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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가면 살기 편한 캐나다 지은이:린다 윤 출판사:깊은 사랑 들어가는 이야기 체험담/피어슨 공항에서 보낸 하룻밤 어떤 부류의 사람이 이민와서 성공한 케이스인가? 이 같은 물음엔 각양 각색의 대답이 나올 수 있다. 결코 나는 성공했다고 사방팔방 떠돌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은 못된다. 하지만 부족한 이 글이 이민을 결정하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싶다. 1988 년 봄부터 나는 자주 이민병으로 끙끙 앓기 시작했다. 일이 자꾸 꼬 이고 모든 게 짜증스럽게 느껴질 때면 도대체 이런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 나기 위해서는 이민이나 가는 게 상책이라고 내 머릿속에는 온통 이민, 이 민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민병을 부른 건 그놈의 영어에 대한 한이었을 것이다. 외국인과 자주, 아니 매일 접하는 업무를 1986 년에 시작하고부터 '영어'는 나를 끔찍히도 괴롭혔다. 6 시에 일어나서 학원에 가 공부하는 등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 지만. 영어 회화는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니었다. 상사가 독일 사람인데 답답했을 것이다. 물론 나도 힘들었다. '나만 못하는 것도 아니잖아. 한두 명만 제외하고는 다들 더듬는데 뭐.' '나만큼 실적 많이 올린 사람 나와 보라고 그래. 또 간부로 일 잘한다고 인정도 받고 있잖아. 영어 좀 못한다 문제될게 뭐야?' 하며 위안을 삼고 나름대로 자긍심도 가져 보았다. 하지만 뉴욕대학 나온 부하 직원이 멋드 러지게 영어를 구사하며 외국 사람들을 접대하는 모습을 볼 때는 속이 쓰 렸다. '내 자식들은 꼭 유학 보내서 영어,불어 등 한 4 개 국어 정도는 능숙하 게 말할 수 있도록 만들겠어.' 가혹 이런 생각을 하고는 했다. 어느 날 한강 모래사장에서 시운전 중 운전기사의 부주의로 트럭이 넘어 졌다. 엔진이 깨지고 차창이 부서지는 등 차는 엉망이 되었다. 수리를 해 도 중고차 가격밖에는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운송 사업을 하시던 '미스터 조'라는 사람이 그 트럭을 구입해 주었다. 내게 이민병을 심어 준 그분과 첫대면인 셈이다. 한 달 후쯤 조씨가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해서 부 천 현장 근처 일식집에서 만났다. "지금 캐나다로 이민을 가려고 준비 중입니다. 답사를 갔다 왔는데, 캐나 다 인상이 하도 좋아 아주 이민을 결정해 버렸죠. 걱정은 좀 되지만 무척 설레요." 조씨는 들떠 있는 것 같았다. "캐나다를 갔다 왔다고요? 그렇게 좋습니까?" "예에, 한번 가보면 정말 살고 싶어지실 겝니다." 조씨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아내 에게 조씨 이야기를 했다. "우리 말야, 자식들 나중에 유학보낼 생각 말고, 아예 이민가는게 어때?" 난 정말 이민을 가고 싶어졌고, 아내도 선뜻 응낙했다. 이민 가기로 결정 한 후, 우리 가족 마음은 이미 캐나다에 가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이제 캐나다에서 살 거라네."


들떠서 아예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서류 심사가 끝나고, 1988 년 6 월 9 일(날짜도 잊지 않고 있다) 같이 신청했 던 사람들과 꿈에 그리던 캐나다 답사를 떠났다. 벤쿠버 상공에서 내려다 본 경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하나를 좋게 보면 모든게 좋게 보인다. 캐나다가 그랬다. 유독 우리 부부 에게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몬트리올로 와서 구경하고 변호사와 인터 뷰 중이었다. 문득 오늘이 결혼 10 주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리고 보니 오늘이 저희 결혼 10 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통역하는 사람한테 말했더니, 금세 변호사와 직원들 모두가 박수치고 축하한다고 한 마디씩 했다. 이는 깊은 인상으로 남았고, 나중에 이민 조건(Condition)이 없는 비자를 받게 된 직접적인 동기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프랑스 퀘벡은 화려하다 못해 황홀한 도시였다. 다른 일행들보다 이틀 먼저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 부부는 단독으로 토론토로 왔다. 나이아 가라 폭포를 빨리 보고 싶어 서둘렀다. 도착해서 바라보니 감동! 마음속으 로 하루라도 빨리 이민오자고 결심했다. 그러던 중 배를 타고 폭포 밑까지 들어가니 옆에 외국사람들도 탄성을 질러 댔다. 폭포 소리가 아무리 커도 아내가 "여보, 나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정말 고마워요. 당신 때문에 이런 행복도 맛보네요."하고 감탄을 하니까 흐뭇했다. 슬며시 아내의 손을 내 쪽으로 끌어다 잡아 주었다. 한국으로 돌아 왔을 때, 주변 사람들은 하나 같이, "경치가 밥 먹여 주 냐?"고 빈정거렸다. 또 한편으로는, "뭐가 부족해서 이민을 가려고 하는 거냐?"며 말렸다. "내가 좀 고생을 하더라도 내 자식들은 어릴 때부터 영어, 불어를 배우게 할 겁니다. 그래서 훗날 한국에 꼭 필요한 인재로 키우겠어요." 난 무슨 큰 포부나 밝히고 있는 것처럼 당당하게 말했다. 드디어 1989 년 12 월 1 일, 가족, 친지들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캐 나다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내는 뉴욕 제과를 8 년 한 경험이 있고 난 상장 기업에서 10 년 넘도록 근무한 경험이 있었다. 아무리 딴 나라지만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 싶었지 만 막상 비행기 속에 않아 있으니 불안하고 초조했다. 기내식을 먹는 둥 마는 둥했다. 과연 경치만 먹고 환경만 믿고 캐나다에서 살 수 있을까 하 는 고민은 나만 하는 것 같았다. 지혜는 초등학교 2 학년, 영민이는 4 학년 두려울 만한 나이인데도 비행기 타고 캐나다 간다고 웃고 떠들며 좋아했 다. 일가 친척, 친구 하나 없는 밴쿠버 공항에 도착해서 이민 가방 8 개를 서 로 끌어안고 세관 수속을 마쳤다. 다시 토론토로 4 시간 비행 후 피어슨 공 항에 도착해 보니 밤 12 시 30 분이었다. 지치기도 했지만 마중 나온 사람 하나 없고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했다. "마중 나올 사람이라도 만들어 둘 걸 그랬구만." "당신한테 이민을 들게 만든 미스터 조는 어디에 산대요?" "몬트리올에 정착했다고 하더만... " 아이들은 피곤했던지 그 새 공항 의자에서 잠들어 있었다. 새벽 4 시까지 공항 내에서 휴식을 취한 후, 호텔을 잡아 보려고 할 때 한국 사람을 만났 다. 그분은 경찰 복장이었다. 그분의 도움으로 그분 친구의 지하실 방에서


