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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gak arts magazine SEP. OCT. vol.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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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리뷰잡지 사각

아트포커스 대덕문화전당 재개관전 인터뷰 조각가 방준호 대구시립극단 예술감독 정철원 Gallery in Paper 노지민 · 박미 · 정래순 · 차현욱 2020 sep. oct. VOL.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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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772586 219008

ISSN 2586-2197

2020 09_10 Vol.27


대덕문화전당 전시실 재개관기념

여경餘慶:

후대로 이어질 예술정신

| 코로나19 극복캠페인

안실욥학극잡지업회

코로나19의 세계적 창궐로 모두가정선육체적 어려움에 빠져 살지만 우리 국민은 이제껏 수많은 고난을 이겨낸 민족입니다

걱정을버립시다! 걱정 없는 인생을 바라지 말고 걱정에 물틀지 않는 연습을하라.

- 알랭 드보통

걱정을 짐자리로 가지고 가는 것은등에 잠을 X口X는· 것이다. _토□� 하리발톤 걱정하는 데에 쏟은 열정을 하는 일에 쏟는E뻔 분명히 성공할 것이다. -X口 X뮬러

꿈을되살립시다! 꿈을 겨苗 간직하고 있으면 반드시 실현할 때가온다. _요한볼프강폰 괴테 꿈이 없는사람은 아무런 생명력도 없는 인형과같다.

- 발타자르그라시안 - 탈무드

승X£1 주머니 속어는 꿈이 있고 패X回 주머니 속어는욕심이 있다.

이또한, 지나가리라!


PHOTO by dot.k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중에서-


문화예술리뷰잡지 사각

서기 2020년 0910월 호 (통권 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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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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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로 보는 전시

14 NO.27 표지사진 대덕문화전당전시실 재개관전 중 김결수작 (사진제공김결수)

ART FOCUS

대덕문화전당 전시실 재개관 기념 '여경:후대로이어질 예술정신' 展

최병소, 이배 , 김결수, 박종규

22 INTERVIEW 조각가 방준호 대구시립극단 예술감독 정철원

2016년 11월 7일 재등록 대구중, 마00007 격월간지 발행일 2020년 7월 15일 발행인 및 편집장 강금주 관리총괄 조성희 발행처 사각출판 디자인 사각출판 인 쇄 (주) 경북프린팅

문화웹진 www. sagakarts.com 페 이 스 북 www.facebook.com/sagaknews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sagaknews 블 로 그 blog.naver.com/sagaknews 유 튜 브 사각테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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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33 33 Gallery in Paper

작가 노지민 · 박미 · 정래순 · 차현욱

42 특별기고

대구근대미술사 | 대구·경북 근대미술의 낭만화가 황 술 조 대구음악사 | 김진균, 예술가곡과 음악학의 선구자 격동기의 대구미술2 | 신석필 연극만들기4 | 코로나19를 맞이하여 연극의 재탄생

56 Review 대구시립교향악단 제465회 정기 연주회 클래식 음악 속으로 뮤지컬 <렌트> 청춘이여, 뜨거운 오늘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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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협정기전

팬데믹 & 대구

2020. 8.19. - 8.30.대구문화예술회관

이우석


변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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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2020. 8. 5. - 8.14. 수성아트피아 7 sagak


대구예술발전소 10기 입주작가전

권기철 '그리고, 은밀한 일상의 서사' 2020. 8. 8. - 8.23. 대구 예술발전소


최선 딸꾹질 'Hiccup' 2020. 8. 27. - 11. 20. CNK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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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은전

2020. 8.24.- 9. 23. 팔조갤러리


ART FOCUS 작가와 비평 대덕문화전당 전시실재개관 기념 ' 여경餘慶 : 후대로이어질 예술정신 ' 展

여경餘慶을 위한 작가들 이진명, 미술비평

“글 [ 文 ] 이란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할 도리 [ 道 ] 를 밝 히는 것이다 . 글이 도리를 밝히지 못하면 그것은 글이 아 니다 . 삼대三代 이상에서는 이 도리가 아주 밝고 분명했 다 . 때문에 글이 간결했다 . 그 이후로 내려오면 도리는 어둡고 밝지 못했다 . 사람들은 저마다 의지를 가지고 그 것을 구했으나 글이 번거롭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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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의 사상가

방효유方孝孺의 말이다 . 이 말은 문장과 문학 , 나아가 예술이 도리 , 즉 도를 싣는 수단이어야지 그 자체로 목적 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이재도론文以載道論’ 의 요지 이다 . 다른 말로 ‘작문해도론作文害道論’이라고도 한다 . 이배 작 _ 전시전경

글짓기 [ 作文 ] 는 도리를 밝히는 데 저해요소 [ 害 ] 가 된

다는 뜻이다 . ‘작문해도론’ 은 이정형제二程兄弟나 주희朱熹도 끝까지 견지했던 신념이었고 , 이 신념은 동아시아 제국으로 확산된 공통가치였기에 우리 전통과도 뿌리를 공유한다 . 이 사상의 원류는 2,500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인류사상 가 장 오래된 책이라고 하는 『서경』 에 등장하는 ‘완물상지玩物喪志’ 가 기원이다 .

“귀나 눈으로 보고 느끼는 즐거움을 쫓지 마십시오 . 그러면 모든 법도가 저절로 올바르게 세워 질 것입니다 . 사람에 지나치 게 집착하면 덕을 잃게 될 것이고 물건과 대상에 지나치게 애착을 가지면 뜻을 잃게 되는 법이니 뜻은 도리로써 안정시켜야 되고 말씀은 도리로써 이어져야 합니다 . 무익한 일을 삼가시어 유익한 일에 해가 되도록 하지 않으시면 공은 곧 이루어 질 것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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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 〮 문학 〮 예술에 모두 부정적이었음을 알 수 있고 대상이나 물건에 지나치게 애착을 갖거나 귀나 눈이 즐기는 즐거움 은 모두 도리를 저해시킨다고 보고 있다 . 우리 대구 〮 경북 지역은 이 동아시아의 정신문화 전통을 아시아 제국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게 지킨 고장이었다 . 퇴계退溪나 남명南冥의 글이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도리를 밝히는 데서 글의 최소한의 기능만 1 方孝孺, 「送牟元亮趙士賢歸省序」, 『方孝孺集』, 上海古籍出版社, p. 531: “文所以明道也. 文不足以明道, 猶不文也. 三代以上, 斯道明, 故其文簡, 三代以降, 道悔而不章, 人 各以意求之, 故其文繁.” 2 『書經』, 「旅獒」: “不役耳目, 百度惟貞. 玩人喪德, 玩物喪志, 志以道寧, 言以道接. 不作無益害有益, 功乃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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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 작 _ 전시전경

아끼고 또 아껴서 사용한 예시나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의 서화가 완물玩物을 넘어서 마음의 적정한 도리만을 담아낸 예시가 바로 그것이다 . 모더니즘을 받아들인 지난 세기의 예술도 어김없이 간결한 형식을 취하며 도리를 밝히는 데 집중했다 . 도리란 예술의 본연이 무엇인가 끝없이 질문하는 탐구 자세를 말한다 . 그리고 “예술은 그 사람 자체이다 .” 즉 뷔퐁 (Buffon) 이 “스타 일은 그 사람 자체 (The style is the man himself)” 라고 말했던 명제를 대구 〮 경북 사람들은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 웅혼한 인품이야말로 스타일과 예술의 맛을 결정짓는 본연이지 스타일과 맛을 일부러 꾸미거나 과장하면 본질에 벗어남을 일찍 부터 인식했다 .

우리는 이인성과 이쾌대의 장대한 인생 서사를 알고 있다 . 정점식 〮 장석수 〮 주경 〮 유병수 〮 강우문 〮 김진태 등 대구 화단의 1 세대 작가들이 구상했던 모더니즘 프로젝트의 특수성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 그들은 하나같이 이구동성으로 ‘문 ( 文 )’ 이라는 것 , ‘예 ( 藝 )’ 라는 것은 모두 ‘도리 [ 道 ]’ 를 싣는 그릇 [ 器 ] 이지 그 자체가 지닌 기량의 출중함과 방법의 화려함은 부차 ( 副 次 ) 한 것쯤으로 가벼이 여겼다 . 그 다음 세대의 대가로 이강소 〮 최병소 〮 이명미 등 출중한 작가들이 있었다 . 이강소는 세계 가 지닌 변화 [ 變 ] 와 불변 [ 常 ] 의 실상을 회화 속으로 심화시켜 추상화시켰고 최병소는 물질의 형질변경을 통해서 예술가의 의지가 물적 토대에 선행할 수 있다는 , 불가능한 진리를 가능한 형식 구축으로 문화계 만방에 표명했다 . 이명미는 예술이 피안 의 저편이 아니라 지금 생의 한가운데 자리한다는 즐거움의 미학을 설파했다 .

우리가 대구 화단에서 다음으로 주목하게 되는 황금 세대 작가들이 있다 . 이배 , 이교준 , 남춘모 , 박종규 , 김결수 등이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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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결수 작 _ 전시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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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 앞 세대의 작가들이 모더니즘 형식과 고유의 정신성을 화합시켜 구조화하려는 긴 여정에 자 기 삶을 걸었다면 이 작가들은 보다 구체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했다 . 서구의 기하학적 추상 , 그리고 신구성주의와도 대척을 이루는 초월적 형상을 창안해내기 시작한다 . 특히 이배 작가 는 숯을 다루면서 소재주의를 초월한 불의 미학과 불의 정신분석을 화면에 구축했다 . 서화동원 ( 書 畵同源 ) 이라는 오랜 테제를 현대적으로 변모시키면서도 숯이라는 태곳적 물질과 아크릴 미디엄이 라는 산업화 시대의 물질을 대비시키고 진동시키면서 시각적 긴장과 물질적 대결을 극화시켰다 . 더 욱이 숯을 조각 내고 갈아서 이어 붙여서 만든 대작 시리즈 < 이수 뒤 푸 (Issu du feu)> 는 수많은 숯들이 각기 다른 형질의 빛을 발산시키는 마법을 보여주면서 동양적 세계관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 마치 인드라의 그물망에 걸려있는 수많은 구슬들이 서로가 서로의 빛을 비추어 그 빛의 근원이 누구 의 것인지 ,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 이배의 연작 회화는 철학적 세계관을 극으로까 지 형상화시켰다 . 인간의 주체는 원래 없는 것이다 .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시시각각 변 화 , 발전하는 의식만을 갖는다는 상호주관성 (inter-subjective) 의 논의가 , 이배의 연작 회화에 서 강렬하게 예시되어 빛을 발한다 . 무엇보다도 작가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 은 아직 열려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전 세계에 의미 있는 응답을 주었다 .

