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다가 8호 - '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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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8



지구랑 친구하기 UPCYCLE HAND MADE 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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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 4


덜 벌고 , 더 노는 세상을 꿈꾸며.

<놀다가,> 5


곁: 어떤 대상의 옆 또는 심리적이나 공간적으로 가까운 곳. 위키낱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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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 있어줘 에릭 쿠, 2005

<놀다가,> 7


곁에 있다고 같이 있는것도 아니고, 같이 없다고 곁에 없는것도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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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어디에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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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contents 2015년 9월 10일 / 8호

여는글

간만에 또 나왔습니다!

11p

놀다가 책

15p

놀다가 음악

너무 많은 ‘곁’ 대하여

주제파악 놀다가 아트 놀다가 영화

당신, 곁의 누군가

<놀다가,> 10

13p 22p 32p 40p


여는글

간만에 또 나왔습니다! 기다리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고, 이런 잡지가 있는지조차 아는 사람이 드물지만, 나오긴 나왔습니다.

이번 호 주제는 ‘곁’ 입니다. 사회학자(??) 엄기호 님이 요즘 많이 하시는 말씀에 영감을 얻기는 했지만, ‘곁’ 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계속 생각할 때마다 묘한 여운을 주는 것 같습니다.

가을이 오는데, <놀다가>를 통해 ‘곁’ 에 대해서 이런저런 잡생각을 해 볼 수 있다면, 우리는 뿌듯할 겁니다.

근데, 그거 아세요? 이거 벌써 9번째인데~ㅋ 우리가 9번이나 이 짓을 했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짓을...

<놀다가,> 11


<놀다가,> 12


주제파악

“곁을 파괴하고 편을 강요하는 것, 이는 우리 사 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곁은 파괴되고 편으 로 몰아가는 사회. …(중략)… 편의 정치는 끊임없이 적대를 창조하고 그 적대로 사람들을 몰아가며 너는 누구 편이냐고 윽박지르 며 ‘곁’을 파괴한다. 둥글게 모여 앉아 자신의 경험을 다른 이에게 참 조점(reference)이 될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고 남의 이야기를 또 그렇게 들으면서 성장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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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호, 『단속사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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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 책

‘곁’이라는 단어

선택한 것 같기도 하고, 주어진 것 같기도 하다. 곁에 선 사람은 곁에 서기 로, 혹은 두기로 한 그 결정의 주체를 대체로 모호하게 남겨둔 채 언제부터인 가 그 자리에 있다. 예민하게 감각하지 않는다면, 보통 곁이라는 공간은 부재 를 통해서 인식된다. 즉, 우리는 대체로 누군가 곁에 있다고 느끼기보다는 ‘ 곁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 기분’을 종종 강하게 느낀다. 누군가 내 곁에 있어 주기 원할 때, 비로소 내 곁에 있었던 사람과 그렇지 않았던 사람이 드러난 다. ‘곁’이라는 말 속에는 공간과 심리적 거리감으로서의 의미가 혼재되어 불 명확한 채로 그러나 매우 직관적으로 인지된다. 그러므로 곁에 있지만 곁에 없고, 곁에 없지만 곁에 있는 것이 가능해진다. 곁이라는 단어에는 묘한 울림 이 있다. 곁이라는 단어 속의 공간적인 의미와 심리적인 의미는 어느 쪽이 더 결정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곁이라는 단어는 때론 어떠한 분명한 실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고, 동시에 ‘관계 그 자체’를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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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다. ‘존재의 허무를 자각하는 순간’ 이라고 하면 허세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쉽게 말하자면 ‘진짜 위로’가 필요 한 순간들. 굳이 진짜 위로라고 구분하는 이유는 우리가 대체로 소비하는 ‘위 로’라는 단어가 너무 가볍고 값싸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로를 누군가에게 전 해주는 어떤 메시지나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진짜 위로’에서는 나를 향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내 목소리를 들어주는 누군가의 존재가 더 중 요하다. 정말로 내 말을 들어주는 존재, 아니 내가 하지 않은 말들, 차마 토해 내지 못한 채로 가슴 깊숙이 쌓여있는 어떤 것들까지도 들어주는 것. 차마 토 해낼 수도 없었던 절망까지도 읽어주는 존재. 알아주는 존재 말이다.

