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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제109호

2016

특별기고 박근혜-최순실 사태 대책 특집 지진과 탈핵 이슈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스미토모 ART & CULTURE 1946년과 2016년 10월, 수창동에서 일어난 일 이달의 회원

김언호 회원 인터뷰

사람사는 세상 사드는 필요없다. 제발~

대구참여연대는 회원의 회비 및 후원금으로만 운영됩니다.

http://www.civilpower.org


│이 한 컷│

<출처 : 민중의 소리>

어제도 오늘도 무심히 또 하루가 지난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평범하지가 않다. 내 친구의 내 가족의 내 이웃의 한숨이, 한숨이 늘어간다. 지친 얼굴엔 이젠 분노가, 증오가 서려있다. 가만있지 않겠다 한다. 그래 이젠 더 이상 가만있지 말자. 동참하자. 보여주자 우리의 분노를.


04

편집장의 말

국민의 힘으로 반드시 진실을 밝힙시다.│류영준

05

대표편지

도영이네 사과│오규섭

06

특별기고

박근혜-최순실 사태 대책 | 김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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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전태일. 분신. 그리고 조영래 | 송필경

16

특집

지진과 탈핵 2016년 9월 12일 경주지진 그 이후 | 홍원화

표지이야기 서옥순 작 <무제> 천, 실, 솜 바느질 가변설치 (1500cm X 1000cm) 여인의 형상과 여인의 두 팔에 안겨있 는 귀여운 소녀상은 바로 엄마와 자식 을 상징한다. 계단의 위에서부터 저 아래에 놓여있는 둥근 실타래는 붉은 실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 붉은 실은 엄마와 자식을 연결해 주는 탯줄과도 같은 것을 의미한다. 엄마와 자식 간의 아가페적인 사랑을 붉은 실로 상징화하여 표현하였다.

엊저녁에도 보르르 떨리고, 지진이 매일매일 찾아 옵니더 | 서분숙 영덕 핵발전소 주민투표 1주년 | 김억남

26

사람 사는 세상

사드는 필요없다. 제발~ | 이영욱

28

이슈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스미토모 | 장지혁

30

Art & Culture

1946년과 2016년 10월, 수창동에서 일어난 일│김병호

38

Book & Cine

7시간·사드까지, 기록의 사유화가 남긴 오늘│장지혁

40

이달의 회원

김언호 회원 인터뷰 │김수상

42

노동현장은 지금

철도노동자의 파업은 외롭지 않습니다!! │최성호

44

대구참여연대는 지금

46

풀뿌리주민자치

48

회원의 소리

49

회원자치모임

50

문화톡톡

51

방방곳곳

52

재정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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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비납부명단

‘똑똑’ │강옥련


│편집장의 말│

국민의 힘으로 반드시 진실을 밝힙시다. 류영준 편집위원장 ryjoon@hanmail.net

지금 대한민국은‘박근혜-최순실 게이트’국정농단

지금 모든 언론에서는 연일 최순실에 대한 의혹이

사태로 패닉 상태입니다. 대통령이 직접 관련된 전대미

보도되고 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지도 모릅

문의 사건을 접하는 온 국민들은 분노와 슬픔을 넘어

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공백, 역사교

극심한 자괴감에 빠져있습니다. 비선실세 최순실 의혹

과서 국정화, 개성공단 폐쇄와 대북정책, 위안부문제

의 파문은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습니다. 철저한 진상규

졸속 합의, 사드배치 등 모든 분야에서 무수한 의혹이

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제기되고 있습니다. 언론을 통해 새롭게 드러나고 있는

각계각층의 시국선언문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사실도 있지만, 오래전부터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있고, 전국 곳곳에서는 국민의 성난 목소리를 담은 시

내용도 다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왜 덮어두

국대회가 연일 개최되고 있습니다.

고 지나가려고 했을까요? 조선일보는 이미 오래전 미 르재단을 파헤치고, 최순실 관련 취재를 끝내 놓고도

여론조사에 의하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연

몇 달을 묵혀두고 있다가 JTBC가 태블릿PC의 최순실

일 하락하여 한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했고, 국민의 다수

파일을 공개하자 부랴부랴 터뜨린 후 언론보도의 주도

는 국정안정화를 위해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하고 특검

권을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기득권 지배층들의 전략적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행보일까요? 대통령을 조정하는 실세 최순실, 그리고

과 새누리당은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이 모든 것을 조정하는 또다른 실세가 있다고 보는 시

있는 것 같습니다.

각이 많습니다.

거세게 들끓는 성난 민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

더 이상의 권력형 부패와 비리, 국정농단이 되풀이

건의 중심인 박근혜 대통령은 모든 문제를 최순실과 청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 앞에 진실은 철저히 밝혀져야

와대 일부 비서관을 희생양으로 삼아 서둘러 봉합하려

하고, 국정을 농단한 사람은 반드시 처벌을 하여야 합

고만 하고 있습니다. 실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립된 특별검사를 통해 성역없

행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누리당은 국민의

는 철저한 수사가 진행되어야 하고, 의혹의 당사자인

목소리를 외면한 채 몸통 감싸기와 사건의 관련자들을

대통령 스스로가 검찰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

비호하며 진실을 흩트리고 사건의 본질을 축소하고 자

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보

기 한 몸 사리기 위해 바둥대고 있습니다. 애초에 수사

여줘야 합니다. 헌법을 유린하고 국가를 조롱거리로 만

의지가 없는 검찰의 늑장수사로 사건의 당사자들은 이

든 대통령을 심판하고, 망가져버린 민주주의를 회복하

미 증거인멸과 말맞추기, 꼬리자르기로 검찰조사에 철

는 길에 우리 대구참여연대 회원여러분들이 앞장서 주

저한 대비를 한 상태였습니다.

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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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편지│

도영이네 사과 오규섭 대구참여연대 공동대표

온 종일 시국 이야기로 모든 것이 중지되어 버린 느

죄를 뒤집어 쉬우는 말은 악마의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의인이고 너는 죄인이다.”권력을 가진 자가 의

낌입니다.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는 소리가 세상을 가득 채우지

도적이든 자기착각이든 이러한 행위는 국민들에게 깊

만 슬그머니 시대흐름에 스며들어 자기 자신을 위장하

은 상처(中傷)를 주지요. 우주의 기운을 모은다는 것이

는 잡것들의 무서운 생존 번식 능력이 섬뜩합니다.

악마의 기운을 모은 모양입니다. 상처 입은 우리들이 우리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 나

서로 뒤엉켜 똬리 틀고 있는 그 무리들. “친일 청산하지 못 함이 천추의 한이다.”라는 어르

가야겠습니다. 물질이 지배하는 지금의 세대는 한 동안

신들의 술 한 잔 취기 속에 터져 나오는 깊은 독백이

우리들의 의식을 물질에 가두어 놓을 것입니다. 자기이

귀에 맴 돕니다.

해 관계의 극대화입니다. 아마 미국 대선이 이 시대징

소위 최순실 너머 박근혜 너머 우리는 어디까지 청산

조를 대변해 줄 것입니다. 스스로 깨어야 할 때입니다. 촛불의 물결 속에 더불어 살아감에 대한 새 질서의 열

해 낼 수 있을까? 옥석을 잘 가려내어야 할 때입니다. 늘 그러하듯이

망을 대 합니다. 제 책상 앞에 대통령 사과와 다른 또 다른 사과 말귀

민심이 모든 것들의 든든한 바탕이 되어야 하겠지요. 12일 민중 총궐기 광화문으로 가자라는 대구참여연

가 있네요. “사과를 먹는다. 사과 꽃에 눈부시던 햇살을 먹는다.”

대 식구들의 소리가 천심(민심)을 이루고 있네요. 오고

“사과에 벌레 먹은 자리가 크다. 간밤에 배고픈 별들이

가는 길 깊은 만남을 상상해봅니다. 대통령의 2차 대국민 사과 중에“이러려고 내가... 자

한 입 베어 먹고 갔다. “

괴감 들고 괴로워” 라는 말귀가 국민들 사이에 큰 인기

1년 전 이런저런 오랜 세월 고민과 경험, 생각을 너

를 끌고 있네요. 분노를 웃음화 시키니 놀라운 능력입

머 일과 직장을 뒤로하고 사과 농사 짖더니 첫 수확 하

니다. 지난 일요일 활동가들이 새로 이사해야할 사무실

셨네요. 자식이름 무단 도용하여 도영이네 사과랍니다.

벽지 제거작업 강제동원에“이러려고 벽지 떼나 자괴감

유쾌한 사과입니다. 물질에 관한 여러 인연들의 고마

들고 괴로워” 라는 사진과 문자를 보았습니다. 웃음 주

운 염려가운데 스스로 그 사이를 지나가니 덩달아 기쁨

시니 고마웠지요. 친밀감도 들고요.

충만합니다. “힘들면 돌아가면 되지요”

그러나 대통령의 사과는 나는 그러한 것이 아닌데 아

그 뻔뻔함이 각박한 경쟁사회 한 가운데 허허로움 웃

무개는 그러했다하니 자괴감 들고 괴롭다는 것이지요. 헬라어 중에‘디아볼로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악마

음꽃 한 송이입니다. 대구참여연대 인연들 저마다 자리에서 그리 살아가고

를 의미합니다. 여러 뜻 중 위증, 중상모략의 뜻도 있

계시겠지요. 다들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지요. 타인 뒤에 숨어 자신을 감추고 교묘한 말로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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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후원의 밤에서 얼굴 뵙겠습니다..


│특별기고│

김윤상 경북대 석좌교수, 행정학 yskim@knu.ac.kr

박근혜-최순실 사태로 인해 우리 정치에 대한 근본적

장은 위헌입니다. 대통령이 2선 후퇴를 약속한다고 해도

인 불신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국민이 대표를 뽑

그건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어 빈 말이 될 수 있습니

아서 국정을 맡기는 민주정에 대해서 깊은 절망감을 느

다. 2선 후퇴의 구체적인 범위도 모호합니다. 이후 국정

끼는 국민도 많습니다. 분노가 이성을 앞서는 상황이지

이 잘못될 경우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할지도 모르게

만, 그렇다고 고함만 질러서는 나아지는 게 없습니다. 좀

됩니다.

차분히, 당면 문제에 대한 단기 대책과 정치제도를 개혁 하는 장기 대책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헌법에는 이런 경우에 적용할 탄핵이라는 제도를 두고 있는데 왜 야당이 정공법을 취하지 않는 걸까요? 대통령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3분의 2 이

1. 단기 대책·사퇴 또는 탄핵

상의 찬성이 필요한데(헌법 65조), 야권 의석수가 3분의 2를 넘지 못하는 현실을 의식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

다수의 국민은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무능

도 헌법에 따라 당당하게 추진하면서, 한편으로는 국민

한데다가 중대한 위법행위까지 드러났으니 당연한 요구

여론에 호소하고 다른 편으로는 여당 내의 이성적인 세

입니다. 그런데 공식적인 해결사인 정치권은 망설입니다.

력을 설득해야 하지 않을까요? 탄핵소추 의결이 성사되

석고대죄해야 할 여당은 그렇다 치더라도 야권도 한심합

면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있을 때까지 대통령 권한행사가

니다. 정의당을 제외한 야권 2당은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정지되므로 야권이 바라는 2선 후퇴 이상의 효과가 나타

전제로 한 거국내각 구성을 요구하다가 국민의 눈총을

납니다. 야권이 탄핵을 추진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로 대통

의식하면서 조금씩 수위를 높이고 있는 형편입니다. 2선 후퇴? 대통령이 권한 없이 결재만 하라는 이런 주

령 임기가 1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도 작용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것 도 짧지 않은 시간입니 다. 특히 외교가 걱정입 니다. 자국 이익 우선주 의를 내세우는 미국 트 럼프 행정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약점을 악용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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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등에서도 보듯이 대 북한/중국 관계도 한 순간에 악화 될 수 있습니다.

하는 정당을 골라 찍을 수 있습니다. 또‘제왕적 대통령’ 이라는 표현도 있듯이 대통령의 권

제가 바라는 단기 대책은 이렇습니다. 대통령은 사고로

한은 너무 큽니다. 특히 중립적 공공기관의 인사권을 장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고 스스로 선언하고

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

여야 합의에 의한 새 총리가 헌법 71조에 따라 권한대행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 백남기 농민의 경우처럼 집

을 맡습니다. 각 정당의 준비 시간을 고려하여 대통령직

회 및 시위에 대해 경찰이 과잉 대응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퇴는 내년 1월 중, 차기 대통령 선거는 헌법 68조에

경찰이 주권자인 국민이 아니라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따라 그 60일 이내인 3월 중에 실시한다고 예고합니다.

충성한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검찰,

대통령이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야권은 헌법에 따라 탄

경찰, 특검, 국정원 등 권력기관 그리고 방송통신위원회

핵 절차를 시작합니다.

나 한국방송공사 등 언론기관 등에 관한 인사는 대통령 손에서 분리해야 합니다.

2. 장기 대책 - 대통령 견제와 권한 축소 3. 개헌? 한다면 내각제로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입니다. 후보를 잘 모르면서‘묻지 마’투표를 한 국민,

필자는 이 정도만 해도 문제가 대부분 방지될 것으로

후보의 자질이 부족한 줄 알면서도 정권만 잡으면 된다

생각하지만, 개헌이 꾸준히 중요한 정치 의제로 등장하고

고 밀어붙인 정치인 등 사람의 문제도 심각합니다. 하지

있는 상황이므로 개헌 문제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하려

만 이 글에서는 제도의 문제, 특히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고 합니다.

크며 견제도 부족하다는 문제에 국한하여 생각하려고 합 니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왕정 대신 채 택한 대통령제는 국민이 선거하는 군주제와 다름없습니

이 문제를 개헌 없이도 예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

다. 여당이 의회의 다수 의석을 차지하게 되면 입법부가

습니다. 국회의원 선거를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것입니다.

행정부를 견제하라는 권력분립의 원칙도 무력해지고 맙니

이 방안은 이미 2015년 초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다. 반면,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의원내각제를 택

제안하기도 하였습니다. 1등만 당선되는 소선구제에서는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선거가 없어 정치 비용이 절약되는

사표가 대량으로 발생하고 거대 정당의 국회 의석 점유

장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개헌을 한다면 비례대표제를 기

율이 득표율에 비해 훨씬 높아집니다. 국회와 국민이 따

반으로 하는 의원내각제로 전환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로 노는 것이지요. 그러나 비례대표제가 시행되면 원내

일각에서는 대통령 4년 중임제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제1당이라고 해도 웬만해서는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기

이건 대통령 권한을 오히려 확대하는 방향 착오입니다.

어렵습니다. 그러면 대통령은 국회 및 야당과의 대화와

프랑스처럼 외치와 내치를 나누어 담당하는 2원집정부제

설득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게 됩니다. 실질적 다당제 하

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업무를 깔끔하게 분할하기

에서는 어느 정당과도 제휴할 가능성이 열려 있으므로

도 어렵고 국정의 일관성, 책임성에도 문제가 생길 것으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대결과 증오의 정치도 사라집니다.

로 봅니다.

국민의 투표 태도 역시 달라집니다. 선택지가 사실상 둘 밖에 없는 지금은 특정 정당이 좋아서라기보다 다른 정당이 싫어서 반대투표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입니다. 눈앞의 단기 대책만이 아니라 근본 대책에 대한 지혜까지 모을 때입니다.

실질적 다당제로 정치 생태계가 다양해지면 자신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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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태일

전태일. 분신. 그리고 조영래 송필경 베트남 평화의료연대 대표이사 spk55@hanmail.net

정당한 분노를 나타내기 위해 제 몸을 태워 저항

주장한 중세시대 신학자 브루노 같은 사람을, 또는

하는 행위를 분신이라 한다. 우리에게 가장 강렬한

KKK단원들이 흑인을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통닭구

기억은 1970년 11월 13일 무지렁이 노동자 전태일

이 만든 경험은 있어도, 그들 역사에서 신념 때문에

분신이다. 열사의 마지막 유언은“우리는 기계가 아

스스로 몸을 불태우는 인물을 본 적이 없었다. 서구

니다!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인들은 자신을 불태운다는 것은 결코 이해할 수 없

하지마라!” 였다. 이로써 한국 노동운동사는 새로운

는 폭력으로 받아들였다.

이정표를 세운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이 분신은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고

이는 7년 전 베트남 승려 틱 꽝 득의 분신과 유사

미국이 감춘 베트남의 참혹한 실상을 알리는 결정

했다.

적 역할을 했다. 이 사건으로 베트남 문제가 미국이 1963년 6월 16일, 베트남 사이공에서 미국의 꼭

그토록 꺼려했지만 비로소 유엔에 상정 됐다.

두각시인 지엠 정권의 폭정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불교 고승 틱 꽝 둑(Thich Quang Duk)이 온 몸에

폭력적으로 보이는 분신에는 뜻밖에도 커다란 사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하였다. 놀랍게도 온 몸이 숯

랑과 희생적인 정신이 깃들어 있다. 제 몸을 태워

덩이가 될 때까지 미동도 않고 명상하듯 가부좌 튼

희생하는 유례없는 사상, 치열하면서도 연꽃 같이

자세를 꼿꼿이 유지하였다.

아름다운 사상은 불교 설화에서 유래했다. “어느 날, 전생의 석가가 커다란 대나무 숲에 들

서구 언론은 경악했다. 갈릴레이와 함께 지동설을

어갔는데, 어미 호랑이가 새끼를 낳고 있었다. 하지 만 먹을 것이 없어 호랑이들은 굶어 죽게 되었다. 전생의 석가는 그것을 불쌍하게 여겨 알몸이 되어 호랑이 앞에 누웠다. 자신을 먹이로 바치려 했다. 하지만 호랑이는 덮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른 대나무로 자신의 목을 찔러 피를 흘리며 산꼭 대기에서 뛰어내려 몸을 던졌다. 호랑이는 결국 그 몸을 먹고 뼈만 남겼다.” 이런 불교의 바다에서 광둑 스님 같은 인물이 나 -8-


타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프랑스에서 국

지도자가 정당한 의식을 가졌기에 따르는 무리

제 참여불교 운동의 지도자로 주목받는 활동을 펼

들은 무기를 들고서도 도덕적 지향을 잃지 않

친 틱 낫 한 스님은 당시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는다. 이 저항이 우리 근대사에서 찬란한 빛이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었던 갑오동학혁명이었다. 비루한 집권자들은 외세의 폭력을 끌어들여 동학혁명을 진압했다.

“1963년 베트남 스님들의 소신공양(자기 몸을 태

3. 특이한 양상의 저항이 하나 있다. 저항을 해야

워 부처 앞에 바침)은 서구 기독교적 도덕관념이 이

하는데 아무리 외쳐도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부

해하는 것과는 아무래도 좀 다릅니다. 언론들은 그

닥칠 때다. 이럴 때는 폭력이 자신에게 향한다.

