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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ESBT지혜성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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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ly published in English under the title: Walking the Way of the Wise (Essential Studies in Biblical Theology Series) by Mitchell L. Chase Copyright ⓒ2025 by Mitchell Loyd Chase, Published by InterVarsity Press, P. O. Box 1400 Downers Grove, IL 60515, USA. www.ivpress.com. All rights reserved. License arranged through rMaeng2, Seoul, Republic of Korea. This Korean Edition Copyright ⓒ 2026 by Revival and Reformation Press, Seoul, Republic of Korea 이 한국어판의 저작권은 알맹2를 통하여 InterVarsity Press와 독점 계약한 부흥과개혁사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지혜 성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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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년 9월 1일 지은이 미첼 체이스 옮긴이 권대영 펴낸이 김은주 펴낸곳 부흥과개혁사 편집 권대영 디자인 박슬기 기획 이승영 마케팅 권성직 인쇄소 영진문원

판권 Ⓒ부흥과개혁사 2026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6길 9-20, 2층(서교동) 전화 Tel. 02 ) 332-7752 Fax. 02) 332-7742 홈페이지 http://rnrbook.com e-mail rnrbook@hanmail.net ISBN 979-11-7540-087-0 (94230)

978-89-6092-654-7 (94230)  (세트) 등록 1998년 9월 15일 (제13-548호)

는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추구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부흥과 개혁이 이 시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조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의 방향을 위한 이정표이자, 잠든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나팔소리요, 깨어난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장작더미이며, 부흥과 개혁을 꿈꾸며 소망하는 교회들을 하나로 모아 주기 위한 깃발이고자 기독교 출판의 바다에 출항하였습니다.


┃목차┃

| 시리즈 서문

| 감사의 글 11

9

| 서론 13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선악을 아는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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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고난과 영적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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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향한 길을 걷다

61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증인들의 합창과 함께 부르는 노래 왕의 아들딸을 위한 지혜

언약 백성을 위한 언약적 사랑 해 아래에서의 덧없는 인생

우매 여인을 따라 포로로 가다 솔로몬보다 더 큰 이

악한 날에 지혜롭게 걷기 좁은 길의 끝

89 109 129 153 173 199 219 237 257

| 토론 문제 271 | 성경 색인 273

※본 문 여백에 표기한 숫자는 원문의 쪽수입니다. 본서의 색인은 원문의 쪽수로 표기하였습니다.


서론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누구나 한 번쯤은, 아마 여러 번 이 질문 을 받았을 것이다. 프로 운동선수가 되겠다, 우주 비행사가 되겠다, 유명한 발명가가 되겠다 하는 꿈을 듣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아 이의 대답과 어른이 되어 실제로 갖는 직업이 얼마나 들어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개는 어릴 적 대답과 다른 삶이 펼쳐졌으리라 짐작 한다. “뭐가 되고 싶니”라는 물음은 보통 직업을 묻는 말로 이해된다. 어른이 아이에게 이 질문을 던질 때 염두에 두는 것도 직업이다. 그 러나 질문을 조금 더 길게, 조금 더 깊게 만들어 보자. “커서 어떤 사 람이 되고 싶니?” 이것은 아이가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이고 어른도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이다.

변해 가는 사람들 우리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어 가는 중이다. 사람은 고정된 존 재가 아니다. 우리는 자라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받으며 형편에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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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 달라진다.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고 앞으로 될 나도 아 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변화라는 사실은 한층 더 깊은 무게를 지닌다. 하 나님은 우리를 근본에서부터 바꾸어 놓으신 긍휼의 일을 행하셨고 2

그 일을 아직 끝내지 않으셨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 운 피조물이다( 고후 5:17 ). 이 영적 진리는 이 땅에서의 결과와 영원 한 결과를 함께 가져온다.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고 있으 며( 고후 4:16 ), 우리의 미래는 부활 생명으로 이루어진 영광의 중한 것이다( 고후 4:17–5:5 ).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셨고 그 일을 이루실 것이다( 빌 1:6 ). 하나님의 선한 일이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밀어 주며 그리스도 안 에서 자란다는 것은 지혜에서 자란다는 뜻을 품는다. 커서 어떤 사 람이 되고 싶은가? “지혜로운 사람”은 훌륭한 대답이다. 어쩌면 가 장 좋은 대답이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세상 물정에 밝은 것 이상 이며 어느 한 분야에서 영리한 것 이상이다. 성경적 지혜는 하나님 의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에 기쁘게 복종하며 살아온 결과다. 성경 적 지혜는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을 믿고 그 빛 아래서 살아가려 애 쓰는 것이다. 지혜로워지고 싶은가? 성경 저자들이 이 주제에 대해 무엇을 가 르치는지 알고 싶은가? 이것은 우리 삶의 밑바닥까지 닿는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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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권을 넘어서 성경적 지혜는 성경 전체가 다루는 주제다. 지혜를 구약과 신약의 몇몇 책만 다루는 문제로 여겨 온 독자에게는 이 말이 뜻밖일 수 있다.1) 성경의 어느 책이 지혜를 다루느냐고 물으면 흔히 욥기와 잠 언과 전도서를 꼽는다. 세 권이다. 여기에 더 보태는 사람이라면 몇 몇 시편과 아가와 야고보서를 들어 모두 여섯 권을 말할 것이다. 물론 이 책들이 지혜를 가르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적 지혜가 이 여섯 권보다 넓게 걸쳐 있다면 어떻게 되는가? 지혜를 일 차적으로 장르가 아니라 개념으로 볼 여지를 열어 둔다면 어떻게 되는가?2) 장르란 형식과 문체의 유사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위에 든 세 권 또는 여섯 권에는 시적 구조와 평행법과 잠언투의 진술이 들어 있고 수신자를 지혜로 이끄는 긴 담화가 담겨 있기도 하다. 그 래서 학자들 사이에서는 “지혜문학”이라는 말이 널리 쓰인다. 1) 본 연구는 집회서나 솔로몬의 지혜서 같은 외경은 다루지 않는다. 2) 지난 200여 년 동안 학자들은 “지혜문학”이라는 말을 써 왔다. 윌 카인스는 An

