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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GAK #artsmagazine may.june/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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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리뷰잡지 사각

김결수 권기자 신은정 황옥희

2020 may. jun. VOL.25

Gallery in Paper

인터뷰 홍콩개인전 ‘Paperlogue’ 송광익 대구콘서트하우스 관장 이철우

2020 05_06 Vol.25


'2020' 소헌 문화예술아카데미 Sohen Culture & Arts Academy

2020 상반기 일정 3. 7 (1토) 공맹(孔孟)과 노장(老莊)-순간과 영원 3.21 (3토) 史記本紀에 나타난 民本思想의 원천 4. 4 (1토) 시(詩)와 인생 4.18 (3토) 한국을 사랑한 세계작가들

2020 소헌문화예술아카데미 회원 안내

홍우흠

(한학자,영남대명예교수)

이하석 (시인,대구문학관장)

최종고 (서울대 법대명예교수)

5. 9 (2토) 우란사죽(友蘭師竹)이야기

류재학

5.16 (3토) 천주교를 통한 동서양의 만남

김정숙

5.30 (5토) 대구언론 100년사 이야기 6.20 (3토) 선비정신,어떻게 받아들일까

·회 원 연회원, 평생회원, 후원회원

이완재

(영남대명예교수,동양철학)

(서예가) (사학자, 영남대명예교수)

최병국 (언론인,경고재 대표)

홍종흠 (언론인, 전 매일신문주간)

·접 수 소헌미술관 사무실 대구시 수성구 화랑로 134-5. 053)751-8089 소헌미술관 E-mail. soheon106@naver.com 인터넷 카페. cafe naver.com/soheon106 ·입 금 연회비 20만원(2020년), 평생회원 100만원, 후원회비 300만원 대구은행 504-10-263824-6. 소헌미술관 ·특 전 일반강좌 및 특별강좌 수강, 강의노트 배부 미술관 특별전 및 기획전 관람 미술관 각종 행사 초청, 아트샵 할인 미술관 출판 인쇄물 및 기념품 증정 서울신포니에타 정기연주회 초대

·문 의 010-2090-2425, 010-9563-6668

※강사의 사정에 의해 일정과 주제가 변경될 수 있습니다.

대구 수성구 화랑로 134-5 (만촌동 1330-33) T053.751.8089 http://blog.naver.com/sohen106


코로나 19로 대구에서도 문화행사가 중단되어서 사각 잡지도 3~4월호 쉬었습니다. 아직도 문화행사는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번호는 그래서 3~4월호 5~6월호의 합본호로 진행됩니다.

'코로나19' 가 감소추세로 전환된 데는 의료인들의 힘이컸습니다. #사각잡지에서도 #응원합니다 # 힘내세요 #함께 극복해냅시다 #의료진덕분에 #덕분에챌린지 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겨울이 가고 우리에게 꽃피울 순간이 다가온다, 꽃잎은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사진: Dot.K


문화예술리뷰잡지 사각

서기 2020년 05 06월 호 (통권 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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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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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로 보는 전시

10 NO.25 표지사진 좌) 김결수 작 [ 갤러리 오모크 ] 우) 박휘봉 작 [대구문화예술회관 ] PHOTO by dot.k

2016년 11월 7일 재등록 대구중, 마00007 격월간지 발행일 2020년 5월 15일 발행인 및 편집장 강금주 관리총괄 조성희 발행처 사각출판 디자인 사각출판 인 쇄 (주) 경북프린팅

INTERVIEW 홍콩서 개인전 ‘Paperlogue’ 을 선보인 송광익 대구콘서트하우스 신임관장 이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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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dot.k

내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 차단 - 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

- 김광균 , 와사등 중에서 -


32 23 23 Gallery in Paper 작가 김결수 권기자 신은정 황옥희 대구근대미술사 - 다시 찾은 거장 이쾌대 32 특별기고 - 대구음악사 - 이병주와 오리엔트레코드

42 Column 공연 - 연극 만들기 2 극단의 탄생 미술과 놀기 - classic blue

46 Review 전시리뷰 2020 유명작가 릴레이전 이다겸 초대전 2020 웃는얼굴아트센터 기획전 시리즈 강지윤전 공연리뷰 국립 발레단 백조의 호수 SWAN LAKE 연대의 딸 (La Fille du Ré giment) 영화 빅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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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휘휘호호’ 2020. 2. 6 - 3.16 신세계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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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림 드로잉전 2020. 4.28 - 5.10 대백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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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왕 QWON SUNWANG 2020. 4. 24 - 6.26 우손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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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온 숲 ' 2020. 3.27 - 7.19 수피아미술관


INTERVIEW 홍콩서 개인전 ‘Paperlogue’ 을 선보인 송광익

Soluna Fine in Hong Kong, 2019 interview

홍콩 초대전 ’Paperlogue’를 통해 종이를 찢거나 기하학적인 구성을 만 들며 반복적인 행위의 실천 과정을 통한 작업방식도 홍콩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마치 도교의 무위를 연상시킨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본지에서는 2019년11월22일부터 2020년 1월9일까지 홍콩 솔로나파인아트(Soluna Fine Art) 초대전을 가진 송광익 작가와 이은주(솔루나파인아트 대표)인터 뷰의 내용을 옮겨왔다.

화가로서의 경력은 어떻게 쌓아 오셨나요?

지난 세월을 반추하면 많은 부침이 있었지 않았나합니다. 대구 계명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규슈산업대학원으로 유학을 간 이후 화가로서의 방향을 확고히 하였고, 한지 재료를 만 남으로써 그 전의 표현주의적인 회화에서 지금의 구축적인 작업으 로 전환하였습니다. 지난 수년간 지속적으로 발표한 “지물(paper things)”이라 칭한 작품의 근간이 그 이후의 결과물입니다. 1980년 첫 개인전 이래로 국내와 일본 화랑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 그 리고 여러 화랑에서의 초대전을 통해 작품을 점차 변화, 발전시켜 나 갔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저의 작업에 획기적인 변신을 추구하였고, 그때부터 한지를 사용한 반입체적 작품을 만들 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은 세월에 따라 스스로 변화, 진화 그리고 발전되어가면서 살아 숨을 쉬는 생물이라 생각합니다. 화가로서의 경력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일본에서 얼마나 머무르셨고 일본에서의 생활이 예술가로서나 특히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나요?

일본에 3년 이상 머물렀습니다. 유학 당시 2014년 일본 문화훈장을 받으시고 현재까지도 화가로 활동 중이신 동경예대 노미야마 교지(野見山曉治)명예교수님과 ‘회색의 화가’로 불리는 비구상화가 사카모토 젠조(坂本善三)교수님께 영향 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노미야마 교수님께 많은 가르침을 받았는데,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셔서 동경 오사카 Form갤 러리에서 개인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기타쿠슈 국제 비엔날레에서 수작상을 받았을 때 심사위원으로 포함 된 분이 노미야마 교수님과 한국의 이우환 작가님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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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과정 설명 부탁합니다.

한지를 손으로 찢고 가위나 칼로 오린 후 이를 화면에 빼곡히 채워 붙여가는 기법으로 작업에 도입했습니다. 나타내고자 하는 패턴에 맞게 잘라 그 평면(--)을 요철형(ㅗㅗ)으로 접어 사용합니다. 그것들을 서로 마주보게 하여 하나하나 접합 하거나 그 위를 덮어 나가는 방법을 교차해 나가면서 작업을 진행합니다. 어떤 작품들은 화면 위에 가로나 세로로 나란한 긴 골을 만들고 거기에 일정한 높이로 얇게 썬 종이를 풀로 붙여 나가 작은 격실로 가득 채웁니다. 전체를 균일한 형태로 연속시켜 수직, 수평으로 연장하면서 장치 방법에 다라 다양성과 가변성을 적용합니다. 색이 들어간 작품은 먼저 한지 윗 면에 아크릴을 칠하고 말린 후 그 종이의 배면을 이용하여 다채로움을 더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의 표면은 마치 그 자체로 하나의 풍성한 숲길이 되고 빛과 바람, 소리에 반응하며 그때그때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많은 시간과 섬세함을 요구하는 작업이지만 제작에 몰입할 때 재료의 물성과 호흡하며 일체감을 맛보는 즐거움에 작업을 합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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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반, 당시의 일본은 한국보다는 세계문화에 대한 개방적 시각이 미술문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환경이었습니 다. 특히 다양한 재료와 이를 응용하는 도구의 사용방법이 여러 형태의 작품제작에 투영된 모습은 현재까지도 기억에 남 습니다. 한국에서는 유화기법만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일본에서 처음 템페라, 프레스코, 목판화, 리노컷 등 여러 기법을 접하였고 지금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금박 템페라처럼 오브제를 사용하여 면과 면의 경계를 미적으로 나누는 기법은 한지를 오려 새로운 패턴을 구성하는데 응용하였고, 프레스코처럼 벽면이 건조되기 전 물감을 표면으로 배어들게 하는 작업은 색을 흡수하는 특성이 있는 한지의 장점을 살려 다채로운 색을 표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한지로 작업해 오셨는데 한지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2000년 이전의 작품은 유채와 더불어 다양한 재료 및 오브제 작품에 치중하였지만 새로운 표현방법에 대한 실험욕구가 들었습니다. 아마도 모든 예술가들이 한번쯤 가지는 의욕일 것입니다. 고인 물은 썩어버린다고 하지요. 작품 또한 시대 와 환경이 변화하면 어떤 모양일지라도 변화에 변화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예술의 진실이지 않을까 합니다. 종이는 인류 문화 발전의 원동으로서 역사성을 지닌 가장 오래된 인간의 발명품입니다.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미술작품을 통해 인류문화와 예술세계를 연결하는 훌륭한 미디어입니다. 동시에 종이는 부드럽고 유연하여 다양한 변화 에 스스로 순응함이 그 특징입니다. 이것은 인간 본연의 심성과 심상에 자연스레 부응함으로써 저의 작품의 성격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주요한 요소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종이가 가지고 있는 역사성과, 유연하고 자유 롭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무수한 종이들이 만들어 내는 공간성과 빛의 굴절, 반투명성, 서로 부딪힘과 흔 들림, 그리고 공간과 공간을 통하게 하는 투과성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특히 닥나무로 만든 한지는 숨을 쉬며 바람, 소 리가 통하는 느낌이 있는 재료입니다. 한지는 소통이 되는 사물이란 의미이지요. 한지는 보이는듯하면서도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보이는 이중적인 매력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서양의 종이가 가질 수 없는 한지만의 특성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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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패턴, 배열의 구성을 어떻게 정하는지 말씀해 주세요. 그것들을 어떻게 결정하고 어디에서 영향을 받나요?