때 자살이라고 했지만, 그러나 그 본질에 있어서 그

우리 현대사에 가장 큰 발자국을 남긴‘전태일

렇지 않습니다. 이는 저항 행위도 아닙니다. 분신

열사 분신’ 이 대표적이다.

전에 남긴 유서에서 그 스님들이 말하는 것은 오로 지 압제자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고 그 마음을 감동

불교 역사상 살신성인의 원조는 썽자오(僧肇 :

시키는 것이 목적이며, 베트남 사람들이 겪는 고통

384~414)라는 중국 진(晉)나라의 승려다. 그는 공

에 대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목적입

사상(空思想)을 대표하는 중국 선종에 막대한 영향

니다.”

을 끼친 중국 불교계의 최대 천재로 불린다. 그는 왕의 노여움을 사(요즈음의 반정부 사상으로) 교수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는 광주 5.18항쟁에 대

형을 당하는데 멋진 시 한 수를 남기고 31세의 나 이로 홀연히 사라진다.

한 저서‘철학의 헌정’ 에서 이렇게 말한다. “국가 권력이나 지배 권력은 정당성이 없을수록

四大元無主 사대가 원래 주인이 없고

더 많은 폭력을 사용한다.

五陰本來空 오음은 본래 빈 것이다.

민중이 국가 또는 지배자의 폭력에 수동적으로

將頭臨白刃 머리에 흰 칼날을 갖다 대어도

응답하면 낙오자나 도망자가 된다.

猶似斬春風 이는 봄바람을 베는 것과 같을 뿐이다.

유리걸식(流離乞食), 즉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면 서 남에게 밥 빌어먹고 살게 된다. 이들이 몇몇이 모이면 도둑이 되고, 좀 더 힘이

四大(地·水·火·風)

세어지면 난을 일으키는 무리로 발전한다.

五陰=五蘊(자기 몸, 즉 色 : 물질적 존재 受 : 감

혼란한 시대의 역사에서 흔한 반란군이다. 홍경래

각 想 : 표상 行 : 의욕 識 : 사유)

난이 최근세사 일이다.

몸 자체가 오온의 가합(假合)이므로 그리고 또

이들의 행위는 미래를 설계할 의식이 없기 때문 에 역사에서 사건이나 사태로 끝나버린다.

오온 그 자체가 또 공(空)한 것이므로 칼날이 내 모가지를 스쳐도 그것은 바람이 스치는 것과 같을 뿐이다.

지배 권력의 폭력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거나 저항 하는 양상은 크게 3가지다.

이에 대해 경도대학 가지야마 유이치 교수의 평

1. 비폭력 저항이다. 3.1운동이 대표적이다.

이다.

2. 무장폭력 저항이다. 지도부가 확고한 이념을

“여기에 묘사되고 있는 중관의 사상가들의 생애

가질 때 따르는 자들이 거대한 무리를 짓는다.

는 그들의 철학과 명상이 보여주고 있는 절대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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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태일

숙(靜淑)과는 매우 다른 광란(狂瀾)에 넘친 생애들

사건으로 수배되어 도피하며 청계천을 누비던 1977

이다. 그들의 변증(辨證)은 그것이 전해주고 있는

년 가을에 쓴 시다.

공의 세계의 청명(淸明)함에도 불구하고 불꽃과 같

불멸의 불꽃 전태일을 온전히 세상에 드러낸 조

이 치열한 논리였다. 이 세계를 꿈(夢)과 환(幻: 환

영래는 우리 지성사에서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전

영)으로 본 그들이 그들의 현실에서 본 것은 삼림

태일 분신 사망 이후에 조영래는 그를 찾아 갔다.

(森林)의 한적한 생활이 아니었으며, 추악한 인간세

이‘영혼의 만남’ 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아름답

의 악몽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결코 중관사상의 에

고, 가장 위대한 사건이었다.

센스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다. 악몽의 아픔을 모 올해는 전태일 사망 46주기이다. 11월 13일은 그

르는 인간에게 어떻게 이 세계를 꿈과 환영으로 보

의 기일이다. 이에 맞추어 우리는 또다시 전태일을

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불러 보자.

불멸의 불꽃과 마르지 않는 샘; 전태일과 조영래 전태일을 불러 옴 -노동자의 불꽃 전태일이 있었다. 45년 전 1970년 11월 13일, 22 『저

살의 무지렁이였던 이 젊은이는 암흑을 깨트리는

처절한 불길을 보라

횃불처럼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그리고 남한의 천

저기서 노동자의

박한 자본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장엄한 사자후를

아픔이 탄다

유언으로 남겼다.

저기서 노동자의 오랜 억압과 죽음이 탄다

시카고대학 사학과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한국

아하, 노예의 호적은 불살라지고

현대사’ 에 이렇게 썼다.『1970년에 한 노동자의 고

끝없는 망설임도 마침내 끊겨버린

독한 행동이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이는 한국 노동

저기서

운동사의 이정표가 되었다. 섬유노동자인 전태일이

노동자의 의지가

11월 13일 서울의 평화시장에서 분신했고, 불꽃이

노동자의 저항이

그를 불사르는 순간에도‘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의 자유가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하고 외쳤다. 7년 전 사

불타오른다

이공 시내에서 한 승려의 분신이 지엠 정권을 무너

.

뜨리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던 것과 유사하게, 이

.

분신자살은 전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다.』

.』 전남대학 철학과 김상봉 교수는‘철학의 헌정’서 이 시는‘노동자의 불꽃; 아아, 전태일’ 이라는 장

문에서‘전태일 분신’ 의 의미를 이렇게 부여했다.

편 시의 첫 부분이다. 고 조영래 변호사가 민청학련

『전태일은 슬픔의 예수와 분노의 예수, 눈물의 예수

- 10 -


와 빛의 예수를 자기 속에 하나로 구현한 영혼이었

부해, 아이에게는 무엇이 좋고 자기에게는 무엇이

다. 대구 남산에서 태어나 서울 평화 시장에서 만난

좋은지 잘 알았다. 그래서 보조금의 대부분을 빼돌

전라도 소녀들에게 차비를 아껴 붕어빵을 사 주다

려 자기 몫으로 챙겼고, 아이들에게는 겨우 굶어 죽

가 불꽃으로 산화한 그는 스스로 빛이 된 눈물이다.

지 않을 만큼만 썼다.

어느 누구의 삶도 눈물과 불꽃이 어떻게 하나인지 아이들은 빵 반쪽을 먹을 수 있는 일요일을 제외

를 전태일의 삶처럼 그렇게 처절하게 보여 주지는

하고는 작은 그릇에 죽을 딱 한 사발만 받아 먹었

못 할 것이다.』

다. 그릇은 씻을 필요가 없었다. 반짝반짝 빛이 날 때까지 숟가락으로 박박 굵어 먹었기 때문이다. 그 러면서 아이들은 간절한 눈길로 솥을 바라보았다.

자본주의

어찌나 배가 고픈지 그 솥마저 집어 삼킬 듯한 눈 우리는 1960년대 한국 자본주의 시장의 본보기인

빛이었다.

청계천 평화시장을 둘러보기 전에, 영국의 1800년 어느 날 올리버는 금세 바닥을 보인 그릇을 들고

대 초반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영국의 위 대한 작가 찰스 디킨슨이 당시 영국 자본주의의 어 둡고 비참한 현실을 실감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평화시장의 비참한 사정과 다를 바 없었

아이들의 대표로 원장에게 다가갔다. “원장님, 죽 한 그릇만 더 주세요. 배가 너무 고 파요.” 퉁퉁하고 혈색이 좋은 원장의 얼굴이 삽시간에

다. 구조적으로 가난을 양산하는 사회 현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가진 디킨스는 문학 작품으로

창백해졌다. 그리고 나지막이 물었다.

사회적인 문제들의 본질을 꿰뚫어보았다. 그 대표적

“뭐, 뭐라고?”

소설‘올리버 트위스트(1838년 작)’ 를 들춰 보자.

“저기…제발 조금만 더 주세요!”

19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유례없는 번영을 누

그러자 원장은 소리를 꽥 질러 직원을 불렀다.

렸다. 귀족이 몰락하고 도시의 자본가들이 힘을 갖

직원은 원장에게 상황을 듣고 구빈원 위원회에 뛰

기 시작했다. 이 이면에는 하루에 한 끼조차 먹기

어가 가장 높은 의자에 앉아 있는 신사에게 말했다.

힘든, 생계를 위해 어린 나이부터 학교 대신에 공장

“죄송합니다. 림키스 씨. 글쎄, 올리버란 놈이 죽

에 가야 하는 빈민이 존재했다. 아래 글은 소설 일

을 더 달라고 했답니다.” 모두가 이런 일이 생전 처음이라 깜짝 놀랐다.

부분의 요약이다.

“더 달라고 했다고? 이봐, 침착하게 설명해 보게. 『올리버 트위스트는 구빈원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 곳은 누구의 간섭이나 보살핌도 받지 않은 채 하 루 종일 마루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지내는 곳이

그 애가 규정대로 준 저녁을 다 먹고도 더 달라고 했단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 다른 위원이 끼어들었다.

었다. 너무 많이 먹어 배가 아플까 염려할 필요도, 옷을 많이 입어 불편할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원장은 아이 한 명당 잘 먹고 잘 입을 수 있는 돈을

“이런, 이런! 그놈은 앞으로 교수형을 당할거야, 언젠가는 교수형을 받고 죽어도 싼 놈이라고!”

정부에서 받았다. 그러나 원장은 지혜와 경험이 풍 - 11 -


│기획│전태일

구빈원 위원들은 이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

전태일은‘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를 썼다. 그 편

해 부지런히 토론을 벌였다. 다음 날 아침 구빈원

지에서 나이 어린 소녀들이 안질, 신경통, 위장병,

대문에 공고문이 나붙었다. 올리버 트위스트를 데려

폐결핵 등에 고생하고 있으며, 성장기에 한 번 고생

가는 사람에게는 약간의 돈을 얹어 주겠다는 내용

하면 평생 고칠 수 없기 때문에 근로환경을 개선해

이었다. 올리버를 어린이 노동 착취하는 장의사에게

줄 것을 하소연했다. 듣기 싫은 불편한 진실을 말한

넘겼다.』

노동자는 같이 해고당했다. 해고당한 우직한 청년은 평화시장 노동조건 실태 를 조사하던 중‘근로기준법’ 이 있다는 것을 알고

청계천 평화시장

공부하였으나 한자가 너무 많아 내용을 명확히 알 올리버는 19세기 영국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수 없었다.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은 청년

1960년대 청계천 평화시장에도 수많은 어린 여성

은 이때 이렇게 되뇌었다고 한다.“대학에 다니는

올리버들이 일하는 작업장이 있었다. 대부분 업주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답답한 청년에게 지

림키스와 다를 바 없었다.

식으로 도움을 줄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1965년, 청계천 평화시장에 찢어지게 가난한 노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청년은 법이 규정한 최소한

동자의 아들이며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 않은

의 근로조건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의로운 분

어린 촌놈 전태일(1948˜1970)이 입에 풀칠하기 위

노를 느꼈다. 못 배운 젊은이의 분노가 자본주의 남

해 대구에서 찾아왔다.

한 사회의 근본 모순을 뿌리째 드러낼 줄을 그 누 가 상상했겠는가?

평화시장 시장은 거대한 닭장 같은 고도 착취 사 업장이었다. 소규모 의류제조업자들이 3, 4층의 창

나름대로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노동청과 서울시

고에 약 1.2m 높이로 마루를 깔고 이용할 수 있는

에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줄기차게

공간에는 모조리 작업대 하나, 재봉틀 한 대, 어린

제출하였지만 번번이 묵살 당했다. 개선 요구 사항

여자 한 사람을 집어넣었다.

은 하루 근무시간을 10˜12 시간, 일요일 마다 휴

14~16살의 소녀들이 마루 바닥에 끓어 앉아 오

일, 정확한 건강 검진, 일당을 100원 정도 인상 해

전 8시에서 밤 11시까지 하루 평균 15시간을 일해

달라는 소박한 요구였다. 12시간 정도는 뼈 빠지게

야 했다. 한 달에 이틀, 첫째 셋째 일요일에만 쉴

일할테니 대신에 다방 아가씨에게 사주는 쌍화차

수 있었다. 할 일이 많은 때는 철야작업까지 했는데

반값 정도의 일당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뿐이

깨어있기 위해서는 각성제‘암페타민’ 을 먹었다. 하

었다.

루 임금은 다방 커피 한잔 값인 50원이었다. 1970년 11월 13일, 22살 청년 전태일은 자신이 어린 여공들은 열악한 작업 환경과 과도한 노동

조직한‘삼동회’ 의 회원들과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

에 시달리다 못해 직업병인 폐렴에 걸리면 그 자리

하지 못하는 근로기준법을 화형식 하기로 결의하고

에서 강제 해고당했다. 이를 보다 못한 동료 노동자

평화시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자본가와

- 12 -


경찰의 방해하여 시위가 무산되자, 전태일은 갑자기

진보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진보란 현실 모순을

온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이고는“근로기준

직시하고 개선 의지를 갖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나

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라는 구호를

는 생각한다. 선방이나 토굴 또는 수도원에서 얻는

외치며 평화시장 앞을 달렸다.

관념적 깨달음보다 더 위대한 깨달음을 ‘바보’ 는 잔인한 현실에서 얻었다. 이‘바보’ 가 스스로 몸을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는 마지막 당부를 외치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소식을 듣고

불태움으로써 남한의 자생적 진보는 횃불을 올릴 수 있었다.

병원에 온 어머니 이소선에게 전태일은“어머니, 내 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이뤄주세요” 라는 절박한

‘전태일이 없었다면 한국 노동자들의 인권은 수 십 년 뒤에나 존중받았을 것.’ ,‘전태일은 대한민국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의 노동운동과 민주주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깃털보다 가벼운 죽음이 있고 태산보다 무거운

이 모두 지극히 옳은 말씀이다.

죽음이 있다. 전태일의 장엄한 죽음은 민주화의 밑 그림이 되었고 비로소 남한 사회의 자생적 진보가

전태일의 단순한 외침‘근로기준법을 지켜라’ ,

첫걸음을 디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태일의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은 남한 사회의 지식인과

분신은 어떤 거대한 담론 보다 더 큰 울림이요, 실

기득권층에게 산업 사회에 진입하는 남한 사회에

존을 자각한 사자후였다.

대하여 근원적으로 반성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바보’ 는 잔인한 현실 전태일 분신에 대한 두 반응

에서 오히려 맑은 눈으로 사회 모순의 근본 핵심을 꿰뚫어 보았다. 잘 사육된 개의 순종적인 눈이 아닌

순종해야 할 무지렁이가 내뱉는 정당한 외침, 이

자유로운 들판에서 자란 늑대의 맑은 눈으로 말이다.

듣기 싫은 불편한 진실에 대해 자본가와 압제자들 ‘임금님은 벌거숭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은 경종을 느끼기보다 분노에 찬 짜증을 내었다. 멀

어렵다는 것을 비비꼬고 빙빙 둘러말하는 이론가들

건 죽 한 그릇 더 달라는 올리버를 팽개친 구빈원

을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다. 고상한 렌즈로 보는

원장처럼 말이다.

먹물들의 눈에는 직관의 진실이 잘 보이지 않는 법 순수한 영혼의 외침에 경종을 받고 청계천에서

이다.

계속되는 닭장 속 같은 삶의 고통을 동감하자는 움 자신도 겨우 입에 풀칠하면서 어린 누이의 더한 고통을 보고‘네가 아프니, 나도 아픈’측은지심의

직임이 일어났다. 먼저 젊은 지식인과 양심적인 종 교인들이 모였다.

발현이 현실 모순에 대한 성찰로 나아갔다. 죽은 지 3일 뒤인 11월 16일, 서울대 법대생 1백 만약 진보라는 말에 착하다는 의미를 포함한다면

여 명은 그의 유해를 인수하여 학생장을 거행하겠

자신의 몸을 불사른‘바보’ 의 진보보다 더 고귀한

다고 주장했다. 서울 상대생 4백여 명은 무기한 단

- 13 -


│기획│전태일

식 농성을 벌였다. 그 뒤 많은 대학들도 추모 행렬

했다.“가정 형편이 어려워 3학년 1학기 때까지 가

에 가담했다.

정교사를 하고 한·일 협정 반대 시위도 주도했는 데 고3 2학기 몇 달 공부해 서울대 전체수석을 했

22일 새문안교회 대학생 신도 40여명은 전태일의

다” 고 한 지인이 말했다.

죽음에 사회가 책임이 있고 자신들도 공모자라며 경기고 재학 시절 수석을 놓치지도 않으면서 6.3

속죄를 위한 금식 기도회를 열었다.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주동해 학교에서 정학처분을 23일에는 개신교와 천주교의 공동 집전으로 추모

받았다.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김선주와 같은 동

예배를 거행했는데, 여기서 김재준 목사는 "우리 기

네에서 살았다. 경기여고에 다니던 김선주는 경기고

독교인들은 여기에 전태일의 죽음을 위해 애도하기

다니던 조영래를 눈여겨봤는데, 하교하면 교복을 입

위해 모인 게 아닙니다. 한국 기독교의 나태와 안일

은채 쌀가게하는 아버지를 도와 쌀 배달했다고 한

과 위선을 애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라고 했다.

다. 그럼에도 1965년 서울대학교 수석으로 법과대 학에 입학했다. 덕분에 박정희에게 초청을 받아 청

젊은 지성인들과 양심적인 종교인들은 미처 몰랐

와대 구경도 했다. 입신출세가 보장된 서울대 법대

던 노동자의 모진 삶에 대해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에 다니면서도 버릇은 여전해 박정희의 한일회담과 3선 개헌을 반대하며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언론도 노동문제를 사회 이슈화 하여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이로써 정치계와 정당들도 정부의 반노

1969년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했으

동자 정책에 비판을 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정희

며 1970년 전태일의 장례식이 서울 법대 주관으로

에 대항하는 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김대중

치렀을 때 조영래도 참석했다. 1971년 사법시험에

은 1971년 1월 23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전태일 정

합격해 연수원에 들어갔다.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자

신의 구현'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마자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되었으며 1 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1973년 4월 만기출

1979년 YH 여공들의 투쟁은 전태일 정신의 총화 였고 캄캄한 유신을 끝장 낸 도화선이었다. 22년

소 후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로 수배되어 1974년부 터 1979년까지 6년 간 쫓기는 생활을 했다.

밖에 살지 않은 무지렁이 전태일, 이 미약한 사람의 조영래는 도피생활하면서 전태일의 영혼에 찾아

진실한 힘이 역사에서 무엇을 하였는지 우리는 다

갔다.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씨를 만나고 당시 전태

시 살펴보아야 한다.

