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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_품2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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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길을 가며 삶을 꿈꾼다


품 20년. ‘문’을 열고 ‘길을’ 가며 ‘삶’ 꾼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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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30일 심한기 박찬국, 이창신 송상민 모두가 날밤까며 강명숙 한울타리

펴낸 곳 주소 전화 팩스 홈페이지

품청소년문화공동체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 30-25 3층 (02) 999-9887 (02) 999-0860 www.pumdogni.net


유창식 엉아는, 거의 40년이 넘게 마음 가는대로 그림을 그리고, 여행을 떠나고, 사람을 만나고, 야학에 봉사를 하고, 아이들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덕담을 하며 사신다. 품의 거의 모든 역사를 함께 하며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 계신다. 창식 엉아가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은 경사날에 그림 한 장씩은 선물 받았을 것이다. 창식 엉아는 늘 붓을 지니고 다니시며 맘이 가는 사람에게 그림을 선물하시지만 전시회를 한번 하자고 조르는 후배들에게는 ‘이놈아.. 때가 아니다!’라고 말하신다. 거만한 예술가가 아닌 살아있는 그림쟁이로 불려지길 원하신다. 품 20년 씨줄 날줄이 엮어진 삶을 그려 주셨다. 이 그림 한장에... 유창식 엉아가 가슴으로 살아온 삶의 흔적들이 묻어 있는 것 같다. 참 감사한 일이다. 참 감사한 일이다.


새로운 20년 앞에 서라 하네 - 품 20년을 맞으면서

고춘식

참으로 이상하지, 그 까닭 난 모른다오 여유 있는 그대들의 웃음소리 들을 때면 오히려 내 마음 아리고 가슴 울컥 했었네 꺾지 못할 뜻이 있고, 식지 않는 피가 있어 새로이 문을 열고 새롭게 길을 가며 새로운 삶을 꿈꿨네, ‘처음’하나 만들고자 경계(境界) 단절(斷絶) 부수려는 스무 해 아니었나 오류(誤謬) 차이(差異) 허물려는 칠천 나날 아니었나 뜨거운 그대들의 춤, 생명들의 노래여 낮은 언어 낯선 눈빛, 때로는 날선 몸짓 날마다 낯선 물음, 답 모르는 첫 고민들 젊음의 언어로 쓰니 새 역사가 되었네 가르치지 않으면서 큰 물음 캐어내고 큰 물음 깨워내어 큰 배움 키워냈지 중병(重病) 든 이 세상 살리는 큰 가르침 되리라


축하의 시

람 바부 수베디

품은 우리의 두근거리는 마음; 이것이 살면 생명도 산다 품은 편안한 맛; 이 얼마나 새로운 맛인지 품은 우리의 좋은 길; 언제가 되던 이 좋은 길을 잊지 않길 네가 품 나도 품; 우리 모두 품 안에 가득 있네 마음의 평화에 춤추는 숲 속의 새들 자연의 정원에서 즐거워하는 요정들 그토록 눈에 보이는 것만을 잡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지쳐간다 뜨거워진 모래 위에는 모래만 익어갈 뿐 20년이 된 품; 한창 좋을 때 얼마나 좋을 때인가 잘 어울리는 옷을 입은; 한국의 새 청년 매력이 넘치는 그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까 깊은 평화인 품; 품과 함께 하자


‘문’을

열며...

20년의 문을 열려 하니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문’이란 것이 처음 열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한번 열리기 시작하면 쌓인 먼지도 새로운 바람도 편안하게 들락거릴 수 있다. 모든 문들은 닫아야 할 이유와 열어야 할 이유가 있고, 들어가야 할 이유와 나와야 할 이유가 있다. 세상에 서 가장 무겁고 어두운 문은 늘 닫혀 있는 문이며, 쉽게 들어가고 나올 수 없는 문일 것이다. 생각을 막고, 행동을 막고, 소통을 막고, 새로움을 막고, 변화를 막기 위한 문이 아니라 이 모 든 것들이 나름의 의지와 이유를 가지며 자유롭게 들락거릴 수 있는 문이라야 아름답다. 품 20년의 문을 연다. 담고 있었던 것들을 풀어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담지 못했던 것들을 받아내고 다시 찾아야 할 것들을 위해 품 20년의 문을 열어보려는 것이다. 전효관 선생께서 ‘20년을 이렇게 준비하는데 30년 기념은 도대체 어떻게 할 꺼냐?’고 하셨 단다. 다소 호들갑스럽게 보이고, 다소 요란해보일 수 있는 품 20년의 문 열기는 늘 열려있 는 문을 위한 ‘SIGNAL’이다. 몇 주째 지금 품에 남아 있는 식구들의 밤 작업이 멈추지 않고 있다. 20년의 기억과 희망을 담아내는 일은 그리 녹록치 않다. 행사나 사업을 위한 준비였다면 슬펐을 것이다. 하지만 지 난 시간을 통해서 현재를 읽어내고, 다시 바라보는 현재를 통해서 또 다른 내일을 희망할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시간인가? ‘품20年史’에는 60명이 넘는 사람들의 글이 담겨져 있다. 대규모의 집필진이다. 하지만 ‘기 억과 희망’을 위한 의미 있는 정리가 될 수 있도록 꽤 많은 애를 썼다. 책의 시작은... 품의 스승인 고춘식, 유창식, 박찬국 그리고 네팔에 계시는 람바부 수베디 선생님의 그림과 시(詩)로 문을 열었다.


제1막에는... 품의 스승이며 선배이며 동지인 14인이 전하는 글을 담았다. 품20년 동안 두드려왔던 ‘문‘들을 7개의 영역으로 나누었고 각 분야에서 만만치 않은 내공 을 가지고 있는 12인의 귀한 글을 담았다. 그리고 20년 전 품을 함께 만들었던 이준호와 양 금석의 글을 담았다. 제2막에서는... 현재 품에서 살고 있는 식구들이 치열하게 정리해 본 품20년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품20년의 축하와 희망들이 가능할 수 있는가? 를 판단해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단락이다. 품20년의 종합정리는 심한기가 했고 ‘강명숙, 유현희, 이상섭, 이지성, 정이가령’이 품의 과거 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단서들을 정리했다. 제3막에서는... 오랫동안 품과 깊숙한 관계를 맺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의 ‘기억과 희망’들을 엮어봤다. ‘기억’ 부분에는 품과 함께 했었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다시 또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이야기 들이 담겨있고, ‘희망’에는 품이 만들어가야 할 앞으로의 길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아봤다. 그 리고 히말라야 네팔에서 날아온 참 아름다운 메시지들도 함께 엮어봤다. 제4막에서는... 온전한 품의 다큐멘터리이다. 품이 아닌 외부에서 전해지는 품의 이야기들과 품의 20년의 흐름들을 볼 수 있는 영역별 연 대표 그리고 품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기록들을 꼼꼼하게 정리했다. ‘들국화’의 멤버였던 최성원의 노래 중에 ‘감사만이 행복의 열쇠’라는 노랫말이 있다. 살아온 시간들이 감사하고, 그 시간을 함께해 온 사람들이 감사하고, 살아갈 시간과 사람들에 게 감사하며 ‘품20年史’를 시작한다.

품청소년문화공동체 대표


5

씨줄 날줄 미세기 품 삶 _ 유창식

6 새로운 20년 앞에 서라하네 _ 고춘식 7 축하의 시 _ 람 바부 수베비 8 ‘문’을 열며 _ 심한기

17 1장 12인의 도사가 말하는 품의 ‘문’ 19 품, 복지의 일상적 틀을 부수다 _ 이태수 24 품의 복지 역사 _ 한덕연

1막.

30 내가 품을 만난지 어언 7년이 지났다 _ 김월식

34 앞으로도 질기게 아이들을 품을 거지? _ 안이영노

문 을 두 드 리 다

| 복지의 문

“

“

| 복지의 문

44 품 _ 김옥순

| 문화의 문 | 문화의 문

| 청소년활동의 문

48 새로운 도약, 그 발판을 준비하시라 _ 김 민 53 품이 만든 오래된 새 길 _ 김영삼

| 청소년활동의 문

| 교육의 문

58 대안교육의 길을 모색하는 ‘품’에게 _ 이치열 62 변화에 ‘변화의 시나리오’를 쓴다 _ 이선재

| 교육의 문

| 대안적 엔지오활동의 문

66 품에 반한 세 가지 이유와 세 가지 기대 _ 이주빈 72 품 20주년, 청소년과 마을만들기 _ 전효관

| 대안적 엔지오활동의 문

| 마을의 문

76 시간만이 만들 수 있는 존재와 인연 _ 우수명

| 사람의 문

축하 시 _ 이용교

81 2장 ‘양금석, 이준호가’말하는 품의 문 82 품,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_ 이준호 89 다시 처음으로 _ 양금석


94 1장 ‘길’을 만들어 가고 있는 품의 20년

_ 심한기

축하 글 _ 전성민

123 2장 여섯 개의 키워드로 말하는 품의 20년

“길 가 다

“

을

2막.

125

청소년문화운동 _ 유현희

145

사람 흔들기 _ 유현희

180

십대와 마을 만들기 _ 이상섭, 이지성

214

품과 히말라야 네팔 _ 강명숙

237

대안교육 길 찾기 _ 유현희, 정이가령

279

품과 주주 _ 강명숙

| 문화는 사업이 아닌 아이들의 삶을 위한 끊임없는 운동이다

| 암묵적 전제들에 대한 위대한 거부를 위하여

| 만들어준 세상이 아닌 스스로의 일상을 만들어 갑니다

| 다시 바라보고, 멈춰보고, 지구적으로 사유하고, 지역에서 실천하기

| 수단과 목적이 아닌 삶의 힘으로서의 교육을 꿈꾼다

| 품의 에너지는 주주로부터 시작한다

축하 글 _ 송 건

299 기억

3막.

김종국, 고인석, 권혁기, 이벽주, 박종우, 이상화, 정영수, 박경호, 곽혜림, 김동환, 최두환, 김동혁, 서인석

328 희망 오원식, 임재춘, 조영미, 이은경, 이정주, 장서영,

357 Message from Himalaya 마닐라마, 정성미, Schools’ Forum Nepal, 상게 세르파, 민 바하둘 바함, 베시마을 모노허라 학교 교사 일동, 딥말라 머허르전, 꺼멀리 시레스터, 루나 시레스터, 써칫 로쩐 자하 축하 글 _ 윤 철

“기억

과

희 망

“

박상영, 전명기, 김지선, 송건, 이순임, 강원재, 표경흠, 정건희, 강종안,


4막.

축하 글 _ 최혜지

369 세상이 말하는 품 축하 글 _ 이상훈

“

398 품 20년 그리고 사람 399 품을 만들어 온 사람들 408 지금 품의 일꾼들 414 품의 주주들

“

품 20 년 의

다 큐 멘 터 리

축하 글 _ 고영재

420 품 20년의 흐름 421

한 눈에 보는 역사

423

연도별로 보는 역사

453

품 20년의 발간물

456 품은 품는 만큼 품이 됩니다.


14

품 20

품의 스승이며 선배이며 동지인 14人이 전하는 글을 담았다. 품20년 동안 두드려왔던 ‘문‘들을 7개의 영역으로 나누었고 각 분야에서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가지고 있는 12人의 귀한 글을 담았다. 그리고 20년 전 품을 함께 만들었던 이준호와 양금석의 글을 담았다.


“문

“

을 두 드 리 다

1막. painted by 정 율


16

품 20


1막.

1장

12

人의

도사들이 말하는 품의“문

“


품 20

복지의

“문

“

18

을

두드리다 이태수 | 한덕연


품, 복지의 꽃동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왜! 복

일상적

지국가인가?’를 물으며 진정한 복지국가를 위해 싸우고 있는 전사이다. 사회복지 실천의 다양성과 진보적 운동

| 이태수

틀을 부수다

성을 강조하지만 따뜻한 제자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가 끔 아끼는 제자들을 품으로 출가시키기도 한다. 품이 기 댈 수 있는 소중한 스승이다.

“Right is Right even if no one is doing it; Wrong is Wrong even if everyone is doing it.” - 성 어거스틴(Saint Augustine)

이상(理想)이 우리는 지금 이상을 버리길 강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실에서 많 필요한 은 이들이 추종하는 생각에서 멀어지면 곧바로 비현실적인 공허한 이 시대다. 상주의자로 가엽게 여겨진다. 현실은 냉혹한 것이기에, 꿈과 이상은 학 교에 있을 때나 하나의 낭만으로 추구할 뿐이고 졸업을 할 때가 가까 워지거나 군대를 갔다오면 지극히 자신의 이익에 충실한 길을 밟는 것 이 의당 현실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세상이다. 학교 때까지 배웠던 윤리와 도덕은 무 능한 인간이 자신을 합리화하는 허약한 방패이고, 자신의 이득과 출세를 위해서는 한치의 양 보나 망설임도 없이 경쟁에서 승리하고 그 결과의 향유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는 배반적 진 실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시대이다.


20

품 20

그리하여 청소년들의 아노미현상은 길고 더 깊다. 자신이 ‘배웠던 진실’과 막상 ‘대면하고 있 는 현실’ 사이의 괴리가 주고 있는 현격한 차이는 그에게 방향감각을 좀처럼 되찾기 어렵게 만든다. 일찌감치 배웠던 진실을 포기하고, 자신이 대면하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될텐데 그 쉬운(?) 처세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청소년에게는 짙은 방황이나 거친 행동이 자 신의 혼돈을 발산시키는 색다른 처세법이 되고 만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어릴 때 품었던 이상이 현실에 의해 가볍게 포기되거나 버려져야 한다 는 통설을 깨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상을 이상으로 품고 현실에서 그것을 실천해 나가려는 청 소년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래서 현실이 이상이 되고, 이상이 현실이 되는 소중한 경험을 함께 하는 청소년들이 함께 있을 필요가 있다.

품의 20년이 그런 열망을 갖고 있는 이들, 특히 그런 청소년들에게 위안이 아니었을까?

신념(信念)이 자신의 생각을 확신하기 어려운 시대다.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인정 필요한 하는 생각에 머물기는 쉽지만 자기만의 생각을 지키는 것은 참으로 어 시대다. 렵다. 소수가 인정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다수의 생각은 옳고 소 수의 목소리는 다수가 쏟아내는 전방위적이고 일방적인 폭력어린 소리 앞에서 힘을 얻기 쉽지 않다. 그래서 다양성이 사라지고 단종(單種) 세포마냥 오로지 한 가지 색깔만으로 그려진 무의미한 캔버스 위의 그림이 되고 있는 세상이다. 튀는 것이 인정되지 않 는다. 똑같은 머리와 복장, 똑같은 유행에 자기 몸을 숨기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는 결론을 받 아들이는 것이 세상을 편하게 사는 시대이다. 자기만의 생각과 믿음, 색깔에 신념을 갖기 어 려운 시대가 되고 만다.

그리하여 청소년들은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기조차 벅차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이미 기성세 대가 정해놓은 정답은 ‘항상’ 있는 것이고 그것을 맞추느냐 아니면 못 맞추느냐의 시험문제 를 푸는 수험생의 입장에 서게 된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인정하고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신념으로 주장하는 청소년은 우등생이 되기 어렵고 좋은 대학을 가기 어렵고 좋은 직장 을 얻기 어려우니 열등생의 낙인에 찍혀 사는 것을 감수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은 신념 있는 인간들이다. 사회의 발전은 모두가 “예”라고 대답할 때 “아니오.”라고 답한 한 사람에 의해 가능하다.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할 때, 숨죽여 자 신만의 다른 답을 찾고 그것을 확신하고 또 확신하여 마침내 다중의 오류나 망각을 뛰어넘어 새로운 진실을 가르치는 신념 있는 이들이 지금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특히 넘쳐나는 정보와 사실 아닌 사실의 홍수에 살고 있는 우리 시대에 자신의 올곧은 생각을 신념으로 지킬 수 있 는 청소년들을 지켜주는 것은 우리 기성세대의 임무이다. 품의 20년의 역사가 신념 있는 청소년들을 키워내는 소중한 역사가 아니었을까?

열정(熱情)이 열정을 갖고 살기 쉽지 않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를 유혹하 필요한 는 수많은 끌림에서 이리저리 분주하기는 쉬워도 자신의 이상에 대해, 시대다. 자신의 신념에 대해 열정과 혼을 갖고 산다는 것은 너무나 인위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에 노력을 행한다 해도 어렵고 어려운 길이다. 열정보다 는 달콤한 유혹에 대한 탐닉만이 가까이에 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값싼 즐거움이 우리가 혼을 다 바쳐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이상과 신념을 향한 열정을 좀먹고 빈껍데기뿐인 일시적 인 쾌락으로 자족하는 자신들을 만들어 나가게 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은 열정어린 삶을 꿈꾸기 어렵다. 일상에서의 소소한 집착은 경 험하지만 열정이 이루어내는 창조적인 결과를 경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기성 세대가 만들어놓고 오로지 그저 충실히 받아들일 것만을 요구하는 현실은 스스로를 자신의 삶 에 능동적인 주체로서 살기보다는 수동적인 객체로서 사는 것이 편하다는 지혜(?)를 일찍 터 득하게 한다. 스스로 자신의 삶에 주체가 되지 않을 때 열정의 싹은 키워질 수 없다.

그러나 열정 없는 삶은 결국 쉽게 지친다. 지쳐도 다시 일어나기 어렵다. 일어나도 또 다시 달려가기 어렵다. 또 다시 달려간다 해도 자신이 설정해 놓은 방향으로 달리기는 어렵다. 우 리 시대의 청소년들이 이런 열정 없는 삶을 사는 것은 비극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비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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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고 우리 미래의 비극이다. 청소년들의 하루가, 한 달이, 일 년이 열정, 패션(passion)으로 가 득 차 스스로의 삶에 역동성과 창의성이 넘쳐나는 것, 그것이 청소년을 청소년답게 만드는 요 체요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는 열쇠이다.

품의 20년이 이런 열쇠를 만들어가는 역사가 아니었을까?

감히 이 시점, 우리사회에서 청소년복지라고 불리우는 제도권 내의 수 품은 청소년복지의 많은 시도들은 청소년들에게 이상을 심어주지도 못하고 있고 신념을 대안이었다. 키워주지도 못하며, 열정어린 삶을 지지해 주지도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한다. 청소년기본법, 청소년활동진흥법, 청소년복지법 등등의 각종 조문에서 보장하는 청소년 들의 권리와 복지를 위해 존재하는 그 많은 제도적인 시도들이 어느덧 청소년들에게 이상을 버리고 현실을 택하며, 자신만의 색깔과 신념을 키우는 대신에 다중의 보호색 뒤에 자신을 은 닉하는 법을 소개하고, 열정에서 오는 역동적인 삶 대신 시행착오 없이 건조하고 무난한 일상 의 반복에 익숙하도록 한 것은 아닌가 한다.

제도권 어디에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품이 도봉산 밑의 한 자락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유지 해 온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품을 여기까지 지켜오고 왔고, 그간 지나쳐간 수많은 청소년 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온 지지자들은 제도권 복지의 일상적인 틀이 가져다줄 수 있는 무(無) 이상, 무(無)신념, 무(無)열정의 세계를 깨는 하나의 실험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품이라는 작 은 공간에서 새로운 대안의 세계를 보여줘 왔던 것이다.

품의 역사는 계속되어야 한다.

앞으로 품의 역사는 그 끝을 알 수 없다. 아마도 우리 사회의 모든 청 소년들이 자신이 소중히 찾아낸 자신만의 이상을 굳건한 신념과 열정 으로 추구해 나가는 그런 세상이 오면, 그리고 국가의 책임으로 운영되 는 수많은 기관들이 그러한 청소년들의 앞길에 밝은 등불을 비추는 역


에 충실하는 때가 오면 굳이 품의 역할이 더 이상 필요치 않으리라.

그러나 그러한 세상이, 그러한 때가 오지 않는 한 품의 실험과 대안은 계속되어야 하고 함께 해 나가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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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품의 사회복지 역사 사회복지적 철학에 근거한 품의 역사에 서 사회복지 측면에서는 어떠한 성장과 자극이 가능하였는가?

사회사업가이다. 체계와 형식에 묶여있는 사 회복지와 사회사업 실천의 역사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도사’이다. 똑바른 사회사업가 를 키워내고 대안적 사회복지 실천의 근거

| 한덕연

들을 닦아 놓았다. 품의 길을 지지하고 응원 도 하지만 품을 비판하고 제안할 수 있는 올 곧은 품의 스승이다.

품은 청소년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또한 자기 복지활동의 주체로 세워 왔습니다.

사람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의 삶 그 실질은 자주 성입니다. 자주하지 않으면 자기 삶이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주 하지 않으면, 주는 대로 먹는 짐승이나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기계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자주하지 않으면 ‘삶’이 아니라 ‘생존’에 불과 합니다. 인격적 생명력을 사실상 상실하는 겁니다.

자주성의 핵심 요소는 당사자의 ‘주체의식과 역량’입니다. 주체의식이

있어야 자주하려 할 것이요, 역량이 커질수록 자주하는 일이 많아지고 수준 또한 높아질 것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도우려면 당사자 그 사람의 주체의식과 역량을 회복·개발, 유지, 개선·강화하는 방식으로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복지사업으로써 오히려 이 자주성을 허물곤 합니다. 복지사업에서 당사자가 자기 복지의 주체로 서지 못하고 대상화하는 일이 많습니다. 후원·봉사 대상자, 보호 대상자, 교육·훈련 대상자, 치료 대상자, 생활지도 대상자, 심하면 관리 대상자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당사자의 삶인데, 당사자의 복지인데, 사회복지사나 교사가 기획선택통제함으로써 당사자가 본인의 삶에서조차 소외되곤 합니다.

당사자를 사람으로 본다면 이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복지의 주체는 당사자 본인입니다. 복지 를 이루는 데 당사자가 주인 노릇 하게 해야 합니다. 복지는 당사자가 이루고 누리는 당사자 본인의 삶이 되게 해야 합니다. 복지 사업을 계획할 때는 당사자와 의논해야 합니다. 당사자 에게 제안·설명하거나 혹은 당사자가 제안·설명하도록 부탁해야 합니다. 당사자의 계획이 되 게 해야 합니다. 당사자를 기획의 주체로 세우는 겁니다. 지금 당사자가 없고 나중에 모집해 야 한다면 혹 모르나, 당사자가 있는데도 당사자의 참여 없이 기획하는 건 온당치 않습니다.

품은 청소년을 사람이게 했습니다. 자기 삶을 살게 했습니다. 자기 복지의 주체로 서게 했습니 다. 품은 청소년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기 삶을 꿈꾸고 설계하고 만들어 가게 도왔습니다. 청소 년으로 하여금 청소년 문화를, 청소년 활동을, 청소년의 삶을, 청소년의 상황을, 비판적으로 성 찰하고 저항하고 대안을 찾게 했습니다. 청소년이 청소년 활동을 기획하게 했습니다. 청소년이 청소년 활동을 선택·통제하고 주체로 참여하게 했습니다. 청소년들의 주체의식과 역량을 살려 청소년 복지를 이루게 도왔고 이런 생각과 방식을 청소년들과 청소년 복지계에 퍼뜨렸습니다.

품 활동가들은 도전하고 개척하는 사회복지사 「도사」들 입니다

척박한 복지 현실에 좌절하지도 않았고, 소위 좋은 조건을 구하지도 않았고, 남이 만들어 놓은 기관에서 선배들이 해 온 것을 답습하거나 적당히 타협하며 안주하지도 않았습니다. 더 멀리 내다보고, 더 크게 생각하고, 더 높은 뜻을 세우고, 열정을 쏟아 힘써 도전하고 개척했 습니다. 그렇게 사회복지, 청소년복지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왔습니다.

변화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능동적으로 안으로는 꾸준히 자신을 혁신해가면서, 밖 으로는 더 높은 목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새로운 현장과 사업을 만들어왔습니다. 청소년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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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의 오늘과 내일을 능동적으로 설계하고 만들어 가는 모습, 참으로 창의적이고 줏대 있는 복지 인의 삶을 보여 주었습니다.

품의 역사는 ‘배우고, 나누고, 가르치는’ 삼락의 역사입니다.

품 일꾼들은 꾸준히 공부하고 궁리하고 적용하여 배움에 진보 또 진보 를 이루어 왔습니다. 그로써 청소년복지를 날로 개선·개발·혁신해 왔 고, 그 배움과 성과를 나누어 왔습니다. 이렇게 배우고 성장하는 재미, 공유하는 재미로 살아온 것 같습니다.

사회사업은 지식 중에서도 특히 방법지가 중요한데 보통은 보고서 양 식에 최소한의 정보만 쓰고 실제 고급한 방법지는 기록으로 잘 남기지 않는 편입니다. 그래서 알짜 정보는 대개 머릿속이나 개인 서랍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품은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자세히 기록하고 아낌없이 나누었습니다. 이로써 청소 년 활동가, 청소년 복지계를 깨우고 성장시켰거니와 품은 그보다 더 큰 유익을 얻었습니다. 동 료와 공유하고 후배에게 가르쳐 주는 재미, 이는 소진되거나 타성에 젖지 않고 사회사업을 계 속하는 비결입니다. 품의 20년 역사를 이어온 힘, 그 중 하나가 ‘경험과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누리는 同樂’ 바로 이것일 겁니다.

지식 공유의 제1법칙 :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의 가치가 높아집니다. 유용한 지식을 공유, 확 산시키는 사람이나 조직은 그 분야에서 곧 알려지고 인정받게 됩니다.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 이나 기관의 위상과 효용·가치가 높아지는 겁니다. 지식이 있어도 공유하지 않으면 누가 알 아주겠습니까?

지식공유의 제2법칙 :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이 성장합니다.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은 지식의 옥 석을 가릴 줄 알게 됩니다. 지식의 가치를 알아보고, 유용한 지식을 곧잘 찾아내게 됩니다. 또 한 남에게 알려 주기 위해 정리하고 다듬어서 그렇게 공유한 지식은 더 오래 기억하고 더 잘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만 알고 묻어 두는 지식은 썩어 없어지거나 효용이 곧 소멸되 기 쉽습니다. 지식은 공유할수록 더 풍성해지고 더 정교해집니다. 공유한 그 사람이 더 성장하


장하고 성숙해집니다. 공유하면 남들이 비판도 하고 격려도 하고 내용을 보태기도 하고 지적 하기도 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품 일꾼들은 품이 하는 일에 관하여 공부하고 적용하고 성찰하는, 지식과 경험과 철학을 모아 자료집을 만들었고 책을 만들어 왔습니다. 공부하고 생각하고 실천하되 그 공부와 생각과 실 천을 기록, 공유·축적, 수정·보완해 왔습니다. 이것이 배운 사람의 사회사업이요, 생각하는 사 람의 사회사업이요, 사회사업을 전공한 사람의 책임입니다. 소진되거나 타성에 젖지 않고 사 회사업하는 비결입니다. 품의 역사에서 이것을 보았습니다.

품은 청소년으로 하여금 인문학적 바탕을 기르고 우정을 쌓고 낭만을 누리게 했습니다.

인생의 단계마다 해야 할 과업이 있는 것처럼, 그때그때 누리고 즐겨 야 할 몫이 있습니다. 학창시절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활동, 졸업하면 돈을 주고서도 살 수 없는 기회, 이때가 아니면 누리지 못할 낙, 이때 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낭만과 행복이라면 지금 누려야 합니다. 청소 년의 때, 학생의 때에 풍성하게 누려야 합니다.

품은 청소년으로 하여금 그런 추억과 낭만과 우정을 얻게 해 주었습 니다. 학교와 동네 지역사회에서 평생의 자산이 될 경험을 만들어 주 었습니다. 방방곡곡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마음껏 즐기고 누리게 했습

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힘겨울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품으로 인해 행복했던 순간들, 꿈과 열정으로 뜨거웠던 시절, 이렇게 가슴 뭉클하고 설레는 추억들로써 다시 힘을 내고 웃 을 수 있을 겁니다.

바람

1) 청소년의 일상생활을 위주로 하기 바랍니다. 발전은 기본에 충실하고 마땅한 삶에 다가가는 노력이지, 무엇인가 새 롭고 다르고 특별한 사업·방식을 좇는 게 아닙니다.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새롭고 특별한 것만을 찾으려 한다면 프로그램 기획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겁니다. 평소의 말 과 행동, 인간관계, 일상생활을 바르게 아니하고서 재미있는 것, 새로운 것, 특별한 것을 탐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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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다면 그 결국이 어떠하겠습니까?

새롭고 특별한 일을 찾기보다는 일상, 기본에 다가가기 바랍니다. 옛것이든 새것이든, 독창적 이든 모방적이든, 소위 전문적 활동이든 단순 활동이든, 다만 마땅함을 좇을 일입니다. 사회사업 초보자는 남들 다 하는 방식으로 하는 평범한 사업보다 새롭거나 특별한 일을 찾 습니다. 다른 데는 없는 사업, 나만의 방식을 추구합니다. 사람들은 ‘와~ 기발하다!’ 합니다. 사회사업 고수는 옛것이든 새것이든, 남과 다르든 같든, 다만 지금 이곳 이 상황에서의 마땅함 을 좇아 행하되 평범한 일상으로 소박하게 복지를 이루게 합니다. 이와 같이 사회사업이, 그 로써 이루어지는 복지가, 평범한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게 발전입니다.

2) A가 아닌 B, 이 문법을 벗어나기 바랍니다. ‘~이 아닌 ~’ 이런 말과 글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품이 전에 해 온 활동 내 용과 방식도 귀합니다. 그건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습니다. 다른 기관 다른 활동가의 일도 그 러합니다. 앞의 일을 부정하지 않고도 뒤의 일을 설명할 수 있기 바랍니다. 남의 일을 부정하 지 않고도 품의 일을 설명할 수 있기 바랍니다.

품은 품 자체로 충분히 좋습니다. 품은 타자를 부정하지 않고도 설 수 있습니다. 품의 오늘은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도 설 수 있습니다. 품이 그러하고 품의 일꾼들이 그러하고 품의 활동 이 그러합니다. 적어도 품에서만큼은 과거는 과거대로 뜻이 있고 지금은 지금대로 뜻이 있습 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품의 역사, 귀하고 귀합니다.


문화의

“문

“ 을

두드리다 김월식 | 안이영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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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내가 품을 만난지 어언 7년이

아티스트 겸 무비스타이다. ‘Art is process’를 말하며 쉽게 이해하기 힘은 과정들을 만들어가는 ‘우뇌 활성화 나라’의 비공식 임금님이다. 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

지났다

을 것 같지만 존중과 신뢰의 상호적 핑퐁게임은 늘 동

| 김월식

점이다. 다소 고지식한 품의 문화적 상상에서 쾌활한 예 술적 실천을 연결하게 해 준 품 역사 속의 명랑현자이 다. 그리고 몇몇 품 청년들은 김월식의 “ART地”에서 허 우적대고 있다.

내가 품을 만난 지 어언 7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 회고할 만한 추억이 없다. 지난 7년 내게 벌어진 수많은 일 중 품과의 인연 또한 적지 않았지만 삶의 불가해하고 불확정한 매일을 살아 가는 예술가에게 회고란 일종의 명예로운 은퇴가 아닌가? 나는 아직 추억을 이야기하기에는 부족한 현재 진행형의 삶을 살고 있고, 품 또한 이제 갓 스무 살의 청춘을 돌파하고 있다. 우 리의 레이어들은 그 층위가 전방위적이어서 가끔 만나고 또 가끔 떨어져서 동시간의 다른 영 토를 여행하고 개간한다. 품과 나는 그것이 서로에게 좋다.

사건을 만드는 재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만드는 재주에 당하지 않을 재간은 별로 없 다. 흘러 다니는 삶과 사건으로서의 만남은 사고를 치장하는 좋은 구 설수이다. 문화란 대체로 이렇게 퍼져 나간다. 서로에게 편리한 기억을 토대로 비교적 사실성의 담론에서 자유롭고, 허구와 오인의 해석이 용 인되고, 이놈 저놈의 다성적 목소리의 합창도 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실적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때문에 한 명의 예술가와 품 같은 문화공동체의 만남은 소문과 같은 사건을 만들기에 적합하고, 그 소문 안에서 서로의 진위를 확인하려는 시도는 이미 넘 쳐나는 자가 증식의 문화를 봉합하려는 미련한 처사일 뿐, 결국 이 모든 배후에는 사건을 도 모하는 유전자들의 자유방임적 구애가 깔려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이 구애는 스스로를 원하 는 자리에서 끌어내리지 않고 상대방에 노골적으로 치근덕거리지 않으며, 외도를 인정하고, 돌 아오지 않는 탕아를 멀리서도 독려하는 방식이다. 그야말로 무늬만 구애인 이 프로포즈들은 그래서 유머를 관계의 매개로 삼아 서로에게 욕을 해도 무방한 광의적 연대를 꿈꾸게 한다. 때문에 예술과 문화의 연대는 이 차이를 연대하게 하는 사건이 되고, 결국 이 사건은 서로를 오염시키기도 하고 흉내 내게 하기도 하며 절대로 닮으면 안 되는 명분을 제공하기도 한다.

수행을 수행하기

실천적 의미로 목적성을 분명하게 하는 방식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수 행의 과정을 설계하는 처음부터 수행의 목적과 배경 철학 등을 주변과 공유한다. 이는 가치를 공유하거나 나눔으로써 공동의 목적에 연대감

을 갖게 하고, 이 연대의 명분은 곧 수행의 기준점들이 되어 준다. 때문에 이 수행들은 대체 로 일사불란하고 조직적이며 헌신적이고 전체적이다. 많은 공동체들은 이 공동체적 목적성에 부합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어 각자 맡은 바 역할이 있어, 이를 책임 있게 수행하고 결과 의 의미 또한 책임 있게 고민하며 나눈다. 또한 이 과정에서의 문제점들을 수정하기 위해 노 력하고 반복되는 실수를 줄이기 위해 꼼꼼하게 확인 또 확인한다. 대체로 일을 잘한다는 평가 는 이런 책임 있는 수행성에 기인한다. 그래서 품은 일을 잘한다. 게다가 지속가능한 프로그 램으로 다년간 그 책임을 지역과 주변에 나누어 주며 공동체를 확장하고 또 그 안에서의 역 할에 대하여 고민한다. 다분히 다자간의 대화와 상호작용 속에서 작동하는 품의 수행성들은 중심을 가진 다양성이다. 이는 다분히 현실에 기반을 둔 나무의 다양성이다. 그런데 나는 이 런 품을 바라보면서 늘 리좀(Rhizome)을 떠올린다. 무언가 비 위계적이고 복수의 층위에서 경계를 흐리고 상위 이웃을 통하지 않고 객체적 접속이 더 가능할 수 있는 리좀의 관계망들 은 현실적 이항대립을 극복하며 잠재적으로 자유로운 접촉면을 만드는 수행이다. 아마 문화 적 실천의 수행이란 이런 내면의 잠재적 사유를 함께 꾸는 꿈일 수 있다. 중심을 가진 다양성 과 자유로운 접속 가능성이 유동하는 잠재성의 차원이 함께 꾸는 꿈. 나는 품도 분명 이 꿈 을 함께 꾸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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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결국 중심을 가진 다양성과 자유로운 접속 가능성이 유동하는 잠재성의 차 생태적 토양으로써의 원이 함께 꾸는 꿈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품이 갖고 있는 생태적 토양 때문 거친 밭 이다. 이 땅은 제도권 밖의 비상식적 영토이며 다수의 쓸모 있는 영토에서 뛰

쳐나온 쓸모없는 영토이다. 이 불안전한 밭의 생물들은 대다수 학교와 지역의 예각과 변두리 에 존재하고, 가족과 친지의 불안에 존재하며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제도적 시스템에 안착시키 지 못하는 꼴통 근성에 존재한다. 때문에 품의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늘 익지 않은 날 것 같 은 생 비린내가 나며, 잡초 같은 곤조가 느껴지고 충동과 감정의 서슬들이 보인다. 미술 교육 이 제도화되어 학교로 들어온 세월이 100여년, 이 근대의 교육 상품이 날 것의 예술을 얼마나 잘 정돈시켜 길을 들여 놓았는지 나는 요즘 예술학교에서조차 품의 아이들처럼 막무가내들을 잘 보지 못한다. 결국 품은 이런 생태적으로 거친 밭의 쭉정이들과 모난 돌을 품은 토양이다. 토양이 이러하니 잡초라도 좋고 쭉정이라도 좋으며 모난 돌이라도 좋고 자갈이어도 무방하다. 그저 그 곳에서 생긴 것처럼 놀면 그뿐인 것이다. 날 것의 미학은 사실은 인정하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다. 그 진정성이 날 것과 만나서 감각적으로 발화하는 지점이 예술의 경계를 넘어 서는 지점이다. 바깥에 서서 늘 딴 곳을 바라보며 생짜 그대로 낯선 곳을 기웃거리는 청춘이던 나는 그래서 그 품이 그립고 설레나 보다. 적어도 예술가의 직관 안에서 품의 아이들은 그렇다.

시정잡배의 혼성모방과 이종교배

배신의 말로를 비극으로 받아들이는 경우 대체로 그 플레임들은 권선 징악의 도덕적 플레임일 확률이 높다. 그만큼 신의와 믿음을 중시하는 공동체 안에서의 배신이란 단어는 도덕적으로 불명예를 안기 십상이다.

하지만 입장을 조금 바꾸고 다른 각도에서 보면 배신을 긍정의 신호로 받아들였을 때 배신이 야말로 예술적 창조 도구가 되고 도덕이란 때론 철지난 클리셰가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역사와 맥락에서 배신은 자유로운 연애만큼이나 생산적이고 매력적인 창조기계이다. 때문에 나는 기회 가 될 때마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배신의 장미’가 되라고 충고한다. 나는 품이, 품의 아이들이 배신의 장미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하고 싶은 모든 일에서 주눅 들지 말고 매번 새로운 시도에 겁먹지 말고, 거리에서 골목에서 마당에서 시장에서 다양하고 황당한 경험 에 매료되었으면 한다. 이 황당한 경험이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없애는 일 이기도 하다. 또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해 보는 일이다. 이 다르고 낯선 것들의 조합은 늘 새로운 상상력을 생산하고 예측하지 못하는 경험치를 선물한다. 일상을 늘 여행하는 것처


럼 살 수 있는 삶이란 결국 늘 새로운 일상을 마주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속성, 지속가능성의 단단한 무게를 살며시 내려놓고 자율성과 새로움의 옷을 입고 패션모델처럼 간지 있는 워킹으 로 당당하고 자신 있게 사교하며, 시정잡배처럼 남의 것을 훔치고 방탕하게 돌아다니면서 교 배하는 삶에서도 긍정의 텍스트를 읽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차이에 대한 이해일 수 있고, 칼 날 같은 상식의 경계를 넓혀서 그 영토에 집을 짓는 일이며, 자칫 단선화 되고 패턴화 되는 공동체의 삶을 파편적이고 개별화시켜 개인이 행복한 삶을 독립적으로 설계 할 수 있는 단초 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이 단초란 개인이 행복한 공동체이며 차이와 차이가 만나서 다양한 상상력이 생산되는 문화적 예술적 공동체를 상상하게 한다.

은혜로운 공동체보다 차이의 공동체

나는 매달 품과 안산의 대안 공간 리트머스에 적지만 얼마간의 돈을 후원 한다. 그래서 난 품의 주주이고 리트머스의 회원자격을 갖는다. 이 땅의 가 난한 아티스트에게 주머닛돈을 털어 기꺼이 후원하게 하는 명분이란 결국 뜻을 같이 한다는 것 보다는 차이의 연대에 가치를 둔다는 것이다. 나와 다

른 생각을 갖고 있는 차이에 주목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격려하고 다름에 감사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목적성을 같이 하며 그 안에서 은혜롭게 나누는 감정의 상호작용이라기보다 차이 속 에서 숨 쉴 수 있는 공통의 영토에 대한 소유욕일 수도 있다. 가끔 만나서 즐겁게 숨 쉬고 다 시 자신의 영토에서 다른 집을 짓는 우리의 느슨한 관계는 늘 긴장을 즐거움으로 바꾸면서 서 로의 집짓기를 격려한다. 우리가 따로 따로 집짓기를 하다 만난 지 7년, 그 동안 우리는 가끔 공통의 영토에서 서로의 간을 보며 친해졌다. 문화를 실천하며 그런 사람들을 짓는 품은 나에 게 늘 다름을 선물하는 친구이다. 나는 가끔 품을 통해서 내가 예술가임을 깨닫기도 하고 망 각하기도 한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관계의 디자인이다. 가장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예술 가와 사회적 책임감과 열정이 만나 발생하는 이 오염은 나의 예술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품의 문화적 실천을 자극시키기도 한다. 때문에 난 더 철저하게 예술가의 삶을 살아가며 삶의 고민 과 문제들을 예술의 과제로 풀어 갈 것이다. 품은 더욱 품의 고민을 품의 방식으로 살아내야 한다. 자칫 서로의 모습이 너무 닮아져 이 차이의 연대가 무너진다면 나와 품은 더 이상 친구 가 아니다. 나는 품과 서로의 다른 차이에 대하여 욕하며 쌍스럽게 막말하면서도 상처받지 않 는 편안한 친구로 남길 바란다. 오랜 친구는 그래서, 그래서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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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앞으로도 질기게 아이들을

<기분좋은 QX> 대표이나 기분 나쁜 문화기획자이

품을 거지?

다. 갑자기 허벅지를 긁어대며 ‘뜯어먹어 날!’을 노

| 안이영노

며 살고 있다. 품이 지닌 고정의 틀을 허물 수 있는

래하기도 한다. 순수와 불손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 만의 우주 속에 꽤 폭넓은 ‘수용의 가치’들을 담아내

단서를 던져 주었고 ‘기획자’라는 키워드를 찾게 해 준 장본인이다. 심한기와는 원수이며 친구이지만 다 른 식구들에게는 매력적인 선배로 위장(?)되어 있다.

심한기대표(이하 무당) 안이영노대표(이하 대뫙)

자랑스러운 20년이야. 바라보는 느낌이 어때? 또 당부할 것은 뭐 있나? 네 말대로 20대 청년 하나를 길러냈으니 대견하겠다. 키우느라 마음

고생이 어련했겠니. 너랑 나랑 처음 만난 것도 띠가 한바퀴 돌았구나. 2000년 8월 15일 내가 김종휘 등과 문화부 청소년문화축제 할 때 그 현장에서 봤으니 강산이 하나 변했어. 유스페스 티벌(youth festival)이라고 부르던 그날 행사장에서 너 참 눈에 잘 들어왔다. 한 여름 땡볕에 체면 없는 반바지, 상인들이 찰 법한 허리쌕을 하고 긴 머리는 빛바랜 갈색염색인 심한기를 보 았을 때, 이렇게 오랜 시간을 같이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진정한 현장 냄새는 났으나 좀 촌스러웠거든. 그래도 날라리가 날라리를 알아본다고, 그 후에 보면 뭔가 끌렸다. 청소년이나 문화에 대해서 쉽게 설득되지 않는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걸어와 줘서 참 고맙다. 품에 대한 느낌보다는 심한기에 대한 느낌인데, 덕담은 여기까지. 혹시 네가 청소년을 기를 때 꼰대처럼


가르치려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안 그러는 거 안다만, 너 예전에 대안교육 주장하면 서 군대식 교육 했던 거 알지? 하하. 무당

우쒸, 가르치려 든다는 게 뭔데?

대뫙

어찌 보면 지금은 다 지난 이야기이다. 품은 공동체이지 회사가 아닌데 말야, 청소년들

이나 직원들이나 운동가로 길러지는 과정에서 어깨가 무거웠을 것도 같았다. 청소년운동, 지 역운동을 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 해온 존경스러운 선생님들, 선배님들의 말씀이니 큰 권위로 느끼는 것이고, 품에서 하는 캠프나 아카데미가 공익적인 가치를 지향하니 그 사명감에 부담 스러웠을 것이야. 교육과정이 뭐랄까, 좋은 가치를 자꾸 집어넣으려는 것 같은 시절이 있었어. 특히 너나 나나 자신도 모르게 그런 것을 후배나 제자들에게 할지 모르니 말야.

무당

영노가 볼 때 지금의 품도 그러한가?

대뫙

물론 아니지. 용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충고를 잘 새겨서 들었으면 해. 품

이 늘 자유롭게 열어놓는 것 같지만 사람들한테 주는 비전은 너무 분명한 게 탈이었어. 다시 말하지만 품은 공동체이지 회사가 아니지 않은가. 디자인에서는 컨셉이 분명한 것이 좋지만, 부모가 자식을 기르고 스승이 제자를 기를 때에는 하나의 가치를 주장하면서 미래 자체를 왈 가왈부 할 수 없다고 본다. 공부하고 살아가는 방법에서만 하나를 강조하고 약속을 지켜달라 는 게 있을 뿐이지, 같은 결과를 요구하거나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되라고 해서는 안 된 다. 그게 좋은 어른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적어도 좋은 조직이나 대안적인 소통을 꿈꾼다는 단 체는 그리 하지 않아야 할 거 같아.

무당

품에서 자란 청소년 청년들은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다양하게 자기 갈 길을 가잖아.

대뫙

품이 공동체이기도 하지만 학교이지 않나. 스스로 결단한 인생을 살도록 하는 것은 당

연하고, 또 그런 다양한 청소년들을 배출한 것이 품이 20년간 만든 결실 중에 가장 중요한 것 같아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품은 학교다. 학교는 가르치려 드는 곳이 아니다. 좋은 학교는 ‘ 권위가 없어 탈’이어야 한다고 늘 우리는 얘기해 왔잖아. 품이 더 가르치려들지 않아도 아이 들이 스스로 자란다는 것을 품 스스로 말해왔지만, 실제로 요즘 몇 년 들어서야 그것을 제대 로 발견하고 체득한 것도 같다. 자각했으니 앞으로 잘 살아라. 무당

너, 나한테 왜 이러니. 20주년인데, 불편한 말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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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대뫙

사실을 내가 이런 따끔한 얘기 하는 거, 친구라서가 아니라 샘나서 그러는 거다. 너한

테 하는 이 얘기는 회사를 하든 학교를 하든 나 역시 가지고 있는 숙제라서 그렇다. 기분좋 은QX는 이제 9년이다. 마악 10살짜리 되는 아이 기르는 내가 볼 때, 20대를 길러낸 너와 품 에게 조언을 구할 것도 많고, 따갑게 묻고 싶은 것 역시 그래서 많은가 보다. 우리 회사 내부 뿐 아니라 에이스벤추라, 쥬스컴퍼니, 문화기획학교 등 용산에 모여 있는 회사, 단체들에서도 그렇다. 동료와 직원들, 후배들, 제자들 출신에게 해 주었던 얘기들을 지키려고 하지만 완벽하 게 지키지 못한 허물이 아까 품에게 따갑게 얘기했던 바로 그것들일 게다. 가르치려 들지 않 아도 알아서 크고, 믿어주면 일 잘 하고 그러는 게 공동체나 학교뿐만 아니다. 회사나 일하는 조직에서도 똑같다. 그런 것을 표방했지만 조직이란 늘 딱딱해지고, 아래에서 자발적으로 못 할까봐 위에서 아래로 가르치고 전달하는 곳이 되기 쉽다. 그걸 극복하는 대안기업을 만들려 고 했어도, 다른 기업 하는 분들은 이런 생각이 이상적이라고 바라봤었다. 그럼 안에서라도 이 상적으로 쭈욱 잘 했어야 하는데 말야. 용산에서 동료들이랑 이 생각을 밀고나갈 때 늘 잘 하 지 못했거든. 한편으론 가르치려 들다 실패하고, 한편으로는 모자란다고 느껴 덜 믿어준 것도 같고, 어떨 때는 지나치게 하나의 비전을 강조하게도 되었다. 그래서 다시 너한테 이야기한다, 네가 말하고 주장한대로 아이들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알아서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해라. 20 년이 다 된 품이 그리 실천한다고 알고 있다.

무당

영노가 말한 대로 품은 나가는 중.

대뫙

그렇다면 네가 없어도 품이 돌아간다는 것 알았으니 나와라. 너나 나나 나이가 들어 아

사무실에 앉아만 있어도 권위가 풀풀 풍기는 ‘아자씨’인데, 이제 그만 약속대로 시어머니 자 리에서 은퇴해버리지?

무당

음......... 이 새끼야, 다른 얘기하자.

대뫙

품 20년, 기이이인 게 짧은 것 보다 좋다. 그건 진리다. 네가 지금 나 때리면서 덕담하

라고 하니까 하나 더 할께. 강해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하다.

무당

상투적이다.

대뫙 음, 그럼 이건 어떤가. 지금은 (주)쥬스컴퍼니를 운영하는 이한호 대표가 기분좋은QX를 함

께 만들고 2년이 지나서였어. 1월 1일에 나에게 메일을 하나 보냈는데, 거기에는 10년 갈 기업과


30년 한 세대를 갈 기업, 그리고 100년을 가는 기업이 다르다는 얘기가 담겨 있었지. 그는 당 시 우리 회사 리더로서 조심스럽고 겸허한 판단을 내리고 있었던 것 같다. 100년을 갈 기업을 만들자고 함부로 얘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겨우 10년 갈 회사를 만들 뜻은 없다고 의 지를 표명했다. 직원들과 어울려서 같이 30년 함께 성실하고 힘든 길을 가자고 했었지. 내가 품에게 바라는 건 그런 거다. 이한호대표가 보든 또 내가 보든 품은 30년 갈 곳이 아니다. 분 수에 맞게 목표를 정해라. 너무 작은 꿈도, 너무 큰 꿈도 바라지 말라. 지금의 품은 50년 이 상 두 세대를 가는 좋은 학교가 됐으면 좋겠다.

무당

우리한테 어떤 희망과 과제가 있을까?

대뫙

큰 재산과 큰 희망이 있다. 네가 청소년을 기르면서 함께 기른 후배가 품의 직원과 동

료가 되어 지금 또 다른 청소년을 길러주는 것 말야. 너희가 길러낸 청소년이 다 커서 이제 다른 청소년을 기른다. 그간 품이 살아온 과정을 나보고 하나로 요약하라면 바로 그거다. 내 가 품과 함께한 많은 경험들은 다 그런 모습을 볼 때였다. 네 성깔과 고집 때문에 직원들이 힘들어하고 너의 신념에 찬 영향력 있는 말 때문에 청소년들이 지나치게 스펀지처럼 하나의 비전을 흡수할 때는 걱정도 된다. 그러면서 ‘어찌 저리도 꼬라지가 나랑 똑같을까’ 하는 생 각도 하지만, 대를 이어 사람을 기른 것은 지금처럼 앞으로도 품의 가장 큰 재산인 동시에 유 일한 과제 아닐까.

무당

앞으로 이렇게 해라, 뭐 이런 식으로 좀 구체적으로 말야, 더 멋있게 더 자세히 얘기 좀 해줘.

대뫙

자꾸 대담 중에 때리지 마라. 더 할 얘기가 없다. 음....사람이 사람을 기르고 그 사람이

또 그 사람을 기르는 것을 우리는 ‘가족’이라고 부른다. 어려운 말로 이것을 ‘세대’라고 하지, 세대는 큰 무리로 발생한다, 번식한다는 의미이지만 명료히 말하자면 그건 가족이다. 가족이 생 물학적으로 번식할 때 DNA뿐만 아니라 좋은 비전도 번식되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비전은 하나가 복제되는 반면 새끼수가 늘어나는 것만큼 사명의 수는 제각각 여러 개로 늘어난다. 그게 내 생각이다. 비전은 하나야. 하지만 그 비전을 실현하려고 다양한 모습으로 가족들이 커버리고 가끔 딴 생각도 할 때가 있다. 가족이란 그것을 품는 곳이지. 품 말이야, 품. 가족이란 하나의 비전에 여러 생각을 나누는 곳이 되는데 그게 바로 가치이다. 가치는 비전이랑 달라. 비전이 평 범해도 가치 있는 곳 있잖아, 살기 좋은 공동체 말야. 이쯤 얘기했으면 더 뭘 얘기하겠나. 3년 전, 너랑 나랑 문화기획학교의 윤성진 교장, 김승민 대표가 다 모여 대학로에서 문화기획학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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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윤성진 교장, 김승민 대표가 다 모여 대학로에서 문화기획학교 얘기할 때도 사람을 기른다는 게 우리 모두의 공통 비전, 하나의 비전이었다. 하는 활동과 사명은 제 각각이지만, 우리는 가 족 비슷한 거 아닌가.

무당

오, 멋진 말이다. 늘 그렇듯 다른 데에서 이거 써먹어도 되나.

대뫙

된다, 밥만 사주라. 사실 용산에서 내가 내 식구들이랑 나누는 비전도 똑같다. 품이나

우리 같은 곳들을 씨족사회라 부르든 부족사회라고 하든 그 장점이 번식력이어야만 한다. 많 은 사람이 함께 하고, 각자 조금 다른 길을 가더라도 인정하고 공존하는데, 좋은 가치를 함께 자연스럽게 만들어가는 것 말야. 내가 그간 옆에서 바라본 품은 이미 그것을 잘 해 내는 20 살이 되었고. 사람을 기르는 비전은 품처럼 용산에서도 똑같다. 기분좋은QX에도 품처럼 사람 들이 신나서 들어왔고, 가슴 아프게 나갔었고, 그래도 모두 가족으로 남았고, 또 남은사람이 꿋꿋하게 끌고나가면서 10년, 12년을 지나고 있다. 20년 넘어가는 품에게 존경을 표한다네.

무당

문화적인 측면에서 볼 때, 품이 한 일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뫙

품이 하는 일이 문화예술계에도 큰 자극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품이라는 공동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은 아주 역동적인 문화기획의 사례라고 말하고 싶다. 연극공연이나 교육캠 프, 축제 같은 작품을 만드는 거 말고 작은 지역공동체를 잘 만들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을 한다. 정부가 주는 돈 받아서 건물을 운영하는 곳이 아니다. 청소년센터 나 문화센터 같은 공공시설 운영하는 게 아니고 홍대 앞 예술가들처럼 저예산 독립운동 같은 일을 해서 좋았다. 한국의 문화기획 사례 중에 그런 게 많지 않다. 청소년축제는 청소년들이 관람자가 아니고, 또 참여자에만 머물 수도 없다. 직접 만드는 축제가 되어야 좋은 축제이다.. 이런 이상을 품과 10년 전에 나누었는데, 당시에도 품은 이미 강북구에서 ‘추락’이라는 청소 년축제를 하였고, 청소년들이 직접 기획하고 지역 내에서 문제를 풀어가면서 운영하는 것뿐만 아니라 후배들을 가르쳐서 대를 물리게 했다. 당시에 내가 김종휘, 강원재, 황덕신, 이지선, 김 영등 같은 동지들과 함께 한 청소년문화축제는 청소년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획기적인 방법을 쓰기는 했지만, 청소년들이 대를 이어서 지금까지 살아남아 오지 못했잖아. 문화예술계는 이 러한 활동이 좋은 문화라고 얘기를 해 왔었기 때문에 품의 활동이 큰 자극이 됐을 것이다. 10 년 전에는 10살짜리 품이 막 자라서 떠드는 사춘기로 보였겠지만 지금의 품은 오히려 좋은 문 화기획의 한국적인 사례 아닐까. 문화예술 영역에서 주도자도 아니었고 전문가도 아니었다고


품과 심한기는 느껴왔겠지만, 진보적인 문화예술에서는 아마 품이 주류 담론 안에 있었을 거 야. 10대를 문화기획자로 기르고 청년들이 주도해서 직접 일하게 만들고, 전국구가 아니라 작 은 지역에서 실무자들이 일하면서 크는 문화운동을 주장했으니 말야. 지금 같은 힘든 시기에 모두 정부가 주는 공공자금에 의존해서 일하는 문화예술계를 생각해보면, 문화운동가들은 세 상에 드문 천연기념물이잖아. 잘했다. 수고했다.

무당

문화계에서 품이 어떤 존재일까. 참 이해받기 힘든 곳이었다는 생각도 든다만. 그런 점

에서 하나만 더 칭찬해줘. 대뫙

심한기가 문화복지아카데미를 만들어 주욱 이끌어 온 것 역시 기억이 난다. 청소년지도

사와 사회복지사들이 문화로 주민들의 복리를 증진해줄 수 있다고 본 것은 창조적인 시도라 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사회복지사들 스스로 문화를 즐길 수 없다면 문화복지를 해낼 수 없 다는 우리들의 발견 역시 참 좋았다. 사회복지사들이나 청소년지도사처럼 시설기관에 종사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 문화운동, 지역예술운동, 시민운동처럼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민간영 역을 이해하는 다리 구실 하나가 생긴다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2005년 당시에 문화예술계에 서는 어찌 보면 문화예술 진흥이나 예술가들의 육성을 주로 생각했는데, 문화예술이 주민들의 질적 생활개선이나 사회복지에 좋은 계기,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 것은 문 화계에서 볼 때는 작지만 좋은 시도였다.

무당

네가 품과 함께한 예전의 경험에서 해주고 싶은 얘기 없는지.

대뫙

12년 전에 청소년문화축제에서 처음 만나고 바로 의기투합했던 것이 청소년 문화기획아

카데미였지, 아마. 내가 이희광이나 지금 문화로놀이짱 대표를 하고 있는 안연정과 함께 문화 예술교육연구소 에이스벤추라 강사로 청소년문화교육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에이스벤추라의 주 된 교육이 청소년을 창의적인 기획자로 기르자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 품이 만들어가는 청소년문화기획아카데미에 기꺼이 참여할 수 있었다. 나는 당시에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든 문 화기획학교에서 20대 성인들을 실무자로 기르는 예비기획자 과정을 하고 있었는데, 그 프로그 램을 바로 청소년들에게 적용하여 교육하려니 힘든 게 많았다. 직업을 택하려는 사람과 달리, 청소년들에게는 문화기획자가 되는 과정이 전인적 교육이나 자기의 삶을 성찰하는 학습과정에 연결되어야 한다. 그걸 만들어나가는 과정이었으니 힘들 때이지. 홍익대 앞에서 게릴라들처럼 놀던 방식으로 청소년들이랑 아예 일을 벌이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 그리 하기도 했고.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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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청소년들을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관 안에서 편협하게 기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청소 년을 스스로 사업을 만들어내는 문화기획자로 기를 때 좋은 가치를 지향하도록 권고하는 것 을 빼놓을 수는 없잖아. 그 때 품이 나타나 자극을 준 셈이다.

무당

어떤 자극이었는가.

대뫙

청소년들이 문화에 대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문화기획자가 되어 프로젝트를 창조

하도록 하는 게 우리들의 일이었는데, 품과 함께 청소년 문화기획 아카데미를 하면서 크게 강 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던 부분에 대해 균형감각을 갖고 생각하게 되었어. 당시에 에이 스벤추라는 청소년들이 이념에 따라서 행동하거나 외운 듯이 공익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자 기정립은 커녕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하게 성장할 우려가 있다고 보았던 것 같 다. 오히려 현장의 전문가들처럼 일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절차를 가르쳐야 한다고 보았다. 청 소년들이 어린 게 아니다. 그들도 충분히 조사하고 진지하게 전략을 짜고 이것을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교육받을 필요가 있다고 보았던 것이지. 품을 비롯하여 문화 운동, 청소년교육 등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게 너무 딱딱하고 냉정해보인다고 했어. 아이들에게 굳이 이런 것을 미리 가르칠 필요가 있는가 생각했던 것이야. 품은 청소년들이 가치있는 삶을 추구하고 자기희생을 하면서 지역운동을 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강조했어, 상대적으로 말야. 나는 체계적으로 일하는 작업능력 뿐 아니라 자신들이 살아나갈 인생의 가치를 스스로 선택 하고 또 새롭게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대로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 문화기획자 청소년을 기르 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는 걸 새삼 고민하게 되었어. 생각이 다른 두 집단이 함께 했다는 것, 그러면서 점차 같은 방향을 보게 되었다는 것은 좋은 거 같군.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무당

그 당시 우리 둘조차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고 또 그것을 즐기면서 친구가 되었던 거

아닐까. 대뫙

친구가 아니라 내가 형 같은데... 심한기가 했던 이야기 중 청소년이 지역의 코디네이터

가 되어야 한다고 했던 게 특히 와 닿았다. 2004년 무렵이다. 청소년이 자신들에게 걸맞은 문 화 활동을 하도록 기르는 게 아니라, 청소년들이 직접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나가는 사 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청소년들이 학교축제를 잘 만들거나 청소년축제를 만드는 것 이 아니라 지역축제를 만들어내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품 덕분이다. 서울 강북구에서 청소년들이 만든 <추락>은 청소년축제가 아니라 지역축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북구청이


크게 도와주지 않아도 주민들이 스스로, 그것도 청소년들이 주민의 한 구성원으로서 직접 만 드는 것 말이야.

무당

영노에게는 내가 참으로 고마운 점 많은 친구이겠군.

대뫙

그렇다. 심한기가 좋은 멘토가 되어주어 에이스벤추라가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문화

예술교육단체로 컸고 신촌 홍대 앞 청소년 문화존 사업을 하도록 도와주고 함께 고민한 것도 심한기이다. 특히 문화로 놀이짱이 청소년문화예술교육을 하다가 홍대 앞으로 건너가 지역운 동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도 역시 품의 영향 아닐까 싶어.

무당

품에서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는지.

대뫙

다 사랑스럽지. 그런데 상섭이가 상징적인 존재 같아. 초창기 품 캠프에 참가했던 어린

친구가 다 커서 품 직원이 되어 다시 아이들을 길러냈고, 또 지금은 새롭게 자기세계를 펼쳐 나가는 사람이 되었으니 말야. 품의 20년 무게감은 상섭이 불어난 몸집의 무게랄까. 기분좋은 QX에서 2007년 당시 문화리더십센터를 만들었는데 정헌영 소장과 함께 잡았던 비전이 있었 어. ‘리더’를 기르는 센터가 아니라 ‘’리더를 기르는 리더‘를 걸러내는 센터를 만들자는 것 이었어. 근데 사실 그건 품의 모습이야. 품의 미래도 그렇겠지. 지금 품의 인상은 10대 문화 기획자들이 바글거리는 곳이야. 이들이 다 커서 어떤 멋진 일을 해내고 어떤 후배들을 길러 낼까. 한국의 문화기획 현장 중에서도 품은 이른바 동네문화기획자들을 기르는 전형 같구나.

무당

끝내기 전에 나에 대해서 좋은 얘기 한마디 해줘.

대뫙

너 스스로 인문학 공부가 부족하다고 느끼니까 그 공부하려고 나이 45에 동네 청소년

셋 꼬셔서 세 개와 심한기의 인문학교 만들었잖아. 자기가 공부하고 싶을 때 해야 하고, 남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자기가 공부하다 보면 절로 함께 하는 사람들이 공부하게 되니까. 큰 개 한 마리가 강아지 세 마리랑 학교건물도 없이 동네 돌아다니면서 잘 살아가는 방법 탐구하는 것 말야, 그거 참 좋았다. 난 그때 심한기가 말로만 하던 것을 제대로 실천한다는 느낌이 들 어 좋았다.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나가는 교육의 본질, 실천하면서 배우는 인생의 본질 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 면에서 앞서서 산을 오르는 심한기가 멋있고, 지금은 무늬만학교 같은 대안교육을 추구하면서 공교육도 포기하지 않아서 좋다. 무당

너도 정신 차리고 네팔 한번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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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대뫙

그냥 내가 있는 용산이라는 작은 우주에서 히말라야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말이 나와

서 하는 말인데, 네가 변해서 네팔 간 게 아니라 네팔에 가보면서 변하는 게 보이더라. 히말 라야에서 자기를 발견한 심한기와, 네팔의 주민들 속에서 사랑을 품게 된 품이 계속 나아가 는 것을 보고 싶다. 품의 지금 모습에 대해 끝으로 이거 당부하고 싶어. 열심히 사는 NGO 단체는 보배야. 저예산으로 독립적으로 살고, 정부지원보다 회원들의 모금으로 운영되는 곳, 그게 진정한 인디문화다. 좋은 일 펼치면서 당당하게 기부 받을 수 있는 곳, 그거 놓치지 마 라. 비록 언더문화로 남을지언정 그게 좋은 거다. 땅 위로 오르기보다 바로 세계에서 제일 높 은 산 오르면 되잖아.


청소년활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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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

두드리다 김옥순 | 김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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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품 | 김옥순

수원대학교 교양교직과 교수이다. <한국청소년문화 연구소>, <대통령청소년특별위원회> 등 현장 연구와 활동경험의 경험을 근거로 ‘아닌 건 아니다!’를 말 할 수 있는 당당함을 버리지 않고 있다. 품과의 인연 은 깊다. 늘 뒤에서 받쳐주고, 때려주고, 보듬어주는 엄마 같은 선배이며 스승이다.

품의 20년을 돌아보는 원고를 청탁받았다. 근데 속이 편치 않다. 왠지 글이 써질 것 같지 않 아 계속 미루다 드디어 독촉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작정하고 속이 편치 않은 이유부터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것은 마치 안락한 가정 배경을 가진 또래로부터 흠씬 두들겨 맞고 있는 쪽방촌 아이를 도 와주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던 사람이 가지는 불편함인 듯 했다.

그리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치열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지는 불 편함인 듯하기도 했다.

살다보면 『인연』이란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감지하게 되는 사건들과 만나게 된다. 1990년 대 어느 여름 안동 하회마을의 한 숙소에서 다 마르지 않은 점토인형들을 보게 되었다. 숙소의


낮은 담 위에 한 줄로 늘어선 점토인형들을 본 순간이 내가 처음으로 품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 숙소에 오전까지 머물렀던 팀들이 품의 여름 캠프 팀이었다는 걸 나는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날 오후 같은 숙소에서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는 청소년영어캠프를 하기 위해 짐 을 풀었다. 그리고 품과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에 근무하던 나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아는 것도 없으면서 지식이라는 무기를 들고 겁 없이 강의했던 그 시절, 강연 장소 어디에선가 심한기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품과 나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래서 인 연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내가 품을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 20주년 기념 인쇄물에 나의 글을 얹힌다는 것은 아무래도 내 속을 편치 않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원고 청탁서를 살펴보았다. 『청소년 활동이라는 영역에서 품의 실천과 가치 그리고 가능성과 과제』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쓰라는 주문이다. 나의 알량한 지식에 기초한 분석을 원하는 주문인데... 정직하게 말해서 나는 정말 아는 게 없고 지식은 더더욱 없다. 그래도 알 량한 지식에 기초한 나의 글이 지금 품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동안의 『방관』 이라는 빚을 조금이라도 청산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고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품은 정확하게 『품 청소년문화공동체』라는 공식 명칭을 지닌 단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품이 기획하고 실천한 청소년 활동은 청소년 문화 활동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 촉매 운동에 대한 글을 쓴 어거스탱 지라는 문화 활동의 목표는 “특정한 부분문화들의 자기표현을 증진시 키고 상호 소통매체들을 통해 그것들을 보다 보편적인 다른 부분문화들과 연관시키는 것을 목 표로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문화 활동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며,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기회의 제공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어거스탱 지라의 이와 같은 주장을 분석의 틀로 하여 살펴보면 품은 부분문화에 대한 고민 과 부분문화의 자기표현을 증진시키기 위해 참 많은 고민을 한 단체이다. 청소년 집단의 부 분 문화, 도봉구 지역사회의 부분 문화, 그리고 대한민국의 여타 부분문화 등등... 부분 문화 의 자기표현을 증진시키는 데 있어 그 어떤 단체도 해 낼 수 없다고 느껴지는 대단한 일들 을 참 많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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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그런데, 품의 활동 초기 나는 품의 활동이 부분 문화를 보다 보편적인 다른 부분 문화들과 연 관시키는 활동에는 조금 소홀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하였다. 물론 최근 들어 보편성과 특 수성에 대한 날카로운 논의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보편적인 다른 부분 문화가 무 엇을 의미하냐고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며 따진다면 나는 할 말이 적다. 왜냐하면 나도 잘 모 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분 문화의 특수성은 보편화된 몇 가지의 문화로 수렴되는 특성을 지닌다고 보는데, 품의 초기 활동은 부분 문화의 특수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보편문화 를 향한 수렴과정에는 의도적으로 무관심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최근 들어 품의 활동은 변하고 있다. 강북의 청소년 집단을 벗어나 보다 다양한 집단과 넓은 지역으로 그들의 활동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으며, 네팔이라는 국가로까지 자신의 활동 영역 을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20살이 가지고 있는 의미처럼...

과거의 품이 어린이처럼 동네 골목 놀이에 몰두하였다면, 성년이 되어가면서 품은 강북의 부 분 문화와 청소년의 문화를 아동집단, 청년 집단, 그리고 다른 지역, 다른 국가의 문화와 소 통함으로써 부분문화의 보편적 문화 수렴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품의 미래 가 정말 많이 궁금해진다. 앞으로 어떤 변신을 꾀할 것인지. 아마도 20살이 되도록 품이 경 험한 모든 것들은 이제 앞으로의 품이 나아갈 활동 방향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인으 로 작용할 것이라 보인다. 나의 경험과 품의 경험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내가 품의 활동방향 은 이렇게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스러운 행동일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품에게 향 후의 과제들을 제시함으로써 방향 설정에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는 것은 더 더욱 오만스러운 행동이 될 것이다.

품은 타인의 방향설정 없이도 자신의 방향을 잘 잡고 나아갈 것이라 여겨진다. 다만 여성으로 치면 꽃다운 방년 20세, 남자로 치면 약관 20세인 품은 이제부터 성인의 삶이 시작되는 중요 한 시기이기 때문에 그저 한 가지의 당부만 하고자 한다. 성인의 삶이 시작된 품에게 나는 현 장의 힘을 어떻게 학문의 힘과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당 부하고 싶다. 현장의 힘을 학문의 힘과 연결시킨다 함은 넘쳐나는 젊은이의 힘을 반관(反觀)에 쓰지 않고 주경존심(主敬存心)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에 쓰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다산 정약용은 그의 두 아들에게 젊음이 가져오는 병으로 반관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반관


이란 기존의 사고를 부정하는 시각으로 젊은 시절 자신도 반관의 병에 걸렸었음을 다음과 같 이 실토한다.

“젊은 마음으로 구속을 싫어하는 자들이 마침내 기거와 동작의 절도를 마음에 내키는 대로 한 다. 나 또한 예전에 이 병에 깊이 걸렸었다. 늙어서 뼈마디가 어근버근해서, 비록 후회하나 고 치기가 어렵다. 깊이 뉘우쳐 한탄할 뿐이다... 지난 번 너를 보니 단정 장중하고 엄숙한 기색 을 조금도 볼 수가 없었다... 세상에 멋대로 말하고 어지러이 보면서 주경존심할 수 있는 사 람은 없다”

나는 지난 20년 동안 품이 꿋꿋하게 지녀왔던 청소년문화에 대한 시각은 그 어떤 시각보다 도 가장 진보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학계에서 청소년의 문화를 하위문화, 반문화, 실험문화 등 등 다양하게 정의내리고 있을 때, 품은 현장에서 그저 묵묵히 청소년문화 그 자체를 인정하고 그 문화와 소통하려 노력했다. 다시 말해 품이 지난 20년간 기획하고 추진한 청소년 문화 활 동은 『청소년이 성인과 같은 문화가 아닌 것은 단순히 그들의 능력이 성인보다 못하기 때문 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 경험이 성인과 다르기 때문』이라는 진보적 사고에 기초하였었다고 본다. 그리고 품은 이런 청소년들이 자신의 부분 문화를 가장 유익하게 생산해 낼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진보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진보적인 시각은 이제 학문적 인 결실을 맺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나는 진보적 시각이란 반관을 통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반관의 자 세는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본다. 그러나 반관의 자세가 학문적 결실을 맺지 못하고 하 나의 습관으로만 자리 잡게 될 때 반관은 그저 잘난 척하는 건방이 된다. 반관은 타인에 대한 존경심을 지니고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될 때(主敬存心할 때) 그 힘이 발휘된다. 나는 품이 품의 주인 되는 길은 바로 자신의 경험을 학문으로 정리해 보는 길이 될 것이라 본다.

품이 20년을 지탱해온 것을 기적이라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운영도 빠듯 한 품에게 학문적 결실을 요구하는 내가 야속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품이니까 나는 이 일을 해내리라 본다. 품의 치열했던 삶이 기적을 만들었고, 그 기적은 이제 또 다른 희망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품 20

새로운 도약, 그 발판을

순천향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교수이다. ‘청소

준비 하시라!

년학’ 그리고 청소년활동과 연결된 이론과 현장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학자이며 실천가이다. 아 픔의 땅 팔레스타인의 모래언덕 위에 아이들을 위한 청소년수련관을 세운 장본인이다. 품이 태어나기 전

품의 20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 김 민

부터 인연을 맺었으며 20년 품의 역사에서 빠지지 않아야 할 동지이다.

20년. 날수로 따지면 7천3백일. 허~. 품이 벌써 20년이란다. 10주년 행사 때 신석호 선생*의 얘기로 축하의 글 모두(冒頭)로 삼은 적이 엊그제 같은데 다시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압축성 장한 한국사회에서 한 뜻으로 단체를 일구어 20년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을 터. 그 지난한 세 월, 여러 질곡을 헤쳐 오늘에 이르렀으니 마땅히 축하하고 축하받을 일이다.

돌이켜보면 당시 청소년계에 그럴듯한 후원자 없이 자생적인 단체를 만들어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일대 모험이었다. 당시 20대, 30대의 청소년단체 및 기관의 실무자들끼리 with youth, 또는 청소년 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일명 청사모)**을 만들어 현장 고민들을 나누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던 때에 심한기 선생의 모험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한편에선 오래 가지 못할 것이란 비관적 추측까지 난무했

* 품 심한기 선생의 ‘절친’이자 과거 필자가 유네스코 청년원 간사 시절, 유창식 화백과 더불어 열혈 자원봉사자로서 만나 지금껏 뜻 깊은 인연을 잇게 되었다. 품의 태동과도 밀접한 분.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으며 세상 만물에 대한 흥미와 간섭이 예사롭지 않다. ** 이후 이 모임들은 발전적으로 해체하여 청소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곧 청사모로 통합되었다. 초기 회장은 김종국 현 서울시립송파청 소년수련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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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기 선생은 당시에도 품의 오늘과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기회가 되는 대로 단체를 어 떻게 끌고 가야 하는지를 주변에 널리 묻고 답을 구했다. 한번은 중앙대 앞 모처에서 하태연 선생을 비롯해 20여명의 현장 활동가들이 오로지 품을 기억하는 이유로 모여 품의 앞날에 대 해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늦게까지 학교에 있다가 사회 첫발을 내딛은 지 2-3년밖에 안 된 사회 초년생이었던 그 때의 필자로서는 지금도 낯설지만 선연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밖 에도 필자의 청년원 간사시절, 수많은 밤을 그런 대화들로 새운 적이 있었고 청사모 정기모임 에도 의제로 다룬 바 있다. 그런 모임에는 지금의 청소년계에 전설같이 내려오는 고 강대근* 선생님을 비롯하여 이철위, 손춘석, 전성민, 이선재 등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기라성 같은 선 생님들도 동참하였고 오늘의 청소년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여러 분들도 함께 하였다. 유 창식** 화백을 비롯하여 김종국, 이준호, 양금석, 박판기, 신석호 선생은 예나 지금이나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지였으며 전명기, 이원경, 박상영, 이국진, 우수명, 표경흠, 강종안, 김태황 등 일 일이 열거할 수 없는 많은 이들이 품의 행사에 참여하여 힘을 보탰다. 학계에서도 광주대 이 용교 교수를 비롯하여 경기대 이광호, 수원대 김옥순, 전 전남대 전효관 교수 등도 품의 일이 라면 발 벗고 나섰다. 무엇보다 품이 배출한 탁월하고 유능한 일꾼들은 오늘의 품을 있게 한 가장 강력한 인적 토대였다. 방명진, 김제영, 김보경, 최윤희, 심재왕, 여승현, 황선미, 김형미, 정민기, 강명숙, 김선희, 나하나 등 일일이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일꾼들의 역사가 오늘의 품 을 이룬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품으로 인해 성장한 아이들은 청소년활동의 ‘선순환 구조’를 여실히 보여준 과정이자 결과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품은 심한기 선생의 역사(history)가 아니라 이들 모두가 함께 한 모두의 역사(their-story)인 셈이다.

이처럼 품은 수많은 이들의 관심과 노력이 보태져 오늘에 이르렀다. 개인적으로 일암재단에서 의 독립은 품의 자생적 토대를 마련한, 그래서 오늘의 품을 있게 한 첫 번째 전환점이었다. 이 어 품청소년놀이문화연구소란 첫 타이틀에서 품청소년문화공동체란 이름으로 개명한 것은 단 체의 비전을 이름으로 각인시킨 두 번째 전환점이었다. 이제 20년의 세월을 뒤에 두고 어쩌면 품이 당면한 세 번째 전환점을 모색할 때가 된 것 같다. 품과 같이 20년을 함께 한 이로써 품의

지 선 가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물론이고 청소년계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신 고 강대근 선생님은 오늘의 심한기 선생을 있게 한 정신적 스승이자 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 선생 본인도 그런 사실을 여러 차례 토로한 바 있다. 품의 역사에서 강 선생님의 자취를 찾기란 쉽다. 생님은 품의 네팔 해피 빌리지 프로젝트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여주셨으며 품의 활동에도 흔쾌히 함께 하셨다. 아마 20년의 품 생일에 장 많은 기쁨과 축하를 하실 분을 꼽으라면 단연, 강. 대. 근. 선생님이시리라. ** 언제나 도인같은 풍모로 자칭 그리고 지금은 타칭조차 ‘자유인’인 유화백은 품의 로고를 만들어준 장본인. 외모는 50대이지만 대화를 누어보면 곧 20대임을 알 수 있는 세월의 거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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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약을 위해 몇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품의 역사에 천착하여 또 다른 제2의 품, 제3의 품이 나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지 원해 주었으면 한다. 품이 새겨 놓은 적지 않은 발걸음은 많은 이들의 도움과 지원에 의해 이 루어졌다. 그들의 꿈과 희망, 노력과 지원이 고스란히 담긴 오늘의 품이 새로운 또 다른 품들 을 만들어내는 인큐베이터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마침 품을 거쳐 간 많은 이들(일꾼, 청 소년들)이 각계, 각층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품을 모태로 품의 정신을 잇는 이들의 앞날에 품이 거쳐야 했던 많은 시행착오, 실패와 성공의 역사를 보태주었으면 한다. 이 번 20년사를 기념하는 자료와 책자들 역시 이들에겐 귀한 매뉴얼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향 에서 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이에 연유한다. 각별히 소망하건대, 부박하기만 한 청소년계의 귀감이 될 수 있는 단체로 품이 우뚝 서기를 바라며 그에 못잖은 역할과 노력을 다하기를 기 대하고 또 기대한다. 즉, 향후에는 품만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20년의 성상 앞에서 함께 노 력하고 지원한 사람들과 단체들에게 귀한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고 널리 퍼뜨리는 청소년계의 전도자 역할도 주요하게 다루었으면 한다.

둘째, 청소년활동과 정책발전에 대한 집중적인 견인차의 역할을 보다 강화하였으면 한다. 오 해하시지 마라. 지금껏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청소년축제 ‘노올자’, 국제청소년 협력활동 ‘해피 빌리지 프로젝트’ 등을 통해 품은 그간 선도적인 활동을 견인해 온 단체로서 그 역할을 다해 왔다. 다만 현장 중심의 활동에서 정책 중심의 견인차 역할까지 수행하기 위 한, 모름지기 20년의 세월을 맞이한 단체답게 단체 활동의 중심(혹은 초점)에 균형을 맞춰달 란 부탁이다. 품 하면 생각나는 것이 평면의 균열을 통해 틈을 만들어 전체를 흔드는 청소년활 동의 게릴라였다고 한다면, 앞으론 공동체의 진화를 위해 진지하게 염려하는 구심의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는 단체였으면 하는 소망이다. 개별 단위의 발전과 변화가 아닌 전체 역사의 진화 와 발전까지 고려하는 보다 적극적인 역할까지 이제 고려할 때가 된 것이다.

셋째, 어느 단체나 마찬가지지만 안정적인 재원확보(fund raising)는 언제나 고민의 핵심이 다. 그간 품은 주주활동을 통해 자발적 기부를 통한 정기적인 재원 확보와 함께 다양한 기관과 의 협력활동, 정부 및 공공기관 프로젝트와의 연계, 기업의 후원 등으로 활동의 토대를 마련해 왔다. 실제로 품 역시 20년의 세월을 맞이하며 내내 가졌던 고민 중 하나는 공간의 확보였으며 동시에 안정적으로 단체의 활동을 지속 가능케 하는 재원의 확보였다. 마침 최근 들어 공간을


확보하게 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재원의 확보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품이 지금까지의 20년을 ‘버텨 왔다’면 앞으로 품 이 흔들리지 않고 당당히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버티는’ 형국에서 벗어나 단단 한 반석 위에 올라서야 한다. 이 반석을 마련하는 일이 구차하게 돈을 구하는 것이어서 지금껏 피해왔다면 - 실제로 그러한지에 대해선 확신할 수 없지만 - 이젠 당당히 의제로 삼아 지혜롭 게 해결하고 넘어갈 일이다. 이 대목에서 고 강대근 선생님이 20년 전 필자에게 건넨 아이디 어가 있다. 소위 백인위원회라는 것인데 백 사람이 백만 원을 거두면 일억이란 거금이 된다. 이 돈이라면 능히 어느 귀한 활동의 종자돈(seed money)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품의 20년을 기념하고 또 다른 20년, 30년을 예비하기 위해 백인위원회를 꾸려낼 좋은 기회가 이 제 온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품의 역사와 활동에 동의하는 이들 모두 재원확보를 위한 다 양한 지혜를 모으는 일에 적극 동참시켜 미래의 반석을 꿋꿋이 세우도록 하자.

단거리를 뛰기 위해서는 순발력과 그에 따른 근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중장거리를 달 리기 위해서는 단거리와는 다른 힘과 근력, 그리고 힘의 배분 등이 필요하다. 20년의 세월이 단거리는 아니겠지만 앞으로 놓여있는 끝없는 미래와 견주어 보면 응당 짧은 거리라 하겠다. 20년을 축하하면서 지금과는 다른 힘과 근력,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 다른 힘의 배분을 강조 하는 것은 30년의 품, 50년의 품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서다. 품이 지닌 힘과 근력이 우 수했음을 인정하고 축하하면서도 또 다른 힘과 근력이 붙기를 희망하고 그 힘의 배분을 어찌 할지 고민하는 것은 바로 이에 연유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사족 하나 더. 심한기 선생이 평소 산을 좋아하고 또 마침 네팔 해피 빌리지 프로젝트를 통해 다리 근육도 보통이 아닐 터인데 괜한 걱정이 아닌가 싶다. 아무쪼록 20년, 대단하고 대단하다. 품의 20년을 진심으로 축하하 며 “새로운 도약, 그 발판을 꼭 준비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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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리다 김영삼 | 이치열


품이 만든 교육의 오래된 새길...

이름으로는 오해될 수도 있지만 세상에 이런 교 사는 없다. 지금은 서울교육청에 장학사로 일 하고 있지만 그는 세상이 닮아봐야 할 진정한 교사로서의 아이콘이다. 함부로 가르치려 하지

| 김영삼

않으며 타인과 다른 시선들을 존중하는 태도 와 교육이 가야할 길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 다. 김영삼의 삶 자체가 품에게는 배움이며 에 너지이다.

공교육? 거창하고 무겁다. 국가가 관여하는 혹은 국가에게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청소년기에 누구나 제공받는 교육? 사교육과 대비되면 뭔가 그 의미가 좀 더 분명해지는 것 같긴 한데...... 근데 좀 엉뚱하게 묻자. 품에서도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공교육이여 사교육이여??

우리는 왜 교육을 하는 것일까? 답이 너무 다양할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보자. 교육을 통 해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성장과 성숙에 대한 기대, 삶에 대한 통찰력이 깊어지는 것, 스스 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그렇다. 변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 변화를 확인하고자 하 는 것. 교육이라는 것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들이 작든 크든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소망들이 다. 그런데 청소년기의 특징 때문일까 나의 무능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학교교육의 한계 때문 일까? 지난 20여년의 교사 생활 동안 나의 이러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장면을 목격하거나 직접 경험한 것은 불과 몇 번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우호 선린의 따뜻한 관계 맺기는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변화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한 상황으로 진전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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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것이 늘 고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품과 심한기를 만났다. 사실 품 만 만난 것이 아니었고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이야기를 나눴고 함께 공감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논의했다. 이야기가 나눠지기도 했고 모아지기도 했지만 분명한 몇 가지는 함께 동의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 자 기 스스로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야 하고 어른들이 만든 경쟁의 사다리를 걷어차야 한다는 것. 그런데 이게 막상 실천하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또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등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말의 성찬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적 실천이든 혹은 정책 적 시도이든 말을 따라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여 흐지부지 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품은 지 향과 가치를 붙들고 이를 현실화시키는 어처구니없는 뚝심을 보여주었고 길 없는 곳에 길을 만드는 경이로움을 선사하였다.

품이 10여년간 이끌어 왔던 서울시 청소년 연극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입상 경쟁을 통한 동 기 부여 없이 그저 자신들이 만든 연극을 공연할 수 있는 장을 펼쳐주면서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모습은 지지와 지원이 최고의 교육이고 경쟁은 그저 목표와 하는 것이지 주변 친구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현실에서 구현해 준 아름다운 실천이었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에서 동아리 한마당을 고민하면서 품의 이러한 성과와 접근을 자기 것으로 하고 자하는 것만 봐도 품의 고민과 실천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더 발칙한 것은 10대와 마을 만들기를 하겠다고 덤빈 것이었다. 학교가 아닌 곳에서 10대들과 뭔가를 도모한다? 그것도 동네(마을)에서 어떻게 하겠다고? 10여년전에 이런 발칙한 생각과 기획, 실천을 도모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10대는 학 생에 불과하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은 그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모든 것들을 포기하거나 자기 생활을 유보하도록 강요받는 것이 너무 당연한 시간들로 동네에 나와 놀 시간이란 상상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 이 부분은 지금까지도 여전한 현실이다. 그래서 10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제공해주려는 노력에 집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청소년들이 자기 삶의 주 인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말을 달고 살지만 막상 가정에서의 내 아이, 학교에서의 우리 아이들 에게는 약간의 규격화된 자기 발언 혹은 제한된 실천의 여지만 주어질 뿐 모든 것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대로 움직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나마 일정한 의미를 찾을 기회를 가진 소수 아이들만 약간의 생동감을 가진 생활을 할 뿐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기 삶에 대한 무기력과 무


관심으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10대들과 마을 만들기를 한다??? 사 실 학생들과 뭔가를 하겠다고 기획하고 시도한 실천들은 계속 있어 왔다. 그러나 그러한 실 천은 시도로서의 의미를 확인하고 일정 기간이 끝나면 한계와 전망에 대한 평가를 한 후 끝 마쳐지곤 했다. 그런 실천조차 없는 것보다는 늘 의미 있는 주목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함 께했던 학생들은 사업이 끝난 후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사업을 기획했던 사람들도 함께했 던 학생들도 어쩌면 그 모습이 현재 우리 사회 청소년들의 삶의 조건이 갖는 한계 속에서 어 쩌면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품에 가면 늘 만나게 되는 아이들 이 있었다. 요놈들은 뭐지???

2010년 품이 사는 동네의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공간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사실 소식을 들으 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아이들이 자기 공간을 갖겠다고 나서는 것이 아이들 스스로의 필요성 과 동력을 가지고 한 것인지 심00 두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는지. 딱 여기까지였다. 품이 사 는 동네 아이들에 대한 몰이해, 아니 사업에 동원된 아이들이 아니라 자기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는 아이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무시(무지),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도무지 그런 경 험의 세계를 가져보지 못한 사람의 인식의 한계. 자기 공간이 아닌 곳은 곧 황폐화될 수밖에 없다. 만드는 것이 목적인 곳은 반드시 그렇다. 그러나 그곳은 아이들의 삶의 공간이었다. 학 교를 비롯해 널려있는 많은 공간들이 있지만 그곳은 아이들의 삶의 공간이 아니다. 아이들을 위해 제공되었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그곳을 벗어나려고만 한다. 부끄럽지만 학교는 그런 공간 이다. 그런데 정말 코딱지만한 지하 공간은 아이들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복닥거리는 삶의 공간이고 정말 많은 일들이 벌이는 가능성의 공간으로 에너지가 넘쳐난다. 아이들에게는 정말 독립된 공간이 필요했고 아이들은 또 하나의 날개를 달게 되었다.

아이들이 복닥거리는 공간은 그 자체로 요즘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소중한 것이지만 뭔가 좀 부족하다. 만일 아이들끼리만 소통하고 있다면 십대와 마을 만들기는 십대를 위한 혹은 십대들 만을 위한 마을 만들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품이 사는 마을에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기이하게 소통을 하고 있다. 수평적 소통에 목숨을 거는 청소년기를 지내고 있는 아이들이 어 른들과의 수직적 소통도 너무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형 동생, 누나 언니로 자기들의 삶을 함께 살고 있을 뿐 아니라 동네 어른들과도 뭔가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 재미있다. 그래서 정말 ‘마을’이라는 것이 실감나는 것이다. 뭐랄까 약간은 시기가 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것은 아이들의 당당한 모습 못지않게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도 당당하기 그지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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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그렇다, 아이들이 당당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성장을 하게 되면 그런 아이 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도 자기 삶에서 당당해질 수 있음을 품이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 을 통해 우리는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로 국한하지 않더라도 교육은 늘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힘과 이웃과 더불어 사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다. 부끄럽지만 학교는 이 부분에서 철저히 실패하고 있다. 교육은 있으나 성장과 성숙은 없고 파편화된 개인의 무차별적인 경쟁은 있으나 협력하고 돕는 실천은 구호로써만 존재할 뿐이다. 사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은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 역시 무차별적인 승자독식의 경쟁에 내몰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삶을 겨우 견뎌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어른들이 사회적 구조를 바꾸어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녀가 소수의 승자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투자에 몰입하거나 자기 자녀가 좀 더 쉽게 승자가 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가지고 장난치 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구조적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학교는 아이 들은 생명력 없는 창백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품에는 활기 넘치는 아이들이 있다. 잠시 특정 시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있다. 이건 또 뭔가?

갖가지 모습을 가졌지만 늘 유쾌하고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동네 아이들, 적어도 품 이 사는 동네의 아이들은 ‘몰라요’ ‘그냥요’ 밖에는 할 말이 없는 것 같은 무기력한 아이들 이 아니다. 이러한 생명력의 근원은 무엇일까? 학교 교육에 몸담고 있으면서 늘 허전하고 안 타까운 몇 가지를 품은 20년의 활동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전부를 가지려 하는 학교 교육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전부를 가져야 충만한 것이 아니라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집중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충분히 경험할 때 비로 소, 자기 모습을 갖춰 나간다. 품은 아이들에게 유보적으로 이것저것을 말하지 않는다. 분명 한 자기 목소리에 충실하게 답하도록 안내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누군가 만들어준 현실이 아 닌 자기 앞에 놓여있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현실을 직면한 아이들만이 성장과 성숙의 경 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충분히 존중받고 사랑받고 있다. 아이들을 존중한다는 것은 책임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랑 때문에 아이들이 멍들어 간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사랑이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는 사랑을


일방적으로 퍼붓기 때문이다. 품은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성찰하게 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요청하는 도움에 반응한다. 해결은 궁극적으로 자기가 해야 하는 것일 뿐이 다. 그런데 학교는 늘 준비된 답안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해결책까지 이미 가지고 있 는 것이다. 따라서 기대했던 요청이 오면 끝까지 책임져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갈등과 외면의 충돌이 나타나게 된다. 그런면에서 품은 책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함께 있어주는 것, 기다려 주는 것, 공감하고 격려해 주는 것, 그러나 해결의 주체는 바 로 자신임을 분명히 밝히는 것....

품은 지난 10년 수많은 실패와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의 근본적 가치가 실현 가능한 것임을 동네에서 증명해 냈다. 성장과 성숙이 있는 유쾌하고 생기 넘치는 아이들의 삶, 동네 주민들과 아이들의 아름다운 간섭이 있는 소통, 이러한 모습이 아주 잠시 몇몇 프로그램 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님을 10년의 시간 속에서 보여 준 것이다. 품이 이렇게 해 냈으니 그럼 이제 모두가 할 수 있도록 하자?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경 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희망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 르는 사람에게, 속도에서 벗어나 가치와 지향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품이 있음을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마음의 안식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에게 품은 미래로 향하는 길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현재일 수 있다. 또 누구에게는 과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사람 사는 세상의 근본적 고민은 다르지 않고 그 해결 방법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을 주고 시간을 함 께하고 손을 잡아주는 일이다. 품은 우리 교육에게 이 근본을 회복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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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교육의 길을 모색하는 ‘품’에게 | 이치열

대안교육연대에서 땀 흘리고 있다. 대단히 명 쾌하며 대단히 지혜로운 교육운동가이다. 유리 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방법보다는 가치 있 는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으로부터 명쾌하며 지 혜롭다. 품과의 만남은 짧지만 교육의 가치를 대하는 사유와 태도는 상호적 아바타이다. 품 이 꿈꾸고 있는 대안적 대안학교의 소중한 멘 토이다.

‘품’의 20년은 우리 사회 교육적 상상력의 풍성함에 크게 기여한 역사라고 봅니다. 제가 처음 ‘품’과 인연을 맺은 건 2011년 봄 ‘세 개’의 <우리는 인문학교다>라는 묵직하고 두툼한 책의 표지에 들어갈 코멘트를 좀 써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부터입니다. 교육 판에서 구르는지라 소 문을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잘은 알지 못했던 ‘품’에 대해 짧은 코멘트 몇 줄을 쓰다가 악연 (?)이 시작된 셈이죠. 제가 썼던 코멘트를 다시 꺼내 소개해 봅니다. 2011년 대한민국 청소년, 미래 내 삶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비루한 일상... 뭔가 탈출을 기도할 비상구가 필요하다. 가끔 반항하고 객기도 부려 보지만 두려움의 구심력이 또다시 작동한다. 여전히 근거도 없는 두려움의 매트릭스에 갇혀 있다. 이 사실을 아예 모르거나 혹은 알면서도 속수무책이거나...


여기에 무모하리만치 용감한 인문학 전사들이 있다. 자기를 똑바로 바라보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내적인 힘, 타자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정신적인 힘, 이 기만의 매트릭스를 깨고 나갈 수 있는 통찰의 ‘빨간약’을 그들은 인문학에서 찾았다. 그것도 고루한 골방의 텍스트가 아닌 일상의 시공간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때로는 생각지도 못했던 카운터펀치를 맞고 그로기상태에서 헤매기도 했지만, They did it! 손바닥 부르트도록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_ <우리는 인문학이다> 표지 글

작년부터 시작된 ‘무늬만학교’라는 이름은 재미있기도 하고,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무엇을 하고자 하는 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안교육운동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화두가 바로 이 ‘근대 학교제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하는 점이거든요. 미셀 푸코 는 위계적 감시시스템인 파놉티콘(Panopticon)을 말하면서 군대, 감옥, 병원, 학교 등도 같 은 규범적 원리에 의해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지요. 이러한 근대 학교교육에는 근본적 으로 비판보다는 순종이, 협력보다는 경쟁이, 창의보다는 몰개성이, 자유보다는 억압의 원리가 관철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근대 학교제도를 넘어서 누구든 자유롭게 배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대안교육이 꿈꾸는 교육의 모습입니다. ‘학교’라는 이름을 쓰되 전혀 학교스럽지 않은 자유로운 배움터. 이것이 무늬만학교가 추구하는 교육의 모습일 겁니다. 형식적인 측면의 학교 틀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에 있어서의 가치지향에 있어서도 말입니다.

현재 주말학교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무늬만학교가 좀 더 일상적인 교육과정의 영역을 넓 혀가는 방향의 고민을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차제에 먼저 대안교육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입장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몇 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주체 역량을 객관화해 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무늬만학교는 문화, 인문학, 여행 과 국제연대 등의 영역에서 좋은 경험을 가지고 있지요.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 지, 우리 마을에서 가지고 있는 교육역량과 중첩되지는 않는지, 혹은 비어있어서 요청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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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이 무엇인지 등에 관해 살펴보는 작업을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해 보시길 권합니다. 가령 삼각산 재미난 중등과정에서 잘하고 있는 영역을 굳이 할 필요는 없겠지요.

둘째로, 사이 배움터로서의 정체성을 지향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제도교육과 대안교육 사이 에서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에서 진로문제를 놓고 헤매고 있는 친구 들, 청소년과 청년 사이에서 진로와 삶의 문제를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 는 배움터를 구상해 볼 수 있겠지요. 제도교육의 ‘6-3-3-4학제’의 관성으로부터 자유롭게, 필 요에 따라서 6개월짜리부터 1년 혹은 2년 코스 등으로 다양한 교육과정을 구성해 볼 수 있 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셋째로, 지역사회의 소외된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립교육공동체였으면 합니다. 그 동안의 활동 도 주로 소외 청소년들과 함께해 왔고 앞으로도 그 정체성에 변함이 없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어려운 얘기이긴 합니다만 경제적으로도 자립하는 교육공동체였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의 자 립의 의미는 자본으로부터의 자립을 포함하는 얘깁니다. 특정한 재벌기업 등에 의존하지 않으 면서 공공적인 지원을 만들어 간다든지, 지역주민의 후원을 폭넓게 조직한다든지, 배움터 자 체의 노동을 통한 경제적 자립도를 지속적으로 높여나가기 위한 기획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백이 있는 마을 수준의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실천해 봤으면 합니다. 지역은 삶 의 터전이자 세상으로 통하는 창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고, 자고, 영위하는 지역의 일상 이 구체적인 교육과정으로 들어와 주어야 합니다. 구태여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될, 혹 은 지역의 구체적인 실재를 간과하고 추상적인 교육과정을 수행하는 시행착오를 처음부터 줄 여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의욕이 넘친 나머지 너무 촘촘한 교육과정을 짜고 서 거기에 발목이 잡히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했으면 합니다. 유연함과 여백이 있어서 누구 나 참여가 가능하도록 열려있고, 상황마다 시행착오를 수정 보완해 나가도록 처음부터 원칙 을 세워갔으면 합니다.

글을 써놓고 보니 못 다한 얘기들이 너무 많네요. 기회 있을 때마다 의견을 나눴으면 합니다. 암튼 20년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새로운 10년의 비전을 만들어 가는 ‘품’의 발걸음에 경의와 찬사를 보냅니다. 아무쪼록 우리사회 교육과 지역을 살리는 길에 든든한 마중물 역할이 되는 ‘품’이 되길 기원합니다.


대안적 엔지오 활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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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리다 이선재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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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네팔에 ‘변화의 시나리오’를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못을 박을 것 같았지 만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고 ‘자유로운 털보’ 로 퇴직을 했다. 라오스 푸딘뎅의 귀신이 되기

쓴다.

전부터 ‘털보의 까칠함은 전 지구적으로 유명 하다.’ 라고 말하고 싶다. 수동적 자원봉사자가

| 이선재

아닌 상호적 자원활동가라고 하는 국제활동의 뼈 있는 개념을 전도했다. 품과의 인연은 짧지 않지만 여전히 살갑지는 않다. 그래도 털보 이 선재의 사유와 실천철학은 품이 배우고 따라야 할 모델이기도 하다.

품에서 연락이 왔다. 올해 20년이 되었고 기념책자를 발간하는데, 나한테도 글을 써달라고 한 다. 그런데 제목이 무척 어렵다. ‘대안적 엔지오 활동의 문을 두드리다’

이 제목을 보면 지금 품이 네팔에서 하고 있는 활동을 스스로 ‘대안적’인 ‘엔지오’ 활동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문이 생긴다. 왜 대안적이라고 했을까? 지금 품의 활동과는 다른 뭔가 새로운 방향과 내용을 찾고 싶다는 것인지? 아니면 네팔이라는 외국의 활동 자체가 이 미 한국에서는 대안적이라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네팔에서 다른 단체들이 하는 방식과는 다른 접근을 하겠다는 의미인지?

왜 ‘엔지오’ 활동을 강조했을까? 한국에서 먼 나라인 네팔에서 뭔가를 한다면 ‘우리’ 단체를 중 심으로 생각하기에 앞서 ‘그곳’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20년 기념책자에 실릴 예정인 여러 글이


“마을의 문을 두드리다, 사람의 문을 두드리다. 교육의 문을 두드리다....” 이런 류의 제목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뭔가 다르다. 그렇다면 품은 네팔에 가서 ‘어떤’ 문을 두드리고 있을까?

나는 왜 품이 네팔 활동을 시작했는지 잘 모른다. 어느 날 품의 대표인 심한기 선생이 히말라 야의 무당이 되었다는, 아니 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계기가 되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그렇다면 괜히 선무당이 되어 사람 잡겠다고 네팔의 청년과 마을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의 문’을 두드리려고 하는데 그게 참 어려운가 보다... 하하

품의 네팔 활동에 대해 간간히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품의 활동지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곳의 활동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우수명의 「네 팔 품의 국제 지역사회복지 실천 사례 연구 - 베시마을의 ‘행복한 마을만들기’를 중심으로」를 읽었다. 그리고 심선생이 출판을 준비하고 있는 자신의 원고를 보내줘서 그것도 같이 읽었다.

우수명의 논문과 심선생의 글에 이미 지난 8년간의 네팔 활동이 아주 자세히 나와 있고, 그 동안의 어려움, 실패, 그리고 새로운 도전이 상세히 설명되어 나와 있다. 다 알고 있으면서 도 대체 나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라는 거야?

나한테 이 글을 부탁한 것은 내가 유네스코한국위원회라는 곳에서 오래 일했으니 국제 활동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보다도 내가 10년이 넘도록 라오스의 푸딘 댕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변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변화의 시나리오’는 아름다운재단이 하고 있는 풀뿌리, NGO 지원사업의 이름이다. 품의 네 팔 프로그램과 아반(AVAN)의 라오스 프로그램이 2008년부터 3년간 이 사업의 지원을 받았 다. 네팔과 라오스에서 지역사회의 변화를 만들고 있다고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동지이고, 남들이 하지 않았던 일을 하는 개척자이기도 하다. 참고로 라오스 푸딘댕 프로그램은 이제 12년차를 맞고 있다. 그 동안 푸딘댕에서 일어났던 일 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11년 전에 만났던 꼬맹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청년이 되고, 청소년센 터의 직원이 돼서 스스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국제개발협력, 해외원조, 국제자원활동이 한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제는 청소년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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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관, 사회복지 기관들도 개발도상국에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돕고, 그 일을 위해 한국의 청소년들을 보낸다고 아우성을 친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이 단체나 기관 내부의 충분한 토론 과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부의 요청이나, 분위기에 편승해서 시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 주 비판적으로 보면, 국제활동, 국제자원활동, 국제개발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우리도 일 단 하고 보자는 식이다.

