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품의 고백
005
길의 철학을 위하여.. l 심한기
011
나로부터의 출발 l 강명숙
023
나에게 고백 l 유현희
031
오순도순의 오순도순한 고백
035
꿈을 찾게 하는 품! l 나하나
041
미루뽕, 품 대학을 졸업하다 l 유영은의 고백
046
섭이의 그림 그리기 l 이상섭
052
주넬리의 GO BACK! l 이보라
058
내 마음의 고백ㅣ이하니
063
품 활동보고 2007, 품 활동 돌아보기
064
학교-지역 연계 문화예술교육사업
068
6기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072
네팔문화교류사업 2008, 품은 지금!!
074
네팔문화교류사업
082
강북청소년문화존
083
주주&나눔사업
085
특집 l 별종 청년들의 동네 이야기
095
당신은 품의 주주입니다.
096
2008 주주와의 약속
101
주주와의 만남. 지금 만나러 갑니다 _서른다섯, 내 삶에 가장 자랑스런 이력 l 김현희 편 _기분 좋은 사람, 기분 좋은 만남 l 정수현 편
108
품의 주주를 소개합니다
114
주주현황
117
후원현황
품의 고백
人
길의 철학을 위하여..
미루뽕, 품대학을 졸업하다! 주넬리의 GO BACK! 섭의
그림그리
기
나로부터의 출발 내 마음의 고백 꿈을 찾게 하는 품! 나에게 고백
심한기의 고백
길의 철학을 위하여...
17년 전 품이 처음 시작한 날.. 서울청소년회관 분관의 지인들이 '젊은 놈들 기특하다!'며 내준 네 평의 지하사무실에 서 품의 첫 성공기원 고사를 지냈다. 선배들, 후배들, 아이들, 친구들, 수녀님, 신부 님, 스님, 목사님, 원불교 교무님 등 품을 시작한 3명의 건달들이 협박하여 모신 칠팔 십 여명의 지지자들과 품의 첫 문을 열었다. 당연히 뒤풀이 자리에는 술과 이야기 있었
_심한기
다. 그곳에서 얼큰하게 취한 존경하는 선배 한 분이 이렇게 소리치셨다. “야! 너희들 이거 1년 이상 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하지만 품은 지금 17살의 생일을 준비하고 있고, 그 선배의 손은 아직도 멀쩡하다. 처음부터 대단한 가치를 상상하지 않았다. 그저 젊은 청년들의 호기와 객기와 치기가
무소유가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눠줄 수 있는 것이라면,
뭉쳐서 조직의 답답함과 직장 선배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재미있게 이 땅의 아이들과
무소식은 무관심의 결과가 아닌 타자의 삶을 느리게 바라보고 기다리는 믿음이 아닐까
놀고 싶은 맘으로 시작한 것이 품이다. 그렇게 시작한 품은 열일곱의 해를 넘기면서 길 고 긴 '길 닦기'를 해왔다. 그 길 위에서 만들어진 것들을 모두 기억하기에는 시간의 거리들이 너무 멀다. 그래도 분명한 것들이 있다면, 그런 것들을 고백하자면...
무관심하지 않고, 보채지 않고, 외형의 현상과 언어에 현혹되지 않고, 하나의 꿈을 한 사람의 인간을, 또는 스스로가 지지하는 한 조직의 과정을 느리게 바라보고,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너무도 쉽지 않다. 거꾸로 나를, 우리를 바라보고 지지하는 한 사람을 느리게 바라보고,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을 갖는 것 또한 너무도 쉽지 않다.
고백 하나. 지금의 품이 지니고 있는 것들 중에는 '의도하지 않은 행운, 스스로는 그렇지 못했는데
그래서 가끔은 술 취하지 않아도 용기 내어 할 수 있는 진실한 고백(告白)이 필요하다.
옆에서 만들어준 가치,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위장술'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 로의 무의식의 욕심 같은 것에서 시작된 멈추지 않았던 '속도'란 것이 있었다. 그리고
고백이라 함은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것들만을 수줍은 척 드러내는 일과는 다르다. 고백
그 속도가 만들어준 '가속도'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 속도감 덕분에 품은 지금까지
은 당연히 숨기고 있었던 것이나,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고 믿고 있는 것들, 또는 결과
더디 가며, 돌아보며, 담아야 할 것들을 너무 많이 잃었다.
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들의 과정들이 숨어있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현상과 현상과의 사이에는 미숙한 판단과 예측 또는 여러 가지 모양새의 오해들이 존재하기도
결국, '품은 사람이다!'라는 대국민 표어 같은 스스로의 약속들을 잃어가고 있었다. 며
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한 싫증이 날 쯤 진정한 무관심과 배타가 시작되고 결국은
칠 전 신용복 교수의 강의록을 읽으며, 딱 한 줄에 진한 밑줄을 다섯 번 이상 그은 적
포기와 단절 등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 있다. '도로의 논리를 넘어서는 길의 철학'... 품은 길을 가고자 했으나 결국 도로 를 만드는 일에 너무 많은 땀을 쏟았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까지 품이 가져야 할 '길
아름다운 고백은 거의 대부분 거창하지 않다. 거창한 고백의 시작은 또 다른 치장과 가 식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아름다운 고백은 작은 것에 대한 솔직한 '진언(眞言)'과 같은 성실한 진실에서 시작해야 한다.
의 철학'들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심한기나 품을 바라보는 동지들은 빠른 속도감으로 만들어진 도로만을 원한 것이 아닐 것이다. 가끔 누군가 '돈부터 벌어라, 이익 먼저 챙겨라'라며 훈계를 할 때 나는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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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철학을 위하여
심한기의 고백
품은 버럭 화를 내며, 말 던진 사람을 무시하곤 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살아온 과정
어쩌면 품이 수많은 반성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사랑'을 위해서 일 것이다. 일의 가
을 꼼꼼하게 돌아보면 돈과 다른 가치를 만들어야 할 시간에 돈의 논리와 다를 바 없는
치, 길의 철학, 사람과 사람, 그리고 그 사람과 사람의 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
'도로 닦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돈의 논리가 무조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서 가끔 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품은 너무 무겁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글도 무
다만 빠른 경제성장을 위한 도로건설과 같은 '속도와 결과의 논리'는 품에게 필요하지
겁고, 홈페이지도 무겁고, 사업 보고서조차 무겁다고 한다. 품이 무겁게 보이는 이유가
않다는 것이다. 결국 품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길을 만들어내는 땀의 의미를 되돌아볼
무엇일까? 혹시 가치와 의미를 찾는 지독한 노력들 때문이 아니라 그 노력 안에서 놓쳐
수 있는 시간이 온 것이다.
버린 작지만 소중한 '준비', 그리고 일상의 '소통'들 때문인 것은 아닌가? 그런 것들을 담아갈 수 있었다면 분명 작은 일상에서 커다란 결과까지.. 그 과정들이 무겁게 보이지 만은 않았을 것인데...
고백 둘.
그래서 품은 목적과 목표, 계획된 비전들을 버렸다. 생각 없이 막 나가자는 말이 아니 그래서 지금 아니 몇 년 전부터 '도로 닦기'가 아닌 '길의 철학'을 만들기 위한 몸부림 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도로가 잘 나가는 속도감을 멈추고, 길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며, 이미 길들여진 속도감을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 었다. 결국 길을 찾는 시간 안에서도 또 다른 도로를 만들기도 했다. 사람을 아프게 하 거나, 소중한 과정들을 놓치는 일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라 진정으로 사유하고, 판단하고, 실천할 수 있는 품으로 다시 태어나려 한다. 올해 2008년부터 그동안 만들어진 속도감을 과감하게 버리려고 한다. 다시 길의 철학을 찾기 위한 소중한 준비와 소통을 할 것이다. 이는 의도된 목적과 목표 그리고 비전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전과 같이 밤 12시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다만 오직 목표를 달성하기
그동안 품에서 목줄에 핏대가 서도록 외쳤던 ‘소통이 중요하다!’란 말... 하지만 '말
위한 준비와 소통이 생략된 달리기로서의 땀은 흘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밤새 불이
의 의미'를 넘어서 진정한 소통의 장면들을 정작 품 안에서 만들어내지 못했다. 몇 명
켜져 있는 곳은 사무실만이 아닐 것이다. 각자가 선택한 시공간에서 각자의 삶과 품에
되지 않는 품 안에서도 행복한 소통의 장면들보다는 힘들고, 답답한 장면들이 더 많았
서의 삶을 이어가기 위한 준비와 소통이 있을 것이다.
던 것 같다. 그리고 품의 진정한 솟대이며, 돛대이며, 대들보인 '주주'와의 소통도 '말
그것은 『유현희가 살고 있는 월세 20만원짜리 방에 모여 밥 한 덩이를 나눠먹는 반가
' 이상의 의미와 실천을 넘지 못했다. 어제까지(2008년 3월 9일) 품은 주주 중에 아이
운 주주한명과 품 식구들, 땀 흘리며 북한산 중턱을 오르는 주주와 품, 옆에 두고 가지
들을 가진 가족이 몇 명이고,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주주가 몇 명인지, 청소년 문
않았던 도봉 도서관에서 책을 읽은 동네 아이들과 품,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구름 아래
화에 관심 있는 주주가 얼마나 되는지 몰랐고, 가끔은 품에 편안하게 찾아오고, 잘못한
서 차를 마시고 있는 품의 지인들, 단골 맥주집 '두리아'에서 행복한 다음 시간을 고민
것들을 꾸짖어 보고 싶어 하는 주주가 있다는 것을 때 맞춰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또한
하는 품의 단골 강사들과 품, 날라리 아이들이 놀아대는 신나는 마당에 초대된 동네사
품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외부의 시선들을 감사하거나 탓하기만 했지 정작 품의 깊은
람들, 대학입시 폐지와 티벳 독립을 위한 촛불시위 현장에 달려온 아이들과 품』과 같
고민과 과정들을 제대로 드러내는 것에도 소홀했다. 품 소식지가 나간지 오래다.....
은 장면들로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각자의 삶과 일상, 그리고 품의 일상과 삶 즉 '길의 철학'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 연결될 것이다.
고백 셋.
2008년 품의 희망들...
고백이란 것이 너무 '반성'을 위한 증언으로 가면 그것 또한 일방적 소통의 시작이다.
올해 품이 하고자 하는 일들은 매우 단순하다. 사업의 숫자로 치자면 달랑 3개다. 지역
다시 말해서 '사랑'하고 있음을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고백이 가지는 가장
청소년 문화운동, 한․네팔 청년 문화 운동, 그리고 주주․나눔 사업이다. 심한기를 제외한
아름다운 행위이다.
3명의 식구들이 각각 하나의 일을 담당하지만, 4명 모두가 전체와 부분을 연결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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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철학을 위하여
심한기의 고백
시스템으로 가기로 했다. 즉, 담당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방식이 아니라 품이 가질
주주 ․ 나눔 사업
수 있는 공동체적인 접근이 가능한 형식들을 만들어가기로 했다. 서로 논의하고, 제안
품의 뜻과 가치를 알리고, 나눌 수 있는 주주. 올해는 그들과의 나눔을 제대로 한번 시
하며 함께 일과 생각들을 나눠갈 수 있는 시간들이 이제는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다. 그
도해 볼 생각이다. 지금까지 말이 먼저 앞섰던 '주주와의 소통, 그리고 품의 뜻과 가치
리고 모든 일들은 사업이 아닌 ‘운동’으로서의 철학을 가지고 간다. 거창한 또는 이
를 알리는 일'들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소통과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준
념적 운동이 아닌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가며, 끊임없는 에너지를 생산하며, 개인 또
비하고 있다. 그 시작이 '주주 콜로키움'이다. 17년 동안 품과의 인연을 가지고 있는
는 집단 또는 사회에 필요한 변화를 실천하고자 하는 실천개념으로서의 '운동'이다. 수
지인들 중에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고 있는 전문가들이 많다. 그래서 그들과 품 주주가
많은 프로포절(공모사업)에 목숨 걸며, 하지 않아도 될 것에 힘을 낭비하는 일들을 최
함께 만날 수 있는 '주주 콜로키움'를 시작한다. 또한 편안하게 주주들과 만날 수 있는
대한 줄이기 위한 나름의 판단이다.
품 생일잔치를 부활시킬 것이며, 가을부터는 오직 품에서만 놀고 있는 심한기가 지금까 지의 경험과 시행착오와 지식들을 총동원해서 품의 주주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심한~
지역청소년문화운동.
개와 함께 하는 맞춤 워크숍’을 시작한다. 심한기는 그동안 주로 품이 아닌 품 밖에서
10년 넘게 해왔던 지역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이는 사정상 개점휴업을
떠들고, 소리치고, 참견하고, 욕을 하며 다녔다. 이제는 늦었지만 안으로의 회기를 할
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 안에서의 일은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는 것처럼 일상 안
시기이다. 사회복지, 청소년, 교육 등 다양한 공공의 영역에서 일하고 있는 품의 주주
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해왔던 지역청소년축제 추락과 청소년
들과 만나 그들의 고민과 희망을 함께 나누려 한다. 그리고 품은 올해 품의 땀을 담은
문화아카데미, 학교문화예술교육처럼 분리된 느낌의 형식에서 지금까지의 과정과 결과들을
책을 출판할 것이다. 자체 보고서의 형식도 아니며, 품 자체를 홍보하는 홍보물도 아니
모아 소박하지만 통합적 접근으로 가려 한다. 다행히 강북구청에서 제안한 청소년문화존
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객관적으로 품의 뜻과 가치를 전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출판
사업과 연결할 수 있어서, 돈 걱정하지 않고 소신 있는 지역문화 활동들을 할 수 있을 것
사업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올 여름이 오기 전에 반드시 품 홈페이지가 업그레이드
같다. 이 사업은 올해로 정식 식구가 된 상섭이가 맡는다. 워낙 아이들과의 소통을 잘하기
될 것이며, 품 소식지 또한 멈추는 일이 없을 것이다.
에 큰 걱정이 없으며, 청소년기획단 ‘세 개와 밥그릇’이 있기에 더욱 든든하다.
한․네팔 간 문화운동.
고백 넷.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 진정한 청년을 찾아내는 일은 네팔문화교류 사업을 통해서 연결하려 한다. 그동안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와 같이 청년을 흔들고, 키우는 일을 이제는 히말 라야와 연결한다. 즉, 이 땅에서 가능한 청년의 에너지와 히말라야에서 꿈꾸는 청년의 에 너지들을 만나게 해주는 일로 연결하려 한다. 어떤 이는 품의 방향이 변했다고 한다. 네팔 에 너무 집중하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그러나 이는 공간의 이동일 뿐이며, 가치의 변화라 기보다는 형식의 변화이다. 하나의 일을 시작할 때 온전한 고민과 집중을 하는 것이 품의 힘이다. 그리고 네팔과의 연결은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역할을 하 고 있다. 올해부터는 한국의 청년작가(문화기획자, 코디네이터, 문화예술교육 전문가, 저
이렇게 고백을 했으니 말로 끝나는 잔치가 되면 안 된다. 그래서 고백은 쉽지 않고, 쉽 게 할 수 없다. 올해 품의 고백과 약속이 100% 지켜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 을 보고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과정이 있다면 그 약속들은 아름답게 나눠질 수 있을 것 이다. '철학'이란 것은 글이나 말로도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에 '길'이라는 실천 의 근거를 붙여서 '길의 철학'을 찾겠다고 했으니, 이젠 말만 가지고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다시 침묵하고, 느리게 바라보고,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할 것이다. 서 로의 믿음들이 가능할 수 있는 시간을 위해 건배를 들자. ‘길의 철학’을 위하여...
널리스트 등)와 네팔의 청년작가들이 서로 왕래하며, 서로의 에너지를 교환하며, 이 시대 에서 꿈꿀 수 있는 청년문화운동을 시작할 것이다. 네팔문화운동은 심한기와 강명숙, 그리 고 네팔 현지에 있는 엔지오 품 식구들(이하니, 앙 장부 세르파 등)과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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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숙의 고백
품에서 몇 년을 지난 후, 품의 일상들이 이제는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 품의 역사
나로부터의 출발
에서 지켜가야 할 속도와 나의 속도(사고, 업무 능력 등)의 차이가 느껴졌고, 그것은 무조건 줄여야 하는 존재로만 다가왔다. 어느 순간 나는 없어지는 듯 했고 어떻게 무엇 을 줄일 것인가에 대한 명쾌한 답도 없이 움직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며, 내가 이
_강명숙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자괴감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 자괴감은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에너지로 전이되었고,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 고민이 시작되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는 품을 나가고자 마음먹었다.
3개월간의 쉼. 고백이라는 말을 써본지도 오래됐다.
심샘과의 3차례 대화. 다시 흔들리기 싫은 고집 같은 의지와 품에 대한 아쉬움이 함께
품은 개인의 삶과 일이 분리되지 않는다.
공존하고 있던 내 마음이 심하게 갈등이 일어났던 것이 사실이다. 대화를 이어가며 품
그래서 개인의 이야기부터 풀어보려 한다.
에게 내가 필요하다는 말은 그동안 혼자 불안했던 나의 역할, 나의 능력에 대한 부정적
품 주주들과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고
평가를 해결할 수 있는 말 이었는지 모른다. 결국 두레품을 통해 품을 나가는 것이 공
고백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지가 된 상황을 번복하게 되었다. 참 쑥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을 계기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의 소통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했다. 3개월간의 쉼을 갖기로 하고, 티벳에 다녀왔다. 소화가 되지 않는 자연 앞에, 티벳인들의
하나. 나로부터의 출발.. 품에서의 7년”
삶은 혹독했다. 하지만 그들의 눈은 평화로웠다. 무엇이 자연스러운 것인가, 무엇이 평화로 운 것인가? 지금 나의 삶은 '과정'이라고 가슴 깊이 인정하며 여행에서 돌아왔다. 차이가 있음이 당연한 것이며, 차이라는 것은 줄여야 하는 부정적인 존재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당연했던 방황.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부정이 긍정을 만드는 원인이고, 지금 품의 변화를 가져오
어릴 적 품이 가진 삶의 방식을 정확한 언어로 정리해 낼 수 없었지만, 학교라는 것을 통해서 사회를 바라보던 것이 전부였던 중학생 시기에 만난 품은 다른 세상을 만난 듯
게 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품 역사의 한 부분을 쓰고 있는 중요한 한 사람이라는 것과 그 차이를 가슴으로 껴안을 수 있음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되는 순간이었다.
했다. 그렇게 92년부터 시작된 품과의 인연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은 나에겐 당연
달라지면서 그대로 있고, 그대로 있으면서 달라짐.
한 것이었다.
방황(?)을 겪고 나서 나의 일상은 달라진 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도 없다. 그저 보다 품의 제안으로 2002년부터 품에 직원으로 일과 생활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그 시기의
품과 나와의 관계가 한 몸인 듯, 그러나 다른 몸인 듯 살아가고 있다. 품과 나의 관계
품은 재단으로부터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품의 정체성과 방향을 다시금 잡아가고
를 억지스럽게 분리하거나, 일치시킬 필요가 없어진 듯하다. 굳이 불필요한 경계를 내
있었던 시기였다. 직원으로서의 역할과 일들이 생경했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해 나
세울 필요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품에 막내였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왕언니
가며 정신없었던 시기를 지냈었다.
다. 부족했던 것 채워나가고 도움 받으면서 그렇게 같이 품을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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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부터의 출발
강명숙의 고백
두울. 2007년‘한국-네팔문화교류사업’
한 해를 뒤돌아보며 한 해를 돌아보면 아쉬움도 많다. 네팔문화교류사업의 담당자로써 해결해야 할 문제인 언어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했었고, 만성적인 지각병도 고치지 못했다. 또, 아직 나무 와 숲을 동시에 보는 시각 키우기도 부족했다. 그래도 돌아왔던 시간을 둘러본다는 것 이 즐거울 수 있는 것은 계속 머릿속에서 끊이지 않고 떠올랐던 '누구를 위한 삶인가?' 라는 질문에 명쾌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참 단순하지만, 나에게는 참으로 어려웠던 '
작년 말 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에 계시는 강대근 선생님을 찾아뵌 적이 있다. 대 뜸 '네팔국제교류사업'이라고 하지 말라 하신다. '국제'라는 단어에 오류에 빠지지 말 라하시며 나라마다 다른 문화적 특성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라는 말씀 이다. 짧은 말이지만, 흘려듣지 말아야 할 말이다.
내가 행복하다는 것'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것 같기 때문이다. 품을 92년 여름에 알아
2006년에 오~ 히말라야로 시작한 한-네팔문화교류사업이 2008년이 되면서 이제 막 3년
지금까지 횟수로 16년, 품에서 일한지 7년 동안의 땀과 역사가 내 스스로 인정이 되는
이 되었다. 3년이란 시간이 길지 않지만, 일의 가짓수는 적지 않았고 사업이 시작하는
지금이기도 하다.
초기인 만큼 품의 에너지가 네팔 사업에 많이 투여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짧은 시간 안
3개월 간의 쉼의 첫 시작 장소는 네팔이었다. 네팔 품을 준비하기 위해 들어가는 일정 에 따라 들어갔고 쉼도 갖고 자연스럽게 그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다. 여행 후, 네팔문 화교류 사업은 행운처럼 담당자가 되었다. 품의 일을 하면서 사실 당장 필요한 것들인
에 많은 일들이 가능했던 것은 품이 한국에서 얻은 경험과 가치들이 고스란히 네팔문화 교류사업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첫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큰 흐름과 변화지 점을 중심으로 꾸밈없이 정리해 보려한다.
한국의 정책, 역사, 세계 역사의 흐름에 대해서도 제대로 모르지만 그것에 대한 갈증보 한눈에 보는 한국-네팔 문화교류사업의 과정
다는 '철학적 사고'에 대한 갈증이 더 컸다. 철학적 사고의 확장은 마치 내가 정신적으 로 성장하는 듯 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고, 보다 현실과 나를 명쾌하게 바라볼 수 있 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책을 선택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것이었는데, 네팔은
• 05년. 개인의 여행과 정신적 교감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책과 마주한 느낌이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속도와 환경, 품
• 06년 1월. 전이의 시작. 첫 번째 오~ 히말라야 • 06년 1월. 네팔교육현실을 만나다. 1일 문화예술교육워크숍 시도
이 언제나 추구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와 공존 등이 그 이유였다.
• 06년 5월. 문화예술교육과 교류의 가능성 확인. 제1차 한국-네팔 문화예술교육워크숍 • 06년 10월. 진정한 교류를 위한 준비. NGO 오픈준비 & 파견인턴 배치
또 하나 네팔이 나에게 주었던 것은 언어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모든 것이 마비되면서
• 07년 1월. 두 번째 행복한 전이. 두 번째 오~ 히말라야
실무자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아주 원초적인 고민을 들게 했고, 조그마한 불편한
• 07년 1월. Nepal NGO PUM Open
것들에 크게 동요하고, 무엇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나를 발견하게
• 07년 5월. 사업방향 알리기와 네트워크 확대하기. 제2차 한국-네팔 문화예술교육워크숍
되었다. 평소에 잘 하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틀리지 않았다고 믿었던 나에게 소통, 다
• 07년 6월. (재)청소년과 사람사랑 나눔학교 장애청소년 네팔교류활동 공동기획 및 진행
름의 인정, 속도 등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 07년 6월. 네팔의 청년과 마을이 변화를 시작한다. Happy School Project • 07년 7월~ 진정한 파트너 찾기. 네팔 NGO 단체 방문 및 조사 • 07년 8월. Happy vibration. Young Artist Group 자발적 활동 시작.
모든 것이 명쾌하지 않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나에게 네팔은 삶의
• 07년 10월. 세 번째 이음. 탈북청소년 네팔국제 자원활동 프로그램 공동기획 및 진행
태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에 대해 백지와 같은 상태를 만들어 주었다. 결국 네팔
• 08년 1월. 세 번째 행복한 전이. 세 번째 오~ 히말라야
사업을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사고의 확장이다. 이제 나는 네팔문화교류사업을 통
• 08년 1월. 영등포 청소년문화의집 가족여행 공동기획 및 진행
해 방황을 끝내고 나의 삶에 집중하게 되었다.
• 08년 1월. CJ 나눔재단 '한국-네팔 청소년 희망나눔 프로젝트' 공동기획 및 진행 • 08년 5월. 제3차 한국-네팔 문화예술교육워크숍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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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부터의 출발
강명숙의 고백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
변화_ 네팔의 행복한 변화를 희망한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 히말라야를 꿈꾸는 사람이 많다. 정신적으로 힘들 때, 마음의
네팔은 인도와 중국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으면서 무역의 중간지점이었고, 양국의 문화
평화가 필요할 때, 쉼을 위해, 날씨가 좋으면, 그리고 마음이 산을 부르면.. 그 부름에
가 넘나들었던 나라이다. 그로 인해 힌두와 불교가 공존하고 있으며, 60여개가 넘는 다
따랐던 심한기 선생님이 히말라야를 갔다. 그곳에서 히말라야, 네팔의 문화, 종교, 사
양한 민족이 살아가며 문화 또한 다양하게 어울어져 있는 나라이다. 2년간 네팔을 오가
람, 그리고 아이들을 만났다. 네팔의 다양한 문화와 공존, 그리고 사람들의 삶의 모습
면서 느낀 점은 이것 외에 다른 것도 있었다. 히말라야가 있는 산 지형으로 사회기반시
을 보며 품과의 연결점을 확신했다. 그리고 이끌림처럼 찾아간 네팔학교에서 'Happy
설이 미약하고, 불안정한 정치상황으로 인해 네팔은 소위 저개발국가로 분류되어 있다.
Life'라는 주제로 많은 아이들이 그린 똑같은 그림을 보며 '왜, 모두의 그림이 같을
그래서 경제적으로 앞서있는 국가에서는 많은
까?' 이토록 다양한 민족과 문화, 종교가 공존하는 네팔에서... '왜?'라는 의문이 들었
경제적 지원을 네팔에 하고 있다. 경제적 지원
고, 이 단순한 사건이 2006년 1일 문화예술교육워크숍을 시범적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은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지만, 부정적인 측
Empowerment
계기가 되었다.
면이 발생하기 쉽다. 경제적 지원이 순수하게 되는 경우보다 세계 정치․경제적 계산에 따른 지원의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부정
문화
적 측면은 문화적 종속, 수동적 삶의 태도이 상호주의
Movement
다. 네팔 또한 그 문제가 곳곳에 뿌리를 내리 고 있었고, 교육이 점차 경제적인 논리로서 접 근되고 있었다.
(사실 여담처럼 한 가지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심쌤은 여행을 마치고 네팔사업을 품 직 원들에게 제안했으나, 절대적으로 공감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2006년 첫 번째 오~히말 라야에 전 직원을 데리고 히말라야로 향했다. 일단 함께 경험하고, 이야기하자는 심쌤 의 생각은 적중하였고, 품 직원들 또한 네팔사업을 공감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네팔과 한국은 매우 닮은 점이 많다. 품은 한-네팔 문화교류는 진정한 상호간의 문화교류를 희망하며, 네팔사회의 작은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 흔들기 를 시작하고자 했다. 제2차 한국-네팔 문화예술교육워크숍은 문화예술을 매개로 네팔사 회에서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시작이고자 했다. 그래서 교육 대상자를 확대 (1차 워크숍은 교사를 대상으로 함)하여 교사뿐만 아니라 예술가, 대학생 등으로 폭을
그렇게 2006년 오 히말라야에 참여했던 어린이문화 '사과'와 품이 공동으로 'Happy Life'라는 주제로 1일 문화예술교육워크숍을 진행하였고, 아이들은 역시 다양한 표현력 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품은 같은 해 6월 초 본격적으로 문화예 '1차 한국-네팔 문화예술교육워크숍'을 진행하게 되었고, 'Happy Life'라는 그림을 처 음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학교가 소속되어 있는 사립학교 연합 School's Forum Nepal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행하였다. 1차 워크숍은 '시작'의 의미를 담고 있었으며, 네팔에 서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06년 10월 네팔 품
넓혔고, 워크숍의 과정 또한 참가자들이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공감하기 위한 체험형 워 크숍으로 보완되었다.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네팔 내 언론홍보 는 기자회견이라는 첫 시도를 통해 네팔 언론에 관심을 일으킬 수 있었다. 제2차 문화 예술교육워크숍은 새로운 분야의 시도, 네팔 내 언론의 높은 관심, 다양한 분야의 참가 자 확대 등의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강사중심의 교육 형태, 다양한 분야의 참가자 등 으로 참가자들의 실천을 이어가는 것은 어려움이 있었다. 양국 간의 문화교류와 실천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을 만들기 위한 준비시간을 거쳐 2007년 1월 네팔 품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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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부터의 출발
강명숙의 고백
무언가 계산된 성과를 예상하지 않았던, 그리고 얼마만큼 가능성이 있을지 알 수 없었
네팔 청년의 성장 가능성 확인과 지역사회의 행복한 변화의 가능성 보기.
던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품이 얻은 점은 경제적 지원이 아닌, 다른 방식의 대안적 국 2007년에 진행된 (재)청소년과 사람사랑의 장애청소년 나눔학교(이하 나눔학교)의 네팔
제NGO활동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것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문화교류 프로그램은 마치 예정된 톱니바퀴처럼 모든 것이 놀랍도록 들어맞는 시간이었 다. 2차 문화예술교육워크숍이 끝난 직후 예정되어 있었고, 공연중심의 단순한 프로그 램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가 품과 나눔학교 모두에게 있었다. 여기에 처음으로 카트만 두 밸리 끝자락에 있는 네팔의 공립학교와 관계를 시작하며 네팔의 교육환경을 다시 바 라볼 수 있었다. 공립학교는 매우 열악하다. 교육의 질, 환경적인 여건이 열악하고 더 욱 그들을 열악하게 만드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공립학교 교육을 원하지 않는다 는 사실이다. 그래서 학교의 선생님은 무기력하다. 교실에 거미줄이 있던, 담장이 무너 지던 손을 댈 이유가 없다. 품은 여기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었고, 그것을 문화예술적인 과정을 통해 과정이 즐겁기를 원했다.
나눔학교를 시작으로 한-네팔 문화교류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다. 2007년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셋넷학교', 2008년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 '히말라야에서 확인하는 가족사랑 여행'과 마지막으로 CJ나눔재단과 공동으로 진행한 '한국-네팔 청소년희망나눔 프로젝 트'에서 Happy Vibration이 주도적으로 '희망의 벽' 프로그램을 이끌면서 품은 네팔청 년을 흔들고, 한국과 네팔 청년들간의 진정한 문화교류를 잇고, 이를 통한 에너지로 사 회변화를 위한 실천들을 이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품은 한국-네팔 문화교류 단기 프로그램을 통해 네팔청년, 지역, 변화를 가능성을 알아 보기 위한 실험적 접근을 지속할 예정이다.