삼십대 - 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 초 中 )

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 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 뿐, 뭐 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 은 참 좋은 일이지, 공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나, 삼십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에 고여 있는 하얀 피, 꿈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에 니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너랑 닮은 새였다(제발 날아가지 마), 삼십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 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에 몸 들뜨나, 산책에서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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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면 이 텅 빈 방, 누군가 잠시 들러 침만 뱉고 떠나도, 한 계절 따뜻하리, 음 악을 고르고, 차를 끓이고, 책장을 넘기고, 화분에 물을 주고, 이것을 아늑한 휴일이라 부른다면, 뭐, 그렇다 치자, 창밖, 가을비 내린다, 삼십대, 나 흐르는 빗물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간다

드라이아이스 - 김경주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中) - 사실 나는 귀신이다 산목숨으로서 이렇게 외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문득 어머니의 필체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고향과 나 사이의 시간이 위독함을 12월의 창문으로부터 느낀다 낭만은 그런 것이다 이번 생은 내내 불편할 것

골목 끝 슈퍼마켓 냉장고에 고개를 넣고 냉동식품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만져버린 드라이아이스 한 조각, 결빙의 시간들이 피부에 타 붙는다 저렇게 차게 살다가 뜨거운 먼지로 사라지는 삶이라는 것이 끝내 부정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손끝에 닿은 그 짧은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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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적막한 열망보다 순도 높은 저 시간이 내 몸에 뿌리내렸던 시간들을 살아버렸기 때문일까 온몸의 열을 다 빼앗긴 것처럼 진저리친다 내 안의 야경(夜景)을 다 보여줘버린 듯 수은의 눈빛으로 골목에서 나는 잠시 빛난다 나는 내가 살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순교할 것이다 달 사이로 진흙 같은 바람이 지나가고 천천히 오늘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 공기들이 동상을 입은 채 집집마다 흘러들어가고 있다 귀신처럼.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 시는 좀 어렵다. 변명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시집 을 찾아서, 사서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의외로 시는 주변에 많이 있다. 당 장에 지하철을 타러 가도 스크린 도어 옆에 수많은 시가 쓰여 있다. (선정 기 준이 의심스럽긴 하나) 나는 지하철을 기다리며 즐겨 그 시들을 읽기도 한다. 교과서에서 익히 보아왔던 유명한 시의 구절들은 흔하게 인용되고, 또는 변 용되면서 소비된다. 언어영역 시험지에서 수십 번씩 읽어야 했던 윤동주와 김수영 같은 시인들의 시. 그러나 그때는 그저 빛나지 않았을 뿐, 그 시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그때 그 시 한 구절이, 수십 번 장난처럼 되뇌던 그 한 구절이 어떤 날 번개처럼 내 삶의 슬픔과 교차하면서 울림을 주는 경험 같은 것들. 그것도 시의 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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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들려주지 않고, 다만 이야기한다. 치명적인 섬세함으로 그 어떤 응 어리들, 그 속내를 아주 적확한 언어로 묘사해내고, 그것이 때로 시를 읽는 독자의 마음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면서 나조차도 몰랐던 내 안의 어떤 것을 읽어내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소설이 보여주려는 노력이라면 시는 이해하 려는 노력이다. 시가 이해하려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나라는 인간이지만, 이 이해의 어떤 깊숙한 지점에서 우리는 시인과 나 자신의 일종의 유대감을 경 험한다. 가짜 유대감이 아니라 진짜 유대감 말이다. 나는 도무지 너를 이해할 수 없고, 나는 도무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을 때,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너 와 나의 어떤 연결점이라고 하면 될까.

어떤 시집, 어떤 시인을 소개할 수 있겠지만, 나는 오늘은 시를 읽는다는 그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시라는 장르는 독특한 장르 다. 사실 장르라고 이름 붙였지만, 멋대로 말하자면, 시는 모든 문학과 예술 장르의 근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시는 어떤 장르가 아니라 그냥 시다. ‘태초에 시가 있었고, 시로부터 노래와 이야기와 모든 것들이 나왔다’ 고 말해도 나는 불만 없다. 한낱 글쟁이와는 다른 위대한 시인들이라고 말해 도 좋다. 나에게 가장 위대하게 보이는 예술가는 바로 시인이다. 그래서 나도 시를 사랑한다. 사랑하지만,

나는 시가 ‘곁’이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하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곁은 구원과도 같은 존재다. 내 편이 없다면, 나는 패배한다. 하지 만 내 곁이 없다면, 나는 살아갈 수 없다. 곁은 삶의 아슬아슬한 순간을 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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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해주는 존재다. 그래, 가족 같은 존재, 둘도 없는 친구 같은 존재다. 동시 에, ‘곁’이라고 하는 것. 소중한 존재라고 말은 하면서 우리는 잔인하리만치 곁에 대해 냉담하다. 평온한 삶에서 곁은 그저 곁에 있는 존재들이다. ‘있는’ 존재들. 평범한 존재들이다. 그 존재들이 비로소 빛을 발하는 순간은 그 존재 들이 없으면 쓰러질 누군가의 곁에서다. 나의 책상 위에도 가장 가까운 책장 중 하나에 시집들이 모여 있다. 그곳에서 먼지를 맞으며 있는 듯 없는 듯, 존 재하고 있다. 평소엔 쳐다보지 않지만, 아주 가끔, 그 책들이 내 책상 한구석 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그 페이지들을 훌훌 넘겨 보며 오래된 구절들을 읽거나 중얼거린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아주 가끔은 그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신을 구원할 시 한 구절, 그리고 그 시 한 구절과도 같은 사람이 당신 곁 에 존재하길 바란다. _대충 소설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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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 없음: 너 거기에 홀로 서라.

