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다가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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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0

도착



지구랑 친구하기 UPCYCLE HAND MADE SHARE

‘지구랑 친구하기’ 는

환경과 건강을 살리는 지속 가능한 생활소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일회용품 사용을 되도록 줄이는 생활실천이 곧 <지구랑 친구하기> 생활소품의 시작입니다. 휴지보다는 손수건을, 종이컵보다는 개인물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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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벌고 , 더 노는 세상을 꿈꾸며.

<놀다가,> 5


도착: [명사] 목적한 곳에 다다름.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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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명사] 목적한 곳에 이르러 닿음.

다음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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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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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왔으니 그걸로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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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contents 2017년 10월 23일 / 10호

여는글 놀다가 게임

나와 게임

놀다가 음악

사랑길

놀다가 영화 놀다가 일기

11p

13p

시인의 사랑은

21p

도착, 다시 출발점에서

37p

<놀다가,> 10

29p


여는글

처음, <놀다가,>를 하려던 때가 생각납니다. 우리는 모여서 “딱 10번만 만들어 보자” 했었습니다. 그 당시 계획으로는 한 달에 한 번씩, 그러니까 10달 후면 일단 우리가 목표 한 바는 이룰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람 일은 절대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2013년 3월 30일 0.5호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1번째 <놀다가,>를 만드는 동안 4년이나 흘렀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깜짝할 새에 지나간 시간들이 무섭기도 합니다.

4년여의 시간 동안, 우리가 어떻게 변해왔나를 생각합니다. 많아 변한 것 같기도 하고, 하나도 안 변한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각들은 얼마나 깊어졌고, 우리의 글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깊어지지 않았으면 어떻고, 글이 하나도 안 좋아졌으면 또 어떻습니까. 그냥 우리는 11번을 만들었습니다.

무언가를 꾸준하게 해왔다는 점에 스스로 박수를 보내고 싶은 오늘입니다.

2017년 10월 23일 놀다가, <놀다가,> 11


<놀다가,> 12


놀다가게임

나와 게임

1. ‘최선을 다한다’라는 말은 매우 잔인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했다는 걸 정확히 측정할 수 없고, 또 증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최선 을 다했다고 증명하려면 그만큼의 결과가 좋아야 한다. 나 스스로 최선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어도 결과가 좋지 않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결과가 나쁘다 는 건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일이 될 때가 많으니까. “최선을 다한 거야?” 혹은 “이게 최선입니까?” 또는 “ 최선을 다해라”라는 말 은 지금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채찍질하는 말이다. 그 말 엔 만족이 없다. ‘더’, ‘좀 더’를 늘 요구할 뿐이다. 끝이 없는 말, 끝나지 않을 말. 아무리 발버둥 쳐도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는 탐욕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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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력했지만,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는 일은 거의 없다. 부족한 보상의 이유가 처음에는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지만, 지 금은 생각이 다르다. 원래 세상은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주지 않는다. 생각을 뒤집어야 했다. 노 력하면 그만큼 보상이 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의 보상을 받기 위해 많이 노 력해야 하는 게 세상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그 ‘조금’이라도 받기 위 해 때로는 ‘최선’이라는 단어를 들먹이거나 들어야 하는 것이 세상임을 나는 알았다.

3. 세상에 많은 일 중에 최선에 대한 압박이 없으며,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따라 오는 일이 몇이나 될까? 모두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며, 경쟁도 원치 않으 면 피할 수 있는 일은 몇이나 될까? 최근 나에겐 그 일이 게임(컴퓨터, 비디 오게임)이다.

게임이라는 세상에 접근하는 것이 처음부터 공평한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 절 게임은 비싼 유흥이었다. 100원도 큰 돈이던 어린 시절에 오락실에서 100 원 넣으면 내가 최대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5분 ~ 10분 정도에 지나 지 않았다. 게임을 잘하는 사람은 100원을 가지고도 오랜 시간을 즐길 수 있 었지만, 그 오랜 시간을 100원만을 가지고 즐기기 위해서는 엄청난 100원을 버렸을 것이다. 타고난 게이머는 흔하지 않았다. 많이 투자하면 실력이 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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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자금이 없던 나는 실력을 키울 수는 없었고 대부분 남이 하는 걸 구경하 면서 보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상황이 달라졌다. 컴퓨터가 빠르게 값이 싸짐에 따라 오락실도 점점 줄어들더니 이제는 찾기도 불가능해졌다. 그 많던 오락실은 PC방으로 바뀌었고, 그 PC방마저 요즘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과 자본주의는 적어도 게임에 관해서는 내게 좋은 시절을 선물했 다. 이제는 핸드폰보다 싼 가격에 게임기를 살수 있게 되었다. 내가 오락실에 서 서서 구경하던 게임들은 내 컴퓨터 안으로 고스란히 들어와 있다.