프로젝트명은 "Happy School Project"다. 이러한 생각은 2차 문화예술교육워크숍에 참 여한 예술대학교 학생들과 그 학생들의 학교에 가서 참여를 제안했다. 총 20명이 참여 했고, 학교를 단순히 예쁘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리고 그들 스스로 해석하기 위해 사전 PPT시간과 참가자들 중심의 기획과정을 거쳤고, 품은 뒤에 서 조력자가 되었다. 기획과정에서 네팔 참가자들은 학교 선생님들이 함께 전 과정과 의미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그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방향에 공감하는 동지 찾기 네팔 품의 꽉 찬 2년과 새로운 2008년. 무던히도 품은 네팔 내에서 동지 찾기를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네팔 내에서 품이 동지 찾기를 중요하게 생각하 는 것은 사업적인 성장을 위해서가 아니다. 결국은 이 모든 일이 지속적으로 네팔사람 들에 의해 이뤄질 수 있어야 하며, 그 후에 서로가 문화교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결과적으로 'Happy School Project'는 몇 가지 중요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첫째, 네팔 청년들의 성장 가능성의 확인이었다. 총 20명의 참여자 중, 자신들 이 배운 예술의 영역과 사회적 가치를 연결하여 실천하고자 하는 청년 자원활동가들을 발굴하였고, 'Happy Vibration'이 탄생하였다. 둘째, 학교의 변화이다. 무심했던 학교 선생님들이 직접 삽을 들기 시작했고 자신들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셋째, 이를 통한 지역사회 사람들이 학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돈을 꾸어서 갚을 수 있는 능력만이라도 있다면 공립학교로 보내지 않는 사람 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짧은 'Happy School Project'에서 마저 끝내지 못한 일들을 마
때문이다. 네팔 사람들은 NGO 활동을 하면 돈이 많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외 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이 집중되어 있고, 그 과정에서 개인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적인 이유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네팔 품을 보는 네팔 사람들의 시선 또한 돈으로 해석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상처를 받은 적도 있다. 그리고 네팔의 문화(속도, 사고방식)가 품과 다르다는 것을 알기까지 일하는 과 정에 속도와 방식이 다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 두 가지 경험으로 수많은 네팔 내 NGO 단체와 사람들을 만났지만, 지금은 다시 처음에서 시작하는 것과 같은 마 음과 자세로 돌아갔다. 서로의 가치와 사업방향을 천천히 공유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 다.
무리하고, 돈을 보아 부족했던 학교의 공간을 늘리는 모금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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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숙의 고백
그리고 오~ 히말라야
• 국내에서 품의 네팔 활동의 가치를 '한․네팔 문화교류사업'의 가치가 인정받기 시작하
품의 주주, 청소년, 정신적인 스승, NGO활동가 등 품과 직접적인 인연이 있는 사람들과
고 있음을 확인한다.
의 행복한 나눔으로 2006년부터 시작된 오~ 히말라야. 2008년 1월 달까지 3번째 여행을
2007년 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주최한 포럼에서 품의 사례를 발표했다. 네팔의
다녀왔다. 오~ 히말라야는 히말라야와의 만남을 통한 쉼과 충전의 시간이다. 사업이 아
변화를 위해 청년을 흔들고, 단발적인 사업을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 네팔 내 네트워크
니기에 사업적 성과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오~ 히말라야를 통해 품과 관계있는 사람
찾기 등을 통해 품 활동에 대한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품은 앞으로 활동의 시사
과 품이 함께 네팔에서 자신의 일상을 다시금 바라볼 수 있고 재충전의 시간이 될 수
점을 알리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세엣. 2008년 한국-네팔문화교류사업’
2007년 한국, 네팔 품의 전반적인 평가. 아직은 경험해야 할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은 네팔문화교류사업이다. 하지만 차근차 근 그 과정을 열심히 밟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다음과 같다.
무엇이 잊지 말아야 할 태도인가?
• Happy Vibration의 성장. 이를 통해 네팔 품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나다
네팔 사업은 현재 성과와 한계가 한 덩어리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예측하지 못한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나눔학교, 청소년희망나눔 프로젝트를 통해 Happy Vibration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고, 뜻밖의 성과가 발생하여 새로운 일의 시작과 연결되기도 한
의 성장은 놀랍다. 점차 자신들의 역할을 찾아가고, 실천과 연결하고 있는 Happy
다. 그렇기 때문에 네팔 사업은 현재 규격화된 틀을 서둘러 만들기 보다는 분명한 지향
Vibration을 보며 네팔의 청년을 찾고, 흔드는 일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점은 두되, 다양한 실험을 지속하면서 네팔 사업의 단계별 목적을 설정할 수 있는 근거 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목표설정 가능할 때 한국과 네팔을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이
• 네팔 내 지속적인 네트워크 작업을 통해 가능성 있는 단체를 발견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는 네팔 내 네트워크 찾기는 사업적인 연결을 통해 서서히 관계를
어나갈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만들어 가기 시작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파트너는 '한․네팔 청소년 희망나눔 프로젝트'를 함
또한 진정한 교류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네팔에서 주는자와 받는자의
께 한 NEST(Nepal Educational Support trust)와 3차 워크숍 등을 함께 준비하고 있는
구분은 품이 원하지 않아도 아직은 떨칠 수 없는 것이다. 주는자에게 보이는 호의에 대
TYA(Today Youth Asia)이다. 아직 네팔 내에서 뜻과 마음이 맞는 단체를 만나기란 쉽지 않
한 판단을 정확히 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가능성을 보였던 네트워크에게
다. 하지만, 품은 끊임없이 찾을 것이며, 진정한 파트너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실망을 하더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품 나름의 깊은 중심축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네팔 현실에 대한 보다 많은 공부가 근거가 되어야 할 것
• 상근 활동가의 성장. 네팔 품 안정적인 구조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2006년 10월 오픈 준비를 하고 빠르게 움직여 온 네팔 품. 한국과 다른 환경에서 하나 씩 운영과 사업적인 것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그 과정에는 상근활동가(이보라)의 성 장이 함께 일어났다. 또한 아름다운 재단을 통해 운영예산구조를 확보하면서 좀 더 안 정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며, 품 내부적인 성찰 또한 게을리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방식 의 과감한 실험이다. 한국과 네팔을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이을 지, 네팔현지에서 품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위한 가장 적절한 방식은 어떻 것인지 탐구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 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알고 있는 사람과 각 사업마다의 성과 각 프로그램마다의 새 로운 시도들을 지금처럼 과감히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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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숙의 고백
3차 워크숍은 네팔의 NGO단체인 TYA(Today Youth Asia)와 공동주관할 예정이다. TYA는
핵심은 '청년문화운동'이다.
사업의 철학, 목적을 공감하는 네팔 측 참가자들을 모집하고, 공동으로 진행을 함께 한 앞서 '심한기의 고백'에서 말한 것과 같이 청년 흔들기가 핵심 방향이다. 흔드는 것에
다. 형식적인 것은 단순하지만, 결국 이러한 사업과정을 통해 한국과 네팔의 청년문화
만 끝나는 것이 아닌 실천을 위한 교육이고자 한다. 그래서 강사중심의 교육방식을 벗
운동을 위해 상호간의 가치와 실천을 교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상적인 실천을 지
어나 양국가간의 청년들이 만나 함께 동시대를 바라보고, 사회변화를 위한 실천 프로젝
원하고 지지해 줄 수 있는 핵심적인 네팔 조직이 되는 것이다.
트를 진행하는 과정을 가진다. 경제적 논리에 문화 계급주의,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경 계, 제한적 문화교류의 경계를 넘어선 한국과 네팔이 수평적 관계에서 양국가의 문화와 예술이 교류하며, 청년들 간의 에너지가 교환되고 사회변화와 성장을 이끌어 갈 수 있 는 청년을 키우는 것이다. 품은 그래서 명칭 또한 한국-네팔문화예술워크숍이 아닌 '청 년문화실천워크숍'으로 탈바꿈한다. 이 워크숍이 개인의 삶과 연결되고, 그것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시작점이 되며, 결국 일상과 연결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장기적
사전 준비과정
한국-네팔 청년문화실천 워크숍 청년의 힘, 문화의 힘으로 세상을 바꾼다!
이어가기 • • • •
한국 한국 품, 튜터 중심으로 사전워크숍 네팔 Nepal PUM을 중심으로 사전워크숍
3월 4월
화교류를 위해 실험적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08년에도 '오~ 히말라야' 시리즈는 계
네팔 품은 2008년 새로운 상근 활동가를 맞이하여 해 오던 일을 그대로 이어가기 위한 준비 를 하고 있으며, 새로운 사무실로 이사도 했다. 올 한해 한국-네팔 문화교류사업은 품의 역 할을 보다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경험적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단기간에 짧은 성과를 얻기 를 바라지도 않는다. 네팔의 풍부한 문화와 공존의 문화가 한국과의 교류를 통해 변화를 위
[ Opening Workshop l 1day ] 한국, 네팔간의 소통을 위한 교환강의 [ Communication Workshop l 3day ] 동시대의 시대적 패러다임을 고민하고 이 시대 청년의 역할과 문화를 통한 사회변화를 위한 실천 준비 네팔 [ Happy Together l 4day ] 네팔의 지역사회의 일상공간에서 문화를 5월 진행 통한 지역주민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진행 [ Free Workshop : For Youth, With Youth l 1day ] 한국측 참가자들과 네팔 국립, 사립교사들을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워크숍 진행
한 에너지로 탈바꿈되기를 바란다. 네팔을 오가면서 품이 얻은 것은 정신적인 성장과 사고의 확장이 되기 시작했다. 문화, 한국의 역사, 소통, 속도 등 품에게 있어 중요한 개념들이다. 익히 알고 있는 개념들에 다시 반추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하였고 이것은 품의 사업적인 것에 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영향들은 지금 '고백'에 들어있는 솔직함과도 맞닿아 있다.
[ Opening Workshop l 1day ] 한국, 네팔간의 소통을 위한 교환강의 [ Communication Workshop l 2day ] 한국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한국 한국의 지역사회의 변화 시작을 위한 워크숍 진행 8월 진행 [ Happy Together l 2day ] 실천 프로젝트 진행 예정 [ Free Workshop : For Friendship l 1day ] 네팔측 참가자들이 한국의 국제교류 단체, 아시아이주노동 관련단체 등을 대상으로 한 프리워크숍 한국, 네팔의 문화를 통한 행복한 변화를 위한 실천집단 구성
재 몇 가지 사업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며, 품은 단순한 방문을 넘어설 수 있는 진정한 문
그리고 네팔 품과 한국 품
2008 제 3차 한국-네팔 청년문화실천 워크숍 청년 찾기
품과 관계있는 청소년단체들의 청소년, 어른들을 히말라야와 이음들은 계속될 예정이다. 현
속되며, 지금까지 진행된 세 번의 여행 사진과 이야기를 담아 책을 하나 만들 예정이다.
으로 이 모든 경험적 근거를 통해 대안적 국제 NGO활동의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국 젊은 작가, 문화예술교육전문가, 문화기획자 등 각 8명 선정 네팔
계속되는 '히말라야와의 이음'
11월
강명숙의 '고백'을 마치며.. 고백에서 나를 돌아보고, 나의 일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지를 확인한다. 담당한 일에서도, 왕언니로써도 아직 갖추어야 할 것들도, 배워야 할 것들도 많다.
한국과 네팔의 청년을 대상으로 사회 변화를 위한 청년 실천 조직 구성 양국의 청년들간의 상호교류를 통한 한국-네팔의 진정한 문화교류의 성장 문화예술교육 및 교류를 통한 네팔의 지역사회, 학교 등 현장에서 변화와 실천 가능성 제시 3년간의 지속적인 한국-네팔의 문화예술교육과 교류를 통한 대안적 국제 NGO활동 제시
그래도 이 고백을 하고 그냥 돌아서지 않으니까, 채워나갈 시간과 희망이 있다. 나는 지금 이 고백대로 열심히 삶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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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희의 고백
부족한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인정이라 함은 있는 그대로
나에게 고백
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이라 할 것이다. 인정은 그 자체로 자신의 존재와 상태에 대한 긍정이며, 또한 겸손하다. 때문에‘내가 그렇지 뭐!’하는 체념, 혹은 포기와는 다른
_유현희
것이다. 갑작스럽게 찾아 온 질문들을 들추어내며, 오랫동안 직면하지 않았던 나와 조우한다. (어쩌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인색하다 할만치 스스로에게 냉정했다고 하지만 인정하지 않았고, 또한 겸손하지 못했다. 더욱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언제부터 인가 조금씩 자라나 내 키만큼 커져버린 사랑스럽지 않은 마음들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예전엔 이렇지 않았는데...’,‘이건 나의 모습이 아니야’하며, 끊임없이 주변상황
정리되지 않은 자신을 고백하는 일은 꽤나 어려운 작업이다. 더군다나 변변한 사랑고백
속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애쓰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그마저 없으면 무너져버릴 것 같
한번 해보지 못한 내가(고백은 사랑하는 사람한테 하는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스스 ̇ ̇ 해야 함은, 그 어느 때보다 로의 솔직함에 대해 심각히 고민 중인 지금, 무언가를 고백
은 위기감을 느끼며, 내 스스로의 존재감(당위성)을 찾기 위해 끊임없는 변명들을 만들 어냈다.
도 어렵게 느껴진다. 게다가 이건 '소식지 곧 나갑니다'라는 상습적인 거짓말을 일삼으 며, 수달 만에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 두레품! 그 중에서도 주주사업 담당자의 고백이 아니던가.
당신이 누군가에게 ‘당신이 무엇을 하든 내 마음의 문은 당신에게 열려있다’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훨씬 더 어려운 일은 당신이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지난 달, 눈물바람을 한 사건이 있었다. 3월부터 시작한 '주주콜로키움'을 준비하고 있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만큼 오랫동안 나와 가까이 지내온 나 자신이여.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든 상관없이 내 마음의 문은 나에게도 열려있다. 안으로 들어오라”
을 때였다. 초안을 작성 중이던 심샘이 “우리 주주 중에 복지현장에 근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냐?”고 질문하신 것이 발단이 되었다. 일상적인 상황에, 너무나 가능한 질문 이기에 이 질문이 ‘사건’이 되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문제는 나의 반응이었다. 어줍지 않은 변명들을 늘어놓는 동안,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그것은 이름하여 ‘용서’라 불린다. 그것은 자기 비난의 감옥에서 자유롭게 걸어 나오는 일이다. 자기 자신과 평화로워지는 일이다. 그리 고 만일 자신의 내면에서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향해 그렇게 말할 용기를 발견한다면, 당신은 그 고귀한 사랑에 부응하기 위해 더 나아지고 더 높이 비상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그런 조건없는 사랑을 주기 위해서는 당신이 아 무 결점 없는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린다면, 그런 때 는 결코 오지 않는다. 자신이 과거에 무엇을 했든 상관없이 자기 자신에게 마음을 문을 열라. 일단 자신을 안으로 초대하면, 그 때 우리는 완벽해진다. <아잔 브라흐마>
“주주와의 나눔을 고민하며, 기초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 “그동안 주주와의 나눔을 제안할 때, 무엇을 근거로 했었나?”, “유현희는.. 어떤 근거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나?” 무언가 깊숙이 건드려진 느낌이었다. 잘했고 못했고를 떠나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는 내가 그렇게 바보 같을 수가 없었다. 사고가 되기보다는 감정이 앞
사람이 함께 살아가면서 나 홀로 만들어진 과정과 결과는 없을 것이다. 관계하며 함께 살
서고 서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아가는 일이 전부나 다름없는 품 같은 조직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조직과 상황을 이 왜일까.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다시 한번 품에서의 나의 시간을, 그동안 나의 일을,
야기하기보다 먼저, 나에게 필요했던 일은,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나를, 나의 모습을,
지금의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이 그 어느 것보다 ‘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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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고백
부터 기인한 것임을 인정하는 일, 그 모습이 조금 못나고 마음에 안들더라도 사랑스럽
유현희의 고백
유현희, 품 5년차.
게 어루만져 주는 일,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하군요’하며 진심으로 겸손하는 일, 겸손 히 인정함으로써 당당해지는 일!
2003년 9월 23일에 첫 출근을 했다. 올해 9월로 5년이 된다. 지날수록 해를 세는 것이 무의미하다 느껴지지만, 짧지 않은 시간이다. 참 힘들기도, 행복하기도 했던 시간이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에게 자신의 허물 한 두가지쯤 고백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것이 나의 전부가 아니며, 끝도 아니며, 거기에서부터 시 작하면 될 일이다. 그동안 수많은 변명을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았
품에 처음 와서 담당했던 일은 ‘청소년연극축제’였다. 학창시절 연극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한 때 배우의 꿈을 꾸기도 했던 나에게 ‘청소년연극축제’는 매우 매 력적인 사업이었고, <대학로 상륙작전> 같은 삶에 길이 남을 행복한 이력을 남기며 정
던가.
말 즐겁게 일했다. 지나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일했나’싶을 정도로 전투적이었 던 때이기도 했다. (‘처음’이 주는 무식한 용기와 추친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아무것 눈물바람 사건이 있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품 식구들과 조촐한 술자리를 가진다.
도 몰랐던 그 때가 가끔 그립기도 하다 )
‘고백’이란 화두를 던져놓고, 각자 자기 고백을 위해 골머리를 썩고 있던 때, 그 쉽 2005년 10회를 마지막으로 ‘청소년연극축제’를 정리하며, 2006년부터 주주사업을 담
지 않은 작업을 먼저 끝낸 심샘이 질문을 던졌다.
당했다. 품의 짧지 않은 역사에서 ‘주주(株主)’가 가지는 상징성과 중요성에도 불구
“정작 안으로 우리는 얼마나 솔직한 고백들을 나누고 있는가?” 모두가 생각해볼 일이었지만, 나는 할 말이 많았다. 너무 오래되어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아챌 수 없었던 케케묵은 이야기들을 꺼내본다. 이해받고 싶었던 마음들, 위태로웠던
하고, 그 중요성만큼 비중있게 다뤄지지 못했던 주주사업. 부분적 업무에 대한 담당자 가 있긴 했지만, 그를 품의 주요 사업의 한 축으로 보고, 전담자를 둔 것은 처음이었기 에 포부(?)가 남달랐다.
고집과 열등감, 흔들렸던 순간들.... 그럼에도 내가 왜 지금 품에 있는지. 충분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한번도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던 생각과 마 음들, 그로부터 생겨난 의심과 오해들을 확인하며 나를 고백해본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주주사업은 제자리걸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초적인 정리 도 안 된 채 날아다니는 데이터들을 정리하기에 바빴고, 번번히 미뤄지는 두레품에 머 리가 빠질 지경이었지만, 정작 ‘무엇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근거가
‘무슨 영화를 한 편 보는 것 같았다’고 막내 섭이 말했다. 언젠가 아카데미에 참여했 던 대학동기 하나는 품을 보고 ‘영화같이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었는데..
부족했다. 모두의 일이라 생각했지만, 제대로 된 제안과 나눔이 되지 못했고, 담당자 스스로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헤매는 동안 꽤 긴 시간이 흘렀다.
영화같은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저 편안한 일상이었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없기에 무엇이든 시작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그간 선배 들이 피땀으로 일궈놓은 텃밭에서 얼마나 쉽게 일해 왔는가를 깨닫게 된다)
이 고백은 누구에게라기보다 나에게 하는 고백이다. ‘나에게 고백’을 공개적으로 고 백하는, 조금은 우스운 고백일지 모르겠다. 편집자의 특권을 남용하며 마지막까지 원고
그 시간동안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 부족하며, 앞으로 무엇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를 쓰고 있지만, 어렵게 꺼내 놓은 나의 고백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었으면 하는
하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동안의 시간이 의미없지 않았음을, 있는 그대로 지금을
바램이다. 아무래도 고백은 좀 쑥스럽긴 하다. ^^;;
받아들이고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품과 일 이야기를 해보아야겠다. 4년간의 품 생활을 뒤돌아보며, 2006년부터 담당 하고 있는 주주사업과 지난해 담당했던 6기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에 대한 이야기를 짧 게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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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주주&나눔사업을 시작함에 있어 새롭고 특별한 계획은 없다. 그동안 해왔던 일들 의 바탕을 다지며, 고민했던 나눔을 하나씩 작은 것부터 실천해 볼 양이다. 아.. 오늘이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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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고백
유현희의 고백
문화적으로 상상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는 청년 키우기
2008 주주&나눔사업
2007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그리고... “어떤 나눔이 필요한가?”에 대해 생각한다 그 첫째는 무엇보다 ‘잘 전달하는 것’이라 입을 모은다.
지난해, 2002년부터 시작된 품의 대표적인 교육사업-‘청소년문화복지아데미’가 ‘청
주주들은 저마다 다른 인연과 동기를 가지고 품의 식구가 되었다. 자신이 알고 경험했 던 품을 기억하며, 그 인연을 가능하게 했던‘그 때의 품’이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그 러나 품은 변화하고 있고, 언제부턴가 어떤 주주들은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달라진 것은 무엇이고, 달라지지 않은 것은 또 무엇인지.. 품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활동을 하는지.. 제대로 알리고 소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년문화실천아카데미’라 개명하고, 여섯 번째 문을 열었다. 사회복지 전공 대학생 및 현장 실무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과정으로 시작해, ‘청년’이란 화두를 던지며 참여의 문을 넓히고, 단기간 집중연수에서 지역실천활동을 포함한 통합적 교육과정으로 확대되 기까지 지난 6년 간 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6기 아카데미는 그 내용과 방식에 있어 서도 가장 실험적인 시도를 한 한해였다. (2004년부터 3년간 아카데미를 담당했던 김미경이 퇴사하면서, 여섯 번째 아카데미를 담당하게 되었 다. 2002년 1기 대학생 과정에 참여하며 품과 인연이 되었고, 6기 아카데미의 실무자자가 되었으니,
품의 가치, 활동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귀히 여기는
참으로 특별한 인연이다. 처음 해보는 교육사업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진행자와 참가자 구분없이 함께 준비하고 경험하자’는 6기 아카데미의 취지 덕분에 즐거운 경험을 만끽할 수 있었다. ^^)
‘문화’이며, ‘사람 사이의 소통과 정’이다. 품과 주주들간의 만남이 뜸해지고, 마 음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종종 아쉬워 하시는 말씀이 ‘주주총회, 송년의 밤 안하냐?’
6기 아카데미는 의도적인 질문, 정리된 가치와 사례의 전달을 피하고, 스스로의 체감과
하는 것이었다. 그마저도 오래된 이야기긴 하지만, 번번히 품은 ‘그런 자리가 과연 무
경험을 통해 상상과 실천의 단서를 찾아가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반듯한 강의실
엇을 나누기 위한 자리이며, 그러한 소통이 가능한가?’ 고민하였다. 다양한 인연과 욕
대신, 함께 하는 단체와 전문가들의 철학과 활동을 온 몸으로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을
구를 가지고 있는 주주들... 그들의 욕구를 한 번에 아우를 수 있는 자리가 있을까. 보
택했고, 잘 계산된 커리큘럼 대신, 청년답게 살아 온 선배들과의 만남을 주선하였다.
다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서로의 생각과 문화를 나누고 소통이 가능한 만남이 필요하
참가팀들의 실천과정에 있어서도 ‘방임’하다시피 내버려두며 간간히 지켜볼 뿐이었으
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니.. 그간의 아카데미 방식에 비추어 본다면 가히 파격적인 실험이 아닌가.
그러한 고민에서 시작된 올해 ‘주주&나눔사업’의 계획은 소박하다. 봄,여름,가을,겨
2007년 12월. 6기 아카데미 참가한 전국 6개 팀이 모여 서로의 실천을 나누던 날. 그
울, 계절에 한번 빠짐없이 소식지를 전해드리는 일, 늬우스를 늬우스답게 전하는 일,
과정과 결과는 놀라웠다. 다양한 주제와 실천방식, 소속된 단체나 기관의 활동에 얽메
직장은 바뀌지 않으셨는지, 주소는 그대로 인지.. 일년에 한번은 주주들의 소식을 묻고
이지 않은 자유로운 상상력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어느 팀 하나 그 쉽지
기억하는 일.. 등이 그것이다.
않은 소통의 과정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3월부터 시작한 ‘주주콜로키움’또한 그 소박한 실천의 시작일 뿐이지만, 이 시작을 계
6기 아카데미를 열며 던졌던 질문, “별종 청년들의 힘! 아이들과 동네난장 가능할
기로 ‘소통과 나눔’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올해는 수년 만에
까?”부제에 답을 해보자면, ‘가능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경험
‘열일곱 품 생일잔치’를 열어보기로 한다. 품의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없어도, 아는 사
이 이후에 어떻게 계속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
람이 없어도 부담없이 함께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잔치’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교육이 교육으로 끝나지 않고, 어떻게 삶에 이어지게 할 것인가?’는 아카데미 6년간
더하면 좋지만, 못하면 실망스러운 법. 너무 많은 약속은 하지 않기로 한다. ^^
의 고민이기도 했으나,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한 답s은, (그것을 찾고자 하는) 각자의 삶
조금 서투르더라도 이런 품의 과정을 넉넉하게 지켜봐주며 함께 해 주시길 기대하면서.
에서 풀어가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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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고백
그러나 다시, ‘문화적으로 살아가기 참 어려운 세상을 살면서, 이미 물들어 있는지 모
유현희의 고백
품과 나. 고백을 마치며..
르는 우리들이, (어떤 교육이나 경험을 통한 확장, 또는 변화 이후에) 다시 물들지 않 고, 물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얼마 전, 갈비뼈골절사고로 집에서 요양(?) 중이시던 심한기 선생님을 따라 한의원에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 혹은 그런 청년들을 키워내기 위해서 필요한
간 일이 있다. 전 직원이 줄줄이 앉아 차례로 진맥을 받는 모습이라니! 처음에는 사뭇
준비와 실천은 무엇일까...?
철학관 같은 느낌이 들더니, 상담사 같은 면모마저 내보이시며 나에게 질문하시길.. “자꾸 화(火)가 나나요? 화가 나면 잘 못 감추죠?”
올해, 아카데미는 쉰다.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지금과 같은 방식이 될지 전혀 다른
마음이 급하고 화가 많아 간과 몸이 쇠약해졌다고 했다.
방식이 될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지만, 안으로 정리하고 공부하면서, 다음을 준
“간이 피로하여 마음이 척발해지나요? 화가 나서 간이 피곤해졌나요?”
비해볼 생각이다.
답을 알면서도 바보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이죠”
언젠가 심선생님이 전해주셨던 ‘self-so. 스스로 그러할 수 있는 힘’이 떠오른다. 청년을 키우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청년이 되어야 한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품과 내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누구 하나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나 또한 그럴 것이다. 나 스 스로를 인정하지 못했기에 타인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 는 척 했거나, 그렇다고 착각했을 뿐. 그럼에도 오늘이 행복한 이유는 ‘그러려고 노력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또 다시 미운 마음들이 고개를 쳐들게 될 것이다. 또 다시 눈 물바람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품은, 노력하고 있다. 나 스스로를 온전히 받 아들이기 위해서.. 타인과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그것이 오 늘 품의 희망이라 생각한다. 심샘의 갈비뼈가 붙어서 며칠 전부터 사무실에 나오고 계시다. 어김없이 “책쓰냐”라 는 말을 듣고 말았다. ^^; 매번 늦어지는 소식지에 미안하지만, 그래도 아직 봄이어서 다행이다. 밤 새 비가 쏟아지더니, 해가 짱짱하다.
6기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집으로 돌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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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도순의 오순도순한 고백
오순도순의 오순도순한 고백
2007년 청소년 문화예술활동 지원사업은 지역의 다양한 단체와 사람들을 발굴해 내고 그들에게 청소년시기의 문화활동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성을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크게 '학교 안' 청소년을 위한 문화예술활동지원과 '학교 밖'(지역) 청소년을 위한 문화예술 활동 지원사업을 진행했다. 우리가 주로 만났던 것은 아이들이었지만, 그 아이들을 만 나는 문화예술강사와 교사, 지역단체 실무자들과의 '관계맺기'를 통해 품에서 굳이 청 소년문화활동지원사업을 하지 않아도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청소년문화활동지원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실험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우선 기존에 다양한 학교의 문화예술활동 동아리를 지원했던 것에서 시범학교(화계중학 교)를 지정하여 동아리지원과 학교축제 지원을 통해 집중적으로 아이들과 교사와의 관 계맺기를 시도했다. 또 방학 중에는 지역청소년동아리를 대상으로 전문강사와의 연계를
오순도순?
통해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하고, 각각의 두 가지 과정과 결과가 축제(강북지역청소년문
2007년에 지역청소년문화활동지원사업을 담당했던 나하나, 유영은, 이상섭을 한꺼번에 칭하는
화축제 추락)를 통해 풀어질 수 있도록 했다.
말로, 셋이서 함께 오순도순 즐겁고 신나고 사이좋게 사업을 진행해보자는 뜻에서 스스로 만든 팀명. 부르는 이에 따라 ‘요모조모’ 또는 ‘어리버리’ 등으로 불리우기도 했음.
그 결과 이후 지역에서 보다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청소년문화예술활동지원을 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했는데, 간단히 몇 가지 중요한 꼭지를 짚어 2007년의 사업을 되돌
2005년부터 진행했던 학교-지역연계문화예술교육사업을 2007년에는 나하나, 유영은, 이
아보면 다음과 같다.
상섭이 함께 팀을 이루어 만들어갔다. 초기의 기획단계부터 마무리까지 늘 머리를 맞대 고 계획을 하고, 셀 수 없을 만큼 '다시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짧고도 긴 1년을 마 무리했다. 어디서 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오 순도순팀의 1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_좀 더 일상적인 접근을 위하여.. 우리가 지난 3년간 활동했던 내용을 종합해보면, 단순히 아이들의 문화 활동을 기술적 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문화 활동이 좀 더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
먼저 간단하게 올해 진행했던 지역청소년문화예술활동지원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품에 서는 2005년부터 문화관광부에서 지원을 받아, '학교-지역연계문화예술교육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청소년들의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했다. 2005년부터 2년간 학교와 지역의 청소년동아리를 대상으로 각각 전문강사를 연계하여 동아리활동을 지원하고, 그러한 활 동의 과정과 결과가 축제(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를 통해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방 식으로 진행해왔다. 이것은 기존의 지역 청소년 문화활동 지원과 동시에 아이들의 일상
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활동을 해왔다. 이를 통해 좀 더 풍요로운 아이들의 삶을 상상 해 왔다. 그러기 위해 학교와 지역의 동아리를 중심으로 지원을 시도했고, 그것을 축제 와 연결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 2007년까지 3년간의 과정을 통해 자신 있게 지역에 그 러한 환경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위한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장기적인 단계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활동에 의미를 둘 수 있다.
