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이 사는 이야기...
두 레 품 2008년 여름이야기
두레품 기획. 끝나지 않을 ‘행복한 마을 만들기’ 이야기 06 이야기를 펴내며 첫 번째 이야기. BESI GAUN 07 두와콧과 베시톨 08 모노허라 학교 09 베시마을 청년들 10 모노허라 학교, 베시마을과 품의 관계 12 행복한 마을 만들기 과정 일지 두 번째 이야기. BESI GAUN에서 LITMUS로 27 시공간의 차이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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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한국에서의 여정 청년과 청년 31 주인으로서의 손님 세 번째 이야기. 끝나지 않을 베시마을 이야기 34 토끼와 거북이 36 토끼 같은 거북이들의 짐 꾸리기 네 번째 이야기. You came here! 39 커머리 시레스터 44 썬제이 시레스터 46 산족 라이 49 앙 상게 세르파 51 이하니 57 람 바부 수베디 환영의 시
2008년 여름이야기 l 통권 63호 발행일. 2008년 10월 20일 발행인. 심한기 l 발행처.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주소. 서울시 도봉구 쌍문1동 495-77 송곡빌라 지층 TEL. 02-999-9887 l FAX. 02-999-0860
Homepage. www.pumdongi.net
특집. 여러분의 불가능은 무엇입니까? 60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박경호 62 1억의 기적이 아닌, 1억으로 만들어 갈 기적을 꿈꾼다 박정희 64 우리 동네엔 품이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설 66 품에게 필요한 공간 이지성 69 품에서 꿈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송성호 70 찌든 세상에 산소탱크 김준혁 72 꿈, 그리고 함께 하는 이들 서인석 73 작은 정성이 모여 큰 기적을 이룹니다 신용식 표경흠 윤은주
품 활동보고 78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 이상섭 83 네팔, 행복한 이음 강명숙 87 소통과 나눔을 위한 작은 시작, 주주콜로키움 유현희
당신은 품의 주주입니다. 94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성종 이준호 98 품 주주를 소개합니다 102 후원현황
이야기를 펴내며
기획
끝나지 않을.. ‘행복한 마을 만들기’ 이야기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 그곳에서의 시간이 벌써 3년이다. 네팔의 교사들을 대상 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워크숍, 한국과 네팔의 청소년 교류사업, 히말라야 만나기 등 한국에서만큼 네팔에서도 우리는 조금은 치열한 땀을 흘리고 있다. 그 짧고 굵은 시간 안에서 우리가 만난 가장 소중한 발견은 ‘마을’이라는 공간, ‘청년’이라는 인 간의 모습, ‘문화’라는 삶의 형식이었다. 이는 그동안 품이 지역에서 10년을 넘게 멈추지 않았던 고민의 방향들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네팔에서 품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은 바로 ‘행복한 마을’을 만들어가는 일임을 확인하는 순간, 한국 에서도 역시 그것이 가장 소중한 우리의 희망임을 확인했다. 10년 넘게 멈추지 않 았던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秋樂)’이 작은 동네의 일상들을 들춰내며, 다양한 세대 간에 새로운 삶의 희망들을 발견할 수 있는 지역문화운동으로 성장한 과정과 도 무관하지 않다. ‘2008년 한국-네팔 청년문화실천 워크숍’이라는 이름으로 시작 한 많은 일들은 거창한 행사도 아니었고, 특별한 사업도 아니었고, 일시적인 문화 교류 프로그램도 아니었다. 우리는 이번 과정을 통해서 행사와 사업과 프로그램으로서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삶과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는 희망들을 스스로, 그리고 상호간에 의문하고, 의심하 고, 발견하고, 실천해갈 수 있다는 구체적인 키워드들을 확인했다. 결국 이 모든 것 은 진행형의 과정이다. 하나의 사건과 결과로서 정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번 기획에 담으려는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이야 기 중 한 대목이다. 때문에 명쾌한 결과는 없지만 앞으로 나눠야할 희망들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올해 ‘한국-네팔 청년문화실천워크숍’ 이름으로 진행되었던 ‘행복한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그 끝나지 않을 이야기들을 나눠보려 한다. 다음 두레품에 서는 ‘마을이야기,강북구편’이 이어질 예정이다. 많은 이야기들을 짧은 지면에 담아내 는 것이 억지스러울지 모를 일이다. 6
첫 번째 이야기. BESI GAUN
그들에게 거대한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마을이 개발 되어 도로가 넓어지고, 부족한 식수가 해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적 인 (최고의 삶의 목표라고 할 수 있는) 희망은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 것 이다. 불행한 자신의 세대가 대물림 되지 않기를 희망하는 보편적인, 그리고 수동 적 꿈만을 가지고 있다. 즉 대부분의 부모 세대가 자신들의 삶에 대해 온전한 애착 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결국 아이들이 희망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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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모노허라 학교 네팔의 전형적인 공립학교이다. 즉 가난한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여, 교사, 학교시 설, 환경 등이 일반 사립학교 비해 매우 열악하다. 하지만 등록금이 무료이기 때문 에 가난한 사람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사립학교의 경우 보통 월 1만원이고, 부
1.두와콧과
유층 자녀가 다니는 고급 사립학교는 월 100만원이 넘는 곳도 있다). 때문에 부모
베시톨*
들은 좋은 시설의 사립학교를 보내기 위해 더 힘든 노동을 할 수 밖에 없다. 모노허라는 13년 전 정부에서 지원한 약간의 돈과 마을사람들의 자발적인 노동
카트만두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베시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네팔의 농 촌들이 거의 그렇듯이 이곳 사람들의 생계와 생활환경, 교육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력으로 세워진 학교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학교에 가지는 애착은 남다르다. 지 금의 교장인 [러메스 쎄레스타]도 학교 건립을 함께 했다. 학교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기대는 높다. 하지만 교사들이 그 기대를 채우진 못하
한국과 같이 도시로의 이동 수준이 높지 않아 아직도 마을에는 아이들과 청년들이 많다. 이 마을 청년들은 대학에 가지 않는 한, 거의 대부분이 특별한 직업을 가지 고 있지 않다. 물론 대학을 다니는 청년들도 드물다. 모노허라학교를 중심으로 한 베시마을의 가구 수는 80가구이며, 마을인구는 300명이 넘고, 대부분 3대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며 유동인구가 많지 않아 옆집 밥숟가락 모양새까지 모두들 알고
고 있으며, 이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의 경우에는 교사에 대한 불만이 많다. (교사 가 너무 수동적이고, 교육 내용이 진부하다는 것과 영어나 미디어 교육 같은 시도 가 전혀 없는 것) 하지만 현재까지는 그런대로 교사와 마을 주민들이 좋은 관계를 맺으며 잘 지내고 있다. 다른 학교의 경우 교장이나 교사들은 자신의 자녀들은 사
있다. * *
이번 프로젝트가 과거와 같이 학교, 아이들에게만 집중하지 않고, 마을 사람들... 청년, 어른세대 또는 가족의 참여까지 목표를 둔 것은 바로 “희생을 통한 희망 찾기가 아닌,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희망 찾 기, 또는 모두가 함께 가능한 희망 찾기”를 시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와콧이 성남시라면, 베시톨는 은행동이다. 그곳 베시마을에 모노허라 학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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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학교로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 교장과 교사들은 자신의 아이들도 사립학교 에 보내지 않고, 모노허라에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교장과 교사 역시 마을 커뮤니
4.모노허라 학교, 베시마을과 엔지오 품과의 관계*
티에 일원인 셈이다.
첫만남 외국인을 처음 만난 학교의 교사와 교장은 매우 굳은 표정이었고, 거의 30분간 은 말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인사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의욕은 전혀 보이 지 않았었다. 또한 어떤 사전준비 과정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엔지오 품은 네 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청년 자원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사전 작업에 들어 갔다. 학교 담장, 교실 등을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분위기로 만들어 갔고, 아이들과 교사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의 교감을 시도했다. 그리고 나눔학교와의 교류 프로그
3.베시마을의 청년들....
램(이틀간)을 거치면서 모노허라 학교와 마을 사람들의 태도와 인식은 조금씩 변화 되어 갔다. 그 과정에서 8년 동안 학교를 위해 삽 한번 들지 않았던 교장 선생님이 학교와 아이들을 위해 삽을 들었고, 마을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도 점점 더 커지기
베시마을에는 모노허라 학교를 졸업한 대략 40여명의 청년들이 있다. 작년까지
시작했다.
만 해도 모노허라 프로그램에서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하 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많은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의 참여가 있었다.
첫 만남 이후 엔지오 품은 교장, 교사, 마을 사람들과 계속적인 관계를 이어갔고,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이 청년의 참여와 행동이었기에 의도적으로 그들의 참여를
수시로 방문을 하여 앞으로의 계획을 고민하기도 했다. 그리고 감동적인 가능성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몇몇 청년들은 의
발견하게 된다. 첫 만남에서 학교 꾸미기를 시도했었으나 부족한 시간으로 다하지
문을 던지기도 했는데, ‘다른 나라, 다른 지역 사람들이 잠깐 와서 어떻게 행복한
못한 일들이 2주일 후에 마을사람들과 교사들이 프로젝트 이후에 자발적으로 참여
마을을 만들 수 있냐?’는 의문이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하여 완벽하게 마무리되어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현상일 수 있지만 네팔의 문화,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행복한 마을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행
특히 모노허라 학교의 상황에서는 매우 감동적인 일이다.
복한 마을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당신들은 무
두번째 만남
엇을 할 수 있는가?” 이는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과도 같다. 즉 수동적 그들의 태도와 생각들에서.. 스 스로 가능한 변화와 성장에 대한 동기를 주는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참여를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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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청년들과의 사전 만남 덕분에 당일 청년들의 참여율은 매우 높았다.
국 장애청소년 대안학교인 ‘나눔학교’의 교류 프로그램이 그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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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오 품은 2007년 6월 “happy school project"란 주제로 처음 모노허라 학교를 만나게 되었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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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만남은 2007년 10월 탈북대안학교 셋넷학교와의 교류 프로그램이었다. 엔지오 품은 모노허라 학교의 지속적인 변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한국의 청소년 교 류 프로그램을 연계했다. 각각의 교류 프로그램은 단발적인 행사였지만 모노허라 학교의 경우는 엔지오 품과 지속적인 연계를 가질 수 있었고, 각 프로그램들이 연 계성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러한 결과로 모노허라 학교, 교장과 교사, 그리
5.행복한 마을 만들기 과정 일지 첫 번째 주민설명회 • 2008.5.19.3~5pm. 모노허라 학교 운동장. • 학교 교사와 아이들, 마을 어르신 및 청년 약 40명과 함께
고 마을의 핵심인물(주민대표, 마을의 어르신들 등등)과의 관계는 매우 긍정적이고, 우호적으로 성장했으며, 두 번의 교류 프로그램으로 인해 학교는 더욱 변화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 만남 : ‘happy vil age project’의 근거 이렇게 시작된 모노허라 학교와의 만남은 결국 학교의 변화를 위해서는 마을 커 뮤니티의 참여와 변화가 중요함을 알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결국 엔지오 품 은 ‘happy school project’에서 ‘happy village projet’로 접근의 방향을 넓히게 되 었다. 그리고 그것의 주체는 교사와 아이들만이 아닌, 마을 주민, 그리고 가장 중요 한 마을 청년임을 확신하며, 이번 프로젝트를 실행하게 되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에는 평범하게 살고 있는(무기력하게 살고 있는) 마을 주민 들과 청년들에게서 그들이 본래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자신의 일상적인 삶을 소중 하게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모노허라 학교를 중심으로 한 실천에서 찾을 수 있도 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프로젝트 이후 자발적으로 마을의 청년모임이 만들어져 학교와 마을의 성장과 변화를 위한 청년활동을 함께 만들어가고 지원하는 것이었 다. 이번 프로젝트의 결과는 없다. 성공과 실패도 없다. 가능한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이었기에 수치로 계산될 수 있는 결과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새로운 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 몇몇 낯이 익은 교사, 마을 사람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편안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기다리며 오랜만에 찾은 학교를 둘러보았다. 처음 품을 만나는 청년들과 마을 주민들은 매우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상황 판단이 무척 빠른 통역자원봉사자 딥벅의 도움을 받아 이번 행복한 마을 만들기에 대한 의도와 배경을 설명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매우 쉬운 단어와 간간히 재미난 농 담을 섞어가며, 진행되었다. 마을사람들은 한국에서 온 이방인의 설명에 박수를 치 기도 하고, 환한 웃음(이렇게 편안한 웃음으로 대답하는 모습의 사진이 너무 좋아
능성과 감동적인 그리고 소박한 희망을 만났다.
서 그 사진을 배경으로 행사 현수막을 제작했었다)으로 대답을 하기도 했다. 몇몇 마을 청년들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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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머리(20살, 박타푸르 멀티플 캠퍼스) : 행복한 마을을 만들어 준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인 시작점의 날이었음)으로 인해 많은 인원의 이동이 불가능해졌고, 심쌤, 하니, 상
어떻게 만들려고 하는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게 세 명만이 모너허라 학교로 향했다. 이전 28일에 만나기로 했던 마을 주민들과
심한기(품 대표) : 행복한 마을을 우리가 만들어주려는 것이 아니다. 행복한 학교와 마을을 만들
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들과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보
수 있는 주체는 당신들이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다만 당신들과 함께 어떻 게 하면 행복한 마을을 만들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며, 작은 것이라도 시도해보는 것이 우리의
는 주민 설명회 자리가 한 번 더 필요하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카트만두에서는 한-
계획이다. 그리고 ‘행복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보다는 무엇
네팔 청년문화실천워크샵 참가자들(이하 한-네팔 청년 참가자들)의 베시마을 현장
을 스스로 할 수 있는가? 를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것은 이전까지는
프로젝트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는 점과 베시마을 주민들 역시 높은 관심을 보
교사와 아이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일을 했다면, 이번부터는 마을 주민과 당신 같은 마을의 청년
이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현장 프로젝트
들이 함께 하기를 희망한다.
작업을 위해 필요한 마을 내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인 대나무를 미리 준비하는 일 교사와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이렇게 외부인들이 학교와 마을을 찾아와 무언가 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감사해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의 가능성 과 에너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은 쉽게 확인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몇 일후 다시 한 번 마을 청년들과 주민들과 만남을 가지기로 했다.
등)을 보았을 때, 이 날 역시 하나의 중요한 과정으로서 전체 프로젝트에 있어서 충분한 의미가 있었고, 이번 프로젝트와 연결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이미 프로젝트는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앞에서 말하고 설득하는 작업은 품이 했지만, 이미 베시마을의 청년과 마을 주민 들은 마을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이를 실천에 옮기고자 하는 동기가 충분해 보였 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마을에 대한 주인 의식도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은 우리
두 번째 주민설명회
가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고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였다(이 후 자발적인 청년 조직의 움직임으로 이어짐).
• 2008.5.28.10:40~12:00. 모노허라 학교 2층 교실 • 학교 교사와 아이들, 마을 어른들, 청년 60여명과 함께
Happy Vil age Project_ 조력자들의 작전 모이
5.25. 한국과 네팔의 예술가, 저널리스트, 사진작가, 다큐멘터리작가들이 모이다. 베시마을의 학교, 지역주민, 마을청년들과 더불어 Happy Village Project를 위한 다른 한 축이 있다. 한국과 네팔의 예술가, 저널리스트, 사진작가, 다큐멘터리 작가, NGO 활동가들이다. 이들의 역할은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일상, 청소년, 지역사회 베시마을에서 현장 프로젝트 진행을 시작하기로 이야기 되었던 28일, 네팔의 정 치적인 상황(5월 28일은 네팔이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그 체제가 변화하는 역사적 13
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사회적 가치를 모노허라에서 마을 청년들과 함께 실천하고 그 과정과 의미를 한국과 네팔 사회에 전달하는 역할이다. 이들은 3월부터 사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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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숍 과정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나타낼 수 있는 물건을 직관에 따라 사오고, 그 이유를 말하는 과정에서 논리적인
5월 25일 드디어 양국의 조력자들이 한 자리에 만났다. 어색한 분위기를 부드럽
정리를 해보는 과정을 가졌다. 이는 모노허라에서 진행될 ‘Happy Village Project’
게 하기 위한 재미난 게임을 해보기도 하고, 각자가 준비한 방식으로 서로의 생각
를 하기에 앞서 지나친 논리적 접근에서 오는 오류들을 최소화하고, 직관적으로 알
과 가치를 전달하는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서로를 소개하고 인사를 나누는데만
고 있는 것을 풀어낼 수 있게 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었다.
약 2시간 30분가량이 걸렸다. 짧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서로의 이야 기에 집중했다. 2년 간 네팔에서 활동을 해 왔던 품은 지금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오프닝을 해본 적이 없었다. 형식보다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 보다 집중했기 때문에 오프닝 형식역시 변화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5.27. 모노허라 안과 밖의 사람 & 한국 사람과 네팔 사람
5.26. 가장 네팔스러움의 중요성과 직관에 대한 통찰
모노허라 안과 밖의 사람, 한국 사람과 네팔사람이라는 4개의 다른 단위가 서로
Happy Village Project는 각 영역별로 맡은 역할이 분명하다. 한국과 네팔의 젊
의 생각을 존중하고 Happy Village Project가 결과가 아니라 앞을 위한 과정으로
은 예술가들이 중심이 되어 기획 및 진행하고 다큐작가는 영상으로 사진작가는 사
서 마을의 활성화 가능성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과 네팔 참가자들은 실행의
진으로 저널리스트는 기사로 과정과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기록을 담당한다.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노허라 마을사람, 마을청년, 학교가 주체가 될 수 있도
Happy Village Project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예술과 사회적 가치
록 지원하는 것이다. 학교는 교사와 아이들이 자신들이 직접 학교의 변화를 만들어
를 어떻게 연결시켜 흔들리지 않은 중심점을 둘 것인지 단서를 찾기 위해 김월식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 마을청년은 프로젝트 과정을 통해 마을과 학
선생의 인덕원 프로젝트와 외국 사례들을 만나보았다. 그 사례들을 통해 가장 네팔
교의 변화를 위해 앞으로의 활동의 동기화를 마련하는 것, 지역주민은 지지와 앞으
스러운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Happy Village Project가 베시마을에 지나가
로의 참여 동기를 위한 이해의 과정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실천방향이었다. 실
는 바람이 되지 않기 위해 지속적인 과정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했
천방향을 머리에 염두해 두고 참가자들은 현실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배제하고 모
다. 이것은 예술가들이 작품자체(물질)에 보다 예술가들의 태도와 정신(가치)이 더
든 생각을 쏟아내는 과정을 거쳐 결과적으로 현실가능하며 실천방향을 표현해 낼
욱 중요함을 뜻하는 것이다. 다음단계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감성들을 직관
수 있다고 판단되는 7가지 생각으로 압축하는 과정을 가졌다.
