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 시즌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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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문화잡지 월간

vol6 시즌1 끝~!


<놀다가,> 2


덜 벌고 , 더 노는 세상을 꿈꾸며.

<놀다가,> 3


잉여짓도 때론,

<놀다가,> 4


방학이 필요해.

<놀다가,> 5


앞으로 세상의 주인은,

<놀다가,> 6


덜 벌고, 더 노는 사람들.

<놀다가,> 7


, 차례

contents 2013년 11월 18일 / 6호 - 시즌1 끝

여는글

식탐

09p

주제파악

11p

놀다가 책

당신에게 추천하는 책 한 권

12p

놀다가 음악

월동준비

20p

놀다가 영화

우리의 삶이 춤이라면

그저 출 수밖에...

26p

놀다가 잡담

CCM이 ‘있었다’

34p

쓸데 없는것 배우기

50p

알림 : ‘놀다가’ 는 이번호를 끝으로 일단 시즌1을 마무리 합니다. ‘덜 벌고 더 노는’ 하루하루 되세요. 해피뉴이어~!

이미지출처 : 쓸데없는것 배우기 = 지구랑 친구하기_랼 그외 이미지 = 원본출처가 정확하지 않은 인터넷 이미지

<놀다가,> 8


여는글

방학입니다.

우리 방학 합니다. 잉여짓에도 때론 방학이 필요 합니다. 재미삼아 하는일이 버거워 진다는 건 재미없는 일이니까요. 미리 크리스마스! 미리 해피 뉴 이어! 그리고, 덜 벌고, 더 노느것, 잊지마시길.

<놀다가,> 9


<놀다가,> 10


좀, 쉴려구, 잉여짓에도

방학은 필요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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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파악