Obituary for “Wisdom Literature”: The Birth, Death, and Intertextual Integration of a Biblical Corpu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9)에서 이 용어가 떠오른 과정과 요한 브루흐의 영향을 추적한다. 카인스는 “지혜”가 일종의 장르라는 통념에 반대한다. 그는 이렇게 쓴다. “나는 지혜의 정 의를 개념으로서 넓게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곧 그 개념이 하는 역할과, 그 개념 이 나타나는 다양한 본문에서 지혜와 결부된 여러 특성에 근거해 이해하되, 반드 시 하나의 뚜렷한 세계관으로 통일되어 있다고 보지는 않는 것이다……이렇게 하면 사실상 지혜를(이제 소문자로 쓰는 지혜를[영어권 논의에서 대문자로 쓰는 Wisdom은 하나의 문학 장르나 사조를 가리키고 소문자로 쓰는 wisdom은 성 경 전반에 걸친 개념을 가리킨다-옮긴이]) 장르나 운동이나 전통이 아니라 ‘거 룩함’이나 ‘의로움’과 비슷한 개념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252-253).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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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책의 장르를 짚어 두면 그 안의 본문을 해석하는 데 빛이 비치 지만 거기에는 위험도 따른다. 장르라는 개념을 근거로 한 책 안에 여러 겹의 문학적 문체나 특징이 함께 있을 가능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이른바 예언서 바깥에 있는 창세기에 예언이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본 적이 있는가? 욥기의 가운데 장들은 시가 주된 문체인데도 그 이야기의 앞뒤를 내러티브가 감싸고 있다는 것 을 본 적이 있는가? 성경 저자들이 지혜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는지 이해하려면 이른 바 지혜서에만 시선을 붙들어 두어서는 안 된다. 욥기와 시편과 잠 언과 전도서와 아가와 야고보서는 이 주제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책 들이고 우리도 차례가 되면 이 책들을 다룰 것이다. 그러나 성경적 지혜는 성경 전체의 관심사다. 성경의 모든 것이 지혜라고 주장하 려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지혜라면 아무것도 지혜가 아니다. 그 렇지만 “지혜문학” 바깥에도 하나님의 세상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자리가 수없이 많다. 지혜롭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본문 가운데는 지혜라는 낱말이 아예 나오지 않는 곳도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지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낱말 연구를 넘어서야 하고 정해진 몇 권에 시선을 묶어 두는 일도 넘어 서야 한다. 지혜를 개념이라 부르는 편이 낫다면 “지혜문학”이라는 표현은 계속 쓸 만한가? 성경에 “지혜서”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트렘퍼 롱 맨은 이렇게 말한다. “장르는 딱딱하게 고정되어 있거나 순수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본문은 오직 하나의 장르만 갖는 것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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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개별 본문을 밝혀 주는 여러 문학적 묶음에 함께 속할 수 있다. 장르의 경계는 흐릿하다. 장르를 이렇게 이해할 때 우리는 성 경에 지혜 장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이른바 지 혜 장르를 가려내는 열쇠가 되는 그 요소는 무엇인가? 롱맨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지혜 장르를 알아보는 주된 표지는 그 본문들이 지 혜라는 개념에 관심을 둔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3) 그리고 성경에 는 구조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목적으로 보나 지혜라는 개념이 워 낙 짙게 배어 있어서 “지혜문학”이라 부르는 것이 어울리는 책들이 분명히 있다. 욥기와 잠언과 전도서가 그렇다. 성경이 지혜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는지 살피려 한다면 우리는 여 러 장르의 본문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우리를 지혜와 생명으 로 이끄는 본문, 순종의 복과 어리석음의 결과를 보여 주는 본문이 모두 그 대상이다.

이야기 줄기라는 난제 성경의 이야기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눈에 띄는 주제들이 있다. 성전이나 제사장직이나 제사나 출애굽이나 아들 됨 같은 주제다. 성경 저자들의 글에서 점진적 계시를 따라가면 이 주제들이 자라나 는 것이 보인다. 이 주제들은 정경 전체를 지나며 점점 또렷해질 뿐