적으로 표현해보는 ‘직관에 대한 통찰’에 대한 시간을 가졌다. 각자 20Rs씩 들고 시장으로 나가 자신을 상징할 수 있는 것, 자신의 나라를 상징할 수 있는 것 등을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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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마을 만들기의 시작_ 0529 늦은 첫 시작(오프닝 세러모니: 짧은 동네 청소)과 작은 환영식 학교 주변을 짧게 한 바퀴 돌면서(20분 거리) 쓰레기를 주우며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프로젝트
5.28. 구체적인 계획세우기와 최종 준비
의 출발을 알리는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세러모니
원래의 계획은 28일부터 모노허라에서 Happy Village Project가 시작되는 것이 나, 28일 네팔이 왕정체제에서 공화국체제로 변하는 역사적인 날로 외곽지역에 있 는 모노허라로 이동이 불가능했다. 한 팀은 2차 주민설명회를 진행했고, 한편으로 는 카트만두에서 구체적인 계획을 마무리하였다. 총 7개의 계획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①마을 청년들과 함께 하는 마을 지도 만들기, ②학교 교사와 아이들이 직접 학교의 변화를 만들어 보기 위한 학교 간판 만들기, 교실 안 게시판 만들기, 아이들이 생각하는 미래에 대한 그림을 깃발 에 그리고 학교에 세우기, 화분 만들기, ③학교 교사 및 청년들에게 아이들과 쉽게 놀 수 있는 놀이 알려주기와 앞으로 생길 학교 도서관에 둘 Happy Village Project 사진집 등이다. 계획 준비과정에서 네팔 측 다큐작가는 방관적인 자세로 앉아있을 뿐 촬영을 하지 않았고, 네팔 측 저널리스트는 바쁘다는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1차 워크숍과 연결되어 진행되는 2차 워크숍(한국)에 그들 이 참여해야 할 이유를 모든 참가자들이 찾지 못하면서 2차 워크숍에는 그 둘을 제외하게 되었다.
로 그 시작을 열었다. 그리고 프로젝트 작업을 시 작하기에 앞서, 마을 주민들의 환영의 마음이 담겨 있는 네팔 전통 방식의 작은 환영식(띠까와 꽃목걸이)도 함께 했다. 이번 프로젝트 를 위해 함께 모인 한국과 네팔 사람, 그리고 베시마을 안과 밖의 사람이 처음 만 나서 하나 되는 시작을 알리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지도 만들기를 위한 길고 긴 과정의 첫 시작 이날의 작업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그 중 한 그룹은 마을 지도 만들기를 위한 사전 조사 작업을 맡았다. 오전 중에 한-네팔 청년 참가자들과 마을 청년들이 함께 하나의 팀이 되어서 마을 지도 만들기를 위한 사전 조사 과정에 들 어갔다. 마을의 구역을 나누어 각각의 팀이 사전 조사를 하였고, 이 과정은 단순히 현재의 상황이나 환경을 조사하는 것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 각자가 마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소망들도 꺼내어 볼 수 있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특히, 그 지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마을 청년들의 참여는 매우 필수적이고 중요한 부분이었다. 자 신들이 살아 온 곳을 돌아보며 새롭게 바라보는 작업은 마을 청년들에게 그들의 공간과 그 안의 사람들을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 를 갖게 했다. 이후 프로젝트 과정을 나누는 자리 에서 한 청년은 이 과정을 통해 마을 사람들이 마 을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긍정적인 생각들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어서 기뻤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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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했던 프로그램들
후에도 계속 남아 준비했던 축제를 위한 세팅(우리나라 운동회 때 만국기가 펄럭이
베시마을 주민들 중에 또 하나의 중요한 주인공은 바로 아이들이다. 이 역시 한-
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 도착한 우리 앞에 펼쳐져 있었음)등은 그 밑바탕에 깔려있
네팔 청년 참가자와 마을 청년들이 함께 호흡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였다. 오전은
는 그들의 실질적인 관심과 고민, 실천(참여)이 있었기에 더욱 빛났고, 덕분에 이미
네팔 놀이와 한국 놀이를 하나씩 돌아가며 신나게 놀아보는 시간이었다. 역시 꾸밈
마을은 축제 분위기였으며 우리만의 프로젝트가 아닌 모두의 프로젝트가 되었다.
없이 제일 신나게 노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른들도 조금씩 마음 을 열고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결국 아이들로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기
부터 어른들이 ‘어떻게 노는가’를 배우는 시간이
조력자들 중 범준과 람은 전 날 조사하고 정리한 자료를 기초로 실제 지도 그리
되었고, 이 시간 이후부터 꼭 프로그램으로 진행하
는 작업에 하루 종일 열중하였다. 상게와 치락 역시 마을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특
지 않더라도 아이들과 몇몇 청년, 어른들은 자연스
별한 모노허라 학교의 간판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몇몇 마을 청년들과 워
럽게 언제든지 놀이를 시작하고 함께 웃고 즐기는
크숍 청년 참가자들이 함께 하는 학교 꾸미기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는데, 교실 게
시간을 보냈다.
시판을 만든다든가, 화장실 문 및 학교 곳곳에 있는 시설물들을 페인팅하는 작업은 모두가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한데 모여 즐겁게 작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날
행복한 마을 선포식과 마을 잔치_ 0530
특별히 한국의 아티스트인 김월식님은 모노허라 학교를 위한 아이들의 모습을 담 은 그림을 작업하여 학교에 선물로 남기기도 하였다.
첫째 날과는 사뭇 달랐던 시작 풍경 둘째 날의 시작 분위기는 첫째 날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전 날 청년들과의 논 의에서 미리 준비를 해놓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되었던, 학교 옥상의 화분 심기나 전 날 아이들이 작업했던 꿈 깃발 세우기 등은 준비가 아닌 모든 일들이 마무리되 어 있었고, 수리를 하고 그 위에 페인팅을 하려고 계획했던 우리의 생각을 함께 나 누었던 마을 분들은 우리가 먼저 이야기하기도 전에 화장실 문을 말끔하게 고쳐놓 으셨다. 이렇게 하여 한-네팔 청년 참가자들은 갑자기 해야 할 일이 줄어들어 하루
삶 깊숙이 시작되는 진정한 축제 시작을 알리는 요란한 멘트 없이도 마을은 이미 하루 동안 축제 분위기였고, 본
종일 청년들과 함께 무엇을 해야 하나 라는 행복
격적인 마을 잔치도 자연스러운 흐름 안에서 시작되었다. 도시에서의 잔치, 파티를
한 고민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들은 누가 시켜서가
떠올려보면, 누군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공연을 하는 사람들과 관객이 엄격하게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들이 마을을 위해 할 수 있
분리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 날 베시마을에서의 잔치는 하루 종일
는 일을 찾고 실행할 수 있는 에너지를 스스로 안
이어지는 흥겨운 노래와 춤, 놀이를 통해 아이들과 어른들의 분리되지 않은 일상이
에서 발견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가 돌아간
그대로 축제가 되었다. 마을의 진정한 주인은 과연 마을 사람들이었다. 모든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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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고 익숙하게 진행해나가는 힘은 그 마을 사람들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것 이었다. 아이들, 손님, 그리고 마을 어른들 순서로 이어진 많은 이들이 함께 나눈 저녁 식사 역시 소란스럽지 않게 모너허라 학교 선생님들과 청년들의 움직임으로
마을 잔치 이후 풍경들 크게 변한 것도, 크게 바뀐 것도 없다. 조용한 베시마을을 살짝 흔들어놓은 ‘행복 한 마을 만들기’의 열쇠는 그들이 가지고 있기에 조금은 소란스러웠던 잔치는 그
자연스러운 마을 잔치 흐름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자체로서의 의미를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작은 잔치 이후 베시마을에는 작은 울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을 청년들의 울림과 마을 사람들의 울림과 아이들 의 울림과 교사의 울림들이 잔잔한 파도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청년들은 학교와 마을의 변화와 성장을 위한 자조적 모임을 시작했고, 교사들은
마을 사람들이 바로 삶의 주인공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고민과 제안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마을 리더들은 학
이 날의 마을 잔치를 위해 다큐 작가로 참여했던 김판중군과 사진작가로 참여했
교에 대한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물론 이는 눈에 보이거나, 수치로 환산할 수 있
교와 마을의 성장을 위한 적극적인 참여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변화된 학
던 임지은님이 준비했던 특별한 선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마을 사람들을 주인
는 현상이 아닌 물결 속에서 일고 있는 보이지 않는 파도와도 같은 울림이었다.
공으로 담은 영상 편지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귀한 땀을 흘려 찍었던 마을 사람 들의 사진(특히 사진작가 임지은님은 마을의 가가호호를 돌아다니며 가족사진 찍는 작업을 이틀 동안 진행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직접 오지 못했던 마을 사람들 도 우리 프로젝트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고, 임지은님의 말처럼 길게 보 았을 때는 그들의 삶의 모습과 과정의 변화를 지켜볼 수 있는 소중한 작업의 시작 점이라는 의미도 있었다)이 합쳐진 한 편의 단편 영화였다. 이날 마을 사람들 한 명 한 명 모두가 그들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그들의 일상이 비록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생계를 유지하느라 버겁게 느껴지더라도 그 안에서 충분히 소중하고
교사, 마을 대표의 행복한 카트만두 나들이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조금이라도 느끼기 시작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품은 마을 잔치를 마친 후 그간 함께 고생했던 모노허라 학교의 교장, 교사(6명),
날 진정 그들이 마을의 주인이고 자신들의 삶의 주인공임을 실천하려는 뜻 깊은
마을 대표 그리고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분위기 메이커 한분과 목수 아저씨
움직임도 함께 있었다. 마지막에 청년 대표 격인 썬저이라는 친구는 상기된 목소리
이렇게 10분을 카트만두의 한국식당으로 초대했다. 모노허라에서 1시간 거리이지
로 지금부터 청년 조직을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관심 있고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
만 쉽게 나갈 기회가 없는 시내 나들이였다. 엔지오 품에서 대절한 봉고버스를 타
은 누구든지 다음날 아침까지 학교로 모이자는 이야기로 자발적인 청년 조직의 시
고 타멜 거리에 도착한 10명의 초대 손님들은 너무도 정겨웠다. 남자 손님들 대부
작을 알렸다.
분은 깔끔하게 이발을 했고, 여자 손님들은 화려한 네팔 전통의상(사리)을 입고 왔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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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한국식당에서의 식사와 이야기는 ‘소박한 이야기 밥상’ 그 자체였다. 누군가 의도적인 말 걸기를 시도하지 않아도, 행복한 밥상의 주제는
베시마을 최초의 청년 조직
‘행복한 학교와 마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행복한 학교와
농촌 마을에 청년들이 없는 한국의 현실과는 다르게 네팔의 농촌과 산간마을에
마을의 주인은 자신들이란 것을... 그리고 이를 함께 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에 대
는 많은 청년들과 아이들이 살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카트만두나 포카라, 동부
한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엔지오 품 대표가 모노허라 학교의 첫 방문에서 느
의 모랑 등의 대도시 또는 중소 도시에는 아직도 네팔의 청년을 흡수할 만한 직업
꼈던 속상함, 네팔 공립학교의 교사의 현실적 한계, 마을 사람들의 변화와 관심, 앞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농촌의 청년들은 자신의 고향에 남아있을 수밖
으로 만들어갈 행복한 학교와 마을에 대한 상상까지... 함께 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에 없다. 하지만 지금 네팔의 농촌에는 많은 청년들과 아이들이 그 자리에서 살고
편안하게 이어졌고, 엔지오 품에서 준비한 작은 선물을 건네며 잡은 두 손은 너무
있다. 엔지오 품은 그 자리에 남아있는 청년들이 바로 네팔의 힘이며, 가능성이라
도 따뜻했다. 다음은 행복한 밥상에서 나눈 이야기 중 일부이다.
고 판단하고 있다. 한국은 빠른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과거의 소중한 뿌리들을 잃어 버렸지만 네팔은 세대와 세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 고 있다.
모노허라에 품이 오기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무엇이 변화되었는가? 빠르버띠(교사) : 당장의 큰 변화는 없다. 그러나 마음이 즐겁다. 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관심이
우리가 만난 네팔의 농촌마을 ‘베시’는 농촌마을의 변화와 가능성을 보여줄 수
없었으나 지금은 마을사람들이 교육의 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있는 전형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가난한 농촌마을 사람들이 스스로의 희망을
품과 함께 한 이번 프로젝트가 어떠하셨나? 라주(교사) : 품과 마을사람이 함께 해서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아티스트들이 와서 아이들이 지적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찾아내고, 모든 세대가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며 가능한 변화를 실천할 수 있는 보
크리슈나(마을대표) : 맨 처음 한 마을청소를 하는 모습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많이 좋아했다.
이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결국 엔지오 품은 이번 ‘행복한 마을 만들기’의 초점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품에 대해 더 많이 설명할 수 있었다. 품이 도와줘서 좋고, 즐겁다. 그
을 청년으로 집중했다. 물론 한국과 네팔의 청년 아티스트들의 참여와 그들의 역할
리고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도 학교를 위한 미팅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즐거워서 하는 것이고 이걸 보는 어른들도 즐겁다. 무엇을 하든 마음과 생각이 중요하다. 오늘도 음식 먹는 게 중요한
도 중요하지만 베시마을의 성장을 위해서는 그곳에 살고 있는 청년들의 힘이 더욱
게 아니라 마음이 있으니 이렇게 불러주는 것 아니냐
중요했다.
교사들의 재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과 꼭 함께 하고 싶다.
워크숍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국과 네팔의 청년 아티스트들에게도 가장 강조되
러메스(교장) : 같은 생각이다. 품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
었던 것은 베시마을의 청년과 주민들에게 스스로 가능한 동기화를 찾게 해주는 것 이었다. 우리가 직접 무언가를 만들고, 제안하는 방향이 아닌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갈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고, 계획했다. 비록 어설프고, 수줍어하 는 청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들의 학교와 마을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을잔치가 끝나갈 무렵 가장 적극 적인 참여를 했던 썬제이는 마을 청년들에게 공식적으로 제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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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는 ‘의심’과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끊임없이 모든 것에 대한 ‘의심’과 ‘질문’
“앞으로 학교와 마을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다. 이제 우리가 직접 마을과 학교를 위해 무언가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모임과 조직이 필요하다. 모노허라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 중 이것에 관심 있는 청년들은 내일 아침 학교로 모이길 바란다.”
을 해봐야 한다는 이야기는 처음부터 청년들의 관심을 끌어 들이기 시작했다. 이 날의 강의는 청년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대부분의 청년들이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렇게 빨리 그들이 스스로 움직일 줄은 예측하지 못했었 다. 우리는 어설프고, 작은 경험과 참여를 통해서 그들의 힘과 에너지가 발현되는 순간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들은 매일 모임을 가졌고, 청년모임의 이름도 정했다. 그들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목록화하기 시작했고, 품에게 자신의 계획을 전달했다. 그리고 엔지오 품은 최초의 베시마을 청년조직과 기존의 마을 커뮤니티 모임, 교사 조직과 함께 모노허라 학교와 마을을 위한 공동의 논의구조를 만들어가
소통할 수 있는 정도의 영어를 사용해 심쌤과 마을 청년들의 직접적인 소통이 가 능했다. 강의가 끝난 후, 청년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셤은 단순하지만 매우 특 별하고 중요한 이야기였다고 말했고, 썬저이는 짧았던 것이 좀 아쉬웠지만 자신들 이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내용이었다며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시간이었다는 자신의 생각을 나눠주었다. 청년들의 움직임에 대해 품 역시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지지하겠다는 우리의 생각과 신뢰의 마음도 전달되었다.
Manohara Ex-students and Creative Youth Society
기로 했다.
워크숍이 시작되기에 앞서 마을 청년들과 그들이 조직한 'Manohara Ex-students and Creative Youth Society'(모노허라 학교 졸업생과 창조적인 청년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재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기획은 처음에 그들이 높은 관심을 보였던 학교 교육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 새로운 영어, 수학 자원 활동가 교사를 배치하고, 부족한 책들과 아이들의 교복을 구입하며, 좀 더 다양한
마을 청년 조직과 함께 한 짧은 워크숍
교육 프로그램들을 제공하겠다는 구체적인 논의들이 이미 이루어졌고, 이들은 이를
• 2008.6.8.16:00~18:00. 모노허라 학교
천의 과정들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이러한 기획과 실행을 위해 매주 토요일 아침 8
실행하기 위해 이미 도네이션과 관련된 움직임을 시작하는 등 놀라운 동기화와 실
• 마을 청년 12명, 품 자원활동가 그룹 ‘해피바이브레이션’ 3명과 함께
시에 정기적인 모임을 갖기로 정했는데, 이 모임에 품의 스텝인 하니도 함께 하여
프로젝트가 끝난 며칠 후 모노허라를 처음 방문했을 때 눈에 띄게 활발한 활동
그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함께 일할 것임을 이
을 벌이기 시작한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전까지 마을 안에서 크게 드러나지
야기되었다. 현재 베시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그들 자신의 삶과 마을 전
않고 있던 청년들의 모습을 생각해봤을 때 매우 커다란 변화였다. 이제 막 시작한
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희망으로 자리 잡았다. 청년 조직과 마을 위원회,
그들의 움직임은 열정에 넘쳤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부분들이 있었다. 그들이
그리고 모노허라 학교의 교사 조직과의 조화로운 소통과 협력의 과정도 이들에게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일을 제대로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새로운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조언과 자극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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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 BESI GAUN에서 LITMUS로의 공간이동
6명의 네팔 청년들이 한국 땅을 밟았다. 그들에게 있어 한국행 티켓은 쉽게 얻어 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청년들처럼 몇 개월 아르바이트해서 갈 수 있는 일상적인 여행과는 거리가 멀다. 경제적 여건은 물론이며 비자 또한 쉽게 나오지 않는다. 지금도 네팔의 수많은 청년들이 돈을 벌기위해 한국행을 꿈꾸고 있지만 그 것은 소수에게 선택될 수 있는 쉽지 않은 꿈과도 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첫 번째 한국행 나들이가 손님으로서만이 아닌 주인으로서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최대한 우리의 일상에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Deepmala Maharjan
Ram. k. Maharjan
Rajendra Napit
2007년 Happy School 프로젝트를 통해 젊은 예술가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그룹인
1.시공간의 차이와 가치
Happy Vibration의 초창기 멤버이고, 예술로 사회를 행복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 지고 있다고 믿는 청년들
히말라야 속의 가난한 나라 네팔과 백두대간을 품고 있는 성장의 나라 대한민국 Chirag Sainju
은 오묘한 시공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네팔은 언뜻 보면 한국의 시간을 30년 정도
Happy Vibration 새로운 멤버.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는 청년
거꾸로 돌려놓은 것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30년이 넘는 시간의 차이 속에는 우리가 잃어버렸던 시공간의 가치들이 히말라야 속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 Ang Sange Sherpa
다. 물론 쉽게 보이거나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장 속도와 삶의 환
네팔 품의 상근활동가.
경에 대한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으나 무형의 가치는 쉽게 드러나지 않기
청년으로 성장하기 위해 열심히 품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
때문이다. 한국과 네팔, 청년 그리고 베시마을의 작은 학교와 함께 한 2년이란 시 간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의심과 발견’을 거듭했고 결국 시공간의 차이와 가치는
이하니
전수, 전달, 유입되는 것이 아닌 교류되고 교환될 수 있는 것임을 확인하였다. 그리
네팔 품의 상근활동가이며,
고 우리는 네팔로 가야만 하는 일방적인 태도에서 그들 또한 이곳을 찾을 수 있는
품의 활동을 몸으로 실천하며 확장되어가고 있는 청년.
