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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 Jun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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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HO HONG

P O RT F O L I O Non-photographic Photography

Junho Hong +82) 10 3802 0924 Hong Junho Solo Exhibition at W Museum, 2019

newrocker76@gmail.com


CONTENTS Artwork 1. On That Which cannot be Defined (규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2. Deconstruction of Idols ; Religion (우상의 해체 ; 종교) 3. Deconstruction of Idols ; Art (우상의 해체 ; 예술)

4. Lucid Dreaming (자각몽) 5. Study of Crumpling (구기기 연습) 6. Decode, Detox, Harm (해독) 7. Homo Ludense ; Digital Being (유희적 인간 ; 숫자로 관리되는 존재) 8. Digital Being (숫자로 관리되는 존재) 9. The Pasque flower without its Thorn (가시 잃은 할미꽃)

10. Continuity of Existence and Absence (존재와 부재의 연속성)

Attachments - Artist Notes - Critique

Archive - VR Gallery - Interview & Online Archive - Newspaper

CV(Curriculum Vitae)


Artwork


On That Which cannot be Defined

(규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 Beam projector + Graphy (2019) 구겨진 종이는 기능을 다한 것에 대한 표상이며 죽음에 대한 인식 “『구겨진 종이』는 절실함의 극한 속에서 잉태한 것이었다. 즉 그것은 뇌출혈로 인해 돌아가신 할머니의 죽음을 목도하고 자신과 아버지도 동일한 질병으로 죽 음의 문턱에 다가섰던 극한의 체험으로부터 기인한다. 현실계 속 ‘존재의 끝을 알리는 죽음’을 체험한 이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단지 주검을 목도하는 ‘타자

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생의 끝’을 인식할 따름이다. 사물로서 구겨진 종 이는 이생에서의 쓰임새라는 존재적 소명을 다하고 생을 마감하는 ‘죽음에 대한 인식’을 불러온다.” - 김성호 미술평론가 (일부 발췌) -

Era review on Death #010 120 x 92.28cm, 2019

Era review on Death #008 120 x 89.81cm, 2019

Era review on Death #009 Pigment Print(Taking the light of a beam project on crumpled Paper), 120 x 89.57cm, 2019


죽어서도 죽지 못해 슬픈 눈을 가진 존재와 눈을 마주친 찰나에 나는 온몸이 굳 어버린 채 멍하니 그 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눈을 외면한 채 동물원 과 자연사 박물관을 만들어 그들의 생사를 관리하고 있다.

Basic_Work

Era review on Death #001, Pigment Print(Taking the light of a beam project on crumpled Paper), 145 x 108cm, 2019


Hallucination #005 Hallucination #102 Pigment Print(Taking the light of a beam project on crumpled Paper), 60 x 40cm, 2019


Detail

Hallucination #106 Pigment Print(Taking the light of a beam project on crumpled Paper), 60 x 40cm, 2019


Detail

Hallucination #106, Pigment Print(Taking the light of a beam project on crumpled Paper), 60 x 40cm, 2019


Deconstruction of Idols ; Religion (우상의 해체 ; 종교) - Beam projector + Graphy (2018) 종교 시스템 그리고 우상 광화문에 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를 흔드는 분들과 종교인의 우상은 어 디서 비롯된 것일까? 성경에는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했는데 종교를 이데올로 기에 투영하여 그들은 거리에 나섰다.

그리고 코로나와 같은 국가 위기 상황에도 종교 권력 유지와 장사에 몰두한다. 과연 신이 존재하는 것일까? 종교는 어쩌면 죽음을 먹고 사는지도 모른다. 유럽의 성당에서 종교 성상을 촬영한 후, (빔) 프로젝터를 통해 구겨진 종이 위 에 투사했다. 구겨진 종이 위에 투사된 카톨릭 성상은 마치 대리석상이 깨져버 린 것처럼 보여지지만 빛의 그림자(허상)일 뿐이다. 나는 실존하지 않는 허상 의 픽셀(RGB)로 표현했다. 그렇게 카톨릭 성상이 허상이 되었다.

Deconstruction of Idols ; Religion #019

Deconstruction of Idols ; Religion #016

Pigment Print(Taking the light of a beam project on crumpled Paper), 130 x 195.28cm, 2018

Pigment Print(Taking the light of a beam project on crumpled Paper), 120 x 89.77cm, 2018


Deconstruction of Idols ; Religion #027 Pigment Print(Taking the light of a beam project on crumpled Paper), 130 x 156.69cm, 2018

Deconstruction of Idols ; Religion #024 Pigment Print(Taking the light of a beam project on crumpled Paper), 130 x 100.3cm, 2018


“홍준호의 작업은 시도와 결과가 어느 정도 예상되는 사진매체의 특성

에서 이탈한 등사의 방법론을 새롭게 적용해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 교적 흥미롭다. 프린트된 이미지를 구겨 잉크와 종이를 분리한다거나, 보다 적극적으로 우연성을 확장하기 위해 작가적 개입/행위의 축소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 또한 눈에 띄는 부분이다. 특히 작품 전체를 관통 하는 명사인 ‘우상’은 다분히 관념적일 수 있는 주제임에도 나름의 방식 으로 시각화-조형화하려는 고된 과정은 인상적이다.” <홍경한 평론 중 발췌>

Detail

Deconstruction of Idols ; Religion #001, Pigment Print(Taking the light of a beam project on crumpled Paper), 150 x 111.12cm, 2018


Detail

Deconstruction of Idols ; Religion #001, Pigment Print(Taking the light of a beam project on crumpled Paper), 150 x 111.12cm, 2018


Hong Junho Solo Exhibition at YeongCheon Art Studio Gallery, 2018


Deconstruction of Idols ;

Art (우상의 해체 ; 예술)

- Beam projector + Graphy (2018) 황금비의 우상 비너스, 파르테논 신전 등과 같은 절대미라고 불리는 황금비라는 것이 사실일까? 나는 허상이고 절대미에 대한 자본이 시각화환 우상이라 생각한다. 내가 가진 황금비는 숫자로 관리되는 존재의 표상인 지갑 속 신용카드

그것의 가로, 세로 비율일 뿐이다.

Deconstruction of Idols ; Art #008 Deconstruction of Idols ; Art #007 Pigment Print(Taking the light of a beam project on crumpled Paper), 60 x 40cm, 2018


남성권력의 우상 모더니즘 이전의 남성 조각상의 남근(penis)은 너무나 당당했고 여성은 늘 수줍어하는 모습이다. 21C의 관점에서 보면 고대 그리스 조각상의 남근은 권력과 권위라는 불편함이 느껴진다. 헬레니즘기의 조각상인 벨베데레의 토르소(Torso Belvedere)의 남근을 구겨버렸다. 그렇게 #me too 운동을 향해 #with you를 외쳐주고 싶었다.