“곁을 파괴하고 편을 강요하는 것, 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곁은 파괴되고 편으로 몰아가는 사회. …(중략)… 편의 정치는 끊임없이 적대 를 창조하고 그 적대로 사람들을 몰아가며 너는 누구 편이냐고 윽박지르며 ‘ 곁’을 파괴한다. 둥글게 모여 앉아 자신의 경험을 다른 이에게 참조점(reference)이 될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고 남의 이야기를 또 그렇게 들으면서 성장 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1

‘곁’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은 편을 가르고 곁을 파괴하는 사회를 지적했던 엄기호의 『단속사회』 덕분이었다. 존재를 신뢰하며 서로를 비추고 비추어주 는 존재들의 연대로서 ‘곁’, 단어에 온도가 존재한다면 이 단어는 얼마나 뭉 클한 것일까. 내게 곁이 있다 함이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그러나 ‘곁’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올리게 되는 표현은 아이러니하게도 ‘곁 없음’, ‘곁이 사라진 사회’와 같은 것이다. 1. 엄기호, 『단속사회』, 파주: 창비,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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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아트 뉴스를 가득 메우는 비극적인 사건들은 그 근거가 된다. 뉴스에서는 곁의 책 임과 그 부재로 인한 비극보다는 정책의 활용과 복지예산의 확충을 말하곤 하나, 절실함이 더해지는 것은 곁, 부재함으로 그 존재감을 더하는 이름이다. 저 이에게 곁이 있었더라면, 저 이를 지탱하고 함께 삶을 감내하는 이들이 있 었더라면. 온기를 빼앗긴 삶의 말로, 고독한 죽음에 대해 도대체 누가 개인의 능력 없음을 말할 것인가.

이동욱, Good boy, 2012, mixed media, 20x120x8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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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의 시선은 바로 그 곁 없음의 자리를 포착한다. 다양한 작품으로 변주 되는 이동욱의 중심 모티브는 벌거벗은 몸뚱어리를 한 인간이다. 주로 홀로 등장하고, 여러 명이 등장한다 한들 여전히 따로 서 있거나 혹은 엉켜 붙어 그저 또 다른 살덩어리를 이룰 뿐이다. 그러고 보면 ‘곁’의 반대말은 엄기호 의 분석에 따르면 ‘편’이고, 이동욱의 작품을 빌리면 ‘홀로’이겠다. 위태로운 홀로의 상태. <Good Boy>에서는 한 사람이 반려견(들)과 함께 서 있다. 아 주 단순화하면,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여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일 수 있겠지 만, 설치를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것은 아슬아슬함이다. 개를 산책시키며 ‘굿 보이’라며 다독이는 개 주인보다는 개들에 끌려가는 포로의 모양이고, 사방 으로 흩어진 개들이 제각기 뛰기라도 했다간 사지가 찢길 것 같은 사형수의 모양이다. 더구나 교수형 대에 오른 죄인의 목에는 올가미가 드리워있으니, 개든 올가미든 이 인간은 사지에 있음이 분명하다. 이쯤 되면 굿보이라는 도 닥거림을 받으며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은 개(들)인지, 사람인지 불분명해진 다. 홀로 막다른 지경에 이르렀을 때, 이 이의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힘들 게 높은 곳에 올라섰다 하여도 그곳은 교수형 대로 보일 뿐, 구원의 빛은 보 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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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Untitled, 2013, mixed media, diamonds, 3.5x5x1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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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이에게 타인은 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밟고 올라서거나, 내게 밟히는 대상, 즉 편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편’은 상대방을 내 편으로 포섭하 기보다는 먼저 내 편 아닌 적으로 밀어낼 때 더 강력한 위력을 펼치는 법, 적 의 얼굴 위에 올라설 때에야 비로소 승리자로, 그를 대항하여 자신을 구원한 이로 부상하는 것이다. 이동욱의 또 다른 작품에 등장한 사람은 다른 이의 얼 굴을 두 발로 밟고 올라섰다.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올라선 이가 두 손 에 쥐고 있는 것은, 밟힌 이의 뽑힌 눈(무려 다이아몬드!)이다. 눈을 뽑고 거 머쥔 대승인 셈이다. 그러나 그 승리의 모양은 개척자의 그것으로 보이지 않 는다. 도리어 운명에 거스르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눈을 뽑고만 그리스신화 의 오이디푸스가 떠오르는 위태로움이, 그 긴장이 느껴진다. 경쟁에서는 승 리하였으나 여전히 헐벗은 몸뚱어리로 홀로 존재한다. 수십 마리의 개이든, 승리든, 혹은 달콤한 꿀이든 간에 그 존재를 궁지에서 구하지는 못한다. 홀로 서 있을 뿐이다.

