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제 2610호 중앙일보

Page 1


지금은 사실때 입니다.

1

3. 우유나 요거트에 혼합하여 부드럽게 K-도라지는 타

100% 한국 토종 유기농 생도라지 농축 2

풍부한 사포닌 성분으로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1/3)

■ 메디치가의 ‘파치 음모 사건’ 후

예술가를 활용한 외교전과 복수

앞에서 살펴본 1478년 일어난 ‘파

치 음모(Pazzi Conspiracy)’는 피렌

체의 통치가문인 메디치 가를 몰아

내고 피렌체를 교황령으로 귀속시켜

교황의 조카들이 피렌체 정권을 장

악하게 하려는 권력쟁탈 목적의 사

건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실패로

끝나자, 이를 방관, 조장한 교황 식

스토 4세(Sixtus IV)와 메디치 가문

간에는 겉으로는 어색한 평화가 이

뤄진 것처럼 보였지만 안으로는 서

로 치열하고 힘겨운 투쟁이 이어지

고 있었다.

식스토 4세 교황은 오늘날 이탈

리아 리구리아 주의 가난한 집안에 서 태어난 프란체스코 델라 로베레 (Francesco della Rovere, 1414~1484)

였다. 로베레는 ‘참나무(oak tree)’를

뜻하니 가난한 농촌출신임을 나타내 는 말이다. 프란치스코회 총장으로

있을 때인 1467년에 교황 바오로 2세 (1417~1471)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

되었고, 교황 선종 후 54일만에 후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사실은 선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밀라노 공

작을 뇌물로 매수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생활이 엄격하고 의지가

강했던 그는 교황에 등극하면서 하

루아침에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했

다. 다른 여러 교황과 마찬가지로 식

스토 4세 역시 가문의 번영과 부흥이

주요 관심사였으며, 친인척들을 등

용하는 족벌주의 정책을 펼쳤다. 그

의 재임기간 동안 총 34명을 추기경

에 서임했는데, 그 가운데 6명이 그

의 조카였다. 파치 음모사건도 돈과

권력 등 세속화된 족벌주의 정책의

결과 중 하나였다. 돈을 물쓰듯 썼고

재원 마련을 위해 강제적 면죄부 판

매, 성직매매 등을 일삼았다.

그러던 중 교황은 너무 오래된 마

조레 성당을 철거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시스티나 성당(Aedicula Sixtina)

을 1481년에 완공하였다. 내부벽화 장

식을 위해 예술가들을 수배한다는 소

식이 들리자 피렌체의 통치자인 로렌

초(Lorenzo de’ Medici, 1449~1492)에

게는 이것이 절호의 기회였다. 조상

대대로 후원해온 훌륭한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을 화해의 표시로 대거 로마

로 보내 교황의 환심을 샀다.

로렌초의 호의와 더불어 산드로 보

티첼리와 피에트로 페루지노 등 당대

에 내로라하는 예술가의 벽화 솜씨에

교황은 매우 만족했다. 그러나 로렌

초의 속셈은 딴 곳에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파견한 예술가들을 통하여 자

연스럽게 교황과 바티칸의 정세를 파

악하는 데 활용하였다. 특히 파치 음

모사건의 주범 중에 유일한 생존자이

자 교황의 조카인 지롤라모 리아리

오 (Girolamo Riario) 백작의 동태를

지속적으로 파악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러던 중 드디어 1488년에 오르시니

가문(Orsini)을 충동질하여 지롤라모

리아리오를 암살하는 데 성공함으로

써 10년 만에 동생 줄리아노의 원수

를 갚았던 것이다.

■ 우피치 미술관의 개요

필자는 30여 년 전에 유로패스를

이용한 배낭여행을 했었는데, 열차

시간표 안내책의 피렌체―로마 구간

열차시간 오기(誤記)로 계획이 빗나 가 피렌체(Firenze, 영어 Florence)

는 두오모의 돔만 얼핏 보고 서둘

러 로마로 갔던 기억이 있다. 그래

서 2024년 11월에 피렌체, 특히 우 피치 미술관(Uffizi Gallery)을 제대

로 볼 생각으로 지중해 크루즈 여행

에 나섰다.

우피치 궁전(Palazzo degli Uffizi)

은 토스카나 지역의 첫 대공이었던

메디치 가(家)의 코시모 1세(Cosimo I de' Medici, 1519~1574)가 자신의 권력의 심장부 안으로 행정 각료들

을 모으는 ‘우피치(Uffizi)’ 즉 ‘집 무실(Office)’로 사용하기 위해 화 가, 조각가, 예술역사가인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 에게 의뢰하였으나 완공을 못한 채 사망했다. 그후 디자이너, 엔지니 어, 조각가인 부온탈렌티(Bernardo Buontalenti, 1531~1608)가 이어받아 코시모 1세의 아들인 프란시스코 대 공(Francisco de’ Medici) 때인 1584 년에 완공됐다.

1230년부터 1743년까지 5세기가 넘 는 기간 동안 문화·예술 분야 진흥 및 후원의 대명사로 불린 메디치 가 는 대를 이어 미술품을 수집하였다.

메디치 가의 마지막 대공인 잔 가

스토네가 죽은 후 유일한 상속녀이 자 프랑스 로렌 가로 시집간 동생 안나 마리아 루도비카(Anna Maria Ludovica, 1667~1743)는 친정에서 상 속받은 재산을 시집으로 가져가던 당시의 관습을 깨고 '가족 맹약'을 체 결하여 이들 컬렉션을 피렌체 밖으 로 반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토 스카나 정부에 기증했다. “위대한 예 술품은 공공의 정신적 문화유산”이 라는 인식을 일찍부터 했던 대인배 다운 결단이었다. 메디치 가의 컬렉션은 우피치 미 술관에 전시되어 1769년 공식적으로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고, 거의 1세 기가 지난 1865년에 정식 미술관이 되었다. 피렌체 사람들은 우피치 미 술관을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선물' 이라고 불렀다. ■ 우피치 미술관 전시실 우피치 미술관은 베키오 궁전과

로기아 데이 란치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최고의 미술관이자 세계 최고의 르네상스

■ 위치 : 7398 Yonge St. 20 D (사리원 식당이 있는 Plaza 내 건물)

■ 시설 완비 : 30석, 강대상, 의자, 음향장비 완비 ■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