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FOR KINGDOM BUILDERS OF HEAVENLY TOUCH MINISTRY
헤븐리터치 미니스트리(HTM)는 2008년 손기철 장로(온누리교회, 담임목사 이재훈)가 설립한 초교파적 선교단체이며 헤븐리터치(Heavenly Touch)는‘하나님나라의 도래와 그 나라로의 침노’를 지칭합니다. HTM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주의 백성들이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함으로써
성도들이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품과 권능을 나타냄으로 각자의 가정과 일터를 하나님나라로 변화시키도록 섬기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Cover Story
고난 속으로 들어오시는 하나님
마귀는 늘 우리의 연약함을 공격합니다.
상처 난 틈, 염려의 틈, 외로움의 틈, 말 한마디에도 무너지는 틈을 기다렸다가 우리를 흔듭니다.
몸은 지치고 마음은 무너지며, 혼은 쉽게 두려움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고난을 우리와 함께 겪으십니다.
상처 난 자리에 직접 주님이 손을 얹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약함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봅니다.
그 영광은 모든 것이 괜찮아진 뒤에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흔들리는 시간 한가운데서도, 눈물이 마르지 않는 자리에서도, 혼이 다시 그리스도께 돌아설 때 우리는 그분의 얼굴을 봅니다.
우리는 오늘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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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 헤븐리터치 미니스트리
서울시 동작구 보라매로 5길 35 파크스퀘어 지하 1층
발행인 | 손기철
기획 | HTM 미디어팀
편집 | 강유진
교정 교열 | 정은영, 조진이, 조유진
디자인 | 이소영, 김혜성
전화 | 02-576-0153
팩스 | 02-447-2039
이메일 | htm0691@naver.com
홈페이지 | www.heavenlytouch.kr
발행일 | 2026년 7월 1일 통권 1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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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 대표인사
MESSAGE
HTM 메시지 | 당신이 겪고 있는 고난들
SPECIAL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에 쓰임받는 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일 | 화요말씀치유집회, 나의 사역지는 LED 화면 속
YOUTUBE
‘정말’시리즈 몰아보기
DEVOTION
19기 킹덤토크와 새마음 훈련 간증
20기 킹덤토크와 새마음 훈련 간증
나는 킹덤빌더다 | 하나님께서 그림 가운데 말씀하시다 치유간증
SKETCH
HTM 광주·호남지역
사랑하고 존경하는 파트너 여러분,
지금 대한민국은 참으로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
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분들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킹덤빌더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몇 자 적고자 합
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신 복음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입니다. 우
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 가운데 살아가지만, 어느 한 진영에 속한 사람이기
전에 먼저 하나님나라의 백성입니다. 이 순서가 흔들릴 때 복음은 왜곡됩니다.
자신의 입장과 이념을 관철하기 위해 복음을 앞세우는 것은 복음의 본질을 무너
뜨리는 일이며, 반대로 세상과 무관한 영적 집단으로 물러서는 것 또한 복음을 축소하는 일입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진영을 초월하지만 현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를 흔든 여러 일들은 많은 국민에게 혼란과 충격을 주었습니 다. 그러나 오늘 한국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적 갈등 자체가 아니라,
정치적 정체성이 신앙적 정체성을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그리스도
인과 교회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념의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진영
논리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이고 교회가 특정 이념의 확성기가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나라의 증인이 아니라 세상 갈등의 당사자가 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성경을 다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당시의 유대
사회도 오늘 못지않게 극도로 이념화되어 있었습니다. 열심당원은 무장혁명을
원했고, 바리새인은 종교적 민족주의를 추구했으며, 사두개인은 현실 권력과 타
협했고, 에세네파는 사회로부터 물러나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
러나 예수님은 그 어느 편에도 서지 않으셨습니다.
막 12:17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예수님은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는 혁명을 일으키지 않으셨고, 사도들도 정
치 혁명을 선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
은 하나님나라를 선포했고, 그 나라가 한 사람과 한 공동체를 변화시킬 때 결국
세상도 변화된다고 믿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불의한 체제를 향해 정치 혁
명을 촉구하는 대신 새로운 인간,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질서를 세워 갔습니다.
이것이 오늘 교회가 회복해야 할 모습입니다. 우리는 특정 정당의 승리를 위해 부름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부름받은 사
람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직시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갈라놓는 증오와 분열, 그리고 그리스도인을 이념의 포로로 만드는 이 모든 흐름
은 단순한 정치 현상이 아니라 영적 전쟁입니다. 성경은 우리 싸움의 본질을 분 명히 밝힙니다.
엡 6:12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한 것이라
원수의 전략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고, 형제를 미워하 게 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진영의 깃발 아래 서서 같은 백성을 향해 분노를 쏟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워해야 할 대상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진짜 대적은 그 배후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정사와 권세와 어둠
의 주관자들입니다. 사람을 향해 칼을 겨누는 순간, 우리는 이미 영적 전쟁에서 패배한 것입니다.
이 전쟁에는 그에 합당한 무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싸우는 방식, 곧 혈과 육의 방식으로 싸우지 않습니다.
고후 10:3-5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이론을 파하며
이념은 사람의 생각으로 쌓아 올린 견고한 진입니다. 그것은 진리처럼 위장 하여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며 높아집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견고한 진
을 파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파쇄는 분노와 정죄와 선동으로 이루어지지 않 습니다. 오직 진리와 기도, 사랑과 화해, 그리고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신갑주를 입은 자녀들을 통해 이 어둠의 진을 무
너뜨리십니다.
하나님나라 복음의 언어로 표현하면, 현재의 하나님나라는 먼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왕국으로 임하고, 그것이 우리의 삶터와 일터 속에서 확장되어 거주
하시는 왕국의 예표를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나라의 회복은 단순한 집회가 아니
라, 그리스도인 한 사람 안에서 회복되는 하나님의 통치권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안에 사랑과 생명과 하나 됨이라는 하나님의 존재적 주권이 회복될 때, 그 사랑
의 관계적 표현인 공의가 우리를 통해 세상으로 흘러갑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과 같은 시국에 그리스도인의 책임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① 헌법과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존중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국민의 자유와 책임 위에 세워진 나라이며, 그 자유는 하나님께
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와 연결됩니다. 국민은 국가의 주권자로서 자신의 권
리와 책임을 감당하고 헌법을 수호해야 합니다.
② 정파보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우선해야 합니다.
우리는“누가 이겼는가”가 아니라“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드러나고 있는
가”를 물어야 합니다.
③ 기도와 깨어 있는 행동으로 나라를 섬겨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헌법을 세울 때부터 기도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한국 전쟁 이후
재건이 불가능할 정도로 가난했던 나라가 열방을 섬기는 나라가 된 것은 단순한
경제 발전 이상의 은혜였으며, 수많은 성도가 무릎 꿇어 기도한 결과였습니다.
지금도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정치적 동원이 아니라 중보기도입니다. 그러 나 그 기도는 골방에 머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각 사람이 선 자리에서 깨어 있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지 기도만 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와 행동 은 대립하지 않습니다. 같은 성령께서 어떤 이에게는 기도를, 어떤 이에게는 행 동의 소원을 주십니다.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소원도 두시고 행함도 두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께서 주신 소원대로 기도할 사람은 기도하고, 행동할 사람은 행동하면 됩니다.
이것은 각 사람의 부르심과 은사의 다양성입니다. 기도를 행동보다 낮추는 것도 아니며, 행동을 기도보다 앞세우는 것도 아닙니다. 내주하시는 왕국은 우리 안에
머무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삶터와 일터로 확장되어, 거주하시는 왕국의 예표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확장은 곧 깨어 있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다만 그 행동에는 반드시 분별의 시금석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내주하시
는 성령의 성품, 곧 사랑과 생명과 하나 됨에서 흘러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
의 생각 속에 쌓인 견고한 진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
름받은 행동은 파괴가 아니라 각성이며, 동원이 아니라 증언입니다. 같은 편을
모아 다른 편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는 행동은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 앞에 깨어나게 하고, 잠든 이들을 깨우는 행동은 빛과 소금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기도하고, 또한 깨어 행
동해야 합니다.
살전 5: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그러므로 지금은 어떤 정당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는,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의 성품과 능력을 나타내며 나라와 교회를 위해 무릎 꿇어야 할 때입니다.
함께 이렇게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1) 국가의 지도자들과 사법·입법·행정의 모든 공직자에게 하나님께서 지
혜와 분별력을 주시고, 특별히 그리스도인 공직자들이 사람이나 진영의 눈치
를 보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공의와 양심과 상식에 따라 판단하고 행 동하게 하소서.
(2)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셔서 모든 사안이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 하게 다루어지게 하시고, 어떠한 불의도 은폐되지 않으며 진실이 밝혀지게 하 소서.
(3) 대한민국을 지켜 주셔서 자유와 책임, 법치와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가 건강하게 유지되게 하시고, 사회를 분열과 혼란으로 이끄는 모든 어둠의 세력 과 그들의 시도를 막아 주소서.
(4) 서로 다른 생각으로 갈라진 국민이 증오와 정죄를 멈추고 진실 안에서 대
화하게 하시며, 교회가 화해와 회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5) 한국교회가 정치의 도구가 되지 않고 하나님나라의 증인으로 서게 하시
며, 진영보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먼저 추구하여 이 시대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소서.
사랑하는 파트너 여러분, 우리는 어느 진영의 승리를 위해 부름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
이 아니라, 그 배후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어둠의 진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파쇄해 야 합니다. 교회는 정치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증인이 되어야 하며, 성
도들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성품과 능력을 나타내야 합니다. 함께 기 도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주님의 성품과 능력을 나타내는 행동을 해 나갑시다. 샬롬!
HTM 대표
건신대학원대학교 신학과 석좌교수
손기철 박사가 인도하는
하나님나라와 성령 복음성회
100년 전 치유의 복음이 선포되었던 그곳에서, 이제 하나님나라 복음이 다시 선포됩니다!
2026. 7. 20 - 22(월-수)
시간 | 저녁 7:00-10:00
장소 | 미국 LA 앤젤레스 템플(ANGELUS TEMPLE, LA)
주소 | 1100 GLENDALE BLVD. LOS ANGELES, CA 90026
손기철 박사 헤븐리터치 미니스트리 대표, 온누리교회 장로
건국대 명예교수, 건신대학원대학교 신학과 석좌교수
건국대학교 생명과학 부총장 역임 주최
* 건신대학원대학교는 미국 포스퀘어 교단 소속의 교육부 인가 신학대학원(총장 전용란)입니다.
100여 년 전, 하나님께서는 미국 LA에서 오순절 운동의 새 물결을 일으키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를 경험했고, 앤젤레스 템플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치유하시는 분이심이 선포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이 역사적인
자리로 우리를
이번 집회는
01. 과거를 기념하는 행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행하시는 일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02. 한 세기 전 이곳에서“예수는 치유자이시다”라는 복음이 선포되었다면, 이제는 예수님께서 친히 전하신“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선포됩니다.
03. 하나님나라는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지금 우리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그 통치가 임할 때 구원과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고, 삶이 변화됩니다.
04. 특별히 이번 집회는 치유기도나 안수사역보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먼저 선포되며, 그 말씀을 듣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구원하시고, 치유하시며, 성령으로 우리 안에 하나님나라를 이루십니다. 오순절 치유 운동의 역사적 산실인 앤젤레스 템플에서,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행하시는 새로운 일을 경험하십시오.
당신이
겪고 있는 고난들
- 당신은 정말 악과 고난을 알고 있는가? (2) -
손기철 박사│ 2026. 5. 19. 화요말씀치유집회 말씀
“왜 하나님께서 이 고난을 나
에게 주셨는가?”우리는 오랜 세
월 고난 앞에서 이렇게 물어 왔습
니다. 이 질문에는 이미 하나님이
고난의 원인이라는 전제가 담겨
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은 피고
석에 서시고, 인간은 재판관의 자
리에 앉습니다. 이것이 지난 2천
년 동안 신정론이 반복해 온 오류
입니다. 이런 출발점에서는 고난
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
면 신앙이 무너지고,“하나님이 이
래서 그러신 거야”라고 억지로 설
명하면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 되
십니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 달려가기보다 오
히려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출발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악과 고난에서 출발해 하나님께 나아갈 것
이 아니라, 사랑과 생명과 하나 됨이신 하나님의 본질과 창조목적의 경륜에서 출발해
악과 고난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 본질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
도이십니다(요 14:9).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교육적 목적으로 고통을 주 신 적이 없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유케 하시고, 치유하시며, 격려하셨습니다. 죽 은 나사로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시며 그 고통을 함께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 해 하나님께서 고난의 원인자가 아니라 고난 속으로 들어오시는 아버지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고난은 죄의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단 한순간도 우리가 고통과 고난 속에 있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자유의지를 지닌 우리의 혼이 주님을 바라보도록 인도하시는 분이지,“또 그런 짓을 했구나. 너는 좀 징계를 받아야 돼”라고 하시는 분
이 아닙니다. 지금 고난 가운데 있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벌이 아니라는 사실은 참
으로 기쁘고 놀라운 소식입니다. 설령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그분이 나와 함께 계심
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묻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생명이시며 하나 됨이
시기에 고통을 주시는 분이 아니고, 고난이 죄에 대한 벌도 아니라면, 이 세상에 존재 하는 수많은 고통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디에서 왔으며, 우리는 어떻게 분
별해야 할까요?
