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sm vol.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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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학 생 국 제 시 사 저 널 프 리 즘 제 7 호 2 0 1 3 년 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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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7

제7호 2013년 12월 특집 | 발 묶인 진격의 중국

북한 설계 2013.architect


편집장의 말 최근 한국 언론에서는 두 국제 이슈에 주목했다. 하나는 중국에서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소 식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에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장성택이 실각했다는 소식이다.《프리즘》 에 서 주목한 것도 중국과 북한이다. 기획에서 2013년 북한의 행보를 정리하고 향후 진로를 짚어 본 다면, 특집에서는 중국의 강대국화의 발목을 잡는 요인들을 다룬다. 기사의 주제를 현안과 연관 지어 몇 마디 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장성택의 경우는 복잡하게 생각할 이유가 아직 많지 않다. 그는 당에서 김정은의 자율성을 위 협할 수 있는 핵심적인, 어쩌면 거의 유일한 변수였다. 그가 실각했다면 당 내부의 큰 변동이 생 겼다기보다는 김정은의 지도가 더 안정화됐다고 보는 편이 맞다. 물론 실세를 정치 무대에서 끌 어내리는 과정에서 생겼을 어수선한 분위기를 수습하는 것은 김정은에게 남은 과제다. 장성택의 실각은, 올해 초 열린 당세포비서대회로 상징되는 당의 장악이라는 과제의 일환으로 파악해야 한 다. 강화된 리더십은‘병진로선’ 과‘마식령속도’ ,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에서 나타난 경제적 회복 의 의지를 추동할 역량을 더 얻었다. 물론 이‘3대 수령’ 의 자율성이 강화된다고 해서 이 추세의 연속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가 인민 생활 중시에서‘총대’중시로 급격히 돌아서 겠다고 결심할 때 이를 견제할 방안이 약화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실각이‘병진로선’ 의 향방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용감한 예언이 아니라면 신중한 추측이 가능할 뿐이므로, 더 지 켜보도록 하자.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중국의 강대국화가 어떤 양상을 띨 것인가 하는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번 선포는 뒤늦게 항공모함을 만들기 시작한 중국의 물리적 역량을 반영하기도 하지 만, 더 중요하게는 핵심이익을 지키면서 미국과 신형대국관계를 수립하겠다는 세계 질서 구상의 갈등 국면을 예고하기도 한다. 최근의 논란은, 역설적이게도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한다는 사실 을 명백히 입증하면서 동시에 그 부상의 어려움을 확증한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부정할 수 없 는 현상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렇게 떠오른 대국의 권력 행사는 승인할 수 있는 현상인가? 특집 에서는 중국이 물질적 풍요를 이룩하는 사안은 물론, 그렇게 얻은 힘을 행사하는 데서 내부와 외 부의 불만을 얻을 여지를 함께 검토한다. 강대국은 공장과 포탄의 통계 수치 속에서 만들어지기 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그 수치를 바라보는 국제 사회의 눈길 속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 시선을 경멸이나 두려움에서 호의로 바꿀 수 있는 소프트 파워가 요청되고 있다. 우리 자신에 관한 소식도 하나 언급해야겠다.《프리즘》 이 어느새 창간 1주년을 맞았다. 창간 때부터 취지에 공감하고 줄곧 발간을 위해 협조해 주는 뿌리기획을 잊을 수 없다. 매 호를 관심 있게 지켜보며 여러 의견을 보내주는 독자들의 조력에도 깊은 감사를 표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프리즘》 을 만들면서 어떤 공로도 스스로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해 주시

2013년 12월 편집장 최정훈

Gustave Dore

는 노동자들께 사의를 표하고 싶다.


Contents 대 학 생 국 제 시 사 저 널 프 리 즘 Vo l . 7

01

편집장의 말

04

프리즘 우편함

06

오늘 세계는

08

창간 특집

첫 돌 맞은 프리즘, 그리고

12

역사를 들이키다

Knock, knock 에그녹을 즐길 시간

14

세계인의 한마디

“프랑스 저항의 불꽃은 꺼져선 안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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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꺼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기획│북한 설계 2013.architect

마식령 속도는 얼마나 달렸나

2013년도 2학기 교양 북한어 초급

오성산, 현실을 위한 상징인가 상징을 위한 현실인가

34

부활의 메커니즘

국제 시사

대학생국제시사저널

Prism


38

국제 시사

나는 지금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

42

세계를 듣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CAROL!

44

특집│발 묶인 진격의 중국

닥터 시진핑의 국유기업 수술

진격의 경제! 내과 진단 한 번?

위구르인들의‘성전’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

58

국제 시사

천재(天災)에 이은 인재(人災), 누구의 책임인가?

62

기고

국제정치학과 지역학

64

혀로 맛보는 역사

간절한 소망에서 주적(主敵)이 되기까지, 쌀과 밀

66

지갑에서 꺼낸 근대인

68

스크린의 국제정치

72

꿈인가 비전인가

76

프리즘 책갈피

78

독자 퀴즈

79

편집 후기

80

프리즘 사용설명서

‘집안일 하는 사람’에서 국민 영웅으로 가장 보통의 존재, 사람이 하는 사람 이야기 이념으로서의 실용 시대?

ⓒ이인재

목차

3


Vol.7 대 학 생 국 제 시 사 저 널

편집장 총무 편집위원 객원기자 표지 디자인 발행처 인쇄 제작·광고

2013년 김정은 체제는 당세포비서회의에 서 시작해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이메일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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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훈 이인재 김만희 김영은 김주량 박새미 박정민 손현선 이근호 견세령 이인재 프리즘, 뿌리출판기획 대학생 국제시사저널 프리즘 (주)인쇄그룹형제 뿌리출판기획 02-741-6411 www.iroots.co.kr journal.prism@gmail.com blog.naver.com/prismjournal @Prismjournal facebook.com/Prismjournal

직위 해제로 끝났다. 그 사이에도 꽤 많은 일이 있었다. 핵무력과 경제 발전을 동시에 추진하는‘병진 로선’ 의 선포는 외자 유치 를 목적으로 한‘마식령 속도’ 의 강조로 이 어졌다. 남북 관계는 개선과 악화를 반복했 다. 오성산에 오르는‘선군’ 의 기억도 놓지 않았다. 새로운 북한의‘설계자’김정은의 한 해를 돌아본다.

발행인 등록번호 등록연원일 제호 간별 발행소 발행년월일 통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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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희 마00062 2012년 12월 5일 대학생 국제시사저널 프리즘 격월간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길30 2013년 12월 13일 제7호

Copyrightⓒ 대학생 국제시사저널 프리즘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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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우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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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개혁법 개정안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1월 29일 워싱턴DC 연방의회의사당 앞에서 이민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는 단식농성자들을 방문해 격려했다. 오바마 2기 행정부가 과감히 추진중인 이민법 개혁포괄적 이민법 개혁안 의 주요 내용은 국경안보 강화, 불법이민자 시민권 부여, 비이민 취업비자 발행 등이며, 특히 핵심은 1,100만 명에 달하는 불법이민 노동자들이 체납한 세금을 내면 시민권을 부여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백악관에 따르면 이 법안을 통해 국경 안보가 강화되고, 세수가 증가하며, 해외 고급 인력들이 유입돼 경제게 활력을 불어넣게 된다. 그러나 이런 포괄적 개혁 법안은 하원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월 상원을 통과했으나 상원과 달리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에서는 통과되지 못하고 하원 회기가 종료되었다. 공화당은 포괄적 개혁보다는 국경안 보, 시민권 부여 등의 각 사안을 따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 방공식별구역 발표 ⓒ미국의소리

중국이 11월 23일 방공식별구역(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 ADIZ)을 선포했다. 방공식별구역 이라는 개념은 미국이 만든 것으로, 이 구역에 군용기 가 진입하게 되면 해당 국가에 알려야 한다. 국제법적 효력은 없으나 중국이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이 한국의 방공식별구역과 일부 겹치는 데다 이어도 상공까지 포함하고 있어 중국이 힘을 통한 외교를 본격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한국은 12월 8일 방공식별구역 확대를 선언했다. 일본은 미일 동맹을 통한 공동 대응 방침을 공표했다. 미국 바이든 부통령은 일본의 아베 총리를 만나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면서도“의도되지 않은 갈등이 더 위 험하다” 는 발언과 함께 중-일 위기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발언을 통해 긴장 상황을 누그러뜨리려는 노력 을 보였다.

온두라스 대선 부정 논란 지난달 24일 치러진 온두라스 대선 개표 결과가 논란을 빚고 있다. 개표 결과는 여당인 국민당의 대선후보 후안 에르난데스의 승리였으나, 야당인 자유당의 후보 시오마라 카스트로 측이 개표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며 결과에 불복했다. 12월 1일에는 시오마라의 지지자 5000여 명이 수도 테구시갈파에 위치한 최고선거법 원 앞에서 재개표를 요구하는 시위를 열기도 했다. 이에 온두라스 최고선거법원은 다음날인 2일 투표결과를 철저히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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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세계는

What’ s Coming? ⓒG20공식 홈페이지

2014 호주 G20 회의 G20 회의가 호주에서 개최된다. 이번 G20 회의는 올해 12월 12일에 셸파 미팅(사전교섭대표회의) 을 시작으로 내년 11월까지 셸파 미팅, 재무차관회의, 그리고 재무장관+중앙은행장회의가 번갈아 열리며, 11월 15일과 16일 이틀에 걸쳐 브리즈번에서 정상회의가 열린다. 이번 G20회의에서 의장 국인 호주는 의장국 권한으로 싱가포르와 뉴질랜드를 기존 G20 외의 초청국으로 지정했다. 이번 회 의의 의제는 지속가능한 성장과, 일자리 창출, 그리고 국제 경제의 유연성 구축이다.

2014년 3월 네덜란드 핵안보정상회의 핵안보정상회의가 내년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다. 2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핵안보정상회의 는 2010년 워싱턴, 2012년 서울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이번 회의의 의제는 핵물질의 축소, 핵물 질과 방사능 물질의 안보 증진, 그리고 국제 협력의 확대이고, 50개국 정상과 국제기구 대표단들이 참가할 예정이다.

1월 시리아 평회회담? 시리아 문제 해결을 위해 UN이 내년 1월 22일 개최하기로 결정한 국제평화회담(제네바2)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반기문 총장은 지난 달 25일 1월 22일에 평화회담을 열 것을 발표하면서 회담의 목 표를“과도정부 구성 및 2011년 6월 회담(제네바1)에서 합의된 내용을 이행하는 것” 이라고 밝혔다. 시리아 정부는 이번 평화회담에 대표단을 보낼 것임을 밝혔으나, 서방 국가들의 기대와는 달리 권 력을 이양하려는 뜻이 없음을 강조한데다, 하지만 주요 반군 세력인 자유시리아군의 대표 살렘 이 드리스 사령관은“회담에 참가하지 않을 것” 이라고 밝혀 회담의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근호

오늘 세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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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돌 맞은 프리즘, 그리고 2012년 11월 30일 창간호를 발간한 후,《프리즘》 은 어느덧 1년 째 순항 중이다. 처음 잡지를 손으로 받으며 꿈 같다 생각했던 것도 벌써 1년. 이제 제법 저널의 모양새를 갖춘《프리즘》 의 1주년을 자축할 겸, 처음으로 독자 분들을 만나보았다. 그간 독자 퀴즈와 함께 의견을 보내주시거나, 과월호 요청, 후원 등의 방법으로《프리즘》 에 관심을 보 여주셨던 분들 중 무작위로 몇 분께 연락을 드렸다. 오수민(이화여대 과학교육과), 이가영(고려대 영어교 육과), 이재식(연세대 대학원 지역학 협동과정), 황록연(서강대 화공생명공학) 등 네 분이 흔쾌히 응해주셨 고, 지난 12월 1일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프리즘》 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프리즘》 을 접하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봤다. 평소 잡지 보는 것도 좋아하고, 특히 마음 속

재식 학부 때부터 대학생들이 만드는 잡지에 관심

으로 순위를 매기는 것을 좋아하는데《프리즘》 은발

이 많았다.《프리즘》 은 올해 3월 학교 도서관에서

견한 이후로 항상 1위였다.

처음 발견했는데, 상업화된 잡지가 아니라 대학생 관심이 많았던 국제 정치나 외교 등의 주제를 다루

(웃음) 순위가 밀리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그러 면 읽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고 있어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수민 사실 전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장이나

록연 저도 마찬가지로 도서관 앞에서 2호를 처음

관점을 가지고 쓴 글들이 많아 흥미로웠다.

들이 스스로 만드는 잡지였고 또 전부터 개인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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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국제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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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영 여러 사건들을 표면만이 아니라 깊이 있게 다

다고 생각했다.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라든지 그런

루기도 하고, 접하기 힘든 자료를 인용하는 경우가

부분이 아예 중립적이기는 힘들다. 지금은 그렇게

많아서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심하진 않지만, 앞으로라도 너무 자극적인 표현이 나, 지나친 희화화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사 쓸 때 주로 누구나 접할 수 있지만 귀찮아 서 잘 보지 않는 자료를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5호의 전두환 외교문서 기획이 그런 것이었다. 그래도 모두 학생이라, 인터넷도 참고하고 책도 많이 보고, 학교 수업에서 힌트를 얻기도 한다.

재식 《프리즘》 은 1.5개월에 한번씩 발행이 되는 잡

재식 저 같은 경우는 원래 궁금한 걸 못 참는 편인

수민 이과 출신이라 아무래도 역사, 특히 세계사는

데,《프리즘》 을 읽고 나서 관심 있는 게 생기면 더

정말 잘 모르는 편이다. 그래서 기획이나 특집 기사

찾아보는 일이 많다. 지적 호기심을 만들어주는 그

는 서두에 역사적 배경이 설명되어 있으면 좋겠다.

런 기사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기성 언론들이

예를 들어 6호 시리아 특집 기사에 수니파와 시아파

발간하는 시사 잡지는 가격에 비해 내용이 부실하다

설명 같은 것 정도?

지고, 뉴스나 신문이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주요 이 슈들를《프리즘》 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집중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좌파, 우파 혹은 중립 이 런 틀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는데《프리즘》 은 학교에서 쉽게 접할 수 있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좋았다.

지금 생각나는 기사가 있다면?

《프리즘》 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나 지역이 편중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각자 자기 관심 분야를 기사로 쓰다 보니 남미나 동남아, 아프 리카 문제는 자세히 다루지 못할 때가 많다.

수민 3호에 6.10 만세 운동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

록연 동남아 관련 기사는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그 사건이 학교 교과서에서는 그렇게 중요하지

재민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남미나 아프리카도

않게, 실패한 운동이었다는 이야기만 나오는데 그런

중요하지만 독자들도 동북아나 미국, 유럽 등의 문

사건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

제에 비해서는 관심이 덜할 것 같다. 동남아의 경우

기사였다. 2호에 일본 드라마〈야에의 벚꽃〉 에 대한

에는 요즘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지역이니 더 다루

기사가 있었는데, 익숙한 드라마를 시사적으로 풀어

면 좋겠지만, 우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우리가

서 재미있게 읽었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문제들 중심으로 다루는 건 나

록연 ‘꿈인가 비전인가’코너가 좋다. 보통 우리가

쁘지 않다고 본다.

접하는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는 이념적인 판단에 따

으로는 4호의 파시즘 특집처럼 좀 자극적으로 느껴

표지에 공을 많이 들이는 편이고 항상 뜻을 많 이 담으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잘 전달이 되는 지, 또 보기에 예쁜지 항상 궁금했다.

지는 주제의 기사에 눈이 가는 편이다.

수민 표지는 전체적으로 다 좋았다. 특히 5호는 의

라 갈라질 때가 많은데, 그런 시선을 벗어나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는 글이라 좋았다. 또 개인적

미 전달이 잘 되어서 재미있게 봤었다.

내용 면에서 아쉬운 점이나 바라는 점이 있다 면?

가영 저는 좀 생각이 다르다. 실제 게임보다 화면

록연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읽으려면 창간호처럼

창간호 표지가 제일 마음에 들었고, 4호나 6호도 예

‘오늘 세계는’코너를 확대하거나, 인터뷰 기사가

퀄리티가 떨어지는 느낌이라 별로였다. (웃음) 저는 뻤다.

더 많았으면 좋겠다.‘프리즘 책갈피’ 에 소개된 책

록연 4, 5호 표지가 예뻤다. 그런데 5호가 재미있기

저자와의 인터뷰 같은 것도 좋을 것 같다.

는 했지만, 4호랑 비교해보면 좀 더 세련되어서 손

가영 개인적으로는 5호 표지가 약간 좀 아슬아슬하

이 잘 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앞으로《프리즘》 이새

프리즘 1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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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프 리즘》이나 다른 대학생 저널은 어 떤 역할을 하고, 어떤 방향을 추구 해야 한다고 보는 가? 수민 이런 일을 해 본 일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후원 금이나 광고 조달 이 중요하긴 한 것 같다. (웃음) 전에 로운 독자를 더 확보하려면, 국제 시사에 관심 있는

즐겨 보던 잡지도 어느 순간 조용히 발행이 끊겼는

사람 뿐만 아니라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들도 끌어

데 그런 금전적인 부분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디자인

록연 독자들로부터 투고나 기고를 받는 것도 좋은

특히 손이 가는 표지를 만드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방법일 것 같다.

생각한다. 재식 저는 개인적으로 표지보다 내용을 더 중요하

마지막으로 참석 소감 한마디씩 부탁 드린다.

게 생각하는 편이긴 하다. 하지만 내용이 아무래도

가영 잡지를 읽으면서 어떤 분들일지 참 궁금해서

무거운 주제가 많으니까, 너무 화사한 것보다는 4호

오게 됐는데, 생각보다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처럼 어두운 계열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재식 사회 생활을 하다 보니 최근에 또래들과 어울 릴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이렇게 만나서 즐겁게 이

대학생 저널이 많이 사라지는 추세다. 특히 대 학생들이 만드는 저널은 수도 많지 않고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프리즘》 은 어떻 게 해야 오래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독자 입장 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재식 〈응답하라 1994〉 만 보더라도, 예전에는 그 세

각을 했었는데, 논술 시험 본다고 해서 그만뒀다.

대가 다같이 공감할만한 대학생 문화, 청년 문화가

(웃음) 군대 다녀와서 열심히 내공 쌓아서 들어오고

있었다. 그 이전 세대는 또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공

싶다.

수민 저 역시 어떤 분들일지 궁금했다. 학교 다니면 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도 좋 은 글 많이 써주시면 좋겠다. 록연 사실 여름에 신입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생

유하는 의식이 있었고, 그런 목소리를 언론으로 투 영한 것이 대학생 저널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대학

지면이 모자라 다 담지 못했지만, 2시간 가까이 되는 긴 시간

생들이 그냥 예비 직장인 같이 되어버리기도 했고,

동안 정말 유익하고 즐거운 대화가 오갔다. 부끄럽고 감사한

자기 꿈보다는 기성화된 시스템에 자기를 맞춰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아무래도 우리 세대는 이 세대 가 공감할만한 문화나 특성이 별로 없는 편이고, 그

칭찬의 말씀부터 아쉬운 부분에 대한 지적까지,《프리즘》 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신 데에 대해 네 분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린다.

렇다 보니 대학생 저널들이 설 자리가 많지 않다고

인터뷰 정리: 이인재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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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 프리즘, 탄생부터 한 살이 되기까지 창간: 뜻밖의 여정

2012년 8월

8월 중순, 8명의 프리즘 원정대(!)가 창간을 위한 첫 모임을 가졌다. 11월이 지나기 전에 창간호를 낸다는 스스로 정한 목표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편집위원들은 창간호를 발간하면서 잡지 발간 과정을 배우게 된다.

첫 눈, 그리고 첫 책

2012년 11월

처음으로 직접 만든 잡지를 받아서 배포하는 길에 맞은 첫 눈은 10년이 지나도 잊기 힘들 것 같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목표대로 11월 지나기 전에 ‘실물’ 창간호를 손에 쥐게 되었다. 디자인이나 세부적으로 아쉬운 점도 많지만 창간호를 내고서야 비로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7시간 회의, 새벽 1시 귀가, 3개의 기획

2013년 3월

창간호를 내고 나름대로 감을 잡을 수는 있었지만 2호를 낼 때도 요령이 한참 부족했다. 회의를 7시간씩 하기도 하고 최종 교열은 무려 자정이 다 되어서야 끝내기도 했다. 그래도 겨울 방학 내내 준비한 결과 <핵맨 김정은>, <일본헌법, ‘ 불침항모’의 미래는?>, 그리고 <새내기 특집>까지 무려 세 개의 기획, 특집 기사를 실었고, 디자인부터 기사까지 창간호에 비해 많은 발전을 이끌어냈다.

정신 차려보니 여름 방학

2013년 4월

2013년 6월

3호를 준비하면서‘할 수 있을까?’싶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4호까지 발간하고, 여름 방학과 신입 모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3호에서는 <핵 Iran 무엇인가?> 특집을 통해 처음으로 동북아 바깥의 문제를 특집으로 다루었고, 국제 구호·개발 활동을 하시는 JTS 활동가 분들과 인터뷰도 할 수 있었다. 4호에는 이명박 정권의 5년과 새로 출발하는 박근혜 정권의 한미, 남북 관계를 분석한〈새로운 삼각관계, 새로운 시선〉, 2 차 대전 전범국의 극우 열풍을 파헤친〈이것은 파시즘이 아니다〉등 볼륨 있는 기사가 많이 실렸다. 3호부터 객원 기자 분들의 글을 싣기 시작했고, 4호 발간하면서부터 정기 구독 신청도 받고 있다.

두근두근 첫 면접

2013년 7월

프리즘 첫 신입 수습위원 선발 면접을 치렀다. 처음이다보니, 지원자들만큼 기존 편집 위원들도 꽤 많이 긴장했던 하루였다. 이후 가평으로 여름 MT도 다녀오고, 방학 동안 수습 교육과 스터디, 기사 준비를 함께 하면서 수습 위원들도 금방 프리즘의 일상에 익숙해졌다.

신생아에서 벗어나다

2013년 9월

2013년 11월

5호의 야심작 <1982, 북방의 마블>은 국내 언론 최초로 1982년 전두환 정권의 외교 자료를 상세히 분석한 기사로 우리끼리도 완성 후 뿌듯함을 많이 느꼈던 기획이었다. 5, 6호 연달아 중동 문제를 다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특집 <평화 없는 평화 회담>과 시리아 특집 < 국경 없는 내전, 시리아>는 생소한 중동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고도 깊이 있게 다뤄 호평을 받았다. 디자인도 안정적이 되었고, 새로운 필진이 들어오고나니 기사 주제도 좀 더 다양해졌다. 꾸준히 읽어주시는 분들도 어느 정도 생기고, 처음으로 인터뷰 요청도 들어와 우리가 인터뷰이가 되어 프리즘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10월 20 일 고함20 기사) 여전히 어렵지만, 다음 호보다 더 먼 미래를 생각할 마음의 여유도 좀 생겼다.

내년 생일도 무사히 맞을 수 있기를

2013년 12월

여전히 기사 쓰는 것은 쉽지 않고, 마감은 고되고, 걱정도 많다. 그럼에도 1년이 지났다. 1주년을 맞아 독자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두 번째 신입 수습 위원 선발도 있을 예정이다. 정기 구독 신청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난처럼 시작된 일은 정말 많은 경험을 가져다 주었다. 이 모든 걸음을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2014년에는 더 좋은 기사로 돌아올 것을 약속 드린다. 감사합니다!

프리즘 1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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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들이키다

ⓒwomensforum

Knock, knock, 에그녹을 즐길 시간 ⓒCarlanthony

옛날 오스트리아 빈에 미망인 그레타와 딸 클라라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레 타는 재봉 솜씨가 좋기로 소문이 자자해 끊임없이 일감이 들어왔고 옷을 지어 번 돈으로는 신선한 달걀과 크림, 설탕, 향신료를 사 딸에게 과자를 만들어 주 고 그것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그런데 하루는 왕의 전령이 그레타의 집을 방문해 여왕을 위한 황금 가운을 지을 것을 명령했다. 왕의 전령에게 대접할 것이 없었던 그레타는 클라라에게 쿠키를 만들어 주기 위해 사온 달걀과 크림, 설탕을 한데 넣어 휘저은 후 남아 있던 의약용 위스키를 조금 더해 은색잔에 담아 대접했다. 이를 맛본 전령은

감탄하며“달콤하면서도 푹신하고, 감미로운 이 음료가 무엇이죠?”라고 그레타에게 되물었다. 사실 이 전령은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노엘 클로즈(Noel Claus)였다고 한다. 에그녹 맛은 물론 그레타의 착 한 심성에 반한 노엘은 그녀와 결혼했고, 여기서 크리스마스 때마다 에그녹을 마시는 전통이 유래했 다고 한다. 노엘을 찾는 신화적 기원이 조금 허무맹랑하게 느

가‘너긴’ (’ nuggin)이란 이름의 작은 나무 잔에 담겨

껴진다면 다음의 설들을 읽어보길 권한다. 에그녹의

egg-n-noggin으로 불리던 것이 에그녹으로 축약되

‘녹’ 이 16~17세기 도수 높은 에일 맥주를 뜻하던 영

었다는 설 등 에그녹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시도들은

국 동쪽 지역의 방언‘nog’ 에서 나왔다는 설, 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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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국제시사저널

다양하다.

Prism


어쨌거나 영국에서 만들어진 상류층의 기호식품이

영국과 미국 외에도 에그녹과 유사한 음료를 만들

라는 것이 에그녹에 관한 정설인데, 대부분의 농장이

어 마시는 여러 나라가 있다. 코키토(coquito)는 푸

영지에 딸려 있었고 냉장고도 없던 시기 신선한 우유

에르토리코 버전 에그녹으로 럼 베이스에 신선한 코

와 달걀을 구할 수 있던 이들은 귀족을 비롯한 상류

코넛 주스나 코코넛 우유를 첨가한다. 페루 역시 크

층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달걀에 우유와 크림을 섞고

리스마스에서 신년 1월 1일까지의 연휴 기간에 비블

여기에 마데이라나 셰리 등의 백포도주 혹은 브랜디

리아(biblia)라 불리는 음료를 즐기는데 여기엔 특별

를 넣어 시나몬, 넛맥 등과 함께 에그녹을 즐겼다고

히 페루산 브랜디인 피스코(pisco)가 들어간다. 역시

한다.

독일은 맥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걸쭉한 에그녹과

이러한 에그녹이 신대륙으로 퍼져나가면서 들어가

달리 묽은 달걀스프에 가까운 모습으로 에그녹‘사촌

는 재료들이 풍성해지고, 첨가되는 술의 종류도 달라

동생’ 쯤을 만드는데 스프의 마지막에 맥주를 넣어 알

진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구대륙과 달리 신대륙에서

코올을 증발시키며 달걀의 비릿함을 날린다고 한다.

는 주인 없는 미개척지에 달걀이나 우유 등을 공급하 는 대규모 가축 농장이 자리잡았고, 덕분에 일반 사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에그녹을 한잔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정통 에그녹 레시피를 소개한다.

람도 쉽게 재료를 구해 에그녹을 만들어 마실 수 있 게 되었다. 또한 미국과 가까운 카리브해 서인도제도 에서는 당밀이나 사탕수수 등을 발효해 증류한 럼을

준비물 : 달걀 4개, 설탕 1/3컵과 1 아빠숟갈, 우유와

주로 만들었기 때문에 미국의 에그녹은 럼이나 버번

생크림 각 1컵, 버번 3온스(1온스는약 30ml) 추가적으

등을 주 재료로 삼는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 싱턴은 술 좋아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에그녹을 사랑했던 그는 라이위스키와 럼,

로 시나몬 가루나 넛맥 등이 있으면 준비 ① 먼저 둥근 볼에 달걀 노른자만 분리해 넣고 흰자들 은 다른 그릇에 따로 담는다. 냉장고에 넣어놓으면 더

셰리를 모두 넣은 그만의 에그녹 레시피로 음료를 만

좋다. 볼의 노른자를 거품기로 가볍게 섞어준다. 노른

들어 마셨고 이 강력한‘폭탄주’ 를 마시기 위해선 상

자가 풀리면 여기에 설탕 1/3컵을 넣고 충분히 섞은 후

당한 용기가 필요했다고 한다. 오늘날 에그녹은 추수

우유와 생크림을 넣는다. 이제 여기에 버번을 첨가하면

감사절에서부터 크리스마스 사이 미국 내 대형마트나

되는데, 버번이 없다면 럼, 위스키, 등 갈색 빛이 나는

식료품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작년 미국 스타 벅스는 계절음료로 에그녹라떼를 판매하여 하반기 매

양주나 셰리와 같은 화이트 와인 계열의 주류를 첨가해 준다. ② 이렇게 한 후에는 새로운 볼을 하나 더 꺼내서 남겨

출목표액을 초과 달성하였다고 보도했는데, 이 점에

두었던 달걀 흰자를 넣고 손목의 스냅을 이용하여 휘저

서도 미국인들의 에그녹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어준다. 한참을 휘젓다보면 폭신폭신한 하얀 거품이 올

하지만 최근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 자 미국에서 에그녹은“비만을 부르는 음료” 로 지목 되는 수모를 당하기도했다. 종이 컵 한 잔 정도의 에 그녹이 170칼로리로 고열량인 데다 지방이 10g, 콜 레스테롤 함량이 하루 권장 섭취량의 1/4에 해당하는

라올 것이다. ③ 이제 큰 병에 (1)을 담고, 그 위에 (2)를 올려준다. 그 리고 냉장고로 직행. 3~6시간 동안 음료를 차갑게 만 든 후 마시면 된다. 만약 집에 시나몬 가루나 넛맥 가루 가 있어 먹기 전 음료 위에 살짝 뿌려준다면 더욱 맛있 는 에그녹이 완성된다.

70mg에 이르기 때문에 겨울 내내 홀짝홀짝 에그녹 을 마시면 살이 쉽게 찌고 건강에 해가 된다는 지적 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명 절에 한두 잔 마시는 음료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홀리데이 스피릿(holiday spirit)” 을 해치 고, 크리스마스 에그녹을 포기하기에는 그 맛이 너무 달콤하고 부드럽다고 한다.