상호적 관계의 중요성을 실천하게 되었다.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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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국에서의 여정보기 8.21
한국에 오다
8.22
강북구청장 미팅 ‘놀이터’ 준비
한국 품에서 지역문화운동을 실천하는 청년집단과의 만남이다. 양국의 청년들은 매
8.23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
달 진행되는 ‘강북 청소년문화 놀이터’에 함께 참여했다. 특별한 대접이나 일정은
8.24~26
없었다. 함께 라면과 떡볶이를 먹고, 생각을 나누고, 즐거운 작업으로 밤을 새고,
전남 광주 나들이
with이주빈(오마이뉴스기자)
호텔이 아닌 그들의 집에서 함께 잠을 잤다. 네팔의 청년들은 한국 품에서 오랜 시 간동안 진행되고 있는 지역사회 문화활동과 축제에 대한 과정과 가치를 경험할 수 있었고, 한국 품의 청년들은 네팔의 청년들(Happy Vibration)에게 또 다른 자극과 경험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꿈꾸는 청년과 청년의 만남은 특별한 준비 없 이 특별한 과정들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보통의 국가 간 교류 사업들이 가질 수
9.1
8.26~28
전시회 준비
8.29~31
아카이브 전시회 ‘주인으로서의 손님’
서울 나들이 청소년과사람사랑 방문
있는 형식적인 함정들은 애초부터 배제되었다. 한국에서의 첫날, 첫 만남은 함께 비빔밥을 비벼먹은 시간으로 시작되었고, 동네에서 진행되는 청소년문화놀이터 작
9.2
업에서도 편안하고 즐거운 참여가 만들어졌다. 거창한 국제교류 행사가 아닌 동네
네팔로
청년들 간의 마실을 즐기는 듯한 자연스러운 만남들이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이는 국제행사, 한국과 네팔의 교류로서의 거창함이 아닌 자연스러운 청년과 청년들의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3.청년과 청년 한국을 찾은 6명의 ‘주인으로서의 손님’들은 네팔의 청년들이다. 그들은 모두 대 학생이기도 하며, 진정한 예술가, 저널리스트, 엔지오 활동가를 꿈꾸고 있는 청년들 이기도 하다. 하니는 엔지오 품의 상근활동가이고, 상게는 엔지오 네팔 품의 인턴 이며, 딥말라, 람, 라젠드라, 치락은 예술과 사회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대학원생)이 며, 또한 엔지오 네팔 품의 자원활동가들이다. 이들 모두 품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개인의 꿈과 희망을 넘어서 세상 밖으로의 가치를 꿈꾸고 있는 청년들이다. 우리는 제일 먼저 그들과 다르지 않은 한국의 청년들과 조우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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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인으로서의 손님 히말라야를 품고 사는 네팔에서 3년 간 좌충우돌 끝에 얻은 지역사회와 청년 그 리고 문화적 가치에 대한 발견들을 한국의 청년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우리가 선택 한 방법은 소박하지만 조금은 특별한 아카이브 방식의 전시회였다. 발제와 토론 즉 말과 글이 중심이 되는 토론회나 세미나보다는 조금 더 생동감 있고 조금 더 인간 적인 교감의 방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공간 역시 서울이 아닌 한국 속의 다문화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안산시 원곡동의 대안적 다문화 공간인 ‘LITMUS’를 선택 했다. 네팔의 청년, 한국의 예술가와 청년, 그리고 리트머스의 예술가들이 함께 준 비한 ‘주인으로서의 손님’은 전시회라기보다는 소박한 시선들을 나누고, 소박한 말 걸기와 상상들을 나눌 수 있는 편안한 사랑방과도 같았다. 주인과 손님의 구분이 없이 모두가 손님이기도 하고, 모두가 주인일 수 있는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는 모두가 주체로서의 삶을 나눌 수 있는 의미로서의 ‘주인으로서의 손님’들이 쉬어가 는 사랑방과도 같았다. 슈퍼스타, 무비스타, 아티스트 김월식 대장을 중심으로 만들 어진 전시회가 편안한 사랑방이 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리트머스라는 공 간이 주는 자연스러움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작가들의 보이지 않는 참여와 응원이 었다. 네팔에서 공수된 네팔 차(찌아)와 네팔라면 그리고 네팔 과자와 네팔 소주(럭시) 를 나눠 먹고, 중간 중간 네팔청년들의 노래와 연주도 나눠보고, 네팔에서의 과정 을 담은 ‘판’의 다큐멘터리와 임지은작가의 사진들을 나눠보았다. 또한 품의 사업기 획서, 네팔 측과 소통한 이메일 편지, 저널리스트로 참가한 이주빈 기자의 기사 그 리고 네팔 청년들의 그림 작품 심지어는 네팔 청년인 치락이 가져온 가족사진 앨 범 또한 중요한 전시물이었다. 천정 위에는 네팔에서 담아온 다양한 소리(SOUND) 들이 들리지 않을 듯 날아 다녔고, 네팔에서 만난 동시(童詩) 시인인 수베디 아저 씨가 불러주는 한국 참가자들을 위한 환영노래가 30년 전 구닥다리 TV 속에서 반 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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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전시장과 전시회에서는 소란스러움, 음식의 냄새, 담배연기, 장기체류가 금기시 될 수도 있지만 이번 전시회 속에서는 이 모든 것이 하나하나의 중요한 전
세 번째 이야기. 끝나지 않은 베시마을 이야기
시물이 되기도 했다. 이틀 간 진행된 전시회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내 용, 규모, 교통편, 사전 홍보 등이 열악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주인으로서의 손 님들이 다녀갔다. 한가한 예술가들도 있었고,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는 작가들도 있었고, 엔지오 활동가들도 있었고, 네팔여행을 준비하는 청소년문화의 집 아이들 과 부모님도 있었고, 네팔을 여행했던 배낭여행자도 있었고,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네팔이주노동자들도 있었다. 품에서는 지금까지 전시회를 한 적이 없었다. 품 17년 역사상 처음으로 열어보 는 이번 ‘주인으로서의 손님’은 전시회라는 부담과 거품들을 편안하게 걷어내고 또 다른 즐거움과 상상들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 리트머스라는 공간과 그곳 에서 숨 쉬고 있는 작가들 그리고 안산 원곡동을 네팔 이주민 노동자들과 함께 나 눌 수 있는 새로운 작업들을 상상할 수 있게 하였다. 결국 네팔의 수많은 사원과 거리 상점에서 보았던 ‘원형’의 만다라처럼 모든 것은 스스로의 생각과 가치와 행
1.토끼와 거북이 한국과 네팔의 시공간적 차이는 마치 토끼와 거북이 달리기 경주와 같다. 우월감 과 자만심으로 가득 찬 토끼는 느리고 느린 그러나 게으르지 않은 거북이에게 지 고 만다는 이야기는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현실에서는 어느 누구도 여유
동과 상상에 따라서 아름다운 연결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본다.
로운 거북이의 삶을 선택하기 쉽지 않다. 특히 빠른 속도감, 그것도 압축적 속도감 으로 무장되어버린 한국에서는 더욱 쉽지 않다. 고도성장의 깃발을 휘날리며, 매가 톤급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는 한국인에게 비친 네팔의 모습은 느리고, 게으른 거북 이와도 같다. 그리고 네팔 인들은 토끼처럼 성장한 한국을 부러워하며, 한국에서 직업을 갖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하기도 한다. 이러한 외형적 상황에서 우리가 자주 만나는 함정이 하나 있다. 즉 개발이나 경제성장과 같은 외형적 수치 로 국가나, 민족 간의 등급을 나누고, 사람과 사람과의 수직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토끼 한국은 거북이 네팔에게 가르치거나, 도와줄 일들만이 존 재하다고 생각하거나, 거북이 네팔은 토끼 한국의 모든 것이 앞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함정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함정에 빠져있을 지도 모른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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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허라 강가에 던져진 돌맹이 하나
에서 만들어진 희망들을 나누며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지금까지 우리가 내밀었던
모노허라강은 카트만두 주위를 맴돌다가 바그마티강을 만나 남쪽으로 흐르다가 결국은 성스러운 갠지스강을 만든다. 작은 물줄기가 성스러운 강과 호수가 되고, 결국은 드넓은 바다가 될 수 있다는 자연의 순리를 잊고 사는 것은 오직 인간뿐일
문화와 예술, 국제교류사업, 등등의 명칭들이 얼마나 거창한 표현들이었고 또한 그 들에게는 쉽게 교감될 수 없는 단어들이었는지를...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가까이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슴의 언어들을 찾으려 한다.
것이다. 눈에 보이는 작은 것에 대한 소박한 가치를 잊고 사는 인간의 삶에서 필요
약간은 소란했던 행사가 끝나고 다시 찾은 모노라하는 평온한 일상의 모습이었
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일상에서의 작은 통찰’이다. 잔잔한 강가에 던져진 돌맹이
다. 벼농사가 시작되는 때라 모두들 모심기에 여념이 없었다. 교장 선생님 그리고
하나가 강 속에 숨겨진 무한한 생명력과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듯이 단조롭고, 답답
아이들과 함께 모심기를 해본다. 잠시 쉬면서 새참(감자)과 막걸리(창)를 나눠 마시
한 일상에 던져진 돌멩이 하나가 삶의 에너지와 가치를 확인시켜주기도 한다.
는 이 순간에는 문화와 예술, 국제교류 사업이 아닌 사람과 사람에 존재하는 따뜻
모노허라 강가의 작은 마을 베시, 그리고 그 작은 마을 속에 작은 학교 모노허라 학교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던져졌다. 2년 전 던져진 그 진동은 멈출 듯 멈출 듯 멈추지 않다가 결국은 베시마을의 희망을 발견해주는 작은 물결이 되었다. 아무것 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 같은 마을에 숨겨진 에너지와 희망들이 쏟아져 나왔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마을의 청년들이 스스로 학교와 마을을 위한 모임을 만들었
한 무언의 언어들만이 들꽃처럼 피어오른다. 그리고 앞으로 이들과 함께 나눠야 할 것은 프로그램과 프로젝트가 아닌 서로가 두 볼을 만지며 감사할 수 있는 인연 (karma)들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다시... 토끼와 거북이
고, 아무런 걱정도 열망도 없었을 것 같은 교장과 교사들이 교육자로서의 성장을
부산행 고속열차의 속도로는 갓 피어난 제비꽃을 만나지 못한다. 하지만 느리게
위한 의견과 제안을 내밀었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던 다수의 마을 주민들이 지
바라보고, 느리게 걸어보는 과정에서는 갓 피어난 제비꽃들과 하염없는 대화를 나
지의 미소를 보내기 시작했다. 분명 작은 마을 베시마을에 깊은 울림들이 너울거리
눌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빠른 토끼가 느린 거북이의 걸음으로 걸어볼 수 있어야
기 시작한 것이다.
한다. 쉬지 않고 빠르게만 달리다가 자칫 흘려버릴 수 있는 시간의 소중함들을 회 복하기 위해서는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시간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히말라야
‘크게 시작하지 않으려면 집으로 돌아가라!’ 세계굴지의 기업 마이크로소프트 회 사의 슬로건이다. 크게 시작하여 거대한 파도와도 같은 큰 이익을 남기는 장사가
에서의 시간은 오늘도 천천히..천천히...(비스따리, 비스따리) 하늘과 구름을 향해 흘러가고 있다.
이 시대의 슬로건이 되고 있지만 오직 크고 거대한 것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베시마을, 모노허라 학교에서 2년 간 벌어진 일들은 너무 도 작고 소박한 일상들이었다. 하지만 빠르지 않게 상호간의 신뢰와 관계를 만들어
2.토끼 같은 거북이들의 짐 꾸리기...
가고, 편안한 일상들을 교감하는 과정 속에서 기대하지 못한 희망들을 함께 발견해
아카이브 전시회 ‘주인으로서의 손님’을 마치고 네팔의 청년들은 주인처럼 손님
갔다. 만약 우리가 처음부터 거대한 꿈과 물질 등을 일방적으로 제공했다면 베시마
처럼 그렇게 머물다가 히말라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간 길의 모습은 직
을에 숨겨진 스스로의 희망을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소박하게 시작된 관계
선의 고속도로가 아닌 처음과 끝이 만나는 ‘원형’의 수레바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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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심한기와 강명숙은 카트만두의 변덕스런 하늘 밑에서 한국에서 다시 돌아 온 사람들, 원래 이곳에 있었던 그들과 또 다시 시작된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리
네 번째 이야기. You came here!
고, 베시마을에는 모노허라 학교의 아이들과 작년에 방문했던 한국의 발달장애청소 년대안학교 ‘나눔학교’ 아이들이 오픈 수업을 하고 있다. 오늘 밤에는 모든 이들이 베시마을에서 함께 잠을 자고 내일은 모두가 함께 소풍을 갈 것이다. 모노허라 학교에는 나눔학교와 베시마을 사람들이 함께 이루어낸 장남감 도서관 공사가 한창이다. 두 번째 방문하는 나눔학교는 모노허라 학교와 친구 맺기를 약속 했다. 베시마을 청년들과 마을 사람들의 희망은 더욱 아름답게 진화하고 있다. 그 리고 지금 심한기, 강명숙, 이하니, 상게, 장부는 또 다른 ‘행복한 마을 만들기’를 위해 에베레스트 솔로쿰부의 산간 마을 방문을 준비하고 있다. 행복한 짐 꾸리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픈수업 마을 청년들과 담장세우기 홈스테이와 마을소풍 희망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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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ld we be happy? These questions I never thought. After your coming I thought about it. Am I happy or not? What I need to be happy etc. I thought about the village and villagers. I hadn’t talk with my own villagers clearly but now I knew who I want? But I still don’t know anymore about them.
꺼머리 시레스터 Because of you, I want to help to develop this village before this also I want
(가운데 활짝 웃는 그녀) 첫 마을 주민 설명회 때, "그래서! 대체 행복한 마을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겁니까?"라는 질문으로 순간
to see my developed village, but couldn’t able to do anything and one thing I
우리 모두를 긴장하게 했던, 하지만 무언가 기대와 희망을 갖게 했던 친구. 개인적인 어려움들이 있지
am a girl. Who have to marry one day and have to go another village/town. So I
만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베시마을 청년조직의 열성 멤버 중 하나. 요즘 꺼머리는 자신의 정체성과 앞 으로의 살아갈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중이다. 첫 번째 글은 Happy Village Project가 끝난
am not ready to this. But now I fully devoted in developing village.
후 청년 꺼머리의 생각이고, 두 번째 편지는 이번 프로그램 때 만난 심한기 선생님께 그러한 고민들을
Unfortunately in our village nobody wants to do such a work. Most of them
털어놓은 소중한 비밀 이야기인데 개인의 동의를 구해 함께 실어본다.
wants to develop their own self level.
I had already written in report about your appearance you again asked me to
I know that if all villagers are rich and do social work, that village can be develop. But if all villagers are poor how could they think about village, when their
write about it. So I am writing or revising that all things.
own situation is not good when they don’t have sufficient things to fulfill their You came here. You have become our forefather to move ahead with all youth to develop our own village. Before your appearance we didn’t have a power to do those all work. We just used to talk with our friends and we usually hadn’t met each other. Sometime one or two times in a month we used to meet and talk. Because of your appearance we became close to each other. We could
primary needs. So I think if all villagers can fulfill their primary needs, they automatically can be happy. I am not saying that money is all things. I had already told you that money is not all things it is just a mean. Generally we cannot do anything without money. So here money is means to do everything. If we want to do anything we need money. if in present situation we need money to work.
know each other closely and we could motivate to do work for all. Yes I already told that the main thing you gave us motivation. Without your motivation
I just want to clear the real reality of our situation. so if we want to make
I think you we never could do it. I am very happy that because of you, one
our village happy, first we should have to do that work which keep all people
foreign NGO. We became this and I want to give thank to you that you want to
busy and they could be self centered without this I think our village cannot be
make us happy.
happy because most of the youth of our village are educated but they hadn’t work to their qualification. They are spending the time without any achievement
We first never thought that we are happy or not. Who is happy in our village?
.they just youth have a great power, but here they cannot use it properly.
All people have problems, lots of work at field but not sufficient for serve. How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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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pal is a developing country, we all know it. Here is not a fixed policy or
Dear. Shim!
politics right now. Our leaders are still in dilemma. At this time, here is lots of unemployed youth. We know that our country’s situation is not good. So most of
Thanks a lot for your help and work. That jokes make me very interesting. I
the people wants to go abroad to study and earn money. Because they think if
feel so much relax I forget my all tension. I had told that I will not participate
they stay here, they cannot do any thing. So our youth are becoming less here.
in this program but I cannot stay without taking participation. I don't know why I
That youth who went foreign country they never want to come back here again.
felt. I cannot do anything in my life. I'm somehow became depress by lots of
In the same way, youth of our village also think this and if they go foreign
reasons. But when I talk with you and saw your energy, I automatically get
country, just their parents will be left here, then our village cannot be happy
power to do anything. Thanks for these all things.
village. So I think first we have to make all youth employed and then they can earn money and can fulfill their needs. After then they will also work to see developed village and do the work for village also.
One thing I want to ask, why you gave me more priority? I'm feeling so so I'm asking you this question. Here are lots of people who are working with us. I think you found them more creative than me. But dear Shim because of you I
I don’t want to tell negative things about my village. But reality is this. This is my personal view. I don’t want that because of my oneself view, your excitement
got lots of positive power. And sorry also we, youth don't have any interesting creation like song, dance etc.
go down or your get depression. I’m very sorry if it happened to you! Another thing I extremely want to ask you is why you are doing these all One thing I want to know is about Korean people’s lifestyle at work, view,
works? We nobody can get right answer. Here we means most of the people
thoughts etc. And what kind of working technology you are using and how you
feel that this kind of program, we just lost our time specially farmer parents
are accepting. If you give me these things answer I’ll be very happy!
don't allowed to participate in it. Other youth who don't have work just come to
I’m sorry, actually at first I have thought that you came here to utilize your own money. But not it totally changed. I know I was wrong. Sorry!
do fun! They don't participate in working. If you want to see your develop village you can do for your ownself country village. Why you came to Nepal or Manohara School? I cannot understand by reading about PUM. Please make us clear. And please don't take it as negative. It is my personal question which is in my heart and mind. I cannot keep anything in my heart. I should throw out everything. So please don't be angry and know I'm not saying go from here. I just want to know your 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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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s a lot once again. You gave me lots of things but I cannot give you anything. I only can give my love and thanks to you. You had said that you will come to my home on September. Yesterday I cannot take you at my home. Sorry for that. Please come next time!
썬저이 시레스터
Let's see one poem here!
맨 처음 베시마을 청년 모임의 시작을 가능하게 했던, 매우 영리하면서도 리더쉽 있는 친구. 남들 안하 고 사는 세상 고민 하느라 가끔 머리가 아플 때도 있다고 하지만, 그에 대한 진지한 생각과 노력을 멈 추지 않는 것이 매력. 그러면서도 진지해 보이기만 하는 이 아이의 장난에 한번 당해보면 모두 혀를 내 두를 만큼 개구쟁이이기도 한 베시마을의 청년 리더!
As a light of a morning sunshine you gave idea to utilize time
Human being is a social animal being a social animal he can not make good
you came here at Manohara School
relation with all due to several reasons .if the relation with people of his
you teach the developing tools
society is not good then he can not be happy and satisfied. And the man who is
you put the power on YOUTH
not satisfied or happy can not be successful in life and his life is ruined. As a
you make us to do work together!
result his family can not be happy and a family in a society is unhappy means / community is unhappy. One society is unhappy means great challenge for nation.
As a evening's downlihgt please don't go at site
Your aim of making our village “happy village besi” and coming to our village
don't make anybody crazy
is not less then the grace of god for us. For this form me and from our
you should keep us HAPPY!
villagers we want to thank you from our heart thank you.
because it is you Happy Besi Gaun!!
You coming to our village and starting your aim from Manohara School is a right step in the right place. After that your different international programs between villagers and school plays important role to make our relation better. However this village is small and we know each other very well, but also we have unbelievable discrimination. After your arrival we have exchange of 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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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Due to your support today we youths have one group and all youths of village work with co-operation. Youth group has also conducted tuition classes about two months ago. For the supervision of school we have kept one miss whose name is Gita Shrestha who is also ex-student of this school. We
싼족 라이
had already provided her salary Rs.1,500 for the month Ashar. The salary of month shrawan will also be provided next Saturday. We have a meeting every Saturday but we have one challenge that is to provide minimum salary of
1차 워크샵을 공동 주최했던 네팔의 TYA(Today's Youth Asia) 쪽 코디네이터로 참여했던 청년. 처음에
Rs.1,500 is very difficult for us.
