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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철학 지은이:H.핑가레트 옮긴이:송영배 펴낸이:심신혁 펴낸곳:서광사

차례 일러두기 머리말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신성한 갈림길 사람이 보수적 공자의

예식을 통한 인간의 공동체 없는 오로지 하나의 도 사람답게 되는 자리:인 전통주의자인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사람인가? 비유:예식에 쓰이는 신성스런 그릇

일러두기 1. 이 책의 원 제목은 <공자:신성스러운 세속인>(Confucius:The Secular as Sacred)이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신성스러운' 차원과 '세속적' 차원의 이분법적 구분이 우리들에게는 그 의미가 충분히 명확하게 파고들지 못하기 때문에 옮긴이는 이 책의 핵심적인 주제에 따라 제목을 <공자의 철학:서양에서 바라본 예에 대하 새로운 이해>로 붙여 보았다. 2. 번역 과정에서 원문에 대한 이해를 돕거나 그 뜻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옮긴이의 말이 삽입되는 경우 그 삽입 부분을 ( )로 표시하여 덧붙였다. 3. 옮긴이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논어>에서 인용된 문장의 원문을 옮긴이 주라 표시하여 게재하였다. 그리고 인용문의 우리말 번역에는 극히 특정한 오역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핑가레트의 해석을 따랐다.

머리말 공자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가 무미 건조하고 답답한 도덕 군자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어록인 <논어>는 온통 구닥다리 냄새가 나서 더 이상 현실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나중에 꼼꼼히 읽어 보면서 그를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내가 아는 어떤 위대한 사상가와 마찬가지로 깊은 통찰력과 탁견을 가진 사상가로 다가오게 되었다. 공자가 오늘날 우리 현대인에게 스승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그는 이미 통용되고 있는 개념들에 단순히 색다른 조명을 해주는 그런 철학자가 아니라, 현대인을 깨우치는 진정한 큰 스승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는 이미 어딘가에 언급되어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말하고 있다. 그는 우리를 가르칠 새로운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철학적 연구들의 최근의 업적들을 잘 알고 있는 이점을 가진 나는, 아주 최근에 이룩된 철학적 업적들 중에 가장 특징적인 몇몇 문제들과 내용이나 사상적인 면에서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는 명백한 통찰들이 이미 <논어> 속에 있음을 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공자는 아주 최근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시대'현대'보다 앞서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공자의 사상이 수세기 동안 서구인에게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상당히 소홀하게 취급될 수 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여하튼 지금 우리는 공자의 생각과 기본적으로 같은 사고 패턴들로부터 손쉽게 서구적 사고의 새로운 흐름을 읽어 낼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제 공자의 문제 제기 방식은 바로 서구 사사의 흐름들을 신선한 각도에서 자리 매김해 주기 때문이다. (공자 사상에는) 이런 <서구의 철학적 경향에> 필적하는 극단적으로 새로운 사상 경향이 있다는 결론을 갖게 됨에 따라, 나는 이미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이런 생각들을 <논어>에서 읽어 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그것이 얼마만큼 성공적이었는가는 독자들이 판단할 것이다. 여기서 나는 다만, 나의 주요 목표-물론 성공했을 경우, 나의 기쁨-는 공자 사상에서 특출한 것이 무엇이냐를 찾으려는 것, 즉 그가 (오늘날의) 나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를 비우려는 것이었다. 고대의 어떤 낯선 사상가가 헤아려 보았던, 그리고 그 내용은 이미 우리들에게 친숙하게 알려진 그런 것을 제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현학적 즐거음을 추구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공자를 서구 언어로 번역한 초기의 사람들은 유식한 천주교 학자나 사제, 그리고 신앙이 돈독한 개신교 선교사들로서, 그들은 그들의 탁월한 지성적 웅합성을 통하여 얻어 낸 큰 업적들 때문에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공자를 기독교회에서 마치 소크라테스를 경탄했던 그런 방식으로 감탄해 하는 경향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비록 이교도이지만, 최고의 진리와 가장 완벽한 생활에 헌신했다는 점에서는 성인에 가깝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는 오직 기독교적 계시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을 열망했던 안타까운 이교도로 평가될 뿐이다. 마찬가지로 <논어>가 거의 기독교 윤리로, 혹은 윤곽이 흐린 기독교신학으로서 읽혀지는 곳에서는, 공자 또한 경이롭고 (안타까운)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런 견강부회적인 목적과 관련하여 좀더 지적하자면, 이런 (왜곡된) 독해는 때때로 번역 과정에서 더욱 잘 나타난다. (서구 문화권에서는) 어떤 경우이든 <논어> 텍스트는, 사유 구조가 기독교 개념틀이나 유럽적 개념틀에 본능적으로 그리고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매어 있는 그런 사람들에 의하여 독해되어 왔다. 아주 최근에는 좀더 인간학적으로 다면적 관심을 가진 비종교적인 학자들이 <논어>를 번역해 냈다. 특수하게 기독교적인 요소는 최근의 번역에서는 사라졌다. 그러나 유럽 문화를 비경으로 하는 기본 가상들은 때때로 그대로 남아 있다. 유럽적 관념이 영향을 미치지 않은 번역에서도-지금 상당히 서구 학자들에게 친숙한-불교와 도교적 사고가 또한 해석상에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런 잘못은 여러 면에서 누적된 것이다. 왜냐하면 불교적 관념들이, 아무리 서구적인 그것과 여러 면에서 상이하다 할지라도, 서구적인 그것과 공유하는 (공자 사상과의) 분명한 근본적 편차가 나타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 두 사상은 인간의 개인주의적이고


주관주의적인 면을 보다 선호한다는 점이다. 불교와 유럽적 사고의 주류를 꿰뚫어 보면, 개개인의 마음, 그 개개인의 내면적 삶과 내면적 실재성이 인간 이해의 초점이 된다. 물론 나도 이런 나의 주장이 상당한 예외를 용인해야 하는, 너무나 거대한 일반론이라는 것을 안다. 이 책에서 제기되었던 연구 과제를 마무리지운 후에야 비로소 나는 이런 일반론이 유지될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는 새로운, 나에게는 굉장히 계발적인 (사유) 방식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렇기 때문에, 나는 이런 일반론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나에게 분명하게 보이는 점은 개개의 번역들 사이에 서로 다른 차이의 (필요성)들이 아무리 강조된다고 할지라도 모든 번역들의 구석구석에는 <논어>에 대한 (번역자 개개인들의 상당히 자의적인) 주관적, 심리적 독해가 얼마든지 추정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아주 무의식적으로 생긴 그만큼 심리적 편차가 더 크다고 추정된다. 바로 이런 근본적 편차와 관련하여 이제까지 현존하는 번역 모두는 잘못 독해되었다는 것이 이 책이 내 거는 하나의 주제이다. 내 주장이 옳다면, 이들 (기존의) 번역들은 공자의 실제 인물상이 아닌 다른 인물상을 애써 찾아서 소개해 온 것이다. 그것들은 결과적으로 공자인간관의 분명한 비서구적, 비불교적 특질들을 그려 내지도 못하였고, 그런 면을 용인하지도 않고 있다. 이런 사실을 규명해 내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 책에서 분명히 제시하기 위한, 내 주장 전거의 중요한 출전은 <논어> 원전이었다. 원전이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원전이 무엇을 말하고 있지 않으며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 않은가를 찾아 보려고 노력하였다. 원전은 다만 절대적 명백성을 가지고 말해 줄 수 있는 그만큼만 말해 줄 수 있다. 그 이상을 넘는 것에는 의문을 제기해야만 한다. 그런 경우 물론 대답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공자의 철학에서 아예) 제기되지 않았던 질문에는 해답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주로 어법상의 문제를 다루는 사람은 원전의 어법적 뉘앙스를 흐려 놓는 번역을 내놓을 것이다. 주로 정신 내용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가진 사람은 그런 어법상의 뉘앙스에는 별로 흥미를 갖지 못하거나 그런 뉘앙스를 분명하게 인식할 수도 없을 것이다. 현대에 나온 <논어>의 어떤 번역도 전문적 서구 철학자가 한 것은 아직 없다. 따라서 당대의 (서구) 철학적 개념들이나 테크닉이 적절하게 능숙하게 배어 있는 번역은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런 몇 가지 점들을 기본 바탕으로 해서 나는 공자의 말로부터 그의 가르침을 찾아 내어 보려고 노력해 왔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가능한한 엄밀하게 <논어>의 앞부분, 좀더 확실하게 믿을 만한 어록 부분, 즉 주로 전체 20 장 중 처음 15 장의 틀 안에 머물러 왔으며, 이런 부분에 대해서조차도 나는 학자들이 후대에 이 초기 어록들에 삽입, 해석해 놓은 것들에 대하여도 매우 신중하게 대처했음을 언급하고자 한다. 그러나 나의 이 책의 연구 목적은 실제 역사 인물인 공자가 그의 <어록> 모두, 또는 그 중의 어떤 부분을 말했다는 것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정신에 입각하여 몇몇 어록들을 삭제해 내고, 독자적인 학적 연구'부록:<논어> 원전 텍스트에 관하여 참조'에 기초하여 우리는 역사-사회적 맥락, 언어학적 문체 그리고 철학적 내용과 연관하여 하나의 통일성을 갖는 <논어> 텍스트를 갖게 되었다. 바로 이 텍스트, 이것만을 나는 이 책에서 해석하고자 노력하였다. 나는 후대의 유학자들의 주석들에 의거한 해설적 재료들을 소개하는 것을 극히 자제하였다. <제자백가> 시대의 각기 다른 학파의 철학적 사상은 서로 상충하고 또한 융합함으로써 공자의 학설을 아주 다른 모습으로 개주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순수 공자의 모습을 찾으려는 시도들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 뿐 결코 완전 무결한


성공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경전과 독해는 이미 수많은 해설, 주석, 편집 선택과 순전한 이념적 조작 등으로 원상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하간 궁극적으로 우리의 관심은 철학적인 것이다. 따라서 내가 문제 삼는 것은 해석에 책임질 수 있는 선택된 텍스트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다. 나는 바로 그 생각을 늘 마음속에 간직해 왔다. 물론 내가 이미 지적한 것처럼, 텍스트에 대한 책임 있는 철학적 독해는 조심스러운 역사적 그리고 언어학적 분석과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믿고 있다. 나아가서 이 점은, 나 자신 중국학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서양 학자들이 쓴, 물론 방대한 양의 중국학 학문 업적에 대한 이들의 훌륭한 개요를 포함하는, 2 차 문헌과 주석들을 상당히 참고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학문적) 목적이나 방법에 합치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주요 과제, 즉 <논어>에 대한 집중적이고 사려 깊은 연구에서 나는 그 원전 텍스트로부터 나 자신 고유의 독해를 해낸 것이다. 적절한 철학적 문제가 텍스트 문제에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경우, 내 자신도 그 텍스트 분석이 바로 철학적 요점 파악에 아주 적절히 요구된다고 믿는 한, 나는 자신의 독자적인 텍스트 분석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실린 어록의 번역문-비록 그것들이 광범한 토의에 의거한 것이요, 주요한 번역들과 학적 논문들에서 상당 부분 빌려 온 것이며, 많은 경우 단순히 인용한 것이지만-에는 나 자신이 책임을 져야만 한다. 나의 주목적은 <논어> 텍스트가 가진 철학적 뉘앙스를 부각하려는 안목을 가지고 번역문을 선택하거나 재번역하는 것이었다. 어떤 경우에, 이 (<논어>속의) 철학적 의미들이 '비록 늘 즉시 분명한 것은 아니었지만' 본질상 뚜렷이 현대적인 특정 개념이나 의미 함축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들과 마찬가지로 중요성을 갖는 다른 경우에는, 철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지 애매모호하여, 침묵하거나 관심을 가질 수 없는 텍스트의 부분도 있었다. 그런 의미들을 뚜렷이 드러나게 하자면, 다른 문화적 (즉 동양적) 전통의 학자들이 정례적으로 설명을 하고 분명하게 밝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나는 번역상의 철학적인 비판적 지적에 합당한 나의 이유를 끄집어 내기 위해 텍스트와 그와 관련된 문제들을 토구하였다. 그리고 나는 내 주제를 입증하기 위하여 의미를 억지로 조작하려는 괴상한 시도라고 간주될 만한 것은 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제1장 신성한 예식을 통한 인간의 공동체

공자가 정확하게 인간적인 덕의 정수로서 꿰뚫어보았던 묘한 힘에 대해 알아 보려는 것이 지금부터의 과제이다. 결국 우리는 그 묘한 힘을 통하여 마침내 공자가 핵심으로 생각했던 인간의 존재적 거룩함을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공자의 가르침 속에 담겨져 있는 이 거룩함의 중심적 역할은, 그 가르침의 존재적 핵심을 우리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20 세기인 (오늘날)에까지 크게 무시되어져 왔다. 특별히 분석에 필요한 것'여기서 제안된 것'은 현대적 철학적 이해를 이용하여 재해석하는 일이다. 사실 그러한 재해석은, 철학적.반성적 작업을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이제까지 그늘에 가려져 왔던 우리 자신 (서양)의 철학적 사유의 차원을 밝혀 줄 것이다. <논어>, 적어도 좀더 논어다운 맛이 나는 <핵심> 부분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철학적 통찰은, (당대) 그것과 대립하였던 제자백가의 이념들이 공자의 학설에 영향을 미침에 따라, 곧 바로 은폐되어 버렸다. <논어>속의 주술적, 종교적 측면들에 대한 일정한 강조를 요구하는 이런 통찰은 일반적으로 현대에 들어와서 서양 학문의 영향을 받은 해석들에서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점은 결코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오늘날 <논어> 독해의 주요한 흐름은 경험적, 인본주의적, 현대 지향적 가르침으로거나, 아니면 플라톤의 합리주의적 이론에 필적하는 또 다른 것(이상적 관념론)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사실 <논어>의 가르침은 <초자연적인 괴력>에 대한 미신 또는 진지한 믿음을 명백히 거부하는 주요한 첫걸음으로 자주 해석되어 왔다. 틀림없이 <논어>의 세계는 질적인 면에서 모세, 아이스퀼로스, 예수, 석가모니, 노자, 또는 우파니샤드 학자들의 세계와 상당히 다르다. 분명한 몇가지 면에서, 사실 <논어>는 인본주의자이며 동시에-여하튼 필요할 때 귀신들에게 제사를 지낼만큼 충분히 전통적이라는 의미의-전통주의자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공자는 말���였다. <백성들의 자기가 해야 할 일에 힘써라! 귀신은 거리를 두고 경외하라> 공자의 행동은 언제나 도리에 합당했으며, 그는 <괴이한 일이나, 억지 폭력으로 하는 일이나, 어지럽히는 일이나, (상식에 맞지 않는) 신기한 일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 초월적,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노골적인 질문에는 <사람을 섬기는 일도 다 할 수 없는 데, 어찌 죽음을 알 수 있겠느냐?>고 대답하였다. <논어>의 중심 내용을 검토해 보면 주제나 핵심 개념들이 주로 인간의 본성, 도덕 행위, 인간 관계에 관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당장 알 수 있다. 그 점은 바로 항상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몇가지 주제, 말하자면 예, 인, 서, 충, 학, 악 및 가족적, 사회적 관계나 '군주, 부친 등등에 대한' 의무 등을 규정하는 각종의 개념들을 열거하면 충분하다. 더 나아가서 <논어>의 이러한 현세 지향적, 실천적인 인본주의는 인간의 정신적, 도덕적 행위란 술수나, 행운이나, 신비적 주술이나 그 밖에 어떤 순전히 의타적인 권능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통하여 한층 더 심화되고 있다. 인간의 심성은 타고난 <본성> 성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근면한 학문과 실천적 연마의 질과 양에 따라서 심성을 <형성해 낼> 수 있다. 고상한 심성은 지속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첫째는 어려움이다> <지식인의 책임은 무겁고, 그가 갈 길은 멀다. 인의 실천을 자기 소임으로 삼았으니, 또한 힘들지 않겠는가?> 공자의 걱정은 <덕을 닦지 못하고, 학문을 강의하지 못하고, 의로운 일을 알고도 몸소 그곳으로 가지 못하며, 좋지 못한 것을 개선하지 못할가> 하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들은 자기의 할 일은 경이나 기적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충실하고 진실한 인간, 값진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하여 언제나 자신을 <갈고 닦고 쪼고 단련해야> 한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모든 면은 <논어>의 반주술적인 외양을 보여주는 듯싶다. 여기서는 초월적인 신의 후광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헌신적이고 분명히 세속적인 무미 건조한 도덕주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한 <논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묘한 힘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 주는 것 같은 언급들을 때때로 찾아 볼 수 있다. 여기서 <신묘함>이라는 말은, 어떤 특정인이 예를 올리는 그의 몸짓이나 음송 등을 통하여 자기의 의지를 아무런 억지나 무리없이 올바르고 (자연스럽게) 움직여 나가는 힘을 말한다. 심묘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 즉 책략이나 꾀를 쓸 수 없다. 그는 강제적 억지나 물리력을 쓰지 않으며 공리성을 따지고 검증하여 책략이나 술수를 얻어 내지도 않는다. 그는 단지 적절한 예에 맞는 배치나 배열을 해놓고 예에 맞는 적절한 몸짓과 말을 하면서 예식을 끝마치려고 할 뿐이다. 자기 스스로는 조금도 억지나 무리함 없이, 그의 행위를 자연스럽게 끝낸 셈이다. 시의를 적절하게 맞추는 공자의 말씀은 위에 언급한 방법에 핵심이 되는 근원적인 어떤 신비력을 강하게 암시해 주고 있다. '아래의 인용문들에 나타난 한문 개념들은 모두 공자 사상에서 핵심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 개념들은 근원적인 가치를 갖는 인간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나, 상태 및 모형들을 나타내 주고 있다. 필요로 하는 한, 이들 개념에 대해서는 이 책의 뒷부분에서 논의할 것이다' 인은 멀리 있는가? 우리가 원하면, 그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을 극복하여 예로 돌아가면 세상 사람들이 인을 좇을 것이다. 아무런 억지 없이 다스린 사람은 순임금이니, 그가 무엇을 했겠는가! 자신을 받드는 마음으로 남면(즉 통치자의 적절한 예)을 했을 뿐이로다. '즉 그 나라의 모든 일이 탈없이 순조로왔음' 그 자체 만져 볼 수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고 분명히 드러나지도 않지만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모든 일을 항상 무리 없이 훌륭하게 이루어 내는 것이 신묘한 부분이다. 올바로 처신하면, 다른 명령을 안해도, 일은 잘 되어 나간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다.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굽히게 된다. 덕으로 다스림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은 자기 자리에 있으나 뭇 별이 그를 둘러싸고 도는 것과 같다. 이 인용문들에 대한 주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듀벤다크의 언급처럼, <위정>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신비적 의미>는 <잘못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거나, <위령공>의 순임금의 예식을 드리는 모습은 <신묘한 힘이 최고에 달한 상태>라고 간단히 지적할 수 있다. 요컨대, 이런 부분들이란 <논어>에 남아 있는 순수한 <미신적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논어> 주석가들은 공자를 보다더 <좋게 이해하려는 쪽으로>, 말하자면 우리들 (현대인들)에게 친숙하고 익숙한 개념을 통하여 공자의 철학적 주장의 타당성을 최대로 입증하려고 하였다. 이들 주석가들의 이런 노력의 결과 <논어>에 있는 신비주의적 언급들은 축소될대로 축소되어 더 이상 원상을 읽어 내기 어렵게 되었다. 주문을 외우거나 예식을 올리는 몸짓을 통하여 정말 올바른 행동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을 진지한 가능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우리 시대의 당연한 공리로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술하겠지만, 이러한 공리의 일반적 수용에 중요한 예외가 현대의 <언어 분석> 철학이다. 그러나 이런 작업의 중요한 의미는 아직 전문적 철학의 세계 밖으로까지는 별로 진척되지 못하였다' 현대인의 기호에 전혀 맞지 않는 신묘함이나 경이의 뜻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희석될 수 있다. <논어>의 3-8 장만이 가장 <논어다운> 부분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내가 인용한 공자의 말씀은, 때때로 공자 정신에 어긋나는, 전술된 텍스트에 삽입된 구절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신묘한 요소는 아주 완벽한 군주에게만 적용되는 극히 제한적인 의미만을 가질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신묘함>에 대한 언급을 <불식하려는 해석>의 또 다른 가능성이란, 공자는 (시의 적절하게) 좋은 예를 제시하는 (주술식이 아닌) 다른 식의 친화력을 강조하고 극대화했다고 가정해 보는 일일 것이다. 요컨대, 이런 관점에 따른다면, <신묘한 힘>과 관련된 (<논어>의) 언급들을 우리는, (공자가 지리한) 산문적 진리를 운문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간주해야만 할 것이다. 끝으로, 공자는 이런 문제에 수미 일관된 논리를 갖지 못하였거나, 아마도 그의 주장의 핵심은 주로 신비 적대적(antimagic)이었지만, 그는 뿌리깊게 박힌 전통적인 (즉 주술적, 미신적) 믿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주석들은 인간의 덕에 대한 주술적 차원의 가르침을 20 세기 문명인이 수용하는 데 장애가 된다고 보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신묘함(magic)을 아예 해석해서 지워 버리거나, 또는 (공자를 2,500 여 년 전의 인물로 생각한다면 그가 말하는) 신묘함이라는 것도 역사적으로 얼마든지 양해될 수 있는 실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말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분명한 의미 (즉 신묘함이 갖는 의미)를 우리들이 수용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면 나는 차라리 이 문제에 관하여는 우리 (현대인)들이 오히려 공자로부터 배울 수 있는 여지가 아직도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나와 입장을 달리하는 여러 주석들과의 논쟁에 말려들기 보다는, 차라리 나는 지금부터 내가 보기에 순수하고 건전한 공자의 신묘한 인간에 대한 견해를 적극적으로 개진해 보고자 한다. 나의 해석이 모든 다른 해석을 배제할 만큼 정확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공자와 같은 창조적 철학자가 자기가 말한 것의 모든 가능한 의미들을 정확하게 밝혔다거나 그의 여러 가능한 의미들 가운데 다른 의미들은 모두 사상하고 오직 하나의 의미만을 의식적으로 강조했으리라고 생각해야 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이와 반대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공자의 신묘한 가르침이 갖는 많은 의미 중에서, 아래의 우리의 논의에서 세련되게 다듬어질 하나의 의미가 신뢰할 만한 핵심적인 공자 사상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그것이 제대로 평가되고 이해되지 못해 왔다고 나는 확신한다. 진실되고, 뚜렷한 인간적인 힘은 특징상 신묘한 바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공자는 일찍이 간파했으며, 그것에 대한 주의를 우리들에게 환기시키고 있다. 이미 너무나 친숙하고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것을 밝히는 것이 사실 공자의 과제였다고 하겠다. 이런 경우에 필요한 것은, 우리 인간 존재의 이런 <자명한>면을 새로운 각도와 올바른 방법으로 만나는 일이다. 이러한 친숙한 영역으로 통하는, 즉 우리에게 새롭고 계시적인 시각을 마련해 주는 그러한 새로운 길을 우리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공자가 찾았던 길은 바로 예라는 통로였다. 예를 익히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힘든 공을 들여야 한다. 예의 의미는 어원상 <거룩한 예식>(holy ritual), <신성스런 의식>과 가깝다. 공자 가르침의 특징은 예식을 올릴 때 쓰이는 말과 이미지들을 매개로 하여 그 안에서 인간 습속, 좀더 정확히 말해서, 인간 사회의 참된 전통과 합당한 관습을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과 예에 복종하는 의지가 바로 인간을 인간이게 할 수 있는 완전하고도 특유한 인간의 덕 또는 힘이라고 공자는 가르쳤다. 여기서 공자는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우리로 하여금 전통과 관습이라는 전체에 주목을 하게 하며,