김주량 (이화여대 사회학) 90konan@naver.com

역사를 들이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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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한마디

“프랑스 저항의 불꽃은 꺼져선 안 되고, 꺼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끝이 아님을

철수하였다. 나치 독일의 공군과 장갑차 부대는 프랑 스군을 압도했고, 6월 10일에는 이탈리아도 프랑스

파리는 6월 14일 점령당했다. 15일 새로이 총리가

를 침공했다. 결국 프랑스는 6월 14일 파리를 점령

된 필리프 페텡과 함께 출범한 새로운 비시 내각은

당했다. 폴 레노 총리는 16일 사임하였고 17일 총리

나치 독일에 항복하려 하고 있었다. 항복에 맹렬히

직에 취임한 1차 세계대전의 영웅, 필리프 페텡은 독

반대하던 샤를 드골은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국 내각

일에 항복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날 드골은 영국

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처칠의 특별 허가를 얻어낸 드

으로 떠나 처칠을 만난다. 드골의 연설로 인해 비시

골은 삼일 뒤인 18일 역사에 길이 남을 연설을 BBC

정부가 나치 독일에 더 협력하게 될 것을 우려한 영

라디오 방송을 통해 남긴다. 유명한 6.18 연설이다.

국 내각은 이를 반대했으나 처칠은 드골의 요청을 들 어주었다. 그의 도움을 얻어 드골은 이튿날 역사적인

“Mais le dernier mot est-ildit? L'espérance

doit-elle disparal ître? La défaite est-elle définitive ? Non !”

연설을 남기게 된다. 프랑스 대독 항쟁의 뿌리로 여겨지는 6월 18일의 이 연설은 당시에는 커다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끝이 선언되었습니까? 희망이 사라진 게

는 아직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어린 장군이었기 때

틀림없습니까? 패배가 곧 종말을 의미합니까?

문이었다. 프랑스 내에서는 극히 소수만이 이 방송을

아닙니다!” ⓒBBC

무참히 패퇴한 프랑스, 그리고 드골의 연설 1940년 5월 10일, 프랑스군은 마지노 선과 벨기 에에 대부분의 병력을 배치해두고 있었다. 그러나 히 틀러의 과감한 결단으로 나치 독일군은 천연의 요새 로 여겨지던 아르덴 숲을 뚫고 지나감으로써 마지노 선을 피해갈 수 있었고 연합군을 포위해 패퇴시킬 수 있었다. 나치 독일의 기세에 밀린 영·프 연합군은 북부 뒹케르크에 고립되었고, 가까스로 영국 본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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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약 삼백 명과, 영국으로 후퇴해 있던 십만 명 가량의 군인 중 약 삼만 명만이 드골에게 가담했다. 심지어 BBC 방송

ⓒNew York Times

들었고, 영국 내 프랑스 시민만 명 가량

국은 이 연설을 녹음하지도 않았다. 그 러나 이 연설은 항독 투쟁을 이어나가 는 프랑스인들에게 계속해서 회자되었 으며 그들의 투쟁 의지를 고취시켰다. 드골은 이 연설 직후 자유프랑스군을 조직하였다. 6월 22일 결국 비시 정부 는 나치 독일에 항복했으나, 자유프랑 스군은 프랑스 본토의 비시 정부를 독 일의 괴뢰정부로 규정한 뒤 대독일 항 전을 벌였고, 프랑스 본토 내의 레지스 탕스(Resistance)들을 지원했다. 18일 의 연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드골은 말 한다.“프랑스 저항의 불꽃은 꺼져선 안 되고, 꺼지지

스는 연합군에 의해서 해방되었다. 1944년 8월 25

도 않을 것입니다.”

일, 해방된 파리의 시청 앞에서 드골은 또 한 번의 연 설을 남긴다.“파리는 참혹해졌습니다. 파리는 파괴

2차 세계대전의 끝, 그리고 드골

당했습니다. 파리는 고통 받았습니다. 그러나 파리는 해방되었습니다.” 드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명실상부 프랑스의 영 웅이 되었다. 1944년 임시정부의 수반이 된 드골은 1946년 총리직을 역임하였고 1953년 정계를 은퇴하 였다가 이후 알제리의 쿠데타를 계기로 총리로 복직, 제5공화정을 발족시켰고 1959년에 대통령에 취임해 한 번의 재선을 거쳐 1969년까지 프랑스 대통령직을 지냈다. 그는 현재까지도 프랑스인들에게 나폴레옹과 더불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자유 프랑스 군의 국기

전쟁이 끝난 게 아님을 역설하던 드골은 말했다.

이근호 (연세대 정치외교) Newroot2@hanmail.net

“프랑스는 혼자가 아닙니다. 프랑스는 바다를 차지하 고, 계속해서 싸우는 영국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또 한 영국처럼 미국의 막대한 산업을 무제한으로 사용 할 수 있습니다.”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후 영국의 선전과 미국의 참전, 독일의 무리한 전선 확 장으로 2차 세계대전은 독일에게 급격히 불리한 형 세로 돌아갔고, 결국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통해 프랑

세계인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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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북한 설계 2013.architect 김정은 체제가 출범 2주년을 맞이했 다. 권력 이양의 시기가 짧은 김정은은 내정 단속에 힘쓰며‘강성국가’를 위 해 1년 열두달 부지런히 산업 현장을 현지지도하고 시찰하며 인민의 경제생 활을“굽어”살피었다. 그러나 이‘자 애로운 경제 수령’이 박근혜 정부에 게는 단단히 뿔이 난 것 같다. 취임 후 ‘원칙주의’ 라는 이름으로 보수적인 대 북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박근혜 정부 의 입장에 북은 심기가 불편해졌고, 이 후 개성공단의 북측 노동자 철수와 일 부 시설의 가동 중단은 심통부림의 1 장 1막이 되었다. 남과 북이 밀고 당기 는 이 연극은 여전히 상연 중이며, 밥 만 먹고나면 또 다시 토라지는 북의 태 도는 야속하기만 하다. 이 길들여지지 않는 북을 알고자, 그의 과거를 캤다.

마식령 속도는 얼마나 달렸나 18 2013년도 2학기 교양 북한어 초급 24 오성산, 현실을 위한 상징인가 상징을 위한 현실인가 28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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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식령 속도는 얼마나 달렸나 2013년 1월 1일.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해 밝힌 북한의“새해 2013년” 은 주체 102년을 맞이한“김일 성-김정일 조선의 새로운 100년대의 진군 길에서 사회주의 강성국가건설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갈 거창 한 창조와 변혁의 해” 이다. 여기서 김정은이 말하고 있는 강성국가의 구체적 성격은 2013년 북한의 투쟁 구호를 통해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북은“우주를 정복한 그 정신, 그 기백으로 경제강국건설의 전환적 국 면을 열어나가자!” 를 올해 전당과 인민의 투쟁구호로 설정했고 이것을 통해“자립적 민족 경제” 의 토대가 공고해지고 생산이 늘며, 대중‘인민’ 의 생활이 향상되고 안정될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북의 제반 영역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 방법을“령도” 하고 있는 김정은의 신년사에서 경제 부문이 가장 먼저 나온다는 점 역시 김정은이 경제를 우선에 놓고 이에 관심 보인다는 것을 나타낸다. ‘창조경제’ 를 역설하는 박근혜 대통령만큼 과학의 시대,‘지식 경제’ 를 역설하는 김정은의 금년 한 해 행보는 어떠했을까? 먼저 상반기와 하반기의 주요 사건들을 짚어본다.

당세포는 작다, 그러나 당세포의 힘은 크다

성원은 당 혁명의“핵심성원들이기에 몇백 몇천의 군 중을 발동시킬 수 있는 거대한 잠재력” 을 가지고 있

상반기, 무엇보다 중요했던 사건은 1월 29일 평양

으며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당세포에게는 조직 내

에서 열린‘조선로동당 제4차 세포비서대회’ (세포비

에서의 일체성과 단결이 중요하게 요구된다. 이번 세

서대회)일 것이다.《로동신문》 은 29일과 30일, 세포

포비서 대회에서 당세포는“주체혁명의 새시대의 요

비서대회와 관련된 기사를 5차례 게재하며 김정은의

구, 우주를 정복한 그 정신, 그 기백으로 경제건설과

대회 개회사와 폐회사, 연설과 참석자들의 사진 기사

인민생활에서 결정적 전환을 이룩” 하고“당을 더욱

등을 모두 개별적으로 소개했다. 전국 로동당의 말단

강화하고 강성국가건설을 힘있게 다그치는”정치 전

분할 조직인‘당세포’의 장(長) 격인 세포비서들이

방의 단위로 위치와 역할이 소명되었다.

모이는 자리이다. 로동당 정치국은 이번 대회에 앞

당세포는 대중의“이웃” 과“동료” 로서 당의 정치

서 1월 23일「조선로동당 세포비서대회를 제도화할

적 아젠다를 일반 인민에게 주입하고 이들을 교화 및

데 대하여」 란 이름의 결정서를 채택하여 세포비서대

선동하며, 일반에 대한 감시와 당의 이념에 불신을

회를 필요한 시기마다 개최하기로 하고 이를 제도화

갖는 이를 색출한다는 점에서 기층적 정치 조직의 역

된 행사로 규정하였다. 이에 따라 과거, 세포비서를

할을 한다. 여기에서 세포비서는 당문헌과 당의 방침

소집해 개최한 유사한 행사에 대한 일괄적인 사건 정

을 빠르게 대중에 전달침투하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

리가 들어가 1991년의‘전국 당세포비서강습회’ , 94

한 상급당의 결정과 지시를 정상적으로 알려주며“우

년의‘전당 당세포비서대회’ , 2007년의‘전국 당세

리가 마음속에 안고 있는 아픔과 고뇌,요구와 지향이

포비서대회’ 가 모두‘로동당 세포비서대회’ 로 통일

무엇인가” 라고 표현되는 여론을 살펴 보고하는 역할

되었다.

을 하는 세포 조직의‘관리자’ 다.

당세포란 북한의 로동당 당원들이 모인 정치적 기

이번 대회에서 김정은은 이들의 기능 정상화와 적

층조직으로서 신입당원, 경력당원, 세포부비서와 세

극적 참여를 고취하기 위해 당세포의 역할을 김일성

포비서로 구성되는“작은”조직이다. 그러나 김정은

의 항일 무장 투쟁 시절과 해방 직후 공화국 건설 시

의 당세포비서대회 연설에 따르면 이들 당세포의 구

기로 소급해 올라간다. 이후‘고난의 행군’시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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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식량난과 경제 불황을 이겨내는 시간이 아니

병진 노선을 추진하는 역동성은 김정은 체제에 들

라 외부의 사회주의 이념을 무너뜨리기 위한“심리모

어‘마식령 속도’ 로 표현되고 있다. 이는 김일성, 김

략전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위한 정치적 싸움” 이었다

정일 체제의‘천리마 속도’ 나‘선군 속도’ 와 비슷한

고 평가하며 연설을 통해“혁명유산의 굳건한 지킴”

맥락으로 생산력과 군비 증강을 독려하기 위해 김정

이라고 추켜세우는 등 김일성-김정일 선대에서부터

은이 내건 기치이다. 이러한‘마식령 속도’ 가 강원도

이어져 온 당세포의 노고를 치하하며 그 권력을 이어

마식령 스키장은 물론 전 산업에서 모범으로 제시되

받은 김정은 자신에게로 이어지는 진정과 충정을 역

고 있으며“인민을 위한”문수물놀이장과 미림승마구

설한다

락부의 건설에도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속도전이

1월 30일 김정은의 비서대회 연설과 앞선 25일

얼마나, 누구에게 유효한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앞

《로동신문》 의 정론 등을 통해 추론해본다면, 이 대회

선다. 수년이 걸리는 스키장의 건설을 1년이 채 안 되

는 기층조직인 당세포의 긍지를 높이고 단속함으로

는 시간 동안 이뤄내고자 하겠다는 김정은의 의지는

써 상명하달의 체계를 공고히 하고 아래에서 위로 모

“인민의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위해 펼친 웅대한

이는 당의 정치력을 강화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짧은

설계도와 작전” 에서 비롯된다고 하지만 말이다. 지난

정권 이양기의 시기를 겪으며 권력을 물려받고, 자신

5월 27일과 8월 18일 김정은이 두 차례에 걸쳐“비

의 체제를 세워야 했던 김정은의‘안방 단속’ 이라는

약의 열풍이 몰아치는”마식령 스키장에 방문해 진행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상황을 보고받고 관계자들을 독려해 스키장 건설에 큰 관심을 보였지만 완성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마식령의 속도’ 로 몰아붙이는 경제발전과 핵무기 증강

휴전협정 60주년이 성대한 승전기념일?

이후 약 2달 뒤인 3월 31일 로동당 중앙위원회의

1953년 7월 27일. 한반도 전역에서 들리던 총소리

‘3월전원회의’는 당의 중심세력인 당중앙위원회와

가 멎는 날이었다.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전쟁

당중앙검사위원회의 위원과 후보위원이 참가하고 여

을 잠시‘멈추자’ 는 정전협정이 체결되었기 때문이

러 중앙기관과 공장, 기업의 책임자들이 방청하는 가

다. 북한은 이 정전협정을“우리 군대와 인민이 미제

운데 개최되었다. 여기서 김정은은“경제건설과 핵무

를 비롯한 16개국의 무력침범자들과 남조선괴뢰들을

력건설” 의‘병진노선’ 을 역설하고 있는데, 이는 자주

타승한 력사의 기적” 이라며 자신들의 승리로 규정짓

권을 지키기 위한 핵무력을 강화하는 것과,“방위력

고,‘전승절’ 로 명명하여 매년 화려하게 기념하고 있

을 철벽으로 다지면서 경제건설에 더 큰 힘” 을 넣어

다. 특히 2013년 올해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 을 추진하는 것이 동시에

이 되면서‘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이란 이름으로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김정은은 미국을“세계

긴 준비 끝에 성대하게 치렀다. 매년 해오던 기념 수

최대의 핵보유국” 으로 북에“항시적 핵위협을 가해

준을 넘어서서 행사를 준비하는 것은 단순히 정전협

오고” 있는 존재로 상정하는데 이는 2월 북한이‘지하

정이 6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 아니라, 대내외적으로

핵시험 성공’등을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보인 무

그간 이뤄온 북한 발전상을 과시함은 물론 김정은 체

력 도발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직접으로 비난하는 것

제의 확고함을 드러내길 원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으로 볼 수 있다. 경제 부문에서는 앞선 세포비서대

한국전쟁 시 김일성이 이뤄낸 업적과 북한 자체 내에

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인민경제에 방점을 찍고 있는데

서 김일성이 지니는 영향력을 상기시켜 그 이미지를

“기초공업부문을 결정적으로 추켜세워 생산을 최대

본인이 전유하려고 한다.

로 늘려가며… 농업과 경공업에 역량을 집중하여 인

《로동신문》 에서 올해 전승절과 관련된 보도를 한

민생활을 최단기간에 안정·향상시켜야 한다” 는 점

최초 시점은 5월 9일이다. 전승60돐을 기념해 은하

이 강조된다.

수관현악단 경축공연준비를 하는 현장에 김정은이 방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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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문했다는 기사이다.“경축공연의 방향과 사상적대,

는 한편 사상적으로 3대 세습을 확립하는 기제로 사

종목과 편성에 이르기까지 공연준비에서 나서는 귀중

용했다. 또한 건설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자 열흘 만

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고 보도할 만큼 김정은은 60

에 다시 찾아 시설을 점검하며 반미를 강조하는 수단

돌을 맞아 행사 전반의 세부 사항에까지 신경을 쓰고

으로서의 기념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있는 듯하다. 또한 올해는 북한이 자랑하는 두 예술

전승절 전날인 7월 26일에는‘위대한 조국해방전

단체인 모란봉악단과 은하수관현악단이 합동공연을

쟁승리 60돐경축 중앙보고대회’ 를 개최하였다. 북한

진행하여 그 규모를 확장하였다.

은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태양절이라 부르며 기념하

또한 북한은 전승절 60주년을 맞아 조국해방전쟁

는데, 김일성과 김정일의 동상을‘태양상’ 이라고 지

승리기념관을 건설하였다. 이 기념관은 지하 1층과

칭한다. 이 동상을 중앙보고대회 당일인 7월 26일 행

지상 3층의 규모로 지어진 최신식 건물이다.《로동신

사장인 5월1일 경기장에 전시하였다. 이는 전승절

문》 은 기념관을“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은 한세기

이 단순히 김일성의 업적을 홍보하는 것을 넘어서서

에 두 제국주의강적을 때려부시고 조국해방과 민족

북한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의 일환

의 자주권을 수호해주신 강철의 령장 김일성대원수님

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의 비범한 군사적예지와 탁월한 군사사상, 불멸의 전

전승절 당일인 7월 27일에는 김정은의 행보를 보

승업적을 만대에 길이 빛내이기 위한 대기념비적창조

도하는‘혁명활동 보도’기사가 5개 실렸다.《로동신

물” 로 소개하였다. 김일성의 업적과 전쟁 중 활약상

문》 이 김정은의 행보를 매일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은 물론 한국전쟁에서 북한이 승리하게 된 까닭 등이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주목할만한 수치이다. 이날 열

담긴 곳이다. 또한 전략적으로 북한의 승리를 부각하

병식, 경축연회, 축포야회,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기 위해 승리상 같은 동상을 세우는 한편 야외전시장

개관식, 금수산태양궁전 방문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

에‘적들의 패배상’ 을 전시하여 대조효과는 물론 일

되었다.“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반 인민들이 시각적으로 북한의 우월성을 체화할 수

우리와 함께 계신다” 는 문구의 꽃바구니를 김일성과

있도록 지어졌다. 김정은은 이곳을 공사시간 중 세

김정일의 미라가 있는 금수산 태양궁전에 두면서 전

번이나 방문하였고,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내에서

승절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이것은 전쟁 승리보다는

상영할 영상까지 따로 제작하게 했다. 특히〈작전을

궁극적으로 이런 행사를 통해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

구상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새로운 전법

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현재 김정은 체제의 확립을 바

을 가르쳐주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조선인

라는 북한 수뇌부의 의도가 깔려있다 할 수 있다.

민군 지휘성원들에게 땅크리용방침을 제시하시는 위

또한 하반기에는‘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

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와 같은 영상을 통해 위대한

대회의’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1980년 10월 제 6

수령인 김일성의 모습을 강화하는 한편 그 현장에 김

차 당대회 이후 북한 조선로동당이 당대회를 개최하

정은 본인이 핵심적으로 참여하면서 전승절을 홍보하

지 않기 때문에 이 회의는 실질적인 당의 최고지도기

20

대학생국제시사저널

Prism


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로 당의 노선과 정책을 수

경제부문에 대한 시찰은 3월 12일의‘용정양어장

립하고 이를 집행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 회의에서

현지지도’ 를 기점으로 한다. 이후 3월 19일 전국경공

는 주로“나라의 방위력을 백방으로 강화” 하는 문제,

업대회의 개최가 김정은의 대회 연설과 기념사진 촬

“조직문제” 가 토의되었다. 구체적 회의 내용은 추측

영을 개별 기사로 3회에 걸쳐 보도되는데, 이는 경공

할 수 있을 뿐이지만 여기서 김정은은 자주권과 안전

업 분야 육성에 대한 김정은과 당의 관심을 간접적으

수호 의지를 펼치며 선군혁명을 강조했을 것이다.

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월과 7월은 수확

한편 김정은은 전 NBA 선수인 데니스 로드맨

을 앞두고 농업 분야의 생산 준비가 본격적으로 이뤄

(Dennis Rodman)과 두 차례 만나며 파격적인 행보

지는 시기인 만큼 식생활 분야와 관련된 농장과 공장

를 보였다. 캄보디아의 노로돔 시하누크처럼 친북 국

의 방문이 잦았으며 다수의 공업분야 공장 시찰이 있

가의 수반이 아님에도 외국 인사가 이렇게 방문하는

었다. 6월 3일 김정은은 돼지공장을 찾은 후 4일 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로드맨의 팬이라고 알려진 젊

산과수농장, 6일 보성버섯공장, 8일 평양기초식품공

은 지도자이기에 할 수 있는 행보라는 평가다.

장, 14일 창성식료공장을 돌며 현지지도하였다. 또한

10월 말 혹은 11월 초 김정은이 전투임무수행 중

“금속공업부문에서 혁신을 일으켜 나라의 전반적 경

사망한 군인들을 참배하는 모습 역시 파격적으로 보

제를 활성화” 하도록 하여 5월에서 6월 사이 총 7회에

인다. 북한에서는 군사 훈련 도중 발생한 희생을 공

걸쳐 기계공장과 종합공장을 현지지도 한 것으로《로

개적으로 인정하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다. 김정은은

동신문》 은 보도하고 있다.

“자기 초소를 굳건히 지켰으며 전투명령을 목숨바쳐 집행한 용사들의 위훈과 고귀한 정신세계를 군부대의

선전 도구에 지나지 않는 문화적 행보

해병들은 물론 전체 인민군장병들이 따라배워야 한 다” 며 이 사건에서 모든 군인이 귀감을 찾아야 한다

북한에서 예술, 체육은 단순히 개인이 자신이 지

고 말하지만, 이 사건의 의미는 시간을 두고 더 생각

닌 예술적 재능을 뽐내거나 문화를 향유하려는 인간

해 보아야 한다.

의 본능이 발휘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인이 아 닌 당이 관장하며 국가적으로 사상을 주입하고, 선전

북한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군사와 경제 행보

하는 데에 예술이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로 동신문》여기저기에서도 예술 단체를‘사상문화전선

1월에서 2월 사이《로동신문》 에 보도된 공식 석상

의 제일기수’ 라고 표현하고, 미술 작품이‘당원들과

에서 김정은의 등장은 각각 11회와 14회로 바로 다음

군인들, 근로자들을 정치사상적으로,정서적으로 교양

달인 3월(24회)과 비교해 보아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

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고 그려내고 있다.

이다. 이러한 시기 적은 활동 보도의 횟수에 비해 그

특히 이런 점이 잘 드러나는 것이 예술공연‘아리

내용은 대부분 군사적 업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랑’ 이다. 앞서 살펴보았던 전승절에 김정은은 주요

비록 군 회의 소집과‘시찰’및‘현지지도’등으로

인사들은 물론 인민군, 근로자와 외국 대표들과 국제

나타나는 군 단속은 지도자의 군 장악과 관리를 위한

기구 인사 등을 초청하여 김일성상 계관(桂冠) 작품

연중, 상시적 행보이나 이것이 연초에 집중되어 있

인 대집단체조와 아리랑을 관람하였다.“유독 수난이

다는 점은 군사 장악력을 제고해야 할 김정은의 필요

많았던 민족사의 아픔을 끝내고 김일성과 김정일 통

성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1월과 2월, 군부대 시

치 하에서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최상의 경지로 찍

찰이나 훈련 및 전술의 지도 등으로 김정은의 직접적

은 번영기” 를 그려내고 있다. 그중에서“미국 제국주

행보가 나타나며 군 독려 차원에서 2월 26일 공훈국

의를 쳐부시고 조국해방전쟁을 승리로 이” 끈 김일성

가 합창단 공연‘조선은 결심하면 한다’ 와 3월 13일

의 업적을 강조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율동과 예

조선인민군 제531군부대 예술선전대공연 등 군인들

술, 체조 동작 등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손쉽게 북한

과의 공연 관람이 보도되었다.

지도부가 일반 시민들에게 자신들이 말하고 싶은 것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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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생활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강성 국가건설” 이나“어버이장군 님의 립상을 잘 모실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 이 언급되 고 있다. 문수물놀이장 건립 이 김정은의 유훈에 의해서 이뤄지며, 이는 단순히 체육 시설이 아닌 국가 통치의 일 환으로 물놀이장이 건설됨 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과정

을 전달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아

에서 마식령 속도처럼《로동신문》 은 군인건설자들이

름답고 우아한 률동, 기백있는 체조, 풍만한 민족적

짧은 기간 내에 공사를 마치고 있다고 강조한다.“낮

정서와 세련된 예술적 형상, 천변만화하는 배경대,

과 밤이 따로 없는 치열한 전투와 노력 끝에 미장을

화려한 무대장치와 특색있는 조명 등이 완벽한 조화

단시간 내에 끝내고 마감공사에 돌입했다는 것” 이다.

를 이룬 공연” 은 공연 자체가 지니는 예술성이나 예

또한 이는“무엇을 하나 해도 제힘을 믿고 자체의 힘

술적인 발전에 대한 칭찬이라기보다는 정권의 선전

으로 하려는 각오를 가지고 달라붙으면 못해낼 일이

도구로서 발전해나가는 주체예술의 모습을 자랑하는

없다” 는 교훈을 개개인에게 주며, 단기간 내에 세계

것이다.

적인 물놀이장으로 완공하는 것은“우리 당의 결심이

이런 선전 도구로서의 예술, 체육 등의 역할을 확 장시키기 위해 현재 북한에서는 평양국제축구학교,

고 의지” 라고 표현하여 국가 차원에서도 특정한 메시 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릉라인민체육공원, 평양체육관, 문수물놀이장, 미림

2013년 김정은의 행보는 김일성 사후 김정일이 3

승마구락부, 마식령스키장, 만경봉체육단의 축구훈련

년 동안 군사와 예술 부분 현지 지도에만 노력한 것

장 등 관련 시설이 새로 건립되고 있는 중이다. 또한

과 닮아있는 듯하다. 실제로 군사와 문화 분야에 대

김정은은 체육선수, 예술인들을 직접 방문하거나 공

한《로동신문》보도 빈도가 가장 잦았기 때문이다.

연이나 경기에 직접 참석하여 관람하고 있다.‘전승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에게 경제에 대한

절’ 이 끝난 이후 8,9월에 그 방문이 집중되어 있다.

관심도 지대하다는 것이다. 마식령스키장 건설은 스

《로동신문》 이 보도하는 김정은의 행보에서 그 증거를

키광으로 알려진 김정은의 개인적 바람 때문이기도

찾을 수 있다. 8월의 19번의 보도 중 11번, 9월 21

하지만, 외자의 유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현재

번 중 11번을 예술체육 건립시설에 방문하거나 공연

북한 경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또한

및 경기를 관람하는데 사용하였다. 특히 문수물놀이

북한은 이산가족상봉을 중단하였지만 개성공단은 여

장의 경우 4번에 걸쳐 방문하면서(8.10, 9.18, 9.23,

전히 가동시키고 있으며, 3월의 병진로선 등 경제에

10.14)‘마식령 속도’ 를 통해 강조하는 마식령스키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로드맨 접견과 같

장보다 더 잦게(5.27, 8.18, 11.3 총 3회) 방문하였

은 준외교적 노력은 젊은 지도자로서 김정은이 자신

다.

의 선대와는 다른 걸음을 내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수물놀이장은“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숭고한 념

그러나 무엇보다 2013년 김정은은‘김정은 체제의

원을 현실로 꽃피워 인민들에게 보다 훌륭한 문화정

확립’ 을 위해 발버둥을 쳤다. 정기적인 행사와 문화

서생활조건을 마련해주시기 위해 헌신과 로고를 바쳐

공연 등은 체제 선전 및 확립의 도구였다. 김정은 체

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원대한 구상에 따라 진행

제의 안정화를 위해서 이런 포괄적 분야에 걸친 현지

되는 거창한 사업” 이라고 소개된다. 그러나 문화정서

행보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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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국제시사저널

Prism


《로동신문》혁명활동보도 기사 2013. 1. 1 ~ 11. 20

군사 57회 (27%)

경제 50회 (24%)

정치 40회 (19%) 외교 7회 (3%)

문화 57회 (27%)

1월 1일부터 11월 20일까지의《로동신문》 ‘혁명활동보

상반기에 군사에 관심을 쏟았다면, 하반기의 김정은 관심

도’ 를 통해 공식 석상에서 김정은의 행보를 정치·군사·

분야는 문화였던 것으로 보인다. 군사와 동률을 이룬 문화

경제·외교·문화 영역으로 구분하였고 이 영역에 해당하

분야는 하반기 40회로 상반기 17회보다 월등이 많았다. 북

는 보도의 횟수를 정리하였다.

한이 새로운 문화시설 건립으로 3대 세습을 굳건히 하는 한

조사 기간 사이‘혁명활동보도’ 에 보도된 기사는 총 212

편, 외자유치를 바라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많은 예술 및

개로 이 중 정치관련 기사가 40회, 경제관련 기사가 50회,

체육 경기에 관람하면서 공개 행보의 횟수를 늘렸다.‘관람

군사관련 기사가 57회, 외교관련 기사가 7회, 문화관련 기 사가 57회로 보도되었다. 특히 군사와 문화관련 기사 모두

하시였다’ ‘보시였다’ ‘돌아보시였다’ 와 같은 술어를 통해 《로동신문》 이 보도하고 있다.

57회로 동일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2013년 김정은이 가장 많이 심혈을 기울인 분야라고 볼 수 있다. 군사적 부분이 다수 보도된 까닭은 정기적인 군사훈련뿐 아니라, 상반기에 얼어붙은 남북 관계인해 김정은이 잦은 횟수로 군부대를 시찰하고 행사를 치렀기 때문으로 추측된 다. 특히 상반기 방문 횟수가 36회로 하반기의 21회보다 많

김주량 (이화여대 사회학) 90konan@naver.com 박새미 (이화여대 정치외교) saemi1116@daum.net

기도 하다.《로동신문》 은 주로 군사 관련 행보를 보도하면 서‘지도하시였다’ ‘시찰하시였다’ 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 고 있다.