곁은 부재함으로 더욱 절실하며, 그 존재감이 더하여진다. 곁을 포착하여 표 현하기보다는, 곁 없음이 전달해주는 절절함과 그 위태로움이 더 큰 것과 같 다. 오늘날에 와서 ‘곁’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는 것은 더더욱 곁을 찾아볼 수 없음에 기인하는 것일 수 있겠다. 또한, 그 곁 없음을 포착하는 작품은 어쩌 면 상처를 더 쓰리게 하는 것 같기도 하나, 그 쓰림이 허상이 아닌바 돌아보 아야 할 아픈 자리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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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투되고 침투하는 당신과 당신의 곁

부재함으로 곁의 의미가 더 드러난다면, 그 곁의 실체는 무엇인가. 국어사전 에서는 곁을 ‘1. 어떤 대상의 옆. 또는 공간적ㆍ심리적으로 가까운 데. 2. 가 까이에서 보살펴 주거나 도와줄 만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이 글에서 말하 는 의미에 가까운 것은 2번의 정의일 것이다. 다만 행위로서의 도움을 주고받 는 대상에 그치기보다는, 엄기호의 설명을 빌어 첨언하자면 서로에게 ‘참조 점’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되겠다. 한 걸음 나아가 내게 곁은 ‘상호 침투할/될 수 있는 관계’라는 의미를 지닌다. 침범의 의미이기보다는, 먼저는 서로에게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으며, 서로가 거리를 두고 외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향을 주고받는, 즉 그(녀)의 어떠함이 내게 침투하며 반대로 내가 그(녀)에게 침투할 수 있는 관계. 그 과정에서 각자의 경계가 흐트러지는 것 은 불가피하며 결국 더 취약해지겠으나,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깊이 신 뢰하고 서로를 지탱하는 관계. 침투되고 침투하는 관계, 그러나 공격이 아니 라 깊고 풍성하게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 그것이 내게 곁이 가지는 의미이다.

전혁림의 추상은, 바로 그 곁의 의미를 끌어내는 데가 있어 내 발길을 붙잡는 다. 시각적인 언어로 설명하자면, 교집합 없는 개별 집합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겹쳐지는’ 관계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때 그 만남의 지점에서 각 각의 색깔은 여전히 별개로 있는 것 아니라, 피차 변화한다. 침투되고 침투하 는 교집합의 영역들, 이것이 이 추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지점이자 또한 곁을 곁으로 존재하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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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혁림, 구성,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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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전혁림의 구성은 곁으로 서로 겹쳐지고 또 겹치면서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일종의 ‘연대’로 읽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럴 때라야 다양한 개별 오브제의 색깔 이상으로 다층적이고 풍성한 풍경을 이룬다는 점은 굳이 언급 하지 않아도 좋겠다. 혼자 있는 나무가 아니라 함께 하는 숲의 추상으로 이끄 는 것이다. 이 여러 도형이 더불어 이루는 숲이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곁의 풍경과 같아서, 식상한 표현이나 참 좋았다.

그리고 여기 너머 곁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 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 만 같다.”2

그때의 곁의 연대는 어디에까지 이를 수 있나. 이곳을 넘어 확장될 수 있는가. 좁은 의미의 곁만을 의지한다면 개인에서 작은 집단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었 을 뿐, 이기의 추세는 여전할 테다. 도리어 내 곁에 있지 않은 이방인에 대해 혐오를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혐오 발언(hate speech)을 내뱉는 이들에 게 곁 없음을 지적할 수 있겠으나, 좁은 곁의 범위를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 다. 이 지점에서, 각자가 가진 역사 인식의 두께에 따라 현재를 감각하는 감 수성이 달라지게 된다는 황현산의 글이 힌트가 된다. 근시안적으로 눈에 보 2. 황현산, “과거도 착취당한다”, 『밤이 선생이다』, 파주: 난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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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현재를 감각하는 것만이 합당한 인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가진 역사에 대한 인식이 ‘현재’의 두께를 다르게 만든다. 때문에 잘살아보자는 구 호에 역사를 거스르는 선택을 집단적으로 하게 되기도 하고, 번듯한 내 생활 조건을 가지고 그저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살고 있다고 진단되는 어떤 이를 업신여기기도 하는 것이다.