,


놀다가 책

당신에게 추천하는 책 한권 호기심을 잃는다는 것에 대하여 불행히도, 우리는 어른이 되어간다. 어른이 되어서 우리가 배우거나, 얻을 수 있는 것들 중에서는 좋은 것이 별로 없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가 잃게 되는 것들 중에는 좋은 것들도 꽤 많은데 말이다. 우리 인생은 생각처럼 간단하지가 않고, 우리는 그것을 깨닫게 되는 매순간 어른이 되어간다. 삶은 여전히 궁금한 것투 성이고, 이해되지 않는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며, 심지어 어릴 때에 배웠던 것과는 많은 것들이 다르게 흘러가는 부분들까지 있다. 하지만, 우리는‘질문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어른이 되는 가장 중요한 미덕이라는 것 또한 배우게 된다. 나는 이 것이 가장 안타깝다. 우리가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세상에 대해 충분히 알게 된 것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들에 대해 질문 하기를 포기한다. 그 대신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들보다는 아는 것들에만 집중 하고,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함으로써 불편함을 해소한다. 우리가 사 실 그것들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몇 개의 전형적인 대답들이 존재하는 데, 그런 대답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항상 그래왔던 것이다.”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들 그렇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실 저 대답들을 늘 사용하면서도, 저런 대답들에 대단히 만족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저 대답들이 꽤 효과적이고, 세상의 부조리와 복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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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 난해함을 설명하는데 꽤 강력한 대답이긴 하지만, 그 부조리의 화살이 ‘나’ 에게 향해질 때, 저런 대답들만큼 폭력적인 해답도 없기 때문이다.(우리나라 남 자들은 군대에서 가장 먼저 그것을 알게된다.) 사실 저런 대답들뿐만 아니라, 우 리가 사는 세상에는 수많은‘정답’들이 판을 친다. 긴 인류의 역사 속에서 단 한 줄의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평생을 고민하고, 수백 페이지나 되는 책들을 썼던 철 학자들이 바보처럼 보일 정도로, 우리는 쉽게 정의내린 정답들을 그대로 받아들 이고, 의심 없이 인용하며, 심지어 그것을 삶의 무수한 선택들을 위한 기준과 신 념으로 받아들일 때도 있다. 그런 정답들은 때론 종교의 얼굴을 빌리기도 하고, 성공한 사업가의 목소리를 통하기도 하며, 삶의 어떤 난관들을 극복한 선구자의 깨우침으로 포장되기도 하는데, 그런 식으로 말해지는 삶의 정답들이란 생각보 다 꽤 호소력이 있어서, 우리는 손쉽게 그것을 받아들이곤 한다. 옳고 그름의 함정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흑백의 단순한 색깔 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것은 일견 명료해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단조로 운 시각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흑과 백 사이의 수많은 회색들, 그런 정도가 아니 라 세상은 사실 총천연색의 다채로운 색깔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 그런 시각 도 존재한다. 그것은 단순히 눈의 착각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런 수많 은 색깔들 때문에 세상은 더 아름답게도, 더 추하게도 보인다. 책이란 것은 그래 서, 세상에는 이러한 ‘색’도 존재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세상을 보는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 게 된다. 좋은 책이란 그래서 우리의 세계를 조금 더 넓게 확장시켜 줄 수 있어야 하고, 우리가 좀 더 다양한 색깔을 찾아 나서도록 우리 안에 잠재된 모험의 본능 을 자극 시키는 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서론이 꽤 길어졌지만 ‘놀다가’ 라는 매체를 통해서, 어찌 되었든 한 달에 몇 줄 정도의 짧은 글들을 써오면서, 그리고 평소엔 그다지 읽지도 않는‘책’이라는 꼭지를 맡게 되면서, 나 는 주제넘게도 몇 권의 책들에 대해서 써왔다. 사실 책에 대해서 다루지 않은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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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들이 더 많기는 하지만, 오늘은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저 한권의 책을 읽 어보라는 추천을 해볼까 한다.‘손녀 딸 릴리에게 주는 편지(Letters to Lily)’라 는 이름으로 2005년 랜덤하우스에서 출판된 책이 그것이다. 책 제목의 윗줄에 는‘케임브리지 대학 노교수가 사랑하는 손녀딸에게 전하는 인류 성찰의 지혜’ 라고 쓰여져 있는데, 예전에 공지영이 쓴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 를 응원할 것이다’의 제목이 인용된 책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고, 꽤 많은 사람들 이 읽어본 책이라서 대단히 특별한 책은 아니다. 지금도 중고 서점에 가면 어렵 지 않게 찾아볼 수 있어서 구하기도 쉽고, 내용도 어렵지 않아서 읽기에도 좋다. 어쨌든, 저자 앨런 맥팔레인의‘손녀딸’이 10년 뒤에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 으로 썼다고 하는데, 책이 출판 된지도 어언 8년이 되어가므로, 아마 노교수의 손 녀딸이 지금쯤은 이 책을 읽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쉬운 책’이 주는 장단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쉬운 책들은 고민의 여지를 박탈하는 경우가 많다. 단정적이며,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편협한 근 거들을 가지고 논지를 펼쳐나가며 그것을 따라 가다보면 쉽게 수긍하게 된다. 많 은 자기개발서들이 그런 논리로 자신의 주장을 펼쳐 나간다. 그런 책들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서 가져다 쓰는 근거들은 사실 우리가 원래 그런 것, 당 연한 것 이라고 믿는 것들로부터 오는 것들이 더 많다. 따라서 ‘쉬운 책’이면서도 ‘좋은 책’을 발견하면 기분이 몹시 좋아진다. 덧붙여 이 책은 훌륭한 자기계발서 로서의 요소도 잘 갖추고 있다.‘책장에 두고 가끔씩 꺼내어 보면 좋을 책’이라는 식상한 수식어가 참 잘 어울리는 책이기도 하다. 스물여덟가지 편지들의 제목이 모두 질문이라는 것도 아주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질문들 속에 아주 많은 ‘왜’라는 단어들이 들어 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던 점 중에 하나다. 나는 마지막으로 책의 한 부분을 통째로 떼어와 여기에 공유하고 싶다. 이것은 책의 마지막에 있는 에필로그 전에 포함된 일종의 부록 같은 부분으로, 내가 담 당하고 있는 책 소개의 꼭지에 너무나도 들어맞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하 나의 책을 추천함으로써 수십 권의 책을 추천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렸냐고 묻는다면 음흉한 미소를 지어보이겠다. 지은이 ‘앨런 맥팔레인’은 책의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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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나의 손녀딸이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들의 목록을 써놓았는데, 그 목록에서 느껴지는 손녀에 대한 애정과 그 목록 자체의 풍성함이야말로 나에게 결정적으 로 이 책을 선택하여 추천하도록 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편지에 나와 있는 어떤 책들은 영국에서만 접할 수 있는 책일 수도 있고,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없는 목록이긴 하지만, 일부러 조금도 편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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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딸 릴리에게 주는 편지 릴리야. 나는 지금부터 네가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들을 권해주려 한다. 물론 독 서만이 네가 누구인지를 알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배우는 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낯선 곳으로 떠나 그곳을 여행하면서도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으 며, 신문과 텔레비전, 영화, 만화, 미술을 통해서도 네가 얻고자 하는 해답을 얻 을 수 있다. 무엇보다 너는 네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친구들의 가치와 취미를 통 해 많은 것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독서는 너 자신과 세상을 파악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그랬든, 한 권의 책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 킬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네가 믿고 있는 것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지도 모른다. 네게 권하는 책이 일반적인 권장 도서 목록과는 좀 다를 것이다. 사랑, 결혼, 가 족, 우정, 폭력, 신 등 다양한 삶의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한 책은 많다. 그렇 지만 그런 책을 소개한다면 마치 대학의 전공 도서 관련 목록처럼 될 것이다. 그 래서 내가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들을 추천해 주려고 한다. 네가 꼭 한번 읽어보 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물론 그 중에는 네가 이미 읽은 책도 있을 게다. 언뜻 보면 아이들을 위한 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삶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아 주 진지하게 고민한 책들을 우선 권하고 싶다. 돌킨의‘반지의 제왕’, 롤링의‘해 리 포터 시리즈’, 루이스의‘나니아 연대기’, 필립 풀먼의 ‘황금 나침반’ 등이 그 에 포함된다. 또 밀네의 ‘위니 더 푸 시리즈’, 그레이엄의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키플링의 ‘정글북’과 ‘바로 그 이야기들’, 화이트의 ‘과거와 미래의 왕’, 스미스의 ‘내가 성을 손에 넣다’, 오스카 와일드의 ‘요정 이야기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같은 책은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했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지금도 나는 종종 그 책들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곤 한다. 이런 책들과 가까운 지점에 미스터리와 추리 소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제 임스의 ‘유명한 유령 이야기들’, 코넌도일의‘셜론홈스 시리즈’, 체스터턴의 ‘브라운 신부 전집’, 포의 ‘황금풍뎅이’가 들어 있는 단편집 등을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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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초서와 예이츠, 셰익스피어가 쓴 시와 희곡, 소설 등은 인간에 대한 여러 가지 수수께끼를 깊이 탐구하고 있다. 그 밖에 인간 조건에 대해 탐구한 책으로 는 페르시아 시대 시인인 우마르 하이얌이 쓴 ‘루아이야트’와 수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는 알렉산더 포프의 ‘인간론’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풍자적으로 그려 더 깊은 이해를 하게 만드는 작가들 의 작품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루이스 캐럴의‘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다니 엘 디포의‘로빈슨 크루소’, 조나단 스위프트의‘걸리버 여행기’,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더글러스 애덤스의‘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가 바로 그런 책들이다. 시간 여행에 관한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데, 나는 그 중에서도 조지 오웰의 ‘1984년’, 헉슬리의‘위대한 신세계’, 사무엘 버틀러의‘에레혼’, 토머스 무어의 ‘유토피아’, 콘래드의‘암흑의 핵심’을 권해주고 싶다. 시간과 공간을 아주 흥미 로운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보르헤스의 ‘미궁에 빠지기’도 괜찮다. 인간 존재에 대한 가장 깊은 질문은 흔히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 도 제인 오스틴과 찰스 디킨스, 톨스토이 같은 유명한 사람들의 작품은 시간 날 때마다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기 때문에 놓치기 쉬운 책 중 에 퀘스틀러의‘정오의 암흑’이 있는데, 공산주의에 대한 뛰어난 묘사가 돋보이 는 책이다. 또 제임스 혹스의‘정당한 죄인’은 종교적 광신도의 정신 세계를 보여 준다. 사랑의 덧없음에 대해 알고 싶다면 포위스의‘사랑과 죽음’을 읽어보아라. 그 다음으로는 깊은 내면의 경험에 관한 훌륭한 자서전적 저술을 권해주고 싶 다. 고세의‘아버지의 아들’과 프리모 레비의 강제 수용소에 대한 책, 카를로 레 비의‘에볼리에 들린 예수’, 노만 더글라스의‘남풍’과 같은 작품이 해당된다. 철학자의 깊은 통찰이 담겨 있는 단상집과 책도 읽어보면 좋다. 그 중에서도 프 란시스 베이컨의 수필과 격언집, 라로슈포코의 격언, 볼테르의‘철학사전’, 몽테 뉴의‘에세이’, 체스터필드의‘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사무엘 버틀러의 ‘소로의 숲 속 생활에 대한 해설’을 읽어보길 권한다. 20세기의 풍자와 유머를 담은 고전이 있다. 그 중에서 조셉 헬러의‘캐치 22’는 전쟁의 어리석음을, 파킨슨이 쓴 ‘파킨슨의 법칙들’은 관료주의의 본질을, 허버 트의‘이상한 법’은 법의 우스꽝스러운 본질을 잘 보여준다. 그 외에 사키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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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잉글랜드의 가식적인 생활상을 파헤치며, 제롬의‘배 안의 세 남자’는 일상생 활의 기이한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최근에 출판된 책 중에는 가아더의‘소피의 세계’와 스테판 로의‘철학 파일’이 세계의 작동 원리를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 있는 책으로는 존 그 레이의‘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그레일링의‘존재의 이유’, 빌 브 라이슨의‘거의 모든 것의 역사’등이 있다. 데카르트의‘방법서설’은 어떤 문제든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책이다. 제임스 모 나코의‘영화 읽기’는 미디어 전반에 대한 훌륭한 입문서이다. 루이스 멈포드의 ‘기술과 문명’은 기술에 대한 설명서 중 가장 뛰어난 책이다. 곰브리치의 ‘예술 과 환상’은 나로 하여금 예술에 눈뜨게 해주었으며, 매튜 아놀드의‘문화와 무정 부주의’는 문화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해주었다. 블로흐의‘역사가의 기슬’은 역사란 무엇이며 역사학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야스퍼스의‘역사의 기원과 목적’은 세계사에 대해 짧지만 인상 깊 게 풀어놓은 해설서이다. 인류학, 고고학에 관심이 있다면 다이아몬드의‘총, 균, 쇠’, 호카르트의‘인간 의 진화’를 읽어보거라. 겔너의‘자유의 조건’은 귀조의 ‘유럽 문명사’와 함께 읽 어보면 좋은 책이다. 헨리의‘인간에 반하는 문명’, 듀보스의 ‘그래서 인간은 동 물인가’는 인간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재미있는 책이다. 마지막으로 너에게 소개할 책들은 다음과 같다.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카잔차키스의‘희랍인 조르바’, 러셀의 책들, 마크 트웨인의‘허클베리 핀’, 하퍼 리의‘앵무새 죽이기’, 칼 마르크스의‘공산당 선언’, 베리의‘피터 팬’, 크릭과 왓 슨의‘이중 나선’, 샐린저의‘호밀밭의 파수꾼’. 열거한 책들은 네게 편지를 쓰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추천해준 목록이다. _대충 소설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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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음악