기획

23


ⓒChristian Aslund

2013년도 2학기 교양 북한어 초급 박근혜 정부 첫해의 남북 관계, 그리고 욕설의 정치학 올해 대북 관계에서 최대의 이슈는 개성공단 정상화였고, 이를 둘러싸고 남북은 치열한 자존심 싸움을 벌였다. 결국 공단은 재가동됐지만 그 직후 남북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다. 핫라인(양국 정부를 직접 이 어주는 통신 채널)이 없는 남북관계에서 북한의 공식 대외 문건은 북한 지도부의 의중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문건에서 수사와 본심을 구분하는 독해는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과격하고 상투적인 표현 들의 행간에는 현 북한 지도부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녹아있다. 아직 너네가 싫지는 않아

내어 노수희 범민련 남측본부 부회장의 구속을“파쑈 적폭거” 라고 부르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튿날에는 조

올해 4월 9일 북측 근로자가 철수하면서 폐쇄된 개

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담화에서 박근혜

성공단을 두고 남북 정부는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대통령이 북한의 경제-국방 병진노선을 비판한 것이

양측이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개성공단 재가동은

“반통일대결망동으로서 정세완화와 북남관계개선을

요원해보였다. 그러자 북한 지도부는 다양한 행정 채

바라는 내외여론에 대한 파렴치한 도전이고 우리에

널을 통해 때로는 남측의 내부 정황을 비판적으로 거

대한 엄중한 도발” 이라며 반발했다.

론함으로써, 때로는 고착화된 남북 관계를 언급함으

조평통의 담화 발표 5일 전인 5월 22일에 북측은

로써 현 상황에 대해 불만을 표시해왔다. 5월 27일,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를 통해 6·15 공동

북한 조국통일범민족련합(범민련) 북측본부는 성명을

행사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한국 정부가 이를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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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국제시사저널

Prism


하자 27일 담화문에서 북한은“괴뢰당국은 여론의 눈

먹어라.》 는 식으로 대한적도 없다” 고 밝혀 류길재 장

치를 보면서 며칠동안이나 암중모색하던 끝에 결국

관의 언사도 비난보다는 해명으로 답했다. 시종일관

허망한 구실을 내대고 불허로 대답해나섰다” 고 말했

‘점잖은’어투로 요구사항을 피력한 6월 6일 담화문

다. 이 담화문은 비록 남측 정부를“괴뢰보수패당” 이

은“우리의 대범한 용단과 성의있는 제의에 적극 화

라고 지칭하기는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은 거

답해야 한다” 는 요청으로 말을 맺었다.

론하지는 않고 대통령을“청와대 안방주인” 이라는 비 교적 온건한 표현으로 언급했다. 북측이 이명박 정부

우리도 밀당할 줄 안다

의 임기 초인 2008년 4월 1일부터 이 대통령을“리 명박역도” 라고 불러왔던 점을 참고한다면,“청와대

6월 6일 이후 일주일 만에 발표된 조평통의 공격적

안방주인” 이란 용어는 남측의 수장을 직접 깎아 내리

인 새 담화문은 직전의 담화문과 극명한 단절감을 보

지는 않음으로써 관계개선의 여지를 남겨두기 위한

여줬다. 남측 정부가 북측 수석대표의 격을 문제시하

북한식‘완급 조절’방식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고 이를 계기로 회담이 무산되자 북측은“북남당국회 담을 파탄시킨 괴뢰패당의 도발적망동을 절대로 용

“대범한 용단과 성의있는 제의”

납하지 않을것이다” 라는 제목의 담화문을 내며 남측 을 거세게 비판했다. 북측은 회담 무산을“괴뢰패당

한국 정부는 북측의 6·15 공동행사 제의에 대해

의 무례무도한 도발행위” 로 규정했고, 박근혜 정부의

정부 차원의 대화가 우선이라는 답을 내놨다. 류길재

‘신뢰프로세스’ 에 대해서도“그것이 이전 정권의 대

통일부 장관은 5월 29일 한반도 경제포럼 강연회에

결정책과 한치도 다르지 않” 다는 기존의 평가를 답습

서“우리 정부를 핫바지로 보는 거냐” ,“속된 말로 통

했다. 남측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별다른 희망을 보

일부 엿 먹어라 하는 식의 태도를 보인 것” 이라고 말

지 못한 북측은 16일 담화를 통해 미국에게 비핵화

하며 공식 채널이 아닌 민간 채널을 통해 교류를 제

이전에 제재를 중단하고 안전을 보장해줄 것과 북-

의한 북측을 비난했다. 그로부터 일주일가량 지난 후

미 고위급 회담을 개최함으로써 한반도 정세를 완화

조평통은 보기 드물게 온건하고 진지한 담화문을 내

시킬 것을 제안했지만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cnn

어 개성공단과 남북관계 정상화 의지를 다시금 피력 하고 6·15 정신을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담화문 에는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남북 당 국 간 정부 차원의 회담을 가지고, 빠른 시일 내에 남 측 기업 및 민간단체의 실무접촉을 실현하고, 마지막 으로 6·15 및 7·4 공동성명을 남북이 함께 기념 하며, 판문점 적십자 연락 통로를 재개하자는 제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6월 6일 담화문에 사용된 표현과 어조는 그 직전의 담화문과 비교할 때‘신사적’ 이었다. 조평통 대변인 은 남측 정부를 지칭하면서“괴뢰패당” 이나“남조선

6월 24일 대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사건이 벌어

괴뢰”대신“남조선당국” 이라는 중립적인 표현을 썼

졌다. 남측이「2007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을 공개

다. 남북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한 3월 이래 이렇게 담

한 것에 대해 북측은 27일 조평통 긴급 성명을 내어

화문 전체에서“괴뢰” 라는 단어가 전혀 사용되지 않

“괴뢰보수패당이 수뇌상봉담화록을 공개한것은 추악

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 또 조평통은“우리는 남조선

한 정치적야욕을 위해서라면 민족의 존엄도 최고리익

당국자들이 말하는것처럼《남남갈등》 을 조성하려 한

도 서슴없이 짓밟는 가장 추악한 반역무리들만이 할

적도 없고 남측당국을《핫바지》 로 본적도 없으며《엿

수 있는 반민족적대결망동의 극치” 라고 비난을 퍼부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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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이렇게 남북관계는 다시 악화되고,“괴뢰”와

꼬가 트이는 듯했던 개성공단 문제는 다시 난관에 부

“망동”등 강렬한 표현들이 다시 담화문 전체를 장악

딪혔다. 7월 실무회담 기간에 북한 지도부는 말을 아

했다. 27일 담화문에서 남측 지도부를 지칭하는 기본

꼈다. 7월 한달 동안 북한이 내놓은 공식 외교 문건

명칭은“괴뢰보수패당” 이었지만 종종“정치적패륜무

은 세 건이었는데, 이 중 실무회담 기간에 내놓은 문

리” ,“정치깡패집단” 으로‘심화’ 되기도 했다. 6·15

건은 정전 60주년을 맞아 미국의“도발자, 전범국가

공동선언 13주년이 있던 6월 내내 북한은 총 8건의

로서의 범죄적정체” 를 비교적‘학술적’ 인 어조로 비

외교 공식 문건을 발표했으며, 이중 남측에 개성공단

난한 것이 유일하다. 협상이 결렬되고 난 뒤에도 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6일 담화문과 조미 정상회담을

측은 조국통일범민족련합 남측본부에 대한 수사와 구

제안하는 16일 담화문을 제외한여섯 문건은 모두 남

속을 비판하는 낮은 강도의 담화문 한 건을 발표했을

측을 비난하는 거친 언사로 이루어졌다.

뿐이었다. 북한 지도부는 중요한 목적을 앞에 두고 섣불리 상대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급한 건 사실이야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와중에 조평통은 8월 7일 공식 성명에서“남조선당국에게”8월 14일에 실무회

하지만 대화록 공개의 원심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담을 진행할 것 제안했다(스스로의 제안에 대해“대

은 개성공단 정상화의 의지를 보였다. 7월 3일, 북한

범하고도 아량있는 립장표명” 이라 자화자찬하는 것

은 급작스럽게 장마철 설비 파손 방지를 위해 남측

을 잊지 않았다). 이후 8월 18일 실무회담이 타결될

기업인들이 방북하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문건을 보

때까지 북한은 다시금 말을 줄여 불필요한 도발을 삼

내왔고, 이튿날에는 개성공단 문제 해결을 위해 남측

갔다. 8월 18일 회담 성사 직후 조평통은 대변인 담

이 제안한 실무회담을 수락하였다. 7월 6일부터 시작

화를 발표, 이번 합의서 채택을“화해와 단합, 평화와

된 실무회담은 5차까지 진행되며 별다른 성과를 내지

통일번영을 바라는 온 겨레의 한결같은 념원과 적극

못했고, 결국 22일 6차회담이 사실상 결렬되면서 물

적인 지지성원의 자랑찬 결실” 로 평가했다.

ⓒ뉴스몬

이튿날인 19일 한국과 미국의 연례적 합동군사훈 련인‘을지프리덤가디언’ 이 시작되었지만 북한은 훈 련 시작 이후인 20일에 이례적으로 짤막한 비판 성명 만을 내었고, 남측 지도부에 대해서도“남조선당국자” 라는 표현을 유지함으로써 수위를 낮췄다. 훈련에 대 해서도 북측은“남조선당국자들은 우리의 성의와 인내 를 오판하지 말아야 한다” 며 누그러진 어투를 썼다. 지 난 3월‘키 리졸브’훈련을 전후하여 남측 정부를“괴 뢰군부깡패들” 로 묘사하고“하늘에 대고 삿대질하는

ⓒ대전시

민족의 원쑤들은 살아 숨쉴수 없다” 고 강하게 비난한 것과 대조적이다. 북한은 남측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개성공단을 정상화하려는 노력을 망치고 싶 지는 않았다. 이후 양측은 8월 23일 남북적십자실무 회담에서 9월 25일 이산가족 상봉을 결의한다.

무엇이 당신을 그리 화나게 했는가 그러나 8월 말부터 남북관계는 다시 냉각되기 시 작했다. 대북 제재로 인해 외자가 절박해졌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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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북한은 개성공단의 정상화는 진지하게 바랐지만,

실인것처럼 떠들어대고있다” 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정상화를 함께 논의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

한 금강산 관광과 이산가족 행사를 무기한 연기하며,

이 북이 원하는 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따라

“날로 가증되는 반공화국전쟁도발책동에 단호하고

서 개성공단이 일단 정상화되고 나자, 8월 20일에 내

결정적인 대응조치” 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놓은 북한의 비교적 우호적인 성명은“남조선당국이

10월 남측을 비난하는 북한 공식 문건 수는 8월에

계속 우리와의 대결을 추구한다면 북남관계는 또다시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비난의 대상은 국정원, 국사

악화의 원점으로 돌아가게 될것이며 그로 하여 수습

편찬위, 청와대와 국방부 인사까지 가리지 않았으며,

할수 없는 파국적후과가 초래될것이라는것을 똑바로

7월부터 9월까지는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던 박

알아야 한다” 는 문장으로 끝난다. 이후 북한의 행보

근혜 대통령의 실명 역시 다시 거론하기 시작했다.

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 문장의 표현들이 구체적으

한국 정부 인사들을 가리키는 용어도“박근혜일당” ,

로 무엇을 지칭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패당” ,“괴뢰대통령” ,“동족대결미친증에 걸

1. “우리의 핵에 대하여, 우리 병진로선에 대하여 더 이상 함부로 재잘거리는” 것 2. ‘을지 프리덤 가디언’, ‘키 리졸브’와 같은 “북침전쟁도발책동”

3월에 초래되었던 남북 간 관계 경색을 의미. 당시 북한은 불가침 합의 폐기, 비핵화 공동선언 백지화, 판문점 연락통로 폐쇄로 그 불만을 극단적으로 표출했음.

“남조선당국이 계속 우리와의 대결을 추구한다면 북남관계는 또다시 악화의 원점으로 돌아가게 될것이며 그로 하여 수습할수 없는 파국적후과가 초래될것이라는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대화의 단절, 병진노선 지속 의미.

린 박근혜” ,“괴뢰국방부 장관 김관진놈” ,“괴뢰국정

근원적 거리감

원 원장 남재준놈”등으로 매우 격렬해졌다. 9월 이 후 공식 문건에서“남조선당국” 이라는 중립적 표현

자국의 안보를 보장하고 제재를 철회하는 것을 교

이 딱 한 차례 쓰였다는 사실은 북한이 남북 관계 개

류와 비핵화의 선결 조건으로 요구하는 북한의 의도

선에 얼마나 경색적으로 나서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는 청와대 및 백악관의 정책과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다.

올 3월은 물론 18대 대선을 앞둔 작년 11월에도 박근 혜 정부가 추진하는‘신뢰프로세스’정책이 소위‘리 명박역적패당’ 의‘비핵·개방·3000’정책과 별반

김만희 (고려대 국문) manhee87011@naver.com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 북한은 이제 비난의 수위를 높 여갔다. 북한은 오랜 침묵을 깨고 23일만에 발표한 9 월 21일 담화문에서“최근 북남관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련의 성과들이 저들의 그 무슨《원칙론》 의결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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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산, 현실을 위한 상징인가 상징을 위한 현실인가 김정은이 공식 무대에 나타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진정한 권력자가 되려면 직간접적으로라도 주 변의 인식과 승인이 있어야 하는데,‘김정운’ 이 권력을 승계하리라는 설이 국제사회에 퍼진 것은 빠르게 잡아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2008년의 일이다. 김정은이 공식 무대에 이름을 알린 것은 2010년 9월 제3차 조선로동당 당대표자대회에서였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해 10월 조선인민군 창건 65주년 행사에서였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자, 당에서는 망설임 없이 김정은을 당·정·군의 최고지도 자 지위에 앉혔다. 김정일의 위상이 당내에서 확고하고, 당과 인민을 영도하기 위해 선대 수령 같이 탁월 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정치사상이 변하지 않는 한 다른 길을 갈 수는 없었다. ⓒ로동신문

지난 6월 오성산을 방문한 김정은 제1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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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정당화의 두 문제

구로서의 특징을 살려 역사적 사실을 변형시키기도 했다. 예컨대 총서‘불멸의 향도’중 1997년 출간된

김정은의 권력 승계가 당내에서 합의되었다고는

『력사의 대하』 에 따르면, 1993년 3월 팀스피리트 훈

하지만, 당의 바깥에서 정치를 침묵하며 지켜보는 인

련의 일환으로 클린턴 행정부의‘영변 폭격’ 이 예정

민 대중에게 권력을 정당화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

되어 있었지만 김정일이 과시적 대응 훈련을 감행하

었다. 김정은은 2010년 이전까지 어떤 업적을 쌓아

는 바람에 미국은 겁을 먹고 폭격을 단념했다. 이것

왔길래 권력을 승계할 자격을 주장하는가? 권력을 잡

은 1차 북핵 위기에 관한 사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픽

은 이후,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김정은의 뛰어난 지

션이다. 소설가는 북한은 미국과 여전히 대결 상태에

도력을 강조하는 레토릭은 북한에서 여러 차례 사용

있고, 핵 문제의 해결이란 요원하며, 이 상황에서 북

되었지만, 이를 입증하는 구체적인 과거사가 거론된

한을 지킬 수 있는 것은 김정일뿐이라는 메시지를 던

적은 드물다. 그런데 최근 북한 문단에서 이에 대한

지기 위해 이런 장치들을 동원했다. 김정일로서는 이

대답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작가 박윤이 2011년 8월

렇게 과거를 왜곡함으로써 현재를 장악할 수 있었다.

에 완성하고 2012년 2월에 출간한 소설『오성산』 이

『오성산』역시 제목이 암시하듯 김정일의 선군 행보

대답의 시작이다.

를 상징하는‘오성산 오르기’ 의 기억을 부각시키는

소설을 정권의 대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북

소설로서, 현재 김정은 정권이 동원하고 있는 상징을

한은 40년대부터 문학을 당과 혁명을 위해 복무하는

길게 부연하는 글이다. 올해 2월 16일, 김정일의 생

수단으로 봤을 뿐 아니라, 주체사상을 국가와 사회

일을 기념하며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이

의 지도 원리로 삼은 7, 80년대를 거치며 당은 북한

렇게 연설했다.“김정일대원수님께서는 철령과 오성

내에서 창작·간행되는 소설에 통제를 강화했다. 창

산,판문점과 초도를 비롯한 조국수호의 전초선들을

작 단계에서 김정일이 직접 교시를 내리는 경우도 있

끊임없이 찾으시여 인민군대가 수령결사옹위의 기치

었다. 따라서 북한에서 정권의 입장과 반대되는 소설

를 높이 추켜들고 제국주의자들과의 치렬한 대결전에

창작이란 생각하기 어렵다. 소설 중에서도 김일성과

서 백두산혁명강군의 위력을 남김없이 떨치도록 현명

김정일의 혁명사를 각각 형상화한 총서‘불멸의 력

하게 이끌어주시였습니다.”올해 6월 3일에는 김정

사’ 와‘불멸의 향도’ 는 가장 지위가 높다.『오성산』

은이“선군의 산악 오성산” 을 방문했다.《로동신문》

은‘불멸의 향도’ 에 속한다.

의 6월 17일자 사설에 따르면“선군의 산악 오성산 과 마식령을 비롯한 험산준령을 넘고넘으시며 진군

과거로써 미래를 이야기한다

또 진군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강행군보폭은 멸적 의 뢰성과 창조의 동음으로 이어지고 원수님의 강의

『오성산』은 넓게 보아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즉 김대중 정부 시기 북한의 대미, 대남 관계를 다루

한 혁명정신은 새로운 일당백공격속도창조의 사상정 신적원천으로 되고있다.”

고 있지만, 소설의 초점은 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된 2002년에 맞춰져 있다. 소설은 북한이‘고난의 행

죽음은 정치적인 사건이다

군’을 극복하고 미국의 부시 행정부와의 대결에서 ‘승리’ 한 역사를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소설은 10

『오성산』 에서 김정은은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진행

년 전의 역사만이 아니라, 출간 시점인 2012년과 이

되던 2003년 3월로 추정되는 어느날을 묘사한 한 장

후의 이야기를 함께 하고 싶어한다. 김정일은 1992

면에 나타난다. 이날 김정일은 직승기에 타 북한의

년『주체문학론』 에서“원래 수령의 혁명력사자체가

대응 훈련을 지켜보겠다고 하지만, 당시 북한의 최고

사람들을 끝없이 격동시키는 위대한것”이라며“수

실세 중 하나인 총정치국장 조명록은 직승기가 적의

령을 형상하는 작품에서는 력사에 없는 사실을 꾸며

타격 사정권 안에 들기 때문에 이 위험한 결심을 말

낼 필요가 없다” 고 했다. 하지만 북한의 소설들은 허

리는 것으로 묘사된다.“키가 훤칠하고 균형잡힌 탄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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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있는 몸매의” (2003년에는 우리가 아는 모습과 달

통신》 은 조의 방문을 보도하며 김정은의 모습을 클로

랐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김정은은 두 사람이 옥신

즈업한 영상을 내보냈다.《조선중앙통신》 은 이후에

각신하는 동안,“키가 낮은 날렵한 형태의 신형장갑

도 다큐멘터리“선군혁명동지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

차” 를 몰고 나타난다. 김정은이 장갑차에서 내리자

장이였던 조명록” 에서 김정은이 군인을 마음으로 아

세상은“회백색하늘아래에 센 해빛이 내리비친듯 환

껴야 한다는 말로 조명록을 감동시킨 바가 있다면서

해지는”듯했다고 한다. 이 세 번째‘태양왕’ 은 방금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혁명일화’ 를‘공개’ 했다.

시운전한 장갑차의 성능을 극찬하며, 김정일에게 직

『오성산』 은 죽은 아버지의 권력을 산 자신이 전유

승기 대신 장갑차에 타는 게 낫겠다고 조명록을 거든

하기 위해 그 매개인‘조명록의 일생을 다시 쓰는’

다. 그러자 김정일은 당했다는 듯이,“김정은대장도

작업의 일환이다. 김정일의‘업적’ 이 사실은 그와 측

조차수[조명록 차수]와 한짝이요? …어느새 조차수

근이 노력해서만 이룩한 것이 아니라 또 한 명의 숨

와 짜고들었구만” 이라고 말하며 두 사람의 권유를 이

은 지도자 김정은과의‘공동 저작’ 이라는 점을 부각

기지 못한다. 소설에서 군용직승기를 타는 것은 김정

하기 위한 서술이 지금 북한에서 진행중인 것이다.

일이 아니라 김정은인데, 그는 직승기를 직접 조종하

북한은 8, 90년대에도 김일성의 혁명활동의 역사를

면서 결전진입계선의 정황을 보고할 정도로 유능하고

다시 쓰면서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판문점 도끼사건,

용감한 군인처럼 묘사된다. 조명록은 김정은이“군사

1984년 서울 수해에 대한 구호 제안 등이 김정일의

과학과 전략, 작전예술, 집단군공격전술”에 능통한

‘업적’ 이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은 2010년 조명록

것으로 극찬한다.

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뿐이지만, 이제는 그의 삶 속

이 짤막한 장면은 상징적 메시지를 함축한다. 조명

에까지 자신의 이름을 적어나가며 2차 북핵 위기를

록은 최고지도자의 측근으로서 권력 승계의 시기인

‘아버지와 조명록의 일’ 이 아니라‘아버지와 나와 조

2010년 11월 6일 사망했다는 점에서 1995년에 사망

명록의 일’ 로 재규정하고 있다. 소설에서 김정은은

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나 1997년에 사망한 인민무

조명록과 사전에 주요 일정을 함께 준비하는 사이로

력부장 최광과 비슷하다. 북한의 공식 서술에 따르면

묘사되며, 김정일은 두 사람의 판단을“당조직의 결

오진우와 최광은 어린 시절부터 항일무장투쟁에 참

정” 이라고 부르며 존중한다.《로동신문》11월 9일자

여해 한국전쟁 전선에서도 활약했다.‘혁명의 원로’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올해 조명록의 사망 3주기를

인 두 사람은 김일성과 함께 늙어가며 김정일을 보필

전후하여 인민무력부 혁명사적관에 있는‘최고사령

했으며, 1994년 김일성이 죽자 곧 그의 뒤를 따른 것

관과 전우관’ 을 방문하여 아버지와 조명록(그리고 자

이다. 김정일은 두 사람이 말년에 질병으로 고생하자

신) 사이의 유대를 회고하였다고 한다. 한동안‘조명

이를 매우 걱정했는데, 그들이 측근이기도 하지만 죽

록 일생 다시 쓰기’ 를 통한 북한사 다시 쓰기는 계속

은 아버지와 살아 있는 자신을 연결하는 상징이기도

될 것이다.

하다는 점에서 이 배려는 정치적으로 중요했다. 권력 승계의‘3년상’ 이 끝나면서 간행된 소설『력사의 대

서해교전의 기원?

하』 에서도 김정일은 오진우의 건강을 각별히 신경 쓰 는 것으로 나온다.

소설에서 북미 갈등을 묘사하는 방식은 대체로 예

김정일에게 오진우가 있다면, 김정은에게는 조명

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2000년 6·15공동선언 발

록이 있다고 할까. 2010년 김정은이 공식 석상에 모

표는 민족을 단합시키는 중요한 사건이었으나 부시

습을 드러낸 직후인 11월 6일 조명록은 82세의 나이

행정부와 한국 군부가 이 단결을 방해한다, 따라서

로 사망했고, 이때 꾸려진 국가장의위원회에서 김정

민족 화해를 지키기 위한 선군 노선이 중요하다는 것

은의 이름은 김정일 다음으로 호명되었다. 11월 8일

이 골자다. 소설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을 6·15의 주

김정일의 조의 방문에 대한《로동신문》 의 보도에서도

역으로서 긍정적으로 묘사하지만, 김정일은“김대중

김정은은 동행자 중 세 번째로 호명됐다.《조선중앙

은 군대를 완전히 틀어쥐지 못하고있소. 그가〈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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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국제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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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 11월 조명록 사망 3주기를 맞아 추모 행보를 보였다. 사진은《로동신문》2013년 11월 9일자 보도의 일부

령〉 이 된 후 군부개혁을 좀 하느라 했지만 상층의 몇

의 연장선에서 2차 서해교전이 김대중이 배제된 채

인물만 겨우 교체하고 새천년민주당 주류로 군을 장

미국의 콜린 파월 국무무 장관의 주도로 한미가 계획

악하지 못했” 다고 지적하며 한국 군부는 미국의‘괴

적으로 도발한 것으로 소설은 묘사하고 있다. 이는

뢰’(꼭두각시)이므로 남북군사당국자회담에서 비협

‘진보’ 적인 김대중 정부에서 정상회담 이후의 군사

조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이런 논리

실무 회담에 임했을 때 북한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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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왼쪽은 1996년 3월 오성산에 올라 이른바‘선군‘ 행보를 시작한 당시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모습. 오른쪽은 올해 6월 오성산을 찾아간 김정은 제1위원장. 김정은 체제는 경제 문제에 몰두하면서도 김정일 시대‘선군’의 기억을 놓지 않고 있다.

지 않았다는 기존의 연구를 재확인하는 대목이라고

국가안보보좌관]와 비슷하데가 있는 녀자” 로“랭철하

할 수 있다. 북한은 김대중 정부에서도 자신의 마음

고 주견이 세고 보수성향이 짙고 또 어디엔가 독기가

에 드는 안보 상황을 만들어주지 않아 분개했다.

있는 독신자” 로 표현하고 있다. 또, 소설에서는“김 정일동지께서는 만찬에 앞서 박근혜가 선물을 올리

『오성산』 이 내비친 새 대선의 기대

던 일과 지난날의 행적과 당파, 리념을 초월하여 숭 고한 민족애의 높이에서 그와 따뜻한 담화를 나누시

소설에서는 2002년 16대 대선을 민주세력 대 친미

던 일을 상기하시였다” 고 말해 2002년 5월의 만남을

보수세력의 대결로 묘사해,“남조선의 민주화의 전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박근혜 위원장의 방북

도 그리고〈대통령〉선거도… 결국은 조미대결전의

은“남조선의 보수일각에서마저 우리의 선군정치에

결과에 따라 승패가 좌우될”것이라는 인식을 보여

대한 허리굽는 자세를 보이는 현실” 이며 이런 현상은

준다. 반미 정서와 남북 단합의 의지 덕에 한나라당

북을 적대시하는“미제에게 있어서는 최대의 위협” 이

의 이회창 후보가 낙선했다는 해석은 새로운 것이 아

라고 분석하고 있어, 이 만남을 한국 보수 세력의 경

니다.『오성산』 에서 진정 흥미로운 것은 그로부터 10

의와 미국을 배제한 남북의 단결 가능성을 드러낸 사

년 뒤에 있을 선거, 즉 소설이 출간되는 해에 있을 선

건으로 재해석했다. 이 소설이 선전 매체라는 점을

거에 대한 기대다. 김정일은“우리가 미제와의 대결

유의해야 하지만, 적어도 2012년 2월까지는 북한이

에서 성과를 내면 미공화당의 남조선지구당같은〈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의원에게 어느 정도 기대를 품

나라당〉 이 아무리 날뛰여도 인민대중이 반미를 내세

고 있었으며 따라서 비난을 자제한 것으로 볼 수 있

우는 민주세력의 후보인물에게 지지표를 던지게 될거

다.

요”하고 말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소설은 2002년

오바마는 이 소설에서 가장 의외로 묘사되는 인물

김정일과 만난 박근혜 당시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

이다. 소설에서 오바마는 파월 장관과 대북 정책을

위원장을 반은 우호적인 시선으로, 반은 의문스러운

두고서 논쟁하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소설의 묘사와

시선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 이미지에 소설이 간행된

는 달리 2003년의 시점에 오바마가 차기 민주당 대

2012년 초 북한의 전략이 투사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

선 후보가 되리라는 예측은 드물었다. 그런데도 오바

다. 소설의 화자는 파월 국무부 장관의 속심을 묘사

마를 등장시킨 것은 집권 1기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

하는 형식으로 박근혜 위원장을“어딘가 라이스[당시

점에서 그에 대한 기대를 다시 보여주기 위한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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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소설가는 오바마를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야심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허장성세보다는 우회적

대안을 제시하는 인물로 그린다. 파월은 오바마를 만

이고 상징적인 선언이 더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난 자리에서 후일 그의 공약이 될“핵무기 없는 세계

이 선언 자체가 현실을 대신할 수는 없다. 예술은 그

를 건설할 구상” 을 공상적이라고 비판하며 핵이야말

나름의 현실을 새로 만들어내지만 그것이 인간이 피

로 미국 외교의 지렛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바마

와 살로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대신해주지는 못한

는 신자유주의공식과 같은 단순한“리론” 으로 국제정

다.

치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현 대

2002년을 이야기하면서 2012년 이후의 미래를 이

북 정책을 비판한다.“미국의 정치전략, 대외정책에는

야기하는 것은 용인할 수 있는 발상이다. 그러나 소

보다 큰것, 대의명분, 실질적인 국제적기여가 따라야

설에서 북한은 여전히 한국을 북의 반미 대결전을 위

합니다. …만약 북조선과의 대결이 세계지도자로서의

해 단결해야 하는 상대로만 보고 있으며, 미국을 핵

미국의 존재를 부각하는데 실질적으로 기여한다면 나

대결에서 꺾어야 하는 사악한 제국주의로만 보고 있

도 환영합니다. 그런데 과연 사회주의가 쉽게 이 지구

다. 한국과 미국이 그 나름의 고유한 외교 전략을 가

상에서 사라질것 같습니까?”오바마에게 이러한 대

지고 있으며 이것을 북한의 전략과 절충, 타협할 수

사를 안겨줌으로써 소설가는 그를 대화가 가능한 인

있는 가능성은 소설에서 암시되고 있지 않다. 이것

물로 재설정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1기 출범과 함

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겠다는 구성원이

께 진행한 비난 공세는 확실히 누그러져 있다. 그러나

되겠다는 의지가 아직 부족하다는 증거이며, 핵 개발

북한과‘대결’ 하려면“서방의 가치관을 전파” 하는 것

로 고통 받는 정치,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유감스러

이상의 명분이 필요하다는 이 말에는, 현재 북한과

운 일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고지도자가 국방과 예

대화 자체를 단절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아

술 문제에 주로 공개 행보를 한 김일성의‘3년상’기

쉬움이 묻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간과 달리, 김정은 제1위원장은 경제 상황을 개선하 기 위한 현지 지도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디로 가야 할까?