박종규 작가는 설치 〮 미디어 〮 조각 〮 퍼포먼스 등 예술의 모든 장르를 구가시키는 현대미술가이지 만 , 뉴페인팅으로서의 엄청난 가능성의 지도를 확장해서 그리고 있다 . 회화가 엄밀한 재현에서 느 슨한 재현으로 , 재현에서 표현으로 , 느슨한 표현에서 강렬한 표현으로 , 표현에서 사유로 , 직관적 사유에서 고도로 철학화된 사유로 , 사유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 느슨한 프로그래밍에서 촘촘 한 프로그래밍으로 가는 과정으로 그 서사를 그려볼 때 , 박종규 회화는 가장 진화한 형식의 회화이 다 . 서구 모더니즘의 제 1 조건이자 대전제가 있다 . 모더니스트들은 주체 (subject) 를 가정한다 . 이 주체는 절대적인 나 (I) 이다 . 이 주체는 서로 다른 주체들과 위계질서 (hierarch) 를 형성한다 . 특정 주체가 신화화될 때 , 나머지 주체들은 한없이 퇴락하게 된다 . 미술관과 화상들은 편집자로서 자기 의도에 맞게 또 자기 이해관계를 따져 모더니스트 예술가들을 재단했었다 . 박종규는 모든 사 물과 대상들의 근원은 텅 빈 것 (void) 이어서 어떠한 차별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 그런데 우 리의 가치판단은 미리 형성된 사회적 선입견 (Vorurteil) 에 종속되기에 우리는 모든 대상을 위계 의 프레임에 가두고 만다 . 노이즈 소리도 노이즈 화면도 한없이 크게 확대하면 질서정연한 것이다 . 박종규의 회화 형식은 회화 발전사의 시각에서 보면 뉴페인팅의 가능성을 열고 있는 것이며 , 철학 적으로는 물질과 대상의 본질을 물으며 , 사회학적으로 보면 위계의 허상을 지적한다 . 모더니스트 담론으로 보자면 모더니스트 예술가들의 신화화에 대한 인식의 재배치를 요구한다 . 간단間斷 없는 질문들에서 회화의 형식은 더욱 견고하게 응결되어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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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규 작 _ 전시전경

김결수는 < 노동과 효율성 (Labor & Effectiveness)> 설치 연작으로 30 여 년 동안 활동해온 설치미술가이다 . 통나무를 불로 태우고 못을 박아 완성한 설치작품은 하이데거의 유명한 테제인 도구의 전체성을 상기시킨다 . 세계는 ‘눈앞에 그저 있 는 것 (Vorhandenes)’ 이 아니라 못 – 망치 – 나무 – 흙 – 집이라는 관계의 그물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 이 세계의 전 체성에서 바라볼 때 모든 개인의 삶이 저마다 생명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 김결수는 노동에 대한 질문으로 예술의 의미를 드 러낸다 . 서구에서는 지난 2,500 년 동안 철학과 예술이 투쟁을 거듭해왔다 . 예술은 철학이 지향하는 이데아의 복사를 다시 거듭한 복사에 불과하기 때문에 세계에서 탄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예술의 본질을 사용할 수 없는 것 (useless) 에서 찾기 도 했다 . 그러나 우리 아시아 감성 공동체에서는 예술을 그렇게 보지 않았다 .

도리 [ 道 ] 를 찾는 사람 [ 君子 ] 에게 최상의 덕목은 결코 현학과 피안처럼 신비주의적 세계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의 경세 經世에 있었다 . 예술 역시 도리를 찾는 우리 전통적 감수성에서는 현실을 잊기 위한 도피 수단이나 초월적 경지가 아니라 오 히려 현실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경세에서 찾았다 . 김결수는 주변에서 만난 사람들의 생생히 살아있는 실존적 삶을 예술계로 승격시킨다 . 도마와 고기잡이 배를 연결하여 설치한 2018 년 연작은 물고기를 썰어 파는 여염집 아낙과 그 물 고기를 잡아오는 지아비의 삶을 총체적으로 드러내준 걸작이었다 . 예술이 경세의 문제를 더욱 잘 드러내준다는 논의가 앞서 말한 ‘완물상지玩物喪志’ 의 논의이다 . 예술 형식으로의 침잠과 집착으로부터 자유롭게 부유하여 세계에 대한 시적 (poetic) 울림을 주는 것이 우리 아시아의 예술관이었다 . 이를 가리켜 예술은 도리를 싣는 그릇이라는 ‘문이재도론 ( 文以載道論 )’ 의 참모습이다 . 김결수의 2020 년 연작에서는 볏짚과 볍씨가 주인공이 되는 커다란 큐브 형태의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 온 갖 생활의 도구가 되어왔던 볏짚과 그 속에서 자라는 볍씨의 환원적 관계 틀에서 , 우리로 하여금 누대에 걸쳐 살아왔던 삶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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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소작 _ 전시전경

대한 근원적 물음을 성찰하게 한다 . 우리는 최병소라는 귀중한 작가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 최병소 작가는 그리기와 지우기라는 역설적 행위를 통해서 정보 ( 신문지 , abundant) 를 지우면서 동시에 새로운 정보 ( 탄화된 종이 , informative) 를 탄생시킨다 . 우리가 살아간다는 말 은 동시에 우리가 죽어간다는 말과 같듯이 , 최병소 작가는 삶과 죽음의 동질성을 반복되는 지우기 ( 그리기 ) 를 통해 시적으로 드러낸다 . 죽음은 오히려 거대한 삶이고 지우기는 되레 위대한 드러내기라는 메타포는 우리 전통에서 아주 오랫동안 유지되 었다 . 우리는 몸을 죽여서 인仁을 완성한다는 ‘살신성인殺身成仁’ 의 위대한 의미나 ‘아침에 도리가 의미하는 바를 깨우친다 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 朝聞道 , 夕可死矣 .]’ 는 문장이 지향하는 뜻을 잘 알고 있다 . 최병소 작가는 유신시대의 곡필을 참을 수 없었거니와 , 증권종목의 상한가 , 하한가 따위의 곡선 그래프도 어처구니 없었을 것이고 , 벗고 흔드는 광대들의 화장기 얼굴도 싫었을 것이다 . 현실에서 일어나는 어처구니 없는 소식을 싣는 신문지는 무한에 가까운 반복의 지우기 ( 그리기 ) 를 통해 탄화된 금속성 빛으로 형질과 의미가 완전히 변경되어 다시 태어나게 된다 . 그것은 빛과 그림자를 모두 품는 반그늘 (penumbra) 이자 삶과 죽음은 자웅동체처럼 한 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거대한 의미 물결 이다 . 서구에서 추상표현주의의 그 어떤 화가들도 , 심지어 로스코 (Mark Rothko) 나 아그네스 마틴 (Agnes Martin) 과 같 은 숭고주의 계열의 화가들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진리의 길을 최병소는 일생 동안 보여주었다 . 그의 뭉개진 손끝과 빠진 손 톱 [ 죽음 ] 은 빛나는 작품 [ 삶 ] 으로 다시 태어난다 .

이번 전시회 제목이 < 여경 ( 餘慶 )> 으로 지어진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 여경이란 사람들이 살아갈 때 자기의 부귀영화 를 위하여 애쓰고 힘쓰지 않고 오로지 덕을 쌓고 도리를 지켜 복이 후대에 미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 『중용中庸』 16 장은 ‘귀 신장鬼神章’ 으로 이해하기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 여기서 말하는 귀신鬼神은 서양에서 말하는 고스트 (ghost) 가 아니다 . 효孝와 관련 지어 생각할 때만 그 의미가 비로소 풀리게 된다 . " 귀신鬼神의 덕德됨이 참으로 성대하도다 ! 보아도 보이지 않고 , 들어도 들리지 않지만 , 귀신은 모든 사물을 체현시키며


최병소작 _ 전시전경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 . 천하天下의 사람들로 하여금 재계齋戒하고 깨끗이 하게 하며 , 의복을 성대하게 하여 , 제사를 받들게 하는구나 . 그리고 보라 ! 귀신은 바닷물이 사방에 넘실넘실 넘치듯 하지 아니 한가 ! 저 위에도 있는 듯하며 , 좌에도 우에도 있는 듯하지 아니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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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은 종법 사회였으며 문중 사회였다 . 한 사람의 개인이 출세해서 사회를 운영하는 사회가 아니었다 . 조상의 체계와 법 , 인연과 농지 및 재산 , 그리고 조정의 추천마저도 상속 받는 상속의 네트워크였다 . 따라서 귀신은 조상들이 살았던 과거 시 간과 과거 공간을 총칭한다 . 그 시간과 공간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친다 . 그때서야 비로소 ‘귀신장’ 의 의문이 풀린다 . 효 孝는 살아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미 죽은 조상에게도 드리는 사랑이다 . 나의 존재를 있게 해준 것은 조상의 유산과 상속 때문에 가능하다 . 그것은 요즘 날에도 마찬가지다 . 특히 예술은 상속의 세계이다 . 나의 스승이 누군지 나의 선배가 누군 지에 따라서 나의 운명은 크게 달라진다 . 특히나 내가 활동하는 예술의 영역 , 즉 나의 예술적 고향이 어딘가는 매우 중요하 다 . 나의 예술은 누군가의 형식이나 태도를 분명히 배운 것이며 나의 예술이 알려진다는 것은 누군가의 소개와 초대 , 그리 고 지지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 이배 〮 박종규 〮 김결수 〮 최병소 역시 이인성이나 곽인식 , 황현욱 등 선구 예술가들이 없 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고 앞으로 일어나게 될 수많은 후세대 작가들도 위 네 명의 유산 없이는 불가능하다 . 더욱이 자신들 의 삶도 중요하지만 자기의 재량과 네트워크를 후세대와 끈임 없이 공유하고 나누고자 하는 , 여경餘慶을 위한 마음이 가득 하니 대구 예술계의 미래도 밝다고 확신한다 . 그들은 차안此岸의 경세經世를 위해서 예술의 의미를 묻기도 하지만 , 후세 대를 위한 , 진정으로 여경餘慶을 위한 작가들이다 . 『中庸』 16章: 子日: “鬼神之爲德, 其盛矣乎! 視之而弗見, 聽之而弗聞, 體物而不可遺. 使天下之人齊明盛服, 以承祭祀. 洋洋乎! 如 在其上, 如在其左右. 詩日: ‘神之格思, 不可度思, 矧可射思!’” 夫微之顯, 誠之不可揜如此夫!


ARTS ISSUE

대덕문화전당 전시실 재개관 대덕문화전당(관장 백귀희)이 개관 23년 만에 전시실을 리모델링하고 개개관 기념전으로 최병소, 이배, 박종규, 김결수 등 대구 출신 유명작가 초대전을 준비했다.

대덕문화전당의 이번 전시실 리모델링 사업은 지난 4월 남구의회 정연주 의원의 제안으로 이뤄졌는데, 공사비 1억 3천만 원으로 1전시실(173m²), 2전시실(87m²)의 층고를 높이고 현대적인 화이트 큐브로 꾸몄다. 백귀희 관장은 “공연 위주의 운영에서 벗어나, 문화예술의 무게중심을 찾고 시각예술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국 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대구 출신의 유명작가 뿐 아니라 여성, 청년 작가들을 지원하는 전시도 계획중이며, 지역 주민과 함께 하며 예술가들에게도 작품 판로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지역 아트페어, 지역의 기업과 예술작품이 함께 하는 아트콜라보 등의 다양한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연주 의원은 “구청에 리모델링 제안 후에도 전시에 최적화된 전시장을 만들기 위해 자주 찾았다. 많은 화가들이 전시하고 싶은 대덕문화전당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기념전의 초대작가들은 국내외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대구 출신의 유명 작가들이다. 채우는 것이 아닌 지움으로 창작 하는 전위적 예술 행위를 보이는 최병소 작가, 숯을 소재로 불의 미학을 보여줌으로써 세계 미술계의 이목을 끄는 이배 작가, 기계작업을 결합한 작업과 미디어 작품으로 뉴페인팅을 선보이는 박종규 작가, 노동의 효과와 가치를 예술로 보이려는 김결 수 작가 등이 전시회에 초대받았다. * 이번 전시는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개막 하루 전에 휴관되었고 전시는 연장 될 예정이다.

