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ldaga no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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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문화잡지

vol4


덜 벌고 , 더 노는 세상을 꿈꾸며.

<놀다가,> 2


진짜 무서운 이야기 해줄까? 어떤 노동자가 일 할 권리를 위해 투쟁했지만, 아무도 들어 주는 사람이 없었어.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놀다가,> 3


그런데..... 그런데 있잖아.... 그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바로 그날, 그 시간, 그리고 다음날, 그 다음날도.... 포털 사이트 검색어순위 1위는 여자 연예인 치마길이에 관한 거였어.

<놀다가,> 4


무섭지? 으스스하지 않아? 사람 목숨보다, 여자 연예인 치마길이가 더 중요한 세상인거야.

<놀다가,> 5


그러니까 너도 조심해.

<놀다가,> 6


네 목숨도 핫 팬츠 보다 짧을테니.

<놀다가,> 7


얼마 전 한 외고생이 제 엄마에게 유서를 남기고 베란다에서 투신했다. 유서는 단 네 글자였다.

<놀다가,> 8


“이제 됐어?”

엄마가 요구하던 성적에 도달한 직후였다. -김규항 블로그 글 ‘이제 됐어?’ 중-

<놀다가,> 9


차례

contents 2013년 8월 12일 / 4호 - 4 / 표지 이미지 - <놀다가,>

여는글

여름 끝에서

11p

주제파악

13p

놀다가 책

Essay 4 Les Essais

14p

놀다가 음악

피가 모자라??

22p

놀다가 아트

날 꺼내줘, 이 더위에서

32p

놀다가 영화

슬프고도 웃긴,무섭고도 비극적인

40p

놀다가 여행

골목이 아름다운 일본 2

48p

쓸데 없는것 배우기

56p

특집 세상에 뿌려진 으스스한 것들

67p

콩트 <그러니까 넌, 나랑 그냥 자고 싶은 거잖아.>

80p

소설 <나름의 해피엔딩>

86p

알림 : ‘산초의 방구석 탐험’은 산초의 출장으로 인해 쉬어 갑니다. 이미지 출처 : 지금까지 <놀다가,> 쓰인 이미지들은 대부분 원본 출처가 불분명하게 인터넷에서 검 색되는 이미지 이거나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인터넷 이미지 외에 출처가 분명한 이미지는 따로 표시하였습니다.

<놀다가,> 10


여는글

여름 끝에서 어느덧 여름의 끝자락에 와 있다. 여름의 열기는 아직 식지 않은듯 하지만 어느 사이 입추도 지나고 말복이다. 올해 여름은 습기와 열기가 기막히게 오가며 그 깊이를 알 수 없더라. 장마가 오는가 싶으면 해가 내리쬐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가 싶으면 소나기가 내리쳤다. 어쨌든 여름은 자꾸 더 짙어지고 여름이 가는 걸 미처 확실히 느끼지 못한 채 다음 계절을 준비해야 하리라. 언제부턴가 불분명한 계절이, 예측할 수 없는 날씨가 두렵다. 너무도 분명하게 알던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가 이제는 제 때 오고가지 않는 것 같아서 익숙한 체감들을 잃게 되는 것 같아 무섭기도 하다. 시간의 감각이 모호한 탓인지 지극히 자연스럽고 보편적이라고 믿고 있던 가치 와 개념들도 경계와 한계를 잃은 것 같다. 그리고 그 모호함에 대한 자각도 없다.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내주어도 좋은지의 기준이 제 각각이라 불투명한 계절 감각처럼 삶의 가치와 개념도 불투명해 졌다. 이번 호 주제는 숫자’4’ (다양하게 맘껏 해석해도 좋다) 예상치 못한 폭우와 폭염으로 때때로 두렵기까지한 여름, 예측 불가능한 더위와 습기로 지쳐있는 당신을 위해 나름 납량특집으로 기획했다. 기획은 기획일 뿐, 당신들의 더위가 얼마나 가실지는 담보할 수 없다. 뭐 경우에 따라서는 더 더워지고 축축해 질지도 모르겠다.

<놀다가,> 11


여는글

하지만 여름이 가고 한기가 몸을 다스릴때 즈음이면 다시 지금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그 그리움을 이번 호에 담고 싶었다. 지친 일상의 기억을 차곡하게. 더위를 피해 몸부림치던 추억을 차분하게. 암울한 정권?의 기록을 저기 깊이 깔아서 여름의 끝자락, 아직은 젊은 우리의 여름을 여기에 담았다.

2013. 8월 여름 끝에서

다르덴 자매

<놀다가,> 12


주제파악

! ! 해 ! ! 고 억울 다 했 못 잘 내가 뭘 날 싫어해? 두 모 왜

<놀다가,> 13


놀다가 책

Essay 4 Les Essais 思 사색과 수필

개인적으로 명상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나도 가끔 사색에 빠지곤 한다. 어 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것은 주로 어떤 ‘가능성’을 이어나가 는 작업이다. 꿈을 꾸는 것과도 비슷하다. 어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으로 옮겨가 면서 목적지 없이 표류한다. 자유롭게 흘러가는 생각들을 따라 가는 일은 의외로 재미있다. 간혹 그 안에서 기록해두지 않으면 잊어버릴 찰나의 반짝이는 영감들 을 발견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생각들을 실제 글로 옮겨보면, 대부분 하찮고, 정신 사납고, 알 수 없는 글이 되기 쉽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질서정연 하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정돈된 글로 옮길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막연한 생각들 을 찬찬히 뒤돌아보고, 기록하여 조금씩 다듬어 나가다 보면, 그 기록은 단순한 기록의 의미를 넘어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바라 볼 수 있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 해준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같은 시도를 통해 내어놓은 결과물을 나 자신이 읽 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자신에 대한 성찰의 기회와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나는 그런 시도의 결과물을 흔히 수필, 혹은 에세이라고도 부르는 것 같다. 그 리고 나는 나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던 위대한 수필집 한 권, 아마도 역사적으 로 가장 오래된 수필집을 한 권 소개하려고 한다. “독자들이여, 이 책은 제법 정성을 기울여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 실 린 글은 단지 나의 집안일이나 사삿일을 이야기하려는 것일 뿐, 그 밖 의 다른 의도는 없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따라서 이 작업은 독자를 위 해서거나 나 개인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일은 나의 힘이 미 치지 못하는 일들이다. 다만 나의 일가권속이나 친구들이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 -조만간 그렇게 될 테지만- 이 책에서 나의 어떤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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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감정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더욱 올바르고 생생하게 지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이 세상 사람들의 호의를 염두에 두고 쓰인 것이라면, 나는 좀 더 나 자신을 꾸미고 조심스럽게 검토한 다음 세상에 내보였을 것이다. 그 러니 독자들은 여기서 생긴 그대로의 나 자신을, 자연스럽고 평범하고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채로의 나 자신을 보아주기 바란다. 내가 묘사한 것은 곧 나 자신이다. 따라서 나의 온갖 결점들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나는 되도록 숨김없이 타고난 나 자신을 그대로 내놓고 싶다.” - 몽테뉴‘수상록’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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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다양한 글쓰기의 구분 중에서 가장 그 범주가 넓고, 사실상 정의하 기 어려운 분야가 수필일 것이다. 나는 굳이 구분하자면, 수필은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매우 자유롭지만, 분명히 작가와 독자가 존재하고 작가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여야 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즉,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내용이어서는 안 되며, 동시에 누가 써도 상관없는 글 이어도 곤란하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은 우리의 일상적인 글쓰기에 수많은 독자를 대면시켰다. 우리는 이제 특정, 혹은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일상과 감정을 꺼내 보이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보 통 독자가 존재하는 글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한 채로, 글을 쓰는 것 같다. 수상록이란 말 자체가, 수필(essay)이라는 말이다. 이 수상록이라는 것은 하나 의 명사로서 몽테뉴의 수필을 의미하기도 한다. 몽테뉴는 수필이라는 장르를 대 중화시킨 첫 번째 인물로 알려졌다. 몽테뉴가 보르도 고등법원 판사를 그만둔 직 후부터 1592년 죽을 때까지 수많은 첨삭을 거쳐 탄생시킨 3권짜리‘수상록’은‘ 에세이`라는 글쓰기 장르의 원조가 됐다. 몽테뉴가 책의 제목으로 사용한 `에세 (Les Essais)’라는 단어는 프랑스어로 시험이나 시도, 경험을 의미하는 단어였 다. 몽테뉴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사색의 결과물을 담았다 는 집필 의도를 표현하려는 뜻으로 붙인 제목이었고, 그것이 언젠가부터‘수필’ 이라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문학작품과 실용문을 제외한 거의 모 든 글을 의미하는 뜻으로 확장된 것이다. 다른 누군가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일은 꽤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두서없이 흘 러가는 대화나, 반대로 지나치게 정돈되고 꾸며진 글에서는 그의 안에 숨겨진 생 각의 파편들을 해석하는데 상당한 노력이 요구된다. 잘 써진 수필들이 우리에게 친절한 것은 바로 그런 부분이다. 몽테뉴의 수필에도, 몽테뉴가 던진 화두들에 대한 몽테뉴의 생각의 흐름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그 생각들을 따라가다 보 면, 우리는 좀 더 쉽게 그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세계 속 에서 나의 세계를 비추어 볼 수 있게 된다. 나는 이것이 독자에게 있어 수필이 가 지는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좀 더 치열하게 생각하고, 읽기와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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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 수필을 읽자! 그리고 수필을 쓰자! (이 무슨 선 동 구호 같네)

死 죽음에 대하여 한동안 빗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면, 온갖 것들이 다 가 라앉는다. 먹먹한 기분에 잠겨 질식할 것만 같았다. 축축한 날씨, 눅눅한 공기는 나를 쉽게 아프고, 우울하게 만든다. 우울함이나 고통은 나에게 죽음에 대한 생 각에 빠지기 쉽게 만들어 준다.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삶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과 삶의 문제를 생각할 때, 그것은 내가 유한한 인간이라는 자각에서부터 시작되고, 그걸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푸념으로 이어진다. 나 는 오늘도 그저 살아가고 있고, 그것은 전혀 놀랍지도, 감동적이지도, 심지어 독 창적이지도 않다. 나는 보잘것없는 자신을 거울 속에서 발견하고, 한숨을 쉬고, 어쨌든 다시 그 사실을 가슴 깊숙이 묻어버린다. 그러나 인생에서 죽음만큼이나 명백한 것이 또 있을까. 나라는 존재는 자각되는 순간 죽어가고 있다. 죽음은 나 의 유일한 목적지, 존재가 도달하는 종착역이다. 몽테뉴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철학이란, 죽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게 될 때 마다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당연히 나는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다. 물론 죽음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죽음을 상상할 수도 없다. 죽음은 존재하지 않음이다. 우리 는 많은 두려운 것들을 상상할 수 있다. 불의의 사고나 질병, 노후의 삶, 사랑하 는 사람들과의 이별에 대해서, 삶의 수많은 불행을 생각할 때, 또한 그것들을 견 뎌낼 또 다른 삶의 희망들을 상상해 낼 수 있다. 절망적인 상상은 희망적인 상상 으로 상쇄된다. 그러나 내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사고가 존재로부터 출발한 바,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음을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존 재하지 않는 나를 상상할 수는 없다. 그것은 ‘아무 기분도 느끼지 못하는 나는 어 떤 기분일까?’를 상상하는 일과도 같다. 거긴 어떤 기분도 없다. 그리고 어떤 기 분도 아닌 기분이란 것은 없다. 그 불쾌함은 정말이지, 묘사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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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타인의 죽음과 나의 죽음에 대해 완전히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나는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처럼 나의 죽음을 애도할 수 없다. 타인의 죽음은 나 의 죽음과는 아주 다른 성질의 것이다. 따라서 나라는 존재의 죽음에 대한 불안 은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나는 나의 죽음에 대해 타인의 경우 에 비추어 반성하거나 본받을 수 없다. 이러한 불안은 나로 하여금 손쉽게 종교 를 떠올리게 한다. 내가 믿는 종교는 죽음의 공포를 이러한 방식으로 해소한다. “내가 이제 심오한 진리 하나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 고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에 순식간에 눈 깜빡할 사이도 없이 죽은 이들은 불멸의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 이 썩을 몸은 불멸의 옷을 입어야 하고 이 죽을 몸은 불사의 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썩을 몸이 불멸의 옷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불사의 옷을 입게 될 때에는,“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렸다.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갔느냐? 죽음아, 네 독침은 어디 있느냐?”한 성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1 종교의 이러한 가르침 덕분에 우리는 종종 ‘사후세계’를 상상하곤 하지만, 그 것은 결코 죽음 그 자체를 상상하는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잠에서 깬 내일의 일과를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것은 죽음에 대해 아무것 도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죽음을 죽음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물 론 그리스도의 부활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죽음이라는 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 내가 믿는 종교에는 죽음이란 없다. 이것은 믿음의 영역이다. 강 력하지만, 폭력적인 선택지. 파스칼의 내기다.2 하다못해 이것만으로 죽음에 대 한 모든 불안과 공포가 사라진다면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사후 세계에 대한 보 1. 고린도전서 15장 51-55절 (공동번역) : 나는 개신교 신자지만, 현재 대한 성공회와 한국정교회 에서만 사용하고 있는 이 공동번역은 참 맘에 든다. 같은 내용을 우리가 흔히 보는 성경에서 찾아보 면 쉽게 동의할 것이다. 2. ‘신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가?’에 대한 내기를 한다면, 파스칼은 신이 존재하는 쪽 에 거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믿었건 믿지 않았 건 간에 결과는 똑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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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인 불안이 더 있다. 삶은 고통스럽다. 우리는 삶 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사실로부터, 절망하거나 혹은 위안받는다. 그것을 통해 위 안받는 사람들은 우리가 죽음을 통해 온전한 세계로 갈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 문이다. 그러나 나는 두렵다. 죽음을 통해 온전해진 나는, 과연 나 자신일 것인가? 나라 는 존재는 불완전하므로, 그리고 바로 그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나 자신인 것 아 닌가? 죽음 뒤에 또 다른 삶이 있다면, 그 삶을 살아가는 존재는 ‘나’인가? 나는 결국 죽음의 공포가 망각의 공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망각의 일상을 통해 서, 죽음의 단면을 엿본다. 삶은 끊임없이 내 머릿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내가 기 억하지 못하는 지난 과거의 나는 끊임없이 죽어간다. 어쩌면, 내 삶의 잣대는 기 억함에 있다. 나는 기억하기 때문에 ‘나’로서 살아있다. 어느 순간 내가 ‘나’라 는 것을 잊어버렸을 때가 나라는 존재의 죽음과 동일하다. 때문에, 죽음 이후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것은 망각이라는 가정이 더 해졌을 때, 별로 다르지 않은 선택지다. 몽테뉴는 자신의 수필에서, 죽음에 대해서도 긴 이야기를 했다. 사실 몽테뉴의 수필 중 많은 것들이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그가 노년에 이 수필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도 존재의 근원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 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생애의 목표는 죽음이다. 죽음만이 우리가 겨누는 필연적인 대상이다. (중략) 어떻게 사람이 죽음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 고, 어느 순간이건 죽음이 우리 목덜미를 잡고 있다고 생각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몽테뉴‘수상록’중- 몽테뉴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떠한 방법을 써도 좋으니 그 리 해보라고 말한다. 비겁을 무기로 써도 좋다. 죽음을 외면하고, 죽음 자체를 망 각해도 좋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소용 있을까? 결국, 몽테뉴는 죽음 그 자체에 당당히 맞서서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죽음에 맞서 싸우는 방법은 뜻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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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간단하다. 죽음을 범상하게 대하면 되는 것이다. 죽음을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죽음과 친해지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내가 너무 먼 미래의 계획을 세우기 때문이기도 했다. 몽테뉴는 ‘지금부 터 백 년 뒤에 우리가 살이 있지 않으리라고 슬퍼하는 것은 지금부터 백 년 전에 우리가 살아 있지 않았다고 슬퍼하는 것과 같은 바보 같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지금 없는 것들, 멀리 있는 것들에 대해 오히려 필요 이상의 걱정과 공포를 느낀다. 쇠약이나 질병이 대표적으로 그러하다. 우리는 병들었을 때보다는 건강했을 때 훨씬 병을 두려워한다. 몽테뉴는 죽음도 역시 그렇기를 바 란다. 우리가 죽음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간다면,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존재하지 않음으로의 비약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철학은 이미 ‘나’라는 존재의 죽음에 대한 질문을 넘어서서, 이제는 ‘타 인의 죽음’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 안에서 몸부림 치고 있다. 뻔한 말이지만, 이럴 때 독서가 많은 도움이 된다. 나는 아직도 죽음 에 대해 잘 정리된 무언가를 써내려갈 수 없다. 나는 여전히 그것을 회피하려고 하며, 여전히 마주 대하기가 껄끄럽다. 어쨌거나, 계속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는 동안에도 죽음은 시시각각 내 주위를 도사리고 있다. 망각의 공포와 쇠 약의 공포, 외로움의 공포가 죽음과 늘 붙어 다닌다. 그러나 어쩌면 몽테뉴의 말 처럼, ‘사실 우리는 죽음을 둘러싼 저 무서운 얼굴과 모든 형상을 죽음보다도 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죽음은 결국 죽음 주위를 도사리고 있는 공 포들일 뿐이며, 죽음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겠다. _대충 소설가_

