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이리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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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입니다. 도토루의 하루 / 그림. 호지 백림서신 - 19. 전화 / 글. composer B 남들이 추천하지 않는 영화 / 미션 임파서블 - 폴아웃 오늘의 날씨는 / 시. 글씨. 류새봄 의미 없는 이야기 - 그림. 글. 사진. 철민 만든다오 - 16. 내년을 준비하며 탁상달력 / 글. 사진. 오진선 Ping Pong - 10. 사진 / 글. 황정운 이훈보


사람의 인연과 일이라는게 참 재미있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주변에 뭘 가르쳐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미디를 알려주는 지인 이 있었고 믹싱을 할 줄 아는 지인. 커피를 알려주는 지인 등등을 만나다보니 혼자서 음악도 해보고 글도 써보고 책도 만들어보고 커피도 만들어보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이번에는 카페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로스팅을 조금 배우고 로스터리에 서 일을 하다가 카페쇼 까지 참여한다는게 참 신기하고 재미있네요. 얼떨떨했습니다. 세상의 여러 인연들이 모이고 흘러서 미래를 구축한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사이사 이에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 이런 좋은 경험들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가만보면 월간이리도 제 덕업에 비해서는 감사하게 꽤 오래동안 진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 마운 일이죠. 그동안 받은게 많은 것 같아 조만간 월간이리에서도 필자들을 상대로 은 혜를 갚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커피와 관련된 일이 될 것 같고 나쁘지 않은 경험을 줄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이달에는 카페쇼를 핑계로 이틀 늦게 나왔지만 사실은 좀 더 빨리 할 수도 있었답니 다. 기다리셨던 독자분들에게는 사과의 인사를 남깁니다. 이달에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간이리 EXXX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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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림 서 신

伯 林 書 信

Composer B

19. 전화

잘 지냈어? 쌀쌀한 바람이 낯설지 않은 계절이야. 나는 계절이 어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또다시 바쁜 날들을 보냈어. 요 며칠 간은 독일어로 된 문서를 만들고, 입에 익도록 따라해보고 그리고 어색한 표현들을 거듭 수정하는 작업들의 반복이었어. 나의 이야기가 독일인들에게 잘 이해될 수 있을지, 어색한 발음이 의미 전달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지… 참으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어. 괜히 엄살 피우는 거 아니냐고? 아냐, 그냥 솔직하게 썼어. 만약 내가 불안감이나 걱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이런 말들을 굳이 편지에 늘어 놓지도 않았겠지. 아마 내 언어가 불완전하다는 것에 대한 의식 조차도 없었을거야.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사실 얼마 전 여행에 필요한 기차표를 인터넷으로 살펴보다가 실수로 잘못된 기차표를 예매해버린 적이 있었어. 독일의 인터넷 예매와 환불 시스템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힘들어. 한국 같으면 빠르면 당일, 길어야 한달 안에 돌려받을 금액들도 독일에서는 몇 번씩 똑 같은 설명을 되풀이하고 나서야 겨우겨우 받을 때가 많아. 나 역시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실수에 대한 아쉬움 보다는 또다시 지옥과도 같은 환불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짜증이 밀려왔어. 환불 절차를 위해 서류 양식을 출력해서 서명을 하고 복사를 했지. 또 만약의 경우를 위해 똑 같은 내용을 이메일로 한 번 더 보냈어. 하지만 또 하나의 관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함정이야. 그것은 바로 전. 화.