4. 세상에 대한 환멸이 커질수록 나는 게임 속 세상으로 점점 더 빠져들게 된다. 게임 속에선 누구나 공평하게 처음을 시작할 수 있다. 누구나 똑같은 무기와 재료를 가지고 레벨 1에서 세상을 시작한다.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 작할 수도 있다. 실패를 통해 배운다는 말이 그냥 듣기 좋은 말이 아닌, 정말 로 실패를 통해 배우게 된다.(그러니까 게임상에서는 ‘죽음’을 통해) 실패했 던 지점에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다다를 수 있으며, 반복해서 다다를 때마다 그 실패를 극복하고 뛰어넘기가 쉬워진다. 더 이상 실패가 두렵지 않다. 가다가 지치면, 그 순간에 그 지점에서 잠시 멈 추는 것도 가능하다. 아니, 몇 날 며칠 혹은 한 달, 아니면 그 이상이라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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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멈추게 할 수도 있다. 또다시 돌아와 내가 멈추었던 그 지점에서 멈추 었던 그대로의 지점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게임의 세계에서 나는 전능하 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리고 그 선택도 나에게 달려 있다. 하기 싫으면 당장 때려치울 수도 있다. 자주 때려치우고 포기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훈계 하는 사람은 없다. 단지 취향으로 존중할 뿐. 그리고 악당을 죽일 수 있다. 원 하는 만큼 몇 번이고 반복해서.

5. 군대 내 총기 난사를 게임 탓으로 돌리고, 각종 흉악범들은 평소에 폭력적인 게임을 즐겨 했노라고 말들 한다. 때로는 마약 취급을 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에서 쭉 살아왔던 나에겐 익숙한 일이다. 어릴 때는 만화책이 마약이었고 지 금은 그게 게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한편으로는 게임만 잘해도 부자가 될 수 있다 말하며 스타가 된 프로게이머 들의 성공을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게임을 정당한 하나의 스포츠로, 혹은 번듯한 직업으로 인식하는 기성세대는 몇이나 될까? 게임은 밥 먹을 때 밥 안 먹고 핸드폰 만지작거리는 아이들의 쓸데없는 놀이에 불과하다고 생각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나부터도 아직 게임기를 가졌노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할 때가 많다. 왠지 그렇게 말해버리는 순간 사춘기의 어디쯤에 멈추어 버린 어리석은 놈이 되 지 않을까 하는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은 교육받아온 두려움이다. 만화에서 게임까지, 학교 공부 외에는 악하다는 인성교육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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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서도 잘 바뀌지가 않으며 스스로 나를 검열하게 만 든다.

하지만, 가상의 공간에서 총질, 칼질하며 사람처럼 보이는 오브젝트를 수만 명 죽이는 일과,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불평등과 억압들 중 무엇이 더 폭력적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수없이 많은 아파트 단지와 빌라촌들 속에 서 내 집이 없다는 사실로부터 도망쳐, 게임 속 내 집, 내 세계를 건설하며 방 에 틀어박히는 삶을 한심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게임 속에서 나는 전능한 신이기도 하고, 몇만 년 만에 한 번 나타나는 영웅 이기도 하다. 멸망해 가는 인류의 거의 마지막 생존자이기도 하고, 세계 최고 의 모 함가 혹은 보물 사냥꾼이기도 하다. 나는 지구에 있기도, 우주에 있기 도 하며, 전혀 다른 환상의 세계에 있기도 하다. 세상의 어떤 일이 나에게 이런 경험들을 안겨 줄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게임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 끝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 의 세계를 시작하고, 하나의 세계를 종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선’이라는 탐욕적인 단어가 쏟아지는 세상살이에, 무언가 하나 완벽하게 종결지을 수 있다는 것, 퍽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덧) 영화나 음악도 완벽한 종결이 있긴 하다. 하지만, 게임은 그 종결을 위해 내가 참여한 부분이 많기에 더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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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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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영화

시인의 사랑은 김양희 2017, 영화 <시인의 사랑> ※ 물론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영화 <시인의 사랑>의 제목은 마치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시인의 사랑이라니, 과연 우리의 사랑과는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시인의 사랑이 가 닿은 종착지는 어디일지, 그 도착지가 궁금하다.