이것은『오성산』 이 선군의 기치를 고수하자고 외치 고는 있으나, 이 소설보다 상위에 있는 권위가 이 선

역사 다시 쓰기와 예술 창작으로 권력의 정당성을

전보다 유연하게 변모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

확보하려는 것은 북한만이 하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미이기도 하다.『오성산』 은 현실 속에서 다시 쓰여야

ⓒ월간중앙.

한다.

최정훈 (서울대 자유전공) intransigere@gmail.com

소설『오성산』은 노무현과 부시 등 한미의 전직 대통령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언급도 담고 있다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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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메커니즘 지난 1일, 파키스탄탈레반(Tehrik-e-Taliban Pakistan, TTP)의 지도자인 하키물라 메수드가 미국의 드 론(무인항공기) 공격으로 사망했다. 괴이한 일이다. 그는 올해 6월에 이미 사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 에 두 차례나 하키물라의 죽음이 보도되었으니 이번은 그의 네 번째 죽음인 셈이다. 3번의 부활이라는, 현대 과학의 영역을 뛰어넘는 하키물라의 성과도 그의 전임자인 바이툴라 메수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 니다. 하키물라 이전에 TTP를 이끌었던 사촌 바이툴라 메수드가 지난 9월‘정말로’사망하기 전까지 드 론 렌즈에 포착된 것만 16차례에 달한다. 저승이 잘 안 맞았던 모양이다. 사후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메수드 부족만이 아니다. 파키스탄을 근거지로 삼아 아프간탈레반을 지원하는 강력한 하카니 네트워크의 지휘관이었던 물라 산진 자드란 역시 두 번이나 이승으로 돌아오는 수고를 감내했다. 아니면, 처음부터 죽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사망한 것은 바이툴라와 물라 산진 대신 다른 사람이었 다는 가설이 부활 이론보다는 훨씬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그들 대신 죽은 것은 누구였을까.

냉전의 잔해

직을 결성하거나 탈레반 정권에 참여했지만, 대다수 의 파키스탄 청년들은 급진화된 채로 고향으로 돌아

미국의‘테러와의 전쟁’ 의 기원은 9·11 훨씬 이

갔다. 10년 후 오사마 빈 라덴이 일으킨 9·11 테러

전으로, 1980년대 냉전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

를 계기로 9월 12일 양원이 제출한, 9·11에 책임이

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아프

있는 자들을 침공하자는 합동결의안에 부시 대통령이

가니스탄에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정

서명한다. 이 결의안은 이후 법원명령 없이 미국 시

보부(Inter-Services Intelligence, ISI)의 지원을

민들을 감청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는 등 수많은

받아 파키스탄의 종교학교인 마드라사에서 수학하

‘무리수’ 의 법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10월, 영국과

고 지하드를 기치로 내건 반소련 해방조직이 만들어

파슈툰 민병대, 반탈레반 조직인 북부동맹의 지원을

진다. 이들이 스스로를 부른 이름이 바로‘무자헤딘

받은 미군은 탈레반에 대한 보복작전인‘항구적 자유

(Mujaheedin)’이다. 무자헤딘을 위해 미국이 기지

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 을 펼친다. 11

를 건설한 곳은 아프가니스탄 동부와 국경을 접한 파

월 마자르 샤리프에서의 패배를 기점으로 탈레반은

키스탄의 연방직할부족지역(Federal Administrative

쇠퇴해, 12월 완전히 패배한다.

Tribal Areas, FATA)으로, 현재의 와지리스탄을 중 심으로 한 7개 지역을 일컫는다. 대다수가 파슈툰 족

나홀로 FATA에

으로 구성된 이 지역에 거주하던 많은 파키스탄 청년 들이 무자헤딘에 참여했다. 1988년부터 소련군이 철

오바마의 말에 의하면“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

수하자 미국 역시 이 지역에서 손을 뗀다. 그러나 무

인 FATA는 현재 파키스탄탈레반과 아프간탈레반, 알

자헤딘은 남았다. 지하드를 수행하면서 급진화된 이

카에다, 아프간탈레반을 지원하는 하카니 네트워크

들 중 일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알 카에다 등 무장조

를 비롯한 여러 무장단체의 근거지다.《알 자지라》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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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국제시사저널

Prism


ⓒCFR

아프간-파키스탄 국경에 접한 FATA

따르면 이곳에서는 평균적으로 나흘에 한 번 드론 공

이들 무장단체들을 제압하기 위해 FATA를 공격한다.

습이 일어나며, 현재까지 파키스탄에 퍼부어진 282

이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게릴라전을 펼치지만 구심점

회의 드론 공습 중 단 1회만이 FATA 밖에서 일어났

이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고, 시기 좋게 2007년 파

다. CIA는 이곳의 특산물이 테러리스트라 평하겠지

키스탄군이 FATA 출신의 70명 남짓의 학생이 포함

만 역사를 되짚어 보면 이 지역의 진짜 특산물은‘냉

된 100명 이상을 학살한‘레드 모스크’사건이 터진

혹함’ 이 아닐까 싶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무굴 제

다. 이 사건에 영향을 받아 무장단체들을 통합한 것

국의 황제들마저 고원과 사막과 추위가 공존하는 이

이 메수드 족 출신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인 바이툴

곳을 정복하지 못했다. 와지리스탄을 중심으로 메수

라 메수드이며, 이렇게 형성된 것이 바로 파키스탄탈

드 족과 와지르 족이라는 강력한 파슈툰 족이 통치하

레반, 즉 TTP다. TTP는 파키스탄 군부와 정보부, 특

는 FATA는 1890년대 영국이 파키스탄을 식민지화하

수부대를 주 타깃으로 공격하며 2008년 이슬라마바

기 전까지 어떠한 중앙통치도 받아 본 일이 없으며,

드의 메리어트 호텔의 폭탄테러, 베나지르 부토 총리

심지어는 영국의 식민통치 하에서도 세금과 형법에서

암살 등을 주도했다. 가장 최근에는 파키스탄 여성교

자유로웠다. 파키스탄 건국 후에도 이 전통은 이어졌

육을 주장하는 소녀 인권운동가인 말랄라 유사프자이

다. 국부 무하마드 알리 진나는 와지리스탄의 부족회

를 공격하기도 했다. 이들은 알 카에다와 아프간탈레

의에 해당하는‘지르가’ (jirga)를 존중하고 이들의 자

반을 지원, 충원, 양성할 뿐만 아니라 지도부에게 은

치를 인정했으며 군대조차 철수시켰다.

신처까지 제공하는데, 아프간탈레반의 지도자 물라

60년 가까이 인정받던 이곳의 자치에 손댄 것이 무

오마르 역시 현재 파키스탄 내부에 숨어 있다. 이렇

샤라프 파키스탄 전 대통령이다. 2002년 와지리스

게 되자 아프가니스탄보다 테러리스트들을 양성, 충

탄을 중심으로 아프간탈레반을 지지하는 무장단체가

원, 지원하는 파키스탄 내 무장단체를 소탕하는 것이

FATA에 여럿 형성되고, 미국의 압박에 무샤라프는

더욱 시급해진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국제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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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국가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할 수는 없었던 미국

‘위험지역에서 죽었으니 테러리스트’라는 논리다.

에게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드론이다.

바이툴라 메수드나 물라 산진 자드란이 사망했다는 오보가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죽은 건 남자 일곱이니 다 테러리스트였겠죠”

드론이 실제 목표물의 신원을 알 수 없다는 엄청난 오류를 안고 있는데도 대테러정책으로 쓰이는 것은

드론이 타깃을 공격하는 데 CIA와 국방부가 사용

불확실한 연구결과 탓이 크다. 드론 찬성론자들이 가

하는 방식이‘수상 행동 타깃(Signature Strike)’ 이

장 많이 인용하는 신아메리카연구소(New America

다. 목표물의 신원을 알 수 없어도‘수상한 행동’ 을

Foundation, NAF)는 미국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

보이면 테러리스트로 간주해 폭격한다는 말이다. 그

고 이사진에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과 프랜시스 후

러나 문제는‘어떤 행동’ 을 보이는‘누가’과연‘수상

쿠야마가 포함된 거대한 연구소다. NAF는 2012년

하다’ 고 간주될 수 있는가에 있다. 절대적 기준이 없

《CNN》 에 출연해, 그 해에는 드론 공격으로 인한“단

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FATA의 인종, 지

한 차례의 민간인 사망도 없었다” 며 드론 찬성론자

형, 역사, 관습에 대한 미국의 무지가 개입하게 된다.

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어마어마한 이사진의 명성

드론은 국제법으로 인정받는 제네바 협약의‘전시

에 위축되기 전에 고려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는

민간인 보호에 대한 조항’ 마저 위반하면서까지 신원

데, FATA는 위험 때문에 기자들을 비롯한 외부인의

미상의 테러리스트를 노리는 것이니 타깃 선정의 기

출입이 사실상 금지된 지역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준은 까다로워야 맞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뉴

‘단 한 명의 민간인도 사망하지 않았다’ 는 주장은,

욕타임즈》 는 드론이 공격하게 될‘수상’ 한‘누군가’ ‘어떻게 알았나’라는 방법론적 질문으로 반박되는 의 기준은 사실상 ‘ 입대가능한 나이의 성인 남자’ 라

것이 타당하다. 문제는 NAF 역시 미국의 억지 논리

는 사실을 폭로했다. 한 CIA 관료는《뉴요커》 와의 인

를 반복할뿐더러 신원은커녕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하

터뷰에서 말했다.“수염을 기른 키 큰 남자는 누구라

는 사망자의 소속조차 모른다는 데 있다. 가령 2013

도 드론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한데 FATA는 전통

년 한 해 일어난 25차례의 드론 공격 중 14차례는 그

적으로 남자들이 자기방어를 위해 총기나 총탄을 들

‘테러리스트’ 의 소속 단체가‘미상’ (unknown)이다.

고 다니는 지역이다. 이들이 테러리스트로 간주될 확

이런 논리로 NAF는 6%라는 민간인 사망률, 17%의

률은 농후하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이나 파키스탄 어

오폭률을 주장하지만 사망자의 신원을 실제로 확인

느 쪽도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탐사보도연구소(Bureau

갖추지 못한 상태라는 데 있다. 그러나 드론 공습의

of Investigative Journalism)는 한 명의 테러리스트

효율성을 널리 홍보하고 싶은 미국이 차용하는 것은

당 10명의 민간인이 사망한다고 증언한다. 90%를 상 회하는 민간인 사망률이다. 파키 ⓒNew America Foundation

스탄 언론의 보도는 더 참혹하다. 파키스탄 일간지《돈(Dawn)》은 2009년 이루어진 44차례의 드론 공습에서 사망한 708명 중 무장단 원은 불과 5명이었다고 보도했다. 나머지 703명은 민간인이었다는 이야기다. 《뉴스위크》전 편집장인 다니엘 클레이드만은 백악관이 과연‘수 상 행동 타깃’ 의 의미를 알고 있었

NAF 소장 피터베르겐은 CNN에 출연해 2012년에는 드론으로 인한 한 차례의 민간인 사망도 없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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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국제시사저널

는지에 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

Prism


ⓒAP Images

이기 마련이며, 따라서 드 론 공습은 미국에 앙심을 품은 잠재적 테러리스트 를 몇 배로 양성하는 꼴이 다. 또 드론 공습 때문에 메수드 족의 절반에 해당 하는 20만 명을 포함한 약 백만 명이 터전인 FATA 를 빠져나와야 했다. 전직 CIA 분석가인 맥거번은 “누군가는 언젠가 이 나라

미국의 드론. 미국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역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드론을 이용한다.

(미국)로 반드시 오게 되 며, 이는 막을 수 없다”

한다. 2008년, 갓 취임한 오바마에게 CIA 부국장 스

고 말했는데, 그의 예언은 현실로 이루어졌다. 2010

티브 캡스가‘수상 행동 타깃’ 에 대해“각하, 우리는

년 타임스퀘어 폭탄테러 미수 혐의로 체포된 파이잘

테러활동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입대가능한 나

샤하자드는 파키스탄에 대한 드론 공습에 앙심을 품

이’ 의 남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만 그들이 누구인지

고 테러 훈련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는 모릅니다” 고 솔직하게 말하자 오바마는 이렇게 말

테러활동이 FATA 바깥으로 확대되었다는 것 또한

했다고 한다.“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소.”그러나 얼

드론이 야기한 예상치 못한 결과 중 하나다. 많은 테

마 지나지 않아 그것으로도 충분해졌던 모양이다. 대

러리스트들은 8천만 인구의 펀잡 주와, 세계에서 가

통령이 임명한 CIA 국장인 브레넌은 2011년 존스 홉

장 많은 도시인구인 2천만이 사는 카라치로 이동했

킨스대 강연에서“어떤 민간인도 드론 공습에서 사망

다. 이들 지역은 도심이기에 드론으로 폭격하는 것이

하지 않았다” 고 발언했고, 올해 5월 오바마는“미 정

불가능하며, 현재 카라치는 자살폭탄테러의 허브가

부가 조사한 민간인 피해 조사와 비정부단체들의 보

되어가고 있다. 피해 국가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고 사이에는 차이가 크다” 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

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의 승인 하에 드론 공격은 2012년 예멘으로까지 확대

드론은 전 CIA 국장 조지 테넷의 고백처럼“저질러

되었으며, 신원 확인 불가와 민간인 학살이라는 문제

서는 안 되는 끔찍한 실수” 다. 이 실수의 조직적 반복

를 안고 있는데도 현재 파키스탄, 예멘, 소말리아에

을 가능케 하는 것은‘보고 있으나 보려 하지 않는’

서 드론은 테러집단을 공격하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

미국의 고질병이다. 또다른 파이잘 샤하드가 나타나

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 전에 이 고질병은 시정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일은 안전할까

박정민(연세대 정치외교) jay6901@naver.com

드론은 장기적으로 더 큰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 하다. 잠재적 테러리스트를 양성한다는 허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스탠포드대와 뉴욕주립대에 서 발간한 보고서인「드론 아래의 삶(Living Under Drones)」 에 의하면 드론이 미국을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었다는 근거들은“잘 봐줘도 불확실하다.”드론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는 그게 누구든 대가족의 일원

국제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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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2011년의 국회 청문회에서 당시 미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은 미국의 새로운 대탈레반 정책을 아우르는 캐치프레이즈가“싸움, 대화, 재건(Fight, Talk, Build)” 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말도 되고 외우기도 쉽고 다 좋은데 힐러리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미국의 대테러 정책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을 맞이했 다. 싸워야 할 미군은 철수하고 있고, 대화는 교착상태에 빠졌으며 재건을 도맡아야 할 현 정권은 역량 부 족이다. ⓒUS Army

아프가니스탄 내 미군 기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Areas, FATA)의 지형에서 끝없이 충원되는 청년들 을 동원해 싸울 수 있지만, 미국은 끝없이 싸울 수 없

탈레반과의 싸움에서 야기되는 문제점은 드론만

다.《포린 폴리시》 의 토마스 릭스는“우리가 왜 여기

이 아니다. 7만 미군이 포함된 10만 명의 나토군은

있는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이기고 있기는 한지

2014년까지 아프간 전역에서 철수한다는 데드라인을

도 모르겠다” 고 잘라 말했다.

바라보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오히려 쫓기는 것

아프간 정부가 스스로 탈레반을 이길 수 있을 날

은 미국이다. 탈레반은 천혜의 요새라 불리는 험난한

은 더욱 요원하다. 훈련시키는 데만 매년 120억 달

연방직할부족지역(Federally Administered Tribal

러가 들어간 35만의 아프간 군(Afghan 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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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국제시사저널

Prism


ⓒReuters

Army, ANA)과 아프간 경찰(Afghan National Police, ANP)이, 미군이 철수하는 즉시 붕괴될 수 있 다는 사실은 아프가니스탄이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 제 중 하나다. 나토군이 2011년부터 철군을 시작하 면서 2012년 30만 명이던 ANA의 사망률은 10만의 국제안보지원군(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 ISAF)의 10배에 달했다.《월스트리트저널》 에 의하면 ANA는 사망, 퇴직, 탈영 등으로 매해 34.8% 의 인력을 잃고 있으며, 현재 ANA의 사망률은 2010 년과 2011년 당시 ISAF와 ANA의 사망자수를 합한 것의 세 배에 달한다. 2010년과 2011년 당시가 미군 의 사상자 수가 역대 최대였던 시기라는 점을 고려하 면 ANA의 미래는 더욱 어둡다. 2009년 ISAF 사령관 맥크리스탈은 4년에 걸쳐 아프간의 치안을 ANA에게

아프간 대통령 하미드카르자이

돌려준다는 계획인 맥크리스탈 계획을 수립해 승인 받았으나 2012년 ANA에게 치안을 넘긴 지역은 당

무조건 보이콧하고 있다. 한데 카르자이가 다자간 협

초 계획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그나마 치안유지권을

상이라는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싶다면, 다양한 인종

위임 받은 지역 중 하나인 바타크샨은 아프간 전역에

이 섞인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고려할 때 먼저 대표

서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었으나 위

할 수 있는 단일한 의견을 이끌어내는 것이 맞다. 실

임와 동시에 탈레반과 아프간 군 간 충돌에 휘말렸

제로 파키스탄 외교관들은 카르자이가 HPC에 포함

다. ANA가 처음으로 아프간 전역의 치안권을 나토로

되지 않은 강력한 부족세력들까지 포함해 평화협상에

부터 인계 받은 6월 이후 ANA의 사망률은 전년대비

관한 전국민적 일치를 약속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카

80%나 치솟았다.

르자이는 실천 비슷한 행동조차 하지 않았고 오히려 비파슈툰 족과의 정치적 동맹을 끊어내는 정치적 자

미운 놈, 나쁜 놈, 못 믿을 놈

살을 감행했다. 실제 카르자이의 의중은 어떻게든 탈 레반과의 평화협상을,다가올 4월 대선을 통해 선출될

미국과 탈레반이 폭력 종식을 위해 처음으로 대화 를 시작한 것은 나토군의 철군계획이 잡힌 후인 2012

그의 후임자에게 떠넘기는 데 있다. 그리고 그가 바 라는 대로 협상은 교착상태에 머물러 있다.

년 3월부터다. 여기서 미국이 저지른 오류는 아프간

설사 협상이 체결된 후에도 탈레반이 무장투쟁을

정부를 배제하고 탈레반과의 양자협상을 시작했다는

전개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지킨다고 믿을 이유는 없

데 있다. 이제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

다. 이미 탈레반은 영국과의 휴전 협정을 깬 이력이

가 탈레반과의 협상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별다

있다. 유일하게 탈레반과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른 비밀도 아니다. 이미 그는 2011년에는 정부측 협

것은 탈레반을 지원하는 하카니 네트워크와 유대관계

상대표 라바니의 암살, 올해 중순에는 탈레반이 카타

를 맺고 있는 파키스탄이다. 그렇다면 파키스탄은 믿

르 도하에 연 사무실의 깃발이 탈레반 정권의 정통성

을 수 있는 나라일까.

을 뜻한다는 이유로 탈레반과의 협상을 취소한 경험 이 있다. 카르자이 밑의 장관들은 카르자이가 정부측

적과의 동침

수석협상자에 대한 린치를 명령했다고 주장한다. 카 르자이는 아프간 정부의 협상기구인 고위평화위원회

미국이 탈레반과의 협상과 전투 모두를 전개하는

(High Peace Council, HPC)가 배제된 협상이라면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수단은 파키스탄 정부의 협조

국제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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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FATA에 접근할 수 없는 미국을 대리해 파키스

파키스탄은 중국산 무기의 최대 수입국일 뿐만 아니

탄정부가 FATA와 퀘타를 비롯한 탈레반의 은거지

라 최근 중국의 도움으로 국내 최대 원자력발전소를

를 공격한다.

착공하는 등 중국과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가고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미국과 파키스탄탈레반

오바마는 2012년 롬니와의 대선 토론에서“오사마

(Tehrik-e-Taliban Pakistan, TTP) 사이에서 사실

빈 라덴 사살 작전을 이슬라마바드에게 미리 알렸더

상 이중첩자 노릇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파키스탄정

라면 오사마는 살아 있을 것” 이라며 파키스탄 정부에

부는 미국을 거스를 수 없다. 첫 번째 요인은 파탄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런 그의 판단은 옳

빠진 파키스탄의 경제다. 미국은 파키스탄이 재정적

다. 파키스탄은 적이다. 그러나 파키스탄이 아닌 다

위기에 부닥칠 때마다 세계은행과 IMF로부터 대출

른 대안도 없다.

을 받아 경제적 위기를 넘기는 데 일조해 왔다. 현재

불에 탈 집을 지어라

까지 파키스탄이 미국으로부터 원조받은 200억 달러 역시 감안해야 한다. 두 번째 요인은 파키스탄 내 강 력한 군부세력의 존재다. 1947년 파키스탄이 영국으

2012년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로부터 독립한 이후 군부는 66년의 절반 가량을 통치

International, TI)는 재건을 도맡아야 할 카르자이

했다. 현재도 군부세력은 강력하며, 현 총리인 나와

정권(과 그의 가족)이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정권이

즈 샤리프가 이끄는 민간정권은 미국이 군부 쿠데타

라고 발표했다. 북한이나 소말리아와 비슷한 수준이

를 지원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다. 실제로 카르자이는 정실 인사와 뇌물의 온상이고

그러나 동시에 파키스탄은 미국의 요구에 무작정

2009년 부정선거 의혹 때문에 정치적 정당성조차 상

순응할 수도 없다. 먼저 정치적 정당성의 문제가 있

실한 상태다. 미국은 아프간 불법행위 대책 프로그램

다. 군부의 지지를 얻지 못한 샤리프 정권의 정치적

(IAIA)를 운영하고 있지만 당장 대통령의 가족부터가

기반은 국민들로부터의 지지이며, 종파와 인종이 복

수억 달러를 횡령했으며 탈세 의혹으로 부패의 정점

잡하게 나뉜 파키스탄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에 달한 상황이다. 대통령의 가족만이 아니다. 2012

의 파키스탄 국민들이 공통으로 공유하는 것이 있다

년 미국은 부패한 장교와 주지사, 관료 등을 파악해

면 반미감정이다. 올해 5월에 당선된 샤리프 총리가

아프간 정부에 넘겼지만 무기력한 사법부는 이에 상

총선에서, 미국의 드론 공습을 중단하겠다는 공약을

응하는 사법 절차조차 진행하고 있지 않다. 이런 카

내건 것은 여기서 연유한다. 또 고려해야 하는 것은

르자이가 아직도 미국의 비호를 받고 있는 것은 그를

바로 인도라는 변수다. 미국은 파키스탄에게 FATA를

대체할 파슈툰 족 지도자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공격하고 테러와의 전쟁에서 보다 주도적 역할을 수

그리고 다가올 2014년 대선에서 3선이 불가능한 카

행할 것을 요구하지만 파키스탄은 결코 TTP를 완전 탄이 내전에 돌입할 경우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은 주 요한 세력 중 하나가 될 것이며, 아프간탈레반을 지

ⓒReuters

히 적으로 돌릴 수 없다. NATO 철군 후 아프가니스

원하는 하카니 네트워크나 TTP를 통해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세력을 확보해, 다가올 인도와의 충돌에 대비할 수 있다. 파키스탄의‘미약하지만 잦 은’반항은 이러한 모순으로부터 나온다.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기 전 6년간 머무른 아보타바드는‘파 키스탄의 웨스트 포인트’ 라 불리는 카쿨 군사학교로 부터 고작 반 마일 떨어진 곳이었다. 파키스탄이 정 말 이 사실을 몰랐을지는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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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국제시사저널

탈레반의 공격으로 불탄 미국 공급트럭 앞에서 아프간군이 총을 메고 서 있다.

Prism


리시》 의 토마스 릭스는“문제는 부패가 아니라 우리 의 달러가 어떤 부패정권에게 들어가는가다. 결국 우

ⓒAP Images

르자이는 형인 콰윰 카르자이를 내세웠다.《포린 폴

리는 정당한 부패를 돕는 셈” 이라고 비꼬았다. 철군 후의 아프가니스탄의 현상유지라는 가능성 조차 이상주의로 보이게 하는 또다른 원인은 다자간 내전의 가능성이다. 아프가니스탄은 파슈툰어를 쓰 지 않는 타지크, 하자라, 우즈벡 족만 해도 전 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다. 이미 아프간 남동부는 파슈툰족 중심의, 탈레반이나 탈레반과 연계된 단체 가 장악한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아프가니스탄 북 부에는 옛 북부동맹이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는

탈레반의 마약 재배는 이들의 가장 큰 수입원 중 하나다. 양귀비를 살 펴보는 탈레반.

데, 이는 나토군 철수 이후 아프간 군이 싸워야 할 곳

의 자금원』 (Funding the Enemy)에서 미국과 계약

은 탈레반이 장악한 동부와 남부뿐만 아니라 북부까

을 맺은 건설, 보안업체나 심지어는 통계자료를 수집

지 포함될 가능성을 암시한다. 아프간 전역에 불똥이

하려고 들어간 학자까지 국방부로부터의 지원자금 중

옮겨 붙을 수 있는 것이다.

1/5에 해당하는 금액을 카불에 있는 탈레반 비밀 사

차라리 탈레반을 비롯한 반정부세력을 탄압해 정

무소에 지불한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아프가니스탄에

치적 안정성이라도 구가해야 지원을 받을 자격이라도

도로를 깔 때도차 탈레반에 돈을 지불해야 한다. 이

생기겠지만 카르자이는 나토군의 철수를 대비, 탈레

들의 묵인 없이는 어떤 사업도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

반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예컨대 최근 그는 탈레반

다.《허핑턴포스트》 는이렇게 매해 약 10억 달러의 외

정권 붕괴 이후 폐지된 간통자의 투석처형법을 부활

화가 탈레반의 손에 들어간다고 보도했다. 상황 자체

시켰는데, 이는 국제사회의 원조를 제 손으로 끊어내

가 하나의 희극이다. 총 2.7조 달러가 투입된 이 총체

는 결과를 낳았다. 대표적인 국가가 아프가니스탄의

적 난국의 정점으로, 탈레반의 마약산업조차 미국이

부패 척결과 여권 향상을 위한 노력에 실망해 올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뉴스위크》 는 탈레

약 1400억 원의 원조 중단을 선언한 노르웨이다. 게

반이 아프간 정권을 무너뜨린다면 아프가니스탄은 세

다가 그는 올해 3월 탈레반이 일으킨 폭탄 테러가 외

계 최초의 마약 국가가 될 거라고 예견했다.

국군의 주둔을 정당화하려는“미국과 탈레반의 공모”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은 이라크, 레바논, 리비아,

라며 미국을 맹비난했다. 이쯤 되면 적인지 친구인지

이집트, 시리아에서 연이어 맛본 실패의 시작이다.

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아프간 정부도 군대도 미완으로 남겨진 상태에서 미 국의 성급한 발빼기가 마치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려

지는 싸움의 가격

는 것처럼 보여 조금은 안타깝다. 그러나 더 안타까 운 것은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다. 종파갈등에 휩싸인

그렇다면 지금까지 미국이 도맡아 온 아프간의 재

이라크와, 미군 철수 후 중동과 아프리카 전역에 세

건사업은 과연 어떨까.미 국방부는 탈레반과의 전쟁

를 확장한 알 카에다가 닦아 놓은 길이 바로 아프가

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물품들을 모두―게토레이에

니스탄과 탈레반이 걷게 될 길 아닌가 싶다.

서 방독면과 가스까지―개인 운송회사를 통해 조달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아프간 도로는 탈레반의 통 제 하에 있고, 운송회사의 트럭들은 이들에게 돈을

박정민 (연세대 정치외교) jay6901@naver.com

지불하고 안전을 보장받아야 한다. 적에게 돈을 내고 싸우는 아이러니다. 더글라스 위싱은 그의 저서『적

국제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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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듣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CAROL!! 산타 할아버지도 몰랐을 캐럴의 숨겨진 이야기 ⓒ디즈니랜드

요즘 거리를 거닐다 보면 빨강과 초록의 향연 속에 반짝거리는 화 려한 전구들로 마음이 말랑해지고는 한다. 그렇다. 축복과 사랑이 넘 친다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기독교인만의 축제가 아니다. 종교에 상관 없이 전세계의 많은 이들이 해마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축배 를 든다. 그렇다면‘크리스마스’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 엇일까? 어느 한 설문 조사의 결과 3위를 차지한 것은 산타였고, 공동 1위를 차지한 것이 트리, 그리고 바로‘캐럴’ 이었다. 연말에 여기저기 에서 울려 퍼지는 캐럴은 그 멜로디만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풍기며 우리를 들뜨게 한다. 그런데 과연 캐럴이 처음부터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일까? 이쯤 되면 눈 치 챘겠지만 대답은 역시나‘NO’ 이다.

캐럴, 너 어디에서 왔니?

기념하는 노래라 볼 수는 없는데, 그 이유로는 부활 절 캐럴, 성령강림주일 캐럴, 승천일 캐럴 등 기독교

듣기만 해도 설레는 캐럴이란 말은 대체 어디서 온

의 모든 절기에 해당하는 캐럴들의 형태가 오래 전부

것일까? 어원을 살펴보면 캐럴은 둥글게 원을 그리며

터 전해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16세기에 이르러

노래 부른다는 뜻의 중세 프랑스어‘카롤레(Carole)’

캐럴은 지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크리스마스 노래

에서 유래된 것으로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 켈트어

로 그 뜻이 한정되었다.

에도 이와 유사한 단어가 존재한다. 즉 캐럴은 마치 우리나라의 강강술래와 같이 다같이 춤을 추며 즐겼

캐럴 금지령?

