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모세 읽기, 예수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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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서문 11

| 본서의 고유 용어 13

| 감사의 글 15

서론 16

1장 토라, 법 위반을 예상하다 24

2장 믿음의 실패는 죽음으로 이어진다 37

3장 토라의 해결책: 메시아 49

4장 창조 명령 61

5장 아담과 이스라엘의 연결 73

6장 시 1: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창 3:14-19) 80

7장 시 2: 자기 아들들에 대한 야곱의 축복(창 49:1-28) 93

8장 시 3: 발람의 신탁(민 24:1-24) 101

9장 율법의 기능 113

10장 하나님의 타협된 이상 134

11장 오늘날 모세의 율법은? 142

12장 메시아적 유대인의 정체성 162

결론 및 마지막 도전 171

| 참고문헌 174

우리가 이 짧은 책을 쓰기로 한 이유는 신자와 토라( 모세오경 또는 오경 ) 및 그 계명( 율법 ) 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원 포 이스라엘( ONE FOR ISRAEL ) FAQ 목록에서 가장 자주 묻는 상위 5가지 질문 중 하

나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율법을 지키셨으니 신자( 유대인 및 이방

인 ) 도 율법 또는 적어도 그 일부( 안식일, 음식법 등 ) 를 지켜야 할 의

무가 있는가? 구전 율법( 랍비 전통 ) 은 어떤가? 토라는 어떻게 메시아 를 가리키는가? 모세 율법을 오늘날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최소 10년에 걸친 학술적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전 문가가 아닌 독자를 염두에 두고 집필되었다. 우리 목표는 토라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 이해하기 쉬운 답변을 제공하되, 성경 본문을 주의 깊게 읽는 데 철저하게 뿌리를 둔 방식으로 그렇게 하는 것 이다.

셋 포스텔 박사( 히브리어 성경학 박사 ) 는 원 포 이스라엘 성경 대학( 이 스라엘 성경 대학 ) 의 학장이다. 에이탄 바 박사( 목회학 박사 ) 는 원 포 이 스라엘의 미디어 및 전도 담당 디렉터다. 에레츠 소레프 박사( 심리학 박사 ) 는 원 포 이스라엘 및 이스라엘 성경 대학 총장이다. 셋, 에이

서문 11 | 서문 |

탄, 에레츠는 모두 예슈아( 예수 ) 를 믿는 유대인 이스라엘 신자들 이다.

이 작은 책이 여러분의 생각을 자극하고 토라를 밤낮으로 묵상함

으로써( 수 1:8; 시 1:2-3 ), 예수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더 깊어지도록 도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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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우리는 예슈아( 예수 ) 를 따르는 세 명의 이스라엘 유대인의 솔직한

고백으로 이 책의 서두를 연다. 유대인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예수를 따르는 유대인이 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유대인으로서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반유대주의에 대처해야 한다. 예수

를 메시아로 믿는 유대인으로서 우리는 종종 가족에게 거부당하기

도 한다. 유대인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들은 우리가 “그 사람”을 믿

는다면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메시아의 몸 안에서 우

리는 종종 이방인 형제자매들로부터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일반적으로 직면할 필요가 없는 우리의 심각한 정체성 갈 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는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정체성 문제와 씨름했다. 메시

아 신앙은 유대인 것이었으므로 초기 메시아 공동체에 이방인이 들

어왔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최초의 교회 공의회( 행 15장 ) 에서는 이

방인이 본질적으로 유대인의 신앙과 문화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는

지를 다루었다. 그들은 이방인 신자들은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

16 모세 읽기, 예수 보기

는 결론을 내렸다( 오늘날 많은 이방인 기독교인은 유대인 구세주에 대한 사랑을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지만 )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를 믿는 유대인 신자들은 어떨까? 사도행전

15장은 유대인 신자들이 계속 율법을 지킬 것이라고 가정하지 않 는가?1) 바울은 사도행전 21장 23-24절에서 자신이 “율법을 지키

며” 살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예수는 “누

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다른 사람에

게도 똑같이 행하게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마 5:19 ) 라고 선언하신다.2)

우리 메시아는 “그들[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행하고 지키라”( 마 23:2-3 ) 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율법과 그에 대한 랍비들의 구전 해석을 포괄한 것이다. 모세는 율

법의 계명이 영원하다고 말한다( 예. 출 12:14, 17, 24; 27:21; 28:43; 29:9, 28;

1) 의무적인 메시아적 유대 율법 준수를 옹호하는 침묵의 주장은 행 15:10에 나오

는 베드로의 분명하고 약간 충격적인 고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 제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감당하지 못한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얹어 하나님을 시험하느냐”(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모든 성경 인용문은 영어 표 준역[ESV]에서 발췌한 것이다).