일 주일 신세를 지면서 이민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후 나는 여유가 좀 있거나 잠이 안 오면 공항에 나가는 버릇이 생겼다. 나처럼 공항에 막 내린 이민자들이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지나칠 수 가 없다. 그래서 우리 집으로 모셔 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짜증을 낸다. "우리 집이 무슨 난민 수용소예요?" "아, 우리도 예전에 도움을 받았지 않아." 하면 아내는 입만 삐죽거리고 만다. 우리는 12 월부터 3 월까지 추운 겨울을 집주인 배려로 그 집 지하실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투자 이민이 별다르냐고 다짐하며 매일 신문을 뒤적였다. 허구한날 신문만 뒤적이고 있으면 돈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차 라리 사업을 하기 전에 적응하자. 일을 배우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10 시간씩 청소, 계산원, 닥치는 대로 일을 배우면서 3 개월을 보냈다. 3 월 초 내게 행운이 찾아들었다. 복권(6.49 로트)을 2 달러 주고 샀는데, 5 천달 러에 척 당첨이 된 것이다. 그 돈으로 한국행을 결정했다. 한국에서 한달 동안 지냈는데, 캐나다가 다시 그리워졌다. "아무래도 캐나다에서 살아야 될 팔잔가 보다. 우리 다시 캐나다 가서 잘 해 보자." 다시 캐나다로 와서 우서 짐부터 옮겼다. 그리고 백화점( Mall)내 과일 야채 가게를 30 만불에 샀다. 수리비로 3 만 불을 들여 깨끗하고 멋있게 꾸 미고 드디어 개장을 했다. 첫날 매상이 300 만 원이었다. 캐나다 돈이 다 내 것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경험부족으로 6 개월 사이에 6 만 불 적자를 보자, 기가 막히고 불안해졌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신선한 벌레를 먹는다. 좀더 부지런할 필요가 있었 다. 새벽 3 시에 일어나서 5 톤 트럭을 끌고 가락시장 같은 1 시간 거리의 시 장으로 가서 신선한 과일, 야채를 구입했다. 이태리 세일즈맨은 한국 사람 과 성격이 비슷하다. 보통 구매자가 10 달러에 2-5 상자를 구입하면 나는 6 - 6.5 달러에 100 상자를 구입했다. 신선하고 싸게, 박리다매로 가게를 살렸 다. 그 상태로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 동안 어려운 일도 많았다. 하 지만 누군들 이 고생 없이 타국에서 정착할 수 있겠는가. 여기 사람들은 체면이나 가식 없이 솔직하고 진솔하게 대한다. 외국 손님들이 가족처럼 매일 방문하는 재미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 사람, 일 본 사람, 폴란드, 필리핀, 캐나다, 이태리 검은 사람 등의 인사말을 배워 살갑게 구니 장사는 그만이었다. 니 호마, 오 하이오, 야세마쓰, 코무스타 가, 하우 아유, 쿰바리 등 간단한 여러 나라 말을 사용하니까 친구도 많이 생겼다. 이것이 내 나름의 삶에 대한 적응방식이 아닌가 싶다. 자식 때문에 이민왔다 하고 장사만 하면 언제 교육다운 교육을 시키겠는 가? 한국에서는 매일 회사 일로 술마시고, 온 동네 떠나갈 듯 고래고래 소 리를 질러 대기는 예사였다. 날이 다 밝아서야 대문 걷어차고 들어와서는 도둑이 큰소리친다고 마누라한테 화내고 자는 애들 깨워서 앉혀 놓고, "공 부 잘 해야 하는 거야, 이 아빠처럼 만날 술이나 마시면서 이래 살고 싶지 않거들랑. 그래, 그래, 공불 해야 해." 하고 소리를 질러대고는 쇼파에 꼬 구라져 자다 떨어지던 기억밖에 없다. 그러던 아빠가 이제는 아이들 생각 해서 학교 옮길 수 없다고 가게 거리가 고속도로 1 시간이나 걸리는데도 이


사하지 않고 7 년간을 출퇴근하고 있다. 그리고 저녁 7 시면 어김없이 퇴근 해서는 아이들을 보듬고 뒹굴며 운동도 함께 하면서 놀아 주었다. 토요일, 일요일은 낚시를 가거나 캠핑을 갔다. 그랬더니 지금은 다 큰 아이들이 그런다. "아빠가 술도 안 마시고 우리랑 놀아 준 게 정말 이해가 안 된단 말이야." 캐나다 아이들이 바보인지 내 아이들은 매년 우등상을 타 왔다. 아들 졸업 때도 그랬지만, 지혜 졸업 때에는 화장실에 가서 울었다. 전교 1 등으로 받 은 금메달에다, 특별상으로 트로피를 받는 지혜를 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지혜야! 장하다. 정말 장해. 니가 효녀구나. 돈이 무슨 소용이냐, 내 아 이들이 보배다."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그 많은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게 기쁜 날은 처음이었다. 큰 아이는 내년에 대학생, 작은아이는 11 학년이 된다. 아들은 비행기 디 자인을 할 것이고 딸은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꿈이라서 특별 활동으로 연 극을 하고 있다. 연기를 제법 한다. 기회가 주어지면 미인 대회에도 참가 시킬까 생각 중이다. 물론 현재까지 공부 잘 하고, 착하며 하루에 책 한 권은 독파한다. 이민오면 무조건 도서관에서 1 주일에 7 권을 빌려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영어에 문제는 없을 것이다. 영어에 대한 맺힌 한은 풀었다. 아이들은 한국말도 물론 잘 한다. 장모 님이 잘 키워주고 본인들 스스로도 아빠, 엄마 고생한다고 노력했던 결과 라고 생각한다. 토론토 내에 내 자식보다 월등한 아이들이 많이 있다는 것 을 말해야겠다. 어디 내 자식만 잘났겠는가. 세계가 불황이고 캐나다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복지 제도가 잘 되어 있어 사업하다 실패해도 살 수 있는 나라다. 돈만 번다고 하면 이곳 생활 은 재미없을 것이다. 저녁에는 가족이 함께 모여 즐겁고 단란하게 지내고, 연어, 송어 등을 잡으며 자연을 맘껏 누릴 수 있는 나라다. 고생하기는 한 국에서나 마찬가지지만 사는 재미가 있다. 이민 오려거든 한 살이라도 젊 었을 때 결정하는 것이 좋다. 어제 신문(삶의 현장)에서 월남전에 참전했 다가 캐나다로 바로 이민온 "나는 영원한 GM 맨" 전기 기사 김치국 씨의 기 사를 보고 감동했다. 학교에서 배운 전공 분야를 살려, 가급적이면 한 직 장에서 한평생을 보낸 사람을 추천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사였 다. 올해 회갑인 그는 74 년 입사 교민 중 최장기 근속하고 있으며,평균 임 금이 일주일 단위로 150 만원, 한달에 600 만원이다. 큰딸은 작년에 박사학 위를 땄고 둘째는 교수 수업을 받고 있으며, 셋째는 경영학을 공부 중이 다. 캐나다에서 이민 생활의 거의 전부를 GM 에서 보낸 김치국씨는 남은 5 년을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특히 명예롭게 퇴진하신 분들은 여기서도 전공을 살려 제 2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짧게나마 김치국 씨를 소개한다. 키 170 센티미터, 84Kg, 남산만한 배, 두부살, 필리핀 사람 같은 나는 여기에서 열심히 운동 하고 일해서 지금은 근육살, 체중 74kg 으로 날씬해졌다. 영어도 잘 못 하 고, 글도 잘 못 쓰지만 자신감 하나만은 내 모든 재산이다. 기회가 주어지 면 이민 생활 동안 조심하고 해결해야 할 것에 대해서 전해 드리겠다. 좁 은 땅에서 큰 땅으로 오는 것도 애국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항상 캐나 다 땅을 한국 땅에다 붙이고 싶은 마음이다.