월동준비

0. 겨울은 길다. 긴긴 겨울, <놀다가,> 없이도 잘 지내시라고, 음악(앨범)을 좀 골 라보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긴-긴- 겨울 이 음악들이 당신의 좋은 벗이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CD 기준이다. 음악은 자고로 CD로 앨범재킷 구경 하며 들어야 제 맛이다. 아님 말고. 1. 그냥 틀어놓으면 무난하고 좋은 앨범 집에서 인터넷을 뒤적거린다거나, 밀린 일이 있어 집에까지 들고 와서 해야 한 다거나, 반가운 친구가 방문 했을 때, 그냥 조용히 있기엔 귀가 좀 심심하다고 느 낄 때 그냥 틀어 놓으면 문안하고 좋은 앨범들을 골라 보았다. Eva Cassidy - Live At Blues Alley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Eva Cassidy’.만약 모른다면 들어봐야 마땅하다. Blues Alley라는 재즈클럽에서의 실황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냥 스튜디오 앨범보다 훨씬 좋더라. 앨범의 첫 곡부터 필이 딱 온다.‘이 앨범 죽이겠구나!’ 하고. 특히 <Fields Of Gold>라는 곡은 원곡자인 ‘Sting’의 버전보다 더 멋지다고 생각한 다. Tommy Emmanuel & Martin Taylor - The Colonel & The Governor 두 아저씨의 어쿠스틱기타 연주 앨범이다. 재즈 쪽 하고 많이 안 친해서 이 아저 씨에 대해선 거의 아는바가 없지만, 가사 없이 음악만 나오니, 알아듣기도 쉽다. 수록곡 중 <True>라는 곡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 봤을만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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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Blueberry Nights OST 영화 ‘My Blueberry Nights’ 는 왕가위선생이 만들고 주드로, 노라존스, 나탈 리포트만이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난 좋았는데. 사운 드트랙도 참 훌륭한데 말이지.... 소규모아카시아밴드 - 2집 입술이 달빛 명반. 이 밴드와 동시대를 살아가는것이 축복이다. 어디서든 틀어놓으면, 합정동 카페 어느 곳으로 워프 할 수 있다. Lionel Richie - The Difinitive Collection Lionel Richie의 2CD 베스트 앨범. 2장의 CD에 38곡이 수록 돼있다. 한번 틀어 놓으면 무난한 곡들을 긴- 시간동안 들을 수 있다. CD바꾸기 귀찮을 때 갑! 2. 너무 조증이라 우울이 좀 필요 할 때 들으면 좋은 앨범 사람이 너무 들떠 있으면 왠지 아슬아슬해 보이고 괜히 사고 칠 것 같은 기분 이 든다. 그럴 때 조증을 달래줄 앨범 골라봤다. 사색이 필요 할 때 활용해도 좋 지 싶다. Antony And The Johnsons - I Am A Bird Now 살면서 이보다 더 멜랑꼴리한 보컬은 경험한적 없었다. 그건 지금까지도 마찬가 지. 앨범재킷이 매우 아름답다. 당신이 만약 이 앨범을 알고 있다면 덕후 인정.( 저랑 이야기 좀 하시죠?) Rachel’s - Systems / Layers 이 밴드는 화가 Egon Schiele를 테마로 한 앨범 [Music For Egon Schiele]가 더 유명하긴 하다.(그래 봤자, 나 같은 사람에게만 유명하겠지만) 그런데, 좋은 음 악들은 TV에 인터넷에 소개되지 않을수록 보석인 경우가 많다. 적어도 나는 그 렇다. 틀어 놓고 혼자 멍 때리기 좋은 음반이다. 멍 때리다 보면 어느새 나는 어 디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쓸쓸하게 사색하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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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head - Amnesiac 빡센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었던 영화(내 생각임) ‘그을린 사랑’의 도입부에 이 앨범의 수록곡 <You And Whose Army?>가 흘렀었다. ‘Radiohead’는 <creep> 으로 매우 유명하지만,그 곡으로만 ‘Radiohead’를 기억해서는 안된다!!(절대 안된다!!) 이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으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자신의 인내 력을 시험해 보시길~ 3. 정부가 짜증날 때 쏴주고 싶은 노래 Metallica - Load 중 <King Nothing> ‘Metallica’의 팬들은 이 앨범을 무지 싫어한다. 왜 싫어하는지는 아들의 전작 [Master Of Puppets] 이나, [ ...And Justice For All] 앨범을 들어보면 바로 답 나온다. 하지만, 나는 이 앨범도 좋더라. 여기에 이 앨범을 고른 이유는 <King Nothing>이란 곡의 제목 때문이다. ‘킹’은 ‘나씽’이라잖어! 듣고 있나?? Rage Against The Machine - Rage Against The Machine 중 <Take the Power Back> ‘기타는 자유를 표현하는 도구이지 착취의 수단이 아니다’ ‘Rage Against The Machine’의 기타리스트 ‘Tom Morello’의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 앨범의 수 록곡 <Take the Power Back>은 요즘 따라 자꾸 듣고 싶네. Tracy Chapman - Collection 중 <Talkin Bout a Revolution> 혁명을 노래하는 방법은 가지각색이겠지만, 미국-흑인-여성은 혁명을 어떻게 노래하는지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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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침에 들으면 좋은 앨범 Pink Martini - A Retrospective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Pink Martini’의 베스트 앨범이다. 사랑스런 음악들이 가득. 아침에 커피마시면서 들으면 참 좋다. 함춘호 & 장필순 - 그는 항상 내 안에 있네 장필순과 기타리스트 함춘호가 함께 작업한 앨범이다. 나직하게 읊조리는 장필 순의 목소리가 참 좋다. 조경옥 - 잘 지내시나요 이 앨범은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지인을 통해 선물 받아 듣게 되었는 데, 첫 곡 <잘 지내시나요>를 듣는 순간 이 가수를 좋아하게 됐다. 말고 투명한 목소리가 아침과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앨범은 구할수 없겠지만, 검색해 서 <잘 지내시나요>는 꼭 한번 들어 보시길. _거의 편집장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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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영화

Take This Waltz, 우리 삶이 춤이라면 그저 출 수밖에 마음 한 곳이 휑하다. 서늘하고 묵직한 것이 가슴 한 곳을 누르는 듯하다. 삶이 내 예상대로 흘러가주면 고맙겠지만 인생은 참 그렇지 못하다. 내 삶은 축 복받았다고 그래서 더없이 감사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분들은 정말이지 다행이 고 말 그대로 축복받은 것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주 평화로워 보이나 내면 의 슬픔과 어그러짐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더라. 당신의 삶은 안녕한가. 돈 걱정 없고 충족한 사랑을 받으며 세상이 어찌 돌아 가건 내 삶엔 이상이 없을 거라 확신하고, 뭐 아픈 사람 없으니 되었다 싶은가. 어른?들이 말하길 평범하기도 힘든 세상이니, 제발 평범하게만 살라고 하더라. 문득 평범한 삶은 대체 뭔가 싶기도 하다. 단 한 번의 삶, 남들 사는 것처럼 그리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 무엇을 쫓으며 살아가야 할지 때때로 막막해서 나 름 한참?을 달려온 삶을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생업은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 이 생의 깊이와 길이를 어찌 엮어 가면 좋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세상의 반은 남자요. 세상의 반은 여자일 것인데, 여인들의 삶은, 우리 어머니 들의 삶, 내 주변의 많은 여성들의 삶이 기대이상으로 스펙타클!!해서 놀라게 된 다. 그 숱한 여인네들이 그들의 시간을 견뎌낸 것이 너무도 대단하고 대견해서 진심으로 존경하게 될 때가 많다. 나는 정말 그들처럼 그 시간을 잘 견뎌낼 수 있 을지, 남들의 부러움 따위는 바라지도 않건만 앞으로 그저 자족하며 평안하게 삶 을 이끌어 갈 수 있을지 별안간 불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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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의해서 삶이 좌우되는 걸 누가 바라겠는가. 하지만 이 여인네들의 삶이 대개는 그들이 사랑하는 타인들에 의해서 어그러지더라. 그 어그러짐을 어떻게 든 견디고 붙잡아 내어 예까지 왔단다. 누군가는 현재 그 견딤을 진행 중일 것이 고 누군가는 이제 막 그 고비를 넘겼을지도 모르겠다. 타고난 것들과 자신의 손으 로 쌓아올린 것들로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로 우리의 삶은 직조되어간다.