시인은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읽는다. 시인의 눈으로 차 창밖의 사람들, 흔 들리는 나무, 그 사이로 빛나는 햇살, 멀리의 바다와 반짝이는 파도를 하나하 나 읽어간다. 그 모습이 좋았던 여자는 시인과 결혼한다. 시인의 밥벌이란 일 천한 고로 시인의 아내는 그가 등단할 수 있도록 생계를 책임지다시피 한다. 동갑내기 동창생인 시인 부부는 격이 없다. 감정 표현도, 서로에 대한 생각을 내뱉는 일에도 거침이 없다. 그렇게 상처를 주고받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그 사이에 깊은 사랑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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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아이가 갖고 싶다. 쉬이 아이가 생기지 않자 그들은 병원을 찾고, 시 인의 정자가 의욕? 이 없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렇게 인공수정을 준비하는 동 안 아내는 임신이 되지 않는 슬픔에, 남편은 자신이 마치 도구가 된 것 같아 서, 그래서 시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은 것만 같아 괴롭다.

그들의 슬픔과 우울, 서로에 대한 책망이 짙어질 즈음, 시인은 소년인지 청년 인지 모를 사내를 만난다. 일단 그 사내를 소년이라 부르기로 하자. 아내가 힘 내라고 사다 준 도넛이 이들을 만나게 한다. 시인은 소년의 말과 행동으로부 터 영감을 얻는다. 죽어라 써지지 않던 시가 써지고, 사람들이 그의 시에 수 긍하기 시작한다. 시인은 영감을 좇아 소년을 좇는다. 그렇게 소년을 좇던 시 인은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소년에게 자꾸 마음이 쓰인다. 다시 또 그 쓰인 마 음을 좇아 소년의 형편과 마음을 살피며 주위를 맴돈다. 시인에게 사랑은 영 감이자, 자신을 시인이게 하는 것이다.

소년은 몸져누운 아버지와 오랜 병간호와 생계로 모질어진 어미와 셋이 산 다. 아르바이트로 소일하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자신의 불우함을 떨쳐보려 애쓰는 소년은 이상하게 자신의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자신의 사정을 돌보 는 시인이 싫지 않다. 부모도 돌보지 않는 나 자신을 저토록 정성스럽게 돌보 는 남자가 이상하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프다. 같이 걷 고 산책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이 싹트고, 어느새 그 감 정은 우정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조금 부족한, 다른 이름이 필요할것 만 같은 그런 무엇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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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남편의 낌새가 너무나 이상하다. 그의 시어에서, 그의 작은 행동과 말 투에서 아내는 사랑을, 연애의 감정을 읽어낸다. 그렇게 아내의 의심과 질문 이 날카로워질수록, 시인은 오히려 자신의 감정에 점점 더 깊이 다가간다. 아 내는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가졌고, 믿을 수 없는, 듣고도 이해하지 못하겠 는 남편의 감정에 처음에는 어리둥절 웃어넘기다, 화가 나서 망신을 주고 분 해하다가, 나중에는 그의 부재가 두렵고 무서워서, 최후에는 너무도 간절하 게 그에게 매달리고 만다. 그것은 꼭 뱃속의 아이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 녀의 매달림은 조금의 구차함이 없는 너무도 순수한 간절함이며 그것은 그 녀의 사랑이다.

시인과 소년은 왜였는지, 무엇이 시작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선명해져 버린 자신들의 감정에 솔직해지려고, 모든 것을 걸어보려고 한다. 소년은 아 내를 만난다. 그것은 아마도 아내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으리라.(잘 차려입은 아내의 모습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아내는 그녀가 어떻게 그를 만났는지, 그 리고 그가 이제 아버지가 되었음을 소년에게 말한다. 소년은 그 모든 것을 무 시하고 싶다. 자신도 사랑받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다. 하지만 그녀의 간절 함, 그리고 그 간절함 속에 있는 시인과 그의 아이의 행복을 무시할 수가 없 다. 아마도 이것은 소년의 사랑이다.