공간 중에서도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는 학교에 접근하는 시도였다. 자발적인 지 역 청소년 문화활동의 지원을 위한 환경을 만들고자 지역단체와 학교를 중심으로 여러
_학교의 높은 벽 물렁물렁하게 하기
가지 시도를 했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것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2007년은
먼저, 아이들의 일상 공간 중에서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학교를 다시 들여다
그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좀 더 실험적인 활동을 하고자했다.
보았다. 사실 10년 전에도 같은 생각으로 동아리지원이나 CA활동지원의 방식으로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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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도순의 오순도순한 고백
오순도순의 오순도순한 고백
만나기를 시도했지만, 매번 학교의 높은 벽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
문화예술 전문강사나 교사 등의 지원주체 외에 지역에서 이러한 활동을 함께 할 수 있
러다 2006년에 학교 동아리지원을 통해 다시 학교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2006년은 다양
는 청년자원을 발굴하고 키워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올해에는 연초에 계획은
한 학교와 다양한 동아리를 대상으로 강사연계를 하는 것에 그쳤다면, 2007년은 분산된
하고 사업을 진행할 때에도 시도는 했으나 성공적이지 못했다. 대학생들이 방학할 시기
지원을 집중하고 사례를 만들기 위해 화계중학교를 시범학교로 지정을 하고 동아리지원
를 놓쳐서 청년을 모집한다던가 하는 항상 한발 늦었던 실행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과 축제지원을 했다. 그 결과 여러 학교를 대상으로 지원했던 것 보다 좀 더 집중적인
그런 과정을 통해 생각보다 덕대에서 동아리활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청소년활동에
지원을 할 수 있었고, 아이들과 학교 선생님들과의 관계 맺기가 더욱 수월했다는 점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접속 시기도 더욱 치밀하고 빨라야 한다는 것을 알
서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역시 학교 선생님들의 이해가 좀 더 있었다면 학교를 좀 더
수 있게 되었다. 지역청소년문화활동지원사업 뿐만 아니라 품에서는 전반적으로 청년자
변화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단순히 선생님들의 이해에서 벗어나 품에서 진행
원의 연계와 발굴이 꼭 필요하다. 내년에는 미리 계획을 해서 반드시 학기 중에 홍보를
하는 사업들의 취지를 이해는 하지만, 학교의 시스템 상 실행하기는 어렵다는 선생님들
하고 사람들을 모집해야 할 것이다.
의 철통같은 믿음을 어떻게 깰 수가 있을까. 그렇기에 학교에 접근하는 것은 더욱 어렵 고 민감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했던 방식처럼 학교를 찾아가서 전폭적인 지원
_팀 내부의 소통, 소통, 소통..
을 하겠다고 먼저 나서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찾아오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 는데, 이것 역시 학교의 시스템 상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교사가 이런 활동에 대한
위에서는 간단히 지난 사업을 되돌아보았고, 이제 오순도순팀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사
필요성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 두 해 안에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 오순도순의 1년간 최대의 화두는 사업의 그 어떤 것보다 '소통'이었다. 소통. 이 시
그렇기에 더욱 더 장기적인 기획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진 대부분의 화두가 그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1년 동안 이렇 게 우리처럼 소통에 대해 끈질기게 살을 부비며 고민해 본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싶다.
_함께 만들어가는 '사람' 만들고, 늘려가기
되돌아보면, 우리가 가진 소통의 문제는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온 것
지역청소년문화활동 지원의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함께하는 사람을 만들어가고,
이 아니라 서로가 가진 다른 점을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었던듯하다. 결국 사
그것이 지역에 뿌리박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업에 참여하는 강사와 교사, 지역
업이 거의 마무리된 시점에 아이들과 프로그램을 하듯이 소통에 있어서 서로가 가진 강
단체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특히 올해에는 지난 3년 간의
점과 약점까지 들춰보며 뒤늦게 서로를 알기 위한 노력을 했다. 어떤 일을 진행하는데
활동을 기반으로 강사네트워크가 전보다 강화되었다는 것을 성과로 꼽을 수 있다. 화계
있어 함께 하는 사람들의 소통방식이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1년이라는 짧은 시
중학교 동아리지원부터 문화예술아카데미까지 같은 강사가 활동을 하며 품과의 관계뿐
간 동안 꼬이고 꼬인 길을 지나 지금 알게 되었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우리가 소통
만이 아니라 강사간의 네트워크도 강화되었다. 비록 실행은 되지 않았지만, 강사들이
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 끝까지 소통하려는 어떤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다만 방법을
자발적으로 강사 연합공연을 기획하는 등 예년에 비해 강사간의 네트워크가 더욱 돈독
알지 못했을 뿐, 서로가 노력했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우리 오순도순이 끝까지 오순도순
해졌음을 알 수 있다.
할 수 있는 이유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2007년 활동 중 아쉬웠던 부분은 강사워크숍, 교사워크숍 등 문화활동을 지
이제 오순도순팀에서 섭이를 제외한 영은과 나는 또 다른 길을 찾아 간다. 앞으로 함께
원하는 주체를 대상으로 한 워크숍을 진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화활동 지원의 필요
일을 하지는 않겠지만, 한번 오순도순팀은 영원한 오순도순팀. 그동안에 나누지 못했던
성을 알리고 이러한 활동이 자발적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교사, 강사, 지역 실무
정신적인 교감을 더 깊이 나눌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제 각자의 고백을 시작
자 등 지원주체를 대상으로 한 교육과 지속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해 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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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나의 고백
캠프가 끝나고 발동이 걸린 나는 친구들과 함께 학교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다음 일과인
꿈을 찾게 하는 품!
품으로 갔다. 학업의 압박 때문에 학원과 과외에 시달리지도 않았던 나는 품에 가서 동 아리활동을 하고,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주요 일과 중에 하나였다. 당시 내 또래 친구들이 학교 다음에 학원을 가듯이, 나는 그렇게 품을 '다녔다'.
_나하나
왜 그렇게 품에 다녔을까..? 품을 만났을 즈음 내 어린 시절을 잠시 되돌아보자.
집... '서늘함, 건조함, 푸슬푸슬, 텁텁함, 깔끔하지만 재미없음, 이야기 없음' 정도로 표현이 되겠다. 보통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따뜻하고 화목한 우리집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다. 서늘했던 것만큼 서로에게 가진 끈끈한 정 같은 것도 내게는 없다. 지금도 가
고백을 하기 전에..
족들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어려운 일이다. 가족에 대해 나쁜 기억만 있 었다면 오히려 더 쉽겠다. 어릴 때에는 그 원인이 모두 부모님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
원래대로 라면 지난 2007년에 살았던 삶을 뒤돌아보고 앞으로의 삶과 일에 대한 고백을
었지만, 부모님이 가진 각 개인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기도 안하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이제 품이라는 울타리 밖을 나와 다른 삶을 살아보고자 마
기도 힘든 것이 현재 나의 모습이다.
음먹은 지금은 지난 3년간 품에서 살았던 날들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디 3년뿐인가.. 지난 3년을 이야기 하려면 그보다 훨씬 전인 10여 년 전의 이야기부 터 시작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부탁드린다. 어쩌면, 너무나 길고 또 누군가는 하도 많이 들어서 지루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진짜 고백을 위해서는 어 쩔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길. ^^
중·고등학교... 특별히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좀 논 것도 아닌,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학교를 매일 다녔지만, 학교에 대한 불만은 많고. 불만은 많 지만 선생님들께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다. 불만은 많았지만, 어떻게 표현해야할지도 몰랐고 용기도 없었다. 지금도 대부분의 학교가 그렇듯이 내가 공부하는 것의 근본적인 이유 없이, 무조건 공부를 했기 때문에 재미도 없었고 늘 지루했다. 하다못해 야외로 놀러가는 소풍과 수학여행도 내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학교 밖에서 하루 '노는 것' 이 외의 의미를 가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품을 만나고 진짜 '놀면서 배우는' 경험을 한 이
1995~2003. 품과의 만남부터 일꾼이 되기까지
후부터는 그 생각은 더 커졌고, 어서 졸업하고 싶은 마음만 목구멍까지 가득 담은 채 여고시절을 마쳤다.
1996년 2월 24일~26일 _ “품속 아이들의 길 떠나기” 1995년 우리 동네 복지관건물 2층에 있던 청소년독서실을 재미삼아 다니던 어느 날, 그 건물 지하에 품이 이사를 왔다. '뭐 하는 곳인가..?' 생소했던 사무실을 흘끔흘끔 다니 던 것이 품과 내 '만남'의 시작이었다. 그러다 캠프 소식을 듣고, 초딩시절 걸스카웃이 었던 나는 묘한 끌림을 받고 1996년 품의 회원캠프였던 '품 속 아이들의 길 떠나기'를 통해 본격적으로 품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내 나이 16세,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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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집만 오고가던 내게 품과의 만남은 참으로 신선했다. 집에서 느낄 수 없었던 따 뜻함과 푸근함을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동 아리활동과 캠프를 통해 학교에서와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에 굉장 한 흥미를 느꼈고, 그래서 더더욱 캠프를 빼놓지 않고 다녔다. 내 또래 친구들이 경험 하기 쉽지 않은 것을 접할 수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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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게 하는 품!
정신적인 쉼터이자 내 꿈을 만날 수 있었던 품.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품 선생
나하나의 고백
품의 일 :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내 삶을 확장할수 있었던 또 다른 배움터
님들 같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당시 품에 있던 선생님들은 모두 사회복지학 과를 졸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드시 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가리라 늘 다짐을 했다. 결 국 평택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 졸업만 하면 원하던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즐 거웠다. 사회복지라는 학문이 내가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달라서 약간 혼란스럽기도 했으 나, 품에서 자원활동을 하며 그 간극은 서서히 좁혀나갈 수 있었다. 대학교를 무난히 졸업하나 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2년 더 늦게 졸업할 수 있었다. 진로를 결정할 즈음에는 이왕 사회복지를 하려면 아이들을 만나고 싶었고, 학교에서 배웠던 협소한 의 미의 사회복지 보다는 넓은 의미의 사회복지를 하고 싶었다. 그러다 졸업을 몇 개월 남 겨둔 어느 여름, 품속학교로 떠난 '참 맑은 물살캠프'에 다녀오던 중 심샘이 툭 던지신
교육사업으로 시작해서 2년간은 교육사업을 맡아왔고, 2007년에 지역에서 청소년문화예 술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을 맡았다. 교육사업을 하며 품에서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을 다 른 이들과 나누는 일을 했다면, 지역사업을 담당하며 아이들을 직접 만나 구체적인 실 천사례들을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 사실 내가 어릴 때 품에서 하던 일과 지금 품이 하 는 일을 비교하면 그 일의 근원적인 가치는 같으나, 실천방식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에 매우 공부할 것이 많았다. (가끔 외부로부터 품이 변했다, '예전 같지 않다'라는 이야 기를 들을 때가 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품이 일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 그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하나, 품에서 일 해볼래?"라는 한마디에 심각하게 고민을 했고(품도 나도), 결국 품에
하여간, 아이들의 삶이 지금보다 좀 더 풍요로워지기 위한 환경을 만들고, 그런 사례를
정식으로 일꾼이 되기로 결심을 했다. 어릴 때부터 심샘 책상을 치며 '내자리'라고 했
외부로 전달하는 것. 또 그러한 활동에 가치를 가지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발굴하
던 나였지만, 품에서 진짜 일을 하기로 결심했던 것은 쉽지 않았다. 그것은 품도 여러
고 만들어내는 것이 품에서 하는 일의 핵심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3년간 했던 활동
이유로 마찬가지였으리라고 생각한다. 첫 직장이었고 당시 집안사정상 '좀 더 돈을 많
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굳이 차이를 두자면, 2006년까지는 주로 진행했던 사업이 '교
이 버는 곳에서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이왕이면 돈보다는 내가
육'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강사와 참가자 사이에서의 조율자의 역할이 강했다면, 2007년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곳에서 시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기에 미련
에는 나와 상섭, 영은이 함께 팀을 이루어 처음부터 아이들을 만나기 위한 준비부터 기
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품의 일꾼으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획까지 좌충우돌하며 기획, 조율, 섭외 등 여러 가지 역할을 소화해야했다는 것이 조금 다른 점이다. 처음으로 둘이나 혼자가 아닌 3명이 함께 사업을 맡으며 소통의 괴로움과 쾌락을 느꼈고,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이리저리 발로 뛰어다녔다. 때로는 상상도 못할
2005~2007. 품의 일꾼으로서의 3년.
실수도 확 저지르고 수습하는 엄청난 '영광'도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2007년 담당했던 학교-지역연계문화예술교육사업은 사업 이상의 뭉클한 의미가 있다.
정확히 2004년 10월 4일에 정식으로 품에 출근을 했다. 출근을 하기 전 며칠 동안은 밤 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긴장되고 설레기도 했더랬다. 자, 되돌아보면!! 나하나는 지 난 3년 중, 교육사업팀에서 2년 간 일했 고, 2007년에는 지역문화운동팀에서 지역
< 그동안 맡아서 진행했던 사업들 돌아보기 > 2004 경기지역 청소년문화예술활동 동아리지원캠프
청소년 문화예술활동지원사업을 진행했다.
경기지역 청소년문화예술활동 동아리지원사업 경기지역 청소년문화의집 실무자교육사업
지난 3년을 그냥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면
2005
얼마나 간단할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
청소년운영위원회 지원사업 2006 경기지역 청소년문화시설 실무자교육사업 경기지역 청소년문화예술활동 동아리지원사업
번에 정리하기에는 쉽지 않기에 아주 크게 두 가지 꼭지를 잡아, 그동안의 3년을 정 리해보려고 한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사업을 담당하며 단순히 사업을 통한 배움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사업을 담당하며 만났던 선생님들, 아이들, 지역단체 실무자들 하나하나가 내 게는 스승이었다. 사업을 올해보다 내년에 더 세련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의 의미가 아니라, 사업을 통해 내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처음 경험한 끈끈한 관계와 소통 누구나 각자가 가진 관계를 통해 끈끈한 경험들을 하게 되기 마련이지만, 품에서의 경험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누가 일터에서 이토록 끈질기게 소통을 시도하겠는가.. 그렇
지역청소년문화예술활동지원사업 2007 (학교-지역연계문화예술교육사업)
기에 품에서 일꾼으로서 겪은 사람들과의 관계와 소통의 경험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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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게 하는 품!
나하나의 고백
아버지이자 든든한 나의 기둥이신 심샘, 친언니 같은 맹언니, 착한 내 친구들 현희, 미
이것을 어떻게 공유를 해야 할지도 고민이 되었다. 다행히 그 과정을 진심으로 지켜봐
경, 혜진, 만년 귀염둥이 섭과 미루나무 같은 동생 영은 등의 사람들과 직원이 되기 전
주고 응원해주는 직원들이 있었기에 용기를 내어 다른 길의 문을 두드릴 수 있게 되었
까지 맺어온 방식과 또 다른 관계를 맺는 것의 시작이었고, 그런 과정에서 누구나 그렇
다. 누군가는 나이가 몇인데, 3년 일했던 경력이 아까우니 계속 하는 건 어떠냐고도 하
듯 삐걱거림은 있었다. 내 경험의 특별함은 그 삐걱거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했느
지만 그건 품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이 아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 꿈을 찾고 실천하
냐에 있다. 남들이 볼 때에는 차라리 서로가 무시하면 될 것을 끈끈하다 못해 때로는
는 청년다운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앞으로 내가 살아야 할 삶이다. 아직 이후에 어떤
끈적하다는 느낌이 받을 정도로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집중했고, 고민했다. 그 과정이
삶을 살 것인지는 아직 구체적이지 않기에 지금 두레품을 통해 공유하기는 어렵지만 무
늘 행복하지만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늘 지루하고 괴로웠던 것은 아니다. 그런 과정이
엇을 하던지 청년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있었기에, 또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에 현재 내가 행복하게 또 다른 길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통은 다름의 차이를 인정해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소통이 된다 안된다 단정하 기 보다는 그저 그 과정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소통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현재 그 과 정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충분히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지금 품의 모습을 보면, 남들이 보기에는 지리멸렬 한 그 시간들일지라도 그것이 현재 품을 지켜가고 있는 힘이 된다는 생각을 한다.
마무리하며.. 이 글을 쓰며 도대체 누구에게 하는 고백인지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이 고백은 품을 지켜봐주고 지지해주는 품의 주주들에게 하는 고백이기도 하며, 지난 3년간 그야말로 ' 살 부비며' 함께 살았던 우리 품 식구들, 그리고 나에게 하는 고백이기도 하다.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품이 어릴 때부터 내게 주었던 영향은 생각보다 더 크기 때
사업을 진행하며 동시에 함께 일하는 사람과 또 사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과의 소통의
문에 지금 글로 표현한 것은 거의 스물여덟의 내 삶을 축소해놓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
경험을 통해 자신 있게 내 삶이 전보다 좀 더 확장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모든 경
이 아니다. 그렇기에 지면에 있는 것 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과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이
험들을 통해 또 다른 꿈을 찾게 되었고, 그 꿈을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든든한 친구들도
존재한다.
얻었다.
되도록 솔직하려고 노력한 나의 고백은 여기까지이다. 품의 일꾼으로서의 삶은 끝이지 만, 이후에도 다양한 고백을 서로 나누기를 바라며 나하나의 고백을 마무리한다.
2008~????. 꿈을 먹고 살자!! : 꿈을 찾게 만드는 품. 꿈을 먹고 살자. 고등학교 때 품 선생님들이 직접 책갈피를 만들어주셨는데, 거기에 써 있던 문구였다. 정확히 어디서 시작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때부터 꿈을 먹고 살자는 내가 늘 입에 머금고 다니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가? 품은 계속 꿈을 찾도록 만든다. 고등학교 때, 내가 품을 만나 아이들을 만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던 것처럼 품에서 일을 하며 또 다른 삶을 꿈꾸게 되었다. 물론, 그 고민의 과정은 쉽지는 않았다. 약간 무식한 말로 '품에 못 박겠다 '(^^;)로 시작했던 나는 자꾸 다른 길에 눈이 돌려지는 스스로를 감당하기 혼란스러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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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은의 고백
미루뽕! 품대학을 졸업하다!
2007 학교 안 청소년문화활동 지원사업-사업을 통해 바라본 학교 학교문화예술교육사업의 3년차. 2007년 오순도순팀이 담당했던 품의 청소년문화활동 지원사업을 두 축으로 나누자면 [학교]와 [지역]인데, 나는 [학교]를 담당하였다. 이
_ _유영은
사업을 담당하며 학교가 가지는 일상성, 문화활동이 주는 행복함을 나 역시 고등학교 때의 동아리활동으로 알고 있었기에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 상상하곤 했다. 지난 2년과 같은 분산된 지원이 아닌 시범학교 1곳을 지정하여 다양한 동아리와 학교축 제를 집중 지원하였다. 한 해 동안 학교 자체는 물론 지역에서의 다양한 과정과 연결하 여 집중 지원을 하고 학교 안에서의 문화적 힘이 생겨 다시 학교에서의 동아리 활동이
̇ ̇ 는 누구? 품의 미루
나 축제 등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 학교가 되는 것이 이번 품의 학교 안 청소년문화활동 지원사업의 핵심이었다. 사실 아이들이 즐겁게 느끼고 이리저리 굴려 더 재미있게 만들
본명 유영은. 품의 청소년연극축제 인연. 공부보다는 연극반 활동을, 연극반 활동보다
고 그것이 가능하게 되는 학교는 생각보다 어렵고 많은 과정이 필요했다.
는 근처 남고 학생들과의 대면식에 더 관심을 가지곤 했었으나 소속된 연극반 전통(?) 에 따라 품의 청소년연극축제에 참가하게 되었고,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
품 인턴 2년차. 과정을 모니터하고 기록하며 시각을 키우려 노력했던 첫 해와 달라진
들에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하며 '품의 연극축제'에서 하는 것이면 졸졸 쫓아다니기 시
것은 사업의 한 영역의 담당자로서 사업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한 것인데
작했다. 재미없던 재수생 때, 수능 전날 날아든 연극축제 스텝모집 우편물을 계기로 연
명쾌한 그림으로 합의될 때까지 멈추면 안 되었다. 몇 시간 간격으로 진행되는 회의와
극축제의 스텝이 되었고, 대학 대신 품을 원하게 되었다. 지금은 품의 막내로, 오순도
조언들에 지쳐갈 때 쯤, 세 명 모두가 피를 토하듯 나름 명확한 그림을 그렸을 때는 이
순팀의 도순이로 2년여의 인턴생활을 마무리하며 품의 응원에 힘입어 조금 더 넓은 세
미 사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상으로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다.
점차 학교에 들락거리는 날이 많아지면서 우리가 그린 그림대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은 현실은 절절함으로 다가왔다. 고민을 거듭해 세운 계획은 학교 사정에 따라 축소되거나 없어지는 일도 많았고, 그 배경에는 여간한 소통이 없으면 간극을 좁
고백에 대한 생각
히기 어려운 학교와의 입장차이가 존재했다.
생각한 것들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이제 막 어미 뱃속에서 나온 알 같
아이들은 학교에서의 일상에 비해 품과 함께 하는 것에 재미와 색다름을 느끼고 변화를
은 내가 보고, 느끼고, 울고, 깨지고, 다시 일어나며 배워간 것들을 어떻게 고백할까.
향해 마구 달려가는 반면, 학교는 그런 아이들의 변화에 당황하기도 하고, 변화하길 원
품에서의 2년. 아니 코흘리개 십대부터 품을 만나 이십대에 들어서 내 생각들을 하나
하지 않는 부분에 있어서는 강하게 부딪히기도 했다. 강사들과 아이들, 담당교사의 소
둘 씩 정리해 찾아내는 아직도 진행 중인 이 삶의 과정 안에서의 2년.. 그 사이에 있었
통이 관건이었으나 모든 부분에서 잘 되었다고 할 수 없다. 다만 꾸준히 부딪혀가며 소
던 사업에서 비롯된 일상의 생각들을 내보이려 한다.
통을 시도한 결과 몇 가지 가능성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앞서 하나언니가 쓴 것처럼 일부 선생님들과의 관계로 이후 사업과 연결할 여지가 생겼다는 것과 화계중학교 아이 들이 지금까지와 다른 문화적 경험을 했다는 것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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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뽕! 품 대학을 졸업하다
유영은의 고백
담당자로서 학교를 드나들며 생각한 것은, 아이들이나 품과 같은 단체의 의지만으로
그리고 당장은 화계중학교 아이들의 행복지수에 대한 어떠한 단정도 지을 수 없으나 확
는 변화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문화활동이나 품과 같은 지역단체와 함
신하는 것은 이들의 경험이 어떠한 형태로든 그들의 삶에 녹아 또 다른 경험을 만들어
께 하는 것을 '업무의 추가'로 받아들이는 교사가 대부분인 학교현장에서는 적어도 그
내고, 보기만 하는 축제보다 직접 할 거리가 있는 축제가 즐겁듯 그들의 일상도 그만큼
렇다. 시범학교 지원을 마무리하며 몇몇 선생님들과의 자리에서 학교의 변화가 어려운
풍성하고 행복해질 거라는 기대이다. 마치 내가 연극을 통해 품을 만나고 다시 품을 통
것은 교사의 업무량은 물론 학교의 구조상(결제 등) 어렵다는 것. 그리고 더 근본적인
해 배우고 커가는 과정처럼..
이유는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의 구조상 학교 안에서의 문화예술교육을 교사의 입장에
아쉬움은 있다. '체벌'과 '두발'이라는 단어가 지배하는 학교가 아니라 즐겁고 상상을
서 받아들이고 실행할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할 수 있는 학교로 바뀌는 것. 스스로의 힘을 믿고 학교와 이야기해가며 힘껏 자신들의
현실적으로 소수의 교사나 학교 또는 품과 같은 단체가 교육시스템 전체를 흔들기는 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이건 정말 상상뿐일까?
렵다. 그러나 올해의 화계중학교와 같이 어려웠지만 소통을 시도하며 관계가 생기고, 또한 이후 올해와 같은 성과들이 이어지는 것에 대한 의지가 있는 학교라면 변화의 가 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큰 틀을 변화시키기 위한 작은 실천과 실험을 해가며 작은 부 분부터 바꿔 나가는 것이 시작이라는 생각과, 지금까지의 활동한 근거를 바탕으로 어떠
아쉬움을 배경으로 한 짧은 상상..
한 시각을 가질 수 있으며 이후 정책 등 큰 틀이 변화하는데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 을 것인지 예측하고 정리하는 것이 남은 과제가 되었다. 10월 XX일 아시중학교 작문시간_ 3학년 3반 이준규“지난 몇 달간을 돌아보며”
화계중학교에 남은 것.. 2007년 화계중학교 아이들은 행복했는가?
동네 놀이터는 심심했다. 그리고 나는 학교-학원-집으로 이어지는 일상이 지루 했다. 지루하고 심심한 친구들을 모아 놀이터에 모였다. 여전히 심심했다. 우리
시범학교를 담당하며 낯설었던 것이 익숙해지면서부터 보였던 것은 아이들의 표정이다.
뭘 해볼까? 뽁작뽁작 뚝딱뚝딱..우리끼리 연습해서 어느 날은 밴드가 되어 공연
그래서인가.. 개인적으로 가장 바빴으나, 또 가장 즐거웠던 때는 학교 축제를 준비하던
을 하고, 어느 날은 장구가락도 쳐봤다. 그런데 이거 몇 번 해보니 참 재미있다.
약 두 달 간의 기간이었다. 무겁고 딱딱하게 담당 선생님과 만나던 것을 시작으로 학생
그러다 난 이런 생각을 했다.‘우리학교에도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 만들어
회를 비롯한 기획단을 만나고, 학급들에 기획교육을 나가고, 학교로 출근할까요? 라는
볼 수는 없을까?’생각하다 상섭이에게 털어놓았다. 상섭이도 같이 고민을 하다
말이 절로 나오던 그 두 달. 한 아이가 학교축제를 준비하며 남긴 한마디... "학교에
우리반 담임 심한기 선생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아 본다. 선생님은 발상이 재미있
이렇게 오래 있어본 적은 처음이에요"
다며 지지해주기로 약속한다. 나는 신이 나서 물고기 물 만난 듯, 함께 만들어갈 친구들을 모으고 우리끼리 회의도 하며 품의 문을 두드리기도 하면서, 생활지도
동아리 아이들은 물론이고 각 반, 학부모와 교사들까지.. 2007 학교축제는 '바라보기만
부장 선생님을 설득하기도 하면서, 이번엔 학교에서 뽁작뽁작 해본다. 그리고 상
하는 축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꺼리'들이 있는 축제로 변신했다. 단순히 축제가 풍
상해오던 그 날이 왔다. 부모님과 친구들, 학교의 수위 아저씨와 매점아주머니도
성해졌다기보다는 준비하는 과정에서 동아리는 동아리대로, 학급은 학급대로 즐길 수
초대했다. 공부 안한다고 혼내기만 했던 교감선생님은 그 날 저녁, 음료수라도
있는 경험이 되었다는 것,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고 이
사 먹으라며 지갑을 여셨다.
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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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뽕! 품 대학을 졸업하다
담당자의
(辯). 사업 속 나
섭 이의 그림 그 리기
1년 과정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것을 놓치고 부족한 점이 더 많았으 나 시간이 갈수록 많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의 1 년은 10년, 100년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놓고 싶을 때도 정작
_이 상 섭
놓지 못했던 이유는 '긴 호흡'의 의미에 조금 더 다가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쉽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품의 활동에 대해 공감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자부심과 고민 도 늘어났다. 처음에는 듣기만 하던 학교의 현실과 부딪히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어느 정도 익숙해 질 때 쯤, '소통'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였는데 이 과정들에서 얻은 것은 고민과 소통은 나눌수록 해결할 여지가 넓어진다는 것. 학교를 고민하고 아이들을 고민 하고 팀을 고민하고..고민들의 핵심은 '소통'이었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소통이 쉽지
고백(告白)을 위한 고백(顧百)
않으니 일도 관계도 난관의 연속이었다. 결국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다름을 받아들일 지 고민했던 과정은 '관계'와 '활동의 에너지'를 만들어주었다. 사이사이 날 깨우쳐준 아이들과 지켜봐 준 오순도순팀을 비롯한 품식구들. 사업의 과정 속에서 나의 일상을
따스한 봄바람이 부는 2008년 3월 나는 고백을 위한 기억 더듬기를 해본다. 아주 어릴
돌아보고, 다시 일상과 연결된 일에서 박차고 나갈 힘을 얻게 해준 에너지원이다.
적 품을 만났을 때의 기억부터 품의 일꾼으로 고백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의 기억들은 몇 편의 장편영화로도 다 보여주기 힘들 만큼의 필름들을 만들어내었다. 이 많은 기억 의 필름들을 가지고 어떻게 고백을 할 수 있을까? 한참 고민 끝에 07년의 필름들을 편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단서
집해보기로 한다. 그 기억의 필름에는 내가 했던 일과 만났던 사람, 고민들이 분리되어 편집을 할 수 없듯,
품에서의 활동을 마무리해 나가는 요즘, 얻고 배운 만큼 잘 정리해야겠다는 생각과 함
지금부터 하게 될 나의 고백 역시 분리되지 않은 편안한 일기를
보여주듯 시작하려 한다.
께 드는 것은 고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무엇을 하느냐고 물어온다. 그들이 원하는 속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정작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기억 필름 하나... 여러 수식어가 있었던 섭이 지금 서 있는 곳은
가 아닌,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빈 여지가 많다. 세상의 수많은 것들을 채워 넣고 근거들을 채우며 그렇게 '어
초등학교 시절에 품을 만나게 되어 99.9%의 캠프 참가와 동아리 활동을 하며 나의 삶과
떤'삶을 살 것인지 차분히 고민해보려 한다.
밀착되었고, 청년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렇게 품과 많은 시간을 보냈 덧붙임. 현재가 있기까지의 중요한 과정들, 진행형인 고민들과 마주하며, 너무 많은 이 야기들이 쏟아짐을 억제할 수 없었음을.. 순간순간 아이들의 얼굴이 생각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음을.. 이렇게 고백할 거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과정에서 나 정리하는 지금이나 충분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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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나는 품동이, 지원활동가, 인턴, 캠프맨, 물품대가 등 나를 표현해주는 수식어들을 달게 되었다. 그 수식어들은 품에서의 나를 나타내는 별명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의 만날 수 있는 경험 또 그 사람들과 고민하고 여러 활동을 했던 나의 경험의 시간들 을 대변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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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이의 그림그리기
이상섭의 고백
기억 필름 둘...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
특히, 품을 만나 갔었던 수많은 캠프 중에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갔었던 '삶의 뿌리를 찾아서'의 특별한 경험을 통해 나의 㖌(굿)은 캠프라는 막연한 느낌이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캠프 전문가가 될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대학을 다니면서 품의 여러 활동 중 캠프는 당연히 가야하는 사명이었던 것처럼 달려왔었다.
