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지껄 강자네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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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자지껄 강자네 식탁

발행 2022년 09월 15일 지은이 이영주 그림 이영주 디자인 김정수 인쇄 디자인점빵 주소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호수로3번길 8-29 대표전화 (010) 8704-7475 메일 qaz0209@gmail.com © 2022. 이영주 all rights reserved.

엄마의 계절

엄마 따라하기

먹을 수 없어 더 그립다

시래기 붕어찜

오징어 초무침

애호박 조갯살 볶음

양념

나물

보았다

차례 준비하며 08 프롤로그 11 다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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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40
46 가까스로 흉내내어
54 고구마순 김치 56 고구마순
66 족편 68 빨간
꽃게장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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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 2. Ⅰ Ⅱ

3. Ⅲ Ⅳ Ⅴ

해보니 쉽고 그럴싸하다 80 돼지갈비 새우젓 조치 82 삭힌 고추 깍두기 90 핑크 동치미 98 팥칼국수 104

오직 강자여사 그 맛의 정수, 장과 소스들 112 메주 114 고추장 120 식초 126 엄마와의 시장 로드 132 동대문시장 134 남대문시장 140 엄마의 고기 요리들 146

에필로그 154

준비하며

내 어머니 박강자 여사. 158cm의 키 50kg이 안되는 자그마한 체구에 슬하에 8남매 를 둔 강한 여인. 재주가 너무 많은데 사랑도 많아서 평생을 손으로 베풀며 사셨으니, 편물 과 재봉으로 옷을 지어 딸들을 입히고 아궁이에다 석유 곤로 있던 부엌에 서 가스레인지 갖춘 주방에 이르기까지 밥을 짓고 가지가지 요리를 하시 며 할머니봉양에 많은 자식들을 먹이고 건축 일을 하시던 아버지를 내조 하며 함께 집을 짓던 창조적 에너지가 넘쳐나던 우리 엄마. 어느날 스텐레스 밥주걱을 흙손 삼아 마당에서 백숙 끓일 화덕을 손수 만 드시던 질투가 날 듯 하얀 피부와 아름다운 자태가 곧 나타날 것 같지만 우리 곁을 떠나신지 15년이 지났다. 2020년 난생처음 겪는 코로나 19 바 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세상에 갇혀 내게 주어진 시간 공간을 아까워하며 보람과 의미를 갈구하던 때에 온 가족의 삼시세끼를 집에서 해결하던 고 단함에 문득 우리 엄마의 어마무시한 가사노동을 떠올렸다. 꿈에서조차 먹고 싶은 엄마 밥을 그리워함에 그치지 말고 갑자기 떠안겨 진 시간을 활용해 기억나는 대로 재현해보고 레시피라도 정리 해보자 결 심하였다. 매일 먹었고 엄마가 뚝딱 해주시던, 다른 어디서도 먹을 수도 찾 을 수도 없는 요리들 반찬들 간식들을. 아들 승화는 할머니 밥을 너무 좋아 하여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떻게 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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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냐, 해먹어 보고싶다, 맛이 비슷하다 등 모든 음식의 기준으로 삼아 왔기 에 나의 작업과 시도를 적극 찬성 하였고 딸 서진이 서영이는 틈 나는 대 로 함께 장보고 다듬고 씻고 거들어 주었다. 막상 시작 하려니 너무 많아 암담함이 밀려왔지만 그중 스토리가 담긴 음 식들을 선정해 직접 조리해보고 복원하려 애쓰며 완성한 접시들은 모두 일러스트화로 남겨 레시피와 함께 실었다. 특히 직접 농사지은 신선한 재료를 아낌없이 제공 해준 예비농부인 친구 정연실의 노고가 있었기에, 그동안 기억 속에만 있었던 언젠가 해보리라 생각에 머물렀던 김치와 나물을 만들어보며 엄마의 손맛을 흉내내 볼 수 있었다. 일러스트화 작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신 아뜰리에 로가의 김 윤아 작가님께 너무 감사드린다. 그리고 나의 자유로운 영혼과 호기심, 하는 일도 많은데 하고 싶은 일은 더 많은 욕심을 항상 응원하고 지지하는 나의 영원한 팬이자 동반자인 남 편 현원찬님께 사랑과 존경의 키스를 보낸다. 끝으로 내가 하려는 작업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확실치 않을 때부터 내 이 야기를 경청하며 수개월에 걸쳐 이 책이 현실화 될 수 있게 애써준 디자이 너 김정수가 자랑스러운 나의 제자임에 몹시도 고맙고 감격스러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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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프롤로그

우리엄마 박강자여사는 일제강점기 말 한글탄압이 심할 때 태어 나셔서 이름이 강자로 불리게되었다. 원래 외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 은 “해주”였다. 외갓집 친척 어르신들이 오시면 엄마를 “해주야”라고 나를 보고는 “해주 딸이냐?”라고 부르시던 걸 어렴풋이 기억한다. 엄마는 20세 무렵 고향인 강진에서 서울로 꿈을 찾아 상경해서 편 물, 재단, 디자인 등을 공부하며 재능을 찾았고 편물 기술로 30대까지 돈 을 벌었다. 우리들은 엄마가 짠 니트로 된 내복, 원피스, 장갑, 모자까지 입고 자랐으며, 아버지가 입다 헤진 니트 스웨터나 무릎 나온 내복을 엄 마는 일일이 실을 풀어 물 끓는 솥위에 쪄서 우리들 옷으로 다시 만들어 입히곤 했다. 편물기계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 것은 엄마가 살뜰하게 종잣돈을 만들어 아버지가 건축사업을 하게 되면서부터인 것 같다. 이후에는 편물기계 대신 재봉틀이 앞장섰다. 우리집은 이사를 너 무 많이 다니게 되었고 그 와중에도 계속 가족 수가 늘어갔다. 옷을 사 입는다는 것을 고등학교 때가 되어서야 이해를 했으니 사실 스타킹이나 브래지어같은 특수한 언더웨어가 아니고선 사러 다닐 일이 없었기 때문 이다. 그래도 넷째 영경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종종 옷을 샀던 것 같기도 한데, 지금도 잔 체크의 셔츠원피스나 주름 많은 쉬폰 스커트같은 종류 는 도저히 구매할 수가 없다. 원단 가격과 바느질, 단추등 부자재 원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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훤히 보이는 데다가 디자인도 특별하지 않고 엄마 옷보다 형편없게 여겨 져서 눈에 들어 올 수가 없는 것이다. 자라면서 키가 큰 나에게 만들어 주셨던 지지미나 린넨으로 된 원 피스의 편안하고도 촉감 좋고 딱 떨어지는 핏감은 도저히 요즘 기성복 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 딸들은 개버딘, 혼방, 캐시미어, 알파카, 모 헤어, 노방 등 원단을 저절로 알았고 수입산 단추나 ykk지퍼 등 좋은 부 자재를 척척 알아보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철없던 우리들은 엄마 의 진가를 알아드리지 못했고, 왜 옷을 만들어만 입는지. 잠 못자고 수 고를 해야 하는지, 남들처럼 사면 안되는지 불평을 했다. 도시락가방, 신 주머니, 보조가방 등 엄마가 만들지 않는 것이 없으니 우리 가족들이 가 졌던 모든 소품, 패션아이템들이 요즘 기준으로 보면 희귀템 인싸템이었 는데 말이다. 엄마가 생각할 때 훨씬 더 예쁘고 튼튼하고 싸게 그 모든 걸 만들 수 있는데 어떻게 그 모든 것을 살 수가 있었겠는가. 어느 날은 커튼이 새로 달려있고 어느 날은 꽃무늬 패치로 무릎이 나 팔꿈치를 기워 모양을 냈고, 어느 날은 이불을 꼭 맞는 내 사이즈로 만들어 주셨다, 현미경으로 관찰해보고 싶을 정도로 섬세한 베갯잇 자 수하며 일일이 열거조차 불가능한 끝없는 엄마 작품들. 원래 우리 엄마 였고 늘상 보는 엄마의 솜씨여서 엄마의 재능과 탁월함과 근면함을 소 중한 줄도 대단한

우리 집 곳곳에는

독특한

에너지가 넘쳤고,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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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도 몰랐고 깨닫는데 오래걸렸다.
흔한 게 이쁜거였고 수제품이었고 한 개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엄마는 늘 유쾌했고 웃음이 많고 호탕했으며,

마와 얘기하다 웃음이 터지면 웃음소리를 뱉지도 못하고 뱃속까지 울 리도록 너무 웃다가 그만 울기까지 한 적이 너무 많았다. 주제가 뭔지도 모르겠다. 배꼽아 어디갔냐. 줍지도 못하게 웃다가 얼굴이 다 얼얼할 정 도였고 엄마를 포함한 우리집 7공주들이 떠드는 걸 아빠는 너무 행복해 하셨다. 이렇게 웃고 떠드는 시간에는 20kg 궤짝에 담긴 귤을 하루 저 녁에 다 먹어치우면 아버지는 귤이 배달온 게 맞느냐고 어이없어 하셨다. 엄마는 저녁에 딸들이 다 모이면 꼭 부침개를 했다. 김치전, 부추 전, 파전, 호박전. 있는 것, 남은 것, 먹던 것이 다 부침개 재료였다. 요즘 에는 제과점, 빵집, 카페가 동네 구석까지 너무 많지만 80년대만 해도 번화가로 나가야만 태극당이나 고려당 같은 제과점이 있었고, 시장에 가야 사라다빵이나 고로케 단팥빵같은 메뉴를 갖춘 소박한 빵집이 있 었다. 우리 집은 빵을 사다 먹으려면 너무 많이 사야 했고, 빵을 그리 좋 은 음식으로 평가하지 않아서 나도 동생들도 친구들과도 빵집 다닌 적 이 없었다. 대신 엄마가 막걸리를 넣어 부풀린 반죽을 삼베 보자기 위에 얹어 찜통에 쪄낸 약간 시큼하고 구수한 집빵을 먹었다. 꿀을 잔뜩 뿌리 거나 아예 설탕을 찍어 먹어 보거나, 추석 때 선물로 들어온 맛없는 사 과로 만들어 둔 잼을 얹어 먹었다. 부침개도 막걸리빵도 엄마와 함께 엄 마랑 웃다가 먹은 것들이니 엄마는 얘기하며 부침개를 하고, 웃으며 빵 을 찌고 우리들은 엄마만 바라보니 엄마는 앉을 새가 없이 서서 오가며 움직인다. 그러다 영순이가 젓가락으로 전을 찢어 ‘엄마도 먹어’ 하며 입 에 넣어주고, 나는 ‘내가 해볼게’ 하고 일어서며 엄마를 앉힌다. 엄마는 모든 것을 손수 만들고, 새로운 것도 해보기를 주춤거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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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아서, 동네 이웃분들과 거실에 모여 요리강습을 빙자한 방문판매 주 방용품이나 조리기구를 소개 받을 때면, 낯선 쿠키나 팬케잌, 마요네즈 같은 평소 우리 집에서 잘 안먹던 먹거리들이 식탁에 놓이곤 했다. 새 조 리기구가 아닌 엄마가 쓰던 팬이나 전기밥솥, 믹서기로 만들어 본 것이 다. 처음 나온 전자렌지를 샀을 때, 잘 사용해 볼 줄 알았으나 정말이지 새 것인 채로 너무 아끼고 안써서 딸들이 돌아가며 새 모델이 몇단계나 지나갔다고 엄마를 타박하곤 했다. 요즘에야 전자렌지를 주방 가전 중 냉장고 다음으로 많이 쓸 터(냉장고는 상시 가동임을 감안해서).

갑작스러울 만큼 삶의 방식이 바뀌고, 새 문화를 뒤흔들 획기적인 주방 살림이 많아지고 너무 빨리 변하니 그에 맞게 게을러져도 될 텐데 엄마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끼고 또 모으고 손수하고 직접하고. 엄마는 그렇게 해서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가지는 가장의 무게와 의무라는 고독 한 짐을 나눠지며 8냄매를 키워냈던 것이다. 무한한 사랑이 당연한 듯, 매일 마주했던 밥상이 본래 내 것인 듯, 호사인 줄 모르고 생전의 엄마 에게 엄마가 얼마나 훌륭한 능력자인지 평가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엄마를 가장 오래 차지하고, 엄마의 젊은 시절을 가장 많이 기억하 고 그만큼 불효도 많이 저질렀을 맏딸인 나는 날 포함한 우리 8남매 뿐 아니라 엄마의 손자 손녀들에게도 우리가 지금을 살아가는 모습의 아 득한 밑바닥과 피한방울까지 엄마의 사랑과 헌신이 녹아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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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계절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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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계절

추위가 덜 가신 이른 봄에 시장엔 봄동이나 냉이가 벌써 쌓인다. 요즘엔 비닐하우스 재배가 많아 사실상 채소가 사철 풍성하지만 엄연 히 노지재배 채소들은 존재하니 봄동 겉절이야말로 겨울이 끝났음을 선언하는 음식이 아닐까? 겨울 끝자락에 봄동을 보면 액젓으로 만든 양 념장에 파릇파릇 싱싱하고 달큰한 봄동을 무쳐내고 큰 접시에 담아 통 깨를 뿌려 장식한 엄마의 겉절이가 너무 그립다. 이른 봄 풋마늘이 생으 로 고추장과 상에 오른 것은 오로지 아버지를 위한 것이었다. 덜 맵고 연한 줄기 바로 아래 쪽을 일정하게 토막 내어 가지런히 놓인 파르스름 연녹색의 풋마늘을 김장김치에 물려 가던 무렵 아버지는 너무 맛나게 드셨다. 한 묶음의 풋마늘은 그렇게 저녁엔 초무침으로 며칠 후엔 새콤 짭짤한 장아찌로 입맛을 돋우었다. 내가 하면 도무지 그 맛이 아니니 무 슨 조화 속인지 모르겠다. 봄이 되면 장가르기가 큰 행사로 정월대보름 무렵 소금물에 담가 둔 메주를 건져 된장을 만드는데, 간장으로 빠진 맛도 보충하고 간도 덜 짜게 맞춰야 해서 삶은 보리, 메주가루, 그리고 메주콩을 무르게 삶아 사나흘 띄운 청국장을 섞어 장독에 꼭꼭 눌러 담는다. 메주를 건져낸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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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물은 연한 갈색의 햇국간장(엄마는 조선간장이라 불렀다)이 되는데 쌀 한 말도 너끈하게 담길 만한 들통에 면포를 깔고 부어 메주와 함께 넣었던 마른 고추 숯 건표고를 걸러내고 달인다. 이때는 온 집안이 장 냄 새로 가득하고, 뒷 설거지는 또 얼마나 많은지 된장 단지 옮기랴 미리 닦 아 말려둔 새 항아리 대령하랴 행주 빨아 나르랴 할 일이 끝없이 생겼는 데, 간장 달이는 동안 엄마는 계속 거품을 걷어내며 몇 시간 씩 서 계시 니 어쩔 수 없이 흘리게 된 장부스러기와 간장 국물을 몇 번씩 닦아내고 걸레 빨아가며 시끄러운 동생들 단속은 모두 내 몫이었다. 할 일이 쌓이는데도 가족들 끼니 때가 오면 엄마는 햇된장으로 찌 개를 끓이셨다. 너무 시커멓지 않고 노르스름한 된장 빛깔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고, 호박에 굵은 멸치 몇 마리 넣어 된장으로만 맛을 낸 뚝배 기에서 보글대던 찌개의 냄새, 소리, 너무 뜨거운 뚝배기를 맨손으로 식 탁에 옮기던 엄마의 엽기적 손놀림을 어찌 잊으랴. 달여 놓은 간장이 식 으면 엄마는 씨간장을 조금 떠서 섞는다. 새 항아리에 담겨 햇볕을 받으 며 발효와 숙성을 거쳐 비로소 엄마의 장이 되었다. 엄마의 씨간장은 다 름 아닌 엄마가 결혼해서 처음 담근 간장이다. 40 년을 숙성하며 색이 더욱 까맣고 농도도 진해져 햇간장보다 걸쭉해졌고, 몇 번씩 이사하고 장마, 눈보라를 피하며 간수한 엄마의 보물이어서 우리 자매들은 엄마 가 돌아가신 후 작은 단지에 모두 나눠 가지며 나름대로 맛을 이어가보 자 다짐했었다. 언제나 엄마는 생선을 궤짝으로 사온다. 조기, 전갱이, 황석어 등 궤짝 속의 조기는 크고 작은 것들이 뒤섞여 넘치도록 담겨있다. 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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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린 것을 도매로 사오신 것이다. 봄 조기 철이 왔다. 맛있는 것을 푸짐하게 먹으려면 직접 손질할 수밖에 없으니, 마당 에선 욕조만한 빨간 고무 통에 생 조기가 가득 담기고, 엄마는 그늘 쪽 에 자리 잡고 도마 위에 놓인 조기를 척척척 싹싹싹 비늘을 벗기고 한쪽 에 쌓아 소금물에 한번 헹구어 채반에서 물기를 뺀다. 집안의 누구라도 엄마를 도울 수밖에 없다. 생선에서 물이 빠지면 마당에 빼곡이 가지런 히 널어 하루 반을 꾸덕하게 말리면 크기 별로 분류 해야 한다. 제일 크 고 늠름한 제사상에 올릴 것 구워 먹을 것과 찌개 끓일 것을 구별하고 터지거나 머리가 없는 것 등 짜투리는 말리지 않고 젓갈이 되어 얼마 후 젓갈무침이나 김치 속이 된다. 봄 조기는 특히나 알이 꽉 찬 게 많아 기 름지고 고소해서 알맞게 간이 밴 조기는 굴비가 되기도 전에 우리들이 먹어 치웠다. 아버지상에 올린 조기는 특별히 예쁘고 통통했는데 어느 날 저녁상에 오른 조기 몇 마리를 엄마 몫을 고려치않고 당연스레 아버 지가 다 드시는 게 밉기도 하고 서운했던 나는 먹지도 않은 동생에게 왜 엄마 드실 걸 안 덜어두고 먹느냐 일부러 나무랐었다. 일반적으로 굴비는 특별히 비싼 식재료라서 20마리 한 두름씩 파 는 것을 사 먹는 가정이 대부분이며 우리 집처럼 도매로 한 궤짝을 사서 직접 손질하는 집은 매우 드물고 또 한 궤짝 중 열 댓 마리 정도 들어 있 는 매우 큰 조기가 그 한 궤짝을 대표하는 값이 나가는 귀물이라는 것 을 나도 결혼 후 장을 직접 보고 살림을 배우며 알았다. 조기뿐 아니라 계절이 바뀌면 제철 식재료가 알려주니 5월까지 엄마는 할 일이 너무 많아 나열하기도 어렵고 기억이 다 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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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따스해지면 하루가 멀다 하고 새 식재료가 들어 온다. 꽃게 철이 되면 뾰족한 집게발을 칼로 쳐내 가며 손질된 게가 금방 빨간 옷을 입고 상에 오르고 떨어진 발들을 모아 국이나 찌개가 맛있게 끓여지고, 처음 나온 저장마늘이 몇 접씩 엄마 손을 타야 했고 쪽파김치, 오이지 와 소박이, 양파 초절임, 햇배추 데친 김치 등등.. 밖은 온통 화사한 봄볕 이고, 수시로 옮겨 심는 엄마의 정원은 화려한 꽃들이 경쟁하듯 피어날 때 사이사이로 호박이나 가지가 자라고 언제 뿌려진 씨앗인지 당귀잎이 연하게 나면 호박잎과 따서 찌고 쌈밥을 먹곤 했다. 엄마는 각종 김치와 젓갈을 함께 차리고 돼지앞다리나 목살을 빨갛게 양념하여 대파로 향 을 입힌 제육볶음을 제일 큰 접시에 가득 담아 상에 옮기면서 딸들 이 름을 번갈아가며 불렀다. 더워지기 시작하고 장마가 오기 전 까지 엄마는 더 분주하다. 여 름에 태어나신 아버지 생신상도 준비하고 제사가 있으며, 5월생 딸이 둘 이나 있으니 머릿속은 늘 식비 계산이고, 식재료가 상하지 않게 하는 모 든 저장법이 총동원 된다. 절이고, 말리고, 기름종이에 싸고 . 여름철 김치는 열무김치가 최고다. 얼갈이배추와 열무를 함께 준 비해 손질하는데 한 젓가락에 집을 때 적당한 길이로 잘라 절일 통에 담 는 엄마의 눈대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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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한 손놀림으로 김칫거리 중 억세 보이는 것들 을 따로 골라 데친다. 잠깐 절여야하는 열무와 얼갈이를 너무 뒤적이면 풋내가 나고 맛이 없으며 젓갈을 많이 쓰면 안된다는 엄마의 설명과 함 께 김치국물을 만들 확독에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양념에는 청양고추와 홍고추가 예쁘게 동동 뜨고, 먹다 남은 찬밥을 베보자기 주머니에 넣어 주무르면 밥의 전분이 빠져나와 풀국 역할을 하게 되는데 옆에서 거들

던 나는 꼭 질문을 한다. '이번엔 밀가루 풀 안 만들어?' 김치에는 발효양 분이 꼭 들어가야 하는데 여러 가지 응용하면 된다고 때에 따라 다르다 는 엄마의 짧은 대답은 후에 수많은 김치를 담고 연습하면서 두고두고 나의 노하우로 발전했다. 찹쌀로 죽을 쑤거나 감자 삶아 으깨거나 밥을 갈아 넣는 등, 엄마는 가족들이 먹다 남긴 밥을 상하기 전에 김치 양념 에 쓰신 것이고, 이뿐 아니라 배나 홍시 같은 과일, 인절미 백설기 등 떡 남은 것도 버려지지 않고 죄다 양념이 되었다.

확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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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되면 햇고구마순, 깻잎이 산더미로 주방에 쌓인다. 엄마 손 톱이 남아나질 않는다. 가격이 두 배도 더 되는 손질된 채소를 사오실 리 없고, 자주 다니던 모래내시장에서 몇 단씩 잔뜩 이고 오는 엄마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곤 했다. 여름 열무김치는 비빔밥나 국수 말이로 너무 많이 먹었고, 김칫거리 다듬을 때 데쳐둔 억센 부분은 된장에 무친 나물이나 마른 새우로 다시물을 만들어 국을 끓이는 등 정겹고도 단정 한 여름 밥상을 장식했다. 엄마 자신은 6월에 제철인 병어를 무척 좋아하셨다. 조림, 구이 뿐 아니라 세꼬시로 썬 어린 병어회나 야채 듬뿍 넣은 회무침을 너무 맛깔 나게 하면서도 선뜻 먼저 드시진 않았다. 엄마가 특히 좋아하는 걸 아버 지도 아시는지 노량진 수산 시장을 함께 가시면 꼭 덕자 병어를 사오셨 다. 이 녀석은 정말이지 쟁반만큼 큰 것도 있었는데 토막을 쳐서 단면을 보면 너무 두툼한 게 뼈는 부드럽고 입은 작고 배알도 조금이라 버릴 게 별로 없고, 조림하면 살살 녹는 생선살에 달콤 짭짤한 양념이 어우러져 말 그대로 저절로 밥을 불렀다. 엄마는 병어 조림 냄비에 무나 양파 감 자 호박 등을 투박하게 토막 내서 깔고 병어를 위에 올려 양념장을 끼얹 는다. 끓기 시작하면 중불로 은근하게 끓이며 졸이면 말도 못하게 근사 한 냄새가 진동 한다. 제일 맛있어 보이는 가운데 토막을 엄마가 드시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을까? ‘엄마 빨리 앉아, 얼른 먹어’ 내 동생 영순이 는 병어조림을 좋아 하는 엄마를 항상 재촉하고 채근했다. 철없고 젓가 락질도 서툰 자식들이 헤집어 둔 접시만 드셨던 게 늘 생각나서 죄스러 운 음식이 병어조림이다. 돌아가시기 몇 달 전 인천 만수동의 소박한 식 당에서 딸들과 같이 사먹은 병어 회무침과 된장국을 끝으로 스스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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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대접하진 않으시고 남편과 많은 자식을 위해 요리하고 예쁘게 담아 먹이는 수고만 너무 오래 하셨다.

여름철,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가 없고 가족은 많으니 채소 반찬 은 거의 김치 종류이고 오이지 참외지 등 절임류, 장아찌를 번갈아 무쳐 먹곤 했으니 며칠에 한 번씩 김치를 담아 대서 엄마의 확독은 물마를 틈 이 없었다.