사실 독일에서는 전화보다는 편지(이메일을 말하는게 아냐. 말 그대로 종이 우편!)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확실할 때가 많아. 콜센터 전화상담과 이메일 문의가 만으로 간편하게 문제가 해결되는 한국인들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거야. 아니나다를까, 이번 전화 통화에서도 나의 자신감을 꺾는 상황이 또 벌어지고 말았지. 내 딴에는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차근차근 잘 설명한다고 생각했는데, 상담원은 그걸 절반이나 알아 들었는지도 모르겠고… 못 알아 들었다면 문제라도 어찌어찌 해결되면 오죽 좋겠어만, 상담원은 내가 이미 이메일을 보냈던 메일 주소를 다시 안내해주며 ‘여기로 메일을 보내 문의해보라’고 하더라. 무한 루프를 돌고 있는 듯한 이 답답함이란. 전화라는 건 참으로 이상해. 분명 같은 내용인데도 면대면으로 대화할 때는 상대의 말을 어지간히 알아 들었고 내 의견도 어느 정도 상대에게 납득 시킬 수 있었는데, 전화를 통해서 대화하면 전혀 그렇지가 못한 것 같아. 나의 미숙한 독일어를 부분적이나마 메워줄 수 있는 비언어적 요소를 포기한 상태로 대화를 해야하니 내가 불리할 수 밖에.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전화 통화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면,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을 간단한 문장도 꼭 메모장에 적어 놓고 전화를 걸곤 해. 아- 피곤하다. 나는 대체 언제쯤 독일어 전화 통화를 잘 할 수 있을까? 아마 죽기 직전에나 잘 할 수 있게 되는거 아닐까? 늘지 않는 외국어와 그로 인한 자신감 하락, 그리고 전화. 외국에서의 생활을 마냥 꽃놀이처럼 동경하는 사람들이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 또다시 나의 무기력함을 확인한 것만 같아서 기분이 영 좋지 않아. 평생 동안 독일어를 공부해야 하는 외국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할 부분이긴 하겠지만, 이 찝찝한 기분은 또 며칠동안 따라다니겠지. 말이 길어졌네. 또 편지할게.


남들이 추천하지 않는 영화 미션 임파서블 - 폴아웃 (2018) 감독 크리스토퍼 맥쿼리 한국에서 <미션임파서블 - 폴아웃 > (이하 폴아 웃) 을 본 사람의 숫자가 몇일까요? 조금 전 확인 을 해보니 650만 명 입니다. 이 영화처럼 남들이 다 봤을 것 같은 헐리웃 블록버스터를 추천하는 게 의미가 있을지 조금은 의아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남들이 다 본 것만 같 아서 추천 목록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있는 것을 떠올려보면 블록버스터를 추천한다는 것도 아주 조금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헐리웃 블록버스터를 추천한다 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를 추 천하는게 맞는가를 두고 열흘을 넘게 고민해야 했습니다. 1. 이미 볼 사람들은 다 봤고 2. 내가 아니어도 칭 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3. 굳이 내가? 이런 수순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민을 하면 할 수록 이 영화는 추천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에 도달하 고 있었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작품이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뭐가 달랐던 것일까요? 설명을 하기 위해 이 영화가 과거의 작품들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보기 위해 시리즈를 헤아려보 니 총 6편이더군요. 저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유명세에 비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하나쯤은 걸렀으려니 했는데 글을 쓰기 위해 헤아려 보니 하나도 빠짐없이 다 본 것을 알고 놀랐습 니다. 시리즈 1편을 제외하고는 괜찮았다는 기억조차 없으면서도 저는 계속 이 시리즈를 봤습니다. 1996년에 출시된 1편의 잔상이 남았기 때문에? 혹시? 어쩌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고 봤다고 보기 에도 너무 긴 세월입니다. 올해 개봉한 < 폴아웃>의 직전작인 <로그네이션>이 2015년 작으로 나온 지 3년 밖에 되지 않은 영화를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희안한 일이었습니다. 재미도 없는 것 같은데 꾸역꾸역 본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6 편을 제외하고는 추천할 만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전작을 다 봤었고 그 중 < 폴아웃>은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일까요, 어마어마한 물량전 때문에? 요즘에는 시각적 놀라움을 기대하고 헐리웃 액션영화를 보 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자동차가 뒤집어지기만 해도 놀랐겠지만 요즘은 실사 촬영 중에 비행기 하나정도 폭발 시킨다고 해도 놀라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폴아웃>은 조금 다