이런 점에서, 품은 유행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일을 벌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청소 년 분야에서는 자연스럽게 품의 활동이 사례가 되고 있다. 품의 활동이 성공 사례든 실패 사 례든 모두 품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8년 간의 품의 네팔 프로그램에 대해 이미 품 내외부의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새삼스럽게 무엇인가 덧붙이기도 망설여진다. 현장을 잘 모르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 전, 품이 네팔 프로그램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라 오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누었던 이야기를 상기해보는 것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품이 네팔에 서 했던 좋은 활동들은 이미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주로 의문이 나는 것들을 적 어본다. 이 이야기들은 국제 활동을 하려는 다른 단체들에게도 유용할 것이다.

내가 가장 강조한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작하고, 한번 시작하면 오랫동안 할 거라고 생 각해라”였다. 품의 식구들이 지금도 꾸준히 네팔을 오가는 것을 보면 이것은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10년, 20년은 더 하지 않을까?

두 번째는 “네팔과 한국이 동등해야 한다.”였다. 한국이 좀 더 잘 산다고 그 사람들을 무시하 거나, 무조건 돕는다는 시혜적 관점으로 일을 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품이 지역에서 청소년 들과 친구로서 평등하게 만나고 있었기 때문에 네팔에서도 사람들을 만나면 그렇게 할 거라 고 생각해서 이 부분은 걱정하지 않았다.

세 번째는 “지역 중심으로 일을 해라”였다. 이것도 쉽게 할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품이 서울의 변두리에 자리를 잡고 그 지역의 청소년들과 의미 있는 활동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 서 당연히 네팔에서도 어느 작은 동네에 들어가서 활동할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시내에 사무 실을 먼저 만들었다고 한다. 라오스에서는 활동을 시작한지 7년이 지나서야 사무실이 생겼다.


네 번째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지역사회의 사람을 키워라”였다. 역시 품이 한국에서 하고 있는 일이다. 품이 돈도 없고, 사람도 많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천천히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내 예상보다 빠르게 이루어진 것이 있다. 네팔 청년의 한국초청이다. 네팔 청년을 한국에 초청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외부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았을 것이 다. 라오스는 8년이 지나서야, 라오 청년을 한국에 초청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상한 나라’ 한국에 오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어떻게 공평하게 사람을 뽑 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질시하지 않을까? 한국에 와서 ‘빨리빨리’만 배우고 가지 않을까? 괜히 헛바람만 드는 것은 아닐까? 이런 문제들을 생각하고 대비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섯째는 “한국 것으로 채우지 말고, 공간을 남겨두어야 한다.”였다. 빈 공간이 있어야만 네팔 의 문화, 가치, 지혜, 사람이 그 곳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품이 활동 초기에 했던 문화교류 프로그램이 시혜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의 좋은 것, 잘하는 것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규모가 작은 품이 이렇게 네팔에서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다. 해외 활동은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그 활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품이 작은 조직이라 는 것은 단점도 있지만 좋은 점도 있다. 예를 들면, 품은 초기 활동을 평가하여 활동 거점을 도시에서 시골로 옮겼다. 그리고 ‘베시 마을’에 집중해서 마을 만들기라는 변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이 정도면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는 훌륭한 일이다. 과오와 실패를 빨리 깨닫고 바로 제대로 된 길로 방향을 바꿨으니까. 정부나 ‘큰’ 단체들은 이런 반성을 잘 하지 않는다.

국제활동, 국제협력은 국내와 별개의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의 활동이 그대로 연장되는 것일 뿐이다. 내가, 우리가 해외로 가고 싶다면 바로 ‘여기’에서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를 바라보고 시작해야 한다. 청소년을 사업 ‘대상’으로 보았다면 그 나라에 가서도 그렇게 할 것이고, 여기서도 ‘사진찍기’에 관심이 많았다면 거기에서도 그렇게 해서 자기 사업 홍보만 열심히 할 것이다.

우리가 품의 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품과 같이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오랫동안 활 동했던 단체도 국제 활동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 일이 그렇게 쉽지 않 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 지금도 ‘변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품의 노력과, 좋은 사례를 보여주는 용기와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품의 20주년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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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품에 반한 세 가지 이유와

오마이뉴스 기자이다. 거침없이 긁어대는 진실 에 여럿 죽었다고 한다. 지금도 끝나지 않는 제

세 가지 기대 | 이주빈

주 강정마을의 이야기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 라’를 읽어보면 그의 삶과 일상이 보여진다. 무 당이 주선하는 ‘오~히말라야’를 두 번이나 참 가했고 품이 진행한 ‘한-네팔 문화예술교육 워 크숍’에도 함께 했었다. 그의 무기는 ‘볼펜’이 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에 품어야 할 따뜻함은 이주빈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건물’ 보다는 ‘사람’

직업이 기자다 보니 ‘현장’을 많이 접한다. 현장을 준비하는 사람을 만 나기도 하고, 현장을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현장을 다녀온 사람의 이 야기를 듣기도 한다. 뉴스는 이처럼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지난 현장’

에서 나오기도 하고, 아직은 A4용지에 계획으로만 ‘그려진 현장’에서 움트기도 하고, 날선 말 과 몸짓들이 충돌하는 ‘현장 속 현장’에서 전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뉴스인 까닭은 그 소식을 접하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즉 뉴스 생산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 모든 것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지만 뉴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그 어느 것 하나 새롭지 않은 소식이 없다. 뉴스(news), 새로운 소식이란 그런 것이다. 품과 나와의 첫 대면 또한 현장과 기자의 만남이었다. 물론 처음에 나는 우연한 인연으로 참여 하게 된 품의 ‘오~히말라야’를 통해 기자생활로 지친 마음과 몸을 쉬게 하고 싶을 뿐이었다.


한국에 청소년문화공동체 운동을 20년 가까이-그 당시엔!- 하고 있는 사람과 단체가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겐 큰 ‘뉴스거리’였다. 또 내로라하는 산악인들만 오르는 줄 알았던 히말라야를 ‘동네 뒷산 오를 힘만 있는’ 평범한 이들이 여럿이 함께 걷는다는 것 자체가 뉴스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네팔에서 돌아오자마자 랑탕히말라야 이야기를 몇 차례 연재했다. 그리고 내 발로 찾아가 심한기 대표를 인터뷰했다. 인연이 취재현장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해본 이들 은 안다. 그 황홀한 경험이 얼마나 기자 자신의 심장을 벅차게 만드는지.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때의 가슴 벅참은 시작이었다. 그해 5월, 한국-네팔청년문화실천워크숍의 일원으로 다시 네 팔을 찾았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진행됐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이 ‘네팔의 교사 연 수 프로그램’이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2008년 당시에 한국인들은 네팔에 학교 짓는 일을 유행처럼 하고 있었다. 공중파 방송사 아침 프로그램은 이 소식을 선행과 미담 사례 중계하듯 연달아 내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들었던 생각이 ‘저 많은 학교에 학생들은 다 채워지는 걸까, 보니까 학용품도 부 족한 것 같은데 건물만 지으면 되나, 건물은 지으면 되고 학생은 모으면 되지만 가르칠 교사 는 있나, 그 교사는 실력이 좋은 분일까’였다. 유료였던 ‘교사 연수 프로그램’에 네팔의 현직 교사들이 많이 참가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교육의 질에 대한 관심이 네팔 교사들에 게 높았던 것이다. 심한기 대표는 “학교 하나 짓는 것보다 교사 한 명에게 새로운 교수방법을 하나 더 가르치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제와 고백하지만 이것이 내가 품에 반한 첫 번 째 이유였다.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에 작은 자극을 주고 변화를 기대했던 품의 활동은 결국 건물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오래된 명제를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이었다. 나는 품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 역할을 오랫동안 해주었으면 한다. 이것이 내가 첫 번째로 품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원조’가 아닌 ‘연대’

그러니까 2008년 5월이었다. 네팔 엔지오 품 활동가였던 하니씨의 안 내로 품의 카트만두 새 사무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어수선하고 먼지 많 은 카트만두 시내 도로를 지나 어느 한적한 주택가 2층에 네팔 엔지오

품의 사무실이 있었다. 하니씨 책상에 끼워져 있던 마종기 시인의 <바람의 말>이라는 시가 지 금도 룽다처럼 펄럭인다. 네팔 엔지오 품의 사무실엔 막 활동을 시작한 청년자원봉사모임 ‘ 해피 바이브레이션’ 멤버들이 모임을 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그 당시 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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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정치조직이 아닌 문화예술교육 관련 자원봉사모임을 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이었다. 그해 네팔 정국은 몹시 불안정했다. 200년 만에 왕정을 끝내고 민간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각 정파 간의 대립은 격렬했다. 카트만두 시내엔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시위를 하고 있었고, 시위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네팔 정부당국이 상가의 일시 철시와 일부 통행금지를 내리는 것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당장의 정 권의 변화보다는 문화와 예술, 교육을 통한 네팔사회의 궁극의 변화를 도모한다는 것은 나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테다. 그들에겐 새로운 길을 걷는 두려움을 줄여줄 든든하고 친절한 안내자가 절실했다. 운명처럼 네팔 청년들 곁엔 네팔 엔지오 품이 있었다.

네팔 엔지오 품은 한국 운동역사에서도 매우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요즘은 국제연대 활동을 하는 단체들도 현지 사정에 밀착하기 위해 ‘내재적 접근’을 많이 시도한다. 이른바 ‘현지화 전 략’을 많이 사용하는데 불과 4년 전인 2008년만 하더라도 품의 네팔 현지화 전략은 매우 드 문 경우였다. 특히 네팔 엔지오 품을 ‘퍼주기를 편하게 하기 위한 현지 조직’이 아닌 ‘자생적 인 활동을 위한 현지 조직’으로 운영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즉 한국의 시선이 아닌 네 팔의 시선으로 네팔을 응시하게 하고, 한국의 힘이 아닌 네팔 청년의 힘으로 네팔 문제를 해 결한다는 원칙을 견지한 현지 조직을 꾸렸다는 것은 ‘원조’가 아닌 ‘연대’의 참된 시작이었 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품에 반한 두 번째 이유다.

그해 여름이었던가. 네팔 엔지오 품 사무실에서 만났던 네팔의 청년들과 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한국-네팔 청년문화실천워크숍’이 이번엔 네팔이 아닌 한국에서 열렸기 때문이었 다. 전남 장성 백양사에서의 템플스테이와 5.18 광주 둘러보기 일정을 난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아마 5.18 구묘역에서 나오다가 잠깐 그런 얘기를 한 것 같다. “한국 사람들 중엔 품 을 모르는 사람이 아는 사람보다 훨씬 많아요.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가 않죠. 우리는 서로 한국의 엔지오 품이건 네팔 엔지오 품이건 품을 통해 만났고, 이렇게 다시 만났으니까요. 앞 으로 계속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날의 바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함이 없다. 그날의 바람은 품에게 바라는 나의 두 번째 기대이기도 하다.

학교가 살아야 마을이 산다

사람 사는 것은 어디나 비슷해서 한국이나 네팔이나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는 것은 똑같은 현상이다. 갈수록 피폐해지는 산골과 농촌의 살림 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따뜻한 먹을 것과 안정된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떠난 이들의 빈자리만큼 깊이 파인 공허를 쉽게 채우지 못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떠날 수도 없다. 청년이 살아도 무기력한 마을, 아이들이 놀아도 스산한 동네.... 스러 져가는 마을엔 반드시 폐교가 있다. 5년을 다녔던 섬마을 학교가 폐교된 후 가본 적이 있다. 부서진 유리창, 작은 운동장에 웃자란 띠.... 공포영화를 촬영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 도였다. 학교가 문을 닫자 동네 분위기도 변했다. 뜻있는 동네사람 몇이서 폐교가 된 학교를 마을에서 구입해 연수원 등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누가 이 외딴 섬마을 깊은 마을 까지 수련회를 오겠냐’는 현실론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런 경험 때문이었을까. 품이 카트만두 인근 베시마을에서 ‘행복한 마을(happy village)’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내 고향일처럼 반가웠다. 특히 행복한 마을 프로젝트 모토로 삼았던 “학교가 살아야 마을 이 산다”는 내 가슴까지 뛰게 만들었다.

예의 품의 사업방식대로 마을 청년들로 짜진 교사진은 베시마을에서 ‘방과 후 학교’를 시작 했다. 정밀하게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아마 네팔 최초의 ‘방과 후 학교’가 아닐까 싶다. 방과 후 학교와 함께 ‘베시마을 사진 전시회’를 위한 사전 작업이 시작됐다. 동네 사진을 찍는다 는 것은 가까이 있어 무시했던 존재들을 다시, 깊게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존재의 재확인, ‘ 그래 저이가 이런 분이었지’ ‘맞아 저 나무 아래서 우린 이렇게 자랐어’… 너무 친근해서 무 시하고 함부로 대했던 가장 오래되고 깊은 것들에 대한 재발견…. 그리고 마을학교에 작은 도 서관을 짓는 공사가 함께 또 시작되었다. 품은 변함없이 “돈을 대지 않는 대신 공사재료와 노 동력을 제공해 달라”고 해 마을 도서관은 ‘시혜의 공간’이 아닌 함께 만든 ‘공동의 작품’이 될 수 있었다. 비록 가난해서 돈은 내지 못했지만 내 아이들을 위해, 우리 후배들을 위해 나 의 노동으로 지은 도서관.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이었겠는가. 그래서 베시마을 도서관 완공식 은 마을의 경사가 될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정성껏 마련해온 음식을 나눠먹으며 서로 배 를 채우고, 아이들은 푸른 하늘빛으로 더욱 찬란했던 만국기 아래 좁은 운동장을 초원처럼 내 달리던 그날이 생생하다.

베시마을의 경험은 품에게 골리로 갈 수 있는 희망의 근거가 된 것 같다. 그렇게 품은 에베레 스트 바로 아래 동네에 마을 도서관을 함께 세웠다. 작년엔 카트만두 시내에 있던 품 사무실을 정리하고 아예 베시마을로 들어갔다고 한다. ‘마침내 품이 베시마을 식구가 되었구나, 이제 말 그대로 네팔 엔지오 품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오래된 마을에서, 오래된 미래를 찾아가고 만들어가는 품. 내가 품에게 반한 세 번째 이유다. 세 번째 기대 또한 베시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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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더욱 오래된 미래를 만들어갔으면 하는 것인데 써놓고 보니 너무 가혹한 기대인가 싶기도 하 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품이니까 말이다.

품 20주년이다. 10년도 버거운데 한 길을 20년 동안 묵묵히 걸어온 품에게 깊은 존경의 인 사를 드린다. 그리고 감사하다. 그 20년의 길에 작은 부분 함께 할 수 있게 손 내밀어주셔서. 그렇게 또 언젠가 손 맞잡고 걸을 날을 다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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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리다 | 전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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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주년, 청소년과

하자센터 소장이다. 하자센터 태동의 근거처럼 전효관 선생의 등장은 획일적이고 파편적인 청

마을만들기 | 전효관

소년활동 분야의 해일과도 같다. 사회복지, 청 소년지도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문화인류학, 사회학, 통일 분야의 전문가이며 학자였지만 결 국은 연결되어야 할 근원적 뿌리들을 만나게 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품은 하 자센터의 근원과 전효관 선생의 철학을 존중하 고 또 배우고 있으며, 전효관 선생 역시 품의 의도와 실천들을 존중해주니 참 감사한 일이다.

인연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내겐 좀 특별한 인연이다. 사실은 자주 만나거나 가보지 않았다. 하지만 강한 동지적 유대감을 느낀다. 서로 왕래가 많지 않아도 강한 느낌을 갖는 이유는 상호간에 형성된 신뢰가 있고, 공동의

과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사실 품과 하자센터는 많이 다르다. 품은 청소년 활동 경력이 하자센터보다 훨씬 오래되었고, 또 조직의 존재기반이나 활동방식도 많이 차이가 있다. 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품과 하자센터 는 기존의 청소년 활동 영역에서 좀더 혁신적인 흐름을 만들어가려는 지향성을 공유하고 있 다. 품은 오래되었지만, 주어진 관성 내에 머물지 않고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해낸다. 그리고 이 러한 새로운 시도는 독특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품은 아주 각별하게 느껴진다. 내가 준비 없는 상태로 청소년 활동에 던져졌을 때, 품의 심한기 대표는 항상 하자센터가 하는 일을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었던 드문 사람이었 다. 서울시의 시설로 시작한 하자센터와 민간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는 차이는 서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조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 동지적 의존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청소년 활동이 좀더 진화되어야 한다는 공유된 믿음 덕분 아닐까 생각해본다.

품의 진화과정과 마을 만들기

품은 청소년 활동의 진화와 혁신의 흐름을 잘 드러내주는 사례이다. 청 소년복지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청소년 문화에 주목하고, 지역에서 청소년축제를 만들어내고, 그 성과를 마을만들기로 이어가는 품의 활 동은 바로 진화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 품은 바로 이 진화의 힘 때문에

당대적 문제와 호흡하면서 여전히 의미 있게 존재하고 있다.

거의 20년을 지하의 작은 사무실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 단체가 부단한 진화를 할 수 있게 하 는 힘은 무엇보다도 청소년 존재와 대상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교육의 양극화, 입시경쟁교육 의 전면화 등 거의 재난상태에 이른 교육 현실은 청소년들에게 삶의 위기를 강제한다. 선한 의지, 좋은 경험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품은 좀 다른 삶을 상상하고, 주민 스스로 지역의 환경을 재구성하고, 사람들의 관계를 바꾸어내는 ‘마을만들기’에 주목한 것이 아닐까 싶다.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고, 떠올리기도 힘든 학교 폭력의 희생자들이 줄을 잇고 있 는 상황에서 삶을 회복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청소년 활동의 이유에 대한 근 본적 질문일 수밖에 없다. 이 재난상태에 대한 대증요법은 많지만, 사실 핵심적 질문과 새로 운 모색의 움직임은 그리 많지는 않다. 품이 마을만들기에 주목한 것은 바로 청소년 활동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자신의 활동을 구성하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나 는 믿고 있다.

품은 지역과 떼어 생각할 수가 없다. 품은 정책이나 제도와의 연결을 최소화하면서 지속해 온 매우 드문 단체이다. 품이 지역 근거를 가지고 활동했다는 사실은 제도와 거리를 취하면서도 지 속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이다. 바로 이웃에 만나고 도와주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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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은 활동을 지속해 올 수 있었다. 품의 지속성은 지역 활동과 분리되어 사고할 수 없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지역은 매우 취약하다. 커뮤니티는 파괴되었고, 시장질서가 모든 관계를 규 제하고 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품은 지역과의 관계를 시도하면서 자구적인 활동의 근거 를 마련해 왔다. 동네와 말 걸기를 시도하고, 동네를 배회하는 청소년들을 만나고, 동네를 위 한 일을 기획하자고 지금도 제안하고 있다.

청소년과 마을 만들기

품의 활동 중에 지역 청소년축제 기획이 있다. 1998년 시작된 강북청 소년문화축제는 벌써 14회에 이르렀다. 품은 청소년 축제를 시작하면 서 청소년 참여의 문제를 고민했고, 2000년 청소년기획단이 탄생한다.

그 이후 선배와 후배의 관계망들이 만들어지면서 강북청소년문화축제는 지역의 대표적 청소 년 참여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축제를 거듭하면서 일상성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하고, 이런 고민은 지역연대활동을 구체화하 는 계기가 된다. 2008년, 이런 고민은 일상의 놀이터를 만드는 프로젝트로 가시화되고, 2010 년에는 십대 대안문화공간을 열기에 이른다. 지하의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청소년활동을 지 지하는 동네의 힘을 모아 공간을 연 것은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다. 이 공간은 청소년과 동네 가 만나는 공간을 상징한다.

품은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살아가는 동네’에 대한 질문, 동네를 다시 읽고 바 라보는 연습을 시작한다. 이러한 일상과 주변에 대한 학습이 시작되면서 청소년축제 역시도 장르와 동아리 발표회 같은, 성격에서 소통과 나눔의 장으로 거듭난다. 축제와 동네가 일상성 을 바탕으로 만나는 과정은 마을만들기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일 수 있다.

혹자의 지적처럼, 마을만들기는 너무 정답이어서 그 과정의 매개들이 잘 잡히진 않는다. 작은 움직임들, 작은 동기들을 주목하기보다는 하나의 모델을 복제하거나 그 요소들을 만들어가는 오류들이 적지 않을 수 있다. 청소년이라는 주변화 된 주체들의 삶에 주목하고, 이들의 삶을 동네와 이을 작은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서 다양한 모임과 활동을 지속적으로 벌려낸다. 지 역 청소년들의 삶을 회복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들이 마을만들기 과정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그 이후 선배와 후배의 관계망들이 만들어지면서 강북청소년문화축제는 지역의 대표적 청소 년 참여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축제를 거듭하면서 일상성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하고, 이런 고민은 지역연대활동을 구체화 하이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대상이 아닌 주체로 참여하고 매개자로서 성장하는 가능성을 실 증한다.

최근 ‘삼각산재미난마을공동체’ 사례가 주목을 받고 있다. 품의 경험은 이런 흐름들과도 밀접 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알고 있다. 품의 사례는 지역 내에서 작은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 작 은 주체들의 참여를 통해 동네를 실체화해 본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품은 ‘십 대와 행복한 마을만들기’를 이야기한다. 그 과정이 있기에 품이 말하는 행복한 마을만들기는 매우 구체적이다.

품, 그 미래를 기대하며

요즘 교육과 사회 사이의 거리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폴라니의 말 을 빌자면, ‘사회 속으로 들어오는 경제’가 없는 상태에서 대안을 꿈 꾸는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를 만들어갈 장은 매우 적다.

그래서 그들은 기존의 사회에 내팽개쳐진 느낌을 받기도 한다고 한다. 사회를 위한 일을 하 고 경험할 장이 없는 셈이다.

품도 여러 고민에 직면해 있을 것이고, 그 고민의 내용 역시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청소 년과 마을을 만나게 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지만, 마을에서 자란 청년들이 마을에서 일하면서 살 수 있는가 라는 고민을 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품은 고민을 우회하지 않고 문제 상황에 들어가 또 다른 대안을 만들어낼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품은 청소년을, 나아가 지역을, 더 나아가 사회를 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규범 에 갇힌 전문성이 아니라 상황을 이해하는 진정성을 가졌기에 품은 앞으로도 좀 더 나은 삶과 대안을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의지처로 진화해갈 것이라는 기대를 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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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만이 만들 수 있는

대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이다. 30번이 넘 는 교수임용 면접을 봤다고 한다. 우수명 선생

존재와 인연

이 지니고 있는 진정성과 분명함들이 아직은 보 편적으로 인정되기 힘든 사회임에 대한 반증 같 기도 하다. 자신의 마스코트의 거북이처럼 늘 서두르지 않고 깊은 과정들을 만들어가며 수용

| 우수명

적이다. 대학시절 품을 만난 시점부터 품의 진 정한 동지이며 가족이다. 그리고 품 식구들에게 는 좋은 선배로서 때론 스승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두 아들이 품의 캠프에 단골손님이니 함 께 한 세월이 아름다울 뿐이다.

품과 인연은 길면 길고 깊으면 깊다. 1994년 어느 때 대학생이던 나의 눈에 들어왔던 품의 집 단 활동 워크샵. 아무 생각 없이 참석했다가 ‘지역과 문화’를 이야기하는 심한기 대표의 강의 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배웠던 치료적이고 문제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했던 집단 활 동에서 지역과 문화를 고민하는 집단 활동은 새로운 패러다임이었고, 내 복지실천의 대안으로 서 ‘지역’을 고민하던 나에게 그 ‘현장’을 보았던 경험이었다. 그 뒤 나의 후배들에게 품에서 의 자원봉사를 권유했고 그것이 한신대와 품 사이의 인연을 만드는 시작이 되었다(이 인연은 가끔 단절되지만 그래도 진행형이다). 그 중 몇몇은 배우자를 품에서 만나기도 했고 주주 활동 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 이제는 나와 혈연관계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수년 후 사회복지 고수 열전(?)으로 치러진 한덕연 원장님의 사회복지정보화캠프는 나에서 사회복지 현장의 많은 고수들을 만나게 해준 자리였고, 나도 그 중에 한명이었다는 영광스런


자리였다. 그리고 사회복지정보화캠프에서 다시 만난 심한기 대표는 엊그제 만났던 형처럼 편 안했고, 몇몇 사람들과 함께 하는 노란 콜라와 거품없는 사이다의 알코올 속에 복지에 대한 고민과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그로부터 더욱 가까워진 인연은 문화복지 아카데미에 참여할 수 있던 계기가 되었고, 품의 주주가 되어 품과의 연이 계속되는 행운도 얻게 되었다.

품의 주주는 참으로 특이한 형태다. 주주라는 표현 자체가 주식을 가진 기업의 주인인데, 대 부분 이윤 추구를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품의 이윤은 현물이 아닌 ‘가치’이며, 소비재를 파는 것이 아닌 ‘지역과 문화의 회복’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품은 주주를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 라 품의 주인이자 가족이 되는 것이며, 품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투자자이자 동반자로 초대 하는 것이다. 품의 이러한 주주의 관점 역시 ‘돈보다 사람’ 중심이 되는 토대에서 나올 수 있 는 것이며, 우리 사회에서 지켜가야 할 아름다움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복지에 대한 관점과 다르지 않았다. 주주로 참여하게 되면서 품과 더 소통할 명분(?)들을 얻게 되었고, 이로 인해 나는 품과 문화와 복지를 더욱 더 자유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동안 가져 왔던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과 문화적 요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역량이 이 과정을 통하여 조금씩 생기게 되었다(이것의 시작은 ‘사회복지 욕구 다시보기’라는 나의 책으로 나왔다). 나 뿐만 아니라 품과 인연이 된 많은 이들이 바로 잃어버린 우리들의 것들, 사람다움을 갖춘 지 역과 문화를 다시 회복하는 품의 ‘가치적 역할’에 자극받아 왔으며 그로 인해 품과의 인연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품의 주주들은 품의 가치를 아는 품격 있는 존재들이다.

많은 활동가들은 청소년이든 지역이든 문화든 복지든 간에 현실에서 부딪치는 실천의 한계라 는 장벽 앞에 절망과 갈망을 경험하게 되고 소진되어 가는 나락을 경험하게 된다. 그 때 에너 자이저처럼 충전되고 새로운 도전으로 수천년 간 지속되어 왔던 잃어버린 미래를 찾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 품의 가치가 쌓여 만들어진 ‘품의 살아있는 역사’를 통해서이다. 그것이 문화 복지아카데미와 지역축제들을 씨앗으로 ‘십대와 마을만들기’, ‘무늬만학교’, ‘오~ 히말라야와 네팔품’ 등의 다양한 문화복지의 꽃들로 피어나고 있다(물론 꽃은 진다. 그래서 다시 피워야 한다). 특히, 네팔은 다녀온 이들에게 특별한 존재감을 주었다. 히말라야라는 상징성과 영성뿐 만 아니라,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가장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여행을 하는 효과가 있기 때 문에 소진된 영혼과 육체를 회복시키는 힘은 막강하다.

품과의 인연은 이러한 꽃들로 인해 더욱 향기롭고 다양한 색채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향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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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식사할 때 더욱 느낄 수 있다. 가족처럼, 집에서처럼 평온하고 행복하다. 이러한 향기 는 품의 선생님과 포옹할 때 더욱 느낄 수 있다. 그 어떤 우정보다 화려한 수식어의 인사말보 다 아름다운 소통이 되었다. 이러한 향기는 품의 사무실을 생각할 때 더욱 느낄 수 있다. 나의 편안하고 쉼을 줄 수 있는 휴식처가 되었다. 이러한 향기는 품과 기울이는 술 한 잔에서 더욱 느낄 수 있다. 나의 인생의 에너자이저가 되었다.

기나긴 20년간의 품의 살아옴은 가치를 만들고 문화 복지를 실천하는 과정이 한 장 한 장 벽 돌처럼 쌓여 하나의 다듬이 길로 만들어져 왔다. 그리고 그 길에 내가 있고, 많은 품의 주주 들이 있고, 많은 청소년들과 세계인이 있다. 물론 이 길은 계속해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지 금까지 지내온 날들보다 몇 배, 아니 몇 십배의 더 먼 길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현재의 품은 20년간 걸어온 역사적 발자욱들을 통하여,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시간 만이 만들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품의 그 역사적 존재함으로 인하여 더욱 치열해지는 문화복지판에서 역사를 만들어 가며(田), 나와 이웃들의 이야기와 삶을 나누고 소통하는 곳이 되고(口), 동네가 되고 공동체가 되어(一) 문화 복지의 정신(神)을 싸우고 이어가고 지키게 될(止) 지향점(福祉)이자 사막의 오아시스가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또한 그 존재로 인하여 나와 또 다른 나와 네팔을 넘 어, 전 세계 무수히 많은 나와의 인연이 되는 구심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품의 20 년이 앞으로 200년 아니 2000년 간 사람다움이 살아 숨 쉬는 문화 복지의 역사이자 실존이 자 현실로 이루어지는 꿈으로 번영할 것이다. 앞으로도 품은 여전히 시간의 역사성 속에 더욱 풍성해질 것이며, 그로 인해 더욱 아름다운 인연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래서 ‘시간만이 만들 수 있는 존재’의 가치를 빛내주기를 기도한다.

파주에서 바람하나의 꿈 우수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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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 지역에서 세상의 변혁을 꿈꾸었던 젊은이들 구  구슬을 꿰는 마음으로 청소년과 20년을 더불어 살았다 인 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의  의로운 마음으로 꿈을 키웠다 벗  벗들과 함께 한반도에서 히말라야까지 품  품었다 청  청소년문화공동체! 소  소박한 밥상을 나누는 마을공동체 년  연간사업을 주주들께 보고하면서 문  문화복지를 알차게 일구었다 화  화려하지 않지만 세상을 바꾸었다 공  공동체는 또 다른 공동체를 살리고 동  동심동체(同心同體)- 한마음 한몸 체  체험을 이론화하면 지구촌복지공동체 만들기

<이용교/ 복지평론가, 광주대 교수>


1막.

2장

양금석, 이준호가 말하는 품의

“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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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험한 세상에

품 창단멤버이다. 한 손엔 막걸리 다른 한 손엔 금서를 들고 그 큰 얼굴에 핏대를 세우며 민주

다리가 되어

와 통일을 외쳐대던 시절 품을 만들었다. 품 초 창기부터 땅과 놀이, 참교육, 쓰여지지 않은 역 사를 강조하며 품의 정신적 근거들을 다지게 했 다. 품을 떠나 개인사업을 하며 품의 든든한 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리가 되길

버지로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7년 째 ‘조금만 기다려라!’를 외치며 또 다른 꿈을

| 이준호

품의 시작을 회고하며

꾸는 이준호다.

세계적인 동기부여 전문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만화예술가. ‘행 복을 그리는 철학자’라 불리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앤드류 매 투스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의 비밀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나에게 20대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몸부림 그 자체였다. 서울청소년회관 청량리 분 관은 유창식, 김종국, 진종호, 심한기, 양금석, 신석호, 박판기를 연결해 준 곳이다. 김종국 형 의 소개로 심한기를 만났고 그를 통해 내 자신이 부족했던 음악에 대한 고민과 청소년 프로그 램에 대한 기틀과 기법에 대해 배웠다. 나는 그에게 역사론과 인식론의 중요함을 이야기했다.


심한기는 그의 오랜 친구이자 음악 듀엣 신석호를 소개했다. 이준호는 양금석을 새로운 동지 로 소개했다. 김종국 형의 소개로 청소년회관을 벗어나 좀 더 위대하고 세련된 마음의 고향, 이천 유네스코청년원을 만났다. 우린 뜻이 맞았고 매일 만났다. 매일 술 마시고 노래하고 토 론했다. 함께 여행하고 함께 고민했다. 이 땅의 청소년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 가? 고민하고, 토론하고, 술 마셨다. 하지만 소비적 한계의 만남은 오래갈 수 없다. 먼저 함께 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나고 지향해야 할 청소년은 이해의 대상이 나 가르침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아이들이 단지 천박한 소비문화의 맥없는 대상이 아닌 그들 의 문화를 스스로 만들고 즐길 줄 아는 창조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대안을 찾아 줌이 마 땅하다. 세상은 진정한 교육이 무엇임을 반성하고 일제 잔재의 구시대적 교육자와 잔존문화를 척결하자. 학교는 이미 학교임을 포기했고, 학교가 가야 할 길은 학교의 담을 스스로 허물어 구시대적 악습을 철폐하고 인간 본연 교육에 충실해야만 이 땅에 참교육을 뿌리내릴 수 있다’ 인식을 공유하고 철학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우린 그 외에도 공통점이 많았다. 친구이자 청소년을 공부한 학도이자 아마추어 딴따라였다. 유네스코청년원 손춘석 교수님과 함께 청소년을 위한 전문 그룹 ‘노래품’을 1991년 탄생시켰 다. 논산 대건고등학교 강석준 신부님과 청소년회관 김종국 형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아 1991 년 11월 5일-6일 4회에 걸쳐 대학로 ‘충돌2’에서 노래품 첫 콘서트를 열었다. 5백명에 가까 운 이들이 우리의 공연을 보았다. 우린 가능성을 보았다. 공연문화를 청소년 프로그램에 접목 하는 시도를 했다. 1992년 정부는 ‘청소년어울마당’ 프로그램을 각 시군구 읍면 단위로 시행 령을 내렸다. 어울마당은 우리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무대이자 생명줄이었다. 유네스코 손춘석 선생님의 소개로 이천군청 청소년계장님을 소개받았다. 이천군 전체 어울마당을 노래품에게 맡기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노래품은 전국을 누볐다. 각 학교를 돌면서 아이들 앞에서 노래 불 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천농업고등학교 공연이었다. 실내체육관이 없어 할 수 없이 뙤약볕 아래 운동장에서 공연 중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경운기에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열광했다. 당시만 해도 라이브 공연을 지방 소도시에서 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우린 좀 더 체계적이고 독립적 지위에서 전문적으로 일할 수 있 는 단체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기존의 단체는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누가 먼 저라 할 것도 없이 우린 모두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세상에 겁 없이 나타났다. 20년 전인 1992년 6월 22일 청량리청소년회관 4평의 지하실 청년들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을 하며 내가 하는 일에 행복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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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거부

고 강대근 원장님께서 어느 날 손수 제본한 ‘마르쿠제의 위대한 거부’ 를 심한기에게 던져 주었다.

‘외설적인 것은 음모를 노출한 벌거벗은 여자의 사진이 아니라, 침략전쟁에서 받은 훈장으로 정장을 한 장군의 사진이다. 외설스러운 것은 히피의 의식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 전쟁이 필 요하다는 교회 성직자의 설교이다.’ - 마르쿠제 위대한 거부 중 품을 만들어가면서 가장 열중한 것은 현장보다도 철학이었다. 우리가 하는 행동과 사고하는 데 필요한 매뉴얼과 철학이 절실했다. 우리는 그간, 미국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한 교수들에게 주입식 사회복지 교육을 받았다. 미국식 개인주의와 프로이드에 벗어난 국학(國學)을 바탕으 로 한 대동(大同)개념의 토종 철학이 절실했다. 지금도 사족을 억누르고 기생충처럼 교육, 법 조, 언론, 금융, 정치권 등 그 모든 세력 깊숙이 뿌리박은 일제 잔재와 전쟁 증후군은 단순히 의욕만 앞세워 행동하는 무식한 무리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과 대항할 논리와 철학은 그 어 떤 무기보다 강할 수 있다고 믿었다. 허나 처음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를 다시 꿰는 일은 만 만한 일이 아니었다. 지난 60년의 세월은 고통조차 익숙한 민중들에게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 는 지경이 되었다. 그렇게 힘들고 지칠 때 강대근 선생께서 ‘후배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아픈 데가 어디인지?’의 실마리로 슬며시 던져 준 마르쿠제의 ‘위대한 거부’는 ‘익숙한 것으로부 터 탈출’해야만 시작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위대한 거부! 무엇을 바꿔야 하고 무엇 을 지켜야 할지 막막하고 갑갑한 시절의 지침서였던 것이다!

Let It Be!

20년이 지나 품을 만들었던 젊은이들은 모두 중년이 되고 아버지가 되 었다. 근데 이놈의 아버지 노릇이 녹녹치 않다. 아니 더러워서 못해먹

겠다는 생각이 한두번이 아니다. 사춘기에 접어드니 얼굴 보기도 쉽지 않다. 요즘은 조그마한 잔소리에도 방문을 걸어 잠궈 버린다. 한마디 한마디가 짜증과 투정이다. 어렵게 대화라도 할 라 치면, 하지 마! 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다. 한마디로 냅둬유다! 열이 받치고 울화가 치밀어 욕을 해대고 매도 들어 본다. 그럴수록 밀려오는 자괴감과 서운함이 서럽게 밀려온다. 아버지로서 아이를 가르치고 제대로 교육시켜 사회의 구성원으로 키워나가는 게 아버지 역할 이라 착오를 했던 것이다. 아이는 부모가 ‘조진다.’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품의 철학 중 하나가 개입과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지도자나 교사는 관찰자나 조력자 정 도의 역할로도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해 나가는 아이들의 자정능력을 현장에서 충분히 경험했 기 때문이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사람도 자연이다. 사람도 스스로 충분히 그러 함이다. 자연은 사람의 손길에 의해 상처받고 상처받은 만큼 인간에게 되돌려주는 순환 기능 을 철저히 한다. 우주 질서 137억년 태양계의 45억년이란 억겁의 세월을 통해 자연의 기능을 만들어 냄이다. 그것이 질서이고 섭리이다. 냅둬유! 는 질서를 거스르는 외압에 대한 항거이자 외침이다. Let it be!는 도에 넘치는 개입과 간섭에 대한 시간을 통한 스스로 깨달음을 수호 함이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건강하고 병충해 없는 농산물을 얻기 위해 인간은 농약 과 비료를 개발했다. 땅은 황폐해지고 인간의 몸은 퇴행적으로 바뀌고 병약해졌다. 해서 지금 은 수배에 달하는 돈을 지불하며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찾는다. 한번 비료와 농약 맛을 본 땅은 이미 그것들에 중독되어 더 많은 양의 비료와 농약을 찾는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그러 나, 희망은 있다. 땅을 그저, 내버려두면 된다. 인간의 손길을 최소화해 몇 년간 쉬게 해 줘라.

아이들과 땅이 다르지 않다. 부모와 사회는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비료와 농약을 남용하고 있 다. 아이들은 대량 생산 시스템에, 인위적 과영양에 시달리고 있다. 숨조차 쉬지 못하고 신음 소리 한번 내지 못하며 오락과 욕에서 돌파구를 찾아 헤매고 있다. 품의 20년은 인간에게 짓 밟힌 황무지에 유기농 농사를 짓기 위한 토양을 만들고자 했다. 그 토양 안에서 자연 그대로 싱그럽게 커가는 열매를 만들고자 했던 몸부림의 세월이다.

20년이 지난 품에는 유기농 농산물을 닮은 건강한 아이들이 득실득실하다.

가르침과 가리킴

일반적으로 가르침과 가리킴을 혼동하여 말할 때가 많다. ‘교사가 학생 을 가르친다’에서 가르친다를 ‘교사가 학생을 가리킨다’라고 잘못 표

한다. 가르침은 교敎다.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지식이나 기술 따위를)깨 닫거나 익히게 하다. 알도록 이르게 하다. 고치어 바로잡다’란 타동사다. 가리킴은 지指(가리킬 지)다. 사전적 의미로 ‘(사람이나 나침판 따위가 무엇을)특별히 짚어 보이거나 알리다. 지칭하 여 이르다’란 타동사이다. 가르침과 가리킴 모두 대상이 있어야만 성립할 수 있다. 가르침은 가 르침의 대상보다 내가 우월적 지위 또는 우월적 지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우월적 지위나 지식 이 없을 경우, 대상이 가르치는 이를 깔보거나 하찮게 여긴다. 막말로 권위가 상실돼 못해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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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가 생긴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선생님 해먹기 어렵다고 한다. 이는 대상 이 가르치는 이를 깔보거나 하찮게 여긴다는 뜻이다. 왜일까?

가리킴은 대상에게 방향을 알려준다. 손을 통하거나 말을 통하거나 내 행동을 통해 직접 안내 해 주어야한다. 중국말로도 가리킴은 지향指向zhǐxiàng이라 한다. 지향은 상대에게 몸과 행동 으로 보여주어야 가능하다. 수직보다는 수평적 개념이다. 교육적 용어로는 가르침이 표준어이 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함은 품의 정신은 가르침과 맞지 않다는 뜻이다. 가르침에는 상대 방이 가르침의 대상으로, 내가 상대방보다 우월함이 깔려 있다. 품은 아이들보다 우월하지도 아이들을 가르침의 대상으로 보지도 않는다. 최소한 가르침의 우월적 지위는 공자, 맹자, 노 자, 장자, 석가모니, 지저스 크라이스트 반열에 오른 분들 정도는 돼야만이 가르칠 수 있는 자 격이 있지 않나 싶다. 허나 가리킴은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로 보며 눈과 마음과 몸으로 실천 이 가능하다. 아이들과 관계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이 권위와 수직적 구조 속의 압력과 억압 이다. 수직적 구조에서는 높이 올라갈수록 낙하의 가속도가 더해 엄청난 데미지가 온다. 이는 엄청난 공포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자기방어를 낳는다. 현재 청소년 폭력과 학교 문제는 학교 와 교권이 아이들 눈과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이다.

품에는 늘 아이들이 들끓고 그들 스스로 즐기며 그들 스스로 세상을 만들어 간다. 늘 공간에 나오고 싶고 어울리고 싶고 무언가 만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을 좋아하고 소통하길 좋 아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거침없이 표현하길 좋아한다. 이들 세계에는 막힘은 사라지고 오 로지 통함만이 있다. 품이 특별한 것은 높이 오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품이 아이들의 눈 높이에 있으니 친구 같고 형 같고 누나 같다. 공포도 없고 자기방어도 없다. 아이들이 쳐다보 기 좋은 곳에서 그들을 기다려주고 들어주고 가리켜 주는 곳이다.

세상에 가장 좋은 교육은 가르침이 아닌 삶으로 가리켜 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섬은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하고픈 마음의 공간이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 좁혀지지 않는 거리일 수 있다. 마음의 문을 닫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를 거부해 스스로 마음의 섬을 만든다. 그래서 정현종 시인은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시인 스스로 배가 되고 다리가 되겠다 함이다. 우린 끊임없이 소통을 이야기한다. 소통疏通shūtōng은 대상이 있어야 가능해진다. 소통은 홀로 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쉽지 않다. 교류交流jiāoliú나 담화談話tán/huà 는 가능해도 소통은 서로가 잘 통해야 가능한 Two-Way Communication이다. 소통이 되 지 않음은 오고 가는 길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그러기에 아예 가지 않음이다. 지위가 높은 곳 에 있거나 재물이 지나치게 많으면 소통이 불가하다. 이들의 특성은 굳이 갈 필요를 별로 느 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가지 못하니 옴이 없다. 특성상 권력과 자본가는 소통하기가 불가하다. 그래서 그들은 담화문을 좋아한다.

품의 20년은 소통하기에 좋은 장을 만들기 위한 몸부림의 역사이자, 지키고자 감내한 처절함 의 역사이다. 올라가기 힘든 높은 곳을 만들지도, 감당하지 못할 자본을 쫓지도 않은 결과이 다. 품의 20년은 사람과 사람의 역사이다. 수많은 섬들이 품을 거쳐 갔고 그 섬에 머물며 혼 신의 땀을 일군 역사이다. 지금도 품은 12시가 넘은 시간에도 불이 켜져 있다. 사람과 사람 사 이에 섬을 만들지 않기 위해 피똥 싼다. 난 품이 지치지 않길 원한다. 때론 쉼이 필요하다. 지 금 품에는 강명숙, 유현희, 이상섭, 정이가령, 이지성이 있다. 섬과 섬 사이를 오가며 때론 배 가 되고 때론 다리가 되어 홀로 외로운 섬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움직인다. 사랑하고 고마 운 마음뿐이다. 품은 이제 심한기, 이준호, 양금석의 품이 아니다. 이미 저들에게 공간을 내어 주고 그대들의 섬에 마실이나 다닐 수 있음을 즐거워한다. 30년 40년 후의 품은 그대들의 품 이요, 아이들이 주인 되는 품이다.

역사 속에서나마 그대들의 품에 안겨 배 띄울 생각하니 회한悔恨huǐhèn이 없다.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심한기가 히말라야를 다니면서 스스로 무당임을 자처한다. 무당은 신 과 인간의 매개자이다. 무당은 자연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다리이다. 다리는 오고감을 달가워하는 소통이다. 심한기는 스스로 소통하는 인간이

되고자 주문을 외운다. 6월 5일 심한기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품을 만든 주역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유창식, 진종호, 양종수, 양금석, 이준호, 신석호, 심한기, 박판기, 최찬욱 9명이 12년 만에 한자리에 모여 화해와 용서의 장을 만들었다. 가장 가까운 섬들이 자주 보지 못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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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대한 화해의 자리였다. 품의 20년은 화해와 용서의 자리이다. 품을 통해 사랑을 느낀 이가 있 다면 품에게 상처 받고 미움이 된 이도 있기 마련이다. 품의 태동을 일으킨 이들조차 12년 만 에 조우하는 것은 품의 정신과 맞지 않다. 허나 12년 만의 조우도 그리움과 기다림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난 사람들처럼 우리는 서로를 그리워했고 그리움에 술 잔 비워감에 즐거워했다. 심한기 스스로 품 20년의 의미에 다리가 되어 주었다.

1992년 6월 22일 품의 태동을 만든 이들은 2012년 6월 22일을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 은 가는 길이 다르고 자리가 달리 있어도 함께 한 그 시절은 인생의 가장 중심 한 곳에 자리 잡혀 철학이 되고 역사가 되어 흔들림 없이 뿌리 내리고 있었음을 고해한다. 마지막으로 유창 식 형이 술만 마시면 읊조리는 신경림 시인의 시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다리

<신경림>

다리가 되는 꿈을 꾸는 날이 있다 스스로 다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내 등을 타고 어깨를 밟고 강을 건너는 꿈을 꾸는 날이 있다 꿈속에서 나는 늘 서럽다 왜 스스로는 강을 건너지 못하고 남만 건네주는 것일까 깨고 나면 나는 더 억울해 지지만

이윽고 꿈에서나마 선선히 다리가 되어주지 못한 일이 서글퍼진다


다시 처음으로 | 양금석

별명 ‘쐐돌이’. 대학시절부터 민주판, 굿판에서 꽹과리를 치고 혁명을 외쳤고, 5분 안에 노래 한곡을 써대는 무시 못 할 작곡실력을 가지고 있다. 심한기와 이준호가 가지지 못했던 차분함 과 냉철함이 있었기에 품 초대 소장으로 추대되 기도 했다. 품을 떠난 후에도 사회복지, 청소년 복지 영역에서 자신의 철학과 실천들을 지켜가 고 있다. 10년 만에 해후했으나 여전히 그는 품 의 근거이며 역사이다.

80년대의 암울한 사회적 상황은 새로운 도전에 대하여 통제적이고 부정적이었다. 이념과 정쟁 의 시대를 머리와 몸으로 저항하며 살다가 사회에 들여놓은 첫 발걸음의 기억은 처참함 그대 로였다. 우리 사회 그 어디에도 나의 능력을 발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조직도 없었고, 나 에게 지원군이 되어줄 자본과도 거리가 멀었으며 정치권력과는 더더욱 그랬다. 졸업 후 2~3 년간은 나에게 암흑기와도 같았다. 미래를, 희망을 시도해 볼 만한 단 한 줄의 실마리도 내게 는 없다고 단언했던 시간들이었다.

종로의 뒷골목 어느 맥주집에서 나는 이준호의 소개로 심한기, 신석호와 첫 만남을 갖게 되었 다. 우리는 그 날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 었는데 그것은 바로 ‘음악과 청소년’이었다. 이 만남을 통해 나는 삶의 유일한 열정의 발현 창구를 만난 듯이 반갑고 행복했었다. 그 후 몇 번의 만남을 통해 그리고 서울청소년회관의 캠프에 지도자로 참여하면서 우리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청소년과 음악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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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를 현실화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작업의 결과로 1992년 6월 22일, 우리는 품을 설 립하게 되었다.

품 초기에 우리는 경제적인, 현실적인 것들은 크게 관심이 없었다. 다만 청소년들과 만나고 그들과 함께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위안이 되었고 행복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우리들 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청소년들과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우 리들은 품의 정체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론하였으며 건강한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공부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제도권 청소년활동이 갖고 있는 한계 (이 한계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를 벗어나 우리만의 고유의 가치적 활동으로 확산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도 끊임없이 지속시켜 나갔었다.

우리들의 음악적 관심은 작곡과 공연으로, 청소년에 대한 관심은 새로운 프로그램의 개발과 추진으로 성장시켜 나갔었다. 청량리 분관(서울청소년회관)에서 중화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하 면서 우리들에게 청소년의 중요성만큼이나 우리들의 가치를 동의하는 청소년지도자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도 중요함을 깨닫게 되면서 사회복지 대학생 실습지도가 시작되었다. 실습교육을 받았던 실습생들 중에 많은 이들이 품의 활동가를 거쳐 갔거나 현재에도 상근활동가로 함께 하고 있다. 우리가 실습교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청소년 활동가가 행복 해야 그들이 만나는 청소년들도 행복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우리들은 실습생들에게 몰입 된 과정을 통하여 전문성을 성장시키는 노력을 기울였고, 그것에 대한 화답으로 그들은 품의 일원으로 여전히 함께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끊임없이 토론하고 논쟁을 했던 화두는 우리가 청소년들의 삶과 생활 속에 동 화되어 청소년과 우리들이 교육을 하고 교육을 받는 대상자와 피대상자가 아니라, 우리를 통 하여 청소년들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그들의 건강한 성장을 통하여 우리들 스스로가 긍 정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사회 자본과 권력에 대한 대척점을 만드는 것이었 다. 저항 혹은 거부라는 단어로 표현되기도 하였지만 당시 우리들의 생각은 자본과 권력의 도 움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들의 순수성이 훼손된다는 논리가 지배적이었다. 우리가 하나의 구조 에 예속되면 우리들 또한 유연한 창의와 역량이 통제될 수 있다는 것이었고, 뿐만 아니라 예 속된 사고 속에서는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의 사고의 유연성마저 통제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들의 판단이었다.


세 번째는 청소년들과의 만남의 지속성을 만드는 일이었다. 일회적, 단일적 프로그램으로는 청 소년들과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개인적인 의견이지 만, 그럼에도 일회적 캠프를 통해 품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게 된 청소년들이 있었다는 것은 품이 프로그램에 대한 집중력과 몰입의 결과라 생각한다.) 사후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 관계 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이 세 가지 화두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품 속에 있지는 않지만 각자 의 영역에서 품의 초기에 함께 했던 정신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 며 이제는 더욱 큰 틀에서의 협력을 통해 긍정적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라 생각한다.

품 20년, 그 20년의 역사와 흔적들 그리고 성과들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고 본다. 또한 품 20년을 맞이하면서 다음의 10년, 20년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품이 되길 기 대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품이 출발할 때의 정신과 가치가 실현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품은 나에게 있어서 사회에 대한 새로운 도전의 과정이자 젊은 시절의 열정을 발현할 수 있었 던 유일한 통로이자 공동체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몸은 품에서 떠나 있었지만 지금도 품에 서 느끼고 공유했던 가치들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자문을 하고 있다.

지난 오랜 시간 동안 홀로 고군분투했을 나의 친구 심한기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의 마음을 함 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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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제2막에서는... 현재 품에서 살고 있는 식구들이 치열하게 정리해 본 품20년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품20년의 축하와 희망들이 가능할 수 있는가? 를 판단해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단락이다. 품20년의 종합정리는 심한기가 했고 ‘강명숙, 유현희, 이상섭, 이지성, 정이가령’이 품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단서들을 정리했다.


“길 가 다

“

을

2막.


품 20

2막.

1장

“길

을 만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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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있는 품의

20

년

[글의 순서]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품의 20년 | Mandala of Pum | 노래품 | 이젠 전성민의 손에 장을 지질 수 있다. 강대근과 유네스코 청년원 | 기억과 희망 | 시공간을 넘나들어야 행복한 품 | 기록과 소통 품과 사람 1 (관계와 태도의 소중함) | 품과 사람 2 (주주의 힘) | 품과 사람 3 (미루) 333의 비밀 | Good Karma (히말라야 네팔) | 기본 3년, 길게는 10년 이상... | 목표는 없지만 ‘길’은 있다. 그래서 어떻게 살겠다는 말인가?


글. 심한기

품 20년의 키워드 ‘감사’

며칠 전 품 20주년 기념식 논의를 위해 오랜만에 만나 뵌 고인석 선 생님께 막걸리 한 잔을 따라드리며 여쭤봤다. “형님! 성신여중 계신지 몇 년째지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하신다. “30년!”

30년 넘게 교사로서 싸워가며 살아온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니냐? 라는 선생님의 표정을 훔쳐보며 품 20년의 호들갑이 부끄러워진다. 그 리고 품 20주년 기념식에서 어떤 감동을 만들 것인가를 얘기하다가 또 한 번 부끄러워진다. ‘가난함에 비례하는 당당함’에 있어 품과 영 원한 동지인 극단 진동의 박종우, 품 역사의 물귀신 된 권혁기 형님, 그리고 품에서 몇 안 되는 잔소리꾼이었던 이정주 등 이날 모인 식구 들의 요점은 ‘너무 의도하지 말고 함께 살아온 시간들에 감사하고 살 아갈 시간들을 꿈꿔보자!’였다.

품 20年史를 쓰고 있는 지금, 수많은 사람과 일들이 교차되는 20년 동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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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들이 기록된 자료를 보지 않고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20년이란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으로 결실이 맺어졌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비판과 질타들이 그 당시 품에 남아있는 사람 특히 심한기에게 집중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다시 품을 돌아보며 그려보는 지금... 품은 여전히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고, 품은 이제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지 않고, 품은 더 많은 이 들에게 나눠져 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을 받고 있으니 이 모든 것들이 감사할 뿐이다.

얼마 전 품과 같은 동네에 있는 돌산공동체의 아주 소박하고 정겨운 22주년 창립 잔치에 다녀 왔다. 김성훈 목사님이 22년 동안 가난했던 지역주민들과 맨 주먹으로 이끌어온 감동적인 동네 공동체이다. 품보다 두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 선배단체이지만 그들이 살아온 땀과 시간을 비 교해보니 다시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감사하다. 누군가의 삶을 존경하며 감동을 받고 또 그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갈 수 있는 날들이 많으니 참 감사할 뿐이다.

시간을 기억하고 환원시키고 다시 진화 시킬 수 있는 것에 가장 중요한 근거는 지나친 겸손도 아니고 가벼운 자랑이나 자만이 아닌, 지나간 것과 다가올 것 들에 대한 ‘감사’였다.

Mandala of Pum 만다라..... 소우주, 본질의 소유, 원형(arche-

의심, 사유 상상, 시도 청소년과 문화

대안적 국제 NGO 활동

type)이라는 의미를 지닌 만다라 는 순간이 연결되는 원형(circle) 으로서의 ‘태’를 담고 있다. 직선

품

동네와 공동체

공간의 혁명

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를 순환시 키지 못하지만 원형의 시간은 과 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끊임없 이 연결한다.

인문공부 대안교육

사람과 소통


더욱이 지금 시점에서 나로부터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파편들이 지니고 있는 가능성들을 이 어준다. 어려운 말이 아니다. 나와 연결되어 있으나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연 결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말한다.

품20년을 만다라로 그려보는 시도 역시 땀과 오류의 반복들을 순환의 가능성으로 연결시켜 주 는 에너지가 있기에 가능했다. 그 동안 수많은 실수와 오류들이 있었지만 성찰의 노력들 또한 멈추지 않았고, 우연 같은 인연으로 만난 히말라야에서 얻은 만다라에서 품이 얻고자 하는 순 환의 에너지를 보았던 것 역시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지는 삶의 순환이었다. 1992년 6월 22일에 문을 열어 만 20년이 된 2012년 지금.... 만다라 속에 연결된 순환의 고리에는 ‘의심, 사유, 상상, 시도’, ‘청소년 과 문화’, ‘대안적 국제 엔지오 활동’, ‘공간의 혁명’, ‘동네와 공동체’, ‘사람과 소통’, ‘인문 공부와 대안교육’이란 키워드가 존재한다. 모든 것 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의 에너지를 교환하고 있다. 품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힘은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가능했던 순환적 성장’이라 할 수 있 다. 초창기 품은 아이들이 잃어버린 땅의 놀이 그리고 땅의 문화와 연결된 새로운 대안으로서 의 청소년문화를 꿈꾸었다. 이후 제한적이고 종속적인 사회복지, 문제와 치료중심의 사회복지 를 넘어서는 당당한 존재로서 자신의 문화와 삶을 만들어가는 청소년복지와 청소년 문화복지 를 고민하고 실천해왔다. 또한 이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질서와 사회가 요구하는 암묵 적 전제들을 깨뜨릴 수 있는 ‘청년의 힘’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을 감지했다. 그리고 품은 청 소년만이 아닌 청년 흔들기를 위한 노력들을 계속해서 시도해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사회복 지 분야만이 아닌 문화예술 분야와의 꾸준한 만남을 시도했고, 결국 좀 더 깊은 문화적 상상 과 실천의 근거들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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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와 문화예술 영역을 활발하게 넘나들었던 2006년 즈음 여행에서 만난 히말라야 네 팔에서 ‘네팔 품’을 시작했고,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전 지구적 사유와 아시아의 가치 등 보다 확장된 시각과 고민들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히말라야 네팔에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공 동체의 원형인 ‘마을’을 만났다. 이후 품은 좀 더 적극적으로 ‘마을 속에서 가능한 문화 공동 체’를 시도하게 되었고, 이는 15년 째 지속되고 있는 ‘추락(동네 청소년축제)’이나 십대들과 동네문화를 만들어가는 실천들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십대와 청년 그리고 마을과의 만남 안에서 늘 부족한 2%가 있었다. 좀 더 일상적인 관계와 만남에 대한 목마름, 그리고 문화적 상상력과 실천에서 채워지지 않았던 ‘사유의 힘, 정신의 힘’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래서 시작 된 것이 인문 공부였다. ‘세 개와 심한개의 인문학교’를 열었고, 십대들과 함께 인문학적 사 유와 문화적 상상이 연결된 공부와 실천을 시도하였다. 결국 2011년에는 ‘무늬만학교’라는 품 의 장점을 살린 주말학교를 열었고, 이제는 공교육과 대안교육을 연결하는 품의 장점을 살린 새로운 방식의 ‘대안학교’를 준비하고 있다.

놀이문화와 땅의 문화

마을 속에서의 문화공동체

히말라야 네팔에서의 성찰

청소년 문화복지 문화적 상상과 실천

인문공부와 무늬만학교


하나의 목표만을 고집했거나, 다시 돌아보고 깨닫지 못했거나, 새로운 시도와 도전들을 망설 이기만 했었다면 이와 같은 순환의 고리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성장을 가능하게 해 준 또 하나의 힘은 품과 함께 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며, ‘소통과 사람’ 또한 서로 연결되어가며 순환의 에너지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품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힘은 ‘Mandala’와 같은 순환적 에너지에 대한 믿음이지 않을까?

노래품

‘노래품’은 노래로, 음악으로 품을 판다는 뜻이 된다. 유네스코 청년원 의 손춘석 선생이 지어주신 우리말 ‘품’에 노래라는 글자가 붙여졌고,

지금의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이라는 이름까지 지켜가고 있다. 노래품은 지금의 청소년문화공 동체 품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때 당시 ‘노래품’은 ‘밴드(band)’라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노래패’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밴드와 노래패를 결합한 형태의 팀이었다. 그 때 당시 우리를 꽤 예뻐하시고 지지하셨던 강석준 신부님(현 논산대건고 교장)이 후원해주신 다트(dart) 앰프와 스피커를 짊어지고 논산, 이천, 남해, 온양 등 우리를 부르는 곳, 아이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노래를 했었다. 양금석, 이준호, 신석호, 심한기로 시작된 ‘노래 품’은 경운기가 털털거리며 지나다니는 운동장, 시골 읍사무소의 좁은 회의실도 마다하지 않 았고, 경기도 이천 시내에 있는 3천명 규모의 체육관에서는 달랑 8명의 아이들과 함께 신나 게 노래하며 삶을 이야기했던 기억도 있다. 그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우리는 네 명 모두 악기 를 연주하고, 노래도 하고, 노래를 만들기도 하고, 가끔은 풍물을 치기도 했었다. 생각해보면 조직이나 단체를 만들기 위한 골치 아픈 준비가 아닌,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선택하여 나름 즐겁고 문화적인 방식으로 품을 준비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시작은 품이 다양한 영역 에 대한 유연성을 가질 수 있는 에너지가 되었던 것 같다.


품 20

점차 ‘노래품’의 식구들은 늘어났고, 어쿠스틱 사운드(Acoustic sound)를 주장했던 신석호 의 반대를 무시하고 최찬욱, 이강우, 조의근*이 결합하면서 나름 밴드(Band)의 형태를 갖추 었다. 중간에 유네스코 청년원의 스승인 손춘석 선생의 참여도 있었다. 이렇게 1991년에 시작 된 ‘노래품’은 1995년 정기공연을 마지막으로 이후 활동이 없었다가, 2001년 ‘노래품’ 10주 년 기념 공연을 끝으로 해산되었다.

얼마 전 참 오랜만에 품 초창기 선배들과 ‘노래품’ 식구들이 노량진 수산시장 좌판에 모여 앉 았다. 이젠 다들 중년의 아저씨들이다. 대충 계산을 해보니 평균연령이 50세 쯤 되는 것 같다. 창식이 형은 이제 환갑의 나이지만 여전히 ‘술과 말’이 멈추지 않는다. 종수형, 종호형 그리 고 금석, 찬욱, 판기의 불어난 뱃살은 감추기가 힘들다. 그렇게 불어난 뱃살만큼 삶의 지혜와 여유도 함께 늘어난 것 같다. 모두들 지나온 품의 20년을 이야기하고 앞으로의 20년을 이야 기한다. 그리고 ‘노래품’은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

노래품은 품을 잉태하였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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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찬욱은 현재 ‘wave collection studio’ 대표이며 음악활동을 하고 있고, 조의근은 ‘mania sound’라는 음향기기 대여업체의 대표이다. 이강우는 음악활동을 하다가 다른 사업을 한다고 들었으나 현재 행방불명 상태다. 그리고 20년이 다 된 지금도 신석호는 록 사운드(rock sound)를 부추긴 심한기와 최찬욱을 싫어한다.


품의 시작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양금석, 이준호, 심한기 모두 아 이젠 * 전성민 의 이들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함께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서울청 손에 소년수련관 청량리 분관에서 자원활동을 했었고, 그리고 권위적이거나 장을 지질 수 평범한 직장이 아닌 좀 더 재밌고 폼 나며 가치롭게 살 수 있는 일상 있다. 들에 대한 치기어린 그러나 당당한 도전이 있었다.

지금은 골프연습장으로 바뀌었지만 서울청소년수련관 청량리 분관의 최종희 관장님과 정병국, 김종국 선생의 도움으로 4평 지하 공간을 얻어 품의 전신인 ‘품 청소년놀이 문화연구소’의 문을 열었다. 첫 문을 열던 날, 품의 정신적 모델이었던 유네스코 청년 원(현/이천 유네스코 평화센터)의 전성민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야!!~~ 너희들 이거 3년 이상 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농담이셨을까? 자극을 주시려는 깊은 의도였을 까? 어쨌거나 품은 3년을 넘어 20년을 지켜오고 있다. 품20주년 기념식에 전성민 선 생님을 모시고 ‘장 지지기’ 퍼포먼스를 할 계획이다. 퍼포먼스에 사용될 ‘장’은 품과 함께 성장한 판중과 현중의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품 청국장’의 곰삭은 장을 공수할 것이다. 지금 양금석과 이준호는 품 사무실에 없지만 그들이 만들었던 ‘품’은 여전히 세상과 아이들을 품으려 움틀거리고 있다. 그리고 장을 지지겠다는 전성민 선생님 역 시 청소년활동 현장에서 품을 응원하고 있다.

전성민의 손에 장을 지질 수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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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청년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근무하였고, 현재는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의 사무처장이며 품이 태어나기 전부터 양금석, 이준호 심한기의 스승이자 선배이다.


품 20

강대근 그리고 유네스코 청년원 와이셔츠 왼쪽 주머니에 꽂힌 디스 담배를 꺼내시면서 늘 하시는 말씀, “밥은 묵고 사나?” 이 제 고인이 되신 강대근 선생님을 스승으로 따르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다양한 영역의 다양한 사람과 조직들이 그를 스승으로 여긴다. 품 그리고 품의 역사 안에서도 이 분의 자리는 적지 않다. 품이 태어나기 전부터 유네스코 청년원을 들락거리며 청소년활동 그리고 청년의 정신에 대한 가르침들을 곁눈질했고, 그 가르침들은 이후 품의 정신과 방향에 꽤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때 만났던 스승이자 선배들이 바로 강대근, 손춘석, 전성민, 이태주, 이선재였고 김민, 강종 안*은 지금도 청소년활동, 국제활동에서 동지로서 품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천에 있는 유네스코 청년원은 그 곳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의 힘과 활동과 연결된 역 사적 가치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공간자체가 지니고 있는 힘 또한 매력적이다. 품은 1997년 부터 유네스코 청년원의 정신과 품의 에너지를 결합한 ‘청소년활동 지도자 연수’, ‘청소년문 화복지 아카데미’, ‘십대문화기획자 아카데미’ 등 당당한 청년과 십대로서의 삶의 실천을 위 한 활동들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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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과 독립, 종속과 해방, 순응과 저항 사이에서 고뇌하고, 방황하고, 좌절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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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유네스코 청년원의 식구들이었다. 손춘석 현)박달재청소년수련원, 전성민 현)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선재 현)국제활동가, 이태주 현)한성대교수, 김민 현)순천향대 교수, 강종안 현) 브릿사업단


청소년과 청년들은 우리사회의 이중구속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며, 익숙한 기성의 질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위대한 거부’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품 20년 동안 늘 잊지 않고 담으려 했던 강대근 선생님의 가르침이다. 가끔 나태해지거나 요 령을 피우고 싶을 때 스스로를 반성하게 했던 가르침이었다. 결국 품은 늘 ‘위대한 거부’를 실 천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아이들과 청년을 흔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강대근과 유네스코 청년원은 여전히 품 의 정신이며 스승이다.

기억과 희망

‘좋은 기억이 있어야 희망이 보이는 것 아닌가?’ 고리타분한 과거의 에피소드를 반복하는 것 말고 오래 묵은 청국장 같은 기억들이 지금과 앞으로의 희망을 느낄 수 있게 한다면, 기억은 희망을

느낄 수 있게 한다면, 기억은 희망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함께 한 당사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며, 그 과정에 없었거나 연결된 관계가 없는 타자에게는 지겨운 넋두리일 뿐이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품의 기억들을 말하고 싶은데, 안 될까?

생각나는가? 진미 감자탕!

품의 식구들이 20년 시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식 당을 꼽으라면 역시 ‘진미 감자탕’이다. 10년도 넘게 들락날락 했던 우이동 최고의 맛집이었다. 맛도 아 름다웠지만, 넉넉한 인심의 사장님 부부도 아름답고, 넉넉한 인심의 사장님 부부도 아름답고, 그곳에서 나눴던 수없는 이야기들도 아름다웠다. 술에 취해서 탁자에서 자는 놈, 미래를 고민하며 눈물을 머금은 놈, 품의 오류를 들춰내며 열변을 토 하는 놈, 집에 갈 시간을 걱정하며 눈치를 보는 놈, 이미 2차를 기대하며 물주를 선별하는 놈....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곳에서의 맛과 이야기들이 모여서 품의 시간들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정선 ‘품속학교’를 기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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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군 고양리 깊은 골짜기에 숨어있었던 ‘품 속학교’ 오래 전 문을 닫은 폐교를 우리 손으로 고치 고, 칠하고, 닦아서 만들었던 품 최초의 자연 속 품속 학교. 겨울이면 눈을 녹여 밥을 지어먹고, 산가지 주 워서 장승을 세우고 썰매를 타고 연을 날리고, 썰렁 한 촛불을 켜놓고 눈물을 흘려도 보고, 시간가는 줄 도 모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만들어 냈던 곳. 오래 전 건물붕괴 위험판정을 받고 문을 닫았지만 언젠가 품이 찾아야 할 자연 속의 학교임을 잊지 않고 있다.

중화동 지하 사무실

품의 첫 공간은 서울청소년청량리 분관 지하 사무실 이지만 품이 자비로 마련한 첫 사무실은 중랑구 중화 동에 있었던 지하 사무실이다. 그 때부터 품의 공간 은 늘 땅 속을 지켜가곤 했다. 인천의 문화운동 단체 인 ‘퍼포먼스 반지하’와 ‘지하공간 연대’를 꿈꾸기도 했었다. 20여 평의 정사각형 공간은 ‘노래품’ 연습실, 사무실, 교육실은 물론 때가 되면 식당 으로 변신하는 질펀한 일상과 삶의 마당이었다. 그곳에서 첫 사회복지 실습이 시작되었고, 청 년을 위한 교육들이 시작되었고, 어떻게 아이들을 만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학습이 시작되었고, 하고 싶은 일과 먹고사는 문제들에 대한 처절함이 시작되었다. 품은 지금 매일매 일 햇볕을 보며 산다. 그 때 그 시절의 땀들이 오늘의 따뜻한 햇볕을 가져다주었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의 함성들

2004년 11월 21일 오후. 쌀쌀한 날씨로 썰렁했던 대학로 한복판에 상기된 얼 굴을 한 300여명의 십대들이 기습적으로 모여들었 다. 마치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그 날처럼, 아이들 은 ‘청소년들의 문화적 권리’를 외쳐댔다. 서울시청 소년연극축제에 참여하는 연극 동아리들의 외침이었다. 연극축제에 참여하면 무대 위에 올라가


빛나는 조명을 받으며 공연을 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스산한 초겨울 날 대한민 국 연극의 중심지인 대학로, 그러나 청소년 연극은 없는 그곳에 모여들었다. 아이들의 발랄하 면서도 진중한 외침은 ‘하고 싶은 연극을 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십대들의 고민과 일상들에 무심한 우리세상을 향한 자신들의 목소리’였다. 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고, 응원을 했 고, 또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그곳에서의 장면들이 품의 시간에서 잊혀질 수 없는 이유는 앞 으로도 품이 꿈꾸어야 할 ‘아이들의 목소리’들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품 20년의 기억을 통해서 희망을 그려볼 수 있는 공간과 장소와 장면들은 참 많기도 하다. 유네스코 청년원 잔디운동장에서의 평화로운 몸부림, 태백산 천제단에서의 비나리, 지리산 밑 함양초등학교 마당에서의 백두대간 퍼포먼스, 안동 하회마을의 아침 안개, 충무로 삼거리에서의 풍물 행진과 남산한옥마을 앞마당에서의 대동놀이, 여해문화공간 앞마당 에 깔린 파랑새들의 날갯짓, 속초 청초호수와 천수만에서 만난 철새들, 강화도 동막리 갯벌에 서의 웃음소리, 세종문화회관 컨벤션 홀에서 들려오는 함성들, 쌍문동 지하 사무실 계단 입구 작은 화분들 위에 비춰진 햇살들과 늦은 밤 강북구청 주차장 마당에 펼쳐진 추락 전야제... 이 모든 시간들 속에 아이들이 있었고, 이 모든 시간들 속에서 아이들은 청년으로 자랐다. 그리 고 이 모든 시간들 속에 품과 사람이 있었다.

이 모든 기억들이 또 다른 희망을 그려내고 있다.

시공간을 넘나들어야 행복한 품.

고 하는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품이 모든 고민과 활 동 그리고 새로운 희망들이 연결되어 있는 ‘마을’을 만나기 전까지

는 전국 방방곳곳을 누비고 다녔었다. 사무실에 앉아있기보다는 세

상 밖으로 나가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품 초창기에는 전국 어느

곳이든지 아이들이 있는 곳이면 달려갔었고 품의 청소년회원들이 생

겨난 후에도 도시에 남아있지 않고 전국의 바다, 산, 강, 들판을 찾

아다니곤 했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자연’을 만났고, 자연에 대한 공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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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품은 주로 동네에서 살아간다. 네팔 품 역시 주로 ‘베시*’라

네팔 품이 그곳의 사람들과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곳이다. 베시마을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와 1시간 남짓 거리의 전형적인 농촌 마 을이고 이곳에 품에서 파견나간 활동가인 이하니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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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자연과 아이들을 연결하는 활동들을 시도했었다. 매년 여름과 겨울에 떠났던 캠프는 물론이고 주말이면 늘 아이들과 함께 자연과 세상을 만나기 위한 여행을 떠났었다. 놀이와 공부를 구분 하지 않았던 품은 결국 늘 새로운 영역의 공부가 필요했었다.

새 박사 윤무부교수를 따라다니며 한국의 철새를 공부하고, 김태정 선생을 따라다니며 한국 의 들꽃을 공부하고, 민속학자 주강현 선생을 따라다니며 한국의 민간신앙을 공부하기도 했 다. 세상의 모든 사물과 공간이 품의 학습터이자 놀이터였다. 자연을 만나고 보니 그 자연 속 에 담긴 문화가 보였고, 그 자연과 함께 한 우리의 전통과 역사가 보였고, 자연과 문화와 역 사가 연결되는 일상과 삶의 문화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1996년에 품은 자연과 문화와 역사가 삶의 사슬처럼 연결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전국 의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삶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프로젝트를 3년 간 진행했었다. 꼬박 1 년 넘게 엄청난 공부와 답사와 프로그램을 위한 준비를 했었다. 우리 땅의 강과 산과 바다를 쫓아다니면서 지금 현재의 삶에 대한 연결점과 희망을 찾아보겠다는 의도였고, 또한 이러한 시도들이 더 많은 청소년들에게 전파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보겠다는 뜨거운 열정이었다.

이러한 품의 과정을 생각해 보면 2012년 현재 품의 활동무대인 동네나 마을이라는 시공간 역 시 이전과 다르지 않은 의미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자리에서 멀리 떠난 다고 해서 늘 새로운 경험과 의미를 만나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 문화와 역사와 일상과 삶이 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가는 시작점은 아마도 멀리 떨어진 세상이 아닌 지금 숨쉬고 있 는 일상과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는 품의 지나온 과정들을 통해서 얻은 통찰과도 같다. 그래서 품은 늘 현재의 시간과 삶, 과거 또는 다른 세상 속에서의 시간과 삶들을 연결하려한다. 히말 라야 네팔의 베시마을이 아주 먼 나라에 존재하는 이상하고 생소한 공간이 아닌, 북한산 자락 우이동에서도 서로 교감하고 연결될 수 있음을 알아가고 있다.

기록과 소통

품 사무실 형광등은 늦은 10시 전에 꺼지는 일이 별로 없다. 늘 그랬던 것 같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만날 늦게까지 도대체 뭘 하냐?, 왜 그 리 일이 많냐?, 애들 그만 부려먹어라!’ 예전에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 했으나 요즘은 스스로도 ‘정말 왜 이렇게 일이 많지?’라는 질문을 자주


한다. 일의 가짓수나 분량을 따져보면 동네 종합사회복지관보다 많지 않은데 왜 그럴까? 요 즘은 대표인 내가 식구들을 억지로 퇴근시키는 일도 자주 있지만 여전히 품의 형광등은 밤늦 도록 꺼지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품을 좋아하지만 품에서 일하는 것은 두렵다고 말하는 사 람들이 참 많다.

품에 일이 많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품을 늦게까지 잡아두는 가장 큰 이유는 ‘기록과 소통’ 때문이다. 뭔 말인가? 어쩌면 아이들을 만나는 곳에서는 당연한 이유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품은 정부지원을 받는 청소년수련관이나 종합사회복지관과는 업무나 운영의 형 태가 많이 다르다. 복잡한 행정이나 서류, 직급별로 이어지는 내부결재, 그리고 주기적으로 이 루어지는 평가나 감사에서도 매우 자유롭다. 품 20년 동안 외부기관에 평가를 받거나 감사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감사하다”는 인사는 자주 주고받고 있다.

품은 평상시 아이들을 만나기 위한 준비, 아이들을 만나고 난 후의 정리, 그리고 그 다음 만 남을 위한 상상은 물론이고 일을 담당한 사람이 느끼는 개인적인 후기(review)와 같은 기록 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품 홈페이지에 있는 내부 인트라넷(intranet)에서 하루에 대한 각자 의 일과 생각을 공유하는 ‘매일일기’를 쓰고, 일주일에 한번 품 식구들이 모여앉아 지나간 한 주의 느낌들과 돌아오는 일주일을 이야기하기 위한 ‘주말일기’를 쓰고, 월별로는 좀 더 깊은 정리와 나눔을 위한 ‘월 나눔 일기’를 쓰고 있다.

이러한 기록과 정리의 중심에는 ‘소통’하려는 의도와 노력들이 존재한다. 즉 종이뭉치로만 남 아있는 서류 또는 누군가에게 보고를 하고 평가를 받기 위한 서류가 아닌, 품 내부에서의 소 통 그리고 품과 연결된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기록과 정리가 대부분이다. 품의 기록과 소통과 관련한 과정들은 문자로 된 서류만이 아니다. 실제 아이들과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해 쓰이는 보이지 않는 시간들 역시 품 업무량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기록만을 위한 기록, 결과만을 드러내기 위한 정리, 사업이나 프로그램만을 진행하기 위한 소통 들은 박제된 인형과 다르지 않으며 내부의 에너지를 갉아 먹는 좀비와도 같다. 그래서 아이들 또는 사람들을 만나는 조직이나 단체에서의 ‘기록과 소통’ 즉 ‘소통과 나눔을 위한 기록’은 단 순히 업무를 위한 효율적 수단을 넘어서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이다. 그래서 이와 같은 품의 방 식은 지켜가되, 매일 밤 품의 형광등이 켜지는 일은 조금씩 줄여갈 것이다. 품이 잘하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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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개인의 일상 찾기, 그리고 일상에서의 쉼을 위한 나름의 방식들을 찾아갈 것이다. 품은 자유로움과 치열함이 공존하는 조직이며 아직까지는 이것이 품의 매력이다. 일과 일상이 명 료하게 구분되지 않고, 작은 일이라도 치열하게 준비하고, 그러다가 쉼이 필요할 때면 사무실 문을 닫고 다함께 여행을 떠나보기도 하고, 매년 한두 명씩은 히말라야 산자락을 오르기도 한 다. 그리고 이러한 품의 방식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품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보편적인 판 단이나 시선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품’ 이지 않은가?

품은 올해 품 20주년을 기념하며 다섯 가지 영역의 릴레이 워크숍과 다섯 권의 책 출판을 준 비하고 있다. 그동안 진행했던 단순한 사업보고서가 아닌 품 20년의 흐름과 과정, 그리고 지 금의 역동과 앞으로의 희망을 담은 워크숍과 출판물들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 은 바로 ‘기록과 소통’의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록을 위한 소통이 아닌 소통을 위한 기록을 하라!

품과 사람Ⅰ (사람 그리고 관계와 태도의 소중함)

모든 조직, 모든 일들의 중심은 사람이다. ‘품과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모든 조직의 아픔과 희망은 사람으로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중심에 얼마만큼의 사람들 또는 어떤 유용한 사람들이 존재하는가’ 보 다는 ‘우리와 연결된 사람들을 얼마만큼 소중하게 생각하는가’ 이지 않 을까? 심지어 사무실을 방문하는 우체부 아저씨, 복사기 기사님까지도

일상의 고마움을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태도를 만들어갈 수 있는가? 뭐 이런 관점으로 ‘품과 사람’을 이야기하고 싶다. 20년이란 시간이 지났으니 품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무수히 많은 실수와 잘못을 반복해왔을 것이며,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남아있을 것이다. 품을 거쳐 간 활동가들과 자원활동가들은 물론이고 300여명의 ‘주주회원’들 그리고 품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품의 역사 안에 존재하고 있다.

이미 잊혀진 사람들과 스스로 잊혀져 가는 사람들도 있고, 10년, 15년, 20년이 넘도록 변함없 이 관계를 이어오고 서로의 삶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있는 사 람들과 새롭게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일에 집중하고 결과에 집중하며 그것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과정과 관계들을 놓친 적도 많았고,


품이 지니고 있는 특이한(?)문화 속에서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도 많았다. 여전히 품은 오류와 실수를 만들었다가 뒤늦게 반성하고, 다시 관계하고, 또 다시 오류를 만들고 또 다시 반성하 기를 반복하고 있다. 스스로 알아차리고 반성을 하기도 하지만 타자의 솔직한 비판과 조언 또 는 타자의 여유와 너그러움 덕에 뒤늦은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품과 사람, 품 안에서의 관계는 ‘관계’ 그 자체에만 집중되지 않는다. 품이 맺는 거의 모든 관계에는 ‘변화와 성장’이라는 의도들이 담겨져 있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조금 어렵고 불편해도 스스로의 성장이나 혹은 함께 가는 변 화와 성장이 가능하도록 애쓴다. 그리고 품은 다양한 삶과 세상을 만나고 바라보는 태도 역 시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기에 더 힘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 더 ‘품과 사람’이라는 제목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

허접하고 안일한 변명이라며 비웃음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존재 해야 할 ‘존중’하는 태도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들은 늘 멈추지 않고 있다. 그리고 2012년 6 월 현재 품의 공간과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8명의 활동가들은 품의 역사에서 반복되었던 사 람에 대한 반성과 성찰들을 온전하게 이어받으며 ‘품과 사람’이라는 명제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품20年史’에 등장하는 집필자들의 존재 자체가 품의 역사이며, 품 20주년 기념식을 찾아오거나 축하해주는 사람들의 마음 자체가 품 의 역사이다.

품 20주년을 정리하고 20주년 기념식을 준비하면서 품이 온 몸으로 감사해야 할 사람들을 떠 올려봤다. ‘그래도 30명은 되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5분도 채 되지 않아 70명, 80명, 100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여기에 품의 역사 안에서는 물론 일상에서까지 힘이 되고 있는 품의 주주회 원을 포함하면 감사해야 할 사람만으로도 500석 규모의 대극장을 어렵지 않게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품이 감사해야 할 일들이며 품이 담아야 할 현재이며 미래이다.

그리고 더욱 소중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 있다면 품과 연결된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신뢰’ 를 말하기 전에 품 안에 있는 사람과 사람 간의 ‘존중과 신뢰’는 얼마만큼 존재하는가에 대 한 대답이다. 이에 대해서 20년 간 장기독재를 하고 있는 심한기가 대답을 하면 믿을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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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되면 심한기 빼고 품의 식구들에게 물어보세요!

품과 사람 Ⅱ (주주의 힘)

보통은 후원자라고 불려진다. 말장난일 수도 있지만 품은 후원자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주주’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후원자라는 단어가 주 는 이미지는 다소 일방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어려우니 도와야 한다는

보통은 후원자라고 불려진다. 말장난일 수도 있지만 품은 후원자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주 주’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후원자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다소 일방적이라는 생각 때문이 다. 어려우니 도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정신의 지지나 가치의 공유보다는 물질적 지원이 우 선이 되는 느낌 때문에 후원자라는 이름 대신 ‘주주’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품 주주의 의미는 경영분야에서 쓰여지는 ‘투자와 배당’이라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품에서의 배당은 투 자한 만큼의 물질적 이익이 아닌 ‘가치’로서의 배당을 의미한다.

1998년 당시 품에서 자원활동을 하던 식구들, 품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식구들로부터 시작된 ‘두레품’은 당시 30여명으로 주주운동을 시작하였고, 지금은 300여명의 주주들이 품을 지지 하고 있다. 후원조직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다른 단체들과 비교하면 매우 열악한 숫자일 수도 있지만, 품의 상황으로 보면 어쩌면 기적과 같은 일이기도 하다. 품은 가난한 아이들, 긴급한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을 선택하여 돌보는 곳이 아니다. 품은 어떠한 형태로든 아이들을 구분 하려 하지 않으며 경제적 상황 등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품이 만나는 아이들, 품으로 다가오 는 아이들 모두를 가르지 않고 구분하지 않는다. 그리고 언뜻 보면 품은 아이들과 노는 단체 이다. 상담을 하고 치료를 하고 경제적 지원을 연결하는 일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에 품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후원을 권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품의 주주는 품을 경험했거나, 가까이서 품을 만났거나, 오랫동안 품을 지켜보았거나, 아주 가 까운 사람을 통해서 품을 알게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방송이나 언론 또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품을 만나고 품의 주주로 함께하는 사람들은 아직 많지 않다. 그래서 품의 주주가 더욱 소중하 다. 어떤 특정한 대상을 돕기 위한 후원이나 지원이 아닌 품의 사람, 품의 생각, 품의 가치, 품 의 활동 자체를 믿고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바로 품의 주주이기 때문이다. 또한 품의 주 주 중에는 품의 선배로서 또는 품의 스승으로서 또는 품의 동지로서 품이 가야 할 ‘길’을 열어


주고 제시해주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정기적인 정부의 지원이나 청소년과 관련한 시설을 위탁받지 않는 다소 고집스런 품의 방향으 로 볼 때 품의 가치에 투자할 수 있는 300여명의 주주가 있다는 것은 경제적 수치로 계산할 수 없는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 품의 주주들이 지원하는 주주회비는 매월 평균 300만 원 정 도이다. 8명의 식구가 살고 있는 품에게 300만원은 그리 큰 액수가 아닐 수 있지만 지난 20 년 동안 품을 지탱해준 가장 소중한 정신적 힘의 원천이 바로 품의 주주이다. 그 힘이 있기에 또 다른 시도와 도전들이 가능했다. 그리고 품을 지지하는 주주회원도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앞으로 품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 중에 하나가 경제적 안정이지만 여전히 가장 어려운 부분이며 품이 가장 못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능력 없는 대표의 잘못이라고 욕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돈을 버는 일, 조직을 확장하는 일, 시설을 위탁받는 일은 품이 가야 할 길이 아니다. 물론 ‘정신의 힘’만을 먹고 살 수 없음도 잘 알고 있기에 조금씩 가능한 대안들을 만 들어가고 있다. 2012년 품은 같은 동네에 있는 ‘사단법인 삼각산재미난마을’이 추진하는 예 비사회적 기업에 참여했다. 품의 정신을 잃지 않으며 또 다른 방식의 성장과 변화를 위한 시 도이다. 빠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조금씩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품의 주주는 품의 主住이다. (주인이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

품과 사람 Ⅲ

이름은 유영은, 애칭은 ‘미루’(이하 미루)다. 미루가 어떤 뜻인지는 모르지만 대충 ‘먹을 때를 미루지 말자!’, 또 는 ‘품과의 약속을 미루지 말자!’ 뭐 이런 뜻이지 않을까? 아님 말고. 어쨌든 미루는 품의 역사에서 품과 사람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가장 적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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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다. 왜냐하면 오로지 품에서만 활동했거나 성장을 한 친구도 아니며, 품에 대한 애정 과 신뢰는 있으나 품 밖에서 자신만의 삶을 꾸려가고, 언제나 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 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품하고의 직접적인 관계나 연결을 기대했을 때 나타나는 오류들을 생각하면 앞으로 사람과 성장이라는 면에서 품이 집중해야 할 일은 좀 더 명확해진다. 즉 품에 남아 있거나 직접적인 연결이 되지 않더라도 다른 세상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청년’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일들을 멈추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미루는 한성여고 연극반 출신이다. 공부를 못한 것은 아니지만 싫어했고, 공부도 미루를 싫어 했던 것 같다. 자신의 드라마 같은 인생과 같은 연극에 몰입했었고 가끔은 사회적 역할을 회 피하지 않고 ‘사회봉사*’에도 참여하곤 했다. 미루는 1학년 연극반 시절에 품을 만났고, 당시 품에서 10년 동안 집중했었던 ‘서울시청소년연극축제’에 참여했었다. 거의 모든 청소년 행사 들이 1등과 꼴등을 가리는 경연대회로 달려갈 때, 품은 ‘경연’이란 무자비한 접근을 당당하 게 거세하고 비경쟁 축제 그리고 참여하는 모든 친구들이 연극을 매개로 만나고 관계하고 또 세상을 인식하며 부조리한 것들을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는 ‘나눔과 참여’로서의 연극축제 를 만들어 갔었다. 미루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그동안 만나던 세상과 다른 세상을 만났고, 또 다른 방식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던 것 같다. 고1때부터 연극축제에 참여하 기 시작해서 수험생인 고3 때에도 멈추지 않더니, 심지어 삼수를 하던 시절에도 10주년 연극축제의 스텝으로 참여했다. 결국 삼수 끝에 대학을 갈 수도 있었지만, 품이라는 대학을 선택하여 품 의 인턴으로 2년 동안 활동하기도 했다. 인턴 면접을 할 때 미루의 무식한 당당함이 기억난다.

“미루는 앞으로 뭘 하고 싶냐, 꿈은 뭐냐?” “네! 저는 축제를 만들고 싶어요!” “품에서 미루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품은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자발적 봉사는 아니고, 학교에서 애들을 때리거나 학교가 싫어하는 짓을 한 대가로 다닌 ‘사회봉사’이며 그 때 배웠던 스포츠 마사지는 미루의 인생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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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는 축제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냐고?” “네! 저는 축제를 만들고 싶어요!”

품에서 2년 동안 미루는 십대를 만나고, 마을을 만나고, 학교를 만나며 막연하게 꿈꾸었던 ‘ 축제’에 대한 상상들을 구체화시켜 갔다. 이후 미루의 상상들은 일상적인 삶의 실천으로 진 화했고, 다른 방식의 경험과 공부를 위해 문화기획교육 전문 집단인 ‘에이스벤추라’에서 1년 간 활동을 했다. 그리고 다시 스스로 만족하고 체감할 수 있는 좀 더 질퍽한 일상적 삶을 고 민하다가 충북 옥천의 시골마을로 내려갔다. 몇 안 되는 아이들과 노인만이 남아 있는 전형적 인 시골마을에서 대안적인 삶의 희망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그곳에서 미루 는 매일 매일 동네의 어르신들과 수다를 나누고, 동네 꼬마들과 이리저리 뛰어놀면서 ‘활동가’ 또는 ‘기획자’로서가 아닌 일상과 삶을 함께 나누는 ‘청년주민’으로서의 시간을 만들어갔다.

지금 미루는 옥천 시골마을보다 더 삶의 변화와 나눔이 필요한 중국 연변에서 살고 있다. 그 곳에서도 역시 동네 아이들과 놀고 동네의 청년들을 흔들며 살아가고 있다. 연변의 조선족 마 을에서 아이들 그리고 청년들과 함께 스스로 가능한 ‘돌봄’의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미루 의 삶은 늘 고민과 싸움과 도전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품에 대한 일방적 의지가 아닌 품 과의 소통과 나눔이 있었다. 서로의 삶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말이며 미루의 고민과 실천 속 에는 품이 고집해온 정신이 아닌 품에서 경험하고 나누었던 삶의 태도들이 자리잡아가고 있 다는 것, 그것이 바로 20년 품이 소리 없는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장면이며 소박한 감동을 주 는 장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품은 앞으로도 미루와 같은 청년들을 만날 것이며, 때론 그들을 흔들기도 하고, 품이 그들에게 흔들리기도 하면서 서로를 응원하고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품의 사람’이 아닌 ‘품과 사람’이 더욱 아름답다.

3,3,3의 비밀

품의 역사에서 3,3,3은 매우 비밀스러운 숫자이다.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중요하지도 않고 근거도 없는 어거지이니까. 그래서 3,3,3을 생각하면 나만 혼자 즐겁다. 20년 전 품을 시작한 양금석, 이준호, 심한기가 3이고, 어릴 적부터 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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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랐고 한 때는 품의 대표 청년이었던 Red-P(김판중, 이설, 김동혁)가 3이고, 동네 골목에서 떠돌다가 십대기획자가 되고 인문학을 공부하고 논문을 쓰고 책을 낸 ‘세 개’(김준혁, 서인석, 송성호)가 3이다. 이것이 바로 3,3,3의 비밀이다. 비웃으면 섭섭하다.

품이 바라보고, 행동하고, 희망하는 일상들은 꽤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품을 만나는 많은 십 대의 아이들은 혼란을 겪거나 기존의 일상이나 질서에 대한 의심을 한다. 학교와 가정과 사회 에서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길을 가지 말라고 부추기기도 하기에 때론 잘 다니던 학교를 그만 두는 아이들도 있다. 수능시험에 매달리기보다는 자신의 일상과 미래를 기획하는 일에 몰입하 라고 제안하기도 하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만나고 도전하고 선택해보라고 꼬드기기도 한다. 그래서 품은 학교와 부모에게 ‘공공의 적’이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가끔은 아이들의 부모에 게 멱살을 잡혀보기도 했고, ‘아이들을 좀 믿고 기다려 보셔요!’라며 핏대를 세우며 부모들과 언성을 높이는 일도 종종 있었다. 이러한 상황들을 만나는 일은 품과 부모들은 물론 아이들에 게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고, 이러한 어려움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참 다행인 것은. 학원을 빼먹고 동네문화작업을 하고, 시험성적이 떨어질 만큼 다른 것에 몰입했던 십대의 아이들 이 이십대의 청년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며 회심을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와 학교와 사회가 그리도 걱정했던 낙오자의 모습이 아닌,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는 당당한 청년의 모습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더욱 즐거운 일은 함께 성장했던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 부모를 이해하려 하고, 지지하려 하고, 또 다른 동생들을 응원하고 다독이는 모습을 만나는 일이다.

여기서의 ‘비현실성’은 기존의 사회가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실체가 없는 비현실성을 의미한다. 품에게 비현실성은 곧 현실성 이다. 비현실성의 현실성은 품이 버리지 못하는 유쾌한 반항이며 신나는 에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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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중, 이설, 김동혁, 김준혁, 서인석, 송성호가 바로 그런 청년들로 살아가고 있으며 이 녀석 들만이 아닌 더 많은 청년들이 품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히말라야 네팔에서도 역시 또 다 른 3,3,3의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20년이란 긴 시간의 노력들이 가져다준 최고의 선물이며, 가 끔씩 부딪치는 고난과 아픔들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최고의 에너지이기도 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또 다른 3,3,3의 비밀들이 진행되고 있다.

Good Karma (히말라야 네팔)

불교와 힌두가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히말라야 네팔에서 ‘업’( 業, Karma)은 매순간 자신이 일으킨 마음에 의해 말과 몸으로 짓 는 행위로서 또는 윤회(輪廻, Samsara)의 사슬로서 전생에서의 행위 가 이생에서의 삶을 결정하는 것으로서 이해된다. 품과의 필연적 업이

었던 것인지 아니면 평범한 우연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히말라야 땅 네팔에서 ‘네팔 품’ 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운명적인 만남과 교감은 올해로 7년을 넘어서고 있다.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와 각인된 풍경에는 의미가 부여된다. “지도상 어디에도 없는 곳이 된다. 진정한 장소들은 실재하지 않는다” 산이나 숲 등 보이는 부분은 설명할 수 있다. 심지어 상상의 개념들도 받아들여 정상에서 맛보는 영광을 재현할 수 있다. 하지만 감추어진 힘들, 감각을 넘어 존재하는 지리적 의미는 알기 힘들다. 토착민들처럼 이 풍경을 제대로 정의하려면 다른 눈으로 보고 다른 귀로 들어야만 한다. - 죠지 B 셀러 히말라야 네팔을 처음 만난 나도 그렇고 품도 그렇고 그곳과 이런 인연이 되고 이와 같은 깊 은 성찰들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상상을 떠나서 그래야 할 욕구 나 필요성도 가지지 못했었다. 서른 살이 넘어서야 떠났던 나 홀로 배낭여행에서 만난 히말라 야가 품의 시공간과 생각의 틀을 흔들어버렸다. 히말라야 네팔을 만나기 전 품은 나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영역의 고민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 만 ‘가난한 나라 그러나 히말라야가 있는 나라’ 라고 알려진 그 곳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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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일상의 진리들이 널려져 있었다. 그곳이 우리가 사는 곳보다 더 영험하고 특별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생각보다는, 살고 있지 않은 다른 곳에서 자신의 자리 를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인연이자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꼼꼼한 준비와 공부 없이 시작했던 네팔품 초창기에는 하지 않아도 될 많은 시행착오와 오류 들을 반복했었다. 특히 그들의 삶과 역사와 문화를 고려하지 않은 채 품의 방식으로 사람을 만 나고 일을 만들어갔던 과정들은 어리석은 시도이었고 자만이었다. 그렇게 3년 정도의 널뛰기 를 한 후에야 뼛속까지 파고드는 반성과 성찰을 할 수 있었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그때까지 품이 갖지 못했던 좀 더 넓고 깊은 고민과 시도들이 가능하게 되었다. 좀 거창한 말일 수도 있 지만 ‘우리가 집중했었던 지역, 마을, 동네라는 시공간이 결국은 더 넓은 세상을 연결하는 작 은 우주이며, 보려고만 하는 것들에서 보아야 할 세상에 대한 공부와 시도를 가능하게 했다.’

저돌적인 추진력에 익숙한 품에게 ‘비스따리(천천히)’를 가르쳐주기도 했고, 거대한 히말라야 의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의 미덕을 깨닫게 해주기도 하고, 사업이 나 프로젝트가 아닌 함께 살아가야 마을을 만날 수 있음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심한기 는 물론 품의 모든 식구들이 각자 지니고 있는 정신의 세계, 생각의 세계에도 영향을 주었으 며,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언어(영어 또는 외국어)에 대한 자극도 던져주었다. 네팔에 처 음 파견되어 ‘네팔 품’을 지켜왔던 이보라와 네팔 베시마을에서 살고 있는 이하니는 물론, 6 개월 또는 1년 이상 네팔로 자원활동을 떠났던 청년들 모두 감사하고 귀한 공부와 경험들을 나누고 왔다. 그렇게 히말라야 네팔에서의 인연들은 좀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했고, 좀 더 깊게 지금 서 있는 우리의 자리를 인식하게 해 주었던 참 고마운 선물이며 또한 고마 운 스승이기도 하다.

그곳에 우리의 모습과 우리의 길이 있었다.

기본 3년, 길게는 10년 이상...

아이들과 함께 일상을 놀아본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과 삶을 나눠본 다는 것으로 생각해보면 ‘정해진 시간 안에서의 결과(효과)*’와 같은 기대는 시작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반나절 정도의 체험이나 2박 3일

* 여기서의 ‘결과나 효과’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단체나 조직들이 기대하는 결과와 효과가 아닌 당사자인 아 이들의 삶 속에서 기대할 수 있는, 하지만 짧은 시간에 드러나지 않는 변화와 성장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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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의 집중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반나절이건 1박2일이건 만나는 시 간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져가고, 새로운 과정들이 만들어지고, 사소한 일상 속에서라도 작은 변 화와 가능성들이 만들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속성과 연속성은 일상에서의 가능성들을 만들어내며 시행자와 참여자로의 구분이 아닌 상호적 변화와 성장을 만들어낸다.

품20년을 돌아보면 한번 해보고 멈춘 일보다는 좀 더 어렵고 까다롭지만 길게 보면서 꾸준하 게 ‘길’을 만들어온 일들이 참 많다. 품이 기억하고 자랑하는 ‘삶의 뿌리를 찾아서’도 1년을 준비하고 3년 동안 이 땅의 강줄기와 산줄기 그리고 바닷길을 쫓아다녔고, 그 과정을 모아 만 든 사례집과 영상을 배포하여 기존의 집단캠프나 훈련방식에 집중된 청소년 야외활동에 커다 란 자극을 주기도 했다. 서울에 사는 풍물 하는 십대들을 모아서 풍물로 소통하고, 풍물로 관 계하고, 풍물로 응원하는 서울시청소년전통예술한마당도 3년 이상을 꾸려왔고, 서울시청소년 연극제는 10년 동안 지켜갔었다. 올해도 열리는 강북청소년거리문화축제 ‘추락’은 이미 15년 을 넘고 있다. 청년을 흔드는 청소년문화복지 아카데미도 6년, 기존의 시각과 형식을 넘어서 는 다양한 방식의 실무자를 위한 워크숍을 시도한 지도 15년째이다. 한국 품만이 아닌 네팔 품에서의 과정들도 이미 7년째를 맞고 있다. 그리고 품은 20년이 되었다.

길어서 좋고, 짧다고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다가 멈추거나, 하다 말거나, 이익을 향해서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야비한 선택보다 는 지속적으로 과정을 만들고 사람을 남기는 일이 아름답다. 그런 과정들은 좋은 기억과 새로 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한다. 품 20년의 시간들이 모두 다 아름답다거나 늘 잘했다거나 언제 나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하면 그건 대단히 오만한 착각일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실수와 반성 속에서 얻은 정답 같은 진리가 무엇인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진정성을 놓지 않으며, 과정과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함께 하는 사람들 간의 소통을 만들어 가며 최선의 힘을 꾸준하게 지켜갔을 때 얻어지는 결과와 희망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를......

품이 가야할 앞으로의 20년도 늘 그렇게 가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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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세운 목표가 때론 목숨을 잃게 하더라. 목표는 없지만 ‘이게 아닌가’ 하며 머뭇거리다가도 세워 둔 목표가 아까워서 버리지 ‘길’은 있다.

못하는 것, 또는 분명 의심해보고 반성해야 할 정도로 잘못하고 있는데

이를 체감하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잘 가고 있다고 우쭐거리는 것들이 반복된다면, 목표는 있 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정해진 목표, 희망하는 목표들도 때로는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정체성 없는 곁눈질로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불손한 변덕’이라면 차라리 생각 없이 달 려가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품은 늘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다. 그리고 늘 한번 세운 목표는 의심하지 않았고 이왕이면 고속주행으로 열나게 달려가기를 반복 했었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 덕에 얻은 것도 많지만 잃어버리거나 상처를 남긴 것도 많았다. 품 20년의 반이 넘어서야 깨달았으니 지금도 여기저기 남겨진 상처들이 많다. 명확하게 언제 부터인지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히말라야 네팔을 만난 후부터 목표가 아닌 ‘길’에 대한 반성과 고민들이 좀더 강렬하게 시작된 것 같다. 한해, 두해 그곳의 자연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원래 있었던 자리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목표가 아닌 ‘길’로서의 시간들을 만들어올 수 있었다. 참 오래 걸렸다. 2010년 즈음부터 안 으로의 ‘소통’을 통한 유연하고 희망적인 ‘길’들이 열려지고 있는 듯하다. 그 때부터 품의 고 민 속에는 명확하고 특정한 목표가 아닌, 지나치고 있는 과정들을 담아가면서 다양하게 선택 할 수 있는 ‘길’들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전까지의 시간들도 소중한 ‘길’을 만들어온 것이지만 지금의 ‘길’은 좀 더 평화로운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대표만의 판단이 아닌 품의 모든 식구들이 체감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과정들이다.


며칠 전 우리 동네 마을목공소 일꾼인 산나물과 나무그릇*이 땀 흘려 만들어 준 원목탁자가 품 사무실로 공수되었다. 제값 주고 사려면 엄두도 못 냈을 원목탁자를 쓰다듬으며 20주년 준비 를 위한 일을 멈추고 캔맥주를 나눠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데 결국 일과 일상, 일 과 사람, 아이들과 일상, 개인과 식구들의 일상들이 뒤범벅되어 나눠진다. 2012년 6월 7일 지 금 현재 품이 사는 모양새다.