일과 함께 했던 청계천 노동자와 노동자들의 현실 을 알기 위해 청계천 일대를 누볐다. 조영래가 본 것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가난한 노동자의 삶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간 위대한 청년 조영래

이었다. 많은 노동자를 만나며 지식을 전해주기도 조영래는 전태일보다 한 살 많은 1947년생이다. 전태일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지만 조영

했지만 오히려 노동자들에게서 삶은 귀중하다는 것 을 깨달았다.

래는 경기고를 수석 졸업하고 서울대에 수석 입학 - 14 -


이 도피기간동안 전

전봉준의 만남처럼.

태일의 삶을 완벽하게

나는 우리나라에서 근현대사에서 일어난 민중의

복원한『어느 청년노동

위대한 자각-다시 말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시대모

자의 삶과 죽음』이란

순을 돌파한 시대정신-을 두 가지를 꼽으라면, 썩

책을 집필했다. 이 책

은 왕조체제에 저항한 전봉준의 동학농민항쟁과 자

은 『전태일 평전』 이란

본주의에서 노동자의 자각을 일구어낸 전태일의 분

제목으로 1983년 전두

신이라고 생각한다.

환 정권의 모진 탄압에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 모든 민주화운동은 이들

도 출간되어 우리나라 노농운동사에 가장 큰 울림

두 분-전태일과 조영래-에게 가장 많은 빚을 안고

을 남겼다.

있다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1980년 복권 후 사법연수원에 복귀해 변호사 자 격을 취득했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김상봉 교수의‘철학의 헌정’서문에 있는 글이

서울 마포구 망원동 수재민 집단소송 등을 수행하

다.『이 책은 5.18에 바치는 헌사인 동시에 부마항

면서 인권변호사로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1980년

쟁에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대를 관통한 조영래의 활약과 그 역사적 의미는 몇

광주와 부산·마산을 물신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권의 책으로도 턱없이 모자란다.

사실 보다 본질적인 근원을 따지자면, 1980년 광주 와 1979년 부산·마산의 시원은 대구다. 왜냐하면

다시 정리해보자. 전태일은 암담한 노동현실의 근

거기서 전태일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본원인은 근로기준법이 준수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대구는 박정희의 도시가 아니라 실은 전태일의

것을 깨달았다. 전태일은 비록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법대 교재인‘근로기준법 해설서’

도시다.

를 구했다. 전문적인 법학개념과 법률용어로 된 책

과 씨름했다. 그는 이때부터“대학생 친구가 하나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 그리고 1980년의 광주 는 1970년 11월 불꽃이 되어 작렬한 전태일의 눈물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 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이 여기 그리고 저기에서 펼쳐지고 부활한 사건에 그러나‘아름다운 청년’전태일에게 자신이 죽고

다름 아니다.』

난 뒤지만 그토록 원했던 대학생 친구인‘위대한 청년’조영래가 찾아왔다. 아름다운 청년은 이 세상

전태일 서거 46년, 조영래 서거 36년, 지금 좌표

가장 낮은 곳에서 인간 고통의 본질을 알아냈고, 위

를 잃고 방황하는 진보는 전태일과 조영래가 보여

대한 청년은 이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준 삶의 의미를 복원해야 한다. 이 분들은 꺼지지

곳으로 찾아 내려와 그 고통을 이 세상에 드러내었

않는 횃불이요, 시대정신이 솟아나는 마르지 않는

다. 혼과 혼으로 이어진 두 사람의 인연을 나는 우

샘이다. 우리는 이 횃불로 암흑을 밝히고, 끊임없이

리 현대사에서 가장‘아름답고 격조 있는 만남’ 이

솟는 이 샘에서 자유와 평등의 목마름을 해소해야

라 부른다. 근대사에서 동학의 두 주역인 최제우와

한다.

- 15 -


│특집│지진과 탈핵

2016년 9월 12일 경주지진 그 이후 홍원화 경북대학교 건축토목공학부 교수

올해 4월 일본 구마모토 지역에서 대규모(규모7.1)의 본진과 여진이 연속적으로 발생하여 일본뿐 아니라 부산 및 경남지 역까지 그 여파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7월 울산에서는 지진관측 이래로 5번째로 큰 규모의 지진(규모 5.0)이 발생하였다. 이렇게 한반도 주변에 연이어 많은 지진이 발생하던 도중 2016년 9월 12일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1978년 기상청이 지진 을 관측하기 시작한 이후 역대 최대규모(5.8)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오후 7시 44분에 경주시 남서쪽 9km 지점에서 규모 5.1의 전진이 발생하였고 48분 후인 오후 8시 32분 경주시 남남서 쪽 8km 지역에서 규모 5.8의 본진이 발생했다. 그 후 10월 24일 오후 5시 기준으로 총 500회의 여진이 발생하여 아직 온 국민은 지진의 공포 속에 살고 있다. 지진이 발생했던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자. 지진으로 건물의 기와가 떨어지고, 상가건물의 지붕이 탈락하고 건물의 유리창이 파손되었으며, TV가 떨어져 부상을 당한 사람도 있었다. 놀란 주민들은 모두 집밖으로 쏟아져 나왔으며 야간자율 학습 중이던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집으로 귀가시켰다. 지진에 관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들어간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는 이 용자수가 많아져 접속이 불가능하였으며, 카카오톡 메신저는 불통이 되어 사람들의 불안은 더욱 증가하였다. 지진발생 사실 을 전파하는 긴급재난문자는 지진 발생 후 8분이 지나 주민들에게 발송되었다. 늦게 전파된 긴급재난문자에도‘어떻게 행동 해야 할지’ ,‘어디로 대피해야 할지’ 에 대한 정보는 전혀 포함하지 않고 있었다. 9월 12일 국민들은 아무런 정보도 행동요 령도 알지 못한채 불안에 떨고 있었다.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은 우리나라가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경각심을 일깨우고, 우리나라의 미비한 지진대 응수준과 교육수준이 여실히 드러낸 자연재해였다. 전국민을 공포에 떨게한 9월 12일의 지진 이후 40여일이 지난 지금 무 엇이 달라지고 있을까? 지금 가장 이슈가 되고 있으며, 실질적인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는 부분은 재난안전문자, 내진설계 그 리고 안전교육이다. 지진발생 당시 8분이 지난 이후에 발송된 지진 긴급재난문자는 지금까지 기상청이 국민안전처에 지진 발생을 통보하면 국민안전처가 이를 취합하고 최종 문자를 발송하는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전송 시간에 지연이 발생하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별도의 긴급재난문자를 기상청에서 직접 발송하거나 통신사와 지역방송국과 연계하여 전송시간 을 단축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긴급재난문자의 전송시간을 단축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긴급재난문자에 포함되어야 되는 내용 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고 있지 않다. 긴급재난문자는 지진이 발생한 것을 국민들에게 알리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 다. 지진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어떻게 행동하여야하는지, 어디로 대피하여야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제공하는 것이 긴 급재난문자의 목적이다. 따라서 앞으로 지진의 규모에 따른 혹은 추가적인 지진의 발생가능성 등에 따른 국민들의 대피행동 - 16 -


요령을 포함한 긴급재난문자를 위해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지진의 피해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각 건물별 내진설계가 매우 중요하다. 공공시설물별 내진성능확보 현황 (2015년 10월 전수조사)을 보면, 유기시설(遊技施設)(13.9%)과 학교시설(22.8%), 공공건축물(33.7%) 등의 내진율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31종 시설물 총 105,448 개소의 내진율은 42.4%였다. 정부는 건축법에 따른 내진보강 의무대상을 제외한 건축물 가운데 내진성능 확인을 거친 건축물에 대해‘지방세 감면’조치를 단행했으나, 높은 내진공사 비용으로 참 여가 저조하여, 2013년∼2015년까지 3년간 지방세 감면액은 660만원(총 17건)에 불과한 실정이다. 건축물의 내진성능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다양한 내진성능 보강 및 보안을 위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경주지진으로 인해 우리 나라가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 지금, 우리는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소홀히 생각했던 내진설계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며, 이를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과 지원이 필요하다.

대형재난이 발생하면 교육과 훈련에 대한 중요성은 항상 강조되고 있다. 대형재난에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적, 행정적 대응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국민이 스스로 본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행동절차와 요령을 숙지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2016년 10월 19일 민방위의 날을 맞아 전국 지진대피훈련을 실시하였으며, 2017년부터 전국 규모의 지진대피훈련을 연 2~3회 실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19일 실시한 지진대피훈련을 살펴 보면 많은 허점을 드러냈다. 시민과 공무원들이 안내방송과 경보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본인의 업무를 계속한다거 나, 경찰과 민방위 대원의 지시를 무시하고 계속 차량을 운행하는 등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하였다. 훈련에 대한 홍보 부족과 국민들의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실효성 없는 훈련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번 훈련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적극 반영하여 향후 보다 효율적인 대피훈련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경보만 울 리는 대피훈련이 아닌 재난시 행동요령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며, 대피훈련에 대한 충분한 홍보와 국민 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까지 정부는 국가에 대형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다양한 정책으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해왔 다. 대구지하철화재참사 이후 지하철이나 철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고를 방지할 수 있도록 철도안전법을 제정하였으 며, 철도안전법에 따라 5년마다 철도안전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수행하고 있다. 또한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안전처를 신설하 여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재난은 재난을 통해 배우며, 같은 재난은 반복됩니다.’여러분들의 기억에서 이번 지진이 사라질 때, 다시 한 번 이러한 지진은 발생할 것입니다.

이번 경주 지진을 계기로 지자체를 비롯한 정부에서는 이러한 재난을 대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며, 국민여 러분들도 적극적인 훈련 참여와 행동요령숙지를 통해 앞으로 발생할 재난에서 국민, 우리가족, 나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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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지진과 탈핵

엊저녁에도 보르르 떨리고, 지진이 매일매일 찾아 옵니더 진앙의 마을,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를 가다 서분숙 르포작가 sbs0901@hanmail.net

2016년 10월 21일,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 마을회관 앞 정자 마루에 앉아 점심으로 사온 도시락을 먹는다. 낮 시간인데도 마을 회관 안은 조용하다. 지금은 가을걷이가 한창인 때이지만 들과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어쩌다 보이는 건 도로 위를 지나가는 경운기뿐이다. 그래도 조금 전 둘러본 마을 곳곳에는 볍씨와 들깨, 그리고 고추를 말리느라 펼쳐놓은 멍석이 마당과 도로 곳곳에 널려있다. 2016년 9월 12일 밤 8시 28분, 앞서 7시 40분의 5.3 지진에 이어 5.8의 본진이 일어났다.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선 이 곳 땅 아래 10킬로 정도를 내려가면 *단층(외부의 힘을 받아서 지층이 끊어져 어긋난 지질구조) 이라고 불리는 *진원(지구 내부에서 처음으로 지진파가 발생한 장소)이 있다. 본진 이후 지금까지 490여 차 례 이어진 여진 때문에 마을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이미 어딘가로 떠나간 걸까. 상당수가 노년층이라 그 엄청난 흔들림을 견디며 집이 있는 부지리에서 계속 살기도 힘이 들었을 것이다. “지진이 아직 있지요. 어제도 보르르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니더.” 점심 도시락을 먹고 난 후 걸어서 마을을 둘러보던 중 만난 할머니 한분은 코밑과 입술 주변이 헐어 있었 다. 근처 양북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시집을 와서 양북댁이라고 불린다는 할머니는 지진 이후 계속된 여진을 견디느라 몸이 자주 아팠고 언제부터인가 피부가 헐고 피가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은 좀 어떠시냐는 나의 물음에 어젯밤도 여진이 있었다는 이야길 전해준다. 지금 마을에는 성한 사람이 없을 만큼 주민 대부 분이 건강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실제로 마을을 둘러보니 첫 번째 5.8 본진으로 무너진 담장을 보수하는 중 다시 일어 난 여진으로 재차 담장이 갈라진 흔적이 보인다. 거듭된 여진으로 누적된 통증은 사람의 몸 안에만 있지 않았다. 도로며 담장이며 마을 곳곳에 여진의 진통을 앓은 흔적이 가득하다. 담 아래 꽃밭에는 쓰러진 울타리 대신 시멘트 벽돌로 새로운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그래도 가을이라고 꽃밭에는 자줏빛과 노란빛의 국화가 새로 심겨져 있다. 마을 한 켠 농가의 창고에서는 지난봄에 수확한 마 늘을 손질하는 할머니의 손길이 분주하다. 할머니는 마늘 알이 실하게 박힌 것들을 여러 줄기를 한꺼번에 묶어 햇볕이 잘 드는 곳에 걸어두었고 떨어져 나온 마늘을 모아 소쿠리에 담아 둔다. 할머니가 소쿠리 옆을 탁탁 칠때마다 마늘 껍질이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간다. 얼마나 미뤄둔 일이었을까. 또다시 여진이 온다 해 도 어떻게든 겨울은 나야하니까 간만에 맘먹고 하는 월동준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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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2일. 전국을 뒤흔든 강진이 있은 후 지금까지 무려 490회를 넘는 여진이 이어지고 있었다. 본래의 강한 지진이 일어난 후에 잇따르는 지진이라고 해서 여진이라고 표현하지만, 그 영향력이 미치는 지 역의 사람들에게는 여진도 그냥 지진일 뿐이다. 여진이라고 해서 공포가 덜하거나 위협이 덜한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울산은 *진앙(진원 바로 위의 지표면)과 가까운 곳이라 진앙에서 느껴지는 여진의 공포를 대부분 다 느끼고 있다. 아래 글은 9월 12일 5.8 강진이 일어났던 급박한 순간부터 이후 다시 영남 지방을 흔든 4.5 지진이 왔을 때까지 내가 적어 둔 기록이다. ① 2016년 9월 12일. 월요일. 저녁 7시 40 분. 첫 번째 지진이 발생했다. 식탁이 흔들렸다. 2016년 7월 5 일에 일어난 울산 앞바다 지진으로 이미 진도 5.1의 지진을 경험한 13살 막내 아들이 비명을 질렀다. 지갑 을 들고 주차장 안에 있는 승용차로 이동했다. ② 9월 12일. 저녁 8시 28분 진도 5.8의 두 번 째 지진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크게 비명을 지르며 아파트 밖으로 달려 나왔다. 차를 몰고 주차장 밖으로 나가 주변에 붕괴 위험 건물이 없는 곳으로 대피했다. 잠시 후 귀가하는 18살 아들을 만나 함께 차안에 머물렀다. ③ 방송에서는 지진 전문 박사가 나와 한반도에 진도 7까지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하는 화면이 나온다. 내가 살고 있는 울산 북구에서 직경 12키로 월성 원자력 발전소는 진도 6.5까지만 폭발하지 않고 버틸 수 있다고 한다. 그 주변에는 핵폐기물 처리장이 있다. 내가 사는 마을건너편에는 울산석유화학 단지가 있다. ④ 대피나 안전에 관한 안내 방송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시민들은 거리에 서있거나 차안에 머물고 있다. 일, 이층 커피숍은 가족 단위로 몰려나 온 대피 객들로 가득 차있다. 학교 운동 장에 대피 천막을 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확인해 보니 사실이 아니다. ⑤ 주변 학교를 둘러봤으나 안전 대피 준비 전혀 없다. 울산 북구청에 전화를 거니 안전 대비에 관한 별다른 대처는 없다고 한다. ⑥ 2016년 9월 13일 화요일 0시 30분 집으로 돌아왔다. 캐리어에 비상 짐을 꾸리고 아이들은 잠바까지 입은 채로 잠 자리에 들었다. ⑦ 9월 13일 새벽 1시. 계속되는 여진 이 공포스러워 아이들과 함께 다시 집밖 으로 나왔다. 아파트 앞 전봇대에 푸른 불빛이 파팍거리며 튀고 있다. 큰 아들 - 19 -


이 112에 신고를 했고 경찰이 오더니 바로 한전에 연락을 한다. 한전 직원이 와서 30여분 가까이 공사를 한다. ⑧ 119에 전화를 걸어 대피소가 마련되어 있냐고 물었다. 답변은‘없다’이다. 이유는 진도 2에서 4정도 의 지진은 위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험해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무슨 소리냐 고 되물으니 전화를 받고 있는 자신도 대피소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한다. 주민들이 계속 119로 전화를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⑨ 9월 13일 아침 7시. 아이들 학교로 보내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니 어젯밤 진도 5.8때 책장에서 쏟아져 내린 듯한 책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⑩ 9월 13일 아침 8시 24분. 식탁 의자 다리가 흔들리는 여진이 느껴진다. ⑪ 9월 13일 9시 25분. 학교에 간 고2 아들이 지진 대피중이라며 연락이 왔다. 위험하니 엄마도 빨리 집 밖으로 나와 있으라고 한다. ⑫ 9월 19일 밤 8시 33분. 진도 4.5의 지진이 발생했다. 학교에서도 몇 번의 대피 경험이 있었던 덕분인 지 13살 막내아들의 대피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다. 고층 아파트가 흔들리는 중에도 재빨리 가스 밸브를 잠그고 출입문을 연다. 당황해서 엘리베이터 단추를 누르려는 엄마 손을 잡아끌고 계단으로 달 려 내려간다. 2016년 9월 18일 일요일 오전, 5.8 강진이 일어 난지 일주일이 지난 날. 진앙인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로 향했다. 지진에 이어 태풍까지 지나간 마을은 스산했다. 명절 연휴인데도 마을에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여진과 태풍을 피해 친척들이 있는 다른 지역으로 대피했거나 그나마 마을에 남아있는 주민들도 대부분 마 을회관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한눈에 둘러봐도 지진의 피해는 선명했다. 도로는 갈라졌고 담장이 무너져 내린 집들도 쉽게 눈에 보인다. 누군가 마음을 담아 가꾸어 놓은 꽃밭의 담장도 무너져 있다. 그 와중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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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여전히 피어 흔들린다. 마을의 집들은 거의 다 오래된 한옥들이라 대부분 기와가 무너져 내렸다. 지진에 이어 비까지 온 뒤라 무 너진 기와지붕 위에는 당장 비를 피하기 위한 파란색 방수 천이 덮여 있다. 무너진 것은 기와나 담장뿐만이 아니다. 부지리를 벗어나 인근 마을에 차를 멈추고 잠시 들판을 바라 보았다. 하루에도 10여 차례. 여진으로 땅이 흔들리는 중에도 그래도 가을이라고 벼가 누렇게 익어간다. 그곳에서 올해 3월에 경주로 귀촌했다는 젊 은 부부를 만났다. 언덕에 있는 땅을 사서 직접 포크레인으로 돌을 파내고 흙을 다듬어 평지를 만들었다는 부부의 집은 마을에서는 제법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앞산이 한눈에 다가올 만큼 전망이 탁 트이고 인 근에는 저수지까지 있어 농사일에 필요한 물 걱정까지 덜 수 있는 좋은 위치였지만, 지진 후 부부는 그 저수 지 때문에 오히려 걱정이 늘었다. 인공 댐으로 가둔 저수지의 위치가 부부의 집보다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 다. 전날 많은 비가 온 까닭에 낮인데도 저수지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는 우렁차다. 깊은 밤, 잠들었다가 여 진에 놀라서 깨어나면 저수지의 물소리가 더욱더 마음을 무겁게 적셔 놓는 날이 늘어만 간다. 지진으,로 인 해 저수지 둑이라도 터지는 날엔 집은 물론이고 목숨마저 위태로운 현실이다. 그러나 당장 이 집을 떠나서는 살 곳이 없다. 경주시에서 지진 후에 한 일이라곤 저수지 둑에 금이 갔는지 살펴보고 간 게 전부다. 뿐만 아니다. 5. 8의 강진이 온 날 밤에는 부부의 집에서 대각선으로 바라보이는 산에서 큰 돌이 굴러 떨 어졌다. 경주는 화강암으로 이뤄진 산이 많다. 그 화강암 덕분에 신라의 뛰어난 조형 예술이 탄생하기도 했 지만, 이번 지진 후에 화강암 때문에 걱정이 더 늘어났다. 풍화가 진행 중인 암석은 큰 압력을 받거나 진동 으로 흔들리면 마을이 있는 곳으로 굴러 떨어질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 여진이 계속 진행 중이지만 암석 의 낙하를 막기 위한 울타리는 어디에도 없다. 위험한 일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도 전혀 대비가 안 되는 상황에 인근 20키로 거리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에 관한 걱정까지 꺼냈다가는 귀촌한지 채 일 년도 안 되는 부부의 속이 다 타버릴 것 같다. 2016년 10워 22일, 전날에 이어 다시 부지리를 찾았다. 지난 새벽에 두 차례의 여진이 지나간 뒤였다. 아 무리 마을을 둘러보아도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세워둔 경운기와 트랙터만 보일 뿐이다. 전날 만났던 양북댁 할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해서 할머니가 사는 집 주변을 서성거렸다. 마당에는 붉은 고 추가 펼쳐져 있다. 지진 때 무너져 내린 기와지붕은 새 모자를 쓴 듯 새로운 지붕을 이고 있다. 집안을 기웃 거리다가 인기척이 없어서 다시 마을 쪽으로 걸어 나왔다. 어제 마늘을 손질하던 할머니의 창고 앞에서 양 북댁 할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지만 할머니의 얼굴은 몹시 어둡다. 등은 더 굽은 채 보행기에 간신히 기대어 서 있다. 간밤에 좀 어땠냐는 나의 물음에 양북댁 할머니는 겨우 대답을 한다. “보르르 보르르 많이 떨렸니더. 자다가 깜짝 놀라 일났니더. 몸이 많이 아프니더.” 지진이 부지리에 온 지 40여일이 지났다. 그 사이 가을이 왔고 마을 사람들의 병은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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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지진과 탈핵