좌)리모델링한 전시실전경 우)대덕문화전당에서 백귀희관장과 정연주의원

21 sagak


INTERVIEW

나무 , 돌 , 바람 ... 자연속에서 자유를 조각하다

가 조각

방준 호 22 sagak


조각가 방준호가 지난 7월 24일부터 8월 15일까지 봉산문화회관에서 열린 “2020 Hello! Contemporary Art 폐허, ‘물과 나무’의 정치학”에 설치작품으로 참여했다. 총 5명 작가들이 설치미술과 조각을 선보인 이번 전시에 서 방준호의 작품은 야외전시장부터 3층까지 이어지는 로비와 계단을 무대로 공간 조형을 선뵀다. 강한 불길로 태우다가 숯이 되기 직전에 멈춘, 여전히 은은한 향을 간직한 검은 탄화 목재가 소재였다. “황량한 폐허의 상징들이 새로운 길이 될 수 있도록 재구성하고, 관객이 그 길을 걸어가며 시각과 후각으로 소 통할 수 있도록 유도하려는 것이다.”라며 “작가는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며 엮어놓은 검은 나무를 보면서 기존 의 계단과 콘크리트 구조물이 사라지고 없는 상태를 상상해보라고 제안한다. 엉성하고 불안하지만, 1~3층까지 검은 통나무로 이어지는 탑 모양 구조의 새로운 길을 상상하는 것이다.” 봉산문화회관 정종구 전시담당의 말이 다. 방준호 작가는 “오래된 향나무 원목 표면을 불로 그을리는 일련의 행위의 반복으로 인하여 향나무가 가지는 본질에 접근한다. 불이 개입된 향나무에서 미세하게 퍼지는 향기는 (실제의) 후각과 시각의 상호작용으로 관객 에게 다가간다. 이러한 후각과 시각은 작가와 관객과의 묵시적인 거리를 하나의 매개체로 연결시켜 준다.”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태풍 ‘하이선’이 대구를 지나던 9월 3일 오후에 방준호 작가를 만나기 위해 칠곡군 가산면에 있는 그의 작업실 을 찾았다. 옆으로 한천을 낀 야외작업장 한편의 건물에 마련된 작업실은 사무공간과 전시실 등을 갖췄고, 2층은 주거공간이라고 했다. 먼저 안부가 궁금하다. 어떻게 지냈나. 전시 기획도 하고, 대구 조각가협회도 맡고 있다고들었다.

조각가협회는 할 사람이 없어서 맡고 있는데, 정말 할 사람이 있으면 좀 맡았으면 좋겠다. 3년하고 연임 했으니 4년, 아니 5년째다. 전시 기획은 지난해 강정현대미술제를 말하는 것 같은데, 기획은 아니고 예 술총감독을 맡았다. 올해는 맡지 않았다. 지난해 이맘때면 전시회를 열다섯 번은 했을 텐데, 올해는 코로 나19로 지난 봉산문화회관 전시까지 세 번의 전시회를 가졌을 뿐이다.

코로나19 이후, 이 시대의 예술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예술가의 감성은 더 민감하지 않나. 그 민감함이 드러낸 전시회도 열리던데.

이 시대 예술, 참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 세대, 말하자면 486세대(50대니 586. 아직 40대로 여기는 듯)라고 불리는데. 80년대에 민주항쟁을 겪고, 90년대에 IMF를 겪고, 지금은 코로나... 예를 들어 말하 자면 3차의 대전을 겪었다. 근데 예술, 극히 주관적인 작업을 하는 저로서는 역사성을 떠나가지고, 그 하 나하나 시대를 반영하는, 시대성을 반영하는 작품이 자기를 통해서 배출되면 충분히 의도하지 않더라도 자연적으로 나오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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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호의 그 전 작업은 눈에 보이지않는 바람을 나무, 돌 쇠 등의 가진 물성을 통해 표현해 내려 애썼다 면 이젠 나무 등을 자연에 방치해두고 바람, 비, 햇볕 등을 그대로 맞으면 약한부분은 퇴락하고 강한부분은 더 표출되어 나타난다. 그 이후에 강한 불 또는 강한 에어를 불어넣어 표현해내고 있다. 사진 작가의 최근작업 방준호제공

앞으로 예술가의 역할, 작품의 역할을 이런 것들을 짐작한다면.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게 맞다. 우리도 대중 속으로, 또 군중 속으로 파고 들어가야 되지 않겠나. 지금까지 분리되어 있는 건 사실이다. 일반 삶을 사는 영위하는 사람들과 작가들, 예술가들 사이가 갭이 많았다. 사회적으로 예술가는 영혼이 좀 자유롭다 고 여겨진다. 지금은 예술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일반인들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 그동안 예술가의 길을 걸어왔 던 감성들을 좀 전해주면서 인문학적이나 인성적으로 접근하게 되면, 그런 감성들이 좀 전해지면 아무래도 삭막하고 어려운 시 기를 사는 사람들에게 좀 도움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계획은?

새롭고, 접근방법이 다른 식으로 표현되는 작품에 대해서 고민하고 싶다. 물론 작가들의 공통된 고민이지만. 작품들이 좀 팔려 나가고 그 작품을 통해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예전과 달리 작품 판매를 통해서 충분히 살 수 있다는 예술가들이 많이 나오고. 그런 시점에서 봤을 때, 작품은 거기 머물지 않고, 작가 스스로 책임지는 일을 해야 하는데, 자기는 창작이지 않나. 창작을 통해서, 콜렉터에 대한 의지를 통해서도 삶을 영위해야 되니까. 돌려주는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예술세계, 새로운 방법, 새로운 접근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주변 예술가들에게 귀감이 되는, 또 전반적인 예술에 대한 고민들을 같이 풀어나가야 되지 않 겠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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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y the sky_ 화강석 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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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방준호는 웃는얼굴아트센터 특별전 ‘방준호’(3. 15.~4. 13.)와 대구문화예술회관 ‘올해의 중견작가전’(7. 12.~8. 12.)에 참 여했다. 웃는얼굴아트센터 ‘방준호’전에서 작가는 “1980년대 말부터 실험적인 조각과 퍼포먼스를 함께했다. 2006년부터 브론즈, 돌과 나무 라는 재료에 자연이라는 주제를 담았다. 최근에는 돌을 우선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탈리아 대리석, 포르투갈 대리석, 인도 화강석, 경 주석, 영천석, 거창석, 포천석, 사암과 오석 등 다양한 돌들을 재료로 다룬다. 이런 재료로 나무를 형상화하고 있다. 때로는 거센 바람 을, 가끔은 산들바람을 돌에 새겼다. 더구나 내 작업장은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분다.”라고 밝혔다.

이어진 대구문화예술회관 ‘올해의 중견작가전’에서 작가는 전시 중심에 ‘묵시’를 선보였다. 홍준화(미학∙철학 박사)는 “대리석, 청동 등으로 만든 ‘바람’ 연작을 선보였던 방준호 작가는 향나무로 만든 ‘묵시’ 등을 전시했다.”고 평했다. 작가는 두 번의 굵직한 전시에서 두 종류의 소재를 선보였다. 앞의 전시에서 바람을 표현한 소재로 돌을, 뒤의 전시에서 가려진 본질 을 주제로 검게 그을린 나무를 선보였다. 올해 8월에 끝난 봉산문화회관 전시에도 작가는 공간조형으로 설치한 작품 ‘묵시’를 선보였다. 전시기획자 박소영(PK Art & Media 대표)은 ‘묵시’를 “검은 나무들과 건축공간의 여러 층위가 서로 관계를 맺으며 한정된 공간에 역 동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질적인 검은 나무와 건축공간의 만남에서 생경함, 자유분방함과 정연한 질서가 없는 정확함이 혼재한다. 원 림(園林)도, 원림(原林)도 아닌, 그 어떤 것도 재현하거나 환기하지 않는 검은 나무들은 어쩌면 그 자체로 자기충족적인 오브제로서의 예술작품이란 목적을 이룬 것인지도 모르겠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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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호의 실내원림 ‘태운 나무’

방준호 작가는 1965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졸업했다. 개인전 29회(서울, 대구, 부산, 상하이 등)를 가졌고, 수백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제7회 부산바다미술제 대상, 2014서울국제조각페스타 올해의작가상, 2016미술세계작가상, 2018춘천MBC현대조각초대전 작품상을 수상했다.

인터뷰 및 작가 사진 정용태 객원기자 | 작품사진 방준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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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그럼에도불구하고 ,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대구시립극단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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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원


코로나19로 문화예술계가 위축된 가운데 민간극단이 즐비한 대명공연문화거리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예정된 공연들의 연 기, 취소가 이어지는 지난 7월 대명공연문화거리 한울림(사)의 대표인 정철원 씨가 대구시립극단 제6대 예술감독에 위촉됐다. 극단 한울림 사무실에서 만난 정철원 예술감독에게 민간극단의 어려움과 시립극단 운영계획을 물어봤다.

지역의 민간 대공연장도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객석 거리 두기’ 지침이 내려오면서 조기 종연했다. 공공기관의 대공연장과 다른 소극장의 규모를 볼 때 방역 거리를 지키면 운영 자체가 어렵지 않나.

모두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까 거기에 대한 정답은 저 역시 잘 모른다. 하지만 코로나 방역이라는 대전제 아래서 모든 것이 이뤄져야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취소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안 그래도 어려운데, 엄청난 타격을 가져올 거다. 지금은 코로나가 지나가길 바라면서 우리 예술세계의 지속성에 대한 부분들을 가져가야 한다. 차후 변화될 포스트코로 나에 대한 준비들을 예술가들이 해야 될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진행하면서 공공극장 같은 경우에는 좌석 거리 띄우기를 했고, 대구의 소극장은 자체적 사회적 거 리 두기를 했다. 이 부분에 대한 2단계 지침이 내려왔는데, 그 지침이 내려오기 전에도 대구의 소극장들은 벌써, 2월의 경험이 한 번 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사회적 거리를 뒀다. 예외적으로 다닥다닥 붙어 앉았을 수도 있었겠으나 지침이 내려오면서부터는 다 따르고 있다. 그동안 예술계가 지탱하는 부분들이 사실은 지원에 의존한다든지, 관객 수입에 의존했는데, 이 부분들을 배제하는 것 은 연극이라는 예술적 형태에서 최후의 보루까지 무너뜨리는 거다. 저 같은 경우 어떻게든 관객을 만나기 위해 노력을 하겠지만 이 상황을 견뎌나가는 힘을 무엇으로 가질까 고민도 하고 있다.

시립극단은 철저한 방역으로 관람객이 급감해도 감독이 경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대구시립극단의 경우 방역 지침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고 당연히 지키고 있다. 그래도 예술적 형태에서 경영에 관한 부분도 중요하다. 예술적 가치를 관객과 나누는 거니 관객이 들어야 한다.

소극장들도 관객과 함께하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말인가.