우디 앨런의 최신작? <블루 재스민(Blue Jasmine, 2013)>의 재스민 역시 그녀 가 사랑하는? ‘그’에 의해 인생이 꼬인다. 그녀의 그는 그녀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었지만 그가 원한 것과 그녀가 원한 것이 일치하지 않게 되는 시점에 이른다. 더 이상 그들의 사랑이 유지되지 못하게 된 순간에 그녀는 그를 사지로 몰아넣 고 그녀의 삶 자체도 자멸하는 길에 들어선다. 그녀의 분노는 어찌 보면 정당하 다. 사랑의 배신보다 더한 상처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영민하지 못한 그녀는 삶은 계속된다는 걸 채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인생은 항상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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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잘못은 무엇일까. 잘난 척하며 자신의 잘난 삶을 살아온 것, 자신의 우 수한 유전자를 기회가 닿는 대로 유용하게 쓴 것, 남편의 죄를 묵과한 것, 멍청하 게 남편의 외도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것, 자신이 살아온 삶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어 하는 욕망. 새로운 삶을 위해 늘어놓은 거짓말들. 그 모든 것이 죄인가. 그것이 죄라기엔 세상은 더 사악하지 않던가. 그녀의 잘못은 대체 뭘까. 재밌게도 인생이 꼬이는 것은 대개 누구의 잘못도 아닐 때가 많다. 그녀의 남편의 외도야 천인공노?의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죽음 으로 그 죄를 씻어야 할 정도는 아니다. 그녀 역시 그녀 자신의 삶을 파괴할 생각 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순간적인 실수와 타이밍이 어그러져 전혀 상상도 못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공교롭게 그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을 만들어 낸 건 나 자신일 경 우가 많다. 마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처럼. 그리스 비극을 좋아하는 우디 앨런 은 마치 현대판 그리스 비극을 직조해 둔 것 같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장난 에 재스민을 세워두고 그 깊은 우울함을 어찌 감당하는 지 지켜보는 악랄한 작 은 신 같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또 얼마나 우스운지. 평범한 미국소녀 이름인 자넷이 싫 어 개명한 재스민. 좋은 향기를 뿜으며 사랑받는 삶을 살던 재스민은 이제 자신 의 욕망과는 별개로 우울한 자넷이 되어버렸다. 그녀의 동생 진저(ginger)는 자 신의 분수를 잘 아는, 너무 잘 알아서 그게 슬픈 여인이다. 인삼이든 홍삼이든 그 건 내가 아니야, 난 그저 일개 생강일 뿐이니 생강의 삶을 살아내면 그 뿐이라는 듯 그녀의 태도가 서글프다. 그녀의 별 볼 일 없지만 성질만 불같은 남자친구는 칠리(chili), 재스민의 실속 없는 전 남편 이름은 할(hollow 느낌?)이다. 이름대 로 된다하지 않던가. 우디 앨런의 작명 솜씨에 눈물이 난다. 남자들의 삶은 기껏 망가져봐야 찌질하거나 머저리 같을 뿐인데 여인들의 삶은 어찌 이리도 비참해 지는 것인지. 우디 앨런은 사람들의 속물적인 근성과 날 것의 비참함과 찌질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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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으로 분한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재스민 그 자체였다. 아마도 감독이 생각한 것 이상의 재스민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어 줬을 것이다. 젖은 머리로 벤치 에 걸터앉아 텅 빈 눈으로 텅 빈 과거와 기대할 것 없는 미래를 들여다보는 듯한 마지막 장면을 한동안 잊을 수 없었다. 도대체 그녀의 잘못은 무엇이란 말인가.

사라 폴리의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 2011)>의 마고도 행복하지 않다.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고 어딘가 모르게 슬프다. 하지만 그 이유를 도통 모 르겠다. 뭐가 문제일까 싶은 그녀의 일상은 한 남자의 등장으로 파동이 인다. 5년 동안 함께 산 사랑하는 남편 ‘루’, 하지만 자기 방식대로만 사랑하는 것 같 은 남편이 때때로 낯설다. 그래서 종종 외롭고 그 외로움은 채워지지 못한 채로 일상을 살아간다. 친절하고 속 깊어 보이는 마고에게 친척들은 허물없이 대하고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지만 정작 자신은 그 누구에게도 자기 속내를 털어 놓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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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없다. 평온한 일상이 따분하게 느껴지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관심 갖는 이 하나 없는 것 같아 외롭다. 상한 마음을 위로 하는 것도 자신이고 남편의 상한 맘 을 풀어주어야 하는 것도 마고 자신이다. 사실 그녀의 남편은 성실하고 좋은 사 람이다. 다만 더 이상 밀고 당기는 연애의 줄타기를 하지 않으려고 결혼을 선택 한 루는 외로워하는 마고를 이해할 수가 없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 남편과 아이 를 원하는 마고 사이의 갭도 점점 커져간다. 그와 그녀의 문제는 무얼까. 문제가 선명하지 않을수록 문제를 풀어내는 일은 더 어렵기만 하다. 그런 그녀의 삶에 자유로운 영혼의‘대니얼’이 나타난다. 그녀가 왜 불안한지, 그녀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 그는 그녀의 모든 게 궁금하다. 그녀에게 닿고 싶고 갖고 싶은 첫 만남의 설레임들이 그들을 감싼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듯, 냉탕과 온탕을 오가듯, 그녀의 삶에 생긴 균열들을 그녀도, 그도, 그녀의 남편도 깨닫게 된다. 되돌릴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결정적인 순간들, 이미 주었던 마음, 상처 받은 영혼은 되돌릴 수 없다. 그것은 육체의 배신정도가 아니라 영혼과 마음의 배신이니까. 그렇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지만 그 휑한 구멍은 새로운 사랑이라 한들 메울 수 없는 것이다. 일상은 다시 균열과 외로움을 낳으니 그때마다 휑함 을 메워줄 사랑을 찾아 나설 수는 없다. 그녀 자신도 그녀의 선택이(그 선택 자체도 그녀가 한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어쨌든), 그녀가 처해진 환경이 그녀에게 어떠한 결과를 주었는지, 그것이 좋은 지 나쁜지 그녀 자신도 확신하지 못한다. 이미 옳고 옳지 않고의 문제를 넘어, 좋 고 나쁘고의 결과를 넘어 그들은 그저 살아간다. 마고의 친구이자 시누이가 마고 에게 말했다. “나는 알콜중독자이지만 진짜 멍청이는 너야, 인생의 모든 구멍을 다 메우고 살수는 없는 거라고.” 처음 극장에서 이 대사를 마주했을 땐 구멍을 메우지 않은 채 살아가는 걸 받아 들이는 것 자체는 삶을 포기한 것이지 않을까 싶었다. 예민하고 철저하게 삶의 균 열과 구멍들을 알아채고 서로 메워가며 사는 것이 맞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다시 영화를 보니 그녀의 말에 조금은 수긍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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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균열과 구멍을 메워가며 살기엔 우리 자신들이 너무 부족하다. 일상의 평 온함을 감사하며 파진 구멍들은 파진대로, 채워진 많은 단단한 흙들을 또 감사하 며 삶이 굴러가도록 두는 것이다. 그때엔 정말이지 미처 알지 못했다. 지금도 여 전히 치열하게 구멍과 균열들에 민감하게 살아가지만 어느 부분은 그러려니 짐 짓 넘기면서 살아가는 지혜도 배우게 된다. 어쨌든 그녀들은 그녀들의 삶을 산다. 우리는 또 우리의 삶을 산다. 삶이 서로 잘 포개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애초에 삶이란 포개어 지는 게 아니라 나란 한 거라서 약간의 외로움과 삶의 무료함은 적당히 감당하면서 사는 것이 어른들 이 말하는‘평범한 삶’이구나 깨닫는다. 이 두 여인네의 삶을 보고 있자니 삶의 쓸쓸함과 무게가 더해져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지만 그저 자신의 삶을 살 뿐 다 른 것은 없다. 주일 밤, 집에 있는 날이면 보통은 개그콘서트를 보는데, 개콘에서 제일 좋아 하는 코너는‘두근 두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하는 청춘남녀의 유치하고 순 수한 사랑을 모니터로 보며 설레어 한다. 마치 그런 감정들이 고대 유물인 것처 럼, 설정된 희극이 아니고서는 현실에서 좀처럼 만날 수 없다는 듯이. 어디가 현 실이고 어디가 환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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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면서도 언제부턴가 사랑을 믿지 않게 되어버린 가여운 청춘들에게 결혼을 그저 견디고 사는 또 다른 가여운 청춘들에게 모든 구멍을 일일이 메울 수는 없지만 다른 땅들을 더욱 단단하게 다져나갈 수 는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이 영화들을 한번 보시게들 하고 권하고 싶다. 그래서 몇 개의 구멍쯤은 넉넉히 넘기고도 남을 단단한 흙이 되도록 조금은 힘을 내 봐 야겠다.

덧.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 2011)>의 O.S.T가 또 엄청나다. 특 히 레너드 코헨이 부른 “Take This Waltz”는 눈물이 난달까. 꼭 들어 보시길 ! _다르덴 자매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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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 잡담

CCM이 ‘있었다.’