'떠나기'가 아닌 '옮겨 가기' 떠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는 곳을 옮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늘 같은 하늘, 같은 땅에서 북적대며 사 는 것보다는 낯설고 물선 땅, 미지의 세계를 찾아 비교적 먼 곳으로 이사 가는 사람이 부적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민'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데에는 몇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먼저 가장 큰 요인은 이민에 대한 기존 관념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과거 70 년대, 80 년대 이민이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 나의 방편, 또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겨져 왔다면 오늘날의 이민은 이러 한 차원을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과거의 이민은 마치 황금의 땅을 찾아 나서는 것과 같이 막연한 부 (富)를 좇아 먼길을 떠나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이민은 그 척도를 '삶의 질'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과거 낯선 땅으로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은 매우 비장한 결심을 하거나, 엄청난 용기와 결단이 필요 했고, 이 때문에 이민은 '쉽게'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 매우 각별한 것 쯤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오늘날 매우 달라지고 있다. 산업화가 어느 정도 큰 진전을 이루고 국민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오늘날 이민은 더 이상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다. 더욱이 한국 땅에서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이민을 떠나는 결심을 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 들에게 이민은 기존 이민과는 그 목적 자체가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버렸 다. 그들에게 있어 이민은 더 쾌적하고 안정된 삶을 누리려는 주요한 방 법일 뿐 부를 축적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 사회의 복잡하고 치열한 상황을 벗어나 더 사회적 스트레스가 적은 곳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민의 주요 대상국가도 상당히 달라지고 있는 추세다. 미국이 한국인들의 주된 이민지였던 시절은 이미 지나버렸으며, 캐나다나 뉴질랜드 등. 환경과 자연을 중요하게 여기는 추세가 강하게 드 러나고 있다. 이른바 '환경형 이민'이 새롭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 다. 이민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이 크게 없어진 데에는 갖가지 정보가 풍 부해지고 더 치열한 사전 준비를 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뒷받침 되어있 기 때문일 것이다. 이민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복잡하고 까다로운 이민 수 속을 철저히 뒷받침 해주는 관련 업무 대행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시간을 따로 내서 이민을 가고자 하는 현지를 사전에 돌아보는 기회를 만 들 수 있다. 인터넷 등의 정보 통신망을 이용해 현지에 사전에 일자리를 장만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주택을 임대하거나 하는 등의 일도 손쉽 게 할 수 있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은 과거 이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민에 관한 공연한 두려움이 점차 사라지 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은 곧 이에 비례해 이민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 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데에는 최근 우리 나라를 뒤덮고


있는 경제위기 국면과도 적잖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98 년 한 해 동안만 실직자들이 2 백만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경제적 위기는 상당수의 재력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 럽게 해외로 눈을 돌리게 하는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평생 직장이라고 일컬었던 공직 사회에서 조기 퇴직한 사람들이나 오랜 기간 군에 종사했던 사람, 기업체의 중견 간부로 일해 왔던 사람 등, 나름대로 경력과 재력을 함께 갖추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로 엄청난 정 신적 충격을 가져오는 일일 수밖에 없다. 이들의 경우 한층 사회적 스트레 스가 덜하고, 안정된 생활 환경이 보장되는 곳으로 훌쩍 떠나는 것이 국내 에서 새롭게 일자리를 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최근 이러한 사람들이 이민과 관련해 문의를 해오는 경우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이민에 대한 부담감이 크게 완화된 데에는 항공 교 통수단의 발달과 함께 비용도 크게 싸졌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항 공 기술의 발달은 이제 지구촌 곳곳을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어 냈고,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나라와 나라 사이를 오가는 것을 가능토록 했다.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는 항공편도 매 우 빈번해진데다가 노선도 다양해져서, 원하는 시간에 두 나라 사이를 원 활하게 오가는 일이 이제는 전혀 부담스러운 일이 못 된다. 과거 '한번 떠 나면 언제나 다시 돌아오려나'하는 부담감에 공항에서 펑펑 눈물 흘리던 시절은 이제 완전히 지나가 버린 것이다. 최근의 이민 추세가 이렇게 바뀜에 따라, 이민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하고 엄청난 일이 아니라는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특히 세계가 마치 한 울타 리 이웃처럼 가까워진 상황에서 비록 국가를 달리해 이주를 할지라도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민과 관련해 문의해 오는 사람들에게 늘 말하듯 이민은 그저 조금 더 먼 곳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것뿐이다. 세 상 어디든 사람 사는 모습은 대개 다 그렇고 그런 터이며, 오늘 우리가 사 는 곳의 환경이 자신에게 잘 맞지 않으면 새로운 환경을 찾아가는 것이 사 람들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자신이 떠나고자 하는 곳이 정보를 원 하는 만큼, 필요한 대로 얻을 수 있는 요즘 세상에서 이민은 그다지 두려 운 일이 못 된다. 그저 새로운 세계에서 만나고 마주치게 될 새로운 이웃 들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설레임과 함께 기꺼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열린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따름이다. 사람들이 다투어 캐나다로 가는 이유 한국 땅을 떠나 다소 먼 곳으로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의 발길은 최근 부 쩍 캐나다로 향하고 있다. 과거 미국이 이민 대상국 1 위였던 시절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다. 미국에서 황금을 좇아 '코리안 드림'을 꿈꾸던 사람 들의 세대는 갔으며,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캐나다에서 새로운 '코리안 드림'을 일궈 내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에 한국인들이 진출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지난 1962 년 첫 진출이 이뤄진 후 35 년 남짓한 세월이 흘렀을 뿐이다. 그 짧은 기간에 캐나다는 한인들로부터 가장 각광 받는 신대륙이 된 것이다. 1962 년 이래 1995 년 말까지 공식 이주자 수는 48,965 명으로 집 계되고 있다. 물론 비공식적으로 정착한 사람의 수도 적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1998 년 현재 새롭게 캐나다를 이민지로 택해 이민 수속을 밟고 있 는 사람들만 해도 수천 명을 헤아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바야흐로 캐나 다는 최근 들어 가장 많은 한국인들이 찾고 있는 신대륙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최근 들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캐나다로 몰려드는 것일 까? 캐나다에서 오랜 기간 거주하면서 만난 한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 캐나다를 한결같이 "천상에서 한 가지가 부족한 999 당"이라고 부르고 있다. 누구나 자신들이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해 약간의 불만스러운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이 보통인데도 이들은 캐나다를 일컬어 '999 당'이라고 부르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부르는 '999 당'에서 새로운 삶 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미 상식처럼 되어 버렸지만, 많은 한국인들이 캐나다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아름다운 땅에서 마음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염원 때문일 것이 다. 실제 캐나다는 사람들의 그러한 바람을 거의 모자람 없이 충족시켜 주 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경쟁 없이 살 수 없는 한국의 도시 생활이 주는 스트레스 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캐나다로 돌리게 하는 주된 동기가 되는 셈이다. 실 제로 캐나다는 캐나다를 찾아 이주해 오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말끔히 잊 게 해 주고 있다. 게다가 천해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으로 도시인들의 영혼 의 피신처 노릇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아울러 캐나다는 혜택받은 자연 못 지 않게 완벽에 가까운 교육환경 및 사회 보장제도로 생활에 지친 사람들 의 발길을 끌고 있다. 이 밖에도 건강을 택해 캐나다로 이주해 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격심 한 사회적 스트레스로 건강을 앓게 된 이들이 사회적 스트레스가 거의 없 는 땅을 찾은 끝에 캐나다로 날아오는 것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는 건강에 대한 각별한 관심 끝에 캐나다 이주를 택하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 사회의 공평성에 매료된 한국인도 있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부 정과 부패가 상대적으로 덜한 사회는 확실히 마음의 평안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비록 구두 수선이나 빨래방을 하고 있지만 스트레스 안 받고 일 한 만큼 얻으며, 마음이 평온하면 그뿐이라는 것이 요즘 캐나다를 찾는 한 인 이주자들의 말이디. 자녀들이 좋은 환경 속에서 교육받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느낀다고 말하는 한인들도 많다. 캐나다가 부쩍 한국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 것은 불과 7,8 년 전인 1990 년 대 이후부터다. 1990 년 이후 많은 한인들이 이러저러한 다양한 이유로 환 경형 이민을 자처하며 태평양을 건너 캐나다로 향했다. 5 만여 명이 옮겨 온 토론토를 비롯, 밴쿠버(2 만 5 천 명),몬트리올(2 천명)이 한인들이 즐겨 찾는 도시들이다. 이 밖에도 오타와(5 백 명)나 캘거리(4 천 명), 핼리팩스 (5 백 명)에도 한인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토막상식/중년 이상은 '아이를 위해'. 젊은 부부는 '우리를 위해' 한국 경제가 크게 나빠지기 시작한 지난 1997 년 이후 이민에 대한 사람 들의 관심은 크게 높아졌다. 특히 캐나다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나 것으 로 보인다. 물론 환율이 크게 오른 1997 년 말부터는 이민을 가고 싶어도 선뜻 추진하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이민 희망자 수는 예전에 비해 크게 늘