그렇다. 소극장에서도 그것이 최우선되어야 한다. 실질적으로는 지원에 의존한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작업을 해나가 야만 한다. 최소한 그거라도 해줘야 예술적 생태계가 흘러가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있는 거다. 모두가 코로나를 극복하 고 견뎌낼까를 고민하고 있다. 공연은 해야겠고 예산을 또 집행해야 되고, 이런 부분을 안 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그것마저 안 한다고 그러면 사실은 헤어날 수 없는 부분으로 가게 된다. 올해 같은 경우는 모르겠지만, 내년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현 실감 있게 머리를 맞대고 진행해야겠다. 지금처럼 방침, 방침, 또 방침 이렇게 진행되고 연기, 취소, 연기, 취소 이렇게 진행되면 앞으로 더 큰 혼란만 야기될 거다. 지금부터라도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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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방역이 느슨한 민간극장 감염사례가 나면 감당이 되겠나.

그건 어디라도 마찬가지 아닌가. 만약에 감염사례가 나타나면 그 지역은 일망타진 상태가 될 거다. 공연장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서 마찬가지. 대학로에서 확진자가 나오기도 하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있지만 공연장 안에서 관객에 의해서 확진되었다는 부분은 없다. 관 객은 말을 할 수가 없고, 입막음까지 해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말은 배우들만 하는 거고, 객석과 2m 띄우기 위해 앞좌석 을 비워버린다. 이런 준비를 하기 때문에 좋은 효과를 내는 거다. 민간소극장에서도 지금 상황에서라면 최소 좌석거리두기라도 지키자 하고, 공연에 대한 취소방침도 많이 따라서 공연을 중 간에 취소를 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이 생겼다. 공연을 온라인으로 하는 경우도 많았다.

취소를 하면 문화지원금은 어떻게 되나. 개인적인 생각인데, 예술가들에도 재난지원금 같은 게 있는데, 이미 지원금이 확정된

공연을 연기, 취소, 연기, 취소하면 일정이 다 꼬이고 어렵게 된다. 더 이상한 범법 형태로 갈 수가 있다. 그래서 차라리 공히 예술지원금 형태로 진행을 해버렸으면 좋겠다. 예술가들이 그걸 가지고 다른 형태의 방역에 관해서 고민을 하는 시간을 좀 더 주는 게, 이런 의무적으로 진행하고 온라인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현실적으로 좋은 게 아닌가.

취임 이후 새로 준비한 공연은. 어떤 작품을 계획했나.

맨 처음 제가 계획했던 작품은 단원창작페스티벌하고 단원연극전이다. 시립극단 단원들이 예술적 세계가 각자 다르다. 일방 적으로 감독이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자극을 위해 단원들이 추구하는 방향들을 드러내는 것을 시도하고 싶었다. 정기 공연으로는 브레히트의 ‘억척어멈’을 공연하고 싶었다. 그걸 준비하는 과정에 시립예술단 전부분이 참여한 문화예술회관 30 주년 공연, 광복절 축하공연을 내가 맡아서 진행했다. 시간적으로 너무 바빴기 때문에 10월에 잡힌 정기공연을 내년으로 미 루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 가운데 시민을 위한 힐링 공연을 준비했다. 찾아가는 공연인데, 실내보다는 실외에서 하는 퓨젼 마당극 형태였다. 8월 21 일부터 한 곳에 이틀씩, 네 곳을 찾아가는 공연이었다. 공연 이틀 전에 코로나 때문에 취소됐다. 그와 함께 단원 역량 강화를 위한 미션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파트별로 10분짜리 창작극을 만들게 했다. 극장에서 공연 형 태로 한 번 진행했고, 지금도 온라인 형태로 진행 중이다.

그럼 정기공연은 내년에 하나.

정기공연으로 잡은 브레히트의 '억척어멈'의 일정이 너무 맞지 않아서 12월로 연기했다. 지금 코로나19 재확산을 맞아서 시 립극단에서도 일상적인 정기공연 형태가 아닌, 코로나 시대에서 시민들과 같이 힐링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굉장히 많 이 했다. 그래서 ‘위드 코로나 시립극단’이라는 계획으로 여러 가지 계획들을 수정하면서, 올해의 목표와 방향성을 많이 바꿨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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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립극단 연습장면

그래서 지금 시민공모전을 통해서 시민들이 힐링할 수 있게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다. 곧 공모전을 알리는 공고가 나 갈 거다. 10분짜리 사연들을 보내면 시립극단 배우들이 직접 연기한다. 시나리오까지 보내든지, 아이디어만 보내도 가능하다. 그리고 오디오북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듣는 연극을 선보일 계획이다. 라디오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유튜브와도 또 다른 부분 이다. 시민 공모전이나 단원들의 10분 창작희극 가운데 골라 오디오북을 만들 계획이다. 그 다음으로 책을 발간할 계획이다. 시립극단에서 만들어가는 작은 희곡집을 저희들이 계획하고 있다. 직접적인 공연으로 많은 관객들을 들이는 것보다도 대부분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컨텐츠로 전환을 시켰다. 그런데도 마지막은 정기공연을 진행을 해야 하는데, 12월 24, 25일 정상적인 공연을 진행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연극 다큐를 제작할 계획이다. 이것이 언제 또다시 멈추고 진행 될지 모르는데, 당일 공연을 못 올리면 다 끝나버리지 않나.

연극 다큐를 통해서 진행과정을 다 담겠다는 건가.

그렇다. 이 공연이 계속 진행되면 무대에 올릴 수 있을 것이고, 그때도 상황이 아직 끝나지 않으면 공연은 못 하더라고 연극다 큐라도 대신해서 진행할 수 있게 두 가지 방법으로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정기공연이 취소가 되면 연극다큐는 분명히 진행될 거다. 정기공연이 무사히 무대에 오르길 간절히 바란다.

대구시립극단의 예술감독으로서 중점을 둔 부분은.

시립극단은 민간극단과 제작 여건에서 현실적으로 차이가 있다. 시립극단은 좋은 시스템과 우수한 인력을 바탕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 민간극단은 재정적 여건은 불안하나 각 극단마다 뚜렷한 특색을 가질 수 있다. 시립극단은 대중성과 예술성, 공공성을 같이 고민하면서 진행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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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극단을 맡으면서 궁극적으로 가져야 할 방향성에 대해서는 연 극성의 회복과 융복합의 조화라고 정했다. 연극성의 회복이라는 것 은 시립극단만이 해나갈 수 있는 작품들을 하는 거다. 그런 부분들을 시립극단이 하지 않으면 참 하기가 힘들다. 그런 방향성을 강화시켜 나가겠다. 융복합의 조화에서는 지금의 여러 가지 형태들, 21세기에 미래 비 전에 관한 것들도 시립극단이 해나가야 된다. 그래서 문화예술회관에 서는 5G를 이용한 프로그램도 제작하는 극장으로 탈바꿈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영상이 아주 중요한 시대 가 되었다. 그런 부분에서도 우리가 고민하고 발맞춰 나가야 하겠다. 연극성에 방점을 찍고 그런 것에 비전 제시를 우리가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연극의 정체성 확립이 중요한데, 연극의 정체성이 무엇이겠나. 시립극단은 그야말로 연극다운 연극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집단이다. 그것에 최고의 방점을 찍어야 않겠나. 정기공연의 형태는 시민들에게 고전극이나 한국 창작극을 소개하고 싶고, 그 다음에는 민간극단과 상생프로그램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극계에서 시립극단의 역할은.

연극협회가 아버지와 같은 외형적인 부분이나 여러 가지 민간극단의 복지적인 측면을 챙긴다면 시립극단은 어머니의 역할을 해야 한다. 예술적 목마름에 대한 가치추구에서 리더의 역할이라든지... 그런 부분에서 진행해 나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민간극단과 상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시립극단 혼자 잘 난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시립극단과 동반상승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가야한다. 시립극단의 배우들은 민간극단에도 소속되어 있다. 민간극단과 상생할 수 있는 공연들, 단원들의 창작의욕을 자극해서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공연들, 연극성에 방점을 찍고 고전이나 한국 창작의 대표적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진 행하는 프로그램들 등으로 공연의 주를 이뤄나가겠다. 시립극단의 경우는 인재개발도 해야 하는데, 재정적으로 어려운 지금은 5명 정원의 1년 인턴제를 활용할 것이다. 인턴을 마치 면 반드시 지역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역할, 창구적인 역할을 시립이 해야 한다. 각 대학의 학생들에 대해서도 시립극단에서 할 수 있는 부분들을 만들어 다시 민간으로 돌려주는 일을 해야 한다. 대구시립극단 정철원 예술감독은 한울림(사) 대표, 한국연극협회와 한국소극장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인터뷰 및 작가 사진 정용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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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in Paper

지면으로 만나는 전시 -갤러리 인 페이퍼 세번째 주

제 ‘내면세계의 개별적 실현’

기

획 노지민

참여작가 노지민 · 박미 · 정래순 · 차현욱


gallery

1

노지민

피안

예술가는 작업 앞에서 만큼은 온전히 자유롭고 무자기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과 감각을 어떠한 것 에도 구애받지 않고 내 방식대로 그려간다. 그래서 나의 작업은 늘 나를 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처음부 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무언가 그럴 듯한 것을 내보이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랬던 시간들이 쌓이면서 불안과 초조, 자신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어느 순간 그림그리기에 강박적인 나로 존재하게 되었고, 나의 내면은 소모되고 쇠약해졌다. 그래서 나는 나를 찾기로 했다. 작업의 과정 속에 이쪽 세계의 내가 저쪽 세계로 건너가 나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며, 그림을 통해 온전하고 행복한 내가 되기로 했다. 말간 종이에 의도를 가진 뿌리기와 그 궤도를 벗어나는 무수한 색점들의 조화가 홀가분한 먹의 흔적 위에 얽어지며 수수한 덩어리를 이루어 평안한 공간을 만들어 낸다. 그 안에서 나는 있는 그대로의 ‘그냥’으로 존재하며, 마무리 된 나의 그림을 마주하시는 분들로 하여금 개개인 의 피안으로 향하는 강기슭에 작은 배 한척을 띄워드리고픈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 작업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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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 | 50.0 × 50.0cm | 장지위에 혼합재료 |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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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2

박미

안녕하세요

눈으로 만지고 , 손으로 들여다 보다 .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빛 , 촉감 , 중첩은 회화적 모티브가 된다 . 내 작업에서는 빛 아래에서 대상의 형태와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 보이던 때를 기억하고 , 빛으로 인 해 그 대상의 존재가 휘황찬란했던 때를 기억하며 오브제를 반복적으로 심는과정을 통해 중첩된 이미지 를 재현하는 것이다 . 대개는 이미지들이 하나로 중첩되고 포개지는 형태들이다 . 중첩되는 이중 이미지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시각적이다 . 그리고 자잘한 유리 알갱이들을 사용하거나 점자를 통해 기호와 언어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촉각적이기도 하다 . 이러한 방법에 의해 내 그림은 공감각을 실현한다 . 그리고 그 공감각 은 작품의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소통’ 으로 연결하고자 한다 . - 작업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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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그리고 울림 ( 안녕하세요 ) | 150.0 × 120.0cm | Mixed Media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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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래순