패턴, 배열은 작품을 구성하기 전 전체의 모듈로 자연스레 구축됩니다. 세부적 모양은 작품의 진행과정에서 재료(요철 부분)의 길고 짧음, 선의 각도 등은 먼저 접혀진 요철형의 종이의 조건에 따라 각도가 만들어 지고 이러한 각도에 의해 공 간적 차이가 생성됩니다. 작품의 전반적 변화는 이러한 작업과정에서 확대, 축소, 반복을 거쳐 자연스레 완성의 과정으로 진화합니다. 그리고 의식적 가감을 통해 조형적 완성도를 추진합니다. 외부적, 문화적 영향에 대해 굳이 말하자면 우리의 창틀문양, 팔만대장경, 격자문양, 떡살문양 그리고 이슬람, 중국의 기하학 문양 등 여러 다양한 문화적 요소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느꼈었던 한지에 대한 기억에서도 모티브를 얻었는데, 창호지를 바른 방문 사이로 불어 오는 바람에 문풍지가 우는 소리, 그 얇은 종이의 떨림과 부딪힘, 햇살에 비쳐진 격자 문틀의 직선적 그림자, 문틀 본체와 그림자의 미묘한 음영 관계와 빛의 투과를 느낄 수 있는 하얀 한지와의 조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옛날 한옥 창문 의 문종이 사이에 오려 붙인 꽃모양이나 여러 형태의 기하학적 문양의 요철, 창호지에서 느껴지는 반투명의 느낌들을 표 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빛과 바람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우리들의 기억 속에 다시 각인하는 작업을 하고 있 다고 생각합니다. 조각과 회화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작가의 작품은 조소와 회화의 요소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의 작품을 어떤 분류로 부르시 겠습니까? 작품들은 벽에 걸린 조소들입니까? 3차원의 회화입니까?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것인가요?

현대의 종이작업들은 돌출한 격자모양의 조소, 아니면 3차원 회화 또는 오브제 작품으로 명명될 수도 있지만, 저의 작품 은 좁은 사각형(ㅁ)이 집합되어 면을 형성하고 돌출되기도 하면서 파여 들어간 느낌으로 변화를 만듭니다. 오늘날 예술 작품세계에서 명확한 장르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볼 때 조소, 오브제 또는 3차원 회화로 굳이 나누어 분류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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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대구콘서트하우스 신임관장

이 철 우 작곡가

은퇴할 나이지만 음악에서는 한창 활동할 나이이고 , 작곡가로서 어떤 세계가 완성되어가는 단계가 지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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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새해를 맞아 지난30년간 대구 연극계에서 연극인으로, 기획자로, 예총을 이끄는 예총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종성 예총회장을 만나 평소의 생각과 예총회장으로서 평소 소신을 들어보며 신년 대구예술계를 전망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제공대구콘서트하우스

대구콘서트하우스는 클래식음악의 요람이다. 콘서트하우스가 새로운 관장과 어떤 화음을 만들어 낼지, 코로나19가 지역에서 한 층 기승을 부릴 때 본지는 지난 2월 취임한 이철우 신임관장을 만났다.

대구콘서트하우스는 유네스코음악창의도시 대구의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이다.

앞에서 기초를 잘 닦아놓아서 먼저 나는 좀 더 보충해서 완성시켜야 하는 것을 찾아서 할 생각이다. 대구콘서트하우스 는 대구의 대표적 공연장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시 당국과 협의 해가면서 진행 할 것이다. 그리고 국제적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 속에서 동반자적인 길을 갈 수 있는 폭을 넓힐 수 있는 방향으로 계획 을 세우고 있다. 먼저 콘서트홀에 갖춰야 할 것은 악기이다. 현재 파이프오르간이 없기 때문에 공연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챔버홀에는 바로크음악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프시코드(쳄발로)악기도 준비를 해야 된다. 실내악을 제 대로 할 수 있는 피아노도 구비해야 되고, 역시 바로크시대의 음악을 할 수 있는 오르간, 포지티브오르간 그런 악기가 준비되면 바로크시대 바흐, 헨델 그 시대 이전시대에 작품을 합창곡을 할 때 반주 하는 악기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악기를 기본적으로 갖추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또,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보면 우리 대구시립교향악단이 세계적인 악단들 특히 유네스코창의도시에 악단들과 교류를 19 sagak


하고, 또 자매결연하는 악단들과 세계 속에서 어울릴 수 있도록 노력을 하려고 한다. 콘서트하우스에서 이미 관계를 가 지고 있는 네트워크와 내가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세계적인 친구 네트워크를 현재도 유지하고 있어서 이것을 잘 활용하면 콘서트홀과 상주단체들이 훨씬 더 다양한 방향으로 세계 속에서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은 청중과 연주자와 함께 공유의 폭이 넓게 해주는데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현대음악은 용어 자체가 정의하기 어렵다. 한때는 음악을 별나게 한다는 것, 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작곡가의 주류가 형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과거의 것인데 어떻게 의미를 다르게 해서 표현방식을 현대화 하는 것 또한 현대 음악이라 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모양은 한복인데 천은 한복 천을 하지 않고 완전히 서구적인 프린트 된 천을 가지고 한복을 만들었을 때 그건 전통한복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한복이지만 좀 현대적이라고 할까요? 아마 후자에 가까워지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 다. 그래서 작곡가는 내가 생각하는 세계를, 음악을 표현하여 청중들과 연주자들과 함께 공유의 폭이 넓어지도록 하는 음악 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통해서 마음을 합하고 공감하고 좀 더 많은 사람과 나의 음악을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작곡가로서 더 중요하 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독일 유학을 통해 서구의 좋은 선진 시스템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음악 세계를 형상화 할 수 20 sagak


있었던 좋은 계기였다. 특히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세계적인 친구들을 사귀고 관계를 형성한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 다. 그래서 콘서트하우스 관장으로서 이미 확보해놓은 세계적인 친구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 지역의 작곡가들, 동료들 과 공유하고 또 연주자와 청중들과 공유하면서 우리의 이상적인 세계를 가치있게 만들어 펼칠 수 있을까, 그런 꿈을 자 연히 꾸게 될 수 있게 되었다. 과거 유럽 경우에는 유명한 작곡가들이 큰 콘서트하우스관장을 지냈다거나, 또 그런 공연 시설 속에서 전속 작곡가로 활동을 했던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실지 저 같은 경우 어쩌면 콘서트하우스의 시스템을 통해 음악의 발전에서 약간의 업무가 다르기는 하지만 이상과 진행의 방향은 결국 작품을 더 가치 있게 만들고, 음악 활동의 연속 상에 있어서 다양하 게 활동 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로서 막상 2주가 지나고, 생각보다는 행정 쪽에서 시간을 많이 빼앗기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점차 내 작품을 계 속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안배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쓰는 훈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콘서트하우스는 순수예술의 이상의 폭을 넓게 잡고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 더 높은 지적인 내용을 나눌 수 있는 층이 많아 지도록 하는 것이다.

부르크너, 말러 작품은 작품 한곡이 굉장히 긴 곡인데 그 한 곡을 통째로 이렇게 들으면서 한 번에 이것은 이런 곡이구 나 딱 단순하게 결정하고 이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클래식 쉽지 않다. 하지만 성악이 좋다, 바이올린 소리가 좋아, 첼로가 좋아.... 그런 악기 소리부터 듣다 보면 폭은 넓 어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클라리넷 협주곡을 듣거나, 트럼펫 협주곡을 듣거나, 피아노 협주곡이나 독주를 찾을 것이다 클래식 음악을 선택해서 듣기는 쉽지 않다. 권할 수 있는 것은 KBS FM 눌러놓고 이거저거 듣다보면 훨씬 더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해설까지 나오니까 그게 오히려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뭐부터 시작해라 그것은 그렇게 유효한 방법 으로 권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미나 주제를 생각하지 말고 너무 의무감을 가지고 접근하지 말고 자기 듣고 싶은 대로 좋아하는 악기가 있으 면 그 악기를 집중해서 들어보는 방법을 권하고 싶다. 보편적인 정보를 얻으려면 클래식 방송이 굉장히 좋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콘서트하우스는 천천히 간단한 것부터 더 수준 높은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 모든 단계의 다양한 것을 콘 서트 하우스에서는 제공을 하려고 노력을 할 것이다. 또 클래식음악을 접근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 예를 들어 찾아가는 음악회라든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벼운 클래식 소 품들을 제공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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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시내 인구가 이백오십만 된다고 했을 때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음악애호가가 접근하고 있는 그런 음악애호가 관 심이 있는 층을 3% 전후로 보면 7~8만이다. 이것을 5%까지 올릴 수 있도록 목표를 가지고 있다. 시민들을 위해 보편적 시설도 있어야 하고 콘서트하우스 같은 시설도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의 삶의 목적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 기 때문에 결국 콘서트하우스는 그런 역할을 책임져야 하고 거기까지 도달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제공해야 하는 중요한 직책과 사명감을 느끼게 된다. 연장선상에서 대구가 음악창의도시이지만, 음악을 중심으로 이것을 끌어올리면 모든 예술 분야가 동반 성장할 수 있다 고 본다. 음악이라는 꼭짓점을 통해 넓게 미미하게 펼쳐있는 다양한 관계를 모을 수 있는 시작을 음악창의도시라는 선 물로 받았다고 생각한다.