_ 스스로의 약속 섭...나 스스로 생각해보면,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이들에게 나를 드러내
그러던 중 2006년 제대가 아닌 공익근무요원 소집해제가 다가 올 무렵 그동안 캠프가
지 못한다는 것과 생각은 많으나 그것을 하기 위한 실천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
나의 모든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나에게 '사회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이고 사회에서 나
을 알았었다. 그래서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를 진행하게 되면서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
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무심코 던졌는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었다. 나 자신을 드러내어 함께하는 이들에게 나의 생각과 고민을 나누고 편안한 관계
하지 못하면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이 질문은 나를 계속 고민만 하고 갈팡질팡하게
맺기를 올해 꼭 노력하고 실천하자는 약속을...
만들었고 결국은 시원한 스스로의 대답을 찾기 위해 '무엇이 되었든 해보자! 그리고 그
_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를 함께 했던 이들과...
안에서 찾아가보자!'라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멍하게 만든 두 번의 순간이 우연하게 찾아왔다. 한번 은 편안하게 술자리를 가지고 있던 중 누군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있어 스스로의 명분과 정체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였었다. 그 말에 지금까지 나는 사회 에서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만 매몰되어 있었 고 이는 스스로의 정체성과 명분을 가지고 내가 살아가는 사회를 바라 본적도 없었고, 내가 하는 것에 대한 나만이 아는 스스로의 의미부여를 했을 뿐이었던 것이라는 멍한 순간을 맞이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수명 선생님께서 우연한 자리에서 그간 품에서 활동했던 나에게 '품에서의 경험은 긍정적인 경험'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시간이 지나 생각을 해보니 품에서 자라면서 수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를 진행하다보니 지역단체, 문화예술 전문가, 학교교사 등 참 많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만남이 있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 던 것은 사업의 파트너이기는 하나 일을 진행하기 위한 소통과 사업 담당자로 실무적인 만남으로 그치지 않고 동네에서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로(동지), 사업을 포함한 활동에 대한 나의 고민과 생각, 그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관계를 맺어보 자. 또 사업 진행을 위해 필요한 사람을 섭외하여 우리가 하려는 것을 단순하게 전달하 고 할 수 있게 하는 것 보다 아이들을 만나는 나의 선배로써 그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나만의 그림을 고집하기 보다는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과정을 통해 서로가 그림에 대 한 애착을 가기고 함께 할 수 있게 해보는 것이었다.
었다. 그 경험과 만남은 단순하게 과거의 추억으로 만 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
그렇게 스스로의 약속과 다짐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활동을 시작했었다. 아! 내공구
에서 어떠한 형태로 되었던 도움을 주기도하고 내 삶의 에너지이기 하였던 것이다. 모
단의 선배들...같이 합의하고 약속했던 것과 다른 태도에 당황...너무 존중해서 중심을
르고 있던 사실은 아니었지만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더 해본다. '내가 좋아서 캠
잊어버릴 뻔도 했었고, 가끔 너무 의식적으로 행동하려고 하는 나의 모습에 고민만 하
프를 가고 싶었지 나의 긍정적인 경험을 캠프에 온 아이들과 함께 했던 활동가와 나누
다가 편안한 관계를 못 한 경우도 있었다. 반면 앞으로의 시간을 위해 같이 하자는 주
었던 적이 있었을까?' 생각을 해보니 내가 그런 나의 긍정적인 경험을 나누려는 삶을
파를 던지던 사람들과 같이 고민하고 풀어가기 위해 소통을 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었던
살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사람들도 만나게 되어 힘을 주는 만남이 무언인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 이거구나.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해야 할 것이...”
_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에서 놀았던 아이들...
그렇게 해서 긴 고민의 시간과 우연한 기회를 통해 스스로의 대답을 찾고 2007년 3월
지난 2년간 사전O.T-분야별아카데미-발표를 했던 흐름에서 사전캠프-분야별아카데미-발
품의 인턴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학교-지역연계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을 준비하고 있었
표-추락준비과정의 흐름으로 변화가 있었고 분야별아카데미활동 역시 분야별로 진행방
던 하나누나와 영은과 함께 오순도순팀이 되었다.
식이 조금씩 변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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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이의 그림그리기
이상섭의 고백
그 결과 다른 분야의 동아리들의 전체적인 교류는 미약했으나 서로 같은 것을 하고 있
나의 그림을 오순도순 팀이 논의 한 횟수는 기억 할 수 없고 품 식구들과 함께 그림을
다는 것과 같은 분야별 활동을 하는 동아리들이 서로 부족한 것을 가르쳐주고 자기공연
가지고 논의 한 횟수는 15번 정도였을 만큼 또 기약 없는 그림 작업이었다. 혼자 그리
시간이 아니면 자리를 떠나거나 관심 없이 자기 할 것을 하던 아이들이 분야에 상관없
는 작업은 논의를 하고 합의를 하여 그리기보다는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기에 속도
이 응원해주고 함께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이런 성과들은 분명 내가 청소년문화예술아
가 빨랐다. 그러나 자꾸 수정을 할 때마다 반드시 이번에는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그
카데미를 잘 진행해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지난 2년간 진행되면서 쌓여진 보이지
리는 과정에서의 혼자라는 느낌이 공동으로 그릴 때와 또 다른 그림그리기 작업이었다.
않는 힘과 분위기,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장 매력으로 다가온 추락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있었기에 가능하였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성과 뒤에는 아이들을 직접 만나며,
_ 화가가 아니어도 그림그리기는 해야 한다.
우리와 함께 고민하고 같이 하고자 했던 의지 있는 강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실무 경험도 없었던 내가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
결국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강사라인이 생겼다는 것과 지역의 청소년문 화예술활동지원을 위한 공간자원의 인프라 구축, 한 번의 프로젝트가 아닌 연속성이 있
까? 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누군가 그려준 그림이 아니라, 나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해서 그렸던 그림이었기에 가능 했던 것 같다. 나에게 그림그리기는 내가 하려고 하는 것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수없이 하게 되고, 전체와 부분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어떤
었을 때 성과의 모습을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가 남겨준 것이다.
흐름으로 흘러가는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해주었다. 또한 사업 진행 중 떠오르는 상상이 나 생각들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판단을 할 수 있는 힘이 되 었다. 이렇게 그림 그리는 작업은 고통스러운 작업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내가 무언가를
기억의 필름 셋... 난 화가가 아니에요!!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덧붙이자면 그림 그리는 작업이 무조건 힘들고 지치기 만 한 작업은 아니다. 나의 상상이 그려지고 현실 가능한 그림으로 윤곽이 드러날 때,
_ 오순도순의 그림 작업
그림을 통해서 또 다른 상상이 마구 될 때의 설렘과 두근거림도 함께 있다.
오순도순의 첫 과제는 전체 사업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한번 그리고 두 번 그리고 세 번 그리고...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림 그리기의 연속이었다. 난 화가가 아닌데..라 는 반항도 해보고 정말 마지막 그림이라는 생각으로 논의도 해보며 다시 힘을 내어보지
기억의 필름 넷... 08년의 고백
만 돌아오는 것은 다시 그리기였다. 그렇게 그림그리기를 하는 것은 사업의 기획을 하 는 과정이기도 하였지만 각자의 실무경험, 살아온 개인의 역사 등이 다른 세 명이 모였 기 때문에 이해구조와 소통방식, 속도 역시 달랐고 그것을 서로 이해하고 조율해가는 오순도순 팀의 소통과정도 발견도 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싸우고 삐지기도 하고 때
07년 품에서 나는 지역문화운동팀에서 땀을 흘리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역단체, 문화예술 강사, 청소년들과 함께 1년이라는 시간동안 함께 했다. 그러면서 아주 자연스 럽게 품에서 나는 08년에도 지역에서 놀아보는 상상을 한다.
론 격려와 서로 힘주기를 하며 함께 하기 위한 소통의 방식을 찾는 동안 오순도순 팀 분위기가 사업이나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
CA, 동아리 지원 등 보따리 장사에서 학교와의 제대로 된 만남까지..
었던 그림그리기 작업이었다.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 3년.. 지역청소년문화축제 추락도 10년... 이렇게 품이 지역에서 짧지 않은 시간동안 활동을 하며 쌓여진 내공을 가지고
_ 혼자서 그렸던 그림 작업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순도순의 전체 그림 작업 후 전체 그림 안에서 함께 할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를 담
동네에서, 무엇을 하면 재미있을까......?
당하게 되었고 그것을 위한 그림그리기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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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이의 그림그리기
주넬리의..
일상의 축제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순 없을까? 라는 상상을 하다 강북구청의 제안으로 품이 하게 될 강북청소년문화존 사업을 통해 지역청소년문화놀이터 만들기를 해보려고
GO BACK!
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바라보며 엉뚱하고 재미있는 상상을 가지고 동네 놀이터와 재 래시장을 돌아다니며 노는 청소년유랑극단이 있으면 어떨까?
_ 이보라
동네에 숨어있는 예술가와 함께 놀아보는... 동네에서 재미있는 활동을 하고 있는 지역단체와 함께 즐겨보는...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여러 사람들과 나눈 것을 들고 나와 함께하는... 그런 마당이 항상 있으면 어떨까? 처음 '고백'이란 화두를 받아들고는 한참동안을 방황했다. 오디션과 공연무대를 찾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청소년들이 홍
고백이란 뭐지? 왜 갑자기 이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거지?
대클럽이 아닌 동네클럽을 만들어서 놀기도 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문화예술활동을 동
고백이란 무엇인가, 이것부터 정리해야 하는 것인가?
네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나누면 어떨까?
한참을 그렇게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깨달은 것은, 고백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고백을 하고 있는 지금도 지역청소년문화놀이터에 대한 상상을 하고 이 상상들
먼저 내 경험을 있는 그대로 펼쳐보자.
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물론 기약 없는 그림 그리기가 계속 될 수 있겠지만, 상상처럼 될 수 없겠지만 가슴 떨리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일상의 축제 에 한 걸음 더 다가서기 위해 상상과 그림그리기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주넬리의 눈으로 보는 네팔 품의 지난 역사 네팔 품의 상근활동가로 2006년 11월부터 현재까지 약 17개월. 비록 그 시간들이 엊그제처럼 느껴진다 하더라도, '2007년 되새김질 놀이'-일기장를 비롯하여 각종 기억들을 들춰보는 신종놀이로, 이 놀이만으로도 일주일이 지겹지 않다-를 통해서
결코 그 시간이 짧지 않았음을 재확인하고야 말았다. 그 짧지 않았던 네팔 품의 역사 속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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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넬리의 GO BACK!
문화예술교육사업_ 쉽지 않다
이보라의 고백
심쌤 가라사대 "기술자보다는 기획자가 되라"고 하셨지만, '아니, 기술자도 모르는 데 어찌 기획자가 될 수 있는가'라며 내내 기술자 알기에 더 정신이 쏠려있었고 워크숍을 진행하는
"네팔-한국 문화예술교육 워크숍"이라는 타이틀로 2년 동안 진행되었던 네팔 품의 메인
동안에도 전체보기보다는 내가 맡은 부분 보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나 기획자는 세세하게 기
사업인 문화예술교육사업. 이 워크숍이 네팔 품의 메인이 된 이유는 네팔에서 진행할
술자를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요즘에서야 든다. 사람은 익숙한 것을 좋
다른 모든 사업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었다. 워크숍을 통해 얻은 경험을 비롯하여 워크
아해서 자기가 보아왔던 것,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한다. 때문에, 부분만 보는 사람은 언제
숍을 통해 이어진 사람들까지. 실제로 2007년 2차 워크숍이 진행된 이후, 그 참가자들
나 부분만 볼 수밖에 없는데, 부분에서 보는 부분과 전체에서 보는 부분은 분명히 다르다.
을 중심으로 하여 국립예술대학 학생들과 함께 "Happy School Project"라는 이름으로
따라서 기술자의 역할에 대해 열심히 고민했다고 하더라도 전체의 시각에서는 고민한 그 역
프로젝트를 진행한바 있다. 이처럼 워크숍은 네팔 품에서 실험인 동시에 현재와 미래를
할의 방향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워크숍을 하면서 나는 얼마나 전체의 시각에서 보
이어주고 있다.
려고 했는가. 결론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결국 요점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T^T
문화예술교육사업은 쉽지 않다. 이런 성의 없는 간결한 문장이 어디 있냐 하겠지만, 나 로서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정~말 쉽지 않다고. 첫 번째 이유는 '네팔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일을 이제 거의 17년 동안이나 지속하고 있는 품은 다양한 자원과 노하우, 쌓여진 내공을 품고 있 다. 그 내공을 고스란히, 그리고 집중적으로 쏟아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네팔에서의 워크숍은 순탄하지 않았다. NGO는 'Non Government Organization'이라는 비정부기구의 약자를 뜻하는 것뿐인데, 네팔에서는 무슨 '돈 많은 기구'라는 약자이기라도 한 듯, 사 람들은 '돈으로 도와주는 곳이며, 그래서 돈이 많은 곳'으로 인식했다. 이는 일상을 건 드리고, 사람을 흔듦으로 인한 작지만 강한 변화를 꿈꾸는 네팔 품이 네팔에서 사람을 만나고, 네트워크를 만들고, 사업을 해 나가는데 있어 결정적 장애물이었다. 아무리 품
문화교류사업_ 손님과 주인 히말라야의 행복한 전이를 위한 오~히말라야 시리즈 1・2・3, '숲해설가협회'의 히말라 야 생태탐사, 장애청소년대안학교 '사람사랑 나눔학교'의 네팔 여행, 남북한 청소년이 함께한 '셋넷학교'의 '평화야 놀자', '영등포 청소년문화의집'의 가족사랑여행, 'CJ나 눔재단'과 함께 한 '청소년 희망나눔 프로젝트'까지. 2년이라는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 이 품을 통해 네팔에 안겼다. 문화교류사업을 통해 네팔 품은 가능성이 있었던 사람, 단체들을 연결하여 어깨동무도 해보기도 하고, 해보고 싶던 일을 한판 크게 벌여보기도 하고, 그 사이사이 문화예술교육사업을 위한 탐색을 하기도 했다. 네팔 품의 시각에서 보자면 문화교류사업은 '물꼬트기'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고 있는 내공이 히말라야를 날려버릴 정도로 대단한 그것이라 해도, 네팔 사람들이 알
전체적인 시각에서 품의 문화교류사업의 방향은, 한국과 네팔의 일상과 삶을 알아가고 공유
고 싶어 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나눌 수 있고, 어떻게 함께 할 수 있겠는
하고, 그것을 통해 한국에서의, 또는 네팔에서의 자신의 일상과 삶을 돌아본다는 것이다. 다
가. 이것을 풀어가는 것은 네팔 품 평생의 화두가 될 것이다.
시 정리하면 서로의 일상과 삶을 통해 자신의 그것에서의 새로운 에너지를 발견한다는 것인
두 번째는 주넬리 개인의 입장에서의 쉽지 않음이다. 2차 워크숍 홍보를 하며 문화예술
데, 현재까지 품의 문화교류사업을 하면서 이에 대한 몇몇 한계점에 부딪히게 되었다.
교육사업을 설명할 때 "삶과 문화가 묻어나는 예술 활동을 통해 교육을 실천한다"라고
이러쿵저러쿵해도 역시 문화교류사업이란 이름으로 '오는 사람들'은 그것을 '여행'으로
나름대로의 정리를 네팔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녔지만, 정작 내 자신은 그에 대해 정리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또한 '맞이하는 사람들' 역시 그것을 '접대하는 의무감'으로 받아
되지 않았었고, 현재 또한 정리되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워크숍을 함께 하려니 버거
들일 수밖에 없다. 진정한 소통과 교류를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동등한 입장이 되어
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즉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논제에 대해 고민하고
야 하는데, 시작부터 '손님과 주인'이 되고 나니, 조심스럽고 어려운 관계가 되어버리는
공부하려는 노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다른 사업도 그런 감이 없었으나,
것이다. 이제 갓 첫돌을 넘긴 네팔 품이 아름다운 문화교류를 위해 고민하고, 준비하고,
특히 문화예술교육사업-워크숍-은 나에겐 뚝!딱!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던 사업이다.
나아가야 할 길이 산 넘어 산이지만, 그러나 언젠가는 분명 그날이 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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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넬리의 GO BACK!
청년지원사업_ 행복한 진동
이보라의 고백
잊지 말아야 할 것, 하나. 역시 속도 조절이다. 150KM를 8시간에 가는 나라와 1시간 에 가는 나라. 극과 극의 속도를 가진 두 나라가 만났다. 단순하게 물리적으로 다른 속
한국 품의 홈페이지에도 소개된 바 있는 네팔 품의 'Happy Vibration Group'. 큰 틀에 서 보자면 그들의 활동은 문화예술교육의 연장선으로 분류되는 것이 맞으나, 주넬리로 써는 그들과의 관계가 너무 소중하기에 따로 언급해보려고 한다.
도를 비롯하여,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위한 시간과 서로를 받아들여 자기화하기 위한 시간이 고려된 속도를 내야 한다. 아무리 그러지 않겠다는 노력을 해봐도 한동안은 품 의 사업 속에서 한국과 네팔의 관계는 '주는 자'와 '받는 자'라는 고질적인 문제에서
2007년 7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들은 카리스마 람, 정신없는 슈퍼맨, 그 둘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이후의 속도 조절에 따라, "처음에 나타난 '주는 자'와 '받는
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딥말라, 이 세 명의 소수정예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2차
자'의 관계는 네팔이 새로운 개념과 방향을 받아들여 자기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표면
워크숍 의 참가자 중 국립예술대학인 럴리껄라 학생들은 학교의 다른 학생들을 모아,
적인 것이었구나"라고 할 수도 있고, "여전하군. 여전해"라며 품 자신의 에너지를 잃어
대안학교인 나눔학교와의 연계로 'Happy School Project'를 진행하였다. 이후 그때 참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네팔 입장에서 보면 품이라는 곳은 생각해보지 못한 생소한 일
여했던 학생들 중 지원서를 받아 만들어진 것이 'Happy Vibration Group'이며, 현재까
들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주는 자'의 역할은 일방적이라는 느낌이 강하지만, 어떻게
지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네팔 품의 소중한 인연이다. 이미 'Happy Vibration
'받는 자'를 생각하고, 배려하느냐에 따라 그 과정에서도 동등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
Group'으로써의 첫 번째 프로젝트로, 지난 1월 CJ나눔재단 청소년희망나눔프로젝트를
고 생각한다.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도 하였다.
잊지 말아야 할 것, 둘. 속도 조절 이야기의 연장선으로 네팔 품의 네트워크. 그동안 사업적인 것을 떠나, 그들이 소중하다고 '특별히' 이야기하는 까닭은 그들의 '행복한 진동'이 머노허라 학교, 헤떠우라 지역의 Children Park뿐 아니라 나에게도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거창하거나 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지루하 면 지루한대로, 고요하면 고요한대로, 신나면 신나는대로, 암울하면 암울한대로, 그 자 체로 나는 재미있었고, 동시에 그래서 행복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나는 다른 곳에서 지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야말로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행복한 진동이었다. 무언가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신이 나야함을 이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네팔 품은 네팔에서 많은 지지와 지원도 얻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상처와 아픔도 얻었 다. 네팔 품의 가치와 실천은 워낙 생소하고 어려운 일이라 처음부터 이해를 바라기는 무리라는 것은 알고 있던 것이지만, 오히려 이를 깎아내리거나, 아주 사소한 일로 치부 해버리는 모습, 아니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동의하던 단체가 결국 돈을 요구하는 모습 등 지칠 수 있었던 이유도 많았다. 그러나 그 모든 모습의 개인이나 단체들이 결국 우 리의 소중한 인연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것을 소통과 교류를 통해 풀어가야 함을 '사람' 에 최고가치를 두는 품이라면 항상 기억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것이다. 너무나 소중한 람, 딥말라, 슈퍼맨. 언제까지나 이 인연이 지속되기를 소망한 다. Happy Vibration Group 파이팅!
Go Back. 주넬리에서 보라로 앞으로의 네팔 품
나는 이제 돌아간다. 이것저것 정리하고 한국을 온몸으로 맞을 마음도 준비하고 있다. 새로 네팔에 들어온 활동가인 하니에게, 그리고 품에게, 주넬리의 빈자리를 남기지 않
이제 갓 첫 돌인 네팔 품. 어리버리 갸우뚱 거리며 내 주변의 것들을 인지하는 과정은 비교적 정리가 되는 단계인 것이다. 앞으로는 그저 하얀 도화지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 이면서 신기해하며 이것저것 만져볼 수 있는 호기심들이 증폭되어야 하며, 동시에 그
기 위해 마지막 힘을 쏟아 붓고 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은 그 옛날 옛적부터 전해 내려져 온 진리인데, 그와는 반대되는 '든 자리는 알아도 난 자리 는 모른다'의 일을 하려니, 어렵다.
호기심을 바탕으로 미래를 위한 발판들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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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넬리의 GO BACK!
시작은 쉬웠으나(그 당시에 느끼기에는 결코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맺음은 아름다 운 뒷모습으로 이어지기가 힘들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굳이 하니나
내 마음의 고백
품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동안 애써왔던 내 스스로에게 당당하기 위해, 그동안의 시간 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돌아가는 그 날까지 나는 달린다.
_이하니
주넬리에서 보라로. 이건 또 무슨 Karma였는지 어스름하게 세상을 비춰주는 주넬리라 는 이름의 뜻과 세상에 보배를 펼치라는 보라(寶羅)라는 이름의 뜻은 크게 다르지 않 다. 주넬리로 2년이라는 시간을 네팔에서 보내면서 네팔이란 나라에 질리기도 하고, 사 람에 상처입기도 하고, 많이 웃고, 많이 울고, 많이 화도 내고, 많이 행복했다. 어느새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버린 네팔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려니 왠지 억울한 기분까 지 들지만(새로 마련한 네팔품 사무실에 프린터와 냉장고가 들어와서 억울한 건 절대
고백의 마음
아니다) 너무 아파하거나 슬퍼하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윤회의 굴레를 돌아, 이 생애 든, 다음 생애든 난 또다시 이곳에 설 수 있을 것임을 믿으니까. gOoD-bYE mY nEpaL!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고백한다는 것은 그것이 언제이든 떨리면서도 준비가 단단히 필요 한 일이다. 나와의 관계가 선명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는 고백은 특히 그렇다. 무엇을 고백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네팔과 네팔품을 만나고 있는 내 마음 을 편안하게 고백해보기로 마음먹는다. 지면을 통해 하는 나의 고백이 이제 막 품을 알 게 된 한 사람의 낯설 기만한 일방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이 소 소한 고백에 누군가 마음 설레어 할 수 있을까 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0^
네팔, 그리고 두 달 마치 '수맥'을 찾는 것처럼, 내 마음에 달려 있는 가느다란 안테나의 파르르한 떨림을 따라 가다 보니 어느덧 지금 이곳에 와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찾아온 그 '수맥' 은 커다란 강줄기라기보다는, 천천히 마른 땅을 촉촉이 적셔나갈 수 있는 맑은 물이 쉴 새 없이 솟아오르는 샘물이다. 지금은 그것을 좀 더 잘 찾기 위해 내 손과 마음을 가다 듬으며, 이곳에서의 삶을 배워나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보낸 두 달이라는 시 간은 매우 탄력 좋은 고무줄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다가도 번쩍하는 한 순간처럼 느껴지 기도 한다. 그 안에서 많이 웃기도, 또 여러 번 철렁해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네팔도 그리고 나도 지금 중요한 변화의 흐름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변화의 흐름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답을 구해야하는 질문이 되 리라_ 수맥을 찾기 위해서 가다듬은 손과 마음을 온전히 집중해야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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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고백
네팔, 그리고 네팔 품
이하니의 고백
그들에게 일상의 변화와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스럽고도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여러모로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이는, 그리고 실제로 어느 정도 그러 하기도 한 세상의 흐름 안에 사실은 독이 될 수 있는 것들이 도사리고 있음을, 지금 당신
_ 2% 채워가기
들이 잃고 있는 가치들이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그것이며, 모두 잃어버린 이후에 되찾으
수많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이곳에 내가 단순한 여행이나 수많은 원조단체들 중 하나, 또는 선교나 개인적인 '도'를 구하기 위함이 아닌, '네팔 품' 안에서 '살아 보겠다'고 오게 된 것은 나의 오래된 꿈 하나가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 옳지 않음이 명확하고, 가슴을 답답하게 짓눌렀던 세상의 큰 흐름 앞에 그 누구보다 많은 상처를 있는 그대로
려 하는 과정은 그것을 힘겹게 지켜내는 것보다도 몇 십 배 혹은 몇 백 배의 노력과 어려 움이 따른 다는 것을 그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를 이미 기득권층 에 속해있는 그래서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들의 이기심이나 기우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 이다. 그래서 나는 품의 방식이 이곳에서 그 힘을 크게 발산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드러내 놓고 있는 네팔. 이곳에 그동안 개인적으로 2% 부족하다고 느껴온 많은 이들이 해온 '보통의 일'과는 다른, 막연하게나마 꿈꿔오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볼 수
_네팔품 안에서 살아가기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적어도 품이 이 땅에서 하고자 하는 일이 말만 앞세우는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고 내가 지금껏 경험해온 일들 안에서 느꼈던 2%의 부족함은 '일상의 중요성'에 대해 나눌
생각한다. 그들이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하게 지켜내야 할 가치를 몸으로 직접 느끼고,
수 없었던 것에서 시작된다. 지금보다 더 철이 없었을 때_ 삶 자체이기도 한 일상의 소
그것이 비록 머릿속에 체계화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의 피를 통해 몸 속 구석구석
중함에 대해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을 때 몽골의 아이들과 길지 않은 시간을 함께 살았
까지 전해져서, 자연스러운 일상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믿는다. 품의 방식은 그들
던 적이 있다. 그 때 나의 '현재'는 중요했으나, 그 아이들의 '현재'는 그리 중요하지
에게 어떤 훌륭한 사례를 보여주거나 강한 어조로 설득하는 것만으로는 할 수 없는 흔
않게 생각되었던 것 같다. 나도 아이들도 모두, 아이들의 '현재'는 꿈같은 '미래'를 위
들림과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분이 내가 품을 만나면서 느꼈던
해 흘러가고, 견뎌내야만 하는 시간으로 여겼다. 그렇게 견뎌내기만 하던 아이들 중 많
가능성과 매력이었고, 앞으로 네팔품 안에서 살아가면서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기도
은 수가 잠자리도 먹을 것도 편안하지 않은 희망 없어 보이는 원래의 삶으로 돌아갔다.
하다. 거창하지 않아도, 또 특별히 의도하지 않아도, '허울뿐인 세계화('오래된 미래'
그것이 그 아이들의 인내심이 부족했다는 말로만 설명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하면
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또 다른 이야기)'에 부드럽게 저항할 수 있는 작은 움
한국에 갈 수 있을까 혹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보다 아이들
직임들, 그리고 그것들의 이어짐이 내가 이곳에서 새롭게 찾기 시작한 꿈이다. 작지만
과 일상의 즐거움, 그것의 힘에 대해 더 많이 나누었어야 했다. 이러한 지점들이 이곳
힘 있게 퐁퐁퐁 솟아나는 샘물이 땅을 천천히 적시며 나아가 또 다른 물줄기에 닿게 되
에 와서 다르지만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니 더욱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듯이, 그러한 움직임들이 세상을 지탱하고 좀 더 아름답게 변화시키려고 하는 또 다른
네팔품에서 하는 일들의 중심에는 역시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는 이미 너무나도 훌륭
노력들과 이어지는 그림을 상상하면 내 안에서도 맑은 물이 흐르는 것 같다.
하게 자신의 소박한 일상을 잘 꾸려나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혼란스러운 변화의 중
네팔 품에서의 지난 시간, 처음으로 경험했던 품의 문화교류사업! 앞으로 네팔품 안에
심에서 각기 다른 생각과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고, 깊은 상처를 여린 몸으로 고스란히
서 살아가면서 여러 지점에서 개인적으로도 합의되어야 하는 부분들이 있음을 배웠다.
겪어 내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 어른들, 그리고 청년들도 있을 것이다.
오기 전에 '섣부른 기대가 아닌 진실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다짐했건만, 이는
물론 품이 집중해서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있을 수 있으나, 일상적으로 만나게 되는
어느 새 빨라져 있는 내 속도를 감지하고 다시 한 번 긴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
평범한 이들에게 나는 그리고 품은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가 되기도 했다. 하나의 사업을 하기 위해 선행되어야하는 개인적인 고민과 공부, 노력 이 없다면, 절대로 내가 새롭게 찾고자 하는 꿈에 닿을 수 없음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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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고백
이하니의 고백
내 안에서 끊임없이 그려 봐야 하는 크고 작은 그림들, 그리고 그것들의 이어짐에 대한
크고 작은 마음들과 그 변화를 이곳에서는 이전보다 더욱 여과 없이 마주하게 된다. 그
고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리라 다짐해본다. 우리나라가 아닌 네팔이 갖고 있는 특수
마음들은 모두 다르지만 하나로 이어지기도 한다. 네팔품에서 새롭게 시작하게 된 "마
한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_ 밥 또는 빵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 대한 고민 역시
음의 여행"이 주는 떨림과 신선함이 조금 쉽지 않은 과정도 잘 겪어나갈 수 있도록 도
빠져서는 안 될 부분일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네팔품에서 살아갈 2년이라는
와줄 것이라 믿는다. 지금의 내가 마음을 여행하기에 이곳만한 곳이 없을 터, 지금 이
시간이 결코 길지 않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순간 이 곳에 있는 것이 참 감사한 일이다. 이런 나의 고백에 마음이 설레어 하는 분이 있다면 네팔에서 만나게 되길 바란다고 전해본다. ^_^
‘창조적인 삶’의 실천 얼마 전, 네팔 품이 관계 맺고 있는 한 네트워크에서 진행 중인 네팔 청년들 포럼의 모 니터링을 다녀왔다. 그 날의 주제는 바로 '창조적인 글쓰기!' 다양한 글쓰기 방법론을 펼칠 것이라 예상했던 한 할머니 편집자는 '창조적인 글쓰기'를 위한 '창조적인 삶'에 대해 힘주어 이야기했다. 삶을 대하는 진정성과 태도,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행위이든 결코 삶에서 분리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 었다. 그 순간 내가 이 땅에 와있는 이유가 내 삶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좀 더 창 조적이고 치열한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임을 강하게 느꼈다. 예전에 어느 책에서 계속해서 떠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 저 깊은 곳에는 정반대로 어 느 누구보다 생활에 안주하고 싶어 하는 강한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나 역시 익숙한 것에 안주하고픈 욕구가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고, 그 때문에 그냥 그렇게 세상에 물들어갈 내 모습이 더욱 두려워서 지금 이렇 게 잠시 이별하고 떠나온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의 2년 동안 개인적으로도 좀 더 단단 해지길 소망한다. 내 삶에 대해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그 흐름 안에서 진정으로 중요 한 것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집중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곳이 들려주는 "바람의 말"에 고요히 귀 기울일 수 있는 마음도 배울 수 있기를..