곁의 문제라 한들 여기에서 멀 것 같지가 않다. 나와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공유하는 가족이 내 곁이 되기도 하겠고, 같은 학교나 직장 소속을 공유하는 이들 역시 내 곁이 되기 쉽겠으나, 그가 가진 사회에 대한, 더 나아가 공동체 에 대한 인식이 가진 넓이에 따라 그 범위는 더 확장될 수도 혹은 더 축소되기 도 하리라. 그렇다면, 침투하고 침투되는 관계는 물리적 혹은 정서적 소통과 인접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나, 그 범위를 넘어서 더욱 넓은 의미의 곁을 삶에 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보다 우리네들은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특정 세 대의 경험, 어떤 경험으로 인한 아픔, 보편적인 상처와 사랑. 가까운 곁을 통 해 돌아본 내용까지 포함하자면 그 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그러한 시선으로 생각해보면, 서울 집값을 보며 걱정하는 내게 노숙인은 멀지 않은 이이며, 이 국의 땅에서 무력감과 두려움을 느껴보았던 내게 난민이나 이주노동자 역시 멀지 않은 이들이다. 사람에 사랑에 가슴 쓰렸던 내게 결혼이주여성의 삶은 사랑과 결혼, 친정 가족과 돈이 얽힌 복잡성이 상당하지만 ,그 여인의 마음만 은 여전히 멀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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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적으로 곁인 척 다가오는 입바른 말들은 사양하기로 하자. 통신회사 상 담원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며, 고객의 편의를 위한다는 카드회사의 수법은 내 살림살이를 챙겨주는 곁인 체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누가 모르나. ‘곁 없음’의 아픔을 덜기 위해서는 정책의 수정과 예산 증축도 도움이 될 수 는 있겠으나, 가장 정직한 대안은 ‘곁 있음’이다. 누군가는 곁으로 가 앉고, 그 자리를 고쳐 시선을 열 일이다. 그 곁의 온기, 침투하고 침투되는 빛은 어느 것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므로.

(다만 쉬이 말만 할 일인가. 나부터 돌아볼 일이다.) _꽤 애호가_

참고자료 및 출처.

_ 이동욱 작품 사진 출처: 아라리오갤러리http://www.ararioseoul.com

_ 전혁림 작품 사진 출처: 웹에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참고하려 찍었던 개인 사진으로 대체함.

_ 이동욱의 작품은 옛 공간사옥을 개조한 아라리오 뮤지엄의 개관전시 <리얼리?>에서 현재 볼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라리오뮤지엄 홈페이지에서 참조. http://www.arariomuseum.org/ _ 전혁림 미술관, 통영 소재. http://www.jeonhyuckli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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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음악

너무 많은 ‘곁’ 대하여

0. I got too many friends Too many people That I’ll never meet And I’ll never be there for I’ll never be there for Cause I’ll never be there ‘Too Many Friends’ -Placebo- <Loud Like Love> 2013

1. 돌이 좀 지난 아기와 지하철을 탔었다. 아기의 밥때가 되어 어쩔 수 없이 준 비해온 주먹밥을 먹이는데 옆과 앞에 앉아 있던 어르신들이 한마디씩 했다. 잘 먹는다는 칭찬에서부터 시작해 몇 개월 됐느냐, 우리 손주도 몇 개월 됐다, 과자 같은 거 먹이면 안 된다, 밥을 먹여야 한다, 어떤 음식이 좋다, 이런 음식 을 만들어 줘야 한다, 등등 모든 분이 한 마디씩 보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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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말에 감사하긴 하다. 다 아기가 예뻐서 하는 말들이지 나쁜 마음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솔직히 귀찮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아기에게 밥 한 숟가락을 먹이는 것도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스포츠인데, 동시에 훈 수 두는 말들에 맘 상하지 않게 적당히 답해야 하는 건 솔직히 피곤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미소 만을 받고 싶다.

2. 회사에서 회사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으니 ‘좋아요’를 눌러 달라고 했다. 나는 대답만 하고 누르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회사에 다니고 싶은 사람이다. 회사는 나의 기본적인 정보 외에는 아무것도 몰라 주었으면 한다. (하긴… 그 기본적인 정보가 이미 치명적인 정보이긴 하다) 회사를 위해 ‘좋아요’ 한 번 누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좋아요’를 누름으로써 나의 페이스북 프로필과 사진들, 포스팅 등이 그들에게 노출되는 것이 싫었다. 나는 나의 기 호와 사상을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커밍아웃하고 싶지 않다. 깔끔하 게 서로가 합의한 계약 관계로서의 예의만 지켜 주었으면 좋겠다. 별로 친하 지도 않은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친한 척 해야 하는 사람이 내 인생의 영역으 로 침범해 들어 오는 것이 나는 싫다.

3. SNS를 보면 누가 어디에 누구와 함께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나는 그런 포스팅들을 볼 때마다 음험한 상상을 한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사람의 하루를 쉽지 않게 추적할 수 있으며, 그 하루하루를 모으면 그 사람의 패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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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행동, 혹은 그 사람의 앞으로의 행동도 예측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쉽게 누군가를 스토킹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SNS 를 통해 우리는 이미 거대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누군가를 스토 킹하고 언제라도 뒤를 캐낼 수 있는 도구를 하나씩 다 가지고 있는 셈이다. 당 신이 잠든 사이에 누군가 당신을 엿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 곁에 있 는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4. 신용카드 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았었다. 지금 쓰고 있는 카드로 공과금을 자 동이체해 놓으면 할인 혜택이 있으니 이용해 보라는 전화였다. 여기까지는 흔한 광고 전화였다. 하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내가 원한다면, 내가 지금 이 통화 상태에서 내가 승인만 해주면, 자동으로 자동이체를 신청해 준다는 거 다. 내가 추가로 해야 하는 절차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지금 내가 오케이 사인만 주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었다. 나는 왠지 찝찝한 마음이 들어 내가 알 아서 하겠다고 하고 전화를 끓었다. 그리고 카드 회사의 오지랖에 대해서 생 각했다. 내 가정의 공과금 할인까지 챙기다니….