2) 예수는 마 5:17-20의 의미를 5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실제로 설명한다. 사람들 이 예수와 그 추종자들이 율법을 폐지했다고 비난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 러나 예수를 따르는 진정한 제자들은 율법에 기록된 요구 사항을 넘어서는 기준 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예수는 그 기준을 더 높이셨다! 예를 들어, 메시아를 따르는 자들은 간음을 금지하는 계명을 지킬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음욕을 품 고 여자를 바라보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간음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보면 예수께서 율법의 계명을 완화하지 않으셨다는 것이 분명하다.

서론 17

30:21; 31:16 참고 ). 3) 사건 종결! 유대인 신자들은 우리의 랍비 예수와

우리의 스승 모세에게 순종하고 바울의 모범을 따라 선하고 신실한 메시아적 유대인으로서 율법에 순종해야 한다.

이전 단락의 논리는 설득력이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큰 해석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왜 그럴까? 이 구절들이 분명해 보이는 것만

큼, 신약성경의 다른 구절들은 우리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다”라고 믿게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율법은 하

나님이 이전에 하신 약속에 추가된 것으로, 그 약속을 대체하기 위 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우리를 메시아에게로 인도하는 가정교사로

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갈 3:1-24 참고 ). 그러나 이

제 메시아가 오셨으므로 우리는 “더 이상 후견인 아래 있지 않다”

( 갈 3:25 ). 덧붙여 바울은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문제나

절기나 초승달이나 안식일과 관련하여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

하게 하라. 이런 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며 실체는 그리스도에

게 속한 것이니라”( 골 2:16-17 ) 라고 말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는

아론의 후손이 아니며 제사장 직분을 맡는 레위 지파 출신도 아니

므로, 그의 제사장 직분은 율법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매우

3) 일반적으로 “영원한”(‘올람’)으로 번역되는 단어는 때때로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긴 기간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렘 25:9에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을 “영원한 황폐”로 만들 것이라고 말씀하 신다. 그러나 렘 29:10에서 하나님은 70년 후에 자기 백성을 그 땅으로 돌아오 게 하겠다고 약속하신다. 이 경우 ‘올람’은 70년이라는 기간을 가리킨다. 그러므 로 단순히 “영원한 율법”이라는 문구 때문에 율법을 영원히 지켜야 한다고 주장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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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모세

분명하게 밝힌다. “제사장직에 변화가 있을 때에는 반드시 율법에

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히 7:12 ). 히브리서 기자는 이어서 율법에 규

정된 예배 제도는 더 좋고 완전한 것의 모형이자 그림자라고 말

한다( 히 8:5; 10:1 ). 더 좋고 완전한 것의 목적은 새 언약의 제정과 함

께 옛 언약은 “사라졌기”( 쓸모없어졌기 ) 때문에 더 나은 언약을 가리

키기 위한 것이다( 히 8:6-13 ). 4)

이 주제에 대한 합의를 향한 첫 번째 단계는 문제가 단순하고 간

단하다면 신자들 사이에서 율법의 역할에 대한 논쟁은 없을 것이라

는 점을 겸손하고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일반적

으로 우리의 입장과 반대되는 성경 구절을 설명하려 노력할지라

도( 심지어 잘 설명하기도 하지만 ), 사실 해석은 과학이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한 양쪽의 신자들은 계속해서 상대방이 왜 이 문제에서 ‘명백한

진실’을 보지 못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다.