마음의 여행.. "결국 사람이 머물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며, 사람이 여행할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라는 정호승 시인의 이야기처럼, 나는 무엇보다 이곳에서 "마음을 여행"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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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품 활 동 돌아 보 기 2005년부터 문화관광부의 지원으로 시작된, '학교-지
품 활동보고
역 연계 문화예술교육사업'. 3년차인, 2007년 사업은 시범학교(화계중학교) 동아리활동 및 학교축제 지원, 지역 청소년동아리를 대상으로 진행한 청소년문화예술 아카데미, 이 두 가지 과정의 에너지를 모아~모아~ 만든 '제 10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으로 구성되 었습니다. 2007 학교-지역 연계 문화예술교육사업 한눈에 보기
학교 내 아이들을 위한 문화예술활동 지원 3월~11월
시범학교 지원 (화계중학교) 학교와 소통하기 동아리 힘주기 학교축제 변신하기
학교 밖(지역) 아이들을 위한 문화예술활동 지원 7~8월
다~ 모여라! 학교 안팎에서 놀던 아이들과 강사들! 청소년기획단 ‘세개’와 노올자 선배들! 추락 올드 동아리들!! 다함께 신나는 10년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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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회 강북 청소년문화축제 ‘추락’ 9월 8일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 교류! 오픈 캠프, 배움! 분야별 교육, 축제! PartY, 거리공연
학 교 -지 역 연 계 문 화예 술 교육 사 업
2007, 품 활 동 돌아 보 기
■ 학교 안에서 놀기 [화계중학교 지원]
ᆞ화계중 축제 : 2007년 10월 19일
_ 2007년 3월~11월
문화예술교육시범학교로 지정된 화계중학교의 축제를 품이 함께 하였습니다. 화계중학교 학생회를 중심으로
ᆞ교사 간담회 : 3월 29일 l 화계중
축제기획단을 만들고, 화계중학교 역사상 최초로 학생
시범학교로 선정된 화계중의 교감선생님, 생활지도부
이 직접 만드는 학교축제가 탄생!! 전교생과 선생님들
장선생님, 각 동아리 담당선생님을 대상으로 2007년
이 모두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답니다. ^^
에 진행될 시범학교 지원사업에 대한 소개와 이후 함 께 고민을 나누어야 할 부분에 대한 공유를 하는 등 ■ 학교 밖에서 놀기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
첫 만남 가지기.
_ 2007년 7월~8월 ᆞ동아리 오리엔테이션 : 4월 20일 l 화계중 ᆞOpen Camp : 7.28-29 l 의정부 다락원
6개 동아리(댄스, 밴드, 방송반, 학생회, 자유활동반,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에 참여하는 아이들과 강사들
도서반)와 각 담당교사, 동아리별 전문강사가 함께 모
이들이 처음 만나는 자리. 분야별 친구들과 만나고,
여 2007년에 진행하는 화계중학교 동아리지원사업과
각자가 가진 끼도 보여주는 첫 교류의 시간을 가짐.
축제지원에 대한 소개, 이후 활동에 대한 동기를 불어
캠프가 진행되었던 의정부 다락원에서는 밤새도록 아
넣기 위한 오리엔테이션. 댄스반과 밴드반의 멋진 공
이들의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는 후문입
연을 비롯한 각 동아리별 소개, 강사 선생님들과의 첫
니다. ^^
만남을 가지며 힘차게 화계중학교 동아리지원사업의 첫 문을 열다!!
ᆞ분야별 문화예술교육 & Party : 7.31-8.5 오픈캠프 후, 분야별 활동이 시작됨. 방송반은 그동안
ᆞ분야별 전문강사 연계 : 5월~
접해보지 않았던 라디오 방송을 만드는 것을 통해 방
밴드반, 도서반, 댄스반, 방송반, 학생회, 자유활동반
송반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등 총 6개의 지원동아리에 각 분야별 전문강사를 연
되었고, 댄스분야는 모두가 하나의 주제로 안무를 만
계하여 동아리활동 지원. 10월에 진행하는 학교축제
들어 멋진 군무를 보여주다!! 풍물반도 거의 처음 악
로 이어져 단순한 기능교육이 아닌, 학교의 분위기를
기를 다루어보는 친구들이 열심히 활동을 해서 선반을
신나게 변화시키기 위한 시도!!
연주해서 구경하던 동네아저씨들까지 신이 났답니다.
* 분야별 참여강사 : 밴드 <기타리스트 최찬욱, 베이
밴드반 역시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활동을 통해 낼
시스트 이정연> / 댄스 <HJ ent. 한웅> / 도서반 <에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답니다. 분야별 활동을 통해 파
이스벤추라 임지선, 김재순> / 방송반 <에이스벤추라
티까지 이어진 이 활동은 9월 8일에 있었던 '추락'까
노재정 / 학생회 <품 유영은, 나하나> / 자유활동반
지 이어져 더욱 재미있게 진행했다는 후문!!
<품 유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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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 교 -지 역 연 계 문 화예 술 교육 사 업
2007, 품 활 동 돌아 보 기
■ 다같이 놀기 [10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는 2002년부터 시작된 '청소년
_ 9월 8일 l 강북구청 앞
문화복지아카데미'의 다른 이름입니다. 변화와 실천의 의지가 있는 숨은 청년들을 적극적으로 발굴・지원하
1998년부터 진행된 아이들이 직접 만드는 축제, 강북
고자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라 그 이름을 달리하고,
청소년문화축제 '추락'이 열 번째 생일을 맞이하다!!
변화와 실천을 고민하는 별종 청년들과 함께 하였습니
열 번째 생일을 맞아 추락이 처음 시작했던 강북구청
다. '청년'의 부름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가지고 모인
앞마당에서 올드 노올자와 2007년 청소년문화활동지
전국 5개 지역, 6개팀, 30여명이 참여하였으며, 두 번
원사업에 참여했던 아이들과 강사, 청소년문화기획단
의 교육과정 이후, 각 지역의 아이들과 다양한 '문화실
세 개와 개밥그릇, 강북·도봉·노원지역의 학급들이
천'을 시도하였습니다.
모여 신나는 축제를 치뤘답니다!!
6기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별종 청년들의 동네난장기! 1년의 과정을 돌아봅니다.
■ 정리하고, 나누기 [동아리 지원활동 사례발표회]_ 3년간의 학교-지역 연계문화예술교육사업을 진행하 며, 기억에 남는 동아리 지원사례들을 모아 지역마당 에 펼쳐놓아 보았습니다. 동아리활동의 의미를 품의 시각으로 다시 짚어보고, 생생한 현장 이야기들을 실 무자의 언어로 담아봅니다. 아쉽게도 지역 실무자들은 많이 참석하지 못했지만, 멀리 군포, 의왕, 부천, 심 지어는 해남에서까지.. 그간 품의 활동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귀한 분들이 자리해주셨습니다. [청소년기획단 세 개 활동보고서 발간회]_ 품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며 왈왈 짖어대던 청소년문화 기획단 '세 개'가 1년 간의 활동을 순전히 자신들의 언 어로 정리한 보고서 '핫도그(HOT DOG)'를 발간했습니 다. 기획부터 인쇄까지.. 100%로 아이들의 힘으로 만 들어낸 근래에 보기 드문 '수작'이지요. 동아리 지원활 동 사례발표회가 있던 날, 걱정 많으시던 부모님들까지 모시고 발간회를 가진 세 개의 한마디!“개망신 당했 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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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기 청 년문 화실 천 아카 데 미
2007, 품 활 동 돌아 보 기
■ 오픈워크숍_ 7.22-23 l 밀머리 미술학교
■ 2차 반장모임_ 10.3 l KT&G 북부복지센터
참가자팀들이 처음 만난 자리. 공동주관단체인 밀머리
교육과정을 마치고 지역으로 돌아간 팀들의 프로젝트
미술학교에서 아카데미의 문을 열었습니다. 아카데미
에 대한 고민이 한창이던 10월, 두 번째 반장모임을
의 의도와 과정을 이해하고, 문화적 체감을 통해 아아
가졌습니다. 각각의 상황과 고민들을 솔직하게 드러내
카데미가 이야기하는 본질적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으
보이며, '우리 잘 가고 있는가?'에 대해 확인합니다. 속
로, 밀머리 미술학교의 철학과 프로그램을 결합하였습
도와 방식은 다르지만, 서로의 과정을 나누며 다시 힘
니다. 참가자와 STAFF의 구분없이 모두가 함께 참여
을 얻어봅니다.
하고 체감하며, 소통을 시도해봅니다. ■ Culture Action with Youth!_ 9월-12월 l 각 지역 ■ 1차 반장모임_ 8.4 l 품 부산에서, 청주에서... 6개 팀의 반장들이 품에 모였습
대학팀, 실무자팀 할 것이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었던
니다. 아카데미의 과정은 일방적 지원이나 수동적 참
것 같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원점으로 돌아
여가 아닌, 쌍방의 준비와 소통의 준비로 이루어짐을
오기를 여러 번, 지지부진한 과정 속에 위험했던 순간
강조합니다. 오픈워크숍에 대한 팀별 평가와 진행상황
들을 함께 극복해 낸 6개 청년팀들이 저마다의 색깔대
들을 나누고, 다음 과정인 컬쳐캠프를 위해 함께 준비
로 '아이들과의 동네난장'을 시도해봅니다.
해야 할 것들을 논의합니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한다는 부산[점프]_ 별 같은 아이들의 이야기 '별별축제'
부담감을 버리고, 무엇을 하기 위한 과정을 충실히 할
2007.11.10l 반송동 건영아파트 놀이터
것을 약속하며.
부산[완소나비]_ 지친 아이들에게 웃음을 주자! '라라라 프로젝트' l 2007. 10-11월 l 양산여고 외
■ 컬쳐캠프_ 8.21-24 l 신기학교 공동주관단체인 신기학교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신기의
서울[동네]_ 동네 소통을 위한 시장프로젝트
철학과 공간, 생활방식을 그대로 체험하며, 새로운 방
'동네와 시장수다' l 2007.12.8 l 백운시장 일대
식의 교육프로그램을 시도해봅니다. 청년으로서의 고
서울[SEXIT]_ 일상 속 성적편견에 딴지 걸기
민과 선험들을 함께 나눌 강사들을 모시어, 이야기를
'미녀들의 수다' l 2007.12.22 l 인천 가정집
들어봅니다. 연극놀이 해마루의 손준형, 문화기획자 아
청주[자립청년당]_ '청소년 사장되기 프로젝트'
랑과 반전, 예술가 김월식 선생님이 강사로, 심한기
2007.12.21 l 청주 산남종합사회복지관 앞
(품), 박찬국(밀머리미술학교), 김지나(공공문화개발센
괴산[신난다]_ 괴산청소년문화캠프 '우리동네 신난다'
터 유알아트), 목윤지영(신기학교) 선생님이 팀별 슈퍼
2008.1.3-5 l 괴산 신기학교
바이져로 함께 해 주셨습니다. 먼저 놀아보고, 일상의 예술이 되어보기도 하고, 나의 문화로 나눔시장을 벌
여느 때보다 다양해진 주제와 실천들이 눈에 띕니다. 청
여보기도 하며.. 이후 활동의 단서를 찾기를 시작합니
년다운 고민과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시도들이 인상적이었
다.
던 6기 아카데미. 청년들의 동네난장은 가능하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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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기 청 년문 화실 천 아카 데 미
2007, 품 활 동 돌아 보 기
■ 팀별 활동보고회 [별종 청년들의 동네난장 이야기]
■ 두 번째 오~ 히말라야.
_ 12월 29일 l 서울
_ 2007.1.29-2.12 | 랑탕 및 카트만두 일대 품의 주주, 청소년, NGO 활동가 등 총 32명이 참가
'별종 청년들의 힘! 아이들과 동네난장은 가능할까?'
한 '두 번째 오~히말라야' 첫 해의 입소문으로 더 많
6기 아카데미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처음 질문에 대 한 대답을 찾아봅니다. 무엇보다 가치있다 느껴지는 것은 어느팀 하나 길고, 더디고, 쉽지 않은.. 그 어렵
은 관심들을 보였고, 품이 활동하고 있는 지역의 활동
우리동네 신난다
가들이 함께 해 그 의미를 더했습니다.
다는 소통의 과정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고, 그 과정을
이번 '오~ 히말라야'에서는 네팔 학교방문과 즐거운 1
통해서 자기 색깔을 찾고, 기꺼이 그것을 실천에 옮겼
일 댄스워크숍도 진행 되었습니다. 단순한 트레킹과
다는 사실입니다.
관광이 아닌, 사람과 자연의 만남. 앞으로도 '오~ 히 말라야'로 행복한 이음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아카데미 6년, 팀별 프로젝트를 지원한지는 3년. 올해 의 결과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보다 다양해진 시도와
■ 제2차 한국-네팔 문화예술교육워크숍
팀웤, 그 가치를 발견하고 긍정하는 과대평가 모델도
_ 2007.5.21-25 | 카투만두 외
놀랍지만, 각각의 상황 속에서, 이뤄낸 과정과 결과가
2007년 두레품 여름호 '히말라야와 품'에 자세히 전달
더욱 그러했습니다.
된 적 있었던 워크숍. 새로운 강사와 새로운 분야의 시도,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을 공감하기 위한 체험중 ■ 6기 아카데미, 그 후...
심, 참가자들이 네팔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으
현재 6기 아카데미에 참여했던 청년들은 무엇을 하고
로 구성되었습니다. 총 70명의 네팔의 교사, 예술가들
있을까요? 몇몇팀은 후배들과 함께 새로운 시도들을
이 참여했고 기자회견을 통해 네팔 언론들의 높은 관
고민하고 있으며, 졸업반이었던 친구들은 취업을 했다
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양국 간의 수평적인 소통, 문
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실무자들팀은 대체로 다음에
화와 예술을 매개로 한 진정한 문화교류에 대한 고민
대해 정해진 계획은 없지만, 지역에서 계속 만날 사람
들을 지속해 나갈 예정입니다.
들이니, 아카데미의 경험이 서로에게 좋은 자극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봅니다.
■ '사람사랑 나눔학교' 네팔문화교류 l 2007.6.7-14
2007년 6기 아카데미를 끝으로, 품은 정리와 다시 시
(재)청소년과 사람사랑에 소속된 장애 청소년 대안학교인
작을 위한 쉼을 가지려합니다. '문화적으로 살아가기
'사람사랑 나눔학교'가 네팔에 방문하였습니다. 공연중심
참 어려운 세상에서, 내가 물들지 않고, 물들일 수 있는
의 교류방식을 넘어서기 위해 네팔공립학교에 문화예술을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
매개로 한 문화교류를 시도했고,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편
을 던져봅니다. 안으로의 공부와 나눔을 실천하며, 그를
견의 시선을 배제된 곳에서 네팔의 아이들과 즐거운 일주
위한 단서를 찾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일을 보냈습니다. 이 만남을 통해 (재)청소년과 사람사랑 과의 네팔문화교류 사업을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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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문 화 교류 사 업
2008, 품 은 지금 !!
■ Happy School Project
1월에만 무려 3개의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 덕에 거의 모든 직원이 네팔로 출장! 심지어
_ 2007.6-8 | 네팔국립예술대학생 20명, 나눔학교 참여
는 네팔에서 연수를 가지기도 했답니다. ^^ 2008년 1월부터 3월까지 네팔 문화교류사업 소식
나눔학교 네팔문화교류 프로그램의 일부였던 Happy
전해드립니다.
School Project는 단순한 프로그램을 넘어선 것이었습 니다. 네팔 공립학교는 매우 열악하여 학생들을 보내
하나. 세 번째 '오~ 히말라야' | 2008.1.2-16 l 27명과 함께 한 여행
기 싫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 또한 매우 무기 력합니다. 여기에 형식적인 문화교류를 넘어서고, 학교 꾸미기가 아닌 문화예술을 매개로 한 행복한 학교로
예상치 못한 비행기 회항으로 하루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하늘버스'를 타는
변화하기 위한 시도를 했습니다. 결과는 매우 놀라웠
것으로 여행을 시작합니다. 버스 위에서 보는 히말라야는 일품(?)이지요. ^^ 한 발짝이 어려운
습니다. 교사들의 변화, 학교를 위한 지역사람들의 자
다리, 씻기 어려운 차가운 물, 입에 맞지 않은 음식, 고소.. 각자마다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하
발적 참여, 네팔청년들의 자발적인 활동조직 구성 등
다, 히말라야와 마주합니다. 자연 앞에,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조금씩 자신과의
품은 학교의 변화, 지역사회의 변화 가능성을 알 수
만남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여행의 묘미일까요? 모두들 자신의 마음속의 산과 마주합니다.
있었던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예상치 못한 (행운의) 사건 중 하나는 랑탕에서 일 년에 한번 문을 여는 곰 파(절)을 방문한 것입니다. 마을에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셔 랑탕에서는 고인의 환생을 비는
■ 셋넷학교 "평화야 놀자"
축제를 열고 있었습니다. 야크버터로 만든 초를 꺼지지 않게 켜두고 밤새 마니차를 돌리고 불
_ 2007.10.25-11.8 | 랑탕트레킹 및 학교교류 프로그램
경을 외며, 한편으론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울기도 하는.. 외국인에게도 술과 함께 춤출 것을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셋넷학교'가 남한청소년과 서로
권하는.. 마치 우리네 굿판과 비슷한 랑탕곰파의 축제. 마침 그 날 생일을 맞은 체왕(심한기선
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남북 청소
생님의 세르파 이름)은 세르파 친구들이 몇 시간에 걸쳐 만든 케잌과 함께 그들의 마음을 담
년들이 함께 히말라야로 8일간의 트레킹도 다녀오고,
은 축복의 노래를 선물 받았습니다. 그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는 그의 말이 기억나는군요. 이어
네팔청소년들과 1박 2일로 자유여행을 다녀오면서 한
지는 우리만의 작은 축제. 함께 춤추고, 웃으며 그렇게 히말라야의 많은 밤을 보냈습니다.
국과 네팔의 문화를 서로 나누고, 남북의 청소년의 문 트레킹이 끝나고 카트만두로 돌아온 일행들은 달콤한 휴식을 취한 뒤, 2박 3일간의 자유여행
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을 떠났습니다. 누군가는 네팔의 고대도시로, 어떤 이는 비행기를 타고 포카라로 떠났습니다. 어떤 일들과 마주했을지는 모르나, 분명 모두가 자유로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 아름다운 재단 '변화의 시나리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 사업선정
마지막 파티에는 역시 가족 같아진 세르파 친구들을 초대했습니다. 짝지인 세르파에게 알맞은
지속적인 네팔과의 교류를 위해 만든 네팔 품. 재정적인
이름을 지어 선물하기 위한 핑계로 참가자들 사이에서 기획된 히말라야 어워드! 킬링 스마일
문제가 쉽지 않았는데, 품의 활동에 공감하여 네팔 품의
상, 핸섬상 등.. 유쾌한 이름과 함께 정성을 담아 아쉬움을 달래기도 하며. 산에서의 하모니카
운영과 청년을 키우기 위한 프로젝트 비용을 아름다운재
와 머더라는 리듬악기에 맞춰 또 한바탕 댄스파티가 열렸지요. 그렇게 마지막 밤을 보내고 한
단으로부터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위원회로부터 08
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한 달여 만에 '후속모임'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습니다. 검게
년도 제3차 문화예술교육워크숍을 위한 사업비를 2년 연
탄 얼굴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지만, 모두들 히말라야의 향기는 점점 진하게 났습니다. 품이 경
속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한-네팔 간 수평적인 소통과
험한 네팔의 문화, 자연, 그리고 사람의 향기를 품의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
진정한 문화교류를 위해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오~ 히말라야'는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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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문 화 교류 사 업
2008, 품 은 지금 !! 두울. '히말라야에서 확인하는 가족사랑 여행' | 2008. 1. 14 ~ 23 영등포 청소년문화의집, 품 공동 주관
[ To. 히말라야에게... 노기호. 중1.] 히말라야야 그동안 잘 있었니? 우리가 만난 지도 1개월 정도가 됐네. 널 만나기 위해 탔던 비행기는 정말 지옥과도 같았어. 카트만두 행 비행기는 비행기에 문제가 있어 돌아오고, 비
지난 해 나눔학교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재)청소년사람사랑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져, 올해는
행기 안은 덥고.. 하여튼 좀 그다지 좋지 않은 여행의 시작이었지. 하지만, 가고 나서는 좋
같은 재단 아래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과 네팔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히말라야에서 확인하는
은 일이 더 많았지. 예를 들어 사람들, 새소리나, 곤충소리, 계곡물 소리, 그리고 따스한 햇
가족사랑 여행'이란 이름으로 진행된 이번 프로그램에는 10가족, 총 27명이 함께 했습니다.
볕과 길고 높은 장엄한 산등이 보기 좋았어.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네가 가지고 있는
여기 아니면 어디서 받아보겠냐며 큰 소리로 웃으시는 어머니들의 목에 걸린 꽃목걸이에 네팔
아찔한 케이블 다리였어. 만화나 TV에서만 나오는 그런 다리가 나는 신기하기만 했어. 샤브
에 대한 생소함은 설레임으로 바뀌었지요.
르베시인가, 툴루샤브르베시인가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경치가 정말 좋았어. 특히 계곡물
나눔학교에 이어 다시 방문한 모노허라스쿨에서는 한국의 가족들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작은
이 인상적이었어. 같이 온 사람들은 모두 다 좋았어. 그렇기 때문에 더 좋은 여행이 된 것
꽃다발을 전해주었습니다. 환한 미소와 함께 신을 축복을 기원하는 띠까를 이마에 붙여주는
같았어. 다음에도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어.
그들. 주인과 손님이라는 딱딱한 선이 부드럽게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모노허라 학생들과 짧 [To. 히말라야에게... 윤영인. 초4.]
은 시간이지만, 한바탕 뒤섞여 놀며, 서로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따뜻한 미소와 찌릿한 전기
안녕. 히말라야~ 난 한국에 사는 윤영인이라고 해. 너는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지? 엄청나
를 가슴에 담고 돌아왔습니다.
게 높아서 말야. 난 그냥 평범한 아이야. 넌 너무 커서 내가 가기엔 너무 힘이 들었지만, 덕 분에 큰 추억이 되고 자랑거리가 되었지. 그리고 4,500m에서 내려다본 경치는 환상적이었
다음에 찾아간 곳은 역시 히말라야입니다. 가족들도 하늘버스를 타고 랑탕계곡으로 향했습니
어. 또 세르파하고도 가까워지고 칭찬도 많이 들어서 더 좋았어. 고맙다. 그럼 이제 Bye~
다. 사람들이 가쁜 숨을 들이 마시며 히말라야의 길을 걸고, 발에 치이는 돌들을 보며, 마니차 와 쵸르텐을 보며,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어떤 시간들을 보냈을까요. 한국에 돌아온 지금 향기가 더더욱 찐해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해봅니다. 짧은 트레킹을 마친 뒤에는, 가족들 간의 쉼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가고 싶었던 곳에 직접 여 행도 가고, 선물도 고르며 마지막 자유시간을 한껏 즐겼답니다. 아쉬움이 늘어만 가고, 아이들 은 한국에 가기 싫다며 자기를 두고 가라 외칩니다. 마지막 파티는 세르파 친구들과 함께 합 니다. 정성을 담은 작은 선물도 드리고, 음식도 나눠먹고, 아쉬움을 안주삼아 이야기를 나누고 그 흥에 춤 같이 추었습니다. 영등포 청소년문화의집의 모든 가족회원이 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참여한 가족들이 영등포 문화의집의 다른 가족회원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문화의집 직원들도 새로운 경험과 에너지를 받았지요. 품 또한 네팔에서 가족을 대상으로 한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준비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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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문 화 교류 사 업
2008, 품 은 지금 !!
세엣. '한국-네팔 청소년 희망나눔 프로젝트' | 2008. 1.24 ~ 31 CJ 나눔재단이 주최하고, 품과 NGO PUM in NEPAL, 도너스캠프가 공동주관하여 만들어진 "한국-네팔 청소년 희망나눔 프로젝트"는 대학시절, 품에서 자원활동을 하였고, 현재 CJ 나눔 <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Happy Vibration >
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는 품 주주 조정은님과의 인연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형태와 색깔은 조금씩 다르지만, 지난 해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얻은 절망과 희망을 거름삼아,
이번 "한국-네팔 청소년 희망나눔 프로젝트" 새로운 시도가 참 많았어요. 처음으로 카트만두
초기과정부터 많은 고민과 준비를 하였고, 적지 않은 예산과 함께 CJ와 품, 현지 네트워크 단
를 벗어나 다른 지역을 찾았고, 학교를 넘어 지역단위와 만남을 시도했으며, 프로그램면에서도
체의 활동가들까지.. 꽤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정을 함께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경험이었습니다.
희망나눔 프로젝트에 함께 한 행운의 주인공들은 CJ 나눔재단에서 지원하는 전국 공부방 아이
프로젝트가 진행된 '헤떠우라' 지역은 카트만두, 포카라와 삼각을 이루는 지점에 위치한 중간
들 중 선발되었습니다. 프로젝트의 성격상, 무엇보다 자발적인 참가의지와 교류에 대한 동기가
도시로, 카트만두에서는 버스로 6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도시보다는 지역이 살아있는 시골을,
있는 아이들을 선발하고자 하였고, 전국 17개 공부방 33명의 아이들이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경험이 있는 학교보다는 서로가 처음인 설레임을 만끽할 수 있는 새로운 학교를 원했기에, 긴
전국에서 모인 33명의 아이들은 같은 지역 공부방에서 온 친구 한둘을 제외하고는 전혀 안면 이 없던 상태라, 우선 이들끼리 교류가 먼저 필요했어요. 또한 곧 만나게 될 네팔과, 네팔의 아이들에 대한 이해, 함께 나눌 것에 대한 준비가 없이는 진정한 교류가 될 수 없음을 확인했 기에 한국에서 먼저 3박 4일간의 사전캠프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동시간에도 불구하고, 헤떠우라를 선택했답니다. 네팔 활동을 하며 만난 현지 NGO "Nepal Educational Support Trust"(NEST)가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학교(프리자왈스쿨)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헤떠우라에서 함께 한 4일간은 무척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프로젝트 첫날, 긴 여행에 지친 한 국의 희망나눔 친구들은 네팔 측 교사와 학생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프리자왈 학교에 도 착했어요. 양측의 인사말과 축하공연을 나누고, 네팔과 한국의 아이들이 처음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이었지요. 모둠별 인사를 나누며, 자기 짝과 무슨 이야기든 해보려고 안 되는 영어에 손짓 발짓을 총동원해봅니다. ^^
< 사전캠프ᅵ2008.1.3-6. 도봉숲속마을 >
한국에서 아이들과 복작거리는 동안, 네팔에서도 준비가 한창이었지요. 모든 것이 더딘 네팔.. 그 와중에도 눈부신 성장을 자랑하며, 든든하게 자리한 그들이 있었으니, 바로 쥬넬리(보라. PUM상 근활동가)와 상게(네팔청년.전PUM상근활동가), Happy Vibration(2차 워크숍으로 인연이 된 예술 학교 청년들. 자원활동가 그룹 HV를 만들어 품과 함께 활동하고 있음)입니다. 네팔 측 참가자 모집부터, 현지답사, 사전준비까지.. 그들이 아니었으면 불가능 했을 일들이 무척 많았답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 중 하이라이트였던 벽화작업을 직접 기획하고 준비한, HV의 성장 은 무척 놀라웠어요. 교사와 아이들을 먼저 만나고, 우리의 의도를 전달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캔버스에 머물러 있던 젊은 예술가들의 붓이 세상으로 나오고 있음을.. 조심스레 확신해봅니다.
둘째날 오전에는 안 되는 영어도, 프로그램도 필요가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서로의 전래놀이 를 함께 해보며, 신나게 놀아봅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모둠 친구들과 함께 '동네한바퀴'를 시도 해봅니다. 네팔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들을 만나고, 서로가 바라본 일상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 고자 했던 의도는 충분히 실현되지 않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과 그 상황에 대처하는 서로의 모습을 통해 작게나마 '다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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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문 화 교류 사 업
2008, 품 은 지금 !! 헤떠우라에서의 마지막날 아침. 아쉬운 밤을 함께 보낸 아이들이 다시 프리자왈 학교에 모였습 니다. 지난밤의 이야기들을 묻느라, 이메일 주소를 나누느라 헤어짐의 시간은 짧기만 합니다. 준비해 온 선물들을 나누고 마지막 인사를 합다. 언제 다시 될지 모르는 만남을 기약하며, 까만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힙니다.. 카트만두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만남 이래 가장 긴 침묵이 흐릅니다. 어떤 녀석들은 아쉬움에
셋째날은 이번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 '벽화작업'이 있었어요. 벽화작업은 지역의 아이들을 위
말을 잇지 못하고, 어떤 녀석들은 영어공부를 해야겠다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헤떠우라에서의
한 공간으로 짓기 시작했으나, 열악한 정부지원 속에 방치되어 있던 'Children Park'에서 진행
만남과 네팔에서의 시간을 정리하며, 한 녀석은 '가난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가
되었습니다. 주제는 'Happy Village', '행복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난한 나라 네팔에 대한 상대적 위안만은 아닌 듯 합니다. 한국에서도 쉽지 않은 환경의 아이
질문을 던져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돈, 땅, 물, 공기, 교육(학교), 교통 등
들.. 그들이 만난 네팔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다른 희망들이었을까요. '언젠가 스스로의 힘
물리적인 요소들부터 대화, 소통, 사랑, 평화 등 가치적인 요소들까지 아이들의 생각은 다양했
으로 꼭 다시 네팔에 오겠노라'고 힘주어 말하는 녀석의 눈에 작지만 위대한 '희망'이 빛납니다.
어요. 행복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골라 짝과 함께 벽화의 밑그림을 그려봅니다. 우리의 HV가 밑작업한 하얀 벽이 하나씩 채워집니다.