이미지 출처 http://www.culturetheque.org.uk/ http://www.brainonholi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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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함 써볼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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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음악

피가 모자라?? 0. 아직도 피가 모자라?? 그게 헌혈로 해결 되는 문제야?? 1. <Sunday Bloody Sunday> - U2 / [ war ] 1983년 아직도 선명하다. 기관총 소리가 났었다. 앨범 재킷도 아주 인상적이지만, 앨 범의 첫 곡 <Sunday Bloody Sunday>의 인트로 드럼 소리는 나에겐 기관총 소 리처럼 들렸다. 샷건을 장전하고 쏴대는 소리. 고1때 였던 것으로 기억 하는데, 교회 후배에게 카세트테이프로 빌려 들은 ‘U2’의 [war] 앨범은 나에게 진정 충 격이었다. 시간을 조금 돌려 보면 지금이야 어이가 없어 웃고 넘길 이야기지만, 90년대 초중반에 소위 기독교 문화서적이라고 들고 나왔던 서적들에서 ‘U2’는 ‘사탄 밴드’ ‘적 그리스도’ 밴드였다. 그 이유는 ‘U2’가 ‘폭격기 이름’이기 때문이란 다.(당연히 말이 안 된다.) 지금 생각해보니 <Sunday Bloody Sunday>의 노래 제목도 한 몫 거들지 않았나 싶다. ‘피의 주일’ 이라니!! 믿음 없게 시리!! 하지만 이젠 세계가 다 안다. ‘U2’는 가끔 보면 록 밴드가 아니라 완전 NGO 아닌가!!!! 하긴 우리나라 어딘가엔 아직도‘U2’를 사탄의 밴드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도 모르지. 좀 더 시간을 돌리자. 1972년 1월 30일. 나는 태어나기도 전이다. 북 아일랜드 ‘데리’라는 곳에서 시민권 운동 중이던 비무장 가톨릭교도에게 영국군이 발포 하여 14명의 사망자와 13명의 중상자를 낸 유혈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피의 일 요일(Bloody Sunday)’사건이라 부르는데, 현대 북아일랜드 분쟁 역사에서 가 장 중요한 사건중 하나로 IRA의 재무장을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된 사건이라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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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 의 [war] 앨범 커버. 커버가 아주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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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져 있다. 그들의 여러 가지 복잡한 역사적, 지역적 맥락이 있겠지만, 이 사건 만 단순하게 놓고 볼 때 군대가 비무장 시민에게 총을 쏜 것을 용납할 사회는 없 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아직도 이것을 용납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1980년 5월 18 일 광주 말이다. ‘U2’의<Sunday Bloody Sunday>는 1972년 1월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 사건을 노래한 곡이다. 하지만 ‘피의 일요일’ 사건은 1972년 그날 이후 끝 이 났을까? 8년 뒤에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났으며,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분 쟁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이 노래는 1972년의 희생자를 위한 노래인 동시에, 지금 현재 우리의 노래이기도 하다.

<Sunday, Bloody Sunday> - U2 I can’t believe the news today Oh, I can’t close my eyes And make it go away How long... How long must we sing this song How long, how long... cause tonight...we can be as one Tonight... Broken bottles under children’s feet Bodies strewn across the dead end street But I won’t heed the battle call It puts my back up Puts my back up against the wall Sunday, Bloody Sunday (X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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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the battle’s just begun There’s many lost, but tell me who has won The trench is dug within our hearts And mothers, children, brothers, sisters Torn apart Sunday, Bloody Sunday (X2) How long... How long must we sing this song How long, how long... cause tonight...we can be as one Tonight...tonight... Sunday, Bloody Sunday (X2) Wipe the tears from your eyes Wipe your tears away Oh, wipe your tears away Oh, wipe your tears away (Sunday, Bloody Sunday) Oh, wipe your blood shot eyes (Sunday, Bloody Sunday) Sunday, Bloody Sunday (Sunday, Bloody Sunday) (X2) And it’s true we are immune When fact is fiction and TV reality And today the millions cry We eat and drink while tomorrow they die (Sunday, Bloody Sunday) The real battle just begun To claim the victory Jesus won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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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그 뉴스가 믿기질 않아요 눈을 감아도 떨쳐버릴 수가 없네요 언제까지 언제까지 우린 이 노래를 불러야 하나요 언제까지, 언제까지? 오늘밤... 우린 하나로 맺어질 수 있으니까요 오늘밤 아이들의 발아래 깨진 병조각들 막다른 거리 곳곳에 흩어진 시신들 그래도 전 전투신호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게 자꾸만 나를 벽으로 밀어 붙이고 또 밀어 붙일 뿐이죠 일요일, 피로 물든 일요일 일요일, 피로 물든 일요일 일요일, 피로 물든 일요일 그리고 바로 싸움이 시작 되었네요 많은 이들이 죽었죠. 허나 말해봐요, 누가 승자인지? 우리가슴속에 깊이 패인골들 어머니, 아이, 형제, 자매들이 서로 찢어지고 일요일, 피로 물든 일요일 일요일, 피로 물든 일요일 언제까지 언제까지 우린 이 노래를 불러야 하나요. 언제까지, 언제까지? 오늘밤... 우린 하나로 맺어질 수 있으니까요 오늘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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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피로 물든 일요일 일요일, 피로 물든 일요일 눈 속에 고인 눈물을 닦아요 눈물을 닦아내요 내가 당신의 눈물을 닦아줄게요 내가 당신의 눈물을 닦아줄게요 내가 당신의 충혈된 눈을 닦아줄게요 일요일, 피로 물든 일요일 일요일, 피로 물든 일요일 맞아요, 우린 너무 무감각해 졌어요 사실이 허구가 되고 TV가 현실이 된 지금 오늘도 수백만 명이 울부짖고 있네요 우리는 먹고 마시는데 내일이 오면 그들은 죽겠지요 진짜 싸움은 이제 시작이에요 예수께서 쟁취했던 승리를 선언할... 일요일, 피로 물든 일요일 일요일, 피로 물든 일요일 (번역 : 이상헌in ‘Deafening street’)

2. <피가 모자라> - 달빛요정 역전 만루 홈런 / [ 전투형 달빛요정 - Prototype A(EP) ] 2010년 헌혈 이야기 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이 공포스러운 점은 대한민국이 정말 으 스스한 이유는 검색어 순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포탈의 검색어 1위는 거의 대부 분 여자 연예인이 차지 한다. 꼭 1위가 아니더라도 10위 안에 반드시 꼭 여자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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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인은 있다. 그리고 그 여자 연예인이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는 내용은 거의 똑 같다. “OOO, 섹시화보 아찔” “OOO, 치마길이가, 헉!” “OOO, 아슬아슬...” 등 등. 적어도 대한민국에선 온 국민이 여자 연예인 몸매만 보고 사는 것 같다. 여 자 연예인 몸매에 감탄 할 수 있다. 좋아 할 수도 있는 것이고, 클릭 수가 오를 수 도 있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목숨보다, 비관 자살하는 사회적 타살자 들의 목숨보다, 기본적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보다, 아닌걸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시위보 다, 한 뼘도 안 되는 여자 연예인의 치마 길이가 더 화제인건 분명히 비정상인거 다. 이것은 내가 특별히 정의로워서 하는 말이 아니다. 상식선에서 생각해서 비 정상인거다. 그렇다면 여자연예인을 검색어 1위가 되도록 클릭하고 검색하는 사 람들은 단체로 미쳐서 그런 걸까? 아니!!! 나는 다시 묻고 싶다. 검색하는 사람이 많아 여자연예인이 검색어 1위를 차지할까, 아니면 검색어 안에 있으니까 검색 하는 사람이 많아진 걸까? ‘성찰(省察)’이란 말은 왠지 철학 적이고 어려운 말 같지만 뜻은 단순하다. 국 어사전에는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핌”이라고 아주 단순하고 명료하게 나 온다. 2010년 세상을 떠난 ‘달빛요정 역전 만루 홈런’의 <피가 모자라>는 바로 그 단순하고 명료한 성찰이 담긴 곡이며 이 시대를 정확하면서도 쉽게 ‘통찰(洞 察)’한 노래다. 흡혈귀 같은 세상은 여자연예인의 스커트길이 만도 못한 우리의 목숨을 호시탐 탐 노리고 있다. 그런데, 이 흡혈귀 같은 세상은 결국 우리 탐욕의 대가다. 영화 ‘설국열차’의 대사 한마디가 떠오른다. 벽이 라고 생각 되었던 저 문을 열고 싶다 던. 21세기 한국 대중음악에서 나는 이 곡보다 더 철학적인 곡을 만난 적이 없다.

