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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NTT 빌립보서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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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ing Christ in Joy and Sorrow: A Theology of Philippians

Copyright ⓒ 2025 by Chris Bruno

Published by Crossway, a publishing ministry of Good News Publishers Wheaton, Illinois 60187, U.S.A.

This edition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Crossway through rMaeng2, Seoul, Republic of Korea. All rights reserved.

This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6 by The Revival and Reformation Press, Seoul, Republic of Korea.

이 한국어판의 저작권은 알맹2를 통하여 Good News Publishers 와 독점 계약한

부흥과개혁사에 있습니다.

빌립보서 신학

발행일 2026년 8월 15일

지은이 크리스 브루노

옮긴이 권대영

펴낸이 김은주

펴낸곳 부흥과개혁사

편집 권대영 디자인 박슬기 기획 이승영 마케팅 권성직

인쇄소 영진문원 판권 Ⓒ부흥과개혁사 2026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6길 9-20, 2층(서교동)

전화 Tel. 02) 332-7752 Fax. 02) 332-7742

홈페이지 http://rnrbook.com e-mail rnrbook@hanmail.net

ISBN 979-11-7540-084-9 (94230)

978-89-6092-756-8 (94230)(세트)

등록 1998년 9월 15일 (제13-548호)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는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추구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부흥과 개혁이 이 시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조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의 방향을 위한 이정표이자, 잠든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나팔 소리요, 깨어난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장작더미이며, 부흥과 개혁을

꿈꾸며 소망하는 교회들을 하나로 모아 주기 위한 깃발이고자 기독교 출판의 바다에 출항하였습니다.

이 책을 마무리할 무렵 아버지가 말기 암으로 입원하셨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아버지의 병실에 앉아 주님이 아버지

를 본향으로 데려가실 날을 준비하고 있다. 빌립보서의 메시지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깊이 뿌리를 내린다. 이 짧은 편지가 첫 수신자

들을 훌쩍 넘어서는 신학과 적용을 가르치는 까닭은 이 편지가

놀라운 주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은 신비

롭게, 그러나 실제로 신적 메시아와 연합되어 있었다. 그 메시아는

로마의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셨으나 무덤에서 승리자

로 나오셨다. 여러 세기에 걸쳐 온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은 고난과 영광 모두에서 그리스도와의 이 신비로운 연합에 계속 참여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것이 빌립보서의 신학이며, 이 신학의 진리는 슬 픔 가운데서도 또 슬픔을 통과하면서도 우리에게 큰 소망을 준다.

빌립보서에는 1세기의 한 교회를 위한 구체적인 지시와 격려와

문안이 담겨 있지만 이 편지는 그 밖의 수많은 상황과 형편 속으로

도 여전히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말한다 이 편지는 바울이 썼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어 하나님 백성이 기쁨과 슬픔을

지나는 동안 복음 안에서 하나 되어 굳게 서도록 소망과 격려를 주

기 때문이다 이 소망이 아버지의 생애 마지막 날들에 아버지를 위

로했고,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기쁨이 땅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밀어낼 주의 날을 기다리는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

배경 이 책의 신학을 살피기에 앞서 몇 가지 배경을 짚어 두는 것이 유

익하겠다. 첫째, 바울은 아마도 60년대 초 로마에 갇혀 있을 때 이

편지를 썼을 것이다. 바울이 갇힌 곳이 가이사랴나 에베소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빌립보서 1장 13절의 “시위대”와 4장 22절의

“가이사의 집”이라는 언급은 그가 로마에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

한다( 아마도 행 28:16, 30–31에 언급된 투옥 기간이었을 것이다 ). 1) 따라서 이

책 전체에서 나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었다고 전제할 것이다.

1) 고든 피는 “이 본문들의 자연스러운 독법은 이 편지가 로마에서 기록되었음을 함축한다”라고 바르게 지적한다. Gordon D. Fee, Paul’s Letter to the Philippians, NICNT (Grand Rapids, MI: Eerdmans, 1995), 34. 이는 존 칼빈의 전제이기도 했다. John Calvin, Commentaries on the Epistles of Paul the Apostle to the Philippians, Colossians, and Thessalonians, trans. John Pringle, vol. 21 in Calvin’s Commentaries (repr., Grand Rapids, MI: Baker, 2003), 35–36.