영덕 핵발전소 주민투표 1주년 탈핵운동의 대중화를 위한 성찰 김억남 영덕주민투표 1주년 행사위원회 사무국장 ekra@naver.com

귀향한지 4년, 지역사회에서 아직도 완전한 주민

보지로 지정되자 군수이하 지역유지들이‘혐오시설

이 아닌 반 이방인이라는 이질감으로 비쳐지는 현

을 내 고향 영덕에 둘 수 없다.’ 는 공감대를 형성하

실에서 영덕의 주민투표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고 반대운동을 전개했고, 주민들은 상여시위와 청와

두렵고 설렌다.

대 앞 단식농성을 벌이며 강력저항 했다.

대게의 고장, 복숭아·송이의 최대 생산지, 동해

그러나 2005년 방폐장 문제에서는 앞선 2차례 반

안의 유일한 개발되지 않는 청정지역, 이것이 영덕

대운동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 된다. 당시 김병

을 떠올리는 이미지이다. 하지만 핵과 연관된 영덕

목 영덕군수가‘방폐장 지원금으로 지역경제를 발

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전혀 다른 역사를

전시키겠다.’ 며 공무원을 동원한 유치운동에 나서면

가지고 있다. 핵문제와 관련한 지긋지긋한 악연은

서 유치 찬반의 갈등으로 영덕사회는 분열된다. 당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 반대 운동에 앞장선 사람들은 벌금형을 받았다. 그리고 지역사회 발전을 해치는 불순분자라 매도되

1989년 우리나라 최초의 방폐장 계획이 수립되자

어 농업지원금에서 배제되고,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

영덕군민 전체가“방폐장 반대” 를 외쳤다. 특히 남

들은 불매운동으로 인해 생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

정면은 지역주민 3,000명이 집회에 참가하여 7번국

황으로 내몰렸다.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 영덕에서

도를 점거하는 강력한 반대운동을 벌였다. 2003년

행정에 반하는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지역사회에서

‘영덕, 울진, 고창, 영광’등 4개 지역을 방폐장 후

고립을 자초하는 행동이고 이방인으로 비춰지게 되 어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로 바뀌었다. 2010년 11월 26일 한수원이‘신규원전 부지 유치신청’ 서를 각 지방자치단체에 보 내자 영덕군은 부지 주민 399명의 동의만 으로 동년 12월 23일‘유치신청 동의 결의 안’ 을 영덕군 의회에 제출하고, 12월 30일 영덕군의회 의결을 거쳐 12월 31일 유치신 청을 접수하게 된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 간 안에 소수의 주민 동의만으로 핵발전소

<2003년 방폐장 반대 집회>

예정부지로 선정됨으로써 영덕사회는 다시 - 22 -


한 번 핵과의 투쟁이 시작된 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사고, 12월 23일 한수원‘신규 원전 후보지 영덕발표’ , 2012 년 4월 2일 한수원 지식경제 부에 ‘전원개발 사업 예정구 역지정 신청’ , 4월 7일 사전환 경성 검토 주민설명회, 9월 14

<국회 상경 투쟁>

일 지식경제부‘신규원전예정 부지 지정고시’ , 2013년 2월 25일‘제6차 전력수급

구 결의안’ 을 발표한다. 범군민연대는 4월 17일 영

계획’ 발표-한수원 신고리 7·8호기 영덕 천지 1·

덕군의회의 여론조사결과를 가지고 상경해 산자부,

2호기로 대체 의향서 제출, 등 영덕의 운명이 바뀌

국회, 청와대를 방문하고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영덕

는 4년의 시간동안 영덕 지역은 기나긴 침묵에서

군민들의 의지를 전달한다.

깨어나지 못했다. 2005년 이후 핵발전소지원금을 통한 지역경제발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를 계기로 탈핵운동

전론이 대세이던 영덕사회의 여론(의회 여론조사

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시대적 변화 속에

당시 찬성론이 우세한 상황-여론조사결과에 승복한

서‘한국농업경영인 영덕군연합회’ 는 기나긴 내홍

다는 한농연의 배수진이 영덕군의회 특별위원회 여

을 거쳐 2013년 10월 영덕군의회에 2010년 부지지

론조사와 성명서발표 합의 배경)이 핵발전소 유치

역 주민 399명의 동의만으로 영덕군민 전체의사로

반대로 전환하게 된 것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와

왜곡해 핵발전소 부지신청을 한 영덕군의 행위에

핵발전소 유치결정에서 주민참여를 배제한 결정이

대한 문제제기를 하게 된다.

라는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영덕군민에게 설득력을 얻었기에 가능했다.

영덕군 의회가 2014년 1월 1일‘원자력특별위원 회’ 를 구성, 주민여론수렴의 과정을 거치게 됨으로

핵발전소 유치반대로 영덕군 여론을 반전시킨 영

써 본격적 대중반대운동의 계기를 마련하고 2014년

덕군 핵발전소 반대운동내부는 주민투표의 시기와

3월 2일 한농연 중심의 농민 5개 단체와 핵반투위

방법을 두고 갈등 ‘7차전력수급계획’ ( 발표(6월 예

가 결합한‘영덕핵발전소반대 범군민연대’ 가 발족

정)를 앞두고 5월·7월 주민투표를 실시해 삼척처

되어 본격적 반대운동을 시작한다.

럼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핵반투위 주장과 주민투 표법상 절차와 조직구성, 자금확보, 모내기 등 농번

영덕군의회 ‘원자력특별위원회’ 는 2014년 4월

기활동력 부재 등의 이유로‘5월 주민투표 실시 불

8~9일 여론조사(유치반대 58.8%-찬성 35.7%, 주민

가’ 의 한농연 등 지역단체 주장 간의 대립)을 겪게

투표실시65.7%)를 바탕으로 4월 15일‘주민투표요

된다. 갈등의 결과‘범군민연대’ 는 한농연 중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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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조직(천지연대)과 반투위 중심의 범군민연대로

대응논리가 먹히지 않자 한수원 직원과 알바생들을

분리된다. 외부단체들 또한 주민투표실시에 대해 회

동원 800명의 인원을 영덕에 파견해 주민투표가 불

의적 반응을 보여 주민투표 실시 가능성이 불투명

법이니 투표에 참가하지 말라는 선전을 하게 된다.

해진다.

영덕 역사상 가장 치열한 선전전(수 천장의 현수막 이 영덕읍을 중심으로 거리를 도배하고 방송차량을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지역반대단체들은 9월 9일

앞세운 한수원 직원들과 주민투표참여를 호소하는

‘주민투표궐기대회’ 를 통해 11월 11일 주민투표를

연대자 중심의 선전전)이 펼쳐진다. 영덕의 거의 모

천명하고, 군청 앞에 농성천막을 설치하고‘주민투

든 단체 명의의 현수막과 심지어 대기업의 영덕지

표 성사’ 를 위한 릴레이 단식농성을 이어가며 전국

원 약속을 한 현수막까지 산자부 국장이 영덕현지

에 지원을 요청한다. 영덕의 상황에 따라 신규핵발

에 상주하면서 주민투표의 상황을 관리하는 전 방

전소계획의 성패가 좌우된다는 인식에 전국의 모든

위적 주민투표 방해와 주민투표를 성공시켜 신규핵

역량이 영덕에 결집하게 된다. 영덕 내부적으로‘주

발전소 확장을 막겠다는 탈핵진영의 한판 승부는

민투표추진위’ 를 꾸리고 연대자 중심으로‘주민투

영덕뿐만 아니라 전국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

표관리위원회’ 를 구성 본격적 주민투표 준비를 하

켰다. 서명명부 작성을 위해 전국에서 지원 온 일천

게 된다.

여명의 탈핵 활동가들과 선거관리를 위한 투표업무 종사자, 투개표참관인 등 6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

주민투표를 실시하기 위한 기본적 조건인 투표인 명부를 만들기 위해 3차에 걸쳐‘서명버스’ 를 조직

의 결집은 당시 영덕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던가 를 반영한다.

하고 주민투표 명부작성을 위한 서명작업을 진행한 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한수원과 중앙정부는 영

11월 11일 투표 첫날 8,000명이 투표에 참가하는

덕의 주민투표를 불법선거로 규정 성명서를 발표하

놀라운 결과가 나오자 충격에 빠진 중앙정부는 영

고 영덕 각 세대에 공보물을 발송하면서 노골적 방

덕군청 공무원들을 대대적으로 동원해 12일 각 마

해 작업을 한다. 특히 한수원은 지역주민을 회유한

을과 투표장에 공무원을 배치시키면서 투표율 저지

찬성단체를 만들어 지역주민간의 갈등이란 기존의

에 나선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11,201명이 투표에 참가해 91.7% 반대라는 결과 가 나왔다. 1년이 지난 지금 영덕사회 는 경주지진의 영향으로 핵발 전소의 안전성 문제가 현실문 제로 다가옴으로써 찬성에 가 까웠던‘영덕군발전소통위원 회’ 가 영덕핵발전소 진행유보 를 결정하는 등 탈핵이 대세

<영덕핵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 성공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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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바뀌고 있다. 영덕에서 탈


핵운동이 뿌리내리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역조직과

표인 명부상 12,008명 외에 6,573명이 투표일에 새

탈핵운동을 외치는 활동가조직의 대립과 갈등의 문

롭게 추가된 사실은 지역사회 전체에 걸쳐 서명활

제가 우선해결 되어야 한다.

동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과 지역조직이 움직이 지 않고는 대중들을 설득해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은

영덕주민투표의 요구는 영덕군민전체의 동의 없 이 진행된 유치결정에 절차상의 문제가 있기 때문

지역운동에서 대중조직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 를 생각해야 한다.

에 주민투표를 통해 영덕군민들의 의사를 다시 확 인해야 한다는 데 있었다. 이런 주민투표 요구 성

탈핵운동의 대중화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정보의

격에 반해‘정부전력수급정책발표 앞에 주민투표를

접근성이다. 핵과 관련한 문제에서 국가안보라는 논

해야 한다.’ 는 당위성으로 조직도 자금도 투표인명

리에 의해 대부분의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많

부도 고려하지 않고 정부전력수급정책발표에 앞서

은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비공개 정부가

주민투표실시 주장을 굽히지 않는 행동은 탈핵운

공개 될 때 마다(2012년 활성단층 보고서 누락 등)

동내부를 분열 시켰다. 지난 9월 기장-10월 삼척

충격을 받는다. 이런 정보는 정부가 독점을 하는데

주민투표에 대한 재판부의‘주민투표는 지방사무에

다, 밝혀진 사실 또한 대중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해당한다.’ 는 판결은 대중운동이 대중의 눈높이와

소수 활동가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본적 절차에 기초해야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는

이런 정보에 대한 접근성의 한계가 활동가들의 오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전국탈핵운동역량을 총결집

만과 독선을 낳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다시

시키고서도 주민투표 사무의 한계를 절감했던 주민

시작된 영덕탈핵에서 핵심은 이러한 정보에 대한

투표 경험 속에서 볼 때‘한 달안에 준비할 수 있

대중들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고 영덕의 실정에

다.’ 는 주장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선언적이고

맞게 어떻게 구체화 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 구조

무책임한 주장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논의구조에 기존 지역조직 과 귀농인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여 간극

탈핵운동은 에너지 정책의 전환으로 귀결된다고 할 때 활동방식은 대중들을 설득시켜 동의를 얻는

을 좁힐 때 신뢰가 만들어지고 영덕 탈핵운동의 전 망이 만들어 질 것이라 생각한다.

것에 기초해야한다 탈핵을 책임진다는 활동가들은 지역조직을 어용이라 매도하고 자신들을 거치지 않

영덕 주민투표의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탈핵으

는 어떤 연대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주민투

로의 전환이라는 전쟁에서의 승리는 아직도 불투명

표명부 서명활동이 자신들의 주도했다는 이유로 주

하다. 탈핵으로의 에너지 정책 전환을 이루기 위해

민투표 관리위 내에서의 독자적 영역을 요구하며

서는 활동가라 이야기하는 우리들 스스로가 자기

명부를 주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한수원과 중앙정

아집과 관념으로부터의 자유과 사회와 운동에 대한

부의 전 방위적 공세에 맞서 찬성과 반대를 떠나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영덕군민 스스로 우리운명을 결정하기 위해 주민투 내 고향 영덕과 우리사회가 보다 나은 진보로 나

표 참여를 호소하는 상황에 반해 활동가 들이 보인 이런 모습은 과거 낡은 운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아가길 희망하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명을 기초로 작성된 투 - 25 -


│사람사는 세상│

사드는 필요없다. 제발~ 성주평화촛불에 반한 봉덕동 주민

김성규

이영욱 편집위원 feby@nate.com

안시물고기를 제일 예뻐하고 애플 스네일(노란

서는 손바닥만한 엽서에 한글을 갓 뗀 듯한 솜씨로

달팽이)은 번식시켜서 용돈벌이를 할 만큼 전문가

삐뚤빼뚤 "박근혜 실망이야"라고 적은 꼬맹이의 메

급으로 취미생활을 하던 김성규씨는 집에서 어항을

시지에 크게 웃는다.

11개나 관리하는 조용조용한 남자다. 자주 마주치다 보니 현지분들과 안면을 익히고 대구에 살고 있지만 성주가 지리적으로 어느 곳

성규씨처럼 대구에서 자주 오시는 분들과도 반갑게

에 있는지 몰랐다. 지난 7월, 지인들과 함께 사드반

인사하고 친해질 수 있는 것 또한 소소한 재미였다.

대집회 참석을 위해 성주땅을 밟은게 처음이다. 성

시간여유가 있는 날에는 그렇게 만난 분들과 국

주읍에 가까워질수록 빽빽하게 걸려있던 현수막들

밥집, 초등학교 앞 ○○치킨집 등에서 치맥을 즐기

과 성주만의 남다른 집회 분위기에 반한 그는 일주

고 집회참석을 하니 이제는 성주가 '우리 동네' 처

일에 두 번씩 성주를 찾았다.

럼 친숙한 느낌이다. 민주주의의 성지 성주에서 작 은 가게를 꾸리며 함께 지내는 것도 꿈꾸고 있다.

조금 일찍 성주에 도착하는 날에는 집회 장소에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오늘 집회 안하는거 아니

집회가 늦게 끝나 막차를 놓친 여대생을 지하철

야?' 싶은데 여지없이 집회 10~20분 전이면 사람

역까지 태워줬다. 수상한 세월이라 여대생 입장에

들이 이쪽저쪽에서 몰려들다시피 나타나는 것이 신

선 낯선 아저씨의 차에 홀로 타기가 쉽지는 않았을

기하다.

텐데 집회에서 만난 이들이 권하고 함께 사드철회 를 외친 동지애가 믿음이 되어 귀갓길을 함께 하는

집회장소를 주차장으로 옮기기 전, 군청 앞마당

것이리라.

에서 어른들이 집회에 참석하는 동안 부모님들과 동행한 어린이들이 모여서 종이접기를 하던 부스에 - 26 -

8월 말에는 사드철회 파란리본스티커 2만장을 만


하고 세월호 노란우산 프로젝트 팀과 함께 푸른 잔 디밭에 노란 "평화"를 펼쳤다. 성규씨가 성주촛불 100주간 행사인 벼룩시장에 동참하자고 의견을 내놓자 동참은 못하지만 물품후 원이 많아서 11시에 출발하기로 한 계획은 한 시간 이나 늦어져서 12시에 겨우 출발했다. 이미 시작된 벼룩시장은 꼬맹이들의 학용품과 장난감 그리고 무 료분양인 강아지까지 있다. 강아지는 공짜로 입양 할 수 있지만 목줄이 10,000원~ 부랴부랴 무대 가까운 곳에 자리를 펴고 동료들 은 옷가지나 독도사랑전자파차단스티커를 팔고 성 규씨는 테이크아웃컵을 미니어항으로 꾸며서 팔기 시작했다. 조곤조곤 기르는 방법을 설명하고 먹이 까지 챙겨주느라 허리 한 번 펼 새 없이 바쁘다. 3시간 동안 판매한 수익금 전액을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에 전달하고 103번째 촛불집회에

<성주촛불 100주간 행사인 벼룩시장에서 노란달팽이를 판매 중인 성 규씨와“다 키우면 된장찌개에 넣어 드세요~” 라고 농담하는 동료들>

참석했다. 하얗고 파란 비옷들 중에 스마트폰 네온 어플으로 "그런데 최순실은?"을 집회 끝까지 들고

들어 더불어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에 참석했다. 전

있는 이가 김성규씨다.