세심한 배려 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완소 산족’으로 자리 잡게 했다. 네팔 워크샵에 참여했던 이들은 모
는 ‘산적’같은 이미지로 많은 이들을 걱정시켰으나, 산족의 다양한 관심과 지치지 않는 에너지, 그리고 두 하나같이 점점 더 깊어가는 산족의 웃음과 표정을 통해 그가 진정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고
But whatever happens, due to your support we are united for village development. We had unity between youths and are working for school and village development. But the honor of his goes to you. We hope your will
이야기한다. 앞으로가 진심으로 기대되는 네팔의 건강한 청년!
Music of Happiness
conduct this types of work in coming days too. Due to which your aim of
"Natanu ta tanu lagne tane pachi matne. Mate pachi jata sukai ladi badi garne,
making our village “Happy Village Besi” will be successful. My saying “For the
K garnu rakshi ko jatai yestai ho” this was the happy song for our Shim sir. So
achievement of goal working continuously with plan is success.”
what is the happy song for me? I didn't know till I saw the real face of happiness in the faces of those small children and innocent peoples of Manohara village. They don't have many facilities like we have got but also they are very happy with what they have. This showed me the real meaning of happiness but before I didn't knew the real meaning of happiness. This workshop started with great excitement and ended with the real big success with spreading real happiness among the people. I don't know what I have done for those people of Manohara but they have given me lots of things. Actually we went there to give them something but instead i got many things from them. I learned to work together and learned how to be happy with what we have got and credit goes to Shim sir and whole team of NGO PUM. This workshop was not only giving but it was about working together to bring the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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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change in the society. At first I was doing this workshop because I was
had to go by walking at night as i was not been able to get vehicles at night.
chosen from my office Today's Youth Asia but latter on I found it very exciting
But also it didn't bother me because at that time I was happy. I was learning to
and I thought that I would get new experience from this workshop.
be happy. I used to sing the same song which Shim sir liked "Natanu ta tanu lagne tane pachi matne. Mate pachi jata sukai ladi badi garne, K garnu rakshi ko
When we were having our workshop I had to work really hard. Coordinating things was not so easy works. It was very hard to communicate with my coworkers as they were Korean but Hanee made things easy for me because she was only one who could talk in both Nepali and english with me. So she
jatai yestai ho” while going home at night. And it felt good. Sometimes I even had a bottle of soft drink in my hand while going on and singing that song use to make me feel really happy. Ahh I miss those nights haha. Now i don't get to do those things.
made things easy by making me understand the idea of workshop and other korean friends. This workshop really was a great experience for me as I made best friends from Korea and from Nepal itself.
In Manohara every works we did proved to be helpful for me because I got to learn many things from it. We worked with villagers and students which were really new experience because in other kind of workshops we don't get to do
When I first met my Korean friends I was not so comfortable with them as we could not share our words because of the problem with language but as the day past I had a good relation with them and then language was not a problem because we could understand each other from our hearts. I still remember the first day with Sang Hee when we went to shopping with only Rs 20. She didn't
this things. Every thing we did like playing with the student, sharing our culture with Korea, wishpot, art and every thing made me feel that this is the real meaning of workshop. This is the real meaning of sharing happiness and the light of hope to the new Manohara Besi Gaun. People were very happy to share works with us that gave us the energy to work really hard.
know the way so i took her around Thamel and Lainchowr. I showed her fishes and we eat kafal together. Those moments were very special for me. Everybody
This happiness we shared will always
was very good to me. This made me feel like I can make a good friend with
remain in my memories. The way to
them so I tried to make them my real good friends and I succeeded. Beum Jun,
Besi Gaun to Haseelo Besi Gaun and my
Lim, Pan, Sang Hee and everybody was my friend now. This made me feel easy
way to sad song to happy song will
to work with them that is why I think I was able to give my best in this
always be cherished. Yes this workshop
workshop. With support of Shim Sir, Myang Di and our artist uncle I was driven
gave me the real happy song. The song
by the feeling of hard work.
of satisfaction and peace in my heart is the music of happiness for me.
Our journey from meetings, pre- workshop to main workshop was very hard. I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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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and every body have happy but many villages, and many cities’ people are not happy but also they have happy but happy can feel and can see when come out the happy. So Manohara village happy came out in happy village project and Manohara people are looking more happy movement from this
앙 상게 세르파
project.
상게는 Nepal NGO PUM의 상근활동가이다. 2006년 첫 ‘오~히말라야’ 때 처음 만났다. 영특하고 품 활
This project was only a week in the Manohara with Korea PUM, Nepal PUM,
동에 관심있어하는 모습에 품이 그에게 품 활동을 제안했다. 1년 뒤, 네팔 품 활동과 가족들이 NGO활
Korean artist, Nepali artist and Manohara youth and public were participated.
동을 지지해주지 않는 이유로 그만두었다가 올해 ‘앞으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뒤 다시 품에 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앞으로 그가 네팔의 살아있는 청년으로 성장하기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할
But the project was started after long planning process. After a week’s project the youth are really excited and reunited to be happy and to make happy
것이다!
village, so it is happy movement. After project Nepal PUM is going to together
“Happy Travel in Himalaya”
with Manohara youth because of youth interesting and effectual of PUM. From this project also PUM happy because after project the Manohara teachers, youth
Happy movement in happy village
and public’s happy movement. After the project the Manohara youth are making
Happy is importance part of human life, so now Nepali village are going to happy vibration to move in the all Nepal. Human love, relationship, friendship,
the youth community, and now days doing many creative works in Manohara these are smiling of Manohara.
and culture are happy rule of the human life and society. People are living in different country, different place, different environment and also different
Nepal and Korea are small countries of Asia. Nepal and Korea is far in
culture, but all people’s heart is same and very importance of the place arts and
distance but like this happy village project really Nepali and Korean people
culture.
relationship can feel very near as friend. Developing countries are not importance only of economic, the society’s art and culture develop is importance
Nepali people and Korean people friendship and happy village project movement it was very interesting and meaningful project in the Manohara Village of Nepal. Different country and different environment people are working together, making friendship and relationship was really interesting, creative and meaningful in Nepali nation and also international.
now in world. So like this Korean people and Nepali people relation also developing the culture and arts education. So from now let’s change world through the culture and arts
Happy village project is making to happy education in the community. Every 49
developing. 50
처음 만난 특별한 일_ “청년 문화 실천 워크샵” 네팔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첫 번째 일이 이번 ‘청년문화실천 워크샵’이었 다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한국 품의 17년과 네팔 품의 3년이라는, 몇몇 숫자와 글자로만 전혀 설명될 길이 없는 지난 과정과
이하니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이번 워크샵에 대해 올해 1월 한국 품 식구들과 네팔에서 함께 했던 첫 미팅의 설렘이 아직까지도 느껴진다. 이번 워크샵의 핵심
2007년 네팔 품 상근활동가 모집 공고를 보고 품과 인연시작. 한국 2차 워크숍이 끝나고 네팔로 다시 돌아갈 때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하며 네팔에서의 생활을 자신의 온전한 삶으로,
키워드라고 할 수 있었던 ‘청년’, ‘지역’, ‘문화’, ‘실천’에 남긴 의미들은 또 어떤지,
자신의 성장으로, 품의 식구로 살아가고 있다.
여러모로 가슴 두근거렸던 지난 여섯 달이었다. 하지만 워크샵의 시작점에서 여전 히 지식적으로든, 경험적으로든 무지했던 나로서는 머릿속에서 따로 돌아다니는 이 러한 개념들이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리고 여전히 정리하고 풀어내야 하
난생 처음! ‘실무자’되다!!
는 과정은 남아 있으나, 일단 한바탕 꿈을 꾼 듯 모든 과정을 치러낸 지금, 나는
지난 1월 네팔 땅에 처음 발을 디딘 이후로 지금까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처음 네팔 안에서 TYA(Today's Youth Asia: 네팔의 청년 저널리스트 그룹)라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실무자’라는 단어이다. 난생 처음 실무자가 된 나에게 그
파트너와의 만남에서 시작하여, 한국에서의 전시회까지가 ‘말’이 아닌 ‘관계’로 풀어
것이 가지고 있는 결코 만만하지 않은 책임감과 무게감은 때로는 나를 적당히 긴
가기 위한 길고도 쉽지 않았던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사람들과 진정한
장하게 하기도, 또 때로는 지나치게 부담스럽게 하기도 하였다. 최선은 다해야겠으
소통이 시작되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기 시작했던 지점은 ‘말’로 풀어질 때
나, 실수를 두려워하며 잘하려고만 하는 것은 오히려 나에게 독이 될 수도 있음을
가 아닌 조금씩 ‘관계’가 쌓여가면서임을 경험할 수 있었다. 결국 쉽지 않았던 과정
수도 없이 되뇌어 가며, 이곳에서 살아가는 실무자로서 자리 잡기 위한 결코 짧지
끝에 역시 본질은 아주 쉬우면서도 기본적인 것임을 다시 한 번 배우고 있다.
않은 시간을 보냈다. 어쨌든 네팔품 실무자로서 현재의 느낌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정신없는 흥미진진함!’이다. 사실 때로는 모든 것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머릿속에
‘말’이 아닌 ‘관계’로 푸는 과정
서 엉켜버린 듯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
지난 3월, 네팔에서의 1차 워크샵을 네팔 내의 청년 저널리스트들로 구성된
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 그리고 앞으로 해나갈 일들이 결코 다른 어느 곳
TYA(Todya's Youth Asia)라는 단체와 함께 공동 주최하기로 합의한 후 그들에게
에서도 쉽게 해볼 수 없는 매우 특별하고 소중한 과정(물론 결코 거창하지 않고,
이번 워크샵의 본질과 의미, 세부 내용과 방향 등을 설명하는 첫 프레젠테이션 자
일상적이라는 점에서는 특별하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지만)이며, 현재 우리(품과
리가 있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TYA와 네팔 측 참가자들과 몇 차례에 걸친, 좀 더
네팔 친구들)는 늘 그렇듯 더욱 길고 깊은 과정을 만들어가기 위한 또 다른 새로운
깊이 있는 본 워크샵을 준비하기 위한 설명과 토론은 계속되었다. 그 때는 정말 머
시작점에 서 있다는 점이다.
리를 싸매고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그들에게 언어적으로 이해시킬 것인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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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소통되었다고 느껴졌지만, 돌아보니 공
이렇게 네팔과 한국을 오가며 워크샵에 담긴 이야기들의 흐름을 짚어가다 보니, 우
통된 경험과 가치에 근거하지 않은 ‘말’은 결국 진정한 소통으로 이어지기 어려움
리가 좀 더 쉬우면서도 본질적인 부분들을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때까지도 여전히 우리가 풀어가야 하는 과정과 나누어야
이러한 과정들이 개인적으로 앞으로의 모든 일에 있어서 숙제처럼 남아있던 의문
하는 소통은 막연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것 같다.
들에 대한 해답에 스무고개를 하나하나 맞춰 가듯이 조금씩이지만 가까이 가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제들은 베시마을에서 보냈던 이틀, 그리고 이후 이어졌던 청년, 교사들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과의 과정에서 의외로 쉽게 풀려가기 시작했다. 중요 한 것은 그들을 언어적으로 이해시키고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움직이면서 소 통하는 것이었다. 이론적인 근거나 기본을 소홀해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다만 ‘말’만으로는 할 수 없었던 그들 안의 에너지와 생각들을 끌어내는 것이 함께 땀을 흘리고 일상적이고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즉 시간과 서로의 노력과 움직임이 버무려져 신뢰라는 토대 위에 천천히 쌓아지기 시작한 관계로부터 가능 하다는 것을 경험하는 과정은 결코 처음 듣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면서도 신선한
특별한 마을, ‘베시’의 요즘 베시는 여전히 조용한 마을이다. 다만 전보다 조금 더 마을 사람들 사이에 나누 는 이야기가 많아졌고, 그리고 각자의 일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서로가 조 금씩 더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별히 새로운 움직임을 시작한 청년들은 우선 자신들이 다녔던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마을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까 고민하다 방과 후 교실을 열었다. 사실 현재의 방과 후 교실은 청년 교사들의 경험 부족에서 비롯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열심히 자
바람과도 같이 느껴졌다.
신들의 몫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처음에는 재미있겠다는 생각 프로그램은 달랐지만, 한국에서의 2차 워크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놀이터에서
으로 시작된 마을의 사진 전시회를 통해서 청년들은 자신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도, 전시회에서도 우리들(2차 한국에서의 워크샵에 참여했던 Happy Vibration의
마을 사람들의 희망이나 새로운 행복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결코 요란
람, 딥말라, 라젠드라, 치락과 네팔품의 상근활동가 상게, 그리고 나)은 그곳의 청
하지 않고 조금씩, 차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물론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며 밖에
년들, 또 다른 많은 사람들과 크고 작은 관계를 맺으며, 그를 통해 그들의 생각과
서 구경만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과정을 나눌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국의 청년들이 쉽지 않은 과정을 함 께 만들어가며 느꼈을 기쁨과 일상이 특별해지는 순간들을 우리도 함께 조금이지 만 느껴볼 수도 있었다. 그 후 네팔의 청년들은 왜 과정이 그토록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깨달았다고 했고, 자신들도 비슷한 일을 네팔에서 시작해보고 싶다는 희망을 보이기도 했다. 단순히 ‘말’로만이었다면 ‘아 그렇지’라고 하고 말았을 이야기들을 각자가 관계와 소통을 통해 스스로 깊이 공감하고 진정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음을
한꺼번에 일어나는 커다란 변화들은 일시적이거나 진정한 것이 아닐 수도, 그리 고 오히려 탈이 날 수도 있다. 요즘같이 뭐든지 ‘빨리 빨리’를 외치며 인위적으로 바꾸어 버리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보기에 이러한 관계에 있어서의 작은 변화들이 하찮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만큼 소중하고 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 한 작은 변화들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그들 사이의 그리고 그들과 우리 사이의 관 계가 조금씩 더 깊어지기 시작하면 우리가 함께 좀 더 행복한 마을을 만들 수 있
알 수 있었다.
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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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국에서의 워크샵 때 사진작가로 참여했던 지은쌤이 내게 ‘품이 그곳에서
이곳에서 산 지 9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생각이나 마음만큼 행동하고 있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라고 질문하신 적이 있다.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과 만나고
지 못하고, 처음에 그 떨리던 마음처럼 치열하게 살아내지도 못하고 있다. 또 내가
있지만, 지극히 기본적이고 단순할 수도 있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나에게는 여전
하고 있는 크고 작은 일들, 아주 작은 기록에서부터 사람을 만나는 일까지 아직 내
히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 때 지은쌤과 나는 우리의 경험에서 비롯된 반
안에서 삶으로서 충분히 어우러져 있다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서 또 한 번
성을 그들에게 알게 모르게 전달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것이 결코 쉽지만은
‘힘내자!’를 스스로에게 외칠 수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수십 번도 더 반복하게 될
않다고 나누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품이 그들을 만나고, 흔들려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아자!
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임에 대한 믿음은 분명히 있음을 이야기했었다. 전에 심쌤 도 내게 말씀하신 적이 있지만, 난 아주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러한 믿음은 있으나 그들과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갈지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특히 마을의 ‘발전’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어김없이 만나게 되 는 부분은 경제적인 지점들인데, 그 부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어떠한 믿음은 있으 나 그것을 그들에게 내보이고 나누는 것은 지극히 조심스럽다). 그래서 그 때 심쌤 이 청년들과 똑같은 입장에서 똑같이 고민하고 나누고 함께 그림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너무 욕심 부리 지 않고, 하지만 또한 결코 쉼 없이 함께 소통하고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생 각이다(이렇게 쓰고 나니 왠지 실무자로서 너무 무책임한 이야기들만 했다는 생각 이 든다 >.<).
08년 여름, 9개월 후의 나! 이번 두레품 글을 쓰기 위해 돌아보니, 지난 두 달 정도는 전에 거의 매일 같이 쓰던 일기 한 장, 내 느낌들에 대한 메모 몇 줄 조차 적어보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 되었다. 그렇게 정리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고 보니, 여전히 내가 어려워하는 부분들과 앞으로 해야 할 지점들이 조금은 더 선명해지는 것 같다(개인적으로는 이 런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풀어낸 것이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 죄 송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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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무것도 줄 수 없지만, 이 마음만은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받을 수 없지만, 그 마음만은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을 기쁘게 한국에 전하고 싶습니다. 이 마음을 신성한 말로 표현합니다, 환영, 환영합니다.
람 바부 수베디
네팔에 계실 때까지 모든 분들 기쁘게 지내시기를 빕니다.
워크숍에 네팔 측 자문으로 참여해주신 수베디 선생님. 모든 참가자들이 진심으로 그를 존경했고 가슴
인생은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깊은 감명을 받았던 분이다. 이 분이 품에게, 그리고 네팔에 온 한국 사람들에게 직접 시 한편을 써 주
히말라야의 기쁨을 전합니다.
셨다. 이 시를 두레품을 읽는 모든 분께 들려드리며, 기나긴 기획을 마치려 한다.
그리고 우리는 바다의 기쁨을 전해 받습니다. 혹시 앞으로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면 용서를 청합니다.
환영의 시 모든 한국 사람들에게 네팔의 환영을 전합니다. 손님은 신입니다. 신과 같이 당신들을 환영합니다. Shim, 당신의 꿈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Pum은 기쁨의 근원을 가지고 있네요. Pum 또한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순수한 (한국의) 친교에 친교로서 환영합니다. 순수한 단일성(한 마음)에 한 마음으로 환영합니다. 순수한 감성에 감성으로 환영합니다. 순수한 바람에 바람으로 환영합니다.
좋은 예술가들에게 좋은 예술로서 환영하고, 교육의 스승에게 좋은 교육으로 환영하고, 문화의 산봉우리에게 문화로서 환영하며, 사랑의 봉우리에게 좋은 사랑의 환영을 전합니다.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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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금운동을 시작한지 석 달이 지나고 있습니다. 아카시아 이파리를 떼어 내 듯 가능과 불가능 사이를 고민합니다. 지금은 불가능 이파리가 하나 더 많은 듯 합니다만, 모아주신 정성과 응원들을 들춰보며, 그 가능성을 확인해보고자 합니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박경호 (꿈,희망,미래 재단. 품초기자원활동가)
우리가 어떤 포털서비스에 가입하면, 그 포털서비스 운영자 또는 그 회사의 가치가 올라갑 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네이트 가입자가 되면 네이트라는 포털의 가치는 1인당 2만 5천원 에서 많게는 5만원씩 올라간다는 것이죠. 지금 네이트 가입자는 몇 명일까요? 1백만 명만 되도 그 사이트의 가치가 벌써 최소 250억이네요. 그동안 우리는 수많은 사이트에 열심히 가입하면서 포털사이트의 가치를 올려주는 밑천이 되어준 거죠. 이로 인해 많은 회원수를 확 보한 포털일수록 그 평가액이 증가하여 나중엔 어마어마한 가치로 매각되기도 한답니다. 품이 그동안 포털사이트 운영을 통해 가입한 회원수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과연 얼마 의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품 주주가 지금 몇 명이나 될라나 모르겠지만, 제가 품에서 알 게 된 사람만 해도 족히 500명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93년부터 뻔질나게 다닌 캠프와 수없이 벌어진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하면요. 그렇듯 개인의 힘은 미약하지만, 뭉치고 합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하리라 생각합니다. 품 직원 출신이나 품의 열성 지지자인 누구 한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 크게 한번 쏘면 해결될 일이라고 꿈 꿀 수도 있겠지만, (저기 어디서 열심히 돈 벌고 계신 그 분이 떠오르네요. 그 분이 머리가 좀 크시기로 소문이 났지요??) 그보다 더 의미 있는 건 한 사람 한 사람이 개미 군단이 되어 이번 모금운동에 동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딸에게 저금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동전이나 천원 짜리가 생기면 무조건 저금통에 넣게 하는 훈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참고로 제 딸은 이제 30개월 이랍니다.) 그 저금통이 어디에 귀히 쓰일까 생각하던 차인데, 지금 이글을 쓰면서 결심했습니다. 품 생일날 저금통을 뜯어
특집
우리 딸의 손으로 품에 전달하게 하기로요. 물론 우리 딸의 동의를 구해야겠지만요. ^^
지하탈출 및 교육공간 마련을 위한 1억원 모금운동 110일째..
