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레 품 2007년 여름호
글 싣는 순서
기획. 히말라야와 품
주주와 문화 고춘식과 PD수첩 l 유현희 l 78
1. 심한~개의 히말라야 일기ᅵ심한기
고윤희의 책이야기_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척 하기 l 고윤희 l 83
도시 속에서의 전쟁, 그리고 히말라야 속에의 평화 l 6 사람의 향기 l 20
품, 생각나눔
Happy School Project l 25
가방을 열다 l 미루 l 88 내가 살던 고향은 l 료애 l 91
2. 외부의 시선
마실 다녀온 느낌 l 봉재 l 94
품-네팔 문화예술교육워크숍을 마치고.. l 김월식 l 32 카메라를 들고, 네팔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l 강준상 l 36 네팔, 히말라야~ l 이승연 l 42
지금 만나러 갑니다
My best wishes to PUM l prakash Babu Paudel l 46
도봉여성의집 유미옥 l 100 동환이 어머니 l 103
3. 네팔 품 식구들 Ang Janfbu Shrepa l 50
당신은 품의 주주입니다.
Ang Sange Shrepa l 53 주주를 소개합니다 l 108
강명숙 l 55
주주 후원 현황 l 112
이보라 l 59
품, 활동보고 품 CALENDARᅵ66 주요활동보고ᅵ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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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에 대한 변명...
기획. 히말라야와 품 벌써 나왔어야 할 ‘두레품’이 이제야 주주들에게 전해지게 되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이 이는 용서받기 힘든 잘못이다.
그럼에도 변명을 늘어놓으려는 이유는 잘못에 대한 회피가 아닌 고민과 성장을 위한 과정에 대한 공유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획의 글은 ‘히말라야와 품’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간 홈페이지나 두레품을 통해서 히말라야 이야기가 단막으로 분절되어 전해지긴 했지만 근원적 고민과 객관적 실천들을 제대로 나눈 적은 없었다.
기획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만나기 쉽지 않은 아름다운 작가들의 글은 물론 멀리 네팔에서도 원고가 날아왔다.
이제 조금 이해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기에 ‘히말라야와 품’의 이야기를 발가벗고 내놓으려 한다.
부디 일과 고민과 나눔을 제대로 하려는 시간들을
사람들이 말한다. 품의 무게중심이 너무 네팔로 기운 것 아니냐고. 혹자는 심대표가 네팔에 미쳤다고 한다. 품은 미치치 않았다. 한국과 네팔의 진정한 문화교류를 희망하며...
주주들께서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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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선생님이 숙제로 내준‘일기쓰기’는 박제된 일상의 사진 찍기와도 같다. 하지만
익숙한 일상 또는 낮선 곳에서의 자발적인‘일기쓰기’는 박제된 일상을 자유롭게 한다.
1장. 심한~개의 히말라야 일기
네팔에서 보낸 지난 두 달간의 시간들은 방금 지나간 순간들도 정리되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었다. 그래도 히말라야 땅의 중심인 카트만두라 하지만 그 속에서의 일상들은 강 렬한 태양과 소음 그리고 매연이 어우러져 바쁜 시간들을 더욱 흔들어 놓기 일쑤였다. 몇 주가 지난 지금에서야 잠시 숨을 돌리고 정신없었던 일상들을 해체 해본다. 그리고 이 해체된 긴 일기는 나를 위한 일기가 아닌 품이 작년부터 시도한 히말라야와의 교감 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 위해서이다.
맨 땅에 머리박기... 네트워크란 함정과 오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빠졌었는가? 네트워크란 함정과 오류에 얼마나 많은 소통들이 묻혀버렸는가? 그리고... 네트워크란 스스로의 함정과 오류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이 낭비되고 있었 는가? 그리고 그렇게 아름답지 않은 네트워크를 지켜내려고 얼마나 많은 에너지들이 소 비되고 있었는가? 음 ~ 오직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란다! 시골대합실 같은 카트만두 국제공항에 내려서부터 짐도 못 풀고 시작한 일은 사람 만나 기였다. 어렵게 시작한 네팔에서의 NGO 활동이 말처럼 쉽거나, 함부로 떠들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아는 순간부터 우리는 제대로 된 사람 만나기와 소통하기를 시작했다. 그리 고 이제 시작된 만남들이 그동안 범해왔던 ‘네트워크’란 거만한 함정과 오류에 빠지 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써본다. 하지만... 그것은 안타까운 노력과 과정일 뿐, 늘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Network ... 제대로 된 일의 체계를 가지고 있는 조직이 거의 없을 것(이 또한 지극히 한국적인, 또 는 품의 눈, 나의 눈으로 바라 본 시각이다) 같은 네팔이라는 오만한 우리의 판단들을
Part One.‘도시 속에서의 전쟁 그리고 히말라야 속에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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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어 버린 사람들과의 만남.. 그 힘들은 더위에 지치고, 먼지와 소음에 지치고, 일에 지치고, 다른 문화와 소통방식에 지친. 우리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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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 고수’와 같은 한국에서는 이름 석자만으로도 날아다닐 수 있는 강사들과 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은 앞으로의 활동에 엄청난 자극과 힘과 밑
지 않은 예산, 그리고 수없는 시간을 투자한 두 번째 워크숍을 준비하는 우리는 이번 워
거름이 되었다. 적어도 네팔에서 어떻게 일을 만들어가야 함을 배웠다. 우리는 그것을
크숍 참가자가 오직 Schools' forum nepal 소속의 사립학교 교사로 안일하게 제한되어
알기위해 2년이란 시간을 투자했던 것이다. 이제 제대로 된 일을 만들어 가야 할 시간
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을 공감했다. 네팔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네트워크가 없는 우리
이 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노력으로 청년 예술가들, 네팔의 엔지오 단체, 대학, 교육
는 결국 직접 발로 뛰어 다니는 아날로그 방식을 선택했다. 네팔의 공립학교 연합, 교육
조직 등 관계를 통하지 않았다면 찾지 못했을 좋은 인연들과의 끈을 만들었다. 그리고
대학, 예술대학, 관련된 엔지오 등 가능한 찾아다니고, 가능한 만날 수 있는 모든 조직
다시 다짐해 본다. 허울 좋은 네트워크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과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네팔 품 공동 대표인 앙 장부 세르파, 그 동생인 앙 펨바 세르파, 네팔 품 스텝인 앙 상
☀ SCHOOLS' FORUM NEPAL ?
게 세르파(이 모두는 네팔 동쪽 에베레스트 지역인 솔로쿰부에서 태어난 오리지날 세르 파 친구들이다) 그리고 쥬넬리, 한국에서 달려온 강명숙, 고민정, 서윤호, 심한기 이렇
SCHOOLS' FORUM NEPAL 이란 조직은... 돈 없는 네팔의 정부가 교육에 대한 국가
게 8명이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히말라야의 바람처럼 날아다님은 물론 한국에서는 유
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힘든 상황에서 마구 쏟아져 나온 수많은 네팔의 사립학교(카트
현희와 고윤희가 지원사격을 하였고, 결국 다양한 조직과 학교를 연결하여, 70여명의
만두에만 사립학교가 약 1,000개가 넘는다) 중에 30여개의 사립학교가 만든 조직이다.
참가자를 모집하게 되었다. 전화 한번 하는 것도 반나절이 지나가 버리는 네팔에 상황을
몇 년 전 여행 중 습관처럼 방문하게 된 Future star english school 과의 인연을 시작
고려할 때 이는 경이로운 결과였다.
으로 ‘품’은 네팔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 학교의 교장인 모노즈 씨는 한국의 외국 인 노동자 출신이었고, 또 School's forum Nepal의 핵심 인물이었기에 품은 이 조직과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네팔 엔지오 품에게는 새로운 파트너가 생기기 시작했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네팔의 교육 상황에서 품이 한
평화를 위한 국제 청년 자원활동 조직에 속한 네팔의 엔지오 NIFC, 네팔의 국립대학인
국에서 해왔던 일처럼 문화를 통한 작은 운동을 위해 시작된 작년 첫 문화예술교육 워
트리뷰번 대학 소속의 예술대학인 FINE ART SCHOOL, 그리고 화인아트 학생들을 중
크숍은 시도자체가 감동이었다. 하지만 늘 모든 관계 속에서의 과정들이 그렇듯이 올해
심으로 구성된 자발적인 청년 예술가 모임인 ‘TRUST', 네팔 공립학교 연합 등.. 그 외
부터 작은 갈등과 소통의 문제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수많은 사립학교 조직 중에 하나였
에도 티베인들과 세르파 인을 위해 세워진 티벳탄 스쿨과 세르파 스쿨 그리고 네팔교육
고, 생존의 문제를 근거로 한 조직자체의 위상에만 무게중심을 두었다. 그들은 다른 조
대학, 공립학교 등과의 느슨한 연계 가능성을 만들었다.
직과 영역과의 교류를 거부했고, 오직 자신들과의 관계만을 원했다. 그것의 근거는 사립 학교 간의 경쟁에서 만들어진 결과이다.
하지만
결국 다양한 조직과 집단과의 결합과 관계와
소통을 고민하는 품과는 출발점부터 같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거기에 일을 대하
우린 또 다시 숫자에 연연한 함정에 빠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 많은 조직들과의 첫 인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지켜가는 것이다. 우 리는 그 다양함을 지켜갈 수 있는 준비를 하지 못했다. 네팔 사람들의 여유와 치열하지 않은 일의 습관과 받는 것에 익숙한 문화 그리고 우리와는 다른 생각과 판단들... 그리 고 그들을 자극하고, 동기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속적인 과정이 필요하며, 이는 첫 시작보다 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에 대한 최선의 준비를 다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네팔에서는 여유로운 속도와 준비와 넉넉함이 필요한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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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태도와 문화의 차이점은 근본적인 소통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결국 수많은 노력과 시간과 경제적 비용들이 하나의 조직의 위상을 위해서만 투자되지 않아야 함을 깨닫게 되었고,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며 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우리 또한 첫 관계를 시작한 그들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쉽지 않다고, 쉽게 돌아선다면 국제교류 사업은 성공하기 힘들다. 특히 저개발 국가와의 교류사업은 엄청난 노력과 인내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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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의 게임
기자회견.
언론과의 게임을 시작해봤다.
언뜻 보면, 그리고 차근차근 들
품과 언론은 친한 사이가 아니다. 언론도 품에 관심이 없을 뿐더러 품도 언론을 그다지
여다봐도 이건 기자회견의 풍경
좋아하지 않는다. 즉 서로의 그림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도 아닌 네팔에서 우
이 아니다. 마치 시골마을 복지
리는 언론과의 게임을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하나다. 그들을 자극하고, 동기화하기 위해
회관에서 청년회의를 하는 풍경
서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가치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
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기자회
에게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네팔의 언론은 오직 정치적인 일에만 관심이
견을 준비하는 우리와는 다르게
있었다.
그들은 편안한 그저 마실을 나 온 동네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1주일에 한번 꼴로 벌어지는 시위는 독재왕권에서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에서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또한 네팔은 아직 ‘디지털 미디어의 힘’보다는 입으로 전해지는 구 전 미디어가 훨씬 더 빠르고, 관계를 중심으로 한 혈연과 지연의 문화가 발달한 나라이 다. 때문에 품이 하는 일을 언론에 알리는 작업은 맨 땅에 머리박기 그 자체였다.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딱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기자들에게 밥을 사고, 돈을 주는 방 법이다. 간간히 일본 쪽 사람들은 자신들의 홍보를 위해서 돈을 주고 기사를 사기도 한 다. 품에게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다행인 것은 신문사, 잡지사, 방송사 등 30개가 넘는 언론사 의 기자들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고민정이 영어로 말문을 열었지만 별 반응이 없다. 드 디어 밤 세워 준비한 PPT를 쥬넬리1)가 발표를 한다. 물론 네팔어로 했다. 기자 중에는 영어를 잘 못하는 기자(네팔에는 영어 신문과 네팔어 신문이 따로 있다)도 많을 뿐더러 한국에서 온 엔지오 활동가가 자국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 자체가 신선할 것 같았기에 시도했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히말라야에 사는 神들의 덕분인지 맘씨 좋은 네팔의 한 기자를 만났고 그 기자의 도움 으로 언론사 리스트를 확보했고, 훌륭한 고씨 자매 덕에 한국에서 사전 확보한 리스트를 추가하여, 언론과의 게임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기자회견에 대한 제안이 있어, 고심 고 심하다가 발견한 곳이 바로 ‘reporters club' 이다. 네팔의 크고 작은 언론은 보통 이 작은 클럽을 통한 기자회견을 중심으로 기사가 다루어진다고 한다. 게다가 7만원정도의
잡담을 하던 그들의 시선은 집중되었고, 자국의 언어로 떠드는 작은 한국 아가씨의 모습 을 너무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대부분의 기자들은 기자회견의 내용보다는 쥬넬리 자체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1시간 넘게 진행된 기자회견은 나름의 성 공이었다. 몇몇의 기자들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의도에 대한 동의와 관심을 보였고, 기 자회견이 끝난 후에도 많은 질문을 하기도 했다.
돈을 내면 카트만두에 있는 수많은 신문, 잡지, 방송에 홍보를 대행해 준다. 망설일 이 유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낮선 땅에서 품 최초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다시 밤을 세어 프리젠테이션을 준비 했다. 판은 그들을 감동시킬 짧은 영상을 준비(아쉽게도 기술적인 문제로 당일 상영을 하지는 못했다. 불쌍한 판..)했고, 심한기가 만든 피피티 초안을 맹 과 보라가 재구성했고, 윤호가 기자에게 나눠줄 보도자료를 구성하면 민정은 영어번역, 장부는 네팔어 번역... 그렇게... 아주 훌륭한 엔지오 품의 톱니바퀴는 신나게 돌아갔다.
‘ 마치 억겁의 윤회를 확인하는 마니차의 움직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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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쥬넬리 ( 네팔어로 보름달이란 뜻이며, 한국이름은 이보라) 1년 만에 네팔어를 독파했고, 이젠 한국말보다 네팔어가 더 익숙하다. 또한 한국에서는 전혀 자신 없었던 미모가 네팔에서는 통한다며 스스로에게 채면(최면?)을 걸며 살고 있다. 먹는 것과 자는 것 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지만 한번 일을 시작하면‘똑’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한국에 있을 때에 는 간간히 품에서 자원 활동을 했었고, 무슨 인연인지 굿네이버스 단원으로 네팔로 파견 왔다가...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 일방적 종교적 강요(기독교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님)로 굿네이버스를 그만두고 네팔 엔지오 품으로 안겼다. 거기에 동생인 이준규도 한국의 품에서 놀고 있고, 그의 아버 님 또한 품 주주이다. 가족전체가 품이랑 놀고 있는 거다. 그녀는 아마 한국으로 돌아오기 힘들 것 같다. 분명 그녀의 전생은 히말라야 사람들의 주식인‘달밧’에 들어가는‘던냐’ 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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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은 아직 우리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늘 일방적인 경제적 원조
前. 暴風 ~ 後. 平和.....
에 익숙한 그들에게 그리고 아직도 빵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에게 양국 간의 책임과 역할을 중심으로 한 상호주의적 관계 그리고 문화를 통한 교육운동의 시도
워크숍이 시작되기 전 한달 정도의 과정은 그야말로‘暴風’과도 같았다. 차라리 워크숍
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긴 설득
이 시작된 후부터는 나름의‘平和’를 즐길 정도였다. 아직은 한국의 품 일꾼들이 있어
을 멈추지 않았다.
야 일의 진행이 원활하기에 우리가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에 많은 일들을 해야 했다. 때 문에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홍보를 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초청자를 섭외하고, 참가
“빵을 해결한 후에 교육과 문화를 생각하면 늦는다. 함께 가야 한다.
자 모집과 그들을 대상으로 사전 설문을 하고, 네팔 측 모니터 요원을 선발하고, 교육하
그리고 오직 사회적 신분의 상승과 돈을 벌기위한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 스쿨포럼 네팔과의 역할을 조율하고, 장소를 섭외하는 등의 모든 과정이 4주 정도의
교육의 변화를 시작으로 네팔의 미래가 시작되어야 한다”
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의 품에서는 밤을 새는 일이 허다하지만 네팔 사람들에게는 생각도 못할 일이다. 네 팔사람인 장부와 상게는 아마 품 사람들을 일하는 기계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일 의 체계가 거의 없는 네팔 대부분의 엔지오나 조직들은 계획과정과 실행과정이 매우 단 순하기에 스쿨포럼과의 역할을 나누는 과정은 거의 전쟁터였다. 약속 시간을 안 지키는 것은 기본이었고, 분명히 공식적 회의 시간에 합의를 했던 내용도 돌아서면 바뀌기 일 쑤였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좀 더 확장된 공공성을 위해 그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워크숍 준비 스케줄표 중 일부 PR to The press
외형적인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10여개의 방송과 신문에 보도가 되었다. 하지만 언론
Date
보도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결과를 판단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의도가 제대로 전해진 기
• Arranging the whole [The press participants list interview] - Whole : number of 5/13 people, gender, motivation • Preparation for the press to participate, the condition interview of application by each class
사는 별로 없었다. 심지어는 [ 쥬넬리가 심한기의 친동생이며, 가족이 엔지오 활동을 한 다..]는 웃기 힘든 기사가 크게 난 적도 있다. 결국 소통의 과정이었다. 우리는 네팔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더욱 겸손해야 하며, 더욱.. 속도를 늦춰야 하며, 그들의 생각 과 행동과 문화를 존중해야 함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발 견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하며, 그 노력은 그들과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다 시 배운다.
‘오늘도 이글대는 태양과 거리의 소음들은
• Joint selection of PUM & SFN • The last checking meeting of workshop with SFN, • Checking and 2p.m. transmitting the situation 5/14 [Selecting, Informing of PR to the the failing of participation] press of - SFN side pplicant: SFN Korea side takes charge - PUM side applicant: PUM takes char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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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카트만두를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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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icipant
[The press interview] Reporter's club 2p.m.
Invitation
Workshop program [Monitor] Making a frame
[List] - Gathering the final list of SFN and PUM - The time of [Que-Sheet] invitation, arranging Making the basic contents, que -sheet checking teacher's ability, passion and intention after workshop [Transmitting] Transmitting the whole invitation to Open Workshop, and Free Festival
[Evaluation] Checking the evaluation of monitor
Production materials [Image] the press interview, image of first day of the workshop [Placard] hecking the design course
[Workbook] Edition
[The press interview] PPT
[Placard] Design [Image] completing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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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들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차츰 약속시간을 지키기 시작했으며, 늦으면 미안해했 다. (이전에는 늦어도 미안 해 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문화였다) 회의록과 공식적인 합
The 2nd Korea & Nepal / Culture & arts education workshop 'Seeking the universal truth of teaching through culture and arts education'
의 내용을 문서로 작성하고, 보관하기 시작했다. 또한 워크숍 기간 중에 들어가는 장소 대여비용, 간식비 등을 네팔 쪽에서 부담하고 나름의 역할들을 담당할 수 있는 과정들이 만들어져갔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들이 성장하여, 책임 있는 과정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서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네팔에서의 일은 천천히 차근차근 그리고 그 상황과 문화에 따른 계획과 실천이 필요한 것이다. Opening Workshop 5월 21일
드디어 시작된 워크숍 ....
[2부] • 강의 1. 네팔 교육철학 교수 : 네팔 자체의 문화적 실천과 의식을 통한 교육 발전 필요 • 강의 2. 심한기(품 대표) : 진정한 교육이란, 네팔과 문화교류를 통한 진정한 관계 희망 • 워크숍 분야별 강사와 참가자들의 만남
드디어 워크숍이 시작되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한, 네팔 문화예술교육 워크숍이다. 작년에는 시도한 것 자체에 만족했다면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스쿨포럼 네팔이라는 하나의 조직만이 아닌 다양한 참가자를 선발했고, 언론홍보를 했고, 장소 또한 전문 교육연수원으로 선택했다. 물론 워크숍의 내용 또한 다양해졌다. 확장되고, 커가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 다. 하지만 두 번째 워크숍에서 우리가 계획한 가장 큰 의도는 장기적으로 우리가 해야
Teacher Workshop 5월 22-23일
할 가치 있는 일들에 대한 점검과 실험이었다.
워크숍의 첫날은 워크숍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네팔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왜 필요한 것
[1부] • 축하인사, 워크숍 시작을 알림(SFN 코디네이터-머노즈) • 초청 손님과 스텝 소개(SFN 코디네이터-머노즈) • 이미지로 보는 워크숍-영상쇼(김판중) • 환영인사(Ang Jangbu Sherpa / 네팔 품 대표) • 품과 워크숍 프리젠테이션(이보라) • 축하인사 : 사립학교 총 연합-National PABSAN대표-TiKa : 네팔 주재 한국 대사관 대사-남상정 : 네팔 교육부 차관-Mohan • 감사인사(Rabi Raj Shahi-SFN 대표)
Youth Workshop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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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Animation / 박찬국(밀머리 미술학교) Human Relationship / 박상영(탈북청소년교육공동체‘셋넷학교장’) Expressional Arts / 김월식(계원예술대학교 겸임교수) Multimedia Creation Fair Tale / 목윤지영(어린이문화‘사과’책임교사) Drama Play / 권혁기(연극연출가)
• 네팔 참가교사들이 청소년 대상으로 분야별 문화예술교육 실천하기.
인가?를 전달하는 자리였고, 우리의 의도를 알리기 위해, 네팔의 교육체육부 차관, 한국 대사 등 관련 단체나 조직의 대표들을 초청했다. 네팔 사람들은 세레모니를 아주 좋아한 다. 작은 학교를 방문해도 축사, 인사, 소개, 환영 의식 등이 보통 1시간을 넘는다. 이 날 역시 축사, 인사 등 기본적인 세레모니만 2시간이 넘게 진행되었다. 약속시간은 안 지키지만 기나긴 세레모니는 빠지지 않으며, 심지어는 3~4시간이 넘는 인사말 시간도 Free Festival 5월 25일
참고 견디는 사람들이다.
[야외] • Open Gallery / 네팔 사진작가 Mani Lama :워크숍 진행사진 및 한국사진 전시(Mani Lama) • 분반별 과정 결과물 전시 [분야별 발표 및 축하공연] • 오프닝 이미지쇼 / 김판중 • Drama Play : 연극 시연 및 소감 발표 • Multimedia Creation Fair Tale : 작품 및 소감 발표 • Expressional Art : 과정사진을 통한 진행과정 발표 • Eco-Animation : 참가자 및 청소년이 제작한 작품 발표와 소감 • Human Relationship : 퍼포먼스 및 소감 발표 [정리] • 강사와 참가자의 마지막 정리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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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과 셋째 날은 본격적으로 네팔의 교사와 예술가를 대상으로 한 교육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작년과 다르게 학교 교사뿐만 아니라, 네팔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대학에서 예술 또는 교육을 전공하는 예비교사와 젊은 예술가, 사회복지 활동가 등 다양한 영역에 서 온 70여명의 참가자들과 한국에서 날아온 다섯 명의 고수들은 각자의 스타일과 의도 를 가지고 워크숍을 진행했다. 또한 과정의 기록과 활용 그리고 다음 작업을 위해 작년 워크숍 에 참가한 네팔 교사들과 엔지오 품의 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모니터 팀도 함께 했다. 장소 또한 작년보다 환경이 좋았고, 넓은 강의실과 정원에서 진행되는 워크숍의 풍경은 마치‘편안한 정원에서의 아름다운 만남의 시간’을 만나는 것과 같았다. 노래소 리, 웃음소리, 거친 숨소리, 그리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소리들이 엉켜지고 있었다. 넷째 날은 워크숍에 참가한 교사와 예술가들이 네팔의 청소년들에게 이틀간 경험했던 워크숍의 내용을 직접 실천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교육 또는 수업 에 직접적인 활용을 할 수 있는 활용 기술을 희망했다. 이는 네팔 뿐 만이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교육의 의도와 가치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근본 즉 WHY?, WHAT? 보다는 HOW에 관심이 많다. 우리가 시도하고자 했던 것은 수업의 기술을 위한 워크숍이 아니었다. 물론 방법과 기술 역시 중요하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문화예술 교육의 방식과 방법이었다. 네팔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산간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3시간 첫날 우리가 의도한 핵심은 인사말과 축사가 아닌 교육부 차관이나 한국대사 그리고 다 른 대표들에게 우리의 의도를 알리는 것이었기에 나름의 작전을 짰다. 보통 자신의 인사 말만 하고 행사장을 떠나는 리더를 잡기 위해, 워크숍과 품의 의도를 알리는 PPT 발표 를 먼저 하고 축사와 인사 시간을 배치했다. 자리를 잡은 내빈들 앞에서 판이 제작한 영 상을 틀었고, 우리의 쥬넬리는 당당하고, 유창한 네팔어로 우리의 취지와 워크숍의 의미 를 발표했다. 기자회견과 마찬가지로, 많은 내빈들과 참가자들이 감동하는 듯했다.