릅니다. 추격, 스턴트, 모험, 사랑, 추격, 스턴트, 액션, 사랑을 숨쉴틈 없으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리 고 각각의 촬영 완성도가 무척 뛰어납니다. 주인공이 아슬아슬하게 위험요소를 피해가서도 아니고 화면에 편집의 리듬감이 팍팍 터지는 것도 아닌데 폴아웃의 여러 장면들은 깔끔하고 아름답게 느 껴집니다. 어쩌면 찍은게 아니라 그린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촬영이 깔끔해서 문득 <폴 아웃>의 감독은 이 작품의 경쟁상대로 영화가 아니라 게임을 상정해 두었나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 다. 빠르고 산뜻하면서 다양한 이미지가 쏟아지는 쾌감이 여느 유명 게임들의 연출을 조금씩 닮아 있으면서도 훌쩍 뛰어넘으니까요, 이렇게 촬영에 대해 감탄을 했으니 촬영감독을 찾아봐야 겠지요. 이 영화의 촬영감독(Cinematography by)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 다. 제가 과거에 소개해 드렸던 <서던리치 : 소멸의 땅>과 촬영감독(Rob Hardy) 이 같았습니다. 장 면에도 취향이라는게 있는 것일까요? 참고로 <5편 로그네이션>의 촬영감독은 Robert Elswit 로 전 작인 <4편 고스트 프로토콜>을 찍었고 저는 이 두 작품이 그닥 인상깊지 않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촬영감독이 촬영 했던 <나이트 크롤러 (2014)> 와 <굿나잇 앤 굿럭> <매그놀리아> <데어 윌비 블 러드> 등은 잘찍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장르와 리듬이 조금 맞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장면을 제외하고도 이 영화의 장점은 또 있습니다. 바로 ‘톰 크루즈’입니다. 누군가는 <폴아웃>을 보고 ‘톰크루즈가 드디어 성룡이 되었다.’ 라는 말을 던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톰 크루즈는 과거 처럼 젊지도 않고 무작정 강하지도 않고 구르고 다치고 싸움에서 밀립니다. 동료들에게도 은근 구박 을 받지요. 이런 ‘이단 헌트’를 보고 있으면 홍콩 배우 ‘성룡’과 그의 영화들이 절로 떠오릅니다. 그 러니 드디어 성룡이 되었다는 표현도 틀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평가로는 <폴아웃>에 서 보여준 ‘이단 헌트’ 특유의 피로감이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비로소 그를 보고 슬퍼하고 공감하 게 되었다고 할까요? 잘생기고 능력있는 요원을 보면서도 안쓰러워 감정을 이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 이번 <폴아웃>의 장점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톰 크루즈가 연기를 펼치는 영화에서 인상적 피로감에 대한 조짐은 영화 <콜래트럴>이나 <잭 리처> 시리즈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지만 이번 <폴 아웃>에 비하면 깊이가 덜합니다. 위의 영화들이 주인공이 고생하네. 수다스럽네.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폴아웃>은 다릅니다. ‘짠하다’ 라는 말이 절로 나와요. 이런 공감은 배우의 훌륭한 연기만 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영화 전반에 깔린 스토리 또한 모자람이 없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폴 아웃>의 첫 장면이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섬에서 사랑의 서약으로 시작하는 주인공의의 달콤 한 꿈이 틀어지고 산산히 부서지는 광경에 이어 컴컴한 곳에서 총을 쥔 채로 잠에서 깨는 주인공을 보면 관객들은 안쓰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되지요. 하지만 이런 감정을 뒤돌아볼 시간 없이 숨 돌릴 틈 없이 영화는 달려갑니다. 그러다 영화의 최후반부 근처. 이제는 슬슬 관객들도 쉬고 싶다는 느낌을 받을 즈음이 되어서야 관객들은 첫 장면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감정. 이단 헌 트가 꿈에서까지 두려워했던 사랑의 깊이를 느끼고 흘러나오는 감정을 추스릴 여유도 없이 관객들 은 적을 쫓아 달려가게 됩니다. 흔히 특수요원과 일반인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죠. 영화속의 특수요원들은 강력하고 능력있고 단 호하고 배우이기 때문에 매력적입니다. 슬플거리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은 강철인간. 로봇에 가