던 일종의 원무를 일컫는 말인 것이다. 또한 놀랍게 도 실제 이 원무는 고대 로마의 이교도들이 동지를

지금은 캐럴을 굳이 찾아 들으려 하지 않아도 어

기념하는 축제에서 추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캐럴

딜 가나 쉽게 들을 수 있지만, 캐럴은 한때 혹독한 규

이 그 초기 단계에서 기독교와 이교도를 가리지 않는

제를 받았다. 그것도 바로 교회에 의해서! 청교도 혁

음악의 한 형태였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캐럴은 크리

명이 일어난 후 개혁의 움직임 아래 청교도들은 모든

스마스와 반드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고 말할 수

종교적인 축제를 부정하였으며 캐럴과 같이 크리스마

없는 것이다.

스를 기념하는 그 어떤 것도 엄하게 금지시켰다. 물

이처럼 기독교 이전에 후렴구를 가진 무곡이었던

론 크롬웰의 통치가 끝난 이후 이 금지령은 점차 풀

캐럴은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종교적인 색채를 띠게

렸으나 이들이 미국의 뉴잉글랜드로 이주를 가면서

되었는데, 그러면서 가사에 아기 예수, 마리아, 동방

캐럴 금지령, 크리스마스 금지령은 그 곳에서 법으로

박사 등 예수의 탄생 신화의 내용이 집중적으로 담기

써 더욱 철저하게 지속되었다.

면서 캐럴은 크리스마스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게 된

청교도들이 크리스마스를 부정했던 그 첫 번째 이

다. 하지만 그렇다고 캐럴이 오로지 크리스마스만을

유로는 12월 25일이 예수 탄생일이라는 근거가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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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국제시사저널

Prism


풍습에 기원했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캐럴이 고대 로 마의 이교도가 동지를 기념하여 춘 원무에서 기원했 다고 언급하였는데, 여기서 동지가 바로 12월 25일 크리스마스였다. 본래 로마에서는 하루 해가 가장 짧

ⓒImperial war museums

에 전혀 나오지 않는 데다가 크리스마스가 이교도의

았다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12월 25일을 태양신의 탄 생일로 여겨 12월 24일부터 다음해 1월 6일까지를 하나의 대절기로 크게 기념하였다. 이에 기독교에서

양군 사이의 중간 지대인 일명‘no man’s land’에서 만난 독일군과 영국군

는‘세상의 빛’ 인 예수의 탄생을 12월 25일로 정하 여 태양신 미트라의 탄생일과 일치시킴으로써 이교도

들은‘크리스마스 전에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들에게 기독교를 더 쉽고 빠르게 전파시키고자 한 것

라 생각하며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전쟁은 장기화되어

이다.

가고 있었고, 어느덧 유럽인들은 전쟁터에서 크리스

크리스마스 금지령의 또 다른 이유로는 당시의 크

마스 이브를 맞게 되었다. 그때 벨기에의 이프르 지

리스마스가 폭식, 음주, 가택 침입 등 일탈이 이루어

역에서는 영국군과 독일군이 지루한 대치를 하고 있

지는‘전도(reversal)’ 의 날이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었다. 그러던 중 독일의 어느 한 병사가 작은 트리를

있다. 사람들이 모여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시는 행위가

들고 참호 위로 올라가 노래를 불렀다. 그때 부른 노

청렴한 삶을 주창했던 청교도의 비위에 거슬리기도

래가 바로‘거룩한 밤 고요한 밤.’그것은 자살 행위

했을 테지만, 지금의 크리스마스를 축복하는 분위기

나 다름없었지만 놀라웠던 것은 아무도 그에게 발포

와 달리 그 때의 크리스마스는 중세적 카니발리즘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양측의

이뤄지는 난폭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은

병사들은 서로 캐럴을 부르며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크리스마스를 기해 캐럴을 부르며 거리를 돌아다니며

하루간‘크리스마스 휴전’ 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믿

부유한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구걸 행위를 하였고, 이

기지 않는 기적 같은 이야기이지만 실제 영국, 프랑

를 거절하면 집에 침입하는 등 복수를 하기도 하였다.

스, 독일에 분명히 기록으로 남아있는 실화이다. 이

상층의 권력자로서 교회는 이러한 하층의 저항적 민

프르 지역만이 아니라 서부 전선 곳곳에서 영국군과

중 문화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따라서 1659년부터 22

독일군은, 또 프랑스군과 독일군은 각자 가진 단추나

년간 뉴잉글랜드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행위

계급장 같은 선물을 교환하고 팀을 나누어 축구 경기

를 법적으로 금지시켰고, 캐럴 역시 부르면 벌금을 물

를 하는 등 크리스마스를 함께 즐겼고, 또한 양측의

어야 하는 금지 행동 중 하나가 되었다.

참호 사이에 흩어져있는 전사자들을 매장해주었다고

하지만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사

전해진다. 이것이야말로 크리스마스의 기적 아닐까?

람들은 몰래 모여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이를 기념하

캐럴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캐럴은 종교에 상관없

였고, 때문에 당시의 캐럴은 교회 더 나아가 권력층에

이, 어떤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심지어 전쟁터에서

게 일종의 반항과 저항의 문화로 인식되었다. 그러다

도 울려 퍼진‘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기 위해

점차 청교도들의 세력이 약해지고, 캐럴 부흥 운동이

만들어진 노래’ 이다. 캐럴의 의미를 되새기며 이번

일어나며 캐럴은 다시 울려 퍼질 수 있게 되었다.

크리스마스는 케빈이나 해리와 같은 친구와는 잠시 작별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즐거운 노래를 부르며 따

전쟁의 한복판에서 캐럴을 부르다

뜻한 시간 보내시길.

이렇게 우여곡절 속에서도 꿋꿋이 이어져 온 캐럴 의 선율은 전쟁 중에서도 끊어지지 않았다. 1914년,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그해 여름 유럽인

김영은 (이화여대 국문) silver894@nate.com

세계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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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발 묶인 진격의 중국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의 결과는 모호했고, 국제 여 론은 13억 인민을 이끄는 이 새내기 지도부가 과연 어떠한 방향을 택할지 궁금해하고 있다. 1978년 이래 점진적으로 개혁·개방을 추진해 온 전임자 들과 마찬가지로, 2013년 3월 국가주석직을 물려받은 시진핑 역시 중국이 당면한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을‘개혁’이란 키워드로 차분히 해결해나가 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중국의 정치·경제·사회가 내재한 모순 들은 매우 민감하고 폭발력이 커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 경제 성장을 거듭하 면서 중국 내부의 문제들은 메워지지 못한 채로 잔존해왔고, 다양한 형태로 사회의 표층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의 발전 가능성을 저해하는 문 제들을 짚어본다.

닥터 시진핑의 국유기업 수술 46 진격의 경제! 내과 진단 한 번? 50 위구르인들의‘성전’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 54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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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시진핑의 국유기업 수술 중국의 향후 정책 방향을 큰 틀에서 설정하는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가 11월 12일 막을 내렸다. 해외 언론들은 정치 경제 전반에 걸쳐 구체적이고 개혁적인 정책 변화 있을 것 으로 기대했지만, 막상 개혁안의 대부분은 경제 분야와 관련된 것이었으며 그마저도 모호하다는 평이 주 를 이뤘다. 그러나 정치 문제와 경제 문제가 복잡하고 긴밀히 엮여 있는 중국의 현실을 고려하여, 현 지도 부는 섣불리 정책안을 내놓기보다는 좀 더 은밀하고 섬세하게 개혁의 기틀을 다지는 방향을 택했다. 지도 부가 천명한 경제 개혁은 경제 분야 내·외부에서 중국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다양한 문제가 선결되어 야만 실현 가능하며, 그 파급 효과는 경제의 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다. 특히 현 경제 구조에서 막대한 이득을 챙기고 있는 이익집단들의 정치적 저항을 극복하는 것은 경제 개혁을 표면에 내 세운 시진핑 지도부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이다. ⓒgettyimages

천천히 변화한다

특히 경제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제는 90년대 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주창한 마오쩌둥과 개혁 개

래 10퍼센트 내외의 고성장률을 기록했으나, 2012년

방 노선을 확립한 덩샤오핑 모두를 부정할 수 없는

7.8퍼센트를 기록한 이래 소위‘7~8% 경제성장률

시진핑에게 급진적인 정치 개혁을 기대하긴 어렵다.

구간’ 에 진입했고, 이러한 국면의 전환은 기존 경제

그러나 동시에 중국의 현 지도자들은 중국 사회가 당

모델의 수정을 필요로 하고 있다. 당분간 경제 개혁

면한 모순과 문제들을 상당 부분 인식하고 있으며,

은 덩샤오핑 이래 유지되어 온 점진적인 개방과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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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역할 증대라는 큰 흐름에서 이탈하지는 않고‘만

적인 시장 형성에 도움이 되지도 않고 사회적 책임의

만디(慢慢地, 천천히)’ 하게 이루어질 것이다.‘간정

극대화라는 애초 취지에 부응하지도 못하는 거대한

방권(簡政放勸 정부 조직을 간소화하고 권한을 아래

이익집단으로 성장했다.

로 이양함)’ 으로 요약되는 중국 경제의 향후 행보에

석유방을 위시한 정치파벌들은 이 이익집단이 정

서 국유기업의 개혁은 가장 민감한 쟁점 중 하나다.

치계에 표면화된 현상일 뿐만 아니라 이익집단의 정 치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이기도 하

돈이 고이면 권력이 움튼다

다. 석유공업부, 석유기업, 석유대학 출신인들로 이 루어진 석유방은 국유기업에 뿌리를 둔 막강한 정

국유기업은 경영의 비효율성과 이로부터 비롯되

치파벌 중 하나다. 석유공업부 장관 출신 위추리가

는 낮은 생산성, 만성적인 적자로 개혁 개방 초기 단

1980년대 국가에너지위원회 주임을 맡으면서 자신의

계부터 개혁의 타깃이 되어왔다. 1970년대 후반에서

측근들을 요직에 앉혔고, 이‘테크노크라트(기술관

1980년대 초까지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국유기업의

료)’ 들이 에너지와 경제 분야에서 활약하면서 석유방

자율성을 보장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특히 수익의 일

의 줄기가 만들어졌다. 이후 석유방은 중국석유화공

부를 기업이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

그룹과 페트로차이나 등 시장을 독점한 석유 국유기

한 제도가 고안되었으나 성과는 미약했다. 이에 중국

업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이윤을 양분으로 성장해 점

정부는 1987년부터 기업의 소유권은 정부에 남겨두

차 당의 핵심 권력에 근접해갔다. 현재 석유방의‘최

고 경영권은 국유기업에 상당 부분 이전하는 개혁을

종 보스’ 는 한때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까지 지냈던 저

추진했으며, 1990년대에 들어서는‘현대기업제도’ 를

우융캉이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는 7~9인의 최

도입해 기업을 주식회사화하고 기업의 경영이 보다

고 권력자들로 구성된, 당내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장려했다. 그러나 중국 정

력을 행사하는 의결기구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부의 영향력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어서, 정부가

상무위원 겸 중앙법정위 서기를 지냈던 저우융캉은

대주주의 형태로 기업에 간섭하였고 보조금과 제도적

비록 상무위원 내 서열은 9위였지만 공안, 검찰, 법원

특혜도 정부와 기업의 관계를 긴밀하게 만들었다. 또

등을 장악하며 상당한 실권을 쥐고 있었다.

한 정경유착이 지속되면서 국유기업의 간부들이 정

가지를 쳐낸 후 뿌리를 뽑는다

계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곧 각 국유기업 출신자들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정치파벌이 형성되었다. 현재 중국 국유기업은 국내 총생산의 17퍼센트 이

저우융캉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로부터 독점 권한

2012년, 보시라이 사건이 터지면서였다. 보시라이

한 중국의 고성장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둬 세계 500대 기업 리스트에 89개 기업의 이름을 올렸다. 이

ⓒgettyimages

과 각종 특혜를 보장받고 있다. 국유기업을 중심으로

는 미국(132개)에 이은 세계 2위이다. 그러나 특성상 이윤의 많은 부분을 사회로 반환해야 하는 의무를 짐 에도 불구하고 2012년 전체 국유기업의 반환률은 총 이익의 약 46%에 그쳤다. 국유기업이 받는 각종 혜택 을 감안하면 실제 반환율은 훨씬 더 낮다. 또한 국유 기업의 고용비중은 전체 중국의 8%에 불과하지만 국 유기업의 급여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급여의 55% 에 달해 부의 재분배에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고 있 다. 정계의 비호 아래 국유기업들은 공정하고 효율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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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영국인 닐 헤이우드를 독살하고, 당시 사건을 담

ⓒreuters

전 충칭 당서기의 부인이 보 일가의 재정고문으로 있 당한 공안국장 왕리쥔이 신변의 위협을 느껴 미 대사 관으로 망명을 신청하면서 사건은 세간의 관심을 끌 었다. 이 사건으로 보시라이는 숙청되었다.《파이낸 셜 타임즈》는 저우융캉이 당시 보시라이의 편에서 “열정적인 로비” 를 폈던 것이 그가 권력에서 밀려나 게 된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보았다. 비록 보시라이 사건 이전에 그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직 책의 사임이 미리 결정되어있었고, 사건 이후에도 보 란 듯 지역 순방을 다니며 건재함을 과시했지만, 언 론들은 곧 중국 최고위층을 휩쓸 숙청의 바람을 조심

시작된 반부패의 파도를 기회 삼아 적극적으로 움직

스럽게 예측했다. 이듬해 3월 취임한 시진핑이‘반부

이고 있다.《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는 11월 5일

패 투쟁’ 을 선포한 것은 이러한 맥락 위에서였다.

기사에서 중국 지도부가 신화통신, 상업부, 광동 남

올해 8월 30일,《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는“중

부의 금융방, 국토자원부 등 정계와 국유기업, 정파

국 최고지도부가 저우융캉에 대한 부패 조사에 합

를 가리지 않고 부정부패 조사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

의했다” 고 보도했다. 같은 달 중국 사법당국은 부정

혔다. 최근에는 조사 목록에 국유해운회사인 중위안

부패 의혹으로 수사 중인 중국석유천연가스(China

그룹과 중국알루미늄공사와 같은 큼직한 국유기업이

National Petroleum Corporation, CNPC)의 전,

추가되었다. 중국 관영 언론인《인민일보》 는 11월 4

현직 간부 천여 명에게 출국 금지 명령을 내렸다.

일,“중국의 새 개혁은 기득권을 깨부숴야 한다” 는

CNPC는 과거 저우융캉이 부사장으로 있었던 석유

제목의 기고문을 실어 국유기업 개혁의 필요성을 주

관련 국유기업으로, 그의 일가가 부정한 방법으로 십

창했다. 기고문은“20년 전엔 모두 못살았지만, 지금

수 조 원 규모의 재산을 축적하는 데 이용되었다는

은 누가 잘살고 누가 못사는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의혹을 받고 있다. 부정부패를 조사 및 감찰하는 중

며 중국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지적했고, 이어“대부

앙기율검사위원회는 석유방 인물들인 귀융샹, 리화

분의 이익을 정부와 국유기업, 은행들이 가져가고 있

린, 왕융춘 등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으며, 석유방의

다” 고 덧붙였다. 사태의 추이를 볼 때 시진핑 지도부

유망주이자 저우융캉의 오른팔로 여겨지는 장제민은

가 추진 중인 일련의‘작업’ 은 단순히 저우융캉의 저

9월 3일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주임 자리를 박탈

격을 넘어 사회 조직 곳곳에 뿌리를 내린 부정부패의

당했다. 수사망이 점차 그를 조여온다는 언론의 주목

대대적인 조정 작업을 암시한다.

에 대해 저우융캉은 10월 1일 석유대학교 개교 60주

국유기업의 효율성과 건전성 제고는 필연적으로

년 기념식에 참석함으로써 건재를 과시하려 했다. 이

기득권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현 지도부

와중에 숙청의 첫 번째 도미노였던 보시라이는 무기

의 2인자인 리커창 총리는 11월 3일“(중국의) 개혁

징역이 구형되면서 그 정치적 생명력을 다하였다.

은 이미 심층 구간에 들어섰으며 필연적으로 기존 이 익구조를 건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 이라고 직접적으

개혁? 정적 제거? 난 둘다

로 국유기업의 개혁 문제를 거론했다. 국유기업 개 혁의 범위는 중앙 정부 차원에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내외의 우려와는 달리 시진핑 지도부가 천명한“호

보인다. 리커창 총리는 또한 11월 1일 열린‘지방정

랑이와 파리를 모두 잡는다” 는 반부패 슬로건이 단순

부 기능전환 및 기구개혁 회의’ 에서 지방정부가 기업

한 보여주기식 정치 캠페인이나 정적 제거에 머물 것

의 설립과 경영에 깊이 관여하는 관행을 끊어야 한다

같지는 않다. 오히려 현 지도부는 보시라이 사건으로

는 요지의 연설문을 발표했다. 그는 지방정부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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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국제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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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에서 직접 차를 모는 운전사가 되지 말고 교통경찰

야만 하는 중국 지도부의 깊은 고민이 담겨있다. 반

과 신호등 역할을 해야한다” 고 덧붙이며 시장의 역할

부패 투쟁에 대해 회의록은“부패 방지와 처벌을 위

과 정부의 공정한 감독을 강조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 과학적인 정책 설정, 완고한 이행, 강력한 감독을

반부패 캠페인은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면서, 동시

위한 시스템을 구축” 하여“권력이 햇볕 아래 작용하

에 기득권층의 이해관계와 정부의 비효율적 관행을

도록”하겠다는 지도부의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뒤흔들어 국유기업의 개혁을 이끌어내고 시장의 영향

구체적으로 반부패 척결 대상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

력을 확대하려는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정하겠다는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국유기업 개혁과 관련해서는 표현이 더욱 모호하다. 회의록은“사회주

최종 보스는 허무하게 쓰러지지 않는다

의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국유경제와 민간경제가 똑같 이 중요” 하며,“국유기업이 경제체제에서 갖는 주도

시진핑의 현 행보가 곧 국유기업의 대대적인 민영

적인 역할을 견지” 하고 동시에“민간 기업이 경제에

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유기업의 개혁은 근본

활력과 창의성을 불어넣도록 지원하고 이끌어야”한

적인 경제 구조를 바꾸지 않는 이상 피상적이고 단편

다고 지적함으로써 국유기업과 관련해 구체적인 방향

적인 정책 변화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

성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적 사유 재산 제도로의 급격한 이행은 이념의 문제와

국유기업 개혁안이 모호한 선에 그친 것은 국유기

함께 사회 구조와 정부 역할의 총체적 변화라는 실재

업을 둘러싼 기득권과의 물밑 싸움이 현재진행형이기

적 문제와 맞물려 막대한 파급효과를 단기간에 낳게

때문이다.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현 지도부

된다. 따라서 국유기업과 관련한 정책 개선은 완만하

에게는 강력한 리더십이라는 추상적인 수단뿐만 아니

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라 제도와 기관이라는 실질적인 수단 역시 필요하다.

기득권층의 강한 반발도 개혁에 제동을 거는 가장

3중전회에서 창설이 결정된 국가안전위원회의 주요

큰 요소 중 하나다. 정부의 반부패 정책은 부패의 잎

목적 중 하나가 시진핑의 내부 권력 장악이라는 지적

은 쉽게 자를 수 있어도 국유기업 기득권력의 뿌리를

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 시장 권한을 증대시키

뽑기에는 그 파괴력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

기 위해 정부 권력을 강화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

계 언론이 석유방의 수장이자 친국유기업 정치인의

될 만큼, 현재 중국이 당면한 문제는 매우 복잡하고

심볼인 저우융캉의 처벌 가능성에 조심스러운 의견을

민감하다. 그러나 중국 지도부가 경제 성장의 동력을

내놓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중국 역사에서 전직

시장의 점진적인 역할 증대에서 찾겠다고 천명한 이

혹은 현직을 막론하고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부정부

상, 국유기업과 국유기업 관련 정치인들을‘수술’ 하

패로 처벌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게다가 정법위 서기

는 일은 중국 정부가 당면한 시급하고도 어려운 문제

를 지내며 5년 동안 검찰과 국가안전부를 손 아래 두

다. 시진핑 체제가 여기에서 어떠한 성과를 거두느냐

었던 저우융캉을 지나치게 몰아세울 경우 자칫 과도

에 따라 향후 중국의 개혁 방향은 크게 달라질 것이

한 부패 폭로전이 벌어져 중국 정부가 통제할 수 없

다.

는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의 한 익명 관계자는《파이낸셜타임즈》 를 통해“중국 내부에 널 리 퍼져있는 스파이 네트워크를 통해 모은 소위‘어

김만희(고려대 국문) manhee87011@naver.com

두운 비밀’ 들을 알고 있는 저우융캉을 공개적으로 공 격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고 주장했다.

이 수술은 내가 집도하겠어요 이번 18기 3중전회 회의록에는 기득권층을 들쑤셔

특집

49


진격의 경제! 내과 진단 한 번? ⓒYaohua2k7(Flickr)

몸집이 엄청 커졌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지표상으로 중국이 미국과 어깨 를 나란히 한 것이다.

중국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내고 있다. IMF

중국이라는 거인의 외형은 장대하다. 하지만 문제

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명목 GDP 7조 9,917억 달

는 그 내부다. 단순히 몸집이 큰 것과 건강한 것은 별

러, 구매력 평가 기준 GDP 12조 3,870억 달러를 기

개다. 겉모습은 육중한 데 몸집의 대부분이 지방이거

록하며 미국을 무서운 기세로 추격하고 있다. 더 중

나, 속병을 앓고 있는 경우라면 진정한 거인이라고

요한 것은 경제성장률이다. 중국은 70년대 말 개혁·

하기 어렵다. 현재 중국의 상황이다. 겉으로 드러나

개방 이후 30년 간 89년 천안문 사태 직후를 제외하

는 거시 지표만을 보고선 조만간 중국이 미국을 뛰어

고는 7%~10% 가량의 고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글

넘고 진정한 선진 강대국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단

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인 2008년 말과 2009년

언할 수 없다.

초에도 경제성장률은 6%대를 유지했다. IMF는 중국 의 구매력평가기준 GDP가 2016년의 미국을 추월할

몸짱인가 비만인가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욱이 미국 상무부 통계와 중국 상무부 통계를 비교하면, 중국의 2012년 무역 총액

그 이유 중 첫 번째는 중국의 GDP 성장의 성격 때

이 미국을 앞질렀다. 비록 두 통계의 산정 방식에서

문이다. GDP는 국내가계소비와 고정자산투자, 정부

50

대학생국제시사저널

Prism


지출 그리고 순수출로 이루어진다. CIA의《월드 팩트북》 에 따르면 중국 의 2012년 GDP에서 국내가계소비는 35.7%, 고정자산투자는 46.1%의 비 중을 차지했다. 미국의 경우 국내가 계소비가 GDP의 70.9%, 고정자산투 자가 12.8%를 차지하고, 한국의 경우 각각 53.5%, 26.7%를 차지한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중국 GDP의 상당 부분이 투자로 이루어져 있고, 국내 소비의 비중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 당히 낮은 것이다. 중국과 함께 브릭스(BRICs) 국가

도를 하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로 불리는 브라질, 인도, 러시아의 GDP 구성과 비교

일당 체제인 중국에서 공산당의 정당성은 높은 경제

해 봐도 중국의 GDP 구성은 기형적이다.

성장률에서 비롯된다. 현재의 성장모델을 과감히 포

이는 중국의 경제가 가계소비에는 지나치게 적게

기하고 소비 위주의 성장으로 급선회하면서, 경제성

의존하고, 고정자본투자를 통한 성장에 크게 의존함

장률이 서구 선진국들 수준으로 낮아진다면, 이것이

을 의미한다. 특히 중국은 아파트 등 도시 기반시설

자칫 현재 공산당의 정치기반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의 대량 건설을 통해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도 있다.

높은 경제 성장률 목표치를 맞추기 위해서 지방 정부

중국 경제의 상당 부분을 외국 기업이 차지하고 있

들은 건설기업으로 하여금 아파트를 짓게 하고 공사

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첨단 산업 부문에 있

대금을 지불한다. 이 공사대금들은 모두 GDP에 집계

어서는 외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

가 되지만 실질적으로 아파트에 입주하는 주민의 수

《파이낸셜타임스》 에 따르면 외국 기업이 생산하는 첨

는 신축 아파트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마찬가

단산업 생산물이 중국 전체 첨단산업 생산물의 66%

지로 도로, 쇼핑몰 등 사회간접자본이 지어지며 GDP

에 달한다. 진짜 중국의 생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중

성장에 한 몫 하지만, 이렇게 새로이 생긴 도시에 사

국 기업들의 생산물들은 대부분 여전히 저부가가치

는 시민은 거의 없다. 중국의 유령 도시가 발생하는

산업 생산물들인 것이다. 또 중국의 전체 수출액의

이유다. 즉, 정부가 높은 GDP 성장률 달성을 위해 필

절반 정도가 외국 기업에 의한 것이다.‘세계의 공

요 이상으로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이

장’ 이라는 명성을 지니고 있는 중국인 만큼 외국 기

런 방식의 성장은 언젠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

업이 세워 놓은 공장이 많고, 그 생산물들이 차지하

다. 사용할 사람도 없는 시설들을 마냥 짓기만 할 수

는 비중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

있을 정도로 중국 정부가 돈과 자원이 넘쳐나는 것이

다. 이처럼 중국의 GDP가 온전히 중국의 것이라고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지방정부 차원의 과

보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도한 투자로 인해 중국 지방정부들은 상당히 많은 양 의 부채를 떠안고 있다. 또 투자는 결국 미래를 바라

몸의 일부분만 살찌고 있진 않나

보고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경기 변동에 큰 영향을 받는다. 내부 혹은 외부에서 발생한 충격이 중국의

두 번째로 심각해지는 빈부격차를 들 수 있다. 심

경기침체를 불러온다면 현재의 GDP 성장 방식 자체

각한 수준의 빈부격차는 중국 경제에 불안요인일 뿐

가 전혀 작동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만 아니라 정치적 안정을 해칠 수 있는 문제다. 중국

중국 지도부가 투자 중심의 성장에서 탈피하고 국

은 사회주의 경제체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심각

내소비 중심의 성장으로 경제구조를 변화시키려는 시

한 빈부격차 문제를 안고 있다. 올해 초 중국은 2008

특집

51


년 0.491로 최고점을 기록했던 중국의 지니계수가

커우 제도)에 따라 농민과 도시민을 구분, 농민들이

계속해서 낮아져 2012년 0.474까지 낮아졌다고 발

도시로 이주하는 것을 불허해 왔다. 결국 농민들은

표했다. 일반적으로, 사회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도시로 이주해도 정식으로 도시민으로 인정받지 못

지니 계수가 0.4를 넘을 때 사회 동요가 발생한다고

하고 불법체류자 신세로 지내며 공장 등에서 일해 왔

한다. 이 같은 발표는 중국 정부가 정확한 통계 산정

다. 도시에 후커우(호적)가 없기에 상대적으로 차별

방식을 공개하지 않아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이들은 불법체류 외국인 노

지니 계수는 0.4를 훌쩍 넘었다. 실제로 중국의 불평

동자처럼 주로 일반 도시민들이 꺼려하는 3D 업종에

등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

서 저임금 노동자로 일해 왔다. 이들을 일컫는 말이

이다. 민간기관인 시나차이징 대학은 2010년 중국의

농민공이다.

지니 계수가 0.61이라고 2011년 발표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의하면 현재 중국에는 농민공

이런 통계적 빈부격차를 자세히 파헤쳐보면 사회

이 2억 6천만 명 가량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불안의 불씨가 더 심각하게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도

들은 도시민 임금의 3분의 1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농 격차와 농민공 문제 때문이다. 우선 도시민 1인당

일하고,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기도 한다. 또한 국가

평균소득과 농민 1인당 평균 소득을비교해 보면, 도

가 제공하는 도시에서의 각종 혜택으로부터 배제된

시민의 수입이 농민의 수입의 세 배가 넘는다. 중국

다. 여기에 농민공들에 대한 정신적인 멸시까지 더해

국가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2009년 도시민과 농민의

져 농민공들의 불만은 언제 터져나올지 모르는 용암

소득 격차가 3.33 대 1이었다. 2011년 3.12대 1 수

처럼 잠재되어 있다. 실제로 이러한 차별에 대항하는

준으로 감소하긴 했으나 여전히 격차가 크다. 게다가

농민공들의 시위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5월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은 농민공 문제다. 중국이 70

베이징 한 쇼핑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안후이성

년대 말부터 도시 공업 중심의 급속한 성장을 이룩했

출신 여성 농민공의 추락사를 공안이 단순 자살로 처

기에 그 과정에서 도농 격차가 발생했고, 도시민과

리한 데 대해 반발하는 수백 명의 농민공 시위가 있

농민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교육, 의료, 주택 등의 혜

었고, 7월에는 광둥성 마오밍 시에서 차별에 불만을

택에서도 많은 격차가 났다.

품은 허난성 출신 농민공 40여 명이 파출소를 습격하 는 일도 발생했다. 9월에는 광시구 구이린시의 한 농

농민공은 시한 폭탄인가

민공이 자신의 자녀가 후커우가 없다는 이유로 한 초 등학교에서 입학을 거부당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해

이 같은 상황 하에서 농민들은 대거 도시로 이주해 공업에 종사해왔다. 하지만 중국은 호구등기조례(후

당 학교 교문에 폭탄 테러를 하는 일도 있었다. 2억 6천만 명이 넘는 농민공들의 이 같은 불만들 이 일시에 터진다면, 그 불길은 중국 전체를 뒤흔들

ⓒLibcom

수도 있는 규모일 것이다. 그 숫자만으로도 충분히 현재의 지배체제를 흔들어놓을 수 있는 수준이다. 또 농민공들이 자신들의 권리 의식에 눈을 떠 더 이상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하려 하지 않고 임금을 도시민 수준으로 인상해 달라는 요구를 개진한다거나, 도시 생활 자체를 포기하고 다시 농촌으로 돌아간다면 그 것 자체로도 중국 경제에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다. 중국의 급속 성장은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높은 생산성에 상당 부분 힘입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혜택을 보는 대신 노동력을 헐값으로 제공한 것이 바 로 농민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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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sm


ⓒStarmass

언제까지 공장 노릇만 할 수는… 중국 경제의 불안 요인 세 번째는 바로 산업 구조와 노 동력의 불균형 문제이다. 이 는 앞서 기술한 농민공 문 제와 연결지었을 때 그 문제 점을 파악할 수 있다. 중국 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칭 에 걸맞게 해외 기업들의 생산공장들이 많아 2차 산

한 임금 인상 압력을 받을 것이고, 값싼 노동력을 바

업의 비중이 3차 산업의 비중보다 크다.《월드 팩트

탕으로 한 높은 생산성이라는 성장동력은 힘을 잃게

북》 에 따르면 중국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시민과 농민을 차별해 수많

은 45.3%로 서비스업의 비중인 44.6%를 상회한다.

