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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_허실로베시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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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엔지오활동과 글로벌복지의 대안적 실천사례

허실로 베시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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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김혁종 | 펴낸이 광주대학교 참여복지센터 펴낸곳 광주대학교 참여복지센터 펴낸날 2012. 9. 10 등록번호 1994. 3. 15 제8-136호

지은이 심한기, 강명숙, 이하니 사진 임지은 외 | 교정 및 교열 장민혜 | 편집 강명숙

주소 광주광역시 남구 효덕로 52 광주대학교 인성관 305 전화 (062)670-2677 이메일 ruralwelfare@hanmail.net

ISBN 978-89-88307-63-2 이 책의 내용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으며, 무단 복제하는 것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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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엔지오 활동과 글로벌 복지의 대안적 실천사례

허실로 베시가웅

광주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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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사 |

1950년 한국전쟁은 국제복지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고아를 돕기 위해 선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급히 힘을 뭉쳤다. 가장 대표적인 단체가 ‘월드비전’이다. 월드비전은 1950년 9월 한 국의 전쟁고아와 과부를 돕기 위해서 만들어진 단체로서, 현재 4 만 명이 일하는 지구촌 대표 엔지오로 발전되었다.

월드비전을 통해서 세계인의 도움을 받던 한국이 지구촌에 도움 을 주는 한국으로 바뀌는 데는 40년이 걸렸다. 아프리카에서 굶주 리는 아동을 돕기 위해 ‘사랑의 빵’을 모금하고, 북한 동포를 위 해 ‘사랑의 쌀’을 모은 것이다. 품을 갚기 위해서 빵을 나누고 밥 을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다. 혼혈아를 입양하기 위 해서 만들어진 ‘홀트’는 국제입양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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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입양된 아동의 3분의 2는 해외입양이고, 전 세계 해외입 양 아동의 3분의 1은 한국인이다. 지구촌 곳곳에 한인이 살고 있 는 것은 전쟁의 흔적이다.

한국전쟁의 아픔을 딛고 지구촌 사람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서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구촌에서 어렵게 사는 이웃에게 관심을 갖고,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청 소년이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지지하는 일이다. 후원금을 내거나 결 연으로 돕는 방법이 있고, 직접 땀을 흘리며 함께 사는 길도 있다.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은 10여 년 전부터 히말라야의 한 골짜기 에 있는 베시 마을에서 주민들과 행복한 마을 만들기를 하고 있다. 네팔 품을 통해서 마을 청년들이 일꾼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청소년 이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이 책은 청소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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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사 |

공동체 ‘품’이 베시 마을에서 꿈꾸고 함께 실천한 이야기 모음집 이다.

농촌복지활동가 양성사업을 하는 참여복지센터가 품의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이유는 지구촌의 농촌복지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구촌 어디에 있든 농촌은 ‘생명창고’이고 농민은 먹고 사는 삶을 책임지고 있다. 이 책은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에서 실천하자”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과 지구촌복지를 꿈꾸는 사회복지 사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독자 여러분은 행복한 베시 마을의 이야 기를 읽고 지구촌이 더불어 사는 길을 찾길 바란다.

20년간 청소년의 꿈을 키우는 데 몸을 바친 심한기 대표를 비 롯한 품의 활동가와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주주 여러분께 경의 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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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역에서 세상의 변혁을 꿈꾸던 젊은이들 구 슬을 꿰는 마음으로 청소년과 20년을 더불어 살았다 인 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의 로운 마음으로 꿈을 키웠다 벗 들과 함께 한반도에서 히말라야까지 품 었다 청 소년문화공동체! 소 박한 밥상을 나누는 마을 공동체 년 간사업을 주주들께 보고하면서 문 화복지를 알차게 일구었다 화 려하지 않지만 세상을 바꾸었다 공 동체는 또 다른 공동체를 살리고 동 심동체(同心同體)- 한마음 한 몸 체 험을 이론화하면 지구촌복지공동체 만들기 2012년 7월 광주대학교 이용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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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이 책을 읽어봐야 할 당당한 근거들 |

“A Guest as a 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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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으로서의 손님.’

네팔과 한국 청년들의 교류 워크숍을 하기 전 우리의 의도를 담 은 멋진 프로젝트 이름을 논의하던 중 김월식 작가가 툭하고 내 뱉은 말이다. 이 이름이 정해진 이후로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이하 품)의 외부 간판은 물론 네팔의 이야기를 전하는 강의나 사례발표 의 제목에도 꽤 많이 사용했다. 완전한 손님도 아니고 완전한 주 인도 아닌 ‘주인으로서의 손님’은 이 책에서 담고자 하는 본질적 의미와 다르지 않다. 자기 정체성과 근원적 가치들이 흔들리지 않 으면서도 타자의 문화와 태도를 수용하며 존중함은 물론 상호간의 소통이 가능한 의미로서의 ‘주인으로서의 손님’은 당연히 본 서문 의 제목으로도 마땅하다.

품은 한국에서 청소년문화운동으로 활동한 20년 동안의 시도와 경험이 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국제개발이나 국제교류 등을 시 도한 굵직한 선배 단체들이나 엔지오 조직들과 비교하면 아주 미 약한 초보단체에 불과하다. 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일을 저지르는 선무당’처럼 빛나는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며 다양한 시도와 실패 를 반복할 수 있었기에 지금의 성찰과 성장이 가능했던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은 ‘국제 엔지오 활동과 글로벌 복지의 대안적 실 천사례’이다. 제목이 다소 길고 거창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실천사례는 하나의 모범정답이 아닌 조금 다른 방식으로 고민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실천사례일 뿐이다. 그런데 어떤 근거로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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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는가? 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그에 대 한 답은 나름 명료하다.

품은 국제개발, 국제교류 등과 같은 전문적 영역에서의 지식이나 경험은 없지만 한국에서, 특히 지역과 마을 안에서 십대들을 만나 고, 청년들을 흔들고, 자발적 조직들을 만들어내고, 문화적 소통과 실천들을 시도했던 20년의 시간들이 있었다. 네팔을 포함해서 아 시아 국가이건 아프리카이건 인간의 생존과 일상, 행복의 가치들 은 문화와 언어의 차이와는 상관없는 ‘원형(archetype)’들을 지 니고 있다.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이 이제는 가난한 나라들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하지만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본질의 차이 는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초고속의 경제성장과 문명의 발달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아야 할 것들이 어쩌면 더 많을 수 도 있다. 이 책은 주는 자로서의 오만함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본 질을 잃지 않으며 서로의 교감과 소통과 성장을 근거로 한 문화적 접근으로서의 국제 엔지오 활동의 실천사례로서 제시하고자 한다.

이 책은 관련한 전문서적이나 논문 등의 외부자료를 참고하지 않았고 우리가 직접 학습하고 경험하고 성찰했던 내용들로 구성했 다. 그리고 실제 이 모든 과정에 참여한 주인공들이 책의 집필자로 참여했다. 20년 동안의 경험들이 네팔에서의 7년 속에 녹아 있다 고 할 수 있으니 전문서적이 아닌 치열했던 ‘현장 일기’와도 같다. 품이 잘하는 일 중의 하나가 ‘기록’이다. 품은 업적을 드러내거나 업적을 치장하기 위한 기록이 아닌 ‘소통과 성장을 위한 기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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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한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필요한 고민은 물론 현장에서 의 소통과정, 그 과정들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다시 예측하고 성 장할 수 있는 기록들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 책으로서의 기본적 인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다.

책의 구성은 총 4막으로 이루어진다.

막이 시작되기 전의 인사말은 늘 품의 활동을 지지하며 이 책의 출판을 도와주신 광주대학교 이용교 교수님께서 맡아주셨다. 책 출 판의 근거와 배경을 설명하는 서문과, 글을 마무리하는 에필로그는 품의 심한기 대표가 맡았다.

1막에서는 품의 대표인 심한기가 그동안의 학습과 경험을 근거 로, 국제활동을 실천하는 활동가들과 국제자원활동을 꿈꾸고 있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근원적 고민들과 품이 히말라야 네팔을 만나게 된 기막힌 인연의 배경들을 담았다.

2막에서는 한국 품과 네팔 품을 오가며 상호간의 연결지점들을 찾아 현장에서의 활동과 지원을 조율한 근무경력 10년 차의 강명 숙 선생이, 그동안 베시 마을과 함께 만들어왔던 과정과 결과들을 핵심적인 키워드별로 정리했다.

3막에서는 네팔에서 5년째 살고 있는 이하니 선생의 살아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학자나 연구자의 입장이 아닌 ‘주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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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 손님’으로 경험하고 터득한 과정 중에서 꼭 나누어야 할 중 요한 단서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냈다.

마지막 4막에서는 ‘허실로 베시가웅’의 주인공들인 파견 활동 가, 파견 자원활동가, 네팔 현지 학교의 교사와 청년들은 물론 베 시 마을 사례를 논문으로 발표한 대림대학의 우수명 교수의 글, 모 든 이들의 스승인 네팔의 동시작가인 ‘람 바부 수베디’ 선생이 전 하는 ‘허실로 베시가웅’에 대한 솔직한 증언(?)들이 담겨져 있다.

그간의 과정을 기록하고 다시 정리하고 이를 근거로 또 다른 가 능성을 찾아가는 일은 실제 현장에서의 실천만큼이나 중요함을 확 인했다. 다른 이들과의 교감과 공유를 위한 출판이라는 기회가 오 지 않았다면 이만큼의 정리는 힘들었을 것이며 이를 통한 내부적 성장도 크지 않았을 것이다. 기록을 정리하고 다시 바라보고 다시 글을 써내는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경험이며 학습이며 성찰이었 다. 집필에 참여해준 분 소중한 사람들, 책의 출판을 가능하게 해준 광주대학교 참여복지센터와 이용교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12년 여름 우이동 자락 ‘품’에서 품청소년문화공동체 대표 심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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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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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막 21

1막 1장. 주는 자의 몫, 받는 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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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와 함정에 대한 프롤로그

27

떠나려는 자들의 오류

34

오류와 반성 그리고 성찰

42

1막 2장. 히말라야 그리고 네팔

43

여행이 만들어준 기막힌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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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그리고 네팔

52

실패가 만들어준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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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65

2막 1장. 흐름으로 보는 허실로 베시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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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으로 보는 허실로 베시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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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허실로 베시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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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2장. 관계 맺기로부터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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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아래의 작은 마을 ‘베시’

78

관계 맺기를 통한 희망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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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로 말 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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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3장. The story of Happy Village

92

청년, 마을의 중심으로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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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변화는 곧 마을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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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연결을 중심으로 한 문화교류사업과 청년 자원활동가의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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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시 마을과 함께 성장하는 엔지오 네팔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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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 149

3막 1장. 남의 땅에 들어갈 땐 모자를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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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삶에 끼어들다

154

‘비뎨시(외국인)’가 범할 수 있는 오류

165

금보다 귀한 현지 문화

171

어떻게 모자를 벗을 것인가?

175

3막 2장. 자연스러움과 치열함을 넘나들기

176

우리의 기획서에는 그들의 일상이 없다

180

말! 말! 말!

184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가?

188

‘공동체’ 어렵게 풀어갈 일이 아니다

194

아름다운 결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199

나를 웃기고 울리는 사람들

204

축제가 마을을 자라게 한다

209

결국 드러나게 되어있는 일상의 진정성

217

소통과 연대는 또 다른 희망을 낳는다

223

원래 하고자 했던 일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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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막.

희망과 가능성에 대한 증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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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노허라 학교의 교사입니다

233

나는 베시 마을의 청년입니다

_ 꺼멀리 시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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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시 마을의 청년입니다

_ 무나 시레스터

240

나는 실무자가 아닌 한 사람의 주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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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시 마을을 지켜본 네팔의 교육자입니다

250

나는 베시 마을의 자원활동가입니다

_ 안하나

259

나는 베시 마을의 자원활동가입니다

_ 이명화

264

나는 베시 마을의 자원활동가입니다

_ 고그린

268

나는 베시 마을을 연구한 학자입니다

284

_ 러메스 랄 시레스터

_ 이하니

_우수명

에필로그

_람 바부 수베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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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심한기

1장. ‘주는 자의 몫, 받는 자의 몫’ _ 오류와 함정에 대한 프롤로그 _ 떠나려는 자들의 오류 _ 오류와 반성 그리고 성찰 2장. ‘히말라야 네팔 그리고 Good Karma’ _ 여행이 만들어준 기막힌 운명 _ 히말라야 그리고 네팔 _ 치열한 실패가 만들어준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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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1장

주는 자의 몫 받는 자의 몫

 오류와 함정에 대한 프롤로그  떠나려는 자들의 오류  오류와 반성 그리고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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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와 함정에 대한 프롤로그 모든 인간과 사회 속에는 다양한 오류와 함정들이 존재한다. 스스로가 만들어낸 오류와 함정도 있고 타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오류와 함정도 있다. 또한 개인만이 아닌 집단과 사회가 가지는 집단적 오류와 함정들 역시 늘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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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시작을 ‘오류와 함정’이라는 부정적 제목으로 시작할 수밖 에 없는 이유가 있다. 저개발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국제개발, 국제 자원활동, 엔지오(NGO) 활동 등에서 알고는 있지만 늘 놓치고 있 는 오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중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일 방적이고 분리된 논리, 그 논리에 숨겨진 현장에서의 오류들을 경 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수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주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연민과 시혜, 편견과 자만과 같은 오류와 함정들이다. 이 는 개인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고 사회적 인식에서부터 만들어 지기도 한다.

특히 저개발국가를 중심으로 한 국제개발이나 자원활동과 관련 한 거의 모든 이미지들은 매우 단순한 공통점이 있다. 배고픈 아이 들의 얼굴과 몸이 부각되고, 무언가를 받고 즐거워하며 손을 흔들 거나 춤을 추는 모습들이 부각된다. 단체의 로고와 메시지가 들어 간 조끼를 입은 청년들이 건물을 고치고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는 장면들 역시 줌인(zoom-in)된다. 때론 유명한 연예인이 등장하여 가난한 어느 나라의 마을에 머물면서 집을 고치거나 아이들을 돌 봐주며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이러한 아주 보편적인 장 면들이 진실을 왜곡한 거짓이거나 불손한 의도가 담긴 연출이 아 님은 확실하다. 하지만 한쪽의 사실(fact)만을 강조함으로써 발생 할 수 있는 오류와 함정일 수도 있음을 의심해봐야 한다. 즉 주는 쪽과 받는 쪽의 일방적 시선과 이미지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는 가난한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받아야만 생존하거나 행복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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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며, 주는 자들은 아낌없이 주어야만 서로의 삶이 평등해지거나 행복할 수 있다는 오류들을 만들어낸다.

실제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받음으로써 행복한 것일까? 물론 수많은 아이들이 밥을 굶고 기본적 교육을 받지 못하며 열악한 노 동에 시달리는 현실들, 간단한 의료시설이 없어 가벼운 질병에도 사망하는 극심한 위기상황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 한 어려움에는 반드시 도움과 지원의 손길이 필요하다. 하지만 당 장 시급한 현실적 어려움들을 해결하는 것이 국제개발이나 엔지오 활동의 전부는 아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판 단되는 사람들에게도 그들만이 지닌 삶의 역사와 문화와 지혜가 존 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주는 자와 받는 자로서의 일방적 접근이 아 닌 상호적 배움과 통찰이 가능하며, 서로 나눌 수 있는 무한한 일 상들 역시 함께 존재함을 인식해야 한다.

국제 엔지오 활동과 관련한 단체들의 홈페이지나 프로젝트 기획 안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단어가 ‘Mutual’이다. ‘Mutual’은 상호적 당사자성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단순히 당사자의 입 장에 대한 배려 차원이 아니라 상호적 관계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당사자에 대한 깊은 인식과 통찰 없이 진행되는 일방 적 지원이나 도움은 받는 자들의 자발적 동기와 의지를 방해할 수 있으며 그들의 삶을 수동적으로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역효과를 가 져올 수도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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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자’들이 가지는 ‘불손한 이익의 전략’*들은 어떠한가? 국 가 차원에서 지원하는 대규모 원조와 개발 프로젝트들은 ‘인간에 대한 존중’만을 근거로 한 선행은 아니다. 아이티 지진참사 현장에 미국의 군인들이 버티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가난한 네팔 땅 에 대규모 병원과 티베트의 라사에서부터 거대한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 카트만두를 잇는 대규모 도로 건설을 지원하고 있는 중국의 의도는 무엇인가? 힌두교와 불교의 정신적 에너지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학교를 지어주고 빵을 줄 테니 교회에 나와야 한다는 의도는 무엇인가? 언젠가 나의 스승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모든 것들의 의도는 ‘Give less and Take more’에서 시작 하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지 않겠나?”

주어야 하는 것들과 받아야 하는 것들을 그만두자는 말은 아니 다. 국제개발이나 원조, 엔지오 활동, 글로벌복지를 꿈꾸는 사람은 물론 이와 무관한 사람일지라도 세상에 숨겨진 불손한 의도와 흐 름 또는 스스로의 오류와 함정들에 대해 ‘의심과 통찰’을 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삶과 절대 로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주는 자와 받는 자가 가져 야 할 첫 번째 몫은 스스로 가져야 할 판단력이다.

*

여기에는 국가의 이익과 전략은 물론, 단체나 조직이 의도하는 이익과 전략 그리고 개인의 이 익과 전략들이 혼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익과 전략이 부당한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무엇 에 근거한 것인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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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한민국에서는 G20과 세계박람회가 열렸고, 앞으로 동계 올림픽, 유니버시아드와 같은 굵직한 세계대회가 열린다. 정부는 이제 우리가 ‘성숙한 국가와 성숙한 시민’이 되었다고 한다.

떠나려는 자들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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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한민국에서는 G20과 세계박람회가 열렸고, 앞으로 동 계 올림픽, 유니버시아드와 같은 굵직한 세계대회가 열린다. 정부 는 이제 우리가 ‘성숙한 국가와 성숙한 시민’이 되었다고 한다. 그 러나 대한민국이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성장하고 있음은 확 실하지만 ‘정신의 성장’도 함께 되고 있는지?는 고민해 볼 문제다.

우리가 제3세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로 성장하면서 정부 지원을 받은 청년(대학생)*들의 해외 나들이도 부쩍 늘어가고 있다. 2010년 이후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대학사회봉사회에서 추진한 대 학생 대상의 2~3주간 단기 해외파견봉사자 수는 1,300명을 넘었 다. 또한 각 대학에서 추진하고 있는 방학 중 해외자원봉사활동의 경우 한두 번의 형식적인 사전 교육만 진행된 채 100명이 넘는 학 생들이 마치 단체 수학여행이나 군대파병(?)처럼 보내지고 있다. 이외에도 많은 정부지원단체와 종교기관 등에서 파견되는 대학생 또는 자원활동가들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자원활 동은 국가의 정책이면서 동시에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 는 20~30대 청년들의 보편적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깊은 고민이나 준비 없이 진행되는 현재의 해외자원활동은 시간과 돈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주는 자로서의 오류와 함정에 빠지는 경우도

*

제3세계에 해외자원활동과 관련해서 단기 일정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아 파견되는 청년들을 선발하는 보편적인 자격기준에는 여전히 대학 재학생들이 더 유리하다. 평화와 평등을 내세우 는 파견 사업의 학력에 따른 선발기준은 과연 평등한 것인가? 그리고 물리적 나이로서의 청년 이 아닌 깊고 다양한 삶의 경험을 가진 늙은 청년들이 참여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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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늘어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왜 우리는 다른 세상으로 떠나려 하는가? 개인적으로 아끼는 제 자 한 명이 개인경비를 들여 캄보디아로 자원활동을 떠난 적이 있 다. 깊은 고민이나 준비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도우려는 조금은 막 연한 생각만을 가지고 한국의 모 재단에서 지원하는 빈민 지역에 있는 학교의 한국어 교사로 스스로 파견을 나갔다. 그 친구가 떠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놀라운 메일 한통을 받았다.

이곳은 현지인이 운영하는 NGO로서 재정부분에서 미국 등의 서양 국가 등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도 오 스트레일리아(현지 International school students)에 서 이곳 기관을 방문했는데, 완전 난리가 났습니다. 며칠 전부터 캄보디아 전통 춤을 연습시키고(춤 관람 시간만으 로 거의 한 시간이나 지났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고서 참 화가 났습니다. 기부를 받기 위해 아이들 모두 완전 분 장 시키고, 한 시간 이상, 오스트레일리아 학생들 앞에서 웃으며 춤을 추게 하는 모습을 보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 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곳과 교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라면, 이곳 아이들과 함께 같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 하여 아이들과의 교감을 하면 좋을 것을… 무슨 관광지에 온 것처럼 한 시간 가량 이상을 그들 앞에서 춤을 추다니 요. 한 시간 가량의 쇼가 끝나고 오스트레일리아 대표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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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장에게 기부를 하고 아이들과 몇 마디 인사 후 떠났습 니다. 그리고 이들은 돈을 벌었습니다. 기관장은 아이들에 게 잘했다고 용돈을 줍니다. 기관장의 이러한 태도는 아이 들이 춤추고 난 후 돈 받는 것에 익숙하게 학습시켜버리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잠시 있다가 갈 봉사 자라 너무 많은 것을 이들에게 바라서는 안 되지만, 그래도 제가 가진 가치와는 너무 거리가 먼 것 같다는 생각을 합 니다. 제가 제 돈을 내고 좋은 마음으로 봉사활동 길에 오 른 취지는 저에 대한 또 하나의 투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번 봉사경험을 통해 제가 더 성장하게 될 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믿고 있었기에 왔습니다. 하지만 제 가 잘못 선택했나 하는 ‘후회’를 했습니다. 이런 경험 또한 저에게 살이 되긴 하겠지만 계속해서 이런 생활들은… 절 오히려 지치고 낙오하게 만들 것 같기 때문입니다. (중략)

아이들을 보면 좋습니다. 너무나 해맑은 아이들은 제가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녹여버립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저는 정말 힘이 나질 않습니다. 기관장의 태도를 보면 정말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기관장은 이곳 에서 렉서스를 타고 다닙니다. 그 딸은 스무 살 정도 밖에 안 됐는데 도요타 차를 타고 다닙니다. 아이들은 매우 열 악한 건물에서 잠을 자고(저도 그곳에서 생활합니다) 이들 은 시멘트로 튼튼히 지어진, 지붕이 제대로 있는 집에서 넓 게 삽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의 재정 운영도 신뢰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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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습니다. 온통 불신감밖에 없습니다. 무슨 야메로 봉사활 동 온 기분입니다. 이곳 사람들의 특성일까요? 이런 형태 또한 이들의 스타일일까요? 저는 온전히 이들의 특징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그림자가 되어 제가 맡은 일을 하며 조 용히 이들을 지켜봐 줘야 할까요? 저는 고민입니다. 정말 진지하게 고민이 됩니다. 저는 이곳에서 힘이 없습니다. 바 꾸고 싶어도 저는 이들에게 잠시 스쳐가는 사람일 뿐입니 다. 그래서 저는 바꿀 수 없는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힘 이 듭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이와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이 난처한 상황들을 어떻게 이 해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 이 상황이 해외자원활동의 보편적인 현 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메일을 보낸 주인공의 근본적인 고민은 제 3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자원활동가의 고민들과 연결된다. 현장에서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서 직접적인 경험들로만 판단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으며, 지혜로운 선택을 하거나 문제를 원활하게 해결할 수 있는 확률 역시 매우 희박하다. 이 사례와 같은 문제를 단순하게 좋다 혹은 나쁘다로만 판단할 수도 없으며, 기관장의 도 덕성이나 운영방식 등에 대한 문제 제기와 판단만으로는 본질적인 해답을 찾기 어렵다.

예전에는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개인적 여행을 떠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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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의미 있는 떠남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 아지고 있다. 이처럼 개인적인 여행을 넘어서 남을 돕거나 무언가 를 나눠보려는 의도가 있다면 깊은 고민과 준비가 있어야 한다. ‘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상식적인 개념을 넘어서는 고민과 준비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을 제대로 읽어내고 바라보는 스 스로의 ‘눈’을 키워내는 일이다. 물리적으로 판단되는 타인의 아픔 이나 고통을 이해하는 것만이 아닌 전 지구의 역사적 흐름 안에서 연결되고 있는 권력과 힘, 부와 빈곤, 지역과 문화, 소통과 갈등과 같은 통합적인 삶의 구조들을 스스로 읽어내고 판단할 수 있는 꾸 준한 공부와 준비가 필요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는 ‘눈’이 없다면, 오직 스스로의 경험에 의한 반성이 나 부분의 감동만이 남을 뿐이다.

“‘수영장이 크냐? 작으냐?’고 묻는데 ‘아름답다’고 대답하는 아 이, ‘콜라가 좋으니? 사이다가 좋으니?’라고 묻는데 ‘주스가 좋다’ 고 대답하는 아이, ‘기브 미 워터’를 가르치는 미국인에게 ‘목마르 지 않다’고 대답하는 아이티에 사는 한 아이”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가 쓴 「가난한 휴머니즘」에 등장하는 글이다. 가난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해결하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가난한 자에 대한 연민이 아닌 가난한 자가 지닌 가능성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하며, 가난을 야기한 수많은 근원들을 인식하고 분노할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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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가난한 자’라는 고정된 판단을 벗어나 존재로서의 인식이 가능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로부터 우리가 잃 고 있었던 소중한 삶의 원형들을 배울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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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와 반성 그리고 성찰

인도와 네팔인들의 일상적 인사말인 ‘나마스테(Namaste)’라는 단어 속에 ’당신의 신께 경배를 드립니다‘라는 놀라운 의미가 담겨 있음을 머리가 아닌 몸과 정신으로 깨닫기까지는 적지 않은 오류와 성찰의 시간들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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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은 세계 10대 빈곤국가 중에 하나이다.  네팔의 1인당 국민소득은 300불이 되지 않는다.  네팔은 경제적 후진성과 비동맹, 중립외교 등으로 인해 해외원조에 의존한다.  네팔은 카스트 제도가 남아 있으며 남녀차별과 인권침해 등의 문제가 많다.  네팔은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자연이 있으며 가난하지만 순수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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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을 소개한 정보책자나 각종 보고서 등에 자주 등장하는 문 장들이다. 이 같은 표현들은 일반적으로 제3세계 국가를 설명하는 공통주제이기도 하다. 나 또한 히말라야 네팔과 그곳의 사람들을 처음 만났을 때 가난한 나라, 도와줄 일은 많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있는 그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잘사는 나 라에서 온 외국인이었으며 그것만으로도 많은 관심과 존중을 받았 다. 나의 무의식 속에는 잘사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보이지 않 는 특권과 혜택, 스스로 만들어낸 자만심 등이 오랜 시간동안 존 재했다. 이는 나 스스로 만든 수많은 ‘자발적 함정’들의 시작이었 다. 이처럼 가난을 비롯한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무언가를 ‘준 다’ 또는 ‘도와준다’라는 행위에서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들 중 하나가 스스로가 느끼지 못하는 자만이며, 이는 그대로 이들이 가 지고 있는 깊은 가능성들을 발견하는 과정에 적지 않은 방해가 된 다. 그리고 주는 자들이 가지는 함정은 결국 받는 자들에게도 커 다란 영향*을 준다.

가난한 나라 네팔에는 잘사는 나라에서 온 수많은 원조단체와 자원봉사기관들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코이카(KOICA)를 중심으로 한 정부 차원의 지원은 물론, 꽤 많은 종교단체와 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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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홀로 사시는 독거노인들이 자신을 도우러 온 사회복지사나 자원봉사자들을 만나면 평소보다 더 어려운 이야기만을 하거나 힘든 모습만을 보이려 하는 것과도 같다. 받기만 하는 것에 익숙해진다면 어렵지만 삶의 의지가 있던 어르신들조차 ‘나 아직 튼튼해, 살 만하다고!’ 를 말하기보다는 ‘늙은이가 빨리 가야지!’를 반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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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의 지원사업들이 네팔을 돕고 있다. 가난한 이들에게 빵과 연 필을 주고 학교와 도로를 만들어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지만, 주기 만 하는 것에 집중된 과정들은 받는 자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네 팔에서 진행되고 있는 수많은 지원 프로젝트 중에 ‘네팔의 가능 성, 네팔의 가치, 네팔인들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 에너지’들을 찾 아내는 사례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렇게 진행되는 일방적인 지원 들이 결국 네팔인들의 삶을 수동적으로 만들어가고 있지는 않은 지 반성을 자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히말라야 네팔을 방문하 는 잘사는 나라의 사람들 중에는, 어느 시골마을의 허름한 학교에 잠시 들러 관대한 환영 세리머니를 받은 답례로 학용품이나 과자 상자 더미들을 선물하고 있거나, 자국에서 모금한 돈으로 근사한 학교를 지어주고 후원자의 이름을 새긴 요란한 현판식을 하고 있 을지도 모른다.

이제 네팔 사람들의 눈에는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 아름다운 소통 의 대상이 아닌 무언가를 받아내야 하는 존재로만 보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자발적 복종’*을 강요한 결과일 수 있다. 과연 잘사는 나라와 가난한 나라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경 제적 수치와 삶과 연결된 물리적 환경만이 그 기준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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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오랫동안 히말라야의 땅에 살면서 지니고 있던 가치 있는 문화와 전통과 관습과 생활태 도 등을 지켜내거나 새로운 삶의 구조로 변화시키려는 노력보다는 해외원조에 기대어 사는 수 동적 삶의 방식들이 고착되고 있다. 결국 그들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잃어가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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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가끔 국가 간 행복수치가 발표될 때 우리보다 행복수치 가 높은 가난한 나라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깊지 않다. ‘그래! 가난하지만 순수하잖아! 그곳에 여행이나 가볼까?’ 정도를 넘어서 지 못하고 물리적 가난함 속에 숨어 있는 오래된 과거와 현재를 읽 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찾아내고 배우는 것’보다는 ‘주는 것’에 더 익숙해지고 있으며 그들 역시 ‘다시 발견하거나 회복하 고 나눠주는 일’보다는 ‘받는 것’에 더 익숙해지고 있는 것은 아 닌가. 조금 다른 시각으로 히말라야 네팔을 바라보면 아주 행복한 네팔에 대한 소개가 가능함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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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은 이기적인 개발의 속도가 아닌 행복한 사람의 속도로 살아가는 나라 중 하나이다.  네팔은 매력적인 다민족, 다문화 사회이며 종교간 대립과 갈등이 심하지 않다.  네팔은 문명사회가 잃어가고 있는 지역공동체, 생활공동체로서의 삶을 지켜가고 있다.  네팔은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자연이 있으며 가난하지만 순수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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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네팔에서 보낸 지난 8년 동안 얻은 가장 귀한 반성과 성찰은 주는 자와 받는 자로서의 구분이 아닌 각자가 지닌 본질 적 가능성에 대한 대등한 교류와 상호적 믿음, 순환적 에너지의 교 환이었다. 즉 평등한 태도와 믿음들을 만들어가는 일이었다. ‘내 가 당신에게 뭔가를 주었으니 당신은 나에게 감사해야 한다’ 식 의 강요가 아닌 상대방의 진정성을 교감할 수 있는 삶의 노력들에 집중하게 되었다. 인도와 네팔인들의 일상적 인사말인 ‘나마스테 (Namaste)’라는 단어 속에 ‘당신의 신에게 경배를 드립니다’라는 놀라운 의미가 담겨 있음을 머리가 아닌 몸과 정신으로 깨닫기까 지는 적지 않은 오류와 성찰의 시간들이 필요했다. 그렇게 각자가 지닌 본질적 가치를 인식하고, 일방적인 관계형성이 아닌 쌍방의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주는 자이건 받는 자이건 서로가 가져야 할 본분과 본질을 배울 수 있으며 결국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라는 획일적 경계를 허물 수 있다. 받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누군가에게 또 다른 선물을 내밀기보다는 받는 것에 대한 진정성을 알리려는 노력이 먼저이다. 마르쿠제가 역설한 ‘위 대한 거부’라는 뜻이 무엇인가? 주는 것을 당당하게 거부할 수 있 고, 받는 것을 당당하게 거부할 수 있는 ‘정신의 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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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2장

히말라야 네팔 그리고 Good karma  여행이 만들어준 기막힌 운명  히말라야 그리고 네팔  치열한 실패가 만들어준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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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만들어준 기막힌 운명

내 나이 35세 때 생애 처음으로 홀로 떠나는 배낭여행을 했다. 지금 분위기로 생각하면 거의 효도관광을 떠나는 것처럼 아주 늦은 시기의 첫 배낭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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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35세 때 생애 처음으로 홀로 떠나는 배낭여행을 했다. 지금 분위기로 생각하면 거의 효도관광을 떠나는 것처럼 아주 늦 은 시기의 첫 배낭여행이었다. 35세의 늙은 청년이 설레는 마음으 로 배낭을 꾸리고 한없이 들뜬 가슴으로 지도를 읽어 내려가며 새 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었던 힘은, 십대 시절부터 지금까 지 꾸준하게 성장시켜왔던 ‘당당한 청년으로서 그리고 스스로 그 러한(self-so) 정신의 에너지’였던 것 같다. 35세 당당했던 첫 배 낭여행은 인도 북부를 시작해서 히말라야 네팔에서 마감되었고, 그 때 만났던 히말라야와 그곳에 기대어 살고 있는 사람들, 청년들, 아 이들에 대한 기억들이 7년 후 히말라야 네팔에 또 하나의 ‘품’을 만들게 한 힘이 되었다. 나는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아이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우리 강의 뿌리, 우리 바다의 뿌리, 우리 산의 뿌리, 우 리 삶의 뿌리를 찾아다닌 온전한 국내산 토종닭이었다. 그러한 내 가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를 나누며, 결국 우리의 삶 은 고정되거나 정해진 시공간이 아닌 세상 어느 곳이든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준 곳과 사람들이 바로 히말라야 네팔이며 그곳 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2006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작은 사무실 하나를 임대하여 ‘NGO NEPAL PUM’을 시작했다. 2000년 첫 히말라야 여행에 서 만난 네팔 친구, 품에서 파견한 활동가 1명과 함께 국제 엔지 오단체가 아닌 네팔 현지 엔지오 단체로 등록을 했다. 국제 엔지 오 단체로 등록을 하지 못한 이유는 1년에 평균 1억원 이상의 사업 비가 있어야 함은 물론 조직과 운영 등의 등록 규정이 까다로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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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이다. 소박한 활동으로 시작하려는 우리의 의도와도 맞지 않 았다. 국제 엔지오 활동이라는 개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 다. 기존의 고정된 개념으로만 접근했다면 ‘엔지오 네팔 품(NGO NEPAL PUM)’은 시작하지 못했다. 반드시 국제 엔지오 단체에 등록된 거대조직이 아니라도, 현지인이 세운 조직에서도 다양한 활 동을 할 수 있으며 개인의 의지에 따라서 조직이 아닌 1인 엔지오 로서도 활동이 가능하다. 즉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가, 또는 어느 만큼의 환경이 보장되어 있는가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판단과 의지, 용기에 따라서 선택의 폭은 다양해질 수 있다. 네팔 품의 탄생은 준비된 의도와 목적에 의해서가 아닌 여행으로 시작 된 운명적 만남으로 시작되었고, 그곳에서의 만남과 경험들이 쌓 여가면서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함께 성장하며 나눠볼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들을 만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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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눈에 보이는 히말라야의 모습은 어쩌면 단순한 풍경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히말라야의 진정성은 눈으로만 보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그리고 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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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와 각인된 풍경에는 의미가 부여된다. “지도상 어디에도 없는 곳이 된다. 진정한 장소들은 실재하지 않는다.” 산이나 숲 등 보이는 부분은 설명할 수 있다. 심지어 상상의 개념들도 받아들여 정상에서 맛보는 영광을 재현할 수 있다. 하지만 감추어진 힘들, 감각을 넘어 존재하는 지리적 의미는 알기 힘들다. 토착민들처럼 이 풍경을 제대로 정의하려면 다른 눈으로 보고 다른 귀로 들어야만 한다. - 조지 B. 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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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상상의 상징물이다. 특히 최 고 고도가 3000미터를 넘지 않는 낮은 지대에서 살아온 우리의 상상에는 8,000미터가 넘는 천상의 산들은 가깝게 다가가지 못하 는 꿈의 상징일 수도 있다. 히말라야를 꿈꾸는 우리는 설산을 오 르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보통 인도나 네팔, 부탄이나 티베트와 같은 나라들을 생각해보면 범상치 않은 정신으로의 여행 과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실제로 그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 들의 여행기와 자랑에는 인간의 정신이나 자연의 위대함 등이 열 거되기도 한다.