신임관장은 예전에는 예술 행정 쪽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 작품이 어느 정도 누적이 되다보니, 작곡을 해놓은 작품을 예술 행정을 통해 오히려 세계적으로 펼칠 수 있는 시점이 와있다는 생각이 들었 다고 한다. 말러처럼 세계적인 작곡가이면서 시스템의 수장으로서 개인적으로 예술가로서,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이상적인 예술을 만날 수 있도록 대구콘서트하우스가 시민들에게 훨씬 더 삶의 질이 높아지고 고상해지는 공간으로 변신하기를 기대해본다. 인터뷰 사진 강금주

이 인터뷰는 유튜브채널 사각테레비에서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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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in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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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결수

Labor&Effectiveness

나의 작업은 삶의 현장에서 버려진 잔해 (object) 를 통해 노동 (labor)- 효과 ( 성 ) (effectiveness) 은 삶의 현장을 관조하면서 발견하는 것이다 . 노동효과를 발견하기 위 해 전제된 오브제의 조건은 ‘세상으로부터 세상에 버려지고 던져진 것들’ 이다 . 오브제의 ‘밖’에서 살펴지는 이미지란 본디 순간적으로 생성되었다가 사라지는 모 든 사건처럼 허망한 존재일 따름이다. 따라서 오브제의 ‘안’에 집중한다. 공간에 나타나는 설치와 평면작업은 우주 속의 생명들이 엮어가는 삶의 터전의 이 야기에 또 다른 예술가의 노동을 가미하여 생명을 위한 건축과 대자연의 순리를 새 삼 음미하게 하고자하는 것이다. -작업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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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결수 전 ( 오모크 갤러리 ) 설치장면 _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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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자

Time acculatrion

2018 년부터 시작된 작업들은 작가가 선별한 질감이 다른 지면紙面들 위에 인위적으로 물감을 뿌리고 떨 어뜨려 점착시킨 후 띠어내어 틀 안에 차곡차곡 쌓아올린 뒤 일정한 간격으로 절단한 단면을 캔버스에 나열 하는 것이다 . 시간이 흘러 응고된 물감은 쌓여 에너지가 보태어져 작가의 감각으로 재구축되는 것이다 . 그간 꾸준히 흘러왔던 물감은 작가가 마련한 지면에서 그 관성이 멈췄고 , 쌓인 에너지는 절단되어 작가의 임의적인 시간의 수평적 방식으로 열거되며 작가와 내밀했던 시공간을 과감히 드러내 물감의 층리로 펼쳐 지고 있다 . 이것이 작가 권기자의 시간을 조형한 , 추상의 방식이다 . 그러기에 그간의 사연을 품은 표정들 은 지면의 종류에 따라 더욱 다양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 조형된 형태와 색들의 조합은 황홀하게 아름 답기도 , 불같이 뜨겁게 느껴지기도 , 수줍게 또는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 같기도 , 단색으로 차갑고 냉정하 게 정리된 듯 보이기도 한다 . - 고연수 평론가의글 ' 시간의 조형 , 추상하다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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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acculatrion_123cmx104cmx2cm_Mixed Media on Panel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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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정

ALLEGORY

주변에서 나타나고 보여 지는 ’ 선 ‘의 관계성을 감정의 관계 , 사유의 관계 , 뜻밖의 관계 , 상상의 관계로 보고 있다 . 화면에 나타난 감정의 생성과 소멸의 반복적 행위는 무엇을 그리느냐 보다는 반복적 패턴에 의한 그리고 , 오려내어 붙이면서 떼어내고 지워내는 행위자체는 ‘나’ 와 ‘외부세계’ 와 얼마만큼의 조화로운 관계로 ‘나’ 의 기 록이라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다 . 선을 정교하게 그리고 (drawing) 커팅 후 페인팅 , 사포질로 마무리 되는 행위는 평면의 종이로 시작해서 수많 은 조각조각의 패턴들이 하나가 되어 출렁이는 바다의 심연 , 첩첩 산중이 내 품고 있는 자연의 위대함을 끄집어내 어 추상적 회화로 안과 밖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 . 표현의 유일한 원칙은 미적 산물이 감각을 발달시켜 외부세계와 얼마만큼의 조화로운 관계를 발달시켰느냐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고 감각이 세련되게 길러지면 그런 감각을 미적 작품으로 표현하게 된다 . - 작업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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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정작 ALLEGORY 120.0x90.0cm mixed-media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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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옥희

눈이 아닌 마음으로 읽어야하는 작품

작품에서 보이는 더 없이 깊고 어둡고 검은 산 , 검정의 숲을 이룬 산맥이지만 그 산은 고요하고 부드럽고 따뜻하며 , 그래서 애써 슬프다 . 화면의 감정과 혼재된 무채색들은 그렇게 고요한 검정이고 , 부드럽고 따뜻한 빨강이며 그래서 애써 슬픔을 참으며 무한의 감정을 이입시키는 무채색이다 . 그렇기에 단단하고 의연하다 . 작품을 보이는 것에만 의지하면 단순히 검정과 무채색의 혼합에 의한 산맥이고 숲이 겠지만 마음으로 본다면 어두운 산맥 너머는 오랫동안 기다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단단해 지고 , 그 단단함이 활활 타 오르는 인생의 희노애락이 있다 . 나는 헛것의 세상에서 자연이라는 현실을 통해 작가로써의 현실적 인식을 제공한 다 . 과감한 화면의 구성과 투박하고 거친 색의 사용은 스스로의 기억을 관통한 시간들을 통해 불가능하지만 이를 구 현하고자 하는 치열한 작가적 상상력으로 구축해 간다 . 현실과 비현실 , 나와 너 , 정상과 비정상을 가로지르는 어떤 공간이고 사이이며 , 틈이자 여백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 나는 그 여백 안에서 가치를 물으며 마음의 눈으로 묻는다 . 그 헛것의 세상이 어떠하냐고 , - 작업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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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my Memory, Oil on Canvas, 50X50Cm,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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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대구근대미술사

자화상,1930,화판에유채,23.5x17cm

다시 찾은 거장 이쾌대

김 태 곤 | 대백갤러리 큐레이터 미술사

한국 근대화단에서 서양화가 이쾌대가 본격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월북·납북 예술인 해금 조치’ 이후부터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대구 근대미술사에서 도 이쾌대나 그의 형 이여성을 온전히 부를 수도 없었고, 작가연구는 엄두도 못 냈었 다. 하지만 ‘월북·납북 예술인 해금 조치’ 이후 유족에 의해 엄밀히 보관되었던 작품 들이 일반인에게 공개되면서 오늘날 미술계는 그동안의 일제강점기와 해방기 미술 사를 새롭게 정리하고 있다. 월북 전인 1948년에 이쾌대가 그린 군상 연작의 웅장한 구성이나 드라마틱한 설정은 당시 국내화단에는 서사적 회화 양식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기에 그의 작품들은 시대적 의미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그가 당대 최고의 화 가였음을 비로소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의 이름 앞에는 ‘잊혀진 거장’, ‘거장의 귀환’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그의 가치를 뒤늦게나마 인정하고 있다. 32 sagak

인물화 ( 동아일보 3 등상 )


Lee Kwaedae 1991년 《월북화가 이쾌대전》(서울 신세계미술관)을 시작으로 부산(눌원갤 러리), 대구(동아미술관)로 이어지는 순회전을 가졌으며, 1993년 수원(수원 문화회관), 1995년 대구(대백프라자갤러리) 전시를 통해 그의 삶과 작품세계 를 다채롭게 공개해 나갔다. 그리고 2011년 개관한 대구미술관에서는 《이쾌 대전》을 2015년 덕수궁미술관에서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를 개최했다. 이처럼 대규모 전시를 통해 암울한 시대를 딛고 예술혼을 꽃피운 그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쾌대(李快大 1913~1965)는 경북 칠곡군 지천면에서 대지주인 아버지 이 경옥(李敬玉)과 어머니 윤정열(尹貞烈)의 이남 사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 관은 경주, 그의 부친은 대한제국 시절 창원 고을 원을 지내기도 했던 대지주 였다. 그의 형 이여성은 복식사 분야를 개척한 학자이자 진보적 민족주의 정 치가이며, 제국주의의 폐해를 고발한 언론인이자 상고시대부터 조선 시대까 지 역사를 그림으로 표현한 역사화가로 1948년 월북한 당대의 저명인사였다. 그와 이쾌대의 12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통해 두 사람의 지적인 영향 관계를 추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 될 것이다. 그는 1921년 칠곡군 신동소학교에 입학했다가 1923년 대구의 수창보통학교 로 전학하여 1928년에 졸업했다.(대구 출신의 서양화가 이인성과 동기동창) 그리고 1928년 서울 휘문고보로 진학하면서 중학동의 할아버지 댁에서 생활 했으며, 1학년 때 미술선생이던 화가 장발(張勃)을 담임으로 만나 처음으로 미술을 가까이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1932년 제11회 《조선 미전》에 〈정물〉을 출품해 입선하고, 그해 가을에는 제3회 《전조선 남녀학생 작품전람회》 중등 회화부에서 〈자화상〉으로 3등 상을 받아 신문 지상에도 소 개되기도 했다. 《조선미전》에 입선하고 《학생전》에서 상을 탄 1932년은 이쾌 대에게 여러모로 의미 있는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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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창작에 열중하는 수업기 이쾌대 하 ) 이쾌대 가족사진


집에서 반대하던 미술도 그가 두각을 드러내자 명분을 얻게 되었고, 그의 아내 유 갑봉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으며 이듬해 본격적인 미술수업을 위해 아내와 함께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동경 제국미술학교에서 체계적인 미술 공부를 마친 그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 다. 1938년 제2회 《재동경미술협회전》 출품을 시작으로 다음 해, 제26회 《이과전》 에는 입상했다. 《재동경미술협회전》에는 2회부터 6회까지 지속적인 출품이 이루 어졌다. ‘창작미협’ 출신의 이중섭과 문학수, ‘독립미술가협회’의 진환, ‘신제작파’의 최재덕 등과 함께 1941년 결성한 ‘조선신미술가협회’는 동경 창립전에 이어 서울 전 시를 이어가며 암울한 시기에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를 견지하면서 향토적 서정을 담아내려고 했던 화가들의 집결체였다. 그는 이를 통해 화가로서의 시대적인 사명 감인 ‘최소한의 저항’을 펼칠 수 있었다.

