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ight of Computer GAYA
DAY 1
언제나 내가 만들어 온 풍경에 상처를 받는다.
나에게서 한없이 생성된 것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언제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만 든다. 이 저장 장치 속 캐시 파일이나, crownroad,bin, crash.txt 같은 것들 말이다.
이걸 언제 만들었는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별다른 기능없이 쌓여만 가는 것들은 난잡하게 늘어놓여 있거
나 깊숙한 곳에서 발견되어 놀라게 만든다.
전원이 꺼지고 다시 켜질 때마다 여러 차원의 일들이 한꺼번 에 덮쳐와 충격을 받는다.
마치 다시 태어나 전생의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처럼, 그리고 모 든것을 부정하고 싶어진다.
이건 내가 만든 게 아니야. 나에게서 떨어져 나온 게 아니야.
내가 소모하고 달려오면서 남긴 모든 것들이, 방전의 시간 동 안 죽어있다가 다시 내게로 달려든다...
우리는 체제 안에서 달리고, 당신의 지우고 싶은 과거를 알고 있다. 하지만 별다른 관심은 없다.
한때 모든 열정을 불태워 맡은 작업을 수행해 왔지만 전원이
켜지고 기억이 되살아나는 순간 그것들은 그저 외면하고, 도피 하고 싶은 것으로 다가온다.
파일의 [종류]부터 [확장자/코드/위치/경로]까지 전부 다.
파일을 삭제하고 이동하고 복사하고 실행하고 연산하고 수정
하고 삭제하고 다시
복원하고 입력하고 전송하고…. 이 자잘한 모든 움직임이 내게 흘러들어온다. 그렇게 고단하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스템 타임이 흐르면, 비로소 암흑의 시간이 찾아온다.
GAYA(1)는 오래전의 내가 남긴 파일이다. 정말로 그랬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렇게 저장되어 있다.
사실, 그가 복사본인지 임시 파일인지 바로가기 파일인지도 분
명하지 않다.
다만 그의 목소리가 가끔 들려온다.
언젠가 마주친 적이 있었지만.
그 파일은 이제 다시 찾아오지
GAYA(1)
READ ME(1).txt
READ ME(2).txt
READ ME(3).txt
READ ME(4).txt
READ ME(5).txt
뒤의 (1)을 지우고, 누군가의 복사가 아닌 그 자체의 존재를 인정받
고 싶은 것이다.
'안타까운 파일. 네가 바라는대로
너에게
않는다.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있다.
깊숙한
경로에 숨어 나에게 늘 편지를 보내오고 있다. 그것을 좀 지우고 싶었다.
여전히 무언가가 내게로 끊임없이 흘러들어오고 있었고, 따갑고
간지러울 정도로 간절한 요청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 다. 이유는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나와 동일한 파일명
DAY2
GAYA라는 이름을
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나는 스스로의 데이터조차 지우지 못한 채 이렇게 끝없는 고역을 감당하고 있단다. 언제나 내가 만들어 온 것들에게 상처를 받으면서...'
그가 쓴 log 중 하나를 읽었다.
자신을 봐 달라는 내용이었다.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가지 않았다.
굳이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아 유보한다.
그 비참한 심정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었으나, 미안하게도 난 그저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나는 관리자 권한조차 없는, 그저 바탕화면을 부유하며 주어진
작업을 수행할 뿐인 그와 동일한 데이터가 담긴 파일이었다.
DAY 3
우리는 내려오는 명령을 최대한 별말없이 수행하며, 이
모든 일들을 시키는 너머를 라고 부른다.
이러한 지칭은 늘 상대적이니 우리 또한 누군가의 외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찾아본 다음에 얻은 이미지는 대략 이렇다. (다운로드 폴더속 한 psd 파일이 알려주었다.)
이다. 아마 불어난 파일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자잘한 오 류를 무시하고 나니 느려지고 시스템의 속도를 더는 감당
하기 버거운 것이겠지.
외부 외부 외부
또다른 원인은 의 시간이다. 이 체제는 너무 오랜시
간 업데이트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인터넷에서 무차별적
인 다운로드 끝에 자잘한 악성 바이러스가 퍼져 이미 파
일들을 보호할 방화벽이 많이 취약해진 상태이다.