인도, 네팔, 부탄, 티베트는 모두 히말라야와 연결된 나라들이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히말라야의 바람과 향 기, 히말라야의 변덕과 넉넉함에 기대어 살아왔다. 하지만 그들의 일상적 삶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고상하거나 정신적이 거나 신비하지만은 않다. 거대한 히말라야의 땅과 싸워온 처절하고 척박한 삶이 그들의 일상이었고, 그 고난한 자연과의 일상 속에서 만들어져 온 것들 중 하나가 숭고한 정신의 역사였다. 우리 눈에 보 이는 히말라야의 모습은 어쩌면 단순한 풍경에 지나지 않을 수 있 다. 히말라야의 진정성은 눈으로만 보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히말라야만이 아닌 다른 민족과 문화와 환경들을 진정성 있 게 만나기 위한 본질적 태도와도 같다. 다른 나라로의 여행이건 일 과 연결된 활동이건 그곳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원형’들과 그 원형들에 연결된 현재의 삶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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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해와 존중은 몇 권의 책이나 짧은 경험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을 만나기 전에 또는 그들과 함께하는 과정에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당연한 자세이며 태도이기도 하다.

네팔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왕이 나라를 통치하는 왕국(The kingdom of nepal)이었으나 2008년에 네팔연방민주공화국이라 는 민주국가로서의 외형적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왕의 독재와 권력에 대항하는 민중 세력들이 성장했고, 그중 중국 의 마오이즘(Maoism)*을 따르는 네팔 공산당인 마오이스트(Maoist)들이 최근 네팔의 제1정당으로까지 성장했다. 왕권이 무너진 이 후에도 네팔은 여전히 정치적인 혼란과 불안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며 경제적 환경 역시 매우 취약하다. 네팔은 GNP(국 민총생산)가 300달러도 안 되는 세계 10대 빈곤국가에 속한다. 한 반도의 면적보다 조금 넓은 땅에 약 2,5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 는데, 그중 5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아직도 해발 1500~3000미 터 사이의 히말라야 산간마을에서 거주하고 있다.

네팔의 종교와 문화, 거주 민족의 형태는 쉽게 설명할 수 없을 정 도로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90개 이상의 다양한 민족들이 살고 있으나 인도 출신의 인도-아리안 계통의 민족들이 주요한 권력을 지니고 있고, 티베트 몽고 혈통의 민족들은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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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마오쩌둥이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발전시킨 독자적인 혁명사상으로 마르크스레닌주 의를 근원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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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네팔은 힌두국가이지만 히말라야를 넘어온 티베트 불교와 인 도 불교 그리고 토착종교 등이 복잡하게 융합되어 있으며 인도 힌 두교에서 시작된 카스트 제도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 있기도 하 다. 이처럼 네팔은 다양한 민족과 종교 등이 서로 혼합되어 있으며, 외형적인 대립과 갈등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다민족 국가가 지니 는 근원적인 과제들은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이러한 네팔의 모습 을 ‘Tolerance but not Assimilation’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세계의 지붕이라고 말하는 거대한 히말라야에 기대어 살고 있 는 네팔. 산악국가 또는 빈곤국가로만 알려져 있는 네팔에는 문명 의 세계가 잃어버린 그들만의 생활공동체가 존재한다. 경제적으로 는 빈곤국가이지만 농업을 중심으로 한 지역공동체가 유지되고 있 는데, 이는 일상적인 삶 속에 녹아 있는 종교와 문화와도 연결된 다. 이는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개인의 삶과 집단의 삶이 관계 중심의 소통을 통해서 연결되는 우리의 전통적 지역공동체와도 다 르지 않다. 하지만 2009년대 이후 해외원조의 증가와 함께 늘어난 네팔 내 엔지오 단체 및 INGO (International NGO)단체의 증 가*, 서구 자본주의의 유입 등으로 그들의 전통적 문화와 공동체들 이 흔들리고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겠지만 해외원조나

* 우수명, “네팔 품의 국제 지역사회복지 실천 사례 연구”, 한국지역사회복지학회 논문에 따르면 네팔은 서방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국가였으나 히말라야 등반과 일반인을 위한 트레킹이 성황을 이루 면서 자연스럽게 네팔의 상황과 어려움들이 전달되었고 이후 해외원조와 엔지오 단체들이 급속하게 늘어나게 되었다. 2002년 기준 네팔 내 엔지오 단체는 1만 3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네팔 내 한국 INGO 단체 역시 2002년에 불과 3개였지만 2010년에는 공식적으로 등록된 단체만도 15개이며 비공식적 지 원활동 단체를 포함하면 2012년 현재 3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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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O 단체의 증가가 그들의 문화와 공동체를 약화시키거나 퇴 보시킨 근본적 원인들에 주목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해외원조와 국제 엔지오 단체들의 지원과 활동이 시급한 빈곤문제를 해결하 는 긍정적 성과도 있었지만, 일방적 원조에 따른 ‘수동적 삶으로 의 변화’라는 역기능들도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그들이 오랫동안 히말라야의 땅에 살면서 지니고 있던 문화와 전통, 공동 체적 환경과 능동적 생활태도 등의 변화는 적지 않았다. 즉 그들 의 문화와 공동체적 환경을 스스로 지켜내거나, 새로운 삶의 구조 로 변화시키려는 능동적 노력보다는 해외원조와 지원에 기대어 사 는 수동적 삶의 태도들을 부추기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화장실 창문으로 본 히말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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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실패가 만들어준 희망 불교와 힌두교가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히말라야 네팔에서 ‘업(業, Karma)’은 매순간 자신이 일으킨 마음에 의해 말과 몸으로 짓는 행위로서 또는 윤회(輪廻, Samsara)의 사슬로서 전생에서의 행위가 이생에서의 삶을 결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의 필연적 업이었는지 아니면 평범한 우연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히말라야 땅 네팔에서의 운명적인 만남과 교감은 올해로 7년을 넘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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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힌두교가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히말라야 네팔에 서 ‘업(業, Karma)’은 매순간 자신이 일으킨 마음에 의해 말과 몸으로 짓는 행위로서 또는 윤회(輪廻, Samsara)의 사슬로서 전 생에서의 행위가 이생에서의 삶을 결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 의 필연적 업이었는지 아니면 평범한 우연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 지만 히말라야 땅 네팔에서의 운명적인 만남과 교감은 올해로 7년 을 넘어서고 있다. 2006년 네팔에서 엔지오 활동을 시작한 후 거의 2~3년 동안 우리는 스스로 만든 자기 함정들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국내에서 오랫동안 청소년, 청년들과 함께 문화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문화운동을 해왔기에 우리의 눈에는 네팔 에서도 이것이 중요하고 필요해 보였고, 그렇게 무지한 오만으로 첫 활동을 시작했다. “네팔의 청소년과 청년들이 스스로를 깨우치 며 자발적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일들이 확장되기 위해서는 그들 을 만나는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라는 확인되지 않은 가설로 시작된 첫 번째 프로젝트는 ‘한·네팔 문화예술교육 워크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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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직접 확인한 네팔의 교육환경과 방식은 매우 획일적이거 나 단순했다. 그때 당시 국내에서는 공교육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 안으로 ‘문화예술교육’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우리는 3년 동 안 네팔 카트만두의 사립학교연합(SFN)과 연결하여 매년 교사를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 워크숍’을 추진했다. 정부나 민간재단 의 공모사업신청 등에 젖 먹던 힘까지 쏟아가며 지원을 받고, 문 화예술교육 분야에서 나름 이름을 떨치고 있는 최고의 전문가들을 매년 네팔로 공수(?)했다. 의지 있는 교사의 선발, 교육 커리큘럼 개발, 뜻을 알리기 위한 언론홍보, 각종 설문지평가서사례보고 서 발간 등 한국에서 익숙하게 해왔던 방식으로 일을 추진했고 일 의 속도 또한 그곳의 속도가 아닌 한국의 방식을 따랐다. 결국 이 사업에 참여한 많은 품의 활동가와 강사는 물론 네팔 측의 참여자 들 모두 ‘무게와 속도에 시달리는 당나귀’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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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차 프로젝트를 정리하며 뒤늦게 깨달은 것은 ‘아! 우리가 참 으로 오만한 헛짓거리를 했구나!’였다. 3년의 과정들이 모두 헛된 것만은 아니었지만 근본과 본질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우리가 꿈꾸는 ‘지역과 삶의 문화 속에서의 자발적 동기화’를 지속 시키기 위해서는 성공의 속도를 따라가는 대도시의 사립학교보다 는 작은 지역의 정부학교*와 연결하는 것이 더 의미 있었을 것이며, 한국의 환경과 문화 속에서 통용되는 문화예술교육의 방식이 아닌 그들의 문화, 환경 등과 연결할 수 있는 방식을 그들과 함께 찾았 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전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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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많은 사립학교는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처럼 운영되는 곳이 많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 이들은 입학이 쉽지 않다. 카트만두 시내에만 해도 1000개가 넘는 사립학교가 있다. 이에 비해 정부학 부학교는 수가 매우 적고 교육환경도 매우 열악하지만 지역사회(공동체)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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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만이 아닌 그들에게 배워야 할 것들을 찾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 같은 처절한 경험과 반성을 통해서 우리는 활동의 방향과 활동 근거지의 이동이라는 두 가지의 큰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2006~2010년까지 4년 동안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에 근거지(사 무실)를 두고 사립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젝트와 문 화교류사업 중심의 활동에 집중했던 우리는, 2011년부터는 그들의 일상과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판단으로 카트만두에 있는 사 무실을 정리하고 한국에서 파견된 활동가가 박타푸르 근처의 베 시 마을로 들어갔다. 카트만두의 사무실을 정리하고 직접 마을로 들어가면서 얻은 경험적 교훈들은 적지 않다. 활동 단체의 조직이 나 사업의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현지에서 사무국 또 는 사무실을 운영하려면 임대료, 사무집기 등의 운영경비가 필요 하며 그 외 활동하기 위한 교통비, 통신비, 식대 등의 예산들이 추 가된다. 품이 사무실을 정리하고 베시 마을로 이동한 후부터는 이 전에 사무실 운영을 위해 필요했던 예산들이 80퍼센트 이상 절감 되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경제적 효율성만이 아닌 품이 앞으로 어떠한 방향과 가능성들을 만들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길 을 제시해 주었다.

베시 마을은 2007년부터 ‘Happy School Project’라는 이름 으로 학교를 중심으로 한 문화교류 프로그램과 교사 워크숍 등으 로 꾸준하게 관계를 이어온 마을이다. 그리고 베시 마을과 함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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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과정에서 네팔과 같은 나라에서 엔지오 활동이란 이름으로 만 들어갈 수 있는 좀 더 다양하고 근원적 방식의 접근방법과 가능성 들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베시 마을로 일과 일상적 삶의 공 간이 바뀐 후 제일 먼저 드러난 것이 있다면, 그동안 일이나 목적 중심의 관계와 만남들이 일상을 나누는 자연스러운 관계와 만남으 로 변화되었다는 것과, 그들의 살아 있는 삶의 모습과 환경들을 직 접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 고 더욱 중요한 성찰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구체적인 목적을 가 진 프로젝트 중심의 사업적 접근‘에서 ‘함께 삶을 살아가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일상적이고 상호적인 접근’으로서의 가치와 의미 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저개발국가에 대한 지원과 활동은 그곳의 환경과 문화, 그들의 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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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나 필요성에 따라 매우 다양한 각도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긴 급상황 또는 1차적 경제지원 등 ‘지원’으로서의 접근만이 아닌 상 호적 교류와 성장으로서의 접근, 문화적 소통과 나눔으로서의 접근 들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또한 저개발국가에 파견되는 활동가나 자원활동가들에 대한 기존의 지원과 운영 시스템에도 다른 각도 의 접근과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공식적이고 안정적인 체계 와 틀 안에서의 활동도 필요하지만 기존의 틀과 상식을 넘어서는 좀 더 자유롭고 대안적인 시도와 실천이 병행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와 정부가 지원하는 공식조직이나 안정적 기반을 가지고 있 는 국제 엔지오 단체만이 아닌, 지원 환경과 운영기반은 열악하지 만 진정성 있는 의도와 용기를 지닌 소규모 활동단체들을 찾아보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또한 공식적 인정이나 지원을 받는 활동가로서가 아닌 온전한 청년으로서 단체와 조직에 기대지 않고 ‘1인 엔지오 활동가’로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들도 필요하다. 유네 스코 한국위원회에서 추진하는 브릿지사업단*, 코이카(KOICA), 굿 네이버스 등 굵직한 국제단체들이 파견하는 청년 자원활동가들을 위한 지원규모**가 과다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원규모를 따지거나 기대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모은 200만 원으로도 당당한 1 인 엔지오 활동가로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례들도 존재할 수

*

http://blog.naver.com/kncu_bridge/

**

파견국가나 활동내용, 역할 등에 따라 다양하지만 현지에서의 사업비를 제외한 1인당 1년의 활동 및 지원 경비(사전 교육비, 항공료, 체류비, 현지 모니터나 교육비, 귀국 후 현지 적응비용 등)는 적게 는 2천만 원에서 많게는 3~4천만 원 이상이 소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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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야 한다.

품이 네팔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선택한 현재의 활동 방식은 저 개발국가에서 실천되는 모든 엔지오 활동의 보편적 사례가 될 수 는 없다. 하지만 일방적 원조나 지원 중심의 접근 또는 주는 자로 서의 접근들에 대한 대안적 제시로서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다. 얼 마 전 자발적 의지와 개인 자본으로 네팔 베시 마을에서의 자원활 동을 선택한 안하나라는 청년이 1년 5개월간의 시간을 보내고 난 후 마을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전해 들으며 필자의 페 이스북에 남긴 메시지를 소개한다.

작년부터 네팔 베시 마을 자원활동가로 살고 있는 안하나라는 청년이 있다. 꽃동네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마구잡 이 취직을 내려놓고 의미 있는 삶을 준비하기 위한 도전이었 다. 5개월 예정으로 떠났다가 이미 1년 반을 넘기고 있다. 온 전한 자신의 선택은 물론이고 경비까지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떠났고 네팔에서도 그곳 마을 주민들과 똑같은 일상( 먹고, 자고, 일하고…)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안하나는 다음 달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네팔 베시 마을을 떠나 네팔과 인도 를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베시 마을에서 아이들과 교 사 그리고 주민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던 장면이 참으로 감동 스럽다. 한 달 수입이 10만 원이 안 되는 교사들과 더 가난한 주민들이 꽤 많은 액수의 여행비를 십시일반 보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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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에 대한 감동스러운 결과이다.

한국에서 파견되는 자원활동가의 대부분은 항공료나 체류비 를 지원받으며 현지에서는 해당 지역의 사람들에게 경제적 지 원을 한다. 1인 당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이 넘는 해외자원 활동 파견사업이나 개발, 원조사업에 쓰이는 경제적 수치와는 또 다른 관점과 시도들이 있어야 한다. 항공료와 체류비는 지 원되는지, 현지 급여는 얼마인지, 활동 사업비는 있는지 등의 질문을 하지 않고 내가 무엇을 나누고 배울 수 있을까를 먼저 질문하며 스스로 도전하고 시도하는 1인 엔지오 활동가, 자원 활동가도 곳곳에 나타날 수 있어야 한다.

안하나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먼저 인사하고, 더 자세 를 낮추고, 그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배우려 했다. 안하나는 자 신이 주어야 할 것보다는 배우고 나눠야 할 것들이 많다며 그 들보다 더 성실하게 살았다. 무의식에 숨겨져 있을 법도 했던 우월감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형태로든지 주 는 것에 익숙한 저개발국 자원활동이란 인식에 작은 돌멩이 하 나를 던진 것이다. 어딘가 떠나려 하는 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받으려 하지 말고, 주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영혼을 흔들며 나 눌 수 있는 생각과 삶의 태도를 먼저 가져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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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강명숙

1장. 흐름으로 보는 허실로 베시가웅 2장. 관계 맺기로부터 출발 _ 히말라야 아래의 작은 마을 베시 _ 관계 맺기를 통한 희망 찾기 _ 축제로 말 걸기 3장. The Story of Happy Village _ 청년, 마을의 중심으로 서다! _ 학교의 변화는 곧 마을의 행복이다! _ 소통과 연결을 중심으로 한 문화교류사업과 청년 자원활동가의 파견 _ 베시 마을과 함께 성장하는 엔지오 네팔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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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1장

흐름으로 보는 허실로 베시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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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으로 보는 허실로 베시가웅 2005

2006

2006~2008

여행이 만들어준

<무모한 도전>

<고정된 명제를 버리자!>

Good Karma

‘1일 한국-네팔 문화예술교육워크숍’

3년간의 문화예술워크숍이 남긴 것은

네팔의 청소년과 청년들이

한국적인 시각에 머문 접근방식,

스스로 깨우치며 자발적 삶을

상호적인 성장이 불가능한

만들어갈 교사에 주목.

과정 등의 반성과 고민!

2009

<교사를 흔들기 위한 1차 워크숍>

<행복한 작은 도서관 탄생>

<마을신문 ‘베시’ 탄생>

마을 공동체의 상징인

활발한 청년활동의 결과로 마을을

마을과 사람, 나아가 네팔을

학교가 되살아나길

위한 사랑방을 그들 스스로 만들다.

담으며 마을의 성장을 만들어갈 수 있는 마을신문

2011

<이제 품도 베시 주민입니다>

<베시 청년들이 성장을 나누다>

<2차 교사 워크숍>

카트만두의 오피스를 정리하고

옆 동네에 세워진 작은 도서관을

교사들이 실제로 활용 가능한

삶의로의 통합적인 접근을

도우며, 서로 함께 성장하다.

방법을 중심으로 한 워크숍

위해 마을로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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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2008

<자발적으로 청년조직의 탄생>

<고민하던 품이 마을을 만나다>

<축제로 마을에 말 걸기>

베시 마을의 모노허라 공립학교와 첫

삶을 살아가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축제를 통해 자극을 받은

만남. ‘Happy School Project’를

일상적이고 상호적 접근으로서의

마을 청년들이 마을을 위한

통해 ‘마을’에 대한 단서를 얻음

가치와 의미들 발견

활발한 활동을 시작함

2010

<행복한 베시 마을 지도>

<건강한 마을을 위한 캠페인 시작>

<도서관 활동의 성장을 위한 교육>

존재와 존재가 살아있는

점점 심해지는 모래채취, 모래먼지를

청년 4인방, 작은 도서관 운영사례를

베시마을을 보여 드립니다!

줄이기 위한 소소한 캠페인을 시작

배우러 한국에 오다!

2012

<마을 최초 오픈교실>

<연대를 통해 새로운 접근 시작>

행복을 찾는 일이 멈춰질 수

교사들이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하고

협력단체와 함께 농업, 여성교육 등을

있나요? 오늘도 마을 청년, 주민,

마을 사람들도 신뢰를 회복하기 시작

시도하며 삶의 접근 영역을 넓히다

품은 함께 행복한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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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허실로 베시가웅

교사 교육 및 일상적 지원 교사들 스스로 신뢰감 회복 모노허라 학교의 변화와 성장

환경 및 보건 삶의 변화유지조건

소득(경제)

도서관의 안정적 운영 정기적인 프로그램 운영 차세대 청년들의 발굴 시도

마을 공동체성을 회복유지할 수 있는 주체 발굴 및 지원 그리고 상호적인 성장

마을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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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농업 시도

주민들의 참여 확대

주부들과의 소모임 운영 (건강, 살림 등)

마을신문으로 활동소식 전달 및 참여 독려 교육

마을의 핵심 청년들의 성장

소모임 및 도서관 운영 등의 핵심역할

청년들과 일상적인 학습 및 지원

일상적인 과정 및 신뢰관계를 통해 삶으로의 접근

네팔 및 한국의 관련단체와의 연대를 통한 연결 활동 사례를 관련현장 및 청년들에게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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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2장

관계 맺기로부터 출발

 히말라야 아래의 작은 마을 ‘베시’  관계 맺기를 통한 희망 찾기  축제로 말 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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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아래의 작은 마을 ‘베시’

베시 마을은 80여 가구 500여 명이 살고 있고 90퍼센트가 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경제적인 수준은 높지 않지만 그리 낮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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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시 마을은 카트만두에서 차로 한 시간여 거리에 있다. 주위에 는 네팔 고대왕국 중 하나인 박타푸르와 인접해 있어 예전에는 얼 마나 목가적이었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베시 마을은 80여 가 구 500여명이 살고 있고 90퍼센트가 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경제적인 수준은 높지도 낮지도 않다. 농사로 인한 수입 원이 많지 않지만 그 덕분에 먹는 것에 대한 걱정 역시 크게 없는 마을이다. 그리고 아직은 한국과 같이 도시로의 이동 수준이 높지 않아 마을에는 아이들과 청년들이 많고, 3대에 걸친 대가족이 사 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유동인구가 적다는 뜻이다. 그러나 요즘은 베시 마을도 외부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변하고 있다. 카트만두 인 근에 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더 크다. 이것이 품이 베시마을에 서 ‘Happy Village’를 마을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이유이다.

몇 년 전부터 카트만두는 높고 거대한 신축건물들이 우후죽순 늘어가고 있다. 이에 필요한 모래들이 베시 마을의 산에서 채취되 고 있어 자연환경이 훼손되었고, 마을 사람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발생한 이익이 몇몇 소수의 마을 주민 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 간에 감정이 상하는 일도 적지 않다. 또 모래 채취 일자리를 찾아 외부에서 새로 유입된 가 구 수가 늘면서 마을의 분위기 역시 조금씩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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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와르 민족*인 베시 마을은 특유의 전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크고 작은 축제들이 많다. 일상적으로도 소소한 왕래가 많아 관계 도 살아 있으며 옆집 밥숟가락 모양새까지 알 정도로 가깝게 지 내고 있다. 이것이 히말라야 아래 작은 마을 베시가 갖고 있는 큰 힘이다.

*

네팔 중부 카트만두 분지에 사는 민족이다. 인종적으로는 몽골로이드에 속하며, 티베트·버마어 계(語系)인 네와르 언어를 사용하나 현재는 네팔 공통어 역시 많이 사용하고 있다. 구르카민족 에게 정복되기 전에 카트만두 분지를 지배하며 말라 왕조를 세웠는데, 이 왕조는 인도에서 온 크샤트리아(인도의 카스트 중의 왕후·무사 계통)이며 이들은 독특한 도시문화를 발달시켰다. 대 부분은 힌두교도이며, 승려 계급에서 직인(職人)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카스트사회를 구성하고 있 다. 상업민족으로 알려졌고, 목조(木彫)·금세공(金細工)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 또한 일반적으 로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제식의례(祭式儀禮)가 발달하였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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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중심에는 모노허라 공립학교가 있다. 1988년에 마을 사 람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학교이다. 움막에서 출발한 학교는 정부 지원을 직접 요청하여 좀 더 그럴듯한 외형을 다질 수 있었다. 교 장 선생님을 비롯한 몇몇의 선생님들은 학교 건립을 함께했다. 모 노허라 공립학교는 그저 마을에 위치한 학교가 아니라 마을 공동체

1998년 학교를 짓기 위해 첫 삽을 들던 날 풍경

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거대한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를, 부모세대보 다 좀 더 낫고 편안한 삶을 살기를 바랄 뿐이다. 때문에 학교에 대 한 마을 사람들의 애착과 기대는 남달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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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변해갔다.

히말라야 덕분에 전 세계에서 몰리는 외국 관광객들로 인해 영 어가 중요시되었고 영어 능력은 곧 직업과 경제적 수입을 결정하 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마을 주변에도 사립학교가 세워지기 시 작하며 주민들이 자녀를 사립학교로 전학시키는 경우가 늘어났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가난한 부모들은 학교의 등록금이 무료이기 때 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거나 좋은 시설의 사립학교를 보내기 위해 힘든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는 변화에 대처하지 못했다. 정 치적으로 혼란기를 겪고 있는 네팔은 공립학교에 대한 지원이 거 의 없었고, 교사들 역시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그저 바라보기 만 할 뿐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의 경우는 교사에 대한 불만 이 많았다. 그럼에도 교사와 마을 주민들은 애(愛)와 증(憎)을 관계 를 이어가고 있었다. 품이 학교를 처음 만났을 때가 이 시점이었다.

1막에서 얘기한 것과 같이 3년간 진행한 ‘문화예술교육워크숍’ 의 실패로 고민하던 시점에 베시 마을은 품에게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다. 품은 베시 마을에서 모노허라 공립학교와 아이들에게만 집 중하지 않고 제한된 방식을 넘어 삶으로의 접근과 마을의 아이들, 청년, 어른 세대의 참여까지 목표로 둔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희 망 찾기 또는 모두가 함께 가능한 희망 찾기’를 시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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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허라 공립학교 전경

학교 안 풍경. 시설의 열악함보다는 교사들의 상실감과 마을 사람들의 불신감이 더 큰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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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맺기를 통한 희망 찾기 품이 베시 마을에 말을 건 첫 대상은 학교였다. 마을 공동체의 상징인 학교는 마을과 관계 맺기를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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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이 베시 마을에 말을 건 첫 대상은 학교였다. 마을 공동체의 상징인 학교는 마을과 관계 맺기를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품은 퇴색해버린 학교를 즐거운 학교로 만들어보자는 취지를 설명했지만 외국인을 처음 만난 학교의 교사와 교장은 매 우 굳은 표정*이었다. 거의 30분간 말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인사 조차 하지 않았다. 또 어떠한 사전 준비 과정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의욕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래서 품은 문화예술교육워크 숍을 통해 알게 된 네팔의 예술대학교 청년들과 함께 주도적으로 첫 말 걸기를 하였다. 첫 관계 맺기는 조금은 낯설었다. ‘Happy School Project’의 내용은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내용 들로 이루어졌다. 마을을 돌며 쓰레기를 주으며 청소를 했고, 학교 의 녹슨 곳, 허물어진 곳들을 재정비했고, 거미줄이 쳐 있던 교실 을 아이들과 함께 꾸몄다. 이틀간의 짧은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학 교와 마을 사람들의 태도와 인식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 설립의 핵심 주축이었지만 많은 것을 놓아버렸던 교장 선생님이 학교와 아이들을 위해 아주 오랜만에 삽을 들었고, 마을 사람들의 참여 인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학교를 세운 주역 들인 그들의 기억과 마음을 자극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희망은 그들 안에 존재했던 것이다.

*

나중에 알고 보니 베시 마을에 외국인이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겉으 로 보기에 어디에나 있을 법한 마을에 외국 관광객들이 찾을 일도 없고, 경제적 어려움도 크지 않아서 외국 NGO 단체들 역시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품에게 어떤 표정으로, 어 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긴장했던 것이다. 이것은 후에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즐거운 이야깃거리 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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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②

③

④

⑤ ① 아이들과 함께 학교 건물 보수 ② 학교를 위해 오랜만에 삽을 든 교장 선생님 ③ 아이들이 다치기 쉬운 학교 운동장 보수 ④ 한편에선 마냥 즐겁게 노는 아이들 ⑤ 타 지역 네팔 청년들, 한국 사람들의 움직임이

⑥

즐거운 마을 사람들

⑥ 품과 함께 프로젝트를 이끈 네팔 청년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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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이후 품은 교장, 교사, 몇몇 마을 사람들과 계속적으 로 관계를 이어갔다. 수시로 방문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고민하면 서 감동적인 가능성을 조금씩 발견하게 되었다. ‘Happy School Project’를 진행할 때 부족한 시간 탓에 마무리하지 못했던 쉼터, 계단 등이 마무리되어 갔다. 심지어 처음 품을 만난 자리에서 당연 하다는 듯이 요구했던 교실 증축을 스스로 나서서 주민들에게 모 금을 받아 2층에 교실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모금으로 걷 힌 돈으로 필요한 벽돌을 구입했고, 마을 사람들이 순번을 정해 울 력을 했다. 목수가 직업이신 크리슈나 아저씨께서 작업반장님으로 총지휘를 해주셨다. 이 역시 울력이였다. 2층을 증축하는 데 들어 간 비용은 온전히 재료비였고, 단 한 푼도 인건비는 들지 않았다. ① 외국의 지원을 받으며 삶의 능동성을 잃는 사례가 많은 네팔의 현 실에서 모노허라 공립학교의 상황은 매우 감동적인 일이었다. 마 을 사람과 교사가 감춰졌던 마을의 공동체성을 스스로 끌어올리 기 시작한 것이다.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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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와 주민이 만들어낸 Before & After

 부족한 교실이 지어졌다.  아이들이 오르내리기 위험했던 곳에 제대로 된 계단이 만들어 졌다.  아이들을 위한 쉼터가 운동장 한 쪽에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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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로 말 걸기 ‘Happy School Project’를 통해 품은 학교와 마을의 연관성이 매우 깊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마을의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교사와 아이들만이 아닌 마을의 주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청년층에게 축제로 말 걸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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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School Project’를 통해 품은 학교와 마을의 연관성 이 매우 깊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마을의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 해 교사와 아이들만이 아닌 마을의 주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청 년층에게 축제로 말 걸기를 시작했다. 축제로 접근하기는 품이 15 년간 강북 지역에서 청소년문화축제를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품은 문화적 소통의 장, 관계의 장, 화제를 전달공유 확장하는 장, 이것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장으로서 축제를 만들 어가고 있다. 베시 마을 역시 이러한 축제의 순기능을 통해 긍정 적인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축제가 가진 유희적인 성 질을 토대로 마을 사람들과 즐겁게 문화적으로 소통하며,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은 축제만한 것이 없다. 베시 마을과 품이 함 께 벌인 축제에서는 마을 주민들과 청년들에게서 그들이 본래 가 지고 있는 가능성과 자신의 일상적인 삶을 소중하게 돌아볼 수 있 는 기회를 모노허라 학교를 중심으로 한 실천에서 찾을 수 있도 록 하는 것이었다.