<피가 모자라> - 달빛요정 역전 만루홈런 친구들의 걱정하네 그러다 잡혀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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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요정 역전 만루홈런’은 2010년 11월 6일 뇌출혈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록 은 언제나 영원하다.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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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세상이라고 몸조심해야 한다고 뒤 끝이 장난이 아냐 쩨쩨하고 오만하지 천박한 너의 웃음은 우리들 탐욕의 대가 알아서 꺼져주면 안 되겠지 정녕 이렇게 피를 봐야겠니? 모자라 피가 모자라 하지만 그 피가 내 것은 아니길 난 비겁해 너와 똑같아 숨어서 이렇게 노래만 부르네 난 비겁해 더워서 나가기 싫어 오래 서 있기도 싫어 하지만 책임져야지 추악한 욕망의 대가 그만큼 해 먹었으면 안 되겠니 정녕 이렇게 피를 봐야겠니? 모자라 피가 모자라 하지만 그 피가 내 것은 아니길 난 비겁해 너와 똑같아 숨어서 이렇게 노래만 부르네 난 비겁했어 어제까진 하지만 이젠 하지만 이젠 물러서지 않겠어 물러서지 않겠어 두 번 다시는 두 번 다시는 모자라 피는 모자라 하지만 그 피가 우리의 것이 아니길

3. 노래를 찾는 사람들 - <광야에서> / [2집] 1989년 군대 있을 때, 소위 운동권 출신으로 추정되는 선임이 있었다. 그 선임은 군종 병 이었는데, 어느 날 종교행사를 마치고 쉬는 시간에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 그 선임이 이런 말을 한 적있다. 교회에서 부르는 ‘찬양’과 소위 운동권에서 부르는 ‘민중가요’는 유사한 점이 매우 많다고. 그러니까 찬양을 부르며 은혜를 받는 마 음과 민중가요를 부르며 피가 끓는 감정이 매우 유사하다는 말이었다. 그때는 이 말을 이해 못했는데 몇 년 후 곧 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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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가 있었다. 나도 촛불집회에 나갔었는데, 그곳에서 < 광야에서>를 부르며 행진을 했었다. 수많은 민중들이 같은 노래를 부르며 같은 곳을 향해 행진 하는 경험은 매우 특별했다. 그때 느꼈다. 찬양 부르며 은혜 받는 것과 민중가요를 부르며 피가 끊는 느낌은 완전히 똑같다는 걸. 이곡은 꼭 시위나, 정치와 연결하지 않더라도 듣고 있으면 피가 끓는 뭔가가 있 다. 가사가 촌스럽다 말할지 모르겠지만 요즘 가요 들으며 피가 끓지는 않지 않 나? ‘이름이 뭐예요, 전화번호 뭐예요’ 들으며 피가 끓는 것도 웃기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에 수록된 곡이지만 이 곡은 워낙 유명해서 여러 가 수 들이 많이 불렀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도 물론 부르고 ‘김광석’ ‘안치환’ 님도 심지어 ‘기쁨의 교회 문화사역팀’에서 부른 버전도 있더라. 그렇지만 개인 적으로 이 노래는 ‘안치환’님의 버전이 제일 멋진 것 같다. 안치환님의 목소리 와 이 노래는 정말 완벽한 조합이라 생각한다. 피 끓는 노래에 피 끓는 목소리. 요즘은 왜 이런 피 끓는 노래들이 없을까? 이런 노래들이 정말 안 나오는 걸까? 아, 요즘 틴에이저 분들은 <이름이 뭐예요>를 들으면 피가 끓으시나? 0. 헌혈로 해결 안 되니까 막 죽이고 그러겠지. 근데도 모자라지? 여전히? 아마, 영원히 그럴걸? _거의 편집장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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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아트

날 꺼내줘, 이 더위에서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평생에 이번 여름처럼 더위와 습도를 온 몸으로 경험 하는 계절은 없었던 것 같다. (심지어) 서울엔 폭염이 제대로 오지도 않았다는데, 최근 처한 상황 덕에 절절히 더위와 습도를 겪어내는 여름이다. 나 이 정도로 여 름을 타지는 않는데. 절대 보지 않는 공포영화 처방이라도 내려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니 사실 말 다했다. 그런 맥락에서 ‘4’는 이 여름의 내게 불운이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러일으키 지 못한다. 원래는 괜히 오싹해 했겠지만, 지금은 그보다 ‘좀 무서워서라도 서늘 함을 좀 가져다 주지 않으련?’ 하는 바람, 혹은 ‘새벽 4시는 그래도 좀 시원하겠 지 않을까?’ 정도의 안도가 먼저 떠오른다. 아 이쯤 되면 좀 슬퍼진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서늘한 그림, 혹은 무서운 것들에 대한 작품을 소개해보 려 한다. 사실은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읽은 것일 수도 있지만, 더위에 취 한 머리 속에서 떠오른 이미지들이니 아니라고 해도 이해를 구한다. 나처럼 축축 한 공기에 절여진 마음들에 공감을 구한다. 아…… 습도.   칼을 나의 붓 삼아 처음 이 작품 앞에 섰을 때에도 그렇고 여전히, 이 작품을 보면 소리가 들린다. 슈악! 종이의 단말마 비명소리가. 종이에 숨을 끊어놓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이 여름, 서늘한 그림을 떠올릴 때 이 작품이 먼저 떠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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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오 폰타나, <공간개념 ‘기다림’ Concetto Spaziale ‘Attesa>, 1960, T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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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골머리를 앓다가 해주는 이야기보다 서늘한 정적을 만들어버리는 한 마디 말이 더 효과 있는 것처럼, 폰타나의 작품은 칼집 하나로 우리를 멈칫하게 한다. 슈아악 하는 종이의 비명을 상상해보면 효과는 더 배가된다. 그러고 보면 아무리 무서운 이야기라고 해도 고전적인 풍으로 풀어낸 그림들은, 무서워도 뭔가 한 여름에 몇 겹 긴 옷을 입고 거리에 나간 것처럼 답답 하다. 반면 폰타나의 그림은 저 칼집 틈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다. 곧 뒤 통수를 스쳐 지나가는 스산한 바람이. 하지만 그게 무엇이건 간에 일단 이게 뭐길래 액자 프레임에 곱게 넣어 벽에 걸 었나 하고 의아해지는 게 사실 가장 즉각적이고 솔직한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나 는 당시 이 작품을 처음 볼 때 온갖 독특하고 이해하기 힘든 현대미술작품들에 둘 러 쌓여있던 터라, 상대적으로 별 충격이 없었더랬다. 그러나 여전히 캔버스에 칼집을 내어서……뭐? 그걸 내가 못할까봐? 할 수 있다. 충분히. 루치오 폰타나 Lucio Fontana 1899~1968는 아르헨티나에서 자라 이탈리아 에서 활동한 조각가이자, 화가이고 이론가이다. ‘공간’이라는 개념에 집중해서 공간주의(Spatialism, Spazialismo) 선언문을 다섯 차례 내어가며 공간주의를 이탈리아에서 시작하였고, 2차원을 벗어난 회화를, 3차원을 벗어난 조각을 구상 하고 고민했었던 작가이다. 이를테면, 흔히 회화와 조각을 다른 종류의 장르라고 생각하는 점, 즉 전자는 2차원적 캔버스에 머무르고 후자는 무게와 덩어리가 느 껴지는 3차원의 소재에 머문다는 바로 그 통념을 발견하고, 그 사이의 경계를 흐 리는 작업을 해온 것이다. 앞서 소개한 <공간개념 ‘기다림’>도 마찬가지다. 저 찢겨진 자국으로 종이가 앞뒤로 벌어져서 생긴 저 공간, 그리고 그 구멍으로 인해 뒤에 나타나는 배경까 지도 생각하면 이 작품을 전통적인 회화로 볼 수는 없다. 평면을 벗어났으니 분 명 조각적인 요소가 있다. 그러나 또 조각이라고 하자니 뭔가 애매하다. 프레임 에 든 건 종이 한 장인걸. 결국 작품의 제목처럼, 회화도 조각도 아닌 그만의 ‘공 간개념’을 만든 것이다. 무엇을 기다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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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는 현실이나 상상의 무언가를 표상해야 하고, 그 어떤 이미지가 나타나기 를 사람들은 바랐다. 그러나 당시 개념미술의 다양한 작가들이 그러했듯, 폰타 나 역시 이미지의 반영, 선적 내러티브를 부정하고선 그만의 추상적인 공간을 제 시한다. 선이야 쉽게 긋는 것이라 하여도, 캔버스 앞에서 칼로 쭉 선을 긋는 데 까지 이르는 건, 또 공간을 창조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칼을 손에 쥐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인 것이다. 심지어 ‘캔버스를 찢었다’니, 이쯤되면 그마저도 의미심장 한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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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타나의 이런 종류의 작품들은 연작으로 계속된다. 평면을 칼질로 쭈욱 찢 기도 하고 이후에는 구멍을 뚫기도, 초크와 금속, 잉크, 돌을 이용한 작업도 선 보인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공간개념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작품이 2천여 점 에 이른다. 그 중에 가장 알려진 것이 앞서 보았던 찢기 작업과 구멍 뚫기 작업 인 것이다. 더워서 그런가? 작품의 미학적 의미나 미술사적 중요성 이전에, 난 일단 시원 하고 후련하다. 많은 고민과 실패, 연구가 있은 후이겠지만, 캔버스를 찢은 저 틈 새가 영화 ‘트루먼쇼’에서 나오는 것처럼, 뜨거운 햇살을 피할 출구 같기도 하 고, 목덜미에까지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나올 것도 같다. 종이 참 두꺼웠을 텐데, 그 소리는 얼마나 또 시원했을까. 쉬이익- 그리고 캔버스를 찢음으로써 2 차원적인 평면에 머물던 개념을 찢은 셈이니, 대단하다. 매일매일 캔버스를 앞에 두고서, 우리는 여러 고민을 한다. 어떻게 칠을 해야 사람들이 예쁘다고 할까, 내 부끄러운 이 검은 점을 가리면 문제가 해결될까, 내 캔버스는 이미 너무 더러워서 이젠 붓을 잡고서 이 앞에 서 있는 것 조차 힘들 때 가 있구나 등등. 평면에 머무르는 일상의 잡념과 연민으로부터 일종의 전환이 필 요하다, 폰타나의 칼질처럼. 그저 찢어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2차원을 3차원으 로 이해하는, 일종의 시원한 전환, 좁은 고민으로부터 깊이와 시야를 바꾸어버리 는 그런 칼질. 구태여 안고 살아가기는 하나, 찢어버릴 잡념은 사실 또 얼마나 많 은지. 폰타나의 단순하나 차원을 다르게 했던 공간 앞에서, 내 번잡한 공간을 돌 아본다. 음 전환이 필요하다. 다시 또 다시. 그런데 사실 제일 무서운 것은 말야 그 와중에 다른 작품 하나 더 얹어본다. 막스 에른스트의 <숲과 비둘기>라는 작품. 사실 ‘4’라는 숫자 하나로 무섭다느니 부정의 기운이 있다느니 하는 건 이 젠 너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다만 숫자 4로 표상되는 어떤 공포나, 무서움 의 이미지가 있을 뿐. 그럼 내가 진짜 무서워하는 건 뭘까. 그래, 내가 어떤 공포 괴담보다 무서워하는 건, (숫자 4를 연관 지어 말하자면) 마음이 떨리는 새벽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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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에른스트, <숲과 비둘기 Forêt et colombe>, 1927, T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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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전화가 되었든 문자가 되었든 그에 대해 누군가에게 토로할 수 없는 상황 이다. 무서운 새벽 4시보다, 무서운 새벽 4시에 대해서 속 깊이 털어놓고 대화 를 나눌 수 있는 이가 없는 것이 더 무섭다. 일종의 친밀한 관계로부터의 단절감 (disconnectedness), 부재. 그래 더위에 취해 진심을 말해보자면, 나는 그게 무 엇보다 무섭다. 단절감을 되뇌어 보다 떠오르는 그림은 막스 에른스트의 <숲과 비둘기>라는 작 품이다. 거대한 숲에 에워싸인 새 한 마리, 게다가 새는 새장에 갇혀있다. 작품 의 톤이 어두운 탓에 새가 땡그란 눈으로 마주하는 빽빽한 숲의 거대함, 어둠이 내릴 때의 막막함, 새장이 주는 답답함이 보는 내게도 이내 다가온다. 나무는 성 글게 긁은 듯 표현되어서, 평화롭거나 포용하는 숲이 아니라 도대체 저 성근 가 지 사이로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숲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도통 막막 하기만 하다. 이 작품을 만든 막스 에른스트 Max Ernst 1891~1976는 독일 출신의 초현실 주의 화가이다. 초현실주의 특유 ‘자동기술법(Automatisme)1’을 통해’ 불가사 의하고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내었으며, 특히 위의 작품에서 거친 표면으로 나 타나는 나무에서도 볼 수 있듯, 종이를 거친 표면 위에 대고 문질러 독특한 질감 표현을 내는 ‘프로타주(Frottage)’와 같은 기법을 만들기도 하였다. ‘비둘기’로 나타나는 새는 에른스트에게 자아를 상징하는 일종의 분신(Alter Ego)으로, 에 른스트는 이 새를 ‘로프롭(Loplop)’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나. 그러나 이 작품에 관해서 분석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자. 앞서 폰타나 작품에 대 해서 이미 이야기를 늘어뜨리기도 하였고, 에른스트의 다른 작품이라면 모를까 이 작품에서 내가 느끼는 일종의 공포는 지적인 분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시선을 앗아간 어두운 풍경과 고립된 비둘기의 모습에 유래하는 것이다. 더위에 지친 이기적인 마음으로 이 작품에‘대해’이야기하기보다는, 그저 이 작품을 들 여다 보고 싶다. 이 작품에 투영된 나의 공포를 들여다 보고 싶다. 그리고 사실은 자신의 공포에 대해서 혹은 두려움에 대해서 타인에게 말을 거는 것은, 더구나 이 러한 포맷에서는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므로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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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가시기 보다는 조금 스산한-바람이 마음에 잠시 머문다. 누군가와 이야 기 나누고픈 여름 밤이나 아직 나는, 더위에서 헤어나오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_꽤 애호가_

1. 자동기술법(Automatisme)은 엄밀하게 《초현실주의 선언》에 ‘이성에 의한 일체의 통제 없 이, 또는 미학적, 윤리적인 일체의 선입견 없이 행하는 사고의 진실을 기록하는 것’ 이라고 되어 있 듯이, 의식 하의 세계를 탐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방법이라 볼 수 있다. 즉 모든 습관적 기법이나 고정관념, 이성 등의 영향을 배제하고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리는 것을 말한 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특히 잠든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중간 상태가 좋은데, 여기서 자연히 표출되는 선이나 형태 또는 말은 무의식 세계를 투영하고 있다. (출처: 자동기술법, 세계미 술용어사전, 1999, 월간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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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영화