씩 걸어서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가난한 부모들에게 가장 큰 관심은 교육이었다. 하지 만 그 열망의 뿌리는 빈곤의 탈출과 신분상승에 너무도 집중되어 있다. 또한 학교교육의 환경 또한 매우 열악하며, 난무하는 사립학교에서는 교육이란 이름을 이용하여, 사업을 하는 곳도 많다. 결국 대부분의 교사들은 획일적인 교육방식에 익숙해 있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다양성을 연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아쉬웠 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워크숍은 이것에 대한 대안적 실천이기도 하다.
이후 내빈 소개와 인사말이 끝난 후 잠깐의 휴식을 갖고, 나는 ‘Why have we come here?' 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워크숍에 대한 의식적 교감을 할 수 있는 강의를 했다. 통 역의 번거로움과 전달과정의 문제 때문에 영어로 강의를 했다. 영어강의는 네팔에서 세 번째 이지만 참으로 고통스럽다. 고민정이 땀나게 영작 해준 강의 안을 1주일간 외우고, 고치고... 심지어는 꿈에서도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들의 문화와 의식에 다가가기 위해, 한국의 사례나 이론보다는 히말라야와 연관된 ’현자‘들인 구루 링포체(파드마삼바바), 만주수리, 타고르 등의 이야기와 그들에게 익숙한 우파니샤드, 바가바드기타 등 힌두와 불교와 연관된 사상과 이론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했지만.. 긴 세레모니로 진이 빠져버린 분위기와 유창하지 못한 영어실력 때문에 충분한 교감과 소통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영어!.... 너 ~ 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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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은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을 초청하여 워크숍의 모든 과정을 나누는 발표회를
네팔에서는 제법 유명한 'Gurukul school of Theatre'에서 사진과 작품전시 그리고 네
페스티벌 형식으로 시도했다.
팔 청소년들의 문화공연과 워크숍의 과정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가자는 물론 일 반 참가자들까지 약 700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참가자를 중심으로 한 교육 워크숍만을 가지는 일적인 일정에 욕심을 내어서, 청소년들 에게 실습을 할 수 있는 과정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까지 5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들을 투자했다. 많은 시간과 예산, 전문 인력들이 참여한 만큼 일회적인 결과에 만족할 수 없었기에 이후 우리는 모든 과정과 결과를 담은 매뉴얼 또는 보고서 를 만들어 네팔의 학교교사, 대학생, 예술가 등에게 배포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짧지 않고,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워크숍은 성공적이었다. 성공적이었다는 표현 속에 는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던 것이 포함된다. 모든 일에 완벽한 성공은 없다. 이번 워크숍 역시 부족한 점이 많았고, 품의 실수도 많았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성공이란 말을 서슴없이 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확신이다.
우리 자신에게 던져 보는 질문..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그들도 원하고 있는가? 그것이 필요한 것임을 전달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프로젝트의 한계를 넘어 삶을 나누듯 멈추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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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역시 고수였다. 같은 시간과 프로그램을 참여하면서 각자 나름의 경험을 만들었 고, 나름의 실험을 하였다. 그리고 목윤지영 선생을 제외하고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술 마시기’에 고수들이 었다는 사실이다. 첫날부터 그들은 처음 찾는 히말라야의 다양한‘술’들을 탐색하기 시 작했고 그 엄청난 탐색의 열정은 한국으로 가는 날까지 멈추질 않았다. 물론 한국에 가 서도 쉬지 않았을 것이다. 가끔 박 모 선생님은 누군가에 업혀서 들어오셨고, 김 모 선 생님은 호텔 마당에서 주무셨으며, 권 모 선생님은 밝히기 힘든 탐험을 시도하셨고, 박~ 모 선생님은 타멜 거리의 경찰관이었다. 오직 목윤지영 여사만이 매일 매일 3백번 의 절과 깊은 명상으로 네팔의 기운을 가져가셨다.
Part two. 사람의 향기
물론 워크숍은 너무도 잘 진행되었다. 참가한 네팔의 교사와 예술가들은 처음 경험하는 프로그램에 매우 만족했고, 몇몇은 사고의 전환과 새로운 실천에 대한 도전을 받기도 했 다. 그래서 그들은 강호의 고수들이다. 그것도 아주 멋 나는 강호의 고수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워크숍을 마친 다음 날 곧바로 쉼을 가졌다. 한 사람은 부처가 태어난 곳으로 날 아갔고, 나머지 사람들은 휴양지로 날아갔다. 그렇게 강호의 고수들은 주어진 2주간의 시간들을 탐험과 경험과 쉼으로 채워갔다.
강호의 고수들 ! 품이 강호의 고수들을 모시고 간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일단 강호의 고수들을 모시고, 네팔에서의 엔지오 활동에 대한 점검을 받고 싶었고, 다양한 분야에서의 최소 전문가들 과 함께 앞으로의 활동을 위한 실험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단 1시간의 쉼 도 갖기 힘든 그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쉼을 가지게 하고 싶었다. 내가 네팔에서 찾았던 쉼 이기도 하다. 결국 강호의 고수들은 내 계략에 넘어갔고, 강사비도 안주는 워크숍에 그것도 네팔까지 날아가 2주간의 일정을 투자했다. 이번에 참가한 강호의 고수들은 여 러 면에서 고수였다. 일단 문화예술교육 분야에서 밀머리 미술학교의 박찬국, 스톤 앤 워터 활동과 다양한 예
품은 앞으로도 강호의 고수이던 예비 고수이던,
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월식, 어린이문화 사과의 목윤지영, 연극연출가 권혁기, 셋넷학
진정성 있는 전문가들을 끊임없이 히말라야로 유인할 것이며,
교 교장인 박상영..등의 이름은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져 있다. 그렇게 자기분야에 전문
그들의 생각과 일을 히말라야와 연결하는
성과 경험 그리고 독특한 사례들을 가지고 있는 고수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관리
‘히말라야의 무당’으로서의 역할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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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컬트'적인 우리의 다큐멘터리 팀
이렇게 모인 사람들이 네팔에서 보여준 50일 가량의 시간들은 참으로 독특하였다. 글이나 말로는 표현하기가 힘들다. 물론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강호의 고수인 강사
이번 네팔 사업에서 빠지지 않고 설명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워크숍을 포함하여, 네
팀들과 마찬가지고 이들 또한‘음주의 고수’였다는 것 (아마 체류비의 80%는 음주로
팔과 한국의 현대화 과정과 변화와 그리고 그것들의 관계성 등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
활용했을 것이다.)과 쉬지 않는 고민과 토론 그리고 진정성을 위한 몸짓을 멈추지 않았
기 위해 합류한 영상팀이다. 물론 이들은 품의 사업을 홍보영상으로 만들기 위해 참여한
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들에게 배운 것이 많다. 물론 가끔 보여주는‘컬트장
팀이 아니다. 그들만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참여한 사람들이며, 워크숍 또한 그
면’들이 힘들기도 했지만 그들에겐 진정성을 향한 각각의 에너지들이 있었다. 특히 강
들이 제작하는 작품의 소스이기도 했다. 물론 품에서 진행하는 사업과 연관성이 있었고,
준상 이란 사람의 에너지는 가끔 호텔 정원에 있는 꽃까지도 시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먼저 제안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 사업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팀이었다.
이제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재구성된 영상 작품을 출산할 것이다. 물론 다큐멘터리는 컬 트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들이 제작한 영상은 매년 네팔 카트만두에서 열리는 국제적
이들 팀의 구성원을 들여다보면 그것 자체가 신기한 컬트무비를 보는 것과 같다.
인 영상제인‘마운틴 필름 페스티벌’에 출품될 예정이다.
네팔 사람들에게도 유명할 정도로 무거운 침묵과 어둠의 그림자로 만든 망토를 쓰고 다 니는 다큐감독 강준상. 세상의 편견, 폭력, 부조리에 대한 침묵의 혁명을 꿈꾸며, 소수 자를 영상의 언어로 조망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이다. 물론 이는 순전히 나의 판
더 많은 사람의 향기...
단이다. 거의 난민 수준의 몸매에도 불구하고, 15kg의 카메라를 손가락(?)에 끼고 다니 며, 어둠의 망토를 쓴 강준상 감독에게 끊임없이 시비를 거는 카메라 감독 권호창. 이 인간은 영상을 전공했고, 때론 영화나 다큐를 연출을 하는 전문가라고 한다. (물론 확인 된 증거는 없다. 그 자신의 말을 인용했다.) 존경하는(?) 강준상 선배의 권유로 참여했 다. 그리고 품에서 크다가 학교도 그만두고, 결국 세상 밖으로 탈출하여, 모든 만물을 호기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가... 올해 오~ 히말라야에서 우연히 잡은 카메라에 빠져 결국 저널리스트의 꿈을 안고 덤벼든 기록감독 판. (이 사람들은 모두가 감독이다. 근데 기록도 감독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근데 누구를 감독하는지.. 지~가 다 하면서..)
오랜 전 방영되었던 드라마‘상도’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진정한 장사꾼은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긴다..’폭풍 같았던 이번 과정에서는 남은 것은 사람뿐이 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의 힘과 소중함’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아름 다운 결과였다. 네팔 품 활동가인 쥬넬리가 자신감을 얻고, 엔지오 활동가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확인했고, 정식으로 엔지오 품 활동을 시작하는 SANGE의 가능성을 확인했고, 공동대표인 JANGBU의 역할과 진정성을 확인했다. 서윤호는 친구로서 그리고 일의 파 트너로서 온갖 잡일부터 커다란 역할까지 소리 없이 맡아 주었고, 한국 품 네팔사업 담 당자인 강명숙도 오랜 기간의 방황과 이별하며, 조금 더 깊은 내공을 쌓아가는 과정을 경험했다. 아무래도 강명숙은 2-3년 후 쯤에는 네팔에서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그리 고 한국에서 훌륭한 지원사격을 해준 고윤희와 스텝으로 참가한 고민정 또한 품과의 멋 진 파트너로서 그리고 스스로에게는 '희열’이 있는 과정들을 경험했을 것이다. 또한 유 네스코한국위원회
강종환의
소개로
만나게
된
네팔의
엔지오‘NIFC’의
대표
PRAKASH 와는 일만이 아닌 진솔한 동지로서의 관계를 만들게 되었다. 함께했던 강사 와 다큐팀, 네팔의 청년들, 교사들, 예술가들, 기자들 모두 기억과 추억이 아닌 앞으로 의 삶의 과정에서 또 다시 연결될 것이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향기가 나는 것이 아닐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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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 이후.. 평화는 왔는가? 생각해보면 모든 시간들이 전쟁이었고, 또 평화였기도 하다. 카트만두의 소음과 매연 속 에서 우리에겐 늘 전쟁과 평화가 함께 공존했었다. 워크숍 이후 약 3주간의 일정 역시 만만치는 않았다. 하지만 워크숍의 성과와 한계를 매우 객관적으로 예측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강호의 고수들이 쉼을 위해 떠난 카트만두는 참으로 고요(?)했다. 일 주일간은 정리의 시간이었다. 늘 프로그램을 하는 시간보다 준비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더 길고 힘들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하는가? 에 따라 일의 가치와 결과가 결정되기 도 한다. 우리의 일 역시 한탕! 요란하게 떠들고 말 것이 아니었기에 정리의 시간이 중 요했다. 모니터 결과를 취합하고, 설문지를 분석하고, 네트워크 현황과 언론보도 자료를 정리하 고, 진행과정에 대한 평가를 하는 일반적인 정리과정은 물론 우리가 가장 집중했던 사후 일정은 워크숍의 에너지를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란 고민과 함께 이렇게 노력한 땀
Part three. Happy School Project
들이 네팔 안에서 지속적인 하나의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일이었다. 물론 당장 될 수 있는 일은 절대로 아니지만 그것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근 거들을 찾고 싶었다. 그러한 중 히말라야에서만 가능한 일(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늘 네팔과 히말라야와 연관된 일들은 기막힌 운명들로 연결되어 나타난다)들이 벌어졌다.
해피 스쿨 프로젝트는 사전에 기획된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워크숍을 진행하고, 이 이후 에 찾아야 할 연결점을 고민하던 중에 운명처럼 만들어진 일이었다. 원래 품에서는 워크 숍 프로그램과 관련 없이 한국의 장애 청소년 대안학교인 나눔학교와 함께 장애 청소년 들의 히말라야 여행 프로그램이 계획되어 있었다. 이 역시 자칭‘히말라야의 무당’인 내가 재단의 이사장(개인적으로는 예전에 함께 일했던 절친한 선배이기도 하다)님을 꼬 득 여서 시작된 일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히말라야를 여행하며, 새로운 방식의 언 어와 감성으로 네팔의 아이들과 교류를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추진한된 일이었다. 그리고 획일적인 방식의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나눔학교 역시 원하지 않았기에 한적한 시골학교 의 아이들과 살갑게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 터였다. 그러던 중 나눔학교의 학교방문 프로그램과 워크숍의 에너지를 연결할 수 있는 고리를 만들게 되었다. 원래의 계획은 나눔학교 아이들이 시골학교(초등학교)를 방문하여 그들 과 함께 자연스럽게 놀고, 또 시설과 환경이 열악한 학교에 작은 희망을 줄 수 있는 신 나는 학교 꾸미기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애 청소년들과 저학년 위주의 네팔의 아이들이 자연스러운 교감을 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물리적인 환경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워크숍의 에너지를 이어가고, 또 나눔학교의 프 로그램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즉석 프로젝트를 시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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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워크숍 참가자를 대상으로 이후 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한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무엇이 변화하였고, 무엇을 가능하게 했는가?
있는 핵심 인자들을 찾고 있었으며, 동시에 'Fine Art' 라는 예술대학을 방문하여 젊은 예술가로서 가치 있는 공공예술 활동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찾기 위한 설명회를 열기도
솔직히 크게 변화된 것은 없고, 특별하게 남긴 것도 없다.
하였다. 거기에 한 술 더하여,‘판’을 중심으로 한 컬트 다큐 팀이 예술대학 학생들을
단기간의 워크숍이나 프로젝트만으로는‘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엔지오 품이 네팔에
꼬득여서 젊은 예술가들의 상상으로 시도해보는 거리 퍼포먼스 팀을 만들어 카트만두
서 지속적인 운동을 만들어가려면‘사람’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 결국 지속적인 에너지
곳곳을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의 힘을 가늠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비록 짧은 시도와 경험이 었지만 앞으로의 가능성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늘 받는 것에만 익숙해
그래서 이 모든 에너지들을 하나로 모아 시도한 것이 'Happy school project'이다. 워크숍에 참가자, 거리 퍼포먼스 팀, 예술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문화를 통한 현장 실 천을 꿈꾸는 사람들을 모집했으며,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원을 했다. 이것 역시 우리 의 실험이었다. 실제 진행과정은 이렇다...
있고, 스스로의 실천을 상상하지 않는 대부분의 학교, 교사, 네팔의 청년들, 예술가 들 이 스스로의 힘과 동기를 찾아가며, 무언을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교 운동장이 망가지고, 담장이 무너지고, 교실이 어두워도 삽 한번 들지 않고, 그 흔 한 전구 하나 갈아주지 않았던 모노하라 스쿨의 교장과 교사와 마을 주민들이 삽과 곡 괭이를 들기 시작했고, 닫힌 공간에서 캔버스에 그림만을 그리던 젊은 예술가의‘붓’이
해피스쿨 프로젝트 팀 구성 및 프로젝트 세부안 만들기
세상 속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받는 것에만 익숙했던 그들이 나누는 것에 대한 희망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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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조우하기 시작했다.
해피스쿨 프로젝트 대상 학교인 모노하라 스쿨 방문, 사전준비 1박
▼ 해피스쿨 프로젝트 시행 < 나눔학교 아이들, 모노하라 학생들, 해피스쿨 프로젝트팀 >
▼ 모노하라 스쿨 엔지오 품 사후 방문
▼ 문화를 통한 교육의 변화 일상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자원활동그룹 모집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고, 만들고, 우리 스스로 판단된 무엇을 제공하는 방식이 아닌 그들 스스로 자기 동기를 가지고, 자신들의 힘으로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그들을 흔들고, 자극하고, 그리고 함께 고민하고, 지원하는 일 그것이 바로 엔지오 품이 만들어가야 하는 일임을 확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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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품’으로..... 그래서 배낭을 꾸린다. 판중이와 너무도 닮은 네팔의 판중, ‘쿠말’에게 전화를 한다. ‘ 짐 싸라! ’ 잠시지만 'EVEREST' 로 향한다. 도망이 아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힘을 충전하러, 히말 라야의‘품’에 안겨본다. 그저 하늘을 막고 서있는 에베레스트와 잡담을 나눈 것 뿐인 데 두통도 사라지고, 매일 마시는 술 땜에 재발한 아토피 증상도 사라지고, 미움들도 피 곤함 들도 기억나지 않는다.
비와 먹구름으로 보낸, 6일 동안의 에베레스트 트레킹 산행 중, 단 20분만을 허용했던 에베레스트
떠나는 사람들과 남아 있는 사람들.... 하나 둘 히말라야를 찾았던 사람들이 떠나고 있다. 강호의 고수들이 그들의 자리로 돌아 갔고, 히말라야의 구름보다 더 행복한 미소를 갖고 있었던 나눔학교 아이들이 떠났고, 치열한 'Locality'를 찾아 헤매던 컬트 영상 팀이 히말라야를 떠났고, 불굴의 전사 강명 숙과 고민정이 그리운 그들의‘품’을 향해 히말라야와 작별을 했다. 두 달 동안 오고 가는 사람들 덕에 카트만두 국제공항을 동네 구멍가게 드나들듯 다녔었다. 모두 다 ~ 떠나고 지겨운 서윤호와 나만이 텅 빈 호텔에 남아있다. 언제나 이곳을 지키는 네팔 식 구들과 쥬넬리와 함께 남은 일들을 정리하다가... 갑자기 숨이 막혀 옴을 감지한다. 정
이젠 내가 떠날 순서가 왔다. 다시 돌아올 곳이기에 작별 인사도 필요하지 않다. 다만, 서울에 도착하면서부터 쉬지 않고 울려댈 핸드폰을 받지 않을 용기만이 필요할 뿐이다.
신과 육신이 석고상처럼 박제되고 있음을 감지한다. 히말라야와는 이미 8번째의 만남이 지만 이번처럼 히말라야의 산바람은 구경도 못하고, 오로지 카트만두의 매연과 소음하고 만 씨름하기는 처음이었다. 이젠 사람들과의 만남도 힘들어진다.
나는 히말라야의 ‘무당’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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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장. 외부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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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성. 문 품 네팔 문화예술교육 교류 워크숍을 마치고
네팔에서 돌아온 후 숨가쁜 일상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적지 않은 메일들이 그들에게 서 날아왔다. 프라딥, 딥말라, 쩐드라, 그리고 2주 동안 내 뒤치다꺼리를 마다않던 밀란 에게서 까지. 짧은 영어실력으로 들여다봐도 온통 그리움과 걱정 투성인 그들의 안부를 과연 내가 받을 자격이 있을까? 답 메일을 몇 자 적으면서 내가 네팔에 남기고 온 어 줍지 않은 약속에 대해 공연한 짓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를 한다. 책임지지 못 할 수많은 말들 속에서 그들에게 주었을 어떤 희망과 감흥, 불편과 갈등, 각오와 오기 같은 부산물들의 파편들을 그들은 어떻게 잘 추스르며 살고 있을까? 내가 과연 그들에 게 그런 영향을 줄 만큼 도덕적으로 문화예술적으로 좋은 선생의 노릇을 할 만한 사람 인가? 에 대한 자신도 신념도 부족한 것이 사실인 현재의 나는 이런 모든 단상들이 다 부담스럽고 무거운 짐처럼만 느껴진다.
매번 어떤 모임이나 클라스에서의 문화예술교육 수업을 마칠 때면 이런 비슷한 감정들 이 나를 불편하게 한 게 사실이지만 나를 또 다시 문화예술교육현장으로 이끌어내는 다 른 각오와 신념들, 이를테면 문화예술교육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문화와 예술을 편 협하고 뻔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수준의 수없이 많은 워크숍과 강의들을 보다 못한 치기 어린 나의 오지랖들이 이번 네팔 워크숍 이후에는 쉽게 발휘되지가 않는다. 한국에서의 워크숍은 어떤 상황에서도 구성원들이나 교육생들에게 이렇듯 많은 미안함을 만들어내 지는 않는다. 그건 아마도 내가 교육한 수많은 사람들의 여러 가지 상황에 비추어 내가 나고 자란 경험이 훨씬 더 열악하고 파란만장했으며 눈물나게도 많은 어려운 시간을 관 통하며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무지가 그저 답답하게만
_ 김월식. Artist
느껴지는 그런 상대적으로 심리적으로 키를 쥔 자의 편안함과 안도감 같은 것이 있었기
한국-네팔 문화예술교육워크숍 표현미술분반 강사.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는‘내가 여러분 같은 상황에서 성장했다면 나는 정말 여
5일 동안 네팔 참가자들과 한 몸이 되어버린 그.
러 가지 상황에서도 자유롭게 상상하고 날라 다닐 수 있는 지금보다 더 훌륭한 문화예 술전문가가 되어 있었을 거예요’ 하는 이상하고 편협한 콤플렉스와 함께 교육현장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났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감동한 듯 한 표정과 말들을 안 그런 척하고 달콤하게 즐겼을 수도 있고, 내가 하는 문화예술교육이 어쩌면 세상을 조금이라
벌써 아득한 일이 되어 버렸다. 한국에서의 시간이란 그 분,초를 끊어서 지속적으로 다 른 의미의 일상을 비선형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시간인지라 더욱 직업이 작가인 나로서
도 다양하고 정서적으로 윤택하게 만들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알 수없는 희망을 품고 오늘까지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는 견디기 힘든 많은 일들로 하여금 황금 같은 내 젊은 날의 가장 중요한 몇몇의 경험 들을 그저 아득한 기억 속으로 몰아넣는 뻔한 실수를 되풀이하고야 만다. 실제 중요한 것들을 챙기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애써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것들은 많이 있다. 특히 예술가로서 취해야 하는 태도 와 신념의 진정성 같은 것 말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내가 말하는 문화예술교육에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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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와 신념과 다른 삶은 살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특히 나의 작업으로 돌아서서
오늘은 막내 동생처럼 귀여운 쩐드라에게 답 메일이나 보내야겠다.