1. 왜 분별이 먼저인가: 오진의 비극 의사가 환자를 보자마자 자기 경험만으로 감기라 진단하고 약을 처방했다고 생 각해 봅시다. 그 환자가 실은 초기 폐암이었다면, 잘못된 진단이 환자를 죽음에 이르 게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오진은 반복되어 왔습니다. 암 투병 중인 성
죄를
원하는 것은 위로인데, 우리는 위로 대신 무거운 짐을 지어 주곤 했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바로 이런 오진을 범했습니다. 그들은 욥이 죄를 지었다고 단정
하고 회개를 요구했지만(욥 22:5, 23), 진단이 틀렸기에 그들의 말은 욥에게 고통과
폭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고통을 너무 쉽게 단순화합니다.“하나님께서 사랑
하시기 때문에 그러시는 거다.”“하나님의 더 큰 뜻이 있다.”그러나 이 모든 말은 오
진입니다. 오진은 하나님께 다가가고 싶어도 나아갈 수 없게 만듭니다.
2. 죄 · 악 · 고난을 다시 정의하다
고난을 바르게 분별하려면 먼저 죄와 악, 그리고 고난에 대한 정의가 바뀌어야 합니다. 죄의 정의에 따라 회개의 방식이 달라지고, 악의 정의에 따라 영적 전쟁의 방
식이 달라지며, 고난의 정의에 따라 고난 앞에서의 응답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죄를
하나님의 법을 위반하는 일로 여기고, 악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로 생각하며, 고난
을 죄에 대한 형벌이나 연단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잘못된 정의가 신앙의 첫 단추를
어긋나게 했기에, 아무리 경건하게 신앙생활을 해도 결국 같은 자리에서 무너지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죄의 재정의 - 혼의 방향 전환
처음 죄가 발생한 창세기 3장을 볼 때, 우리는 흔히 하와가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죄를 지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영이 떠나 인류가 타락했다고 이해
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세밀히 보면, 행위 이전에 먼저 혼의 방향 전환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혼으로 하나님을 의식하고, 몸을 통해 하나님을 나타
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뱀 안으로 들어와 인간을 시험했습니다. 뱀
은 하와에게 처음부터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고 물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정면으로 공격한 말이 아니라,“하나님이 정말 너희를
위해 그렇게 하시는 거냐? 정말 그렇게까지 제한적인 분이냐?”라고 물으며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의심을 심는 일이었습니다. 그 질문 앞에서 하와는 자유의지를 가진 혼
으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대신,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에 관해 말했습니다. 곧 혼이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마귀는 하와에게 의심이 심긴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하와의 심중에 거짓말을
심기 시작했습니다.“그것을 먹는다고 결코 죽지 않는다.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되
어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래서 먹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라
고 말한 것입니다. 혼이‘내가’가 된 상태에서 마귀의 말이 들어오자, 하와는 그 말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선악을 아는 나무가 보암직스럽고, 먹음직스럽고,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선악을 아는 나무가 힘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 힘은 하와가 준 것입니 다. 그리고 그 힘에 순종했을 때 행위적인 죄, 곧 타락이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타락
은 죄의 결과입니다.
중요한 것은 행위가 아닙니다. 그 이전에 혼이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왔는지, 아
니면 여전히 자기중심으로 살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늘 고통 속에 살 수밖에 없습니다. 죄의 본질은 바꾸지 않고 결과만 바꾸려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뀐 사고 체계는 한 사람 안에만 머물지 않습
니다. 그것은 개인의 습관이 되고, 관계의 패턴이 되며, 공동체의 문화가 되고, 사회 의 시스템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가 통치하는 타락한 세상입니다. 모든 사람이 ‘내가’를 중심으로 생각하기에 이 땅이 더럽혀지고, 거민들이 모두 죄악 가운데 살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죄를 법의 위반으로 보면 고난은 결국 벌이 됩니다. 그러나 자유의지를 가진 혼
의 방향 전환으로 보면,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하나님의 경륜에서 이 탈한 자리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고난을 하나님이 주시는 벌로 여기면, 그 벌을 다 받을 때까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
나님의 경륜 밖으로 벗어났을 때는 다시 그 경륜 안으로 들어오면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그 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악의 재정의 - 하나님 없는 상태의 구조
많은 사람은 악을 선의 반대편에 있는 독립적 실체로 보고, 영적 전쟁을 서로 대
등한 두 세력의 싸움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 다. 악은 하나님의 부재, 곧 빛의 부재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상태에서 만들어 져 파괴적으로 작동하는 구조입니다. 어둠이 빛과 대등한 실체가 아니라 빛이 없는
상태일 뿐이듯, 아무리 짙은 어둠도 촛불 하나면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빛이신 하나
님은 어둠과 싸우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악을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하며 전쟁합니다. 그래서 백전백패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 선 안에 있으면 악은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악을 이해하기 위해 위조화폐와 기생충이라는 두 비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위조화폐는 악의 원인과 한계를 보여 주고, 기생충은 악의 작동 방식과 치료 방식을
보여 줍니다.
위조화폐는 진짜 화폐가 있기에 존재합니다. 또한 그것은 진짜를 모방할 때만
통용될 수 있고, 그 자체에는 본래 가치가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을 통용시
키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위조화폐가 있어도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영향
력도 갖지 못합니다. 악도 이와 같습니다. 악은 선이 있어야만 존재하며, 선을 모방 합니다. 본래는 힘이 없지만 타락한 인간이 그것을 행할 때 힘을 갖게 됩니다. 그러
나 위조화폐가 진짜 화폐 체계 안에서만 작동하듯, 악은 하나님의 허용 범위 안에서 만 작동합니다. 욥기 1장 12절에서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 아래에서만 활동할 수 있었 듯, 가장 강력해 보이는 악조차 하나님의 주권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기생충은 숙주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숙주에 붙어 그 생명을 빨아먹으며 살 아갑니다. 악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선한 것에 기생합니다. 선한 것을 모방하고 왜곡
하면서 그 생명을 빼앗고, 점점 강한 파괴력을 발휘합니다. 마치 암세포와 같이 말입
니다. 그러나 기생충을 일일이 다 잡는 것이 답은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숙 주의 면역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숙주의 생명이 살아나면 기생충은 더 이상 살 곳을
잃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방식입니다. 악을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부어 주시고 사랑을 충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
므로 악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면 우리의 응답도 달라집니다.
면 내 의지처의 실체가 한순간에 드러납니다. 내가 붙들고 있던 것이 능력인지, 재물
인지, 사람의 인정인지, 건강인지, 아니면 정말 하나님인지가 밝혀집니다. 이 점에서
고난은 심판이 아니라 진단입니다. 고난은 내 혼이 세상에 있는지, 하나님 안에 있는
지를 보게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분깃을 받아 집을 떠났고, 모든 것을
잃은 뒤에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조차 먹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 고난은
단지 어려움을 겪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의지했던 분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이
었는지, 동시에 아버지의 집이 얼마나 든든한 기초였는지를 드러내 주었습니다. 풍족 할 때는 몰랐던 것들이 고난이라는 지진계를 통해 비로소 드러난 것입니다. 누가복음
15:17은 아들이“이에 스스로 돌이켜”라고 말합니다. 고난이 혼으로 하여금 방향을
전환하여 하나님의 경륜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정의가 바뀌면, 고난에 대한 우리의 질문과 응답도 달라집니 다.“왜 이 고난이 내게 왔는가?”가 아니라“이 고난이 드러내는 내 의지처는 무엇인 가?”를 생각하게 됩니다.“누가 이 고난의 원인인가?”가 아니라“나는 어느 방향으 로 가야 하는가?”를 점검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원인이 아니시기에,“내가 무
엇을 잘못했는가?”가 아니라“내가 무엇을 발견해야 하는가?”를 묻게 됩니다. 고난 은 우리의 혼이 방향을 전환하여 다시 하나님의 경륜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요삼 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프쉬케: 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나님은 고난의 원인자가 아니라, 고난이 드러난 자리에서 우리의 의지처가 되 십니다. 하나님은 욥에게도 폭풍 가운데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최고의 악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악으로 이 우주를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분은 고난 중에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고 난 가운데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의 고난을 대신 가져가 짊어지기 원하십니다. 이 것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입니까.
3. 고난을 분별하다
죄와 악, 그리고 고난을 새롭게 정의했다면, 이제 그 정의 위에서 고난을 분별해
야 합니다. 고난에는 크게 두 방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서 오는 고난
과 하나님께 가까워질수록 오는 고난입니다. 이 두 방향을 혼동하면 오진이 일어납니
다. 방향 전환이 필요한 고난을 사명적 고난으로 착각할 수 있고, 반대로 사명 때문에
받는 고난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결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이 겪는 고난은 크게 다섯 범주로 나뉩니다. 사명적 고난, 언
약적 심판, 허용적 징계, 성숙의 연단, 구조적 고난입니다.
범주 1. 사명적 고난 고난을 분별할 때 가장 먼저 살펴야 할 범주는 사명적 고난입니다. 모든 고난이
방향 이탈의 결과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나를 따르면 고
난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나를 따르면 박해가 있을 것”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5:20).
사도 바울의 고난도 그러했습니다. 바울은“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
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고 말합니다. 바울이 받은 고난은 하나
님의 경륜에서 벗어난 결과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한 고
난이었습니다. 이것은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할 고난입니다.
범주 2. 언약적 심판
어떤 사람들은 구약의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 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구약의 하나님께서 신약에
와서 다른 분이 되실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구약에 나타난 각종 저주와 재
앙을 볼 때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언약적 심판을 이해하려면 먼저 구약의 사람들과 새 언약 안에 있는 사람들의
출발점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후, 아담의 자손들 은 사망과 저주, 형벌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죄를 짓 고 죽음을 향해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구약의 백성들에게 율
법(토라)을 주신 이유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죄를 정하기 위해 율법을 주셨다고 말하지만, 율법이 없었을 때에도 이미 죄는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생명, 하나 됨이십니다. 이것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동일합니다. 토라의 어근인‘야라’는‘방향을 지시하다’,‘화살을 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곧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망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죄 를 알게 하고, 생명의 방향을 가리켜 주는 가이드였습니다. 인간은 본래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나, 율법 밖으로 나가면 자연스럽게 고난을 받습니다. 오히려 율법
이 있기에 형통과 축복 안에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율법은 저주와 사망 가운
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백성들을 자유케 하시려는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누
구도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가장 강하게 책망하 신 이유입니다. 그들은 자기 행위로 율법을 지키는 것을 의롭다 함을 얻는 길로 여겼 고, 다른 사람들마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 28장 에 나오는 저주의 목록은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에 따른 조건부 문제가 아니라, 율 법 밖으로 나간 당연한 결과입니다.
특별히 구약에는“여호와께서 진노하셨다”,“여호와께서 재앙을 내리셨다”와 같이, 하나님께서 직접 어떤 일을 행하신 것처럼 보이는 표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을‘심판의 하나님’,‘두려운 하나님’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일어나는 모든 일을“하나님이 하셨다”고 표현하는 독특한 히브
리적 어법입니다. 창조주이시며 유일하신 하나님의 섭리 아래 모든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그 일의 원인자이심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권자이시지만, 악의 원인자가 되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구약에는 날 때부터 타락한 존재이기에 당하는 고난과는 다른 층위의 고
난도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것이 노아의 홍수입니다. 하나님은“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창 6: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본문을 이해하려면 하
나님의 경륜적 주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서 예정하신 비밀의 경륜을 통해 창조목적을 점진적으로 이루어 가십니다. 이 경륜은
결코 포기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경륜이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는 임계점에 이르
면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노아의 홍수가 바로 그런 경우였습니다.