CCM이 있었다. ‘있었다’고 표현한 이유는 말 그대로‘있었기’때문이고, 지금은 없기 때문이 다. 90년대 초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CCM을 그저 ‘은혜주입’용 종교 음악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 하나의 커다란 카테고리로 놓고 좋아했던 사람이 라면 ‘CCM은 있었다’는 말에 공감 할 것이다. 2013년 8월 늦여름 오후에 할 일 없는 세 남자가 카페에 모였다. 세 사람 모두 CCM이 아주 잠깐 찬란했던 때에 CCM을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셋 중에 둘은 아직도 CCM근처를 서성대는 사내들이다. 이글은 거창하게 CCM을 정의하 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대담이 아니라, 아주 잠깐 동안 아주 찬란했던 CCM 에 대한 수다이고, 추억 뽀개기다. -편집자주용어정리 : 이 글에서‘예배음악’이란, 교회 안에서, 혹은 예배시간에 회중들 과 함께 부르는 흔히 말하는 소위‘복음성가’‘경배와찬양’‘찬양’‘모던워 쉽’ 등을 말한다. 이렇게 저렇게 나누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예배 음악’이라는 한 단어 통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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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하 편), 엔틸드(이하 엔), 길가는밴드(이하 길)

추억 편 : 일단 나 자신과 CCM의 첫 만남, 혹은 추억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으로 시작 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CCM을 처음 만난 것이 ‘아브 라조’라는 밴드를 통해서였어요. 아까도 오랜만에 꺼내 들었는데, 지금 들어도 좋더라고요. 암튼 ‘아브라조’ 라는 밴드가 저에게는 처음 만난 CCM밴드였어요. 그때가 중학교(94년, 혹은 95년경으로 추측됨)때였는데 겨울에 몇 교회들이 모 여서 연합 수련회를 했었거든요, 그때 ‘아브라조’라는 밴드가 집회를 하러 온 거 예요.‘아브라조’의 모토가 ‘청소년의 영혼을 위하여’ 였어요. 그러면서 ‘록’음 악 으로 찬양을 연주 하는데 충격이었죠. 연주, 노래, 율동하시던 선생남과, 보컬 분들의 목소리도 좋았고요. 그리고 가장 신선했던 것이 뭐냐면 몇 몇 곡들은 영 어로 부르는 거였어요. 그게 그때는 그렇게 신선하더라고요. 참고로 그때 당시 대부분의 교회 분위기가 어땠냐면 헤비메탈이나 록 음악 을 들으면 안 되는 거였어요. 헤비메탈이나 록 음악은 사탄의 음악이었기 때문에.( 교회에서 록, 메탈음악을 터부시 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 우리 세 사람은 ‘낮을 울타리’의 예를 들며 잠시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그래서 교회에서 드럼을 쳐서 도 안 되는 거였어요. 드럼이 있는 교회도 거의 없었고요. 암튼 그런 시대에 ‘아 브라조’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록 음악을 들고 나온 거죠. 지금 들으면 요즘 록 음 악들에 비해 촌스러울 수도 있는데 그때 그 사운드는 충격이었죠. 더 충격인 건, 1집 앨범 안에 찬양도 있었지만, 가요 같은 노래도 포함돼 있었 다는 거예요. <지친영혼을 위하여>라는 록발라드는 예수님, 하나님 이라는 단어 전혀 없이‘인류애’ ‘인간애’를 노래하는 곡이었거든요. 그냥 착한 가사로 된 노 래였는데, 그것 자체도 저에겐 굉장한 충격이었죠. 찬양밴드의 앨범 안에 찬양이 아닌 곡들이 들어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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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 저는 ‘드림 2집-세상에게’. (순간 동시에 세 사람의 감탄사!!!! ‘드림’을 알 고 있는 것에 대한 동지애!!!) 제가 고향이 대전인데요,‘드림’의 연주를 처음 들 었던 건 97년인가, 98년인가 정확히 기억이 안나요. 부천 실내체육관에서 했던 ‘ 선교한국’ 때였어요. 그때 ‘드림’이 오프닝밴드였거든요. <가브리엘의 오보에>(영화 ‘미션’ OST) 라는 곡을 연주 했어요.‘드림’이라는 밴드의 태생은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작곡하신 정두영지휘자님의 수제자였 던 최성규 전도사님, 故이기선 전도사님이에요. 함께 대전시립교향악단에서 클 라리넷 오보에 연주하셨던 분들이 실용음악 판에 뛰어 드시면서 CCM을 시작 하 신 거죠. 그러다 보니 클래식과 실용음악이 합쳐져 엄청난 밴드가 됐어요. 저는 그때 <가브리엘의 오보에>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처음‘드림’이란 밴드를 알았죠. 그리고 그분들의 앨범을 그분들께 직접 돈을 주고 샀던 기억이 있는데요,침례 신학교 에서 했던‘CCM 컨퍼런스’(1997년으로 추정됨) 혹시 기억 하세요? 그때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CCM 하신다는 분들은 다 나오셨어요. 딱 한 번 하고 끝나 긴 했지만요. 컨퍼런스 현장에서 ‘드림 2집’을 반값으로 파는걸 아티스트께 직 접 돈을 드리고 사서 집에서 계속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그것이 인연이 닿아, 최성규 전도사님 제자로 들어가 BASS기타를 배웠고 함께 몇 년 동안 사역도 했었어요. 많은 CCM 아티스트들의 곡을 들었지만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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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감명 깊게 만나고 들었던 CCM 음반은 ‘드림2집 세상에게’입니다. 엔 : 저 같은 경우는 예배음악 같은 것을 많이 듣다가보니, 좀 더 ‘가요’ 같은 음 악에 대한 갈급함이 생겼어요. 어느 날 교회에 갔는데 가슴에 ‘팍’ 치는 노래를 만난 거예요. 그 곡이 바로 ‘워킹’의 <기대>라는 곡 이었어요. 이 경험이후로 가 요CD만 있던 제 CD플레이어에 CCM곡들이 채워지기 시작했어요. 찾아듣기 시 작 한 거죠.‘김수지’‘예레미’‘스트라이퍼’ 같은 팀들의 곡들을 찾아듣기 시작 했어요. 또, CCM의 대해서 생각나는 두 가지 강렬한 경험이 있어요. 하나는 2000년경 에 ‘올네이션스 경배와 찬양’ 큰잔치에 갔을 때 예요. 교회에서 단체로 갔던 건 데 그때 ‘하스데반’ 선교사님이 청중들에게 도전?을 던진 거예요. 집에 있는 가 요CD 모두 버리라고. 당시에 아주 신실하고 착한 청년이던 저는 그때 가지고 있 던 CD, MP3 파일들을 다 지웠어요. 지금 생각하면 미친짓 이었죠. 또 하나는 제가 ‘쿨대디’라는 아티스트를 좋아 했는데요, 그 아티스트에 얽힌 이야기예요 ‘쿨대디’보컬분이 앨범을 내고도 생활고에 시달려 기독교 음반을 유 통하는 곳에서 아르바이트하셨데요. 어느 날 박스를 나르다 무심코 박스 안을 보 니 자신의 CD가 있더라는 거죠. 그런데 그 박스가 반품하는 박스였어요. 이 에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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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를 듣고 한동안 분개했던 기억이 나요.‘쿨대디’앨범은 정말 괜찮은 모던 록 앨범 이었거든요. 어디 내놔도 인정 받을만한 팀이었다고 생각 했는데, 사람들 이 별로 알아주지 않았죠. 저는 그래서 ‘쿨대디’라는 팀이 마음에 많이 남아요.