Time of Silence

나의 작업은 집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유연하게 새로운 리얼리티를 나타내고자 한다. 이미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며, 단순한 모방을 통한 것이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재구성해서 보 여 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대상이 가진 이미지를 전통적인 재현방식보다는 사유를 통한 형상적인 방법 과 대상을 전유하여 획득한 감각의 힘을 표현하려 한다. 이는 사물이나 사건을 직접 경험할 때 구현되어 진 다. 즉, 일상적인 삶에서 예술의 연속성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현실 이미지의 기초에서 실제로 경험할 수 없거나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마음속으로 담아 두었던 것을 상상의 힘으로 빌려 집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작업하고 있다. 그 가상을 현실에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꿈꾸 기를 선택한다. 꿈꾸기인 몽상(夢想)은 실현성이 없다고 그 가치를 일반적으로 깎아내린다. 하지만 무엇을 실제로 이룩하게 하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먼저 있어야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에 꿈꾸기는 필요하며 중요한 가치가 있다. 꿈의 세계는 끝없이 세계를 새롭게 조립되거나 변형되어 있어 뚜렷하게 인 식되지 않는다. 그 세계는 원래의 구체적인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는 않다. 꿈속의 생각이나 끝없이 세계를 조립한 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의미 관계를 풀어헤쳐야만 진정한 모 습을 찾는다. 나는 현실 이미지의 기초에서 실제로 경험할 수 없거나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마음속으로 담아 두었던 것을 상상의 힘으로 빌려서 풀고 있다. 이미지에 대한 원래의 현상을 찾는 작업은 이제까지 의 모든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의문을 질문하고 답하는 결과를 이미지로 찾고 만든다. -작업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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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of Silence | 72.7 Ã&#x2014; 60.6cm | acrylic on canvas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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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차현욱

쌓임의 중첩과 스며듬의 중첩

겹겹이 쌓인 중첩은 표면위에 물리적인 두께를 드러낸다 . 겹겹이 스며든 중첩은 두께가 아닌 깊이감의 쌓임으로 사라진 것 같지만 사라지지 않은 중첩으로 드러난다 . 나는 이 스며듬의 겹을 통해 가시성을 벗어나 그늘진 어둠 속 에 감춰져있던 틈새의 그림자들을 발견하고 ,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관점과 교차점을 만들어 나간다 . 또 한 스며드는 먹과 안료들은 자신의 또 다른 감각들을 깨우며 지속적으로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재촉한다 .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은 경계가 허물어진 가시적 세계의 이면이 드러나는 풍경을 회화로 나타내는 것이다 . 우리는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해서 바라보는데 익숙해져 있다 . 빛과 어둠을 있는 것과 없는 것이라는 이분법으로 구분 짓게 되면 , 우리는 그 경계의 테두리에 갇힌 사고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 이러한 경계를 허무는 행위를 시작으로 우 리는 어떠한 ‘가능성’ 을 획득하게 되는데 , 나는 이 가능성에 충실할 수 있는 ‘스며듬의 중첩이 있는 그리기’ 를 통 해 빛으로 충만한 세계의 이면은 어둠의 그림자를 통해서 드러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 밤의 풍경을 매개로 그것을 관찰하며 경험하고 있다 . 나는 현재 그 틈새를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이다 . 그 틈새로 새어 들어온 빛줄기는 시각이 아닌 사고의 시선을 밝히는데 이로인해 어둠은 더 이상 나에게 빛이 사라진 , 또는 흑막의 시공간적 개념을 벗어나 자신을 지배하던 고정된 관념의 이면을 드러내는 ‘세계의 흔적’ 이 되어간다 . 그리고 이렇게 자신에게 와닿은 풍경 은 어둠이라는 어떤 틈을 통해 서로가 개별적인 관계성으로 분리되어 있다기보다는 서로를 드나드는 열린 관계 속 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 - 작업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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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있었던 그날 | 163.3 × 130.3cm | 한지에 먹 |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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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근대미술사

황술조 , 자화상 , 1930, 캔버스에 유채 , 60.8x45.7cm

대구·경북 근대미술의 낭만화가

황술조

김 태 곤 | 대백갤러리 큐레이터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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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경주 솔거미술관에서는 대구·경북 근대미술의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 ‘황술조 회고전’이 개최되어 지역미술계는 물론, 서울에서도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제 1기획전시실에는 〈계림풍경〉과 〈여인〉, 〈정물〉, 〈구룡포소견〉, 〈흑자 (黑子)二 앉아있는 누드〉 등 유화 7점과 수채화 1점, 드로잉 1점 등 총 9점 의 유작들이 선보였다. 그리고 제 2기획전시실에는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 장하고 있는 작품사진집과 대여되지 못한 작품 40여점이 영인본으로 제작 되어 작가의 화풍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특히 1933년 조선중앙일보와 1938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삽화를 처음으로 공개해 작고 80년 만 에 고향에서 마련된 유작전의 의미를 더해 주었다. 1940년 작고한 그의 예술세계를 기리기 위해 동경미술학교 동문인 길진섭과 이병규가 중심이 되어 기획한 유작전 (1940.6.26〜30, 화신백화점 화랑) 이후 60년 만에 고향인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는 점이 무엇보다 큰 의미를 가진다.

토수 황술조(土水 黃述祚, 1904~1939)는 경주에서 대대로 한의원을 운영하던 대지주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1918년 경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양정고 보에 입학해 본격적인 신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본 격적인 미술수업을 받기 위해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동경미술학교 입학을 위해 우선적으로 1924년 가와바타(川端)미술학교에 입학해 미술의 입문과정인 데생 등 기초실기를 익혔다. 동경미술학교는 1909년 고희동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입학한 이후 한국인 유학생들이 증가했지만, 국내에서는 체계적인 서양화 입문과정을 습득할 교육기관이 마땅히 없어 대다수의 유학생들이 가와바타를 거쳐 갔다. 물론 박영선과 정현웅, 구본웅과 같은 작가들은 가와바타를 졸업한 후 귀국해 작품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1925년 동경미술학교에 황술조와 함 께 입학한 이해선, 손병돈 모두 가와바타 출신들이다. 그들의 지도교수는 와다 에이 사쿠(和田英作, 1874~1959)였다. 그는 파리 유학을 통해 외광파 아카데미즘 화 풍을 익혔으며, 1903년부터 동경미술학교 교수로 재직해 1932년 학교장을 역임하 기도 했다. 그의 또 다른 한국인 제자들로는 김정채, 길진섭, 김응진 등을 꼽을 수

황술조 제3회 동미전 출품작 [동아일보, 1932년 7월 20일] 제2회 동미전 포스터 [동아일보, 1931년 4월 8일] 황술조(1904-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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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방향으로 황술조 , 흑자二 앉아있는누드 , 1926, 캔버스에 유채 , 98x78.5cm 황술조 , 구룡포 소견 , 1930 년대 , 캔버스에 유채 , 33.5x48.5cm 황술조 , 연꽃 , 1930 년대 , 캔버스에 유채 , 77.5x98cm 황술조 , 자화상 , 1939, 캔버스에 유채 , 31.5x2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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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동경미술학교 조선인 유학생과 교수, 1929 (황술조-두번째줄 좌측 세번째)

우)황술조 유작전 기념사진(앞줄 좌측부터 부인, 딸 두번째줄 좌측 두번째부터

길진섭, 이해선, 김진섭, 이병규)

있다. 그는 일본 유학시절 여러 점의 유화작품을 남겼는데 그중 〈계림〉(1927)은 방학 중 고향에 머물며 제작한 작품으로 된 계림풍경으로 안정된 구도와 풍부한 표현력이 주는 회화적 묘미 를 극대화시킨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화우였던 구본웅이 소장하고 있던 『황술조 작 품 사진첩』에 남겨진 당시 흑백사진은 이 작품의 진위와 보존 상태를 확인 시켜주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 외에도 〈창측의 정물〉(1925), 〈자화상〉(1925)과 졸업 작품으로 제작 된 〈자화상〉(1930), 〈R군의 초상〉(1930) 역시 그의 초기작품으로 미술사적 가치를 높여주 고 있다.

1930년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한 그는 귀국 후 개성의 호수돈여학교와 개성상업학교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하며 학생들을 지도했다. 동경에서 개성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이 시기는 그 에게 가장 활발했던 시간이었다. 동경미술학교 동문전인 ‘동미전’(1931~2년)과 1918년 설 립 이후 첫 신예작가 공모전을 개최한 ‘제11회 서화협회전’(1931)에도 출품을 했다. 이 공모 전에서는 김기창을 비롯해 한유동, 장우성, 이응로 등이 등단하기도 했다. 또한 유치진 극 본·연출의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의 무대감독을 맡았으며 신문 삽화까지 그렸다. ‘제2 회 동미전’(1932)에 출품한 〈연돌소제부〉는 동료 작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는데, 김용준과 함께 동미회를 이끌었던 선배 홍득순은 “상상력의 풍부함과 교묘한 필치”라는 표현으로 그 의 작품세계를 높이 평가했다. 한편 이 작품은 ‘미술과 사회’, ‘미술과 현실’이라는 조선화단 의 또 다른 논쟁의 중심에서 담론화 되었다. 김용준은 ‘조선의 현실에 유의한 작품’을 위해 작가는 순수한 미의식을 나타내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는 “미술이 어떠한 시대사조 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한 것이라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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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수 황술조 유작전 포스터(1940.6.26-30, 화신백화점 화랑) 황토수 유작전 [동아일보, 1940년 6월 27일]


황술조 , 정물 , 연대미상 , 캔버스에 유채 , 38.2x45.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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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술조 회고전 열리고 있는 솔거미술관 관람객 전경들 (2019)

대적 책무라는 것이다. 반면 황술조의 작품처럼 “가장 조선의 현실을 이해하고, 가장 조선의 현실에 적합한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가장 조선적인 미술이라는 주장 역시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개성의 교직생활을 그만두고 서울에서 작품 활동만 전념했던 작가는 1934년 이종우, 이병규, 송병돈, 김용준, 구본웅, 김 응진, 길진섭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목일회’의 창립회원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이 단체의 성격은 조선미술전람회의 아카 데미즘에 반대하며 조선미전 출품을 거부하였으며, 회원들이 객관적이고 이성적 시각의 ‘서양의 아카데미즘’을 거부하고 주 관적이고 감성적인 ‘동양의 정신’을 서양화의 재료로 표현하려는 노력을 펼쳤다. 작가 역시 이러한 이유로 조선미전에는 단 한 번도 출품하지 않았다. ‘목일회’는 외부압력에 의해 해체된 이후 ‘목시회’로 새롭게 결성되어 1937년 6월 15명의 회원들이 대대적인 전시회를 가졌다. 하지만 이 역시 해체가 되고 그해 12월 ‘동인전’이라는 전시회를 통해 회원 간 교류를 이어 나갔 다. 이는 일본의 중국대륙 침탈정책과 민족말살정책이 강화되는 시점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1938년 전후로 고향인 경주에서 작품 활동과 함께 여과생활을 만끽했던 그는 고미술에 심취해 경주고적보존회에 참여해 활동하였으며, 신라문화 함양에도 앞장섰다. 경주고적보존회는 1913년 설립되어 1922년 재단법인으로 발족한 단체로 조선 총독부 박물관 경주분관의 산하단체는 아니지만 경주박물관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활동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작가는 동 양화에 관한 깊은 애정과 함께 골동품 수집과 다도, 조원술 등 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1939년 인후결핵이라는 병 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요절화가로 기록되고 있다.

‘경주 황부잣집’ 후손으로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했던 시대를 살았던 그는 출세나 자신을 들어 내고자 하는 치열한 삶보다는 자신이 가진 다양한 예술적 재능을 함께 나누며 예술의 풍유를 만끽했던 작가였다. “토수는 이렇게 다양한 긍(亘)한 재주를 가진 탓인지 그의 그림에도 항 상 성광이 빛났다. 그러나 유감인 점은 토수는 몹시 게을러서 좀처럼 그림을 그리려 하지 않 았다. 그래서 그는 기술을 발휘해 주지 못한 채 가버렸다.” 김용준의 회고처럼 우리는 그를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낭만화가로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이다.