바울이 실제로 로마에서 편지를 썼다면 로마와 빌립보 사이의 연관

성이 편지 곳곳에서 그의 머릿속에 있었을 법하다

BC 4세기 필리포스 2세와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이끈 마케

도니아 세력의 팽창기에 빌립보는 광산 자원과 비옥한 농지에 인접

한 전략적 입지 덕분에 마케도니아의 주요 도시로 자리 잡았다 로

마의 세력이 커지면서 이 도시는 BC 168년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

갔고 훗날 옥타비아누스( 후의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 가 마르쿠스 안토

니우스와 함께 이 도시 근처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둔 뒤 도시를 “재 건”했다. 빌립보는 로마 식민시로 선포되었고 그 주민들에게는 로

마 시민권이 주어졌다.2) 그러므로 바울이 처음 도착했을 때 이 도시

에는 카이사르와 그의 제국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었다. 빌립

보에는 그리스계와 로마계 시민이 함께 살았고 유대인 인구는 비교

적 미미했던 것으로 보인다.3)

바울이 처음 빌립보에 도착한 일은 사도행전 16장 11–34절에

2) 이 도시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보라 예. James R. Harrison, “Paul and Empire 2: Negotiating the Seduction of Imperial ‘Peace and Security’ in Galatians, Thessalonians, and Philippians,” in An Introduction to Empire in the New Testament, ed. Adam Winn, Resources for Biblical Study (Atlanta: SBL, 2016), 165–184; N. T. Wright, Paul and the Faithfulness of God, vol. 4 of Christian Origins and the Question of God (Minneapolis: Fortress, 2013), 1271–319. 이 편지의 반 제국적 함의를 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편지의 첫 독자들이 특히 예수께서 주님이시라는 주장을 마주했을 때 하나님의 나라와 로마 제국 사이의 대비를 보 았으리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3) 바울이 선교 여행 중에 방문한 다른 여러 도시와 달리 빌립보에는 유대인 회당 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이 도시에서 맞은 첫 안식일에 회당으로 가지 않고 강가에서 기도하러 모인 여인들을 만났기 때문이다(행 16:13).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 루디아의 집안과 빌립보 간수의 집안이 복음

을 듣고 믿었다 이 정황은 아래에서 더 다루겠지만, 바울이 AD

49년경 처음 빌립보에 도착했고 편지가 60년대 초에 기록되었다면

교회는 세워진 지 10년에서 15년쯤 된 셈이다. 회중이 도시의 구성

을 반영했다면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있었을 것이고 회중의 다

수가 이방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4) 편지가 보여 주듯이 이 교회는

바울의 사역을 꾸준히 후원하며 의미 있는 방식으로 그와 동역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편지가 기록된 계기는 그들이 자기

네 교인 가운데 한 사람인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선물을 보내 온 일

이었다. 에바브로디도는 로마에서 바울과 함께 지내는 동안 몹시

병들었으나 회복되었고, 감사와 격려와 권면을 담은 편지를 지니고

빌립보로 돌아갔다.5)

4) 에바브로디도, 유오디아, 순두게, 글레멘드는 모두 이방인 이름이다. 적어도 교

회가 세워질 무렵 교회는 루디아의 집에서 모였는데(행 16:15, 40), 루디아 역시 이방인 이름이다 그러나 이 이름들 외에 교회의 인종 구성에 대한 구체적인 정 보는 거의 없다

5) 빌립보서의 구조와 장르와 배경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예. Fee, Paul’s Letter to the Philippians, 1–39; Moisé s Silva, Philippians, 2nd ed., BECN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5, 『BECNT 빌립보서』, 부흥과개혁 사 역간, 2020), 1–36; Frank Thielman, “Philippians,” in Zondervan Illustrated Bible Backgrounds Commentary:New Testament, ed. Clinton E. Arnold, 5 vols.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2), 3:343–347. 더글러 스 무는 빌립보서를 “친밀하고 긍정적인 관계를 암시하는 따뜻한 어조, 복음 안 에서의 긴밀한 교제 의식 및 관계의 상호성이 두드러진” 편지로 묘사한다.