여러분의 불가능은 무엇입니까?
품을 기억하고, 품에 안겨봤던 사람들이 꽤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쩌다 시간이 나서 품 에 갈 때 뭐 음료수라도 사갈까 생각해봤던 사람들도 꽤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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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의 기적이 아닌, 1억으로 만들어갈 기적을 꿈꾼다! 박정희 (주부. 2003년 품 인턴)
저는 부디 작은 정성들이 모여 큰 품을 만들어 내는 기적이 벌어지길 소원합니다. 나중에
안녕하세요, 여러분! 뭐라고 소개해야 할까요? 전 칙칙이라고 해요~ 박정희라고도 하죠!
얼마 안 되는 금액 기부하면서, 지금 쓴 이 글이 무지 창피할 수도 있겠지만, 불가능 그것은
내년이면 30이 되는군요. 덜덜덜.. 지금은 한 남자의 부인으로 7개월 된 아들내미의 엄마이
아무것도 아니다!! 이 말을 한번 믿어보기로 하겠습니다.
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쓰기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다는 게 정말 오랜만이라 어색합니다. 부 담이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품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겠어요!
요즘 여러분의 불가능은 무엇입니까?
품과는 2002년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를 통해서 인연을 맺었고, 2003년에는 교육인턴으 로 한 해를 보냈답니다. 품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가 떠오릅니다. 노란대문, 파란벽의 계단, 그리고 사진들, 이것저것이 쌓여있는 책상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영상을 보는 것처럼 펼쳐집니다. 2003년 그때를 생각해보면 자신감에 충만해있었지만 소리 가 요란한 빈깡통이었죠! 하하하.. 지금 생각해보면 참 뭘 몰랐구나 싶지만 그래도 그때는 확 타오를 수 있었던 열정이 있었고, 제 20대의 가장 빛났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메일을 받았어요. 지하탈출 및 교육공간을 위한 1억 모으기 모금운동을 한다고요. 그때가 떠올랐어요. 제가 인턴을 하던 해가 숙소가 처음 생기던 해였고, 인턴숙소를 위해 일 일호프를 했고, 숙소가 생겼었죠! 화장실이 유난히 좁았던 그 숙소가요. 제가 품의 인턴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숙소가 있다는 것 때문이었어요. 서울에 연고가 없는 광주 촌 놈이 무작정 품에 가서 ‘뭣 좀 배우러 왔습니다!’ 하기엔 서로 너무 부담되는 일이잖아요. 엄 청 고민하다 포기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다행히 많은 주주들이 힘을 모아주셨고 숙소 만 들기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청년은 뜨거운 일 년을 보냈고, 그 청년의 인생의 많 은 부분이 달라졌어요. 품이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지하탈출과 교육공간마련을 위 한 1억원 모금운동입니다. 개인적으로 열악한 재정구조 속에서도 계속 살아 움직이는 품에게 너무 감사해요. 그리고 함께해주시는 주주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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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엔 품이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설 (2008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 기획팀)
제가 인턴으로 있을 때, 품의 살림장부에서 월세가 빠져나가는 걸 보고 정말 아까웠어요.
설입니다. 품에 발을 들여놓기는 시작한 것은 16세 때 부터인 것 같은데 그 때부터 말만 많이 했지,
누군가 품에게 떡하니 기부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었죠. 품에게 좀 더 여유가 있다면,
이렇게 글로써 뵙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다시 말씀드리면 전 설이라는 사람입니다. 나이는 24세 이며,
다달이 내야하는 그 돈의 용도가 달라진다면, 품은 좀 더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요? 안타 깝게도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저 혼자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안타까워할 뿐이었지만 품이 함께하자며 우리를 부르고 있어요! 전 박수를 치면서 응원합니다.
2008년 1월에 군 제대를 한 이 후, 현재는 품과 함께 문화놀이터라는 동네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1.공간 살며시 예전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왔을까? 보통 이런 질문을 하면 보통 나오는 공간은 집, 학교.. 제 나이 정도의 남자라면 군대 정도? ^^; 저는
품은 많은 청년들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왔습니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에 주인공이 되어가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 이게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기
그저 평범하게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가는 시기의 흐름을 생각 없이 잘 따라온 케이스 이기 때문에 이정도의 빅3가 있어요. 그래도 그런 삶 속에서 히든 쿠폰이 하나 있었다고 한 다면, ‘품’ 이라는 공간일 것 같네요.
적들을 위해서 품은 좀 더 안정감 있는 재정구조와 교육공간이 필요합니다.
저한테 그 공간은요.. 처음엔 그냥 봉사활동 할 수 있는 곳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이 후에 정말 간곡히 부탁해봅니다. 지금까지 품의 걸음걸음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과
‘노올자’라는 축제기획단에 합류하게 되면서 품으로 오는 빈도가 더욱 높아지게 되었고, 점차
열정들이 함께했고 어려운 고비들을 잘 넘겨왔습니다. 이번에도 품과 함께하시는 많은 분들
자주 오게 되면서, ‘아~ 이 공간은 참으로 매력적인 공간이로구나!’ 생각을 했었어요. 품에는
이 모두 힘을 모았으면 좋겠어요! 1억을 모았다!의 기적이 아닌, 1억을 모은 이후에 우리가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사람들의 열정과 웃음과 눈물이 있었습니다.
만나게 될 많은 기적들과 소중한 인연들을 떠올리면서 정성을 모으고 응원해주셨으면 좋겠
하지만 더 자주 들락날락 하면서 그 곳의 다른 면도 알게 되었어요. 항상 사람이 있는 건 아니었다는 말로 하면 쉬울까요? ‘항상 무언가가 있을 때만 품에 온 것은 아니었나?’ 라는
습니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 같아요.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사실 이런 것은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몰라요. 무언가 할 것이 있어야 사람들도 오지요. 그래서 더욱 아 쉬움이 남는 것일지도 몰라요.
2.만남 아직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원체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다양한 만남의 기회를 가지게 되더라고요.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을 알게 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런 만남에서 아쉬움이 있다면 이후의 만남을 이어 가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운 사람들이 많은데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뒤라 안부전 화하기도 쑥스러웠어요. 다들 보면 어떻게든 만나고 그러던데, 전 너무 현재에 집중하는 사 람이라 그런가요? 같이 무언가를 하는 상황이 아니면 보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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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게 필요한 공간 이지성 (덕성여대 사복과 4 휴학 중. 2008 품 인턴)
3.희망 언젠가는 나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그림을 한 번 그려봤어요. 누군가가 나를 보
AM 00:44
고 싶을 때, 나의 공간으로 오는 그런 상상? 나 또한 누군가가 보고 싶을 때, 그 사람의 공
밝음과 어둠의 중간, 창문 밖 세상은 어두우나 사무실 불은 밝다.
간으로 살며시 침투해 가는 상상도 하고요. 그래서 요즘엔 현중이라는 놈이 참 부러워요. 뚝
그리고 그 중간 내가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딱뚝딱 카페를 만들어 잘 꾸려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다른 상상도 있어요. 동네에 좋은 느낌을 가진 만남의 공간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
반지하 품 사무실,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오면 사무공간으로 들어가는 유리문이 있
각을 해요. 함께 만들어가고, 오랫동안 남아있는 그런 공간? 저한테는 그게 품이었는데, 요즘
다. 계단의 끝자락과 사무공간이 만나는 공간, 작은 테이블 하나, 바로 이곳이 밖의 어
동네 친구들한테는 어떤지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이번에 품이 또 다른 변화를 꿈꾼다고 하
둠과 사무실에서 새어나오는 밝음의 중간. 내가 앉아 있는 그 곳이다.
니까, 기대가 되네요. 동네주민으로서 물심양면!! 되는 만큼!! 밀어볼 생각입니다. ^^
우리 동네엔 품이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런 품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아쉬 움이 있다면 그 안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다면 들어가기 조금 쑥스러운 공간이란 겁니 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활보하다 차를 한 잔 마시러 들어간다거나, 나의 자취를 남긴다거 나, 누군가와 편하게 일상의 대화를 하긴 힘든 공간... 아마도 품이 그런 게 아니라, 공간의 아픔이 있는 것이겠죠. 그래서 희망 하나를 그립니다. 이번 모금운동을 통해 지하에서 지상 으로 나와 동네와 새로이 호흡하는 그런 품이 되는 그림을요. 즐거운 곳에서 맛있는 커피 한 잔 함께 하길 기대하면서. ^^
이곳이 품의 처음이다. 2007년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를 통해 품을 처음 찾아 온 나의 기억에 있어 이곳은 품의 첫인상이며 느낌이었다. 작은 테이블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계단, 한 계단을 내려오니 나의 발소리를 알아차린 듯 반갑게 웃어주었었다. 그리고.. 그곳에 따뜻함이 있었다. 가끔 품을 찾아올 때면 또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재떨이에는 담배 시체들이 가득히 쌓여있고, 진지함에 발소리를 죽이고 서 있으면 회의에 열중하던 그들은 한참 뒤... 나를 알아보고 또 웃어주었다. 그리고 지금, 품에서 인턴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나는 자주 이곳을 지난다. 여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다양한 일들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됐다. 회의장 소, 카페, 담배 피우는 곳, 식사하는 곳, 노래 부르는 곳, 잠자는 곳, 품에 찾아오는 아 이들의 수다가 이루어지는 곳, 세 개와 강아지의 피 터지는 논의가 이루어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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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오후가 되면 늘 학교에서 바로 와서 교복을 채 벗지 못한 친구들이 (혹은 그렇지 않은 친
품에는 회의실이 따로 없나요? 혹은 사무 공간 말고 또 다른 공간이 없는지..?
구들도) 하나 둘 이곳 ‘품’으로 모여든다. 이곳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선생님, 청년들이 함 께 어우러져 있다.
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면 ‘멀티룸’이라 불리우는 작은 방하나가 있다. 이곳은 우리들 의 ‘아지트’라고도 불린다. 유리문을 열면 책장이 양면을 가득가득 채우고 있으며, 365일 돌
우리가, 우리 아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아가는 제습기도 한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있다. 웃고 있는 아이들,
날씨를 걱정하지 않으며, 인원수의 제한을 둬야함에 걱정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상상이 즐거운 실천이 되기 위한 논의를 하고 있는 아이들.. 아이들만 있는가? 청
그렇게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
년들도 있으며, 이들을 위해 교육하고 바라봐 주시는 품의 선생님들이 있다. 그래서 이 공간 이제는 소망한다. 그리고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은 늘 바쁘고 북적하다.
이것은 나의 바람뿐만이 아닌 것을 안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 그럼 좀 쉴 수 있고 비어있는 공간.. 그런 공간은 없는가?
품을 아는 이들, 품과 함께하는 이들 모두가 바라는 것이라 믿는다.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멀티룸이 비어있으면 그곳이 그러한 공간이 되고, 테이블 과 의자가 비어있으면 그 곳이 그러한 공간이 되는 것이다. 쉴 수 있을만한 혹은 비어있는 공간이 고정되어 항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들 품 선생님들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불편 사항도 아닌 것 같다. 별로 불편해 하지 않고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속상해 하는 한 가지가 있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 오히려 이들은 더 채울 수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더 함께 할 수 없음을 속상해 한다. 아이 들을 위해 일한다고 말하지 않고 가르친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이기에 함 께하는 이곳에 당연히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내가 본 선생님들은 이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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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꿈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찌든 세상에 산소 탱크
송성호 (북공고 2 l 청소년문화기획단 세 개)
김준혁 (경신고 2 l 청소년문화기획단 세 개)
나에게 불가능은 무엇인가?
‘요즘 십대들은 어떠한 청소년기를 보낼까?’ 생각할 때, 어른들은 대부분 ‘공부하는 아이’와
저에게 불가능은 제가 불가능이라 생각하는 것들이겠죠.
‘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 아이’ 이렇게 크게 두 갈래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이
당장의 불가능한 일은 그냥 ‘안 되는 일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었어요.
시대는 공부만이 살 길이라나 뭐라나. 뭐.. 난 아직 10대이다 보니 이런 말들을 많이 듣고
‘뭐 어떻게 되겠지’하는 정도...? 만약에 일어날 일만 기대하고 있었나 봐요.
산다. 집에서, 학교에서.. 등등. 이런 찌든 세상에서 산소 탱크와 같은 품에 인연이 닿은 지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내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가 산소 탱크라고 말을 하는 이유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진한~ 삘
지금은 불가능 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한다면........
이 있다.(나만의 삘!) 사실은 톡 꼬집어서 말할 수가 없다. 그만큼 나한테 품은 소중한 곳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품에서 지금 1억원 모으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현쌤이 우리 ‘세 개’에게 ‘품 1억 모금 운동’에 대한 두레품 원고를 제안하셨다.
1억원은 교육 공간을 만들기 위한 자금으로 쓰인다고 하네요.
우리는 오케이 했지만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다 이제야 겨우 허겁지겁 쓰 게 되었다. 정리는 안 되지만 내 느낌(?)을 써봐야겠다. (난 어렵고 복잡한건 싫다. 하하)
품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저희 ‘세개’처럼 기획하는 아이들도 있고, 밴드, 댄스, 풍물, 마술 등등 여러 동아리와, 동아리가 아닌 친구들까지... 품에서 꿈을 먹고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품은 이 많은 아이들과 같이 이야기하며 교육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이 많은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가르쳐 주기 위해 품에 공간이 필요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억 원 모으기라는 사업이 불가능 할지도 모른다고 하셨지만, 품에게 불가능 한 일은 1억 원이라는 돈 모으기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품고 있는 품이 문을 닫는 일이 아닐까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같이하며, 불가능한 꿈을 같이 꿔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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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그리고 함께 하는 이들 서인석 (중앙고 2. 청소년문화기획단 세 개)
지난 3년을 떠올려 본다면... 3년 동안 품을 통해 여러 경험을 해보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할 수 있다’ 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 시키며 살아가지 않는가. 품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할 수 있다’ 라는 것을 되뇌이며 살아가자.
추락=사람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이지만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가.
추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즐거운 것은 바빠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품에게 1억이 필요하지 않다면 과감히 버리자.
다. 추락을 준비한다는 이유하나로 사람들이 모이는 게 나는 너무 좋고 기쁘다. 물론 사람들
하지만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소유하자.
이 너무 많이 오면, 사무실이 좁아서 정신도 없고 가끔(?) 돼지 우리처럼 변하게 되지만 사 품이 공간마련을 위한 1억 모으기라는 ‘꿈’을 꾼다.
람들이 모인다는 것 자체가 좋다. (좋은 건 좋은 거니까. ^^)
이 꿈은 절대 허무맹랑하지도, 절대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다. 품이 ‘1억 모금 운동’을 해서 이사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사 안가면 좋겠다’라는 생각 도 해본 적이 있다. 왜냐? 품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에는 지금 품 사무실이 떠오르고, ‘품’
품과 “함께 하는 이들” 이 있기에... 품은 그 꿈을 위해 걸어 갈 수 있다. 함께 하는 이들의 사소한 것들이 모였을 때 그것이 행복이다.
이라는 이름과 품 사무실 공간을 분리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금 이 공 우리는 “할 수 있다” 라는 것을 나에게 확인 시키며 살아오지 않았나요?
간은 또 하나의 품이라는 이름의 공간이다. (품이 싫으면 폼은 어때요?)
다시 한 번 확인 할 때입니다. “할 수 있다” 물론 모금 운동이 성공적으로 되서 지금보다 더 나은 사무실로 이사 간다고 하면 좋긴 좋
하지만 세상에는 혼자서 이루기에 벅찬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을 것이다. 지금 보다 더 나은 곳으로 이사를 갈 테니까. 하지만 나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 품에서 했던 작업, 품에서 밥 먹는 것... 하나하나가 다
함께 하는 우리들이 없었다면 이런 꿈은 꾸지도 못했을 테죠.
추억인데... 아직 더 많은 추억 꺼리가 남아 있을텐데.... 쪼금만.. 여기서 즐기다가 다른 데로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이사 가면 좋을 텐데...
기쁠 때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사람보다 힘들 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더 기억에 남기 마련입니다. 지금 품에게 힘이 필요한 타이밍인 것 같습니다.
우리 1억이 다 모여도... 쫌만 나중에 이사 가면 안 되요..?
품은 1억 모으기에 과감하게 도전했습니다. 함께 하는 이들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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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성이 모여 큰 기적을 이룹니다
작은 정성이 모여 큰 기적을 이룹니다
벼룩시장에서 우연찮게 구입한 동전책에
품의 향기 나는 영혼으로 살아가는 힘을 얻는 주주 표경흠입니다.
현지와 동전 넣기 프로그램(?)을 진행해왔습니다.
이번 모금에 "100인 100만원 모금"을 제안 합니다.
다 채우고 나서도 간혹 다시 뺐다가 집어넣기를 반복하면서
그래서 제안자로서 먼저 제가 조금은 무리이지만, 1번으로 후원하고자 합니다.
노는 현지의 좋은 놀이감이었는데요, 소식을 듣고는 조심스레 현지에게 물어보니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정말 함께 하고픈 사람들이 있지요.
흔쾌히 괜찮다고 하네요.
저는‘품'의 동료들이 그런 소중한 분들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합니다. 내년 1월에 네팔에 가는 일을 잠시 접어 두고,
비록 무겁고 불편한 동전책이지만
그 비용의 일부지만 품으로 보내기로 했지요.
그동안 모아왔던 돈을 드리는 게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조금 전에 전화로 아내에게 이런 제안을 하자 기꺼이 내편을 들어 줍니다.
민망함을 무릅쓰고 이렇게 드립니다.
눈물이 핑 돌 만큼 고마운 사람입니다. 제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품을 찾는 청소년들이 햇빛 듬뿍 받으면서 스스로의 꿈을 키워갈 수 있는 공간을
여러분이 가는 길이 비록 어렵고 험하더라도
꼭! 만드시기 바랍니다.
함께 하는 이들이 있음을 기억 하십시오. 그대들의 발자국을 보면서 희망을 얻는 이들이 있음도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사람들이 품을 마음의 고향이라고 부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8.7.10. 부천에서 뽀시기
가까운 시일 내로 찾아뵙도록 하지요. 소주 한잔이 그리운 이가 광화문에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품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자랑임을 고백합니다. 힘내십시오. 2008.7.8. 표경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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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성이 모여 큰 기적을 이룹니다
2008 열일곱살
품의
지하탈출 및 교육공간 마련을 위한 1억원 모금운동
햇빛 쫌 봅시다 발도르프교육에서 강사한분이 그러더군요. 간절히 바라면 꼭 이루어진다고... 발도르프학교도 그렇게 만들어졌대요. 아무런 가능성이 없다하더라도 간절히 바라면 꼭 된다고.. 아이들도 그렇다고.. 희망을 가지라고... 그 말을 믿습니다. 품의 간절한 바람에 저의 바람도 보태면 더 강해지겠죠. ^^ 꼭 이루어 질 겁니다. 2008.7.1. 윤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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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활동보고
강북 청소년 문화 놀이터 이야기
봄 소식에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 작전상황을 짧게 전해드렸는데, 벌써 많은 작전들과 과정 을 지나 가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하시죠? 지금부터 그동안 진행되었던 “우리 동네 청소 년 문화 놀이터 만들기 대작전!”, 강북청소년 문화놀이터의 과정을 전해드리겠습니다.