황술조 회고전 포스터 (2019.6.25-9.15, 경주솔거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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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대구음악史

. 김진균 (1925-1986)

김진균, 예술가곡과 음악학의 선구자

글 | 음악사연구가 손태룡 음반레이블/옹달샘 추억의 옛노래

김진균은 1925년 11월 8일 중구 계산동 2가 75번지에서 5녀1남 중 다섯 번째로 태어났다. 1986년 8월 29일에 작고한 그는 부친의 독립운동 관계로 1928년부터 조부 슬하에서 성장하게 된다. 조부 때부터 천주교 신자 집안이라 어릴 때부터 계산성 당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서양음악을 접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음악에 대한 관심과 재질이 많아 바이올린을 다루었으며, 대륜중학교에 다니면서는 바이올린 및 피아노를, 대구사범학교 시절에는 음악의 전반에 흥미를 가졌었다. 계산성당에서는 1941년부터 합창활동을 시작하였는데, 김진균은 1953년부터 대구가톨릭성가대의 지휘를 맡아 그해 12월 만경관 극장에서 생상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발표하였다. 그는 안정된 직업을 가지기 위해 1947년 대구사범학교 문 학부 영문과에 입학하였었다. 대구사범학교 입학 이전부터 그는 작곡을 하였는데, 이때 작곡한 곡이 「노래의 날개」와 「금잔 디」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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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균의 제 1 회 작곡발표회 내용 ( 대구미공보원 , 1951. 11. 3.)

작곡에 대한 자신의 애정과 열정으로 1951년 11월 3일 대구미문화원에서 제1회 작곡발표회를 가졌다. 여기에서 자신이 평소에 가장 좋아하였던 신석정의 시에 곡을 붙인 「산수도」 등 10곡을 발표하였다. 그는 평소에도 늘 자유분방한 예술형식 을 좋아하였다. 형식에 너무 구애받지 않고 자유주의자로서의 강한 의지가 그의 작품에 반영되어 간혹 전통형식을 고수하 는 선배음악인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은 매우 서정적이었으며, 때로는 형식을 무시한 것 때문에 노래를 부르는 전문음악인들이 표현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았다. 1947년 이종택의 시에 곡을 붙인 「그리움」은 그의 외롭고 고독한 마음을 달래는 곡으로 오늘날에도 널리 애 창되고 있는 가곡이다. 이후 오스트리아 빈대학으로 유학한 김진균은 작곡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서양음악사와 비교음악학을 연구한 후 “한국 민요의 비교음악학적 고찰”이란 논문을 발표하여 1964년 2월 7일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해 귀국하여 여러 대학에 출 강하다가 이듬해인 1965년부터 계명대 음악과에 전임교수로 재직하게 된다.

그가 작곡을 시작한 것은 23세 되던 1947년부터이다. 하이네의 시 「노래의 날개」에 심취해 처음으로 곡을 지었는데, 이 때는 서구적인 스타일로 출발하였다. 차츰 한국적인 것에 눈을 뜨기 시작하여 한국적인 특 성이 잘 들어나 있는 현대시인들의 서정세계에 탐닉하게 된다. 그 결과, 1970년 5월 󰡔김 진균가곡집󰡕을 출간하였으며, 1974년에는 가곡선집 '초혼'을 발간하는 한편, 한국어의 음 률에 맞는 새로운 음악어법을 토대로 우리의 정서를 짙게 그려내는 곡을 작곡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평소 “예술가곡은 그 나라의 언어적 특성과 언어의 아름다움을 기반으로 해야 한 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언어가 노래로 자연스럽게 발현된 것이 민요라면 예 술가곡은 민요적 특성에 기반을 두어야 하고, 그러한 성악예술만이 진정한 예술가곡”임 을 주장해 왔었다. 또한 1981년 경북대에 예술대학이 신설되자 그는 예술대학장으로 자 리를 옮긴다. 박사학위논문 ( 오스트리아 빈대학 ,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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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영선과 결혼 ( 계산성당 , 1954 년 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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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박사학위 수여식 (1963.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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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스트리아 빈대학 유학시절 4. 제 12 회 경북도문화상 수상 (1971) 5. 제 7 회 한국음악의 밤 (1980.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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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진균가곡집 ( 이상사 , 1970) 2. 또 한송이 나의 모란 음반 ( 성음제작소 ,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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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진균가곡발표회 프로그램 ( 서울국립극장 , 1972.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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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진균의 ' 이별 ' 친필악보작곡집 ' 산넘어 저 하늘이 '(1986) 5. 작곡집 ' 招魂 ' (1974)

경북대 재직중에는 음악학 연구도 함께 하였는데, 1984년에 발간한 서양음악사(공역서)와 음악과 전통이란 단행본의 발간 이다.그리고 자신의 회갑기념가곡발표회를 1984년 11월 6일 어린이회관내 꾀꼬리극장에서 가졌다. 대표작 15곡이 선보여진 <김진균회갑기념작곡발표회>에서는 또 한송이의 나의 모란을 비롯하여, 짧은 이 한때, 광야, 3월, 춘양유문, 산유화, 서시,노 을 속에서, 남사당, 추천사, 그리움,강강수월래, 청산에 살고 싶어라, 가을 저녁의 시, 귀촉도가 무대에 올려졌다.

한편 음악이해의 방법 연구서와 김진균가곡 85곡집:산넘어 저 하늘이의 창작가곡집이 1986년에 유작으로 발간되었다. 그는 음악이해의 방법에서 “근년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나 음악예술에 대한 이론적인 태도와 학문적인 사고가 허약하 다”고 지적하고 있다. 음악은 예술적 실천으로서의 면과 학문적 연구로서의 면이 병행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1985년 10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그는 자작시에 곡을 붙여 이별이란 가곡을 마지막으로 작곡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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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격동기의 대구미술

신석필

그리움과염원

신석필 , 이방인 , 연도 미상 , 캔버스에 유채 , 54 × 45cm, 대구미술관 소장 ( 박동준 유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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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은 수많은 이들의 삶을 바꿔놓 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화가 신석필(申錫 弼, 1920-2017)도 그러한 피난민들의 무리에 끼어 있었다.

신석필은 황해도 사리원 출신으로 전쟁 이전까지는 평양미술학교 의 조교로 재직했지만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없었던 북녘 화단 에 환멸을 느끼고 1951년 1.4 후퇴 무렵에 부산으로 향하는 피난길 에 올랐다. 그리고 휴전이 이루어지자 서울로 올라가던 도중 우연히 버스 사고로 대구에 머물게 되었으나, 이후 대구의 삶과 풍토가 마음 에 들어 쭉 이곳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이후 총 60여회에 달하는 개 인전과 더불어 수많은 단체전에 출품하였고, 남문시장에서 동서미술 학원을 운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며 대구를 대표하는 원로 작가로 자리메김하였다. 살아생전 작업실에서 신석필선생님 , 화가 김진혁과인터뷰 했다 - 이 인터뷰는 사각잡지에 실려있다

마침 올해는 신석필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다. 그 래서 이번에는 80여년에 달하는 작가의 화업에서 시기별 대표작 10 여점을 선별하여, 작게나마 지상 유작전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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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60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1. <이별의 곡>, 1957년, 캔버스에 유채, 137×227cm, 대구미술관 소장. 1951년 1.4 후퇴 무렵에 피난길에 오른 신석필은 1959년 이 경험을 주제로 150호 크기의 대작 2점을 그렸다. 이 작품은 그 중 하나로, 고향에서 가족 중 절반과 이별하고 월남해야 했 던 당시의 아픈 기억을 갈색 위주의 색채로 애달프게 표현하였다. 2. <마스크>, 1959년, 캔버스에 유채, 98×82cm, 개인 소장. 1950-60년대 신석필의 작품은 주로 갈색 위주의 어두운 색채가 두드러지지만, 드물게 푸른색 계열의 색채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작가의 해설에 따르면 “인간의 이중성을 가면 으로 은유”했다고 하며, 부릅뜬 눈과 기괴하게 변형된 입이 캐리커처나 만평처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였다. 3. <탈출>, 1960년, 캔버스에 유채, 90.5×64.5cm, 대구미술관 소장. 신석필은 자유가 억압된 북녘을 떠난 경험을 ‘탈출’에 비유하곤 했다. 이 작품은 <이별의 곡>의 뒤를 이어 전쟁 경험을 표현한 것으로, 급히 피난길에 올랐던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가녀 린 여인상으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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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1979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1. <일식(日蝕)>, 1967년, 청동, 70×70×148cm, 대구문화예술회관 소장. 신석필은 평양미술학교 재학 시절 조각과 소조를 부전공으로 하였다. 이후 대구에서도 조각을 시도하는 작가가 거의 없자 몇 점의 조각 작품을 발표하는데, 이 작품은 그 중 유일하게 남은 것이다. 작가의 해설에 따르면 “해를 가리는 사람”의 모습으로 전쟁 직후의 우울했던 사회상을 담은 작품이다. 2. <만추>, 1975년, 캔버스에 유채, 90×116cm, 대구미술관 소장. 초가집과 가을 풍경은 신석필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자주 다루어진 모티프이다. 이들은 대개 <이별의 곡>, <탈출>처럼 아련한 갈색으로 마치 떠나온 고향 풍경에 대한 그리움을 암시 하는 듯하다. 3. <가을의 여인>, 1975년, 캔버스에 유채, 63×51cm, 대구미술관 소장. 앞서 소개한 <만추>처럼 가을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신석필은 일생동안 수많은 여인상을 그렸지만, 이 작품처럼 머리에 무언가를 인 여인을 특히나 많이 그렸다. 향토적인 생활상의 단면을 보여주는 이러한 여인상은 홍종명, 황유엽, 전선택 등 여러 실향민 작가도 즐겨 그린 모티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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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99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1. <지층>, 1980년, 캔버스에 유채, 111×145cm, 대구미술관 소장. 수많은 이들의 삶을 파괴한 한국전쟁은 신석필의 작품세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다. 이 작품은 전쟁 중 탄환, 폐품 등 온갖 무기들이 지층에 매설된 모습을 표현하 였고, 작가의 반전주의적 성향을 드러낸다. 2. <지층>, 1981년, 캔버스에 유채, 97×130cm, 대구미술관 소장. (해설은 위와 동일) 3. <낙동강>, 1995년, 캔버스에 유채, 129×250cm, 대구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무한한 생명력을 품은 자연의 자비로움을 낙동강의 강줄기와 여체의 실루엣을 결함시킴으로서 표현한 것이다. 전쟁의 아픔을 뼈저리게 경험한 작가의 입장에 서 이 작품은 이상향의 은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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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2017