그러니 젓갈 종류가 셀 수도 없다. 차도 없던 시절에 새우를 몇 말 씩 사 나르고(오젓 육젓 추젓까지 종류도 많았다), 생멸치에 황석어. 실 갈치 꼴뚜기가 입구 넓은 유리병에 젓갈이 되어 담겼다. 엄마는 젓갈 중 최고를 곤쟁이젓이라고 하셨다. 곤쟁이가 뭔지 몰라 새우 새끼인 줄 알 았으나, 알고 보니 ‘자하’라고도 불리는 곤쟁잇과의 생물이었으니 젓갈 로 보면 붉은빛 보다는 연보랏빛 핑크색으로 곰삭아 입자가 거의 안보 이는 풀죽처럼 보여 양념으로 쓰거나 김치에 넣을 때도 갈거나 다질 필 요가 없었다. 계란 요리에 아주 조금 넣거나 깍두기를 1cm로 작게 담을 때 꼭 곤쟁이젓을 쓰셨는데 옆에 있는 내게 젓가락으로 조금 찍어 맛을 보여 주셨다. 온 몸을 휘감는 짜르르한 감칠맛에 코 끝을 스치는 쿰쿰하 고도 달짝지근한 냄새까지 생생하니 곤쟁이젓을 넣기 전 후의 확연히 다른 맛의 차이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할 정도인데 어떻게 재 료를 구해 만들어볼지 엄두가 나지도 않는다. 젓갈을 담고 간수하고 보관하고 활용하는 일은 너무 고단하고 괴 로움이 따른다. 멸치만 해도 생멸치를 보면 속이 터진 것 머리가 없는 것 이 다 섞여 있어 진젓으로 쓸 것과 무침용으로 쓸 것을 골라야 한다.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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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몸통이 비교적 깨끗한 것은 무침용이고 나머지는 진젓인데, 다 숙성 이 된 진젓을 갈아 걸러 김치 양념용으로 담아두고 찌꺼기는 끓여서 어 간장를 만들었다. 그 냄새는 다 어찌할까? 다 그렇거니, 누구네 집이나 이렇게 장과 젓갈을 직접 만들어 먹나보다 했으나, 특별히 우리 엄마가 가진 솜씨였고 부지런함이었으며 알뜰함이었다. 젓갈 통에서 통통한 멸 치를 골라 일일이 뼈를 빼내고 잘 삭은 멸치 살을 발라 매콤하게 무친 양념장을 꼭 노란 배추 속잎과 곁들여 쌈으로 한입에 드시던 엄마를 나 도 따라 해본다. 제일 작은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멸치젓을 국물과 조 금 넣고 마늘을 듬뿍 넣어 끓여 만든 양념장에 미역쌈과 먹고 삼겹살에 곁들이거나, 호박 또는 두부찌개를 끓였다. 뉴스를 보면 가뭄이라서 홍수라서 태풍이라서 배추가 금추가 되 고 고추값이 널뛰고 양파 파동이 나는 등 장바구니 물가가 들썩여도 특 별히 우리 집 밥상에서 반찬 아쉬움을 못느끼며 자란 건 혹시 나만 먹성 이 좋아서 그런걸까? 엄마는 그 계절에 가장 흔하고 싱싱하고 값싼 재료 로 마술을 부렸고 장독대와 냉장고 속 저장 음식을 적절하게 꺼내 섞어 먹으며 가족들 각자의 입맛도 고려하려고 애쓰셨다. 가을맞이는 봄맞이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미 8월 말이면 고춧가 루 걱정부터 시작된다. 건고추 시세가 초읽기에 들어가고 작년 한해동 안의 우리집

모이면 정보가 수

쌓인다. 신안에 가뭄이 심하니 올

소금이 좋을 테니 쟁여두고 간수를 빼야 한다

그리고 우리집 주방 뒤 장독대의 소금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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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량을 계산해서 태양초 몇 관을 사야하나 농사가 잘 된 고추 산지는 어딘가, 엄마와 친구분들과 이웃분들이
없이 오고 간다. 천일염도 몇자루씩
해는 댓발이 섰을 테고
는 등 엄마가 했던 얘기들이,

이 기억에 생생하다. 젓갈, 김장, 오이지, 고추지, 각종 장아찌 등 소금 쓸 일이 천지니 미리미리 확보 할 수밖에. 봄에 젓갈을 그렇게 담았어도 가 을에는 또 추젓을 담고 김장준비를 한다. 아버지가 건축일을 한창 하실 70년대 후반엔 배추 두 접 김장은 기본, 설탕과 밀가루가 다 20kg 포대 로 들어왔다. 가을걷이가 끝난 후 햇찹쌀이 멥쌀과 가격이 비슷할 때 찹 쌀을 미리 사서 쟁여둔다. 김장 때 풀도 쑤고 고추장도 해야 하고, 새알 심 팥죽에 오곡찰밥, 약식 등 엄마의 특식이 이어졌다. 수입이 일정치 않 은 아버지의 직업에도 겨울은 나야 하고, 가족 수가 많아도, 학비가 무 섭게 들어가도, 엄마는 재봉틀로 한 켠, 주방 살림으로 한 켠, 돈을 벌면 서, 돈을 아끼면서 본인 몸을 혹사시키며 조금이라도 더 풍성하고 넉넉 하게 먹이고 입혔다. 손도 빠르고 몸도 빠르고 눈도 빠르고 입도 쉬지 않 으며 한 번에 몇 가지씩 만들고 치우고 다음에 이어 할 것을 찾고 계산 하며 보이는 자식들에게 잔소리, 심부름, 지시할 것, 해야할 것을 일일이 지적하니 언제 세수라도 했던 걸까. 우리 엄마는 너무 예쁘고 아름다웠 다. 난 항상 엄마가 스스로의 미모에 조금이라도 집중하길 바랬다. 더 예 뻤으면 했고, 화장대 앞에 더 앉아 있길 바랬다. 너무 바빠서 어림도 없 는 소망이었지만. 가을볕이 너무 좋은 어느 날 조금 일찍 집에 들어갔을 때 시끌 벅적한 우리 마당에 엄마는 서해안 대하를 잔득 펴 놓았다. 밝은 곳에 서 새우에 섞인 잡생선들과 해초 찌꺼기, 그물조각과 티를 골라내고 있 다. 아주 굵은 것, 조금 작은 것, 아주 못생긴 것을 분류 작업중이다. 나 는 왠거냐고 물으면서도 올 것이 왔다 생각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목장 갑을 끼고 돕다가도 결국엔 맨손으로 할 수 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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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려다보니 어쩔 수 없다. 내가 마무리하고 채반 등 그릇을 정리할 동 안 엄마는 새우구이에 튀김 등 너무 맛난 요리를 준비하고, 손가락길이 의 새우는 머리를 떼고 소금에 절여두고, 무를 납작하게 썰어 못난이새 우를 듬뿍 넣은 김치도 한 통 만들며, 배추 속대를 길게 대충 찢어 새우 사이에서 골라낸 잡생선들을 함께 넣은 된장국을 끓여 놓는다. 다음 날 아침에 식구들에게 먹여 내보낼 계획이신 것이다. 남은 야채, 버섯, 대파, 무청, 배추 겉잎까지 알뜰히 다 쓴다. 새우를 실컷 만진 손은 자기 전에 아무리 보습크림을 발라도 밤새 욱신대기 일쑤이다. 새우가시에 손끝이 찔려 보이지 않는 상처가 가득하기 때문. 가을 채소 중 배추는 정말이지 너무 달큰해서 매일 새로운 반찬 이 되었다. 특히 배춧국. 모래내시장에 따라가서 꼭 사자고 조르던 게 어 묵이었는데, 엄청난 크기의 튀김 솥이 몇개나 끓고, 어묵이 둥근 것, 넓 적한 것, 가운데가 뚫린 것 등을 조리사들이 빠른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가득 튀겨 내는데, 그 고소한 냄새는 참을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서 몇 개씩 주워 먹곤 했다. 그 중 넓적한 것을 길게 국수 가락처럼 썰어서 배 추와 끓인 국은 계속 먹고 싶어서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간을 된장 으로 해도, 새우젓으로 해도, 국간장으로 해도 다 맛있었다. 동생 영순 이와 만나 엄마 얘길 할 때면 그 때 모래내시장의 어묵을 잊을 수 없다 고 서로

계속 먹고 싶을 때 배가 조금 아프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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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다퉈 떠들곤 한다.
하면 화가 날 정도였다고 영순이는 회상한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음력 10월이 지나며 엄마의 생신이었고, 매생이가 처음 나오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때는 한 냄비 가득 거무튀튀

시퍼렇게 끓고 있는데 김도 별로 안나는 매생이국이 도무지 먹고 싶지 않았는데, 이게 요술인지 밥에 말아 꼭 한 숟가락이라고 엄마가 먹여주 면 기가 막힌 오묘한 바다향과 감칠 맛에 눈을 뜬다. 어린 동생들이 안 먹으려 해도 꼭 한 숟가락을 먹였다. 우리 8남매 중 매생이국을 좋아하 지 않는 형제가 누가 있으랴.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매생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탱글탱글한 굴이 듬뿍 들어간 참기름 향 입은 매생이국은 국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되게 끓여서 국으로만 배를 채우곤 했다. 엄 마의 신혼 초에 매생이를 끓였을 때, 생소해 하시던 아버지는 한 그릇만 드셨고 나머지 한 냄비는 엄마가 다 먹었는데, 평소 새모이만큼 밖에 안 먹던 아내가 매생이국을 먹는 걸 본 아버지는 너무 놀라 왜 배가 그렇게 고프도록 굶은 거냐고 했다는 얘길 엄마로부터 몇 번이나 들었다. 매생 이국은 소화가 너무 잘 돼 체하는 법이 없었고, 저녁에 먹어도, 아침에 먹어도, 해장국으로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으며 떡국 떡을 넣거나 소면을 말아 먹어도 최고다. 매생이국을 끓이는 날엔 참고로 굴무침이 함께 등 장할 수 밖에 없다. 요즘엔 아이스박스 안에 비닐 포장된 굴이 일반적이 지만, 예전엔 알루미늄 깡통으로 굴을 포장해왔다. 물론 많이 사기 때문 이었다. 작은 공기로 한 근씩 계량해서 파는 걸 사는 경우도 있었다. 제철 굴을 많이 살 때는 어리굴젓, 굴깍두기 등 겨울 특미를 장만하려는 이유 고, 생굴을 그대로 먹고, 굴 넣은 파전, 뜸 들이는 밥 위에 무채와 함께 굴 을 얹어 살짝 익으면 양념장과 먹는 굴밥도 이때 먹는 엄마 밥이었다. 겨울이 시작되면 모든 채소가 비싸지니 엄마는 대비를 하신다. 아 름드리로 대파를 사서 큰 화분에 심어두고, 김장 때 떼어낸 배추 겉잎을 말리고 데치고 얼리고, 무청을 널어 시래기를 만들고, 호박이며 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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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려두고, 무말랭이도 만들어 둔다. 지금 생각해보면 김치냉장고가 발 명되기 전인데, 한 대의 냉장고로 다 보관이 가능했던 걸까. 의문스럽기 짝이 없다. 주방문을 열면 물부엌이 나오고, 또 문을 열면 밖으로 이어지 는데 집의 북쪽이면서도 볕이 한쪽에 들었다. 볕이 덜 드는 쪽에 김장독 이 4개정도 묻혀있고, 가마니로 덮어두었다. 장독대와 함께 엄마의 팬트 리였다. 얼지 않게 보관된 저장 무, 말린 나물들, 미역, 멸치, 김, 북어 등 해산물과 건어물. 그 때는 건어물도 진짜 바짝 마른 게 많았고, 절여서 건조시켰기 때문에 음식을 하려면 간을 빼고 불리는 수고로움이 필수였 다. 그러니 겨울철엔 비교적 보관이 쉬워 특히 싱싱한 생선을 많이 먹었 다. 지금처럼 귀하고 비싸지 않았지만 당시에도 고가인 홍어는 정말이지 특별한 생선으로 자식들보다도 아버지를 위한 음식이며 엄마도 먹고 싶 은 생선이었는데, 미나리향 가득한 홍어무침은 가히 흉내낼 수도 없고 다시는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특식이었다. 삭힌 홍어 특유의 냄새, 정갈 하게 썰어 장식한 지느러미 부분의 결이 일정한 분홍빛 자태와 홍어애 탕. 같이 곁들인 묵은지와 막걸리 등. 며칠 후 아버지는 홍어가 아직 남 았느냐고 엄마를 채근하고, 따로 남겨둔 예쁜 부위를 아버지께만 드렸다. 200포기씩 담아 둔 김장 김치 덕분에 우리의 겨울은 풍년이었다. 돼지고기 전지를 껍질과 비계가 얇게 붙어 있는 부위로 골라 큼직하게 썰어 밑간하여 볶고 김치찌개를 끓이면 순간 이성을 잃은 듯이 먹고 또 먹었다. 동태를 토막 내서 쌀뜨물에 담갔다가 콩나물에 김치를 함께 얹 어 끓여낸 찌게 또한 겨울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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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배합인지 그 맛을 재현할 수 없 는 김치부침개와 시어진 김치 다져 넣은 김칫국, 굵은 다시 멸치 한 줌을 바닥에 깔아 양념을 다 털어내고 행궈 낸 김치를 위에 얹고 들기름을 둘

러 보글보글 끓인 묵은지 지짐 등 잊을 수 없는 집밥 친구들이 다 긴긴 겨울에 김장 김치가 아니면 채워질 수 없는 맛이고 풍경이며 엄마의 지 혜와 알뜰함이 섞인 솜씨의 풍요로움이었다.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박은 궤짝에 20kg씩 담긴 귤, 늦게 오실 때 사오시는 아버지 손에 들린 통닭 이나 순대, 잠도 안자고 떠들며 노는 딸들에게 부침개나 주먹밥을 해다 주시던 엄마의 양념같은 잔소리, 100권짜리 딱다구리 그레이트 북스 문 고판 책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읽으면서 먹던 구운 떡 등 우리들의 겨울은 배부르고 따스했고 안전했다. 뜨끈한 방바닥에 깔린 요 밑에 귤껍질 마 른 것, 과자 부스러기 등이 청소 때마다 나오곤 했다. 8명의 자녀를 키우고 무시무시한 주방 살림에 여느 식당보다도 바 쁜 상차림과 간식거리가 끊이질 않았음에도 쓰레기가 이웃들보다 적게 배출된 우리 집 사정이 분리수거 개념조차 없던 시절임에도 알고 보면 순 전히 아끼고 또 아껴서 풍요로웠던 엄마의 살림 솜씨였고, 노하우였고, 진 짜 집밥의 참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엄마는 모든 식재료는 구입해 온 바로 그 날 모두 갈무리를 하셨다. 무가 반개만 필요해서 쓰고 남은 무는 채 썰어 무나물이 되고, 한 줌 정도 남은 부추나 실파, 쪽파는 양념장을 해 두셨다. 양념장도 매운 것과 안 매운 것 두 가지로 만드는데, 안 매운 달달 한 양념장이 또 마법이다. 막 삶은 쫄깃한 국수나 한 쪽만 익힌 계란프라 이 얹은 밥에 파트너가 되는데, 어엿한 숙녀로 자란 조카 채민이도 할머니 음식 중 또 먹고 싶은 걸로 간장비빔국수를 꼽았다. 어릴 적 입맛이 이리 기막히게 영원할 수 있을까. 엄마의 자식들 손자들 중 양념장에 비빈 밥이 나 국수를 모를 수 있을까. 정말이지 다시 먹고 싶고 그립다. 특히 감기 몸 살이 오거나 계절을 타서 입맛이 없을 때. 급히 나가는 딸을 불러 한 숟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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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 넣어주던 엄마의 다급한 발걸음까지. 내가 관리하는 내 냉장고 속을 볼라치면 말라서 못쓰게 된 당근이 나 물러진 풋고추가 꼭 나오곤 하는데, 참... 엄마는 남은 채소가 있을 수 없으니 모조리 채 썰어 부침개가 되거나 다져서 볶음밥에 넣거나 주먹 밥을 해서 들고나는 자식을 불러 입에 넣어주셨다. 특히 멸치볶음한 프 라이팬에 남은 채소를 다져 밥과 한 번 더 볶아 김에 싸서 뭉쳐 만든 주 먹밥은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양쪽 허벅지가 잔뜩 욱신거리고 무거워 도 뛰어가 냉큼 받아 먹고 싶을 정도였으니. 나도 내 자식들에게 주먹밥 을 만들어 먹여보곤 했다. 어떻게든 우리 엄마같은 엄마가 되어가는 나 는 어릴 때 엄마처럼 일 속에 묻혀 살지 않으리라고 골을 내던 청소년기 를 보냈었다는 고백을 한다. 정말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내 엄마 박강 자 여사의 밥을 먹으며 자란 것이야 말로 나의 건강과 체력의 원천이고 엄마와 함께한 무수한 장보기와 시장 나들이는 식재료에 대한 혜안을 배웠던 학교였을 뿐 아니라 내가 고르는 모든 음식의 기준이 되었다. 엄마의 계절을 따라가고 엄마의 뒷모습을 좇으며 엄마의 맛을 나 도 내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고 불가능하다. 두 세배, 아니 몇 백배로 시간을 쪼개가며 남들보다 치열하게 생을 살아내신 우리 엄마의 열정과 재능과 성품과 체력, 그리고 그 모든 걸 가능케 한 엄마의 사랑을 어떻 게 흉내라도 낼 수 있겠는가. 더구나 미모까지. 대학 시절 아버지가 지은 남가좌동집 마당에서 어린 동생들과 진돗개 황진이가 뛰놀던 때, 엄마

한 폭의 풍경이 어느 날 꿈에 나오면 설명

수 없는 맛있는 음식 냄새가 함께 생생하니, 내게 주신 사랑이 아직 도 나를 어루만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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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가꾼 꽃과 감나무가 있던
30 엄마의 계절 엄마 따라하기Ⅱ

다시는 먹을 수 없어 더 그립다

가까스로 흉내내어 보았다

해보니 쉽고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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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먹을 수 없어 더 그립다 한 그릇의 사랑 힘들고 지치고 어려움에 처한 자식에게 어미는 어떤 사랑을 줄 수 있을까. 모든 어려움을 없애줄수도, 순식간에 이겨낼 힘이나 해답을 줄수도 없다. 다만 한그릇의 밥을 먹일뿐이다. 우리엄마는 한 그릇의 밥을 가장 맛있게 해주셨다. 언제나.

시래기 붕어찜 오징어 초무침 애호박 조갯살 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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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먹을 수 없어 더 그립다

시래기 붕어찜 대신 생선찜

시골 사시던 외할머니는 항상 머리에 한 짐을 이고 오셨다. 곧 추석 이어서 아직은 덥지만 아침 저녁으로 서늘하던 무렵 나는 중학생이 었고 우리들의 쌍둥이 남동생이 태어나기 전이다.

6공주네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당시 엄마는 너무 지쳐계셨다. 시어 머니인 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계셔 엄마를 괴롭혔고 할머니는 풍채 가 좋으셔서 씻기기도 힘들었다. 고생스러울 게 뻔한 딸에게 뭐라도 해주실 의도인지 외할머니는 고 향 먹거리를 잔뜩 이고 오신 것이다. 낙과로 떨어진 떫은 감을 절여 만든 감장아찌나 말리지 않은 염장 미역, 동네 개울에서 잡은 붕어 같은 시장에서는 팔지도 않는 식재료들.

다시는 먹을 수 없어 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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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돌아온 나에게 외할머니의 빠르고도 구수한 사투리가 들 렸다. 외할머니는 무척이나 활기찼고 내게 엄마를 도우라고 당부하 며 얼굴을 어루만지곤 하셨다. 외삼촌네에서 추석 때까지 지내시려 고 오신 듯했고, 며칠 후 또 오실 것이다. 부엌에 가보니 외할머니가 손질해두신 식재료가 정리되어있고 엄마는 시래기를 된장에 주무 르고 있었다. 낯선 비주얼의 배가 볼록하고 튼튼해 보이는 물고기가 눈에 들어와 나는 엄마한테 묻는다. 얘는 대체 뭐야? 시골서 잡아 온 참붕어야. 잉어보다 몸에 좋다고 할머니가 가져오셨어 붕어는 어른 손 크기는 될 듯 제법 컸다. 뾰족한 입에 둥근 배, 빗 자루 같은 꼬리지느러미가 신기해서 손으로 눌러보니 단단한 살이 느껴졌다. 엄마는 손이 빠르게 요리 준비를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원래 붕어는 겨울에 맛있는데 아직 이른 철이고 흙내가 나서 맑은 물에 사는 것을 잡아야 한다고. 냄비 중 크고 넓적한 것을 골라 된 장 양념한 시래기를 깔고 붕어를 얹는데 붕어 배를 갈라 손질한 게 보인다. 엄마는 붕어 몸통 양쪽에 칼집을 두 번씩 더 넣고 들기름을 바른다. 쌀뜨물을 붕어가 조금만 보일 때까지 붓고 끓이기 시작한다. 이상한 생선비린내가 각종 양념 냄새와 어우러지고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저게 맛있는 음식인가? 아님 어른들 맛인가. 항상 저녁만큼은 상을 펴고 다 같이 둘러앉아 먹었는데 대충 자리 는 정해지기 마련, 치매를 앓고 계시던 할머니 식사는 미리 챙겨드 린 뒤 아버지를 기다렸다 먹는 저녁이 일상이었다. 동생들은 낯선 생선요리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늘 배탈이 걱정인 영순이는 검증된 음식만 먹어야 안심이라 겁이 나고 다른 동생들은 가시에 생소한 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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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머지 익숙한 반찬만 먹고 있는데, 아버지는 생선찜 냄비 아 래쪽의 시래기를 한젓가락 집어 밥숟가락에 얹어 크게 한입을 드시 며 외할머니 근황을 엄마한테 묻는다. 어떻게 아직 더운데 붕어를 챙겨오셨냐는 반가움 섞인 물음. 입맛이 도니 밥을 더 먹을 것 같다 는 말. 열무김치도 맛이 잘 들었다는 칭찬. 그리고 뒤이어 옆에 앉은 나에게

'영주야 붕어 먹어라. 이런 맛을 어디서 찾을 수가 없으니 꼭! 이게 붕어냄새야 너희들도 먹어봐. 보약이나 마찬가지야. 아니 지 보약보다 귀하지, 맑은물에 사는 붕어는 팔지도 않으니 산 삼보다 낫지. 아 당신도 먹어 만들지만 말고. 어머니가 당신 먹 이려는건데.' 평소 말을 많이하신다고 느낀적이 없는데 우리 아버지는 왜이리 붕 어찜앞에서 흥분섞인 표현과 수다가 쏟아진걸까. 아버지가 저리 맛 나다는데 또 권하기도 하시니 된장베이스에 생강향 섞인 붕어 살을 한젓가락 먹어본다. 분명 코에서는 이상하고 생소하고 낯선, 비린내 라고만 한정지을 수 없는 거부감 드는 냄새가 나건만. 혀에서는 달 고 구수하게 녹아버리는 기막힌 단백질의 감칠맛에 침이 턱밑이 아 프도록 고이고 밥없이 붕어로만 배를 채우고 싶었다. 엄마는 원래 이건 시래기가 맛있는 거라며 김에 밥을 얹고 시래기를 올려 입에 넣어준다. 젓가락으로 시래기를 들어 밥을 감싸서 한입, 두입 눈으로는 붕어가 몇 마리였나, 엄마는 붕어를 먹고있나, 다른 동생들은 하나도 안먹네 등 내가 붕어를 얼마나 더 먹을수 있나 계 산하며 밥상 주위를 살펴본다. 이때 붕어는 내 인생에 들어왔다. 정말이지 아무 때나 먹을 수 없는

다시는 먹을 수 없어 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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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요리. 3번 먹었나 4번 먹었나. 그리고는 현실에서 사라져버렸다. 기억속에 박힌 그대로 잊히지도 않는데 . 어느해 늦가을 3남매를 낳고 일과 생활에 치여가던 무렵 입맛이 뚝 떨어진 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붕어찜 먹고싶다. 어디서파나, 양념 잔뜩 밴 부드럽게 물러진 시래기를 이때쯤 먹어줘야 하는데.'

나는 김장때 말려둔 시래기를 불리며 붕어찜 냄비 속 시래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건강식이니 먹어두자는 평범한 시래기 나물을 만든 다. 내 머릿속에 있는 그 맛과는 괴리감이 커서 내가 만든 시래기 나 물을 더 예쁜 접시에 놓아본다. 맛없는 걸 가려보고 싶어서다. 붕어 는 없어도 생선찜을 먹을만하리라 싶어 비슷하게라도 해보니 코다 리, 우럭, 가자미, 서대와 다 잘 어울렸다. 그래도 특히 풍미가 좋은 것은 말린 우럭을 불려서 시래기를 깔고 약 한불에 뜸을 들인 찜이 제일 그럴듯했다. 내 기억속의 붕어찜을 알 리가 없는 내 자식들은 생선찜을 다 좋아한다. 간장양념에 무를 곁들 인 생선조림과는 구분되는 된장시래기 특유의 구수함에 얹혀진 생선 찜이 더 깊은맛이 나지만 내게는 늘 모자라고 부족한게 내 음식이다. 남편은 항상 내 음식과 요리에 과한 칭찬을 한다. '식당을 해도 성공 했을거야. 정말 너무 맛있어서 화나.' 그런데 정작 나 스스로는 깊은 그리움과 함께, 먹고싶은 엄마밥이 기준이다보니 좋은 식재료가 주 는 신선함을 빼면 당최 뭔가 모를 아쉬움이 항상 있으니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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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기붕어찜 대신 생선찜

준비재료

조리과정

· 시래기 삶은 것

· 우럭 2마리

· 대파 2뿌리

· 양파

· 청양고추

· 다진마늘

된장

· 고춧가루

· 참기름

· 맛술

· 요리당 (생강즙 또는 생강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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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분 / 3인분

시래기를 삶아 껍질을 벗기고 꼭 짜서 7~8cm길이로 썰어 된장에 주물러 양념해둔다.

된장, 고춧가루, 맛술, 다진마늘을 섞어 양념을 만들어둔다.2

생선을 토막내서 생강즙과 맛술을 발라둔다.3

양파와 대파를 큼직하게 썰어둔다.4

냄비에 양념한 시래기를 깔고 손질한 생선을 올린다.5

생선이 잠길정도로 쌀뜨물 또는 물을 붓고, 양념장을 크게 한숫갈 넣고 대파, 양파, 청양고추를 넣고 끓인다. 6 끓어오르면 중불로 줄여 20분 정도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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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기를 먹어보고 간이 잘 배었으면 참기름을 한바퀴 둘러 상에 올린다.

*생선은 우럭뿐 아니라 코다리, 고등어, 가자미, 동태, 민어 등 제철생선을 써도 좋고, 오래 냉동된 생선을 쓸때는 소금물에 맛술을 섞어 담가서 해동시킨 후 조리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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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먹을 수 없어 더 그립다

오징어 초무침

냉동이라도, 생물이라도, 갑오징어라도, 총알오징어라도 모든 오징어 가 다 맛있고 개운하고 반가운 식재료다. 어렸을때는 마른 오징어도 곧잘 먹었다. 연탄불보일러 위에 동그란 철로된 뚜껑은 각종 간식을 구워먹던 그릴이었는데 쥐포나 마른오징어 노가리, 먹태 등을 구워 고추장이나 마요네즈를 찍어 맥주와 곁들여 먹는 맛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나 스스로는 아픈데 없고 무척 튼튼하다고 자부했으나 스무살 무렵 턱관절이 말썽을 일으켜 어느날 움직여지지도 않는데다 편두통까 지 몰고오는 악관절장애가 혹시 마른오징어 때문일까? 진단을 받아 보니 턱이 너무 뾰족해 체형구조상 잘 고장나니 조심하라는 의사의 조언이었다. 정말이지 우습고도 고통스러운 나를 두고 엄마는 턱이 빠지는 내 딸, 턱순이, 턱소리나는 영주 한턱 낼려해도 턱이 빠져 안되겠다 등 힘껏

다시는 먹을 수 없어 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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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며 놀리면서 부드러운 음식으로 달래 주었다. 이제 마른거, 딱 딱한거 먹으면 안된다는 잔소리를 양념처럼 얹어서. 30대가 지나 자 진통제로도 어림없던 턱이 아픈 증세가 거짓말처럼 없어졌다. 식 습관을 고쳐서일까. 어쨌거나 지금까지 마른오징어는 잘 먹지 않는 다. 동생 영순이는 25년 직장생활동안 스트레스가 심할 때 혼자 앉 아 온 얼굴 근육, 턱관절, 위아래 치아를 다 동원해 오징어 한 마리 를 씹고나면 어느덧 기분이 나아진다고 했으나. 치아교정을 하게되 어 마른오징어와 이별하였으니 우리의 친구이자 간식이던 마른오징 어와는 더 이상 만남을 가질 수 없다. 그래도 괜찮았다. 왜냐. 그것은 엄마의 오징어초무침 때문이었다. 요즘들어 재래시장을 가보아도 대형마트를 가보아도 엄마가 요리하 던 크기의 오징어는 잘 보이지 않는다. 대략 몸통만 20cm를 넘기 는 크고 통통한, 오징어다리도 중간에 한번 잘라야 할 정도를 많이 먹은 것 같은데 다 어디로 간 걸까. 연안어장이 달라지긴 한 것 같 다. 싸고 푸짐하게 먹었던 오징어물회가 몇 년 전 속초에서 너무 비 싸서 황당했고, 시중에 파는 오징어들이 너무 작다. 포구 어시장에 가면 갑오징어를 가끔 만나는데 몸통부분이 통통하고 맛있을건 알 겠으나 도무지 가격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도 오징어는 손질된 것이든 냉동이든 장바구니에 자주 담게 되는 친밀한 맛좋은 어물 이 틀림없다. 다만 맛좋은 아이를 더 맛나게 요리하고 싶은데 사실 오징어요리는 막상 만만치 않다. 데치는 것만으로도 요리가 사실상 끝나는 것인데 도 시간 조절이 쉽지 않고, 볶음을 해보면 머릿속의 요리 모양과 전 혀다르게 된다. 즉 야채와 오징어 모양이 살아있고 색깔이 눈에 띄 게 빨갛게 물들고 물기가 별로 없는 마치 기름떡볶이를 접시에 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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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으로 완성하고 싶으나, 실상은 검붉은 칙칙한 빛깔에 국물이 흥 건하게 빠지고 오징어와 양파색이 모두 탁해진 볶음이 되니, 유명 맛 집의 오징어볶음 레시피를 따라하거나 요리 고수들의 비법을 눈여겨 볼 수밖에. 특히 잘 안되는 오징어요리가 바로 새콤 달콤 매콤 아삭 쫄깃한, 미 나리향 가득 품은 오징어초무침이다. 정말 맛나게 해보고 싶건만 매 번 실망한다. 머릿속으로 수십번 엄마가 만들던 손놀림, 양념 넣는 순 서를 시뮬레이션 해 본다. 어쩌면 그리 빠르게 순식간에 뚝딱 썰고 데치고 무치고, 간도 안보셨던 것 같은데 한결같이 맛이 환상적일 수 가. 특별한 날도 아니고 기념할 만한 일도 없는데 오징어초무침이 상에 오르면 그 자체로 즐거움이었다. 상차림이 오징어중심이 되어 화려 했다. 아버지가 편한 홈웨어차림으로 가까운 가게에서 직접 사오시 던 몇 안되는 식재료가 오징어였을만큼 정말이지 엄마의 오징어 초 무침은 아버지가 너무 좋아하셔서 우리식탁에 자주 오르고 오징어 를 무치고 난 양념이 묻은 양푼에 국수나 찬밥을 넣고 참기름을 둘 러 비벼서 먹기도 했던 무척 흔하게 먹던 친밀한 맛인데. 이게 사실 잘 낼 수 없는 맛이었다니. 엄마가 식사준비 하시는 동안 나 아니면 영순이가 곁에서 거들고 돕는 일이 많아서 대부분 요리과정을 보았 다고 생각했으나 도저히 재현할 수가 없다. 준비해둔 채소도, 오징어도 똑같은 것 같은데 왜일까.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은 때 엄마는 과사용으로 인한 손목병이 심해 져 수술을 하셨다. 나는 호기롭게 엄마의 주방에서 아버지가 직접 사오신 오징어를 손질하고 엄마가 하던대로 초무침을 해 보았다. 내 가 먹어봐도 영 아닌데 아버지는 얼마나 실망한 표정을 지으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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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죄송했으니 말이 안나온다. 아빠. 맛이 너무없다 그치? 아버지는 '일단 잘못 데쳤다. 그래도 우리딸이 해준 것이니 맛있구나.' 하셨다. 기억해보니 내가 무엇이든 엄마를 도우려했던 모든 일들이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음에도 아버지는 타박하거나 모자람을 지 적하거나 질책을 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 아버지가 엄마를 불러내는 바람에 열무 김치를 담으려다 말고 그대로 방치된 김칫거리를 내가 힘껏 주므르 고 꼭꼭 눌러 통에 담고 설거지까지 했던 고등학교시절 어느날 아버 지는 영주가 담은 김치라 특별하다고 하셨다. 풋내가 나고 이상해진 데다 간도 안맞은 김치였는데 나중에야 엄마는 열무김치를 다듬고 절이고 통에 담는 과정을 내가 돕게 되었을 때 열무는 절일때부터 살살 다뤄야 풋내가 없고 국물을 잠기게 넉넉히 붓고 청양고추는 시 원한 맛을 준다고 알려주셨다. 어쨌든 엄마가 만들어둔 음식을 차려드리는 것이 아닌, 내가 만들어 서 아버지께 드렸던 음식이라고 꼽는게 엄마가 아프실 동안의 오징 어초무침인데 참, 이렇게 어려울수가. 친정에 갈때면 엄마께 드릴 것 아버지께 드릴 것을 사러 시장이나 쇼 핑센터를 들르기 마련인데 '엄마! 요새 오징어초무침 했어?' 라고 묻고 는 소고기나 과일 외에도 눈에 보이는 통통한 오징어를 꼭 사서 갔다. 한번 더 배워보려는 이유에 아버지가 좋아하신다는 당위성인데, 지 금 이 순간까지 엄마의 손맛은 혓바닥이 알고 눈으로 찍힌 선명한 오 징어초무침 접시가 살아있건만 나의 현실에서 구체화 시키질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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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무침

생물 오징어 1마리

몸통 길이 20cm 이상)

오이

양파

청홍고추

미나리

고춧가루

고추장

식초

설탕

다진마늘

맛술

생강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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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4

20분 / 3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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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몸통을 가위로 자른 뒤 내장을 제거하고 등뼈를 뺀다.