CCM이 뭐였지?? 편 : 그럼 지금부터는 좀 더 깊게 들어가서 ‘CCM의 정의’에 대해서 각자의 생각 들을 한 번이야기 해 봤으면 좋겠어요. 일단 ‘하덕규의 CCM캠프’ 라는 CBS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그 프로그램 의 메인카피가 뭐였냐면 ‘음악은 오늘의 음악, 그 메시지는 영원한 것으로’ 였어 요. 그 당시 그러니까 소위 한국 CCM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90년대 초중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아주 넉넉히 잡아서...) CCM을 깔끔하게 정의 할 수 있었던 말 이 저는 이 카피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CCM이라는 말 자체는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줄임말이잖아요? 굳이 해석하자면 ‘동시대적인 기독교 음악’ 정도가 되겠죠. 그런데 지금은 CCM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단 CCM 시 장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줄었고, 다양성도 이제는 거 의 없다시피 하죠. 솔직히 지금은 대부분이 예배음악, 찬양만 남아있는 상태고 그것마저도 2~3개 팀이 독점하는 상황이잖아요? 또 지금 CCM이라고 하면 사람 들이 쉽게 그냥 찬양을 떠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하고요. 그 이상을 상상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엔 : 몇 년 전에 ‘CCM은 죽었다’ 라는 말이 거의 공언처럼 나왔을 때, ‘CCMer’ 라는 잡지 게시판 안에서도 CCM의 정의, 혹은 바운더리(boundary)에 관한 논쟁 이 좀 있었어요. 그 때 그 논쟁을 보면서 제 스스로 정리를 좀 했었는데요. 일단 CCM캠프의 카피,‘음악은 오늘의 음악, 그 메시지는 영원한 것으로’라는 말에 물음표를 찍고 싶어요. 먼저 ‘영원한 메시지’는 무엇이냐? 라는 문제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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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신학적인 문제일 수 있는데, 기독교의 핵심 메 시지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여러 곳에서 굉장히 다를 것 같거든요. 굉장히 다 양한 답변들을 그냥‘영원한 메시지’라는 말로‘퉁’쳐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인 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또‘오늘의 음악’이라는 부분에서는 왠지 강요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지금 사 람들이 보편적으로 좋아 하는 음악으로 다가가야 하지 않겠니?” 라고 하는. 그렇 게 되면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음악들은 배제 돼야 하나? 라는 생 각이 들거든요. 제 생각에 CCM은 교회에서 만들어 지고 교인들을 향해 불려지는 ‘예배음악’ 외에 분류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교회 안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를 대변하고 공유 할 수 있는 음악. 저는 그것이 예배음악이라고 봐요. 예배음악 이외에 CCM이 존재 하느냐에 대해서는 그런 것이 과연 필요 한가? 하 는 생각이 들어요. 굳이 CCM과 대중음악을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저는 무 의미 하다고 생각해요. 길 : 제 생각에는 누가 부르고,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고, 어디에서 부르고 있나, 하는 문제가 중요 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문제가 중요 한데도 불구하고 아 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릴 때가 있어요. 저는 예배음악을 하는 사역 단체에서도 오래 사역을 했었고, 또 제가 지금 활동 하는 밴드는 거리와 아픔의 현장에서 노래를 하거든요. 그곳에서 노래하는 이유 는 제가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 가치관에 대해 거부감이 있거나 기독교에서 쓰 는 언어나 느낌들을 전혀 이해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쓰고 있는 언어로 다가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에요. 그래서 투쟁현장에서 노래를 하거나, 통일에 대 해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한 번은 제가 해군기지건설 문제로 이슈화 돼 있는 제주 강정마을에 노 래하러 간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우리가 교회에서 자주 부르는 ‘부흥’‘보리 라’같은 노래 들이 불려 지고 있는 거예요. 강정에 계신 분들 중에는 교회 다니 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분들도 굉장히 많으시거든요. 그런 경 험을 하면서 CCM 이라는 바운더리 자체를 규정하고 나눈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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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양한 음악으로서 그냥 받아들이 는 것이지 어떤 건 “CCM이 아니야” 하고 배제 하는 것이 무의미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전에 윤향기님이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노래 히트 치시고 한참 후 에 인터부에서 “그 노래 CCM이다” 말씀 하시는 것 들은 적 있거든요. <You Rise Me Up> 같은 노래도 교회 안에서 엄청 불리잖아요? 그런데 알고 보면 그 노래가 CCM은 아니거든요. 이런 예를 보면서 저에게는 CCM을 규정짓는 것 자체가 어 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 우리에겐 이런 저런 정의나 규정보다 다 양성을 인정해 줄 수 있는 ‘품’이 필요한 것 같아요. 편 : 우리 셋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비슷한 것 같아요, CCM을 지금 이 시잠에 구 분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동의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오히려 90 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는 CCM이라는 구분이 필요했고 또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엔 : 어떤 면에서 그때, 그러니까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오히려 CCM을 정 확히 구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장이 존재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어쨌든 그 때는 나름 많은 팬을 거느린 CCM아티스트들도 있었고, 다양한 팀들의 음악들 도 쏟아져 나왔고요. 그때는 물론 가요쪽 보다는 소수이기는 했지만, 아티스트 가 음반을 만들면 사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것을 가지고 집회나 콘서트 같은 공연 들도 많이 했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지금은 아예 CCM시장 이라는 것 자 체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굳이 CCM이라는 구분이 필요 한가 하는 생각 이 드는 거죠. 편 : 맞아요, 지금 굉장히 중요한 지적을 하셨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주 넉넉하게 잡아서 90년대 초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CCM이라는‘시장’이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분명 ‘CCM 시장’이 존재 했어요. 그리고 바로 그 CCM시장이 생겨난 이유가 그때 당시 대한민국교회의 분위기 를 휩쓸었던, 어쩌면 유행처럼 번졌던 ‘문화선교’때문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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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좀 잘나간다 하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문화선교’를 이야기 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시장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투자를 하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교회에서 문화선교를 놓기 시작 했거든요. 투자되는 돈 에 비해 전도가 많이 안되니까. 그렇게 교회가 문화선교를 포기하기 시작 하면서 CCM시장도 점점 침체기로 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 생각은 그래요. 길 : ‘문화선교’ 라는 단어 자체가 믿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믿 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하는 의미였고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CCM, 즉 음악 이였잖아요? 뿐만 아니라 그때에는 연극도 있었고 온누리교회 같 은 경우는‘열린예배’라고 해서 예배 안에 콩트나 연극을 삽입 하는 등의 시도가 많이 됐었는데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포커 스가 맞추어져 있었거든요. 그래서 하덕규의 ‘가시나무’ 같은 노래는 CCM의 아 이콘과 같은 것 이었고요. 어제 제가 페이스북에 CCM에 대한 생각을 친구들에게 물었어요. 댓글을 보니 까 ‘시인과촌장’이나 ‘드림’의 음악같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더 초점이 가 있 는 노래들을 CCM이라고 말하지 않더라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CCM 은‘예배음악’이였어요.‘예배음악=CCM’ 인거죠. 저는 당연히‘드림’이나 ‘시인 과촌장’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가치관을 이야기하는 그런 음악들을 생 각해 왔는데,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CCM 하면 떠올리는 것이‘어노인팅’이나 ‘ 마커스’ 같은 팀들을 이야기 하는 거죠. 저는 괴리감이 들더라고요. 소위 CCM중흥기라 불릴 수 있을 90년대 초중반부 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시대가 저물고 CCM 시장이 폭삭 주저앉으면서 예배음 악으로 시장이 재편성된 느낌 이예요. 그런데 문제는 그런 예배음악들을 좀 뜯어 보면‘힐송’이나 다른 외국 곡 들을 무분별하게 카피하고 있거든요. 저는 그 많은 곡들의 저작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지도 신기해요. 암튼 지금 사람들이 인지하는 CCM은 예배음악이고, 저는 그 부분이 참 안타까 워요. 그 댓글을 통해서 찬양 외에 기독교의 가치관을 담은 노래를 부르고 싶은 저 같은 사람들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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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 : 사실 예배음악이 교회 내에서 유행 할 수밖에 없었던 건 톡 까놓고 말해서 수를 유지하기 위해서였잖아요? 어떻게든 사람들을 아니, 젊은 청년들을 교회에 앉혀놓고 싶은 거죠. 편 : 어떻게 보면 군대에서 교회 가는 사람에게 초코파이 주는 거 하고 다를 게 없어 보여요. 솔직히 90년대 초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거의 모든 교회에 서‘문화선교’라는 이름으로 투자도 하고 집회도 하고 공연도 많이 했잖아요? 그 때는 CCM가수들이 교회 행사 하면서 먹고 살 수도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요 즘은 안 그렇잖아요. 뭐, 거창하게 ‘문화선교’‘다음세대’를 위한 투자라고 했지 만, 군대에서 초코파이 주는 것과 똑같은 거죠. 결국은 쪽수 늘리려는 거였다고 봐요. 엔 : 그리고 또 그때는 자본이 들어갔잖아요. 대형교회 중심으로 투자도 많이 했 고. 그런데 몇 년 해보니까 딱히 뭐 없는 거죠. 길 : 맞아요. 인풋은 많은데 아웃풋은 별로 없고 편 : 그렇죠, 한 100만원 투자 했으면 한 30명은 교회 나와야 하는데 이건 뭐 한 두 명 나오는 거지. 엔 : 저는 그 부분에 CCM이 가진 한계가 있었다고 봐요. CCM 중흥기라 말했던 그 시절에도 사실 퀄리티가 높은 아티스트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아무라 중의적인 메시지, 기독교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 거의 가요느낌의 노래들도, 일 반 가요와 비교했을 때 후졌거든요. 퀄리티가 떨어지니까 사람들도 관심 없고, 교회에서도 투자 좀 하다가 전도도 안 되고 돈은 돈대로 드니까 그냥 손 털은 거 죠. 솔직히 저는 심하게 말해서 대형교회 자본에 놀아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지금 다시 CCM을 일으킬 만한 방도가 없잖아요? 저는 절망스러워요. 이판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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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그 부분에 있어선 아쉽고 힘든 부분이에요. 지금 기독교의 현실과 연관이 되 는 것도 같고. 우리 셋이 지금 CCM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초점이 세상에 맞춰 진 거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폭삭 주저앉고 교회에서만 불리는 예배음악이 유행 하면서 어떻게 보면 세상과 더욱 고립된 느낌이 들어요. 단적으로 예를 들어서 수련회에 믿지 않는 친구를 데려갔는데 통성기도 같은 거 하면 부담스럽고 충격을 받잖아요. 그런데, 그런 대형집회가 활성화 되면서 좀 더 괴리감이 커진 것 같아요. 어떻게든 믿지 않는 사람들과 접점을 찾으려고 하는 그런 노력들도 지금은 별로 없으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궁금한건 그럼 그때 활동했던 CCM아티스트 선배님들은 어디에서 노래하고 계신가? 입니다. 편 : 저도 가끔 그런 생각해요. 그 당시에 잘 나갔던 CCM가수들, 예를 들면 ‘김 수지’나 ‘A-MAN’ 같은 분들은 요즘 뭐하고 사실까. 엔 : 대부분 목사님 하시지 않나요? 찬양인도자가 되신 분도 있을 테고. 아예 이 판을 떠나 다른 일 하시는 분들도 많겠죠. 길 : 그러니까 답답하고 고민이 되는 거예요. 저처럼 CCM 근처를 서성거리는 사 람들은 그런 아티스트들이 처음 만들었던 길을 따라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 은 그 길이 갑자기 없어진 느낌이에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죠. 그렇다고 공연을 할 수 있는 물리적 장소나, 공연을 기획해 줄 수 있는 기 획자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아티스트가 이제는 음악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 대관까지 스스로 해 야 하는 거예요. 사실 벅차거든요. 기획해주고 판을 벌려주는 사람이 필요한 건 데 그게 더 자연스럽고요. 그러다 보니 대안처럼 거리로 뛰쳐나와야 하는 거죠. 너무 없으니까. 공연 할 곳이 없고 불러주는 곳이 없기 때문에. 편 : 정리하면, 일단 지금에 와서 CCM이란 카테고리를 만들어 정리 하는 것이 사실상 무의미 하다는 점. 이미 그럴 수가 없어졌고, 소위 CCM중흥기라 말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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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90년대 초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대형교회 즉 소위 돈 많은 교회 에서 ‘문화선교’라는 이름으로 적지 않은 자본을 투여했고 그로인해 CCM시장 이 만들어진 측면도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부터 문화선교에서 교회들이 손을 때게 되면서 이제 CCM은 ‘힐송’ 같은 예배음악이 거의 대대분인 상황이 되어 버렸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 게 좋은 메시지, 인류애적인 메시지를 전달 하고자 했던 아티스트들은 사실상 거 의 사라졌다. 그렇기에 예전부터 CCM을 좋아했던 팬들과 예배음악만이 CCM이 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과의 온도차이도 좀 생기는 것 같다. 사실 지금은 예배음 악이 곧 CCM이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뭐 이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겠네요. 답답하네요. 쓴 웃음도 나고. 사실 CCM뿐만 아니라 음악시장이 주저앉은 것 에 영향을 준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기야 하겠지만, 당시 교회 자본이 CCM시장 을 유지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고,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효율 과 성공만을 놓고 능률이 안 오르니 그냥 버린 면이 있는 거죠.