먼저 상대를 존중하는 건전한 의견 차이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

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토라의 의미와

4) 히브리서 기자가 히 8:13에서 “쓸모없어지고 낡은”과 “곧 사라질 것”이라고 말 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옛 언약이 실제로 “사라져 버린” 시 기를 히브리서를 기록할 당시에 대해서 미래로 보았지만, 이는 저자가 의도한 바 는 아닌 것 같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내가 새 언약을 세우리 니”라고 썼을 당시의 “새”라는 단어의 의미를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 예레미 야가 첫 번째 성전이 파괴되기 직전에 그 언약을 “새 언약”(렘 31:31)이라고 불 렀을 때, 그는 옛 언약이 그 시대에 이미 쓸모없어지고 “사라질 준비가 되어 있 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것은 새 언약이 세워질 때 옛 언약이 쓸모없어지고 사라졌음을 암시한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사라졌다”와 “쓸모없어졌다”라고 쓴 것은 메시아의 피 흘림으로 새 언약이 세워졌을 때 옛 언약이 사라지고 쓸모없 어졌다는 것이 본문의 요점이기 때문이다.

서론 19

토라에 담긴 율법의 목적에 대해 우리가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

을 것임을 알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이미 모든 게 밝혀졌다고 생

각했다면 이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이 이 논의에

독특하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믿는다.

많은 사람이 토라를 율법책으로 이해하는 랍비 유대교의 관점에

서 토라를 읽는다. 즉 토라를 따른다는 것은 곧 시내산 언약의 계명 을 지키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우리는 이런 일반적인 가정에 동의

하지 않는다. 오히려 토라(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 의 목적에 대한 우리

논지는 토라가 역사적 내러티브이며, 그 목적은 이스라엘을 지켜지

지 않은 율법을 통해 그 너머로, 즉 모세가 자기 독자들에게 마지막

날에 오실 것이라고 확언하고 있는 메시아에게로 인도하는 데 있다.

우리가 보기에 토라를 충실히 따르는 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다( 요

5:39-47 참고 ). 우리는 토라의 몇 가지 핵심 구절을 살펴봄으로써 이

논지를 옹호한다.

1장에서는 토라의 서론( 창 1-11장 ) 과 결론( 신 29-34장 ) 을 살펴본다.

토라의 시작과 끝을 살펴보면 모세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

어가기 전에 장차 율법을 어기고 그에 따라 포로 생활을 할 것이라

고 예언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모세가 토라를 기록한 주된 목적

이 이스라엘을 지켜지지 않은 율법에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을 통해 그 너머로 인도하는 것이었음을 암시한다.

2장에서는 시내산으로 이어지는 광야 이야기( 출 15:22-18:27 ) 와 시

내산에서 떠나는 광야 이야기( 민 10:11-36:13 ) 사이에 위치한 시내산에

서 율법을 주신 이야기( 출 19:1-민 10:10 ) 를 살펴본다. 우리는 율법을

20 모세 읽기, 예수 보기

받은 것과 이스라엘의 믿음이 무너진 것( 그 결과는 죽음이다 )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롬 7:9-10 참고 ). 이 텍스트 자료

는 모세가 토라를 기록한 목적이 단순히 우리를 율법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 그 너머로 인도하는 것이었음을 보여 주

는 또 다른 증거다.

3장에서는 토라가 율법을 향하고 있지 않다면 어디를 향하고 있

는지 보여 주겠다. 토라는 메시아를 향하고 있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대해 말하는 구절들을 살펴보겠다. 우리는 이 구절들이 모

세가 토라를 기록한 궁극적인 목표, 즉 이스라엘이 율법을 어기는

과정을 통해 마지막 날에 우리를 메시아에게로 인도한다는 것을 드

러낸다고 주장할 것이다.

4장에서는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에서 펼쳐지는 하나님의 복의 패

턴인 창조 명령을 소개한다. 우리는 아담을 하나님의 첫 번째이며

원형적인 왕이자 제사장으로 여기고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창조 목

적을 조명한다.

5장은 바벨론의 강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아담은 동쪽으로 유배

되는 형태로 불순종의 결과를 경험하는데, 이는 훗날 이스라엘의

유배를 예표하는 것이다. 아담과 이스라엘은 어떻게 불순종을 극복

하고 하나님이 의도하신 복으로 회복될 수 있을까?