3) Tremper Longman III, The Fear of the Lord Is Wisdom: A Theological

Introduction to Wisdom in Israel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17), 281.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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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라는 찬란한 계시에서 한데 만나 고 그 계시를 향해 치솟는다. 지혜라는 주제는 성경의 이야기 줄기 위에서 그만큼 뚜렷하게 드 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 저자들은 말해 주기도 하고 보여 주기 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내러티브는 명제적 진술이나 잠 언투의 문장과는 다른 방식으로 성경적 진리를 가르친다. 지혜의 성경신학은 성경의 여러 장르가 지혜를 어떻게 펼쳐 보이는지 눈여 겨보아야 한다. 지혜는 성경의 이야기 줄기를 밀고 나가지 않는 것처럼 보이므로, 다른 좋고 중요한 주제들이 독자와 해석자의 관심을 차지하는 동안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다. 이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 지혜로운 일 이다. 성경신학의 과제는 성경의 여러 부분이 전체와 어떻게 맞물리는 지, 하나님의 구속 목적이라는 큰 설계 안에서 낱낱의 것이 어떻게 들어맞는지에 관심을 둔다. 그러므로 지혜를 논하려면 여호와를 경 외함, 동산 한가운데 있던 나무들, 복과 저주라는 두 갈래 길, 언약 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경험, 주 예수의 사역, 새 언약의 삶을 위한 윤리, 그리스도의 재림에서 이루어질 완성 같은 요소들을 함 께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독자의 손에 지도를 하나 쥐여 드리려 한다. 이어지는 장들 은 구속사의 흐름을 따라간다. 1장은 성경의 첫머리 여러 장에 우리를 뿌리내리게 한다. 그곳에 지혜의 씨앗이 있고 지혜의 나무까지 있다. 2장은 욥이라는 사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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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를 다룬다. 필자는 그의 생애가 성경 역사에서 아주 이 른 시기에 놓인다고 본다. 3장과 4장에서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와 발걸음을 뒤따른다. 5장에서는 다윗이 일어서는 것을 보고 그가 부른 노래 곧 시편을 듣는다. 6장과 7장과 8장에는 솔로몬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다. 그의 생애를 돌아보고 잠언과 아가와 전도서를 살피기 때문이다. 구약의 지혜를 살피는 여정은 9장에서 마무리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 포로 된 땅으로 간다. 어리석음이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데려가는 곳이 바로 거기다. 10장은 참되고 더 크신 솔로몬이신 예수의 성육 신과 사역으로 우리 시선을 돌린다. 11장에서는 때가 악하므로 그 리스도의 백성으로서 지혜롭게 걷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 한다. 마지막 12장에서는 지혜로운 길의 끝을 바라본다. 생명과 복 으로 이끄는 길, 우리가 그것을 위해 지음을 받고 구원받은 그 생명 으로 이끄는 길이다. 이 구속사의 흐름은 지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성경 자체의 큰 이야기에 비추어 자리매김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지혜를 정경 전체의 시야에서 바라볼 때 우리는 성경 저자들이 이 주제를 가르 치는 여러 방식을 보게 된다. 그리고 지혜의 길을 걷고 있는 복되고 기쁜 성도들의 대열에 합류하라고 그들이 우리를 부르고 있음을 더 온전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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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선악을 아는 지식

창세기의 첫머리 여러 장에는 기초가 되는 사건, 그리고 그 뒤로 오래도록 파장을 남기는 사건이 담겨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 이 창조주시라는 진리를 만난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쓰지 않고 모 든 것을 지으신 분이다. 빛을 말씀으로 부르시고 물을 가르시고 땅 을 채우시고 지으신 것을 향해 “좋다”라고 선언하시는 분이다. 우리 가 읽는 것은 질서 잡힌 세계다. 저녁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또 저 녁과 아침이 이어지며 그 리듬이 오늘까지 흘러왔다.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성경 저자는 하나님의 선한 설계를 허물고 하나님의 선한 세상에 혼란을 들여놓으려는 음모를 들려준다. 거룩 한 공간에 거짓말이 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들이 지혜 대 신 어리석음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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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질서 창세기 1장 26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의 형상 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 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고( 창 1:27 )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렇게 명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8

생물을 다스리라”( 창 1:28 ). 창세기 1장 28절의 표현은 창세기 1장 26절을 되울린다. 형상을 지닌 자로 산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대리한다는 뜻이다. 다스림을 행사하고 피조 세계를 정복하는 과업이다. 고대 근동의 왕이 어느 땅을 자기 이름과 통치 아래 두었음을 알리려고 그곳에 자기 왕상을 세우듯이,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세상에 자 신의 왕적 형상을 세워 두셨다.1) 형상을 지닌 자들을 자기 세상에 두신 것은 그 세상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알리는 표지이며, 동시에 형상을 지닌 자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소유하신 세상을 정복하는 일을 품는다. 창세기 1장의 창조와 창세기 1장 28절에서 형상을 지닌 자들에 게 맡기신 과업은 질서와 설계로 가득하다. 잠언 3장 19-20절의 말

1) 참고. Peter J. Gentry and Stephen J. Wellum, Kingdom Through Cove-

nant: A Biblical-The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Covenants , 2nd ed. (Wheaton, IL: Crossway, 2018), 22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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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 그대로다.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 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여호와는 빛을 만드시 고 어둠에서 나누신다( 창 1:4 ). 물을 나누신다( 창 1:9 ). 물에서 땅을 드 러내시고( 창 1:9-10 ) 그 위에 식물과 과일나무를 내신다( 창 1:11-12 ).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리듬이 하루에서 다음 하루로 넘어 간다. 여호와는 생물이 물과 하늘을 채우게 하신다( 창 1:20 ). 그리고 그 생물들에게 명하신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창 1:22 ). 창세기 1장 22절의 이 표현은 창세 기 1장 26절과 1장 28절에서 형상을 지닌 자들에게 주어진 위임에 도 반영된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짐승들은 번식하 겠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들을 다스리지는 못한다. 오직 사 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재하며 오직 형상 담지자만이 창조 질 서를 정복할 것이다. 데스몬드 알렉산더의 말이 옳다. “하나님은 사 람에게 모든 육지 짐승과 새와 물고기를 다스리라고 위임하심으로 써 사람을 다른 모든 피조물과 구별하시고 왕의 신분을 주신다.”2) 창세기 1장 전체의 사건과 흐름을 곱씹어 보면 질서와 설계가 눈

2) T. Desmond Alexander, From Eden to the New Jerusalem: An Intro-

duction to Biblical Theology (Grand Rapids, MI: Kregel Academic, 2008), 76.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표현의 밑바닥에는 왕권 이라는 개념이 깔려 있다. 고대 근동에서는 애굽에서나 메소포타미아에서나 ‘신 의 형상’이라는 말이 흔히 왕과 결부되었다. 왕은 살아 있는 ‘신의 형상’이 었다”(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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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들어온다.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절정으로 서 있고, 그 형 상 담지자들이 다스림을 행사하고 피조물과 피조 세계를 정복하라 는 위임을 받는 장면을 우리는 읽는다. 하나님이 창조의 주인이시 고 이 세상의 최고 권위이시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 든 선하다.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이 선한지를 향해 형상 담지자들 을 이끈다. 하나님의 명령이 선한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선하기 때 문이다. 지혜는 이 모든 것과 어떻게 맞물리는가? 주권자이시며 선하신 창조주께 복종하는 것은 선한 일이고 따라서 지혜로운 일이다. 하 나님이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질서 지으셨고 형상을 지닌 자들의 마음과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끄는 명령을 주셨다면, 하나님의 설 계를 거스르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지혜는 하나님의 설계와 명령을 따라 사는 일이고 어리석음은 그것을 거슬러 사는 일이다.