2007년 10월. 강북구청과 품이 연합하다! 작년 가을, 열 번째 ‘추락’을 하였습니다. 추락은 동 네에서 청소년문화축제로 10년이라는 시간을 지켜 가면서 하루의 이벤트가 아닌 일상의 축제를 위해 청소년축제기획단, 동아리대표자, 학급참여, 청소년 문화예술아카데미 등 많은 과정과 사람들을 남기며 달려왔었지요. 그러던 중, 강북구청으로부터 ‘강북 청소년문화존’을 제안 받았고, 이런 상상들을 하게 되었어요. 매달 추락을 한다면 어떨까?, 동네 청소 년들과 신나는 과정을 만들고.. 강북구청앞마당을 강북구 청소년 문화활동의 메카로 만들 수 있지 않 을까? 그러면 일상의 축제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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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놀이터 특공대, <놀이터지기>와 만나다!
08.07.22. 무대가 없어도 논다! 수유역 게릴라 나가다
추락과 함께 성장한 청년, 청소년문화기획단 세 개, 품 실습을 하기 위해 찾아온 대학생
상상놀이터와 클럽데이로 나누어 놀이터를 했던 6월의 경험으로 얻게 된 것은 강북구청
등 봄을 지나면서 동네에 청소년문화놀이터를 만든다는 소식에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앞마당이 놀이터를 하기에는 제일 좋은 곳이라는 점과, 상상놀이터와 클럽데이로 나누어
그렇게 하여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놀이터 팀이 되었고, 우리는 이들을 ‘놀
서 하기보다는 뭉쳐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7월부터는 매달 넷째주 토요일에 강
이터지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놀이터가 무엇인지, 아이들의 일상은
북구청 앞마당에서 놀이터를 하기로 하고 놀이터 아이들과 놀이터지기들은 여름이 시작되
어떠하며, 어떤 마당이 필요한지... 놀이터 오픈에 앞서 서로의 고민과 생각을 나누기 위
는 7월의 문화놀이터 주제를 더위사냥으로 정하여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장마
해 참 많이도 머리를 맞대었었어요.
와 함께 찾아온 비는 야외에서 놀이터를 하는 우리들에게는 불청객이었고 결국은 7월 문
08.05.31.강북청소년수련관 난나_ 동아리 첫 만남!
화놀이터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준비하던 아이들과 놀이터지기들은 취소된 상
동네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아리친구들과 동아리는 아니지만 문화놀이터에 함께 하고 싶은
던 수유역으로 향하였고 놀이터 아이들이 역장님과 심도 있는 이야기(?) 후, 7월 22일부
동네 아이들이 처음으로 다 같이 모여 서로 인사도 나누고 청소년문화놀이터가 무엇인지
터 7월 27일까지 게릴라 공연으로 7월 문화놀이터를 작게 이어갔었습니다. 지나가던 지역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민들에게 박수도 받고 장르와 분야를 파괴하고 연합공연도 하며 청소년문화활동을 하는
황에서도 7월 문화놀이터를 할 수 없지만 그냥 지나갈 수 없다며, 거리홍보를 하러 갔었
08.06.07.강북구청앞마당_ 놀이터 오픈축제 “다多모여라!”
자신들과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를 알릴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드디어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 문을 열다!! 동네에 청 소년문화놀이터가 문을 열었다는 것을 알리고 문화놀 이터에 함께 하고 싶은 동아리와 청소년친구들을 찾 기 위한 축제를 하였습니다.
08.06.14.삼각산문화예술회관_ 상상놀이터 쿠키를 만들 수 있는 친구들은 쿠키를 만들어 나누어주고 가르쳐주기, 숨 겨두었던 일기장을 읽어주기, 내가 찍은 사진 공개하기 등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들고 나오는 혹은 자기만의 발상과 상상으로 만든 상상마 켓을 여는 상상놀이터를 열었습니다.
08.08.8~09.강촌밸리_ 놀이터캠프 “무박2일”
08.06.28.강북청소년수련관 난나_ 강북클럽데이 “클럽 雨”
7월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던 놀이터 아이들 짧은 시간 많은 과정을 하며 지내왔지만, 중간에 함께 하기 시작한
공연하는 친구들 다 모여!! 하루 종일 공연으로 놀기
친구들과 서먹하기도 하다는 생각에 신나게 놀면서 모두
위해 모였던 날이었습니다. 놀이터 아이들과 사전에
가 친해지기 위한 무박2일 캠프를 다녀왔습니다. 이번
모여 더운 날에는 물놀이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클
무박2일 캠프에서는 장르와 분야의 구분없이 전 동아리
럽 水]라는 컨셉을 정하고, 공연내용과 사전 놀이를
아이들을 섞어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특히 캠프 이후 진
기획하여 준비하였는데, 계속되는 비로 인하여 결국
행되는 동네 게릴라 프로젝트를 하기 전 워밍업을 하기
포기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비가 오면 비로 놀아보
위해 모둠으로 모인 아이들이 캠프의 마지막 시간을 직
자”라고 의기투합한 놀이터 아이들은 클럽수를 클럽
접 기획하여 놀아보는 시간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우로 바꾸고 클럽데이를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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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11~14.우리동네_ 동네 게릴라 프로젝트
동네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고 있는 활동을 통해서 청소년문화활동에 대하여 알리고 응원 을 받기도 하는 과정을 놀이터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갔습니다. 그 과정 안에는 문화놀이 터 아이들의 일상공간이며,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와의 소통이 중요하였기 때문에 동네 관찰를 통해서 동네 재발견 하는 과정, 동네사라들에게 작업걸기(인터뷰, 공간사용 허락받 기 등), 관찰을 연결하여 팀별 프로젝트 기획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하며 동네와 관계 맺기 를 시도했던 시간이었습니다.
08.10.25.강북구청 앞마당_ 열한번째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온 동네 사람들에게 보내는 유쾌한 십대들의 사랑스런 애정표현!
“온동네씨, 같이 놉시다”
씨앗을 뿌린 후 잘 가꾸어 가을에 곡물을 추수하듯, 일상의 축제를 만들며 달려왔던 문화 놀이터도 그 동안의 과정을 추수하는 10월 문화놀이터 추락을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추 락은 문화놀이터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하지만 지역청소년축제이기에 동네 주민들과 함 께 호흡을 하려고 합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는 추락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문화 놀이터 아이들과 놀이터지기들은 열심히 준비 중이랍니다. 그럼 10월 25일 강북구청 앞마 당에서 하는 추락에 오시라는 말씀을 끝으로 08년 지역문화운동팀의 강북청소년문화놀이 터 작전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08.08.23.강북구청 앞마당_ “우리 동네에도 문화놀이터가 생겼어요!” 8월 놀이터에는 쉬는 동안 잊어버렸을지 모르는 놀이터의 존재를 다시 알려보자는 취지로 “우리 동네에도 문화놀이터가 생겼어요!”로 하기로 했습 니다. 쉬는 동안 온 몸이 근질거렸던 놀이터 아이 들! 강북구청 앞마당에서 신나게 놀았답니다.
08.09.27.강북구청 앞마당_ 추락주의보 9월에는 곧 다가올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을 기다리는 마음 으로 [추락주의보]라는 주제를 정했습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 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직접 홍보물을 만들기 시작했고, 놀이터 주위를 기웃거리기만 하던 친구들이 놀이마 당을 기획하고, 공연만 하던 마당으로 내려와 벼룩시장을 열 었습니다. 그동안 거리홍보와 게릴라 공연, 동네 말걸기 작업 등 많은 과정을 함께 해 오면서, 놀이터의 주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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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조금씩 천천히 친해지기 시작했고, 그날 오후부터 네팔 친구들과 일대일로 짝이 되어 네 팔 친구 집에 가서 친구동네도 함께 돌아다니고 네팔친구가 아는 사람도 소개받으며 그렇게
네팔, 행복한 이음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통하기 시 작했습니다. 다음날, 네팔 친구들과 함께 모둠별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어디를 가고 싶은지 모두 다 같이 이야기하고 목적지로 출발. 처음 본 곳을 신기해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장난도 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짧지만 이틀간의 시간을 보내며 아이들은 정이 깊 게 들었나 봅니다. 아이들의 인사는 밤이 어두워질 때까지 끝날 줄을 몰랐었습니다.
Nepal NGO PUM 활동도 바쁜 한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반기에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일에 대해 전해드리겠습니다.
1. 광명1동 청소년문화의집 '아름다운 선택, 네팔‘ | 2008.9.4~11 광명1동 청소년문화의집(이하 문화의집)은 지속적으로 외국과의 교류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그렇게 네팔 친구들과의 이틀간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히말라야에 안겨보기 위해 '순다리 쟐'이라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우기로 비와 거머리를 만나기도 했고 한국보
단체입니다. 품이 2007년 문화의집에 청소년네팔문화교류를 제안했었으나, 아쉽게도 성사되
다 높은 고도에 약간은 힘들어 하기도 하며, 그렇게 2박 3일간을 히말라야 자락에서 보냈습
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광명지역의 청소년 15명과 일주일간 네팔을 가게 되었습니다.
니다. 비록 좋지 못한 날씨 때문에 히말라야의 설경은 볼 수 없었지만, 아이들 머리속에는 히
일주일간의 여정은 품이 2년간 카트만두 내 사립학교 연합인 <Schools' Forum Nepal>과 '한
말라야는 특별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국-네팔 문화예술교육워크숍'을 하면서 관계가 시작된 National Model Science School(이하
이번 여행은 문화의집과 품과의 또 다른 만남이기도 했습니다. 문화의집의 모든 직원이 품의
남스학교)와 이틀간의 문화교류 프로그램과 잠깐이지만 히말라야에 안겨보는 시간을 꾸려졌 습니다. 이것을 위해 사전에 1일간의 집중워크숍도 하면서 같이 갈 사람들끼리 얼굴도 보고, 우리가 가는 네팔에 대해 공부하고, 무엇을 보고 싶은지 등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9월 3일 방콕에서 10시간을 대기한 후, 4일 날 네팔에 도착. 네팔 현지식당에 가서 현지음식 을 먹으며 첫날을 보내고 둘째 날은 모둠별로 카트만두 인근지역을 여행했습니다. 짧은 시간
'주주'일 정도로 관계가 남다른 문화의집과 품과의 사이를 네팔이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 주 었습니다. 이후, 한국과 네팔 아이들이 서로의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것과 남스학교가 내년에 한국 방문을 원하고 있어 편안하게 준비하는 다음 과정이 남아있습 니다. 이번 일주일간의 시간은 아이들에게, 문화의집에, 남스학교에 보다 특별한 여행으로 남 기를 희망해 봅니다.
이었지만 네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문화 등을 경험해보고, 자기가 느끼고 만난 네팔을 10Rs의 돈으로 표현해 보며 아이들은 자기의 방식으로 네팔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5일 남스학교 친구들과 만났습니다. 남스학교의 마음이 담긴 환영인사를 받으며 예쁜 학교로 들어섰습니다. 한국 아이들 15명, 네팔 아이들 15명 총 30명과 선생님들이 모두 함께 뛰어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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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재)청소년과 사람사랑 '나눔학교' 두 번째 베시마을에 가다. | 2008.9.11 ~ 18
홈스테이. 베시마을의 둘째 날, 마을에서 처음으로
네팔 품이 Happy Village Project를 진행하고 있는 베시마을과 인연을 시작하게 해 준 나눔학
홈스테이를 해 보았습니다. 장애청소년들에게 낯선
교가 베시마을에서 두 번째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2007년은 첫 만남의 의미가 있었다
나눔학교 아이들과 선생님, 품 식구들, 마을 사람들
면, 올해 두 번째 만남은 그 의미가 조금 더 깊어졌습니다. 양국 아이들의 교류의 시간이지만
모두 즐겁고 새로운 기억이 되었습니다.
환경이 어떻게 다가갈지 몰라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핵심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품과 나눔학교는 베시마을과 모노허라학교의 '지난 과정과 지금'을 함께 공유하고 지금 마을 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사전과정을 가졌습니다. 베시마을에 제일 필요하다고 요구되어지는 것 중 하나는 교사들에게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과 학교도서관 추진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눔학교는 'Open School'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도서관 건축에 필요한 금액을 마련하
소풍. 다음날 아침 8시에 학교 운동장에 모여 한참 열심히 공사중인 마을 도서관을 위한 2차 공사금을 전달하고, 나눔학교와 모노허라 학교가 공식적으로 자매결연을 맺고 마을 주민들, 아이들, 청 년들이 가까운 곳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소풍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은 없었습니다. 한쪽에 서는 모두가 맛있게 나눠먹을 음식을 만들고 한쪽에서는 춤과 노래도 부르고 놀이도 하면서
여 만남 전에 전달을 하며 서로의 만남이 더욱 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평화롭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노허라 학교와의 두 번째 만남. Open School부터 홈스테이와 소풍까지 9월 11일, 나눔학교 아이들 25명과 10명의 선생님들이 한국 에 입국하였고, 다음날 바로 모노허라로 향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서로의 얼굴에 반가움과 함께 쑥스러움이 공존했지만, 서로가 마음으로 준비한 환영인사를 나눈 후, 뜨거운 땡볕 아
래서 시원한 땀 흘려가며 신나게 반나절을 놀았습니다. 놀이는 서로가 가진 다름들을 편안하게 포용해주는 신비한 묘약과도 같았습니다. 베시마을에서 준비한 맛있는 달밧을 손으로 느끼며 먹고, 나눔학교가 준비해 간 'Open School'을 시작했습니다. 네팔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빈 PT병을 이용하여 만드는 악기로 '하늘에서 터지는 거품과 같이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하여 붙게 된 재활용 악기 하품 만들기. 가장 중요하고 쉬운 자기의 몸으로 나는 다양한 소리를 흥겨운 리듬을 만들어 재밌 는 율동과 장단으로 움직여보는 몸벌레, 나눔학교에서 만든 '우리는'이라는 노래와 마지막으 로 모노허라 학교 선생님들이 준비한 네팔노래 배우기까지 총 4개 반이 운영되었습니다.
2007년 처음 만난 이후로 지속해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베시마을. 아직은 특별한 일상이지 만 변화의 모습들을 끊임없이 보여주었습니다. 마을 주민들, 교사, 청년, 그리고 아이들까지 이제는 손님과 주인의 경계가 조금씩은 편안해지면서 이 시간을 각자가 온전히 가져가고 있 음을 느꼈습니다. 나눔학교를 통해 모노허라 학교가 오랫동안 바래왔던 도서관이 완공되면 네팔 품이 그것을 이어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마을과 함께 만들 어갈 예정입니다.
이렇게 한국과 네팔에서 합동으로 준비한 Open School에 핵심적인 의미는 네팔 일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고, 이후 교사와 마을청년들이 활용하고 응용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
나눔학교는 안나푸르나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포카라로 이동, 그것에서 산도 오르고 모둠 별 여행도 하며 그렇게 일주일간의 두번째 네팔여행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음에서 준비해 두었습니다. 양국의 아이들, 마을 청년들이 함께 오픈수업에 참여하여 정신없 이 노래 부르고 악기로 연주도 하고 밥도 먹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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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을
위한
작은
4월. 강대근.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탈출
시작...
• 2008.4.19.토.3pm l 창동청소년수련관 세미나실 • 강동호, 고미경, 고윤희, 권오현, 김대심, 김동혁, 김종국, 김창영, 김판중, 박경호, 송종열, 송주아,
주주콜로키움
신미경, 양승부, 유영은, 이국진, 이벽주, 이설, 이성종, 이정연, 이준규, 이준호, 이현제, 임세훈, 임지은, 정연정, 정영수, 정훈, 최두환
1.
"어찌 살아야합니까?"라고 묻는 우리들에게 "문제는 고민의 양입니다"라고 그는 대답합니다.
고민을 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다른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지금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그러면 거기에 반드시 함께 할 사람이
3월부터 시작한 주주콜로키움이 벌써 8번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있을 것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콜로키움의 뜻도 몰랐고, 서너 번의 만남이 지나도록
2.
행사도 아니고, 짜여진 강의도 아닌 이 만남을 주선하는 일이 어렵기만 했습니다. 중반이 지나서야 조금 알게 되었어요.
품 주주들이 아직 숨 쉬고 있고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고민한다는 것은
고민하기 이전보다 뭐든 좀 더 나아지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고, 함께 고민하고 나눌 수 있음은 함께
아.. 만남을 주선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로구나.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제게 가장 깊이 남는 말씀은 지금 내가 현장에서 갖고 있는 고민을 누구와 나누고 있느냐, 그 나눔이 의미있다...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마음을 터놓고
주주콜로키움을 진행하며 참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3월부터 여덟 분의 이야기손님을 모셨고, 114명의 주주가 콜로키움에 함께 하였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만나지 못하는 주주들을 만나고,
나눔을 갖고 있는가, 내 얘기가 하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의 말도 들을 자세가 되어 있는가 반성해보는 시간도 되었습니다. 학습이던, 습관이던 어떤 형태를 통해서건 우리는 익숙해져 있는 것이 그야말로 익숙하고 편안한데, 그게 왜 그리 맘에 안 들어 변화의 몸부림을 치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인사만 하던 이야기손님들과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됩니다. (박경호)
짧은 지식과 경험으로 이야기손님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고 전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많은 공부와 경험이 되었습니다. 주주콜로키움의 단골손님이신 이성종 선생님이 어느 날, 술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제야 품이 왜 콜로키움을 하는지 알겠어. 좋은 사람들 만나게 해주고 싶은 거잖아?” 8월 드라마고 선생님의 콜로키움이 끝나고, 모두가 고마운 인사를 나눕니다. “마고를 만나게 해주어 고마워요.”, “보고 싶었던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어 고마워요.” 7월, 박찬국 선생님의 콜로키움에 참가했던 10대 주주 성호가 이야기 합니다. “저는 예술가입니다.” “강동호예요. 이번에는 못갈 것 같네요. 멀리 광주서 마음만 보냅니다.”
5월. 김태황.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탈출
막혀있던 주주와의 소통에 작은 물꼬를 튼 느낌입니다.
• 2008.5.16.금.3pm l 대학로 햇살돛단배
답하지 않으면 그만인 단체문자에 답신을 주시는 분들이 많아집니다.
• 이준규, 신경애, 이성종, 유영은, 이장형, 이설, 이지성, 김판중, 나하나, 정훈 연말에는 콜로키움의 이야기들을 모아 책자를 내볼까 고심하고 있습니다.
1.
이야기를 들려주듯 편안하고도 소장하고픈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하려는 아주 작은 일들, 소소하고 지난하고 찌질한 일들이 곳곳에서 많이
혹시 좋은 생각이 있걸랑 나눠주세요.
일어나면 이 사회가 변화할 거라고 생각해요. 담론으로 사회가 변한다고 생각지 않아요. 그 말 잘하는
지난 콜로키움에 담긴 이야기들을 짤막하게 전해드립니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한 짓들을 보세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그렇잖아요.
12월까지 두 번의 콜로키움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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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요, 누군가가 깃발을 꽂고 “이쪽으로 모여! 우리는 이 일을 할 거야!”하고 주장한다고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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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은요, 대단한 것들이 아니에요. 지금, 당장, 여기서 할 수 있는
지지-_-a 대마왕은 그럴수록 자신에게 관대하라고 한다. 그리고 3년씩 우물 파라고 한다. 관대함의
것들로부터 시작하세요. 커피를 좋아하면 커피를 드세요. 차를 좋아하면 차를 드세요, 나눠 드세요.
열쇠가 기간에 답이 있었을 수도. 힘이 되었다. 마치 나를 찍어서 하는 이야기 같아서 따끔따끔도 많이
그것으로부터 시작이에요.