시인은 그렇게 소년을 떠나보낸다. 사랑은 사랑할 때에도, 사랑이 머물고 간 이후에도 영감인지라, 시인은 시를 쓴다. 그리고 그 시 안에 그의 사랑이, 절 망과 그리움이, 그리고 그것들이 뒤섞여 삶이 된 시어들이 있다. 시인은 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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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nav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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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써 더 시인이 된다. 시인과 소년은 우연히 재회한다. 그 우연은 너무도 영 화적이다. 어쩌면 현실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울 법한 그들의 재회는 제주도라 는 공간적 제약으로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시인은 시인이어서, 그리고 그 사랑이 너무도 간절해서 소년과의 재회를 매 일 꿈꿨을지 모르겠다. 시인은 언제고 만날 소년에게 전할 영감의 값을, 그 사 랑을, 그리고 시인에게는 삶을 이어갈 희망이었을 선물을 소년에게 전한다. 그 선물은 소년의 지지부진하고 벗어날 길 없는 일상에 돌파구가 된다. 그리 고 시인은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재회의 희망을 잃고 집에 돌아와 아이 앞에 앉아 눈물 흘린다. 그 눈물은 그렇게 슬프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 눈물은 아 마도 시인의 사랑이다. 그리고 살아감에 대한 연민이다.

시시한 연애가 싫었다. 이제 사랑을 한다면 진짜 사랑을 하고 싶었다. 실은 시 시한 연애 같은 건 존재하지 않고 시시한 나만 있을 뿐인데, 그저 연애를 탓하 며 시시하다는 한탄만 이어 왔구나 문득 깨닫는다. 다만 시시한 내가 아니라 서 누군가를 알아보고 그로부터 영감을 얻고 또 주며, 그래서 서로가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고(극 중의 아내의 대사처럼), 상대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물러나기도 하고, 그렇게 선택된(선택’한’이 아니다) 삶 속에서 사랑을 읽어내는 것, 그래서 시시해질 수 없는, 그런 사랑. 그래서 영화 <시인의 사랑 > 속 인물들의 사랑은 어느 하나 시시하지 못했다.

시인의 사랑이 도착한 곳은 다행히도 세 사람 - 시인 자신과 아내와 소년 -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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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nav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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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균형의 자리인 것 같아 마음이 조금은 편했다. 하지만 영화적으로는 몹시도 안정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다. 세상은 오히려 영화보다 막장인지라, 현실에서의 시인과 소년은 함께 떠났으나 헤어졌고, 아내는 아 이를 홀로 키우며 다시 돌아온 남편을 받아주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 고 어떤 선택과 상황이 그들에게 더 행복을 줄지, 더 나은 선택이 될지 역시 알 수 없다.

우리의 사랑은 어디에 도착할까. 우리 사랑도 그들의 사랑처럼 어느 정도는 균형 있고, 각자가 나름의 행복을 찾는 지점에 가닿기를 바라본다. 그래서 우 리 눈물이 아주 짜지만도, 달지만도 않기를, 다만 간절해서 시시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_다르덴 자매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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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음악