6장부터 8장까지는 토라에서 엄선한 세 가지 시적 연설을 살펴보 겠다. 이들 본문은 자기 원수의 머리를 부수게 될 특정 혈통의 특별

한 개인을 통해 창조 명령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회복될 것인지를

보여 준다.

서론 21

9장에서는 “그렇다면 율법은 왜 필요한가”( 갈 3:19 ) 라는 질문에 답

하기 위해 율법의 여섯 가지 주요 기능을 조명한다. 그 기능은 가정 교사, 그림자, 신학, 사랑, 지혜, 기소 검사로서의 율법이다.

10장은 시내산에서 주어진 613개의 계명 중 구시대적이고 때로

는 기이한 율법들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이로써 우리는 모세의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

는 11장에 이르게 된다. 어떻게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었는지, 그

리고 랍비 현자들이 이런 국가 정체성 위기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살펴보고, 특히 “구전 율법”에 주목하겠다.

12장에서는 메시아적 유대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와 율법 및 유대

전통과 우리 관계를 살펴본다. 결론에서는 연구 결과를 요약하고

독자에게 마지막 도전 과제를 제시한다.

정식으로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이 책의 목적을 아주 분명하게

밝히려 한다. 첫째, 우리는 신자와 율법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답하

려고 이 책을 썼다. 1970년대 초부터 메시아 운동이 급속히 성장하

면서 점점 더 많은 신자가 ‘단순하지만, 세상을 뒤흔드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아 가고 있다. ‘사실 1: 예수는 유대인이다. 사실 2: 구약성경을 주의 깊게 연구하지 않고는 신약성경을 이해할 수

없다.’ 이 두 가지 발견 때문에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율법과의 관계 에 대한 질문으로 어려움을 겪는 신자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둘째, 우리는 예수가 어떻게 토라의 목표인지 보여 주려고 이 책

을 썼다. 어떤 사람에게는 신약성경의 몇 구절이면 충분하다. “모세

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니 그가 나에 대하여 기록하였음

22 모세 읽기, 예수 보기

이라”( 요 5:46 ).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주시는 율법의

끝[목표]이니”( 롬 10:4 ). 우리는 이 구절의 진리를 긍정하지만, 이것

이 어떻게 그런지 알아보려고 매일 성경을 살펴보는 것이 모든

신자의 의무라고 믿는다( 행 17:11 ). 토라의 목표가 예수라고 말하는

것과 토라에서 이를 증명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토라에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몇 개밖에 없다( 창 3:15; 49:8-12; 민 24:7-9, 17-19; 신 18:15 ). 토라의 목적에 대한 결론이 수학적 문제라면, 율법이 토라의 목적이라고 쉽게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왜냐하면

메시아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는 반면, 율법을 언급하는 구절이

토라 전체 구절의 약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라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일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으며, 관련 구절들이

어설프게 흩어져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짜임새 있는 구조에 담겨

있다. 여러 개의 병렬적인 이야기가 나타나고 주제가 반복되고 있 는 토라의 내러티브 구조를 살펴보면 메시아 및 그에 대한 우리의

필요를 일관되고 부인할 수 없이 가리키는 푯말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누구든 환영한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가 약속된

메시아라고 믿는 사람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런 믿음을 공유

하지 않는 사람들, 이들 모두 이 책의 독자가 되기를 바라고, 나아가

그들 모두에게 이 책이 발견의 여정이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이 끝날

때쯤이면 여러분이 빌립 및 이 책의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이 선포할 수 있는 충분하고 만족스러운 증거를 갖게 되기를 진

심으로 기대한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선지자들도 기록한 분

을 찾았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 1:45 ).

서론 23

1장

토라, 법 위반을 예상하다

신약성경의 눈으로 보기

바울은 로마서 10장 4절에서 메시아가 토라의 목표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위한 율법의 목적( 개역개정 “마 침” ) 이시다.”1) 요한복음 5장 46절에서 예수는 종교 지도자들이 모

세를 믿지 않으므로 그를 약속된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주 장한다.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니 그가 나에

대해 기록하였음이라.” 마찬가지로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예수는

1) ‘텔로스’라는 단어를 율법의 목적(즉 의를 세우기 위한 것)으로 번역해야 하는 지, 아니면 목표(즉 율법의 의도된 목적지)로 번역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문맥은 후자의 해석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해석 모두 장점이 있다.