금지된 나무 하나님은 자기 형상을 지닌 자를 지으실 때 아담을 먼저 지으 신다. 그 사람을 동산에 두시는데( 창 2:8 ) 그 동산 한가운데 두 나무 가 있다.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많았지만 두 나무는 남달랐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다. 여호와는 아담을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신다 ( 창 2:15 ). 이 두 동사는 오경 뒷부분에서 나란히 나올 때 제사장의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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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과 이어진다( 민 3:7-8; 8:26; 18:5-6 ).3) 아담은 농부 이상이다. 그는 에덴의 제사장이다. 그는 그 거룩한 공간을 경작하고( 또는 섬기고 ) 그 일대를 지켜야( 또는 파수해야 ) 한다. 동산의 나무들에 대해 아담에게 주어진 것은 금지 명령이었다. 여 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 시 죽으리라”( 창 2:16-17 ). 한 나무만 금지되었다. 그리고 그 금지에는 결과가 딸려 있다. 아담이 겪어 본 적 없는 것에 대한 예고 곧 죽음 이다. 금지된 나무의 이름 자체가 우리가 지혜와 결부시키는 낱말을 불 러온다. 지혜로운 자는 선과 악을 분별한다. 형상을 지닌 자들이 선 과 악을 알아 선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도 움이 되지 않겠는가? 금지 명령이 엄중하기는 하지만 그 나무 자체가 나쁘거나 악했다 고 결론짓는다면 지나친 해석이다. 하나님은 선한 나무( “생명나무” ) 곁에 악한 나무를 심어 두지 않으셨다. 오히려 하나님이 지으신 모 든 것은 선했다. 어쩌면 그 금지는 자라남과 시험의 한 시기에만 유

효했을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들이 그 기간에 여호와를 신뢰하는 법을 배우고 순종을 나타내는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은 한동안 금하셨던 그 나무를 마침내 자기 백성에게 먹도록 허락하셨

3) 참고. G. K. Beale, The Temple and the Church’s Mission: A Biblical

Theology of the Dwelling Place of God , New Studies in Biblical Theology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66-70.

1장 ┃ 선악을 아는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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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도 모른다. 일종의 시험 기간을 염두에 두신 것이라면, 여호와 의 금지를 신뢰하는 일은 지혜의 자라남을 품는 일이었을 것이고, 그 자라남은 정하신 때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는 데로 이어 졌을 것이다. 훗날 하나님이 정하시고 알려 주시는 때에 그 나무를 먹는 일이 가능했다 해도, 그 나무의 이름은 그것을 심판의 나무로 지목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레고리 빌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점에 서 에덴의 그 나무는 심판의 나무로 기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담 이 ‘선과 악을 분별하러’ 나아갔어야 할 자리, 그리하여 뱀이 동산에 들어왔을 때 그것을 악하다고 판단하고 그것에 판결을 선고했어야 할 자리다.”4) 그러니 이제 그 뱀 이야기를 해 보자.

동산의 무질서 창세기 2장 끝머리에서 여호와는 여자를 만드시고 그 남자에게 이끌어 오신다( 창 2:20-23 ). 남자와 여자로서 그들은 생육하고 번성 하라는 위임을 이룰 것이었고, 하늘과 땅과 물의 짐승이 아니라 그 들이 형상을 지닌 자로 존재했으므로 하나님의 피조물과 피조 세계 를 정복할 것이었다. 창세기 3장에서 여자와 뱀이 주고받는 말을 보면 여자는 이미 금

4) G. K. Beale, A New Testament Biblical Theology: The Unfolding of the

Old Testament in the New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11, 『신약성경신학』,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3),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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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된 나무를 알고 있었고 누구든 그것을 먹으면 어떤 결과가 따르 는지도 알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직접 말씀하셨거나 아담이 직접 일러 주었을 텐데, 성경 내러티브는 그가 언제 어떻게 알았는지 알 려 주지 않는다. 창세기 3장 첫머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뱀 이야기 를 읽는다. 여기 기어다니는 것이 있다. 창세기 1장 25절에서 읽은 바로 그 부류다( “땅에 기는 모든 것” ). 그렇다면 여기 정복해야 할 대상 이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스림이 행사될지 지켜보게 된다. 그런데 그 결말이 드러나기 전에 우리는 한 가지 묘사를 먼저 읽 는다.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 창 3:1 ). 간교함이라는 말은 약삭빠름을 가리키고 약삭빠름은 지

혜라는 개념과 잇닿아 있다( 창 3:1의 “간교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룸’ 은 잠언에서 “슬기롭다”로 옮겨지는 낱말과 같다[잠 12:16, 23; 13:16 등]. 저자가 뱀의 간교함을 지혜 개념과 잇는 것은 이 어휘의 겹침 때문이다-옮긴이 ). 뱀이 하나님