Deconstruction of Idols ; ART #006 50 x 40.66cm, 2018

Deconstruction of Idols ; ART #004 50 x 40.11cm, 2018

Pigment Print(Taking the light of a beam project on crumpled Paper)

Deconstruction of Idols ; ART #005 50 x 38.77cm, 2018


Lucid Dreaming (자각몽) - Medical Image(CT, MRI) + Action + Graphy (2017) 트라우마 사진 이미지에서 종이와 잉크를 분리, 분해, 소멸, 해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의 증거인 의료용 이미지를 프린트한 후 본래의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구기고 또 구긴다. 바람이 꿈속에서는 실현되지만, 현실 은 그렇지 않다. 현실에 대한 부정과 긍정을 반복하다 보니 사진 이미지의 형상 은 해체되고 종이와 잉크를 분리, 분해, 소멸이 되었고 그 과정은 작업이 되었다. “사물로서 구겨진 종이는 이생에서의 쓰임새라는 존재적 소명을 다하고 생을 마 감하는 ‘죽음에 대한 인식’을 불러온다. 그것은 바르트의 유명한 언명 “거기에 있었다(Çà a été)”라는 완료형의 사건을 ‘지금, 여기’에 소환하여 시각화하는 사 진의 존재론적 차원과 공유한다.”

- 김성호 미술평론가 (일부 발췌) -

Lucid Dreaming #088 Pigment Print(Crumpled Medical MRI printed on Matt Paper and Action Result), 137 x 100cm, 2017


Lucid Dreaming #03, Pigment Print(Results of repeated crumpling of Brain Medical MIR printed on Matt paper), Installation, 2019


Study of Crumpling (구기기 연습) - Medical Image(CT, MRI) + Action + Graphy (2018) 사진 이미지에서 종이와 잉크를 분리, 분해, 소멸, 해체 사진은 복제 가능한 예술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나는 그 사실에 물음을 가졌고 부 정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의 몸짓으로 그것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구겼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구겼다. 손바닥이 벗겨져서 손가락이 펴지지 않을 때까지 구겼다. 구기는 행위로 인해서 사진의 평면성과 복제성은 상실되었다. 종이는 이미 이미지 를 위한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성질과 형태를 드러내었다. 종이의 자유의지가 드 러나고, 잉크가 만들어놓은 형상은 서서히 사라지고 구겨진 선과 면을 통해서 새 로운 조형성이 나타났다. 그리고 2차원 평면이 3차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Study of crumpling #0006, Crumpled Medical MRI image

Study of crumpling #0011, Crumpled Medical MRI image print on Matt Paper and Paper dust and

print on Matt Paper in Paulownia wood Frame, 50 x 42cm, 2018

Acrylic on Canvas in Paulownia wood Frame, 50 x 42cm, 2018


Decode, Detox, Harm (해독) - Printed Image(Tissue Box) + Action + Graphy (2020) 사진 이미지에서 종이와 잉크를 분리, 분해, 소멸, 해체 코로나 19로 힘든 시기 과거의 일상이 아닌 새로운 일상. New Normal의 시대를 살아가게 되어 버린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해독이 아

닐까 한다. 해독은 몸 안의 독소를 빼내는 detox, 어려운 것을 해석하는 decode, 손해를 끼친다는 harm. 해독은 이렇게 다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2020년 3월경 코로나 19(COVID-19)로 인해 혼란에 빠진 유럽과 미국에 대한 뉴스를 통해 생필품들이 동이 나는 모습 속에서 흥미로웠던 것이 마트에 화장지 가 동이 나는 모습이었다. 같은 코로나로 인한 판데믹(Pandemic) 상황이었음에 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휴지가 할인하는 반면에 선진국이라 일컬 어지는 나라에서는 진열대에 화장지가 없는 모습에서 비현실적인 모습과 문화 적인 괴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낯선 이러한 상황을 모티브로 동시대에 전 세계 가 느끼는 사회적 담론으로써의 필요한 해독을 『모나리자』를 통해서 표현한다.

모나리자가 휴지가 된 까닭은 #01

모나리자가 휴지가 된 까닭은 #02 Pigment Print(Crumpled pigment print on Matt Paper and Action Result), 120 x 87cm, 2020


Detail

모나리자가 휴지가 된 까닭은 #02, Pigment Print(Crumpled pigment print on Matt Paper and Action Result), 120 x 87cm, 2018


Homo Ludense ; Digital Being (유희적 인간 ; 숫자로 관리되는 존재) - Medical Image(CT, MRI) + Action + Graphy (2016) 인적자원(Human Resource)의 피로사회 그리고 뇌출혈(죽음), 물감 놀이 “이미지란 한낱 죽음, 부재와 맞물린 허상이지 않던가? 보라! 이미지의 라틴 어원 인 ‘이마고(imago)’는 고대 로마 시대 장례식 때 ‘주검에 착용시켰던 마스크

(masques mortuaires)’ 혹은 ‘사자(死者)의 초상(le portrait d'un mort)을 지칭한다. 문화이론가 드브레(Regis Debray)가 잘 고찰하고 있듯이, 이미지란 원래 출발부터 부재와 죽음과 깊이 연동되는 정체성인 것이다.” - 김성호 미술평론가 (일부 발췌) -

Homo Ludense #16, Pigment Print(Mixed Medical CT, Acrylic on Matt paper), 72.7 x 76.4cm, 2016

Homo Ludense #02, Pigment Print(Mixed Medical CT and Water Color on Hanji), 86cm x 76.4cm, 2016


Homo Ludense ; Digital Being (유희적 인간 ; 숫자로 관리되는 존재) - Medical Image(CT, MRI) + Action + Graphy (2016) 인적자원(Human Resource)의 피로사회 그리고 뇌출혈(죽음), 물감 놀이 10여 년간 주류회사에서 IT 개발자로 근무하다가 2011년 5월에 뇌출혈이 발병했 다. 내 기억속에서 사라질 무렵, 아버지마저 과로로 뇌출혈이 발병했다. 그때가

2014년 4월이었다. 이 일이 나에게는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다양한 숫자를 통해 관리되어 온 자신. 숫자들이 주는 압박. 규율사회 속 감시. 개 성을 포기한 노동하는 동물로서 인간. 근대 노동 사회에 만연한 피로. 뇌출혈, 신경 과민으로 이어지는 탈진. 끝없이 이어지던 추락의 회로를 탈출하는 방법이 홍준호 에겐 작품이 되었다.” - 양지윤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일부 발췌) -

Homo Ludense #14, Pigment Print (Mixed Medical CT, Acrylic on Matt paper), 75.7cm x 100cm, 2016

Homo Ludense #03, Pigment Print(Mixed Medical CT and Water Color on Hanji), 73.3cm x 76.4cm, 2016


Digital Being (숫자로 관리되는 존재) - OA Machine + Graphy (2015)

인간 존재와 인적자원(Human Resource) 시스템 / 시뮬라크르(Simulacre) 10여 년간 기업에서 근무할 때 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냥 자원(Resource)일 뿐이었다. 그래서 팩스, 스캐너, 복사기 등과 같은 사무 자동화 기기(OA)를 사용해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인간이 숫자와 기호를 만들었지만, 그것에 지배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과연 우리는 우리 삶의 주체일까 객체일까? 주민등록번호, 여권번호, 신용카드, 운전면허번호, 의료보험번호 등 다양한 숫자를 통해 개성없이 시스템 아래 관리되어 온 자원(존재). 개성을 포기한 노동하는 동물로서 존재가 디지털 이미지로 중첩해 역설적으로 화려하게 드러난다.

Digital Being - Card #04, Pigment Print., 44.8 x 74.9cm, 2015

이것이 실체(존재)가 사라진 시뮬라크르(simulacre)가 아닐까?