24 모세
읽기, 예수 보기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2)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다.3) 히브리서 기자 는 율법은 그 자체로 목표가 아니라 사람들을 메시아에게로 인도하

기 위해 하나님이 의도하신 예배 제도를 규정한 것이라고 주장 한다. 그는 성막에 대해 이렇게 썼다.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

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이 장막은 현

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히 9:8-10; 참고. 10:1).

2) 문맥상 예수는 율법뿐 아니라 토라 전체를 언급하고 있다. 이는 “율법”을 “선 지자들”과 나란히 배치하는 방식 때문에 분명한 사실이다.

3) 히브리어 뿌리 운동(Hebrew roots movement)을 따르는 일부 사람들은 헬라 어 본문의 언어적 의미가 아니라 헬라어 본문 뒤에 있는 “진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헬라어를 예수의 모국어로 역번역하려고 시도한다. 이 논리에 호소함으로 써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토라를 “완성”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해 석”하러 오셨다고 주장한다. 이 학설 또는 관점에는 두 가지 매우 심각한 결함이 있다. 첫째, 코이네 헬라어를 히브리어 및/또는 아람어로 역번역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모든 역번역은 항상 추측 수준에 머물러 있다. 두 번째 결 함은 첫 번째 결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성경 본문의 권위와 관련이 있다. 성경 본 문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추측에 근거한 역번역에 의존할 때, 하나님 말씀의 권 위는 더 이상 성경 본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번역을 제시한 학자에게 있다. 요 한복음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하나님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모든 것을 가르치고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셨다”(요 14:26; 참 고. 2:22; 12:16; 20:9)라고 분명히 가르친다. 제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보존하 기 위해 하나님의 영으로 독특하게 기름 부음을 받았으므로, 그들이 예수의 말씀 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은 영감을 받은 것이며, 따라서 신앙과 실천을 위해 전적 으로 권위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이었다.

1장 ┃ 토라, 법 위반을 예상하다 25

신약성경은 메시아가 토라 전체와 특히 율법의 목표이자 성취라

고 가르친다. 예수, 바울, 히브리서 기자는 어떻게 그런 결론에 도달 했을까? 그들의 결론은 토라의 문법적·역사적 해석에 근거한 것

일까,4) 아니면 신약성경의 렌즈를 통해 토라를 읽어야만 그런 해석

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토라에 나오는 메시아에 대한 구

절이 토라 전체 구절의 1%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특히 적절한 관련이 있다! 우리는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토라에

추가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니라, 모세가 토라를 기록할 때 의

도한 원래의 의미를 실제로 이해했다( 이를 ‘주해’라고 부름 ) 고 믿는다.5)

아버지의 행위는 아들에게 표징이 된다

토라의 궁극적인 목적이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고 율법을 지키

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토라의 서론과 결론 ( 창

1-11장; 신 29-34장 ) 에서 이런 목적에 대한 어느 정도의 암시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해야 한다. 성경 문헌의 서론과 결론에는 일반

적으로 책 전체의 주제와 목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1-11장의 목적과 의미, 그리고 토라의 서문으로서의 기능

을 이해하기 위해 창세기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학적 특징을 살펴보겠다. 랍비들은 이를 ‘마아세 아보트, 시만 레바님’

4) 즉 원저자가 의도한 의미에 대한 문자 그대로의 해석이다.

5) 주해(exegesis)는 독자가 텍스트의 문법적·역사적 의미, 더 구체적으로는 텍 스트의 역사적 저자가 의도한 의미를 찾는 해석 과정이다.