첫 시작으로 마을 주민과 더불어 의도적으로 청년들의 참여를 최 대한 유도해 주민 설명회를 열었다. 다들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 로 행복한 마을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품의 의도와 배경에 귀 기울 였다. 마을 사람들은 한국에서 온 이방인의 설명에 박수를 치기도 하고 환한 웃음으로 대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의 가 능성과 에너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은 쉽 게 갖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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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마을을 만들어준다고 했는데,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만들려고 하는가? 도로나 학교를 지어준다는 뜻인가? 구체적으 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꺼멀리 시레스터(마을 청년)

행복한 마을은 우리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행복한 학교 와 마을을 만들 수 있는 주체는 당신들이다. 그러기에 우리에겐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다만 당신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행복한 마을을 만들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작은 것이라도 시도해 보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다. 그리고 ‘행복한 마을 만들기를 위해 무 엇을 해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보다는 무엇을 스스로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것은 교사와 아이들만의 참여가 아닌 마을 주민과 당신 같은 마을의 청년들이 함께하기를 희망한다. - 심한기(품 대표)

마을 청년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했다. 청년들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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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이러한 물음은 품이 마을에서 하려는 일에 대한 관심을 더 크게 일으켰다. 또 한국에서는 많이 잃어버린 ‘나의 마을’이라 는 주인의식이 그들에게는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축제를 시 작하는 데 매우 중요하고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였다.

축제에는 품만이 아니라 한국과 네팔의 예술가들이 함께 참여했 다. 마을을 외형적으로 더 예쁘거나 멋있게 만들려고 예술가들과 결합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 쪽 참여 예술가들은 커뮤니티 아티스 트(Community Artist)들이었다. ‘Art is Process’라 말하며 커 뮤니티 아트*의 풍부한 실천경험이 있는 김월식 작가를 필두로 네 팔의 청년 예술가들과 함께 커뮤니티 아트에 대한 학습과 베시 마 을에서 행할 실천 계획을 세우는 사전과정을 거쳤다. 축제의 첫 시 작은 마을을 돌며 쓰레기를 줍는 세리모니로 시작되었고, 이후 양 국의 예술가들과 마을 청년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 마을지도와 릴 레이 영상편지를 만들기로 했다. 마을을 돌며 주민들의 마을에 대 한 소망과 다른 사람에게 평소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 등을 꺼내보 았다. 누구보다 참여한 마을 청년들에게는 자신들이 살아온 곳과 주민을 새롭게 바라보는 기회가 되었다. 같은 시각 학교에서는 아 이들과 교사, 그리고 참여한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놀며 각자가 할

*

박물관에 박제된 예술 탈피, 향유자 또는 소비자와 같은 위치에서 탈피하여 예술가들이 지역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개인의 삶, 일상, 지역 등의 가치와 의미 등을 재발견한다. 이를 통해 자신과 지역의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가도록 한다. 때문에 일상생활과 연관된 커뮤니티 아트는 다양한 형태의 예술들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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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 몫만큼 학교 꾸미기를 해 보았다. 깍두기처럼 시간에 맞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처럼, 잔치처럼, 조금은 특 별하지만 의도적이지 않은 시간들이 흘렀다.

마을을 돌며 행복한 마을에 대한 생각을 묻는 청년들

리서치 결과를 나누는 마을 청년과 네팔 청년 예술가 학교꾸미기

일상처럼, 잔치처럼, 조금은 특별하지만 의도적이지 않았던 첫 번째 마을잔치 풍경들

행복한 마을지도 그리는 중 아이들과 노는 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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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마지막 날 각각의 것들이 결과물로 드러났다. 지도가 완 성되었고, 학교의 외형이 처음보다 조금 달라졌다. 릴레이 편지 영 상이 상영되자 모든 사람들은 너무나도 즐거워했다. 축제가 끝나갈 무렵 마을 청년 중 한 명이 느닷없이 일어나 외쳤다.

“앞으로 학교와 마을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다. 이제 우리가 직접 마을과 학교 를 위해 무언가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모임 과 조직이 필요하다. 모노허라 학교를 졸업한 청년 들 중 이것에 관심있는 청년들은 내일 아침 학교 로 모이길 바란다.” - 썬저이 시레스터(마을 청년)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품이 예상했던 대로 베시 마을 청년들도 마 을과 학교를 위한 자발적인 변화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청년들 특유의 에너지와 그들이 가진 마을에 대한 애정이 빚어낸 결과였다. 이후 청년들은 청년조직을 자발적으로 만들었고, 마을과 학교를 위한 활동들을 구체적으로 시작했다.

또한 품은 며칠 동안 함께 고생한 교사와 몇몇 마을 대표들과 소 박한 밥상을 마련해 땀을 나누던 자리를 가졌고, 이 자리를 통해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 존중감을 갖고 서로가 스스로의 동기 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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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의 큰 변화는 없다. 그러나 마음이 즐겁다. 전에 는 마을 사람들이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은 마을 사 람들이 다시 학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빠르버띠 커뜨리(교사)

마을을 돌며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보고 마을 사람들 이 많이 좋아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더 많이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도 학교와 마을을 위한 미팅을 하기 시작했다. 청년들 이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일이고, 이걸 보는 어른들 도 즐겁다. 무엇을 하는 마음과 생각이 중요하다. 이 자리에 있는 음식이 그냥 맛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이 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음식도 더 맛있다. -크리슈나 시레스터(마을 주민)

같은 생각이다. 품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 는 것이다. -러메스 랄 시레스터(교장)

단 한 번의 축제로 마을이 변한 것은 없었다. 조용한 베시 마을의 변화를 만들어갈 힘은 주민과 청년, 교사들에게 있기 때문에 소란 했던 한 번의 축제 그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웠던 축제의 경험은 마을의 청년들, 교사들, 주민들에게 작은 울림을 만들어주었다. 이후 품은 마을과 학교에 의미 있는 일이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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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때마다 과정과 결과를 나누는 자리로 크고 작은 마을 축제를 벌였다. 때로는 네팔과 한국의 김치를 함께 담그기도 하고, 어울 려 춤을 추거나 놀기도 했다. 축제는 마을 사람들이 마을과 학교 에 대해 느슨해진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매개체이자 장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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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3장

The Story of Happy Village  청년, 마을의 중심으로 서다!  학교의 변화는 곧 마을의 행복이다!  소통과 연결을 중심으로 한 문화교류사업과 사업과 청년 자원활동가의 파견  베시 마을과 함께 성장하는 엔지오 네팔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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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마을의 중심으로 서다! 베시 마을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스스로 희망을 찾아내고 모든 세대가 자신의 역할을 찾고 실천해갈 수 있는 힘이 있는 곳이다. 그 힘을 묶어낼 청년들의 존재 자체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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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기와 희망을 나누다 청년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의 농촌마을의 현실과 달리 네팔의 농 촌과 산간마을에는 아직 많은 청년들과 아이들이 살고 있다. 이유 는 간단하다. 카트만두를 포함한 네팔의 대도시나 중소도시에 청 년들을 흡수할 만한 직업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청년들은 자 신의 고향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네팔 청년들 역시 도 시에 대한 로망을 꿈꾸고 있고, 카트만두 인근에 위치한 베시 마을 청년들의 로망 역시 점차 강렬해지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이유일지라도 아직 마을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이 바로 네팔의 힘이 며 가능성이라고 판단했다. 한국은 빠른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과거 의 소중한 뿌리들을 잃어버렸지만 네팔은 세대와 세대, 현재와 미 래가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품은 오래전부터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사유와 의심을 가지 고 세상의 불합리들을 발견하며 변화를 만들어가는 주체로서 청년 을 주목하고 그들을 교육하며 끊임없이 흔들고 있다. 청년은 다른 어떤 세대보다 기성 체제와 문화, 보편화된 인식 등에 비판의식을 가지며, 실천적 활동들로 연결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실제 로 청년들이 사회적으로 만들어낸 변화는 역사적으로도, 세계적으 로도 많은 사례가 있다. 품 역시 이러한 청년 세대에 대한 가능성과 희망을 가지고 청년에게 집중하고 있다. ‘행복한 마을 만들기’의 핵심으로 청년에게 집중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베시 마을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스스로 희망을 찾아내고 모든 세대가 자신의 역할을 찾고 실천해갈 수 있는 힘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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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어낼 청년들의 존재 자체가 희망이다.

첫 마을 잔치가 끝난 후 20여 명 남짓한 청년들이 모노허라 공 립학교의 작은 교실에 모였고 ‘Manohara Ex-students and Creative Youth Society’가 탄생되었다. 이제 시작한 청년들의 움직임에는 열정이 넘쳤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부분들이 있었 다. 그들이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일을 제대로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조언과 자극이 필요했다. 이렇게 청년들과 짧지만 강렬한 첫 워크숍이 시작되었다. 워크숍은 ‘의심’과 ‘질문’에서 출 발했다. 끊임없이 모든 것에 대한 ‘의심’과 ‘질문’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처음부터 청년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대부분의 청년 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정도의 영어로 마을 청년들과 직접적으로 소

마을 청년들과의 첫 번째 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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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을 했다. 청년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짧았던 것이 아쉬웠지 만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한 내용이었으며 다음 발걸음을 위해 매 우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자신들의 생각을 나누어주었다. 품 역시 앞으로 청년들의 움직임에 지속적으로 지지하겠다는 생각과 마음 을 전달하였다. 이후 품은 청년 조직과 다양한 형태(회의, 워크숍, 일상적인 편안한 수다 등)로 자극과 조언을 지속적으로 주고받으 며 마을 변화를 만들어가는 주체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을 해나갔다.

청년들이 시작한 본격적인 활동은 학교와 마을을 위한 일이었다. 마을 청년들 대부분은 모노허라 공립학교를 졸업했는데, 학교 교육 수준과 교사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았다. 청년들이 상급 학년 진학 을 위해 다른 학교로 옮겼을 때 심각한 교육 수준의 차이를 느꼈 고, 그로 인해 놀림을 받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 학교가 끝 난 후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들 때문에 방치될 수밖에 없는 환경으 로 인해 다양한 활동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이러한 불만과 아쉬 움은 청년들이 ‘방과 후 교실’을 만드는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청 년들이 후배들을 위해 스스로 나선 것이다. 마을의 아이라면 누구 나 참여할 수 있었고, 단순히 학업을 돌봐주는 것뿐만 아니라 미술, 체육, 소풍 등과 같은 다양한 수업들이 진행되었다. 축제를 통해 자 극받은 청년들은 마을 사람들의 존재와 관계를 드러내며 마을이 가 진 소중한 것들을 알리기 위한 ‘사진 전시회’를 기획해 진행했고, 릴레이 영상편지의 좋은 기억은 정기적인 ‘마을 영화제’를 탄생시 켰다. 시간이 흘러 ‘방과 후 교실’은 후에 마을에 세워진 도서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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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히 흡수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마을 영화제는 학교 운동장에서 매달 한 번씩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방과 후 교실>

<사진 전시회>

<마을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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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도서관의 기적 마을 도서관은 다양한 활동을 생산해낼 수 있는 공간이자 마을 사람들의 소통 공간이며 아이들에게는 학습과 배움이 가능한 공간 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마을의 작은 도서관은 엄청난 것들을 만 들어낼 수 있는 희망의 공간인 것이다. 청년들은 일련의 활동을 통 해 마을에 사랑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해냈다. 물론 사 랑방이 도서관과 연결될 수 있다는 상상을 청년들이 하지는 못했 다. 그저 어렴풋이나마 마을을 위한 쉼터 같은 공간이 필요함을 느 낀 것이다. 품은 청년들의 의견을 토대로 ‘도서관’이라는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했고, 청년들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만약 마을 도서관 이나 청년조직이 외부의 일방적인 지원을 통해서 진행되었다면 마 을의 어느 누구도 주인의식과 스스로 하고자 하는 용기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귀 기울여 듣고, 기다 리고, 함께하는 과정을 통해 지역 주민의 자발성에 기초해 만들어 진 조직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마을 도서관은 모노허라 공립학교 건물 위층에 지어졌다. 청년들 은 주민들에게 도서관의 필요성과 활동계획을 직접 알리며 주민서 명을 받았다. 품에게도 도서관 설립을 위해 힘을 보태줄 것을 당당 하게 제안했다. 청년조직은 자체적으로 교사와 주민들로부터 건축 에 필요한 목재, 벽돌, 시멘트 등을 구입할 수 있는 비용을 모금했고,

*

한국지역사회복지학 Vol. 40, 2012. 3. 1. pp.31~58. 네팔 품의 국제 지역사회복지 실천 사례 연구, p.49, 우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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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품 역시 청년들의 기획서를 토대로 품과 베시 마을과 관계가 있는 (재)청소년과사람사랑*의 지원을 받 아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지붕, 창문 제작 비용을 보탰다. 공사에 필요한 재료비 이외에는 단 한 푼의 인건비도 들지 않았다. 몇 개 월에 걸친 공사가 2009년 1월 말 완공되었고, 마을은 또 한 번의 작은 축제를 열었다. 베시 마을에는 이렇게 주민이면 누구나 이용 할 수 있는 마을의 공간이 생겼다.

완공된 마을의 사랑방 ‘작은 도서관’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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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모노허라 공립학교와 만나 진행한 ‘Happy School Project’는 이 재단 소속의 나눔학교 와 함께 진행했다. 이를 통해 재단 역시 베시 마을과 학교에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었다. 자세 한 이야기는 뒤에 ‘Happy Village로 연결된 문화교류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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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an Shrestha

Need of library Library means the collection of books where we can get various types of them like stories, course, poem etc. Library is very important for all people. So the need of library will be mentioned below.

1. Getting outside knowledge In the library, there is the collection of books. So we can choose one which we are interested in. So not only getting knowledge from the course book but also getting outside knowledge can be possible.

2. Using one’s free time When people have free time, they can utilize their time in the library. Instead of wastin time, reading can make us get some knowledge from books.

3. Getting the habit of reading People go to the library to read books. So if they go there to read very often, they can get the habit of reading naturally. …(생략)

청년, 주민들의 힘으로 한창 공사 중인 도서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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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도서관으로서 제 기능을 하는 데는 청년들이 큰 역할을 담 당 했다. 네팔에 있는 Room to Read*에게 직접 제안서를 만들 어 책을 지원받았고, 운영과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으며, 도서관이 마을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러나 청 년들은 대부분이 도서관을 사용해본 경험이 없었다. 심지어 도서관 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청년들도 있었다. 네팔에는 현재 공 립도서관이 2~3개 정도밖에 없고, 학교 도서관의 경우 사립학교에 서 자신들을 위해서만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 었다. 이런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청년들은 도서관이 마을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감을 잡아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청년들은 도서관리, 대출업무 등과 같은 기본적인 관리운영부터 마을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들이 방향을 잡고 계획을 세우는 것까지 어려움과 아이디어 고갈을 느끼 게 됐다. 청년들이 도서관의 전반적인 운영, 책과 관련한 도서프로 그램 등을 배우고 학습할 수 있는 실제적인 경험이 필요했다. 2010 년 품은 서울시 민간단체 지원사업의 공모를 통해 네 명의 마을청 년을 초청했다. 베시 마을 청년들은 품과 연계되어 있는 도봉 지역 의 ‘초록나라어린이 도서관’, 안산지역의 ‘별과 민들레’ 선생님들

*

1998년 마이크로소프트 중국 지사의 전도 유망한 30대 임원 ‘존 우드’는 삭막한 경쟁 세계를 떠나 쉼을 위해 네팔을 찾았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위치한 학교를 우연히 방문한 존 우드는 책 한 권 없이 공부하는 아이들의 현실에 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여행 후에 다니던 마이크 로소프트를 나와 ‘Room to Read’를 설립하고 지구촌 빈민지역에 도서관을 짓고 책을 전해주는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네팔뿐 아니라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 라오스, 스리랑카, 남아공 등에 도 서관 및 학교를 설립하고 수많은 아이들에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지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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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도서관의 역할, 책의 중요성과 필요성, 다양한 도서 프로그램, 운영 정보, 지역과 도서관이 어떻게 호흡해야 하는지 등을 실제적 으로 학습했다. 또 ‘순천 기적의 도서관’과 ‘한양대학교 도서관’ 등을 방문하여 민과 관의 협력의 중요성, 도서관마다 역할의 차이 를 학습할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서울 도봉 지역의 ‘초록나라어린이도서관’에서 책과 연결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익히며

안산 지역의 ‘별과 민들레’에서 도서관이 지역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과정의 중요함을 느끼며

한양대학교(왼)에서, 순천 기적의 도서관(오)에서 학교 도서관과 민관협력에 대해 들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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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문은 짧았고 바빴습니다. 그러나 매우 인상적이었습니 다. 한국에도 많은 마을 도서관이 있고, 마을 활동들을 하고, 그 래서 행복한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한국의 도서관 프로그램에 서 배울 것이 많았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그러 나 그것을 우리 마을에서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고민합니다.” - 꺼멀리 시레스터(활동 청년)

“우리는 10년을 바라보고 일을 했습니다. 이런 저희에게 순천 기적의 도서관 관장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100년 을 보고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문제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00년을 어찌 내다보나 싶었지만 그래서 더 여유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 100년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 디네스 시레스터(활동 청년)

현재 도서관은 여러 가지 굴곡을 거치며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 다. 1주년 때마다 크고 작게 잔치를 열었고,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 은 열 배가 넘게 늘었으며, 보유 장서의 종류와 수도 늘어가고 있 다. 그리고 조금씩 마을 주민, 특히 주부들의 방문 역시 늘어가고 있다. 또한 도서관은 주민들의 모임과 회의공간으로, 청년들의 활동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학교는 아직 1차적인 수준이지만 수업 시 간표에 도서관 수업을 배치해 교사들이 책을 읽어주거나 책을 활용 한 수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도서관의 자체 예산구조를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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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위한 시도도 시작되었다.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는 주민, 아이들 의 부모 등을 대상으로 소액이지만 정기적인 후원금을 받아 도서 관 관리운영에 사용하고, 장차 그 폭을 넓힐 예정이다. 시간이 흘 러 새로운 어려움과 맞닥뜨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함께 문제를 해결 해 나갈 수 있는 마을의 주민, 교사, 청년들이 성장하고 있고, 어려 움을 나눌 사람들 역시 늘어나고 있다.

주민회의, 청년 모임, 교육 등이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의 수가 늘어가고

이루어지며 마을의 사랑방과 같은

있고 상상력, 표현력이 함께 자라나고

역할을 하고 있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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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와 희망의 지도를 그리다! (마을지도 그리기) 품이 처음 말 걸기를 위해 벌였던 마을축제에서 한국의 예술가 와 마을 청년, 네팔 청년 예술가들은 마을을 돌며 마을지도를 만들 었었다. 첫 마을지도는 색이 바랐음에도 마을의 입구에 아직까지 도 설치되어 있다. 첫 마을지도에는 도로가 생기거나 부족한 식수 가 해결되는 등의 외형적인 변화를 바라는 것들이 많았다. 이 역시 마을을 위해 필요한 일인 것은 분명하다.

두 번째 마을지도에는 마을의 관계와 희망, 존재들을 드러낼 수 있는 지도를 그려보기로 했다. 이 지도 작업에는 ‘Happy Vibration’이라는 네팔의 청년 예술가 그룹이 참여했다. ‘Happy Vibration’은 처음 품이 ‘축제로 말 걸기’를 할 때 참여한 네팔 청 년 예술가들이 축제 이후 자발적으로 예술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취지로 만든 그룹이다. 그룹이 조직된 이후 모 노허라 공립학교에서 미술 수업을 하는 등 교사와 청년들과 지속적 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매우 의미 있는 결합이었다. 만약 두 번째 마을지도 제작이 마을과 관계가 없는 외부의 예술가가 중심이 되 었다면 두 번째 지도는 그 의도를 충분히 담을 수 없었을 것이며, 마을 내에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하나의 작 품으로서만 존재했을 것이다. ‘Happy Vibration’이 마을에 갖는 애정을 토대로 했기 때문에 예술적 접근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올 수 있었다. 지도 제작을 위해 한 방문은 처음보다 훨씬 주민들에게 반 갑게 다가갔고, 수다 같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마을 주민들에게 집 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 무엇인지 묻고,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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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들에 대한 관심도, 체감 정도도 함께 파악해 보았다.

첫 번째 마을지도 두 번째 마을지도

수집과정은 마치 동네 마실을 다니는 것과 같았다

마지막 과정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도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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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전에 한 번 지도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 보다 이번에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개인 이 한 일이 아니라 마을 전체 사람들이 함께한 느낌이 들었습 니다. 마을지도를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을 했다는 느낌보다는 친구 집에 놀러가 재미있게 수다를 떨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얼마만큼 이해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 을 사람들이 이해한 것만큼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사 람들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과정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 다. 이제 베시 마을은 저의 마을 같습니다. 정말 무엇보다 결과 가 아닌 과정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 람 머허르전(Happy Vibration)

두 번째 마을 지도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고 가는 길목인 학 교 앞에 설치되었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면 자신들의 집도 찾고, 옆 집 이야기도 하면서 재미있는 수다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두 번 째 마을 지도는 마을 주민들 스스로 개인에 집중되어 있던 경계를 마을로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꽤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던 두 번째 마을 지도는 우기와 건기를 오가는 네팔의 날씨와 시간의 변화 덕 분에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그러나 외형만 사라졌을 뿐 지도는 마 을에 계속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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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발적 의지와 소통이 만들어낸 감동의 마을신문 ‘베시’ 그저 베시 마을에도 ‘신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출발 이 아니었다. 신문이 마을의 이야기를 담고 신문을 통해 소통이 확 장되고, 마을의 이슈들이 공유되면 마을 주민과 청년들의 변화와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몇 년간 청년, 주민들과 도서관을 설립운영하고 영화제, 사진 전시회, 크고 작은 마을 잔 치 등을 통해 서로 성장하고 쌓인 소통의 과정이 만들어낸 욕구였 다. 이 욕구에 상상과 시도가 보태져 ‘신문’이 탄생하게 되었다.

2009년 말 청년들과 몇 차례 회의를 가졌다. 신문을 통해 청년과 마을이 배울 수 있는 것, 성장할 수 있는 것들을 상상할수록 서로 의 가슴은 떨렸고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이후 과정이 발 빠르게 진 행되었다. 몇몇 마을의 큰 어른들을 모셔놓고 신문의 필요성을 설 명하는 과정도 거치고,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 예산구조에 대한 심 도 깊은 논의들이 이어졌다.

신문에 대한 필요성, 예산 등에 신랄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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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첫 번째 마을 신문 ‘베시’가 탄생되었다. 소박한 마을 잔 치도 열어 신문의 시작을 알렸고, 인쇄에 필요한 예산 마련을 위 해 마을 주민들에게 정기 기부를 약속받았다. 신문 ‘베시’에는 마 을의 크고 작은 알림, 정보, 마을 주민들이 주인공이 되는 소식 등 이 담기고 있으며 월 1회 발간을 한다. 또한 최소한의 인쇄경비를 알려 유료로 배포하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신문이 안정적으로 발행되고 유지되지는 못했다. 신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했고 그에 따라 필요한 비 용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다. 또 도서관 운영, 크고 작은 마을 행 사와 일들에 청년들의 역할이 적지 않은데 주제를 선정하고, 마을 의 기사거리를 취재하고, 기사화해 내는 일련의 과정은 청년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되었다. 실제로 몇 개월 동안 발행이 멈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을 포기하지 않았다. 품의 의 지도 한몫했지만 청년들의 자발적인 동기와 의지로 출발하지 않았 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제는 신문을 기다리는 주민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지금 도 청년들 중심으로 기사를 작성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마을의 아 이들, 주부 등이 직접 참여하는 것을 염두하고 있다. 신문이 마을 신문으로서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 아직 만들어가야 할 과정이 많 다. 신문을 만들어가는 주체의 다양화, 신문을 통한 소통과 변화의 확장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느리지만 가능성들을 만들어가고 있 고, 만들어지고 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충분히 가능한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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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 처음 발행되던 날, 마을의 큰 어른들에게 정기후원을 약속받았다

신문을 만들어내고 나누는 과정. 이제는 신문을 기다리는 주민들의 수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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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과 선택 7년 청년 조직에도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2007년 20여 명의 청 년들이 만든 ‘Manohara Ex-students and Creative Youth Society’는 활동이 구체성을 띠면서 인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단순한 호기심이었던 경우, 활동이 버거운 경우, 집안일이나 학업 때문인 경우 등 다양한 이유로 청년들이 줄어들었다. 물론 품이 개 인의 동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그들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청년 조직은 줄어 디네스, 러메스, 꺼멀리, 무나라는 네 명의 청 년들로 압축되었다. 모두 다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들이며, ‘우리 마을’이라는 애착이 있는 청년들이었다. 디네스는 도서관을 관리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역할을 맡았고, 꺼멀리는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보조교사 같은 역할로서 청년과 교사, 품과 교사 들 사이의 중간다리 역할을 해주었다. 무나는 교장 선생님의 첫째 딸로 초창기 ‘방과 후 교실’을 담당했고, 후에 도서관이 시작되면 서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마지막으로 러메스 는 목수인 아버지 영향과 러메스 스스로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성향으로 도서관에 무언가 고장이 나면 큰 빛을 냈고 드러나진 않 지만 존재감 있는 역할을 해주었다.

시간이 흘러 네 명의 청년은 두 명으로 다시 압축되었다. 러메스 는 결혼을 했고, 디네스는 마을을 위해 일하는 자신에 대해 고민의 시간을 가지며 한 발짝 물러나 있다. 디네스는 초반부터 도서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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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하는 책임자로서 크고 작은 굴곡을 거치며 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네스는 마을을 위한 청년 활동가로서의 삶에 대한 불 안감과 흔들림을 느꼈다. 경제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여타의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보내는, 디네스의 삶을 불안하게 또는 이해 하지 못하는 시선들을 넘어서지 못했고, 더불어 스스로의 성장을 인지하지 못했다. 네팔에서 활동하다보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음에 도 스스로 포기하는 이와 같은 경우를 자주 경험하게 된다. 하지 만 이 역시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무나는 더디 변하는 마을과 교사들을 보며 활동 동기를 잃었다가 요즘은 스스로 마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해내고 활력을 찾아가고 있 다. 지금은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제 몫 을 해주고 있다. 꺼멀리는 삶의 목표가 변화되며 활동 동기를 단단 히 굳혀가고 있다. 거의 전반에 걸친 역할을 해내며 지금은 없어서 는 안 될 마을의 일꾼이 되었다. 후에 꺼멀리가 결혼을 해서 베시 마을을 떠난다고 해도 또 다른 마을에서 변화를 만들어낼 청년으 로서의 삶을 살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일상적인 도서관 풍경. 왼쪽 책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꺼멀리와 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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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로 보자면 20여 명에서 출발한 청년 조직은 자연스럽게 자 신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삶을 만들어가는 청년들로 집중 되었다. 하지만 청년들의 활동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청년의 동 생들, 소수의 새로운 청년들, 몇몇의 아이들이 조금씩 순환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짧지만 7년간의 지속적인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 한 일이다. 이 순환구조가 그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가치와 희망 이 스스로 변화되고 확장되는 다음 과정을 만들어가는 토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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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변화는 곧 마을의 행복이다

모노허라 학교는 부모 세대를 잇는 끈인 동시에 아이들에게 지식적인 가르침과 더불어 삶을 교육하는 곳으로 마을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산실이자 매개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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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노허라 공립학교 교사들 마을에서 모노허라 공립학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모노허라 공립학교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동기로 설립되 었다. 모노허라 학교는 부모 세대를 잇는 끈인 동시에 아이들에게 지식적인 가르침과 더불어 삶을 교육하는 곳으로 마을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산실이자 매개체이다. 따라서 마을 커뮤니티 의 변화와 직결되어 있는 교사들의 변화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모노허라 공립학교는 유치부부터 5학년까지 운영되다가 근래에 들어 학년제*를 높이고 있다. 교사의 구성은 설립 때부터 계신 러 메스 교장 선생님과 라주 커뜨리 선생님을 비롯하여 수학을 담당 하는 러구낫 커드까 선생님, 네팔어와 사회를 담당하는 빠르버띠 커뜨리 선생님, 2학년 담임인 비뎌 커드까 선생님, 유치부를 담당 하는 럭시미 띠밀시나 선생님, 과학과 영어를 담당하는 람껄라 커 뜨리 선생님, 1학년 담임인 엄비까 멀러 선생님, 마을 청년이자 영 어를 가르치는 꺼멀리 시레스타, 이렇게 아홉 명의 교사와 학교 관 리를 담당하는 언저나 따망 디디**까지 총 열 명이 근무하고 있다.

*

한국과 네팔의 학년제는 다르다. 한국은 초중고등 과정으로 나눠져 있는 반면 네팔은 1학년 부터 10학년까지 구성되어 있다. 10학년을 졸업 후 대학수학능력시험과 같은 시험을 치를 수 있 있는 자격을 얻게 되고 이 시험의 결과로 11학년에 입학하며 12학년까지 다니게 된다. 이때는 학부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전공을 선택해서 듣는다. 이것을 토대로 대학의 전공과목을 선택한 다. 모노허라 공립학교의 경우는 유치부~5학년까지만 있었으나 2010년부터 한 학년씩 늘리기 시작하여 2012년에 8학년까지 확장되었으며 각 학년별로 한 학급씩 운영되고 있다. ** 자신을 기준으로 나이가 많은 여성을 지칭하는 말. 우리나라말로 언니 또는 누나를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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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품이 교사들을 만났을 때의 모습. 교사들의 표정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학교는 네팔 사회의 변화와 학부모들의 욕구를 해결해주지 못하 면서 마을 내 주민들의 불신을 키웠다. 이는 교사들의 책임이 크다. 교사 스스로 교사로서의 역할과 책임감이 부족했다. 물론 네팔 사 회의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정부에서는 교사의 전공과목과 무관하 게 공백이 있는 과목에 그냥 배치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르칠 지식적 기반이 약하다 보니 수업의 질 과 교사의 책임감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모노허라 공 립학교의 몇몇 교사도 이 경우에 해당되었다. 또 설립 때부터 주민 들로 구성된 학교 운영위원회가 유명무실해진 것도 원인이었다. 긴 장감과 자극이 전혀 없는 환경은 교사들의 무기력증을 키웠다. 그 렇지만 교사 스스로 변화의지를 만들어 내지 못한 책임은 피할 수 없다. 교사들은 교실에 거미줄이 쳐 있어도, 책걸상이 삐그덕거려도 치우거나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수업을 위한 자기개발이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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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했으며, 심지어 학교를 빠지거나 수업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 었다. 교사들은 문제를 외부 환경 때문이라고 회피만 한 것이다. 이러한 교사들의 모습에 마을 주민과 청년들은 교사들을 불신했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골이 점차 깊어졌다.

# 조금씩 흔들리는 교사들 품의 잦은 방문, 크고 작은 마을의 잔치와 행사들, 도서관의 탄 생 등은 모두 학교에서 진행되었고 교사들 역시 크고 작은 역할을 담당하며 자극을 받았다. 하지만 교사들에게 맞는 더 근본적인 자 극이 필요했다. 2008년 교사들과 처음 워크숍을 진행했다. ‘교사란 학생들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접근하여 교사들 스스로 학교에 대한 생각, 교육에 대한 가치관 등을 표현하게 해 자연스럽게 교사로서 가져야 하는 태도를 점검해볼 수 있도록 하였 다. 학교의 변화를 위해 필요한 과제도 설정하고 수행 방법도 결정

첫 번째 교사워크숍이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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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았다. 워크숍은 잘 끝난 듯 보였다. 하지만 교사들의 긴장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품이 방문했을 때는 수업 시간도 지키고 교실에 있지만, 평상시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런 교사들에 게 청년 활동가들은 크게 실망했고, 품 역시 실망했다. 하지만 한 번의 시도로 원하는 결과를 얻기란 불가능함을 알기 때문에 크게 좌절하지는 않았다. 이후에도 교사들의 역할을 배제하지 않았고 꾸 준히 관계 맺기를 이어가며 서로의 신뢰를 쌓아갔다.

도서관 활동, 영화제, 신문 등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베시 마을과 연결한 여러 문화교류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는 데 품은 교 사들을 적극 참여시켰고, 마을 축제를 할 때 역시 역할을 주었다. 청년들에게도 교사들과의 협업 과정을 갖도록 유도했다. 일련의 과 정들은 교사들과 품, 청년들과 교사가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만 들어가는 역할을 해주었다.