생각해보면 이런 비슷한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내가 가입해 놓은 인터 넷 사이트에서는 매년 내 생일 때마다 생일 축하 문자와 이메일 보낸다. (내 가족은 물론이고 나 자신조차 깜빡할 때가 있는 내 생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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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Placebo)는 1994년 영국에서 결성된 얼터너티브 록 밴드이다. 지금까지 5장의 정규 앨범과 6장의 EP 앨범, 27장의 싱글 앨범을 발매했다. 그들은 비영어권 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적으로 적지 않은 인지도를 얻었다. 또한, 영국에서만 백만 장, 전 세계에선 천만 장 이상의 앨 범 판매고를 달성했다. 포스트 그런지로 시작한 밴드는 1집 발매 이후 신시사이저와 같은 악기들과 전통적인 음색을 이 용하여 좀 더 부드러운 음악을 하게 되었다. 멤버 브라이언 몰코(Brian Molko): 메인 보컬, 기타, 하모니카, 키보드, 색소폰 , 작사담당 스테판 올스달(Stefan Olsdal): 베이스 기타, 키보드, 보컬 스티브 포레스트 (Steve Forrest) : 드럼, 보컬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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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서핑을 하다가도 섬뜩해질 때가 있는데, 내가 좀 전에 검색해본 상품의 광 고가 인터넷 창 옆이나 중간에 주르륵 뜬다거나, 유튜브에 들어갔을 때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영상만 골라 윗자리를 채우고 있을 때이다. 나의 선호를 인터 넷이 꾸준히 기록하고 분석한다는 데서 오는 섬뜩함이다. 이렇게 관심과 오 지랖, 그리고 집착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5. 나는 아파트에 산다. 1년여 살다 보니 양 옆집과 아랫집 할머니하고는 지나가 다 마주치면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이상까지는 별로 바라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이상의 다른 얼굴은 알지 못한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SNS를 사용하게 된 후로는 연락이 뜸했던 사람에게 연락할 일은 없어졌다. SNS를 통해 그냥 알 수 있으니까. 얼마 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간 친구가 있 다. 친했는데, 결혼하고 서로 바빠서 만나지 못했었다. 결국, 얼굴 한번 못 보 고 유학을 떠났지만, 멀리 있다는 느낌은 없다. SNS 상에선 늘 가깝게 있으 니까.

SNS 안에 친구 목록 중에는 내가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때로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친구로 등록되어 있다. 대부분은 누구의 친구, 혹은 누구 친구의 친구 같은 식으로 내가 추가한 사람도 있지만, 도무지 누구인지, 왜 내가 이 사람 을 친구로 추가했는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친구들의 소식까지도 별생각 없이 쳐다보고 있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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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안에 전화번호부는 이미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범위를 넘었다. 전화 번호 목록을 보고 있으면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분명히 내가 저장해 놓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누구이기에 내 전화 번호부에 있는지.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SNS에서 내가 그 사람을 친구로 등록한 이유가. 스마트폰 전화번호부에 그 사람의 연락처를 저장했던 이유가. 그런데 기억을 못 한다는 건, 노화로 인한 단순한 기억력 감퇴의 문제만은 아 닐 것이다.

어떤 사람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는 건 아닌 지, 알아야 할 사람과 몰라도 되는 사람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은 아닌지 생 각했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은 쉽게 잊어버리듯, 사람도 그렇게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0’ 내 곁에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매우 많지만, 우리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지? -거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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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영화

당신, 곁의 누군가 <브로큰 플라워 (Broken Flowers, 2005)>, 감독 짐 자무쉬

옛날부터 ‘영감(다른 말로 아저씨)’이 좋았다. 영감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었 고 아직은 소년의 감성을 가진 어딘가 모르게 나른한 그런 아저씨가 좋았다. 다소 예의 있는 듯 보이나 실은 다 귀찮아서 적당히 선을 긋고 살아가는 그런 나이 든 남자. 그러니까 그는 ‘빌 머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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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인이 떠나겠다며 여행 가방을 끌고 방에서 나온다. 그녀는 두 사 람의 미래, 이를테면 결혼 같은 건 안중에 없는 남자와 실갱이 하는 것에 지 쳤다.(그렇다고 그녀가 원하는 것이 결혼이라는 형식은 아니다) 문을 열고 밖 으로 나서는 그녀를 마주 본다. 남자는 문고리를 꼭 붙잡고 배웅 아닌 배웅 을 한다. 도대체 뭘 원하느냐고 서로에게 묻고는 곧 답 듣기를 그만둔다. 그 는 문밖에 서서 그녀의 이름을 한번 불렀을 뿐, 어떤 액션도 없이 그 자리에 선 채로 떠나는 차를 바라본다. 여인은 떠났고 문이 닫힌다. 그렇게 그는 그 녀가 떠나기 전에 앉았던 소파에 돌아와 몸을 누인다. 그리고 아까 보다 만 < 돈 주앙>을 본다. 눈의 초점이 흐리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것 같지만 분명 무언가 달라져 버렸다.