어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민을 희망해 상담해오는 사람들을 보면 독 특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이민 동기가 세대에 따라 적지 않은 편 차를 보인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년 이상 가장들의 이민 동기 는 자신들보다는 자녀들을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젊은 부부들의 경우 는 아이들보다는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이민을 결심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는 것이다. 이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자녀로 둔 중년 이상 부모들의 경우 한국의 교육 환경에 대한 문제 의식이 대단히 높으며, 결국 아이들을 공부로부터 해방시키고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들이 갖고 있는 소 질과 재능을 맘껏 발휘할 기회를 갖기 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장들은 대부분 캐나다의 교육환경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 분이며, '순전히 아이들 때문에 이민 간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한다. 캐 나다의 교육환경이 이들의 바람을 충분히 충족시켜줄 것이라는 믿음도 갖 고 있다. 반면 아직 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이 없는 비교적 젊은 층의 가장 들은 자신들의 불안한 미래에 대한 대안 모색으로 이민을 결심한 경우가 많다. 불안정한 직장 생활을 하루하루 견뎌 나가기보다는 아예 이민을 결 행해 획기적인 삶의 전기를 마련 해보자는 모험심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 다. 하지만 이민이라는 것이 가족 구성원 가운데 특별히 누구를 위해 가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환경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며, 좋은 일이든 나쁜 일 이든 이것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몫이기 때문이다. 캐나다를 선택한 당신은 행운아 "캐나다를 선택한 당신은 행운아다." 캐나다를 방문해 본 사람이면 누구라도 이런 말을 하며, 누가 이런 말을 할지라도 거침없이 동의한다. 일단 한번 캐나다를 여행하거나 살다 온 사 람들은 한결같이 캐나다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잠시 동안 방문했던 사 람이라면 언제고 기회만 주어지면 다시 또 방문할 기회를 갖기 위해 노력 한다. 실제로 이런 상황은 거리에서도 흔히 목격된다. 한국 사회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 여행을 다녀왔지만 캐나다를 방문했던 사람들의 모습은 유 별난 구석이 있다. 자신이 캐나다에 다녀왔음을 유별나게 드러내 보고 싶 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캐나다 국기인 '메이플 리프 프래그(Maple Leaf flag)'를 볼 수 있다. 예의 그 빨간색이 선명한 캐나다 국기를 차 뒷 편 유리창에 붙여 두고는 자신이 캐나다에 다 녀왔음을 과시하는 것이다. 여행객 수로 따지자면 미국이나 일본 등을 다녀온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을 법한데도 불구하고 캐나다에 다녀온 사람들은 이처럼 한결같이 캐나 다 홍보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그러한 모습이 보는 관 점에 따라서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렇게 까지 티를 내는 데 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즉 자신이 다녀온 캐나다라 는 나라가 너무나도 인상적이고,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 된다. 그래서 그들은 다녀온 캐나다를 못내 잊지 못하고, 스티커라도 차량 에 붙여두고 그때 그 추억을 곱씹어 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때 캐나다 에서 생활했던 모 신문사 기자는 자신이 쓴 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캐나


다를 극찬하고 있다. "내가 살아 본 토론토를 보자. 나는 서울의 종로 4-5 가쯤에 해당하는 영 스트리트선상의 컬리지 전철역 위에 살았는데 지금도 도시 생활의 즐거움 을 잊지 못한다. 나는 수없이 눈물겹도록 행복함을 느꼈다. 쾌적함, 편리 함, 도시 문화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토론 토 시내에 살아 볼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다. 나는 또 캐나다의 자연 속에 뛰어들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광활함, 그 태고의 신비, 그 장엄함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뇌리에 박힌다. 캐나다의 단풍잎 국기처럼 캐나 다의 자연은 선명하고 인상적이다." 캐나다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객관적 자료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인간 자원 정보, 자문 및 훈련문제를 다루는 기업 자원 그룹(CGR)은 정 치 및 경제 안정, 범죄, 공해, 보건, 환경 lac 교육 등 42 개 요인을 기준 으로 전세계 161 개 주요 도시의 '삶의 질'을 분석한 1996 년도 자료에서 세 계에서 생활하기에 가장 좋은 최상의 도시로 캐나다 서부의 밴쿠버를 꼽았 다. 그 다음으로는 역시 캐나다의 토론토가 차지했으며. 스위스의 취리히와 제네바.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순으로 평가했다. 밴쿠버와 토론토는 사회적 안정, 우수한 산업 기반 및 훌륭한 레저 시설 등으로 높은 평점을 받았다 고 이 보고서는 밝혔다. 비단 이 보고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유엔 산하 기구인 UNDP 가 세계 74 개국의 평균수명, 교육수준, 구매력 기 준 국민 소득 등에 관한 통계를 바탕으로 국가별 인간 개발 지수(HDI)를 산정한 결과 , 캐나다는 1996 년에 이어 1997 년에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점수를 얻어 '삶의 질'에 관한 한 가장 앞선 것을 입증해 보였다. 캐 나다가 UNDP 의 조사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꼽히기는 이번을 포함, 지 난 10 년 사이에만 모두 4 차례이다. 교민들이 바라보는 캐나다 사회 그렇다면 캐나다에 이민온 한인들은 실제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전반적으로 상당히 만족해하는 수준이다. 물론 살아 가는 방식이나 하는 일 등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민에 대한 관점과 만족도 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크게 불만을 갖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인 이주민들이 이민의 장점으로 들고 있는 것은 일단 살 만하다는 점 이���. 자연 환경도 매우 깨끗하고 아름다워 사람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 주고 있으며, 사회 복지 수준이나 교육환경 등 어느 면에서건 큰불만을 느 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드넓고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닮아서인지 사람들은 이민족을 대하면서도 한결같이 친절해 사회적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도 한결 같다. 전직 의사인 밴쿠버의 장아무개 씨는 "극심한 경제 생활에 지친 한국인 에게 천국이나 다름없다."고 극찬하면서 "노후를 편안하게 즐기려는 사람 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적극 개발해 내는 교육제도 역시 교민들이 대단히 매력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 다. 맘껏 뛰놀면서도 자기가 갖고 있는 장점과 기능을 적극 개발해낼 수 있기에 특히 아이들은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대단히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 특히 자녀들의 교육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한국 사람들이 캐나