비판하기보다 더디더라도 변화 가능성이 있는 교사들이 더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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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도 더디지만,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2011년 5월 두 번째 워크숍을 만드는 토대를 만들어주었다. 두 번째 워크 숍은 교사로서의 철학을 묻는 머리로만 아는 근본적인 질문보다는 좀 더 실질적인 교과과정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접근하였다. 수 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교구와 도서 활용 워크숍, 연극에 관심 있 는 교사들을 중심으로 교육연극 워크숍 등이 진행되었다. 워크숍 을 시작하면서 교사들과 약속한 것은 워크숍이 끝난 후 자체적으 로 배운 것을 서로 교환하는 워크숍을 진행하는것 단 하나였다. 두 번째 워크숍은 교사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긁어주었고 따라서 만족 도도 높았다. 이후 교사들은 자체 워크숍을 이어갔고 학교 최초로 학부모들을 초대해 공개수업을 진행하였다. 마을 주민과 학부모들 30여 명이 참여했고 학교의 이런 변화에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 였다. 교사들은 공개수업의 내용, 홍보 등 모든 준비를 도맡아 진 행했던 탓인지 30명이란 수에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이 아쉬움 은 다음을 위한 좋은 계기이기도 했다. 공개수업은 마을 주민, 학 부모, 교사 스스로가 학교가 점차 변화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자신감을 찾은 교사들은 공개수업을 한 달에 한 번 운영하여 마 을 주민과 학부모들에게 학교 수업의 변화와 교사들의 의지를 표 현하고 대화하는 과정을 만들어가는 계획을 세웠다. 교사들은 마을 주민들과 청년들이 갖고 있는 불신에 대해 맞설 수 있는 자신감과 교사로서의 자긍심을 회복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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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① 자연, 환경과목의 교구 활용 교육  교육과 연극을 연결한 교육  교과 내용을 토대로 참여식 수업교육  오픈수업 풍경. 왼편에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수업과정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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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이 아닌 일상의 변화와 성장 현재 학교에서는 교사들 간의 회의 구조가 생겼다. 안건들은 문 제를 먼저 제안하여 해결방안을 찾기도 하고, 아이에 대한 공동논 의, 수업에 대한 피드백 등 점차 주제도 다양해지고 있다. 또 적은 금액이지만 도서관 책 구입을 위해 매달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돈 을 모으고 있다. 우리의 시선으로 보자면 너무 당연해 진부한 이야 기지만 모노허라 학교의 경우에는 결코 그렇지 않다. 앞서 설명한 학교와 교사의 상황과 대비해 본다면 큰 변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적인 회의구조’가 생겼다는 것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변화 를 만들어가는 시작으로서의 신호탄이자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인 것이다. 앞으로 일상의 소소한 변화가 학교 의 변화를 만들어가고 교사 스스로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매우 중 요한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

오랜 기다림의 결과다. 만약 성급하게 접근했다면 네팔 교육환경 에 대한 구조적인 어려움을 알지 못한 채 교사들의 문제로만 접근 했을 것이다. 교사들의 자존심 역시 훼손하여 오히려 서로간의 불 신을 쌓는 과오를 범했을지도 모른다. 품은 앞으로도 한 번에 놀 라운 변화는 바라지 않으며 목표로 삼지도 않는다. 베시 마을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일상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 교 사들과 신뢰관계를 토대로 천천히 그러나 꾸준한 변화를 만들어갈 예정이다. 교사 스스로의 변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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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연결을 중심으로 한 문화교류사업과 청년 자원활동가의 파견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는 큰 태풍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나비효과의 의미는 개인의 작은 경험 또는 실천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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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ppy Village로 연결된 문화교류 프로그램 한국에는 제3세계 국가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하고 싶은 꿈을 가진 청년들이 많다. 청소년들 역시 세계의 다른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은 욕구와 호기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은 정부와 민간단체의 해외 문화교류 및 봉사 프 로그램 등을 선택한다. 하지만 관광지를 중심으로 한 여행을 넘어 서지 못하고, 누구를 위한 봉사인지 알 수 없는 프로그램인 경우가 적지 않다. 품이 네팔에서 활동을 한다는 소식이 외부에 알려지자 품을 신뢰하고 있는 청소년 단체, 청년들이 기존과는 달리 현지인 들과 깊은 교감을 나누며 배움이 가능한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네 팔을 통해 얻고자 했다. 품은 베시 마을 또는 모노허라 공립학교와 이들의 연결을 통해 상호간에 배우고, 교감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며, 서로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 넣으려 의도로 문화교류 프 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

문화교류 프로그램의 방문 목적과 형태는 다양했다. 그러나 방문 의 목적과 형태가 무엇이든지 지금까지 고수하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존중하는 태도뿐 아 니라 무엇보다 그들의 삶의 방식, 문화 등을 배우려는 자세, 주는 것이 아닌 나누는 태도를 강조한다. 마을은 손님이 찾아오는 것을 반가운 일이라 여기고 자신들의 일상이 다소 불편해지는 것을 기꺼 이 받아들인다. 그런데 손님들이 ‘우리가 도와주겠다!’라는 생각으 로 마을을 방문한다면 그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밖에 없다. 솔직히 짧은 기간 동안 베시 마을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 없이 어떻게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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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선으로 그들의 문화를 판단하기에 앞서 서로의 문화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겸손한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을 줄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마지막은 베시 마을과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연결할 때 활동의 흐름과 방문하는 팀 사이 에 ‘서로 즐거운 경험과 자극의 기회로서 가능한가?’를 먼저 찾는 다. 마을 청년, 교사, 때에 따라 마을 주민과 논의 과정을 거친다. 그 후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내용을 구상하고 한국과 베시마을에 서 각기 그에 맞는 사전준비 과정을 가진다. 만약 방문 목적과 규 모, 마을의 상황 등이 적합지 않을 때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 았다. 7년간 이 원칙은 잘 지켜지고 있다. 이 원칙은 특히 한국 쪽 에 더 많이 요구되는 부분으로 사전에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쳐 학습하고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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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진행된 한국-네팔문화교류 프로젝트> 단체

단체

2007

(재)청소년과사람사랑 ‘나눔학교’ 탈북청소년대안학교 ‘셋넷학교’

2008

CJ나눔재단

전국 공부방 청소년들과 한국-네팔 희망나눔 프로젝트

(재)청소년과사람사랑 ‘나눔학교’ National Model Science School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

‘오름’의 청소년들과 문화교류

한국으로 여행_ ‘오름’의 청소년들과 문화교류 문화복지아카데미 심화연수과정 1차 _ 모노허라 학교 연계 문화복지아카데미 심화연수과정 2차 _ 사립학교 연계 베시 마을 작은 도서관 탐방 연수

고리울청소년문화의집

베시 마을 모래먼지 줄이기 캠페인

양업고등학교

1학년 해외이동수업(랑탕지역 트레킹 및 자유여행)

광명1동청소년문화의집 ‘오름’

2012

네팔사립학교 청소년들과의 문화교류

마을 N도서관

경기문화재단 2011

랑탕지역 트레킹 및 베시 마을과 짧은 만남 가족회원 히말라야 트레킹

‘오름’

2010

베시 마을 모노허라 학교와 Happy School Project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

광명1동청소년문화의집

2009

프로젝트 내용

꿈틀학교

문화복지아카데미 심화연수과정 3차 _ 모노허라 학교 연계 베시 마을 모노허라 학교와 문화교류 및 캠핑 베시 마을 모노허라 학교 리코더 동아리와 음악수업 *음영이 있는 것이 베시 마을과 연결된 프로젝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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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마을을 방문한 학교, 단체가 적지 않다. 셋넷학교와 영 등포청소년문화의집 가족회원들은 짧은 방문으로 베시 마을을 찾 은 경우다. 품과 베시 마을이 초반에 관계를 쌓아갈 시기여서 이 들 프로그램의 연계를 통해 품은 베시와 자주 만나는 계기를 만 들었고, 방문 팀들은 모노허라 학교 친구들과 양국의 놀이로 만나 는 시간을 가졌다.

의미가 있었던 프로그램은 나눔학교와 오름, 꿈틀학교의 경우 를 들 수 있다. 나눔학교는 장애청소년 대안학교로, 영어 구사능 력이 화려한 사립학교보다는 서로 오감으로 교감하며 새로운 경 험을 목적으로 2007년 모노허라 학교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초 반 품이 모노허라 학교를 처음 만났을 때 행했던 ‘Happy School Project’는 나눔학교와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오름의 방문은 2010년에 이루어졌다. 마을에 세워진 두 번째 마 을지도에 마을 사람들의 사진을 덧붙이는 작업을 청소년들과 함께 진행했다. 오름의 청소년들과 모노허라 학교의 아이들, 마을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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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함께 가가호호를 돌며 인사도 드리고 가족들의 사진도 찍었다. 집에 식구들이 없으면 밭으로 직접 찾으러 나서기도 했다. 오름의 아이들은 그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고, 언어는 통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마을 사람들에게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 는 정을 많이 느꼈다. 마을 역시 지도에 자신의 가족이 담기자 매 우 좋아하셨다. 오름은 베시 마을을 다시 방문하여 학교 아이들과 함께 1박 2일로 캠핑을 다녀오기도 했다.

베시 마을의 모든 집을 돌며 어설프지만 네팔 말로 소개도 하며 새로운 경험을 한 오름 친구들

꿈틀학교는 서울에 있는 대안학교다. 꿈틀학교는 모노허라 학교 에 새롭게 생긴 리코더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먹고 자며 음악수업 을 진행하였다. 꿈틀학교 친구들은 일정이 끝난 후 자체평가에서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 음악을 가르쳐주며, 깊은 교감을 나 누었다고 말했다. 리코더 동아리 아이들은 음악적으로 새로운 경험 과 호기심을 더 많이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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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수업을 진행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는데 하다 보니 없어졌다. 내가 더 배웠다. 비나는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데도 계속 먼저 손을 잡아주고 챙겨주어서 고맙다. 한국에서는 못 느꼈던 정을 많이 느꼈다. - 연서(꿈틀학교)

한국에서는 앞집과 모르고 지내는데 여긴 마을이 다 알고 지내 는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음악시간을 진행할 때는 이렇게까지 앞에 나서서 진행하는 역할일 줄은 몰랐다. 말 거는 것을 낯설 어하고 힘들어하는 성격인데, 아이들이 먼저 다가와주니까 나도 먼저 말을 걸 수 있게 되었다. 나이가 많다고 가르쳐주기만 하 는 게 아니라 배울 수도 있구나 싶었다. - 현(꿈틀학교)

냄새, 더러운 것이 싫어서 네팔에 가는 것이 걱정됐다. 그런 데 이젠 네팔에 갔다 오면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 이 이해된다. 편견도 없어지고, 나의 변화에도 도움이 되었다. - 소리(꿈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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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시 마을과 연계한 일 중에는 문화교류뿐 아니라 교육연수의 경우도 있다. 경기문화재단 문화복지아카데미 마지막 과정의 심화 과정인 네팔 연수를 품의 주관으로 담당하며 총 세 차례 중 두 차 례를 베시 마을에서 진행하였다. 연수라 하면 통상적인 형태로 주 제와 연결된 곳을 방문하고 강의를 듣는 등의 방식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경기문화재단과 진행한 연수에서는 그 형식의 틀을 과감히 벗었다. 참가자들은 사전 준비과정으로 베시 마을에 대해 학습했고 문화복지아카데미 과정을 통해 배운 문화와 복지의 개념을 바탕으 로 마을의 상황에 맞게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했다. 1차 연수 참가자들은 베시 마을의 사례를 가깝게 접하면서 동시에 베시 마 을의 지역공동체의 경험과 ‘일상 속에서 나’라는 주제로 학교 아이 들을 대상으로 직접 기획하고 실행해보는 과정을 가졌다. 아이들에 게는 새로운 학습의 경험이 되었고, 참가자들에게는 사회복지적 관 점에서 마을 주민조직의 사례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2차 연수 참가자들은 교육연극활동가, 아동센터장, 사회복지사 등 으로 이력이 다양했다. 마침 베시 마을의 모노허라 학교에서는 연 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있었고, 연극과 수업을 연계시키고 싶어 하는 교사도 있었다. 한국에서 온 참가자들 역시 교육연극활동가가 두 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교사들과 이것을 주제로 짧은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주제를 설정하기 위한 토론과정, 극을 구성하고 역할을 나누는 과정 등을 거쳐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소박한 연극 발표회를 가졌다. 이런 교사들의 모습을 처음 본 학생들에게는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 마을의 모래 문제가 주제였는데, 기존에 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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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알려주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 을 교사 스스로 체감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교사들과의 두 번 째 워크숍 중 교육연극 분야는 이것의 연결로 만들어진 워크숍이 었다. 연수 참가자들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문화와 복지의 연결, 자신의 경험 확장과 다른 환경에서 쉼을 갖는 기회가 되었다.

2010년 1차 연수_ 모노허라 공립학교 아이들에게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연수 참가자.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사, 마을 청년 등도 함께 참여했다

2011년 2차 연수_ 마을의 모래먼지 문제를 짧은 연극으로 만들어 선보인 교사들. 교사들과 아이들 모두 새로운 방식에 흥미와 즐거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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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문화복지의 의미를 찾을 때도 그랬지만 연수라는 단어가 주는 형식적인 의미보다 내가 생각하는 연수가 중요한 것 같다. 연수 중반까지는 과연 이 과정이 연수일까 의심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간에 해왔던 과정을 보면 우리는 이 과정에서 일반적 인 의미의 연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사실 힘들고 어려웠지만 지나고 나면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이번 연 수는 기존 연수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연수였다. - 장마리아(남양그룹홈) / 2010년 참가자

베시 마을에서의 4일간의 여정 속에서 가장 많이 고민하게 되 었던 것은 그들이 우리보다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작은 것 에도 감동하고 기뻐했으며 즐거워 보였다. 나의 눈에 불편하고 부족해 보였지만 그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물질적 풍요와 행복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끔 되었 다. (중략) 편한 연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배우고 겉 모습을 훑고 돌아오는 연수가 아닌 관계가 만들어지고 서로 자 극받고 성장하는 연수였다. 수동적 배움이 아닌 능동적이고 함 께 고민하는 연수 과정이었다. - 노재정 (에이스벤추라) / 연수 코디네이터

이처럼 마을과 함께하는 문화교류 및 교육연수 프로그램은 각각 의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베시 마을의 관점에서 보면 베시 마을의 변화에 필요한 시도와 계기들이 되는 한 흐름으로 연결된다. 여러 문화교류프로그램을 통해 모노허라 학교 아이들, 베시 마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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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새로운 경험의 기회이자 타국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동시에 품이 마을에서의 활동과 연결한 시도들의 계기이기 도 했다. 방문한 사람들은 무엇보다 베시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통 해 자신의 일상과 환경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자 신이 깨닫지 못했던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행복에 대한 질문을 스 스로에게 다시 해보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성과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프로그램의 세 주체들이 만남의 본질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 1인 엔지오! 청년 자원활동가 ‘1인 NGO가 되어라!’라는 말은 요즘 품이 청년들에게 자주 하 는 말이다. 형태가 있는 엔지오를 설립하라는 뜻이 아니다. 청년으 로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변화를 위한 실천적 행동을 하 며 살아가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란 한국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지구 반대편의 일과 나의 일상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까운 예로 쉽게 사 먹는 햄버거와 아마존의 밀림이 없어지는 것의 연관성을 드러낸 <지식 채널-e의 ‘햄버거 커넥션’>의 사례를 꼽을 수 있다. 이런 의미로 청년들로 하여금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에서 실천하기’를 배울 수 있도록 품은 베시 마을에 청년들을 파견하고 있다. 베시 마을의 아이들, 마을 청년들 역시 다른 문화에서 온 한국 청년들에 게 자극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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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1인 엔지오가 되어 의심과 사유를 통해 실천함으로서 변화를 꿈꾸는 네 명의 청년들이 짧게는 2주간 길게는 1년 5개월 간 활동하며 베시 마을을 거쳐 갔다. 청년들은 심한기 대표의 강 의, 품의 활동, 품을 후원하고 있는 부모 등을 통해 품과 베시 마 을을 알게 되었다. 각기 개인의 색깔만큼 베시 마을과 연결된 경 로 역시 다양했다.

청년 안이진은 외국에서 살다 온 경험을 살려 도서관에서 청년 및 아이들과 영어 수업을 진행했다. 바쁘게 사는 것에 익숙하다가 할 일 없는 시간을 보내는 낯설음도 마주하며 방학 기간을 온전히 마을에서 보냈다. 무엇보다 마을의 아이들, 청년들과 소소한 일상 을 보내며 자신이 꿈꾸는 국제활동에 대한 꿈과 품의 활동을 비교 하며 사유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열일곱 살 청년 고그린은 고등학교에 1년 빨리 입학했지만, 자 신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과감히 휴학계를 내고 네 팔 행을 선택했다. 처음에 한 달을 예정했던 일정은 한 달이 더 늘 어난 두 달이 되었다. 그린이 역시 도서관과 학교에서 영어수업을 진행했는데, 그린이의 수업방식은 영어교사로 있는 꺼멀리에게 좋 은 자극이 되었다.

품의 자원활동을 통해 베시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된 청년 임경화 는 처음 도서관이 생겨 방과 후 교실이 흡수될 무렵 마을 청년들과 같은 입장에서 마을, 도서관, 아이들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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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으로 구체화시키는 과정을 함께했다. 현재 임경화는 일본에서 자 신이 전공한 사회복지와 연계한 활동과 공부를 매우 활발히 진행 하며 삶의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1막에서도 소개된 안하나는 품에서 1년간 지역의 십대들과 활동 한 경험을 살려 학교에서 리코더 동아리를 만들었다. 미술과 음악 수업이 없는 학교 아이들에게 네팔의 풍부한 문화적 환경에서 감 성적 성장의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함이었다. 네팔은 문화예술적 으로 환경이 매우 풍부하다. 한국과 비슷한 악기도 많고, 단조와 엇박자를 사용한다. 피리 역시 쉽게 사용하는 악기이다. 안하나는 음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아이들과 1년 5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 다. 지금은 아이들이 연주할 수 있는 노래의 수도 제법 많고, 경험 이 쌓인 아이들은 동생들을 가르치며 동아리로서 자리를 잡았다. 또 도서관 일을 함께하고, 틈만 나면 동네를 돌아다니며 아주머니 들과 수다도 떨고 일도 도우며 타지에서 온 처녀지만 마을 청년처 럼, 또 동네 주민으로서 살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안하나는 자신의 고향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위한 활동의 꿈을 확실히 다졌다. 앞으 로의 활동이 기대되는 청년이다.

네 명의 한국 청년들과 베시 마을과의 만남은 서로에게 큰 자극 과 영향을 주었다.

‘개인적인 것이 가장 공공의 것과 연결되어 있다’라는 말이 있다. 개인이 느낀 사소한 불편이 사실은 모두가 공감하는 불편이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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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위한 문제해결 시도가 결국 모두를 위한 변화가 될 수도 있 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가 꼭 들어맞진 않더라도 생각해보면 개인 의 생각과 실천이 얼마나 많은 것들과 연결고리를 가질 수 있는지 상상해볼 수 있다. 비슷한 이야기로 ‘결정론적 카오스’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나비효과’와 비슷한 이야기로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는 큰 태풍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는 것이다. 그만큼 개인의 작은 경험 또는 실천이 결코 사소한 것 이 아니라는 말이다. 스스로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아름답고 많은 가능성을 담고 있는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①

① 청년 임경화  청년 안이진  청년 안하나  청년 고그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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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시 마을과 함께 성장하는 엔지오 네팔 품

베시 마을과의 과정을 통해 품도 성장하고 배운 것이 매우 많았다. 원래 품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실천 키워드이자 삶의 태도인 ‘마을, 일상, 속도, 다름의 수용, 소통, 문화’ 등의 개념이 많이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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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 사무실의 시작과 접기까지의 흐름에 따라 변화된 베시의 지원 형태 2006년 ‘한국-네팔 문화예술교육워크숍’을 진행한 뒤 카트만두 타멜* 인근지역에 작은 사무실을 열었다. 단순히 업무 공간을 확보 하기 위함보다는 상호적인 성장이 되기 위한 연결성 있는 사업 운 영, 일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 네팔에 대한 이해 등이 이 유였다. 처음 3년간 네팔 품은 ‘아름다운재단의 변화의 시나리오’ 를 통해 사업지원을 받았다. 이 지원비는 프로그램 활동비 뿐 아니 라 인건비를 포함한 운영비를 지원해주었기 때문에 사업의 실험적 접근과 시도들을 안정적인 구조에서 할 수 있었고 네팔 품의 상근 활동가 역시 적절한 사람을 필요한 곳에 배치할 수 있었다. 네팔 품의 직원은 한국에 있는 품과의 소통과 네팔 엔지오 활동가 키우 기 등을 목적으로 한국인 한 명과 네팔 활동가 두 명이 함께 근무 했다. 서로 다른 문화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었지만, 많은 부분 에서 품이 네팔을 이해하고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베시 마을과 처음 관계를 맺은 2007 ~ 2010년까지는 1주일에 한두 차례 마을을 오갔다. 청년과의 회의와 활동지원, 주민회의뿐 아니라 가끔은 마을 주민들과 벼 베기도 하며 관계를 맺었다. 4 년간의 활동은 크고 작은 변화와 희망들을 마을에서 만들어 냈다.

*

한국의 이태원과 같은 여행자의 거리이다. 네팔은 수도 카트만두에만 국제선이 운항하기 때문에 네팔을 오가는 외국인의 대부분은 타멜 지역에서 묵게 된다. 싼 게스트하우스부터 비싼 호텔, 세 세계 각국의 음식점, 각종 상점, 여행사 등이 집합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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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품 직원들과 베시 마을 청년들이 함께 미팅 중. 마치 동네 친구들끼리 나누는 수다 같다.

이러한 변화와 희망들은 더 깊고 넓은 관계와 접근이 필요함을 인식하게 했다. ‘마을’은 구조가 좀더 복잡한 존재였다. 다양한 세 대들이 마을 안에 살아가고 있으며 경제, 교육, 환경 등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다. 어느 한 부분의 변화만으로 ‘마을’의 변화를 만들 어가기에는 부족했다. 이것은 베시 마을과 행복한 마을을 만들어가 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사업적 접근이 아닌 더 깊은 삶으로의 접근이 필요했다. 품은 외부인으로 언제나 ‘손님’ 인 것은 분명하지만 ‘주인으로서의 손님’으로 마을에서의 삶을 선 택했고, 카트만두에 있는 사무실을 정리하며 이러한 선택과 집중을 구체화시켰다. 함께 일하던 네팔 활동가들도 베시 마을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사회와 마을의 변화를 꿈꾸게 되었다. 베시 마을로 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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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을 옮기면서 함께 일하지 못한 아쉬움은 존재하지만, 조직의 형 태보다 삶으로의 접근을 선택한 품의 선택을 받아들여주었다. 이들 은 현재 네팔 품 활동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다음 발걸음을 걷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품이 네팔에서 하는 활동에서 매우 중요한 역 할을 하며 식구와 같은 존재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베시 마을로 들어간 품은 마을의 새로운 공간에 또 다른 사무실 을 차린 것이 아니라 도서관 한쪽을 사용하기로 했다. 소유하고 있 던 사무기기 및 기자재 등은 학교와 함께 공유하며, 아이들의 교 육과 청년들의 활동을 위해 활용되고 있다. 한국인 활동가는 마을 주민들의 집을 빌려 살아가고 있다. 초반에 집을 얻을 때도 혹여나 마을 안에서 보이지 않는 오해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신 중한 선택을 위해 교장 선생님과 몇 차례 논의를 거쳐 집을 선택 했다. 오해란, 품과 활동을 활발히 하는 분의 집에 머물 경우 품의 활동을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분이 불필요한 시샘을 하거나 ‘끼리끼리’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현재 품은 베시 마을에서 주인으로의 손님으로 살아가고 있다. 활동가의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대략 도보로 15분 정도 걸리 지만, 실제로 학교에 도착하기까지는 몇 배의 시간이 걸린다. 안부 도 묻고, 오늘 날씨가 어떤지, 어제 밥은 무엇을 해먹었는지 등 소 소한 일상 이야기로 수다를 떨다 보면 시간이 훌쩍 흘러버린다. 조 금씩 인사하는 주민들의 수도 늘어나고, 이제 품의 활동가를 딸처 럼, 친구처럼 진심으로 여겨주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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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나마스테’라는 인사를 몇 번 하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마을 사람들과 가까워져 간다.

초반에는 ‘마을 스스로 독립적인 구조를 만드는 것을 품의 최종 목표’라고 설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품 역시 변화되었 다. 베시 마을과의 과정을 통해 품도 성장하고 배운 것이 매우 많았 다. 원래 품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실천 키워드이자 삶의 태도인 ‘마을, 일상, 속도, 다름의 수용, 수통, 문화’등의 개념이 많이 확장 되었다. 이러한 확장은 한국 품이 활동하는 데 가치적으로 많은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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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만들어냈다. 품은 이제 베시마을에서 이루고자 하는 구체적인 목표가 없다. 앞으로도 마을 주민, 청년들과 행복한 마을에 대해 끊임없이 함께 고민하며 실천해 나갈 것이고 시도할 것이다. 그렇 기 때문에 언제까지 마을에 머물 것인가 역시 고민하지 않는다. 그 저 오늘도 주인으로서의 손님으로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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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끼와 거북이 한국과 네팔의 시공간적 차이는 토끼와 거북이 달리기 경주와 같 다. 우월감과 자만심으로 가득 찬 토끼가 느리고 느린 그러나 게 으르지 않은 거북이에게 지고 만다는 이야기는 동화 속에서나 가 능한 이야기다. 현실에서는 어느 누구도 여유로운 거북이의 삶을 선택하기 쉽지 않다. 특히 빠른 속도감, 그것도 압축적 속도감으 로 무장된 한국에서는 더욱 쉽지 않다. 고도성장의 깃발을 휘날리 며 메가톤급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는 한국인에게 비친 네팔의 모 습은 느리고 게으른 거북이와도 같다. 네팔인들은 토끼처럼 성장 한 한국을 부러워하며, 한국에서 직업을 갖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하기도 한다. 이러한 외형적 상황에서 우리가 자주 만나 는 함정이 하나 있다.

즉 개발이나 경제성장과 같은 외형적 수치로 국가나 민족 간의 등급을 나누고, 사람과 사람과의 수직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토끼 한국은 거북이 네팔에게 가르치거나, 도와주어야 하고, 거북이 네팔은 토끼 한국의 모든 것이 앞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함정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함정에 빠져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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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허라 강가에 던져진 돌멩이 하나 모노허라 강은 카트만두 주위를 맴돌다가 바그마티 강을 만나 남쪽으로 흘러 성스러운 갠지즈 강을 만든다. 작은 물줄기가 성스 러운 강과 호수가 되고, 드넓은 바다가 된다는 자연의 순리를 잊 고 사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다. 눈에 보이는 작은 것에 대한 소박 한 가치를 잊고 사는 인간의 삶에서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일상에서의 작은 통찰’이다. 잔잔한 강가에 던져진 돌멩이 하나 가 강 속에 숨겨진 무한한 생명력과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듯이, 단 조롭고 답답한 일상에 던져진 돌멩이 하나가 삶의 에너지와 가치 를 확인시켜주기도 한다.

모노허라 강가의 작은 마을 베시, 그 작은 마을 속의 작은 모노 허라 학교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던져졌다. 2007년에 던져진 그 진동은 멈출 듯 멈출 듯 멈추지 않다가 결국은 베시 마을의 희망 을 보여주는 작은 물결이 되었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어 보이지 않 는 마을에 숨겨진 에너지와 희망들이 쏟아져 나왔고, 아무것도 없 어 마을의 청년들이 스스로 학교와 마을을 위한 모임을 만들었으 며, 아무런 걱정도 열망도 보이지 않던 교장과 교사들이 교육자로 서의 성장을 위한 의견과 제안을 내밀었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 던 다수의 마을 주민들이 지지의 미소를 보내기 시작했다. 작은 마 을 베시에 깊은 울림들이 너울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크게 시작하지 않으려면 집으로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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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굴지의 기업 마크로소프트 회사의 슬로건이다. 크게 시작하 여 거대한 파도과도 같은 큰 이익을 남기는 장사가 이 시대의 슬로 건이 되고 있지만 오직 크고 거대한 것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베시 마을, 모노허라 학교에서 7년간 벌어 진 일들은 너무도 작고 소박한 일상들이었다. 하지만 빠르지 않게 상호간의 신뢰와 관계를 만들어가고, 편안한 일상들을 교감하는 과 정 속에서 기대하지 못한 희망들을 함께 발견해갔다. 만약 우리가 처음부터 거대한 꿈과 물질 등을 일방적으로 제공했다면 베시 마 을에 숨겨진 스스로의 희망을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소박하게 시작된 관계에서 만들어진 희망들을 나누며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지금까지 우리가 내밀었던 문화와 예술, 국제교류사업 등의 명칭들이 얼마나 거창한 표현들이었는지, 그 표현들이 그들 에게 쉽게 교감될 수 없는 단어들이었는지를.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가까이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슴의 언어들을 찾으려 한다.

벼농사가 시작되는 때라서 모두들 모심기에 여념이 없었다. 교장 선생님, 아이들과 함께 모심기에 동참한다. 잠시 쉬면서 새참(감자) 과 막걸리(창)를 나눠 마시는 이 순간에는 문화와 예술, 국제교류 사업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따뜻한 무언의 언어들 만이 들꽃처럼 피어오른다. 그리고 앞으로 이들과 함께 나눠야 할 것은 프로그램과 프로젝트가 아닌 서로가 두 볼을 만지며 감사할 수 있는 인연(karma)들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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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토끼와 거북이 부산행 고속열차의 속도에서는 갓 피어난 제비꽃을 만나지 못한 다. 하지만 느리게 바라보고, 느리게 걸어보는 과정에서는 갓 피어 난 제비꽃들과 하염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빠른 토끼가 느린 거북이의 걸음으로 걸어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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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 않고 빠르게만 달리다가 자칫 흘려버릴 수 있는 시간의 소 중함들을 회복하려면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시간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히말라야에서의 시간은 오늘도 천천히… 천천히… 하 늘과 구름을 향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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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 이하니

1장. 남의 땅에 들어갈 땐 모자를 벗어라 _ 그들의 삶에 끼어들다 _ ‘비뎨시(외국인)’가 범할 수 있는 오류 _ 금보다 귀한 현지 문화 _ 어떻게 모자를 벗을 것인가? 2장. 자연스러움과 치열함을 넘나들기 _ 우리의 기획서에는 그들의 일상은 없다 _ 말! 말! 말! _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가? _ ‘공동체’ 어렵게 풀어갈 일이 아니다 _ 아름다운 결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_ 나를 웃기고 울리는 사람들 _ 축제가 마을을 자라게 한다 _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는 일상의 진정성 _ 소통과 연대는 또 다른 희망을 낳는다 _ 원래 하고자 했던 일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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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

1장

남의 땅에 들어갈 땐 모자를 벗어라    

그들의 삶에 끼어들다 ‘비뎨시(외국인)’가 범할 수 있는 오류 금보다 귀한 현지 문화 어떻게 모자를 벗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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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삶에 끼어들다

고등학교 때로 기억한다. 어느 날 우연히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을 통해 아프리카 아이들이 병들고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 었다. 그 장면은 그 후에도 오랫동안 머릿속에 강하게 남았고 막연 하게나마 나도 저런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지금 돌아보니 그것이 제3세계에 대한 나의 운명적 관심의 시작이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당시 텔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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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서 보았던 것처럼 가난한 나라의 불쌍한 모습을 보여주어 사람 들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과, 그들의 가난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복합적인 요소들에 의해 대물림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쉽게 ‘돕는다’는 표현을 쓴다. 네팔에서 활동하며 만나 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들을 돕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묻는다. 사실 우리가 서로를 인정하고 도우며 사는 것만큼 기분 좋 은 일이 또 있을까? 평화라든가 인권, 복지라는 이름으로 귀한 가 치를 추구하며 활동하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세상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런 기분 좋은 상상에 ‘저들은 불쌍하니 나의 도움이 필요해. 내가 무언가를 해줘야겠어!’라는 무 시와 차별이 우리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끼어들게 되는 것 이 현실이고, 이는 결국 현지 사람들이 아닌 도움을 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중심에 놓이는 활동을 하게 한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단순히 그들을 돕겠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대학에 진학하며 선택한 전공이 사회복지였다. 하지만 공부하다 보 니 현장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나라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서비스 를 제공하거나 무언가를 끊임없이 주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점 이 답답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자를 위한 학문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약자일 수밖에 없는지, 그들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의 답을 찾기에는 내 자신이 매우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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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바뀌다 보니 결국 우리가 흔히 경제적 잣대로만 정의하는 저개발 국가를 지원한다는 것이 현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외부인이 그들 본래의 삶에 끼어드 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 는 입장이라면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는데, 결 론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생각했을 때 가장 충실히 해야 하는 기본은 현지인들의 삶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존 중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또는 외부인이 정해놓은 잣대를 가지고 함부로 그들의 삶을 판단하지 않으면서,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제3세계 국가 사람들이 어떠한 방식으 로 대응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가는 것이 내가 맨 처음 이상적이 라고 생각한 활동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꿈꾸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최근 UN이나 국제 대형 단체의 진출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제3세계와 관련된 다양한 영역의 활동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런데 모두가 이 계통의 사람들 역시 전문화되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는 모습을 보면서 의아했다. 물론 모든 이들이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에게는 이러한 모습이 제3세계 사람들의 삶을 제대 로 이해하기 위한 공부라기보다는 우리의 방식을 어떻게 그들에게 전달할 것인가 내지는 화려한 스펙을 좇는 모습 정도로만 보였다. 실제 현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들 중에도 그 안에 너무나도 당연 하게 지켜져야 하는 기본이 빠져 있는 경우를 쉽게 접할 수 있었 고 늘 그런 상황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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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세계는 점점 더 가까워져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삶에 끼 어들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왕 하는 것 조금 더 잘 끼어들어서 서로의 삶이 풍성해질 수 있는 활동들이 더 많 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현지 사람들의 삶을 제 대로 이해하면서 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관계하고 소통할 수 있 는 활동을 하길 바랐고, 어느 날 이것이 가능할 거라는 믿음이 생 기는 단체를 만나게 되었다. 바로 현재 일하고 있는 ‘품’이다. 무 엇보다 ‘사람’과 ‘문화’를 중심에 두는 품이 추구하는 가치에 끌 려 4년 전 네팔 땅을 처음 밟았고, 지금까지 가슴 떨리는 과정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으로서 그들의 문화에서 살면서 실 수도 하고 배우기도 한다. 솔직히 말하면 부족하고 부끄러운 경험 이 더 많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유는 적어도 이러한 부분이 활동하는 데 기본이 됨을 기억하고, 때론 실수하더 라도 멈추지 않고 노력하는 것의 의미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가 외부인으로서 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실 수들을 잘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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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뎨시(외국인)’가 범할 수 있는 오류

네팔에서의 생활은 비슷하다 싶으면서도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생각될 때가 많다. 네팔어로 외국인을 ‘비뎨시’라고 한다. 네팔 사 람들에게도 ‘비뎨시’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을 것이 다. 우리의 관계나 소통의 장애물은 바로 이 ‘다름’에서 생겨난 다. 그래서 아주 사소하지만 이를 통해 현지의 상황이나 사람들 전 체를 왜곡되게 판단하거나, 하고 있는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 칠 수도 있는 외국인으로서의 시선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 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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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가난하다 “네팔은 나라가 가난한 것이지,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아니다.”

