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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250주년 기념

땅으로 넘어갔다.

미 원주민 사회와의 충 돌은 불가피했고, 영국은 또 다른

충돌과 전쟁을 피하기 위해 왕실

칙령으로(일방적으로) 미국인들

이 애팔래치아산맥 서쪽으로 이주

해 정착하는 것을 금했다.

‘1763년 선언선’이 왜 식민지

미국의 주민들에게 생존을 위협하

는 폭정으로 대두되었나? 애팔래

치아 산맥 동쪽에 정착할 땅이 없

어서가 아니다. 미국인들은 이주, 정착, 팽창을‘생명, 자유, 행복 추 구’권리로 본 것이다. 이렇게 영

국이 그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

는 권리를 짓밟았으니, 실존이 위

협을 받은 것이고, 따라서 당연히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함이 당연 했다.

- 독립선언 3년 전인 1773년 발 생한 소위 ‘보스턴 티 파티 (BostonTeaParty)’도 미국인들이 왜 이렇게까지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견딜 수 없는 영국 정부의 폭압에 대한 항거? 과연 그랬나? △ 아주 흥미로운 지적이다. 단 순히 생각하면 과도한 군중 심리 의 표출로 보여진다. 하지만 내용 을 분석하면 미국인들에게 자신들 의 정체성 파괴에 대한 항거로 받 아들일 만하다. 영국 정부는 1773년‘동인도 회 사(EastIndiaCompany)’에게 북미 식민지로 동양에서 차를 들 여올 수 있는 수입 독점권을 주면 서, 동시에 수입 차에 대한 일종의 소비세는 그대로 유지했다. 북미 식민지를 통해 재정난을 겪고 있 는 동인도회사를 살리려 한 것이 다. 한 회사에 교역상의 독점권을 주면서 세금은 계속 거두어 가겠 다는 정책을 미국인들은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보았다. 독점권은 미 국인들이 신성시하는 경제 활동에 서의 자유, 즉 상업과 무역의 자유 를 침해했다고 믿었다. 이 주장을 더 확대하면, 독점권은 생존권을 위협한 것이 된다. 세금 또한 납세 자의 동의가 없었다며 이 정책들 을 폭정의 증거라 외쳤다. 차가 너 무 비싸서 또는 없어서 일어난 것 이 아니라, 차 정책에 담긴 부정, 부당한 권력의 남용을 보았다. -‘보스턴 티 파티’는 영국의 입장에서 상징성이 큰 반란 행위 아닌가? 차를 바다에 던짐으로써 사유재산을 침해하지 않았나?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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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426 by nyilbo - Iss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