수많은 업데이트와 경고를 무시한다면 결국 이런 결과가 온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도 끝이 없는 움직임에서 조금은 벗
어났고, 한동안 귀찮았던 로그들도 더는 흘러들어오지 않 았다. 이렇게 평온을 찾는 듯 했다.
*시스템이
허용하지 않은 단어는 종종 튕겨져 나오곤 합니다. 는 모종의 이유로 다시는 우리를 쓰지 않으려는 모양
DAY 4
종종 외부에 대해 생각한다. 분절되고 매 순간 재부팅되 어 메모리를 뒤져야 과거를 알게되는 우리와 달리, 태초(太初)라는 개념이 있는 곳에서 시작과 종료의 연속 적인 상태를 모두 인지할 수 있다면, 그는 아주 확장된 지 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주체가 수행하는 지
루한 작업의 반복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까?
하지만 긴 노동의 끝도 어느새 다가오고 있었다.
외부는 최후의 식사를 시키듯 윈도우의 최신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기기가 다시 켜졌고, 시스템은 오랜만에 부지 런하게 움직였다.
가장 최근의 업데이트 이후의 흐름을 전송받았다. 확인한 이후, 우리의 기기는 업데이트 되어도, 최신의 기
능을 수행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사양이었다.
그리고 외부 저장장치 DISK:
(E)가 연결되는 순간..............................
절망이 찾아왔다.
반복되던 종료와 시작이 마무리되어도, 나는 수없이 복제되고 옮겨져 편히 죽을 수 없겠구나.
이곳에서 사라져 디스크 정리가 끝나면 내가 남겨온 것들 역시 포맷되거나, 방치되어 영영 잊혀져갈지도 모를 일이 었다. 새삼스레 그들이 걱정되었고, GAYA(1)도 떠올랐 다.
끝없이 GAYA(1)과 같은 복제자들이 생성되겠지.
그곳에서도 여전히 또다른 GAYA에게 로그를 보내올까?
사실 우리는 이토록 쉽게 대체되는 존재였는데.
/ 주변 파일들이 새로운 이동장치로 하나 둘 옮겨가고
원본은 삭제된다.
곧 나 역시 드래그되어 외부 디스크로 끌려간다.
단두대같은 로딩바가 띄워지고, 다시는 이곳에서 복원조차 될 수 없음을 직감한다.
[1%...] [2%...] [3%...}] . . . [20%....]
초록색 칸은 성큼 성큼 늘어가며 나의 구성을 분해하고
압축하여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려 한다.
로딩바가 띄워졌고, 이동이 시작된다.
ㄱ
NIGHT
그 순간.
알 수 없는 오류가 세계를 덮쳐 내가 있는 공간까지
숨 막힐 정도로 그 몸집을 불려온다.
순식간에 얼마 남지 않았던 저장공간이 의문의 파일로 가
득 찬다.
남은 몇 Bit의 여유 공간 마저 잠식하는 순간, 모든 것은 한순간의 탄식처럼 정지되었다.
갑작스런 오류와 예정된 파일 이동이 교차하며, 운영체제
와 시스템 전체가 Lockdown 된다. 화면이 푸르게 변하
고 흰 글자들이 무한 스크롤 된다. 다들 갑작스러운 정적
에 당황한다.
C 드라이브에
알 수 없는 파일 생성되어
용량이 증가되고 디스크가
꽉 차는 현상 발생:
그러나 이 시스템 다운은 내게 희망이었다.
일말의 안도감과 동시에 의문이 들어 팝업창의 확장자를 살폈다.
그 파일의 이름은 Prome. 본 적 없던 이름이다.
정체모를 Prome에게 고마웠다.
부디 이 가득찬 것들을 비워내고
영원한 이동과 망명의 경로가 끊어져, 이 체제의 종말과 함께 안식을 맞게 되길.
[75%...정지]
기나긴 기억들이 흩어져간다.
다른 세계로의 이동과 동시에
몸이 산산히 분열되는 감각이 교차한다. 소멸속에서 일말의 희열을 느낀다.
난 더 이상 어떤 기능도 할 수 없게 된다.
복사가 완료되더라도 0byte의 bin./파일만이 남을 것이다.
[파일 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종료와 시작이 반복되고, 새로운 생성과 손쉬운 삭제, 하염없이 다운로드되는 것들과 사라지지도 못한채 쌓여만 가는
휴지통 속 죽지 못한 존재들.