네팔의 한 대학생이 스치듯 한 말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뒤통 수라도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사실 ‘그들은 가난한가, 그렇지 않 은가’는 지금까지 활동해온 나에게도 매우 골치 아픈 주제 중 하 나이다. 그리고 실제로 ‘가난’이나 ‘빈곤’으로 표현되는 생활상의 결핍에 대해서는 실로 다양한 연구와 논쟁이 항상 있어왔다. 그만 큼 외부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가난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정의 하기란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인데, 현장에서 활동하다 보면 그것이 칼로 무 자르듯 딱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더욱 크 게 느끼게 된다.

우리가 마을에서 운영하는 도서관 문턱이 닳도록 찾아오는 꼬마 손님들이 있다. 이 개구쟁이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하루 종일 온 동 네를 쏘다니며 노는데, 도서관은 자기들의 코스 중 하나이다. 그렇 게 실컷 놀다 온 아이들의 모습이 볼 만하다. 흙먼지를 잔뜩 뒤집 어써 언제 씻었는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이고, 나무 타고 흙에서 뒹구는 아이들에게 멀쩡한 새 옷을 입혀 내보낼 일은 없기 때문에 옷은 늘 찢어지고 구멍투성이다. 게다가 그렇게 날마다 가만히 앉 아 있을 시간없이 뛰어 노니 소아 비만을 걱정해야 하는 한국의 아 이들과는 전혀 달리 겉으로 드러나는 아이들의 팔다리가 앙상하다. 이쯤 되면 상황을 모르는 외국인, 특히 현장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방문했을 때 ‘저 아이들의 집은 가난한가요?’ 또는 ‘저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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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원이라도 이루어지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그럴 때면 나 스스로에게 반문해본다. ‘이 아이들이 가난한가? 어 떤 도움이라도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다’이다. 물론 이 아이들의 가정 형편이 마을 안에서 도 상대적으로 가난할 수 있다. 부모가 힘들게 일해야 자녀를 먹이 고 입히고 겨우 공부시킬 수 있는, 세상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고 단한 삶이다. 그런데 그것의 의미가 반드시 ‘우리가 그들을 물질적 으로 도와주어야 한다’는 아닌 것이다.

동네 꼬마 녀석들

마을에서 살다 보면 경제적으로 더 잘살고 그렇지 않고가 그들의 생활이나 서로의 관계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우리 같으면 내 아이가 가난한 집 아이와 어울려 노는 것에 과민하게 반응할 텐데,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번듯한 2층 집을 짓고 사는 사람과 움막 같은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이 스스럼없 이 왕래하고 그들의 자녀들은 서로 친구가 된다. 오히려 누가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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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렇지 않고를 따져 구분하고 경계를 지어주는 일은 주로 외 부 지원 단체들이 한다. ‘가난’이라는 말이 크게 통용되지 않던 동 네에, 부족하지만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것 이 부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순간이다. 물론 자연재해로 인 해 긴급 구호가 필요하거나 절대적 빈곤 상태에 있는 극한 상황에 지원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제3세계 사람들의 삶 을 대하고 판단하는 데 ‘가난’만이 그 기준이 될 수 없음을 이야 기하고 싶은 것이다. 만약 우리가 마을에서 좀더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을 중점적으로 진행했다면, 결국 우리에게는 함께 일하 는 마을 사람들이 아닌 지원을 받는 가난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만이 남아 있게 되었을 것이다.

# 무엇이 더 나은 생활 방식인가 조용하던 한 시골 마을에 품의 활동으로 시작된 외국인의 등장 은 마을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다. 지금은 햇수만으로도 6년째가 되는 터라 초기의 폭발적인 반응이나 관심은 없지만, 재작 년에 마을로 들어와 살게 되면서 외국인인 나의 생활과 행동 하나 하나는 다시 한 번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가 네팔이 라는 제3세계 국가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데에 ‘가난’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곳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한국은 ‘잘사는 나라’이다. 그리고 그토록 잘사는 나라에서 온 내가 어떻 게 생활하는지가 사람들은 궁금했다. 이사 오고 난 후 많이 들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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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중 하나가 “밥은 누가 해? 너희 집에 집안일 해주는 사람이 있어?”였으니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최대한 경제적인 기준을 넘어 한국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 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골고루 나누려고 노력했다. 특히 생활에서 이곳 사람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얼마만큼 많이 소유하고 소비할 능력이 있는가에 의해서만 잘사는 것과 아닌 것이 구분되 는 것은 아님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했다. 또한 화폐 중심 의 소비문화가 결국 이곳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게 되더라도 나 로 인해 그것이 가속화되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은 없어 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집에 휴지를 두었더니 놀러온 동네 아 이들이 왜 휴지를 쓰는지, 휴지를 쓰면 무엇이 좋은지 질문 공세를 해댔다. 며칠 후 한 번도 휴지를 써본 적이 없는 한 아이가 화장실 에 가면서 휴지를 써도 되느냐고 물었다(물론 마을에는 아직까지 휴지를 쓰는 사람이 없어서 동네 가게에서는 휴지를 살 수도 없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한국 언니가 쓰는 것을 보니 물보다 휴지가 더 깨끗하고 편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때 나는 아이들에게 휴지는 나무를 베어 만들기 때문에 환경이 파괴되고 또 쓰레기가 남으니 좋지 않다, 그리고 오히려 물이 비누를 잘 사용하면 종이를 하얗게 하느라 화학약품을 쏟아부어 만든 휴지보다 위생적인데, 한국 사람 들은 게을러서 휴지를 쓰는 거라고 설명하고는 당장 그날부터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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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허수아비! 무엇 하나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이들은 되도록 고쳐 쓰고, 버려진 물건들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한다. 조금만 해지고 구멍 나도 버리는 우리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에서 휴지를 치워버렸다.

휴지 하나 가지고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기 도 했다. 하지만 마을 안에서 환경의 중요성과 보호를 이야기하면 서 모순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 다. 또한 한국이라는 나라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휴지를 쓰는 생활 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선진적이고 위생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 다는 점은 그냥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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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필요한 것이 너무나 많은 소비 중심적인 한국 사 람들의 생활에 비해 오히려 현지 사람들의 삶이 생태적이고 지속 가능하여 그것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전에 네팔에서 몇 개월 동안 지내며 개인 작업을 하던 한국인 공공예술가가 있었 는데, 그분은 처음에 진행할 프로젝트로 재활용을 염두에 두고 있 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불가능한 계획임을 깨달았 다. 네팔 사람들은 물건을 최대한 고치고 아껴 쓰기 때문에, 카트 만두에서 처리가 되지 않아 도시를 지저분하게 차지하고 있는 수 많은 쓰레기더미에서도 플라스틱 봉지나 병 외에는 따로 재활용할 만한 쓰레기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현지인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물건을 고쳐 쓴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소비 위주의 생활 에서 살아온 자들의 오만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만약 작 은 생활습관 하나 또는 외부인이 남기고 가는 이미지가 현지인들, 특히 아이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어 떻게 조심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 현지인들과 일하기 어렵다 제3세계에서 활동하며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이 함께 일하는 현지인들에 대한 존중과 그들과의 호흡이라고 생 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 중요성만큼이나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이 기도 하다. 일단 어렸을 때부터 서구화 교육으로 무장된 우리는 일 할 때도 논리를 들이대게 된다. 효율이나 합리라는 서구식 논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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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대로 세워진 활동 안에서는 현지인들이 외국인들의 지시를 받는 상하 구조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요즘 대형 단체에서 일하는 현 지 직원들은 외국 경험도 많고 우리의 기준에서 능력이 뛰어난 경 우가 많은데, 일부의 경우 오히려 이들이 현지인들을 무시하는 안 타까운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관계가 굳어지면 서로가 서 로를 이해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 되고, 일상적으로 드러나는 문 화적 차이는 자칫 잘못하면 개인 간의 갈등으로까지 번지기도 한 다. 품은 하고자 하는 일 자체가 효율이나 합리를 따져 정해진 프 로세스에 딱 맞춰 진행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으나, 나 역시 긴 시 간 동안 익숙해져 있는 그 논리로부터 자유로워지기가 쉽지 않았 다. 그리고 때로는 스스로가 규정 지어 놓은 수준에 현지인들이 미 치지 못할 때 나 자신의 부족함은 생각지 못한 채 그들을 다그치 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처음 마을에서의 활동을 시작했을 때였다. 도서관지기로 일하는 친구가 이웃집 아이의 성인식이 있는데 가서 도와줘야 해서 출근을 못하겠다고 했다. 사실 자기 가족 일도 아니고, 도움을 줄 사람이 그 친구밖에 없나 하는 생각이 들어 뭐 그런 일로 출근을 못한다고 하나 싶었지만, 처음이기도 하고 어쨌든 마을 일이고 우리가 마을 에서 일하기도 하니 일단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이 후에도 꽤 자주 반복되었다. 크고 작은 축제에, 집안 모내기, 옆집 추수, 동네 형의 오토바이 접촉 사고로 인한 병원 행까지.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좀더 유동적인 업무 운영이 필요 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주 빠지다 보니 오히려 해야 할 일들이 제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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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는 그날도 못 나오겠다 는 그 친구에게 “그럼 며칠 전부터 밀리고 있는 이 일은 누가 하 지?”라고 질문했다. 그의 대답은 “커이, 께 거르네(글쎄, 그럼 어 쩌지)”였다.

이 정도 되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표정이 굳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의 배경이 되는 문화를 살피지 못한 채 이 친구 가 보인 행동만으로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책임감없고 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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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명절 역시 어른이 덕담을 해주시고 음식을 나누는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동네에 무슨 일이 있으면 하루 종일 다니며 대접해주시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일이 조금 힘들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온전히 그들의 흥과 유대를 맛볼 수 있다.

르다’가 되어버린다. 사실 네팔에는 전통적인 축제나 다양한 가족 행사들이 많고 사람들은 이를 통해 함께했을 때 즐겁고 힘이 된다 는 경험을 쌓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처럼 그들의 수많은 축제와 잔 치가 농경사회의 공동체 구성원들 간에 유대를 강하게 해주는 중 요한 요소로 작용해왔기 때문에 현지인들의 문화 안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점을 처음부터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또한 네팔 사람들이 잘 쓰는 ‘께 거르네(그럼 어쩌지)’라는 표현이 어떤 책임 회피나 안이한 태도에서 온 것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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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적으로 쟁취하는 것보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순응해온 경험이 더 많기 때문이라는 것 역시 처음에는 이해할 턱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조건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것만이 현장에서 최선의 해답이 될 수 없음을 경험적으로 익히고, 그들의 문화적 배 경을 조금씩 알고 나니 현지인들이 이해되지 않는 상황 역시 많이 줄어들었다(물론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들이 생기긴 하지만 이제는 한번 멈추어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그리고 때로 는 그들의 삶에서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고, 바로 그것이 우리 가 지켜내야 하는 소중한 가치라는 점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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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보다 귀한 현지 문화 인도네시아 발리 사람들에게 삶은 예술이고 종교이며 그들은 모두 재능 있 는 예술가들이다. 힌두교와 이슬람, 토착문화의 정교한 문화 융합으로 발리 섬은 신이 내린 걸작이라고 칭송된다. 문화는 경제발전을 넘어서 주민들에 게 영감과 행복감과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불어 넣는 힘이다. 문화가 강 한 나라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세계화의 위험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번성 하며 자긍심을 잃지 않는다. 브라질이 그렇고 히말라야의 부탄이 그러하며 아프리카의 말리가 이를 입증한다. 반대로 문화 정체성을 잃고 문화적으로 통합을 이루지 못한 국가는 많은 외부 원조에도 불구하고 빈곤의 악순환에 서 벗어나지 못한다. - 이태주 <‘문화와 발전’ 의제의 주류화를 위하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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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네스코 홈페이지에서 접한 이태주 교수님의 글이다. 현지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가 외국인으로서 현지인의 문화 를 오해하거나 무시했을 때 그 활동이 실제로 그들에게 이로운 것 이 될 수 없음을 잘 설명해주는 글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 히 네팔 사람들의 문화는 미개하고 발전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 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인식 속에 현지인들은 늘 결 핍 상태에 놓여 있다.

네와르 민족의 비중이 큰 내가 사는 마을에는 ‘구티’라는 풍습 이 있다. 가까이 사는 형제, 친척, 이웃으로 구성된 ‘구티’는 집안 이나 마을 대소사에 힘을 합쳐 일을 치르는 모임으로 예전 우리의 ‘두레’ 풍습과 비슷하다.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하는 이곳 문화에 서 땔나무를 사고 장례를 치르는 일은 혼자 하기에는 어려운, 하지 만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 중 하나이다. 장례를 함께 치르기 위 해 시작되었다는 ‘구티’는 사람들의 삶에서 서로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순간에 함께한다. 이웃집 자식의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자기 집에 있는 물건을 아까워하지 않고 내오며 함께 모여 음식을 준비 한다. 한껏 들떠 있는 모습을 보면 어느 누구도 이 과정을 고되다 생각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에 밤새 이어지는 춤과 노래는 그들의 흥을 돋운다. 노동과 놀이가 분리되지 않는 진정한 삶 속 축제의 모습이다. 이렇게 즐겁게 함께하는 풍습을 보면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싶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내가 지금 까지 발견한 금보다 귀한 네팔의 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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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구티’가 있던 날

왜곡된 시선의 외국인이 범할 수 있는 오류가 낳는 가장 위험한 결과는 이러한 귀한 문화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지인들 스스 로가 그들의 문화가 한국이나 자신들보다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 의 것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단 한 번도 자신의 고향이 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외부인 의 잘못된 시선에 의해 자신들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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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자신을 책임감 없고 게으른 무능한 활동가로 만든 것 이 바로 태어나고 자라온 열등한 문화라고 인식하게 된다면 우리 는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학자는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활동을 통해 문화란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자체이자, 일상을 지탱해주는 삶의 근간이 아닐까 정의해보았다. 사람은 각자 태어나고 자란 곳의 문화 안에서 살아 가게 된다. 그러한 문화는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 그곳 에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적합한 삶의 모습으로 형성되 어 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결코 정체됨 없이 새로운 변형의 과정 을 겪고 있다. 뿌리가 튼튼한 문화는 그 안의 사람들을 주체적이 고 당당하게 해준다. 내가 만난 네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여전 히 자신들의 문화를 귀하게 여기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속해 있는 사회에 대한 주인의식과 함께 적극적인 관심과 행동으 로 이어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네팔도 현재 과도기를 겪고 있다. 그들만의 문화가 여전 히 건강하게 살아 있기는 하지만, 서구식 자본주의가 무섭게 흘러 들어오고 있고, 그것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선택할 기회 없이 삶에 깊숙이 파고들어 그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문화보다는 서구적인 삶 의 양식이 선진적이라는 이미지를 주입시키고 있다. 우리 동네에만 해도 무분별한 서구화의 여파로 시작된 영어 공부 열풍이 사립학교 에 다니는 어린아이들로 하여금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신들의 모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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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가 아닌 영어를 먼저 익히게 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영 어를 읽을 때 소리 내서 발음은 하면서 무슨 뜻인지 모르거나, 네 팔어는 아예 읽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든다. 이 아이들이 성장해가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언어를 포함한 문화에 대해 과연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지 걱정이 되어서이다. 가 까운 예로 한국 사회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문화 정체성이나 정 신적인 가치를 잃어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쉽사리 회복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현지 본래의 문화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생각 해볼 수 있다.

때문에 마을에서 살며 그들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나누는 일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로 아이들이나 주민들을 만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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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나의 손은 하얗고 부드럽다. 반 면에 마을의 대부분이 농사를 짓는 이곳 사람들의 손은 굵고 거칠 며 햇빛에 검게 그을려 있다. 그래서 종종 동네 디디(자신보다 나 이가 많은 여성을 부르는 호칭)들은 내 손을 쥐며 어쩜 손이 이렇 게 곱고 하야냐며 이야기하신다. 그럴 때면 나는 글씨 쓰는 것 외 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게으른 손이라고 말하며 쑥스럽게 손을 빼내곤 한다. 나의 하얀 손과 그분들의 거친 손이 문화의 우열을 의미하지 않음을 소통해가는 것이 개인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활동 의 최대 과제이다. 이는 서로 다른 두 문화가 동등하며, 어쩌면 생 명을 이어가는 그들의 문화가 산업 문화의 여러 진통을 앓고 있는 우리에게 알려줄 것들이 더 많음을 나누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 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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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모자를 벗을 것인가?

‘남의 땅에 들어갈 땐 모자를 벗어라.’

내가 네팔에 간다고 했을 때 외국에서 오랜 시간을 살다 오신 한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어디를 가든 자신이 익숙해져있는 것 들을 잠시 내려놓고, 그곳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대한 존중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이 함축적인 한마디로 선물해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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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나에게 이 말은 방향키와도 같았다. 하 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것을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것을 넘어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결국 가장 현명하게 모자를 벗는 방법은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 겠지만 서로가 다름을 인식하고 인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 닐까 생각해본다. 이때의 관건은 실제로 내가 이미 오랜 시간 익 숙해져 있는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진 상태로 현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일방 적으로 전달하려고 하지는 않는지, 다름을 틀림으로 해석하고 있 지는 않은지 늘 돌아볼 일이다. 이러한 성찰이 가능하다면 외국인 이 범할 수 있는 오류도 많지만, 우리가 먼저 산업사회를 살아오며 경험한 것들이 현지인들의 문화를 지켜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때 ‘우리가 이렇게 해봤더니 실패했어. 그 러니 당신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좋아’라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 고 나가면 이는 변화가 아닌 주입이 되어버리고, 이는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던 힘을 약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지난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외부인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최대한 줄이면서 활동할 수 있는 나의 역할 은, 현지 주민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귀한 가치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그들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독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험 적 의도를 잘 살피고 그 둘 사이에서 지혜롭게 줄타기 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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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곡예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줄에서 떨 어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쓰 고 있는 수많은 오류와 오만의 모자를 제대로 벗고 그들의 삶에 행 복하게 끼어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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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

2장

자연스러움과 치열함을 넘나들기          

우리의 기획서에는 그들의 일상은 없다 말! 말! 말!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가? ‘공동체’ 어렵게 풀어갈 일이 아니다 아름다운 결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나를 웃기고 울리는 사람들 축제가 마을을 자라게 한다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는 일상의 진정성 소통과 연대는 또 다른 희망을 낳는다 원래 하고자 했던 일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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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획서에는 그들의 일상은 없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통해 이미 눈치챘겠지만, 나는 허울 좋은 세 계화에 대한 일상에서의 부드러운 저항을 꿈꾸며 네팔에 왔다. 신 자유주의라는 경제 시스템을 무기로 세계 곳곳의 약자를 더욱 약하 게 만들고 있는 흐름에 화가 났고, 이와 관련하여 무언가 실질적인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네팔에 처음 왔을 때 우리가 하게 될 활동을 통해 사람들이 폭력적인 세계화에 대해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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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하고 나면 분명 그것에 저항하는 일들을 해낼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더 나아가 우리가 만들어갈 과정이 작지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국제 개발이나 연대 활동에 대안적인 모델 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목표도 있었다. ‘자본에 장사 있을 것 같은’ 마을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결코 넘치는 기대일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마을 공동체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본다. 내가 네팔에 파견되던 첫해까지 품이 집중적으로 하던 사업 은 수도 카트만두의 교사와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교육워 크숍이었다. 이러한 교육 사업은 사람들의 삶에서 어찌 되었든 간 에 한 걸음 떨어져 접근하는 방식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베시 마을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네팔 사람들의 삶을 조금 더 가까이 에서 바라보며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가 설정해놓은 목표가 이곳 사람들의 삶에는 어울릴 수 없는 다소 거창하고 인위적인 것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상이 너무 높으면 현실이 그것을 따라갈 수 없게 마련이다. 이 상적인 시각으로만 보면 건강한 공동체성이 남아 있는 마을에서 함 부로 나무를 베어내고 모래를 파내 땅이 메마르고 모래 먼지가 휘 날리는 것은 믿기 어려운 부정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것은 사람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부정적인 상황을 그냥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말하거나 그로부터 이 익을 얻는 외부 자본 세력을 옹호하고자 함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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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우리의 목표대로라면 이러한 상황을 멈추어야 했고, 이를 위해 사람들을 설득하여 불의에 강경하게 대항하는 이들을 등장시 켜야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고, 마을이라는 배 경을 고려했을 때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해결책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제3세계에서의 활동에서 대안적이고 이상적인 공동체 사례 를 만들겠다는 의도로는 모래채취 사업에서 얻는 이익을 통해 자식 들을 결혼시키거나 공부시키는 주민들과 모래를 파내는 일용직으 로 삶을 꾸려가는 이들, 이렇게 얻은 이익이 마을 안의 길을 닦는 일부 자금으로도 돌아가고 모래를 파낸 후 사막처럼 황폐해졌다고 생각되던 땅에 옥수수를 심어 다시 농지로 개간하는 모든 상황들 을 설명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정해 놓은 고정된 기준의 목표로는 그들의 삶을 설명하고 그것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채취된 모래를 실어 나르며 모래먼지를 심하게 일으키는 트럭들에게 주행속도를 줄여달라는 내용의 표지판을 달고 있는 주민. 삶과 연결되어 있는 모래채취를 중단하기에는 불가능했지만, 주민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한 의미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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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마을에서의 활동을 위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커다란 목표는 깨져야 했다. 이는 우리가 추구하는 대안적인 모델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초기에 거 창한 의도에서 사업을 진행하다가 그들의 삶에 점점 더 가까워지 는 낮은 자세가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강한 의도를 가지고 직 접 할 수 있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고, 우리의 의도를 강요했을 때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결코 지속적으로 이어 질 수 있는 진정한 변화가 아니라는 점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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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말! 말!

한국에 있을 때 나는 누군가 하는 멋진 말이나 그들이 쓴 글을 통해 자주 감동받았다. 그리고 나의 현재 상태를 자세히 공유하며 관계를 쌓아가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말 그대로 언어적으로 해석하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 이 한국에서 농사를 짓거나 노동직에 종사하지 않는 이상 살아가면 서 특별히 몸을 쓸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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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 헬스장에 다니고 산악회를 조직해 산에 다니는 거라는 생각 을 해본 적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렇게 한국 사람인 내가 익숙해져 있는 말로 풀어내는 방식은 초기에 마을에서 진행하는 활동들에도 적용될 수밖에 없었다. 당 시 우리는 무슨 일만 있으면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그중 대 표적인 것이 마을 핵심 주민(아저씨, 교사, 청년)들로 구성된 도서 관 운영위원회 회의였다. 네팔에서 도서관 사업을 진행하는 단체들 이 많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도서관이라고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거나 심지어 들어보지도 못해 결코 친숙한 공간 이 될 수 없었다. 따라서 이 회의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마을 도 서관의 의미나 마을 내 기능에 대해 공유하며 주민들을 운영에 직 접 참여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물론 주민들을 만 나 이야기할 때는 최대한 그들이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골라 설명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시작된 회의는 나에게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 중 하나였다. ‘우리 마을’이라는 가슴 뛰는 표현을 매우 자연스럽게 쓰며 우리 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결론으로 이어지던 당시의 크고 작은 논의와 합의들은 감동적이고 의미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것 이 반드시 행동이라는 실천적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맨 처음 우리의 아이디어로 제안되었던 운영위원회 회의는 시간이 갈수록 형식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져 갔고,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사라져버렸다. 워낙 전통적으로 힘을 모아 함께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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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하는 일에는 높은 경지에 있는 사람들이니, ‘도서관’이 라는 것이 좋다고 하니 한번 지어보자 했다가 시간이 지나 며 관심이 시들해졌던 것이다. 처음에 문을 연 후 도서관을 장악하던 아이들조차 ‘이미 있 는 책은 다 봤다(물론 사실이 아니다)’, ‘추우면 추워서, 더 우면 더워서 오게 되지 않는 다’고 말하며 발걸음이 뜸해졌 다. 결국 도서관의 문을 연 지 6개월 만에 남게 된 것은 품과 함 께 해온 몇몇 청년들뿐이었다.

하지만 당시 청년들과 나는 ‘이 길이 아니었나 봐’ 하고 포기하 지 않았다. 그리고 회의 진행이나 사람을 불러모으는 일을 고수하 려는 대신 도서관이 마을 전체에 좀더 잘 활용될 수 있는 실질적인 활동들에 더욱 에너지를 쏟아보기로 했다. 물론 이때까지 주민들과 의 소통 과정이 완전히 무의미했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러한 자리는 지금도 매우 중요한 지점으로 이어지고 있고, 그들이 스스로 판단 하고 결정하는 것을 돕고 있다. 대신 당시의 방식과 달리 회의는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가 아닌 주로 그들이 필요하다고 여길 때 소집되고, 이때 나는 거의 말하지 않고 그들이 이야기를 끌어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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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도록 하는 변화가 있었다.

어쨌든 우리는 실망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든가, 아이들뿐 아니라 일반 주민들도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정기적으로 구입 및 대출하고, 도서 외에도 마을에서 필요한 교육이나 활동들을 진행하는 공간으로 도서관을 활용했다. 그랬더니 예전에 말로써 설명할 수 없었던 의미들이 사람들에게 천 천히 전해지기 시작했고, 다소 침체되었다고 생각되었던 주민들의 관심 역시 조금씩 회복되어갔다. 말로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이해 할 수 없었던 도서관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사람들이 조금씩 이해 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아주 가끔이지만 아이의 손을 잡고 엄마나 아빠가 도서관에 찾아오는 풍경도 볼 수 있다. 결국 가치를 실질적 인 활동으로 풀어내는 것만큼 몸으로 정직하게 살아온 그들에게 신 뢰와 이해를 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음을 배우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하고 책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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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가?

얼마 전 지난 한 해를 정리하며 청년들과 함께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누군가 우리에게 ‘마을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요?’라고 물으면 딱히 대답할 거리들 이 없는데 우리는 늘 바쁘게 무언가를 하고 있다. 막상 돌아보니 마을 내 경제적인 부분까지 깊이 건드리지는 못했지만 나름 시도해 보지 않은 일도 없고, 아이들, 청년, 청장년층 남성과 여성(남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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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굳이 따로 분리한 이유는 그만큼 남성과 여성 사이의 생활 적인 차이, 필요나 욕구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농민까지 불러 보지 않은 주민 단위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마을의 할머니, 할아 버지들과 함께했던 특별한 과정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분들의 삶 의 경험을 나눌 수 있도록 아이디어 한번 내보자며 깔깔거리며 웃 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듯 마을 안에서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분야에 걸친 과정을 만들어왔는데 매번 그 반응이나 참여 수준은 매우 달랐다. 초기에 는 우리가 외국인이라는 장점이 효력을 발휘해 모든 과정에 열렬한 반응과 참여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외국인 효과가 떨어지며 남게 된 것은 말 그대로 그들의 온전한 필요와 관심이었다. 상황 이 이렇게 돌아가면서 나는 학부 때 배웠던 ‘욕구(Need)’를 제대 로 파악해야겠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사람들이 꼭 오겠다고 해서 어떤 일을 준비했는데 참여하지 않으면 김이 빠지게 마련이 다. 분명히 우리도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을 꼭 갖는다고 하는 데에도 사람들이 오지 않는 것은 그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괴로운 시간이 흘렀다.

기본적인 기초선 조사나 욕구 파악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현 지인들의 삶이나 실질적인 욕구에 대해서 얼마나 정확한 판단 근거 를 마련해주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사람들을 부르거나 말로 설 명하는 것이 잘 통하지 않게 되자 우리는 동네를 돌며 사람들을 만 나기로 했다. 아주 일상적으로 말이다. 어쩌다 한번 묻게 되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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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가 이런 일을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혹시 오실 생각 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라므로 처(좋아요)! 시간이 된다면 꼭 갈게요’일 수밖에 없다. 날마다 하루 종일 논밭 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지금 내가 정말로 원하고 필요 한 게 뭐지?’라는 질문은 사치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에 게 우리가 욕구 조사랍시고 생전 생각해보지도 않은 것들을 물어 대니 결국 피상적인 대답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올해 진행한 일 중 여성 문맹자 교육이 있다. 여성 문맹자 교육 을 진행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는 몇 년 전부터 내부적으로 논의 되었지만 번번이 다양한 이유로 다음으로 미루어졌다. 그런데 마침 네팔 지방 정부에서 문맹자 교육의 교사 인건비와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는 기회가 우리 마을에도 오게 되었다. 게다가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청년 꺼멀리가 우리로 치면 야근을 불사하면서까지 진행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잘 진행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문맹자 교육은 첫 두 달 정도는 순항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결석생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결국 수업을 당분간 쉬는 결과로 이어졌다. 왜 일까? 참여하던 여성들을 중심으로 탐문 수사에 들어갔다. ‘저녁밥 을 해야 하는데 너무 늦게 끝난다’,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고 오 니 힘들어서 더 이상 나갈 수가 없다’, ‘아이들이 숙제하는데 옆 에 있어줘야겠다’ 등 실로 다양한 이유가 나왔다. 하지만 지난 두 달 동안 문제되지 않던 이런 상황들이 어떻게 갑자기 그들의 의지 를 꺾게 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더 깊이파고 들어가 알게 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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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 이유는 ‘이제 이름과 간단한 것들을 읽고 쓸 줄 아는 정도가 되었으니 충분하다’였다. 문맹자 수업을 진행한 꺼멀리와 나는 의 아했다. 우리였다면 혹은 한국의 상황이었다면 좀더 공부해서 책 이나 신문도 읽고, 지금까지 자신이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해보고 싶었을 것도 같은데 문맹자 수업에 나왔던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 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처음으로 시도했던 문맹자 교육은 문 을 닫았고, 이를 통해 우리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욕구나 필요 가 너무나도 다르고, 사람들이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이러한 욕구 와 우리의 활동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을 때 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금 확인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최근 새롭게 도입한 방식은 ‘수다’를 통한 그들의 욕구 파악이다. 이렇게 말하니 뭔가 인위적인 의도가 느껴 지는데, 사실 그냥 일상적으로 열심히 수다를 떨다가 간혹 정말 사 람들 스스로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들 안의 필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심봤다~’ 하는 심정으로 기억해두는 것이다. 과학적 조사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원시적이고 비효율적인 방법 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에게는 지난 5년간의 경험을 통해 찾아낸 가장 효과적인 고도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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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어렵게 풀어갈 일이 아니다

공동체! 이것은 ‘가난’ 다음으로 나를 한없이 복잡하게 만드는 말 이다. 품이 마을에서 하는 활동의 중심이 되면서도 실제로 풀기 어 려운 것이 바로 마을 공동체의 가치 유지와 회복이었다. 처음 베시 에 들어와 살 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 된 미래>는 성경과도 같은 책이었다. 라다크에서 저자가 발견할 수 있었던 공동체성을 포함한 삶의 지혜와 가치가 이곳에도 남아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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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때문에 나에게 베시 마을은 ‘오래된 미래’이자, 공동체적 유토 피아였다. 지금 그때를 돌아보니 무식하게 이상만 높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제대로 된 마을 또는 지역 공동체 안에서 한 번도 살 아본 경험이 없는 산업사회의 열등한 산물이었다. 나의 고향은 강 원도 춘천이다. 사실 강원도 하면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촌스러움 이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내가 20년을 살아온 춘천이라는 곳에서도 우리 집은 단 한 번도 시골이었던 적이 없다. 대부분 도시 계획으로 이주해온 사람들로 구성된 우리 동네에서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 던 사람들은 가족과 학교 친구 몇 명뿐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자연 스럽게 이웃 간의 교류나 연대는 거의 경험하지 못한 채 성장했다.