나무가 주는 느낌이 좋다. 나무가 지닌 생명력이 참 좋다. 나무가 알려주는 삶의 지혜가 들리는 것 같다.

품과 자란 20년의 나무는 숲이 우거진 ‘길’을 꿈꾼다!

그래서 어떻게 살겠다는 말인가?

20년 장기독재를 서슴지 않은 심한기의 품 20년사 속 마지막 글이다. 이런저런 긴 과정들을 이야기했을 때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질문은 결 국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 건데?’이다. 분명 살아온 과정 안에 살아 갈 살아갈 이야기도 담겨 있는데 늘 마지막 질문은 “확실하게 말해봐!”

이다. ‘품20년사’를 꼼꼼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질문은 하지 않을 것이 다. 그렇기에 ‘품20년사’를 소유하고 있는 것 자체가 품에겐 동지로서의 감동이며 감사이다. 20년을 기억하고 희망하려는 품은 아주 작은 조직이며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 다. 그리고 세상 모두가 알아주는 조직이 되겠다는 ‘개꿈’ 같은 것 역시 상상하지 않는다. 다 만 작은 힘이지만 답답하고 부조리한 것들을 바꿔보려는 의지와 희망은 버리지 않으려 한다.

내 이야기 좀 해 보자. 20대에 품을 시작해서 지금은 40대 후반이다. 생물학적 에너지의 80% 이상을 품에서 소비했다. 그런데 아직 흰 머리카락은 딱 두 개밖에 보 이지 않으며 여전히 5월부터 10월까지는 반바지를 입어야 시원하다. 강의를 하거나 토론을 할

* 산나물(이상훈, 마을목공소의 마을목수/사)삼각산재미난마을 사무국장), 나무그릇(양승헌, 마을목공소의 마을목수)

때 남을 선동하거나 ‘아닌 것은 아니다’ 라며 핏대를 세우는 일도 여전하다. 분명 청춘을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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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했는데 아직 힘이 많이 남아있다. 아니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힘들이 늘 새롭게 생겨나 고 있다. 품에서 삶을 소비한 것이 아니라 품에서 삶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앞으 로 최소 10년 이상의 장기독재를 위해서 매일매일 운동을 하고 여차하면 산을 오르기도 하고 자전거로 동네를 쏘다닌다. 간이나 위장 계통은 잘 모르겠지만 심한기의 장딴지는 나날이 튼 튼해지고 있다. 품을 혼자서 지켜야 한다는 바보 같은 의지는 예전에 사라졌다. 이제는 후배 들이 잘 지켜갈 수 있도록 뒤에서 따라주고 지지하고 또 이전보다 좋은 환경들을 만드는 것 에 집중해야 한다.

시골 품속학교에 내려가서 품 20년사를 집필하겠다는 예전의 약속들은 모두가 ‘뻥’이 되었다. 아직도 나는 다른 세상을 꿈꾼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티벳 승려들이 가르치는 네팔 트리뷰 반 불교 대학원에 유학을 떠날 것이며 아직 다 만나지 못한 히말라야의 오지들을 찾아 볼 것 이다. 그리고 이제는 좀 더 깊숙하고 일상적인 아이들과의 만남을 가지고 싶다. 조만간 품 학 교가 열리게 된다면 교사보다 더 웃기고 교사보다 더 가까운 골 때리는 교장을 하겠다는 꿈도 유효하다. 주변 사람들이 자꾸 책을 내보라고 꼬드긴다. 늘 그래왔지만 내가 쓰고 싶을 때 쓸 것이며 준비가 되고 때가 되면「아이들과 행복해 질 수 있는 50가지의 마법기술」, 또는「아 무도 하지 못한 히말라야 네팔 이야기」와 같은 책도 내볼 생각이다.

품 이야기 좀 해 보자. 명료하고 구체적인 목표는 없다. 살아가는 흐름을 따라서 살아갈 것이다. 그 흐름들을 놓치지 않고 연결해가기 위해서 지금 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안정과 성장이 중요하다. 일하 는 사람들 모두 ‘고인 물’에 정지되어 있지 않으면서 안정적으로 각자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 다. 5년 이상 품과의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는 상섭이와 지성이는 이미 든든한 일꾼으로 살아 가고 있고, 품에서 10년을 넘기고 있는 강명숙과 유현희도 탄탄하게 품의 중심으로서의 역할 을 잘 해나가고 있다. 품의 막내인 가령이도 마치 10년을 넘긴 사람처럼 유연하고 생기 있게 살아가고 있다. 예전 품에서 인턴 경험이 있었던 명화는 4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네팔 에 파견을 나갔던 이하니와의 자리바꿈을 준비하고 있다. 십대 때부터 품에서 놀았던 준혁이 도 품 인턴으로서의 배움과 경험들을 잘 만들어가고 있다. 모두가 아주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 다. 이것이 바로 품의 미래를 말해준다. 일과 사람의 성장, 그리고 존재로서의 위치는 서로 분 리되지 않기에 지금 품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희망과 품이 기대하는 희망은 다르지 않음 을 확인할 수 있다.


일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흐름과 다르지 않다. 땅의 문화와 놀이문화를 고민하다가 자연을 만 났고, 자연과 연결된 역사와 문화를 고민하다가 한국은 물론 네팔에서도 지역(마을)과 일상의 문화를 만났고, 꾸준한 삶의 정신과 에너지를 고민하다가 대안적 교육을 만나게 되었다. 품의 20년을 돌아보니 모든 것들의 중심은 ‘마을과 세상’이었다. ‘지구적으로 사유하고 지역에서 실천하기’가 품이 앞으로 가야 할 길임을 오랜 시간 동안의 경험 속에서 찾아냈다고 할 수 있 다. 이 같은 품 20년의 흐름들은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다.

‘지금과 연결된 다음’

 마을 속에서 마을과 함께 아이들의 삶과 희망을 만들어 가며 이를 세상과 공유하는 것.  마을과 세상이 연결되는 품만의 대안학교를 만들어 가며 이를 세상과 공유하는 것.  네팔 베시마을에서 살아가며 국제 엔지오활동의 또 다른 대안들을 찾아가는 것.  예속되지 않은 형식으로 품의 안정적 운영을 만들어가며 품과 함께하며 품의 가치에 지지 하는 주주회원을 늘려가는 것.  품에 사는 사람들의 배움과 성장 그리고 치열함과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비교할 수 없는 행복한 삶과 일터를 만들어가는 것.

또 다시 문을 두드리고, 길을 가며, 삶을 꿈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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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청소년문화공동체의 스무 해 살이를 축하합니다. 품 20년에 즈음하여, 품이 활동을 시작한 1992년 이후의 국내ㆍ외 상황을 떠올려 봅니다.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참 어지러운 시간들이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품은 그 시 간들과 사건들 그리고 그로 인한 변화가 야기했던 어려움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피 할 수 없었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쉬운 길로 가고자 하는 생각도 없었지만, 거기에는 청소년들이 있었기에 그런 무모하고 미련한 선택 밖에는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품은 지난 20년의 시간들을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품의 스무 해 살이는 대단하고 소중합니다.

품의 무모함과 미련함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권리의 존중, 소통, 실험이라는 단어로 일관 되게 특징되는 청소년활동으로 표출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들은 지난 20년 동 안, NGO로서의 특성에 더 하여 CSO로서의 정체성을 굳건히 할 수 있는 주춧돌이 되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활동의 터전인 지역사회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로 다양 화시키면서 관심의 밀도와 영역을 넓혀 왔습니다. 아마도 이 부분이 다른 청소년활동 관련 조직들과 구별되는 품의 가장 커다란 차이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CSO는 인권, 협업, 운 동성, 민주공동체 등의 개념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지속가능성이 보장됩니다. 이런 생각에 저는 품의 20년 후를 기대합니다.

20년 후에는 품의 또 다른 의미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품의 스 무 해 살이를 축하하면서 그 동안 애써 오신 심한기 대표와 품의 식구들에게 심심한 사의 를 표합니다. 그리고 늘 곁에서 함께 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리며 새로운 스 무 해 살이에도 더욱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사무처장 전성민


2장

여섯

개의

“키워드

“

2막.

로

말하는 품의 20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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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청소년 문화 운동 (1996~2005)

축제를 매개로 한 청소년문화운동 (서울시청소년연극축제를 중심으로) 글. 유현희

이것은 숙명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연극에 미쳐 살았던 내가, 품의 많은 사업 중에서도 하필 ‘청소년연극축제’ 인턴을 제안 받아 품살 이를 시작하게 된 것도, 품의 20주년에 청소년문화운동의 10년사를 정리하게 된 것도 어쩌면 정해진 운명이었나 보다. 미완으로 남아있 던 청소년연극축제 10년사를 다시 들추어내었다. 뒤이어 시작된 전 통예술한마당도, 장애청소년연극축제도 귀하긴 마찬가지이나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사업이기도 하고, 사업과 운동에 대한 고민 속에서 격동기를 함께 보내며 진화해 온 사업이기에, 청소년문화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청소년연극축제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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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순서] 1. 청소년문화운동의 배경과 의미 2. 청소년문화운동의 철학_ 문화로 경쟁하지 말자 / 문화로 세상에 말 걸기 3. 청소년연극축제 탄생기(1996-1997)_ 경쟁은 슬프다 / 변화기(2000-2002)_ 연극제에서 연극축제로 / 성장기(2003-2005)_ 축제, 운동을 고민하다 / 청소년연극축제 1년 4. 청소년전통예술한마당 5. 장애청소년연극축제 6. 청소년문화운동이 남긴 것

청소년문화운동의 배경과 의미

품이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는 과정에는 청소년문화활동과 관 련한 다양한 분야의 접근이 있었다. 초창기에는 자연생태적 철학을 바탕으로 한 전래놀이, 역사와 전통문화, 생태활동이

주를 이루었으며, ‘아이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는 열정으로 전국의 청소년 어울마당 과 캠프 현장을 누비었다. 그러다가 아이들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고민하여 처음 시도한 연속 사업이 ‘청소년연극축제’다. 시작은 1996년, ‘청소년 활동 지도자를 위한 교육연극 워크숍’ 이 계기가 되었다. 이 워크숍을 통해 종합예술이자 훌륭한 교육인 ‘연극’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고, ‘권혁기’라는 연극연출가를 만나면서 ‘청소년연극제’가 탄생했다. 1997년 전통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시도한 ‘송파산대놀이 교실’이 1998년 ‘청소년전통예술한마당’으로 이어졌으 며, 2001년에는 서울시로부터 ‘장애청소년연극축제’를 제안 받아 3년 간 진행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품은 청소년문화활동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많은 변화와 시행착오를 거치며 축제와 함께 성장하였다.

품이 열 살이 되던 2002년 즈음, 본격적인 교육사업의 시작과 함께 지역활동이 점차 확대되면 서 사업에서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 찾아왔다. 안으로는 사업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 던 활동에 대한 반성과 함께 품의 정체성과 방향에 대한 고민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2002년, 4회를 마지막으로 청소년전통예술한마당이 막을 내렸고, 치료 중심이었던 장애 청소 년들의 문화활동에 새로운 장을 열었던 장애청소년연극축제도 2003년에 아쉬운 마침표를 찍 게 된다. 품의 중반 역사를 함께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청소년연극축제 또한 2005년 10 회 연극축제를 끝으로 지난 역사가 되었다.

지금은 모두 종결된 사업들이지만, 품 20년을 정리하는 데 청소년문화운동이 빠질 수 없는 이 유는 그 과정과 시도들이 가지는 의미 때문이다. 만연한 경쟁 속에서 ‘배움과 소통’을 이야기 하며 펼쳐낸 축제의 마당은 문화활동을 하던 청소년들이 꿈과 열정을 펼칠 수 있는 따뜻한 품 이었으며, ‘청소년의 문화 권리’를 외치며 거리로 나갔던 시도는 청소년문화활동의 새로운 가 능성을 확인하게 해 준 역사적 사건으로 남아 있다.

‘우리 여기 있어요!’라고 수줍게 말을 건네던 아이들, ‘붕어빵이 되긴 싫다’고, ‘나의 파랑새 를 찾았다’고 외치던 아이들은 이미 어른이 되었다. ‘대학로 상륙작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 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아이들도, ‘연극반은 죽지 않는다’며 비장한 걸음을 내딛던 아이들 도 지금은 모두 기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들의 아름다운 몸짓과 외침은 아직도 대학로 거리 에, 그리고 품의 정신과 활동 속에 남아 있다.

청소년연극축제 1996~2005

청소년전통예술한마당 1999~2002

장애청소년연극축제 2001~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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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문화운동의 철학

문화로 경쟁하지 말자! 품의 태동에는 청소년에 대한 문제중심적 시각과 제한적 접 근, 그 안에서도 문화의 소외와 활동 현장의 부재에 대한

문제의식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그저 평범한, 보통의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문화적 접 근을 고민하던 초창기부터, 문화를 통한 운동을 고민했던 중반기, 그리고 문화가 녹아있는 삶 과 일상을 고민하는 현재까지 청소년과 활동가, 교사, 청년은 물론, 학계와 현장을 연결하여 청소년활동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 품이 아이들과 만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서도 문화예술이라는 매개, 특히 연극과 전통예술, 음악이라는 고리를 통해 아이들을 많이 만 났던 시기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마저 입시경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 속에서, ‘축제’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수많은 단발성 행사와 ‘공부 더 열심히 하라’는 깊 은 뜻이 담긴 당근성 호의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일상과 신명, 공동체, 축제라는 문화는 익 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또한 문화예술 활동의 기능적 성장을 위해서는 많은 지도편달을 받았 는지는 몰라도 ‘표현이자 소통이며,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는 문화의 또 다른 가능성에 대 해서는 더더욱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아 이들, 그들이 설 무대를 만들어주고 경쟁 아닌 어울림으로 참가자 모두가 흥겹고 신나는 교류 의 장을 만들고 싶었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 잘 놀고 어울리는 것’이 중요한 마당, 만나고 배 우고 성장하는 과정이 있는 축제. 품이 만드는 모든 활동에서 이제는 너무나 당연해진,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축제의 모습이다.

문화로 세상에 말 걸기 축제를 통해 아이들과 잘 노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왔던 품은, 10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는 아이들의 현실을 지켜보며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일상의 축제란 말이 무색하게,


축제가 끝나면 아이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 여전히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였다. 축제의 감동이 아이들의 일상으로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환경을 만들지 못했다는 반성으로부터 운 동을 생각했다. 꿈이 없는 아이들, 팍팍해져가는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지키고자 애쓰 는 아이들의 든든한 빽이 되어주는 일, 그러한 빽을 한 수백 개쯤 전파하는 일. 아이들이 자 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힘 주고, 그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지도록 메아리를 만드는 일. 그것 이 품의 역할이라는 자각이었다. 2004년, 사업명이 전격 개칭되었고, 청소년문화활동지원사업 은 청소년문화운동이 되었다. 사업에서 운동으로... 그 변화의 지점에 청소년연극축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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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연극축제 1996~2005 한 눈에 보기

[성장기] 2003~2005 우리 축제는 우리가 만든다! -청소년기획단 l 동아리대표자연합  축제를 통한 아름다운 외침의 시작! -청소년 연극활동 보장을 위한 성명 발표 및 온라인 서명 운동, 최초의 거리개막축제

[변화기] 2000~2002 축제로의 변신! “살아있는 과정이 아름답다” - 워크숍, 캠프, 번개모임 시작 - 연극제에서 연극축제로... - 연극축제운영매뉴얼 발간

? [공백기] 1998~1999

[탄생기] 1996~1997 탄생, 그러나 경쟁은 슬프다.


초기의 청소년연극축제는 일반 연극대회와 마찬가지로 경 연방식이었다. 예선을 통과한 팀만이 본선에 진출할 수 있 었고, 1회 때는 3팀, 2회 때는 5팀만이 본선 무대에 섰다.

탄생기(1996~1997) 경쟁은 슬프다

학교현장을 쫓아다니며 과정을 나누고 교감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기회는 소수의 팀에게만 주 어졌으며 시상 결과 앞에서 아이들은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결과를 평가하기보다 과정의 땀과 열정을 가치 있게 인정해주고 싶었던 품은, 아이들의 아픔을 지켜보며 많은 고민을 하 게 된다.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는 97년 두 번째 연극제의 몇 가지 변화로 나타나게 되었다. 순회심사를 심사만으로 끝내지 않고 그에 따르는 설명도 해주셔서 정말 좋았습니다. 실력이 심사 기준이 아니고 연극을 하고 싶어 하는 의지와 노력을 보시는 것과 연극을 올리기 위해 이모저모를 지원해 주신 것, 정말 청소년을 위한 연극제인 것 같습니다. 또한 무한한 꿈과 가능성을 인정해주시는 것 같아 반갑기도 했구요... - 제 2회 서울시청소년연극제 참가 후기 중

본선팀 선발 방식을 신청동아리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심사하는 순회심사의 형태로 바꿨다. 신청 동아리의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지원의 적합성을 알아보고자 하는 취지였고, 심사결과를 떠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 전문적인 코멘트와 지지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상 금을 줄이는 대신, 본선 참가 팀에게 소정의 지원금을 지급하였고, 시상내역도 ‘금상, 은상, 동 상’에서 ‘대상, 최우수 남자연기상, 최우수 여자연기상, 연출상, 희곡상, 분장상, 인기상’ 등으 로 그 폭이 넓어졌다. 그리고 ‘무대, 연극이란?, 연기의 실제, 신체훈련, 화술’을 내용으로 하 는 최초의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참가 동아리 모두에게 ‘우수동아리상’이 주어졌고, 그 중 모든 과정과 결과에서 타의 모범이 되는 1팀을 최우수동 아리로 선정하였다. 개인상을 제외한 모든 시상을 없앴고,

변화기(2000~2002) 연극제에서 연극축제로

동아리지원금을 더 늘렸다. 참가동아리도 10팀 이상으로 늘어났으며, 참가 팀 수의 제한 때문 에 선정과정이 필요했지만, 동아리의 행사에 대한 이해, 준비성과 열정, 외부지원의 필요정도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하여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선발 과정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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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심사와 준비마당*을 거쳐 선정된 동아리는 워크숍 참가는 물론, 전문가가 직접 현장을 방 문하여 지도하는 순회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워크숍 역시 신체훈련과 호흡, 발성 등 연극 방법에 대한 내용이 중심이었으나, 초급반과 중급반으로 나누어 눈높이를 맞추었고 배움 에 목말라 있던 연극반 아이들과 교사들은 환호했다.

2001년에는 명칭을 ‘연극제’에서 ‘연극축제’로 변경하면서 본격적인 축제로의 변신을 선언 한다. 우열을 가리는 시상이 완전히 없어지고, 참가 동아리 모두에게 주는 ‘우수동아리상’ 외 에 참가 지도교사 및 청소년 개인에게도 ‘표창장’을 수여하였다. 연극캠프가 생겼고, 번개모 임 등을 토대로 한 교류활동이 시작되었으며, 기술적 연극지도가 중심이었던 내용도 점차 아 이들의 문화적 감수성과 표현, 교류와 소통을 중심으로 확대되어 갔다. 그리고 2000년 ‘별을 닮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2001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부제를 달게 되었는데, 부제를 통해 축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었다. “우리 여기 있어요!” 아이들의 외침이 들린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는 걸까? 아이들은 연극을 통해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이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모아 주위의 친구들, 그리고 어른들에게 들려주려 한다. - 제 6회 서울시청소년연극축제를 열며

*

참가동아리 선정을 위한 두 번째 과정. 참가신청서를 내방 제출하도록 하여 1차 면접을 하고, 이후 준비마당을 통해 2차 심사를 했다. 신 청동아리가 모두 모여 참가작품을 설명하고 주요 장면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1,2차 심사의 결과를 종합하여 참가동아리를 선 정하였다. 예선과 비슷한 형식이지만, 1,2등을 가리기 위한 과정이 아니므로 그 성격은 확연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2002년에 접어들면서 축제는 방문신청과 순회심사를 통한 참가동아리 선정에서부터 사전설 명회*, 워크숍-캠프-순회지도-번개모임 등의 중간 과정, 본마당으로 이어지는 연간의 형태로 자 리를 잡았고, 비경쟁 축제로서도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경연대회에 익숙해져 있던 동아리들 도 차츰 축제를 이해하게 되었고, 1년 이상 연속 참가하는 동아리들도 생겨났다. 축제에 아이 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동아리대표자 모임을 시작했고, 이는 이후 청소년기획단 활동 및 동아리대표자 연합활동의 시초가 되었다. 3-4월

 사업 기획과 준비 : 홍보, 본마당 극장 확보, 연출팀 및 STAFF 구성

5월

 사전설명회(축제 방향과 과정, 신청 안내 등)  방문신청(교사와 대표자)과 순회면접(동아리전원)을 통한 참가 동아리 모집

6월

 여는마당 : 동아리, 교사, 연출가 등 축제를 함께 하는 모든 사람과 축제 열기 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 ↓

7-8월

 성장과 교류를 위한 연극워크숍 & 캠프  방문지원(전문가 연계 지도와 힘주기 방문) / 교사 모임 및 참가동아리 연합활동 ↓

9-10월

 본마당 기획 / 청소년기획팀 구성  홍보 / 참가자들이 기획하고 진행하는 거리 홍보(거리 퍼포먼스, 거리공연)  본마당 운영팀 구성과 교육 / 리허설 / 최종점검

11월

 본마당 (Main Festival) : 개폐막식 / 참가팀 공연 / 전시, 참여프로그램

12월

 평가, 정리 : 평가회, 설문조사, 결과보고서 작성 및 정산  후속활동 : 온, 오프라인을 통한 참가자들 간 네트워크 활동 지속

또, 청소년연극축제 기획 및 청소년 연극 활동 지도를 위한 매뉴얼 ‘붕어 빵 탈출 대작전’을 발간하였다. ‘무식한 사람들이 만든 청소년연극축제 이 야기’로 시작되는 이 책은, 지난 7년간의 땀과 고민에 대한 솔직한 정리이 자, 축제의 사례를 알리고 그 과정과 결과의 가치를 나누고자 하는 책임성 의 발로이기도 했다.

청소년기획단 <나마스테> 2003년. 연극축제에도 청소년기획단이 생겼으니... 이름하여

*

성장기(2003~2005) 축제, 운동을 고민하다

참가동아리 선정과정 이후, 참가동아리, 지도교사, 전문가가 모두 모여 서로 소개하고 축제의 과정을 살펴보는 과정이다. 이후 오리엔테이 션, 여는마당이란 말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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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테. 2000년 품의 지역축제에서 태어난 청소년기획단 ‘노올자’를 시초로 청소년행사마 다 기획단이 우후죽순 늘어나던 시기였으나, 이들의 시작은 조금 달랐다. 10개 참가동아리 아 이들 중 축제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무기로 기획단에 지원한 13명의 아이들은 기획단이면서 참가자이기도 했으며, 각 동아리 내에서는 대표자인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동아리 간 교류활 동을 중심으로 축제의 과정을 함께 만들어 나갔다. 기획단의 활동으로 참가 동아리들의 과정 참여는 높아졌으며, 축제는 점차 아이들의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8회 청소년연극축제 ‘나? 파 랑새를 찾았어!’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연극’이라는 희망을 찾은 파랑새들의 이야기. 그것은 아이들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우리 축제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제 8회 서울시청소년연극축제 개막식 중, 청소년기획단 나마스테의 개막 선언 (2003, 여해문화공간)

나? 파랑새를 찾았어! 자신들을 꿈을 찾은 파랑새라 자칭하던 아이들은 파랑새 옷을 지어 입고 거리로 나갔다. ‘나? 파랑새를 찾았어!’라고 목청을 높이며 대학로 거리를 날던 파랑새들은 ‘연극을 좋아하는 친구 들과 함께, 즐겁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 활동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포스터 부착과 전단지 배 포 수준에 머물렀던 거리홍보는 또 하나의 축제의 과정으로 자 리 잡게 되었다.

축제를 통한 세상으로의 외침_ 2004 대학로 상륙작전 연극축제가 9년 차에 접어들던 2004년. 10년 가까이 축제가 이어지도록 변하지 않은 아이들의 현실을 바라보며 고민하였다. ‘매년 수백 명의 아이들이 축제에 참가하는 동안, 우리는 아이들과 잘 노는 것 외에 어떤 일을 했는가. 아이들의 땀과 열정이 그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품 전체적으로 사업에서 운동으로의 전환을 고민하던 시기였다. 아이들과 함께 ‘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험해보자 마음 먹고 아 이들에게 물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니?’

말문이 터진 아이들의 첫 마디는 역시 ‘연극’이었다. 연극하는 아이들의 꿈과 열정, 그러나 높은 현실의 벽. 아이들은 할 말이 많았다. 기획단 아이들과 함께 주제를 고민하며, 우리들의 이야기를 축제에 담기로 한다. 아이들은 청소년연극의 독립을 선언하며 거리로 나갔다. 2004 대학로 상륙작전은 그렇게 탄생하였다.

2004년 11월 21일 대학로. 한국노총의 집회로 2만여 명 인파가 6차선 도로를 가득 메웠던 날, 펄럭이는 대형 깃발과 엄청난 함성에도 아랑곳없이 비장한 얼굴로 거사를 준비하는 아이들이 있었으니... 청소년연극의 열악한 현실과 핍박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하여! 청소년연극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하여! 경쟁적이고 획일적인 연극 경연대회로부터의 독립을 위하여!

입시와 관련된 공부 말고는 그 어떤 활동도 ‘딴짓’이 되어버리는 지금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좁게는 연극을 하는, 넓게는 문화활동을 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 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힘만으로는 부족했다. 언론과 온라인에 성명서를 내고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2주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에 동참, 응원 의 메세지를 보내주었고, 한겨레를 비롯한 몇몇 언론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연극을 사랑하는 청소년 218인의 성명서> 우리는 목마르다. 우리는 답답하다. 우리는 처절하다. 우리에게 연극은 밥이며, 꿈이며, 사랑이다. 우리에겐 연극할 자유가 필요하다....(중략) 아무도 우리를 바라봐주지 않는 것 같다. 아무도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는 것 같다. 때론 친구도 경쟁 상대이고, 학교와 세상과 그리고 부모님도 연극 활동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200명의 연극전사들은 우리의 꿈과 희망을 무기로 대학로를 점령하려 한다. 11월 21일 대학로 벌판으로 나가 우리가 당당하게 요구하고, 만들어가야 할 외침을 세상에 알리 고자 한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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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가락고11기 최범규: 와~정말 공감 500%에요!! 21일 정말 정말 기대되요!!^-^// [11/10-05:46] ㆍ광대기욱님: 와우~~~~~~~~~~~~옳소!!!!!!!!!!!!!!!!!!!!!!!!!!11 [11/10-09:39] ㆍ모노로그은지: 이거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네요~^-^ [11/10-10:04] ㆍ뜨레모아영인: 점점 멋져 지는 우리 축제 ㅋㅋ [11/10-12:54] ㆍ이문석: 전교조 학생청소년위원회도 당연 공감합니다. 특히 교육과정부분... [11/12-15:18] ㆍ고인석(성신여중 교사): 살아 숨쉬는 교육현장과 사람의 참된 냄새를 느끼게 하는 그런 교육현장, ㆍ문화현장, 그런 청소년들을 위한 선언에 적극 동참하며 지지를 보냅니다. [11/12-18:15] ㆍ전국국어교사모임 사무총장 박종호: 연극을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의 성명서 가슴으로 읽고 뜻을 같이 합니다. 이름을 어디에라도 넣어 쓰셔도 좋습니다. [11/12-18:15] ㆍ오티알: 공연포탈사이트 OTR입니다. 저희 사이트도 청소년 서명에 동참하겠습니다. 저희 사이트의 미디어 분야에 청소년 218인의 성명서를 보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1/12-18:16] ㆍ성공회대16대학생회: 꿈을 향해 나아가는 청소년을 위해 성명에 동참합니다^^ 꼭 좋은 결과 있으시길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모든 학생들이 응원하겠습니다! 파이팅! ^______^☆ [11/16-01:34] ㆍ강북청소년수련관 난나: 연극을 사랑하고 청소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뜻깊은 행동이 좋은 결실을 맺길 바라며 성명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11/16-12:29] ㆍ성공회대 김현미: 우리의 미래 청소년들이여..꿈을 펼쳐라~~~멋진 공연과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아자!!^^ [11/16-12:36] ㆍ평화의샘(경진): 상륙작전의 성공을 기원하며.. 이 세상!! 우리 청소년들이 가득 채워가길... 화이팅~!!^^ [11/16-13:43] ㆍ창동청소년문화의집: 푸른 아이들..... 니네가 있기에 늙은 우리가 있다....ㅋㅋ 자, 끼를 보여줘... 푸르름을 보여주세요...색바랜 이 세상에 새로운 색으로 덮어주세요...^^ [11/16-18:48] ㆍ중구청소년수련관: 그들을 멈추게 할 순 없다. 청소년 연극의 독립을 위한 선언서.. 권리회복을 위한 멋진 출발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청소년 여러분 팟팅입니다.. ^^* [11/17-08:57] ㆍ대신고(이치형) 학교는 소수의 사람만의 학교가 아니라 모든 이에게 꿈과 희망을 가르치고 배울 공간이다. School is the place to grow! 저희 ‘광대’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11/18-14:18] ㆍ김해청소년문화의집: 외치지 않아도 언젠가는 우리의 일상이 축제처럼 즐거웁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축제가 축복이라면, 우리의 일상이 축복이어야 합니다. 그 누구도 우리가 행복할 권리를 앗아갈 수 없습니다. 힘내세요.^^ 아자! 아자! 아자!! [11/18-15:02] ㆍ미지센터(김민정) 동참합니다! 무대에서 서기전 떨며 어찌할지 몰라 하던 얼굴과 연극이 끝난 후 감동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있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모두 힘내세요! 아자! [11/18-19:31]


그리고 11월 21일, 대한민국 연극의 메카라 고 하는 대학로에서 연극축제 역사상 최초 의 거리개막축제가 열렸다. 눈발이 날리던 초 겨울 날씨에 한국노총의 대규모 집회가 있 던 날이었다. 참가동아리 200여명의 거리행 진으로 시작된 개막축제는 청소년 연극현실 에 대한 퍼포먼스 공연, 청소년 동아리들의 축하공연, 참가 동아리 대표자들의 성명 발 제 9회 서울시청소년연극축제 보도자료 (2004, 한겨레)

표와 관련 교사 및 예술인들의 지지발언으 로 채워졌다.

개막 축제 이후, 대학로 소극장에서 13일간 이어진 본 공연 또한 연일 객석을 꽉 채우며 성황 리에 진행되었다. 작전은 성공한 걸까?

청소년연극축제 10주년 ‘연극반은 죽지 않는다’ 아이들의 외침은 이듬해인 2005년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아이들의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 다. 교육당국과 학교의 동아리 축소 방침, 학부모들의 반대와 아이들 스스로의 학업부담, 선 후배간의 경직된 관계로 인한 학교폭력 오인 등 여러 악재 속에서 연극반의 수는 오히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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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해야 할 10주년에 이런 암울한 부제를 다는 것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 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만 가지 표정을 담 은 영정사진’은 죽어가는 청소년 문화예술활 동 현실에 대한 강한 역설이자, 아직은 뜨거 운 열정을 가진 아이들이 축제를 통해서 할 수 있는,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한 의지 표명이기도 했다.

우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극반 살리기를 위한 기상천외한 기자회견’이란 제목으로 관

연극반 살리기를 위한 기상천외한 기자회견 (2005, 명동 미지센터)

련 언론사의 기자들을 초청했고, 영상과 퍼포 먼스로 청소년연극활동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기자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정말 미친 걸까 요?’ 발칙한 아이들의 어이없는 초대를 기꺼 이 받아 준 아름다운 기자들은 우리의 이야 기를 전해 주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이야기는 또 한 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아이들의 무대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여느 때처럼 열 번째 축제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환호 속에 막을 내렸다.

청소년연극축제 10년

2005년 10회를 마지막으로 품의 청소년연극축제는 끝이 났다. 10년 역사를 함께 해 온 자식 같은 사업이고 많은 아 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만들어 온 축제이기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앞으로의 방향과 활동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학교 안의 문화활동은 계속해서 축소되고, 서울시의 간섭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던 터였다. 청소년연극축제의 종결과 함께 청소년문화운동팀도 품의 역사에서 사라졌다. 사업의 형태는 달라지지만 아이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품의 고민과 운동은 여전히 ‘ing’ 이기에 가능한 선 택이었다.


제 1회 서울시청소년연극제 1996.9.14~15 / 동숭아트센타 동숭홀 송곡여고 연극반 ‘동리자전’ I 중 대부속여고 열림문화터 ‘샌드위 치 변주곡’ l 세화여고 연극반 ‘ 아리랑 2’

제 2회 서울시청소년연극제 1997.6.13~15 / 동숭아트센타 동숭홀 오금고 R-GEN ‘방황하는 별들’ l 선일여상 별무리 ‘네 멋대로 해라’ l 이화여고 연극반 ‘비애’ㅣ서울청소년회관 사맛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l 서울고 S.D.A.C. ‘학생천국’

제 5회 서울시청소년연극제 2000.12.16~23,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타 한성여고 모노로그 ‘밀레니엄 파우스트’ l 창문여고 뜨레모아 ‘춘풍의 처’ l 성암여중 무지개빛악동 ‘봄봄’ l 중대부고 연극사단 ‘귀족수업’ l 대진여고 일막일장첫구절 ‘나사와 시계추’ l 송곡여고 연 극반 ‘미운오리새끼’ l 혜성여고 짓마니아 ‘언덕위의 하얀집’ l 용화여고 소래어리 ‘여울목의 소리’ l 용강중 용연동 ‘올리버 트위스트’ l 영훈고 광대도깨비 ‘우리는 철부지들’ l 한영고 연극사랑 ‘꿈 꾸러기’ l 경복여고 예닮 ‘당신의 정신건강은 어떠십니까?’ 제 6회 서울시청소년연극제 제「우리 여기 있어요」2001.11.17~24 /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타 용화여고 소래어리 ‘돈리돈리 돈라셩’ㅣ경복여고 예닮 ‘죄수번호 007빵’ㅣ가락고 연극반 ‘FAME’ l 극회 로가로세 ‘황순원의 소나기, 그 이후’ㅣ영등포공고 쏠트 ‘2001 춘향전’ㅣ혜성여고 짓마니아 ‘비가 지나가면’ㅣ대신고 광대 ‘기적을 파는 백화점’ㅣ잠실여고 하제 ‘비행하는 아카루스’ㅣ선일여 상 별무리 ‘가시고기’ㅣ계성여고 새별 ‘김치국씨 환장하다’ㅣ서라벌고 연극예찬 ‘청춘예찬’ㅣ한성 여고 모노로그 ‘뫼비우스의 띠’ㅣ영훈고 광대도깨비 ‘빈자리’ 제 7회 서울시청소년연극제 「붕어빵 탈출 대작전」2002.10.19~26 / 여해문화공간 한성여고 모노로그 ‘아름다운 사인’ㅣ선일여상 별무리 ‘날개’ㅣ강남청소년회관 연아 ‘산 너머 개똥 아’ l 인헌고 산적 ‘철부지들’ l 잠실여고 하제 ‘환타스틱스’ㅣ대신고 광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 웅’ㅣ서울국악예고 음악연극과 ‘왈패전’ㅣ가락고 연극반 ‘The Play’ l 경복여고 예닮 ‘우리는 그녀 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ㅣ잠신고 야누스 ‘팔자 좋은 의사선생’ㅣ성암여중 ‘변학도전’ 제 8회 서울시청소년연극제 「나? 파랑새를 찾았어!」2003.11.8~20 / 여해문화공간 한성여고 모노로그 ‘2003 햄릿’ l 창문여고 뜨레모아 ‘여고 환상 깨기’ l 대신고 광대 ‘거위의 꿈’ l 용화여고 소래어리 ‘유리눈알’ l 성심여고 희로애락 ‘한 여름 밤의 꿈’ l 서울YWCA 마루 ‘아홉 살 인생’ l 상일여고 맥 ‘죽은 시인의 사회’ l 영훈고 광대도깨비 ‘빈자리’ l 강남청소년회관 연아 ‘ 그곳에 가면’ l 선일여상 ‘마술가게’ 제 9회 서울시청소년연극제「대학로 상륙작전」2004.11.21~12.5 / 예술극장 나무와 물 한성여고 모노로그 ‘2004 넌센스’ㅣ가락고 연극반 ‘토요일 밤의 열기’ l 경복여고 예닮 ‘아름다운 사인’ l 경복여정산 해밀 ‘가스펠’ l 대신고 광대 ‘애들아 학교가자’ l 용화여고 소래어리 ‘오락가 락’ l 숭문고 토월 ‘지하철 보관함’ l 서울YWCA SCENE ‘죽은 시인의 사회’ l 성심여고 희로애락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l 창문여고 뜨레모아 ‘죽은 시인의 사회’ l 경수-광진중연합 개구쟁이 ‘너는 특별해’ l 잠실여고 ‘유리가면’ l 청소년연극축제 연합팀 ‘같이 제 10회 서울시청소년연극제「연극반은 죽지 않는다.」 2005.11.6~11.27 / 성동청소년수련관 무지개극장 건대부고 문예반 ‘가족’ㅣ광양고 공감 ‘롤렉스 금장’ㅣ대신고 광대 ‘하면? 된다’ㅣ무학여고 M.D.C ‘탑과 그림자’ㅣ서울여고 쥐불 ‘분장실’ㅣ서울 YWCA 마루 ‘어린왕자’ㅣ서울YWCA SCENE ‘ 아카시아 꽃잎은 떨어지고’ㅣ선일여상 별무리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ㅣ성동고 성동극회 ‘하루’ ㅣ성심여고 희로애락 ‘판도라의 상자’ㅣ양재고 리얼액션 ‘카르페디엠’ㅣ창문여고 뜨레모아 ‘마네 피플’ ㅣ 초청공연_ 사람사랑 나눔학교 ‘ooo이라 불려지는 아이들의 이야기’ㅣ청소년전문극단 진 동 ‘지금해라’ㅣ마임이스트_ 이두성 ‘새’, 고재경 ‘황당’ㅣICM 청소년뮤지컬컴퍼니 ‘뮤지컬 대동 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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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전통예술한마당 1999~2002

전통예술한마당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4회 진행되었 다. 연극과 전통예술이란 점만 다를 뿐, 연극축제와 마찬가 지로 경연이 아닌 어울림의 축제였고, 만남을 위한 준비마당

부터 순회지도 등 중간 과정, 한마당으로 이어지는 연간의 과정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문화 우리 가락의 우수성을 외쳐대지만, 정작 현실적으로는 그 신명을 풀어낼 공간과 기회가 없습니다. 어렵고 힘겨운 이때에, 이 아이들에게, 그리고 그 아이들과 말없이 아픔을 같이 해오는 지도 선생님들에게 우리는 잠시 숙연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더욱 장구 끈을 조여 매고 북을 찢어져라 두드리며, 꽹과리의 울음소리에 스스로 다짐하는가봅니다. 끝내는 이 찡한 아픔을 승화시키려고 징은 머얼리도 징~하는지 모릅니다. _고인석(서울교사풍물패 흥시렁, 성신여중 교사) / 2002년 4회 전통예술한마당 축하의 글 中

복색을 한 아이와 힙합바지 입은 아이가 함께 춤 을 춘다. 풍물 가락에 맞춰 테크노 스텝을 밟으 며 어깨를 들썩인다. 우리 가락과 우리 소리, 그 흥과 신명의 맛을 아는 아이들에게 품은 신나게 놀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고 옆에서 박수치는 역할을 자처했다. / 제3회 서울시청소년전통예술 한마당, 남산 한옥마을, 2001

풍물 하는 아이들이 가지는 특유의 느낌이 있다. 이상하게도 촌스럽고 투박한, 그래서 더 구 수하고 정겨운 느낌이다. 모든 사업이 아쉽기는 매한가지지만, 전통예술한마당은 우리 가락과 소리, 몸짓이 가지는 특유의 신명, 그 신명이 아이들과 만났을 때 우러나오는 질퍽한 에너지 때문에 더 아쉽고 그립다.

전통예술한마당은 2004년부터 전통예술 전문단체인 ‘작은소리학교’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으며, 한마당을 계기로 만나게 된 서울교사풍물패 ‘흥시렁’과는 아직도 귀한 인연을 이어오 고 있다. 언젠가 남산 한옥마을에 다시 모여 강강수월래 할 날을 기다려본다.


제 1회 서울시청소년전통예술한마당 1999.10.10 / 남산골 한옥마을 동대부고 ‘우도판굿’ l 일신여상 ‘풍물’ l 성신여중 ‘풍물판굿’ l 은곡공고 ‘전통무용’ l 명지중 ‘사물’ l 우신고 ‘사물’ l 대진여고 ‘사물’ l 서울정진학교 ‘앉은반 사물놀이’ l 신명중 ‘가야금 병창’ l 영림중 ‘영남사물’ l 숭문고 ‘삼도설장구풍물가락‘ l 북서울중 ‘진안굿 선반’ l 대림중 ‘ 풍물’ l 수유중 ‘풍물’ l 은곡공업고 한얼 ‘풍물’

제 2회 서울시청소년전통예술한마당 2000.9.23 / 남산골 한옥마을 가락고 ‘연날리기’ l 은곡공업고 ‘민속체조’ l 중앙여고 ‘삼도 사물놀이’ l 경희여고 ‘삼도풍물 판굿’ l 대진여고 ‘사물놀이’ l 대일외국어고 ‘날뫼북춤과 판굿’ l 숭문고 ‘삼도풍물가락’ l 금천 고 ‘영남사물’ l 서울경영정보고 ‘풍물’ l 서울삼성학교 ‘사물놀이’ l 관음포교원 ‘웃다리 사물’ l 둔촌중 ‘가야금연주’ l 성신여중연합 ‘풍물판굿’ l 인창중 ‘웃다리사물놀이’ l 한성여중 ‘풍물’ l 수유중 ‘풍물놀이’ l 영림중 ‘창작판굿’ l 북서울중 ‘풍물(전라좌도진안굿), 설장구, 진도북춤’ l 명지중 ‘사물놀이’

제 3회 서울시청소년전통예술한마당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함께 가자」 2001.9.23 / 남산골 한옥마을 대일외국어고 ‘판굿’ l 상계제일중 ‘전라좌도 진안중평굿’ l 경희고 ‘판굿’ l 성신여중연합 ‘판 굿’ l 상계고 ‘웃다리사물’ l 휘경여중 ‘우도판굿’ l 정의여고 ‘앉은반 설장구’ l 명지중 ‘삼도사 물놀이’ l 금옥여고’ 풍물시나위’ l 세명컴퓨터고 ‘봉산탈춤’ l 경기민요연합 ‘경기민요’ l 중앙 여고 ‘삼도사물놀이’ l 한성여고 ‘모둠북’ l 숭문고 ‘웃다리사물’ l 한성여중 ‘좌도판굿’ l 경희 여고 ‘우도판굿’ l 수유중 ‘우도판굿’ l 북서울중 ‘전라좌도 진안중평굿’ 제 4회 서울시청소년전통예술한마당 2002. 9. 15 / 남산골 한옥마을 인창중 ‘삼도사물놀이’ l 서울정진학교 ‘웃다리사물놀이’ l 금천고 ‘영남사물놀이’ l 명지중 ‘모 듬북’ l 봉화중 ‘호남우도판굿; l 동일여고 ’판굿’ l 한성여중 ‘창작좌도판굿’ l 녹번초 ‘영남사 물놀이’ l 명지중졸업생연합 ‘삼도사물놀이’ l 금옥여고 ‘모듬북’ l 경희고 ‘판굿’ l 성암여중 ‘ 호남좌도필봉굿’ l 문일고 ‘북놀이’ l 한성여고 ‘시나위사물놀이’ l 중앙여고 ‘삼도사물놀이’ l 서울애화학교-우리국악배움터 연합 ‘상모놀이판굿’ l 상계제일중 ‘전라좌도 진앙중평굿’ l 경희 여고 ‘호남우도판굿’ l 수유중-천지음 연합 ‘호남우도판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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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청소년연극축제 2001~2003

청소년연극축제가 6회를 맞이하던 2001년, 서울시의 제안 으로 장애청소년연극축제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동안 문화 의 소외 대상이었던 장애인들, 그 중에서도 청소년들을 위 한 무대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작이었다.

연극은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어디가나 기를 펴기 힘든 우리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떠들고 웃고 놀 수 있는 마당을 펼쳐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사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입니다. _그래서 우리는 무대에... / 제 1회 장애청소년연극축제를 열며, 2001

참여 팀이 모아지고, 장애 아이들과 함께 할 전문연출팀이 꾸려졌다. 참여 팀마다 연출가가 파견되고, 1년의 과정을 통해 함께 작품을 만들어 간다. 축제의 과정은 다르지 않지만, 그들 이 무대에 서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공연을 준비하는 아이들, 지도교사, 연출 가 모두에게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축제에 참여했던 이들이 느 끼는 감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남들의 이목을 받은 행사보다는 자 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축제가 되고자 하였다. 축제는 장애청소년팀과 비장애청 소년팀의 무대로 꾸며졌다.

장애청소년연극축제 또한 2003년 3회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함께 했던 교사와 연출가들은 여전히 현장에서 아이들과 호흡하고 있고, 당시 연출가와 교사로 만났던 박종우 선생님과 전 재란 선생님은 평생 인연이 되어 삶을 함께 하고 있다. 꼭 축제의 방식이 아니더라도 장애인 들의 문화활동에 대한 소식이 들려올 때면 반갑다. 짧은 시도였지만, 그들의 삶과 문화의 지 평을 넓히는 데 작게나마 도움이 됐기를 바란다.


제 1회 서울시장애청소년연극축제「그래서 우리는 무대에」2001.10.22~29 / 연강홀 하트-하트종합사회복지관 ‘작은 사랑’ l 서울인강학교 ‘백설공주의 선택’ l 노들장애인야간학교 ‘피라카숑 하퐁출롤’ l 정문학교 ‘용궁으로 가는 길’ l 충현복지관 ‘탈춤연극놀이’ l 봉화중학교 ‘꽃들에게 희망을’ l 번동2단지 종합사회복지관 ‘도깨비섬의 아이들’ l 송파공업고등학교 ‘날개’

제 2회 서울시장애청소년연극축제「요리조리 삐뚤빼뚤 엉망진창 히히헤헤」 2002.11.11~16 /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 노들장애인야학연극반 ‘스물다섯의 내가’ l 화계중학교 특수반 ‘어린왕자를 찾아라’ l 서연-구 산-중앙 중학교 특수반 연합 ‘우리들의 보물여행’ l 서울시립대종합사회복지관 통합교실 ‘호랑 이 이야기’ l 번 2단지 종합사회복지관 민들레 교실 ‘방구쟁이 뿡구’ l 서울여자고등학교 특수반 ‘춤으로 말하는 이야기’ l 맑음터 ‘핸드벨 이야기’ l 청담고등학교 특수반 ‘댄스, 댄스, 댄스파 티’ l 우성원 ‘언덕배기 합창단’

제 2회 서울시장애청소년연극축제「우리는 당신의 선물입니다」2003.11.1~2 / 종로구민회관 봉화중 ‘농부가 남긴 선물’ l 서울시립대종합사회복지관 ‘무엇이 될까’ l 우성장애인요양원 ‘보 물섬’ l 장안종합사회복지관 ‘만남, 그리고 사랑’ l 개봉중학교 ‘졸업파티’ l 서울여고 ‘못다 핀 꽃한송이’ l 송파중학교 ‘우리들의 이야기’ l 청담종합사회복지관-혜명보육원 ‘우리는 친구야’

많은 사람의 관심과 지지 속에 대학로 상륙작전은 막을 내 렸지만, 아이들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라던 연습

청소년문화운동이 남긴 것

실도 안 생겼고, 반대하시던 부모님이 하루아침에 돌변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청소년연극축제가 끝나고 7년이 흐른 지금, 학교에서 연극반을 찾 아보기가 더더욱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작전은 성공했다. 대학로 상륙작전에 참가한 아이들은 연극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일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그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세상을 흔들 만한 커다란 외침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경연대회 일색이던 청소년문화예술 활동 현장에 비경쟁 축제의 모델을 만든 것도 중요한 성과 다. 축제의 과정을 잘 기록하고 나누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2002년에는 청소년연극축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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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으로 한 비경쟁축제 만들기 매뉴얼을 발간하기도 했다.

경쟁 대신 배움과 소통이 있는 축제, 과정이 살아있는 축제, 아이들이 함께 만드는 축제, 아이 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축제.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 수많은 아이들의 웃음과 눈물 속에서 10년 의 축제가 남긴 가치는 2012년도 품이 마을과 학교에서 이야기하는 것들과 다르지 않다. 연극 반도 풍물반도 점점 사라져갔지만, 아이들의 열정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권리’에 대 한 소박한 희망은 죽지 않았다. 축제는 끝났지만,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세상과 아이들의 가 능성에 대한 희망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역사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마을 안에서 이어지고 있다. 장르 중심의 문화 활동은 점차 생활 문화, 일상의 문화로 확대되고 있고, 아이들과 마을을 이야기하며 문화를 통한 행복 한 소통과 나눔을 시도하고 있다. 그렇게 삶의 문화를 만들며,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사람 흔들기 품의, 교육사업을 말하다(1996~2005) 글. 유현희

나는 품의 대표적 교육사업인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1기 출신이다. 그 인연으로 품을 만나 인생이 흔들렸고 현재 품에서 9년을 살아가고 있는, 품이 줄곧 이야기하는 ‘사람 흔들기’의 산물인 셈이다. 이 장에서는 사람 을 흔들고 성장시킴으로써 실천 현장에 변화를 주고자 했던 교육사업을 이 야기할 것이다. 1기 아카데미로 품을 만나 마지막 아카데미 실무를 담당했 었고, 아카데미 이후 이루어진 대부분의 교육프로그램에 함께 했기에 품의 20년 교육사를 정리하는 일은 나의 성장 과정에 대한 돌아봄이기도 했다. 이야기는 품 교육사업의 철학, 사례, 이후계획 순으로 엮었고, 사례 부분은 시간 흐름에 따라 내부 사업과 외부 사업을 나누어 담았다. 짧은 지면에 긴 역사를 담다 보니 생략되거나 축약된 부분도 적지 않을 것이다. 혹여 부족 한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 품의 사람 흔들기에 대한 긴 여행을 시작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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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순서]

1. 교육사업의 철학_ 품의 희망은 사람 세상을 바꾸는 나비효과 / 세상을 흔들려거든 나부터 흔들어라 2. 실천사례 하나_ 안에서 흔들기 자원활동가 교육 / 실습 / 인턴쉽 3. 실천사례 둘_ 밖에서 흔들기 청소년문화워크숍 / 청소년지도자 연수 /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 청소년문화기획아카데미 / 청문집 청운위 교육지원 프로젝트 / 경기도 청소년문화시설 실무자워크숍 4. 교육사업의 현재와 미래_ 스스로 흔들며 세상을 흔드는 사람 키우기 계속되는 청년 흔들기 / 청년 대학을 꿈꾼다


[품의 교육사업] 자원지도자 키우기

사람 흔들기

(1992~2003)

청소년기획단 노올자

실습 (1993~2005)

청년문화워크숍

(2000~)

(1996~1999) 청소년문화기획

인턴쉽 (2000~현재)

아카데미, 포럼 청년지도자연수

(2003)

(1997~1998) 청소년문화의집

스스로 흔들며 세상을 흔드는 청년 키우기

경기도 청소년문화

청소년운영위원회

예술활동지원사업

교육지원프로젝트

(2004~2006)

(2003~2006)

청소년문화의집 실무자 워크숍 (2005~2008) 청년학교

청년대학/ 아시아청년네트워크

세상을 바꾸는 나비효과 (현장흔들기)

지역현장교육 (2009~

십대기획자 키우기대안교육에 대한 고민

무늬만 학교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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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교육사업의 철학_ 품의 희망은 사람

품이 가장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가장 값진 의미로 생각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품이 만들어지고 성장할 수 있었던 힘 도 ‘사람’이었으며, 아이들과 활동가는 물론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품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년 동안 품이 만나온 사람 은 셀 수 없이 많다. 아이들 을 제외하고도 50명에 가까 운 사람들이 품의 일꾼으로 젊은 시절을 함께 보냈고, 실 습생 80명, 청소년문화복지 아카데미를 통해 만난 대학 생과 실무자만 475명에 달한 다. 그 외에 품과 함께 했던 자원활동가, 각종 교육 프로 그램을 통해 만났던 현장의


실무자들을 더하면 그 수는 수천 명에 이를 것이다.

이들은 대체로 대학생이거나 초기 실무자 시절에 품을 만나 지금은 현장의 중견 활동가가 되 었거나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었다. 이들의 삶에 품이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 가 늠할 순 없으나, ‘품에서의 배움이 삶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거나 ‘품의 가치와 활동에 자극 과 힘을 받는다.’는 반가운 고백을 종종 듣게 된다.

결국 모든 변화는 사람에서 시작되고 사람으로 마무리된다. 학교가 아무리 어렵다 한들 고민 하는 교사 한 명이 아이들의 희망이 될 수 있으며, 세상이 아무리 어렵다 한들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변화를 만들고 희망을 만드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나비효과

‘품이 100명의 아이들을 만나면 100명이 행복해지지만, 100명의 교사나 실무자들을 만나 변 화를 줄 수 있다면 1,000명의 아이들이 행복해질 것이다.’라는 것이 품 교육사업의 기본적인 동기였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고, 결국 그 변화를 만든 것은 ‘사 람’이므로 ‘게릴라’를 키우자 했던 것이다.

안으로는 자원지도자를 키우며 소집단세미나를 통해 청소년문화나 그룹워크를 함께 공부하기 도 하였다. 방학마다 청소년과 복지 전공 대학생들과 함께 한 실습은 93년부터 13기까지 진 행되었는데, 그러다 좋은 청년을 만나면 ‘함께 살아보기’를 제안했던 것이 품의 인턴쉽이다. 대부분의 인턴들이 품 캠프나 행사에 자원활동을 했거나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한 인연으로 맺 어졌으며, 그 중 몇몇은 직원이 되어 몇 년간 함께 일하기도 하였다.

공식적인 첫 외부 교육사업은 1996년 청소년지도자를 위한 문화워크숍. 청소년과 연극, 미디 어, 대중음악을 주제로 96년과 98년 2회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97년부터는 청소년지도자연수 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품이 10주년을 맞이하던 2002년, 그간의 고민과 경험, 네트워크를 담아 낸 본격적인 교육사업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가 문을 열었다. 전국의 청소년복지 현장 실무 자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아카데미는 집중연수 방식으로 3년간 진행되다, 연수와 지역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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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프로젝트를 포함한 과정으로 확장되어 2007년까지 이어졌다. 2003년 경기문화재단 부설 기 전문화대학과의 만남은 ‘경기도 청소년문화예술동아리 지원사업’을 낳았고, 이어 시작된 ‘경 기도 청소년문화시설 실무자 워크숍’은 2008년까지 계속되었다. 청소년 교육사업으로는 품의 축제기획단 ‘노올자’의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전국 청소년기획단들과 함께 했던 ‘청소년문화 기획아카데미(2003)’가 시초였으며, 같은 해 1기 아카데미 실무자 과정 출신인 이천 창전청 소년문화의집 조계형 선생님의 제안으로 시작된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회 교육지원 프로젝트(2003~2006)’는 청소년 자치교육의 경험적 기반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품의 주주가 되었고, 텅 빈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무장했던 대학 생들이 (나 같은 ^^;) 단단한 현장의 실무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기도 하고, 교육생으로 만나 현장의 변화를 위한 사업을 함께 기획하는 파트너가 되기도 하는 작은 변화들이 일어났 다. 일시적 교육프로그램의 한계로 ‘흔들어놨으니 책임지라’는 원성도 많이 들었지만, ‘교육을 통한 배움이 현장이 실천으로 이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며 사업적으로도 사업 외적으로도 많은 고민과 노력을 했던 시간이었다.

세상을 흔들려거든, 나부터 흔들어라 사실 품의 사람 흔들기는 태동과 함께 시작되었고, 사업 형태의 교육을 중단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에 게 좋은 교사를 이야기하려면 내가 좋은 교사여야 하고, 문화를 얘기하려면 내가 문화적이어야 하고, 운동을 얘 기하려면 내 삶이 운동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완벽할 순 없지만 적어도 그러하려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떠드는 가치와 사례는 당 위성을 갖게 되고, 울림을 줄 수 있게 된다.

2008년. ‘경기도 청소년문화의집 실무자들을 위한 문 화&실천 워크숍’을 끝으로 품의 교육사업은 종결되었다. 그러나 품의 사람흔들기가 종결된 것은 아니다. 한국과


네팔의 마을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살아가는 과정 속에 교육은 다양한 형태로 녹아있으며, 이 제는 한시적이고 일방적인 교육보다는 살아가며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삶의 교육으로 확대되 고 있다. ‘교육이 실천으로 이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열쇠는 어쩌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삶을 기반으로 한 교육, 삶과 함께 하는 교육. 세상을 흔들려거든 나부터 흔들어야 한다.

자원지도자 키우기 1992~2003 품의 초기 역사에서 자원지도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삶의 뿌리를 찾아서’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부터 어울마당,

안에서 흔들기 자원활동가 교육부터 실습, 인턴쉽까지

축제까지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품은 없을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자원활동가’ 정도로 이 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말이 자원지도자지 그 역할을 보면 비상근 내지는 반 상근 활동가라고 볼 수 있다.

근래에 들어서는 품에도 기근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다른 단체에서 부러워하는 것이 ‘품에 가면 늘 젊은 친구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비결을 품 10년사에서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1. 단순 자원활동은 지양한다. 관심 있는 활동에 대해 의견을 공유하고 합의한 후 역할을 결정한다. 봉투도 붙이고 복사도 할 수 있지만 모든 일은 활동의 과정 속에 연결되며, 절대 그냥 시키지 않는다. 2. 반드시 사전교육을 하고, 전 과정을 함께 한다. 캠프에 관심 있고 열정 있다고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가? 품 캠프에 가려면 최소 한 달은 투자해야 한다. 사전 캠프 교육과 소집단 교육부터, 답사, 프로그램 논의, 물품준비, 진행과 평가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한다. 3. 기본이 바로 서야 한다.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눈’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편견을 갖고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자신의 눈부터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

초창기 선배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혀를 내두르며 당시의 노고를 회상한다. 답사 가던 날 지각 해서 거리에서 호되게 야단맞은 이야기며, 세미나 하면서 깨졌던 이야기, 조사하고 보고서 쓰 느라 지새운 많은 밤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만큼 고생스러운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품을 찾았던 건, 아마도 아이들에 대한 품의 고집스러운 철학과 ‘사람을 키우고자 하는’ 열정 이 그들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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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1994년 시작한 품 자원지도자를 위한 문화기행이 벌써 네 번째를 맞이한다. 문화기행은 두 가지의 뜻이 있다. 첫째는 아이들을 위해 봄, 여름을 열심히 땀 흘린 많은 식구들과 함께 따뜻한 마음들을 나누기 위해서다. 2월 회원캠프를 시작으로 가요제, 연극제, 어울마당, 실습, 그리고 여름캠프를 참여한 친구 중에는 오래된 식구도 있고, 이제 품 식구가 되려는 친구도 있다. 품의 직원들과 친구들이 좁은 사무실에서 나누지 못했던 많은 것을 나누기 위함이다. 둘째는 말 그대로 문화를 찾아 여행을 한다는 뜻이다. 다양한 곳을 찾아다니며 또 다른 삶을 배우기 위해서다. 우리가 시도했던 과거와 현재의 연관성을 찾아보며 한 여름의 끝을 마무리하고 찾아오는 가을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그리고 열심히 사는 많은 식구들의 화이팅을 위해... _1997년 네 번째 문화기행을 시작하며

해마다 자원지도자들을 위한 송년회도 하고, 문화 기행도 가고 했던 걸 보면, 고생만 있었던 건 아닌 모양이다. 사실 가끔 선배들을 만나 무용담 같은 옛 얘기를 듣고 있으면, 살짝 부러움이 생기기도 했었 다. 뜨거운 청춘들이 만나 함께 보낸 시간이 진흙 탕에 구른들 안 재밌었을까 싶은. 고생고생해가며 품과 함께 해 준 선배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품이 있다. 그 선배들 대부분은 품의 주주가 되었고, 여전히 품의 든든한 뿌리이자 버팀목이다.

빡세기로 소문 난 품의 실습 1993~2005 청소년과 복지 전공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품의 실습은 1993년 시작되어 2005년까지 진행 되었다. 품 실습의 명성은 대학시절부터 익히 들어왔는데, 우선은 ‘매우 길고, 빡세다’는 것이 었다. 청소년 정책과 문화, 복지에 대한 기본 교육부터 실천을 위한 사례 연구 및 현장탐방, 프로젝트 실습으로 이어지는 품의 실습과정은 짧게는 4주에서 길게는 7주까지 진행되었다. < 2002년 8기 실습과정 > 청소년복지 실천을 위한 기본적 접근 [객체, 환경을 중심으로]      

품은 무엇인가? (홈페이지 및 자료 분석) 자신의 이해 (자기측정 및 상호인정을 위한 MBTI) 청소년의 이해 (문화를 중심으로) 청소년 정책, 관계법, 활동의 이해 (연구, 강의, 현장조사) 지역사회와 청소년복지 (연구, 강의, 현장조사) 지도자란? (연구 및 강의)


▼ 청소년활동 지도의 실천을 위한 구체적 접근 [체험과 실습을 중심으로]       

사회복지와 청소년복지의 실천적 접근 (정보화 캠프 참가) 청소년지도 활동 실습 청소년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 (연구 및 강의) 캠프 및 소집단 활동의 운영 (연구 및 강의) 팀워크 훈련 (자원지도자와 함께 하는 M.T) 청소년활동 지도 실습 (품 청소년 캠프 참가) 활동실습 중간 평가 (평가 기법 실습)

▼ 청소년 복지 실천을 위한 구체적 접근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 청소년복지와 지역사회 / NGO적 특성을 중심으로 (연구, 강의, 현장조사)  청소년복지와 지역사회 실천을 위한 실습 - 영상 제작을 기초 훈련 / 영상제작 실습 (지역사회 청소년 문화)  제작 영상 발표회 및 평가

▼ 실습평가 및 종결  최종 실습 평가서 작성 및 최종 실습 평가회

이론과 현장, 학습과 실천을 연결하는 품 교육방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연수라 해 도 무방할 만큼 탄탄하고 체계적인 과정인데, 상상해보라. 한 달 남짓한 시간에 저 많은 공부 와 활동을 소화해내기가 만만했겠는가?

그럼에도 많은 대학생들이 여름이면 짐을 싸들고 품을 찾아 서울로 상경을 했다. 지방학생들 이 많아 어느 해에는 실습생을 위한 공동숙소를 마련해야 했었고, 바람도 잘 들지 않는 지하 숙소에서 함께 먹고 자고 공부하며 뜨거운 여름을 보내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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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2005 품 실습 > 연도

기수

인원

기간

1993

1기

2

4주

기본교육(놀이문화,그룹지도,기관방문) / 캠프 기획과 운영

양금석

1994

2기

4

4주

기본교육(놀이문화,그룹지도,기관방문) / 캠프 기획과 운영

심한기

1995

3기

3

4주

기본교육(청소년이해,그룹웍,놀이문화,문화예술활동) / 캠프 기획과 운영

심한기

1996

4기

8

4주

기본교육(청소년복지,활동,문화) / 미디어 실습 /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

심한기

1997

5기

4주

기본교육(청소년이해,정책,지도론/청소년문화-대중음악,영상,정보문화) / 캠프 기획과 운영

심한기 이국진

학기중

기본교육(청소년이해,법,행정,지도/청소년문화,대중음악,영상,정보문화) / 캠프 기획과 운영

심한기

7주

기본교육(청소년이해,소집단지도,역사,환경,생태,지역,문화교육) /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삶의 뿌리를 찾아서 Ⅲ 준비, 진행, 평가)

심한기 이상화

1998

1999

6기 7기

5

7 9

중심내용

슈퍼바이저

2000

8기

9

7주

기본교육(문화,정책,복지) / 기관탐방 / 탐험캠프 준비, 진행, 평가

심한기 이국진

2001

9기

5

7주

기본교육, 기관방문, 프로젝트별 실습(지역축제,강화캠프,생태모니터링)

심한기 황선미

2002

10기

5

4주

기본교육, 기관방문, 프로젝트 실습(서울 찾아 떠나는 여행)

심한기 황선미

2002

11기

15

7주

기본교육(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참가) / 프로젝트 실습(캠프 3팀)

심한기 황선미

6주

문 열기 산행 / 개별 여정지도와 문화여행 / 실습계획하기 / 품 역사와 활동 알기 / 아이들 만나기(연극캠프, 도봉 멀티미디어 캠프) / 기본교육(청소년복지,문화,지역사회실천) / 현장탐방 / 현장실천을 위한 가상기획 프로젝트 / 정리와 평가

심한기 강명숙

2005

12기

8

1993년 시작되어 2002년까지 10년간 쉬지 않고 진행되어 온 품의 실습은 2003년부터 2004 년까지 조직적으로 사람이 들고 나는 혼란기를 겪게 되면서 잠시 멈추었다 2005년 다시 부 활하였다. 그 사이 품의 관심과 활동은 복지에서 문화, 예술 영역으로 점차 확장되고 있었고, 문화적인 삶을 고민하며 소통과 실천의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 변화는 자 연스럽게 실습에도 이어졌다. ‘자기 문화를 점검하라. 주말을 관찰하고 공유하자.’, ‘실습방향 을 직접 세워보라.’는 품의 주문에 실습생들은 ‘헐~’하고 말았지만, ‘완전히 틀을 깬 경험이 었다.’고 회고한다. 나로부터의 문화, 스스로 하는 학습의 비중이 높아졌고, 아이들과의 만남 도 한층 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실습을 하러 왔는데 우리보고 실습방향을 정해보란다. 헐~이게 뭔가.. 정말 틀을 깬 발상이었다. 실습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로 한 채 하얀 전지에 우리가 고민하고 배워보고 싶은 것들을 담아 보았다. 이렇게 6주간의 실습방향 흐름이 정해졌다. ‘주말에 뭐 하는가’를 경험해 보면서 소중한 일상을 느낄 수 있었고, 의사표현 시 뜬구름 잡지 않는 것, 기획서를 쓰더라도 1page내에 상대방에게 명료하게 전달하는 것 등은 지금까지 일하면서 내 생활에 습관처럼 자리 잡고 있다. 6주간의 합숙생활이 끝나고 내 삶과 가치관에는 많은 파장과 울림이 있었다. 그 핵심내용은 이렇다. [균형적 시각, 체계적 사고, 확장적 사고, 근거 찾기,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기, 핵심키워드, 소통, 관계, 고민, 혼란, 공유, 비판, 설득, 방향성, 본질, 일상의 소중함, 익숙함의 무서움, 입장의 동일함, 파장효과(나비효과), 자기 개념정리, 일상의 소중함.. 등 _ 2005, 품 실습 중에] _ 2005년 12기 실습생 최두환

2005년 이후로 청소년과 복지 전공생을 대상으로 하는 품의 실습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고, 그 자리는 나이, 전공에 관계없이 스스로의 삶과 실천의 변화를 꿈꾸는 ‘청년’들로 채워졌다. 2008년 동네와 문화를 공부하며 ‘유쾌한 십대들의 동네 말 걸기’를 함께 해 준 청년들이 있 었고, 2009년 현 무늬만학교의 전신인 ‘세 개*와 심한개의 인문학교’가 있었으며, 2010년 오 래가진 못했지만 청년들의 인문학습 모임이 시도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11년 무늬만학교와 함께 청년학교가 태어났다.

대상과 내용, 방식은 달라져왔지만, 이론과 현장, 학습과 실천을 아울러 ‘고민하고 행동하는 Youth Worker’를 키우고자 했던 품 실습의 핵심 철학은 여전히 유효하며, 실습을 뿌리로 시 작된 품의 청년 키우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품에서 살아보세, 인턴쉽 2000~현재 품의 인턴은 최소 6개월에서 2년까지 활동하며, 사업은 물론 품의 운영 전반을 함께 공유하고 논의한다는 점에서 습이나 타 기관의 인턴쉽 프로그램과는 차별성이 있다. 품에서 자원활동을 했거나 교육과정에 참여했던 이들이 도전장을 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에게 품의 인턴활 동은 공부도 하고 아이들 만나며 현장도 경험하고 품의 생활도 체험해볼 수 있는 1석 3조의

*

세 마리의 개라는 뜻으로, 중학교 때부터 품에서 문화기획단으로 활동한 서인석과 송성호, 김준혁을 말한다. 남들 다 수능 공부하는 고 3 때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여 학습 다큐멘터리 ‘우리는 인문학교다(학이시습, 2011)’를 출간한 덕에 엄청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품 아이 들의 성장모델이자 품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초들로 품 20년 이야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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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기회였던 것이다. 한편, 정식 직원을 채용하기에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많았던 품에게 인턴은 자발적 활동인력으로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최소의 활동비밖에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었고 조직적으로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품의 입장에서나 인턴의 입장에서나 서로 배 우고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 품과 함께 한 인턴들 > 연도

이름

2000

김대심, 김민정

2001

김형미(2003년까지 직원으로 활동), 김선희, 김영호, 강동호, 황지희, 강경미, 이미선, 홍경숙

2002

홍경숙, 김영호, 김지연, 최유라, 강명숙(현재까지 직원으로 활동)

2003

홍정모, 김미현, 박정희

2004

유현희(현재까지 직원으로 활동), 김미경(2005년까지 직원으로 활동), 김혜진(2006년까지 직원으로 활동), 장효진, 이정주

2005

이애란, 고윤희

2006

이정연, 유영은, 지현영

2007

유영은, 이상섭(현재까지 직원으로 활동)

2008

이지성

2009

이정연, 이지성(현재까지 직원으로 활동)

2010

안하나

2011

정이가령(현재까지 직원으로 활동)

2012

김준혁, 이명화

2000년도부터 현재까지 32명의 청년들이 품의 인턴으로 활동했고, 그 중 8명이 직원이 되었 다. 남은 사람보다 떠난 사람들이 훨씬 많지만, 이제는 품도 더 넓어져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 아나서는 사람들을 넉넉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박수쳐줄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는 아이의 엄 마가 되었고, 누군가는 민간재단에서 학교에서 지역에서 중견 이상의 활동가가 되었을 터이다. 그들 역시 품의 오늘을 있게 한 소중한 뿌리이자 자산이다.


청소년문화워크숍 1996~1999 줄곧 안에서 이뤄지던 ‘사람 흔들기’가 처음 밖으로 내민 손은 ‘청소년문화워크숍’이었다. 청소년에 대한 잘못된 인 식을 바로잡고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청소년 문화에

밖에서 흔들기 청소년문화워크숍부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실무자워크숍까지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마련된 문화워크숍은 96년 대학생 워크숍을 시작으로 98년 청소년지도자 과정, 99년 청소년, 대학생, 지도자 통합 과정으로 이 어졌다. < 1996~1999 청소년문화워크숍 > 연도

이름

주제

내용

1996

대학생

청소년과 연극

청소년문화의 이해 / 청소년과 연극 / 연극놀이와 주제 토론

1998

청소년지도자

청소년과 미디어

미디어란 무엇인가? / 미디어 시대 청소년의 문화 / 세상을 반 영하는 거울 ‘광고’ / 미디어의 활용(영상제작)

대중음악과 청소년

청소년 문화를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 / 청소년문화와 대중음악 / 대중음악의 역사 / 한국의 대중음악

대중문화

대중음악과 청소년문화읽기, 대중음악의 역사, MTV시대의 문화 혁명 / 영상 언어의 이해, 영상제작 / 문화공감(발표회와 교류 의 시간)

1999

청소년, 대학생, 지도자

당시 복지 영역에서 ‘문화’를 주제로 교육을 시도한다는 것은 파격적 인 시도였다고 한다. 지난 기록을 보면 제한적인 시간과 전달방식의 한계로 깊이 있는 체감은 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으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문화와 청소년문화에 대한 시각을 안팎으로 넓혀준 시도였 다고 생각된다. 청소년문화를 현상적 이해나 방법론으로 접근하지 않 고, 개념과 역사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자 했던 점은 현재 품 의 교육에서 중요하시는 인문학적 접근 방식과도 몹시 닮아 있다. 또 한 이후 시도된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의 문화체감 활동이나 2006 년 진행된 ‘심한개의 뮤직토크’도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학습하고 그 학습을 실천에 연결하고 그 학습과 실천의 결과를 정리하여 나누고 확산하는 것. 품의 교육사 업이 성장해온 방식이다. ▲1998~1999 청소년문화워크숍 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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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 막 “THE SOUND” 우주에 존재하는 소리의 근원을 찾아본다. 그 리고 우리가 듣고 있는 모든 음악의 근원적 형식을 만나본다. RHYTHM & MELODY의 이해이다.

 제 3 막 “그것만이 네 세상” 음악과의 교감은 듣는 것만으로 가능하지 않 다. 나의 언어로, 詩로, 그림으로, 노래로, 연 주로, 몸짓으로, 춤으로... 음악과의 행복한 조 우를 하기 위한 비명처럼 즐거운 시간을 만들 어 볼 것이다.

 제 2 막 “HISTORY & SPIRIT” 모든 대중음악의 뿌리로서 나의 음악적 감성 을 깨울 수 있는 JAZZ와 BLUES를 만나본다. 시대를 움직였던 FOLK MUSIC을 통해 저항 과 변혁의 역사를 만나본다. 당신은 이제 BOB DYLAN을 사랑할 것이다. 시끄러운 ROCK을 욕하지 못할 것이다.

 제 4 막 “우리들의 CONCERT” 무대는 늘 바라보기만 하는 타인의 공간이 아니 다. MUSIC TALK는 결국 당신이 찾은 소리를 바람과 하늘과 공기와 먼지에게 전달하게 하는 무당일 뿐이다. 이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축 제를 열어볼 것이다.

# ‘심한개의 뮤직토크’는 마지막 청소년문화워크숍이 끝나고 7년 뒤, 동네에서 진행된 스페셜 프 로그램이다. 전혀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초기 문화워크숍에서 다루었던 대중음악의 역사가 여전 히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품의 교육은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보태어지 고 진화한다. 음악을 통한 감성여행을 희망하는 17명의 사람들과 함께 한 7주간의 여정은, 다시 없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청소년 자원지도자 연수 1997~1998 청소년 활동 현장의 자원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지도자연수는 97년과 98년에 2차 례 진행되었다. 현장감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역량 있는 청소년지도자를 키우고자 했던 이 시도는, 유네스코 청년원에서 영감을 받아 품을 시작한 세 청년들이 오랫동안 숙원 했던 ‘청년교육’의 시작이기도 했다. < 1997~1998 청소년 자원지도자 연수 > 연도

일시/장소/인원

주요내용

1997

12.14~17일 산내유스호스텔 (경북 경주) 46명

 이론교육 : 청소년 자원활동의 발전방향에 대한 토의(토의 및 사례발표), 청소년문화 의 이해  실천교육 : 청소년 프로그램의 기획과 운영, 역사․문화와 연관된 답사 프로그램의 실 제, 소집단지도의 실제, 미디어교육의 접근과 활용, 공동체훈련, 정보화의 이해와 활용  프로그램 개발 : 청소년야외활동프로그램 기획과 운영, 청소년야외활동프로그램 실제, 모둠별 주제답사활동 발표 및 평가

12.14~17 유네스코 청년원 (경기 이천) 80명

 이론교육 : 청소년 자원봉사 활동론, 청소년 자원지도자의 역할과 기능, 자원지도의 현황과 문제점, 청소년 문화의 이해, 집단지도론  실천교육 : 청소년 프로그램의 기획과 운영, 심성계발 프로그램의 실제, 역사, 문화와 연관된 답사 프로그램의 실제, 집단지도의 활용(소집단활동), 분반실습(창작놀이반/전래 놀이동반/자기표현활동반/연극놀이반/미디어연구반/환경놀이반), 미디어교육의 활용과 접근, 정보교류의 시간, 민속장터 등  프로그램 개발 : 소집단별 주제 답사 실습과 프로그램 개발, 평가 및 우수 프로그램 선정

1998

연수는 관련 학과 및 단체의 기대에 부응하며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 결과 품은 준비된 자 원지도자를 확보하였고, 열정 넘치는 청년들을 보며 지도자 교육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현재 아힘나평화학교의 교장이신 김종수 선생님은 1997년 나이를 속이고 연수 에 참여했던 열혈 청년이었다고 한다. 유네스코 청년원에서 길러진 청년들이 품을 만들고 지 도자연수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더 많은 청년을 흔들고 키우기 위한 청소년문화복지아카 데미의 전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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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2002~2007 2002년. 2년간의 준비 끝에 품의 대표적 교육사업인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가 탄생했다. 아카데미는 한국복지교육원, 미디어프로젝트팀 ‘헤모’, 주성대학교 청소년문화학과, HS리서치 센터 등 청소년복지와 관련한 많은 단체와 전문가들이 함께 한 공동사업이자, 청소년문화복지 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하는 운동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2002년 4월, 서울과 청주, 광주에서 실무자아카데미가 먼저 진행되었고, 7월 경기도 이천의 유네스코 연수원에서 대학생 과정이 이어졌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70명에 달하는 청년들이 이 천으로 몰려들었고, 그곳에서 5박 6일을 보내며 나는 제대로 흔들렸다. < 2002 1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대학생 과정 교육내용 >

이론교육

ㆍ청소년복지론 : 이용교(한국복지교육원/광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ㆍ청소년문화론 : 김민(주성대 청소년문화학과 교수) ㆍ청소년과 미디어론 : 김태황(미지센터 프로그램 팀장/미디어프로젝트팀 헤모) ㆍ지역사회 청소년문화복지론 : 심한기(품 청소년문화공동체 대표) ㆍ청소년 문화복지 프로그램 기획과 실제 : 이승민(인천카톨릭 청소년회 사업팀장)

특강

ㆍ위대한 거부 : 강대근(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업본부장) ㆍ사이버 문화의 르네상스가 온다 : 김옥순(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 ㆍ가상복지를 통한 지역사회 청소년 운동 : 표경흠(평택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실천교육 [선택분반]

ㆍ미디어 활동의 실제 : 김태황, 이승민 ㆍ청소년 축제를 통한 지역공동체 만들기 : 심한기 ㆍ가상 청소년 문화 복지관 만들기 : 표경흠 ㆍ청소년 하위문화 집중탐구 : 김민

현장탐구 [선택분반]

ㆍ청소년 활동 현장 실무자들과의 만남(실무자 과정 참여자들로 구성) -청소년수련관, NGO, 자원봉사센터, 대안학교, 자활지원센터, 쉼터, 지역사회복지관


문화체감

ㆍ문화 읽기 : 청소년과 대중음악, 청소년과 영화 (선택) ㆍ노는 것이 공부다! : 엽기 OL, 엽기 운동회 ㆍ토론 카페, 아카데미 페스티벌

춘천에서 나고 자라 품도 운동도 뭣도 몰랐던 나에게 그곳은 신세계였다. 청소년 복지와 문화, 지역사회, 위대한 거부로 이르는 이론교육과 특강, 별나라 얘기 같던 품의 지역 실천 사례, 실 무자들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까지... 갑자기 쏟아진 많은 질문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지 만, ‘세상에 눈을 떠라. 청년답게 살라.’ 말하던 아카데미의 메시지만큼은 정확하게 내 가슴에 꽂혔다. 나처럼 큐피트의 화살을 맞은 젊은이들이 70여명. 그 열기를 품어내기에 유네스코 연 수원의 잔디밭은 참 푸르고 넉넉했다. (유네스코 청년원. 품을 태동케 했던 그곳이었다. 품을 만든 세 명의 청년들도 이곳에서 나와 같은 가슴 떨림을 느꼈으리라!)

2002 1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대학생 과정

후속활동을 희망하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청소년축제 모니터링단 ‘틈새’가 꾸려졌고, 첫 해 만큼은 아니지만 목말랐던 실무자들과 대학생들의 환호를 받으며 2,3기 아카데미가 이어졌다. 교육의 기본적인 흐름과 구성은 같았지만, 실천교육 영역에 문화기획과 반자본 지역사회 문화 운동이 추가되고 문화에 대한 체감 활동이 강화되는 등 교육내용의 변화가 있었고, 참여대상 도 점차 넓어져 2004년 3기 대학생과정에는 전공이 아니어도 청소년문화복지에 관심이 있는 청년이면 신청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인간과 복지에서 ‘청소년문화복지’가 출 판되었다. ‘청소년문화복지’의 이론과 실제를 채워가는 데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 아 아카데미 강사들이 함께 엮었고, 학교 현장의 좋은 반응을 얻으며 교재로 채택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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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_ 위대한 거부 (강대근) 2장_ 한국의 청소년복지 (이용교) 3장_ 청소년문화 (김민) 4장_ 청소년과 미디어(김태황) 5장_ 지역사회 청소년문화복지 실천 (심한기) 6장_ 프로그램 기획과 평가 (우수명) 부록_ 정보사회와 청소년의 자아정체성 제3의 교육 패러다임을 실험하는 하자센터 제1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설문결과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진행과정

< 2002~2004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 2002 1기 실무자 과정 * 서울ㆍ강원ㆍ경기북부 : 4.3~7 _이천 유네스코 연수원 (27명) * 경기남부ㆍ충청 : 4.10~14 _청주 안중근학교 (18명) * 경상ㆍ전라ㆍ제주 : 4.17~21 _광주 중소기업연수원 (21명)

[공동주최ㆍ주관] 서울청소년문화교류센터 ‘미지’, (재)인천가톨릭청소년회, 주성대청소년문화학과, 품, 한국복지교육원 [후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2002 1기 대학생 과정 7.1~6 _이천 유네스코 연수원 _청소년과 복지 전공 대학생(3,4학년) 76명 후속활동 _청주지역 미디어모임 ‘따또’ _청소년축제 모니터링단 ‘틈새’ 2003 2기 실무자 과정 : 4.21~25 _용인 대림교육연구원 _청소년 현장 활동가 29명 2003 2기 대학생 과정 : 6.22~27 _이천 유네스코 연수원 _청소년과 복지 전공 대학생(3,4학년) 89명

보수교육 : 10.2~3 / 여해문화공간 _특강, 현장토론, 야간산행 _1,2기 수료생 33명

[공동주최] 미디어교육프로젝트팀 ‘헤모’,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 센터 ‘하자’, HS리서치센터, 주성대 청소년문화학과, 표경흠 사회복지사무소, 품, 한국복지교육원,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주관] 품 [후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2004 3기 대학생 과정 : 6.23~28 _이천 유네스코 연수원 _청소년문화복지에 관심 있는 대학생 (3,4학년) 67명

2004 3기 실무자 과정 : 10.24~28 _이천 유네스코 연수원 _청소년 현장 활동가 43명

[공동주최] 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대학, 미디어교육프로젝 트팀 ‘헤모’, HS리서치센터, 주성대 청소년문화학과, 품, 한국복지교육원 [참여단체] 에이스벤추라, 퍼포먼스 반지하 [주관] 품 [후원] (사)나눔문화

하지만 아카데미 3년을 정리하는 사무국에서는 고민이 많았다. 공동주최 단체들의 참여가 점 차 약화되고 있었고, 예산 확보도 난항에 부딪혔다. 2005년 3월부터 5월까지 연대단체들을 만나 이후 아카데미의 방향에 대한 의견들을 모았다. 내용적으로는 이론교육과 실천교육 간 의 연결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평가가 있었고, 현장 실천 연계를 위한 방안의 필요성도 제기되 었다. 예산확보와 운영의 버거움, 아카데미의 가치와 현장 실무자들의 욕구 간 괴리를 확인하 며 실무자 교육과정은 중단을 결정하였고, 새롭게 구성된 네트워크 단체들 - 시민문화네트워 크 티팟, HS 리서치 센터, 퍼포먼스 반지하*, 품 - 과 함께 4기 아카데미에 대한 논의가 시작 되었다. ‘자기 존재와 청소년에 대한 재인식, 삶의 문화, 지역사회 실천’이 핵심키워드로 떠올 랐다. 참여방식을 개인에서 팀으로 변경하였고, 아카데미 후속과정으로 지역 실천 프로젝트를 포함하였다. 교육과정도 공통교육과 팀별 워크숍을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워크숍 강사들이 팀별 멘토가 되어 후속과정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하였다. < 2005 4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 대상

전공에 관계없이 4인~8인 팀으로 신청(지역별 구성)

내용

ㆍ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 6. 24~28 / 강원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 - 나의 원형 찾기 - 공통교육 : 위대한 거부, 사회와 문화, 청소년과 문화, 지역사회 청소년문화운동 - 팀별 흐름 워크숍 : 나의 문화, 나(청소년)와 환경, 지역사회와 청소년 - 특강 : 나로 시작된 생태문화운동 - 문화체감 : 자연과 함께 메모지로 집짓기, 한밤의 음악회(캐비넷 싱얼롱즈와 함께)

*

특히 인천의 달동네에서 반자본 문화운동을 하고 있던 ‘퍼포먼스 반지하’와의 만남은 품과 아카데미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내부적으로 운 동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시기였기에 반지하의 가치와 실천적 삶이 더 많은 자극과 감동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수 차례의 사전워크숍과 논의가 이어졌고, 징하게 많은 술과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지나친 강성으로 참여 강사들과 갈등을 빚기도 하고 품과 도 애증이 교차하는 시간을 여러 해 보냈지만, 당시 반지하와의 만남은 변화의 시기에 품을 성장케 했던 중요한 계기였다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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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ㆍ지역 청소년 문화활동 실천 : 8~11월 / 팀별 지역 현장 - 아카데미 이후 팀별 자체 워크숍 실시 / 지역별 특성에 맞는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 - 멘토 연계를 통한 후속 과정 지원 ㆍ사례발표 : 12월 - 지역별 활동사례 공유와 피드백

그러나 교육과 지역 현장 실천을 연결하고자 했던 아카데미의 의도는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 다. 참여 팀들에게 ‘지역 청소년 문화 실천’은 막연하고 무거운 과제였으며, 지난한 논의만 반 복하다 이렇다 할 시도도 해보지 못한 채 마무리된 경우가 많았다. 2006년 5기 아카데미. 교 육과정에 지역사회 문화실천 기획과 실습이 포함되고, 멘토들의 후속활동 지원을 강화하였다. 참여 팀들의 활동 기관이나 대학을 기반으로 의미 있는 시도들이 있긴 했지만, 나와 청소년과 지역을 연결하는 문화적 상상력을 기대하기에는 여러모로 역부족이었다. 그리하여 2007년. 아 카데미는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청소년과 문화, 지역사회를 연결하고자 하는 실천 철학은 변하지 않았지만, ‘청소년문화복지’라는 이름으로 아카데미를 고집해야 할 근거가 약해지고 있다. 사회복지 현장의 실무자들과 전공 대학생들을 흔들고자 했던 아카데미의 목적은 5년의 과정을 거치며 지역사회로 점차 확장되고 있고, 그 대상 또한 ‘청소년과 지역사회의 변화를 꿈꾸는 청년’으로 확대되어 왔다. 때문에 ‘청년과 문화, 실천’라는 포괄적 언어를 선택하였다. 6기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는 내가 숨 쉬고 있는 지역사회에서 청년이란 이름으로 스스로의 진정성을 회복하며, ‘문화’라는 행복한 소통의 끈을 통해 동네 아이들과 일상의 실천들을 만들어갈 수 있는 행복한 지원을 시작하려 한다. - 6기 아카데미를 시작하며

그렇게 6기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별종 청년들의 힘! 아이들과 동네난장 가능할까?’가 탄생 하였다. 밀머리 미술학교와 신기학교가 공동주관으로 참여하고, 박찬국, 목윤지영, 김월식, 아 랑, 김지나, 손준형 같은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가들이 대거 합류하였다. 집중 연수 방식으로 운영되던 교육과정을 단계별로 쪼개었고, 전체적으로 가치와 당위의 무게를 줄이면서 참여자 도 강사도 문화적 감성과 상상력을 열어보자는 방향을 잡았다.


< 2007 6기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 교육과정 [7~8월]

Open Workshop ‘열다‘ : 7.22~23 / 밀머리미술학교 첫 만남, 아카데미의 역사와 의도 이해하기, 자기표현과 문화체감을 통한 실천의 본질적 단서 찾기 [밀머리 투어 / 자기표현_ fun sign 만들기 / 아카데미 이야기 / play workshop_ 소리워크숍, 에코애니메이션 / 박찬국과의 만남_ 밀머리의 철학과 활동, 현장실천사례 / 한밤의 토크] 대표자 모임 : 8.4 / 품 팀별 중간 상황 점검 및 이후 계획 공유 [오픈워크숍 정리와 나눔, 이후 과정 안내, 팀별 현황과 이후 계획 공유, 활동비 지급과 정산교육] Culture Camp ‘깨다‘ : 8.21~24 / 신기학교 즐거운 문화체감을 행복한 상상과 실천의 동기로 전환하기,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단서 찾기 [쏘남과 맨발로 신기 투어 / 손준형과 몸 열기 마음 열기 / 심한~개의 뮤직토크 / 신기 노작활동 / 가치와 상상을 거래하는 OO마켓 이야기(아랑) / 김월식과 우뇌 열기 / 4인의 멘토와 함께 하는 팀별 Free Workshop / 정리와 나눔]

활동과정 [9~11월]

Self Workshop : 팀별 정리와 토론. 프로젝트 대상과 주제 설정 Making Network : 지역 네트워크 만들기 Planning Project : 프로젝트 기획하기 Action with youth : 프로젝트 실행하기 P.P.T. (Process&Public&Together) : 활동 과정과 결과 나눔. 이후 활동에 대한 토론과 논의

그 동안 줄곧 사용해왔던 연수시설을 떠나 살아있는 실천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밀머리 미술 학교에서는 밀머리 미술학교를 만나고 신기학교에서는 신기학교를 만날 수 있도록, 운영적인 측면에서도 ‘치밀함’보다는 ‘자연스러운 편안함’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청년들에게 문화적 상 상력과 실천을 요구하려면 우리 스스로가 문화적일 필요가 있겠다는 자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각은 준비과정과 아카데미 전반의 색깔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2007 6기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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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들은 물론 실무자와 스탭들도 한결 더 가벼워졌고, 나와 환경,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동화되며, 청소년과 문화, 지역을 연결하는 상상의 단서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 고 각 지역으로 돌아간 참여 팀들은 멘토들의 응원에 힘입 어 무모하지만 즐거운 Culture Action을 시도하게 된다. 부산의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완소나비’는 밤마다 봉고차 로 학원 앞을 순회하며 학업에 지친 청소년들에게 웃기는 춤을 선사하기도 하기도 하고, 품에서 자란 청년들로 구성 된 ‘동네’팀은 동네의 작은 재래시장에서 ‘동네와 시장수 다’라는 소통 프로젝트를 시도했으며, 청주지역 실무자들 로 구성된 ‘자청당’은 위기 청소년들을 위한 훈남 사장 창 업 프로젝트 ‘청소년 사장되기’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3년 만에 얻어낸 고무적인 결과였다. 비록 단발적인 시도에 그 치긴 했지만, 청소년과 지역에 대한 인식은 결국 자기 존 재에 대한 발견으로부터 시작되며, 문화 실천 또한 스스로 의 문화적 체감에 기인함을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 2005~2007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 2005 4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ㆍ7개 지역, 7팀, 39명 참가 - 충남 공주대 TP-maker, 서울 경기대 청소년 학과, 경주 동국대 사회복지학과, 경기 이천 창전청소년문화의집, 경기 군포당동청소년문화 의집, 광주 실무자 대학생 연합팀, 울산 실무자 대학생 연합팀 ㆍ아카데미 : 6.24~28 - 강원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 ㆍ후속활동 : 7~12월 - 멘토 : 드라마고, 심한기, 우수명, 지경

[주관] 품 [참여단체]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 시민문화네트워크 티팟, HS 리서치 센터, 퍼포먼스 반지하 [후원] 행정자치부,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


2006 5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ㆍ5개 지역, 6팀, 35명 참가 - 청주 사랑의 울타리, 군포 호미, 공주 TPmaker(2기), 광주 청연, 광주 문화행동S#arp 쿨피스, 이천 창문 ㆍ참가자 OT : 6.11 - 명동 유네스코 회관 회의실 ㆍ아카데미 : 6.28~7.2 - 강원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 ㆍ지역실천 : 7~11월 - 멘토 : 전명기, 우수명, 드라마고, 심한기 ㆍ사례발표 : 12.16 - 명동 유네스코 회관 회의실

[주관] 품 [참여단체] HS 리서치 센터, 퍼포먼스 반지하, 이천 창전청소년문화의집, 군포 당동청소년문화의집, 문화행동 S3arp, 한국복지교육원 [후원] 행정자치부,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

2007 6기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별종 청년들의 힘! 아이들과 동네난장 가능할까?’ ㆍ5개 지역, 6팀, 30명 참가 - 서울 동네, 서울+인천 SEXIT, 괴산 신난다, 부산 완소나비, 청주 사랑의 울타리(2기), 부산 JUMP ㆍ오픈워크숍 : 7.22~23 - 경기 여주 밀머리 미술학교 ㆍ컬쳐캠프 : 8.21~24 / 충북 괴산 신기학교 ㆍ지역실천 : 8~12월 - 멘토 : 박찬국, 목윤지영, 심한기, 김지나 ㆍ사례발표 : 12.29 / 서울 KT&G북부복지센터

[주관] 품 [참여단체] 밀머리미술학교, 어린이문화 사과(신기학교), 공공문화개발센터 유알아트 [후원] 행정자치부

아카데미 6년. 청소년문화복지에 대한 담론을 열었고, 연수로 시작해서 지역실천 활동을 포괄 하는 교육과정을 만들었다. 대학생에서 청년으로 청소년문화복지에서 지역문화실천으로 변화 와 성장을 거듭해가며, 각계의 전문가들을 만나 많이 배우고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6기 아카데미의 파격적인 변신을 통해서 ‘오랜 시간 물들여진 경직된 사고와 감 성, 실천을 위한 에너지를 깨우려면 훨씬 더 자연스럽고 지속적인 학습과 경험 과정이 필요 하다는’ 약간의 단서를 얻긴 했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남아있었다. 교 육이 삶의 실천으로 이어지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 걸까? 1년간의 아카데미는 너무, 짧았다.

쉼을 가지며 새로운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내부적으로도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2008 년, 지역에서는 아이들의 일상과 삶의 문화에 접근하는 ‘놀이터’가 시작되었다. 2006년 시작 된 네팔 활동도 점차 마을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었고, 2010년 즈음에는 교육을 포함한 품의 모든 활동이 아이들과 마을을 중심으로 연결되며 확장되어 갔다. 자연스럽게 외부 교육사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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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었고 교육사업팀도 사라졌으나, 아카데미가 전하고자 했던 철학과 다양한 실천의 가능성들 은 현재 품의 과정에 알알이 녹아있다.

아카데미의 소실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다. 10년이 지났건만... 아카데미의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하고, 그 내용과 방식 또한 변함없이 유용하다는 사실이 (그다지 진전이 없었다는 반증 같 기도 해서) 한편으론 조금 안타깝기도 하다. 아카데미는 끝났지만 품의 청년흔들기는 계속될 것이고, 언제 어떤 방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청년들을 위한 학교도 꿈꾸고 있다. 그 때는 아 마도... 아이들과 마을에서 쌓아가고 있는 삶들이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청소년문화기획아카데미 2003 품의 청소년교육은 지역청소년문화축제와 십대기획단의 활동을 기반으로 시작되었다. 아이들 과의 만남 속에 늘 교육은 존재했었지만, 지역을 넘어 시도한 첫 청소년 교육사업은 ‘청소년 문화기획아카데미’라 말할 수 있다. 2003년 8월, 유네스코 청년원에서 진행된 청소년문화기 획아카데미에는 품의 청소년축제기획단 ‘노올자’를 포함해 전국 청소년기획단 5팀이 참여했 으며, 프로젝트팀 에이스벤추라*가 기획과 운영을 함께 하였다. < 2003 청소년문화기획아카데미 교육내용 > 구분 축제 기획 교육

지역별 컨설팅

*

프로그램

세부내용

동기화 프로그램

ㆍ영상과 프리젠테이션을 활용한 자극주기 - 전형적인 축제 사례다른 기획단의 축제 기획안 사례를 통한 자극하기 - 기획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의 방법’이라는 것 이해하기 - 토론하기 : 축제에 대한 모둠별 생각나누기

기획실습

ㆍ상상력 넘치는 기획서 만들기 (모둠별 자유기획) ㆍ조건이 제한된 기획서 만들기 (장소, 대상, 예산 제한) ㆍ모둠별 프리젠테이션 쇼 준비하기

기획 발표와 피드백 ㆍ각 기획단별로 진행할 축제 계획에 대한 발표 및 comment

현 문화예술교육연구소 ‘에이스벤추라’는 당시 문화기획자 안이영노가 만든 프로젝트팀으로, 아랑, 잉카가 함께 활동하고 있었다. 청소년 문화기획아카데미는 에이스벤추라와 품이 함께 한 첫번째 공동사업이었으며, 이후 청소년문화의집 운영위원회 교육지원프로젝트, 경기도 청소년문화예술활동지원사업 등을 함께 하였다. 당시 에이스벤추라와의 만남은 품의 경험적 기반을 교육으로 전환하는 데 큰 자극과 도움 이 되었고, 이후 서로의 변화와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교류와 협력

모둠활동

ㆍ모둠별 친해지기 활동 / 활동내용 나누기

문화 OL

ㆍ문화적 감성 + 청소년 간 교류, 응집력 높히기

엽기 운동회

ㆍ잔디 운동장의 특징을 살린 몸풀기 및 교류 프로그램

축제

ㆍ모둠별로 주제 정해서 축제 준비하기 - 모둠별 발표물(퍼포먼스, 노래, 전시 등) 만들기 등

품의 축제기획단 ‘노올자’에게 청소년문화기획아카데미는 매우 적절한 자극제가 되었고, 품 에게는 청소년 자치와 기획 교육을 위한 커리큘럼을 개발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그 해 10월에는 참여팀들의 활동사례를 바탕으로 ‘청소년이 만드는 청소년문화축제 포럼’을 열기 도 하였다.

2003 청소년문화 기획아카데미 2003.8.6~9 이천 유네스코 청년원

2003 청소년문화 축제 포럼 2003.10.25 여해문화공간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회 교육지원프로젝트 2003~2006 2003년부터 청소년문화의집 운영위원회 교육활동이 시작되었다. 청소년의 참여 권리 확대 정 책에 따라 청소년문화의집에 ‘청소년운영위원회’ 설치가 의무화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청소년 을 미래로 유보된 존재, 정책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사회를 함께 살고 있는 사회의 구성원이 자 능동적 주체로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였으나 현장에서는 준비가 되 지 않은 상태였고, 청소년운영위원회의 역할정립과 활성화를 위한 교육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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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하였다.

그 계기는 1기 실무자아카데미 출신인 이천 창전청소년문화의집 조계형 선생님의 제안으로 만 들어졌다. 연대하고 있는 청소년문화의집들을 모아, 청소년운영위원회 역할 찾기를 위한 공동 워크숍을 제안한 것이다. 그리하여 2003년 10월, 이름도 재밌는 이천의 치킨대학 연수원에서 이천 창전과 수원 영통, 거창 청소년문화의집이 함께 하는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 2003 청소년운영위원회 공동워크숍 > 일시/장소

2003.10.18~19 / 경기 이천 치킨대학 연수원

대상/인원

이천 창전청소년문화의집, 수원 영통청소년문화의집, 거창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회와 실무자 40명

교육내용

자기표현과 의사소통, 자치 참여 동기화(자치활동의 의미와 사례), 자치활동 기획(기획 실습과 개별기획안 만들기, 청소년문화의집 활성화를 위한 공동기획안 만들기), 발표와 피드백, 기관별 친교의 시간

공동워크숍을 계기로 품은 지역단위 청소년문화활동의 거점으 로서 청소년문화의집이 가지는 중요성과 청소년운영위원회 교 육의 필요성을 확인하게 되었고, 이듬해인 2004년 전국단위의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회 교육지원 프로젝트’를 시작 하게 되었다. 청운위 활동에 대한 동기부여와 교육을 위한 연 합워크숍, 활동지원을 위한 방문컨설팅, 연합토론회로 이루어진 청운위 교육지원 프로젝트에는 전국 7개 청소년문화의집 48명 의 청소년운영위원회가 참여했으며, 청소년문화예술교육연구소 ‘에이스벤추라’와 공존을 위한 공공문화 표현집단 ‘퍼포먼스 반지하’, 품이 함께 하였다.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세 단체의 만남은 묘한 긴장감을 동반하며 ‘나와 지역의 존재 인식으로부터 청소년문화의집과 청운위 의 역할 찾기, 상상과 발상을 통한 문화 기획’ 등 청소년 교육의 다양한 가능성들을 선사하였 다. 이는 이후 청소년 자치와 문화 교육을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경험적 기반이 되었고, 2005 년 3월에는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회 활성화 방안연구’를 발간, 배포하기도 하였다.


< 2004,2006 청소년운영위원회 교육지원 프로젝트숍 > 2004

2006

참여자

전국 7개 청소년문화의집 52명 - 거창, 당동, 이천, 단양, 매포, 창동, 토평

경기 6개 청소년문화의집 39명 - 신갈, 창전, 만안, 장안, 안산, 석수

강사진

에이스벤추라, 퍼포먼스 반지하, 품

에이스벤추라, 문화로 놀이짱, 품

 연합워크숍 : 2004.4.2~5 / 청려수련원(경기 화성) - 시작의 시간(개별, 문화의집별 소개), 주제별 모임 과 문화체험 활동, 한울타리 운영모임, PT Show, 평가 및 마침의 시간 / 워크숍 후, 온라인커뮤니 티 개설, 운영  방문컨설팅 : 2004.10~12 / 각 청소년문화의집 - 청소년문화의집별 워크숍, 우수사례 개발  연합토론회 : 2004.12.4 / 명동 유네스코회관 - 사업운영결과 공유, 운영위 현황과 발전방안, 문화 의집별 사레발표, 토론

 사전방문워크숍 : 2006. 7월 - 문화의집별 현황 및 욕구파악, 사업계획 공유  연합워크숍 : 2006.8.7~10 -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 - 시작의 시간(개별, 문화의집별 소개). 문화체 감 OL, 한울타리 모임(운영위 역할 정리, 지 역과 청소년을 연결하는 기획), 공유와 피드 백, 평가 및 마침의 시간  방문컨설팅 : 2006. 11~12월 - 활동 현황 공유와 이후 계획  연합토론회 : 12.23 / 안양 석수청소년문화의집 - 문화의집별 활동 공유, 한접시 파티

과정

청소년운영위원회 교육지원프로젝트는 예산과 인력 문제로 한 해 쉬었다가 2006년 다시 진 행되었다. 참여 단체 간 교류를 활성화하고 네트워크를 만들려면 지역 단위 집중이 필요하겠 다 판단하였고, 당시 청소년문화의집 실무자 교육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던 경기 지역이 선정 되어 6개 청소년문화의집이 참여하였다.