을 높이는 뜻에서 지혜롭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뱀은 영 리하고 말을 다룰 줄 안다. 뱀은 조종하고 속이고 유혹한다. 뱀은 질문으로 여자에게 다가선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 3:1 ). 창세기 2장 16-17절의 금지 명령이 실제로 어떠했는지 떠올려 보면 뱀이 하나 님의 말씀을 뒤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뱀은 하나님을 이 모든 나 무를 지어 놓고는 자기 백성에게 그것을 금하는 분으로 그려 낸다. 뱀은 하나님의 성품과 의도를 왜곡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여자는 뱀의 말을 바로잡으며 이렇게 말한다. “동산 나무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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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 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 노라 하셨느니라”( 창 3:2-3 ). “만지다”라는 말은 본래 명령에 없었으 므로( 창 2:16-17 ), 어떤 해석자들은 여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잘못 덧 붙였다고 결론짓는다. 다른 이들은 열매를 먹으려면 만지는 일이 앞서야 하므로 여자가 “만지다”라고 말한 것은 합당한 표현이며 반 드시 하나님의 명령을 왜곡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논의에서 눈 여겨볼 만한 점은 창세기 3장에서도, 그 뒤의 어떤 성경 본문에서 도, 창세기 3장 2-3절에서 여자가 뱀에게 한 말을 두고 그를 고발 하는 대목이 없다는 것이다. 독자에게 두드러져야 할 대목은 창세기 3장 4-5절에 나오는 뱀 의 응답이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 피조물은 하나님이 주신 경고를 대놓고 부정한다. 여자는 죽음의 위협을 언급했는데( 창 3:3 ), 뱀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한다. 에덴동산의 거룩한 공간에서 놀라운 대화가 오가고 있다. 뱀이 하 나님의 말씀에 의심을 던지고 있다. 뱀이 여자에게 금지된 나무를 먹으라고 딱 잘라 말하지는 않지만,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힘없는 것으로, 또한 그 명령을 주신 하나님을 중요한 무언가를 감추어 두 는 분으로 그려 낸다( “하나님이 아심이니라……하나님과 같이 되어”, 창 3:5 ). 12

뱀은 하나님의 말씀을 뒤틀었고( 창 3:1 ) 하나님의 경고가 얼마나 엄중한지 흔들어 놓았으며( 창 3:4 ) 하나님의 동기를 인색하고 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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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것으로 몰아붙였다( 창 3:5 ). 여자가 그 나무를 바라볼 때 그 나 무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창 3:6 ). 이 마지막 묘사 곧 “지혜롭게 할 만큼”이라는 말은 “선악을 아는” 일이 무엇을 가져다줄지에 대한 내레이터의 확 인이다. 그것은 지혜를 가져다줄 것이었다. 성경적 지혜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 가려내기 때문 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나무를 금하셨다면, 지혜를 얻겠다는 고상한 목표를 품었다 해도 그 열매를 먹기로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행 동이다. 뱀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을 오도하는 말로 그려 냈지만 정작 오도하는 말을 한 쪽은 뱀이다. 지혜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슬 러 얻어지지 않고 그 명령에 복종함으로 얻어진다. 여자는 거역하 는 행동으로 그 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 도 주었으며 그도 먹었다( 창 3:6 ). 여자가 이렇게 한 것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알면서도 뱀이 한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아담은 뱀과 여자가 나눈 대화를 다 들었을까? 내레이터는 여자가 열매를 건넬 때 그가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니 그도 하 나님이 하신 말씀을 알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고 아내가 잘못 내디딘 걸음을 따라갔다. 창세기 3장의 장면 전체가 무질서로 가득하다.5) 뱀을 정복하기는

5) 창세기 3장과 이후 성경 계시에서 그것이 하는 역할과 그 되울림을 한 권 분량으

로 다룬 논의로는 다음을 보라. Mitchell L. Chase, Short of Glory: A Biblical and Theological Exploration of the Fall (Wheaton, IL: Crossway, 2023).

1장 ┃ 선악을 아는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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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녕 여자는 속임수에 빠지고 아담은 그를 따라 죄로 들어간다. 그 들은 기어다니는 것을 다스리는 데 실패한다. 기어다니는 것이 도 리어 그들을 다스린다! 창조 질서를 뒤집어 놓음으로써 뱀은 동산 에만 혼돈을 들여놓은 것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의 관계에도, 그리 고 그들과 하나님의 관계에도 혼돈을 들여놓는다. 뱀은 뒤틀린 말 을 가지고 여자에게 다가왔다. 아담은 아내를 지키지 않았고 하와 는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명령에 맞서 말을 쳐든 그 비열한 피조물을 아담도 하와도 정복하지 못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창 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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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눈과 닫힌 문 뱀의 말은 탐낼 만한 지식을 약속했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 을 알”게 되리라는 것이다( 창 3:5 ). 그러니 우리는 그 부부의 행동이 실제로 무엇을 가져왔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벗은 몸과 무방비함에 수치를 느꼈다는 것을 안다. 무화과나무 잎을 엮 어 몸을 가렸기 때문이다( 창 3:7 ). 그들은 여호와께서 자기들 가운데 계신 소리를 듣고 여호와를 피해 숨었다( 창 3:8 ).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이 한 일을 물으셨을 때 아담은 아내를 가리켰고 여자는 뱀을 가리켰다( 창 3:12-13 ). 그들의 “밝아진 눈”은 뱀이 약속한 하나님 같아지는 경험을 가 져다주지 못했다( 창 3:5 ). 전에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 는데, 이제는 벌거벗은 채로 부끄러워한다( 창 2:25; 3:7, 10 ). 그들은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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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를 움켜쥐었고 그렇게 하면서 도덕적 자율까지 움켜쥐었다.6) 내 러티브는 도덕적 자율을 따르는 일이 어리석음을 보여 준다. 뒤이 어 하나님이 선언하신 결과들은( 창 3:14-19 ) 그 부부의 행동이 얼마 나 어리석었는지를 확인해 주며 동시에 뱀의 말이 얼마나 기만적이 었는지를 확인해 준다. 하나님은 그 부부를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 하신다.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 으니”( 창 3:22 ). 언뜻 보면 여호와께서 뱀이 여자에게 한 말에 동의하 시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창 3:5 ). 그러나 창 세기 3장의 맥락에서 이 “지식”이 낳은 것은 수치와 격리였다. 이제 그 남자와 여자에게 옳고 그름에 대한 더 큰 감각이 생긴 것은 맞지 만 그들은 죄를 통해 이 지식을 얻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 의 때를 신뢰하는 대신 그들은 도덕적 자율을 움켜쥐었고 악을 저 질렀다. 금지된 나무를 먹었으므로 그들은 생명나무를 먹을 수 없게 된다. 에덴에서의 추방은 그 사람이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하는 일이 없도록 못 박는다( 창 3:22 ). 창세기 2장의 내러 티브는 남자나 여자가 언젠가 생명나무를 먹은 적이 있는지 알려 6) 롱맨은 이렇게 말한다. “그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아담과 하와가 새로운 정