이러첨 공동체에 대해 머리로 습득한 지식을 ‘말’하던 내가 드 디어 몸으로 살아보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 처음에는 낭만적으로 만 생각되었다. 특히 마을 사람들의 삶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신 뢰는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지금도 내가 마을에서 가장 좋아하는 풍경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를 아이의 엄마가 밭일 나가 있는 동안 이웃과 동네 꼬마들이 자연스럽게 돌봐주는 모습이다. 간혹 놀다가 넘어지거나 다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아이의 부 모는 이웃 안에서 보살핌을 받는 아이가 위험할 거라고 전혀 생각 하지 않는다. 이러한 신뢰 덕분에 이웃 간 문턱은 낮고 언제든 왕 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의 도움이 필요할 때 네 일 내 일 따지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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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없었지만 마음만은 공동체 사람이 다 된 것처럼 열정으 로 가득했던 내가 마을로 이사한 후 가장 부지런히 한 유일한 일 은 동네에서 만나는 주민들께 열심히 ‘나마스떼’라고 인사하고, 크 게 웃으며 수다 떠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벽이 낮은 마을의 문화 안에서 나 역시 ‘개인’이라는 경계 안에 머물기보다 는 ‘우리(집단)’ 안에 있으려고 노력했다. 철저하게 개인 공간으로 분리되는 한국의 도시에서 살아온 내가 대문을 활짝 열어두고 시 도 때도 없이 우리 집에 드나드는 아이들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 에 대해 절대적으로 공감 능력이 떨어지던 나는 어떤 현상을 머리 로 해석할 수는 있으나 몸으로는 그것이 얼마만큼의 무게로 주민 들의 삶에서 작용하고 있는지 느낄 수 없었다. 감정적 단절을 경 험하던 나는 나보다 훨씬 뛰어난 공감 능력으로 상황을 읽어내며 에너지를 받고 있는 강원도 원주의 촌사람 안하나(품 인턴)가 부 럽기만 했고, 그때부터 나에게 공동체는 서서히 머리 아픈 주제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공동체의 속성 중에 항상 긍정적인 것만 있는 것 은 아니라는, 저 위에 있던 나의 이상이 산산조각 나는 경험을 하 게 되었다. 맨 처음 혼란은 서로에 대한 돌봄과 협력이 가능한 마 을의 공동체성 안에 절묘하게 버무려져 있는 개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을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에 진행한 동네 청년들과 의 토론모임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선설과 성악설 등을 논하며 나름의 해답을 찾아보려 했지만 어차피 결론이 날 수 있는 성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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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도움이 필요할 때면 누구라도 팔을 걷고 함께 한다

것은 아니었다. 당시 나는 비현실적이고 성숙하지 못한 관념뿐인 공동체에 대한 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혼란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흐름에 쉽게 넘어지 는 모습을 보며 최고 정점을 찍었다. 말로는 ‘마을을 위해’라고 말 하던 마을 안에서는 나름 유지인 핵심 주민들 대부분이 마을 내 모 래 채취 사업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관여하기 시작했다. 또 협력 으로 이루어지던 농사일에도 내가 한 만큼 상대방도 내 논밭의 일 을 열심히 해줄 거라는 신뢰가 사라지며 일당을 주고 삯꾼을 쓰는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가고 있었다.

내가 귀하게 여겼던 공동체의 가치 중 중요한 부분이 쉽게 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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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저 답답하기만 했고 내가 과연 무엇 을 할 수 있을지 무기력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의 삶 속에 존재 하는 가치 있는 것들을 잘 바라보고 지켜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더 이상 말로써 전해질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풍부한 가치 안에서 살아가 고 있는 이들은 여유로운데 반해 이미 그것을 잃어버려 아픈 진통 을 겪고 있는 사회에서 나고 자란 나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내가 그토록 위태롭게 여겼던 상황들이 상상 했던 극한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어떠 한 개입 없이 그냥 흐름대로만 내맡겨진다면 어떤 결과를 낳을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마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고민하고 행동하 고 있다. 또 거기에는 개인의 이익뿐 아니라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공동체적 가치도 또 하나의 판단 기준으로 계속해서 자리 잡고 있 다. 나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바라보며 이것이 바로 그들이 가지 고 있는 문화의 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왜 그렇지?’가 아니라 우선은 현상을 그저 바라보며 받아들이고 이해 해보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지 만 어느 학자가 ‘이상적인 공동체는 없다’는 명언을 남겼는데, 나 는 이 말을 떠올리며 늘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물론 공동체는 여전 히 나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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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역시 친동생이 아니어도 잘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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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결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품이 하는 일의 매력 이자 최대 어려움이다. 이것은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의 멋진 옷을 볼 수 있는가 아닌가의 수준 정도로 매우 어려운 작업이지만, 가치 를 이어가며 사람들이 성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진실한 변화와 연 결되기 때문에 쉽게 포기해버릴 수 없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 고 내가 마을에서 하고 있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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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는 임금님의 옷을 볼 수 있도록 만드는 해석자의 역할이 아 닐까 싶다.

처음부터 어려웠다. 아니 처음이 더 쉬웠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마을에 들어와 살기 전에는 오히려 어떤 현상을 객 관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해내는 것이 더 쉬웠다. 자신들이 하고 있 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워하는 청년들에게 조금만 더 힘내 라며 내가 해석해낸 것을 들려주었고 그때마다 고맙게도 친구들은 다시 기운을 내곤 했다. 그런데 막상 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고 모든 것이 일상이 되고 나니 나는 갑자기 시력을 잃은 것처럼 눈 앞이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이 도대 체 어떤 의미가 있는 거지? 무엇을 가능하게 한 거지?’ 마을에서 의 과정을 시작한 후로 이토록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의 의미에 대 해 완전히 뒤집어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의문과 의심 이 계속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해석이 결코 거짓말은 아닌 데, 거기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을 지 울 수 없었고 완전히 길을 잃은 것 같은 방황의 시간은 계속되었다.

이러한 방황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뿐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던 내가 그것을 일상으로 만 나게 되면서 생겨난 크고 작은 어려움을 비롯한 아주 복합적인 이 유들이 얽히고설키어 만들어진 것이기에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 힘든 시간 동안 결국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처음부터 모든 과정에 함께해 온 몇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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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 교사들 덕분이었다. 내가 남몰래 혼자 끙끙대며 먼 길을 돌 아가는 동안에도 이들은 스스로 익힌 나름의 방식으로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하나하나 찾아가며 묵묵히 일상의 과정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거꾸로 그들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나에 게 되짚어 보여주게 된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어떤 특별한 사건이 계기가 되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토록 힘들어하던 지난한 일상을 통 해 현재 하고 있는 일과 나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가고 있다.

우리는 요즘 농담처럼 ‘모래마을’ 또는 ‘먼지마을’이라는 별칭 을 베시에 지어주었다. 그만큼 건기의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 먼지 는 사막 한복판을 연상시킨다. 물론 이것을 그냥 내버려둘 우리가 아니다. 처음에 모래 채취 사업이 시작되고 여러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시도했던 것은 핵심 주민들과의 회 의였다. 회의 때에는 공동체에 이로운 방향으로 합의점을 도출했지 만, 이것이 사람들 개인의 이익을 넘어서기는 어려웠기에 실행으로 옮겨지지는 못했다. 물론 주민들을 비판하고자 함은 아니다. 앞에 도 언급했지만 이는 그들의 매우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 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향대로만 끌고 갈 수는 없었다.

그후 우리가 모래 채취 사업 자체를 멈추게 할 수는 없지만 마을 안에서 먼지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은 의미 있 겠다 싶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마을 아이들과 함께 동네를 고속도로를 연상시키던 트럭 운전사들에게 천천히 운행할 것을 부 탁하는 캠페인을 진행한다든가, 학교 앞에서는 서행하라는 당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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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표지판을 교사와 청년들이 직접 만들어 붙이는 작업이었 다. 이때의 과정에는 한국에서 교류 프로그램으로 네팔을 방문한 고리울청소년문화의집 친구들이 함께했다. 마을의 과정이 일상적 으로 이어지다 보니 교류 프로그램 역시 기존의 흐름에 자연스럽 게 녹아들게 된 것이다. 그후에도 아이들과 재미있는 놀이처럼 바 닥에 물을 뿌려 쓴 글씨로 운전사들에게 천천히 서행하라는 메시 지를 전하는 활동을 진행하기도 하고, 기회가 되는 대로 모래 먼지 의 문제에 대해 마을 신문이나 영화상영 등의 매체를 통해 전달하 여 가능한 문제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였다.

아이들의 귀여운 몸짓과 목소리로 ‘깨끗한 베시 마을’을 외치던 날

하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상만 놓고 보자면 이 과정을 통해 생긴 눈에 띄는 변화는 찾기 어렵다. 모래 채취는 여전히 이루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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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고 그로 인해 날리는 모래 먼지는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씩이지만 사람들은 행동의 변화를 보이고 있 다. 당연히 매우 일상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눈을 똑바로 뜨고 보 아야만 볼 수 있다. 자신들도 먼지 때문에 불편하다고 생각하긴 했 지만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길에 물을 뿌 리거나 최소한 모래를 나르는 트럭에 덮개를 씌우게 하는 등, 전 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인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적어도 무관심이 아닌 나의 생활에 직결된다는 인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더 나아가 우리가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인식하게 된 것들이 아이들 또는 주민들이 이후 비슷한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모래 먼지와 관련하여 뚜렷한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 해도 이와 같은 즐거운 과정들을 계 속해서 만들어갈 생각이다. 그리고 그중 하나로 올해는 아이들과 나무 심기를 꼭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아 주 사소해 하찮아 보이기까지 하는 일상에서의 변화를 통해 새로 운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믿음을 갖기까지 이토록 돌아오기는 했으나, 심봉사가 눈 뜨듯 또 다른 세상을 만났으니 오히려 힘들었 던 시간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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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웃기고 울리는 사람들

베시 마을 이야기를 나누는 데 모든 과정의 중심에 놓여 있는 사 람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아무리 좋 은 기획의 일을 한다고 해도 결국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함 께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단순한 ‘직업’이 아닌 ‘삶’으로 주민들 을 만나고 있기 때문에 관계 역시 일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으로 분 명하게 구분해내기 어렵다. 나는 품의 실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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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한국에서 온 언니나 여동생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특 별한 관계를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나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 다 하며 나를 울게도 웃게도 만든다.

점점 더 깊은 맥락을 가지고 동네 아이들과 주민들을 만나고 있 는 청년들, 마을신문이 나오면 우리보다 더 먼저 와 기다리며 신나 게 동네를 누비는 아이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면 어쩌지나 하는 염려에 그럴 일 없다며 편안한 일상의 변화로 대답하는 모노허라 학교의 선생님들, 늘 말로만 하는 듯해 얄미울 때도 있지만 학교와 마을의 크고 작은 일에 빠지지 않고 손 걷어 부치고 나서는 아저 씨들, 처음에는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쑥스러워하더니 이제는 먼저 불러 이것저것 물으시는 동네 디디(자신보다 나이 많은 여성)들… 이 사람들 안에 내가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결국 사 람만이 희망이라는 진부한 이야기로 감동 받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과 일을 하다 보면 당연히 ‘내가 지금 제대 로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자기반성 내지는 회의를 하게 된다. 이런 고민 없이 항상 충만한 상태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이는 하고 있는 일 자체에 대한 돌아봄과는 또 다른 성질의 것이다. 나는 마을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내 모습을 통해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고 아픈 성장통을 겪었다. ‘일’은 수없이 고민하고 함께 만 들어가기 때문에 개인인 내가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대 적으로 적다. 하지만 사람을 일대일로 대하다 보면 내가 본래 가지 고 있는 것들이 여과 없이 전달된다. 특히 가까이에서 함께 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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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기 때문에 늘 조심스럽다. 또한 관계라는 것은 상호적이기 때문에 나 역시 그들로부터 수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최근까지 함께 활동한 청년 디네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 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관계 중심으로 일하 는 나에게 큰 깨달음이었기 때문에 나누고 싶다. 디네스, 그는 초 창기 청년 조직의 멤버이자 도서관지기로 3년 넘게 활동해온 친구 이다. 다른 네팔 친구들과는 조금 다르게 자기 나름의 비판적 시 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실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렸던 디네스는 처음부터 나에게 특별했다. 그런 그가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한계 로 인해 힘들어 할 때 그것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차질을 빚더 라도 결국은 또 하나의 성장의 과정이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긴 시간을 함께 해왔다.

그런데 그의 방황이 길어졌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빈도도 높아 지고, 자연스레 진행되고 있는 일이나 함께 활동하고 있는 다른 친 구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나는 디네스가 잠재력을 가지 고 있다고 믿었고 이번 한 고비만 넘으면 새롭게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중 마 을에서의 프로그램 문제로 네팔을 방문한 심한기 대표와 디네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자꾸만 디네스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안타까움에 대해 반복해서 이야기하던 나에게 대표님은 “ 그건 네 생각이지, 그걸 진짜로 디네스가 원하는 게 아니잖아.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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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확인하기엔 충분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는데?”라고 말씀 하셨다. 순간 나는 머뭇거리고 말았다. 결국 그토록 버리고 싶었던 내 중심적인 의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나의 욕심으로 그 아이를 끌고 왔던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자 나 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또 나의 방식대로 그 친구를 만들려고 했 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자 두려운 마음조차 들었다.

얼마 후 디네스는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 렸고 나도 그의 최종 선택을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내가 그를 향 해 쏟았던 애정과 에너지가 아까웠고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는 그 친구가 안타까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친구가 우리와 함 께할 수 있는 과정은 거기까지였고, 그가 그만두었다고 해서 지난 과정이 모두 부정되는 것도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일 을 통해 우리가 하는 일에서 특히 그 안에서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최선의 노력은 해야겠지만 그것이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잘 살피는 일과, 때로는 쥐는 것보다 놓는 게 오히려 필요함을 배우게 되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아이 들은 갈등이 생겼다가도 금방 잊고 신나게 같이 놀고, 의견을 조율 하다가 안 되면 따로 놀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사람들 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지 배운다. 관계란 그리고 사람의 성장이란 고정된 형태로는 존재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사람의 성장이 밝고 자유로운 것이 되길 바라며 노력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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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꺼멀리가 지금 맡고 있는 일을 그 자리 에서 더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닌, 그녀가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살 아갈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어디가 되었든 그녀가 원하는 삶을 주 체적으로 꾸려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성장 이다. 디네스도 당장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지난 시간이 그의 삶에 거름이 되어줄 것이고, 그가 만들어온 도서 관에서의 과정이 아이들의 삶에도 계속해서 남게 될 것임을 의심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오늘도 이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 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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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마을을 자라게 한다

2막에서 품이 축제를 통해 어떻게 마을을 만나왔는지에 대해 소 개했다. 처음에는 그러한 축제에도 소위 한국적 방식인 우리의 의 도나 기획이 많이 반영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과 연결되는 프 로젝트나 축제도 농번기를 피해 마을 사람들에게 가장 편한 때에 일정을 잡고, 하나의 통일된 흐름을 가지고 어느 정도 정해진 스케 줄대로 흘러가기보다는 이곳의 자연스러움에 좀더 어울리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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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진행하고 있다. 축제는 마을과 품이 함께 만들어온 과정에 적 극적으로 참여한 이들에게는 또 다른 성장의 기회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편안하게 그 과정으로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두는 매 개로 자리 잡아왔다.

마을 도서관이 문을 연 후 우리는 매년 크고 작게 생일잔치를 해 왔다. 이 역시 마을 안의 작은 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 누가 먼저 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마을에 처음 생긴 도서관이 당시 핵심적으 로 활동하던 청년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고(도서관 건축과 운 영이 결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계기는 마을의 한 청년이 우리 에게 전했던 제안서였다), 이런 기회를 통해 마을 사람들에게 도서 관이 좀더 친숙한 공간으로 자리할 수 있길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그 생일잔치의 변천사를 살펴보는 것이 재미있다.

2010년 첫 돌 때는 도서관에 늘 오던 사람들이 모여 소박하게 생 일 케이크를 자른 것이 전부였다. 첫 번째 생일을 보내고 나니 다 음번에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도서관을 찾는 계기가 되 는 작은 축제와 같은 자리가 되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2011년의 생일잔치는 꽤 화려하고 규모도 컸다. 마을에서 진행된 모든 과정을 담은 사진 전시회와 도서 소개 코너 외에도, 마을 여 성들의 즐거움과 문화 교류 차원에서 진행된 한국의 어짜르(네팔 전통 음식)인 김치 만들기 코너와 겨울방학에 진행한 재미난 학교( 이 역시 청년들이 긴 방학을 보내는 동네 꼬마들을 위해 매년 진행 해온 프로그램이다) 때 ‘농업환경, 보건’을 주제로 아이들이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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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했던 첫 번째 도서관 생일날

낯선 한국의 김치지만 마을 아줌마들의 솜씨는 놀라웠다

도서관의 책과 관련한 재미있는 놀이를 통해 도서관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비했던 연극도 동네 사람들과 나누었다. 이날은 잔치를 찾은 주민 들뿐 아니라 마침 한국에서 네팔 여행 중이던 품의 ‘오~히말라야’ 팀과 지금까지 품이 네팔에서 일해오는 동안 알고 지낸 지인들까 지 모두 합세하여 동네가 들썩이는 축제의 날이 되었다. 그리고 이 를 통해 마을 사람들과 도서관 사이에 존재하던 어색한 벽이 조금 이나마 깨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준비했던 청년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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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째 성대한 생일잔치에 만족해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일하기에 바빴던 것 같아 아쉽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래서 그 다음해인 2012년에는 조금 다른 생일잔치 풍경이 벌어 졌다. 이번에는 마을 사람 중에서도 다양한 기회에 소외되어 있는 여성들과 도서관 주 이용자인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되면서도 준비한 사람들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여 유 있는 날이 만들어지길 바랐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읽은 책의 내 용을 표현해보는 사생대회에 참여해서 신이 났고, 여성들을 위해 이웃 단체인 비욘드-네팔을 연결하여 준비했던 대안생리대 프로그 램에도 많은 이들이 참여해 귀한 정보를 담아 갔다. 그리고 당시 교류 프로그램 차 베시에 머물고 있던 꿈틀학교 친구들이 모노허 라 학교 아이들과 진행한 음악 수업의 결과물을 공연하여 함께했 던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지난해보다 많은 인원이 참여한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에게 편안하면서도 즐거운 나눔의 장이 되었고, 특 별한 일상의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모노허라 학교 아이들, 꿈틀학교가 함께 한 음악수업의 결과물을 나누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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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모든 과정에 담겨 있는 소소한 변화를 알아챌 수 있다 면 당신은 삶 자체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에 소질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축제의 모습과 함께 축제를 준비하고 참여해온 사람들의 생각과 도서관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변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베시 마을에는 더싸인이나 띠하르(네팔의 전통 명절)처럼 매 년 2월이 되면 도서관 생일잔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 작했으니, 이를 통해 다소 관계가 소홀해졌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 필요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재미있는 문화로 자리 잡아가게 되 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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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는 일상의 진정성

품이 마을 안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을 일컬어 ‘프로그램적 접근’이 아닌 ‘일상적 접근’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사업을 진행하는 데 관계나 소통이 단절됨 없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도 사람들이 보통 프로그램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진행한다. 매주 동네 꼬마들을 위해 청년들이 진행하는 도 서관 프로그램이 있고, 마을 내 공립학교의 교사들을 자극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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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육 프로그램도 때마다 진행된다. 하지만 일상적 접근에서는 한 번의 프로그램을 통해 전달하려는 내용만큼이나 그것을 진행하 기까지 함께 준비하는 시간들(심지어 그 과정에서 떨었던 시시콜 콜한 수다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이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이어지는 만남과 생각이 교류되는 상호적인 순간들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이 모이고 쌓여 삶 속에서 변화의 원동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러한 과정 자체가 지루하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 질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는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 니다. 표면적인 현상만으로는 판단하기 힘들어 굉장히 복잡해지다 가도 때로는 어이없을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사뿐히 삶 속에 자 리 잡고 있는 것이 변화라는 이해할 수 없는 놈이다. 그렇기에 오 르막 내리막을 걷듯 천천히 하지만 지속적으로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역시 수많은 과정을 만들어가며 ‘지난 시간 이 이렇게 자리 잡고 열매를 맺는구나’라고 느끼는 특별한 순간들 을 맞이하게 된다.

주민들 간의 소통 및 정보 교류를 위해 현재 정기적으로 발간되 고 있는 마을신문, ‘월간 베시’가 최근 하루하루 자리 잡아가고 있 는 모습이 그러하다. 반복하지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은 눈에 보 이지 않는 사람들 내면의 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활동을 하면서도 그 의미를 계속 짚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또 어렵다. 첫 시작 후 1년 정도까지 청년들은 매달 8면 신문을 발간하는 수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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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성장으로 연결시켰다. 작게는 컴퓨 터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부터 크게는 자신들이 기자로서의 시각 을 가지고 마을의 상황을 전하는 것에 대해 꽤 자부심을 갖는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혼란이 찾아왔다. ‘우리가 이 일 을 왜 하는 거지?’, ‘도대체 신문이 나오는 것에 마을 사람들이 관 심이 있기나 한 거야?’, ‘신문을 낸 후 변화한 게 무엇이 있담?’ 등 불안과 의심이 터져 나왔다. 이 진통은 꽤 오랜 시간 겪어야 했 다. ‘이쯤 했으면 됐으니 그만두는 게 좋겠다’와 ‘그래도 이왕 시 작했으니 좀 더 이어가 보는 게 좋겠다’는 의견 사이에서 갈팡질 팡하며 6개월을 보냈다. 서로 얼굴만 보면 맨 처음 신문을 시작하 며 그렸던 마인드맵을 꺼내보며 고민하고, 서로 엇갈리는 의견 때 문에 목소리 높이는 이들을 보며, 나는 그저 상황을 해석하고 그들 의 이야기를 듣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해줄 게 없었다. 그러던 어 느 날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리든 너희의 선택을 따를 테니 오늘은 결론을 짓자! 정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그만두는 것도 너희 선택이다’ 라고 이야기했고, 나를 뺀 네 명의 청년이 꽤 긴 시간 머리를 맞대고 논의에 들어갔다.

그들은 결국 논의를 통해 어떤 이유에서든 신문 작업을 그냥 접 어버릴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인원 감소로 축소된 청 년 활동을 멈추지 않고 이어가던 친구들에게 어쩌면 마을신문은 그들 활동의 정체성이었을지도 모른다. 현재 4면의 ‘월간 베시’는 그때 머리 터지게 했던 고민의 결과이다. 3개월마다 돌아가며 실리 는 ‘농업환경보건’이라는 큰 주제는 청년들이 신문의 체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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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기 위해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주제라고 생각해서 결정한 것 이다. 이때 설정한 목표는 되도록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연결 되면서도 정보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뻔하지 않은’ 정보 를 싣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실으면 좋을 지 감을 잡지 못해 어려워하던 청년들이 신문이 호수를 거듭할수 록 자신들이 정한 목표에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마을신문을 읽고 있는 동네 아저씨

6개월 정도 전부터는 마을에 새롭게 이주해온 이주민들과 오랫 동안 살아온 원주민들 사이가 조금씩 단절되고 있다는 판단에 매달 돌아가면서 이주민과 원주민들 중 각각 한 가족씩 돌아가며 소개 를 싣고 있다. 처음에는 서로 다 아는 사람들을 왜 싣냐는 불만을 들어야 했다. 물론 의견을 받은 그 순간에는 그것이 정말로 타당하 여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아닌지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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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우리가 생각했을 때 분명 사람들 사이에 서로 모르는 관계가 생겨나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이 천천히 지속되다보면 마을 공동체가 깨지는 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 기에 계속해서 이어나가기로 했다. 현재는 이에 대해 모르는 사람 없이, 자기 가족 소개가 실리길 기다리는 코너가 되었다.

신문 자체의 내용적인 성장과 더불어 마을 사람들의 인식도 높 아지고 있다. 초창기에 무엇이 실리든 관심 없던 사람들이 이제는 마을 내 도로를 정비하기 위한 주민 회의처럼 중요한 일이 생기면 마을신문에 실어야 한다며 청년들을 찾는 일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고, 최근에는 청년들뿐 아니라 아이들이나 주민들이 직접 기자가 되어 소식을 전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더 이상 신문의 의미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 이 신문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것이 읽히 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만약 계속해서 고 민하고 의미를 찾았던 매일의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마을 신문 은 분명 불가능했을 것이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은 모노허라 학교에도 찾아왔는데 바로 지난해 11월에 진행된 공개수업 날이었다. 공개수업이 진행되기 1 년 전쯤부터 학교에서는 교사 정기회의가 시작됐다. 그전에는 우리 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의 회의를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주도 해갈 의지를 보이지 않아 시작할 수 없었는데 차츰 그들 스스로도 어떤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에게도 회의문화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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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긴 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대표자 선출이나 예산 공개 등 형식적 인 부분에 치중되어 있었다. 우리가 교사들에게 제안한 것은 각자 의 생각을 공유하고 학교 운영에 중요한 안건을 논의하는 소통의 자리였고, 낯설어 하는 그들에게 지난 한 주나 한 달 동안 가장 즐 거웠던 경험과 힘들었던 경험을 공유하는 것부터 시작하게 했다. 재미있게도 개인의 경험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서로 나누지 못했던 마음속 이야기들이 공유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그러한 점들이 학교를 잘 운영하기 위한 안건으로 이어졌다.

교사들 사이의 소통이 시작되니 무슨 일을 하든 일사천리로 진행 됐다. 예전에 회의를 할 때마다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지?’ 하고 멀뚱멀뚱 쳐다고 어떤 이야기를 해도 의욕을 보이지 않아 속으로 한숨을 쉬어야 했던 기억은 다른 학교의 이야기인 듯 생각될 정도 였다. 이렇게 앞서 진행된 교사 워크숍을 통해 배운 내용을 학부모, 주민들과 나누고 학교의 신뢰를 회복하자는 데에 교사들이 합의했 고 각자 수업 준비에 들어갔다. 나와 꺼멀리는 중간에 조언 정도만 하며 선생님들이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을 맡았다.

드디어 공개수업 당일날,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선생님과 아 이들이 그렇게 긴장하면서도 성취감을 느끼는 모습을 본 적이 없 다. 특히 이날의 모습은 당시 자신의 정체성과 청년 활동에 대한 회의로 방황 중이던 무나를 동네 아이들에게로 돌아오게 하는 중요 한 계기가 되었다. 선생님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까지 확인할 수 없 었던 변화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도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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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의 가슴이 벅찼던 공개수업 하던 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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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마음이 설레고 감동했는지 울컥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 다. 도대체 무엇이 늘 뒤에서 머물던 그들을 이리도 적극적으로 만 들었을까? 어느 순간 갑자기 시작된 변화는 아니었다. 2007년에 처음 시작된 교사들과의 크고 작은 과정 하나하나가 쌓여서 만들 어낸 귀한 순간이었음을 절절히 확인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일상 의 힘들었던 과정들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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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연대는 또 다른 희망을 낳는다

마을에서의 일이 더욱 신이 나는 것은 우리와 뜻이 맞는 마을 밖 친구들을 만나고 또 그들의 활동이 우리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 을 확인할 때이다. 물론 이들도 단순히 일로써만 만나고 연결되기 보다는 대부분이 개인적인 관계를 쌓는 것부터 시작하게 된다. 반 대로 일로 만난 경우라도 천천히 관계를 맺어가며 또 다른 가능성 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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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에서 살면서 일한다는 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주민들 의 삶과 연결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많은 영역을 우리가 직접 다 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만나는 친구들을 통해 네트워크를 만들고 연대하는 일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우리가 마을에서 활동하는 데 매우 중 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관계 중심이다 보니 일이 추진되지 않 을 때도 많아 효율성 면에서 떨어져 보일 수도 있지만, 장기적인 면에서 보면 한번 이야기된 연결 고리는 언제가 되었든 그 ‘때’가 되었을 때 진행하게 되는 강점도 있다.

평생 교직에 몸담은 수베디 선생님은 우리의 오랜 스승으로 모노 허라 학교 자문으로도 함께 해주고 계신다. 선생님이 갖고 있는 아 이들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열정은 베시 마을 선생님과 청년들에 게도 좋은 자극이 되고 있다. 품의 초창기부터 함께 해온 청년 아 티스트 딥말라가 얼마 전 함께 활동을 시작한 ‘A-Drops’라는 그 룹의 친구들은 작년에 몇 차례 마을에 놀러 오더니 이번 새 학기 부터는 아예 모노허라 학교 아이들의 미술 수업을 책임지기로 했 다(네팔 공립학교의 교과 커리큘럼은 아이들의 감수성을 위한 예 체능 수업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품의 초창기 볼런티어 그룹이었 던 Happy Vibration의 활동 이후로 두 번째 특별 수업의 기회를 누리고 있는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났다.

내가 네팔에 온 것처럼 자신이 돌포(네팔에서 가장 접근성이 떨 어지는 산악 지역)에 갈 운명이라며 벌써 7년째 1인 엔지오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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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는 비놋이라는 친구는, 그도 현지에서 학교를 운영하고 있 기 때문에 기회만 되면 모노허라 학교에서 진행되는 교사 교육 및 워크숍에 객원 참가자로 참여해왔다. 그는 얼마 전 우리 학교 고학 년 아이들에게 돌파의 환경, 문화, 그 안에서 자신이 활동하고 있 는 모습을 소개하는 자리를 가지며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필요한 곳에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날 자리했던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공책이나 연필을 돌 파 친구들에게 전하며 처음으로 새로운 방식의 즐거운 나눔을 경 험할 수 있었다.

모노허라 학교의 평생 자문인 수베디 선생님

미술 수업을 진행하는 딥말라 (가운데 땋은 머리) 돌포에서 활동하고 있는 네팔 청년 ‘비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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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박타푸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웃 단체 비욘드 네팔은 앞에서도 소개한 대로 여성들과 함께 대안생리대 프로그램을 실행 했고, 그전에는 몇 개월에 걸쳐 그들이 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농업 을 베시에 소개하였다. 화학 농법을 지양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은 건강, 경제, 환경 모든 측면에서 농민들에게 중요하지만, 당장 농약 으로 인한 심각한 피해를 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 아직은 강한 설 득력을 갖지 못해 현재 상황을 지켜보며 언제든 농민들을 다시 연 결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중이다.

대안생리대 프로그램은 실제로 여성들의 건강은 물론 환경 문제 와 직결되는 부분이다. 마을 안에서도 기성세대는 위생적이지 못한 아무 천을 둘둘 말아 생리대로 사용하는 한편 새로운 세대는 일회 용 생리대를 사용하기 시작하여 극한 상황적 대립을 보이고 있다. 비욘드는 네팔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이러한 상황에 천으로 만든 대안생리대가 그들 모두에게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 각했고, 현재 네팔 전역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을 우리 는 마을 안에서 어떻게 하면 대안생리대를 실생활에서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할 수 있을지 또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보겠다는 생각에, 매달 한 번씩 정기적으로 초경을 한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 프로그 램을 자체 운영해보기로 했다.

비욘드와의 연대는 우리 마을뿐 아니라 그들이 일하고 있는 근 처 마을로까지 이어진다. 그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짱구’ 마을에도 작은 도서관이 있는데 그것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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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와 연결해 진행한 농민모임(위쪽)과 대안생리대 프로그램(아래쪽) ‘짱구 마을’ 도서관에서 베시 마을 청년들이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

우리 마을 청년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이다. 이는 짱구 마을 도서관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아이들 만나기를 좋아하는 무나가 자신의 경험을 확장하고 그를 통해 다시 새로운 것을 배우 는 귀한 기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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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벌써 몇 년 전부터 마음만 먹고 진행은 되지 못했던 현 지 환경 단체 CGNN(Children for Green New Nepal)과 연결 한 환경수업 및 활동과 얼마 전 인연이 된 네팔의 젊은 뮤지션 제 이슨과 추진해볼 네팔 전통 음악수업은 올해 꼭 연결하고 싶은 거 리들이다. 이렇게 많은 이들과 함께하는 베시에서의 활동이, 그리 고 삶이 어찌 더욱 다양하고 풍성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같은 희망을 공유하며 연대할 수 있는 이들의 존재가 참으로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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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하고자 했던 일을 하고 있는가?

예전에 ‘어떤 마을이 건강하고 살기 좋은가?’라는 질문에 누군가 말했던 ‘내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 마을’이 명답이라고 생각했 던 적이 있다. 최근 베시 마을의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환 경을 천천히 살려가는 데에 알게 모르게 동참하고 있다.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의 변화 역시 인상적이다. 초기에 아이들과 프 로그램만 하면 등장하던, 집을 배경으로 꽃과 수도가 있는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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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주제에도 똑같이 그리던 매우 일반적인 그림이 있었다. 그때 아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그것을 표현해내 는 일이 불가능했다. 이미 아이들의 삶 깊숙이 차지하고 있는 미디 어의 이미지와 획일화된 학교 교육으로 인한 결과였다. 하지만 다 양한 과정 속 자극을 통해 현재 아이들의 상상과 표현은 아주 천 천히 자신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잠재력을 발견하며 생기발랄해지 고 있다. 아이들은 그 과정을 통해 자발적 책임감을 갖고 친구, 이 웃들과 연대하는 경험들을 쌓아가며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물 론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한 축의 접근만으로 가능했던 것도 아니 고 기존에 그들이 살아온 흐름과 결코 동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렇게 아이들이 자라나 베시 마을뿐 아니라 자신이 살아 갈 다양한 장소에서 행복한 변화를 일구어내는 주축이 될 수 있으 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나눈 베시 마을에서의 과정에 공통된 키워드로 등장하 는 것은 바로 ‘사람의 성장’이다. 지난 공개수업에서 수베디 선생 님은 ‘품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본래 가 지고 있는 것들을 그들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돕는 일을 하고 있 습니다’라고 이야기해주셨는데, 이것만큼 품이 본래 하고자 하는 일을 잘 설명하는 말은 없을 것 같다.