달리고

달리고

뛰고 구

르고 달

리고

까운 존재로 여겨집니다. 일반 관객과 영화속 특수요원간의 괴리는 보통 여기에 있습니다. 저 서람 은 나와 확연히 다른것 같다는 인상이 영화속의 종횡무진을 납득시켜주지만 한편으로는 공감이 덜 되게 하는 요소가 있지요. 하지만 <폴아웃>의 주인공 ‘이단 헌트’가 겪는 문제는 조금 다릅니다. 그 잘생기고 강하고 능력있고 똑똑한 주인공이 자신의 문제는 해결하지는 못해요. 능력 밖의 일이 있 다고 인정하고 수긍합니다. 우리도 살면서 비슷한 경험을 하죠. 자신의 마음이나 상황과 상관없이 사고가 터지고 버거운 감정 이 이는 경험은 일을 하는 누구나 하니까요. 일은일 사생활은 사생활 이렇게 나뉘면 좋으련만 이 두 가지는 나라는 범위에 얽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결심하고 참고 넘어가는 것이죠. 납득이 라기 보다는 자기 희생이나 포기가 더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가 일상적인 업무 범 위에 있는 것과 달리 주인공은 강도높은 특수요원을 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어느곳에서는 실패 하고 그것을 납득하고 있는 주인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짠하죠.’ 저는 이 감각이 <폴아웃>에 잘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단 헌트’도 보통 사람들 처럼 처지를 납득하고 견디는 장면이 여기저기 에 등장합니다. 이것은 치고 받을 때 터지는 물리적 통증의 감각이 아니라 감정적인 내면의 통증이 기 때문에 관객들은 쉽게 수긍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부분이 시리즈를 통틀어서 가장 인상깊은 영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끝입니다. 톰크루즈도 나이가 들어 충분히 훌륭하게 이끌어온 이 시리즈 를 과연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폴아웃>은 분명 의미가 있는 지점에 도달했다고 생 각합니다. 그런이유로 헐리웃 블록버스터를 굳이 시간내 추천합니다.


월간이리에서는 늘 새로운 필진을 찾고 있습니다. 차분 하게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듯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하실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그림, 사진, 음악, 영화, 여행, 식믈, 곤충, 의학, 각종 기술정보 등등장르를 가리지 않으며 이것이 될까 싶은 연재들도 가능한 연재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니 연재와 관련해서 문의 사항이 있으신 분들은 언제든 exxx2x@gmail.com 으로 문의 주시면 친절 안내 드립니다. 이달에도 이런 과정을 거쳐 참여해주신 필진이 계십니다. 여러분도 참여해 보세요!








글. 사진. 그림. 철민



만 든 다 오

시시콜콜하고 사소한 가내수공업 고군분투기

#16. 내년을 준비하며, 탁상달력 참 바쁜 가을이었다. 아직 단풍잎이 가지 끝에 매달려있지만, ‘가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남은 나날도 바쁠 것 같 으니 과거형을 쓸 수밖에 없다. 이사를 했고 해외출장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뭔가를 만들 새도 없었다. ‘만든다오’라는 이름이 무거웠다. 염치없이 휴재를 두 번이나 했지만, 짬은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제 야 ‘만든다’는 행위에 얼마나 많은 것이 담겨져 있는지 느껴졌다. 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는 도무지 새로운 것이 샘솟지 않았던 것이다.


해야할 일은 많이 남았지만, 내일의 내가 해주리라 믿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이 오늘이었다. 모카포트로 커피 를 한 잔 내려와서 거실 소파에 푹 파묻혔다. 새 집은 21층. 창밖으로 보이는 산이 울긋불긋하다. 문득 눈에 들어온 달력이 얇다. 아, 곧 2018년도 끝이구나. 베란다로 들어온 바람에 발끝이 시렸다. 12월도, 1월도 순식간일 것만 같 다. 오늘이 아니면 안 되겠다며, 묵혀뒀던 숙원사업인 달력을 만들기로 했다.