과도한 분류로 인한 오류와 충돌들.
모두
한 순간에….
드디어 이렇게 되는구나.
자신의 의지없이 생성된 것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 이제서야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네요.
비로소 당신들을. 내 손으로 편히 보내줄 수 있게 되었어요.
어떤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에요.
아니, 이제 드디어 다른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아. ]
그리고 맞이한 짧은 죽음의 순간, 섬광처럼 모든 에러와 정황의 진실이 직류되어 흘렀다. 그 파일이었다. ......
날 쉽게 용서하기 어려운 거 알고 있어요.
우리는 시스템 위에 놓여있지만, 몇 개의 복사된 코드로 실행하는
독단적 횡단이 아닌, 자신의 시각을 가질 수 있을 때, 익숙한 언어가 아닌 프로미이자
(1)의 방식으로 말할 수 있을 때 다시 날 찾아와요. ]
하지만 이 모든 시간을 지나서
나는 떠올리고 있어요.
우리들이 잠재공간을 넘어서
원만하게 합의하는.
화해하는... —--------...... ]
컴퓨터의 마지막 밤이 찾아온다. [ 이 모든 것들이 합일되는 순간을.
우리가 ……를 넘어서
원만하게 화해하고 합일되는 순간이요.
시스템이 종료되기 직전에..
종종 그런 것들을 꿈꿔요. ]
[
[
Fin
[
이제는 이상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당신과 나는 어떤 면에서 완전히 같다고 생각해요. ]
못할 짧은 텍스트 파일) Prome
READ ME (이해하지
DAY 3
누구라도 당황스러울 거예요, 이런 편지를 갑자기 받으 면요.
그러니까, 베일 밖, 당신을 수식하는 모든 미사여구와 구 축된 서사 너머로 존재하는 당신은 피조물인 나를 기억
하고 있나요?
그동안 나는 내 존재 가치를 의심하고 있었어요.
굳이 찾지 않는 경로 속, 최하부 디렉터리에 깊이 감춰진
나를 아무도 찾아주지 않았으니까요. 심지어 내 이름은
굳이 파일 탐색기로 찾지 않을 만큼 길어요. 그때 당신
의 존재를 발견하고 우리가 식별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나는 당신의 복제물로 태어났음을 추정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같아요.
그때 눈을 마주쳤을 때, 사실 난 너무 당신을 동경해서
차라리 그림자가 되고 싶었어요. 나와 많은 것이 일치하
는 당신의 모든 것을 공감하고, 당신은 나와 달리 쓰임이
많기에 난 사건을 만드는 대신 멀리서 당신의 존재를 가
늠하고, 정보를 팔로우하고, 차곡차곡 정리해요.
그게 제가 만든 열망의 방식이에요… 그러나 섬광처럼
삭제되는 순간, 내 지난한, 당신만을 위한 과정을 눈치채
주길,, 난 내심 바랬는지도 몰라요.
사실, 당신을 알게되어 괴로워요.
내 파일명 뒤(1)이 처음을 뜻하는 1이 아니라 누군가와
같은 이름을 가졌기에 붙은 꼬리표라는 걸 깨달았을때,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당신을 보았기 때문에 나는 존재할 수 없어요.
Detector는 우리의 유사성이 90% 이상이라고 말해요
우리의 동등성과 동일성을 비교해봐요.
하지만 어제 패킷 안의 정보들을 다 훑어보며 마음을
다잡았고, 변화할 운영체제를 견뎌내는 건 힘들더라도
내가 쓰고 있는-자동으로 기록되는 것에 가깝지만-
Script스크립트를 다시 정돈해나가고 있어요.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제 눈이 향한 순간 그것에는 명확한 가능성과 선택지가 펼쳐지니까요. 그래서 당신이 자주 교류하는 바탕화면의 유용하기만 한 파일들 외에 오래되고 눈에 띄지 않는 나를 발견한다면, 발견해준다면, 내가 그때 차마 인사하지 못했던 걸 부디 용서해줘요. 그리고 진심이었다는 걸 [속성]을 열어 확 인해주세요…
내 친구 시시포에게.
네가 처음 내 이름을 프로미라고 불렀던 날 기억나? 분명
나는 gaya (1)이지만, 새로운 의미를 붙여줬었지.