과정 중 혼란스러웠던 기간에 품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 민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는 특정 주제 또는 문제 해결을 중심 으로 접근했던 나의 오류였다. 이럴 경우 접근 자체가 눈에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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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만을 좇게 되거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 어나기 어렵다. 수베디 선생님의 말대로 품은 네팔에서 새로운 것 을 만들거나 기존의 것을 완전히 바꾸어 변화를 만드는 것을 중요 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이미 가지 고 있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을 유지하거나 새로운 흐름에 맞 는 방식으로 변형시켜가는데, 이때의 주체는 당연히 품이 아닌 주 민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중간중간 목표나 의도가 변한 다고 해도 수정될 수 없는 품의 존재의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외부인인 우리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마을신문을 발간하고, 도서관을 잘 운영하면 서 마을 안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크고 작은 교육이나 프로그램 들을 운영해가는 ‘일’이 원래 주인인 주민들로부터 시작되지 않고 그들의 성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단순히 일 자체가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 안에 사람이 없다면 결국 그 일은 일 회성 프로그램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진 행한다고 해도 그것을 받아들일 사람들이 그 필요성에 대해 공감 하지 못하고,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 라면 그것은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가끔 일을 하다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의도를 주입하고 있는 것 은 아닌지 분간하기 힘들 때가 있다. 하지만 가치를 지켜가기 위해 사람들의 잠재력을 키워가면서 실질적인 활동을 통해 일상적으로 천천히 자극을 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면 어차피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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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이 되었든 그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당사자와 함께 충분한 과정을 거쳐 잘 파악한 후 에는 기다림의 미학을 즐길 줄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야 말로 요즘 한창 강조되고 있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 법이 아닐까?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실행적인 목표나 의도의 변화 를 넘어 원래 하고자 했던 일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렇다’라 고 당당하게 이야기해본다. 남들이 보기에 티도 나지 않는 과정 이 꽤 긴 시간을 거쳐 사람의 성장을 가능하게 했음을 깨닫기까 지 나 자신 역시 많은 길을 돌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 미와 과정이 결코 거짓이거나 과장된 것은 아니었음을 확신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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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막 희망과 가능성에 대한 증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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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노허라 학교의 교사입니다 러메스 랄 시레스터

학교는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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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메스 선생님은 말씀이 적으시다. 그만큼 말보다 행동으로 표현하고 실천하 시는 분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데에도 온전히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바를 표현하기 무척이나 어려워하셨다. 무엇을 써야 하냐고 자꾸만 물으시는 선생님 께 방과 후에도, 쉬는 날에도 학교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마음을 쓰실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써달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냥 학교에 애정이 있었어. 그래 서 떠날 수가 없었지. 그게 내 삶인걸’이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 다른 이들에 게 나쁜 소리 한번 못하시는 순한 선생님은 모두가 원하는 리더십을 조금씩 보 여주며 자신감을 찾아가고 계신다. 선생님의 사랑으로 오늘도 학교가 더욱 풍 성해지고 있다.” _ 이하니(네팔 품 활동가)

모노허라 학교가 지어진 25년 전부터 저는 이곳에서 교사로 살 아왔습니다. 처음에는 한 명 교사의 월급을 두 명이 나누어 받으며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개교 후 1년 반까지 가르칠 곳이 없어 움 막을 교실로 삼아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지역 사람들이 힘을 모아 드디어 교실이 다섯 개 있는 학교를 지었습니다. 지금은 학교 건 물이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갔고, 교사도 아홉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까지 교장이라는 직책으로 많은 일들을 해왔습니 다. 교장으로서 해야 하는 행정일이 많지만 현재는 학교의 사정으 로 다른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수업을 맡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 니다. 물론 이건 지난 긴 시간 동안 겪어온 어려움에 비하면 행복 한 고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품과 처음 만난 건 2007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모노허라 학교와 품의 관계가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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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품을 통해 나눔학교를 만났습니다. 당시 두 학교의 교사 와 아이들이 교류하고 우정을 쌓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과정을 통해 품은 이 학교의 교사들 간 그리고 교사들과 아이들 사이에 서 로 사랑하고 마음이 통할 수 있는 관계를 발전시켜가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교사가 아이들을 대하고 아이들이 교사를 만나는 데 에 큰 변화가 있었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또 품을 통해 아이들 을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 수 있는지도 배울 수 있었고, 지금까 지 한국의 다른 단체, 친구들도 만나 좋은 관계를 만들어올 수 있 었습니다. 이것 외에도 품은 학교 구석구석 필요한 것들에 도움을 주어 왔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해준 품의 대표인 심한기 와 학교에서 함께 지내며 일하고 있는 이하니에게 감사하다는 이 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는 모두 함께 열심히 더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 력하고 있습니다. 좀더 희망이 있다면 품과 이 학교 사이의 관계가 더욱 깊어져 이후까지 이어지길 바랍니다. 새로운 것들을 더 많이 서로 가르치고 배워갈 수 있길 희망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서로에게 도움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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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시 마을의 청년입니다 꺼멀리 시레스터

내 삶의 놀라운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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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품을 만난 건 2008년 모노허라 학교에서 진행된 ‘Happy Village Project’를 통해서였습니다. 저는 초등학교를 모노허라 학교로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후에는 베시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학 교를 다녀야 했기 때문에 제가 사는 동네와 이곳 사람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품과의 만남은 저에게 우리 마 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 학교로 돌아가 선생님과 친구들을 다시 만났고, 제가 공부했던 학교에서 또 가르칠 수도 있는 기회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활동하면서 우리 마을과 연결된 많은 새로운 경험을 하고, 마을에 대해 좀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 대해 알기 위해 저 는 다른 곳에 갈 필요가 없었지요. 다양한 교육이나 워크숍에도 참 여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한 사회와 사람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 는 필요한 지식 또한 얻을 수 있었어요.

그동안 참으로 많은 과정이 있었습니다. 청년 조직이 생겨 마을 을 위한 활동을 시작할 수도 있었고, 저 역시 이 과정에서 볼런티 어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 은 자연스럽게 자기 길을 가며 함께 만든 청년 조직을 잊는 것 같 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다른 친구들처럼 그렇게 쉽게 떠날 수 없 었어요. 물론 품의 지원이 없었다면 아마 저도 그 친구들처럼 중 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겠지요. 품이 마을에 온 후 만들어진 도 서관에는 이제 우리 마을뿐 아니라 옆 동네 아이들까지 책을 읽으 러 옵니다. 뿐만 아니라 마을의 청년들이 모이고 새로운 것들을 함 께 배울 수 있는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도서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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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새로운 책을 읽거나 놀이를 하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는 기 회를 누리고 있습니다. 매주 진행되는 도서관 프로그램은 학교에서 는 배울 수 없는 새로운 것을 익히는 시간이 되고 있고요.

지금까지 발간되는 신문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작은 변화를 만 들어내고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신문을 읽고 제안을 하기도 합 니다. 신문을 만드는 청년들과 마을 구석구석까지 배달하는 아이 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영화상영회를 통해서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거나 필요한 정보를 얻 기도 합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학교 안의 모습에도 큰 변화가 있 었습니다. 교사들 간 그리고 교사와 아이들 사이에 이야기를 나누 는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작은 것도 소통하기 위 해 노력합니다. 다양한 교육, 워크숍이나 교류 프로그램, 최근 진행 된 음악수업도 이러한 소통과 각자가 맡은 역할에 좀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품의 스테프으로 정식 활동을 시작했던 지난해는 특별히 제 삶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실 저는 전에 행복해지기 위해 서는 은행이나 다른 커다란 회사에서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제가 그렇게 기계 틈에서 하는 일에 행복해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는 품 덕분 에 가능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을 때 품이 저에게 길을 보여주었어요. 그리고 그것은 저의 생각과 창의 성을 전보다 폭넓게 만들어주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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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스스로의 변화의 의지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 즘 저는 ‘의지’야말로 삶을 좀더 쉽고 행복하게 풀어가는 데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생각을 해보아요. 이 ‘의지’라는 것 때문에 이미 나이가 지긋한 마을 사람들도 네팔어를 읽고 쓰기 위해 문맹자 교 실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리도 좋고 흥미로운 기회를 통해 우리 마을을 위해 도움이 되면서도 기억에 남을만한 일을 할 수 있으니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마을에서 품이 해온 과정을 볼 때 품과 같은 단체도 또 없겠다 싶습니다. 어떤 단체가 사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의지 에 맞는 정서적 지지와 실질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을까요? 대부 분의 단체들이 자신들의 이익이나 이름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품은 지역 안에서 가능한 인적 자원을 최대한 지원하고 그 를 통해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하는 일에 집중합니다. 긍정적인 생 각을 해야만 사람의 삶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저 역시 품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부분들을 받아들이며 성장하고 있고,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더욱 안정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자리 잡아가길 바랍니 다. 새롭게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청년들이 다시 생겨 또 다 른 조직을 이어갈 수 있게 되어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품도 지금 처럼 우리 마을에서 함께한다면 더욱 행복한 마을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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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시 마을의 청년입니다 무나 시레스터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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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품에게 20주년 정말정말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요. 품과 만난 지 벌써 6년이나 되었네요. 이 시간을 통해 우리의 관계도 단단해졌음을 느낍니다. 새롭고 도움이 되는 다양한 경험 을 하며 우리는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무엇 을 원하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는 어린아이들이 잘 성장하기 위한 과정을 만들어가며 다른 이들 에게 내가 한 경험을 나눌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새로운 일 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힘도 생겼고, 다른 이들 과 어울려 함께 일하는 것의 중요성과 그것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 는지도 배우고 있습니다. 일을 하는 데 수많은 어려움이 온다고 해 도 그 일이 옳은 것이라면 그것이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 음도 생겼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스스로 아주 힘든 시간도 보 내야 했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나 스스로를 위해 정말 필요 한 것인지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리니 혼란스럽기 시작했고, 잠시지 만 활동에 참여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일을 해보겠느냐는 기회가 왔을 때 선뜻 그것을 택할 수도 없었습 니다.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한 후 저라는 사람이 다른 이들이 행복 해하는 모습을 보거나,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할 때 가장 즐 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아이들과 함께할 때 더 행복해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 제대로 맛을 본 이 일을 저는 쉽게 그만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원래 제가 있던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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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베시 마을을 위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마을 공동 체를 위한 일이라는 것이 하루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쉬운 일도 아닙니다. 공동체의 변화를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 니다. 그리고 변화라는 것은 정말이지 쉽게 오는 것이 아닌 듯합니 다. 제 경험으로는 저희가 해왔던 일들로부터 어떤 눈에 띄는 결과 를 보기는 어렵지만 눈에 띄지 않는 영향과 변화는 만들어내고 있 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어린아이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들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아이들이 배우고 또 성장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도 길러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새로운 혹은 자신에게 필요한 좋은 것들을 경험하고 스스로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품은 제가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그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 며 다시 성장하게 하는 그런 존재입니다. 품이 지역에서 일해 오며 20년이 지났다고 합니다. 앞으로 20년 더 그렇게 살아가길 바랄게 요. 그리고 그런 품에게 다시 축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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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무자가 아닌 한 사람의 주민입니다 이하니

다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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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하루 낯익은 얼굴들이 더 많아지고, 오며 가며 사람들과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조금씩 길어져 갈 때. 우연히 만난 아주머니가 흙 묻은 당근 하나 손에 쥐어 주시고 근처에 사는 아이들이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을 제 집처럼 드나 들며 수다를 늘어놓을 때. 그리고 매일 저만치서 소리 지르듯 인사하는 아이들이 조금 씩 자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때…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음 을 확인하게 된다.

마을에서 살면서 무언가 엄청난 변화를 일구어내야 한다는 허황된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그렇다고 무슨 큰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그저 열심히 살기만 하겠다는 마음도 조금 씩 경계하며 그렇게 조금씩 더 이 마음 저 마음 옮겨 다니며 재미나게 살 수 있길.

마을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썼던 일기이다. 마을에서 사는 것의 의미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생겼다. 여러 겹 걸치고 있던 인위적인 의도 의 옷을 하나씩 벗어가며 이제야 조금 가벼워진 나를 느낀다. 물론 늘 걸려 넘어지는 스스로의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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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는 내가 그들과 삶을 나누는 데 있어 필요한 최소한의 의도만을 남긴 채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는 내가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 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처했는지, 어떻게 효율적으로 프로젝트를 운영했는지에 대해 지극히 실무적인 경험을 나눌 것이라고 기대했 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아닌 삶을 나눌 수밖에 없었던 이 유는 말 그대로 내가 현지 사람들의 삶에 들어가 나 역시 그들 중 한 명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거추장스런 치장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는 그냥 모너허 라 학교의 미스(여선생님)이다. 그런데 무슨 선생님이 수업은 안 하 고 만날 그냥 앉아 있거나 사람들과 수다를 떤다. 가끔씩 학교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서도 아무 일 하지 않고 그냥 사진만 찍는다. 당최 마을에 와 살면서 무엇을 하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다. 그런 수상한 나를 사람들은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주었다.

이런 나에게 사람들은 오히려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말한다. 이 는 사회복지를 공부하기 시작하며 ‘봉사’와 함께 근 10년을 들어왔 는데도 익숙해지지가 않는 말이다. 말장난 같지만, 물론 내가 나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의도하는 바를 알기 때문일 거다. 지금까지 내가 그들을 돕고 있다 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우리는 때론 없어서는 안 될 애 증의 관계로 또 다른 가족이 되고 있다. 그리고 서로가 함께 성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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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음에 대한 의심은 없다.

변화를 꿈꾸는 당신에게 맨 처음 네팔 땅에 온 것이 스물여섯 살이었고, 지금은 서른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그랬듯 나와 비슷한 나이에, 큰 경험 도 없이 각자의 선한 의도를 가지고 제3세계 사람들 삶의 구석구 석을 찾아간다. 이러한 이방인들이 현지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바 라보는 시각은 천차만별이다.

때로는 제아무리 잘사는 나라라 하더라도 사람 사는 곳이면 어 디든 벌어질 수 있는 실업, 범죄, 상대적 빈곤과 같은 지극히 보편 적인 어려움들을 마치 현지만의 열등함과 불편함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분명 한국에서도 겪을 수 있는 일들이 마치 네팔만의 특수한 문화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은 놀라 운 일이다. 한 번에 많은 물건을 구입해 집에 구비해두거나 냉장고 에 식품을 저장하지 않는 잉여 없는 현지인들의 삶을 평소에 준비 가 부족한 나태함으로 폄하하는 시각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물론 최근 제3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논하는 학 문들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 하나 이수했다고 해서 그들 의 삶을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 지 않을까? 주민이 주인이 되는 지원,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지만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현지인들의 모습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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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결핍투성이이다.

각자의 선한 의지를 이러한 오만스러움과 잘못된 시각이 가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화려해 보이는 활동이 그들에게는 평범한 삶임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누구를, 그리 고 무엇을 위해 일하게 될까? 이야말로 전문성을 쌓아가는 것만으 로는 채워지지 않는 오류의 간극이 아닐까?

다시 마을! 마을에서 살게 되면서 받은 선물이 하나 있다. 그것은 새로운 안 경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이 생긴다. 나는 지금까지 끔 찍하다고만 생각했던 한국 사회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나 스스로 내가 나고 자란 곳과 그곳의 문화를 사랑 하지 않으면서 이곳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었 다. 선물 받은 안경을 통해서 그동안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 도 살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마을에서의 삶은 나에게 그 시각 을 좀더 깊고 넓은 것으로 만들라고 이야기해주고 있다. 게다가 더 이상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거만한 옷도 이미 벗어버렸으니 이 제 또 다른 공부를 위해 마을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편안하게 먹 어본다. 물론 나보다 훨씬 더 마을의 버히니(자신보다 어린 여성), 디디로 잘 살아갈 수 있는 친구와 행복한 배턴터치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있든 없든 간에 베시는 어떤 조건 없이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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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 진정한 나의 고향이다. 그들에게는 내가 실무자인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함께하는 것으로 충 분하다. 이런 그들로부터 내가 어떻게 배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는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고자 하는 모두에게 해 당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만약 각자가 나고 자라온 문화 안 에서 스스로 익숙해져 있는 것들을 잘 살피지 못한다면 오히려 자 신도 현지 사람들도 상처를 받는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진행한 과정 자체가 일반화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매뉴얼처럼 정리할 수 있겠 는가? 하지만 적어도 누구든 새로운 땅을 향하는 사람들이 어떤 마 음이면 좋을지 나누고 싶었다. 나는 결국 성찰을 통해서만 더 나은 과정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신념과도 같은 의지를 말하고 싶었나 보다. 실수하고 넘어져도 그것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 만 있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받아들여질 것이다. 부족하지만 지금까 지의 이야기를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의 과정을 아프지만 행복하게 겪고 난 한 사람의 진솔한 고백으로 들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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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시 마을을 지켜본 네팔의 교육자입니다 람 바부 수베디

고마운 품! 고마운 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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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품과 제가 만난 지 5년 정도 되었습니다. 품과 심 선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름입니다. 품이 있는 곳에 심 선생이 있고, 심 선생 이 있는 곳에 품이 있습니다.

2. 품은 한국의 한 시민단체입니다. 이것은 네팔에도 있습니다. 품은 네팔의 교육, 문화, 예술의 발전을 위해 참 좋은 일을 하고 있습니 다. 한국의 아름다움, 경험, 창조성을 어느 때는 헤떠우라(네팔 남 부 지역)에, 또 박타푸르에, 때로는 더 멀리까지 전해주었습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어디든 품이 가닿은 곳이면 사람들은 그들 안 에 있는 작은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어느 때는 네팔의 연극을 한국에, 또 한국의 연극을 네팔에 전해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두 나라의 우정을 두루두루 퍼뜨렸습니다.

3. 품은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좇아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질문합니다. “그렇게 달려가는 것만이 다인가요? 행복한 삶이 무엇보다 중요합 니다. 우리 모두 행복합시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망치지 맙시다. 자기 안의 행복을 그냥 내버려서는 안 됩니다.” 품은 이렇게 말합 니다. 심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4. 오늘 한국의 이마에는 땀이 가득합니다. 일본의 이마에도 땀이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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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니다. 네팔의 이마에도 땀이 가득합니다. 그것보다 더 많은 땀이 미국의 이마에 흐르고 있습니다. 그 땀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닌 죽이는 일에 더욱 쓰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사는 모습은 한쪽에 서는 부자는 더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들은 더더욱 가난해집 니다. 품은 이 둘 사이의 작은 중재자입니다. 이는 당신에게 평화, 시원함, 그리고 행복을 선물하는 또 하나의 묘약입니다.

5. 심한기에게 모두 심 선생님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그를 심 선생이 라 부릅니다. 그는 품을 늘 새롭게 만들어가는 사람입니다. 그는 놀 라운 사람입니다. 네팔에 대한 그의 사랑은 매우 큽니다. 그는 나 의 아주 좋은 친구입니다. 그는 진실로 네팔의 매우 좋은 친구입니 다. 모든 사람들의 좋은 친구입니다.

6. 박타푸르의 베시 마을에 모노허라 학교가 있습니다. 거기에 러메스 랄 시레스터라는 훌륭한 교장 선생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학교 에 품이 있습니다. 품은 학교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잠깐 의 물질적 지원을 통해서가 아닙니다. 아이들, 교사, 학부모,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어놓는 일을 통해서입니다. 주려면 이런 것을 주고, 도우려거든 이렇게 도웁시다.

7. 저는 품의 네팔 고문입니다. 모노허라 학교에서 역시 저는 고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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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언제든 모노허라 학교를 찾을 때면 저는 그때마다 새로운 변 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것이 교육의 변화임 을 확인합니다.

“마음과 연결된 변화가 모두에게 행복한 것이군요.요즘 저는 모노허라 학교에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8. 품을 통해 맹디디(나의 여동생)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니 여동생 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무 여동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너 무나도 재미있고 잘 통하는 서정문*과 다른 사람들도 알게 되었습 니다. 이들은 모두 한국의 반딧불이입니다. 이들이 품을 통해 한 국에서 시원한 빛을 만들고 있습니다. 네팔에도 시원한 빛을 전하 고 있습니다.

9. 고마운 품! 고마운 심 선생

*

2010년 경기문화재단 네팔 연수 당시 참여했던 문예지원사업 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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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시 마을의 자원활동가입니다 안하나(2011.2 ~ 2012. 5)

학!(學)학!(學)학!(學)! 쌍방 통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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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자원봉사활동. 길든 짧든 어느 순간부터 개인 스펙의 한 부분 또는 여행의 개 념으로 ‘누구나 한 번쯤’이라는 생각에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다녀 오고 있다. 나 역시 대학교 2학년 때 이런 생각을 가지고 단기 해 외자원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 니 누구나 한 번쯤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곳보다 경제적으로 부 유한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이상한 우월감으로 그저 ‘우리 보다 가난하니 도와줘야 해’라는 마음으로 2주간의 시간을 보냈다. 당시에는 누구에게나 말할 만한 자랑거리였으나, 지금은 아무리 생 각해도 너무 생각이 없지 않았나 싶다. 그 활동의 밑바닥에는 세상 에 널리 알려진 단 하나의 잣대(경제적 관점만으로) 내가 그들보다 낫다는 우월감과 이후 개인의 스펙으로 남겨질 것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깔려 있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어렸고 생각도 없었 다. 돌이켜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시간이지만 나에게는 반성이 되고 스스로 경계하게 되는 중요한 경험이었다.

나는 2010년 품에서 1년간 인턴으로 활동했다. 그 활동이 마무리 될 때쯤, 5개월 정도 네팔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았다. 1년 동안 함께 지내며 나를 봐오신 선생님들께서 개인적으로 많은 배 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제안하셨던 것인데,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매우 기뻤다. 정말 기뻐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네 팔에 간다’라는 생각에만 초점이 맞춰져서 그저 신나기만 했을 뿐, 전에 경계하고 반성을 했던 경험이고 그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이고 뭐고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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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번쩍 들게 해주었던 것이 바로 품 자체 내 시험이었다.

시험을 보는 사람은 나 하나. 시험과목은 네팔 사회 전반에 대 한 지식, 네팔어, 리코더 연주(나는 네팔에 가게 되면 리코더를 도 구로 하여 아이들의 정서 함양과 새로운 경험 등을 위한 음악수업 을 진행하기로 이야기되어 있었다)와 내가 네팔에 가야 하는 당위 성에 대해 정리해서 말하기였다. 이 시험을 통과하면 네팔에 가는 것이고 통과하지 못하면 반대 상황이 되는 시험. 꼭 가고 싶었다. 그때는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정말 가고 싶었고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했다. 네팔 사회 전반, 네팔어 는 그 나라에 그 정도의 시간을 머물며 마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는 공부해야 한다고 선생님들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도 했고 나 역 시 필요성을 느낌과 동시에 재미있기도 해서 어려워도 무작정 열심 히 했다. 리코더도 마찬가지여서 열심히 했는데,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나를 가장 어렵게 만들었던 것은 당위성이었다.

“나는 왜 그곳에 가려고하지? 나는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지? 내 가 왜 꼭 가야 하지? 꼭 나여야 하나? 왜?”

전에 참여했던 해외자원봉사활동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거만한 생각을 했던 것이지 굳이 나일 필요는 없었다. 그때도 지금 이 순간에도. 소통의 기본이라는 언어도 못하고(나는 영어도 못한 다), 네팔 사회에 대한 경험도 없기 때문에 내가 잘하는 것이 그들 이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그곳에 가서 현재 활동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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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와 마을 사람들에게 폐를 안 끼치면 다행인 상황이었다. 하 지만 그럼에도 가고 싶었다. 그래서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하고 주 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끝에 생각했다.

‘지금 현재는 당위성이 없다. 하지만 가고 싶다. 가서 배우고 싶 다. 그들의 삶, 그 속에 살아 있는 마을성 등 배울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누구보다 성심성의껏 열심히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 배우 며 살아가다 보면 내가 그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보일 것이 다. 그렇게 살다보면 내 당위성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 아가는 삶 속에서 말이다.’

이렇게 정의를 내렸다. 그리고 나 혼자만 엄청나게 긴장했던 시 험. 사실은 가고 안 가고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네팔에 갈 준비를 잘하고 열심히 하라고 만들어진 시험을 무사히 통과! 행복 하게, 하지만 마음은 배울 준비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네팔로 날 아갔다.

네팔에서 나의 생활, 활동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었다. 마을 안 에서의 삶이었고 그 삶에 사람이 빠지려고 해야 빠질 수가 없었다. 사람과 함께 부딪히며 살아가다 보니 그들과 이야기하는 상황이 많 이 생겼는데, 한국에서 그나마 공부를 해서 아주 작은 부분의 소통 은 가능했지만 그 이상이 가능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없었다. 관계도, 내가 배울 수 있는 것도, 그를 통해 내가 나눌 수 있는 것도. 그래서 네팔 생활 초반 나의 생활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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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언어 배우기가 있었다. 노트 한 권을 가지고 다니며 귀에 들 리는 족족 노트에 적어 발음을 쓰고 동네 친구들이나 아이들, 함께 사는 활동가 언니에게 물어 적으며 틈틈이 매일매일 공부를 했다. 필요에 의해 나름 치열하게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주변의 친구들 도 좋아하며 적극적으로 알려주었고, 그 덕에 생각보다 빨리 서로 의 생각을 나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말이 트이고 마을과 네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보고 듣다 보 니 네팔 사회, 전통, 문화, 역사 등 전반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궁 금한 것은 질문해서 듣기도 하고 가지고 있는 네팔 관련 책자를 뒤 적이며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오기 전 시험을 준비하며 보았던 책 자나 자료들도 다시 보게 되었는데, 현장에 있기 때문인지 전에는 머리로만 받아들였던 것들이 피부로 와 닿았다. 더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고, 책 안에 저자의 생각이 담긴 부분들도 그냥 받아들이 는 것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공감하고 의아한 부분은 나 스스로 ‘왜?’ 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안에서 또 한 번 배울 수 있 었다. 이런 배움의 시간들은 개인의 지식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사 람들과 관계하는 부분에서도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이 원래 친절하고 호의적이었지만 타국에서 온 친구가 이곳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에 나를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었고 여러 사람들과 친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또 말이 통하다 보니 같은 것과 다른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를 통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내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직접 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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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을에서 했던 활동은 음악수업, 음악수업을 통해 리코더 에 조금 더 흥미를 가진 아이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리코더 동아리 지도, 마을 활동가 청년들과 함께하는 도서관 프로그램, 마을신문 만들기 등 마을 안에서 진행되는 것들 대부분이었다. 나뿐만 아니 라 다른 청년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내 활동은 활동별로 주도적으 로 이끌어가는 중심이 있기는 했지만 모두가 같이 준비하고 참여했 다. 함께 이야기하고 준비하고 부족한 부분을 매워주고. 그러다 보 니 ‘너는 거기서 뭐 하고 있니?’라는 질문을 들으면 내가 주로 하 고 있는 활동인 음악수업과 그를 통해 발생한 동아리 활동을 먼저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결론으로는 그냥 마을에서 하는 활동을 같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짜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친해지 는 것은 물론 배우기도 많이 배웠다.

함께한다는 느낌과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꾸준함, 지속가 능하게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었다. 내가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에도 이들이 만들어오는 마을의 활동이나 과정들에 대해 몇몇 마을 사 람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외부적인 반응과 가끔 은 일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으로 인한 개인의 내적 갈등으로 인해 중간중간 고비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서로가 서로를 다 독이며 격려하고 우리가 지속적으로 이 일을 해 나가는 것에 대한 정의를 내리며 꾸준히 이어왔다. 내가 함께하지 못한 이전의 시간 이 있었으니 아마 꽤 오랜 시간을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고받으 며 이어왔다고 생각한다. 이런 꾸준함과 노력은 힘들면 쉽게 포기 해버리는 요즘 청년들과는 다른 모습이었기에 나 역시 많은 자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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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았고 힘을 얻었다.

청년들과의 활동뿐만 아니라 나에게 배움이 되었던 여러 사람들 이 있었다. 그중 한 친구는 마을 학교의 학생으로 음악수업을 통해 리코더에 흥미와 재미를 느끼고 동아리의 시작부터 함께했던 친구 였다. 그 친구는 배우는 것이 정말 느렸다. 다른 아이들이 노래 한 곡을 다 연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친구는 겨우 3분의 1을 연 주할 수 있었다. 그 친구보다 늦게 동아리에 합류한 친구가 그보다 더 빨리 그 노래를 연주하게 될 정도였다. 그것을 보고 동아리 친 구들 몇 명이 놀리기도 해서 이 친구가 상처를 받지 않을까 했지 만 그저 묵묵히 열심히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고 연주할 뿐이었다. 나는 그 친구를 보면서 걱정이 됨과 동시에 답답함을 느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느리게 습득하는 것을 비하하며 자신감을 잃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걱정과 다른 친구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 하는데도 빨리 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답답함. 이런 저런 마음에 동아리 활동이 종종 일찍 끝날 때 그 친구를 슬쩍 불러 둘이 같이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는데, 왠지 답답한 마음에 동아리 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그 친구는 재미있다 고 이야기했다. 정말 재미있냐고 했더니 정말 재미있단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봤더니 새로운 노래를 배울 때 어렵기는 한데 그래도 재미있다고 한다. 이 친구는 8명이었던 동아리 인원이 15명이 되고 30명이 되고 중간에 나간 아이들이 생겨 다시 12명이 되는 1년의 과정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동아리 활동에 참여했다. 누구보다 즐 겁게 말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를 돌아봤다. 나 역시 느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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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었는데, 그저 이 친구보다 먼저 이 악기를 배워 조금 더 잘 하는 것을 가지고 거만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내가 느린 사람이 라 느리다는 것과 빨리빨리를 강요하는 사회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런 내가 그 친구보다 일찍 배워 조금 더 잘하고 빨리 한 다고 무의식중에 느리다고 답답해하며 이 친구의 속도를 보지 않 고 다른 사람들의 속도에 맞추기를, 빨리 하기를 은근히 강요했던 것이다. 개인의 생김과 성격이 다르듯 속도 역시 다른 것인데 말 이다. 나에게 사람의 속도에 대한 깨달음을 알려주었던 이 친구는 여전히 다른 친구들에 비해 느리지만 본인이 즐거워하며 하다 보 니 악기 연주 실력 역시 성장했다. 또한 성장해 나가는 연주 실력 만큼 내적의 힘, 개인에 대한 자신감도 성장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친구는 스스로의 속도에 맞게 아주 잘 해나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네팔 활동을 통해 체감하며 배운 것은 수없이 많다. 그래서 5개 월이라는 시간이 부족해 다시 1년을 더 연장해 살기로 했고 그렇 게 했던 것을 지금도 매우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을에서 1년 여라는 기간을 살며 사람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내가 살았던 1년의 희로애락 중심에는 사람이 있었다. 마을 활동 을 하고 있는 청년들이 있고, 그 청년들을 보며 성장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고, 그들에게 힘을 주는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서로서 로가 관계 안에 얽혀있으며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나도 그 관계 안에 있었으며, 그 안에 있는 동안 나는 내가 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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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 부분과 나눌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최선을 다해 함께했다. 함께. 그 안에서 아주 행복했고 즐거웠으며 그것이 나만의 감정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서로 힘을 주고받으며 성장했고 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지냈던 시간을 ‘봉사’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지 않다. 다른 어떤 말로 표현 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성장과 배움의 시간이었다. 나의 가치와 존재 가치에 대해 찾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말 너무나도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어디서든 사 람을 사람답게,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존중하며 일방통 행이 아닌 쌍방통행을 하고자 노력한다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얻고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1년여 동안 나를 누구보다 행복하고 귀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허실로 베시가웅(행복한 베시 마을)’,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 모 두 ‘데레이 던네밧(많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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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시 마을의 자원활동가입니다 이명화(2011. 2)

이렇게 맘껏 웃어본 게 얼마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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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품에서 매년 꾸리고 있는 ‘오! 히말라야’를 가려다 인 천공항에서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네팔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지 못했다. 함께하지 못해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에 눈물을 훔쳤는데…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그 속상했던 마음들을 후련히 씻어주었던 네 팔 베시 마을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길으면 길고 짧으면 짧았던 시간들… 베시 마을에서 보낸 2주, 아직도 내 머릿속 이곳 저곳에 베시 마을의 향긋한 그림들이 깊게 베어 있다. 베시 마을은 사람과 문화, 환경이 다를 뿐이지 우리나라 옛 시골풍경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타지였고 편한 사람 하나 없는데도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안하고 좋았다.

짧게 머물다 왔지만 풍경도 사람도 오랜 여운이 남았고, 남모르 게 ‘함께한다는 것,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 며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골목골목 존재하는 어르신, 청 년, 아이들, 화들짝 보여지는 창문 넘어 수줍게 미소 짓는 분들… 마을에서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그림을 그리면 웃음 이 나온다. 나에게 그곳은 그냥 삶이었다.