보를 얻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도덕의 범주를 규정할 권리를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들에게 돌려 버린다. 하나님은 그 열매를 먹는 것이 잘못이라고 그들 에게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먹는 행위로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거부하고 무엇 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정할 권리가 자기들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Tremper Longman III, The Fear of the Lord Is Wisdom: A Theological Introduction to Wisdom in Israel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17),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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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그 나무를 금하지는 않으셨지만 이제 추 방이 그런 먹음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14

허락되지 않은 먹음은 어리석었고 그 어리석음은 파멸과 추방을 불러왔다. 여호와는 그 사람을 동산 동쪽으로 쫓아내시며( 창 3:24 ) 아담이 하와라 이름한 여자도( 창 3:20 ) 함께 추방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창세기 1–3장의 내러티브는 순종과 복을 한 실로 엮는 동시 에 반역과 심판도 한 실로 엮는다. 지혜와 생명은 함께 가고 어리석 음과 죽음도 함께 간다. 동산 입구를 닫으시려고 하나님은 그룹들을 두시고 두루 도는 불 칼까지 두어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게 하신다( 창 3:24 ). 공교롭 게도 그룹들이 동산을 지키는 것은 그 사람이 지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에덴에서 몸으로 멀어진 것은 죄와 어리석음이 일으키는 더 깊은 문제를 상징한다. 어리석은 자는 제 길을 택하고 하나님의 길을 거부한다. 그런 어리석음은 파멸로 이어진다. 어찌 그러지 않 겠는가? 하나님이 모든 선함과 생명의 근원이시라면 지혜를 거부하 는 일은 선함과 생명의 정반대를 거두게 될 것이다.

첫아들의 어리석음 지금까지 태어난 모든 사람은 에덴 바깥에서 태어났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위임을 받은 아담과 하와는( 창 1:28 ) 자녀를 낳는다. 태 어나는 자리마다 죄와 부패가 드러나는 타락한 세상이다. 죄의 문 제는 아담과 하와만이 아니라 그 후손에게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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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두 자녀는 가인과 아벨이다. 때가 이르러 두 사람은 각각 여호와 께 제물을 가져온다( 창 4:1-4 ). 여호와는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 의 제물은 받지 않으신다. 그리고 가인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분하 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 4:6-7 ). 가인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 어디에도 지혜라는 낱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가인을 지혜로 부르시고 어리석음에서 떼어 놓으려 하시는 것은 분명하다. 죄는 맹수와 같아서 몸을 낮추 고 때를 노리며 덮쳐 사로잡을 순간을 기다린다. 가인이 죄를 정복 하지 않으면 죄가 가인을 정복할 것이다.7) 가인의 문제는 안쪽에 있다. 그의 마음이 문제다. 가인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지 않다면 어 떤 짐승 제물로도 가인은 바르게 될 수 없다. 창세기 4장 6-7절에 서 하나님이 가인에게 주신 경고로 보아 죄는 이미 은밀하고 독한 방식으로 가인의 삶에 파고들고 있었던 듯하다. 가인이 악에 정복당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동생을 두고 내린 결정에서 드러난다. 가인은 아벨에게 말을 건네고 들에 이르렀을 때 그를 죽인다( 창 4:8 ). 가인은 무슨 말을 했을까? 본문은 알려 주지 않는다. 그러나 가인이 자기 계획을 미리 아벨에게 털어놓았을 리

7) 존 오웬의 말대로다. “이 일을 하루도 쉬지 말라. 죄를 죽이라. 그러지 않으면 죄

가 그대를 죽일 것이다.” Owen, The Mortification of Sin (Glasgow: Christian Focus, 2006), 27. 부흥과개혁사에서 역간한 존 오웬 시리즈 가운데 『죄 죽 임』(2009년)이 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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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없다. 그의 말은 속이는 말이었을 것이다. 죄가 가인에게 덮치려 고 웅크리고 있었듯이 가인도 동생 아벨에게 덮쳐 그를 죽였다. 가인은 하나님의 경고를 거부하고 어리석음을 택했다. 창세기 3장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에서 내레이터는 창세기 4장의 여호와께 서 가인에게 이렇게 물으셨다고 전한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 냐”( 창 4:9 ). 이 질문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네가 어디 있느냐”( 창 3:9 ). 두 질문의 차이는 여호와께서 가 인에게는 가인이 어디 있는지가 아니라 아벨이 어디 있는지를 물으 신다는 데 있다. 여호와께서 이런 질문을 하시는 것은 정보가 필요 해서가 아니다. 형상을 지닌 자가 자기가 저지른 일과 정면으로 마 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투명함과 자백이 없으면 회개는 참되지 않다. 아담은 여호와의 물음에 사실대로 대답했지만( 창 3:10, “내가 동산에 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 가인은 여호