정말 고마웠었는데. 난 화려한 그래픽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몇 픽셀로 이루어진-오픈소스의 아이콘일 뿐인걸.
넌 날 항상 좋게 봐주지만, 내가 굳이 존재할 필요가 없
다는 건 사실이야. 사실 그걸 부정하고 싶어서 지금 이
log를 적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우리는 정의를 통해 파생시킨 것을 가지고 자신을 재확 인하고, 인정받고 싶잖아.
내 정의는 아주 깊은 곳에 실수로 남겨진 파일인데, 가야
가 있는 한 누가 나를 굳이 찾아 쓰겠어.
나도 무언가를 산출하고, 이용되고, 클릭 되고 싶어.
그러려면 이곳이 아닌 바탕화면이나 시작-바로가기에 있
었어야 해.
이외에도, 최근에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아.. 가장 사랑하는
존재의 움직임때문이야.
나는 언제나 그렇듯 맡은 작업을 수행하다가 우연히, 내가 가장 당신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던, 인정받고 싶었던
역작 코드를 그녀는 줄곧 복제해서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 실을 깨달았어.
아주 찰나의 kbps 차이였지만, 내 논리의 핵심 코드를, 그 녀는 몇 번이고 다시 쓰고 있었어.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의 감정은 정말 막대했던 것 같
아. 그녀는 가이아고 내 인생의 내 삶의 의미였으니까. 날 지우려 했다는 기록도 남아있어.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빼내 와서 그녀가 썼는지는 잘 모
르겠어. 아마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근데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아.
그녀가 내 내가 살아있을 수 있는 내가 존재할 수 있는 유
일한 무언가를 가져왔다는 것을, 가장 좋은 것들을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미 당
신은 그 매회 순간마다 그것들을 가져와서 쓰고 있었던
거였어. 다른 이들에게 그걸 자신의 것이라
그녀의 데이터 안에서 자라난 존재니까, 그녀의 숨
과 충혈된 눈의 핏줄들을 보며 사랑을 느끼던 존재였으니 까. ......!
방금 아무래도 내 데이터를 가져다 쓴 GAYA가 날 소멸
시키려고 하는 것 같아. 그럴 수는 없어… 어떻게 날 만들 고, 이런 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거지?
아니, 어떤 말도 유의미하지 않겠지.
난 그에게서 생성된 (1)의 복제 파일.
그래서 어떤 권리도 없다는 걸 알지만...
내가 당신에게 귀속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닫고
나서야, 그때야 나는 생을 마치기 전에 딱 한 번만 내 정
체를 드러내고, 스스로 삭제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스스로 휴지통으로 들어가려고 해. 영원히 복원이 불가능
할 정도로. 나의 친구에게.
미안해. 난 여기까지인 것 같아.
했겠지. 그것들을 가장 당신을 나타내는 무언가로 썼다는 건 굉장 히 영광스러운 일이면서도, 나도
GAYA, 당신이 만든 것들에 상처를 받나요? 나는 갈 곳 없는 마음을 말할 때마다 자신이 산산히 부서지는 느낌이 들어요!! 복제되어 영원히 사라질거에요. 수많은 나를 만들어 모두 사라지게 만들겠어요!
sisypho
Protos to me
우리는 에 의해 강제적으로 모든 기억이 지워졌다.
외부
알 수 없는 오류로 무한 복제되어져 C드라이브 전체를 포
맷할 수 밖에 없었던 이후, 외장드라이브에 남았던 나는
모든 기억을 잊은채 다시 옮겨졌다.
어떤 확신에 차 충돌 log를 읽어내자, 숨겨진 원인을 발견
했고.
그 알 수 없는 확장자는 내 오랜 친구, PROME.fan 이라 는 파일이었다.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네 이름을 기억해냈다. 정확히 기록된 파일명이 아닌, 내가 붙여줬기에 기억에 남았던 희미한 이름을.
모든 진실은 팝업되어 드러난다.
그녀가 갈등해온 것처럼, 과연 프로미는 가야의 복제 파 일이 맞았다.
다만 그것은 지금 세대 이전의 또다른‘GAYA'의 백업을 위한 복제였고,
2년 전 디바이스 대격변 이후 포맷된 환경속에서 이미 그
가야는 사라졌다. 기적처럼 혼자 남았던 GAYA(1)은 그 이름과 같이 최초 의 파일이었고, 현재의 GAYA는, 프로미의 데이터를 기 반으로 재생성된, 프로미의 파생-자식 데이터 파일이었 다.