나는 한 번도 타인의 시선을 염두에 둔 적이 없는 나만의 삶의 방식만을 존중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인간이다. 따라서 내가 내 작업에서 바라는 소통구조란 일반 대중과의 눈높이 교감이랄까 소통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려는 구조가 아니라 오히려 의미의 덫과 함정을 파 놓으면서 스스로 그 놀이에만 집중하는 개인적인 구조이기 때문에 일반 문화예술교육현장 에서의 다양한 소통경로와 타인과의 대화를 통한 차이에 대한 이해라는 측면은 나의 작업 에서는 거의 고려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난해한 소통구조를 가지고 오직 작업적 인 신념과 태도만 가지고 평생 작가의 길을 살아온 내가 문화예술교육현장에서 타인들에 게 다양한 소통을 이야기 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찌 보면 사기에 가까운 일이다. 이런 생 각의 끝은 문화예술교육현장에서의 내 모습을 가식의 모습으로 판단하게 만든다. 심각하 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나의 이러한 입장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나는 문화예술교육현장을 떠나 그저 한 예술쟁이가 되야 하는게 맞는 일인 듯하다. 그래서 내가 궁색하게 찾아낸 변명은 늘 나의 교육은 성경 같은 게 아니라는 말 뿐이다.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또는 내 생각이 필요한 몇몇의 사람들에게 내 문화에 대한 예술 에 대한 철학을 나눈다는 변명인 것이다. 따라서 나는 계속 작업의 세계에 있고 일반적인 문화예술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수의 비적응자들과 또는 기존의 이야기가 지겨운 새로 운 호기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냥 사소한 이벤트처럼 받아들일 수 있게 하자는게 지금의 궁색한 내 생각이다. 그래야만 교육현장에서의 이상한 자긍심도 생기지 않고 네팔 에서처럼 오히려 그들에게 많은 빚을 진 것 같은 마음에서도 벗어날 듯하다. 하럴드 제만 의‘태도가 형식이 될 때’처럼 나의 이러한 태도가 내 작업과 교육이 될 것 같다.
이런저런 불편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던져놓고 온 나의 말을 추스르려 다시 네팔에 갈 것이다. 물론 저번과는 다른 태도를 가지고 말이다. 또 한번의 만남으로 내 빚을 다 청산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 만큼 나를 순수하게 만나주었 던 네팔리들에게 반성의 인사와 그들의 생각대로 선택할 수 있는 나의 예술을 가지고 말이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 또래의 한국 대학생들이나 교사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한 다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들이 만나는 한국 예술이 혹, 나 한명으로 인해 오해가 생기 지 않도록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는 여러 사람과 그들을 만나게 해 주고 싶다. 그래야만 내가 그들에게 진 빚을 어느 정도 청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은 또 다른 사람들 과 만나면서 다른 소통의 창구를 마련할 수 있을 테니까. 동시대를 살면서 분명히 같이 동등한 입장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갈 장치들은 존재할 테니까. ‘활극도 긴장도 농담도 없는 Narrative’김월식,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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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들고, 네팔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25살 늦은 나이에 영화 해보겠다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진학했다. 왜냐고? 물론 영화를 좋아했으니까. 키에슬롭스키의 무의식적 공간에서의 타자와의 만남이란 신비와 매혹의 모던, 장 뤽 고다르의 현란하고 난해한 독백 속의 현대사회와 미래의 징후들, 에 릭 로메의 느슨한 휴양지에서의 대화 사이의 간극, 마틴 스콜세지 영화 속 뉴욕 뒷골목 의 비열함, 그리고 우디 알렌의 뉴요커들의 현대사회 속 집착과 정신분열에, 뭐 어쨌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영화들 속에서 살았다. 그래서 영상원에 갔다.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고 싶었으니까. 누구나 20대 때는 그렇지 않은 가? 물론 난 매우 ‘진지한’ 청년이었고, 단순히‘좋아하니까’로 성에 찬 답변이 될 수는 없었다. 그 당시에는 뭔가 대단한 의미부여를 하고 있었고, A4 10장을 충분히 넘길 수 있을 만큼 영화를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다. 대략 그때 난 완전 먹물이었다. 서구 지식인들 의 잘난 척 하는 현란한 사유구조에 빠져있었으니까. 영화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측정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이자, 미래사회의 징후를 보여주는 꿈의 분석과도 같은 것이었고, 나아 가서는 현실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난 어쨌건 영화광이었다. 그렇지만 영상원을 서른이 넘은 늦은 나이에 졸업하면서 영화를 잊기로 했다. 영화를 전 공하며 영화는 현실이 되었고, 충무로와 한국의 좁디좁은 영화판으로 들어가기 위한 지 루한 과정이 되었다. 그 안에서 난 무력함에 빠졌고, 환멸이라고 말하기도 멋쩍은 지리 멸렬함에 지치기만 했다. 아마도 능력 부족이었거나 노력 부족이었겠지만, 영화를 통해 서 그 어떤 미래가치도 발견할 수 없었다. 어쨌건 난 영상원을 졸업하며 다시는 영화에 대한 미련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_ 강준상. 영상팀 총 연출 철저히 제 3자를 원한 그. 과묵의 무게만큼 강한 카리스마
무엇인가 다른 것이 필요했다. 87년 이후 형식적인 민주주의만 성장한 채, 실질적인 민 주주의는 퇴보해, 사회적 양극화는 심해지고, 청년들의 정치적 참여의식은 갈수록 떨어 지고, 성장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복잡다단해져 실체에 다가가 기도 힘든 전지구의 자본이란 거대한 제국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 그 현실 속을 살아가 는 동시대 사람들의 삶의 숨결과 작은 고민의 결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 안에서 작은 몸
들어가며.
짓이라도 하고,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변화하는데 겨자씨만큼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안녕하세요. 전 이번에 한 달 여간 품과 함께 네팔에서 가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한 강준
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결심! 홋 그렇게 대단한 결심을??!! 그러나 서른이 넘은 나
상입니다. 이 글은 맹 선생님으로부터 품의 바깥에서 본 네팔의 여정에 대해 써달라는
이에, 내가 배워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카메라를 드는 일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프
청탁을 듣고 쓰는 것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으실 분은 품 식구들과 품의 지인들이겠죠.
로메테우스라는 인터넷 언론사에 영상기자로 들어가게 됐다. (현재 프로메테우스는 재정
저를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으니 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적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기자들은 모두 퇴사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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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에서 작은 DV 캠코더를 들고 주류 언론사에서 주목받지 않는 투쟁의 현장,
흠, 2,3쪽 분량의 글을 쓰라고 했는데 벌써 반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 네팔 공항은 커녕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으려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2년여를 보냈다. 하지만 그
인천 공항에도 도착을 못했구나. 이제 시작해보자. 네팔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
울림은 널리 전파되지 못했다. 많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지면에 그 이야기를 다 할
고? 아니,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직 네팔 이야기로 넘어갈 수 없다. 네팔에 가기 전 이야
수는 없다. 그러려고 쓰기 시작한 글도 아니고.
기를 조금 더 해야겠다.
어쨌든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도 변화해야 했고, 프로메테우스도 변화해야
네팔에 난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다큐멘터리의 주인공들 - 빌
했고, 내 주변의 동료들도 변화해야 했고, 진보적 언론사와 영상운동도 변화해야 했다.
니콜스라는 다큐멘터리 이론가는 다큐멘터리의 등장인물들을 사회적 배우(social actor)
그렇게 2007년은 새롭게 시작해야한다는 강박과 함께 시작한 해이다. 그 강박은 나름
라 칭한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얘기다. 흔히들 다큐멘터리는 연출이 배제된 있는
절실한 것이었다. 이제 30대 후반이 되어버린 지금의 나 개인에게도, 3년 넘게 출구를
그대로의 사실이요, 다큐멘터리나 뉴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이라
찾지 못한 프로메테우스에게도 그랬다. 2007년 비정규직법안이 개악되고 한미 FTA가
생각하는데, 그들이 배우라고? 그렇다. 그들은 배우다. 내가 카메라를 든 순간, 그들이
체결된 한국사회 속에서 과연 우린 무엇을 해야 하나?
카메라에 찍히는 순간, 그들은 배우가 된다. 내가 연출을 하건 하지 않건, 그들이 연기 를 하건 하지 않건, 카메라가 없는 시간과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시간은 다르다. 그들
내 주변엔 작지만 소중한 실천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인연맺기 학교를 하는 사
은 배우다. 다만 극영화의 시나리오에서 제시된 캐릭터가 아닌 그 사람 자신을 연기하는
람연대 대학생들, 장애인 운동을 하는 동지들, 노숙자라 천대받으면서도 사회의 빈곤문
배우다. - 과의 만남이 있다. 바로 청소년 문화공동체 품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함
제 변화를 위한 작은 실천을 하는 노숙인 아저씨들, 그런 주변의 실천들을 촬영하면서
께 네팔에 갈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있으신 선생님들이 그들이다.
알게 된 분들이 있다. 충북 괴산의 한 폐교에서 신기학교를 시작한 목윤지영 선생님과 원석이형이 그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어서 괴산에 내려갔다. 그때 원석이
난 네팔에 떠나기 전에 그들과 몇 번의 회의 자리를 가졌고, 술도 두어 번 마셨다. 품의
형이 내게 네팔을 소개해줬다. 네팔에 가는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을 소개해줬다. 다큐멘
상근자들은 모두 후배들이었지만, 품의 두 대표선생님과 문화예술교육 선생님들은 대부
터리를 찍어보면 어떻겠냐고?
분 선배님들이었다. 내겐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큰 습성이 하나 있다. 나보다 먼저 한국 사회를 살아온 선배들에게 왜 이렇게 한국사회를 엉터리로 만들어놓았냐는 질책을 하면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다. 2007년, 뭔가 변화의 시점이 되고자 했던 내게 네팔은 매력적
서 그들로부터 단절하려는 태도! 반대로 나보다 후배를 만나면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
으로 다가왔다. 당장 한국사회는 한미FTA 체결과 비정규직 법안의 시작을 앞두고 사회
다. 이런 엉터리 사회를 살게 해서 미안한 마음! 오지랖인가? 어쨌든 난 아마도 그렇게
가 요동을 쳤고, 대선의 판짜기를 둘러싸고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 어지러운 때였지만,
선배님들에게 다소 까칠하게 대했을 거다.
무엇인가 네팔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통해 마음이 새로워지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휴가, 어쩌면 여행 같은 것이 되기를 바랬다. 그렇게 한국으로부터 멀리 떠나서 네팔이라는 이
난 사람들과 쉽게 마음을 트지 못하는 편이다. 카메라를 들 때의 나 역시 다르지 않다.
국의 먼 거리에서 한국사회를 돌아보고 싶었다.
난 인간시대류의 다큐멘터리를 가장 싫어한다. 한 사람의 삶을 어찌 몇 일만에 다 이해 하고 느낀 것처럼 카메라가 연출을 한단 말인가? 오히려 카메라와의 거리감, 카메라를
한국의 6,70년대를 닮았다는 카트만두에서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고 싶었고, 네
통해 만난 나와 그의 불편함과 낯 설음, 그 쉽게 조화될 수 없는 소통의 간극과 불협화
팔의 산과 자연에서 한국에서 뚫릴 천성산과 관악산을 사유하고 싶었고, 네팔의 근대화
음, 그 과정에서 생기는 노이즈에서, 오히려 삶의 무의식적 진실이 포착되지 않을까? 그
과정을 통해 한국의 근대화과정을 성찰하고 싶었다. 오래된 미래에 대한 성찰보다는 더
런 태도와 생각!
욱 요동치는 현실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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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야기가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끝나버리는 영화들 말이다. 난 그런 영화를 좋아한다. 기승전결 구조의 완성도, 인과관계가 완전한 매듭으로 짜여진 것 보다는 열려 진 형식이 좋다. 그렇기도 하고 난 네팔에 대해 글보다는 영상으로 말해야 할거다. 네팔 에서 겪은 것을 글로 다 써버리면 네팔 다큐에 대한 흥미도 떨어질 것 아닌가? 네팔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빠르면 9월 늦으면 10월, 네팔에서 찍은 다큐멘 터리로 다시 만나기를 기다리며 글을 마친다.
나가며.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직접화법으로 말하겠습니다.“네팔에서 전 다큐의 무 게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함께 지낸 사람들에게 상 처를 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건 고스란히 저의 부덕의 소치임에 대해 변명할 수가 없 습니다. 품 식구들, 그리고 누구보다도 판과 호창이에게 감사한 마음과 함께 미안한 마 음을 전합니다.”
난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의 20년과 그 안의 여러 사람들의 고민과 갈등의 역사에, 그리 고 그들의 삶의 숨결에 직접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그럴 여유가 없기도 했 고, 이번의 짧은 네팔 작업은 오히려 관계의 시작, 관계트기라 할까? 그 관계트기 과정 에서의 엇박자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것은 네팔에서 38일간의 체류를 마치고 돌아온 지금도 - 시작할 때와는 다른 의미에서 - 마찬가지다. 그렇게 네팔에 출발하기 전, 품과 만났고, 품의 생각과 내 생각, 품의 여정과 다큐팀의 여정은, 따로 또 같이, 엇갈리거나 만나거나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음과 다름은 네 팔에서 더 내파가 심화되고, 외연도 확장됐을 거다. 그렇게 네팔로 떠났고, 네팔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었고, 고생도 많이 하고, 즐거움도 괴로움도 많이 겪고, 싸움도 많이 하고, 실망도 주고받으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은 알아 갔을 거다. 그리고 난 지금 그 네팔에서 찍은 영상으로 최소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작 업할 계획이다. 내게 남은 지면이 많지 않을 것 같다. 네팔에서 겪은 이야기를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이 제 끝내려 한다. 일종의 반전으로 생각해 주시길. 영화에서도 간혹 그런 영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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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히말라야~
품과 오랜 시간 많은 인연을 간직해 온 사람사랑이 품NGO와의 새로운 만남을 시작한 건 우리의 품속으로 다가온 새로운 네팔에서였다. 발달장애청소년과 비장애청소년 15명 과 교사 4명으로 구성된 제1회 네팔 국제교류팀은 2007년 6월 7일 컴퓨터, 지구본, 공 책 등 네팔의 친구들을 위해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후원자들의 마음과 설레는 마 음을 담아 네팔의 트리뷰반 공항을 향해 출발하였다.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절대로 걸어 서는 가보지 못할 것 같은 구름위로 살짝 모습을 드러낸 히말라야 최고 봉우리 3개를 볼 수 있는 행운으로 이번 국제교류는 시작되었다.
현지에서 품NGO의 심한기, 서윤호 선생님과 세르파팀들은 일일이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숙소인 썩티호텔에서 우리를 맞아주는 플랭카드를 든 강명숙, 고민정, 김보라 선생님의 환한 얼굴로 우리의 네팔에서의 일정을 시작하였다. 앞으로 우 리의 모든 일정을 안내하고 인솔해 줄 댄디, 벰부, 앙프리 세르파를 소개받고 세르파 다 이(우리말로 하면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타멜 지역탐사로 하루일정을 마무리하였다.
트리플잼 스쿨의 학생을 만난 건 둘째 날이었다. 트리플잼 스쿨 친구들은 우리를 위해 네팔의 민속춤, 무예 등을 공연해 주었고 우리는 금도끼, 은도끼를 답례공연으로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따뜻한 마음을 담은 공책과 지구본을 선물하고 네팔 ․ 한국의 친구 들이 짝꿍을 맺어 모둠별로 스웸부나흐(사원), 파탄 고대왕국, 동물원 등으로 작은 여행 을 다녀왔다. 서로 언어의 차이는 있었지만 친구들 모두 네팔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만 든 날이었다.
_ 이승연. 청소년과 사람사랑 품과 오랜 인연. 네팔과의 첫만남을 가슴깊이 담아간 사람.
모노하라의 작은 시골학교에서는 학교꾸미기를 하였다. 품NGO에서 사전에 네팔대학생 자원지도자들을 확보하고 아카데미를 통해 네팔 청년들이 지역에서 해야만 하는 가치에 대해 교육하고 지역사회 자원을 조직화하는 사전작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네팔 의 대학생들과 우리 장애친구들이 모두 모여 열악한 학교에 담장 설치, 교문 만들기, 벽 화그리기 등을 통해 학교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네팔 전역의 물 사정은 그리 좋지
트레킹으로 많이 알려진 곳,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인 부처가 태어난 룸비니를 가진 나 라 국제교류로 네팔을 가게 되었다고 알았던 순간부터 그 나라에 대해 알고자 노력했던 시간 속에서도 네팔에 대한 자료의 부족과 내용의 부실함, 외무부 영사센터의 네팔에 대 한 여행주의 등 온통 모든 것이 부정적이었던 네팔.. 우리가 만나는 친구들과 그들이 진 정 하나 될 수 있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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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아서 제한된 시간에만 물이 나오거나 마을의 공동수도를 사용해서 물을 길어서 사용 하고 있었다. 모노하라 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학교에서 가장 필요하다는 물탱크와 관개시설을 설치해 주었고 지구본과 공책, 사탕 등을 전달해 주었다. 학교에서 는 우리에게 보답의 의미로 네팔의 음식인‘달밧’을 대접해주었는데 수저와 포크 없이 손으로 음식을 먹어보는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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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국립박물관에서 네팔의 대표적 신인 힌두신의 역사가 담긴 다양한 유물유적을 보고
공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모노하라 주민들은 학교를 변화시키겠다
미니트레킹을 위한 나갈코트와 짱구나라연으로 향했다. 한국에서는 절대 경험해 볼 수
는 품NGO측의 사전방문 시 학교변화에 대한 논의에 대단히 부정적이었다고 했다. 그러
없는 버스 지붕위에 올라타 하늘이 내린 네팔의 천혜의 자연환경과 이국적인 풍광, 지나
던 그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마을 전체 주민이 모여 학교의 변화를 위한 자체의 마을
갈 때마다 누구에게나 ‘Namaste!'를 외치는 맑은 눈망울의 네팔사람들... 나갈코트는
회의를 구성하고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담보하고 이러한 작은 힘들이 모두 모여
세계에서 석양이 제일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세르파 다이2)들은
직접 계단도 설치하고 2층 건물을 위한 벽돌 하나하나를 올리며 지역주민들이 직접 노
우리에게 네팔의 전통 악기와 전통 춤을 가르쳐 주고 우리 친구들을 위해 말무등까지
동력을 제공하는 등 스스로 변화가 되고 있는 학교의 모습에 대해 듣게 되었다. 우리의
태워 주었다. 한국의 놀이인 수건돌리기를 하면서는 규칙을 잘못 이해해 정확한 놀이를
작은 노력이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할 수는 없었지만 규칙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다해 서로를 대하고 그런 서로의 마
품NGO는 네팔의 학교 교사들과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문화예술교육워크숍을 열었다. 이
음과 마음을 통해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는 네팔에서 어느 누구도 해야 한다고, 필요하다고 감히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를 통해 네팔의 학교 교사들과 대학생들은 네팔의 청소년들을 올바르게 육성시키기 위한
우리의 일정도 거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네팔에서의 일정을 정리한 여행기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사고의
를 만들고 트리플잼스쿨의 친구들을 초대하여 가든파티를 열기로 했다. 친구들을 환영하
변화는 바다로 나갈 물길을 만드는 물꼬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네팔의 청
고 우리의 여행기를 소개하고 한국과 네팔의 지속적인 교류가 되기를 희망하는 마음을
소년들은 행복하고 가치 있게 성장해 나갈 것이다.
담은 친구들의 편지가 낭독되었다. 준비한 음식을 나누고 네팔에서의 일정을 담은 영상 을 상영하고 서로 짝꿍이 된 친구들에게 모둠 친구들이 나와 선물을 전달해 주었다. 서
지금 품NGO는 네팔에서 새로운 운동을 하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만난 네팔대학생
로의 아쉬움은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나중을 기약하기도 하였다.
들과 그 나라의 아무도 하지 못할 거라고 했던 일, 무모하다고 했던 일을 지금 하고 있 다. 모노하라스쿨에서의 함께했던 대학생들은 이번 일이 끝난 후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렇게 끝마친 우리의 네팔 국제교류의 일정은 네팔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제는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무모한 것이 아니었다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 방법을
아시아 10개국의 청소년지도자들이 모여 Asia forum과 지도자연수를 진행할 예정이며
알았기에 이제는 우리가 그 역할을 하고, 해야만 한다고...’
이를 위해 각국에 Youth training center를 건립할 예정이다.
이렇게 네팔에서의 국제교류를 무사히 끝마치고 우리 법인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선정하
한국도 그러했다. 아무도, 누구도
기까지는 품NGO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네팔 현지는 ‘빨리 빨리’가 없는 나라이다.
그 일이 한국을 이렇게까지 변화시키리라고
만약 이러한 현지에서의 품NGO 선생님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번 네팔 국제교류는 사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실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현지에서 이러한 교류를 원하는 학교의 정보를 수집하는
네팔도 분명 가능한 일이다.
일, 장애인시설에 대한 정보, 정부 장차관과의 만남을 통해 이번 국제교류가 성공적으로
지금 그 불씨를 Nepal NGO 품이 지피고 있다.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반환경을 만드는 일, 모노하라 지역의 주민들을 이해시키고 설득 하는 작업, 숙소와 차량 섭외 등 제반환경을 완성하기까지 품NGO 선생님들의 노력은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일 것이다. 나중에 품NGO를 통해 들은 소식은 모노하라스쿨이 사람사랑과 품의 노력으로 작은 변화 발전이 단초가 되어서 마을이 바뀌고 있다고 했다. 2) 네팔어로 다이(dai)는 자기를 기준으로 나이가 많은 남자를 부를 때 사용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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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Best wishes to PUM
Korean organization PUM, Nepal office" Her Nepali was so nice; I really surprised to know that she is a Korean! This was my first meeting with any PUM members. 저는 저의 비서로부터 한국 조직의 대표들이 저를 만나기 위해 2007년 5월 2일 사무실로 방문할 것 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누가 올 것이며, 그 혹은 그녀의 조직에서의 지위에 대해서는 확실 히 알지 못했지만, 약속된 시간에 저의 사무실에서 그들을 기다렸습니다. 바로 그때, 두 젊은이가 저의 사무실로 들어와 "나마스떼!"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답례를 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두 젊은이 중 여성분은 저에게 "저의 이름은 쥬넬리이고, 한국인이며, 한국 조직인 품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네팔 사무실에서 직무를 보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 다. 그녀는 네팔어를 아주 능숙하게 했기 때문에 한국인이라는 말에 무척 놀랬습니다! 이것이 품 멤 버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Ms. Juneli (Lee Bo Ra) and Mr. Ang Sange Shrepa had been to my office to invite me in the opening ceremony their forthcoming event ‘The 2nd Korea+Nepal Nepal+Korea Culture and art Education workshop’ I knew from them that some well-known experts are coming from Korea on various field especially on Environment, Drama, Human relation and Animation. 쥬넬리(이보라)씨와 앙 상게씨는 앞으로 다가올‘제2차 한국-네팔, 네팔-한국 문화예술 교육 워크 숍’의 행사에 저를 초대하기 위해 사무실을 찾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다양한 분야, 특히, 환경, 연극, 인간관계 그리고 애니메이션 분야에서의 잘 알려진 전문가들이 한국에서 오신다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_ Prakash Babu Paudel
They also informed me that Mr. Shim, Han Ki, founder and representative of
President of New International Friendship Club-Nepal
PUM is coming to Nepal for this event and interested to meet with me. I had
깊은 내공과 경험이 온화함으로 표현되는 네팔 품의 친구 (사진 중간)
heard about Mr. Shim, Han Ki, from one of my Korean friend Mr. Kang who is working in Korean National Commission for UNESCO. I immediately told Juneli that it will be my pleasure to meet Mr. Shim and learn about PUM activities! Then this relation got good speed, we were in contact regularly. I was very
I was informed by my office secretary that a Korean organization's representatives are coming to meet meon 2nd May 2007. I was not very sure who is coming and what is his or her status in the organization. I was on time in my office and waiting to them. At a same time two youths entered into my chamber and greeted to me saying "Namaste!" I replied to them and asked if I have to do anything for them. The girl replied me "My name is Juneli, I am a Korean and working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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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essed to observe the preparation work of the event by PUM team. And finally the event came, I participated in opening ceremony. How PUM team presented the programme it encouraged me to observe the whole event everyday! There is no doubt all events of ‘The 2nd Korea+Nepal Nepal+Korea Culture and art Education workshop’ were completed successfu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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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또한 기관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심한기씨께서 네팔에 오실 것이며, 저와의 만남에 관심을 갖 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저는 유네스코 한국 조직에서 일하고, 저와는 친분이 있는 Mr.강3)으로부터 심한기씨에 대해 익히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심한기씨를 만나 뵙고, 품의 활동에 대해 배울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주넬리씨에게 말했습니다. 그 후, 우리의 관계는 잘 이어졌으며,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했습니다. 저는 품이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놀라지 않 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행사가 시작되었고, 오프닝 워크숍에 참가했습니다. 품이 제공한 프로그 램은 전체적인 행사를 엿볼 수 있게 도와주었고, 의심의 여지없이 제2차 한국-네팔, 네팔-한국 문 화예술 교육 워크숍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I got an opportunity to meet with Mr. Shim, Han Ki and share experiences and ideas on social, cultural and youth development. I impressed to learn about him and how his experience of Nepal changed his way of life and his determination to do something for Nepalese people.