청소년문화시설의 청소년운영위원회는 현재까지도 계속 지속되고 있다. 전반적인 상황이 크 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지만, 청소년의 주체적 역할과 참여 활동을 고민하는 현장 실무자들 을 종종 만나게 된다. 부름이 있으면 외부 교육을 나가기도 하고 대개는 동네에서 하고 있는 현재의 활동들이 살아있는 사례가 된다. 2011년부터 강북구 청소년참여위원회를 운영하고 있 고, 교육청과 함께 학생자치교육을 여러 차례 진행하였다. 지난 과정과 경험들이 지금을 살 아가는 훌륭한 자산이 되고 있다. 2004 청소년운영위원회 연합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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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청소년문화의집 실무자 워크숍 2004~2008 청소년문화의집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은 2004년 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대학 과의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기전문화대학의 제안으로 ‘경기지역 청소년문화활동지원사 업’이 먼저 진행되었고, 이듬해인 2005년 사회문화예술교육사업의 일환으로 동아리아카데미 와 실무자아카데미가 진행되며 ‘실무자워크숍’이 태어났다. < 2005~2008 경기도 청소년 문화시설 실무자 교육 > 2005

2006

2008

일시 장소

2005.11.13~15 경기 양평밸리

2006.11.26~28 경기 양평밸리

2008.11.21~24 광명1동청소년문화의집

대상 인원

15개 청소년문화의집 20명

14개 청소년문화의집 20명

5개 청소년문화의집 10명

교육 내용

ㆍ소통과 인식 : 이미지를 통한 시작의 시간, 여정지도 그리기, 문화의 이해, 지역사회와 청소년 문화실천 ㆍ실천 : 프로그램 기획실습, 발표와 피드백 ㆍ나눔 : 청소년문화의집 활성화 방안 논의, 네트워크 제안

ㆍ고정관념 해체하기 (오감소통,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해, 청소년문화의집의 역할과 정체성), ㆍ어깨 넘어 배우기 : 사례발표와 토론 ㆍ체감하기 : 당신도 예술가, 나는 미디어, 공간을 넘어서 ㆍ멀리보기 : 향후 계획

ㆍ얼굴 마주보기 : 시작의 시간 ㆍ고정관념 해체하기 : 새로운 문화예술 패러다임에 대한 이해와 토론 ㆍ어깨 넘어 배우기 : 현대미술에 숨어있 는 게임의 법칙 ㆍ시각과 발상에 발동걸기 : 자신의 일상 적 공간과 결합해서 엉뚱함을 유발하는 공간 재구성 워크숍 ㆍ일상에 딴지 걸기 : 청소년문화의집 관찰과 분석, 변화를 위한 드로잉 작업(기획) ㆍ시도하기 : 기획 실행 ㆍ개별 아카데미브 및 전시 * 청소년문화의집별 후속 실천작업 지원 (강사연계와 컨설팅)

경기 지역 청소년문화예술활동지원사업은 2006년 기전문화대학이 해체되면서 마무리되었으 나, 청소년 동아리 교육과 실무자 교육에 많은 단서를 제공하며 품의 지역사업과 교육사업에도 영향을 주었다. 2005년 지역에서 만들어오고 있던 청소년축제 ‘추락’의 과정으로 ‘청소년문 화동아리워크숍’이 생겨났으며, 이는 참여 동아리들의 성장과 교류를 지원하고 축제로 연결하 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기전문화대학과 연결되어 있던 다양한 문화예술 강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며 ‘나의 문화와 인식의 성장’으로부터 출발하는 문화예술 매개자 교육 의 시초가 되었다. 이러한 경험들이 2007년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의 변신을 시도할 수 있 게 하였으며, 2008년에는 새로운 방식의 실무자 교육프로그램 ‘공간의 재발견’을 탄생시켰다.


그간 청소년 문화시설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한 많은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무자들의 현실적 상황과 환경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교육 프로그램이라 하여도 실무자가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과정이라면 일상의 변화를 기대하기가 힘들다는 판단을 해 봅니다. 그래서 이번 경기도 청소년문화의집 실무자를 위한 세 번째 워크숍에서는 진행자의 욕심과 과다한 상상들에 대한 거품을 버렸습니다. 현장의 실무자들이 실제로 가능할 수 있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작지만 중요한, 지속적인 일상의 실천들이 가능하게 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우리의 결론은 ‘공간’이었습니다. _ 청소년문화의집 실무자들을 위한 문화&실천 워크숍 ‘공간의 재발견’을 열며

‘공간의 재발견’은 교육시설을 떠나 실무자들의 현장으로 들어간 파격적인 시도였다. 공동주 관으로 함께 했던 광명1동청소년문화의집을 중심으로 인근 동네에서 교육이 이뤄졌으며, 숙박 은 인근 모텔을 이용했다. 충분히 놀면서 시각과 발상에 발동을 걸고, 청소년문화의집의 실제 공간을 관찰하고 드로잉하며 변화의 그림을 그려보는 과정이었다.

2008 청소년문화의집 실무자들을 위한 문화&실천 워크숍 ‘공간의 재발견’

스무 명이 채 안 되는 강사와 실무자 STAFF들이 함께 한 이 생소한 여정은 나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참가자들은 완전히 오픈되어 오랜 술친구가 되었으며, 참여한 5개 청소년문화의 집 중 3곳에서 후속작업이 이어졌다. ‘바꿔야 할 것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공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라는 명언과 함께 매개자 교육 프로그램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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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_ 안내서를 위한 안내서 이 책을 탐독해야 하는 이유 안내서 100배 즐기기 2장_ 공간의 재발견을 위한 다섯 가지 키워드 나의 시각과 상상력 점검하기 ‘주위를 둘러보세요...’ 시각과 발상에 발동 걸기 ‘잠들어 있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깨우자’ 익숙한 공간 새롭게 보기 ‘일상에 딴죽 좀 걸어볼까요?’ 관계, 그리고 네트워크 ‘우리 동네 예술가를 찾아보아요!’ 나의 것으로 정리하기 ‘나만의 아카이브 만들기’ 3장_ 실천! 현장 속으로.. 광명1동청소년문화의집 ‘페인트통을 집어 들다’ 신갈청소년문화의집 ‘상상충전프로젝트’ 고리울청소년문화의집 ‘꾸마 다시보기 프로젝트’ 4장_ 우리가 발견한 것들 5장_ 부록

교육사업의 현재와 미래 스스로 흔들며 세상을 흔드는 청년 키우기

20년 품 역사와 버금가는 교육사업의 역사를 훑어보았 다. 한 눈에 읽어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업이 있 었고 정책과 사회의 흐름에 따라 변화도 많았지만, ‘사 람과 현장을 흔든다.’는 교육사업의 철학은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 2008년을 기점으로 외부 교육사업이 종결

되었고, 현재는 한국과 네팔의 지역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교육과 삶을 함께 하고 있다. 지역 의 필요가 있거나 열정 있는 현장의 부름이 있을 때 간간이 강의를 나가는 정도로만 외부교 육활동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고민과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 로 ‘청년’이다.

계속되는 청년 흔들기 ‘청년’은 ‘청년실업’으로 대표되는 시대적 화두이기도 하고, 태동부터 현재까지 품을 지탱해 온 정신적 뿌리이자 에너지이기도 하다. 품에서 청년은 지금의 삶터를 마련해준 초석이었고, 쉽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해 준 친구였고, 커가는 아이들의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요즘 똥 싸면서 체게바라 평전을 읽고 있다. 난 20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나의 20대가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지금 그리고 내일의 내 모습이 더 아름다울 것이라는 스스로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 오만한 삶의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한 것은 무엇인가?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 특히 올해 심한기의 페르소나는 내 눈 앞에 있는 청년들이다. 그러면서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내가 청년이 아니라도 좋다. 그들이 청년일 수 있도록 내가 존재해야 함을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체게바라는 20대의 여행에서 약한 자, 노동자, 권력과 위선, 가식을 보며 분노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그의 꿈과 실천으로 이어진다. 나는 희망한다. 청년의 이름으로. 우리의 미래가 ‘혁명’으로 실천되기를 희망한다. 혁명이란 것은 거창할 필요도 없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외치고,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고 외치고, 바꿔야 할 것이 있다면 내가 먼저 바꿔보고, 개인의 카타르시스에만 갇혀있지 말고, 세상과 나눌 수 있는 오르가즘을 느껴보길 희망한다. 나는 희망한다. 스스로의 부족함에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내가 해야 할, 내가 만나야 할, 내가 이겨봐야 할 것들에 대한 행복함으로 눈물을 흘려보길 희망한다. 나는 희망한다. 청년들이 외설적이지 않기를. 나의 스승 강대근 선생님이 그러셨다. 세상의 외설은 벗은 나체가 아니라 거짓으로 비겁하게 사는 모습이라고. 나는 희망한다. 내가 함께 살았던 청년들과 함께 오랜 시간 동안 늙어 가기를... _ 2008년 품 청년들과 함께, 심한기

2005년 품 실습이 끝나고 난 뒤에도, 2007년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가 막을 내린 뒤에도 품의 여름은 청년들로 뜨거웠다. 지역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청년이 되고 아이들의 선배가 되어 많은 활동을 함께 했다. 놀이터 아이들과 함께 ‘동네 말 걸기’를 하기도 하고 참맑은물살 캠프 에서 어린이들의 교사가 되기도 하고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이 있을 때는 강사로 함께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아이들 만나기도 바빴고, 선후배 할 것 없이 함께 커가고 있던 시절이라 그 역 할을 대부분 심샘이 담당하긴 했지만, 때때로 우리는 멈추어서 ‘나는 청년인가? 청년답게 살고 있는가?’ 질문하곤 했다. 가끔은 그 질문이 버거워 도망간 친구도 있고, 그 질문과 무관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친구도 있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그것은 ‘삶’을 질문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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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놀이터 청년들과 함께 한 여름공부

그러다가 2010년. 청소년과 청년의 중간쯤에서 인문학을 만나며 삶의 아우라를 만들어가고 있 던 ‘세 개’에 자극받아 청인교가 생겨났다. 공부에 대한 다른 생각과 소통의 문제로 그리 오 래가진 못했지만 청년들이 중심이 된 인문공부의 첫 시도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1년 품을 닮은 실험적 대안학교 ‘무늬만학교’와 함께, 스스로 흔들며 세상을 흔드는 ‘청년학교’가 태어 났다.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에서 실천하기, 인문학적으로 사유하고 문화적으로 상상하며


가치롭게 실천하기’라는 청년학교의 부름에 화답한 8명의 청년들과 보낸 여름은 뜨거웠다. < 2011 청년학교 교육내용 > 알아가기

시각열기

 청년학교 입학식 - 개별 소개 PPT, 비빔밥 세레머니, 산행  공간 만나기 : 공간 알기, 공간 생활 안내  인문학 만나기 : 찰리와 인문학 공장  품 만나기 - 품의 역사와 활동 - 무늬만학교, 세 개 만나기 책 읽고 토론하기_ 다시, 마을이다 모둠학습과 발표_ 미디어, 디자인 서울

글로컬리즘

품과 글로컬리즘 : 한국과 네팔의 마을이야기 현장탐방 : 자연과 예술(남양주 논아트 밭아 트/박찬국), 커뮤니티아트(수원 인계시장 프로 젝트/김월식), 교육과 마을(재미난마을법인/고 영재), 풀뿌리공동체(열린사회북부시민회/김진 숙), 작은도서관과 마을운동(초록나라도서관/ 이순임), 마을과 문화(마을카페 나무야나무야/ 김낙준)

정리와 나눔

보고서 작성과 발표

[바칼로레아_ 8인을 위한 8개의 질문] ㆍ김호진 : 로마의 세련된 도로는 무엇을 위한 역사 였는가? 나는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역사는 사실인가? 나의 역사에 잠재되어 있는 위선을 체감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시(詩)는 무엇인가? ㆍ김종윤 : 나는 지금까지 어떤 교육을 받아왔는가? 그 교육은 지금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ㆍ신주애 : 진실에 대한 판단은 무엇에 근거하는가? 종교는 나의 사유와 자유를 방해 할 수 있는가? ㆍ송시영 : 시간의 규칙은 일상의 법칙인가? 과학과 기술은 자유로운 카오스를 가능하게 하는가? 사랑하면 날(fly)수 있을까?

청년대학을 꿈꾼다 교육이 삶의 실천으로 이어지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어떻게 하면 진정한 ‘청년’을 키울 수 있을 것인가? 교육사업의 오랜 고민이자, 아직 끝나지 않은 물음이다. 품과 근 10년을 함 께 하며 내가 얻은 절반의 결론은 ‘지속적인 학습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익숙해진 인 식과 문화, 편의, 게으름 같은 것들을 하루아침에 떨치기란 쉽지 않다. 훌륭한 강연 혹은 위대 한 성인의 책을 통해서 자각을 할 순 있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다. 스스로의 의지이든 외부의 자극이든 지속되는 과정이 없을 때, 감동은 추억이 되고, 깨우침은 폼 잡을 때나 한번 읊조리는 명언이 되기 십상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아카데미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아카데미 이후 후속활동에 참여하 지 않았더라면, 품의 인턴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카 데미쯤 그냥 대학시절의 좋은 추억으로 삼고 잘 살았겠지. 어쩌면 나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선택했던 것 같다. 그 실체가 무엇인지 불확실했지만 강렬한 이끌림을 느꼈고, 그것을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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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을 자신은 없었기에 붙잡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단체가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 이라는 건 확실히 알았으니까. 예상대로 품은 나를 한시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고, 10년 동 안 엄청나게 많은 자극과 감동, 때로는 아픔을 선사하며 지금 나를 여기에 있게 했다. 그래서 사실 그 절반의 결론은 품에서의 삶을 통해 얻은 것이다. 열정만 앞섰던 대학생이 생각도 할 줄 아는 청년이 된 것이다. 나 뿐 만이 아니다. 오토바이를 훔치는 것으로 자기 존재를 확인하 던 아이들이 당당한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았다. 길이 없다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자기 길을 만들어가는 청년을 보았고, 오십이 넘도록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는 청년도 보았다. 그리 고 심지어는 불같은 성격 때문에 ‘미친개’라 불리우던 심샘이 자신의 원형과 조우하며 ‘부처’ 가 되어가는 과정도 보았다. 이것들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 절반은 깨어 있고자 하는 스스로의 의지이며, 절반은 깨어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주변의 환경이다. 다시 품의 청년키 우기로 돌아와 얘기하자면 ‘그 계기와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줄 것인가?’하는 질문이 남는다.

첫째는 청년으로 계속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청년이고, 우리의 삶이 곧 운동 이 될 수 있도록 아이들 열심히 만나고 하던 일 열심히 하면서, 서로의 건강과 연애도 좀 챙 기면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세상을 흔들려거든 나부터 흔들어야 한다.”

둘째는 우리의 삶터인 마을에서 청년들을 키워낼 것이다. ‘세 개’로 자란 준혁이가 현재 품에 서 인턴 활동을 하고 있다. 곧 군대도 가야할 테고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순 없지만, 우리가 만나고 있는 아이들이 스스로 흔들기를 멈추지 않고, 나아가서는 마을과 세상을 흔드는 청년이 될 수 있도록 지원 과 지지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흔들며 세상을 흔드 는 청년을 키우자.”

셋째는, 청년대학이다. 아카데미가 끝나고 2008년인가, 1세대 공공예술가이자 아카데미 강사로 함께 했었던 박찬국 선생님 과 ‘대안대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교육이 삶 의 실천으로 이어지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하는 물음에 그가 내민 이 한 장의 그림에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난다.


우주와 세계를 품고 노래하는 인간. 전공과 관계없이 문화예술을 즐기며, 사회에 대해 관심 갖 고 행동하는,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문화적 리더쉽을 가진 인간. 우리가 이야기하는 청년의 모 습이다. 여행과 노작, 탈국가적 관심, 인문학적 상상력과 문화교육, 공방, 통합적 기획워크숍, Art Action 등 구체적으로 제시된 내용도 익숙한 것들이고 이미 여러 분야에서 시도되고 있 는 것들이기도 하다. 숙제가 있다면 실천 영역의 경계를 넘은 연대다. 지역이 문화와 만나고 복지와 생태가 만나고, 국제활동과 예술이 만날 수 있다면, 청년을 고민하는 단체와 전문가들 이 연대한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구체적인 논의가 이어지진 못했지만 범지역적, 혹은 범세계적 청년대학에 대한 상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1학기는 동네에서 공부하고, 2학기는 네팔에서 공부하는 무늬만학교 아이들을 상 상한다. 네팔 베시마을의 청년들이 강북의 마을 목공소에서 대패질을 하고, 한국의 청년들이 라오스 푸딘댕 마을에서 민속춤을 배우는 모습을 상상한다. 지역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함 께 공부하고 실천하는 청년들의 학교, 아시아 청년 네트워크도 상상해본다.

‘경계를 넘어서기’는 이력이 났고 ‘함께 하자고 꼬시기’가 주특기이며 ‘무모한 도전하기’는 전교 1등인 품이기에 걱정은 없다. 지난 20년이 그랬던 것처럼 상상하고 도전하면서 차근 차 근 만들어볼 예정이다. “세상을 바꾸는 나비효과”를 꿈꾸며.

당분간은 단기 청년학교를 계속 이어갈 것이다. 올해는 20주년 때문에 어렵게 되었지만 내년 여름에는 2기 청년학교를 열어볼 생각이다. 여름 한철 짧은 만남일지라도 청년들을 만나고 머 리를 맞대다 보면 보다 구체적인 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아는가? 무늬만학교 아이 들이 청년이 될 때쯤엔 청년대학이 문을 열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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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와 마을 만들기

만들어 준 세상이 아닌 스스로 일상을 만들어 간다 _글. 이상섭, 이지성

품과 함께 살아간 지 올해로 5년이 된 지성이, 청년교육과정이었던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를 통해 품을 만났고 08년 ‘지역문화운동 팀’의 인턴으로 활동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때 품을 만나 어느새 서른을 넘긴 상섭은 07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현재 지성과 지역문화운동팀의 변화된 명칭인 ‘십대와 마 을만들기’ 팀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십대와 마을만들 기의 중요했던 5년을 품과 함께 살아간 둘이었다. 그리고 그 덕에 현재 20주년이란 값진 시간을 정리하고 나눌 수 있는 순간을 함께 살고 있다. 아... 그런데 이 과정이 참 쉽지 않다. 역시 품 20주년, 특히나 역사도 오래되고 많은 것들이 연결되어 있는 지역의 15년 정리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을 두고 대표님과 지성과 섭이 모여 하나하나 목차를 다시 잡았다. 함께 흐름을 정리하고 그 안에 중요한 이야기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부족한 부분의 맥 락과 오해의 소지가 있는 내용도 수정ㆍ보완하였다. 남은 것은 원고를 쓰는 일이었다. 지성은 글을 쓰고, 섭은 자료를 찾고 필요한 표를 정리하였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완성이 된 십대 와 마을만들기의 원고. 시작은 진지하나 끝은 빵빵 터지는 웃음으로 십대와 마을만들기 이야 기에 빠지시기를 바라며... 조금 더 살아 있고 자세한 내용이 궁금해진다면 11월에 열리는 <십 대와 마을만들기>워크숍에 꼭 참여하시기를 바란다.


[글의 순서] 이상섭과 이지성의 辯 / 십대와 마을만들기로의 여정을 떠나기 전 십대와 행복한 마을만들기의 여정 그림으로 보는 십대와 마을만들기 여정 / 축제에서 마을까지의 여행 이야기 성장과정으로 풀어보는 십대와 마을만들기 - 1단계/ 어라? 축제가 마을을 만나게 했네? - 2단계/ 청소년 축제기획단의 탄생 “축제의 주인은 십대였다!” - 3단계/ 아이들의 성장과 순환 그리고 지역축제로의 시도 “마을에서 큰 아이들이 아름답다” - 4단계/ 허상의 네트워크에서 아이들의 일상으로... “공부하며 논다!” - 5단계/ 마을공동체의 대안적 접근 “유쾌한 십대들의 동네 말 걸기” - 6단계/ 삶의 기획자로서의 진화 “공간의 탄생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 7단계/ 다시 마을 속으로 “14년 만에 내린 결론! 탈탈탈 재미로 나눠보는 십대와 마을만들기의 성장도표 품20년 십대와 마을만들기 연대표

십대와 마을만들기로의 여정을 떠나기 전 지금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십대와 행복한 마을만들기의 15년 이야기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15년의 여정을 7단계로 구분해 보았고, 구분의 기준은 십대의 성장 과정, 지역에 대한 개념과 관계의 변화이다. 십대의 성장 과정은 품이 지역을 바라보는 관점 의 변화, 지역과의 관계, 교육과정의 변화와 밀접한 연관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십대와 마 을을 구분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흐름에 담고자 한 것이다.

1장에서는 ‘십대와 마을만들기의 여정’을 그림으로 보고 간단한 설명을 통해 전체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그 후 2장에서는 ‘성장과정으로 풀어보는 십대와 마을만들기’ 를 통해 단계별로 세부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다. 그리고 3장에서는 품이 만들어가고 있는 ‘십 대와 마을만들기’ 사업의 과정들을 다양한 각도와 흐름으로 쉽게 읽어볼 수 있는 ‘재미로 나 눠보는 십대와 마을만들기’의 성장도표들을 그려 보았다. 앞부분을 이해하며 꼼꼼히 읽으셨다 면 골라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4장에서는 시간 의 흐름별로 정리된 연대표를 제시하였다. 정말 가이드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루하지 않은 친절한 가이드가 되겠다는 다짐을 해 보며.. 즐겁고 흥미로운 여행이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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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십대와 마을만들기 여정 1단계 축제를 통한 마을과의 만남 (1998-1999) 축제의 시작 그리고 축제의 매력에 빠진 품(1998) 축제의 가능성 찾기와 주체로서의 청소년에 대한 고민 시작(1999) 축제를 통한 지역 알기 시작

2단계 청소년 축제기획단의 탄생 (2000-2003) 청소년 기획단의 ‘노올자’ 탄생(2000) 주체적 청소년 축제의 성장(2001)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이름의 탄생(2007)

3단계 아이들의 성장과 순환, 지역축제로의 시도 (2004-2005) 십대기획자에서 청년 기획자로의 성장 (올드보이, Red-P) 축제로 연결되는 지역연대활동에 대한 희망과 시도

4단계 허상의 연대에서 아이들의 일상 속으로 [2005-2007] 연대와 네트워크에 대한 고민 동아리워크숍, 청소녀문화예술아카데미 시도 (2005)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10년 (2007)

5단계 십대와 마을공동체를 위한 대안적 접근 (2008-2009)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탄생, 십대들의 동네 말 걸기 시작 동네문화 실천을 위한 상설 아카데미로 변화 /인문학적 사유를 위한 세심교의 시작 (2009.02~)

6단계 삶의 기획자로서의 진화와 공간의 탄생 (2010) 청소년문화‘공간’ 탄생 자기 삶을 기획하는 십대문화기획자 아카데미 시작 동반성장프로젝트 진행 / 동네소모임 탄생

7단계 십대와 함께... 다시 마을 속으로 (2011~2012)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탈탈탈 동네난장’ 강북마을장터 ‘탈탈탈’ 탄생 강북마을모임, 삼각산 재미난 마을과의 연대시작


품이 지역과 제대로 만나게 된 계기는 청소년문화축제를 통해서이다.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전국 각지의 다양한 청소년들과 만났던 품은 단발성 행사가 아닌, 아이

십대와 행복한 마을 만들기의 여정

들의 삶 속에 연결되고 지속될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하였고 지역에서 청소년운동을 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그러던 중 풀뿌리 단체로 지역에서 활발 한 활동을 했던 ‘열린사회북부시민회’로부터 ‘청소년문화제’를 제안 받게 되었고, 낮은 수준 이었지만 지역에서 청소년 운동을 고민했던 품에게는 고마운 기회를 만난 것이다. 당시 함께 제안 받았던 햇살청소년회와 전교조 북부지회* 역시 지역 활동을 고민하고 있었기에 세 단체 는 의기투합하게 된다. 이후 문화제를 위한 실질적 구상을 시작하며 (사)열린사회북부시민회, 햇살청소년회, 품이 주축이 되어 1998년 10월 청소년 거리축제를 열었다. 축제는 기존 청소년 축제에서 느낄 수 없었던 주체적 참여자로서의 십대의 가능성, 지역 내 단체들의 최초 연대사 업의 의미와 함께 연대를 통한 청소년문화운동의 발전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생각 있는 어른들의 구상으로 시작된 청소년축제는 2000년에 들어서 스스로 청소년축제의 주체가 되어 축제를 만들어가는 청소년축제기획단 ‘노올자’를 탄생시켰고, 노올자의 탄생은 실무자 중심의 기획을 벗어나 십대 스스로 만드는 청소년축제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이들 로부터 2001년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가을 추秋, 즐거울 락樂’이란 이름이 만들어졌으며, 이후 ‘추락’은 ‘강북청소년문화축제’의 얼굴이 되었다. 또한 2004년~2005년 추락을 통해 성 장한 십대들(노올자)은 ‘올드보이’라는 청년기획단을 낳았고 이는 2005년 ‘Red.P’라는 청년 축제기획팀으로 확장되며 축제를 통한 십대들의 성장과 순환의 시초가 되었다. 아이들의 성 장과 더불어 축제에 참여하는 지역단체도 점점 늘어났다. 지역 내 관심과 지역단체의 참여확 장은 축제와 지역을 연결하는 지역축제로의 시도, 축제를 넘어선 지역연대활동으로 확장시키 는 토대가 되며 품 내부적으로는 지역사회, 지역연대와 같은 새로운 고민과 시도들이 확대되 어 갔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안으로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을 맞게 된다. 청년기획 단의 등장으로 십대축제기획단 ‘노올자’의 역할은 축소되며 선배그룹과의 보이지 않는 마찰은

*

전교조북부지회의 참여에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있었다. 축제 전날 관내 학교장 몇몇이 ‘전교조’라는 조직이 들어가는 축제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공문을 서울시에 요청했고 서울시가 이와 관련된 공문을 관내 학교에 배포했다. 축제가 토요일이라 축제에 참여하는 대부분 학생들의 참여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곧바로 단체 대표들은 서울시 교육청으로 달려가서 항의 서한을 전달했고 뒤늦게 수정이 되기도 했 다. 하지만 이런 사건에도 불구하고 강북에서 열린 첫 번째 축제는 지금의 언어로 ‘대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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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올자’의 침제기를 가져왔다. 또한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공동의 사업을 추진했었지만 구 체적인 관계와 과정이 생략되거나 행사로만 연결되는 ‘허상의 네트워크’는 품이 추구하는 ‘ 네트워크’에 대한 깊은 고민을 던져 주었다. 결국 사업이나 행사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네트워 크 활동을 재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품은 단체와 단체가 행사로 결합하는 방식이 아닌 아이들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의 관계와 소통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리고 지역 네트워크에 쏟았던 에너지들을 아이들과의 일상적 소통과 상시적인 교육이 나 활동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2005년 아이들의 일상에 집중하며 축제 중심의 기획교육을 넘어 지역 내 동아리들의 문화적 성장과 교류를 위한 동아리워크숍,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가 시작된다. 이는 일상적 만남과 새로운 방식의 교육과정을 고민하게 했고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는 현재 십대문화아카데미 의 바탕이 되었다. 동아리워크숍,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는 단발 교육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참여했던 동아리들의 과정과 결과를 축제를 통해 공유되고 드러날 수 있도록 했고, 십대들의 참여를 더욱 확장시키는 요인으로 작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6년 아홉 살 추락은 ‘성장 통’을 겪게 된다. 9년이란 시간만큼 축제의 규모는 더욱 커졌지만, 무엇을 위한, 누구와 함께 하고자 하는 ‘축제’인가에 대한 부족함은 축제의 내용에 많은 아쉬움을 남겼고, 여전히 침체 기인 ‘노올자’의 활동은 성장통의 한 부분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그 시기 새로운 아이들이 등장하게 된다.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며 놀던 세 명의 아이들이 ‘재미있는 것 좀 해보지 않을 래?’라는 꼬드김으로 품과의 인연을 시작하였고, 자신들 스스로 청소년문화기획단이란 정체성 을 세우며 2007년 추락 십대기획단으로 참여하게 된다. 축제만이 아닌 축제를 포함한 ‘문화’ 기획단이란 정의는 기획단에 대한 확장된 시작을 보여주는 이름이며 이들은 2008년 그 이름 에 걸맞게 지역 내 동아리친구들과 다양한 일상 활동을 펼친다. 그리고2007년은 추락이 10회 를 맞는 해이기도 했다. 추락은 10년이 지니는 과정과 의미를 정리하며 일상문화와 일상교육 에 대한 새로운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2008년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강북청소년문화존)이다. 일 년에 한 번이 아닌, 일상 과정을 통한 상시적 만남과 동네와의 적극적인 문화적 소통들을 시도했다. 즉 일과 연결되지 않을 경우 단체 간의 소통과 세대 간의 소통이 늘 부족했던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기성세대가 먼저 준비하거나 말을 건네는 문화가 아닌 십대들이 먼저 동네와 단체들에게 문화 적인 방식으로 말을 걸어보는 ‘십대들의 동네 말 걸기’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청소년문화운동의 중요한 주체이자 매개자는 실무자, 단체 중심의 네트워크만이 아닌 당사자 인 ‘청소년’ 역시 그 중심에 서야 함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런 시도를 시작으로 2009년부터 는 십대를 중심으로 한 동네와의 즐거운 관계 맺기는 더욱 활발히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과 정에서 ‘일상적 문화 공간’에 대한 고민과 필요성을 느끼며 그 해 겨울, 청소년문화공간을 위 한 공간마련모금콘서트 ‘이천(만원)’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청소년문화, 공간이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청소년들만의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근거는 ‘십대들의 동네 말 걸기’를 통한 동 네와의 소통과 관계 그리고 십대들의 자발적 에너지였다.

공간의 탄생은 품이 아이들의 ‘삶’을 좀 더 깊이 바라보고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안 정적인 활동공간이 생겨남으로써 상시적으로 진행되는 ‘놀이터 활동’과 ‘아이들의 일상’을 연 결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며, 잘 놀기 위한 기획교육이 아닌 자기 삶을 변화시키는 ‘삶의 기획 자’로서 활동과 진로(학업)를 연결할 수 있는 삶의 과정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그 가운데 2009년 2월부터 시작된 ‘세 개와 심한개의 인문학교’는 놀이터 아이들에게 문화적 상상력과 실천을 넘은 인문학적 사유를 통한 ‘내적인 힘’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전도사 같은 역할을 하 였고 실험적으로 ‘인문학 놀이터’와 같은 인문학 수업도 함께 이뤄졌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춤과 연극을 매개로 한 세대결합 동네 소모임이 탄생하고 동네의 청소년들이 동네의 어 린이들을 문화적으로 돌보고 소통하는 ‘동반성장프로젝트’와 같은 십대와 마을과의 즐거운 ‘ 관계 맺기’들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2011년 가을,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한 ‘추락’을 맞게 된다. 탈지역, 탈세대, 탈문화 를 외치며 십대와 동네가 어우러지는 동네난 장을 시도하였다. 보편적 축제의 상징과도 같 던 높은 무대를 없애고 마당 중심의 축제를 꾸렸다. 축제의 형식과 내용의 변화는 축제를 통해 십대와 마을이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문화의 장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일상 으로 펼치는 마을장터’에 대한 설레는 희망을 갖게 했다. 그렇게 2012년 강북마을 장터 ‘탈 탈탈’이 생겨났다. 그리고 공동육아로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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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욕구를 반영한 대안초등학교, 마을카페, 마을목공소 등을 만들고 운영하며 마을 공동체 를 일구고 있는 (사)삼각산재미난마을과 강북 내 지역모임인 강북마을모임 등 장터를 중심으 로 한 구제적인 연대활동이 시작되며 십대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마을, 행복한 공동체를 위한 마을 활동들을 진행하고 있다.

품은 여전히 축제를 한다. 그러나 지금 품이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는 십대의 목소 리만을 담지 않는다. 십대와 마을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문화적 소통과 성장이 교류되는 만 남의 장을 꿈꾼다. 그 안에 모두가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돕고, 문화적 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들에게 십대들의 유쾌한 에너지로 때론 먼저 말 걸고, 때론 도움을 드리기도 한다. 이 것이 바로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마을만들기’의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기 성세대 또는 지역의 단체들은 ‘일과 사업’이란 틀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십 대들의 고민과 시도들은 ‘사업적 상상이나 사업적 성과’들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십대들 의 성장은 마을의 순환적 연결들을 가능하게 하며, 그 과정들은 세대의 중간에서 또 다른 매 개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 이는 십대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거나 모든 것들에 십대가 중 심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동안 외면되어 왔던 삶의 주체, 지역의 주체, 마을 속 의 일상적 주체로서 십대들의 가능성을 다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십대들에게도 ‘행복한 마 을’과 연결된 에너지와 역할이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품 20년을 바라보며 꿈꿀 수 있는 희망 중에는 ‘십대와 마을만들기’라는 매우 행복한 상상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성장 과정으로 풀어보는 십대와 마을만들기

1단계. 어라? 축제가 마을을 만나게 했네?

청소년을 바라보는 문제중심적이고 보호중심적인 시각에 대한 반항으로부터 시작된 품은 기존의 방식을 넘어선, 문 화적 접근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자극하고 흔들었다. 음악을


통한 만남, 청소년 캠프, 어울마당 등 다양한 방식의 청소년 활동을 진행하였고 그 과정의 중 요한 키워드 또한 ‘문화*’였다. 1994년 전국 각지의 다양한 청소년들을 만났지만 일회적이고 단위적인 행사중심의 사업에서 낮은 수준이지만 그들의 생활 속에 연결되며 지속할 수 있는 교육과 방식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 고민은 1998년 구체화되기 시작하였고 아래 표 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기초조사, 기초 모임 등 여러 가지 준비과정을 갖게 된다. 1998년 5월, 이전까지 서울 전역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사업에 주력하던 품에서는 지역사회 청소년운동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지역사회 공동망 구성과 청소년운동을 추진하기 위한 예비모임을 구성하게 되었다. - 강북구 지역사회 청소년운동 추진을 위한 기초모임 - 기초 조사 (강북구 내 지역사회 자원에 대한 조사) - 지역사회 네트워크 구성을 위한 “함께 나누는 이야기마당” / 98년 9월 19일 (토) (출처 : 지역사회자원의 통합 system을 통한 “Youth Welfare Network” 모델 제시 연구보고서)

그러던 중, 품과 햇살시민회는 열린사회북부시민회로부터 지역단체 연합 ‘청소년문화제’를 제 안 받게 된다. 2년 동안 진행되었던 청소년문화제는 청소년들의 주체적 참여, 문화 환경을 위 해 시작된 사업으로 청소년을 위한 문화마당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지만 수동적 참여, 기성 세대 중심으로 만들어진 문화제 구성에 대한 새로운 변화와 대안이 필요했다. 청소년문화활동 에 다년간의 노하우와 경험이 있는 ‘품’과 노래패를 중심으로 했던 ‘햇살시민회’, 지역을 중 심으로 활동하며 지역적 관점과 지역 활동의 노하우가 있는 ‘열린사회북부시민회’의 만남은 1998년 10월 강북구 최초의 청소년 거리문화축제를 만들어냈고, 이는 강북지역에 신선한 문 화적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거리 축제 제안 당시의 청소년 문화제 방향 -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하나의 청소년 문화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한 것으로 가자! - 강북구 수유동의 거리를 청소년문화의 거리로 발전시키자! -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주체적, 자주적인 강북청소년문화제를 만들자! - 청소년 건전 육성에 관해 공감하는 청소년단체들이 연합하여 단체 성격에 맞는 프로그램을 공유하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 충족하면서 ‘강북구청소년단체연합조직’을 만들어보자! (출처 : 지역사회자원의 통합 system을 통한 “Youth Welfare Network” 모델 제시 연구보고서)

*

청소년에게 문화는 단순한 여가나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창조적인 예술 활동만이 아니다. 문화는 다양하고, 창조적인 삶의 영역이며, 문 화를 매개로 한 세대 간, 계층 간의 ‘공동경작’을 위한 노력이 바로 청소년문화복지의 실천이다. (처음 같은 시작을 위한 품 10년의 이야 기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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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축제의 방향을 세우며 중점으로 두었던 부분은 ‘십 대들의 주체적 참여’와 ‘축제의 지속성’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축제를 중심으로 한 지역연 대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였다.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판’에 십대들이 참여하는 수준을 넘 지 못하고 있던 기존의 청소년축제에 대한 한계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품은 축제에 십대 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시도했으며, 청소년기획단을 만들기 위한 시도와 지역 내 청소년동아리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99년, 2회 거리축제 “밀레니엄, 우리가 만드는 축제”에서 처음으로 청소년기획단이 구성되었다. 각 기관에서 기획단을 원하는 청소년들을 모집했고 준비모임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2회 거리축 제는 1회보다 내용과 운영적인 부분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청소년들의 자발적 움 직임은 청소년 스스로 만들어가는 청소년축제의 가능성, 축제를 통한 십대의 문화적 성장가능 성을 보여주었으며, 수동적 존재ㆍ불완전한 존재로 여기던 기성세대들에 문화적 주체로 인식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이와 더불어 추진위원회는 청소년문화활동에 공감하는 지역단체들과의 연대를 통해 축제의 안 정화와 지역 내 다양한 자원이 연결될 수 있도록 지역연대를 위한 활동을 꾸준히 시도해 나 갔다.

2단계_청소년 축제기획단 ‘노올자’의 탄생 “축제의 주인은 십대였다!” 1999년 청소년기획단의 탄생은 청소년의 자발적 움직임과 청소년축 제의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이름에 걸맞는 기획과 운영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그 이유는 기획에 참여하고자 하는 십대들이 각 기관별로 분 산되어 전체적인 운영이 안 되었던 것과 축제기획을 하기 위한 충분 한 사전과정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0년 스스로청소년축제 의 주체가 되고, 스스로 축제를 만들어가는 청소년축제기획단 ‘노올 자’가 탄생하게 된다. ‘제대로 된 축제 기획과 운영을 해보고 싶다.’ 는 아이들의 공통된 욕구와 청소년기획단의 교육과 운영을 고민하던 품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과정을 준비하게 된다.


< 2000년도 청소년축제기획단 ‘노올자 활동과정’ > 진행내용

날짜

세부내용

신입회원 면접

4.22 / 5.13

신입회원 예정자 21명 참가. 총 15명 (기존 기획단 4명 포함)

1차 회의

5.20

노올자 전체 얼굴보기 / 1년 활동계획 논의

명동축제모니터

5.26

명동청소년거리축제 ‘미지축제’ 참가

3차 모임

6.9

1년 일정논의 및 모니터활동 정리, 발대식 준비

발대식

6.17

명동거리축제 활동 발표 / 인증서 수여

기획교육

6.24

‘청소년문화축제’ 란 주제로 기획교육

5차 모임

7.17

축제 명칭 결정 : 가을 추(秋) 즐거울 락(樂) ‘추락’

참가동아리 순회촬영

8.22~9.4

참가동아리 연습장면 순회촬영 및 인터뷰, 영상으로 편집

6차 모임

7.19

축제 장소 답사

7차 모임

7.24

기획단 역할 분담

기획 모임

7.29~9.7

총 20여 차례 모임 진행 축제 세부기획과 준비 / 참가동아리 대표자, 자원봉사자 모임 진행

강북청소년문화축제

9.8

축제 진행

평가회

9.16

축제 전체 평가 및 향후 활동 계획 논의

위의 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들은 축제기획교육, 모니터링, 참가동아리 순회 방문 등 의 자발적 활동과정을 가졌고 이것을 토대로 스스로 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평가하는 기 획단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노올자의 탄생은 대한민국 최초의 청소년축제기획단이라는 의미를 갖는 동시에 기존 실무자 중심의 청소년축제기획을 벗어나 청소년들의 주체적 과정이 담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 다. 노올자의 탄생과 성장은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이라는 이름을 탄생시켰고, 이후 ’추 락’은 강북청소년문화축제의 얼굴이 되었으며, 십대들의 목소리가 축제의 부제로, 내용으로 담 기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축제에 멋진 이름과 부제가 생겼다는 것이 아니 라 십대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축제를 통해 풀어지며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강북청소년문화축제‘불만 있습니다’ 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학교에서의 불만을 직접적으로 시위나 아님 기타 다른 방법으로 말하지 못하지만 축제를 통해 공연으로 또한 여러 프로그램으로 말해가고 있다. 그래서 청소년축제는 그들의 목소리를 말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2003년 청소년문화축제 포럼에서 기조발제를 하였던 노올자 멤버 김동혁군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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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노올자의 활동과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은 점점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지 역사회청소년축제 성공 사례로 제시되며 세상에 자극을 주기 시작했다.

<위즈키즈-우리들의 축제 우리가 만든다!>

<틴뉴스-그 많던 골목은 다 어디에 갔을까 >

<보도자료> 청소년도 문화 생산자 될 수 있다 “스스로 기획에서 평가까지” 편집 2003.08.24(일) 17:21

청소년들이 무비판적인 문화의 수용자가 아닌 문화의 창조자가 될 수 있을까? 9월 열리는 두 가지 청소년 문화축제에서 우리 청소년의 문화역량을 살펴보고 이 질문에 대답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시립 청소년정보문화센터 스스 로넷은 청소년 순수 미디어 작품을 공모하는 ‘대한민국 청소년 미디어 제전’ 을 연다. 공모부문은 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만화, 사진, 라디오 등으 로 25일부터 9월8일까지 응모할 수 있다. 만 18살 이하 청소년이 직접 기획, 제작한 작품만 참가할 수 있다. 10월 초부터는 예심을 거친 작품을 공식사이트의 온라인상영관(mediacontest. net)에서 감상할 수 있다. 청소년들의 톡톡 튀는 시각과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될 듯하다. 이와 함 께 퀴즈 이벤트, 심사위원과의 만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진 미디어축제도 함께 열릴 계획이다. (02)7958000.


청소년들이 직접 만들고 기획하는 청소년 축제 ‘추락’이 9월20일 서울 강북구청 앞마당에서 펼쳐진다. 품 청 소년문화공동체 등 강북지역 7개 시민·복지단체들이 함께 진행할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은 축제의 기획 부터 진행, 평가까지 전과정을 청소년기획단 ‘노올자’가 직접 만든다. 청소년들에게 가장 밀접한 문제인 ‘학 교’와 ‘교육’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남녀공학, 두발자유화, 교육제도 등에 대한 이야기를 축제 형식으 로 풀어놓을 예정이다. 바자회, 먹거리장터 등 여러 행사가 함께 열려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축제로 만들어진다. (02)999-9887.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3단계_아이들의 성장과 순환 그리고 지역축제로의 시도 “마을에서 큰 아이들이 아름답다”

노올자의 성장은 청소년이 주체가 되는 청소년축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축제의 성장뿐 아 니라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많은 자극을 주었다. 그리고 2004년 노올자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청년기획팀 ‘올드보이’가 등장한다. 십대시절 동아리와 기획단으로 추락에 참여했던 이들이 청년이 되어 후배를 돕는 멘토로, 축제를 함께 만들어가는 청년 기획팀으로 돌아온 것이다. 올드보이 이후 2005년 노올자 출신이자, 올드보 이 멤버였던 세 명의 청년들이 축제로 세상을 변화 시켜보겠다며 청년축제기획팀 ‘축제로 웃는 놈들 Red.P’를 결성하게 된다. 이들은 추락을 함께 기 획하고 준비하는 활동 뿐 아니라 후배인 노올자의 교육은 물론, 전국에 축제를 기획하고자 모인 십대 들이 원한다면 자신들의 축제경험과 노하우를 전수 하는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다. 지역을 넘어 활발한 활동을 해오던 이들은 2005년 추락 이후 군대 문제로 팀으로서의 활동을 멈추게 되었고, 이후 ‘청년’으로 ‘선배’로 각자 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 이들의 존재가 의미 있는 이유는 축제를 통해 성장한 십대가 청년이 되어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배움을 전해 주며, 축제와 마을로 다시 환원시키는 순환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며 이후 청소년축제기획단 ‘세 개’-십대문화기 획단 (놀이터 기획단 - 장터기획단)의로의 성장과 순환이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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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성장과 더불어 축제에 참여하는 지역단체도 점점 늘어갔다. 추락에 대한 지역의 관 심도 높아졌고 축제라는 ‘마당’을 통해 지역단체들의 활동을 나누며 축제참여마당은 다양한 세대가 참여할 수 있는 풍성한 장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98년부터 꾸준히 노력한 지역연대구축을 위한 시도와 노력이었으며 2001년 지속적 네트워크 구성을 위한 지역 사회기초조사, 기관방문이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 지역네트워크의 변화과정 > 참여 단체

주요성과

1998년

열린사회북부시민회, 햇살청소년회, 품청소년 문화공동체, 전교조 북부지회

- 축제를 제안한 지역단체 3곳으로 네트워크 시작 - 강북구청의 장소후원

1999년

열린사회북부시민회, 햇살청소년회, 품청소년 문화공동체, 전교조 북부지회, 강북구청

- 98년 축제를 계기로 축제의 취지와 방향에 동참하는 단 체 확대 - 강북구청에서 행사비 중 일부의 재정적 지원과 장소 후원

구세군종합사회복지관, 도봉시민회, 번2단지 2000년 복지관, 열린사회북부시민회, 전교조북부지 회, 품청소년문화공동체, 강북구청

- 자발적인 지역단체의 참여증가

구세군종합사회복지관, 번2단지종합복지관, 열린사회북부시민회, 품청소년문화공동체, 녹 색삶을위한여성들의모임, 강북청소년수련관 ‘ 2001년 난나’, 사이버상담실 청소년 세계, 돌산아동 청소년센터 ‘판’, 번3단지종합사회복지관, 강 북구청

- 실질적, 지속적 지역네트워크 구성하기 위한 지역조사 실시, 이를 바탕으로 지역단체 발굴 및 축제를 통한 연계 - 축제추진위원회 구성, 장기적인 지역복지연대모임 발전방향 제시

구세군종합사회복지관, 번2단지종합복지관, 열린사회북부시민회 ,품청소년문화공동체, 녹 색삶을위한여성들의모임,강북청소년수련관 ‘ 2002년 난나’, 청소년과 사람사랑, 아동복지센터 ‘둥 근나라’, 돌산아동청소년센터 ‘판’, 번3단지 종합복지관, 강북구청

- 지역사회네트워크에 대한 공동의 마인드 및 지역청소년 전반에 대한 시각형성을 위한 정기모임 실시 - 축제추진위원회 체계 및 역할 정비

구세군종합사회복지관, 번2단지종합복지관, 열린사회북부시민회, 품청소년문화공동체,녹 색삶을위한여성들의모임,강북청소년수련관 ‘ 2003년 난나’, 청소년과 사람사랑, 아동복지센터 ‘둥 근나라’, 돌산아동청소년센터‘판’, 번3단지 종합복지관, 강북구청

- 실질적인 지역축제로의 확장을 위한 지역단체 사업과의 연계 - 교육복지투자사업을 통한 지역과 학교연계시도

구세군종합사회복지관, 녹색삶을위한여성들 의모임, 돌산아동청소년문화센터 ‘판’, 아동 복지센터 ‘둥근나라’, 번2단지종합사회복지 2004년 관, 번3단지종합사회복지관, 열린사회북부시 민회, 청소년과사람사랑, 품청소년문화공동 체, 성북교욱청, 강북구청, 지역학교 5곳

- 6년간의 추진위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지역문화공동체형성 을 위한 강북지역복지협의회를 발족 - 축제와 교육복지사업에 대한 공동논의 공동 사업 추진 교 육복지투자사업을 통한 지속적인 프로그램 연계 - 학교와의 네트워크 확대


축제로 연결되는 지역연대활동은 축제의 풍성함과 함께 축제에 참여하는 십대와 지역단체를 넘어 지역 내 주민들에게 ‘지역청소년축제’로의 인식을 심어주는 데 긍정적 영향을 주었고, 지역사회와 연대활동에 대한 희망과 축제로서만이 아닌 지역의 다양한 활동에 관심 갖고 연 대활동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4단계. 허상의 네트워크에서 아이들의 일상으로... “공부하며 논다!”

축제와 지역을 연결하는 지역 활동, 축제를 넘어선 지역연대활동을 통해 품 내부적으로는 지 역사회, 지역연대와 같은 새로운 고민과 시도들이 확대되어 갔다. < 2004-2006 주요 지역연대활동> 도봉연대활동

강북연대활동 2004

강북매니페스토

2002~03

도봉-관통로 반대운동 도봉어린이날 행사 / 도봉지역 촛불시위

강북복지협희회회의 발대식 & 정기모임

2004

도봉산 골프장반대 운동

강북 실무자 교육 ‘쉼과 회복’ 강북 실무자교육워크숍 2005

2006

어린이날 ‘차없는거리 아이들 세상’ 2005

도봉시민단체협의회 공동연수

어린이날 행사

도봉어린이날행사 / 초안산 일상축제

지역전통축제 밝달 풍물 재수굿

덕성여대시민강좌

강북매니페스토

2006

도봉어린이날행사 / 초안산 일상축제

<덕성여대 연계사업 | 초안산 일상축제 | 강북구 간담회 >

위의 표는 2004~2006년까지 품이 참여한 주요 연대활동을 정리한 것이다. 지역 내 실무자들 을 위한 교육, 어린이날 행사, 전통 축제, 매니페스토 활동까지 다양한 영역의 활동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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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은 아이들의 삶의 환경으로 다양한 관계망들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기에 아이들의 문화적 성장과 환경을 고민하는 품이 지역의 일에 관심 갖고 함께하는 것은 중요하다는 스스로의 책 임감과 부담감도 높았던 시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기 품은 ‘안으로의 선택과 집중’이 필 요한 시점을 맞게 된다.

2005년 청년기획단의 등장으로 십대축제기획단 ‘노올자’의 역할은 축소되었고 축제기획과정 에 있어 동등한 입장으로 의견을 나눴던 청년기획단과 품의 실무자는 서로의 다른 ‘입장 차 이’로 소통의 어려움, 역할에 대한 혼란을 겪게 되었다. 이는 2006년 노올자의 침체기를 가 져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7~8년간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공동사 업을 추진했지만 구체적인 관계와 과정이 생략되거나 행사로만 연결되는 ‘허상의 네트워크’ 는 품이 추구하는 ‘네트워크’에 대한 깊은 고민을 던져 주었다. 결국 사업이나 행사를 중심으 로 연결되는 네트워크 활동을 재정리하는 계기가 되었고 아이들과의 일상적 소통과 교육, 활 동에 더욱 집중하여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품은 오랫동안 아이들(품은 청소년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음)과의 활동과 작업과 소통을 통해서 지역을 바라보았다. 즉 지역과 동네 안에서 존재하는 아이들을 바라보기보다는 아이들을 통해서 지역과 동네를 만나왔었다. 지역과 동네와의 소통과 연결 그리고 함께 하는 모든 고정들 속에서의 중심은 품이 지향하는 ‘아이들’이란 키워드였다. 결국 이러한 과정에서 드러난 결과는 ‘입장과 지향점과 대상과 희망에 대한 차이의 발견이란 것과 ’함께 하는 것에 대한 부분적 보기’였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네트워크라는 말을 뱉는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란 함정 속에서 서로의 다름, 본질적 연결을 고민하고 시도하지 못한 체 삶을 관통하는 과정들을 만들어 내고 있지 못하다. .............................................................................(이하 생략) 네트워크란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의 관계에서 가능한 것이다. 쌍방향의 네트워크란 보편적 사회복지 서비스에서 말하는 일방적인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는 보통 현안과 사업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간다. 하지만 실제로 지역과 동네의 다양한 세대들의 일상과 삶들을 연결하거나 충돌시키는 과정을 통한 네트워크는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그것의 중요함과 소중함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2009 도시넷_ ‘아동청소년이 행복한 지역사회’ 포럼 네 번째 포럼 ‘청소년이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심한기 대표님 발제문 일부

아이들의 일상 활동과 교육에 집중하며 교육의 대상, 내용, 방식도 변화하게 된다. 2005년부터 시작된 동아리워크숍은 축제기획단 중심의 교육에서 지역 내 동아리들의 분야별 교육과 교류를


통해 문화적 성장은 물론 그들의 일상에서 문화 활동이 실천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 다. 이에 따라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시간을 활동할 수 있는 방학 7일을 교육기간으로, 이후 충 분한 동기화와 학습과 실천이 연결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꾸렸다. 그리고 그 해 가을, 교육과 정에 참여했던 팀들의 과정과 결과를 축제를 통해 공유하고 나눔으로써 아이들의 일상과 지 역을 연결하고 추락으로 이어지는 일상 문화활동으로의 시도를 하게 된다. 동아리워크숍은 이 후 2년간 진행했었고 07년 동아리워크숍에서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변경되 었다. 3년간의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는 분야별교육을 통한 기능적 성장뿐 아니라 지역 내 강사연계, 지역으로의 연결활동을 꾸준히 시도하며 아이들에게 일상 문화활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자극과 동기를 주었고 이는 08년 동네문화실천을 위한 상설 아카데미로 변화할 수 있 는 경험적 단서가 되었다.

<2005~2007 청소년문화예술 아카데미 >

2006년부터 시작된 노올자의 침체기는 계속되었고 2007년 ‘노올자’라는 이름의 공식 활동 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 새로운 아이들이 등장하게 된다. 소위 우리사회에서 ‘문제 아’라고 불렸던 이들은 알고 보니 그저 그런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던 아이들이었고 뭔가 재미있는 것을 하고픈 에너지 가득한 아이들이었다. “동네에서 재미있는 것 좀 해보지 않을 래?’란 꼬드김에 품과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예와 도’의 교육적 철학을 중요시 여기는 이상 섭 선생님의 가르침 아래 문화기획단이 되기 위한 1년간 ‘실패와 시도의 좌충우돌 실험과정’ 을 거쳐 십대문화기획단 ‘세 개’라는 정체성을 세우며 2007년 추락기획단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와 함께 아홉 살 추락은 성장통을 겪게 된다. 자라면서 생기는 통증이란 뜻처럼 06년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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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방향과 내용의 아쉬움, 축제를 함께 만들어가는 단위들과의 소통 부재는 한계점으로 평가되었지만, 지금의 시점으로 그때를 다시 바라본다면 반드시 있어야 했던 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통해 2007년 추락 10년이 지닌 과정과 의미를 정리하며 일상문화와 일상교육에 대한 새로운 고민과 십대와 마을공동체를 위한 대안적 접근이 이뤄질 수 있는 시각과 생각의 변화 를 갖게 해 주었다.

5단계. 마을공동체의 대안적 접근 “유쾌한 십대들의 동네 말 걸기”

1.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 탄생, 십대들의 동네 말 걸기 시작

십대들의 일상문화와 일상교육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2008년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강북청소 년문화존)가 시작된다. 일 년에 한번 이뤄지는 축제가 아닌 월별축제와 캠프, 정기모임, 청소 년문화기획아카데미 등이 하나의 흐름으로 진행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우리가 살아가는 동네 를 바라보며 관심 갖고 말 걸어보는 일상 활동을 시작하였다. 동네를 무대로 십대의 문화를 알리고, 행복한 동네문화의 필요성을 전하며 쑥스럽고 어색하지만 동네를 향한 적극적인 ‘말 걸기’를 시도하였다. 동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 궁금함과 호기심 으로 바라보는 시선, 익숙하지 않기에 다소 불편해하는 반응도 있었다. 그렇게 1년을 꾸준하다 못해 끈질기게 아이들과 동네를 누볐다. 그리고 축제와 지역 활동을 통해 만났던 지역단체 활 동가, 학교 선생님, 지자체 공무원에게도 아이들의 언어로 ‘말 걸기’를 시도 했다.


말 걸기의 방식도 굉장히 다양했다. 말을 잘하는 아이, 춤을 잘 추는 아이, 연주를 잘하는 아 이 등등, 저마다 자신들의 문화적 방식으로 말 걸기를 시도했고 협업과정을 통해 각자가 잘하 는 것이 하나로 모아지고 나눠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아이들은 이 과정을 통해 문화적 소통 이란 표현의 다양함을 넘어 다양성에 대한 수용과 배려,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포함한 태 도임을 체화하는 과정을 갖게 되었고 09년 ‘말 걸기’에서 한걸음 나아가 ‘관계 맺기’를 위 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동네관찰을 통해 무엇을 좋아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지역 단체를 방문하여 서로 알아보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사전에 미리 방문하는 곳을 조사하고,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질문을 꾸렸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며 만 남을 위한 준비를 하였다.

아이들과 함께한 십대들의 동네프로젝트는 하루에 끝나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즐거운 일상 을 만들어가는 활동으로의 시도였으며 이는 동네와 아이들, 동네와 품이 함께 할 수 있는 계 기와 과정들을 만들어 주었다. 또한 ‘일’과 ‘자신의 구체적 문제’에 연결되지 않을 경우 단체 간의 소통과 세대 간의 소통이 늘 부족했던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십대들이 먼저 동네와 단체 에 문화적인 방식으로 말을 걸어보는 십대들의 운동이자, 기존에 익숙한 문화를 새롭게 바라 보고, 지역과 나누며 확장시켜 보는 동네를 향한 새로운 문화적 접근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의 중심에는 실무자가 아닌 ‘주체로서의 십대’가 있었으며 청소년문화운동의 중요한 주체이자 매 개자는 실무자, 단체중심의 네트워크만이 아닌 십대와 마을이 함께여야 함을 확인시켜 주었다.

2. 동네 문화실천을 위한 상설 아카데미로 변화

십대들의 동네 말 걸기와 동네와의 적극적 문화적 소통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청소년문화기획 아카데미가 있다. 07년까지 동아리의 교류와 성장을 위한 분야별 아카데미로 진행되었던 이 교육과정은 08년 동네문화실천을 위한 상설아카데미로 변화하며 동네, 문화, 기획이라는 키 워드로 4일 동안 진행되었고 그 다음해 09년에는 교육과정을 보완하여 총 5일간 진행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동네에 대한 관심은 물론, 기획력의 성장, 동네를 향한 아이들의 새로 운 상상과 문화적 실천이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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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2009 청소년문화기획아카데미 >

2008

 핵심키워드 : 동네관찰, 동네에 대한 애정표현하기, 10대 문화 및 놀이터 알리기  실천 방향 : 관찰과 상상을 통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동네를 바라보고 직접 기획하고 실천함으로 동네와 문화로 관계하고 소통하는 경험 갖기  장소 : 수유팀, 창동팀, 시장팀  과정 : 동네 관찰 - 관찰을 통한 상상과 기초기획 - 실행 (4일 동안 진행)

2009

 핵심키워드 - 동네관찰 : 동네 관찰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음을 알아가고 찾아가보는 과정 - 동네 작업걸기 : 말 걸기에서 관계를 맺고 함께 어울리기 / 해프닝과 퍼포먼스 - 알리기 : 10대 문화, 놀이터, 추락  실천 키워드 : 동네에 관심가지기, 관계 맺기, 함께 놀기, 놀이터와 추락으로의 단서 찾기  참여 단위 (총 41명) 밴드 , 댄스, 랩, 마술 + 동아리가 아닌 개별 참여 친구들  장소 : 창동수련관, 동네탐방(열린사회북부시민회, 생명평화연대, 녹색마을사람들, 동북여성민우회), 생글 도서관, 강북구청  과정 : 동네 탐방 - 생글도서관 동네작업 - 강북구청 관찰 및 탐방 - 구청 힘주기 프로젝트

◀▲08년 강북구청 직원들 힘주기 위한 동네 게릴라 프로젝트

작은 도서관 ‘생글’ 어린이 친구들과 함께한 도서관프로젝트

6단계 / 삶의 기획자로서의 진화 “공간의 탄생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1. 청소년문화‘공간’의 탄생

동네와의 일상문화활동과 교육활동이 점점 확대되며 ‘일상 문화 공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과 필요성은 더욱 구체화되었다. 2008년 6월, 강북구청의 도움으로 미아8동 지하창고에 작은 공간을 마련하게 되지만 1년 6개월 만에 자율방범대와 공간을 같이 사용해야 하는 기로에 놓 이게 되며 이곳을 나오게 된다. 지속가능한 대안이 필요했지만 가난할 살림살이에 공간을 마 련한다는 것은 ‘상상’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공간에 대한 아이들 스스로의 필요성과 자발적 에너지는 ‘공간마련을 위한 모금콘서트 이천(만원)’을 시작하게 했고, 2010년 1월부터 이를 위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공간마련 모금콘서트를 준비하며 작성했던 십대문화기획단 편지> 세상이 무언가 만들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우리가 필요한 세상을 만들어 볼랍니다. 우리는 언제나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맘껏 놀 수 있는 마당과 기회가 없다고 불평만 하며, 누군가 만들어 불러주기를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놀 곳이 없으면 마당을 만들고, 무대가 없으면 거리를 무대로 만드는 방법을 우리는 놀이터를 통해 배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공간은 우리 뿐 아니라, 동네에서 살아가는 다른 많은 청소년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또래들과 어울리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다른 세대와 소통하는 법도 배워가는 소중한 배움의 장이자, 신나고 의미 있는 십대 문화 활동의 창작소가 될 것입니다. - 십대문화기획단, 유정화의 편지

추운 겨울, 구슬땀을 흘리며 한 달 동안 아이들은 강북, 도봉, 노원 40여개의 단체를 직접 발 로 뛰어다녔고, 문화공간의 필요성을 지역에 알리고 모금활동을 펼쳐나갔다. 티켓 하나하나 손 글씨로 번호를 매기고, 후원모금을 해주신 분들께 감사편지를 준비하며, 콘서트에 오시는 분 들께 당당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그리고 2010년 1월 30일 모금콘서트가 열렸고, 400여명이 콘서트를 찾아주셨다. 무엇보다 동 네 분들의 많은 참여는 아이들의 과정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고, 목표액을 달성하진 못했지만 아이들과 함께했던 과정은 이천만원의 가치를 훨씬 넘어섰다. 모금콘서트를 통해 마련한 금액 과, 품 지하탈출을 위해 모금했던 돈을 모아 강북구 우이동 봉제공장으로 사용했던 지하에 공 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공간을 꾸밀 수 있는 재료들을 구했고, 조 금 더디더라도 하나하나 아이들의 손으로 만들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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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_ 준비과정 | 중간_ 덕성여자대학교 대강당에서 진행된 모금콘서트 이천 | 아래_ 청소년문화’공간’ 오픈식

2010년 5월 23일 공간의 탄생 과정을 지켜봐주신 100여명의 분들과 함께 공간 오픈식을 가 졌고,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오픈식을 열게 되었다. 이렇게 청소년들만의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근거는 ‘십대들의 동네 말 걸기’를 통한 동네와의 소통과 관계 그 리고 십대들의 자발적 에너지였다.

2. 자기 삶을 기획하는 십대문화기획자 아카데미의 시작

이렇게 탄생한 ‘공간’은 십대와 마을을 연결하는 매개의 ‘장’이 되었고 공간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렇게 탄생한 ‘공간’은 십대와 마을을 연결하는 매개의 ‘장’이 되었고 공간을 중심으로 다 양한 일상 활동을 가능하게 했다. 공간의 탄생은 결국 품이 아이들의 ‘삶’을 좀 더 깊이 바라 보고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당시 놀이터의 고민은 10회 추락의 고민과 조금 닮아 있었다. 놀이터 활동과 운영은 안정화되어 갔지만 놀이터의 내용과 방식의 변화를 위한 성장, 3년간의 놀이터 과정을 통해 성장한 운영위원회의 지식적 성장이 아닌 삶의 태도로서의 성장 을 위한 활동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놀이터 과정에 다양한 교육활동과 방식을 시도함으로써 품 일꾼들은 물론, 운영위원회, 놀이터 기획단의 문화적 성장, 삶의 태도와 주체적 성장을 위 한 과정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 가운데 2010년 청소년문화기획아카데미는 십대문화기 획자 아카데미로 변화하게 되었다.

십대문화아카데미는 당시 놀이터기획단에서도 선배로서의 역할을 맡았던 운영위원회, 놀이터 기획단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상상력과 기획력 키우기, 하반기 놀이터 활동을 위한 실질적인 기획과 준비과정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아카데미의 과정과 결과를 동네 사람들과 나누고 이 후 함께 할 수 있는 연결지점 갖기’라는 핵심방향을 통해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아카데미 마지막 날 그동안의 교육과정을 동네와 나누는 ‘Presentation Party’와 아 카데미과정을 열심히 했던 아이들을 지지하고, 스스로 자기 삶을 기획하는 멋진 십대기획자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기획단 발대식을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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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기획단 선언문>

나는 십대입니다. 세상을 볼 줄 알고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생각하는 십대입니다. 소통을 실천하며 변화를 만들어가는, 행동하는 십대입니다. 나의 꿈, 나의 문화... 아름다운 삶의 길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십대입니다.

우리는 불가능한 꿈을 꾸는 십대입니다. 불가능한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십대 기획자들입니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동네, 행복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십대 문화 기획자입니다.

우리는 놀이터 기획단입니다.

그대를 자랑스러운 놀이터 기획단으로 임명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춤과 연극을 매개로 한 세대결합 동네소모임이 탄생하였고, 동네의 청소년 들이 동네의 어린이들을 문화적으로 돌보고 소통하는 ‘동반성장프로젝트’가 생겨나는 등, 십 대와 마을과의 즐거운 관계 맺기가 시작되었다. < 동네 소모임 > 1. 프로젝트명 ‘극단 언니들’  방향 : 주부와 십대의 결핍된 욕구 해소 세대 간 소통, 지역극단 만들기  참여자 : 청소년 3명, 지역 주부 2명  지역청년 2명, 지역에 거주하는 현직연출가 1명  활동내용 : 공연관람 및 작품 탐색, 공연준비

2.    

십대 + 지역활동가 댄스 모임 ‘248+’ 방향 : 춤을 통한 세대 간 소통과 지역문화활동 참여자 : 청소년 4명 (십대 댄스강사 2명) 지역활동가 5명 활동내용 : 십대 강사에게 배우는 댄스교실


‘극단 언니들’은 이후 지역의 특색을 살리고자 ‘동네극단 우이동’으로 개명하였다. 2012년 현재까지 자체적인 모임을 지속하고 있는 우이동에는 품 일꾼 유현희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십대-지역활동가 댄스모임 248+는 참여자들의 나이를 합한 248에 신규멤버를 고려한 ‘+’를 합한 이름이며, 2010년 하반기에 활동을 마무리하게 된다.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곳은 한 팀뿐이지만, 활동의 성과이자 의미는 프로젝트를 통한 세대별 만남과 문화적 소통의 가능성 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3. 마을 속 청소년과 아이들의 서로성장을 위한 ‘동반성장프로젝트’

동반성장프로젝트는 지역 내 청소년들과 아이들의 서로성장을 위한 활동으로 09년 아카데미 에서 십대와 생글도서관 아이들이 함께했던 생글도서관 프로젝트를 통한 단서를 얻게 되었 고 놀이터활동을 통해 성장하고 있던 아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활동이었다. 또한 기존의 부족한 학교공부를 보충해 주고 돌봄을 위한 단순 멘토 프로그램을 넘어서는 서로의 에너지 가 교감되고 나눠지는 ‘돌봄과 성장의 활동’이 가능함에 대한 확신도 있었다. 품에서 활동했 던 십대문화기획단, 동아리 친구들이 지역 내 소외(여기서 말하는 소외는 경제적 소외만이 아 닌 문화적 소외를 포함한다.) 아동들의 멘토로 활동하며 참여 청소년들에게는 자신들의 활동 을 통해 지역사회 돌봄과 나눔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참여 아동에게는 동네 언니 오 빠와의 관계를 통한 정서적 지원과 문화적 경험을 통한 성장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 이 활 동의 주된 의미이다. < 동네 소모임 > ‘생글이랑 품이랑’  방향 : 지역 어린이와 십대의 소통과 교류  참여자 : 십대 기획단(4명)+도서관아이들(8명 이내)  활동내용 : 씨앗심기, 언니오빠들과 함께하는 운동회, 책 함께 읽기, 책 놀이, 강북청소년문화축 제 ‘추락’ 참여

‘햇살교실’ 투데이와 레전드의 전설만들기  방향 : 밴드수업을 중심으로 지역 어린이와 십대 의 소통과 교류  참여자 : 투데이 밴드(3명), 레전드 밴드(3명)  활동내용 : 밴드 악기 수업(40회), 햇살공부방에서 데뷔 공연,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참여


204

품 20

춤추는 프리비어스와 비어트리스  방향 : 댄스수업을 중심으로 지역 어린이와 십대 의 소통과 교류  참여자 : 프리비어스(4명), 비어트리스(5명)  활동내용 : 댄스수업(총 25회), 오픈축제 데뷔공연, 햇살교실 축하공연, 놀이터 소개팅 공연, 추락 공연

7단계. 다시 마을 속으로 “14년 만에 내린 결론! 탈탈탈”

1.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탈(지역)탈(세대)탈(문화) 동네난장’

2011년 가을,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한 추락을 맞게 된다. 탈지역, 탈세대, 탈문화를 외치며 십 대와 동네가 어우러지는 동네난장을 시도하며 높은 무대를 없애고 마당중심의 축제를 꾸렸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경험, 이야기, 재주가 교류될 수 있는 ‘한평가게’를 시도했으며, 동네마 당, 십대마당, 어린이마당을 구분하지 않고 구청 앞마당과 삼거리에 먹거리, 놀이마당, 체험마 당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열린 마당을 꾸렸다.

놀이터에서 활동했던 선배들이 새내기 기획단의 멘토로 14회 추락기획단에 합류하여 힘을 보 태주었고 괜찮은 청년교육집단 ‘세 개’는 청년기획자이자 추락기획단의 멘토로 참여하여 아 이들과의 일상적 만남과 준비과정을 가졌다. 기획단의 대 선배인 Red.P ‘이설’은 축제의 진 행을 맡았고 초창기 품을 만드셨던 ‘이준호’ 선생님은 차(茶)와 삶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마당으로 축제에 참여하셨다.

축제 전, 처음으로 참여하는 모든 단위가 한 자리에 모여 축제를 위한 사전모임을 진행하였 고, 20여개의 지역단체 및 활동가들이 축제에 참여하며 부분적 결합을 넘어서 함께 즐기고 나 누는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14회 추락의 부제처럼 그 해 추락은 650명의 축제 참여자와 3500여명의 모객들로 가득 메웠고 십대들만의 축제가 아닌 마을 속 축제로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2011년 강북청소년문화축제 ‘탈탈탈 동네난장’ 모습

2. 강북마을장터 ‘탈(지역)탈(세대)탈(문화)’ 의 탄생

축제의 형식과 내용의 변화는 축제를 통해 십대와 마을이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문화 장으 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일상으로 펼치는 마을장터’에 대한 가능성을 갖게 했다. 기존의 대 안장터와는 또 다른, 품의 경험과 노하우가 담긴 사람, 문화, 이야기가 있는 강북마을장터 ‘탈 탈탈’은 마을 속 십대와 동네가 서로 교류하고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행복한 장터를 만들어가는 주체이자 매개자로 십대들의 활동은 동네사람들에게 자극과 즐거움을 주고 있다. 아이들의 일상과 행복한 마을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함께 나누며 강북마을장터를 중심으로 즐거운 일을 함께 꾸리는 친구들도 생겼다. (사)삼각산재미난마을,


206

품 20

강북마을모임과의 구체적인 연대활동이 시작되었고 15년간 품과 함께 일해 온 강북구청은 갑 과 을의 관계가 아닌 관계와 신뢰를 통한 대등한 협력관계를 유지해가고 있다. 이렇게 품은 아 이들과 동네와 함께 행복한 마을, 행복한 공동체를 위한 활동들을 진행하고 있다.

3. 십대와 행복한 마을 만들기에 대한 즐거운 상상

품의 20년, 세상이 ‘정답’이라 정해놓은 것들로부터 의심과 질문의 과정을 놓지 않았고 익숙 한 것들로부터의 ‘거부’는 새로운 상상, ‘세상이 바로 보지 못하는 가치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자극’을 주기도 했다. 불완전한 존재, 미숙한 존재로서의 청소년이 아닌, 스스로 당당한 자기 삶을 꿈꾸고 만들어갈 수 있는 주체적 존재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세상이 정해놓은 정 답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질문을 만들어 보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고민할 수 있 는 ‘문화적 태도, 문화적 표현과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동네를 통한 일상 활동을 실천하였다. 그 과정에 수많은 시도와 고민이 담겨있었고 좌절과 아픔의 시기도 있었지만 그 것이 실패가 아닌 성장을 위한 과정임을 ‘시도와 실천’을 통해 배우며 경험해 갔다.

10년의 활동을 통해 일상과 삶이 연결된 아이들의 터전인 ‘동네’를 재발견하게 되었고 이후 5년의 과정을 통해 행복한 마을은 기성세대들만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 그 안에 살아가는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 일궈 가야 함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동안 외면 받아 왔던 십 대는 삶의 주체, 지역의 주체, 마을 속의 일상적 주체로서 행복한 마을의 중요한 매개자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마을 만들기’의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이는 십대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거나 모든 것들에 중심이 되어 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십대들에게도 ‘행복한 마을’과 연결된 에너지와 역할이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품이 꿈꾸는 십대와 행복한 마을은 다음과 같다.


십대가 주체적으로 성장하는 마을, 문화적 소통과 실천으로 성장하는 마을, 십대의 일상과 삶 을 돌보며 함께 성장하는 마을을 희망한다. 그리고 십대와 청년을 흔들며 함께 성장하는 마을 을 꿈꾼다. 그래서 품은 문화, 교육, 네트워크라는 실천 키워드를 통해 마을 속 장터와 축제를 꾸려가고 있으며 문화적상상과 실천을 위한 교육과정은 인문학적 사유와 사고의 과정이 연결 된 방식으로 깊이와 내용을 더해가고 있다. ‘마을 속 인문특강’이라는 제목으로 십대와 마을 이 만나고, 삶과 인문학이 교감될 수 있는 수업도 진행 중에 있으며 행복한 동네문화를 위한 마을과의 ‘관계와 소통’의 과정을 시작하고 있다.

그래서 품 20년을 바라보며 마을 속에서 아이들이 삶과 희망의 과정을 만들어가고 이를 세 상과 공유하며 또 다른 희망을 만들어 내는 ‘십대와 행복한 마을 만들기’를 위한 즐거운 상 상이 가능한 것이다.


208

품 20

1. 15살이 된 청소년축제 ‘추락’ “이렇게 컸지요!” .

1998

절망적 문화의 땅 위로 피어난 강북 최초의 청소년 축제가 잉태되다.

1999

고래? 관심이 없던 강북구도 ‘발 벗고 돈 내고’ 나섯네!

2000

똑같은 복제축제는 구려! 우린 색깔 풀고 논다!

4살 된 축제! 널~~~~ ‘추락’이라 부르겠어.

2002

슈퍼모델은 아닙니다. 그저 대한민국 청소년축제의 모델이 될까 합니다.

국회 뒤집는 국회의원의 목소리만 있나? 우리의 목리도 있응께!!

2004 2005 2006

THE FASTIVAL IS PROCESS! 아님 말구!

동아리만 사람이냐? 집에 노는 것들 축제로 가출하다!

2학년 3반 다~ 나와! 휴지 줍는 자원봉사 너도 나와!

오~ 마이~ 갓드... 벌써 10년이 되부럿네.

2008 2009 2010

아저씨, 아줌마! 같이 놀아요!

당신이 비빔면을 비빌때 우린 동네랑 비볐습니다.

동네랑 비볐더니 행복해지던데요?!

탈탈탈 털지말고 탈하고 놀자. 탈문화, 탈세대, 탈지역

2012

축제가 단 하루라면 우리는 ‘하루살이?’ 탈탈탈 일상의 장터를 연다.


2. 십대기획단의 콧물나는 성장 STORY . 청소년 축제라면서요? 근데 애들은 놀기만 하네요. 그래서 고민했다! 어른들이 다 하지 말라야 함을...

1998 ~ 1999년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을 뛰어넘는 ‘청소년 축제기획단 노올자’의 탄생 선생님 힘드시죠? 우리도 일좀 할께요.

2000년 청소년축제기획단 종합검진결과 ‘간도 커지고, 대가리도 커졌다네?!’ 선생님 힘드시죠? 우리가 다 할께요.

2001 ~ 2003년

축제에서 늙어가는 잔주름 깔린 청년 기획 단의 부활. 젊음은 순간이야! 동상들아 우리가 도와줄께!

2004 - 2006년 어슬렁거리는 동네 개들도 무시하던 ‘세 개와 개밥그릇’과의 조우 개처럼 놀아보세. 어른이 먼저 나서면 ‘주책, 십대들이 초대하면 ‘영광’?!

2007년 세 개와 개밥그릇의 폭팔진화 그리고 문화 놀이터의 등장. 인간은 하루만 축제하지만 진정한 개는 동네랑 맨날 놀아야 하는~ 고야!

동네와 세대와 문화를 연결한다고 한단다. 그 이름은...’십대 장돌뱅이’ 늙어가는 십대들, 늙어버린 청년들, 늙기 싫은 어른들... I’m happy to get old through~ “탈탈탈 동네장터”

2012년

2008 ~ 2011년


210

품 20

3. 품 20년 ‘십대와 마을 만들기’를 위한 땀이었어!

1998년~

전국으로 놀던 ‘품’ 동네를 의심해보다.

2002년~

함께하는 재미와 배움을 깊게 의심하고 시도해보다

관념으로는 ‘지역사회’, 삶과 일상으로서는 ‘동네와 마을’인 것을...

2007년~

허상으로서의 네트워크를 고민하다가 네팔에서 답을 찾다

마을의 원형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켜왔던 것을 찾아가는 것임을...

2009년~

십대는 돌봄의 대상이 아닌 돌봄과 나눔의 주체임을 확인하다.

아이들이 말을 거니 동네가 말랑말랑 해지던~걸!!

2010년~

전 지구적으로 사유하고 지역(동네)에서 실천하라!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을 훌쩍넘어서니 쪼금 알 것 같네요!

2011년~

관념에서 사유로, 상상에서 실천으로, 고집에서 나눔으로...

품 20년의 키워드 2012년~

의심, 상상, 상유, 실천, 문화, 십대와 마을, 대안교육, 지구적 소통

사회복지개론에서 많이 봤떤 지역사회.. 음 중요하다고는 하네!

학습지가 알려준 답은 쉽게 잊지만 경험으로 찾은 답은 희망으로 변신함을...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순간 이 바로 아름다운 시작점임을...


4. 품20년 십대와 마을 만들기 팀 연혁 연도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주요장소

활동내용

강북구청 앞

 1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청소년거리축제’ 시작 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진위원회(공동주관단체3곳)가 구성됨

번동중학교

 번동중학교 CA 지원

강북구청

 지역사회를 위한 사람들의 모임

강북구청 앞

 2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밀레니엄, 우리가 만드는 축제’

각 학교

 학교CA지원 사업 시작 [번동중 ,도봉중, 창일중, 도봉정산고, 선덕고, 신경여실]

서울일대

 강북구 재미있는 박물관 기행 [국립중앙/민속박물관, 농업박물관, 이대자연사박물관]

강북구청 앞

 3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너.나.노.니’ → 청소년축제기획단 탄생 ‘노올자’

각 학교

 학교CA지원 사업 진행 [번동중, 창일중, 신방학중, 신경여실]

강북구청 앞

 8.15 광복절 기념 청소년 ‘Rock Festival’

신일고등학교

 4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진행 → 축제를 참여하는 동아리 대표자 모임이 생겨남

각 학교

 학교CA지원 사업 진행[영훈고, 창문여중, 수유중]

북한산국립공원

 북한산생태모니터링을 통한 청소년환경프로그램 모델개발활동

강북구청 앞 삼거리

 5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EXIT’

강북구

 강북연대활동[강북구 정책제안]

도봉구

 도봉연대활동[노원ㆍ도봉시민연대‘관통도로반대운동’, 어린이날 축제]

강북구청 앞 삼거리

 6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불만있습니다’

유네스코문화원

 청소년문화기획아카데미 개최 [청소년축제기획단 및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회] → 네트워크 : 에이스벤추라, 울산중구청소년문화의집

도봉구

 도봉연대활동[도봉구시민단체협의회, 어린이날 축제]

강북구청 앞 삼거리

 7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겉멋든 세상에 추락바이러스’ → 한국청소년개발원에서 발간한 연구보고서에 지역사회청소년축제 성공 사례로 제시됨

각 학교

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사업[번동초,번동중,미양초/실무자미디어교육]

강북구

 강북연대활동[강북실무자교육 진행, 강북지역복지협의회 활동참여]

도봉구

 도봉연대활동[도봉구시민단체협의회 활동참여, 어린이날 축제]


212

품 20

연도

주요장소

활동내용

2005

강북청소년 수련관

 8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고장난 꼬마야 날개를 달으삼’

각 학교

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사업[번동중, 미양초 / 실무자흐름워크숍]

강북구

 강북연대활동 [강북지역복지협의회활동참여,강북실무자문화연구모임,지역전통축제]

도봉구

 도봉연대활동 [도봉구시민단체협의회 활동참여, 어린이날 축제, 공동문화행사 등]

강북-도봉

 학교-지역연계문화예술교육사업 시작 →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 탄생_분야별 교육과정과 발표회로 구성

강북청소년 수련관

 9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000나와라’

각 학교

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사업 [번동중, 미양초]

강북구

 강북연대활동 [강북매니페스토 활동]

도봉구

 도봉연대활동 [어린이날 축제, 초안산 일상축제]

강북-도봉

 학교-지역연계문화예술교육사업 → 강사워크숍, 문화예술매개자워크숍,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로 운영

강북구청 앞 삼거리

 10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열번째 추락 光狂수월래’

강북-도봉

 학교-지역연계문화예술교육사업 → 시범학교인 중학교(1곳) 집중 지원[동아리, 학생회, 학교축제] →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 진행[오티, 여름캠프, 분야별교육, 발표회]

강북구청 앞 삼거리

 11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온 동네씨 같이 놉시다’

강북구청 앞

 강북청소년문화존사업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가 시작

-

 강북청소년동아리지원사업 운영 시작

강북구 일대

 청소년문화아카데미 ‘동네 힘주기 게릴라 프로젝트’ → 장르, 분야별교육 중심에서 문화기획, 프로젝트 활동 중심으로 변화

강북구

 강북연대활동[강북시민연대 부분 활동]

번동중

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사업[프로젝트 번동축제기획단, 번동문화캠프]

강북구청 앞

 12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Listen, 동네야 들어봐’

강북구청 앞

 강북청소년문화존사업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

강북구 일대

 청소년문화아카데미 ‘십대들의 동네 말걸기 , 온동네 들썩들썩!!’ → 지역단체탐방,동네어린이도서관,구청직원 힘주기 프로젝트로 활동

강북-도봉

 청소년 대안문화공간 만들기 프로젝트 진행 ‘모금콘서트 이천’

2006

2007

2008

2009


연도

주요장소

활동내용

2009

도봉구

 도시넷 포럼[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2010

강북구청 앞 삼거리

 13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온 동네 꽃이 피었습니다’

강북구청 앞

 강북청소년문화존사업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

청소년문화공간

 청소년문화‘공간’ 오픈식

청소년문화공간

 청소년문화아카데미 ‘십대문화기획자 교육과정’

강북-도봉

 동반성장프로젝트 : 십대들이 지역의 공부방 및 도서관 어린이들에게 문화 활동을 가르쳐주고 끌어주기

강북구청 앞 삼거리

 14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탈탈탈(탈동네,탈세대,탈문화) 난장’

강북구청 앞

 강북청소년문화존사업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

청소년문화공간

 청소년문화아카데미‘십대문화기획자 교육과정’

강북구청

 강북청소년참여위원회 운영 시작

숭곡중

 혁신학교연계(숭곡중_학생회,학교축제기획단,학교축제 연간지원)

강북청소년 수련관

 십대와 동네가 함께 하는 ‘동네문화콘서트’ → 백세밴드, 극단우이동, 숭곡중연극반

강북구청 앞 삼거리

 15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강북구청 앞 차 없는 거리

 사람, 문화, 이야기가 있는 강북마을장터‘탈탈탈’ [5월~9월, 매월 1회]

청소년문화공간

 마을속인문특강 진행 중 [마을 이야기+삶의 이야기+세상 이야기가 담긴 생생한 삶의 인문학]

청소년문화공간

 청소년장터워크숍 [키워드‘상상+창작, 증폭, 사고사유’ / 5월~9월, 매월1회]

청소년문화공간

 강북청소년참여위원회 운영

각 학교

 혁신학교연계(숭곡중,북서울,삼각산고]

강북구

 강북연대활동[강북마을모임,강북아동청소년협의회]

강북구

 십대와 동네가 함께 하는 ‘동네문화콘서트’

2011

2012


214

품 20

품과 히말라야 네팔

다시 바라보고, 멈춰보고, 지구적으로 사유하고, 지역에서 실천하기 _글. 강명숙

나 스스로 다른 나라에 이렇게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리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랬 던 내가 2007년부터 네팔사업을 담당하면서 다른 문화가 주는 새로운 경험과, 실수와 깨달음 의 시간을 오가며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품이 처음 네팔활동을 시작했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우려 섞인 질문을 받았다. 네팔활동은 준비된 의도와 목적이 아닌 ‘직감’에 의한 출발이었고, 당 시 어떤 사업보다 많은 에너지 투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네팔에서 품 의 ‘역할’찾기를 위해 채찍질을 했었다. 그 시기가 짧은 7년간의 네팔활동 중 에 가장 치열하고 바빴던 시기였었던 것 같다. 이 글은 품이 네팔에서 어떤 실 패와 성찰을 했으며, 우연한 계기로 만난 ‘베시마을’에서 품의 역할을 찾기까지 의 과정, 그 희망이 ‘골리마을’로 전이되는 과정을 담았다. 다 읽은 후에는 품 이 네팔과 한국에서 하는 일이 다르지 않음을, 또 어떻게 함께 성장하고 있는지 를 눈치채게 될 것이다.


[글의 순서]

1. 네팔과의 만남은 준비된 의도와 목적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2. 히말라야 그리고 네팔 3. 치열한 실패가 만들어 준 희망 4. 히말라야 아래의 작은 마을 베시에서 찾은 품의 역할 베시마을와 모노허라 공립학교 / 축제로 말걸기 / 청년, 핵심 주체로 성장 / 학교의 변화는 곧 마을의 행복

5. 베시의 가능성은 골리마을로 골리마을과의 인연 / 작은 도서관과 약국 / 도서관과 청년을 중심으로 한 변화의 시작

6. 한국과 네팔을 잇는 문화교류 소통과 연결을 중심으로 한 문화교류 사업 / 1인 NGO! 청년자원활동가 / 오~히말라야

7. 한국과 네팔의 품 마을과 함께 성장하고 변화하는 네팔 품 / 네팔 활동을 통한 한국 품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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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흐름으로 보는 Happy Village in Nepal

여행이 만들어 준 Good Karma (2005)

3년의 문화예술워크숍이 남긴 것! ‘고정된 명제를 버리자’ (2006-2008) 카트만두 내 사무실 오픈(2006) 한국적인 시각의 접근, 상호적인 성장이 불가능한 과정 등의 반성과 고민 네팔에서 품의 역할고민

베시마을과 첫 만남 <Happy School Project> (2007) ‘마을’, ‘청년에 대한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하며, 마을에서 품의 역할 찾음 청년발굴 및 마을 축제 진행

행복을 만들어내는 도서관과 청년 4인방활동 (2008~현재) 축제를 통해 청년들의 자발적인 활동조직, 마을과 학교를 위한 활동시작 마을의 변화와 직결된 교사 흔들기 신뢰를 바탕으로 상호적인 성장 및 변화 가능. 한국 품의 시각 확대, 사업이 성장할 수 있는 단서 제공

에베레스트 솔로쿰부지역 골리마을로 전이 (2009~현재) 베시마을의 활동경험과 성과를 근거로 활동시작. 마을 주민들과 함께 도서관, 약국 건립 마을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마을청년 조직 지원

통합적 삶의 접근으로 변화 (2011~현재) 카트만두 사무실을 마을로 이사 청년들이 마을의 중심 주체로 성장 일상적인 과정을 토대로 청년지원, 교육, 환경 등 통합적 접근 마을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마을청년 조직 지원


네팔과의 첫 만남은 개인에서부터 출발했다. 대한민국의 구 석구석을 아이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우리 강의 뿌리, 우리 바다의 뿌리, 우리 산의 뿌리, 우리 삶의 뿌리를 찾기도 했 었던 온전한 국내산 토종닭이었던 심한기 대표가 다른 세

네팔과의 만남은 준비된 의도와 목적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를 나누며 결국 우리의 삶은 고정되거나 정해진 시공간이 아닌 세상 어느 곳이든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준 곳이 바 로 히말라야 네팔이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2006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작은 사무 공간을 임대하여 ‘NGO NEPAL PUM’을 시작했 다. 심한기 대표가 2000년 첫 히말라야 여행에서 만난 네팔 친구 그리고 품에서 파견된 활동 가 1명과 함께 국제 엔지오 단체가 아닌 네팔 현지 엔지오 단체로 등록을 했다. 국제 엔지오 단체로 등록을 하지 못한 이유는 네팔에서 국제 엔지오 단체로 등록을 하려면 1년 평균 1억 이상의 사업비가 있어야 함은 물론 조직과 운영 등의 규정 역시 까다로웠기 때문이기도 하고 소박한 활동으로 시작하려는 우리의 의도와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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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그리고 네팔

히말라야는 많은 사람들의 꿈꾸는 상상의 상징물이며 최고 고도 3000미터가 넘지 않는 낮은 지대에서 살아왔던 우리 의 상상에는 8,000m가 넘는 천상의 산들은 더욱 꿈의 상

징일 수도 있다. 보통 인도나 네팔, 부탄이나 티베트와 같은 이미지가 떠오며 실제로 그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기와 자랑에는 인간의 정신이 나 자연의 위대함 등이 열거되기도 한다. 인도, 네팔, 부탄과 티베트는 모두 히말라야와 연결 된 나라들이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히말라야의 바람과 향기, 그리 고 히말라야의 변덕과 넉넉함에 기대어 살아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일상적 삶은 우리 가 기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고상하거나, 정신적이거나 신비하지만은 않다. 거대한 히말라야의 땅과 싸워왔던 처절하고 척박한 삶들이 그들의 일상이었고, 그 고난한 자연과의 일상들 속에 서 만들어져왔던 것들 중에 하나가 숭고한 정신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세계의 지붕이라 말하는 거대한 히말라야에 기대어 살고 있는 네팔, 산악국가 또는 빈곤국가로만 알려져 있는 네 팔에는 문명의 세계가 잃어버린 그들만의 생활공동체가 존재한다. 경제적 빈곤국가지만 농업을 중심으로 한 지 역공동체가 유지되고 있으며 이는 일상적인 삶 속에 녹 아있는 종교와 문화와도 연결된다. 이는 일과 삶이 분리 되지 않고 개인의 삶과 집단의 삶이 관계중심의 소통을 통해서 연결되는 우리의 전통적 지역공동체와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2009년대 이후 해외원조의 증가와 함께 늘어난 네팔 내 NGO 단체 및 INGO (International NGO)단체의 증가 그리고 서구 자본주의의 유입 등으로 그들의 전통적 문화 와 공동체들이 흔들려가고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기 쉽지 않겠지만 해외원조나 INGO 단체의


있었던 근본적 원인들에 주목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해외 원조와 국제 엔지오 단체들의 지원과 활동이 시급한 빈곤문 제를 해결해가는 긍정적 성과도 있었지만 일방적 원조에 따 른 ‘수동적 삶으로의 변화’라는 역기능들도 서서히 드러나

증가*가 그들의 문화와 공동체를 약화시키거나 퇴보시킬 수

기 시작했다. 네팔에서 진행되고 있는 수많은 지원 프로젝 트 중에 ‘네팔의 가능성, 네팔의 가치, 네팔인들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 에너지’들을 찾아내는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히말라야 네팔에서 보낸 지난 7년 동안 가장 귀한 반성과 성찰이 있었다면 그것은 주는 자와 받는 자로서의 구분이 아닌 각자가 지닌 본질적 가능성에 대한 대등한 교류와 상호적 믿음 그리고 순환적 에너지의 교환이었다. ‘내가 당신에게 뭔가를 주었으니 당신은 나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강요들이 아닌 상대의 진정성을 교감할 수 있는 삶의 노력들에 집중하게 되었다. 인도와 네팔 인들의 일상적 인사말인 ‘나마스테(Namaste)’라는 단어 속에 ‘당신의 신에게 경배를 드립니다.’라는 놀라운 의미가 담겨 있음을 몸과 정신으로 깨닫기까지는 적지 않은 오류와 성찰의 시간들이 필요했다.

2006년 네팔에서 엔지오 활동을 시작한 후 거의 2-3년 동안 우리는 스스로 만든 자기 함정들에 빠져 허우적거렸었다. 국 내에서 오랫동안 청소년, 청년들과 함께 문화를 통해서 자신 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문화운동을 해왔기에 우리의 눈

치열한 실패가 만들어 준 희망

에는 네팔에서도 이것이 중요하고 필요할 것이라는 무지한 오만으로 첫 활동을 시작했었다. ‘네팔의 청소년과 청년들이 스스로를 깨우치며 자발적 삶을 만들어갈 있는 일들이 확장되기 위해서는 그들을 만나는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라는 확 인되지 않은 가설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한국-네팔 문화예술교육 워크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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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명, “네팔품의 국제 지역사회복지 실천 사례 연구”, 한국지역사회복지학회 논문에 따르면 2012 네팔은 서방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국가였으나 히말라야 등반과 일반인을 위한 트레킹이 성황을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네팔의 상황과 어려움들이 전달되었고 이후 해외원조와 엔지오 단체들이 급속하게 늘어나게 되었다. 2002년 기준 네팔 내 엔지오 단체는 1만 3천개가 넘는다고 한다. 네팔 내 한국 INGO 단체 역 시 2002년에 불과 3개였지만 2010년에는 공식적으로 등록된 단체만도 15개이며 비공식적 지원활동 단체를 포함하면 2012년 현재 30여개 가 넘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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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네팔 문화예술워크숍

우리가 직접 확인한 네팔의 교육환경과 방식은 매우 획일적이거나 단순했으며 그 때 당시 국 내에서는 공교육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안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던 시 기였다. 우리는 3년 동안 네팔 카트만두의 사립학교 연합(Schools’ Forum Nepal)과 연결 하여 매년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 워크숍’을 추진했다. 정부나 민간재단에서 지 원하는 공모사업에 젖 먹던 힘까지 쏟아가며 지원을 받아내었고, 문화예술교육 분야에서 나름 이름을 떨치고 있었던 최고의 전문가들을 매년 네팔로 공수(?)했었다. 의지 있는 교사의 선발, 교육 커리큘럼 개발, 뜻을 알리기 위한 언론홍보, 각종 설문지, 평가서, 사례보고서 발간 등 한 국에서 익숙하게 해왔던 방식으로 일을 추진함은 물론이고 일의 속도 또한 그곳의 속도가 아 닌 한국의 방식을 따르고 있었다. 결국 이 사업에 참여한 많은 품의 활동가와 강사는 물론 네 팔 측의 참여자들 모두 ‘무게와 속도에 시달리는 당나귀’가 되어가고 있었다.

3년 차 프로젝트를 정리하며 뒤늦게 깨달은 것은 “아! 우리가 참으로 오만한 헛짓거리를 했구 나!”였다. 3년의 과정들이 모두 헛된 것만은 아니었지만 근본과 본질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확실 했다. 우리가 꿈꾸었던 지역과 삶의 문화 속에의 자발적 동기화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성공의


속도를 따라가는 대도시의 사립학교보다는 작은 지역의 정부학교*와 연결하는 것이 더 의미 있었을 것이며, 한국의 환경과 문화 속에서 통용되는 문화예술교육의 방식이 아닌 그들의 문 화, 환경 등과 연결될 수 있는 방식을 그들과 함께 찾았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우리가 가 지고 있는 것들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닌 그들에게 배워야 할 것들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워크숍’의 깊은 반성으로 혼란을 겪고 있던 품에게 방향성을 제시해 준 곳은 베 시마을이었다. 품은 베시마을에서 모노허라 공립학교와 아이들에게만 집중하지 않고 제한된 방식을 넘어 삶으로의 접근과 마을의 아이들, 청년, 어른세대의 참여까지 목표로 둔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희망 찾기 또는 모두가 함께 가능한 희망 찾기”를 시도하고자 했다.

작은 마을 베시, 그리고 모노허라 공립학교 베시마을은 카트만두에서 차로 1시간여 거리에 있으며 80 여 가구 500여명이 살고 있고 90%가 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경제적인 수준은 높지 않지만 그리 낮지도

히말라야 아래의 작은 마을 베시에서 찾은 품의 역할

않다. 한국과 같이 도시로의 이동률이 높지 않아 마을에는 아이들과 청년들이 많고, 3대에 걸 친 대가족이 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베시마을도 외부의 변화에 따라 자본이 유입되면서 마 을 공동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카트만두 인근에 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더 크다. 이것 은 품이 베시마을에서 <Happy Village>를 마을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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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많은 사립학교는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처럼 운영되는 곳이 많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은 입학이 쉽지 않다. 카트만두 시내에만 해도 1000개 넘는 사립학교가 있다. 이에 비해 정부학교는 그 수가 매우 적고 교육환경도 매우 열악하지만 지역사회(공동체)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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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중심에는 모노허라 공립학교가 있다. 88년도에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학교 로 움막에서부터 출발한 학교는 정부 지원을 직접 요청하여 좀 더 그럴듯한 외형을 다질 수 있었다. 모노허라 공립학교는 그저 마을에 위치한 학교가 아니라 마을공동체성의 상징 그 자 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학교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애착과 기대는 남달랐지만 시간이 흐르며 학교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잃어갔다. 히말라야 덕분에 전 세계에서 몰리는 외국 관광객들로 인 해 영어능력은 곧 직업과 경제적 수입을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고, 사립학교들은 발 빠 르게 대처했다. 하지만 모노허라 학교는 정치적으로 혼란기를 겪고 있는 네팔정부의 지원부족 으로 영어교사를 배치하지도 못했고, 기존 수업의 질 역시 뒤처져만 갔다. 교사들 역시 수동적 인 태도로 일관하며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이들은 떠나갔고 학부모들, 주민들, 학교 를 졸업한 청년들의 경우는 교사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그럼에도 교사와 마을주민들은 애(愛) 와 증(憎)을 넘나들며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품이 학교를 처음 만났을 때가 이 시점이었다.

축제로 말 걸기 베시마을과 초창기 만남은 ‘일단 우리랑 해 봅시다!’였다. 함께 행복한 마을을 만들자고 했지 만, 그들은 우리가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외부의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주거나, 지어주는 것 외의 것을 보지 못한 탓이었다.

처음 베시마을에 말 걸기의 대상은 학교였다. 마을 공동체성의 상징인 학교로의 접근은 마을 과 관계맺기를 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짧은 이틀간 진행했던 <Happy School Project>는 자신들의 아이와 마을을 위해 학교를 세운 주역들인 그들의 기억과 마음 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긍정적인 자극이 되었다. 첫 만남 이후 교사와 몇몇 주민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갔고 마을의 변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교사와 아이들만이 아닌 마을의 주민, 그리 고 가장 중요한 청년층에게 말 걸기 위한 ‘마을 축제’를 열었다. 축제로의 접근은 품이 15년간


강북지역에서 청소년문화축제를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모두가 즐거웠던 첫 마 을 축제에 자극을 받은 청년이 느닷없이 일어나 청년들에게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고 외쳤 고, 이후 20여명의 청년들은 자발적인 조직을 만들어 마을의 가는 핵심 주체로 등장하게 되 었다. “앞으로 학교와 마을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다. 이제 우리가 직접 마을과 학교를 위해 무언가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모임과 조직이 필요하다. 모노허라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 중 이것에 관심있는 청년들은 내일 아침 학교로 모이길 바란다.” - 썬저이 시레스터 (마을 청년)

◀▲ 마을 축제 풍경 ▼ 10년만에 학교를 위해 다시 삽을 든 교장선생님

마을 청년, 마을의 핵심 주체로 성장하다. 청년들은 마을의 아이들을 위해 <방과후 교실>을 열어 학습과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고, 베시마을의 행복한 일상을 담은 <사진 전시회>를 기획해 열었으며 <운동장 영화관>을 만들어 마을사람들과 영화도 보며 담소도 나누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품은 청년들 과 또 한 사람의 마을 청년처럼 관계도 쌓아가며 회의와 워크숍 등과 같은 일상적인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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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을 지원했다. 청년들은 일련의 활동을 통해 마을에 사랑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 식해냈고, 품이 청년들의 의견을 토대로 ‘도서관’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를 제시했다. 만약 마을 도서관이나 청년조직이 외부의 일방적인 지원을 통해서 진행되었다면 마을의 어느 누구도 주 인의식과 스스로 하고자 하는 용기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 청년들은 마을 주민들에게 도서관의 필요성을 전달하고 모금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마을 도서관을 짓기 위한 활동을 했 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돈과 노동력을 기부해 학교 건물 윗 층에 도서관이 완공되었다. 품 은 베시마을과 관계가 있는 (재)청소년과 사람사랑* 측에 지원을 받아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지붕, 창문제작 비용을 보탰다. 2009년 1월말 도서관 완공을 축하하며 마을은 작은 축제를 열 었고 마을에는 주민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마을의 공간이 생기게 되었다.

(왼) 도서관 전경 | (중)방과 후 교실 풍경 | (오) ‘행복한 우리 마을’ 사진 전시회 풍경

이후 청년들은 도서관을 중심으로 활동을 만들어 갔다. 도서관을 관리하고, <방과후 교실>을 흡수해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마을 안에서 도서관의 역할을 찾아갔다. 품은 청년들의 멘토처럼, 친구처럼 일상적인 지원을 이어나갔다. 2010년에는 마을 도서관이 다양한 활동들을 생산해 낼 수 있는 공간이자 마을 사람들의 소통 공간이며 아이들에게는 학습과 배 움이 가능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서울시 민간단체 지원사업의 공모를 통해 4명의 마을청년 을 한국에 초청했다. 품과 연계되어 있는 도봉지역의 <초록나라어린이 도서관>, 안산지역의 < 별과 민들레> 선생님들에게 지역 안에서 작은 도서관이 가져야 하는 역할, 책의 중요성과 필요 성, 다양한 도서 프로그램, 도서관 관리, 지역과 도서관이 어떻게 호흡해야 하는지 등을 실제 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했다. 2008년에 완공된 마을의 작은 도서관은 나름의 굴곡을 거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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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모노허라 공립학교와 만나 진행한 <Happy School Project>는 재단 소속의 나눔학교와 함께 진행했었다. 이를 통해 재단 역시 베시 마을과 학교에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었으며 도서관 지원에도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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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1주년 때마다 크고 작은 잔치도 열고 있고,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은 10배가 넘게 늘었으며, 보유 장서의 종류와 수도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마 을 주민 특히 주부들의 방문 역시 늘어가고 있다. 또한 도서관은 주민들의 모임과 회의공간 으로, 청년들의 활동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학교는 아직 1차적인 수준이지만 수업 시간표에 도서관 수업을 배치해 교사들이 책을 읽어주거나 책을 활용한 수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제 도서관은 주민을 대상으로 소액이지만 정기적인 후원금을 받아 도서관 관리운영할 수 있는 자 체 예산구조를 만드는 과정에 돌입했다.