Digital Being - Passport #01, Pigment Print, 44.5 x 61.7cm, 2015

Digital Being - Card #01, Pigment Print, 44.8 x 74.9cm, 2015


Digital Being (숫자로 관리되는 존재) - OA Machine + Graphy (2019) 인간 존재와 인적자원(Human Resource) 시스템 / 시뮬라크르(Simulacre) 신용카드 영수증은 사진과 같은 존재 증명이며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신용카드를 사용(소비) = 셔터를 누름 신용카드 단말기 = 카메라 영수증 = 필름 영수증 확대 = 필름 인화, 출력(작품)

Digital Being – Receipt#04

Digital Being – Receipt#01 / 2016.02.12

Mixed Media(Pigment Print, Receipt, Credit Card), 100 x 90cm, 2019

Mixed Media(Pigment Print, Receipt, Credit Card), 42 x 30.5cm, 2019


Digital Being – Receipt#03, Pigment Print(Taking the light of a beam project on crumpled Paper), 100 x 70cm, 2019


Digital Being (숫자로 관리되는 존재) - Installation, Archive (2019)

어디서 무엇을 소비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죽어갈 뿐이다. 2019년 5월~10월까지 사용한 신용카드 영수증이다. 나는 어디서 무엇을 샀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신용카드 영수증은 사진처럼 내 기억을 대신에 해주기도 하지만, 숫자로 관리되는 존재의 표상이기도 하다. 나는 주체적인 존재로서 생존을 위한 소비를 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주체적이 었을까? 나의 소비는 관리되는 자원(Resource)이었을 뿐이었고 역설적으로 주체적 이지 못했다.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서 만든 숫자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 영수증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편의를 위해 소비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중량 (kg)을 물의 부피(ℓ)로 환산하여 물을 담았다.

Detail

Detail

Puente Nuevo(101.43L), Installation(Boat, Water, Cup, Arcylic, Acrylic glass), 2019


Detail

Villein & Villain, Installation(Receipt, Magnet, Metal plate), 2019


The Pasque flower without its Thorn (가시 잃은 할미꽃) - Installation + Photography + Archive (2020)

관조적 태도 나의 트라우마를 넘어 자식을 위해 헌신하다가 불치의 병으로 돌아가신 타자의 죽음을 시각화한다는 것은 또 다른 감정의 객관화가 필요했다. “실타래 거슬러 가시덩굴처럼 얽힌 인연 주름져 오래 지나 무거워진 피부 마냥 이젠 무거워진 가시를 내려놓은 당신을 보니 오만가지 세월의 깊이만큼 당신의 가시가 내 가슴을 찌른다.” <작가노트 중>

The Pasque flower lost thorn Ⅱ Canvas Frame, Wooden chair, Acrylic Shoes, Variable Installation,

Hong Junho Solo Exhibition at Space 9, 2020

2020

Kindly Untitled, Used old wooden door, Variable Installation, 2020


Hong Junho Solo Exhibition at Space 9, 2020


자신이 경험한 죽음의 문제를 누군가의 죽음으로 등치시키고 객관화하기 시작하는 듯하다. 이 전시는 분명 코로나 19라는 특이한 상황 아래에서 만들어졌다. 언컨택트(Uncontact)가 뉴노멀(New Normal)이 되면서,

새로운 종류의 접촉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전시를 기점으로 자신이 경험한 트라우마를 넘어서서, 인류가 마주한 새로운 트라우마와 연결 짓고자 시도한다. - 양지윤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일부 발췌) -

Untitled #2005, Pigment Print, 65 x 48cm, 2020

Untitled #2004, Pigment Print, 65 x 48cm, 2020

Untitled #2003, Pigment Print, 65 x 48cm, 2020


Untitled #2002, Pigment Print, 65 x 65cm, 2020


Untitled #VI_2006, Pigment Print(Scanned Archive old photo), Variable Installation, 2020


Untitled #VI_2005, Medical Tools Used, Medicine, Variable Installation, 2020


Continuity of Existence and Absence

(존재와 부재의 연속성)

- Installation (2020) 기울어진 운동장 Positive Space vs Negative Space (평등 & 불평등) 나는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민주주의,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의 전쟁터에 내던 져졌다. 교육을 통해서 배운 이 땅의 이데올로기에는 평등과 자유, 의무가 존재 하지만 누구에게는 있고 누구에게는 없는 것 같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이 시스템을 나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과연 자유와 평등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배드민턴 코트는 약자를, 탁구대는 권력과 자본을 가지고 시스템을 이끄는 사 람들을 상징” 현실이란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를 준 척 포장되지만, 사실은 누군가에게도 동 등할 수 없는 불평등한 현실이다. Solo Exhibition (홍티아트센터, 2020)

Battlegrounds, Badminton court, Badminton net, Table tennis table, Shuttle cock, fluorescent pigment, Fishing line, Black Light, Variable Installation, 2020


Battlegrounds, Badminton court, Badminton net, Table tennis table, Shuttle cock, fluorescent pigment, Fishing line, Black Light, Variable Installation, 2020


Continuity of Existence and Absence

(존재와 부재의 연속성)

- Installation (2020) 움직일 수 없는 육신에 갇힌 정신 + COVID-19 Positive Space vs Negative Space (신체의 자유 & 부자유) 코로나(COVID-19)의 대유행(Pandemic)이 온 기간에 환자들이 사용한 깁스를 정형 외과를 통해서 수집했다. 오브제로 사용하기 위해서 여러 차례 소독을 진행했지만, 그 속에는 독특한 체취가 남아서 후각을 자극한다. 냄새는 지금을 견뎌내고 있는 힘든 시간의 축척이고 사람의 체취이자 의료진의 숭

고함이고 깁스는 자유가 박리(剝離) 된 채 육신에 갇혀버린 이 시대의 불편함과 불 안함의 표상이다. 거기에서 출발한 이 작업은 현재도 진행 중인 상황에 대한 나의 물음이다. 바이러스 전염병에 대한 위협으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국가적으로 통제되는 현실, 정치적인 신념에 따라 우리의 눈을 현혹하는 미디어에 대한 표현이다.

Solo Exhibition (홍티아트센터, 2020)

Isolation, Cast used by the patient, Fishing line, Cotton, Black Light, Variable Installation, 2020


Isolation, Cast used by the patient, Fishing line, Cotton, Black Light, Variable Installation, 2020


Isolation, Cast used by the patient, Fishing line, Cotton, Black Light, Variable Installation, 2020


Attachments - Artist Notes - Critique


비非사진적 사진

Artist Notes

나는 대학에서 전산을 전공하였으며 10여 년간 IT개발자로 근무 중 과로로 인한 뇌출혈을 겪으면서 노동하는 직원이 존재(Being)가 아니라 자원 (Resource)으로 취급된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OA기기를 이용해 신분증, 신용카드, 통장, 운전면허증 등과 같이 숫자로 나를 가두어두고 통제하고 관리하는 시스템 속의 나. 즉, 자원화되어 숫자로 관리되는 존재를 보여준 작업 <Digital Being(2015)>을 시작으로 매체에 대한 연구와 가능성의 실 험을 통해 시각예술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시각예술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IT개발자의 경험과 미술 이론을 기반으로 10여 년간 해외 비엔날레, 도큐 멘타, 미술관, 박물관 등을 다녔던 중요한 경험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후 사선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뇌출혈 당시 접했던 의료기기(CT, MRI, MRA, X-Ray)를 사용한 <Homo Ludense(2016)>, <Lucid Dreaming(2017)>, <Study of Crumpling(2018)> 작품을 통해 관객과 소통했다. OA기기나 의료용 장비를 사용한 까닭은 이러한 기기들의 원리가 카메라의 원리와 밀접 한 연관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의 장점은 이론적, 경험적 토대로 기술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작품의 형식적 변이를 용이하게 한다는 점이다. 또한, 고정된 미적 형식보다 기술매체의 실험을 통해서 새로운 형식을 탐구하는 데 있다. 최근 나의 작업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정치, 경제, 사회 현상을 면밀히 살피고 궁금증을 가지는 것에서 시작한다. 광화문에서 있었던 촛불 집회에 참 여하여 느꼈던 것을 토대로 정치적, 사회적 “우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종교적 신념이라 일컫는 신에 대한 우상을 해체하는 작업으로 이어갔