했다. 내안엔 작은 이설이 몇 명이나 있을까? 이제부터 하나하나 찾아봐야겠다. (이설)
3.
여러분은 답을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하는 Plan_B 또한 문화적인 대안을 찾는 거지, 답을
찾는 건 아니에요. 대안은 수십, 수백 가지일 수 있죠. 대안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가장 적합한 질문들을 찾아내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나에게, 혹은 우리 주위에서요.
7월. 박찬국. 예술생활협동조합 • 2008.7.19.토.3pm l 다원예술매개공간 • 고윤희, 권오현, 김영삼, 김준혁, 박경호, 박선정, 부은희, 서인석, 송성호, 유영은, 이벽주, 이성종, 이정연, 이준규, 이지성, 임경화, 임지은, 임진성, 정혜영, 천은영
1.
6월. 안이영노. 피터팬과 피노키오 • 이준규, 송성호, 김준혁, 정운호, 서인석, 김판중, 박선정, 이지성, 유영은, 이설, 정혜영, 이보라,
두렵지 않겠나. 어떤 우물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팠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우물의 주인이 누구인가.
깊이가 웅덩이밖에 안 되는 아주 깊은 우물이든지 간에 자기가 파나간 걸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나이, 허물과 투성이고, 아직도 파야할 깊이가 많더라도, 하다 보니 체력도 정신도 지치고 낙담하게 되더라도.. 자기가 판 우물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우물로 자기를 돌아볼 수
2.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노동에 대한 것을 많이 생각했어요. 되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들을
내 생활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애들을 만나는 현장이나 삶에서 예술을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그 예술이라는 것이 내 생활에 어떤 자리를 잡을 것인가?, 그 시점이 어디인가?, 내 삶에서의 시작인가?, 아니면 내가 활동하는 공간에서의 시작인가?에 대한 생각.. 그리고
있게 되는 시기가 사십인 것 같아요.
2.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예술을 하는 거야. 그러면서 스스로 새로운 세포를 생산하고, 다른 사람 세포도 좀 새로운 세포로 바꿔 주는 거야. 그런 것을 해보자는 거지. 그러면 이렇게 늙는 게 안
이정연, 나하나, 김지연, 임지은, 권오현, 정수현, 김지나, 우수명
1.
예술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결국 자기의 인식에 달렸다. 재미있는 거야. 예술에 어떤 목적이나
수단으로서의 필요가 있을 수 있겠지. 미묘하지만, 당연한 거지. 그것 때문에 하는 거니까. 다만 그것에
• 2008.6.29.일.3pm l 촉각예술센터 ‘빛을 만지는 아이들’
주변에 계신 많은 사람들 얼굴을 잠깐 떠올렸습니다. (부은희) 내가 기분 좋고 동료들과의 관계가 기분 좋으면 세상이 기분 좋아진다. 그것이 문화다. 문화로
세상이 바뀐다는 건 그런거다’라고 생각해요. 나의 결핍에 대한 경험이기도 하죠. 여동생이 죽었을 때 처음으로 문화에 대한 정의를 내렸거든요. 문화는 ‘정신적 자살을 막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3.
사람이 되고 싶었던 피노키오는 사람이 되어서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누군가는 특별함에 의미를
부여하고 누군가는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에 소중함을 부여한다. 피터팬은 피노키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뒤집어서 피노키오는? 아이러니하게도 피노키오는 변화를 선택했고 피터팬은 무변을 택했다는 사실. 나는?? 그래도 피터팬과 피노키오는 확실한 소망이라도 있었지만.. 난 적당히 생각없이 이거저거 건드리면서 살아가는 소위 대마왕이 말하는 괜차니스트인가? 이젠 룩도 죽었으니..
89
8월. 고춘식. 촌놈의 Turning Point 90
2.
• 2008.9.6.토.4pm l 한빛영성수련원 • 김준혁, 박선정, 최희훈, 유영은, 이준규, 정혜영, 이지성, 이설, 이정연, 이보라, 서인석, 송성호
1.
함께 산다는 것이 뭘까? 중요한 것이잖아요? 지금 제가 여러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으니까.
근데 저는 그런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없어서요.. 왜 나는 저런 질문을 던져 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저 스스로에게 던져 보려고요. (송성호)
경쟁해야 나라가 산다? 경쟁력이 있어야 나라가 사는 것이다. 경쟁력은 무엇으로부터 나오는가?
경쟁에 의해서 경쟁력이 생기기도 하지만, 협력에 의해서도 경쟁력이 생긴다, 경쟁으로 생긴 경쟁력은 오래 가지 못한다. 우리는 과연 언제 행복한가? 가난할 때 행복을 모르는 사람은 부자가 되어서도 행복을 모른다. 청소년 시절, 청년 시절에 행복을 모르는 사람은 행복을 모른다. 청소년이 행복하지 않으면 나라가 행복하지 않다.
2.
시조(時調)란, 그 시절을 노래하는 것. 생활시조를 쓰자. 쥬넬리(이보라)의 시조후기
교육
행복
시조
고등학교 선택제 골라가기 사기극
어제도 아직이요 오늘도 아직이요
시조가 어렵다니 이詩가 아니거늘
10월. 이준호. 차 한 잔 하시지요..
비판은 쉬울지나 대안은 무엇인고
대단한 그 행복 언제온단 말이더냐
노트는 사양하오 지우개가 너무바빠
• 2008.10.11.토.3pm l 품 다방
물음표 기웃거리다 미래별을 놓쳤네
끝없이 앞만 더듬다 옆을 보지 못했다오 글자판 건반삼아서 음미하면 그뿐이오
• 이원범, 정훈, 송향숙, 임경화, 문혜원, 강종안, 이상화
1.
콜로키움을 마치고 나니, '차란 무엇인가..?' 했던 첫 물음이 무색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마셔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 '차'라는 말씀이 딱 맞는 듯합니다). 마시는 혀끝마다, 만나는 마음마다 다른 것이 또한 차일 테지만, 그래도 개인적인 느낌을 전한다면... 점점 더 알고 싶고, 자꾸만 만나고 싶은... ‘연애 초기 감정' 같다고 할까. 시간과 이야기가 물 흐르듯 흘러가니 자연스러워 좋았고, 이준호 선생님이 걸출한 입담을 오랜만에 만나볼 수 있어 좋았고, 세월을 머금으며 맛과 향이 더해지는 보이차처럼 더 깊어지고 편안해진 품 선배님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소수지만 오랜 선배님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되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안 오신 분들을 위한 배 아픈 보태기. 평생 먹어볼까 말까 한 오~래된 보이차들을 맛볼 수 있어서
9월. 드라마고. 함께 산다는 건 뭘까
좋았습니다. 값으로 치면 콜로키움 참가비의 100배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헉~!)
• 2008.9.20.토.3pm l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 • 권오현, 김동환, 김양희, 송성호, 유영은, 이설, 이성종, 이준규, 이정주, 이지성, 장효진, 정지원, 정혜영, 최희훈, 정선영
1.
2.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오랜만에 보는 고향의 느낌이었습니다. 딱10년이네요. 제가 품을 알고 실습을
한 것이. 이제 새로운 품을 만나고 싶어 노력해야겠어요. 10년 전의 책의 무게만큼 눌러 앉은 책꽂이를 보면서 안타까움도 생겼습니다. 자주 갈게요. (이원범)
우리 머릿속에 있는 추상적인 것들, 막연한 것들 있잖아요. 이 막연한 것들이 좀 구체적인 것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 구체적인 것을 찾으려고 여행도 가고 공부도 하고 그러죠. 그런데 그 구체성이 계속 추상적인 상태로 머무는 활동을 반복하는 경우가 있어요. ‘함께 산다는 것이 뭘까?’ 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한 이야기예요. 왜냐면 ‘함께 산다는 것이 뭘까?' 추상적으로 생각한다고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추상적인 질문에 구체적인 대답을 할 수 있으려면 내가 구체적으로 사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하고, 내가 구체적으로 살아가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내가 갖고 있는 삶의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법을 알고 있어야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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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나러 갑니다_ 이성종편
이성종과 카메라 1992년부터 품을 거쳐 간 선배들이 수십 명에 달하지만, 그 중 자주 만나고 지내는 사람은 많 지 않다. 늘 사진첩 속에서만 선배들을 만나야 하는 후배들의 아쉬움과는 다르게, 해가 바뀌고 사 람이 바뀌고 나누지 못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품에 오기가 쉽지 않다고 선배들은 이야기한다. 그런 데, 시간의 공백이 무색하게 편안한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이 사람. 이.성.종. 지난해부터인가..? 부쩍 그를 자주 만났던 것 같다. 근처에 일이 있어 동네에 오실 때면 사무실 에 들러, 10분이고, 20분이고 수다를 떨다 가시곤 했다(수다라는 말은 그와 참 잘 어울린다). 아 내와 같이 오기도 하고, 아이와 같이 오기도 하고, 콜로키움에는 처제를 데리고 와 주주의 연을 맺어주기도 하셨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창을 열었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정식으로 인터뷰 요청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그에게 전화가 온다. “나야. 이성종. 뭐해? 일이 있어서 근처 왔는데...”
당신은 . . . 품의 주주입니다
하하하. 그렇게 하여 그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와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술 그는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프리랜서 복지영상가라는 그의 직업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게 카메라는 직업이라기보다는 생활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상대방의 시선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 순간을 기록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팔과 손목, 카메라 목을 능수 능란하게 움직여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을 잡아내기에, 상대방에게 브이를 그릴 시간 따위는 주어 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의 사진은 이야기가 살아있는 듯 자연스럽다. 또한 그는 그렇게 담은 순간들을 되돌려주는 부지런함을 겸비하였다. 가끔은 현장에서 사진을 출력하여 주기 위해 번거로운 장비들을 지고 다니기를 마다지 않는다. 폰카, 디카 등 언제 어디서 든 찍을 수 있는 장치는 흔해졌지만, 부러 출력하여 전해주는 이들은 많지 않기에, 그의 수고로움 이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진다. “예전에 품 캠프하고 나면, 꼭 사진 모아서 보내줬었잖아. 참 기분 좋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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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아닌 우연
지금 만나러 갑니다_ 이준호편
서울신대 사회복지학과 출신인 그가 어떤 계기로 카메라를 잡게 되었을까? 그는 그저 ‘시기와 기회가 좋았다’고 대답했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역시 ‘그냥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확
품의 아버지, 이준호를 만나다
인하게 된다. 그는 생각보다 많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 대학 초년생 때 레크레이션을 배웠고, 군대에서는 컴 퓨터 관리자로 활동(?)하면서 한글96을 마스터 했으며, 제대 후 한글과 컴퓨터 본사에서 아르바이 트를 하면서는 ‘문서마당대회’에서 수상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졸업 후, 한덕연 선생님이 운영하 시던 <사회복지정보원>에서 간사로 있다가, 한덕연 선생님이 복지인마을 사이트를 한국사회복지 사협회에 기증하면서 ‘복지인마을’ 웹마스터로 일했고, 거기서 사회복지 현장의 소식들을 모으고 때로는 현장을 취재하면서 라디오 방송 리포터로 활동한 경험도 있다. 그다지 개연성 없이 보이는
이준호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대학 생 과정이 한창이던 이천 유네스코 문화원에서, 김민기의 친구를 열창하던 그를 처음 만났다. 김 민기도, 친구도 잘 몰랐던 나지만, 벌겋게 달아오른 그의 얼굴과 아랫배를 묵직하게 울리던 뱃속 깊은 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이듬해 품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품에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나 아이들
경험들인 것 같지만, 그는 자신의 모든 경험들이 지금 하는 일에 농축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경험들 속에서 공통점을 찾자면,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했고, 즐겁게 했다는 것’ 일 것이다. ‘카메라는 영상 언어’라는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복지영상’이라는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기까지, 그의 말대로 ‘나 좋은 것 남들한테 얘기해주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의 성품과, 특유의 긍정적인 삶의 태도도 한 몫 했을 것이나, 다양한 경험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축적해 온 보이지 않는 노력이
과 캠프가 있을 때, 청년들과의 교육과정이 무르익었을 때 꼭 한 번씩 현장에 들르곤 했다. 언제 나 두 손 가득 소주를 사들고. ^^ 또 그는 품에 새 사람이 들어올 때나 나갈 때, 중대한 결정이 필요할 때도 함께 했었다. 언젠가 추석을 앞두고, 식구들을 불러 “민족 대 명절인데, 식구끼리 얼 굴 한번 못 봐서 되겠냐” 하시며 저녁을 사주셨던 일이 기억난다. ‘바빠도 사람 놓치지 마라’ 하는 부드러움 다그침에 죄송함과 감사함이 함께 올라와 울컥했던 순간이었다.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그를 품의 아버지라 부른다.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심한기 대표님과 함께 품을 ‘싸질러
복지영상. 이성종.
놓은’ 장본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품을 그만두고 치열한 자본사회의 한 복판에 서 있을 때에
그는 현재 VisualWelfare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프리랜서 영상가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의 프로젝트를 맡아 노숙인들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 외에
도 아버지 역할을 자처하며 품의 대소사를 함께 해 온 때문이다.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하시면서는 국내에 안 계시는 날이 더 많지만, 그래도 한국에 들어오실 때
도 연말까지 마쳐야 하는 작업이 많은데, 진도가 안 나간
는 꼭 한 번씩 품에 들르시곤 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한 번도 먼저 찾아뵙지 못했는데, 마침 10월
다며 ‘추락에 와 주십사’하는 제안을 은근슬쩍 거절한다.
주주콜로키움에 모시게 되어 인터뷰를 핑계 삼아 그를 만나러 간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물었더니,
그를 만나러 안산에 간다. 4호선 수유역에서 그의 사무실이 있는 고잔역까지 지하철만 꼬박 한
“그런 거 없어”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다. 고잔역에서 99번 버스를 타고 무슨무슨 아파트 앞에 내리니 멀리 그가
“그냥.. 돈 받고 하는 일 말고,
보인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이 보이는 우이동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풍경. 그의 빠른 걸음을 쫒아 빽빽이 둘러싸인 아파트 숲 사이를 걷는다.
그 때 그 때 내가 찍고 싶은 것들을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우이동에도 있는 고잔의 방일해장국에서, 해장국 한 그릇을 먹어치우고 다시 그의 걸음을 쫒는
그런 날이 올까...?”
다(헥헥..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아파트 숲을 지나니, 잘 정돈된 넓은 초록이 눈에 들어온다. 안 산에서 유명한 호수공원이라고 한다. 삐죽이 솟은 아파트 말고는 가린 데 없는 하늘, 탁 트인 도
복지영상 이성종. www.visualwelfare.net
로, 막힘없는 바람이 외국에 온 듯 이색적으로 느껴진다. 저 멀리 그의 아파트가 있다.
95
96
고잔 새도시에 조성된 20만평 규모의 안산호수공원. 공연장과 다양한 체육시설, 갈대습지와 산 책로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의 근린공원. 인공과 자연의 조화란 건 이런 걸까? 자연까지도 도시의
품의 주주를
일부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놀라운 솜씨에 소름이 끼치다가, 여기저기 뛰어노는 아이들의 밝은 얼 굴을 보니, 그래... 그래도 아파트만 있는 것 보다야 낫지.
소개합니다
“여기로 올라가 보자.” 공원 한 귀퉁이 섬처럼 솟은 작은 산이 보였다. “이 공원에서 유일한 순 수 자연이야.” 그의 설명을 들으며 계단을 오르니, 호수공원과 아파트 숲의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꼬마 둘이 인라인스케이트를 신은 채 총총 따라 올라와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대단한 능력이다). 평상에 앉아 차올랐던 숨을 고른다. “이 공원을 봐라. 인공적으로 만든 거지만 자연이기도 하잖아. 우리 사는 것도 똑같지 않냐? 자 본사회에 살면서 자본주의를 부정할 수 있나? 산으로 들어가 혼자 사는 게 아닌 다음에야... 난 단절은 아니라고 봐. 본인들이 소통을 이야기하면서 단절을 하잖아. 그런 의미에서 세상과 더불어
오주영
2002년 실습으로 품과 인연이 되었으며, 1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대학생 과정
에 참가하였다. 한창 ‘똥집’의 업그레이드 버젼인 ‘삼성카드’(카드를 긁듯이 하는 똥집.^^;;)가 유행할 무렵, 심한기 대표님께 삼성카드를 긁은 일화로 유명하다. “반갑다. 품! 잊지 않았노
살아가야 한다. 더불어 사는 방식은 다양하겠지. 나는 돈을 벌어야 산다. ‘정신적 지주’만큼 쓸 데
라. 품!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거다. 품!”이라고 외치며 뒤늦게 주주가 된 그녀는 현재 대구
없는 게 어디 있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어야지. 생존권이 걸린 일인데.. ‘조금만 기다려라, 기다
‘한몸그룹홈’에서 일하고 있다. http://happylog.naver.com/hanmom
려라’ 하면 뭐하냐고...” 잠시나마 품었던 그에 대한 의심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었다. 지난 시간을 같이 하진 못했으나, 선배들을 통해서 전해지는 그의 옛 모습은 빨갱이에 가까웠기에, 최근 몇 년간 보아왔던 사업가로 서의 그의 모습에서 어떤 접점을 찾기 어려웠던 터였다. 어쩌면 ‘품’이라는 온실 속에 살고 있는지 도 모르는 나로서는 그의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우리가 자본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자본사회를 살아가면서,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힘을 가지는 것이 그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그 지키 고자 하는 것 중에 하나는 ‘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준규
2007년 오~히말라야로 품과 인연이 되었다. 2007년까지 네팔품에서 활동한 누나
(이보라.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 역시 주주이다) 덕분에 품을 알게 되었지만, 이제는 보라를 ‘준규의 누나입니다’라고 소개해야 할 만큼 품의 곳곳에 출몰하는 녀석. 2008년 현재 강북청 소년문화놀이터에서 놀터지기로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사진 찍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학교 다니기를 부업처럼 하고 있는 녀석은 지금 고3. 상계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김판중
중학교 때부터 청소년축제기획단 노올자로 활동했으며, 고 1때 잘나가던 학교를 때
려치고 사회라는 더 큰 학교에 입학하였다. 이후 청년기획팀 ‘올드보이’, ‘Red_P’를 거쳐 현재 까지 상상 많은 청년기획자로 살아가고 있다. 2008년 오~히말라야 다큐멘터리 ‘판의 미로’로
안산호수공원의 유일한 순수 자연인 산을 내려와, 인공으로
데뷔하여, 네팔에서 진행되는 워크숍에도 작가로 참여한 바 있다.
만들어진 갈대습지를 지나,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을 개천을 건너, 다시 아파트 숲으로 걸어 들어간다. 역시 빠른 걸음으로
임지은
앞서가는 그의 뒷모습이 전장에 나가는 용사처럼 용맹스럽다.
사진작가. 탈북청소년교육공동체 ‘셋넷학교’ 자원교사로 활동던 중, 2007년 품과
셋넷학교가 함께 한 한-네팔 청소년 문화교류프로그램을 통해 인연이 되었으며, 그 만남을 계기로 2008년 3차 한-네팔 청년문화실천워크숍에 한국 측 작가로 함께 하였다. 나이를 잊 은 외모와 열정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십대들의 우상인 빅뱅 팬클럽 회원이기도. ^^ 2009년 세르파들의 고향, 솔루쿰부와의 만남을 제안받고 행복한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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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성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4학년 휴학 중. 2007년 6기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로 품과
인연이 된 그녀는, 마지막 학기를 일시정지하고, 품에 안겼다. 현재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에
서인석
서 인턴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9년 오~히말라야를 예약해 둔 상태다. 워낙 잘 먹어 ‘밥벌
녀석이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아 늘 고민이 많은 녀석, 특히 학교는 그에게
레’로 불릴 뻔 했던 그녀는 스스로 밥벌레보다는 ‘밥지렁이’가 되고 싶다며, 품에 올인 중이
내내 고민인 모양이다. 현재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에서 청년 놀터지기들과 함께 한 몫 거뜬
다. 그녀가 진정 품의 밥지렁이가 되어 히말라야로 아름다운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는 미지
히 하고 있다.