오징어다리의 빨판이 씻겨지도록 손으로 훑어가며 씻고 오징어 이빨, 눈도 제거한 뒤 손가락 길이로 썬다. (몸통도 같은 길이로 썰되, 두께는 1.5cm로)

스텐 소쿠리에 오징어를 담고 끓는물에 넣어 껍질이 분홍빛이 돌면 건져서 찬물에 재빨리 헹구어 체에 받쳐 물기를 뺀 뒤 식초에 버무려둔다.

넓은 볼에 고추장 1큰술, 고춧가루 1컵, 간장 1컵, 요리당 1큰술, 설탕 1큰술, 맛술 반큰술, 다진마늘 1큰술, 생강즙 작은술을 넣 고 잘 섞는다.는 (소주컵 기준)

4번 양념에 식초에 버무려둔 오징어를 넣고 무친 뒤, 오이를 반 갈 라 어슷하게 썰고 양파, 청홍고추를 같은 크기로 썰고 미나리는 통통한 줄기부분을 7~8cm로 썰어 오징어와 함게 살살 버무리 고 통깨를 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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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조리과정준비재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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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 조갯살 볶음

언제나 지나는 길에 청과물가게나 노점상에서 연두색 빛깔의 매끈 한 애호박을 보면 가격을 묻곤 한다. 무슨 반찬을 만들 계획인지 생 각할 필요도 없다. 애호박은 무엇이든 된다. 냉장고 속 비상금이라고 할 수 있다. 보관기간이 며칠은 되고 만들 수 있는 반찬이 갖가지로 여러개니 너무 좋은 식재료인데 영양도 맛 도 훌륭하고 실패도 별로 없으니 과연 우리 밥상에서 애호박을 빼 놓을 수 있을까. 가장 비쌀 때는 명절 직전. 어머나 기막히다 3000 원이 넘다니. 5월 무렵엔 두 개에 천원하는 적도 많다. 싱싱하고 쌀 때 많이 먹는 게 제일 신나는 장보기가 아닌가. 한껏 멋부리고 외출 했다 돌아오는 길에 애호박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아무리 비싼 고급 토트백도 애호박 장바구니가 되는게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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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엔 정말이지 호박이 지천이었다. 셋째 영옥이가 태어난 집 앞 은 공터였는데 엄마는 틈틈이 공터(주인이 누군지 모름)에 채소를 키웠다. 방 두 개와 부엌이 딸린 마당이 없는 조그마한 집으로 대문 이 곧 현관문이어서 문을 열면 곧 신발을 벗고 작은 툇마루로 올라 서서 방으로 들어가는 구조였다. 그 집에서 엄마는 설날 아침 떡국 을 끓여 놓고 영옥이를 출산했었다. 눈이 정말 동그랗고 몹시 예쁜 영옥이를 업고, 바로 앞 공터에 엄마 가 가꾼 채소밭에서 이것저것 그날 먹을 채소를 따기도 하고 잡초나 상한잎을 솎아내거나 호미질을 할 때, 엄마등의 영옥이는 몸을 세 우고 활갯짓을하며 장난치고 영순이와 나는 대문앞에서 소꿉장난 을 하던 순간들이 생생하다. 엄마는 가끔 호박 좀 따오라고 나를 불 렀다. 엄마가 뭘 하시든 눈여겨 보던 나는 어떤 호박을 따야하는지 금새 알아서 적당한 호박을 따서 가져가곤 했다. 엄마는 그 집이 복이 있었다고 했다. 좁고 불편했을지는 모르지만 우리 가족의 첫 자가주택이고 아버지 가 2년여 기간 동안 결핵으로 투병생활을 하다가 회복이 되고 완치 가 된 후 장만한 집이었다. 아픈 남편을 간호하고 혹시 진짜 이별을 하면 두 딸(영옥이 태어나기전)과 살아야 해서 엄마는 이악물고 돈 을 벌었다. 1년 정도는 별거를 하셨는데 어린 딸들에게 병이 전염될 까봐 강진 고향으로 세 모녀가 가야했고 엄마는 고향 마을을 편물 로 평정하고 말았다. 그래서 아버지와 재회하여 가족이 모이게 된 집이고, 그 집은 밑천 이 되어 아버지가 사업할 수 있게 되니 복이기도 했고, 영옥이가 태 어나며 더욱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어 복이기도 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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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닫이 방문을 열면 엄마가 아궁이 옆에서 도마질하고 음식간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내가 따서 가져간 호박은 반 갈라 반달모양으 로 일정하게 썰어져서 좋은 냄새를 풍기며 프라이팬에 담겨있거나, 된장찌개가 되어있거나, 돼지고기와 함께 고추장찌개로 변신하는 등 다양한 반찬으로 상에 올랐다. 초등학교로 들어가기 전인 그때 북가좌동 언덕위의 집. 주변은 황량 했고 가게가 어디있었는지, 어떤 교통수단들이 오고 갔는지는 잘 기 억나지 않지만 우리집 주변에도 작은 주택들이 있었고, 옆집 뒷집도 있었으며 대문안으로 아버지의 자전거가 겨우 집어넣어졌던 우리집 나는 엄마의 부엌을 기억하고 부엌 바로 옆의 방에서 그때는 비교적 젊고 풍채 좋은 할머니와 함께 자던 나날들을 기억한다. 애호박은 그때부터 원초적인 내 인생의 채소이다. 아주 터무니없이 비쌀 때가 아니면 일년 내내 먹는 식재료인데, 내가 어떤 의도로 사 용하든지 배신하는 법이 없다. 호박나물만 해도 5가지이상은 되니 햇수확한 봄에 나온 애호박은 소금간만 해서 기름도 없이 데치듯이 나물해 먹고, 국간장 간에 들기름에 볶거나 물을 조금 넣고 육젓 건 더기를 넣어 한소끔 끓여 참기름을 둘러 먹거나, 굴소스를 조금 넣 고 매운고추와 함께 볶아 먹는 등 갖가지로 응용이 된다. 각종 찌개는 물론 생선과도 어울리고, 칼국수 고명, 잔치국수 고명 으로 채썰어 넣기도 하니 얼마나 기특한지 모른다. 그런데 정작 내 가 먹고 싶은 애호박은 이런게 아니다. 첫 아이 승화를 임신했을 때 나는 처음 겪는 입덧에 그만 깜짝 놀랐 다. 눈을 뜨며 시작되는 느글거리는 구토증. 무엇도 먹기 싫고 세상 에 나는 모든 냄새가 다 역겹고 도망쳐야하니 이건 당최 대책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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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시댁어른들도 매일 새로운 음식이나 신기한 과일을 사다주셨 고 남편도 어쩔 줄 몰라 할 때, 뭐든 먹어야 생명이 유지되니 먹고는 토하고 마시고는 토하고, 토하다 지쳐 잠들고 물마셔도 토하는 나를 남편은 서울집으로 가자며 데리고 나섰다. 친정에 당도하자 퀭하게 변한 내가 심한 입덧중인 걸 아시면서도 아 버지는 이 꼴이 뭐냐고 하셨다. 아버지는 엄마를 부르시며 얘를 뭘 먹여야 하느냐고, 이러다 죽는 거 아니냐고 하셨는데, 엄마왈 날 닮 아서 그런다. 내가 입덧한건 기억도 못하냐고 하시며 안죽는다고 일 갈하고는 주방으로 들어가시는데 내가 따라들어가자 마당에 나가 있으라고 하셨다. 내가 그때 먹은건 뜨겁게 볶은 애호박과 조갯살이었는데 새콤하고 매콤한 맛에 발그레하게 물든 고추장 빛깔이니. 이름을 붙이자면 ‘새콤매콤 애호박 조갯살 볶음?’ 좌우간 이름이야 어쨌거나 며칠을 굶고 먹은 엄마 음식이었다. 조리과정을 보거나 미리 냄새를 맡으면 먹을 수 없을테니 못보게 하신것이라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맛으로 기억할 뿐이다. 엄마는 구토증을 진정해야 먹을 수 있기에 맵기도하고 새콤하기도 한 그러나 따뜻하고 소화 잘되고 단백질도 풍부한 음식을 임신한 딸에게 해주신 것이다. 어느 요리책에서도, 어느 식당에서도 존재한 적이 없는 창조적인 요리였을 터.

정말이지 기막히게도 딱 밥 한 숟가락을 작은 접시에 애호박 서너 조각 조갯살 몇점을 반찬삼아 먹고는 토하지 않았고 정말이지 힘이 났다. 그뒤로도 입덧은 계속되었지만 임신을 견딜 수 있었고 나는 아이를 셋이나 출산하고도 건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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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엄마는 애호박과 조갯살에 소금간을 간단히 해 빠르게 볶아낸 애호박이 살캉하게 씹히고 통통한 조갯살이 그대로 살아서 살짝 익 을 정도로 조리를 했다. 아들 승화는 지금도 이 요리를 기억하며 다 른곳에선 못먹는 외할머니 음식이라고 꼽는다. 엄마한테는 요리로 취급되지도 않는 간단한 반찬이지만 불조절도 어렵고 왜 국물이 흥건하게 되는지. 내가 해보면 잘 되는적이 별로 없다. 더욱이 새콤매콤한 애호박 조 갯살볶음은 성공한 적이 한번도 없고 비슷하지도 않다. 내 자식들 이 맛있다고 해도 내겐 어림없으니. 임신중이어서 그 맛을 느낀건지, 양념이 다른지, 조리순서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애호박을 또 조리해본다. 언젠가 딱 그맛이 나올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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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 3인분애호박 조갯살 볶음

조리과정준비재료

· 애호박1개

· 조갯살 100g

· 양파 반개

· 홍고추1개 or 홍피망 반개

· 새우젓1작은술

· 다진마늘 1큰술

· 다진파 1큰술

· 소금 한꼬집

· 참기름 1큰술

· 깨소금 1/2큰술

애호박을 반으로 갈라 5mm 두께로 반달썰기해 30분간 소금을 뿌려둔다.

조갯살은 찬물에 빠르게 헹궈 체받쳐 물기를 빼둔다.2

양파와 홍고추 또는 홍피망을 채썬다.3

절여진 애호박을 키친타월로 감싸 꼭짜서 물기를 뺀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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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넉넉한 크기의 프라이팬을 충분히 달군 뒤 참기름을 두르고 애호박 양파 홍고추 또는 홍피망을 함께 넣어 20초정도 볶는다. 조갯살 다진마늘 새우젓을 넣고 20초정도 볶는다. 다진파를 넣고 불을 끈 뒤 뚜껑을 덮어 남은 열로 2,3분간 뜸을 들인다. 접시에 담고 깨소금을 뿌려 장식한다.

1) 새우젓 간은 제품마다 차이가 있고 육젓은 건더기가 너무 커서 골고루 간이 안되니 다져서 쓰거나 국물만 쓴다.

2) 조갯살을 많이 넣을 경우 맛술을 1작은술 넣어 비린내를 없애주고 생강을 채 썰어 함께 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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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흉내내어 보았다

김치

나물 족편 빨간 양념 꽃게장

고구마순
고구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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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흉내내어 보았다

고구마순 김치

손이 많이 가는 식재료는 너무 많다. 일일이 껍질을 제거 해야 하는 재첩이나 바지락, 찜요리에 넣을 머리 제거한 콩나물, 각종 김치 부 재료들인 파 마늘 미나리 부추 등을 다듬는 일은 끈기와 인내가 필 요한 정도가 아니라 마음을 진정시키고 도를 닦아야 한다. 그래서 여럿이모여 하거나 드라마라도 시청하며 작업을 겨우 마치면 청소 까지 해야 한다. 음식을 손수 만들어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은 애정 이 담겨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받아 먹는 사람은 수고를 알 길이 없 어 맛이 있네 없네 평가하기 마련이고 주는 사람은 상처 입는 경우 가 있다. 애정과 수고로움을 먼저 알아주면 될 일인데 말이다. 쪽파만 해도 3월말 경이면 겨울에 잘 키워 일정한 길이에 큰 단으로 묶여 파릇하게 놓인 걸 채소가게마다 볼 수 있는데 파김치 한통을 담그려면 몇 단이나 사야 하는가. 한 단만 손질하려 해도 선뜻 사기 힘들 정도로 막막한 마음이 든다. 쪽파김치가 입맛 도는 거야 말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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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도 없지만 저걸 언제 다듬나 오늘 안에 못 끝낼 것 같은데... 이번엔 포기! 주말에나 하자. 그러다 나도 모르게 엄마의 분신이라도 된 듯 흙쪽파를 몇단 사서 또 엄마처럼 보자기를 깔고 다듬을 땐 후회가 반드시 뒤따른다 '이걸 또 왜 샀나.' 내 자식들은 또 맛있다고 먹는다. 남편은 길게 한 줄거리 파김치를 손으로 집어 한입에 먹는 걸 익숙치 않아 해서 적당히 잘라 상에 놓지만 원래 파김치는 흰 부분 푸른 부 분을 함께 먹어야 제 맛이다. 흰밥에 파김치 얹어 김에 싸서 먹는 맛 이야 무엇에 비할까. 생김치의 코끝 때리는 매콤함부터 시큼하게 익 어 턱밑에 가득 침고이는 톡쏘는 풍미까지 변화무쌍한 변신을 보여 주는 파김치는 국물까지 버릴 게 하나 없고 다듬는 수고 외엔 너무 좋은 반찬이자 식재료다. 너무 시어진 파김치도 양파나 무 배추 등 남은 채소와 함께 냄비에 깔고 꽁치, 고등어 등 저렴한 제철 생선 위 에 자작하게 파김치 국물을 부어 지지면 충격적으로 맛난 요리가 된 다. 우리가 늘 먹던 채소로 된 음식들은 한결 같이 수고로움이 뒤따른 다. 다듬지 않아도 되는 나물 요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비름나물이 나 참나물도 싱싱해 보이는 걸 사도 떼어내야 할 잎이 많고 줄기 끝 부분에 억센 부분이 있어서 꺾어 내고 데쳐야 하니, 장바구니에서 나온 즉시 손질해서 조리해야 그나마 온전한 한 접시가 나올 테고 하루 이틀 게으름을 피우면 죄책감과 함께 통째로 폐기 처분해야 할 참사가 일어난다. 망설여진다면 사지 말아야 한다. 알고 보면 소고기 나 돼지고기로 만든 상차림이 오히려 단순 간편하다고 하겠으나 채 소를 곁들이지 않는 고기반찬에 완성도를 기대할 수 없을 터. 영양소 균형에 계절감을 더해 음식을 준비하고 가족과 나눌 음식을 조리하 는 사람은 어떤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게 손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 다는 진리 같은 사실을 깨닫는다. 거기에 물가도 가계부도 가족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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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하고, 상하지 않게 간수해 며칠을 먹을까, 가족들 개개인의 입맛 취향, 식이요법이나 처방식까지 신경 쓸 부분이 너무 많다. 엄마가 여름철이면 자주 하시던 고구마순 김치, 볶음, 무침은 이런 음식 중 단연 최고봉이다. 뜨거운 밥과 먹으면 숟가락질을 멈출 수 없는 극적인 반찬이었다. 바닥에 신문지나 보자기를 깔고 앉은 채, 고구마순을 쌓아 두고 넓 적한 잎을 꺾어 가며 가늘게 껍질을 벗겨내고, 적당한 길이로 손질 된 것을 한 켠에 가지런하게 구분 지어 놓으며 작업하고 있는 엄말 볼 때면 고구마순 더미에 가려서 엄마가 보이지도 않는다고 생각했 었다. 숨 막힐 듯 짜증이 올라오지만 그래도 처음엔 조용히 곁으로 가 앉으며 거들기 시작한다. 20분쯤 지나면 손끝 손톱 밑에 고구마 진이 시커멓게 물들고 만다. 아직 멀었건만…. 나와 엄마는 속도 자 체가 다르다. 왜 맨날 이렇게 많이 사는 거냐고 퉁명스레 묻는 내게 떨이로 싸게 사서 몽땅 가져온 거라며 날 바라보고 웃으시는 엄마 는 ‘주둥이가 코보다 많이 튀어 나왔네’ 하신다. 심통 난 걸 말씀하 신 것이다. ‘씻어도 안 닦아 진단 말이야 엄마 손도 까맣잖아 에이 정 말!’ 내 소리가 커지면 영순이가 옆에 앉으며 ‘언냐! 가서 딴 거 해 내 가 할게’ 한다. 셋이 하면 더 빠르니 같이 하면서도 계속 불평이 주 렁주렁…. 씻고 데치고 절이고 엄만 김치와 나물을 만들 계획으로 바쁘고, 나는 다듬어 낸 쓰레기 치우고 바닥을 정리한다. 어느새 영 순이는 김치통, 풀 쑤는 냄비를 척척 갖다 놓고 있다. 우리 둘은 손 을 맞추기라도 한 듯 어느 시점에 뭐가 나와야 하는지 필요한 양념 이 뭔지 빠르게 준비해 놓는다. 동생들이 먹고 난 설거지 안 된 그릇 이나 엄마 장바구니 속의 다른 물건이나 음식 재료가 있는지 엄마 가 들어오시면서 제대로 걸어 놓지도 못한 가방도 확인하고 정돈한 다. 아버지가 오실 시간이 되어 가는지 시계를 보아가며 밥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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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살펴본다. 나보다 몸이 작고 약한 영순이는 언젠가 아주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은 일을 했노라, 10식구 밥을 할 때마다 쌀바가지에 쌀을 담아 나르는 심부름을 자기가 도맡았노라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 나는 쌀가마니는 누가 날랐겠냐, 쌀독에 쌀은 누가 부었겠냐 받아치곤 했다. 우리 둘은 첫째 둘째여서 항상 둘 중 누군가는 엄마 를 도왔다. 예전에 엄마는 마당에 큰솥을 걸고 일하신 적이 많았다. 돼지 머리 고기를 삶거나 토종닭 백숙을 끓이거나, 이불 홑청을 표백하려 삶거 나 등. 고구마순 김치를 하려 해도 한번 데쳐서 찬물에 헹궜다 절여 야 하고 나물이나 볶음도 삶아낸 다음 해야 하니 마당에 채반이나 대야에다 확독까지 놓이고 홍고추 쪽파 양파 등 재료에 도마와 칼 까지 야외 키친이 차려진다. 그 더운 여름철에 요즘처럼 에어컨도 없 고 주방가구도 운신하기가 엄마 성에 차질 않아서 엄마는 물을 편 하게 쓰고 큰솥을 걸 수 있는 마당으로 나올 밖에. 재료가 다 준비 되면 엄마는 맨손으로 확독에 홍고추를 갈아 양념을 만들어 순식 간에 김치를 버무린 다음 김치통에 옮겨 담고, 확독에 남아있는 양 념에 물을 조금 부어 간을 맞추고 확독을 헹군 김칫국물을 김치통 에 붓는다. 다 정리된 김치통들을 안으로 가져가고 뒷설거지까지 마 당에서 해치우고 장독대에 확독을 엎어두어야 끝이다. 마당에 물청 소며 내친김에 화초들에 물도 주게 된다. 확독은 정말이지 여름철에 엄마가 너무 자주 쓰던 옹기였다. 열무김 치나 겉절이, 데친 김치 등 여름 채소 반찬들이 끝없이 탄생하던 확 독은 분명 엄마의 중요한 요리 파트너였지만, 요즘 우리는 사용할 엄 두도 내지 못하고 핸드블랜더나 믹서기 분쇄기 등 최신 주방 가전 으로 대체 되었다. 가끔 김치 명인들이 TV 프로그램에 나올 때 확

가까스로 흉내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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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등장하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하고 송곳이라도 튀어나올 듯 심장이 조여 오곤 한다. 엄마가 보고 싶고, 엄마가 투영되고, 엄마 김치맛이 그리워서. 나는 기운이 세서 일을 곧잘 했을지는 몰라도 성격이 괄괄한 데 비 해 차분하고 조곤조곤 얌전한 둘째 영순이가 엄마를 더 편하게 배 려했을 것이고 나이 먹어가며 엄마의 모습을 닮아 가는 영순이도 고구마순에는 할 말이 많을 테지만 그래도 김치도 나물도 비교적 자주(나와 비교하면) 해 먹는다. '그 맛이 아니야!' 해가며. 나는 고구 마순을 다듬으려면 산더미처럼 해야 하니(식구가 많아서) 아예 하 고 싶지 않았다. 한 끼 먹을 나물도 안될 만큼 조금씩 파는 손질된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찾지도 않는다. 그런데 마음먹고 고구마순과 화해해 보기로 했다. 친구 정연실이 고 구마 농사를 지었는데 고구마순이 너무 잘 자랐다고 베어다 준 걸 기회로. 업고 들어 와야 할 만큼 큰 포대에 가득 담긴 고구마순을 펼쳐 놓으 니 가관이다. 아득하다 아득해! 마음을 진정하고 담을 통도 미리 말 려두고 양념거리를 확인해 보며 양파, 쪽파, 쓰고 남은 당근도 정리 해놓는다. 고구마순의 껍질을 벗겨내며 앉아있는 주방에 내 자식들은 이게 웬 거냐, 뭘 만들 거냐 하며 번갈아 와서 돕는다. 애들 반응을 보니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 자식들이 나보다 효자들이구나. 나는 미리 귀 띔한다. 손이 까매지니까 장갑을 껴야 한다고. 고구마순을 다듬다 보니 별의별 갖가지 생각과 상념이 수만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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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 갔다. 내 주방은 엄마의 주방에 비해 화려하지만 그렇게 많은 음식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엄마처럼 오래 머물지도 않는다. 갖출 건 다 갖추고는 있으니 어찌어찌 고구마순 김치가 완성되었고 조금 남겨 나물도 볶았다. 50점은 넘겠다 싶은 두 가지 요리가 나오긴 했 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 된장 초무침을 해보고 싶었으나 이미 지쳐 의욕이 사라졌다. 이번 여름엔 이 정도 시도하고 만든 것도 큰 성과 이니 멈춰야 했다. 점심 무렵 시작한 일이 자정을 넘겼으니 뒷정리 도 난감하다. 사실 고구마순 김치는 너무 맛있는 별미 김치여서 계속 먹고 싶다. 과정이 힘들 뿐이다. 쪽파김치와 마찬가지로. 그런데 쪽파보다 고구 마순을 더 미워한 건 엄마 손이 까매질 뿐만 아니라 손톱 밑에 남은 고구마 진이 한동안 안 없어져서였던 것 같다. 항상 너무 많은 일을 하시던 우리 엄마는 잠깐이라도 외출할 땐 순식간에 깜짝 변신하듯 동네에서 제일 아름다웠지만, 고구마순은 그 변신을 방해했던 것이 다. 그런데 나 자신도 무슨 일이건 손이 험해지거나 안 지워지는 흔 적이 남는 나의 작업들이 아무렇지도 않다. 개의치 않고 김치를 담 고, 상관없는 듯 흙과 나무를 만져대고, 찬 것 뜨거운 것도 맨손으 로 잡는 게 간편하니 나는 내가 엄마한테 하던 잔소리나 염려를 다 잊기라도 했나, 내 자식들 핀잔을 무수히도 듣는다. 나도 우리 엄마 처럼 된 걸까? 어쨌든 고구마순과 화해를 했지만 얼마나 자주 할 수 있을지 엄마의 맛을 조금이라도 흉내 내가며 손맛을 이어가 내 자 식들도 해 먹을 수 있도록 보여주게 될지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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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일한다는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그대의 마음에서 자아낸 실로 옷을 짜는 일입니다. 마치 그대의 연인이 그걸 입기라도 할 것처럼.

그것은 애정으로 집을 짓는 일입니다. 마치 그대의 연인이 거기 살기라도 할 것처럼.

그것은 다정함으로 씨뿌리고 기쁨으로 그 수확물을 거두어 들이는 일입니다. 마치 그대의 연인이 그 열매를 먹기라도 할 것처럼.

그것은 그대가 빚어내는 모든 것들에 영혼의 숨결을 불어 넣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축복받은 선조들이 그대 곁에 서서 지켜 보고 있음을 알게 되는 일입니다. - 칼릴 지브란< 예언자> 일에 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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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가까스로 흉내내어 보았다

준비재료

· 껍질 벗긴 고구마 줄기 1kg (2단을 사서 손질하면 대략 1kg정도 됨)

· 쪽파

· 양파 2개

· 청홍고추 2개

· 미나리

· 다진마늘 1컵

· 고춧가루 1컵

· 당근 반개

· 액젓 1컵

· 매실청 or 요리당 or 설탕

· 밀가루풀 (묽게 쑬 것)

고구마줄기를 끓는 소금물에 살짝 데쳐 찬물에 헹군 뒤 소금에 20분 절인다.