다에 와서는 이러한 문제로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만족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밖에도 캐나다로 이주해 온 교민들이 한결같이 놀라워하는 영역은 무 궁무진하다. 철저히 지켜지는 교통질서,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과 보호정 신, 극히 낮은 수준의 범죄율 등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긍정적인 면들 이 자신들의 선택이 결코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는 것 이다. 특히 이민 초기 겪게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이웃 주민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해결한 사람일수록 만족도는 훨씬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대 부분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는 캐나다인들은 인종에 대한 차별적 감정 이 거의 없으며, 새로 이주해 온 이웃에게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발 벗고 나서 도와주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사업에 실패하고 캐나다로 이주해 간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어음 없는 세상'이라는 점도 매력적인 측면으로 종종 손꼽히고 있다. 지난 1996 년에 58 세 나이로 밴쿠버로 이주해 간 김아무개씨는 그런 측면 에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김씨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너무 많은 어음을 받았다가 어음이 부도난 바람에 졸지에 사업이 무너져 결국은 이민 을 택한 경우이다. 어음에 대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든지 "캐나다에서는 어음이 없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고 말할 정도다. 김씨는 자그마한 모텔 하나를 인수해 운영하면서 그런대 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현지의 교민들은 캐나다로 이주해 오기를 희 망하는 한국인들을 향해 "절대로 큰돈을 벌 생각을 말 것"을 당부한다. 아 울러 '한국에서와 같은 생활을 기대하지 말 것'도 덧붙인다. 조그마한 것 에도 만족을 느낄 줄 알고, 스스로 대자연과 아름다운 환경을 즐기는 자세 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캐나다에 와서까지 큰돈을 벌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모습은 결코 캐나다와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며,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캐나다가 아닌 다른 곳에 훨씬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것은 캐나다 이주가 이민자 모두에게 행복을 가 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대기업의 중역이었던 몬트리올 의 한 교민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갖고 있던 것보다 많은 것을 잃었다. 이 곳에서는 알아주 는 사람도 없고, 한국에서처럼 품위와 명예를 지키고 있지도 못하고 있 다." 한국 대기업의 중역이라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리에서 누리던 명예와 권위를 더 이상 누리지 못 하는 데다, 자영업을 하기 때문에 육체 노동까 지 감수해야 하는 캐나다의 생활이 그다지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이야 기다. 하지만 그 역시 "자녀들만큼은 된 사람으로 키웠고, 그래서 자녀들을 통 해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다."고 털어놓고 있다. 이처럼 이민 1 세들은 한국보다는 뭔가 손해 보는 측면도 있다고 보는 사 람도 있다. 언어 장벽도 이들의 심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러는 고 독한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이들은 자신들의 자 녀들, 즉 이민 1.5 세대나 2 세대들이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으로 대


리만족을 하는 실정이다. 이민사례/캐나다는 천국에서 1 센티 모자라는 곳 고동광씨(49)는 10 년 전 캐나다에 이민을 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심 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고씨는 생활의 돌파구를 이민을 통해서 마련해 보고 자 했다.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 10 년전 캐나다로 이주해 온 고씨는 지금의 생활에 대해 상당히 만족해하는 편이다. 현재 고씨 부인과 함께 BC 주의 수 도 빅토리아에서 살고 있다. 그가 한국에서 경험했던 생활과 떠나올 당시의 한국 생활을 종합적으로 따져 볼 때 고씨의 캐나다 생활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그의 자랑이다. 무엇보다 이른바 '삶의 질'이 확연히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캐나다에 도착한지 얼마 안 돼 운전 면허 시험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불합격했지요. 많이 틀린 것은 아니고 몇 문제가 틀렸던 것이지요. 그런데 제가 놀란 것은 시험 관계자가 내가 왜 떨어졌는지, 어떤 문제가 왜 틀렸 는지 열심히 설명해주는 겁니다. 운전면허 준비용 소책자에 내가 다시 주 의 깊게 읽어야 할 곳을 표시해 주고, 조금 더 공부해서 다시 시험보라고 격려해 주더군요. 사실 이러한 분위기는 한국에서는 좀처럼 바라기 힘든 것이어서 얼마나 큰 힘과 도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물론 그 일은 이후 제가 캐나다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확고하게 갖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 었습니다." 고씨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밴쿠버에서 옆 섬도시인 빅토리아시에 대 해 대단히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거침없이 "천국에 서 1 센티 모자라는 곳"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만치 자연 풍경이 아름답고, 날씨가 좋아 주거 생활 환경이 더 없이 쾌적 한 것이다. 당초 고씨는 캐나다에 정착하면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는 다는 R 서이 고씨의 고백이다. 살다보니 사는 곳에 정이 듬뿍 들어 버렸고, 다시 또 복잡하고 어지러운 도시의 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고씨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지금처럼 잘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노후 대책이나 주거 환경은 이 곳 캐나다가 한국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 지요." 이민사례/돈 벌려는 욕심 없으면 괜찮은 곳 "인종 차별 없고 환경 좋아 만족! 돈 벌려는 욕심 없으면 괜찮은 곳" 밴쿠버에서 사는 차종환씨는 자신 있게 "이민을 오려면 캐나다를 택하라" 고 말한다. 그의 확신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미국, 아르헨티나, 캐나다... 15 년 동안 세 차례나 국적을 바꾼 '코스모폴리탄'인 차씨는 이 렇게 3 개국을 돌며 모두 실아 보았기 때문에 캐나다가 지닌 장점을 확연히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81 년 그는 국내에서 하던 섬유수출업을 정리하고 LA 로 이민을 떠났다.