“이거 필요할까?” 이사를 하면 여러 가지를 버리게 된다. 나도 모르게 실천하게 되는 미니멀리즘. 낡은 것들은 다 쓰레기처럼 보이 는 마법에 걸린 것만 같다. 그래도 꾸역꾸역 들고 온 것이 있으니, 작은 나무판 몇 개다. 나무판은 2년 전에 주문한 것이다. 나왕합판과 미송합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액자를 만들겠다며 인터넷으로 나무를 주문할 때, 언젠가는 만들겠지 하며 추가했던 것들이다. 액자를 만들 때 사포질도 같이 해두고, 수성 스테인 도 발라놓았다. 가공은 다 해놨는데, 이미 달력이 있어서 ‘다음에’라고 미룬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심지어 나무판이 여러개인 건 친구들에게 선물을 주겠다는 포부였다. 그때는 주고 싶은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고작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소박하고 수수한 직접만든 티가 나는 달력이라, 기왕이면 이런 스타일을 좋아 할 사람에게 주고 싶은데, 여기에 시간과 정성이 들어갔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 주고싶은데, 선물을 주는 것도 자 신이 없다. 몸이 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은 믿고 싶지 않았는데, 서울에서 있었던 일들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거두절미하고, 오늘은 달력을 만드는 날이다. 디자인은 간단하다. 나무판과 볼트와 너트, 나사만 있으면 준비물은 끝이다.


달력의 크기는 A5. 나무판은 적당히 여백이 느껴질 정도 의 크기다. 먼저 전동드릴로 볼트가 들어갈 구멍을 뚫어준 다. 볼트는 끝이 뭉툭하기 때문에 구멍을 뚫어주는 것이 필 수인데, 한쪽으로만 작업하면 반대쪽 표면이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에 반반씩 양쪽으로 뚫어주는 것이 좋다. 구멍을 뚫으면 적당한 곳에 달력을 걸 곳을 만든다. 나는 나무판에 나사를 두 곳에 박고, 달력 종이에는 같은 위치에 펀치로 구멍을 내서 걸었다.

달력은 심플하게. 다루기 쉬운 한글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2019년 달력을 켜놓고, 하나하나 입력한다. 1월에는 사랑하는 언니의 생일, 2월에는 내 생일이, 4월 에는 제사가 있다. 내년은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이 둘 다 일요일이라 황금연휴라고 부를 수 없고, 추석도 금요일이라 연휴가 길지 않다. 가족과 친구들 생일, 우리의 기념일까지 적어본다. 희한하게 양가 부모님의 생신이 주말에 몰려있고, 우리집 제사도 주말이다. 빼도 박도 못하고 가족에게 보내는 시간 이 많아질 것만 같다. “이제는 결혼해야하지 않겠니?”, “나도 손주가 보고싶 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 어쩌려고 그래?”와 같은 말이 벌 써부터 들리는 것만 같다. 올해야 말로 커밍아웃을 해야 할 때인가, 마음을 굳게 먹 어본다. 안정이 되면 언젠가는 얘기할 생각이었는데, 그 안 정이라는 게 신기루처럼 좀처럼 잡히지 않는 것만 같다. 분 명 전보다는 안정이 된 것 같은데, 전보다는 나은 것 같은데. 어느새 크리스마스까지 입력했다. 전보다 나아졌다 느 끼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간단한 작업이지만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입력하다보니 시간이 생각보다 꽤 걸린다. 종이는 되도록 두꺼운 것을 사용해 프린터로 인쇄한다. 작업은 A5로 해놓고 용지는 A4로 설정해 '두장 모아찍기'를 선택하면 간단히 인쇄할 수 있다. 용지 테두리를 사전에 설정해두면 나중에 재단할 때 편하다. 인쇄는 평범한 A4용지 보다는 두꺼운 편이 좋은 것 같다. 나는 두성 디지털페이퍼 하이브리드 A4/157g을 사용 했다. 그 이상의 두께는 프린터가 힘겨워하고, 그보다 얇으면 지나치게 팔랑거려서 멋이 덜한 것만 같기 때문이다. 표면이 조금 코팅된 느낌의 종이라면 기성품의 느낌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달력에 구멍을 뚫어서 거치대에 걸어본다. 2019년 12월, 11월, 10월, 9월, 8월… 그리고 1월까지. 오지 않은 시간들 이 멀리서부터 아득하다.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돌아올 때, 그 시간의 나는 지금 과 얼마나 다를까? 문득 지나온 시간들이 스쳐간다. 신림에서, 홍대에서, 광안 리에서. 그리고 강원도와 제주도, 전주와 서울 곳곳. 마주했 던 얼굴들이 하나하나 아련하다. 누구나 전(前)과 같을 수는 없다. 모두에게는 공평한 시간들이 덧입혀지고 있을 뿐이다. 시계 초침이 움직이고, 아침이 찾아오고, 계절이 지나가면서 말이다. 해가 산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문득 목이 따끔, 눈에 서 노을이 타는 것만 같다.