카트만두로 돌아온 희망나눔이들은 네팔의 자연과 문화를 맛보며, 짧고도 길었던 여행을 정리 벽화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Children Park 운동장에는 마을 사람들의 걸게 작업이 한창이었어 요. 재미난 글귀와 다양한 그림들로 10m 걸게 두 개가 빈틈없이 채워졌습니다. 벽화가 완성되 고, 한바탕 마을 잔치가 벌어지자, 공원 울타리 밖에까지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한 국과 네팔 친구들이 준비한 공연을 보여주었고, 프리자왈 학교 교사들과 HV도 멋진 연주와 노 래를 들려주었어요. 날은 어두워지고.. 계획에 없던 흥겨운 춤판이 벌어집니다. 예상치 못한 상 황에 진땀이 나는 순간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나는 모양이에요. 정신없는 속에 준비 한 저녁을 함께 한 뒤, 헤떠우라에서 마지막 밤, 네팔 친구들 집으로 홈스테이를 떠나 봅니다.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곳에 아직 정리할 것이 남았던 품님들은 네팔 공항에서 아이들과 아쉬운 이별을 나누었고, 새벽에 서울에 당도하여 남은 1박을 채운 희망나눔이들은 칼바람에 눈물을 펑펑 날리며, 다음을 기약했다는 후문입니다. 다른 문화를 만나는 것처럼, 다른 조직을 만나고 함께 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 부족함과 아쉬움이 남지만, 서로 다른 조직과 사람들이 함께 일하기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값진 경험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진정성을 나눌 수 있는 현지 단체를 만나고, 수동적이었던 청년자원활동가들이 제 역할을 찾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품에게 또 다른 가능성으로 다가옵니다.
짧은 지면에 긴 이야기 담아보았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품 홈페이지 소식나눔에 연재된 '해피스토리' 1,2,3편을 참고하세요. www.pumdong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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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문 화 교류 사 업
2008, 품 은 지금 !!
■ 2008년 한국-네팔문화교류사업 준비 중!
■ 지역청소년문화놀이터(강북청소년문화존) 작전 상황
올 초 진행된 프로젝트들을 정리하며, 올해 진행할 사업들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
작전 하나. 뼈대를 잡아라!
네팔 품에서는 올해 새롭게 식구가 된 이하니양의 터잡기가 한창이며, 2년 간 함께 했던 이보라
청소년문화존 그 전체 그림을 위한 뼈대잡기를 하였답니다. 그동안 품에서 했던 지역문화운동의 활
양은 3월로 네팔품 활동을 마무리 하게 됩니다. 네팔품 사무실도 보다 넓은 공간으로 이전하여
동이 이어지고 확장 될 수 있는 그림도 그리고 품이 생각하는 청소년문화존의 컨셉 잡기를 하였지
새단장 중이에요. 새로운 사무실에는 자원활동가그룹 HV을 위한 모임터도 마련할 예정입니다. ^^
요. 그래서 나온 것이 지역청소년문화놀이터(가칭)입니다.
• 제3차 한국-네팔 청년문화실천 워크숍 - Nepal Side | 5월
작전 둘. 작전회의!!
문화예술교육워크숍이었던 사업명칭을 청년들의 실천을 강조하여 '청년문화실천'으로 바꿉니
강북구청과 컨셉에 대한 작전회의, 문화존 활동의 거점에 대한 작전회의를 하고 동네에 있는 단체
다. 현재, 공동주관이 예정되어 있는 TYA(Today Youth Asia)와 논의 과정에 있고 한국과 네
와 같이 하기 위한 준비 작전회의도 하며 작전준비를 하였고 청소년문화기획단 '세 개'와도 함께 하
팔의 저널리스트, 유스 리더, 사진작가, 영상 작가, 예술가 등 8명씩을 모집할 예정이입니다.
기 위한 작전모임을 가졌습니다.
말과 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 프로젝트까지로 기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회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청년들의 에너지를 희망합니다.
작전 셋. 연합작전!! 시작하는 날도 정해보고, 지역에 알리기 위한 작전도 생각해보고, 준비일정도 만들어보며 작전준비
• 제3차 한국-네팔 청년문화실천 워크숍 - Korea Side | 7월 (예정)
에 한창이었습니다. 그리다 청소년들의 일상공간인 학교와 함께 하기 위한 작전도 짜고 옆 동네와
이번 워크숍은 네팔에서만 진행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국에 네팔 청년들이 방문하여,
함께 하기 위하여 연합작전 계획을 세우고 있답니다.
서로의 문화를 수평적으로 나누며 한국에서 역시 실천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작전 넷. 돌격 앞으로 바로 직전!! • 아마추어 오케스트라팀 네팔 방문 예정 | 9월
그동안 작전회의 하고, 연합작전도 짜고, 상상도 하고, 그림을 그렸다면 이것들을 잘 정리하고 잘
교사, 의사 등 40여명이 음악이 좋아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과
흐르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상상을 더 해야 하는가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네팔의 음악가들이 모여 콘서트도 하고, 아이들을 만나며 교류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지역청소년문화놀이터 만들기 작전이 공개됩니다. • 한국-네팔문화교류사업 보고서 제작 | 10월 네팔과의 문화교류활동이 3년을 맞이합니다. 3년간의 활동내용을 중심으로 성과와 한계를 평 가하며, 앞으로 방향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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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북 청소 년문 화 존 ․ 주주 &나눔 사 업 ■ 주주&나눔 사업
2008, 품 은 지금 !! 생각과는 다른 현실을 이야기하며 '어떻게'를 묻는 우리들에게 그는 "현실과 상황을 탓하지 말고, 나만 잘하면 된다"고 합니다. "다만 근간을 지키며, 소박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 그것이 사회사업
• 주주콜로키움 첫 문을 열다!
의 시작입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지난 3월 28일 금요일, 첫번째 주주콜로키움이 문을 열었습니다. 첫 주주콜로키움은 열두분의 주주
사회사업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이 무엇이냐고 묻는 우리들에게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특별
들이 참여한 가운데, 창동청소년수련관의 작은 모임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한 자질과 기술이 필요합니까?"라고 합니다. 이는 비단 사회사업가 뿐 아니라, 사회를 함께 살아가
첫번째 이야기손님으로 초대된 한덕연 선생님께서는 수년간 사회사업에 대한 고민과 경험을 정리한 '복지요결'을 바탕으로 사회사업의 근간이 되는 철학과 개념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질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회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이 살아있는 곳. 사람된 도리를 다하며 살고 있습니까?" 첫번째 콜로키움을 열며, '진짜 중요한 준비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주주콜로키움 을 '사람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열린 이야기마당'이라 소개하며, 정작 스스로는 만남과 이야기를 위 한 준비가 부족했음을 반성합니다. 또한 콜로키움이 진정 이야기마당이 되기 위해서 어떤 준비가 필요한 것인지 확인해봅니다. 부족하지만,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어 의미있는 시작이었습니다. 강대근 선생님과 함께 하는 4월 콜로키움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탈출”은 4월 19일 토요일에 진 행될 예정입니다. 주주콜로키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콜로키움 카페를 참고해주세요. ^^ http://cafe.pumdongi.net/jujucolloquium.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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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특집.
̇ ̇ 별종
청년
동네 이야기
실천의 시작을 위하여 모이다.
항상 상상과 고민만 하고 말았던... 무미건조한 일상에 지쳐있던... 다섯 명. 상상을 펼칠, 고민의 끝을 맺을, 일상에서의 새로움을 찾기란 어려울 것 같았던 다섯 명.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를 만나다. 이거 괜찮지 않냐? 한번 해보자! 이리하여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라는 핑계로 품의 자원활동가 다섯 명이 모이다. 평소 품 을 통해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가 다소 촌스럽지만 정감 있는 동네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우리가 먹고, 자고 활동하는 우리 동네에서 무언가 재미있는 일을 작당하고 싶은 상섭! 동환! 영은! 세 명의 별종들이 모였다가 역시나 상상과 고민의 늪에 빠져 재미없는 일상 에서 새로운 것을 찾고 있던 정연과 지원이 합류함으로써 비로소 한 동네가 되다.
두 번의 캠프. 실천을 위한 동네 상상을 꺼내기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과정에서 두 번의 캠프를 다녀오며 색다른 경험을 맛보다. 캠프 안의 여러 주제들에 대해서, 느낀 것들을 팀원끼리 나누면서 서로 다른 이해와 소통구조 들이 있다는 것과 활동의 근거에 대한 부족을 느끼다. 청년이란 무엇인가? 지역사회에 서 어떤 실천이 가능한가? 와 같은 질문들을 반복하다. 결국 무거운 분위기의 절정에 도착. 활동 근거를 위해서 깊고 무거운 과제들_ 지역사회, 청소년, 문화, 재래시장 등에 대한 포괄적이고 깊은 근거찾기_을 통해 내부세미나부터 시작하자는 열의를 불태워보지 만 곧 계획들을 실행하기에는 너무 바쁜 현실에 부딪히게 되었다. 분위기가 점점 늪 속 으로 빠질 때쯤 슈퍼바이저에 고민을 털어놓으며 지금까지 잡은 계획을 전면 수정하게 되었다. 슈퍼바이저의 조언으로 활동 방향에 대한 고민들이 한결 정리된 동네 팀은, 소 통과 고민은 많았지만 부실공사가 되어버린 근거찾기의 기초공사에 돌입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끼리의 시간을 가져보고 더 깊이 있는 생각들을 나누며 활동의 기반을 잡 기 위한 엠티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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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원정. 동네,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하다
엠티가자! 슈퍼바이져의 조언을 통한 동네 팀의 논의방향 ▷ 키워드를 가지고 개인이 생각하는 동네팀의 선언문(방향) 상상 ▷ 실천을 위한 동네의 실천 키워드 상상 ▷ 업무 분담이 아닌 역할 나눔을 위한 상상 ▷ 개인이 원하는 것,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 활동이 드러났을 때의 사회적 의미를 생각해 보시오. ▷ 프로젝트 후의 동네, 발전적인 해체를 할 것인가? 이어갈 것인가? 후배를 키울 것인가?
강촌으로 떠난 동네. 동네의 재탄생을 위하여 소통에 대한 고민을 하던 동네는 문자나 메일이 줄 수 없는 따뜻한 느낌의 소통을 어떻 게 전달할까 고민하다 00시장을 떠올렸다. 아카데미 컬쳐캠프 때 강의주제였던 '문화로 놀이짱'의 '00시장'이 우리가 생각하는 소통의 가치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하 였다. 보이지 않는 자신들의 소중한 가치를 나누는 '광장'의 개념을 가지는 00시장에 매 력을 느꼈고, 동네의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기 전에 00시장에서 일종의 '실험'을 해보 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럼 00시장에서 뭘 하지? 소통.. 소통? 어떻게?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부터 동네의 모든 것을 재조명하고 우리가 핵심으로 생각하는 단어들을 우리 식으
고민 끝에 문자나 메일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요즘의 소통방식을 대신할 거리를 찾다
로 재해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체적으로 6하 원칙을 이용한 기획회의를 통하여 개념
간단하고도 쓰는 이의 마음이 담긴 엽서를 전달해주는 우체통의 역할을 하기로 합의하
정립의 시간을 가져 보았고 결국 코피 터지는 밤샘 회의 끝에 동네의 슬로건과 우리가
였다. 그리하여 품의 전폭적 물품 지지 아래 홍대에서 벌어진 '동네와 엽서 한 통으로
하고 싶은 일을 다소 추상적이나마 정리해보았다.
소통하는' 시간! 말하지 않아도.. 동네와 엽서 한 통으로 소통하기. shall we 통통?
☆ 동네의 재탄생 = 동네의 재해석을 통한 동네 개똥철학!! 동네는 우리가 갖고 있는 재미있는 상상을 꺼내어보고, 우리 동네의 새로운 일상 추구와 내 삶의 방식을 찾으며,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닌 실천하는 청년이 되기 위해 모였습니다. 동네는 일상의 소통을 위해 동네를 재발견하고 생동감을 불어넣으려 합니다.
☆ 동네 통통.... 그 이후 눈에 보이는 결과로 말한다면...동네의 홍대 원정은 말아먹고 온 셈이다. 대박 나게 많 이 팔리는 것은 상상 뿐이었고 오히려 적자가 났으며, 내부적인 준비도 아주 완벽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공공시장의 실험을 통해 우리 활동에 스스로 탄력을 받았고, 옆 가게와 지나가는 사람들, 엽서를 만들러 찾아온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소통이라는 것에 대해
* 동네가 생각하는 소통과 재발견, 생동감? 소통이란 ∞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언어나 생각, 가치 등을 나누는 것
다시 한 번 즐겁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시장'이 가지는 매력에 다시 한 번 푹 빠
재발견이란 ∞ 공간, 가치, 사람 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서 나누는 것
지게 되었고, 우리들이 자주 가는 시장에서의 소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
생동감 불어넣기란 ∞ 일상에서 사람들이 소통하며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동네의 분위기
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며 많은 사람을 만남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주로 하는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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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안녕하세요, 이거 얼만가요? 수고하세요' 정도이나, 이 대화와는 조금 더 다른, 깊이
☆ 동네와 시장수다 들어갑니다요~!
있는 소통을 통해 시장이 활기차고 즐거워질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리고 우리들
뭘 그리 할 얘기들이 많은지.. 조잘조잘 쉴 새 없이 수다를 이어가며 시장 상인협회 부
이 자주 가는 품 어귀의 '백운시장'에서의 즐거운 움직임을 상상하고 시도할 준비를 시
회장님의 떡집에서 나누어먹을 떡을 부탁드리고, 한집 한집 인사드리며 홍보하기를 일주
작하였다.
일. 때때로 아이들의 앞날을 걱정하시며 다가오는 새로운 세상에 공부 안하고 뭐하냐는 꾸지람을 하기도 하셨건만,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사무실에 온 아이들은 시장과 품 사무 실을 들락거리며 이것저것 만들어낸다. 빈 상자를 모아다주시며 잘해보라는 응원은 하루
동네와 시장 수다 start! 동네가 동네를 만나다.
종일 고생 끝에 먹을 것이 컵라면과 과자 몇 봉지가 전부여도 배부르게 만들어준다. 동 네도, 수다도 즐거운 준비기간. 며칠 안 남았다! 아싸~
☆ 동네 아이들과의 즐거운 만남
☆ 슈퍼바이저와의 두 번째 만남.
한편,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과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중, 공개적으로 모집하여 실행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현실적으로 너무나 촉박한 일정이 어서 품의 활동을 하며 만나는 아이들에게 제안하여 함께 해 보자는 이야기로 바뀌었고, 곧바로 이들에게 제안을 하여 곧 동네 5명과 동네 아이들 8명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 다. 진지하게 그러나 간단한 동네 소개와 과정, 그리고 앞으로 하려 하는 일에 대한 프 리젠테이션을 하였고, 고맙게도 아이들이 우리의 생각에 동의하고 관심을 보여 청소년기 획단 '수다'를 꾸려 활동 할 계획을 세웠다.
: 바쁜 일정 탓에 동네 action 이틀 전에야 두 번째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슈퍼바이저 는 다시 우리의 고민거리를 짚어주신다. 시장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즐거움, 혹은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이벤트인가, 아니면 긴 호흡으로 갈 일인가? 다시 한 번 잘 판단해 볼 것. 그리고 이번 활동의 후속작업이 필요하다는 조언과 시장 사람들에게 더 잘 다가갈 수 있는 소스를 제공해 주셨고, 이에 동네는 다시 한 번 머릿속이 깔끔해지며 탄력을 받 고 내일의 준비를 힘차게 시작하였다. ☆ 동네 Action! 시장수다 나가신다 길에 나와라!
☆ 별종 청년 ‘동네’의 프로젝트 작당 소개 “동네와 시장 수다” ☆ 동네 간판 소개
☆ 프로젝트 기획의도 및 컨셉
- 주제 : 동네와 시장 수다 - 부제 : 동네 가는 날이 장날 * 동네? 청년팀 동네, 우리 동네(지역) * 시장? 물물교환의 시장과 소통이 가능 한 장 * 수다? 소통
- 일상의 소통과 공유를 위한 동네의 재발견과 생동감 불어넣기 - 시장에 오는 동네사람들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 질 수 있는 즐거운 꺼리(소통의 계기) 만들기
☆ 동네의 당돌한 Action
☆ 하기 위한 당연한 일정 및 사전 활동
▷ 떡과 술이 함께하는 시장잔치 : 장날의 풍경. 먹고(떡) 즐길(술, 함께할만한) 꺼리가 있는 동네 시장 / 음식나누기 ▷ 5분 동안 부려먹어주세요 : 피켓을 들고 다니 며 원하는 백운시장 상점에 가서 5분간 손님 끌 어들이기 등 다양한 형태로 장사 돕기 ▷ 재활용 박스 동네 벽화 만들기 : 백운시장, 동 네 글자 디자인을 미리 해놓고 조각을 나누어 공 동작업으로 완성하기.
- 시장홍보 및 동의 : 동네 작당 홍보지 / 시장 상인협회 만나기 / 전기 사용 문의 - 함께 수다를 떠는 아이들과 사전 만남 : 일정 및 공유 / 작당에 대한 공유 / 시장홍보
드디어 12월 8일이 되었다. 동네와 시장수다들은 이른 아침부터 품 사무실에 모여 작당 모의를 시작한다. 미리 준비한 가상 시나리오를 공유하고 모두가 함께 한껏 파이팅을 외 치며 '동네와 시장 수다' 시작! 놀대로 놀아본(?) 아이들과 '시장신'이 시장의 풍요로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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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마당 한판으로 그럴듯한 시작을 하고나니 지척의 떡집에서 갓 도착한 김 모락모락
많았으나 시도하지 못했던 백운시장에서 비록 미흡한 점은 많았지만 그 생각을 실천하
떡 한판이 와있다. 1차로 떡, 막걸리와 무조건 어머니 작전으로 무장한 후, 2차 애교작
려는 의지와, 실제로 그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큰 의미가 있다는 자체
전 실시!
평가를 내렸다.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후
아들 딸, 손주 같은 아이들의 애교에 못이기는 척 활짝 웃으시며 떡도 받고, 막걸리 잔
시장에서의 활동과 활동의 연속성에 대해 여러 가지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그것을 따져
도 받고 하신다. 손에 따뜻한 오뎅국물 한 컵이며 난로 불 좀 쬐다 가라는 따뜻한 마음
보며 고민하는 중이다.
도 잊지 않으신다. 야쿠르트 아주머니는 살색 리어카 위에 떡 한접시 올려놓고 가시며 호호 웃으시고, 반찬가게 아주머니는 돼지머리 사진 위에 만원 짜리를 떡-붙여주신다. 젖은 손으로 써주신 소원지를 시장 가운데 걸고, '부려먹어 주세요~'를 외치며 눈물 줄 줄 흘리며 양파도 까고 하다 보니 한 구석에 몰려온 아이들. 떡고물을 흘려가며 고사리
Epilogue1.
동네의 제멋대로 한마디.
손으로 우리가게 그림을 그리다보니 해가 져 간다. 자. 그럼 이제 물러간다고 인사드려 볼까? 어머니~저희 물러가요~ 아이고~언제 또 오냐?
상섭 동네와 시장과 수다.....처음으로 스스로의 의지와 상상을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쏟아 부을 수 있었던 시간!! 나의 열정이 아직은 뜨겁다는
동네와 시장수다, 그 후. 동네의 추억 이어가기
것을 확인한 동네와의 시간!!
동환 ☆ 동네와 시장 수다
이념을 넘어서는 문화의 힘을 이번 아카데미에서 보았고, 느꼈다. 모든 사
원래 12월 23일에 모여 8일에 시장 사람들과 함께 작업했던 시장 간판을 모아 구조물
람을 아우를 수 있는 것이 문화이며, 그것이 문화의 힘이라 생각한다. 하지
(시장 지도)을 만들어 설치하려 했으나, 시장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즐거움
만, 나는 다시 이념과 계급을 생각한다. 그래서 별종 속에 별종이 된 기분이다. '누구를
을 줄 수 있는 형태가 나올 것 같지 않다는 고민 하에 후속 작업은 천천히 시도하기로
위한 문화인가?' 하는 물음. 나는 그 물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하였다. 대신 이 날은 추운 날 함께하며 고생했던 '수다' 아이들과 활동의 마무리를 짓는 시간으로 조절하였다. 서로에게 간단한 롤링페이퍼를 만들어 함께 전달하고, 간단한 추
지원
억의 선물을 나누며 다시 한 번 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도대체 끝나는 분위기가
직장생활의 고단함 속에 쉼표를 찾던 내게 늦게라도 아카데미에 참여
아니다. 기획단 수다는 마무리 되었는데 그들의 수다는 끝나지 않는다. 동네에서의 추억
하게 된 것은 감사한 일이다. 산더미 같은 일과 예측할 수 없는 퇴근
이 앞으로 그들이 재미있고 신나는 상상을 현실로 옮겨놓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동네
시간 때문에 많은 시간 참여하지 못했지만, 아카데미를 통해 '청년'과 '소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여러 사람들의 응원과 도움으로 '동네와
언니, 오빠들은 바라고 있다.
시장 수다'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됨에 감사한 마음이다. ☆ 시장과 동네
정연
백운시장에서의 시장 수다 이후, 시장은..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그러나, 동네와 시장수
준비하고 실행하면서 어설픈 점도 많았고 놓친 것도 많지만 끊임없이 지
다 이후 시장에 가면 전과는 달리 어르신들의 따스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고, 이분들이
지해 주고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은 품 식구들을 비롯한 시장 사람들,
이후 '동네' 활동에 대한 기대와 관심을 보여 주셨다. 동네는... 동네가 벌인 시장에서의
'수다'에게 감사한다. 이들이 함께해 준 덕분에 마무리까지 잘 지을 수
수다에 대한 평가-무엇이 잘 되었고 무엇이 안 좋았다는 식의 평가-의 시간보다는 이 시도 자체에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 합의하였다. 예전부터 무언가를 해 보자는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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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던 것 같다. 아카데미는 끝났으나 이 경험이 내 삶의 여정을 위한 오랜 걸음을 내딛어도 발이 아프지 않은 튼튼한 운동화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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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 요즘에서야 문장으로 정리된 고민거리. '나는 결국 어떤 삶을 살고 자 하는가' 이 고민이 동네활동을 하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로 조금 바뀌었다. 정말 무엇일까? 지금까지 재 미있는 상상의 작업이었다면 동네에서 이어지기 위한 실천이 남았다. 아주 어려울 것 같 지 않다. 우리들이 경험했던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에너지를 믿으므로!
Epilogue2.
동네에서의 동네의 의미.
동네... 상상만 하고 주저앉았던 5명의 삶에 각자의 에너지를 분출 할 수 있었던 기회였 다. 함께 해나가는 것에 대해 알아가고 서로 힘을 주고받으며, 상상을 현실로 옮기기 위 한 과정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던 소중한 일상의 변화를 통해 스스로 또 다른 삶의 에 너지를 나누어 가지다. 우리 동네... 동네에서의 활동이 이어지거나 동네 팀이 추구했던 소통의 확장은 아니었 다. 그러나 우리 동네에서 지내는 청년들이 지역과 지역에서의 삶을 고민해보고 우리들 끼리만이 아닌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하는 뭔가를 실험해보았다는 것에 의미를 가져본다. 또한 일상을 보내는 우리 동네에서 동네 같은 동네청년들이 움직였을 때의 가능성도 상 상해본다. 품... 품에서 활동하는 자원 활동가이자 품에서 자란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 움직였다는 것에 의미를 가진다. 동네 5명의 공통분모는 품이었고, 품을 바탕으로 활동의 폭을 넓혀 갈 수 있었다. 우리들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상상만 하는 청년들이 많을 뿐이라고 생 각하며 이런 청년들을 모아 동네 2기나 이후 활동들을 위한 생각과 준비를 하고 있다.
※ 그간 우리의 과정을 모두 쓸 수 없어서 간단하게 압축하였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품 홈페이지의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카페에 있는‘동네’를 참조해 주시 기 바랍니다. http://cafe.pumdongi.net/with-youth.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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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하나 . 주주콜로 키 움 _ 품 주주와의 소통을 시작합니다. 편안한 술자리에서 나누는 이야기보다 더 아름다운 나눔의 방식으로 주주와의 소통을
당신은 . . .
시작합니다. 이제 17살이 된 품이 잃어버린 것도 많지만, 지켜온 것도 적지 않습니다. 사회복지 정보원의 한덕연 선생님께 아주 오랜만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대뜸 농부가 가 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냐? 고 묻더군요. 그래서 '땅'이라 하였더니 하나가 더
품의 주주입니다
있다고 하시며, 그것은 '씨앗'이라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니 품에 가장 큰 '씨앗'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품의 소중한 씨앗과 같은 주주님들과 오랜 시간동안 품 의 뜻과 가치를 지지해주셨던 소중한 분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려 합니다. 일방적인 강의가 아닌 스스로의 고민과 철학을 나누며 깊은 성찰의 시간들을 만들어갈 수 있는 귀한 만남을 시작합니다. 품의 주주들과 쌍방향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 을 상상하며, 'JUJU COLLOQUIUM'이라 하였습니다. 품의 주주님들과 함께 깊은 이야 기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분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자신의 뜻과 철학을 실천하며, 많 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있는 그리고 긴 시간 품을 지켜봐주신 소중한 분들을 모시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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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콜로키움은 [소통, 문화와 예술, 교육, 청소년과 청년, 진보적 복지모델, 나의 문화
권순석(문화컨설팅 바라 대표) : 삶을 연결하는 문화예술기획
그리고 삶의 철학, 소수자의 권리와 문화, 지역사회와 마을, 국제 청년 자원활동과 엔지
조한혜정(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이제 마을이다
오 활동] 등의 이야기로 꾸며지며, 매월 빠지지 않고 진행됩니다. 올해는 월 1회로 진행
이금연(국제 엔지오 활동가) : 엔지오 활동의 진정성 또는 나의 비전 찾기(감마모델)
되며, 주주님들의 반응과 참여에 따라 2009년부터는 격주 간 진행하려 합니다.
최윤아(인투뮤지엄 대표) : 미술은... 미술관은 공공의 전유물이다 우수명(한신대 사회사업학과 교수) : 사회복지사업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매월 콜로키움의 일정과 내용은 주주메일 및 주주콜로키움 카페를 통해 공지됩니다.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지역조직 그리고 사회복지 임파워먼트
주주님들의 귀한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김민(순천향대 청소년학과 교수) : 한국 청소년정책과 청소년 활동의 계보 주주콜로키움 카페 http://cafe.pumdongi.net/jujucolloquium.cafe
이동연(문화사회연구소 소장) : 청소년문화 똑바로 인식하기 (청소년문화의 계보 찾기) 김월식(예술가) : 문화로... 예술로... 잘 노는 방법.. 김영현(공공문화기획자) : 공공문화기획이란 또는 공공미술의 탐험
_ 2008년 주주 콜로키움에 모시는 분들
이용교(광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이 시대의 복지모델 정익중(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이 시대의 아동복지 모델에 관하여
한덕연(사회복지정보원) : 복지요결 (3월)
유경(노인전문가, '죽음을 위한 준비' 저자) : 죽음을 위한 준비
강대근(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원장) : 위대한 거부 (4월)
목윤지영(신기학교 교장) : 자연이 교육이며, 자연이 학교이다
김태황(문화디자인 'Plan-B' PD) : 문화 디자인 또는 미디어와 소통 (5월)
권혁기(연극연출가) : 삶은 연극이다
안이영노(한겨례문화센터 문화기획학교 교장) : 삶을 기획하는 문화기획 (6월)
박노해(나눔문화 대표, 시인) : 바그다드의 편지
박찬국(밀머리 미술학교 교장) : 일상의 에너지와 예술의 힘 (7월)
전효관(전남대 문화예술경영 대학원 교수) : 이제 문화적 소통이 대안이다
고춘식(한성여중 교사) : 고춘식의 수첩 (8월)
이광준(문화이론가, 문화기획자) : 아케이드 프로젝트
드라마고(퍼포먼스 반지하) : 대안문화학교 '언덕을 오르는 길' (9월)
이지선(문화기획자, 한국대중음악상 기획자) : 대중음악의 승리
이준호(중국차(茶)문화협회부회장, 사업가) : 차의 문화, 그리고 경제학 (10월) 이선재(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국제 청년 자원활동의 의미 (11월) 케이피(네팔투어 대표) : 네팔의 모든 것 (12월)
_ 2009년 주주 콜로키움에 모시고자 하는 분들... 김영삼(대신고 교사) : 어느 교사의 고백 (학교는 포기해도 교육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전성민(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협력사업본부장) : 글로벌 마인드 (우물 안의 개구리는 바다를 만나지 못 한다) 최혜자(한국문화정책연구소) : 문화예술교육의 힘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유미옥(여성운동가) : 여성운동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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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둘.심 한~개의약 속
약속 셋. 품생일 시끌벅적한 생일잔치를 해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잘 안 납니다. 올해 품 17살 생일잔치는 그냥 넘어가지 않으려 합니다. 품의 모든 주주님들과 무겁지
■ 주주와 함께 하는 심한기의 맞춤 워크숍
않고, 어렵지 않고, 편안하고 즐거운 품 생일잔치에 초대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주주님들 이 품생일의 주인공이니까요. 2008년 품 생일은 6월 22일 일요일입니다. ^^
품의 주주들 중에는 품의 직접적인 일들과 연결된 분들이 많습니다. 사회복지 또는 청소년 영역에서 일하고 있거나 평소 관심이 있는 주주들을 위한 맞춤 워크숍을 준비합니다.
약속 넷. 책 이쏟 아집 니 다
그동안 심한기는 다양한 곳에서 컨설팅, 교육, 강의, 워크숍을 해왔지요. 그렇게 바쁘게 지내는 동안 정작 품 안에의 식구들과 주주님들께는 소홀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품의 뜻과 가치를 전달하는 '책' 발간을 시작합니다. 자체 보고서는 물론 공식적인 출판도 함께 시도하려 합니다.
늦었지만..,,,주주님들과 심한기가 함께 하는 '일대일 맞춤 워크숍'을 준비합니다. 사업기획, 평가, 아이디어는 물론 현장 활동과 관련해서 평소 주주님들이 고민하시는
단순한 수익사업도이나 홍보사업이 아닙니다. 주주님들과 품이 만들어 온 뜻과 가치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한 의도입니다.
것들을 심한기와 함께 풀어가 보는 '무료 과외'를 시작합니다. 네팔에서 진행될 청년문화실천 워크숍이 끝나는 5월 이후부터 진행할 예정입니다.
■ 청소년축제 10년의 가치 (가제)
사전에 신청을 받아 순서별로 진행하려 합니다. 특히 지방에 계신 주주님의 경우에는
품이 추진해온 청소년 축제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 청소년연극축제와 강북청소년문화축
심한기가 직접 찾아가 보려 합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제 '추락'은 10년이 넘게 진행해왔습니다. 10년이란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 나눌 것이 많습니다. 그동안의 과정들을 잘 정리하고, 분석해서 청소년축제의 대안적 모형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 결과물은 자체 보고서의 형식이 아니라 공식적인
■ 계속되는 무당의 접신. 네번째 ‘오~ 히말라야’
출판물로서 제작될 수 있도록 길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네 번째 오 히말라야는 오로지 공식적인 품 주주님들만 초대합니다. ■ '품 10년의 역사' 가 업그레이드 됩니다.