노아의 시대에는 타락한 천상의 존재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합하여 네피림이라
는 다른 종족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을 왜곡한 것으로,
그 종족이 번성하면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물로 타락한 인류를 멸절시키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사랑이시기에 노아의 가족을
남겨 두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경륜을 이어 가셨습니다. 따라서 노아의 홍수는 죄
에 대한 심판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 경륜의 신정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악을 선으로 바꾸어
창조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6장은“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창 6:7)는 말씀에 곧이어“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는 말씀을 둡니다. 여기서 우리는 창조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사랑 의 하나님을 봅니다. 따라서 관계적 주권에 따른 모든 심판은 존재적 주권에 기초한
창조목적의 경륜적 표현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피조세계에서 행하시는 관계적 주권
(예정, 통치, 능력)은 존재적 주권인 사랑과 생명과 하나 됨에 기초하여, 경륜적 주권
안에서 창조목적을 이루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구약에는 이처럼 여러 층위의 고난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더 이상 구약 아래에 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범주 3. 허용적 징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부활과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임하셨습니다. 거듭난 우리 안에는 더 이상 사망과 저주와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 지혜와 능력이 흐릅니다. 이 전환은 단지 이신칭의라는 법정 적 관점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이신칭의는 하나님이 심판주이시고 인간은 죄를 지은 피고인으로 형벌을 받아 야 하지만, 대리인이신 예수님께서 내 죗값을 대신 치르셨기에 우리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관점입니다. 그러나 무죄를 받아도 피고인은 피고인입니다. 신분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심판주께서 피고인을 아들로 삼으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법적 관점을 뛰어넘는 존재적 변화입니다. 신분이 아니라, 태생과 국적이 바뀐 것입
니다. 그래서 성경은“옛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는 단지 죄 사함을 받은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생득권이 주어집니다.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거듭날 때
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흐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혼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혼이 스스로 그리스도 밖으로 나가면 어둠 속에 들
어가 고난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때의 고난은 하나님의 보호막에서 벗어남으로써 당
연하게 일어나는 결과입니다. 이것을 허용적 징계라고 부릅니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
녀는 본래 고난을 받을 수도, 죄를 지을 수도, 병들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마 귀의 말에 속아 하나님의 영광 밖으로 나간 결과로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죄에 대한 징계가 아닙니다.
우리는 징계를 벌이나 처벌, 채찍질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2
장에 나타난 징계, 곧 파이데이아는 한 사람을 온전한 성인으로 세우기 위한 교육 과
정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허용적 징계는 한 사람을 킹덤빌더로 세워 가는 과정입니
다. 하나님께서 이를 허용하시는 이유는, 고난이라는 지진계를 통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고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버
선발로 뛰어가 맞아 주고, 새 옷과 가락지와 신발을 내어 주며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
리고“죽었던 내 아들이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생명적 관계를 잃
었던 존재가 다시 돌아와 아들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새 언약 아래 산다면, 우리가 당하는 어떤 고난도 죄에 대한 벌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
었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 하나 됨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혼이 그 스위치를 꺼 버린 결과로 찾아옵니다. 따라서 신약에 사는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고난은 허용적 징계에 속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허용 하시지만 동시에 중보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고난 가운데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먼저 우리가 그 길로 가지 않도록 중보하시고, 우리가 원해서
그 길로 갔다 하더라도 그 고난 가운데서 우리와 고통을 나누시는 분입니다.
범주 4. 성숙의 연단 앞의 세 범주가 고난의 원인에 따라 구분된 것이라면, 성숙의 연단은 고난이 지
닌 기능으로 정의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세우시는 통로입
니다. 욥은 의로운 자로서, 그 고난을 통해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뵙게 되었습
니다(욥 42:5-6). 잘못이나 방향 이탈이 없음에도 고난을 겪을 때, 그 안에서 우리를
연단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분별해야 합니다.
범주 5. 구조적 고난
구조적 고난은 혼이 세상으로 방향을 전환한 인간들이 만들어 낸 타락한 사회
구조 안에서 사람들이 겪는 고난입니다. 자연재해, 전쟁, 전염병, 유전병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선택이나 사명과 무관하게 받는 간접적인 죄의 영향입니
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의 죄에 대해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죄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고난의 분별과 하나님 자녀의 삶
고난을 바르게 분별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난에 더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
고 고난당하는 이를 살리고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도 고난 앞에서 짊
어졌던 두려움과 정죄의 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 아닙니
다. 그분은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라도 그분께 달려가 안길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늘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마귀는“네가 그렇게
하고도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느냐”고 참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설령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고백해야 합니다.“그래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
하나님은 본질상 벌을 주실 수 없는 분입니다. 그분은 사랑이시고 생명이시며 하 나 됨이십니다.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God is so good!
헤븐리터치센터 임마누엘홀
LED 디스플레이 설치
화요말씀치유집회가 열리는 임마누엘홀 두 기둥에 대형 LED 디스플레이가 새롭게 설치되었습니다.
이제 홀 어느 자리에서도 사각지대 없이, 더욱 선명하고 시원하게 말씀이 선포되는 집회 현장을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귀한 변화를 위해 동역해주신 손길에 감사드립니다. 더 많은 분들이 임마누엘홀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누리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손기철 박사│ 2026. 5. 24. 성령강림주일
엡 1:9-10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오순절에는 여러 교회, 여러 공동체가 한곳에 모입니다. 우리는 왜 모일까요? 에
베소서 1:9-10에는‘비밀’,‘경륜’, 그리고‘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표현이 등장
합니다. 이 세 단어의 뜻을 깨달을 때, 우리가 오순절에 모이는 목적도 분명해집니다.
오순절은 단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일 년에 한 번 함께 예배드리려 모이는 날이 아닙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예정하신 목적이 역사 안에서 한 걸음 전진한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건의 연장선에 선 자로서 모입니다. 매주 드리는 예배, 봉사와 전도, 말씀 공부 - 우리는 왜 이 일을 할까요? 많은 경 우 이렇게 답합니다.“구원받고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타락한 세상에서 빛과 소
금으로 살기 위해서입니다.”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대답은 모두 타락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타락이 있었기에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목적이 정말 타락에서 시작될까요? 우리의 부르심이 타락에 대한 반응일 뿐일까요? 만
약 하나님의 목적이 타락보다 앞섰고, 우리의 부르심이 그 목적의 실현과 연결되어 있
다면, 우리는 신앙생활을 새롭게 보아야 합니다.
1, 하나님 창조목적의 실현으로
본 성경 이야기
1)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 책인가?
성경은 한 권의 책입니다. 그 안에 수많은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고, 수많은 가르침 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성경을 인물이나 사건, 교훈 중심으로 조각내어 읽습니다. 이렇게 보면 성경이 마치 위인전이나 도덕책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성경 전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회
복해야 할 첫 번째 관점입니다. 골로새서 1:16은“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아 그를 위하
여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그로 말미암아”는 그리스도가 창조의 통로이시라는 뜻이
고,“그를 위하여”는 그리스도가 창조의 목적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이 되십니다. 성경은 바로 그리스도가 어떻게 모든 것의 머리
가 되어 가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 모든 것이 그
리스도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께로 수렴됩니다.
이것이‘그리스도 중심 해석학’입니다. 우리는 이 렌즈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의 죄와 구원의 관점, 곧 언약에 기초한 구속사로 성경을
읽어 왔습니다.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창조목적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협소합니다.
그리스도 중심 해석학을 회복하지 못하면 성경은 분해됩니다. 구약은 도덕책이 되고,
신약은 구원을 위한 설명서가 됩니다. 율법은 옛것이 되고 복음은 새것이 되며, 이스라
엘은 옛이야기가 되고 교회는 우리의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구약의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림자와 모형이며, 신약의 모든 실체는 그리스도를 드러냅니다.
오순절은 그리스도 중심 해석학의 결정적 봉우리입니다. 오순절을 통해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임하셨고, 성령님이 임하실 때 바로 그 생명나무 되신 분께서 우리 안에 오
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시고 창조주이시며 창조목적의 시작이요 끝이신 분께서 우
리 안에 들어오신 사건이 마침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스도 중심 해석학과 더불어 회복해야 할 관점은‘종말론적 해석학’입니다.
많은 사람이 성경의 기준을 에덴에 둡니다. 에덴이 본래의 상태였고, 에덴과 같은 상태
로 돌아가는 것이 신앙의 목표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지는 에덴이 아닙니
다. 마지막 때 우리가 도착하는 곳은 새 예루살렘, 거룩한 성입니다. 그곳은 동산이 아
니라 도시입니다. 우리가 가는 곳은 에덴과 비교할 수 없는 놀랍고 신비롭고 영원한 곳 입니다. 에덴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장소였지만 완성이 아
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기준점은 과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잃어버린 에덴을 그리워하는 자가 아니라, 아직 도달하지 않은 완성을 향해 전진하는 자입니다. 그렇기 에 우리는 앞을 향하여, 푯대를 향하여, 부름의 상을 위하여 나아갑니다.
신앙의 방향이 달라지면 우리의 관심도 달라집니다. 뒤를 보고 있을 때 가장 큰
관심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회복입니다. 그러나 앞을 보고 있다면, 날마다 그 완성을 향해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는 일에 관심을 두고 전진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오순절도 종말론적 사건입니다. 아담이 가 본 적 없는 무엇이 시작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동행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내주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과 생명적 관계를 맺기 위해 생명나무
를 임의로 먹어야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순절은 회복이 아니라 전진입니다. 인류 역
사에 단 한 번도 없었던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 것입니다. 우리가 오순절을 기념한다는
것은 바로 이 종말론적 의미를 새기는 일입니다.
이제‘그리스도 중심 해석학’과‘종말론적 해석학’의 관점으로, 서두에서 언급한
에베소서 1:9-10을 다시 살펴보려 합니다.
2)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 ‘비밀’의 헬라어‘무스테리온’은 흔히 생각하듯‘영원히 드러나면 안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지금은 숨겨져 있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드 러나도록 예정된 것’을 가리킵니다. 곧, 드러남을 예정해 두고 잠시 가려 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비밀은 언제부터 있었을까요?
엡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부터’라는 표현은 시간을 초월합니다.‘시간’이라는 개념이 시작되기 전부
터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갖고 계셨고, 그 목적이 교회를 통해 드러나도록 예정하셨습 니다(엡 3:10). 따라서 하나님의 목적은 타락에 대한 반응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1:4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합니다. 창조 이전에 우리는 이미 택함을 받았습니다. 비록 죄를 짓고 타락했지만,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도록 예정되었고, 예수님께서 땅에 오시고 우리가 그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을 때 그 예정이 우리에게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이 비밀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엡 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비밀의 경륜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여기서“통일되게 하려 하심”은 헬라
어로‘아나케팔라이오오시스’인데,‘케팔레’는‘머리’,‘아나’는‘다시’를 뜻합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흩어지고 분열된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질서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과 요한계시록을 통해 우리는 내주하시는 왕국과 거주하
시는 왕국을 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 두 왕국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은 영혼 구원이나 교회의 부흥을 넘어 피조세계 전체를 향합니다. 하나
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 지금도 비밀의 경륜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경륜’의 헬라어‘오이코노미아’는 집을 뜻하는‘오이코스’와 법, 관리를 뜻하는 ‘노모스’의 합성어로,‘집을 관리한다’,‘가정을 온전히 운영한다’는 의미입니다. 경륜
은 즉흥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계획하고 그 계획을 이루어 가는 일 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통일되는 창조목적의 점진적 실현
을 위해 피조세계를 경영해 나가시는 것이 그분의‘경륜’입니다.
그렇다면 왜‘비밀의 경륜’일까요? 마귀로 인해 인간이 타락했기에, 마귀도 알
수 없는 비밀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반응적이지 않습니다. 사고가 터져 수습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품으셨던 그 목적을 향해 전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륜은 능동 적입니다. 그 길 위에 타락이 있었지만, 그조차 하나님의 경륜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오
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더 깊은 비밀의 경륜으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이 눈으로 성경을 본다면 창세기 12장의 아브라함을 새롭게 보아야 합니다. 그는 한 민족의 조상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로 비밀의 경륜에 쓰임받았습니다. 출애굽기의 모세도 한 민족을 해방시킨 지도자에 머물지 않습 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그 백성을 하나님나라를 예표하는 땅으로 이끄셨습니 다. 창조목적이 한 단계 더 실현되는 자리에 그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 왕조, 솔로몬 의 성전, 이사야의 예언도 모두 한 줄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그 끝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이 있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오순절에 우리에게 오셔서 하나님의 통치가 시 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은 비밀의 경륜의 가장 결정적인 봉우리이며, 우리는 그
연장선 위에 서 있습니다.
성경은 66권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통일성과 일
관성, 목적성을 지닌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창세 전에 예정된, 그리스도 안에 서 만물이 통일되는 비밀의 경륜입니다. 그 경륜이 지금 역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이루 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에 쓰임받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오순절에 모입니다. 2.