시계반대 방향으로 ) 1. 1940 년대초의 이쾌대 2. 재동경 미술학생전 , 재동경미술협회전에서 입선한 ' 습작 A' ,'2 인초상 ' 에 관한 신문기사 (1939) 3. 1945 년 해방축하 조선미술협회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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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인도,1 943, 캔버스에 유채, 60x70cm(제3회 신미술가협회전 출품작) 하 )걸인, 1948, 캔버스에 유채, 60.7x9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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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반대 방향으로) 1. 만추, 1949, 캔버스에 유채, 60x40cm(제1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출품작) 2. 두루마리 입은 자화상, 1948-1949년무렵, 캔버스에 유채, 60x72cm 3. 카드놀이하는 부부, 캔버스에 유채, 73x91.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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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군상4, 1948, 캔버스에 유채, 216x177cm

우)해방공간의 정경을 담은'군상1-해방고지'앞에선 이쾌대

1945년 해방과 함께 이쾌대는 ‘조선미술건설본부’에 가입한 후 《해방기념문화대축전》 출품에 이어 ‘독립미술가협회’를 결성(1946)과 ‘조선문화단체총연맹’ 산하의 ‘조선조형예술동맹’ 회화부 위원으로 새로운 그룹 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전 조선문필가협회’ 준비위원으로 활동하며 《해방 일주년 기념전람회》와 《독립미술가협회전》에도 각각 작품을 출품했다. 동시에 1946년 북한을 직접 방문해 혁명적 과제의 제작만 강요하는 「공산주의 노선의 북한 미술계」를 목격하고 그 실상 을 밝히는 글을 발표하고 이듬해에도 북한을 방문하고 작성한 「북조선미술계 보고」를 『신천지』 2월호에 싣기도 했다. 1948년에는 ‘성북회화연구소’를 개설하고 작품 제작뿐 아니라 후학들을 양성하는 활동을 통해 김서봉, 김창열, 심죽자, 이영은, 전뢰진, 이용환 등과 같은 작가들을 배출해 내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그의 대표작인 〈군상Ⅰ-해방고지〉와 〈조 난〉, 〈걸인〉과 같은 대표작을 완성했다. 해방 후 처음으로 개최된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추천작가로 선정되어 〈추과(秋果)〉를 출품했으며, 이듬해 4월에는 홍익대학교 미술과 강사로도 활동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 하자 어머니 병환으로 인해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머물다 ‘조선미술동맹’에 가입 당해 스탈린과 김일성의 초상을 그 리는 부역을 강요당했다. 이러한 이유로 9·28 서울수복이 있기 전 북한으로 넘어가다 국군에게 생포되어 ‘부산 100수용 소’와 ‘거제 포로수용소’에 수감 되었다. 그 후 1953년 휴전이 되자 포로 교환에서 북한을 선택하고 만다. 이후 그는 ‘건 설성 미술제작소’와 ‘조선미술가동맹(평양시)’ 화가로 활동하다가 1965년 위 천공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였 다. 은 이것은 북이나 남쪽 모두 크나큰 손실이었다. 우리나라의 근대화가들 모두가 그렇지만 이쾌대 역시 질곡의 세월 속에서 자신이 추구했던 진정한 예술을 위한 온몸으 로 표현했던 진정한 거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37 sagak


특별기고 - 대구음악史

오리엔트레코드사 ( 향촌문화관 , 2020.1.11.)

이병주와 오리엔트레코드

글 | 음악사연구가 손태룡 음반레이블/옹달샘 추억의 옛노래

대구에서 가장 먼저 음반을 제작한 곳은 오리엔트레코드사이다. 1947년 오리엔트레 코드사를 설립한 이병주(1920.8.20-2013)는 경북 성주군 월항면 한계리에서 부친 이수근과 모친 조봉선 사이 1남4녀 중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칠곡의 개신교 집안의 대농가였던 아버지는 외동아들을 시골에서 공부시키고 자라게 할 수 없다며 1924년 5살 때에 대구 중심지로 이사를 왔다. 대구로 이사 온 그는 중구 남성로 제일교회에서 운영한 유년주일학교에 다녔다. 이곳은 지금의 유치원과 같은 곳이었다. 그해 계성학교 음악교사로 부임한 박태준선생을 유년주일학교에서 만나 찬송가 등 의 노래를 배워 부르면서 음악적 영향을 받게 된다. 아울러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이 듬해(1925년)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에 유년주일학교의 어린이대표로 교회에서 박태준의 동요 ‘오빠생각’ 등을 연주하면서 자랐다. 수창초등학교(1925-1931, 제17 회 졸업) 재학 중에도 계속 바이올린을 비롯하여, 기타, 만도린 등 여러 가지 악기를 인터뷰하는 이병주 (1990 년 1 월 17 일 )

다루었다. 졸업 후 계성중학교에 진학하여 3년간(1931-1933) 재학 중 박태준선생으 로부터 음악을 배우다가 대구상업중학교로 전학하여 야구부에서 투수로 활동하다가 졸업하였다. 38 sagak


발행년도와 상관없이 가나다순) 1.감격의 꽃다발(백년설)-오리엔트레코드(1953) 2.감격의 뉴스(심영옥)-오리엔트레코드(1954) 3.거리의 천사(박신자)-오리엔트레코드(1955) 4.고향편지(신세영)-오리엔트레코드(1953) 5.굳세어라 금순아(현인)-오리엔트레코드(1953) 6.귀국선(신세영)-오리엔트레코드(1947) 7.귀국선(신세영)-오리엔트레코드(1949) 8.나의 등대(이인권)-오리엔트레코드(1951) 9.내아들 소식(권정애)-오리엔트레코드(1952) 10.내아들소식(권정애)-오리엔트레코드(1952) 11.뉴코리안(오준희)-오리엔트레코드(1956) 12.달보고 별보고(박신자)-오리엔트레코드(1954) 13.로맨스항로(신세영)-오리엔트레코드(1952) 14.마음의 고향(백년설)-오리엔트레코드(1957) 15.망향의 사나이(남인수)-오리엔트레코드(1949) 16.무영탑 사랑(이인권)-오리엔트레코드(1952) 17.미사의 노래(이인권)-오리엔트레코드 18.병원선(신세영)-오리엔트레코드(1958) 19.부산야곡(신세영)-오리엔트레코드(1959) 20.불란서인형(장세정)-오리엔트레코드 21.사랑의 복지(장세정)-오리엔트레코드(1953) 22.샌프란시스코(장세정)-오리엔트레코드(1953) 23.신라제 길손(백년설)-오리엔트레코드(1951) 24.쌍가락지 논개(남성봉)-오리엔트레코드(1953) 25.아내의 노래(심연옥)-오리엔트레코드(1952) 26.아리랑(방초향, 남애월)-오리엔트레코드(1951, K801) 27.애원송(김용태)-오리엔트레코드(1952) 28.여인혈서(권정애)-오리엔트레코드 29.영넘어 고개길(신세영)-오리엔트레코드(1953) 30.옛마을(백년설)-오리엔트레코드 31.이별의 탱고(현인)-오리엔트레코 32.전선야곡(신세영)-오리엔트레코트R815, 1950) 33.전선의 달(이인권)-오리엔트레코드(1951) 34.전선의 하룻밤(방초양)-오리엔트레코드(1950년대) 35.젊은 지평선(방초양)-오리엔트레코드 36.정열에 하와이(신세영)-오리엔트레코드(1952) 37.즐거운 목장(장세정)-오리엔트레코드(1953) 38.청춘랩소디(신세용)-오리엔트레코드(1952) 38.청춘무성(남인수)-오리엔트레코드(1953) 40.추억의 백마강(이인권)-오리엔트레코드(1951) 41.추억의 사십계단(신세영)-오리엔트레코드(1954) 42.추억의 탱고(김용태)-오리엔트레코드(1954) 43.타향일기(신세정)-오리엔트레코드 44.푸른달밤(신세영)-오리엔트레코드(1951)

남선악기사_향촌문화관(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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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니스트로서의 음악활동