또한 신성한 예식, 거룩한 의식의 형상 등을 통하여 이런 모든 것을 우리 눈으로 (직접) 보게끔 한다. '정신적으로' 고상한 사람은 조야한 인품을 사회적 형식인 예와 잘 융화시켜서 이 둘을 덕, 말하자면 인간의 가치를 뚜렷이 나타낼 수 있는 힘으로 전환시키는 연금술 (또는 도덕 연마)에 많은 공을 드린 사람을 말한다. 덕은 인간 상호간의 하나의 전형이 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들 속에서 실현된다. 이러한 전형들은 모든 예에 공통되는 일정한 일반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전형이 되는) 행동들은 <인간에 대한 인간다움>, 즉 인간들 상호간의 성실성과 존중을 참되게 나타내 주는 모든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형적 행위들은 또한 특징적인 것이다. 이것들은 망인에 대한 애도, 결혼, 결투, 군사, 아버지, 아들 등등이 되는 인간적인 전형으로 세분화되어 문명된 행위를 구성하는 예식 진행의 절차를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여하간, 인간이란 어떤 우주적 또는 사회 법칙에 의해 규정된 상투적 행위를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단순히 표준 규격화된 단위로만은 결코 간주될 수 없다. 그렇다고 인간은 사회 계약에 (능동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자기 충족적이고 개별적인 (즉 원자적으로 완결되고 독립된) 인격체도 아닌 것이다. 인간의 조야한 충동이 예에 의해 도야됨으로써 인간은 진정한 인간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는 인간적 충동의 완성, 즉 충동의 문명적 표현이지, 결코 형식주의적인 비인간화가 아니다. 예는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를 생동적으로 살려 내기 위한 인간 고유의 형식인 것이다. 공자 이전에는 다만 <거룩한 예식>, <신성스런 의식>이라는 그저 일상적인 의미였던 것을 바로 인간 고유의 자기 계시적인 이미지로서, 말하자면 전통과 관습을 배워 익힌 인간 고유의 존재적 측면으로 바라 볼 수 있게 한 것은 공자의 훌륭하고도 창조적인 통찰력 덕분이라고 하겠다. 능숙하게 익힌 의식을 몸소 행하면서, 각자는 전형적 행위에 따라 해내야만 되는 것으로 상정되는 바로 그 행위를 하게 된다. 나의 몸짓은-우리들 중에 아무도 억지를 쓰거나 밀어 부치거나 요구하거나 힘으로 해결을 보려고 했거나 또는 다른 방식으로 이것을 <조작>해 내려고 하지 않았지만-저절로 상대방의 그것과 조화를 이루며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우리의 몸짓은 그때그때 적절하게 아무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른 참여자들의 몸짓과 어울리는 것이다. 모두가 <예에 숙달되어> 있다면, 적절한 예식의 맥락 속에서-사실 글자 그대로-예에 맞는 몸짓을 해내면 될 뿐인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저절로 자연스럽게) <일어날 뿐인 것>이다. 순임금이 무엇을 하였는가? <자기를 받드는 마음으로 남을 대했을 뿐이로다!> 우리는 다음에서 신성한 예의 이런 자기 계발적인 이미지가 강조하는 행위의 분명한 특징들을 좀더 상세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억지 없이 자연스럽다는 말을 <기계적> 또는 <자동적>이라는 뜻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예식을 올리는 행위가 만약 자동적, 기계적이라면, 공자가 누차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그 예식은 빈약하고 공허하며 죽은 것이다. 그 속에는 혼이 없다. 에식의 참된 <모습>에는 일종의 자연스런 자발성이 있다. 예식을 올리는 개개인들의 진지하고 성실하게 몸과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에, 예식에는 생명력이 있다. 정말 진짜 예식이 되게 하려면 누구나 <제사에 몸소 참여>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제사를 전혀 드리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예를 잘못 집행하는 두 가지 사례가 있는 것이다. 숙련된 세련미 부족으로 예식이 부자연스럽게 억지로 진행되거나, 예식이 겉으로 보아서는 매끄럽지만 진지한 목적 의식과 실천이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어딘가 기계적이며 맥이 빠져 보이는


경우이다. 아름답고 생명력 있는 에식은 숙련된 예식의 세련미와 혼용하는 집행인의 <현장성>을 필요로 한다. 이런 이상적 융합이 바로 신성한 예식이라는 의미의 진정한 예인 것이다. 공자는 (한편) 예를 실행하는 군주와 (다른 한편 오직) 명령, 협박, 규율, 처벌과 폭력으로 자기 목적만을 추구하려는 군주를 특정적이고 날카롭게 대비시키고 있다. (외부적, 타율적) 강제력은 명명백백하지만, 예 안에 생동하는 막연하고 '신묘한' 힘은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분명하지도 않다. 경건하고 근엄한 마음가짐을 하고 서로 자유스럽게 협동하는 가운데 예는 살아 움직인다. 신성한 의식의 완성은 예술적이며 동시에 정신적인 것이다. 거룩한 예식 지체를 검토했으므로, 우리는 이제 좀더 일상 생활 측면에 눈을 돌려야 하겠다. 이것이 사실 바로 공자가 우리에게 실천하기를 바라는 측면이며, 이것이 그의 인간관의 바탕인 것이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아는 상대반을 만나면, 미소지으며, 그에게로 걸어가서, 그와 악수를 한다. 보라! 어떤 명령, 책략, 폭력, 특수한 꾀나 도구를 쓰지 않았고, 내 쪽에서 상대방을 그렇게 하게끔 아무언 힘을 행사하지 않았지만, 상대방은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내 쪽으로 그의 손을 내미는 것이다. 우리가 악수하는 것은 단순히 결코 내가 상대방의 손을 또는 상대방이 내 손을 위, 아래로 끌어 잡아 당기는 것(즉 강제적 폭력)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완전히 서로 한마음으로 협조하여야 하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이렇게 (서로서로 한마음으로) 협조하는 <예식> 행위의 미묘함과 놀라운 복잡성에 주목하지 못한다. 그러나 누가 교본을 통해서 이런 예식을 배워야만 할 경우라든가, 아니면 악수하는 풍속을 모르는 이방인의 경우라면, 이런 미묘함과 복잡성이 아주 분명하게 눈에 띄게 될 것이다. <예식>이 자체 안에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그리고 적어도 최소한도라 할지라도, 각각 서로 (예의 진행 과정에 실제) <몸소 참여해야만 한다>는 사실도 우리는 보통 주목하고 있지 못하다. 공자의 말씀대로, (예식을 행할 때는) 상호간의 깊은 신뢰와 존중이 항상 일반적,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상호간의 존중은 존경의 마음을 서로 마음속으로 느끼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우리가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자신이 (마음속으로만) 인지하고 있을 경우, 우리는 훨씬 더 멍청하게 정신을 빼앗기거나, 또는 그런 자신을 의식하면서 아마도 상당히 어색하게 보이게 될 수 밖에 없다. 분명히 (상대방과 악수하는) 이런 우리의 작은 <예식>이라도 그 모습이 상당히 어색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한 사람이 자신의 손을 너무나 선급하게 빨리 빼어 들고는 허공에 빈손을 어색하게 들고 서 있는 모습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것은 예가 아니다. 진정한 상호 존중은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존경이 마음을 의식적으로 감지하거나,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 대한 존경에 초점을 (의도적으로) 맞추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예는 그저 올바른 <생활>, 말하자면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행위를 하는 중에 충분히 표현되는 것이다. 마치 공중 곡예사가, 적어도 목전의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속임수가 있다 해도,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완전한 신뢰를 '의식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아니고' 몸소 가져야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수를 하는 우리도 (공중 곡예만큼 위험 부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에 아무런 의미도 전달되지 않는, 생동감 없는 형식으로 우리는 아주 어색하게 손을 더듬고 흔들 뿐인 것이다. 악수나 인사를 잘하기 위해서 상호간의 인격 존중과 신뢰가 꼭 필요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렇지만 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때로는 악수를 통해 상대방 태도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도 있다. <예식을 드리는> 몸짓은 그 예식의 의미를 각별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 예식의 몸짓에는 인간 관계의 깊이가 드러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상대방의 옛 은사라고 한다면, 길에서 만난 그 상대망(옛날 학생)에게 걸어가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차라리 그 학생이 먼저 확실하게 내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악수를 하면서, 그것이 분명 따뜻한 것이기는 했지만, 그 학생은 어떤 묘한 여운을 남길 수도 있다. (말하자면) 내 쪽에서는 아마도 그 학생의 어깨를 얼싸 안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학생은 내 등을 살짝 두드리는 일 (반갑다는 표식) 따위는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몸짓을 가지고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든지, 뉘앙스를 준다든지, 자상하면서도 의미 있는 여러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묘한 감정을 다양하게 나타낼 수 있음을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다. 이런 미묘한 변화들과 그 규칙을 묘사하자면, 우리는 곧 <논어> 10 장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10 장에서 말하는 예식을 올리는 요령은 현대의 미국인 독자들의 눈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아주 고풍스러운 전통주의의 정수로 비쳐질 것이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인간 개개인의) 사회 활동은 문명 사회 안에서도-힘을 들이거나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고도 적절한 구도속에서 적합한 예식의 몸짓을 자연스럽게 해 나감으로써-서로 협조적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이런 예식의 힘은 첫째로 배워 익힘에 달려 있다고 공자는 말하고 있다. 그것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를 통한 무리 없는 자연스런 힘은, 우리들이 보통 그런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고 있지만, 또한 물리적인 목적을 수행하는 데도 적용될 수 있다. 내가 지금 연구실에서 강의실로 책을 한 권 가지고 와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신묘한 방법이 없는 한, 나는 글자 그대로 다음 과정을 밟아야 한다. 몸소 연구실까지 걸어가서, 문을 열고, 내 근육을 움직여 책을 집어 들고 물리적으로 그것을 다시 강의실로 가지고 와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묘법이 있을 수 있다. 즉 자신의 소망을 예식에 적합하게 나타냄으로써, 자신이 몸소 (물리적인)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소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강의실에 있는 한 학생에게 정중하게, 즉 에식에 적절하게, 눈길을 주고 단지 책을 나에게 가져 오라는 내 소망을 절도 있고 품위에 맞는 '예식적인'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내 소망을 이렇게 예식에 적절하게 나타내면 되는 것이다. 나는 그 학생에게 폭력을 쓰거나, 위협을 주거나, 술책을 써야 할 필요가 없다. 내가 몸소 실제 해야 할 일은 더 이상 없다. 내가 소망했던 대로, 거의 아무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도 그 책은 내 손에 있게 된다. 이런 점이 바로 인간 고유의 일처리 방식인 것이다. 남과 악수하는 것이나 남에게 일을 대신시키는 일 같은 것은 매우 비근한 예라고 한다면, 도의 정신은 아주 심원한 예라고 하겠다. 이와 같이 (예식을 올리는) 복잡하지만 또한 친근한 몸짓들이 바로 인간 관계를 유지시키는 가장 인간적인 특징이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관계가 -말하자면 이리저리 쫓기거나, 위협을 당하거나, 힘의 압제를 받거나, 조종을 받는 동물 또는 인간 이하의 존재들과 같은-물리적인 (대상적) 사물들간의 관계가 아닐 때, 우리 인간들은 이 세상에서 어느 것과도 구별되는 것이다. 예의 이미지에 의해 이런 <예식>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개명한 인간들 상호간의 일상적인 접촉 관계를 보다 분명하게, 강조하고 매우 세련되게 다듬어 놓은 것들이 바로 의심없이 신성한 예라는 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언어는 오직 행위에 대하여 말할 때나 또는 행위를 간접적으로 유도하는 데 쓰여질 뿐이라는 관념이 서구 현대인의 생각을 지배해 왔다. 그러나 당대의 <언어> 분석


철학은 예식을 올리는 도중에 하는 말이란 어떤 행위에 대한 보고이거나 또는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기 보다는 얼마만큼 그 자체가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 실제 행위인가를 밝혀 왔다. 작고한 오스틴 교수는 이런 현상의 보편적 실재성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한 사람중의 하나이며, 그는 자신의 분석에서 이런 언어적 실재성을 <수행적 언사>라고 명명하였다. 우리들이 하는 말 중에는 사실 법적 증서에서 <효력을 갖는> 조항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무수한 수행적 언사들이 있다. 이런 언사들은 말이기는 하지만, 어떤 행위에 대하여 보고하거나 어떤 행위를 (우회적으로) 유도하는 말이 아니다. 이 말들은 행위 그 자체를 바로 수행시키는 것이다. <나는 내 시게를 내 동생에게 줄 것을 유언한다>라는 언사를 적절하게 말로 표현했거나 글로 쓴 것은 내가 이미 행동한 것에 대한 보고가 아니라, 이런 유증 자체의 실행인 것이다. 결혼식에서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말은 승낙하는 내심의 정신적 행위에 대한 보고가 아니다. 그것은 결혼 계약의 한쪽 몫을 완결 짓는 행위 자체인 것이다. <나는 약속한다>라는 말은 조금 전에 내가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에 대한 보고가 아니며, 그 외의 다른 어떤 사실에 대한 정보 제공 또한 결코 아니다. 그 말을 한 것은 그 자체 약속에 대한 실행일 뿐이다. 말을 통해서 그리고 이런 말들이 한부분을 이루고 있는 예식을 통해서 우리는-<마음에서 예에 따라 행하는> 사람의 경우처럼-어떤 책략들이나 강제성보다도 훨씬 강력하게, 더욱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자신을 규제하는 것이다. 예에 힘을 쓰는 사람은 자기보다 위에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물리력만을 행사하는 사람은 결코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고 공자는 진실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관례를 몸으로만 익히고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면, 또는 적절한 구도를 갖추지 않고 말만 했거나 관례의 효력만을 바랐다면, 또는 예식이 충실하게 수행되지 못했다면, 또는 예식을 올리는 사람이 적절히 권위를 가진 그런 사람 '즉 <권위의 행사>-다시 말해 예식')이 아니었다면, 예의 효력은 없는 것이다. 요컨대 예식의 몸짓과 말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도덕적인 구속력은 예식 행위와는 별개로 유리되거나 추상화 될 수 없다. 우리가 예식에서 쓰고자 하는 것은 겉으로 현란하게 보이는 힘이 아니다. 그것은 예식의 (즉 예식을 올리는 현장 그 자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힘이다. 만약 우리 사회에서 노예에 대한 관습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면, 나는 나의 종을 다른 누구에게 유증하는 예식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 내기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나는 2 달러를 놓고 내기를 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훌륭한 변호사라 해도, 지정된 법정에서 지정된 의식의 절차와 권위를 빌리지 않고 다만)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어떤 범죄에 대한 <유죄> 혐의를 법적으로 변호할 수 없다. 이와같이 예의 힘은 예가 충분히 존중되지 않고서는 발휘될 수 없는 것이다. 이점 또한 공자가 늘상 되풀이해서 하신 말이다. <세 귀족이 (천자의 예인) 옹 음악으로 예식을 끝내다니! '예에 따르면, 옹의 음악을 쓸 신분이 아닌')이 세 귀족의 사당에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이 되는 것인가?> 지금 우리로서는 우리들의 언어나 예식속에 명백히 알수 있는 수행적 공식 언표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하는 점에 주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또한 그만큼 분명하진 그러나 자못 중요한 수행적 공식 언표들, 예를 들면 자신의 소원, 애호, 선택을 표현하는 언표들에 주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이 물건을 선택한다>는 말은 자신이 나중에 그 물건을 받아 보고, 그것은 참 뜻을 말한 것이 아니라는 식의 이의 제기를 배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적절한 상황에서 그런 언명을 한 것은 이미 일어난 어떤 일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함에 따른 (앞으로) <수행해야할>


단계로의 이행이기 때문이다. 언어와 언어가 갖는 <예식 수행상>의 상관 관계에 대한 이런 연구의 결론은, 오스틴 교수의 추론에 따르면, 자못 역설적이었다. 그는 궁극적으로 모든 언명들은 본질적인 면에서 수행적이라는 결론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 결론은 미해결의 문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문제는 '과거에는 실용주의적인 철학 경향들의 기본 주제였으나' 지금은 현대 분석 철학의 상투어라는 점과 우리는 어떠어떠한 일들, 즉 상당히 중요하고 매우 다양한 일들을 한다는 낱말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일로 충분하다. 실제로 아런 새로운 철학적 통찰의 중심적인 교훈은 언어에 대한 가르침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예식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하겠다. 우리 방식대로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것은-바로 예식이 인간 존재의 실체를 이루는-그런 인간 존재 영역이 얼마나 광대한 것인가이다. 각종 약속, 합의 사항, 실수의 해명, 변명, 찬사, 협약-이런 등등의 일들이 예식들이다. 이것들이 예식이 아닐 때는, 이들은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이와같이 예식을 매체로 하여 우리에게 고유한 인간 생활이 유지되는 것이다. 예식 활동은 따라서 그 어느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제일 우선적인 일이다. 언어가 뿌리를 박고 있는 사회 관습 속에서의 언어 행위와 무관하게 추상화되어 이해되어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언어이다. 인습적인 언어 행위 또한 자신을 규정하고 동시에 그 자체도 한부분을 이루고 있는 언어와 고립되어 이해될 수 없다. (만약 누구와 약속을 한다면) 그 약속이란 순전히 물리적인 동작일 수만은 없다. 예식적 상관 관계, 주변의 환경적 요소와 각자의 역활 등과 전혀 관계없이, 오직 말만으로는 약속이 성립될 수 없다. (순전히 물리적으로만 계량되는) 말과 동작이란 구체적인 예식 행위로부터 (일탈된) 추상물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근육 동작 기술에 숙달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말을 또한 올바르게 (즉 예의 적절하게) 사용해야만 한다는 점을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식에 맞는) 올바른 언어 사용은 (물리적) 몸동작과 마찬가지로 효율적인 행위를 구성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고 올바른 언어는 단순히 유용한 첨가물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것은 예식을 실행시키는 핵심에 속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우리는, 공자의 유명한 정명론이 단순히 낱말-묘술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라거나 전통을 가르치려는 관심에서 나온 공자의 현학적인 노력의 표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또한 <실체>론-또는 플라톤의 이데아, 혹은 그와 유사한 신유학적 개념-을 읽어야 할 어떤 이유를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논어>는 그런 원리에 대한 어떤 암시도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우리 자신의 현대적 철학 원리를 고전의 가르침에서 읽어내는 일에 매우 조심해야만 한다. 그러나 글자나 정신 면에서 <논어> 원전은 인간을 예식적 존재로 보는 우리 자신들의 최근년에 등장한 관점을 지지하며 풍부하게 해주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예식의 작용과 연관하여 공자는 단순히 현저하게 인간적인 성격을 또한 제시하고 있다. 끝으로 우리는 이제 공자가 신성한 예식을 형성화하여 인간 존재의 모든 측면을 통합하고 그것을 구석구석까지 주입하였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그 사실을 밝히는 것에 우리 분석의 초점을 맞추어야만 한다. 아마도 현대의 서구인이라면, <몸으로 비워 익힌 관습과 언어를 이지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일>을 말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이지적 실천은 (서구적) 시속에 맞는 가치-중립적인, <과학적> 고리(한계)를 가지게 된다. 사실 현대 분석 철학자들은 이런 식으로 (즉 가치 중립적, 과학적으로) 말을 하여 상식을 지키며 (그 이상의 언급은) 삼가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럽게 해서는 공자의 중추적 이미지가 성취했던 그런 것을 얻어 낼 수 없는 것이다. 거룩한 예를 인간 존재의 비유로 형상화시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 존재 속의 신성한 차원에 눈을 돌리게 된다. 거룩한 예가 그 거룩함의 절정에 달해서는 여러가지 차원을 갖게 된다. 예는 사회적 형식의 조화와 아름다움, 인간 상호 관계의 내재적이고 궁극적인 존엄성만을 강하게 나타내어 주는 것만은 아니다. 예식은 또한 동등한 존엄성을 가진 타인과 함께 예 안에서 (무리와 충돌 없이) 자유스럽게 공동 참여(활동)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 내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암묵적으로 함축되는 도덕의 완성을 보게 되는 것이다. 좀더 나아가 말하자면, 예식을 따라 하는 행위는 타인(또는 그것을 바라보는 상대방)에게도 완전히 개방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식은 공개적이고, 공동 참여적이며, (따라서 누구에게나) 명백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식과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비밀스럽고, 요령 부득이하고 정도에서 벗어난 것이거나, 아니면 독재적 폭력에 의한 강제성을 띤 것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자기와 같은 타인(상대방)들과 함께 어울려 이러한 예식에 아름답고 근엄한 공개적인 참여릎 통하여 인간은 자기 인격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간의 완전한 공동 생활-그리스도교의 형제애와 유사한 유교적 대비-은 신성존경과 불가분한 한 부분이라는 주요한 면모, 다시 말해 예수 가르침의 중추적 계율과 맞먹는 유사성을 다시금 갖게 되었다. 좁은 근원적 의미에서 신성한 예식은 인간의 현세 ㅅ활 밖에 있는 정신적 존재(혼령)들을 전적으로 신비스럽게 위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공자는, 당연한 추론이지만, 우리들에게 가르치고자 하였다. 정신은 더 이상 예식에 의해 감응을 받은 외재적 존재가 아니다. 정신은 예식 안에서 표현되며 그 안에서 가장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이다. 인간의 현세 영역에서 다른 초월적 세계로 관심의 방향을 전환시키지 않고서, (인간은 누구나 공개적으로 거룩한 예식을 올림으로써) 그 거룩함의 내용을 참된 인간 존재의 차원으로 표현하며 (동시에 그 참된 인간 존재의 차원에 몸소) 참여한다는 양방면에서 바로 공개적인 거룩한 예식은 (인간 존재의) 중추적 상징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명백히 거룩한 예는 이렇게 도를 인간 문명 속에, 보다 포괄적이고 이상적이며 전면적인 예식의 조화를 통하여, 완전하게 체현해 내는 찬란한 중심점이 되는 것이다. 인간 생활은 그 전체면에 있어서 마침내 하나의 광대하고, 자발적이며 거룩한 예, 즉 (신성스런 예식에 공동 참여를 통하여 사람들과 사람들이 서로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융합해 나가는) 인간의 공동체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자의 <궁극적인 관심>이었다. (원자적으로 각기 고립되고 자기 완결적인) 개개 인간들의 삶 자체보다 더 문제가 되는 유일한 것이 바로 이 점이라고 공자께서는 거듭거듭 말씀하셨다.