1) 경륜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비밀의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비밀의
점진적 실현은 일 곱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택하셨습니다. 우리는‘영원 전에 예정’된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창조’는 사랑이시고 생명이시며 하나 됨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분의 목적
을 이루시려고 시간 안에 처음으로 나타나신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
신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흔히 우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되었다고 말합
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하나님은 어느 한 인간도 자녀라고 부르신 적이 없습니다. 성령
님이 내주하시고 영원히 떠나지 않으시게 된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
가 되는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인간을, 그분의 형상을 따라 모양대
로 창조하셨습니다.‘형상’은 본질이고,‘모양’은 닮아가는 것입니다. 부모의 DNA가
자녀 안에 있어 자라면서 점점 부모를 닮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형상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혼이 점점 더 하나님의 영에 반응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자라 갑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계획하신 인간의 원형입니다.
우리는 에덴을 낙원이라 여기지만, 에덴은 완성이 아니라 경륜의 원형으로서 온전 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피조세계에 오셔서 동산을 거니셨지
만, 거주하시는 왕국은 에덴동산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모든 피조세
계가 에덴동산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위해 아담에게 위임된 권세를 주셨고, 생
명나무를 통해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끊임없이 흐르게 하셨습니다. 시작은
두 인간과 에덴동산이지만, 마지막은 온 피조세계입니다. 생명나무로부터 시작된 강은
온 땅으로 흐르고, 마침내 완성될 새 예루살렘 성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는 하늘에
속한‘형상’을 지닌 자들이 됩니다.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목적은 온전하지만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우리가 응답하기를 원하셨습니
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완성된 요한계시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목적은 마귀에 의해‘왜곡되고 지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이 죄지은 상태로 영원히 사는 것을 막으시려고 두루 도는 그룹들과 불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창조목적의 실현은 파괴되지 않았고, 하나님 께서는 마귀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의 경륜을 통해 그분의 창조목적을 하나하나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것을 새롭게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후 모세 에게 성막을 짓게 하시고 제사 제도를 주셨습니다. 성막의 지성소에 하나님께서 거주하
셨고, 제사 제도를 통해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죄를 덮어 주셨습니다. 주님이 임
하시는 성막은 거주하시는 왕국의 모형이고, 제사 제도는 내주하시는 왕국의 그림자입 니다. 구약에서는 동물의 피로 내주하시는 왕국을 그림자로 나타내었지만, 새 언약에서
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심으로 단번에 내주하시는 왕국이 시작되었습니다. 하 나님의 비밀의 경륜의 관점에서 볼 때, 구약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으며 모 든 사건은 두 왕국의 그림자와 모형입니다. 그리고 때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혜사 성령님의 오심으로 우리는 ‘회복’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재창조’되었습니다. 오순절은 생명나무 되신 예수님께 서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 막혀 있던 길이 열린 날입니다. 에덴과 비교할 수 없는 일 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회복에 그치지 않고 점진적 실현입니다.
창조목적의 실현에서 보면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도 새롭게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마귀의 일을 멸하고 인간을 구원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롬 8:29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고전 15:49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하늘에 속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조목적 실현의 마지 막 단계인 7단계, 곧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은 그 인간, 그 예표적 존재로서 이 땅 에 오셨습니다. 성육신은 최종 완성될 인간의 존재를 역사 속에서 미리 드러내신 사건 입니다. 첫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이시며 새 창조의 첫 열매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시작이신 동시에 종말론적 인간의 원형이기 도 하십니다. 인자로 오신 예수님은 바로 마지막 완성 때에 우리가 되어야 할 모습입니 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동급이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부활의 몸 을 입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통해 온전히 나타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므로 우리를 통해 생수의 강이 흘러나옵니다. 이는 예수
님이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거주하시는 왕국을 예표적으로 보여 주는 삶을 살 수 있다
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것이 성령의 열매이고,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동
안 하셨던 사역이 나타나는 것이 성령의 은사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빛과 성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함께하기 때
문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이루어질 그 일을 지금 꿈꾸고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내주하
시는 왕국과 거주하시는 왕국이 한 장소에서 하나가 되는 그 일을 보기를 원합니다. 하
나님의 임재뿐 아니라 영광이 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흥입니다. 그 일은 혼자서는 이
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모여 기도할 때 화로가 만들어지고, 우리 각자를 통해 흘러
나오는 생수가 모여 강을 이룹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합니다.
부흥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미래에 있어야 할 일을 지금 맛보는 것입니다. 창조목
적 완성의 예표적 봉우리가 바로 부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어떻게 해야 부흥이 일
어나는가”가 아니라“왜 부흥이 오래가지 못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부흥이 오래가
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부흥이 창조목적의 실현을 위해 주시는 일임을 알지 못하고, 부흥을 경험한 후에 영적 전쟁을 치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영적 전쟁을
치르며 내 일터와 삶터를 바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순절은 이러한‘회복과 재창조’를 기념하고‘성숙과 확장’으로 나아가는 자리 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그의 나라와 의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삶 이‘성숙’이고, 내 일터와 삶터, 선교지에서 모든 민족이 내주하시는 왕국을 이루어 가 게 하는 것이‘확장’입니다. 이 성숙과 확장의 단계 안에서 우리는 전진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새 언약의 결산이 오고, 예수님께서 친히 오셔서 통치하시는 천년왕국이 시작됩니다. 하늘과 땅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우주적 확장’이 일어납니다.
천년왕국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돌아오지 않은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 민족들이 돌아
오도록 주시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천년왕국 후에는 백보좌 심판이 옵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모든
것이 영원한 불못으로 들어가고,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
늘에 속한 형상을 입은 자가 되어,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의 장막 가운데서 영원한 삶을 누립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생명수가 흐르고 그 강 좌 우에‘생명나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계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문법상으로는 단수이지만, 문맥상으로는 100% 복수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
스도가 각 성도 안에 거하셨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 중앙에 있던 한 그루 생명나무가
오순절 날 마침내 각 성도 안에 들어와 거하셨고, 그것이 부활의 몸 안에서 각각 한 그
루의 생명나무로 온전히 드러난 것입니다. 결국 만세 전에 예정된 그 경륜이 완성되는
자리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생명나무가 된 모습으로 그분 앞에 서게 됩니다. 바 로 우리가 개별적으로 그리스도화된 것이며, 만국을 소생케 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내주하시는 왕국과 거주하시는 왕국이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단계이며, 영원 전에 예정된 그 경륜이 '완성'되는 자리입니다.
2) 두 왕국을 이루어가는 자
우리는 재창조된 자입니다. 신분과 태생이 바뀌었고, 생득권을 가졌습니다. 존재 가 바뀌었다면 사고방식과 믿음 체계도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단지 죄 사함만 받은 자가 아니라 지금 창조목적을 이루어 가는 자입니다. 내주하시는 왕국은 이루어 가고, 거주하시는 왕국은 예표적으로 보여 줍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육체를 경험하며 개 별적으로 그리스도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우리’입니다. 그분은 내 안에도 계시지만, 그분의 영 광은 우리 가운데서 가장 놀랍게 나타나십니다. 그러나 시작은‘나’로부터입니다. 각
사람 안에 하나님의 내주하시는 왕국이 이루어질 때 거주하시는 왕국을 예표적으로 경 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내가 어쩌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고 죽은 다음에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만세 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자로 선택받았고,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하나님의 그 비밀의 경륜의 동역자로 쓰임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주님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우주적 확장에 참여하는 자입니다. 한 사
람 한 사람이 결정적입니다. 그 한 명 한 명이 모일 때 생수가 강이 되고 화로가 됩니
다. 그때 사회가 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어떤 행동으로, 어떤 슬로건과 외침으로
이 사회를 바꾸려 합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여러분이 이 비밀의 경
륜을 안다면, 이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 시점에 하나님께서 이 비밀을 계시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이 마지막 때
이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두면 믿는 자들조차 불법을 행하고, 사랑이 식고, 배도하게 됩
니다. 그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킹덤 빌더를 세우시고 이 땅에 새로운 생태계를 만
들기를 원하십니다.
시작은‘나’, 한 사람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그 비밀의 경륜에 쓰임받고, 그리스도
를 나타내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
여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교회가 존재합니다. 그때 킹덤 에코시스템, 곧 하나님나라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그 생태계를 통해 마지막 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며
믿지 않는 자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들어오게 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두
왕국을 이루어 가는 우리가 품어야 할 비전입니다.
제34기
킹덤빌더스쿨 “
킹덤빌더스쿨(Kingdom Builder School)은 HTM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훈련과정으로,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나라를 알고(눅12:32), 그 나라로 침노해 들어가(눅16:16), 하나님나라 친 백성의 실제적인 삶을 살기를 소망하는 이들을 훈련시키는 스쿨입니다.
2026. 10. 2 - 5 (금-월) ▶ 가평 좋은아침 연수원 * 1-4일차 숙박
2026. 10. 9 - 10 (금,토) ▶ 헤븐리터치센터
* 5,6일차 숙박없음
* 일정과 장소는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스쿨핵심내용
신앙과 현재의 삶
기초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일” - 화요말씀치유집회, 나의 사역지는 LED 화면 속글│ 킹덤빌더 섬김이
안녕하세요! 저는 매주 화요말씀치유집회 말씀 배경을 제작하는 킹덤빌더 섬김이 입니다. 화요말씀치유집회에 오시면 매주 말씀 주제에 따라 말씀 배경이 바뀌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이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궁금해하시는 분들도 계셨
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말씀 배경 이미지를 만들며 제가 품고 있는 마음과, 그 안에 담
긴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설명이나 정보보다‘순간의 장면’을 더 오래 기억합니다. 졸업식 축사는 희미해져도 강당의 풍경은 남아 있고, 어린 시절 친구와 나눈 대화는 잊어도 노을 지던
놀이터의 풍경은 기억합니다. 이처럼 어떤‘이미지’는 심중에 오래 남아 우리의 생각
과 가치관을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미래를 약속하실 때, 장황한 설명 대신 그가 평생 잊
지 못할 압도적인 장면을 보여 주셨습니다.
창세기 15:5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아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께서 구체적인 숫자 대신 까만 밤하늘에 가득한 별들을 보여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그 약속을 머리로 계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심중에 심을 수 있도록 ‘이미지’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심중에 새겨진 이미지는 곧 우리의 믿음이 됩 니다.“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는 말씀 처럼,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이미 있는 것을 심중에 그려냄으로써 그것이 실제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구체적인 이미지를 사용하셨습니다. 제자들 이 하나님나라를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선명히 그려 보게 하심으로, 그 말씀
이 심중에 심기고 온전한 믿음으로 자라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말씀을 단순한 지식과 정보로 머리에 저장하는 수준 에 머문다면 삶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하나의 생생한 장면이 되어 심
중에 심겨질 때, 비로소 우리의 믿음체계와 삶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나라를 상상하고 그려내도록 돕는 일에, 말씀 배경이 소중한 통로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예배의 배경을 채우는 일을 넘어, 예배자와 하나님 사이
를 더 깊이 이어 주는 하나의 다리가 됩니다.
저는 이런 마음으로 저는 매주 화요집회 말씀 배경을 만듭니다. 예배가 끝난 뒤에
도 마음에 오래 남을 Take Home Message를 고민하며,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
대신 우리에게 하나님나라가 임하였다는 복음의 기쁜 소식이 심중에 선명히 그려지기 를 소망합니다. 또한 그 이미지들이 예배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선하고 아름답게 상상하도록 돕는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 호에서는 한 장의 말씀 배경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비하 인드 스토리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나라를 어떻게 이미지로 그려내 고 있는지, 그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샬롬!
우리는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로서
주님께 무언가를 얻어내려 애쓰는 자가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 나타내고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빛나는 물줄기처럼 보이는 이미지는 우리 안에
이미 흐르고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냅니다.
2025.06.03. 화치 말씀배경 | 나는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다
치유의 여부는 신앙의 척도가 아닙니다.
참된 영성은 치유의 과정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몸 안에는 예수님의 생명이 흐르며, 우리의 몸은 그 생명이 열매맺는 통로입니다.
2026.06.02. 화치 말씀배경 | 치유, 경륜의 관점으로 다시 보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은 ‘혼의 어두운 밤’을 통과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 길 끝에는 반드시 빛이 있습니다. 이 빛을 만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실제가 아님을 깨닫고 혼이 주님을 향해 돌아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영적 전쟁은 단순히 마귀를 쫓아내는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것이 진정한 영적 전쟁입니다.
어떤 상황이 찾아와도 어둠에 시선을 빼앗기지 말고,
빛 되신 주님 안에 거하세요.
2026.04.28. 화치 말씀배경 | 당신은 정말 마귀를 알고 있는가?
당신은 어떤 OS(운영체제)로 살아가고 있나요?
우리는 AI와 시스템이 설계한 가짜 세상에서 벗어나,
하나님나라의 통치를 실현하는 보다 더 성경적인 신앙 체계로
무장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 운영체제 안에서 함께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나갑시다.