국에서 모인 대의원들과 당원들에게 나눠주며 성주 의 상황을 알렸고, 당선수락연설을 하는 추미애대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꽤 늦게 끝났지만 다음에

표의 오른쪽 어깨에 붙어 있는 평화를 상징하는 파

는 따뜻하게 입고 오자는 말들만 오갈 뿐 추워서

란리본스티커를 보며 흐뭇했다.

안 오겠다는 사람은 없다.

10월 8일 성밖숲에서 열린 평화촛불 플리마켓에

성규씨가 생각하기에 성주의 촛불집회가 체계적

동행했다. 갓 인쇄해서 색이 선명하던 현수막들은

이고 백일이 넘는 동안 꾸준히 이어 나갈수 있는

여름햇살에 익어서 짱짱한 빛이 옅어졌다. 날씨는

원동력은 과거 민주화운동을 하셨던 이름만 대면

흐리지만 군청 주차장에서 조용하고 깨끗한 동네를

알만한 쟁쟁한 분들이 귀농해서 살고 있는 든든함

몇 마디 나누며 걸으니 금새 성밖숲이다. 아기자기

이다.

한 플리마켓 부스를 돌며 이것저것 쇼핑에 몰입하 니 출출하다. 소문만 듣고 잔뜩 기대한 참외빵은

서울 ○○음대 출신으로 음악에 조예가 깊은 성

이미 매진이라 구경도 못하고 커피콩빵이 달지않고

규씨가 그 동안 함께한 동지들을 위해 2016년이 다

향기로워 줄까지 서서 사먹는다. 구경도 했겠다~

가기 전에 사드반대 촛불집회 무대 위에 올라 트럼

배도 부르겠다~ 어슬렁어슬렁 성밖숲 둘레를 산책

본을 연주해주기를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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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스미토모

장지혁 대구참여연대 정책팀장 movieknight@hanmail.net

참으로 숨 가쁜 정국이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을 빼먹을 수는 없다. 현재 대구참여연대는 릴레이로 대구시청 앞에서 매일 점심시간마다 대표-운 영위원-활동가들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주제는 전범기업이다. 전범기업이란 2차대전 당시 추축국의 전쟁범죄에 협력했던 기업들을 일컫 는 말이다. 주로 한국에서는 일본제국주의 강제점령기 시절 일본이 일으켰던 태평양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식민지 조선인들을 괴롭협던 기업들을 의미한다. 쉽게 이야기 하면 일제 시절 강제동원 사업장(공장, 탄광등 강제노 역소 등)을 운영한 기업이 전범기업이다. 수 많은 일본기업들이 전범기업이 지만, 한국정부는 2010년부터 2016년 6월까지“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 라는 기구를 국무총리실 산하 설치하고 일본 전범기업을 조사하여 발표한 바 있다. 이 과정 속에서 놀라운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다. 대구참여연대는 대구시가 외국투자기업 정책을 펼친이래 1호 투자기업이 된 SSLM이라는 회사를 계속해서 모니터링 하고 있었다. 2011년 투자유치 당시 대구시는 대 기업을 유치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바 있다. 삼성그룹이 SSLM이라는 자회사를 대구시에 설립한다는 것 이었다. 당시에 우리는 기업유치지원 예산과정에의 불투명성을 지적했다. 또한 2년 뒤 삼성이 지분을 매각하 고 투자철수를 할 때에도 고작 2년 투자하고 빠지는 대기업과 예산지원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문제는 삼성그룹이 지분을 매각한 회사가 스미토모화학이라는 일본기업이며, SSLM은 결국 스미토모화학 의 자회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여기까지만 듣는 다면 큰 문제를 못 느낄수도 있다. 하지만 스미토모화 학은 한국정부가 조사하고 인정한 일본의 전쟁범죄 기업이었다. 대구참여연대가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 사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의 발간 자료와 기타 자료를 검토한 결과 스미토모 그룹은 태평양 전쟁 당시 총 102곳의 강제동원 노역장을 운영했고, 심지어 한 곳은 이역만리의 미크로네시아까지 조선인을 끌고 갔다. 그리고 102곳의 강제노역장 중 그나마 인력송출계획이 파악된 혹가이도(북해도)의 고노에 광산의 경우 2500여명의 조선인이 강제노역을 했고, 제대로 지급하지도 않는 저임금, 가혹한 노동환경 때문에 수백명이 탈출할 정도로 악독한 사업장이었다. 그리고 탈출하지 못한 나머지 조선인들도 1945년 8월 당시 귀국하지 못하고 몇 개월 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간신히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나마 진상이 알려진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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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곳의 강제노역장에서 수천명의 조선인이 피해를 받았는데 알려지지 않은 나머지 100여곳에 강제동원된 조 선인의 숫자는 수만 수십만에 달할 것이다. 이런 전쟁범죄 기업이 대구시로부터 예산지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 9월 12일 대구참여연대는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전쟁범죄 기업을 지원한 대구시의 사과, 그리고 전범기업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활동을 하도록 대구시가 나설 것, 스미토모사의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와 배상 및 미지불된 채 남아 있는 우편 예금에 대한 지급등을 요구했고, 스미토모화학의 진출에 협력하고 계속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삼성그룹을 규탄하였다. 하지만 대구시는 아무런 입장을 발표도 하지 않았다. 대구참여연대는 9월말 다시한번 공개질의서를 보내 대구시의 입장과 행동을 요구했다. 그래도 묵묵부답 그래서 시청 앞에서 우리의 요구를 담은 릴레이 1인시 위를 시작하였다. 스미토모화학의 대구 진출과 예산지원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앞서서 계속 이야기 했지만 이들이 전쟁범죄 기업이라는 것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대규모 강제노역장을 운영했다는 점에서 역사 의식과 기업이 가져야하는 윤리성에 대해서 책임추궁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업의 목적이 이윤이라지만 사람 들을 강제로 데려오고, 임금도 주지 않고, 노예처럼 취급했다면 그에 대한 엄정한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하 지만 여전히 한일위안부 협상에서 보듯이 한국정부는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해서 제대로된 추궁을 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우리는 일본 전범기업의 한국진출을 위해서라면 과거 역사에 대한 책임있는 자세와 행동을 보 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이 산업이 화학산업이라는 점이다. 비록 자회사명에서는 그 특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지만 첨 단산업이라는 포장을 벗겨보면 이는 규모가 있는 화학공장이다. 인근에 대규모 공동주택단지가 있고, 취수원 과 가까운 위치에 화학공장이 있다는 것에 시민들은 불안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세 번째 이 기업에 대구시가 각종 세제혜택과 예산을 지원한 까닭은 지역의 고용창출을 위해서이다. 하지 만 2011년말 대구시가 밝힌 512명 유지 2016년도 까지 고용완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현재 고용창출은 애초에 약속했던 절반에도 못미치고 있다. 즉 스미토모 화학은 지역주민의 고용을 명목으로 각종예산을 받아 놓고 약속은 지키지 않고 있다. 즉 일본 전범기업인 스미토모는 대구시민의 혈세에 빨대를 꼽고 쭉쭉 빨아먹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업들 과 여기에 시민혈세를 지원한 대구시를 문제삼지 않는다면 대구시가 조선총독부 산하의 행정기관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통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 이 공장의 설립 기공식에는 그 유명한 박근혜 대변인이 참석한 바 있다. 의심쩍은 마음을 지울수 없는 것은 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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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

1946년과 2016년 10월, 수창동에서 일어난 일 수창1946 프로젝트 김병호 화가 cosmo4189@hanmail.net

1. 1946 수창동 대구 북성로와 달성토성 사이에 위치한 <수창동>은 1946년부터 적용되어 지금까지 불리고 있는 지명이 다. 이미 대구수창초등학교에서‘수창’ 이라는 이름을 쓰긴 했지만 지역의 이름으로 붙여진 건 그 해 부터 이다. 1946년은 또 다른 의미에서 당시 근대 한국 민주화 역사에 중요한 해이기도 하다. 1946년, 대한민국 역사상 미군정에 저항한 최초의 민중운동이 대구에서 일어났으며, 그 장소가 바로 여기 수창동이다. 이 민 중운동은 대구 10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나아가 2,2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잇게 하였다. 1946년을 기억하자면, 광복 이후 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USAMGIK)기의 남한 내 민중들의 삶은 매우 굶주리는 처지였다. 미군정의 쌀 배급 정책이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 콜레라가 창궐한 대구의 굶주 림은 특히 더 심했었다. 이 일대에 2천여 명의 콜레라 환자가 발생하자 치료를 위한 조치들은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전염을 막는다며 대구를 봉쇄해버린 것은 미군정의 폭압적인 실정이자 민중궐기의 촉발이 되었다. 1946년 당시 이곳 수창동에 소재했던 전매지국의 노동자 500명이, 부산철도파업 노동자들과 함께 9월 총파 업을 주도했고, 파업의 물결은 전국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였다. 그 와중에 10월 1일 저녁, 대구부청 앞에서 기아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시위 도중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 황말용, 김종태 라는 노동자가 총에 맞아 사망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미군정이 인정한 친일부역의 대표적인 군상들이 시민들의 가슴에 총탄을 발포한 충 격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발원지인 대구부청 자리는 오 늘날 경상감영공원이며, 이곳 수창동과는 불과 몇 백 미터도 되지 않은 거리에서 일어나 이곳 수창동의 전매지국 노동자 들이 합세하는 형상으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 침,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노동자 들이 시내에 집결하기 시작했고 굶주린 일반 시민들과 학생 들도 시위에 합세했다. 그 인원이 만여 명을 넘어서자 상황은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고, 궁지에 몰린 경찰관들은 군중들 에게 총을 난사하여 17명의 시위대가 죽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태가 퍼져나가는 도중에 주동자로 의심되는 인물이 경찰에 체포되어 끌려가는 모습이다.

그렇게 대구 10월 항쟁은 최초의 반미 민중운동으로 기록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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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고, 이 항쟁은 경상도를 넘어 전라도와 충청도를 비롯해 경기 도와 평안도까지 번진 전국적인 민중항쟁으로 확장되었다. 미군 정은 즉시 계엄령을 선포하고 대응했으며, 당시 이 항쟁으로 죽 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대구10월 항쟁은 그래서 동학, 3.1 운동과 함께 한국3대 민중항쟁의 위대한 저항으로 기억되고 있 다. 그러나 미군정은 이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고 기록들을 말살 하여 당시 그 자료들의 다수가 소실되었다. 그와 더불어 이곳 수창동은 일제가 만들었던 공창이 지금까지

사건 직전인 1946년 10월 1일 낮에 개최된 메이데이 행사

도 존속하여 속칭‘자갈마당’ 이라는 곳이 아직도 명맥을 이어 가고 있는 애잔한 지역이기도 하다. 인근 북성로는 일제가 형성 했던 유흥가의 골목이었지만, 광복 이후 전쟁을 거치며 다양한 계층들이 조성했던 공구골목으로서의 이야기가 서려있다. 도대 체 이곳 수창동에서는 무엇이 있었고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아직도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대구 자갈마당

2.‘1946’명명 2016년 문화관광체육부와 대구시에서 지원하는 청년예술창조 공간 조성사업은 지역의 버려진 폐시설을 지역문화예술의 새 플랫폼으로 만들자는 기획으로 시작되었다. 이 사업은 전국 6개 도시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폐시설을 문

현재의 북성로 풍경

화예술창작공간으로 업사이클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대구 는 그 적정 장소로 1976년에 지어졌던 수창동 구전매청 사택(전매청아파트)을 선정하였다. 십 수 년 동안 비워진 전매청아파트의 사택부지는 비밀의 정원처럼 고혹적인 폐허로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 사택을 거쳐 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 또한 그냥 그대로 버려진 채 켜켜이 쌓인 먼지로 무겁게 내 려앉아 있었다. 일명 전매청(Kt&G) 구사택부지의 청년예술창조공간 조성사업 <수창1946 프로젝트>는 이런 의미들과 함께 여러 가지의 이유로 명명된 이름이다(공교롭게도 당시 전매지국 최초의 사택이 생긴 해 역 시 1946년이다).

3. 2016년 수창동 <공간의 기억> 예술가들이 모였다. 대구의 예술가가 다수이고 또 멀리 경기도와 대구 인근의 외지에서도 예술가들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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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

여들었다. 왜 예술가들이 이곳, 수창동으 로 모였을까? 풍경이라곤 현재 주차장으 로 사용하고 있는 앞마당과 폐허가 된 작은 아파트 두 동, 그리고 아파트 사이 로 무작정 자란 식물들이 규칙 없이 뒤 엉켜 황량하기만 한 이곳에 말이다. 장미 덩굴이 삼층 아파트의 키만큼 훌쩍 자라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이곳 수 창아파트는 그로테스크하게 자란 잡초들 과 오래된 히말라야 그리고 50 여년 된 모과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곳은 마치

2016년, 전매청(Kt&G) 구사택부지의 후면 풍경

비밀의 화원처럼 오래 전 사람들의 흔적 들이 박제로 굳어 있었고, 아무렇게나 닫혀있던 아파트 내부는 마치 멸망한 미래사회의 한 단면을 상상하 게 했다. 바로 이곳, 수창동 전매청(Kt&G) 구사택으로 유령처럼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예술의 조우였고 장르였고 실험이었다. 건물이 다시 지어지기 전에 모여든 것도 그간 없었던 일 이고, 폐허 안에서 이렇게 집단 예술실험이 이루어진 것도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아파 트의 안과 밖, 그리고 수풀과 덩굴들 사이의 버려진 공간에서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설치를 하고, 연 주를 하고, 무용을 하는 예술실험들이 이어졌다. 만들어진 공간 안에 선정되어 들어온 작가들의 예술작업이 아니라 만들어지기 전의 폐허 같은 공간에 제 발로 걸어들어 온 예술가들의 예술이 펼쳐졌다. 그 안에는 기 존의 예술이 있었고, 거리의 예술이 있었고, 고독한 저만의 예술이 있었다. 미술과 음악이 있었고, 무용과 공예 그리고 그것들을 담은 영상이 있었다. 미술은 그림이 있고, 시가 있고, 설치가 있었고 또 퍼포먼스가 있었다. 음악은 째즈와 블루스가 있었고, 가야금과 소리 그리고 국악과 전통가요가 있었다. 옷을 만드는 화 가가 있었고, 그 옷을 입고 춤을 추는 현대무용이 있었다. 이곳 수창동에 모여든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방식 으로 예술을 실험하고 유희하고 투신했다. 그리 고 그들은 이곳 수창동에서 있었던 역사와 지역 의 서정을 해석하고 버려진 폐허의 공간을 기억 했다. 하나하나 예술실험들이 이어지고 그것은 사진과 영상 그리고 텍스트로 면면히 기록되었 다. 2016년 수창동의 여름은 그간의 지난했던 세 월을 비켜서며 침묵으로 일관했던 공간에게 말을 걸었다. 예술가들은 무리로, 혹은 홀로 와서 공 간의 기억을 유추하거나 각자 분산되어 그들만의 폐허의 공간 안에서 자신의 작업을 적용시킨 김민정작가의 설치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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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폐허와 조응했다.


가창창작스튜디오(사진은 본문의 내용과 무관함)

(현재 우리나라에는 다수의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예술창작스튜디오가 지역마다 구비되 어 있다. 보통 이러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서울 경기 지역부터 대구 부산에 이르는 여러 도시에서 행해지 고 있으며, 대개 지자체가 운영하거나 지역문화재단 등에서 위탁관리를 하는 형식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이런 공간들은 거의 유사한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각 지역마다 선정된 소수의 작가들이 일정기간 머물며 지원을 받는 예술가 지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가 구성하는 관리시스템의 한계로 인해 다 수 예술가들의 보편적인 복지, 지원과는 거리가 있고 또한 자유로운 창작공간으로서의 역할은 미진한 편이 다. 이미 만들어진 공간이 주는 부담감이 적지 않고 공적공간의 운영방침을 자유분방한 예술가에게 적용하 기에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 한 이러한 예술창작공간은 이미 지 어진 건물에 소수 기성 작가들을 선 정하여 입주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 기 때문에 예술가들이 공간을 해석 하거나 공간과의 조화를 이루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수창 1946 프로젝트 첫 번째 기획 이미지

4. 2016년 10월, 수창동에서 일 어난 일, <수창1946 프로젝트-공 간의 대화 그리고 창생전> 공간을 기억했던 예술가들이 폐허 안에서 그 뜨거운 여름을 보내며 그

수창 1946 프로젝트 두 번째 기획 <공간의 대화>에 참여 중인 김민수 작가의 설치, 행위미술과 사진작가 허재원의 설치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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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

들의 행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되돌아갔고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가을이 성큼 다가 온 2016년 10월, 예술가들은 아직도 폐허인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이곳 수창동 전매청 아파트는 짧은 시간이지만 지난 여름 예술가들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겨져 있었고, 작가들은 새로운 시간의 흔적들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전체가 함께 조응(照應)하고자 하였다. 공간은 어슴푸레 새로운 기억들로 다 시 피어나고, 예술가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그들과의 만남을 조합했다. 한국근대가요를 째즈로 편곡했던 김 명환트리오의 연주를 뒤로 작가 김민수와 이재호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옷을 이종희현대무용단과 현대무 용가 권혜영집단이 현대무용으로 승화시키는 등 상상을 넘나드는 콜라보가 이루어지고, 사택 내부에서는 회화와 영상이 만나고, 설치미술과 퍼포먼스가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예술가들이 공간의 기억을 꺼집어낸 뒤 펼치는‘공간과의 대화’ 였다. 폐허의 공간은 작은 목소리로 화답하고 화가들은 그것을 받아 적 었다. 작가 하광석은 아름답고도 개념적인 영상설치로 공간을 향한 예를 갖추었고 설치미술가 리우는 가상 의 공간을 상상했다. 작가 김건예는 얼음 덩어리에 꽃을 심고 보석을 담아 하나의 공간이 소멸하고 남은 흔 적을 통해 역설적으로 공간의 새로운 탄생을 예고했다. 페인터이자 설치 미술가 서옥순은 석고가루를 채로 걸러 방안과 거실, 화장실 등 내부 공간 전체를 하얗게 덮어 세월의 무게를 흰 눈처럼 표현하고 그 위에 자 신의 설치작품을 올려놓았다. 설치미술가 이재순은 나뭇가지를 모아 하나하나 가는 실로 수없이 반복적으 로 감고 또 엮어 길고 긴 선으로 환원시킨 작품‘파동’ 을 통해 새로운 공간의 기를 조형적으로 표현하였다. 작가 김윤섭은 순례자의 시각으로 회화와 설치의 접목을, 설치작가 정세용은 엔틱한 소품들을 이용한 시간 성에 대한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개념미술을 선보인 임동훈은 사택 내외부 폐허의 공간에서 오랫 동안 버려졌던 작은 조각 알맹이들을 물성에 관계없이 미니멀하게 재구성하여 폐허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나갔다. 공예작가 오명석은 해먹에서 착안한 이미지를 굵은 와이어로 스트리트퍼니처를 상상하였고, 대학생 으로 이루어진 그룹 SEESAW와 TAR은 집단으로 참여하여 그들만의 언어로 복합장르의 설치미술을 연출 하기도 하였다. 설치미술가 오지현은 한 땀 한 땀 엮은 천으로 공간의 여러 곳에 배치, 거미줄처럼 표현하 여 세월의 무게를 상징하는 작품 을 출품했다. 김민정작가는 아파 트 내부 전체를 붉은 색으로 칠하 고 조명을 달아 자신만의 환타지 안에 다양한 드로잉들을 선보였으 며, 거리의 예술가들인 팔로와 그 의 친구들 그룹은 놀이와 축제를 구성해 보드를 타고, 사운드 아트 인 디제잉과 그래피티를 혼합하여 ‘즐기는 예술’ 을 표방하였다. 한 국무용가 김효주는 살풀이를 통해 StraBe의 설치작품 <공간의 기억>