26 모세 읽기, 예수 보기

이라고 설명하는데, 이는 “조상들의 행위가 아들들에게 표징이

된다”라는 뜻이다. ‘마아세 아봇, 시만 레바님’이란 모세가 족장들

이야기를 쓴 것은 족장들에 대해( 그리고 그들보다 앞선 사람들에 대해 ) 우

리에게 들려줄 뿐 아니라 그 족장들의 후손들( 즉 이스라엘 민족 ) 에게

미래에 일어날 일을 우리에게 알려 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일부

학자들은 이 히브리어 문구를 사용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이런 문학

적 특징을 내러티브 유형론 또는 문학적 유비( 이는 우리가 선호하는 영어 용어임 ) 라 부른다. 어떤 사람들은 토라에 나오는 이야기의 의미에 대

한 우리 결론에 도달하려고 우리가 우화적 해석에 의존한다고 비난

할지 모르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문학적 유비( literary analogy ) 는

텍스트 자체에서 식별할 수 있고 분명히 실재하는 특징이며 고대와

현대의 해석자, 유대인과 기독교인 모두에게 인정된 것이다. 또한

한 텍스트가 의도적으로 다른 텍스트의 유비 또는 예표로서 기록되

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요구되는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기준이

있다. 그것은 (1) 공유된 단어와 구절( 어휘적 유사성 ), (2) 공유된 플 롯( 주제적 유사성 ) 이다.6)

예를 들어, 창세기 43장 1절부터 출애굽기 12장 38절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에 대한 토라의 설명은 창세기 12장 10절부터

13장 2절의 다른 곳에서만 볼 수 있는 핵심 단어, 문구 및 주제를 반복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독자들에게 아브람에게 일어

6) 우리는 세 번째 기준, 즉 해석의 역사도 활용한다. 즉 해석의 역사에서 한 이야 기가 다른 이야기를 어떻게 예표하는지, 또는 한 이야기가 이전 이야기에 비추어 어떻게 쓰여졌는지를 인식하는 다른 사람들을 찾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1장 ┃ 토라, 법 위반을 예상하다 27

난 일을 상기시키려고 의도적으로 묘사되었음을 암시한다. 두 기록

모두에서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1) “심

한 기근”( 창 12:10; 43:1 ), (2) 애굽으로 내려감( 창 12:10; 46:6 ), (3) 남자

는 생명을 위협받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은 상황( 창 12:12; 출 1:16 ), (4) 바로를 섬기는 “억류 상태”( 창 12:15; 출 1:11 ), (5) 애굽 사람들에게 내

린 재앙( 창 12:17; 출 7-12장 ), (6) 재앙으로 인한 애굽에서의 추방( 창 12:20; 출 12:33 ), (7) 큰 재물과 함께 애굽을 떠남( 창 12:16; 13:2; 출 12:35, 38 ). 아브람과 사래가 큰 기근 때문에 애굽에 머무는 이야기, 하나님

이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리신 이야기, 큰 재물을 가지고 애굽에서

“탈출”하는 이야기( 창 12:10-13:2 ) 는 아브람과 사래에게 일어난 일을

보여 줄 뿐 아니라, 400년 후 이스라엘에게 일어날 일을 예표

한다( 창 43:1-출 12:38 ).

문학적 유비( ‘마아세 아보트’ ) 의 또 다른 예로는 모세를 의도적으로

예표하는 인물인 노아의 이야기가 있다. 영어 성경 독자들은 하나

님이 방주( 히브리어로 ‘테바’, 창 6:14 ) 를 통해 노아와 그의 가족을 물의

죽음에서 구원하셨음을 알고 있지만, 모세도 방주( 히브리어로 ‘테바’, 출

2:3, 5 ) 를 타고 물의 죽음에서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놀랄 수도 있다.

출애굽기 2장 3절과 5절의 ‘테바’를 ESV에서는 “바구니”( 개역개정

“상자” ) 로 번역하고 있지만, 토라에서 ‘테바’는 다른 모든 경우에 “방

주”( ark ) 를 의미하므로 이는 분명 예외다( 창 6:14-16, 18-19; 7:1, 7, 9, 13, 15, 17-18, 23; 8:1, 4, 6, 9-10, 13, 16, 19; 9:10, 18 ). 더욱이 ESV에서 “바구

니”라는 단어가 나타날 때마다 다른 히브리어 단어가 사용된다. 창

세기부터 민수기에서 바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살’이고( 창

28 모세 읽기, 예수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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