가축사료 등 곡물을 취급하는 '리아트라스마'라는 회사를 운영하던 중, 1988 년에 아르헨티나 대통령 메넴의 초청을 받은 차씨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로 짐을 꾸렸다. 그 곳에서 차씨는 섬유업에 손대 다시 큰돈을 벌었다. 괜 찮은 수입을 단념하고 1993 년 11 월 밴쿠버 게스타운(GAS TOWN)인근에 45 만 달러를 들여 포켓볼을 할 수 있는 시설과 스탠드식 주점을 차렸다. 이 곳 에서 라이브 쇼도 한다. 캐나다 정부는 술을 파는 일에 대해 규제가 심하 다. 차씨가 얻은 자격증은 밴쿠버시가 허가한 8 개 중의 하나, 그러나 곳곳 을 옮겨다녀 본 경험 덕에 차씨는 현지 공무원에게 접근할 수 있는 '루트' 를 알고 있었다. 차씨는 자신이 살아 본 3 개국을 이렇게 비교했다. 먼저 미국, "자유롭고 의외로 인종 차별도 심하지 않다.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많 다. 그러나 불안하다." 두 번째 아르헨티나, "자녀교육에 문제가 많다. 정국 상황도 유동적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인상은 매우 후한 편이다." 이 같은 설명과 함께 차씨는 캐나다를 "인종 차별도 없고 편안하면서, 사람도 순수한 편이며 환경도 좋다."고 평가하며, "다시는 옮기지 않을 계 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돈을 벌려면 캐나다로 와선 안 된다"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소득 높고 교육/복지제도 좋아 - 욕심없이 즐기며 살기에 적합 1979 년 몬트리올로 건너온 유동진 씨(34)는 청과상으로 자수 성가한 케 이스. 냉동창고가 포함된 2 백여 평 규모의 청과상 '영 브라더스'를 운영하 고 있는 유씨의 일과는 17 년째 매일 새벽 3 시에 시작되어 오후 8 시에 끝난 다. 매일 매일 들어오는 과일의 신선도를 유지하느라 보통 신경이 쓰이는 것 은 아니지만, 자기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만족스럽다고 말 한다. 현재와 같은 상태라면 2 년 정도 지나면 익숙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 면 큰 신경 쓰지 않아도 원만히 굴러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무엇보다 유씨가 만족스러워하고 있는 것은 자녀 교육 문제. "아이들 교육은 이 곳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봅니다. 시내 곳곳에 아이스 링크가 있어 각종 운동을 즐길 수 있고 교육비도 싸게 먹히기 때문이지요" 유씨의 자랑은 주로 아이들의 교육 문제로 모아진다. 유씨가 살고 있는 퀘벡 주는 프랑스의 영향이 강하게 베어있는 곳이다. 다소 세금이 많은 것 이 흠이라면 흠일 수 있지만 이에 비례해 복지 정책은 매우 훌륭하기 때문 에 큰 불만은 없다고 한다. 아울러 술 소비량도 다른 주에 비해 높고, 시 민들은 한 번 사귀어 놓으면 오래가는 특성이 한국인과 비슷하다고 말한 다. 몬트리올의 물가 역시 캐나다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필수품은 한국 보다 싼 경우도 많아 저렴한 편이지만 일상 생활에 꼭 필요치 않은 기호품 들의 경우는 대부분 비싸다.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떠나라


과거 이민은 '황금'을 찾아 먼 곳으로 떠나는 의식과 같은 것이었다. 한 국 경제가 크게 어려웠던 시절 국내에서 먹고사는 방편이 좀처럼 구해지지 않던 시절 '잘 사는 다른 나라'는 꿈의 땅이었고, 기회만 주어지면 떠나고 싶은 동경의 땅이었다. 한때 봇물처럼 몰려들었던 미국 이민 역시 이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곧 '부'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고 미국 땅으로 이민을 떠나는 사람 들은 저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달라지기 시작했다. 황금을 찾아 다른 나라 땅을 찾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 다. 그 대신 더 쾌적한 환경에서 안락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추구하는 경향 이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일상적인 도시 생활이 주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나날이 높아짐 에 따라 이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캐나다는 이러한 사람들의 바람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나라로 새롭게 각 광받기 시작했고, 90 년 이후 캐나다로 향하는 이민자들의 발길이 크게 잦 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저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목적인 사람은 캐나다를 선택할 필 요가 없다는 것이 필자뿐 아니라 캐나다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캐나다에서도 물론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지만 캐 나다 생활의 매력은 또 다른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캐나다는 땅이 엄청나게 넓다. 자그마치 남한의 1 백 배가 넘는다. 이처럼 드넓은 땅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불과 2 천 9 백만 명 정 도, 3 천만 명이 안 된다. 일단 인구가 이렇게 작다는 것은 경제적인 관점 에서 본다면 유리한 측면이 못 된다. 내수시장이 적어 대량 소비가 일어나 지 않고, 따라서 산업이 크게 번창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캐나다라고 해서 막대한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아니 다. 한국 교민들 가운데도 적잖은 부를 축적한 사람이 있다. 이민 1 세는 여건이 어려워 힘들었지만 이민 2 세 가운데는 캐나다 내수 시장뿐 아니라 인근 미국과 세계 여러 나라를 상대로 적극적인 비즈니스를 전개해 상당한 재력을 쌓은 사람들도 많다. 특히 이민의 역사가 1 백년이 넘는 중국계 교 민들의 경우는 상당한 재력을 과시하는 사람들이 적지 많다. 물론 이러한 경우에는 그다지 흔한 사례들은 아니다. 대다수의 일반적인 주민들의 경우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적에는 별로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으며, 또 실제로 엄청난 규모의 부를 축적하기란 그다지 쉬운 일도 아니다. 그래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것이 없이 캐나다만 놓고 본다면 먹고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무리한 욕심을 버린다면 그런대로 안 정되고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다만, 문제는 어디에서, 어떤 종류, 어느 정도 수준에서 생활의 만족을 찾아야 할 것인지 기준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산업이 고도 로 발전되어 있는 나라로 꼽힌다. 인플레이션이 연 3% 정도 미만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만 치, 마음먹기에 따라서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그야말로 속 편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나라이다. 범죄도 별로 없어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인 장점이다.


자연 경관도 매우 수려해 아주 가까이 있는 산이나 강에서 스키, 낚시, 골 프, 보트 타기 등을 즐길 수 있다. 한국에서 이러한 레포츠 활동을 일 상적으로 즐기려면 매우 큰돈이 들어가고, 그렇기 때문에 극소수 상류층 사람들이나 즐기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캐나다에 서 이런 레포츠 활동을 하는 데는 그리 큰돈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모든 레저 활동에 드는 비용은 매우 값이 싸다. 값을 책정하는 기준 자체가 어 지간한 소득이 있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설정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도록 합리적으로 책정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만 있다면 누구든지 얼 마든지 즐길 수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캐나다에서 돈은 삶의 목적이 아니다. 그저 일상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돈에 대 해 큰 욕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마어마한 돈을 모으고자 악착같이 노력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흥청망청댄다는 이야기는 아니며 대부분의 주민들의 생활은 대단히 검소하고 근면하다.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그저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돈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 이상 벌려고 하면 대단히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하며, 그렇게 하려면 공연히 삶이 힘들고 고단해질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사회적 여건과 분위기가 그렇기 때문에 캐나다로 이주하려는 사람들도 그런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거듭 강조하건대 많은 재산을 축 적해 두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라면 캐나다가 아닌 다른 곳 을 택해 이주해 가는 것이 좋다. 캐나다는 막대한 부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이 찾아가기에는 돈보다 더 좋 은 많은 것들을 간직하고 있는 나라다. 그저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삶의 평안함과 소박한 생활 속의 행복감을 추구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곳이다. 캐나다는 어떤 나라인가 면적 북미 대륙의 북쪽 3 분의 1 을 차지하며 총면적 9,970621 제곱 킬로미터로 한반도의 45 배에 달하는 캐나다는 옛 소련이 해체되어 여러 나라로 나누어 지면서 국토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가 되었다. 수도와 행정 구역 온타라오 주에 있는 오타와가 캐나다의 수도이다. 행정 구분은 앨버타, 브리티시 콜롬비아. 메니토바, 뉴브런스윅, 노바스코시아, 온타리오, 프린 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퀘벡, 사스캐치완 등 10 개 주와 노스웨스트 테리토 리, 유콘 등 2 개의 준주로 구성된다. 인구의 80%가 퀘벡, 온타리오 등 5 대 호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문화 모든 캐나다인은 원래부터 이주민이기 때문에, 이주민들의 모국 문화가 캐나다의 전통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주민들은 17 세기에 이주해 오면서 전통 의상과 음식, 관습 등을 가지고 들어왔다. 20 세기에 들어서면서 캐나