(오) 일상적인 도서관 풍경 | (왼) 한국 초청 교육 시 품의 아이들, 놀이터와 만났던 베시마을 청년들

몇 년간 청년들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성장했고, 마을주민 역시 참여 정도가 늘어가고 있다. 이 성장에 상상과 시도가 보태져 ‘마을신문’이 탄생하게 되었다. 2009년도 말 청년들과 가슴 떨리는 합의 과정을 거쳐 <마을신문 ‘베시’>가 탄생되었다. 처음으로 발행되던 날 소박한 마 을 잔치도 열어 신문의 시작을 알렸고, 인쇄에 필요한 예산마련을 위해 마을 주민들에게 정기 기부를 약속 받았다. 마을신문 ‘베시’는 마을의 크고 작은 알림, 정보, 마을 주민들이 주인공이 되는 소식 등이 담기고 있으며 월 1회 발간을 한다. 또한 최소한의 인쇄경비를 알려 유료로 배 포되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신문이 안정적으로 발행되고 유지되지는 못했다. 신문에 대한 마 을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했고 그에 따라 필요한 비용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다. 또한 도서관 운영, 크고 작은 마을 행사와 일들에 청년들의 역할이 적지 않은데 신문을 만들어 내는 일련 의 과정들은 청년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되었다. 실제로 몇 개월 간 발행이 멈춘 적도 있었지만 신문을 포기하지 않았다. 품의 의지도 한 몫 했지만 청년들의 자발적인 동기와 의지 로 출발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제는 신문을 기다리는 주민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으며, 필요한 만큼의 예산도 모아지고 있다. 현재는 마을의 아이들, 주부 등이 신문을 만들 어가는 주체로 참여하고 신문을 통한 소통과 변화의 확장을 위해 느리지만 가능성들을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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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가고 있다.

기사를 취재하고, 쓰고 있는 마을 청년과 마을신문 ‘베시’를 읽는 주민들

2007년 20여명에서 출발한 청년조직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소수의 청년들로 집중되었다. 하지만 청년들의 활동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 는 청년들의 동생들, 소수의 새로운 청년들, 몇몇의 아이들이 조금씩 순환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짧지만 7년간의 지속적인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순환구조가 그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가치와 희망이 스스로 변화되고 확장되어지는 다음 과정을 만들어가는 토대가 될 것이다. 현재 행복한 마을 만들기의 핵심 주체는 마을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이다.

학교의 변화는 곧 마을의 행복이다! 모노허라 공립학교는 부모세대를 잇는 끈임과 동시에 아이들에게 지식적인 가르침과 더불어 삶 을 교육하는 곳으로 마을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산실이자 매개체이다. 하지만 학교가 네팔 사회의 변화와 학부모들의 욕구를 해결해 주지 못하면서 학교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다. 교사들 스스로 교사로서의 책임감을 잃은 문제도 있지만 네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도 동시에 있다. 네팔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교사의 전공과 무관하게 공백이 있는 과목에 그냥 배치해 수 업의 질과 교사의 책임감을 떨어뜨리는 사례가 적지 않고 모노허라 공립학교의 몇몇 교사들도 이 경우에 해당되었다. 또 설립 때부터 주민들로 구성된 학교 운영위원회 역시 유명무실해져 교사들에게 긴장감과 자극을 줄 수 있는 어떠한 환경도 존재하지 않아 교사들의 무기력증을 키웠다. 그렇지만 교사들 스스로도 변화의지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수업을 위한 자기개발을


위한 노력 역시 매우 부족했으며 심지어 학교를 멋대로 빠지거나 수업 시간에 밖으로 나가 차 를 마시는 일도 허다했다. 교사들은 문제를 외부 환경 때문이라고 회피만 한 것이다.

품의 잦은 방문, 크고 작은 마을의 잔치와 행사들은 모두 학교에서 진행되었고 교사들 역시 크고 작은 역할을 담당하며 자극을 받았다. 하지만 보다 교사들에게 맞는 또 필요한 근본적인 자극이 필요했다. 2008년 교사들과 처음 워크숍을 진행해 교사로서 가져야 하는 태도를 스스 로 점검해 보았으나 교사들의 긴장감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실망하지 않고 청년을 중 심으로 한 마을의 여러 활동과 베시마을과 연결한 여러 문화교류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는 데 교사들을 적극 참여시키며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교사들을 자극했다. 2011년 5월 두 번째 워 크숍이 진행되었고, 교과과정에 좀 더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교구활용 및 교수법에 대한 것들 로 구성되었다. 교사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고, 일련의 과정에서 받았던 느슨한 자극이 함께 결합하면서 교사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교사들은 서로 배운 것을 교환하는 자체 워크숍 진행 했고, 학교 최초로 학부모들을 초대해 오픈교실을 진행하였다. 마을 주민과 학부모들 30여명 이 참여해 교사들의 변화의지와 결과에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반응에 힘입은 교사 들은 앞으로 오픈교실을 한 달에 한 번씩 운영해 마을 주민과 학부모들에게 학교 수업의 변 화와 교사들의 의지를 표현하고, 대화하는 과정을 만들어 가자는 계획을 세웠다. 현재 교사들 은 마을 주민들과 청년들이 갖고 있는 불신에 대해 맞설 수 있는 자신감과 교사로서의 자긍 심을 회복해 가고 있는 중이다.

(왼) 2차 교사워크숍 장면 | (중) 오픈 교실에서 교사가 부모들에게 설명하는 모습 | (오) 교사회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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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베시의 가능성은 골리 마을로

세르파들*의 고향, 골리마을과의 인연

베시마을에서 보았던 희망은 에베레스트 솔로쿰부 지역의 작은 마을 골리마을로 이어졌다. 솔로쿰부 지역은 세르파의

고향이다. 품은 네팔 친구 Ang Jangbu Sherpa가 등록했던 현지 단체를 ‘NGO NEPAL PUM’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가 NGO를 설립한 이유는 자신 의 고향 골리마을을 지원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품에게도 책임이 있었지만 처음 3년간 진행 했던 ‘한국-네팔 문화예술교육워크숍’을 했을 당시에는 역할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베시 마을의 가능성과 발견하며 골리마을을 지원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았던 것이다.

골리마을은 에베레스트 지역이지만 트레킹 코스에서 벗어난 곳으로 외국인의 방문이 거의 없으며 경제적 발전은 없지만 그만큼 세르파 민족 문화와 공동체 가 살아있는 마을이다. 카트만두에서 차로 하루, 고 도 1,000m를 오르 내리며 2틀을 꼬박 걸어야 마을에 당도할 수 있다. 골리지역에는 9개 마을이 있으며 총 458가구 2,300여명이 살고 99%가 농업과 가축을 키 우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히말라야에 기대어 살며 자연적 삶의 환경은 풍부하지만 불균형한 삶의 환경을 안고 사는 전형적인 산간마을이다. 또한 골리마을에도 부는 도시에 대한 로망의 열기는 점차 커져가면서 빈집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있으며, 청년들 역시 수입과 학업을 위해 골리마을을 떠나는 경우 역시 자주 발생하고 있다.

골리마을에 지어진 작은 도서관과 약국

작은 간이 약국 하나 없던 솔로쿰부지역 골리마을에 반드시 필요했던 의료지원과 더불어 베시마을과 같이 그들이 가진 에너지를 희망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도서관을 함께 짓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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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동부 히말라야 산속에 살고 있는 티베트계(系)의 한 고산민족으로 라마교를 믿으며 농업, 목축업, 상업 등에 종사한다. 에드먼드 힐 러리(뉴질랜드)가 에베레스트를 최초 등반할 때 세르파의 도움이 컸다. 이후 트레킹업에 주로 종사하고 있다. 품은 <오~히말라야>, <문화 교류> 사업 등을 진행하며 세르파들과 많은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식구같은 관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했다. 파트너로서 관계가 가능한 지원처를 찾기 위한 노력의 결과 <꿈희망미래 재단>과 <연 강병원협회>를 만나게 되었다. 꿈희망미래 재단이 연결이 가능했던 것은 90년대 품의 청년 자원활동가였고, 지금은 품의 주주이신 ‘박경호’선생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일이었고, 연경병 원협회는 품과 오랜 관계를 가지고 모노허라학교의 변화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 (재)청소년 과 사람사랑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축제로 말을 걸었던 베시마을과 과정이 달랐던 것은 Ang Jangbu Sherpa와 네팔 품 직원 인 Ang Sange Sherpa(이하 상게)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배경 덕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가깝게, 신뢰감을 가지고 첫 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품은 일방적인 경제적 지 원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마을 작은 도서관과 약국을 짓는 과정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들 어 갔다. 마을 사람들과 몇 차례 주민회의를 하면서 도서관의 역할과 중요성, 약국의 운영계 획 등을 전달했고, 마을사람들 역시 땅을 기부하고 노동력을 품앗이하기로 결정하며 일이 발 빠르게 진행되었다. 공사 기간 중에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서 새참을 돌아가면서 준비하 는 등 적극적인 참여를 보여주었다. 이후 공사가 완공되던 후 골리마을 축제를 열어 함께 흘 린 땀을 나누고 축하를 나눴고 베시의 첫 마을축제처럼 도서관 공간도 꾸미고, 마을 사람들과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며 기분 좋은 시작을 열었다.

(왼) 마을 주민들이 참여로 공사진행 | (중) 완공 된 도서관과 약국 전경 | (오) 세르파 전통 방식의 축하 세레모니

도서관과 청년을 중심으로 변화가 시작되다

골리마을 역시 청년들을 찾았다. 첫 축하 세레모니 후 마을 잔치를 열어 청년들을 참여시 켰다, 역시 자극받은 마을 청년들은 상게를 중심으로 의기투합했다. 도서관 운영 및 관리 를 담당하기로 했으며 마을을 위한 일들을 해보자는 의지와 동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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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네팔문화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관계를 맺게 된 임지은작가*를 골리마을 도서관에 1년간 파 견을 해 청년들을 상게 뿐 아니라 일상적인 과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골리마을 청년들은 청 년들 대부분은 멀리 학교를 다니고, 집안일을 도와야 해서 많은 시간을 낼 수는 없지만, 틈 나는 대로 도서관에 나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마을꼬맹이들을 위해 작은 <방 과 후 교실>을 열었고 상시적으로 <도서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도서관의 문턱을 낮추는 일을 진행했다. 늘 조용하던 마을에 새로운 활력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마을 어른들도 호의 적인 시선으로 지켜보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품을 어떤 경제적인 원조 단체로 인식하지 않고, 무언가 함께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친구’로 인식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품도 네 팔을 방문할 때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골리마을을 찾았고, 품의 주주와 함께하는 <오~ 히말라야> 팀이 마을을 방문해 마음을 나누는 등의 시간을 마을과 관계를 이어갔다. 또 방 문 때마다 청년들이 만들어 내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지지하고 응원했다. 현재 골리마을에 지어진 도서관과 약국은 Ang Jangbu Sherpa가 중심이 되어 운영과 예산까지 마련하며 과정을 만들어 가고 있다. 베시마을과는 다르지만 골리마을만의 속도로 느리지만 흐르고 있다.

(왼) 도서관 활동으로 즐거운 아아들 | (중) 도서관의 일상 풍경 | (오) 도서관 운영을 맡고 있는 청년들

*

임지은작가는 <셋넷학교>의 자원교사로 활동하고 있었고 2007년 품과 <셋넷학교>가 네팔문화교류사업을 진행할 당시 알게 되었다. 2008 년에는 품에서 진행하는 “한국-네팔청년문화실천워크숍”에 참여하며 품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네팔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진작가이면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임지은작가는 흔쾌히 골리마을에서 1년간 파견하는 활동에 참여했다. 네팔 사업설명에 사 용된 사진 역시 임지은작가가 찍은 것이 많이 있더.


소통과 연결을 중심으로 한 문화교류 사업 문화교류 프로그램의 방문 목적과 형태는 다양했다. 그러나 방문의 목적과 형태가 무엇이든지 지금까지 고수하는 몇

한국과 네팔을 잇는 문화교류

가지 원칙이 있다.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존중하는 태도 뿐 아니라 무엇보다 그들의 삶의 방식, 문화 등을 배우려는 자세, 주는 것이 아 닌 나누는 태도를 강조한다. 또 ‘서로에게 즐거운 경험과 자극의 기회로서 가능한가?’를 먼 저 찾은 후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내용을 구상하고 그에 맞는 사전준비 과정을 가지고 있다. 년도

단체

프로젝트 내용

2007

(재)청소년과사람사랑 ‘나눔학교’

베시마을 모노허라 학교와 Happy School Project

탈북청소년대안학교 ‘셋넷학교’

랑탕지역 트레킹 및 베시마을과 짧은 만남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

가족회원 히말라야 트레킹

CJ나눔재단

전국공부방청소년들과 한국-네팔 희망나눔 프로젝트

광명1동청소년문화의집 ‘오름’

네팔사립학교 청소년들과의 문화교류

(재)청소년과사람사랑 ‘나눔학교’

‘오름’의 청소년들과 문화교류

National Model Science School

한국으로 여행_ ‘오름’의 청소년들과 문화교류

경기문화재단

문화복지아카데미 심화연수과정 1차 _ 모노허라 학교연계

경기문화재단

문화복지아카데미 심화연수과정 2차 _ 사립학교 연계

마을 N도서관

베시마을 작은 도서관 탐방 연수

고리울청소년문화의집

베시마을 모래먼지 줄이기 캠페인

양업고등학교

1학년 해외이동수업(랑탕지역 트레킹 및 자유여행)

경기문화재단

문화복지아카데미 심화연수과정 3차 _ 모노허라 학교연계

2011

광명1동청소년문화의집 ‘오름’

베시마을 모노허라 학교와 문화교류 및 캠핑

2012

꿈틀학교

베시마을 모노허라 학교 리코더 동아리와 음악수업

2008

2009

2010

(왼) ‘오름’친구들과 베시마을 나들이 | (오) 고리울 친구들과 베시마을 모래 줄이기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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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지금까지 품을 통해 네팔을 방문한 단체가 적지 않다. 이 문화교류 사업들은 각기 원하는 프 로젝트의 목적에 따라 네팔의 사립학교, 현재 NGO 단체, 베시마을 등과 연결해 진행했다. 특히 베시마을과 연결해 진행할 때는 베시마을의 관점에서 마을의 흐름의 변화에 필요한 시 도와 계기들로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 베시마을은 여러 문화교류 프로그램과 교육연수를 통 해 모노허라 학교 아이들, 교사, 마을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의 기회이자 타국 사람들과 교감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방문한 사람들은 무엇보다 베시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자신 의 일상과 환경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이 깨닫지 못했던 물질적인 풍요 로움과 행복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다시 해 보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 다 많은 성과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프로그램의 세 주체들이 만남의 본질을 잊지 않았기 때 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1인 NGO! 청년자원활동가 “1인 NGO가 되어라!”라는 말은 요즘 품이 청년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형태를 가진 NGO 를 설립하라는 뜻이 아니다. 청년으로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변화를 위한 실천적 행 동을 하며 살아가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로 청년들로 하여금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 에서 실천하기’를 배울 수 있도록 품은 베시마을에 청년들을 파견하고 있다. 베시마을의 아이 들, 마을 청년들 역시 다른 문화에서 온 한국 청년들에게 자극을 받을 수 있다. 현재까지 4명 의 청년들이 짧게는 2주간 길게는 1년 5개월간 활동을 하며 베시마을을 거쳐 갔다.

한국 청년들은 아이들과 도서관과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며 마을 청년조직과 좌충우돌 협업 과정을 만들었다. 이 과정을 통해 4명의 한국 청년들과 베시마을과의 만남은 서로에게 큰 자극 과 영향을 주었고,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과 감정들을 교감하는 시간이 되었다. 앞으로도 품은 스스로 1인 NGO가 되고자 하는 청년들과 네팔을 연결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베시마을에 1년 6개월간 머무르며 학교에 음악동아리(리코더)를 만들어 낸 청년 안하나.


품의 주주와 네팔을 잇는 “오~히말라야” ‘좋은 것을 좋은 사람들과 나눈다.’라는 단순하지만 당연한 생각이 <오~히말라야>의 출발이 었다. <오~히말라야>는 지금까지 167명을 네팔과 이었고, 품 직원들에게 역시 쉼의 기회가 되고 있다. <오~히말라야>는 품의 주주만이 참여할 수 있는 주주만을 위한 특별한 여행이다.

<오~히말라야>는 품이 네팔에서 활동하면서 배운 시각과 정보를 토대로 ‘어떻게 만날 것인가?’ 를 학습하는 2~3차례의 사전과정을 가진다. 여행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히말라야 트레킹 인데 ‘같이 걷지만, 혼자 걷는 듯’ 여유있는 걸음과 높이가 아닌 마음과 눈으로 교감하는 히 말라야를 만나도록 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품과 연결되어 식구같은 세르파, 따망 등의 티벳 민족들 덕분이다. 그들로부터 네팔의 문화와 정서, 마음을 고스란히 전해주며 여행의 아름다운 동반자가 되어주고 있다. 또한 트레킹 후 개인 여행으로 주어지는 3박 4일간의 시간에는 원한 다면 관심있는 영역의 현지 NGO단체 방문, 청년 예술가, 베시마을과 품이 연결해 주고 있다. 년도

여행 장소

침여 주주

2006

랑탕지역(샤브루베시 - 캉진곰빠)

36명

2007

랑탕지역(샤브루베시 - 캉진곰빠)

32명

2008

랑탕지역(샤브루베시 - 캉진곰빠)

27명

2009

랑탕지역(샤브루베시 - 캉진곰빠)

12명

2010

에베레스트 지역 골리마을로 떠난 공정여행

15명

2011

랑탕지역(순다리잘 - 쿠툼상 - 타다빠니-타케강)

24명

2012

랑탕지역(순다리잘 - 쿠툼상 - 타다빠니-타케강)

21명

네팔에서 돌아오고 나선 한 번도 못 느꼈던 감정을 같이 갔던 사람들을 만나며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고. 그분들에게 나는 여러 가지를 듣고 보고 배우며 내이야기도 하면서 정리되지 않던 생각들을 정리 할 수 있었다. 난 네팔을 다녀오기 전까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네팔에 같이 다녀온 분들에게 이야기를 나누며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나는 이번 오 히말라야를 통해 얻은 것 중 이 사람들을 만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 한다. - 이제는 청년이 된 이준규 (2007, 오~히말라야를 다녀와서)

<오~히말라야>에 참여한 주주와 품의 아이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한국에서의 삶의 에너지를 네 팔의 사람, 히말라야에게 얻고 있다. 앞으로도 <오~히말라야>는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쭈~욱!


품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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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네팔의 품

마을과 함께 성장하고 변화하는 네팔 품

2006년 네팔 품 사무실을 마련한 것은 단순히 업무 공간

을 확보하기 위함보다는 상호적인 성장이 되기 위해서는 연결성 있는 사업운영, 일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

네팔에 대한 이해 등이 이유였다. 네팔 품은 5년간 카트만두의 여행자 거리인 타멜 인근에 위 치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아름다운재단의 공모사업을 통해 운영비를 지원받으며 사 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품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는 베시마을을 일주일에 1~2차례, 골리 마을을 1달에 1차례 이상 오갔다. 청년과의 회의와 활동지원, 주민회의 뿐 아니라 가끔은 마 을 주민들과 벼를 베기도 하며 관계를 맺었다. 그러면서 역할도 분담이 되었다. 베시마을은 품이 중심으로, 골리마을은 Ang Jangbu Sherpa가 중심이 되어 과정을 만들어 가고 있다.

품은 마을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활동을 통해 ‘마을’은 보다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 게 되었다. 다양한 세대들이 마을 안에 살아가고 있으며 경제, 교육, 환경 등 모든 것은 서로 얽혀있다. 어느 한 부분의 변화만으로 ‘마을’로의 변화를 만들어가기에는 부족함을 느꼈다. 외 부인인 품이 언제나 ‘손님’인 것은 분명하지만, ‘주인으로서의 손님’으로 마을에서 좀 더 일 상적인 삶을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

베시마을로 들어간 품은 마을의 새로운 공간에 또 다 른 사무실을 차린 것이 아니라 도서관의 한 켠을 사 용하고 있다. 소유하고 있던 사무기기 및 기자재 등 은 학교와 함께 공유하며, 아이들의 교육과 청년들의 활동을 위해 활용되고 있다. 한국인 활동가 역시 마 을 주민들 중 집을 빌려 살아가고 있다. 활동가의 집 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대략 도보로 15분 정도 걸리 지만, 실제로 학교에 도착하기까지는 몇 배의 시간이 걸린다. 안부도 묻고, 오늘 날씨가 어떤지, 어제 밥은 무엇을 해먹었는지 등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로 수다 를 떨다 보면 시간이 훌쩍 흘러 버린다. 조금씩 인사 하는 주민들의 수도 늘어나고, 이제는 품의 활동가를


딸처럼, 친구처럼 진심으로 여겨주는 사람 역시 늘어나고 있다. 이제 품은 베시마을에서 ‘주 인으로의 손님’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마을주민, 청년들과 행복한 마을에 대해 끊임 없이 함께 고민하며 실천해 나갈 것이고 시도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까지 마을에 머 물 것인가 결정할 수 없다.

네팔 활동을 통한 한국 ‘품’의 변화 3년간 ‘한국-네팔문화예술교육워크숍’을 진행할 때는 네팔과 한국 품 사이의 연결점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3년간의 실패는 네팔활동의 전환점을 만들어 준 것 뿐만 아니라 품이 살아가는 태도를 성찰하게 한 계기도 만들어 주었다. ‘속도’, ‘상호적’ 등과 같은 말들이 가진 의미를 다시 바라보게 되며 실무자들에게 사업을 바라볼 때 ‘우리의 속도’를 내부적으로 의 심하게 되었다. 점차 네팔 품이 베시와 골리마을에서 행복한 마을 만들기를 청년들과 진행할 수록‘일상’, ‘마을’, ‘통합적 접근’ 등의 키워드들을 역시 다시금 정리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당시 품에서 진행하던 강북청소년놀이터(문화존) 사업은 일상의 변화, 삶으로의 접근을 말하며 일련의 과정을 만들어 갔지만 고정된 틀을 넘어서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네팔 활동의 경험 을 통해 배운 ‘마을’은 보다 복합적인 존재들의 집합체로 이해되어야 하며, 사업 계획서에 정 해놓은 목표가 무를 자르듯이 딱 떨어지지 않는 곳이 ‘마을’이라는 점이었다.

이후 품은 마을을 바라보는데 있어 ‘통합적 접근’으로서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과정을 만들어 왔고 활동의 형태가 성장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강북지역에서는 마을장터가 진 행 중에 있고, 네팔 베시마을에서는 일방적인 목표를 설정하지 않고 마을사람, 주민들과 소통 하며 그들의 문화와 속도에 맞게 천천히 다음 길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한국의 강북지역에서, 네팔의 베시마을에서도 함께 삶을 살아가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올해 7월에는 광주대학교 참여복지센터와 함께 베시마을 사례를 중심으로 담은 책을 출판 할 예정이다. 20주년 기념사 에 살포시 이 책의 목차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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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대안적 NGO 활동과 글로벌복지 실천사례 “ 허실로 베시가웅(행복한 베시마을)”>  1막  _ 1장 ‘주는 자의 몫, 받는 자의 몫’ 오류와 함정에 대한 프롤로그 / 떠나려는 자들의 오류 / 오류와 반성 그리고 성찰 _ 2장 ‘히말라야 네팔 그리고 Good karma’ 여행이 만들어준 기막힌 운명 / 히말라야 그리고 네팔 / 치열한 실패가 만들어 준 희망  2막  - 1장. 흐름으로 보는 허실로 베시가웅 - 2장. 관계 맺기로부터 출발 히말라야 아래의 작은 마을 베시 / 관계 맺기를 통한 희망 찾기 / 축제로 말 걸기 - 3장. The Story of Happy village 청년! 마을의 중심으로 서다! / 학교의 변화는 곧 마을의 행복이다! / 소통과 연결을 중심으로 한 문화교류 사업과 청년 자원활동가의 파견 / 베시마을과 함께 성장하는 엔지오 네팔 품  3막  - 1장. 남의 땅에 들어갈 땐 모자를 벗어라 그들의 삶에 끼어들다 / ‘비뎨시(외국인)’가 범할 수 있는 오류 / 금보다 귀한 현지 문화 / 어떻게 모자를 벗을 것인가? - 자연스러움과 치열함을 넘나들기 거창한 의도로는 담을 수 없던 일상 / 말! 말! 말! /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가? / 오! 공동체 /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 찾아 삼만 리 / 나를 울게도, 웃게도 만드는 사람들 / 마을 축제가 자란다! / 지난한 일상의 과정이 빛을 발하는 순간 / 연대를 통해 꿈꾸는 또 다른 희망 / 원래 하고자 했던 일을 하고 있는가?  4막  나는 실무자가 아닌 한 사람의 주민입니다(이하니) / 나는 모노하라 학교의 교사입니다(러메스 랄 시레스터) 나는 베시마을의 청년입니다(꺼멀리, 무나시레스터) / 나는 베시마을의 자원활동가입니다(안하나, 이명화) 나는 베시마을을 지켜 본 네팔의 교육자입니다(람 바부 수베디) / 나는 베시마을 사례를 연구한 학자입니다(우수명)

현재는 네팔 품의 활동과 한국에서 이뤄지는 품의 활동이 보다 직접적으로 사업적 연결되는 것도 상상하고 있다. 예를 들면 <무늬만학교>의 운영체제가 정비되면 커리큘럼에 3개월간 베 시마을에서 살면서 학습하는 과정을 넣는 등의 다양한 상상들을 하고 있다. 더불어 베시마을 의 사례를 잘 정리해 관련 현장 실무자와 청년들을 흔드는 전달을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을 예정이다.


수단과 목적이 아닌 삶의 힘으로서의 교육을 꿈꾼다

대안교육 길 찾기

_글. 유현희

‘청소년교육’을 주제로 그 동안 학교 안팎에서 해왔던 시도들을 엮어 봤다. 청소년교육의 철학적, 경험적 기반이 된 ‘지역사업’과 실천적 경험을 바탕으로 사례를 나누고 사람을 흔드는 ‘교육사업’ 을 둘 다 경험한 덕에 청소년교육에 대한 첫 정리를 담당하게 되었 다. 품의 이름을 건 실험적 대안학교 ‘무늬만학교’가 시작되기 전 까지 품의 청소년교육 활동은 지역사업은 물론 교육사업의 성장과 정과도 맞닿아있다. 때문에 ‘십대와 마을 만들기’, ‘사람 흔들기’ 편을 함께 참고하면 더욱 이해가 빠를 것이다. 품 청소년교육활동 의 역사와 의미를 먼저 정리하였고, 무늬만학교 탄생을 기점으로 이전의 학교 연계 활동은 내가, 대안교육 길 찾기 과정은 현재 무 늬만학교를 담당하고 있는 가령이 나누어 정리하였다. 과거와 현 재의 사람들이 함께 미래를 이야기하며,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이 어가는 과정은 놀랍기만 하다. 부족하지만, 행복한 교육의 길을 찾 는 품의 여정에 의미 있는 기록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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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글의 순서] 교육과 함께 한 20년 품과 청소년교육 / 학교, 미워도 다시 한 번 / 제도와 일상의 경계에서 행복한 교육의 길을 찾는다

학교 손 잡기 ‘학교연계활동’ 학교CA지원사업 /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사업 / 학교문화예술교육사업 / 그리고 지금, 학교의 혁신은 가능할까?

대안교육 길 찾기 ‘무늬만학교’ 무늬만학교, 그 역설의 가치 / 무늬만학교의 탄생 배경 / 무늬만학교, 우리가 새기고 싶은 무늬(무늬만학교의 철학) / 무늬긋기의 여정(무늬만학교의 실제 교육과정과 교육의 키워드) / 무늬는 저절로 새겨지지 않는다 / 무늬만학교가 진짜 학교를 꿈꿀 수 있는 이유(무늬만학교의 꿈과 희망)


[품의 청소년 교육] 지역

십대 기획자

마을이 함께하는 교육

행복한 교육의 길 찾기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1998~현재)

학교 CA지원 (1998~2001)

청소년 기획단 노올지 (2000~)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 + 유쾌한 십대들의 동네 말걸기 (2008~현재)

교육복지투자 우선지역사업 (2003~2008)

세개와 심한개의 인문학교 (2009~)

일상(삶)을 연결하는

학교

학교, 미워도 다시한번

학교문화예술교육사업 (2005~2007)

인문학 놀이터 (2010~)

교육

지역과 학교가 함께 키우는 아이들

마을 속 인문특강 (2012~)

제도와 일상의 경계에서 행복한 교육의 길을 찾는다

무늬만학교 (2011~)

청년학교


240

품 20

교육과 함께 한 20년

품과 청소년교육

품의 역사에서 간혹 이벤트 단체, 문화행사 단체라는 오 인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품의 활동에 교육이 없었던

없다. 품이 아이들을 만나는 데 선택한 매개이자 방식이 축제이고 캠프이고 행사였던 적은 있 었지만, 아이들과의 과정에, 그리고 아이들과 만나기 위한 활동가들의 준비과정에 교육은 늘 존재했었다.

품의 활동에서 축제라는 마당은 아이들과 마을이 문화로 소통하며 성장하기 위한 매개로 존 재한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고 계획하고 실행한다. 품은 그것을 기 획이라 부른다. 기획의 과정에서는 무수히 많은 자기표현과 의사소통, 상상과 사유, 학습과 협 업이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과 타인을 만나고 비로소 세상을 만나며 성장한다. 품에서 줄곧 사용하는 ‘십대기획자’라는 말 속에는 결국 ‘스스로의 삶을 기획하는 주체로 성 장’하길 희망하는 품의 철학과 바람이 담겨있다.


품이 본격적으로 청소년 교육을 시작한 계기는 역시 ‘축제’였다. 1998년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을 시작하며 지역을 만나게 되었고, 축제의 주체로서 아이들의 역할을 고민하며 청소년 기획단 ‘노올자’를 만들었다. 축제와 기획에 대한 교육이 중심이었지만, 나름의 교육내용을 만 들고 ‘청소년문화기획아카데미’라는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을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2005 년 축제에 참여하는 동아리들의 교류와 성장을 위한 ‘동아리워크숍’이 생겨났고, 2008년 일 상의 문화 만들기를 주제로 한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가 시작되면서 동네와 문화, 기획을 중 심으로 한 동네판 ‘문화기획아카데미’가 새롭게 태어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품은 ‘인문학’ 을 만나게 된다. 아이들과의 만남이 일상화되고 아이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 서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 나와 세상을 바로 만나고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가려면 보다 깊은 내적인 힘이 필요하다.’고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242

품 20

그래서 시작된 것이 2009년 ‘세 개와 심한개의 인문학교’다. 심한기 대표님과 품에서 자라난 세 명의 청소년으로 이루어진 이 이상한 학교는 아이들에게도 품에게도 생소하긴 마찬가지였 던 ‘인문학’을 함께 탐구해가며 1년 반의 기적 같은 시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실험은 성 공적이었다. 학문적 깊이로 보자면, 무수히 많은 인문학 영역 중에서 ‘역사’ 하나 겉핥기 했 을 뿐이지만, 인간과 삶에 대한 공부가 왜 필요하며,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알기엔 충분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2011년에는 그 가치를 인정해준 고마운 출판사를 만나 목침 두께 에 버금가는 학습 다큐멘터리를 세상에 내어놓게 되었고, 수많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 며 각종 강연과 교육에 러브콜을 받기도 하였다.

2010년 품 주주들과 3년에 걸친 우리 아이들의 동네 말 걸기 과정을 어여삐 봐준 많은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청소년문화 공간’이 탄생하고, 공간을 배움터 삼아 ‘인문학 놀이터’ 같은 교육프로그램을 조금씩 시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1년 ‘무늬만학교’가 탄생했다.

무늬만학교는 품의 20년과 앞으로의 비전을 집약한 실험이다. 아이들의 삶과 문화, 교육에 대 한 고민을 담아내고, 문화와 예술, 복지, 지역운동, 국제 NGO활동 등 다양한 영역과의 만남 과 교육의 경험들을 녹여내고자 했다. 현재 주말학교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나 점차 일상학교 방식으로 확장될 예정이며, 향후 몇 년 안에는 심한기 대표가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품 속 학 교’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학교, 미워도 다시 한 번

품의 청소년교육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축제로 시작해서 무늬만학교에 오기까지 지역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만들어 온 과정이 한 축이라면, 또 다른 축에는 ‘학교’가 있다. 품의 놀이 터나 무늬만학교가 그렇듯, 배움이 일어나는 곳이 모두 학교라 치면, 정확히는 ‘공교육’이 라 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삶과 문화, 교육을 고민하며 빼놓을 수 없는 곳, 학교. 학교는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 첫 번째로 사회화 교육이 일어나는 곳이며, 아이들이 하루 일과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곳이다. 아이들의 매우 중요한 일상이자 삶인 것이다. 때문에 아이들을 만나는 품에게 학교는 함께 해야 할 필연적인 대상이었고, 그런 이유로 초창기부터 지금까 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학교의 문을 두드려왔다. 그런데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이 생각이


상호적이지 못하다는데 있다.

1998년 추락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학교CA지원사업(1998~2001)에서부터 교육복지투자우선 지역사업(2003~2008), 학교문화예술교육사업(2005~2007)으로 이어지는 학교와의 만남은, 슬 프지만 도전과 좌절이 반복된 역사였다. 학교는 아이들의 일상이자 함께 해야 할 중요한 파트 너이기에 포기할 수 없었지만, 사업이 끝날 때마다 ‘학교와 교사의 변화 없이는 일시적 프로 그램 지원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학교의 벽이 너무 높다’라는 식의 쓰라린 평가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심정으로 도전과 좌절을 반 복하며 10년을 보내고, 2007년 이후로는 사실상 이 애증의 관계를 그만두기로 결정했었다. 동 아리를 모집하거나 축제를 할 때면 여전히 학교에 공문도 보내고 뜻 있는 교사들과는 교류를 이어왔지만, ‘학교 안에 들어가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일랑 하지 말자. 그냥 우리 스타일 대로 학교 밖에서 하자.’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다가 2010년. 진보 교육감의 당선과 함께 서울 교육에 혁신 바람이 불었고, 이듬해 우리 지역에도 혁신학교가 생겼다. 그런데 새로 개교하는 혁신학교에 줄곧 만나왔던 ‘뜻 있는 교 사’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학교 차원의 변화 노력이 없으면 어렵다고 입버릇처 럼 말해왔었는데... ‘혁신 바람을 타고 새로 만든 학교에, 이런 교사들이라면 가능성이 있겠 다.’ 의견을 모았고, 그렇게 학교와의 만남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품에게는 전에 없던 일 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역교육청의 교육국장이 사무실을 찾는가 하면, 서울시교육청의 제안 으로 학생자치캠프 교육에 참여하였고, 그 여파가 지역교육청까지 이어져 지역학교 학생회 아 이들을 위한 교육을 연달아 위탁받게 되었다. 교육감의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이 변화가 제 대로 맺음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게 되었지만, 변화의 씨앗을 뿌렸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 씨앗들이 튼튼한 뿌리를 내리길, 그리하여 비로소 학교와 지역의 교사들이 아이들의 삶과 교육을 함께 논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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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제도와 일상의 경계에서 행복한 교육의 길을 찾는다

무늬만학교가 2기에 접어들었고, 지역에서는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연계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말마다 무늬만학교 아이들과 씨름하며, 많이는 못하지만 지역 학교에 학생회 교육 도 나가고 부름이 있으면 교사 교육도 나간다. 아이들의 삶에 구분이 없듯 품의 교육에도 제도와 대안의 구분은 없다. 학교에 들어가 대안을 이야기하고, 무늬만학교에서도 필요하 면 제도를 이야기한다. 상황과 맥락에 맞게 방식과 수위가 달라질 뿐 품이 아이들과 나누 고 싶은 이야기는 다르지 않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공교육과 대안교육의 역할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늬만학교는 대안학교지만, 기존 대안학교의 다른 이름이 되고 싶진 않다. 제도와 일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 시대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학교를 만들고 싶다. 함께 살아가며 배 우고 나눌 수 있는, 아마도 지극히 품스러운 학교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품스러운 게 뭔지 궁금하시면, 품20년사를 정독하시라. ^^).


학교 손 잡기 ‘학교 연계 활동’ 학교CA지원사업 1998~2001 1998

번동중 전래놀이반

대문 놀이, 산가지 놀이, 땅뺏기, 꼬리따기, 다방구, 제기차기 등 우리 놀이, 놀이신문 제작, 전래놀이 한마당 운영

1999

번동중 놀이연구반

여럿이 함께, 벌꿀놀이, 원시인 만들기, 고무줄 화살놀이, 색깔찾기, 고양이와 쥐, 의자릴레이, 다리줄이기, 마술놀이 등 놀이체험과 개발

도봉중 지역탐사반

유해환경탐사, 하천탐사, 동네릴레이

창일중 전통예술연구반

탈춤민요장구배우기, 소리극 연출하기, 난타, 전래놀이

도봉정산고 정보문화연구반

자연 속 정보 찾기, 자기소개 웹페이지, 홈페이지 제작 실습, 홈페이지 시연

선덕고 문학반

형용사 게임, 비교토론, 조각 맞추기, 문학지도 만들기, 패러디 문학회, 문학 장터, 문학CD롬, 벼룩시장 운영, 문학 토크쇼

학교 CA 축제

1999.11.1 / 덕성여대 대강당 CA 활동 전시 및 발표, 학교 CA 소개와 참여방법 안내, 지역 학교 동아리 전시와 축하공연

번동중 놀이연구반

테마가 있는 놀이, 탐방활동, 놀이타임캡슐 만들기

신경여실 대중음악반

음악책 만들기, 인디밴드재즈클럽방문, 뮤직비디오 제작, 음반만들기

신방학중 스타연구반

스타 발표회, 스타 굴렁쇠, 매니저 체험, 스타 이력서 만들기

창일중 연극놀이반

즉흥극 연출하기, 대본선정, 캐스팅 및 스텝구성, 등장인물 분석, 동선만들기, 스텝 진행하기, 작품분석과 연극읽기, 조화만들기

영훈고 영화만들기반

단편영화 보기, 영화장르 알기, 영화제작과정 역할극, 시놉시스콘티 만들기, 단편영화 제작, 제작영화 상영, 기성영화 모니터하기

창문여중 지역탐사반

초상화그리기, 우리학교 OL, 영화테마열차, 여의도공원 문화지도, 북한산 수 목탐사,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 탐방, 공동체 놀이

수유중 자원활동반

자원봉사 가치경매, 자원봉사동아리 ‘나누리’와 대담, 북한산 지킴이 인터뷰, 장애아동시설독거노인 자택 자원봉사

2000

2001

학교와의 만남을 위한 구체적인 첫 시도였던 학교CA지원사업은 학교 선정과 CA 프로그 램 개발, 자원지도자 교육과 파견을 통한 연중활동, 축제로 이어지는 연간과정이었다. 1998 년부터 2001년까지 10개 학교가 참여했으며, 14개 CA 활동을 지원하였다. 활동의 제한성 때문에 지속적인 과정과 관계를 만드는 것이 어려웠고, 품 투입인력의 한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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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학교와의 소통 문제 등으로 중단되었다. 그러나 다양한 CA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자원지 도자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며, 학교와 관계를 열고 학교의 시스템을 알 수 있었던 점에서 의미 있는 첫 시도였다.


학교CA지원사업 1998~2001 2003

연구사업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사업 연구지원센터 연구위원 활동 -심한기, 한국교육개발원, 2003~2004

2004

미양초 CA 지원 ‘놀이연구반’

2004.3.26~12.17(17회) / 미양초 / 23명 자기놀이 경험, 타인놀이 관찰, 개인과 집단놀이 기획, 파티 만들기, 파티

미양초 특기적성 교육 ‘영상제작반’

2004.3.26~6.15(10회) / 미양초 / 미양초 21명 놀이를 통한 미디어 이해, 카메라 익히기, 뮤직비디오 만들기, 작은 발표회

번동초 특기적성 ‘방송반-미디어 교육’

2004.6.6~12.31(12회) / 번동초 방송실 / 방송반 15명 미디어의 이해와 활용, 카메라 익히기, 영상물 제작, 방송제

번동중 CA 지원 ‘청소년문화탐구반’

2004.4.10~9.11(5회) / 번동중 / 문화탐구반 22명 상상과 발상, 축제 OT와 기획, 축제 참여를 통한 실행

지역사회교육전문가를 위한 ‘미디어워크숍’

2004.6.14~7.13(10회) / 오현초 멀티미디어실 / 지역사회교육전문가 5명 복지영상 이성종님과 함께 / 미디어의 이해, 이미지텔링, 영상제작과 발표회

지역 협력 프로젝트 ‘우리동네 보물카드 만들기’(생태)

2004.8.2~5 / 북한산 소귀천 계곡 일대 / 지역 초등 3-4학년 23명 생태전문가 심상옥님과 함께 삼각산 이야기, 감수성 OL, 생태탐사(소귀천 식 물과 수중생물 관찰), 카드 제작과 놀이 개발 / 추후 카드 제작, 배포 ※ 열린사회북부시민회 주관, 문화유적은 열린이 생태는 품이 담당

번동중 CA 지원 ‘청소년문화탐구반’

2005.3.19~11.5(14회) / 번동중 / 문화탐구반 17명 학교 문화 모니터링, 변화 프로젝트 기획과 실행, ‘추락’을 통한 청소년문화 만나기, 학교축제 참여(문화탐구반 소개)

강북 교육복지 실무자들을 위한 ‘흐름워크숍’

2005.10.1~3 / 바람과물 연구소 / 지역 교육복지 관련 실무자 13명 바람과 물 따라 산책하기, 여정지도 그리기, 당사자성에 근거한 존재 찾기, 삶을 연결하는 통합적 기획에 대한 이해와 실습

번동초 동아리 지원 ‘방송반’

2006.4~12(35회) / 번동초 방송반 / 방송반 12명 미디어의 이해, 방송반의 역할 이해와 소속감 갖기, 개인 미디어 작업(사진 수필 만들기), 팀 미디어 프로젝트(번동초 동아리 활동을 말하다), 동아리 교 류캠프, 학교 방송 만들기, 방송제, 신입부원 모집

번동초 동아리 연합캠프

2006.7.21~23 / 도봉숲속마을 / 합창반, 댄스반, 방송반 30명 동아리 소개와 교류활동, 동아리별 작업과 발표회

2007

노원 청소년 활동가 워크숍 ‘당신의 삶은 문화적입니까?’

2007.2.24~25 / 바람과물 연구소 / 노원지역 청소년 활동가 17명 나와 문화(심한기), 오감소통(박상영), 공간넘기(김월식), 한밤토크, 너도 예술 가(김영현)

2008

교육청 협력사업 번동중 ‘생동감 넘치는 학교 만들기’

청소년문화기획단 : 2008.5~2009.2 -기획 이해와 실습, 학교문화 기획과 실행, 지역축제 참여 / 에이스벤추라 번동중 문화캠프 : 2009.2.25~27/봉도수련원/교육복지 대상학생 37명) -모둠 만들기, 연극놀이, 요리창작, 놀이기획, 뽐내기 발표회

2005

2006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사업과의 인연은 2003년 심한기 대표의 연구과정 참여로 시작되었다.


248

품 20

초기 사업시행을 위한 공청회, 사업설명회, 지역선정 등에 참여했으며 서울과 부산으로 시 작된 교육복지투자우선지원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설계와 학교장, 교사 교육 그리고 지역 사회전문가와 교육청 pc의 선발은 물론 사업주체들의 교육부분 중 문화복지 영역을 기획 하고 교육했었다. 우리 지역에서는 강북구와 노원구가 교육복지 대상지역으로 선정되었고,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강북구를 중심으로 학교 CA 및 동아리 지원, 실무자 교육이 활 발히 진행되었다. 하지만 애초에 상상했던 그림과 다르게 흘러가는 정책과 사업에 대한 실망, 적극적인 매 개자 역할을 했던 초기 실무자들의 이직 등으로 사업은 점차 힘을 잃었고, 현재는 교육복 지 영역과 거의 교류가 없는 상태다. ‘기존 공교육 시스템이 가지는 한계를 넘어 지역사 회의 모든 아이들이 일상적 교육과 문화를 누리게 하자’던 초기의 기대는 유토피아적 상 상이었을까?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사업을 통한 학교와의 만남이 전혀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CA 나 특기적성 프로그램을 활용한 지속적 동아리 지원을 통해 학교의 문화를 자극할 수 있 는 기회였고, 품에게는 초등 대상 문화교육을 처음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또한 학교와의 협업에 있어 정책적 기반이나 학교의 태도도 중요하지만, ‘결국 어떤 사람 이 함께 하는가’가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2004 번동중 문화탐구반

2004 강북교육복지실무자를 위한 미디어워크숍

2004 우리동네 보물카드 만들기

2006 번동초 방송반


학교-지역 연계 문화예술교육사업 2005-2007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사업이 시작될 무렵, 한편에서는 문화예술교육의 붐이 일고 있었다. 2003년부터 정부에서는 ‘개개인의 삶의 질 향상’과 ‘사회문화적 역량강화’를 위한 문화 예술교육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고, 2004년 11월에 문화관광부와 교육인적자원부가 공동으로 ‘문화예술교육활성화 종합계획’을 발표하였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2004년부터 학교-지역 연계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이 추진되게 된 것이다. 문화예술교육.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한 이 생소한 단어 때문에 품은 한동안 머리가 아팠 으나,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활동과 다름 아님을 깨닫게 되었고, ‘그냥 하던 일 열심히 하 면 된다. 다만, 문화와 예술 영역의 다양한 전문가들과 함께 해 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 리고 학교 만나기의 연장선에서 학교문화예술교육을 활용하기로 마음먹는다. 2005

청소년문화동아리워크숍

2005.7.30~8.5 / 강북청소년수련관, 창동청소년문화의집 4개 영역(밴드, 댄스, 풍물, 영상) 동아리 및 개인 160명 여는 마당, 분야별 워크숍(영역별 이해와 동기부여, 기능교육과 창작), 거리 공연

2008

학교 동아리 및 CA 지원

2006.4~11 / 5개 학교 9개팀 지원 수유중-연극놀이, 미디어, 화계중-밴드, 댄스, 수송중-밴드, 미디어, 강북중댄스, 밴드, 번동중-학교공간바꾸기 프로젝트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

2006.7.25~8.1 / 지역 공간 다수 / 지역 내 문화예술 동아리 90명 전체 OT, 분야별 아카데미(밴드, 댄스, 풍물, 기획/이론-실기-창작), 발표회 / ‘추락’ 참여로 연결

강북지역 문화예술교육 매개자워크숍

2006.12.14 / 성북교육청 상황실 / 유관 교사, 강사, 실무자 38명 교육사례발표, 현장의 목소리, 문화예술교육 강의

문화예술강사 워크숍

2006.12.29 / 강북KT&G 재가복지센터 / 문화예술교육 강사 13명 문화교육과 예술교육, 문화예술교육 강사의 정체성, 강북 문화예술교육 활성 화 방안

시범학교 통합지원 _ 화계중

2007.3~12 / 화계중학교 / 동아리, 학생회, 학교축제 통합지원 -동아리 지원 : 방송반, 도서반, 댄스반, 밴드반, 자유활동반 / 지역사회 문화 예술교육 전문가와 지역 공간 연계를 통한 연간 지원 -학생회 운영 : 자치교육, 두발규제 완화 운동, 학교축제 기획 -학교축제 지원 : 학교축제 기획과 운영(학생회 기획, 전교생 참여)

2007

‘청소년 문화 동아리 워크숍’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2005년 지역 내 청소년 기관과 연계 하여 청소년 문화 동아리들을 모았고, 기존의 기능 교육을 넘어 상상과 창작이 가능하도록


250

품 20

분야별 워크숍을 꾸렸다. 이는 ‘십대와 마을 만들기’에서 핵심적인 청소년 교육과정인 ‘청 소년문화기획아카데미’의 전신이 되었다. 2006년에는 보다 일상적인 지원의 필요성을 느 끼고 학교 내 동아리 및 CA를 선정하여 연간 지원을 시작하였고, 동아리워크숍은 문화예 술아카데미로 계속해서 이어졌다. 2년간의 시도는 학교 내 문화예술 동아리를 지원하고 지 역 차원의 교육 과정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지만, 외부강사에 의존한 단기적인 지원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고, 부동의 학교 앞에서 ‘정작 학교와 아이들의 문화가 변화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낳게 하였다.

2005 청소년문화동아리 워크숍

그리하여 2007년에는 한 학교만 통합적으로 지원해보자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화계중학 교가 5개 동아리와 학생회, 학교축제를 포함한 통합 지원의 시범학교가 되었다. 사업에 대한 이해와 협력을 위해 학교장, 교사들과의 미팅을 여러 차례 갖고 학교와 협약을 맺는 등 과 정에서도 공신력을 가지려 노력했으며, 품 활동가들과 외부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아이들에 대한 교육과 지원은 물론 교사들과도 소통을 위해 많은 애를 썼다. 그리고 그 과정에 품의


주주이기도 한 류현진이라는 괜찮은 교사가 있었다. 학교 선정부터 운영까지 그 한 사람이 이유이자 동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이들의 교사로서, 품과 학교 사이의 매 개자로서 훌륭히 역할을 해주었다. 그 결과 동아리들은 신이 났고, 학생회 아이들도 빛이 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했던 두발규제 완화 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학교축제까지 아이들 다운 발랄함으로 훌륭하게 이끌어냈다. 학급 참여단위로 전교생이 함께 하여 축제는 더욱 풍성했고, 축제 당일 날 동물잠옷을 입고 학교 앞에서 풍선을 나누어주던 교사들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2007 화계중학교 축제

그러나 이 성과가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었다. 그럭저 럭 협조도 해 주었고 인사도 받았지만, 아이들과 학교의 변화에 대한 교사들의 동의나 지 속 의지는 발견하기 어려웠고, 후에 들은 얘기지만 이 과정의 일등공신이나 다름없었던 류 현진 선생님에게 학교는 ‘학생회 그만 맡으라.’고 했단다. 품의 내부적 여건과 계속되는 회의감으로 학교문화예술교육사업도 그렇게 끝이 났다. ‘와서 해주는 건 고맙지만, 우리가 뭘 어떻게 할 생각은 없어요.’라는 학교. 참으로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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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그리고 지금, 학교의 혁신은 가능할까? 2011~현재

그리고 2010년까지 이렇다 할 학교와의 교류는 없었다. 2008년 놀이터를 만들고, 아이들 의 일상과 동네를 만나며 학교 밖에서 열심히 놀았다. 지역 활동에 함께 할 아이들을 모 으기 위해서 학교 홍보는 계속해왔지만, 그도 사실은 인연 있는 교사와 아이들의 입소문 이 훨씬 큰 효과를 발휘하였다. 그리고 2011년 진보교육감의 당선과 함께 우리 지역에도 혁신학교가 생겼다. 이상기류는 2011년 어느 날 감지되었다. 지역교육청의 교육국장이 불쑥 품 사무실에 찾아 온 것이다. ‘세상이 변하긴 변하는가보다.’ 싶더니, 서울시교육청의 고등학교 자치활동 캠 프에 이어 지역교육청의 학생참여위원회 교육과 초중고 학생회 캠프를 연달아 위탁받게 된 것이다. 2011

2012

서울시교육청 고등학교 학생회 자치활동 캠프

2011.2.14~16(2차) / 대천수련원 / 서울시 고교 학생회장단 300명 학생자치활동 강화를 위한 민주적 리더십(21C청소년공동체 희망) 다 함께 즐거운 학교 축제 만들기(품)

성북교육청 학생참여위원회 자치캠프

2011.7.20~21 / 도봉숲속마을 / 성북교육청 학생참여위원회 29명 시작의 시간(모둠별 소개와 인사), 공통강의(어떤 리더가 될 것인가), 모둠활 동(아름다운리더의 조건, 행복한 학교 그리기), 학교 축제 만들기 사례탐구와 기획, 발표와 피드백

성북교육청 초등학교 학생 자치활동 캠프

2011.11.16~17 / 가평교육원 / 성북교육청 초등 임원 84명 아름다운 리더가 되기 위한 여행 : 모둠별 OL, 이상적 리더십 정리와 발표

서부교육청 초등학교 학생 자치활동 캠프

2011.11.24~25 / 강촌유스호스텔 / 서부교육청 초등 임원 120명 아름다운 리더가 되기 위한 여행 : 모둠별 OL, 이상적 리더십 정리와 발표

성북교육청 중고등학교 학생 자치활동 캠프

2012.11.19~20(2차) / 북한산생태교육원 / 중등 90명, 고등 80명 몸 열기 마음 열기, 공통강의(아름다운 리더십), 주제토론(내가 상상하는 행 복한 학교), 기획(행복한 학교 만들기), 발표와 피드백

혁신학교 교육 지원 및 축제 연계

삼각산고 임원교육 : 2011.5.18 / 학생회, 동아리대표, 학급정부회장 43명 -공동체놀이, 리더십이란, 행복한 학교 만들기를 위한 기획, 발표와 피드백 숭곡중 학교축제 기획단 운영과 학교축제 지원 : 연중

혁신학교 학생회 지원 및 축제 연계

2012.3~12 / 숭곡중, 북서울중 연간 학생회 교육, 지역 축제 참여 연계, 교사 교육 등

그 밖에

삼각산 고등학교 운영위원 활동(심한기) 기타 학교-지역 연계 활동을 위한 사례발표 및 교사 교육


2011년에만 무려 5회에 걸쳐 진행된 자치활동 교육은 품에서 자란 청년들과 모처럼 호흡 을 맞추며, 리더십과 자치활동, 학교문화를 아우르는 그 동안의 교육경험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였고, 품에 대한 학교의 인지도와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 2011 성북교육청 학생참여위원회 자치캠프 교육내용 > 시작의 시간

ㆍ강사소개와 인사 / 어색함을 풀어주는 몸 놀이 ㆍ모둠별 인사나누기 + 모둠이름과 소개 만들기 / 모둠별 발표

[활동 1] 아름다운 리더

[전체강의] 어떤 리더가 될 것인가? ㆍ히틀러와 간디 이야기 ㆍ아름다운 리더쉽을 위한 4가지 키워드 : 소통, 수용, 해득, 기획력 [모둠활동]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리더상 ㆍ리더가 필요한 순간 (상황 설정하기) ㆍ이런 리더를 원한다! (구성원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ㆍ아름다운 리더의 조건 (자질, 태도, 역량) ㆍ아름다운 리더는 ______ 다. [전체공유] 모둠별 발표와 피드백

[활동 2] 행복한 학교

[모둠활동] 행복한 학교 그리기 ㆍ내가 상상하는 행복한 학교 / 변화를 위한 대안 찾기 ㆍ키워드 : 본질을 읽어내기,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기,-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과정 설계하기 [전체공유] 모둠별 발표와 피드백

쉬어가기

[모둠대항놀이] ㆍ모둠별로 놀이 한 가지씩 정하여 제안 ㆍ다섯 모둠의 다섯 가지 놀이로 함께 놀기

[활동 3] 행복한 학교 만들기를 가능하게 하는 학교축제

[전체강의] 학교축제 만들기 ㆍ위원회와 축제기획자의 공통점 ㆍ일상의 변화를 만드는 학교축제 사례 : 안면중 숲길축제, 송현고 솔뫼제 ㆍ행복한 학교축제 만들기를 위한 키워드 : 즐거움, 참여, 변화 [모둠활동] 상상과 기획 ㆍ무엇을 위한 축제인가(why), 누구와 함께 만들 것인가(who), 어떤 과정으로 만들 것인가(process) ㆍ기획서 만들기와 발표준비 [전체공유] 모둠별 발표와 피드백

교류의 시간

ㆍ모둠별 간식과 하루 정리

정리의 시간

[모둠활동] 개인별 정리 ㆍ이번 캠프에서 배운 것, 느낀 것 ㆍ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개인, 위원회, 축제), 예상되는 어려움, 필요한 지원은 무엇인가? [전체공유] 모둠별 배움 나누기, 모둠별 강사 총평 공유

마침의 시간

ㆍ활동사진 슬라이드쇼 / 기념사진 촬영


254

품 20

2011 성북교육청 학생참여위원회 자치캠프

2011 삼각산고 임원교육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혁신학교와의 만남은 생각만큼 큰 성과를 얻진 못했다. 일방적인 교 육과 지원보다는 쌍방향의 소통과 교류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학교는 학교대로 해결해야할 내부의 과제가 많았고 세부과정을 모두 함께 하기에는 품도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 만 학교와 지역이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테이블이 생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으며, 품 이 교육 한 학생회 아이들이 지역 축제에 나오고, 학교 연극반과 동네 극단이 함께 연말 발표회를 하는 등 고무적인 시도가 이루어지도 했다. 그리고 품도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 로 학교를 기다려줄 수 있게 되었다.

2011 학생회 아이들과 함께 만든 숭곡중 축제

2012 강북마을장터에 나온 숭곡중 문화기획반


얼마 전 북부지역 전교조 교사 연수에 초대 받아 ‘학교 지역과 손잡기’라는 주제로 이야 기를 한 적이 있다. ‘지역은 아이들의 삶터이고 배움터이기에 우리는 모두가 교사이고, 좋 은 교사가 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지역과 학교가 손잡아야 하는 이유다.’라는 이 야기를 했더니 몇몇 교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디에나 변화를 꿈꾸는 교사들이 있고, 더 디지만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때문에 품의 학교 만나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또 다시 기 대와 좌절을 반복하게 될지 모를 일이지만, 학교 안이든 학교 밖이든 손 놓지 않고 우리의 할 일을 하는 것. 그것이 학교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이랄까?


256

품 20

무늬만 학교

_글. 정이가령

스무 살 품과 두 살의 무늬만학교가 가지는 물리적 시간차는 크지만 무늬만학교는 품의 스무 해 시간과 역사가 그대로 묻어진 학교 다. 그에 비해 내가 품과 함께 한 시간은 십 분의 일에 불과하니 그 역사성과 연결성을 이 해하고 글로 함축하여 정리하는 작업은 물론 녹록치 않았다. 무늬만학교와 나는, 시작의 설렘과 두려움을 함께한 동지적 관계이자 때로는 무늬만교사로서 나의 싸가지와 됨됨이를 지독하게도 직면하게 해 주는 애증의 대상이기도 하다. 품과 아이들 이 함께 새로운 배움의 무늬를 그려가는 이 여정에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그 시절의 배움을 잊지 않기 위해 애쓰는 청년으로써 남다른 애착을 품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짧게 줄이 지 못한 이 글에는 무늬만학교의 탄생배경과 철학, 2년 동안의 시행착오와 교육과정, 그리고 품이 무늬만학교를 통해 꿈꾸는 진짜 학교의 꿈과 희망이 담겨 있다. 최대한 솔직하고도 생 동하게 담아 보려 했으나 아이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정리한다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 이었다.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미처 다 싣지 못한 좀 더 생생하고 자세한 무늬만학교 이야기 는 올 12월에 열리는 <대안교육 길찾기> 워크숍과 올해 안에 발간될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읽으시며 스무 살 품이 찾아가고 있는 배움의 길찾기 여정의 즐거운 동반자가 되어 보시길.


[글의 순서] 무늬만학교, 그 역설의 가치 품과 청소년교육 / 학교, 미워도 다시 한 번 / 제도와 일상의 경계에서 행복한 교육의 길을 찾는다

새로운 무늬를 찾아서 : 무늬만학교의 탄생 배경 무늬만학교를 낳은 세심교 / 세심교 그 후

무늬만학교, 우리가 새기고 싶은 무늬 무늬만학교의 철학 / 무늬만학교의 실험적 시도들

무늬긋기의 여정 : 무늬만학교의 실제 교육과정과 교육의 키워드 놀면서 공부하기의 진수/ 스스로 서고 함께 살기 / 표현하고 소통하며 커지는 생각 / 스스로 느끼는 성장의 가치

무늬는 저절로 새겨지지 않는다 : 무늬만학교의 시행착오 그리고 고민들 무늬만학교와 일상의 줄타기 / 아이들, 교사, 부모가 함께 크는 학교

무늬만학교가 진짜 학교를 꿈꿀 수 있는 이유 :: 무늬만학교의 꿈과 희망 공교육과 대안교육을 잇는다 / 교육과 일상 그리고 삶을 잇는다 / 교육과 마을 그리고 세상을 잇는다 / 또 다른 방식의 대안교육을 꿈꾼다

‘무늬만학교’, 그 역설의 가치

품의 역사와 그간에 활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어도 그 이름만으로도 담고자 하는 가치와 지향들이 꽤 분명하게 전달되는 강렬한 이름의 학교. 스무 살 품의 과거와 지금의 희망들 이 녹아나고 있는 ‘무늬만학교’다. 스무 살 품이 현재 가지고 있는 ‘해답’ 같기도 한 무늬 만학교는, 품이 20년간 학교 밖 동네와 일상에서 자신의 삶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아이들의 성장을 함께하며 확장되어 온 고민과 얻게 된 단서들의 결정체이자, ‘학교’라는 전형적인 틀과 시스템을 따르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자유로운 배움의 공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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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만들고자 하는 보다 구체적인 품의 실천이기도 하다. 품이 아이들과 살아온 시간으로, 지금의 아이들이 살고 있는 환경은 지역과 일상, 공부와 놀이, 꿈과 현실, 가족과 학교 등이 너무나도 파편적으로 분리되어 있음을 온 몸으로 느껴 오면서, 아이들과 함께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일상을 나눌 수 있는 공간과 일상적 관계로 연결된 환경이 실로 소중하고 필요함을 알게 되었고 이는 무늬만학교를 만 들게 된 진정어린 동력이 되어 주었다. < 무늬만 교가> 무늬만~무늬만~무늬만~ 학교! 무늬만 학교, 무늬만 학생 색깔이 없어서 무늬만 학교일까? 생각이 없어서 무늬만 학생일까? 정해진 색깔은 없어요. 정해진 생각도 없어요. 세상에 모든 색깔을 담아요. 세상에 모든 생각을 담아요. 무늬만 학교이니깐! 무늬만 학교니깐! (랩) 이거해라 저거해라 말씀 마시고 무슨 생각하고 있니?

어떤 꿈을 꾸고 있니? 얼굴 보며 따뜻하게 질문해 봐요. 예~~ 이거해라 저거해라 말씀 마시고 너는 지금 행복하니? 나도 함께 달려볼까? 어깨한번 두드리며 포옹해 봐요. 예~~ 예 세상을 하얗게 물들여 보았어요. 세상을 파랗게 흔들어 보았어요. 아무도 가려 하지 않은 길들을 찾아가요. 소중한 나만의 무늬를 찾아가요. 무늬만 무늬만 무늬만... 학교!

무늬만학교의 무늬만교장 심한기 대표가 직접 작사작곡한 교가. ‘랩’이 있는 교가는 우리나라 최초가 아닐런지!

‘학교’라고 하면 으레 떠올려지는 번듯한 공간도, 체계적인 운영방식도, 짜여진 시간표 도, 정리된 교안도, 자격증을 갖춘 ‘전문적’인 교사도 없는... 사회에서 익숙한 학교의 틀 로 보자면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은 무늬만학교. 하지만 기존 제도권 교육이 고수 해온 학교의 ‘태’를 벗어나고도 얼마든지 ‘진짜’ 학교가 가능할 수 있음을 증명하려는 품 의 자신이기도 하며, 벗어나야’만’ 진짜 배움이 만들어짐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품의 역 설이기도 하다. 고정된 방식의 학습 대신 다양한 경험과 관계들로 함께 성장하며, 스스로의 삶을 기획하 고 동네와 세상 속에서 당당하게 소통하며 삶의 가치를 실천하는 ‘힘’을 키우는 학교. ‘무 늬만’이라는 어설픔을 앞세운 수식어를 내걸고도 이렇게 당당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 유와 함께 무늬만학교의 탄생배경부터 철학, 교육과정, 아이들과 교사들의 이야기 그리고 나아가 품이 무늬만학교에 품고 있는 희망을 담아본다.


새로운 무늬를 찾아서 : 무늬만학교의 탄생 배경

2막 2장 <대안교육 길찾기> 글의 서문에서 품이 아이들과 만들어온 교육의 과정을 큰 흐름 으로 살펴보았다. 축제를 통해 주체적인 기획과 여럿이 함께하는 협업을 경험하고 지역에서 배움을 나누는 실천의 과정을 만들어오기까지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품의 고민과 지향이 변 화확장된 시간이기도 했다. 이러한 20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무늬만학교이지만, 무늬 만학교가 만들어지고 실제 아이들과 삶을 나누고 있는 교육과정이 만들어지기까지 보다 구 체적인 영향을 미치고 중요한 단서를 발견하게 해준 무늬만학교 탄생의 배경을 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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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축제’하던 아이들, 삶으로 연결된 ‘공부’가 필요하다!

1년 반의 인문공부, 세 개와 심한개의 인문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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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의 놀이터 ‘무늬만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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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아이들과도 공부해보기 : 인문학 놀이터와 문화기획 아카데미 속 인문공부

‘동네’를 놀이터 삼아 성장한 세 개를 비롯한 품 십대기획단 아이들의 긴 성장기는 무늬만학교의 탄생배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20 년사 2막 2장 <십대와 마을 만들기>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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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1) 무늬만학교를 낳은 세심교

품 20년사 책 곳곳에 등장하는 이름인 ‘세 개’와 심한개의 인문학교. 중3때 품을 만나 동네에서 축제하며 신나게 논 세 개 송성호, 김준혁, 서인석과 품 의 심한기 대표가 2009년부터 1년 반 남짓 치열한 배움의 시간을 만든 ‘세 심교’는 품이 아이들과 함께 사는 모 습을 한 단계 성장시킬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실험이었다.

 세심교가 만들어지기까지 노는 법을 몰랐던 아이들이 품을 만나 재밌게 놀고 동네와 함께 즐길 수 있게 되었다면 그 놀이의 유쾌한 에너지를 ‘삶과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까?’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된 세심교 였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며 더불어 가족, 학교, 동네, 세상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과 관계와 함께 내적인 힘을 키울 수 있는 ‘공부’ 가 필요함을 품도, 아이들도 깨달은 것이다.  1년 반, 특별한 실험의 시간 세심교 위 인용글에서처럼, 세심교는 참으로 엉뚱하고 생뚱한 학교였지만 삶의 ‘인문학’과 진짜 ‘ 배움’에 대한 많은 단서를 발견한 과정이었다. 공부 내용으로만 보면 인류의 탄생부터 혁명 까지... 방대한 세계사의 극히 일부를 공부한 것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세심교 는 주 1회의 공식수업 뿐 아니라 ‘삶’으로 연결되는 배움의 관계를 통해 사람과 삶, 세상에 대한 실천적 고민을 멈추지 않았고 세심교의 경험과 배움은 오픈 수업, 강의 활동 등을 통해


나누어지며 ‘우리에게 왜 공부가 필요하며, 무슨 공부를 할 것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 고 싶은가?’와 같은 질문들에 자연스럽게 답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 수 있었다.*

2) 세심교, 그 후!

세 개의 세심교 공부과정은 <놀이터>에서 함께 활동하던 후배들에게 큰 자극이 되기도 했 었다. 책, 공부, 글쓰기, 머리쓰기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보였던 형, 오빠들이 스스로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논문’까지 써내며 공부다운 공부를 하는 모습은 놀이터 아이들의 자발 적 학습동기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했다. 이런 아이들의 욕구에 힘입어 품은 놀이터 아이 들과 함께 즐겁고 쉽게 인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인문학 놀이터’를 진행했다. 지속되지 는 못했지만 아이들은 책속의 인문학이 아닌 살아있는 인문학을 공부하며 잘 노는 즐거움 에 버금가는 ‘공부하는 즐거움’을 배웠다. 여름마다 진행된 십대문화기획아카데미에도 인 문학 공부과정이 시도되었고 이후 품이 진행하는 거의 모든 강의와 교육활동에는 ‘인문학’ 이라는 키워드가 자리 잡게 되었다. 품 역시 아이들과 함께 이전까진 생경했던 인문학을 공부하며 ‘삶으로서의 인문학’이 가진 가치와 힘을 인정하고 실감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 과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왜 중요하며 어떻게 공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이어 졌고 품이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배움과 학교의 모습은 점차 구체화되어 무늬만학 교를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품의 20년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무늬만학교>

*

세심교 이후 세 개는 모두 무늬만학교의 ‘무늬만교사’가 되어 자신들의 경험과 배움을 후배들에게 나누며 청년다운 삶을 고민하는 또 다 른 성장을 만들기도 했다. 무늬만학교 아이들 역시 친근한 형, 오빠이자 삶의 선배들로서 세 개를 만나며 다양한 삶의 모습과 가치들을 가까이에서 발견하고 용기를 얻기도 했으니 세심교와 무늬만학교의 특별한 순환적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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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무늬만학교, 우리가 새기고 싶은 무늬

1) 무늬만학교의 철학

진정한 배움의 길을 찾기 위한 실험의 과정으로써 크고 작은 시도를 현재도 멈추지 않고 있는 무늬만학교이지만, 아이들과 나누고자 하는 본질적인 가치와 철학들은 흔들림 없이 꽤 분명하다. 물론 무늬만학교의 교육 철학임과 동시에 품이 ‘축제’를 계기로 청소년 교육 과정을 고민하고 만들어오며 자연스럽게 진화해 온 교육관이 그대로 담겨 있기에 곧 품의 철학이기도 한 것은 당연하다.

Teaching이 아닌 Learning. 무늬만학교에서 지향하는 배움의 방식은 교사의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닌 교사, 학생의 구분 없이 같이 배우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과정이다. 의도 하는 정답만 찾아 적는 것이 아닌 모두가 배움의 주체로서 스스로 또 같이 질문하며 ‘문 제’를 함께 만들어가는 배움의 과정인 것이다. 아마도 품과 함께한 모든 아이들이 공감할 대목이지 않을까 싶다. ‘싸가지 있는 아이들’. 여기서의 ‘싸가지’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서로 배려하고 존중할 수 있는 삶의 태도로서의 싸가지를 의미한다. 사람을 만나면 반가움을 다해 인사를 하고, 적은 음식도 함께 나누어 먹을 줄 아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 인 존중감을 의미하는 ‘싸가지’는 물론 하루아침에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일상으로 몸에 배어지는 것이기에 아이들과 일상과 삶을 나누고자 하는 무늬만학교의 희 망이 엿보이는 철학이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삶의 주체로 성장 하길 바라는 ‘자기기획력’은 무늬만학교의 전반적인 교육과정에 스며들어있는 철학이기도 하다. ‘무늬만면접’ 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와 아이들 모두 ‘우리가 서로에게 행복한 만남이


될 수 있을지’를 함께 논의해보는 시작의 과정부터 그렇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충 분히 이야기하는 부분은 아이들의 자발적인 의지와 동기였고 ‘하는 만큼 가져가는 학교’ 라는 무늬만학교의 숨겨진 철학이었다. 더불어 무늬만학교에서의 배움과 경험이 아이들의 일상 즉 학교, 가족, 친구 등 다양한 관계와 환경에서도 연결되길 희망하고 있다. 함께하 는 시간이 즐거운 무늬만학교와 큰 재미를 찾기 힘든 학교생활 사이의 괴리감으로 아이들 은 종종 힘들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늬만학교 너무 좋아요’를 넘어서 자신의 삶을 스스 로 꾸려가는 아이들의 성장을 바라고 있으므로 배움과 성장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해보 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아주 사소한 실천부터 노력하고 있다.

2) 무늬만학교의 실험적 시도들

2011년 무늬만학교가 탄생하고 올해 2년차를 맞이하였지만 구체적인 교육과정과 운영방 식에 대한 실험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이 단단하고도 유연한 무늬만학교의 실험정신 은 무늬만학교가 현재의 주말학교 방식이 아닌 일상 과정의 학교가 된 후에도 변하지 않 을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같이 만들어나가는 배움터를 꿈꾸기 때문이기도 하며, 아이들과 나누고자 하는 배움의 가치와 중심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단단한 뿌리를 가 진 덕분이기도 하다. < 2011~2012년 무늬만학교 교육과정> 2011

2012

놀면서 공부히는 <문화놀이터>

인간으로서의 삶을 탐구하는 <인문놀이터>

‘인문학적으로 사유하고, 문화적으로 상상하고, 가치롭게 실천하는’ 무늬만학교 <인문놀이터>

시기

2011.4~2012.2 (연간 주말학교 방식 운영)

2011.12~2012.2 (겨울방학 단기과정 운영)

2012.4~2013.1 (연간 주말학교 방식 운영)

아이들

15~20세 10명의 아이들

15~18세 6명의 아이들

14~19세 13명의 아이들

교육 키워드

십대문화기획자, 소통과 인식, 동네(학교)와 문화실천, 스스로 만드는 축제

지식의 탐구가 아닌 정의롭고 가치로운 인간을 위한 공부와 실천, 인문학적으로 사유하고 문 화적으로 상상하며, 가치롭게 실천하기, 소통,배려,지혜,용기

문화적 상상과 인문학적 사유, 소통과 나눔, 문화적 실천, 당당한 십대기획자 - 자신의 삶과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당당한 삶의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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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인문학적으로 사유하고 문화적으로 상상하며 가치롭게 실천하기’. 2012년 무늬만학교 2 기의 슬로건이다. 작년 무늬만학교 탄생 첫 해는 십대 과정을 두 과정으로 분리해 운영했 었다. 문화적 상상력과 자발적 실천력의 성장이 중심이 되었던 ‘놀면서 공부하는 십대문 화기획자 과정’ <문화놀이터>를 연간과정으로 진행했으며, 인문공부 과정이 중심이 된 ‘인 간으로서의 삶을 탐구하는 십대인문과정’<인문놀이터>가 겨울방학 단기과정으로 진행되었 다. 사실 무늬만학교 초기 기획 당시에는 人文+文化를 통합한 ‘인문’놀이터를 계획했었지 만 첫 해인만큼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갖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각 과정 별 충분한 실험을 하고 나니,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통합’이라는 초기의 그림으로 회귀할 수 있었다. 문화놀이터, 인문놀이터 모두 각각의 키워드에 집중하여 의미 있는 배움과 성 장들이 가능했지만 품이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기도 한 ‘통합적으로 살아가기’를 위해서는 역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교육이 필요했다. 공부와 놀이, 생각과 행동, 현실과 꿈으로 쪼 개어진 아이들의 분리된 일상의 조각들을 다시 연결하고 이어주는 삶의 교육이 필요하다 는 경험적인 확신이었다. 또한 아이들이 자신의 일상과 삶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정 신과 실천의 힘을 함께 키우기 위해서는 배우고 익히고 나누는 ‘학습과 경험과 실천’의 통 합 역시 중요하며, 이와 더불어 문화적 감수성과 사고, 인문학적 시각과 사유의 힘을 고르 게 성장시킬 수 있는 ‘문화’와 ‘인문학’(人文+文化)이 적절하게 섞이고 비벼 진 교육과정 이어야 함을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체감한 것이다.

무늬만학교 1기 16명 졸업하다, 2011‘무늬만졸업 쇼’

가족들과 함께한 2012 무늬만학교 2기 13명의 입학식

‘무늬만학교 첫 해는 무수한 시험의 과정을 거쳐 아이들과 교사 그리고 무늬만학교라는 배움터가 함께 성장하는 시간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실험의 과정이기도 했다. 평일에는 일반학교, 주말에는 무늬만학교를 병행해야 했던 아이들은 자발적인 ‘이중고’를


‘감내해야 하기도 했고, 지금까지 살아오던 익숙한 세상을 벗어나 ‘신세계’를 마주하며 세 상을 바라보는 프레임과 가치관과 정체감에 ‘반가운’ 혼란의 방황기를 겪기도 했으며, 아이 들 스스로 자신의 성장을 인정하고 자긍함에도 정작 부모님들의 지지와 격려를 받지 못해 좌절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함께하기도 했다. 무늬만학교의 교사들인 품의 활동가들 역시 아 이들을 만나면서 ‘교사’로서의 본질에 대해 치열한 고민과 성찰의 시간을 마주하기도 했다. 2년차인 올해는 보다 아이들의 일상에 가까이 그리고 깊게 다가가는데 주력하여 또 다른 실험의 과정을 기꺼이 즐기고 있다. 작년 첫해는 연간과정 10명, 단기과정 6명 합해서 16 명의 아이들이 자신의 무늬를 새기고 졸업했고, 올해는 저마다 다른 색깔의 다양함을 가진 13명의 아이들이 무늬만학교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무늬만학교, 우리가 새기고 싶은 무늬

< ‘2011 무늬만학교’ 놀면서 공부하는 문화놀이터의 월별 교육과정 > 4월 다르게 바라보기

무늬만 학생, 교사, 부모님, 친구들과 함께 한 무늬만입학식 / 박경옥 선생님과 함께 ‘서로 알 기’ 수업(MBTI) / 김월식 선생님과 낯설게 바라보기(촉각관찰과 드로잉) + 친절한 현대미술관, 국경없는마을 원곡동 탐방 / 문화로놀이짱 1/4 하우스 방문. 재활용 목재로 의자 만들기 / 독 립영화 제작자 느림보, 경순 감독님과 함께한 무늬만 영화관<쇼킹 패밀리>

5월 축제란 무엇인가?

4월 돌아보기 / 교장 선생님과 함께한 축제 공부(축제의 탄생과 기원) / 내가 만들고 싶은 축제 + 우리가 만들고 싶은 축제(축제 조사와 상상) / 신나는 축제 여행 ‘춘천마임축제’

6월 축제 맛 보기

첫 축제 놀이터 오픈축제 참여.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 오픈축제와 3개월 돌아보기

7월 다양한 만남,스스로 만드는 부모모임

기분 좋은 QX 방문. 문화기획자 안이영노와 ‘꿈’ 나누기 / 현샘과 함께 문화란 무엇인가 /청 년학교와의 만남. 나눔떡집 김대선 사장님과 함께 한 ‘떡과 인생 이야기’ / 직접 기획하고 준 비한 부모 모임(과정과 성장 나누기)

8월 문화와 동네

월학리 놀이터 여름 캠프 / 문화기획아카데미. 기획 공부 및 동네 프로젝트 실행

9~10월 축제 만들기

선생님들을 모시고 우리가 직접 만든 7,8월 돌아보기 / 본격적인 축제 준비 시작. 14회 강북 청소년문화축제 ‘추락’ 기획단 결성 / 본격 추락 기획 시작! / 추락 기획과 팀별 준비작업 (전 시팀, 놀이먹거리팀, 렛추락팀)

11월 우리가 만드는 축제

열네 번째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탈탈탈 동네난장’ / 추락 돌아보기(정리 및 평가) / 무늬 만학교 1년 과정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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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12월 우리들의 성장나눔

개별 성장 정리 / 품 선생님들과 함께한 무려 일곱 시간 동안의 성장 나눔 자리

1~2월 졸업의 시간

2월 졸업식 준비 +팀 작업(책연극팀, 과정영상팀) / 2011 무늬만학교 졸업식 ‘무늬만 졸업쇼’

2012년 무늬만학교 4가지 열쇳말

앞서 밝힌 바 있듯 1기 무늬만학교를 진행하며 발견한 단서들로 올해 2기 무늬만학교 교육과 정이 꾸려졌다. 큰 흐름으로 보자면 연간의 교 육과정은 초반 문열기와 관계맺기에서 내가 가 진 기존의 시각과 시선을 점검하고 의심과 질 문을 품어보는 ‘좌뇌와 우뇌열기’로 이어진다. 정해진 답을 찾아내는 데 익숙해 있는 아이들 과 당연하게 받아들인 ‘사실’에 의문을 가져보 는 것이다. 조금씩 사고가 유연해지면 굳어진 머리를 열어 상상을 해보기도 하고, 제한적이고 개인적인 사고를 넘어서 자신의 일상과 관계를 연결한 통합적 사고를 통해 세상을 읽어내는 진실한 눈을 키워보기도 한다. 크고 작은 자체 실천 프로젝트를 통해 경험의 색깔을 더하며


배움을 확장해나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배움과 학습이 지역과 일상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되고 실천되는 통합적 과정이다. 물론 단계별로 분명한 구분이 있는 과정도 아니며 아 이들의 호흡과 속도에 맞는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살려 탄력적으로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 이 무늬만학교답고 품스러운 학교가 가진 장점이다.

1) 놀면서 공부하기의 진수

‘교육’은 학습과 함께 경험이 연결될 때 비로소 몸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무늬만학교에서 이야기하는 ‘문화’와 ‘인문학’은 모두 글자로 교육할 수 없는 속성들이며 무엇보다 책만 가 지고 공부했을 때의 그 ‘재미없는’ 부작용을 교사들 역시 참아낼 수 없기에 무늬만학교는 놀면서 공부하기를 선택했다. 주목해야할 것은 ‘공부했으니 놀자’ 혹은 ‘놀았으니 공부하 자’는 의미가 아닌 놀이와 공부가 구분되지 않은 모호한 경계에서 배움을 만든다는 점이다. 무늬만학교에서 ‘놀면서 공부하기’가 가능한 이유는, 품이 해온 ‘다양한’ 활동들을 무늬만 학교와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 ‘다양성’과 연결’이라는 열쇳말이 무 늬만학교가 다른 대안학교, 여타의 인문학문화 교육 프로그램과 차별성을 갖는 지점이지 않을까. 아이들과 온 자연을 누비어온 수백 회의 캠프, 동네에서 만들어 온 축제를 비롯한 문화실천활동, 아카데미 등이 무늬만학교의 교육과정에 끈끈하게 녹아져 연결되어 있으며, 더불어 국제, 문화, 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뻗어 있는 품의 소중한 사람과 방대한 네 트워크들이 모여 무늬만학교의 훌륭한 ‘놀이터’를 만들어주고 있다.  이미 놀고 있던 마을, 함께 더 놀자 품이 올해 15년째 십대와 동네와 함께 만들고 있는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과 올해 5년 차를 맞은 ‘놀이터’(강북청소년문화존)에서 아이들과 만들어 온 경험은 무늬만학교가 ‘동 네’를 주된 배움터이자 ‘놀이터’로 삼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청소년축제에서 지역축제로, 청소년문화를 넘어서 행복한 동네문화로 확장된 시각과 넓혀진 반경은 아이들의 성장에 동 네, 마을이 가지는 중요성을 새삼 반복하여 확인시켜주었다. 숨겨져 있을 뿐, 아이들의 조 밀한 일상은 동네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늬만학교는 품이 아이들과 함께 이미 놀고 있던 ‘마을’에서 함께 논다. 수업에서 만든 떡을 동네 이웃 가게들을 찾아가 나누기 도 하고, 마을 목수 아저씨와 마을 탐방을 해보기도 하고, 품의 십대기획단, 동아리아이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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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축제를 만들며 무늬만학교의 경험과 배움을 동네와 나누기도 한다. 2기 무늬만학교가 매월 참여하고 있는 강북마을장터 ‘탈탈탈’은 마을을 보다 가까이 만나고, 마을의 어른들, 또래들, 꼬맹이들과 즐겁게 소통하며 관계할 수 있는 좋은 배움의 장이다. 아이들이 머리 보다는 마음으로 마을을 먼저 이해하길 바라기에, 말로 ‘마을’을 언급하기보다는 자연스럽 게 마을을 만날 수 있는 관계와 환경을 연결하고 있다.

이웃과 떡을 나누고, 재래시장에서 즐거운 인사를 나누고, 둘레길을 걸으며 마을을 만나는 무늬만학교

(왼) 아티스트 김월식 선생님과 함께한 국경없는마을 안산 원곡동 탐방 (중) 마임이스트 이두성 선생님과 함께한 ‘몸 열기 마음열기’ (오) 동네 떡집 사장님과 떡을 빚으며 나누는 ‘떡과 인생’ 이야기

수업을 하면서 가르침을 주러 오시는 선생님 분들 중에서 내가 가장 크게 놀랐던 분은 떡집 사장님이셨다. 단순한 체험활동 차원에서도 학부모님이 오시지 떡집 사장님께서 직접 오시진 않는데 체험활동도 아니고 사람의 인생과 떡을 연관 지어 수업을 해주셨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떡이 잘되려면 과정 중에 구멍을 내서 김이 새지 않게 길을 만들어 주어 소통하게 해 줘야 하는 것처럼 사람 사이에도 소통을 해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떡을 만들면서 나는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우리가 평소에 동네와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을 떡을 만들어 동네에 나가 동네 주민 분들께 나눠드리면서 직접적으로 와 닿아서 더 인상이 깊었다. 어떤 학교에서 떡집 사장님을 선생님으로 모셔오고 떡을 만들면서 떡과 사람의 인생에 대해 비교해보고 소통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을까? - 1기 졸업생 윤주가 가장 인상 깊은 수업


 다양함을 만나다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를 알았고, 다양함을 존중하게 되었다.” 1기 아이들이 상반기 과 정을 되돌아보며 입을 모아 이야기한 공통의 배움이다. 아이들은 무늬만학교에서의 다양한 경험과 만남을 통해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깨달았다고 한다. 1기 무늬만학교는 거의 30명 에 달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만났고, 20여 곳의 다양한 배움의 공간을 만났다. 품이 20 년간 다양한 영역에서 맺어온 소중한 인연과 함께 아이들과 문화, 인문, 예술, 국제, 인권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다채로운 색깔의 배움을 만드는 것이다. 문화기획자, 예술가, 지역활동가, 국제NGO활동가, 인권활동가, 영화제작자, 떡집사장님, 연극연출가 등 자신의 분야에서 치열하게 삶을 만들고 있는 ‘선배’들을 무늬만강사로 초대한다. 품과는 길게는 10년, 짧게는 2년 이상 인연을 이어온 분들이라 아이들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소통한다. 그 중의 반 정도는 한 동네에 사는 ‘마을 강사’들이니 마을에서, 장터에서 자주 만나며 관 계다운 관계를 만들 수 있어 더 좋다.

2) 스스로 서고 함께 살기

삶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품이기에 무늬만학교 역시 아이들 스스로 꾸려가는 과정들이 많 다. 작은 모둠별 기획활동을 할 때에도 교사들은 대강의 방향과 줄기만 짚어줄 뿐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고 뼈를 세우고 살을 붙여가는 과정은 온전히 아이들의 몫이다. 처 음에는 막연해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자신의 학습과정의 능동적인 참 여자가 되어 과정을 만들어간다. 교사들이 옆에 붙어 적극적인 개입을 할 때보다 물론 속 도가 좀 더디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들의 ‘함께하는’ 힘은 때때로 교사들의 경험치를 훨 씬 뛰어넘은 기발한 상상과 독창적인 사고들을 가능케 하니 교사들은 가끔 그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스스로 기획하고 준비한 마을 축제 및 장터 등의 지역문화프로젝트, 부모님 발표회, 학습 발표회, 졸업식 등 배움과 성장을 스스로 정리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마을에서 함께 나누어 경험은 아이들에게 큰 경험이 되었다. 아이들은 ‘배운 것들을 실제로 실천해볼 수 있어서 좋았고, 우리가 스스로 같이 해냈다는 것에 성취감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저마다 다른 아이들은 ‘협동과 협력’의 과정을 거듭하고, 배움을 직접 실천해보며 분명 성장한다. 아이 들 스스로 ‘넌 이걸 잘하는 사람이구나’, ‘난 이런 걸 어려워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서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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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함들을 발견하며 자신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잘하는 모습보다 더 쉽게 발 견되는 ‘아쉬운’ 모습들, 내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들도 서로 솔직하게 나누고 찔러주며 때로는 참아도 보며 스스로 서고 같이 세우는 무늬만학교다.

머리를 맞대어 회의도 하고, 연습도 하며 장터, 축제, 졸업식 등 크고 작은 함께하는 과정을 만들어가는 무늬만학교

3) 표현하고 소통하며 커지는 생각

모든 수업과 모든 만남이 소중하지만, 그중에서도 매월 말 한 달의 활동과 배움을 되돌아 보고 자신과 우리의 성장을 함께 나눠보는 돌아보기 시간인 ‘달나눔’ 수업은 또 다른 의 미를 갖는 중요한 수업이다. 소소한 일상까지 충분히 나누기 어려운 주말학교 방식의 한계 를 넘어서기 위한 시간이자, 각 수업의 배움, 무늬만학교와 아이들의 일상, 아이들과 아이 들, 아이들과 교사의 관계까지 연결하고 이어보는 시간이다. 매월 각자의 한 달을 돌아보며 성장한 점, 아쉬운 점, 더 채우고 싶은 점을 나누고, 일상과 삶에 대한 고민들까지 나누며 소통과 관계의 성장을 만든다. 서로의 힘듦을 덜어내며 서로를 보듬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이야기에 서로 공감하고 치유 받는 시간이다. 달나눔 뿐만 아니라 무늬만학교 대부분의 수업시간에서 일방적인 교사의 강의보다 함께 이야기 나 누고 질문하고 대화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수업을 마치면 오늘 무엇을 배웠는지, 무슨 생각 을 했는지 나누고 또 하루의 배움을 홈페이지 혹은 각자의 노트에 수업일기로 매 수업마다


‘글쓰기’를 한다. 무늬만학교에서 말과 글은 ‘표현’이자 곧 ‘소통’으로 이어진다. 온전히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담은 나의 기록, 나만의 표현을 넘어서 서로 나누고 나아지기 위 한 ‘소통’의 과정인 것이다.

어떤 일을 하게 되던 생각을 하게 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고, 나의 생각을 스스로 정리하고 스스로 말하며 남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큰 발전 인 것 같다. 그로인해 나는 내가 변해가는 것을 점점 느끼고 있었고, 배우면서도 그 배우는 과정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내가 몰랐었던 나의 모습을 알아갈 수 있었다. - 1기 졸업생 영지의 1년 성장 일기 중

1기 졸업생 아이들이 스스로 말하는 성장 중의 가장 큰 공통점은 ‘생각하는 힘과 표 현의 성장’이었다. 아이들은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에 판단과 편견을 가지지 않고, 편안 하고 자유로이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에 서 말문을 텄고 목소리를 키웠다. 더 이상 ‘ 왜?’라는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의 ‘ 생각’을 키웠다. ‘표현력’, ‘의사소통능력’ 이라는 제한된 범주 안의 수치적인 성장이 아닌, 함께 성장하는 관계를 통해 마음을 키운 것이다.

3) 스스로 느끼는 성장의 가치

매 월 자신의 성장과 배움을 정리하는 ‘달나눔’ 시간의 힘인지,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질 문의 힘인지, 작년 1기 졸업생들은 무늬만학교를 통해 얻는 자신의 성장을 나름 근거 있게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 생각하는 힘, 삶에 대해 고민하고 만들어나가는 힘, 함께 관계 맺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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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고 소통하는 법 등... 비슷하기도 하고 각기 다르기도 한 성장의 키워드들은 분명 그 나 름의 의미를 가진다. 무늬만학교라는 배움의 공간이 아이들에게 바랐던 성장의 모습을 아 이들 스스로 이야기할 때에는 아이들, 교사 모두 뿌듯함을 나눈다. 하지만 그 성장의 구체 적인 모습보다 더 가치로운 모습은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성장을 인정하고 표현한다’라는 점이다. 정해진 기준에 의해, 타인의 시선으로 ‘평가’받는 데 익숙한 요즘의 교육환경에서 나라는 존재의 성장을 내가 직접 이야기하고 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생각보다 큰 의미였 으며 성장의 깊이를 더하는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1년의 성장을 되돌아보며 1기 졸업생 아이들이 이야기한 자신의 성장이야기>  장서영 : 가장 큰 성장은 사람들과의 만남, 소통이 편안해졌다. 그 외에도 새로운 시도와 변화에 용기 있게 도전할 수 있게 되었고 스스로 나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 장서희 : 좀 더 넓은 시야로 볼 수 있고, 소통하는 법을 배웠고, 나를 둘러싼 문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됐고... 세자면 한도 끝도 없다... 내가 가장 의미 있게 생각하는 부분은 여유가 생기고, 무늬만학교를 하면서 보다 즐거워 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 김건호 : 평범한 세상에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과 소통하고 틀림과 다름의 차이를 이해하는 동시에 고정관념이 바뀌었다  김규환 : 무늬만학교라는 것은 나에게 정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절실하게 깨닫게 해준 것 같다. 무엇이든지 한번 더 생각해보고 거꾸로도 생각해보고 한 주제를 여러 가지의 각도로 보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지금은 안다.  전지현 :제가 무늬만 학교를 하면서 제일 크게 성장한 점은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 같은 게 생겼다는 점 인 것 같아요. 처음 보는 거, 새로운 거, 이런 거 정말 꺼려했었는데 이젠 재밌어지기까지 했으니까 엄청나게 변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도 많이 늘었고 다른 사람 의견이나 생각도 존중해주고 내 생각도 잘 말하고 그런 점도 크게 배운 것 같아요. 그리고 기록하는 습관도 생겼어요. 무늬만 학교에서 많은 걸 배워가고 생각도 커져서 앞으로 고등학교에 가도 사회에 나가도 잘 생활하면서 지낼 수 있을 거 같아요.

무늬는 저절로 새겨지지 않는다 :: 무늬만학교의 시행착오 그리고 고민들

1) 아슬아슬한 무늬만학교와 일상의 줄타기

아이들이 고민을 토로한다. 무늬만학교에서 보내는 주말 시간은 너무나 즐거운데 정작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고. 배움과 삶의 연결을 꿈꾸는 무늬만학교이지만, 첫해의 과정을 돌아보면 가장 아쉬운 점 역시 ‘일상과의 연결’


이었다. 주말학교라는 물리적 한계를 차치하더라도 아이들이 느끼는 괴리감과 혼란스러움 은 생각보다 깊었고, 학교를 비롯한 일상생활 전반에 의욕을 잃어버리는 방황기를 맞이하 는 아이들도 있었다. 사실 ‘일상’이라는 개념은 매우 촘촘한 순간과 찰나로 만들어지기에 ‘무늬만학교와 아이들의 일상은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신의 일상과 삶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정신과 실천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일상과정에 대한 고민과 시도가 필요했다. 무늬만학교 2기는 ‘1일학교’ 방식을 비롯해 무늬만학교와 아이들의 일상과의 간극을 좁히 기 위한 시도들이 더해지고 있다. ‘1일학교’는 수업의 특성과 아이들의 호흡에 따라 유동 적이지만, 본 수업시간을 포함해 하루를 온전히 함께 살며 일상의 리듬을 함께 나누며 진 행되고 있다. 아침에 모여 한 주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고, 점심을 함께 해 먹고, 산책을 다 녀오고, 수업을 하고 또 함께 수업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함께 사는 ‘하루살이’는 짧고도 길지만 사소한 여유와 여백들 속에서 다시 발견되는 일상의 소중함과 일상 속에서 아이들에게 체화되는 배움과 통찰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1기부터 현재까지 아이들의 일상을 나누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은 계속 되고 있다. 아이들 개별 의 일상에 집중해보기 위해 평일 저녁밥을 먹으며 아이들과 편안한 이야기 시간을 가져보 기도 하고, 시시때때로 문자 메시지와 메신저, 홈페이지를 통해 일상적 소통을 나눈다. 올 해 역시 다양한 방식의 일상 소통은 여전히 계속 되고 있으며, 방과 후 시간이 비교적 여 유로운 아이들과 평일 영화모임을 가지기도 하고, 인문학에 대한 공부 욕구가 큰 몇몇 아 이들과는 교장선생님과 함께 ‘무늬만 과외’를 만들고 있다 무늬만학교 과정에서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의 활동들을 이해해 주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기도 했고 사람 만나는 것이 어려워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아쉬운 것은 따로 있다. 무늬만학교에서의 배움과 변화를 일상에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무늬만학교 내에서는 편하고 즐겁지만 여전히 밖에서는 불편하고 무늬만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지만 일상에서는 그렇지 않다. 원체 귀가 얇은 지라 무늬만학교에서의 배움을 그냥 받아들이기만 한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는 무늬만학교를 한 번 더 다니고 싶다. 무늬만학교에서의 변화를 일상의 변화로 만들고 싶다. - 1기 졸업생이자 2기 입학생이기도 한 장서영이 이야기하는 ‘무늬만학교와 일상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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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공간에서 점심을 해먹고, 산책을 다녀오고... ‘하루’를 함께하는 무늬만학교 (오) 지산이와 윤섭이의 부모님, 동생까지 온가족이 함께한 무늬만면접

2) 천천히 굽이굽이 함께 커가기, 아이들 교사 그리고 부모

대안교육, 공교육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배움터에서 배움의 3주체로 아이들, 교사, 부모를 꼽곤 한다. 그러나 실제 이 세 단위가 균형적인 주체성을 가지고 배움의 과정에 참여하는 배움터를 만들기란 굳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앞세우지 않더라도 참 힘들다. 품 역시 아 이들과 오랜 시간을 만나왔지만 부모님과 적극적인 소통 과정을 만들거나 아이들의 활동과 성장을 구체적으로 공유하는 과정을 가지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간혹 아이들의 활동에 우려와 무조건적인 반감을 표하시는 부모님들과는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에 반해 소수이 지만 적극적인 지지와 관심을 가지는 부모님도 있었으며 많은 수 아이들의 부모님은 ‘아 이가 하고 싶어 하니까’ 큰 개입을 하지 않으시는 편이기도 했다. 품이 무늬만학교를 만들 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일상과 삶을 나눌 수 있는 배움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일상은 물론, 스스로의 삶 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데 필연적인 영향을 끼치는 관계이자 환경이 바로 ‘가족’이므로 품은 무늬만학교 아이들의 부모님과 이전에 비해 훨씬 적극적인 소통 과정을 만들고 있다. 1기 과정에서는 부모님과 무늬만학교의 배움과 성장을 나누기 위한 부모모임을 아이들 스 스로 만들기도 하고, 2기 무늬만학교는 모든 아이들의 부모님과 함께 동반 면접을 긴 시간 진행하며 서로 살아온 이야기와 아이들에게 바라는 성장을 나눴다. 2기 입학식에서 아이들 과 함께 입학 소감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부모님들은 함께 성장할 준비가 충분한 모습이었 다. 아이들과 함께 오픈 수업, 마을 장터에 오시는 부모님들도 꽤 계시고, 아이들에 대한 고 민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부모님들의 전화도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 아이들을 함께 키우고,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적 관계가 만들어지는 모습이다. 또한 부모님의 성장이 ‘부모’라는 역할과, ‘양육자’로서의 성장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삶을 만들어가는 존재로서의 주체적인 성장이길 기대한다. 아이들과 가족, 가족과 학교가 연결되어 소통하며 ‘함께 크는’ 배움터. 무늬만학교의 변함없는 지향일 것이다.

무늬만학교가 진짜 학교를 꿈꿀 수 있는 이유 : 무늬만학교의 꿈과 희망

20년사의 담긴 스무 살 품의 대안교육 길찾기 여정이 마무리되어 간다. 글을 쓰며 무늬만 학교 1기 졸업생 16명의 아이들이 유독 생각난다. 그 중 4명은 올해 역시 무늬만학교와 함 께 살고 있거나 품에서 활동하고 있어 자주 만나고 있고, 또 다른 친구들은 매월 열리는 장터에서 함께 놀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은 각자 대학생활, 취업준비, 학업 등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자신들의 무늬를 잊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제 1기 무늬만학교의 무늬만 졸업장> 진정한 무늬들이 사라져가는 세상에 진정한 무늬를 피우며 살기를... 야비하고 어설픈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스스로의 용기와 지혜로 맞장 뜨기를... 무늬만 학교에서 얻었던 소중한 경험과 기억과 약속들을 잊지 않기를... 스스로의 무늬를 찾아가며 또 다른 수많은 무늬들을 반겨주기를... 1기 졸업생들에게 준 졸업장. 무늬만학교 2기의 입학식 날에는 졸업생들이 찾아와 연극과 교가 노래로 후배들을 반겨주었다

이 넓은 우주에서 너희들을 믿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잊지 않기를... 친구들아 사랑한다! 2012년 2월 26일 무늬만학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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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글에서는 품이 무늬만학교를 통해 꿈꾸고 희망하는 교육의 무늬를 담아보았다. 공교 육과 대안교육을 잇고, 교육과 일상을 잇고, 교육과 마을을 잇는 무늬만학교. 물론 이 희망 으로 행복한 배움을 실현하는 학교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확신한다. 하지만 졸업생 아이들 과 지금 무늬만학교 2기 아이들을 떠올리니 그보다 ‘진짜 학교’가 가능한 가장 확실한 이 유를 만나게 되었다. 아이들은 무늬만학교를 정말 찐하게 사랑했고, 지금도 역시 그렇다는 것. 대다수의 학생들이 자신의 학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참 진기한 일로 여겨지 는 세상이기에, 아이들이 무늬만학교를 향해 보내고 있는 그 사랑이 무늬만학교가 아이들 의 행복한 삶의 놀이터인 ‘진짜’ 학교를 꿈꿀 수 있는 이유이겠다.

1) 공교육과 대안교육을 잇는다

교육은 모두가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 누려야할 당연한 권리임에도, 언젠가부터 ‘교육’이라는 이름의 틀은 더욱 세분화되어 분리되고 있다. 그 구분의 경계 또한 점점 뚜 렷해지는 모습이다. 제도권학교, 대안학교, 혁신학교, 탈학교, 고등학교, 중학교... 점점 세 분화되는 교육의 구분은 ‘소속되지 못한 아이들’을 낳고, 서로 소통이 불가한 경계의 벽만 높일 뿐이다. 무늬만학교는 분리 대신 통합을, 구분이 아닌 ‘이음’을 택하려 한다. 공교육, 대안교육의 구분으로 인한 이분법적인 선택이 아닌, ‘아이들에게 필요한,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은 무엇일까?’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과 고민을 이어갈 것이다. 그리 멀지 않을 시일 내 아이들과 보다 깊게 일상과 삶을 나눌 수 있는 일상과정의 학교를 꿈꾸고 있는 무늬만 학교지만,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아이들이 받고 있는 고통을 모른 척 할 수 없기에 공교육 에 대한 관심과 소통의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그리 거창하지 않다. 아이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무늬는 구분된 환경에 맞춰서 짜여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함이 인정되는 자유로운 배움의 환경에서 저절로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2) 교육과 일상 그리고 삶을 잇는다

무늬만학교 역시 배움과 일상을 연결하는 어려움을 실감하고 있지만 그만큼 우리의 망가진 교육 환경과 비뚤어진 교육 인식의 반증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더욱 ‘일상으로의 연결’ 에 대한 질문과 실천적 시도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아이들과 일상적으로 소통하며 함께 아이들의 일상을 이루는 가족, 학교, 친구 등 다양한 환경과 무늬만학교를 연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과정에 대한 실험도 더해보려고 한다. ‘교육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이 살아야 할 삶의 모습 즉, 삶의 무늬에 대해서 소통하는 것’*이기에 무늬만학교에서의 경험과 배움 그 리고 성장이 아이들의 일상과 삶으로 울려 퍼지길 희망한다. 무늬만학교와 함께 살고, 졸업 한 아이들이 살아갈 모습의 무늬는 아이들의 몫이므로 확언할 수 없겠다. 하지만 무늬만학 교의 배움이 이후 아이들의 삶과도 연결될 수 있도록, 아이들이 만든 무늬의 힘으로 스스 로 삶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이어주는 끈과 관계를 놓지 않을 것이다. 아는 것과 사는 것 이 함께 가는 것, 앎과 삶이 조화롭게 일치된 교육을 꿈꾸는 무늬만학교다.