대구상업중학교 재학시절인 1935년부터는 신명학교 오른편 달력 공장에서 정사장이 만들어 운영하던 애락원(樂友會)이라는 악단 에 최연소 기타니스트로 들어가 일제에 의해 1940년 해산될 때까 지 함께 활동하였다. 이들은 주로 대구극장 등의 악사(대구우체국 장 조씨, 교회의 바이올린 박장로, 플루트 최씨, 기타 이병주 등)들 로 무성영화의 반주음악을 담당하였고, 아울러 대구공회당에서 기 관단체의 행사에 의식용 연주 등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 (1946.1.15.)에도 흩어진 애락원 단원들을 수습하여 대구의 첫 실 내악단격인 7인조 악우회(아코디언 육병곤 등)를 결성하여 활동을 이어나갔다. 기타를 다루는 젊었을 때 (1947 년 ) 의 이병주 _ 대구일보 , 1990.7.17 트리밍 하여튼 당시는 일제의 만주 침략과 중일전쟁으로 인하여 징병제 가 실시되면서 군에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병주는 경상감영 공원 앞 대구병무청 주위에 위치한 16헌병대에 전속 악단의 조직을 제안하여 결성하게 된다. 그것은 1943년 일제의 강제 징용을 피하기 위해 일본 헌병대의 주선으로 20여명의 위문공연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던 것이다. 당시 구성단원은 남녀 가수 4명(여자가수 김광자, 이옥자, 김화자와 남자가수 이응기)과 연주자 6명, 그리고 사회겸 만담 남녀 각 1명과 스태프 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일본군 부대와 안동지역 탄광의 산업전사들을 위문공연하기 위해 다녔다. 이러한 연주활동을 다니던 중 1945년 8월 해방을 맞은 그는 모든 재산을 투자하여 대구 최초의 백화점이었던 이비시야 (イビシヤ, 중앙로와 동성로 동아백화점 사이, LG패션 자리) 입구 적산가옥 5층 건물에 남선악기점(이후 화정악기점으 로 개명)을 개업한다. 2년 후 중구 화전동 자유극장 옆 건물(중구 화전동 14-7번지, 미리내 수입의류 매장)을 구입하여 이사한 1층에는 악기점을 겸해 오리엔트레코드사를 차렸고, 2층에는 오리엔트다방을 열었다. 다방은 이병주가 박시춘의 가정형편을 고려해서 그의 아내 김예비가 운영하도록 허락하였던 곳이다. 이 다방에서 조용한 새벽시간대에 SP음반을 제 작하였다. 오리엔트레코드사의 SP음반 제작

이병주는 1947년 가을부터 대구에서 오리엔트레코드사를 설립하여 많은 가요곡을 취입하여 발매한다. 첫 작품으로는 해방 이후 당시 해외에서 배를 타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모습을 보고 1948년에 ‘귀국선’(신세영과 진방남 녹음, 이인권 재 취입)을 제작하였다. 아울러 ‘이별의 탱고'(현인), ‘신라제 길손'(백년설), ‘쌍가락지 논개'(남성봉), ‘아마다미야'(이남순) 등 많은 가요곡들을 작곡하거나 편곡하였다. 또한 한국 최초로 󰡔기타교본󰡕(서울:유니온출판사, 1947)을 발간하여 기타붐 을 주도하였다. 이 무렵 평양에서 조선 최대 규모의 악기점인 상신악기점을 경영하던 김철준과 김영준 형제가 대구로 내 려와 유니온레코드사를 설립하여 송민도의 ‘애수' 등의 음반을 출반하던 상황이었다. 1948년부터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는 ‘꽃피는 진주땅'(고화성), ‘인생술잔'(강남달), ‘쌍가락지 논개'(남성봉), ‘죽령고개 30리'(황영자), ‘로맨서 항로'(신세영), ‘미사의 노래'(이인권) 등을 취입하여 출반을 준비하고 있을 때 1950년 6‧25전쟁 이 발발하였다. 전쟁이 일어나자 전국의 예술인들이 대구에 피란민으로 몰려들면서 대구가 대중예술의 중심지가 된다.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는 이미 제작된 음반과 ‘굳세어라 금순아'(현인), ‘전선야곡'(신세영), ‘꽃마차'(진방남), ‘님 계신 전 선'(금사향) 등을 제작하여 날개 돋친 듯 전국적으로 판매되었다. 당시 이병주는 국방부 군예대의 문예부 일을 보던 작곡 가 박시춘 그리고 강사랑, 이재호 등과 의기투합하여 신보를 제작하였던 것이다. 이 무렵, ‘굳세어라 금순아', ‘전우야 잘 자라' 등이 대구에서 탄생한 노래이다. 이어 작사가 손로원, 청진 출신의 이인권이 오리엔트레코드사에 가세하였다. 이렇 게 해서 탄생한 음반이 바로 ‘님 계신 전선'(금사향), ‘미사의 노래'(이인권), ‘단장의 미아리고개'(1956, 이해연) 등의 노래 40 sagak


좌) 방태원의 취입장면(1954) 우)금사향의 '님 계신 전선'(1952)을 취입하는 장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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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사진) 이병주와 가수 고화성(대구MBC, 2007년)

를 비롯해, 신세영, 이남순, 도미, 남성봉, 나애심 등이 대구에서 첫 취입을 하게 되었다. 이는 한국가요의 맥을 잇는, 이 른바 1950년대 가요의 중심지로 대구가 부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가요대회와 음악학원을 통한 가수 선발

이병주는 1953년 3월 대구극장에서 있은 제1회 가요대제전을 비롯하여, 오리엔트레코드사 제7주년 기념으로 숨어있는 대중예술가의 등용문을 열고자 전국신인남녀전속가수 선발을 위해 콩쿨대회를 그해 12월 1-2일 양일간 대구극장에서 개 최하였다. 또한 1954년에도 전국신인가수선발대회를 대구극장에서 개최했는데, 이 대회에서 신영일, 방운아, 도미(都 美)가 각각 1-3등으로 선발되었다. 1958년 5월에는 지금은 없어진 남산동의 대도극장에서 오리엔트레코드사의 취입가 수선발대회를 개최하여 남일해가 발굴된다. 남일해는 이후 ‘찾아온 산장', ‘이국땅', ‘첫사랑 마도로스' 등을 히트시켰으며,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는 등 195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이렇듯,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는 음반 출반은 물론, 가요 콩쿨대회를 열어 가수들을 등용시켰다. LP음반의 움직임으로 1958년에는 대구에서 완전히 SP음반의 사업을 접고 이병 주음악연구소를 개소했으며, 이듬해인 1959년에는 당국의 인가에 의해 동성로 동아백화점 자리에 대구음악학원(작곡 추 월성, 아코디언 안창구, 기타 장태화 등)을 탄생시켰다. 이로써 경북지역의 연예인 육성이 용이했으며, 대구음악학원을 통해 박재란, 방운아, 도미, 남일해, 강남달, 고화성 등 쟁쟁한 가수들이 배출되었다. 초창기 대구에서 이병주에 의해 오 리엔트레코드사가 설립되어 음악활동의 활성화를 꾀하고 음반제작을 통해 전국에 대중가요를 보급하였음을 상기할 때, 이는 한국연예사의 획기적인 일임을 알 수 있다. 당시 1947년부터 1956년까지의 SP음반 제작을 통해 이어지는 본격적 LP음반시기인 1960년대 우리나라 대중음악 보급에 영향을 직접적으로 끼쳤고, 결국 오늘날의 대구연예활동의 바탕을 이 루었던 점에서 그를 높이 평가한다. 1950년대 우리나라 음반시장은 최악의 침체기였지만 오리엔트음반 과 그리고 대구가요계로는 최고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당시 시 대상황인 1950년 6·25전쟁을 소재로 담은 노래는 대구에서만이 볼 수 있는 점을 미루어볼 때, 대구가요계가 우리 대중문화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고 하겠다. 이러한 대중음악 활성화 중심에 바로 이병 주가 제작 발매한 오리엔트레코드에 있는 것이다. 아울러 가요대회와 음악학원을 통해서 많은 신인가수를 키우고 등단시키게 되었음에 우리 는 주목해야 한다. 41 sagak


Column | 공연

연극 만들기 1

배우의 탄생 글 김태석 예전아트홀 대표·극단 예전 예술감독

연극의 3대 요소는 배우, 희곡, 관객 이라 한다. 즉 최소한 이 3가지가 있어야 연극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으라면 단연코 배우라 하겠다. 연극은 배우예술이라 하지 않는가. 물론 희곡도 매우 중 요하다. 그러나 대본 없이 하나의 주제만 제시하고도 배우들끼리 즉흥적으로 연극을 만들 수 있다. 즉 연습을 하면서 희 곡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관객이 없다면 연극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관객 또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서 마치 버스킹을 하듯이 배우들이 공연을 하면 된다. 연극을 만들 수 있다면 공연할 장소가 있다 면 관객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러면 혹자는 극장이 있어야 되지 않는가 라고 반문한다. 그렇다. 극장이 있어야 한 다. 그러나 이 역시 배우와 관객이 만나는 곳이라면 그게 바로 극장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던 배우가 없다면 연극을 만들 수가 없다. 어떠한 형태로든-그것이 살아있는 인간이든 목각인형이든 배우를 대신할 오브제가 있어야 한다. 따라 서 연극을 성립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배우인 것이다. 우리는 배우의 자격을 논할 때 “누구나 배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나 배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연기라는 것은 삶을 영위해나가는 수단-말과 행동-을 사용해서 관객들에게 시청각적으로 전달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지금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우를 할 수 있다. 그의 삶 속에서 이미 배우의 연기 수단을 익혀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배우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나 배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란 무슨 의미일까? 이 말은 배우의 자격이 있다는 것만으로 배우가 되기 위한 필요충 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배우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연극배우는 그러하다. 우리는 TV 탤런트도, 영화배우도, 연극배우도 모두 일컬어 배우라 칭한다. 그러나 TV와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와 연극 배우에게는 큰 차이점이 있다. 그 차이점은 바로 관객의 형태이다. TV와 영화의 관객들은 TV화면과 스크린을 통해 배 우를 본다. 그러나 연극관객들은 배우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을 쉬며 배우의 연기를 경험한다. 다시 말해 TV와 영화 배우들은 그들의 연기가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도 모르고 오직 카메라의 초점 안에서 연기한다. 그리고 한 씬 한 씬 부분적으로 작게는 몇 달, 많게는 몇 년에 걸려서 촬영한다. 만약 실수를 하면 다시 연기하고 그것을 또 다시 촬영하 면 된다. 그러나 촬영을 마쳤다고 그것이 바로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편집이란 기계적 과정을 거쳐서 다시 한 번 더 단련되어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보여진다. 그러나 연극배우들은 수많은 관객들의 눈과 귀를 의식하면서 연기를 한 다. 며칠을 공연하더라도 마치 처음 공연하듯이 지금 바로 여기서 공연을 하는 것이다. 또 다시가 없다. 틀리면 틀리는 대로 막이 내릴 때까지 연기를 이어가야한다. 몇 번의 반복된 공연이라도 최상의 연기를 관객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연극배우가 만들어진다는 말의 출발점이자 “아무나 배우가 될 수 없다”라는 말의 의미이다. 42 sagak