2026.02.24. 화치 말씀배경 | AI시대, 영적전쟁 어떻게 할 것인가!
Devotion
19기 킹덤토크와 새마음 훈련 간증
본 호에 게재된 간증은 원문의 의미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편집자의 손을 거쳤음을 안내드립니다.
33기 KBS를 마치고 돌아가자마자 무리하게 일을 했고, 수술 부위에 극심한 통증
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걱정에 사로잡혀, 매일 마주하는 상황에 묶여 있
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하나님나라 복음을 여전히 머리로만 깨닫고 있었다는 사실
을 주님께서 한 번 더 알게 하셨고, 아직도 스스로 그리스도를 나타내려 하는 제
모습 앞에서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그 답답함을 안고 킹톡새에 참석했습니다. 첫날 주님께서는 계속 사랑을 보여 주셨 고,“누구 때문에”라며 다른 사람을 탓하던 저를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기름
부으심과 임재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조별 모임에서는 각자의 고민을 나누며 우
리 모두가 주님 안에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위로와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적용점을 찾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둘째 날에는 함께 참석한 남편이,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했다고 여겼던 섬김과
봉사가 사실은 주님이 하신 일이 아니라 내가 한 일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말
을 듣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남편을 향한 긍휼이 올라오며, 남편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셋째 날에는“이제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는 레마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제 저
는 과거에 묶인 자가 아니라,‘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던 저를 하나님나라 복음으로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드 립니다. 소명과 비전을 주신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주님은 내 아버지이십니다!
2박 3일의 시간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다.
KBS 33기에 참여하기 위해 베트남에서 올 수 있었던 것도 기적이었는데, 킹톡새
를 위해 다시 한국에 올 수 있도록 모든 상황을 순적하게 열어주신 하나님의 은혜
와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KBS를 마치고 삶터와 일터에서 살아가며 여러 의문이 생겼습니다. 혼의 방향 전환
을 어렵게 만드는 상황들 가운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컸
습니다. 킹톡새에서 QnA 시간을 통해 그 궁금증을 풀 수 있었고, 임재호흡과 나비 손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껏 누렸습니다.
특별히 용서와 회개의 시간 가운데, 진정으로 용서해야 할 대상이‘나’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스스로를 정죄했던 순간들이 떠올
라 하나님 앞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나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던 제 모습을 보며 회개했고, 그 모든 것을 주님께 올려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내가 너의 보호 자야”라는 따스한 음성으로 위로해 주셨고, 저는 비로소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되었
습니다.
이제 다시 삶터와 일터로 나아갑니다.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서 나아갑니다.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바라보며, 매 순간을 감사함으로 걸어가겠습
니다.
킹톡새 하루 전부터 왠지 모를 두려움과 긴장이 찾아왔습니다. 킹톡새에서 제 내면 의 견고한 진을 마주하고, 깨끗이 치유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내면의 쓴뿌
리와 상처를 대면하고 나누려 하니 아프고 두려웠습니다. 킹덤빌더스쿨은 모든 과
정이 편안하고 좋았지만, 킹톡새는 처음부터 불편하고 부담이 되어 그렇게 첫날을
보냈습니다.
둘째 날, 주님께서 제 내면에서 늘 저를 괴롭히던
니다. 할렐루야.
이제 저는 주님 안에 있는 존재이며 말씀을 이루는 자입니다. 상황과 처지에 묶인
자가 아니라, 거짓자아에서 벗어나 주님 안에서 상황과 처지를 바라보는 자가 되었 습니다.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도 선제적인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 알
게 되었습니다. 넘어지고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께서는 여전히 두 팔을 벌리고 저 를 기다리십니다. 저는 언제라도 아버지께 돌아갈 수 있으며, 언제나 그분 안에
있습니다.
송○○
킹톡새는 저에게 특권이었습니다. 저는 주님을 알게 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은 새 신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한 형제, 자매들을 이곳에서 만나 함께 생활하
며, 심중에 많은 은혜와 말씀들이 심겨졌습니다. 매일, 매 시간이 새로웠습니다.
무엇보다 특별했던 시간은 증오의 대상이었던 아버지를 용서하고 화해하게 된 순 간입니다. 임재호흡 후‘토해내는 기도’시간과 나비손 기도를 통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내면의 극적인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또한 2박 3일 동안 손기철 장로님
과 함께 지내며, 믿음의 선배이신 장로님의 삶을 가까이에서 듣게 된 것도 큰 은혜
였습니다.
저는 늘 제가‘갈망’할 것을 찾기를 갈망했습니다.‘Why’를 찾으면 어떤 상황에
서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말한 어느 철학자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저는 Why를
찾으러 이곳에 왔지만, 킹톡새는 저에게 Who, 곧‘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었습니
다. 감사합니다.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을 살겠습니다.
헤븐리하우스로 출발하기 전, 배우자와의 가벼운 다툼을 풀지 못한 채 불편한 마음
으로 킹톡새에 참석했습니다. 과정 초반, 기대를 쓰는 시간에 저는 배우자와의 화
해를 믿음으로 선포했습니다.“나는 배우자와 건강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장로님과의 대화, 임재호흡, 용서와 회개, 나비손 기도 가운데 놀라운 일들
이 제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배우자를 향한 사랑이 제 안에서 생수의 강처럼 흘러
가는 것을 기쁨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배우자와의 다툼을 정○○
거짓자아가 붙들지 않도록, 그것을 주님께 드림으로 자유를 누립니다. 그리고 킹톡
새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배우자와 기쁨으로 재회했습니다.
이 변화는 배우자에게만이 아니라, 세상에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삶으로 이어질 것
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킹덤빌더로 변화시키셔서 세상으로 보내셨습니
다. 이제는 하나님을‘듣는’내가 아니라 하나님을‘보는’, 하나님과 더 친밀해진
저를 봅니다.
Devotion
20기 킹덤토크와 새마음 훈련 간증
본 호에 게재된 간증은 원문의 의미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편집자의 손을 거쳤음을 안내드립니다. 이○○
킹톡새를 시작하며 이 과정이 끝난 후에는“‘나는 선택받지 못했어’라는 말을 하
지 않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둘째 날, 내 안의 억울하고 답답한 기억을 새롭게 해 주시는 주님을 기대하며 나비
손 기도에 임했습니다. 두려웠지만 조장님과 조원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힘이 되었 습니다. 기도할 때 펜이나 붓에 먹물을 찍어 대충 그어 놓은 듯한 낙서 같은 그림 이 떠올랐는데, 그 볼품없는 모습이 마치 나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주위로 액자 표구가 생기더니, 볼품없던 그림이 나무에 꽃으로 수놓은 듯한 그림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선택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나의 부족함을 괴로워했지만,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집을 비우기 어려운 상황이라 킹톡새 신청이 망설여졌지만, 먼저 킹톡새에 참석한 남편의 변화된 모습을 보며 이 과정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남아 있는 쓴뿌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주님께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물
었습니다. 그때 문득“나는 시작은 쉽게 하지만 마무리를 잘 못한다”는 문장이 떠
올랐습니다. 둘째 날 휴식 시간에 지인과 통화를 하던 중, 청년 시절 젊음을 바쳐
일했지만 임금을 받지 못했던 기업의 대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때 지인이“그 사람은 늘 시작만 하고 마무리를 안 하는 사람이었잖아”라고 말하는데 깜짝 놀랐 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은 이미 주님께 올려드려 다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습니
다. 그런데 제 마음에 떠오른 문장과 지인의 입에서 나온 문장이 정확히 일치했기
에, 용서와 회개의 시간에 다시 그 사람을 주님 앞으로 들고 나갔습니다.
이전에는 그 사람에 대한 원망만 단편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억
이 쓴뿌리가 되어 청년 시절에 대한 전반적인 후회와 권위자와의 관계, 재정관 등
여러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를 용서하는 기도를 드렸을 때, 마치 땅속 보이지 않는 곳에 깊
이 박혀 있던 잡초 뿌리가 뽑힌 것처럼 너무나 시원하고 자유했습니다. 이 놀라운
일을 행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33기 KBS를 마친 뒤, 5-6년 동안 복용했던 우울증과 공황장애 약을 완전히 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킹톡새를 앞둔 일주일 전부터 알 수 없는 부담감과 소화 불량
이 찾아왔고, 다시 약을 먹어야 하나 하는 유혹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
데 조장님들과 조원들을 만나 뵈니 신기하게도 불안이 편안함으로 바뀌었습니다.
나비손 기도 가운데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지난 과오들이 CCTV처럼 비춰지며 하나
씩 나타났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이 사라지며 다시 밝은 빛이 비춰지
는 듯한 느낌이 들어 참 황홀했습니다.
앞으로 가정과 직장에서 킹덤빌더로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겠습니다. 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매일 5분씩이라도 계속 불을 지피겠습니다. 이 과정을 함께한
모든 분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직장 생활을 하며 2박 3일의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사모하는 마음이 있
었고 주님께서 환경도 열어 주셨습니다. 훈련이 시작되기 전 조장님과 통화할 때 “하나님의 호의를 기대해 보자”고 말씀해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그대로 응답해 주
셨습니다. 네 명의 아이들을 키우며 장거리 출퇴근과 직장 생활, 교회 사역까지 감
당하느라 여러 일들로 지쳐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멈춤의 시간을 주셔서 참 행복했 습니다. 분주하고 피곤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멀어졌다고 생각했지만, 말씀을 들
으며 제 생각과 달리 하나님께서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늘 같은 자리에서 저와 함 께하고 계셨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늘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에 짓눌려 있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분의 사랑 안에서 자녀 됨의 특권을 마음껏 누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조원들과 함께하는 시간 가운데 치유를 얻었고, 조장님과 부조장님, 스태프분들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제가 섬기는 자리에 있을 때는 잘 느끼
지 못했는데, 섬김을 받아 보니 그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제 다시 가정과 교회, 직장으로 돌아가 하나님나라에서 파송받은 대사로 서기를 소망합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사랑과 평강, 기쁨을 흘려보내며 그분의 나라를 확장 하는 킹덤빌더로 살아가는 저의 모습을 그려 봅니다. 허○○ 김○○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는 말씀이 심중에 심겨지는 여정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누려 본 적 없던 제가 하나님나라 안에서 가족을
만났습니다. 어린 시절, 저와 동생을 두고 떠나신 어머니를 늘 그리워했습니다. 그
리고 그 어머니가 돌아왔을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학대와 무
시를 당하면서도 늘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 기억은 쓴뿌리가 되어 하나님
의 살아 계심이 믿어지지 않는 때가 있었습니다.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고 헌신하는
가운데에도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마음으로 괴로웠습니다.
그런 저에게 주님은 가장 안전한 곳에서 최고의 선물을 주셨습니다.“이렇게 버릴
거면 날 낳지 말았어야지!”부모를 원망하며 울고 있을 때, 주님의 따스함이 느껴
졌습니다. 가장 밑바닥을 살고 있을 때 눈물 흘리며 저를 바라보시는 주님을 보았 습니다. 저를 임신했을 때 배를 때리며 울고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주님의 임재 가
운데 부른 배를 행복하게 어루만지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모태에서부터 축복받은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태생
과 존재가 바뀐 것입니다.
이제 다시 스리랑카로 돌아갑니다. 이제는 복음을 전할 때 제 거짓자아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제게 생명과 사랑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전할 수 있습니다. 저는 누구
나 쉬어 갈 수 있는 정원, 누구에게나 손 내밀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당신은 정말•••”
시리즈 몰아보기 “
우리는 복음을
‘죄인이 용서받아 천국에 가는 이야기’로 들어왔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가장 먼저, 가장 길게 전하신 것은
이 시리즈는 바로 그 본래의 복음, 곧 창세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으로 돌아갑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안다고 여겨 왔으나 전통과 익숙함에 가려 놓쳐 온 가장 본질적인 진리를 하나씩 다시 묻고 되찾아 갑니다. 이 진리는 머리로 이해하고 끝나는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가가 아니라 누
구이신가에 초점을 맞춰, 그 본질이 심판 과 형벌이 아니라 사랑·생명·하나 됨임 을 밝힙니다. 새 언약 안에서 하나님 자
녀는 그분과 분리될 수 없는 하나된 존
재이며, 죄로 인한 고통은 하나님의 벌이
아니라 스스로 그리스도 밖으로 나간 선 택의 결과입니다. 죄를 지었을 때조차 담
대히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참
자유이고, 영생이란 곧 지금 이 순간 참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그리스도에 대해 아는 것(지식)
인가, 그분을 아는 것(연합)인가. 이 물음
에서 출발합니다. 창세기 원문에서 하나
님이 주신 것은‘열매’가 아니라‘생명
나무’자체였고, 최초로 열매를 끌어들
인 것은 하와의 타락이었습니다. 신앙이 란 그리스도를 배우거나 따르는 것이 아
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생명나무 되신 그
리스도를 먹어 그분이 나를 통해 나타나
시는 존재론적 연합입니다.