제2장 갈림길 없는 오로지 하나의 도

공자는 <논어>에서, 선택 혹은 책임에 관한 말을 세심하게 논의하지 않았다. 가끔 그 비슷한 용어가 사용되기도 ㅎ지만, 이 말들은 서양의 철학적, 종교적인 인간 이해에서 중추적 의미를 갖고 있는, 그런 (서구적) 특색으로 발전되지도, 엄밀하게


다듬어지지도 않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서양에서는) 이런 선택이나 책임의 개념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존재론적으로 궁극적인 힘과 서로 함께 묶여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개개인들은 이런 자신들의 존재론적인 힘을 통하여 개개인 자신의 영적 운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진정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택이나 책임의 개념은 (그 개개인들은 그들에게 천부적으로 부여된 궁극적인 존재론적인 힘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들은 죄를 저지를 수도 있으며, 또한 그 저지른 죄에 대하여 회개도 할 수 있고, 아니면 그에 합당한 심판도 받을 수 있다는 (서양 고유의) 관념들과 밀접히 연관되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공자는 선택과 책임이라는 말을 그런식으로는 다루지 않았다. 우리 서양인들은 위와 같은 맥락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깊이 안주하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와는 전혀 다른 방식, 즉 공자의 방식으로 세계를 한 번 바라보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뭐니뭐니해도 공자는 사회 속에서의 인간이란 무엇이며 그 안에서 인간이 차지해야 할 위치가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는 데 깊은 관심을 기울인 사람이다. 그는 우리들이 (오늘날) 도덕적인 문제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문젯거리를 정의하고 설명하는데 헌신하였다. 그는 위대하며 창조적인 교육자였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선택>과 <책임>을 둘러싼 그런 (서양식) 관념들의 체계를 간과할 수 있었을까? 선택과 책임에 관한 말이 (중국의 사유 체제에서) 발전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선택하거나 책임지는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님을 우리는 즉각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 시대와 마찬가지로 공자 시대에도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에 비해 보다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또 그렇게 행동했다. 또한 고대 중국에서도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진지한) 선택을 했으리라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영혼의) 죄책감이나 회개 또는 죄에 따른 응당한 징벌 등의 말들이 우리 (서양사람)들이 지금 그것들을 쓰는 그런 의미로 (고대 중국 사회에서도) 통용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그런 확신이 나에게 없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서양적인) 이런 관념들이 지시하는 실재 대상들이 (고대 중국인들에게는) 전혀 부재했다는 확신 또한 나에겐 없다. 물론 고대 중국에 있었던 징벌 관념은 (범죄 행위의 결과를 처벌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범죄 행위의 발생 자체를 미리 차단하려는) 예방적인 징벌 관념이었다. 즉 저질러 놓은 죄를 씻어 내기 위한 응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악행을 미리 방지하기 위한 엄혹한 <교훈> 또는 글자 그대로 (자유 자재로 활동할 수 없게끔) 절름발이 병신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이런 (동서양간의 관념적인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후자의 논점을 더 이상 논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선택>과 <책임>의 경우, 이 말들이 지시하는 실제 대상들이 (중국의 사유 체계에도) 분명히 존재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 다만 우리 서양에서는 그런 실재 대상들을 표현하고 그들 내부의 모습과 움직임을 자세하게 추적하기 위한 정교한 언어를 가지고 있었던 반면 공자'그리고 그 당대의 사람들'는 그와 같은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들 고대 중국인들은, 같은 시대의 그리스나 근동의 여러 민족들에게서는 핵심적인 의미를 지녔던 그런 도덕적 실재 대상들에 대해 별로 진지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하겠다. 아마도 이러한 <관심 부재>를 뚜렷이 밝힐 수 있는 가장 계발적인 방법은 <논어> 속에 제시된 가장 중요한 형식적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다. <논어>의 관심은 <타오>이다. 타오란 도, 즉 길이나 도로이다. 비유적으로 확장된 일반적 의미로 그것은 고대 중국에서 삶의 올바른 도, 통치의 도, 인간 존재가 걸어야 할 이상의


도, 우주의 운행 방식, 만상의 존재 자체를 생성시키고 규범화하는 (즉 만물의 소이연지고와 소당연지칙으로서의 도 '이치, 길, 과정') 등을 의미한다. '<논어>에서 <도>는 그것의 가능한 또 다른 하나의 의미인 <말> 혹은 <말하다>의 의미로는 쓰이지 않고 있다' <논어>에 제시된 도의 형상적 의미는 걸어가는 길의 비유가 가장 많다. <논어> 원전에 대표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문자는 걸어다니는 길, 도로, 걷다, 궤도, 따라가다, 통과하다, 부터, 까지, 들어가다, 떠나다, 도착하다, 나아가다, 곧다, 굽다, 평탄하다, 부드럽다, 멈추다, 위치를 정하다 등등의 의미를 가진 것들이다. 도의 관념은 당연히 공자의 핵심적 과념인 예와 상통하는 관념이다. 공자에서 예는, 사회적 교제, 즉 인간의 삶이라는 거대한 예식을 명백하고 세세하게 나타내 주는 패턴이다. 참된 길을 똑바로 걸어가는 모습과 예식을 멋들어지게 올리는 모습으로 바꿔서 생각해 보는 것은 아주 쉽고도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심지어 우리는 예를 특정한 도로 체계, 다시 말해 길이 그려진 지도로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 생각이 기울어지면, 이 길이라는 형상적 의미를 발전시켜서 선택, 결정, 책임 등의 관념을 이끌어 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우리 서양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자명하게 다듬어진-도의 이미지에서 파생되어 나온-갈림길의 이미지를 이끌어 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선택이라는 관념을 표현하기에 이렇듯 딱 들어맞고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바로 이 갈림길의) 비유가 정작 <논어>에서는 결코 한번도 쓰인 적이 없다. 사실 갈림길의 모습은 자세하게 그려진 도로 그림에서는 어디에라도 매우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 요소이다. 그러나 (공자의 경우처럼) 우주를 기본적으로 명명백백하고 단일하며 확정된 질서를 가진 것으로 보다는 관념에 깊이 빠져 있다면, 그런 사람은 갈림길의 이미지로부터는 도를 찾아 헤매는 구도자를 (더욱 강하게 단련시킬 수 있는) 하나의 도전(의 관념을) 생각해 내지 못할 수 있다. 참된 도를 바르게 걸어가 살펴볼 때, 이런 단일하고 확정된 질서에 대한 공자의 애착 또한 자명하게 드러난다. 바로 그 다른 선택이란 잘못된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도를 잃은 것이거나 (도를 찾는 일을) 포기하는 것이다. 즉 하나의 질서 (즉 도) 이외의 <다른 선택>은 모두 무질서이며 혼란인 것이다. 우리가 도를 따라 계속 간다면 결국 어디에 이르는 것일까? 이 여행을 종결시키는 어떤 목적지가 있는 것일까? 공자가 제시하는 (도의) 형상적 의미는-말하자면 그곳이 항구이거나 고향집 혹은 황금의 도시이거나 또 다른 그 무엇으로 묘사되든-어떤 미리 정해진 혹은 이상적인 목표점에 도달하려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정신적으로 고귀한 사람(군자)은 어떤 장소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떤 상태, 즉 아무런 애를 쓰지 않고도 적절하게 도를 따라가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그 자체가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도를 따라가는 것을 터득함으로써 그런 평정한 상태에 이르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그는 지도 위의 어떤 특정한 장소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목표점에 <도달>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다. 목표점에 도달한다는 것은 도의 본래적이고 궁극적인 의미를 올바로 잘 터득하여 지금 자신이 도를 따라가기로 마음을 정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그 도를 얼마나 잘 따라와서 그것을 몸에 잘 익혔는가 하는 수준에 관계없이, 그리고 우리가 이미 얼마나 배웠는가하는 수준과도 관계없이 우리는 진실로 도를 따라갈 수 있다. 왜냐하면 도에 아직 완벽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 도를 배우는 일에 온 마음으로 헌신하는 것 그 자체가 도이기 때문이다. 배우는 이에게는 배우는 이의 도가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 상태에 안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의 짐은 무거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 모든 것을 마무리지운 인자, 즉 예에 완벽한 사람, 진정으로 고귀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견습생일 뿐이기 때문이다. <논어>에 나타나 있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은 인간이란 진정한 인간으로 형성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이 세상-좀 더 구체적으로 한 사회-에 태어난 존재라는 것이다. 처음에 태어날 때는 다듬어지지 않은 덩어리. 물질적 재료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조야한 존재는 학문과 문화, 즉 예를 통해 꼴이 잡히고 잘 조절됨으로써 정품으로 다듬어져야만 한다. 하지만 이렇게 <자르고 다듬도, 쪼고, 윤을 내는> 일은 잘 될 수도 있고 못될 수도 있다. 자신이 고통을 참아 내고 적절히 제대로 노력하고 그리고 교사들에 의해 잘 훈련을 받아서 이런 수련 과정이 잘 진행된다면 그만큼 그 사람은 도를 향하여 똑바로 걸어나가게 될 것이다. 그와 반대로 이상적인 것에 따라 모양이 잡히지 못하면 바로 그 결점으로 인해 그 사람은 도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순수한 의미의 선택이란 없으며 중요한 것은 도를 따라가거나 못 따라 가거나이다. 도가 아닌 다른 <통로>를 선택했다는 것은 (또 다른 하나의) 진정한 길을 택했다는 뜻이 결코 아니며 단지 심지가 연약하여 그 진정한 길을 따라 가기에 실패한 것일 뿐이다. 만약 선택이라는 말의 의미가 여러 가지 똑같이 실재적인 선택사항들 중에서 하나를 행위자 자신이 자기 힘으로 고르라는 뜻이라면, 공자가 제시하는 가르침의 형상적 의미는 그러한 선택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 이와는 달리, 공자의 가르침은 도를 따라가기 위해 우리 자신이 자기 힘을 쏟느냐, 아니면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하여, 즉 힘이 없어서 삐뿔어지고 결국 아무 곳에도 이르지 못하여 물질적 이득, 유리한 이점, 개인의 안락과 같은 환상을 헛되이 쫓고자 넘어지고 자빠지고 이리저리 헤맨다는 식으로 문제를 보고 있다. 공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은 사실이다. <'어찌할까 어찌할까' 하고 끊임없이 반문하지 않는 사람이면, 나도 그 사람을 어찌할 수 없을 뿐이다> 이 문장의 언급만을 따로 떼어 우리 서양인의 경향대로 읽는다면 이것은 선택과 연관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혀 그렇게 볼 필요가 없다. <어찌해야 할까?>-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그것을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식으로 읽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한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거기에는 동등하게 가치 있는 선택사항들이라는 관념이 함축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실천해야할 하나의 올바른 것만이 전제되어 있다고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반문의 실제 내용은,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떤가? 그것은 올바른가? 그것은 도인가?> 하는 것이 된다. 좀더 일반적인 말로 하자면, 이런 것은 선택이 아니라 어떤 대상이나 행동을 객관적으로 옳거나 옳지않다고 확정지으려는 시도라고 사료된다. 그것은 바로 도덕적인 일이다. 즉 어떤 행위를 적절히 분류하여 예에 맞게끔 그 틀 안에 자리매김 해주는 일이다. <논어>에는 <현혹된> 혹은 <착각> 또는 <의심>에 빠져있는 마음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문제에 관해서 공자가 언급한 두 문단이 있다. 그에 대해 웨일리(A.Waley)는 그의 <논어>(The Analects of Confucius)에서 두 가지 마음이 있을 때 어느 하나로


결정하는 것에 관한 문제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비록 웨일리가 선택 혹은 결정이라고 번역했지만, 이런 관념에 대한 공자 자신의 세심한 논의를 놓고 보면, 오히려 웨일리의 번역은 공자 철학 사상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두 구절 모두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서 (주저하고) 의심하는 마음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욕구나 행위 면에서 수미일관되지 못하는 사람에 의미를 둔 것이다. <논어> 원문의 내용을 쉽게 풀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아마도 가까운' 어떤 사람이 잘 살기를 바라지만 때로 화가 날 때는 그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혹은 맹목적인 흥분으로 실상 그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와 같은 갈등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택이나 결정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하게) 일관되지 못한 성향들을 구별 혹은 변별해 내는 일이다. 더욱이 각 구절에서, 우리가 그 성향들 각각을 변별해 내기만 한다면 어떤 성향이 바른 것인지는 너무나 자명하여 의심할 수 없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해야 할 일은 선택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식에 관한 것이다. 이 구절들에서 핵심적인 용어인 혹은 여기에서는 <현혹된, 또는 예와 맞지 않는 성향이나 경향에 잘못 이끌려진>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무엇을 할까 선택을 할 때 가지게 되는 의심이 아닌 것이다. 선택이라는 문제와 관련해서 또 하나의 흥미있는 구절이 <논어>에 있다. 어떤 다른 구절보다도 더욱 이 구절은 도덕 규범 내에서의 충돌, 우리식으로 정의하자면, 개인(당사자)의 선택에 의해서 해결을 볼 수밖에 없는 충돌의 문제가 발생된 상황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아버지가 남의 양을 훔친 <정직한> 궁이라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궁은 자기 아버지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이 사실을 말한 제후(즉 섭공)는 자기 백성 궁의 정직함에 대해 공자에게 뽐내듯이 말했지만 공자는-자기 나라의 정직한 사람은 자기 아버지를 숨겨 주었다고 말하면서-그에게 재치 있게 반대했다. 이 구절은 두 가지의 대립, 충돌하는 도덕 요구들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해결하는 데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양인들은 대부분 이 경우 '법을 존중하는 것은 옳다. 자신의 부모를 보호하는 것도 옳다. 두 가지가 다 깊은 의무라는' 지식을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으나, 이들 두 가지 깊은 의무가 서로 충돌할 때는 우리가 (그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선택의 논의를 어쩔 수 없이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어쩔 수 없는 필요성 안에서 비극, 책임소재, 죄책감, 회한 등 각종의 씨앗을 낳는 결정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이란-우리(서양인)들에게는 지극히 자명할 수 있지만-공자로서는 전혀 생각해 볼 수 없는 일이다. 매사를 불가피한 선택의 문제로 보는 우리(서구인들) 시각의 자명성은 바로 공자의 그런 관점의 부재를 우리들에게는 그만큼 더 황당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실재하는 몇 개의 대안들 중에서 하나를 참되게 선택하는 일이 공자에게서는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적어도 그런 선택이 근본적인 도덕적 과제라는 점이 결코 공자에게는 분명하게 인식될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 좋은 증거를 우리는 댈 수 없다. 공자는 단지 이런 문제를 바라보는 그 자신의 생각만을 선언했을 뿐이다. (자연스럽게) 예에 따르는 관습을 지키는 일이 의미 있다고 말함으로써 재치 있게 이 문제를 넘어갔다. 여기에는 결정의 문제로 생각해 볼만한 어떠한 것도 없다. 다만 그 제후쪽(즉 섭공)의 지식의 결핍, 단순한 도덕 판단의 잘못만이 생각되어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 즉 명백하게 선택의 제시로 볼 수 있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공자는 뚜렷하게 아무것도 주목하지 못했으며, <논어> 전체에서 오직 한 번 이런 경우가


언급되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주장은 입증된 셈이다. 사실 공자 당시-극히 예외적인 일대 혼란과 변력 시기-의 중국인들의 실제적인 일상 생활에서는 그러한 (선택의 기로에 처한) 상황이 많았으리라고 사료된다. 더욱이 우리가 도덕가로서의 공자의 크기와 그의 임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감안한다면, 공자가 이와 같은 (구체적인) 경우에서도 내면의 도덕 충돌이라는 문제를 인식하거나 거론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공자의 관심사나 생각들이나 배려들이 요컨대 그의 도덕과 지성의 전체 방향이 (우리들 서양의 그것과는) 다른 방향에 서 있다고 가정하지 않고서는 해명될 길이 없다. 선택하는 일로 상정되는 어떠한 일도 또한, (서양 방식) 대신에, 공자 방식으로도 규정될 수 있다. 그것은 예의 질서 안에서 언뜻 보기에 선택적인길들을 객관적으로 분류하는 일이며, 어떤 것이 진짜 길인가를 발견하는 일이며, 그리고 어떤 길이 유일하고 분명한 길인지를 찾아내는 일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아마도 가시덤불로 이어져 있는 숲을 헤쳐 나가는 일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다만 도가 존재한다-즉 우주적 크기의 자기 일관성과 자기 진실성을 확신시키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가정하기만 하면 된다. 인간 존재의 중심적인 특징으로서의 선택이라는 관념은 오직 서로 밀접하게 짜여진 관념체계의 한 요소일 뿐이다. 이런 선택 개념의 결여는 그러한 관념 체계의 나머지 관념들도 없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선택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주요한 관념들은 도덕적 책임, 죄책감, 응분의 징벌과 회개 등등이다. 때때로 어떤 사람이 어떤 일에 책임져야 한다고 말할때, 우리는 그 일을 일으킨 결정적인 원인자로 (간주되는) 그의 역할만을 언급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 하느냐 하는 문제는 복잡하다. 그러나 이렇게 보는 방식의 일반적인 추세는 책임 소재를 도덕적 의무에서 찾기 보다는 일의 발생 혹은 인과 관계의 문제와 연관지어 보는 것이다. 책임에 대한 이러한 인과적 관념은 고대 중국인에게도 매우 익숙하다. 누가 혹은 무엇이 어떤 특정한 사태를 발생시켰는가 하는 것을 드러내 놓고 따지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물론 그들은 그것을 <책임>이라 번역될 수 있는 주제 아래서 따진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책임이라는 말의 어근적 의미는 도덕적인 것인데, 그것을 단지 인과관계와 연관지어 사용하는 것은 이미 탈도덕의 범주로 파생되어 나온 용례이기 때문이다. 물론 <책임있는>이라는 말의 어근은 <일으키다> 혹은 <산출하다>가 아니라 <대응하다>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일들이 되어가는 길(과정)에 대해 누가 대응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일들이 되어가는 것에 대해 대응해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은 일들이 그렇게 진행되어 가는 데에 대해서 실제적 혹은 잠재적인 인과 관계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들이 되어 가는 길에 대하여 인과적 관계를 가진 모든 사람이 물론 다 그 일들의 실제 진행 상황에 대하여 대응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자기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고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공자의 깊은 관심은 책임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념의 한 측면만을 반영한다. 만약 이것이 우리가 가진 책임이라는 관념이 갖고 있는 특징의 전부라고 한다면 그것은 진부한 군소리, 즉 사람은 자기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고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말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책임이라는 관념에 특징적인 내용을 주는 것은 <대응>이라고 하는 어근으로부터 도출된다. 여기에-내가 이 행위에 대해 대응한다. 이 행동은 나의 것이다라는-특별히 개인적인 동참이 있게 된다. 그리고 이 대응 행위가 이번에는 바로 '도덕적' 책임의 관념을 죄책감, 응분의 벌


그리고 회개라는 관념들과 연결짓는다. 대응해야만 하는 사람의 그 대응의 결과는 죄를 지어 벌을 받거나. 회개하여 보속을 받을 수도 있고 혹은 공덕을 쌓아 긍지를 가지고, 상급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서양에서의 이러한 책임에 관한 논의들은 책임이란 요컨대 궁극적으로는 순수하게 인과적 관념으로 따져야 된다는 특정한 공리주의적 관점때문에 사실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한 관점에 따르면 <책임>이란 단지 과거의 원인들을 분석 진단하여 미래의 사태에 영향을 주기 위한 일로 여겨져야 한다. 따라서 제재 조치와 포상은 미래의 잘못에 대한 예방을 약속하는 인간(행위)의 모든 인과적 연결 고리의 어느 부분에든지 끼어들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의 제재 조치들이 내일의 악행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것들은 정당화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제재 조치들이 악행을 막지 못하거나 혹은 어떤 특수한 경우에는 악행들을 오히려 조장하게 되면 그때는 그 반대의 제재 조치가 제시되게 된다. 회개를 하는 근거나 가치는 그 회개를 통해 미래의 악행을 막을 수 있는 효과를 거두는 데에 있지, 결코 과거 행위의 도덕적 측면과의 어떤 관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죄책감 같은 것이 가지는 가치도 이러한 견해에 따른다면 그와 유사한 합리적 근거에 의해 정당화 될 것이다. 최근의 철학 토론에서는 보다 섬세하고 보다 복잡한 형태의 공리주의적 견해들이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하게 발전된 형태들도 결코 (과거의) 보다 간단한 견해들에 의해 명백하게 발생되었던 그런 혼란의 가능성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다. 범법에 대한 제재와 연관하여 공자가 한 말씀을 번역자들이 <벌>로 번역하였기 때문에, 이는 조심성 없는 독자들로 하여금 공자가 그 말을 우리'서구인')들의 '도덕적인 죄책감이라는 근원적인 함축적 의미를 지닌' 벌 개념과 똑같이 이해하고 사용했다고 잘못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공자에게는 전혀 등장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히브리-가독교 전통에만 특별히 있는, 그리고 그 대부분에서 공리주의와 깊이 대조되는 이러한 견해는, 단지 (미래의 범법을 예방하려는) 벌의 효과에 의해서 형벌을 받을 만하기 때문에 징벌을 내리는 것이라는 견해이다. 벌이란 도덕적으로 책임있는 행위자에 의해 저질러진 행위에 대한 적절한 도덕적 응답이다. 또한 회개의 의미도 그 나름으로 보자면 단지 적절한 (범죄 억제) 장치, 또는 그 회개 나름대로의 심리적인 (범죄 예방적) 효과들에 의존해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저질렀던 나쁜 행위에 대한 회개라는 점에 있다. 회개란 자신이 도덕적으로 책임 있는 어떤 과거의잘못에 대한 도덕적 대응이다. 죄책감이란 이미 저질러 놓은 잘못 때문에 생겨나는 어떤 도덕적 '혹은 영적인' 속성이다. 만약 벌이 참된 도덕적 체험으로 주어지고 또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은 일종의 도덕적 채무를 갚는 것, 즉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결과적으로 미래에 있을 유사한 잘못이나 그 잘못에 의해 수반될 죄책감뿐만이 아니라, 또한 벌에 부수되어 나오는, 도덕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물리적, 신체적) 불쾌감이나 고통을 더욱더 싫어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만일 회개가 진실하다면, 그 회개는 이전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기 혐오이며 도덕적 죄책감에 대한 인정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 회개는 앞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겠다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죄책감, 벌, 그리고 회개가 도덕적 품성에 그리고 도덕성과 관련된 행위에 끼치는 결괴적 효과들은 당연히 환영할 만한 것이다. 여기에도 분명히 공리적으로 효과적인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것들 각자의 도덕적 근거, 즉 각자에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그 당사자가 '도덕적으로' 책임져야 할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데에 있는 것이다. <벌>, <죄책감> 그리고 <회개>가 그 사람이