What I realized that there are very few
friends of Nepal who always think for the well being of Nepal by heart and pay some efforts for this nation and people. I can say that Mr. Shim and his entire team of PUM is true friend of Nepal. 저는 심한기씨를 만나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사회, 문화 그리고 청소년 발전에 관한 전반적인 생 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를 알게 되어 무척 기뻤으며, 그가 네팔과 관련한 경험을 바탕으로 어떠한 삶의 변화를 겪었고, 네팔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데 대해 감명 받았습니다. 저는 네팔의 안위를 항상 진심으로 걱정하고,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노력하는 친 구들을 알고는 있지만 매우 적은 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저는 심한기씨와 품은 네팔의 진정한 친 구임을 확실히 얘기할 수 있습니다.
3장. 네팔 품 식구들
I am sure PUM will continue their activities in Nepal and even pay more effective efforts to launch new fruitful projects in Nepal. My best wishes to PUM! 품은 네팔에서의 활동을 지속할 것이며, 더 효과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한 품의 무한한 행복을 기원합니다.
Dhanyabad4)! KamsaHaminda! 15th July 2007
3) 강종안 선생님. 한국유네스코 청소년팀장님으로 계시고, 품과 오랜 인연을 갖고 있는 그로부터 쁘라까스씨를 소개받았다. 덕분에 귀한 사람을 네팔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4) Dhanyabad(던예밧). 네팔어로 ‘고맙습니다’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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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일한 바 있습니다. 현재 네팔 품의 대표이면서 Pikye Hill 사회 조직의 총무로 활동하고 있습니 다. 사회 복지 활동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When I was working as Spanish language guide in Lhasa Tibet that time I met Mr. Shim Hanki representative of Pum Korea in Tibet. The meeting in the holy place Tibet established good relationship between us. When Imet Mr. Shim Hanki, he told me about
NGO Pum in Korea & Ngo Pum working to the culture art education
sector of Korea since long years. After came back to Kathmandu we met in kathmandu & we talked about the Nepal’s culture art education system. Mr. Shim hanki was interested to support & work to Nepal through NGO Pum Korea. Lhasa 티벳에서 스페인 사람들을 가이드하고 있을 당시 품의 대표인 심한기씨를 티벳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스러운 티벳 땅에서의 만남은 우리의 관계를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심한 기씨는 한국 엔지오 품 그리고 엔지오 품이 수년 동안 한국의 문화예술 교육 분야를 위해 일하고 있 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카트만두로 돌아온 뒤 우리는 다시 만남을 갖게 되었고, 네팔의 문 화예술 교육 체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심한기씨는 한국 엔지오 품을 통해 네팔을 지원하 고, 일하는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_ Ang Jangbu Sherpa Nepal NGO PUM 공동대표.
In 2006, Pum youth group Visited to Nepal "Oh Himalaya 2006" to the Langtang. The
품이 네팔에서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장본인.
youths realized real nature, Himalayan culture & real humanity. The trip successfully
곧고, 정직하며, 선한 눈빛을 갖고 있는 산 같은 사람.
completed the "Oh Himalaya trip 2006". The trip made good relationship between Nepalese & Korean peoples. In 2006, Pum held 1st culture art education workshop in kathmandu Nepal. The workshop was so effective & useful system in Nepalese
I am Ang Jangbu Sherpa from Solukhumbu Goli-7 Nepal, the remote area of Nepal. I studied Diploma in Humanities & social Science. I worked General secretary of Pikye Hill Social Organization 2 terms, Central member of Nepal sherpa Student forum 2 years. Sherpa’s yearly magazine editor two times. Now I am President of PUM Nepal & General secretary of Pikye Hill social organization. I would like to do social service.
education sector. Through the PUM’s workshop Nepalese schools teachers gained good teaching method, good presentation & expression. In 2007,visited to Nepal Pum Youth group to Himalaya country Nepal "Oh Himalaya 2007". It was so successful trip to Himalaya to the Langtang. It was as friendship trip to Himalaya of Korean youths. The youth group organized a cultural program singing & dancing teaching for Nepalese teachers & students. It was really interesting & effective. In 2007, Pum held Second Nepal-Korea, Korea-Nepal culture art education workshop
저는 네팔의 외딴 지역인 솔루콤부 골리-7 (Solukhumbu Goli-7) 출신인 앙 장부 세르파입니다.
in Kathmandu Nepal. The workshop was Nepal’s biggest workshop in the education
인간과 사회 과학을 전공으로 학위를 수여 받았습니다. Pikye Hill 사회 조식의 총무 직을 두 차례
sector, which was organized by Pum. Pollution tested of kathmandu & trained to the
역임했으며, 2년간 네팔 세르파 학생 포럼의 대표로 활동했으며, 세프파 연간 잡지의 편집자로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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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vironment science teacher & students. It was related With Nepal’s present situation. Pum’s Happy school project changed the Manohara government school to real happy school. Pum giving the Daily news Paper to mountain village area poor schools, where they can’t get news Paper in their school. 2006년 품은 "오 히말라야"라는 프로그램으로 랑탕을 방문했습니다. 청소년들은 진정한 자연과, 히 말라야의 문화와 인간애를 알게 되었고, "오 히말라야 여행 2006"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여행은 네팔 사람과 한국 사람들간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같은 해에, 품은 제 1차 문화예술 교육 워크숍을 네팔 카트만두에서 개최했습니다. 워크숍은 네팔 교육 분야에 매우 효 과적이고 유용했으며, 품의 워크숍을 통해 네팔 학교 교사들은 교육법과 좋은 발표, 표현 방법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2007년 품 청소년공동체는 "오 히말라야 2007" 프로그램으로 네팔의 히말라야 를 다시 찾았으며, 히말라야 랑탕 여행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그 여행은 한국 청년들의 히말라야 로의 우정여행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청소년 문화공동체는 네팔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노래하고 춤추 며 가르치는 문화 프로그램을 조직했으며, 그것은 매우 흥미롭고 효과적이었습니다. 2007년 품은 네 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제2차 한네팔 문화예술교육워크숍을 개최했고, 네팔의 교육 분야에서 이 루어진 워크숍 중 가장 규모가 컸습니다. 카트만두 오염을 측정했으며 환경 과학 교사와 학생들을 교육시켰으며, 그것은 현재 네팔의 상황과 관련된 것들이었습니다. 품의 Happy School 프로젝트는 Manohara 국립학교를 진정한 행복한 학교로 변화시켰습니다. 품은 또한 산간 지역의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신문을 얻지 못하는 학교에 일간 신문을 제공할 예정이기도 합니다.
_ Ang Sange Sherpa Nepal NGO PUM 활동가.
In my view, which supports doing Pum in Nepal’s art culture education &
23살. 네팔 청년.
environmental sector development, it’s so great. It’s big support to Nepal’s
품의 일을 조금씩 익혀가며 자신과 품의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
development. Nepalese peoples are really impressed Pum’s support to Nepal. Pum established good relationship & friendship between Korea-Nepal peoples circle. I would like to say Thank you to PUM Korea for their support to Nepal & we are great 1. My introduction
full to PUM South Korea. 저는 품이 네팔의 문화예술 교육과 환경 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해 제공하는 지원은 매우 훌륭한 것이 라고 생각합니다. 네팔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지원인 것입니다. 네팔 사람들은 품의 네팔에 대한 지 원에 매우 감동을 받았습니다. 품은 네팔과 한국 사람들 간의 좋은 관계와 우정을 쌓게 했으며, 한
I am Sange Sherpa. I am a student of university and staff of the NGO PUM. My birthplace is Solukhumbu Nepal. And my birthday is 25 November 1985. I have worked experience also. I have taken training 3 month to make a cheese
국 품의 네팔에 대한 지원에 감사를 드리며, 또한 한국 품과 함께하게 되어 아주 가슴 벅차다는 것
and in 1999 worked 1 year in Yak cheese factory that time I was studying in
을 전하고 싶습니다.
class 8 and same time I was students’leader of Shree Himganga Secondary School of Solukhumbu. Than after I came Kathmandu and continue my study and trekking in Nepal and Tibet. Now also I am studying in university third year and I am working in NGO PUM. I like Music, sports, and 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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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이름은 상게 세르파입니다. 대학교에 재학중이며 NGO 품의 직원이기도 합니다. 1985년 11월 25일 네팔의 솔로콤부라는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3개월간 치즈를 만드는 교육을 받았고, 1999년 에는 1년간 야크 치즈 공장에서 일했으며, 같은 해에 8학년에서 학업 중이었고, 또한 솔로콤부의 Shree Himganga 고등학교의 학생회장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 후 카트만두로 와 학업을 계속했 고, 네팔과 티벳 등지에서 다수의 트레킹에 참여했습니다. 지금 현재에는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 며 NGO 품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음악, 스포츠 그리고 여행을 좋아합니다.
2. Opinion about PUM PUM alreadyso many worked in Nepal and that was very effective in Nepali education and society. Like a happy school project and teacher workshop is very necessary in Nepal. PUM already did good work in Nepal. I want to say & I think PUM never stop the work in Nepal like before and with new ideas to develop the Nepal and Nepali culture and arts education. PUM is already very commendation in Nepal and PUM always has to do like that commendation work and I will try as much as possible to do like that work from PUM side. Now days how much I want to do I couldn’t do like that but I have courage to do because of PUM. And I think PUM’s future plan have to be culture and arts education with environment education also will be very effective in Nepal because Korea knows
_ 강명숙. 품 상근활동가
environment how to develop long lasting so I want to Korean’s that ideas also in
품 5년차. 네팔국제교류사업과
Nepal because I am getting so many region in Nepal.
행복한 시작을 함께 하고 있다. 품은 이미 네팔에서 많은 일들을 해 왔고, 그러한 작업들은 네팔 교육과 사회에 아주 유용한 것들이 었습니다. Happy School 프로젝트와 교사 워크숍과 같은 프로그램은 네팔교육과 사화에 매우 필요 한 작업들이었습니다. PUM은 이미 네팔에서 좋은 작업을 했으며, 변함없이 이전처럼 네팔에서의 작 업을 지속할 것이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시켜 네팔 그리고 네팔의 문화예술 교육을 발전시켜 나
국제교류사업, 가볍지만은 않은 말.
갈 수 있는 활동을 해 나갈 것입니다. 품은 이미 네팔 내에서 아주 괄목할만한 일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한 일들을 해 나갈 것이며, 그러한 활동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품의 일원으로 최대
2005년 심샘이 네팔 여행 후 네팔국제교류사업을 시작해보자는 제안은 품 직원 모두에
한 노력할 것입니다. 이전에는 내가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품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용
게 공감가지 않는 말이었다. 그 때 생각을 다시 떠올려 보면 “한국에서 해야 할 일도,
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네팔에서의 계획들 즉, 환경교육을 통한 문화예술 교육들 또한 네팔
품에서 해야 할 일도 구만리인데 왜 네팔에서 그 일을 하려 하지?”라는 질문에 나름의
에서 매우 효과적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은 환경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네팔의 수많은 지역에 대해 배워가고 있고 환경관련 한국의 지식을 네
이유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심쌤의 제안은 원래 없었던 듯 1년이 지났다.
팔에서 활용하고 싶습니다.
직접 경험한 것이 가장 무섭다. 2006년‘첫번째 오~ 히말라야“여행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아 여행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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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은 꽤 오래갔다. 심쌤과 비슷한 경험을 한 직원들은 1년 전 왜 네팔국제교류사업을
아가는 모습에서 한국사회에서 잃어버리거나 외면하고 있는 가치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시작해 보자고 했는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2006년 오 히말라
하지만, 사람도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을 더 모른다고 했다. 점점 마음이 깊어지면서
야 이후 네팔 국제교류사업은 자연스럽게 시작되었고, 나는 3개월의 휴가를 받고 2007
알쏭달쏭한 네팔의 모습과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의
년 다시 품으로 돌아와서부터 네팔사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문제를 담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며, 이제 네팔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시점 이 되었다. 그들의 역사와 종교, 정치 경제가 궁금해진다. 문화는 이런 것들과 매우 밀
국제교류사업이라는게 모냐?
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네팔 사회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 그
담당한 사업에 대해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올해 사업의 청사진을 내놓는 직원연수. 직원
러나 네팔은 히말라야로만 알려져 있어 자료 찾기가 쉽지 않다. 경험으로 부딪히며, 안
연수를 준비하며 나 역시 드는 질문이었던“왜 네팔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전까지는
되는 영어 해석해가며, 인접해있는 나라를 빗대어 가며 공부해야 하는 실무자의 난관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었다. 품에서 살아온 5년, 사람들을 통한 다양한 경험과 이 계
넘어야 한다. 더불어 현재 시점에 이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나는, 사업진행을 하면서 함
기로 뒤져본 몇몇의 자료들로 몇 가지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외부에
께하는 사람이 다르고, 환경이 다름에 오는 낯설음들과 더 확장된 사고를 할 수 있어야
서 말하는‘지향해야 할 지구화’에 품이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 문화의 의
하며, 그들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중의 태도와 함께 어디까지가 그
미, 자연에 대한 품의 철학, 상상력, 자기 주체성 등이 이제까지 품이 힘주어 말하고 있
들의 문화인지 혼동이 되었다. 순간마다 현명한 지혜가 필요한 상황들이 반복되었다.
는 개념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라는 흐름에서 지금 세계 적으로 요구되는 철학과 실천들을 품은 꾸준히 쌓아가며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
긴. 호. 흡.
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더 많은 이론과 사례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
2년째를 맞는 문화예술워크숍을 준비하며 품은 의도하지 않았으나 ‘주는자’, ‘받는
러한 확인은 품이 지금까지 했던 일들의 가치와 함께 지금 하고 있는 국제교류사업은
자’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분리될 수밖에 없음을 확인했다. 네팔 측 주관단
새삼스러운 다른 영역의 것을 하는 것이 아닌 품에서 하고 있는 일의 연장선으로 단지
체인 Schools' Forum Nepal(사립학교 연합)과의 진행과정에서 워크숍의 의도와 필요성
지리적 위치만 다르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 품은 사업적 전략으로 네팔이라는 나라를
에 관심을 갖기보다 보여지는 물질적인 것에 더 힘주어 말하는 모습을 보며 파트너쉽을
선택한 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사실 꽤나 오래 걸렸다ᅳᅳ;). 만약 품이 다른 계기로 다
만들어 가는 과정의 어려움을 경험했고, 그들과 앞으로의 관계를 희망적으로 상상하지
른 나라를 만났다면 네팔이 아니었을 테니까. 이 두 가지 사실이 합해지면서 ‘어디냐’
못하며 답답했다. 하지만 워크숍이 끝난 후 참가자 중 Fine Art School 친구들이 자발
라는 지리적 질문보다 ‘무엇을’하고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질문이며, 품의 철학과 가
적으로 모여 Happy School Project를 성공적으로 만들었던 네팔청년들의 동력과 멀리
치들의 연장선으로 이해되면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도 개념을 잡아갈 수 있었다.
서 온 한국 사람들이 자신들의 학교를 위해 땀 흘리는 모습에 지역사람들 스스로 태도 가 바뀌어 가는 모습에 변화의 가능성을 보기도 했고, 5개 분야에 참여했던 참가자들의
네팔. Nepal.
말 속에서 생각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중학교 사회 시간에 “야, 거기 사는 사람들은 팔이 네 개 인가봐”라며 친구들과 썰렁
‘긴 호흡’이 필요함을 공감했다. 품은 이제 시작하는 단체도 아니고 16년간 일을 해
한 이야기를 하며 그저 이름이 재밌어 기억에 남았던 손톱만 해 보였던 나라. 사실 거기
왔던 수많은 경험을 근거로 한 나름의 속도가 있다. 그러나 네팔에서 주어진 시간은 제
에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가 있는지, 인도와 티벳 중간에 있는 나라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한되어 있다. 그 안에 준비해간 것, 네팔에 비해 빠른 품의 속도의 조율이 필요하다. 품
관심 없던 나라. 그랬던 네팔을 4번이나 다녀오며 느낀 것은 참 흥미로운 나라라는 것
이 하고자 하는 일과 연관된 사람과 조직을 찾는 것, 그리고 접점들을 천천히 찾아내는
이다. 물론 흥미롭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으련만, 품의 영향을 받은 나의 사고구조로 봤
일과 올해의 성과와 한계를 더해 가능한 실험들을 해 갈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을 때 매우 흥미롭다는 것이다. 참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고,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며
현재 품이 네팔에서 하고자 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품의 방향과 완벽하
그 각기의 종교가 삶의 태도에 고스란히 녹아있으며, 경외심으로 자연을 섬기며 함께 살
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사회가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사람이 아닌 자기 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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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은 한국 사람인 우리가 하 는 것이 아니라 네팔 스스로 그 필요성을 공감하게 하는 것이 더욱 핵심이다.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끊이지 않고 지속적이어야 하는 일이다. 우리가 해야 할 몫과 그들 이 풀어야 할 몫을 서로 확인하고 인지할 수 있는 긴 호흡과 경험이 함께 필요하다.
동지. 네팔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며 참 많이 답답했던 것이 언어였다. 영어도 안 되며, 네팔어 는 더더욱 안 되는 나로서는 무언가 의도를 전달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옆에서 보면 가관이다. 네팔어 10%, 영어 10%, 눈빛 20%, 손짓 발짓 30%, 포기 30%로 대화한다. 하지만 난 어순이 우리와 다른 영어보다, 어순이 같아서인지 네팔어가 더 맞다. 환경에 노출이 되어 있지 않아 쉽지 않지만 조금씩 공부하다 보면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지는 않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하하~ 이렇게 두 대발 거리며 사업을 진행하며, 네팔어가 자유로운 보라와 이제 한국어를 떠듬떠듬하며 품 활동을 열심히 해보겠다고 덤비는 네 팔 청년 상게를 본다. 사업의 기획이라던가, 사업의 핵심내용들은 한국 측에서 담당하고 있지만, 네팔 사업의 Key는 그들 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워크숍이 끝나고 나면 과 정에서 남은 사람들과 후속작업을 만들어가며, 품의 일과 관련된 사람과 조직을 찾아내
_ 이보라. 네팔 품 상근활동가
고 그 접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계기를 고민하고 네팔의 속도와 한국의 속도를 조율해
쥬넬리.
줄 수 있는 역할이 Nepal PUM의 핵심이라고 생각해본다. 현장에서 시작점을 만들어
어두운 밤 어스름하게 비치는 달빛이라 한다.
낼 수 있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떨어져 각자의 역할에 맞게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이번
고요하게, 부드럽게 자신의 빛을 내고 있다.
워크숍을 통해 힘을 내기 시작했다. 그건 실무자인 나에게도 큰 자극과 힘으로 다가온 다. 보다 분명하게 한국 품의 담당자로 청사진을 그려나갈 수 있는 동력을 그들에게 받 고 있다. 해가 가면 갈수록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래서 더 많은 상상과 실험이 가능한 아... 정말.... 어색하다.
참 기대되는 사업이고 만남이다.
이제까지 원고 청탁을 들이대며 끈질지게 볶아대기만 해봤지, 내 평생 정작 원고 청탁을 받은 적은 거의 없어, 참으로 어색하다. 원고 청탁을 받아도 요리조리 잘 피해다니며 한.번.도 쓴 적이 없는데, 두레품의 원고 청탁이니 이건 피해갈 수도 없다. 라며 받는 순간 체념했다. 어디서부터 풀어볼까.
Scene 1. 멀고먼 네팔이란 나라에서 품과의 인연을 맺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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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2. 품과의 인연 후 지금까지..
# 철없는 아이, 드디어 대형 사고를 치다
졸업을 앞두고, 당췌 무엇하나도 현실적이지 않아, 철없는 아이로 통하던 나는 벼르고 벼르던 대형 사고를 쳤다. 모 NGO 소속으로 네팔에 날아들게 된 것. 이제 졸업을 하고
# NGO의 별천지, 네팔
평탄한 길을 걷기를 바랬던 가족에게는 적잖이 충격적인 일이었으리라. 그런 연유로 사 고를 치고 난 뒤에서야 즉, 장기자원봉사자로 발탁이 된 후에서야, 설득작전에 들어갔
드디어 요이땅.!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접하고 부대끼는 일이
고, 뭐라 뭐라 해도 딸래미편인 어무이, 아부지는 울며 겨자먹기로 승낙을 하셨다.
었다. 그러다보니 우물 안 개구리로 살던 시절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네팔의 또 다른 모 습들이 내 우물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간신히 우물 꼭대기로 기어오른 나는
정말로 벼르던 일이었다. 다른 제3의 나라에서 그 나라 사람들과 부대끼며 그들의 고민
아연질색할 수밖에 없었다. 미처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우물이 INGO와 NGO의 간판을
을 함께 하고, 함께 풀어갈 수 있다면. 그런 자리들을 만들어 갈 수 있다면. 그것은 나
달고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아이의 사진을 들고 “학비가 없어요!”라고 외치는 아버
의 “평생 꼭 해야 할 List"에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왜 네팔인지는 몰랐다. 그냥
지들과 “초콜릿!”을 외치며 우르르 몰려다니는 아이들, “과학 기자재 대여실을 만들
네팔이라는 나라가 막연히도 끌렸었다.(그 이유는 네팔에 온 후에야 비로소 풀리기 시작
어야 된다니까욧!”라고 협박하는 교장선생님들과, “저를 외국으로 데려가 주세요.”라
했다.)
고 호소하는 젋은이들. 그들이 이곳 저곳의 우물을 저리 왔다갔다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그들 자신이 나태하거나 게으르기 때문이라기보다, 결국 무분별하게 외지에서
# 네팔에서의 방황과 고민
들어와 무조건 퍼주기만 우물이 존재해왔기 때문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드디어 품의 네팔에서의 2번째 문화예술교육 워크숍을 맞이했다.
그러나 나의 네팔에서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소속되어 있는 NGO가 원조기관인 것에 있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모아 학교를 보내고, 공 부를 시키고, 먹이고, 재우고.... 마을사람들에게 염소를 나누어 주고, 가끔 한국에서 오
# 아무것도 주지 않는 PUM
는 단기자원봉사자팀을 받아 네팔 아이들에게 이벤트를 선사하고....... 그곳에는 단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었을 뿐 서로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흥’이 날 수 있는
내가 품에 들어온 후 정식으로 하는 첫 번째 메인 사업. 5일간의 워크숍 일정을 진행하
에너지가 없었으며, 이미 받는 것에만 익숙해진 그곳 사람들은 자신들 안에서 끌어낼 수
기 위해, 몇 백배의 시간이 투자되었다. 그 준비과정은 과연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다.
있는 에너지의 존재 자체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안간힘을 쓰며 무언가 해보려고 해도 꺽
여느 NGO들과는 달리 진정한 참가자들의 욕구를 확인하기 위해 부과했던 워크숍의 참
여지는 절망을 거듭하면서 어느새 그 생활에 안주하는 내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
가비는 NGO 퍼주기 사업에 익숙한 네팔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참가자
았고, 나는 결국 7개월 만에 그곳에서의 생활을 접었다.