슬프고도 웃긴, 무섭고도 비극적인 드래그 미 투 헬(Drag Me To Hell), 뭐 이런 무서운 제목이 다 있는가. 지옥 으로의 드래그라니 상상 만으로도, 입에 담는 것도 왠지 꺼림칙하다. 그렇지 않 은가. 여름의 끝자락, (설마 이 보다 더 더워지려나) 당신을 서늘하게 해 줄 영화 한편 을 소개한다. 볼 사람은 다 본 샘 레이미 감독의 <드래그 미 투 헬, Drag Me To Hell, 2009> 이다. <드래그 미 투 헬>의 소감을 짧게 간추리면 이러하다. ‘영양 소가 균형 잡힌 탄력 있는 몸매처럼 각종 요소가 알뜰하게 들어찬 매끈하고 탄성 넘치는 공포영화’ 라는 것. <이블 데드> 시리즈로 유명한 샘 레이미 감독이니 공포영화에 능할 것은 당연 지사. 하지만 국내 홍보용 포스터에는 <스파이더맨> 감독이라는 문구로 홍보했 었다. <스파이더맨> 샘 레이미 감독의 익스트림 판타지 호러라나!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드래그 미 투 헬>을 보고 싶게 만드는 문구는 아닌 듯. 무려 <이블 데 드> 감독이 아닌가. 이렇다 할 유명 배우는 없지만 캐스팅이 또 절묘한데 뭔가 모르게 헐리우드 궁 상미를 풍기는 알리슨 로먼( Alison Lohman, 크리스틴 브라운 役), 그의 착하 디 착한 남자친구 저스틴 롱( Justin Long, 클레이 댈튼 役, 개인적으로 저스틴 롱은 그냥 정이 간다), 조연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한 모욕 당한 할마시 역할의 로 나 라버(Lorna Raver, 실비아 게너시 役), 크리스틴에게 저주를 풀 방법을 일러 주지만 챙길 건 다 챙기는 심령술사 딜립 라오(Dileep Rao, 람 자스 役) 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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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상 깊은 손톱연기의 얄미운 회사동료 레기 리(Reggie Lee, 스투 루빈 役)가 있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매우 평범한 은행 대출 상담원 크리스틴은 약간의 콤플렉스와 일터의 치열함을 안고 살아가지만 어쨌든 사랑하는 연인이 있어 그 런대로 삶이 즐겁다. 승진을 앞 둔 어느 날, 30년 동안 지켜온 집의 대출금이 밀 린 한 노파의 대출 상담을 맡게 된다. 크리스틴은 한편으로는 집을 잃게 되는 노 파가 가엾지만 승진을 위해 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호한 결단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노파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한다.(어찌 보면 그렇게 간절해 보이지도 않았 다. 불쌍한 노인네의 부탁을 거절할까 싶어 하는 노파의 태도가 살짝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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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간곡함을 외면하자 노파는 곧 돌변하여 크리스틴에게 저주를 내뿜는 다. 모욕을 당했다고 느낀 노파의 절규는 가여움을 불러일으키기엔 이미 너무 무 섭다. 지옥으로 드래그 하는게 취미인 염소악마 라미아의 저주를 불러온 노파 덕 에 크리스틴은 점점 감당할 수 없는 일상을 버티게 된다. 과연 그녀는 드래그 되 었을까. 개인적으로 매력적인 공포영화의 조건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슬프고 웃기면 서 무섭고 결국엔 비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드래그 미 투 헬>은 그 모든 것 을 갖췄다. 이번 호 주제가 ‘4’이니 이에 걸맞게 이 네 가지 매력을 파헤쳐 볼까 한다. 1. 이 영화, 일단 슬프다. 일단 주인공 처자 크리스틴은 궁상맞아 보인다. 가지런한 용모지만 어딘지 모 르게 불안함이 얼굴에 뭍어 난다. 그녀의 일상은 터프함이 촘촘히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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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고 있지만 남자친구의 집에서 환영할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자신의 처 지에 낙담하고 열심히 일했지만 들어 온지 얼마 안 된 동료 스튜와 승진 경쟁을 해야 하는 게 짜증난다. 자신의 능력이 상대보다 나음을 끊임없이 어필해야 하는 피곤함을 당신도 알지 않는가. 사실 스튜 역시 얄밉지만 절박하고 다소 불쌍해 보이는 아시아인 캐릭터?다. 경쟁이란 경쟁에 참여한 자들 모두를 불행하게 만 든다.(경쟁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고) 그녀의 슬픔은 노파의 저주와 함께 배가된다. 노파의 부탁을 거절한 것은 안타깝 긴 하지만 지옥으로 드래그 될 정도는 아니다. 자신이 당한 모욕을 되갚아주려는 노파의 저주는 필요이상으로 과잉되었다. 뺨을 한 대 올려붙였다고 칼부림을 한 꼴이다. 그런 크리스틴의 억울함은 그녀를 희생자로 만든다. 그녀를 따라다니는 저주의 그림자와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그녀의 처절한 몸부림은 영화 내내 보는 이를 슬프게 만든다. 크리스틴의 불행은 결국 영화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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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영화 근데 또 웃기다. 무섭고 끔찍한 존재들이 과장되게 등장하는 방식, 또 이를 저지하려는 크리스 틴과 할매의 사투는 어딘지 우스꽝스럽다. 과장된 반응들. 이를테면 코피가 한 방울 떨어지는가 싶더니 급작스럽게 마치 혈관이라도 터진 듯 입과 코에서 피가 분출하는 광경이라던가, 할매를 저지하려 다 그녀의 입에 꽂힌 크리스틴의 팔뚝, 머리가 압박되어 눈알이 용수철을 단 듯 튀어나오는 모습이랄지, 틀니가 다 빠진 할매가 입으로 얼굴을 핥는 행동들은 뭔가 모르게 무섭지만 웃음이 솟구친다. 난데없고 과장된 드립이 웃음 포인트. 3. 그래도 어쨌든 무섭다. 이 영화의 공포 요소를 다시 4가지로 정리해보자. 하나는 크리스틴이 지극히 평 균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과거나 콤플렉스는 있고 착 하게 살려하지만 내 이익과 상충될 때는 미안하지만도 나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 게 된다. 누구라도 크리스틴의 상황과 처지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영화 를 보면서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하나의 장치로 작동한다. 갈등과 선택의 순간,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부분이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삶을 오히려 뒤흔드 는 것이다. 어떤 일이 초래될지 선과 악의 경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니 결 과는 늘 예측할 수 없다.(딱히 크리스틴이 악해서 저주에 빠진 건 절대 아니지만) 다른 하나는 일상의 요소들이 공포를 자아낸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경제적이 다. 정말 돈도 별로 안들이고 우리를 서늘하게 만드니 어쩜 이리 영리한지. 기괴하고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를 기본으로 음산한 바람, 날리는 손수건, 스테이 플러, 안전벨트, 틀니, 파리, 손톱, 커튼, 그림자, 케이크, 포크, 고양이 등 일상 의 아주 작은 요소들이 공포를 자아내는 장치의 전부이다.(소스라치게 놀라움을 자아내는 할매의 등장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할매는 불쌍한 노파에서 왜인지 어 느새 거의 지옥의 사자로 변모한다) 소소하게 일상을 변질시키고 정신착란을 일 으키는 작은 변화들 말이다. 일상은 이토록 쉬이 뒤틀려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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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크리스틴의 공포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래도 공유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침대에 함께 누워있어도 그녀의 꿈과 일상을 파고드는 공포는 오롯이 그녀의 몫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며 함께 할 수도 없다. 얼굴에 쏟아내는 구 더기를 뒤집어써야 하는 것도, 할매의 공격에 주먹을 내던져야 하는 것도, 섬뜩 한 악마와 대면해야 하는 것도 결국 자기 자신이다. 마지막 하나는 그 저주의 굴레를 도무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일 어나는 무서운 일들에 지친 크리스틴은 승진이고 뭐고 대출도 연장해드리고 할 매에게 사과하고 모든 걸 바로잡고 싶어한다. 그래서 찾아간 할매는 이미 죽었고 할매의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할매의 죽음이 그녀 탓인 양 당해도 싸다는 태 도다. 저주를 피하고자 다른 이에게 저주를 옮기려 하지만 마음 약한 크리스틴은 결국 죽은 할매의 영혼에 저주를 되갚고자 한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 역시 자신 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배려로 인해 수포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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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비극이어라 저주의 주인은 결국 바뀌자 않았다. 벗어나려는 처절한 노력이 처절하면 처절 할 수록 이 비극은 배가된다. 노력이 거세면 거셀수록 그 애씀이 크면 클수록 그 녀의 비극은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간다. 영화를 보고 있자니 나중에는 급기야 선명한 화질도 두렵고 이질적으로 느껴지 더라.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 해야겠다. 영화 도입부에 억울하게 드래그된 소년의 운명은 결국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벗어날 수 없는 그녀와 당신의 운명 말이다. 그녀의 불행과 저주는 대출을 연장 해줬으면 피해갈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녀의 일상은 그녀를 더 옥죄었을 것이고 다른 방식으로 할매에게 모욕감을 선사하게 됐을 것이다. <드래그 미 투 헬>의 공포는 억울함과 수치심, 모욕감이라는 감정에서 불이 붙 어 신경을 거스르고 불안을 선사하다가 피할 수 없는 결말로 치닫는다. 그 비극 성이야 말로 우리를 공포에 몰아넣는다. 영화 자체의 색감도 복고적이고 스타일 리쉬해서 보는 내내 즐겁다. 이 영화에서 교훈을 얻고 싶은가. 만약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이 나는 가장 공포스럽다. 제발, 그저 이 두려움과 슬픔, 웃음과 눈물의 짬뽕을 온갖 신경 을 곤두세워 즐기고 전율해 달라. 그러면 족하다. _다르덴 자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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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여행

놀다가 여행,

골목이 아름다운 일본, 오사카,교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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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좀 조심스럽다. 일본 방사능 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말이 여러 블로그와 SNS를 통해 들린다. 개인적으로 아주 근거가 없 는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나는 아주 위험 한 지역을 여행하고 왔 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쓰는 일본의 이야기는 나의 일본 여행 후의 정리이다. 이제는 어쩌면 일본에 다시 갈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짚고 가다. 일본의 방사능이 심하다는 말이 떠돌면 떠돌 수록 반대로 우리나라는 안전할 거라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데, 아니다. 절대 아 니다. 이건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아니다. 원전은 세계 어느 나라에 있든 위험 하다. 그러므로 당연히 우리나라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일본방사능이 심하다는 말로 우리나라는 안전하다는 착각은 제발 하지 말도록 하자. 5. 전철에서. 간사이국제 공항의 첫 느낌이 그다지 특별 했던 건 아니다. 공항 분위기야 거 기서 거기니까. 그런데 공항에서 전철을 타고 오사카 신사이바시에 있는 숙소로 향하는 길은 특별했다. 전철안에서 보는 일본 풍경이 참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2~3층 정도 되는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레고마을 같은 분위기랄까. 이 분위기는 나중에 ‘교토’와 ‘나라’로 이동 할 때도 볼 수 있는 풍경인데, 마음이 소박해지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6. 오사카 ‘오사카 - 신사이바시’란 곳에 도착 했을 때 인상적 이었던 건 오사카 내에서 도 큰 번화가에 속하는 곳인데도 자동차가 별로 없이 한적한 분위기였다는 것이 다. 그리고 의외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전거를 타는 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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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는 표현이 안되는 묘한 정서들이 있다. 전철안에서 보는 일본 풍경이 특히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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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다양 했으며, 짧은 치마에 높은 하이힐을 신고 자전거를 타는 아가씨의모습도 쉽게 눈에 보였다. 자전거를 탄다는 건 참 한가로운 행위다. 타는 사람도 그렇고 타는 것을 보고 있는 것도 그렇다.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인지라 신선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나는 서울 시내를 걷고 있으면 화가 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자주 느끼는 거 지만 우리나라는 자동차를 위해 사람이 존재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 자동차느님’을 모시느라 항상 주위를 살펴야 하고 빵빵 거리는 자동차께 굽실거 리며 종종걸음을 걸어야 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좁은 골목길을 지날 때 뒤에 서 비키라고 ‘빵-빵-’거리는 자동차는 나를 너무나 짜증나게 한다. 내가 생각하 기에 우리나라에는 자동차라는 기계 보다 인격이 덜 된 사람들이 자동차를 운전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7. 만화책만 파는 서점, 게임, 프라모델 숍 일본 답게?? 거리를 걷다보면(꼭 오사카가 아니더라도) 만화책서점이 심심치 않게 눈이 띈다. 여기서 만화책 서점이란 정말 만화책만 판다. 역시 우리나라에 거의 없기에 부러운 점이었다. 만화책서점 뿐만 아니라 게임, 프라모델을 파는 곳도 자주 보았다. 우리는 ‘잘 놀고’있을까? 그렇지 않은 소수의 사람도 있지만 우리에게 보편적 으로 만화란 만화방에서 돈을 내고 앉아서 보던가, 어른이 되면 보지 않는 것이 고, 게임이란 또 역시 PC방에서 돈 내고 하는 것이 되었다. 그것도 거의 대부분 남자들에게만 해당 된다. 프리모델은 뭐 말할 것도 없고. 주위에 누군가가 게임 기 혹은 만화책, 프라모델을 꾸준히 사서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당신은 어 떤 생각이 들것 같은가?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사회 분위기는 그런 사람들을 ‘덕 후’라고 하대하고 깔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야 말로 정말 놀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이야 말로 인생을 즐 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에게 ‘취미’ 라는 것이 있는가? 왜 어른이라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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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신사이바시’ 근처의 풍경들. 건담가게는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못갔다....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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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는 나이가 되면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안 되는가? 홍대나 강남 같은 젊은이들 이 많이 모이는 번화가에 술집과 노래방, 피시방과 여관, 그리고 카페 밖에 없다 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슬프게도 그것 빼고는 놀게 없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그 몇 안되는 놀이터라도 우리는 재미있게 즐기고 있을까? 어른들의 대표 놀이터 술집만 생각 해 봐도 그렇다. 우린 ‘술 마시기 위해’ 술집에 가는가, 아니면 ‘술 이나 마시러’ 술집에 가는가? 이건 매우 다른 문제다. 슬프게도, 놀고 있어도 심 심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8. 덴노지지역 숙소에 짐을 풀었다. 참고로 우리가 묵은 곳을 호텔이었는데도 객실이 굉장히 좁았다. 고시원 보다 약간 넓은 정도의 객실크기였다. 내가 알기로 일본은 대부 분 다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아주 특급 호텔은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평소에 좁 은 곳에서 잘 못 지내는 분들이라면 미리 경고 해 둔다. 호텔, 많이 좁다. 숙소에 짐을 풀고 좀 저녁인지라 저녁도 먹을 겸 마실을 나왔다. 원래는 오사카 성에 가려고 나왔지만, 가는 길을 착각하여 ‘덴노지’로 와 버렸다. 그래서 별 계 획 없이 덴노지 지역을 구경하게 되었다. 덴노지에는 커다란 동물원 겸 공원이 하나 있는데, 저녁에 도착한 지라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 동물원 앞에는 서울역과 같이 노숙자분들이 많이 살고 계셨다. 노숙자 문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예전의 사고 방식처럼 그냥 ‘거지’, 뭔가 삶에서의 열정 같은 것이 결여된 사람들 정도로 치 부해 버리는 건 무식한 생각이다. 그 사람들이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인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구조를 만드는데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도 모르는 사이에 한 몫 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의 더 많 은 공부가 필요함으로 가설 정도로만 마무리 할까 한다. 시간이 나는 데로 ‘지그 문트 바우만’의 <쓰레기가 되는 삶들>을 읽어 볼 생각이다. 같이 읽으실 분계시 면 함께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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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정문에서 왼쪽으로 크게 돌다 걷다보면 ‘신세카이’ 지역에 다다르게 된 다. 내가 갔던날이 평일 이라 그런지는 잘 모르겠으나 식당과 술집이 늘어선 번 화가 치고는 많이 한산했다. 이곳에는 꼬치 튀김집이 많이 있는데 튀김으로 유명 한 일본에 왔으니 튀김을 좋아하는 나는 아니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정말 튀김을 잘 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 종종 먹는 눅눅한 튀김을 생각하 시면 안 된다. 정밀 튀김의 신세계를 경험 할 수 있다. 튀김의 종류도 정말 다양하 다. 내가 느끼기에 튀김옷을 입힐 수 있는 음식은 어떤 것이든 튀길 것 같은 기세 다. 맥주와 튀김, 작은 정종도 한 병 먹으며 일본의 첫날 저녁을 고즈넉이 보냈다. 밤이 가고 아침이 되니 둘째 날 이라. _거의 편집장_