짐 자무쉬의 2005년 작 <브로큰 플라워>의 첫 시퀀스는 지극히 빌 머레이스 러운, 아니 그냥 빌 머레이라는 이름이 가진 것이 그대로 담겼다. 하지만 이 남자를 그렇고 그런 못난 남자로, 사랑을 모르는 찌질이로 취급하는 것은 영 내키지 않는다.

다시 <브로큰 플라워>. 이제 막 여자 친구를 잃은 돈 존스톤(빌 머레이의 극 중 이름)에게 발신인 없는 핑크 핑크한 편지가 도착한다.(사실 그의 이별과 동시에 편지가 도착한다) 편지의 내용인즉 그의 옛 연인 중 하나가 그의 아 들을 낳았고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으나 그 아들이 아빠가 궁금해 찾아 떠 났으니 알고나 있으라는 것이다. 애초에 봉투를 뜯어보는 것도 귀찮았던(혹 은 귀찮은 척하던) 그(he). 대신 탐정 놀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동네 친구 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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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턴이 오지랖을 떨며 그를 부추긴다. 사실은 없을지도 모르는(누군가의 장 난일지 알게 뭐란 말인가) 아들의 엄마를 찾아 오로지 한 통의 편지에 기대어 길을 떠난다. 다 귀찮다더니 하나하나 시키는 대로 잘만 하는 것 역시 이 늙 은 소년의 매력.

그렇게 길을 떠난 존스톤은 4명의 옛 연인을 만나 은근슬쩍 아들의 존재를 떠본다. 하룻밤 그 집에 묵기도 하고 현재의 남편의 견디기 힘든 눈빛을 바라 보며 저녁식사를 하고, 급기야 얻어터지기도 하면서 핑크 핑크한 흔적(왜 핑 크인지는 그냥 영화를 보면 안다)을 좇으나 의문만 남긴 채 별 소득 없이 집 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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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 눈에 밟히는 소년들이 마치 다 자기 아들인 것만 같다. 그리고 두 번이나 마주친 소년을 자신의 아들로 추측하며 전혀 빌 머레이 같 지 않은 호의를 베푼다.(이건 거의 오지랖이다) 남자는 젊은 소년에게 어색 한 조언을 건네며 자신이 그의 아버지가 아니냐고 묻는다. 소년은 불안한 기 색을 비치며 자리에서 도망간다. 그가 아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냥 우연이었을지 모르는 그 만남은 그에게 너무나 복합적인 감상을 선사한다.

순간 자기 자신에게서 아버지다움을 찾으려 한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당혹스 러움,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삶에 대한 의문, 자신 곁에 여전히 누구도 없 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감각, 이전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생각과 감각들의 습격.

묘사하기도 어려운 이런 감정들의 범벅이 그를 집어삼킨다. 아들의 존재 유 무와는 별개로, 현재 자신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이 허망함과 쓸쓸함의 정체 를 확인할 길이 없어, 이유를 알 길이 없어 그는 다시 초점을 잃고 어디 먼 곳,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바라본다.

그는 참 멋진 여자들을 사귀었다. 늘씬하고 예쁘다. 서로 그다지 닮은 구석 은 없어 보이지만 각자의 개성을 지닌 이 여인네들은 모두 그를 사랑했다. 수 십 년이 흐른 지금, 그녀들은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듯 보이기도 하고 역으 로 아직 화가 나 있기도 하다. 그를 사랑했지만 그녀들은 외로웠고 결국에는 그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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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첫 시퀀스가 말해주듯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이 남자에게 그녀들은 모두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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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역시 언제나 혼자라 느꼈다.(나는 왜 그를 변호하는가) 뼛속 깊숙 이 늘 소년의 피가 흐르는 이 남자는 섬세하고 자상해서 생의 외로움을 이해 한다. 그것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생의 외로 움이 너무 크니, 타인의 외로움을 껴안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 선을 넘지 않기로, 자기 자신과 타협한다. 누구도 누구의 곁에 있 을 수 없다는 결론. 하지만 괜찮다. 그것이 삶이라면 나는 받아들이겠다는 그 의 태도는 상대를 근본적으로 외롭게 하는 재주가 된다.