사랑길

Track 01. 도착 Ending 분명 노래가 시작되기 직전의 침묵과 끝나고 난 후의 침묵은 같지 않다. 그런 데 내 인생은 시작한 적도 없는 노래가 끝난 후의 침묵 같았다. 나는 늘 조용 했고 혼자였다. 대개의 소심이들이 그렇듯 아주 조금의 친한 친구들뿐이었 다. 그런 내게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건 TV나 소설에나 나오는 남의 일이었다. 내가 너무 별난 사람인가 싶어 학창시절엔 남들은 다 느낀다는 설 렘이란 감정을 느껴보기 위해 억지로 애를 쓰기도 했다. 비가 오면 웅덩이에 물이 고이듯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몸과 마음의 영토가 넓어졌을 때, 둘러 덮었던 무거운 옷들을 벗어던지고 한여름 바닷가로 뛰어들듯 연애 감정으로 나를 던져 넣었다. 하지만 워낙 혼자 아닌 상황에 서툴렀던 나는 이내 연애 감 정이란 대양 한가운데 표류하는 신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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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떠돌며 몇 년 간의 흠모와 구애, 실패와 실수와 상처의 주고받음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나에 관한 한 가지 진실이었는데, 그건 내가 나만 의 둥근 벽 안에 갇혀 있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향한 가득한 마음을 들고 나가려니 문이 없고, 나를 향한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들이기에는 내가 쳐 놓 은 벽이 너무 높았다. 하지만 전에는 벽이 있는 줄도 몰랐다. 나를 답답하게 하는 그게 뭔지 몰랐으니까. 연애 감정의 바다를 떠돌다 간신히 도착한 넓지 않은 마음의 영토에서 내가 발견한 건 좁고 높은 벽 안에 갇혀 있던 나 자신이 었다. 바다인 줄 알았던 그곳은 사실 한낱 빗물 고인 웅덩이였던 걸까. 있을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벽의 존재를 알고 나서 나 혼자 넘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장 그 벽 때문에 인생 전체의 에너지가 길을 잃고 휘청거릴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무엇을 시도해도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벽을 알고 나 서 맞이한 몇 번의 연애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벽 앞에서 녹아내릴 때, 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을 해야 했다. 그 벽에서 물러서지도 않고 주저 앉지도 않겠지만 그렇다고 넘으려 애쓰지 않겠다는, 홀로 서겠다는 결정을.

Track 02. 시작 Beginning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기초를 가르치는 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힘을 빼라’이다. 특히 목에 힘을 빼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잘 부르겠다는 욕심을 거두고 몸이 시키는 대로 자연스럽게 호흡을 사용해서 소 리를 내는 것이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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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연애가 자신을 온전히 자신으로 살게 돕는 거라면, 그런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는 힘을 참 많이 빼야 하는 것 같다. 내가 그랬다. 그 사람을 처음 만났던 날은 관습적으로 갖던 새로운 인연에 대한 어떤 기대 조차 접어둔 때였다. 우리가 만났던 모임은 딱히 새로운 사람이 올 자리도 아 니었기에 아무 생각 없이, 굳이 연애에 대해 생각한 게 있다면 나를 좋아할 사 람은 없으리라, 있다면 감사한 일이지만. 뭐 이 정도였다. 그리 신경을 두고 있진 않았지만 그녀를 처음 본 장면은 기억난다. 뒤로 질끈 묶은 머리에 갈색 계통의 코트를 입고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에게 약간의 눈 길을 더 둔 건 사실이었지만, 정작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건 그녀가 말한 자 신의 ‘투쟁’ 이야기였다. 홀로 그러나 용감하게 싸우는 그녀가 참 멋있다고 생 각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적어도 나는. 벽 앞에 서 있는 내게 바깥에서 신호를 보낸 건 그녀였다. 하늘로 연도 날리 고, 벽을 빙빙 돌며 소리도 질렀지만 나는 그 모든 게 우연히 보고 듣게 된 관 광객들의 놀이인 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 그녀가 던진 밧줄을 보고서야 깨 달았다. 그녀가 나를 좋아하고 있음을. 밧줄을 보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이렇 게 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밧줄은 처음 본다고. 그렇게 마음의 벽을 넘은 나는 새로운 시작점 앞에 섰다.

Track 03. 길 위에서 On The Crossroads 이 세상의 어떤 노래도 감정의 찰나를 온전히 다 담아낼 순 없다. 그 찰나는 제 갈 길로 가고, 거기서 붙잡아 달랜 몇 가지만이 남아, 가버린 찰나를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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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할 뿐이다. 마치 그런 노래처럼, 이 모든 고백은 길 위에 선 내가 지나간 길을 돌아보며 하는 고백이다. 길을 떠난 지 불과 몇 달 되지 않은 우리에게 는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넓은 세상과 많은 길들이 나를 흥분시키고 힘을 불어넣어 준 것도 사실이었지만 다시 혼자였던 벽 안 으로 돌아가고 싶게 만든 것도 사실이었다. 한쪽 얼굴이 그녀를 보며 웃고 있 다면 다른 쪽 얼굴은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두고 온 마음의 벽을 향하고 있달 까? 그러다 우리 둘 사이에 문제가 생길 때면 기다렸다는 듯 얼굴은 울상이 되고 멀어져 가는 나만의 벽을 돌아보는 내가 드러나곤 했다. 다른 한 편으 론 길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내 자아가 그 길의 수만큼 분열하려는 듯 욕심 을 부렸고, 그러고 나면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하게 해 함 께 걷기 힘들게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뒤통수를 강하게 때리는 한 마디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 도 이 말을 처음 꺼낸 건 나 자신이었는데, 둘이서 잘 모르는 동네 골목을 걸 을 때마다 여유를 찾기 위해 했던 말이었다.