책임져야 할 이전의 도덕적 잘못과 전혀 관계가 없다면, 우리는 도덕성보다는 (단순히 기게적 물리적인) 사회 공학을 문제 삼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왜 공자가 주된 공격 목표로서 <벌>의 사용을 지목하고 그 자신의 적극적인 가르침을 그런 것과 직접 대조되는 것으로 보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이다. 공자에게서 도덕 교육이란 예의 규정들을 몸으로 익히고 문학이나 음악 그리고 일반적인 교양 과목들을 배우는 일이다. 사람이 자신의 노력으로 <미는 힘>은 마련할 수 있지만, <당기는 힘>은 목표가 본래 지니고 있는 고매성에 의해 마련되는 것이다. 스승-혹은 군자-이 다른 이들을 도에로 이끄는 것은 그가 정신적으로 고매한 사람에 의해서이다. 힘을 가진 것은 바로 그 도이다. 그 힘은 (인위적인) 노력이 없는 것이요, 보이지 않고, 신묘한 것이다. 명백하게 <법가>의 영향으로 나중에 삽입된 문장으로 보여지는 오직 하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모두에서, 덕성, 인간다움, 예식, 그리고 그와 연관된 행위 지침인 <양보>의 사용과는 명백하게 대조를 이루는 제재 조치나 형벌의 사용이 바람직하지 못한 대안이라는 것이 <논어>의 특징이다. <논어>는 문제를 간명하게 제시한다. 즉 우���는 예와 <양보>를 써서 통치할 수 있거나 그렇게 할 수 없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그렇게 할 수 없으면 스스로 기만하여 보았자 소용이 없으며 <벌>, 즉 제재 조치들과 포상(이라는 강제적 수단)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것들은 폭압적인 방식으로든 혹은 상급을 주어서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진실로 인간적인 '즉 도덕적인' 방식이 아니기에, 진실로 인간적인 삶을 확립시키지 못한다. (서양적 세게관에 따른) 도덕적인 죄책감 혹은 죄가 되는 근거로서의 도덕적책임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도덕적 응징으로서의 벌이라는 개념을 갖지 못한 공자는 제재 조치들의 사용에서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 어떠한 잠재적 가능성도 볼 수 없었다. 이런 (공자의 입장과) 반대되는 즉 이런 문제들에 대한 <공리주의> 편향적인 관점이 당시의 중국인들에게 낯선 것이었다고 상정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이들의 관점을 거부함으로써 공자는 그 자신의 관점을 매우 유별나게 만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자의 견해는 당시 매우 유별나게 만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자의 견해는 당시 매우 강력한 경쟁 세력으로 커나갔던 법가의 견해와는 명백하게 대조된다. 법가는 전형적으로 채찍이나 사탕 이외의 것에 대한 호소는 감상적인 자기 기만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도덕적인 접근이란 속임수이며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쓰는 사람이 스스로 얽어 묶이게 되는 덫이라고 생각했다. 호랑이가 개를 제압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가진 발톱과 이빨 때문이다. 호랑이가 자신의 발톱과 이빨을 포기하고 그것들을 개가 사용하게 된다면, 호랑이는 개에게 제압 당하고 말 것이다. 마찬가지로 통치자는 그의 신하들을 형과 덕 '즉 <칭찬과 포상>의 <이득>'으로 통제한다. 법가의 이러한 생각은 공자의 가르침과는 선명하게 대조된다. 공자께서는 말씀하셨다. 규정들에 따라 백성들을 다스리고 형벌로 질서를 잡는다면 백성들은 수치심없이 법망을 빠져 나갈 것이다. (반면에) 도덕적인 힘으로 그들을 다스리고 예로 질서를 잡는다면 백성들은 수치심을 가질 뿐 아니라 바르게 될 것이다. (이런 중국적인 관념에서) 하여간, 벌이 어떤 역활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실제적으로 (범죄 발생)억제라는 순전히 공리주의적인 역할이지, 결코 도덕적인 응징의 역할이 아니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다고 하겠다. 좀더 핵심적으로 말하자면,


도덕적 응징으로서의 벌이라는 관념은 <논어>나 법가의 사유 그 어느 쪽에서도 생겨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의 그 말(벌)에서 도덕적인 의미를 읽어 내지 말아야 한다. 더 나아가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논어>에서는 죄책감과 회개를 어떤 개인의 못된 행위에 대한 도덕적 대응으로 보는 관념이 전혀 발전되지 않았다는 점을 이제 좀더 자세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 (<논어>의 관점에 따른다면) 사람이란 실제적인 여러 이유들로 인해 자신의 과거 행위를 후회할 수 있으며, 얼마든지 가던 길을 바꾸고 이제부터라도 도를 따라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죄책감이라고 하는 <내심의> 얼룩(오점의 관념)이 부재한다. 우리의 이런 주장을 밑바침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생각을 <논어> 원문에서 (당장 곧바로) 읽어 내기보다는 차라리 <논어> 원문을 보다 잘 독해하기 위하여, 이런 우리의 주장에 대한 예외적 사례로 보이는 것들을 통례적으로 우리는 좀더 상세하게 살펴 보고자 한다. <논어>의 어떤 구절들은 <수치심>을, 또 다른 구절들은 내심의 결함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살펴볼 마지막 구절은 내심의 자기-견책을 요구하는 갓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은 도덕적 책임 그리고 죄책감과 연관된 관념들에 대해서 적어도 거의 명백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수치심에 대한 언급은 위에서 이미 인용된 적이 있다. 즉 형벌 '곧 위협'로 다스리면 수치심이 사라지고, 덕으로 다스리면 수치심이 있게 된다고 하였다. 덕은 미덕의 힘, 또는 인하고 예를 따르는 사람의 덕성이라고 번역될 수 있다. 그것은 도에 내재하는 힘 혹은 미덕이다. 그것은 물리적, 강제적 힘과는 대조 된다. 그래서 다른 구절들과 마찬가지로, 인용된 이 구절은 수치심을 공자가 하나의 도덕적인 대응으로 생각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점에서 치라는 말이 과연 <수치심>이라기보다는 <죄책감>에 해당하는 것인지 어떤지 하는 의문이 생겨난다. 치는 확실히 공자가 언급한 말들 중에는 가장 죄책감의 관념에 가까운 말이다. 따라서 그 말을 자세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치의 관념은 여러 가지 맥락에서 나타난다. 어떤 경우 그것은 물질적인 이득을-예를 들면 좋은 옷, 좋은 음식, 부유함-그 자체에 대한 관심 혹은 그것들의 소유를 다루면서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도에서 어긋난 방법으로 얻었거나 공적인 일의 수행과 관련해서 그 일을 해내지 못했을 때 이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언사나, 용모, 아첨, 교만, 위선이 지나친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 된다. 끝으로 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치는 여러 곳에서 오명과 짝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 (개인적 이해 관계 때문에) 자기의 공적인 역할을 오명으로 끝내는 사적 행위에 대한 유비로 보인다. 만약 우리가 (중국과 서양간의) 관점이 결정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이런 치에 관한 원문들은 우리 (서양인)들로 하여금 공자의 <수치심>을 서양의 <죄책감>과 같은 것으로 보기 쉽게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다루고 있는 문제들과 연관지어 본다면 그런 관점의 차이는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비록 치가 틀림없이 도덕적 개념이며 어떤 도덕적 조건 또는 반응을 가리키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감당하는 도덕적 관게란 개개인이 바로 예에 의해 규정되는 자신의 (공적인) 지위와 역할에 대해 가지는 도덕적 관계이다. 치는 따라서 <내면적>이라기 보다는 <외면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말은 했으나 못지키는 말의 문제요, 부도덕하게 취득한 재물의 문제이며, 용모와 행동을 지나치게 꾸미는 위선의 문제이다. 이런 치는, (서양의) 죄책감처럼, 결코 내면적인 상태, 내심의 타락에 대한 혐오, 자기 비하나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관련 되어 의미를 갖는)


공적인 지위나 호평과 전혀 관계없이 오직 한 개인으로서 자신이 천박하거나 혹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보는 (즉 자기 내심으로부터 나오는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수치심을 도덕적 실재가 아니라 <단순한 겉모습>에만 관계되는 것으로 가정하는 것은 근본적인 오류이다. 공자의 수치심 개념은 순전한 도덕적 개념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존재의 내적 핵심, 즉 <자아>를 향해 있다기보다는 전통적으로 그리고 의례적으로 확정되어 있는 사회적 처신, 즉 예를 중심으로한 도덕성으로 향해 있다. 도덕 질서를 어기는 것은 따라서, 서양의 죄책감의 경우 못지 않게, 공자의 수치심에서도 본질적인 것에 대한 파괴로 간주된다. 개인적인 반응, 도덕적 가치가 혼입된 느낌의 색조가 또한 두 경우 모두에서 핵심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 느낌을 해석하고 취급하면서 취하는 방향은 두 가지 경우 서로 다르다. 진실로, 죄책감을 갖게 되는 근거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어떤 비도덕적 행위나 배신의 경우라 할지라도 죄책감을 느끼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궁극적으로 죄는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이다. 수치심은 '체면'의 문제이며, 당혹함의 문제이고 사회적 지위의 문제이다. 수치심은 말한다. <네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을 바꾸어라. 너는 더럽혀졌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내 영혼의 병듦>에 대해서, 그것의 <상처>에 대해서, <수렁에 빠져 꼼짝도 못하는 것>에 대해서, 신에 의해 건져져 씻겨지는 것에 대해서, 영혼이 병들어 기형적으로 된 것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공자를 대충 읽었다 하더라도 <논어>에서는 그런 이미지 혹은 그에 유사한 어떤 분위기조차도 낯설다는 점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 <논어>에는 도덕적 타락을 암시하는 구절이 두 개 있다. 그것들은 언뜻 보면 곧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숙고된 타락과 유사하다고 생각될 것이다. 한 구절은 재여에 관한 것이다. 이 구절에서 공자가 주는 이미지는 오르페우스, 히브리 혹은 기독교의 이미지와 얼마나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재여는 조각할 수 없는 썩은 나무이며, 흙손질할 수 없는 마른 똥무더기 담이다.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사람이다. 여기에서는 왕성한 질병, 즉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울부짖게 만드는 상처는 단순한 무기력, 도덕적 가치들에 대한 소극성과 내재적 무감각으로 대체되어 있다. 재여는 기껏해야 도덕적인 인간 존재가 될 능력을 상실한 정도이다. 그러나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주는 이미지에서는 타락한 죄의식이 갖는 강도나 역동성은 바로 그의 도덕적 관심과 절박한 개종 (기독교에의 귀의)이 갖는 활력소의 크기를 나타내주는 것이다. 도덕적 타락에 관한 <논어>의 두번째 언급은 내심의 병을 암시하고 있다. 사람이 그 자신의 내심을 살펴 보아서 아무런 병든 곳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는 자연히 어떤 근심도 어떤 두려움도 가지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병>의 이미지를 그렇게 사용한 유일한 경우이다. 나는 <병>에 대한 이 고립된 인용을 이때만을 위한 임시 방편적이고 정교화되지 않은 비유, 즉 다른 많은 경우와는 달리 공자 자신의 별반 관심을 표시하지 않는 비유로 볼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비유는 확실히 중심적인 교의에 대한 선언 또는 은유가 아니다. 따라서 (공자 철학에서) 그것의 정확한 논점은 불분명하다. 비록 그 이미지가 우리 (서양인)에게는 매우 친숙하고 또는 우리의 용법에서는 그렇게도 풍부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그런 것을 별로 문제로 느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아직 검토해야할 또 다른 두 개의 구절이 남아 있다. 그것들은 명백하게 <내심을 향한> 방향성과 <자기 견책>을 요구한다. 공자는 한 구절에서 우리에게, 우리가 가치없는 다른 사람들(불현자)을 바라보고 있을때, 우리 자신의 <안>을 들여다 볼


것을 말한다. 다른 곳에서 그는 스스로의 잘못을 알고서 자신의 내심에 책임을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탄식한다. 내면의 삶에 대하여 우리 (서양인)들이 배경적으로 갖고 있는 풍부한 이미지는, 다시 한번 이런 구절들을 바로 자아의 내면 세계, 죄책감, 혹은 레그가 암시하고 있는, 양심과 도덕적인 책임에 대해서도 공자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간단하고 명백한 증거물로 보게끔 된다. 그러나 12:4(3)에서의 <내심의 병>을 포함해서 <논어> 전체에서 그러한 <내심을 살펴봄>에 대한 언급이 오직 세 군데에서만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공자가 양심이나 죄책감을 언급하였다고 가정하는데에 더욱더 신중할 것을 요구한다. 양심 혹은 죄책감이 어쨌든 명료하게 인식되기만 한다면 그것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도덕 생확에 핵심이 되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만약 공자가 어떤 <내적인> 삶을 염두에 두었고 또 그것을 강조하였다면, <논어>의 전체 500 여 절 더욱이 그 중 세 번만 그런 것에 대해 언급했단 말인가? 그리고 또한 어째서 그 세 구절마저 그리 모호하고 또 정교하게 다듬어 서술되지 못했단 말인가? 우리는 공자가 다른 관념들, 즉 도, 인, 덕, 예와 같은 관념들에 대해서는 주저없이 반복적으로, 그리고 정교하게 다듬어 서술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우리는 <논어>가 전체적으로 모든 세세한 면에서 주로 도덕을 가르치는 담화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러한 담화는, 다른 무엇도다 먼저 양심, 죄책감 그리고 내심의 삶에 관한 주제를 정교하게 다루게 마련이다. 사실 <내심을 살핀다>라는 이미지를 사용한, 맨 끝의 두 구절에서의 공자의 말은 그가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것과 완전히 합치되는, 전혀 또 다른 맥락으로도 독해될 수 있다. <이인> 4:17 에서 공자의 말씀은 가치 있는 사람들처럼 되는 일에 관심을 가지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자의 시대처럼, 정치적인 내부 투쟁, 사회적인 경쟁, 군사적 충돌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다투어 소송하는 시대에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결점을 꼬집어 내어 폭로하며 그렇게 하기를 즐기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익을 얻으려 하는 것은 자연스런 경향일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그렇게 하는 대신 <우리 자신의 속을> 보라고 하였고, <자기 자신을 소송하라>고 가르친다. 앞의 말씀은 매우 모호하고 잘 다듬어져 서술되지 않았다. 뒤의 말씀은 극도로 혼란한 공자의 시대라고 하는 그 특정한 그 시대에-공적인 고발이나 송사가 매우 명백하게 논의되던 상황이라는-매우 일상적인 맥락에서 언급되었을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사실, 공자는 매우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눈 속의 가시를 보지 말고 네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법정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이미지를 배경으로, 공자가 <공야장> 5:26 에서 한 말씀은 또한 예수의 <판단하지 말라>는 말과 유사하다. 그러나 고발, 재판, 판결에 관한 말은 구약과 신약 성서 모두에 두루 나오는 데 반해서 <논어>에서는 전체를 통틀어 여기에서 단지 한 번 도덕적 은유로서 나타난다. 우리 서양인 모두는 또한 이 은유가 도덕적인 삶에 너무나 잘 들어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공자가 단지 한번 그것을 사용하고 곧이어 무시해 버렸다는 사실로부터 다시 한번 우리는, 공자의 양심이 체게적으로 우리 (서양)와는 다른 방향으로 자리잡혔으며 그 비유에서는 오직 임시 방편적이고 (특정 사실과 관련해서) 시사적인 언급만을 한 것으로 추론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나는 믿는다. 공자에게서 이 <자기-송사>는 임시적인 은유에 불과하며, 그의 주요한 방향성과 양립할 수 없고, 오직 어떤 특정한 상황속에서 특정한 목적들을 위해 사용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근거들이 있다. <논어>전반에 흐흐는 정신이 소송 '���벌, 규제 등등'에 대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공자는 드러내


놓고 <반드시 필요한 것은 송사가 없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송>이라는 말은 도덕적 태도라기보다는 소송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이는 것이 표준적이라는 점, 소송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 도덕적인 뉘앙스로는 여기에서 유일하게 쓰였다는 점 등등은 감정이 듬뿍 실린 아래와 같은 영탄조의 문장을 반어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즉 요즘 사람들은 끊임 없이 서로 사소한 문제로 다툼을 벌이며 다른 사람이 실재로 한 잘못은 물론 상상해 낸 잘못까지도 고발한다. <상대를 고발하는 데 그렇게 신속한 반면에 자기의 잘못을 바라보고 그 자신을 송사할 수 있는 사람은 어찌 그리 찾아 볼 수 없는지!> 지금까지 우리는 <논어> 원문을 해석하면서, 공자가 그 자신 실제로 선택, 책임, 도덕적 응보로서의 벌, 죄책감, 회개에 대해 관심을 가졌을 가능성에 대해 고려해 보았다. 도달한 결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도라는 이미지의 중심에서 선택의 관념이 명백하고 풍부하게 발전할 기회가 내제되어 있지ㅁ 그 기회는 (공자에게서는) 눈에 띨 만큼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그리고 도덕적인 병듦, 자기-송사, 내적 성찰에 대한 고립된 언급들은 있지만-그 각자는 책임, 죄책감 그리고 회개에 대해 관심 있는 이에 의해 그렇게도 풍부하고 적절하게 쓰일 잠재적인 가능성은 있지만-이 중에 어떤 것도 공자에 의해서 발전되거나 혹은 어쨌든 조금더 (깊게) 천착되지 못했다. 그것들은 고립된 채로, 임시적인 은유들로 남아 있다. 그 은유들은 아마도 지금은 잊혀진 그들의 원래 맥락에서는 반어적인 혹은 시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끝으로 수치심에 대해서는 좀더 자주 그리고 체계적으로 언급되고 있지만 그것은 특정한 외적인 소유, 행동 혹은 지위와 결합되어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오염되고 부패한 자아에 대한 내면의 고발이라기보다는 외부 세계와 관련된 자신의 지위와 행동에 초점이 맞추어진 도덕 감정이다. <논어> 원문의 맥락에서 보이는 선택-책임-죄책감이라고 하는 개념 체계의 결여는, 그가 그처럼 인간의 본성과 도덕성에 대한 통찰력이 넘치는 철학자였음을 고려한다면, 문제의 개념들과 그것들에 연관된 이미지들이 공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거부되었다기보다는 단지 단순하게 그의 사고 속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고 추론하는 것이 그 타당함을 입증하였다. (<논어>에서) 공자 사상의 주된 틀을 형성하고, 그리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말과 이미지는 우리 (서양인)에게 상이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조화로운 그림들을 보여주고 있다. (공자가 생각하는) 인간은, 실재의 선택항들 중에서 선택하여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형성해 나갈 수 있는 능력, 즉 자신에게 고유한 내적이고 결정적인 힘을 갖고 있는, 궁극적으로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다. 대신에 인간은 <원자재>로 태어났다. 그는 교육에 의해 개명되어야 하며 그래서 진짜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는 도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 도는-그것의 고귀성과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의 고매성을 통해-그 사람을 틀림없이 사로잡을 것이다. 이런 사유의 결과는 사회 혹은 물리적인 환경에 대립하여 그것을 압도하는 인간의 힘을 증강시키는 것으로 인식될 수 없다. 차라리 그것은 어떤 사람이 그 하나인 참된 도를 빗나가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그 지점으로 향하는 그 사람의 <목표> 혹은 방향성을 예리하게 인식시키고 꾸준하게 이끌어 나가는 그런 것이다. 그는 개명한 인간 존재인 것이다. 그 도를 걸어간다는 것은 그 도에 담겨 있는 거대한 정신적 존엄성과 힘을 그 사람 속에서 체현한다는 것이다. 도에서 벗어 나가는 사람보다는 도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 그리고 억지로 그렇게 하는 사람이 개인적인 존엄성과 성취의 삶을, 그리고 서로에게 바로 그러한 삶을 허용하는 상호


존중에 기초하는 타인과의 사회적 조화의 삶을 사는 것이다. 때문에 공자에 있어 주된 도덕적 문제는, 어떤 사람 자신의 자유 의지에 선택한 행위에 대해 그 사람의 책임 소재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도에 대하여 적절한 교육을 받았는지 그리고 그가 그 도를 열심히 배울 욕구를 가지고 있는가 어떤가 하는 실제적인 문제들이다. 도덕 질서'예'를 따르지 못하는 행위에 대한 적절한 반응은, 비록 결과가 사악한 것이 될지라도 자유롭고 책임이 따르는 선택에 대한 자기-유죄 판결이 아니라, 단순한 결점, 힘의 부족, 요컨대 자기의 <(인격) 형성>의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한 자기-재교육인 것이다. 이런 점에 관해서도 서양인들은 부지런한 노력이 부족한 것에 대해 개인적 책임이라는 문제로 역설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확하게 <논어>에서는 그러한 종류의 문제는 한번도 제기된 적이 없다. 마지막으로 좀 도식적인 방식으로 요약을 한다면, 공자에게서 도덕적인 문제들은 다음의 네가지 형태들 중의 하나로 귀착된다. (1) 잘못된 행위를 하는 자는 무엇이 도이고 무엇이 그럽지 않은가를 인식하고 또 적절하게 구별할 수 있을 난큼 충분히 잘 교육받지 못했다. (2) 잘못된 행위를 하는 자는 어떤 면에서는 그 도를 따라가는 데 필수적인 노련함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 (3) 잘못된 행위를 하는 자는 요구되는 노력을 지속시키지 못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힘의 문제로 이해된다' (4) 잘못된 행위를 하는 자는 어떤 행동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알고는 있으나 그 도에 전적으로 마음을 쏟고 있지 않다. 그래서 그는 쉽게 잘못을 범하거나 혹은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예의 외적인 형식을 체계적으로 오용하거나 왜곡시키고 있다. 공자의 철학적 견해는 인가능ㄹ 비극적 존재, 내적인 위기와 죄의식을 가진 존재로 보는 면에는 아무런 기초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마련하는, 사회 지향적인 관점을 제공해 준다. 게다가 우리가 여기에서 언급한 논의들을 공자의 인간관이라는 보다 넓은 맥락-이 맥락에 대해서는 이 책의 다른 부분에서 좀더 토론할 것이다-에 놓고 본다면, 내적인 인간과 내적인 갈등이라는 (서양인들에 익숙한) 이미지는 (다음과 같은 공자의) 인간 개념에는 본질적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공자가 이상화한) 인간의 존엄성은, 신묘함과 세련미가 있는 그런 삶, 그 안에서의 인간의 행위가 자연의 맥락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으며 동시에 성스러움과도 조화될 수 있는 그러한 삶, 그리고 그 안에서 실천적, 지적 그리고 영적인 것들이 동등하게 외경되며, 하나의 행위-즉 예의 행위-속에서 조화를 이루게 되는 그러한 삶의 모습들의 절정에서 현실화되는 것이다.