그동안 주주가 아닌 분들도 함께 했고, 청소년들도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내년 1월 또는 2월에 떠나는 '오~ 히말라야'는 온전한 주주님들만 초대하며,
품 10년을 기념하며 제작하였던 '품 10년의 역사'에 7년을 재추가한 '품의 역사'를 담은
좀 더 아름다운 여행을 위한 준비를 하겠습니다.
자체 발간물을 제작합니다. 현재 계획은 품 17살 생일과 맞추어서 제작하려 합니다.
평소 히말라야 여행을 가슴에 담아 두셨던 주주 님들에게는 최고의 여행이 될 것입니다. 4월 안
■ '오~ 히말라야' 그림 수필집 발간
에 안내공지 보내겠습니다.
3년간 진행해온 '오~히말라야'의 사진과 이야기를 모은 그림 수필집을 제작합니다. 책 발간에 소요되는 예산 그리고 내용 모두 '오~ 히말라야'에 참가했던 분들의 참여로
위 두 개의 약속은 온전한 심한기의 약속입니다.
만들어집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공유라기보다는 오직 '오~ 히말라야'의 참가자들과 품
만약 안 지킬 경우에는 심한기만 욕하시면 됩니다. ^^
주주님들과의 소통과 기억을 위한 책입니다. 2009년 3월 전에 제작됩니다. 주주 이창신님의 그려주신 심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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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하나
서른다섯, 내 삶에 가장 자랑스런 이력 _ 주주 김현희님과의 만남
그와의 인연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역에서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청소년동 아리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를 시작한지 두해 째 되는 때였고, 그는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를 공동주관했던 창동청소년문화의집<다즐>에 새로 온 직 원으로 처음 품을 찾았다. 모처럼 맘이 맞는 젊은 실무자들을 만나 에너지를 주고받으 며 많은 상상을 키웠던 <다즐>과의 인연은 그해 아카데미를 끝으로 더 이어지지 못했지 만, 그는 이듬 해 6월까지 <다즐>에서 근무했고, <다즐>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이후에 도 종종 공간이 필요하거나 공연장비가 없어 도움을 청할 때면 내 일처럼 달려와 주곤 했다. 그런 그가 정말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왔다. 부천으로 직장을 옮긴 후 얼마 안지나 의정 부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다시 ‘동네로 오게 되었습니다’라는 이야기였다. 그를 만 난 이년 사이, 벌써 세 번째 이직이다. 그 사연이 궁금하기도 하고, 근황도 들을 겸하 여 그와의 만남을 요청한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9시쯤이 좋겠어요. 창동에서 만나죠!’ 그에게도 품에게도 무척 익숙한 장소다. 포장 마차가 즐비한 창동역 입구. 그 모퉁이에 여 름내 동네 아이들과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던
만남하나. 김현희 (노원청소년수련관) 서른다섯, 내 삶에 가장 자랑스런 이력
창동문화마당이 있다. 이 시간 이곳은 찾기 쉬운 술약속 장소 중 하나. 파라오 노래방과 다정하게(?) 머리를 맞대고 있는 돌간판이 우
만남둘. 정수현 (한남직업전문학교) 기분 좋은 사람, 기분 좋은 만남!
스워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 이 다가온다. “오랜만입니다. ^^” 근처 가까운 술집에 자리를 잡고, 주주와의 만남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음주인터뷰를 시작해본다. 이참에 화려한 그의 이력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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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보이에서 청소년상담사까지..
내 삶에 가장 자랑스런 이력
“열아홉에 군에 입대했고, 1995년 1월에 제대를 했어요... 당시 YMCA에서 운영하 던 ‘호텔학교’가 있었는데, 그 해 7월에
졸업을 하고, 강남의 꽤 유명한 호텔뷔페에서
그는 분명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많은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단순히 이력만 보자 면, ‘지독하게 직장운이 없는 사람이구나’ 혹은 ‘사회성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단지 직장을 몇 번 옮겼는가 만으로
웨이터 일을 시작했지요. 일명 ‘호텔보이’였죠..(웃음).. ”
그의 이력을 평가할 순 없을 것 같다. ‘호텔보이’로 시작된 그의 이십대는, ‘그 많은 이력을 어떻게 다 기억하나’ 신기할 정도 로 파란만장했다. 호텔보이에서 나이트, 프랜차이즈 음식점 매니저까지.. 짧지 않은 시
그는 200점 만점이었던 수능을 시작으로 400점 만점이 되기까지 세 번의 수능시험 을 치렀고, 늦은 나이에 대학공부를 시작해 스스로의 힘으로 학업을 마쳤으며, 직장을
간, 요식업계에 종사했던 그는 스물다섯에 늦깍이 대학생활을 시작한다.
다니는 동안에 방통대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호텔보이’ 시절 만났던 미국밴드와 6개월 “서일대학교 레크레이션과에 98학번으로 입학을 했어요. 주말마다 레크행사 알바를 뛰
간 동거를 시도하기도 하고, 노래가 하고 싶어, 밤에는 주방일을 보며 손님없는 낮타임
었죠. 방학 때는 다시 요식업계 알바를... 학교 다니면서 이것저것 배운 것도 많아요.
노래를 하기도 했다. 그는 내가 아는 어떤 사람보다 열심히 20대를 살았고, 쉬지 않고
풍물 전수관에 수제자로 들어가기도 하고.. 아는 선생님께 ‘춤 한번 해봐라’ 이야길 듣
공부하였다. 그 성실과 노력이 무엇보다 그에게 가장 자랑스런 이력이 아닐까?
고, 의정부 무용단에 있은 적도 있었고요.. ^^ 졸업 후에는 주로 기업연수업체에서 일 을 했지요. 주말마다 이벤트 출장 다니면서 1년을 보냈는데.. ‘아.. 난 다시 요식업이
삶은 징검다리 같은 것
야’ 싶어서 잠깐 청담동 이태리 레스토랑에서도 일을 했죠. 스물여덟 살 때, 다시 학교 로 돌아왔어요.”
고민 많은 20대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부딪히며 살라”고 답하며, 언젠가 선배에게 들었다는 말을 함께 전해주었다.
다양했던 이십대의 경험 중, 그가 가장 자랑스럽게 꼽는 이력은 모교에서 조교로 일하
“현희야... 사는건 징검다리 같은거야. 건너가다 보면, 길이 나오는..”
며, ‘조교노동조합’을 만든 사건이었다. 초대위원장을 지내며, 교수님들과 껄끄러운 순 간도 있었지만, 조교들과 학교 간의 공식적인 의사소통 통로를 만들 수 있었던 뿌듯한
마지막으로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물었다. 그는 “행복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계기가 되었다고.
그저 함께 하는 사람들과 ‘이해와 소통’이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희망과 함께.
그가 청소년 관련 분야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30대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서른한 살
현재 그는 노원청소년수련관 노원청소년수련관 청소년상담실에서 일하고 있다. 노원,동
에 독립을 했고, 서른둘이 되던 해, 청소년위원회가 추진하던 ‘청소년동반자사업’의 상
대문,중랑구 지역의 위기청소년들을 만나는 ‘청소년동반자’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담사로 일하게 되면서 청소년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그가 청소년 관련 활동을 시작하며, 처음 했던 일이 ‘청소년동반자사업’이었으니, 그와 는 각별한 인연인 듯싶다.
이후, 의정부에서 다즐, 부천의 청소년수련관에서 양주의 천문대, 다시 방학동으로 오 기까지 그의 과정은 쉽지 않았던 듯하다. 그 중에는 남들
이곳이 그의 마지막 직장이 될지 아닐지는
이 부러워할만한 환경과 조건을 가진 곳도 있었지만, 편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행복해지기를 멈추
안한 환경에 젖어가는 자신을 보면서 다시금 마음을 다잡
지 않을 것이다, 이 역시 어쩌면 ‘행복’에 대
기도 했다는 그의 말. 쉽기만 한 조직이 어디 있을까 싶
한 답을 찾아가는 그의 과정이 아닐까 하는
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새로운 일을 선택할 수 있었던
생각을 해본다.
그의 용기가 한편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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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남 둘
그녀는 한남직업전문학교에서 무려 12년을 근무했다. 대학 졸업 후, 지역사
기분 좋은 사람, 기분 좋은 만남!
회복지관에서 10개월 정도 근무했던 것이 유일한 전직이라고 하니, 20대를 한남직업
_ 주주 정수현님과의 만남
전문학교와 함께 지내 온 셈이다. (심한기 선생님께서 후배들에게 입버릇처럼 하셨던 말씀, ‘10년은 해봐야 한다’가 생각난다. 한 가지 일을 10년 이상 한다는 것은 그 시간만으로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헌데, 12년이라 니!!! 한 직장에서 12년 동안 일한다는 거... 어떤 느낌일까?)
“아... 저.. 어떻게 이야길 해야 하나... 제가 뭐 할 건 없고...”
그녀는 한남직업전문학교 총무지원과에 있다. 현재 재단 간사 역할을 겸하며 총무지원
올해 초 전화한통을 받았다. 하도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시기에 후원을 해지하시려나보
과에서 인사관리를 담당하고 있지만, 그 전에는 주로 교학팀, 기획팀에서 학생지도, 상
다 생각했는데, 후원금을 증액하시겠다는 이야기였다. 변변치 못한 주주관리로, 유지만
담 및 생활지도, 교양수업 등 학사와 관련한 일을 하셨다고 한다.
해주시는 것도 감사할 판에, ‘증액하겠다’는 말을 이토록 어렵게 하시니, 몸둘 바를 모 “(총무지원과에 와서) 1년간 정말 힘들었어요. 학생들하고 부대끼며 일할 때 재밌었는
르겠습니다.. 했던 기억이 난다.
데... 아이들 만나는 게 천성인가 봐요.. ^^” 그녀를 딱 한번 만난 적이 있다. 2005년이었던가.. 지역 내 한 초등학교 동아리 지원 을 시작하며, 방송반 운영에 관한 자문을 얻기 위해 미디어전문가인 김태황 선생님(현
인연.
문화디자인 'Plan-B'의 PD)을 만나러 갔다가 아주 잠깐 동석을 하게 됐는데, 짧은
때였다고 한다. 당시 한남직훈의 주임으로 계셨던 정우진 선생님이 ‘일 잘하는 세팅을
만남이었지만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이 인상이 남아, 돌아와 주주기록을 뒤져봤더랬다.
보여주마’하고 대학후배이기도 했던 품의 심한기 대표님과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 계기였
아, 한남전문학교에서 일하시는 주주님이시로구나.
다고.
“만나러 가고 싶은 데요”
“그 후 한동안 뜸했다가... 다음해였나? 신학기 OT 때 심한기 선생님을 모시려고 전
이토록 기분 좋은 환대가 또 있을까. 허락해주심은 물론, 심한기 대표님의 대학선배가
그녀가 처음 품을 알게 된 것은 1996년, 그해 3월 입사하여, 한창 정신없을
화를 했는데, ‘나 바뻐!’하시면서 소개해준 것인 김탕(김태황)이었어요.”
얼마 전 교장선생님으로 오셨다며, 함께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해주셨다. 몇 차례 전
그렇게 인연이 된 세 사람은 카톨릭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다시 만났다. 경력 우선
화를 주고 받고, 같이 점심을 먹기로 약속을 잡았다. 3월 18일 아침, 한남동에 간다.
인 선발 과정, 면접장에서 두 사람을 만나고 ‘떨어졌구나..’ 싶으셨단다. 걱정과는 달리 세 사람 모두 합격! 했으나, 심대표님은 첫 수업 이후로 보이지 않았고, 정수현 선생님
한남직업전문학교.
기다리는 동안 학교를 한 바퀴 둘러본다. 입구에 붙어있는
연혁을 보니, 1957년 ‘소녀원’으로 시작된 무척 오래된 학교임을 알 수 있었다. (1977년에 소년소녀직업훈련원으로 통합되었고, 1988년 한남여자직업훈련원으로 분
과 김태황 선생님은 청소년복지학과 석사과정을 모두 마쳤다. 후에 만난 심대표님과의 일문 일답.
리, 1995년부터 2001년까지 한남여자직업전문학교로 운영되다, 2002년 ‘한남직업
정 : 왜 그만두셨어요?
전문학교’로 변경되었다.) 1977년부터 공생복지재단이 위탁운영하고 있는 한남직업전
심 : 배울 게 없어서
문학교는 교육비와 교재비, 재료비 일체가 무상으로 지원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미용
정 : 돈이 없으시죠?
과, 조리과, 멀티미디어과 등 8개 과목이 개설되어 있으며, 1년(주간)과정과 6개월(야
심 : 너... 뭘 좀 아는구나?
간)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 15세 이상 55세 미만의 서울 거주자라면 누구든 입 익숙한 유머가 상상되어 웃음이 터진다. ^^
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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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가 될까 한마디 덧붙이자면, ‘배울 게 없다’는 그의 대답은 ‘자만’이라기보다는 ‘고집’일 것이다. 주위 선후배들의 오랜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는 ‘학위취득’을 거부하고 있다. 그의 희망 중 하나는 사회가 요구하는 자격을 뛰어넘어, 당당히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이며, 나
품의 주주를
는 그런 그의 ‘고집’을 지지한다)
소개합니다
“후에 몇 번 품에 방문했어요. 참 필요한 일을 하는 단체구나.. 생각했죠” 그렇게 그녀는 품의 주주가 되었다. 2002년의 일이다.
자각(自刻) “작년 말.. 1년을 정리하면서 매우 민망했어요. 살면서.. 두 군데 정도는 뜻 좋은 단체를 후원하겠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품과 월드비전을 같이 시작했는데.. 그동안 참 무심했구
이지은
나.. 하는 자각이 든 거죠. 버는 거에 비해 후원금도 관심도 너무 적었더라구요. 미디어나
되었다. 여성스럽고 어여쁜 그녀는 간혹 사람을 놀래키는 재주가 있는데, 주로 취중에
문화.. 내가 관심 있는 데는 돈 아까운 줄 모르고 투자하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죠”
그렇다. 자꾸 술 마시고 싶어지는 사람. www.in2museum.com
품의 주주가 되고 후원을 하는 저마다의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 의미에 대해 품 또한 너무 무심했다는 자각을 한다. 해마다 그 의미를 되새기며 자기를 반성할 수 있는 사 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이며, 또 얼마나 희망적인가.
유미옥
문화예술교육단체 인투뮤지엄의 활동가로 2007 오~ 히말라야로 품과 인연이
지난 호,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주인공. 지역에서 20년 넘게 빈민운동을 해
온 전천후 운동가이며, 현재는 도봉여성의집의 대표로 계시다. 품의 후배들에 대한 넘 치는 애정으로 늘 감사와 반성을 안겨주는 그녀. 심한기 대표님과 친구 같은 동지이며,
약속한 점심시간이 되어, 한 시간도 채 못된 인터뷰를 아쉽게 마무리한다. 품에게 전하고
활동가들에게는 존경하는 선배. 다음번에는 먼저 만나러 가야겠다.
싶은 말씀이 없으신가 물었더니, 증액 후에 월드비젼에서 받은 감사편지 이야길 해주셨다.
김연아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부(야) 재학 중. 9차 복지순례 때, 심한기 선생님의 강
“(후원자 관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단체이기도 하지만, 생각지 못한 세심한 배려에 ‘내가
의에 감명 받아, 복지순례단을 조직하여 품에 방문했고, 바로 주주가 됐다. 조용한 듯
참 잘했구나’ 싶었어요. 조금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그녀의 실천력은 놀라운 수준. 그 덕분에 몇몇 동기와 후배
그녀가 느꼈던 민망함이 이런 것이었을까. ‘아차’ 하는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솔직 한 충고에 한편 힘이 나기도 한다. 언젠가 그녀에게 ‘내가 참 잘했구나..’하는 행복한 만족 을 만회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들도 품과 인연이 되어, 그 먼 용인에서 수유리까지 자원활동을 올 참이다.
오종환
품 올드멤버. 2000년부터 2001년까지 품에서 활동했으며, 청소년전통예술한마
당을 담당했었다. 술에 취하면 밤늦게 품에 전화하는 몇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그의 그녀가 사 준 점심을 먹으며, 10년 만에 만났다는 심한기 대표님과 윤동인 교장 선생님의
‘술한잔..’을 번번이 퇴짜 놔 미안하다. 변치 않는 로맨티스트. 현재는 금호생명의
재회를 함께 했다. 긴 시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익숙해 보이는 두 사람. “10년 만에 만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다.
난 사람들 같지 않아요” 했더니, “늘 마음에 있었으니까” 라고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최영민
늘 마음에 있어, 오랜만에 만나도 익숙한 품이었으면 한다.
오종환 선생님이 덤으로 넘겨준 부인의 주주가입서. 신랑을 통해서 품과 인연
이 되었고, ‘우리물류’라는 회사에서 일하고 계시다. 몇 번 보지는 못했지만, 편안함 짧은 만남이 못내 아쉬워, 다시 한번 만남을 청해봐야겠다. 좀 멀지만..
과 털털함이 기억에 남는 그녀. 다음에 종환샘과 함께 술 한잔 합시다. 꼭!
우이동에 여행 한번 오시라고.. 땡강이라도 부려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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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
공공문화개발센터 유알아트 사무국장. 유알아트의 대표인 김영현 선생님과 심
박경호
CJ 나눔재단. 2008년 CJ나눔재단과 함께 한‘한국-네팔 청소년 희망나눔 프로
한기 선생님이 형제로 오인받으며 붙어다니던 때, 김지나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단단
젝트’의 담당 실무자였고, 그 과정에서 품의 주주가 되었다. 활짝 웃는 모습이 일품이
함과 넉넉함을 동시에 가진 사람. 내 나이 저맘때 쯤 저런 모습일 수 있다면... 하는
며, 호탕하다 못해 익살맞기까지 한 웃음소리는 더 일품인 그. 방문한 그날, 품 사무실
생각이 드는 여성후배들의 이상형. www.urart.org
이 많이 더러웠는지.. 그는 주주가입서-품에게 하고 싶은 말에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사무실 청소 Day Project 만들어요!”^^;;;;;; www.donorscamp.org
이보라
네팔에서 두레품을 받고 있는 유일한 사람. ^^ 네팔 품에 파견되어 있으며,
두레품을 읽다 '내가 주주가 아니네' 하여 가입서를 보내왔다. 2005년 자원활동가 모집
이한나
광고를 보고 처음 품에 왔으며, 청소년연극축제 STAFF로 활동했다. 쉽지 않은 타국생활
가뭄에 콩나 듯 나오는 소식지를 그녀가 읽게 된 것은! 실로 놀라운 인연이다. (이걸
에서 놀라운 언어습득능력과 적응력을 보여주며, 그녀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중. 그녀
지금 농담이라고 하는 건가? ㅡ.ㅡ;;;) 그렇기에 그녀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
의 아버지는 주주이며, 그녀의 남동생은 품에서 영상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다. 다음 ‘주주와의 만남’후보 1호! 곧 만나러 갑니다. ^^
이영애,손광현
조성대
배우 이영애만큼이나 뛰어난 미모를 지니신 싸랑하는 이모님과 속
청주 YWCA. 우연히 읽게 된 품 소식지가 재미있어서 주주가 되었다는 그녀.
경북 영양군 일월면사무소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전담공무원. ‘청소년문화복지
정 깊으신 사장님. 품의 단골뒤풀이 장소로, 품을 아는 많은 사람에게 추억되고 있는
아카데미’를 함께 시작했던 존경하는 교수님이신, 광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용교 교
‘진미감자탕’의 주인장 부부. 예고도 없었던 갑작스런 폐업, 일명‘진미감자탕 폐업
수님이 운영하는 온라인 카페‘시민과 함께 꿈꾸는 복지공동체’를 통해 품을 알게 되
사건’으로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했었다.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두 분의 근황! 축~!
었다고. 주주가 된 직후, 영양군의 명품 고춧가루를 보내주셔 아직까지 맛있게 먹고 있
상계동에 ‘진미감자탕’재개업!! ^^
다. 문화소외지역인 농촌지역의 청소년문화활동에 관심이 있으며, “품과 함께 여러 대 안적인 고민을 나누길 희망한다”는 그는 보기 드문 열정 공무원임이 틀림없다.
이진주
KT&G복지재단 북부복지센터에서 일하는 어여뿐 처자로, 먼저 품의 주주가 된
선임 최명옥님과 함께 처음 품을 찾았다. 당당한 말투와 시원시원한 말투가 인상적이었
이하니
던 그녀. 좋은 먹거리가 생기면, 잊지 않고 품을 찾아주는 고마운 우렁각시. ^^ 한 동
가 묻어나는 솔직함에 매료되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 의외의 어리버리함을 보며, 약간
네서 일하며, 종종 만나고 있다. www.ktngwelfare.org
속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ㅋㅋ 어디에든 잘 어울리는 특유의 장점을 발휘하며 네팔품에
올해부터 네팔품에서 활동하게 된 품의 새식구. 치장하지 않은 당당함과 깊이
잘 적응하고 있는 듯하다. 거대한(혹은 무시무시하기도 한) 세상에 맞서는 삶의 실천을
김효정
제주 법환 청소년문화의집. 2006년 제주에서 있었던 ‘청소년문화의집 실무자
고민하는 그녀는 말한다.“지금의 확신이 세상을 조금씩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길..”
워크숍’에서 심한기 대표님을 만난 계기로 품의 주주가 된 그녀는 주주가입서에 역사 에 길이 남을 독특한 가입동기를 남겼다. ‘증권거래 뉴스를 볼 때 마다 주주가 되고
류현진
싶었다. 드뎌 나도 주주를... ㅜㅜ’. 2006년 두레품 여름호, ‘그래, 나 주주다!’에
참여해 준 고마운 인연으로, 2007 학교문화예술교육사업 시범학교로 화계중학교가 선정
‘니가 찾던 게 이거지?’라고 자문하며, 두레품 데뷔. 잘 지내시는지요? ^^
되면서 일년동안 동고동락 했다. 화계중학교에서는 일명 ET(English Teacher)로 통하는
화계중학교 영어교사. 2006년 추락 학급참여 프로그램에 반아이들을 대동하고
그녀. 학생들이 그 별명을 스스럼없이 부를 만큼 아이들에게 친숙한 인기교사인 그녀는
신경애
전 창동청소년문화의집 관장. 당시에는 어려운 관계였으나, 2006년 창동청소
아직 미혼!
년문화의집에서 진행했던 ‘뮤직토크’를 계기로 미처 알지 못했던 인간적인 면모를 발 견하게 되었고, 숨겨진 문학적 감수성에 놀라다. 현재 명지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청소
김명호
년지도학을 공부하고 계시며, 2008년에 진행되는 모든 주주콜로키움에 참가를 예약(?)
않았지만, 그 열정과 애정이 남달라 품의 주주가 되었다. 그의 바램대로 다른 길을 찾
하셨다.
은 그는, 현재 몽골에 있다. Social Walk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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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네팔품 상근활동가 모집 공고를 통해 처음 품에 안긴 그. 채용은 되지
정수연
해남 농어촌 청소년 문화환경센터. 2007년 문화예술교육전문인력 양성교육에
신용식
고리울청소년문화의집 꾸마. 심한기 선생님과 유네스코 청년원 시절부터 인연
서 심한기 선생님을 튜터로 만나 품과 인연이 되었다. “품의 노하우를 저희에게도 많
이 있었고, 직접 연계활동을 한 적은 없지만, 오랫동안 관심가지고 계셨다고. 꼭 한번
이 알려주시고, 좋은 활동 계속하시길 바랍니다” ^^
만나보고 싶은 주주.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더욱 발전하는 품이 되길 바랍니다” www.kumayouth.or.kr
한주남
2007년 어느 날, 예고 없이 품에 들이닥친 용감한 여인이 있었으니..^^; 단정
한 차림에, 곱게 머리를 빗어 넘긴 그 여인은 다른 아님 광주의 원불교 교무님. 전국
강미선
원불교 교무님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에서 심한기 선생님을 뵌 적 있다는 그녀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참여하며 품과 인연이 되었다. 마냥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 뒤에
는 많은 고민을 안고 대책 없이 품에 안겨, 바로 주주가 되었다. 원불교 광주교구.
감춰진(사람 안 좋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님 ^^;) 강인한 열정과 추진력은 놀랍다. 걸출
부산 YMCA 반송종합사회복지관. 부산 반송 지역의 별종 실무자들과 함께 6기
한 입담과 유쾌함으로 자꾸만 만나고 싶어지는 그녀. 이제 한번 오실 때가... ^^
허종룡
화계중학교 음악교사이자, 생활지도부장.
2007년 학교문화예술교육사업 시범
www.bsymca.org
학교로 화계중학교가 지정되면서 품과 인연이 되었다. 품 청년들의 오랜 은사님이기도 한 그는 영락없는 생활지도부 선생님의 풍모를 지녔지만, 교육과 학생들에 대한 애정만은 그
이주빈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화계중학교 지원 시, 학생회 두발규정완화 시위로 곤욕을 치르
말라야에 참가하는 횡재를 하였으며, 그 계기로 품의 주주가 됨. 무뚝뚝한 첫인상과 달
기도 했던 그의 한마디.“학교 공동체를 아우르는 청소년문화운동이 되었으면...”
리 구수한 입담과 예리한 필력을 자랑하는 그. 오~히말라야 이후, 오마이뉴스에 히말라
오마이뉴스 기자. 2002년 품 실습생이었던 홍상미양의 소개로 세 번째 오~히
야 여행 기사를 연재하였으며, 인물 100인보에 한 사람으로 심한기 대표님을 인터뷰했
이정은
품 캠프 단골손님 기호, 경호의 어머니. 심한기 대표님의 대학후배로, 지금은
다. www.ohmynews.com
중학생이 된 큰 아이 경호가 초딩 꼬맹이 일 때부터 품 캠프로 인연이 되었으며, 오랜 시간 지켜보시다 2007년 품의 주주가 되었다. 충남 아산에 살고 있으며, 초록마을어린
목혜균
이집에서 일하고 계심. “항상 꿈과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품을 보면서, 뒤에서 조금이
재직 시, 품과 인연이 되었다. 품 캠프 명예의 전당에 기록된 ‘2005년 그래 걷자’와
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2006년 첫 번째 ‘오~히말라야’에 함께 한 행운의 사나이. 문화의집 퇴사 후, 자립적
주주가입서에는 “그냥 알고 있음”이라 적었으나, 이천 창전청소년문화의 집
인 활동기반을 만들려 고군분투하다, 현재는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비공개 일반
김태성
한일장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무기한 휴학 중. 품의 대표적인 품동이자 현 활
직에 종사하고 있다. 고민해 볼 만한 그의 제안 “언제 변덕을 부릴지 모르는 외부지원
동가인 이상섭군의 오랜 친구로, 2005년부터 품의 단골 자원활동가가 되었다. 꼼꼼한
에 의존해서는 안 돼. 지금 잘 되고 있다고 안심해서도 안 돼. 지속적인 실천을 위한
성격의 소유자. 가끔 들러 끓여주는 그의 해물탕은 일품이다. 최근 생에 첫 연애를 시
자립, 자립을 위한 현실적인 준비가 지금부터 필요하다고!”
작.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
정훈 이문학
주주 임재춘님과의 소개로 2008 오~히말라야에 참가한 후, 품의 주주가 되었다.
재단법인 청소년과 사람사랑 -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 부장님. 품과는 약 15
현재 ‘앨리스키친’이라는 인터넷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으며, 주 판매상품인 홍차에 관
년된 인연(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주주가 된 것을 의식하신 걸까. “연도를 쓴 후에 더
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다. 하이한 음성과 굴하지 않는 수다가 매력인 그녀는 ‘깨가 쏟
욱 민망해지는 이유는 뭘까?”라고 주주가입서에 고백하심. ㅎㅎ) 올해 1월, 네팔에서
아진다는 신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고소한 깨를 쏟고 다녀, 주변 처자
진행된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 가족사랑여행’이후에, 뒤늦게 주주가 되었다. 나이를
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기도.. ^^; www.alicekitchen.co.kr
가늠하기 어려운 동안의 소유자. 품에게 말씀하시길..“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장성문
www.ssoul.org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에 있을 시 인연이 되었으며, 교육프로그램 장소를 구할
때마다 많은 도움을 준 고마운 인연.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상냥한 말씨와 싱그 런 미소를 지녔다. 현재는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 근무 중. www.ny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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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은
고교시절 연극반 활동을 했던 그녀는 청소년연극축제에 참여하며 품과 인연이
되었다. 고교 졸업 후, 원하는 선택과 강요된 선택 사이에서 갈등하며 삼수를 했고, 2006년 품 대학에 입학해 2년간 활동했다. ‘미루’라는 별칭을 쓰고 있으나, 대체로
주주현황
‘미루뽕’이라고 불리는 편이며, 그 외에도 만달라, 동그리 등 주로 동글동글한 얼굴 과 몸을 비유한 별명을 다수 갖고 있다. 알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맘에 안 드 는 것도 많은 그녀. 현재는 품에서 지난 활동을 정리하며, 다음 걸음을 준비하고 있다.
노재정
2008년 3월 20일 기준
품의 청소년문화예술지원 사업에 빠지지 않는 주요 강사 중 하나로, 품과의
인연은 꽤 오래되었다. 풍물패 출신답게, 그의 가락과 소리는 일품이다. ‘똘’이란 별 칭을 사용하며, 현재 문화예술교육연구소 ‘에이스벤추라’의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www.aceven.net
박경호
심한기 대표님의 대학 후배이자, 품 초창기 자원활동가로 인연이 되었다. 얼
총 주주 회원분류 평생주주
마 전까지 꿈,희망,미래 재단(전 스티븐 김 장학재단) 연변사무소에서 활동하다, 현재
정기후원주주
는 서울사무소에 부장님으로 계시며, 심한기 대표님이 꿈,희망,미래 재단의 이사가 되
총 주주
후원방법 품의 역사에 공여했다고 마땅히 여겨지는 정신적 동반자 CMS를 통해 월정기 후원하는 소중한 주주 자동이체를 통해 월정기 후원하는 소중한 주주
인원(명) 10 253 11 274
면서 근래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의 이메일 아이디 "widepum"이 품에서 비롯된 것이란 추측은 억측일까. stevekimfn.org 분류별 주주현황 정기후원주주 264명의 데이터를 성별, 연령, 지역, 가입연도, 활동영역, 관심분야에 따라 분석해 보았습니다. 활동영역이나 관심분야에 있어서는 변동된 상황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며, 분석이란 말에 어울리지 않게 추측과 의견이 난무하나, 대략적인 현황을 이해하시는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그럼 제멋대로 분석(?)한 품 주주현황.. 같이 한번 보실까요? ^^
1) 성별
2) 연령 60대, 3명, 50대, 9명,
1.1%
10대, 3명, 1.1%
3.4%
남자, 110명, 42%
40대, 43명,
20대, 82명,
16.3%
31.1%
여자, 154명, 58%
30대, 124명, 47.0%
다음호에 계속... 113
114
품 주주의 성비는 여성 58%, 남성 42%로 여성이 약간 더 많습니다. 사회복지나 청소년 활동현장 에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현실에 비하면, 품 주주의 성비는 비교적 균형적인 편이군요. ^^ 지난해까지 품 활동가의 성비도 여성이 압도적이었으나, 올해 최초로 50대 50이 되는 이상적인(?) 조직형태가 되었습니다. 하하하 ^^;;;
5) 활동분야 공무원, 11명,
학생, 11명, 4%
4% 청년, 10명, 4%
미파악, 9명, 3%
언론, 2명, 1% 일반, 45명, 17%
연령은 20-30대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아무래도 품이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젊은 현 장실무자들이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품 초기 함께 활동했던 선배님들은 이제 대부분 조직의 중 견 실무자들이 되었고, 어려서부터 품에서 활동했던 아이들이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 주주가 된 경 우도 있답니다.