와의 물음을 거부하고 거짓말한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창 4:9 ). 그는 여호와의 물음에 물음으로 응수하는데 그것은 교만과 무관심의 진술이다. 사실 창세기 4장 9절의 가인의 물음은 성경 이야기 줄기에서 하 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가 던진 첫 번째 질문이다. 그 대담함이 우리 를 놀라게 한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해석자는 하나 님이 옳고 가인이 그르다는 것을 안다. 가인은 마땅히 자기 아우를 지키는 자여야 했다. 그러나 어리석음의 길은 사랑의 길을 부패시 킨다. 가인의 악한 마음이 의로운 동생을 향한 악한 행동으로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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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세상에서 형상을 지닌 자 로서 가인은 웅크린 채 자기를 노리는 죄를 다스려야 했다. 달리 말 하면 가인은 지혜로워야 했다. 아벨의 죽음은 어리석음이 낳는 끔찍한 결과를 보여 준다. 어리석 음은 이웃 사랑을 가로막는다. 가인은 여호와께 불순종했고 동생을 해쳤다. 이 두 행동은 사람의 어리석음이 여러 방향으로 곧 수직으 로도 수평으로도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려면 우리는 지혜를 사랑하고 죄를 미워해야 한다. 그러나 창세기의 내러티브가 전하는 것은 세대를 이어 넘쳐 난 죄 에 대한 크나큰 사랑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 아담의 후손이 생육하고 번성하면서 세상에는 악한 자와 의로운 자가 함께 있게 되었다. 여호와는 아벨을 대신해 아담과 하와에게 아들을 주셨고 그들은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 창 4:25 ). 그리고 내 레이터는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라 고 말한다( 창 4:26 ). 가인을 비롯한 이들이, 이를테면 창세기 4장 23-24절의 라멕이 어리석은 일을 행했지만, 마음으로 여호와를 신 뢰하고 예배한 형상 담지자들도 있었다. 창세기 5장의 족보는 경건한 후손이 있었음을 확인해 준다. 창세 기 5장 21-23절의 에녹은 땅에서 죽음을 겪지 않고 여호와께 “데 려감”을 당하는 독특한 경험을 했다. 에녹의 생애는 하나님과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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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삶이었다( 창 5:22, 24 ). 걷는다는 은유는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았 는지를 가리킨다. 에녹은 하나님과 교제했고 하나님께 순종했다. 그 러므로 그의 “걸음”은 지혜로웠고 하나님은 그 걸음을 귀히 여기 셨다. 데려감을 받는 이 영예는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족보에서 그를 둘러싼 이름들은 모두 죽음의 통고로 마무리되는 생애이기 때 문이다. 타락한 세상에서의 삶은 복잡했다. 여자의 후손 곧 여호와를 신뢰 하고 사랑한 이들이 뱀의 후손 곧 여호와께 반역하고 악한 자의 영 적 형상을 닮아 간 이들 틈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여호와를 신뢰하 고 그 이름을 부른 이들은 뱀을 무찌를 약속된 아들에 대한 소망을 알고 있었다. 그런 소망이 뚜렷이 드러나는 예가 라멕의 말이다. 창 세기 4장 23-24절의 악한 라멕이 아니라 창세기 5장 28-31절의 의로운 라멕이다. 라멕은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노아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호 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 하리라”( 창 5:29 ). 라멕의 소망은 창세기 3장 15절의 하나님의 약속 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하와에게서 난 아들이 뱀을 짓밟아 승리하 리라는 약속, 그 아들이 자신의 고난을 통해 이룰 승리에 대한 약속 이다. 라멕의 말이 창세기 3장 15절의 소망을 되울리고 있으니, 그 소망은 더 널리 알려져 있었을 것이고 에덴에서 추방된 뒤 여러 세 대에 걸쳐 첫 형상 담지자들이 그 소망을 분명히 선포했을 것이다. 17

라멕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승리하는 아들을 소망했다. 노아 가 그 약속된 구원자는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라멕의 소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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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되었고 그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이들 가운데 있었다.

어리석음과 홍수 창세기 6장에 따르면 악은 널리 퍼져 있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취했다 는 묘사는( 창 6:2 ) 창세기 3장 6절을 상호 본문으로 되불러 온다. 거 기서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눈에 “보암직” 함을 “보았고” 그런 다음 그 열매를 “따 먹었다”( 저자가 짚는 창 3:6과 6:2의 상호 본문 연 결은 히브리어 동사 ‘라아’ [보다] 와 ‘라카흐’ [취하다] 가 두 본문에 나란히 쓰인 데 근 거한다. 개역개정은 6:2를 “보고……아내로 삼는지라”로 옮겨 이 반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옮긴이 ).

말이 닮았다는 사실은 동산 바깥에서 죄인들이 세대를 이어 어리 석음을 택하고 있음을 못 박는다. 창세기 6장 1-4절의 죄에 가담한 이들이 누구인지를 두고는 논쟁이 있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 들이 어느 정도 얽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그 죄악의 상태에 대한 여호와의 평가는 포괄적이고 정죄하는 평가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 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 6:5 ). 그리하여 여호와는 사람을 지 면에서 “쓸어버리”겠다고 선언하셨다( 창 6:7 ). 대홍수는 사람의 크나큰 어리석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널리 퍼진 부패는 널리 퍼진 폭력에서 드러났다( 창 6:11-12 ). 그래서 하나님은 땅에서 솟은 물과 하늘에서 내린 물이 물의 아가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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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물어 닫게 하셨다( 창 7:11-24 ). 오직 노아와 그의 아내와 아들들 과 며느리들만 살아남았고, 그들이 살아남은 것은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 말씀에 복종했기 때문이다. 노아는 홍수를 견 뎌 낸 방주를 지었다. 물이 물러가고 형상을 지닌 자들이 나왔을 때 하나님은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 9:1 ). 이 위임은 창세기 1장 28절을 되울리며 홍수 이 전의 책임이 노아의 삶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마치 노아가 새 아담 인 것처럼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해 준다. 아담과 하와의 자녀들이 영적으로 서로 다른 상태를 드러냈듯이 노아의 아들들도 자기 마음 의 영적 상태를 드러냈다. 창세기 9장 22절에서 함이 한 행동은 아 버지에게 수치를 안겼고, 셈과 야벳의 행동은 지혜롭고 분별 있으 며 아버지를 존중하는 행동이었다( 창 9:23 ). 노아가 함을 두고 한 말은 예언적 심판이었다. 이 상황은 창세기 3장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도 수치와 벗음이 결과를 불러왔다( 창 3:7, 18