죄를 율법 위반이나 행위 목록으로 규정 하던 바리새인식 이해를 넘어섭니다. 죄의
본질은 자유의지를 가진 혼이 하나님 중
심에서 자기 중심으로 돌아서 그리스도
밖으로 나가는 방향 전환, 곧 예수님이 말 씀하신“나를 믿지 아니함”이자 생명나무
와의 단절입니다. 죄를 이기는 길은 행위
와 싸우거나 스스로 죄값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그것은 오히려 십자가 대속을 부정 하는 교만입니다), 죄책감에 묶이지 않고
담대히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모든 생 각과 감정을 주님께 드리는 회개입니다.
신앙의 출발점은 타락한 죄인이 아니라,
창세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하
나님의 영원한 경륜입니다. 구원은 죄 용
서의 법적 사건이 아니라, 그 경륜이 한
사람 안에서 완성되는 존재론적 재창조
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우
리는 생명나무 되신 그리스도와 연합해
모양대로 완성되어 가며, 예수님이 흘리
신 피(혼의 대속)와 물(심중의 갱신), 그리
고 성령으로 회복되어 아담과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하나님나라(바실레이
아)’는 왕에게 복종하는 통치 구조가 아닙
니다. 왕의 생명이 백성을 통해 흘러나와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왕국이며, 지금 우
리 안에서 이루어지는‘내주하시는 왕국’
과 재림 때 완성될‘거주하시는 왕국’의 이중성을 띱니다. 이 왕국은 하나님이 마
귀를 통치하시고 우리를 통해 자신을 드
러내시는 좋은 소식이고, 심중에서 마귀가
심어 놓은 것을 빼내고 생명의 말씀을 심는 ‘침노’를 통해 날마다 누리는 실체입니다.
성전(건물)과 교회(에클레시아)를 혼동하고 하나
님나라를 교회 안에 가두면서, 수단인 교회가 목
적이 되어 버린 한국 교회의 구조적 문제를 짚습
니다. 교회의 본질은 건물이나 구원받은 자들의
집합이 아닙니다. 내주하시는 왕국을 이룬 자들
이 생명으로 연결된 그리스도의 몸이자, 하나님
의 통치를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네트워크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으로 마귀에게 빼앗겼던 통치권이
회복되어, 교회는 천국 열쇠를 위임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흩어지기 위해 모이는 곳이며,
주말 교회에서 세워진 왕국 백성이 주중 교회를 통해
통치를 드러내는 전진 기지입니다.
성령님을 은사·치유 같은 기능으로만 알
아 온 것을 넘어, 그 본질이 진리의 영이
심을 밝힙니다. 헬라어 알레테이아가‘가
려지지 않고 드러난 실상’을 뜻하듯, 진
리란 명제가 아니라 인격이신 예수 그리
스도이고, 말씀 또한 정보가 아니라 영이 고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함
을 받는다는 것은 말씀을 분석하고 깨닫
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생명을 만
나 말씀대로 생각하고 느끼며 그리스도
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령님을‘또 다른 보혜사’- 예수님과 같은 본질을 지니신 하나님 - 로 소개하셨음에서 출발해 그 사역을 살핍니다. 예수님의 떠나심이 도리어 유익인 까닭은, 육신의 시공간 제약을 넘 어 그 성령이 모든 자녀 안에 영원히 내주하시며 시대를 초월해 그리스도를 나타내시기 때문입니 다.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막힌 샘이 열려 생수가 흐를 때, 그것은 그리스도의 성품(열매)과 사역(은 사)으로 드러납니다. 나아가 공동체가 한마음으 로 기도해 그 생수가 서로 공명하고 순도가 높아 져 위로부터 임하시는 성령과 공명할 때, 두 왕국
이 하나 되는 영광의 현시인 부흥이 임합니다.
마귀를 개인을 도둑질하고 괴롭히는 존재로
보는 협소한 이해를 넘어섭니다. 그 반역에
숨겨진 진짜 목적은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
하고 두 왕국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며, 마
귀가 우리를 공격하는 까닭도 우리가 하나님
의 왕국을 이 땅에 실현하는 통로이기 때문
입니다. 이 전쟁의 최종 전쟁터는 외부가 아
니라 우리의 심중과 혼의 선택입니다. 십자가
로 이미 무력화되어 속이는 일밖에 못 하는
마귀를 이기는 길은, 외부를 향한 선포가 아니
라 먼저 하나님께 복종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이름으로 대적하는 것(약 4:7)입니다.
2026 헤븐리 하우스 예약
헤븐리 하우스에서 안식 휴식 성찰을 통해 하나님나라의 삶을 경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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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1박 3만원
입실 : 오후 3시 / 퇴실 : 오전 11시
HTM 파트너를 위한 안식 휴식 성찰을 위한 공간입니다.
예약자 본인 외의 가족이나 지인 동행은 제한됩니다.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돗내미길 53 헤븐리 하우스
대중교통 (KTX 양평역에서 택시 이용)이나 자가용을
HTM 화요말씀치유집회 휴회 및 개회 안내
2026년 상반기
2026. 7. 14(화)
2026년 하반기 첫 집회 2026. 8. 25(화)
하나님께서
그림 가운데 말씀하시다
글│ 킹덤빌더 최진희 작가 (HTM 파트너, 킹덤빌더처치 성도)
저는 30여 년 동안 동네에서 아
이들을 가르치는 미술학원 교사로 살
아왔습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
을 좋아했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
어 내야 한다는 열심 속에 살아왔습니
다. 그러나 40년이 넘는 신앙생활 속
에서도 세상과 교회에 냉소적인 태도
로 머무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제 안
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과 갈증
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기간 중 교회에서 2년간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을 받게 되었습니
다. 말씀과 예배, 나눔에 집중하는 시
간이 길어질수록 신앙이 깊어지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
으면 읽을수록 제 안에는 오히려 많은
질문이 쌓였습니다. 특히 신약의 말씀
은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
았습니다.“하나님과 생명적으로 연결된다”는 말씀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특별한 일을 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더 배우
고, 더 준비하고, 더 자격을 갖추어야만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무렵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림 앞으로 저를 부르셨습니다. 사실 저는 과거 세 번의 개인전을 끝으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으려 했습니다. 제 안에 더 이 상 표현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고, 깊은 자괴감 속에 머물러 있었기 때 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끝났다고 생각했던 그 자리에서 다시 붓을 들게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제 욕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며 하나님께서 그림을 통해 제 안의 거짓자아를 드러내시고 무너뜨리고 계셨다 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인권과 환경, 노동, 인간 존재를 다루는 세계적인 현대미술 전시인 독
일 카셀 도큐멘타(Documenta) 전시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하나님
을 찾지 않는 시대의 깊은 공허함을 보았습니다. 특히 교회 건물 안에서 열린 전
시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뱀이 상징적인 장소마다 똬리를 틀고 있었고, 갈
라지고 흐릿해진 천장화는 테이프로 이어 붙여져 있었습니다. 공간 전체에는 냉
소와 해체의 이미지가 가득했고, 종교는 상징물로 소비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 조형물 주변에 수많은 약봉지와 돈이 꽂힌 진열대가 있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 역시 신념을 신앙으로 착각하며, 무언가를 얻기 위해
기도했던 시간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그 후 말씀으로 정결해지기를 바라는 시간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유튜브를 통해 손기철 장로님의 말씀을 듣게 하셨습니다. 다른 설교를 듣다가도 자동으로
치유집회 말씀이 이어졌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도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습니 다. 처음에는 기존 신앙의 틀을 깨는 말씀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궁금했던 내용
이었지만 마음이 불편했고, 어떤 날은 그림을 그리다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새 사람이 된다는 것’,‘그리스도 안으
로 들어간다는 것’,‘성령의 인도하심’,‘하나님나라’. 이전에는 관념적으로 느
껴졌던 말씀들이 어느 순간 제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돌아보면 그것은
성령님께서 심중에 말씀을 심고 계셨던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알게 되
었습니다. 그때 제가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
으로 기도하고 계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그림 가운데 계속 말씀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
다. 그 말씀을 들으며 그린 그림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었습니다. 2024년은 대학
원 작품 심사를 준비하던 시기였습니다. 달라진 주제와 재료로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작업을 완성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약 다섯 달 동안 열두 점의
대형 작업이 완성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것들이 제가 원래 하던 방식의
그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자료를 찾아보고 계획적으로 만든 작품들이 아니
라, 말씀을 들으며 기도하는 가운데 쏟아져 나온 이미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심
사 전시에서는 일곱 명의 심사위원을 모두 통과했습니다. 종교적 색채를 선호하
지 않는 심사위원들과 화우들까지도 제 그림을 공감의 시선으로 바라봐 주었습
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사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제 그림을 받으셨다는 내적인 감동이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과의 더 깊은 생명적 관계를 소망하며 킹덤빌더스쿨을 신청하
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이 시대는 진리를 편안하게 소비하려 하지만, 성령께서
는 혼의 자유의지로 주님께 의탁하는 자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말씀 가운데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때때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려는 갈망이 사라지고, 익숙
한 행동반경과 의식을 따라가고 싶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
는 사랑으로 말씀하십니다.“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어느 주일, 불평을 쏟아 놓고 난 뒤,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 려왔습니다.“죄인을 의인 되게 한 아버지인데, 내가 너에게 다른 것을 주지 못 하겠느냐.”그 순간 손 장로님께 들었던‘의인 의식’에 대한 말씀이 다시 떠올랐
고, 말씀이 심중에 심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비로소
오래 붙들고 있던 정죄와 죄책감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무
엇을 이루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제게 예술 이전에 복음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림을
통해 제 이름을 드러내게 하신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킹덤빌더스쿨 과정을 마친 뒤, 다시 일곱 점의 그림을 짧은 기간 안에 그리 게 하셨습니다. 창조, 은혜와 호의, 야곱의 죽음과 삶, 십자가의 고난과 영광, 밭
에 감추인 보화, 성령의 바람, 기름부음, 새 땅…. 그 주제들을 현대적인 재료로 표현하며 작업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주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전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히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시며, 지금도 말씀하시고, 한 사람의 평범한 일
상을 통해 당신 자신을 드러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킹덤빌더’가 되어 가는 과정임을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주 님의 말씀이 더 풍성하게 제 안에 심겨지고, 개별화된 그리스도로 자라가기를 소 망합니다.
“주님, 저를 마음껏 사용하여 주십시오. 주님을 나타내는 존재로, 주님과 교 제하는 딸로 살아가게 하소서.”
제 그림들이 사람의 감정과 사상을 넘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작은 창문으로 사용되기를 기도합니다.
에녹라인
이 작품은 가인이 하나님의 보호하심보다 자신이 세운
성을 의지하며 에녹성을 건설한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거칠게 갈라진 성벽과 바닥은 인간이 스스로의 안전과
의미를 위해 쌓아 온 문명과 제도, 욕망의 흔적을 담고
있다. 그 위에 자라는 가늘고 푸른 해바라기는 생명의
근원과 멀어진 채 외형만 성장한 인간의 모습을 상징한
다. 멀리 이어지는 원근의 풍경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반복되어 온 인간 역사의 여정을 보여 준다.
그러나 하늘로 이어지는 사다리는 인간이 만든 성이 아
닌, 보이지 않는 세계와 연결되는 참된 회복과 구원의
길을 조용히 비추고 있다.
거짓자아
이 작품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스스로를 지키고 증명
하기 위해 쌓아 올린 거짓자아의 풍경을 담고 있다. 끝
없이 이어지는 벽과 계단은 경험과 지식, 문화와 욕망으
로 구축된 자기 확신의 구조를 상징한다. 그 위에 자란
해바라기는 생명의 근원과 단절된 채 외형만 성장한 거
짓자아의 모습을 드러낸다.
끝없이 쌓아 올린 벽은 스스로를 지키려는 거짓자아의
성이다. 그 위에 피어난 꽃은 높이 자랐으나 생명의 근
원에서는 멀어져 있다. 바람에 흩어지는 꽃잎들은 붙들
어 온 이름과 성취의 덧없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열린
하늘은 참된 존재로 돌아가는 길을 조용히 비추고 있다.
현기증
이 작품은 거짓자아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 마주하게 되
는 존재의 혼란과 현기증을 담고 있다. 오랫동안 자신이
라 믿어 온 경험과 성취, 욕망과 신념들이 흔들리기 시
작할 때, 인간은 더 이상 붙잡을 것을 찾지 못한다. 바람
에 휘어지고 흩날리는 해바라기들은 중심을 잃은 채 흔
들리는 내면의 풍경이자, 해체되어 가는 거짓자아의 모 습이다. 끝없이 기울어진 공간과 불안정한 시선은 자신
이 누구인지 다시 물어야 하는 존재의 공백과 방황을 드 러낸다.