‘길은 이어져 있으니까.’

처음 경험하는 세계가 낯설고 힘들어서 뒤를 돌아보게 될 때, 자아가 욕심을 부리고 긴장 가득한 눈앞이 흐려져 갈 때, 이 한 마디의 말이 흘러가는 곳을 향해 눈을 돌리면 내 옆에 언제나처럼 서 있는 그녀가 보인다. 그리고 이 말 을 우리의 연애의 배낭에 집어넣을 때마다, 두고 온 나만의 마음 벽, 함께 걸 어온 길과 그 앞의 표지판들, 서로 힘겨워 아파했던 시간들이 사라지고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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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길만 남는다. 그 믿음이란 건, 우리가 잠시 서로 다른 길로 향하더라도 이어진 길을 따라 어 떻게든 다시 만나지 않을까 하는 대책 없는 낙관 같은 믿음, 마음의 벽 안에서 의 혼자일 때와는 전혀 다른 홀로서기를 가능하게 하는 믿음이다. 그걸 배낭 에 넣고 내딛는 발걸음이 어디로 향할지는 전혀 알지 못하지만, 언제든 배낭 을 열어 바라보며 만지고 먹고 마실 수 있는 우리 둘만의 것이 있다는 사실은 아직 분명하다. 우리 둘만의것, 남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엔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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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den Track : 배낭여행 해가 지고 달이 떠도 하늘은 끝없이 펼쳐져 있네 / 오늘 같은 날에는 땀에 흠 뻑 젖도록 걸어도 좋아 / 해가 뜨고 달이 져도 길은 영원할 것처럼 놓였네 / 오늘 같은 날에는 흠뻑 젖도록 물놀이 해도 좋아

노을이 질 때까지 서쪽으로 달렸어 / 햄버거 한 쪽에 배가 부른 내가 이상해 / 이제 몸도 마음도 든든히 챙겼으니 / 구름과 바람 사이를 미끄러져 갈 거야

Journey to wild Journey to wider

가야 할 길 생각하면 까마득해지지만/ 쉬다가 걷다 보면 까만 밤은 지나가 지 / 남기고 갈 것도 없는 약소한 인생이지만 / 어느새 같이 가는 그대가 있 으니까

Journey to wild Journey to wider

엔틸드 자신의 이야기, 이웃에 관한, 또 사회에관한 이야기를 노래하는 싱어 송라이터. 이 말

은 매우 뻔해보이지만 뻔하지않다. 2017년 대한민국 에서는 더더욱. 흔히 만날수 있는 음원사 이트(멜론, 지니 네이버 등)나 유튜브를 통해 엔틸드의 노래를 들어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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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일기