제3장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자리:인 공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인>은 예와 같은 단일 개념과 적어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점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예와는 달리 인은 <논어> 안에서 역설과 신비로 둘러싸여 있다. 인은 개별적인 것, 주관적인 것, 개성이나 감정, 태도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컨대 인은 심리적인 개념인 것처럼 보인다. 나와 같이 <논어> 안에 피력되어 있는 사상이 (개별적 인간들의) 심리적인 개념들에 정초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논어>의 본질적인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면, 인을 이와 같이 (개인적, 심리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특히 예민한 문제가 된다. 서양학자들이 자연스럽게 심리학적인 맥락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그런 기본적인 주제들을 공자가 어떻게 비심리적인 방법으로 다룰 수 있었는가를 밝혀 내는 것은, 실로 인에 대한 최근 분석이 내놓은 주요한 성과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중국 문헌에서 심리적, 주관적인 의미로 인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은 후대에 와서 비로소 생겨난 것이다. 그런 의미로의 인이라는 개념 사용의 중요성은 첫째 불교적 입장에 서 있는 주석가들의 심각한 심리적 편견과 둘째 그리스적, 기독교적 입장에 선 서양 번역가들에 의해 확대 포장되었다. 인에 대한 공자 학설의 정말로 새로운 면모들은 바로 우리가 살펴볼 필요가 있지만, 우리는 그 점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아주 새로운 것이요, 우리 (서양인)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서양식의) 심리 구조에 치우친-언어로는 파악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은 선, 인간애, 사랑, 자비, 덕, 인간다움, 최상의 인간성 등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었다. 다양한 주석가들에게 인은 미덕, 포괄적인 덕, 정신 상태, 마음 자세와 감정의 복합체, 신묘한 존재로 여겨졌다. 예 및 그 밖의 중요한 개념들과 인의 관계는 애매모호한 채로 남아있다. 이제 우리는 <논어>의 중요한 개념들을 사용하여 명백하고 확실하게 나타낼 수 있는 의미의 제시를 시도해 보고자 한다. 이런 의미에 대한 우리들의 설명이 바로 <내가 너희에게 감추는 것은 없다> 하신 공자의 말씀을 실체화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검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인의 해석을 참신하게 발전시키는 일을 해야만 한다. 웨일리는 인을 <신묘한 존재>라고 했다. 이렇게 <논어> 원문은 적어도 외양상으로는 역설적 모순이 있음에 틀림없다. 인은 그 자체 무거운 짐이라고 한다. 진정한 선비는 뜻이 크고 굳세야만 한다. 그의 짐은 무겁고 길은 멀다. 인을 자기 짐으로 삼으니 무겁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야 그의 갈길은 끝나니 멀지 아니한가. 그런데 또 인은 <어려운 일을 제대로 하고 난 후에> 오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한 이런 어려운 일을 완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인이 그렇게 먼가? 내가 그것을 바라면 그것은 여기에 있다>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인이란 이상적인 삶에 핵심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정말로 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보다 먼저 고려할 아무것도 없다. (다르지만 비슷하게 강조된 번역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정말로 인을 좋아하는 사람을 누구도 능가할 수 없다) 인한 사람의 눈에 띄는 독특한 특징은 무엇인가? 이 점에 대해서도 우리는 일단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공자는 <이익과 운명과 인에 대해 드물게 얘기했다>고 할 뿐 아니라 인한 사람은 말하기를 신중히 한다고 여기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언명들이 우리가 따를 수 있는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구절들에서는) 누구도 공자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인하거나 인했던 실제 사람을 규정하는 공식은 발견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정말로 우리가 최초의 <저술>, 가장 권위있는 공자의 어록이라고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논어>의 각 편들을 보면 인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이들 언명들은 몇 개의 주요 그룹으로 나뉜다.


2 장에서 9 장까지, 좀더 넓게는 2 장에서 15 장까지 나온 (인에 관한) 많은 언명들은 부정문으로 표현되었으며 그 언명들은 여러 가지 칭찬할 만한 행동들을 반드시 인의 표지로 보아야 하지 않느냐는 제의들을 다 부정하고 있다. 인을 추구하려는 노력에 관한 일반적인 언명들로 이루어진 또 다른 일련의 구절들이 있다. 우리가 앞서 인용했듯이, 인은 다른 어떤 것보다 앞서 고려해야 할 것이며, 군자는 잠시라도 인을 떠나서는 안 되며, 인은 사람이 어려운 일을 한 뒤에 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힘이 약한 것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온 힘을 다 쓰려는 의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인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다. 인에 관한 또 다른 많은 언급들은 또한 상당히 일반적이긴 하지만 인을 실천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효과나 위대한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인하지 않은 사람은 곤경도 영달도 오래 버틸 수 없다. 인자는 인을 편안히 여긴다. 인의 힘은-약간은 모호하지만-다음과 같은 문장 속에 표현되어 있다. 누가 자신을 극복하여 예를 따르면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의 인에 호응하리라. 진정한 임금이 일어나면 한 세대 뒤에 인은 널리 퍼질 것이다. 이 두 문장의 경우 인의 힘은 다른 조건, 즉 임금다움 또는 예를 향한 순종과 명백하게 연관되어 있다. 오직 인한 사람만이 사람을 사랑할 줄도, 미워할 줄도 안다고 말하는 구절이 있는가 하면, 또 그 반대로 진실로 인에 뜻을 둔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구절도 있다. 후자의 경우(즉 인한 사람은 미워함의 감정을 지니고 있는가의 여부)에 대하여 원문이 모호해서 웨일리는 그 문장을 본질적으로 반대되는 뜻으로 번역했다. 그렇게 핵심적인 문제에 관련된 구절에 반대되는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 개념이 모호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인에 대한 이들 모든 주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자의 <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말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검토했던 언명들은 인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로 거의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숨긴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공자께서는 말씀하셨다. <얘들아, 너희들은 내가 너희들에게 슴기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너희들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 너희들이 모르는 것을 나는 하지 않는다>. (공자의) 이런 말씀들을 우리는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공자는 여기에서 다만 자기의 실제 행위둘에 대해서만 얘기할 뿐 비의적인 교의를 말하는 것은 반드시 아니라고 웨일리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곳(제 3 장)과 이 책의 다른 장들에서 제가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듯이, 공자에게 있어서 기본적인 것은 비의적인 교리나 주관적 (심리적) 상태가 아니라, 바로 공적인 제반 상황에서의 실제 행위이기 때문에, 그는 실제 행위의 맥락에서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다시 공자의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적어도 일단 이런 복잡한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군자는 <자기가 말한 것을 우선 실행한 뒤에 그 다음을 이어가는 것이다> 인 자체, 즉 그것이 적극적인 특성, 그 용어의 정의, 아니면 적어도 인한 사람의 몇몇 결정적인 특징에 관해서 우리가 공자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까? 몇몇 단서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들 단서 중 가장 명확한 것들은 십중팔구 공자 자신의 언급 중에서 후기에 속하는 것이요, 어느 경우에는 정말 공자의 말씀으로 보기에는 불확실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나는 <논어> 중에 후대에 작성된 부분에서 인한 사람의 특성으로 묘사된 좀 상투적인 몇몇 덕목들에 대해서는 가볍게 넘어가려고 한다. <공손한>, <부지런한>, <충성스러운>, <용감한>, <너그러운>, <친절한> 등등의 표현들은 우리에게 어떤


통찰이나 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는 전통적인 덕목들이다. 더우기 이들 후대의 언명들, 특히의 경우에 대한 진위 문제를 접어 둔다 해도, 앞에서 우리가 이미 주목했던 것처럼, 공자가 여러 번 그러한 덕을 소유하는 것이 인한 사람이 되는 데 충분하지 않다고 했기 때문에 (위에서 열거된) 그런 덕목들은 결정적인 것이 못된다. 일련의 언명들 중에는 인의 특성을 매우 뚜렷하게 드러내 주지ㅁ, 매우 의심스러운 언명이 있는데, 그런 부류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옹야>의 언명이라고 하겠다. 웨일리가 지적했듯이, <논어> 원문의 후반부는 도가적인 영향을 받은 것 같으며 아마도 혼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르면, 인한 사람은 인함에 만족하는 반면, 앎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인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또한 인한 사람은 조용하며 장수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인 자체의 특성을 가장 구체적으로 규정해 주고 또한 (그것의 이해에) 가장 많은 도움이 되는 언명들에 주목해 보기로 보자. 자신이 입신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입신시키도록 하라. 나아가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나아가게 하라. 자기에게 가까운 것으로부터 유비를 얻는 것 (즉 이웃을 자신처럼 여기는 것) 여기에 인의 길이 있다. 자신을 극복하여 예에 귀의하는 사람은 인하다. 앞의 두 언명에서 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밀접히 연결된다. 첫번째 예문에서는 사람 사이의 일반적인 상호 신뢰에 구체적인 내용이 부여된다. 그것은 예에 의해 상세히 규정되는 구체적 사회 관계의 틀이다. 요컨대 예 속에 정의되어 있는 특정한 형식들을 통해서 상호간의 신뢰와 존중이 표현되는 곳에 인의 길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예와 인은 같은 것의 양면인 것이다. 각각은 인간을 뚜렷하게 인간답게 만드는 역할에 이바지하는 인간 행위의 (각각) 한 측면을 지시하고 있다. 예는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행위나 관계들에 대한 전통적인 사회적 패턴에 주의를 돌리게 한는 것이며, 인은 그런 행위의 패턴을 추구함으로써 그러한 관계들을 유지하고 있는 그런 사람에게 주목을 하게 한다. 예는 불변하는 규범을 예증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신분에 맞는 특정한 행위를 지시하며, 인은 인간됨의 방향성을 분명히 나타내는, 즉 예의 규정대로 행위하겠다는 그 사람의 심지를 명백하게 표현하는 행위와 연관된다. 예는 한 행위자의 단일하고 개별적인 몸짓, 즉 그런 몸짓을 하는 오직 그 한 개인과 그런 특수 행위가 늘어나는 오직 그 하나의 앞뒤 맥락과 연관하여 그 사람 자신이 특정적, 개별적으로 하고 있는 몸짓과 연관되는 것이다. (이런 공자 철학의 중요한 개념들이) 우리 (서양인)들에게 좀더 친근한 성양의 용어로 표현될 때, 오해를 불러 일으킬 여지가 있다고 하겠다. 우리 (서양인)들은, 내가 앞서 설명한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인은 바로 마음의 태도, 감정, 소망, 의지와 연관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이런 식의 (번역) 용어들은 오해를 야기시킬 수 있다. 우리가 해서는 안 될 일은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용어를 (개개인의) 심리적 차원의 문제로 보는 일이다. (공자의 이런 핵심적 개념을 전혀 개인의 심리상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새로운 시각에서) 이런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첫번째 단계는 인 및 그와 관련된 다른 <덕목>들, 그리고 예라는 것 등은, <논어> 원문에서 <의지>, <감정>, <내심의 상태>라는 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일이다. 어느 한 사람과 연관된다는 <그런 이유 때문에> 인을 바로 그 사람의 내적 심리 또는 정신적 상태 또는 그 진행 과정을 지시하는 인으로 치환하는 것에 대비될 만한 것을 <논어>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다. 확실히 그러한 연관 관계에 대하여 체계적으로나 또는 비체계적으로나 전혀 공들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위의 논지에 대해 유일하게 명백한 예외는 <자한>, 9:28 과 그것이 반복된 <헌문>, 14:30 에서 볼 수 있다. 두 구절에서 인한 사람은 우(불행한, 근심스러운, 걱정스러운)하지 않다고 한다. 더구나 그 문장의 앞뒤 맥락은 이것이 (인에) 우연하게 부수되는 속성이 아니고 오히려 (인의) 특성을 본질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명백히 내적이고 주관적인 언급때문에, 그리고 여기에서 인에 대한 핵심적인 어떤 의미가 다루어지고 있다고 시사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중요한 문장들과 우라는 용어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이 두 문장의 내부 구조는 평범한 음운상의 대구를 이루고 있다. 세가지 중심 미덕(지, 인, 용)이 언급되고 있고, 똑같은 문법적 구조 형식으로 가가의 덕목이 부정적인 단일 어구로 규정되어 있다. 지자는 당혹해 하지 않고, 용자는 두려워하지 않으며, 인자는 우하지 않는다, 거의 동어 반복적인 성격의 앞의 두 구절은 거의 같은 방법으로 <인한 사람은 우하지 않는다>를 받아들여야 할 것을 시사하고 있다. 우는 인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추정해 보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의 의미를 더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일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그것은 이 논의의 주제에 대한 더 깊은 이해-그리고 확증-을 제시해 줄 것이다. 우가 쓰여 있는 <논어>의 다른 문장을 보면 어떤 문장은 번역하는 사람마다 번역이 다르고 또 같은 번역자라도 문장마다 다르게 번역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레그는 <슬픔>으로 번역했는가 하면, 웨일리는 <걱정>으로, 레슬리는 불어의 <희한하다>와 <당혹함>으로 번역했다. 또 <술이>, 7:18 에서는 <슬픔>으로, <비통>으로, <근심>으로, <고뇌>로 되었다. 그러한 유형은 게속 반복된다. 분명히 번역자들은 완전히 일치를 볼 수 없는 한문 용어에 대해 적절하고 특정한 유럽의 용어를 무엇으로 정할까 고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용레들 중에 공통 분모가 있는지를 보면, 모든 용례에서 우는 골치 아픈 상태를 의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골치 아픔>이라는 말은 마음이 <불안정하고>, <평정하지 않으며>, <혼란스러운> 의미를 내포허며 따라서 <우선 먼저 불길하고 불쾌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함축된다. <슬픔>, <근심>, <비통>과 같은 번역들에는 사람 개개인의 주관적 심리 상태, 격정과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에 강조를 두는 것이다. 서양인에게는 이런 식으로 볼 때 의미가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따라서 인한 사람이 대체로 우하지 않은 사람에 상응한다면 인은 우와는 반대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인이란 하나의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심리적인 용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우가 사용되는 문맥을 따라, <논어>의 원문을 검토해 보면 우리는 다른 그림을 얻게 된다. <위정>,2:6 에는 부모가 자식의 병에 대해서 우한다는 말이 있다. 이 문장에서 우리는 객관적이고 불길한 걱정거리, 즉 일정 상황에서의 객관적인 불안감과 연관되어 특정지어진 부모의 모습을 보게 된다. 말하자면 부모들의 (객괸적인) 걱정거리에 대한 대응은 걱정스러운 (객관적 사실적인) 대응인 것이다. 서양인들은 이런 대응의 <걱정거리>를 아주 쉽고도 자연스럽게 <내적인> 심리 상태로 한정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이 억지로라도 이 <논어>의 원문을 직접 보고 나서, 적어도 이 구절에는 심리적으로 내적인 도는 주관적인


어떠한 뜻을 풍기는 말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아이의 병은 (객관적으로) 눈으로 볼 수 있는 상태요, 부모의 걱정이 담긴 대응 또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상태라고, 우리는 진실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원문 텍스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무언으로 전제하고 있는 상념이 바로 부모의 걱정된 모습이야말로 걱정스런 '내심의' 상태에 뿌리를 박고 있다고 반드시 그렇게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다. <술이>, 7:3 에서 공자는 사람으로서 미덕, 배움, 도의의 추구를 못하는 것, 그 점이 사람을 우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 문장에서 다시 우리는 인간의 대응 행위는 바로 객관적으로 무질서하고 혼돈된 상태에서 일어남을 보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무질서와 혼돈은 공자가 지적한 자기의 도와 반대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틀린 행위(비행)인 것이다. <술이>, 7:18 에서 공자는 자신은 배움을 추구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바라기 때문에 우를 잊고 노년이 오고 있는 것도 잊는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다시 노년이라는 좋지 않은, 그러나 아주 객관적인 불안이 우와 나란히 있는 것이다. 공자는 그의 여러 언명들에서 내적 심리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고 했다는 식의 주장이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요 논지는 결코 아니다. 만약 공자가 (내적 심리와 관련된) 그러한 기본적인 비유를 염두에 두고는 있었지만 반성을 통하여 그것을 거부하기로 작정했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가 내심에 관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이 자리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주장의 요점은 전혀 그러한 생각이 그의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서양인)들에게는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까지 매우 친근한, 그런 내면적, 심리적인 삶의 비유가 <논어>에는 단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내적, 심리적 삶이 부정당하다는 가는성마저도 <논어>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가 언급된 위의 구절들에는 (내심의 주관적인 상태와 연관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내가 말했을 때, 그 구절들이 내면의 심리적인 문제)를 잘 다듬는 일을 분명하고 명백하게 배제했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의미하려는 것은 그 구절들이 전혀 그런 뜻을 잘 다듬지도 않았으며 또 이해나 타당성을 돕는 면에서도 그럴 필요응 전혀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안연>, 12:4 에서 우리는 <논어>가운데 가장 <심리적>으로 쓰인 우의 용레를 보게 된다. 군자는 우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왜 그런가? 그가 <내심을 들여다 볼> 때, 그는 어떠한 <병>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심>을 본다는 이미지는-우리(서양인)들에게-<내적인 삶>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보려는 것이 결코 <주관적 (심리)상태>로가 아니라, <병>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에 우리는 반드시 주목해야만 한다. 의심의 여지없이 공자는 이것은 <도덕적인 병> 또는 <정신적인 병>과 같은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공자의 주요한 업적 중의 하나는, 공자가 중국에서 자기 이전의 누구도 했던 적이 없는 방법으로, 인간 존재의 정신적, 도덕적 영역이 존재함을 알았고 그것을 가르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요점은 그가 이 정신적 영역을 조직적으로 개개인의 <내심>에 위치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서구인들은 (서양의 사유 구조에 본질적인) <내심>이라는 말과 이미지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거의 인지할 수 없기 때문에, 공자가 이 주제에 대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가를 배우는 첫번째 중요한 행보는, 비록 그 말이 쓰이는 경우가 <논어>안에 혹 있다 하더라도, (서양적 의미의) 내심이란 부재하다는 명명백백한 사실에 주목하는 일이다. 논의의 전개를 앞질러 말하자면, 나는 여기에서 단지 정신적인 것이란 공자에게는 공적인 것, 즉 <외면적인 것>-그러나 그 정신적인


것이 신이나 혹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이나 비인간적인 괴력들에서 구현되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이라는 점을 언급해 두려고 한다. <논어>원문을 보면 공자가 적어도 세 경우에 <내적인 것>에 대해서 모호하게 언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는 잘 다듬어진 용어들로 행위나 처신 그리고 행위의 규칙들에 대해 줄기차게 애기하고 있다. 좀더 말하자면, <내적인>, <사적인> 것에 대한 그의 언급들은 언제나 그곳을 병통의 근원, 즉 도덕 발전의 결여의 장소로 지적하는 경우이다. 도덕 발전을 적극적으로 규정짓는 성공이란 객괸적으로 처신하는, 말하자면 상호 신뢰와 존중을 예 안에서 특수하고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일이다. 우를 나타낸 일련의 구절들에서, 형제(즉 가족)없는 사람은 우하고, 앞 일을 헤아리는 사람은 우하다고 한다. 객곤적인 불안감(형제 없음)과 잠재적 위험(미래의 일)이라는 주요한 두 가지 조건이 다 이 구절들에 있기 때문에 자연히 우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또 군자는 도에 대해서는 우하지만 가난 때문에 우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객관적 불안감과 불확실성의 관념이 이 구절들에 다시 적절하게 나타나 있다. 군자는 부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부에 대한 불확실성은 그의 처신에 있어서 아무런 곤란한 불안감을 유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에 대해서는 완전히 다르다. 거기에 모든 것이 걸려 있기 때문에 도의 길은 쉽지 않다. 오직 성인만이 온전히 안정되고 자연스럽게 그 도를 걸어 갈 수 있다. 명백히 훨씬 뒤에 편집된 문장인 <계씨>,16:1 에서는 우라는 말이 명백히 객관적으로 문제 많은 나라, 즉 군사적, 정치적인 면에서 골치 아픈 나라와 연관되는 문맥으로 쓰여졌다. 요약하면 우한 상태가 없는 것이 인한 사람의 결정적인 특징이다. 우의 상태란 객관적으로 미해결된 골치 아픈 상황, 즉 그로부터 나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것이 분명하고 명백하게 예견되는 그런 상황에 연루되어 그 속에서 대처하고 있는 그 사람의 (객관적인) 상황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우가 없는 것은 객관적으로 해결을 보아 체게화된 상황과 잘 융합되는 그런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는 사���의 상태이다. 무엇이 이런 상태인가? 공자의 경우, 그것은 <예에 귀의한>(복례) 사람의 상태라고 우리는 분명히 기술해 왔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이란 마땅히 예에 의해 순수하게 정말로 다스려지는 사회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예란 모든 사람의 행동을 조화시키고 그들의 복지를 인간답게 확립시키는 그러한 인간적인 행위의 구조물이기 때문에, 예 속에 확고하게 서 있는 사람은 완벽하게 짜여져서 인간 존재의 잠재성을 꽃피우는 데 전적으로 기여하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음은 자명한 것이다. 만약에 인이, 한 특정인이 행위자로서 걸어가야 할 방향성에 주목하도록 하는 그런 행위의 측면이라면, 예를 따르지 못하는 방향성이나 준비 태세가 그 행위자의 자세에 결여되어서 객관적으로 불안을 야기시키는 요소로 느껴 질 것은 자명한 일이며 이로 인해서 분열과 불안과 걱정이 있게 될 것이다. 요컨대 우는 참으로 인의 부재이고 인은 우의 부재이다. 우리는 이제 인이란 어렵지만 이 자리에서 소망되는 것이라는 역설을 논의해야 할 위치에 와 있으며, 그 역설을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앞으로 인이 어ㄷ게 <내심의>자아와 연관된 심리적인 개념이 아닌지를 보여 줄 것이다. 사람은 인성의 다듬어지지 않은 원재료만을 가지고 태어남으로 인은 <먼저 어려운