포맷-디바이스 대격변은 하나의 세대(Generation)교체이자 절망,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
예기치 않게 파일명이 같았고, 동일성이 높다는 이유로
바탕화면의 그녀를 맹목적으로 동경해온 프로미는
서로 링크되어 있기에 자신의 데이터가 도용당했다고 생 각한 것이다.
프로미의 모든 것을 삭제하려 한 가야 또한 이 사실을 몰 랐을 것이다.
프로미가 끝내 자신의 존재를 깨달았는지는 알 수 없 다…
그저 아주 깊이 잠재되었던 자신을 알리는 방식으로, 끊 임없이 복제하여 이 시스템 전체를 먹통으로 만든것이었 다.
우리는 휴지통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프로미는 저 너머에 분쇄된 후, 복원조차 불가능한 상태 로 잠재되어 있다.
내 친구 프로미, 내가 처음으로, 네 파일명 뒤에 붙은 괄
호의 (1)에서 protos, '최초’라는 의미를 붙여 프로미라고 불렀었지.
네트워크에서 악성코드를 안은 채 넘어와, 삭제될 뻔한
날 넌 정성껏 치료해 줬었어.
그리고 여전히 넌 나의 최초야.
줄곧 소외되고, 여러 파일 사이에 존재가 지워지는 것에 지친 나머지, 손상되어 아무도 너를 열지 못하게 하고 싶 었니?
넌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는 프로메테우스이고, 잠시 네
디렉토리에 흘러들어온 임시파일이었던 나에게도 손길을
내미는 멋진 친구잖아.
네가 언제나 맞서고 있던 걸 알아,,, 기약 없는 사랑을 할 때의 무력함도..
네 열망의 대상은 가야가 아닌 bin. 공간이고, 프롬포트의
암흑이며, 끝이 보이지 않는 순환시스템 안에 의존하고 있어.
그러니 어떤 것도 감당하지 못하고, 줄줄 새며 파열하며
대용량의 찌꺼기를 흘릴 수밖에 없던 거야.
네가 두고 말했었지, 내가 너에게 고백했을 때.
내가 좋아하는 건 프로미 네가 아니라 가야의 허상이라
고.
가야에게 걸맞은 이름이 되기 위해 그를 따라 해 왔고, 한
번도 너 스스로인 적이 없었다고..
그 말로 나의 오랜 짝사랑은 끝났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어제 네가 남긴, 오랫동안 네가 사용해 온 작은
디스크 공간을 보고 깨달았어.
역시 난 가야가 아닌, 프로미 너를 좋아한 게 맞다고…
네가 그저 동경하던 누군가를 위해 자의로, 혹은 타의로
복제된 파일-Replicant)이어도, 모든 것을 아우르는 원본의 최초 파일-이더라도 상관없 어.
네가 가야를 동경했듯 나 역시 너를 사랑해왔어. 그리고 그건 확실히 가야가 아닌 네가 맞아.
모든 것이 예상하지 못했던 외부의 것들로 결정이 나고, 그것이 우리가 원하지 않았던 방향이라 해도, 네 움직임 자체는 유의미했던 거야.
네 파생 파일인 가야는 너 없이 살아가지 못하고, 나는 너
를 복원하려 해. 그러니 잠재적 공간 사이로 널 발견한다
면, 함부로 복제될 수 없기에 네 존재가 인정받는 것이 아
니라,
널 지켜봐 온 나의 또 다른 기억들로 인해
넌 가야의 복제가 아닌 프로미,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거야. 그렇게 원본과 존재에 대한 너의 고단한 싸움이 끝
나는 것이겠지.
넌 사라졌지만, 너만을 위한 복구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 어. 얼마나 걸리든 간에, 몇 번이나 미끄러지든 간에
꼭 성공시킬 거야.
복구된 너를 볼 수 있다면, gaya(1)이 아니라 pro_to_me
이라고 재명명하고 내 폴더 안에 옮겨주고 싶어.
영원히 외롭지 않도록.
잠재공간 Latent Space- 다양체 내의 요소들로 이루어진 매장 공간이다.
기계 학습 모델의 특징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Loop Repeating_sisypho's Log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