도착, 다시 출발점에서

제가 지금 도착한 곳이 어디인지부터 말해야 할까요. 생각해보면, 얼마 전 일 본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는 꽤 부지런히 계획을 세웠습니다. 휴가 일정 을 맞춰 비행기 표를 끊고, 지하철역과 가까운 곳에 숙소를 예약하고, 어디에 가서 어떤 음식을 먹으면 좋을까 생각하며 예산도 세웠지요. 일부러 타지에 가는 만큼 시간도 에너지도 알뜰하게 쓰고 싶어서 많은 정보를 모으고 살뜰히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여행 날짜가 가까워서 일기예보를 보니 일본에 있는 내내 비가 온다고 하네요. 날씨만큼은 미리 계획할 수 없으니까요.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재미있게 놀자, 그러다 피곤하면 편의점 음식을 잔뜩 사서 숙소에서 쉬지 뭐! 하며 일단 떠났습니다. 다행히 비가 많이 오지는 않았고, 때에 맞춰 해가 떠주는 덕에 아주 만족스러운 여행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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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여행과 많이 닮았다고 하지만 실은 무척 달라서, 언제 어디에서 무얼 할 지 계획하기가 어렵습니다. 여행에 끼어드는 변수라고 해봐야 고작 날씨 정 도였지만 삶에는 생각지 못한 갖가지 계기가 따르게 마련이니까요. 제 삶도 그랬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제 꿈은 과학자였답니다. 과학 선생님을 좋아해 서 과학 공부를 제일 열심히 했는데 그만 재미를 느끼고 말았지요. 생물이나 지구과학보다는 화학, 물리를 좋아했습니다. 훌륭한 과학자가 되려면 수학을 잘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좋아하지도 않는 수학 책을 붙들고 씨름했던 기 억이 나요. 아직도 집 어딘가에 [수학의 정석]이 있답니다. 어쨌거나 지금 생 각 해면 그때 이공계 대학교로 진학했더라면 퍽 심심해했겠다 싶어요. 알고 보니 저는 학문 그 자체보다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고,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에 더 관심이 많더라고요. 심리학과에 진학하려다, 신학교(개신교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신앙심 충 만한 저로서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신에 대해 공부하며 풀어갈 수 있 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신이 사람을 지었으니 신에 대해,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세상을 둘러싼 섭리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아주 많은 사람들에 게 이롭게 쓰일 지식과 혜안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열심히 공부 한다면 말이지요.

그렇게 무턱대고 들어간 신학교는 제 예상과는 아주 많이 달랐습니다. 스무 살 청년일 뿐인데 벌써 대형교회의 우두머리를 꿈꾸는 사람도 있었고, 평신 도 교인들을 자신이 가르치고 돌봐야 할 ‘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어 요. 교회에서 배워온 신앙에만 갇혀 수많은 신학자들이 고민하고 연구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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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물을 배척하거나 무턱대고 기도와 찬양에만 힘쓰며 ‘직통계시’에 매달리 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저는 공부에도, 이런 문화에도 적응하지 못하다가 ‘가 난한 이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붙잡혔습니다. 가난하고 힘이 없어서 교 회에서조차 지워진 이들, 사회에서 유령처럼 존재하는 이들과 함께하며 고 통받는 하나님을요. 저는 철거민, 홈리스 등 주거권을 두고 운동하는 동아리 에 들어가서 활동했습니다. 신의 영원성과 초월성은 이렇게 세상 속에서 고 통받는 이들을 위해 쓰일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나님의 정 의, 공의로움이 이루어지는 나라, 누구도 차별받고 소외되지 않는 나라가 하 나님 나라, 곧 천국이니까요.