고구마순이 절여지는 동안 쪽파, 양파, 당근을 모두 청홍고추와 비슷한 길이(대략7~8cm)로 썰어둔다. 2

3 4 5 6

1 김치 버무릴 큰 볼(양푼)에 풀국, 액젓, 다진마늘, 고춧가루, 요리당 (설탕)을 넣어 양념을 섞는다. 절여진 고구마순을 소금물을 헹구어 건져 둔다. 양념담긴 볼에 물기 뺀 고구마순을 쪽파, 양파, 청홍고추, 당근을 넣어 골고루 섞고 간을 본다. 싱거우면 액젓으로 간을 맞춘다. 통깨를 뿌려 완성, 통에담아 3~4시간 후 냉장고에 넣어두고 하루 지난 후 먹기 시작한다.

· 통깨 밀가루풀 대신 밥을 갈아 넣거나 찹살풀, 감자으깬 것 모두 가능하며 다 맛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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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순 김치 조리과정
66 가까스로 흉내내어 보았다

준비재료

나물

· 고구마순400g (손질한 것)

□ 볶음양념

· 국간장1

· 들기름1/2

· 다진마늘1/2

· 다진대파1/2

· 통깨

· 들깨가루

□ 무침양념

· 된장1

· 들기름1/2

· 다진마늘1/2

· 다진파1/2

· 통깨

□ 된장 초무침 양념

· 된장1

· 식초1/4

· 고춧가루1

· 다진마늘1/2

· 통깨

고구마순을 7~8cm로 잘라 소금물에 무침용은 10분정도, 볶음 용은 5분정도 삶는다.

무침 – 물기를 뺀 고구마순에 양념을 넣고 꼭꼭 주물러 무친다. 무침 양념은 볼에 따로 섞어 만들어둔다. 통깨를 뿌려 완성 2

3

1 볶음 – 팬에 데친 고구마순과 양념을 넣고 주물러 간이 배면 들기 름을 두르고 다진 대파와 센불에 3분 정도 볶은 뒤 들깨가루를 뿌 려 잘 섞고 뚜껑을 덮어 2분정도 뜸들인다. 볼에 옮겨 담아 식히고 통깨를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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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순
조리과정

가까스로 흉내내어 보았다

족편

예전엔 모든 대소사 중 제사나 명절을 빼고도 손님 접대, 생신연까 지 모두 집에서 치렀다. 원래 우리 가족도 대식구인데다 아버지의 거래처나 직원들도 수시 로 우리 집에서 모이는 바람에 엄마의 그릇은 같은 크기의 접시나 종지, 밥공기, 국그릇들이 보통 20개씩이었다. 국냄비, 찌개냄비도 2~3인용은 본 적이 없었고, 탕이나 곰국은 음식점에서나 쓸법한 엄 청난 크기의 들통을 몇 개씩이나 두고 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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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바로 설거지를 한다 해도 손님 치르느라 내 자식 밥그릇이 없어 선 안되니 20개씩 한세트인 그릇이 두세 종류가 되었다. 법랑, 스텐 레스, 코렐, 본차이나 등 그 시절에 새로 소개된 것이나 유행이 있어 도 엄마는 늘 예쁘고 잘 안깨지는 고급그릇을 썼다. 깨끗하고 오래 가는 내열자기중에서 당시에도 고가인 접시를 12인조로 두 세트를 장만하는 것은 사실 엄마가 경제력을 갖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엄마의 화장대는 정말 변변치 않았음을 볼 때, 엄마가 음식에 얼마 나 진심이었는가를 알 수 있었다. 평소에는 하루나 이틀 먹을 국이나 찌개를 끓였지만 명절이나 손님 이 올 때, 특히 겨울철에는 우족을 보통 6개정도 앞다리로 장만하여 핏물을 빼고 끓인다. 두가지 음식이 나온다. 곰탕과 족편. 먼저 족탕을 한나절 끓이면 살이 분리되는데 동그란 고리 모양의 살 만 따로 건지고, 뼈는 양지머리나 아롱사태를 새로 넣고 곰탕을 끓 이고, 우족탕과 살은 약한 불에 밤새 고아서 족편을 만든다. 나물이나 전, 나박김치, 겉절이, 생선구이가 다 마련되고도 족편은 진행 중이다. 우리들은 뭔지 모를 고깃국 냄새가 나는구나 했었지, 자세한 조리과정도 모르고 완성된 음식만 먹었다. 부엌밖에 놓인 네모 쟁반에 탱탱하게 굳어있는 형형색색 오방색이 다 들어있는 묵 같은 것을 엄마가 가로 세로 칼집을 내어 큰 도마에 뒤집은 다음 한모씩 분리해 놓고 상에 놓기 전에 썰었는데 접시에 놓기 전 옆에서 구경하는 내게 도마 위에 놓인 윤기흐르고 노란색 흰색 빨간색 등으로 한쪽면이 장식된 족편을 한점 입에 넣어 주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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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신기한 육향에 탱글한 식감과 감칠맛이 도는데, 어린 내가 보기 에도 중요한 음식이고 접대용이며 고급 요리이며 수고한 시간과 정 성을 알 것 같고, 함부로 손대서는 안되는 귀한, 수랏상에나 올라갈 음식이었다.

그 음식으로 상차림을 장식해야 할 행사가 모두 끝나고 나면 우리 가족들만 모여 편안한 식사를 했고, 엄마는 양념장과 족편을 손님상 과 똑같이 예쁜 접시에 담아 상에 놓아주셨다. 미끄러워 젓가락으 로 조심히 집어야 했고 정말이지 우아한 젓가락질을 왜 꼭 익혀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요리라는 것을 한해 두해 체험해갔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족편을 먹지 않았다. 집에서 손님치를 일이 줄어 들고 엄마도 너무 힘이 들어서가 아닐까 싶다. 엄마가 해주시던 귀한 요리를 꼭 재현해보고 싶어 족편을 만들어보 기로 하고 우족을 1개 준비해서 기억에 의존해 만들어 보았다. 핏물 빼고 애벌 삶은 물을 버리고 곰탕에 넣을 아롱사태도 준비하 고, 고명으로 쓸 실고추며 말린 대추도 준비해두었다. 우족을 3시간 끓여도 뼈가 쓱 빠지지가 않았다. 약한 불로 줄이고 2시간 더 뜸을 들이니 뼈가 빠졌다. 문제는 기름과 기름 사이에 섞은 부유물을 계 속 걷어내느라 꼬박 서 있어야 하는 것이 고역이었고, 우족탕을 처 음에 잡았던 국물이 반으로 줄도록 고았는데도 식혀서 굳히면 묵처 럼 탱탱하게 되질 않았다. 중학교 무렵인가 족편을 두고 엄마랑 나눴던 대화가 기억나는데, 조 금 컸을 때여서 잠도 못주무시고 냄비를 젓고 있는 엄마가 너무 힘 들어 보여 그냥 자면 안되느냐는 내 말에 엄마는 닭발을 넣으면 빨 리 되지만 엄마가 싫어하기 때문에 고생스러워도 이렇게 하는 거라

가까스로 흉내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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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래서 파는 걸 못믿는다고 하셨다. 해먹지 않으려면 안먹으면 된다고 모든 동물의 발에는 콜라겐이 많 아 끓이면 젤라틴화되니, 그나마 닭발이 싸고 시간을 단축시켜 수 지를 맞추려면 별 수 없다는 엄마의 말을 확인해본 바는 전혀 없지 만 나는 파는 족편을 사먹지 않는다. 그러니 먹으려면 만들어야 한 다. 아이고야, 세 번을 해도 실패했다. 네 번째에는 우족탕을 고아 다 됐다고 여길때 쯤 조금떠서 냉장고에 굳혀보고 안되면 더 고아서 또 굳혀보는 방식으로 꾀를 내서 완성시켰다. 정말 그럴싸했고 내 자식 들이 박수쳐 줄 정도였고 맛도 좋았는데, 또 해먹을 수 있으려나. 자 신이 없다. 그냥 곰탕을 맛있게 먹는 걸로나 만족해야지 너무 힘들 다. 이걸 매해 겨울마다 만드신 것이다. 우족 1개도 이리 힘들건만 6개씩 이나. 우리 엄만 정말 철인이었다. 어찌 이런 요리를 감당하셨나 모 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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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가까스로 흉내내어 보았다

준비재료

우족 1개

마늘 3쪽

양파

생강 1쪽

실고추

청양고추

달걀2개

통깨

말린대추

양념장

쪽파 다진 것

간장

마늘

참기름

맛술

만들기

1박 2일 / 5인분

양파, 생강과 족을 담고 물을 넉넉히 넣고 끓인다.

족을 깨끗이 씻어 하룻밤 정도 담가 핏물을 충분히 뺀다.1 1시간 끓이고 중불로 3시간 더 끓인다. 족을 건져 뼈와 껍질을 분리시켜 껍질부분만 다른 냄비에 새 물을 붓고 끓인다.(분리된 뼈는 원래 냄비에 양파 등 야채를 모두 건져 내 끓여서 국으로 먹으면 된다.)

족편이 될 껍질과 살은 끓기시작하면 아주 약한 불로 고아야 하는 데, 절대 눌어서는 안되므로 30분마다 저어서 확인해야 하고 거품을 수시로 걷어내야 깨끗한 국이 된다.

처음 국의 양이 반정도 될 때까지 하루이상 고아 국자로 떠보아 국물이 걸쭉하게 느껴질 때, 흐물흐물한 건더기를 모두 건져 족편 굳힐 틀에 담는다.

국에 국간장을 조금 넣어 간을 한 뒤, 5분정도 더 끓이고 족편 틀 에 붓는다.

틀에 담긴 우족탕이 식었을 무렵 고명을 모두 골고루 얹는다. 마지막으로 통깨를 뿌리고 차게 굳힌다. 다 굳은 족편을 도마위에 뒤집어 꺼낸 뒤 적당한 크기로 납작하게 썰고 고명이 위로 보이게 접시에 담고 양념장을 곁들인다.

식을 동안 달걀 2개를 노른자 흰자를 분리해 지단을 만들어 채썬다.

너무

적당한 길이로 자른다.

가늘게 채썰고 대추는 씨를 빼서 채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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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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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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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족편
조리과정
3 4 5 6 7 8 9 큰 냄비에 마늘,
2 1) 족편이
2) 실고추가
길면
3) 청양고추는
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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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양념 꽃게장

서해안 꽃게는 말그대로 축복같은 식재료다. 축복이라는 건 바란다고 오는게 아니고, 갖고 싶다고 가질 수 없으 며 항상 존재할 수도, 누구에게나 오지도 않는다. 오죽했으면 축복기도를 해야할까. 꽃게는 그만큼 귀하다. 비싸기도 하고 매해 잘 잡히는 것도 아니다. 보통 4.19를 기점으로 소래 꽃게가 나온다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실 제로 알이 꽉찬 암꽃게는 탕으로 끓이면 말할 수 없이 시원달콤하 고 찜을 하면 냄새부터 빛깔이며 담음새까지 화려하기 그지없다. 5월이 지나야 많이 나오며 가격대도 형성된다. 항상 제철에 나는 신 선하고도 좋은 생선, 나물 등을 비교적 도매가로 저렴하게 사서 요 리해주시던 엄마 덕분에 우리 8남매는 풍성하고도 훌륭한 식재료 를 언제나 영접했지만 꽃게는 더욱 귀하고 맛난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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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장 깊게 밴 빨간 꽃게장은 그중에서도 화룡정점이다. 기가막힌 감칠맛에 양념장 비법이 뭔지 저절로 궁금증이 생길지경이었으니. 봄이 무르익어 더워질 무렵이면 한관씩 사서 온 가족이 맛을 보는 데 사실 엄마는 큰맘먹고 꽃게요리를 하신 것으로 아버지가 2년여 를 공을 들인 빌라단지가 성공적으로 분양이 끝나는 등 이벤트가 있어서 우리는 덩달아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게다리가 꼼지락거리 고 움직이는게 징그러운 듯 재미난 모양을 구경하며 엄마 주변에서 요리를 거들곤 했다. 양끝이 뾰족한 등딱지 안쪽에 흰부분 양쪽으로 다리가 붙어있는 사이사이를 솔로 닦고 배꼽을 열고 이물질을 빼고, 에일리언 입처럼 생긴 꽃게입과 눈부분도 떼고 정리한 다음 몸통과 등딱지를 손으로 벌려 분리하는데 살이 꽉찬 꽃게는 분리하는게 쉽지 않아 요령있게 힘을 줘야한다. 주홍빛 알이 가득한 등딱지에서 모래주머니를 제거 하고 몸통양쪽의 아가미도 꼼꼼히 떼어 낸다. 엄마는 등딱지를 접시처럼 놓고 만들어둔 양념장을 한 숟가락 얹 은 뒤 몸통을 두조각으로 잘라 다리를 잡고 잘린 단면에 양념장을 묻혀 등딱지에 올려 통에 넣는다. 마구 뒤섞이지 않게 차곡차곡 담 아 마지막에 통깨를 솔솔 남은 양념장도 마저 위에 바르듯이 얹는 데 눈대중이 무섭게 딱 들어맞게 양념장을 만드셨다. 기억을 더듬어 만들려니 게 양념에는 가늠이 잘 안돼서 양념장이 남기 일쑤이다. 꽃게 손질은 참 간단치가 않다. 게다리 끝부분은 먹을게 없어 잘라 버리고, 집게발은 먹기가 불편해 아깝다. 엄마는 집게발을 칼등으로 두드려 쪼개서 양념을 해 속살에 간이 배고 먹기 수월했다. 떨어진 발을 따로 모아 찌개, 국, 라면에 육수용으로 써서 또 맛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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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탄생한다. 양념 꽃게장을 다 먹고나면 꼭 통에 게 육즙이 섞 여 숙성된 양념장이 남게 되는데, 이 양념장은 말그대로 만능양념 이다. 두부를 두툼하게 썰어 프라이팬에 가지런히 깔고 대파를 얹은 뒤 양념장을 얹어 물을 자작하게 조금 붓고 조림을 하면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부드럽고 매콤한 감칠맛의 향연이 따로 없었다. 양념 꽃게장은 먹는 사람마다 조금씩 노하우가 달라지는데 등딱지 에 따뜻한 흰밥을 비벼 먹는게 한편, 조금 식은밥에 게 몸통살을 눌 러 짜서 얹어먹는게 한편, 게다리를 잡고 몸통의 껍질을 최대한 벗 겨서 아이스바 먹듯이 살을 베어먹고 밥을 나중에 먹는 방식이 한 편, 각자 먹는 방법이 있다. 그중엔 손에 묻히기 싫어 엄마가 손으로 눌러 짜줘야 먹는 녀석까지. 그러면 엄마는 남은 것을 드시기 마련 이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만드는 과정 전부를 참여하는 일이 많아 꽃게장 을 맛보는 정도로만 먹었지 밥도둑이라 여길 정도로 많이 먹어지지 가 않았고, 나중에 남은 양념장으로 만든 두부조림이나 시래기찜을 더 좋아했다. 꽃게 자체도 비싼 식재료인데다 손질도 번거롭고 먹을 때도 남는 쓰레기가 많을뿐아니라 정말 살이 꽉찬 꽃게가 아니면 먹는 게 없어 돈만 버린 것 같고 속은 기분이 들때가 더러 있다. 그 러니 제철에 단골가게를 갈 수 밖에 없다. 꽃게요리의 기본은 간장게장과 양념 꽃게장이라 할 수 있다. 비법레 시피를 자랑하는 전문식당에서 먹어보아도 유명인이 만든 것을 사 서 먹어보아도 지불한 비용에 비해 실망스럽기 그지없어, 먹고 싶으 면 직접 해먹을 수 밖에 없다. 엄마의 양념장을 떠올리며 별로 달지 않는데도 착 붙는 맛 한입에 반할 꽃게장 맛을 올해는 낼 수 있을까.

가까스로 흉내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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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가족이 다 좋아하고 먹고싶어하나 많이 먹으면 안될 것 같고 어 쩌다 먹는다고들 생각하는 것이 어렸을 때의 내 모습이고 엄마가 만 든게 제일 맛있다고 말해주는 자식들의 격려에 힘입어 나는 게 손 질을 하게 된다. 우선은 남편이 간장게장을 너무 좋아하여 꽃게 한관을 사면 10마 리정도는 간장게장을 만들고 양념 꽃게장은 그 나머지로 만들어 본 다. 떨어진 꽃게다리를 모아 엄마처럼 국을 끓이거나 냉동실에 넣어 두고 요리 좋아하는 아들에게 일러둔다. 뭐든 해먹을 때 활용하라 고. 꽃게다리를 잔뜩 넣은 라면을 끓이는 아들. 같이 먹으며 맛 칭찬 을 하는 남편을 보고 있으면 문득문득 엄마의 주방이 떠오른다. 빨 간 양념을 입은 꽃게를 입에 한가득 드시던 아버지도, 자식들 밥그 릇에 살을 꾹 눌러 짜주시던 엄마도. 그런데 나도 엄마처럼 나의 끼니를 위해 꽃게를 꺼내 먹어지지가 않 는다. 맛을 그리워하고 맛을 내려하고 계속 도전해보는 것과 별개로. *빨간양념이라 고추장이 기본베이스인 것 같으나 고운 고춧가루와 간장, 마늘, 생강, 맛술, 요리당 정도를 알맞은 비율로 섞은 것이고 보기와는 달리 맵지가 않으며 양념장맛이 꽃게 본연의 맛을 덮어 해치지도 않아야하고 그러나 꽃게의 비린맛을 잡아줘야 한다. 그리 고 중요한 한가지. 꽃게가 양념장을 입으면 간이 되어 물이 빠지게 되는데 그러면 자칫 빨간물이 흥건하게 많아져서 양념장옷이 벗겨 저 정말이지 이상한 꽃게장 꼴이 나타나 냄비에 넣고 찌개를 해야 될 망신스러운 경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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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있는 꽃게 2kg (대략 7~8마리)

· 고춧가루 고운 것

· 고춧가루 굵은 것

· 고추장

· 물엿

· 생강즙 or 생강청

· 진간장 or 멸치액젓

· 다진마늘

· 청홍고추

· 양파

· 맛술

· 통깨

1

1시간 / 7인분 조리과정준비재료 꽃게를 솔로 깨끗이 닦고, 게딱지 몸통은 분리한 뒤, 모래주머니를 깔끔하게 떼고 내장도 제거해둔다.

게다리 끝부분을 자르고 게딱지의 양끝 뾰족한 부분도 자른다.

게몸통을 반으로 잘라 먹기좋게 두고 게 집게발을 떼어 따로 가위 밥을 넣어 속살을 먹을 수 있도록 손질한다.

집게 중 한쪽은 잘라서 하는게 보통이지만, 두 개 다 있을 경우 움직 이는 부분을 자르고 게가위 긴부분을 넣어 자르면 쉽게 할 수 있다. 손질한 꽃게 중 게딱지에 양념을 한스푼정도 넣고 구석까지 양념을 바른다. 저장용기에 양념한 게딱지 1개를 접시 삼아 담아놓고 양념한 몸통 2개씩 얹은 방식으로 차곡차곡 쌓아가며 담는다. 볼에 남은 양념과 썰어둔 청/홍고추, 참기름, 통깨를 잘 섞어 용기 에 담고 꽃게위에 골고루 뿌리고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하루정도 숙성시킨 뒤 먹는다.

절단해둔 꽃게 몸통은 절단면에 양념이 잘 묻도록 버무린다.

볼에 진간장이나 멸치액젓을 소주컵으로 반컵정도 넣고 고춧가루, 고추장, 다진마늘, 생강청, 맛술, 물엿을 넣고 잘 섞는다. 양파 반 개를 채썰어 섞는다. 양념장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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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양념 꽃게장
3 4 5 7 8 6 가위로
2 넓은

쉽고

해보니
그럴싸하다
돼지갈비 새우젓 조치 삭힌 고추 깍두기 핑크 동치미 팥칼국수 82 90 98 104

해보니 쉽고 그럴싸하다

언제 먹어도 푸짐한

돼지갈비 새우젓 조치

엄마의 고기 요리 중 가장 많이 자주 먹은 음식은 돼지고기 요리들 이었다.

된장 풀어 삶은 수육, 고추장찌개, 제육볶음, 김치찌개, 두루치기 등 은 계절도 없이 돌아가며 항상 먹었던 반찬이자, 야식이거나 간식이 었다. 여름철 해질녘이면 마당에 불을 피워 돌판을 달구어서 두툼 하게 썬 목살을 구워 쌈채소와 먹기도 했다. 가정에선 잘 안 해먹는 족발찜, 정말 손이 많이 가는 머릿고기 편육도 우리집에선 일상에 속하는 음식들이었다. 머릿고기는 외할머니가 특히 잘하셨다. 작고 야무진 손놀림으로 막 삶은 돼지머리살을 베보자기에 모양 맞춰 놓 고 묶어서 둥근 방석 모양으로 만든 뒤 기름이 빠지며 식을 수 있게 막대기를 대야 위에 걸치고 그 위에 보자기에 묶인 삶은 고기를 얹 고 돌로 눌러 놓는 외할머니의 재빠르고 능숙한 솜씨를 해마다 볼 수 있었다. 납작하게 썰어 양념새우젓과 함께 상에 올릴 손님맞이

해보니 쉽고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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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음식이었다. 무수히 먹었던 돼지고기 반찬들 그중 하나 엄마의 요리라면 젓국갈 비(돼지갈비 새우젓 조치)를 꼽을 수 있다. 돼지갈비를 한번 데치고 엄마의 조선간장으로 밑간을 해서 냄비에 넣고 끓이다가 젊은 호박 을 돼지갈비 토막과 비슷한 크기로 썰어 넣고 새우젓을 넣어 중불 에 끓여낸 찌개 같기도 하고 찜같기도 한 너무 맛있고 좋은 푸짐한 음식이다.

엄마는 계절마다 오젓 육젓을 직접 담으셨기에 새우젓은 특별히 최상급이었는데, 음력 유월에 담는 육젓은 살이 통통하고 뽀얗게 국물이 나며 숙성되면 분홍빛이 돈다. 살만 건져 양념하여 흰죽과 먹기도 하고 애호박 볶음에 간을 하거나 두부탕을 끓일 때 넣으면 마치 조미료를 넣은 듯 감칠맛이 난다. 새우젓을 담으려면 팔딱팔딱 살아 있는 살이 투명한 생새우를 넓은 쟁반에 부어 놓고, 빠른 손놀 림과 매의 눈으로 잡티를 골라 내야 하는데 옆에서 거들 때 보면 노 끈, 비닐, 낚시줄, 그물 조각 외에도 정말 이상한 잡티들이 나오곤 했 다. 새끼게, 망둥어인지 박대인지 모를 어린 물고기들, 실치인지 뱅 어인지 모를 긴 생선들이 보이면 신기한 듯 우스운 듯 손끝이 찔리 는 지도 몰랐다. 이렇게 일년동안 추젓까지 적어도 세 번씩 새우젓 을 담았다. 어쩌다 제법 굵은 보리새우나 흰다리새우로 젓을 담기 도 했는데(특히 새우 풍년인 해는 값이 몹시 쌌다) 배춧국에 굵은 새우젓 건더기로 간을 하면 보기에도 풍성하고 고급스러워 더 맛 깔난 것 같았다. 연례행사로 새우 손질을 거들던 나는 새우젓만큼 은 직접 담아 엄마 솜씨를 흉내내며 나만의 노하우를 만들어 왔다. 엄마가 하시던 것보다 턱없이 조금만 하면 되기에 사실 그리 힘들지 않을 뿐 아니라 매해 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직접 만들면 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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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짝이 없다. 덜 짜게 해서 냉장고에 보관하며 엄마처럼 두부에 애호박에 계란찜에 간할 때 넣어 맛을 낸다. 돼지갈비도 소갈비처럼 간장 양념을 할 수도 있지만, 특히 새우젓과 만났을 때 너무 조화로운 맛과 소박하고도 깔끔한 풍미에 놀란다. 소화도 잘되니 몸이 안 좋을 때 입맛이 없을 때 먹으면 너무 좋다. 돼지갈비를 먼저 끓이다 호박을 투박하게 토막 내서 넣으면 부드럽 고 달짝지근한 맛에 고기의 감칠맛이 섞이며 맛의 상승 작용이 일 어나 더없이 훌륭한 요리가 된다. 이때 호박은 아무거나 좋지만, 특히 젊은 호박이 제일 좋다. 애호박 보단 호박 과육에 향이 더해지고 식이섬유가 식감을 더해 덜 물러 지면서도 늙은 호박에 비해 껍질이 연해서 짙은 녹색의 껍질과 노 르스름한 호박 과육이 돼지갈비와 어우러져 음식의 색감까지 더욱 곱고 오묘해진다. 돼지갈비를 이렇게 저렇게도 해보고 남은 채소를 활용해 다양하게 만들어본 바, 어떻게 해도 다 맛이 좋고 근사한 한 끼를 마련할 수 있으며 가족들 누구나 잘 먹으니, 새우젓도 호박 도 항상 떨어지지 않게 준비하게 된다. 돼지갈비 대신 사태나 앞다 리도 토막 내서 호박과 끓이면 그 또한 맛있으니, 돼지고기는 참 자 존심도 없이 사철 내내 우리한테 맛난 식재료다. 돼지고기로 할 수 있는 요리는 정말 무궁무진 다양하다. 매콤하게 찜을 할 수도 있고 조림이나 강정을 해도 너무 맛있는데 가격도 비 교적 저렴하니 몇 가지라도 연습해 손에 익혀두면 풍성하고 영양가 있는 식탁을 언제라도 마련할 수 있다. 엄마가 수없이 해 주셨던 접시들을 눈여겨보고 따라 한 몇 가지를 소개한다.

해보니 쉽고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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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갈비 묵은지 찜 (600g 기준 3, 4인분) : 핏물 뺀 돼지갈비를 양념 씻어낸 묵은지 1포기와 냄비에 담고 쌀뜨물을 자작 하게 붓고 새우젓을 건더기 쪽으로 넣어 중불에 30분 정도 끓인 뒤 들기름을 두른 다음 약한 불에 은근히 묵은지가 푹 무를 때까지 끓인다. 조심할 것은 묵 은지에 간이 되어있으므로 새우젓 국물은 넣지 않는다. 최종간은 까나리액젓 멸치액젓 참치액 중 집에 있는 것으로 취향껏 한다. 돼지갈비는 냄비 아래쪽에 묵은지는 갈비를 덮듯이 올린다. : 돼지갈비가 냄비 바닥에서 눌을 수 있으니 양파나 대파를 깔면 좋다. 참고) 묵은지 찜에 멸치만 넣어 끓일 때도 새우젓 쌀뜨물 들기름을 같은 순서로 쓰는데 간이없는 재료를 추가로 넣지 않으므로 새우젓은 아주 조금만 넣는다. 나이들수록 좋아하게 되는 음식이다. 돼지갈비 감자조림

: 돼지갈비 600g 감자 5개

: 핏물 뺀 돼지갈비에 간장 설탕 맛술을 1스푼씩 넣고 버무려 밑간을 하고 양념 장을 따로 만들어 둔다.

: 냄비에 밑간한 돼지 갈비를 넣고 물을 자작하게 부어 30분간 끓인다. 기름을 걷어내고 만들어둔 양념장을 한국자 넉넉히 얹고, 감자를 큼직하게 토막 내어 넣어 감자가 익을 때까지 약한 불에 은근히 조린다. 함께 넣을 채소로 꽈리 고추 가 좋다. 양념장에 따라 맵게도 안맵게도 할 수가 있다.

*양념장 1 : 간장1 설탕1 다진 마늘1/5 다진 파1/5 생강즙1/10 맛술1/5

*양념장2

간장1 고운 고춧가루1 물엿1 다진마늘1/5 다진 파1/5 생강즙1/10 맛술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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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심 떡볶이(2인분)

: 떡볶이 떡(가래떡 쌀떡 밀떡중 취향껏. 참고로 현미 가래떡이 제일 맛있었다.)