그러나 이 현기증은 파괴의 끝이 아니라, 참된 자아와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통 과의 시간이다.
글로리어스
거짓자아의 흔들림과 현기증의 시간을 지나자, 마침내
시야는 넓게 열리기 시작한다. 이 작품의 반석은 자신
을 지키기 위해 쌓은 성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열려 있 는 제단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은 존재가 근원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상징하며, 황금빛 빛은 하늘의 영광이 땅에 임하는 순간을 드러낸다. 그곳에는 더 이상 자신을 둘러싸던 방어와 대치물,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쌓아 올린 벽들이 존재하지 않는다.〈Glorious〉는 모든 가림 이 벗겨진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 안에 참여하며 참된 안식과 회복으로 나아가는 순간을 담고 있다.
HTM을 위한
7월 중보기도
함께 기도로 동역해 주시기 바랍니다.
➊ 전반기 화요말씀치유집회를 위하여
전반기 화요말씀치유집회가 하나님의 임재에 따른 영광을 체험하는 집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나라 복음이 선포될 때, 그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고, 놀라운 치유와 삶이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임마누엘 홀이 부흥의 진원지가 되었습니다.
➋ 미국 LA 집회를 통한 하나님나라 복음의 확장
미국 LA 집회 가운데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선포될 때, 초대교회와 같은 말씀의 능력과 치유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참석한 모든 이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➌ 북미주 4기 킹덤토크와 새마음 훈련 (7월 27일-30일, 3박 4일)
3박 4일간 진행되는 북미주 4기 킹톡새 훈련을 통해 참가자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을 체험함으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전체 일정과 모든 순서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호의가 넘쳐납니다.
➍ 킹덤빌더 주니어 스쿨 (8월 13일-15일)
킹덤빌더 주니어 스쿨을 통해 다음세대의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준비하고, 섬기는 모든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한국 교회의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부흥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치유간증
글│ 박상미 성도 (호주 브리즈번)
안녕하세요. 저에게도 주님의 치유 역사가 일어나 너무도 신기한 마음에 주님의 일하심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손기철 장로님의 사역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가끔 유튜브로 집회 영상을 보곤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설교 말씀이 레마로 제게 쏙쏙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흘려들었고,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알 수 있는 영역은 아주 조금뿐이었습니다. 장로님의 설교는 무척 어
렵게 느껴져 재미있게 들리지 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의 간증을 보며 성령님의 일하심
은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약 한 달 전쯤, 교회 집사님 한 분이 하버드 의과병원 의사의 치유 영상을 공유해 주셨습니 다. 그 영상을 본 뒤부터 화치 영상을 매일 보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고 심중에 새겨지지 않을 때에도, 그저 하루 종일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결혼을 굉장히 늦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결혼 후 곧 임신하게 해 주셨지만, 7주 차에 유산했습니다. 다시 임신했을 때에도 5주 차에 또 유산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잉태와 출산을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간절히 기다리며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호주 브리즈번 에 살고 있는데, 작년에는 시험관 시술을 받기 위해 한국까지 갔습니다. 네 차례 시술을 받았지 만 모두 실패했고, 다시 호주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주님의 은혜와 기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화치 영상을 보고, 잠들기 전 성령님의 임재를 구하
는 찬양을 틀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님, 제 기도를 듣고 계십
니까? 언제 저희에게 자녀를 주시렵니까?”라고 기도하며 울부짖는데, 갑
자기 7년간 아팠던 어깨 통증이 99% 사라졌음을 느꼈습니다. 너무 신기
해서 “이게 뭐지?” 하며 여러 자세로 어깨를 움직여 보았습니다. 그동안
느꼈던 저림 증세와 근육이 눌리는 듯한 통증이 사라진 것을 확신했습니 다. 저는 이 어깨와 팔의 통증 치유를 위해 늘 주님께 구해 왔습니다. 그런 데 이렇게 갑자기 기도 중에 치유해 주시니 그저 신기하고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제가 경험한 치유의 하나님, 성령님의 일하심을 부지런 히 전하고 선포할
HTM 광주 · 호남지역
파트너
글│ 김은숙 (HTM 사역자, (주)토담 전무이사)
초여름의 푸르름이 깊어가던 6
월 6일, 광주 예나교회에서 광주·호
남 지역 킹덤빌더 파트너 모임이 열렸
다. 김제, 해남, 전주, 완도, 광양, 순
천, 군산, 익산 등 전라도 각지에서 약
100명의 킹덤빌더 파트너들이 한자리
에 모였다.
뱃길로 1시간, 찻길로 2시간이
넘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장 먼
저 도착한 자매를 시작으로, 파트너들
이 한 명 두 명 모여들었다. 오후 3시
30분이 되자 준비된 90석의 의자가 부
족해 플라스틱 의자를 더 놓고, 오후 3
시 30분이 되자 예배당이 가득 찼다.
뜨거운 찬양이 하나님께 올려질 때,
예나교회의 예배당은 마치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찬양 후 강단에 선 손 장로는 온
몸을 불사르는 열정으로 말씀을 선포
했다. 그 모습 속에서 주님을 향한 뜨
거운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
고자 하는 간절함이 느껴졌다. 말씀은
어느 부흥회 못지않게 뜨겁고 강하게
선포되었고, 예나교회 예배당은 주님
의 임재와 영광으로 가득찼다.
손 장로는 광주·호남 지역에서
다시 킹덤빌더 파트너들이 모인 것이
4년 만이라고 말하며, 서로 다른 교회
와 교단에 속한 이들이 이 자리에 모
인 이유는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갈급
함 때문일 것이라고 전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
지만, 말씀과 성령과 삶이 하나 되지
않는 갈급함,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이 아니라 삶을 통해 살아 계신 예
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싶은 갈망이
우리를 이 자리로 이끌었다는 말씀이
었다.
이어 손 장로는 예나교회가 각자
의 교회와 삶터, 일터에서 하나님 자
녀의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비전교회
임을 소개했다. 예나교회는“예수님을
닮아가는 교회”를 넘어“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나타내는 교회”이며, 광주·
호남 지역의 킹덤빌더들이 일상의 자
리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능력
을 나타내도록 섬기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전했다.
이날 말씀의 중심은 하나님 자녀
의 정체성이었다. 손 장로는 예수님께
서 공생애 동안 하나님나라 복음을 선
포하시며, 그 하나님나라가 임했다는
실제를 질병 치유와 귀신 축출, 기적
으로 보여 주셨다고 설명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단지 말로만 전해지는 교
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
때 실제로 우리의 삶과 몸과 현실 가
운데 나타나는 진리라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나라는 예수 그리스
도를 믿는 자 안에 임한 하나님의 통
치라고 선포했다. 우리 안에 계신 그
리스도께서 우리를 통치하실 때 내주 하시는 왕국이 이루어지고, 그 생수의
강이 흘러나와 삶터와 일터 가운데 하
나님나라의 실제가 나타난다는 말씀
이었다. 그러므로 킹덤빌더의 삶은 더
많이 배우고 애써 증명하는 삶이 아니
라,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나타나
시도록 내어드리는 삶임을 힘 있게 전
했다.
손 장로는 또 우리가 더 이상 죄
사함 받은 죄인의 정체성에 머물러서
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예수 그리스
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
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
이며, 하나님의 자녀로 재창조된 존재
라는 말씀이 선포될 때 예배당 곳곳에
서 뜨거운 아멘이 터져 나왔다. 우리
는 문제와 질병, 과거의 경험으로 자
신을 정의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
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과 하
나 됨이 흐르는 존재라는 말씀이 심중
에 깊이 심겨지는 시간이었다.
말씀을 듣는 중에 치유와 회복
도 일어났다. 뇌출혈로 왼쪽 팔이 반
밖에 올라가지 않고 다리도 굽혀지지
않던 자매는 양팔을 높이 들고, 손 장
로와 함께 걸으며 무릎이 굽혀지고 씩
씩하게 걷기 시작했다. 오른쪽 팔목이
부어 붕대로 감고 있던 성도는 붓기와
통증이 사라졌다고 고백했고, 손가락
으로 물건을 집기 어려웠던 성도는 손
가락이 접히며 물건이 집어진다며 기
뻐했다. 집회 후에도 치유와 회복을
경험했다는 감사의 전화와 문자가 이
어졌다.
이 모든 일은 특별한 치유기도의
순서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과 하나님나라 복음이
선포되는 가운데, 주님께서 친히 나타
나셔서 그분의 살아 계심과 복음의 실
제를 보여 주신 시간이었다. 예수 그
리스도 안에서 기적과 표적, 하나님의
호의가 더 이상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
하나님 자녀에게 당연한 삶임을 경험
한 예배였다.
다음 날 주일에는 예나교회 창립
2주년을 기념하며 주님께 감사예배를
드렸다. 예배 가운데 먼저 김익태 장
로가 하나님나라 복음을 실제 삶으로
살아낸 킹덤빌더의 간증을 나누었다.
깨어진 가정과 상처, 거절감과 죄책감
속에 머물던 삶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서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는 복음으로
새롭게 변화되고, 그 사랑이 가정과
사업장, 교회와 다음세대를 섬기는 삶
으로 흘러가게 된 이야기는 예배자들
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김익태 장로는 자신이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
지만, 여전히 죄책감과 정죄감, 열등
감 속에 묶여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
러나 하나님나라 복음을 통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때부터 하
나님께 사랑받기 위해 애쓰던 삶이 아
니라 이미 받은 사랑을 누리고 흘려보
내는 삶으로 바뀌었다고 나누었다. 그
변화는 가정과 일터에서 실제 열매로
나타났다. 아내와의 관계가 회복되고,
자녀들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으며, 사
업장은 하나님나라를 위한 통로가 되 었다.
이후 손 장로는 원래 준비했던 말
씀 대신, 김익태 장로의 간증 위에 성 령님께서 주시는 감동을 따라 하나님
의 사랑에 대해 말씀을 선포하셨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우리는 그 사랑
을 얻어내기 위해 애쓰는 존재가 아니 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하나님
의 사랑을 받은 자녀라는 말씀이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
한 의무와 책임의 삶이 아니라, 먼저
받은 사랑이 흘러넘쳐 하나님을 나타
내는 삶이라는 선포가 이어졌다.
손 장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생
명과 하나 됨을 나타낼 수 있는 존재
가 되었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
을 얻어내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고 있
다고 말씀했다. 사랑은 얻어내는 것
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이며, 그 사
랑을 체험할 때 비로소 우리의 섬김과
헌신도 의무감이 아닌 기쁨이 된다는
말씀이었다.
이날 예배는 삶으로 살아낸 복음
의 간증과, 그 삶을 성경적으로 풀어
주는 말씀이 아름답게 하나 되는 시간이었다. 김익태 장로의 간증이 하나님나라
복음이 한 사람의 삶과 가정, 일터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 주었다면, 손
장로의 말씀은 그 변화의 근원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선명하게 밝혀 주었다. 말씀
이 삶이 되고, 삶이 다시 말씀의 증거가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예배처럼 느껴
졌다.
이틀 동안 파트너들을 섬기는 예나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은 든든히 중심을
잡아 주었고, 예나교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기쁨으로 섬겼
다. 그들의 얼굴에는 예수님의 사랑이 묻어 있었고, 교회의 이름 그대로 예수님
을 나타내는 교회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안내와 식사, 자리 정리와 교
제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과 생명, 하나 됨이 흐르고 있었다.
광주·호남 지역 킹덤빌더 파트너 모임과 예나교회 창립 2주년 감사예배는
단순한 지역 모임이나 기념예배를 넘어, 하나님나라 복음이 삶터와 일터로 흘러
가기 시작하는 귀한 출발점이 되었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킹덤빌더들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사람을 넘어, 삶으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시청각 교재가 되기를 기대한다.
2026
북미주 4기 킹덤토크
날짜 7/27/2026 (월) 오후12시 - 7/30/2026 (목) 오후 3시
장소 Billy Graham Training Center at the Cove, Asheville, NC, USA
등록비 850불 (부부 할인 없음, 3박 10식과 제반 훈련비용 포함)
참가 자격 킹덤빌더스쿨(온라인 포함) 1회 이상 수료하신 분(필수 조건임) 교통 수업 장소까지 개인적으로 오셔야 합니다 (개인이 왕복 항공 및 교통편 준비)
* 킹덤빌더스쿨 미수료자는 온라인 킹덤빌더스쿨 수료 후 등록 가능합니다.