각종 튀김과 나의 이빨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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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

없는것 배우기

어떻게 사람이 쓸데 있는 것만 배우면서 사나! 소위 ‘스펙 올리기’ 만 하면서 산다 면 우리 인생은 얼마나 갑갑한가. 그래서! 준비했다. 앞으로 이 쳅터를 통해서 우리 는 삶에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것들, 배운다 해도 이력서에 써 넣을수 없는 것 들, 쓸데 없이 시간 때우기 좋은 것들만 골라서 배워볼까 한다. 쓰잘데기 없다고 이 세상에 없어도 되는건 아니니까. _<놀다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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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구랑 친구하기> 랼입니다~^-^ 이번호에서는 가방에 들어갈만한 큼지막한 모티브를 떠볼 거에요~!

제가 한선, 한선 그렸답니다! 하하!!! 같이 떠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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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바늘 뜨기 기본자세 준비~!

2-1. 실을 걸고, 사슬뜨기 6개를 뜨세요~!

2-2. 원형시작코를 뜨는 건데요,

2-3. 우리는 좀더 튼튼하게 뜨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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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사슬뜨기를 하고, 원형으로 마무리할거에요

3. 사슬뜨기 3코로 올려주세요~

4. 바로옆에 긴뜨기

5. 사슬뜨기 2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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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보는 기호가 있죠~ ‘한길긴뜨기 2코 구슬뜨기’에요~! 기호 참고하시고, 저랑 같이 떠보아용~

6. 여기가 중요해요~!^-^ 이 모티브의 하이라이트! 실을 2번 감으세요~! 더 감을거에요~! “우리는 기호보다 실을 한번 뜨개모양 위가 날렵하고 예쁘게 나오거든요~^.* ” 왜냐~! 2번 감아 뜨면 뜨기 하셔도 되구요~직접 비교해가며 떠보세요~ 기호처럼 한번만 감아 긴

7. 긴뜨기 한번뜨기

8. 실감아서 또한번 긴뜨기를 뜨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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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실을 한번 감아서 4줄을 한꺼번에 빼세요~ 그럼 2코 구슬뜨기 완성~!

10. 이제 도안에 따라 손뜨개를 떠 보아용~ ^

보면 외워질거에요 하하^-

앞으로 계속나옵니다~! 뜨다

11. 1단 완성~! 빼뜨기 한번

12-1. 도안에 있는것처럼 옆에 한번 더 빼뜨기로 마무리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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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13. 2번째 단도 떠가요~

14-1. 긴뜨기 주르륵 6개를 떠주세요~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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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2번째 단도 완성됐어요~*

16. 3번째 단 시작할 때 주의할 점! ‘2코 구슬뜨기’ 3세트를 떠주는거에요! 잘 확인하세요~^.*

17. 짜잔~~! 도안대로 뜨면 이런 모양이 돼요~!

18. 만들고자 하는 가방 크기에 따라 모티브를 쭉쭉 더 떠갈 수 있어요. 4단 을 더 뜬 모양이에요~~! 한단씩, 한 단씩 크기보면서 더 뜨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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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시간 준비물~! 가로*세로 27*27cm의 손뜨개 가방을 만들거에요~ -앞면/뒷면 천을 달리하고 싶으시면 각각 29*29cm(시접 1cm 포함)의 천을 준비해주세요~ 같은 천으로 겉감을 하시려면 가로29*세로56cm의 천을 준비해주세요~! -안감은 가로29*세로56cm의 천을 준비해주시구요~ - 자석똑딱단추(선택사항입니다)

- 가방줄은 70cm로 2줄 준비해주세요~

어떤 줄이든 편하게 쓸수있는 줄로 준비합니다. 그럼, 다음호에서는 우리 바느질해보아용~^-^ 그때까지 행복하게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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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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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 특집 휴가는 이미 다녀왔고, 더운 늦 여름, 몰아보던 드라마, 영화, 만화책도 다 봤고, 방바닥에서 뒹굴거리기 지겨울때 쯤, 낮잠을 초대할 읽을거리를 준비했다. 작게나마 당신의 시간을 때울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겠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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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스스한 것듯

세상에 뿌려진 으스스한 것들

글/사진 : <놀다가,> 72p, 74p 이미지 : 인터넷(원본출처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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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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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혼자 걷는 오래된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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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공중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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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로 덮여질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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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 폭력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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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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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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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만원 주고 한 사람은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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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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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천국, 여긴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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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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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이래야 겠어? 도대체 왜 나를 싫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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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 콩트

그러니까 넌, 나랑 그냥 자고 싶은 거잖아. _눈부신 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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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혜진, 민수, 정환(전도사), 엿 파는 할머니 #1 토요일 오후 번화가 거리.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몰려다니고 떠드는 사람들. 즐거운 토요일 오후. #2 청년부 전도사 청년부원들과 길에 모여 있다. 손에는 각자 전도지와 초코렛을 들고 있다. 정환 : 오늘 노방 전도를 그냥 가볍게 생각하면 안돼. 오늘 우리의 전도로 인해 한 영혼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거야. (거리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자 봐, 그냥 스쳐가는 사람들이지만 저들은 모두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죄인들이야. 우리 짧게 기도하고 노방전도 시작하자. 전도사와 청년들 손을 잡고 선다. 정환 : 아버지, 오늘 당신의 어린 양들 한 영혼이라도 당신께 인도하고자 이 자리 에 나왔습니다. 우리에게 골리앗을 싸워 이긴 다윗의 담대함으로 죄악 된 세상을 향해 나아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 멘. 자! 화이팅 한 번 할까? 모두들 : 화이팅!!! #3 정환, 민수 번화가를 걷고있다. 민수 : 전도사님 얘기 들으셨어요? 우리 목사님이랑 사모님도 노방전도 하다 만 나셨데요. 정환 : 응 이야기 들었어. 놀랍지 않냐? 우리 하나님? 노방전도로 전도해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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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다니다가 인연이 돼서 결혼 했다잖아. 부럽다~~ 민수 : 그러고 보면 인연 이란게 있기는 있나 봐요? 정환 : 그게 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은혜 아니겠냐?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지. 민수 : 전도사님은 진짜로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믿으세요? 정환 : 그럼, 당연하지. 민수 : 저는 솔직히 난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오늘 이 노방전도도 전 싫어요. 쪽팔려요. 정환 : 몇 번 하다보면 괜찮아 질 거야. 기도해 줄게. 민수 : (한숨) 정환 : 그럼 난 이쪽으로 갈게. 전도 많이 해!! 좀 있다 보자. 민수 : 네, 이따 뵈요. #4 혼자 열심히 전도지를 돌리는 정환. 그러다 책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혜진을 발견한다. 혜진은 눈에 띄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 정환 : 저, 실례합니다. 혜진 : 네? 정환 : 저 혹시 교회 다니세요? 혜진 : 네, 그런데요. 정환 : 아, 다니시는구나. 노방전도 나왔는데 혹시 교회 안다니시면 전도지 한 장 드리려 했어요. 혜진 : 아, 네 저 다녀요. 정환 : 반가워요. 교회 다니는 사람도 만나고. 초코렛 하나 드릴까요? 혜진 : 아니오. 괜찮아요. 정환 : 다이어트 하시나 봐요? 하하하 혜진 : 네? 아닌데요. 그냥 먹기 싫어서요. 정환 : 하하 농담이에요. 근데 어느 교회 다니세요? 혜진 : 그냥 맘 맞는 사람끼리 모여서 예배드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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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 : 그래요? 그럼 정식으로 다니시는건 아니네요. 혜진 : 저는 정식으로 다니는데요. 정환 : 그럼 좀 위험 하지 않나요? 신앙적으로. 원래 신앙 이라는 게 건강한 곳에 서 시작해야... 혜진 : 뭐가 위험 한데요? 정환 : 아니 그러니까 정식으로 목사님도 안계시고 그러다 보면 건강한 신앙을 갖 기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요. 혜진 : 아~ 걱정 안하셔도 되요. 신학교 졸업한사람도 있으니까요. 정환 : 그러지 말고 저희 교회 한번 나오실래요? 정환 혜진 에게 전도지를 건낸다. 혜진 : 요즘은 이단도 많고 해서 조심하셔야 되요. 혜진 전도지를 받지 않는다. 혜진 : 아니, 저 교회 디닌다니까요. 이런 것 안주셔도 되요. 괜히 쓰레기만 되요. 다른 안다니는 분들 주세요. 정환 : 어디에요? 어디서 예배 드려요? 제가 한번 가 볼께요. 걱정 되서 그래요. 혜진 : 네?? 무슨 걱정이요? 정환 : 자칫 이단에 빠지지 않을까 해서요. 혜진 : 걱정 안하셔도 되요. 이단 이런 거 아니니까요. 그리고 바쁘실 텐데 가보 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정환 : 아니, 저 솔직히 말씀 드릴께요. 전 이교회 전도사입니다. 제가 전도지를 돌리다가 우연히 자매님을 봤는데 하나님께서 가서 이야기를 해 보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제가 보기엔 자매님 지금 영적으로 좀, 뭐랄까 위험한 것 같아요. 혜진 : 아니, 저를 언제 봤다고 위험하다 하시는 거예요? 저 아세요? 정환 : 아니, 화내지 말고 들어 보세요. 그래서 제가 자매님 다니시는 교회에 가서 검증을 해 드릴게요. 혹시 이단이거나 뭐 그러면 안 되니까요. 혜진 : 아니 제가 괜찮다는데 왜 그러세요? 그리고 이단에 가도 제가 가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정환 :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한 영혼이 사탄에게로 향하는데. 그리고 하나님 안 에서 형제와 자매이니 돕는게 당연하고요. 요즘은 시대가 악해서 이단도 많고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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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 예언자들도 많아요. 자매님도 뉴스에서 많이 보셨잖아요. 광화문에서 난동부 리고 시위하고 경찰들 때리고 하는 장면이요. 평화를 위협하고 순종하지 못하고 불화를 일으키는 세력들이 어느 시대보다 강합니다. 장로님이 대통령이 되셔서 사탄들이 더 깨알같이 달려드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매님 깨어 있으셔 야 되요. 시대가 악합니다. 혜진 : (어이없어 한숨 쉬며) 알았어요. 이번 주 부터 동네에 있는 교회 나갈게요. 됐죠? 이제 가세요. 정환 전도지에 자신의 핸드폰 번호와 이메일주소를 적어 준다. 정화 : 저 이거 받으세요. 신앙생활 하시다가 혹시 궁금한 점 있거나 기도제목 있 으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제가 늘 기도할게요. 그리고 아직 결혼 안하셨죠? 자 매님같이 아름다운 분은 배우자도 주님 안에서 잘 만나셔야 되요. 믿은 좋은 형 제를 만나셔야 되요. 남자친구분은 교회 다니세요? 혜진 어이없어 웃는다. 그리고 재밋다는 듯이. 혜진 : 저 남자친구 없는데요? 정환 : 정말 잘됐네요. 앞으로 꼭 믿음 안에서 좋은 형제 만나세요? 혜진 : 그건 근친상간 아닌가? 정환 : 네?? 혜진 : 그렇잖아요, 형제랑 자매랑 만나서 결혼하는 건 근친상간이죠. 안 그래요? 정환 : 아니, 자매님 그런 뜻이 아니라, 진짜 혈육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안 에서 한 형제고 자매라는 뜻이죠. 진짜로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마치 피를 나눈 형제처럼. 혜진 : 그래요? 어떤 교회는 그런 형제끼리 돈 때문에 서로 싸우고 재판도 하고 그러던데요? 정환 : 물론, 인간인지라 완벽 할 수는 없죠. 우리 모두가 죄인이니까요. 자매님 도 죄인이고 이 거리를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에요. 저 또한 죄인이죠. 그 래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예수님계서 피 값으로 사신 것 아니겠 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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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엿 파는 할머니가 정환 에게로 온다. 할머니 : 총각 엿 하나만 사줘. 아주 맛나. 정환 : 담에 살게요. 죄송해요. 할머니 : 에이 그러지 말고 하나 사줘. 교회 다니는 사람끼리 하나 팔아줘. 정환 : 아이 글쎄 담에 산다니까요. 혜진 : 얼마에요? 하나 주세요. 할머니 : 아이 고마워~ 색시 이 천원~ 이쁘게도 생겼네~ 고마워~ 할머니 엿을 혜진 에게 주고 정환을 째려 보고는 간다. 혜진 : 진짜 하나님을 믿으세요? 정환 : 그럼요! 혜진 : 그런데 왜 이세상은 항상 문제투성이 일까요? 지구 반대편에서는 늘 전쟁 중이고 기독교 국가라고 알려진 미국은 세계적인 무기 수출국이구요. 누군가는 주가를 조작하고 사기를 쳐서 논을 버는데 누군가는 엿을 팔아 하루하루를 연명 하고요.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인 사람들은 더욱 부자가 되고 하나 님이 계시면 왜 이런 일들을 바로 잡지 않죠? 정환 : 네, 자매님. 그건 우리의 불순종 때문이에요. 우리는 하루빨리 회계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해요. 제가 지금 자매님을 전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 요. 우리 모두가 회계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난다면 그때가 바로 하 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가 되는 거죠. 혜진 :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요? 정환 : 하나님의 정의가 강같이 흐르는 나라지요. 혜진 : 그런 겉도는 말은 그만 좀 하시죠? 그쪽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사람 모두가 기독교인이 되는 나라인가봐요? 정환 : 아니 세상사람 모두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나라죠. 혜진 엿을 하나 꺼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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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 : 엿 드실래요? 정환 :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혜진 : 다이어트 하시나 봐요? 정환 : 아니, 그건 아니고.... 잠시 정적이 흐른다. 혜진은 먹던 엿을 맛있게 먹는다. 정환 결심한 듯이. 정환 : 저, 자매님! 좀 전에 말씀드렸듯이 전도지를 돌리는데 우연히 자매님을 봤 습니다. 그런데 보는 순간 뭔가 뭐랄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왠 지 하나님께서 자매님과 대화해 보라고 막 하시는것 같았어요. 성령의 인도하심 이라 저는 생각해요. 자매님. 제가 자매님을 올바른 신앙으로 인도하고 싶습니 다. 자매님과 제가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필연이에 요. 연락처를 알려주시면 제가 매일 기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화심방도 자주 할께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시대가 악해요. 이런 때일수록 올바르고 건강한 신 앙으로 무장해야 되요.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제가 꼭 자매님을 올바른 신앙 으로... 혜진 말을 끊으며 혜진 : 야! 정환 놀라 말을 멈춘다. 혜진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혜진 : 그러니까 넌 나랑 그냥 자고 싶은 거잖아. 그걸 그렇게 길게 말하니? 엿이 나 드세요! 혜진 정환에게 엿 상자를 주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정환 얼떨결에 엿 상자를 받고 멍하니 서서 혜진의 뒷모습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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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 소설