평생을 이어온(50년생인 빌 머레이와 극 중의 존스톤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 미해 보인다. 얼추 그들은 55세다) 그의 이런 철학은 소년과의 만남을 통해 통째로 흔들린다. 그것은 소년의 영향이라기보다 자기 자신과의 만남 때문 이다. 현재의 자신과 자신의 숨겨진 욕망과의 만남. “곁”을 구하지 않는 삶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자신이 괜찮다고 여긴 삶의 방식이 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닐 수도 있을 거라는 그 허망함을 그는 어쩌지 못한다. 어찌지 못하는 그를 텅 빈 길에 세워두고 영화는 끝이 난다. 그의 태도, ‘우리는 우리가 원하 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라는 일관된 태도는 그가 자신이 원하는 것에 다가가 려는 스스로의 시도마저 외면하는 것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멋진 여자들은 그를 여전히 사랑한다. 내가 그렇듯이. 그가 사랑스러운 것은 세상 귀찮은 듯한 그의 태도 때문이 아니라 생의 외로 움을 이해하는 보기 드문 섬세함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는 기대. 좀 억지를 쓴다면 이렇다. 그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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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다만 자신의 그 사랑을 좇아가는 일이 힘겨워서 그저 귀찮은 체하는 것 이다. 그리고 이런 연기는 오직 빌 머레이만이 가능하다(라고 생각한다). 그 에 대한 나의 애정이 드러나는 것이 한편으로 부끄럽지만(뭐랄까 억지스럽 다, 좋아하기 위해 좋아한다는 느낌) 그는 언제나 그를 연기한다. 짐 자무시 든, 웨스 앤더슨이든, 소피아 코폴라든, 누가 연출을 해도 빌 머레이는 빌 머 레이이므로 만세!!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실제상황에서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도망 하라는 것. 당신은 그를 절대 구할 수 없다. 그저 그 섬세한 내면을 멀리서 지 켜보고 그 섬세함을 칭송하자.

지금 당신의 곁을 지키는 사람은 누구인가. 또는 누군가 당신의 곁을 지켜주 었으면 하고 원하는지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다. 적어도 존스톤처럼 시도조 차 차단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완벽한 곁을 만나는 것을 우리는 해피 엔딩이라고 배웠다. 아마도 배운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결론이 다 같을 수 는 없다. 각자의 결론을 각자의 방식대로 지으면 된다. 영화의 제목처럼 그가 그녀들에게 전할 꽃은 꺾였으나 그는 스스로 어쩌면 자신의 곁에 있어줄 누 군가를 원한다는 사실을 조금은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엔딩은 처연했지만 이것은 일종의 해피엔딩이다. 그의 철학은 금이 갔고, 때문에 지금 그가 느끼 는 시린 마음은 일찍이 겪어본 적 없는 것일 테지만 그 균열은 벽을 허물고 오 래된 공간에 새로운 공기를 들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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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처음과 나중에 흐르는 음악이 인상적인데, The Greenhornes의 ‘There Is An End’가 그것이다. 마지막 가사는 이렇다.

Spring brings the rain, With winter comes pain, Every season has an end.

There’s an end, There’s an end, There’s an end, There’s an end, There’s an end.

아마도 그의 시린 마음에 봄이 올 것 같은 기분. 빌 머레이 만세! _다르덴 자매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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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오늘 같은 날 외로움이 널 부를 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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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에 조용히 찾아와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 장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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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FF * 거의 편집장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 으로는 먹고살기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깨달아, 다른 노동으로 돈을 벌면서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 을 심각한 취미 로 여기고 살아가는, 대한민국 남자 사람 노동자. * 꽤 애호가 무심하게 마침표 찍기 보다는 쉼표와 함께 생각하고 싶으며, 간단히 재단하기 보다는 시 간이 걸려도 상세히 이야기하고 싶다. 구불구불한 골목 어귀를 걸으며 긴 대화 나누는 것 을 좋아한다. 삶의 태도로써의 예술을 지향하고, 그것이 결국은 삶을 예술로 만듦을 믿는 다. 길을 잃었을 때라야 비로소 도시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듯이, 예상치 못하였던 시간 을 통해 즐거운 사람들을 만난다. 놀다가, 걷다가, 이야기하다가, 웃다가 하는 이 공간이 즐겁다. * 다르덴 자매 다들 행복하기만 한 거 같아서 불편했다. 그럴 리가 만무한 거 같아 영화를 보기 시작했 다. 영화를 보면서 삶이, 행복이 무언지 조금씩 생각을 고쳐먹었다. 얇고 짧은 생이라 이 렇게 몇 자라도 쓰다보면 통찰이 돋아나는 날이 오겠지 싶어 <놀다가,>에 투신(?) 해 보 기로 했다. * 대충 소설가 적당주의자: 한탕주의적이고 무사 안일한 현실주의적 비관론자. 즉, 어차피 세상 사는 거 한번이고, 결국 로또는 누구한테든 터질 것이지만, 어쨌든 나는 안될 것이고, 그렇지만 뭐, 모두들 어떻게든 살지 않겠어? 라며 하루하루 실실 쪼개며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 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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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문화잡지 월간 <놀다가,>는 덜 벌고 더 노는 세상을 꿈꿉니다. 혼자 놀기보다 같이 노는 세상을 꿈꿉니다. 완벽한 전문가 보다는 투박한 아마추어를 사랑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느낌, 생각, 이야기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같이 놀까요?

거의 문화잡지 월간 <놀다가,> 2015년 9월 10일 8호 http://noldag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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