이 공간의 시간을 지켜온 생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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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제를 올렸으며, 새로운 생의 문을 여는 것에는 현대무용가 권혜영의 창작무용으로 이곳의 재탄생 을 알렸다. 김명환밴드의 째즈는 이가야가 이끄는 트리오무뉘의 가야금과 트럼본이 이어갔으며, 대구시향에 서 오랫동안 첼로를 연주했던 이상희는 직접 제작한 전자첼로를 들고와 아이들과 협주를 하였다. 싱어송라 이터 김강주는 공간을 보는 즉시 즉흥적으로 작곡을 하여 공간을 두드렸고, 이호우는 감성 깊은 보컬로 노 래를 했다. 트럼펫과 건반, 전자첼로를 함께 쓰는 아트키키는 블루스와 째즈로 이어갔고, 핑거스타일로 이 름을 날렸던 정흠밴드는 달콤한 보컬로 깊은 밤을 수놓았다. 이 것이 폐허인 한 공간에서 동시간대에 이루어 졌으며, 무려 10시 간에 이르는 시간동안 리허설과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퍼포먼스가 이어지는 동안 길 건너 예술발전소 수창홀에서 는 근자에 볼 수 없었던 라운드테이블이 구성되어 버려진 공간 에 대한‘수창1946 프로젝트의 난상 토론 워킹 프로세스(기획최윤정)’ 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사진:사진작가 이인우, 영상기록: 영상설치작가 윤동희, 다큐멘 터리: 대구MBC) 또 이 퍼포먼스를 미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에는 큐레이터 최윤정과 조수현이, 디스플레이에 디자이너 전유진과 연극인 이동수가 함께 했다- 그렇게 공간과의 대화는 빈 틈 없 이 이어졌고, 예술가들 서로의 조합은 즉흥에 가까우리만큼 빠 르게 이루어졌다. 왜 이 작가들이 이렇게 모이고 함께 했을까? 첼리스트 이상희의 전자첼로연주

5. 예술가는‘전시용 예술품’ 이 아니라 그 자체로‘예술’ 이다. 예술, 혹은 예술가가 우리 사회(기관 혹은 단체 등)에 부름을 받게 될 때는 무언가의 조건이 있다. 그것은‘그곳’ 과 예술가 양자에 부합되는 조건이 맞을 때‘거래’ 가 성사되는 형태를 갖 춘다. 그러나 그‘거래’ 는 부당하기 쉽고 때로는 매우 불합리하 게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는 현재 우리사회에서 벌 어지고 있는 몇 가지 현상으로 대변되기도 한다. 흔한 말이 되 어버린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통해서 예술가들은 ‘전시용으로서의 예술품’ 이 된 경험들이 부지기수다. 지역의 창 작센터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여러 곳의 (기관 지원 의)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예술가들은 하나의 전시품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지역의 문화공간을 채워주는 콘텐츠개발자 역할을 하지만, 지자체가 주관하는 공간의‘장식용으로서의 예술품’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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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과 트럼본의 협연으로 이루어진 무늬 트리오(上)와 현대무용가 권혜영집단의 오프닝 퍼포먼스(下)


│ART & CULTURE│

할을 하는 것이 다반사다. 예술가들은 극소수가 지원 받고, 그 극소수는‘지원받음’ 에 대한 댓가를 의무적 인 작품발표의 형식을 통해 보답을 강요받는다.(그것은 때로 그것을 운영하는 단체의 과오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것을 구성하게 했던 구조의 문제이며, 구조 분석의 소흘함에서 비롯된 것일 확률이 높 다.) 이것은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 작가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서 일정 기간 내 의무적인 작품 발 표 외에도 일정기간 지역민들에게 작업실을 개방하는 오픈스튜디오를 실시해야 하며, 학예연구자들이 기획 하는‘(일방적인)주제’ 에 부합해야 한다. 그것이 지원받음에 대한 조건이다. 그러나 그 조차도‘그것’ 을누 리는 것은 극소수의 예술가에 국한 된다는 사실이다. 예술가들이 그동안 여러 곳의 공간에서 부름을 받았 고, 또 그것에 대한 화답이 외형적인 것과는 달리 매우 불행한 형태로 흘러간 사실들이 밝혀짐에 따라 그들 은 어느 정도 의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의심은 불신으로 이어졌다. 예술가들이 기관이나 어떤 단 체에 의해 갑섭을 받거나 종속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지 원’ 이라는 이름으로 예술을‘자원화’ 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예술가들은 때로 저들이 원하는 대로 그대로 둘 때 어쩌면 가장 자유롭고 좋은 결과를 내기 도 한다. 의무적인 결과를 제출해야 하는 시스템과, 그것을 틀 안에 넣어 상품화할 때 예술은 장식품으로서 의 한계를 맞거나, 예술가들은 소모품으로서의 결과와 맞서게 된다. 많은 경험을 통해 이제 예술가들은 그 들 스스로 방어를 하거나 미묘한 자기검열을 하게 되었다. 예술이 창작으로서의 예술이 아닌 어떤 부품으 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면 예술가는 설 자리가 사라지고 그들 안에서의 소통은 점차 소멸되고 말 것이다. 무엇이 예술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예술가들이 납득할만한‘무언가’ 가 필요한 시점이 이미 지났다는 이야기이다. 예술가는‘전시용 예술품’ 이 아니다.

6. 페허를 선택한 <수창1946 프로젝트>와 예술가들 예술가들이‘이미 만들어진 공간(구조적 결함을 경험했던 공간)’ 이 아니라 (폐허지 만) 앞으로‘만들어지게 될 공간(미생의 공 간)’ 을 주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 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 그 공간의 시간과 대화하고, 스스로의 동기에 의해 그 공간을 조성한다는 것에 매우 큰 의미를 두는 것 이다. 누군가에 의해 조성된 기성의 공간 안에 예술가들이 부품처럼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 자신을 위해, 또 다음에 올 사람들을 위해 그 공간 안에 스스로 뿌리 수창동 사택부지의 내부 공간 中 (2016년 사진작가 이인우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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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내리는 것이다. 그 공간은 일방적인 조


건이 없다. 그 공간은 예술가와 함께 업사이클링 되는 것이다. 공간이 숨을 쉬고 공간이 예술가와 함께 호 흡을 하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모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곳은 다양한 장르가 자유롭게 만나고, 다양 한 퍼포먼스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다양한 양식이 충돌하고 자유로운 상상과 유쾌한 창작을 이어나가는 공간이다. 그런 교감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통해 어떤 가능성을 찾고 그것이 완전한 형태가 아니어도 충만 한 자유를 기대하게 된다. 공간은 예술을 지배하지 않는다. 예술가들은 그 공간을 사유화하지 않는다. 함께 그 공간을 조성하고, 함 께 참여하며, 함께 꿈을 꾼다. 예술가들이 공간을 선택했고 그 공간이 그들을 불렀다. 소외받거나, 스스로 소외되길 원했던 예술가가 밖으로 나와 무언가를 선택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페허’ 를 선택했던 <수창 1946 프로젝트>와 예술가들은 무엇을 위해 그 공간을 선택했으며, 다시 또 그 공간에서 모일 상상을 할까? 예술가들은 누구를 위해 스스로 그 공간에 왔을까? 이제 예술가들은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 새롭게 태어난‘과거의 폐허’ 로 다시 모일 것이다. 비록 모든 것 이 그들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지라도 그 과정만큼은 함께 꿈을 꾸었고, 또 그 구조 안으로 들어가 치 열하게 펼쳤던 퍼포먼스를 잊지 않을 것이다. 예술이‘고급’ 이어야만 할 이유는 없지만 부속품 끼워 맞추기 식의 저급한 역할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술은 쓰고 버리는 물건이 아니다. 예술은 사유화가 될 수 없 다. 예술참여는 누구나 가능하며, 창작은 어떤 계층의 어느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한다. 예술은 예술과 만 나고, 예술은 비예술과 만나고, 예술은 거리와, 예술은 사회와, 예술은 사람과 만나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 게 하는 것이‘예술을 스스로 꿈꾸게 하는 것’아닌가 한다. 예술가들이 폐허를 선택 했던 것은 그것이 좋 아서가 아니라 폐허가 가지는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의 여지에 의미를 둔 것이다. 벽에 못 하나 박지 못하게 하는 어떤 예술창작공간을 바라보며, 자유로운 창작과 유쾌한 협업이 이루어지 는 새로운 공간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 상상들이 모여서 새로운 예술생태계가 조성되었으면 좋겠다(1946 년 10월 그날, 수창동에서 일어났던 역사를 상기하며 2016년의 10월의 수창동에 새 뿌리를 내리자. 그래 서 우리가 그렇게 모여 노래하고 춤추고 그림을 그렸던 것 아니겠는가! 이것도 어쩌면 혁명의 시작이 될 것 이다). 창작은 누구나 누릴 자유가 있다. 문득, 자유로운 예술은‘놀이’ 이고, 예술가는 샤먼이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16년 11월, 김병호(수창1946 프로젝트 <공간의 대화-창생전>기획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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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Cine│

7시간·사드까지, 기록의 사유화가 남긴 오늘

장지혁 대구참여연대 정책팀장 movieknight@hanmail.net

최근 지난 정권의 외교적 결정과 관련한 논란이 이어지 고 있다. 그런 시기에 <대통령 기록전쟁_노무현, 대통령기록

각설하고,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났다. 나는 참여정부

을 남긴 죄(전진한 지음, 한티재 출판, 2016)>를 읽고 있다.

지지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몇 가지 인정하는 업적이 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읽고 있는 책과 화제가 일치하니

그중 일부가 바로 정부의 기록 관련 정책과 정보공개정책

신기할 따름이다.

이었다.

우리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광범위한 기록문화

책을 읽으면 노무현 정부가 기록과 관련된 정책을 어떻

를 찬양하면서도, 오늘날 대한민국 기록이 어떻게 남겨지고

게 형성했는지, 그것이 왜 중요한 일인지, 그 일로 인해 참

있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기록할수록 불리한 지배집단도

여정부가 이후 정권에게 왜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는지 이

물론이거니와 기록하면 한대로, 하지 않으면 않는 대로 조

해할 수 있다. 참여정부를 먹잇감으로 삼은 자들은 자신의

작되어 탄압받은 반대세력도 마찬가지였다. 양자 모두에게

기록을 절대 남기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

기록은‘보안위배’ 였고, 조직보위를 위해 기록을 남기지 않

마도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으니 맞아 떨어질 것이다.

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4월 16일 청와대에서 일어난 7시간의 그래서 우리 사회는 카더라 통신이 난무한다. 누가 무슨

역사를, 그토록 한국 정부가 부정하던 사드 배치가 왜 갑작

결정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협상을 하든‘카더라’ 를통

스럽게 결정됐는지 영영 모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30년

해서 추측하고, 비난한다. 종국에 가면 진실은 아무도 모르

뒤 미국 문서보관소의 먼지 쌓인 기록을 찾아 헤매게 될 것

게 생산되고 유통됐다. 세상이 이러니 공공기관 중앙부처,

이다.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책 43쪽은 아래와 같이 기록

지자체에 공식적인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숨이 턱턱 막힌다.

하고 있다.

“왜 (정보공개청구) 하셨어요” ,“XX 새끼, XX놈” 과 같은 어이없는 발언과 욕설도 듣는다. 국회의원에게 제공해 언론 에는 공개되었지만, 시민에겐 줄 수 없다며 비공개 결정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전에는 공개했지만 지금은 공개할 수 없다는 고용노동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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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활동가로서 비통 한 심정으로 기록하고 있다. 책은 그 제목처 럼 기록 전쟁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은 그 참혹한 전쟁터를 기록 한 우리 시대 기억이 될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두 기록은 민주주의를 위한 기본 조건이다. 전제 군주제나

려운 것은 몇 가지 킵(Keep)해두었다는 핑계로 진행하지

독재 체제에는 기록은 없을 수도 있다. 그저 한 사람 마음

않은 정보공개와 기록에 관한 업무를 떠올리게 해 다른

에 모든 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다르다.

의미(?)에서‘아…좋지 않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사실이

민주주의는 서로 갈등하고, 논의하고, 반대하기 때문에 스

다. 그 느낌은 책을 읽을수록 노동량을 더 늘려야 한다는

스로 정당성을 증명해야 한다. 기록의 객관성은 필수적이

압박이었다. 하지만 정말 기록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이들

다. 누가 의사결정에 참가했는가, 누가 어떤 판단을 하는가.

은 한 번쯤 살펴보아야 한다. 상대방을 위해서도, 우리를

이 때문에 국회에는 엄청난 속기록이 존재하고, 헌법재판소

위해서도.

는 소수의견과 그 이유를 기록해서 국민에게 공개한다. 덧붙임. 이 글을 쓰는 동안 대통령 연설문과 청와대 각 그런데 행정부와 청와대는 왜 그러한 의무에서 벗어나 있

종 기록이 최순실 씨에게 넘어가고, 최 씨가 정책 결정에

는가? 이는 시민이 누려야 할 기본권 침해다. 그런 의미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충격적인 언론보도를 접했다. 어느 페친

서 이 정부는 기록을 특정인과 특정 집단을 위해서 사유화

이 썼다. 보수정부인 줄 알았는데 정부가 아니었고, 왕정국

할 뿐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헌법적이

가인 줄 알았는데 신정국가였다. 우리스스로 자조하는 단어

다. 물론 이 정부의 반헌법적인 행태가 이뿐만은 아니지만.

인‘헬조선’ 에 사용된 조선이라는 옛 국가에게 미안해졌다. 우리는 명과 청에게 인증 받은 조선이란 국가보다 못한 나

저자는 책 곳곳에서 어떻게 이 기록의 민주주의를 지난

라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가 망치고 있는지 기록, 정보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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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회원│

“우리 삶과 밀접한 경제문제도 시민운동에서 고민해야”

‘지역과 소셜비즈’김언호 회원

글. 대담 김수상 부편집위원장 kimss21@hanmail.net

대구참여연대 상근자로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

대구참여연대 상근활동가로 근무할 당시와 지금을

니다. 언제부터 근무하셨으며 당시에 어떤 일을 하

견주어볼 때, 앞으로 시민운동은 어떤 길을 모색해

셨는지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대구참여연대가 1998년 4월 11일에 창립했는데,

“정치를 일상적인 삶의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활

그때부터 상근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2008년 8

동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전의 시민운동은 의도적

월에 사직을 했습니다. 1년을 휴직하기는 했지만,

으로 정치와 거리두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딱 10년을 채우고 나온 셈입니다. 상근하면서 주로

모든 삶은 정치적인 것과 분리될 수 없는데도 마치

회원사업부, 지방자치센터, 예산감시센터 등에서 일

정치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했던 것 같

을 했습니다. 초기 3~4년은 회원사업부에서 일을

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처럼

했습니다. 참여연대가‘권력 감시운동’ 을 하는 시

시민운동도 정치적 의미가 분명히 드러났으면 합니

민단체이기는 했지만, 저는 지역조직에 대한 고민

다. 또 시민운동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경제와 관

이 더 많았어요. 그래서 구별모임, 구미의 회원모임

련된 문제도 다루어주셨으면 합니다. 비정규직, 일

등을 시작했습니다. 회원 분들에게 전화를 드리고,

자리, 양극화, 저출산 등의 문제는 우리의 일그러진

안내문도 보내고, 직접 만나는 모임도 열고 그랬던

경제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제 분야의

기억이 나네요. 대구에서 처음으로 의정감시단 활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와 활동이 더 필요할 것 같습

동을 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대구시의회에서 본

니다.‘밥은 하늘이다’ 라는 말도 있는데요. 제 생각

회의나 상임위가 열릴 때 주부회원들과 함께 방청

에는 이 문제가 진짜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밥을 만들기 위한 쌀을 누구와 어떻게 생산하고, 어떻게 나누고, 누구와 먹고 등등 여기서 많은 이 - 40 -


야기를 건져 올릴 수 있을 거예요. 이런 문제들을

업과 유사합니다. 과

가지고 시민들과 함께 고민한다면 많은 이야기가

거의 마을공동사업은

나올 거예요. 우리는 자신이 처한 경제적 문제를

경쟁을 통한 이윤의

가지고 사회를 인식합니다. 정치적인 문제는 ‘정

창출과 독점이 아니

답’ 을 가지고 판단을 하겠지만, 경제 분야는 좀 다

었습니다. 노동력을

를 것 같습니다. 시민운동도 이제는 운동의 차원을

교환하던‘품앗이’ 나

깊고 내밀하게 다듬어서, 경제적 문제에 대한 고민

관혼상제에 필요한

을 좀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물을 공유하던 동 기, 부역 등이 그것

‘지역과 소셜비즈’ 에 근무하시는데, 하시는 일을

입니다. 요즘 이야기 하는 사회적자본이나

구체적으로 들려주시죠.

공유자산 등의 개념을 거기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 “몇 년 전부터‘사회적 경제’ 에 대한 관심이 많

합니다. 사회적자본의 강화나 자산의 공유를 통해

아졌습니다.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이

서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을 그것과 연결해서

그것입니다. 저는 2011년부터 마을기업을 지원하는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흔히 중간지원조직 이라고 하는데요. 마을기업은 행자부에서 지원하는

가족 얘기 등, 최근의 근황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입니다. 마을이나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자원 을 활용한 수익사업을 통해 공동체 활성화에 기여

요즘 조금 바쁜 계절입니다. 연말이면 한 해 사업

하는 조직을 마을기업이라고 합니다. 저는 주로 경

정리해야하는데 평가를 받아야합니다. 내년 사업계

북 쪽의 마을들을 많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주민

획도 세워야하니까 일이 같이 겹쳐서요. 중1, 초2

들이 함께 마을기업을 만들려고 할 때 이런저런 안

에 다니는 두 딸이 있는데 아이들이 너무 바빠요.