은 농민공들이 불만을 품게 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

일반적인 선진국들의 GDP를 들여다보면 3차 산업의

는 폭탄 같은 위험요소를 안고 있을 수는 없다. 2억 6

비중이 2차 산업의 비중을 월등히 상회한다. 경제 발

천만이 넘는 농민공들의 불만은 현 정치체제를 뒤흔

전 시기에서는 제조업 중심의 발전이 이루어지지만

들 격변의 불씨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일

그 이후에는 고부가가치 첨단 산업을 제외한, 미숙련

종의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이다. 후커우 제도의‘점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제조업들을 대부분 해외로 이

진적’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전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은 여전히 2차산업의 비중이 크다.

언제까지나 투자 중심의 성장, 저임금 노동력을 바 탕으로 한 성장에 얽매이고 있는다면 중국은 살만 찐

아직 저임금, 미숙련 노동력이 바탕이 되는 산업

거인이 될 것이다. 빈부·도농격차는 언젠가 중국을

이 많이 잔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 성장

뒤엎을 커다란 불안요인이기에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

과 고등교육의 확산에 힘입어 중국 청년들의 눈높이

다. 그리고 경제 발전에 따라 저부가가치 산업은 사

는 높아지고 있다. 결국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는 3차

라지게 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인 첨단 기술 산업이나

산업의 일자리는 부족한 반면 2차 산업에서는 오히려

서비스업 위주의 선진국형 경제구조를 구축해야 한

구인난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임금 노동력

다. 중국 지도부도 이 점을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변

수요를 충당해 주던 농민공마저 임금 인상 요구를 하

화를 당장에 꾀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공산당의

거나, 도시를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국가

정당성은 경제성장에서 나오고, 그 경제성장은 기존

통계국에 따르면 2012년 중국의 민간부문 노동자 임

의 성장방식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금이 전년도 대비 14% 상승했다. 이런 제조업 노동자 임금상승으로 인해 해외 기업들은 더 값싼 노동력이 있는 동남아시아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이근호 (연세대 정치외교) Newroot2@hanmail.net

중국은 최근 삼중전회를 통해 후커우 제도의 점진 적 개선의지를 밝혔다. 후커우 제도가 일시에 사라진 다면, 도농 격차로 인해 도시에 엄청난 인구가 몰려 들 것이다. 농민공과 도시민의 차별이 없어지고, 농 민공들은 더 이상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하려고 하지 도, 그래야만 하지도 않게 된다. 결국 공장들은 급격

특집

53


위구르인들의‘성전’ 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 10월 28일, 한 가족이 탄 SUV 차량이 천안문을 향해 내달렸다. 자금성으로 향하는 금수교를 채 건너지 못한 이들은, 준비해 두었던 휘발유 통에 불을 붙여 불길 속으로 사라지는 길을 택했다. 폭발음과 함께 터 져 나온 연기는 마오쩌둥 초상화와 천안문 광장뿐 아니라 사건의 본질까지 뒤덮어 버렸다. 이후 약 한 달 동안 중국 정부는 위구르인들, 미국 언론들을 상대로 지난한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사실 중국의 소수민족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조금 더 익숙한 티베트에서는 중국 정 부의‘폭압’ 에 대응하는 분신이 벌써 123번째 일어났다. 한편 거듭되는 소수민족의 분쟁과 분신 사건들 을‘인권’ 과‘폭압’ 이라는 단어 없이 무마해보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상황이다. ‘천안문 사태’ 로 재발된 위구르 인들과의 갈등 속에서도 중국 정부는 미국으로 대변되는 국제사회의 압 력에 순탄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무엇보다 미국과“신형 대국 관계” 를 맺으며 국 제질서를 재편해 나가려는 중국의 발목을 억세게 붙잡고 있다. ⓒWashington Post

신속한 뒤처리와 꺼림칙한 앞날

혀졌다. 푸정화 국무원 공안부 부부장의 지휘 하에 발빠른 수사로 이틀을 보낸 중국 정부는,‘신중한’

2명의 추가 사상자와 40여 명의 부상자를 낸 이 사

침묵을 깨고 30일, 이 사건을 약 4만 위안의 자금을

건의 용의자는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인 위구르 족으

모아“치밀하게 사전 계획한 테러 공격” 으로 규정한

로 우스만 아이산과 그의 부인, 그리고 모친으로 밝

다. 웨이보나 주요 언론들의 보도가 중국 당국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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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국제시사저널

Prism


해 재빨리 통제되는데도, 이 구절만큼은 메아리처럼

체인 테러리스트들의 목적은 중국을 분열시키려는 것

반복되며 울려 퍼진다.

이었다. 대변인은“사회 질서를 지키고 근본적인 인

중국 정부의‘선결론 후증명’절차는 매우 신속했

권을 보호하기 위해”그들을 엄격히 처벌해야 할 것

고 명쾌해 보였다. 천안문‘테러’사건을 공모한 것

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나아가“극소수 극단주의자들

으로 추정되는 5명의 용의자들은 10시간 만에 잡혔

의 테러 행위를 중국의 국가, 종교 정책과 연관시켜

다. 이들은 중국 정부에 무장투쟁을 선언한 바 있으

서 판단하려는 시도나 중국의 정책들을 공격하는 구

며 위구르 족 독립운동 테러조직으로 알려진“동투

실로 사용하려는 것은 심각하게 잘못된 것이며, 분

르키스탄 이슬람 운동”소속임을 인정했고, 사전 테

명 다른 저의가 있는 것” 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국 정

러 계획에 대해서도 시인했다고 알려졌다. 그러자

부의‘테러’규정은“법에 따른 싸움” 이라는 불투명

31일부터 사건의 규정에 핵심적인‘원인 파악’문제

하면서도 실질적인 추가 조치들을 함축하는 선언으

를 두고 중국 정부와 위구르 족 사회의 겨루기가 시

로 귀결되었다. 양위쥔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성명을

작된다.

통해 국제적인 적인 테러로부터 국가를 지키기 위해

위구르 족 사회에서는‘테러’ 보다도 중국 정부의 단호한 성명에 위기감을 느꼈다. 그리고 중국 당국의

“필요한 경우”중국군은 법에 따라“다양한 테러 행 위와 싸울 것” 임을 선언했다.

사후 조치에 곧바로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세계 위 구르회의 의장인 레비야 카디르는《로이터》 와의 인

때아닌 명명전(戰)의 발발

터뷰를 통해“독립된, 국제적인 기구에 의한 조사 없 이”중국 정부가 급히 마무리 지은 과격주의자들에

이후 중국 정부에 의한 반테러전이 암암리에 대

의한‘테러’시나리오를 강력하게 의심했다. 카디르

대적으로 진행되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우루무

는 이번 사건이 위구르인의 소행이라면, 테러가 아닌

치 지역에서는 경계 수준이 최고 등급으로 조정되었

“중국 정부의 통치 하에서 위구르들이 겪어야만 하는

고, 검문소가 수백 개로 대폭 증가하여 통행 차량 검

부당함을 시정할 만한 수단이 없는 절망에서 비롯된

사나 위구르 인들에 대한 신분 확인이 일상화되었다.

것(out of desperation)” 이라고 주장한다.

신장 자치구의 펑용 당 상무위원은 해임되었고, 류레

즉 카디르는‘테러’행위 자체에 대한 피상적 묘

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100여 명의 위구르 인이

사로 단순하게 요약된 중국 보도 내용들을 보다 심층

종교 서적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는 가운데 위

으로 끌어들이며, 곧바로“중국정부의 식민적 지배”

구르 인과 한족의 갈등으로 번질 듯했던 사태는 다소

문제로 연결시킨다.“위구르족의 언어, 가치, 정체

먼 상대를 만나면서 곧‘유명’ 해지기 시작했다.

성, 종교적 신념 등에 대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공

외부 학자들은 레비야 카디르의 인터뷰에서 많은

격(systematic attack)과 같은 문화적인 학살 정책

영감을 받은 듯했다. 중국 정부가 즉각적이고 공개적

의 시행” 이 천안문 광장에서의 사건을 야기시킨“근

으로 문제 삼은 CNN의 31일자 기사는, 카디르가 주

본적인”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사건이 또

장한 위구르 인의“절망” 에 관한 지적을 그대로 옮겨

다시 중국 정부의“엄격한 탄압”(heavy-handed

간 것처럼 보였다.“테러리즘인가 혹은 절망의 외침

repression)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될 것을 우려한

인가?” (Terrorism or cry of desperation?)라는 제

다. 카디르는 일반인 사상자라는 결과보다 그 원인

목의 글은 20년간 신장 위구르 자치구 문제를 연구해

을 논의의 중심으로 가져오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온 션 로버츠 조지 워싱턴대 교수의 문제제기로 시작

위구르 족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로 돌리는 데 성공한

된다. 그리고 치밀하게 계획된 테러로 사건을 규정하

다.

려는 중국정부의 입장을 반박하는 논거로“투명성 부

이러한‘예상된’화제 전환을 무마하기 위해, 중국

족” 과“증거 불충분” 을 강조한다. 휘발유, 칼, 쇠몽둥

정부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반테러전을 선언한다.

이 등과 같은 대강의 도구들을 살펴보면 도저히“고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에 의하면 과격한 무장단

도로 조직된 무장 과격 단체 혹은 테러 조직” 의 소행

특집

55


이라고 주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정교한”작업의

중국 정부는 이처럼 더 큰 상대를 마주하면서, 기존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의 입장을 보다‘정교하게’내놓기 시작한다.

그가 진정 하고 싶었던 말은 중국 정부가 잔인한 테러로 명명한 사건의 실체가“중국 정부의‘거대

테러라는‘명예로운’이름표

한 개발 기구’ (monstrous development machine) 의 주변부에 위치한 사람들에 의해 성급히 결집된 절

중국의 변론은 자못 흥미롭다. 11월 4일, 7일자 《글

망의 외침” 이라는 것이다. 로버츠 교수의 연구에 의

로벌 타임즈》 를 통해 드러난 중국정부의 첫 번째 전

하면, 신장 지역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관

략은 상대방의 약점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서로 다른

문이다. 중국 상품들을 교환하기 위해 서구 시장으로

문명과 민족 간의 불화는 오늘날의 중국에서만 일어

진입하는데 있어서 유용하고, 더불어 중앙 아시아로

나는 일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었던

부터 석유, 가스, 우라늄과 같은 천연 자원을 확보할

이 문제에 미국도 해결사로 자처할 수 없는 입장이라

수 있다. 그렇기에 중국은 보다 큰 국가적 계획 아래

는 것이다. 중국은 인종 분쟁 문제를 그 예로 들고 있

에서 신장 내에“사실상의 경찰 국가” 를 세우고 정치

다. 사실 로버츠 교수도《워싱턴포스트》 와의 인터뷰

적, 종교적, 문화적 억압을 나날이 확장시켜가며 이

에서 유사한 문제를 지적한다. 19세기 아메리카 대륙

모든 사업들을“반테러전” 이라는 이름 하에 정당화시

에서 원주민들의 터전을 대상으로 자행된‘개척’사

키고 있다는 것이다.

업들을 본다면 미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으로 신장지역의 경계를 넘어 베이징까지‘절

그러나 로버츠 교수는 그러한 일들이 과거에 미국에

망의 행위’ 가 넘어와 사태가 급격히 악화되는 가운

의해 행해졌다는 사실이 오늘날 일어나는 유사한‘탄

데, 로버츠 교수는 중국 정부가 근거 없이 지속적으

압’ 에 대한 변명으로 이용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

로 주장하고 있는“테러리스트의 위협” 에 관한 주장

한다.

이 아마도“자기 충족적 예언” 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중국은 다소 전형적인 방식으로 역공에

역설한다. 이처럼“선을 넘는”CNN의 보도는 중국

나설 수 있다. 왜 미국은 중국에 이중 잣대를 적용하

정부의 거센 비난을 샀고, 1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는가? 중국 정부는 천안문 광장 사건을“보스턴 마라

“CNN 반대 서명 캠페인” 에 동참했다고 선전되었다.

톤 테러” 나“9.11 테러” 와 비교한다. 그러면서“누구 라도 자살 테러 공격에 연루된 ⓒAP Ng Han Guan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절망과 적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고 강조한다. 종교적 극단주의 세 력에 의해 세뇌된 일종의‘명 분’과 같은 것이 없다면, 어 떻게 알 카에다의 조직원들이 “대의, 성전” 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시민들에 대해 대량 학 살을 벌일 수 있었을 것인가? 따라서 그 어떤 근거도 테러를 정당화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 다. 중국 정부가 9.11직후 알 카

2009년 7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우루무치 시에서 일어난 위구르족의 시위를 강제 진압하고 있는 무장경찰. 중국군의 유혈 진압과 한족과의 충돌 과정에서 197명이 사망하고 1천7백 명이 다친 것으 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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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국제시사저널

에다의“악행” 을 곧바로 강력하 게 비난했던 반면, 미국 국무부

Prism


대변인은 이번 사건에 대해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진

것” 이라는 예측이다.

것인지 면밀하게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성명만을 내놓 고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 지도부가 즉각적인 조의

중국의 평화롭지 못한 부상

를 표하지 않고 이번 사태를 중국의 정책에 연관시켜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은“초강대국” 의 지위에 맞

중국 정부는 몇몇 청년들이 들고 있는 깃발을 통해

지 않게 중국에 대한“어두운 속내” 를 스스로 드러내

서나 그 존재를 가늠해볼 수 있는“동투르키스탄 이

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신장에서 진행되는 중국의 국

슬람 운동” 세력의‘극단적인 성전’ 에 대비하기 위해

가적인 개발 사업에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겠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최근 중국 공산당의 18

만, 천안문 사건을 테러로 인식하지 않는 것은“전적

기 3중전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대내외

으로 다른 문제” 라는 것이다.

적 안보 위협에 대처할“국가안전위원회” 의 설치가 결정되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최근에 벌어지고 있

공허한 공회전

는 일련의‘공격들’ 이 국가안전위원회의 설립의“필 요성” 을 증명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천안문 사태 배

그런데 천안문 사건을 미중 공동의‘합의’ 하에‘테

후의‘테러 조직의 일원’ 에 대한 전투를 진두지휘한

러’ 로 규정하기에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문제가 가

푸정화가 소내각 차원으로 운영될 이 기구의 비서장

로막고 있다. 사실 중국과 미국의 입장 차이는 테러

에 임명될 예정이라고 알려졌다.

라는 단어를 정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리웨이

그러나 중국 정부는“대테러전” 을 소수민족 문제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대테러연구센터 주임은 중

와 연관시켜 끊임없이 중국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려

국과 미국의‘테러’개념이 서로 다른 측면을 기준으

는 미국의‘공격’ 에 대해서만큼은 만전의 대책을 세

로 삼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어로 테러리즘 〔공포주

우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테러” 라는 국제적인 표준

의(恐怖主義)〕은“이념적 동기를 강하게 함축”하는

의 이중적인 활용과 상대방 약점잡기라는 방어적 전

반면, 영어에서는“정부와 주민을 위협하는 시민에

략만으로는 국제 사회의 공인을 받기에 무리가 있는

대한 폭력과 같은 행위의 측면에서 주로 정의된다.”

것이다.“통합” 과“다양성” 이라는 두 모순적인 개념

그렇기에 미국은“정교한 폭발물” 과 같은 증거를 투

을 이념적으로 적당히 배합해낸“중화민족” 이라는 가

명한 방식으로 제시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공적 개념 또한 수많은 외교 상대들을 설득시키지 못

반면, 중국 정부는“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 세력”

하고 있다. 미국의‘공격’ 적인“스마트 파워” 에 버

의 상징인 성전 깃발만으로도 그들의 이념적 동기가

금갈 만한 중국만의“소프트 파워”없이, 중국 정부

충분히 설명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 중국 정부에

가 국력 강화에 수반되는 국제적인 지위를‘평화적이

의하면 사건에 대한“자세한 공개” 는 충분히 이루어

고 긍정적으로’얻는 일이란 천안문 광장에서 벌어지

졌다.

는‘절망적인 사건’ 들만큼이나 불투명할 것으로 보인

로버트 달리 우드로윌슨센터 연구원은‘천안문 사

다.

건’ 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두 나라의 대립에서 미중 관계의 진전을 위협하는 근본 문제를 읽을 수 있다 고 본다. 중국과 미국이 이처럼 같은 사태에 서로 다

손현선 (이화여대 사학) iamthemis@hanmail.net

른 기준을 내놓으며 입장 차이를 반복하는 이상,“미 국에서는 (이 사태가) 천안문 광장에서 희생된 사람 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중국 정부의 또다른“어리석 음(goonishness)에 관한 이야기가 되어버릴 것”이 며 이러한 미국의 태도가 또다시“중국에서는 미국의 자만과 위선에 대한 기존의 주장들을 충족시키게 될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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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天災)에 이은 인재(人災), 누구의 책임인가? 아이티의 콜레라 확산과 팔짱만 끼고 있는 UN 2010년 1월 13일. 지구 반대편 카리브해 연안 국가 아이티에서 진도 7.0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은 20만 명의 사상자와 200만 명의 이재민을 낳았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궁과 국회 의사당 등 주요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있는 교도소 역시 붕괴되어 재소자 4000 여 명이 탈출하기도 했다. 행정, 치안 등에 심각한 공백이 생긴 것이다. 일례로 평화 재단(Fund for Peace)에서 정치, 경제, 사회 지 수를 종합해 발표하는 실패 국가 지수(Failed State Index)는 아이티의 위기를 보여준다. 지진이 발생하기 전(2009년) 아이티는 12위였으나 2011년 5위를 차지했다. 공공 서비스와 난민 (Refugee and internally displaced persons) 발생 항목에서 점수가 대폭으로 상승한 것으로 미루어 국가 전반에 퍼진 위기를 짐 작할 수 있다. 올해 역시 아이티는 같은 지수에서 8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역사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한 군부의 쿠데타에 지진이라는 자연 재해까지 덮치면서 아이티는 정치적인 위기까지 맞게 되었다. 때문에 전 세계에서 아이티를 돕는 손길이 이어졌고, UN에서도 2010년 10월 평화유지군(Peace Keeping Force, PKO)을 파견하여 엉망이 된 아이티 치안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Eduardo Munoz2 콜레라는 전염이 빠른 병으로 콜레라 의심 환자를 격리하지 않으면 그 확산 속도가 커진다. 설사와 탈수 증세가 주요 증상이다. 사진은 탈수 증세 를 보여 국경없는 의사회의 치료를 받고 있는 소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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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국제시사저널

Prism


ⓒAFP/GETTY IMAGES

는 콜레라균과“매우 비슷 하다(very similar)” . 따라 서 콜레라가 일상적인 풍 토병인 나라 네팔에서 온 평화유지군이 이번 전염병 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또 보고서는 평화 유지군 주둔 기지의 정화 아르티보니트강은 마치 우리의 한강처럼 아이티인들에겐 젖줄이다. 아이티인들은 이 강물을 식수로 사용하 는 것은 물론 목욕, 세탁 등 다양한 용도로 쓴다.

시설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 았다고도 주장했다. 이곳

지진에 이어 콜레라까지

에서 유출된 하수가 주요 식수원이자 지류인 멜레 마 을 근처 아르티보니트 강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아이티

2010년 10월 말, 아이티 전역에 갑작스럽게 콜레

전체로 퍼져 나갔다는 것이다. 지진으로 인해 위생

라가 퍼졌다. 2013년 10월 17일 통계를 기준으로 현

과 보건 시스템이 붕괴된 아이티에서 콜레라가 급속

재까지 최소 68만여 명이 감염되고, 8300여 명이 사

하게 확산되었다. 때문에 보고서는 연구 결과를 근거

망하면서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 수치는 인

로“UN은 아이티 콜레라 창궐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

구가 천 만이 채 되지 않는 아이티에 또다른 대혼란

과하고, 상임위원회를 구성해 아이티 전역에 있는 피

이 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950만 국민의 약 8%가 콜

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예방에 대한 책임을 질 의무가

레라에 감염된 것이다. 또한 인근의 도미니카 공화국

있다” 고 결론을 맺었다.

까지 콜레라가 퍼져 카리브해 연안 전체로 확산되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UN

있다. 지진이 일어난 직후인 2010년 3월까지만 해도 미국 연방정부 산하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는 아이티에서 콜

한편 UN은 이 사태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레라의 발병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있다. 콜레라의 발발 원인을 최초로 조사한 전직《AP

이 혼란의 원인은 어디에서 왔을까? 놀랍게도 아

통신》 기자 조너선 카츠(Jonathan Katz)는 CNN과의

이티 사람들이 반겼던 평화유지군이 빌미를 제공했

인터뷰에서“UN은 이 사태를 전혀 언급하고 싶어하

을 가능성이 높다.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아이티 땅

지 않았고, 이 주제를 논하는 사람을 비판했다” 라고

ⓒunilang

이 되고 말았다. 콜레라의 원인으로 평화유지군이 지 목된 이유는 간단하다. 콜레라는 아이티의 풍토병도

ⓒ AP 통신

에 도착한 네팔 평화유지군은 죽음을 불러오는 망령

아니고, 콜레라 박테리아는 아이티 환경에서 자생적 으로 발생할 수 없는 병원균이기 때문이다. 이번 콜 레라 발병은 아이티에서 백여 년 만에 보고되었다. 이런 까닭으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아이티 콜레 라 확산을‘금세기 최악의 콜레라 사태’ 라고 규정했 다. 미국 예일대 로스쿨과 보건대는 네팔에서 파견된 평화유지군이 아이티 콜레라의 주범이라는 골자의 보 고서를 2013년에 발표했다. 콜레라는 대부분 적도지 방 근처에서 발병하는 병으로, 콜레라균은 전염성이 높다. 또한 아이티 콜레라균이 남아시아에서 발견되

콜레라를 막기 위해서는 깨끗한 식수가 꼭 필요하지만, 대부분 식수 가 오염되어 있는 상태이다. 때문에 한정된 식수를 얻기 위해서 언쟁 을 벌이는 아이티인들의 모습이다

국제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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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GETTY IMAGES

말했다. 일부 UN 관계자들은 외교 관 면책특권에 의해 평화유지군 및 UN은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국제 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외교관 면책 특권은 1961년 비엔나조약에 의해 보장된 것으로 주재국의 간섭 없이 공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명시한 권 리이다. 또 UN은 2004년 아이티 재 건을 기치로 모인 군인들에 대한 면 책특권을 규정한 군 지위에 관한 협

ⓒ AP 통신

정(Status of Forces Agreement) 을 아이티 정부와 체결했기에 아 무 문제가 없다며 UN에게 쏟아지 는 비난의 화살에 대응하고 있다. 2010년 프랑스 전염병 학자인 르 노 피아로(Renaud Piarroux)가 네 팔 평화유지군이 원인이라 주장하 자, 아이티의 UN 안정화 임무(UN Stabilization Mission in Haiti) 대 변인은 르노의 주장이 결정적인 증 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회의적이라 는 논평을 하였다. 또한 2013년 2월 “아이티 콜레라에 대해 UN이 지닐

콜레라 창궐을 두고 UN의 책임을 묻는 아이티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아이티의 정 의와 민주주의 협회가 결국 UN을 제소하는 상황으로 드러났다. 아이티인들은 대개 UN의 콜레 라는 인류에 대한 범죄(Cholera of UN is a crime against humanity)라는 메시지를 통해 UN의 책임을 부각한다.

법적 책임은 없다” 고 말한 이래 현 재까지 보상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이다. 국제적인 반

불구하고 역시 보상하거나 책임을 지기보다는 구호가

발과 비난이 계속되자 2012년 12월 반기문 UN 사무

필요한 지역에 지원의 형태로 도움을 주겠다는 평소

총장은 향후 10년간 22억 7000만 달러의 UN 예산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또한《뉴욕타임즈》 의 분석에

을 투입해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의 콜레라 확산을

따르면 UN이 지원하기로 한 금액은 아이티에서 확산

막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주민들이 식수원을 통해

중인 콜레라를 떨쳐버리기 위해 사용되어야 할 전체

감염되었기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정화시설을 교

금액의 1% 수준이다. 게다가 이 계획은 아이티 현지

체하며, 부족한 치료시설을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또

에서 실질적으로 거의 실행된 바가 없다. 안전한 방

UN은 전문가 4명을 2011년에 아이티에서 확산 중인

식을 통한 오수의 폐기, 콜레라균에 오염된 강과 빗

콜레라를 규명하기 위한 건강전문가로 임명하였다.

물이 길거리나 사람들의 거주지에 영향을 주지 않게

그리고 그들은“자연에 의한 발병이라기보다는 인간

끔 예방하는 것, 적절한 의료 지원과 같은 거창한 처

활동의 결과로 현재 서아시아 형의 콜레라 병원균이

방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꼭 이런 해결책을 통해 콜

아르티보니트강으로 흘러들어가 강을 오염시겼다” 며

레라를 근절하자는 것이 아니다. 먹고 씻는 물이 깨

“세계 각 지역에 오염물질이 유입되지 않도록 전세계

끗하게만 유지되기만 해도 콜레라 확산 및 예방을 막

주둔 중인 UN군 시설에 배설물을 처리하는 체계를

을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UN이 취하고 있는 태

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제안했다.

도는 아쉽다.

UN 자체 내에서 이런 보고서가 작성되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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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국제시사저널

Prism


서 진전된 행보를 보였다. UN 안전보장이사회는 10

결국 피고가 된 UN

월 11일 아이티에 주둔 중인 평화유지군 규모를 줄이 기로 했다. 이사회는 2004년에 설치된 UN 아이티 안

그러자 아이티 피해자들도 적극적으로 UN의 책임

정화지원단의 평화유지군을 감축하는 내용이 포함된

과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피해자들은 2012년 BBC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 결의안으로 아이

와의 인터뷰에서“UN이 보상 협상에 나서지 않으

티 평화유지군의 규모는 6270명에서 5021명으로 줄

면 UN 본부가 위치한 뉴욕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하

어든다. 결의안에서 눈여겨볼 점은 아이티 평화유지

겠다” 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아이티 희생자들은 UN

군의 임무에‘콜레라 통제 및 제거’ 를 더했다는 것이

이 보상 협상을 마무리 지을지 아니면 고소를 당할지

다. 상징적인 조항일 수도 있으나, 식수와 씻을 물 확

를 선택하라며 60일 이후를 최종 협상 시한으로 제시

보를 포함해 아이티의 위생을 제고하는 지원이나 아

하였다. 그리고 UN이 어떠한 태도 변화도 보이지 않

이티 정부의 활동에 대한 적극적 협력을 규정하고 있

자, 결국 2013년 10월 9일 UN 을 상대로 22억 달러

다. 또한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제시했던 22억 달러

의 거액 손해배상 집단소송을 청구하였다. 아이티 콜

예산을 통해 아이티 콜레라를 없앤다는 안도 포함되

레라 희생자들을 대표하는‘아이티의 정의와 민주주

어 있다.

의 협회’ (Institute for Justice and Democracy in

소송을 두고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가장

Haiti)는 UN이 책임을 회피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

이목이 쏠리는 것은 소송의 승패이다. 세계 전역에서

지 않은 것이 콜레라 창궐 및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

그간 수집된 증거 자료를 본다면‘아이티의 정의와

을 했다는 취지의 소장을 뉴욕 맨해튼 연방지방법원

민주주의’ 가 승소해야 하지만, 아이티 정부와 UN이

에 제출하였다. 이들은 아이티 콜레라 사망자를 구제

맺은 협약과 외교관의 면책 특권을 고려한다면 소송

하는 것은 물론 아이티계 미국인 콜레라 피해자와 콜

이 기각될 수도 있다. 이 소송을 두고 아이티의 처지

레라 감염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도 요구하고 있다.

에 동정을 보내는 사람도 있지만, UN이 주어야 할 보

이 소송에 대해 파르한 하크 UN 대변인은“UN을 피

상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질병의 원인을 제공

고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 면서

한 네팔과 UN 예산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미

UN은 충실히 아이티 현지에서 콜레라 감염자 치료

국, 그리고 다른 UN 회원국에 상당한 금전적인 부담

및 콜레라 사망자에 대한 사후 지원 등에 힘쓰고 있

이 생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울러 보상이 이

다고 말했다.