<청소년문화기획단 세 개> 중 까만개. 세 개 중 가장 키가 크고, 가장 욕심도 많은
수지만, 그녀의 성실과 진지함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정운호 고정애
<청소년문화기획단 세 개>의 전신인 <여섯 개> 시절 함께 활동하다, 학교를 그만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졸업반으로, 품 인턴 지성과 함께 2007년 6기 청년문화실
두며 독립하였다. 예측 불허한 입담과 상황에 굴하지 않는 용기가 매력이며, 유쾌한 겉모습과
천아카데미에 참가하면서 품과 인연이 되었다. 호기심 가득한 큰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
달리 안으로는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카멜레온 같은 녀석이다. 무언가 만들고 디자인 하
다 심한기 대표님의 소개로 아름다운 재단에서 인턴활동을 하고 있다. 아카데미의 경험으로
는데 관심이 있으며, 배움을 위한 자금마련을 위해 막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그녀, 취직하게 되면 십일조 하라고 말해 볼 참이다. ^^
오종승 안이영노
기분좋은 트랜드 하우스 QX 대표님이시다. 에이스벤추라 시절 품과 인연이 되
어, 2003년 청소년문화기획아카데미, 2004년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회 워크숍 등의
중 3때 고성캠프로 품과 인연이 되어, <노올자>로 활동하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눈매와 묵묵한 뒷심이 일품인 그는 생김새와 다르게 요리를 전공하고 있다. 군 제대 후, 복학 을 준비하며 간간히 놀터지기로 활동하고 있다.
사업을 함께 하셨다. 인디밴드, 문화평론, 축제기획, 연구 등 다양한 이력과 그 이력만큼 다양 한 이야기를 가지고 계신 분이다. 빨간 남방과 빽바지가 잘 어울리는 그는 품과의 인연에 이
천은영
렇게 적었다. “강압적 운명의 코브라 트위스트” http://www.givenzoneqx.com
아 사회복지학도가 되었다고 한다. 성결대학교 사회복지학부에 재학중이며, 2008년 강북청소
지금은 없어진 품의 자원봉사 동아리 <품앗이>로 활동하였고, 그 영향으로 말미암
년문화놀이터에서 놀터지기로 활동하며 여름실습을 겸하였다.
김현중
김판중의 닮은 꼴 동생. 형의 뒤를 이어 공교육을 버렸으며, 'FeFe'라는 카페를 꾸
려 운영하고 있는 17세 사장님이시다. 청소년축제기획단 노올자, 문화기획단 세 개 등으로
정혜영
활동했으며, 청소년들이 모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FeFe를 시작했고, 현
명님의 소개로 품의 문을 두드렸다. 2008년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 놀터지기로 활동을 시작하
재는 외부의 시선과 지나친 관심으로부터 초심을 찾고자 잠정폐업(혹은, 대리 운영) 하고, 방
며 여름실습을 겸하였고, 겁 많고 눈물도 많아 울보낑깡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뜨거웠던 여
랑(?) 생활을 하고 있다.
름실습을 통하여 그 뚝심과 내공을 증명하였다. 2009년 오~히말라야에 함께 한다.
송성호
박선정
그 유명한 <청소년문화기획단 세 개> 중 작은 개다. 2006년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이며, 품 주주이자 한신대학교 교수님이신 우수
역시 우수명님의 소개로 품과 인연이 되어 놀터지기로 활동하며, 여름실습을 함께
품과 인연이 되었으며,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현재는 강북청소년문화놀이
하였다. 실습 첫날 산행에 지각하여, 눈물바람으로 시작된 그녀의 여름은 뜨거웠던 만큼 성장
터 기획팀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지만 절대 만만하게 보면 안 되는 녀석. 그 동안 김치, 쌀
을 확인케 해주었다. 무개념 낑깡으로 통하던 그녀의 한마디 “개념을 찾았어요!”
등으로 밥값을 하다, 올 들어 어머니 계좌를 빌어 주주가 되었다. ^^
김월식 김준혁
예술가이며, 스톤앤워터,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계원디자인예술대학 등에서
<청소년문화기획단 세 개> 중 하얀 개. 앞서 소개된 송성호와 같은 과정을 통해
활동하고 있다. 2006년 경기도 청소년문화시설 실무자 워크숍을에 강사로 참여하면서 품과
품과 인연이 되었다. 하얗고 뽀얀 피부 때문에 밀가루, 혹은 하얀개라 불리우며, 공식적인 자
인연이 되었고, 종잡을 수 없는 그의 매력에 푹 빠져 현재까지 인연을 맺어오고 있으며,
리에서 말을 시키면 자동으로 얼굴이 빨개지는 지병을 가지고 있었으나, 세 개 활동으로 극
2008년 한-네팔 청년문화실천워크숍에도 한국 측 작가로 함께 하셨다.
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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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임병수
대표님을 포함한 전직원이 품의 주주인 광명1동 청소년문화의집에 계시다. 2008년
후원 현황
광명1동 청소년문화의집과 함께 한 ‘한-네팔 청소년문화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가깝게 알게 되었으며, 그가 주주가 됨으로써 광명은 ‘전 직원 품 주주인 단체 1호’가 되었다. 선한 눈매와 배려 깊은 말투가 인상적인 그는 오는 11월 결혼한다. (좋겠다.ㅜㅜ) http://gmyouth.net
김지선
노원교육지원센터 ‘나란히’ 센터장으로 계시며, 노원나눔의집의 20년 시간을 함께
해 온 전천후 지역운동가이시다. 1998년 주주 김미정님의 소개로 품과 인연이 되셨으며, 이 후 심한기 대표님과 돈독한 정신적 연대(?)를 맺어오고 계시다. 멀리서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 에너지와 사랑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궁금해진다. 제대로 알고 싶은 선배 님, 미뤄왔던 방문을 시도해봐야겠다. http://www.nowoni.net
임경화
덕성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4학년. 2007년 기관방문을 통해 품과 첫 인연을 맺
었으며, 품 인턴이자 친구 지성을 빌미 삼아(?) 품에 드나들다 주주가 되었다. 그러고는.. 2009년 오~히말라야에 합류하더니, 심지어는 네팔 품에 남아 경험을 쌓아보겠다고 들이대는 것이 아닌가? (오호라~) 그녀는 지금 일주일에 세 번 품에 출근하며 각종 네팔을 공부하고 있다. 학교 공부도, 바깥 경험도 열심인 그녀의 학구적인 태도는 가히 본받을 만하다.
정선영
주주 이성종님의 사랑받는 처제이다. 형부 덕분에 주주콜로키움에 참가하며 더불어
주주가 되었다. 상담을 전공했고, 관련 기관에서 근사한 경력을 쌓을 수도 있었건만, 무엇이 고팠던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인이 되었다. 품과 인연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잘 알 지 못하지만, 멋진 동갑내기(29살)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녀의 진가는 2009년 오~ 히 말라야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4월_ 총 3,205,000원 * 자동이체 : 85,000 원 김정현 10,000 이교영 40000 방명진 10000 한 진 10000 김영호 5000 권혁기 10,000
* CMS : 2,990,000 원 강동호 강혜진 고춘식 김귀련 김미경 김민정 김연아 김은애 김지나 김현철 류현진 박성민 박판기 변효정 송주아 신익현 양종남 오지선 유병서 윤진호 이벽주 이연수 이은경 이정주 이진주 이현제 임재춘 전옥희 정연주 조남억 채성용 최영민 표경흠 한철희 황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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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숙 20000 고미경 10000 고현주 20000 김남정 10000 김미순 10000 김선희 10000 김영구 10000 김정대 10000 김지연 20000 김현희 20000 목윤지영10000 박성희 10000 박현기 40000 부은희 20000 송향숙 20000 신재성 10000 양종수 100000 온혜림 10000 유병훈 10000 윤회영 10000 이보라 10000 이연종 10000 이은정 10000 이정호 10000 이창신 10000 이혜진 30000 임진원 10000 전현경 10000 정영수 20000 조성대 10000 천봉환 10000 최정훈 5000 하여주 10000 허상문 10000 황지희 10000
* 특별후원 : 130,000원 이성종 30000 임현승 100000
다음호에 계속...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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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희 고성애 곽혜림 김남희 김미정 김세진 김영미 김정진 김지원 김희정 목혜균 박영심 반병두 서정애 송혜민 안미선 양지희 우상미 유제흥 이교헌 이 설 이영애 이은주 이주빈 이철훈 이화선 장성문 정수연 정유섭 조영미 천수경 최준근 한가흔 허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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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선 고영한 권오현 김대심 김미정 김수근 김영삼 김정화 김창영 노재정 문재형 박정화 배선미 손의숙 송혜진 안준원 오명진 우수명 유희경 이기남 이성종 이원경 이장형 이준규 이치형 임선우 장성희 정수현 정지원 조용균 최두환 최해경 한석구 허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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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 고윤희 권혁철 김동찬 김 민 김승희 김영습 김종윤 김태성 두영미 박경호 박정희 배재석 송성숙 신미경 양승부 오승은 원정분 윤은주 이문학 이성태 이유신 이정미 이지은 이한나 임세훈 장은석 정안철 정 훈 조원석 최명옥 최현실 한유흔 홍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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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옥 고인석 권희정 김명호 김민경 김양희 김유정 김종주 김태영 라영준 박기범 박종우 백진아 송종열 신용식 양은일 오종환 유경희 윤진영 이미선 이수나 이은경 이정은 이진선 이한나 임은옥 장효진 정연정 조기찬 조혜영 최선경 최희훈 한주남 홍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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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ㆍ5월
5월_ 총 3,055,000원
후원 현황
6월_ 총 3,445,000원
* 자동이체 : 80,000 원
* 자동이체 : 85,000 원
김정현 10000 이교영 40000 권혁기 10000 방명진 10000 한진 10000
김정현 10000 이교영 40000 권혁기 10000 김명희 5000 방명진 10000 한 진 10000
* CMS : 2,975,000 원 강동호 강혜진 고현주 권희정 김명호 김민정 김양희 김유정 김지나 김현중 두영미 박경호 박정희 배선미 서정애 송혜민 신재성 양은일 오지선 유병훈 윤회영 이성태 이은경 이정은 이진주 이혜진 임지은 장효진 정안철 정 훈 조용균 천수경 최정훈 하여주 허윤성 황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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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숙 고미경 곽혜림 김귀련 김미경 김선규 김연아 김정대 김지연 김현철 류현진 박기범 박종우 배재석 손의숙 송혜진 안미선 양지희 온혜림 유현희 이기남 이수나 이은경 이정주 이철훈 임선우 임진원 전봉재 정연정 조계형 조원석 최두환 최준근 한가흔 허중혁 황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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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MS : 3,290,000 원 강명희 15000 고성애 10000 권도라 20000 김남정 10000 김미순 10000 김선희 10000 김영구 10000 김정진 10000 김창영 10000 김현희 20000 목윤지영10000 박성민 10000 박판기 20000 백진아 10000 송 건 10000 신경애 10000 안상희 20000 오명진 10000 우상미 10000 유희경 10000 이미선 10000 이연수 20000 이은정 10000 이정호 10000 이치형 10000 임성규 10000 임현승 30000 전현경 10000 정연주 10000 조기찬 10000 조재경 10000 최명옥 10000 최해경 20000 한유흔 10000 홍경숙 10000
강미선 10000 고영한 20000 권순임 10000 김남희 10000 김미정 10000 김세진 10000 김영미 10000 김정화 10000 김태성 10000 김효정 20000 목혜균 10000 박성희 10000 박현기 20000 변유선 10000 송종열 10000 신미경 10000 안이영노10000 오승은 15000 원정분 10000 윤은주 10000 이벽주 10000 이연종 10000 이은주 10000 이주빈 10000 이한나 10000 임세훈 20000 장성문 20000 정민기 10000 정영수 20000 조남억 20000 조혜영 10000 최선경 20000 최현실 10000 한주남 10000 홍미용 10000
강지영 고인석 권오현 김대심 김미정 김수근 김영삼 김종윤 김태영 나하나 문재형 박영심 박혜경 변효정 송주아 신용식 안준원 오종환 유경희 윤진영 이보라 이영애 이장형 이지은 이한나 임은옥 장성희 정수연 정유섭 조성대 채성용 최영민 최희훈 한철희 홍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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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옥 고춘식 권혁철 김동찬 김 민 김승희 김영습 김종주 김현민 노재정 박경호 박정화 반병두 부은희 송향숙 신익현 양승부 오주영 유병서 윤진호 이성종 이유신 이정미 이진선 이현제 임재춘 장은석 정수현 정지원 조영미 천봉환 최윤성 표경흠 허상문 홍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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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호 강혜진 고춘식 김귀련 김미경 김민정 김연아 김은애 김지나 김현철 류현진 박성민 박판기 변효정 송주아 신익현 양종남 오지선 유병서 윤진호 이벽주 이연수 이은경 이정주 이진주 이현제 임재춘 전옥희 정연주 조남억 채성용 최영민 표경흠 한철희 황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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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숙 20000 고미경 10000 고현주 20000 김남정 10000 김미순 10000 김선희 10000 김영구 10000 김정대 10000 김지연 20000 김현희 20000 목윤지영10000 박성희 10000 박현기 40000 부은희 20000 송향숙 20000 신재성 10000 양종수100000 온혜림 10000 유병훈 10000 윤회영 10000 이보라 10000 이연종 10000 이은정 10000 이정호 10000 이창신 10000 이혜진 30000 임진원 10000 전현경 10000 정영수 20000 조성대 10000 천봉환 10000 최정훈 5000 하여주 10000 허상문 10000 황지희 10000
* 특별후원 : 70,000 원 * 특별후원 : 0원
김진숙 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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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희 고성애 곽혜림 김남희 김미정 김세진 김영미 김정진 김지원 김희정 목혜균 박영심 반병두 서정애 송혜민 안미선 양지희 우상미 유제흥 이교헌 이 설 이영애 이은주 이주빈 이철훈 이화선 장성문 정수연 정유섭 조영미 천수경 최준근 한가흔 허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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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선 고영한 권오현 김대심 김미정 김수근 김영삼 김정화 김창영 노재정 문재형 박정화 배선미 손의숙 송혜진 안준원 오명진 우수명 유희경 이기남 이성종 이원경 이장형 이준규 이치형 임선우 장성희 정수현 정지원 조용균 최두환 최해경 한석구 허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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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 고윤희 권혁철 김동찬 김 민 김승희 김영습 김종윤 김태성 두영미 박경호 박정희 배재석 송성숙 신미경 양승부 오승은 원정분 윤은주 이문학 이성태 이유신 이정미 이지은 이한나 임세훈 장은석 정안철 정 훈 조원석 최명옥 최현실 한유흔 홍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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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옥 고인석 권희정 김명호 김민경 김양희 김유정 김종주 김태영 라영준 박기범 박종우 백진아 송종열 신용식 양은일 오종환 유경희 윤진영 이미선 이수나 이은경 이정은 이진선 이한나 임은옥 장효진 정연정 조기찬 조혜영 최선경 최희훈 한주남 홍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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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ㆍ7월
7월_ 총 3,195,000원
후원 현황
8월_ 총 3,355,000원
* 자동이체 : 35,000 원
* 자동이체 : 85,000 원
김정현 10000 김명희 5000 방명진 방명진 10000 한진 10000
김정현 10000 권혁기 10000 이교영 40000 김명희 5000 방명진 10000 한 진 10000
* CMS : 3,160,000 원 강경미 강하자 고윤희 곽혜림 김남희 김미정 김승희 김영습 김정대 김지나 김현중 노재정 박경호 박정화 배재석 서정애 송향숙 신익현 양승부 오종환 원정분 유희경 이기남 이수나 이은경 이정주 이창신 이혜진 임재춘 전옥희 정연정 정 훈 조혜영 최선경 최희훈 한유흔 홍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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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호 강현옥 고인석 권도라 김대심 김 민 김양희 김영철 김정진 김지연 김현철 두영미 박경호 박정희 백진아 손의숙 송혜민 신재성 양은일 오주영 유경희 윤은주 이문학 이연수 이은경 이주빈 이철훈 이화선 임진원 전현경 정연주 조기찬 채성용 최영민 표경흠 한주남 홍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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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MS : 3,220,000 원 강명숙 강혜진 고정애 권오현 김동찬 김민경 김연아 김월식 김정화 김창영 김현희 류현진 박기범 박종우 변유선 송 건 송혜진 안미선 양종남 오지선 유병서 윤진영 이벽주 이연종 이은정 이준규 이치형 임경화 임현승 정민기 정영수 조영미 천봉환 최윤성 하여주 허상문 홍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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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희 15000 고미경 10000 고춘식 20000 권혁철 20000 김미경 10000 김민정 10000 김영구 10000 김유신 10000 김종윤 20000 김태성 10000 김효정 40000 목윤지영10000 박성민 10000 박판기 20000 변효정 10000 송성호 10000 신미경 10000 안상희 10000 양지희 40000 온혜림 10000 유병훈 10000 윤진호 30000 이보라 10000 이영애 10000 이은주 10000 이지은 20000 이한나 10000 임성규 10000 장성문 20000 정수연 10000 정유섭 10000 조용균 10000 천수경 10000 최정훈 5000 한가흔 10000 허윤성 10000 황선미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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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미 강현옥 고춘식 권오현 김동찬 김민경 김연아 김월식 김정화 김창영 김효정 류현진 박기범 박정희 백진아 손의숙 송혜민 안상희 양지희 오지선 유병서 윤진영 이벽주 이영애 이은주 이주빈 이철훈 이화선 임은옥 장은석 정수연 정운호 조기찬 조혜영 최선경 최현실 한석구 홍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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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희 고미경 고희종 권희정 김미순 김선규 김영미 김유정 김종주 김태영 나하나 목혜균 박성희 박판기 변효정 송성호 신미경 안준원 오승은 우상미 유제흥 윤회영 이성태 이유신 이정미 이지은 이한나 임병수 임지은 전봉재 정안철 정지원 조영미 천봉환 최윤성 표경흠 허상문 홍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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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선 10000 고성애 10000 곽혜림 10000 김귀련 10000 김미정 10000 김선희 10000 김영삼 10000 김은애 10000 김지나 30000 김현중 10000 남소연 10000 문재형 10000 박양미 10000 박현기 20000 부은희 20000 송종열 10000 신용식 10000 양은일 10000 오종승 30000 우수명100000 유현희 10000 이기남 10000 이수나 10000 이은경 10000 이정은 20000 이진선 20000 이한나 10000 임선우 10000 임진원 10000 전옥희 10000 정연정 20000 정혜영 10000 조용균 10000 천수경 10000 최정훈 5000 하여주 20000 허윤성 10000 황선미 20000
강지영 고영한 권도라 김남희 김미정 김승희 김영습 김정대 김지선 김현철 노재정 박경호 박영심 반병두 서인석 송주아 신익현 양종남 오종환 원정분 유희경 이문학 이연수 이은경 이정주 이진주 이현제 임성규 임현승 전현경 정연주 정 훈 조원석 최두환 최준근 한가흔 허중혁 황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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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자 고인석 권순임 김대심 김 민 김양희 김영철 김정진 김지연 김현희 두영미 박경호 박정화 배재석 서정애 송향숙 신재성 양종수 오주영 유경희 윤은주 이미선 이연종 이은정 이정호 이창신 이혜진 임세훈 장성문 정민기 정영수 조계형 조재경 최명옥 최해경 한상진 홍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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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ㆍ9월
9월_ 총 3,78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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