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츄잉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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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츄잉 Monthly Chew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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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츄잉 한 컷

6 교감일보직전

8 독일어 시간

10 이 달의 츄잉


츄잉 한 컷

4 _


5 _

정은이가 만든 출석부 :)


교감일보직전

6 _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건네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7 _ 교감일보직전

초선영 | 작가, 화가. 행복이 무언지, 올바르게 사는 게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 chosunyoung.com | @chosunyoung


독일어 시간

8 _


겨울 동안은 작업실에 출근하는 일이 줄어든다. 작업실 멤버들끼리 이 시기를 겨울 방학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작업에 대한 마음이 느슨해지거나 한껏 게으름을 누리는 호사를 부려보기도 하 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작업실에 오면, 쪼그라든 잎새로 연명했을 화분에 미안 한 감정이 든다.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을 잊는 것처럼 내가 나를 돌보는 일에 무던해질 때가 있었다. 여사원들끼리의 외모를 비교하는 상사 앞에서 분위기를 흐릴까 봐 웃었던 기억, 성희롱하는 택 시 기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척했던 일, 가족의 폭언 앞에서도 화내지 못하고 속만 썩이던 일, 나의 말을 몇 번이고 끊어버리는 이 앞에서 괜찮은 듯 행동했던 기억.... 나는 그때마다 그냥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거나 상대는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을 텐데 나 혼자 예민했던 거라고,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생기가 돌았던 것 같은데, 해가 바뀔수록 내 마음은 마치 말라 비틀어지기 직전에 겨우 숨이 붙어있는 식물처럼 여겨지기 도 했다.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 나는 나를 수차례 말려 죽였다. 직장생활을 어려워하는 나에게 H는 술을 따라주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원래 그래. 네가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너를 너무 보여주지 마. 그러면 너만 다쳐.” 나는 그 친구의 말에 수긍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딱히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처 지도 아니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 날은 동기의 청첩장을 받으러 종로에 들렀다. 모임이 끝나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는데 회식 후 건하게 취한 채 이동하는 직장인 무리와 뒤 섞이게 되었다. 어두운 빛깔의 양복을 입은, 흥청망청 취한듯한 분위기의 사람들 속에서 나는 조금 어깨가 움츠러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여성 한 분이 눈에 띄었다. 까마귀 떼 같은 시커먼 남성들 사이에 그분은 혼자였는데, 상사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돌연 그 여성의 볼에 입맞춤했다. 그들을 둘러싼 남자 들은 모두 웃었다. 그리고 무리 중 누군가 넌지시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이젠 익숙해져야지.” 9 _

도움도 주지 못했음에 미안하다. 그분은 아직도 그 빌어먹을 새끼들과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 을까. 고발했기를. 제발 나 좀 그냥 내버려 두라고, 멀쩡하고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고 싶다고 아우성쳤기를. 영혼까지 말라버린 자신을 보고 책망했던 것은 나 뿐이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우리는 몇 번이고 다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아직도 다칠 일이 많이 남아 있을까? 말라 버린 이파리 앞에서 오늘도 마음이 아프다.

윤나리 | 프로산책러. 반려견 포카 @poca_girl 와 산책하고 그림을 그립니다.

독일어 시간

나는 그때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깊은 죄책감을 느낀다. 그분께도, 과거의 나에게도. 아무런


여전히 먼지일기 작업 중.. _박정은

요 몇주 방정리를 하기 시작하 면서 잊고 있던 물건들과 여러 번 마주쳤다. 특히 요녀석을 마 주쳤을 때는 여러가지 추억들과 츄잉 새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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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부딪쳤다. 고등학교 시 절 열심히 썼던 mp3cdp. 그 밖에 디지털카메라몇대와 2g 핸드폰들. 자연스럽게 멀어져갔 던 것들이 많더라. 스마트폰 무 서워. 또 나도 모르게 어떤 것들 이 멀어져갈까. _블블


중고 타자기를 데려왔다. 판매상 에서 내 나이를 묻더니, 나와 대 략 비슷한 나이일 거라며 꺼내주 었다. 집에 와서 깨끗이 닦아주 고 이러저러한 글도 적어보았다. 반가워, 이제는 나랑 같이 일해 보자. _윤나리

가족, 친구, 그리고 혼자 오랜만 의 긴 여행. 이십대의 여행과 삼 도 그만큼 달라진 거겠지새로운 한 해의 진짜 시작, 누구 보다 나를 돌보고 응원하는 2018 년! _이지나

이 달의 츄잉

십대의 여행은 분명 달랐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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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츄잉 #44 2018년 2월호 츄잉룸 chewing.kr | chewingroom@gmail.com | @chewingroom 디자인 윤나리 @naripl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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