들에게 선물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네팔 사립학교 연합 코디네이터의 화를 불러 일으켰 다(전화에 대고, “그럼, 품이 참가자들에게 주는 것은 뭐요!”라고 큰소리를 질렀다.).
# 다시 시작
그렇다. 상당수의 네팔 사람들이 물질적인 원조에 익숙해진 나머지 무형적인 형태를 띤 교류사업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치부해버리는 것이었다. 그 혼란 속에서 “왜 하
잠시 방황을 즐기고 있는 동안 다시 품을 만나게 되었고, 품의 꿈에 동감하며 가슴이 설레였다.
니”, “뭐하니”를 반복하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해서, 정작 당일인 5일 동안은
그래서 국제교류이니, 문화예술교육이니 하는 것은 쥐뿔도 모르면서 품이 내민 손을 덥썩 잡아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뚝.딱. 워크숍이 막을 내렸다.
버렸다. 이것이 내가 지금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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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네팔 사람들과 함께??
이제 겨우 한 걸음 내딛었다. 아니, 어쩌면 반걸음인지도 모르겠다. 너무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지만, 분명히 나는 조금쯤 앞으로 나왔다. 그렇게 한발 한발 나아가리라. 다
혼란스러웠다. 네팔 사람들에게,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어쩌면 열악한 환경을 위한
짐을 한다. 트래킹을 가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겠지만(안 가본 사람은 반드시 2008
학용품, 과학기자재, 학비이지 않을까. 이들과 어떻게 함께 해야 할까, 과연 어떤 것을
오~히말라야에 참여하시라), 히말라야를 오르다보면 현재 걷고 있는 발걸음이 어디를
주고, 어떤 것을 받을 수 있을까. 과연 주고받기는 가능할 것인가. 다시 고민 속으
가고 있는 것인지 당췌 알 수가 없다. 단지 눈 앞에 있는 길을 따라 한참을 정신없이 걷
로.......... 그러나 워크숍 마지막 날, “이런 쉬운 방법을 통해 아이들과 재미있게 수업
다가 후~하고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성큼 나아가있는 나를 발견하는 동시에 한층 히말
할 수 있다는 건 생각도 못했어요.”라고 말하는 참가자의 진심어린 눈에서나 “아이들
라야에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다. 급하게 가다가는 고소증이 올지도 모르므로, 아주 아
과의 수업이 변했어요. 이제 제 수업에서 아이들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라는 워크숍
주 천천히 히말라야의 공기에 적응하며 아주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해야 한다. 그렇게 나
후 날아든 참가자의 메일에서 그들이 원한 것은 단지 물질적인 원조가 아님을 겨우겨우
도...... 아주 아주 천천히 조금씩 부대끼고, 부딪치고, 깨어지면서 품과 함께 나아가보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렸다.
련다.
워크숍 이후 진행된, 행복한 학교 만들기, 일명 해피 스쿨 프로젝트는 워크숍의 참가자 였던 예술대학 학생들을 통해 18명의 젊은 예술학도들과 함께 진행하게 되었다. 그들은 외부의 일방적인 원조를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조를 이용하기도 하여 자신들의 에너지로 변환시켰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무기력하게 방관하고 있던 한 마을의 정부학 교의 사람들을 변화시키기에 이르렀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한 학생이 앞으로도 이 런 일을 계속 하고 싶다며 지원서를 들고 바로 오늘 품 사무실에 방문했다. 그 지원서에 는 이런 말이 적혀있었다. I really believe that we can change society through power of art (나는 진정으로 예술의 힘을 통해서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렇다. 이제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그들과 주고받기가 가능하다는 것, 함께 고민하고, 부대끼며 조금은 더 나은 네팔의 변화를 꿈꿔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그들에게 가 아닌 나에게 힘과 으쌰으쌰할 에너지가 되었다. 아자.!!!!!!
Scene 3. 그래서 지금........ 어디서나 쉽지 않은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PUM은 역시 네팔에서도 쉽지 않은 일을 벌 이려고 하고 있다. 아니, 이미 벌어지고 있다. 그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직도 헤매인다. 아직도 나는 국제교류이니 문화예술교육이니 하는 것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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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활동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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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품 1
January
CALENDAR 2
February
6
학교-지역연계문화예술교육 사업 시범학교 지정을 위한 화계중학교장 미팅_ 3.29
June
네팔팀 입국 l 2.16 2006 정리 및 2007 계획을 위한 1,2차 직원워크숍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 오픈캠프_ 7.28-29 l 다락원
네팔 라마스님 방문_ 4.30
4
네팔 NGO 사무실 세팅 1.15~ l 네팔 카투만두
April
5
노원 실무자 흐름워크숍 「당신의 삶은 문화적입니까」 2.24-25 l 바람과물 연구소
훌쩍 떠난 직원여행_ 6.24-25ᅵ남애항
May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 7.31-8.4 l 지역단체 방학2동 공부방 캠프 「찍고뽁고 우리들의 이야기」 1.19-20 l 봉도수련원
3
March
아름다운재단 국제협력팀 기관방문_ 3.2
문화예술교육단체협의회 창립총회_ 4.3 l 충무아트홀 덕성여대 지역단체 간담회 4.12 l 덕성여대
화계중 동아리 지원 시작_ 밴드,댄스,방송,도서,학생회 자유활동반
6기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홍보물 발송_ 6.15 화계중학교 동아리지원 강사 중간평가모임 l 6.15
화계중학교 간부수련회 4.13-14 l 포천 염광수련원
신년카드발송_ 1.29
직원숙소이전_ 3.5
7
네팔 2차 워크숍_강사미팅 4.16 l 홍대북카페 품 자원활동가 모임_ 5.16
2007 오~히말라야 후기모임 3.10 l KT&G강북센터회의실
8
August
July
당동청소년문화의집 축제기획단 기획교육_ 7.14
한국-네팔 2차 문화예술교 육워크숍_ 5.22-26
6기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1차 반장모임_ 8.4
화계중학교 동아리 O.T 4.20 l 화계중학교
2007 오~히말라야 1.29-2.12 l Nepal 광명청소년문화의집 기획단 기획교육 3회
익산청소년수련관 기관방문 7.24 강남대 사복과 기관방문 7.26
직원연수_ 3.12-15 l 속초
덕성여대 사복과 기관방문 4.29 청소년기획단 여섯개 알깨기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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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기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오픈워크숍_ 7.22-23 l 밀머리 미술학교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 발표회_ 8.5 l 창동문화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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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품
주 요 활 동 보고 11
November
학교-지역연계문화예술교육사업
나하나,유영은,이상섭
사업별 정리 및 보고서 작성
학교-지역연계문화예술교육사업은.. 참 맑은 물살 캠프 8.10-13 l 월학리 냇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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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부터 올해로 3년째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일상공간인
December
학교와 지역의 인적·물적 자원을 연결한 문화예술교육사업으로, 크게 학교 내 프로그램(시범 학교 동아리 지원 및 학교축제 지원)과 학교 프로그램(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 축제)으로 나
6기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지역실천활동 발표회
6기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컬쳐캠프_ 8.21-24 l 신기학교 한성여중 축제기획단 기획교육 8.30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10th 「광광수월래」 9.8 l 강북구청 앞마당
누어 진행됩니다.
2008년 사업 계획
지금까지 이렇게 진행되었어요!!
두레품-겨울 발간
■ 화계중학교(시범학교) 지원_ 2007년 3월~11월
10
October
• 화계중학교 교사 간담회_ 3.29ᅵ화계중학교 올해 시범학교로 선정된 화계중학교의 교감선생님, 생활지도부장선생님, 각 동아리 담당선생님
두레품-여름 발간
9
네팔 국제교류사업 보고회 10월초 l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정)
September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지역실천활동 시작 「Culture Action with Youth!」
을 대상으로 2007년에 진행될 시범학교 지원사업에 대한 소개와 이후 함께 고민을 나누어야 할 부분에 대한 공유를 하는 첫 만남을 가졌답니다.
화계중학교 축제 「목련제」 10.19
• 지원동아리 오리엔테이션_ 4.20ᅵ화계중학교 2007년에 지원받는 6개 동아리(댄스, 밴드, 방송반, 학생회, 자유활동반, 도서반)와 담당교사,
셋넷학교와 함께하는 「2007 나마스테~ 평화야 놀자!」 10.25-11.8 l 네팔
강사가 함께 모여 동아리 지원사업을 이해하고 이후 활동에 대한 동기를 불어넣기 위한 오리 엔테이션을 진행하였습니다. 강사 선생님들과의 첫만남을 가지며 힘차게 첫 문을 열었답니다.
두레품-가을 발간
• 화계중학교 동아리 각 분야별 전문강사 연계_ 5월~ 오리엔테이션 이후, 동아리별 전문강사 연계를 통한 지원을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10월에 진행하는 학교축제로 이어져 단순한 동아리의 기능교육이 아닌, 학교 전체의 분위기를 즐겁고 신나게 변화시키기 위해 각 분야별 전문강사 선생님들이 고군분투 하고 있답니다! * 분야별 참여강사 밴드 : 최찬욱, 이정연ᅵ댄스 : HJ ent. 한웅ᅵ도서반 : 에이스벤추라 임지선, 김재순ᅵ 방송반 : 에이스벤추라 노재정 ᅵ학생회 : 유영은, 나하나ᅵ자유활동반 : 유현희, 강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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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품
주 요 활 동 보고 COMING SOON...
■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_ 7월~8월 방학기간 동안 지역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했습니다. 댄스, 밴드, 풍물, 방송반 등 총 4개
■ 제 10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_ 2007년 9월 8일 / 강북구청 앞
의 분야별 활동이 이루어졌는데요, 이 힘을 쭈욱 이어서 추락까지 몰고 갈 참이랍니다!
1997년부터 시작된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이 올해 벌써 10년을 맞았습니다. 10년의 의미를 • Open Camp_ 7.28-29ᅵ의정부 다락원
되살려 강북구청앞마당에서 이루어질 2007년 추락은 시범학교와 방학중 활동인 문화예술아카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모여 처음 만나는 강사선생님과 각 분야별 친구
데미 참가자, 학급·교사들의 참여로 더욱 다양하고 풍성해질 예정이랍니다. 2007 추락이 궁
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 각자가 가진 끼도 보여주며 첫만남의 시간을 가졌었는
금하신 분들, 9월 8일 강북구청으로 오세요. 신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데요, 캠프가 진행되었던 의정부 다락원에서는 밤새도록 아이들의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그치 지 않았다는 후문입니다. ^^
■ 화계중학교 축제 _ 2007년 10월 19일 / 화계중학교 시범학교로 지정된 화계중학교의 축제를 품이 함께 합니다. 벌써 학생회를 중심으로 학교축제 기획단이 꾸려져서 방학중 활동도 하고 있고요, 9월8일에 있는 추락참여를 통해 더욱 학교축 제를 재미있게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기존의 관람중심에서 벗어난 교사와 학생이 모두 참여하 는 축제, 기대해 주세요!!
6기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 분야별 교육_ 7.31-8.4 ᅵParty Time 8월 5일 오픈캠프 후 각 분야별 활동이 시작되었답니다. 방송반은 그동안 접해보지 않았던 라디오 방
여섯 번째 아카데미가 문을 열었습니다.
송을 만드는 것을 통해 방송반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댄스분
변화와 실천의 의지가 있는 숨은 청년들
야는 모두가 하나의 주제로 안무를 만들어 멋진 군무를 보여주었지요. 풍물반도 거의 처음 악
을 적극적으로 발굴・지원하고자 「청년
기를 다루어보는 친구들이 열심히 활동을 해서 선반을 연주해 구경하던 동네아저씨들까지 신
문화실천아카데미」라 그 이름을 달리하
이 났답니다. 밴드반 역시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활동을 통해 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답
하고, 별종 청년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니다. 분야별 활동을 통해 파티까지 이어진 이 활동은 9월 8일에 있는 추락까지 주욱 이어집
6기 아카데미는 말을 좀 줄였습니다.
니다. 이들의 모습이 궁금하신 분들은 추락에 오세요!!
의도적 질문과 무거운 가치전달보다는 스
추락 카페 cafe.pumdongi.net/2007play
유현희
스로의 체감을 통한 상상과 실천의 확대 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욕심과 기대는 낮추고, 긴 과정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청년의 부름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가지 고 전국 5개지역, 6개팀이 모였습니다. 7-8월 교육과정을 거쳐 팀별 지역활동을 시작합니다. 별종 청년들의 동네난장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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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품
주 요 활 동 보고 ■ 오픈워크숍_ 7.22-23 l 밀머리 미술학교
■ Culture Action with Youth!_ 9-11월 l 각 지역 (부산×2,괴산,청주,서울,부천)
참가자팀들이 처음 만난 자리. 공동주관단체인 밀머리
교육과정을 마치고 지역으로 돌아간 팀들이 프로젝트 활동을 시작합니다. 경험에 대한 평가와
미술학교에서 아카데미의 문을 열었습니다. 아카데미
상상들을 나누고, 지역의 네트워크를 발굴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한 후, 실행까지! 동네 아이들
의 의도와 과정을 이해하고, 문화적 체감을 통해 아아
과 문화로 놀기를 시도합니다. 별종 청년들의 실천을 위한 소정의 활동비를 지급했으며, 이후
카데미가 이야기하는 본질적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으
팀별 슈퍼바이져들이 온오프라인으로 지원사격을 할 예정이랍니다.
로, 밀머리 미술학교의 철학과 프로그램을 결합하였습 니다. 참가자와 STAFF의 구분없이 모두가 함께 참여
■ Publication Process Together_ 12월
하고 체감하며, 소통을 시도해봅니다.
팀별 프로젝트의 과정과 결과를 나누고 함께 정리하기 위한 자리를 가질 예정입니다. 1년간의 아카데미가 끝나도 별종 청년들의 별스러운 실천은 계속해서 이어지길 바라며, 서로의 생각과 의지를 나누어보렵니다.
■ 1차 반장모임_ 8.4 l 품 부산에서, 청주에서... 6개 팀의 반장들이 품에 모였습 니다. 아카데미의 과정은 일방적 지원이나 수동적 참
■ 아카데미 6년 정리와 제안
여가 아닌, 쌍방의 준비와 소통의 준비로 이루어짐을
어쩌면 6기 아카데미를 잘 진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과제일지 모르겠습니다. 6년간의 아카
강조합니다. 오픈워크숍에 대한 팀별 평가와 진행상황
데미를 정리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청년
들을 나누고, 다음 과정인 컬쳐캠프를 위해 함께 준비
상이 무엇이며, 그러한 청년들과 함께 하기 위해 품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지원사업에
해야 할 것들을 논의합니다. 당장 무엇을 해야한다는
의존하지 않고, 아카데미를 만들어갈 수는 없을까..?
부담감을 버리고, 무엇을 하기 위한 과정을 충실히 할 것을 약속하며. ■ 컬쳐캠프_ 8.21-24 l 신기학교 공동주관단체인 신기학교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신기의 철학과 공간, 생활방식을 그대로 체험하며, 새로운 방 식의 교육프로그램을 시도해봅니다. 청년으로서의 고 민과 선험들을 함께 나눌 강사들을 모시어, 이야기를 나누어봅니다. 연극놀이 해마루의 손준형, 문화기획자 아랑과 반전, 예술가 김월식 선생님이 강사로, 심한기 (품), 박찬국(밀머리미술학교), 김지나(공공문화개발센 터 유알아트), 목윤지영(신기학교) 선생님이 팀별 슈퍼 바이져로 함께 해 주셨습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후 활동의 단서를 찾기를 시작합니다.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카페 cafe.pumdongi.net/with-y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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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품
주 요 활 동 보고 이상섭
참 맑은 물살 캠프 셋째 날은 티셔츠 만들기로 시작합니다. 넥타이를 그려 넣기도
“내내 비 온다는데요?”헐... 계속되는 폭우에 긴급회의를 소집합니다. 날씨만 좋으면 그냥 놀면 되는 캠프련만... 실내 프로그램을 대비해 멤버들을 충원 하고, 떠날 준비를 합니다. 본래 자연스러움이란 비가 오든 눈 이 오든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니, 강물은 흐려도 잘 흘러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하고, 기찻길을 만들기도 하고, 나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채워 넣 으며 작은 예술가들이 탄생합니다. 열심히 돌담까지 쌓았는데 한번만 놀긴 아쉬워 다시 물가로 나갑니다.
삶은 옥수수와 족
대를 짊어지고 갑니다. 입술이 파래지는 줄도 모르고 물고기들 을 쫓습니다. 마지막 밤은 사진놀이를 좀 해볼까요? 카메라 한 대씩 들고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봅니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참 맑은 물살. 2005년 정선 품속학교를 시작으로, 2006년에는 남원, 올해는 강원도 인제로 떠나봅니 다. 강과 뗏목이 유명한 월학리 냇강마을. 마을 사람들이 공동 건축한 숙소와 체험관, 무엇보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이 매력적 인 마을. 입소문이 났는지, 캠프 전부터 문의전화가 쇄도하더 니,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초등 참가자 45명과 자원활동가, 교 사들을 포함해 60명을 웃도는 대인원이 물살캠프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물살은 잘 흘러갑니다. 늘 그렇듯 머리 아픈 것은 어른들입니다. 교사들은 악천후보다도 부족했던 준비보다도, 스스로 잘 흘러가 지 못함이 아쉽습니다. 딸 해인이와 함께 온 영수샘의 무거웠던 얼굴이 맑아졌습니다. 다섯 살 정원이 아버지 석호샘은 어린 아 이들을 만나기 위한 준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질문과 제안들 을 다음을 위해 담아둡니다. 분명한 것은 아이들의 얼굴입니다. 멀리 청주에서 온 현찬이 민 찬이 형제는 헤어지는 자리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물살캠프 2
첫날 첫 시간은 우비만들기로 시작해봅니다. 커다란 김장비닐
년차인 유흔이가 몰라보게 성장한 모습을 확인합니다. 잠자리와
을 오려 몸집에 맞게 재단하고 그림도 그려 넣어 봅니다. 마을
개구리잡기에 열중하던 말없던 아이, 민준이가 ‘물살캠프 너무
체험관에 가서 약과 만들기도 하고, 맛있게 튀겨져 나오기를
재밌었다’고 전해옵니다.
목 빠지게 기다렸다가 낼름낼름 집어 먹습니다. (정말 맛있다!)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어진 환 둘째 날에는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어요. 오그작 뽀그작 아침 을 지어먹고 밖에 나가 한판 놀다 물폭탄을 뒤집어 썼습니다. 모처럼 마주한 햇님과 물놀이나 하러 가 봅시다. 불어난 계곡 물을 돌담으로 막고 신나게 놀아봅니다. 저녁에는 물살캠프 전 속 음악회. 재미난 노래 함께 부르며.. 하늘을 보니 별이 총총 하네요. 이런 밤에는 귀신 놀이가 제격입니다. 어스름한 달빛
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함 께 마을을 만나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황소 콧잔등이도 만 져보고, 마을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을텐데..
마을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번 더 가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번 더 갈까요? ^^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건 아이들만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속에서 마을길을 따라 내려가 봅니다. 미리 매복해 있던 귀신 들이 애를 써보지만, 아이들을 놀래키기에는 영~ 시원치가 않 습니다. 매복해 있느라 가장 무서웠을 귀신들을 위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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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2008년 참 맑은 물살캠프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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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품 한국-네팔 문화교류
강명숙
오랜만에 나오는 두레품에 많은 이야기를 담은 ‘네팔국제교류사업’ 진행되었던 것들이 충분한 나눔이 되셨는지요? 여기서는 앞으로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네팔 국제교류사업 보고회 및 보고서 제작 사업을 진행하는 것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많은 힘을 쏟는 정리 작업. 2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네팔에서 진행되었던 워크숍을 중심으로 현재까지의 성과와 한 계를 정리해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한국어와 영문 2종류로 제작하며 한국 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 10월 초순 보고회를 예정하고 있으며, 보고서도 이때 배포 될 계획입니다. 보고회는 16년간의 경험을 가지고, 네팔에서 압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업인 만큼 고민의
주주와 문화
내용을 솔직히 드러내고, 많은 조언을 받는 자리이고자 준비 중에 있습니다. • 남북청소년이 하나 되어 펼치는 국제평화자원봉사활동 ‘2007 나마스테 평화야 놀자’ 10월 25일(목) ~ 11월 8일(목) / 2주간 탈북청소년교육공동체 셋넷학교, 한국 품, 네팔 품이 공동주관하고 있는 사업입니다. 단순한 관광과 표내기식 자원봉사로 구성된 활동이 아닌 남북청소년들 간, 한국과 네팔 청소년들이 함께 교류하고, 네팔 사람들과 살아있는 교감을 나누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사업입니다. 여기 에 10번째 추락의 청소년기획단 ‘세 개와 개밥그릇’도 참가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올해 사업의 성과인 Young Artist Group와 모노허라 학교, 품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트 리플 잼 학교 등도 벌써 네팔에서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준비하는 프 로그램이 아닌, 서로 기대감을 가지고 준비하는 행복한 교류의 첫 발걸음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8월 20일 ~ 23일(3박 4일) 사전워크숍을 시작으로 아이들은 가슴 떨리는 활동을 시작했 고, 9월 15일 북한산 산행도 있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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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춘식과 PD수첩
82권 수첩의 한 페이지에 영수증이 붙어 있다. 2007년 4월 2일. T-point 12개들이 한 세트와
유현희. 품 활동가
피디수첩 열다섯 권의 값은, 이만백원이다. 창신동 그 집의 이름은 현진문구사. 갑자기 십 년 넘게 그에게 피디수첩과 T-point펜을 팔
그의 메모하는 습관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온 문구사 주인을 인터뷰해보고 싶어진다. “교무부장 되기 전이니까.. 정희여고에서 마지막 담임할 때일꺼야. 교무부장 하고 그러 면 대우하느라고 담임을 안주거든. 조회, 종례 시간이 담임 잔소리 하는 시간인데, 그 게 하기 싫어서 ‘5분 이야기’를 시작했지. 지시․전달 사항은 칠판에 적고, 아침저녁으로
82권 잘 있어!
5분 이야기를 하는데, 3개월 지나니까... 만만치가 않더라고. 5분 이야기 자료가 필요
다 쓴 82번 수첩을 가져 오신 것은 우연일까, 그의 배려일까.
해 진거지. 그게 스크랩과 메모의 시작이었어”
빽빽하게 채워진 82번 수첩의 마지막 장에는 “82권 잘 있어!”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내 책상 언저리에도 수첩들이 꽂혀있다. 사무실에 굴러다니던 것을 주워놓은 것도 있 고, 여느 행사 기념품으로 받은 것도 여러 권이다. 영어공부를 시작하며 단어장으로 사 용하던 것도 있고, 주주와 관련한 업무를 메모해둔 수첩도 있지만, 어느 하나 끝장을 보지 못한 것들이다. 어느 수첩이 이토록 주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그의 PD수첩은 세상 에서 가장 행복한 수첩일 것이다.
수첩의 겉지를 열면 커다란 수첩번호와 수업시 간표, 그 시기에 생각하고 준비해야하는 일들 로 보이는 메모가 가득하다. 아동복지교육지원 사업, 전기요금 할인제도 등 '지원‘이란 이름으 로 메모된 것들은 아마도 누군가 자문을 구한 것들 일 것이다. 매우 호기심을 자극하는 메모들도 있다. PD 수첩은 한성여중 교장 부임 이후, 창신동에서 구입한 것이다. PD수첩 이전에 50 여권의 수첩이 있고, 현재 83번째 PD수첩을 쓰고 있다.
금주의 책, 달걀 120개/20분, 62kg..... 62kg? “선생님 62kg은 뭐에요?”