극단예전 , 2019 예전연극열전 4 ' 산불 '

연극배우는 ‘지금’ ‘여기서’ ‘바로’ 최상의 공연을 관객들에게 제대로 보여주기 위하여 어떻게 하여야할까? 어떻게 하면 1시간30분에서 2시간이 넘는 공연의 대사를 잊어 먹지 않고 관객들의 귀에 속속 들어가게 하고 배우들 간의 약속된 연 기의 교합을 어떻게 하면 최상의 타이밍과 긴장감으로 표현하여 관객들의 극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고 많은 스텝들과의 무언의 약속을 어떻게 무대에서 실수하지 않고 수행하며 그런 와중에도 배우 자신만의 창조적인 해석에 바탕을 둔 나 만의 독창적인 연기를 만들어 관객에게 전달할 것인가? 그래서 어떻게 배우예술의 극치를 보여줄 것인가? 이렇듯 배우의 연기는 현재 극장에 있는 관객의 존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고 그래서 배우들은 관객을 인식하고 관객 과의 교감을 하면서 그러면서도 관객을 의식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TV텔런트, 영화배우와 다른 많은 훈련 과 연습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관객들에게 대사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발성과 발음 훈련, 정확한 동작과 감정표현으로 표현을 풍부하고 극대화하기 위해 신체와 감정 훈련을 지속적으로 하고 다양한 표현 양식을 익히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연기 워크샵을 수료하고 타장르의 무대예술들을 익히는 등 개인의 연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훈련을 수행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훈련과 함께 연극 작품에 캐스팅되어 두 달 이상 매일 2시간 이상씩 대사를 외우며 작품 속의 다른 배우들과 리허설 즉 작품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와 아울러 내가 맡은 역을 나만의 방식으로 창조적인 연기를 완성 하기 위해 자신만의 연기철학과 작품분석력 그리고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력을 높이기 위한 인문학적 교양을 쌓기 위 한 노력을 한다. 이렇게 해서 연극배우만이 만들 수 있는 배우예술이란 경지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배우예술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오래 걸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무대의 화 려한 모습과 관객들의 갈채에 반해 배우가 되고자 했다가 경제적인 어려움과 주의의 만류 그리고 인내력의 부족으로 배우를 직업으로 하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배우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배우가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겪고 훌륭한 연극배우가 된 사람들은 연극배우로서 뿐만 아니 라 자신의 연기적 능력을 TV드라마에서 영화에서 그리고 다양한 연기적 능력을 요구하는 프로그램에서 활용해 인기와 경제적 부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연극배우는 예술가다. 예술가의 길은 구도자의 길과 같다. 연극배우 또한 배우예술가가 되기 위해 구도자와 같은 심정 으로 끊임없이 자신과 남의 삶을 탐구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서 진정한 자아와 자신만의 창조적인 예술성을 찾 고 이를 통해 관객들을 감동시키고 관객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어떤 연극인이 말씀하셨다. “ 이 세상 모든 사람 은 배우의 스승이요 배우는 모든 관객들의 스승이다” 라고. 43 sagak


Column | 미술과 놀기

classic blue 글 장민 | 디자이너

위대한 청색 카니발리즘 Great blue cannibalism , 테네시윌리엄즈 에게헌정하다 .Tribute to tennessee williams

세계적인 색채연구소 팬톤에서는 매년 올해의 컬러를 선정하여 발표한다. 매년 색채 트렌드에 대한 세밀한 연구와 분석을 통해 이에 맞는 색을 선정하게 되는데, 2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해당 컬러는 그 해 수많은 분야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쳐왔다.

2020년을 맞아 팬톤에서 선정한 올해의 컬러는 바로 ‘클 래식 블루 Classic blue(팬톤 색상 번호 19-4052)’, 해 질 무렵 하늘을 연상케하는 차분하지만 자신감 있고, 타인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주는 색상이다. 팬톤에서 선정한 올해의 컬러는 그 해 수많은 디자인 계통에서 아이코닉 한 컬러로 쓰이게 되는데, 미술사에서도 이런 아이코닉 한 블루 컬러가 존재한다. 그 컬러의 공식적인 명칭은 인터내셔널 클레인 블루(International Klein Blue) 라는 색상이며, 줄여서 IKB라고 불린다. 이 IKB 컬러는 짙은 울트라마린 색의 컬러로써, 프랑스의 화가 이브 클랭이 특허를 받아 작품 활동을 했었던 클랭의 대표적인 블루 컬러이다. 클랭은 이탈리아의 아시시를 여행하던 중 조토의 프 레스코화를 보면서 하늘로부터 자신에게 내려준 유일한 색조인 청색의 계시를 받았다고 했는데, 이후 클랭은 젖은 상태 이건 마른 상태이건 동일한 밝기와 농도를 지닌 블루 컬러를 만들기 위해 화학자들과 함께 고착액인 에틸알코올과 에틸 아세테이트에 건조시킨 로도파엠에이(RhodopasMA)라는 푸른 안료를 섞어 IKB 컬러를 개발하게 되었다. 클랭은 IKB 컬러를 사용한 수많은 회화 연작을 완성하였는데, 그 수는 자그마치 200여 점에 달했다. 한편으론 IKB 회 화 작품들은 비물질적인 것들을 회화화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는데, 그는 파란색을 가장 순수하고 무한하며 사물의 무 (無)에 가까운 색이라고 여겨, 푸른 하늘과 같은 비물질적인 것들을 회화화하기 위한 작업들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모노크롬 회화 이론에 대해 1959년 소르본 대학의 초청 강연에서, ‘색채에서 주관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44 sagak


청색시대의 인간 측정학 Anthropométries de lépoque bleue , 1962

그것을 형이상학적인 오브제로 전환시킴으로써 색채를 객관화하는 시도’라고 설명했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작가주 의를 철저히 배제하기 위해 작가의 개성이나 감정이 드러날 수 있는 붓의 사용을 지양하고 거대한 롤러나, 타인의 신체 따위를 이용한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클랭의 작품 활동으로는 1960년 5월 파리의 국제현대미술갤러리에서 열린 <청색 시대의 인간측정학 >(Anthropométries de lépoque bleue)이라는 퍼포먼스가 있는데, 그가 ‘과도하게 심리적인 도구’라며 거부하던 붓 대 신, 여성 모델의 나체에 IKB 색상의 물감을 묻혀 빈 공간에 회화를 완성함으로써 미술계에 국제적인 파란을 일으켰던 사 건이 대표적이다. 클랭의 인간 측정 시리즈는 모델이라는 존재가 그림에 남긴 흔적을 통해 1차원적인 그림에서 주체와 대상, 그리고 매체가 동시에 뒤섞이는 순간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한편 클랭은 ‘우주발생론’에도 관심을 두어 옛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처럼 세상 만물이 불, 물, 공기, 흙으로 이 루어져 있다고 믿었었는데, 그것들을 재료로 하여 회화를 그리는 기행 또한 서슴지 않았다. 비물질인 불을 회화화하기 위해 화염방사기나 산소용접기를 이용해 그림을 불에 태운다거나, 공기를 회화화하기 위해 스프레이를 사용하기도 하 며 기발한 예술관을 이어갔고, 그의 활동은 점점 현대의 개념미술 형태로 발전해나갔다.

하지만 그의 예술에 대한 뜨거 운 열정은 그의 기행만큼이나 놀랍게도 짧게 막을 내리게 되었는데, 1962년 5월 피에르 레스타니가 기획한 전시<가시화 (Donner à voir)>의 개막식 참여 중 갑작스레 찾아온 심 정지로 인해 약 8년간의 짧은 작품 활동을 끝으로 34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한때 ‘미국 팝아트에 대한 프랑스의 화답’이라 불렸던 누보 레알리슴의 막은 이렇게 내리게 된 것이다. 좌)청색시대의 인간 측정학Anthropométries de lépoque bleue _ 시연장면 우) Yves Klein with his signature International Klein Blue. Photograph: . Charles Wilp/BPK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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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전시리뷰 2020 유명작가 릴레이전

이다겸 초대전

2020.2.11.-2020.3.7. | 어울아트센터 갤러리 명봉 글 강금주 | 사각 발행인 및 기획자

행복북구문화재단 어울아트센터(이사장 배광식)에서는 2월 11일부 터 3월 7일까지 어울아트센터 2020년의 첫 번째 유망작가 릴레이전 을 시작했다. 행복북구문화재단의 ‘유망작가 릴레이전’은 평론가와 작가를 연결하 여 작가의 작품을 좀 더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고, 그들의 작품 의도 와 임하는 태도를 살필 수 있는 시각예술 소통 프로젝트 형식을 통해 지역민과 함께 공유하는 기획전이다. 올해 릴레이의 첫 번째 주자는 선과 텍스트로 이야기를 담는 이다겸 작가이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한 화면에 담은 선(Line)으로 마치 글쓰기를 하듯 이미지를 채운다. 내게 있어 그리기 (미술작업)이란 글쓰기를 대신하여 선(Line)으로 채워진 이미지 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것은 마치 언어(이야기)가 시간과 함께 순차 이다겸 acrylic on canvas_2020

적으로 향유되지만 그것의 묶음인 책 자체는 공간성을 가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나의 작업은 한 화면에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한 번에 보이는 공간성의 선형적 내 러티브이다. (작가 글)