10, 16-19 ). 이제 창세기 9장에서도 수치와 벗음의 상황이 심판으로

이어진다. 노아는 함을 두고 말한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창 9:25 ). 다른 두 아들에 대해 서도 이렇게 말한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 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 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창 9:2627 ).

함의 행동과 그 자손 가나안에게 내린 심판은 죄와 어리석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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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로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해 준다. 함은 방주에 탔던 사람 이다. 그런데 이제 그의 어리석음이 드러났다.

어리석음의 탑 창세기의 첫머리 여러 장은 여호와께 반역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 이며 어리석음은 심판을 거둔다고 가르친다. 또 이 장들은 여호와 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며 지혜로운 자가 하나님의 복을 누린다고 가르친다. 이 가르침은 창세기 11장의 한 건축 사업 이야기에서도 이어진다. 시날 땅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창 11:3 ). “자, 우리가”라는 말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하나님 의 말씀을 되울린다. 시날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들 이지만 그들의 말투는 위험한 추구를 내비친다. 그들의 계획이 더 뚜렷해질 때 그 생각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독자에게 분명해진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창 11:4 ). “우리 이름을 내고” 싶다는 바람은 우려스럽다. 높임을 받기에 합 당한 이름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뿐이기 때문이다. 여기 하나님인 양 처신하는 형상 담지자들이 있다. 여기 자기들의 탑으로 땅을 하 늘에 잇겠다는 듯이 사업을 벌이는 형상 담지자들이 있다. 성읍이 함께 나온다는 것은 그 탑이 고대의 지구라트 곧 예배 장소이자 신 학적 상징을 담은 건축물과 같았음을 시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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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어리석음은 교리의 오류를 낳는다. 창세기 11장의 이 형 상 담지자들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울 수 없다. 자기보다 크신 분 의 형상으로 존재하는 자들이 자기 이름을 확보할 수는 없다. 이 백 성의 하나 됨이 부끄러운 활동으로 나타났으므로 여호와는 그들을 흩으신다. 여호와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 19

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 자”( 창 11:7 ). 사람의 언어가 혼잡해지자 자기를 높이고 거짓 예배를 드리려던 그들의 하나 된 계획이 가로막힌다. 그 혼잡은 흩어짐을 낳는다. 그 들은 온 지면에 흩어지는 일을 면하고 싶어 했지만( 창 11:4 ), 결과는 바로 그 흩어짐이었다( 창 11:9 ). 창세기 11장에서 사람의 어리석음은 여호와를 향해 제 계획을 쳐들었고 어리석음은 실패한다. 지혜의 표지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존귀하심을 깨닫는 것 및 하나님을 높 여 드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것이다. 반대로 어리석음의 표지는 자기를 부풀리는 완고한 망상 및 하나님이 선언하신 것보다 사람의 계획이 앞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창세기 11장 1-9절의 그 건축자들은 자기 이름을 내려던 계획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들의 계획에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셨 는지 읽을 때 우리는 내레이터에게서 선과 악을 배운다. 우리는 말 로 교만하게 넘겨짚는 죄인들의 말을 듣고( “자, 우리가” ), 그 결말에서 그들의 반역이 어떻게 실패로 끝나는지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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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이 장의 목표는 지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를 놓는 것이 며 이 기초는 성경의 첫 책에 달려 있다.8) 창세기 1–11장에 지혜 롭다나 지혜라는 낱말은 나오지 않지만 지혜로운 행동과 어리석은

행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온다. 순종과 복과 생명은 쉽게 끊어지 지 않는 삼겹줄처럼 함께 묶인다. 불순종과 심판과 죽음도 마찬가 지로 함께 간다. 에덴동산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 불린 나무가 있었고, 선악 을 안다는 관념은 지혜라는 개념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더 많은 지 혜를 바라며 도덕적 자율을 움켜쥐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일 뿐 아니라 형상을 지닌 자로서의 우리 삶을 해치는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세상에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대리하도록 지으 셨다. 그리하여 우리로 정복하고 다스리게 하셨다. 그러나 어리석음 의 길에는 우리를 삼키려고, 우리를 이겨 정복하려고 웅크린 죄가 놓여 있다. 사람의 어리석음은 하나님의 선한 설계와 선한 명령을 거부한다. 창세기의 내러티브는 죄인들의 망상과 그들이 거역한 결 과를 보여 준다. 8) 벨처의 말대로다. “창조의 하나님이 구속사의 하나님이시다. 창세기 1–3장에는

질서와 무질서, 언약과 율법 및 구속사의 시작이라는 요소가 모두 담겨 있다. 이 런 사실이 창세기 1–3장을 지혜문학으로 증명해 주지는 않지만, 이 기초 본문 에서 이 관념들이 서로 긴밀히 결부되어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Richard P. Belcher Jr., Finding Favour in the Sight of God: A Theology of Wisdom Literature , New Studies in Biblical Theology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1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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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 15절과 5장 29절을 읽을 때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본다. 약속된 아들이 사람의 어리석음이 맺은 열매를 되돌리고 죄 와 죽음의 저주를 이기리라는 소망이다. 하나님의 지혜가 세상을 지으셨다면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을 구원하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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