3) 교육과 마을 그리고 세상을 잇는다

무늬만학교는 배움의 주체로 아이들, 교사, 부모에 ‘마을’을 더해 배움의 주체라 부르려 한 다. ‘마을’을 배움의 주체로 삼을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과 환경으로서의 ‘마을’이 아닌, 나의 일상과 유기적이고 상호적으로 연결되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관계 로 여긴다는 의미다. 나아가 무늬만학교에서는 삶의 기반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창’으로 서 마을을 주목한다. 내 일상을 ‘형성’하는 마을을 넘어 세상을 읽고 ‘창’이다. 아이들은 마을에서 만나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로 세상을 만나고 공부하며 익힐 수 있는 것이다. 마 을 안에서 아이들은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세상에 일어나는 무수한 일들을 나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어떤 실천을 해야하는지 창틀과 같은 생각과 실천의 기준을 세울 수 있다. 무늬만학교는 아이들과 마을 속에 존재하는 관계와 환경을 연결해 주는 일상적 환경의 매 개자인 마을 학교를 꿈꾼다. 마을 안에서 어떤 배움을 만들 것인지 아이들은 스스로 터득 하고 선택한다. 마을 학교의 일주일을 상상해 본다. 하루는 마을 목공소에 가서 직접 쓸 가 구를 만들고, 하루는 마을 도서관에 가서 동네 꼬맹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하루 는 목적지 없이 마을 골목을 구석구석 누비며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길도 발견하는 마 을 여행을 할 수도 있겠다. 마을 공간과 마을 사람들이 곧 배움터가 되는 이 마을 학교는 큰 돈과 많은 품을 들이지 않아도 되니 참 좋다. 자연스러운 마을의 돌봄과 관계로 자란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꾸려가기 위한 기반을 닦고, 청년으로 성장해 마을의 아이들을 돌보 는 ‘돌고 돌며’ 함께 성장하는 마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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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헌(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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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또 다른 방식의 대안교육을 꿈꾼다.

무늬만학교는 기존의 대안교육을 넘어선 다른 방식의 대안교육을 꿈꾼다. 학교의 모양을 갖추는데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참된 배움이 가능함을 지금처럼 끊 임없이 실험하고 증명할 것이다. ‘학교’라는 껍데기보다는 아이들의 일상과 삶을 먼저 더 많이 고민할 것이며 ‘대안을 만들어가는 교육’을 위한 저항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 이다. ‘학교’의 무늬보다는 아이들이 아로새겨가는 아이들의 삶의 무늬가 더 소중한 무늬 만학교이다.


품과 주주

품의 에너지는 주주로부터 시작한다 _글. 강명숙

나는 품에서 십대를 보내고 이제는 품의 10년차 실무자로서 살고 있다. 거의 품 초창기부터 품의 역사를 옆에서 바라보며, 스승과 선배들이 하는 수많은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었고 지금 은 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주주는 품의 역사와 매우 밀접 하게 맞닿아 있다. 그래서 옆에서 주워들었던 이야기, 남아있는 기록들을 토대로 초창기 품의 역사부터 되짚어 보았다. 그러나 가장 역동적이고 치열했던 품 초반기에 있었던 많은 일들의 상관관계를 올바르게 짚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최대한 객관적이고, 사실 그대로를 ‘되짚어 보기’ 위해 노력했으나 나로 인한 실수가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만약 그러한 글이 발견될 때는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고, 다정하게 일러주시길 바라본다.

20년을 계기로 ‘주주’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품이 지켜가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를 정리해 보 고자 했다. 글을 정리하며 다시금 느낀 것은 품의 20년을 한결같이 지켜보고, 삶을 함께 살 고 있는 주주들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품이 살아온 만큼 살아갈 수 있는 힘의 근원에는 주주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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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는 주주가 있다

품 20

초창기 품과 최초의 자발적 후원조직 ‘두레품’

3명의 혈기왕성한 청년의 청소년현장에 대한 비판적 시각

으로 시작된 품. 초창기 품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 당시의 품은 앞 뒤 가리지 않고 아이들이 있는 곳이면 찾아갔다. <노래품>이란 이름으로 아이들 앞에 기타를 메고 서기도 했고, 캠프나 어울마당을 통해 전국의 아이들을 만났다. 하도 많이 돌아다녀 집에 들어갈 시간 은커녕 빨래를 할 수도 없어 차에 젖은 옷을 달고 운전했다는 이야기, 아침, 점심, 저녁에 모두 다른 캠프장에서 있었다는 이야기 등은 흡사 홍길동의 무용담을 듣는 것과 같았다. 그럼에도 당시 젊은 품이 놓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아이들을 만나기 위한 치열한 준비과정과 사회, 문 화, 역사, 놀이 등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가 그것이었다. 이러한 결과로 본질적으로는 청소년복 지에서 추구하는 이상과 다르지는 않지만 아이들을 만나는 방식, 태도가 달랐던 품의 매력에 빠진 많은 대학생들은 품을 찾았다. 치열했던 당시 품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아이들을 만나 는 일과 모여드는 청년들을 흔드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있었지만, 앞 서 ‘문을 열다’의 양금석 선생님의 글에서처럼 초창기 품에게는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뜨거움이 유지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뒷받침 역시 중요했다. 설립 2년 후 인 94년 재정적 어려움을 겪은 품의 사업과 정신의 보장, 운영방식도 함께 고민한다는 조건 으로 재단 편입을 결정했으며 품의 사업들은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와 실험적 접근을 통해 변 화와 성장을 이어갔다. 단발 형태의 사업은 점차 줄여나갔고 자체 사업들이 많아졌으며 접근 하는 시각역시 장기적 관점으로 변했다. 그러나 재단에 편입되었음에도 경제적인 문제만큼은 쉽게 해결되지 못했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로 재단으로부터 온전하게 경제적인 뒷받침을 받지 못했으며 두 번째로 지원받는 사업 예산을 넘어서는 예산을 투여하며 에너지 를 쏟았기 때문이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품의 청년 자원활동가들은 작은 힘이나마 품의 경제를 돕자는 의지를 보였고 품 최초의 자발적인 후원조직 ‘두레품’이 탄생되었다. 두레품의 시작은 품과 같은 조직이 이 사회에 필요함을 당시 활동하던 청년들 스스로 인식하면서 출발한 것이었다. 두레품이 결성되 고 매월 25~30명이 4~50만 원 정도를 후원했다. 하지만 후원금은 소식지 발행비와 일정 부 분의 공공요금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였고 당시 품이 겪었던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럼에도 당시 품에게는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정신적인 지지를 청년 자 원 활동가들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품이 재단에 편입하면서 경제적인 뒷받침은 부족했지만 나름대로의 발전과 정체성을 다져나 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재단 이사장이 갑자기 바뀌면서 재단과 품 사이의 갈등 이 시작되었다.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선, 가치 등이 달라 사업의 내용과 대상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너무도 다른 시각은 타협점을 찾을 수 없었고, 품은 서로가 행복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인 ‘독립’을 결정했다. 당시 품은 독립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고 발 빠른 준비들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품이 존재되어야 함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 이 많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두레품’으로 시작된 후원의 개념은 ‘어떤 방식으로든 삶을 나 누며 품의 뜻과 가치에 투자한다.’로 달라졌다. ‘주주’는 ‘주인 중에 주인’이란 뜻을 담고 있 다. 어찌 보면 말장난 같을 수도 있으나, 그만큼 품의 실천 철학에 공감하는 동반자들로부터 경제적 후원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지지를 동시에 얻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말 100 명의 ‘주주’가 탄생했고, 품에서 활동하는 청소년회원, 청년 자원활동가들, 지지하는 선배와 스승, 사업을 통해 맺게 된 여러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 주었다. 100명의 주주들이 모아준 독 립기금으로 지하공간을 임대할 수 있었고, 필요한 사무기기 등도 여러 사람들에게 후원을 받 아 사무실로서 외형을 갖출 수 있었다. 또한 2001년부터 품은 비정기적이었던 지로방식의 아 쉬움을 해결하기 위해 CMS라는 납입 방식을 도입해 동참한 주주들의 정기적인 후원이 간편 해지도록 했다. 20주년을 두고 다시 바라보면 수많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굴곡은 오히 려 품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찾고 비판적인 시각과 자기성찰적인 측면을 지키며 지속적으 로 변화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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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품의 주주는 다르다

그냥 360이 아니다.

품의 20년의 역사와 2001년도에 탄생한 주주의 역사를 비 춰봤을 때 360명이라는 숫자로만 보자면 초라할 수도 있다. 하지만 360명이라는 숫자 속에 담겨진 의미는 따로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후원’을 결정하는 요소에 동정, 애처로움, 안타까움 등과 같은 감정들이 밑 바탕 되는 경우가 많다. 또 후원되는 금액은 직접사업비로 활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품 의 경우는 운영비로 사용되고 있다. 그만큼 360명의 대다수는 품의 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 한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품 활동에 대한 공감 정도가 깊으며 품이 청소년현장에서 비판적 시 각과 목소리로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음을 신뢰하고 있다. 품 역시 품의 활동에 공감하는 사 람들에게 ‘주주’로서 동참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360명이라는 숫자는 품에게는 10배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다.

다양해서 아름답다.

품의 주주들은 가입경로, 연령, 지역, 그리고 활동영역이 참으로 다양하다. 주주를 하나씩 세 밀히 분석해 보면 품의 과거, 현재를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그만큼 주주는 품의 변화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참고로 주주 개념이 도입된 초기에는 지로를 이용한 후원과 CMS를 이용한 후원이 동시에 사용되었던 시기였다. 현재 지로로 가입한 주주들의 기록을 찾 을 수 없어 정확한 데이터로서는 떨어지나 현재 360명의 데이터를 토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연도별 가입현황, 2012.6 현재>

<가입동기, 2012.6 현재>

년도

인원

비율

가입동기

비율

2001

14명

4%

품 초창기 멤버 혹은 청년 자원활동가

4%

2002

18명

5%

내부 및 외부 교육사업

5%

2003

36명

10%

사업을 통한 주주가입

10%

2004

25명

7%

주주참여 활동 및 주주소개

7%

2005

36명

10%

자녀의 성장을 보고 주주에 동참한 부모

10%

2006

40명

11%

품동이 출신

11%

2007

40명

11%

심한기 대표 외부활동(강의 등)

11%


2008

47명

13%

기관방문

13%

2009

32명

9%

언론 혹은 품 홈페이지를 통해

9%

2010

22명

6%

품 인턴 및 직원들의 소개를 통해

6%

2011

36명

10%

품 재직 및 인턴 출신

10%

2012

14명

4%

기타

4%

합계

360명

100%

합계

100%

먼저 연도별로 주주가입현황과 가입경로를 살펴보자면, 초창기에는 품에서 활동한 청년 자원 활동가들이 중심이었다가 중반부부터는 품에서 행하는 교육사업, 지역사업, 네팔사업 등이 활 발해지고, 주주여야만 참여할 수 있는 ‘참맑은물살’, ‘오~히말라야’ 같은 프로그램들이 마련 되면서 주주 가입자 수 역시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교육사업을 통한 가입경로 비율이 가장 높은데 이는 품의 철학과 실천방식이 구체적이고 압축적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교육 사업은 청소년활동 실무자 및 관심 있는 대학생을 주요 대상으로 했으며 6년간 진행되었던 ‘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실습’을 통한 가입의 경우가 가장 많았다. 또한 품을 현재 구성하 고 있는 직원들 외에도 직원이나 인턴으로 활동했던 사람들도 주주로 많이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품을 직접적으로 만난 사람들이 품의 주주가 되며 그만큼 품의 주주들은 품의 실천철학과 방식의 이해를 토대로 하는 동지인 것이다. 근래에는 비율은 적지 만 언론보도 혹은 홈페이지를 보고 가입하거나 아이들의 성장을 체감한 부모가 가입한 경우 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지역과 나이층 역시 다양하다. 서울부터 제주도까지,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지역적 분포 와 나이층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품에서 진행해 온 교육 사업과 매우 큰 연관성을 갖고 있다. 품을 찾는다면, 품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강의와 교육을 했고, 전국지역의 청소년 관련 활동가 및 관심있는 청년들을 모아 교육했기 때문이었다. <주주 연령대, 2012.6 현재>

<주주 성별, 2012.6 현재>

연령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남

40%

비율

14명

43명

33명

8명

2명

여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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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지역 분포도, 2012.6 현재> 지역 강원 경기 비율 4%

경남/경북 광주 대구 대전 부산 서울 인천 전남/전북

24% 3%

2%

2%

2%

2%

49% 3%

3%

제주

충남/충북

해외

0.5%

5%

0.5%

품의 배경에는 사회복지, 청소년복지를 빼 놓을 수 없다. 표에서 보듯이 이 두 영역의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을 보면 더욱 확실하며 세부영역 또한 다양하다. 형태적으로는 청소년문화의집부 터 노인복지시설까지, 내용은 청소년들의 문화활동을 지원하는 것부터 의료보건관련 활동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품의 특색은 사회복지청소년복지에서 흔히 연결되지 않는 영역에서 활동하 는 사람들이 주주로 참여하다는 사실이다. 문화예술, 언론 및 미디어, 대안교육 등이 여기에 해 당된다. 이는 품의 시작부터 중요한 키워드였던 ‘문화’, ‘교육’에 대한 시각이 확장되고 새로운 접근방식을 실험했던 품의 활동과 매우 긴밀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영 역들과 일적인 관계,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넘어 주주활동까지 동참한 것은 품에게 있어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또한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지역의 관공서, 여성가족부 등에서 일하는 분들, 재단이나 협의회 등에서 활동하는 분들도 주주로서 품의 활동을 지지하고 있다. <활동영역, 2012.6 현재> 청소년관련단체 및 시설

11%

국제활동

1%

언론 및 미디어

1%

공무원

3%

대안교육

1%

재단 및 지원센터 6%

교사

3%

대학교수

1%

기타

교육청

2%

문화예술

7%

개인사업

4%

사회복지

20%

일반직

6%

시민단체

4%

주부

6%

작은도서관 1%

꾸준해서 감사하다

품의 주주들은 한 번 주주로서 가입하면 최소 1년 정도 유지하고, 1년 이하의 단기 주주 비율 은 높지 않다. 대부분은 3년 이상이며 10년 넘게 유지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왜일까?


앞에서 말한 대로 품이 관련 현장에 지속적으로 사례를 전달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길 바라고 있고 신뢰하기 때문이다. 또한 품이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개개인의 삶 과 일에 자극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품 역시 주주가 품을 불러 준다면 마다하지 않고 그 곳 으로 찾아가고 있다. <주주 유지 기간, 2012.6 현재> 11년

10년

9년

8년

7년

6년

5년

4년

3년

2년

1년

1년 미만

3%

6%

10%

7%

10%

11%

11%

13%

9%

6%

10%

4%

주주들은 품에게 경제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버팀목 역할을 해 준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이 사회가 그만큼 상식적이지 못하기 때문 이지 않을까. 품 역시 20년간 해 온 활동들은 남들과 결코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만들어 가며 남들과 소통할 수 있는 문화적인 힘을 길러내는 일’ 이었다. 품이 20년간 이를 위해 기본을 지키며 끊임없이 본질이 무엇인가를 성찰했던 것을 품 의 주주들이 공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꾸준하게 품을 지지하고 있는 주주들 덕분에 품은 20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만들어 올 수 있었으며, 만들어 갈 수 있다.

일상적으로 품 소식 나누기

주주들에게 품이 꼭 해야 하는 것이 일상적으로 품의 활동

주주와 함께 한 나눔과 소통

을 공유하고 전달함으로써 품의 실천과정을 여과 없이 나 누는 것이다. 품의 일 뿐만 아니라 일상의 소소함을 나누며 물리적인 거리를 넘어설 수 있는 관계를 맺고 있다. 1주일에 한 번씩 웹으로 품의 일상다반사 를 <품늬우스>라는 이름으로 10년이 넘게 유지하고 있으며, 생일을 맞은 주주들에게 <손 편지 >로 멀리서나마 마음이 담긴 축하의 말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98년도에 만들어진 소식지 <두 레품>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내부적으로 일이 많다는 핑계로 비정기적으로 소식들을 전할 때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의 일상과 일을 나누며 품과 주주들이 함께 교감하고 있음을 심심치 않게 확인하고 있다. 일상적인 소통은 품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유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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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언제나 바쁘게 그리고 밝고 환하게 일 해나가는 모습이 새삼 보고 싶습니다. 조만간 한 잔 할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품은 언제나 마음의 따사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곳이기에 좋습니다. - 고인석(성신여중 교사) 어쩜 이리들 부지런을 떠는지.... 참으로 대단하고 대견하고 부럽습니다. 품은 지부를 안 만듭니까? 뭐, 인천지부? 김포지부? 그래야 어슬렁어슬렁 마실가듯이 놀러갈 터인데... 으~~~~ 여기서 거기까지는 너무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품입니다. 그나마 온라인 늬우스로라도 생기를 전달받습니다. 오늘도 품 식구들.... 아좌아좌 힘내세~~~ !!! 건강!!! - 권오현(교육연극) 4월의 뉴스지기가 유현희 선생님이셨나요? ‘우리는 왜 창원에 갔는가, 마지막 뮤직토크 이야기...’ 글을 읽으면서 그 생각의 깊이와 재치와 필력에 감탄했는데, 우리 사회복지사 중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청년이 있는가 라며 감탄했는데, 그 청년이 바로 유현희 선생이었나요? 4월 뉴스지기에 대한 저의 감탄과 감사가 5월의 뉴스지기에게는 부담이 되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꼭 말하고 싶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한덕연(사회복지정보원) 메일을 열어보고.. 흐뭇해지는 품 뉴스로 한 주를 시작했습니다. 아침부터 실수 연발이여서리.. 기분도 꿀꿀했는데.. 마지막에 있는 반가운 얼굴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네요^^ 즐거워 보이는 품 분위기가 오늘은 겁나게 부럽습니다~~ 늘..행복하세요.. 품 여러분들~ - 변효정(사회복지사)


품에 보관된 두레품 의 수는 엄청 많다. 여기에는 아주 일부 만 담아본다. 두레품 은 앞으로도 계속 이 어질 예정이다.

주주들과 나눔

품이 잘 하는 일 중 하나가 ‘사람 흔들기’이며, 많은 주주들 역시 자신들을 자극하고, 그들이 만나고 있는 아이들을 흔들어 주기를 품에게 바라고 있다. 그래서 주주를 대상으로 이러한 활 동을 진행했으며, 앞으로도 작은 활동들을 예정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으로 품을 찾는 주주들이 많다. 사업 초반에 특히 품을 많이 부른다. 청소년들을 만나는 실무자들은 청소년들과 1년 활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축제, 문화기획, 역할’을 키워드 로 한 교육에, 문화예술 영역, 사회복지, 청소년활동 등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역시 ‘행복한 기획’을 주제로 한 여는 강의에, 품의 지역활동 및 네팔활동 사례를 직접 듣기 원하는 주주 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 품이 이런 부름을 받을 때는 일정을 최대한 고려하여 그곳이 어디든, 강의료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달려가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주주들을 대상으로 한 ‘콜로키움’을 진행하기도 했다. 간헐적으로 진행되던 주 주들과의 일대일 만남에서 벗어나 무엇보다 말만 많았던 ‘주주와의 나눔을 위한 실천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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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일상을 환기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서로의 생각과 삶 을 나눌 수 있는 주주콜로키움은 품과 주주, 이야기손님 모두에게 의미 있는 자극과 성찰의 시간으로 마련한 활동이었다. 콜로키움의 이야기 손님들 대부분은 품의 주주였으며, 주주가 아니더라도 품과 오랫동안 일적으로, 인간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자 주 만나지 못하는 주주들과 생각과 고민을 나누고 의도했던 성찰과 자극의 기회가 되어 주었 다. 아쉬운 점은 2008년 진행된 콜로키움이 명맥을 잇지 못하고 끝난 점이다. 하지만 주주들 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자극을 주고자 하는 품의 고민은 여전하며, 앞으로 여러 방식을 통한 추진을 예정하고 있다.

2008년에 9명의 이야기 손님을 초대해 삶과 경험을 나누는 ‘주주콜로키움’


또한 품이 네팔에서 활동하며 ‘좋은 것을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 자’라는 의미로 2006년부터 <오~히말라야>가 진행 중에 있다. 이 역시 품의 주주만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으로 품이 7년간 네팔에서 맺은 인 연과 여행의 노하우들이 <오~히말라야>에 녹아들어 있다. 300명이 넘 는 사람들이 <오~히말라야>를 통해 새로운 문화적 경험과 네팔에서 만 난 사람들로 인해 따뜻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고, 일상을 다시 바라 볼 수 있는 힘들을 가질 수 있었다. 앞으로 주주와 네팔과의 행복한 교 감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자녀들을 함께 키웁니다.

품이 20년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기기 시작한 일이 자녀 세대의 등장이었고, 품 역시 주주들 의 자녀들을 위한 일들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참맑은물살’ 캠프이다. 물살캠프 초창기 는 꼭 주주 자녀가 아니더라도 참여할 수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품과 관계있는 사람들의 조 카, 동생, 자녀 등이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주들의 자녀들이 하나 둘씩 늘어가고 성장해 감에 따라 ‘참맑은물살’ 캠프의 정체성은 주주들의 자녀만 참여할 수 있는 캠프로 변화되었 다. 캠프는 일 년에 한 번뿐이지만, 부모세대부터 관계가 있고 품 역시 오랜 기간 청소년들을 만나왔던 경력들이 있어 3박 4일간의 시간을 온전히 보내며 발견되는 아이들의 긍정적인 점, 아쉬운 점들을 부모들과 소통하고 있다. 2011년에는 물살캠프에서 처음으로 부모모임을 하며 아이들이 교육을 함께 고민하고 나누는 자리를 갖기도 했고, 아이들의 성화에 겨울캠프가 만 들어지기도 했다. 물살캠프에 재미를 느낀 아이들은 꾸준히 참여를 하고 있어 주주의 자녀들 이 성장하는 것을 품과 함께 하고 있음을 더욱 강하게 느끼고 있다. 또한 물살캠프는 품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모둠교사 혹은 보조교사로 주주들의 자녀를 돌보고 있다. 품 직원 들은 물살캠프를 진행할 때면 품의 과거, 현재 미래가 한꺼번에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있고, 그 행복함은 주주자녀들을 위한 캠프로 지속해 나가는 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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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그리고 순환

부모에서 아이에게로 연결되는 순환 “잊혀지는 시간과 순환하는 시간의 차이”

품 초창기 품의 실습이나 교육사업에 참여했던 청년이 이제는 부모가 되어 아이를 품에 보 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 중 의미 있는 사례가 있다. 얼마 전 심한기대표가 품 홈페 이지에 “잊혀지는 시간과 순환하는 시간의 차이”라는 제목으로 전한 이야기를 옮겨본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사례가 계속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고, 일어날 것이다. 시간은 소비되고, 잊혀지고, 단절되기 일쑤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담아가야 하는가?’에 따라 시간의 순환을 만날 수도 있다. 같은 시간 안에서도 매우 다른 과정과 결 과들이 존재하지만 그냥 운에 맡기거나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시간의 순환이 가져다주는 감동을 만나기가 힘들다. 아이들, 청년, 일상, 지역(동네), 대안교육, 문화적 상상과 인문학적 사유 그리고 실천... 뭐 이런 단어들은 품 20년 동안의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키워드들이다. 그리 고 그런 과정에 만들어진 것 중 하나가 <무늬만학교>이다. 일반학교의 아쉬움과 대안학교의 아쉬움들을 채울 수 있는, 품이 잘 할 수 있는 접근으로 시작한 것이 <무늬만학교>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무늬만학교>를 열었다. 올해는 아이들만이 아닌 부모와 함께 면접을 보았다. 열 네 가족의 면접 중에 품이 보내온 시간의 흐름과 순환을 만날 수 있는 장면이 있었다.

올해 중학교 1학년이 된 윤섭이와 중학교 3학년이 된 지산이, 그리고 부모님들과의 인터뷰 장면이다. 지산이는 작년에 이어 2년째 <무늬만학교>에 입학을 했고 지산이의 아버지인 오 원식 선생은 품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 숭곡중학교 교사이기도 하다. 어머니 역시 품의 주 주이고, 약사시다. 가끔 품 아이들 행사에 약을 후원하시기도 했다. 이 사진 한 장에서 과 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시간의 순환을 만났다. 윤섭이의 엄마인 이유신님은 20대 대학시절부터 품에서 진행했던 ‘소집단워크숍(1995)’ 에 참가한 후 인연이 되어 사회복지 실습과 품의 자원활동가로 활동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 다. 이후 사회복지사인 지금의 남편(신민철님)과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품과는 주주로서의 참여 이외에는 뜸한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다 두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주 주 자녀를 위한 <참맑은물살>캠프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또 다른 방식의 소통이 만들어졌고 윤섭이가 중학생이 된 올해 <무늬만학교>를 지원하는 학부모로서 품과 조우하게 되었다. 15년이 넘는 시간이다. 이런 장면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순환의 시간들을 감사하게 만 날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이유신’이란 사람이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을 하고, 결혼을 하 고, 아이들을 키워가는 과정들이 ‘품에서 보낸 청년기와 어떤 연결이 있는지?’를 본인에게 확인한 적은 없지만 오랜 시간 품의 주주로서 품을 지지하고, 아이들을 품 캠프에 보내고 지금의 <무늬만학교>의 학생으로 활동하는 장면... 그리고 <무늬만학교>의 학생인 지산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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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서 품과 교육을 나누고 주주로서 함께하는 가족들과의 면접 과정은 20년 품 역사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순환의 시간들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보여지는 사람의 흔적만이 아닌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삶 속에 꽤나 많은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여 전히 지금도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희망이다.

품 일꾼으로의 순환

20년을 돌아보면 직원(인턴포함)이 품에서 일하게 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첫 번째는 품의 교육사업을 통해 매력을 느껴 청년자원활동가로 활동하는 사이 서로 살아볼 만하 다고 판단되는 경우. 두 번째는 청소년시기부터 품에서 활동한 품동이가 성장하며 역시 함께 살아볼 만한 관계라는 것이 느껴지는 경우이다. 품은 지금까지 적지 않은 수의 직원이 일을 했지만 3년 이상을 재직한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현재 품을 구성하고 있는 직원들은 10년차, 9년차, 5년차, 3년차 등, 짧지 않은 시간을 품에서 살 아가고 있다. 이렇게 변화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 었을까? 첫 번째는 조직의 비전과 개인의 삶의 비전 이 많은 부분 맞닿았으며, 품 조직의 비전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 가고 있음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 이다. 두 번째는 점차 안정화되어가는 경제적인 토대 덕분이다. 예전 직원들이 품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 은 조직과 다른 비전, 새로운 경험에 대한 욕구 등과 같은 경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장 큰 이유였다. 물론 아직 품의 경제적 상황은 사회적인 인식으로 바라봤을 때는 부족하지만, 품 내부적인 노력과 더불어 주주의 꾸 준한 증가로 인해 조금씩 경제적인 안정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다. 현재 품 직원들은 모두 주 주이자 품 역사의 산 증인으로서 스스로 순환적인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지금처럼 의심과 사유를 통해 품의 가치를 지켜가기

‘짧지 않은 시간 주주들이 품과 동참하고 있는 이유는

행복한 숙제

무엇일까? 그리고 품이 지켜가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품 20년에 떠오르는 당연한 질문이었다. 2011년 6월에 품의 거의 모든 역사를 알고 있는 주 주부터, 이제 품과 관계를 시작한 주주까지 연령대, 활동영역 등을 고려해 열 분을 모셔 ‘품 20주년이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를 묻고, 막걸리 한 잔을 함께 마셨었다. 그 자리에서 나눴 던 이야기들 중에 품이 새겨들어야 할 제안 몇 개를 전하면, 품에 거는 기대가 많다. 품의 청소년들이 자라서 청년이 되었으니까 이제는 당당하게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 한편에선 청년들이 등록금투쟁을 하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괴로움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에 대한 희망 등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 김지선(노원교육지원센터 ‘나란히’) 품에는 다양한 매뉴얼이 있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지역과 다른 기관과 실무자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것을 20주년을 맞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 이장형(지구촌나눔운동 몽골사업장 파견활동) 품의 정신을 지켜갈 수 있었던 것은 돈과 타협하지 않은 이유에 있는 것 같다. (중략) 사람에 대한 인큐베이팅을 해내는 것이 품의 장점이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품의 20주년을 통해 사람들이 자극하고, 전파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조영미(대한 YWCA 연합회)

모든 주주가 그렇다고 결코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품을 오랜 기간 동안 지켜본 주주들이 품 에게 바라는 것들을 추려보면 ‘관련 현장과 청년들을 흔드는 일, 품에서 자란 청년들이 청년 으로서 자기 삶을 당당하게 외부에게 전달하는 것’ 등이다. 이것은 품이 품다움을 잊지 않고 품이 가진 매력을 지켜가야만 가능한 일이다. 품의 매력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잃지 않고,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의 희망을 믿으며 청소년과 청년들을 활동으로, 교육으로 흔들어 내는 일일 것이다. 이것이 품의 주주들이 바라는 일이며, 더 많은 사람들이 주주로 동 참할 수 있는 원동력일 것이다. 품은 앞으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 지켜겨야 할 기본을 놓치지 않고 살아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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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와 함께 만들어 가는 안정적인 운영구조

품이 반복적으로 겪고 있는 경제적인 난관을 넘어 이제는 안정적인 조직구조를 만들어야 한 다는 제안의 목소리가 많다. 품 역시 누구보다 깊은 공감을 하며, 이를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필요하다. 품의 활동들이 확장되며 품에게 요구되는 책임들을 다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운영 구조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현재 주주 360명이 가진 의미는 결코 작지 않지만 품의 안정 적인 운영구조를 만드는 측면에서는 아직은 부족하다.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는 품 내부의 몫 이 가장 크다. 품은 올해 강북지역에서 품이 하고 있는 ‘십대와 마을만들기’와 연결해 (사)삼 각산재미난마을과 함께 사회적기업에 참여하며 인건비를 지원받고, 마을의 문화와 실천의 장 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품은 앞으로 지켜가야 할 가치가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인 운영 구조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러한 품의 시도와 노력도 필요하지만 주주들이 힘을 보탤 수 있도록 가능한 역할을 제안하는 것도 필요하다. 몇 년 전부터 주주들 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품의 가치를 설명하고 주주를 늘리는 자발적 주주배가 운동을 시작했지 만,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이는 주주들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품이 주주들이 움 직일 수 있는 동기부여를 만드는 과정이 부족했다. 앞으로 이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기 위 한 구체적인 시도를 해 볼 예정이다.

주주들과 소통과정의 확장

새로운 주주가 늘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의 주주가 품의 가 치와 활동의 이해를 통해 지속해 가는 것이다. 이를 위한 품의 노력은 게으름 없이 지속되어 야 할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품늬우스>, <손편지>, <활동리뷰>, <두레품> 등이 일상적인 나눔이 가능하도록 좀 더 안정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 또한 자녀들을 위한 <참맑은물살> 캠프뿐 아니라 <콜로키움>과 같은 주주들을 위한 활동 역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품은 몇 가지 상상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첫 번째는 올해 품 20년의 노하우를 전달하는 <릴레이 워크숍>을 계획하고 있다. 총 5개 영역 으로 9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되며, 관련 현장 활동가 및 관심 있는 청년들에게 품의 철학과 실 천 방식을 전달할 예정이다. 5개 영역 안에는 비영리조직으로 걸어온 20년 안에 담겨진 활동과


사람, 조직을 해체(解體)하고 희망(希望)을 찾는 20주년 기념 포럼도 마련되어 있다. 품의 주 주만을 위한 워크숍은 아니지만, 이 자리에서 품 주주들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으며 각 영역 별로 출판도 예정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심한기의 아카데미>를 열어 심한기대표가 품에서 보낸 개인의 역사와 품의 역사, 품의 활동을 토대로 한 노하우 전수를 해 볼 예정에 있다. 구 체적인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주주만을 위한 특별한 나눔의 자리를 마련해 볼 예정이다. 세 번째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참맑은물살>, <오~히말라야>를 지속해 나가며, 주주들이 있 는 곳으로 찾아가 짧지만 행복한 만남을 했던 <주주를 만나다> 역시 다시 시작해 볼 예정이다.

글을 맺으며...

품이 아직 채워가야 할 것도 많지만 20년이란 시간을 열심히 노력하고 살았음을 느낄 수 있 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지난 역사를 찾고, 데이터를 정리하고, 주주들이 남겨준 수많은 자 취들을 바라보며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애정과 관심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부족하지만 품이 좀 더 당당하게 살아도 될 것 같은 믿음을 가지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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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막에서는... 오랫동안 품과 깊숙한 관계를 맺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의 ‘기억과 희망’들을 엮어봤다. ‘기억’ 부분에는 품과 함께 했었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다시 또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있고, ‘희망’에는 품이 만들어가야 할 앞으로의 길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아봤다. 그리고 히말라야 네팔에서 날아온 참 아름다운 메시지들도 함께 엮어봤다.


“기 억 과

“

희망

3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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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품을 사랑 합니다”

축하의 글

자신이 살고 싶은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주인이 되기 위해 서로 배려하고 협동하는 것, 자활에서 주민들에게 강조하는 것 들입니다. 품이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 이 되고자 노력해 온 지난 스무 해의 발자취 속에 추구해 온 것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돌이켜 보면 본고사를 보고 대학을 들어가던 시절을 보낸 제가 입시경쟁의 학교 울타리에서 회의 를 느낄 때 사춘기의 고민을 함께 풀어간 장은 교회 중고등부 학생회였습니다. 사람을 소중히 여 기는 교회 선생님이 공부와 성적만 강요하는 학교 선생님 보다 가슴에 소중하게 남아 있습니다. 내 인생의 스승을 떠 올려보라면 그 때 교회선생님이 항상 생각납니다.

중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자퇴한 저의 외동딸이 선택한 곳은 하자센터의 작업장학교였습니다. 뮤지컬배우가 되고 싶었던 딸이 중학교에서 희망을 못 찾고 고민할 때 새로 시작하는 하자 작업 장학교에서 본인보다 서너 살이나 많은 동기들과 함께 고민하고 씨름하고, 도봉구에서 영등포까지 어린 나이에 다니느라 애쓰는 딸을 보며 저희동네에도 하자센터 같은 곳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지요. 그때 품과 심한기 대표를 알게 되었고 딸과 함께 세종문화회관에서 품이 진행하는 청 소년연극제를 보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비록 저희 지역에 하자센터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더 건강하게 청소년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온 품이 있기에 크게 아쉽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바라기는 품이 품 내부 활동을 충실히 확장 할 뿐 만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청소년 단체들과도 더 적극적으로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특히 도봉의 입 장에서는 도봉과 함께 해 온 품이 강북하고만 더 친한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도봉도 청소년 유관 기관과 단체가 네트워크 해서 도봉푸른앤을 출범시켰습니다

‘당당하게’ 품과 심한기 대표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입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당당하게 푸른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품이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도봉지역자활센터장 송건 도봉 푸른앤 대표


“기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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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하나.

성년 품 청소년문화공동체와 청년 심한기

김종국 청년 심한기의 슈퍼바이져 송파청소년수련관 관장

1. 품과 손춘석, 그리고 강대근 선생님 “품” 로고타이프를 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은퇴하 신 손춘석 선생님이시다. 경기도 이천 청소년활동지도자의 산실 유네스코청년원은 나와 심한 기 대표에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곳이다. 또 한 분 잊을 수 없는 분, 몇 년 전 작고하신 영 원한 청년 우리들의 강대근 선생님이다. 유네스코청년원에서 우리는 그렇게 청소년을 만났다.

2. 심한기와 서울청소년회관, 그리고 음악 내가 심한기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아마도 88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해 일 것이다. 그리 밝 지 않은 모습으로 군에서 갓 제대한 그는 늘 국방색 야전 점퍼를 걸치고 서울청소년회관 분관 인 청량리청소년회관을 드나들며 자원봉사 활동을 전개했다. 말이 자원봉사지 청소년프로그램 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쫄따구 신세였다. 그 이듬 해 복학해서 그는 우리 회관에 사회사업 실 습을 나왔다. 그리고 고등부 음악동아리 “한우리”를 지도하였다. 한우리의 회가를 작사,작곡 하였고, 회원들과 관계가 참 좋아서 회원들이 매우 잘 따랐다. 실습을 마치고 나서도 그는 적 지 않은 기간 동안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청소년활동프로그램이 열리는 날이면 여지없이 나 타나서 열심히 봉사활동을 했던 것이다. 특히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필요한 프로그램을 개최할 때면 인력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를 통해 레크리에이션 연구 동아리 “이든” 회원들과 봉사 활동 동아리 “젊은 새 이웃”의 많은 회원들이 서울놀이마당에서 실시되었던 청소년민속제 등 의 프로그램을 진행해주곤 했었다.


그는 자원봉사 기간 동안 적극적인 면을 보였지만 어떤 때에는 일에 대해 매우 관찰자적인 모 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사실 지금에서야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가 청소년운동에 인생을 걸 것이 라고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그 때의 그런 태도가 청소년과 함께 하는 일에 대한 미래를 나름대로 차근차근 꿈꾸며 하나 둘씩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후 “ 기타가 있는 좋은 나라의 풍경”이라는 대학부 음악동아리를 결성하여 매우 왕성한 활동을 전개 하며 대학로의 인켈아트홀에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황토길 베고 누워 잠자는....” 으로 시작 되는 회가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는 통기타와 베이스기타 연주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악기를 다 루는 재주가 대단하다. 작사 작곡 실력도 겸비하고 있고 레크리에이션 지도 실력도 녹록찮다.

3. 노래품, 그리고 품의 탄생 1990년대 초 내가 서울청소년수련관에서 일할 때 그 젊은 날의 뜨거운 열기를 모아 손춘석 선생님을 중심으로 심한기 대표가 노래모임 “노래품”을 조직하였다. 지금도 그 극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초가을날 대학로의 충돌2에서 이틀에 걸쳐 멋진 공연을 했다. “품” 로고타이프는 그 때 “노래품” 공연 포스터의 글씨를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품”은 손춘석 선생님 께서 직접 쓰신 아니 그리신 매우 독특하고 아름다운 글씨이다. “품”을 보면 의미 자체도 포 근한 느낌이라 그저 정겨워서 꼬옥 안아주고 싶다. 그래서 “품” 하면 손춘석 선생님과 “노래 품” 공연이 생각나는 것이다. 당시 “노래품” 공연 기획을 담당하면서 수련관에서 예산을 따내 고 티켓을 판매했던 기억이 새롭다. 품의 탄생은 20년 전 청량리청소년회관 지하 1층의 4평 정도의 좁은 골방에서 시작된다. 당 시 청량리회관의 대모이자 넉넉한 인심의 소유자인 최종희 선생님께서 공간을 마련해주셨다. 심한기 그리고 이준호, 양금석, 신석호 후배가 품의 첫 출발을 함께한 사람들이다. 그 곁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은 내가 늘 있었다. 아니 보이지 않게 창식이형도 있었다.

4. 추억, 그리고 성년이 된 품을 축하하며 그런데 잊고 있는 사실 하나는 심한기 대표가 나랑 청량리청소년회관에서 함께 일을 할 뻔 했다. 내가 강력히 추천해서 그는 면접에서 최종합격을 했다. 하지만 그는 출근하지 않았다. 틀에 박힌 조직 생활에 적응하며 일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다른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다. 나로서는 상당히 아쉬움이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심대표의 결정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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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심대표에 대한 짙은 아쉬움이 하나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내가 결혼을 할 때 축가 를 불러주길 기대했는데 성사되지 못했다.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그가 인도로 배낭여행을 떠난 것이다. 하지만 심대표, 내가 결혼 30주년을 맞이하면 꼭 축하의 노래를 불러주시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이준호, 양금석, 신석호 후배들이랑 함께 통기타를 메고서...... 으음, 그리고 지금의 품 이 있기까지 함께 했던 사람 중에 잊고 사는 사람은 없는지 잠깐 멈춰 서서 뒤 돌아 보자구요.

성년이 된 우리들의 품, 뜻 깊은 20주년 생일을 마음 가득히, 우리 쌍둥이 정성을 함께 담아 축하합니다! 아울러 우리들의 품이 이 땅의 청소년들을 위해 더욱 건강하게 성장해, 청년이 되 고 장년이 되어 영원히 청소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기억 둘.

품은 내 교직 생활의 멘토, 내 삶에 그리운 품

고인석 교사풍물패 흥시렁 성신여중 교사

‘품’... 하면 지금부터 십오륙년 전쯤일까. 학교의 풍물 동아리 아이들과 ‘청소년전통예술한마 당’ 참가 신청을 하러 처음 들렀던 그 기억에서 시작된다. 닫혀 보이는 듯한 학교 현장에서 느낄 수 없던 풋풋한 따사로움의 느낌과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는 여유로운 문화공간에서 아 이들이 함께 끼를 발산할 수 있다는 그 첫 인상... 그것이 내게 다가온 ‘품’의 모습이었다. 모 두들 있는 그 자체의 모습으로 자그마한 것에서부터 실행을 하는 품의 사람들... 학교라는 가 식적이며 일상적인 매너리즘의 연속이랄 수 있는 분위기에서 벗어나고픈 그래서 신선한 인간 적 실천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품의 향기로움이 그 당시 나에겐 그리움과 포근함으로 몸에 스 며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와 외곽 청소년 문화단체는 그 당시 벽이었다. 학교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이들을 교육하 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나에게, 품의 사람들과 그 들의 일 하나 하나는 나에게 점점 깨라! 넓게 보아라! 지식이 아닌 실천이다! 라고 가르쳐주 고 있었다. 부끄러워졌다. 더 낮아져야겠다. ‘아이들 편에서...’ 라고 입으로만 행정적 문서로 만 많이 봐왔던 우리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열어야 한다. 벽과 둑은 바늘구멍이 나 실낱같은 작은 것에서 서서히 무너지지 않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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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나 혼자 무슨 힘이 되랴, 가 아니라 나 스스로 작은 것부터 관심을 갖고 아이들에게 다가서야 하지 않겠는가. 교사인 내가 학교의 안과 밖을 소통해 주는 역할로서 아이들에게 실낱같은 희 망의 불빛과 물꼬를 터줄 수만 있다면 그것이 교사의 또 하나의 소임이 아니겠는가. 아이들에 게 무엇을 많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함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품이 추구하고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 지향하는 것들이 학교가 절대 할 수 없는 소중한 삶의 교육을 뼈저리게 가르쳐준다. 품이 안고 있는 내재적 한계와 구조적 사회적 한계에도 불구하 고 품은 그것들조차 품어가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지역 아이들과 주민들과 함께 나눔을 공유 해가며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실천적 배움의 기회를 주고 그것을 다시 사회에 환원해 낼 수 있게 하는 그 에너지는 ‘품’만이 꿈꾸고 이룰 수 있는 가치라고 본다.

네팔을 가고 싶었다. 그곳을 한번 가고픈 맘이 점점 살아 꿈틀거린다. 왜? 무엇하러? 그것보다 품의 또 하나의 개척지인 머언 이국 땅 네팔의 청초한 자연과 그 속에서 삶을 하나 되게 엮 어가는 주민들의 건강한 에너지들...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다 귀한 곳일진대 그곳의 에머랄드 빛 하늘과 대지를 눈에 넣고 싶다. 품이 이미 향기를 나눈 곳이기에 더더욱 그립고 보고 싶다. 품의 20주년이 되는 그 마당에 구성진 비나리로 보답하고 싶고, 30주년 되는 그 어느 곳에 서도 처음처럼 비나리로 영혼을 나누고 싶다.


기억 셋.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박종우 청소년연극축제 연출가 극단 진동 대표

청소년전문극단 진동을 창단하고 어느 언덕에 비벼야 하나 갈피를 못 찾고 있을 때 품을 만 나게 되었다. 만났다기보다 그야말로 들이밀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게다. 인터넷에 청소년 연극을 검색어로 쳐보니 품이 진행하는 서울시 청소년연극제가 나왔다. 그리곤 무작정 품에 연락을 해보고 찾아 나섰다. 그렇게 품과 만나게 되고 청소년연극축제, 장애 청소년 연극축 제로 이어지는 연분이 시작되었다. 나와 극단 진동의 지금이 있기까지 품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품은 은인이요 스승이요 연인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품과의 관계에 서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품 20주년을 맞이하여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비 화 한 가지를 밝히려 한다.

지금 생각에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아내와 달콤한 잠자리를 하려던 바로 그 순간 심한기 대표한테서 전화가 왔다. 급히 상의해야할 일이 있으니 사무실로 와 달라는 거였다. 얼마나 중요한 일이기에 이 시간에 연락을 했을까, 라는 생각에 곧바로 차를 몰고 품 사무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심대표가 없는 것이다. 일은 다른 직원이랑 보라고 하고 자신은 먼 저 집에 갔다는 거였다. 아니, 이 밤중에 오라고 불러내놓고 지는 먼저 집에 들어가? 가더라도 내가 온 이후에 가던지... 갑자기 열이 뻗쳐 오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당장 연락해서 다시 오 라 하라고 직원들한테 말하면서 갖은 인상을 다 써댔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안절부절 못하던 직원들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런데 진짜로 심대표가 다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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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야, 나도 잠 좀 자자” 라며 들어서는데 왜 그렇게 미안하던지... 그 이후 심대표는 내가 조금 만 인상이 굳어질라치면 “야, 박종우 승질내면 무서워, 조심해” 라며 뼈있는 농을 던지곤 한다. ‘형, 그땐 정말 미안했어....’^^

그리고 또 한 가지. 작년이었던가...? 정말 모든 게 귀찮고 힘들어서 다 때려치고 싶었던 때, 술 한 잔 사달라며 심대표를 불러내서 곧 생을 마감할 것처럼 훌쩍거릴 때 품 20년이 되는 지 금도 자신은 솔밭공원에서 술 한 잔 하며 선배한테 전화해 갖은 원망과 한탄을 쏟아내고 있 다고. 그러니 힘내라고 ‘씨발 씨발...’ 하면서 함께 술잔을 기울여 주던 심대표, 아니 한기형~ 당신과 품이 있어 즐겁고 희망차고 기운 받고 위로받고 그리고 사랑을 느끼고 있답니다.

오늘도 돌아오는 길에 어김없이 불이 켜져 있는 품 사무실. 그만 일 좀 하고 일찍들 퇴근하라 고 재촉하긴 하지만 불 꺼진 품 사무실을 보면 왜 그리 허전하고 서운하던지......ㅎㅎㅎ 힘들 어도 항상 우리를 밝혀주는 환한 불빛이 되어 주셔~~ 품, 그리고 심한기 대표님! 그 곁에 박 종우와 극단 진동이 항상 곁에 있겠습니다. 우헤헤헤헤헤헤..........


기억 넷.

내가 좋아하는 품

이벽주 작은도서관 생글 대표

올해 우리 부부는 결혼 20년째다. 얼마 전 20주년을 맞이하여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들 어릴 때 자주 갔던 곳이다. 그때는 바닷가에서 종일 꼬물거리는 생물들을 찾아다녔는데 이제 는 같이 생선회에 소주잔을 기울인다. 아~~격세지감을 느낀다. 4인 가족이 이럴진대 20년 된 품은 오죽하랴. 아마 20주년을 준비하면서 밤을 새울 날도 많을 것이다. 20년 동안 품이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과의 이야기 그것을 어찌 며칠 밤새운다고 다 하겠는가. 그 긴 이야기 속 에 나도 끼워준다고 품과의 기억을 글로 쓰라고 한다. 영광이다. 그렇지만 쓰는 건 싫다. 그 냥 슬쩍 안 쓰고 넘어갈까 했다. 그런데 왜 자꾸 뒤가 켕기는지...... 결국은 자판에 손을 얹는 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떼로 모여 있는 품은 사양할 수 없는 존재이다. 5분전에 한 일 도 까먹는 내가 처음 품을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를 기억해 내며 꽂힌 시점을 찾고 있다. 완 전 무리하는 거다.ㅋㅋ

우리 딸이 초등3학년(지금은 고2)에 ‘참맑은물살’에 참여하였다. 보낼 때부터 걱정은 손톱만 큼도 안했다. 품이 하니까. 까칠한 아들도 캠프에 다녀왔다. 어딘가 다녀와서 재미있다고 말한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또 생각했다. 역시 품이야. 무슨 근거로 품을 그리 믿었는지 궁금할 수 도 있겠다. 그런데 그게 좀 싱겁다. 심샘이 민우회에서 교육을 한번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느 낌이 있었다. 교육이 빼어났느냐? 미안한데 까무러치게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다른 곳에서의 교육은 훌륭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그럴 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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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근거 있는 믿음이다. 심샘의 태도와 언어가 그런 신뢰를 주었다. 사심 없는 행동으로 탄탄히 다져진 사람만이 풍기는 향기가 있다. 물론 이런 판단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이후에 신뢰는 더욱 강화되었다는 사실이다.

동네에 작은도서관 ‘생글’을 만들고 품과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품이 아이들을 만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품의 청소년들이 동네와 소통하기 위해 우리 도서관에 찾아왔는데 이 친구들 주변에서 보는 무서운 10대가 아니다. 자발적으로 찾아온 준비된 아이들의 모습은 밝았고 재미있었고 재주 많고 예의 바르고 성실했다. 이렇게 아리따운 청소년이 되어 우리 도 서관에 찾아오기까지 품에서 얼마나 진심으로 그 아이들과 소통하였을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도서관 아이들은 동네의 언니, 오빠들에게 푹 빠져들었고 나는 아이들의 로망인 청소년들을 자세히 살피게 되었다. 이렇게 도서관에서 자란 아이들이 품으로 가고 품에서 자 란 청소년들이 도서관의 동생들과 함께 하면서 품과 생글의 인연은 확대되고 촘촘해질 것이다. 이제 스무 살이나 된 패기만만한 품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삶이 단조로워진 아이들, 책도 골든벨을 하려고 읽고 줄넘기도 인증을 받기 위해 하는 아이들. 봉사는 점수를 위해서 하고 축제는 입학사정관제를 위해 하는 아이들, 이렇게 놀이가 사라진 아이들에게 남은 것은 불안감과 이기심과 어두운 정서이다. 그런 생각에 한없이 우울해 지는 날 우이동 솔밭길을 걸어 품 사무실에 가면 80년 된 보이차로 호사를 하고 네팔의 진한 커피 향이 기분의 음계를 ‘솔’ 정도로 올려준다, 무엇보다도 아이들과 풍성한 삶을 찾아가고 있는 품. 그곳에서 풍기는 진한 사람 내음에 용기를 얻는다.

어제 읽은 신영복 선생님의 글에서 품을 본다 “변방과 중심은 결코 공간적 의미가 아니다. 낡 은 것에 대한 냉정한 각성과 그것으로부터의 과감한 결별이 변방성의 핵심이다.” 품, 이곳이 변방이다. 스무 살 생일 엄청 축하한다.


기억 다섯.

품과 마법의 조끼

이상화 1997~1999 품 일꾼 (전) 광정동청소년문화의집 관장

몇 일전 갑자기 품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는 20주년 기념 책자에 싣게 될 원고 기한에 대해 잠깐 언급하더니, 내 현 소속을 무엇이라고 인쇄해야 하는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순간 정신이 멍해짐을 느끼며 잠깐의 정막이 흘렀다. 왜냐 하면 어떤 기관의 20년 역사를 기념하는 책자에 담을 원고의 저자 중 한명으로 선택받았다는 것은 제아무리 원고 주제의 경중과 양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사실 결코 쉽거나 가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또한 이 글을 쓰고 있는 현 재 나의 마땅한 소속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순간 나도 모르게 내 현 소속을 ‘ 그냥 품이라고 해주세요!’ 라는 말이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 턱밑까지 차올라있었다. 역시 아 무래도 나는 지난 16년간 품을 떠난 후 4번의 이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내 소속은 ‘품’을 결코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다. 이 무슨 업보이단 말인가? 각설하고!

품의 20번째 생일은 곧 나에게 있어 내가 청소년활동가로서의 길을 조심스레 꿈꾸고 실천해 온 기간이 20년이 넘었다고 하는 의미와 다름 아니다. 그 만큼 품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너 무나 큰 전화기적 영향을 미친 멘토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시절 성북구에 위 치한 동선2동청소년야간공부방과 품에서 시작한 자원활동을 계기로 본격적인 청소년활동가로 서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고백하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조금 은 우습게 들릴 수 있는 말이라 좀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사실 내가 품에서 대학시절 자원활 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계기 중의 하나는 품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입던 단체용 품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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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의 마력? 때문이다. 그 조끼는 당시 프로그램 진행 스텝만 입을 수 있었는데, 자원봉사자와 직원들은 다른 색깔로 구분하 였는데 직원은 검정색, 자원봉사자는 빨간색이었다. 얼마다 그 조끼가 입고 싶었던지! 사실 나를 포함한 자원봉사자들 대부분 은 그 조끼가 주는 즐거움, 행복감, 자신감, 그리고 청소년과의 관계에서 느끼게 되는 부러움, 자랑스러움 등등의 일종의 ‘도깨 비감투’같은 상징적인 것이었다. 그것을 입는 순간 용기 있고 매력 있는 선생님으로 짠~ 하고 변신하는 느낌이랄까? 잠시 기 억을 떠올려 보면,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마다 그곳에서 만나 그 당시 아이들의 대부분은 내가 입고 있던 조끼를 부러워하는 경 우가 참으로 많았었다. 뭐 조끼에 금테를 두른 것도 아니었고 화려한 디자인의 옷도 아니었지 만 정말로 그랬다. 조끼를 한번만 입어보면 안되느냐고 졸졸 따라다니며 물어보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마지못해 잠시 벗어주면 그 걸 입고 좋아서 또래끼리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마냥 즐거워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이걸 입고 있는 사람은 전부 선생님이냐고 묻는 아이들, 그리고 이거 입고 선생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묻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더욱 중요 한 사실은 그 아이들 중에 몇몇 아이들은 우리들의 모습을 따라 현재 품에서 그리고 다른 관 련 기관에서 Youth Worker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품 조끼의 마 력은 참으로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 조끼의 뒷면에는 대략 ‘따뜻한 가슴, 소중한 땀! 품’ 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야 사실을 밝히니 시원하기는 한데, 나를 아시는 분 들 중 실망한 분들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절로 난다.

이유야 어쨌든 품에서 시작한 청소년활동가로서의 기간은 어느 덧 16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전 문직업인으로서 청소년활동가의 길을 걸어온 나의 이력에 지금까지도 많은 청소년분야의 사람 들이 나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 중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아마도 나의 첫 번째 직장인 ‘품’일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도 나를 ‘품’ 출신이라고 말한다. 나는 겨우 품에서 3년 간 자원 활동을 하고 1997년부터 1999년까지 3년간 종사한 경력밖에는 없는데, 10수년이 지 난 지금에도 나를 ‘품’ 출신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품을 아는 사람들은 나에게 조심스레 다가와서 품의 근황에 대해 그리고 품의 가치와 비전에 대해, 그리고 품에 대한 기 대 등등에 관한 의견을 피력하고 그것에 대한 대답을 나에게 듣길 원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신기하게도 나는 또 품을 대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위치에 서는 나를 발견한다.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나와 품은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 아마도 그냥 관계를 굳이 인식하고 해석하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운 공동체적 관계에 놓여있다고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가 보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싫어하는 그냥 언제나 함께 사는 가족공동체인가? 크하하! 좀 더 깊 이 들어가 이야기한다면 품은 청소년활동가인 나에게 있어 청소년과 청소년문화활동에 관한 진정성의 토대를 형성한 곳이며, 전문성의 기초를 닦은 곳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나는 다양한 청소년기관에서 실무자, 실무책임자를 거쳐 기관운영자의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었으며, 청소 년분야에서 진정성과 전문성을 모두 겸비한 청소년활동전문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진심 으로 재차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나와 함께! 그리고 품을 아는 모든 이와 함께 변화,성장해온 품에게 이 지면을 빌어 간곡한 청 이 한 가지 있다. 품이 지난 20년간 올곧게 지켜온 ‘청년’의 맛과 멋에서 ‘중년’의 맛과 멋 을 가미한 한층 더 지혜로우며, 조화와 균형감각을 갖춘 발전된 기관으로 혁신하기를 진심으 로 바란다. 왜냐하면 “참 진리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항상 하는 법이 없어 늘 변화하 다는 것 자체만이 참 진리이다” 이라고 설하신 석가세존의 가르침처럼 앞으로 품이 걷는 길의 방향과 모습은 우주의 진리법칙을 따라 거듭 변화해 가는 것이 진정한 ‘품‘ 다움의 정신을 지 켜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말한 혁신은 현재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취하는 방식이 아닌, 현재 것의 장점은 취하되 초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 현재보다 다양한 관점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의 참여를 통한 의사결정이 가능한 열린 구조의 품 운영방식을 제안한다. 이러한 열린 구조의 실제적인 모습은 좀 더 많은 토론과 연구 과정이 필요함을 언급하며, 끝으로 품의 20번째 생일을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하고, 10년 후 품의 30년 축하 원고의 글을 다시 쓸 수 있는 영광을 다시 한 번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북한산 정릉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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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기억 여섯.

품이 나에게 남긴 것

정영수 98년 삶뿌리 자원지도자 양평중 국어교사

품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99년, 내가 26살 때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 전 해인 1998년에 품을 알았다. 참여연대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알게 된 송향숙, 백미정(그 때 둘은 삶뿌리 2, 백두대간을 준비하고 있었다.)으로부터 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품 이야기를 할 때면 둘 은 다른 사람이 되곤 했다. 갑자기 꿈꾸는 눈빛을 하면서 신이 나서 이야기하는 그들을 통해 ‘품’이라는 단체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 호기심이 1999년 품으로 찾아가게 나를 이 끌었다. 그때부터 삶뿌리 3을 비롯한 몇 차례의 캠프를 함께 하며 품과 인연을 이어왔다. 품 을 알게 된 지 13년째, 지금 나에게 품이 남긴 것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1. 아내 김영주와 세 아이(혜인, 민우, 선우) ‘삶 뿌리 3’을 준비하면서 ‘삶 뿌리 2’ 선배 스텝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때 영주를 처음 만났다. 처음 만난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걸 보니 그때 난 영주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나 보다. 하지만 영주와 사귀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였다 (이젠 말할 수 있다. 내가 사귐을 당한 거다^^ 영주의 용기 덕분에 우린 만날 수 있었다). 그 리고 1년 뒤 2001년 12월 우린 결혼했고, 지금 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물론 우린 참 행 복하다. 나만 그런가? ^^


2. 캠프 중독증 선생으로서 사실상 아이들을 처음 만난 것이 품 캠프 ‘삶 뿌리 3’이었다. 삶 뿌리를 마치며 모둠 아이들과 헤어지던 그 날이 생생하다. 버스에서 내려 동그랗게 모여 “우리 아이들의 나 라는 하늘과 땅이 하나로 되어.....♪” 노래를 부르며 울며 아이들을 보냈다. 참 많이 행복했던 만큼 참 많이 울었고 아이들을 보내고 나서 참 많이 허전해했던 기억이 자꾸 나를 캠프로 이 끈다. 캠프 참 좋다! 그래서 자꾸 캠프로 나서게 된다. 급기야 작년에는 6박 7일 무전여행 캠 프, 40일간 인도로 청소년 단기출가까지 다녀왔다. 그래서 우리 집 아이들은 아빠에 굶주려 있다. 가정파괴의 주범, 품은 캠프를 중지하라!

3. 아이들을 보는 따뜻한 눈, 정성스러운 손길 품에서 일하는 것은 큰 축복이기도 하지만 몹시 괴로운 일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생각하고,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품의 모습은 한없이 따뜻하다. 철저하게 아이들의 자리에서(어쩌면 품의 심한기 샘의 정신세계가 어려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행복과 성장을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들에 대한 애정만큼, 꼭 그만큼 품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철저하다. 으~~ 그 철저함, 꼼꼼함이 때론 힘겹기도 했지만, 그 정성스러운 손길 덕분에 아이들과 나는 또 얼마 나 성장했는지... 품의 정성스러운 손길 속에서 나도, 아이들도 별처럼 반짝일 수 있었다. 그 따뜻한 품에서 내가 처음 아이들을 만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지금도 학기 초 학부모에게 쓰는 편지 첫 대목에 이 이야기를 쓴다.

저는 교직에 들어오기 전 대학교 때 청소년 단체에서 2년간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자원봉사를 할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다. 첫 캠프 때였습니다. 미숙한 저를 참 많이 도와준 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물 심양면으로 저를 많이 도와준 너무도 멋진 녀석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녀석 학교성적이 전교에서 꼴등 이더군요. 만일 그 녀석을 학교에서 만났더라면 내가 그 녀석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생각하니 (아마 틀림없 이 의욕 없는 문제아로 봤겠지요.) 섬뜩하더군요. 그때 저는 ‘비록 내 앞에서는 문제투성이고, 학교에서는 미숙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쉽게 그 아이를 평가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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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4. 광견병 캠프 준비하면서 한기 형한테 여러 번 머리를 물렸다. 아팠다.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 지! 사람인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난 학교로 발령을 받고 교사가 되었다. 작년까지 10 년 동안 아이들의 머리를 물었다. 나도 내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 아이들의 머리를 물고 있었다. 이건 광견병이 틀림없다. 다행히 올해는 아직 1명도 물지 않았다. 완치라고 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적어도 치료기 간이 10년 이상은 걸리는 난치병인 듯하다. 제발 불치병이 아니기를!

이제 품이 20살 청년이 되었다. 품이 20년이 살았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한 아이들, 행복한 선 생님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리라. 나 한 사람에게 품이 남긴 것이 이렇게 많은데, 20년 동안 품 을 지나갔던 수많은 인연들의 가슴에는 어떤 흔적들이 남아있을까? 그 흔적들이 밤하늘의 별 처럼 이 세상을 조금은 더 아름답게 하고 있지 않을까?

품이 오래 살아 장수만만세에 출연하면 좋겠다. 품, 사랑한다!


기억 일곱.

품, 사람

박경호 94년 품 2기 실습생 동안복지재단

기억... 품 20주년을 맞은 원고 제안을 받고 오랜만에 품과 나의 지난 시절을 회상하면서 어 떤 기억이 떠오르는지 조용히 지나간 시간들을 추스려 보았다. 어느덧 청년의 나이를 먹은 품 을 바라보니 나는 그보다 딱 두 배의 나이라는 것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품이 이렇게 스무 해 를 지내오며 아이들을 만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품과 함께 하고 있음에 모두와 함께 축하하고 싶다. 그리고 지난날을 통해 품의 오늘을 인식하고 이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생각하는 시 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편, 품이 지금의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 말하자면 솔 직히 지금의 나는 기억 속 그 때 같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내가 품20주년을 맞 아 좀 묵은 사람으로서 기억에 대해 말할 만한, 품에서 선정한 멘토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자 문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대학 2학년 시절 품이 이제 갓 걸음마를 뗄 무렵, 우연히 품 캠프에 참여한 계기로 2기 실습생 이후에 한참 동안은 그야말로 품에서 살다시피 했었다. 품에서 아이들을 만난 시간들은 나를 가슴 뛰게 했고,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일하면서 청소년들에게 열정을 쏟게 한 계기가 되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 복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과정에서 품에서의 들음과 배움, 품 에서 만난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 나눔으로 고민이 많았고 영향도 많이 받았다. 군대를 제대하 고 복학한 후 품에서 자원지도활동을 할 땐 열심히 활동하는 선후배 자원활동가들과 ‘늘품우 리’라는 친목모임을 만들기도 했었다. 이제는 과거이고 기억이 되어버린 일들이지만 그 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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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께 한 젊음과 열정은 정말 뜨거웠고 참 즐거운 만남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 못한 기회가 계기가 되어 남들이 흔히 경험하기 힘든 일에 과감히 도 전하며 중국으로 떠날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품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 덕분이었다고 말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국에서 일하며 아이들을 만날 때 녀석들에게 캠프다운 캠프를 경 험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더 땀 흘리고 애썼던 것도 대학시절 열심히 활동했던 경험에서 우 러나온 것이었을 것이다. 중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일하면서 품을 통해 좋은 일꾼들을 만날 수 있었고 아이들을 만남에 있어 공감할 만한 공통의 경험과 고민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추억하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기억들로부터 이제는 오늘과 내일의 품을 생각하게 된다. 다시 스무 해를 지내고 중년이 된 품의 모습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조직의 리더와 구성원들은 조 직의 정체성과 방향에 대해 일체감을 갖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번 20주년을 맞는 기념 순 서가 품의 성장과 현 주소를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지향점에 대한 인식에 있어 일체감을 갖 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품이 남긴 사람, 품을 떠난 사람, 품에 있는 사람 모두 품 사람들이다. 지금 품에서 웃고 울 수 도 있고, 먼발치에서 품을 그리워할 수도 있고, 이제는 다른 생각으로 다른 삶을 살수도 있겠 지만 그 모든 것이 품의 기억이고 역사라고 생각한다. 지금 품이 추구하는 것, 품이 우선하는 가치, 품이 일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라보건 나의 기억 속에 있는 품은 사람이 희망이 고 사람을 가장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품이 남긴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기억 여덟.

품, 내 삶의 기억과 희망

최두환 2005 품 12기 실습 청원군청소년수련관

안녕하세요. 글쓴이는 품12기 실습생(2005)이며, 현재 충북 청원군에서 청소년상담사로 있는 최두환입니다. 먼저, 파란만장한 이력과 충만한 내공의 소유자! 스무 살 청년 품의 생일을 진 심으로 축하합니다. 깐따삐야~ 2005년 무더운 여름이지만 품과의 운명적인 인연으로 되돌아 가봅니다. 지난 실습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약간은 실습 후기식(?)으로 편하게 얘기해보렵니 다. 먼저 반가운 12지신(‘12기 실습생 지들끼리 신났다’의 뜻) 얼굴들을 소개합니다. 최두환 (킹스타), 이영은(..), 김현민(보거스), 이정연(두피), 강호근(옹이), 윤지현(들꽃), 이진선(달곰이), 고민정(꼼) 이상 8명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순」 품아~그때 너는 13살 밖에 안됐는데 니놈의 소문은 지방에 있던 나에게도 그 영향력이 대단했다. 아는가? 당시 대학교 4학년이었던 나에 게 실습을 굳이 안 해도 되는데 선배들의 입소문에 너의 매력을 알고야 말았다. 그 중 하나만 알려줄까? 다른 실습기관과 달리 너는 준비가 되 어 있어야 실습생을 받는다고 했다. 도도한 녀 석! 11기 실습 이후로 3년 만에 12기 실습생을 받는다고 하기에 왠지 신청 안 하면 평생 후회 할 것 같은.. 이건 선택도 아닌 운명처럼 다가온 느낌이었다. 그래서 난 니놈의 매력을 알고자 서 울로 무작정 상경했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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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왔는데 이게 뭐냐? 북한산 등반! 비도 오 는데 대빵 심쌤은 그래도 가란다. 쩝! 뭔가 찝 찝한 실습이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그 내 막을 보면 친목도모 이상으로 의미 있고 섬세 한 미션이 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또한, 심쌤 의 명언도 생각난다.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갔 을 때 가장 자연스러워진다.” 지금도 그 여운 의 감동이 현장에서 꿈틀거린다. 청소년들과 초기상담을 할 때 가끔은 인근 공원에서 산책 로를 따라 관계형성 시간을 갖기도 하는데 효 과가 좋은 것 같다.

실습을 하러 왔는데 우리보고 실습방향을 정해 보란다. 헐~이게 뭔가.. 정말 틀을 깬 발상이었 다. 실습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로 한 채 하얀 전지에 우리가 고민하고 배워보고 싶은 것들 을 담아 보았다. 이렇게 6주간의 실습방향 흐 름이 정해졌다. 한편, 즐거운 고민 중 하나로 ‘아~나는 주말에 뭐 하는가’를 경험해 보면서 소중한 일상을 느 낄 수 있었고, 의사표현 시 뜬구름 잡지 않는 것, 기획서를 쓰더라도 1page내에 상대방에 게 명료하게 전달해야 하는 것 등은 지금까지 일하면서 내 생활에 습관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 밤낮으로 계속된 합숙생활과 함께 6주간의 실습여정은 끝났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 온 나는 내 삶과 가치관에 많은 파장과 울림이 있었다. 그 중 핵심내용은 아래와 같다. 균형적 시각, 체계적 사고, 확장적 사고, 근거 찾기,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기, 핵심키워드, 소통, 관계, 고 민, 혼란, 공유, 비판, 설득, 방향성, 본질, 일상의 소중함, 익숙함의 무서움, 입장의 동일함, 파장효과(나비 효과), 자기 개념정리, 일상의 소중함.. 등 _ 품 실습 중에(2005)


품에서 배운 생생한 것들은 당시 교내 학술제를 통해 다른 친구들에게도 전해졌다. 지금 내가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도 그렇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문제가 있는 청소년들에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지극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상담이라는 방법을 통해 청소년을 변화시키고, 가족을 변화시키며, 나아가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나비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실습 후 1주년 기념으로 당시 실습생들과 함께 품을 다시 찾아갔다. 그때 심쌤이 엽서에 적어 주셨던 말씀이다. 지금도 내 사무실 책상에는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늘 있다. 이 멘트는 때로는 나에게 자극제이며 비타민이다. 그만큼 내 가슴에 와 닿는다. 지금도, 앞으로도 자동사의 Do 처럼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스스로 그렇게 삶을 살고자 노력할 것이다.

2012년 나를 다시 되돌아본다. 스무 살 품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의 가치관에 있어 품은 정신적인 뿌리라고.. 어디를 가도 흔들리지 않는 본질적인 바탕을 알 게 해준 스승이다. 또한, 최두환이라는 사람을 이 세상에서 필요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멋 지게 숙성시켜 주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품의 철학이 내 삶 속에 꽤 많이 스며들어 있었다.

청소년 실무현장에 있으면서 힘들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품과의 인연을 떠올리면 신기하게 도 긍정적인 자극과 함께 불끈~자신감이 되살아난다. 그만큼 품의 존재감은 나에게 있어 꽤 나 큰 자부심이다. ‘세상을 흔들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먼저 흔들어라’는 안도현 시인의 싯 귀가 불현듯 생각난다. 청소년 상담이든, 교육이든, 활동이든, 복지든, 문화든.. 나를 끊임없이 흔들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와 함께 공존하는 사람만이 관계의 열쇠이고, 희망일 것이다. 다시 한 번 일상의 소중함을 알려 준 품의 가족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 스무 살 품아~ 생 일 축하하고, 고맙고, 사랑한다. ^^

충북 청주에서 Mr.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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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기억 아홉.

‘품’이라는 기억 안에 ‘품’이라는 추억

곽혜림 아이 엄마가 된 품동이 자영업

이런 이런... 글재주도 없고, 라디오에 사연 한 번조차도 보내본 적 없는 저에게 글을 부탁해놓 고서는 부담 갖지 말라는 품... 부담 백배 속에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연 끊어진다는 심샘 의 협박어린 말에 별생각 없이 평범한 아줌마의 넋두리를 하려 합니다. 어찌 보면 품과는 전 혀 관계가 없을 듯한. 사회복지 전공도 아니요, 그쪽에 관계가 있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도 아 닌 제가 왜 품하고 인연의 끈이 이리 오래 맺어지고 있는지 저도 사실 좀 의문입니다^^; 이 번 기회에 그 이유에 대해 생각을 좀 해 보니... “품이라는 기억 안에 추억이 너무 많아서...” 라는 결론을 내렸답니다. 어느 글에 ‘기억은 머릿속에서 살지만 추억은 가슴속에서 산다.’라는 말이 있더군요. 머릿속에선 품이 멀기만 하지만 항상 품을 생각하면 푸근해지는 것은 제 가슴 속 한켠에 품이 자리 잡고 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거슬러... 저와 품의 인연은 1995년. 고등학교 1학년에 시작되었답니다. 와~ 거진 20년 가까이 되네요. 복지관 시절... ‘크레파스’란 이름의 토론동아리로 시작을 하였고, ‘품동이 1호’란 타이틀도 그때 갖게 됐네요... 사춘기를 겪을 때 품 회원 캠프를 댕겨왔고, 첫 사랑의 쓴맛을 볼 때 쯤 품 갯벌체험도 갔었고.. 공부에 지쳐있을 때 품 동아리 활동을 하고..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제가 ‘품동이’라는 것만으로도 저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잠재울 수


있었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자원지도자 생활을 하게 되었고, ‘품동이 1호 출신 자원지도자 1호’란 타이틀을 얻게 되었죠. 전공도 아닌 제가 품에서 일을 하니 신기해하시는 분들도 많았 습니다. 그땐 그냥 막연하게 모든 게 좋았었습니다. 품 식구들도, 품 사람들도, 아이들도, 일하 는 것도, 저의 젊은 시절 열정을 쏟을 수 있다는 것 자체도... 라면 여남은 개씩 끓어 ‘뿔어팅 팅 라면’을 매일 먹어도 그땐 왜 그리 맛있었을까요? 제 평생 잊지 못할 ‘삶의 뿌리’... 백두대간, 제주... 백두대간 수개월을 준비해놓고 막상 캠프 때 못 가서 얼마나 울었었던지... 출발 전날 나 내일 새벽에 제주도 가~ 해놓고 20여일을 제 주도에 있어서 부모님께 얼마나 혼났었던지... 올망졸망 귀여웠던 아이들과 1년을 함께했던 학 교CA... 그렇게 몇 년여 열심히 달려오다 보니, 급 회의가 들었습니다. 내 자리가 맞는 것일 까?? 난 이쪽 전공도 아닌데... ‘품동이... 품동이 출신 지도자’ 타이틀에서 오는 부담감... 그 러다 보니 물밀듯이 밀려오는 품과의 괴리감... 내 자리로 가야지... 그렇게 살짝 품을 등지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여름 되면 웃통 벗고 야~이 XXX야~하며 이사람 저사람 머리를 물어 뜯어 주시는 심샘이 생각나.. 겨울 되면 얼은 눈 녹여서 밥해먹던 캠프 생각나... 산에 가면 삶 Ⅱ생각나... 바다가면 삶Ⅲ 생각나... 제 가슴속에 이리 자리를 확고하게 잡고 있을 줄이야... 품 의 묘한 중독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결론.

저는 지금 제 전공도 아닌 쌩뚱맞아 보일지 모르나 신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허나, 내 자 리가 따로 있나? 내가 좋아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 자리가 내 자리인거지... 꼭 품에 가 야만 품 사람인가? 지금 내 자리에서 품을 응원하고 추억할 수 있다면 나는 품 사람인거지... 라는 결론. ^^

작년에 큰놈이 품동이가 되었습니다. ‘품동이의 품동이 2세 1호’. 품이 할아버지가 된 건가요? 아이에게 “엄마 얼굴도 있고. 너에게도 타이틀이 있으니 잘해~!”라는 말보다 “엄마가 추억하 는 품보다 더 많은 추억을 품에서 쌓으렴~!!” 하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주실 꺼죠?!!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흐려지지만 추억은 갈수록 진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또 글을 쓰면서 추억에 잠기게 되네요... 품 20주년 축하합니다. 그리고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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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림림이의 추억 상자

아... 이런 캠프도 있구나... 생에 처음으로 느꼈던 별천지 캠프.ㅎㅎ 1996년 2월 1회 회원캠프

고3이 되기 전 꼭 가야한다고 우겨서 갔던 캠프 모둠개별 활동 중 히치하이킹으로 얻어 탄 트럭~ 1997년 2월 품2회 회원캠프

갯벌도 가고, 철새 구경도 가고.. 학교생활에서의 일탈. 마음의 쉼터. 1996년 5월 품 가족 갯벌나들이


기억 열.

엄마 품

김동환 딸 둘의 아빠가 된 품동이 제니엘 근무

품 20살, 저희 네 식구가 열렬히 축하합니다. ^^ 앞으로도 청년 품으로서 푸르르고 열정 가득하길 바랍니다. 제가 지원(나의 아내)이를 스무 살 때 처음 만나 부모님과 친구들보다 제일 먼저 소개시켜 줬 던 곳이 품입니다. 당시 지원이에게 뭐라 소개시켜 줬는지 물어보니, ‘엄마 품’이라고 했다네 요. 아마도 품이 엄마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그런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품 축제나 캠프가 있으면, 항상 지원이와 함께 자원봉사를 했지요. 그러면서 징글맞게 싸우기도 했어요. 오죽했으면 심샘께서 저희 결혼 주례 때, 결혼해서는 싸우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 지원이와 양가 어른들께 결혼 주례를 상의할 때, 당연히 심샘이셨지요. 저희를 10년 이상 봐 오셨고, 그 만큼 잘 아시는 분. 심샘만한 분이 있겠어요?! 심샘께 주례 부탁드릴 때, “젊은 내가 주례를 어떻게 보니...” 하시면서 품동이 애기 둘이 결혼한다고 좋아하셨지요. 그래서 가끔씩 품 술자 리에서 저희를 다른 분들께 소개하실 때, “야~~ 내가 얘네들 결혼 주례 봤잖아. 둘 다 품동 이였는데~~~” 로 시작하십니다. 저희 아이들 태연이, 태림이 이름을 선생님께서 지어주셨는 데요. 태연이는 유창식 선생님께서, 태림이는 심샘께서 지어주셨어요. 저와 지원이가 존경하는 두 분께 부탁드릴 수 있다는 게 참 행복합니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최고의 관계형태는 입장의 동일함” 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비를 맞 는 사람에게 도움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비를 함께 맞는 것이라 하셨지요. 품은 청 소년을 지도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아요. 네팔에서도 지속되어 원조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 죠. 품이 주욱 그렇게 한국, 네팔의 청소년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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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기억 열하나.

부끄러운 My Way

김동혁 청소년기획단 노올자, 청년집단 Red_p 신발업체 ‘메이송’ 사장님

내가 중3때, 그때 품 사무실은 2층, 3층 두 층을 쓰고 있었다. 항상 2층에서만 축제 모임을 가졌기 때문에 3층에 올라갈 일이 없었다. 축제 담당 선생님 외에 다른 선생님들을 처음 보는 날, 잘 나가던 학생이었던 난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 3층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마치 선생님의 총애를 받는 학생이 아무렇지 않게 교무실에 들락날락하는 것처럼 난 자신이 있었다. 여기 있는 선생님도 나를 좋아할 것이라 믿었나 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사건이 생겼다. 난 선생님들과 밥을 함께 먹어본 경험이 없었는데 부엌에서 선생님이 직접 끓여주신 라면을 선생 님들과 함께 먹게 된 것이다. ‘라면 국물을 흘리지는 않을까?’ ‘내가 눈치 없이 너무 많이 먹 는 건 아닐까?’ ‘버릇없는 말을 하지는 않을까?’ 잔뜩 긴장해서는 정말 많은 고민을 하며 먹 었던 라면이라 그런지 집에 가서도 잘 소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참 묘한 맛을 낸 라면이었다.

2007년에 난 Red.P와 함께 살았다. 20대 초반 품에서 자란 남자 3명이 모였다. 우리는 ‘어 떻게 하면 우리 동네 사람들과 행복하게 축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열심히 살았다. 돈도 없고, 공간도 없지만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그렇게 2007년 ‘추락’이 끝났다. ‘축제로 웃는 놈들 Red.P’로 함께 했던, 군대 가기 전 마지막 추락. 나와 설이와 판은 구청 뒷골목에 서 눈물 젖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하도 눈물이 멈추질 않아서 멈추길 기도했던 것 같다. ‘ 빨리 뒷정리를 해야 하는데,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데...’ 하며 자책도 해보았지만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해 추락은 내 생에 있어서 가장 많은 고민과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내게 많은 변화들을 주었던 시간들의 피날레였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8살이 된 지금. 난 지금 사업을 하고 있다. 사업을 한 이유는 가족의 생 계 때문이었다. 잘 되지 않았다. 하루하루 나와 사투를 벌이며 살아갔다. 단순히 책임감만으로 는 이겨내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살아왔다. 내 꿈도, Red.P도, 품도 다 잊고 몇 년을 살았 다. 내가 왜 그렇게 눈물을 흘렸는지...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어 했는지... 다 잊은 채 살았 다. 그런데 요즘 내게 다시 행복한 일들이 생겨나고 있다. 품에서 처음 함께 라면을 먹었던 선 생님과 1년에 몇 번 가지는 식사 약속이 행복하다. 품에서 ‘추락’했던 세 개와 언니들을 만나 서 대화하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공간’에서 가지는 워크숍에 가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판 엄마네 청국장 집에서 만나는 동네 사람들과의 만남이 행복하다. 참 다행히도 나에게 이런 행 복이 찾아왔다. 그 이후 난 새로운 에너지로 지금 잘 살아가고 있다. 예전에 꿈꾸며 살았던 나 에 대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시 꿈꾸기 시작했다. 물론,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 꿈이 무언 지 아직은 말하기 부끄럽다. 그러나 이렇게 다시 꿈을 꿀 수 있는 용기를 준 건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곳에 품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품에 갔던 중학생 때도, ‘추락’할 때도, Red.P 할 때도. 나에게 품은 내가 꿈을 꾸며 살게 한 기억들이다. 정말 다행인 것은 난 스스 로, 혼자만의 힘으로 꿈을 꾸지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에 품이 있고, 그리고 그곳에 품이 있는 한 계속해서 꿈을 꾸며 살아갈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20년 된 품 이 30년, 40년, 50년이 되는 그 날까지. 2007년에 눈물 흘렸던 나의 피날레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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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기억 열둘.

7년째 연애 중

서인석 2006~2008 청소년기획단 세 개 2009 세개와 심한개의 인문학교 군입대 준비 중

빈곤한 기억력과 표현력 덕에 그 날, 그 때의 냄새나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나의 수준에서 거뜬하게 기억 할 수 있는 몇 가지. 첫 만남, 7년 전, 지하 공간, 그녀는 열 세 살이었다. 첫 만남이 그리 불쾌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그리 유쾌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런 애매한 느낌에 자주 마음을 뺏기곤 하는 나는 그 강렬함에 끌렸고, 그녀와 정식으로 만나 기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그녀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어서 그녀를 만나봐야겠다 마 음을 먹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아 그녀가 더 궁금해졌고, 그녀 를 사랑하고 싶어졌다.

2006년, 우리는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경험도 없던 나는 시작부터 부끄 럽기 짝이 없었다. 실수와 거만은 기본이고 최소한의 배려나 노력도 없이 어떤 달콤함만을 꿈 꾸면서 그녀와의 만남을 지속하려는 야비한 준비 자세부터가 문제였다. 물론 시간이 지나도 그 런 야비함들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근데 이상하게도 내가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내 손을 더 욱 세게 잡으려했다. 내가 어긋나고 비틀거릴 때마다 그녀는 내 손을 더욱 세게 잡아줬다. 그 리고 그렇게 이상하리만치 고마운 그녀의 손을 붙잡고 다니면서 내가 그리 쓸모없는 인간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작은 희망을 품고는 나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때부터,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녀와 함께 했다. 그렇게 그녀와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 께 놀고, 함께 공부하며 그녀의 사람들을 만나고, 축제를 만들고, 짜릿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 들은 구멍난 내 모습을 조금씩 채워줬다. 어쩌면 모른 척하고 외면하며 살아온 시간들을 다시 보게 했고, 어쩌면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할 뻔한 사람들과 관계할 수 있게 했고, 해본 적도, 꿈꾸어본 적도 없는 일들이 가장 희망적인 일이라는 사실 역시 알게 해 줬다. 때로는 섬뜩하 게도 희망을 위해 절망을 맛보게 했고, ‘가능’을 위해 불가능을 꿈꾸라고 했다. 때로는 가장 사소한 것이 위대한 것이며, 가장 위대한 것은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때로는 시 작을 위해 기다림을 알아야 한다고 했고, 나를 알기 위해서 나를 버리라고 했다. 그녀의 그런 알 수 없는 역설은 짜증이 날 만큼 어려웠지만 나는 그 치명적 매력에 매료되어 7년이란 시 간동안 그녀의 품에 안겼다.

물론 그녀를 만나는 7년이란 시간이 결코 아름답거나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부모님의 반대는 말할 것도 없었고, 거짓으로 나를 포장하며, 가지지 않은 것을 가진 척하기도 하고, 다른 것을 마음에 품기도 했다. 그녀를 계속 만나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 적도 많았고, 나의 결핍된 무언가를 채워주지 못하는 그녀를 미워하기도 했다. 물론 그녀도 시간이 지날수 록 방황과 갈등을 자처하는 내 모습에 가끔씩 싫증을 느끼곤 했던 것 같다. 사실 가끔은 먼저 ‘이별’을 이야기해 주기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허나 헤어져야 할 이유보다 만나야 할 이유들 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금세 깨닫고 나는 아직도 그녀에 품에 안겨 있다.

그렇게 서로를 미워하고 사랑하고 성숙하며 7년을 보냈다. 그리고 열세 살, 처음 봤던 그녀가 벌써 스무 살이 되었다. 그녀와 지내온 애증 섞인 시간들을 들춰보니 크고 작은 기억의 스파 크들이 들썩거린다. 우리가 만든 희망의 역사와 기억이 아른거린다. 7년이나 만났으면 헤어질 때도 되지 않았냐고? 만나온 시간보다 만나갈 시간들이 더 많은 걸 알기에 평생 그녀와 살련 다. 우리는 지금도 연애 중.

성인이 된 그녀의 이름과 희망, 모순, 그 모든 것을 축하하며 나의 그녀, 20살 생일을 맞는 품과 품의 모든 사람들에게


품 20

“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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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하나.

그대 품, 자신과 세상을 치료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박상영 품 태동 전부터 인연. 청소년연극축제 등 다수 활동 셋넷학교 대표교사

무화과는 열매 자체가 꽃이라 합니다. 꽃이 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이라 고 하네요. 무화과를 기억하며, 20년생 토종 무화과 ‘품’ 나무를 떠올렸습니다. 기특하고 갸 륵하고 장엄한 나무를 경이로운 눈길로 바라봅니다.

제 기억 속에 품은 지난 20년간 ‘어떤 사람’을 고집스레 기르고, ‘어떤 동네’를 따뜻하게 키 웠습니다. 윌리엄 마틴이 얘기했지요. ‘인내를 배운다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소박함을 배운다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본다. 그리고 배려를 배운다면 자신과 세상을 치료한다.’ 아 마도 품이 일구었던 처음 10년은 인내를 배워 세상을 바로 보는 시절이 아니었나 싶네요. 그 시절은 무당의 눈물이 어쩔 수 없이 배어있는 참으로 애틋한 시절이지요. 그 이후 10년, 히말 라야를 떠돌며 배운 소박함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살았기에 품이 건강하게 뿌리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품이 기르고 키웠던 ‘어떤 사람’들과 ‘어떤 동네’가, 비로소 품 을 품을 수 있는 의미 있는 나날들이었다고 기억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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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이제 새롭게 맞이하는 품의 나날들은, 어떤 배려를 배우며 자신과 세상을 치료해야 하지 않을 까요? 품이 품어야 할 피할 수 없는 시대는 다문화시대입니다. 이미 우리 곁에는 195개국이 넘는 나라의 젊은이들이 결혼과 노동을 통해 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일상은 더 이상 우리만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은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커졌고 세세하게 나뉘 어져 있습니다. 우리 아닌 낯선 사람들과 함께 꾸려가야 비로소 채워지는 시대로 들어섰습니 다. 그럼에도, 우리는 낯선 나라에서 온 새로운 이웃을 함부로 대하고, 몸과 마음에 모욕을 가 하고 있습니다. 품이라면 어찌하겠습니까?

이제 새롭게 맞이하는 품의 나날들은, 어떤 배려를 배우며 자신과 세상을 치료해야 하지 않 을까요? 품이 품어야 할 피할 수 없는 시대는 통일시대입니다. 이미 우리 곁에는 24,000명이 넘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죽음의 산과 강을 넘어서 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일상은 더 이상 우리만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분단일상은 우리를 삶과 분리시키고, 생명으 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움과 증오는 커져만 가고, 분단으로 인해 고통 받 는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우리 아닌 낯선 탈북자들과 함께, 지독한 편견을 넘어 공존의 삶을 준비하고 연습해야 하는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낯선 북조선에 서 온 아주 오래된 이웃을 조롱하고, 이념의 승리에 도취해서 자존심을 짓밟고 있습니다. 품 이라면 어찌 하겠습니까?

품이 새롭게 배워야 할 ‘배려’는 다름과 차이를 품어 안는 유연함입니다. 품이 몸과 마음을 다 잡고 치료해야 할 사람들은 이 땅에서 우리와 새로운 계약을 맺고 이웃으로 살아야할 이방인 인 다문화권 이주민과 탈북자들입니다. 품이 꿈꾸고 상상해야 할 세상은 오래 사귄 친구들과 친근한 벗들로 가득한 작은 동네가 아니라, 낯설고 이질적인 이웃들과 함께 만들어갈 조각보 동네입니다. 품이 외면하지 않고, 위선 떨지 않고, 말로만 그치지 않고 선택해야만 갈 수 있는 사람들의 동네입니다. 이제 온전히 품이 선택할 외로운 시간입니다. 품이 가꾸어야 할 아름다 운 시간입니다. 품이 가야할 오래된 새 길입니다.


희망 둘.

‘품’은 우리들에게 바로 ‘그 사람’이다.

김지선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품 주주, 품 일꾼들의 존경하는 선배 활동가 노원 나눔의집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사람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_함석헌

나는 늘 외롭지 않았다. ‘자발적 가난’을 화두 삼아 살아가는 나눔의집 실무자로서... 늘 가 난한 아이들 편에 서서 살아가는 실무자로서... 가난할지라도 하고 싶은 의지와 뜻을 결코 내 려놓지 않았고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 편을 드는 ‘품’이라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품’이 있어 가던 길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아이들과 뒹굴 수 있었다. 없어도 넉넉한 마음으로 채우는 그 친구 ‘품’이 있어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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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그 ‘품’이 이제 스무 살 성년이 된다. 품이 걸어온 20년, 그 길의 깊이만큼 성년이 된 ‘품’에게 부푼 꿈을 담아 소망해본다. 첫째, 늘 청소년의 입장에 서서 청소년 편드는 일을 계속했으면 한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돕는 ‘품’이었으면 한다. 둘째, 보다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청소년과 함께 하는 실무자가 되도록 교육하고 훈련하는 활동을 지속하였으면 한다. 셋째, ‘품’이 만들고 시작한 ‘청소년 활동’을 이제는 이 마을 저 마을에 퍼뜨렸으면 한다. 마 을과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세상 곳곳에 나타났으면 싶다.

어른이 된 ‘품’이 걸머질 짐은 지금보다 훨씬 무거울 것이다. 그러나 이미 품은 청소년 사이에서, 마을 곳곳에서, 히말라야에서 새로운 길을 내고 있는 중이 다. 품이 내는 새로운 길이,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의 이정표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까지 ‘품’이란 친구가 있어 나는 외롭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품’에게 나 역시 ‘저 사람이야’ 하고 믿어지는 친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희망 셋.

품이 있으니 좋네요.

강원재 품 주주, 품 20주년 100인의 희망멘토 OO은대학연구소 1소장

품의 초대는 당황스럽다. 이 쿨(cool)한 시대에 이상한 핫(hot)함으로 그렇잖아도 거절 잘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확 흔 들어놓는다. 대개 품 청소년이나 청년들의 이름으로 발신되는 품의 초대장에는 형식 격식 이 런 거 없고, “만나고 싶고 보여줄 게 있으니 꼭 와 달라”는 간절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낯모 ⋅

르는 어른, 선배에게 이토록 뜨거운 이야기로 초대를 할 줄 아는 청소년 청년이 누군지 궁금 해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이런 hot한 초대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도록 한 품의 이 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가끔은 이번 행사 초대처럼 “인연 끊어질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협박 도 서슴지 않는 심한기 대표의 태도도 있지만 말이다.

품 앞에서는 혼란스럽다. ‘주인으로서의 손님’이라는 간판을 떡하니 마주치기 때문이다. 주인 아니면 손님으로 스스로의 위치를 잡고 그 만큼의 권리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 미덕인 이 분법적 시대에 장자의 나비마냥 내가 손님으로 온 것인지 주인으로 온 것인지 헛갈리도록 만 들어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무늬만 교훈’이 일상인 품의 구성원들 이 취하는 hot함이 이해될 것만 같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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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품 안은 따뜻하다. 뭔가 오랜 동지를 만났거나 고향을 찾은 기분이랄까? 따뜻한 환영의 인사도 인사려니와 나누는 대화의 결도 투박할지언정 날카로움이 없다. 각을 세 우고 서로의 빈틈을 찌르면서 자신의 존재 증명을 하는 게 세련되고 문화적인 것이라 여겨지는 사회에서 품의 투박한 커뮤니케이션 문화는 오랜 시간 이 곳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을 겹쳐 쌓은 튼튼함과 건강함이 묻어있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더불어, 함께 하는 만큼 배우고 움직이고 일을 하며 쌓은 내공이 품의 핵이 되어 존재와 관계 곳곳을 데우고 있음이 느껴진다.

품을 다녀오는 길에서는 기분이 좋다. 별로 기대하는 거 없이 하루하루 바삐 살아가는 동안 무뎌진 희망에 대한 희망 같은 게 되새겨 진다. 세상 어딘가에 뜨겁게 투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삶이 나와 연결되는 공 간이 있다는 것이 목욕탕을 다녀올 때처럼 내 몸의 묵은 때를 씻어낸 것만 같은 상쾌함을 준다.

품이 곁에 있는 마을이 부럽다. 품의 지난 이십년은 청소년을 둘러싼 우리사회 담론이 ‘규율과 일방적 훈육’이라는 척박함에 서 ‘약속과 서로를 돌봄’으로 진화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 그렇게 청소년과 함께 하던 품이 언젠가부터는 훌쩍 자라난 청년들의 품으로, 그리고 또 언젠 가부터는 마을로 향하며 열리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품 곁에 있는 그 마을이 참 행복해지겠 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무 살 청년 품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희망 넷.

품의 희망을 말하다

표경흠 품일꾼들이 존경하는 스승이자 선배활동가 비영리컨설팅 웰펌 대표

품 20년사의 원고를 부탁받았다. 그것도 심한기 대표로부터 직접 메일과 전화와 카톡까지 받 고, 며칠을 고민하다가 연필을 잡았지만, 쉽지가 않다. 아마도 품에 기여한 바와 함께 고민을 나누지 못한 지난날에 대한 짧은 반성의 시간 탓이리라. 희망(hope, 希望)을 얘기해 달라 하 셨다. 고마운 부탁이었지만, 여전히 작지 않은 부담이 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답답한 마음에 사전을 먼저 찾았다. 희망 : ① 앞일에 대하여 좋은 결과를 기대함. 또는 그러 한 기대. ② 앞으로 어떤 일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적혀 있었다. 또한 성 아우구스티 누스에 따르면, “희망은 선한 것, 미래에 있는 것, 희망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어울리 는 것과 관련될 뿐이다.” 희망이 그 목적을 성취하고 나면, 희망은 더 이상 희망으로 존재하 지 않고 소유가 되어버린다. 즉, ‘사랑은 끝이 없지만, 희망은 이 세상에서 유한한 인생살이 에 국한된다’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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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품에서 지난 20년간 진행해 왔던 청소년을 향한 인문적 접근법이 정보화를 거쳐 이미 네트워 크 시대에 접어든 지금, 우리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쓰나미의 발원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징후들을 곳곳에서 발견하곤 한다. 바로 불확실성이 너무나도 커져버린 현 시대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방법과 과정이 바로 인문학적 학습과 접근의 필요 성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인문학이 무엇인가? 짧은 필자의 생각으로 인문학은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제대로 살 것인 가? 즉, 삶의 본질과 존재가치에 대한 접근으로 철저하게 고유명사적인 속성을 가진 학문이 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고유한 자기 삶을 향한 흉내내지 않는 자기의 스타일을 찾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품의 접근은 철저하게 아이들의 삶이 자기 삶을 살도록 권력과 관 습을 뛰어넘는 자유와 개성이라는 화두를 실현하도록 함께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걸어 가야 할 길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자기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과 부딪히는 고통과의 만남이라고 하겠다. 그 고통을 즐기고 극복하는 것이 바로 품의 정신이고, 인문정신이자 핵심이라고 하겠다. 스스로의 삶을 살면 겪 게 되는 고통과 그 고통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이해는 사회적 연대성이라는 구체화된 고민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품의 존재가치는 바로 여기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꽃 을 피우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얘기하는 희망의 핵심기제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품의 삶을 어떻게 드러내고 직면하고, 극복하고 나누고 함께 하는가? 이 과정에 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더불어 그런 당당함이 돋보이는 품이어야 한다. 비겁함으로 세상이 물들어갈 때 적어도 품은 움츠리거나 눈치 보는 모습이 아닌 더 큰 당당함으로 승부할 수 있어야 한다. 커브가 아닌 직 구로서 말이다. 비록 안타나 홈런을 맞을지언정 웃으면서 그것을 즐길 수 있을 때, 지난 20년 의 노력이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닐까 한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처럼 자본과 권력의 노예로 힘겨 운 흉내 내기에 급급한 모습을 닮는다면 더 이상 우리는 함께 희망을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지금부터 준비하고 만들어가야 하는 부분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도공이나 서예가들이 작품을 위해 평생을 바치는 것처럼,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연대와 협력 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품’의 성숙과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하며, 비록 허접하더라도 ‘품’의 고유한 모습으로 천천히 걸어가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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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현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눈물 나게 힘들겠지만, 그 눈물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길 때다.

‘인생은 꿈과 희망이다(Vita est somnium et spes)’는 말이 있지 않은가? 꿈과 희망이 없 는 인생을 어떻게 상상조차 할 수 있겠는가? 이 땅의 수많은 청소년들의 삶의 터전인 ‘품’은 이제 더 큰 꿈과 희망을 가져야 한다. ‘품’과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우리 모두 현실을 기반으로 하여 희망을 가지고 한 걸음씩 꿈을 향하여 ‘품’이 꿈꾸는 지역사회를 가꾸 고 만들어 나가는 스스로의 노력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자, 내일을 바라보자. 그리고 그 희망을 ‘품’에서 함께 찾아보자. 나는 그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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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희망 다섯.

10대여! 바꾸는 자가 되라

이순임 도봉어린이문화정보센터 관장 품과 네팔을 사랑하는 ‘정열의 여인’

내년이면 나는 50이 된다.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지만 나는 아직 청춘이며, 정신연령 10대라고 말하고 다닌다. 아직도 온 갖 것을 다 알고 싶어 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자신과 세상에 물음 던 지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내 주변에는 돈과 권력과 지위와 영향력을 가지고 사회의 주류로 살 아가고 있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많은데 그들은 대부분 물음을 던지는 걸 그만두었다. 종교나 철학, 정당 중에 하나를 선택했고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에 대해 웬만큼 알만한 건 안다고, 자 신의 생각이 옳기도 하거니와 아마도 진리이고 해답일 거라고 생각한다.

영혼의 나이가 있다면 내가 느끼기에 오히려 오래된 영혼 중에는 2000년 이후 태어난 10대들 에게서 더 많은 것 같다. 지금의 세상을 보면 뭔가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 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가 아니라 자신이 보기에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10 대의 열정과 호기심과 상상력을 가진 ‘품’이 그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오래된 영혼 들 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에 거는 기대는 크다. 세상을 바꾸는 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세상을 바꾼다는 건 반드시 세상의 리더나 지도자가 돼서 인류나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바꾼다는 건 반드시 수많은 대중 속에서 ‘나를 따르라’고 정치연 설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세상을 조용히 거쳐 가는 것으로, 유달리 눈에 띄지는 않지만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기억되는 것으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계란으로 바위치기야” 라고 할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 주위의 집단의식을 넘어서는 사람들이 있다. 상당수가 10대들이고 10대들은 아주 공공연하게 하기도 하고 은밀하게 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요렇게 조렇게 모여 작전을 짜 고 잘 논다. 잘 노는 것으로 집단의식을 바꾸는 변혁자들이 모여 있는 공간을 나는 품이라고 부른다.

변화를 가져오는 사람들, 변혁자들. 아는가? 그것이 ‘품’ 자신의 어쩔 수 없는 존재방식이고 존재의 본성이며 본 모습이다. 이들 이 가는 곳 어디서나, 그들이 들어서는 어느 공간에서나 그들과 만나는 누구라도 당신들로 인 해 모든 것이 바뀐다. 더 가벼워지고, 갑자기 모든 게 괜찮아 지고 더 많이 웃게 되며, 그냥 내 앞에 네가 있다는 게 행복해진다. 그 순간에는 세상이 더 멋져 보이고 살 만해진다.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남의 시간과 에너지나 물질을 빼앗아 오는 정글게임이 아니라, 존재만으로 기쁨을 주고, 존재자체가 행복과 사랑의 바이러스들인 이 세상의 크리스 탈 같은 사람들이 되는 것을 최대의 비전으로 삼아보자. 그것이 내가 ‘품’에 걸어보는 최대 의 기대이며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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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희망 여섯.

희망, 청소년 그리고 품

정건희 품 20주년 100인의 희망멘토 품 주주, 청소년자치사무소 소장

희망은 ‘예측’이다. 희망은 ‘삶의 이유’이며, 망상이 아닌 ‘현실’이다. 희망은 누구나의 ‘바람’ 이며 삶의 과정 가운데 나타나는 그 어떤 ‘밝음’이다. 어떤 이는 자기가 길을 내면 희망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새로운 그 길에 사람들이 함께 하면 희망이라고 한다. 희망은 다양하다. 차이 가 있다. 그 희망은 우리 누구에게나 존재하며 삶의 원동력이고 삶의 이유이며 삶의 과정이다. 청소에게 그 ‘희망’을 품은 곳. 바로 ‘품’이다.