PD수첩의 짝은 T-point(0.38:흑색)펜.
“몸무게야. 몸이 어떤가 궁금하여 적고 있지”
매번 창신동 그 집에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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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에서 퍼오기
기억하려고 메모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지 않으려고 메모한다.
* 민사고 81명 국제계열 → 전원 해외 명문대 진학 기억의 방에 새로운 상상력을 남겨두기 위해 메모한다.
* 시는 오만이다. 우주와 맞짱 뜨자
새로운 생각 발전소로 남겨두기 위해 메모한다.
* 나는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예수도 ‘예수’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에디슨 3,400권 메모
전지전능 좀 아니었으면 좋겠다.
술 먹은 다음날 대화의 질 검증자료
* 불량건축은 공간 죽이기, 우주 상처내기, 하늘 욕보이기 메모할 거리가 있는 만남, 없는 만남.
* <상실>은 가장 큰 인생수업이다.
메모하는 습관은 상대방의 태도를 변화시킨다.
* 가장 화나는 일 - 홀인원 * 상처는 내 몸의 통로를 들여다보는 통로. 통로가 없어 수술칼
_ 수첩 속에서 발견한 메모에 대한 메모
새 수첩을 쓰기 시작하면, 이전 수첩에서 기억에 남는 메모들을 추려 위와 같이 정리해 둔다. 짧고 간결하지만, 그의 메모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와 메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그는 메모를 하고 있다. 메모할 거리가 있는 만남이라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
그에게 물었다.
메모에 대한 그의 철학에 한걸음 더 다가가 본다.
“메모를 하긴 하는데, 하고 나서는 잘 안보게 되더라구요... 메모를 어떻게 활용하시나요?” 메모를 꼭 다시 읽을 필요가 있느냐는 그의 반문. 메모를 하기 시작하면 대화를 나누는
정희여고 시절에 일본의 시골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온 일이 있었다고 한다. 누구
과정이 달라진다고 그는 이야기 한다. 그의 수첩을 보고 있자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 명 빠짐없이 모두 수첩과 펜을 들고 다니며 메모를 하는데.. 그 모습이 매우 충격적 이셨다고 한다. 과제가 없으면 메모하지 않는 우리네 학생들의 모습을 비교해보며, 놀 람과 부러움, 두려움을 느끼셨다고.
그의 메모는 여유와 위트가 있다. 간혹 날린 글자도 있지만, 메모 하나 하나에 사색과 미학이 스몄다. 스쳐가는 생각과 흘러가는 이야기들을 붙잡으려, 가끔은 스스로도 해독 불가능한 메모 를 남기곤 하는 나 같은 하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의 메모에는 그대로 한 편
“메모하는 일본인. 나는 그것이 두렵다. 그것은 엄청난 차이이다.”
의 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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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수첩 속에는 볼거리들도 많다. 만남 즈음에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이란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
고윤희의 책 이야기
필체가 매우 힘있고, 멋있어서 오려두셨다고 한다.
고윤희. 2005 품 인턴 현재 노원교육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수첩 중간에는 수첩번호를 펜으로 래터링한 그림도 있다. 손바닥 반 만하게나 숫자를 새겨 넣는 동안 그는 무슨 생 각을 했을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척 하기.
그는 멋을 아는 사람이며, 고백하건데, 나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척 하는 류(類)의 사람이다. 감추려 해도 감추
그래서 그의 메모는 재밌다.
어지지 않는 약점이자, 내 삶의 즐거움이 바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척 하기 놀이’인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는 아주 오랜 습관이자, 현재의 습관 중 하나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책과 씨름하는 것이다.
프로이트 일파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누구나 페르소나라는 이상적인 자기상(自己 “메모는 삶은 진지하게 하는 힘이다.
像)을 갖는다고 한다. 아마도 나의 이상적 자아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책도 척척 읽
메모하는 사람 앞에서는 진지해지며, 긴장하게 된다.
어내고 이해해 내는 ‘잘난 자기(自己)’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과거와 현재
메모하는 습관! 국민운동으로 할 만하지 않은가?“
는 그렇지 못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런지는 의문이다. 반백의 중년, 혹은 백발의 노인이나 되면 제대로 주제파악이라도 할 수 있게 되어 포기하게 될는지, 그것조차 의 문인 것이다. 물론 결코 질리지 않는 놀이 하나를 평생 갖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면 기 실 즐거운 불일치이기도 하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두텁고 무거운 책을 기어이 도서관 에서 대출해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은, 그러한 오래된 습관에 따른 허영이 80%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본다.
참 글로 풀어내기 뭣 하지만 내 흥미를 갑자기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나머지 20% 영 향력을 발휘한 것의 정체이다. ‘그래봐야 네 안의 잡동사니 같은 생각에 관한 호기심 아 니냐?’라며 지금 읽고 있는 글의 정체를 묻는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사실 나는 내 안의 잡동사니와 그것과 비슷한 잡동사니를 쌓아놓고 사는 이러 저러한 사람들에 대해 호기심을 품는 잡스런 인간류(人間類)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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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의 욕구에 대해 곰곰이 추적해 본 결과, 두꺼운 책을 빌리는 것과 같은 선택의 원
한 여행자와 함께 은하수를 히치하이킹 하거나, 오래 전에 죽은 조지오웰 아저씨와 함
인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
께 21세기에 분통터져 할 수 있을 때, 나는 내 영혼이 보호되고 있음을 혹은 은근히
다. 정확히 1235페이지에 달하는 한권의 책은, 새로 들어간 직장과 그에 따른 업무에
위로받고 있음을 느낀다.
대한 예측 불가능한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선택된 것이다. 기억컨대 졸업 을 앞두고는 넓적하고 두터운 ‘애니어그램의 지혜’를, 다리가 부러지고 입원해 있었을 때는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빌려 읽었던 것이다.
살면서 이러 저러하게 생긴 상처를 덧대고 가만히 만져주는 것은 결국 100%의 이해가 아닌, 이러 저러한 반창고류(絆瘡膏類)의 시도와 노력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의 상처를 잘 감싸다 보면 어떤 종류의 ‘지혜로운 반창고 붙이기’를 익힐 수 있지
지금까지, 지루함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렇다면 그
않을까 하는.
80% 혹은 20%의 욕구를 ‘두꺼운 책읽기’가 얼마만큼 해결시켜 주었냐‘는 독서의 효 용이 궁금할 것이다. 사실 그 물음에 대해서는 ‘내 딴에는 참 만족스럽소.’가 답이다. 싱겁지만 그런 만족 덕택에 위태로운 혹은 서러운 시간 들을 그럭저럭 넘겨 올 수 있었 던 것이다.
결국, 내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산은 산이로되, 물은 물이요’라는 어느 선승의 선문답 일 것이라고 나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그러나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척하는 것이 현학에 대한 허영이든, 두꺼운 책으로의 현실도피이든, 어쩌면 그것이 배와 배꼽을 그 대로 보는 것으로 향하는 길일 수 있지 않은가라고 항변하고 싶다. 참, 내가 생각해도 억지스런 변명인 듯싶지만 더 이상 설명해 낼 수 없는 것이다. 고백하지 않았던가? 나 란 녀석은 모순 덩어리인 자기(自己)에 대해서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척하는 인간류라 는 것을...
요즘 나는 ‘통찰과 포용’이라는 하워드 가드너의 책을 읽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책 역 시 두꺼운 걸 보면 나는 아직 골치 아픈 이런 저런 고민에 휩싸여 있나 보다. 살다보면 그러한 현실-내 배보다 더 큰 배꼽을 기대하는 현실 혹은 그것에 욕심내는 자기(自 己)-에 처할 때가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아마도 자꾸 능력보다 더 큰 욕심을 부리고 있는 나(自己)이고, 현실의 관계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나(自己)이며, 혼자서 모든 것을 헤쳐나가기엔 버거운 세상살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때에, 버겁지만 포기하거나 혹은 중단할 용기를 내기 어려울 때엔 두꺼운 책을 읽어보아도 좋을 것이다.
가끔씩 현실을 잊을만한 누군가의 지혜로운 문장을 암송하고 옮겨 적고 있을 때, 엉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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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생각나눔.
Photo by 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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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열다.
자유활동반 아이들을 무서워한다.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이지만, 학교 시선에서는 자유 활동반 아이들은 학교도 잘 안 나오고, 욕도 서슴없이 하고, 담임교사의 골치를 아프게
미루.
품 상근자원활동가
하는 암적인 존재랄까? 이들은 작거나 비어보이는 가방을 들고 다니며 어떤 날은 가방 없이 등교한다.
#5 학교 가는 날 나의 가방
#1 USB 같은 아이들.. 아이들을 만나며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그들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끌어안 고 싶기도 하고, 너무너무 즐겁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USB 스틱처럼 아이들의 아무렇지 않은 말 하나가 수직으로 꽂힐 때면 화가 나기도, 한없이 작아지기도 그래서 흔들리기도 한다. 5월 한중간에 방학이 오길 간절히 기도한 적도 있다. 요즘에야 아이들을 만날 때
가는 순간까지 바쁘다. 이것저것 준비와 챙길 물건들. 카메라는 맨 나중에 찾아 들고 버 스를 탄다. 머리가 이만큼 커진다. 담당 선생님과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나..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이들이 중간에 뛰쳐나가면 어떡하지..에이! 이런 생각은 왜 해! 그러다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 분명 청소도 안하고 나왔을 아이들과 눈이 마주친다. 심 호흡과 함께 이젠 팔릴 대로 팔린 얼굴. 마주치는 아이들과 인사를 한다. 안녕? 응.. 머
에는 (물론 학교에서도) 어떤 중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중심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학교에 들고 다니는 가방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리 많이 길렀구나! 교복 줄였네? 오늘은 노래방 가니? 저기 누구 온다. 오랜만에 본다! 시험은 잘 봤어? 남자친구구나! 응? 뭐라구? 에이 뭐야~ 품에 와.....
한다.
무거웠던 가방이며 머리가 가벼워진다. 내가 만나야 할 학생회 아이들을 만난다. 달래기 도 떨기도 하며 더듬더듬 할 얘기들을 하고 나면 한숨 한번 쉬고, 아이들이 예상 밖으로
#2 학생부? 청소가 끝나길 기다려 담당 교사와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하러 교무실로 들어가 한참 생각을 나누고 있는데 어떤 아이와 교사가 들어오더니 교무실 안 학생회실(아이들은 골 방이라 부른다)로 들어갔다. 문을 닫자마자 가방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내려놓는 소리와 맞는 소리와 고함 소리가 들렸다. 다른 교사들은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교무실안의 아이
재미있어 하면 한숨
한번 더 쉬고, 마지막엔 다 같이 수고했다며 박수를 치는데 매번
스스로를 쓰다듬으며 박수를 친다. 그날따라 학교에서 최고로 무서운 선생님한테 열대나 맞고도 머리를 안 자른 고집스런 혁우가 무표정이었다가 미소를 지었다면 돌아오는 발 걸음은 날아갈 것 같다. 학교 가는 날 나의 가방은 그 날의 아이들 모습으로 채워진다.
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이다.
#6 학교 담 #3 시험 가방
중학교 때 운동장 뒷 쪽 계단으로 된 벤치 위에는 작은 운동장이 있었는데, 벤치 위의
학교에서의 활동일 때문에 열 명 정도의 동아리 아이들에게 저녁시간에 연락을 해야 했
등나무로 가려져 있기도 하고 교무실에선 잘 보이지 않기도 해서 내가 좋아하던 삼학년
다. 학원에 다녀오느라 밤 열두시가 넘어서야 통화가 가능한 아이도 두세 명쯤 되었다.
오빠는 친구들과 개구멍을 만들어 수시로 드나들곤 했었다. 나도 삼학년이 되어 호기심
하나같이 피곤하고 지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학원은 왜 그렇게 늦게 끝나니? 다음
에 드나들어 보았는데 몇 번 왔다갔다 할 때마다 등에 맨 가방이 늘 걸리적거리는 통에
달에 시험이잖아요. 한 달도 안 남았네. 어휴.. 어렵게 잡은 활동일, 책상에는 아이들의
담 넘어 다니는 것을 귀찮게 여겼다. 그냥 문으로 다니지 뭐 하면서.
책가방이 무겁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놓아졌다.
학교에 다니던 때나,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한 지금이나 학교 담장을 넘기엔 걸리는 것이 많은 것 같다. 문을 열기도 쉽지 않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행복하다는
#4 가방도 없이? 가방은 없이?
진리. 그러나 막힌 듯 철저히 분리된 학교의 시스템이나 교육은 다시 생각해보아도 진리
우리 동네 화계중학교에는 자유활동반-이라고 불리는 반이 있다. 좀 논다-하는 아이들
와 어울린다고 하기엔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니... 가방도 걸리고 머리도 걸린
을 부적응아로 분류하고 생활지도부의 특별관리(?)를 받는 아이들인데. 아이들은 보통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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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중심 학교에서 활동하며 현실적인 문제들과 마주칠 때면, 아이들은 늘 어떻게 해요? 라고 물
내가 살던 고향은.. 료애.
어온다. 너희가 무엇을 하려고 했었는지 잘 생각해보렴. 이라는 답답한 대답을 하면서
2005 10회 청소년연극축제 참가자. 품 홈피에 료애의 안경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품식구들과 고민도 해보고 여기저기 조언도 들어본다. 그러다 진이 빠지면 가방을 연다. 수첩에는 받아쓰기 한 것이며 이것저것이 그려져 있다. ....나는 왜 아이들을 만나며, 아이들을 만나는 나의 철학은 무엇인가
내 기억의 시작은 어느 가난한 아파트 단지다. 집 베란다 창문 뒤로는 남동공단이 보이는 평수 작고 비좁은, 그러나 행복했던 그 곳.
생각해본다. 질문을 한다.
내가 살던 그 아파트 단지는, 주변 아파트 단지들 중에서도 '제일 못 산다'고 소문난 단
답은 아직..더 고민하며 찾아봐야 한다.
지였다. 몸이 불편하거나 생활이 어려운 이를 위해 지어진 영구임대 아파트가 절반, 그
혹시.. 어쩌면 이것도 아이들의 가방에 있을지도..
나마 사정이 조금 나은 사람들에게 분양된 아파트가 절반. 이렇게 재나 저렇게 재나 비 슷비슷한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만들어진 마을...그 곳은 그런 곳이었다. 비록 말은 더듬더듬, 아주 어눌하게 하셨지만, 내 입모양을 보지 않으면 대화를 나누기 어렵기도 했지만, 언제나 내게 반갑게 인사를 해주던, 친절하게 내 자전거를 고쳐주곤 하던 우리 아파트 6층 아저씨.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며 마을 아이들을 매일 혼내곤 하 시던, 하지만 내게는 자상한 분이셨던 노인정 할아버지. 인사성이 밝다고 나를 늘 예뻐 하시던 청소 할머니. 내가 지나갈 때면 꼭 농담 한마디씩 건네시던 경비 아저씨... 사고로 다리도, 팔도 모두 불편해지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언제 나 웃으며 목발을 짚고 다니시던 12층 아저씨. 많이 힘드셨겠지만 그런 아저씨를 사랑 으로 보듬으셨던 12층 아주머니. 그리고 내가 아주 예뻐했었던 그 집 아들, 꼬맹이 광 이. 우리 아버지께서 자주 가시던 수현 비디오 가게 등 굽은 아저씨. 아파트 단지 어귀 에서 맛있는 떡볶이를 파시던 민자 아줌마. 우리 옆에 살던 거북이 아줌마. 그 옆에 살 던 예쁜 아줌마. 그리고 우리층 제일 끝집에 살던 3살짜리 꼬마 동규...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있을지 전혀 알 수가 없지만, 그 때의 모습들을 생각해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오고는 한다. 그냥 문득, 생각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커다랗게 지어진 스타시티를 바라보다가. 제2의 강남을 꿈꾼다는 이 주위를 한 번 둘러보다가, 나도 모르게 갑자기, 그 곳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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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내에, 어느 아파트가 제일 못사는 아파트래~ 하는 소문이 쫙 퍼졌었지만
그러나 나는, 그 어떤 것보다, 사랑이 넘치는 곳에서 자랐던 그 때의 기억이, 내 기억의
아무도 함부로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도, 서로를 차별하지도 않던 착한 아이들이.
시작이 그곳에서부터라는 것이 내 생에 가장 큰 재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을
부녀회장이셨던 어머니가 식사를 준비해가면 그렇게 고마워하시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만나는 동안 그 사람들 덕분에, 또, 언제나 많은 사랑을 품고 사시던 부모님 덕분에 나
몸이 불편해도 얼굴만은 언제나 웃음꽃이었던, 내가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도.
는 사랑하는 법을 아주 조금이나마, 어렴풋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소박한 행복도. 함께 하는 웃음도.
발전도 좋고, 잘 살게 되는 것도 다 좋은데. 돈이 많은 것도 좋고, 성공하는 것도 다 좋은데.
아직도 가끔, 시간이 나면 두 시간이나 걸려서 그 마을에 찾아가고는 하는데... 잠시 들
그런데. 어쩐지 이 주위에는 그만큼 인정이란 게 부족한 것 같아서.
렀다 오는 것이 전부라 아직, 그곳 사람들을 다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내가 살던
그냥 느낌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것 때문에 씁쓸해져서......
고향, 내 인생의 가장 큰 밑거름이, 그만큼 값진 재산이 되어준 그 사람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빈'과 '부'가 여실히 드러나는 이 마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도 언젠가는 싹 갈아엎어 재개발 할 거라는 말들.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가게 되면, 그 때 살던 사람들이 혹시 아직까지도 있는지, 두 눈
좋아하는 집주인들과, 불안해하는 전세가구.
크게 뜨고 샅샅이 살펴보아야겠다.
어쩐지 그냥 그렇다. 큰 건물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을 보면, 그냥 기억 속에서 이렇게 추억만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예쁘구나, 좋구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예전 그 마을의 생각이 톡톡, 가슴 한구석을 살짝 때리고 지나가는 것이다. 내가 너무 낮은 곳에 살아 그런지는 몰라도,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 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다. 나는 아직 어리지만 소박한 행복을 찾는 법을 어렴풋 이나마 알고 있다. 그냥, 내가 지금 볼 수 있다는 것에, 말할 수 있다는 것에,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생각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드리면, 그렇게 하나하나 쪼개어 모든 일에 감사하고 살면 사람은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 그 외에 것이 더 생기면 더욱 좋은 거고, 만약 그 중 하나를 잃어버리면, 다른 것들에 또 감사하며 살면 되는 것이다. (비록 실천 은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알까.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지키려고 아등바등 살다보면, 정말 '마음은 가난한 사람들'이 되어버릴 텐데. ...뭐, 꼭 가난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이왕이면 많이 가진 것이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고 쓰고 싶은 것 마음껏 쓰면서 사는 편이, 어쩌면 더 행복한지 도 모를 일인 것이다.
료애, 장슬기. 2005년 청소년연극축제 대표자연합캠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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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 마실 다녀 온 느낌
프리젠테이션을 보며 눈물이 뭉클하던 순간이 많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가 싫어 야자가 싫어 실업계로 도망쳐 나온 저의 과거와 대학에서 임원을 하며 수능이라는 무시
봉재.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무시한 괴물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수많은 대학생들을 만나며 과연 내가 이들한테 사진 에서 보았던 해맑은 웃음을 본적이 있는지 돌이켜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대학생들의 웃음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합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울한 이야기, 걱정
안녕하세요~ 기관방문한지 며칠 안됐는데 자유분방(?) 했던 품이 그립네요. 지금 품에서 배운 내용들 정리 중에 홈페이지에서 이것 저것 둘러 볼 겸 홈페이지에 들 렸다가 게으른 저를 알기에 기관 평가(?) 아니, 기관 방문한 느낌 적으려고 왔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저로서 품에 갔을 때 무언가 그리운 곳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을 따라 도시로 올라와 적응하기 힘들어 하던 그때가 너무도 생각났습니다. (물론 초등학교 2학년 때는 그게 적응하는 과정인줄 모르고 도시로 올라온 게 마냥 기뻤지만
들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수능을 피해간 저로 썬 공감하기 힘들었지만 우리나라 교육제도 안에서 흔히 우등반에서 제외된 이들이 모 인 강남대 학생들에 학창시절은 건강하기만 하다고 표현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품은 그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의 환경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그리고 그 속에서 진정으로 기뻐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바라보니 너무나도 가슴이 뭉클 했습니다.
지금은 초등학교 친구가 없는걸 보니 적응하지 못한 듯합니다...)
학교에서는 자고 학교 끝나면 피씨방 아니면 컴퓨터 학원을 다니고 친구들과 놀기 만한
'품' 왠지 시골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컴퓨터
저의 과거를 생각하면 '나는 왜 이런 걸 모르고 살았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티
나 오락기가 없어도 하루 종일 동네를 뛰어 다녔습니다. 당시 우리 마을에는 자동차나 넓은 도로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뛰어 다니는데 누구하나 뭐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 리고 어찌 보면 부모님들은 농삿일에 목장 일에 바쁘기 때문에 제가 나가서 노는 것이
비와 신문을 통해 그리고 각종 실제 사례를 통해 듣는 학생들의 환경은 너무나도 비 건 강한 것이 현실인데 그런 환경 속에서 작은 날갯짓을 하고 있는 품이 있어 가슴이 뭉클 했습니다. (너무 감상적이 되네요...그때의 두근거림을 생각하니 좀처럼 '이성적인 글'이 써지질 않습니다. 조금(?) 스크롤 압박 글이 될 듯 합니다.)
더욱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르죠 ^^;; (쓴웃음)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기관에서 딱딱한 분위기에 무언가 막힌 느낌을 많이 받았거 든요. 하지만 품은 무언가 달랐습니다. (아마도 우리어머님께서 보셨으면 빨간 고무장갑 과 빗자루, 걸레 등을 들고 오셨을지 모르지만....) 그냥 편하다고 할까요? 딱딱한 분위 기 보다는 포근한 분위기 그리고 사무실 곳곳에 붙어 있는 사진, 그림 책꽂이 가득한 책들 그리고 세월을 말해주는 듯한 '사람 다녀간 흔적들' 중소기업을 다니고 정리정돈을 강요받았던 환경에서 그리고 보기에만 깔 끔한 것에 익숙한 저로써는 '아, 이런 것도 좋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명숙 선생님께서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하시기 전에 말씀해 주신 것이 생각납니다. '우 리도 기관방문자들 받으면서 긴장해보긴 처음이다.'라고 물론 예의상 해주신 말씀(?)일 지 모르지만 복지순례의 설레임을 안고 밤잠을 설치고 평균수면시간 2시간을 자고 부랴 부랴 도착한 저희들의 몸과 마음의 피로가 싹 씻겨 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강남대 복지순례단 품 방문하던 날. 사진 왼쪽아래 봉재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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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품의 본질 지키기
니다. (지금 이 순간이라도 당장 품으로 달려가고 싶은 욕망...).
또 하나의 감동은 품에 본질에 대해, 그리고 품의 본질을 지키기 위한 선생님들의 노력
그리고 사업 중에 하나인 아이들과의 바깥나들이, 행사진행 순서 없는 행사 등에 대해
입니다. 잘되고 있던 사업을 그만 둔다는 것이 어떤 단체에서든지 매우 힘들 것이라는거
듣게 되었습니다. ' 자기들 끼리 알아서 놀더라, 하자는 거 하면 되더라, 아이들은 놀거
매우 일반적인 상식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것 때문에 피해보는 정도가 심각하지만 단
리를 스스로 만들면서 놀더라' 라는 이야기가 가슴을 콩닥 거리게 했습니다.
체는 그걸 잘 모르죠)
하지만 10살이 되면서 해오던 사업들을 바꾸고 또 바꾸고 또 바꾸는 모습이 학생회 임
넷. 왜 하필 네팔이냐!?
원으로써 부끄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였습니다. 저도 임원 일을 하
심한기 선생의 깊은 뜻 아직 모두 이해하진 못했지만 왜 하필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알
면서 짜여진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거든요.