다. “신 존재”에 대한 많은 철학적 이야기는 차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허상을 존재케 하여 그 너머에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죽음 을 빌미로 자본화, 권력화된 우상을 깨트리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Beam Projector를 이용해 구겨진 종이 위에 빛으로 만들어진 허상(성상)을 변형, 왜곡된 채 맺혀지게 만들어 작업을 완성했다. 비물질인 빛으로 그려낸 비조각적 작업<Deconstruction of Idols(2018)>이었다. 새로운 매체 실험과 탐구를 통해 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나아가 경험해보지 못한 죽음을 통해 자본 시스템이 운영되는 또 다른 자연사 박물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촬영지였던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 여러 차례 방문하여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슬픈 눈을 가진 존재에 대한 작업<On That Which cannot be Defined(2019)>을 발표했다. 박제가 된 이들은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박제되어 자본의 도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보편적인 커다란 죽음 이외에도 환경오염으로 인해 발생하는 촌극과 같은 COVID-19 시대에 변화를 표현한 의료 폐기물인 정형외과 깁스를 사용해 생(生)과 사(死)에 물음을 던지는 설치작업, 소수의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시스템에 의해 죽음에 이르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문제를 Black Light를 통해 선명하게 표현한 <존재와 부재의 연속성(2020)>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어서 누군가의 어머니에 대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 <가시 잃은 할미꽃(2020)>을 발표하며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작업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렇게 “존재와 부재”, “(사회)시스템”과 “죽음”에 천착하게 된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피로 사회의 직장생활에서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이유 때문이 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앞으로도 일어날 현대사회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이며 관찰해 나가고 있다.


Critique

‘Deconstruction of Idols’ : 현상의 지각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 홍경한(Hong, Kyung-han, 미술평론가) 작가 홍준호는 우상, 다시 말해 종교-적 성향의 우상을 다룬다. 아니, 보다 적확히는 종교(-화 된 것들), 그리고 이데올로기, 권력, 신화 등이다. 홍준호가 우

상을 주제로 삼게 된 배경엔 2016년 많은 국민들이 삼삼오오 거리로 나와 정상적이지 못한 국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쏟아낸 촛불집회가 놓여 있 다. 과거 사진과 회화의 경계 넘기라는 방식을 통해 작가 자신이 경험한 삶과 죽음, 정체성의 문제1)에서 살짝 벗어나 동시대 우상을 다루게 된 계기도 해당 집회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홍준호의 시선은 부정한 정치권력에 관한 국민투쟁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우상화(-에 버금가는) 현상에 관한 지각에 무게를 뒀다. 동시에 해체의 전 략을 통한 새로운 대안으로 받아들였다. 작가에게 이는 보다 광활한 대지로 나아가는 인식자유 및 해방과 맞닿는 것이었고, 사상과 이념에 관한 리얼리티가 아니라 어떤 원인과 결과의 동일성을 통한 인과관계 자체2)에 중점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우상화라 할 수 있는 현상의 지각과 인식자유 및 해방’은 동일성이라는 인과관계를 매개로 표상화 되지만 조형적으론 찰나의 기록과 저장, 영원이나 불멸 의 의미적 동일성 등과 같은 사진내외의 특성을 외면하지 않는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모더니즘의 형식주의와 개인성을 이탈한 포괄적 관점에서 우상에 관한 자신만의 시각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건 이러한 우상(-화 된 것들)을 조형언어화 하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방법론이 ‘우연성’이라는 점이다. 그의 옛 작업들이 물질과 물질(종이×잉크)의 만남을 통한 소극적 우연성을 강조했다면 근작은 우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존 형상의 고정적 이미지를 붕괴시키는 방식(해체)을 사용하고 있다.3) 그는 이러한 붕괴와 흐트러짐을 자유의 개념으로 전치시킨다. 작가에 따르면 그것은 곧 선택을 넘어 스스로 해방되는 인식-지각(깨달음)의 해체-자유와 갈 음된다.4) 심지어 사진매체가 가진 요소와 소재로써 우연성을 활용해 우상을 해체한 자유의 부여가 예술의 ‘자유의지’에 종속되는 것이라는 개념으로까지 나 아간다. 홍준호의 작업은 시도와 결과가 어느 정도 예상되는 사진매체의 특성에서 이탈한 등사의 방법론을 새롭게 적용해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교적 흥미롭다. 프린트된 이미지를 구겨 잉크와 종이를 분리한다거나, 보다 적극적으로 우연성을 확장하기 위해 작가적 개입/행위의 축소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 또한 눈에 띄는 부분이다. 특히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명사인 ‘우상’은 다분히 관념적일 수 있는 주제임에도 나름의 방식으로 시각화-조형화하려는 고된 과정은 인상적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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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그의 작업은 의료사진을 아이디와 중첩시키는 방식으로 삶의 의지로써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새겨져 있다.

2)

작가는 이 인과관계의 조형적 출발을 사진의 인과성에서 발견한다. 예를 들면 작가는 사진에 대해 “피사체에 빛이 반사되어 필름이나 센서에 상이 맺히는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며 “그 다음은 결과물을 보여주기 위한 인화나 프린트를 통해 인화지(프린트용 종이)와 감광유제(잉크)가 만나는 인과성(Kausalität)이 존재한다.”고 자신의 작가노트에 적시하고 있다.

3)

우연성을 완성하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종이의 구김과 도포되는 잉크 등으로, 본문 기술처럼 작가는 이러한 과정에 따른 행위자체를 또 다른 자유의지로 판단하는 듯하다.