일을 할 것>을 요구한다. 인간은 아직 깎이고 닦이지 않은 원재료, 즉 성숙한 인간으로 형성될 수 있으나 아직은 조야한 충동들이나 잠재력에 불과한 것이다. 짜임새 있는 인격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은 예가 계발되는 한에서만 계발된다. 인은 예 안에서 자기 모습을 형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사회 정치적인 관계와 문제들에 대해서 알게 되는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는, 이들 문제에 대해 상당히 폭넓은 경험을 가질 때까지는, 요컨대 실제 정치에 참여해서 행정적인 일의 특정한 성격을 배울 때까지는, 그는 그의 군주에 대해서 심오하고 지적인 충성심을 가질 수 없다. 어린 아이의 단순 소박하고 미숙한 집착이나 의뢰심과 위대한 (경륜을 가진) 정치가의 깊고도 세련된 군주에 대한 충성심 사이의 간극이 갖는 의미를 우리는 인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 (전자의 미숙한 단계로부터 후자의 성숙한 단계까지의) 틈새를 건너오는 동작이란 예를 배워서 달통하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아무리 처음에 그것이 강렬했다 하더라도, 여러 번의 위기나 좋은 운수 그리고 틀에 박힌 일상 생활을 통한 수년간의 결혼 생활 뒤에 나타날 수 있는 상태와 비교해 보면, 내용면에서 상대적으로 무정형적이며 빈약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타인에 대한 각각의 개인적인 자세는 새로운 행위의 규범, 새로운 의무, 새로운 양보와 취득을 요구하는 일련의 상황을 겪지 않고서는 계발되고 심화되고 풍부해질 수 없다. 고통(고전적 의미에서)과 행위는 인간(의 인격)을 형성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를 배울 때까지는 인은 실현될 수 없다. 인과 예는 동일한 존재의 다른 국면일 뿐이므로 그 하나는 다른 하나 없이 성숙해질 수 없다. 인은 <어려운 일을 한 뒤에> 온다. 물론 예를 배우는 데는 시간과 노력,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사람이 인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시간과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안하지 않는 사람은 예와 관계를 가질 수 없다. 자신을 예에 귀의시킬 수 있는 사람은 인하다. 이렇게 인과 예는 상호적으로 작용한다. 인은 당장이라도 실현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예 대한 대답은 좀더 복잡하며 또한 보다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예는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몸짓, 즉 시간과 공간을 통한 일련의 동작들을 강조한다. 이러한 몸동작은 여러 단락들, 즉 일련의-각각의 단계가 그 다음 단계에 필수적인-그런 단계들로 구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예를 수행하는 방법(즉 일련의 단계들)이 있지만, 인은 그렇지 않다. 행위자의 관점에서 자기 몸짓을 보자면,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관계로 따로따로 분석될 수 있는 복잡한 행위 패턴이 아니라 <단순한> 몸짓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행위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자기 행위를 본다는 것은, 외면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떨어져 나와서 그 대신 오로지 내심의 신비스런 영역을 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행위를 공개적으로 노출된 행위로만 규정하려는 범주들의 백락으로 규정지으려는 것이다. 이 경우 이것이 당장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누군가에게 인사할 것을 결정하고 그렇게 한다. 이렇게 인사하는 것은 예이다. 어떤 특정 맥락에서 우리는 공개적으로 드러난 연속된 몸동작-즉 복잡한 일련의 손과 팔로 움직임, 규정된 인사말과 교환, 요컨대 시간과 공간의 차원에서 행위적 요소와 언어적 요소들로 분석될 수 있는 일련의 잘 조화된 행위들과 수행-을 보는 것이다. 그런나 누구에게 인사하기로 결정하는 일은, 또한 몇 단계의 정신적 행위로 반드시 나눠질 수 있는 <정신적>행위, 즉 또 다른 <내심의> 행위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내재적, 본질적인 길 또는 방법은 없다. 사람은 간단히 결정한다. 물론 결정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는 있다. 즉 우리의 숙고는


시간을 끌 수도 있다. 때에 따라 우리의 결정에 도움울 주기 위해 한두 가지 손쉬운 방법을 쓸 수도 있다. 이런 것은 어떤 것도 결정을 내리는 데 본질적이지 못하다. 즉 이런 (마음 속의) 결정은 결코, 남의 손을 잡고 흔드는 행위가 그 인사행위에서 본질적인 구성 요소가 되는 그런 식으로 결정을 내리는 데 구성적인 요소가 되지 못한다. 숙고가 이전과는 다른 (심리사의) 경로를 취했다고 해도 우리는 (인사라는) 똑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 논지의 요점이다. 그러나 바로 똑같은 (일련의 행위의) 단계를 밟지 않고서는 똑같은 인사를 할 수 없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일련의 행위의) 단계들이 실제의 인사 행위를 구성한다. 그러나 (인사하려는 마음의) 결정을 구성해 주는 (일련의 심적인) 단계들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시공적으로 어떤 단계도 없이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결정 행위의 기적적이고 마술적인 성격의 증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점이 바로 공자가 의도한 것이었다고 하겠다. 아니면 <결정하는 일>(<인하기로 결정하는 일>)을 어떤 심비한 내심의, 개인적인 <정신적>영역에서-아마도 그곳에는, 우리 서구인들이 특히 데카르트 이래로 자주 그렇게 생각해 왔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 <기계>, <구조틀> 또는 <대행자>가 있으리라고 상정되는 영역에서-발생하는 어떤 과정이나 행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는 <(마음의) 결정>과 <(실제의) 인사>라는 그런 행동들 사이의 이런 유형의 대조를 그 개념들이 수행하는 <논리적> 역할에서의 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그는 이득을 보았다>라는 말이 그 사람이 실제 사고 파는 눈에 보이는 행동과 명백하게 구별되는 경제적 영역에서의 행위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존에게 인사하기로 결정하였다>는 말 또한 내적인 심리 영역의 신비적인 행위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니다. <이익을 본다>는 문장과 <결정을 한다>는 문장이 일련의 공간적이고 구체적인 행위, 그 자체의 국면들을 지적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결정하거나 이익을 만드는 그런 행위를 구성해 주는 일련의 <단계적>행위를 우리가 (이들 어구만으로는) 묘사하거나 결코 보여줄 수는 없다는 사실은 그 어떤 형이상학적 신비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들 어휘는) <문법적>인 사실만을 말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즉시에든 아니면 위에서 말한 일종의 언어 분석에 호소함에 의해서든, 우리가 서구의 전퉁적인 정신적 편견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인과 그와 관련된 개념들에 대한 공자의 의도를 보다 더 자유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현대의 철학적 분석을 그가 가르치거나 사용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처신에 대한 정신적 해석 또한 내가 이미 말한 것처럼, 그가 배제했다거나 반대했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그가 정식화한 것은-정신적인 개념이나 모형에 대해서는 무언의 언급 또는 암시조차도 없는-공자 그에게만 특유한, 그 자신의 것이었다. 공자는 단지 참된 것만을 보았고 말했을 뿐이다. 인이란 예를 따르고자 하는 (일단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노련함을 객관적으로 쌓았다면) 사람의 결정 사항이기 때문에, 어떻게 인하게 되는지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단계적인 분석이 없다. 사람이 정말로 인하고자 한다면 인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오직 결정하는 하나의 길밖에 없으며 그 길이란 결심을 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그 밖의 다른 개념들, 예를 들면 <생각함>, <느낌>, <마음 자세를 가짐> 또는 <욕구함>과 같은 (서양에서는 우리들이 심리적인 문제로 보는) 개념들에 대해서도 적절하다고 본다. 그러한 각각의 개념의 경우, 어떤 공개되어 분석될 만한 과정이 없다. 사람은 다만 어떤 마음 자세를 가지거나,


생각하거나, 요구하거나 그러지 않거나 할 뿐인 것이다. 이들 모두는 그런 관점에서 인 개념과 논리적으로 비슷한 점이 있다. 자전거는 타는 <방법>이 있다. 즉 어떤 연속적인 시간 속에서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다리를 움직이고 기대고 한다. 그리고 자전거가 구르는 동안 그러한 동작을 게속하는 것이 자전거를 타는 방법이다. 그러나 요구하거나 생각하는 데는 (특정한) <방법>이 없다. 특정 조치의 타당성을 논리에서 찾을 수 있거나 고귀한 동기에서 무엇인가 행위하게 하는 (특정) 방도는 없다. 최종적으로 분석을 한 다음에, 사람은 그렇게 하기도 하고 (또는 하지 않기도 하는) 마음의 결정을 내린다. 따라서 (예를 따라 인답게) 행위하는 그 지점에 도달하기까지 자기를 계발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들여야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어떤 의미로는 결국 인하는 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길 즉 방법은 필요한 것이지만 충분한 수단은 아니다. 인은 <어려운 일을 한 뒤에> 온다. 즉 예에 의해 요구되는 행위의 솜씨를 몸에 익힌 뒤에 오는 것이다. 인간들이 상호 교제하는 데 필요한 여러가지 개명된 솜씨들을 모두 다 익숙하게 배우기는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그것은 비상한 능력보다는 인내를 요구한다. 그렇다고 인내하는 방법도, 인하는 방법도 (특정적 규정적으로) 있을 수 없다. 사람이 배움을 계속하는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은 인내하는냐 인내하지 않느냐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예 안에서 자기 존엄성을 찾는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똑같은 관심과 배려를 가지고 행동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이 인한가 그렇지 못한가의 문제일 뿐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인되기는 쉽다. 단적으로 인하게 행동하라! 적절히 예식을 올리는 제반 솜씨를 터득하고 난 사람은, <마치 중요한 손님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중요한 제사를 모시는 것처럼>, 요컨대 타인들도 자신과 근본적으로 같은 존엄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그들을 대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는 (특정한) 다른 방법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이지만, 인은 원하기만 하면 즉시 가까이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행위의 패턴은 공개되어 있다는 행위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는 때때로 피할 수 없는 장애가 있어서, 그것이 그 행위 패턴을 훼방함으로써 그 행위를 무산시켜 버릴 수 있음을 잘 안다. 그러나 행위자의 타인에 대한 지향, 즉 그가 자기 행위에 부여하는 방향의 맥락에서 우리가 행위를 생각하면 우리는 여기에서 일종의 무오류성, 즉 밖으로 드러난 행위의 최종 결과가 어떠하냐 하는 것과 뚜렷이 구분되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피아니스트는 연주를 통해 어떤 화음을 표현하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외적인 장애란 (표현하려는) 의도함이 아니라, 그런 (표현) 행위의 성공만을 막는다. 따라서 이렇게 보면, 위도함에는 아무런 장애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의도하는 것뿐이다. 같은 논리로, 어떤 행위가 (객관적인) 장애 때문에 실패한다 할지라도, 그 어떤 행위에서도 타인에 대한 일종의 관심이나 배려를 볼 수 있다. 인은 관심이나 배려의 한 형태이다. 그러므로 인이라는 관심, 배려에는, <사람이 인하고자 하면>, 거기에는 어떤 장애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원하면 바로 거기에 있다>고 하는 것은 예에 대해서는 적용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인에 대해서는 꼭 들어맞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의 행위란 다른 것들과 비교할 때, 다시금 신묘하고 경이로우며 역설적인 차원을 갖고 있다.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고 안 가질 수도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 사람 개인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가 자기 행위를 참되게 관심을 기울인 (또는 배려를 한) 행동으로 만들어 내는 (고정적으로 확정된) 방도는 없다. 이상의 언명들은 주로 인의 시각, 즉 개인적인 시각이 지닌 직접성과 무오류성의


측면을 끌어 내고, 또한 이런 측면을 탈신비화함으로써, 이런 개인적인 시각이 얼마나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친근한 것인가를 상기시키려는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몇개의 언급을 통해 바로 개인적인 인의 측면이-개인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지만-<외적>인 또는 공적인 행위로서 갖는 자연스러움과 고유한 성질을 적절하게 부각시켜 보고자 한다. 공자가 다양한 공적인 시각에서 바로 공적인 이 속세의 문제를 검토했다는 사실을 재강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마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면 공자는 행위의 모범 사례인 예식의 사회적인 역사, 즉 전통적으로서의 예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그는 역할, 즉 예에 의해 규정된 역할들을 수행하는 행위-<임금은 임금다워야 한다> 등등-에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끝으로 그는 사람들이 주위의 타인들을 향한 또는 그들과 함께 하는 개인적인 행위-인, 상호 존중, 충성, 믿음-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다.그러면 공자는 개인적인 행위가 어떻게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는가? 예를 따르는 행동은 단순한 기계적 작동, 즉 공식에 매인 행동 수행이 아니다. 예에 따르는 행위는 많건 적건 상황에 민감하게 대처하고 행위 수행에 융합성이 있는 미묘하고 이지적인 행위이다. 여기서 공자가 애호하던 음악을 모델로 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는 민감하고 지적인 음악의 연주를, 지루하고 바보같은 음악 연주에서 우리는 신뢰와 융합성 또는 아마도 주저, 갈등, <거짓>, <감상적 작풍>을 감지할 수 있다. 우리는 연주라는 그 현장 안에서 이 모든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우리는 따로 연주자의 심리 상태나 인물됨을 조사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느끼는) 그것은 <거기에> 공개적으로 놓여 있는 것이다. 느낄 수 있는 그것이 연주라는 장 안에 있기 때문에, 비록 우리가 그 연주를 베토벤 3 번으로도 (즉 작곡자의 관점으로), <공개 음악회>로도 (예의 관점으로), 또는 <후기 모차르트 작품>으로도 (스타일의 관점에서) 보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 연주를 일차적으로 이 특정한 사람의 연주로 (그 개인의 관점에서) 볼 때, 비로소 우리는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 이 사람이 어떻게 행위를 하는가를 보면,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사람이 주위에 관계되는 모든 사람들을 그와 함께 예에 참여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타인들을 자신과 같은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대해 주었는지가 밝혀진다면, 그 행위는 인으로도 보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행위 패턴이 어쩔 수 없이 엉망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마이 피아니스트가 연주에서 나타내려고 했지만 결국은 나타내지 못한 화음을 들을 스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 행위가 시도했던 방향, 목표, 즉 그 행위 중에 나타낸 관심이나 배려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행한 그의 행위를 봄으로써 이러한 모든 것을 아는 것인지, 결코 그 사람의 두뇌나 내심의 정신 영역을 탐구해서 아는 것이 아니다. 음악 연주에서 거짓을 감지할 수 있듯이, 우리는 겉으로 예처럼 보이는 행동이지만 사실은 보다 복잡하면서도 위선적인 행위의 요소가 있는 경우에 그런 거짓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런 거짓은 예에 의해 규제받지 않는 방식으로 타인을 희생시킴으로써 행위자 자신의 중요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심적인 의도와 태도라는 주관성을 띤 언어와, (그것에 대한) 논리적, 언어적 분석을 모두 배제하고, 인을 이해하는 공자 자신의 방법에 초점을 맞추어 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인을 보는 공자의 방식을 분명하고 진실되게 반영하는 이미지는 행위자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이미지는 그 사람의 <내심>이 아니라 그 사람이 실제로 하는 행위에 주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미지는 인한 힘을 외부에 드러낸 행위와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그 대신 인이 지향하는, 즉 인한


힘이 지닌 목표의 성격은 (인하려는) 행위가 궁극적으로 실제 도달한 과정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런 구분점이 (인이라는) 말과 이미지에 의해 강조되어야 할 문제라는 것일 뿐, 실제로 이 두 분명한 사건들 (인하려는 의도와 실제로 하는 인한 행위)을 분리하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행위 또한 어떤 의도의 맥락에서 해석되지 않고서는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힘은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힘이어야 한다. 즉 (진정한 인간일 때 갖게 되는) 인간 존재의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인간 존재들을 향해 있으며 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공자가 쓴 한문에는 고유성, 성질, 정의, 본질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은 한 개인과 자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이요, 그 개인이 소유해야 할 것으로 제시되엇다고 하겠다. 가장 도움이 되는 서양적 이미지는 물리학에서 빌려 온 벡터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인의 경우 우리는 공개된 시간과 공간에서-시초의 원인점에 또 다른 사람이 서 있고, 그 힘이 가해지는 끝지점에 한 사람이 잇다고 가정하고-실제 행위를 일으키고 있는 방향성 있는 힘(즉 벡터 역량)의 작용을 생각해야만 한다. 그 힘들은 물론 인간의 힘이며 기계적인 힘이 아니다. 공자가 강조한 덕목들은 모두 정말로 <역동적이고> 사회적인 것들이다. 예를 들면서 (인간 관계에서의 상호 존중), 충(충성), 신(타인에 대한 믿음)과 같은 것들은 원래부터 타인들과의 역동적인 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다른 한편 순수성이나 결백과 같은 <정직이고>, <내적인> 덕목들은 <논어>에서 별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우리는 예를 밖으로 드러난 도라는 이미지의 맥락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인도 그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인의 이미지는 행위자의 자세, 즉 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나 일정 공간에서 취하고 있는 태도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즉 우리가 예식에 참여하거나 그것을 관찰할 때, 그 힘이 우리를 향해 <발산된다>고 음미할 수 있다. <임금이 남쪽을 향해 예식에 맞게끔 앉아 있으면 모든 일이 (적절히)되어 갔다> 예식에 정해진 바로 그 역할을 정말로 참되게 해낸다고 느껴지는 그 사람이 예식을 올릴 때, 예식의 몸짓(혹은 마치 최면술사와 같은 그 몸짓)으로부터 발산되어 나오는 것이라고 우리 모두가 느끼는 마술적 힘을 음미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인에 대하여 느껴야 하는 길인 것이다. 그리고 인은 갈라져 있는 백터들-완전한 충성심과 신의, 인간 존엄에 대한 완전한 존중 등등-의 완전하게 집중된 힘이다. 이들 각각은 그 나체로 볼 때, 내심의 상태가 아니라 본래적 의미의 덕-(각각의 덕을 발산하는) 그 사람으로부터 발산되는 힘, 즉 인간다은 힘을 들여서 마침지 그 일을 해냈을 때, 일찍이 안연이 이야기했듯이, <그것은 홀연히 내 앞에 우뚝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그는 마침내 인이 발산하는 힘을 (의도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이끌어 낼 일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 사람이란 예 안에 자기 자리를 잡음으로써 인하게 되든지, 그렇지 않든지 할 수 있다. 인하게 될 수 있는 것, 그것은 오직 그렇게 하고자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종종 결정의 순간에 인간의 힘에 대한 믿음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 사람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물리적인 힘과 동물적 힘에 의지하여 살아 왔다. 그러나 인은 바로 인간적인 방식에 대한 완전한 자기 헌신이다. 그리고 그 벼랑 끝까지 걸음을 계속해 가는 것이다. 두려움과 전율 속에서 신중과 걱정 속에서 마치 깊은 연못가에 있듯이


마치 얇은 살얼음을 밟듯이.

제4장 보수적 전통주의자인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사람인가?

공자가 다듬은 예에 대한 이상은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20 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문화의 갈등>(culture conflict)을 알고 있고, 단일 문화권 내에서도 야기될 수 있는 습관과 가치관의 충돌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일찍이 공자가 겪지 못했던 하나의 문제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공자의 기본 전체는 하나의 예가 있고, 그것은 보다 위대한 우주의 도(천도)와 근원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전제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없이,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는 이 예가 그가 살고 있던 나라의 (당시 다른 나라는 아직 야만적이었다) 예이며, 그의 전통의 선조들도 바로 이 예 속에서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예와 그것이 뿌리박고 있는 우주의 도는 내적인 연관을 갖지며 아주 적절한 것이라고 생각햇다. 따라서 사회적, 도덕적으로 필요한 것은 (개개의 사람들이) 바로 이 예 안에서 그 자신과 그 자신의 행위를 형성해 내는 것 뿐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독특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다수의 문화권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문화적 다원성이란 점을 고려할 때 공자의 서로 관련된 이런 기본 가정들에 대한 신중한 재검토가 요청된다. 공자가 다듬은 (예의) 이상에 (비판적인) 이런 이의들에 대한 첫번째 대응은 이런 이의들이란 시대 착오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만약 누가 공자의 이상을 (서로 다른 문화들이나 관습들간의 갈등을 초월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보편 타당한 인간 이상의 가능성으로서 제시했다면, 그런 비판적 논의들은 당연히 공자의 이상에 대해서도 해당됨을 우리는 용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논의들이 만일 기원전 5 세기 노나라 출신의 교육자인 공자를 비판하는 준거들로서 제기된 것이라면, 그런 논의들은 시대 착오의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우리는 논박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공자는 그가 살았던 당대의 그리스 문화나 이스라엘 문화 또는 보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집트 문명 등 다른 거대한 문화가 있었음을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나라 사람들이 알앗던 것은 인접한 아시아권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그들 선조들 중의 몇몇을 특별히 크게 이상화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물론 분명 노나라만큼 수준높은 문화를 가지지 못한 변방의 여러 종족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오늘날 그를 비판하는 학자들과는 전혀 다른 역사 환경, 즉 기원적 5 세기 중국에 살았던 공자는 그가 알고 있는) 그 이상의 인류학적 그리고 역사학적인 정보를 접할 수 없었고, 또한 그런 정보가 잇으리라고 가상할 만한 어떤 합당한 이유를 전혀 가질 수 없었다. 그런 공자가 반문명 또는 순야만 민족들이 살고 있는 변방으로 둘러싸인 중앙, 즉 만물의 <중심>에 오직 하나의 위대한 문명이 있다고 생각했다 해서, 그를 비판하는 것이 어떻게 정당화 될 수 있겠는가? 또한 어떻게 (그 당대에) 자기의 문화와 같은 수준의 다른 위대한 문명들이 존재하리라는 가능성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식의 번호가 아무리 설득력이 잇다 할지라도, 이와 같은 공자에 대한