Douglas J. Moo, A Theology of Paul and His Letters: The Gift of the New Realm in Christ, Biblical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1, 『BTNT 바울 신학』, 부흥과개혁사 역간, 2024), 298.

18 빌립보서 신학

핵심 주제와 개관

이 책의 핵심적인 성경신학적 주제들을 살피면서 먼저 말해 둘

것은 빌립보서가 바울의 모든 편지와 마찬가지로 강렬하게 기독론

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중심성과 그리스도와 우리의 실제

적 연합을 보는 것이 이 책과 그 권면들을 이해하는 열쇠다. 기쁨과

슬픔 중 그리스도와의 연합이야말로 이 연구 전체에서 내가 드러낼

주제들의 중심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보겠지만 이 주제들

은 서로 상당 부분 겹치므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중심에 둔 벤 다

이어그램으로 그 관계를 나타낼 수 있다( 그림 1을 보라 ).

교회의 하나 됨

복음의 전진 그림 1.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중심에 둔 빌립보서의 핵심 주제들

기쁨과 슬픔 중 그리스도와의 연합

지금 그리고 오는 시대의 삶

1장에서는 빌립보서 2장 1–11절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비하와

승귀를 편지의 나머지 대부분을 떠받치는 토대로 살펴보는 데서 출

발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 및 모든 그리스

도인이 어떻게 기쁨과 슬픔 중에 그리스도를 본받도록 부름을 받았

는지 보겠다

2장에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다. 이 주

제는 편지에 스무 번 넘게 등장하며 교회를 향한 바울의 모든 지시

의 토대를 이룬다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편지의 처음( “그리스

도 예수 안에서 모든 성도에게”, 1:1 ) 부터 끝(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

게 각각 문안하라”, 4:21 ) 까지 빌립보서 신학에서 감당하는 중심 역할을 확인할 것이다. 이어지는 장들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승귀 모두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의 현실에서부터 흘러나온다.

3장에서 우리는 바울이 교회를 하나 됨과 서로 마음을 같이하는

겸손으로 부르는 근거가 교회가 함께 누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2:2–3 ). 그렇기에 교회는 하나님이 교회 가

운데 쓰시는 목회자와 교사들을 알아보고 존중해야 한다( 2:19–30 ).

나아가 교회는 로마가 아니라 장차 올 나라의 전초 기지이므

로 ( 3:20–21 ) 교인들 사이에서 ( 4:2–3 ) , 또 다른 회중과의 관계에

서( 4:14–19 ) 하나 됨을 힘써 추구해야 한다.

4장은 복음 전파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

합과 구원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그의 굳건한 확신( 2:12–13 )

두 측면에서 함께 살핀다. 빌립보서에 담긴 바울의 복음 전파 신학

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모두 들어 있다. 후자의 예로는

빌립보서 신학

그릇된 동기로 전파하는 자들과 복음을 대적하는 거짓 교사들이

있다( 1:12–17; 2:14–15; 3:2–3; 3:17–21 )

5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새 창조의 소망이 이 시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생기를 불어넣는지 볼 것이다. 바울은 편지 서두에서

“그리스도의 날”을 강조하며( 1:10 ) 편지 곳곳에서 그리스도의 재림

과 그리스도와 함께할 종말론적 삶에 관련된 주제들을 부각

한다( 1:19–26; 2:10–11; 3:11, 20–21; 4:5 ). 빌립보서에서 마지막 날의 근

본 소망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더 깊은 교제

와 더 충만한 경험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6장에서는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고난을 지나면서도 끊임없

이 기뻐하라고 요청하는 대목을 살피며 마무리하겠다. 바울 자신이 감옥에 있으면서도 기뻐하는데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복음의 결말

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1:12–18 ). 하나님의 주권적 손길 덕분에 빌립

보 교인들은 어떤 형편에서도 기뻐할 수 있다( 2:14–18; 3:1; 4:11–13 ).

모든 신자에게 가장 큰 기쁨은 그리스도이며 이 기쁨은 다른 어떤

고난이나 상실도 이겨 낼 것이다( 3:8–16 ).

