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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모범'이 되는 우등생인 줄 알았던 나에게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거기까지는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순진한 줄 알았더니 여간 아니라 는 등 나에 대한 개인적인 험구를 하다못해 어른들이 변화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열등감을 이기기 위한 단 하나의 유리한 조건, 즉 젊은 이들이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아서 옛날 일을 모른다는 것을 내세워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 아이들이란,,,,,, "이라고 결론을 낼 것 인데 그런 오해를 하도록 도와줄 순 없다. 하지만 허석이라면 나를 이해하리라. "봄에는 이곳에 이상한 남자들이 많아져요." 이렇게 말을 시작한 나는 허석에게 내가 목도한 남자들의 수음행 각을 얘기한다. 허석은 내 말을 들으며 당황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약간은 어색해하기도 하더니 남자들의 운명에 동정을 느꼈다 는 부분에 이르자 내가 삶을 벌써 이만큼 통찰했다는 게 놀랍다며 나의 결론에 특히 강한 공감을 표시한다. 자신도 남자들의 성적 욕 구를 저주한다는 거다. 그는 남자가 자기 몸 가운데 제어할 수 없는 부분을 지닌 피조물 이란 걸 알게 된 다음 빠지게 되는 운명적 비탄에 대해 얘기해준다. 운명을 저주하지만 오이디푸스라는 신화 속의 인물이 자기의 눈을 빼버리듯이 그 욕망과의 단절을 상징할 거세의 방법도 쉽지 않다고 말한다. 남자라면 누구나 원죄의식과 더불어 거세욕망이 있다고도 알려준다. 내가 청소년기를 본능과의 싸움으로 허비해야 하는 남자 의 운명에 대해 다시 한 번 동정과 유감을 표시하자 그는 나의 사유 의 깊이를 높이 평가하는 한편 그러나 대개의 여자들은 남자의 슬픔 을 좀더 이해하려고 할 필요가 있다고 분개한다, 여자들이 남자의 욕망을 배척하는 데에 남자들의 운명적 비극은 커지는 거라고 질단 하면서, 많은 남자들의 첫경험이 사랑과는 아무 관계 없이 이루어지 는 게 현실이라고 알려준다. 자신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며 . 아무래도 좀 심각한 대화였던지 허석은 이런 얘기를 한 다음 주 머니에서 담배를 꺼낸다. 담배연기 사이로 그의 표정은 왕건을 통해 권력의 속성을 일갈할 때 못지않게 시니컬하다. 그의 행동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깃든 염소와 하모니카의 이미지를 완성시킨다. 만약 Y 너 같은 어린애에게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하지만" 따위의, 자기가 하고 싶어 못 견디는 얘기를 꺼내면서도 최후까지 자존심을 드러내 려는 옹졸한 가식을 담고 있었다면 나는 그 얘기를 그렇게 흥미있게 듣지는 못했을 것이다.(나는 '내 자랑이 아니라'로 시작되는 노골적 인 자랑과 '남의 험담 같아서 안줬지만'으로 시작되는 본격적인 험 담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를 어린애처럼 대하는 실수 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는 누이에게 첫사랑의 비밀을 털어놓는 남동생처럼 수줍고 진지한 면이 있다. 비밀을 고백해오는 남자에 대해 보편적으 로 여자가 느끼는 감정은 모성애일 것이다.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 다. 할머니가 사주었던 인형에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모성애를 나 는 나보다 열 살이나 많은 남자에게 느끼고 있다. 허석으로 인해 나 는 많은 것을 한꺼번에 뛰어넘는 기분이었다. 사랑을 꿈러본 적은 결코 없지만 내가 사랑을 한다면 바로 이 정도의 성숙한 사랑이었다 는 생각도 든다. 상안에서 내려오며 나는 '우리'가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 날의 해 가 저무는 것을 애툿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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