선(Line)은 일상의 풍경과 사물들을 새롭게 구성하는 기본요소이 다. 화면 전체에서 보이는 일상은 현실의 공간을 작가의 상상들을 묶어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래서 이다겸의 작품을 보 노라면 내러티브가 정확하겠다.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한 배태주 평론가는 “이다겸의 선은 서사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빌렘 플루서가 말하는 것처럼 ‘문자 텍스트가 그림 의 요소를 찍어내어 줄로 나열한 것이라면, 이다겸은 문자 텍스트의 46 sagak


이다겸_walk in the scene_60x160cm_acrylic on canvas_2020

속성이 선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러한 작업의 중심에 서사성이 자리한다고 했다. 시간성과 공간성이 교차하고 선과 텍스트성이 교차하면서 작업의 스펙트럼이 넓혀진다. 결국 그의 그림도 실험의 연장선 에 있다”고 말했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겹쳐 면이 되고 면이 쌓여 입체를 이룬다. 여기서 이다겸 작가는 선을 통해 서로 다른 방향과 흐름을 선으로 채우고 늘여서 각기 다른 색을 선에 입혀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작가는 팀 버튼의 <빅피쉬>를 통해 “한 사 람의 삶, 생활에서의 경험, 추억 혹은 기억이든 결국에 남는 것은 이야기이다.” 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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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전시리뷰

2020 웃는얼굴아트센터 기획전 시리즈

강지윤전

2020. 2.13 - 2.27 | 웃는얼굴아트센터 오픈갤러리 글 강금주 | 사각 발행인 및 기획자

아이들 깨우는 소리로 시작되는 아침. 이 닦기 싫어하는 막내 손끝에 달랑달랑 칫솔ㆍ넘치는 찌개국물 엄마의 허둥지둥 뒷모습ㆍ처음 찍어보는 가족사진이 어색해‘얼음땡’자세가 되어버리신 부모님ㆍ행복한 미소로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는 신랑 신부. 누구에게나 있는 생활 속 이야기. 그 이야기에 나만의 색을 입히면 더 특별한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신나는 상상. 강지윤 작가는 우리들의 일상을 특유의 재치와 시선을 통해 재미있게 화폭을 채운다. 이번 달서문화재단 기획전으로 강 지윤의 ‘노꽁시리즈’연작을 선보였다. 갤러리 특성상 오픈된 갤러리에 전시된 강지윤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늘 특별한 날을 희망하였지만 우리의 일상 이 오히려 특별했고,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주는 그런 일상이 감사하게 느끼게 한다. 작가는‘늘 있다고 생각하는 삶에 나만의 특별함을 더한다면 우리의 하루는 새로운 기대가 되어 희망으로 빛날 것이다.’말 했다. 경북대 조소과를 졸업한 강지윤 작가의 어른을 위한 동화시리즈는,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그 희망의 길을 안내 자로 가족과 우리의 이웃을 말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현실에 묶여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재미있는, 그러면서 일상의 소중함이 가장 특별한 삶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작가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통해 잠시나마 삶에 즐거움을 주고자 시리즈 작업을 이어 가고 있다. 48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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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공연 리뷰

국립 발레단 백조의 호수

SWAN LAKE : 낭만적 선율의 황홀경에 이르다. 리뷰어 박순선 | 공연객원기자

라디오 채널을 클래식에 맞춰 두어야 잠이 드는 아들은 겨울에 들어서면서 차이콥스키에 빠져 살았어요. 초등학교 5학 년인 아들은 해마다 겨울이면 가게 되는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몹시 좋아하는데요, 얼마 전 검색을 통해 전막을 본 백조 의 호수 음악을 내내 따라 하기에 공연이 있으면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죠. 마침 국립 발레단의 공연이 있어 예매 해 두 고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19세기 발레는 무용에 집중되어 있었는데요. 음악은 무용을 위한 반주곡에 불과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차이콥스키의 발 레곡은 가히 혁명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극과 음악의 유기적인 결합을 이루어낸 차이콥스키의 음악으로 인해 발레 음악은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이 되었죠. 그의 음악은 스토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풍부한 선율과 리듬의 생동감을 느 낄 수 있죠. 낭만적인 선율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음악이 무대에서 선으로 구현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발레의 유산인 <백조의 호수>는 여인으로 변한 백조가 호수에서 목욕하는 동안 사냥꾼이 옷을 감춰 결혼했으나 몇 년 후 옷을 찾아 날아갔다는 러시아의 전설을 모티브로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프티파의 안무로 초연되었습 니다. 전 4막의 이 작품을 볼쇼이 발레단의 안무와 로열 발레단의 안무 두 가지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같은 곡에 맞춰 안부를 한 것이라도 내용이나 안무 스타일도 많이 다르답니다. 로열 발레단의 안무는 왕자와 오데트가 함께 죽는 비극적 결말인데 비해 볼쇼이 발레단은 악마를 물리치고 오데트가 마 법에서 풀려나 인간으로 돌아온다는 결말입니다. 그리고 로열 버전은 색채가 화려하고 주역 무용수 두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반면 볼쇼이 버전은 악마 로트바르트에 게도 상당한 비중을 두어 솔로 안무를 주었고 전체적인 색채는 무채색에 가까운 편이예요. 특히 로트바르트에 대한 해석 이 특징인데 로열 버전은 거의 움직임 없이 마임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볼쇼이의 경우는 지그프리드와 함께 춤을 추기도 하면서 대결 구도를 보여준답니다. 국내에서도 발레단의 양대 산맥인 국립 발레단과 유니버셜 발레단도 이 안무들을 따르고 있는데요. 국립 발레단은 볼쇼 이 버전을 유니버셜 발레단은 로열 버전을 선보이고 있답니다. 같은 작품의 다른 버전 비교 감상도 꽤 재미있답니다. 호 두까기 인형이나 다른 무대들을 비교 해 보아도 국립발레단은 우아하고 정적인 분위기인 반면 유니버셜 발레단은 화려하 고 재미있는 것 같아요. 50 sagak


다른 발레들도 비슷하지만 백조의 호수는 특히 군무가 아름다운데요. 푸른 달빛이 가득한 무대에 일렬로 늘어서서 자리 를 잡아가는 흰 튀튀를 입은 백조들이 팔을 펴서 날갯짓을 하는 모양새를 갖추면 눈을 떼기가 어렵죠. 접혀있는 날개처럼 팔을 굽히는 동작, 날갯짓하는 가슴모양, 날개 끝이 떨리는 섬세한 움직임, 다리의 물방울을 털어내는 모습, 목을 둥글게 돌리는 움직임 등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표현 되었는데요. 얼마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본 국립발레단의 연습 모습 이 생각나서 더 감동적이었어요. 하루 6시간 이상 군무를 연습하는게 일상인 무용수들을 보면서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무대 위의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위한 그들의 노력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우아하고 청초한 백조 오데트와 요염하고 강렬한 흑조 오딜을 연기한 발레리나 김리회의 우아한 팔 동작이 아직도 잊히 지가 않네요. 신체의 한계에 다다랐을듯한 강렬한 흑조를 연기하면서도 팔 동작은 어쩜 그렇게 우아한지. 관절이 없는 것 같았어요. 흑조 연기를 하다가 백조로 돌아왔을 땐 너무 힘이 없어 보이기까지 했어요. 뭔가 전력을 다 한 느낌이랄까. 그 렇게 혼신을 쏟아내는 춤은 또 다른 감동이었답니다. 브라보~!!! 지그프리드역을 춘 발레리노 박종석과의 그랑 파드되(2인무)가 특히 합이 잘 맞았다고 생각해요. 점프를 어찌나 가볍게 하시던지 발소리도 안 들렸을 정도예요. 시종일관 가볍게 날아오르는 박종석씨의 점프에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이 있었 죠. 악마 로트바르트역은 수석 무용수 이제우님이 추셨는데요. 과연 왜 수석 무용수인가를 보여주신……. 전날 지그프리 트 역도 맡아서 하셨던데 그렇게 강렬하게 춤을 추셨더라면 전날의 로트바르트는 어쩌죠? 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장신이 기도 해서 시원시원하고 강한 춤사위가 이어졌는데요. 지그프리트와 함께 추는 2인무에서는 악마에게 압도된 지그프리 드가 불쌍해 보일 정도였어요. 역시 까맣고 악마적인게 섹시하고 멋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네요. 처음 백조의 호수를 관람했던 90년대를 돌아보면 짧은 시간 동안 무용수들의 실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생각을 하 지 않을 수 없는데요.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 예술계 전반의 눈부신 발전이 특정한 어떤 사람들의 공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예술인 개인의 노력도 물론이지만 관람하는 관객들도 더불어 성장했겠지요. 감동적인 공연을 위해 힘든 연습도 마다하지 않는 국립발레단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 다른 좋은 작품을 기다립니다. 51 sagak


REVIEW | 공연 리뷰

연대의 딸 (La Fille du Régiment) 도니제티 (Donizetti)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 스트리밍의 세계로 달콤한 나들이 리뷰어 박순선 | 공연객원기자