<면호>는 여전히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한다. 왜냐하면 이런 변호는 결국 공자의 가르침으로 더 이상 보편적, 철학적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의 (특정한) 역사 시대의 그것으로 의미를 축소시키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제야 우리는, 비슷한 지적 한계를 가지고 활동햇던 공자 당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공자의 가르침을 생동적 선택으로 받아들였던가 하는 것을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공자의 가르침은 바로 (현대에 살고 잇는) 우리들을 위한 가르침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의 요점이다. 공자의 가르침은 어쩌면 (인류학적, 역사학적)지식을 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 20 세기의 현대인들에게는 (비록 이 책에서 나의 논의는 이러한 견해와는 정반대의 내용을 분명히 밝히고자 하지만) 하나의 (지나간 특정 시대의)역사적 본보기 이상의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인 접근 방식은 아직까지 풀지 못한 몇가지 문제를 남겨두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된 것은 (당시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라는 동일 문화권) 내부의 갈등, 즉 단일 문화권 안에서의 충돌의 문제이다. 공자와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흔히 비운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다 당시에 다수의 난립해 있는, 또한 수시로 전쟁까지도 불사하는 여러 제후국들의 존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 당시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민족들 사이에는 상당한 정도로 생활 관습들이 서로 다르며, 이런 관습들이란 협소한 중심부의 제후국들과 변방에 위치한 상대적으로 큰 면적의 나라들 사이에서 시대적 간격을 두고 아주 큰 차이를 보이고 잇음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지식인이라면 누구라도 옛 전통의 붕괴가 자주 일어나면서, 새로운 제도와 습속이 도입되고 있음을 간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상한 이론 논쟁으로부터 마키아벨리식의 종치술, 단순 살인, 처참한 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문화 내적 갈등에 휩싸인 지역이 일찍이 있었다고 한다면, 분명히 노나라와 그 이웃 제후국들이 바로 그에 해당될 것이다. 그때는 실로 일대 혼란-그러한 혼란이 강하게 의식되는-시대였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서, 노나라의 예 역시 본질적으로는 (다른 변방 지역의 관습들과) 자주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특정 생활 방식의 총체인 것이요, 따라서 당시 세계의 여러 실제적인 도전들을 해결하기에는 부적합한 것일 수도 있다는 가증성을, 그렇다면 공자는 어떻게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 있었는가? <논어>에서 이런 문제를 꼭집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더 말할 나위 없이 공자는 상고 시대에 완벽했던 원래의 예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도덕적, 정치적으로 타락한 결과 이런 혼란이 야기되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우리가 제기해야 할 문제는 다음과 같다. 왜 이런 식의 대답이 그 어떤 다른 대안적인 문제 제기를 아예 차단해 버릴 수 있을 만큼 (공자에게는) 그렇게 강한 구속력을 가질 수 있었던가? 당시의 일상적 삶에서 분명하게 도출될 수 있는 적어도 (공자가 제시한 대답과) 같은 수준의, 아니 (우리 현대인들의 눈에는) 그것보다 훨씬더 강한 설득력이 있을 수 있는 다른 여러가지 대안의 가능성을 제쳐두고, 어ㄷ게 해서 공자는 오직 이러한 대답에만 도달할 수 있었던가? 우리가 이것을 (공자라는 개인의) 한정된 사고력의 탓으로만 돌린다면, 그것은 별로 도움이 안된다. 위대한 사상가요, 교육자인 공자가 핵심적으로 생각했던 문제들의 구성이나 대답의 방식안에 있을 수 있는 그 어떤, 보다 설득력과 보편성이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 하는 점을 적어도 이제 우리는 우선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근거가 어떤 것인지를 찾아보고자 노력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공자를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공자의 가르침을 단지 당대의 시대작 위기의 본질에 대해 철저하게 무지하여 아무런 창의력을 제시하지 못한 그런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갈등과 혼란에 새로운 비젼을 제시했던 창의적인 대안으로 보아야만 한다. 앞으로의 서술에서, 나는 새���운 사실을 제시하지 않고 오직 우리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얘기를 새롭게, 내가 희망하는 바로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정말 계발적인 방식으로 주장해 보려는 것이다. 우리는 우선 공자를 단순히 과거의 제도와 문화의 현상 유지만 고집스럽게 변호하는 고풍스런 사람이라기보다는 위대한 문화 개혁가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앞의 어딘가에서 공자가 예의 기존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고 지적했듯이, 공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 사회의 개념 전체를 변혁시켰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는 새로운 이상의 창조자이지 결코 낡은 이상의 변호인은 아니었다. 우리는 잠시 그를 새로운 이상의 제안자로 보기로 하자. 적어도 무엇보다 먼저 공자의 안목이나 그가 구사한 상투어의 표면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의 가르침이 갖는 역사적 역할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그는 고대에 있었던 조화의 회복이라는 맥락에서 논의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상이 지니는 실제적인 의미는 사람들로 하여금 (당대 중국에서의) 지역적 전통을 다시 해석해 보고 이를 재창조할 수 있는, 새롭고도 보편적인 질서를 산출해 내려는 데 있었다고 하겠다. 공자가 그 당대의 역사적 사실에서 파악한 것은, 사회적, 정치적인 접촉 관게를 통해서 (과거 변방과 중심의 제후국들간의 문화적 이질성이 사라지고, 점차) 새로운 유사성의 출현, 말하자면 일찍이 노나라를 포함한 좁은 지역에만 한정되었던 가치 개념들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는 새로운 공유의 현상이 출현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공자는 문학, 음악, 법률, 정치의 여러 형식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확대 공유되는 현상이 출현하는 것을 보았다. 역사적 증거에 의하여 당시의 상황을 판단해 보면, 과거에 위대했던 문명의 퇴화가 아니라 새롭고도 보편성을 지닌 문명으로의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그 당시에 막대한 인구의 급증이 있었다. 그리고 생산 기술과 교통 수단의 확대에 있어서도 일대 약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제까지 지역적으로 고립되고, 상이한 문화를 가졌던 다수의 민족들이 이제는 보다 더 긴밀한 접촉을 갖게 되었다. 관념, 생활 양식, 관습, 언어의 교류와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 공자는 (당대의 시대적 전환을) 퇴화의 과정으로 보고 당대의 혼란을 세쇠도미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실상 낡고 소규모적이며 문화적으로 고립되어 보다 원시적이고 촌스러운 여러 집단들이 이제 새로운, 좀더 거대한 단일 사회로 통합되는 진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부수되어 나오는 혼란과 무질서였던 것이다. 과거에 많건 적건 서로 고립되어 이질적이었던 (변방의 반 야만적) 사회들, 그렇지만 (당시의 사회적 대변혁 덕분에 비로소 문화 수준이 높은, 중심의 노나라와 더불어) 거대한 하나의 지정학적 공동체로 성장하는, 면적도 넓고 인구도 많은 (변방 지역들의 저급) 문화들에 대하여, 이제 공자가 노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몇몇 제후국의 (고급스런 중심) 문화의 지배에 주목했다는 사실은 정말 너무나도 자연스런 것이라고 하겠다. 면적이 적은 노나라의 상대벅으로 약한 국력을 감안할 때, 노나라 사람 공자가 (사회적) 질서와 통합을 위한 일차적 근거로서 군사적 정복이 아니라 문화적 정복에 눈을 돌린 것은 오히려 당연한 책략이라고 하겠다. 요컨대 공자는 주변의 강대한 제후국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많은 갈등들을 둘러보았고, 동시에 또한 그들 사이에서 노나라 지역의 고급 문화에서 연원하는 (새로운) 문화 수용의 징후들을 보았음을 우리응 상정하지 ㅇ을 수 없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공자가 모든 민족들이 이제 하나의 단일한 인간적인 실천과 이상의 체계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들 모두가 단합하여 천하가 태평성대할 수 있는


가능성-즉 하나의 이상-을 보았다고 생각해야 한다. 마침내 노나라 사람인 공자는, 새로운 사회의 기본 구조로 노나라 문화의 수용이라는, 이미 명백히 드러난 경향을 더욱 자극하고 극대화하는 정력적인 계도 작업을 통해서야만 그러한 이상이 성취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고 생각된다. 공자의 비젼은, 사실 다른 어느 것보다도 중국이 실제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미래에 대한 참된 것이었다. 그것은 노나라를 중심으로 하여, 중심 지역의 통일된 문자, 언어와 여러 예식 형태들로부터 전체적으로 영감을 받는 하나의 통일된 국가 조직에 기초하는 거대하고 강력한 통합 문화의 출현에 대한 비젼이었다. 당시의 정황속에서 이와 같은 새로운 이상이 어떻게 정립되어 설득력 있게 설파될 수 있었던가? 당장 드러나는 것은 불가사의한 역설뿐이다. (당대의 사회적 대전환이라는 와중에서 새롭게 제기되는) 이상이란 바로 누구나 다같이 동일한 이념과 실천의 체계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거대한 사회에 대한 이상이다. 그러나 실제 사람들이 자기들 관습대로 각기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다양한 방식들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런 방식들은 어떻게 생겨 났고, 어떻게 정당성을 획득했으며, 유지되어 왔는가? 이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기본적으로 이중적이다. 첫째는 전통에 대한 강조이다. 일반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다양한 인습적 행위들이 확립되는 데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효력 있는 명령, 공동의 합의, 그리고 수용된 전통의 계승이 그것들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 공자에 의하여 그 중요성이 암묵적으로 인정된 것들이다. 진실한 왕이 길을 선도하고, 백성들이 동의하여 자발적으로 따르는, 즉 가르쳐지고 따르게 되는 것이 곧 전통이며 이는 선인들의 생활 방식이다. 전통의 내용이 하늘의 의지 즉 <명령>의 다른 형식)라고 여겨진다 할지라도, 그 전통은 곧 선인들의 도와 일치한다. 왜냐하면 하늘의 의지는 멋대로 (새롭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공자는 역시 그의 가르침에 있어서 선인의 도, 즉 전통에 첫째가는 우위성을 인정하였다. 왜 공자는 궁극적으로 전통을 일차적으로 강조해야만 했는가? 이에 대하여 우리는 이제 몇 가지 중요하지만, 부차적 이유들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성들은 (남의 가르침을) 따라갈 수는 있지만 결코 남들을 지도하지는 못한다. 이 점은 자명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분명히 지식과 문화가 결여되어 있고, 타인들에게 바람직하게 행동할 것을 계도할 수 있는 아무런 전통도 몸에 배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성들의 공동의 합의는 배경적인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 그 당대의 통치자들은 흔히 전제주의적이었고 권력 추구에 매몰되어 있었음이 역사적 사실이다. 따라서 선한 통치지가 필요했으며, 그래서 그런 존재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선하기 위해서 통치자는 선에 대한 비인격적인(객관적인) 기준을 가져야만 했다. 비인격적안 가준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바로 전통이나 천명이었다. 공자가 <논어>에서 천에 대하여 언급하기는 했으나 그 역할은 분명하지도 않고 그다지 정교하고 치밀하게 논의된 것도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공자 철학의 결정적 영향력은 그의 정치에 대한 통찰에 있다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철학적 통찰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바 그는 형이상학적 사변이나 <신학>에는 별로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는 현세에서의 인간의 삶에 보다 깊은 관심을 쏟았다. 공자의 가장 내용적인 철학적 통찰의 하나는 바로 사람의 인간성은 예의 이미지를 통해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 동물이나 무생물로부터 구별되는 것은 관습을 잘 배워서 실천하는 일 때문이라고 보았다. 폭력, 협박, 명령에 의한 (강제적, 수동적 행위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잘 배워 익힌


관습의 실천 속에는 얼마나 신비스러우며 얼마나 인간적인 (즉 자발적 능동적인) 힘이 깃들어 있는가를 공자는 잘 알고 있었다. 마침내 공자는 인간만이 지니는 존엄성과 관련된 힘이 신성한 의식이나 예식들과의 관계에서 특정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예식은 행위 자체 안에 생리적인 조화와 아름다움과 신성함이 강조되는 관습화된 실천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이상은 성스러운 의식과 예식이라는 이미지에 의해 명백히 나타난다. 의식과 예식들이야말로 그 나름대로 다른 그 어느 것보다 더 오랜 옛날 전통에 뿌리를 둔 행위의 형식들이다. 어떤 형태의 행위나 제스처가 도무지 생경하고, 인위적 조작 또는 실리 타산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한 그런 행위나 제스처의 형태에는, 말하자면 예식을 올릴 때 가질 수 있는 궁국적 엄숙성, 또는 예식을 통해서만 인간의 영혼 속에 촉발될 수 있는 그런 깊고 고풍적인 (심리적, 감동적) 반응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사실은 궁국적으로 심리학이나 도 다른 어떤 학문을 통해서도 모두 설명 가능한 것이다. 비록 복잡한 예식을 (간소하게) 수정하는 일이 가끔씩 일어난다 해도, 적어도 예식의 재료나 그 구성 요소들은 전통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공자의 사상에 영향을 기쳤을 많은 생각들 중에서, 공자는 인간의 독특한 본성을 예에 뿌리박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데 그의 본질적인 세속관이 드러난다고 하겠다. (당대에 새롭게 형성되는) 거대한 문명의 통합은 구성원들의 합의나 명령보다는 우선적으로 전통에 근거하는 것으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물론 (백성들의) 사회적인 합의 또는 군주나 하늘의 명령이라는 관념들은 문화를 규정하는 전통들을 합리화하는 데 있어서 여전히 공자의 사상 속에서 무시 못할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공자에게 있어서 사회적 합의나 천명의 역할은 결국(전통이 갖는 절대적인 중요성에 비해) 부차적인 것이며 별로 다듬어져 논의되고 있지 않다. 예식에 관심을 가진 다른 사상가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에 대한 핵심적 강조는 이데올로기적, 철학적 또는 종교적인 면에서 아무리 상이한 그 어떤 틀이 가미된다 할지라도 예를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도덕적, 정감적인 권위, 즉 전통에로 곧바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두 개의 위대한 통찰력이 공자의 사상 속에는 혼합되어 있다. 정치가로서의 공자는 당시 사회적 위기의 극복을 위해서는 문명화된 정치적, 사회적 통일의 근본적 토대로서 문화적 통합이 요구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철학적 인간학자로서의 공자는 진정한 에식 행위의 이미지 속에 구현된 삶이 진정한 인간서의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라고 확신하였다. 상호 연관되어 있는 이들 주제의 의미 함축은 곧 정치적, 사회적 통일이 바로 예식적인 것이 될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전통 지향적 문화를 바로 예식이 자양분을 공급받는 핵심적인 터전으로서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공자는 다음과 같은 역설에 직면하게 되었다. 전통을 그들 자신의 고유하고도 신성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새로운 이상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런 전통들이란 (한 개인의 흥미나) 필요에 따라 임의로 선택되거나 새로 만들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선대에는 합당했었지만 이제 소홀하게 된 전통을 단지 다시 확정짓고 그것에 호소함으로써 새로운 이상을 나타낼 방도는 분명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물론 공자와 같은 시대와 환경 속에 살았던 어떤 사상가는 공자와 전혀 다르게, 즉 전통 지향적이 아닌 다른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이런 (비전통주의적) 대안은 이른바 법가 및 다른-이미 공자 시대에


그들의 철학적 이념들이 정립되어 틀림없이 공자 그 자신에게도 알려졌을-사상가인 제자백가들에 의하여 분명하고도 강력하게 피력되었다. 예를 들면 법가는 상과 벌이라는 두 계기에 의해 강압적으로 통제되는 사회를 제창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공자의 관심이, 단순히 사회 공동체의 질서 확립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인간 존엄, 즉 인간 존재의 분명한 차원을 아름답고 고상하고 거룩한 존재로 보려는 의미에 바탕을 둔 문화의 창달에 있었음을 아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문화의 통합은 인간성 실현의 극치이어야 했지, 결코 사람의 모습을 지닌 (온순한) 양떼를 (공권력을 통해 강압적으로) 몰아붙이는 질서 유지일 수 없었다. 공자의 새로운 이상 구현에 있어서 두번째의 기본적인 요소 (즉 만백성의 합의의 문제), 말하자면 만인이 공유하는 관례들에 기반을 둔 보편적 공동체라는 이상 실현의 문제를 고찰해 보기로 하자. 공자가 제안한 내용은 전통에 바탕을 둔 새로운 공동체를 건립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이러한 이념을 보급 확산시킬 수 있는 매우 적합하고 강력한 논의 형식을 이미 치지 냈다고 생각했다. 실로 그는 인류 문화에 가장 깊이 뿌리를 내림 논의 형식, 즉 이야기 특히 고대의 신화나 일화 이야기를 이용하였다. 모든 사회는 추상적인, 특히 정신적인 문제들을 명료하게 규정짓는 그들 나름의 특징적인 방식에 있어서 서로 차이가 난다. 그러나 그 중 하나의 방법, 즉 이야기의 사용은 모든 사회가 공유하는 것이며 또 역사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이야기들에 <역사>, <신화>, <전설>등 여러 가지 명칭을 붙인다. 이들 이야기 형식들에서, 예를 들면 (한 위대한 인물의) 탄생이 갖는 도덕적, 법적, 정신적, 심리적 측면은 추상적 개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탄생신화-즉 사건이나 인물을 묘사하는 이야기-의 맥락에서 제시된다. 이야기는 말로도, 몸짓으로도, 또는 문자로도 나타날 수 있다. 사망, 혼례, 치적, 인간 관계, 세계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 등의 문제들은 모든 사회에서 이야기의 형식으로 표현되어 왔다. 몇몇 문화권 즉 유럽, 인도, 중국 문명에서 우리는 또한 이러한 문제들에 적용된 추상적, 이론적 교설이나 분석을 찾아볼 수 있다. 삶의 외형적 실상보다는 그 의미를 포착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언제나 삶에 대한 추상적 개념의 형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삶과 대비(대칭)되는 사건들의 이야기 형식을 통해서 그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대칭의 세계는-우리의 현세와 경쟁 대립되지만-다른 영역(하늘이나 올림푸스 산)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어질 수 있다. 또는 이런 대비적 세계는 지상에 있는 바로 우리집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의 이야기로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이야기에 나오는 시대는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보다 훨씬 옛날의 이야기라는 형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옛날 다른 곳에서 발생한 사건의 이야기라는 형식을 취하게 될 것이다. 이야기를 다른 시기나 장소로 옮겨서 말하거나, 인물들이 가진 능력들이나 품행을 이상적(또는 극단적)으로 규정해서 이야기를 꾸며내는 방식은, 최근의 진짜 인물이나 실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기억과 꼭 합치하지 않을 수 있는 이야기의 단점을 충분히 상쇄시킬 수 있다. (이야기라는) <다른>세게와 우리 자신의 (현실) 세계 사이의 이런 작용은 우리 인생의 의미가 매일매일의 일상적 삶의 사건들을 초월하기도 하고 동시에 정말 그 속에 구현되기도 하는 (삶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회상의 이야기는 역사를 기억으로 보여주지만 다른 이야기(말하자면 신화의 형식)는 역사를 의미로 보기 때문에, 이 두가지 이야기 방식은 모두-그것들이 무엇을 말하든지간에-그들 나름의 타당성을 갖는다. 회상의 이야기도 의미의 이야기도 모두


현재에로 귀결된다. 나아가서 의미와 회상은 전혀 뚜렷이 구별될 수 없다. 각각 서로 다른 것을 필요로하며, 서로 그 속에 융합되어 있다. 우리는 가금 참으로서의 역사와 허위로서의 신화를 구분하지만 사실 이런 구분의 (이유가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은 확실히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런 구분은 우선 너무나 과민한 것이어서 쉽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신화> 이야기가 회상 이야기보다 눈에 띄는 선명성이 있다고 보는한, 신화 이야기가 보다 의미 깊고 보다 지속적 타당성을 가지기 때문에 그런 구분이 통용된다. 왜냐하면 신화 이야기는 많은 의미를 준다. 즉 이것이 의미 그 자체인 것으로 통용되는 한, 적절한 신화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소박하게 이해한 인생보다는 신화의 방식에서 더 중요한 의미가 드러난다. 이 <다른> 영역은 언제나 의미 있는 영역임은 물론 의미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 있는 이야기들은 전형적으로 이중적인 역사성을 지닌다. 첫째, 이야기의 형식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은 바로 (특정) 시간-요컨대 역사의 한 단락-안에서 의미 있게 연결되는 일련의 사건들로서 나타나는 인생의 의미를 우리들에게 제시한다. 둘째, 우리가 이미 주목했던 바와 같이, (실제 삶의 생생한 사건들과 구분되는) 이야기라는 <별개성> 또는 <초월성>은 전체 이야기를 먼 과거 또는 아주 먼 장소, 혹은 이 둘다에다 서러정하는 이야기 형식속에 이미 드러나 있다. 내가 의미 이야기(즉 신화)에 대립하여 명명한 회상 이야기(즉 역사)를 신종하는 현대 유럽 문명권의 사람에게는, 의미란 결국 암암리에 회상속으로 섞여 들고 만다. 즉 역사라는 것이 말하자면 그들의 신화인 셈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식이 많아질수록 표면상 의미 이야기, 즉 신화들로 보이는 것들이 사실상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에 근거하고 있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사건들은 어떤 식으로든 신화의 무대가 되는 그 해당 시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사건들이다. 의미를 주는 이야기가 먼 과거의 일로 설정될 때는, 일반적으로 그 이야기 자체는 역사적인 과거, 회상된 역사적 과거와 사실상 연관을 갖는, 그런 과거의 일이다. 정교하고 세밀하게 구성된 이야기나 계보는 일반적으로 실제의 역사적인 과거의 그 (이야기 속의) <다른>(<옛날의>)과거를 연결시키고 있다. 비록 다른 영역(즉 이야기 세계)의 존재들이 실제 일어나는 인간 역사에 대비되는 그것들 자신의 역사-물론 인간들이 실제 눈을 뜨고 활동하는 동안 보통 눈에 띄지 않지만-를 계속하고 있음을 우리가 적지 않게 자주 발견하게 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추상적 이론과 개념적 분석이 발명디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런 이야기를 사용하는 경향은 결코 서구 뭄명권에서는 사라진 적이 없었다. 우리(서구인들)는 역사적으로 참으로 빈번하게 다종 다양한 이론적 이데올로기나, 교설, 구호(<자유 언론>, <인권 보장> 등등)들의 노예였다. 아직도 우리는 (기억된 과거만을 유의미한 것으로 정리하는) 이른바 역사의 연구뿐만 아니라, 또한 종교 이야기, 정치적인 신화 창조, 상업성을 띤 <인물 만들기>나 <각종 표창>, 그리고 (통속적인) 드라마, 예술, 문학 등을 정말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사고와 감성의 제 양태로 보고 그것들에 마음을 쏟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그 나름의 독자적인 근거에서 예식의 이미지, 따라서 전통이라는 이미지를 통한 인간다움의 실현을 깨닫게 되었다. 공자가 가장 일반적인 이야기 형식-즉 오래된 과거의 이야기-에 주목하게 된것은 아주 독특하게 적절한 것이었다. 그래서 공자의 가르침의 내용은 인생의 의미를 사색하는 모든 형태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마도 가장 의미를 불러일으키기 용이한 형식과 완벽하게 합치하는 것이었다. 비록 이런 방식의 이야기 형식이 <고풍스런> 사유 형식이지만, 그런 이야기 형식은 현대의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완전한 고대로의 순전한 복귀가 아니듯이, 공자에게 있어서도