다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민 문화를 개발했다. 이러한 캐나다의 다양한 문화적 특성은 1988 년 정부에서 다문화주의 법령을 통과시키면서 공식적으 로 안정되었다. 평균 수명 세계 7 위의 경제 대국답게 최고 수준의 의료 및 복지 후생제도가 자랑거 리이다. 90 년대 초 의사 수가 5 만 2 천여 명으로, 인구 476 명당 1 명 꼴로 매 우 좋은 의료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 때문에 유아 사망률도 0.73%에 불과 하다. 평균 수명은 남자가 72.9 세, 여자는 79.8 세이다. 가구 수 1991 년에 한 인구 자녀는 1.3 명이다.

조사에 따르면 한 가족의 평균 구성원은 3.1 명이며,

생활 수준 캐나다의 생활 수준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예를 들어 1991 년 83%에 달하는 가구가 적어도 1 대의 자동차를 가지고 있고, 97.5%는 컬 러텔레비젼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5 가구당 1 가구는 컴퓨터를 갖고 있다. 14 세 이상의 문맹률이 4.4%일 만큼 교육 수준이 높고 전기 및 상수도 보급률 1 백%, 전화도 1.3 명당 1 대 꼴로 보급되어 있다. 종교 국교는 없지만 캐나다인의 대다수는 기독교도이다. 카톨릭, 개신교도의 수가 전체의 46.5%를 차지한다. 1991 년에 한 인구 조사에 의하면 로마 카 톨릭 신자가 54.2%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신교도들(41.2%)이다. 이 밖에 다른 종교는 유태교, 회교, 힌두교, 시크교, 불교도 등이다. 약 340 만 명 의 사람들은 전혀 종교가 없다고 했다. 스포츠 캐나다에서 대중적인 스포츠는 수영, 아이스하키, 크로스 컨트리. 알파 인 스키, 야구, 테니스, 농구, 골프 등 매우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 히, 아이스하키, 캐나다 미식 축구와 야구는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는 경기 로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천연자원 주요한 천연 자원으로는 천연 가스, 석유, 금, 석탄, 구리, 철광석, 니 켈, 칼륨, 우라늄, 아연 그리고 수자원과 삼림 등이다. 국민 총생산 1992 년 캐나다에서 한 해 동안 생산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총량은 캐 나다 달러로 688 조 5 천만 달러였다. 1 인당 GNP 는 미화 2 만 3 천 달러 정도. 주력 산업 캐나다의 주력 산업은 자동차 산업, 펄프, 제지, 제철, 기계 및 설비 산


업, 광산업, 임업, 농업 등이다. 수출 캐나다의 주력 수출 상품은 자동차 완성품과 부품, 기계, 설비, 첨단 식 품, 석유, 천연 가스, 금속, 목재, 농산물 등이다. 수입 캐나다는 기계, 통신 및 전자 설비,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원자재(철 광석, 귀금속, 화학 약품, 플라스틱, 면, 울, 기타 직물) 등을 비롯하여 공산품 및 식품 등을 수입한다. 시간대 캐나다는 여섯 개의 시간대를 가지고 있다. 가장 동쪽에 위치한 뉴펀들 랜드는 그린니치 시간대(GMT)보다 3 시간 30 분 늦다. 다른 시간대는 atlantic, Eastern, Central, Rocky Mountain 등이며, 가장 서쪽에 위치한 Pacific 시간대는 그리니치 시간대(GMT)보다 8 시간 늦다. 화폐 통화 단위는 1 캐나다 달러(C$)는 100 센트로 나뉘어 진다. 캐나다 달러는 1998 년 3 월 현재 한화 약 1 천 원 정도다. 정치/다양한 인종 어울려 평화를 나누는 곳 캐나다는 한마디로 말해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다양성 속에서 차별 없이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사회다. 캐나다의 원주민은 서부 인디안들이다. 이 인디안들은 대부분 '인디안 보호구역'이라는 곳에 모여 살고 있으며, 나머지 국민들의 거의 모두가 이 민자들이다. 이 때문에 캐나다에는 100 여 종이 넘는 인종이 모여 살고 있 다. 이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가 영국계이며, 나머지가 대부분 프랑스계, 독일계, 이탈리아계 순이다. 물론 그밖에도 유럽 각 나 라 사람들과 중동, 남미, 아시아 지역 각 나라에서 이민온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인종이 뒤섞여 살고 있기 때문에 특정 인종이 다른 인종 을 차별하는 인종 차별이 별로 없다. 어차피 모두가 지구 위 다양한 지역 에서 유입되어 온 처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럴만도 하다. 캐나다의 이 러한 특성은 오늘날에도 홍콩이나 중국 등 아시아의 각 나라 수많은 이민 자들로 부터 가장 각광받는 이민 적격지가 되도록 하는데 톡톡히 한몫 하 는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에는 오늘날 이민자들만 몰려드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는 정치적 파탄 상태에 이른 나라들의 갈 곳을 잃은 난민들을 가장 많이 받아들이고 있기도 하다. 이는 다시 캐나다에 인종 차별이 거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해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캐나다야말로 '난민의 천국' 이라 부른다. 최근 발표된 유엔 난민 고등 판무관실의 '1997-1998 세계 나민 현황'에 따르면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난민을 받아들이는데 매우 인색한 반면 캐


나다는 총 2 만 6 천 명의 신청 건수 중 42%를 승인해 난민들을 가장 많이 받아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나 유럽 각 나라들이 인종에 대한 편견 과 차별, 그리고 자기 나라의 경제, 사회적 여건 때문에 겉으로는 인도주 의를 말하면서도 난민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반면, 캐나다는 상대적으로 이러한 부담감이 덜한데다. 대부분의 캐나다인 역시 이러한 난 민들을 받아들이는 데 그다지 큰 거부감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이 캐나다이지만 지역에 따 라서는 약간의 편차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1997 년 캐나다 연방 이민 성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복합 문화주의 도시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토 론토가 의외로 인종 차별이 다른 지역에 비해 심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소수 민족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토론토가 인종차별주 의 가장 심한 곳으로 꼽혔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매년 수만 명의 소수 민족들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안정되고 평화로운 생활이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토론토 주민들이 새롭게 이주 해 오는 소수 민족들과 난민들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감정은 그저 주민들의 의식 밑바닥에 보이지 않게 깔려 있는 것일 뿐 일상 생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캐나다는 인종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여타 유럽 국가나 북미 국가에비해 상대적으로 덜한 나라로 꼽힌다. 특히 인종 에 대한 차별적 대우나 행위 등은 법률로 엄격하게 규제되어 있기 때문에 이민자들이나 새로 이주해오는 소수 민족들이 실생활에서 인종 차별로 입 는 손해나 피해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다. 더욱이 유럽이나 미 국 등의 인종 차별적인 양상에 비긴다면 없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다양함 속에서 피어나는 질서와 조화 마치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할만큼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사는 곳이 캐 나다이지만, 어느 곳에 가든지 혼란스러운 풍경이나 갈등의 조짐을 볼 수 없다. 원주민이나 먼저 정착한 민족이 뒤늦게 이주해 오는 민족에 대해 적 대감이나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일반적인 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 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캐나다의 문화를 일컬어 '모자이크 문화'라고도 부 른다. 마치 보기 좋은 '모자이크 작품'을 보는 것 같이 다양한 것들이 한 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 내는 것과 흡사하다는 이야기다. 캐 나다의 이러한 성공적인 이민 정책이 잘 나타나는 사례 하나를 들어보기로 하자. 자연 경관이 매우 뛰어나 해마다 세계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찾아드는 밴 쿠버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 가운데 밴쿠버섬이라는 곳이 있다. 그 크기가 매우 넓어 남한의 1/3 정도 크기에 달하는 곳인데, 이 섬을 둘러보기 위해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머저 밴쿠버 시와 섬 사이를 연결하는 여객선 페리호 를 타야한다. 그런데 이 여객선의 웅장한 규모에 먼저 모두들 놀라기 일쑤이며, 그 다음에는 여객선에 오르내리는 관광객들의 질서 졍연한 풍경에 다시 한번