내를 하고, 지정된 마을기업이 사업을 할 때 필요

집사람도 일을 하니, 아이들도 학교 마치고 나서도

한 다양한 지원을 연계해 주기도 합니다.”

학원이나 이런 곳을 다녀야해서 아이들에게 늘 미 안한 마음입니다.

저와는‘마을기업’관련으로 만난 적이 있는데, 마 을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전망에 대해 대구참여연대

대구참여연대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세요.

회원 분들께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구참여연대가 회원조직이지 조합조직은 아니 “마을기업은 행정자치부의 지원사업입니다. 좁은

잖아요. 회원참여에 대한 부담을 많이 덜었으면 해

의미로 마을 공동사업이지요. 이런 지원사업 이 있

요. 저도 회원으로써 자주 참여하기는 좀 쉽지 않

기 전에도 마을이나 공동체에서는 다양한 공동사업

아요. 출장 다니는 날도 많고 모처럼 일찍 마치면

을 해왔습니다. ‘농촌체험마을’‘색깔 있는 마을

좀 일찍 가고 싶고 그렇습니다. 권력 감시운동을

만들기’등 다양한 마을 단위의 지원사업이 있었습

하는 시민운동단체니까 그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니다. 행정자치부의‘마을기업’ 도 그런 종류의 사

역할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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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현장은 지금│

철도노동자의 파업은 외롭지 않습니다!!

최성호 전국철도노동조합 부산지방본부 노동안전국장

반팔입고 시작한 파업이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었다.“파업투쟁 42일차”돌이켜보니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성과연봉제 저지투쟁으로 시작한 파업은 지금 최순실 사태를 아니 박근혜 사태를 맞이하여 새로 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전국의 7500 파업조합원들과 현장에 근무중인 만여명의 조합원들은 한마음으로 박근혜퇴진과 성과연봉제 저지가 파업투쟁승리이며, 숭리의 그날 현장으로 복귀하자고 서로 굳게 손을 맞잡고 있다. 철도가 파업을 한다는데 열차는 다니고 있다. 철도는 필수공익사업장이라 필수유지업무자가 존재한다.약 70%의 조합원은 파업을 할 수 없는 사업장이다. 또한 파업참가인원의 50%를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열차운행은 지속되는 것이다. 물론 화물열차와 일정 새마을,무궁화는 감축운행하고 있다.그러나 몇시간의 교육만으로 열차의 안전운행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지금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대체근무자들의 오작동과 상황대처 미비는 대형사고로 직결될 수도 있기에 파업중인 철도노동자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철도노동자들이 국민의 발인 철도가 사고에 노출되고 있음에도 장시간 파업을 지속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와 공사의 일방적 성과연봉제 변경에 대한 투쟁이다. 공사는 5월20일 성과연봉제 보충교섭을 시작한지 단 일주일만인 27일 2차 교섭에서 교섭철회를 요구하였 고, 5월30일 이사회에서 일방적으로 성과연봉제를 통과시켜 보수규정을 변경하였다.당시 130여개 공공기관 이 거의 동일한 시기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였고 이는 6월초에 있는 박근혜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공공기관 기관장회의 보고용이었슴이 드러났다. 법률에 의하면 임금체계의 변경은 노사간 합의로 시행하여야 함에도 정부와 공사는 불이익 변경이 아니라는 억지를 부리며 성과연봉제를 이사회에서 의결하였고,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하자 법원에 가서 판단 받아오라고 몽니를 부리고 있다.특히 다수의 공기업노조가 동시 파업에 돌입하였음에도 철도노조에만 불법이란 덤터기를 쒸워 강경일변도로 일관하고 있다.노사합의로 변경해야할 임금체계를 일방변경하고 억울하면 법에 호소하라니 그럼 노사교섭은 왜 필요하며 노사합의해야한다는 법 문구는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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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국민의 기본적 생활은 지키기 위한 투쟁이다. 공기업의 책무는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다. 철도,가스,병원,상수도등 모든 공공기관 은 국민의 기본적 생활을 책임지기 위해 존 재한다.그런데 이러한 공공기관에 성과를 내라고 하니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답답하 다.철도만 해도 무엇을 가지고 성과를 측정 할 것인지도 없다.단지 정부의 방침에 따라 사진출처 : Focus news

무조건 성과연봉제를 도입해놓고 그 방법에

대해서는 노사간 협의해 보잔다.그럴듯한 속임수이다.“일잘하는 사람에게 많은 임금을 주겠다”솔깃한 말 이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무엇을 가지고 평가하는지 모른다.단지 기존의 평가시스템을 준용하겠다는데 그 렇다면 평가자인 관리자에게 줄서기 하라는 표현일 것이다. 대다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철도현장이 누가 잘하는지 평가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평가상 생산성 향상은 인력의 감축이나 외주,용역화로 나타나고 있다.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기관별,조직별로 생산성 향상을 도모할 것이고 이는 고용질의 약화와 철도안전의 도외시가 명약관화하다. 셋째 박근혜정부의 노동정책 개악 저지 투쟁이다. 최순실은 대기업으로부터 수백억을 받았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최순실은 박근혜를 뒤에서 좌지우지 했 다.이제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2013년 KTX민영화 저지 파업투쟁에서도, 2016년 성과연봉제 저지 파업투쟁 에서도 정부와 공사의 불통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말이다. 대기업은 지금까지 해고의 자유와 돈되는사 업의 민간이양을 꾸준히 요구해 왔고 박근혜 정부가 화답한 것이 공기업의 민영화와 성과연봉제인 것이다. “댓가없는 뇌물은 없다” 장사꾼인 기업가들이 수백억을 왜 쾌척했겠는가? 현재 가장 돈을 버는 사업인 KTX 민영화와 공기업부터 도입해서 민간기업으로 전파되길 바라는 성과연봉제 아니 성과퇴출제 이는 바로 대기 업과 먹튀자본들의 요구였던 것이다. 성과연봉제와 함께 제출된 저성과자 퇴출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 이이며 이는 해고의 자유를 기업에게 주는 것이다. 철도노동자의 성과퇴출제 저지를 위한 파업투쟁은 오늘도 지속된다.파업돌입후 정부와 공사는 40여명의 지도부를 고소고발하였고 250명을 직위해제하며 해고시키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그러나 철도노동자들은 흔 들리지 않는다. 성과연봉제가 현장에 도입되면 동료는 적이 될 것이고, 일자리의 불안전은 철도안전을 위협 할 것이기에 동료의 손을 맞잡고 파업투쟁을 지속해 나가는 것이다. 철도파업에 많은 지지와 연대를 바라 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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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참여연대는 지금│

[시정감시활동] ‘새누리당, 시의원 보궐선거 공천하지 말라’성명 발표(9.19) 합의제 감사위원회 설치 및 공익제보 민-관 네트워크 구축 제안 (9.20) 대구지역 6개 현안이슈 국정감사 요구(9.22) 7대 대구시의회 의정활동 평가결과 발표(9.28) ‘대구지역 지방자치단체 자활기금 방치하고 집행의지 부족’보도자료 발표 (10.13) 대중교통 정책실패 시민에게 전가하는 시내버스ㆍ도시철도 요금인상 반대 성명 발표(11.4) 대구시의회 행정사무감사 7개 시정현안 행정사무감사 촉구 성명(11.8) 전범기업 스미토모 예산지원 중단, 사죄·배상 촉구 활동 -전범기업 스미토모 공개 사과ㆍ배상 및 시민혈세 지원 중단 촉구 활동 기자회견(9.12) -전범기업 스미토모 지원한 대구시에 공개질의 (9.26) -고용창출 지키지 않는 스미토모 지원 중단 논평 (10.24) -1인 릴레이 시위 진행 중(10.26~)

박근혜 - 최순실 국정농단 규탄 시국활동 - 박근혜대통령 퇴진촉구 대구참여연대 시국성명 발표(11.1) -‘권영진 시장의 시국 및 지역현안 발언, 문제 있다’성명발표(11.2) - 박근혜 퇴진을 위한 대구시민 비상행동 선언 기자회견 (11.3) -‘대통령은 물러나서 특검의 수사를 받아야 한다’성명 발표 (11.4) -‘내려와라 박근혜’범국민 시국대회 참가(11.12/서울) -‘박근혜-최순실’지역농단 공익제보 전화 개설 보도자료(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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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참여연대는 지금│

[회원사업] 2016 신입회원 한마당(9.22) 회원선언 “사드가고 평화오라” (10.4) 대구참여연대 르뽀창작‘작당’특별강좌(10.17~10.31) 2016 시민학교‘문제는 민주주의다!’(11.8~11.22) 대구참여연대 사무실 이전 기금을 위한 후원주점(11.25)

[연대사업] ‘대구시립희망원의 비리와 인권유린에 대한 국회의 철저한 국정감사 촉구’기자회견 (9.19) 사드반대,‘주민 비하하는 성주군수는 이미 군수가 아니다’기자회견 (9.19) ‘1017 빈곤철폐의 날 대구경북 조직위원회’기자회견 (10.10) ‘대구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총파업 지지 및 대구교육청의 성실교섭 촉구’기자회견(11.3) 내려와라 박근혜 대구 시민 시국대회(11.5) 내려와라 박근혜 대구 시민 2차 시국대회(11.11) 전태일 46주기 대구시민노동문화제(11.18~23) 전태일 46주기 대구시민노동문화제 추진위 기자회견(11.15)

사진출처 : 뉴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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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주민자치 소식│

회계의 불투명성, 선심성·특혜성 예산 편성 등 일어날 수 있 는 모든 부조리를 무시한 채 수년째‘묻지마’ 식 지원을 계속해 오고 있다. 구미시는 그 기준이 명확히 다르고 근거 법률이 다름에도 불 구하고 공모 절차를 거쳐야 하는 보조사업인 경우 슬그머니 이 름을 바꾸어 위탁사업으로 설정하고, 심의위원회나 의회의 동 의도 없이 일방적으로‘한국노총 구미지부’ 에 사업을 몰아주었 다. 이는 명백한 특혜성 지원이며 범죄 행위이다. 더불어 시의

최인혁 구미참여연대 사무국장 gom5566@nate.com

회는 이에 대한 지적이 있을 때마다 한국노총 출신 시의원들을 중심으로 매년 법령과 조례를 무시한 채 예산을 편성해 구미시

시·의정감시활동 : 구미시 보조금(민간위탁)사업 예 산분석 구미참여연대는 지난 7월부터 구미시 보조금(민간위탁) 관련 하여 2차례 회원포럼을 진행하였다. 황대철 공동대표가 주관 한 이번 포럼에 10여명의 회원들이 참여하였다. 두 번의 포럼 을 통해 구미시의 보조금(1천 3백억)사업과 민간위탁(6백억)에

의 예산 지원을 부추겨 왔다. 또한 선거 때마다 특정 정당과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는 등 활동으로 보조사업과 민간위탁 사업 대상에서 원천 배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온갖 특혜성 예산을 독점하고 있는‘한국노총 구미지부’ 에 대한 보조금사업과 위탁사업은 근본적으로 재검토 되어야 한다.

대한 특혜 및 선심성 지원, 상위 법령 및 조례 위반 등 다양한 부조리가 나타나는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알게 되었다.

이에 구미참여연대는 구미시의 한국노총에 대한 탈법적이고 특혜적인 보조금(위탁금) 지급 실태를 공개하면서 구미시에 대

특히 한국노총에 대한 보조사업(민간위탁)이 불법과 특혜의 종합 선물세트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첫 번째 예산분석사례로 한국노총 구미지부에 대해 꼼꼼히 살펴보기로 하였다.

해 다음을 요구한다. 구미시가 우리의 요구를 무시하고 시민들 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는 주 민감사청구 및 형사고발 등 모든 법적 조치 등 강력 대응해 나 갈 것이다.

2015년~2016년 구미시의 지방보조금 및 민간위탁 사업에 대한 총 2,000억(지방보조금 1,300억 원/ 민간위탁금 7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점검하면서 우리는 구미시의 보조 금과 민간위탁금 관리가 부실하고, 심지어 법령을 어기거나 특 정단체와 개인에 대한 특혜성 예산이 심각한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미시는 '한국노총 구미지부'에 대해 매년 23억 원이 넘는 보조금(위탁금)을 지급하고 연면적 1,300㎡의 4층 건물을 한 국노총에 무상 임대하고 있는 등 어느 단체보다 가장 큰 특혜 를 베풀고 있다. 같은 노동단체인 민주노총이 보조금(위탁금) 0 원임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특혜라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구미시는 엄청난 보조금(위탁금)을 지급하면서도 상 위법을 무시한 특혜성 조례 제정, 위탁 사업에 대한 감사 미실 시, 법령 위반에 대한 눈감기, 상위법을 위반한 보조금 지급, - 46 -


│풀뿌리 주민자치 소식│

양희 대구참여연대 동구주민회 운영위원장 outside63@hanmail.net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뜬금없이 성주에 사드배치 한다하여 행동 하는 동구 주민회가 더 바쁘게 보냈습니다. '사드 말고 평화' 란 제목으로 9월11일 반계공원에서 사드반대 마을 축제 를 열었습니다. 따듯하고 아기자기하게 가족들과 함께 많은 주민들이 참여 하여 만든 평화마당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풍선 나누기, 형광프로펠러 쏘아 올리기, 종이 접기, 이쁜 피켓 만들기 부스도 준비하였고 사드 퀴즈 대 회, 노래공연도 주민분들이 직접 수고해 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 하고 사드 배치 반대 행동에 동참하였습니다. 또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900일 째 되는 10월 1일에는 세월호 참사 의 원인규명과 해결을 위해 그 날 이후 매주 마다 거리에 나와 잊지 않고 고생하는 동구의 세월호 서명팀을 중심으로 900일 집중 서명전을 펼쳤습니 다. 그 외 동구쪽에 공공노조의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여러단체와 함께 현 수막으로 응원하였습니다. 동구주민회의 11월은 최순실 국정논단의 사상초유의 사태로 더 바쁘고 어려운 달이 되었습니다. 대통령 하야 시국집회를 동구에서 12일(토)에 진 행할 예정입니다. 현수막도 개인, 단체 마음을 모아 동구 곳곳에 걸립니다. 11월 26일에는 동구마을축제가 열립니다. 주민들과 함께 하며 삶이 실천 이 되는 동구주민회, 우리지역의 꺼지지 않는 촛불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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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 소리│

‘똑똑’ 강옥련 회원 yean0925@hanmail.net

“똑똑..”

고 그들과 여러 일을 해나가다가 그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되

“누구세요?”

었습니다. 사소한 관심조차 크게 가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을

“저예요”

더 잘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공부가 상

“넌 그냥 들어와도 된

담심리였습니다. 처음 수업을 할 때 나는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위

단다.”

해 스킬만 배우면 된다고 생각하고 팔짱을 낀 채 방관자처럼 행동

요즘 중년 돌싱인 어느

했었습니다. 한 일년쯤 시간이 지나고서야 부족하고 상처투성이며

개그맨이 여가수에게 남

열정이라는 이름의 방어기제로 투사처럼 무장한 나를 보았습니다.

긴 사랑이야기입니다.

참 슬펐습니다.

저의 근황이 궁금하다는 말을 전해 듣고 왜 이 글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지금까지 의 시간을 다 써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 할 말은 많고 인간

근 8년이라는 세월동안 참여연대 활동은 접은 채, 큰 행사에 가 끔 얼굴 삐죽 내밀고 새로운 사람들과 낯선 분위기에 서둘러 집으

의 심성이 금방 시원하게 싹 바뀌는 것이 아니란 걸 알기에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나를 봐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로 돌아오곤 했는데 저를 궁금해 한다는 말이 반가웠나 봅니다.

지금은 일탈청소년들과 수업을 하고 있고 프리랜서로 와 달라는

저는 활동을 접은 시간동안 새로운 일을 찾아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곳이 있으면 어디건 마다 하지 않고 나가 강의나 상담을 하고 있습 니다. 그리고 상담소를 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저에게 딱 맞는 상담심리 학과에 입학해 이번 여름학기에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50이 넘

동구쪽이 비행기 소음으로 상담 환경이 좋지 않아 신천역 쪽을 생각하고 있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아 고민입니다.

어 시작한 공부가 60이 된 지금까지 다 마친 상태는 아니고 아직

아들 결혼식이 끝나면 다시 알아보려 하고 있습니다.

박사과정이 남아 있긴 합니다만 다시 시작하는 게 두렵기도 해 아

제가 꿈꾸는 상담소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공간입니다.

들 결혼을 핑계 삼아 미루고 있습니다.

사실 상담소가 비용이 만만치 않아 서민들이 오기에는 문턱이

사실 그 동안 젊은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한다는 것이 결코 쉽

높습니다.

지는 않았습니다.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을 인정하고 내려놓기까지

그래서 혼자 생각합니다. 커피데이를 만들어 그날은 지역주민들

마음고생도 있었고 직장을 찾아 이력서를 냈지만 번번이 나이라는

과 커피 한 잔 하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방학 때는 형편이

올가미에 걸려 패배의 맛을 보면서 한 동안 무기력에 빠져 있기도

안 되는 집 아이들과 진로 상담이나 학업트레이닝을 하는 시간도

했습니다.

틈틈이 가지며, 때로는 지금 수업을 하는 여자 일탈 청소년들과 상

왜냐하면 그 동안 정말 상담가로서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열심 히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담도 하면 좋겠다고요. 물론 상담소로서 어느 정도 기본이 갖춰지 면 꿀 꿈이긴 합니다만..

청소년 상담을 잘 하기 위해 영화, 사진 등의 매체를 활용한 수

상담소가 생기는대로 이런 계획을 구체화 시킬 생각입니다.

업을 받으러 몇 년 동안 서울을 오갔고 학부모 상담을 위해 몇 년

이런 제 인생에 참여연대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결혼하고 처

과정을 대구로 서울로 다니며 자격증을 취득하고 지금은 방학 때

음으로 제가 열정을 끌어내어 일을 할 수 있었고 동구주민회를 맡

마다 남양주를 오가고 있습니다.

으면서 지금의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곳이기 때문입

상담이라는 공부가 정말 해도해도 끝이 없긴 한 것 같습니다. 상

니다. 그런 열정을 다시 끌어내어 사람을 잘 만나는 상담소를 만들

담이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 일이라 먼저 자신의

어 가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분이 계시다면 회원 여러

마음을 추스르고 어루만지는 것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분과 함께 하는 시간도 만들어 가겠습니다. 시국이 어수선합니다.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이 필수입니다. 저는 사실 동구주민회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지역주민들을 만났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그런 나라를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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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자치모임│

글쓰기모임‘작당’ 작당 주최로“삶의 기록- 르뽀문학 ‘ 초청 특강을 열었습니다. 지난 10월 17일부터 3회에 걸친 특강은 르뽀문학에 대한 이해와 실전을 위해 마련한 자리였으며 매우 유익한 자리였습니다.