4)

작가는 “적극적인 인과성을 보여주기 위해 해체(Deconstruction)라는 개념을 차용”했다고 자신의 작가노트에 기술하고 있다. 우연성을 확장해 맹목적으로 우상화된 것들로부터 인식의 자유를 부여하고자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Critique ‘On That Which cannot be Defined’ : 규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2019)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1. 프롤로그

이러한 시기에 작가 홍준호는 무슨 이유로 ‘버려진 무덤’ 위에서 자신의 예술을 찾고

작가 홍준호의 작업은 구겨진 종이 위에 빔프로젝터로 사진 이미지를 투사하고

있는가? 그의 작업에서 ‘구겨진 종이’는 절실함의 극한 속에서 잉태한 것이었다. 즉 그

그것을 다시 카메라로 촬영하는 과정을 거쳐서 완성된다. 구겨진 종이의 피부 위에

것은 뇌출혈로 인해 돌아가신 할머니의 죽음을 목도하고 자신과 아버지도 동일한 질

투사된 사진은 굴곡진 종이 위에서 원래의 본 모습을 잃고 왜곡된다. ‘엄격한 모방 의 원칙에 기초한 이상적 인체(canon)’를 통해서 미술사 속 거장의 조각을 구겨진 종이 바탕 위에 드리우는 홍준호의 작업은 굴곡진 바탕으로 인해 그 이미지가 뒤틀

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다가섰던 극한의 체험으로부터 기인한다. 현실계 속 ‘존재의 끝 을 알리는 죽음’을 체험한 이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단지 주검을 목도하는 ‘타자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생의 끝’을 인식할 따름이다. 사물로서 구겨진 종이는 이 생에서의 쓰임새라는 존재적 소명을 다하고 생을 마감하는 ‘죽음에 대한 인식’을 불러

린 채 관객에게 제시된다. 실제의 왜곡과 은폐가 만드는 그의 새로운 조형 실험은

온다. 그것은 바르트(R. Barthes)의 유명한 언명 “거기에 있었다(Çà a été)”라는 완료형

사진 매체의 독특한 존재 조건을 실험하면서 이미지의 존재에 관한 문제의식을 진

의 사건을 ‘지금, 여기’에 소환하여 시각화하는 사진의 존재론적 차원과 공유한다.

중하게 성찰한다. 이번 전시에서 홍준호는 ‘규정할 수 없는 것들’을 제시한다. 자신의 비언어적(nonverbal) ‘사진 작업’을 자신 스스로 언어적(verbal) 진술로 설명하고 분석적으로 해부 하던 이전의 창작 태도로부터 한발 물러나 이미지를 덩어리째 던지고 그 ‘규정할

작가 홍준호가 이번 전시에서 내세우는 전시 부제인 ‘규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독일의 철학자 니체(F. W. Nietzsche)의 초상을 구겨진 종이 위에 투사하여 사진으로 표현한 작업인 〈Hallucination〉 연작이 중심에 자리한다. ‘환각’ 또는 ‘환영’으로 번역

수 없는 것들’의 의미를 관객 스스로 찾기를 기대한 것이라 하겠다.

되는 이 제목은 니체의 “신은 죽었다(Gott ist tot)”라는 ‘선언 아닌 선언’으로부터 기인

2. 구겨진 종이 위에서

천한 니체의 철학적 성찰을 통해서 규범과 제도, 가치, 도덕으로부터 탈주하는 인간의

‘구겨진 것’은 버려진 것의 지표(index)이다. 그것은 기념하여 고이 간직해야 할 ‘보존의 자격’을 상실하고 버려진 ‘배제된 것’이자, ‘잔여물’이며, 쓰임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불필요한 ‘잉여물’이다. 이처럼 ‘구겨진 것’ 위에 펼쳐지는 그의 ‘사진 행위’ 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20세기 미술이 아방가르드를 기치로 이전의 ‘이즘(ism)’을 버리고 ‘새로운 것(nouveauté)’을 찾아 나섰던 이데올로기의 시기에서 늘 목도되었다. 이즘의 교체를 지속해서 맞이했던 당시에는, “새로운 것이란 기존의 것 을 변형하고 변용하는 곳에서 꽈리를 틀기보다 다시 폐허 위에서 새로운 싹을 틔우

는 것”이라는 믿음이 20세기 미술가들에게 있었던 까닭이다. 바야흐로 21세기 미술에는 ‘새로운 것은 이제 없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와 그들 의 신념이었던 천재성, 독창성의 개념은 점차 미약해지다가 20세기를 거치면서 이 미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 '독창성(originalité)'에 관한 담론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창의성(créativité)'의 존재 여부를 묻는 말만이 미미하게 존재할 따름이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구약 성서의 아포리즘(aphorism)을 다시 꺼내어 반추하는 오늘날 시대에 창의성은 작가 개개인의 미시적 세계에 대한 질문 들로 넘쳐난다.

한다. 즉 신을 죽이는 상징적 사건을 상상함으로써 ‘신에 대한 타살’을 이론적으로 실

자유 의지를 자신의 작업 속에서 천명한 셈이다. 니체가 종교와 같은 ‘최고 가치’의 상실을 의도적으로 유발하면서 회의론의 나락으 로 빠지면서도 끝내 견지하려고 했던 것은 비극적 상황에서도 잃지 않으려 했던 디오 니소스적 긍정이자 ‘초인(Über-mensch)’의 삶이었다. 구겨진 종이와 같은 ‘죽음의 땅’ 위에 이미 고인이 된 철학자 니체의 초상을 소환해서 푸르거나 붉은빛이 도는 중간 색조와 맞물려 놓음으로써 신의 죽음의 의미를 성찰하는 홍준호의 〈Hallucination〉 연작은 의미심장하다. 구겨진 종이 위에 올라선 왜곡된 초상이 유추케 하는 비관적 회의주의와 더불어 디오니소스적 낙관주의 사이를 서성이는 까닭이다. 그것은 앞에 서 언급했듯이, 홍준호가 할머니의 죽음을 목도하고 자신도 뇌출혈로 인해 생사의 갈 림길 앞까지 갔던 체험과 아버지 또한 동일한 질병으로 인해 얻어진 장애를 가족과 함께 견디어 내는 체험을 녹여냄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리라. 그런 면에서 그의 최근 작업은 작품 심층에 담긴 근본적인 미학이 무엇인지를 존재 론적으로 성찰하고 되묻는 작업이라 할 만하다. 폐허의 ‘구겨진 종이’ 위에 새기는 그 의 사진 작업은 적어도 칸트식의 도덕에 대한 ‘정언 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 란 부재한다. 간혹 ‘니힐리즘(nihilism)’의 망령이 서성이는 것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이러한 허무주의적 비극을 대면하는 디오니소스적 긍정이 언제나 그 안에 서 꿈틀대고 있다고 할 것이다.


Critique 3. 우상의 해체 작가 홍준호의 사진 작업에서 구겨진 종이 위에 메이킹 포토(making photo)의 조 형 언어를 실천하게 된 계기는 ‘시뮬라크르(simulacre)로서의 사진’이라는 존재론적 질문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사진의 매체적 특징과 미술에서의 사진의 위상학적 정체 성을 되묻는 질문은 종이를 구길 대로 구기는 극단의 목표 지점을 지향하면서 종이 의 표면 위에 올라 있는 잉크를 모두 해체하고 탈각시켜 결국 이미지를 소멸시키는 일련의 실험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그것은 홍준호에게 있어 사진의 2차원 평 면 이미지로서의 시뮬라크르일 따름이지만, 삼차원의 조각적 속성을 공유하는 ‘사 진’이 ‘비(非)사진’ 사이의 경계 지점까지 다녀오는 값진 여행이었다. 사진 속에 담긴 이미지는 대개 그가 해외의 박물관, 미술관을 다니면서 직접 촬영 한 조각상들이거나 자연사 박물관에서 살펴볼 수 있는 박제들이다. 특히 그가 진행 한 〈Deconstruction of Idols〉 연작은 실재를 둘러싼 이미지의 현현(顯現)에 대한 이