재단, 12명, 5% 시민활동, 8명, 3% 국제교류, 5명,
청소년, 56명,
2%
21%
문화예술, 16명, 6%
교육, 16명, 6%
복지, 63명, 24%
품 주주들의 활동분야는 다양합니다만, 복지기관, 청소년활동기관, 교육기관 등 아이들과 관련한 일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절반을 넘습니다. 학생이거나, 일반직에 종사하고 계신 주주들 중에도 실상은 품의 활동에 참여했던 분들이 대부분이라, 품과의 인연 없이 단순 후 원 동기로 품의 주주가 되신 분은 극소 수라고 볼 수 있지요.
3) 지역 기타, 3명, 1.1% 제주, 4명, 1.5%
강원권, 7명,
전라권, 11명,
2.7%
4.2% 경상권, 22명,
경기, 67명,
8.3%
25.4%
충청권, 24명,
지역
강원
경기
인천
서울
인원
7명
57명
10명
126명
지역
충북
충남
대전
대구
인원
9명
10명
5명
4명
지역
경북
경남
부산
울산
인원
9.1%
서울, 126명, 47.7%
4명
7명
5명
6) 관심분야 < 품 초기 > 국제교류, 16명, 5%
2명
지역
전북
전남
광주
제주
인원
2명
2명
7명
4명
지역
국외
불명
계
인원
2명
1명
264
< 2005년 이후 > 자연생태, 18명, 5%
11명, 3%
미디어, 민속,
16명, 5%
청소년문화
7%
활동, 53명,
22명, 11%
26%
육, 7명,
여행,
지역사회
34명,10%
3%
네트워크,
집단지도,
56명, 16% 학교사회사 문화예술프 로그램, 50 명, 14%
업, 24명, 야외활동, 18명, 5%
7%
문화예술일 반, 23명,
지역사회
11%
청소년문화 청소년캠프, 36명, 18%
운동, 50명, 24%
주주가입서 작성 시, 선택사항인 관심분야의 내용을 분석한 것입니다. ‘전부 다’선택하신 분도 있 고, ‘아무것도’ 선택 안하신 분들도 많아 정확한 데이터라 보기 어렵지만, 선택양식이 변경된 2005년 전후로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지역사회활동과 청소년문화(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과 ‘주주들의 관심과 욕구를 듣기 위한 새로운 귀가 필요하다’는 점 인 것 같습니다. ^^;;
4) 가입연도별 (연도별 신규주주 수) 18.9%
동향, 14명,
문화교류,
문화예술교
8명, 2%
지역별로는 역시 서울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 다. 전국 어디를 가도 밥 먹을 데가 있다던 심한기 대표님 말씀이 떠오르네요. 우리 지역에 어떤 주 주가 있나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지역별 품주주모임을 상상해봅니다. ^^
17.8%
국제청소년 청소년문화, 84명, 25%
12명, 3%
20
청소년이슈,
대중음악,
17.4%
15.6% 13.6%
15
저마다 다른 인연으로 맺어진 품의 주주들. 연령도, 지역도, 하시는 일도, 관심도, 욕구도 다양한 이 사람들과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주주들의 생각과 욕구를 나눌 수 있는 보다 일상 적인 소통과 나눔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올해 작은 실천들을 시작해봅니다. 늦은 시작이지 만, 시작이 반이란 말을 생각해봅니다. 주주님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8%
10 5.7%
3%
5 0 15명
21명
41명
36명
47명
50명
46명
8명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실제로 가입서를 쓴 인원은 이 두 배쯤 될 것입니다. 중간에 후원을 해지하신 분도 계시고, 초기에는 이름뿐 인 유령주주도 꽤 많았지요. 품의 교육사업이 본격화된 2003년을 기점으로, 신규주주가 많이 늘었네요.‘무 조건 많이’는 품의 목표도 방식도 아닙니다만, 최소한의 활동기반을 마련하려면, 더 분발해야겠습니다. ^^
115
116
월별 후원 현황
후원현황 9월_ 총 3,000,000원 * 자동이체 : 55,000 원 김정현 10,000 권혁기 20,000 김영호 5,000 방명진 10,000 한 진 10,000
2007년 주주후원금 총결산 < 단위 : 원 >
月
자동이체 후원금
CMS 후원금
특별후원금
01
55,000
2,620,000
0
2,675,000
02
45,000
2,570,000
0
2,616,000
03
50,000
2,550,000
0
2,600,000
04
30,000
2,745,000
0
2,775,000
05
80,000
2,535,000
100,000
2,715,000
06
80,000
2,380,000
0
2,460,000
07
50,000
2,650,000
300,000
3,000,000
08
45,000
2,545,000
20,000
2,610,000
09
55,000
2,645,000
300,000
3,000,000
10
35,000
2,590,000
100,000
2,725,000
11
70,000
2,670,000
200,000
2,940,000
12
85,000
3,035,000
250,000
3,370,000
* CMS : 2,645,000 원 강경미 강혜진 고춘식 권혁철 김동찬 김 민 김승희 김은애 김지원 나정만 박성희 박혜경 부은희 송혜진 심희영 양지희 우상미 유현희 이교헌 이성태 이유신 이정호 이현제 임진원 전옥희 정유섭 조원석 최두환 최찬욱 한석구 홍정모
월별소계
5,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5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40,000 20,000 40,000
강동호 고미경 고현주 권희정 김동혁 김민경 김영구 김정대 김창영 두영미 박양미 반병두 서정애 신경애 안상희 오명진 우수명 유희경 이기남 이수나 이은경 이진주 이혜진 장성문 전혁희 정지원 조정은 최보경 최해경 한유흔 홍해린
10,000 10,000 20,000 10,000 5,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50,000 5,000 10,000 10,000 10,000 10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30,000 20,000 10,000 10,000 20,000 10,000 20,000 10,000 10,000
* 특별후원 : 300,000원 강대근 200,000 박정희 100,000
2007년 주주후원금 총계
33,486,000
117
118
강명숙 고성애 고희종 김귀련 김미경 김선희 김영미 김정진 김태영 라영준 박인규 방형심 손의숙 신미연 안준원 오승은 유경희 윤은주 이벽주 이연수 이은정 이창신 이화선 장성희 전현경 조기찬 조혜영 최선경 최희훈 허상문 황선미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5,000 10,000 20,000 10,000 30,000 10,000 20,000 15,000 2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20,000
강명희 15,000 고영한 20,000 곽혜림 10,000 김남정 10,000 김미순 10,000 김성욱 10,000 김영삼 10,000 김정화 10,000 김현희 20,000 목윤지영 20,000 박정화 10,000 배선미 20,000 송성숙 10,000 신순갑 20,000 양은일 10,000 오종환 30,000 유병서 20,000 윤진영 20,000 이보라 20,000 이연종 10,000 이은주 10,000 이철훈 10,000 임유정 10,000 장은석 5,000 정수현 20,000 조남억 10,000 채성용 10,000 최영민 20,000 표경흠 10,000 허윤성 10,000 황지희 10,000
강지영 고윤희 권도라 김남희 김미정 김세진 김영습 김종윤 김혜진 문재형 박종우 백진아 송주아 신익현 양종남 오지선 유병훈 윤진호 이석원 이영애 이정미 이치형 임은옥 장효진 정안철 조영미 천봉환 최윤성 하여주 홍경숙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20,000 10,000 30,000 10,000 10,000 30,000 10,000 10,000 10,000 10,000 5,000 10,000 10,000 10,000 10,000
강현옥 고인석 권오현 김대심 김미정 김수근 김유정 김종주 김효정 박기범 박판기 변효정 송향숙 신재성 양종수 온혜림 유제흥 윤회영 이성종 이원경 이정주 이한나 임재춘 전봉재 정영수 조용균 천수경 최정훈 한가흔 홍미용
20,000 10,000 10,000 20,000 15,000 40,000 10,000 30,000 20,000 20,000 20,000 10,000 20,000 20,000 50,000 10,000 10,000 10,000 20,000 5,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5,000 10,000 10,000
2007년 9ㆍ10월
월별 후원 현황
10월_ 총 2,725,000 원
11월_ 총 2,940,000 원
* 자동이체 : 35,000 원
* 자동이체 : 70,000 원
김정현 10,000 방명진 10,000 김영호 5,000
김정현 10,000 이교영 40,000 방명진 10,000 한 진 10,000
* CMS : 2,590,000 원 강동호 강혜진 고희종 권희정 김미경 김선희 김영미 김정화 김태영 목윤지영 박종우 배선미 송성숙 신미경 안준원 오승은 유병서 윤진영 이보라 이영애 이장형 이철훈 이화선 장은석 정연주 조성대 조혜영 최윤성 하여주 허중혁 황지희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5,000 2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5,000 20,000 2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5,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강명숙 고미경 곽혜림 김귀련 김미순 김성욱 김영삼 김종윤 김현희 문재형 박판기 백진아 송종열 신순갑 양승부 오종환 유병훈 윤진호 이성종 이원경 이정미 이치형 임은옥 장효진 정영수 조영미 천봉환 최정훈 한가흔 홍경숙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20,000 10,000 20,000 10,000 10,000 20,000 10,000 30,000 10,000 30,000 10,000 5,000 30,000 10,000 10,000 10,000 20,000 5,000 10,000 5,000 10,000 10,000
* CMS : 2,670,000 원 강명희 고영한 권도라 김남정 김미정 김세진 김영습 김종주 김효정 박경호 박현기 변효정 송주아 신익현 양은일 온혜림 유제흥 윤회영 이성태 이유신 이정주 이하니 임재춘 전옥희 정유섭 조용균 천수경 최찬욱 한경임 홍미용
15,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30,000 20,000 20,000 2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5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강지영 고인석 권순임 김남희 김미정 김수근 김유정 김지나 나하나 박기범 박혜경 부은희 송혜민 신재성 양종남 우상미 유현희 이교헌 이수나 이은경 이정호 이한나 임진원 전혁희 정지원 조원석 최두환 최해경 한석구 홍정모
10,000 10,000 10,000 10,000 15,000 20,000 10,000 30,000 10,000 4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20,000 40,000
강하자 20,000 고춘식 20,000 권오현 10,000 김동찬 10,000 김미현 20,000 김연아 20,000 김은애 10,000 김지원 10,000 두영미 10,000 박성희 10,000 반병두 50,000 서정애 5,000 송혜진 10,000 심희영 10,000 양종수 50,000 우수명 100,000 유희경 10,000 이기남 10,000 이연수 20,000 이은정 10,000 이지은 20,000 이현제 10,000 장성문 20,000 전현경 10,000 조기찬 10,000 조재경 10,000 최선경 20,000 최희훈 10,000 한유흔 10,000 홍해린 10,000
강현옥 고현주 권혁철 김동혁 김 민 김영구 김정대 김창영 류현진 박인규 방형심 손의숙 신경애 안상희 오명진 유경희 윤은주 이벽주 이연종 이은주 이진주 이혜진 장성희 정안철 조남억 조정은 최영민 표경흠 허윤성 황선미
20,000 20,000 10,000 5,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3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30,000 10,000 10,000 10,000 20,000 20,000 10,000 10,000 20,000
강경미 강현옥 고인석 권순임 김남희 김미정 김선희 김영미 김정진 김지원 김효정 박성희 반병두 손의숙 송혜진 신재성 양종수 우상미 유현희 이교헌 이수나 이은경 이지은 이현제 장성희 전현경 조기찬 조재경 최두환 최희훈 한유흔 홍미용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5,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50,000 30,000 10,000 10,000 5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강동호 강혜진 고춘식 권오현 김대심 김미현 김성욱 김영삼 김정화 김창영 나하나 박양미 방형심 송성숙 신경애 안상희 양지희 우수명 유희경 이기남 이연수 이은정 이진주 이혜진 장은석 정수현 조남억 조정은 최명옥 표경흠 허상문 홍정모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40,000 10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30,000 5,000 2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20,000
강명숙 고미경 고현주 권혁철 김동찬 김 민 김세진 김영습 김종윤 김태성 류현진 박종우 배선미 송종열 신미경 안준원 오명진 유경희 윤은주 이벽주 이연종 이은주 이철훈 이화선 장효진 정안철 조성대 조혜영 최보경 하여주 허윤성 홍해린
* 특별후원 : 100,000원 * 특별후원 : 200,000 원
김민정 100,000
이연종 100,000 유미옥 100,000
119
12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2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강명희 15,000 고성애 20,000 고희종 10,000 권희정 10,000 김명호 10,000 김민경 10,000 김수근 20,000 김유정 10,000 김종주 30,000 김태영 5,000 목윤지영 10,000 박판기 20,000 백진아 10,000 송주아 10,000 신미연 10,000 양승부 5,000 오승은 15,000 유병서 20,000 윤진영 20,000 이보라 10,000 이영애 10,000 이정미 30,000 이치형 10,000 임은옥 10,000 전봉재 20,000 정연주 10,000 조영미 5,000 채성용 10,000 최선경 20,000 한가흔 10,000 허종룡 10,000 황선미 20,000
강지영 10,000 고영한 20,000 곽혜림 10,000 김귀련 10,000 김미경 10,000 김민정 10,000 김연아 40,000 김은애 10,000 김지나 30,000 김현민 20,000 문재형 10,000 박현기 20,000 부은희 20,000 송향숙 40,000 신순갑 20,000 양은일 10,000 오지선 10,000 유병훈 10,000 윤진호 30,000 이성종 10,000 이원경 5,000 이정은 20,000 이하니 10,000 임재춘 10,000 전옥희 10,000 정유섭 10,000 조용균 10,000 천봉환 10,000 최정훈 5,000 한석구 20,000 허중혁 10,000 황지희 10,000
강하자 10,000 고윤희 20,000 권도라 10,000 김남정 10,000 김미정 10,000 김선규 10,000 김영구 10,000 김정대 10,000 김지영 10,000 김현희 20,000 박기범 40,000 박혜경 10,000 서정애 5,000 송혜민 10,000 신익현 20,000 양종남 10,000 온혜림 10,000 유제흥 10,000 윤회영 10,000 이성태 50,000 이유신 10,000 이정주 10,000 이한나 10,000 임진원 10,000 전혁희 10,000 정지원 10,000 조원석 10,000 천수경 10,000 최해경 20,000 한여주 10,000 홍경숙 10,000
2007년 11ㆍ12월
월별 후원 현황
12월_ 총 3,370,000 원
1월_ 총 3,165,000 원
* 자동이체 : 85,000 원
* 자동이체 : 85,000원
김정현 10,000 권혁기 10,000 이교영 40,000 방명진 10,000 한 진 10,000 김영호 5,000
김정현 10,000 이교영 40,000 권혁기 10,000 방명진 10,000 한 진 10,000 김영호 5,000
* CMS : 3,035,000 원
* CMS : 2,930,000 원
강경미 10,000 강하자 10,000 고윤희 20,000 권도라 10,000 김남정 10,000 김미경 10,000 김민정 10,000 김영삼 10,000 김종주 30,000 김현희 20,000 목윤지영 10,000 박인규 10,000 백진아 10,000 송종열 20,000 신순갑 20,000 안준원 10,000 오승은 15,000 유경희 20,000 윤은주 10,000 이벽주 10,000 이연수 20,000 이은정 10,000 이정호 20,000 이한나 10,000 임진원 10,000 전옥희 10,000 정연정 20,000 조성대 10,000 조혜영 10,000 최보경 20,000 최해경 20,000 한유흔 10,000 홍미용 10,000
강동호 강현옥 고인석 권순임 김남희 김미순 김선희 김영습 김지나 김효정 문재형 박정화 변효정 송주아 신용식 양은일 오종환 유병서 윤진영 이보라 이연종 이은주 이진주 이현제 장성문 전혁희 정연주 조영미 채성용 최선경 최희훈 허상문 홍정모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30,000 20,000 10,000 20,000 20,000 10,000 10,000 10,000 60,000 2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40,000 10,000 10,000 5,000 10,000 20,000 10,000 10,000 20,000
강명숙 10,000 강혜진 10,000 고춘식 20,000 권오현 10,000 김대심 10,000 김미정 10,000 김성욱 20,000 김은애 10,000 김지원 10,000 김희정 20,000 박경호 40,000 박종우 10,000 부은희 20,000 송혜민 10,000 신익현 20,000 양종남 10,000 오지선 20,000 유병훈 10,000 윤진호 30,000 이 설 10,000 이영애 10,000 이장형 20,000 이창신 20,000 이혜진 30,000 장성희 10,000 전현경 10,000 정영수 40,000 조용균 10,000 천봉환 10,000 최영민 40,000 표경흠 10,000 허윤성 10,000 홍해린 10,000
강명희 고미경 고현주 권혁철 김동찬 김미정 김수근 김정대 김창영 나하나 박기범 박판기 서정애 송혜진 신재성 양종수 온혜림 유제흥 윤회영 이성종 이원경 이정미 이철훈 이화선 장은석 정수연 정유섭 조원석 천수경 최정훈 하여주 허종룡 황선미
15,000 10,000 20,000 10,000 10,000 15,000 20,000 10,000 10,000 10,000 40,000 20,000 5,000 10,000 10,000 50,000 10,000 10,000 10,000 10,000 5,000 30,000 10,000 10,000 5,000 10,000 10,000 10,000 10,000 5,000 10,000 10,000 20,000
강미선 고성애 고희종 권희정 김동혁 김 민 김영구 김정화 김태성 두영미 박성희 박현기 손의숙 신경애 심희영 양지희 우상미 유현희 이교헌 이성태 이유신 이정은 이치형 임은옥 장효진 정수현 정지원 조재경 최두환 최진희 한가흔 허중혁 황지희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40,000 3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5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40,000 10,000 2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강지영 10,000 고영한 20,000 곽혜림 10,000 김귀련 10,000 김명호 10,000 김민경 10,000 김영미 10,000 김종윤 20,000 김태영 5,000 라영준 10,000 박양미 20,000 반병두100,000 송성숙 10,000 신미경 10,000 안상희 10,000 오명진 10,000 우수명100,000 유희경 10,000 이기남 10,000 이수나 10,000 이은경 10,000 이정주 10,000 이하니 10,000 임재춘 10,000 전봉재 10,000 정안철 10,000 조기찬 10,000 조정은 20,000 최명옥 10,000 최찬욱 20,000 한여주 10,000 홍경숙 10,000
* 특별후원 : 250,000 원
강경미 강현옥 고인석 권순임 김남희 김미정 김성욱 김영미 김정화 김태성 두영미 박성희 반병두 손의숙 신경애 안상희 양지희 우수명 유현희 이교헌 이성종 이원경 이정미 이진주 이한나 임재춘 전봉재 정연정 조남억 조정은 최명옥 최희훈 한유흔 홍경숙
5,000 20,000 10,000 10,000 10,000 15,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50,000 30,000 10,000 10,000 40,000 100,000 10,000 10,000 10,000 5,000 3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2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강동호 강혜진 고춘식 권오현 김대심 김미현 김수근 김영삼 김종윤 김태영 류현진 박양미 배선미 송종열 신미경 안준원 오명진 원정분 유희경 이기남 이성태 이유신 이정은 이창신 이현제 임진원 전옥희 정연주 조성대 조혜영 최선경 표경흠 한철희 홍미용
10,000 10,000 20,000 10,000 20,000 20,000 20,000 10,000 20,000 5,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50,000 10,000 2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20,000 10,000
강명숙 10,000 고미경 10,000 고현주 20,000 권혁철 10,000 김명호 10,000 김 민 10,000 김승희 10,000 김영습 10,000 김종주 30,000 김현철 10,000 목윤지영 10,000 박정화 20,000 백진아 10,000 송주아 10,000 신용식 10,000 양승부 5,000 오승은 15,000 유경희 20,000 윤은주 10,000 이문학 20,000 이수나 10,000 이은경 10,000 이정주 10,000 이철훈 10,000 이혜진 30,000 장성문 20,000 전혁희 10,000 정영수 20,000 조영미 5,000 채성용 10,000 최영민 20,000 하여주 10,000 허상문 20,000 홍정모 40,000
* 특별후원 : 150,000원
유미옥 ․ 유미란 200,000 강동호 50,000
고윤희 100,000 모닝글로리 50,000
121
122
강명희 15,000 고성애 10,000 고희종 10,000 권희정 10,000 김미경 10,000 김민경 10,000 김양희 20,000 김유정 10,000 김지나 30,000 김현희 20,000 문재형 10,000 박종우 10,000 변효정 10,000 송향숙 20,000 신익현 20,000 양은일 10,000 오종환 30,000 유병서 20,000 윤진영 20,000 이벽주 10,000 이연수 20,000 이은정 10,000 이정호 10,000 이치형 10,000 이화선 10,000 장성희 10,000 전현경 10,000 정유섭 10,000 조용균 10,000 천봉환 10,000 최윤성 20,000 한가흔 10,000 허윤성 10,000 홍해린 10,000
강미선 10,000 고영한 20,000 곽혜림 10,000 김귀련 10,000 김미순 10,000 김민정 10,000 김연아 20,000 김은애 10,000 김지원 10,000 김효정 20,000 박경호 20,000 박판기 20,000 부은희 20,000 송혜민 10,000 신재성 10,000 양종남 10,000 온혜림 10,000 유병훈 10,000 윤진호 30,000 이보라 10,000 이연종 10,000 이은주 10,000 이지은 20,000 이하니 10,000 임선우 10,000 장은석 5,000 정수연 10,000 정지원 10,000 조원석 10,000 천수경 10,000 최정훈 5,000 한석구 20,000 허종룡 10,000 황선미 20,000
강지영 10,000 고윤희 20,000 권도라 10,000 김남정 10,000 김미정 10,000 김선희 10,000 김영구 10,000 김정대 10,000 김창영 10,000 나하나 10,000 박기범 40,000 박혜경 10,000 서정애 5,000 송혜진 10,000 심희영 10,000 양종수100,000 우상미 10,000 유제흥 10,000 윤회영 10,000 이 설 5,000 이영애 10,000 이장형 20,000 이진선 10,000 이한나 10,000 임은옥 10,000 장효진 10,000 정안철 10,000 조기찬 10,000 조재경 20,000 최두환 10,000 최해경 20,000 한여주 10,000 허중혁 10,000 황지희 10,000
2008년 1ㆍ2월
월별 후원 현황
2월_ 총 3,145,000 원
3월_ 총 2,990,000 원
* 자동이체 : 85,000원
* 자동이체 : 85,000원
김정현 10,000 이교영 40,000 권혁기 10,000 방명진 10,000 한 진 10,000 김영호 5,000
김정현 10,000 이교영 40,000 권혁기 10,000 방명진 10,000 한 진 10,000 김영호 5,000
* CMS : 3,060,000원
* CMS : 2,905,000원
강동호 강현옥 고인석 권순임 김남희 김미정 김선희 김연아 김은애 김지나 김현민 류현진 박정화 반병두 송성숙 신경애 심희영 양종남 온혜림 유병훈 윤회영 이보라 이영애 이장형 이진주 이한나 임재춘 전혁희 정연정 조성대 채성용 최영민 하여주 허윤성 홍해린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30,000 20,000 10,000 20,000 5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강명숙 10,000 강혜진 10,000 고춘식 20,000 권오현 10,000 김대심 10,000 김미정 15,000 김성욱 10,000 김영구 10,000 김정대 10,000 김지연 20,000 김현철 10,000 목윤지영 10,000 박정희 10,000 백진아 10,000 송종열 10,000 신미경 10,000 안미선 20,000 양지희 40,000 우상미 10,000 유현희 10,000 이교헌 10,000 이성종 10,000 이원경 5,000 이정미 30,000 이창신 10,000 이현제 10,000 장성문 20,000 전현경 10,000 정연주 10,000 조영미 5,000 천봉환 10,000 최윤성 20,000 한가흔 10,000 허종룡 10,000 황선미 20,000
강명희 15,000 고미경 10,000 고현주 20,000 권혁철 10,000 김동찬 20,000 김미현 10,000 김세진 20,000 김영미 10,000 김정진 20,000 김지원 10,000 김현희 20,000 문재형 10,000 박종우 10,000 변효정 10,000 송주아 10,000 신순갑 40,000 안상희 10,000 오명진 10,000 우수명100,000 유희경 10,000 이기남 10,000 이성태 50,000 이유신 10,000 이정은 20,000 이철훈 10,000 이혜진 30,000 장은석 5,000 정민기 20,000 정영수 20,000 조원석 10,000 천수경 10,000 최정훈 5,000 한석구 40,000 허중혁 10,000 황지희 10,000
강미선 10,000 고성애 10,000 고희종 10,000 권희정 10,000 김명호 10,000 김 민 10,000 김수근 20,000 김영삼 10,000 김정화 10,000 김창영 10,000 김효정 20,000 박경호 20,000 박판기 20,000 부은희 20,000 송향숙 40,000 신용식 10,000 안준원 10,000 오승은 15,000 원정분 10,000 윤은주 10,000 이문학 20,000 이수나 10,000 이은경 10,000 이정주 10,000 이치형 10,000 이화선 10,000 장효진 10,000 정수연 10,000 정유섭 10,000 조재경 10,000 최두환 10,000 최해경 20,000 한유흔 10,000 홍경숙 10,000
강지영 10,000 고영한 20,000 곽혜림 10,000 김귀련 10,000 김미경 10,000 김민경 10,000 김승희 10,000 김영습 10,000 김종윤 20,000 김태성 10,000 두영미 10,000 박기범 40,000 박현기 20,000 서정애 5,000 송혜민 10,000 신익현 20,000 양승부 5,000 오종환 30,000 유경희 20,000 윤진영 20,000 이미선 10,000 이연수 20,000 이은정 10,000 이지은 20,000 이하니 10,000 임선우 20,000 전봉재 10,000 정수현 60,000 정지원 10,000 조정은 20,000 최명옥 10,000 최희훈 10,000 한주남 10,000 홍미용 10,000
강하자 20,000 고윤희 20,000 권도라 10,000 김남정 10,000 김미순 10,000 김민정 10,000 김양희 40,000 김유정 10,000 김종주 30,000 김태영 5,000 라영준 10,000 박성희 10,000 박혜경 10,000 손의숙 30,000 송혜진 10,000 신재성 10,000 양은일 10,000 오지선 10,000 유병서 20,000 윤진호 30,000 이벽주 10,000 이연종 10,000 이은주 10,000 이진선 20,000 이한나 10,000 임은옥 10,000 전옥희 10,000 정안철 10,000 조기찬 10,000 조혜영 10,000 최선경 20,000 표경흠 10,000 허상문 10,000 홍정모 40,000
강경미 강하자 고춘식 권혁철 김동찬 김민경 김양희 김유정 김종주 김태영 류현진 박영심 박혜경 서정애 송혜민 신재성 양종남 우상미 유제흥 윤회영 이 설 이원경 이정미 이진선 이한나 임재춘 전봉재 정안철 조기찬 채성용 최영민 하여주 허상문 홍정모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30,000 5,000 10,000 10,000 10,000 5,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5,000 3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20,000
강동호 10,000 강현옥 20,000 고현주 20,000 권희정 10,000 김명호 10,000 김민정 10,000 김연아 20,000 김은애 10,000 김지나 30,000 김현철 10,000 목윤지영10,000 박정화 20,000 반병두 50,000 손의숙 30,000 송혜진 10,000 안미선 20,000 양종수 50,000 우수명100,000 유현희 10,000 이교헌 10,000 이성종 10,000 이유신 10,000 이정은 20,000 이진주 10,000 이현제 10,000 임진원 20,000 전옥희 10,000 정연정 20,000 조성대 10,000 천봉환 10,000 최정훈 5,000 한가흔 10,000 허윤성 10,000 홍해린 10,000
* 특별후원 : 0원 * 특별후원 : 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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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숙 강혜진 곽혜림 김귀련 김미순 김선희 김영구 김정대 김지연 김현희 문재형 박정희 배선미 송성숙 신경애 안상희 오명진 원정분 유희경 이기남 이성태 이은경 이정주 이창신 이혜진 장성문 전혁희 정연주 조영미 천수경 최찬욱 한석구 허종룡 황선미
2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20,000 2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50,000 10,000 10,000 10,000 30,000 20,000 10,000 10,000 5,000 10,000 40,000 20,000 10,000 20,000
강명희 고미경 권도라 김남정 김미정 김세진 김영미 김정진 김지원 김효정 박경호 박종우 백진아 송종열 신미경 안준원 오승은 유경희 윤은주 이문학 이수나 이은정 이정호 이철훈 이화선 장성희 전현경 정영수 조용균 최두환 최해경 한유흔 허중혁 황지희
15,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2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5,000 20,000 10,000 2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20,000 10,000 2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강미선 고영한 권순임 김남희 김미정 김수근 김영삼 김정화 김창영 나하나 박기범 박판기 변효정 송주아 신용식 양승부 오종환 유병서 윤진영 이미선 이연수 이은주 이주빈 이치형 임세훈 장은석 정민기 정유섭 조원석 최명옥 최희훈 한주남 홍경숙
10,000 20,000 10,000 10,000 15,000 20,000 10,000 10,000 10,000 20,000 4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30,000 20,000 2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20,000 5,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강지영 고인석 권오현 김대심 김 민 김승희 김영습 김종윤 김태성 노재정 박성희 박현기 부은희 송향숙 신익현 양은일 온혜림 유병훈 윤진호 이벽주 이영애 이장형 이지은 이한나 임은옥 장효진 정수연 정지원 조혜영 최선경 표경흠 한철희 홍미용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20,000 20,000 20,000 20,000 10,000 10,000 10,000 3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20,000 10,000
두레품 2008년 봄⦁통권 62호 2008년 4월 8일 .발행일 심한기 .발행인 유현희 .편집인 나하나 .표지디자인 한울타리 .인쇄 서울시 도봉구 쌍문1동 495-77 송곡빌라 지층 .주소 02-999-9887 .전화 02-999-0860 .전송 www.pumdongi.net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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