11월 정기모임 11월 14일 월요일, 11월 28일 월요일 저녁7시입니다.

좌장 : 김수상 회원 참가문의 : 총무 김성경 회원 (010-3526-1674)

관심 있는 회원은 누구라도 함께 하시면 됩니다!!

정치철학 강독모임 에티엔 발리바르의 철학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를 상상하기 위한 정치철학강독모임은 은 매월 1,3주 수요일 저녁 7시 대구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열립니다. 좌장 : 노태맹 회원 참가문의 : 대구참여연대 053-427-9780(김채원 팀장)

독서토론모임 오지락 오지락은 매월 첫 번째 주 금요일 저녁에 모임이 있으며 책읽기에 관심 있는 회원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11월 모임은 지난 11월 4일 열렸으며 최명희의‘혼불’2권 읽고 소감 나누었습니다. 대표 : 권영태 회원 참가문의 : 대구참여연대 053-427-9780(장지혁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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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톡톡│

전태일 노동영화제가 추천하는 5편의 영화 정용태 편집위원 joydrive@daum.net

<깨어난 침묵> 박배일 | 2016년 | 81분 | 다큐멘터리 [상영내역] 13회 서울환경영화제, 8회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시놉시스] 2014년 4월 29일 (부산)생탁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법에 정해진 노동3권 보장과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환경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투쟁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서 쉼 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외치지만, 법과 자본, 사람들의 무관심과 가족의 외면은 그들의 외침을 집어삼켜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다시 거리로 나선다. [키워드] 투쟁하는 노동자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김진혁 | 2016년 | 111분 | 다큐멘터리 [상영내역] 17회 전주국제영화제, 8회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시놉시스]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부터 현재까지 총 20여명의 언론인이 해직되었다. 해직 언론인 대부분이 노조 간부가 아닌 것은 물론, 그 중 상당수는 평범한 언론사의 직장인으로서 생활하던 이들이다. 7년 의 시간이 흐른 지금, 한때 그들의 직장이었던 언론사에 대한 권력의 통제는 이미 관성이 되어버렸고, 그런 현실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도 착찹하기만 한데... 그들은 돌아갈 수 있을까? 직장은 잃었지만, 직업은 지속될 수 있을까? [키워드] 권력VS노동자, 언론민주주의

<야근 대신 뜨개질> 박소현 | 2015년 | 105분 | 다큐멘터리 [상영내역] 41회 서울독립영화제, 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시놉시스] 주말 근무와 야근에 지친 나나와 동료들은 이런 생활이 무언가 잘못된 것임을 문득 깨닫는다. 야근 대 신 재미있는 걸 해보기로 한 그녀들의 첫 시도는 다름 아닌‘뜨개질’ . 헌 티셔츠를 잘라 만든 실로 뜨 개질을 해서 삭막한 도시를 알록달록 물들이자! 모두가 잠든 새벽에 이루어진‘도시 테러’ 에 한껏 고 무된 멤버들은 장기적인 퍼포먼스 계획을 세우지만, 그녀들의 프로젝트가 순조롭지만은 않다. 실질적 으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 나나는 뜨개질의 첫 코를 뜨듯 사회적 기업 최초의 노 조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키워드] 저녁이 있는 삶, 여성노동

<내일을 위한 시간>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 2015년 | 95분 | 극영화 [상영내역] 67회 칸영화제, 39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시놉시스] 복직을 앞둔 산드라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회사 동료들이 그녀와 일하는 대신 보너스를 선택 했다는 것. 하지만 투표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제보 덕분에 월요일 아침 재투표가 결정되고 일자리를 되찾고 싶은 산드라는 주말 동안 16명의 동료를 찾아가 설득하기로 한다. 보너스를 포기하고 자신을 선택해 달라는 말이 어려운 산드라와 각자의 사정이 있는 동료들, 마음을 바꿔 그녀를 지지해주는 동 료도 나타나지만 그렇지 않은 쪽의 반발도 거세지는데…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긴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이 흐른다. [키워드] 일과 삶, 자본주의

<컴, 투게더> 신동일 | 2016년 | 122분 | 극영화 [상영내역] 21회 부산국제영화제 [시놉시스] 40대 중반의 고지식한 엔지니어 범구는 해고된다. 카드회사 영업사원인 아내 미영은 경쟁에서 살아남 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대입 합격자 추가발표를 앞둔 재수생 딸 한나는 극도로 초조한 상태다. 이 작 품은 어느 평범한 가족이 일주일 동안 겪는 예고치 않은 감정적인 여정(emotional Journey)을 다루고 있다. [키워드] 자본주의, 경쟁 - 50 -


│방방곳곳│

방방!

정용태 joydrive@daum.net

지난 10월 28일 고령군 대가야역사테마공원 내 카페‘르 뮈제’ 에서 이성복 시인의 사화집‘꽃에 이르는 길’낭독회 가 있었다. 낭독회는 작당 당수 김수상 시인의 사회로 노 래와 연주, 시조창으로 분위기를 띄우더니 사회집 낭독과 이성복 선생의 해설로 마무리했다. 차 마시며 공연과 낭독, 강연에 참가하고 저녁까지 먹고 마치는 행사였다. 카페‘르 뮈제’ 는 역사공원 들어서자 바로 오른쪽에 자리 하고 있다. 넓은 자연정원을 가진 사각형 유리집인데, 북카페인지 책으로 한 면이 장식돼 있다. 이곳 주인인 이향 시인은 이성복 선생의 제자라 했고, 카페 이름도 이성복 선생이 지었단다. 박물관 옆이 라 그리 지었을 테다. 박물관 구경도 하고, 차도 마시기에 꽤 괜찮아 보였다. 공원 입장료가 따로 있 으니 카페만 갈 거면 주인장에게 전화하고 가는 게 좋겠다. ^^ 카페 주인장 전화는 010-3804-0534번이고, 근무시간은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다. 역사공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장한다.

곳곳! 충청북도 충주는 강원도 오대산(혹 태백시 검룡소)에 발원한 남한강 유역의 도시로, 삼국시대 백제 땅이었으나 고구려, 신라 순서로 땅주인이 바뀌었다. 5세기 고구려는 광개토대 왕과 장수왕이 집권하면서 동아시아 최강으로 성장했다. 장 수왕 대에 남쪽으로 내려온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차지한 백제를 몰아내면서 한강의 주인이 되었다. 남한강이 휘도는 충주도 이때는 고구려 땅이었다. 4세기엔 백제, 6세기부터는 신라 땅인 충주에 한반도 유일 의 고구려비가 있다. 이‘충주고구려비’ 는 비석이 발견됐던 곳에 자리한‘충주고구려비전시관’ 에서 볼 수 있는데, 장수왕 대에 세운 것으로 모양은 광개토대왕비의 축소판이다. 전시관은‘충주고구려비’ 를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으니 제대로 둘러보면 5세기 한반도 역사를 제대로 배울 수 있다. 전시관 뒤로 자리한‘장미산성’ 도 백제, 고구려, 신라의 순서로 주인이 변한 산성이다. 산성에 올라 남한강 을 내려보는 경관은 아주 시원한 맛이 있다. 산성까지 승용차로 갈 수 있는데, 네비에 장미산성이 나 봉학사로 검색하면 된다. 봉학사에서 산성까지는 약 20미터, 바로 눈앞이다. 산성과 전시관을 잇 는 길은‘중원문화길’ 로 정비되어 걷기에도 참 좋단다. - 51 -


│재정보고│

2016년 10월 본부 재정운용결과(2016.9월~2016.10월 누적회계)

※ 본자료는 회계감사의 감사를 받기 전 자료로서 회계감사후 일부 계정 및 계수의 조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날개달기

회원동정

최봉태 공동대표님 상근자 식사 지원해 주셨습니다. 박은주 부운영위원장님 상근자 식사 지원해 주셨습니다. 심윤철 회원님께서 상근자 후원기금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52 -

이형석·박성미 회원님의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강옥련 회원님의 자녀(박준욱)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신창일 회원님의 자녀(신나래)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회비납부명단│

납부하신 회비는 세상을 바꾸는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소중하게 사용하겠습니다.

강경수 강경애 강금수 강동철|신동주 강만수 강상채 강선구 강선구 강옥련|박창호 강재기 강준구 강진호 강천식 강혁진 강현구 고동우 고미숙 고봉수|임선정 고춘자 고희림 공미정 곽이화 곽현수 구수용 구인호 권경자 권구형 권덕기 권도준 권명오 권미숙| 박재범 권상대 권석우 권수용 권수임 권영규 권영래 권영태 권영해 권오성 권오혁 권오현 권옥자 권재영 권재화 권중일 권추경 권택흥 권혁장|추정화 권현준 권형우 권 홍 금송민 금창수 김 찬 김갑진 김강택 김건예 김건우 김건훈|김향미 김경근 김경숙 김경식 김경환 김광석|이혜영 김광희 김교정 김규엽 김규종 김기용|김선희 김남수 김남희 김도헌 김동익 김동현 김량현김명호 김미경 김미수 김미정 김민수 김민재 김민지 김 배 김병철 김병호 김보임 김봉심 김 삼 김상수 김상숙 김상순 김상호 김석동 김석수 김석원 김선영 김선우 김선희 김선희 김성경 김성수 김성수 김성택 김성현 김소언 김수동 김수성 김수옥 김수일 김수정 김순옥 김승주 김승현 김신애 김신일 김애리 김애화 김억남 김언호 김연희 김영도 김영록 김영미 김영일 김영진 김영철 김용원 김우주 김원현 김유진 김윤상 김윤정 김윤정 김은정 김응호 김인하 김인호 김일수 김일영 김임곤 김입분 김재권 김재승 김재우 김재호 김정미 김정애 김정화 김정희 김종권 김종록 김종봉 김종태 김종필 김종협 김주영 김주욱 김주태 김주혁 김주희 김지연 김지일|박선영 김진석 김진숙 김진환 김천중 김철원 김철현 김춘희 김태균 김태성 김태숙 김태영 김태일 김학준 김항서 김해원 김해환|곽이화 김 혁 김현근 김형기 김형섭 김형우 김형진 김형태 김혜수 김혜정 김효경 김효정 김휘수 김희진|변정호 나대활 나문석 나순단 남상권 남성욱 남영주 남원직 남호진 노규철 노대형 노미경 노승석 노연수 노인만 노태맹 노형석 도국배|김순섭 도영주 도윤백 류대하 류덕제 류보경 류영준|이영주 류영철 류은경 류태하 류후기 마동철 문경자 문성근 문영곤 민정식 민천식 박건상 박건욱 박경로 박경욱 박경찬 박근식|강문희 박근영 박노진 박덕수 박덕환 박명리 박명섭 박명호 박명환 박병득 박병철 박석분 박선우 박성미 박성찬 박수열 박순일|이미숙 박순태 박순화 박신호 박양주 박여경 박영백 박옥순 박원형 박은영 박은정 박은주 박인규 박인수 박인철 박재범|권미숙 박정호 박제일 박종률 박지연 박지윤 박찬용 박찬웅 박창호 박현탁 박현호 박호석 박희진 배갑기 배대환 배병철 배상우 배윤선 배은경 배재국 배재수 배주영 백경록 백권기 백미숙 백부현 백승대 백진숙 백진욱| 이선희 변영숙 변창우 변화진 서덕교 서두진 서보경 서보성 서상득 서상민 서상철 서인찬 서정욱 서준하 서준호 서진숙 서창환 석민철 석성진 설동진 성상희 성언제 성재환 소영진 손관영 손광락 손대락 손상호 손석철 손선희 손순옥 손영호 손재봉 손정숙 송보경 송상욱 송윤식 송진환 송해익 시정기 신기복 신기완 신기욱 신도철 신동민 신동민 신동연 신동완|정희선 신동주 신동찬 신동화 신득렬 신명희 신미정 신병호 신상길 신상봉 신성욱 신수정 신숙경 신영숙 신윤정 신정석 신중석 신호식 신효철 심병철 심윤철 심주석 안상진 안영미 안영배 안정임 안종권 안헌수 안현재 안현효 안형진 양만재 양상한 양선진|임호성 양영일 양유선 양진모 양 희 엄시근 엄창옥 여검옥 여지은 염상현 오명준 오문섭 오신택 오용태 오철희 오태동 오현주 우성문 우재동 원준호 유경진 유병록|윤명화 유영직 유해록 육심원 윤 영 윤규성 윤명화 윤문주 윤병대 윤병철 윤보욱 윤상호 윤성아 윤영식 윤영욱 윤용희 윤재석 윤종화 윤태자 윤형철 윤호석 은영지 이가영 이경미 이경상 이경선 이경호 이계성 이광현 이교희 이권주 이근덕 이근수 이금용 이기락 이기수 이길상 이남수 이남훈 이동기 이동석 이동선 이동수|황소영 이동인 이동진 이두병 이만호 이명분 이명원 이명자 이명호 이미영 이미지 이범주 이병동 이병목 이봉도 이상구 이상돈 이상목 이상미 이상술 이상용 이상욱 이상원 이상훈 이석주 이선영 이선영 이성우 이성해 이성희 이세은 이소령 이수정 이순재 이승근 이승수 이승용 이승익 이승호 이양우 이연주 이영구 이영도 이영욱 이영윤 이옥례 이용기 이윤희 이윤희 이은정 이은정 이의호 이재남 이재문 이재성 이재욱 이재호 이재희 이정동 이정선 이정수 이정연 이정영 이정원 이정화 이정화 이종길 이종득|김민지 이종우 이종춘 이종필 이종한 이준혁 이준홍 이진희 이창수 이창순 이창윤 이창화 이창환 이창환 이철환 이춘곤 이충기 이태영 이해선 이현미 이현숙 이현옥 이형규 이형석 이화선|정호태 이화정|최훈태 이희연 임기섭 임성무 임순광 임전수 임종화 임지현 임 향 임현수 임현태 장밝은 장성수 장영훈 장원용 장원재 장준민 장태철 장혜숙 장화환 장환석 전대환 전승훈 전영주 전은희 전주태 전창훈 전현배 전형권 전홍철 전환길 정갑환 정강미 정경식 정경열 정경하 정계순 정금숙 정기백 정기숙 정기철 정도욱|신윤정 정도해 정범철 정선기 정성찬 정승필 정우근 정우달 정우선 정우영 정우호 정웅권 정원숙 정윤수 정은영 정은주 정이성 정인숙 정일선 정재봉 정재형 정종배 정준호 정지욱 정탁현 정하진 정해숙 정혜숙 정호원 정희정 조광진 조병집 조상우 조영미 조용국 조용래 조용식 조윤기 조윤정 조인기 조일선 조재민 조정화 조혜연 조혜진 조희재 주보돈 지은혜 진성섭 진수미 진용인 차우미 채영희 채장수 채장식 채휘균 천기철|고춘자 천덕우 천용길 최개천 최경호 최기현 최문석 최미희 최병덕 최병우 최병학 최봉태 최상돈 최상주 최선애 최수영 최신일 최엄윤 최연석 최원준 최유리 최일배 최정민 최종현 최진욱 최진혁 최해천 최현일 최현진 최혜진 최희철 추원일 추정화| 권혁장 추호식 하경호 하성협 하유신 한광훈 한대환 한상구 한상렬 한상훈|최경화 한승균 한은영 한정화 한효정 함종호 허 종 허경주 허노목 허미경|최근성 허 소 허주녕 현명호 현영철 현호성 홍상익 홍 숙 홍순표 홍영표 홍운기 홍원대 홍일표 홍종범 홍창영 황대철 황선명 황성연 황순오 황양운 황윤호 황중진 평생회원 권흥락, 김미, 김성희, 김은주, 김응곤, 김영화, 성상희|이선례, 신숙경, 이경옥, 이정환, 이종만, 진미화 *위 명단은 2016년 9월부터 2016년 10월 동안 회비가 인출된 명단입니다. 이름이 없는 등 기타 오류가 있을 시, 사무처로 연락 바랍니다. ☎ 053) 427-9780 담당 : 장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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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뿌리주민자치 - 구미참여연대 대표 : 김찬, 우기원, 황대철 운영위원장 : 김민수 사무국장 : 최인혁 Tel. 054-716-0023 Add. 경상북도 구미시 신시로 14길 58 3층 E-mail : gumipspd@hanmail.net Cafe : http://cafe.daum.net/chamyeogm 격월간 제109호

- 동구주민회 공동대표 : 박호석, 박경욱 운영위원장 : 양희

2016

등록번호 대구라01132 등록일 2000년 8월 4일 제호 함께꾸는꿈 간별 격월간 디자인 참디자인 발행일 2016년 11월 16일, 통권 109호

Tel. 박경욱 대표 010-5410-7918 Add. 대구시 동구 입석로 96, 연우빌 2층 Cafe : http://cafe.daum.net/dongjumin

■ 회원자치모임 - 글쓰기모임‘작당’좌장 : 김수상 010-2756-1744 - 밴드‘미칠레’대표 : 최명구 010-9352-2001 - 독서모임‘오, 지락’ 대표 : 권영태 010-6826-8809 Cafe : http://cafe.daum.net/people-and-book - 정치철학강독모임 좌장 : 노태맹 010-5634-7194

발행인 ‖ 원유술, 오규섭, 최봉태 발행처 ‖ 우)700-160 대구시 중구 동성로 12길 21(문화동 7-9번지) 3층 전화 : 053) 427-9780~1 상담 : 053) 427-9788 팩스 : 053) 427-9723 홈페이지 : http://www.civilpower.org 전자우편 : dgpeople@gmail.com 후원계좌 : 대구은행 036-04-000437-9 (대구참여연대)

■ 함께 꾸는 꿈 편집위원회 편집위원장 류영준. 부편집위원장 김수상, 편집위원

김건예, 김병호, 이영욱, 정용태

편집담당 활동가 민경환

공 동 대 표 ‖ 원유술, 오규섭, 최봉태 운 영 위 원 장 ‖ 오규섭 집 행 위 원 장 ‖ 박근식 사 무 처 장 ‖ 강금수 상 근 활 동 가 ‖ 김채원, 장지혁, 민경환, 최나래


대표변호사 | 구인호 변 호 사 | 박경로 박진수 박준혁 이승익 손충환 김도현 서부지원 분사무소 변호사 | 박경찬

대구 수성구 동대구로 348-17 우정법원빌딩 1층 전화 : (053) 756-2600 팩스 : (053) 756-2607 홈페이지 : www.chamgillaw.com 서부지원 분사무소 대구 달서구 장산남로 21 법조빌딩 805호 전화 : (053) 743-0034 팩스 : (053) 743-2034


함께꾸는꿈 109호 (2016년 11월)  

대구참여연대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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