나름의 해피엔딩 _대충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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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것도 없이, 참 보잘 것 없는 인생이다. 나이 서른. 올해 겨우 대학을 졸업했다. 그나마도 보 잘 것 없는 지방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별의별 회사에다 이력서를 제출했었지 만, 면접이나 한번 보러오라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되새겨 보자면 참으로 많은 이력서를 썼더랬다. 어느 날은 느즈막히 일어나 비몽사몽간에 이력서를 쓸 때였 는데, 한참을 적고 나서 보니 내가 그때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던 노래 가사를 그 대로 옮겨 적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정말이지, 놀라고 말았다. 깜짝 놀란 것은 아니고 그냥 눈을 조금 크게 뜨고 내가 쓴 이력서를 다시 한 번 훑어보며 노래를 흥얼거렸을 뿐이지만. 문제는 며칠 뒤 그 회사에 정말로 이력서를 보낼 때 생겼 는데, 나는 정말 실수로, 노래가사를 닥치는 대로 적어놓았던 이력서를 그대로 저장, 발송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웃으면 끝날 얘깃거리일 뿐이긴 하지만, 정말 로 웃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는데, 당시에 몇 군데나 이력서를 넣었던 회사들 중에, 딱 그 회사에서만 면접을 보러오라는 연락이 왔다. 차마 면접을 보러갈 용 기가 나지 않아서 거절했지만 나의 이력은 ‘노바디 노바디 벗츄 그대 아니면 싫 어’ 따위의 가사보다도 임팩트가 없구나. 라고 깨달았다. 나는 이후에 이력서 쓰 기를 그만두었다. 거기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을 지도, 혹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생활 에 당분간 휴업을 선언했다. 그저 졸릴 때 자고, 배고플 때 먹고, 이것도 팔자 좋 아야 하는 짓이라고 자위하면서, 남부러울 것 없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덕으로 대학 근처의 자취방에서 홀로, 나는 그렇고 그런,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고 그런, 미개하고 원시적인, 졸려서 자고 고파서 먹고 그러면 마렵고, 그러고 나면 다시 고프고, 그러면 다시 졸리고 하는 쳇바퀴 굴리는 것 같은 일상에 일종의 무 료함 내지는 자괴감 심지어는 어떤 쾌감을 느끼게 될 때까지. 그러다가 문득 나 는 뭐지, 똥 만드는 기계인가. 남 시키는 대로만 일하는 기계에 비유 하더라도 하 다못해 어디 쓸데 있는 걸 만드는 기계도 아니고 세상 쓸데없는 똥 만드는 기계 로 존재하기 위해 태어난 것인가. 심지어는 개만도 못한, 좀 더 구체적으로는 매 일 아침 나의 집 앞에서 왈왈거리는 저 집나간 똥개만도 못한, 생각해보니까 또 짜증이 확 나는데, 그 망할 똥개는 대체 다른 곳 다 놔두고 내 집 창문에서 매일 아침 한참을 짖어대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래도 그 놈은 먹고 자고 똥 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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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말고도 닭 대신 매일 모닝콜이라도 한다지만 난 뭔가. 도대체 뭐하자는 것인 가. 따위의 고민을 하게 되는, 그러다가 마침내 그런 생각조차도 귀찮아 지고 마 는. 아마도 그러던 어느 날. 이대로는 안 돼 라는 생각이 퍼뜩.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잠깐, 이대로는 안 되겠다 니 뭐가 안 되겠다는 거지, 이대로 안 되면 뭘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거지. 라는 어쩌면, 여전히 먹고 싸고 자면서 고민하던 문제에 새로운, 혹은 사소한 고민하 나를 더하며 부질없는 고민마저 일상이 되어버린 삶에 뭔가 새로운 결단을 내린 다. 역시, 아무래도 안 되겠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고민은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 으로, 그러하므로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으로, 결국 뭔가 달라져야 하는 그 자 체가 목적인양 생각되기 마련이다. ‘변화’는 강박처럼 남고, 그래서 나는 초인 적인 의지를 발휘하여 ‘뭔가’를 행동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이를테면, 매일 해 가 중천에 뜬 후에나 눈을 뜨고 TV를 켜고 배가 고파질 때까지 누워 데굴데굴 굴 러다니다가 배가 고파질 즈음 어젠가 그저께쯤 사다놓은 식빵쪼가리를 뜯어 먹 고 그나마도 없을 때에나 겨우 근처 편의점으로 외출하던 미개하고 야만적인 일 상을, 아침 9시에 규칙적으로 일어나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조깅 후 돌아오는 길에 신선한 바게뜨 빵을 규칙적으로 사서 우유 한잔과 규칙적으로 마시는 일상 으로 바꾸는 것 같이. 내가 보기에는, 그리고 아마 누가 봐도, 과연 규칙적이고 바람직한 문명인의 생활 이라고 할만한. 그리고 나는 그것을 해낸다. 생활의 관성을 이겨내는 데에는 수 많은 반작용들이 따랐지만, 달리 쏟을 열정의 출구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내 생활 의 루틴을 수정하고 적응하는데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넣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 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고, 아주 딱 떨어지는 일련의 규칙적인 하루일과를 지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 나의 자괴감, 혹은 무료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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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부를만한 것이 과연 나의 불규칙적인 생활 습관에서 기인했던 것인가 하는 근 본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아마도 매일 매일의 반 복되는 생활패턴에서, 오늘도 해가 뜨고 내일도 해가 뜬다는, 아무런 변화 없는 무료한 일상에서 일종의 권태를 느낀 것인데, 바람직한 생활이든 미개하고 원시 적인 생활이든 간에,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이 반복된다는 사실, 그리고 반복되 는 일상이 계속된다는 것이 잔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차차 이런, 그러나 그 것을 깨달은 것은 이미 내가 오랜 생활습관을 바꾸고, 매일 아침 8시 반에 일어나 아침 운동 삼아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제과점에서 신선한 바게트 빵을 사서 아침식사로 우유한잔과 곁들이기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겨우 그것을 실천하게 된 지 삼주쯤 접어드는 시점이었다. 그러자마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나는 또다시 만사가 귀찮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사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거니와 규칙적이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생활습관을 바꾼다 는 것은 그 자체로 꽤나 큰 결단이 필요한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흔히 불규칙에 서 규칙으로 가는 것은 어려우나 규칙에서 불규칙으로 가는 것은 쉽다고 말하곤 하지만-물론 엔트로피에 의하면 어느 정도 맞는 말 이기는 하다-규칙을 무너뜨 리는 것도 늘 어느 정도의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자연 상태의 모든 것들이 규칙 에서 불규칙으로 이동하지만, 반대로 인간의 경우에는 이상하게도 늘 불규칙에 서 규칙으로 이동한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한 시점부터 그래왔다. 불규칙 속에서 규칙을 찾는 것이 그들의 본능인 듯이. 찾고 분류하고 열 세우고 단순화하고 쪼 개고 나누고 혹은 착각하거나 생략하여 규칙을 찾아내고 만족해한다. 딱히 그 때 문이라기보다는 단지 지금도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여전히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운동을 하고 아침식사로 바게트 빵 쪼가리를 삼키며 그러 지 않았던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죽을 것 같은 무료함과 권태에 빠져 있었다. 바 로 어제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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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굉장히 사소한 일인데도, 삶 그 자체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리는 일도 있다. 이를테면 ‘길을 걷다가 우연히 길바닥에 떨어진 뭔가를 줍는다던가 하는 일’ 말 이다. 그러니까 그게 나는 아침운동을 하던 중이었는데, 공원을 뛰던 중에 저 앞 에 뭔가 검은색의 물체가 길 위에서 반짝거리는 것을 본다. 사실 그게 무엇인지 별로 궁금하지는 않지만, 마침 뛰어가는 코스가 그 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물체와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얼핏 보기에 검은색 막대기에 손잡이가 달려있었 고, 가까이 가자 그게 아마도 ‘권총’쯤 되어 보인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가 있었다. 나는 시력이 꽤 좋은 편이니까. 잠깐 권총이라고? 누군가는 그게 어째서 대수롭지 않은 일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생각해보란 말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길바닥에 총이 한 자루 굴러다닌다고 해서 깜짝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것이 진짜 총이라 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총기 소지가 합법인 별 괴상한 양키 놈들 나라라 면, 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그런 권총 따위가 길바닥에 떨어져 있을 때, 그게 진짜 총이라며 놀라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해 보이지 않겠 는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때 아무렇지도 않게 그 권총을 스쳐지나갈 수도 있 었다. 내가 뭔가 변화에 갈급하지만 않았더라면, 혹은 화장실이 급했더라면, 혹 은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떨어진 물건 주위를 서성거리기가 조금이라도 맘에 걸렸더라면, 나는 누가 장난감 총을 여기에 떨어뜨렸을까 라고 생각하며 권 총 옆을 스쳐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마침 공원은 나의 일상만큼이나 한 가했고, 화장실이 급하지도 않았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변화를 갈망하고 있 었기 때문에 굳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주인을 잃어버린, 아마도 장난감 권총으 로 추정되는 물건에 관심을 가지고 말았다. 그게 뭐든지 간에, 아마 똑같이 행동 했을 것이다. 길에 떨어진 뭔가를 줍고자 할 때, 우리가 하는 행동은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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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먼저 주위를 둘러본다. 남의 물건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가정교육 을 받아온 사람이라면, 죄책감 내지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려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체면 때문이라든가. -대체로 어렸을 때 땅에 떨 어진 물건은 대게 ‘지지’라는 더러운 것으로 통일되기 마련이니까- 내지는 어떤 이유든 간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 물건을 주울 사람이 나 뿐이라거나, 아 니면 내가 이 물건을 주워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확신하고 나면, 그 물건을 줍든지,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가게 된다. 돈 일 경 우에는 대체로 줍는 경우가 많겠지만, 돈이 아니라면 쉽사리 줍지 않을 물건들이 세상에는 의외로 많이 있다. 그게 누군가 떨어뜨린 것이 아니라 버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멀쩡하게 생겼어도, 남이 ‘떨어뜨린 물 건’이 아니라 ‘버린 물건’을 줍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다. 생각해보면 꽤나 이 상한 일인데도, 세상에는 땅에 떨어지면 곧바로 쓰레기가 되는 부류의 물건들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손에 들고 있으면 가치가 있는 것인데, 한번 땅에 떨어 지면 아무런 가치도 없게 되는 것들. 대체로 먹는 것들은 땅에 떨어지면 아무런 가치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존심이라든지, 명예같이 눈에 보이지 않 는 것들도, 한번 땅에 떨어지고 나면, 예전의 가치를 가질 수는 없게 되기도 한다. 각설하고, 길가에 버려졌든, 떨어졌든, 그걸 찾아주겠다는 사람이든지 내가 가지겠다는 사람이든지 비슷한 모양새로 물건을 줍게 되어 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허 리를 굽히거나 다리를 접어서 눈을 최대한 사물과 가까이 둔다. 그리고 물건을 찬 찬히 관찰한다. 땅에 떨어진 것은 대체로 더러운 것이기 때문에(이유는 알 수 없 지만), 내가 맨손으로 이 물건을 집어도 위생상의 문제가 없는지를 살피면서 조 심스럽게 - 대게는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만을 이용해서 - 물건을 ‘획득’한 다. 한번 손을 더럽힌 다음에도 별로 관심이 생기지 않는 경우에는 이내 신경을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냥 지나가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일단 물 건을 줍게 되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원 주인의 흔적이다. 