끝으로 빌립보서의 성경신학적 내용에 대해 짧게 한마디 해 둔다.

모이세스 실바가 지적하듯이, 이 편지에는 구약의 명시적 인용이

없고 인유도 드물다.6) 그럼에도 빌립보서는 구약과 이스라엘의 이 야기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 인유들을 샅샅이 훑을 수는 없겠

6) Moisés Silva, “Philippians,” in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Use of the Old Testament, ed. G. K. Beale and D. A. Carson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7), 835.

지만 마주치는 대로 짚고 넘어갈 것이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우리

는 이 편지가 성경 전체의 이야기와 실로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볼

것이다. 다만 이런 성경신학적 연결에 대한 탐사는 이 기획의 성격

상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다른 학자들이나 논쟁 중인 견해들과

의 상호작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빌립보서에 대한 이 신학적 개관에 들어서면서 독자 여러분이 자

신의 기쁨과 슬픔 중에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새롭게 헤아려 보기를 권한다 거의 2천 년 전 로마의 감

옥에서 기록된 이 짧은 편지가 부활하여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의 연합을 통해 주님의 은혜를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계속 말하고

있는지, 주님이 우리 눈을 열어 그 은혜를 새롭게 보게 하시기를 바

란다.

빌립보서 신학

고난받고 높임 받으신 그리스도

빌립보서를 연구하려면 반드시 그리스도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 편지 처음부터 끝까지 배어 있기 때문

이다. 바울의 모든 편지가 그렇듯이 빌립보서에서도 그의 사역과

삶 자체의 토대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승귀다. 이 주제를 다루면서

나는 편지 전체에 걸쳐 거듭 돌아올 여러 주제를 함께 소개하겠다.

빌립보서는 그리스도의 비하와 그에 뒤이은 승귀라는 복음 사건에

온통 젖어 있기 때문이다.

2:6–11의 그리스도

이 사건을 가장 분명하게 진술한 대목은 아마도 빌립보서 2장

6–11절의 저 유명한 기독론적 찬가일 것이다.1) 이 본문에서 바울

은 자신이 빌립보 교회를 향해 그에 합당하게 살라고 부르는 근

거가 되는 복음을 서술한다( 비교. 1:27 ).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울

은 빌립보 교회를 향해 비하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으라고 부

른다 이렇게 해서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가장 아름

답고 풍성하게 묘사한 대목 가운데 하나가 시작된다.2)

이 찬가는 성육신 이전 그리스도의 위치를 살피는 데서 시작한다.

“하나님의 본체”( 2:6 ) 라는 묘사가 사실은 그리스도의 선재를 가리키

지 않는다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 그리스도인 해석자는 이 표

현이 이른바 삼위일체 신학의 이른 사례를 반영한다고 인정해 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처음부터, 어떤 이들의 주장과 달리 바울이 그리스

도의 본성을 매우 높이 보았음을 인정해야 한다.3) 그리스도는 하나

1) 학자들은 이 찬가의 배경과 구성 문제를 논하는 데 필요 이상으로 많은 잉크를 쏟아 왔다. 그러나 N. T. 라이트가 지적하듯이 “2:5–11과 그것이 지금 놓여 있 는 문맥 사이의 언어적·사상적 긴밀한 연결은……이 찬가가 이제 바울이 의도 한 바를 말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N. T. Wright, The Climax of the Covenant:Christ and Law in Pauline Theology (Minneapolis: Fortress, 1991), 57. 이 찬가를 둘러싼 논의의 개관은 다음을 보라. Gregory P. Fewster, “The Philippians ‘Christ Hymn’: Trends in Critical Scholarship,” CBR 13 (2015): 191–206; 다음도 보라. G. Walter Hansen, The Letter to the Philippians, PNTC (Grand Rapids, MI: Eerdmans, 2009), 122–133.

2) 빌립보서 2장에 대한 보완적 논의는 다음을 보라. Chris Bruno, John J. R. Lee, and Thomas R. Schreiner, The Divine Christology of the Apostle Paul: Retrospect and Prospect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24), 122–135.

3)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보라. Bruno, Lee, and Schreiner, Divine Christology, 139.