뤄지면 그간 UN이 해왔던 활동으로 피해를 보았다고

UN을 상대로 한 소송이 제기되면서 많은 관심이

주장하는 국가나 단체들이 유사한 소송을 낼 수 있는

촉발되자 결국 UN은 책임이 없다며 방관하던 자세에

‘선례’ 를 제공한다는 현실적인 시선도 있다. 하지만

ⓒMecropress

단순히 금전적 문제를 떠나서 콜레라 발병 원인이 비 교적 분명하게 드러난 상황에서 UN이 책임을 회피하 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문제가 된다. UN의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현재 주둔 중인 평화유지군 시설의 정화 및 개선은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 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박새미 (이화여대 정치외교) saemi1116@daum.net

국제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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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제정치학과 지역학 도종윤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2010년 1월 13일. 지구 반대편 카리브해 연안 국가 아이

사실 한국적 국제정치학에 대한 갈망은 급작스럽게 나온

티에서 진도 7.0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은 20만 명의 사

것은 아니다. 탈냉전 이후 전통적 국제정치이론이 가진 한

상자와 200만 명의 이재민을 낳았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궁

계점에 대한 의문과 그에 대한 비판은 이미 90년대부터 조

과 국회 의사당 등 주요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수도 포르토

심스럽기는 했지만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이

프랭스에 있는 교도소 역시 붕괴되어 재소자 4000 여 명이

것이 본격화된 것은‘한국국제정치학회’가 2007년《국제

탈출하기도 했다. 행정, 치안 등에 심각한 공백이 생긴 것이

정치논총》특집호에서 한국적 국제정치학의 가능성을 타진

다. 일례로 평화 재단(Fund for Peace)에서 정치, 경제, 사회

하면서부터였다. 이때의 문제의식은 우리의 국제정치학이

지수를 종합해 발표하는 실패 국가 지수(Failed State Index)

단지 외래 학문의 수용에 머무르며 한반도가 처한 현실을

는 아이티의 위기를 보여준다. 지진이 발생하기 전(2009년)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제대로 설명해 내지 못하고 있다

아이티는 12위였으나 2011년 5위를 차지했다. 공공 서비스

는 한계와 이로 인해 야기된 실제 정책 수립과 학문간 괴리

와 난민 (Refugee and internally displaced persons) 발생 항

에 대한 반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목에서 점수가 대폭으로 상승한 것으로 미루어 국가 전반에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국제정치학이 냉전 구도 속에서

퍼진 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올해 역시 아이티는 같은 지수

주로 미국 연구자들이 생산해낸 저작에 근거하고 있다고 볼

에서 8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역사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한

때, 빠르게 변화하는 전 지구적 현실―신기술의 발달 및 새

군부의 쿠데타에 지진이라는 자연 재해까지 덮치면서 아이

로운 이슈의 등장―은 물론이고, 냉전 시절의 양극 구도가

티는 정치적인 위기까지 맞게 되었다. 때문에 전 세계에서

지역주의화라는 다극적 구도로 바뀌고 있는 현실을 정확히

아이티를 돕는 손길이 이어졌고, UN에서도 2010년 10월

포착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과 소련의 대

평화유지군(Peace Keeping Force, PKO)을 파견하여 엉망이

립에 근거한‘(신)현실주의 이론’ 은 미국에서조차 지금 심

된 아이티 치안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도전은 크게 두 가지 차

최근 우리 나라 국제정치학계에서 자주 논의되는 것 중

원에서 다시 구분이 가능하다. 첫째, (신)현실주의 이론이 가

의 하나는‘한국적 국제정치학’ 의 등장 가능성이다. 즉, 영

정하고 있는 국제정치의 본질에 대한 도전이다. 무정부적

국의‘잉글리시 스쿨’ 이나 덴마크의‘코펜하겐 스쿨’ 을모

위계구조 속에 주권국가라는 단위는 그 속성상 스스로의 생

델로 한‘코리안 스쿨’ 이 가능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이다.

존을 위해 끊임없는 물질적 투쟁을 한다는 것이 그들의 세

다른 사회과학 분과와는 달리 국제정치학은 초강대국의 시

계관이다. 그러나 동북아시아가 1천 년 이상 지켜 왔던 예

각에서 세상을 조망하는 성격이 강하기에, 탈미국적인 접근

(禮)에 기반한‘사대질서’ 나‘칼리프’ 를 정점으로 한 이슬

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적지 않다.

람 문명을 되돌아 볼 때 무정부적 위계 구조는 지나친 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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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국제시사저널

Prism


중심적 발상이다. 국가 역시 단순히‘단위’차원으로 환원

는 이제 인권, 인도주의, 젠더, 민주주의, 국가의 실패 등으

할 수 없다는 것은 역사상 등장한 수많은 사례가 반증하고

로 세분화되었으며, 전통적 의미의 정치경제(IPE)는 환경, 에

있다. 즉, 국가는 고유의 능력과 변화를 잠재하고 있는 개

너지 등의 자원관련 주제나 IT, 통신 등의 기술관련 주제로

성 있는 존재이다. 최근의 예로는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국

보다 다양해지고 있다. 이렇게 조밀해진 연구 항목들은 다

가 체제가 급격히 변화된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단순한 경

시 지역학과 맞물려 관련 연구자들과 협업을 이루거나 학제

제 공동체에서 정치 공동체로 거듭나고 있는 유럽연합의 등

적 연계를 통한 연구 협력을 이루려는 노력으로 복합화되고

은 동일한 속성을 지닌‘단위’ 로 환원되기에는 어려운 독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노력은‘규범적 접근’ 이다. 국제

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이익’중심의‘물질

정치 현실이 더 이상 힘에 기반한 물질적 이익 추구나 충돌

적 투쟁’ 은 다자주의, 개발협력, 환경 등에서 전 지구적 차

에 있지 않다는 것은 구성주의자들이 이룬 큰 토대다. (신)

원으로 유대가 강화된 현실을 보았을 때 모순된 주장이라고

현실주의 이론에서 배제되었던 도덕 관념과 윤리는 이제 국

볼수 있다. 둘째는 (신)현실주의를 비롯한 미국 중심의 이론

제정치학 속으로 상당 부분 녹아들어, 규범에 대한 사상적

들이 요구하는 실증주의적 태도다. 문제제기-가설설정-검

접근은 물론이고 개발협력이라는 현실의 응용된 주제로 크

증-환류 또는 결론으로 이뤄지는 알고리즘은 과학적 접근

게 발전하고 있다. 규범 문제는 또한 인권이나 민주주의 등

을 표방한 실증주의자들이 취하는 대표적인 연구 방식이다.

안보 영역에서 파생된 분야의 이론적 근거로서 의미를 가지

특히 검증 과정에서 요구하는‘증명’ 은 대체로 통계를 통

기 때문에 다양한 주제와 접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니

해‘인과관계’ 의 상관성이나 일반화된 역사적 사례를 보여

고 있다. 더 나아가 규범은 지역 기반의 이질적인 문화가 공

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처럼 양적접근에 주로 의

존하는 길을 제시해주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

존하는 연구는 지난 수십 년간 국제정치 논증 형식의 주된

학이라는 분과 학문의 분업이 국제정치학이라는 보다 큰 영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국제정치학은 현

역으로 종합화 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규범

실세계에서 목격되는 변수들 간 인과관계의 증명을 유일한

에 대한 관심은 국제정치학이 관심을 갖고 있는 각 분과적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 아니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나 중국

주제와 공간적 의미에서 지역학의 상이한 문화가 접합될 수

의 정치학은 인과관계가 아닌 무엇이 훌륭한 정치인가를 토

있는 핵심이 될 수 있다.

론하는‘규범’ 의 학문이었다. 또한 양적 접근은 관계의 미

향후 국제정치학의 방향은 보편적 체계 안에서 이질적

묘한 흐름과 정치 주체의 내적 확신은 포착하지 못하는 한

요인들의 특수성을 예외적으로 제시하는 차원이 아니라 공

계마저 노정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우리식 국제정

간적으로 보았을 때 이질적 체계들의 특수성을 연구하는 분

치학이 고민하고 있는 학문적 주제임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업 형식의 지역학이 최종적으로는 규범의 틀 위에서 협업하

국제정치학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는 방식으로 종합화 될 가능성이 많다. 또한 연구 주제에 있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요즘 국제정치학 연구자들이

어서도, 세분화된 주제들이 각 지역을 관통(cross-cutting)하

보여주고자 하는 주된 현실은 보편적 이론에 대한 맹신보다

는 일련의 흐름으로 묶여 그 안에서 보편성을 추정해 보는

는 분과적 차원의 분업과 이를 조합하려는 협업의 가능성이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 유럽은 미국식 (신)현실주의 가정에 일찍이 의문을 제기

최근 우리가 한국적 국제정치학을 추구하는 것도 동아시

하면서 실증주의적 접근에 대한 비판과 인식론적 대안 탐

아라는 맥락에서 한국이 경험한 과거와 현재를 보편적 시각

구를 계속해왔다. 이는‘지역학’ 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

의 틀로 해명하는 것이 아닌 특수한 사례로 인정하고 이웃

게 인식되고 있다. 식민지 개척 논리라는 논란에도 불구하

한 타 지역에 관한 지역학들과 교류하면서 이를 종합화하여

고 지역학은 각 지역이 가진 특수성을 통해 일반화된 진리

세계정치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규명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

에 보다 가깝게 다가서 보자는 학문적 염원이 담겨있다. 즉,

것은 또한 보편적 진리를 일시에 구해보겠다는 이성의 허영

러시아, 중국,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등을 대상으로 한 분

을 비판하며 인간 본래의 겸허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이기

업적 연구가 정치학, 경제학, 인류학, 사학 등 학제적 협업으

도 하다.

로 이어져 결국에는 세계적 차원으로 하나의 그림을 그리려 는 시도가 지역학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거시적 차원 의 국제정치적 접근이 여전히 우세하지만, 중국학, 유럽학,

도종윤 박사의 관심 분야는 외교정책, 국제정치이론, 유

동남아시아학, 이슬람학 등 지역학을 매개로 국제정치학을

럽연합, 해석학 등이다. 도종윤 박사의 최근 저작으로는

조합하려는 노력도 점차 커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유럽연합의 개발협력전략”,“국제정치학에서 주체 물음”

요즘 우리 연구자들의‘동아시아 국제정치학’ ,‘한국적 국

(근간) 등이 있다.

제정치학’ 을 모색해보려는 노력이 보다 큰 의미를 갖는다. 주제의 세분화도 주목할 만하다. 전통적 의미의 국가안보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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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로 맛보는 역사

간절한 소망에서 주적이 되기까지, 쌀과 밀 결국 또 밥 한 숟가락을 먹고 말았다. 밤에 몰래 먹는 밥은 왜 밥만 씹어도 이렇게 맛있을까. 어제는 식빵이었다. 바쁜 아 침 간단히 먹기 위해 산 식빵은 한가로운 자정의 야식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 필자는 그 흔한 탄수화물 중독자다. 쌀과 밀. 요즘 다이어트하는 여자들의 주된 두 적인 밥과 빵의 원료인 이 곡물들은 옥수수와 더불어 인류 역사에서 제일 중요한 곡물들이다. 신석기 농업 혁명이 일어난 이래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지구의 땅에서는 쌀과 밀이 가장 많이 재배되 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쌀과 밀은 어떻 게 우리의 주식이 되었을까?

너지를 생산하는데 주 원료로 사용하는 탄수화물 함 량이 매우 높아서 증가하는 인구를 부양하는데 아주 적합했다. 보리 역시 농경 초기부터 재배되기 시작한 곡식이고 다양한 기후에 적응력이 높지만, 쌀과 밀에

농경은 지금의

비해 영양이 부족한 탓에‘주식’ 의 자리에는 오를 수

서아시아, 중동 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쌀과 밀은 유라시아 대륙의 주

역 부근에서 기원전

식이 되었고, 밥, 빵, 온갖 종류의 국수, 떡, 술 등 현

10,000~8,000년 전

재까지도 다양한 형태로 소비되고 있다.

후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밀은 보리 등과 함께 농경 초기에

빵은 길을 만들고 밥은 마을을 만든다

재배된 작물들 중 하나로, 아프가니스탄 등의 서아시 아 지역이 원산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쌀은 이보

“빵은 길을 만들고 밥은 마을을 만든다” 는 말이 있

다 약간 더 늦은 6,000~7,000년 전부터 인도 동북부

다. 역사 여행가인 고(故) 권삼윤씨가 2007년 쓴 책

와 이와 멀지 않은 중국 윈난 성 부근에서 처음 재배

의 제목이다. 책에서 작가는 쌀과 밀의 특성을 분석

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기후 조건에 따라

한다. 쌀은 단위면적당 수확량과 영양가가 높은 대신

동쪽에서는 주로 쌀을, 서쪽인 유럽, 지중해 지역에

저수지 등 관개시설이 필요하고 노동집약적이라 공동

서는 주로 밀을 소비하게 된다.

체 중심의 생활 문화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그렇다면 왜 쌀과 밀일까? 답은 간단하다. 효율적

다. 반면 밀을 주로 소비하는 지역에선 육류, 유제품

이었기 때문이다. 밀은 고온, 다습한 기후에 약하긴

등으로 영양소를 좀 더 보충해야 했기에 외부와의 교

하지만 그 외에는 어느 지역에서나 잘 자라는 편이

류가 많이 필요했다. 그래서 밀이 주식이었던 서양에

다. 쌀은 밀과 반대로 아시아처럼 고온 다습한 지역

서는‘길’ 이 더 중요했다는 것이다.

에서 잘 자라는데 기후만 잘 맞으면 단위면적당 생산

사실 이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세대

량이 밀보다 높았다. 게다가 두 곡식 모두 인체가 에

아날학파를 이끈 프랑스의 위대한 역사학자 페르낭 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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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국제시사저널

Prism


로델은 1967년 펴낸 책『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 일상

는 규제까지 실시했다. 학교에서 매일 혼분식을 하는

생활의 구조』 에서 이미 이와 같은 사실을 지적했다.

지 검사하여 성적에 반영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우리 부모님에게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유명한 이야기다.

밀을 재배하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섭취하는 영양분의

이는‘서구화’ 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과 맞물려 큰

50-70퍼센트를 밀이 공급하는 반면 쌀의 경우는 80-90

효과를 발휘했고 실제로 이때 밀가루, 빵, 과자, 라

퍼센트 이상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쌀이 더 지배적이다.

면 등의 소비가 크게 높아졌다. 1965년 연간 1인당

…… 그리고 쌀은 대개 현지에서 소비되므로 밀 무역에

13.8kg에 불과했던 밀가루 소비량이 1969년에는

비교할 만한 쌀 무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 (동양의 쌀

28.7kg으로 증가할 정도였다. 1977년에 이르러서야

생산은) 전체적으로 보면 엄청난 노동력과 인적 자원을 집 중시키고 주의 깊게 적응시킨 결과였다. 게다가 만일 이 거대한 관개 시스템 라인을 서로 긴밀하게 연결하고 위로

이러한 강압적인 정책의 시행은 중단되었는데, 이는 드디어 쌀 자급자족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부터 관리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잘 짜인 사회, 국가의 권위, 그리고 끊임 없이 많은 노동을 투하함을 의미한다. (주경철 옮김)

위와 같은 브로델의 지적은 어느 정도 일리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이후 세계 여기 저기를 정복하고 탐구하느라 바빴던 유럽의 역 사와, 같은 시기 나라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버텨온 중국이나 한국을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흰 쌀밥과 잡곡밥 사이 밀가루 먹고 선진국 되자 어려웠던 시절‘흰 쌀밥 한 그릇’ 은 가난한 이들 그렇다면 정말로 우리가 주저 앉아 밥을 먹는 동

의 소박한 소망이었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로‘희고

안 유럽인들은 빵을 들고 배를 탔기에 근대 이후 잘

부드러운 빵’ 은 가난한 동화 속 주인공이 꿈꾸는 음

나갈 수 있었던 걸까? 실제로 그렇게 단순히 설명할

식이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가난한 이들이나 먹던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인식의 차원에서

잡곡밥과 검고 거친 빵은‘건강의 상징’ 이 되었다.

1960-70년대 한국에서는‘밀가루 먹고 선진국 된

아니, 이제는 아예 쌀과 밀은 다이어트의 주적인 탄

다’ 는 믿음이 없지 않았다.

수화물 덩어리라며 기피되기까지 한다. 농경을 하면

당시 한국은 아직 자급자족을 할 수 있을 만큼 쌀

서 널리 보급된 쌀과 밀을 중심으로 한 식단은, 수렵

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었고, 대신 미국으로부터 밀가

채집을 하여 먹고 살던 구석기인들의 식단보다 영양

루 원조는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었다. 이 때문에‘식

학적으로 훨씬 떨어진다는 주장도 적지 않게 보인다.

생활 개선’ 이라는 이름 아래 쌀과 다른 곡물을 같이

그렇다면 여러분은 흰 쌀밥과 잡곡밥, 부드러운 식

먹는 혼·분식 장려 정책이 광범위하게 실시되었다.

빵과 호밀빵 사이에서 무엇을 택할 것인가. 어찌 되

정부는 대중매체와 관공서, 학교 등을 통해‘밀가루

었건, 우리는 이미 쌀과 밀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된

가 쌀보다 영양가가 높아, 빵을 먹으면 서양인들처럼

것만은 분명하다.

될 수 있다’ 는 믿음을 퍼뜨렸고, 밀가루를 활용한 요 리법을 소개하는 등의 공격적인 홍보가 이어졌다. 심 지어 1969년에는 일주일에 두 번 정해진 무미일(無味 日)에는 음식점에서 낮 시간에 밥을 팔아선 안 된다

이인재 (이화여대 국문) gilraen@naver.com

혀로 맛보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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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에서 꺼낸 근대인

‘집안일 하는 사람’ 에서 국민 영웅으로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뉴질랜드에는 그 자연만큼 아름다운 새들이 살고 있다. 키위 새를 사랑해서 스스로‘키위(Kiwi)’ 라고 부를 만큼 토종 새를 사랑하는 뉴질랜드 사람들답 게 화폐에서도 새들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뉴질랜드의 1달러와 2달러짜리 동전 그리고 모든 지폐에는 새가 한 마리씩 그려져 있다. 1달러에는 뉴질랜드의 국조인 키위가 그려져 있고, 5달러에서는 노란눈펭귄, 50달 러에서는 코카코, 100달러에서는 노란 머리를 가진 모후아를 만나볼 수 있다.

▲ 1달러에 새겨진 키위 새의 모습. 키위는 뉴질랜드에만 서식하는 새로서 날지 못한다. 수컷의 울음소리가‘키위’처럼 들려서 키위라고 불린다. 키위 주변에 그려진 잎은 뉴질랜드의 또 다른 상징인 나무 고사리 잎 퐁가다. ⓒPaul Peychers

ⓒTony Whitehead 청회색 몸통에 가슴은 밤색 빛을 띠는 푸른 오리. 주로 유속이 빠르고 수풀이 우거진 물가에 서식한다.

10달러에 등장하는 새는 뉴질랜드에만 서식하는

가의 어머니로만 존재했으며,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

푸른 오리이다. 주로 고지대의 물살이 빠른 강가에서

였다. 그런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질 리 만무했고

생활하는데 무리 지어 살지 않는다. 수풀이 우거진

왕족이 아닌 평범한 여성이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맑은 강가나 냇가에 산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뉴질랜드 화폐에 등장하는 새들은 대부분 멸종위 환경 보호를 위해 보호지역을 설정하고 관광객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뉴질랜드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주어진 자연을 소중하게

세계화폐박물관

기에 처해진 희귀종이다. 뉴질랜드 정부에서는 생태

여길 줄 아는 국민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여성의 참정권이 뉴질 랜드에서 출발한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세 기 말까지만 해도 여성은 그저 누군가의 아내와 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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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국제시사저널

케이트 셰퍼드가 새겨져 있는 10달러 지폐. 케이트 셰퍼드가 이끈 여 성참정운동이 성공하여 뉴질랜드는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국 가가 되었다.

Prism


ⓒAuckland City Libraries

ⓒArchives New Zealand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남편의 저녁을 차려주며 개숫물을 버 리는 일, 즉 자연이 그들에게 허락한 집안 일이나 하라.” 고 주장했다. 그러나 뭇 남성들 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893 년 9월 19일, 뉴질랜드는 법

1899년 12월 6일, 오클랜드의 한 투표소에 여성 참 여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1893년 10만 명이었던 뉴질랜드의 여성 투표자수는 1899년 16만 명을 넘어섰고 1905년에는 21만 명에 달할 정 도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러나

1893 여성 참정권 지지를 위한 탄원서 중 일 부. 약 3만 2천 명이 서명했으며, 이는 당시 뉴질랜드 백인 여성 인구의 1/4에 해당한다.

적으로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 했다. 여성의 참정에 반대하 는 사람들은“선거일에 여성 투표자들이 보이면 괴롭힘을

당할 것” 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지만 1893년 선

든 일에는 최초

거는 어느 때보다 차분하고 질서 있게 진행되었다고

가 있는 법, 19

기록되어 있다.

세기 말 뉴질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으나 그렇다고 해서 여

랜드에는 케이

성이 의회 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권리

트 셰퍼드(Kate

가 바로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여성의 피선거권은

Sheppard)라는

1919년이 되어서야 주어졌고, 1933년에 최초의 여

여성참정운동가

성 의원이 탄생했다.

가 등장해 역사에 새로운 한 획을 긋게 된다. 그녀의

케이트 셰퍼드는 뉴질랜드에서 여성참정권을 보

노력으로 인해 뉴질랜드는 최초로 여성의 참정권의

장받은 후에도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키기 위한 노력

인정한 나라가 되었으며 셰퍼드의 얼굴은 10달러에

을 계속했으며 뉴질랜드의 10달러 지폐와 우표에 새

새겨져 있다.

겨져 지금도 널리 기억되고 있다.

1847년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난 케이트 셰퍼드는

세계 유수의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뉴질랜드에는

20대 초반에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로 이주

케이트 셰퍼드처럼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인권의 신장

했다. 그녀는 서른여덟 살에 기독교연합의 금주운동

을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에 참여했다가 금주운동을 위해서만이 아닌 여성참정

했던가. 뉴질랜드 달러를 보면서 자연과 사람을 사랑

권 그 자체의 필요성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여성의 정

하는 뉴질랜드 인들의 넓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치 참여를 주장하게 된다. “우리는 질금질금 주어지는 영역에 머물러야 하는 것과 그 영역 밖의 모든 일은 여성답지 못하다는 말 을 듣는 것에 신물이 납니다.” 본격적으로 여성참정권 확보를 위한 운동에 뛰어 든 셰퍼드는 뉴질랜드 전역을 돌며 의원들에게 로비 활동을 하고, 여성들을 설득해 여성참정권을 의회에 상정하기 위한 서명을 받아냈다. 1891년에는 9천 명

TIP

뉴질랜드는 폴리머 노트(Polymer Note)라고 불 리는 플라스틱 은행권을 사용한다. 폴리머 노트는 잘 찢어지지 않고 재생이 가능한 지폐로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뉴질랜드는 1993년 처음 10달러를 폴리머 노트로 발행한 후 모든 지 폐를 폴리머 노트로 발행하고 있다.

에 불과했던 서명인 수가 1893년 3만 2천 명에 육박 할 정도로 여성들의 호응을 얻었다. 물론 반대의 목소리도 거셌다. 웰링턴 주민인 헨 리 라이트는“여자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

견세령 (한국외대 법학) milyee@naver.com

지갑에서 꺼낸 근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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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의 국제정치

가장 보통의 존재, 사람이 하는 사람 이야기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2011)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는 이란 영화다.〈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따금 그 점만으로도 영화의 모 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국적인 풍경과 히잡을 두른 여성들, 종교가 지배하는 세계를 제멋대로 상상하고, 포스 터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정작 제목에 나오는‘별거’ 의 뜻은 유추해낸다. 이런 근거 없는 유추는 아마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 은 제3세계 영화가 공통적으로 안고 가야 하는 숙명일 것이다. 물론 영화에는 성직자도 히잡도 있다. 그러나〈씨민과 나데 르의 별거〉 는 어느 나라를 공간으로 삼아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지극히 현실적인 영화다. 감독이 어떤 신을 믿고 어떤 기도를 올리는 누구건 간에, 이 영화는 본질적으로 사람이 하는 사람 이야기다.

ⓒ Sony Picture Classics 영화의 첫 장면에서 씨민(좌)은 나데르(우)에게 이혼소송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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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국제시사저널

Prism


ⓒ Sony Picture Classics

부부의 말다툼, 중간에 낀 딸 테르메(사르나 파르하 디 분), 노인의 치매와 라지에의 고된 일에 할애한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라는 제목에서 이란판‘비포 미드나잇’ 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눈앞에 있는 것은 ‘그냥 가족’ 이고,‘그냥 현실’ 이다. 화면이 의도적으 로 벽과 문을 사이에 놓고 찍히고, 법원의 회백색 벽 과 좁은 복도가 배경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 영화는 때로 숨막힐 정도로 답답하다. 스크린에서까지 마주 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못내 불편했던 탓일까. 한 국에서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관객 일부는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떴다고 한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벽과 문, 희뿌연 창을 공간으로 삼는다.

공간은 이란이다 스크린 속의 우리 그렇다고 해서〈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가 영화 속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라는 말처럼 스

배경인 이란의 현실과 전적으로 무관하지는 않다. 실

크린 속 인물들의 모습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은 그 정반대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란의 종교, 사

‘치매인 아버지를 모셔야 한다’ 는 이유로 이란을 떠

회, 경제적 배경이 구성하는 것은 이 작품의 뼈대가

나려 들지 않는 남편인 나데르(페이만 모아디 분)는

아닌 살이다. 지루한 현실이 반복될 것처럼 보이던

한국의 전통적 효자상과 기러기 아빠 모두를 닮아 있

찰나, 라지에가 노인의 외출을 막기 위해 침대에 묶

고,‘이런 곳에서 딸이 자라게 할 수는 없다’ 는 이유

어 놓고 집을 비우고, 이 사이 노인이 쓰러지자 격분

로 별거하려 드는 아내 씨민(레일라 하타미 분)은 극

한 나데르가 라지에를 문 밖으로 세게 밀친다. 영화

성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가정법원에서 서로의 말

의 상승부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부터 영화에

끝을 물고 늘어지기 바쁜 이 둘을 바라보는 것은 카

는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에 가까운‘이란다움’ 이등

메라 뒤에 자리잡아 목소리만 내는 판사이다. 구로사

장한다.

와 아키라의〈라쇼몽〉 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의 도입

이란은 시아 파가 8천만 인구의 90%를 상회하하

부부터 관객은 상반된 입장을 들으며‘그날 실제 무

는 엄격한 시아 이슬람국가다. 이란 이슬람공화국은

슨 일이 있었는지’ 를 판단하게 된다. 결국 관객은 판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34년이라는 역사 중 7명의

사와 관객의 두 시선으로 이들을 보게 되며, 결국 관

대통령이 수행한 11차례의 임기를 보았지만‘아야톨

객은 이 부부에게 가중된 피로를 느끼게 된다. 씨민

라’ 의 호칭을 받는 최고종교지도자는 두 명밖에 보지

이 떠난 후 아버지를 돌보게 할 목적으로 나데르에

못했다. 이러한 이란의 정체성은 영화 전반에 걸쳐

게 채용된 가정부인 라지에(사레 바얏 분)가 맡는 고

여러 차례 등장한다. 여성인 자신이 할아버지를 씻겨

된 일도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실직자

드리는 것은“옳지 않다” 며“종교 때문” 이라고 사과

인 남편에 아이도 딸린 그녀가 30만 리얄이라는 적은

하는 라지에의 모습라지에가 집을 비운 사이 돈이 없

월급에 대해 나데르에게 항의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어지자 그녀를 도둑으로 몰아붙이는 나데르 앞에서

환율을 따지면 마음은 더 불편해진다. 30만 리얄이면

“순교자들에게 맹세한다. 나는 독실한 사람이다” 고

한화로 약 3만 원 남짓한 돈이다. 적은 월급과 낮은

외치는 라지에의 모습이나, 영화 말미에서 라지에에

보너스, 빼먹기 일쑤인 시외수당에 대해 불평하는 우

게‘아이의 유산이 나 때문이라면 코란에 대고 맹세

리 모습이 스크린 속에 그대로 보인다.

하라’ 던 나데르의 모습, 신이 두려워서 맹세하지 못

영화는 두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의 3분의 1을 이

하는 라지에의 모습은 종교가 이들의 삶에 얼마나 깊

스크린의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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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하자“우리가 처자 ⓒ Sony Picture Classics

식 패는 짐승인 줄 아 냐, 같은 사람이다”고 외치는 라바사니의 모 습, 초라한 집구석에서 테르메를 노려보는 소마 예의 모습에서 이란 사 회에 만연한 계급갈등이 그대로 드러난다. 2012 년 포르셰 생산량의 절 반이 이란에서 소비되 었다는 루머가 돌 정도 노인을 방치한 라지에를 내보내려는 테르메와 나데르.“나는 도둑이 아니다”며 일당을 받아야 나가겠다는 라 지에의 외침은 비참하다.

로 이란은 중동 전체에 서 포르셰가 가장 잘 팔

숙히 개입한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리는 나라다. 영화가 개봉된 2011년은 마무드 아마

이란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위치 또한 수차례 등장

디네자드 재임 당시로, 그의 임기 동안 이란에는 새

한다. 나데르는 살인 혐의로 피소된 법정에서‘차도

로운 계층이 생겨났다. 테헤란에 살고 포르셰를 몰며

르 때문에 라지에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고증

이란의 강력한 공화국수비대나 정치인과의 연줄을 바

언한다. 아내가 남편을 대신해 일하는 것이‘수치스

탕으로 이란의 새로운 중산층으로 부상한 이‘올리가

러운 일’ 이라고 말하던 라지에의 남편 라바사니나 주

르히’ 들은 이란이 경제적 제재를 받으면서 더욱 부유

유소에서 돈을 지불한 후“다들 쳐다본다” 고 말하는

해졌다. 반면 빈곤층은 이란 전체 인구의 35%에 달한

테르메에게서도 이란 사회의 경직된 여성관이 드러난

다. 8년 전 22%였던 것에 비교하자면 엄청난 차이다.

다. 이란 내 계급격차 역시 나데르와 라지에의 맞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

소의 저변에 깔린 요소 중 하나다. 테르메가 공부하 는 내용이 하필이면 사산 왕조의 계급격차라는 것은

살의 거품이 가라앉았을 때 드러나는 것은 영화의

우연이 아니다. 씨민과 나데르는 포르셰를 몰고 명품

뼈대다.〈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에서 절대적으로 정

손목시계를 차며 텔레비전으로는 미국 프로그램을 보 는 중산층이다. 이들은 딸인 테르메에게 개인 가정교 죄로 나데르가 기소되자 씨민은 별거 상태인데도 보 석으로 법정에 4천만 리얄을 선뜻 낸다. 반면 라지에 와 라바사니의 가정은 어떨까. 이들에게는 차도 없 다. 부엌과 단칸방이 집의 전부다. 라바사니는 우울

ⓒ Sony Picture Classics

사를 붙일 수 있는 가정이다. 태아를 죽였다는 살인

증에 걸린 실직자이며 라지에는 고작 3만 원을 받고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가정부다. 어린 딸 소마예가 쓰레기를 옷에 묻히자 갈아입을 옷도 없다며 화내는 라지에의 모습에서 그녀가 어찌할 수 없는 가난을 읽 어내기란 어렵지 않다. 씨민의 어머니가 라지에의 유 산이 라바사니의 폭행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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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예의 집과 테르메의 집이 적나라하게 대비되는 가운데 소마예가 테르메를 노려본다.