200g, 돼지 등심 200g 양념장1 또는 양념장2 양배추 100g 빨간 파프리카

1개 고추가루 통깨, 설탕 또는 올리고당

국물이 많은 떡볶이

: 전골냄비에 물 400cc를 붓고 양념장을 한 국자 넣어 센 불에 한소끔 끓으면 간을 본다. 간이 맞으면 고기와 떡을 넣고 설탕 또는 올리고당을 한 큰술 넣은 뒤 중불에 끓인다. 싱거우면 고기가 익었을 때쯤 양념을 추가한다. 짜면 양념 섞인 국물을 한 국자 떠 내 버리고 같은 양의 물을 추가한 뒤 고기와 떡을 넣고 같은 방법으로 조리한다. 떡에 양념이 적당히 배기 시작할 때 양배추와 파프리 카를 넣고 센 불에 1분 정도 끓인다. 불을 끄고 통깨를 뿌려 마무리한다. 국물이 없는 떡볶이

: 프라이팬에 고기를 넣고 양념장1을 반국자 넣고 10분 정도 버무려둔다.

: 물 100cc를 양념된 고기 프라이팬에 붓고 센 불에 한소끔 끓으면 불을 줄여 떡과 고춧가루 반국자 설탕 반국자를 넣어 뭉치지 않게 저으며 볶아 준다. 떡에 고춧가루물이 들고 간이 배면 양배추와 파프리카를 넣고 센 불에 한번 더 볶아 준 뒤 불을 끄고 통깨를 뿌려 마무리한다. 참고) 기름을 전혀 쓰지 않아 담백한 건강 떡볶이이므로 덜 달고 덜 짜지만 맛 있게 먹을 수 있다. 당을 줄이려면 추가 양념 때 설탕이나 올리고당을 넣지 말고 양파를 넣으면 좋고, 맵게 먹으려면 처음 끓일 때 청양고추를 썰어 넣으면 된다. 냉동 떡을 쓸 경우엔 떡을 먼저 삶아놓는다.

해보니 쉽고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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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엄마는

한술이라도 뜨고 나가라고 하셨다

엄마는

오늘도 늦냐고 하셨다

엄마는

잘 챙겨먹고 다니라고 하셨다

엄마는

자식은 아플 때나 내 차지라고 하셨다

엄마는

너보다 귀한 사람은 없다고 하셨다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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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해보니 쉽고 그럴싸하다

3인분

· 돼지갈비 600g (한근)

· 젊은호박 600g (손질한 것)

· 양파1개

· 마늘 3쪽

· 청양고추

· 새우젓 1/2컵 (소주 컵 기준)

· 참기름

· 간장

· 설탕

· 생강청

아주 쉽게 하는 방법

돼지갈비와 젊은 호박이 다 담길정도의 냄비를 골라 돼지갈비 양념을 만든다. [간장1, 설탕1/2, 생강청1/4, 참기름1/2] *비율로 잘 섞이도록 끓인 뒤 데친 돼지갈비와 섞어둔다.

토막낸 돼지갈비를 1시간 핏물 빼고 끓는물에 데쳐 식힌다.1 갈비양념이 배는 동안 야채를 손질한다. 양파 굵게 썰기. 마늘은 칼날 옆면으로 으깨 놓기. 청양고추 썰기. 이 외에 남는야채(당근, 대파, 표고, 새송이 등 냉장고속 재료) 갈비를 위아래 뒤섞고 갈비가 잠길정도 물을 부어 한소끔 끓이는데, 거품이 생기면 걷어내고(쌀뜨물을 쓰면 물보다 더욱 구수하고 맛 있다.) 중불에 15분 둔다.

거품이 있다면 또 걷어내고 젊은호박과 손질한 채소양념을 모두 넣고 10분정도 끓인 후 , 새우젓을 넣는다. 물이 너무 적으면 조금 더 추가하고, 센불에 잠깐 끓인다. 젊은 호박을 젓가락으로 찔러보아 잘 물렀다면 참기름을 한바퀴 둘러 상에 올린다.

1) 돼지갈비를 간장물에 데친다.

2) 냄비에 물을 붓고 새우젓을 넣어 끓여서 간을 본다. 약간 짤 정도면 적당하다.

3) 돼지갈비를 넣고 채소를 다 넣는다. 끓기시작하면 중불로 줄이고 젊은 호박을 넣어 호박이 익을때까지 끓인다.

4) 참기름 두르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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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 5
2 30~40분 /
돼지갈비 새우젓 조치 조리과정준비재료

쉽고

모든 밥상들, 모든 음식들 중 주인공을 뽑는다면 주저없이 김치가 될 것이다.

김치를 필두로 배추김치(포기 김치)는 기본이어서 일년 열두 달 떨어진 적이 없었다. 총각김치 파김치 백김치 보쌈김치 갓김치 열무김치 오이소박이 부 추김치 깻잎김치 고구마순김치 동치미 나박김치 섞박지 깍두기 겉 절이 고들빼기김치 데친김치 촌김치 상추불뚝김치 파래김치 무청김 치 ....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고 다 기억나지도 않는다. 계절마다 돌 아가며 짧게 저장하는 겉절이부터 3년씩 숙성해야 맛있는 묵은지,

해보니 쉽고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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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김치들 중 삭힌 고추 깍두기에 도전해 보다 해보니
그럴싸하다 엄마의
김장

버리게 마련인 재료로 환상적인 맛을 내는 상추불뚝김치, 인스턴트 나 패스트푸드보다 빨리 만드시던 각종 나박 김치등 엄마의 김치 세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 창조적이며 다양하고 화려했다. 정말 신 기한 다른데서 잘 먹을 수없는 김치만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우선, 이름이 따로 없는 ‘촌김치’ 엄마 고향분들은 촌지(발음은 ‘촌찌’가 된다)라고 부르셨다. 보통 김 치를 ‘지’라고 축약해 모든 채소에 붙이면 김치이름인 바 파김치는 ‘파지’, 갓김치는 ‘갓지’가 된다. 그런데 오이지는 오이김치와 다르다. 오이김치는 오이소박이이고 오이지는 소금물에 절여 오래 저장하는 짠지이다. 어쨌든 촌지가 무슨 김치인가 하면, 무농사를 짓는 고향 분들이 예 쁘게 잘자란 상품가치가 있는 수확물은 단으로 묶어 장에 내다 팔 고 자신이 키운 팔지 못하는 못생긴 무 또는 크기가 총각무도 동치 미무도 아닌 무청조차 억세져서 팔기 힘든 작물들로 양념도 투박하 게 청고추도 홍고추도 아닌 매워진 고추를 몇 개 따서 대충 찧어 총 각김치와 동치미를 절충시킨 모양으로 국물을 잡아 담는 김치이다. ‘왜 촌지라고 부르냐 무김치가 아니고 ’라는 내 질문에 대한 엄마의 설명이다. 여름이 깊어져 더위에 국조차 끓이기 힘든 때, 밭에서 뽑아 김치를 담아서, 김칫국물을 마셔 가며 밥을 넘기고 무김치도 먹고 무청이 시어지면 멸치 넣어 지져 먹기도 하는 김치다. 엄마도 어려서 많이 먹고 자랐던 터라 먹고 싶을 때가 있어 초가을에 덜 여문 동치미무 가 시장에 나왔거나 텃밭에서 키운 애매한 크기의 무를 뽑아다 파 는 할머니들이 노점에 보이면 떨이로 사오시곤 했다. 엄마의 텃밭에 서 뽑은 것은 아니지만 엄마도 푸르딩딩한 고추를 밥과 함께 확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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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굵게 갈아 액젓으로 간을 해서 순식간에 담으셨다. 김치가 익으 면 국물이 슴슴한게 빨갛지도 않고 칼칼한 것이 동치미 맛도 아닌 시원함이 있었고 무를 젓가락에 꽂아 베어 먹는 재미가 있었다. 사실 이름을 붙여 주고 싶었지만 못찾겠다. 두번째는 상추불뚝김치 상추를 키우다 보면 위로 자라면서 적당히 자란 잎을 몇차레나 따 먹고 어느새 줄기가 제법 길게 올라온다 . 더이상 따먹기 힘들겠다 싶을 때 줄기(쫑대 혹은 대궁이라고도 한다)를 맨 위에 붙은 고갱 이와 함께 쓱쓱 잘라 김치를 담는 것인데 소금물에 10분 정도 담가 살짝 절이고 매콤한 양념에 버무려 담는다. 젓갈은 아주 조금만 넣 는다. 하루 정도 지나고 먹는데 줄기가 씹히는 아삭함에 조그맣게 자란 고갱이가 너무 고소하고 약간 쌉쌀한 맛이 정말 특별하고도 기가 막힐 뿐아니라 여름 내내 더위에 지친 입맛이 한순간에 돌아 온다. 하찮아 보여도 함부로 버리면 안되는구나 하는 깨달음까지. 그런데! 해 먹으려면 봄부터 계획을 세워 직접 키워야 하니... 쯥. 그리고 내가 꼭 잘 만들고 싶은 깍두기 무를 정육면체 모양으로 깍둑깍둑 썰어 담는 게 이름이 된 흔한 김 치다. 그런데 깍두기 처럼 창조적이고 무궁무진 다채로운 게 없다. 같은 무를 써는 방법을 바꾸고, 다른 재료를 섞기도 하고, 한껏 모양 을 내고, 국물양도 다르게 하고 등등. 집집마다 지역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다양한 깍두기들이 메인 음 식과 함께 상에 오르면 제일 먼저 한입 먹고 음식평이 시작된다. 최 상의 맛을 가진 깍두기의 이데아가 개개인마다 영혼의 깊은 곳에 있 을 것이다.

해보니 쉽고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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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춧가루 물의 다홍빛에 수분 가득한 촉촉한 표면, 네모반듯 일정 한 모양이 보시기에 알맞게 담긴 설렁탕 옆 깍두기가 말한다. ‘ 나를 한입 먹어봐!’

고깃국을 뜨기 전 먼저 한입 먹은 깍두기가 시원 달큰하고 약간 새 콤하게 잘 익어 침이 고이고 아삭하게 씹히면, 이 시간이 좋은 식사 시간이 될 테고, 이 집 설렁탕에 후한 점수를 주게 될 것이라는 예 감이 든다.

우리 집은 엄마가 너무 쉽게 담은 깍두기를 철마다 떨어지지 않게 먹었었다. 단단하고 단맛이 좋은 가을무가 아닌 여름철 맛없는 무, 겨울 저장 무로도 담아서 늘 먹었는데, 막상 직접 담으려니 또 만만 한 게 아니다.

간 맞추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운가, 무는 왜 쓴맛이 날까, 국물이 왜 개운하지 않고 찐득거릴까, 단맛이 설탕인가 과일맛인가. 별별 시행 착오를 참아가며 깍두기를 담아보고 실망하기가 셀 수 조차 없다. 그 중에도 특히 ‘삭힌 고추 깍두기’

텃밭에서 키우던 고추밭을 정리하기 전 가을 끝에 못생기고 두꺼워 진 뻣뻣한 고추를 소금에 절여 만든 고추지(삭힌 고추)를 넣어 만든 깍두기인데, 멸치젓을 넣기에 색도 진하고 고추지 맛이 배어 향도 맛도 강하다. 겨울 내내 한결같은 맛이 유지되는 그 비결이 뭔지 찾 고야 말리라. 너무 그리운 그 맛을 현실화 시켜보려고 재래시장에 가서 할머니 들이 만들어 파는 고추지를 사다가 해보고 청양고추를 소금에 절여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다. 어느날 연실이네 농장에서 가을걷이 때 삭힌 고추에 제격인 운명 같은 한 보따리의 맵고 못생긴 고추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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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말았으니, 진짜 삭힌 고추 깍두기를 만들어보게 됐다. 딱 이거야! 된 것 같아. 하며 완성한 깍두기. 뭐든 조화로워야 맛이 나는 거였다. 제대로 절이고 과하지 않은 양념과 알맞은 숙성 등... 고추지를 한꺼번에 많이 담아도 활용을 못하면 무용지물이고 짠 저 장 음식이 환영받지 못하는 식생활이 요즘 식문화이고 보니 사실 삭 힌 고추를 다져 만든 양념을 국에 넣어 간을 맞춰먹던 맛이나 물엿 깨소금 넣고 무쳐낸 밑반찬도 잊혀질 판이다. 그러니 깍두기에 넣을 요량으로 고추지를 마음먹고 담는 것보다 한봉지에 10개든 청양고추 를 2,3개 쓰고 남을 때 소금에 절여 뒀다가 이용해도 정말 맛있는 삭 힌고추 깍두기가 된다. 큰 무1개를 깍둑 썰어 간단하게 만들어 1주 일 정도 맛있게 먹고, 또 남은 고추가 굴러다니면 소금에 절이고... 깍두기 만드는 게 별 부담이 없으니 자주 해 먹으며 다른 모양으로 썰어 보기도 한다. 엄마의 그 많은 다채로운 김치들 중 한가지라도 따라하게 되니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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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11월

이영주

이제 나무도 좀 쉰다 가지 늘어지게 가득 찬 잎들 다 버리고 한결 가벼워져 숨을 쉰다

새잎 내느라

열매 키우느라 분주했던 지난 계절들

길어 올릴 물이 모자라 땅 밑 더듬던 고달팠던 뿌리도 좀 쉰다

바람아 밀지 마라 저 나무가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도록

눈보라야 기다려다오 다만 며칠이라도

온전히 하늘 향해 활짝

나무등걸까지 내맡기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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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해보니 쉽고 그럴싸하다

· 삭힌 고추 냉면 그릇으로 가득

· 무 2~3개

· 쪽파

· 다진마늘 1컵

· 고춧가루 굵은 것

· 고춧가루 고운 것

· 설탕 1컵

· 소금 1컵

· 멸치액젓

· 매실청 또는 요리

삭힌 고추 만드는 법

삭힌 고추를 베보자기에 싸서 무거운 것으로 눌러 소금물을 다 뺀다.

무를 깍둑 썰어 소금과 설탕에 절여둔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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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치 버무릴 볼에 물뺀 깍두기무를 넣고 고춧가루 물을 들인 뒤 멸치액젓, 매실청을 넣어 버무린다. 물뺀 삭힌 고추를 넣고 쪽파, 다진마늘을 넣고 섞는다. [주의사항] 무를 절일 때 소금간이 되어 있고 삭힌 고추도 소금에 절여진 것이 라 짜게 될 수 있으니 멸치액젓을 많이 넣으면 안된다.

손가락 길이 보다 짧고 통통한 고추 1kg를 바늘로 찔러 공기 빠질 구멍을 내고 꼭지는 1cm만 남기고 자른다. 씻어서 물기를 다 털어내고 병에 넣는 다. 천일염을 위에 붓고 접시나 종지 등으로 눌러놓고 뚜껑을 덮어둔다. 1주일이 지나면 벌써 물이 나고 고추가 갈변하며 숙성된다. 여름 끝 무렵에 담아두면 가을무가 나올 때 깍두기를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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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힌 고추 깍두기 조리과정준비재료

해보니 쉽고 그럴싸하다

너무 예뻐 엄마를 닮은 핑크 동치미

엄마의 각종 김치는 정말이지 너무 맛있고 정갈하고 예뻤다. 집에 오신 손님들은 항상 엄마김치를 극찬하곤 했는데, 특히 엄마 친구 분들이 오시면 항상 조금 싸달라고 해서 내가 노려 보곤 했다. 엄마 는 뭐든지 예뻐야 했다. 거기다 독창적이기까지 한 수 많은 김치들. 그중 무김치처럼 창의성을 반영하는 음식이 또 있을까? 깍두기도 무김치지만 깍두기가 아닌 너무 많은 무김치가 있으니 아마도 요리 사 숫자만큼 있지 않을까? 엄마는 무를 도마에 놓지도 않고 왼손바닥에 올려 돌려가며 오른손 으로는 칼날을 밖으로 향하게 들고 무를 일정한 크기, 그러나 비정 형으로 쳐내 툭툭 양푼에 떨어지게 잘라, 배추나 쪽파 얼갈이 등 남 은 채소와 대충 버무려 섞박지를 만드셨다. 칼날이 아슬아슬 엄마 손 위에서 춤출 때 조마조마해서 엄마 눈이 손에 닿아있는 모습을 방해할까 봐 엄마를 부르지도 못한 채 바라보던 장면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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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tv에서 중국의 어느 지방의 국수 전문가가 도삭면을 만드는 것을 보았는데, 단단한 밀가루 반죽을 손부터 팔목까지 놓이게 만 들어 들고 특수한 칼로 면을 쳐서 물 끓는 솥에 던져 넣는 모습에 우리 집 박강자 여사의 무 썰기 신공을 떠올렸었다. 말 그대로 부엌 칼 신공이었다. 무가 제법 단단해져 시장에 나오면 여러 가지 무 요리가 엄마 손을 거쳐 우리 입으로 온다. 총각무보다 크고 깍두기로 썰기엔 작은 무 옆구리에 사선으로 칼집을 내서 절이고, 부추 홍고추 쪽파 당근을 약간 길게 채 썰어 소를 만들어 무 틈새에 넣고, 무청을 따로 양념해 서 한 접시에 올릴 양을 꽈배기 모양으로 접어, 소 넣은 무 옆에 가 지런히 차곡차곡 김치통에 담아놓은 모습까지 단정한 비늘 김치. 무 허리를 뚝 자르고 단면에 가로세로 칼집을 내서 무채가 붙어 있는 모양으로 한 면은 남겨 절이고, 고춧가루를 베보자기에 넣어 다홍 빛 물을 빼서 빛깔 고운 김칫국을 만들어 청, 홍고추를 채 썰어 장식 하고 미나리로 향을 입힌 국화 김치. 그리고 거의 매일 먹은 것 같은 무생채와 무나물, 나박김치와 동치미... 무가 단단하고 달달해지면 엄마는 매일 무채를 썬다. 다다다다다... 도마에 칼날 닿는 소리가 매일 들리고 무생채와 무나물이 우리 집 식탁에 오르면 아침엔 무나물 저녁엔 무생채를 입안 가득 먹으며, 별거 아닌 늘 보이는 재료로 훌륭한 맛을 살려내고 담음새도 깔끔 하고 정갈하게 한끼 한끼를 장식해주신 매일매일들을 참 잘도 누렸 다. 엄마는 내꺼였다. 엄마가 딱 엄마인 듯 예쁘게 만드시던 나박김치와 동치미, 백김치들 은 우리에겐 간식이었다(군고구마, 삶은 감자 먹을 때 목넘김 도우미 로 필수이니 매일 마셔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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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배추 오이 당근 미나리 등 제철 채소가 나오면 뭐든 일정하게 썰 고, 장식되는 꽃(당근)도 오려서 넣고 적당한 간의 국물을 넉넉히 잡아서 만드는 나박김치. 무를 통째로 절여 담는 겨울 동치미, 한입 크기로 무를 토막 내고 과일로 맛을 낸 약식 동치미, 병어나 황석어 를 세꼬시로 썰어 간을 해 배춧잎 사이사이에 넣고 실고추로 장식 하는 백김치. 이뿐이랴 그중에도 군계일학, 핑크빛 물이 배어 나온 갓 물김치... 아! 그 요술 같은 알 수 없는 개운하고 시원하고 새콤한 맛이라니! 엄마는 돌산 갓보다 김치 양념에 주로 쓰는 청갓, 홍갓의 알싸함을 더 좋아하셨 다. 함께 장 보러 가서 갓을 고를 때, 길이가 너무 길지 않고 일정하 게 비교적 짤막한 것을 고르던 엄마를 따라 나도 갓을 고른다. 뒤집 어 보아 시든 잎 누런 잎이 있나, 너무 가늘거나 굵은 게 있나. 저절 로 배우게 된 엄마의 장보기다. 엄마는 갓을 고르거나 다듬거나 갓김치를 먹을 때, 같잖은 게 갓김 치 맛도 모른다고 식객들을 흉보던 고향 사람들의 말을 들려 주셨 다. 진짜 갓김치 맛도 모르면서 김치 평을 해대는 사람들을 같잖다 와 갓의 발음이 같이 들리는 말로 비꼰 것이겠지. 갓은 이파리에 가는 가시가 촘촘해서 쌈으로 먹기엔 거칠지만 2,30 분만 절여도 금새 부드럽고 아삭거리며 독특한 향과 맵고 알싸함 때 문인지 김치를 담으면 시어져도 무르지 않고 숙성될 수록 깊은 맛이 나서 엄마의 고향 분들이나 외삼촌들은 갓김치는 썩어야 제맛이라 고들 하셨다. 특히 홍갓은 이파리가 짙은 보랏빛으로 쌈채소 중 적 겨자와 비슷하지만 그 향이 너무 뛰어나다. 더욱이 물김치나 동치미 에 넣으면 물감인가 색소인가 싶을 믿기 힘든 핑크색이 배어 나와 살짝 익었을 때 한 모금 마시면, 그 형용할 수 없는 청량함에 한 사

100 해보니 쉽고 그럴싸하다

발을 순식간에 들이키게 된다. ‘핑크 동치미’를 핑크색 자체에 집중해서 만들려면 가장 쉬운 식재료 로는 비트를 조금 넣으면 된다. 무 2개에 비트 반개면 충분히 예쁜 핑크색 김칫국을 만들 수 있다. 남은 비트는 사과나 당근과 함께 건 강주스를 만들어 먹으면 된다. 또 다른 재료로는 자색무나 적배추 로도 만들 수 있다. 나박 김치처럼 또는 동치미처럼 만들되 색도 예 쁜 한보시기가 상에 오를 때 보기에도 즐거움이 있으니 다양하게 시 도를 해 본다. 핑크색은 아니지만 갓처럼 알싸한 맛은 찾아보면 강 화도 순무가 있다. 무와 무청을 함께 국물을 넉넉히 잡아 슴슴하게 담는데 나름의 맛이 일품이다. 김장을 하거나 갓김치를 담을 때 갓 을 서너 뿌리 정도 따로 남겨 무 한개와 간단한 동치미를 만들어 상 온에 하루 정도 두고 익히면 핑크색의 김칫국물에 하얀 무가 약간 물이 들어 더없이 곱고 예쁜 물김치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해볼수록 어렵고 간단치 않은 게 김치 담기지만 핑크동치미는 만들 기도 쉽고 실패도 적어 간만 잘 맞추면 정말 훌륭한 집밥 친구이니 갓이 없을 땐 비트로, 가을에 홍갓이 나오면 박강자여사표 갓물김 치로 사시사철 만들어 본다. 참고 김칫국이 짜게 되어 난감할 때- 탄산음료를 섞는다. 너무 싱거워 맛이 없을 때- 무를 좀 짜게 절여 섞는다. ㅎㅎ 어쨌거나 이 모든 무김치, 나박김치, 동치미들 중 엄마의 홍갓 물김 치가 진정 핑크동치미의 최강자로 유혹적인 빛깔에 향과 톡 쏘는 맛 까지 빈틈이 없으니 그림같이 예쁜 홍갓 물김치가 투명한 그릇에 담 기면 계절이 여름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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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

생강

찹쌀풀

고운소금

새우젓국물1/2컵 (소주 컵 기준)

주의할 점

무를 5mm 두께 가로세로 3cm 크기로 썰어 김치통에 고운 소금 2컵을 뿌려 절여 둔다.

찹쌀풀 냄비에 물을 1리터 붓고 새우젓 국물을 섞는다. (찹쌀풀만들기 : 찹쌀가루 반컵 물 4컵을 큰 냄비에 넣고 잘 섞어 풀 어준 뒤 불을 켜고 저어가며 끓이다 풀이 투명하게 되면 불을 끈다.)

3 4 5 6 7

1 쪽파는 3cm 길이로 썰고 배는 무와 같은 크기로 썬다. 홍갓은 아주 긴 것만 손으로 반을 꺾어 절인무와 섞어둔다. 마늘과 생강은 납작하게 편으로 썬다. 무와 홍갓을 절여둔 김치통에 쪽파 배 마늘 생강 썬 것을 모두 담고 찹쌀풀 냄비의 모든 물을 다 붓는다. 김치통안의 재료를 위 아래 고루 섞고 잘 저어 준 뒤 찹쌀풀 냄비 에 물을 붓고 소금 1컵을 마저 넣어 잘 섞고 김치통에 붓는다.

무 절인 소금물을 김칫국물로 그냥 담기 때문에 모든 재료를 깨끗이 씻고 충분히 물기를 털어야 한다.

2) 무5개를 담을 통이 없으면 두 개에 나눠 담는데 간이 다를 수 있으므로 1시간 정도 있다가 섞어준다.