품은 사람 사는 곳이다. 품은 사람이 살아가며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곳이다. 자유롭게 틀에 얽매이지 않고 누구나가 소통하며 함께 하는 곳이다. 품에는 사람이 산다. 사랑하는 심한기 선 생님도 살며 그 안에서 만나며 사랑하며 사랑해야 하는 그 어떤 청소년들도 산다. 다양한 삶 가운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그 다양함 안에 사람 사는 곳이 무엇인지 소통하고 관계하며 성찰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앞으로도 청소년들의 문화적 희망을 안은 품이 그랬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위아래 격식 없이 또 다른 상황에서 좌충우돌하며 그 공간에서 만나는 이들이 그들만의 삶과 문화를 노래했으 면 좋겠다. 품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은 조직의 엉성한 위계관계와 틀에서 벗어나 품에서 만나 는 모든 이들이 가진 그들만의 문화적 에너지를 마구 발산했으면 좋겠다. 거리낌 없이 소통하 는 곳. 그리고 서로의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나누는 곳. 그 안에서 희망을 만나 는 곳. 품이라 고 기억하며 품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이 순간이 과정이며 결과이다. 미래는 현재이고 그 현재는 또 다른 미래를 낳는다. 지금 이 순간의 품이, 미래의 품이다. 그 희망은 지금 이 순간 노래되어질 때 미래의 품은 희 망을 품은 곳이 된다. 항상 희망을 노래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망상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 만, 품의 청소년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희망으로 현실이 되는 그 순간의 감동을 항상 맛보았 으면 좋겠다. 먼 미래, 앞으로 200년 후의 품은 없다. 지금 이 순간의 품이 현재이고 미래일 뿐이다. 품은 그런 곳이다.

어떤 이는 알면 보이고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강조한다. 어떤 이는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닌 사랑한 만큼 보인다고 한다. 희망은 사랑하는 만큼 커진다. 많은 이들 에게 그 희망은 아주 먼 곳에 찾기 힘든 그 어떤 곳에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품은 그래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아는 것, 모르는 것 그 어떤 것을 품고 발산하는 공간이다.

품은 발산하며 소통하는 곳이다. 청소년의 문화는 그 순간의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멀리 있 지도 않고 과거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만나는 그 어떤 청소년에게 존 재하는 그들만의 문화와 그 순간의 공간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소통관계는 그 순간만의 그 어 떤 문화적 형상이며 희망이다. 품의 희망은 그 곳에 있다. 품의 미래. 그 어떤 희망.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 미래에 품에게 품는 희망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 품에 존재하는 모든 아 이들의 다양한 문화를 그대로 품에 안는 것이다. 바로 품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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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희망 일곱.

“BonVoyage” to 一期一會

강종안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브릿지사업추진반

이런 이런. 갑자기 이메일을 단체로 “틱” 하고 보내더니, 내용인 즉 품의 과거가 아닌 품의 미 래를 이야기하란다. 그것도 품의 희망을 담아서. 그리고는 거절하면 인연을 끊는단다. 그것도 굳이 A4 딱 한 장이란다. 넘으면 안 된다는 말이지 않은가. 이런 이런... 적어도 안 되고 넘어 도 안 되는 구속. 그래서 찾아봤다. 희망이란 무엇인가?

출처 : 위키피디아 희망(希望)은 자신이 바라는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기대나 예측을 의미한다. 주로 실 현 시간이 불명확하다. 희망은 인류 역사상 많은 문학과 예술의 소재가 되어왔으며 영화 등 의 주요 테마이기도 하다. 순 한국어로 바람이라고 하며, 한국인 사이에서 흔히 ‘바램’이라고 잘못 언급하기도 한다.

ㅋ~~ 이런. 실현 시간이 불명확하다니.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은 때로는 굉장한 무서움을 동반한다는. 너무나 처절하게 외로워서 그것이 너무나 뼈에 사무쳐서 다시는 그 외로움을 느끼고 싶지 않기에 무서움을 느 낀다는.


내게 있어서 “품”의 20년은 외로운 길을 걸어간 동지와 같다. 여기서 감히 희망을 이야기하 자면 실현 시간이 불명확할 것 같아서 한글로는 ‘바람’이라고 했으니, 나의 바람을 적는다면 그 무서운 외로운 길 앞으로도 같이 가자고 하고 싶다. 그것이 내게는 “품”의 희망을 찾는 길 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가는 길이 아닌 좀 더 돌아가더라도 제대로 길을 만들면서 뚜벅이처럼 걷는 것. 시간 의 조급함에서 벗어나, 그 속도에서 벗어나, 만나는 모든 것들과의 순간순간을 즐기면서 함 께 하는 것.

一期一會(일기일회)라는 사자성어의 뜻은, 모든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모든 만 남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 번의 기회라는 뜻이기도 하다. 단 한 번 만남의 기회에서 상대방에게 자신이, 모든 정성을 다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를 가 지고 있다.

변화무쌍한 삶의 현장은 언제나 우리에게 성찰의 장을 제공한다. ‘누가 누구에게’가 아닌 우 리가 함께 모든 이들과 더불어 ‘처음처럼’...

“품”의 20년 이후가 아닌 지금 바로 여기서 우리는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을 지금부터 시작 한다. 뚜벅이 걸음으로, 一期一會를 잊지 않으며, 서로가 서로를 보듬으며 길을 만들어 간다. 그 길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을 잊지 않고 서로 챙기면서 ‘외로움’을 ‘희망’이라는 단어로 바 꾸어 간다. 그 길에 함께 하는 모든 이에게 “Bon 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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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희망 여덟.

품비어천가

임재춘 품 주주, 경기문화재단

치유와 솔루션 담론이 유행입니다. 아이, 청년,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모든 세대가 앓고 있습 니다. 그래서인지 사는 게 더 팍팍하게 느껴집니다. 최후에는 아무대도 기댈 곳이 없다는 상 실감이 한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사치스러운 것으로 치부하고 어쩌면 그런 아픔에 무감각한 것이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리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회적 기능으로서 분 명 위로와 문제해결의 예술이 존재하지만 삶에 대해 보다 민감하고 예민한 감각과 이의 표현 으로서의 예술은 한데 연결되어야만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예술로 도구화되지 않겠지요. 그러 기 위해 삶에 대한, 관계에 대한 깊은 관찰을 통해 다양한 틈과 대상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한 과정이 지난하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품의 20년’은 감히 그런 깊은 고민과 실천의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품을 처 음 만난 것은 9년전 지금은 ‘00은 대학’연구소 제1소장으로 계신 강구야(강원재)를 통해서입 니다. 당시 경기문화재단에서 청소년 문화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을 하는데 기존에 교사 주도의 실기활동 동아리 지원이 아닌 아이들의 자발적 참여를 높이는 새로운 프레임의 사업을 구상 하면서 심사위원과 자문으로 심한기 대표님을 만난 게 인연이었습니다. 이후 몇 년동안 10대 들의 문화, 문화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눴던 것 같습니다.


포괄적인 문화가 아닌 구체적인 예술의 언어를 제안하면서 서로가 가진 시각의 차이도 발견 하고 더 깊게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면서 합의해가는 과정에서 많은 신뢰감과 사람들 간 의 情도 쌓였구요. 당시 경기문화재단의 문화예술교육에서 청소년 문화정책만큼은 품에 기대 어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은 경기문화재단의 청소년 문화정책이 제대로 자리 잡 고 있지 못하고 기타 교육청이나 복지 주도의 것으로 흡수되다 보니 이전에 품과 나눴던 고 민들을 이어갈 일의 계기를 만들지 못하는 점이 내내 아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품을 거쳐 가기도 하고 저처럼 언저리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느 날 의외의 자 리에서 ‘품’이 언급되면 마치 굉장히 잘 알고 친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물론 최근에서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품의 꼴이 어떻게 진화해 가는지 잘 알지 못 하지만 그들이 여전히 그 안에 있어 여전하겠구나 짐작해봅니다. 그러고 보니 품은 요즘 어 떻게 지내는지요? 옛날처럼 밤새면서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품에서 일하고 있는 2,30대 젊은 청년들이 일에 밀려 온전한 자기와 자기생각을 기르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좋겠 어요. 몇 달 전 신문 기사를 보니 윤구병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보리출판사가 하루 6시간 근 무를 실천하신다고 하던데 조직 운영에 있어서도 문화적인 실천도 품이 대안을 보여주면 좋 겠다는 바램도 전해봅니다.

그저 사람만 보고, 서로의 열정과 신뢰감에 기대는 것만으로 20년을 보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민간 NGO의 역사이자 청소년 문화운동의 역사일 것입니다. 모두 대단하십니다. 그저 매일 보 내는 하루하루의 연속일 뿐일지라도 올해만큼은 맘껏 자축하고 축하받으실만합니다.

뒤끝하나. 가끔 생각납니다. 품의 판중이. 제 결혼식 영상을 찍고 결과물을 주지 않고 파리로 날라버린 판이. 품의 일원으로 믿고 맡긴 일이 미제사건처럼 남아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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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희망 아홉.

‘품’의 미래를 보다

오원식 숭곡중학교 교사 무늬만학교 열혈 학부모

요즘 ‘품’이 자주 보인다. 얼마 전 집에 배달된 잡지 『우리교육』에서 강명숙 샘과 유현희 샘 기사를 봤는데 어제 아침 『한겨레신문』에는 무늬만학교 활동사진과 함께 관련 기사가 실 렸다. 품이 올해로 20주년이니까 그 동안 아마 숱하게 언론에 소개되었겠지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요즈음 일이다. ‘본다’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나는 이제 야 ‘품’을 보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통해 ‘품’을 보는 걸까. 두 말할 것도 없이 ‘품’의 여러 선생님들이다. ‘품’ 사무실을 찾았을 때 ‘품’ 선생님께서 붙여 놓은 진심어린 환영 메시지를 보며 ‘사람에 대한 정성’을 보았고, 선생님들이 ‘무늬만학교’를 통해 아이들과 만날 때 아이들 눈으로 아이 들 입장에서 아이들의 힘과 지혜를 믿고 기다려주시는 모습에서 ‘진짜 교육’을 보았다. 지금 의 ‘품’을 만들어온 힘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품’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뭐 다 른 거 볼 게 아니라 지금의 ‘품’ 선생님들 모습을 보면 된다. ‘품’이 장차 대안적인 학교 형 태로 변모하든, 청소년문화를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의 여러 요소들을 연결하는 지역 교육문화 센터 형태로 발전하든, 어떤 것이든 무조건 신뢰가 가는 것은 선생님들 때문이다. 선생님들이 든든하게 ‘품’을 지켜내는 한 ‘품’의 미래는 밝다. 그래서 더욱, 선생님들이 지금보다 조금 더 안정적인 기반위에서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는 재정적인 여건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품’에는 독특한 주주제도가 있다고 알고 있다. 작은 힘이지만 나도 도움 이 되는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 ‘품’의 미래를 위해서.


내가 ‘품’을 볼 때 어쩔 수 없이 공교육 교사 입장에서 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품’에 바라 는 점이 있다면, ‘품’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기존 학교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갈지 고민하 고 실천했으면 하는 것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숭곡중학교는 지난해 ‘품’과 학생자치활동, 축제 등을 함께 했고 올해는 좀 더 폭을 넓혀 밴드, 댄스 등 여러 동아리 활동에서도 품의 도 움을 받고 있다.

특히 작년 ‘품’ 선생님들 지도로 1학년들만으로 구성된 축제기획단 학생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준비해서 열었던 학교 축제는 준비했던 학생들이나 교사들 모두에게 뿌듯한 경험이었다. 만 약 ‘품’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럭저럭 해 오던 대로 어떻게든 지지고 볶으면서 애는 썼겠 지만 아직도 계속 애만 쓰고 헤매고 있지 않을까 싶다. 고맙게도 학교 울타리 안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다가 지난 1년 여 여러 활동들을 통해 ‘자치’, ‘문화’ 이런 것들이 학교 내에 서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지 조금씩 눈을 떠가는 경험을 했다. ‘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우리 학교에서의 경험을 곧바로 일반화해서 다른 학교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어 느 학교든 그 학교에 맞는 방식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품’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다르지 않고, 답답한 학교에 숨통을 열고자 하 는 학생과 교사들은 늘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지역과 학교가 아름답게 만나는 자리에 ‘품’이 늘 함께 하기를 기대한다.

‘품’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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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희망 열.

‘품’의 미래를 보다

이은경 품 20주년 100인의 희망멘토 광명시립 오름 청소년문화의집 관장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에 조금이라도 높은 벽이 턱!!하고 생긴다면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기 일쑤입니다. 아마도 이건 사회나 인생이 주는 무력감 같은 것에서 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 다. 이럴 때 항상 저에게는 [품]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삶의 무력감으로부터 작은 희망을 안겨 다 주었습니다.

특히, 인간은 모든 것이 100% 만족되는 순간, 권태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듯이 저 또한 많 은 것들을 이루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갈망해야하는지 그리고 그 것을 실천과 행동으로 이어질 때만이 그 의미를 찾고, 살아갈 이유를 얻게 됨을 [품]이 일깨 워 주었습니다.

이렇게 청소년과 함께 마을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이유와 그 의미를 끊임없이 채찍질 할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준 [품]이 벌써 20년을 맞이했습니다.

20년이면 강과 산이 2번이나 바뀐 긴 시간입니다. 마을의 많은 모습들이 변했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청소년의 의식 또한 변했습니다. 요즘은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현재 [품]이 지향하고 있는 것들이 처음 생기게 된 그 시절 꿈꾸 었던 것일까? 아마도 일부 변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품]이 이 땅의 청소년 그리고 청소년지도자들과 함께 ‘공존’과 ‘희망’을 노래하기를 바랍니다.

청소년지도자들이 청소년과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기도 전에 현장에서 청소년과 함께 해야 했 던 불편한 진실들. 이 불편함을 해소해주고 스스로 일깨울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 주는 나 침반 같은 존재

그리고 사업의 결과물로부터의 인정이나 비난의 표시보다는 얼마만큼 가치롭게, 의미 있게 우리 내부의 양심을 따르고 있는지를 일깨워 주는 스승 같은 존재

급하게 앞만 보며 달려만 왔던 우리들에게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를 되물으며 가끔 쉬었다 갈 수 있는 나무 같은 존재

서로 서로 힘들 때 손 내밀면 덥석 잡아주고 ‘고생했다’ 한마디로 어루만져 주는 부모 같은 존재

청소년문화운동이 삶의 희망이 되고 노래가 될 수 있도록 감히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 들을 시도하고 부딪쳐 보며 ‘이것이 희망이다’라고 깊이 있는 생각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마 중물 같은 존재.

죽은 물고기는 물이 흐르는 대로 흘러가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꿈이 없는 사람은 제자리에서 안주하지만, 꿈이 있는 사람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청소 년에게 희망과 꿈을 노래하는 가수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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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희망 열하나.

품, 새롭게 시작할 20년, 그리고 100년

조영미 품의 든든한 주주 한국YWCA연합회

사람이 태어나 20년이면 아동기, 청소년기를 지나 청년기에 들어서 자신의 진로, 삶의 방향, 가치들을 정립하고 젊은이답게 실천할 시기이다. 행복하면서도 불안하기도 하고, 다가올 미래 에 대한 기대가 가득한 시기이기도 하다.

품은 초기부터 새로운 시도들을 마을에서 시작해 왔고, 청소년들과 삶을 나누며 일상의 삶 속 에서 운동을 펼쳐왔다. 그래서 품이 가진 매력과 힘, 그리고 영향력은 타 어떤 청소년단체나 기관에 비해서 크고 넓음이 있다. 그러한 품이 20년을 맞았고, 청년성을 한껏 발휘하는 사람 들과 함께 살며 마을을 움직이는 마을의 놀이터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나 또한 대학교 졸업 이후, 품과 인연을 맺고, 크고 작은 도움들과 나눔들 속에서 품과 함께 해 왔다. 특히, 품을 지탱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역사를 고스란히 물려주며 서로의 성장을 도우며 보듬으며 서로를 지지하며 힘을 더하는 많은 청년들을 보면서 동네를 넘어서 한국사회의 건강함을 만나곤 했다.

특히, 활동하면서 도저히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있다고 느끼는 순간, 품에서의 활동가들과 만 남은 그간의 묵었던 나의 고민들이 하나 둘씩 정리되어 다시금 새 힘을 갖게 되는 힘기도 했다.


품은 그렇게 동네에서 청소년들과 넉넉하게 그리고 천천히, 그러나 지향과 가치를 묵묵히 지 켜내면서 그 시간의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살아왔고, 그 가운데 사람의 성장, 나눔, 그 리고 살림을 실천하는 사람들로서 그리고 마을에서 세계로서의 시공간을 초월한 우리들의 삶 으로 우리 앞에 당당하게 서 있다.

청년은 생기가 가득한 시기이다. 청년은 그 생명력으로 새롭게 사고하고 창조하며 변화를 받아들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혁신하 는 원동력을 마련하는 힘이자, 마중물이 되는 시기이다. 그래서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도전을 아끼지 않는 시기이다. 그러한 품이 앞으로의 20년을 위한 성인식의 자리에 서있다. 그리고 성년으로서 다시금 자기를 세우며, 나눔을 실천하고자 서 있다.

품을 통해서 배워왔고, 품을 통해서 자극받으며, 품의 선생님들을 멘토로 삼아온 내가 품에 거 는 기대를 감히 말한다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품은 20년을 보내는 동안 건강한 마을을 꿈꾸며 실천적 대안을 제시해 왔고 그것을 지속성 있게 끌어왔다. 그리고 그 안에 스 스로 생명을 일궈내는 힘 있는 청년들의 살아있는 결을 자기답게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함께 울 고 웃었다. 그러한 품이 앞으로 품어갈 세상 속에서 버려야 할 것과 앞으로 지켜나갔으면 하 는 것들을 작게나마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선, 지속적으로 지행해 왔던 가치, 삶의 원형 속에서 일상성을 통해서 행복을 느끼는 공간 과 사람으로서 존재했던 힘, 선 순환적 지도력 육성, 세상이 말하는 가치가 아닌 대안적 가치 를 가진 청년들이 지속적으로 사회 속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인큐베이터로서의 역할, 사람과 사람을 엮어 청소년과 동네의 어른들, 마을과 마을을 엮어 강북지역과 네팔의 베시마 을을 넘나들며 실천해왔던 그 힘들은 지속해 가길 원한다. 그리고 그에 더하여 함께 가는 길 속에서 그 후발 주자로서 품과 같은 미래를 꿈꾸는 단체, 조직, 사람들을 지속성 있게 키워내 는 형님으로서의 역할을, 생기 있게 길들여진 습관과 업적을 넘어선 그림을 그려주길,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넘어 지금 하고 있는 마을학교의 꿈을 행복하게 키워가길 소망한다. 그것 이 더욱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얼마 전 한 유명한 CEO를 만난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싶다. 그 분이 한 스님을 찾아갔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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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왜 나를 찾아왔냐는 질문에 그 분은 “제가 낮아지려고 왔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랬더 니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당신이 뭐가 그리 높다고 낮아질 것이 있느냐?”고 반문했다고 한 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어색함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법당 문 너머의 큰 창을 바라보며 “ 창이 크니 세상이 커 보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고 한다. 그랬더니 다시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당신 안에 있는 마음의 창마저 없애면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자만, 성공, 선입견을 버려야 하는 내려놓음에 대해서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다시 금 “진짜 왜 나를 찾아왔는가?”하는 질문에 “매번 남의 일만을 위해 살아왔는데 정말 제 일 을 해 보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더니 “사심을 버리고 공심을 가지면 세상에서 더 큰 이로운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숙연해 졌다. 활동가로서의 나를 되돌아보기도 했고, 내 안의 선입 견과 고정관념, 성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그리고 작지만 더욱 공의로운 일을 위해 힘쓰는 사 람으로서의 나의 모습을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품의 20년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자리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기관으로, 그리고 사람으로 나눔과 소통을 통 해 다시금 신바람을 낼 앞으로의 20년, 그리고 앞으로의 100년을 위한 소망으로 청년들과 부 딪치며, 삶으로 살아내길 소망한다. 그리고 그 청년들이 사회 곳곳에서 정의로운 일들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로 서 가길 기대한다.


희망 열둘.

스무 살 ‘품’이 품은 ‘희망’

이정주 2004 품 인턴, 품 주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품’이 스무 살이 되었다. 스무 살이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희망’인데 나에게 또 ‘ 품’에게 바라는 ‘희망’을 이야기해 달라니, 잊혀진 스무 살의 기억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나 는 서른 살이 되었다. 스무 살의 봄을 떠나보내고, 적당히 여물어 불그스름한 서른 살의 봄을 맞이했다. 그리고 지금, 스무 살 ‘품’의 손을 잡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품어야 할 ‘ 희망’ 혹은 이미 품고 있을 ‘희망’에 대하여.

품에서 인연을 맺은 故 강대근 선생님. 몇 년 전, 그 분께로부터 <아직도 낯선 길가에 서성이 다>(유진택,1996년) 시집을 선물 받았다. ‘방황은 그만두어라’ 라는 글귀와 함께. 나는 서른이 되어서야 이 글귀에 ‘방황을 하라’는 역설적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한 방향 이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자신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 구성하며 ‘나’만의 길을 걸어가라는 일종의 ‘방황을 권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故 강대근 선생님께서 ‘나’에게 주신 깨달음이면서 동시에 내가 스무 살 ‘품’에게 바 라는 ‘희망’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희망’은 이미 ‘품’이 품고 있는 ‘희망’임을 알기에, 반 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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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품’이 ‘탈(脫)세대’, ‘탈(脫)문화’, ‘탈(脫)지역’을 모토로 내건 지역축제는 이러한 ‘품’의 ‘ 희망’을 선포한 것과 같다. ‘품’은 이미 ‘청소년’, ‘문화’, ‘공동체’라는 본연의 정체성을 해 체하고 세상의 질서와 경계를 허물며 ‘방황’ 속에서 그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품’ 20주년 포럼 주제 ‘해체(解體)와 희망(希望)’에서 ‘품’이 스무 해 동안 거듭해 온 지난한 ‘해체’의 과정이 ‘희망’으로 재창조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품’이 ‘무엇으로부터 벗어남’이라는 뜻의 ‘탈(脫)’에서 나아가 주체 적인 ‘희망’을 만들어가기 위해 더욱 방황하기를 ‘희망’한다. ‘품’이 그 안에 축적된 굴레와 관습에서 벗어나기를 바란 ‘희망’은 ‘품’이 꿈꾸는 세상과 삶에 대한 적극적 ‘희망’이 동반 되어야 완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완전해 질 ‘희망’이 ‘그들만의 희망’이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에게 수줍은 손을 건네기를 바란다.

“해방은 해방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서 비롯되고 희망은 희망 없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라고 한 브라질의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 말처럼 ‘품’의 ‘희망’을 가 장 외롭고 절실한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면 욕심일까? ‘품’의 ‘희망’이 중동 과 아프리카에서 독재에 대항하는 청년들의 ‘희망’과 연대하고,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만으 로 투옥된 양심수들의 ‘희망’과 연대할 수 있다면, 삶터를 빼앗기고 절망에 빠진 주민들의 ‘ 희망’과 연대하고, 자본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의 ‘희망’과 연대할 수 있다면, 세계 곳곳에서 억압과 배제, 불안과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희망’과 연대하고, 정의와 자유, 평 등과 존엄성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의 ‘희망’과 연대할 수 있다면, ‘품’의 ‘희망’은 연대 속 에서 퍼져 나가는 울림이 될 것이라 믿는다.

물론 ‘희망’이라는 앞날에 대한 무모한 기대가 가끔씩 우리에게 좌절을 안겨 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희망’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은 ‘희망’을 품는 것 자체가 변화 의 시작임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해체’의 삶이 순탄하지 않았듯이 ‘희망’을 향한 삶 또한 순탄하지 않을 테지만, 나는 스무 살 청년 ‘품’이 거뜬히 그 과정을 이겨낼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품’의 ‘희망’에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품’ 스무 살 생일에 한 이 약속이 언젠가 또 다른 ‘희망’의 울림을 만들기를 바라면서.


희망 열셋.

장서엿의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품

장서영 창동고등학교 1학년 무늬만학교 2년 동안 재학중

나는 품에 정말 많은 영향을 받고 살아가고 있는 십대이다. 나는 작년부터 무늬만학교를 통 해 품을 깊이 만나게 되었다. 무늬만학교는 품이 살아온 역사를 녹여낸, 품의 자식과도 같은 존재라고 한다. 나는 품을 통해서 정말 많은 성장을 했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나는 공부는 잘하지 않았지만 말썽을 피우지도 않는 그저 그런 어중간한 청소년으로, 왜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가는 학교 공부에 흥미를 갖지도, 열심히 하지도 않았 다. 그렇다고 딱히 하는 것도 없이 지겹고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살 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늬만학교 안내를 보는 순간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재미있는 걸 해 볼 수 있 겠다는 생각, 그리고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사회와 소통함으로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청소년이 될 수 있도록 한다는 부분에 설레어 신청서를 냈다. 신청 서와 면접에서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나의 내면에 대한 질문들과 나의 가치를 묻는 질 문에 여기서 요구하는 것을 찾아 답해야 하는지 진짜 나의 생각을 말해야 하는지 방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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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그럼에도 내게는 열정이 보인다고, 무늬만학교와 1년을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불편하고 어색하기만 했는데 무늬만 학교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 께하다 보니 사람을 만나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또, 이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나 와 친구가 되어 어렵기만 하던 나의 내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내 삶을 능동 적으로 살고자 노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품은 하늘처럼 여겨지는 존재다. 내가 지금까지 몰랐던 즐거움을 가르쳐 주고, 새로 운 삶을 보여주었으며, 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까지 한다. 내가 본 품은 많은 것을 스스로 해야 하고 내 자신이 주체가 돼야 하는, 참 어려운 곳이다. 그리고 그 어려운 활동들 로 어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묻어가면 편하다. 하지만 그렇게 내 가 주체가 되지 못하는 삶을 사는 것은 의미 없게 생각된다. 품은 내가 주체가 되어 사는, 더 어렵지만 더 행복한 삶을 가르쳐 준다. 그래서 난 품이 참 좋고, 다른 십대에게도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십대 친구들도 나와 같을 것이다. 품은 자신의 삶을 수동 적으로 의욕 없이 살아가는 십대들에게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준다.

나는 지금까지 품에서 활동하면서, 품 속 에서는 참 즐겁고 행복했지만 내 일상은 여전히 지 루하고 의미 없게 여겨졌기에 품과 일상 사이의 괴리를 느꼈었다. 지금은 괜찮지만 작년에는 주위 사람들, 특히 학교에서 내가 하는 활동은 시간낭비라는 말을 들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다. 그래서 나는 품이 앞으로 학교 안 청소년과 많이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 학교와 연계하여 많은 청소년을 만나게 되면 더 행복한 십대를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한다. 요즘의 품은 학교와 연계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지만, 다른 부분에 비해 많이 부족하 다고 여겨진다. 물론 굉장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품이라면 분명 멋지게 성 공해 보일 것이라고 믿는다.

품은 나에게 정말 좋은 친구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품의 스무 살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 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청소년들의 좋은 친구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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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age From Himal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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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Message From himalaya

My PUM and Short Memory

Sange Sherpa

PUM is different kind of NGO in Nepal and Korea and now it is celebrating 20 years successfully. Within 20 years of struggle, some effective works also have been done in Nepal from 2005 onwards up to now. W ithin 20 years PUM had done many practices to make some changes in Korea also. And whatever, works, develops and changes made in Nepal and Korea can’t be forgotten for me. Many educational workshop and economical employment has play vital role which is done by PUM from 2005 to 2007 in Nepal. PUM changes many workshop of educational and economic employment from 2005 to 2007 is one of the history which is not so effective as aspect of PUM because of social public unawareness, economical condition of Nepal and also unstable situation of politics. By which from 2007 onward every program me is try to run in different ways in many villages in Nepal with the help of many research to create concept of happy village, by giving motivation to young citizen for making village by themselves.


Even now also with the helps, co-operative and motivation every works and program run by PUM, we all who is connected with PUM family is very thankful to Korea Pum. And this kind of program is needed in Nepal PUM can stand in high position in the history of Nepal due to hard work and changes in Nepal.

The work of PUM is not limited, but also changes the art and cultural exchange between two countries for which many talented persons of Korea is responsible for introduce of different Nepali culture and art. And also Nepalese young citizen will also exchange the Korean culture, by which not only within two persons but also for exchanging the culture between two countries also. So, for the entry of 20 th anniversary of PUM we congratulate and for the further development and success weare heartily wishes for PUM to exchange cultural development program between Korea and Nepal more and more in coming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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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Message From himalaya

그 날의 기억 반 컵 정도 남아있던 검은색 차(홍차)를 단숨에 들이키더니 하얀 담배 한 모금 빨며 한 청년이 말했다. “민, 우리 언제 한번 한국에서도 이 렇게 함께 차 한 잔 합시다.” 그 말에 나는 “담배도 같이 피죠?”라고 답했다. 그 후 그 다이(형)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악수한 후 “자 이 제 우리 친구가 된거요” 라고 말하며 나와 함께 있던 친구들에게 담 배 한 대씩 돌리더니 곧 모든 사람들을 웃게 하며 사진을 담았다. 그 리고 그 때 그 사람이 바로 심한기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2008년 9월 구루쿨 극장에서 품의 대표인 심다이, 그리고 친구들과 있었던 일 이다. 품과 나의 첫 만남은 이렇듯 재미있고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고, 그 날로부터 많은 시간 품과 우리 꺼날리 극단은 교류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갔다. 하루는 품의 전 사무실이 있던 사마쿠시에서, 또 하루는 썩띠 호텔, 또 언제든 품의 프로젝트가 진 행되는 박타푸르에서 심다이와 담배를 피우고, 하니와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 었다. 그리고 드디어 2010년 4월, 품에서 우리 극단이 활동하고 있는 무구 지역을 방문하였고, 그 때까지 이어오던 이야기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다.

2010년 10월에는 품이 우리 극단 친구들을 한국에 초대하여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그곳에 서 우리는 극단 진동과의 1주일 워크샵에 참여하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한국의 문화 예술 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 우리는 2개의 공연을 선보였는데 한국 사람들 모두가 좋아해 주셔서 우리 모두 기뻤고, 한국에서 만났던 많은 친구들과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네팔에 돌아왔다.

그때부터 품이 네팔의 박타푸르를 포함해 이곳저곳 진행하던 커뮤니티, 문화 관련 프로그램 마다 참여하며 나 자신 역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러한 순간에 함께 하길 바란다.첫 만남부터 무언가 통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인지 싶다. 매번 네팔에 올 때마다 새로운 담배를 사다 주는 심다이, 그도 즐거워 보이고, 나 역시 신이 난다! 마지막으로 품의 특별한 날에 나 역시 축하의 마음을 보낸다.


Message From himalaya

# We BEYOND family express warm wishes on your successful 20th anniversary. We wish may coming days will bring more positive changes and success on the way of your vision and mission. We express our solidarity and cooperation in future days as well. Thank you <Sachit Lochan Jha> 네팔 박타푸르에서 ‘품’과 이웃하며 일하고 있는 ‘BEYOND-Nepal’의 정성미예요. 그동안의 품 의 행복한 경험과 배움이 세상 곳곳에 나눠지기를 바라며 20주년 많이 축하드려요. <국제연대활동가, 비욘드네팔 공동대표 정성미>

# 네팔의 사회, 문화를 위한 품의 지원과 교류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품과 품의 가족들, 심다 이와 하니, 그리고 모든 한국의 친구들이 저에게 전해준 사랑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20년 이라는 긴 시간을 기념하는 품이 자랑스럽고, 더욱 좋은 모습으로 발전해 가길 바랍니다. <비놋 싸히 네와>

# Dear NGO PUM I am so happy that you have just crossed your teenage and entering in more mature, more youthfull and more energetic age. I believe more energetic time is coming ahead. In this happy occasion of your 20th birthday I wish for your long life and good health. I have spent 5 years with you. Within these years, there were some up and downs in our relationship but I believe it strengthened our relationship. And I have learned so many things from you. I feel like GREW UP with you. Thank you very much for everything. Once again the biggest congratulation in your 20th birthday. This is very important day for me.

<With lots of love Deepm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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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Message From himalaya

Mani lama # My heartily congratulations to Mr. Shim Han-ki and the hard working team of PUM on the 20th anniversary. When I first met Mr. Shim and the friendly members of PUM I was so impressed with the way they worked and dealt with people in Nepal. I liked the methods of teaching here at schools and the Nepali teachers to newer ways of learning. I’m sure if more schools/ teachers in Nepal gets a chance to see how its done then it would definitely improve the education system. The cultural exchange programs are also very good for the Nepali and the Korean students. They both learn so much more and share the best from each other. Thank you Mr. Shim for being so good to Nepali children/teachers and sharing your knowledge with us. Hope you will continue the good job for more years to come, Namastey and my best wishes to all the PUM team.

# We would like to congratulate NGO PUM Korea for its 20th great annual anniversary and would like to wish for its great success and achievement in further future. <Best wishes from RAM, SUJAN, SHAILESH and all the members of Studio TAPARI>


Message From himalaya

Schools’ Forum Nepal # On the occasion of 20th Anniversary of PUM, South Korea, The Schools’ Forum Nepal extremely delighted to extend our best wishes and congratulation on its completion of 20th years. Schools’ Forum Nepal had an opportunity to work with PUM, in various field especially in education sectors and was very effective and worthwhile among the students of Nepal. May the PUM carry on its wholesome and meritorious deeds years and years and we would like to continue to work with PUM for the welfare goodness of many people and students of Nepal and South Korea. <Ven. Raju Kondan Lama Chairman Schools’ Forum Nepal>

# 자신의 지역에서 계속해서 활동해 오며 20주년을 맞이하는 품,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 리고 또 다른 시작 역시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품의 좋은 일과 관계 들을 계속해서 이어가며 또 다른 20년 역시 맞이하길 바랄게요.

<베시마을 청년, 무나 시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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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Message From himalaya

왼쪽에서 두번째 _ 장부 세르파, 그 옆이 벰바 세르파 품과 가족같이 지내는 장부 세르파의 식구들

I really like to express my hearty congratulation behalf of Pum 20th anniversary celebration. On the way of community base social welfare Pum successfully came over to 20th anniversary . In real way Pum had extremely activities on sector of art, culture & education. I was really connected with Pum from long time it created a great relationship between us. I would like to wish get grand success on your ways to gain your aim, prospects & future plans. In the future It would bring out more advance activities to the community. We appreciated yours co-operation with us. <With best wishes, Ang Jangbu sherpa>

I am Pleased to extend my warmest greetings to PUM’s 20th anniversary. Pum is successfully Working Education, Art & culture sector in South Korea & Nepal since establish. We are very much please with the successful programs with Pum in Kathmandu & Solukhumbu Nepal. We do hope for the creative tasks in the future too through such valuable activities. I am sure PUM would bring Great laurels your Activities. Once again I congratulate you on your well deserved Success. Your Sincerely Ang Pemba Sherpa Persident Pikeey Rural Health Post & Dream Hope Future Liberary Goli,Solukhumbu Nepal


품을 통해 갖는 희망 무엇보다 먼저 품과 품을 여기까지 오게 한 모든 분들께 진심으 로 축하드린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품과 만났던 지난 5년 동안 저의 크고 작은 희망들이 이루어졌습니다. 지금의 저는 베 시와 품 사이의 관계가 더욱 길고 단단해 지길 희망합니다. 품 이 하고자 하는 일들을 더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마음으로부터 함께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베시마을에 존재하는 가능성과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재미있게 앞으로 다가올 날들도 보 낼 수 있다면 더 좋겠고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한국의 아이들 이 모너허라 학교를 찾아오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그곳에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제가 지금까지 품을 통해 누릴 수 있었던 감사한 기회들이 우리 마을의 다른 친구들에게도 가 닿을 수 있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함께 가요 품! 축하 합니다~

# 어느 새 모너허라 학교와 품, 그리고 네팔과 한 국이 형제와 같은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간 품의 활동을 통해 우리 학교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전에는 보거나 생각할 수 없던 것들도 우리 안에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품이 20주년 이 되었군요. 앞으로 더 긴 시간 함께 하며 더 많은 <모너허라 학교 교사 일동>

새로운 일들을 해나갈 수 있길 바라요.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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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베시마을 모노허라 공립학교 교장선생님의 둘째 딸 루나. 마을에서 청년자원활동가로 1년 6개월간 마을에 머물렀던 안하나에게 한글을 배웠다고 한다. 품 축하편지를 쓸 때 어느 누구에게도 묻지도 않고 혼자 몰래 몰래 썼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 따뜻하고 예쁜 마음이 더 전해온다.


꿈을 꾸게 해주는 품의 2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축하의 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인생길에 멈춰 서서 망설이고 있습니다. 아마도 꿈이 없 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품을 통해 꿈꿔왔던 꿈을 함께 공유하고자 합 니다. 저의 꿈은 ‘교육을 통한 아시아의 빈곤퇴치사업’입니다. 청소년공동체 품 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이런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네팔 히말라야 베시 마을에 서 청년조직을 만들고 함께 마을을 일구어 가는 현장 중심의 활동과 히말라야 지역에 대한 깊은 인식은 우리에게 많은 공감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들도 지역을 벗어나 아시아의 빈곤문제 또한 우리가 안고 가야할 문제로 인식 해야 합니다. 특히 베이버 부머 시대에 놓여 있는 꿈이 없는 분, 길이 막히신 분, 앞뒤가 도무지 안 보이는 분들에게 함께 꿈꾸기를 제안합니다. 네팔지역에 청소년교육센터 설립을 위해 함께 기금을 모으고 함께 공유하고 함께 꿈꿔 나 가면 실현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나는 이런 꿈을 꾸게 해준 품의 20년이 자랑스럽습니다.

꿈이 현실이 되기를 소망하며...

광명시 인권위원회 위원장 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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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축하의 글 품이라는 씨앗을 고르고 싹 틔워내는 과정부터 지켜보았던 까닭에 품의 20돌이 내 게 주는 정서적 무게감은 제법 묵직하다. 참 잘 자랐다. 씨앗 한 톨이 상하지 않고 제 구실할 만큼의 성숙한 개체로 자라날 확률을 가늠하긴 어렵지만 높지 않음은 분 명하다. 품 또한 20살의 청년으로 자라기까지 때론 가르랑거리고 때론 막막한 위기 들을 잘 달래고 다스렸음을 알기에, 청년 품에 보내는 축하의 마음 한켠이 울컥하 기까지 하다.

20살 ! 눈부신 청춘이다. 불안한 첫 걸음에서 청년으로 자라기까지 우선은 작은 몸 을 키우고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도 겪었을 것이다. 이젠 견고 한 정체성을 뼈대로 잘 자란 몸을 다듬고 만들 때인 것 같다. 필요 없는 살들은 덜 어내고 탄탄한 근육으로 매력을 더한 에너지 200%의 청년 품을 만나고 싶다.

넓어진 가슴으로 더 많은 사람, 쟁점, 꺼리들을 품어 주기를 희망한다. 품의 20년 이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격려해 준 수많은 길동무로 인해 아름다웠던 것처럼 앞 으로의 여정에서도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품이 함께 하길 기대한다. 다양 한 꺼리들을 각 없이 다루고 고민하는 성숙해가는 품의 또 다른 20년을 20살 청년 품에게 희망해 본다.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혜지


20년의

“다큐멘터리

“

품

4막.


품 20

제4막에서는... 온전한 품의 다큐멘터리이다. 품이 아닌 외부에서 전해지는 품의 이야기들과 품의 20년의 흐름들을 볼 수 있는 영역별 연대표 그리고 품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기록들을 꼼꼼하게 정리했다.

“세상

“

370

이

말하는

품


1992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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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2000 중등우리교육


2001 청소년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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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2003 위즈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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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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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

2005 한겨레 신문


2008 강의 후기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김유정

“사회복지사로 갇혀 살지 말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살자.” -심한기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대표님을 만나 두근거림을 찾아보다.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심한기 대표님의 강의가 월요일에 있었다. 그는 우리와 채 몇 마디 나누지도 않고 대뜸 물었다. 사회복지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복지에 대한 설레임은 가지고 있냐고.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한 그 순간에 가졌던 희망과 설레임 은 아직도 유효히 존재하고 있느냐고. 강사님의 말에 말문이 막힌 것은 무슨 이유일까. 나는 내 나름대로 사회복지의 신념과 내가 선택한 이 가야할 길에 대한 생각은 많이 해 왔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강사님은 사회복지는 다른 사람에게 보일 내 신념, 그것을 뛰어 넘어 진솔한 의미의 자 기 행복이라고 하셨다. 사회복지라면 흔히들 인간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지만 정작 그 사회복지사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 또한 새로운 의미의 사회복지라며 복지를 실천하는 우리 청년 복지사 개개인의 행복의 중요성을 일 깨워주셨다. 진정한 사회복지의 실천, 그것의 대상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행복을 추 구하라니 조금 엉뚱한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었다. 또다시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나이와 상관없이 마음속의 자기울림을 만들어 내고 표출하 라고 말하시며 이것에 대한 우리의 즉각적인 반응과 대답을 원하셨지만 우리는 모두 침 묵했다. 부끄러워서였을까, 같이 능청스럽게 말을 나누고 싶었지만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러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조차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겁쟁이가 된 것 같다는, 내 마음속 자기울림을 피해버릴 정도로 용기가 없는 예비 사회 복지인 이었는지. 대답 없는 우리에게 그분은 웃으며 말을 이으셨다. 청년의 힘을 찾으 라고, 자신의 에너지를 발견하여 버거운 현실에 밀려 내 안으로 숨어버린 끊임없는 호기 심과 두려움, 설레임을 다시 이 세상으로 꺼내달라는 말을 하셨다. 호기심과 두려움, 설 레임의 청년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 나이가 몇이 되던지 그 사람은 청년처럼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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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말씀은 내 방식대로 세상을 살지만 내가 노력한다면 아무리 나이를 들어도 청년처럼 살 수 있다는 말씀은 내 방식대로 세상을 살지만 내가 노력한다면 아무리 나이를 들어 도 청년의 모습으로 사회복지를 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이끌어 냈다. 과연 심한기 대표님이 그렇게 강조한 청년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 것인가? 나는 과연 대표님의 기준에 맞는 청년인 것인가? 발표 자료에는 99%의 순종적인 인간과 1%의 거 부하는 인간이 있었다.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나는 99%의 순종적인 인간이었다. 내가 아는 나는 모두가 가는 그 길을 진리라 생각하고 나만 유별나게 눈에 들어서 찍히거나 이쁨을 받는 걸 피하려고 하고,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으며 무난한 획일화에 익숙해져 버린 인간이다. 강사님의 자료는 흡사 예전 어느 광고문구 “모두가 yes라 할 때, no라 고 할 수 있는 용기”를 떠오르게 하였다. 강사님은 사회의 흐름을 따라가는 무난함보단 조금은 설레이며 용감하게 흐름을 거부하는 용기를 가진 이를 청년이라 말하셨다. 하지 만 이 말에 난 전적으로 수긍 할 수는 없었다. 내 자신이 강사님이 정한 청년의 기준에 포함되지 않아 성이 나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 일 수도 있지만 내 생각에 청년이란 옳은 일에까지 반박하고 도전하는 무모한 젊은이는 아니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어서 사회복지사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상상력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 꽃대 학생 모두가 지식 이론뿐만이 아닌 상상력과 예측할 수 없는 기발함을 가질 수 있길 원 하셨다. 그리고 사회복지사가 시험공부, 즉 졸업시험으로 인해 자기 생각과 신념을 좀 더 깊이 생각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말하시면서 정답 찾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대 한 안타까움을 드러내셨다. 보다 사회복지의 즐거움을 알아가며 배워야 할 시기에 글씨 로 쓰여 있는 박힌 지식에 매달리는 우리의 모습은 솔직히 우리가 보더라도 이렇게 하 는 공부가 나중에 실전에서 정말 필요한 것일까 라는 생각을 들게 하여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내가 듣는 수업 ‘사회복지현장의 이해’ 시간과 ‘여성과 사회’ 시간 두 교수님이 수강생들에게 공통적으로 하셨던 말씀이 있다. “수업은 듣지 않아도 좋아, 너희가 해야 할 일이 있겠다 싶으면 수업정도야 뒤로 미뤄버리고 자신이 지금 하지 않으면 죽겠다 싶은 일을 찾아 열정을 가지고 매달리고, 그런 것도 좋잖아! 앉아서 공부하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면 가끔은 용기 있게 과감해 지는 것도 참 좋은 거 같아.” 나 도 과연 이런 용기가 있을까, 씁쓸하지만 약간의 자신도 있고 용기 있는 청년이 되고 싶 기도 하고 심란하지만 괜시리 웃을 수 있었다. 강사님은 또다시 말을 이었다. 자신을 카메라라고 생각을 해보라고 말하셨다. 쌩뚱맞게 카메라라니,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멀뚱멀뚱 화면을 쳐다보고 있으니 사진이 화면에 떠올랐다. 같은 꽃이지만 다른 효과로 찍은. 한 사진은 산과 하늘이 보이는 최고의 배경 에 아래는 유채꽃밭으로 가득 찬 풍경사진, 또 다른 하나는 그 노란 유채꽃을 클로우즈 업 방식으로 찍은 세세적인 아름다움이 드러난 정밀사진. 심한기 대표님은 사회복지사를 렌즈로 표현하시며 사회복지는 Zoom in과 Zoom out, 두 개의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셨다. 넓은 세상과 작은 아름다움 두 개를 보고 살면 강사님은 “흥분”이 된 다고 하셨다. 이것은 에너지라며 사진 각각의 매력과 숨겨진 뜻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 다. 두 장의 사진은 단순한 사진이 아닌 사회복지사가 클라이언트에게 보여줄 수 있는 표현 방식, 관계, 소통, 사회참여, 타인을 이해하는 것을 나타낸 것 같았다. 상상력 또한 가능하게 하였다. 사진은 아닌 것을 가능하도록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사회복지사의 일을 우리에게 제대로 전달해 주었다고나 할까? 인간과 인간이 만나 이뤄지는 사회복지. 처음에 강사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어쩌면 자기 행복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설레임’은 복지에 대한 즐거움을 더 유발시켜 주었으며 인 간의 행복추구는 스스로의 행복추구로부터 이뤄진다고 정리가 되었다. 나는 애초에 사회 복지에 뜻을 두었을 때, 내가 남을 돕기에 즐거움을 느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내 가 즐거웠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것을 새로운 개념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 사회 복지는 절대로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한 방향으로 클라이언트만을 위해 일 하는 기계가 아니다. 그런 기계가 될 바에는 사회복지를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 같 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회복지는 연결되어야 하는, 즉 주고받고 서로 돕는 흥분되고 설레이는 사회복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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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인권

도봉산 자락 한 동네에 유난히 눈에 띄는 파란색 대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가면 지하 같 지 않은 밝은 공간이 나온다. 그곳에 젊은 청춘들이 환한 얼굴로 모여 있다. 청소년들이 함께 노는 곳, 청소년 문화 공간 ‘품’ 안에 들면 어쩐지 어른들도 숨을 제대로 크게 쉴 수 있을 것 같다. 그 산소 같은 분위기 때문인지 젊어 보이는데다 산 사나이같이 옹골찬 모습인 ‘품’의 심한기(45) 대표. 그런데 어째 그의 표정이 심드렁해 보인다. “요즘은 무슨 일을 해야 옳은 건지, 내가 일해 온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품’ 나이가 벌써 열여덟이 되었는데 말이지요.” 심 대표는 ‘품’을 만들었고 ‘품’ 속에서 세월을 보낸 사람이다. 그런 그가 한숨을 쉬는 이유는 ‘요즘 아이들’ 때문이다. “ 최근 3~4년 전부터 더해진 것 같은데요. 아이들이 알아서 고개를 숙여요. 그게 더 불쌍 해요. 그전 10대들은 암울했지만, 움칠거리고 뛰어나가려는 몸부림을 쳤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스스로 체념한다는 거죠. 뛰쳐나가봐야 인정도 못 받으니 그냥 세상이 만들어놓 은 길을 똑바로 가는 척이라도 하자,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자니 마음이 아주 갑갑한 거 죠.” 심 대표는 사회적 압박이 아이들의 혈관 깊숙이 스며들었다고 표현한다. 10대는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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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팡 테러블’인데 우리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벌써 제어능력이 생겨 스스로 자신을 닫 아버린다는 말이다. 심 대표는 요즘 고등학교 아이들의 삶은 절망적이라고 한숨짓는다. 그가 ‘품’을 만든 1992년 당시, 고등학교마다 자발적 동아리가 적어도 30~40개는 있었 다. 그런데 지금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동아리를 만들게 내버려두는 학교는 하나도 없 다. 설사 교장이 하려고 해도 학부모가 아이들 공부시간을 빼앗는 처사라며 항의한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자발적 동아리가 전멸했습니다. 이건 동아리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 삶의 문제이지요.” 심 대표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짐을 느꼈는지 목청을 가다듬었다.

“10대들과 행복하게 사는 단체를” 그가 애초 ‘품’이란 것을 만들기로 작정했을 때를 설명한다. “저도 10대 때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그래서 다른 아이들한테는 그런 것을 좀 덜 겪 게 하고 싶었던 거죠.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지요.” 심 대표는 자신의 10대는 음악을 하는 것 말고는 어둡고 우울했다고 떠올린다. 밴드를 조직해서 노래도 부르고 기타도 치면서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눈총만 받았다. 당시 음악 을 한다는 것은 비전없는 ‘딴따라’로 살겠다는 말과 같은 것이었으니 부모와 학교 모두 그를 들볶았단다. 결국 기타를 내려놓고 대학에 갔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면서 다행스 럽게도 숨을 쉴 수 있었다. 평소 아이들 사는 데 관심이 많았던 터라 아예 아이들을 위 한 일을 평생 직업으로 하자는 마음을 굳혔다. 졸업 후 바로 청소년 단체를 첫 직장으 로 잡아나갔다. 그런데 가보니 실망이었단다. 기존의 사회관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답답 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청바지도 못 입게 했어요. 생각도 자유롭지 않더군요. 청소년들을 만나는 게 일인 사람 들이 그렇다는 게 이해가 안 되었어요. 충격이 컸지요. 그래서 같이 자원봉사활동 다니 던 동기 세 명과 함께 마음을 모았습니다. 이럴 바에는 우리가 단체를 만들자, 10대들과 행복하게 사는 단체를 만들자, 그렇게 해서 ‘품’이 시작된 겁니다.” 푸른 청춘들이 모였으니 안 먹어도 배가 불렀고 세상은 충분히 꿈꿀 수 있는 공간으로 보였다. 음악도 하고 풍물도 하고 ‘품’에 모인 아이들은 세상으로 창을 크게 열고 그들 나름의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청소년들의 좌절과 패배도 길게 보면 큰 꿈속의 한 부분 이었다. ‘품’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떠나고 다시 돌아오고 하는 사이 시간은 훌쩍 지나갔 다.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하나의 조직을 꾸려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참 신기해요. 돌아보면 별로 길게 느껴지지 않아요. 우리는 늘 한자리에 있었는데 초등학교 때 오던 친구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을 졸업해서 직장인이 되고 그 렇게 커나가더군요. 여기서 커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친구들도 있고, 항상 젊은 에 너지가 순환되다 보니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하하…….” 그러나 젊은 에너지만으로 세상을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조직의 재정이 꽤 어려웠을 텐데도 그는 꿋꿋하다. “시작할 때 돈은 우리의 조건사항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우리더러 가난하다고 불쌍하게 보는 이가 많았어요. 처음엔 화가 나기도 했지요. 우리는 늘 넉넉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요. 그래도 제가 명색이 대표이니 후배들 고생 덜 시키려고 열심히 뛰어다닙니다.” 지금 정기적인 후원회원이 300명가량 된다. 처음엔 활동하는 친구들에게 교통비 정도나 지원해 줄 수 있었는데 이젠 재정 형편도 나아져서 일정 정도 급여를 지급하기도 한다. “여기서 견딘다는 생각으로 일하면 한 달도 못버티지요. 이 일이 너무 좋고 이런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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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한테 큰 에너지가 되고 비전이 되는 친구들만이 여기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청소년 문화만들기 프로젝트’를 시도하면서 외부의 지원을 받아서 치른 일도 많았다. 그런 일이 재미도 있었고 보람도 있었지만 요즘은 사업 내용을 단순화하기로 했 다. 최근 들어 가장 공을 들이는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지역’, 또 하나는 ‘사람 흔들 기’다. “지역, 그러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를 중심으로 일한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속한 동 네를 들여다보면 세상이 보이거든요. 변화의 가능성, 영속성,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어 서 좋기도 하고요. ‘사람 흔들기’는 그들을 깨워낸다는 말인데요, 청소년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교사, 청소년 단체 상근자들을 깨워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청년 흔 들기를 가장 중점적으로 하는데 5년 전부터 청년아카데미를 열어서 20~30대를 공략했 습니다. 너희가 아는 세상이 틀린 세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지요. 청소년학과, 아 동학과, 상담,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들, 이들 중에는 청소년을 위해 자신을 희 생하겠다고 나서는 이도 있는데 정작 우리 사회가 왜 희생을 필요로 하는지는 몰라요. 그 젊은이들을 깨우는 겁니다. 너희가 서 있는 세상을 다시 보라고.”

‘품’에서 자라고 떠나고 다시 돌아오고 심 대표는 ‘품’이 동네문화를 어떻게 새롭게 만들어나가는지 열성적으로 설명한다. “요즘 아이들의 생활권이 동네거든요. 아이들이 자기가 중심이 되는 생활을 학교, 집, 동네 안에서 꾸려내도록 하는 겁니다. 10대와 기성세대가 만나기, 관공서 제대로 알기, 주부들과의 만남, 시장 상인 만나보기… 등등 활동을 통해 아이들과 어른들을 서로 소통 하게 하는 거지요.” 매일 방과 후가 되면 20~30명씩 아이들이 ‘품’으로 몰려온다. 이번 프로그램은 어떻게


해나갈까, 회의하고 의견을 모은다. 10대들은 지역에서 중간세대에 속한다. 이들이 동네 주민, 기성세대들과 만난다는 것은 지역 전체의 의사소통이 되게끔 한다는 것이다. 그러 면 지역문화도 살아나고 아이들은 부모세대를 다시 보게 된다. 아이들은 이런 활동을 통 해 공부 말고도 세상을 다르게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심 대 표는 자신한다. 그는 ‘품’이 이루고 싶은 보편적 가치를 다른 지역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 을 늘 갖고 산다. 우이동에서 이뤄내는 꿈이 다른 곳에도 그대로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 람이 있다. 네팔에서 벌이는 ‘품’의 활동이 그런 소망의 구체적인 표현일 것이다. 네팔과 그의 인연 은 아주 우연히 이뤄졌다. 산을 무척 좋아하는 그는 자주 혼자 떠나곤 하는데 몇 년 전 네팔의 한 산동네에 갔다가 주저앉을 뻔했다는 것이다.

내면에서 재생되는 에너지 만들기 “카르마라는 말이 있잖아요. ‘업’이라고 하는 뜻인데 저는 제가 마치 전생에 그쪽에 살 았던 느낌이 들었어요. 그 동네 사람들한테 그러지요. 난 당신들한테 속해 있는 사람이라 고요. 하하하…….” 그래서 그곳 형제들한테 한국에서 하는 ‘품’활동을 해보자고 손을 내밀었단다. 이제 4년 되었다. 요즘도 그는 1년 중 서너 달을 그곳에 가서 지낸다. “여기서 하는 일과 똑같은 일을 해요.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자연과 소통하면서 어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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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줄 아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얼마나 큰지 알게 하고 싶어 요. 외부에서 도움을 기다리기만 하던 주민들이 능력껏 재주껏 일을 찾아서 하더라고 요. 학교, 청년 조직을 중심으로 문화작업을 하는데 재미있어요!”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들과 어울려 노느라 언뜻 보기엔 떠들썩하고 외향적일 것 같은데 심 대표는 매우 신중하고 조용하게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는 운동을 목청으로 하는 사람 이 아니다. 아이들과 하는 운동을 그는 ‘내면에서 재생되는 에너지 만들기’라고 정의한 다. 거창하게 소리 지르기가 아니라 일상에서 자기를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을 키워내고 싶은 것이다. ‘품’의 활동 내용에서 인권, 복지 그런 단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쩐지 너무 큰 의미 같아서 자칫 괴리되는 느낌이 들어서인 것 같다고 그가 설명한다. “사람들이 탈출하자는 말을 많이 하는데, 우리는 일상 안에서 찾자, 매일 매일이 나의 축제가 되게 하자, 그런 말을 하지요.” 심 대표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사회 제도와 절차, 순서를 약간씩 바꿔놓는 것을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무척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까지 비친다. 최근 그는 굳이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한테 그러면 가지 말라고 했다. 그 대신 그 아이들과 작은 학교를 만들었다. 수업은 인문학 공부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붙들고 넉 달 공 부했는데 벌써 자기 길을 찾은 것 같다고 하네요. 그렇게 긴 시간 학교에 보내도 못 찾 아낸 길을 넉 달 만에 찾았다는 말입니다!” ‘품’을 찾은 아이들이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니 어떤 학부형들은 심 대표 멱살을 잡기도 했단다.


“그런데 아이들이 변화하는 것을 보면 부모님들도 알게 되지요. 아이들 스스로 자기 선 택을 명쾌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모들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심 대표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길도 나설 사람이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모든 아이 를 지켜낼 파수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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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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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인은 ‘나’ 1992년에 만들어진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은 그 동안 여러 활동으로 많은 학생들을 만났 고 그들은 다시 ‘품’으로 돌아와 선배가 되고 활동가가 되었다. 이들이 모여 ‘어떻게 하 면 아이들이 행복해질까’라는 고민으로 시작한, 공부와 놀이, 꿈과 현실, 교육과 실천의 간격을 줄이고 연결해나가는 시도가 바로 무늬만학교 프로젝트이다. 말 그대로 무늬만 학교인 ‘무늬만학교 품’은 주말형 대안학교다. 2011년, 1기생을(문화 놀이터 11명, 인문놀이터 6명) 졸업시켰다. 문화놀이터에서는 지역청소년축제 ‘추락(秋 樂)’을 직접 기획하며 문화•예술의 즐거움을 몸으로 체화하고 주체적으로 내 인생의 기 획자가 되는 준비운동을 하고, 인문놀이터에서는 이론적인 인문학이 아닌 실제 ‘삶’ 자 체 본질에 문화적 상상력으로 접근한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유현희 선생님은 품이 전국단위로 활동할 때 고향인 춘천


에서 청소년아카데미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하며 품과 인연을 맺었다. 본인은 이때부터 품의 예비활동가 시절이었다고 말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막연하게 가치있는 삶을 고민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가치있는 삶이란 문제에 대한 갈증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일터와 일상이 분리되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자꾸 들고 ‘품’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 는 거에요.” 2003년 드디어 품에 합류하였고 벌써 9년 차 고참 활동가다.

배움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대안학교는 공교육이라 일컫는 학교의 일탈이 아니다. 대안적으로 만들어진 학교의 다른 모습, 다른 교육방법이 대안학교가 아니다. 세상의 보편적인 눈으로 보면 틀에서 벗어나 는 삶을 택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삶을 흔든 용기있는 아이들 이다. 세상에는 여러 모습의 배움터, 스승이 있는 것이다. ‘선생님’이라는 이름에 들어있는 책임감과 사명감의 무게가 무겁다는 유현희 선생님은 아이들의 변화가 느껴질 때가 가장 기쁘다. 눈도 못 마주치는 통나무 같던 아이들이 살 아날 때, 학교에서는 손들고 발표도 못 하는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서 의견을 말할 때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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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모든 아이에게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열정과 에너지가 있어요. 그냥 목표도, 목 적도 없이 따라가는 게 안타까워요.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천편일률적인 교육환경에 적응되어 버린거죠.” 무늬만학교는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상황적 특징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래야 부담없이 자기를 드러낼 수 있다. 무늬만학교에서는 재학생, 탈학교, 대안학교 청소년들을 구분하 지 않고 입학생을 받는다. 소외학생, 부적응자는 어른들의 구분짓기에서 만들어지는 것 이다.

‘다름’ 이해하기 중고등학생 시절 동네에서 연극을 시작하고 동아리에서 꾸준히 문화예술 활동을 해 온 유현희 선생님은 그때는 문화가 뭔지, 예술이 뭔지도 몰랐단다. 그냥 마냥 즐겁기만 했 다. 나는 그렇게 즐겁게 살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왜 이렇게 살지 못할까 생각하면 안쓰 럽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문화경험이란 소중한 가치를 나눠주고 싶다는 유 현희 선생님. 무늬만학교에서는 문화예술을 즐거움 그 자체이며 에너지를 나눠줄 수 있는 근원이자 상대를 이해하게 만들어주는 매개체라고 한다. 취향과 기호는 다르지만 상대의 즐거움을 이해하는 것. 힙합과 트로트를 함께 춤추게 하는 것이 바로 문화 예술의 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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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기생을 모집하는 무늬만학교는 올해 놀이터를 통합하고 주말형 대안학교에서 일상 대안학교로 전환하려는 목표가 있다. 품의 교육이 일상에서도 실천되려면 주말에만 만나는 걸로는 부족하다고. 두 번째 입학생은 4월부터 놀이를 시작한다. 1기생 중에는 여수에서 주말마다 올라온 열정 넘치는 친구도 있었다. 3월 18일까지 모집하는 2기생은 더 뜨거운 가슴을 가진 아이들이 함께 하기를, 자신의 삶과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고 기 획하는 당당한 삶의 주체자가 되기를, 세상의 가치를 발견하며 행복을 만들어내는 사회 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축하의 글 제가 삼각산 자락에 산지는 약 10년 정도 됩니다. 그 동안 소중한 만남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서도 으뜸은 아마도 ‘품’을 만난 걸 겁니다.

지역에서 활동하지 않았던 저에게 품은 그저 다른 사람 입으로만 듣는 지역 단체였습니다. 하지 만 제가 삼각산재미난학교라는 대안초등학교 행정교사를 맡고 이어서 마을살이에 참여하면서 알 게 된 품은 사업이나 활동, 뿐만 아니라 일꾼들도 참 멋졌습니다.

품 20주년을 맞이하여 원고 청탁을 받으면서 기뻤습니다. 멋진 품의 소중한 기념식에 참여할 수 있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원고 청탁’은 역시 버거운 숙제랍니다. 어떻게 숙제를 풀까 며칠을 고심 하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일곱 글자 우리말 재미로 품에 대한 저의 짝사랑을 대신 드러낼까 합니다.

품에는 ‘꾼’들이 많습니다. 20년 동안 품의 대장 노릇하느라 늙을 시간조차 없었던 무당을 비롯 해서 지금 막내인 준혁이까지 누구 하나 만만한 꾼이 없습니다. 품의 ‘끼’는 대단합니다. 품은 어 떤 부탁이든지 좀처럼 거절하지 못하게 만드는 묘한 ‘끼’를 갖고 있습니다. 품은 ‘꾀’도 많습니 다. 단체 이름부터 ‘꾀’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또한 사업이나 행사를 기획할 때도 재치 넘치는 ‘끼’를 한껏 발휘합니다. 강북마을장터 ‘탈탈탈’처럼 말입니다. 품은 ‘꼴’에 살고 ‘꼴’에 죽습니 다. 사무실과 주방, 화장실까지 ‘꼴’ 보기 좋습니다. 비데 있는 민간단체 화장실... 그것 보기 쉬운 ‘꼴’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일꾼들 심신의 ‘꼴’도 매력적입니다. 자신들만의 캐릭터를 잘 만 들어 갑니다. 좀 네팔틱합니다. 품은 ‘깡’이 좋습니다. 사실 20년 동안 한 지역에서 이러저런 유 혹에 빠지지 않고 아이들과 만나면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건, 품이 대단한 ‘깡’을 가지고 있기 때 문입니다. 아마도 그 ‘깡’은 사람에 대한 믿음에서 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품 은 ‘끈’이 정말 대단합니다. ‘끼’와 ‘꾀’가 많은 품의 ‘꾼’들이 20년 동안 맺어온 다양하고 소중 한 인연들이 바로 품의 단단한 ‘끈’이 아니가 싶습니다. 아마도 이 ‘끈’은 앞으로 더욱 여러 갈 래로 이어지고 뻗어나가리라 생각됩니다.

제가 품을 만나서 더욱 즐겁고 행복한 건 함께 ‘꿈’ 꿀 수 있어서입니다. 여러 세대가 어우러져 즐 겁고 행복한 마을살이를 꿈꿉니다. 그 ‘꿈’을 품과 함께 일궈 나갈 수 있어 행복하고 흐뭇합니다.

(사)삼각산재미난마을법인 사무국장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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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20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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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of People 품을 만들어 온 사람들

이준호. 노래품, 품 창단 멤버. 1994년 퇴사 후, 뒤에서만 일함 품의 창단멤버이며, 1991년 노래품 활동부터 1994년 퇴사까지는 프로그램 기획과 전교조 등과의 연대사업을 추진하였고, 내부적인 갈등과 개인적 고민으로 품을 나간 후 고난의 길(고향에서 농사와 토종닭 요리장, 세일즈맨 등)을 걷다가 사업에 성공하 며 품의 든든한 뒷심이 되어주었다. 지금은 사업이 어려워져서 힘들지만 그는 여전 히 품이 흔들릴 때, 어려울 때, 혼자 남았던 심한기가 고민할 때, 품의 식구로서, 품 의 대소사를 함께 하는 종신형을 선고 받은 품의 아버지이다.

신석호. 1991년 노래품~창단준비. 이후는 뒤에서만 일함 믿기지 않지만 수구선수 출신이며, 어쿠스틱 기타연주와 뉴에이지 음악의 꿈을 버리 지 못하고, 품 창단준비만 참여한 후 음악활동에 전념했고 한때는 음반제작도 하였 다. 그 간 몇년간 자동차세일, 기획사 운영, 보험설계 그리고 지금은 중고자동차회사 운영까지 변화무쌍한 삶을 살고 있다. 예전부터 ‘조금만 기다리면...’이란 말을 자주 하며, 품을 긴장시키고 있다.

양금석. 1991년 노래품~1995년 대학시절 과격한 운동가였고 풍물패, 노래패, 학생회장 등 욕심많은 일꾼이었다. 품 창단멤버이며 작곡과 노래실력도 대단하다. 품에서는 프로그램 기획 등의 일을 함께 했으나 행정과 조직운영에 탁월한 감각이 있었고 자유롭고 싶은 이준호와는 싸움도 많았다. 퇴사 후, 국제교류 사업, 캠프장 운영, 서울신대 노조활동 등 그 답게 잠시도 쉬지 않고 일했고 참 어려운 일도 많이 치렀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사무총장을 지내 다 현재는 사단법인 ‘좋은친구들’ 사무국장으로, 경기도 광명지역에서 일하고 있다.

서윤호. 1992년~1993년 영원한 환경운동가이며 청소년환경교육에 뜻을 두어 초창기 품과 함께 활동을 시작 했고, 당시 품이 환경과 자연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하였 다. 품에서는 1년간 활동하다가 현재는 프리랜서 환경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으나 고 질병이 재발했는지 몇 년 전부터 행방불명 상태이다.

정병국. 1993년 품 소장~1994년 서울청소년회관 근무시 심한기, 양금석, 이준호의 슈퍼바이저로 있다가 1992년 품 의 소장으로 활동하였으나 품의 방향성에 대한 이견으로 1994년 퇴사 후, 현재는 벤처사업을 운영하고 있고 긴 시간이지만 품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변하지 않는 스 승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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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수. 1994년 재단창단~2000년 품 독립전까지(사무국장) 일암 청소년육성재단 창단맴버이며, 품이 재단에서 활동했던 5년이 넘는 세월동안 고민과 갈등과 희망을 함께 나누었다. 독립한 품과 새로 시작한 재단과의 인연의 끈 을 이어주게 하는 품 사람들의 선배이기도 하다. 지금은 품을 걱정하고, 후원하고 있 으며 현재는 ‘청소년과 사람사랑’이라는 법인의 이사장으로 장애청소년대안교육의 새로운 대안을 찾아가고 있다.

진종호. 1992년~1997년 품 초장기 개인이 운영하는 사무실이 마땅치 않아 품에 함께 있다가 자연스럽게 품 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늦게 결혼하여 너무도 많은 시련을 겪었고, 품이 재단으로 편입되는 역할을 했고 맏형으로 참으로 든든한 품의 선배이다. 개인적으로 일을 벌 리고 사고를 치는 타입이라 품을 떠난 후 익산 YMCA, 청소년신문 창간, 대안학교 개교 등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펼쳐왔고, 현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 비를 하고 있다.

박판기. 1993년~1997년 심한기와는 동아리 후배라는 악연으로 대학졸업 직후부터 품을 품게 되었고, 가장 힘 든 시기를 함께 보낸 품의 식구이다. 정리정돈과 전래놀이, 종이접기의 대가이며, 품 에서 만난 김령선생과 결혼해 예쁜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다. 품을 떠난 후 유아교 육사업, 제주도 명도암유스호스텔, 서울청소년지도육성회 근무 등 다양한 활동을 하 다가 현재는 직장을 다니며, 그의 꿈인 개인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최윤희. 1993년~2000년 품 최초의 실습생으로 출발하여 고난과 희망의 젊은 청춘을 품에서 보낸 장본인이 다. 느리지만 노력하는 모습으로 선배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기도 했고, 결국에는 청 소년전문가로서 자신의 역할을 당당하게 찾았던 잊지 못 할 품의 기둥이었다. 품 식 구 중 가장 많은 눈물과 가장 많은 웃음을 보이기도 했고, 힘든 시절 이국진선생의 주선으로 품 활동중에 만난 이승민선생과의 결혼을 시작으로 새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은 예쁜 딸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방명진. 1993년~1998년 최윤희 선생과 입사동기이며, 역시 품 실습을 시작으로 청춘을 품에서 보낸 품 사람 이다. 선배들의 총애를 많이 받았던 정확하고, 총명한 일꾼으로 심성활동가 소집단 지도전문가였고, 데코를 잘해서 ‘요술공주’라는 별명도 갖고 있었다. 집안의 반대와 품속에서의 고민으로 퇴사 한 후 지금은 학원에서 강사로 지내고 있으며, 얼마 전 기적 같은 결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김제영. 1995년~1996년. 1998년 ‘삶의 뿌리를 찾아서’ 담당 최윤희, 방명진선생과 동기이며 뒤늦게 품에 뛰어들었다. 단호하고, 대쪽같은 여장부 스타일로 후배들에겐 공포의 선배이기도 했다. 일에 대한 애착과 욕심이 대단하며, 자신에 대한 고민이 많은 잊지 못 할 식구였다. 품 최초의 연구보고서 발간과 청소 년연극제를 기획했고, 퇴사 1년 후, 프로젝트 사업인 ‘삶의 뿌리를 찾아서2’를 담당 하기도 했다. ‘인천 일하는 여성의 집’에서 근무하다가 현재는 남편과 함께 미국에 서 살다가 귀국을 했고 품과의 행복한 조우를 기다리고 있다.


이국진. 1997년~1998년. 2000년 잠시 재입사 후, 퇴사 잘 다니던 보라매청소년회관을 그만두고 큰 뜻으로 품을 두드렸지만 품은 그의 뜻 을 담을 수 있을 만큼의 비전을 가지질 못했다. 리더쉽이 강하며 조직과 운영에 약 한 품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였고, 품에서 영상사업과 미디어를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해준 주인공이다. 쌍둥이 아빠로 삶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고, 몇번의 직장을 경험하다가 한때는 조금 더 넉넉한 미래의 투자를 위해 건축업도 했었고 이 후에도 감마모델연구소, 대학원 진학 등 꿈을 위한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었고 현재 는 ‘키다리 아저씨 화덕 피자’집을 오픈해서 꽤 잘나가고 있다.

이상화. 1997년~1999년 컴퓨터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아리랑 고개에서 살던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활동에 관 심이 많았고, 품이 만들어지기 전 부터 동선2동 공부방과 청소년회관을 기웃거리며 자신이 꿈을 차근차근 준비해온 소리없는 노력파이다. 노래와 시를 좋아하고 남보 다 더 큰 감성을 지니고 있다. 혼자 생각하고, 행동하는 스타일로 가끔은 주변사람 을 힘들게 한 적도 있지만 순수한 심성과 뜨거운 열정들이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집안의 사정과 개인적인 고민으로, 인연이 깊은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에서 활동했 었고, 품에서 만난 씩씩한 사회복지사 송향숙선생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 의 꿈은 아마도 품 같은 삶이 아닐까?라는 쓸데없는 의심을 한 적도 있다. 현재는 광정동청소년문화의집의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품은 그를 퇴사했다고 말하지 않는 다. 이상한... 이상화

진현실. 1998년~1999년

(사진 없음)

품에서 함께 지낸 식구들 중 가장 아쉬움이 남고, 퇴사 후에도 유일하게 서로 연락 이 되지 않는 후배이다. 그가 생각하는 품에 대한 생각과 비전이 서로 맞질 않았고, 전투적인 삶과 생활을 원하는 품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져 퇴사하던 시기에도 웃고 정리할 수 없는 아픈 기억이 있다. 지금 연락은 안되지만, 어느 곳에건 자신의 일을 찾을 수 있는 후배라고 믿고 있다.

여승현. 2000년~2001년 1999년’삶의 뿌리를 찾아서3’을 시작으로 다음 해부터 품 정식직원으로 일하게 된 다. 삶의 뿌리를 찾아서는 욕심이 많았던 사업이라 준비하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일에 대한 집착과 욕심으로 사람을 여유있게 키우지 못한 기획자(심한기) 의 책임이 유난히 컸던 식구였다. 품의 사람들이 거의 그렇듯이 독특한 감성을 지닌 후배였고, 지역사회사업을 담당하였다. 평소에 많은 어려움을 갖고 있다가 지금의 동 반자인 ‘안산 들꽃피는 학교’ 유승권선생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결정하게 된다. 품 독립 후, 첫번째로 품을 떠났던 후배라 더욱 가슴에 남아있다.

박성희. 2000년 품 공채 1기 출신이며, 지금까지의 식구들과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었던 좀 다른 후 배였다. 소프트웨어보다는 하드웨어에 관심이 많았고, 정책방향과 사회운동에도 열 의가 많아 다른 식구들과 작은 이견이 있기도 했다. 가끔 개인적 생활패턴의 차이와 무리하게 진행되는 품의 일상에 몸이 따라 주지 않아 힘들어했고, 연대사업에 대한 물꼬를 트려고 노력하다가 1년간의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퇴사한다. 퇴사 후 인권연 대, 평화포럼, 코이카 네팔단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공생원’에서 국제 사업을 담당하고 있으며 결혼도 성공하여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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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은. 2000년 품 공채 1기 출신이다. 품이 처음으로 공채를 실시했던 시기는 나름대로 품에 비 전과 조직과 운영에 대한 가능성을 믿고 추진했던 일이었으나, 결론으로는 제대 로 준비하지도 못하고 무리하게 벌린 오류이기도 하다. 결국 그 당시 식구들은 생 각과 비전과 일상 등이 서로 맞지 않는 일이 많았던 책임을 느낀다. 그때부터 지금 까지 아직 품은 제대로 된 여건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닌 어렵게 게릴라 전 투를 끌고 가야하는 비정규 부대와도 같다. 정동은선생 또한 전투를 해야하는 품의 일상과는 쉽게 결합할 수 없었고, 품은 그의 스타일과 욕구를 충분히 받아줄 수 있 는 환경이 되질 못했던 것 같다. 역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친구이며 퇴사 후, 연락 은 이어지지 않고 있다.

황선미. 2000년~2002년 전북 진안 출신이며, 입사원서를 거의 200페이지가 넘게 제출한 품의 기록보유자 이다.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에 들어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품을 지켜 온 슈 퍼우먼이다. 품의 운영과 재정까지 책임지며, 항상 자신의 스타일로 품과 심한기에 게 변화를 요구했다. 품 식구들의 정신적인 지지자까지 되어주며 요란하지 않게 자 신의 일을 해왔고, 회원사업과 문화복지아카데미를 담당했다. 현재는 아름다운재단 에서 일하고 있으며 못할 것 같았던 결혼에도 성공했다.

오종환. 2000년~2001년 대학 1학년부터 품에서 자원활동을 하던 후배이며, 스스로 삼의 무게를 늘려가는 독특한 스타일을 갖고 있다. 영화에 관심이 많고, 평소 비디오가게 사장이 꿈이라 며 떠들기도 한다. 대학시절에 풍물패 활동을 경험으로 ‘청소년전통예술한마당’을 진행했으나, 군대에서 다쳐 재발 된 무릎수술과 개인적으로 아픈 상황이 겹쳐 결국 평소에도 힘들어하던 꿈 많은 후배는 품을 떠나게 되었다. “제가 밉지 않으세요?”, “제가 날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하는 전화목소리는 여전하며, 지금은 몸을 추스리 며 안정 된 직장에 나가고 있다.

김형미. 2001년~2003년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어야 할 친구였는데, 어느 날 인터넷에서 인턴교육 프로그램 을 보고 품을 찾아왔다. 풍물패 활동을 했고 그 특이한 외모(?)만큼 생각 또한 정 상이 아닌 후배이다. 지역사회 공동체 운동에 관심이 많으며, 아이같은 케릭터와 성격덕에 아이들과의 관계는 너무도 자연스럽다. 지역사회사업을 담당했으며, 호흡 과 내공이 보이기 시작할 쯤 새로운 충전을 위한 아름다운 방황을 하다가 현재는 지역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최유라. 2002년~2003년 봄까지 품 로 는 록 서

8기 실습생 출신으로 노원나눔의 집에서 자원활동을 하였고, 아주 우연한 기회 품을 찾게 되었다. 지역사회사업을 김형미선생과 함께 담당하였다. 겉으로 보이 연약함과는 다르게 의지가 강하고 많은 고민을 하는 스타일이며, 시간이 지날수 힘과 가능성이 보이는 파워건전지이다. 강북지역 ‘지역전문가’로 번동중학교에 근무하다, 최근에 행복나눔재단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미경. 2004년~2006년 부산출신으로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1기 출신이며, 졸업 후 서울에 있는 쉼터에서 근무하다가 새로운 삶의 도전을 작정하고 품에 안겼다. 처음으로의 회기를 위해 삭발 을 감행하기도 했던 그녀는 진지한 삶을 포기하지 않는 전천 후 전사이다. 박정희의 뒤를 이어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를 담당했으며, 2006년 원인불명의(?) 신경성대장 염으로 인해 퇴사를 결정하였다. 이후, 사회복지사이버대학에서 조교로 근무하다, 자 신의 길을 찾기 위해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따박따박 주는 월급 대신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다. 현재 그녀는 ‘트레블러스 맵’이라는 사회적 기업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

김혜진. 2004년~2006년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1기 출신이다. 대학 1학년 때 학교에서 들은 심한기의 특강 이 그를 흔들어 놓았고, 그 계기로 2002년 품 실습을 거쳐, 2004년부터 품에서 일 했다. 막 졸업한 초짜 실무자가 그 어렵다는 지역사업을 맡아 3년간 처절하게 고민 하고, 몸부림했다. 특유의 유쾌함 때문에 아직도 지역에 나가면 그녀의 안부를 묻는 이들이 많지만, 품과의 마지막은 아쉽게도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 언젠가 그녀와 허 심탄회하게 지난 시간을 나눌 날이 있기를...

나하나. 2005년~2007년 중 3때 품을 알았고, 고등학교 때는 집보다 품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심한기 의 책상을 땅땅치며, ‘이 담에 크면 이거 내 거예요!’ 했던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 고 결국 품에 안겨, 그 책상을 3년간 차지하였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김미경 과 함께 교육사업을 담당하였고, 2007년에는 골때리는 인턴 둘과 함께 지역문화운 동팀에서 파란만장한 한해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 하나가 대표되는 날이 오면 품 은 성공한거다’ 했던 기대와 달리 그녀는 품을 떠났지만, 행복한 이별이 가능하다 는 사실을 확인케 해주었다. 그녀는 현재 품의 지지자 임재춘이 일하고 있는 경기문 화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이보라. 2006~2007년 2005년 청소년연극축제를 통해 안면을 텄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참으로 신기하게 품이 네팔과 만난시기에 그녀 역시 네팔에 갔다. 활동하던 단체의 실천방향으로 고 민하다 과감히 나왔던 때, 품이 네팔에서 문을 열었다. 절묘한 만남이다. 네팔 품의 초창기를 함께 하며, 터를 닦는데 큰 역할을 했다. 지금 그녀는 한국에서 자신이 품 에서 배운 것, 네팔에서 얻은 것과 연결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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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of People 품의 인턴 김대심. 2000년 체격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모습 또한 단단하다. 뻘쭘한 모습에서 이젠 당당한 일꾼 으로 바뀐 그를 볼때마다 사는 맛이 나기도 한다. 가끔 고민이 너무 많아 스스로 힘 겨운 무덤을 파기도 한다. 시나브로처럼 길게 만들어 가는 스타일이며, 청소년연극제 는 일에 대한 경험말고도 삶에 대한 경험으로 남아있다고 스스로 말하기도 한다. 지 금은 틈틈이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두레품 편집을 맡았던 변 명의 여지가 없는 품 사람이다. 아이 엄마가 되어 얼굴 본지가 꽤 오래이지만 절대 로 잊혀지지 않을 사람이다.

김민정. 2000년 웃을 땐 눈동자가 전혀 보이질 않으며, 평소에 행동에서도 고민을 볼 수 없다. 하지 만 그도 역시 쉽고 편안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호시탐탐 다른 세상으로 빠져 나 가려 한다. 인도, 네팔, 아프리카..국제교류활동에 관심이 많다. 편안하고, 산만하며, 조직적인 것에는 머리 아파하기도 한다. 연극제를 진행하던 1년 동안 자신과 일과 사 람들과의 싸움을 많이 했다. 웃을 때 감춰둔 눈동자처럼 보석 같은 삶의 철학을 가 지고 있는 아주 아름다운 사람이며, 김대심과 같이 변명의 여지가 없는 품 사람이다.

강동호. 2000년 강동호 덕택에 품에서도 남도 사투리를 듣게 되었다. 한때는 택견 고수의 꿈도 갖고 있었던 건강한 청년이었지만, 갑상선을 앓고부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의 계획 이 바뀌기도 했다. 아이들이 풍장 소리에 혼을 불러올 만큼 감춰둔 신명을 갖고 있 으며, 옆 사람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가슴이 넓은 사람이다. 청소년전통예술한마당은 물로 갖은 일들을 함께 나누었으며, 결혼 후에는 고향 광주에 살고 있다. 늦은 밤, 얼큰히 술이 취한 날이면 품에 전화하는 몇 안되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지금은 뒤 늦게 공부한 ‘연극치료’와 관련한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김선희. 2001년 인턴사원 신청 면접을 보고 겁 없이 품을 찾아 온 막내소녀이다. 앳띤 선희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잘 할 수 있을까?란 의문을 갖기도 했으나, 품 막내소녀 선희는 일 을 하는 것에 있어서는 막내가 아니었다. 초등 회원사업, 심지어는 행정과 예산관리 까지 능숙하게 일을 처리했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이며, 졸업 후에도 역시 사회복지 의 길을 버리지 않고 있다.


강경미. 2001년 그의 관심사는 평범하지 않다. 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관심과 활동분야 또한 평범 하지 않다. 청소년과 장애우에 대한 애정이 많으며, 그를 풀어가기 위해 소시오드 라마, 연극, 라틴댄스, 재즈댄스, 영상, 사진과 같은 문화적 소통으로 삶을 풀어가 길 원한다. 지독히 고독한 만큼 지독한 일상의 고민을 끌어안고 산다. 품에 대한 사랑과 미움은 더욱 간절하다. 2001년 장애청소년연극축제에 묻혀 그 많은 에너지 를 모두 다 쏟아내고 지금은 자신의 영혼에서 쏟아져 나오는 춤에 대한 미련을 버 리지 않고 춤과 함께 살아갔지만 몇 년전부터 소식이 없어 품의 식구들을 애태우 고 있다.

이미선. 2001년~2002년 신문방송학과 재학 시 사회복지를 복수전공으로 선택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방송반 활동을 했으며 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꾸준하다. 품에서 연극제와 기타 활동 을 하며, 청소년문화복지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고,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스타 일과 매력을 갖고 있다. 잠시 가정과 개인적 상황에 대한 갈등으로 고민하다가 용 기를 내어 자신의 길을 선택하여 신월청소년문화센터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그렇게 오랫동안 만났던 그놈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고 지금은 참맑은 물살 캠프에 아이를 보내기 위해 엄마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황지희. 2001년 장애우와 자신의 삶에 대한 처절한 전투를 가끔 구별하지 못한 정도로 인권과 교육 에 대한 애정은 너무 각별하다. 사는 모양새는 마치 정신나간 타조와도 같다. 가상 공간에서 마련된 자신만의 세계에서 가끔은 허우적대기도 하지만 철저한 프로정신 을 갖고 있는 전사이기도 하다. 삶에 전사인 만큼 그가 쓰는 글 또한 전사의 글이 다. 잠시나마 품과 함께 했지만, 그 삶 또한 세상과 싸우는 품의 모습과 다를것이 없는 품의 동지이다.

홍경숙. 2001년~2002년 사회복지정보원에서 진행하는 정예화캠프와 사회복지순례를 계기로 품과 인연을 맺 게 되었다. 충청도 여인이 갖고 있는 특유의 ‘숨겨진 여유’를 갖고 있다. 1년 담당 으로 정리되는 인턴교육을 스스로 1년을 연장할 만큼 청소년연극제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 많다. 두 번째 진행하는 2002년 연극제에서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며, 매우 즐겁게 일하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한 때 품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기 도 했지만 스스로 나름대로의 상황들을 극복해가며 자신의 미래에 대한 대답을 찾 아가고 있으며 현재는 대전에서 상담가로 일하고 있다.

김지연. 2002년 엄청난 식성만큼 일에 대한 욕심도 많은 친구이다. 장애청소년사업과 문화기획에 관심이 많아 서울시 장애청소년연극축제를 담당하게 되었다. 푸근하고, 편안한 심 성도 그만이지만 좋은 일꾼으로서의 가능성도 갖고 있다. 평소에 웃는 모습은 그 자체가 ‘자연’이다. 품하고 닮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군포 당동에 있는 청소년문화 의집에서 일하다, 품 선배 송향숙 선생님의 소개로 타지총각을 만나 저 멀리 부여 로 시집을 갔고 지금은 호주에서 산다. 몸은 멀리 있지만, 그곳에서도 역시 아이들 만나는 일을 하며, 품과의 끝을 놓치 않는 그녀는 전천후 품 식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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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2002년 아주 오래 전부터 품 자원활동가였고, 마음은 늘 품에 두고 있는 후배이다. 4학년 때는 틈틈이 전통예술한마당과 캠프를 진행했었다. 졸업 후, 청소년수련원에 취직 을 했으나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한 결정을 하게 된다. 품에서 서울시청소년전통예 술한마당을 담당했었다. 이리저리 직장을 옮기기는 했지만 늘 청소년을 만나는 일 을 하고 있다. 언제가 품을 문을 열며 ‘술 사줘요!’ 라고 말하는 김영호를 기다리 고 있다.

홍정모. 2003년 정모는 고민한다. 고로 존재한다. 대학 3학년이 되기까지 자신이 너무 잘났다는 나 르시즘...의 늪에 빠져 있다가 결국 품 실습을 하면서 그 늪에서의 탈출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한여름 무조건 걸어 보기에도 역시 해답은 없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고민 을 시작한다. 난 무엇을 하려하는가? 결국 품에서 다시 죽어보기로 한다. 1년간 품 에서 지역사회네트워크에 꿈을 담으려 했다. 신입시절부터 팀장같은 풍모가 풍기던 그는, 현재일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하고 있다.

김미현. 2003년 잘 다니던 자활후견기관을 그만둔다. 왜! ‘이 길이 아닌게벼...’방황한다. 고민한다. 역사의 땅 광주에서 복지 부랑아로 전전하다 품으로 안겼다. 역시 가볍지 않은 용 기였다. 하고싶은 일을 해야 하기에 버리는 것이 아깝지 않다. 회원사업과 청소년 동아리 지도를 담당하였다. 영국으로 공부하고 와서 곧바로 결혼을 했고 현재는 청 소년수련관에서 일하고 있다.

박정희. 2003년 엄마는 광주의 민주 싸움꾼이셨다. 그 덕에 온갖 자유를 누리고 살고 있다. 5.18 관련사업, 청소년동아리 박람회, 평화축제, 촛불시위.. 도대체 기웃거리지 않은 동 네가 없다. 그런데 처음과 끝을 제대로 경험한 적이 없는 아직은 허접한 싸움꾼이 다. 결국 죽음의 품인턴을 선택했다. 이제 그의 자유는 일 속으로 승화된다. 제2기 문화복지아카데미를 담당하였다. 전라도 광주를 사랑하는 여자이기에 잠시 재즈아 카데미에서 하고 싶은 노래를 하다가, 결혼을 했고 당진에서 살다가 현재는 다시 광주로 돌아와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장효진. 2004년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1기 출신으로 춘천에 있는 청소년문화의집에서 1년간 근무 하다 역시 새로운 도전을 위해 품 교육인턴으로 1년간 일했다. 품에서 추진했던 전 국청소년문화의집 교육지원사업을 담당했고, 1년의 진통 끝에 멋진 보고서를 만들 어 냈다. 품 인턴 활동 이후, 당동청소년문화의집에서 일하다 결혼을 했고 상담학 석사과정 이후 엄마로서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전혀 아줌마 같지 않은 싱그러운 웃음은 여전하다.

이정주. 2004년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를 휴학하고 품 교육인턴으로 일했다. 에너자이져 유현희와 청소년연극축제를 함께 함은 물론 다른 세상을 꿈꾸기 위한 비판과 고민을 서슴치 않는 당찬 배짱을 지녔다. 인턴 이후에도 품과 함께 고민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다른 세상을 위한 꿈 찾기 역시 ‘Never Stop’이다. 캐나다에서 어학공부를 마치 고 엠네스티 한국지부에서 5년 째 일하고 있는 국제 활동가이다.


고윤희. 2005년 27살이라는 나이에 졸업을 한 일이나 27살이란 나이에 차비도 안주는 품 교육인턴 으로 몸을 던진 일 모두 그의 인생관처럼 단순하지 않다. 북한산에서 떨어져 헬기 로 구조된 직후 절뚝거리는 다리로 품에서 청소년연극축제를 함께 하였다. 그 나이 에 비보이 스타를 꿈꾸고, 죽을뻔 했던 산을 그리워하는... 아무리 생각해도 단순하 지 않는 사람이다. 아니, 너무 단순한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선과 악이 교차하는 Inter Face를 당당하게 내밀 수 있는 진정한 전사이다.

이애란. 2005년 대한민국 바다의 역사를 안고 있는 굴비의 나라 영광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핵 폐기장 반대 운동을 하던 동네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지역운동을 어렴풋이 꿈꿔 왔다 고 한다. 그래서 품에서의 지역문화운동팀 실습을 아쉬워하며 아예 교육인턴으로 자 리를 차고 앉았다. 보이기는 눈만 멀뚱한 바보천사 같지만 실은 매서운 고민과 욕심 을 지키고 있다. 배가 고프면 코피를 흘리는 도저히 밥을 굶겨서는 안 될 주요인물 이며, 청소년축제기획단 ‘노올자’를 담당하였다. 현재는 괴산에 있는 신기학교에 터 를 잡고 안주인으로 살고 있다

유영은. 2006년~2007년 고교시절 청소년연극축제에 참여했다, 2005년 10회 연극축제 추진위원단으로 합류 하며 다시 품과 인연이 되었다. 대학 삼수끝에 품 대학에 입학하였지어는 인턴 재수 도 마다하지 않은 그녀는, 품에서 더 큰 세상을 배웠노라고 고백한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지역문화운동팀에서 학교문화예술교육을 담당했다. 이후 문화예술교육 연구소 ‘에이스벤추라’를 거쳐 옥천에서 마을 사랑방을 운영하다가 지금은 중국 연 변에서 청년 흔들기를 하고 있다.

이정연. 2006년 품 5분 거리에 있는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2005년에 품에서 열두번째 실습 을 했으며, 2006년에 품에서 교육인턴으로 활동하였다. 덕성여대 노래패에서 베이 스를 연주했던 이력으로, 지역문화운동팀에서, 특히 밴드 아이들과 신나게 놀며 1년 을 보냈고, 이후 이곳저곳 도전정신을 발휘하면서도 축제 시즌이면 어김없이 품에 돌아오곤 했다. 끈기없음의 대명사를 자처하지만, 자발적인 의지로 오래도록 열중 한 것 두 가지는 음악과 품 생활이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품녀이다. 지금은 삼 각산재미난마을에서 마을 일을 하며 퇴근 시에 품에서 저녁을 먹는 동네 친구이다.

지현영. 2006년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2기 출신으로, 오랫동안 품을 염탐해오다 장문의 이력서를 써들고 2006년 품을 찾았다. 1년이 좀 못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특유의 뚝심과 우 직함으로 깊은 정을 나누었다. 이후, 이천의 청소년문화의집에서 근무하다 오랫동 안 만나던 그 분과 결혼하여 살고 있다. 그녀가 불리고 싶어했던 이름, 제인. 제인 의 정겨운 사투리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까..

안하나. (2010년 품인턴 / 2011년 / 네팔 품 인턴) 성공회대 현도대 사회복지학과 출신으로 겸손하고 우직하고 순수하고 힘이쎄다. 심 한기 강의를 들으며 인연이 되어 졸업 후 오 희말라야 까지 함께 했다가 2010년 품 인턴으로 강제 징용을 당했다. 그 후 다시 네팔 품으로 2차 강제징용을 스스로 선택했고 6개월만 있겠다고 했던 안하나는 1년 반이 지나서야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또 다른 시작을 꿈꾸고 있으며 3차 강제징용도 고려하고 있다.


408

품 20

History of People 품의 일꾼들

1992년 6월 22일 품이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20대와 30대와 40대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10대 시절 잘 나가 던 Rock Band 멤버였고, 공부 안하는 ‘날라리&딴따라’ 라는 사회적 지탄과 멸시의 아픔들이 지금의 품을 만드는 에너지가 되었다. 한 때 꿈이었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에 너지는 아직도 남아있고 가끔은 10대들과 무대에 서기도 한다. 태생적이고 본능적인 오감 덕에 대학에서 사회복지

심한기 Ang Chhewang Sherpa

를 전공했으나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며 진행되고 있는 ‘

심한~개

문제의 유지와 보완’이라는 제한적 사회복지를 거부하며

무당

품 안에서 대안적 청년문화복지를 위한 혁명(?)을 포기하

1992년 ~ 현재

지 않고 있다. 40살이 넘은 지금도 또래의 어른들을 만나 는 일보다 10대, 20대의 청년들과의 소통이 더 편안한 것 을 보면 아직도 철없는 인간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다. 전 혀 차분하지 않은 성질로 많은 이를 괴롭혔지만 히말라야 를 만난 이후에 본질적인 삶의 원형(Archetype)에 대한 고민과 실천들을 시도하며 차츰 차분해지고 있다. 이 시 대의 ‘청년과 지역사회’가 빼앗겨버린 봄꽃을 피울 수 있 다는 확신으로 한국과 네팔을 넘나들며 ‘청년흔들기, 청년 인문학교, 청년 커뮤니티 만들기’에 힘을 쏟고 있다. 70 살이 넘는 시간까지 살 수 있다면 히말라야 언덕에 소박 한 ‘품속학교’ 를 짓고 웃기는 ‘교장 질’ 하는 게 꿈이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품과 의 만남을 ‘필연’이라 말하고 싶다. 학교를 통 해서만 세상을 만나던 것이 전 부였던 그 당시, 1992년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품은 말 그대로 쇼킹한 <다른> 세상이었다. 그 어린 마음에도 에 너지 넘치고 웃긴 선생님들이 좋아 줄기차게 품 을 오가며 자연스레 품에서의 ‘나’를 상상했다. 2002년 소원성취!! 품의 역사가 만든 순환적 구 조의 산 증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멋모른 막내에 서 팀장이라는 역할을 맡고 있는 시간을 통해... 2006년부터 현재까지 담당하고 있는 네팔사업

강명숙

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재발견하며 품에서 삶

2002년 ~ 현재

의 진화를 경험하고 있다. 어쩌면 이 시대의 죽 은 청년으로 살았을지 모를 내가 품에서의 삶이 행복한 이유다.

대학교 4학년때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를 통해 품을 만났다. 그 때 그녀는 강력한 삶의 진동을 느 꼈다고 한다. 세상모르고 지 잘난 맛에 살아오던 청년 하나가 구제된 순간이었다. 결국.... 춘천에 있는 복지관에 근무하다가 운명처럼 품과 재회하 게 되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연극에 미쳐 살았던 그녀는 운 좋게도 품에서 청소년연극축제를 맡아 3년간 행복하게 일했으며, 2006년부터 2009년까 지 주주운동과 교육사업을 담당하며 멀티로 활약 (?) 하였다. ^^;; 백미터 달리기는 몰라도 장애물 달리기만큼은 1등을 놓친 적 없다며 문제의 사진

유현희 2003년 ~ 현재

을 들이밀던 그녀가 벌써 품에서 아홉번째 여름 을 맞이하고 있다. 나이 서른이 무색하게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았기에, 일에서도 삶에서도 그녀의 장애물 달리기는 앞으로도 계속 될 듯하다. 2010 년부터 마을을 만나며 대안교육 길 찾기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410

품 20

품은 어지간해서 공채를 하지 않는다. 자존심이라 기보단, 직업으로 일을 대하지 않는 태도와 살아갈 사람들간의 교감이 가능한 사람인지를 한장의 서류 와 면접을 통해 판단하기에는 오류가 너무 많기 때 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 오류를 가볍게 넘어섰다. 품에서 겨우 3개월간의 교육과정을 거쳐 네팔행 비 행기에 올라선 그녀.. 그 누구보다 품을 오롯이 품

이하니

으며 당당한 청년으로 네팔에서 삶의 원형을 찾아

2007년 ~ 현재

가고 있다. 그녀는... 품이다.

1993년 아직 콧물 흘리고 있던 어린 시절... 학교 와 집 외에는 몰랐던 섭에게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해주었던 품!! 동아리, 기획단, 캠프등 수많은 품의 활동으로 십대시절을 보낸 섭은 자신이 품에게 받 았던 에너지를 함께 살아가는 동생들과 아이들에게

이상섭 2008년 ~ 현재

전하고 싶어, 2007년 인턴을 시작으로 품에서 살아 가고 있다. 섭은 동네 십대들과 일상의 문화활동을 만들어가고, 십대와 동네사람들의 행복한 소통을 만 들어가는 지역문화운동팀에서 육중한 몸을 움직이 며 일하고 있다.


이지성이라는 바구니가 있다. 이 바구니가 품을 만난 건 대학교 2학년 때. ‘무엇을 위해 나의 바구니를 채울 것인가,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라는 물음도 의심도 없었다. 그러다 대학교 선배를 통해 품을 알게 되었고 문득 이렇게 보내는 대 학생활이 아쉽게 느껴져 당시 품에서 진행했던 청년문화실천아 카데미라는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스스로의 바구니 를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었으며 찰나의 ‘의미’를 붙드는 첫 만 남이라 평가한다. 2008~2009년 품의 인턴으로 동내에서 아이 들을 만나는 일을 하였고, 2010년 마을의 작은도서관 “생글”에 서 도서관지기로 살았다. 2011년 품으로 다시 돌아와 십대와 마

이지성

을만들기(당시 지역문화운동팀)팀으로 문화로 행복한 일상을 꿈

2008년 ~ 현재

꾸며, 십대가 행복한 마을을 꿈꾸며 아이들과 마을을 만나는 일 을 하고 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그러나 꽤 괜찮은 바구 니로.. 세상에 놓이는 것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고 싶기에... 오늘 도 품에서 살아간다.

머리가 커지기 시작한 중학교 시절부터, 남다른 ‘싸가지’의 소유 자였다. ‘학생답게’ 머리를 똑같이 자르라는 선생님들이 이해되지 않았고, 내가 하기 싫은 것은 죽어라 안했으면서도.. 하고 싶은 것 은 또 언제나 넘쳐났다. 그러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대안학교, 산 청간디학교를 만났고, 총천연색으로 가득한 삶의 이야기들을 선 물받았다. 웃고,울고,싸우고,놀면서 멋모르고 날뛰다 정신차려보니 사람,삶,세상과 만나려 말을 걸고 마주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사 람과 세상에 대한 공부를 하고 졸업 후에는 지역에서 아이들을 놀 며 만나는 멘토링 활동을 했다. 한창 아이들을 만나며 사람과 일

정이가령 2011년 ~ 현재

상과 관계의 힘에 놀라워하고 있던 스물 셋, 심샘을 만나 품을 만 났다. 이후 몇 번 품을 들락거리며, 잘 보이려 치장하지 않고, 진 심으로 사람을 만나는 품이 참 반갑다, 생각했다. 아픈 가랭이를 부여잡고 여섯번째 오 히말라야에 참가해 네팔도 만나며 2011년 3월부터 지금 품에서 살고 있다. 먼가 불만있어보이는 표정과 싸 가지는 여전하지만, 함께 사는 삶을 조금씩 배워가며, 더 나은 세 상을 함께 꿈꿀 수 있는 것에 감사해하며, 사람과 세상이 빚어내 는 ‘삶’의 소중함을 하나씩 만나고 찾아가고 있다. 손으로 벌레를 잡아챌 땐 ‘가랭이용사’라 불리며!


412

품 20

열여섯. 친구의 소개로 품을 처음 만나 ‘강북청소년문화축 제 추락’ 기획단에 잠시 잠깐 참여. 열일곱. 제대로 축제를 만들어 보겠다며 <청소년축제기획단 ‘세 개’>로 품에서 활 발히 활동. 열아홉. 고 3이 아닌 열아홉이라 외치며 심한기 선생님과 함께 한 <세 개와 심한개의 인문학교>에서 세상 을 똑바로 바라 볼 수 있는 인문학적 시각과 공부를 어떻 게 해야 하는지를 배움. 스물 하나. <문화기획 교육집단 ‘ 세 개’>라는 이름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지금껏 배

김준혁

운 것, 깨달은 것으로 교육과 강의활동하며 동네 후배들의

2012 청년인턴

멘토로 활동 스물 둘. 올해로 품을 만난지 7년째지만 남 들과 다른 삶의 속도를 선택. 군대를 가기 전 지난 활동을 정리하고, 나의 일상생활에서 지키지 못했던 약속들, 다짐 을 제대로 채우기 위해 품에서 살아가고 있다. 카르페디엠!

심쌤의 강연을 통해 만난 단어 Self So! 밤늦게 까지 스 스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다가 운이 좋게 품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품에 와서 헤매고 방황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사 유하고 상상하며 일상의 에너지를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한 품의 매력에 퐁당 빠졌다. 품에서 실습을 하고 인턴을 하 고 청년학교를 하고, 잠시 다른 단체에 몸을 담갔다가 나 는 다시 삶에 대해 고민했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 인가?’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네팔’이라는 땅에서 네팔

이명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재미있는 일상을 만들어 가는 꿈

2012 청년인턴

을 꾸고 있다. 2011년 겨울 단 2주지만 베시마을 그곳의 여운이 쉽사리 떠나지 않는다. 적다고 생각하지만 적다고 도 할 수 없는 나이 25! ‘직업’이나 ‘경력’으로서가 아닌 삶을 잘 나눌 수 있는 길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행복한 길 을 잘 걸어보고 싶다. 그곳이 베시 마을 이어서 그리고 그 곳이 품이어서 그 여정으로 떠날 수 있게 되어서 지금 나 는 참 행복하다.