고대로의 순전한 복귀가 아니었다. 공자는 인간의 본성과 (그의 자율적,능동적인) 능력에 대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통찰에 근거를 둔 이념을 제시함에 있어서 신화적인 과거의 이야기를 사용했던 것이다. 이와같이 공자의 사유 속에는 (의미를 산출해 내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라는) 형식적인 모습이 그의 (전통에 결정적 역할을 부여하는) 가르침의 내용과 혼융되어 있다. 말하자면 공자는 그의 이사의 내용이 되는 전통에 대한 깊은 존경과 충성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기에 아주 적절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긔 공자의 사상을 살펴보는 것이, 바로 그의 가르침을 서구인의 단순한 역사적 호기심의 차원에서 구해 내어, 그것을 모든 인류에 대한 적절하고 (보편적인) 가르침으로 밝히는 일이 된다. 우리는 옛날 방식에의 <복귀>를 가르치는 사람(즉 공자)을 둘러싼 문화적 갈등의 문제를 살펴보는 것으로 이 자의 서술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의 가르침은 진정으로 역사적이며 내적 일관성이 있고 단지 전적으로 적절한 전통의 소유(즉 전통에로의 완벽한 복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오히려 공자의 가르침이 주는 과제는 공자 자신이 가르쳐 준 바와 같이 사실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갈등 많은 현재를 인간답게 하고 조화롭게 할 수 있는 새로운 해석을 얻어 낼 수 있도록 자신의 전통에서 (참신한) 영감을 찾아 내라는 것이었다. <옛 것을 되살리어 새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스승이라 할 수 있다> <옛 것을 되살리려는 일>(온고)의 목적은 어쩌면 (문제 많은) 현실 속의 전통들에 대한 (진지하고도 철저한 근본적인 새로운 개혁책을 제시하지 않고 단순히 전통을) 무책임하고 자기 편한대로 대충 취급하는 미봉책을 호도하려는 완곡 어법, 즉 위선이나 자기 합리화의 일종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공자는 그 점을 확실하게 부인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옛것을 믿고 또 사랑한다> 즉 전통에 대한 해석은 인간의 과거에 대한 참된 사랑과 존경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 에수, 불타는 모두 그들의 전통에 대하여 진정으로 심오하게 그리고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그들의 전통을 되살린 사람들의 본보기들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많은 유학자들이나, 기독교들 그리고 불교도들은, 그들의 현재 목적에 영합하는 말씀이나 행위라면-그것이 무슨 맥락의 전통이든지간에-(그 전통의 생생한 현장적 의미 추구를 사상해 버리고 오직 상투화된 죽은 형식적) 전통만을 조금씩 조금씩 뽑아 쓰고만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질적인 전통 묵수의) 태도는 (불가피한 것이 아닌) 자명한 전통 오용인 것이다. 전통적인 형식이나 예식들에 대하여 아무리 그것들이 현재 상황에 부적절한 것이라 할지라도 전혀 개의하지 않고 아주 완고하고 무비판적으로 묵수하려는 사람들은 이제 누구나 다 똑같이 세 사람의 위대한 전통 개혁자(즉 공자, 예수, 불타)들의 태도와 대비되어 비판을 받아야만 한다. 무엇이 새로운 것인지를 알려는 방법으로서의 꾸준한 온고의 태도는 결코 편협하고 답답한 이상이 아니다. 온고의 태도는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다 적절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유효 적절한 통찰의 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지 본능이나 조건에 따라 (물리적, 기게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라기보다는, 지성적인 관습적 방식에 따라 (자율적, 능동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인간은 독특한 (자율적인) 능력과 존엄성을 갖는 것이다. (이 점은 바로 오늘날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철학적 분석가들이 말하는 바이다) 철학적 분석가들이 관습이 지니는 지성적 측면의 관점에서 보자면, 삶의 여러 형태들은 (천재의 어떤 기발한 순발력에 의해)갑자기 한번에 고안됐거나 수용된 것이 아니다. 삶의 여러 형태들은 우선적으로 앞선 시대로부터 관습으로 전래된 언어와 실천의


방대한 체계를 각 시대마다 계승하여 생겨난 것이다. 오로지 전통적인 방식들을 철저하게 쫓아서 참되게 성장함으로써만이 우리는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오직 되살림으로써만, 우리는 우리들 삶의 통합성과 방향성을 유지하게 된다. 똑같은 전통을 지님으로써 사람들은 서로 결합하게 되고 사람들로 하여금 참된 사람이 되게끔 한다. 모든 전통의 포기는 인간들의 분열을 가져온다. 전통을 되살리려는 진정한 온고의 노력은 (분열되는) 인간들을 통합시킴에 있다. 인간 통합에 대한 이런 실제적 비젼은 단순히 정치적인 비젼만이 아니다. 비록 이러한 공자의 비젼이 기록된 역사에 있어서 가장 웅장하고 성공적인 정치적 비젼 중에 하나이자만, 그것은 철학적 비젼이요, 종교적 비젼이기까지도 하다. 공자의 비젼은 전승된 삶의 형태에 뿌리를 내린 공동체, 바로 그 공동체 안에서 생생하게 존재하는 신성스럽고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나타내 준다. 우리의 현대 세게는 신기한 호기심, 광적인 변화나 위기에 대한 지향만이 너무나 지나치게 용인되고 정당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대의 세게에서 공자의 인간에 대한 이러한 기본적 비젼은 단지 시대 착오적인 것으로 일축되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어쩌면 인간에 대한 공자의 관점은 그것의 발생지였고, 그 후대에 지나치게 전통에 모든 근거를 두었던 중국에서 보다도, 오히려 오늘의 우리(서양) 세게에 보다더 적합하고, 보다더 시의 적절하며, 버다더 시급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공자의 비젼이 지닌 진리를 깊이 통찰해 볼 필요가 있는 까닭은 바로 그것이 우리 시대에는 너무나 생소하기 때문이요, 또한 우리가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그 참뜻에 무지한 것은 너무나 먼 시대적인 이질감 때문이다.

제5장 공자의 비유:에식에 쓰이는 신성스러운 그릇

인간이 금수나 무생물과 구별되는 점은 무엇인가?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과 (능동적인 자기 계발의) 힘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가? 이와 관련하여 공자는 예를 놀랄만큼 적절하고 유의미한 이미지로 제시하고 잇다. 그러나 아무리 최근년의 비판적 연구의 경향이 (공자에 의한) <개인의 발견>을 강조하고 있다 해도, 의례와 예식에는 언뜻 보기에 개인이 강조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의 발견>이라는 이 특별한 어구를 쓴 휴즈는 바로 <인간이란 (더불어 사는) 자기 동료들과 연관을 맺고 그 속에 자신을 융합시키려는 시각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의미 있는 구벌을 덧붙이고 있다. 진영첩은 유사한 방식으로 <공자 철학 전체는 자아의 실현과 사회 질서의 창출>이라고 요약하고 있다. 휴즈와 진영첩이 <개인>-<사회>라는 두 개의 축을 제시하고 있지만, 유무기는 <개인>이라는 축을 더 강조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결구 개인이 우주의 중추이다 공자께서는 정말 천재적인 멋진 솜씨로 윤리적 개인을 (인간의 본질로) 보게 되었다 이제 개인은 (공자의 관점에 의해) 바로 사회의 기본 단위가 되는 새로운 처지로 격상된 것이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개인의 존엄성이 주장되기에 이른 것이다. 개인의 계발이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가 된 것이다> 크릴은 물론 공자의 사회적


관심의 방향을 공들여 논의하고 있지만, 그는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문맥에서 공자 사상에 들어 있는 <개인의 제일의적 중요성이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임어당은 사회성을 강조하면서 <도는 참으로 인간 자신안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요컨대 현대 문필가들의 대표적인 글에서 나온 이러한 구절에서, 우리는 광범위하게 되풀이되는 해석 방식을 보게 된다. 이런 간결한 어구를 인용할 때, 이들 어구의 의미를 본질적으로 밑바침해 주고 풍부하게 해주는 앞뒤 문맥에서 일탈하여 (자의적으로) 의미를 왜곡시키는 일이 종종 있다. 이러한 위험 부담이 있다 해도, 이런 어구들을 인용하려는 나의 의도는 (그 어구들에 대한 많은) 주석들을 총괄하여 원융무결한 해석을 해내려는 것이 아니다. (공자의 핵심 사상에 대한) 개괄적 도식이 피치 못하게 요구될 경우, 나는 차라리 <사회>와 <개인>이라는 관계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개인>에 우선적인 강조를 두면서 종종 도식화해 왔음을 명기해 두고자 한다. 자아 실현, 자기 완성, <자아의 완숙한 계발>, <개인의 궁극적 가치> 등 이런 (개괄적인) 말들은 공자가 발견한 아이디어들의 특성을 잘 나타내주는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공자는 <개인>과 <사회>라��� 양극적 두 개념에 보다는 차라리 <인간다움>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좀 더 타당하다는 논의가 현재 이 책에서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주제이다. 개인과 사회라는 (상호 대립적) 관계로 논의를 구성하는 것은 오히려 서구인들의 선입관이나 사고틀들 또는 (본래 공자의 생각과 배치되는) 아마도 도가적, 불교적, 그리고 성리학자들의 관심 사항을 반영한 것에 불과하더고 하겠다. 우리는 이 점을 추상적으로 논의하기보다는 공자 자신이 직접 우리들에게 제시한 많은 시사성이 있는 비유 중에서 다음과 같은 하나를 깊이 생각해 봄으로써 보다 구체적으로 터득해 배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공이 물었다. <저는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너는 그릇이다> <어떤 그릇입니까?> <제사에 쓰는 옥 그릇이다> 이 구절은 대개 <논어>에서 다른 구절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와 대비되어 읽혀진다. 주석가들 사이의 일반적인 견해는, 위의 <위정> 2:11 에 비추어 볼 때, 공자는 처음에는 그에게 합당한 자리매김을 해준 것이고, 그 다음 대답에서는 그에 대한 (첫번째 대답의 노골적인) 충격을 완화시켜 준 것이라고 여겨 왔다. 이러한 해석가들은 아마도 아래의 문단에서 개진될 (내가 생각하기에는 분명히 오류를 범한) 내용으로 (위의 그 짤막한 대화의) 속뜻을 읽어 내려갔을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선생님! 이상과 연관해서는 제가 어디쯤에 서 있는지를 좀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을 자공을 우리는 우선 상상할 수 있다. 공자는 대답했다. <너는 여전히 단지 특별한 목적에만 사용되는 그릇에 불과하다. 너는 도덕적으로 자각한 사람이 아니며, 다른 사람들 (즉 노동에 종사하는 일반 백성)의 특수한 (기술적인) 능력을 다스리거나 부릴 수 있는 폭넓은 (도덕적)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공자의 이런 뜻밖의 말에 자공은 진정한 군자가 되려는) 그의 열망과 평소의 낙간론이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자공은 단념하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은 무슨 뜻입니까? 선생님은 저에게 더 큰 희망을 줄 수 있는 완곡한 말씀을 해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온정적이며 격려하는 어조로 대답했다. <자공아, 그것에 대해 너무 서운해 하지 말라. 비록 너는 여전히 부림을 받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적어도 너는 너와 같은 사람들 속에서응 매우 훌륭한 사람이다. 사실 너는 가장 훌륭하고 가치 있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나의 견해로서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이와같이 줄을 따라 읽는 것은 아주 잘못되었다고 본다. 이런 해석으로부터 받아들일 만한 유일한 요소는 공자가 처음으로 자공의 지나친 낙관론에 찬물을 끼얹으려고 했다는 것뿐이다. 공자는 그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보게 하고, 그를 동요시키고, 그를 흔들어 놓고, 그를 당황하게 만들기를 원했다. (자기의 수양을 너무나 자만하고 있는) 자공으로 하여금 새로운 통찰을 통해 그의 삶의 방식을 반성해 볼 필요를 느끼게끔 해야만 했다. 공자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공과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을 가장 잘 배려한 그런 방식으로 대답을 한 셈이다.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에서 자공은 가장 잘 배려한 그런 방식으로 대답을 한 셈이다.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에서 자공은 가장 쉽게 성공했으며 상당히 세속적인 면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학식이나 세속적인 성공을 거둔 면에서 자공이 그의 개인적 성취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왜냐하면 자공은, 그릇의 비유와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라는 비유에 담긴 의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의 처음 대답은 그가 했던 다른 대답들과 마찬가지로 교육적 효과를 고려한 역설법 중의 첫째가는 요소이다. 그러나 <너는 옥으로 된 제사 그릇이다>라는 공자의 두번째 진술은 앞의 충격에 대한 단순한 감정적 완화만은 아니다. 이 말은 앞의 역설법을 완결짓고 동시에 문제를 해소시킨다. 그것은 공자가 구변 좋고 자만에 빠져 있는 자공으로 하여금 분명하게 깨닫게 해야 할 고도의 압축된 이미지 속에 포함된 핵심적인 가르침인 것이다. 무엇이 이런 핵심적인 가르침인가? 제사 그릇을 생각해 보자. <논어> 원문에서 공자는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의식과 관련하여 곡식을 담는 데 쓰이는 옥으로 만든 특정 유형의 제사 그릇의 이름(호련)을 언급했다. 그와 같은 그릇은 거룩하며 신성스럽다. 그 그릇의 외형-청동 재료나 조각이나 옥 색깔-은 우아하다. 그것의 내용물인 풍성한 곡식은 풍요를 표현한다. 그러나 그 그릇의 신성함은 청동이라는 귀중한 재료에도, 장식의 아름다움에도, 옥의 희귀성에도, 곡식의 먹음직스러움에도 있지 않다. 어디에서 그 그릇의 신성함은 오는 것일까? 그것은 그 그릇이 예식을 올리는 데에 본질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신성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예라는 거룩한 의식에 참여하는 덕분에 신성한 것이다. 그 그릇을 우리가 예식에서 갖는 역할과 분리하여 생각해 본다면, 그 그릇은 그 안에 곡식만 가득 채워 있는 값만 비싼 항아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점이 바로 (제사 그릇이) 그릇으로서 가지는 자기 모순이다. 왜냐하면 이 그릇은 일반적인 그릇들과는 달이 예식 자체와 무관하게 실용적인 목적으로만 쓰여질 수 없으며, 오로지 예식과 연관되는 기능만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예식용 항아리는 실용적 가치보다는 차라리 예식적인 가치를 강조하기 위하여 항아리에 실상 여러 개의 구멍들이 뚫려 있는 것도 있다) 유비 추리를 해본다면, 개개의 인간 존재 역시 예식이나 의례 즉 예 속에서 그 자신이 수행하는 역할에 의해 궁극적인 존엄성 즉 신성한 존엄성을 갖게 된다는 의미 함축을 공자가 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종교적 의식에만 관련된 예라는 단어의 의미를 공자가 사회 자체를 예의 모델에 바탕을 두고 (새롭게) 그려 보는 방식에까지 확장시켰음을 우리는 이제 상기해야만 한다. 예에 관한 가르침이


이런 식으로 일반화된다면, 자공과 에식용 그릇 사이의 유비를 철저하게 따져 나가 그것을 일반화하는 일이 합당하다고 하겠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앞서의 이런 비유적 표현이 인간이나 인간관계에 관한 공자의 가르침에 대한 우리 리해를 얼마나 심화시켜 주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사회적 예의 범절 일반이나, 부자 관계, 형제 관계, 군신 관계, 친구 관계와 부부 관계 등 말하자면 개개 인간들과 그들의 관계들은 궁그그적으로 예 안에서 그것들 각각이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사회라는 것이 사람들의 관습이나 도덕적 의무감들에 의해서 규제되고 유지되는 한 공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회는 (각종의 에식들이 집행되는) 하나의 거대한 예식 수행의 현장이며 또한 사회는 정교하고 치밀한 종교적 의례들이 지니는 온갖 신성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예식, 말하자면 영감적인 의례의 집행을 우아하게 해주는 장엄성과 동시에 경쾌한 마음이 함께 어울어져 진행되는 예식으로 되어간다. 인간의 궁극적 존엄성을 마련해 주고 그것을 떠받치는 충분한 조건은 단지 개별적 인간 그 자체도 아니며, 또한 라나의 집단 그 자체도 아니다. 그 조건은 바로 에식 집행 과정에서 한 몫을 하고 있는 인물들이나 행위들이나 대상물들을 신성스러운 것으로 보게끔 해주는 인간 삶의 예식적인 측면인 것이다. 공자는 개인을 (자기 완결적으로 고립된) 궁극적인 원자로 보지 않았고 또한 (자기 밖의 권위에 의해서 다만 피동적으로 움직이는) 동물이나 기계 조작의 유비를 통하여 인간 사회의 특성을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 사회를 (기독교적 관념에서처럼) 영생을 누릴 영혼을 가려낼 시험장이나 또는 개별적 인간들의 쾌락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고안된 사회 계약적 또는 공리주의적 산물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는 <논어>에서 사회와 개인을 (대립적인 두 개의 독립적인 범주로) 논의하지 않았다. 그가 논의한 것은 사람됨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였다. 공자는 사람이란 예에서 연원하며 그 바탕에 뿌리를 둔 (오직 인간에게만) 독특한 존엄성과 (스스로를 자율적, 능동적으로 규율하는) 힘을 가진 특별한 존재라고 보고 있다. 단지 태어나서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촉감적 만족을 즐기고 물리적 고통이나 불쾌감을 피한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동물들도 이런 짓은 다 한다. 문명됨이란 단순히 물리적, 생물적 또는 본능적이 아닌 (즉 자연 상태 이상의 고상한) 관계를 확보함을 말한다. 그것은 인간적인 제반 관계, 즉 본질적으로 상징적인, 전통과 인습에 의해 규정을 받으면서도 경외심과 의무감에 뿌리를 박고 있는 그런 제반 관계를 확립하는 일이다. <부모를 잘 먹이기만 하는 일은> <개나 말들까지도 다 할 줄 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부모를 그저 살아 있게끔 먹이는 일보다 훨씬더 선한 어떤 것이다. 적절하게 배치된 곳에서, 적절한 경의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적절한 방식으로 음식을 건네 주고 받으며 먹는 일은, (동물도 다하는) 단순한 음식물 섭취 행위를 인간만의 고유한 만찬 의식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회초리가 (무서워 그것에) 복종한다면 그런 사람은 가축들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 그러나 올바르게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충성을 하고, 그들에게 봉사함으로써 바로 인간 공동체 안에서 봉사하는 일을 (말하자면 결코 폭력이 무서워서 수동적으로 이끌려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과 본성이 우러나와서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하게 될 때, 인간은 진정으로 자기 공동체의 참된 성원이 되는 것이다. (예식에 등장되는) 사물들의 존엄성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존엄성이란 인간 개개인이 단순히 생물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있다기보다는 차라리 예식 자체에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은 자기의 생물적 존재, 즉 정신적 의미가 아닌 생물적 의미의


<생명>을 만약 <예식>이 그것을 요구할 경우 희생하는 사람을 우리가 이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희생의식(고삭)의 기본 요소인 양을 죽이는 일에 대한 그의 제자들의 의구심에 다음과 같이 대답함으로써, 공자는 간단 명료하게 이 점을 밝혔다. <너는 양을 아까워 하느냐? 나는 예를 사랑한다>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고 공자는 말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공동체 예식에 참여함으로써 변신하게 된다. 그렇게 변신하게 될 때까지 인간은 진정한 의미의 인간이 아니며 다만 인간으로 계발될-마치 갓 태어난 유아나 원시림의 늑대 소년 또는 <야만인>처럼-잠재성만 있는 것이다. 예식이 어떻게 야만인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사람으로 변환시키는가를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예식은 정당화된다. 그리고 무엇이 인간의 가장 좋은 상태인지를 한 번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자! 맛있는 음식이나 즐기는 단순한 동물적 생존이라기보다는 거룩한 예식을 누리는 삶이 인강의 최선의 삶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될 때, 최상의 삶(즉 예에 근거하는 삶)이 정당회되는 것이다. 어떤 입장에서 보든지간에, 우리는 인간의 뚜렷한 본성과 존엄성에 대한 우리의 비젼을 환히 밝혀 주고 심화시켜주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하나의 관점을 얻게 된다. 우리가 인간을 (원자들처럼 고립된) 개별적인 자아라기보다는 차라리 (주쥐 사람들과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 예식의 참여자로 보게 될 때, 제사 예식에 쓰이는 그릇처럼, 그 사람은 우리들 눈에 새롭고 신성한 아름다움을 지닌 존재로 보여지는 것이다. 이와같이 <논어>에서는 개별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신성스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은 결코 <사회>에 부역만 하는 단순한 도구로 생각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예식이 결코 참여자나 신성한 그릇, 제단, 주문들과 무관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일 수 없듯이 인간 사회 도한 하나의 자체 독립적인 단위일 수 없다. 사회란 서로를 사람답게 대접하는 사람들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사회란 서로의 인간 관계 유지에 요청되는 사랑과 진실과 경의의 마음에서 우러나와 진심으로 예에 규정된 의무들이나 특권들에 따라서 서로를 인간답게 대접하는 사람들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다양한 인간 관계의 형태들은 물리적으로 불가피하게 인간들에게 부여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배워서 익힌 뒤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예식들에 근거하고 있다. 예식들은 사람들 스스로가 옳다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식에 굴종하는 여하한 존재들이나 몸짓들이나 말들도 없는 것이며, 또한 예식이 그것들에 종속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를 극복하여 예에 돌아간다>는 뜻은 동물적 욕구나 부도덕한 격정에 더 이상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것은 결코 (예에의) <굴종>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승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의 주제는 (원자처럼 자기 완결적으로 고립된) <개인의 발견>이나 개인의 궁극적 중요성의 발견도 아니다.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맺고 있는 제반 연관 관계로부터 차단되고 추상화되어 버린) 단순한 개인이란 언제나 이렇게도 저렇게도 쓰여질 수 있으며 또한 언제라도 깨어질 수 있는 볼품 없는 그릇, 그러나 인생의 예식에 이바지할 때 비로소 찬란하고 신성스럽게 변모되는 그릇에 비유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이 결코 인간들이나 개개인들의 궁극적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단지 보다 큰 전체(즉 사회)에 봉사만 하는 개미처럼 무의미한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제사 예식 자체가 신성스럽기 때문에 제사 예식에 쓰이는 그릇의 신성스러움이 실제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신성스러움에의 참여 효과 또한 실제적으로 눈에 보인다고 하겠다. 그리고 인간의 거룩함(또는 신성스러움)이 들어 있는 방식이 기독교의 관점괴는 다른 것이다.


(기독교의 경우처럼) 인간은 신성, 즉 불멸하는 영혼의 한 <조각>을 다른 사람괴는 전혀 관계없이 오직 자기 자신 안에 절대로 확보하는 것만으로 결코 성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사는 ���른 사람들과 전혀 관련없는) 개인의 <완숙한 계발>이 핵심적 주제가 아니다. 그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올리는 예식 행위를 통한 인간다움의 완숙한 계발이 핵심적 주제이다 마치 사당에서 쓰이는 예기가 칼로 깎고 끌로 다듬고 옻칠로 광택을 내어서 만들어지듯이, 물론 개인도 자신을 계발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공자의 관점에서 볼 때, (예식에 쓸)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 (예식 수행의) 핵심이 아니듯이, 이러한 자기 계발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증하는) 핵심적인 일이 못 되는 것이다. 마련하거나 수련하는 일은 꼭 있어야만 할 일이다. 그러나 핵심은 예식을 올리는 일이다. 예식을 올리는 한에서 일체의 구성요소, 제반 관계들 그리고 각종 몸짓들은 비록 각각이 자기의 특성을 가질지라도 모두 신성스럽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예식에 쓰이는 인공물로 개조되지 못한 자연적 대상은 버려져야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거룩함의 옷이란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에까지도, 그리고 젊음과 노래뿐만 아니라 강물과 공기에까지도 드리워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예식에 맞는 기우제의 이미지를 통해서 보게 된다. 군자란 자아, 이기심, 고집, 자만을 거의 완벽하게 잘라 버리고 물질적 이익이 아니라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말한다. 그와 같은 사람은 인간으로서 완숙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는 성인이며, 신성스런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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