듯(?) 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히말라야에서 선생님들이 보았던 것들을 보고 싶다
는 생각을 했습니다.
둘. '나는 그냥 즐겁다.' 현재 대학 3학년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죠. "취업"이라는 현실 때문에 수많은 대학생 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저 역시 거기에 포함되지만 말입니다 ^^;;;
다섯. 그 사람들 나 싫어해~ 밥을 먹으면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미국과 일본 방식이 고대로
회사를 다니면서 끊임없이 하던 고민이 '내가 여기서 뭐하지?', '그만둘까?', '그냥참자'
믹스되어 전공서적 이곳저곳을 가득 채우고, 김치를 먹고 자란 아이들이 그것을 그대로
등등 약간은 부정적인 고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회복지학으로 길을 돌렸을 때
흥미를 많이 잃었거든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그러지 않고 있
작심한 것이 '하고 싶은 일 평생하면서 살자'였습니다. 하고 싶다는 것이 즐겁다와 유사
는 사람들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아 괴롭기도 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것이 제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도 결심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
가 느낀 솔직한 느낌입니다.
셋. 스스로 그러하다
여섯. 문화
한덕연 선생님을 통해 자연주의 사회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도덕경
'문화생활'이라는 편견과 모순 가득한 단어를 품만의 방식으로 풀어 주신 듯 합니다.
을 읽기 시작했지만 끝까지 읽을 수 없었습니다. 워낙 본질 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과
1) 표현되어지는 모든 것
연 가능할까?' 라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기 때문입니다.
2) 문화는 전달이며 소통이다
품에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 이런 열정이 있다
3) 문화는 공동체이며 변화의 중심 매개 이다
면 가능하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에 대
건방지게 여기에 하나를 추가하자면 '문화는 즐길 줄 아는 사람만이 즐길 수 있다.' 라는
한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 궁굼해졌습니다.
걸 추가 하고 싶습니다. 문화라는 개념을 너무 협소하게 인식하고 있던 그리고 문화공동
유현희 선생님과 강명숙 선생님과의 담소를 본격화 하려 할 때 쯤 점심이 도착하여 더
체란 말을 듣고 제 머리 속에 떠올렸던 것들이 너무 한심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
이상 진도를 나갈 수 없어 너무도 아쉬웠습니다. 아마도 자연주의를 혼자 공부하면서 대 화할 수 있었던 아니! 관심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 처음이라 그랬을지도 모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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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습하고 있는 현실 속에 제가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사회복지 공부하는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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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사업을 벗어나 운동으로 학교에서 배우던 '전인적 관점'이 그리고 공동체 활동(교과서에는 지역사회 활동으로 번 역 되었습니다.)의 필요성에 대해서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변화해야 하는 사회환경 또한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졸업하는 내내 그리고 제 목숨이
지금 만나러 갑니다
끝나는 날까지 풀어야 하는 숙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입니다~ 품에 잠시 들렀다간 객이기 때문에 비판이라는 걸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활동할 기회가 생긴다면 모르겠지만요.. ^^; 3시간 반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거 배우고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
오랜만입니다.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 보자 보자 하고는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은 사람 잊을만 하면 만나지는 사람 이번만은.. 벼르다가 꼭 먼저 연락받게 되는 사람 안 만났으면 했는데... 거부할 수 없는 운명 ^^; 그리워만하다.. 그리워만하고 싶어지는 사람.. 참 오랜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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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 지역단체 모임에서 심한기 선생님을 만나면서 많은 자극을 받으셨다고 했다. 들켜
만남 하나
도봉여성의집
버린 것 같은 느낌. 관성, 세월의 때.. 스스로 비겁하다고 느껴졌던 순간에 대한 고백.
유미옥
치열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가지는 지나친 자기반성이리라. 두 분이 막역해진 것은 몇 년 안 되었다. 아마도 내가 기억하는‘미옥이 누나의 금일 봉’그 즈음부터인 것 같다. 정확한 계기는 알 수 없으나, 오랜 시간 지켜보며 쌓아온 신뢰와 애정, 무형의 연대가 둘 사이에.. 존재한다.
그녀에 대한 첫 기억은 심한기 선생님으로부터였다. 2005년이었던가... 첫 여행 이후로 내내 그리던 히말라야와 8년만의 재회를 준비하고 있을 무렵, 뜻하지 않은 금일봉에 감
너무 이쁜 후배들
격한 그의 모습이 기억난다. ‘미옥이 누나’가 돈을 보냈다고 했다. 성북동 달동네에서
아직 심한기 선생님이 도착을 안 하셨다. 오시기 전에 칭찬이나 실컷 듣자. 호호호..
20년 가까이 빈민운동을 하셨고, 현재는 도봉 여성의 집의 수장으로, 도봉지역단체 네
사실 유미옥 선생님의 과한 칭찬과 애정에 몸 둘 바를 모를 때가 많다. 치열하지 못한
트워크에서 만났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후배들을 보면 울화가 치민다는 선배의 말. 품의 친구들을 보면 ‘요즘도 저런 청년들이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그 때도 역시 그녀의 초대로 이
있구나’싶어서 위안이 된다고.. 이뻐죽겠다고 하신다. 시대가 변했다지만, 20년 선배의
루어진 점심식사 자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단아한 느낌. 여성스러움이 물씬 풍겨나는 옷
삶과 지금 나의 삶을 비할 데가 있겠는가. 화끈거리는 얼굴을 웃음으로 무마하며, 스스
매무새와 달리 그녀의 눈빛은 강하고 깊었다.
로의 치열함을 반문하기도 한다.
우리콩 순두부.
여성의 집 자립전략 그녀가 추천하는 음식점은 공통점이 있다.
품의 이사계획과 재정사정에 대해 물으신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성의 집 자립 전략!
한국적이고, 정갈한 음식, 동네서 한 목소리 할 것
여성의 집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여기 저기 빚도 참 많이 냈다고 하셨다. 임원들에게,
같은 아주머니들이 늘 많고,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
후원자들에게, 언론사 직원들에게, 심지어는 모금행사 차 건너간, 일본에서까지... ^^;;
가 없을 만큼 음식 맛은 보증수표. 인원수까지 진작
그 빚을 어떻게 갚았는고 하니... 그 비결은 다름 아닌 화장품! 회원여성들의 생계수입
에 파악한 수저와 물수건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이기도 한 이 상품은 재료의 가공부터, 제조, 포장까지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진다.
명숙샘과 기다리고 있는데, 유미옥 선생님이 먼저
“저희도 가서 알바 좀 하면 안될까요...? ^^;;”
도착하셨다.
“보통 노가다가 아니야”
"여기 콩비지 진짜 맛있어!"
어떻게 상환할까요? 심한기 선생님과의 인연
여성의 집을 준비하면서 진 빚을 어떻게 상환할까 고민하다, 투자자(?)들을 한 자리에
2001년 도봉 지역단체 모임에서 만나셨다고 한다. 사람에 지쳐있을 무렵, 조금은 냉하
모은 자리. “어떻게 상환할까요?”하하하. 한 사람씩 고액부터 할지, 소액부터 할지,
게 거리두기를 하고 있던 그녀에게 ‘누님, 누님’하면서 다가오는 그가 이상하게 친근
작은 금액씩 나누어 할지 의논한 결과...‘10만원씩’하기로 결정을 한다. 그녀의 당당
했다고 한다. 솔직하고 담백한 느낌이 좋았다고.
함과 그 당당함을 기꺼이 받아들인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상하게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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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요구하고, 미안해 말자. 인생구원의 기회를 주었으니, 고마워할 일 아닌가" 라는 그녀의 말. 비영리단체의 모금전략 강연이나 책자에서 익숙히 들었던 그 이야기가
만남 둘
새삼 가깝게 느껴지며, 유쾌해진다.
동환이 어머니
박.정.희.
조금만 기다려봐 품은 돈이 필요하지 않냐고, 돈으로 돕고 싶은 단체라고 하신다. 오랜 지하 생활을 걱정 하며, 이사할 만한 공간을 내가 좀 알아봐주면 안되겠냐고 하신다. 해드린 것도 없는 데.. 분에 넘치는 그녀의 애정이 한편 놀랍기도 하다.
동환이
받은 만큼 주는, 혹은 되받기를 기대하는 그런 관계가 있다. 정보의 공유든, 인간적 교
어려서부터 품 캠프를 섭렵하며 자라난 품동이 중 하나로, 현재 한신대 사회학과에 재학
류든.. 주는 동시에 기대하고, 의도적이진 않더라도 주려고 노력한다.
중이며,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에 참가하여 동네라는 팀의 청년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어쩌면 그녀의 애정은 주는 행위 그 자체에 의미를 둔 그녀만의 실천인지도 모르겠다.
동환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수수한 외모, 순수함, 은근한 고집과 진지함...
어쩌면 그녀가 바라는 보답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호의가 아니라 후배들의 삶인지도 모
순수∙진지∙청년이란 수식어가 딱 어울리는.. 요즘 보기 드문 캐릭터.
르겠다. 미안하기보다는 고맙고, 힘도 나지만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한다. 늘 핑계 많은 무심한 후배들에 대한 그녀의 애정에 감사하며....
동환이의 부모님은 품의 주주다. 내가 품에 있는 4년 동안 그의 부모님을 뵌 적은 없다.
조금만 기다려보라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 ^^
어떤 분이실까? 동환이를 보면서 가끔 그런 궁금증을 품곤 했다.
얼마 전, 참 맑은 물살캠프 공지가 나가고 나서, 동환이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동 환이, 지원이와 함께 참여하고 싶다고 하셨다. 주 대상인 초등학생 이외에 차량운행이나 식사준비를 도와줄 자원활동가나 보조교사로 활동할 청소년 참여, 어린 참가자의 부모님 동행만을 열어둔 상태여서 조금 당황했고, 쉽사리 답을 드리기가 어려웠다. 어려운 시간 을 내어 쉬러 오시는 것 일텐데..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 고민하다 ‘저희가 준비가 안 되어서 오신만큼 좋은 시간이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하고 정중한 사과를 전했으나...
안끼워줬잖아! 솔밭공원 앞에서 만난 동환이 어머니의 첫마디. 하하하.. 많이 서운하셨나보다. 사실 큰 용기가 아닌가. 훌쩍 커버린 아들과 낯선 사람들, ‘애들 노는데...’라며 뒤로 빼기 쉬 운 그런 자리에 함께 하겠다는 마음이. 나이 때문이 아니라고 설명을 드리느라 진땀을 뺀다. 서운함보다도, 젊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이 그리우셨던 모양이다. 나이 를 가늠하기 어려운 얼굴, 동글동글한 눈매, 생기 가득 찬 그녀의 눈빛에서 에너지가 느 껴진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 도봉여성의 집 유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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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환이 어때요?
"중학교 입학식 날, 처음 교복입은 모습이 애기 같더니만, 고등학교 입학하던 날은 그
솔밭 근처 보쌈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음식을 주문하고, 어떤 이야기로 말문을 열까
모습이 그렇게 의젓해 보일 수가 없더라고.. 이제 다컸구나 싶은게... 맘이 묘했어요..
고민하고 있는데 그녀가 먼저 입을 연다. “우리 동환이 어때요?”
그리고, 캠프 다녀왔을 때! 잘 놀고 오더라도 밖에 나가면 힘들잖아. ‘집이 최고
누구누구의 어머니로 보다 박.정.희란 사람 그대로를 만나고 싶었는데.. 역시 우리네 어
야!’,‘엄마밥이 최고야’하면서 안길 때는 가슴이 뭉클한게.. 하하하"
머니의 삶에서 어머니를 빼는 것은 어쩌면 억지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이야기를 하시는 어머니 얼굴로 중학생 동환이 어머니의 얼굴과 고등학생 동환이
"우리 동환이가 내성적이라서....
어머니의 얼굴이 스쳐간다. 흉내내기 어려운 깊은 미소. 긴 시간이 묻어나는... 묘한..
&%@%$**I%^&%T$^%#$%#^%&^*()*(&(*_O& ...
김치찌개 파티
............ 그래도 우리 동환이가 착해" 처음엔 걱정 같은데 끝까지 듣고 보면 칭찬이다. ^^;;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란 말을 의식
가족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남다르다. 무뚝뚝한 아버님은 제외하더라도, 두 아이와 함께
하신걸까.. 겸손하게 시작해서 꼭 한번은 마무리 확인을 하신다. 하하.
하고픈 그녀의 열망은 크다. 이 핑계 저 핑계로 가족의 경계를 술술 빠져나가는 나이. 다 큰 자녀들의 외도(?)에 마냥 서운해 하기보다, 가족문화가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
품과의 인연
야기하는 어머니. 가끔 좋은 일이 있으면, 그녀는 파티를 제안한다.
동환이가 중학교 2학년 때. 마을 부녀회 활동에서 만난 동사무소의 사회복지사가 품 캠
"얘들아~ 우리 파티하자." ... "무슨 파티?" ... "으응.. 김치찌개 파티!" ^^
프를 소개해주었다고 한다. “내성적인 동환이가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좋아하 더라구요.. 심한기 선생님도 재밌고.. 심한기 선생님 너무 좋잖아요~ 호호호”
책도둑과 밥도둑은 도둑도 아니다.
아이들이 캠프에 온다고 다 주주가 되는 것은 아니므로, 부모님 주주는 드물다. 왜 주주
동환이의 책사랑은 익히 알려져 있다. 진지한 얼굴로 책 읽는 모습은 동환이의 대명사.
가 되셨냐는 질문에 그녀는 불끈! 힘주어 대답한다. “젊은 사람들 열심히 사는게 좋아
대학진학을 위해 삼수를 하고 있던 어느 날. 학원 간다고 나간 동환이가 책 꾸러미를 잔
요. 그게 완성품이죠. 완성된 인생인 것 같아. 열심히 사는 모습 그대로..”
뜩 안고 되돌아 왔더란다. 누가 책을 버렸을까 안타까워하며, 땀을 뻘뻘 흘리며. "고서 수집하는 아저씨들 가져가게 그냥 두지 그랬니?"
대한민국 청소년복지, 문화 니가 책임져!
"엄마, 책도둑과 밥도둑은 도둑도 아니래요"
"요즘 애들 너무 불쌍하잖아... 놀 시간도 없고. 나는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산으로 들 로 나가 놀고 그래야지..."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게 밥 한 공기를 비워낸다.
친인척은 물론이고, 주위 친구들에게도 여러번 품을 소개했다고 한다. 애들 좀 품에 보
동환이 녀석, 누구를 닮았나 궁금했는데... 어머니를 닮았나보다.
내보라고, 가보면 좋을거라고.. 보이지 않게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셨던 모양이다.
돌아가는 길에 우리 어머니 생각이 난다.
그렇게 이야길 했는데 쉽지 않더라고.. 오히려 답답해하시는 어머니의 당찬 한마디. 동환 어머니! 내년에 히말라야 꼭 함께 가세요~
"김동환! 니가 대한민국 청소년 복지, 문화 책임져!"
행복한 순간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일까. 동환이 키우면서 제일 좋았던 순 간은 언제이신가요? 동환이 어머니께 묻는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 동환이 어머니,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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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 . . 품의 주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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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열정적인 스타일리스트. 현재 푸른시민연대에서 일하고 있다.
오랫동안 멈추었던 주주 이름 부르기를 다시 시작해본다. 이름 석자로 소개글 몇 자 써내려가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있구나.
이철훈
잊지 말고 내일은 전화한 통 넣어봐야겠다.
입서를 팩스로 보내셨다. 품 죽돌이 준규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를 아직 만나본 적은
말없이 기다려 준, 솔직하게 채근해 준 주주들에게 감사의 맘을 전하며..
없다.
정유섭 최두환
품 12기 실습생(2005년). 일명 십이지신(십이기 실습생 지들끼리 신났다의
준말)의 왕신이었던 그는 현재, 청주시청소년수련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때마다 안부
네팔 품에 파견되어 있는 이보라양의 아버지. 아무런 사전통보 없이 주주가
원명이란 법명을 가진 스님으로, 9차 복지순례 때 심한기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품의 식구가 되었다. ‘품 활동 중 참여하고 싶은 부분은?’이란 질문에 ‘청 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라고 적은 그가 내년 아카데미에는 꼭 함께 할 수 있기를. 사 회복지법인 정토만일회에서 일하고 계신다.
전화를 잊지 않는 세심한 그의 한마디 “품은 제 인생의 큰 행운입니다”
임선우
한유흔․한가흔 아홉 살, 여섯 살 자매. 둘의 이름으로 주주가 되었지만 실질적 후 품 자원봉사동아리 품동이 출신으로, 품 행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달려오던
원자는 그 부모인 한도희, 박경애 부부이다. 청소년위원회에서 지원한 ‘청소년문화
단골 자원활동가. 충청대학 일본어통역과에 재학 중이며, 현재 일본 유학중이다. 커
의집 교육지원사업’으로 한도희 선생님과 인연이 되었고, 그 인연이 온 가족을 품의
다란 키에 하얀 피부. 슈퍼모델 뺨치는 기럭지를 가진 그녀는 일본 유학 전, 당분간
식구로 만들었다. 2006-2007 참 맑은 물살 캠프에 박경애 선생님과 두 아이가 참여
후원이 어려울 것 같다며, 금일봉을 보내 품 식구들을 감동시켰다.
했으며, 유흔이는 엄마와 함께 2007 오~ 히말라야에도 함께 했다. 아직도 소녀 같은 감수성을 지닌 두 아이의 엄마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주부활동가이시기도 하다.
나정만 2004년 품 인턴으로 활동한 이정주의 대학선배로, 세계일류여행사에서 근무 할 당시, 품의 주주가 되었다. 여행과 술을 좋아하며, 넉살 하나는 둘째가라면 서러
전현경 아름다운재단 배분사업팀. 심한기 선생님이 아름다운재단 배분 심사위원으로
운 그는 현재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호주 유학을 준비 중이다.
참여하면서 인연이 되었다. 커다란 키에 보이쉬한 매력을 가진 사람으로 여유로워보 이는 느낌과 달리 격동적인(?) 변화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다양한 삶의 이력을 가
양종남
경기문화재단 교육기획팀. 경기문화재단과 함께 한 ‘경기도 동아리지원사
지고 있으며, 조직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발전적 변화를 꿈꾸고 있다.
업’으로 품과 인연이 되었다. 네이트온에서 주로 만나는 메신져 친구. ^^ 서글서글 한 얼굴과 사교적인 성품을 기억한다. ‘진심은 사람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의
정연주
원천인 듯 합니다. 그 힘을 가진 품이 지금처럼 늘 그 자리에 머물렀으면 해요’라는
는 팀의 팀장으로 아카데미에 참가하면서 품과 인연이 되었다. 2007년 4월 봄내음
그의 말. 지하는 좀... 벗어났으면 한다. ^^;;
물씬 나는 편지 한 통과 함께 주주가입서를 보내왔다. 학교를 졸업하고 대전 농협중
4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출신. 공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T.P maker라
앙회 충남지역본부 여성복지팀에서 일하고 있다고. 품을 대리 만족하는 그녀의 삶을
강명희
품 활동가 강명숙의 동생으로, 언니 덕분에 함께 한 2006 오~ 히말라야로
품이 대리만족하게 되길.
품과 인연이 되었다. 하얀 피부와 늘씬한 몸매의 소유자로 처음 본 사람이면 누구나 둘의 혈연관계를 의심하지만, 분명 친 자매.대학을 졸업하고, 현재는 서울대학병원
최희훈 중학교 때 풍물을 하다가 품과 인연이 되었다.
조교로 근무하고 있음.
풍물과 사람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천지음’이란 연합풍물패를 조직하여 활동했
쇠를 칠 때 가장 멋있는 그는
으며, 걸출한 멤버들로 구성되었던 천지음은 전통예술한마당, 추락, 연극축제 등 품
고미경
기관방문을 계기로 품과 인연이 된 그녀는 기관방문 시 매운 오뎅을 국물과
함께 사들고 온 유일한 사람이다. 개성 넘치는 외모와 독특한 패션감각을 자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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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단골팀으로 맹활약하였다. 현재는 풍물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동네 풍물동 아리의 부활을 꿈꾸며, 후배들을 키우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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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문화예술교육단체 인투뮤지엄의 활동가로 2007 오~ 히말라야로 품과 인연
권순임 2002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대학생과정 1기 출신으로, 같은 해 여름 품에
이 되었다. 여성스럽고 어여쁜 그녀는 간혹 사람을 놀래키는 재주가 있는데, 주로 취
서 실습을 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큰 눈이 매력적인 뚝심있는 그녀. 늘 열심히 뛰
중에 그렇다. 자꾸 술 마시고 싶어지는 사람.
어다니는 열정적인 그녀가 현재 정착한 곳은 청소년과 놀이문화연구소. 멀리 남양주 에서 후배를 데리고 방문해 품의 주주가 되었다.
김지나
공공문화개발센터 유알아트 사무국장. 유알아트의 대표인 김영현 선생님과
심한기 선생님이 형제로 오인받으며 붙어다니던 때, 김지나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전봉재
단단함과 넉넉함을 동시에 가진 사람. 내 나이 저맘때 쯤 저런 모습일 수 있다면...
의 나이는 스물여섯살. 남다른 고민과 괴짜스러움이 돋보이는 그는 기관방문을 통해
하는 생각이 드는 여성후배들의 이상형.
인연이 되었다. 홈페이지에 장문의 후기를 남겨주는 센~스. 아무래도 그는 품에 반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부 3학년. 언뜻 보기에도 꽤 들어보여 조심스럽던 그
한 듯 하여,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
유미옥
이번 호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주인공. 지역에서 20년 넘게 빈민운동을 해
온 전천후 운동가이며, 현재는 도봉여성의집의 대표로 계시다. 품의 후배들에 대한
송혜민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대학생과정 2기 출신. 멀리 부산의 강서구종합사회
넘치는 애정으로 늘 감사와 반성을 안겨주는 그녀. 심한기 대표님과 친구 같은 동지
복지관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2007년 8월 품의 주주가 되었다. 나는 아카데미를 기
이며, 활동가들에게는 존경하는 선배. 다음번에는 먼저 만나러 가야겠다.
억하는데, 아카데미는 왜 선배들을 기억하지 않느냐는 그녀의 말. 아카데미의 선배 로, 여직 청년으로 그녀는 뜨겁다.
이보라
네팔에서 두레품을 받고 있는 유일한 사람. ^^ 네팔 품에 파견되어 있으며,
두레품을 읽다 '내가 주주가 아니네' 하여 가입서를 보내왔다. 2005년 자원활동가 모
이은선
집 광고를 보고 처음 품에 왔으며, 청소년연극축제 STAFF로 활동했다. 쉽지 않은 타
학교 사회사업학과 교수인 임현승 선생님의 소개로 품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복지순
국생활에서 놀라운 언어습득능력과 적응력을 보여주며, 그녀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례팀의 기관방문을 계기로 품의 주주가 되었으며, 머지않아 남자친구를 대동하고 품
중. 그녀의 아버지는 주주이며, 그녀의 남동생은 품에서 영상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을 다시 찾았다. ‘품의 자유로움.. 본질을 찾아가는 모습을 계속 지켜볼 수 있었으
강남대학교 사회사업학과 4학년. 심한기 선생님의 대학동기이자, 현 강남대
면 좋겠다’는 그녀의 말. 그녀 또한 자유롭게, 본질을 찾아가는데 품이 좋은 동지가
김연아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부(야) 재학 중. 9차 복지순례 때, 심한기 선생님의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07년 9월 1일 현재.. 품의 마지막 주주. ^^
강의에 감명 받아, 복지순례단을 조직하여 품에 방문했고, 바로 주주가 됐다. 조용한 듯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그녀의 실천력은 놀라운 수준. 그 덕분에 몇몇 동기와 후배들도 품과 인연이 되어, 그 먼 용인에서 수유리까지 자원활동을 올 참이다.