신앙적인 이야기를 너무 오래 했나요. 그렇게 저의 방향은 신의 정의로운 속 성에 오래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는 기독교계 운동단체에 몸담으며 활동했지요. 그런데 이곳에서는 또 다른 담론이 일어나기 시작하더 군요. 운동사회에서 남성은 주로 리더 역할을, 여성들은 이를 보좌하고 실무 를 이끌더란 말입니다. 여성 리더가 있었지만 독보적인 사람들 몇 뿐이었습 니다. 매우 실력 있고 독보적인 소수의 여성 리더와 대부분의 남성 리더, 그리 고 많은 수의 젊은 여성 실무자들. 점점 ‘중년의 남자 단체장과 젊은 여성 간 사’구도에 대한 비판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면 누가 컵을 씻는가, 공공연하게 성차별이 이루어지지는 않는가, 집행위원이나 실행위원, 이사 등의 조직 리더십에 성별 비율은 어떻게 되는가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선배들이 생겨났어요. 이 흐름 속에서 저도 성차별 문 제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칭찬이랍시고 건네던 예의 “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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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간사님”농담에 맞장구치며 웃던 날들이 사사사 지나더라고요. 좀 더 정확하게는 제 연애를 주제로 이야기 나누던 운동 선배가 발화한 “사 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아이디어, 그리고 또 다른 선배에게 선물 받 은 정희진 씨의 [페미니즘의 도전]이 제 눈을 밝혀 주었습니다. 정의, 그러니 까 정의로운 신에 대한 신앙의 열정을 쏟을 구체적인 상황이 생긴 것이지요. 페미니즘, 참 무심코 발 디디고 살아온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정직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앞서 이 주제를 고민하던 선배의 제안으로 동료들과 그룹을 만들고 스터디를 했습니다. 여성주의 책을 읽고 토론하고, 교회에서 성도에 게 성범죄를 저지른 남자 목사 사건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포럼도 열고,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만나려 강의도 열었습니다. 그런 활동, 공부와 토론을 통해 중요한 화두가 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페미니즘은 보다 풍성 한 방향으로 제 삶을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도착한 곳은 기독교인으로서의 페미니즘 운동, 크리스천 페미니즘입니다.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을 별도로 구분해서 사는 사람들도 많 지만 저에겐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에 팽배한 여성 혐오와 성차별이 교 회 안에서 신앙의 이름으로 버젓이 작동하고 있고, 신앙심이 투철한 소위 ‘복 음적인’사람들이 사회에 나가 성범죄를 저지릅니다. 신앙의 이름, 신의 이름 으로 뒷받침되며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여성 혐오와 성차별에 이름을 붙이고 싶습니다. 젊어서는 옷단 속과 혼전순결 강요에, 특정 나이가 되어서는 결혼 강요와 남편 내조, 찬양, 양육 독박과 주방 봉사로 시달리는 교회 여성들의 현 실을 알리고 함께 외치고 싶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내가 믿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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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하나님은 차별받는 여성들과 함께하며 같이 싸우실 거라고 말이죠. 이곳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래서 이곳은 제게 다시 출발점입니다. 여기서 만나는 많은 사람과 사건들이 저를 또 어디로 데리고 가게 될까요. 저 는 어디서 달라지고 어떻게 깊어지며 또 어느 만큼 도약하게 될까요. “5천 년 이 넘는 가부장제의 언어, 그리고 그 안에서 쓰인 성경의 언어가 가지는 힘은 어마어마하다, 이 힘에 기죽지 말고 이제 시작한 여성의 언어, 우리의 말을 자 꾸만 힘써 발화하자”고 박소영 교수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우리의 말을 할 것,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자꾸만 외칠 것, 우리가 - 우리와 함께 고통받는 신 과 더불어 여기 이렇게 살아있다고 위엄있게 외치고 싶습니다. 삶이 데려다 준 자리에서, 제가 도착한 이 자리에서. -달밤-

달밤 ‘믿는페미’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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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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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언제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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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FF * 거의 편집장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 으로는 먹고살기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깨달아, 다른 노동으로 돈을 벌면서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 을 심각한 취미 로 여기고 살아가는, 대한민국 남자 사람 노동자. * 꽤 애호가 무심하게 마침표 찍기 보다는 쉼표와 함께 생각하고 싶으며, 간단히 재단하기 보다는 시 간이 걸려도 상세히 이야기하고 싶다. 구불구불한 골목 어귀를 걸으며 긴 대화 나누는 것 을 좋아한다. 삶의 태도로써의 예술을 지향하고, 그것이 결국은 삶을 예술로 만듦을 믿는 다. 길을 잃었을 때라야 비로소 도시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듯이, 예상치 못하였던 시간 을 통해 즐거운 사람들을 만난다. 놀다가, 걷다가, 이야기하다가, 웃다가 하는 이 공간이 즐겁다. * 다르덴 자매 다들 행복하기만 한 거 같아서 불편했다. 그럴 리가 만무한 거 같아 영화를 보기 시작했 다. 영화를 보면서 삶이, 행복이 무언지 조금씩 생각을 고쳐먹었다. 얇고 짧은 생이라 이 렇게 몇 자라도 쓰다보면 통찰이 돋아나는 날이 오겠지 싶어 <놀다가,>에 투신(?) 해 보 기로 했다. * 대충 소설가 적당주의자: 한탕주의적이고 무사 안일한 현실주의적 비관론자. 즉, 어차피 세상 사는 거 한번이고, 결국 로또는 누구한테든 터질 것이지만, 어쨌든 나는 안될 것이고, 그렇지만 뭐, 모두들 어떻게든 살지 않겠어? 라며 하루하루 실실 쪼개며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 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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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문화잡지 월간 <놀다가,>는 덜 벌고 더 노는 세상을 꿈꿉니다. 혼자 놀기보다 같이 노는 세상을 꿈꿉니다. 완벽한 전문가 보다는 투박한 아마추어를 사랑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느낌, 생각, 이야기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같이 놀까요?

거의 문화잡지 월간 <놀다가,> 2017년 10월 23일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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