예배음악, 너님은 참 문제가 많아 편 : 뭐 이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요. 이유야 어찌됐든 요즘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CCM이란 사실 예배음악이잖아요? 이제 그 찬양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 봤으면 해요. 한국교회가 문화선교 한다고 한참 돈 쓸 때, 그때 대부분의 교회에서 드럼 사 고, 키보드 사면서 밴드악기들을 사들였잖아요? 요즘 아주 작은 교회 빼고 드럼 없고 키보드 한 대 없는 교회가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현재 거의 모든 교회에서 크고 작은 밴드 구성으로 된 예배음악밴드를 가지고 있는 상황이 됐어요. 그런데, 그런 각 교회 예배음악 팀들이 주일마다 부르는 예배음악이 저는 문제 가 많다고 생각해요. 일단 가장 큰 문제점은 번안곡이 너무 많다는데 있다고 봐 요. 그리고 그 번안곡도‘힐송’의 찬양에 너무 집중돼 있기도 하고요. 우리정서, 대한민국 정서로 부를 수 있은 찬양이 별로 없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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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 저는 뭐 100%동의하고요. 일단 너무 쉬운 방법이잖아요. 멜로디 다 있고 그 냥 가사만 번안해서 부르면 되니까요.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 내려는 노력들이 너 무 부족한 것 아닌가 생각해요. 대형교회 대형집회 인도하신다는 분들 조차도요. 그걸 부르기만 하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될 텐데, 그걸 또 앨범으로 만들어 팔잖아 요? 저작권문제는 어떻게 처리 하는지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는 ‘부흥한국’ 이라는 팀에서 지금까지 5장의 앨범이 나왔는데, 그 앨범들이 정말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점은 모두 자작곡이라는 점이예요. 음악 스 타일이나, 곡 자체가 어떠냐를 떠나서 일단 자작곡 이라는 점이 매우 훌륭한 거 죠.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이나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이 부분에 대한 문제의 식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엔 : 기독교에서 음악이라는 것이 어떻게든 사용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에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고 싶은데요. 한국교회가 함께 공유 할 수 있는‘정 서’라고 하는 것이 과연 뭘까, 또는 그 정서에 대해서 고민은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 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가 그것에 대해 질문하거나 고민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교회는 음악을 굉장히 도구화시켜서 사용하는, 그저 예배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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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퉁이에 끼워 넣으려고만 하죠. 저는 개인적으로 성공회 스타일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에 출석 하는데요, 그러 다 보니 전례가 많이 강조가 되요. 그런데 그 전례에 필요한 곡은 그때그때 만들 어 쓰고 있어요. 특별한 경우 이기는 하죠. 멜로디를 좀 바꾼다든지 아니면 가사 를 좀 바꾼다든지 아예 새로 만들기도 하고, 저는 그 부분이 정서를 모아 내거나 만들어가는 과정 이라고 생각 하거든요. 지금 한국교회가 예배음악에 있어서 해 야 할 작업이 바로 이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사실 그런 운동들이 없지는 않았거든요,‘많은 물소리’찬양집이 있었어요. 보 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중간 중간에 칼럼들이 있었잖아요. 그것을 만들어가던 멤 버들이 같이 고민했던 이야기를 실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함께 만들었던 노 래들, 그 노래를 부르는 과정들, 바로 그런 과정들에 집중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 각이 들어요. CCM의 흥망성쇠를 자본이 쥐고 있었다면, 이제는 예배음악만이 라도 그 주도권을 빼앗아 왔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그냥 일반 성도들이. 그래서 지금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직접 만든 곡들을 나누고 싶은 마음들도 있거든요. 편 : 어떻게 보면 교회에서, 혹은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들이 정서를 고민하기보 다(정서를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나 할까요?) 그냥 아주 손쉽게 갖다 쓰 는 거죠. 별로 고민 없이. 그리고 그런 곡들 가운데서도 엉터리로 번역된 곡들도 많고. 엔 : 저는 그래서 서툴지만 우리 정서로 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노력만이 지 금처럼 번안곡 으로 편중된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해 요. 정말 중요한 지점은 각 교회 공동체의 정서에 맞고 그것을 반영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가? 나아가 스스로 공급하는 공동체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에 있으 니까요. 길 ; 저도 음악을 하지만 어쩌면 손쉬운 건 카피가 아닐까 생각해요. 이건 누구 도 부정 할 순 없을 거예요. 그런데 이게 너무 팽배해 있어요. 심지어 예배인도자 가 하는 멘트까지도 똑같은 경우도 있더라고요. 이것을 프로 팀들까지도 빈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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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하니까 그것을 각 교회에서 배우는 거죠. 물론 곡을 만들기가 쉬운 건 아니잖 아요. 그리고 그런 여력이 없는 교회들도 많고요. 하지만, 분명히 노력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봐요. 대형교회 예배음악 팀들도 사실 그런 노력들을 별로 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그런 분위기 들이 흘러 들어가는 것 같아요. 자작곡은 때론 어설프지만 참신 할 수 있고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 우 리가 우리 정서로 만들고 부르는 예배음악들이 늘어날 거라 생각해요. 편 : 좀 전에 엔틸드님께서 “교회는 음악을 굉장히 도구화시켜서 사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이 부분을 좀 더 보충하면서 마무리 하면 어떨까싶어요. 엔 : 푸념처럼 했던 얘기지만, 번안곡이든 창작곡이든 노래들이 예배 속에서 하 나의 도구로 전락하는 거야말로 근본적인 문제 아닐까 싶어요. 다들 공감하시겠 지만, 예배음악은 예배 전에 예배를 준비하는 워밍업 정도로 여겨지잖아요? 마음 을 열게 하는 수단 같은 걸로. 그래서‘준비찬양’이라는 말도 많이 쓰고요. 그런데 고대의 기독교로부터 중세를 지나 현대까지 적어도 기독교에서는 예배 에서 음악이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거든요? 사실 오늘날이야말로 기 독교에서 예배음악이 가장 무시당하는 시절 아닌가 싶어요. 음악은 단순히 음악이 아니라 예배의 구성요소이고, 어찌 보면 설교와 동등하 다고 할 정도의 지위를 가져야 하는데도요. 실제로 전례를 중시하는 예배에서는 음악이 예배 요소요소에 들어가 있거든요. 단순히 찬송가를 부르는 수준이 아니 라, 말씀이나 중요한 신앙고백에 가락을 붙이는 거죠. 중요한 예배의 순간에 음 악이 들어가면 그 힘이 더 강해지는 측면도 분명히 있거든요. 일반적인 한국 개신교에서는‘음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배의 본질이다.’라는 식으로, 또 음악이 개인의 감정만 자극하고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 로 음악을 천시하거든요. 그렇게 치면 설교라는 예배의 한 부분이, 목사라지만 제한된 인간으로서 전하 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아주 중요하게 강조되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봐야겠죠. 예배의 본질은 음악도 아니고 설교도 아니어야죠. 설교와 음악 모두 예배의 큰 정서를 구성하는 동등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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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이상한 위치에 음악을 버려놓고 신경도 안 쓰는 한국 개신교 예배 가 좀 못마땅해요. 또 예배음악 사역자들에 대한 낮은 처우도 문제라고 생각하 고요.