왼쪽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1. <파피루스>, 2000년,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대구미술관 소장 만년에 작가는 세계 여행을 다니며 해외에서도 개인전을 갖는 등 더욱 정열적인 활동을 보였다. 이집트 여행 중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고대 이집트 문명의 상징인 파피 루스와 피라미드의 실루엣을 겹쳐 추상적이며 신비로운 구성을 만들어냈다. 2. <불사조>, 2001년, 캔버스에 유채, 158×197cm, 대구미술관 소장. 2000년대에 접어들며 신석필은 “불사조” 연작에 몰두한다. 하지만 작가의 불사조는 서구의 불사조(Pheonix)처럼 죽음 뒤에 새로 부활하는 모습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 까지 영원히 살아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작가의 불사조는 길상을 뜻하는 민화 속의 새처럼 해학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즉 “불사조”는 한국적 해학미를 탐구한 연작이 라 하겠다. 3. <페르소나>, 2009년, 캔버스에 유채, 162×130cm, 개인 소장 작가는 만년에 “얼굴”을 주제로 수많은 작품을 그렸다. 여기서 “페르소나”라는 단어는 “개인이 사회생활 속에서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지 않기 위해 겉으로 드러내는, 자 신의 본성과는 다른 태도나 성격. 사회의 규범과 관습을 내면화한 것”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1959년의 <마스크>처럼 풍자적인 메시지를 은유한 것 으로 보인다. 글 안태연 | 객원기자 * 작품사진은 작가유족의 동의 후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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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연극

연극 만들기4 : 코로나19를

맞이하여 연극의 재탄생 글 김태석 예전아트홀 대표·극단 예전 예술감독

코로나 19 가 창궐하고 연극계는 전례 없던 위기를 맞이하였다 . 물론 연극계 뿐 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서 생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을 맞이하여 그 어려움이란 상상하기도 힘든 지경이지만 특히 연극계를 포함하여 공연예술 분야는 더욱 심각한 상태 에 빠져있다고 할 수 있겠다 . 그 중에도 연극계는 더 큰 위기 속에서 공황상태에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코로나 19 의 위기 속에서 공연예술계는 온라인 영상공연이란 비대면 공연의 형태로 공연을 하고 있다 . 연극 또한 이런 비대 면 영상공연으로 공연을 하기도 하지만 사실 연극을 영상으로 송출하여 공연을 대처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 왜냐하 면 연극을 영상으로 찍어 온라인으로 송출하게 되면 그것은 무대종합예술이 아니라 영상종합예술이란 영역으로 전환되기 때 문이다 . 즉 연극의 특징 중 가장 중요한 현장성과 관객과 같은 공간에서 교감하는 상호교감성이 상실되기 때문에 연극으로서 의 기능은 상실되기 때문이다 . 다시 말해 연극을 영상으로 찍는다는 그것은 단순히 기록물로서의 존재가치를 지닐 뿐이다 .

코로나 19 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정해진 거리두기와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일부 극단에서 공연을 감행하고 있다 . 우리 극 단예전에서도 코로나 19 사태가 조금 가라앉아 심각성이 숙져있을 때 두 작품의 막을 올렸다 . 작품을 연습하면서 어떻게 하 면 배우와 스탭 그리고 관객들이 안전하게 작품을 공연하고 관람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작품을 만들어 갔다 . 통상의 공연방 식과 다른 무대작업을 연구하였고 배우와 관객을 단절시키면서도 감흥이 전달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고 시도를 하였다 . 대사보다는 행위를 강조하였고 대사의 직접전달보다는 녹음을 하여 스피커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였으며 관객 석과 무대 사이를 검정 샤막으로 막기도 하였으며 코로나 19 를 차단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무대에 활용하였다 . 실험 아닌 실험이 무대에서 벌어진 것이다 .

그러나 그러한 생소한 노력들이 노력한 만큼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 무대는 활력을 잃었으며 거리두기를 통해 평소의 3 분의 1 도 안 되는 자리를 채운 많지 않은 관객들은 소극적인 태도로 무대의 감흥을 느끼기에 마음의 준비가 되 어있지 않아 연극을 충분히 즐길 수가 없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코로나 19 의 공포 속에서 이렇게나마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꼈으며 코로나 19 덕분에 시도란 여러 방법 중에서 새로운 표현방식을 발견하여 창조적 예술행위에 대한 기쁨도 느꼈다 . 그러나 이것도 잠시뿐 코로나 19 의 2 차 확산이 시작되면서 극장의 문을 다시 꽁꽁 걸어 잠가야 했다 . 몇몇 공연하는 극장도 급격히 줄어든 관객 수에 가슴이 타 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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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기 연극인들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 아직 대구에서는 다행이도 연극인중에 한명도 코로나 19 에 감염되 지 않았다 . 그만큼 주의를 하고 철저히 거리두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 그러나 이 또한 장담할 수 없다 . 그러니 당장 연 습이 걱정이고 연습이 안 되면 공연을 할 수가 없다 . 공연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 길이 없다 . 사실 지금 상황에서는 공연을 해도 손해 안 해도 손해다 . 그렇다면 하고 손해 보는 것이 덜 손해 아닌가 . 그런데 몸이 상하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 이런 진퇴양난 -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연극인들이 살아갈 길은 무엇인가 ? 답이 없다 . 정말 넋 놓고 앉아만 있어야 하는가 ?

천만에 ! 그럴 순 없다 . 몇 천 년을 이어온 연극 아닌가 ? 전쟁 중에도 멈추지 않고 막을 올렸던 연극 아닌가 ? 어떤 극한 상 황 속에서도 그 존재감을 잃지 않고 그 의미를 밝혔던 예술 아닌가 . 분명 그 전통을 이을 길이 있을 것이고 어두운 세상을 밝 힐 방법이 있을 것이다 . 마냔 주저앉아 세상 탓만 할 수 없다 . 정말 공연할 수 있는 극히 미세한 틈만 있어도 우리 연극인들 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무당이 작두 끝에 서는 심정으로 막을 올려야 한다 . 걱정하기보다 그 시간에 방법을 찾아야한 다 . 연극은 멈출 수 없다 . 그 방법을 찾을 때까지 잠시 쉴 뿐이다 . 아니 쉬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고 연습하는 것이다 . 그래 서 연극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어려움에 힘들어하는 시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다 . 이것이 바 로 지금 이 때 우리 연극인들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 절대 좌절하지 말고 연극을 만들어 가야한다 . 지성이면 감천이라 고 이런 우리의 태도는 관객들을 감동시킬 것이고 관객들은 극장을 다시 찾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만약 거리두기와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킨다면 사실 극장이 제일 안전하다 . 식당 , 카페 등 어떤 곳보다 안전한 곳이다 . 그렇 지 않은가 . 극장에 와서 연극을 보며 마스크를 벗을 일도 없고 대화를 할 일도 없다 . 가장 안전한 극장에서 한 두 시간 동안 코로나 19 로 힘든 몸과 마음을 쉬었다 가는 것도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 이러한 밝은 면을 생각하 며 우리 연극인들은 철저한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연극을 만들고 극장의 문을 활짝 열어 두어야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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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클래식

대구시립교향악단 제465회 정기 연주회

클래식 음악 속으로 리뷰어 박순선 | 공연객원기자

정말 오랜만의 콘서트 하우스 나들이였다. 코로나 19의 영향이 이렇게까 지 장기화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겨우 한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재확 산의 조짐이 보이다니, 공연계의 암담함이 피부로 느껴지는 듯한데요. 콘서트 하우스 주변 주택가에 주차하고 걸어가는데 멀리서부터 브라스 소리가 들려서 연습하는 소리가 바깥까지 들리네 하고 생각했어요. 시간 이 촉박해 콘서트 하우스 계단을 뛰다시피 올라갔는데 콘서트 하우스 광 장에는 다른 연주가 펼쳐지고 있었어요. 클래식 포레스트란 제목으로 광 장에 무대를 마련한 작은 음악회였는데 오늘은 5대의 브라스가 등장한 신나는 무대였죠. 흥이 절로 나는 소리였지만 아쉽게도 잠깐밖에 듣지 못했어요. 입구에서 발열 체크를 하고 손 소독, 개인정보 확인, 티켓수령 까지 일사천리로 하고 세세한 방역에 다소 안심이 되었네요. 공연장에 들어서자 표를 구하기 어려운 이유를 알게 됐어요. 한 줄 건 너 한 줄에 있는 모든 의자와 관객이 앉지 않는 좌석 두 칸에도 모두 흰 종이테이프가 둘려 쳐 있었어요. 테이프에 적힌 ‘공연이 계속될 수 있도록 안전거리를 지켜 주세요’라는 문구를 보자 울컥했어요. 며칠 전 뉴스에서 영국의 유명한 극장에서 마스크를 쓰고 띄어 앉는 거리 두기 공연을 오픈하자 사람들이 더 슬퍼 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비록 환호 소리가 적어도 이런 시국에 공연하는 음악가들도 관객이 고맙고 관객들은 공연 자체가 감사 하고 그래서 더 감동적인 거 아닐까 싶네요.

2014년 4월. 대구 음악계로서는 이미 역사적인 날이 됐습니다. 시립교향악단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줄리안 코바체프 님이 부임했기 때문이죠. 이탈리아, 미국, 독일, 터키, 헝가리, 스페인, 한국 등 세게무대에서 오케스트라 및 오페라 지휘자로 활약하고 있는 그는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태어나 어릴 때 바이올린을 시작으로 클래식에 입문했습니다. 프란츠 자모힐, 헤르베 르트 알렌도르프, 폰 카라얀을 사사하며 지휘공부를 병행해 1984년 카라얀 지휘 콩쿠르에서 입상하기도 했죠. 세계적인 유수 의 오케스트라 지휘 뿐 아니라 세계적인 극장에서의 오페라 지휘 그리고 오페라 페스티벌까지 성공적으로 이끈 실력 있는 지휘 자입니다. 차이콥스키, 슈만,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전곡,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전곡,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녹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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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RAM** INTO THE CLASSICAL MUSIC

‘Into the Movie’ for Piano Concerto (2019 Ver.)

그리그 E.Grieg

Intermission

페르 귄트: 모음곡 제 1번, Op.46

베토벤 L.van Beethoven

Peer Gynt : Suite No.1, Op.46

교향곡 제 3번 Eb 장조, Op.55 ‘영웅’

1. Morgenstemning 2. Åses død

Symphony No.3 in E-flat major, Op.55 ‘Eroica’ 1. Allegro con brio

3. Anitras dans

2. Marcia funebre : Adagio assai

4. I Dovregubbens hall

3. Scherzo : Allegro vivace

이 호 원 Howon Lee

4. Finale : Allegro molto

피아노 협주곡을 위한 ‘영화 속으로’ (2019년 개작)

발매한 10여 장의 음반도 호평을 받았죠. 그의 섬세하고 깊이 있는 지휘에 1200석 규모의 대구 콘서트 하우스는 매회 전석매진의 신화를 기록하고 있고, 대구의 클래 식 열풍에 단단히 한몫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유명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39세 되던 1867년에 완성한 [페르 귄트]는 그가 노르웨이의 민요 채집 여행에서 얻 은 전설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5막의 시극입니다. 입센은 이 시극이 낭송에는 적합하지만, 무대 상연에는 어려움이 있다 는 것을 깨닫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풍부한 음악이 필요했어요. 1874년 초 입센은 당시 명성이 높았던 그리그에게 극음악 작 곡을 의뢰하지만, 그리그는 자신의 음악적 성향이 서정적이어서 입센의 환상적이고 극적인 시극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 단해 선뜻 수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의욕적으로 작곡을 시작한 결과 그리그의 다른 작품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격렬한 극적 기복이 돋보이는 음악을 작곡하게 되었지요. 작품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노르웨이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페르 귄트는 아버지가 재산을 탕진한 채 세상을 떠나 자 어머니 오제와 가난하게 살고 있었어요. 공상가이자 허풍쟁이였던 페르는 솔베이그와 결혼하고도 방랑벽이 도져 떠돌던 끝에 미국에서 금광을 발견해요. 그러나 귀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무일푼이 되죠. 겨우 귀향을 해서 백발이 된 솔베이그의 품 에 안겨 죽음을 맞게 됩니다. 제1곡은 원곡의 4막 전주곡인데요. 플롯과 오보에. 클라리넷의 목관악기 소리가 청명한 아침을 느끼게 하는 연주였어요. 현악에 비해 관악의 편성이 너무 적은 게 아닌가 싶었는데 크지 않은 소리가 오히려 집중력 있게 들려서 더 깨끗한 소리가 났 던 것 같아요. 제2곡은 오제의 죽음으로 원곡의 3막에 나오는 곡인데요. 내용을 모르고 음악만 들어도 비통함을 느낄 수 있는 현악들이 일 제히 울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눈물이 날 뻔했답니다. 섬세한 표현력에 정말 감동 받았어요. 제3곡은 아니트라의 춤으로 원곡의 4막에 나오는데요. 아라비아 사막이 배경인 만큼 이국적인 색깔이 드러나는 마주르카 템포의 춤곡이 흐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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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 클래식