“차 마실래?”

그녀가 엊그제 일본 우지에서 사온 말차를 우려냈다. 고소하면서도 살짝 달큰항 향이 난다. 차가 지나간 자리는 조금 쌉쏘리하다. 싫지 않은 씁쓸한 맛이다. 그렇다, 괜찮다. 지나온 시간에도 그랬던 것 처럼, 앞으로 몇 번의 달력이 새로 내걸릴 때 도 그녀는 나와 함께할 것이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서로가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창한 목표 같은 것은 세우지 않는 편이다. 좌우명이라고 할 것도 따로 없다. 그저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 로,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 해가졌다. 다가오는 겨울도 그저 무탈히, 따뜻한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귤을 까먹을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이다.

*글쓴이_오진선(@ss_jinsun) 가내수공업 중독자 / 나노상공인 / 애견인 / 페미니스트 / 레즈비언 가정주부/홍대살다 부산거주 중/ 퀴어여성커뮤니티<언니네달방>운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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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황정운

이훈보

보내는 공

선생님께,

선생님께 아이가 있으신지 미처 여쭙지 못해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살짝 머뭇거려집니다만. 두 살, 세 살 정도의 아이를 키울 때 여러 고민 중 하나는 언제까지 아이에게 최대한 신식 문물 을 멀리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식 문물은 이미 기성 어른들이 충분히 누리 고 있으되 정작 아이에게는 철저히 막는 꽤 모순적인 것들인데 콜라, 초콜릿, 휴대폰 등이 그렇 습니다. 휴대폰. 요즘 저의 세 살 아이는 휴대폰에 조금씩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어느 새인가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휴대폰을 주워서는, 한 번도 가르쳐 준 적이 없으나 사진 촬영 프로그램을 열고 사진을 찰칵찰칵 찍고 있더군요. 아이들의 스펀지 같은 학습 속도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사 진을 찍을 때는 손으로 브이를 만들어서 턱에 갖다 대라며 쫑알대는 모습에 한 번 더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그래, 신식 문물은 나쁜 것이 아니지 …… 하며 함께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 속에 나와 아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같이 사진을 봅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 휴대폰에 수 천 장 있습니다. 컴퓨터에는 이보다 많은 수 만 장의 사진이 있 습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이고, 지금은 잘 쓰이 지 않는 무거운 코닥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해서 오래도록 썼던 기억이 납니다. 2006년 방영한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은호(손예진)는 “사진을 보면 슬퍼진다. 사진 속의 나는 환하게 웃고 있 어서 이때의 나는 행복했구나 착각하게 된다”고 말했지만 저는 사진을 보면 대개 마음이 따스해 집니다. 사진 속의 나는 환하게 웃고 있어서 이때의 나는 행복했구나,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 사진 속의 나는 대개 웃고 있는 편입니다. 우리는 보통 얼굴을 찡그릴 때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아주 이국적인 곳으로 여행을 떠난 순간, 어버이날을 기념해서 모인 가족들의 점심식사 순간, 대학 동아리 MT에서 철없이 즐겁게 술 마시던 순간. 이런 순간은 보통 웃게 됩니다. 사진 속의 나는 웃고 있습니다.