품을 지켜가는 사람들

주주 ■ 후원중 358 ■ 해지 81 ㅣ 총 439

ㄱ

권혁기 프리랜서 연극연출가

강경미 2001 품 인턴

권현숙 고양시청소년지원센터

강대근 (전)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장

권희정 1997 5기 실습 / 삼각산재미난마을

강동호 2000 품인턴/연극치료사

김경린 한국국제협력단 연수사업팀

강명숙 품 직원(2003~현재)

김경진 서울특별시 꿈나무마을

강명희 강명숙 동생 / 일본 유학 중

김광수 학부모(무늬만학교)

강미선 2007 아카데미

김귀련 2003 실무자아카데미 / 프리랜서 강사

강성철 2005 아카데미 / 군인

김남정 2003 실무자아카데미 /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강원재 OO은대학연구소

김남희 창동청소년문화의집

강이샘 중앙위기청소년교육센터

김대근 도봉 마을예술창작소 준비위원회

강종안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브릿지사업팀장

김대유

강지영 2002 실무자아카데미 / 해바라기쉼자리

김동찬 2002 대학생아카데미 / 광산지역사회연구소

강하자 서귀포청소년문화의집 관장

김동혁 노올자, 레드피 / 아동화쇼핑몰

강현옥 2002 실무자아카데미 /

김명호 CJ Hello Vision

권혁철 이벤트회사

서울시교육청 교육복지담당관

김명희 주부

강혜진 2006 아카데미 / 문화행동#

김미경 드림구미시민네트워크

고미경 파리크라상 교육팀

김미경 2004~6 품 직원 / 트래블러스맵

고민정 양산도립병원

김미순 2004 실무자아카데미 / 평화의샘

고성애 2002 대학생아카데미 / 문경청소년문화의집

김미정 1996 4기 실습

고영한 강남구노인복지관

김미정 2002 대학생아카데미 /

고윤희 2005 품 인턴

원주청소년수련관 방과후아카데미

고인석 성신여중 교사

김미정 법률사무소

고정애 2007 아카데미 / 한국메세나협의회

김미현 2003 품 인턴

고춘식 교육운동가, 시조시인

김 민 순천향대 청소년문화학과 교수

고현주 인천시 연수구청

김민경 품동이 / 유치원교사

고희종 HJ ENT / 공익근무요원

김민정 2000 품 인턴

공영배 고리울청소년문화의집

김벽규 강남대 사회복지학부 / (주)정염토탈클리닉

곽춘란 품 청국장

김보영 교사

곽혜림 품동이 / 주부

김선규 서대문장애인종합복지관

권도라 도봉구청 부동산관리과

김선희 2001 품 인턴 / 꽃동네 희망의 집

권순석 문화컬설팅 바라 대표

김성미 방화6종합사회복지관

권순임 2002 대학생아카데미

김성숙 학부모 / 옹달샘 방과후교실

권오현 나눔연극작업소 소풍

김성아 문화기획자(봉다리낙타)


414

품 20

김성욱

김태성 품 청년자원활동가 / 컴퓨터업

김세리 사단법인 행복공장

김태영

김세진 사회사업가 / (전)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김판중 노올자, 레드피 / 프랑스 유학 중

김수근 김동환 부모님

김한섭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

김승희 Hyatt Regency Incheon

김허중 서울시교육청

김양희 2002 실무자아카데미

김현민 2005 품실습 / 일반직

김연아 강남대 사회복지학부(야)

김현중 노올자, FEFE / 군복무 중

김영구 한올기획이벤트

김현진 2005 아카데미

김영미 (전)당동청소년문화의집

김현철 2004 실무자아카데미

김영삼 서울시교육청 장학사

김현희 (전)창동청소년수련관

김영습 2002 실무자아카데미 / 밀양종합사회복지관

김혜진 2004~6 품 직원

김영철 2008 놀이터/제빵

김호진 2008 청년학교 / 드림구미시민네트워크

김영호 2002 품인턴

김효숙 재미난카페 운영위원 / 동네극단 우이동

김영희 커뮤니케이션북스(주) 학이시습

김효정 2007 아카데미 / 법환청소년문화의집

김용성

김희성 디자인

김월식 예술가

김희정 (전)이천청소년문화의집

김유신 품 청년자원활동가 / 현대카드 김유정 2004 실무자아카데미 / 청주YWCA 김은애 보은노인복지센터

ㄴㄷㄹㅁ

김은옥 (전)축제극장 몸짓

나은수 학부모(무늬만학교)

김은재 강남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나하나 2005~7 품 직원 / 경기문화재단

김은정 동원종합사회복지관

남소연 여성가족부

김은하 2003 실무자아카데미 /

남충진 생글도서관 운영위원

광주광역시 청소년자원봉사센터

노서영 노올자

김정대 (전)명지대학교 교수

노재정 문화예술교육연구소 에이스벤추라

김정진 컴퓨터 관련

두영미 1996 4기 실습 / 주안4동 동사무소

김정현 카톨릭대 사회복지대학원 박사과정 중

라영준 서울특별시남부교육청

김정화 거창군청소년문화의집

문상훈

김종국 송파청소년수련관장

류경미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김종윤 노올자 / 편의점

류현진 송곡중학교 교사

김종주 한국갤럽조사연구소

목윤지영 어린이문화 사과, 신기학교

김준혁 청년문화기획집단 세개 / 2012품인턴

목혜균 일반직

김지나 촉각예술센터

문숙영 학부모(무늬만학교)

김지선 노원나눔의집

문재형 품동이 / 한살림

김지연 2002 품 인턴 / 호주유학중

민영진 편집디자이너 / 학부모(무늬만학교)

김지영 2004 대학생아카데미 / 밀양시청

민현성 사이버라인 개발팀

김지원 김대유님 딸 김진형 품동이 / 관동대학교 김진회 에너자이저 코리아

ㅂ

김창영 2002 대학생아카데미 / 한국예술종합학교

박경수 뮤직시트


박경호 CJ 나눔재단

변효정 안양시청소년수련관

박경호 1994 2기 실습 / 동안복지재단

부은희 북부교육청 지역교육전문가

박금임 학부모 / 자영업 박기범 백양고 국어교사 박남숙 구미강동병원 사회복지사

ㅅ

박모아 2010 경기문화복지아카데미 / 에이스벤추라

서동미 학교사회사업가

박미희 (전)고리울청소년문화의집

서원영 학부모 / 매디팜미소약국

박선우 학부모(삼각산재미난학교) / 학원

서인석 청년문화기획교육집단 세 개

박선정 놀터지기 / 한신대학원

서정애 한국성문화연구소

박성민 경상남도 청소년활동진흥센터

손옥경 노원아동청소년네트워크

박성희 부천여성청소년센터

손의숙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인증정보부

박수현

송건도 봉지역자활센터장

박아람 천안시사회복지협의회

송성숙 한국방송대학교

박양미 성동청소년수련관

송성호 청년문화기획교육집단 세개

박영심

송종열 봉원중학교 교육복지실

박용석 강북구청 교통행정과

송주아 주부

박인규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재가노인복지센터

송진숙 2002 청소년연극축제

박일규 경기도사회복지협의회

송향숙 2002 실무자아카데미 / 정릉종합사회복지관

박정미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부

송혜민 2003 대학생아카데미 / 강서구종합사회복지관

박정화 안산 YWCA 여성과 상담소

송혜진 2004 대학생아카데미 / 중구청소년수련관

박정희 2003 품 인턴 / 광주광역시교육청 상담사

신경애 창동청소년수련관장

박종서 1998 삶의 뿌리를 찾아서 / 산사나이

신남정 동국대 국제학과

박종우 청소년전문극단 진동

신미경 2002 실무자아카데미 / 인천 북부교육청

박진희 한스카운셀링센터

신미연 주부

박찬국 예술가

신석호 품 창단멤버

박판기 1993~97 품 직원 / (주)보성트렌피아

신순갑 스스로넷

박현기 당진군청소년문화의집

신용식 2002 실무자아카데미 / 고리울청소년문화의집

박현주 주부

신익현 교육과학기술부

박혜경

신재성 (전)교육공동체 나다

박효선 2007 아카데미 / 정신보건

신지은 별과 민들레

박희정 (전)강북구청 기획예산과 / 스페인 유학 중

심경화 원불교 인권위원회

반병두 참한마을

심은선 2008 실무자워크숍 / 교육연극활동가

방형심 살레시오여자수도회

심희영 2002 대학생아카데미 / 울산중구청소년문화의집

배경옥 품 초기 자원지도자 / 안산화정초등학교 교사 배선미 두비학원 배재석 (전)창동청소년수련관

o

백진아 2002 대학생아카데미 / 트래블러스맵

안미선 사단법인 좋은친구들

변신우 웅지세무대학교

안상희 광명시청소년종합지원실

변영정 품동이 / 물류회사

안이영노 기분좋은 QX 대표

변유선 인천 청소년 일시쉼터

안정호


416

품 20

안준원 인천연수구청소년수련관

이교영 강남성모병원

안하나 2010 품 인턴, 2011 네팔품 인턴 / 길 찾기 중

이교헌 이국진키다리아저씨화덕피자

양승부 2002 실무자아카데미 / 부천시청소년수련관

이기남 교남소망의집

양은일 산울림청소년수련관

이동규 열린사회북부시민회 사무국장

양종남 경기문화재단

이명화 2012 품 인턴

양종수 청소년사람사랑 이사장

이문학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

양지수 2003 대학생아카데미

이미선 2001~2 품 인턴 / 주부

양지희 설치예술가, EEL

이민정 학부모 / 도봉구청

오명진 송산노인복지회관

이벽주 작은도서관 생글 대표

오승은 미경친구

이보라 2006-7 네팔 품 직원

오연주 연극놀이터 해마루

이보미 2004 대학생아카데미 /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오종승 노올자 / 요식업

이상섭 품 직원(2008~현재)

오종환 2000~1 품 직원

이상훈 (사)삼각산재미난마을 사무국장

오주영 2002 대학생아카데미 / 한몸그룹홈

강북마을모임 집행위원장

오지선 2002 실무자아카데미 / 서귀포시 교육청 교육과

이석원 제일화재

온혜림 당곡고등학교

이 설 노올자, 레드피, 놀터지기 / 한양대 물리학과

우상미 2002 대학생아카데미

이성종 1994 2기 실습 / 복지영상

우수명 대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성태 스카이사운드

원덕길 강남대 사회복지학부

이수나 2003 대학생아카데미 / 삼전종합사회복지관

원무랑 광혁건설(주)

이순일 회사원

원정분 1999 7기 실습 / 밀알복지재단

이순임 도봉어린이정보문화센터 관장

유경희 강원대학교 병원

이승직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부

유기철 장위종합사회복지관 관장

이안나 가톨릭대 교직원

유미옥 도봉여성의집

이연수 카톨릭교리신학원

유병서 서울미술고

이연종 (전)노아의집

유병훈 2002 실무자아카데미 / 익산시 YMCA

이영애 (전)진미감자탕

유연진 광주 원불교 중흥교당

이원경 농부

유영아 애슐리 방학홈플러스점장

이원범 1998 6기 실습 / 경기도청 사회복지담당관실

유영은 2006-7 품 인턴 / 꿈희망미래재단 연변사무소

이유신 1996 4기 실습 / 도봉구청

유영주 경기도 어린이박물관 학예지원팀

이윤엽 학부모(무늬만학교)

유정화 도봉구 방학1동사무소

이윤정 주부

유제흥 귀농

이은경 도봉노인복지관

유창식 동양화가

이은경 광명시립오름청소년문화의집 관장

유현희 품 직원(2004~현재)

이은정 2002 대학생아카데미

유희경 중구종합사회복지관

이은주 2004 실무자아카데미 / 대구북구지역자활센터

윤은주 노원골사람들

이은주 은평종합사회복지관

윤진호 로레알코리아

이장형 2004 대학생아카데미 / 지구촌사랑나눔(몽골 파견)

윤 철 광명시 인권위원회 위원장

이정미 파워마인드 컨설팅

윤회영 2002 실무자아카데미 / 자연사랑 어린이집

이정연 2006 품 인턴 / 삼각산재미난마을

이갑식 산격종합사회복지관

이정은 초록마을어린이집


이정현 학부모(무늬만학교) / 한국약국

ㅈ

이정호 서울 YWCA 녹번종합사회복지관

장성문 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

이주빈 오마이뉴스 기자

장성희 (전)여성복지관

이준규 놀터지기

장윤미 2002 대학생아카데미 / 영국 이민

이준호 품 창단 멤버 / 남향명차

장은석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이지성 품 직원(2008~현재)

장은주 동방사회복지회 국내입양부

이지은 인투뮤지엄

장정숙 (주)그린화재 영등포점

이진선 2003 대학생아카데미

장효진 2004 품인턴 / 주부

이진원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활동지원부

전경선 노인전문요양시설 공덕의 집

이진주 KT&G 북부지원센터

전봉재 동북케어

이창신 홀트아동복지회

전수완 1999 7기 실습 / 강남구정신보건센터

이철훈 학부모

전재환 학부모(무늬만학교) / 노원중 교사

이치형 대신고 교사

전혁희 (전)청소년보호위원회

이하니 네팔 품 직원(2007~현재)

전현경 아름다운재단 사무국장

이한결 대학생

정건희 청소년자치사무소 소장

이한나 (전)꿈희망미래재단

정미라 북부교육희망네트워크

이한나 청주 YWCA

정민기 문화행동샾

이현숙 청소년시설환경학회

정선영 자유인

이현제 2004 대학생아카데미 / 가브리엘작업활동시설

정선희 작은도서관 생글 운영위원

이혜진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박사과정

정수연 해남 농어촌 청소년문화환경센터

이혜진 고리울청소년문화의집 꾸마

정수현 한남직업전문학교

이화선 1999 7기 실습 /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정안철 국립고흥청소년우주체험센터

이희영 학부모

정연정 (전)강서교육청 교육복지지원센터

인성희 힘찬빌사회적응훈련센터

정연주 천안국민연금공단 천안사무소

임경화 2009 네팔 품 인턴 / 길찾기 중

정영수 양평중학교 교사

임금순 학부모(삼각산재미난학교)

정영훈 (전)광명시립오름청소년문화의집

임병수 광명시립오름청소년문화의집

정예서 김대심(2000 품 인턴) 딸

임선우 품동이

정우진 상계직업전문학교

임성규 서울복지시민연대

정운호 세 개와 개밥그릇 / 군복무 중

임용순 염리청소년독서실

정유섭 청련암

임유정 2001 9기 실습 / 서울시립북부장애인종합복지관

정윤미 서울여대 교육심리학과 / 수유+너머

임은옥 경기문화재단 문예지원팀

정이가령 품 직원(2011~현재)

임세훈 강서교육청 초등교육과

정지원 품동이 / AIG 보험

임재춘 경기문화재단

정찬희 서울청소년수련관 관장

임정아 2008 실무자워크숍 / 고리울청소년문화의집

정필숙 망원청소년독서실

임지은 사진작가

정혜영 놀터지기

임진원 2004 대학생아카데미

정 훈 앨리스키친

임현승 강남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제윤경 학부모(무늬만학교) / (주)에듀머니 대표

이정주 2004 품 인턴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조남억 광운대학교


418

품 20

조계형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 관장

최해경 품 초기 자원활동가 / 주부

조기량 홀트일산요양원 생활지도원

최현실 2003 대학생아카데미 / 홈에버문화센터

조기순 카이스트 교육공학과 책임교수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조기찬 2003 대학생아카데미 / 한국청소년지원협의회

최화성 명랑행성 509

조성대 경북 영양군 일월면사무소

최효경 일반직

조성주 4기 아카데미 / 창전청소년문화의집

최희훈 천지음

조영미 대한 YWCA 연합회

표경흠 사회사업가 표경흠사무소

조원석 어린이문화사과, 신기학교 조용균 학부모 조재경 고무신학교 조정은 CJ 나눔재단

ㅎ

조혜영 여성신문

하경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주정아 서천군자원봉사센터

하대근 완주군청소년문화의집

지유진 학부모(삼각산재미난학교)

하여주 인터넷쇼핑몰

지은진 2007 아카데미

한가흔 한도희,박경애님 딸

지현영 2006 품 인턴

한경임 화북청소년문화의집 한덕연 사회복지정보원

ㅊㅋㅌ

한상진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장

채성용 서울시립아동상담치료센터

한성숙 금산군청 금산다락원

천봉환 품동이

한수영 학부모

천수경 신도봉중 국어교사

한여주 원불교 광주교구

천은영 품동이 / 홍은종합사회복지관

한완민 학부모 / 고양시청소년지원센터

최두환 2005 12기 실습 / 청원군청소년지원센터 팀장

한유흔 한도희,박경애님 딸

최명옥 KT&G 복지재단 인천복지센터

한 진 오이도복합문화샌터

최보경

한철희

최선경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허상문 이렌컴

최성임 2002 대학생아카데미 / 김해청소년문화의집

허윤성 2003 대학생아카데미 / 양산시청소년문화의집

최숙영 학부모(무늬만학교) / 도봉시민회

허종룡 화계중학교 교사

최영민 (주)우리물류

허중혁 중앙대 건설환경공학과(졸업)

최유라 2002 품 직원 / 성북교육청 교육복지 PC

홍경숙 2001~2 품 인턴 /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최유진 고양청소년문화의집 높빛마술

홍미영

최윤성 안양시만안청소년문화의집

홍미용

최윤정 (전)녹색마을사람들

홍민경

최은영 품동이 / (사)평화를만드는여성회

홍상미 2002 대학생아카데미

최정훈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홍성희 춘천별빛산골유학센터 농가와 깍두기

최주희 노올자

홍정모 2003 품 인턴 / 일산종합사회복지관

최준근 (전)아이들과 미래

홍해린 2002 대학생아카데미 / 마리아영아원사무실

최진희

황선미 2000~2 품 직원 / 아름다운재단

최찬욱 WC 스튜디오

황지희 2001 품 인턴 / 기자

한석구 마포구 염리동사무소


축하의 글

스무 살 ‘품’, 희망의 아지트! ‘품’이 방년(芳年)20세, 약관(弱冠)20세가 되었군요. 꽃다운 나이이고, 갓을 쓰는 나이 이지요. ‘품’의 20주년을 축하하는 글을 부탁받으면서, 스무 살의 의미를 먼저 떠올렸던 것은 아마도 성년이 된 이 시 대 청년들의 현재가 자꾸 겹쳐지기 때문일 겁니다. 자신이 처한 삶을 ‘남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문 제’로 받아들이고, 온전한 자기주장을 펼치는 청년들을 보기도 했고, ‘88만원 세대’, ‘실업’, ‘비정규 직’이라는 단어가 연상되는 현재적 삶이 주는 무게감에 짓눌려 행복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하는 희망 을 꿈꾸기보다는 시민으로서의 권리조차 자포자기하는 청년들도 보았습니다. 20대들의 투표율이 이슈 가 되는 시대는 역설적으로 그 만큼 20대가 절망하고 있다는 것일 테지요.

휴~ 축하를 드린다고 해 놓고, 많이 돌아왔네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위와 같은 현실 때문에 오히 려 ‘품’이 가지고 있는 존재감이 굉장히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품’이 없었다면 마을에 있는 청소년들 이 그저 막연한 객체로 다가왔을 겁니다. ‘품’을 알고 나서부터, 청소년들이 다르게 보이더군요. 그리고 청년들의 현재 모습은 저와 같은 486세대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는 사실 역시 깨달았습니다. ‘요새 아 이들 왜 저래?’ 라고 투덜대면서도 일상생활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았지요. 저에 게는 쉬운 일인데, 모르는 친구들에게는 어렵게만 다가설 수 있는 일들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직 업이 영화제작을 하는 사람인지라, 몇 차례 간담회도 하고, 상영회도, 여러 번 행사에 참여했었는데, 고 마움을 표시해주시고, 진지하게 질문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참 실하게 크고 있구나!’라고 혼잣말을 하 곤 했습니다. 저에게 ‘품’은 마을의 좋은 친구이고, 벗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살찌울 수 있는 관계이지 요. 마을 속에 ‘품’이 있다는 이야기는 나의 일상적 삶속에서 교류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입니 다. ‘마을장터’, ‘무늬만 학교’ 등에서 만난 ‘품’을 보면 자연스레 미소가 떠올려지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자본의 논리가 아닌,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진중하게 고민해 볼 수 있고, 서 로의 능력으로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그리고 마을 속에서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품’이라는 존재로 인해, 서두에 언급한 ‘청년의 절망’의 극복할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고 있다 는 저의 소감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겠지요! 축하드려요! 꽃다운 스무 살, 듬직한 스무 살이어서 축하 드려요. 감사드려요! 저도 청년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격려합니다! 절망보다는 희망을 꿈꾸는 스무 살 청년이 되신 것을 격려합니다.함께 할께요! 이후로도 쭈우욱.

(사)삼각산재미난마을법인 이사장 고영재


품 20

품

20년의

“흐름

“

420


한 눈에 보는 역사

1992

ㆍ품 놀이문화연구소 개소

93

ㆍ청소년 어울마당, 캠프를 중심으로 우리 놀이 연구와 활동 ㆍ사회복지 전공 대학생 실습, 청소년 지도사 연수, 청소년 회원 활동 시작

94

ㆍ재단법인 ‘일암청소년육성재단/품 청소년놀이문화연구소’ 설립.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의 시작

95

ㆍ품 최초의 보고서 ‘청소년 어울마당에 대한 연구 보고서’ 발간

96

ㆍ우리 뿌리 찾기 프로젝트 ‘삶의 뿌리를 찾아서(1995~1997)’ 태동 ㆍ품 최초의 연속 사업 ‘서울시청소년연극축제(1996~2005)’ 시작 ㆍ서울시특별시 청소년 단체상 수상

97

ㆍ청소년 교육, 청년 교육, 자원지도자 교육 활동 시작(교육사업의 모태가 됨).

98

ㆍ‘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秋樂(1998~현재)’ 시작 ㆍ자원활동가가 중심이 된 자발적 후원 조직 ‘두레품’ 발족

99

ㆍ삶의 뿌리를 찾아서 사례집 발간 ㆍ‘청소년전통예술한마당(1999~2002)’ 시작

2000

ㆍ재단으로부터 독립. 주주운동으로 전세금 1천만원 모금(현 후원사업의 모태). 강북구로 이전 ㆍ대한민국 최초의 청소년기획단 ‘노올자’ 탄생

01

ㆍ비영리민간단체 등록(서울시 제 252호) ㆍ‘장애청소년연극축제(2001~2003)’ 시작

02

ㆍ품 10주년. 품 10주년 사 편찬. 주주총회 시작. 청소년연극축제 매뉴얼북 발간 ㆍ사회복지ㆍ청소년 현장 실무자 및 대학생을 위한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2002~2007)’ 탄생 ㆍ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회 교육사업 시작. 안티수능 페스티벌 참가

03

ㆍ첫번째 후원의 밤과 송년의 밤 ㆍ청소년기획단 교육과 교류를 위한 ‘청소년문화기획아카데미’


422

품 20

04

ㆍTurning Point. 사업에서 운동으로.. ㆍ문화예술을 통한 세상에 말 걸기. 연극반 아이들의 문화권리 찾기 ‘대학로 상륙작전’ ㆍ주주 자녀들을 위한 초등여름캠프 ‘참 맑은 물살(2004~현재)’ 시작

05

ㆍ서울시청소년연극축제 10주년. 연극반 살리기를 위한 청소년 기자회견 ㆍ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의 과정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청소년 동아리 워크숍’ 탄생 ㆍ학교문화예술교육사업(2005~2007),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사업 연구 및 참여

06

ㆍ네팔 여행 프로젝트 ‘오~히말라야(2006~현재) 시작. 첫번째 한국-네팔 문화예술교육워크숍 ㆍNGO PUM NEPAL 설립. 네팔 사무실 마련과 상주 활동가 파견 ㆍ도봉 어린이날 행사, 강북 매니페스토 활동 등 지역네트워크 활동 시작

07

ㆍ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10주년. 일상의 축제에 대한 고민 ㆍ6기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를 끝으로 전국 대학생, 실무자 집중연수과정 종결 ㆍ한국과 네팔의 이음을 위한 문화교류 프로젝트 시작

08

ㆍ강북청소년문화존 위탁, ‘강북청소년문화놀이터(2008~현재)’ 탄생 ㆍ유쾌한 십대들의 동네 말 걸기 프로젝트 시작. 십대와 동네의 소통 가능성 발견 ㆍ청소년동아리워크숍은 청소년문화기획아카데미로, 축제기획단은 문화기획단으로 전환. ㆍ추락의 변신! 청소년축제에서 동네 축제로... ㆍ품 지하탈출 및 교육 공간 마련을 위한 모금 운동 시작

09

ㆍ마을 중심의 문화공동체 만들기 운동으로 한국과 네팔의 지역 활동 정체성 정리 ㆍ인문학에 대한 고민과 시도 ‘세 개와 심한개의 인문학교’

2010

11

2012

ㆍ십대와 동네를 위한 대안문화공간 마련 프로젝트 ‘모금콘서트 이천’(1천만원 모금) ㆍ‘청소년문화,공간’ 탄생과 품 사무실 지상 진출! ㆍ놀이터 십대들의 도움과 나눔 ‘동반성장 프로젝트’(어린이 기획단, 밴드, 댄스팀) ㆍ놀이터기획단의 동네문화프로젝트로 동네극단 우이동, 백세밴드 등 동네문화모임 탄생 ㆍ네팔 품 사무실 정리와 함께 파견 활동가 마을에서 살기 시작

ㆍ삶의 교육을 위한 주말대안학교 ‘무늬만학교’ 탄생 ㆍ학습다큐멘터리 ‘우리는 인문학교다’ 출간. 문체부 청소년 권장도서 선정 ㆍ14회 추락 ‘탈탈탈 동네난장’, 지역과 세대, 문화를 넘은 난장 가능성 확인 ㆍ동네문화모임들이 함께 하는 ‘제 1회 동네문화콘서트’ ㆍYTN 권장사이트 선정. 방송통신위원회 권장사이트 우수상 수상

ㆍ품 20주년. 20년사 집필. 20년 나눔을 위한 영역별 보고서 발간과 릴레이워크숍 ㆍ‘십대와 함께 마을 만들기’로 지역 활동 방향 정리. 마을 만들기를 위한 지역연대모임 시작 ㆍ행정안전부 청소년단체상 국무총리 표창장 수상


연도별로 보는 역사

1991 노래품 결성

심한기,양금석,이준호

노래품 첫 공연

10.5~6

대학로 충돌 2

일반 840명

노래품 공연활동 4회

11.6

이천 유네스코 청년원 외

한국해외봉사단, 논산 대건고 축제, 이천 양정 여중고 어울마당, 장호원어울마당

1992 청소년어울마당 및 문화행사 16회

4~12

전국 방방곡곡

온양 88올림픽기념 어울마당, 오뚜기 축제, 근로자 교양대학 졸업축제, 모범청소년 해보 내기 축제 등

품 청소년놀이문화연구소 개소식

6.22

청량리 청소년회관 분관

심한기,양금석,이준호

청소년 캠프, 여행 12회

7~10

전국 방방곡곡

유적지 답사, 남한강 순례, 민속캠프, 문예캠 프, 뽀빠이 여름캠프 등

청소년캠프 지도자 강습회

7.10~18

청량리 청소년회관 분관

일반 74명

청소년어울마당 및 문화행사 45회

1~12

전국 방방곡곡

졸업생을 위한 콘서트, 청소년 기차여행, 우 리놀이마당, 청소년퀴즈대회, 등

노래품 정기공연

3.18~21

신나라 라이브홀

청소년, 일반 800명

청소년 캠프 14회

7~12

전국 방방곡곡

유청소년 유적지 순례, 민속캠프, 오뚜기 캠 프, 향토문화학교 등

1기 실습

7.15~8.15 품 사무실

방명진,김제영

1차 자원지도자 문화기행

8

한기,판기,의근,사라,민정,윤정,범찬,운하,민경, 지현,종호,지선,영옥,명진,경호

1993

강진, 해남


424

품 20

품 창립 1주년 기념식

10.22

품사무실

청소년 회원, 자원지도자, 관련 단체 100여명

전국 방방곡곡

옛터기행, 전래놀이마당, 공연, 자연체험활 동, 축제, 기차여행, 풍물교실 등

1994 청소년어울마당 및 문화행사 64회 1~12

자원지도자 연수

2.22~23 도봉산청소년마을

청소년지도자 40명

자원지도자 교육

7.5~8.1

품 사무실

최윤희,이성종,박경호,이영혜

2기 실습

7.10~18

청량리청소년회관 분관

일반 74명

청소년 캠프 13회

7~8

동해번쩍 서해번쩍

유적지 순례, 민속캠프, 엄마와 아이가 함 께 하는 모자캠프, 신나는 어린이캠프, 문 화캠프 등

인천 청소년지도자연수

8.11~13

인천지방공무원연수원

교사 90명

청소년어울마당 및 문화행사 46회 1~12

전국 방방곡곡

눈썰매교실, 도예교실, 퀴즈대회, 노래이야 기, 자연체험, 도시OL, 밤따기 교실, 농구대 회, 철새탐사 등

청소년회원의 날

1.22

금성스케이트장

김성희,조미애,황원구,유은정,노소라,배진아, 이상섭,변영정,김성주,김태현,박판기,최윤희, 김민영

3기 실습

7.4~8.3

품 사무실

손영주,홍순표,김미란

청소년 캠프 6회

7~8

전국 방방곡곡

유적지 순례, 서울시 청소년 가치관 정립 캠 프, 부여 심성계발 캠프 등

자원지도자 문화기행 - 2차

8.21~25 강원도-부석사, 정암사,용화

1995

심한기,박판기,김보경,심재왕,손영주,전정민, 방명진,최윤희,한경란,김수연,김제영,오종환, 홍미영,홍순표,최사라,남재용,김준성,이유미, 이영주,배경옥,


1996 청소년 어울마당 및 문화행사 13회

1~10

도봉구 외

갯벌탐사, 철새탐사, 들꽃탐사 등

청소년캠프 6회

1~8

도봉구 외

송파스키캠프, 도봉 청소년 문화캠프, 부여 심성계발 캠프 등

회원활동 - 품 속 아이들 길 떠나기

2.10

강원 속초

초등~고등 31명 / 심재왕,배경옥,이지현,이 상화,한경란,이유미,홍미영,방명진

회원활동 - 회원캠프

2.24~26 강원 속초, 설악 일대

품 청소년 회원 45명 / 심한기,최윤희,심 재왕,배경옥,이지현,이상화,한경란,이유미,홍 미영,방명진

문화충격(3회) - 영화, 음악

3~5

품 사무실

청소년 30명 / 서재식,양미란,이지현,곽영 희,김영호,전태훈

청소년문화워크샵 - 청소년과 연극 3.23

품 사무실

전정민,김수연,홍미영,배영미,배경옥,임지영, 이상화 / 권혁기

청소년 자원봉사단

4

품 사무실

청소년 20명

자원지도자 교육 - 자기표현의 원리와 적용

4.5~6

품 사무실

품 자원지도자 30명

동아리 연합행사

4.11

도봉산청소년마을

소리(토론), 크레파스(토론), 녹색혁명(토론) 40명

회원활동 - 갯벌탐사

5.19

강화 동막 갯벌

청소년 회원 30명 / 심한기,최윤희,방명진, 이상화,심재왕,배경옥,홍미영,전정민,박나리, 송은경

4기 실습

7.3~7.30 품 사무실

임지영,김미정,조숙경,김경애,이유신,성은희, 오은경,두영미

삶의 뿌리를 찾아서 1 - 강을 따라서

7.22~27

안동,단양,태백 일대

전국 중고등학생 70명 / 심한기,이준호,유 병서,유창식,신석호,김영아,양지희,고일영,심 재왕,이상화,김수연,전정민,김보경,김준성,김 영호,이유미,배경옥,김민영,임재혁,남재영,김 진희,방명진,김제영,조기훈

자원지도자 문화기행 - 3차

8.19~24

지리산, 비진도 일대

김준성,김제영,심한기,방명진,박판기.김민영, 이경옥,김영호,심재왕,이하림,오은경,배경옥, 홍미영,임지영,김인식,송윤경,최해경,이유신, 성은희,정호선


426

품 20

1회 서울시청소년연극제

9.14~15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청소년연극반 3팀 / 청소년 및 일반 1,300 여명 / 김제영 / 권혁기,유홍영 / 김현화,이 영미.김성순,손윤기,김찬중,김다연,이보은,김 한별,강길우,전민호,유춘화,유영주,나하나,김 민경,신희영,박수현,홍남기,박무성,김준성,양 지희,양미경,이유미,홍미영,배경옥,심재왕,성 은희,이상화,임지영

서울시가족가요제

9.22

세종문화회관 소강당

14개 가족팀 / 심한기,최윤희,방명진,유영 주,김준성,이국진,조현주,원미경,김준성,심재 왕,이하림,양지희,김영원,이은수,현천홍,조현 주,강명숙,홍선영,송윤영,성은희 / 박균호,김 민지,나하나,김민경

동아리 창립 1주년 기념식

11.12

품 사무실

품 청소년 동아리 20명

회원활동 - 품 속 아이들의 기차여행

12.26

강원 춘천시 남산면 강촌

이상화,최윤희,김준성,심재왕,김제영,방명진, 심한기,이국진

자원지도자 송년의 밤

12.29

뇌성마비복지회관

품 자원지도자 80명

청소년 캠프 및 하루 여행 7회

1~8

충북 단양 외

과거로 가는 캠프, 철새탐사, 갯벌탐사, 탐 라문화기행, 남도 가족여행 등

회원활동 - 우리 것 찾기 여행

2.24~26 충남 일대

청소년 회원 30명 / 심한기,박판기,최윤희, 이상황,방명진,김준성,심재왕,안윤정,홍미영, 현천홍,배경옥,이동훈,황선경,김경애,한경란

도봉구 우리 문화유산 바로 알기

3.23

도봉구 일대

도봉구 청소년 60명 / 양종수,심한기,최윤 희,진종호,홍미영,조현주,이국진,류정진,박 판기,김령

어린이날 기념 청소년가족가요제

5.5

한강 고수부지 야외무대

12개 가족팀 / 2,000명

2회 서울시청소년연극제

6.13~15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청소년연극반 5팀 / 청소년 및 일반 1,500 명 / 장남윤,김희영,김지선,나하나,김민경,박 수현,신승연,조원화,뱍양미,박판기,장남윤,방 명진,최윤희,김지선 / 권혁기

5기 실습

7.4~8.19 품 사무실

1997

복지혜,김영철,강미정,권희정,임은정


자원지도자 문화기행- 4차

8.20~23

경주 일대

진종호,심한기,박판기,최윤희,방명진,최해경, 이유미,배경옥,복지혜,권희정,홍미영,김령,송 향숙,김정현,김미정,이상화,이성종,조의근,김 정국,김준성

회원활동 - 청소년 연합캠프

8.30~31

경기도 이천 덕평수련원

청소년 회원 40명 / 진종호,심한기,최윤희,방 명진,이상화,임은정,이동훈,박기범,홍미영,김 준성,최사라,남재영,이은수,조현주,권희정

회원활동 - 산행

10.26

도봉산 일대

품 자원지도자 21명

청소년자원활동 지도자 연수

12.14~17

경주 산내유스호스텔

대학생 자원지도자 50명 / 심한기,유창식,신 석호,방명진,이상화,최윤희,김미정,김태황,송 윤영,박경호,조의근

회원활동 - 송년의밤

12.27

품 사무실

품 주주 및 자원지도자 60명

1998 회원활동 - 꿈따라 길따라 여행

12.23~25

강원도 정선 품속학교

청소년 회원 24명 / 김영주,박선영,오필 오,유창식,권혁기,조정은,조의근,권희정, 이상화,박기범,서동미,최윤희,심한기,김 보경,방명진,박판기,양종수

번동중 CA지원

3.18~11.13

번동중

번동중 27명 / 조진희,이상화,최윤희,권 희정,김영주

세미나 - 그룹 사례분석, 영상

4~11

품 사무실

자원지도자 30여명

회원활동 - 운동회

4.19

우이동 솔밭

품 활동가 및 자원지도자 27명

송파산대놀이교실(4회)

5.9~31

전통민속예술원 한무리 외

청소년 400여명 / 이상화,방명진,최윤 희,김한별,이정아,곽혜림,곽민경,현천홍, 최지민,장성희,김용기

회원활동 - 갯벌나들이

6.14

강화도 동막리

청소년 회원 30명 / 조정은,박기범,심재 왕,배경옥,박판기,김정현,곽혜림,진현실, 유병서,서동미,심한기,이상화,최윤희,조 의근,권희정,오종환,두영미


428

품 20

강북구 갯벌탐사

7.20

강화도 동막리

강북구 청소년 100명 / 이상화,방명진,최 윤희,장성희,곽혜림,성은미,김도희,강선화, 서광효

삶의 뿌리를 찾아서 2 - 나! 백두대간 간다.

8.2~8

강원도 점봉산에서 지리산까지 대간여행

전국 중고등학생 72명 / 심한기,이준호,심 재왕,유병서,김제영,권희정,유창식,신석호,조 의근,김보경,류정진,곽혜림,최윤희,박지운,강 명숙,양지희,오종환,김영주,박기범,서동미,이 정민,송향숙,이성종,조정은,박경호,박선영,백 미정,복지혜,권혁기,한대수,강승의,심상옥,황 영하,박종서

자원지도자 문화기행 - 5차

8.19~23

경주, 동해(용화)

자원지도자 20명

6기 실습

9.8~12.1

품 사무실

육성희,박은주,유지연,성은미,서정은,심은 진,이원범

지역사회를 위한 사람들의 모임

9.19

강북구청

강북구 지역 활동가 16명

회청소년문화워크숍 - 영상

10.3~11.1

보라매청소년회관

청소년지도자 37명 / 심한기,이상화,최윤 희,박명진,백미정

1회 강북구거리축제

10.31

강북구청 앞

지역 청소년동아리 18팀 / 청소년 및 지 역주민 500여명 / 최윤희 / 청소년거리축 제추진위원회(열린사회북부시민회, 햇살청 소년회)

청소년문화워크숍 - 청소년과 대중음악

11.10~14

보라매청소년회관

청소년 자원지도자 42명 / 심한기,이상화, 최윤희,방명진,백미정

회원활동 - 철새를 찾아서

11.22

충남 천수만 일대

이상화,최윤희,방명진,심은진,육성희,박은 주,서정은,유지연,박성민,이원범 그리고 청 소년 36명

청소년자원지도자 연수

12.14~17

유네스코 청년원

심한기,박판기,조의근,김영주,이성종,최윤희, 김정현,방명진,이상화,이승민,박상연,서윤호, 유창식,권혁기,이선재,김민 그리고 자원지 도자 59명

자원지도자 송년의밤

12.26

미아 2동 복지관

품 활동가 및 자원지도자 100명

강북구 철새탐사

12.29

충남 천수만 일대

강북구 청소년 100명


1999 1.18~21

강원도 정선 품속학교

청소년 회원 40명 / 이원범,전옥희,신미경, 이동훈,오종환,강명숙,김보경,김은초,김소연, 안경호,강경미,박기범,유창식,조의근,권혁기, 심한기,이상화,최윤희,박판기,두영미,조정은, 권희정,김정미

학교 CA 지원사업

3~12

지역 6개 학교

번동중 놀이연구반, 도봉중 지역탐사반, 창 일중 전통예술연구반, 도봉정산고 정보문화 연구반, 신경여실 영상제작반, 선덕고 문학 반 / 유지연,곽혜림,이원범,정영수,김대심,이 상황,박기범,김미선,박선영,이광섭,정혜숙

회원활동 - 봄 산행

4.4

도봉산 일대

품 식구 20명

세미나 - 그룹 , 사례분석

4~12

품 사무실

품 활동가 및 자원지도자 32명

회원활동 - 물고기 탐사

6.20

가평군 명지산 계곡

품 식구 50명

7기 실습

7.1~8.23 품 사무실

원정분,전옥희,정의정,이화선,유지희,김광훈, 김영훈,서동미,채성용

삶의 뿌리를 찾아서 3 생명의 바다, 삶의 바다, 희망의 바다

7.31~8.6 강화도에서 제주도까지 서해안을 따라

전국 중고등학생 84명 / 심한기,이준호,유 창식,김보경,신석호,이대용,김용기,김영호,이 교영,유병서,서동미,여승현,강경미,권혁기,박 종서,허상무,김연아,전옥희,원정분,정의정,이 화선,유지희,김영훈,정영수,이원범,양지희,권 희정,채성용,이상화,신미경,현천홍,권혁철,박 기범,오종환,곽혜림,강명숙

회원활동 - 추석맞이 산행

9.26

도봉산

품 식구 18명

1회 서울시청소년전통예술한마당

10.17

남산골한옥마을

서울 전통예술 동아리 295명 / 청소년 및 일반 1,000여명 / 최윤희 / 여승현,강경미, 유지연,박기섭,나하나,박기범,김영호,김민경, 이원범,김선희,강명숙,김용석,공세영,정혜진, 문세영,유숙원,이민희,최문진,최재형,이수현, 정영수,이상섭,문재형,문재형

2회 강북구청소년거리축제

10.31

강북구청 앞

지역 청소년동아리 13팀 / 청소년 및 지역 주민 5,00여명 / 최윤희 / 강북구청소년거 리축제추진위원회(열린사회북부시민회, 햇 살청소년회, 전교조)

웤

회원활동 - 몸튼튼, 맘튼튼 여행


430

품 20

학교 CA 축제

11.7

덕성여대 강당

지역 청소년 800명 / 오필오,박선영,이상 화,정영수,서동미,이정화,여승현,곽혜림,이광 섭,정혜숙,유지연,송승욱,홍진,김지현,그리고 청소년 800여명

청소년문화워크숍 대중음악과 청소년 영상문화

11.8~21

돈보스꼬 청소년센타

청소년 자원지도자 50명 / 심한기,최윤희, 홍현웅,김태황,이승민,김예선,권희정,권순봉, 조윤주,조의근,파스타,이영미,민성기,김종휘

강북구 재미있는 박물관 기행

11.22

국립중앙박물관 외

강북구 청소년 50명 / 최윤희,여승현,김대 심,조윤주,오종환,김광훈

회원활동 - 철새를 찾아서

11.28

충남 천수만 일대

청소년 회원 20명 / 강명숙,나하나,이혜정, 신윤희,이서웅,권혁철,정숙경,김민경,김민희, 최해경,오종환,권희정,김광훈,최문진,유숙원, 장혜지,권기욱,신승연,이대용,심한기,이상화, 강경미,여승현,최윤희

자원지도자 송년의밤

12.18

미아2동 복지관

품 식구 100명

2000 학교 CA 지원사업

1~11

지역 4개 학교

신경여실고 대중음악반, 번동중 놀이연구반, 창일중 연극놀이반, 신방학중 스타연구반 / 여승현 / 최윤희,강민선,나하나이유미,강명 숙,정동은,김민희,추연주,권혁기,강경미,윤영 미,김태성,박혜연,여승현,박성희,박정현,강영 원,권성남

회원활동 - 정선캠프

1.17~20

강원도 정선

청소년회원 50명 / 최윤희,김보경,강명숙,권 혁기,강경미,박정현,심한기,김영호,정영수,김광 훈,여승현,유창식,정동은,김민경,오종환,주금 옥,이준오,신미연,황선미,신미경,김민희,박성희

품의 정체성 확립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세미나

2.26

뇌성마비복지관

품 식구 200여명

품 홈페이지 개설

5.20

인터넷 세상으로

회원활동 - 포토밭 농활

6.17~18

충북 추풍령

청소년 회원 40명 / 김보경

8기 실습

7.1~8.19

품 사무실

최유라,이유미,김은주,강선아,박정현,김기자,하 경환,김미현,김은진,김지선


사회복지정보화캠프

1.18~21

호서대

회원활동(초등) - 서울을 찾아 떠나는 여행

7.24~8.4 서울 지역

초등회원 13명 / 황선미,신미연,정혜진,임 경민

도전! 탐험캠프

8.1~5

경남 함양

청소년 80명 / 심한기,최윤희,여승현,김지 선,신석호,박종서,김민정,민창해,김영호,유병 훈,김민경,변영정,유민호,윤진영,이교영,이국 진,이유미,하경환,최유라,강선아,박정현,김기 자,김미현,김은진

8.15 광복절 기념 청소년 락 페스티벌

8.15

강북구청 앞

청소년밴드 5팀, 성인인디밴드 6팀 / 심한 기,이국진,최윤희,여승현,황선미 / 자원봉 사자 50명

2회 서울시 청소년전통예술한마당

9.24

남산한옥마을

전통예술 동아리 19개팀 300여명 / 청소년 및 일반 1,000여명 / 정동은 / 김영호,정혜 진,강선아,김기자,김미현,김은진,김지선,박정 현,이유미,최유라,하경환,이지현,감한승,강영 원,이은주,유혜원,김혜미,남종수,한세나,권혁 기,오종환,김광훈,신미연,이은선,장효안,오신 정,이소연,이은남,이은정,김민경,권현미,변 영정,김선일,정율,김우중,강명숙,서동미,이수 영,김민정,이재홍,권영선,천은영,김대심,유창 식,류정진,조정은,박기범,이원범,정영수,이상 화,주금옥,김정미,성정옥,이은형,이열인,한선 영,안신영,서지연,김상희,장연주,나은성,류정 선,하현정,유수정,민창해,심재왕,안세진

3회 강북청소년거리축제

10.14

강북구청 앞

청소년 동아리 20팀 / 지역 청소년,일반 1,000여명 / 황선미 / 청소년기획단 노올자 / 강북청소년거리축제추진위원회(구세군종 합사회복지관,열린사회북부시민회,전교조북 부지회,번동2종합사회복지관,도봉시민회)

회원활동 - 가족산행

10.22

도봉산

품 식구 42명

회원활동 - 철새를 찾아서

12.3

강화도 초지진

청소년 회원 31명 / 박기범,정혜진,김기자, 김대심,조윤경,김민정,송향숙,심한기,여승현, 황선미,오종환,정율

5회 서울시청소년연극제

12.16~23 세종문화회관

청소년연극반 12팀 / 청소년,일반 4,000여 명 / 김대심,김민정 / 김광훈,신영범,변영 정,유승권,강경미,박정현,김영아,신미연,강선 아,최은영,이은정,조미지,신승연,문정현,원윤 지,박민경,김기자,정혜진

품 송년의 밤

12.30

품 식구 100명

미아2동복지관

대학생 600여명


432

품 20

2001 회원활동 - 회원캠프

1.15~18

강원도 정선 품속학교

청소년 회원 50명 / 강동호,김정진,정율,공 세영,김안희,우승희,정혜진,김기자,강선아,원 정분,전옥희,이상섭,변영정,김대심,김민정,김 민경,김형미

재미있는 박물관 기행

1.31

강화 초지진, 김재 교육박물관

청소년 40명 / 김정진,김민정,정혜진,공세 영,김형미, 정율,변영정,이은정

사회복지정보원 합숙생교육

2.1~3

품 사무실

사회복지정보원 합숙생 20명

품 비영리민간단체 등록

2.21

서울시

소년소녀 가장 똘똘이캠프

2.22~23

학교 CA 지원사업

3~11

지역 3개 학교

영훈고(영화만들기), 창문여중(지역탐사), 수 유중(자원봉사) / 오종환,정율,김민정,김선 희,김성실,김형미,김대심,임유정

품 회원활동 - 초등 박물관 기행

4.21/22/ 28/29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김선희,김정진,황선미

교육 희망 찾기 - 시민대회

5.13

남산백범광장

황선미,김정진,김선희,강명숙

교사풍물패 흥시렁 공연

5.20

남산한옥마을

정미영,김민경,정율,장보경,이은정,김우중,강 동호,변영정,홍은량,정은실,강명숙,나하나,김 형미,김선희,오종환

서울 여행

5.19~20

여의도, 광화문

초등 60명 / 정혜진, 공세영, 조윤미, 최유 경, 김정진

회원활동 - 포도밭 농할

6.2~3

추풍령

청소년 회원 20명 / 오종환,신진이,홍경숙, 김정진,강명숙,공세영,최경화,김영호,김민경, 정율,김대심,이미선,변영정,심한기,황선미,김 형미,김선희

회원활동(초등) - 나비캠프

6.23~24

나비나라(고양) 외

청소년 회원 18명 / 김선희,김정진,황선미

품 9주년 생일잔치

6.23

품 사무실, 진미감자탕

품직원 및 인턴 10여명, 초등회원 15명, 중 등회원 5명, 주주 및 자원지도자 40여명

김정진,김형미,김선희,이은정,공세영,정율, 변영정


9기 실습

7

북한산 생태모니터링을 통한 청소년 환경 프로그램 모델개발 활동

7.21~8.16 북한산 국립공원

중등 20명 / 황선미,최경화,홍정모,배은정 / 눈박이생태기획대표심상옥

강화로 떠나는 우리들만의 여행

7.25~28 강화도 일대

전국 초,중,고 70여명, 학부모 14명 / 심한 기,유창식,심재왕,유병서,강명숙,김기자,김영 호,강동호,변영정,김우중,김광훈,김태현,유창 식,황지희,조원석,목지영,정영수,이미선,김정 진,강경미,김선희,이상섭,주금옥,조현용,오상 윤,천은영,천기덕,이교영,정율 / 해양수산부

강북 고성 교류캠프

8.2~4

고성군 일대

강북,고성 청소년 80명 / 황지희,강명숙,김 정진,공세영,서동미,나하나,이상섭,정혜진,황 선미,김영호,오종환,정율,김민경,변영정,백진 아 / 강북구청, 고성군청

똘똘이 캠프

8.13~16

봉도청소년수련관

강북구 초등학생 50명 / 나하나,천기덕, 김선희,백진아,조현용,이상섭,박지혜 / 강 북구청

민물고기 탐사

8.22

가평

청소년 45명 / 지도자 5명

북한산 탐사

8.22

북한산

초등 61명 / 지도자 7명

모자캠프

9.1~2

봉도청소년수련관

쌍문동 저소득 한부모 가정 12팀, 67명 / 황선미,강명숙,황지희,강경미 / 적십자봉사 회, 쌍문1동사무소

4회 강북청소년거리축제 추락

9.8

신일고 운동장

청소년동아리 22팀 / 청소년과 주민 1,000 여명 / 김형미, 임유정 / 변영정,이상섭,김 영호,공세영,정혜진,이미선,강호,정율,강명 숙,배은정,황지희,김정진,홍정모,임유정,최경 화,백진아,신미연,홍경숙,김선희,김형미

남산한옥마을

전통예술 동아리 22팀 / 오종환,김영호,감 동호 / 박영식,이은남,조윤경,이은정,박인,신 수정,최윤선,홍은량,방민철,하진선,최지선,김 정수,조형범,홍정재,김민경,신미연,조주형,김 대심,강명숙,변영정,박은정,백호삼,변지혜,정 율,김선희,김형미,황선미

3회 서울시청소년전통예술한마당 9.23

회원활동(초등) 엄마가 다니던 학교 아빠가 놀던 동네

품 외

10.13~14 인사동, 일산 호수공원

최경화,홍정모,배은정,강명숙,임유정

청소년회원 17명 / 김선희,백진아,황선미


434

품 20

1회 서울시장애청소년연극축제

10.22~29 종로 연강홀

장애 청소년 8개팀, 비장애 청소년 5개팀, 축하공연 10개팀 / 청소년,시민 1,000명 / 황지희, 강경미 / 박영식,강명숙,백진아,변 영정,정율,권혁철,김기자,김정진,김민경,홍정 모,강동호,이미선,홍경숙,김선희, 김형미,오 종환,황선미

6회 서울시청소년연극축제

11.17~24 세종문화회관 컨벤션홀

청소년연극반 12팀 / 청소년, 일반 1,000 여명 / 이미선,홍경숙 / 김동환,강경미,김 선희,변영정,정율,김대심,김정진,김민정,오 종환,황선미

도봉구 만화캠프

12.8~9

도봉구 초등 30명 / 강경미,강명숙,김형미, 김동환,정율,백진아,김선희,유창식

노래품 10주년 기념공연

12.14~15 여해문화공간

품 주주, 아이들과 청년들 500여명 / 노래 품(심한기,이준호,신석호,최찬욱,이강우,윤진 형,이준호,심은정,최재희,문혜원) / 빨래골 밴드,파스타,애버라스팅 / 강경미,강명숙,김 동환,정율,김선희,김형미,오종환,황선미

10기 실습

1.4~30

품 사무실

강향심,민혜란,조윤희,이선영,이은미

회원활동(초등) - 만화랑 놀 사람 여기 붙어라

1.8~10

강촌 유스호스텔 및 그 일대

초등회원 31명 / 김형미,김선희,변영정,김동 환,정 율,이상섭,백진아,나하나,신진이,김민 정,김신강,유창식,강현구

도봉구 서울여행

1.23~26

서울 전지역

도봉구 청소년 40명 / 황선미,강향심,민혜 란,조윤희,이선영,김선희,이은미

큰 품동이들의 따뜻한 겨울여행

1.23~26

양평 중미산

품 청소년 32명 / 심한기,권혁기,이미선,변 영정,이상섭,강경미,김신강,김동환,이은정,김 형미,나하나,이석환,홍경숙,정율,백진아

사회복지정예화캠프 참여

2.4~8

대진대

대학생 1,00명 / 심한기 외 품 활동가

품 주주총회

3.2

명동 유네스코회관

품 주주들 / 황선미 외 품 활동가

강촌유스호스텔

2002


1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 실무자 과정 - 서울, 광주, 청주(3회)

4.3~21

이천 유네스코청년원, 광주 중소기업연수원, 청주 안중근수련관

청소년과 복지 현장 실무자 100명 / 황선 미 / 김민,김춘아,김태황,심한기,우수명,이 승민,이용교,표경흠,김춘아,안혜경,김예선 / 서울시청소년문화교류센터 미지 ,인천카 록릭청소년회, 주성대 청소년문화학과, 한 국복지교육원, 미디어프로젝트팀 헤모, 서 울시사회복지협의회, 인천연수구청소년수 련관, 청주시사회복지협의회, oh youth, welfare TV

1회 차 없는 거리, 아이들 세상

5.5

방학4동

지역 주민 2,000여명 / 도봉지역 13개 단 체

회원활동(초등) - 만화영화 좋아하5.11 니?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초등회원 20명 / 황선미,김선희,나하나,백 진아

회원활동 - 포도밭 농활

5.25

추풍령

청소년 회원과 학부모 15명, 품앗이 11명 / 황선미,강명숙,권순임,나하나,백진아,김민 경,김지연

10주년 기념 심포지엄

5.27

프레스센터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사)한2국청소년문 화연구소

엄마랑 나랑 같이~

6.15

국립극장 야외무대

초등 20명, 학부모 20명 / 황선미,강명숙, 나하나,백진아,김선희

품 10주년 기념식

6.22

성균관대 경영관 소극장

품 10주년 준비위원회 늘품우리(품 실무자 모임) - 황선미,박경호,송향숙,이성종,조정 은,주금옥,박예분,원정분,지영민 등 / 이준 호,신석호,유창식 외

1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대학생과정

7.1~6

이천 유네스코문화원

전국 사회복지와 청소년 전공 대학생 76 명 / 황선미 / 강대근,이용교,김민,김태황, 심한기,표경흠,이승민,김옥순 / 이미선,정 민기 / 서울청소년문화교류센터 미지, 인 천카톨릭청소년회, 주성대 청소년문화학과, 한국복지교육원, 미디어프로젝트팀 헤모 /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 인천연수구청소년 수련관, 청주시사회복지협의회, oh youth, welfare TV

아카데미 후속모임 - 청소년축제모니터링단 틈새

7~12

품 외

1기 대학생 아카데미 수료생 7명 (김미경, 김선미,김혜진,박정희,홍해린,장효진,유현 희) / 심한기

11기 실습

7.10~8.23 품 외

이기석,홍상미,권순임,홍해린,이은정,고성애, 오주영,김혜진,구자홍,우상미,이주연,최성임, 나하나,백지안,방민청 / 황선미,심한기


436

품 20

회원활동(중등) - 지리산 품속 시원한 여행

7.23~27 지리산 자락

중등회원 20명 / 심한기,김영호,나하나,변 영정,장국호,박종우,이은정,이상섭,정세영,김 혜진,강향심,이주연,김형미,이주원

청소년교류캠프(강북구,고성군, 보성군) - 일단 뛰어, 서울로!

8.6~8

봉도청소년수련원외 서울 전 지역

강북,고성,보성 청소년 90명 / 황선미,변영 정,이기석,방민철,오주영,구자홍,이은정,홍해 린,백진아,고성애,권순임,우상미,이주연,성 임,홍상미,나하나,김혜진,강명숙

5회 강북구청소년거리축제 추락

9.7

강북구민회관

청소년동아리 35팀 / 김형미 / 추진위원회 (열린사회북부시민회,번2단지종합사회복지 관,구세군종합사회복지관,강북청소년수련관, 돌산청소년센터판,녹색삶을위한여성들의모 임,번3단지종합사회복지관,사이버상담실청 소년세계)

남산 한옥마을

청소년 전통예술 동아리 21팀 / 김영호 / 심한기,황선미,강명숙,김지연,이준호,이성종, 김동환,이장형,오종환,홍정모,장효진,박선화, 김선희,김민경,백호삼,변영정,이은남,승혜영, 최동근,변형수,김은실,최선호,오경원,윤종 성,김미정,김홍건,정숙경,염명훈,정지원,이지 영,조혜경,우주은,송무아,박은정,류정진,김 광훈,이주연

4회 서울시청소년전통예술한마당 9.15

7회 서울시청소년연극축제

10.19~26 여해문화공간

청소년연극반 11팀 / 청소년, 일반 1,000여 명 / 홍경숙 / 박상영,박종우,권혁기,손준 형,조영아 / 심한기,황선미,김형미,김지연,최 유라,강명숙,김영호,김한나,장효진,박선화,이 소진,송유미,나하나

2회 장애청소년연극축제

11.11~16

세종문화회관 컨벤션홀

장애청소년 9팀, 비장애청소년 4팀, 축하공 연 7팀 / 심한기,김지연,이미선 / 박종우,손 준형,권오현,조경향,권정희,여승현

후원의 밤

1.4

이대 앞 2002 호프

주주 및 지역활동가 200여명

회원활동(초등) - 뛰어 들자! 겨울 속으로

1.16~18

계명산 자연 휴양림

초등회원 44명 / 강명숙,심한기,서윤호,홍 정모,백진아,최은영,권미희,김지연,박정희,김 용성,김혜진,문재형,김미현,김판중,이상섭,김 은정,장효진,강현구

2003


회원활동(고등) - 나도 여행간다! 1.21~25

충주 및 단양, 영월 일대

청소년회원 21명 / 심한기,박정희,김혜진, 정영수,최유라,백진아,홍정모,이상섭,김미 현,강명숙,강현구,김형미,홍정모,백진아,김 민경,김정진

3회 서울시장애청소년연극축제

3.3~12.2 종로구민회관

장애청소년 연극팀 포함 10팀

2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실무자 과정

4.21~25

용인대림교육연구원

사회복지 및 청소년관련 현장실무자 28명 / 박정희 / 강대근,표경흠,김민,심한기,김태 황,우수명,전효관,박상영,강에스더 / 김형미, 홍정모,김창영,이지연

8회 서울시청소년연극축제 나? 파랑새를 찾았어!

5~11

여해문화공간

동아리 10팀(105명) / 청소년기획단 나마스 테 / 강명숙,유현희

2회 차없는 거리, 아이들 세상

5.5

방학4동

지역주민 2천여명

회원활동품동이 봄산행

5.11

북한산

청소년회원 42명 / 김미현,김형미,홍정모, 심한기,한명인,강명숙

6.5~6

함양 양파밭

청소년회원 22명 / 심한기,김형미,최유라, 김미현,박정희 / 한명인,백진아,박종우,나하 나,강현구

2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대학생과정

6.22~27 이천 유네스코 문화원

사회복지 청소년 전공 대학생 89 / 박정희 / 나하나,유현희,이은정,김혜진,유우리,이장 형,백진아,이지연,김형미 / 강대근,김민,심한 기,김태황,우수명,박상영,전효관,강에스더 / 미디어교육프로젝트팀 헤모, 하자센터, HS Research Center, 주성대 청소년문화학 과, 표경흠 사회사업가 사무소, 한국복지교 육원,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회원활동(초등) - 가자! 놀자! 품속학교

7.31~8.3 정선 품속학교

초등회원 41명 / 이상섭,주용성,김갑용,김용 성,박정희,조미지,김은정,권미희,이기석,김 혜진,유우리,고성애,이정주김수현,우상미,이 보미,문재형

청소년문화기획아카데미

8.6~9

이천 유네스코 문화원

청소년기획단 및 청소년문화의집청소년운영 위원회/김형미,오승희,홍정모,김혜원,심수연, 조계형,구성모/심한기,안이영노,김형미,아랑, 잉카,박정희,장윤미/에이스벤추라,울산중구 청소년문화의집

강북구 고성군청소년교류캠프 - 뛰어 들자, 고성으로!

8.12-14

설악 수련의 집

강북,고성군 청소년80명

회원활동 - 양파밭 농활 ‘ 나도야 간다’


438

품 20

6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 불만있습니다

9.20

강북구청 앞마당 및 삼거리

참여동아리 38팀, 자원봉사 85명 / 김형미 / 노올자 25명(김판중,김동혁,임나경,황인 영,신은옥,오종승,박진아,김양수,김종윤,송예 진,윤민정,최주희,천서희,정인초,황혜진,김승 섭,정현수,이준혁,김은정,손광섭,권미희,손민 우,신동우,박현미,이설,김경화,양지은)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회 - 연합워크숍

10.18~19 이천 치킨대학 연수원

3개 청소년문화의집 청운위 59명 / 김형 미,심한기,박상영,신석호,김형미,이상섭,김미 경,김혜진,박정희,이정주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보수교육

10.2~10.3 여해문화공간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1,2기수료자30명/박 정희,강명숙,유현희,이지연,김미경/강대근,박 상영,김태황,우수명

안티수능 페스티벌

11.5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문화연대,전국교직원노동조합,품,학벌없는 사회,희망

송년의밤

12.27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강당

주주 100여명

8차 정보화캠프

2003

대진대

심한기,김형미,노래품

2004 번동초 특기적성-미디어반

1.5~1.15

번동초등학교

청소년 15명,강명숙,김혜진,유현희

품 회원활동(중등) - 작은 여행 캠프

1.28~2.1

함양,덕유산,안동, 포항,경주

청소년 30명/유병서,김혜진,장효진,강명숙, 심한기,정영수,유현희,이정주,김미경,이상섭

주주총회

2.28

서울청소년수련관

주주 20명

교육복지 -미양초 놀이문화연구반

3.26~ 12.17

미양초

미양초 20여명 / 김미경,유현희 / 이혜진

교육복지-미양초 영상제작반

3.26~ 6.15

미양초

미양초 20여명 / 강명숙 / 이혜진

교육복지 -번동중 청소년문화탐구반

4.10~9.11

번동중

번동중 22명 / 김혜진

송현고 축제기획단 교육

4.16

송현고

축제기획단 20여명 / 심한기,강명숙,김미 경,유현희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회 4.2~4.5 교육지원프로젝트-연합워크숍

청려수련원

전국 7개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 회 44명, 지도자 8명 / 장효진 / 심한기, 강명숙,장효진,유현희,김미경,김혜진,이정 주,이장형,김동혁 / 에이스벤추라(안이영 노,잉카,아랑), 퍼포먼스반지하(드라마고,지 경,지풀,미츠루,행또)

3회 차없는 거리, 아이들 세상

5.5

쌍문2동 도당길

지역주민 4천여명

서울시청소년연극축제 대학로상륙작전

5~1

대학로 나무와물 소극장 동아리 14팀,기획단 나마스테/ 유현희,이 정주

강북 실무자 연수 - 흐름워크숍

6.16~17

양평 바람과물 연구소

3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대학생 과정

6.23~6.28 이천 유네스코 문화원

7개 지역 단체 및 기관 실무자13명

전국 사회복지 및 청소년 전공 대학생 67 명 / 김미경,강명숙,유현희,이정주,김나연, 명현화,박소라,김선미,장현명,김영우,김동 혁 / 강대근,이용교,김민,김태황,심한기,우 수명,박상영,드라마고,지경,지푸라기,안이영 노,아랑,잉카,손준형,오은영,양지희,최재희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회6~11 교육지원프로젝트-방문컨설팅

참가청소년문화의집

전국 7개 청소년문화의집 / 장효진 / 심한 기,드라마고,안이영노

교육복지(강북) -실무자 미디어 워크숍

7.13~14

오현초

지역사회전문가 10명 / 이성종,강명숙

우리동네 보물카드 만들기

7.23-8.25 북한산 소귀천 일대

교육복지 초등 3~4학년 23명 / 나하나,송 혜진,유현희,강명숙,천은영 / 심상옥 / 열 린사회북부시민회

도봉구 여름캠프 - 갯벌로 떠나는7.26-27 자연캠프

강화도 동막리 갯벌 외

도봉구 초등학교 40명/강명숙,김미경,유현 희,김혜진,김지연,박정희,이정주/정율,변영 정/심상옥

회원활동 - 참 맑은 물살

강원 정선

초등회원 20명 / 최규성,박승희,강은하,박 상인,차푸른,유종옥,권민수,염지훈,이찬미, 윤정원,김새날,맹은지,최규진,박성민,김지 현,박유정,정지민,최헌,유지원,김지아 / 정 재민,김나연,김미경,이정연,이현제,이정주, 박경수,김현중,허중혁,송혜진,장효진,양한 솔,조기찬,유현희,박수진,서두원

8.8-11


440

품 20

7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고장난 세상에 추락 VIRUS

9.18

강북구청 앞마당 및 삼거리

39개 동아리, 청소년자원봉사 54명 / 청소 년기획단 노올자(김양수,김판중,천서희,황혜 진,최한영,권새미,김수현,석지영,김은혜,정재 연,임나경,황인영,신은옥,정현수,송예진,최주 희,오종승,손광섭,윤민정,김종윤,김동혁,함정 수,최희훈,최은영,이설,김인용,김지인,오훈 정,김영철,김지원,김보미) / 번동3단지종합 복지관,번동2단지종합복지관,구세군종합사 회복지관,열린사회북부시민회,돌산아동청소 년센터‘판’,강북청소년수련관‘난나’,녹색삶 을위한 여성들의모임

교육복지 - 번동초 방송반

9.20~ 12.31

번동초

번동초 5학년 10명 / 강명숙,유현희 / 이 시나

청주 청소년기획단 기획워크숍

10.2~10.3 청주

청주,진주Y 청소년기획단 14명, 자원활동 가 3명, 실무자 2명 / 심한기,강명숙,김미 경,김혜진,유현희,이정주

3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실무자과정

10.25~29 이천 유네스코 문화원

사회복지 및 청소년관련 현장실무자 45명 / 김미경,나하나,김성조,이현제,박정희 / 강 대근,이용교,김민,드라마고,지경,심한기,우수 명,김태황,이두성,오은영,박종우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회 12.4 교육지원프로젝트-연합토론회

명동 유네스코회관

전국 7개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 회 및 실무자 60여명 / 장효진 / 조계형,신 화경,함정수,이예니,조준교 / 한도희,이장형, 지경,안이영노,아랑

경기도 청소년문화예술동아리 지원캠프 - FREE FESTIVAL

12.18~19 이천 유네스코 문화원

경기도 청소년문화예술동아리 13팀 60명 / 나하나,이정주,유현희,김혜진,이상섭,김동혁, 이설,최희훈,변영정,김판중,백진아박상영,박 종우,감유겸,아랑,김형미,강명숙 / 경기문화 재단(임재춘,임은옥)

9차 정보화캠프 - My Way

2004

전주대

심한기

2.19

대한YWCA연합회 강당

주주 31명

2005 2005 주주총회


회원활동 - 그래 걷자!

2.20-25

7번 국도(포항~삼척)

품동이와 청년 28명(유현희,김태성,지풀,고 윤희,강진구,황혜진,오용석,이정연,김혜진,장 효진,성수희,김동욱,김판중,정준협,윤진열,석 지영,나하나,송혜진,최윤정,함정수,목혜균,김 재현,박수진,김진형,김미경,이애란,최혜경,이 설,심한기,김현중,권새미,조인태,신석호,강명 숙,이상섭,이정주,변영정)

교육복지 - 번동중 청소년문화탐구반

3.19~ 11.5

번동중 3학년 1반

번동중 15명

10회 서울시청소년연극축제 연극반은 죽지 않는다

4.~12.

성동청소년문화의집 (본마당)

12개 연극반, 초대팀 4팀 / 유현희,고윤희 / 청소년기획단 나마스테, 청년자원활동가

4회 차 없는 거리, 아이들 세상

5.5

쌍문2동

지역주민 8천여명

초안산 일상축제

5

초안산

지역주민 100여명 /도봉시민회,창동청소년 문화의집

운현궁 전통놀이 한마당

6.11

운현궁

품 10명 / 강명숙,권혁기,유창식,흥시렁

2005 품 생일

6.22

산

주주 94명

4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대학생과정

6.24~28 강원도국립평창 청소년수련원

사회복지 및 청소년 관련 실무자, 대학생으 로 구성된 전국 7개 지역, 7팀, 39명 / 김 미경,유현희,강명숙,김혜진,이정주,이상섭,나 하나,이보미,임진원,정민기 / 심한기,드라마 고,우수명,지경,강대근,김보성,서윤호

제주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회 교육

6.5

이천,부발,창전, 제주 토평,예례, 단양청소 년문화의집 청운위 69명 /강명숙,유현희,나하나

12기 실습 - 십이지신

7.13~8.22 품 외

강호근,김현민,이영은,윤지현,고민정,최두환, 이진선,이정연 / 강명숙,심한기

도봉위탁캠프(초등) 기차 타고 만화 세상 속 여행

7.28~29 강촌유스호스텔

초등학생 34명 / 강명숙 외 / 어린이문화 사과 / 도봉구청

대구산격종합사회복지관 청소년기획단 기획교육

7.9

청소년축제기획단 21명 / 심한기,강명숙,김 미경,유현희,나하나,이정주,이애란

제주 서귀포 청소년수련관

대구 산격종합 사회복지관

경기도 청소년문화예술활동 동아리7.9~7.12 강촌밸리클럽 지원캠프 “FREE WORKSHOP” (강원도 춘천)

경기도 청소년문화예술동아리 18개 61명 / 나하나,이상섭,김태성,오종승,임재춘,임은옥/ 심한기,동이향,노재정,유창식,강경미,박종우, 정율,강명숙,유현희,김판중,최희훈,김미경


442

품 20

십대지기 기획교육

9.24

의정부 십대지기

연합동아리 축제기획팀 14명 / 김미경,나 하나,김혜진

지역전통축제 달풍물재수굿

10.16

강북구청 앞마당

청소년풍물동아리 7팀 / 권윤달,김성남, 박상준, 최은서,서대구,노수환,백혜준,최희 훈 / KT&G(최명옥), 열린사회북부시민회 (박운정)

8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 고장난 꼬마야 날개를 달으삼

10.22

강북청소년수련관 난나

참여동아리 35팀, 자원봉사 42명 / 김혜진, 이애란 / 노올자(김현중,김지원,김경진,최한 영,권새미,김수현,석지영,정재연,김은혜,김양 수,황혜진,천서희,김고은), Red.P(김동혁,이 설,김판중) / 강북청소년수련관난나,창동청 소년문화의집다즐,열린사회북부시민회,성인 풍물패밝달,교사풍물패

경기도 청소년문화의집 실무자워크숍

11.13~15 양평밸리(경기)

경기도 13개 청소년문화의집 실무자 20명 / 나하나,심한기,김미경,김혜진,이애란,백진 아,성수희 / 김보성,최지연,임은옥,동이향,노 재정,임지선,한도희,김태황

당동청소년문화의집 문화활동 봉사단 기획교육

11.20

군포당동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문화활동봉사단 10명 / 강명숙,유 현희

안티수능페스티벌 11.23 나는 비행청소년 친구야 날자꾸나

혜화역 4번 출구 앞

문화연대,전국교직원노동조합,품,학벌없는사 회,희망,민주노동당청소년위,Red-p

덕성여대 연계 강좌 - 대안적 지11.28~ 역공동체를 꿈꾸는 비젼나눔 2005 12.02

덕성여대 인문사회관

덕성여대 학생 및 지역단체 실무자 총17명 / 강명숙,이정연 / 부은희

교육복지 - 미양초 축제기획단

11.30~ 12.21

미양초

축제기획단 레인보우 12명 / 김미경,김혜진

10차 정보화캠프

2005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심한기

첫번째 오~히말라야

1.10~26

네팔, 랑탕 외

주주와 아이들, 품 일꾼 전원 총 32명

1일 문화예술교육 워크숍

1.23

네팔, Future Star English Secondary School

네팔청소년 5~60명, SFN 소속학교 교사 20여명/ 어린이문화사과(목윤지영,조원석), SFN(러비,모노즈,쿤둔라마)

2006


학교문화예술교육 - 동아리,CA 지원

4~11

각 학교 동아리실

5개 학교 9팀 / 김혜진 / 고희종,이진우,이 성종,오재영,장윤성,강명숙,이정연유영은

교육복지 - 번동초 방송반

4~11

번동초

방송반 7명 / 강명숙,유현희 / 이정연,김판 중,유영은 / 안미나,이시나

강북 매니페스토

5~

5회 차 없는 거리, 아이들 세상

5.5

도봉 발바닥공원 앞

지역주민, 도봉지역단체 1,000여명

스승의날

5.15

품

품 스승 4명, 품 활동가 10여명

초안산 일상축제

5.20

초안산

지역주민 가족 / 김혜진,이정연,유영은 / 도 봉시민회,창동청소년문화의집

네팔, 아쇼카 호텔

SFN 소속 사립학교 교사 40명, 청소년 60 명 / 목윤지영,권혁기,김태황,모노즈,러비, 쿤둔

1차 한국-네팔 문화예술교육워크숍

6.1~3

김혜진,이정연

5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대학생 과정

6.28~7.2 국립평창 청소년수련원

사회복지 및 청소년 관련 실무자, 대학생 으로 구성된 6팀(35명) / 김미경,지현영 / 드라마고,심한기,우수명,전명기,강대근,지 경,박찬국,이두성 / 김현진,고민정,이태희, 임수련

방학2동 공부방 미디어 캠프

7.22

공부방 아이들 및 교사 20여명/나하나,지 현영

학교문화예술교육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 ‘비행을 꿈꾸다’

7.25-8.1 창동문화마당 외

원불교봉도수련원

10개 학교, 14개 동아리 / 김혜진,이정연,유 영은 / 최찬욱,이진우,박경수,김현준,정광채, 최희훈,고인석,김성남,한웅,강명숙,김판중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회8.7~8.10 국립평창 교육지원프로젝트 - 연합워크숍 청소년수련원

경기도 6개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 원회 33명, 지도자 6명 / 나하나 / 김혜진, 지현영,아랑,이상섭,동이향,노재정,김재순,임 지선 / 변영정,김태성,유영은

회원활동 - 참맑은물살

민주노동당 남원중앙연수원

주주자녀 30명(심현,한가흔,김윤정,황인재, 김재관,맹은지,정유남,강혜원,박경애,박윤정, 김진범,김자영,김한울,오재호,이찬미,이가은, 이상민,김현중,한유흔,김한솔,최지원,윤성헌, 김지현,백승민,조두원,최명제,김진형,김명서, 김지수,노기호,김재근,윤주영,강지연,김두리, 천봉환) / 심한기,유창식,변영정,이상섭,홍 정모,강명숙,성수희,나하나,함정수,지풀,유영 은,지현영,김태성,김판중,이정연

참가청소년문화의집

경기도 6개 청소년문화의집 /나하나

8.18-21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회 9~11 교육지원프로젝트 - 방문컨설팅


444

품 20

9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 000 나와라

10.21

강북청소년수련관 난나

공연동아리총28팀,학급참여 5팀,자원봉사 52명/ 김혜진,이정연,유영은,김판중/송성호, 박성재,박예슬,서준영,서인석,김동욱,홍지희, 김준혁,김현중,정운호 /최찬욱,한웅,최희훈/ 돌산아동청소년센터판

경기도 청소년문화예술동아리 지원캠프 - FREE FESTIVAL

11.11~12

경기양주딱따구리 청소년수련원

경기도 청소년문화예술 동아리 17팀 124명 /나하나,심한기,지현영,유현희,이정연,유영 은 / 김판중,이상섭,김태성,김현중,김동환,김 양수,석지영,함정수,정훈협,강현구,고미경,노 서영,하민수,정지원 / 임은옥,양종남 / 노 재정,박종우

네팔 품 사무실 오픈

11.17

네팔, 타멜

이보라, 상게 세르파

청소년 문화시설 실무자 워크숍

11.26~28 경기도 양평밸리

경기도 청소년문화시설 실무자 20명 / 나 하나,심한기,강준혁,박상영,정민룡,박찬국,목 윤지영,김영현,김월식 / 지현영,유현희,이정 연,유영은,김판중,이상섭 / 임재춘,임은옥

서울여대 연계실습

11~12

미양초

서울여대 4학년 4명 / 미양초등학교

학교문화예술교육 - 문화예술 매개자 워크샵

12.14

성북교육청

지역교사 및 학교문화예술교육 참여학생 , 강사 30여명 / 김영삼,고인석,한웅,김판중, 류현진,노은연,김진숙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회 교육지원프로젝트 - 연합토론회

12.23

석수청소년문화의집

경기도 4개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 원회 및 실무자 30여명 / 나하나,지현영,김 혜진,노재정,동이향,임지선,김재순,아랑

2006 자원활동가 송년모임

12.24

KT&G 강북재가복지센터

자원활동가 및 스승 35명 / 유현희,품

2007 동아리활동 사례발표회 -청소년동아리 행복찾기

1.12

창동청소년수련관

청소년 문화의집 등 지역기관 실무자 50여 명 / 나하나,유현희,이상섭 / 서인석,송성 호,김준혁,이정연,이설,김판중

방학2동 미디어캠프 - 나에 대한 이야기

1.19~20

봉도수련원

방학2동 공부방 청소년 18명 / 김혜진 / 품 스탭 8명 / 방학2동사무소

두번째 오~히말라야

1.29~2.12 네팔, 카트만두 일대 및 랑탕

주주 및 청소년 28명, 품 직원 4명 총 32 명


노원 실무자교육 - 흐름워크숍

2.24~25 바람과 물 연구소

노원지역 실무자 20명 / 유현희,나하나,김 혜진 / 심한기,김영현,김월식,박상영

학교-지역 연계 문화예술교육사업 4~11 - 시범학교 운영

화계중

화계중 학생회 및 동아리(밴드반,댄스반,도 서관,자유활동반) 50여명 / 나하나,유영은, 이상섭 / 김태성김유신,이정연,유현희,최찬 욱,한웅,노재정,임지선,김재순

숲해설가 야생화 출사

5.5~12

네팔, 랑탕 외

숲해설가 11명

2차 한국-네팔 문화예술교육워크숍

5.21~25

네팔, staffcollege 외

교사,예술가,시민단체 69명, 청소년 80여명 / 박찬국,김월식,박상영,목지영,권혁기,고민 정,강준상,김판중,권오창/ SFN

6기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5~12

밀머리미술학교, 신기학교 / 각 지역 현장

고민하고 실천하는 청년 32명 / 유현희 / 심한기,박찬국,김지나,목윤지영,김월식,아랑, 손준형 / 밀머리 미술학교, 신기학교

나눔학교 청소년문화교류프로그램 6.7~14

네팔, 모노허라학교 외

나눔학교 장애청소년 15명,나눔학교교사 5 명 /강준상,김판중,권오창

HAPPY SCHOOL PROJECT

6.9~10

네팔, 모노허라 학교

나눔학교 20명, 네팔 청년예술가 22명 / 강준상,김판중,권오창

도봉 실무자 교육 - 흐름워크숍

9.

도봉지역 교육복지 연대단체, 지역교육복 지전문가 20명 / 심한기우수명,김태황,드 라마고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

7.28-8.5 창동문화마당

동아리 10팀 / 나하나,유영은,이상섭,이정 연,김판중,이설,정재연 / 최찬욱,이진우,엄상 민,이남근,한웅,천지음최희훈,문화예술교육 연구소에이스벤추라(노재정,김재순),창동청 소년수련관(최형진),인디밴드오~부라더스

회원활동 - 참 맑은 물살

8.10~13

강원 인제 월학리 냇강마을

주주자녀 42명 / 유창식,심한기,강명숙,이 상섭,홍정모,백명주,나하나,정영수,윤은주,김 동환,박경애,유영은,김용성,정지원

10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 광광수월래

9.8

강북구청 앞마당 및 삼거리

동아리 10팀 / 나하나,유영은,이상섭서인 석 / 청소년기획단(송성호,김준혁,하민수,정 운호,김현중) / 청년자원활동가(노서영,천서 희,김은해,김수현,김양수,석지영,황혜진,김영 철,권새미) / 지역단체 및 모임 7팀

셋넷학교 - 평화야 놀자

10.25~ 11.7

네팔, 랑탕지역 모노허라학교 트리플잼학교

셋넷학교 48명 / 심한기,강명숙,이보라,상 게 / 모노허라, 트리플잼학교

자원활동가 송년파티

12.21

KT&G 강북재가복지센터

품 일꾼들과 청년들, 스승들 30여명


446

품 20

2008 세번째 오~히말라야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 가족여행

1.2~16

네팔, 카트만두 일대 및 랑탕

품 주주 및 청소년 27명

1.14~23

네팔, 카트만두 일대 및 랑탕

10가족 27명 /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 실무 자 4명 / 심한기,강명숙,상게세르파

네팔, 카트만두 일대 및 헤떠올라

CJ 청소년 33명, 프리자왈학교 청소년 33 명 / 심한기,강명숙,상게세르파 / HAPPY Vibration(딥말라머허르전,람크리슈나머허 르전), 네팔 청소년 예술가(쩐다커더엿,쓰 므리띠구룽,라젠드라너삣,싸일레스머허르전, 쁘라딥어디까리) / NEST,프리자왈학교

CJ 나눔재단 - 청소년 희망나눔 원1.23~31 정대

주주콜로키움(10회)

3~2009.1 다원문화매개공간 외

주주 135명 / 유현희 / 한덕연,강대근,김 태황,안이영노,박찬국,고춘식,드라마고,이준 호,이선재

번동중 축제기획단과 문화캠프

3~12

번동중

번동중 37명 / 이상섭,최세리,김유신,김태 성,이지성,이설,유영은,이정연,서인석,김준 혁,송성호 / 최인숙,이미경(번동중),이혜진( 북부교육청)

SFN 1일 문화예술교육워크숍

5.24

네팔, 남스학교

네팔 사립학교 교사 40명 / 심한기,강명숙, 상게세르파,리따시레스터 / 김월식,임지은, 김판중 / SFN

3차 한국-네팔 청년문화실천 워크숍(네팔)

5.25~31

네팔, 베시마을

네팔참가자 6명 , 한국참가자 6명 / 심한 기, 강명숙,이하니,상게세르파 / TYA

강북청소년문화존

5~12

강북구청 앞마당, 공간 외

참여동아리 21팀, 자원봉사자 월 50명 / 이 상섭,이설.김판중,이지성,박선정,정혜영,천은 영,최희훈,이준규,오종승 / 지역단체 6팀

베시마을 방과후교실

6.16~

네팔, 베시마을

베시청년 무나, 꺼멀리, 써리따

베시마을 사진전시회

7.19

네팔, 베시마을

마을주민 100여명 ,마을청년 10여명

실습(놀터지기)

7.9~8.28 품 외

박선정,정혜영,이지성,천은영 / 강명숙,심 한기

베시도서관 건축 시작

8.1

마을주민 30여명, 마을청년 10여명

네팔, 베시마을


청소년문화기획아카데미 - 동네 힘주기 게릴라 프로젝트

8.11~14

3차 한국-네팔 청년문화실천워크숍(한국)

8.21~ 9.2강북구, 안산, 전남광주

한국 참가자 6명, 네팔 참가자 6명/ 심한 기,이하니,상게세르파 / 리트머스

2차 나눔학교 청소년 문화교류 프로그램

9.11~18

네팔, 모노허라 학교 및 포카라

장애청소년 24명,나눔학교 교사 9명/ 심 한기, 강명숙, 이하니, 리다 시레스터 / 박 찬국

서울디자인올림픽 ‘어;어;어 9.30~ 마을대회 - 나만의 전시(시민참여) 10.30

잠실올림픽경기장 외

유현희,이지성,이설,이준규 등 / 박찬국, 권 지혜

광명1동청소년문화의집 문화교류

9.4~11

네팔, 나갈콧 일대 / 남스학교

한국청소년 15명, 네팔청소년 15명, 광명청 소년문화의집 실무자2명 / 심한기,강명숙, 이하니,상게 세르파 / 남스학교

11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 온동네씨 같이 놉시다

10.25

강북구청 앞마당 및 삼거리

참여 동아리 19팀, 150명 / 자원봉사자 275명 / / 학급참여 38명 / 이상섭,이지성, 품,세개,박선정,정혜영,천은영,김유신,김태 성,이보라,이정연,이준규 / 지역단체 및 모 임 11팀

베시마을 영화상영회

11~

네팔, 베시마을

마을주민 50여명

경기도 청소년문화의집 실무자 워크숍 - 공간의 재발견

11.21~24 광명1동 청소년문화의집 외

청소년 41명 / 이상섭,이지성,품,이설,이지 성,박선정,정혜영,천은영,김준혁,송성호,서인 석,최희훈,이준규

경기도 청소년화의집 실무자 10명(이은경, 김미현,임병수,백진아,심은선,이주호,임정아, 김지헌,우원탁,민혜진 / 유현희 / 김월식,이 인혁 / 이지성,임경화 심한기, 상게 세르파 / 꿈 희망 미래재단 스티브김, 박경호 

네팔, 골리마을

골리마을 도서관, 헬스포스트 완공11.28 식

강북구청, 수유역 창동역, 백운시장

2009 네번째 오~히말라야

1.15~29

네팔, 카트만두 일대 및 랑탕

품 주주 및 청년 12명(강명희,이지성,정혜 영,이설,김유신,오종승,김태성,이주빈,홍상 미,박종우,박선정,임경화,심현,임지은) / 심 한기,강명숙

베시마을 도서관 완공식

1.28

네팔, 베시마을

마을주민 300여명


448

품 20

강북청소년문화존+ 동아리지원사업

5~12

강북구청 앞마당 / 미아강북청소년문화 정보센터

8개 동아리 107명, 자원봉사 300여명 / 이 상섭,이지성,세개,이명화,조규희,함정수 / 강북청소년수련관난나 외 지역단체 및 모 임 12개

Happy Village Project

5.4~6.11

네팔, 베시마을

베시마을 주민 3~400여명 / 산족라이,람바 부수베디,니란전어디까리,유샤로허니 / 심 한기,강명숙,이하니,상게세르파 / 김월식,이 주빈,임지은, 김판중,김범준,박성희

Happy Village Project

5.4~6.11

네팔, 골리마을

골리마을 주민 300여명 / 심한기, 강명숙, 이하니, 상게 세르파/ 김월식, 임지은, 김 판중

실습(놀터지기)

7.6~8.31

품, 놀이터 공간

이명화,조규희 / 심한기,이상섭

회원활동 - 참 맑은 물살

7.22~25

강원 인제 월학리 냇강마을

주주 자녀 37명 / 심한기,이상섭,이준호,최 희훈,김태현,정율,강명숙,유충희,송성호,유현 희,박찬욱,임경화,서인석,이정연,김준혁

청소년문화아카데미

8.10~14

품 사무실 외

놀이터 기획단 33명 / 이상섭,이지성,함정 수,이정연,조규희,이명화

남스학교 한국 방문

8.13~20

광명 및 평택

네팔청소년 13명, 한국청소년 13명, 네팔교 사 3명 / 광명1동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과 사람사랑, 남서울대학, 평택시

12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 동네야 들어봐!

11.7

강북구청 앞마당 및 삼거리

참여팀 13개 총 121명 / 자원봉사자 100명 / 품 일꾼들과 청년들, 놀이터 기획단 / 지 역 단체 및 모임 14개

Asian Youth Leaders Forum - Exchange Resident Project

11.18~12.2

네팔, 베시마을

베시마을 청년 4명, 마을주민 5명, Happy Vibration 4명 / 청소년과 사람사랑

다섯번째 오~히말라야

1.12~26

네팔, 골리마을

품 주주와 청년들 14명(신지은,정선희,백승 일,류귀호,김은옥,유정화,이인혁,안하나,박 아람,전복선,안송희,정민희,박소나무,이정 연) / 심한기

마을N도서관 - 히말라야 도서관 탐방

1.18~1.23

네팔, 베시마을 외

마을N도서관팀 20명, 마을청년 4명 / 네팔 품, 마을N도서관

2010


공간마련을 위한 모금콘서트 - 2천

1.30

덕성여대 대강당

품 아이들과 마을주민 400여명 / 품 아이 들과 청년들 / 극단 진동, 타악그룹 KATA, 캐비넷 싱얼롱즈, 에이콘, 에이콘 걸즈

우리동네 십대들의 동반성장프로젝트

4~12

생글도서관, 초록나라도서관, 햇살공부방

생글도서관 어린이 10명, 햇살교실 3명, 초 록나라 6명 / 유현희,이지성,이상섭 / 이지 연,배소담,오지연,이용훈,박영택,이정준,최 상백,한주현,양승만,최지이,박진경,안혜진, 추주영

청소년문화공간 오픈식

5.23

청소년문화공간

품 아이들과 마을 주민 95명/ 이상섭,안하 나,유현희,강명숙,이지성,이정연,유영은,서인 석,송성호,김준혁

강북청소년문화존+ 동아리지원사업

05~12

강북구청 앞마당 및 삼거리 / 청소년문화공간

운영위원회 언니들(김신영,김단비,유정화,오 지연), 놀이터기획단(김태호,이원희,김보선, 김은지,황권희,남궁은,김은비,고승연,고승희, 한주현,양승만,박영택) / 참여 동아리 9팀 / 자원봉사자 100명 /유현희,이상섭,안하나 / 지역단체 및 모임 10팀

회원활동 - 참 맑은 물살

7.26-29

강원 인제 월학리 냇 강마을

주주 자녀 19명 / 심한기,이상섭,이원범,김 준혁,강명숙,이하니,한주현,장승희,송성호, 김단비,안하나,이장형,오지연,서인석,김신영

청소년문화아카데미

8.9~14

청소년문화공간 외

청소년 26명 / 유현희,이상섭,안하나 / 심 한기,안이영노

베시 청년들 한국 초청 교육 (도서관프로그램)

9.6~20

강북구, 안산, 순천

베시 청년 4명 / 이하니,리따 / 초록나라도 서관,별과민들레,순천기적의도서관

13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 온 동네 꽃이 피었습니다

10.30

강북구청 앞마당 및 삼거리

청소년동아리 및 마을모임 16팀 / 청소년 및 일반 주민 3,000여명 / 유현희,이상섭, 안하나,유정화,김신영,김단비,오지연,이정연, 이지성,김준혁,송성호,서인석,김은수,하대근, 김태성,김유신,주용성 / 놀이터기획단(박영 택,임경엽,이원희,이창선,이성은,김보선,황권 희,김은지,박진경,최지이,도용훈,안혜진,남궁 은,김은비,고승희,양승만,한주현,고승연,김태 호,오현지,박지은,김선미,이용훈)

경기문화재단 문화복지아카데미 - 우수자 네팔연수

11.15~26 네팔, 베시마을

심은선,박모아,오연주,권경심,노재정/ 심한 기,강명숙,이하니,상게세르파 / 경기문화 재단

고리울청소년문화의집 문화교류

11.20~28 네팔, 베시마을

한국청소년 19명 / 심한기,강명숙,리따시레 스터,상게세르파 / 고리울청소년문화의집( 신용식,이미현,박정인)


450

품 20

양업고등학교 해외이동수업

1.26~ 12.6

네팔, 랑탕지역

한국청소년 38명, 교사 6명 / 이하니,강명 숙,심한기 / 양업고등학교

2011 여섯번째 오~히말라야

1.24~2.7 네팔, 랑탕지역(헬람부)

품 주주 및 청년 24명(김누리,김보람,이순 임,이민정,신정경,이장형,이준영,오지산,신윤 섭,박이현,정이가령,조윤령,김원규,김석민,송 성호,김단비,오지연,한주현,이용훈,김낙준,노 동건) / 심한기

서울특별시 고교 학생자치 캠프

2.14~16

대천 임해교육원

서울시 고등 임원 225명 / 강명숙,심한기, 정이가령,이상섭,이지성,이정연,서인석,송성 호,이명화,하대근,김태성 / 서울특별시교육 청, 21C청소년공동체희망, 인권교육센터들

1기 무늬만학교 - 문화놀이터

4~2

청소년문화공간 외

정규민,장서희,장서영,최민희,전영지,한주현, 안윤주,전지현,오지산,김건호 / 유현희,정이 가령,서인석,송성호,심한기,강명숙,이지성, 이상섭 / 박경옥,김월식,문화로놀이짱,고영 재,안이영노

강북청소년문화존+동아리지원사업 5~2012.1 강북구청 앞마당 및 삼거리 / 청소년문화공간

참여 동아리 10팀, 총 213명 / 극단언니 들,248+ ,삼각산재미난학교,생글도서관 / 노재정,명건,보현,띠앗풍물패 / 이지성,유 현희,심한기,정이가령,강명숙,이상섭,이정 연,이설,김은수,하대근,김태성,김유신,이명 화,박선정

강북청소년참여위원회

5~2012.1 청소년문화공간 강북구청

강북구 청소년 20명 / 이지성, 김준혁 / 박 운정

1기 청년학교

7.5~8.15 청소년문화공간 외

청년 8명(이명화,이진영,신주애,송시영,양승 희,이성희,김호진,김종윤) / 강명숙,유현희, 심한기 / 김월식,고영재,박찬국,이설,김진숙, 김낙준,이순임

회원활동 - 참 맑은 물살

7.24~27 강원 인제 월학리 냇강마을

주주 자녀 42명 / 심한기,이상섭,강동호, 김현희,서인석,이성종 / 박선정,이장형,강 명숙,이지성,김준혁 송성호,오지연,정이가 령,한주현


청소년문화아카데미

8.10~13

청소년문화공간, 강북구청

Happy Village Project - 교사워크숍 (교육 철학과 방법론)

9.3~9.14 네팔, 베시마을

모노허라학교 교사 10명, 마을 주부 40여 명, 주민 100여명 / 이하니,안하나,강명숙, 상게세르파, 심한기/ 이순임,김낙준,박종우 / A-drops

14회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 탈탈탈 동네난장

11.12

강북구청 앞마당 및 삼거리

청소년 동아리 및 마을모임 63개팀 500여 명, 자원봉사자 138명, 일반참여자 3,,500 명 / 이상섭,이지성,유현희,심한기,정이가령, 강명숙,이설,이정연 / 세 개(김준혁,서인석, 송성호), 추락기획단(한주현,안윤주,최민희, 전영지,정규민,장서영,전지현,오지산,김건호, 장서희,김자령,손세민,채이안,한승희,김도희, 이상현,이승희,정국일,이지은,장승희,박영택, 김은수,최지이,추주영)

성북교육청 초등자치활동 캠프

11.16~17

서울시학생교육원 가평교육원

서초등 5-6학년 임원 84명 / 강명숙,유현 희,이상섭,이지성,이가령,송성호,서인석,김준 혁,박영택,장승희,이명화

Happy Village Project - 공개워크숍(학부모)

11.23~28 베시마을

노허라 학교 교사 10명, 학부모 30여명 / 이하니,안하나,심한기 / 람 바부 수베디

서부교육청 초등 자치활동 캠프

11.24~25 강촌유스호스텔

초등 임원 123명 / 강명숙,유현희,이상섭, 이지성,이가령,송성호,서인석,김준혁,백정인, 박영택,장승희,송시영

1회 동네문화콘서트

12.10~11 강북구청 앞마당, 난나 소극장

동네극단 우이동, 숭곡중연극반, 백세밴 드 / 청소년 및 주민 160명 / 유현희,강명 숙,이상섭,이지성,정이가령, 놀이터 기획단 과 청년들

성북교육청 중고등자치활동 캠프

12.19~21 국립공원생태탐방 연수원

중등 임원 80명, 고등 임원 80명 / 강명숙, 유현희,이상섭,이지성,정이가령,송성호,김준 혁,서인석,박선정,심은선,박모아

회원활동 - 참 맑은 얼음

12.26-28 강원 인제 월학리 냇강마을

주주 자녀 23명 / 심한기,이상섭,김준혁,김 양수,이지성,이영아,강명숙,장승희,김은혜

1기무늬만학교 십대인문과정인문놀이터

12.30~ 2.26

김예진,김광철,김예훈,박태랑,정규민,장서희 / 유현희,정이가령,심한기,강명숙,이상섭 / 이상훈,이순임,이창림,이정주,김동훈,이주빈

청소년문화공간 외

지역청소년 23명 / 심한기,유현희,이지성, 정이가령,송성호,서인석,김준혁


452

품 20

2012 일곱번째 오~히말라야

1.18~2.3 네팔, 랑탕 헬람부

주주 및 청소년 18명, 품 직원 3명 총 21명

광명1동청소년문화의집 ]문화교류

1.6~19

네팔, 베시마을 및 카트만두 일대

한국 청소년 15명, 네팔(베시마을) 청소년 29명, 심한기,이하니,안하나 / 광명시, 광명 청소년문화의집

꿈틀학교 졸업여행

2.2~2.6

네팔, 베시마을

꿈틀학교 8명, 네팔 베시 모노허라학교 15 명, / 이하니,안하나 / 꿈틀학교

2기 무늬만학교 - 십대 문화,인문학 통합과정

4~2013.2 청소년문화공간 외

신윤섭,임지오,신채영,정지민,이승희,한진규, 오지산,염원,김예진,임나경,김승연,장서영,김 신혁 / 정이가령,유현희,심한기,김해진,김미 경 / 심은선


품 발간자료 목록

년도 1996

펴낸 이름

펴낸 곳

청소년 어울마당의 발전방향에 대한 연구

일암청소년육성재단 / 품청소년놀이문화연구소

강북구 중학생의 여가생활실태 및 욕구에 관한 조사연구

일암청소년육성재단 / 품청소년놀이문화연구소

98 청소년 문화활동 사례

일암청소년육성재단 / 품청소년놀이문화연구소

98 청소년자원활동 지도자 연수

일암청소년육성재단 / 품청소년놀이문화연구소

대중음악과 청소년 영상문화

일암청소년육성재단 / 품청소년놀이문화연구소

2000

품의 정체성 확립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세미나

품청소년문화공동체

2001

학교 CA지원사업 매뉴얼집(1998년 ~ 2001년)

품청소년문화공동체

북한산 생태모니터링을 통한 청소년 체험환경교육프로그램 모델개발 연구 보고서

품청소년문화공동체

지역사회 자원의 통합 System을 통한 “Youth welfare Network” 모델 만들기 연구보고서 (강북청소년문화축제 보고를 중심으로)

품청소년문화공동체

2001 서울시장애청소년연극축제 / 그래서 우리는 무대에…

품청소년문화공동체

처음같은 시작을 위한 품 10년의 이야기

품청소년문화공동체

10주년 기념 심포지움 Network와 청소년 문화활동

품청소년문화공동체

지역청소년문화축제를 통한 청소년문화활동 네트워크모델제시 “지역청소년 축제 만들기 지침서”

품청소년문화공동체

강북도봉지역 청소년문화활동 네트워크 만들기 사례보고서

품청소년문화공동체

제 1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품청소년문화공동체

청소년연극축제 기획 및 청소년 연극활동 지도를 위한 매뉴얼 “붕어빵 탈출 대작전”

품청소년문화공동체

청소년문화기획아카데미 “내 손으로 축제를 만든다.”

품청소년문화공동체

제 3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품청소년문화공동체

청소년문화복지 -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편

인간과 복지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회 활성화 방안연구Ⅰ

품청소년문화공동체

1998

1999

2002

2003

2004

2005


454

품 20

년도 2005

펴낸 이름

펴낸 곳

청소년문화의집을 거점으로 한 청소년 문화예술 활동 교육-지원사업 사업보고서

품청소년문화공동체

제 4기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

품청소년문화공동체

2006 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운영위원회 활동 사례 모음집

품청소년문화공동체

제 5기 청소년 문화복지아카데미 교육교재 “존재, 관계 그리고 실천”

품청소년문화공동체

제 5기 청소년 문화복지아카데미 사례발표집

품청소년문화공동체

2007 The first report of NGO PUM

품청소년문화공동체

학교-지역연계 학교문화예술교육시범사업 결과 보고서 - 네트워크 강화를 통한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프로그램 “마을이 함께 키우는 행복한 아이들”

열린사회북부시민회 품청소년문화공동체

청소년문화기획단 ‘세 개와 개밥그릇’ 활동문집 “Hot Dog”

품청소년문화공동체

6기 청년문화실천아카데미 에세이집 ‘청년’

품청소년문화공동체

2008

2008 Korea-Nepal, Nepal-Korea Youth Cultural Practice Workshop “Happy Village Project”

품청소년문화공동체

2009

즐거운 변화를 희망하는 청소년문화의집 실무자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 “공간의 재발견”

품청소년문화공동체

2011

우리는 인문학교다 1,2

학이시습

011 무늬만학교 1기 졸업생들이 엮는 무늬만 이야기 ‘무늬긋기’

무늬만 학교 1기 졸업생들

2006

2007


456

품 20

품은 품는 만큼 품이 됩니다. 품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질문합니다. ‘품’이 무슨 뜻이예요?, “품’은 뭐하는 곳이예요?

품은 따뜻한 사람을 만나면 따뜻한 품이 되고, 가치있는 사람을 만나면 가치있는 품이 되고, 아이들을 만나면 아이들의 품이 되고, 변화와 혁명을 꿈꾸는 자를 만나면 변화와 혁명을 꿈꾸는 품이 되고, 꿈을 꾸는 자를 만나면... 꿈꾸는 품이 됩니다.

하지만 품은 위선적이고 거짓된 사람을 만나면 그를 따르지 않습니다.

품은 세상의 모든 아이들과 청년들이 이 땅에 품어야 할 소박한 꿈들을 품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해체시킬 수 있는 없지만... 우리의 아이들, 그리고 청년들이 자기 언어와 문화를 품으며 세상에 말걸고, 소중한 소통을 이뤄내길 희망합니다.

품은 우리의 아이들과 청년들이 스스로 흔들며 생긴 울림의 힘으로 세상의 변화를 시도하기를 희망합니다. 품은 삶의 수레바퀴가 멈추지 않는 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찾아가려 합니다.

그래서 품은 품는 만큼 품이 됩니다.

품청소년문화공동체 대표

심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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