홍준호의 또 다른 작품 〈Era review on Death〉 연작은 그가 자연사 박물관을 다니 면서 촬영했던 동물 박제의 이미지를 구겨진 종이 위에 겹쳐 놓은 것이다. 죽어 자연 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인간에 의해서 그러지 못하는 동물 박제의 슬픈 눈동자가 보 이는가? 죽음을 통제하고 소비하는 살아있는 인간의 야만스러운 욕망을 화질 높은 이미지와 선명함으로 더욱 더 강조하는 그의 작업은 어떤 면에서 섬뜩하기까지 하다. 가히 동물의 주검을 강제로 되살려 놓은 표피적 이미지를 통해서 죽음을 소비하는 야만적인 인간의 욕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작업이라 하겠다. 홍준호의 작가 노트 에도 이러한 허망한 이미지에 덧씌우는 인간의 권력과 그것을 둘러싼 덧없는 욕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그것을 해체하려는 작가의 태도가 잘 담겨 있다. “진화론과 과학의 발전으로 서구 형이상학을 통해 지탱하던 신의 죽음에도 불구하 고 현대 사회에 여전히 남아 죽음의 공포를 이용해 장사하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 동 물원과 자연사 박물관을 통해 인간이 동물(자연)의 생과 사를 관장하며 죽음으로 장 사하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종교 성상과 자연사 박물관에 박제를 소재로 상을 왜 곡하고 환영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지 논쟁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도 그럴 것이 우상(Idol)과 성상(Icon) 사이 의 이미지 논쟁을 거치면서 용인된 오늘날 동방정교회와 로만 가톨릭교회의 ‘성상

수용’의 관습은 실제로 이코노클라즘(iconoclasme)이라고 하는 ‘성상 반대파(혹은 우상 배척파)’와의 피비린내 나는 오랜 싸움 이후에 얻은 열매였기 때문이다. 흥미 롭게도 이러한 우상과 성상 사이의 차별적 인식은 오늘날 이미지(image)의 고대 그 리스 어원인 에이콘(εἰκών, Eikon)과 에이돌론(εἴδωλον, Eidolon) 그리고 판타스마 (φάντασμα, Phantasma)의 초기 흔적을 더듬는다. 이러한 이미지의 어원들은 현재 에 이르러 에이돌론이 아이돌(Idol)로, 에이콘이 아이콘(Icon)으로 판타스마가 판타 지아(Fantasia)로 각기 특성을 달리하며 현실에 대응하는 이미지가 지닌 여러 속성

으로 확장해 왔다. 홍준호는 ‘지금, 여기’에서 한낱 에이콘(아이콘)일 뿐인 조각상을 에이돌론(아이돌) 로 간주해 온 고대인의 신화적 유산과 헛된 믿음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구겨진 종 이 위에 올라선 이미지의 대비를 강조하기 위해서 일일이 세부적 이미지를 ‘리터칭’ 하는 작업을 거치고 수정, 보완해서 최종적으로 작업을 마감하는 수고스러운 노동 을 마다하지 않는다. 관성화된 사회의 원활한 통제를 위해서 우상을 공고히 하는 인 간의 욕망은 얼마나 음험하고 무서운가? 이미지란 한낱 죽음, 부재와 맞물린 허상

이지 않던가? 보라! 이미지의 라틴 어원인 ‘이마고(imago)’는 고대 로마 시대 장례식 때 ‘주검에 착용시켰던 마스크(masques mortuaires)’ 혹은 ‘사자(死者)의 초상(le portrait d'un mort)을 지칭한다. 문화이론가 드브레(Regis Debray)가 잘 고찰하고 있듯이, 이미지란 원래 출발부터 부재와 죽음과 깊이 연동되는 정체성인 것이다.

4. 에필로그 작가 홍준호는 기본적으로 사진의 이미지에 천착하는 사진작가이자 사진의 유형화 된 범주를 끊임없이 탈주하기 위해 조형적 실험과 성찰을 지속하는 멀티 미술가이다. 그의 다음 말대로 그의 다양한 실험들은 매우 특별하거나 비장한 상황 속에서 출발 하고 이어진 것들이다. “인간이란 존재가 자원과 돈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 한 이야기를 담은 ‘Digital Being(숫자로 관리되는 존재)’ 전시를 시작으로 죽음에 대 한 트라우마를 담아낸 ‘Homo Ludense(유희적 인간, 2016)’, ‘Lucid Dreaming(자각몽, 2017) 전시를 통해서 돈보다는 꿈꾸고 사랑하던 시각예술가로서의 꿈에 첫발을 내 디뎠다. 나는 죽음의 경험을 토대로 나의 트라우마를 놀이와 같은 유희로 풀어내고 동시대에 발생하는 왜곡된(그릇된) 사회 현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형상을 왜곡시켜 실존하지 않는 환영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 글에서 자세히 언급하지 않은 그의 다양한 연작들과 실험들은, 홍준호의 위의 진술로 간략히 대신하는 것으로 그치지만, 필자의 또 다른 글에서 또 다른 방향으로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사진 연작들에 담긴 무거운 메시지들이 풍기는 음울한 분위기는 매우 주목할 만한 것이다. 또한 자신의 사진 이미지로 빗대는 현대 사회와 현대인에 대한 메타포도 의미심장해 보인다. 그런데도 필자가 보기에 그의 창작에 있어서 하나의 관건이 있다면 지나치게 분석적인 태도로 접근하는 창작의 방식이 조 금 더 풀어지고 느슨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는 작가 스스로 ‘명징하게 말을 할 수 없는(혹은 말하지 않아도 될) 새로운 어떠한 작업’이 등장할 수 있기를 기 대한다. 필자가 보기에 ‘규정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제명 아래, “빛의 색을 일부러 마 치 물감을 혼합시킨 듯 시도”하는 이번 전시는 그런 면에서 하나의 중간 기점이라 할 것이다.


Critique ‘Continuity of Existence and Absence ; Requiem’ 존재와 부재의 연속성(2020) 양지윤(Yang, Ji-yoon,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현대 예술에서 ‘프로페셔널 예술가’가 되는 제도적 관행이 존재한다. 정규 교육 과 정, 전공 학과를 거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절차다. 학교마다 구축된 미감이나 주 제가 있기에, 같은 학교를 졸업한 예술가 사이에는 공유하는 미감이나 주제가 존재 한다. 예술 전공 학위를 취득한 후 정부 기금을 받아서 첫 전시를 한다면, 학교 밖 인정을 우선 획득한 셈이다. 이후 각종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를 두루 거쳐 프로 예술가로서 스스로의 경력을 쌓아간다. 예술가로 교육받고 프로 예술가로 경 력을 쌓아 인정을 받는 일정한 패턴이 단계마다 만들어진다. 홍준호는 이런 제도적 관행에서 벗어난 출발을 한다. 전산통계학과를 졸업한 후 IT 개발자로 10여 년 기업에서 근무한다. 이때 그는 아마추어 사진가로 많은 양의 촬 영을 하곤 했다. 이후 2011년 과로로 인한 뇌출혈을 겪으며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것이 그 예술 창작의 출발점이다. ‘정말 운이 좋았어요.’라고 그 일에 대해 그는 말