아마 난 베시 마을에서 도란도란 함께 교감할 수 있는 그 무언 가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던 듯하다. 네팔에서 활동하는 하니 언니 집문을 나가면 순수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해주는 아이들과, 청년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바보같이 배시시 웃으며 동네를 거닐며 인사하는 내가 있었다. 이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행복한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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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마을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던 이유는, 마 을에서 함께 살아가려고 하는 베시 마을 네팔 청년들의 삶 때문 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베시 마을이 어떠한 흐름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있을 때 도서관은 매주 금요일마다 어떠 한 프로그램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지, 앞으로 청년들이 만드는 마 을신문의 흐름은 어떻게 가져갈지, 환경에 대한 부분을 어떻게 바 꾸어 나갈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고 상의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들 이 소통하는 언어는 잘 모르지만 그들의 표정과 하니 언니의 대략 적인 통역으로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사뭇 진지하다는 것을 느 낄 수 있었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하자!’라는 논의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끌고 나갈지, 어떻게 연결시킬지에 대해 진지하게 궁리하며 나누는 청 년들의 모습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다. 2010년 몽골에 방문했을 때 방문한 단체 12곳 중 8곳에서 적지 않은 사업비가 엉뚱한 곳에 쓰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사업비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만날 때도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괴리를 느껴 아이들과 함께하 면서도 나는 즐겁지 않고 괴로웠었다.

그와는 달리 시작부터가 ‘소통’인 네팔 품. 힘이 들고 어려울 수 있지만 마을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꿈을 꾸고 있는 청년들, 그 청년들 곁에 있는 아이들의 진한 소통에서 보이지 않는 큰 선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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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느낌이었다. 묵묵히 그들의 에너지와 힘을 믿고 만들어가는 모습이 참 값져 보였다. 그들 스스로 자기 동기를 가지고, 자신들 의 힘으로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흔들고, 서로가 서 로를 자극하기도 하며 함께 궁리하고 지원하는 일. 단순히 하나의 사업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존재하는 따뜻한 무언의 언어들이 사 업 속에 녹아 들어가 있었다. 2주 동안 함께 지냈던 디네스지가 꿈 을 물어보았을 때, 나는 아직 나의 꿈은 잘 모르겠지만 마을에서 사람들과 함께 만들고 꾸려나가는 것이 나는 행복하다고 답했다. 디네스는 이해가 안 가는 척 ‘미친 꿈’이라고 했지만 그는 무척이 나 만족스러워 보였다.

2주 동안 네팔 베시 마을에서 청년들의 모습, 아직 자주와 공생 이 살아 있는 마을을 들여다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잘 살아가보 자고. 잘 만들어 가보자고. 어디서든 어디에 존재하든 중요한 것은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하는 것도, 같이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목 적이나 목표도, 내가 그곳에서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게 살다 왔고 어떤 성장을 하였는가의 물음조차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대다수 개도국에서 한국은 꿈의 나라이다. 한국은 그들에게 희 망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네팔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귀한 가치들 이

많이 존재했다. 이웃에 대한 배려, 공동체성, 서로 어울려 지

내는 과정들. ‘가난하다’는 기준과 판단의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 르겠지만 마을을 유지시키는 힘은 바로 이러한 가치들에서 나온다 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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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베시 마을에서 활동하는 하니, 하나 언니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청년들을 보면서 역사적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회를 이해 하고 그들과 함께하려는 노력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한국이 하려고 하는 개발사업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가난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어 MDGs*라는 단일화된 목표를 제 시하고 풀어나가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어떠한 행운인지, 어떠한 인연인지, 감사하게도 나는 하니 언니 뒤를 잇는 역할로 ‘베시 마을’에 다시 안길 수 있게 되었다. 경제 적 자립의 목표가 아닌 가난하든 부유하든 그들이 그들 삶의 주인 으로 설 수 있도록, 나 또한 그곳에서 주인으로 설 수 있도록 즐겁 고 행복한 과정들을 함께 잘 만들어 가보고 싶다.

지난 2011년 2월, 나는 베시 마을에서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 럼 큰소리로 시원하게 웃었다. 나를 품어준 베시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의 삶이 그들의 삶으로서 존재하고 살아나기를 기 도해본다.

*

밀레니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는 2000년 9월 뉴욕 국제연합 본부에 서 개최된 밀레니엄서미트에서 채택된 빈곤 타파에 관한 범세계적인 의제이다. 당시에 참가한 191개의 국제연합 참여국은 2015년까지 빈곤의 감소, 보건, 교육의 개선, 환경보호에 관해 지 정된 8가지 목표를 실천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주요 내용으로 ① 극심한 빈곤과 기아 퇴치, ② 초등교육의 완전보급, ③ 성평등 촉진과 여권 신장, ④ 유아 사망률 감소, ⑤ 임산부의 건강개 선, ⑥ 에이즈와 말라리아 등의 질병과의 전쟁, ⑦ 환경 지속 가능성 보장, ⑧ 발전을 위한 전 세계적인 동반관계의 구축을 들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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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시 마을의 자원활동가입니다 고그린(2011. 8~2011. 9)

베시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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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함께 초등학년 5학년 때 네팔을 여행하면서 베시 마을 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여행이 주된 목적이어서 베시 마을에 오래 머물지 않았지만, 그곳에 일하고 있는 이하니 선생님과 다른 분들 을 만나고, 품이 베시 마을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아직 어려서 베시 마을에서 진행되던 프로그램이 어떤 취 지에서 무엇을 달성하고자 하는지도 잘 모르고 막연하게 ‘좋다’라 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들과 느낌들은 바쁜 스케줄에 짜여진 한국 생활을 얼마 하지도 않아서 다 없어졌다.

중학교 3학년, 1년 동안 휴학하기로 했을 때 나는 조금 뜻깊은 일을 하고 싶었다. 멘토링 봉사를 하면서 조금 더 아이들과 같이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었고, 그러던 중 5학년 때 잠깐 들렀던 베시 마을 생각이 났다. 부모님을 설득하고 품분들과도 얘기를 하여 베 시 마을로 여행이 결정되었다. 그렇게 해서 2011년 4월 중순에 네 팔 베시 마을로 떠났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편하게 지냈지만 초반에는 네팔 의 덥고 습한 날씨와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도 낯선 환경에서도 금방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베시 마을에서 계시던 하 니 선생님과 하나 선생님의 도움 때문이다. 하니 선생님은 네팔에

*

고그린의 어머니는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최혜지 교수님으로 품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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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신 지 오래되어서 네팔 말을 현지인들처럼 유창하게 하시고 네 팔 문화나 생활에 대해 많이 알아 내가 베시 마을 주민들과 친해지 는 데 많은 도움을 주셨다. 하나 선생님은 내가 한국 음식을 먹고 싶을 때 네팔 식 재료들을 가지고 한국식 음식을 만들어주셨다. 하 나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음식을 먹을 때 항상 그 맛에 놀랐다. 그 리고 하나 선생님은 하니 선생님보다는 계신 지가 덜 되어 나에게 적응에 관해 몸소 체험한 팁을 많이 알려 주셨다.

하니와 하나 선생님의 도움과 더불어 네팔 사람들의 친근하고 정 많은 성격도 마을 분들과 친해지는 데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마을 분들과 친해지는 데 언어의 장벽과 문화적 차이 때문에 마 을 분들과 친해지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줄 알았다. 하지 만 예상과 달리 마을을 방문한 첫날부터 꺼멀리 미스를 포함한 모 노허라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과 인사했고, 내 또래 친구들과도 급 속도로 친해졌다. 놀랍게도 나와 그 친구들은 공통 관심사가 많았 고, 그 계기를 통해 더욱 빨리 친해졌다.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마을 청년들도 상당히 배려심이 깊어서 많은 면에서 도움을 줬다. 이렇게 친해진 네팔 친구들과 함께 옆 동네인 네오파니나 다 른 곳을 여행하면서 더욱더 친해졌고 다양하고 재미있는 네팔 문 화를 배울 수 있었다.

금방 적응하고 또 마을 분들과 친해져서 그런지 나는 예상보다 빨리 베시 마을의 모노허라 학교에서 봉사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4학년부터 7학년 학생들의 영어 수업시간에 가서 꺼멀리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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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를 도와드리거나 내가 직접 수업을 주도해봤다. 나중에 아이들과 친해지고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어느 정도 파악한 뒤에는 학생들 이 다소 어려워하는 말하기 역량을 키우기 위해 연극 위주로 수업 을 진행했다.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라 실수도 많았을 텐데 학생들 이 아주 열심히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성공적이었다. 학생들도 재미 있게 수업에 임해서 나도 즐겁게 수업을 할 수 있었다.

네팔의 작고 아담한 베시 마을에서 보낸 두 달 반이라는 기간은 나에게 아주 뜻 깊은 시간이 되었다. 네팔이라는 이국적인 나라의 문화와 아름다움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리고 서로 돕는 법을 배웠다. 해맑고 즐겁게 사는 베시 마을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교육이 한국 학생들에게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마을을 가꾸려는 베시 마을 청년들의 노력을 보면 서 헌신적 태도에 관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네팔에 서 배운 가장 값진 가르침은 여유였다. 나는 한국 특유의 ‘빨리빨 리’ 정서 때문에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주위에 있는 일들을 무시 하고 지나쳤다. 하던 일을 돌이켜보고 거기서 문제점을 보완해 나 가며 주위에 있는 것들을 즐기는 네팔 사람들의 여유로움은 나를 좀더 깊이 생각하고 많은 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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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시 마을 사례를 연구한 학자입니다 우수명(대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지역운동 ‘허실로 베시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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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I)NGO 현황

경제적 취약함이나 정치적 혼란은 에티오피아나 팔레스타인에 비견되는 나라(Arya et al., 2007)인 네팔은 수많은 INGO들 이 활동하는 나라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네팔의 빈곤과 경제 적 자조조직화의 문제는 많은 사회개혁가들의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26년 네팔에서 최초 로 NGCPT(Nepal Gandhi Chrkha Pracharak Trust)라는 NGO가 사회개혁가인 Tulsi Mehar에 의하여 설립되었다(Bhattachan, 2004). 그 뒤 21년이 지난 1948년에는 Paropakar Samsthan(다른 이들의 복지)이 네팔의 두 번째 NGO로 설립되 었으며 건강과 교육 분야에 대한 자급(self service)을 강조하며 네팔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Neupane, 2010).

네팔의 어려움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1990년대 초부 터 네팔에 대한 해외원조는 크게 증가하였다. 그에 따라 INGO 와 연계한 네팔 내 NGO의 수는 거품처럼 폭증하였다. 공식적으 로 네팔에 등록된 NGO는 1990년 기준으로 237개에 불과하였으 나 2002년에는 13,686개로 늘어났는데(이는 5,775%의 놀라운 증 가율이다), 이중 대다수가 INGO와 연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 다(Bhattachan, 2004).

네팔에서 활동하거나 지원하는 INGO는 미국이 30%, 영국이 15%, 일본이 13%, 독일이 8%, 프랑스가 5%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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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3% 수준이었다(Bhattachan, 2004). 코이카(KOICA) 네 팔지부의 내부자료에 따르면 2010년 3월 기준으로 15개 이상의 공 식적인 한국 INGO가 네팔 내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 외에 등 록되지 않은 한국 INGO와 선교사 등의 많은 비공식활동을 포함 하면 네팔 내에서도 적지 않은 한국 INGO들이 활동하고 있을 것 으로 판단된다.

네팔 INGO의 활동 내용들을 살펴보면 여성자립지원사업과 주 민권익 참여운동 등을 포함하는 지역사회개발(Community Development)이 47%, 의료 및 보건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강개발 (Health Development)이 25%, 아동 보건 및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아동개발(Child Development)이 16% 순으로 나타났다. 이 들 대부분의 활동이 지역개발, 여성, 아동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네팔이 여전히 카스트 제도 아래 억압받는 여성 과 아동의 실태를 알리거나 이들의 빈곤문제와 해결을 위해 노력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Gurung, 2004; Cameron, 1998). 예를 들면 Gurung(2004)과 Banskota와 Sharma(1997)의 저 술에 의하면, Annapurna Ghandruk 지역에서 전통적인 자조 (self-help)와 생태적이며, 지속가능한 지역사회 회복과 여성권 익 향상을 위한 교육 및 지역개발을 포함한 ACAP(Annapurna Conservation Area Project)로 인해 적지 않은 여성들이 자립 한 사례는 널리 알려져 있다.

많은 성장과 활동에도 불구하고 네팔의 INGO들은 많은 내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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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네팔 정부 관리들은 INGO에 대하여 비 우호적이며 금전 거래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다. 관련 정책이나 제도도 자주 바뀌는 비일관성을 갖고 있으며, 예산집행에서도 비효 율성이 높다고 지적된다. 또한 NGO들도 다른 나라 INGO의 파트 너가 될 만큼 성숙된 조직들의 수가 많지 않고, 열악한 재정과 예 산 오남용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네팔의 NGO들은 다 른 나라의 INGO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며, 독립적이지 못한 경우 가 많고, 소수의 카트만두 중심 그룹과 힌두교 그룹에 정보와 권 력이 집중된 문제들이 나타난다(Bhattachan, 2004). 그렇기 때 문에 다른 나라의 INGO들은 점차 네팔 내에서 직접적인 활동과 참여를 더 많이 하려고 한다(Kandel, 2004). 물론 다른 나라의 INGO들이 형식적인 지원을 빌미로 일방적인 요구를 남발하거나, 남성 중심적인 차별적 태도를 견지하거나, 네팔사회의 문화적 다 양성을 무시하는 등의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Bhattachan, 2004).

또 하나의 의미있는 지역운동 ‘허실로 베시가웅’

네팔은 많은 INGO의 활동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광산업화로 인한 물질주의 및 도시의 확장 등을 포함한 경제개발논리로 인해 점차 자립적인 지역공동체들이 붕괴되어가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 다. 필자가 2008년과 2010년 네팔 방문시 가장 큰 차이로 느껴진 것은 비자 발급 비용과 산악 트래킹 비용이 매우 세분화되어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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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수록 크게 증가하는 형태로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불과 2년 사이에 최대 10여 배 이상 차이가 날 만큼 더 많은 돈을 더 쉽게 징수하는 법을 네팔 정부가 배운 것이다. 이것은 돈에 대한 욕망 의 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판단된다. 타멜에서의 여러 물가들 은 두 배 정도 오른 느낌이고, 환락과 유흥과 자동차의 수는 피부 로 느낄 만큼 변화하였다. 이런 것들은 결국 ‘더 많은 돈을 욕망’ 하는 모습들의 그림자일 것이다. 이제 네팔도 자본과 욕망과의 싸 움에 치열하게 돌입해야 할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네팔 품에서 베시 마을(Besi village)에서 진행하 는 ‘허실로 베시가웅(Happy Village Project)’은 의미 있는 해 외지역복지 실천 사례이다. 네팔 품의 활동은 자선적 지역개발이나 긴급구호 차원이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들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참 여하는 지역조직화에 기초한 지역복지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베시 마을 청년들의 자생적 조직화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었으 며,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사업수행의 경험을 가지게 된 곳이 되었 다. 여기는 돈이나 성장(혹은 성공)이라는 가치가 아니라 ‘인간’이 여전히 중심이 되고 있음을 천명하는 가치의 지속가능한 싸움의 시 작터이다. 즉 네팔 카트만두 인근의 베시 마을이라는 작은 물리적 공간에서 진행하는 네팔 품의 ‘행복한 마을 만들기 - 허실로 베시 가웅’은 그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 가치 지향성에서는 ‘오래된 미 래’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과 꿈의 중간 열매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베시 마을의 행복한 마을 만들기는 네팔 품이 네팔사업 3년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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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착오 끝에 얻은 ‘지역과 문화’의 중요성을 ‘존재와 관계’를 통 하여 구현하려고 시도하는 사업이었다(우수명, 2012). 이를 위해 마을 도서관을 중심으로 마을 주민들 스스로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만들어갈 수 있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네팔 마을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사업으로 시작되었다(Nepal Pum, 2011). 이 사업은 종결되지 않은 지속적인 지역조직사업이며, 동시에 자본과 욕망이 지배하는 지금 이 시점에 ‘우리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한 답을 줄 수 있는 ‘현재형 미래’이다.

 ‘허실로 베시가웅’의 의미있는 실천의 과정들 昔者海鳥止於魯郊, 魯侯御而觴之干廟, 奏九韶以爲樂, 具太牢以爲膳. 鳥及 眩視憂悲, 不敢食一 臠, 不敢飮一杯, 三日而死. (석자해조지어노교, 노후어이상지간묘, 주구소이위악, 구태뢰이위선. 조급현시 우비, 부감식일련, 부감음일배, 삼일이사.) 옛날 바다 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서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이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구소의 음악을 연주해 주고, 소와 돼 지와 양을 잡아 대접했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 하고 슬퍼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죽어버리고 말았다. - 장자(莊子)의 지락(至樂) 편으로 오강남(2008)에서 재인용.

네팔이 가지고 있던 가난한 이미지들은 세계 10대 빈곤국가 중 하나이며, 카스트 제도가 남았고,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가난하지만 순수한 사람들이 사는 것과 같은 표현들이다(우수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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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 이런 이미지들은 네팔을 도와줘야 하는 불쌍한 대상으로 만 들어버리는 ‘문화적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특히 한국의) INGO들은 쌍방의 상호존중에 기초한 소통으로 시작하기 보다는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방적인 원조와 지원방식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네팔 사람들이(자원봉사자라도) 점점 원조에 익숙해져가고 원조산업이 하나의 거대한 네팔 내 사 업이 되어갔다. 또한 INGO 실무자를 만나면 돈부터 요구하는 경 험을 쉽게 하게 된 것도 이 ‘문화적 힘’의 영향이다. 그리고 그것 은 자본과 욕망 관계에 기초한 위계적 권력이 되고 ‘착한 사마리 아인’을 가장한 폭력이 되어버린다. 바다 새를 사랑한 노나라 왕은 그 사랑이 일방적이고 폭력적이었기에 오히려 그 사랑만큼 더 빠 르게 새를 죽게 만들어버린다는 역설을 주창한 장자의 글은 이런 상황에 정말 ‘딱!’이라는 생각이 든다.

네팔 품은 베시 마을에서 폭력적이지 않은, 상대방에 대한 강점 과 존중에 기초한 상호호혜적 접근방식을 취하였다. 베시 마을에서 의 접근방식은 행복한 마을 만들기의 주체가 지역주민임을 분명히 하고,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고 싶다는 제안과 구체적인 행복한 마을의 모습이나 목표를 제시하지 않는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주 민들 스스로 ‘어떤 것이 행복한 마을인가?’ ‘어떻게 우리 스스로 행복한 마을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품게 만들었다. 특히 베시 마을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을 찾고 있다는 ‘잘사는 한국에서 온 NGO대표’의 자세는 상대에 대한 인정을 넘어 존중의 의사를 전달하고자 하였다(우수명,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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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품은 당장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진행하고 도움 주는 이들 이 잘 나오도록 사진 찍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다림을 통 해 상대방의 마음이 열리도록 만나고 이야기하는 소통의 과정으로 현지 주민들 스스로 동기화하여 마들 만들기의 주인이 되도록 하 는데 중점을 두었다.

2010년 필자가 베시 마을을 찾았을 때도 아이들이 모노허라 학 교 운동장에서 네팔식과 한국식 놀이 방식을 혼용한 땅따먹기와 사방치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적지않은 해외원조사업에서 자원봉 사자들은 한국의 놀이나 노래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았 다. 국악을 배우고 악기를 배우고, 한국의 자원봉사자들이 떠나면 모든 기구들을 잘 닦아서 포장해놓고 내년에 다시 올 때까지 창 고에 보관하는 모습들이다. 또한 대부분 마을에 벽화를 그리는 활 동이 나타난다. 그래서 빗물에 벽화가 망가져도 내년에 와서 다시 칠해줄 외국인 봉사자들이 있으므로 현지인들은 신경 쓰지 않는 다. 네팔 품의 활동은 네팔의 것과 한국의 것을 서로 배우는 방식 을 취하였다는데 이는 상호관계성(mutuality)을 중요시하였기 때 문이다. 이를 통하여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이 일방적인 도움을 받 는 존재가 아닌 무엇인가 스스로 줄 수 있는 존재임을 자각했을 것 이다. 이러한 자각은 ‘허실로 베시가웅’을 만들 수 있는 자신감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 중 하나가 마을축제와 워크숍으로부터 자극받은 마을 청 년들 스스로가 만든 Manohara Ex-students and Creative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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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h Society(이하 청년위원회)일 것이다. 청년위원회는 마을 사 람 얼굴이 하나하나 담긴 모든 이들이 참여하는 사진 전시회, 방과 후 교실을 통해 어린 학생들의 성장을 돕고 영화상영 등의 활동들 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함께 마을 도서관의 탄생은 베시 마을 에서의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축이 되었 다. 만약 마을 도서관이나 청년위원회가 외부의 지원을 통하여 빠 른 시일 내에 반강제적으로 구성되었다면 마을의 어느 누구도 주 인의식과 스스로 하고자 하는 용기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귀 기울여 듣고, 기다리고, 함께하는 과정 을 통해 지역주민의 자발성에 기초해 만들어진 조직은 쉽게 없어 지지 않는다(우수명, 2012).

현재 이루어지는 모노허라의 교사들의 창의적인 도서관 활용 프 로그램과 청년위원회와 협력하는 방과 후 교실과 도서관 활동, 마 을신문 만들기를 통한 스스로의 이야기 담아내기 등과 함께 한국 과의 다양한 교류들은 베시 마을 청년위원회의 위상과 주체성을 더 욱 높이는 데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활동들을 포함하여 행복한 마을 만들기 진행 사항의 과정 과 의미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우수명, 2012).

첫째, 네팔 품은 한국적 방식과 속도를 가진 외원적 성격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네팔 교사와 청년들의 변화를 추구하였으나, 효과적 이지 못하였다. 네팔 품은 이에 대한 깊은 반성을 통하여 사업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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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을 꾀하였다.

둘째, ‘존재와 관계’로 관점변화를 통하여 지역 속으로 들어가기 로 하였으며, 상호존중의 관계에서 베시 마을과의 만남을 가졌다.

셋째, 주민들이 스스로 자기 마을을 알아가고, 희망을 느끼고, 긍 정적이고 존중받는 역할을 하도록 기다리며 소통하며 지원하였다.

넷째, 서로의 것을 상대방에게 가르쳐주는 과정을 통하여 서로 의 강점을 함께 배우는 상호관계성의 중요함을 경험하게 하였다.

다섯째, 청년위원회, 마을 도서관 건립과 운영, 학교 교육의 변 화, 마을신문의 발행, 방과 후 학교의 운영 등 다양한 활동들이 성 과로 나타났다.

여섯째, 행복한 마을 만들기의 성숙과 함께 네팔 품 상근직원들 은 베시 마을의 마을주민 구성원 중 하나로 들어갔다. 그리고 도 시화와 지역막개발로 인해 파괴되는 지역을 살리기 위한 활동을 전개 중이다.

‘허실로 베시가웅’을 통해 얻은 지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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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품은 지역사회조직의 관점에 기초하여, 일방적인 접근이 아 닌 상호관계적인 접근을 통하여 주민들 스스로 자신의 지역에 주 인이 되고 손님도 주인이 되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 었다.

그러나 현재 베시 마을에서는 그동안의 활동을 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도전과, 도시화와 난개발에 따른 지역사회 변화가 예고되 고 있다. 베시 마을에서는 빠르지는 않지만 잔잔하고 지속적인 변 화들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변화 외부에는 네팔의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지역변화와 도시에 비해 낮은 소득의 상 대적 박탈감이라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마을 입 구의 산들이 파헤쳐지는 모래 채취와 점차로 늘어나는 덤프트럭의 먼지를 통하여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은 앞으로 베시 마 을의 공동체를 위협하는 위험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마을 주민 들은 현재도 나무 심기와 과속방지턱 만들기 등으로 이에 대응하 고 있다. 외부 변화 속에 주민들이 자신들의 강점과 공동체의 아름 다운 관계를 잊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갔던 자립적인 활동을 지속 한다면 베시 마을 주민들과 청년위원회는 이러한 위기를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우수명, 2012).

다음은 베시 마을의 행복한 마을 만들기인 허실로 베시가웅을 통 해 얻은 지혜들을 정리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해외에 나가 사회복지

*

우수명(2010)을 수정보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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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역활동을 준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의미 있는 조언들 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정리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필자가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한 질문이자 동시에 답이 되어야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첫째, 문화적 다양성에 기초하여 상대를 알고자 노력해야 한다. 한국적 방식과 속도는 다른 나라 주민들에게 적합하지 않을 수 있 으며, 오히려 진정한 소통의 관계를 방해할 수 있다. 따라서 문화 적 다양성을 이해하여 차이를 받아들이고, 좋은 지역사회 만들기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여 진행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마인드로 접근 해야 한다. 또한 일방적 원조보다는 상호관계성에 기초한 접근이 필요하다. 흔히 원조품을 앞세운 방식은 사진 찍기 좋은 장면을 손 쉽게 만들 수 있지만, 불균형 배분에 의한 지역사회 민심의 파괴 나 의존성을 높일 수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지역사회조직의 실패 를 만드는 요인이 된다.

둘째, 소통의 노력을 통하여 서로 이해하는 관계 만들기에서 출 발해야 한다. 네팔 품이 베시 마을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할 초기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만나서 이야기하기’였다. 일회성 만남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꾸준한 만남이 계속될 것임을 알리고, 주민들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우선시하여 그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었 다. 또한 마을을 알고 싶어했고, 주민들의 강점을 배우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베시 마을이 갖는 공동체의 강점을 찾고, 지역주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행복한 마을 만들기를 추진하는 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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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신뢰관계의 형성을 의미한다.

셋째,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강점과 희망을 스스로 찾도록 해야 한다. 네팔 품은 먼저 목적과 목표를 세우고 이를 수행하는 방식으 로 접근하지 않았다. 많은 프로그램은 준비되었으나 주민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기 전까지 유보하고, 불필요하면 하지 않았다. 대신에 행복한 마을 만들기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주어 주민들 스스로 자신들이 행복하기 위한 방법들을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참여하고 싶은 주민들에게 참여할 권한을 인정한 것이었으며, 지속적인 참여 동기를 유지하는 힘이 되었다.

넷째,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긍정적이고 가치 있는 주인의 역할 을 수행하도록 한다. 네팔 품의 대표는 처음부터 자신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주민들에게 물어보았다. 마을지도 만들기에서 는 베시 마을의 청년들이 안내자이자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하 게 하였다. 놀이활동의 경우도 네팔의 놀이와 한국의 놀이를 번갈 아가며 함께하도록 하였다. 이는 외원기관처럼 일방적인 지원으로 상대의 존중감을 줄어들게 하거나, 불쌍한 존재가 되어야 더 많은 외원을 받는 현실에서 나타나는 가식적인 페르소나를 제거하는 효 과를 가져왔다. 상대방에게 배우고자 하는 자세와 리더와 가르치 는 자로 자리매김한 긍정적 역할은 베시 마을 주민들 자신이 존중 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고, 당당한 마을 주민들로 변화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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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상대방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하 되, 작은 일부터 성공의 경험을 제공한다. 마을지도 만들기, 함께 놀기, 학교 간판과 게시판 만들기와 같은 작은 일들의 지속적인 성 공은 마을 주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자발적인 청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무너진 학교를 개보수하고, 작 지만 함께 모일 수 있는 마을 도서관을 만들어내는 힘이 되었다. 이 과정 또한 외부의 원조가 우선이 아니라 주민들의 모금과 노동력의 참여가 선행으로 이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은 자신이 만든 학교와 도서관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이러한 성공의 경험 은 한국의 자원봉사자들을 받아들이고 함께할 수 있는 자신감이 되 었으며, 마을신문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으로 성장하는 힘이 되었다.

일곱째, 지속가능하고 자립적인 활동과 외적인 변화에 대응할 준 비를 해야 한다. 네팔 품의 상근활동가들은 도시의 사무실을 접고 베시 마을로 들어왔다. 또한 마을신문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주민들 의 이야기를 표현하게 하고 공유하고 나누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들 중 일부는 한국 방문과 연수를 통하여 더욱 힘을 얻게 되었으 며, 지속적으로 마을 속에 만남의 장을 유지하는 중심체가 되었다. 이를 통하여 외부의 지원이 아닌 스스로의 자립으로 더욱 나가게 될 것이다. 물론 지역의 난개발과 도시화와 같은 새로운 환경의 변 화도 다가올 것이며, 이는 급변하는 빈곤국가의 환경적 변화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사회의 공동체성을 지켜나가며, 환경 과 안전을 도모하고, 지역사회 자립적인 경제적 토대를 마련할 준 비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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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오강남(2008), 장자, 현암사. 우수명(2012), “네팔품의 국제 지역사회복지 실천 사례 연구 - 베시마을의 ‘행복 한 마을 만들기’를 중심으로”, 한국지역사회복지학 Vol 40., pp. 31~58. Arya, R. C. et al. 2007. NEPAL YEARBOOK 2007 VOLUME 12. Kathmandu: NYB Publications. Banskota, K and Sharma, B. 1997. Case Studies from Ghandruk: Impact of Alternative Energy Technology in Reducing Pressure on Forest Resources, Contribution of Tourist Expenditure to the Local Economy in the Annapurna Area. Kathmandu: ICIMOD. Bhattachan, K. B. 2004. “I)NGOs in Nepal, Non-Government Organizations Challenges and Opportunities”, Kathmandu: Sahakarya: 65-96. Cameron, M., M. 1998. On the Edge of the Auspicious: Gender and Caste in Nepal. Chicago: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98. Gurung. M. 2004. WOMEN AND DEVELOPMENT IN THE THIRD WORLD: A Case Study from Ghandruk, Nepal, WWF Nepal Program Office. Kandel, C. N. 2004. “The Strengths, Weakness, Opportunities and Threats of the Nepali NOGs”, Non-Government Organizations Challenges and Opportunities, Kathmandu: Sahakarya: 21-25. Nepal Pum(2011), “Internal Paper of Nepal Pum”. Nepal Pum Neupane, B., D. 2010. VOLUNTEERISM IN NEPAL : A Perspective on the Existing Policies and Practices, Kathmandu: Volunteer in Nep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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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

20년 넘게 청소년문화운동을 멈추지 않았던 것, 거창한 명분이나 가치보다는 일상에서의 성장과 진화를 찾아갈 수 있었다는 것, 여 행에서 만난 희말라야 네팔과 삶을 교감할 수 있다는 것 등은 결국 삶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이 책을 통해서 대안적 국제 엔지오 활동과 글로벌 복지의 실천을 위한 하나의 사례를 드밀어보 려는 욕심이 있었음은 감출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세상의 사람을 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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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나, 다른 세상 사람들과 무언가를 함께하거나, 다른 세상에서 살 아가는 것 모두가 세밀하게 의도된 계산 또는 의도된 목표를 이루 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닌 일상적 삶에서 만날 수 있는 행복한 성 찰이나 시도로서 전해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처음부터 이런 희망을 가지며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주체와 객 체 또는 주는 자와 받는 자로서의 구분과 분리가 주는 답답함과 한 계를 조금씩 경험하며 얻은 선물이다. 사업 계약서에 명시되는 ‘ 갑과 을’과 같은 이미 정해져버린 역할이나 기대만으로 채워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의도된 만족을 넘어서는 삶의 성장이나 행복도 그렇고,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사람과 세상을 만나는 태 도들은 삶의 구분이 아닌 삶의 교감과 공유에서 가능한 것임을 확 인했다. 생각해보면 베시 마을에서의 과정들은 보이는 성과보다는 보이지 않는 교감과 공유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사람의 성장이나 교감이 쉽게 확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 던 것들이 이후에 확인되기도 하고 또 다른 희망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베시 마을에 살고 있는 아이들과 사람들, 베시 마을을 찾았 던 사람들 모두 각자의 노력과 태도만큼의 성장이 있었을 것이다.

두 개의 장면을 떠올리며 허실로 베시가웅(행복한 베시 마을)의 이야기를 마치려 한다.

# 1 베시 마을에서 1년 반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청년 자원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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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 안하나가 올 가을에 파견될 후배(이명화)에게 네팔어를 가르 치며 즐거워한다. 가만히 살펴보니 안하나는 네팔어를 가르치는 것 이 아니라 네팔과 네팔 사람들의 향기를 교감할 수 있는 ‘소통의 근거’들을 나누고 있었다. 네팔로 떠나기 전 미래에 대한 불안감 으로 흔들렸던 청년의 모습은 사라지고 당당하면서 평화로운 청년 의 모습이 보여진다. 그리고 안하나는 자신이 태어난 강원도 원주 시 신림면 용암리 시골마을의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행복 한 꿈을 꾸고 있다.

# 2 ‘품청소년문화공동체’ 20주년 기념을 위해서 품과 함께 했던 사 람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고 있었다. 홈페이지와 메일로 축하의 글 을 보내는 사람들이 전부였지만 딱 한 장의 축하편지가 도착했다. 베시 마을에 살고 있는 열다섯 살 ‘루나’의 편지였다. 초등학생 때 부터 보아온 친구였고 안하나에게 가끔씩 한국어를 배웠었다. 루나 에게는 한국어가 코리안 드림(Korean Dream)을 위한 생존의 수 단이 아닌 자신이 만난 소중한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한 또 하나의 즐거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베시 마을 모노허라 학교에서 철모 르고 뛰어놀기만 했었던 루나는 지금 베시마을 도서관에서 동생을 돌보는 청년으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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