빌립보서 신학

님의 본체이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동등하기도 하셨다( 2:6 ). 하나

님의 본체로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등함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은 아담이나 어떤 높임 받은 천사 따위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 바울처럼 구약에 정통한 1세기 유대인에게 이 표현은 그야말

로 혁명적이었다. 2장 6절에서 우리가 이를 수 있는 결론은 바울이

예수를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따라서 신적인 분으로 여겼다는 것

외에 달리 없다.

혁명적인 표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예수는 신적인 분일 뿐

아니라 종의 형체까지 취하셨기 때문이다( 2:7 ). ESV가 그는 “하나

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라고 옮긴 2장 6절

의 마지막 어구는, 바울의 논리를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한층 더 충

격적인 것으로 만들었을 법하다.4) 예수는 신적인 분 곧 모든 면에서

하나님 자신과 동등한 분일 뿐 아니라 자신의 신적 위치를 자기 비

하의 걸림돌로 여기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그리스도는 “종의 형체

를 가지사……자기를 비우셨다”( 2:7 ). 많은 이가 지적했듯이 이 자기

비움이 그리스도의 신적 위치를 어떤 식으로든 앗아 가는 것은 아

4) CSB의 번역 “did not consider equality with God as something to be exploited”(하나님과 동등 됨을 이용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도 비슷한 의미를 전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신성이 주는 이점을 붙들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의 사명을 위해 기쁘게 비하를 받아들이셨다(비슷한 번역으로 NIV, NRSV, NLT 등을 보라). 이 어구는 KJV의 번역(“하나님과 동등 됨을 강탈로 여기지 아 니하시고”)과 비슷한 뜻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명백한 진술이 한층 더 강화될 뿐이다. 그러나 ‘하르파그몬’의 의미는 ESV의 “취할 것”(a thing to be grasped)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리스도 25

니다.5)

이 비움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신적 속성 사용을 자발적으로 내

려놓으셨다는 뜻도 아니다.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내려놓으

셨는가보다 무엇을 더하셨는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를 비우셨다”라는 번역은 그 은유적 의미를 문맥( 2:6–

8 ), 특히 2장 8절 ( “자기를 낮추시고” ) 에 비추어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

면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자기를 비우셨다”라는 어구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어떤 상실이 있었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그리

스도의 비하를 달리 표현한 말일 뿐이다. 이 비움의 성격은 그 뒤에

이어지는 분사에서 서술된다. 곧 “종의 형체를 가지사”( ‘모르펜 둘루 라

본’, 2:7 ) 이다. 이 비움은 신성을 덜어 냄이 아니라 인성을 더함에

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는 자신의 신적 본성을 조금도 잃지 않으

신 채 “종의 형체”를 더하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하는 말의 충격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본체로 계셨고 하나님 자신과 동등하셨던 신적 그리스도

께서, 자신의 신적 본성과 위치를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한 비하의

걸림돌로 삼지 않으셨다. 그리스도는 성육신에서 무엇을 잃거나 어

떤 식으로든 영광이 줄어들지 않으셨으나 새로운 무엇을 취하셨다.

곧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7 ) 이다.

5) 다음을 보라. Theodore Zachariades, “Διπλῆν ἐπαγγελίαν in Athanasius’ Christology: A Methodology to Counter Kenotic Notions of the Incarnation,” ATI 5 (2012): 56–66.

빌립보서 신학

아담과의 대조인가

바울의 편지에는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기사가 없고, 복음서에 서 만나는 예수의 생애에 대한 세부 사항도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빌립보서 2장 6–11절에서 우리는 예수의 탄생과 생애가

지닌 온전한 의미를 붙잡을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 어떤

이들의 주장만큼 명시적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우리는 2 장

6–11절에서 아담의 시험과의 평행을 볼 수 있다.6) 아담은 하나님

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졌으나, 하나님처럼 되어 자기를 높이려고

시험에 굴복하고 말았다( 창 3:5–6 ). 이와 대조적으로 주 예수는 하나

님의 본체로 계셨다. 단순히 “하나님과 같은” 정도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아버지와 동등하셨다. 그럼에도 이 위치를 종의 형체를 취