2016년부터 진행한 <Homo Ludense>는 사고 이후 자신의 뇌를 촬영한 CT, MRI 이 미지를 소재로 한다. 홍준호는 ‘사진을 찍은 당시는 한 치 앞조차 알 수 없었던 때’라 고 말한다.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우기 위한 작업’이라 덧붙인다. 삶과 죽음의 경 계에 있던 자기 자신의 기록들을 소재로 했지만, 자신의 뇌를 촬영한 사진은 자신의 신체임에도 자신에게마저 낯설 뿐이다. 뇌출혈 당시의 의료용 이미지 위에 물감을 유 희적으로 덧입혀 작품을 만들었다. 2017년 <Sad Lucid Dreaming>은 의료용 이미지를 프린트한 후 본래의 형상을 알아 볼 수 없을 때까지 구기고 찢는다. 이는 사진 이미지에서 종이와 잉크를 분리, 분해, 소멸, 해체하는 과정이 된다. 2018년 <Study of Crumpling>에서도 작가는 ‘손바닥이 벗겨지고 손가락이 펴지지 않을 때까지’ 자신의 MRI 이미지를 구긴다. ‘잉크가 만들어 놓은 형상은 서서히 사라지고 구겨진 선과 면을 통해 새로운 조형성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3년간 행해진 창작의 모든 과정이 죽음에 대한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해 나 가는 치유의 과정이 된다.

한다. 홍준호는 운 좋게 살아날 수 있었음을 감사하면서도, 자신의 탈진의 이유는 한국 사회 시스템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이후 그는 아마추어 사진가 시절 촬영한 사진들을 들춰보며 프로 예술가로서 사진 이라는 매체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대상을 찍거나 재현하는 방식이 아닌, 카메라와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는 기기들을 활용한 제작 실험을 이어간다. 2015년 만든 <Digital Being>이 홍준호의 첫 예술 작업이다. 기업에 근무할 때 사용했던 팩스, 스캐너, 복사기 등과 같은 사무 자동화 기기를 사용한 연작이다. 작가 자신의 주민 등록증, 여권, 신용카드, 학생증에 적힌 기록들을 겹치고 겹쳐 프린트했다. 회사원으 로서 자신의 생활과 활동을 기록한 숫자들, 그 기록들을 다시 들춰낸다. 홍준호는 이 작업으로 ‘기업이나 국가 시스템에서 인적 자원 Human Resource으로 불리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다시 질문’하려 했다고 말한다. 주민등록번호, 여 권번호, 신용카드, 운전면허번호, 의료보험번호 등 다양한 숫자를 통해 관리되어 온 자신. 숫자들이 주는 압박. 규율사회 속 감시. 개성을 포기한 노동하는 동물로서 인 간. 근대 노동 사회에 만연한 피로. 뇌출혈, 신경과민으로 이어지는 탈진. 끝없이 이 어지던 추락의 회로를 탈출하는 방법이 홍준호에게는 예술 창작이 된다.

치유의 과정이 마무리될 무렵 작가는 자신의 개인적 서사를 넘어선 작업을 시작한다. 2018년 시작한 <Deconstruction of Idols>은 10여년 간 유럽의 성당, 미술관, 박물관 을 여행 다니며 카톨릭 성상들을 촬영한 사진에서 출발했다. 평면 사진 이미지를 손 으로 구겨 입체화한다는 기존의 방식을 좀 더 확장하여 실험해 본다. 큰 종이를 구겨 서 벽에 설치하고 유럽에서 촬영한 카톨릭 성상 디지털 사진을 (빔) 프로젝터를 이용 해 구겨진 종이 위에 투사했다. 구겨진 종이 위에 변형, 왜곡된 채 맺혀진 이미지를 재 촬영한 것이다. ‘구겨진 종이 위에 비친 빛을 촬영하는 것은 기존의 형식을 해체하고 새로움을 찾는 행위이며, 이것은 고전을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나의 실험정신’이 라고 소개한다.

이는 서양 미술사를 대표하는 예술 작품 이미지를 해체하는 행위로 이어진다. 그 예 는 다음과 같다. 2014년 과학 저널에 발표된 예술가의 시선에 대한 논문을 토대로 하 여, 프라도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아일워스의 <모나리자> 세 작품을 하나의 이미지 로 재해석한다.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은 흑백의 유리 건판사진에 디지털 라이트 노이즈를 넣어서 만든 색이 뒤틀린 디지털 이미지를 구겨진 종이 위에 (빔) 프 로젝터를 이용해 다시 태어났다.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The Nude Maja)>에서 드 러나는 남성적 시선을 질문하며, 고대 그리스 남성 조각상 <벨베데레의 토르소 (Belvedere Torso, Vatican Museums)>의 남근을 해체하기도 한다. 또한 반 고흐가 4 년간 그려온 해바라기를 한 장의 사진에 겹쳐 작업한다.


Critique 홍티아트센터에서 홍준호는 설치의 영역에 도전한다. <격리>는 뼈가 부러졌을 때 일정 시간 신체를 고정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깁스를 소재로 한 설치 작업이다. 정형외과에서 실제 사용되었던 깁스 무더기에는 독특한 체취가 남아있다. 움직일 수 없는 육신과 그 불편함에서 출발한 이 작업은 코로나19 상황에 대한 작가의 응 답이기도 하다. 바이러스 전염병에 대한 위협으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국가적으로 통제되는 현 상황을 시각화했다. <배틀 그라운드>에서 작가는 배드민턴 코트와 탁 구 코트로 나누어진 일종의 세트장을 연출한다. 배드민턴 코트에서 경기해야 하는 사람과 탁구 코트에서 경기해야 하는 사람의 대결. 작가는 “배드민턴 코트는 약자를, 탁구대는 힘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소개한다. 현실이란 동등한 기회 를 누구나에게 준 척 포장되지만, 사실은 누군가에게도 동등할 수 없는 불평등한 상 황을 표현한다. 또 다른 작업 <Continuity of Existence and Absence; décalcomanie>을 살펴보자. 이는 또 실존했던 여성 한 명의 삶과 죽음의 기록을 소재로 한다. 그 여성의 자녀들 요청으로 진행한 이 작업에는 그녀가 받았던 교육, 결혼과 출산, 남편 사업의 부도

로 인한 생계 문제, 생의 마지막 10년간 겪었던 파킨슨 증후군이라는 질병과 같이, 세상을 겪은 과정이 담긴다. 사진, 병원 기록, 옷가지, 그리고 그녀의 물건들을 소재 로 한 사진 작업들로 이루어진다. 이 작업에서야 비로소 홍준호는 자신이 경험한 죽 음의 문제를 누군가의 죽음으로 등치시키고 객관화하기 시작하는 듯하다. 이 전시 는 분명 코로나 19라는 특이한 상황 아래에서 만들어졌다. 언컨택트(Uncontact)가 뉴노멀이 되면서, 새로운 종류의 접촉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홍준호는 이 전시 를 기점으로 자신이 경험한 트라우마를 넘어서서, 인류가 마주한 새로운 트라우마 와 연결 짓고자 시도한다. 홍준호의 예술 세계는 현재 한국 현대 미술계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는 치 유의 과정에서 스스로 진행한 예술 교육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가가 현