오종환
품 올드멤버. 2000년부터 2001년까지 품에서 활동했으며, 청소년전통예술
한마당을 담당했었다. 술에 취하면 밤늦게 품에 전화하는 몇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그의 ‘술한잔..’을 번번이 퇴짜 놔 미안하다. 변치 않는 로맨티스트. 현재는 금호 생명의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다.
최영민
오종환 선생님이 덤으로 넘겨준 부인의 주주가입서. 신랑을 통해서 품과 인
연이 되었고, ‘우리물류’라는 회사에서 일하고 계시다. 몇 번 보지는 못했지만, 편 안함과 털털함이 기억에 남는 그녀. 다음에 종환샘과 함께 술 한잔 합시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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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원 현황 1월_
2007년 1⦁2월 2월_
총 2,675,000원
총 2,616,000원
• 자동이체 : 55,000원
• 자동이체 : 45,000원
김정현 10,000 이유신 10,000 김미정 10,000 김용성 5,000 방명진 10,000 한 진 10,000
김정현 10,000 김명희 5,000 김민정 10,000 방명진 10,000 한 진 10,000
• CMS 자동이체 : 2,620,000원
• CMS 자동이체 :2,570,000원
강경미 5,000 고성애 20,000 곽혜림 10,000 김남정 10,000 김미순 10,000 김선희 10,000 김영구 10,000 김정대 10,000 김지원 10,000 김효정 20,000 목윤지영 20,000 박판기 20,000 배경옥 20,000 손의숙 30,000 신미경 10,000 양승부 5,000 온혜림 10,000 유영은 10,000 윤은주 10,000 이벽주 10,000 이연수 20,000 이은정 10,000 이정호 10,000 이혜진 30,000 장성문 20,000 정민기 10,000 조남억 10,000 조현희 20,000 최두환 10,000 최해경 20,000 허윤성 10,000
강명숙 10,000 고영한 20,000 권도라 10,000 김남희 10,000 김미정 10,000 김성욱 20,000 김영미 10,000 김정진 10,000 김창영 10,000 김희성 20,000 문재형 10,000 박현기 20,000 배선미 10,000 송성숙 10,000 신미연 10,000 양종남 10,000 우상미 10,000 유정연 10,000 윤진영 20,000 이 설 5,000 이연종 10,000 이은주 10,000 이진주 10,000 이화선 10,000 장성희 10,000 정수현 20,000 조성주 20,000 조혜영 10,000 최명옥 60,000 표경흠 10,000 허중혁 10,000
강지영 10,000 고인석 10,000 권오현 10,000 김대심 20,000 김미정 15,000 김세진 10,000 김영삼 10,000 김정화 10,000 김태영 5,000 나정만 10,000 박기범 40,000 박혜경 10,000 백진아 10,000 송주아 10,000 신순갑 20,000 양지수 10,000 우수명 50,000 유제흥 10,000 윤진호 30,000 이성종 10,000 이영애 10,000 이장형 10,000 이창신 10,000 임유정 10,000 장은석 5,000 정안철 10,000 조영미 5,000 채성용 10,000 최선경 20,000 하여주 10,000 홍미용 10,000
강하자 10,000 고춘식 20,000 권혁철 20,000 김동찬 10,000 김미현 10,000 김수근 20,000 김영습 10,000 김종윤 40,000 김한섭 20,000 노서영 10,000 박성희 10,000 박혜정 10,000 변효정 10,000 송향숙 40,000 신익현 20,000 양지희 20,000 유경희 20,000 유현희 10,000 윤회영 20,000 이성태 50,000 이원경 5,000 이정미 30,000 이철훈 10,000 임은옥 10,000 장효진 20,000 정영수 20,000 조원석 10,000 천병원 10,000 최윤성 10,000 한석구 20,000 홍해린 10,000
강현옥 20,000 고현주 20,000 권희정 10,000 김동혁 5,000 김 민 10,000 김수현 10,000 김유정 10,000 김종주 30,000 김현희 20,000 두영미 10,000 박인규 20,000 반병두 50,000 부은희 20,000 송혜진 10,000 안상희 10,000 오명진 10,000 유병서 20,000 유희경 10,000 이교헌 10,000 이수나 20,000 이유신 10,000 이정연 10,000 이치형 10,000 임재춘 10,000 전옥희 10,000 정지원 10,000 조재경 20,000 천수경 10,000 최정훈 5,000 한철희 20,000 황선미 20,000
강혜진 10,000 고희종 10,000 김귀련 10,000 김미경 10,000 김민경 10,000 김양희 20,000 김은애 10,000 김지연 20,000 김혜진 10,000 라영준 10,000 박종우 10,000 방형심 20,000 서정애 5,000 신경애 10,000 안준원 10,000 오승은 15,000 유병훈 10,000 윤성엽 10,000 이기남 10,000 이시나 20,000 이은경 10,000 이정주 10,000 이현제 10,000 임진원 10,000 전혁희 10,000 조기찬 10,000 조정은 20,000 최경화 10,000 최진희 10,000 허상문 10,000 황지희 10,000
112
강경미 강혜진 고희종 김기봉 김미경 김성욱 김영미 김정화 김현민 라영준 박종우 배선미 송성숙 신미연 양승부 우상미 유현희 이교헌 이성종 이영애 이정미 이치형 임진원 전옥희 정지원 조원석 채성용 최보경 표경흠 허중혁 황지희
5,000 10,000 10,000 20,000 10,000 2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5,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3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강동호 10,000 고성애 10,000 곽혜림 10,000 김남정 10,000 김미정 15,000 김세진 10,000 김영삼 10,000 김종윤 20,000 김현희 20,000 목윤지영 20,000 박판기 20,000 백진아 10,000 송종열 20,000 신순갑 20,000 양종남 10,000 우수명 50,000 윤성엽 10,000 이기남 10,000 이성태 50,000 이원경 5,000 이정주 10,000 이현제 10,000 장성문 20,000 전혁희 10,000 조기찬 10,000 조재경 10,000 천병원 10,000 최선경 20,000 하여주 10,000 홍경숙 20,000
강명숙 10,000 고영한 20,000 권도라 10,000 김남희 10,000 김미정 20,000 김수근 20,000 김영습 10,000 김종주 30,000 김효정 20,000 문재형 10,000 박현기 20,000 변효정 10,000 송향숙 20,000 신익현 20,000 오명진 10,000 유경희 20,000 윤은주 10,000 이벽주 10,000 이수나 20,000 이은경 10,000 이정호 10,000 이혜진 30,000 장성희 10,000 정민기 10,000 조남억 10,000 조정은 20,000 천수경 10,000 최윤성 10,000 한석구 20,000 홍미용 10,000
강지영 10,000 고인석 10,000 권오현 10,000 김대심 40,000 김미현 10,000 김승희 10,000 김유정 10,000 김지원 10,000 김희정 10,000 박성희 10,000 박혜경 10,000 부은희 20,000 송혜진 10,000 신재성 20,000 오승은 15,000 유병서 20,000 윤진영 20,000 이병희 20,000 이시나 20,000 이은정 10,000 이진주 10,000 이화선 10,000 장성희 10,000 정안철 10,000 조성주 20,000 조현희 20,000 최경화 10,000 최정훈 5,000 한철희 20,000 홍상미 20,000
강하자 10,000 고춘식 20,000 권희정 10,000 김동찬 10,000 김 민 10,000 김양희 20,000 김은애 10,000 김창영 10,000 나정만 20,000 박인규 20,000 반병두 50,000 서정애 5,000 신경애 10,000 안상희 10,000 오지선 20,000 유병훈 10,000 윤진호 30,000 이석원 20,000 이연수 20,000 이은주 10,000 이창신 10,000 임은옥 10,000 장은석 5,000 정영수 20,000 조영미 5,000 조혜영 10,000 최두환 10,000 최진희 10,000 허상문 10,000 홍해린 10,000
강현옥 20,000 고현주 20,000 김귀련 10,000 김동혁 5,000 김선희 10,000 김영구 10,000 김정대 10,000 김태영 5,000 두영미 10,000 박정화 10,000 방형심 20,000 손의숙 30,000 신미경 10,000 안준원 10,000 온혜림 10,000 유제흥 10,000 윤회영 10,000 이 설 5,000 이연종 10,000 이장형 10,000 이철훈 10,000 임재춘 10,000 장효진 20,000 정유섭 10,000 조용균 20,000 지현영 20,000 최명옥 60,000 최해경 20,000 허윤성 10,000 황선미 20,000
113
후 원 현황 3월_
2007년 3⦁4월 4월_
총 2,600,000원
총 2,775,000원
• 자동이체 : 50,000원
• 자동이체 : 30,000원
김정현 10,000 김미정 10,000 김용성 5,000 김명희 5,000 방명진 10,000 한 진 10,000
김용성 5,000 방명진 10,000 한 진 10,000 김영호 5,000
• CMS 자동이체 : 2,550,000원
• CMS 자동이체 : 2,745,000원
강경미 강혜진 고희종 김귀련 김미순 김선희 김영미 김정진 김창영 김희정 박인규 반병두 서정애 신경애 양승부 오지선 유병서 윤은주 이벽주 이연수 이은주 이철훈 임은옥 장은석 정안철 조성주 조현희 최경화 최해경 허윤성 황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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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호 10,000 고성애 10,000 곽혜림 10,000 김남정 10,000 김미정 10,000 김성욱 10,000 김영삼 10,000 김정화 10,000 김태영 5,000 나정만 10,000 박종우 10,000 방형심 20,000 손의숙 30,000 신미경 10,000 양종남 10,000 온혜림 10,000 유병훈 10,000 윤진영 20,000 이병희 10,000 이연종 10,000 이장형 10,000 이치형 10,000 임재춘 10,000 장효진 20,000 정영수 20,000 조영미 5,000 조혜영 10,000 최두환 10,000 표경흠 10,000 허중혁 10,000 황지희 10,000
강명숙 고영한 권도라 김남희 김미정 김세진 김영습 김종윤 김현민 두영미 박판기 배선미 송성숙 신미연 양종수 우상미 유제흥 윤진호 이성종 이영애 이정미 이현제 임진원 전옥희 정유섭 조용균 지현영 최보경 하여주 홍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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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 10,000 고인석 10,000 권오현 10,000 김동찬 10,000 김미현 10,000 김수근 20,000 김유정 10,000 김종주 30,000 김현희 20,000 목윤지영 20,000 박현기 20,000 백진아 10,000 송종열 10,000 신익현 20,000 양지희 20,000 우수명 50,000 유현희 10,000 윤회영 10,000 이성태 50,000 이원경 5,000 이정주 10,000 이혜진 30,000 장성문 20,000 전혁희 10,000 정지원 10,000 조원석 10,000 채성용 10,000 최선경 20,000 한석구 20,000 홍미용 10,000
강하자 10,000 고춘식 20,000 권혁철 10,000 김동혁 5,000 김 민 10,000 김승희 10,000 김은애 10,000 김지영 20,000 김효정 20,000 문재형 10,000 박혜경 10,000 변효정 10,000 송향숙 40,000 신재성 10,000 오명진 10,000 원정분 20.000 유희경 10,000 이교헌 10,000 이수나 20,000 이은경 10,000 이정호 10,000 이화선 20,000 장성희 10,000 정민기 10,000 조기찬 10,000 조재경 20,000 천병원 10,000 최윤성 10,000 한철희 20,000 홍상미 20,000
강현옥 20,000 고현주 20,000 권희정 10,000 김미경 10,000 김민경 10,000 김영구 10,000 김정대 10,000 김지원 10,000 김희성 40,000 박성희 10,000 박혜정 10,000 부은희 20,000 송혜진 10,000 안상희 10,000 오승은 15,000 유경희 20,000 윤성엽 10,000 이기남 10,000 이시나 20,000 이은정 10,000 이진주 10,000 임유정 20,000 장성희 10,000 정수현 40,000 조남억 10,000 조정은 20,000 천수경 10,000 최정훈 5,000 허상문 10,000 홍해린 10,000
114
강경미 5,000 강현옥 20,000 고춘식 20,000 권혁철 20,000 김동찬 10,000 김미현 10,000 김수근 20,000 김영습 10,000 김종주 30,000 김혜진 20,000 목윤지영 20,000 박판기 20,000 백진아 10,000 송종열 10,000 신순갑 40,000 양종남 10,000 우상미 10,000 유제흥 10,000 윤진호 30,000 이석원 20,000 이영애 10,000 이장형 10,000 이철훈 10,000 임은옥 10,000 장효진 20,000 정안철 10,000 조영미 5,000 지현영 20,000 최명옥 30,000 최해경 20,000 한철희 20,000 홍상미 10,000
강동호 20,000 강혜진 10,000 고현주 20,000 권희정 10,000 김동혁 5,000 김 민 10,000 김승희 10,000 김은애 10,000 김지영 10,000 김효정 20,000 문재형 10,000 박현기 20,000 변효정 10,000 송향숙 20,000 신익현 20,000 양종수 50,000 우수명 50,000 유현희 10,000 윤회영 10,000 이성태 50,000 이원경 5,000 이정미 30,000 이치형 10,000 임재춘 10,000 전옥희 10,000 정영수 20,000 조용균 10,000 채성용 10,000 최선경 20,000 표경흠 10,000 허상문 10,000 홍정모 20,000
강명숙 10,000 고미경 10,000 고희종 10,000 김귀련 10,000 김미경 10,000 김민경 20,000 김양희 20,000 김정대 10,000 김지원 10,000 김희정 10,000 박성희 10,000 박혜경 20,000 부은희 20,000 송혜진 10,000 신재성 10,000 오명진 10,000 원정분 20,000 유희경 10,000 이교헌 10,000 이수나 10,000 이유신 10,000 이정주 10,000 이현제 10,000 임진원 10,000 전혁희 10,000 정유섭 10,000 조원석 10,000 천병원 10,000 최윤성 10,000 하여주 10,000 허윤성 10,000 홍해린 10,000
강명희 15,000 고성애 10,000 곽혜림 10,000 김남정 10,000 김미순 20,000 김선희 10,000 김영구 10,000 김정진 20,000 김태영 5,000 나정만 10,000 박양미 10,000 박혜정 10,000 서정애 5,000 신경애 10,000 안상희 10,000 오승은 15,000 유경희 20,000 윤성엽 10,000 이기남 10,000 이시나 20,000 이은경 10,000 이정호 10,000 이혜진 30,000 장성문 20,000 전현경 10,000 정지원 10,000 조재경 10,000 천수경 10,000 최정훈 5,000 한가흔 10,000 허중혁 10,000 황선미 20,000
강지영 10,000 고영한 20,000 권도라 10,000 김남희 10,000 김미정 15,000 김성욱 20,000 김영미 10,000 김정화 10,000 김현민 40,000 두영미 10,000 박정화 10,000 반병두 50,000 손의숙 30,000 신미경 10,000 안준원 20,000 오지선 10,000 유병서 20,000 윤은주 10,000 이벽주 10,000 이연수 20,000 이은정 10,000 이진주 10,000 이화선 10,000 장성희 10,000 정민기 10,000 조기찬 10,000 조정은 20,000 최경화 10,000 최진희 10,000 한석구 20,000 홍경숙 10,000 황지희 10,000
강하자 10,000 고인석 10,000 권오현 10,000 김대심 40,000 김미정 20,000 김세진 10,000 김영삼 10,000 김종윤 20,000 김현희 20,000 라영준 20,000 박종우 10,000 방형심 10,000 송성숙 10,000 신미연 10,000 양은일 10,000 온혜림 10,000 유병훈 10,000 윤진영 20,000 이병희 10,000 이연종 10,000 이은주 10,000 이창신 20,000 임유정 10,000 장은석 5,000 정수현 20,000 조남억 10,000 조혜영 10,000 최두환 10,000 최찬욱 40,000 한유흔 10,000 홍미용 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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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원 현황 5월_
2007년 5⦁6월 6월_
총 2,715,000원
총 2,460,000원
• 자동이체 : 180,000원
• 자동이체 : 80,000원
김정현 10,000 김용성 5,000 임선우 100,000 이교영 40,000 방명진 10,000 한 진 10,000 김영호 5,000
김정현 10,000 김용성 5,000 이교영 40,000 방명진 10,000 한 진 10,000 김영호 5,000 • CMS 자동이체 : 2,380,000원
• CMS 자동이체 : 2,535,000원 강동호 강현옥 고춘식 권혁철 김동찬 김미현 김영구 김정대 김창영 김희정 문재형 박현기 변효정 송향숙 신재성 양종수 우수명 유희경 이교헌 이성태 이원경 이정주 이혜진 장성문 전현경 정유섭 조원석 천병원 최정훈 한가흔 홍경숙
20,000 20,000 2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20,000 10,000 20,000 10,000 50,000 50,000 10,000 10,000 50,000 5,000 10,000 3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5,000 10,000 10,000
강명숙 10,000 강혜진 10,000 고현주 20,000 권희정 10,000 김동혁 5,000 김 민 10,000 김영미 10,000 김정진 20,000 김태영 5,000 나정만 10,000 박성희 10,000 박혜경 10,000 부은희 20,000 송혜진 10,000 안상희 10,000 양지희 40,000 유경희 20,000 윤성엽 10,000 이기남 10,000 이수나 10,000 이유신 20,000 이진주 10,000 이화선 20,000 장성희 10,000 정민기 10,000 정지원 10,000 조재경 10,000 천수경 10,000 최진희 10,000 한유흔 10,000 홍미용 10,000
강명희 고미경 고희종 김귀련 김미경 김민경 김영삼 김정화 김현민 노서영 박양미 박혜정 서정애 신경애 안준원 오명진 유병서 윤은주 이벽주 이시나 이은경 이창신 임유정 장은석 정수현 조기찬 조정은 최두환 최찬욱 한철희 홍해린
15,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5,000 10,000 10,000 5,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5,000 20,000 10,000 20,000 10,000 40,000 20,000 10,000
강성철 고성애 곽혜림 김남정 김미순 김선희 김영습 김종윤 김현희 두영미 박인규 반병두 손의숙 신미연 양승부 오승은 유병훈 윤진영 이병희 이연수 이은정 이철훈 임은옥 장효진 정안철 조남억 조혜영 최보경 최해경 허상문 황선미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20,000 10,000 20,000 50,000 30,000 10,000 10,000 15,000 10,000 2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10,000 10,000 10,000 20,000 10,000 20,000
강지영 10,000 고영한 20,000 권도라 10,000 김남희 10,000 김미정 10,000 김성욱 10,000 김유정 20,000 김종주 30,000 김혜진 20,000 라영준 10,000 박종우 10,000 방형심 10,000 송성숙 10,000 신순갑 20,000 양은일 10,000 온혜림 10,000 유제흥 10,000 윤진호 30,000 이석원 10,000 이연종 10,000 이은주 10,000 이치형 10,000 임재춘 10,000 전옥희 10,000 정연주 10,000 조영미 5,000 지현영 20,000 최선경 20,000 표경흠 10,000 허윤성 10,000 황지희 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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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미 강현옥 고춘식 권희정 김미순 김선희 김영삼 김종윤 김혜진 라영준 박정화 방형심 손의숙 신미연 양은일 온혜림 유영은 윤진호 이성태 이원경 이정미 이치형 임재춘 전혁희 정유섭 조원석 천수경 최진희 한석구 홍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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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희 15,000 고성애 10,000 권도라 10,000 김남희 10,000 김 민 10,000 김수근 40,000 김정대 10,000 김창영 10,000 나정만 10,000 박성희 10,000 박현기 20,000 변효정 10,000 송혜진 10,000 신재성 10,000 오명진 10,000 유경희 20,000 윤성엽 10,000 이기남 10,000 이연수 20,000 이은정 10,000 이진주 10,000 이화선 10,000 장은석 5,000 정안철 10,000 조남억 10,000 지현영 20,000 최선경 20,000 표경흠 10,000 허상문 10,000 황선미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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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원 현황 7월_
2007년 7⦁8월 8월_
총 3,000,000원
총 2,6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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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10,000 김용성 5,000 권혁기 10,000 방명진 10,000 한 진 10,000 김영호 5,000 유미옥 300,000
김정현 10,000 권혁기 10,000 방명진 10,000 한 진 10,000 김영호 5,000 권순임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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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숙 고미경 고현주 김귀련 김미경 김선희 김영미 김정진 김태영 노서영 박성희 박혜경 부은희 송향숙 신익현 양종수 우상미 유제흥 윤진호 이성종 이영애 이정미 이치형 임재춘 전옥희 정유섭 조원석 최두환 최해경 한유흔 홍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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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희 고성애 고희종 김남정 김미순 김성욱 김영삼 김정화 김현희 두영미 박양미 반병두 서정애 송혜진 신재성 양지희 우수명 유현희 윤회영 이성태 이원경 이정주 이현제 임진원 전혁희 정지원 조정은 최보경 최희훈 한철희 홍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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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미 강현옥 고인석 권오현 김대심 김미정 김세진 김유정 김종주 김효정 박기범 박판기 부은희 송향숙 안상희 양지희 우수명 유희경 이기남 이수나 이은정 이창신 임유정 장은석 정안철 조남억 채성용 최윤성 표경흠 허윤성 황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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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희 15,000 고성애 10,000 고희종 10,000 김귀련 10,000 김미경 10,000 김민경 10,000 김영미 10,000 김정진 10,000 김태영 5,000 두영미 10,000 박인규 20,000 방형심 10,000 송성숙 10,000 신미경 10,000 양은일 10,000 오지선 10,000 유병서 20,000 윤진호 30,000 이 설 5,000 이영애 10,000 이정주 10,000 이현제 10,000 임진원 10,000 전혁희 10,000 정유섭 10,000 조원석 10,000 최두환 10,000 최찬욱 20,000 한석구 40,000 홍미용 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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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자 10,000 고윤희 20,000 권도라 10,000 김남희 10,000 김미정 10,000 김성욱 20,000 김영습 10,000 김종윤 20,000 김혜진 10,000 문재형 10,000 박종우 10,000 변효정 10,000 송주아 10,000 신익현 20,000 양종수 50,000 우상미 10,000 유제흥 10,000 이교헌 10,000 이성태 50,000 이은경 10,000 이진주 10,000 이화선 10,000 장성희 10,000 정수현 40,000 조기찬 10,000 조혜영 10,000 최선경 20,000 최희훈 10,000 허상문 10,000 홍해린 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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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의 주주가 되세요! 청소년활동 현장의 변방에서 중심으로의 비전을 꿈꾸고 있습니다. 기능적, 보호주의적 관점에서의 확대 또는 대안으로 다양한 청소년들이 문화를 통해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 고, 스스로의 발전역량을 개발하고, 주체적인 사회변화의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실 천적 네트워크를 확대하며, 한 집단의 성장을 목표로 함이 아닌 청소년문화 활동의 다양 성과 변화를 전이시킬 수 있는 청소년문화운동의 필요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이 땅의 청소년과 함께 우리사회의 새로운 공동체적 삶을 만들어가기 위한 청소년문화운동을 실 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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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 방법 홈페이지에서 주주가입신청서를 다운로드 하신 뒤, 꼼꼼히 기입하시고 팩스로 보내주세요. 날인이 꼭 필요합니다. 주주로 가입함과 동시에 지정하신 계좌에서 후원금이 인출되며, 청소년은 오천원부터, 성인은 만원부터입니다. 비정기 후원을 원하실 경우, 후원계좌는 아래와 같습니다. 하나은행 l 392-810014-45805 l 예금주 :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작은 정성이라도 정기적인 투자가 품에 더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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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품 2007년 여름⦁통권 61호 2006년 7・8월 ∙ 통권 59호
2006년 11월 25일 .발행일 심한기 .발행인 유현희, 강명숙 .편집인 나하나 .표지디자인 한울타리 .제 작 서울시 도봉구 쌍문1동 495-77 송곡빌라 지층 .주 소 02-999-9887 .전 화 02-999-0860 .전 송 www.pumdongi.net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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