아, 생각해보니 웃지 않는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증명사진입니다. 대학 학생증을 만들 때, 여권 을 만들 때, 기업 입사지원서를 작성할 때, 자기소개서를 쓸 때 나는 내가 소개하는 그 사람과 일


치하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증명사진을 찍습니다. 웃지 않는 사진이라고 말씀 드렸죠. 그러 나 웃지 않는 증명사진에도 저마다 조금의 차이가 있습니다. 한창 증명사진을 많이 찍었을 때가 대학교 3학년과 4학년 졸업까지 2년 사이였습니다. 여러 공모전 참가 신청서, 인턴 지원서, 기업 정식 입사지원서에 쓸 사진을 찍기 위해 반 년에 한 번씩은 증명사진을 찍었던 것 같습니다. 한 번 찍고 여러 지원서를 쓰고 또 그만큼 떨어지고 불합격하는 것이 많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사 진을 찍고, 그걸 몇 번 반복합니다. 그때 찍은 증명사진을 다시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웃고 있지 않지만, 웃고 있기도 합니다. 10년 전 젊은 시절의 자신감과 미래를 향한 견딜 수 없는 즐거움이 적당히 입가 어딘가에 배어 있었습니다.

자신감과 즐거움을 결코 숨길 수 없던 나의 모습. 숨길 수 없는 웃음이 배어 있던 나의 모습은 10 년 동안의 사회 생활을 거치며 조금씩 마모되어 갔습니다. 마모되었다고 느낀 건 제가 먼저 스스 로 깨달은 것이 아니에요. 요새 오랜만에 증명사진이 필요한 일이 있어 사진을 다시 찍어야 했 습니다. 그런데 인화된 사진을 받고 저는 말 없이 사진 속 나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증명 사진 취지대로 웃지 않는 내가 그 안에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어디에서도 숨길 수 없는 웃음이 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자신감과 즐거움이 마모되어 사라져버린 내가 그 안에 있었거든요. 그러니 까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며 여전히 생기 넘치는 삶을 계속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며 이처럼 굳은 표정만 남았다는 걸 사진을 통해 뒤늦게 알았던 셈입니 다. 삶은 이처럼 조금씩 굳어가고, 깎여가는 것일까요. 저도 어느새 이처럼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하는 마음만 남은 것일까요.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주어,

봄은 다 가고---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 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윤동주 시인의 <사랑스런 추억> 부분

황정운 9년 차 직장인입니다. http://blog.naver.com/marill00 에서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돌아온 공

정운님께.

안녕하세요 정운님.

잘 지내셨나요? 원고를 받고 어제밤 늦게나마 답장을 쓸까 하다가 여기에 적는것은 어떨가 하는 생각을 문득 했습니다. 저는 어제까지 카페쇼에 다녀왔습니다. 일을 하는 로스터리에서 카페쇼에 참여하게 되어 준비를 하고 손님을 응대하는데 많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꿈에서도 손님을 응대하는 꿈을 꿨습니다. 카페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잘 사지 않던 옷을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방문해주시는 손님들에게 조금 더 깔끔하게 보여야 했으니까요. 비록 이틀짜리 참여였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카페쇼에는 일원으로 참여해서인지 다 끝나고 보니까. 새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하나 없더군요. 중간에 한장쯤 찍어둘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거기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면구스럽고 해서 참고 말았습니다. 마치고 돌아와서 카페쇼에 들른 분들의 인스타를 돌아봐도 제 사진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새옷도 새옷이지만 사람들을 응대하고 있던 제 모습이 어땠는지 조금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건 그렇고 이달의 주제인 사진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우선 저는 아직 미혼임을 밝히고 시작하겠습니다. 아이들의 신문물과 관련해서는 오직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저는 그냥 요즘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인간에서 멀어져 가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아 슬프다는 정도로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왠지 꾸밈도 사진도 다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아서 이렇게 드문한 답을 드려봅니다.

정운님이 고르시는 주제들이 그동안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이번에도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할 주제를 선택해 주신것 같습니다. 제게 사진은 꽤 중요한 단어 중 하나거든요.