이때 예술을 만들고 이해하는 능력인 ‘취향’은 문화자본으로 정의된다. 예술을 창작 하고 감상하는 능력에는 감춰진 사회적 메커니즘이 있다는 것이다. 예술 창작과 감 상 능력은 그 집안의 교육 수준과 신분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이런 문화 자본은 한 개인의 개별적 특성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고 역사적 시스템들이 함께 얽혀져 장기적으로 만들어진 구성물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는 칸트가 이야기한 천재는 비판적으로 다뤄진다. 칸트는 천재의 요건 을 독창성 originality, 전범model적 속성, 보편적이지만 동시에 기계적으로 모방 불 가능한 특성으로 말한다. 즉 천재의 작품은 바로 천재 내부의 천성적인 특징에서 유 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르디외는 19세기 유럽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슬 로건 마저 당시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발명으로 바라본다. 19세기 유럽 이후, 예술이 라는 제도는 ‘지배계급 내 피지배 분파’였던 지식인 예술가들이 예술적이고 사회적인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천재라는 개념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사회인, 회사원이라는 일상의 틀에 갇혀 살던 한 사람이, 죽음을 목전에서 경험하고 이후 삶에서 자유롭게 창작하는 일만을 할 것을 결심한다. 홍준호는 창작하는 자유가 주는 즐거움에 대해 거듭 말한다.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자아,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신체를 발견하는 즐거 움을 표현하고 있다. 홍준호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고정된 틀, 신체를 억압하는 시간과 공간, 지배 질서가 자신의 신체에 부과한 억압들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자 부단히 노력 중이다. 김규항의 <혁명노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워 크work가 아니라 레이버labor이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목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단이며, 자본의 이윤 추구에 사용되는 도구다. 노동자의 인격이나 개성, 노동의 구 체성 따위는 모두 추상적 노동으로만 환원되어 임금으로만 표현된다.’ 홍준호가 과거 경험했던 회사원의 삶은 임금으로 표현되는 인적 자원으로만 평가되는 것이었다. 규 격화된 삶이 주는 피로는 탈진으로 이어졌을 때에야 그는 자유로운 인간에 대해 존 재론적 고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에게 자율적 활동으로서 예술 창작이 야말로 노동의 목적이 순수하게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대 예술계에 진입하여 활동 중이라는 사실은 또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갖는다. 한국 현대 예술계가 갖는 현재 구조로 인해, 어떻게 비제도적 인물이 예술계 제도에 진입 하는지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기존 미술계의 규칙이나 미감과는 상이한 자신만의 작업을 지속하는 홍준호가 역설적으로 한국 미술계의 구조와 기능을 노출하는 역할

을 한다. 흔히 예술 사회학에서 예술가를 예외적 천재로, 예술 작업을 천재의 초월적 활동으 로 바라보는 관점은 비판적으로 다뤄진다.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말하는 ‘문 화 자본’이라는 개념이 그러하다.

예술가는 노동으로 두뇌와 신체를 자연과 결합하여, 자신의 삶과 이를 둘러싼 세계 를 변화시킬 꿈을 꾼다. 이때의 창작 활동이야말로 인간을 다른 동물로부터 구분 짓 는다. 예술계 비제도권에서 출발한 그의 미감은 주류 예술계에 낯설지 모른다. 하지 만 그 또한 미술계의 편견과 선입견에서 기인했기에 좀 더 열린 시선에서 그의 작업 활동을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자아실현으로서 예술 창작에 대해 노동의 결과물이 온 전히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기쁨을 만끽하는 중이다. 그리고 제도권 예술계 야말로 창작의 즐거움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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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view ] 1. 존재와 부재의 연속성(Continuity of Existence and Absence) – 홍티아트센터 개인전 (2020년) https://www.youtube.com/watch?v=uhU4HzGG5b4 https://www.youtube.com/watch?v=n8ER6uckVGk&t=5s 2. 해독(Decode, Detox, Harm) – 영등포아트홀 갤러리(2F) 단체전 (2020년) https://www.youtube.com/watch?v=PrDX4dTMoPU

[ Online Archive ] 1. 죽음에 대한 시대적 고찰(Era Review on Death) – 프로젝트 스페이스 공공연희 개인전 (2019년) https://neolook.com/archives/20190713a 2. 우상의 해체 ; 예술(Deconstruction of Idols ; Art) – Gallery 9P 개인전 (2018년) https://neolook.com/archives/20181108i

3. 우상의 해체 ; 종교(Deconstruction of Idols ; Religion) – 영천예술창작 스튜디오 갤러리 개인전 (2018년) https://neolook.com/archives/2018091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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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개인전_Solo Exhibition 2020 <가시 잃은 할미꽃>, Space 9, 서울 2020 <Continuity of Existence and Absence (존재와 부재의 연속성)> (홍티아트센터 8기 입주작가 결과보고전), 홍티아트센터, 부산 2019 <On That Which cannot be Defined> (W미술관 레지던시 1기 입주작가 결과보고전), W미술관, 익산 2019 <Era Review on Death>, 프로젝트 스페이스 공공연희, 서울 2018 <Deconstruction of Idols ; Art>, Gallery 9P, 서울 2018 <Deconstruction of Idols ; Religion> (영천예술창작 스튜디오 10기 입주작가 결과보고전), 영천예술창작 스튜디오 갤러리, 영천 2016 <Homo Ludense ; Digital Being> (갤러리 선정 2016년 2월의 작가), 포토그래퍼스 갤러리 코리아, 서울 2015 <Digital Being ; My Story2>, 日本 東京 ユキギャラリー, 일본 도쿄

CV

주요 단체전_Selected Group Exhibition 2021 <원(ONE)만한 관계>, 범어아트스트리트, 대구 2021 <이·력 Another Energy>, Space 22, 서울 2021 <당신의ㅅㅈㅅㅈ>, 호랑가시나무창작소, 광주 2020 <2020 공존: 공통시대 (Common Era)>, 인디아트홀 공, 서울 2020 <Cutting Edges - 12 New Printmakers>, Space 9, 서울 2020 <Connected Mind>(Media Live Performance), 호랑가시나무언덕, 광주 2020 <해독(Decode, Detox, Harm)>, 영등포 아트홀 2층 전시실, 서울 2020 <Rainbow-Wire 2020 ; 무한대의 사색>, f1963 석천홀, 부산 2020 <2020 윤동주 문화제 서시(序詩)>, 안산자락길, 서울 2019 <만개의 풍경, 만개의 이야기>, 영등포 아트홀 2층 전시실, 서울 2019 <신자연주의>, 담빛예술창고, 전남 담양 2019 <이리로 이리로>, W미술관, 익산 2018 <D.I.Y展 (D cut Image for Yourself) Season 2>, Artspace AT, 서울 2018 <In Us Without Us> (KIMI For You 프로젝트 작가선정), KiMi Art Gallery, 서울 2016 <PASA Festival> (Contest Prize Winner), 예술공간 봄, 수원 레지던시_Artist in Residency 2021 대구예술발전소 11기 입주작가, 대구 2020 호랑가시나무 창작소 6기 입주작가(9~12월), 광주 2020 홍티아트센터 8기 입주작가(2~6월), 부산 2019 W미술관 레지던시 1기 입주작가, 전북 익산 2018 영천예술창작 스튜디오 10기 입주작가, 경북 영천 선정/수상/소장_Prize/Collection 202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2019 무소속연구소(프로젝트 스페이스 공공연희) 공간지원 작가 선정 2018 경북 영천시 소장 2018 KIMI For You 프로젝트 작가 선정 2016 PASA Festival Contest Prize Winner

Junho Hong +82) 10 3802 0924 newrocker76@gmail.com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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