제4곡은 드브레산 마왕의 동굴에서라는 제목으로 원곡 2막에 등장하는 음악이에요. 행진곡풍 곡이긴 하지만 왠지 무거운. 그리고 저음이 많이 쓰인 곡인데요. 마왕의 딸을 납치하려는 페르를 막기 위해 마왕의 부하들이 그 주위를 맴돌며 춤을 추고, 큰 폭음과 함께 부하들이 흩어지는 광경을 묘사한 대목이에요. 음악을 들어 보시면 아, 이 음악 어디서 들었는 데라고 생각하 실 텐데, 만화영화 형사 가제트의 삽입곡으로 쓰이기도 했지요. 귀에 익숙한 음악이기도 하고 섬세한 연주가 너무 좋아서 집에 와서 반복해서 들었답니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지휘자의 역량 이 돋보인 연주였습니다.

두 번째 곡은 이호원 님의 피아노 협주곡을 위한 ‘영화 속으로’라는 곡이었는데요. 소리에 대한 시간적 관점 그리고 울림의 다변화가 주된 관심사라는 소개 글처럼 다양한 연주기법을 보여 주었습니다. 현악기도 타악기처럼 연주하고 심지어 피아노도 현을 뜯는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 연주였는데요. 예술적 조예가 깊지 않은 저에게는 난해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연주에는 피아 니스트 손은영 님이 협연해 주셨는데요. 슈만 음반을 발매하기도 한 실력파 연주자로 풍부한 소리와 성숙한 음악으로 인정받 는 피아니스트입니다. 가냘픈 모습으로 피아노 현을 뜯는 퍼포먼스까지 해내셨네요. 여리여리한 모습의 등장에 반해 연주가 시작되자 강렬하게 건반을 점령하는 모습을 보이셨답니다. 화려한 연주경력에도 불구하고 신인 같은 순진함도 보여 주어 연 주가 더 강렬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네요. 올해는 베토벤 서거 250주년이라 그런지 어디를 가나 베토벤 곡들이 연주되는데요. 코바체프 지휘자님의 픽은 교향곡 3번 영웅이었습니다. 베토벤의 전기작가 쉰들러의 견해에 따르면 베토벤은 빈 주재 프랑스 대사 베르나도트로부터 1789년 일어 난 프랑스 혁명과 이 혼란을 잠재운 나폴레옹의 업적을 듣고 감동하였다고 해요. 이후 시대의 영웅적 면모를 담은 신작으로 이 곡을 완성한 베토벤은 악보 표지에 ‘보나파르트로 제목을 붙이다’라고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보나파르트가 아닌 영 웅이 제목이 됐을까요? 베토벤의 제자 페르디난트 리스의 수기에 의하면 책상 위의 총보 표지에는 보나파르트와 베토벤의 이 름 외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일각에서는 시대의 영웅인 줄 알았던 나폴레옹에게 실망한 베토벤이 표지 를 찢었다는 설도 있었죠. 현존하는 총보의 표지에는 “신포니아 에로이카”라고 적혀있고 아래에는 ‘어느 영웅을 회상하기 위 해’라고 덧붙여져 있다고 합니다.

지휘하시는 스타일이 누군가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카라얀이 아니었나 싶네요. 흔들리는 은발과 크지 않은 동작. 격정 적인 순간에 나오는 퍼포먼스. 너무 멋졌습니다. 저는 3악장 스케르초 부분이 가장 좋았는데요. 즐겨 듣던 곡이기도 하고 호 른 연주가 너무 감미로워서 좋아합니다. 콘트라베이스가 8대나 등장해서 저음부를 많이 보강한 연주였는데, 묵직한 현악 소 리가 너무 좋았어요. 시향의 정기연주 티켓 구매가 좀 덜 치열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긴 하지만 이 좋은 연주를 많은 사람과 함 께 누렸으면 싶기도 하네요. 한음 한음 정성을 다해 연주하시는 연주자 대구시향 연주자 여러분과 아름다운 지휘자님께 다시 감사드려요. 평화로운 시기가 다시 올 때까지 건강하시길 바래요. -대구시향의 리플렛 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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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공연

뮤지컬 <렌트> 청춘이여,

뜨거운 오늘을 만들자!

2020. 6.16. - 8.23. 디뷰크아트센터 리뷰어 김지영 | ‘관객의 소리’ 운영자

뮤지컬 < 렌트 > 는 오페라 < 라보엠 > 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 이 작품 의 작가이자 작곡가인 조나단 라슨 (Jonathan Larson) 은 대학 졸업 후 난방 도 되지 않은 단칸방에서 살며 10 년간 웨이터 일을 했고 , 그떄 보고 느낀 것 들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쓰고싶어했다고 한다 . 그래서 렌트를 완성했지만 공 연이 올려지기 바로 며칠 전에 요절하고만다 .

그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렌트를 상징하고 1996 년 이 작품 이 공연 되었을 때 , 젊은 층의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지금까지도 사랑 받는 작품이 되었다 . 에이즈 , 마약중독 , 동성애 등 사회적으로 금기된 소재 로 파격적이고도 도발적인 첫 걸음을 내딛고 ' 오늘 ' 의 가치와 청춘의 열정 을 다뤄 'Rent-Heads( 렌트헤즈 )' 라는 새로운 팬덤 문화를 만들 정도로 흥행을 하였다 . 소재만큼이나 파격적이었던 것은 음 악이었다 . 대형 뮤지컬이 휩쓸고 있던 브로드웨이에 팝 , R&B, 탱고 , 가스펠 등 여러가지 현대적인 음악을 사용하여 젊은 층 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 한국에서는 스타등용문이라고 불릴 정도로 뮤지컬 배우에게는 초심의 꿈이자 , 욕심나는 작품이다 .

1989 년 12 월 24 일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그후 1 년까지 뉴욕의 어느 빈민가에 사는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의 이야기이다 . 그 들의 삶을 채워주는 것은 서로를 향한 사랑과 우정이고 내일보다는 오늘이 더 소중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야한다는 것을 말해주 고 있다 . 작품이 만들어진지 20 여년이 흘러 소재가 다소 낡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렌트가 주는 본질 자체는 젊은이들의 치열 한 삶을 보여주며 청춘의 에너지를 뽐내기 때문에 시대가 흘러도 젊은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작품이 될 것이며 청춘이라 면 누구나 공감하고 위로를 받을 작품이다 . 그렇기 때문인지 많은 대학에서 학과공연으로 렌트를 올리는 경우가 많다 . ' 젊음 ' 의 대표작인 셈이다 . 90 년대 미국의 청년층과 한국의 청년층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공감과 이해를 하지는 못해도 이 작품이 청춘에게 건네는 위로는 국적과 문화를 뛰어넘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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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년 공연 이후 9 년 만에 다시 돌아온 렌트는 브로드웨이 연출가인 앤디 세뇨르 주니어가 직접 2020 한국 연출이 되어 논 레플리카 형식 말고 레플리카 형식으로 연출이 되었다 . 덕분에 보다 유연하게 한국 관객들을 맞이할 수 있었고 , 모든 배역이 새로운 배우들로 캐스팅이 되었기 때문에 조금 더 신선하게 느껴졌다 .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동성애를 다루는데 게이와 레즈비언을 함께 다룬다는 점이다 . 근래 만들어진 동성 뮤지컬을 보면 대부분 게이들에게 더 많은 포커스를 두고 있다 . 동성을 사랑하는 것에는 여자도 같기 때문에 레즈비언들의 이 야기도 많이 생겨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 공연을 소비하는 층이 여성이 많다는 것은 많은 설문조사와 연구에서도 밝혀진 바이다 . 그렇기 때문에 여자 소비자층을 타깃으로 하여 게이극이나 남자배우들로만 구성하는 공연들이 많아진 것은 이해가 되 는 부분이지만 다양한 배우들이 다양한 무대에 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앞으로도 열정적이고 다양한 작품이 많이 만들어지 기를 ! 열정적이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느끼고 싶다면 렌트하세요 . 기억하자 . No Day But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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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AL LETTER Untact시대에 Contact하기... untact

2020 년 코비드 19 로 UNTACT 하는 시대가 가속화되었다 . 시대에 발맞춰 준비할 새도 방어할 새도 없게 어이없이 찾아온 미래가 현재가 되어버렸다 . 너무 늦진 않았을까 . 고민할 시간도 없다 .

아무것도 만지지 말고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요즘 , 실물경제가 어렵게 됐다 . 경제가 어려우면 문화 , 예술은 더욱 어렵다 . 그렇기에 문화예술을 다루는 매체 , 그것도 디지털이 아닌 종이라는 아날로그 매체는 더더욱 어렵게 되었다 . 그나마 본지에서 열심히 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종이로나마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콘텐츠를 준비했다 .

코비드 19 와 살아가기 위해서 시대의 변화 , 불안 속에서 이성적인 생각과 생활방식이 요구된다 .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될는지 ... 우리는 그것을 예술에서 답을 찾고 싶다 . 예술의 형태가 어떤 식으로 바뀔지는 모르지만 빡빡한 지금 , 우리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키워야 한다 . 그만큼 여유를 가지기를 희망하면서 ...

오늘은 LP 판으로 음악을 듣고 싶어진다 . 이 또한 커다란 나무를 키우는 것이 아닐까 .

2020 0910 SAGAK ARTS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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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을버립시다! 걱정 없는 인생을 바라지 말고 걱정에 물틀지 않는 연습을하라.

- 알랭 드보통

걱정을 짐자리로 가지고 가는 것은등에 잠을 X口X는· 것이다. _토□� 하리발톤 걱정하는 데에 쏟은 열정을 하는 일에 쏟는E뻔 분명히 성공할 것이다. -X口 X뮬러

꿈을되살립시다! 꿈을 겨苗 간직하고 있으면 반드시 실현할 때가온다. _요한볼프강폰 괴테 꿈이 없는사람은 아무런 생명력도 없는 인형과같다.

- 발타자르그라시안 - 탈무드

승X£1 주머니 속어는 꿈이 있고 패X回 주머니 속어는욕심이 있다.

이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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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포커스 대덕문화전당 재개관전 인터뷰 조각가 방준호 대구시립극단 예술감독 정철원 Gallery in Paper 노지민 · 박미 · 정래순 · 차현욱 2020 sep. oct. VOL.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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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86-2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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