요즘에 누가 자기 물건에 이름을 써놓겠느냐마는. 어쨌든 나는 약간의 흙먼지 이외에는 위생상 별 로 문제가 없어 보이는 권총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려본다. 마치 진짜 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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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고, 마치 진짜 총처럼 생긴 권총을 들고, 장난감 총을 만지듯이 신기해 하다 가 마침내 조그만 버튼을 눌러 탄창을 분리해 본다. 그리고 거기에서 군대에서나 봤던 실탄이 들어있는 것을 확인한다. 당연히 나는 멍해진다. 얼레. 이거 설마 설마 설마 설마 설마 설마 진짜 총인가? 하고. 생각한다. 진짜 총인가? 진짜 총인가? 진짜 총인가?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되새길 겨를도 없이 머릿속 에서는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 을지 대체 지금 무슨 상황이 일어난 것인지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리고 타 이밍 죽이게. 마침 뒤쪽에서 인기척이 난다. 나는 왠지 황급하게 권총을 품속에 숨긴다. 콩닥 콩닥. 어린애처럼 모양 없이 심장이 뛴다. 그때 머릿속에 드는 생 각은 이를 테면, 어떤 멍청한 새끼가 이런데다가 진짜권총을 버리고 갔지? 라든 가, 이걸 경찰에 가져다주어야 하나, 아니면 FBI 같은 정보부에 가져다주어야 하 나. 라는 생각이 전혀 아니라. 에이. 썅. 좆됐다. 씨발. 니미. 같은 욕지거리였다. 법은 잘 모르지만, 흉기 소지도 그 자체로 범죄 아닌가? 하물며 총이라니. 대 한민국이란 나라에서는 칼도 허가받은 사람이 아니면 가지고 다닐 수가 없지 않 은가.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보던 ‘무기’들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은 아마도 군대에서 처음으로 만지는 총 정도일 텐데. 사실 군대있을 때도 총 이라는 것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살상무기라고 생각되기보다는 쓸데없이 무거 운 짐 덩어리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어쨌든, 칼만 한번 잘못 들어도 체포되 는 나라에서 총이라니.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고 싶고, 권총을 한번 주웠다 는 이유만으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경찰서에 가서 “길에서 이런 물건을 주웠는데요”라고 말하며 권총을 꺼내놓는다면, “근래에는 보기 드 문 착한 젊은이시군요”라는 칭찬을 받을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 론, 체포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나는 이 물건을 입수하게 된 경위에 대 해서, 그들이 납득할 만한 대답을 할 때까지 심문에 가까운 조사를 받아야 할 것 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쓸데없이 강력한 무기를 들고 있으면, 보통 권력자는 그 것을 응징하려 한다. 어린 시절부터 철저히 나의 도덕관념에 각인되어 있는 것은 총이나 칼은 사용하는 것 이전에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나쁜 짓’이 될 수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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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나쁜 짓을 하면, 총이나 칼보다 무서운 몽둥이를 소지 하고 있는 선생님 이나 경찰이나 군인들에게 개 패듯이 맞아야만 하는 것이 응당한 일이다. 선생님 이나 경찰이나 군인들이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 것은 왜 나쁜 짓이 아닌가라는 데 에는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이유들을 생각하기 이전에, 본능적으로 내 얼굴은 창백해지고, 숨이 거칠 어진다. 뒤에서 앞으로 두 명의 옆모습이 뒷모습으로 바뀌어 가다가 그것이 돌연 앞모습으로 바뀐다. 젊은 남녀가 나에게 다가온다. 나는 가슴팍에 손을 집어넣 은 요상한 자세로 길 한복판에서 숨을 헐떡거리고, 무릎을 덜덜 떨고 있다. ‘아저 씨. 괜찮으세요?’ 라고 묻는 그 젊은 남녀는, 아마도 근래에는 보기 드문 착한 젊 은이일 것이다. 공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웬 아저씨가 창백한 얼굴로 가슴을 부 여잡고 후들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와서 친절하게 몸 상 태를 물어본다. 아마 도움을 요청하면 구급차를 불러줄 생각도 있겠지. 만약 응 급처치법을 알고 있다면 간단한 응급처치까지 해줄 생각일는지도 모른다. 갈수 록 삭막해져 가는 요즘 참으로 보기 드문 착한 젊은이다. 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에이 저 새끼들은 왜 갈길 가다말고 여기 와서 남에 일에 참견이야. 라는 생 각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전혀 엉뚱한 대목에서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말까지 더듬어 가면서 뱉은 말이 ‘저 아저씨 아닌데요 씨발’ 이었다. 젊은 남녀가 한걸음 흠칫 물러났다. 생각해보면 참 무모한 짓이다. 아침에 사 람도 많지 않은 공원 한복판에 인상은 드럽고, 오늘 아침엔 세수도 안했을 것 같 고, 눈 주위는 퀭한 남자가 가슴팍을 부여잡고 숨을 헐떡거리고 있다. 땀도 많이 안 흘린 것 같은데 왜 헐떡거리고 있겠냐고. 드디어 젊은 남녀는 자신이 지금 얼 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아차린 것 같았다. 혹시 저 남자 가슴팍에 권 총이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둘은 매우 자연 스럽게. 뭐야 이상한 사람이잖아, 라는 표정으로. 뒷걸음을 치는 것이다. 여기서 만일 노골적으로 두려운 표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상대방에게 덤벼들면, 그것이 상대방을 도발시켜 급기야 권총이 불을 뿜고 아침 산책 중에 비명횡사 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 가능한 침착하게, 나는 그냥 당신을 지나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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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새끼 정도로 생각하겠소. 라는 표정으로. 생각해보면, 그것도 그것대로 기분 나쁜 일 인데도, 나는 그 둘이 나를 향해 요상한 표정을 지으며, 사라지는 것을 보며 안도 의 한숨을 쉬었다. 한숨을 쉬면서 가슴팍에 쥔 권총을 만지작거린다. 씨발. 이제 이걸 어쩐다. 덜컥 버리고 가려고 해도, 왠지 찝찝하다. 이미 나는 경험하지 못한 하나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이기 때문에, 영화 같은데 보면 그냥 주인공이랑 인사 만 하는 것만으로도 죽어나가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잖아. 어쨌거나 나는 주인공 과는 영 거리가 먼 평범한 시민이고, 삶에 있어서도 엑스트라 이상의 역할을 평 생 못해볼 사람이기 때문에, 여기서 나의 지문이 묻어있는-아마도 묻었겠지- 총 을 버리고 간다면, 마침 화장실에 갔다 온 악당들이 총을 다른 사람이 만진걸 보 고는 ‘역시 후한을 없애두어야 해’ 라면서 나를 찾아 마구 총질을 하겠지. 하는 걱정도 들고 해서. 아니다 사실은 아무 생각 없이 나는 권총을 품속에 숨기고 집 으로 마구 달리기 시작한다. 아마도 아침 운동을 시작한 이래로는 처음으로. 빵 집이 채 문을 열기도 전에. 나는 빵집 옆을 지나쳐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평소엔 잠그지도 않던 현관 손 잡이 문에다가 보조 자물쇠까지 걸어놓고. 그제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 다. 그리고 곧바로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내가 지금 무슨 멍청한 짓을 한 거지.’ 잠시 차가운 현관문에 몸을 기대고, 가쁜 숨이 잦아들 때까지 나는 이 말을 되새 김질 하고 있었다. 내 손에 매달려 있는 차디찬 쉿 덩어리가 서슬 시퍼렇게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총을 들고 이러 저리 돌려본다. 맨 처음 총을 주워들었을 때와는 달리 흡사 맨손으로 젤리 덩어리를 만지는 것처럼 조심 스럽게, 건드리기만 해도 톡 터질 것 같은 비누방울을 구경하듯이. 권총에 혹시 일련번호라도 붙어있을까 돌려보았는데, 없다. 아무래도 사제품인 것 같다. 라 고 생각하고는 스스로 똑똑하다고 대견해한다. 탄창을 분리해서 총알을 하나 분 리해본다. 총알 뒷면에도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다. 이 나라는 일단, 성인으로 분 류된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총을 한번 만져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나라이기 때문 에, 나는 이것이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은 일종의 조립품, 내지는 밀수품이 라는 결론을 내렸다. 요즘에는 영화든 게임이든, 일반인에게도 총은 박물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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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럼 그 다양한 종류와 성능을 가상으로 시험해보고, 체험해 볼 수 있는 길이 마 련되어 있다. 그걸 통해서 뭘 어쩌고 싶은 건지 알 바 아니지만, 여튼 이런 때에 는 그런 경험이 제법 도움이 된다. 생긴 모양을 봐서 아마도 이건 베레타라는 모 델로 보였다. 넓은 범주에서는 똑같이 그냥 총일 뿐인데, 기능에 상관없이 품목 을 외우고자 하는 욕구는 도대체 언제부터 생겨난 걸까. 아마도 너와 내가 다르 다는 것을 사람들은 충족 받고 싶은 모양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걱정과 동시에 나는 약간의 흥분을 안고, 권총을 마른 헝 겊으로 깨끗하게 닦아서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그렇게 하는 중에도 계속 해서 옷으로라도 대충 닦아서 그때 그 자리에 버리고 오는 편이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그 공원에 가서 권총이 놓아져 있던 자리에 그걸 돌려놓겠다는 결심을 할 수는 없었다. 아니면, 인적 드문 시간을 택해 한강다리 위에서 권총을 던져버릴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만약 조직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나타나 권총을 내놓으라고 하면, “여기있소.” 하고 냉큼 갖다 바치는 것이 더 현명한 짓 이 아닐까라는 판단 하에 어떻게든 나만 알고 있는 장소에 보관해 부는 편이 좋을 것이라 판단했고, 결국 당분간 지켜보자.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극도로 긴장된 생활을 시작했다. 이게 정말 제대로 작동은 하는 권총일까? 혹시 정말 잘 만든 장난감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 것은 방안 구석에 권총을 놔두고 전전긍긍한지 거 의 한달 만에 든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극도로 긴장된 정신 상태와는 다르 게, 나의 평범한 하루는 도무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아침 8시 삼십 분에 일어나서, 조깅을 하고, 빵집에 들러 빵을 사고, 우유와 함께 빵을 먹으며 신문기사를 읽었다. 다만 달라는 것은 조깅을 하는 내내 나의 가슴 한편에 묵직한 쇳덩이를 달고 다녔다는 점과, 집에서 구독하는 신문의 숫자를 엄청나게 늘렸다 는 것이었다. 행여나 신문에 분실되거나 도난당한 권총과 관련된 기사가 있을까 싶어, 거의 모든 종류의 신문들, 심지어 각 지역신문들까지도 일일이 신청하여 구독했다. 처음 몇 주간은 ‘권총’이라는 단어를 놓치기라도 할까봐 거의 잡아먹 을 듯이 신문을 읽었다. 그러나 몇 주 후에는 쌓여가는 신문더미들을 보면서 ‘이 걸 잔뜩 뭉쳐놓고 거기다 권총을 쏘면 몇 장이나 뚫릴까?’라는 생각 따위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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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성건성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다. 한 달쯤 지나자, 내 키보다 높이 쌓여버린 신 문더미를 보며, 내 방에 정말 권총이 있기는 한가? 사실은 저거 그냥 장난감 아닐 까? 라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그날 밤. 나는 권총과 단둘이 대면하여 앉아 다 시 한 번 권총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조금 먼지가 쌓여있긴 했지만, 맨 처음 내가 얻은 정보 이상의 것을 얻지 못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권총을 분해해 볼 생 각은 하지 못했다. 겁나서 그랬던 건 아니고, 단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랐기 때 문이다. 영화에 보면 한손으로도 슥슥 만지니까 후두둑하고 분해되어 버리던데, 두 손으로 열심히 조물락 대봐도 분해는 커녕, 반질반질 윤만 났다. 그쯤 돼서, 나는 정말로 황당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쏴볼까 이거. 공짜 클래 식 공연 티켓이라도 경품으로 받은 사람처럼 평소 클래식이 나오기만 하면 꾸벅 꾸벅 조는 사람이라도, 공연 티켓이 귀하다는 것을 아는 이상, 가서 졸게 뻔하더 라도 남 주긴 싫은 것이 인간 아니던가. 주운 놈이 임자,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총 이라는 게 쏴야 총이지. 안고 있어봐야 둔기밖에 더 되겠는가. 어쨌든 나는 결 심했고, 사용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일종의 흥분을 느끼며, 고 조 되었다. 이른바 성능 시험이라고 하면 될까. 어쩌면 아주 마음착한 누군가가, 아니 총에 관해서는 나쁜 놈인게 맞겠지만, 익명의 누군가에게 친절히 선물한 것 은 아닐까. 아니면, 거대 기관이나 비밀 조직 따위에서 나에게 일종의 임상 실험 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평범한 누군가에게 총을 쥐어주면, 어떻게 행동할 것 인가 하는. 그런 걸 관찰하고 있고, 나는 관찰당하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총을 쏘고 나면, 실험 끝을 선언하고 총을 빼앗아 갈는지도 모른다. 