3) 1시간 후 간을 보아 단맛이 부족하면 배를 더 넣고 짜면 물을 더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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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핑크동치미 조리과정준비재료 · 무 5개 · 홍갓 한단(400g) · 쪽파 반단(200g) ·
1개 ·
3쪽 ·
1쪽 ·
·
3컵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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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칼국수

70년대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절미운동의 일환으로 강요됐던 혼분식 장려로 쌀소비를 줄이려 학교에서 도시락 검사를 했고 분 식의 날이 일주일에 이틀(수, 토요일)이나 있었으며, 무주일 무미일 까지 있었다. ‘복남이네 집에서...’로 시작하는 보리밥 노래까지 기억 이 생생하다. 이 무렵의 분식 장려 캠페인을 생각하면, 요즘의 3백 (밀가루 설탕 백미)유해론을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비만과 당뇨, 성 인병의 원흉이라도 된 듯 방송에 나오니 아예 안 먹어야 하는 건가? 우리 8남매는 각종 통계에서 제외된 걸까? 시대상을 반영한 것인지 분식을 좋아해서인지 쌀을 아껴 먹으려는 엄마의 의도인지 모르겠고, 어린 우리들은 엄마가 해 주신 음식을 먹기만 하니 엄마 가계부의 깊은 내막을 알 길이 없다. 우리집 부엌 엔 곰표 밀가루 포대가 항시 쌓여 있었고, 모래내시장 초입의 국수 가게를 단골로 다니며 소면과 중면을 수시로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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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추를 섞은 수제비 반죽 >

엄마는 수제비나 칼국수 반죽을 자주 하셨다. 엄마 손때가 묻은 반 질반질 윤이 나던 홍두깨와 칼국수를 썰어 면을 떼어 밀가루를 한 번 더 입혀 풀어 놓는 넓은 양은 쟁반이 항상 주방의 제일 손이 가 기 쉬운 곳에 있었다. 신김치를 잘게 썰어 멸치로 맛을 내어 국을 끓이고 수제비를 떠넣거 나 소면을 넣어 제물국수(국수를 따로 삶아 씻어 그릇에 담아 국을 얹지 않고 국에 면을 직접 넣어 끓이는)로 먹기도 했고, 바지락 넣고 호박 고명 올린 칼국수, 열무김치나 오이채 넣은 비빔국수 등 면 요 리뿐 아니라 각종 부침개와 막걸리빵까지 밀가루 음식을 계절마다 돌아가며 끼니로 간식으로 많이 먹었지만 엄마의 모든 밀가루 요리 중 제일 특별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팥칼국수였다. 팥을 불리고 삶고 체에 받쳐서 깔끄러운 껍데기는 걸러내어 팥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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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고소한 팥앙금이 풀어져 보라색의 팥국물이 만들어 지면, 칼 국수를 삶아 건진 뒤 팥국물에 한번 더 끓여 소금이나 설탕으로 취 향껏 간을 해 먹는 팥칼국수. 사실 번거롭기가 이를 데 없기에 해먹 을 엄두가 잘 나지 않고 잡곡을 고를 때 팥을 선뜻 집게 되지 않는 다. 밥에 넣을 잡곡으로 콩을 선호하는 데다 집에서 팥시루떡을 해 먹게 되지 않으니, 사실 건강에도 좋고 구수하며 맛도 좋은 곡식임 에도 활용할 메뉴나 요리가 별로 없다. 엄마는 어떻게 그리 쉽게 뚝딱 우리들에게 팥을 활용한 음식들을 자주 해 주신 걸까? 팥죽도 쌀알이 보이도록 끓이는 것과 팥알갱이도 쌀알도 안보이도 록 매끄럽고 뽀얗게 끓여 달게 먹는 디저트 같은 단팥죽도 먹었고 팥죽에 찹쌀 새알심을 동동 띄운 죽도 먹었다. 다같이 모여 앉아 새 알심을 만들 때면 엄마가 손바닥 사이로 찹쌀 경단을 두 개씩 돌리 는걸 따라하다가 다 뭉개뜨리곤 했다. 사실 가정에서는 해 먹기 힘든 특식 느낌인 게 팥요리이다. 동지팥 죽도 그렇고, 대보름에 먹던 오곡찰밥, 이사떡이나 개업떡도 대부분 사먹거나 얻어 먹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집은 사철 아무때고 먹었던 음식이고 간식이었다. 둘째 서진이 출산하고 엄마 집에서 몸조리하던 중에도 팥칼국수를 해주셨 다. 팥은 맛있고 배 부르지만 살이 빠지는 음식이라 산모가 팥을 많 이 먹어서 붓기를 빼야 하다고 하셨다. 엄마를 비롯해 6명의 딸을 키 우시며 체형관리를 늘 신경쓰신 모든 이면에 팥이 있었던 건 아닐까?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 6월 6일 엄마의 자손들이 빠짐없이 모여 다 같이 둘러 앉아 우리는 팥칼국수를 먹었다. 암투병 중인 엄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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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국물만 드셨지만, 우리들은 엄마와 떠들며 먹던 엄마가 해주신 팥 칼국수가 먹고 싶었던 걸까? 우왕 좌왕 하며 팥국물을 만들고 칼국 수를 삶았었다. 다 같이 먹는 마지막 끼니가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해마다 동지 무렵이면 팥죽을 쑤어 가족들에게 권하며 항상 엄마의 팥죽, 팥칼국수를 떠올렸었다. 자주 먹던 음식 친근한 음식 이건만 이제 잘 안 먹게 되는 상황이 맞는 걸까? 어떻게 하면 간편하게 팥 을 맛있게 먹을까, 항상 이런 저런 시도를 하며 엄마표 식생활을 따

라 간다. 엄마는 최소한 10인분씩 음식을 하셨다. 국수그릇, 수저만 해도 설거지가 한 가득이니 체에 거르는 번거로움도 괘념치 않으셨 던 것 같고, 팥 양이 많아서 믹서기로 여러번 가는 것보다 체에 직접 문지르는 게 빠르기도 했을 것 같다. 우리들이 해 먹으려면 3, 4인분 이면 족하니 조금이라도 간단하고 수고를 줄여야 한다. 가능한 한 간편하고 설거지를 줄이고 1인분도 가능한 요리여야 좀 더 자주 해 먹을 수 있기에. 세상에서 제일 간단한 팥칼국수 만들기 도전은 이렇게 시작했다. 우선 팥(1kg 포장된것 전부)을 깨끗이 씻어 팥 삶을 압력솥(조금 큰 것)에 5시간 이상 불린다. 팥을 한 번 삶고 바로 찬물을 부어 한 번 더 삶는다. 여기서 잠깐! 밥에 넣을 팥은 한 번 삶은 것을 덜어 냉동 실에 보관했다 쓰면 된다. 두 번 삶은 팥을 압력솥 채 핸드블랜더로 꼼꼼히 갈아준다. 곱게 갈린 팥을 냉동 밥용기에 덜어 식힌다. 압력 솥에는 지금 먹을 양만 남기고서. 냉동실에 소분해 둔 갈아 놓은 팥을 언제고 꺼내서 데우기만 하면 되니 세상에 이보다 편할 수가 없다. 팥물의 농도 소금, 설탕 취향도 제각각이니 알아서 먹고 싶은 대로 해 먹으면 된다. 물론 체에 거른 엄마표 팥죽에 비할 바는 아니나 팥 껍질에도 영양소가 풍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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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질이 많으니 핸드블랜더로 곱게 갈면 식감에 문제가 되지 않고 핸드블랜더는 설거지통에 직접 돌려 헹구면 세척도 간편해서 편리 하다. 단, 열에 강한 제품을 쓸 것. 팥칼국수 뿐만 아니라 매일 먹었던 반찬들, 간식들, 김치들을 엄마처 럼 만들고 똑같이 재현할 수는 없다. 그래도 엄마랑 함께 했던 음식, 엄마가 베푸셨던 정성을 잊지 않고 내 가족에게 배풀며 나만의 레시 피로 간소화시켜 집밥의 범위를 한가지 한가지 확대하고자 한다. 수십 년 엄마음식을 먹고도 만들어 먹지 못해 기억 속에 박제시키 는 것이야말로 죄스러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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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그럴싸한 쉬운 팥요리들

1. 팥칼국수

: 칼국수면을 삶아 건져서 압력솥에 남아 있는 팥국물에 넣고 물양을 맞추어 한번 더 끓이고 간을 해서 먹는다. 소금이나 설탕 취향껏.

2. 팥죽

: 밥 반공기(1인분 기준)를 팥국물에 넣고 끓이며 간을 맞춰 먹는다.

3. 새알심팥죽

: 인절미를 썰어서 그릇에 담고 팥국물을 부어 간을 맞춰 먹는다.

4. 팥라테

: 우유 반 컵을 전자렌지에 데우고 팥물을 얹어 시럽이나 설탕을 적당히 넣어 먹는다.

엄마 팥칼국수의 특징

1. 팥껍질이 씹히는 것을 싫어하셨다.

2. 직접 반죽하고 밀어 칼국수 면을 만들고 면을 따로 삶아 전분을 빼고 팥칼국수를 해서 칼로리는 몹시 낮추었다.

3. 걸쭉한 느낌은 팥 앙금에게서 나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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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 불리는 시간 제외) / 2인분

쉽게하는 팥칼국수

팥(적두)를 씻어 충분히 불린다(5시간 이상)

큰냄비에 팥이 잠기도록 물을 넉넉히 붓고 삶는다.

1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수시로 저어 절대 눌지 않도록 오래 삶는다.(1시간)

팥이 터진 게 보이면 불을 끄고 덮어 뜸을 들인다. * 잘 삶아진 팥은 물이 별로 없고 냄비에 팥이 가득한 느낌

뚜껑을 열어 팥을 식힌 후 으깨어 채에 내린다.(껍질이 보이지 않 도록 - 제일 힘든단계) * 말끔히 체에 내리면 고운 팥앙금에 껍질이 없 어 너무 좋지만, 힘드니 핸드블랜더로 촤라락 먹을 만큼만 남기고 덜어내어 보관한다. 칼국수면을 삶아 건지고 냄비에 앙금을 한국자 넣고 물을 1인분 당 2컵(400 ml)부어 끓이다, 칼국수면을 넣고 한소끔 끓이고 소금간을 한다.

밥하는 것처럼 삶는다.

뒤적여 찬물을 붓고 다시 한번 압력솥에 삶는다.

팥 중 한 번 먹을양을 남기고 덜어 팥을 냉동실에 보관한다.

4) 압력솥에 남은 팥에 물을 조금 더 넣고 핸드블랜더로 갈아둔다.

5) 칼국수를 삶아서 헹구어 낸 뒤 블랜더로 갈아둔 팥이 담긴 압력솥에 넣고 저어가며 한 번 더 끓인 뒤 소금간을 한다.

6) 처음부터 팥을 1컵만 삶아 조금씩 해먹어도 좋다.

7) 미리 삶아둔 팥이 있으면 더 자주 더 많이 팥요리를 먹게 되어 항상 1봉지는 다 삶아두니 편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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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0~40분
팥칼국수 조리과정준비재료 · 적두 1봉지 (800g 또는 1kg) · 소금 · 설탕 · 칼국수면 · 찹쌀가루 1) 팥을 씻어 압력솥에
2) 한 번 삶아진 팥을
3) 두 번 삶아진
112 오직 강자여사 그 맛의 정수, 장과 소스들 오직 강자여사 그 맛의 정수, 장과 소스 Ⅲ

1. 메주 2. 고추장 3. 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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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오직 강자여사 그 맛의 정수, 장과 소스들 메주 오직 강자여사 그 맛의 정수, 장과 소스

겨울밤이 깊어지던 때 며칠 전부터 커다란 함지박에 불려둔 백태를 온종일 삶아 우리 집안에 콩 냄새가 나고, 엄마는 뜨겁게 삶은 콩을 갈아 달달 짭짤하게 간을 해서 두유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콩 껍질 과 함께 걷어낸 거품과 찌꺼기를 따로 모아 마당 구석에 흙과 섞기 도 하셨다. 서리태콩으로 콩물을 내리면 빛깔이 고와서 색다른 맛 이 있었지만 메주콩은 정말 뽀얀 우유 같아서 정말 많이 먹었다. 두 유를 만들 때보다 콩을 더 삶아야 메주를 만들게 되는데, 콩국수집 에서 콩물을 마시고 메줏내가 난다고 평하는 말이 무슨 얘긴가 하 면 너무 오래 삶아졌다는 뜻일 게다. 메주를 빚으려면 삶아진 콩을 반쯤(된장엔 콩이 더러 보여야 제맛이니)으깨어 치대야 하니, 뜨거 운 김이 올라오는 삶아진 콩이 한 김 빠지면 두꺼운 비닐봉투(뭔가 식재료를 포장했던 것을 씻어 말려 두셨다)에 바가지로 삶은 콩을 담고 공간이 생기게 입구를 묶어 우리더러 밟으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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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굿공이로 빻아 반죽이 된 것을 네모지게 벽돌 모양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이게 설거지를 비롯해 뒷마무리가 너무 힘들기에 꾀를 내신 것이다. 비닐봉투는 봉투라기보다 포대에 가까웠다. 우리들이 번갈 아 밟아도 터지지 않고, 뒤집어보면 덜 뭉개진 콩이 잘 보였다. 메주 를 큰 쟁반 위에서 손바닥으로 두드려가며 직육면체 모양으로 만드 는데, 비닐포대 안의 콩이 잘 뭉개져 반죽이 된 것을 큰 양푼에 부어 쏟아 놓고 또 한번 밟아야 할 삶은 콩을 다시 포대에 넣고... 우리들 은 다 분주하다. 게다가 콩반죽 빛깔은 오묘하게도 피부색과 너무 비슷해서 얼굴에 묻어 있어도 표가 나지 않아 이게 말라서 피부가 당기면 나중에 세 수할 때 불려서 씻곤 했다. 옷소매에 묻고 바닥에 눌러 붙고.... 풀죽 이 된 콩반죽은 한동안 어디선가 묻은 채 발견되었다. 메주 만들 때 몇번이고 걸레를 빨아가며 닦았었는데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엄마는 적어도 사나흘동안은 콩과 씨름하셨을 것이다. 10개 정도 메주가 만들어지려면 적어도 반죽 포대를 세 번은 밟았 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콩을 한 말도 넘게 삶았던 것 같다. 콩을 불려서 삶은 것도 기술이라는 것을 내가 콩을 삶아보고서야 알았는데, 아무리 삶아도 메주콩으로 으깨지지 않는 경험을 했었 고, 두유를 만들려고 갈면 뽀얀 두유가 되지 않고 거친 콩가루가 씹 히곤 해서 대체 콩이 문젠가, 덜 삶은 건가 엄마한테 전화했었다. 불 리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줄 몰랐고, 나는 쉽게 보고 해먹을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두유도 어려운데 메주를 아파트에서 어찌하랴. 어쨌든 겨울철 뜨겁게 달궈진 아랫목에 못쓰게 된 이불을 깔고, 그 위에 멍석을 깔고, 나란히 메주를 세워 말리는 것은 우리 집의 겨울 풍경이고, 겨울 냄새이며, 엄마의 꼭 완수해야 할 그해의 마무리 미

오직 강자여사 그 맛의 정수, 장과 소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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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이었다. 메주가 마르면서 겉이 갈라지고, 안에 곰팡이가 보이면 특 유의 콤콤한 냄새가 나고, 가운데가 푸른지 검은지 알 수 없는 색이 올라오고. 이것은 이듬해 정월에 대보름 무렵 소금물에 담긴다. 집집마다 메주 띄우는 장소, 온도, 공기, 사람이 다 다르기에 장맛 이 같을 수 없고, 발효의 매직이라고 순창의 명인, 강원도의 명인들 이 이야기하는 것을 해마다 장 담는 철에 듣곤 한다. 엄마의 장도 엄 마가 하기에, 우리들이 북적이며 살던 그 집이기에 가능한 맛이리라. 엄마의 장맛을 재현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집간장의 깔끔하고 달큰 짭쪼름한 나만의 깊은 맛을 찾고 싶어 명인들이 만들어 파는 메주 로 2, 3년에 한 번씩 장을 담는다. 머릿속엔 엄마가 하시던 모습, 지 나가며 들리던 말, 그리고 아버지가 지은 집의 아랫목에서 말라가던 메주들을 떠올리며. 적은 양이지만 간장이 나오고 된장이 되면 너 무 기쁘다. 호박만 넣은 된장을 끓이며 엄마를 따라 해본다 . 햇된장 으로 찌개를 끓여봐야 간을 알 수 있어서다. 된장이 너무 짜면 쓴맛 이나니 남겨둔 메주가루와 삶은 보리를 햇된장에 섞어 꼭꼭 눌러 두 고 고추씨를 삼베 주머니에 넣어 된장 위에 덮으면 익으면서 칼칼한 맛이나고 상하거나 곰팡이스는것도 방지된다던 귓동냥이 떠오른다. 가지런히 서서 말라가던 단정한 메주들은 주변을 성스럽게 정돈하고 보살피던 엄마의 손길이 닿아서 소금물에 제 빛깔을 내어주고, 40년 째 간수한 씨간장과 섞이고, 햇간장이 묵은 간장과 맛이 같아지도록 햇빛에 쪼여지기를 반복해서 완성된 엄마만의 장이 되었다. 간장 독 을 열었을 때 짙은 검은 빛에 하늘이, 구름이 비쳤다. 장독대 주변에 벌레가 올까, 낙엽이 떨어질까 청소하며 항아리들도 키 맞추고 모양 에 따라 가지런히 열 세우던 엄마의 보물이 바로 장항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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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활용 양념- 강된장

먼저 만들어 두고 싶은 양을 정한다. 용기의 1/3 정도 된장을 쓰면 된다. 채소 재료 - 표고버섯 청양고추 양파 다진마늘 이외에도 남은 채소를 다져둔다. 단백질 재료 - 조갯살 오징어 새우살 우렁이 삶은 것 중 구하기 쉬운 것, 다진 고기 를 써도 된다. 프라이팬에 단백질재료를 볶는다. 된장을 넣고 쌀뜨물을 된장이 잘 풀어질 정도로 조금 넣고 참기름을 넉넉히 둘러 2분 정도 볶다 다진 채소를 넣고 약한 불에 2~3분 끓이듯이 볶는다. 불을 끄고 뚜 껑을 덮은 채 뜸을 들이며 식을 때까지 놓아둔 뒤 채소물이 잘 섞이도록 저어가며 통에 담아두고 먹을 때는 꼭 덜어 먹는다. 활용 요리

열무비빔밥 양념으로 쓴다. 미역 다시마 양배추와 쌈장으로 곁들인다. 두릅 등 쌉싸름한 채소를 데쳐 양념장으로 곁들인다. 두부찌개에 두부 한 모당 강된장 한 숟가락을 얹어 끓이면 된다. 각종 나물 얼갈이 배추 열무 쑥갓 미나리를 데쳐 강된장을 넣고 주물러 무친다.

118 오직 강자여사 그 맛의 정수, 장과 소스들

사랑 봄물보다 깊으리라 갈산보다 높으리라 달보다 빛나리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만 말하리

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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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강자여사 그 맛의 정수, 장과 소스

고추장

우리 8남매가 한창 클 때 엄마는 고춧가루를 해마다 반 관씩 늘려 장만 했다고 하셨다. 어느 해 남는 고춧가루가 생길 때가 왔고 겨우 두 관만 해도 될 것 같다고 엄마는 이제 덜 힘들게 되었다고 하셨다. 내 눈에 비친 엄마 는 덜 힘들게 된 그때가 지쳐 보이기도 했고 허무함이 드리운 것 같 아 뭔가 가슴 속을 휘익 스쳐 가는 서늘함과 함께 세월이 느껴졌다. 그 기분에 잠기는 게 싫어서 ‘엄마 일어나. 옷입어. 나가자!’ 하며 오 히려 시끄럽게 너스레를 떨었다. 고춧가루 장만하는 일은 가을철마다 엄마의, 그리고 우리 가족의 큰 행사이고 과제였다. 좋은 태양초를 구하는 것(어느 해는 물고추 를 사다 직접 말렸고, 어느 해는 고추를 모종부터 키워 수확해서 말 렸다), 목돈이 드는 것, 일일이 닦고 가위집 내서 씨 빼는 노동에 방 앗간가서 빻아오는 것까지 그 모든 수고로움이 어찌 한 두마디 말로

120 오직 강자여사 그 맛의 정수, 장과 소스들

될까. 엄마가 파묻힐 듯 쌓인 고추 포대를 보면 누구라도 옆에 가 앉 거나 행주를 빨아오거나 엄마가 마실 물이라도 떠오게 된다. 엄마의 가계부는 봄부터 준비를 한다. 김치를 담글 때마다 고추장 을 먹을 때마다 올 가을엔 얼마나 마련해야 할까, 늘 계산하고 대비 해야 했다. 태양초도 등급이 있고 산지별로 맛이 달라서 엄마는 덜 맵고 두꺼 워 가루가 많이 나오는 충청도산과 작고 빛깔이 예쁘지만 몹시 비 싸고 매운 청양고추 태양초를 섞어서 장만했다. 6kg짜리 태양초 포 대가 몇 개씩이나 거실에 쌓인 채 넓은 함지박에 깨끗이 닦인 고추 를 담고, 고추 몸통을 가위로 잘라 씨를 빼서 고추 꼭지와 모으는 다른 양푼을 두고, 깨끗한 행주와 고추 때로 더러워진 행주를 담은 쟁반이 늘어진 풍경을 대 엿새 동안은 봤던 것 같다. 왜 고추씨는 계속 나오는 지, 비질도 했고 진공청소기도 매일 돌렸는데 어디선가 고추씨는 몇 달간 나타난다. 고춧가루는 고운 것과 굵은 것 두 가지로 빻아서 따로 보관하는데 고춧가루 보관도 노하우가 필요하니 자칫 맛이 변하거나 곰팡이가 나거나 색이 탁해지는 상황을 방지해야 하는 정말 힘든 일이다. 양 도 워낙 많으니. 요즘은 1kg씩 소분해서 지퍼백에 담아 아예 냉동실에 넣어 장기보 관이 가능하지만 엄마가 살림을 대규모로 하시던 7, 80년대만 해도 김치냉장고가 대중화되기 전이고, 작은 냉장고 겨우 한대이니 땅에 묻어둔 항아리, 바람 잘 통하는 서늘한 응달 이외에 어느 곳에 어떻

간수하신 걸까. 더구나 양도 많고 비싸고 힘든 노고까지 얹혀진 고춧가루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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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춧가루가 김치를 비롯해 엄마 양념의 기본이 되니 정말 비중이 큰 지출이고 그만큼 중요했다. 특히 고운 고춧가루는 고추장 만들 것으로 따로 계산해 두셨다. 엄마가 고추장을 담는 날이 어느 때다 라고 정해진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된장 간장과는 달리 사실 아무 때고 고추장은 만들 수 있 었다. 온도가 높고 벌레도 많고 습한 여름철을 피해 만드는 게 대부 분이다. 문제는 하루 꼬박 엿기름 물 내려야지, 찹쌀죽 쒀야지, 항아 리 단속도 해야지, 남은 고추장도 작은 용기에 옮겨야 하는 등 일이 많아 어느날 마음먹은 하루를 엄마가 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지간 한 대소사가 다 마무리 지어진 겨울철이나 묵은 고춧가루가 더 보 관하면 빛깔이 변할 것 같다고 판단 될 때 하거나. 우리 집은 주로 봄철 볕이 가득할 때 넓은 함지박에 가득 비벼진 윤기 나는 빨간 햇 고추장을 보곤 했다. 사실 고추장은 간단히도 할 수 있다. 찹쌀죽이 아닌 보리나 쌀로 하 기도 하고 조청을 넣어 단맛나는 고추장을 만들기도 한다. 엄마는 찹쌀로 죽을 쑤고 엿기름 물을 섞어 식혜처럼 단맛이 올라 오도록 약한 불에 올려 몇 시간이고 저으며 고아서 베이스를 만드셨 다. 이 달달해 진 고추장베이스를 식혀서 메주가루를 넣고 소금으 로 간을 하고 고춧가루를 넣어 잘 풀어져 섞이도록 저어주면 고추 장이 되는데 단맛 짠맛이 균형 있게 맞아야 하고 고운 고춧가루 색 이 윤기 나게 숙성되어야 하니 항아리에 옮겨 맨 위에 소금을 하얗 게 덮고 단맛에 벌레가 꼬이지 않도록 망을 씌워 햇볕을 쬐어 주면, 겉이 꾸덕하게 마르고 항아리 속 고추장이 익으며 수분기도 줄어 알맞은 농도가 된다.

122 오직 강자여사 그 맛의 정수, 장과 소스들

결혼 후 몇 년이 지났을 때 플라스틱 통에 엄마의 고추장을 퍼 온 적이 있었다. 아으! 윗부분에 공간을 조금 남겨서 퍼왔어야 했는데 그만, 가득 차게 욕심껏 담다 보니 집에 오자마자 대참사가 일어나 고 말았다. 오는 길에 고추장이 익어서 부풀어 올랐는데 플라스틱 통을 열려고 뚜껑을 돌리는 순간 빨간색 점성의 액체가 틈을 비집 고 사방으로 분출한 것이다. 옷에 튀고 가구에 벽지에 붉은 칠갑을 해 난리가 났었다. 미련한 나 스스로 얼마나 욕했던지. 차가운 곳에 두고 가라앉혔으면 될걸, 조 금 덜 담았으면 될 걸 등등. 진짜 고추장은 발효와 숙성 과정이 반드 시 따르므로 만들고 나면, 익는 동안의 온도, 빛, 습도가 필수 요소 일 뿐 아니라 잘 간수하고 저장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장류까지 냉 장 보관하려면 냉장고가 너무 커야 하거나 아니면 조금씩 사 먹어야 한다. 더구나 나는 젓갈도 엄마 따라 직접 담아대니 냉장고 공간은 아무리 정리해도 모자랐다. 그 참사를 일으킨 고추장은 봄 가을이 아닌 거의 여름이 되어 만든 것인데, 엄마의 알뜰함과 창의성이 전제된 결과물이었다. 무슨 얘긴 가? 전말은 이렇다. 겨울에 우리 가족이 자주 먹던 간식 중 인절미를 꼽을 수 있는데, 햇찹쌀이 나올 무렵 멥쌀과 가격이 별 차이가 없을 때 찹쌀 농사지 으시는 지인이 작황이 좋아 수확량은 많은데 잘 팔지 못하고 계셨 다. 엄마는 평년보다 많은 양의 찹쌀을 주문해서 일부는 인절미를 뽑았다. 외삼촌네와 주변 이웃들과도 나누고, 겨울 내내 먹으리라는 계획으로 집 냉동실에 차곡차곡 두었다. 인절미는 한 김 식어 말랑 할 때 얼렸다가 먹고 싶을 때 꺼내면 금새 처음처럼 말랑 해져서 맛 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가족들이 뭐든 다 잘 먹고 많이 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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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같았지만 사실 금방 만든 것 새로 만든 것을 잘 먹었지 한 가지 를 두고두고 계속 먹지를 않았다. 결국 인절미가 막 해온 며칠만 가 족들이 먹고 난 뒤 겨울에 몇 번 꺼내 프라이팬에 구워서 꿀에 찍어 먹은 것 외에(색다르게 먹어보려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아까운 인절미를 고심 끝에 콩고물이 묻은 떡 전체를 이용 해 고추장 만들 결심을 실행하셨다. 엄청난 크기의 들통에 담긴 딱딱해진 인절미에 물을 붓고 약한 불 에 올려 말도 안되게 묵직한 손맛으로 인절미 죽이 풀어지도록 몇 시간을 저어서 또 엿기름물을 부어 저을 수 밖에 없었으니 결국 내 가 가서 돕고 텅 빈 냉동실을 후련해하며 청소를 함께 했다. 가족이 많으니 뭐든 잘 먹고 많이 먹을 거란 생각은 나부터도 하지 말아야 되는데 사실 자녀들이 성장할수록 집에서 밥 먹는 일이 적 어지고 입시생들은 집에 거의 있지를 못하니 인절미처럼 장기 보관 중에 외면당하는 음식이 얼마나 많을까. 어쨌거나 인절미로 만든 고추장은 너무 빛깔이 예쁘고 입자도 고운 데다 달콤하기 그지없어 그냥 풋고추만 찍어 먹어도 맛이 좋았고, 참기름과 비빔국수를 해보니 다른 양념이 필요 없었다. ‘엄마 대성공이야! 고추장이 진짜 예술이네!’ 내가 드린 전화가 엄마는 반가우셨던 모양이다. 얼마 뒤 엄마는 더 갖다 먹으라고 하시며 힘드셨노라 푸념도 하셨다. 돌이켜보면 장이 만들어지는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재료를 응용해 서 될까 안될까 실행에 옮기는 것. 박강자였다. 엄마의 삶에 대한 태도가 전부 한결같았던 모습이다. 해보지 않고 망설이는 경우보다 원리를 파악했으면 확신을 가지고 바로 움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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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이 바로 엄마의 에너지였다. 우리 8남매의 삶의 자세로 흘러 우리 자신도 모르게 엄마 모습이 되어가는 힘인 것이다. 해마다 만들어 먹던 고추장은 초장으로 쌈장으로 만들어지고 매운 양념장으로 만들어져 떡볶이로 제육볶음이나 호박찌개에 기본 맛이 되었다. 적당히 짠맛 단맛 매운맛이 균형 잡힌 고추장이 어느 날인가 기억 속의 맛과 일치하길 바라며 나만의 고추장을 또 만들어 본다.

고추장 양념장 만들기

- 양념장 담아둘 용기를 준비한다. 용기의 절반에 고추장을 담을 계산을 하고 나머지 부분은 야채 를 다져서 채운다.

- 다져 넣을 야채는 풋고추 마늘 쪽파 대파 양파 부추 달래 등 제철에 나는 것 요리하고 남은 것을 다 이용한다.

- 용기에 야채를 담고 그 위에 고추장을 넣어 젓가락으로 살살 섞는다. 올리고당을 고추장 양의 1/4 정도 넣고 다시 섞는다 맨위에 참기름을 뿌려 냉장보관 한다. 고추장 양념장 사용요리

1. 새송이 표고 느타리 등 버섯을 구워 양념을 바른다.

2. 두부조림

- 작은 냄비에 두부 한 모를 적당한 크기로 약간 두툼하게 썰어 담고 양념장을 크게 한 숟가락 올 리고 물반컵을 부어 중불에 3~4분 끓인다.

3. 떡볶이(떡 100g 정도)

- 프라이팬에 물을 붓고 떡을 삶는다. 말랑해지면 물은 버리고 고추장양념을 1숟가락 넣고 떡과 버 무려 준 다음 소시지나 어묵을 취향껏 넣고 볶는다. 국물 있게 먹고 싶으면 물을 추가, 맵게 먹고 싶 으면 고춧가루 추가, 싱거우면 액젓을 조금 넣어 간을 맞춘다.

4.