하는 데 걸림돌로 여기지 않으셨다. 이는 세상에 들어와 아담의 후

손을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건지시기 위함이었다. 라이트가 지적하

듯이 “바울의 전체 이야기 세계의 일부는……이스라엘의 곤경에 대

한 하나님의 궁극적 해결책이 그로써 아담의 곤경까지 해결하고,

다시 그것을 통해 온 창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재건하

리라는 것이다.”7)

일부 학자의 표현대로 빌립보서 2장 6–11절에 아담 기독론이

6) 다음의 논의를 보라. Bruno, Lee, and Schreiner, Divine Christology, 125–127. 다음도 보라. A. G. van Arde, “Reading the Christ Hymn in Philippians in Light of Paul’s Letter to the Romans,” Neot 52, no. 2 (2018): 364; Wright, Climax of the Covenant, 58–62.

7) N. T. Wright, Paul and the Faithfulness of God, vol. 4 of Christian OriginsandtheQuestionofGod (Minneapolis: Fortress, 2013), 686.

담겨 있다 해도, 그것은 그리스도의 본성을 낮게 보는 견해를 가리

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울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얼마나 높이

보았는지를 보여 줄 따름이다. 그러므로 아담과의 비교( 더 정확히는 대

조 ) 는 바울이 품은 메시아 개념이 그의 동시대인 다수와 달리 신적

메시아 개념이었음을 드러낼 뿐이다

신적 그리스도는 인성을 취하시고 자기를 낮추셨으며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셨다( 빌 2:8 ). 8) 아담

의 불순종이 빌립보서 2장 6–7절의 배경에 놓여 있다면, 이사야

42–53장에 뿌리내린 “종 기독론”은 이 찬가 전체( 특히 사 52:13–

53:12의 “고난받는 종” ) 에 한층 더 분명한 배경을 마련할 것이다.9) 다시

말하지만 바울의 기독론이 지닌 놀라운 성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의 동시대인 다수에게( 및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바울 자신에게도 ) 고난받는 신적 메시아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었을 터다. 그러나 바울이 복음 사건을 서술하며 그려 내는 초상이

바로 그것이다.

고난받는 종

이사야 53장에서 종은 하나님 백성의 구원을 위해 죽기까지 낮아

지지만( 사 53:4–6 ) , 그 비하의 저편에서 신원되고 높임 받는다( 사

8) 빌 2:7–8에서 그리스도의 순종이 그리스도의 성육신 및 죽음과 구체적으로 연 결되어 있음에 유의하라. 이는 아들이 아버지께 영원히 종속되어 있었던 것이 아 니라 자기 비하의 일부로서 스스로 복종하셨음을 가리킨다.

9) 참고. 사 42:1–4; 49:1–6; 50:4–11; 52:13–53:12.

빌립보서 신학

53:10–12 ). 그의 유대인 동시대인 다수가 고난받는 메시아라는 주제

를 알아보거나 강조했을 가능성은 낮지만, 고난받고 신원되는 여호

와의 종은 구약 전체에 걸친 흔한 주제다.10) 이 주제는 이사야의 고

난받는 종에서 정점에 이르며, 바로 이것이 빌립보서 2장의 그리스

도의 비하와 승귀에 가장 유력한 배경을 형성한다 버림받고 신원

되는 여호와의 종이라는 주제는 구약 전체에서 발견되지만, 메시아

를 종으로 보는 개념은 이사야 42–53장, 특히 이사야 53장에서

가장 분명하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메시아의 고난과 그에 뒤이은

승귀는 기독교 전통 전체의 중심이듯이, 바울의 사역과 빌립보 교

회를 향한 그의 가르침에도 근본을 이룬다. 니케아 신경의 거의 절

반이 이 찬가에 담긴 개념들에 바쳐져 있다.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

오셔서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육신하여

사람이 되셨으며,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을 받으시고 묻히셨으며,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10) 이 강조점은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의 설교 전체에 나타난다. 비교. Chris Bruno, Jared Compton, and Kevin McFadden, Biblical Theology according to the Apostles:How the Earliest Christians Told the Story of Israel, NSBT 52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20), 5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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