어떤 결말이 나던 지 간에, 나는 이제 이 사소한 사건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문제는 어디서, 뭘 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허공에 발사하거나, 표적지를 그 려놓고 쏘는 것은 사실 당장에라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총소리.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인적이 조금 드문 곳이라면 총소리, 내지는 ‘마치 총 소리’ 같은 큰 소리 한번쯤은 사소한 일상을 두드리는 한 번의 망치질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일상이라는 것은, 경험으로 미루어 한 두 번의 망치질로는 꿈 쩍도 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나의 경험 속 수많던 나의 두드림에 비한다면, 총 소리는 내가 세상을 향해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가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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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묘한 흥분을 일으킬만한 일이었다. 무엇을 쏠 것이냐는 문제는 조금 더 고민이 필요했다. 먼저, 나에게 사람을 쏠 수 있을만한 용기가 있을 것이란 생각 은 들지 않았다. 사물을 향해 쏜다는 것은 총의 올바른 사용법이라 생각되진 않 았다. 어쨌든, 총은 뭔가를 죽이기 위해 발명된 물건 아닌가. 뭐, 그렇다고 날 쏠 순 없고. 그때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매일 아침 우리 집 앞에서 짖어 대는 똥개를 떠올렸다. 살인 충동이라는 거 보통 원한관계에서 출발 하는 게 아니 겠는가. 물론 내가 원한을 가진 대상이 기껏 지나가는 똥개였겠는가마는. 그러나 나는 갈수록 그 생각에 매우 강렬하게 사로잡혔다. 내 머릿속에는 그 똥개가 죽 어야할 이유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그 똥개가 죽어도 될 이유들을 떠올리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그 똥개가 없어진 세상에 대해 생각했다. 구차 한 변명이지만, 어쩌면 난 그저 내가 개보다는 낫다는 걸 증명해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날 밤, 이가 빠진 밥그릇하나에 먹다 남은 밥을 담아서 집 밖으 로 나왔다. 쯥쯥 소리를 내면서 주변을 잠시 배회하자 골목 구석에서 집나간 똥개 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아침마다 멍멍 시끄럽게 짖는 이유가 뭔지 진작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어서 말을 걸어본 건 아니고, 신문지 싸던 노끈을 목이랑 다리에 칭칭 감아서 임시 개끈을 만들었다. 똥개는 이른바 최후의 만찬을 한참 즐기고는 별로 끈을 당기지도 않았는데 나를 졸졸 따라왔다. 졸졸졸졸. 나 는 근처 야산으로 올라갔다. 간간히 들리던 차 소리가 멎고, 풀벌레 소리만 가득 해진 곳까지, 이놈의 똥개는 한번 짖지도 않고 신나게 따라왔다. 동네 야산이라도, 공원처럼 잘도 산책길을 만들어놓았다. 한참동안 길을 따라 올라갔다. 꽤 늦은 시간이라 인적은 없었지만, 사람이 만들어놓은 길이라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 다닐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오래도록 걸었다. 걷다가. 적 당한 지점을 발견하고 나는 길이 아닌 곳으로 발걸음을 틀었다. 그야말로 야산을 타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더뎌졌다. 뭔가를 느꼈는지. 이놈의 똥개도 순순히 따 라오기를 포기하고 여기저기를 킁킁대며 내가 목줄을 끌어당길 때에만 낑낑 소 리를 내며 끌려왔다. 개가 큰소리로 짖어대기 시작했다면, 아마 나는 그 자리에 서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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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이 제법 거칠어진 것을 느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달빛이 몹시 밝아서 가 져온 손전등을 의지하지 않아도 어려움 없이 걸을 수 있었다. 적당하다 싶은 장 소가 나타나서 나는 일단 똥개를 근처 커다란 나무에 짧게 묶었다. 한발자국정 도 물러났다. 너무 가까운 것 같아서 한발자국 더 물러났다. 또 물러나고, 물러나 고, 발걸음이 물렁물렁 해질 때 까지 물러나다보니까 이제는 총을 쏴도 저걸 맞 출 수 있을까 싶은 거리까지 물러나고 말았다. 똥개는 쪼그리고 앉아서 나를 관 찰하고 있었다. 분명, 앉아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나는 마치 개가 나를 내 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어쩌면, 단순히 경사 때문이었 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좀 더 무서운 눈으로 똥개를 노려보며 가슴 안쪽의 주머 니에서 권총을 꺼내어 그러쥐었다. 바르르. 긴장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자 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가. 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니 까,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 소중한 생명을 지 금 내가 막 짓밟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뜻밖에도, 웃음이 나왔다. 사실, 웃 지 않으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웃음에 실어 숨을 내보내는 느낌이었다. 저 똥개 자식은 마치, 아니 분명히, 나를 깔보듯 노려보고 있었다. 건방진 자식이. 아니, 건방진 개자식이. 날씨 때문인지, 금속의 총 손잡이가 더 차갑게 느껴졌다. 식은 땀이 나서 제대 로 총을 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총을 꺼내고 탄환을 장전하고 그냥 그것 뿐이었 는데, 나는 방망이 깍던 노인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일련의 동작들을 경건한 자세로 해냈다. 양 손으로 총 손잡이를 감싸쥐고 총구를 들어올리면, 총이 천근 처럼 느껴졌다. 찰칵. 하고 장전되는 순간 시한 폭탄을 쥔 것처럼. 똥개는 여전히 나를 보며 혀를 헥헥 거리고 꼬리를 흔들고 있었는데. 나는 아마도 지나치게 비 장한 표정으로. 똥개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 정말 쏠 수 있을까. 사람을 쏘는 것 도 아닌데. 그냥 똥개 한마리인데. 근데. 내가 왜 이걸 해야하지. 똥개 한 마리를 앞에두고 권총 한자루를 쥐고, 너무 철학적인 사유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는 스스로가 바보 같아서. 나는 오기가 났다. 총을 겨누었다. 가늠쇠 사이로 보이는 똥개가 작아졌다. 너무 멀다. 한발. 다가 간다. 또 한발. 다가간다. 또 한발. 다가간다. 한방에 맞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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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발. 또 한발. 똥개의 움직임이 느려진다. 나를 본다. 빤히. 총구를 바라본 다. 미안하다. 똥개야. 쾅. 하고, 생각했던 생각보다도 더 커다란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서 나 는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화약 냄새와 함께 주변이 조용해졌다. 창피한 말이 지만, 나는 꽝 소리가 나는 그 순간 눈을 감고 말았다. 그 잠시 동안 나는 커다란 개를 타고 초원을 달리는 꿈을 꾼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문득 주위에 풀 벌레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는 저 앞에서 웅크리고 움직이지 않는 똥개를 보았다. 왜인지는 모르 겠지만, 나는 미처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팔과 엉덩이만을 사용하여 그 자 리를 벗어났다. 내리막을 구르듯 내려오면서 산의 경사를 이용해 겨우 일어날 뛸 수 있었다. 꽤 많이 굴렀었는데, 산에서 몇 번을 굴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집 에 돌아왔을 때, 나는 권총을 여전히 손에 쥔 채였고, 깜짝 놀랐으나, 권총을 얼 마나 꽉 쥐고 있었는지 권총을 손에서 떼어내기 위해 다른 손을 사용해야 할 정도 였다. 지저분한 옷을 세탁기에 돌리고 목욕을 하고 나온 뒤에도 희미한 화약 냄 새가 어딘가 남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어 연거푸 잔을 들이킨 뒤에야 나는 겨우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날 꿈에서 나는 개 의 등을 타고 달리는 꿈과 등에 개를 태우고 달리는 꿈을 번갈아 꾸었다. 그리고 다음날 눈을 떴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고, 오만종류의 신 문을 샅샅이 뒤졌지만, 잃어버린 사제 총기 지금 어디에, 산속에서 총에 맞은 똥 개의 변사체 발견, 과 같은 시시한 기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고, 한 때 상 상해봤던 음모론, 혹시나 누군가가 나를 관찰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위를 살폈지만, 역시 이것도 전혀 이상한 낌새가 없었다. 동네에 떠도는 괴소문이라도 없을까 하여 조깅 코스를 바꿔 뒷산을 서성거리기도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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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나 아무 기미도 없었다. 조금 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인류의 일상은 나의 보 잘 것 없는 총질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는 느낌이었다. 사람을 쏴볼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것은 그 후 내가 분명 개를 쐈던 그 뒷 산, 몇 번이나 산을 헤매봤지만, 어디서도 그때의 그 장소와, 총에 맞은 개와, 총 에 맞은 개의 피, 따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다시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왜인 지는 모르겠지만, 몇 군데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어째서인지 모 르겠지만, 나는 늘 안주머니에 권총을 가지고 면접을 보러 가곤 했다. 아마도 그 래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취직을 했고, 보잘 것 없는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 다. 권총은 여전히 반질반질 윤이 나고 있었고, 나는 아마도 그것을 평생 쓰지 못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우리 집 골목에 살고 있던 똥개 한 마리를 죽였 다는 사실, 그것을 누구도 입증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 사소한 사건이 나에게 가 져온 것은 아마도 내가 그토록 바라던 작은 변화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_끝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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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나 미워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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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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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편집장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 으로는 먹고살기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깨달아, 다른 노동으로 돈을 벌면서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 을 심각한 취미 로 여기고 살아가는, 대한민국 남자 사람 노동자. * 꽤 애호가 무심하게 마침표 찍기 보다는 쉼표와 함께 생각하고 싶으며, 간단히 재단하기 보다는 시 간이 걸려도 상세히 이야기하고 싶다. 구불구불한 골목 어귀를 걸으며 긴 대화 나누는 것 을 좋아한다. 삶의 태도로써의 예술을 지향하고, 그것이 결국은 삶을 예술로 만듦을 믿는 다. 길을 잃었을 때라야 비로소 도시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듯이, 예상치 못하였던 시간 을 통해 즐거운 사람들을 만난다. 놀다가, 걷다가, 이야기하다가, 웃다가 하는 이 공간이 즐겁다. * 다르덴 자매 다들 행복하기만 한 거 같아서 불편했다. 그럴 리가 만무한 거 같아 영화를 보기 시작했 다. 영화를 보면서 삶이, 행복이 무언지 조금씩 생각을 고쳐먹었다. 얇고 짧은 생이라 이 렇게 몇 자라도 쓰다보면 통찰이 돋아나는 날이 오겠지 싶어 <놀다가,>에 투신(?) 해 보 기로 했다. * 대충 소설가 적당주의자: 한탕주의적이고 무사 안일한 현실주의적 비관론자. 즉, 어차피 세상 사는 거 한번이고, 결국 로또는 누구한테든 터질 것이지만, 어쨌든 나는 안될 것이고, 그렇지만 뭐, 모두들 어떻게든 살지 않겠어? 라며 하루하루 실실 쪼개며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 게 나다. *랼 <지구랑 친구하기>의 가내수공업자. 일회용품 사용을 멀리하고, 손수건과 개인물통(텀블 러)을 항상 들고 다닌다. 환경과 건강을 살리는 생활실천이 바로 <지구랑 친구하기> 생활 소품의 시작이라는 모토로 오늘도 재봉틀을 돌린다. www.chiguya.com * 산초 일상과 일탈사이를 방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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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문화잡지 월간 <놀다가,>는 덜 벌고 더 노는 세상을 꿈꿉니다. 혼자 놀기보다 같이 노는 세상을 꿈꿉니다. 완벽한 전문가 보다는 투박한 아마추어를 사랑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느낌, 생각, 이야기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같이 놀까요?

거의 문화잡지 월간 <놀다가,> 2013년 8월 12일~ 9월 30일 4호 ‘4’ http://noldag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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