- 냄비에 양파를 둥글게 토막쳐 깔고 고등어를 올린다. 고추장양념을 고등어에 바르듯이 반숟가 락씩 올린다. 고등어가 반쯤 잠기도록 물을 붓고 센 불에 2분정도 팔팔 끓이다가 약한 불로 줄여 5 분간 뚜껑덮고 둔 뒤 상에 올린다. (*주의할 점- 고등어 자반일 경우 양파 외에 배추 무 감자 호박 등 채소를 더 넣고 양념장의 양을 반으로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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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조림(1마리)
126 오직 강자여사 그 맛의 정수, 장과 소스들 식초 오직 강자여사 그 맛의 정수, 장과 소스

지금의 신식부엌은 80년대 이후에야 우리 집에 설계된 것 같다. 이 전의 부엌은 집의 거실 높이보다 적어도 무릎 깊이 만큼 낮았던 것 같고,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지으셨던 집들을 떠올려 봐도 당시에 가장 인기 있던 주거 형태를 지으셨을 테지만, 주방은 아궁이와 함 께 밖에 있는 집이 많았고, 연탄보일러가 대부분일 때는 지하실에 연탄창고와 보일러 시설이 있고, 그 위에 거실 마루가 깔리는 구조 에 부엌 바닥은 하수도도 있고 난방이 들어가지 않았다. 타일로 개수대를 수작업으로 제작해서 서서 설거지와 식재료 손질 을 하게 만든 부엌 구조를 어린 내가 보기에도 첨단으로 보이고 화 려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항상 물 끓이는 큰 솥이 걸려있는 아궁이 가 있고, 큰 솥을 들면 연탄에 불이 올라와 빨갛게 보였고, 부지깽 이, 연탄불 덮개를 들어 올리는 꼬챙이(정확한 명칭이 뭘까?), 연탄 집게가 능숙하게 손에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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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보일러가 대중화될 때쯤 매직쉐프에서 나온 가스오븐레인지를 엄마는 무척 갖고 싶어 하셨다. 린나이에서 나온 2구짜리 가스레인 지도 이전에 쓰던 아궁이나 석유곤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획기 적으로 편했고, LPG 가스통을 배달시키는 일이 주기적인 소비였는 데 국을 끓이다 가스가 떨어지는 일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니 보조 조리시설이 자꾸 늘었다. 여전히 야외 화덕이 구실을 했고, 전기 프 라이팬도 몇 개나 썼고, 식혜 만드는 전용 전기밥솥, 전기 약탕기도 항상 주방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모든 주방 시설의 진화 과정에 언제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원래 그 자리였던듯 한데, 시골에서 온 것인지 누구에게 물려받은 것인지 모를 됫병이 있었다. 보해소주나 금복주 같은 주류회사에서 당시에 팔던 소주가 30도나 되던가? 겉이 파르스름하고 맑은 소주가 담겨 있던 병이지만 엄마는 이 됫병에 막걸리 식초를 발효시켰다. 따뜻한 아궁이 한쪽, 바람이 안 들어오는 쪽, 햇빛이 직접 닿지 않는 쪽에 됫 병이 2개 정도 있었다. 솔잎을 가지런히 묶어 마개로 썼다. 식초의 다 른 이름이 고주라는 것이 유래라고 할 것 없이 일상적인 우리집. 엄 마의 기본적인 양념 만들기의 첫 단계였다. 식초 냄새만 맡아도 얼마 나 신지 적당한지 발효 정도를 가늠할 수 있었던 게 엄마의 후각이 었는지 엄마는 가끔 막걸리를 만들고 발효 중인 됫병에 새 막걸리를 조금 추가하셨다. 맑게 뜬 윗부분 식초는 옹기로 된 다른 주전자 모 양 병에 따라 놓고, 양념 병을 줄 세워둔 한쪽에 식초병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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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걸리와 식초 사용

1. 생선 회무침을 할 때는 꼭 생선을 썰어 막걸리로 씻는다.

2. 초간장, 초고추장 등 새콤한 양념에 사용

3. 무생채, 상추 겉절이, 봄동 겉절이에 식초 몇 방울로 풍미를 돋운다.

4. 각종 된장 초무침 나물에 발효 식초가 기본

5. 오징어 초무침에 반드시 발효 식초를 쓴다.

엄마의 맏사위인 남편이 처음 인사하러 가고 얼마 후 우리가 결혼하 기로 하고 약혼이며 결혼식이며 준비를 해야 할 때, 처음 우리 집에 서 밥을 함께 먹었다. 그때 엄마의 오징어 초무침을 처음 먹은 남편 은 정말 감탄해 마지않았다. 특히 오징어를 좋아하여 이곳저곳에서 많은 오징어요리를 먹었지만 이런 맛은 처음이라고 하였다. 알고 보 니 오징어 초무침의 독특한 엄마만의 맛은 바로 식초였다. 엄마는 식초를 특별하게 관리하였고, 모든 새콤한 요리들을 엄마 맛 으로 만들어서 우리 8남매는 어디서도 새콤한 음식에 맛있다고 느 끼질 못한다. 오징어를 데치지 않고 투명한 국수가락처럼 보이도록 길게 썰어서 물회처럼 먹었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이 음식은 몇 시 간도 보관할 수 없어 바로 먹어야 해서 딱 한 끼 그 시간에 있는 사 람만 먹고 나머지는 데쳐서 초무침을 하셨다. 엄마의 모든 맛 중 정말이지 따라 할 수가 없는 맛이 식초가 들어간 음식들이다. 막걸리 식초를 엄마처럼 만들어 쓰는 대가님들이 어딘 가 숨어 있겠지 싶어 엄마의 고향을 가보기도 했고, 시장 주변 맛집 도 가본 적이 있는데, 홍어회 무침 골목이 있는 시장에서 발견한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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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구에 너무 놀란 적이 있다. ‘우리 가게는 빙초산을 쓰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빙초산을 먹었을 수도 있구나를 깨달았다. 아 주 조금만 넣어도 바로 쏘는 신맛 때문에 음식에 물이 덜 생겨 보기 에 깔끔해 보이는 접시를 연출할 수 있어서 사용하는 가게들이 더 러 있고(물론 인체에 해가 없을 만큼 쓰겠지만), 언젠가 왜 이리 특 이한 신맛이 날까 하며 엄마의 식초 맛과 저절로 비교하게 되던 기 억들이 바로 소환되는 순간이었다. 시판되는 식초들을 대부분 사서 사용해 보고 맛을 찾았다. 레몬즙을 써보기도 하고 2배 식초, 3배 식초를 비교해 보기도 하고, 감식초, 흑초, 사과식초 등 다양하게 써 보았다. 그때마다 느끼는 알 수 없는 아쉬움과 모자람이 감히 형언 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아! 왜 엄마를 적극적으로 배우질 못했을까. 궁여지책으로 생선에는 레몬즙, 된장 초무침에는 현미 식초, 채소 겉절이와 무생채에는 사과식초를 쓴다. 맛이나 향의 충돌이 생기는 시행착오 끝에 정착한 식초사용법이지만 나의 막걸리 식초를 향한 도전은 계속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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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회

: 횟감용 생굴을 찬물에 잠깐만 씻어 체에 밭쳐 물기를 빼 접시에 담고, 청양고 추를 아주 잘게 다져 위에 뿌린다. 불린 미역을 썰어 한쪽에 함께 담는다. 레몬 즙을 뿌린다.

생선 맑은 탕

: 우럭, 도다리, 가자미 등 제철 흰 살 생선을 미리 소금 후추로 30분간 밑간해 둔다(냉동 생선은 해동해서 쓴다). 끓는 물에 생선을 넣고 10분 정도 끓인다. 콩 나물, 미나리, 쑥갓, 대파 등 채소를 넣고 뚜껑을 덮은 뒤 불을 끄고 상에 올리 기 전까지 2~3분간 뜸을 들인다. 간은 소금, 새우젓, 까나리액젓, 멸치액젓, 참 치 액젓 중 취향대로 한다. 생선은 살짝 절인 것이고 짜게 되면 본연의 맛을 해 치므로 최대한 적게 간하는 것이 좋다. 국간장으로 간을 하면 국물이 갈변하니 그릇에 담았을 때 예쁘지는 않으나 맛은 훌륭하다. 먼저 냄비에서 나온 그대로 맛을 보고 채소를 먹고 나서 두 번째에 레몬즙을 뿌려 맛을 비교해보면 색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레몬즙 대신 식초를 사용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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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몬즙 사용법 (생레몬 또는 시판 레몬즙)
엄마와의 시장 로드Ⅳ

1. 동대문시장 2. 남대문시장

엄마와의 시장 로드

동대문시장

엄마와 나. 우리가 같이 보냈던 시간이, 일이 뭐가 있을까. 일요일에 목욕탕 간 것이나, 결혼 후 백화점 쇼핑을 같이 했던 몇 번 을 빼면 대부분 같이 시장에 다닌 것이다. 매일 삼시세끼를 위한 모 래내시장에 장보러 다닌 것이 아닌,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 평화시 장, 경동시장, 중부시장 등 특수시장은 날 잡아서 가야하고 시간이 많이 걸려 일종의 여행이자 나들이이자, 고행이면서도(그때는 택배 문화가 없던 시절이라 구매한 물건은 다 내가 들고 와야 했다) 설레 는 일이었다. 경동시장과 중부시장은 또 다른 의미의 식재료 준비를 위한 장보기 일환이어서 재미있지는 않았다.

엄마와의 시장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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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다녔던 엄마의 주 거래처인 동대문시장은 각종 원단상과 단골 포목점이 있었고, 짜투리를 파는 원단 노점상부터 바늘이나 미싱부품, 단추나 지퍼 등 부자재, 특수한 실 등을 전문적으로 파는 조그만 가게들이 구석구석 밀집해있었다. 종로5가에서 동대문 로터리까지 정말 광활한 시장이었고, 청개천이 복개되기 전 방산시장, 평화시장까지 이어져 무수히 걸어 다녔다. 같 이 다니다 보면 엄마의 눈썰미에 내 눈도 돌아갈 지경이었으니 맘에 드는 물건이 나타나도 절대 한 번에 구매하는 적이 없는 엄마는 발 품을 팔고 또 팔며 기막힌 흥정 솜씨를 보였다. 특히 동대문시장 일대는 모든 유명제품의 복제품부터, 신진디자이 너들의 무대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유행이 창조되는 말 그대로 첨 단 의류시장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약재상, 원예 용품, 꽃씨, 채소씨앗 등 종자상부터 약 국 거리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니 맛집 천지였다. 도매상이 주로 다니는 새벽시장에 밤새 돌아다닌 후(우리 집 여자 들만 해도 7명이라 속옷을 묶음으로 사게 되니 도매상인 줄 아는 상인들도 더러 있었다.) 진하고 달달하게 타주는 이동식 다방의 네 슬레나 초이스커피를 마시면 와! 정말 눈이 새로 뜨였고, 호떡을 한 개씩 먹고 또 힘내서 돌아다니곤 했다. 엄마와 시장에 수없이 다니면서도 함께 식당에 앉아 여유롭게 한 끼 를 해결한 적은 거의 없었다. 즉 외식 자체를 하지 않았다. 스낵으로 잠깐 허기를 달래는 정도였지 진짜 밥은 원래 집에 가서 먹는 거였 는데. 동대문시장에서 제일모직 등 양복감을 주로 취급하는 제법 큰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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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엄마와의 시장 로드

의 단골가게에서 아버지 양복감을 주문하고 나오던 어느날 엄마와 평 양냉면을 먹게 되었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인지 아니면 엄마도 한 번쯤 큰딸과 호사를 누리려는 생각이셨는지, 앉아서 쉬며 주문한 냉면 두 그릇. 간이 된 건지 맛이라는 게 뭐라도 있는 건지 맹숭맹숭 무슨 맛 인가 하며 면을 먹어보니 뭔가 쿰쿰하고 구수한 이 맛이 숭늉 맛인가? 엄마한테 나지막이 물었다. ‘원래 이런 맛이야?’ ‘냉면 육수를 살짝 마셔봐. 조미료없이 이 맛 내는 게 어려운 거야. 이 가게는 재료를 안 아끼고 안 속여.’ 엄마의 얘기를 듣고 비로소 벽에 걸린 차림표와 음식값을 보았다. 학 교 앞 분식집에서 파는 맵고 시고 달고 한 번에 다가오는 감칠맛의 비 빔국수와 그 냉면값이 별 차이가 없었다. 광장시장에서 종로6가 동대 문 원단 시장으로 가는 길목의 커다란 냉면집. 엄마랑 가서 처음 먹은 평양냉면. 담음새가 너무 정갈하고 깔끔해서 마치 모형 같았다. 처음 먹는 육수 맛이 맛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은 비어있는 맛이었으니, 정말 의아스러웠다. 그러나 이날 나눈 엄마와의 대화는 이후 내 인생의 모든 외식 메뉴를 정하는 기준이고 철학이 되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 질이 좋은 원재료를 쓰는 식당에선 양념 맛을 과하게 내지 않는다. 신선한 재료가 강점이기 때문이다. - 주인이나 요리사가 깨끗하고 단정한 복장을 하고 손님을 맞는 가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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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주방도 깨끗하다.

- 세상에 싸고 맛있는 음식은 있을 수 있지만 싸고 좋은 음식은 기대 하면 안된다.

- 배가 많이 고플 때는 오히려 밖에서 음식을 먹으면 안된다. 왜? 강한 양념, 너무 달고 짠 음식이 맛있다고 여겨지면 진짜 입맛을 잃게 되고 정확한 음식평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엄마가 힘들게 돌아다니고 지쳤을 때 택한 메뉴가 평양냉면인 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비빔밥이나 매운 낙지볶음 등을 먹는다면 필 시 허겁지겁 안 먹어도 되는 양을 먹었을 게 아닌가.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비롯해 온 가족이 항상 맛있는 음식을 푸짐 하게 먹고 갖가지 제철 음식을 먹었으며, 밤늦게 오실 때 아버지 손 에 들려있던 통닭이나 순대를 야식으로 먹었지만, 누구 하나 비만인 사람이 없었다. 물론 고양이 우유 접시만큼도 못 먹는 넷째 영경이, 속탈이 잘나서 항상 고심하는 둘째 영순이는 한창 클때 조차 너무 가녀린 몸이었지 만 사실은 엄마의 세심한 배려가 늘 뒷받침되어 큰 병치레 없이 잘 먹고 잘 놀았고 그 힘으로 공부도 잘하는 딸들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몇 년간 동대문시장을 가지 못했다. 돌아가시기 직전 투병 중일 때 막내 동생 영은이의 결혼을 앞두고 엄마 대신 내 가 혼수 준비를 도울 수밖에 없어 한복집, 그릇 가게, 이불 가게를 갔었던 기억은 꺼내 보지도 못하겠고, 엄마가 돌아가신 지 1년째 탈상을 위해 단골 한복집에서 엄마를 위한 마지막 옷을 준비하며 너무 울며 다녔던 그 길, 그 골목, 그 가게들을 몇 년간은 기억 저편 에 눌러두었다.

엄마와의 시장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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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시간이 흘러 영순이, 영경이와 속옷을 묶음으로 사러, 때론 모자를 사러 가서는 엄마의 시장 로드를 따라가며 엄마 얘기를 하고 그때 먹던 것을 먹고 우리는 울음을 감추며 더 크게 떠들곤 했다. 광장시장의 녹두전이나 떡볶이 허파 볶음을 한입씩 먹고, 그 골목 에서 파는 쑥인절미에 눈이 갔다. 거문도 쑥으로 만든 엄마가 사다 가 할머니께 드렸던 떡이었다. 골목 밖의 종자 가게 꽃모종 가게를 기웃거려보다가 미싱 부속 가게, 단추 가게가 즐비한 골목을 지나 다녀 본다. 우리들은 엄마와는 해보지 않았던 호사를 누린다. 카페 에서 놀다가, 디저트를 추가로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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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로드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이 일터였다면 남대문시장은 놀이터였다. 주로 완제품을 사러 다녔고, 독특한 디자인의 수입품들이 많 아 구경 자체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여자들)이 무척 많 이 다녔다. 숙녀복 아동복 란제리 등 의류상가, 식기 주방용품 전 문상가, 수입보세 상가, 피혁전문 상가, 안경 상가가 이웃해 골목 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회현동 방향에 도깨비시장, 액세서리 부자 재 상가, 문구 화방용품 상가가 있었다. 엄마의 후배 디자이너들 이 개인의상실을 열어 활동 중인 명동 충무로 일대의 맞춤복집 들도 가까웠다(실은 걸어서 30분은 가야 했다. 기성복이 요즘처 럼 다양해지기 전엔 고급외출복은 주로 맞춰 입던 시절이었다). 당시 소공동 지하상가에서부터 명동성당 골목까지 엄마따라 누 볐고 미도파 새로나 등 백화점도 구경하는 맛에 열심히 짐꾼 노 릇를 하며 엄마와 동행했다. 대학 입학 후 첫 2학기 무렵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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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시장 가자!’ 하며 학교 앞에 나타난 적이 있다. 하이힐에 미니 스커트 차림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기들과의 일정(그래봐야 소주아 님 맥주집이겠지만)도 얼버무리고 엄말 따라 나섰다. 엄마랑 도깨비 시장을 들를 때면, 별나고도 희귀한, 찬란하고 번쩍이는 유럽산 식 기류, 커피잔, 커트러리를 구경하느라 말 그대로 혼이 나갔다. 엄마 가 정말 오랜시간 계획하고 심사숙고하며 마련했던 찻잔 세트들이 다 도깨비시장 물건이었을 것이다. 시장 이름이 원래 도깨비인지 별칭인지는 모르겠으나 밀수품이 성 행했던 시절, 단속이 나오면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다시 차려진다고 해서 도깨비시장이라는 설이 있었다. 건강식품, 약품 인테리어 소품, 소형 가전, 고가의 모피의류까지 없는 게 없고, 뭐든 구해다 주기도 한다는 도깨비시장은 정가가 없고, 촘촘히 붙어있는 가게마다 같은 물건도 가격이 달랐고, 그럼에도 나름 규칙이 있었다. 게다가 진열 자체도 경이로웠다. 그렇게 빼곡히 진열을 하고도(쌓아둔게 아닌) 상인들과 손님들이 겨우 다닐 통로가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가게마다 취급품목 분야가 달랐기에 지나가며 훑어보기에도 바쁜 눈길이 엄마 화장대에서 본 적 있는 폰즈 화장품, 납작 동그란 꽃무 늬 코티분 케이스에 닿곤 했다. 돌려 열면 분명 초록색인데 입술엔 핑크색이 발리는 노란색 케이스의 립스틱까지. 남대문시장은 워낙 큰 시장이기기도 하고 파는 것도 다양해 시장 전부를 하루에 다 돌아보는것은 엄두 조차 낼수가 없기에 늘 계획 한 쇼핑을 먼저하고 구경하러 다녔는데 남대문 노점상의 활기는 다 니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활력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다 날릴만 한 특별함이 있었다. 구매자들이 물건을 고르기 쉽게 높이가 허리 께 오도록 매대를 만들어 펼쳐두고(시장이 쉬는 날 지나가 보면 매 대가 철수된 것으로 보아 조립식인 듯) 상인이 허리에 현금 전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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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채 매대 위에 서서 손뼉과 발구름으로 박자를 맞춰 ‘골라골라’하 며 리드미컬하게 호객을 한다. 파는 물건을 수십개씩 몸에 걸쳐서 (브래지어를 머리에 쓴 모습은 잊히지도 않는다) 멀리서도 보이며 사려고 계획하지 않은 물건까지 어느새 고르고 있다. 속옷류에 티 셔츠 청바지 모자 스카프 등 품목도 많고, 터무니없는 저렴한 가격 까지 외치며 안 돌아 볼 수가 없게 불러 대곤 한다. 학교 앞에서 엄마를 만나 남대문시장에 갔던 날, 가난한 미싱장이 (후배 디자이너들을 엄마는 이렇게 불렀다)들이 운영하는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파는 작은 가게들에서 블라우스와 바지를 구입하 고 나와서 눈에 들어온 노점상들 옆, 엄마와 내가 요란한 리듬과 호 객소릴 들으며 지나가려는데 ‘이리오세요! 아이고 오랜만이네’ 하며 ‘영순이 어머니’ 라고 부른 적이 있다. 엄마와 나는 화들짝 놀라 돌 아보니 브래지어를 몇개나 겹쳐 입고 양팔에 수십개 꿰고 서있는 상 인이 던진 말이었고, 이어서 동숙이 어머니 순자씨 말자씨 언니들 이모들 하며, 계속 지나가는 여성들을 향해 모든 친숙한 호칭을 던 져 대고 있었다. 그 중에 진짜 영순이 어머니가 있었으니... 엄마와 내가 눈을 마주치고 서로를 본 순간 웃음이 터졌고 그날 남 대문시장 골목을 돌며 얼마나 웃었는 지 마스카라한 눈화장이 다 없어졌다. 아마 허파에 주름이 있었다면 다 펴졌을 것이다. 얼굴 근 육에 배까지 아팠다. 그렇잖아도 영순이는 영순이라는 본인의 이름 이 세련된 느낌이 아니라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사실 영순이 뿐 아니라 영옥이 영경이도 이름에 불만이 있었다), 집에 가서 이 에 피소드를 말할까 말까 살짝 걱정이 될 정도 였다. 우리 모녀가 왜 웃 는 지 행인들이 알 리가 없어 무슨 난리가 났나 쳐다보기까지 했다. 이 날 엄마랑 남대문 일대를 돌아다니다 확인한 게 엄마는 영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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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라는 사실이었다. 후일 영순이와 이날 ‘영순이 어머니’ 얘기를 여러번 나누며 또 웃고 또 웃게 되었다. 활기찬 남대문시장 풍경의 또 한가지가 먹거리 골목이었다. 갖가지 나물을 산더미로 쌓아 두고 순식간에 비빔밥을 세팅해 주는 골목, 윤기 나게 삶아진 족발이나 머리가 진열되어 있고 행인들에게 시식 시키는 골목, 겉이 검게 그을린 양은 냄비가 쌓인 갈치조림 골목 등 이 즐비했고, 이동식 냉차나 커피 수레, 과일을 꼬치에 꿰어 바로 먹 을 수 있게 파는 수레 등 먹거리 천지였다. 이 많은 맛있는 것을 제 치고 엄마와 내가 남대문시장에 가면 꼭 먹으리라 다짐하는 것이 따로 있었으니 바로 호떡이었다. 다른 곳에도 호떡집은 많았지만 특 히 우리가 선호하는 집이 두 군데였는데 한 곳은 신촌의 학교 앞 호 떡집이고, 또 한 곳이 남대문시장이었다. 호떡은 찬바람이 불어야 등장하는 대표 겨울 간식이다. 만드는 사 람마다 맛과 모양, 크기가 조금씩 다르고 개성이 있는데 호떡의 쫄 깃함을 정하는 반죽(밀가루 옥수수가루 찹쌀가루의 배합 비율과 발효)이 달라서 구웠을 때 노르스름한 정도가 달랐고, 호떡 빚은 경 력과 숙련도에 따라 호떡 껍질의 두께가 다르고, 기본적으로 설탕 이 들어가는 앙꼬가 흰설탕, 흑설탕, 계피가루, 땅콩 등 재료배합에 따라 달면서도 향긋하고 고소한 특유의 호떡 맛이 극대화되기 때문 에 아무데서나 먹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호떡 안의 꿀이 한쪽에 몰 리거나 터지면 절대 안된다. 호떡을 먹을 때는 특유의 자세가 나온다. 금방 구워 뜨거운 호떡을 네모지게 자른 마분지에 끼워 잡기 쉽게 건네주는 것(요즘은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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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에 주지만)을 받아 바로 먹어야 하니, 최대한 입술에 안닿게 이로 만 베어 먹어야 해서 저절로 웃는 얼굴이 된다. 게다가 구워지면서 녹은 설탕베이스 앙꼬가 갈색 꿀이 되는데 몹시 뜨거운데다, 항상 흘리기 쉬워 손가락에 묻힐 뿐만 아니라, 옷깃에 여지없이 떨어져 끈끈하게 얼룩지는 경험이 쌓여 허리를 10도 정도 굽히고 먹는게 호 떡 마니아들 자세다. 나는 머리도 길어서 아무리 조심해도 별나게 흔적을 만들곤 했다. 아무튼 일년에 한 번 용인되는 불량 식품(엄마는 길거리 음식을 이 렇게 불렀다)이 호떡이니 진짜를 먹어야 했다. 지글지글 기름에 튀 기듯이 익힌 종류는 우리 모녀가 선호하지 않았고, 달인의 솜씨는 달인이 알아본다고, 엄마는 남대문시장의 호떡은 인정해 준다고 하 셨다. 그런데 막상 못 먹는 경우가 더 많았다. 줄을 너무 길게 서 있거나 우리가 갔던 시간대랑 호떡집의 영업시간이 맞지 않아서. 그런 날은 아쉬움을 달래며 족발 같은 것을 사서 집에 가곤 했다. 남대문 족발 도 엄마가 인정하는 맛집이었기에. 영순이 어머니 소리에 실컷 웃고 다닌 날도 엄마랑 호떡을 먹었다. ‘호떡은 역시 이 맛이야!’ 하며. 얼굴엔 아직도 웃음기가 남아 있고, 엄마가 란제리류를 고르는 동안 난 줄을 서서 호떡을 샀다. 줄이 안 길어서 다행이었다. 겨울이 오기 전 찬 공기를 느끼면 나는 ‘올해는 어디서 호떡을 찾아 먹나’ 미션을 만들어 둔다. 나에게 용인되는 불량 식품이니까. 그런 데 미션을 완수할 때보다 실패할 때가 더 많다. 남대문시장의 호떡 집이 아직 그 맛인지(엄마가 돌아가신 뒤 한 번도 안 갔다) 모르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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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동네에 오는 호떡집을 가 보면 새로 나온 레시피가 너무 다양해 서(튀긴호떡 피자호떡 씨앗호떡 치즈호떡) 내가 선호하는 호떡을 찾 기도 어렵다. 게다가 어느 해 겨울 외형으로 볼 때 튀긴 게 아닌 구 워 만든 레시피에 손님도 북적이지 않아 금방 만든 호떡을 딸 서영 이와 한 개씩 사서 먹은 게 하필 상한 것이었다. 벼르고 별러서 기다 린 호떡을 첫입을 베어 먹다 망연자실 서로 눈이 마주치며 황당해 하던 순간이었다. 서영이 왈 ‘느자구가 없네!’ 그 다음부터 호떡 미션은 더 어려워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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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엄마의 고기 요리들 엄마의 고기 요리들Ⅴ