Prism


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데르는 라지에가 임산부

지에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쓰러질 때까지 방치해

였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자기 자신조차 속인다. 그는

뒀다는 효심에서 나오며, 밀친 적 없다는 거짓말은

징역에 처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자 라지에를 밀

홀로 남겨질 테르메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어

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 문에서 계단까지의 각

머니인 씨민이 딸을 걱정하는 마음을 비난할 수는 없

도를 조사해 라지에가 도저히 떨어질 수 없었다며 우

으며 라바사니는 빚더미에 올라앉은 우울증 환자다.

기는 나데르의 모습은 추할 지경이다. 라지에는 사고

증언 후 돌아오는 차 안에서 흐느끼는 테르메의 모습

전날부터 뱃속 아이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숨

은 그래서 서글프다. 죄인 줄을 알고서도 죄를 저지

겼고 씨민이 원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테르메의 양

르기에 열한 살은 너무 어리기 때문이다. 모두가 나

육권뿐이다. 라바사니는 또 어떤가. 명예를 중시하는

름대로는 좋은 의도를 가졌으나 그 결과는 참혹하다.

남자라면서 라지에가 코란에 대고 맹세하기를 거부

누구도 바라지 않았던 결과라 더욱 그렇다.

하자“이미 빚쟁이들에게 다 말해 놓았다” 며 아내에

가장 보통의 존재

게 거짓말을 강요한다. 심지어는 아버지가 가정부의 임신 사실을 알았다는 것을 눈치챈 테르메,“사실대 로 말하면 되는데 무엇이 걱정” 이냐던 테르메조차 판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의 감독을 맡은 아스가르

사 앞에서는 아버지가 임신 사실을 몰랐다며 거짓말

파라하디는 이 영화를 통해,“선악의 대립이 아니라

한다. 이들 중 죄 없는 자는 아무도 없다. 자신이 깨

각자의 선이 가진 비전의 대립을 보여주고 싶었다” 고

끗하다고 믿는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당당하

말했다고 한다. 이 대립은 누구의 삶에서건 일어나며

게 화살을 남에게 돌리고 독설을 퍼붓고 돈으로 꾀려

앞으로도 되풀이될 비극이다. 영화 말미에서 테르메

한다. 그런 이들을 비난하고 돌을 던지려는 찰나 우

는 결국 이혼을 결심한 부모 중 한 사람을 택해야 한

리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스크린 안팎을 떠나

다. 씨민과 나데르, 테르메 모두에게 이는 비극이다.

죄 없는 이는 아무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당혹스러

테르메가 누구를 택하는지 영화는 끝내 보여주지 않

운 감정이다.

으며, 관객은 비극의 끝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점마

알 수 없다. 대신 카메라가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것

저 깨닫게 되며 당혹은 더욱 커진다. 물론 가장 깨끗

은 회백색 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가장 보통의

한 것은 신을 두려워해, 유산 원인이 불확실하다는

존재, 죄인인 아버지와 가정을 버린 어머니다. 테르

이유로 보상금 받기를 거부한 라지에다. 그러나 영화

메는 과연 누구를 선택했을까.

에서 가장 악역에 가까운 인물인 나데르의 분노는 라

ⓒ Sony Picture Classics

박정민 (연세대 정치외교) jay6901@naver.com

거짓 증언을 한 후 흐느끼는 테르메와 아무 말 없는 나데르의 모습은 이 영화의 백미다.

스크린의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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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ailynews

꿈인가 비전인가

이념으로서의 실용 시대? 500만 표의 차이로 당선된 이명박의 대통령 취임사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그는 임기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60년을 시작하는 첫해인 2008년을 대한민국 선진화의 원년으로 선포” 했다. 그는 60갑자가 돌 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뛰어넘어야 할 60년의 세월 중에서도 1년 뒤 죽음을 맞이할 두 대통령의 시대를 비교적 명확하게 겨냥했다.“지난 10년, 더러는 멈칫거리고 좌절하 기도 했지만 이제 성취의 기쁨은 물론 실패의 아픔까지도 자산으로 삼아 우리는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제는 새로운 법칙이 작동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우리는‘이념의 시대’ 를 넘어‘실용의 시대’ 로 나가야 합니다.”

지난 10년 간의 실용

구분시켜 주는 기준이 결여되어 있었다. 오히려 김대 중과 노무현의 시대에는‘실용’ 을 언급하지는 않으면

부분적으로는 타당한 지적이었다. 세상은 복잡해

서도 이념보다 우선하는 실용적인 것에 대한 인식이

져 가고 있었으므로, 좋은 의도만으로 좋은 정치를

있었다. 김대중이 한반도에서 남북 모두가 전례 없는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었다. 이것은 앞선

경제 위기를 겪는 동안 양측 모두를 국제사회 앞에

노무현 시대 5년이 보여준 교훈이었다. 그러나 대니

개방시키려는 모험적인 개혁을 시도했다면, 노무현은

얼 벨의 선언을 연상시키는 이 50여 년 뒤늦은 선언

이념과 폭력의 각축 속에서도 다같이 교역하고 돈 버

에는, 자신의‘실용적인 것’ 을 이념적인 것으로부터

는 일에만 몰두한다면 긴장은 헐거워질 수 있다고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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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sm


각했다. 민주화 운동가 출신의 두 개방주의자는 머릿

영 합참의장 내정자가 며칠 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속에 미국과 북한에 대해 전통적인 보수 세력과 분명

북의 대남 핵공격이 우려될 경우‘선제타격’ 을할수

구별되는 이미지를 넣어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있다고 대답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남북 관계 몸짓

10년 동안 일어난 많은 일들은, 진보 세력의 이념으

과 눈짓 사이” ,《프리즘》4호). 그러나 갈등의 진정한

로만 환원할 수 없는 나름의‘실용’ 적 사고의 산물이

원인은 실용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이념으로 인식

었다.

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이명박은“남북관계는 이제 까지보다 더 생산적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이념의 잣

이념을 버리는 것도 하나의 이념

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습니다” 라고 말 했지만 북한은 그가 이전부터 이야기해 온 비핵·개

그렇다면 이명박의 과제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선대의 10년보다 도덕과 당위에 덜

방·3000 구상이‘대결적 이념’ 의 산물이라고 인식 했다.

경도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10년보다 더 실용

실용이 한편으로“반북대결” 의 혐의를 샀다면, 다

적인 실용을 고안해 내는 것이(어야 했)다. 문제는 두

른 한편으로는‘친미’혐의를 샀다는 사실도 부정할

번째 과제를 충분히 달성하지 못함으로써 첫 번째 과

수는 없다. 이명박은 당시 미 대통령 부시를 만나 그

제를 이룩하는 데도 어려움을 보인 데 있다. 이명박

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미국 측의 요구에 협조했

은 실용이라는 말로써 정치를 도덕적인 열정에서 해

는데, 이것은 노무현 시대에‘이념’때문에 멀어진

방시키고 정치를 문제 풀이의 수단으로 이해시키고

한미 관계를‘정상화’ 하려는 실용의 표현이었다. 그

싶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념의 차이로 인한 대결

러나 그의 실용 정치가 유일한 문제 풀이가 아니라는

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이룩

사실은 4월부터 활발하게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하는 데에 나와 너가 따로 없고, 우리와 그들의 차별

반대 집회에서 명료하게 드러났다. 반대 세력은 이명

이 없습니다. 협력과 조화를 향한 실용정신으로 계층

박이 FTA에서 실용의 가치를 버리고 친미라는 이념

갈등을 녹이고 강경투쟁을 풀고자 합니다.” “국가의

을 실현하려 든다고 생각했다.

발전 방향과 실천 대안을 만들어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내의 여론이나 북한의 비난은 동아시아

…이것이 실용정치의 기본입니다. …소모적인 정치

의 큰 틀에서 본다면 사소한 변수에 불과하다. 진정

관행과 과감하게 결별합시다. …여와 야를 넘어 대화

한 문제는 이쪽에서 이념을 벗어던지더라도, 무시할

의 문을 활짝 열겠습니다.”그러나 정치를 문제 풀이

수 없는 규모의 거인들이 이념의 틀로 세계를 해석할

로 간주한다고 해서 문제 풀이가 반드시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풀이도 다른 이념이 실용의 이름으 로 제시하는 제2, 제3의 풀이와 경쟁 관계를 맺을 수 ⓒ광명사진포털

있다. 그렇다면 실용 정치는 탈이념의 외피를 쓴 또 하나의 이념 정치로 간주될 여지가 있었다. 이 우려 는 한미관계, 한중관계, 남북관계, 국가-사회 관계에 서 100일도 못 되어 극명하게 드러났다.

실용이 사야만 했던 여러 혐의 이명박은 집권하자마자 북한과의 관계가 틀어졌 다.《로동신문》 은 그가 취임하고 한 달쯤 지난 4월 1 일 한 논평에서 그를“리명박역도” 라고 지칭했다. 이 호칭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비난은 김태

꿈인가 비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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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

ⓒ오마이뉴스 남소연

때 생겨난다. 거인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자리에서 당

장 역시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혹스러운 일이 생겼다. 2008년 5월, 이명박은 중국과

그러나 이명박이 북한 자체를 악마적 존재로 보았

의 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키는 실

다거나, 대결 일변도의 정책을 고수했다는 평가는 근

용의 자세를 발휘했지만 동시에 중국 외교부 대변인

거가 희박하다. 적어도 현재까지 알려진 수사 가운데

으로부터“냉전시대의 군사동맹으로 역내에 닥친 안

서, 이명박이 북한을“악의 축” ,“폭정의 전초 기지” ,

보문제를 생각하고 다루고 처리할 수 없다” 는 비판을

김정일을“폭군” ,“피그미” 로 부르는 부시 행정부의

들어야 했다( 《조선일보》2008년 5월 29일자). 반공

극단적 레토릭에 근접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가 서

으로 시작된 한미 동맹을 강화하되 중국과의 관계를

울 시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서울시를 기독교의 신에

고려해 그 성격을 재설정할 수 있을까? 이것은 실용

게 봉헌하겠다는 말로 비난을 받은 적은 있지만, 부

시대 원년에 던져진,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시와 같이 대북 문제를 기독교적 도덕주의의 스타일

분명한 것은 정치를 이념이 아니라 실용으로 인식한

로 생각했다는 증거도 보이지 않는다.

다고 해서 이 복잡한 문제가 주변의 불만 없이 풀릴

오히려 이명박은 외교 정책을 포함한 두 전임자

리는 없다는 점이다. 아니, 실용의 시대는 출범과 동

의 업적을 부정하는 데서 실용 정치의 색깔을 찾았

시에 이름에 걸맞지 않게 자신이 풀 수 없는 문제가

으면서도, 북한과의 대화로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던

있을 가능성에 직면해야 했다. 이 시대는 노무현의

것 같다. 이명박은 긴장 상황에서도 화해의 가능성

‘이념적’시대 못지않은 갈등으로 점철되었고, 앞으

을 배제하지 않았다. 천안함의 침몰 원인에 대한 다

로도 그럴 것이다.

양한 음모론이 존재하는 속에서, 5·24 담화 및 조치 이전까지 이명박이 침몰 원인을 속단하지 말라고 발

이명박은 대화 거부파라는 신화

언한 사실도 그것이 수사이기는 하지만 지적할 필요 가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도“남북 정상이 언제든지

물론 이명박의 실용을 실용이게끔 만드는 몇 가지

만나서 가슴을 열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도 언급하는 것이 공정할 것 같다. 북한의 핵 문

그 기회는 열려 있습니다” 라고 말했는데, 이 말을 실

제를 대하는 태도가 실용적인 것이었는지 이념적인

현하려는 노력을 최소한 두 번 이상 보였다. 아직 그

것이었는지만큼은 여전히 논란이 많지만 말이다. 전

내막을 알려주는 자료가 충분히 공개되지는 않았지

임자들의 관여 정책을‘친북적’사고의 산물로 보는

만 몇 가지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이명박은 2009년

쪽에서는 이명박의 선비핵화 요구를 탈이념적, 실용

두 대통령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원인을 제공했다

적인 정책으로 보고 있다. 이전의 10년을 기능주의라

는 비판을 듣지만, 그해 5월의 2차 북핵 실험에도 불

는 이론적 틀로 옹호하는 입장은 오히려 이명박의 선

구하고 가을부터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대북 접촉에

비핵화 요구를 무책임한 방관주의로 보는데, 이런 주

들어간 것도 사실이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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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sm


격 사건이 일어났지만 2011년 봄에도 이명박 정부는

일은 도둑 같이 온다’ 는 취지의 발언을 해 흡수통일

3차 정상회담을 위한 접촉을 추진하게 했다. 천안함

론자라는 의혹을 사기도 했지만 흡수통일 계획조차

폭침이나 연평도 피격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사태가

면밀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뒤늦게 만들어진 통일항

대화의 가능성을 좁혀 놓았지만, 이명박이 그 가능성

아리는 정식 입법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정책으로 모금

조차 붙잡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물론 회

액의 상당 부분이 통일부 직원의‘자발적인’기부금

담의 전제 조건으로 한국 측이 비핵화 의지의 표명과

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전 도발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한 데 반해 북한 측

이명박은 공유될 수 없는 이념적 가치보다는 공유

이 경제적 지원 등을 요구한 사실을 놓고서, 대화 결

할 수 있는 이익의 가치로 국제정치를 헤쳐나가자고

렬의 책임 소재를 찾는 문제는 앞으로도 오랜 과제로

말했다. 이것은 지난 10년 간의 장사꾼 마인드를 보

남게 될 것이다.

존하되, 이데올로기가 제시하는 문제 풀이를 거부하

이명박의 대북 정책에 대한 일반적인 긍정은 그 일

자는 선언이었다. 그러면 이데올로기가 떠난 자리에

관성에서 나온다. 일단 나름의‘실용’원칙을 만들

서 무엇을 가지고서 문제 풀이를 할 것인가? 복잡해

어 놓은 뒤에는, 그 원칙에서 벗어나‘대화를 위한 대

져가는 현실을 어떻게 풀어나가는 것이 덜 이념적인

화’ 에 임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5년 내내 꽤 성실하게

가? 그의 취임사를 빌려 표현한다면, 이는 이어지는

준수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일관성은 적어도 현재까

5년만이 아니라 다가오는 60갑자의 외교를 관통하는

지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에서도 유지되고 있다.

질문이 될 것이다.

장기 계획의 부재, 그리고… 이명박의 외교 비전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아무

최정훈 (서울대 자유전공) intransigere@gmail.com

래도 장기 비전이 없다는 데 있다. 실용이 보편적으 로 수용 가능한 문제 풀이가 되지 못한 것도 장기 계 획의 부재 때문이다. 노무현의 꿈이 동북아균형자가 되겠다는 야심찬 초장기 비전이었다면, 이명박의 국 제정치적 목표는 수사적인 차원에서나마 잡히는 것 이 없었다.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를 어떻게 무탈하 게 동시에 강화할 수 있겠는가 하는 딜레마와, 이에 대한 대답의 미비 상황은 이미 언급했다. 실용이 특 정‘이념’ 을 반대하는 이념이면서도 홀로 설 수 있는 실용적 이념이 되지 못하는 현실은 통일 정책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비핵·개방·3000은 공존과 통 일의 조건을 모두 북한의 전략적 결단에 맡기는 정책 으로, 한반도 문제를 위해 한국 측이 주도적으로 어 떤 행동도 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그는 남북 간 신 뢰를 쌓을 수 있는 구체적 방침 없이 통일에 대한 확 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2010년 광복절 경축사에 서 통일세를 사회 각계에서 널리 논의해 달라고 요청 해 놓았는데, 정작 통일부에서 통일 비용을 모금할 통일항아리를 빚은 것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2012 년 6월이었다. 그 사이인 2011년 6월, 이명박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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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책갈피 중국의 대내외 정세를 두고 합의된 유일한 명제는, 중국의 급격한 부상이 국제질서의 변화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논자들에 의해 불투명한“중국의 꿈” 이해 부되는 상황이다. 조영남은 국내외 중국 연구자들의 다양한 분석 틀과 연구를 검토하기도 하고 일부를 활용하기도 하면서, 중국 5세대 지도부와 정치개혁, 대외정책을 면밀하게 분 석하고 중국의 진로를 진단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주변국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오는“중국의 꿈” 의 국제정치적 향방은, 중국의 “공세적인”외교의 진행 양상을 통해 판단된다. 저자는 중국도“지역 패권국” 으로 성장 해 강대국들의 전형적인 행보를 답습하고 있다는 미어셰이머의 공격적 현실주의와는 거 리를 둔다. 오히려 관료정치 모델과 경험주의 관점을 중심으로 판단하건대, 중국이 내부 합의를 통해 외교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한 바는 없고, 다만 국제 사회의 변화에 대처하 면서“외교‘행태’ 의 변화” 가“반응” 적으로 촉발되고 있다고 본다. 여기서 저자는 외교 행태와 정책 결정의 상관관계를 보다 명확히 규정하여,“즉자적” 인 외교 행태의 변화들로 인한 외교 정책의“미세 조정”과정으로서의“공세적 외교”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 나 이러한“조정” 을 지속시킬 요인에 관한 논거는 제시하지 않으며, 따라서 향후 중국의 외교 정책 변화가 공식화될 가능성에 대해서 판단을 보류한다. 저자가“변화와 조정” 의 구체적 양상과 관련해 주목하는 것은 18차 당대회의 정치보고에서 미묘하게 달라진“표 현법” 이다. 중국은“핵심이익” 을“포괄적” 으로 제시해 무력 행위의 정당화 구실로 이를

면밀한 현상 분석, 그러나 아쉬운 실천적 지침 조영남,『중국의 꿈 : 시진핑 리더십과 중국의 미래』, 민음사, 2013.

활용할 여지가 생겼으며, 미국뿐 아니라 다른 강대국들에게도 새로운 외교 관계의 표준으 로“신형대국 관계” 를 제안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해양 강국의 건설” 과“군사력 강화” 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책의 말미에서는“한미 동맹과 북중동맹의 양립 가능성” 이 검토된다. 북중 관계는 한중, 미중 관계에“연동된”사 안으로서“거시적인 관점” 에서 본다면 큰 변화가 없다. 이때 저자가 우려하는 두 가지는 한미동맹의 성급한 성격 변 화와 북한에 대한 봉쇄정책이다. 한미동맹이 한·미·일의 반중국적 군사 협력 기제로 작동하면, 동아시아에서“냉 전” 과 같은 갈등 구도가 재발될 수 있으며, 북한의 중국 의존도가 급상승하는 상황에서 대북 봉쇄정책이라는 전략적 선택도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미·중간 견제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미국의“안보 협력 강화 요구”보류와 중국과의“전략적 신 뢰”관계 구축에 대한 미국의 의심과 반발을 무마해야 하는 난점을 축소시켜, 결국 양자 사이에서 명확한 택일을 피 하고 미묘한 전략을 추구해야 하는 어려움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저자가 이전의 저서『용과 춤을 추자』 에 서도 제시한“관여, 위험 분산, 다자주의 정책” 이라는“정책 3중주”속에서, 한국이 지역국들과의 협력으로 중국의 “패권적 행위 규제” 라는 일차 과제를 수행하되 이것이“중국 반대 정책” 이 아님을 동시에 설득시킬 수 있다는 주장 은 분명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미래지향적 관점” 의 구체적 실천 지침이 빠져 있는 것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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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선


최정운의『한국인의 탄생』 은“도대체 한국인이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겨 먹은 사람들인지” 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그는 한국의 근현대 사상사 연구의 난점으로 사상을 드러내는 체계 적인 저술의 부재를 드는데, 이런 자료의 부족 속에서도 근대소설이야말로“역사의 흐름과 그 속에 살았던 지식인 예술가들의 고민과 사상을 종합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학문의 보고로 본 다. 저자는 근대소설을 말하기 앞서『홍길동전』 과『춘향전』 에서 드러나는 조선 후기의 전근대 성을 분석한다. 홍길동과 성춘향은 모두“성리학 국가의 가족 제도에서 튕겨 나온 근대 개인주 의적 속성을 띠는 인물” 이다. 하지만 홍길동은 폭력적인 대결을 피하고 도술로써 갈등을 풀어 나가며, 역성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또 하나의 조선’ 을 만듦으로써 자제의 미덕을 보여 주고, 천수를 누린 후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성춘향 역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내세우는 당찬 여성이지만 결국엔 이몽룡과 결혼하여 정경부인이 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근대적 가능성의 실마리는 존재하나 두 인물은 모두 다시 성리학적 틀 안으로 회귀함으로써‘해피엔드’ 를 맞는다. 그렇다면 근대 문학에서는 어떤 전환이 있었을까. 1906년 이인직이 쓴 최초의 근대식 한국 소설『혈의 누』 에서, 김옥련은 청일전쟁 중에 부모와 헤어져 뜻하지 않게 유학 길에 올라 조선

소설로 읽는 한국 근대 사상사 최정운, 『한국인의 탄생』, 미지북스, 2013.

의 개화 운동을 위해 공부하는 인물이다. 진정한 개화란‘조기 유학’ 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는 작가의 믿음이 어린 소녀를 외국으로‘강제 납치’ 시킨 것이다. 여기서 이인직이 당시 조선을 바라봤던 시각, 즉 망 국의 길로 들어선 조선에 대한 위기 의식이 드러난다. 이른바‘신소설’ 은 참담했던 당시 조선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데, 공동체가 붕괴되어 각자의 생존에만 급급하고 개인의 욕망을 위해선 범죄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장면은 이인직 과 이해조의 소설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 소재다. 최정운은 이러한 당대 사회의 모습이‘홉스적 자연상태’ 라 보고, 조선이 맞이한 이 자연상태가 신소설이라는 한국 특유의 새로운 소설 장르를 개척했음은 물론, 나아가 대한제국 말기 등장한 친일파의 등장을 설명해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일진회나 진보회가“지옥 같은”당시의 자연 상태를 벗어나기 위 한“사회계약적 발상의 정치적 표현” 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친일파의 활동은 다른 사회 구성원들 에게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야기시켰는데, 이때 국가를 매개로 하지 않는‘민족’ 이란 키워드가 부상하며 민족주의 자들이 등장한다. 이광수의『무정』 과 신채호의『꿈하늘』 은 각각 지식의 수입업자에 불과했던‘개화민족주의자’ 와의 지도 자의식도 없이 투쟁하는‘저항민족주의자’ 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저자는 이 두 유형의 민족주의가 모두 온전하지 못한 상태의 욕망이었다고 지적한다. 이후 1919년 김동인의『약한 자의 슬픔』 에서 비로소“강한 자와 약한 자” 라는 한 국 민족주의의 기본 문제의식이 제기되고,“강한 조선인 만들기” 라는 과제는 1930년대 이광수의『유정』 에 이르러서야 성과를 본다.『유정』속의 최석은“뜨겁게 그러나 끝없이 자제해야 하는”사랑을 하는 강한 의지를 지닌 인물이다. 강 한 조선인은 애정인 동시에 고행인 사랑을 죽어 부활해서도 집요하게 실현함으로써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한국인은 해방을 맞은 뒤에도 홍명희가 모든 문명을 부정하고 투쟁하는 민중 영웅으로 묘사한 임꺽정처럼,‘힘’ 에 지나치게 집 착하는 반지성주의적 면모를 보였고 이것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장애가 되었다. 이런 태도는 나아가 교육 만능주의 와 결합하여 오늘날 우리 사회에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저자인 정치학자 최정운은 담론 분석의 전문가로, 광주민주화운동을 당대인의 체험으로 재구성한『오월의 사회과 학』 처럼 신선한 방법론과 논지는 물론 방대한 소설 자료의 치밀한 분석은 설득력을 얻는다. 저자는 후속작에서 광복 이후의 소설과 드라마, 영화를 분석하여‘과연 한국인은 누구인가’ 에 대한 질문의 답을 내릴 예정이라고 하니 한국인 의 정체성에 대한 이어질 탐구가 기대된다.

김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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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퀴즈 1. 북한의 로동당 당원들이 모인 최말단 기층조직인‘이 조직’은 대중의 이웃 과 동료로서 당의 정치적 아젠다를 일반 인민에게 주입하고 인민을 교화, 선동 하며 일반에 대한 감시 및 당에 불신을 갖는 이를 색출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 로 알려져 있는데요, 북한의 당 생활 및 정책 수행의 최소단위인‘이 조직’의 명칭은? 2. 1980년대 미국은 반소련 해방조직으로 출발한 무자헤딘을 위해 아프가니스 탄 동부와 국경을 접한 파키스탄의‘이곳’에 기지를 건설하는데요, 현재의 와 지리스탄을 중심으로 한 7개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지금은 탈레반과 알 카에다, 하카니 네트워크 등 여러 무장 단체의 근거지이기도 한‘이곳’은 어디일까요? 3.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일이라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12월 24일부터 다 음 해 1월 6일까지를 대절기로 크게 기념하였던 고대 로마인들의 풍습에서 비 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로마인들이 하루 해가 가장 짧았다가 길어지 기 시작하는 날이라 여겼던 12월 25일은 원래 어떤 기념일이었을까요? 4. 중국의 급속 성장에 큰 역할을 한 값싼 노동력의 제공 주체인‘이 사람들’ 은 현재 중국의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중국 정부가 호구등기조례 인 후커우 제도에 따라 농민들이 도시로 이주하는 것을 불허하는 바람에 불법 체류자 신세로 일반 도시민들이 꺼리는 3D 업종에서 저임금 노동자로 차별 받 으며 일할 수밖에 없었던‘이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5.‘이 사람’은 1967년 자신의 책에서 서양은 밀을, 동양은 쌀을 주식으로 한 사실이 동, 서양의 역사 문화적 발전 과정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서술하고 있는 데요, 2세대 아날학파를 이끈 프랑스의 위대한 역사학자인‘이 사람’의 이름 은? 각 문제의 정답을 모두 적어 이름, 연락처와 함께 12월 29일 일요일 자정까지 journal.prism@gmail.com로 보내주세요. 정답을 맞히신 분들 중 세분을 추첨하 여 문화상품권 1만 원권을 보내드립니다. 이번 호에 대한 감상이나 의견도 함께 보내주시면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6호 퀴즈의 정답은 1. 샘 호스 2. 백화문 3. LILAC(라일락) 4. 알 카르다 위 5. 터미네이터 입니다. 정확하게 답을 적어 보내주신 분 중 세분을 추첨했 는데요, 당첨되신 김혜민 님, 이슬기 님, 추흥관 님께는 개별적으로 연락을 드 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편집후기 또다시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2013년 이번 한 해,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올해는 이렇게 보내야지!’작심삼일일 걸 알면서도 하는, 저의 올해 다짐과 목표는 “스스로 괴롭히는 건 절대절대하지 말자” 였습니다. (만) 그런 제가,《프리즘》2013년 마지막 호의 편집후기를 쓰고 있군요. 
 프리즘의 모든 글은 국제시사에 대한 편집위원의 애정 어린 관심(강요 받는 관심일 때도 종종 있습니다), 모니터를 붙잡고 쓰는 인고의 기사 작성 시간, 마감이 넘어감에 편집위원을 독려하기 위한(드문드문 독촉도 합니다) 편집장 동 지의 카카오톡 알람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기어코 자신을 괴롭히는 한 해가 되었으나 그 괴로움이 착실히 한 해를 넘 기고 있다는 방증인 거 같기도 해, 흡 눈가가 촉촉해져 오네요.

다시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가 봅니다. 여러분의 2013년 한 해, 어떠셨습니까? 저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이번 마 감을 함께한 강산에의〈거꾸로 강을 거슬러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에 나오는 가사 일부를 가져와 봤습니다.

그 언제서부터인가 걸어 걸어 걸어오는 이 길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가야만 하는지 여러 갈래길 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돌아서 갈 수밖에 없는 꼬부라진 길 일지라도 딱딱해진 발바닥 걸어 걸어 걸어가다보면 저 넓은 꽃밭에 누워서 난 쉴 수 있겠지

이제까지 있었던 무수한 나의 선택의 결과로 있다는 지금의 내 자리가 옳은지, 제대로 걸어온 길인지, 혹여 걸어 걸 어 걷다 보면 꽃밭 대신 사북자리가 날 기다리고 있진 않을지 걱정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그런데 처음 맡아본 이번 호의 기획기사가 그 물음에 쉼표를 찍었습니다. 확보한 자료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엮고, 분석하여 김정은의 1년 행 보를 보여줄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지만, 처음 써낸 기사를 완전히 새로 써가며 나를 다독이는 과정이 스스로 대견스 러웠달까요? 앞의 걱정과 고민은 여전하지만‘저 힘찬 연어들처럼 나도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는 은근한 용기가 생겼습니다. 2013년《프리즘》 과 함께 걸어온 덕분입니다.

2014년 새해에도 저희의 발걸음,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봐 주셔요. ⓒ이인재

김주량


프 리즘 사용설명서 사용하시기 전에 아셔야 할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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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은 서울 지역 대학생들이 힘을 합쳐 만드는, 대학생을 위한 국제시사 저널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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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은 한반도의 국제정치를 탐구하고, 국제 정치 이슈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선을 소개하고 논의하려 합니다.

프리즘은 국제정치 현안과 역사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소통하자고 제안하는 창구가 되고자 합니다. 국제 시사에 대한 기존의 다양한 시각을 소개하는 동시에 대학 생의 젊고 실용적인 대안을 모색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프리즘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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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이란 빛을 분석, 굴절, 분산할 때 쓰는 유리와 수정 등으로 만든 다면체 의 광학 부품을 말합니다 프리즘은 세계의 이슈들이 한반도 내에서 가지는 굴절된 의미들을 분석하고, 이 에 대한 여러 스펙트럼의 시선을 소개하고자 하는 다짐에서 붙인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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