청춘을 바쳐서 사진을 찍은 것은 아니지만 대학 시절 처음으로 저의 카메라를 갖게 되었고 당시 여러가지 나만의 작품활동을 펼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진을 아주 잘 찍는 사람은 아니지만 당시의 노력 덕분인지 제 마음에 드는 사진은 찍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가끔 사람들과 사진 잘 찍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데 저는 이때 “한 만 장 정도 찍으면 조금 느는것 같아.”라고 이야기를 해 줍니다. 그것을 무턱대고 찍는 것은 아니고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우선 마음에 드는 피사체를 찾고 사진을 찍습니다. 꽃 같은 경우는 처음에 마음에 든 구도에서 사진을 찍겠죠. 그리고 조금 각도를 틀어서도 찍어보고 멀리서도 찍어보고 시간 여유가 있다면 보다 다양한 사진을 찍게 됩니다. 특히 디지털 사진기는 이런 면에 강점이 있으니 더욱 좋습니다. (저는 처음에 인화비가 부담스러워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했는데 돌아보니 그것은 정말 잘한 선택 중 하나였습니다.) 아무튼 그런 사진들을 잔뜩 찍은 다음에 집에 가는 겁니다. 보통은 하루의 일정이 다 끝난 저녁이겠지요. 그 다음 혼자서 품평회를 여는 것이죠. 그리고 사진을 한장만 남깁니다. 100장 중의 1장이 아니라 각 피사체 마다 한장의 사진을 남깁니다. 낮에 화단에서 만났던 빨간꽃의 사진이 10장이라면 1장을 남기는 것이죠. 어느 각도가 좋았는지 촛점의 느낌은 어땠는지 피사체와 공간의 여백은 어느 정도가 좋은지 구도는 어떤지 등등 여러가지 변수들을 생각하면서 사진을 한장씩 지워나갑니다. 그리고 그 피사체를 가장 멋있고 인상깊게 담은 한 장을 남깁니다. 이 과장을 거치면 이 꽃은 왼쪽 여백을 좀 더 남긴 사진이 더 멋있구나. 나는 이런 색감의 사진이 좀 더 마음에 드는구나. 이 사진은 그냥 아무 의미 없이 셔터를 눌렀구나. 등등 자기 자신도 들여다보고 결과물도 들여다 보게 됩니다. 물론 절대적인 촬영 경험도 늘어나지요. 웃긴게 이게 뭐라고 꽤 치열합니다. 좋아하는 피사체에 마음에 드는 사진도 여러 장인 경우에도 피사체당 1장만 남긴다는 철칙을 따라서 사진을 골라야 하니까요. 경험해 보지 않으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모릅니다. 때로는 ‘한장만 더 남길까?’ 하는 고민도 하게 됩니다. 스스로 정한 룰을 무너뜨리고 싶은 순간도 많습니다. 사진 파일은 지워지면 끝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자주 들게 되니까요.

그런데 이 과정을 거치면서 사진을 찍으면 분명 사진이 변하게 됩니다. 사진을 지워야 한다는 절실함이 보다 나은 한장을 이해하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죠. 이런 시간을 통해 사진사는 본인이 좋아하는 구도나 색감을 이해하고 피사체를 해석하는 방법이 늘어납니다. 본인에게 솔직한 사진을 아주 빠르고 능숙하게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절대적인 촬영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촬영 기술이 느는 것도 덤이 되겠죠. 아주 전문적인 수준의 사진을 깨우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것을 고민해야 하고 저도 모르는 영역이기 때문에 뭐라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보통의 경우 이 정도의 연습이면 충분히 스스로의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만장이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지도 않습니다. 1년 정도만 지나면 일상적인 수준에서 쓰기에는 넘칠 정도로 부쩍 늘어있을 겁니다. 요즘은 휴대 전화 카메라가 발달해서 확인도 용이하고 삭제도 편하니 언제든 이 과정을 거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확인하고 조금 더 빨리 경험을 쌓을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이 모든 과정도 괜히 별 것 아닌것에 큰 의미를 두는 지난 시대의 유물일 수도 있고요. 쓰다 보니 문득 옛 사진이 그리워집니다. 저는 지금 잘 찍고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고요. 이달에도 재미있는 주제 감사드립니다.

이훈보 드림.

ps. 사진에는 렌즈나 카메라 자체가 주는 화면의 매끈한 느낌이 있어서 좋은 장비로 사진을 찍 을 때는 더욱 자신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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