엄마 음식을 한가지라도 제대로 재현해보고 맥을 이어보자 다짐하 던 무렵 마침 영순이를 만났다. 근황을 물으며 시절이 어떻다, 요즘 볼만한 영화가 뭐가 있냐는 등 얘기를 나누다 문득 물었다. 엄마 음 식 중 뭐가 제일 먹고 싶냐고. 영순이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 갈 비찜!’ 무에 갈비맛과 양념이 충분히 배고 별로 달지 않고 색깔도 시 커멓지 않은 별 치장도 하지 않은 엄마 갈비찜이 정말 그립다고 했 다. ‘맘 놓고 푸짐하게 먹고 싶어!’ 엄마 갈비찜의 특별함이 뭘까? 엄마의 레시피라고 딱히 별다를까? 생각해보니 계량 스푼으로 설명 될 수 없는 엄마 손에 익은 국자 뒤 지개 숟가락 주걱 등이 계량 도구였을 것이고 엄마가 쓰시던 들통 국냄비 프라이팬을 기준으로 눈대중을 해 엄마만의 손맛이 정착된 것일 터. 지금에 와서 똑같이 재현하려는 시도 자체가 비현실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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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밖에 없다. 오로지 주관적인 기억 속의 입맛이 기준이라서. 갈비찜은 어디서 언제 먹어도 다 맛있고 좋은 음식이며, 고급지고 비싼 일품 요리인데다 평소에 흔하게 먹지 못하는 특별함이 있다. 갈비찜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곁들여지고 행사가 뒷받침되어 주인공 과 함께 설레임이 자리에 앉는다. 다른 많은 접시가 있어도 갈비찜 은 언제나 상차림의 중앙에 놓인다. 누군가와 함께 갈비찜을 먹거나 대접받는다면 분명 그 누군가는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일 것이다. 유명식당의 상차림에서 갈비찜을 보면 그릇이나 담음새를 늘 눈여 겨 보곤 한다. 이 집은 어떤 특별함이 있나. 밤이나 은행, 모양 있게 깎은 당근, 인삼 등 갖가지 고명이 식당마다 특색있게 올라가 장식 된 정성 가득한 접시가 대부분이다. 국물이 자작하게 담기고 통깨 가 솔솔 뿌려진 모양새는 그 상에 앉아 음식을 대하고 있는 식객들 을 적잖이 유혹하게 마련, 다른 모든 접시들을 제치고 그 상차림 전 체의 맛평가를 대표하고 만다. 이 집 음식 잘하는데! 맛이 그저 그 렇네! 등. 내가 먹었을 때 좋은 음식이라 평하게 되는 식당의 갈비찜 은 항상 그릇부터 고명, 달고 짭짤한 양념의 비율 등을 따라해 보곤 했다. 그러나 맛에 있어서 엄마의 갈비찜은 어느 유명 맛집과는 차별화된 특별함이 있다. 아들 승화와 엄마의 갈비찜에 대해 어떤 점이 특별 한가를 얘기한 적이 있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간이 세지 않고 단맛이 먼저 오지 않는다. 둘째, 다음날 먹으면 더 맛있다. 셋째, 남은 갈비찜과 국물로 재활용한 음식이 더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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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양념의 기본은 간장(짠맛), 설탕(단맛)이 1:1 이라고 엄마가 알 려 주신 적이 있다. 불고기양념을 내가 해보겠다고 했을 때 보통 큰 볼에 고기를 두고 간장 붓고 설탕 뿌리고 마늘 등 갖은 양념을 넣고 손으로 무치다 파 나 양파, 버섯을 취향껏 넣는게 일반적이라 생각했지만 불고기 감은 얇게 썰어져 붙어 있게 마련이라 간장을 먼저 넣으면 간이 골고루 안되니, 넓은 볼에 양념을 먼저 잘 섞이도록 만들어 두고 고기를 다 떼어 분리한 다음 무쳐내고 참기름 깨소금을 나중에 넣으라고 하 셨다. 갈비양념도 기본 고기 양념과 같은데 물을 많이 잡아야 하니 한 번 데쳐서 기름을 빼서 버리고 만들어둔 양념을 두 번에 나눠 넣는데 처음 양념을 넣고 고기가 잠기도록 국물을 잡고 갈비찜이 끓 기 시작하면 무를 토막 내서 넣고 중불로 줄인 채 1시간 이상 끓인 다. 이때 보면 국물이 조금 줄어 있다. 간을 한번 보고 나머지 양념 을 마저 넣고 국물도 고기가 잠기도록 추가하고 약한 불로 줄여 은 근하게 국물이 졸아들 때까지 놓아 둔다. 엄마는 갈비찜 간을 국간장(엄마가 담은 조선간장)과 섞어서 쓰셨 다. 그래서 색이 연하게 보였고 달큰한 국물이 뭔지 모르게 개운하 게 느껴졌으며 설탕을 조절할 때 배나 사과 등 과일을 많이 넣으면 설탕을 줄이고 양파나 대파가 갈비찜에 돌아다니면 깔끔하지가 않 으니 양파는 갈아서 넣고 대파는 맛이 빠지면 건져 내셨다. 함께 먹 어도 되고 대파의 흰 부분은 익으면 맛도 좋았지만 갈비에 얹어진 모양새나 국물에 풀어진 게 안 예쁘고 지저분해서. 갈비찜은 일 년에 한 두번이나 먹을까 할 특별요리였지만 30년 이상 을 먹었다고 생각하니 정말 많이 먹었던 엄마 음식이고, 좋은 날 특 별한 날 즐거움과 함께 먹었을 테니 영순이는 엄마 갈비찜을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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싶은 것이겠지. 아들 승화는 ‘할머니 갈비찜은 도대체 어떻게 양념을 한 걸까? 똑같 은 맛이 있긴 할까? 우리집 갈비찜도 맛나지만 할머니 맛은 정말 특 별해!’ 하며 기억 속의 맛을 꺼내곤 했다. 그중 거의 다 먹고 난 갈비 찜에서 뼈를 건져 내고 호박을 가득 썰어 넣어 찜을 해서 밥과 차려 주신 한 끼는 진짜 환상적이었다고 몇 번이고 얘기하곤 했다. 갈비찜을 비롯해 몇가지 음식들은 일정양 이상 만들고 뜸을 뜰여 야 더 맛있어 지는 게 있다. 시래기국, 김치찌개도 그렇다. 많이 해서 다음날 먹으면 맛이 확실히 깊어져 있다. 1인분만 만들면 그 맛이 아 닌 것 같고, 많이 만들자니 남으면 버리게 될까 걱정이 앞선다. 갈비찜은 남을 걱정은 없으나 고기를 다 먹고 나면 뼈와 국물이 많 이 남게 된다. 그냥 반찬삼기엔 건져 먹을게 없고 밥이나 비벼 먹다 가 물려서 아깝지만 버리고 만다. 엄마는 남은 갈비찜 국물을 활용해 호박찌개를 하거나 소고기 전 지 부위를 적당히 토막쳐서 찜을 하셨다. 간단한 간을 조금만 추가 해서 또 다른 한 냄비를 만들어 갈비찜과 비교할 수 없는 맛이 창조 되었다. 이때 호박은 애호박보다는 겉이 아직 딱딱해지지 않고 충분 히 둥글어진 젊은 호박 또는 잘 익은 늙은 호박을 쓰는데, 특유의 노 르스름한 과육의 단맛과 향이 갈비맛과 어우러져 기가 막힌 풍미가 올라 왔다. 이 맛의 근본은 엄마의 조선간장으로 간을 해서 가능 한 것이다. 시판용 진간장으로만 갈비양념을 하면 너무 진하고 강한 간 장 맛과 색깔 때문에 호박맛이 가려진다. 아들이 너무 그리워해서 몇 번 해보았으나 잘되지 않았다. 그나마 아예 국간장으로 소갈비찜 을 조금 한 다음 나중에 호박을 넣고 찜을 하니 가장 비슷한 맛이 났지만 애초에 엄마의 음식 순서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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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많이 만들어 뜸 들이는 시간을 지켜야 맛이 더 풍부해지는 음식이 갈비찜이고 엄마의 갈비찜은 기억 속에만 있다 해도, 나에게 그리고 동생 영순이와 아들 승화에게 사랑과 행복의 맛이다. 내가 먹고 싶은 엄마의 고기 요리는 따로 있다. 소의 내장으로 끓인 탕과 육회. 이때 쓰는 부위는 소의 양과 천엽인데 소의 위장 중 첫째 둘째 위가 양이고, 셋째 위가 천엽이다. 엄마가 탕을 끓이던 것은 두 번째 위장 으로 벌집 모양이 보이는 벌양, 세 번째 위장인 회색 천같은 잎사귀 가 너덜너덜 붙어 있는 천엽이었는데 밀가루와 굵은 소금을 뿌려 비비고 물에 몇 번이고 빨아 찌꺼기와 지방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 정이 만만치가 않았다. 엄마가 천엽을 손질하고 있는 풍경은 누가 봐도 걸레 빠는 것 같았는데, 막내 영은이가 이 모습을 보았는지 내 가 천엽회를 먹는걸 보고는 우리 큰언니는 왜 걸레를 먹는거냐며 울었던 적이 있었다. 영은이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고 너무 귀엽고 예뻐서 나는 머리도 직접 잘라주고 이런 저런 옷도 입히며 놀던 때였다. 유난히 뾰족한 턱과 도톰한 입술에 까만 눈으로 천엽 회를 먹는 나를 보고 울기에 ‘너도 먹어봐’ 하자 진저리치며 도망갔 다. 천엽은 꼬들꼬들 씹히는 독특한 식감 때문에 나는 무척 잘 먹었 고 음식에 거부감이 별로 없던 걸 아시기에 엄마는 탕 끓이기 전 참 기름장과 함께 한 접시를 썰어 주셨다. 이때 생각에 가끔 종로 5가 광장시장의 육회 골목을 찾곤 한다. 내 식성과 가장 닮은 딸 서영이 를 동반해서. 손질이 무척 고되고 번거롭지만 양과 천엽으로 끓인 탕은 양지머리나 업진살로 끓인 일반적인 소고기국과는 비할 수 없 는 색다른 맛이 있었다. 요즘 시중에 파는 내장탕과는 전혀 다른 깔 끔하고 개운하며 기름기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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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탕을 끓이는 방법은 두가지였다. 한가지는 맑은 국으로, 소 고기국인데 재료가 천엽이고 양인 것처럼, 먼저 손질한 천엽과 양을 삶아 건져서 썰고 무와 다시마를 넣어 끓이다 건져낸 채소 육수에 고기를 넣고 소금과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추는 국이다. 또 다른 한가지는 고기를 삶아 썰어 두고 육수에 나물(숙주 고사리 머윗대 등)을 넣고 두태기름을 프라이팬에 구워가며 기름이 나면 고춧가루를 넣어 고추기름을 만든 뒤, 썰어둔 고기를 국간장과 마 늘로 양념하여 국에 넣고 한소끔 끓여 내는 육개장 모양의 얼큰한 국이었다. 두태기름은 단골 정육점에 부탁해두면 내가 가서 받아오 곤 했는데 난 모양만 봐서는 뭐에 쓰이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먹는건 가 의아스러웠었다. 두태기름을 구우면 말 그대로 우리집 잔치있어 요! 라고 광고 홍보가 저절로 되기라도 하듯이 온 동네에 이루 말할 수 없이 고소하고 식욕이 절로 올라오는 고기 풍미가 진동하는데 냄 새만으로 할 일 다 했다는 게 두태기름이다. 하지만 정작 엄마 자신 은 고추기름이 둥둥 뜬 고깃국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엄밀히 말하면 기름을 많이 쓰는 요리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 많은 부침개 육 전 호박전 등 지지는 요리도 최소한의 기름을 썼고 특히 기름이 많 이 쓰이는 녹두전이 맛있기는 하나 집에서는 만들지 않았고, 호떡도 튀겨서 만든 게 아닌 담백하게 구운 것을 사 먹곤 했다. 어쨌든 천엽과 양으로 끓여 주신 두가지 탕은 진짜 우리 엄마의 맛 이니. 천엽이나 양을 쓰진 못하더라도 우리 엄마의 밥을 먹고 자랐 다면 적어도 소고기 뭇국은 제대로 끓여야 된다고 늘 생각한다. 보 는 것이 배우는 것이고 따라하는 게 연습인지 넉넉하게 끓였다고 여겼는데 금방 동나곤 한다. 남편도 무척 좋아하고 아들도 잘먹는 데 특히 국 없으면 안되는 딸 서진이 때문에 너무 자주 끓인다. 나도 기름기를 싫어하고 맑은국을 선호하지만 두태기름 만큼은 잘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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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보고 싶은 식재료다. 육개장 좋아하는 딸 서진이가 힘들어 보일 때 한그릇이라도 제대로 먹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엄마는 음식의 기본은 좋은 식재료와 간이라고 하셨다. 어떤 비법이 나 특별한 양념이 아닌. 가장 간단히 불고기를 만드는 법을 어렸을 적 엄마의 훈수로 만들 어 보던 때를 떠올리며, 점차 다른 음식에도 적용하면서 먹어보지 않고도 간을 잘 맞추기까지 엄마의 음식이 늘 생생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가장 간단히 불고기 만들기

: 불고기감 200g(1인분), 양파 반개 채썬 것, 간장 양념장, 후추가루, 1인분용 전골냄비 또는 프라이팬

: 간장양념장(소주컵 기준) 간장1 설탕1 참기름1/2 다진마늘1/5 맛 술1/5 을 볼에 넣고 설탕이 녹도록 잘 섞어둔다.

*만드는 법

1. 작은 전골 냄비에 다 만들어진 불고기 모습을 먼저 상상 해본다. (국물이 자작한 불고기를 상상)

2. 냄비에 물을 200cc(고기양과 비슷하게) 붓고 만들어둔 간장양념 반을 넣고 끓인 다음(고기 없이) 맛을 본다.

3. 양념이 남은 볼에 고기를 넣고 무친 다음 냄비에 넣고 센 불에 끓 인다. 양파를 얹고 뚜껑을 덮어 불을 끈 채 2분 정도 놔뒀다 먹으면 된다. 먹기 직전 후추가루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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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물에 양념만 섞어 끓였을 때 간을 보면 간의 정도를 알 수 있 다. 싱거우면 간장 추가, 짜면 물을 추가 하면 된다. 이렇게 연습해보 다 나만의 불고기를 개발하고 발전시켜 본다. 양배추 넣은 것, 버섯 넣은 것, 바싹불고기 등. 애들이 어렸을 때 아침저녁을 항상 같이 먹고 “아빠 오시라고 해”하 며 상을 차리던 때, 김치찌개 된장찌개 제육볶음 두부조림 장조림 계란말이 등을 돌아가며 만들어 가족들과 밥을 먹으면, 가족들 저 마다 먹는 모습이 다르고, 좋아하고 잘 먹는 반찬도, 선호하는 음식 도 똑같을 수 없지만, 잘 먹는 아들은 내 모습 같고, 위장이 아프거 나 속탈이 자주 나는 딸 서진이는 영순이 같다고 생각하곤 했다. 날이 갈수록 양념 덜한 음식을 좋아하는 내 식성은 딸 서영이가 닮 아 간다. 언제부턴가 남편은 나보다 더 김치를 많이 먹는다. 음식을 통해 입맛이 대물려 가며 요리도 배우고 기억 속의 맛 집안의 맛 엄마의 손맛이 이어지는 것은 정말이지 신기하고도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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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내리사랑

박강자의 맏딸

사춘기 이전의 엄마를 떠올리면 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뭐든지 완벽했 고 강하며 빈틈이 없었다. 항상 바쁘고 분주하고 너무 많은 일을 다 수 행해 내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여자 박강자도 철 저히 아름다웠다. 고교 시절 이후부터 나는 항상 분노와 불평과 반발심으로 가득 찼었다. 동생들도 많은데 아버지의 직업상 건축일 관련 일꾼들, 기술자들, 거래 처직원들이 항시 드나들었고, 엄마의 동생들, 즉 외가 친척들이 거의 매 일 우리 집에 와서 지냈다. 집안 살림을 도와주던 들물댁 아주머니에 우 리 집 강아지들까지 집안에 빈 공간이 어디에도 없었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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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나의 불평과 반발심의 근본적인 이유도 잘 모르겠고, 정확 히 누구에게 화가 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엄마는 내 힘든 마 음이 뭔지 알고 계셨다. 엄마한테 향하는 반항, 버릇없는 태도까지 받아 주셨다. 작은 몸으로 너무 바쁜 엄마, 쉬지 않는 엄마가 속상하고 이해 가 안간다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도록 삶을 함께하는 아버지까지 밉다 고 가득 찬 불만을 토로하며 자랐으면서도, 이상한 것은 내가 꼭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나는 불평을 하면서도 엄마를 도왔고, 화나는 것과 별개로 손을 움직였 으며, 너무 시끄러워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부를 했다. 게으름에 핑계는 없다고 늘 생각했다. 엄마보다 많이 배운 후배 세대지만 엄마를 따라가기 벅차다. 엄마의 무 궁무진한 창조력과 재능은 커녕, 엄마의 삶에 대한 태도나 음식에 대한 지식과 철학을 이어가기도 어렵다. 받고 싶은 사랑과 줄 수 있는 사랑이 어떻게 일치하겠는가. 엄마의 시절 엔 더구나 궁핍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고, 풍요로움을 누리는 것 자체가 생의 목표였으니,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치 였다. 그러나 다른 형제들에 비해 나는 충분히 배려받은 딸이었다. 엄마가 된 나는 엄마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엄마여야 하건만, 나야말로 내가 줄 수 있는 사랑밖에 줄 수가 없다. 내가 나도 모르게 엄마를 닮아 가듯 내 자식들이 나의 무엇을 닮으려나 두렵기 짝이 없다. 이번 작업을 시도한 이유는 무한한 사랑을 깨닫지 못한 철없던 나의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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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를 고백하기 위함이고, 나 스스로나 나의 형제들 그리고 내 자식들 누 구에게도 ‘밥’이라는 이름으로 엄마 노릇을 강요하려 함이 아니다. 한 사 람의 희생을 전제로 나머지 가족의 행복을 보장받아서는 안될 뿐아니 라, 흔히들 집밥을 엄마밥으로 그리운 맛을 엄마 손맛으로 동일시하는 감성에 기대어 가끔 추억으로 소환하는 정도의 실체 없는 엄마맛을 떠 올려보는 따위로는 우리 엄마 박강자 여사의 음식에 대한 진심을 감히 폄하할 수 없다. 한 개인이 자신의 밥을 고민하고, 식재료 본연의 맛을 찾아가며 계절에 따른 음식을 찾고 직접 조리해 보려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집밥의 의미 일 것이며, 올바른 식생활이 건강을 보장하고 음식에 대한 상식은 한 분 야의 교양이며,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는 안목일 뿐만 아니라 삶의 풍요 로움과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런 까닭에 엄마의 음식 철학만큼은 엄마의 자손들이 꼭 기억하고 살 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 맛있는 엄마 밥을 먹고 자라 생명과 건강을 넘어서서 까다로운 미 식과 식재료를 고르는 태도를 내 영혼에 장착하였고, 요리에 도전하며 생의 큰 기쁨을 내 가족에게 선사하는 엄마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엄마 자신은 요리가 즐거웠는지 밥 차리는 일, 반찬 걱정하는 일이 힘들지 않 았는지 이야기 나눈 적이 없다. 아니, 모른 척 외면했던 건 아닐까? 엄마가 나에게 또 다른 딸들에게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을 막지는 않으 셨지만 적극적으로 요리를 가르치신 적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엄마도 ‘엄마’라는 직업을 수행하며 기쁨보다는 고충이, 엄마 노릇을 위해 포기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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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엇들에 대한 회한을 딸들에게 대물림하지 않으신 것이야 말로 엄 마의 참사랑이었음을 마음에 새기며, 절대 잊히지 않는 엄마와의 대화 를 떠올려 본다.

엄마! 노을 좀 봐, 너무 멋지다 그치? 엄마는 저녁 노을이 보기 싫어. 왜? 하늘이 불타는데? 저 너머엔 어둠이 기다리니 싫어. 그럼 해뜨는게 좋아? 일출 보는게? 일출보는 것도 안 좋아. 왜? 떠 봤자 별거 없어서 싫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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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자의 첫 손자

어린시절 내가 받은 한 상의 의미. 엄마의 음식엔 특별함이 있다. 누구에게나 집밥, 엄마의 밥상에는 특별 함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엄마의 밥상은 언제나 추억과 사랑 정 등이 보정되어 몇배는 맛있게 기억되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는 외할머니의 음식 은 엄마의 음식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한다. 엄마는 서운할수도 있지만. 엄마의 음식은 맛있다 그 이상으로 표현할 수 있다. 항상 어릴적부터 좋 은 재료로 좋은 조리기법으로 맛있는 음식만 받아먹었던 나는 밖에서 음식을 사먹어도 큰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단적으로 치킨은 시켜 먹는거보다 엄마가 해주는게 아직도 좋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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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음식엔 특별함이 있다

외할머니 음식은 무언가 말료 표현하기 힘들다. 당연히 맛있었고 놀러 갈 때마다 항상 따듯한 새 밥에 완벽한 한 상을 내어주셨고, 하룻밤 자 고 오는 날에는 야식마저 매번 새로 만들어서 챙겨주셨다. 돌아가시기 전 까지 제법 오랜 시간을. 그중 가장 배우고 싶고 기억에 남는 음식은 시시하게도 양념장이다. 흔 히들 먹는 양념장. 두부에도 올리고 나물밥에도 비벼 먹는 흔하디 흔한 양념장. 내가 많이 먹는 요즘의 간장베이스의 양념장과는 맛이 전혀 다르다. 깊 이 또한 다르다. 매번 엄마에게 맛이 그렇게 나냐 물어보면 직접 담근 간 장과 할머니만의 재료배합이 있기에 따라할 수 없다고 하신다. 시중에 파는 간장맛보다 좀더 달짝지근하고 감칠맛이 강하다. 그리고 조금더 걸쭉하다. 그 맛있는 양념장은 초등학교시절 내 소울푸드였고, 인천에 살던 때에 할머니 음식을 먹기 위해 초등학교 저학년 동생과 서 울에 가곤 했다. 양념장과 함께 막 지은 따뜻한 흰 쌀밥에 밑반찬과 국 그리고 오징어무 침이라던지 갈비구이라던지. 외할머니는 부모님없이 초등학생 둘이 놀 러가도 단한번도 상을 어설프게 차려주신 적이 없다. 내가 만약 초등학 생 친척들이 집에 몇 번씩 놀러온다 하면 항상 최고의 밥을 차려줄 수 있을까. 성인이 되고 나서도 가끔씩 생각난다. 살면서 얼마나 맛있는 음 식들을 좋은 사람들과 먹었고 수없이 많은 끼니를 먹었는데, 할머니의 음식만 특별하게 생각날까. 내린 결론은 할머니는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하셨다는 것이다. 모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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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님이 그러하듯 외할머니도 나에게 그렇게 해주셨다. 고퀄리티의 음식 으로 말이다. 사람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는 방법중 하나. 좋은 공간에서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그것을 할머니는 어릴때부터 아무런 대가없이 나에게 배푸셨는데 그것이 지금의 나와 할머니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 었고, 성인이 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분좋고 맛있는 한끼를 대접하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들이 있고 그 방법들이 어떤식으로 돌 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이 방식은 외할머니의 딸 인 엄마, 그 아들인 나까지 외할머니를 기억하고 할머니에게 사랑받았 다는 느낌을 몇십년간 대를 거쳐 느끼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원히 기억되는 것 만큼 좋은게 있을까? 세상을 떠 나서도 끊임없이 기억되고 사랑받고 그 후대에까지 기억되는 방법이 할 머니가 우리에게 배푼 사랑방식이다. 엄마도 그 방식을 이어받아 엄마의 스타일에 맞게 바꾸어 가족들에게 배풀고 있다. 그 다음은 내가 될것이고, 외할머니의 사랑은 대를 거쳐가 며 사랑과 노하우를 더해 점점 거대해져 주위사람에게 더 큰 행복감을 느끼게 해줄거라 믿는다. 맛있는 양념장으로 어린시절의 나에게 큰 행복을 선물해주신 외할머니 에게 다시한번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며, 엄마는 비슷한 맛을 내도록 힘 을 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의 이기심이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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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 댁

나는 외할머니의 공주였다. 외할머니댁에 방문한다는 것. 그것은 어릴 적 나에겐 마치 놀이동산에 가는 것만 같은 설레는 일이었다. 손재주가 좋으셨던 우리 외할머니는 도착하면 꼭 손수 만드신 원피스를 입혀주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렇게 공주 옷을 입고 막내 이모의

달그락달그락 조리하는 소

식사 시간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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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잔뜩 꽂혀있는 만화책들을
래 보다 보면 밖에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리가 들려온다. 그렇게 나는 신나게
기다린다.
영주의 첫째 딸

방문을 여는 순간 풍겨오는 달콤하고 짭짜름한 냄새가 나를 반겨주었 다. 갈비찜과 오징어젓갈, 소고기뭇국에 고등어구이까지 세상의 온갖 산해진미들이 가득한 20인용 식탁에 앉으면 어떤 것부터 먹어야 할지 가 초등학생인 나에겐 아주 심각한 고민이 된다. 위가 작고 입이 짧아서 종류별로 한 젓가락씩만 먹다 보면 배가 가득 차버리니 몇 그릇씩이나 먹는 오빠가 어찌나 부럽던지. 내 몸뚱이가 밉다. 뭔가 억울하달까?

어떤 특별한 날

외할머니댁에는 작은 텃밭과 닭장이 있었다. 외할아버지와 함께 닭장에 서 따끈한 달걀을 꺼내 소중하게 안고 가면 외할머니께서는 늘 ‘오늘은 어떨랑가 함 보자~’ 하며 달걀프라이를 해주곤 하셨다. 어느 날은 달걀 에서 노른자가 두 개가 나오지 않던가. 사실 달걀도 노른자도 썩 좋아하 지 않았지만 무언가 선택받은 공주님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아무에게 도 보여주지 않고 한입에 프라이를 우겨 넣었다. 소금도 후추도 없이 그저 달걀로만 프라이를 했을 뿐인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맛을 능가하는 프라이는 먹어본 적이 없다. 우리들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으로 정성껏 닭을 관리하고 키운 외할머니의 사랑 때 문이었을까. 외할머니의 손맛은 역시 조리 솜씨 이전에 사랑을 담은 정 성이 반 이상이라는 것을 느낀다. (쓰다 보니 외할머니가 참 보고 싶다.)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늘 간식만 먹었던 내가 외할머니의 차림 앞 에서는 늘 허겁지겁 먹기 바빴다. 꼬마 공주 미식가는 그렇게 탄생했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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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이 없고, 무엇이든 척척 해내 보이며, 절대로 지치지 않는 것만 같았던 나의 엄마에게도 추억하면 스스로가 더없이 작아지는 그런 영 웅이 있었단다. 아이처럼 자신의 영웅이었던 외할머니와의 소소한 추억 을 이야기하는 엄마를 보니, 엄마도 한 사람이고, 여자이며, 어리고 고운 딸이라는 사실이 들어왔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은 나의 눈으로 엄마의 일상을 바라보니, 그 소중한 추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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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어나는 모습들이 눈에 보이기 시 작했다. 요리비법뿐만 아니라 음식에 대한 태도와 까다로운 기준, 그리 고 호떡을 좋아하는 이유까지. 한 예쁜 딸이 자라나서 누군가의 자랑스 나의 슈퍼우먼에게도 영웅이 있었다 영주의 막내 딸

러운 엄마가 된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한편으로 마냥 행복하게 추억하지만은 못했을 것이 눈에 선하였다. 이렇게 마음을 들여 외할머

니를 추억하는 엄마를 통해, 내가 엄마를 추억하는 방법은 나의 엄마와 는 또 다른 방법이겠지만, 엄마의 발자취를 따라서 함께했던 추억을 그 리워하고 곱씹어 보며, 추억이 담긴 요리를 만들어 그림을 그리고, 레시 피와 그에 따른 글을 쓰기까지를 과연 나는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 이 생겼다. 난 그저 나의 멘토인 슈퍼우먼의 전진이라고 생각하며 이런 엄마를 만드신 외할머니께 엄마의 딸로서 감사할 따름이다. 주황빛이 감도는 따듯한 분위기와 왁자지껄하고 떠드는 소리, 멀리 보 이는 외할머니의 뒷모습과 풍겨오는 따듯한 밥 냄새. 나에게 남은 외할 머니 댁의 기억은 이 한 장면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맛있는 음식 을 먹을 때마다 외할머니를 추억하는 엄마와 오빠의 말에 키토산(돌게 볶음을 키토산이라고 불렀다)과 양념장들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당시 어렸던 나에게는 아쉽게도 그 맛을 회상할 수 있는 미각이 없었고, 그렇 기에 함께 맛을 추억할 수도, 당시의 기억을 회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어린 내가 외할머니 댁에서 강렬하게 느꼈던 맛뿐만이 아닌 그때 온 기, 냄새와 같은 정서가 사진을 찍어 저장해놓은 듯 뚜렷하게 남아 지금 도 그때를 회상하면 따듯한 밥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이 따듯한 밥 냄 새를 나는, 외할머니의 사랑의 향기라고 추억하고 싶다. 단 한 번도 맡지 못한 적이 없었고, 외할머니 댁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디선가 풍겨 오는 향기였기에, 비록 맛은 기억하지 못할지언정 그 향기 덕에 외할머 니의 사랑은 추억할 수 있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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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도 밥상을 차리는 것에 귀찮음을 내색한 적이 없다던 외할머니 의 밥을 먹고 자란 나의 엄마는 그렇게 사랑을 베푸는 방법을 배웠나보 다.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서 허기를 채우려는 나의 손길이 닿는 모든 곳 에는 엄마의 마음이 담겨 있었고, 그렇게 나는 엄마의 사랑을 느꼈고, 정 성을 먹었다. 그 사랑이 너무나 크고 따듯했기에,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마 음을 넘어서서 나 또한 이런 사랑을 베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의 엄마가 엄마에게서 배운 사랑의 방식을 내가 엄마로서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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