이쯤해서 이야기를 마쳤다. 마지막 엔틸드님의 말 “예배음악 사역자들에 대한 낮은 처우도 문제”라는 지적했지만,예나 지금이나 ‘처우’자체가 있기나 한가? 그런‘처우없음’으로 CCM은‘있었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사라지고, 지 금의 기형적인 예배음악만이 간신히 자리를 채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CCM처 럼 예배음악이 없어지지는 않을것이다. 예배전 바람을 잡기위해 필요로 하니까. CCM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CCM은 없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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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

없는것 배우기

어떻게 사람이 쓸데 있는 것만 배우면서 사나! 소위 ‘스펙 올리기’ 만 하면서 산다 면 우리 인생은 얼마나 갑갑한가. 그래서! 준비했다. 앞으로 이 쳅터를 통해서 우리 는 삶에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것들, 배운다 해도 이력서에 써 넣을수 없는 것 들, 쓸데 없이 시간 때우기 좋은 것들만 골라서 배워볼까 한다. 쓰잘데기 없다고 이 세상에 없어도 되는건 아니니까. _<놀다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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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구랑 친구하기> 랼입니다! 상투적인 표현을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네요! 하하 손뜨개 가방 만들기 연재 시작한지 정말 엊그제같은데, 벌써! 어느덧! 마지막호입니다. 시간 정말 빠르죠~* 지난호에 이어 손뜨개 가방을 차근차근 완성해볼거에요~! 한번 만들고나면, 쉽고 유용해서 또 만들고 싶으실거에요~^.* 씬나게 손뜨개 가방을 만들어보아용~ 여러분~! 그동안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디서든 우리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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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

가방끈을 달아서 펼쳐놓은 겉감위에 안감을 올려주세요 겉감의 겉과 안감의 겉이 만나게 포개주세요 중심선에 맞춰 시침핀으로 고정 후, 가방끈이 있는 양쪽면을 1cm로 박음질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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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를 잡고 분리해주세요 안감은 안감대로, 겉감은 겉감대로 포개지도록! 시접은 가름솔로 위, 아래 중심에 맞춰 시침핀 고정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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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방 양옆면을 쭉~쭉~~박음질해요~^-^ 여기서 잠깐! 안감쪽 한면은 창구멍을 낼거에요 안감의 가운데에 12cm 창구멍 자리를 두고 박음질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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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구멍으로 오른쪽을 넣어 가방을 뒤집어 줄거에요~! 모서리의 한쪽면을 접고, 나머지면을 접어 각을 잡아주세요~ 가방 안쪽에서 오른손으로 모서리를 잡고 먼저 뒤집어놓고,다른쪽 모서리도 이렇게 해주세요 이렇게 하면, 각이 살아있어 모서리가 예쁘답니당~^-^ 그리고 창구멍을 통해 가방을 뒤집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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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사진)이 4쪽의 천이 만나는 부분이라 둔해지거든요~ 그래서 뒤집어서 꼭! 시접을 가름솔로 정리해주세요~ 그리고 겉에서 시침핀으로 고정해주세요 안감을 가방속에 집어넣고 시침핀으로 겉감과 안감을 고정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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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면의 가방끈 부분부터 끝박음질을 해주세요~ 가방끈 있는 부분은 2-3번 되박음질로 튼튼히 박아주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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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딱단추를 달아보아용~* 똑딱단추에 직접 닿는 천을 보호하기 위해 인조가죽이나, 빳빳한 천을 똑딱단추 동그란 크기에 맞게 잘라서 껴주세요. 안쪽에 들어갈 빳빳한 천과 심지도 준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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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양옆을 접어서 가방끈 사이의 중심선을 안감쪽에 표시해주세요~* 똑딱단추의 위치는 끝에서부터 높이 2.5cm를 중심으로 표시하고, 선에 맞게 가위집을 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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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딱단추를 안감 겉면에 박아주고, 창구멍을 통해 안쪽 자리를 정리해주세요 빳빳한 천-심지-똑딱단추판을 순서대로 통과시킨 다음, 똑딱단추 다리를 양옆으로 펴서 고정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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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딱단추의 심지를 반으로 접어 박음질로 마무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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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말 마지막 단계입니다!^-^ 창구멍의 시접을 1cm로 접어놓고 끝박음질 해주세요! 그럼~~ 나만의 <손뜨개 가방>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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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요~~~ <놀다가,>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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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는 잊어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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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벌고, 더 놀아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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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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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해피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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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편집장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 으로는 먹고살기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깨달아, 다른 노동으로 돈을 벌면서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 을 심각한 취미 로 여기고 살아가는, 대한민국 남자 사람 노동자. * 꽤 애호가 무심하게 마침표 찍기 보다는 쉼표와 함께 생각하고 싶으며, 간단히 재단하기 보다는 시 간이 걸려도 상세히 이야기하고 싶다. 구불구불한 골목 어귀를 걸으며 긴 대화 나누는 것 을 좋아한다. 삶의 태도로써의 예술을 지향하고, 그것이 결국은 삶을 예술로 만듦을 믿는 다. 길을 잃었을 때라야 비로소 도시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듯이, 예상치 못하였던 시간 을 통해 즐거운 사람들을 만난다. 놀다가, 걷다가, 이야기하다가, 웃다가 하는 이 공간이 즐겁다. * 다르덴 자매 다들 행복하기만 한 거 같아서 불편했다. 그럴 리가 만무한 거 같아 영화를 보기 시작했 다. 영화를 보면서 삶이, 행복이 무언지 조금씩 생각을 고쳐먹었다. 얇고 짧은 생이라 이 렇게 몇 자라도 쓰다보면 통찰이 돋아나는 날이 오겠지 싶어 <놀다가,>에 투신(?) 해 보 기로 했다. * 대충 소설가 적당주의자: 한탕주의적이고 무사 안일한 현실주의적 비관론자. 즉, 어차피 세상 사는 거 한번이고, 결국 로또는 누구한테든 터질 것이지만, 어쨌든 나는 안될 것이고, 그렇지만 뭐, 모두들 어떻게든 살지 않겠어? 라며 하루하루 실실 쪼개며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 게 나다. *랼 <지구랑 친구하기>의 가내수공업자. 일회용품 사용을 멀리하고, 손수건과 개인물통(텀블 러)을 항상 들고 다닌다. 환경과 건강을 살리는 생활실천이 바로 <지구랑 친구하기> 생활 소품의 시작이라는 모토로 오늘도 재봉틀을 돌린다. www.chiguya.com * 산초 일상과 일탈사이를 방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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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문화잡지 월간 <놀다가,>는 덜 벌고 더 노는 세상을 꿈꿉니다. 혼자 놀기보다 같이 노는 세상을 꿈꿉니다. 완벽한 전문가 보다는 투박한 아마추어를 사랑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느낌, 생각, 이야기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같이 놀까요?

거의 문화잡지 월간 <놀다가,> 2013년 11월 23일 6호 시즌1 끝 http://noldag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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