* 일정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부산의 관문에 하나님의 문 세우다”
- 이재모피자 부산역 포장배달점 개업예배 -
글│ 주명규 (HTM 비전기획실장)
이재모피자(대표 김익태 장로, HTM 킹덤비즈니스 공동 대표)가 지난 6월
14일 주일, 부산역 앞 부산역점 바로 옆에 포장배달점을 개점하고 개업 감사예
배를 드렸다. 이번이 이재모피자의 열 번째 개업 예배로, 이로써 부산 지역 내 총
10개 지점 운영 체제를 갖추게 됐다.
이번 포장배달점은 기존 부산역점과 나란히 자리해, 부산역을 찾는 방문객
과 떠나는 이들을 함께 섬기는 역할을 맡는다. 손기철 장로는 개업 감사예배 설
교에서“부산역점이 부산에 들어오는 사람을 환영하는 손길이라면, 포장배달점
은 부산을 떠나는 사람을 축복하는 손길”이라며, 두 지점이 하나님의 관문으로서
갖는 영적 의미를 강조했다.
이재모피자는 신규 매장을 개업하기에 앞서, 먼저 예배를 드리는 원칙을 지
켜오고 있다. 이 원칙은 2023년 부산역점 개업 당시 20일간 영업허가가 지연되
다 예배 직후 허가가 떨어진 경험을 통해 더욱 확고해졌다. 이를 두고 손 장로는 “예배는 복을 끌어내는 주문이 아니라, 이 기업의 참 주인이 누구인지를 고백하
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김익태 장로는 인사말을 통해“지점 수가 늘어날수록 하나님나라를 위한 독 립 자금의 지경도 넓어진다”며
목적을 밝혔다. 그는 또“돈을 벌어
서 구제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나라와 의를 경험한 사람의 삶이 바뀌는 것이 진정한 비전”이라고 강조하며, 이 비전이 변질되지 않도록 기도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재모피자 부산역점은 부산역 출구에서 내리면 바로 마주하게 되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 부산역 차이나타운 입구를 지키는 용문(龍門) 바로 옆으로, 2층 간 판에‘I Love Jesus’문구를 내걸고 킹덤 비즈니스의 정신을 공개적으로 선포하 며 운영해 왔다. 7월 2일에는 명지대방 포장배달점 개업을
본문은‘킹덤빌더스쿨’과‘킹덤토크와 새마음 훈련’현장에서
만 같아 불안해요.
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요?
Kingdom Insight 악몽을 단순히‘외부의 공격’으로만 치부하며 두려워할 필
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꿈을 통 해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꾸는 꿈의 대부분 은 우리 내면 상태를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악몽에 시달리는 분들을 보면 대체로 내면에 해결되지 않
이제 악몽에 묶여 하루를 망치지 마십시오. 꿈에서 깨어났 을 때 기분이 좋지 않다면, 그 즉시 선포하십시오.“이 꿈은 아 무런 힘이 없다. 이 꿈이 내 정체성을 어찌할 수 없다! 나는 승리 한 싸움을 싸우는 자다!”오히려 악몽을 통해 내가 어떤 부분에 서 주님의 평강을 놓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주님 의 완벽한 사랑 안에 거할 때, 밤의 어둠은 더 이상 당신을 위협
Kingdom Insight 성경적 관점에서 하루의 시작은 아침이 아니라 저녁입니 다. 창세기는“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라”고 기 록합니다. 즉, 밤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새로운 하루의 영적 주파수를 결정합니다.
잠들기 전 5분은 깨어 있는 표면의식이 잠재의식으로 바 통을 넘기는 아주 중요한 시간입니다. 이때 그날의 염려와 분노, 억울함을 붙든 채 잠드는 것은 그 쓰레기들을 심중에 심는 것과 같습니다.
침대에 누워 하루의 모든 짐을 주님께 완전히 넘겨드리는 '자기 부인'을 연습하십시오.“오늘 제게 일어난 모든 일의 결과는 주님 손에 있습니다. 저는 이제 주님 품에서 안식합 니다”라고 고백하며 혼의 방향을 그리스도 안으로 돌려, 그분의
임재 안에 거하십시오. 주님과 생명적 관계 안에서 안식하며 잠 들 때, 밤새도록 우리의 심중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은 것 들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것이 다음 날을 하나님의 하루로 살아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3
꿈에서 불길한 장면을 보고 나면 혹시 현실이 될까 봐 가슴이 두근 거립니다. 흔히 말하는 예지몽처럼, 나쁜 일을 미리 보여주는 징조는 아닐까
요? 이미 꾼 꿈의 내용을 우리가 바꿀 수도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Kingdom Insight
우리의 심중에 심긴 것은 반드시 삶의 실체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심중에 무엇을 심을지 결정하는 자유의지를 가진 자입니다. 꿈은 결정된 운명이 아니라, 현재 내 잠재의식의 상태
를 보여주는 정보일 뿐입니다.
불길한 꿈을 꿨다면, 깨어난 즉시 그 내용을 새롭게 그려보 십시오. 다시 자리에 누워 꿈의 장면을 떠올리되, 결말을 주님의 승리로 바꾸는 것입니다. 쫓기던 꿈이었다면 돌아서서 주님 권 세로 대적을 물리치는 장면을 그리십시오. 두려운 상황이었다면 주님의 빛이 그 현장을 덮는 실상을 심중에 심으며 선포하십시오.
이것은 막연한 긍정적 상상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 서 확정된 승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심중에 하
나님의 말씀을 심으며 믿음의 실상을 그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
비물질 세계에서 실상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보이는 세계에서 실
체가 나타날 수 없다"는 원리를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꿈속 장면 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정의하고 평강을 선택할 때, 불 길한 예감은 힘을 잃고 사라지게 됩니다.
4
꿈을 통해
보여주거나 특별한 메시지를 주시기도 하나요? 주변에서는 꿈을 세밀하게 기록하라고 권하는데, 단순히 꿈을 적 는 것이 신앙적으로 어떤 유익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Kingdom Insight 하나님은 분명 꿈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꿈을 기록하는 더 본질적인 이유는 우리 혼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함 입니다.
꿈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잠재의식은 우리 심중에 심긴 것이 무엇인지를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꿈을 꾸준히 기록하고 한 달 정도 그 흐름을 살펴보면, 내가 겉으로 고백하는 믿음과 실제 심중 깊은 곳에서 붙들고 있는 믿음체계 사이의 간극을 발 견하게 됩니다. 입으로는 감사하다고 하지만 꿈에서 늘 결핍에
시달린다면, 내 혼은 여전히 심중 깊이 심겨 있는 세상 가치관에 묶여 있다는 증거입니다.
기록하는 것은
내는 작업입니다.
잠들더라도 제 혼은 깨어 주님과 교제하고 싶습니다. 잠자는 시 간조차 영적으로 낭비하고 싶지 않은데, 수면 중에도 하나님나라의 풍성 함을 누리며 주님과 깊이 소통하는 비결이 있을까요?
Kingdom Insight
수면은 단순히 육체가 쉬는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의 혼이 하나님의 영 안에 거하며 참된 안식과 평강을 누리는 시간입니다.
첫째, 깊은 교제는‘애씀’이 아니라‘맡김’에서 일어납니다.
밤새도록 무언가를 생각하며 성령님과 대화를 하겠다는 노
력은 오히려 숙면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교제는 성령님
품 안에서 자기를 부인하는‘안식’그 자체입니다. 사랑하는 아 이가 부모의 품에서 곤히 잠들 때 부모와 가장 깊이 하나 되듯, 우리의 혼이 주님의 보호를 신뢰하며 모든 방어 기제를 해제할 때 비로소 친밀한 교제가 가능합니다.
둘째, 잠들기 전 5분 동안 혼의 방향을 예수 그리스도 안으 로 정렬하십시오.
잠자리에 들어 임재 호흡을 하며 하루 동안 붙들고 있던 모 든 생각과 감정, 계획을 모두 주님께 올려드리십시오.“주님, 이 제 제 혼은 주님 안에서 쉽니다. 제가 잠든 사이에도 성령님께서 제 심중을 새롭게 하시고 통치하여 주옵소서”라고 의탁하십시 오. 그렇게 혼의 방향을 전환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정렬한 채 잠 이 든다면 수면 중에도 그분의 생명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잠에서 깨어날 때 느껴지는 평강과 새로운 영적 통찰은 밤 새 주님과 나눈 보이지 않는 교제의 결과물입니다. 밤의 시간도 주권을 주님께 이양할 때, 수면은 단순한 휴식을 넘어 킹덤빌더 로 세워져 나가는 영광스럽고 복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스쿨의 비전 핵심 가치
Kingdom Builder Junior School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다"
스쿨의 목적
하나님의 눈과 귀와 마음은 다음세대에 있습니다.
KB 주니어 스쿨은 다음세대의 부흥을 꿈꿉니다.
“하나님의 생명, 사랑, 하나 됨” 하나님 자녀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다음세대의 심중에 새깁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고,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정체성을 세우며, 하나님과 사람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루도록 돕습니다.
이 스쿨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체성을 알며,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과 은사를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이를 통해 다음세대들을 하나님을 나타내는 킹덤빌더로 세워 각자의 삶터로 파송합니다.
Kingdom
영적돌파와 신앙의 성숙이 시작되는 곳
헤븐리터치 아카데미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개정판 온라인 KBS
킹덤빌더스쿨 현장 영상을 온라인 강의로 제공합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반복해서 들으실 수
세 파트로 나누었고 각 파트별로 수강이 가능합니다.
1. Introduction
2. 사회ㆍ생활 관점에서 본 삶
3. 생물ㆍ심리 관점에서 본 삶
4. 종교ㆍ영성 관점에서 본 삶
5. 성령체험 특강
12. 기존의 신학체계와 새로운 신학체계의 필요성
13. 성경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기
14. 하나님나라의 복음으로 본 구속사
15. 진정한 복음이란
16. 방언의 은사 특강
25. 하나님나라
26. 통전적 하나님나라
27. 현재적 하나님나라 실현의 핵심원리
28. 기름부으심 특강
29. 성경적 재정관리
30. 가난의 묶임 끊기와 재정의 기름부으심 받기
6. 기독교 역사의 개요
7. 역사적 관점에서 본 패러다임의 변화
8. 교회의 역할과 복음
9. HTM의 비전과 소명
10. 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1)
11. 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2)
13강, 12시간 7분
17. 하나님나라 핵심 용어 정리
18. 진정한 회개
19. 킹덤빌더의 일터 부흥
20. 십자가의 도 (1)
21. 십자가의 도 (2)
22. 구원이란
23. 당신 정말 구원 받았는가
24. 구원 전후의 인간의 존재적 변화
13강, 11시간 56분
31. 재물과 재정에 대한 킹덤 멘탈리티
32. 킹덤빌더의 실제적 재정관리
33.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과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행
34. 세 차원 세계에 대한 이해
35. 킹덤빌더의 새로운 의식(그리스도 의식)
36. 킹덤 멘탈리티와 킹덤빌더의 일상 영성 훈련
37. 어두움의 묶임 끊기 및 집안 영적 정화
6월 헤븐리 뉴스레터
1. 광주예나교회 2주년 기념 예배
6월 6일부터 7일까지 광주 예나교회에서 광주·호남지역 킹덤빌더 파 트너 모임과 예나교회 창립 2주년 감사예배가 열렸다. 각지에서 모인 약 100명의 파트너들은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과 하나님나라 복음을 함께 나누며, 말씀 가운데 치유와 회복을 경험했다. 이어진 주일 감사
예배에서는 김익태 장로의 간증과 손 장로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말 씀을 통해, 복음이 가정과 일터에서 실제 삶으로 나타나는 은혜를 함 께 누렸다.
2. 20기 킹덤토크와 새마음 훈련
19기에 이어 20기 킹덤토크와 새마음 훈련(이하 킹톡새)이 6월 11일부 터 13일까지 양평 헤븐리하우스에서 열렸다. 이번 킹톡새를 통해 19명
의 참여자들은 손 장로와 함께 질의응답, 임재호흡기도, 나비손 기도 등을 통해 새로운 돌파의 시간을 가졌다.
3. 3기 영적 전쟁 세미나
6월 27일 세 번째 영적 전쟁 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세미나는 해외와
지방 거주자를 위해 줌과 현장 강의를 동시에 진행했다. 영적 전쟁에 대한 올바른 정의와 예방의학적 영적 전쟁에 대해 배운 킹덤빌더들이 삶터와 일터를 하나님나라로 변화시키고 킹덤 에코시스템을 구축하는 원동력이 될 모습을 기대해 본다.
HTM과 파트너가 되시면 매거진의 더 많은 내용을 종이책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스쿨 및 세미나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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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 파트너란 헤븐리터치의 비전에 함께하며,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고, 각자의 가정과 일터, 교회를 통하여 이 땅에 주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동역자를 말합니다. 이 땅의 모든 지역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파트너가 세워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