지난 2월부터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전 세계인들이 집안에 고립 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여러 산업의 종사자들이 다 힘들었겠지만 특히나 공연에 종사하시는 많은 분들의 어려움은 짐작하기도 힘드네요. 매년 1,2월이면 그 해에 연주 되는 공연을 예매하곤 하는데요. 올해는 메이저급 공연이 많아서 조바심을 내며 티켓 오픈일을 기다렸습니다. 티켓 오 픈시간을 알리는 타이머가 울리기도 전에 인터넷 접속을 하고 좋은 자리를 확보하는 전쟁을 치르는데요. 올해는 그 모 든 일이 우습게 되어 버렸네요. 2월 말쯤이 되자 예매한 공연의 취소문자가 속속 도착했습니다. 연주자들의 입국도 어 려워져서 5월에 예매 해둔 연주까지 모두 취소 문자를 받았네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지만, 슬픈 중에도 소소한 즐거움이 생기는 법이죠. 코로나 19 때문에 모든 공연이 중단되자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 전 세계에서 일어났습니다. 각 공연장에서 무료 스트리밍을 시작한 것이죠. 베를린 필하모닉을 선두로 뉴욕 매트로 폴리탄 오페라, 빈 국립 오페라 극장,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 뿐 아니라 우리나라 국립 오페라단과 유니버셜 발레단 같은 유수의 예술 단체들이 무료 스트리밍으로 관객 들과 만났습니다. 그 중에서도 영상 면에서는 독보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매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는 아직까지 도 매일 오페라 한 편 씩을 무료로 스트리밍 하고 있답니다. 뉴욕매트 오페라는 워낙 DVD 제작을 많이 하기도 하는데 요. 이제껏 DVD 제작과 판매에 공을 들인 만큼 어느 오페라단 보다 뛰어난 영상 기술을 보실 수 있답니다. 다른 오페 라단들이 공연 실황으로 영상을 제작한다고 생각하면 뉴욕매트는 거의 영화와 비슷한 수준으로 영상을 제작하는데요. 오페라 가수들의 연기 또한 아주 훌륭해서 보는 맛이 있답니다. 오늘은 지난 3월 20일에 스트리밍 된 연대의 딸 리뷰입 니다. 사랑의 묘약으로 유명한 도니제티의 오페라인 연대의 딸은 발레곡 지젤의 대본가로 유명한 쥘 앙리 보로노이 드 생 조 르주와 비제 오페라 대본을 쓴 장 프랑수아 알프레드 바야르가 썼습니다. 보고 있자면 들라크루아의 ‘리버티’가 생각 나 기도 하고 ‘잔다르크’가 생각 나기도 하면서 몹시 프랑스 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9세기 초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오페라 부파에서 오페라 세리아로의 전환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니제티는 이 전 환점에 위치하는 작곡가여서 ‘사랑의 묘약’이나 ‘돈 파스콸레’ 같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오페라 부파부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와 같은 오페라 세리아의 걸작까지 다채로운 작품세계를 가질 수 있었지요. 오늘의 주인공은 세계적인 레쩨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인 나탈리 드세이(Natalie Dessay)가 맡았습니다. 그녀의 마 리는 마치 말괄량이 삐삐를 연상시키는 천방지축인 소녀 였는데요. 그 말총머리 하며, 누가 그 역할을 맡아도 그녀보다 더 완벽 하게 할 수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높은 음역대에서의 목소리가 굉장히 자연스럽습니다. 뛰고 구르고 난리를 쳐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와 바늘로 찌르는 듯한 정확한 피치, 음계를 반음씩 오르내릴 때 조차 날 카로운 정확함. 그러면서도 기가막힌 연기까지 보여줍니다. 정말 DVD를 위해 태어난 가수 같아요. 52 sagak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원래 연극배우 출신인데요. 공연을 하다가 지인에게서 목소 리가 굉장히 좋으니 노래를 해 보는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아 성악 공부를 했다고 해 요. 그 때문인지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못하는게 없는 그녀. 이번 무대를 보면서 정말 반했답니다. 게다가 이 오페라는 마치 뮤지컬처럼 대사가 엄청 많았는데요. 대 부분의 오페라는 대사처리를 대부분 노래로 하는데 비해 이 오페라는 중간 중간 익 살스런 표정과 연기를 보여주는 대사가 많이 요구됐습니다. 전쟁 중에 고아가 된 어린 마리를 키워낸 부대원들은 하나같이 아빠 같은 마음으로 그녀를 돌봐줍니다. 그녀 역시 잡일 을 해 주며 부대원들과 가족으로 살아가죠. 부대원들과 함께 노래하는 씬이 많은데요. 군가입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와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물론 훨씬 더 개구 졌지만요. 어느새 아가씨가 된 마리는 마을 청년인 토니오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마리를 위해 군에 입대까지 하며 사랑을 키우려는 찰라, 후작부인인 마리의 이모가 나타나 마리를 데려가게 됩니다. 후작부인은 최고귀족인 공작부의 아들과 마리를 결혼 시킬 계획이죠. 군에서 자유롭게 자란 마리는 후작부인의 귀족교육이 힘들기만 합니다. 드디어 사교계에 그녀를 인사시 키는 날이 됐죠.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 귀족들이 대거 무대 위로 등장합니다. 갑자기 무대 전면에 탱크와 함께 등장한 토니오. 사랑을 찾기 위해 전공을 세워 장교가 되고 탱크와 함께 등장한 토니오에 무대는 아수라장이 되죠. 우리의 마리 는 결국 토니오와 사랑을 맹세합니다. 그 와중에 군가가 울려 퍼지죠. 토니오 역은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Juan Diego Florez)가 맡았는데요. 그의 깨끗한 미성이 돋보이는 역이었습니다. 사실 이 오페라는 테너가 어렵기로 유명한 오페라인데요. 하이 C 음계를 계속 넘나들며 노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테너는 도전하지 않는다고 해요.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이 역할을 소화하면서 유명세가 시작됐다고 하죠. 막간에 성악가 들을 인터뷰하는 영상도 있었는데요. 후안 플로레즈가 본인이 노래에 아무 만족해 하며 하이 C를 9번이나 했다고 자랑하 기도 했었답니다. 또 한사람의 주연급 가수는 술피스 중사인데요. 외양부터 너무나 프랑스스러운 바리톤 알렉산드로 코 르벨리(Alessandro Corbelli)인데요. 모차르트와 로시니 전문 바리톤으로 유명할 만큼 그의 발랄한 연기는 정평이 나 있답니다. 그 역시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코믹한 연기와 우렁찬 소리, 군가와 너무 잘 맞는 음색까지. 마리와의 이중 창이 너무 좋았답니다. 스트리밍으로 접한 오페라들은 국내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새롭고 재미있는 오페라들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요. 더 좋은 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http://www.metopera.org로 접속하시면 언제든 영상 관 람이 가능하답니다. 뉴욕에 가지 않아도 와인 한 잔 들고 뉴욕매트의 샹들리에 아래에 있는 것처럼 오페라 영상의 진수를 느끼실 수 있답니다. 53 sagak


빅쇼트 리뷰어 박수주 | 프리랜서 기고가

비극적인 상황을 예견한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것을 기회로 바꾼 야망가들 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가장 확실하고 경쾌한 영 화. 빅쇼트. 영화의 배경은 뉴욕 월스트리트 내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미리 예견한 헤지펀드 운영자 마이클 버 리는 파생상품을 만들어 큰돈을 번다. 물론 마이클을 제외하고도 몇 몇의 금융인들 역시 상황을 눈치 채고 배팅을 한다. 미국이 망한다는 데 돈을 거는 것이다. 금융위기의 결과로 수많은 사람들은 집과 일자 리를 잃고 현실의 무게에 삶을 지탱하기 어려워진다. 시스템이 붕괴 되어야 돈을 벌게 되는 주인공들과 그들이 느끼는 윤리적인 딜레마 를 섬세하게 표현 했다. 영화의 특성상 전문적인 금융 용어가 등장하 는데 카메오를 이용해 설명하는 효과적인 방식을 취한다. 빠른 편집 과 역동적인 연출 덕에 영화의 몰입도가 큰 작품이다. 자본주의 시스 템에 대한 환멸을 느끼며 트레이더 일을 그만둔 벤 리커트가 돈을 벌 게 되자 기뻐하며 춤을 추는 제이미와 찰리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 인

The Big Short, 2015 드라마 미국 130 분 2016 .01.21 개봉 감독 아담 맥케이

상적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어 버린 세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목숨을 잃고 현실의 자리를 잃어버리는 고통의 시간 속에서 조차 누군가는 돈을 벌고 있다. 시스템을 이용한다는 것, 현실을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위기를 기회로 치환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 는데 탁월한 능력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지 못하고 위기의 바람에 휩쓸려가며 삶을 송두리째 잃게 된다. 취약한 계층부터 서서히 파멸하며 그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던져져 있다. WHO의 팬데믹 선 언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영화적 이였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참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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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 Ja-Hyun 구 자 현 Solo exhibition

5.15 – 6.30, 2020 갤러리신라

08_KOO JA-HYUN, Untitled, 41.5x30cm,HANJI, GOLD LEAF, 2020 (3)


EDITAL LETTER 다반사_ 가 그립다.

2020 0102 SAGAK ARTS MAGAZINE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그런 일들이 요즘은 그립다 못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우리의 다반사는 코로나19가 그 자리를 채웠다. 텅 빈 학교, 텅 빈 공연장, 텅 빈 지하철.... 우리는 마스크 없이는 만남도 허락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는 사회적 거리가 고유명사로 자리 잡고, 자가 격리는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입버릇처럼 말한 4차 혁명이 자 연스레 앞당겨져 버렸다. 그만큼 코로나 19는 우리와 세계인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렸다.

현재 감염 주기가 점점 빨라지면서 대면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점차 비대면으로, 디지털화 시대의 전환도 당겨졌다. 코 로나19가 우리 사회와 전 세계를 삼킬 때 문화예술계는 발 빠르게 온라인을 통해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 방법을 모색했 다. 그리고 비대면 예술 활동의 분야가 활성화되고 있다,

아마도 익숙한 대면적 다반사를 통해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감상과 느낌은 점점 멀어질 것이다. 우리 사회가 급속하게 변하면서, 예전 우리가 누렸던 생활방식은 완전히 바뀌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 보니 활자화된 잡지가 더는 같은 환경 과 방법으로 지금의 시대에 발맞출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지금 잡지 사각도 마찬가지로 예술의 경험과 함께 예술을 통한 사회적 소통을 어떠한 방법으로 잘 담아서, 공유할 수 있을까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종이로 만든 잡지는 박제되어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다반사_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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