놀란다. 5 백여 대에 이르는 차량들과 그 몇 배 이상의 승객들이 배에 오르 는데 걸리는 시간은 채 10 분도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 한 명 서두르 는 사람도 없지만 철저하게 남을 배려하고 순서를 지키기 때문에 오히려 승하선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바로 이런 질서의식이 캐나다인들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 녹아들어 있기 에 서로 다른 다양한 민족간의 조화가 원만히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 마음속에 이러한 의식이 자리잡게 된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정부 와 교육 당국의 배려가 뿌리 깊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캐나다 사람들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학교 교육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방을 존중해주는 관용을 배운다. 어차피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를 경우가 많고, 얼굴 색과 문화도 철저히 다른 사람들끼리 어울려 사는 상황 에서 남을 포용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캐나다라는 국가 공동체의 존립 자 체가 도전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 교훈도 자신과 상대방을 존중하라는 것이 많 다. 모두가 상대방을 존중하며 함께 사는 사회의 훌륭한 구성원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철저히 교육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국가 역시 일찌감치 이러한 이민족간의 화합과 조화를 정책적으 로 실현해 나간다. 이미 지난 1971 년 이민족간의 복합문화를 정부 정책으 로 채택한 뒤 1988 년에는 이를 입법화시킴으로써 교육과 행정, 문화, 예술 등의 모든 영역에서 복합 문화를 적용토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종을 이유로 한 부당한 차별 등은 캐나다 스스로 용납하지도 않지만, 법률에 따 라 처벌되는 중대한 범죄 행위로 취급된다. 캐나다의 이민 정책 앞에서도 부분적으로 언급한 바 있지만 극소수 원주민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캐나다인들은 이주민이다. 어차피 모두가 이주민인 터인지라 누가 누 구를 이주민이라고 차별하고 말 것도 없고,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져 있 고, 조건과 자격이 맞으면 캐나다 땅에 들어와 캐나다 시민으로서 생활하 도록 되어 있다. 캐나다 이주민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17 세기 이후다. 그 이 전에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땅이다. 17 세기 무렵 주로 유럽 등지에서 이 주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다가, 20 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이민 문호가 개방 되면서 다양한 민족이 밀려들어와 오늘날에는 1 백여 인종이 함께 사는 '인 종 전시장'이 되었다. 캐나다의 이민은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자격요건이 주어 지는 최종 판정 기준은 철저히 캐나다에 대한 기여도를 중심으로 결정된 다. 즉, 캐나다로 이주하고자 하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캐나다의 산업과 사 회에 어떻게,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 지를 판정 기준이 모아지고 있는 것 이다. 독립이민이든 투자이민이든 결국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 점에 있다. 물론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이민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족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캐나다의 문화 풍토에서 비롯된 정책이 이른바 '초청 이민'이라는 것인데, 이민을 통하지 않고서는 가족들 간에 떨어져 살 수 밖에 없다고 판단될 경우 이민을 허용하는 경우이다.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이주를 허용하는 다른 경우는 정치적 난민에 대해


폭넓게 문호를 열어 놓고 있는 점이다. 지구상에서 오갈 데 없는 정치적 난민들은 유럽이나 미국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적극 수용하기를 꺼리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캐나다의 경우는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이들을 비교 적 적극적으로 수용해 왔다. 캐나다 이민의 종류 캐나다의 이민 정책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기회를 주되, 최종적인 판단 은 철저하고도 엄격한 점수 평가에 따르는 것을 골간으로 하고 있다. 기회 는 누구에게나 부여되지만, 캐나다 정부가 정한 규정과 기준을 얼마나 충 족시키는지를 점수로 따지고 객관화시켜, 이에 합당한 사람들만 받아들인 다. 해마다 이민자들을 얼마나 받아들일 것인지를 정하는 원칙도 따로 마련 되어 있다. 캐나다 내의 노동 시장의 상황과 수요와 적정 인구, 그리고 인 구 증가율 및 인구의 지리적 분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를 주관하는 부서인 이민 장관이 각 주 정부와 관련 기관의 협의를 거쳐 매년 이민자의 적정 수와 수준을 정해서 발표한다. 이 때문에 어느 해는 이주하기가 비교적 쉽기도 하고, 어느 해는 예년에 비해서 다소 어려워지기도 한다. 캐나다로 이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해 마다 그 해의 이민 정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 좋다.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주자를 선발하기 위해 캐나다는 객관적인 점 수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독립 및 기타 이민에 속하는 이주자들은 모두 점수 제도의 적용을 받는다. 더 자세한 내용은 실린 내용을 참고하기로 하 고, 대략적인 이민의 종류와 자격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초청이민 초청이민은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실시하고 있지만 조건은 매우 까다로운 편이다. 초청을 받을 수 있는 가족의 범위는 다음과 같이 제한되어 있다. *직계 가족 : 부모, 배우자, 약혼자, 19 세 이하의 자녀 또는 학생 신분의 19 세 이상의 자녀. *가족 사업 이민 : 삼촌 이내의 친척(단, 초청자가 캐나다에서 1 년 이상 성공적인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경우이다.) 기업이민( Entrepreneur) 캐나다 정책에 기여해야 한다는 취지에 기업이민이 시작됐다. 3 년 이상 의 자영업 경험이 있거나 기업체 간부 경력이 있어야 하며, 캐나다에 가서 2 년 내 사업을 해야 하는 조건이 있으며, 또한 본인 가족을 제외한 영주권 자나 시민권자 중 한 사람 이상 고용한다는 조건으로 자격이 주어지는 조 건부 영주권 제도를 말한다. 이 때문에 몬트리올과 헤리팍스의 경우 C$40 만 달러(한화 약 4 억 원), 대도시인 밴쿠버, 토론토 등은 C$50 만 달러(한 화 약 5 억 원)이상의 자산을 증명해야 한다. 순수 투자 이민(Investor) 기본적으로 캐나다 지역 경제에 기여해야 한다는 취지도 순수 투자 이민 이 시작 되었다. 3 년 이상의 사업체 경영의 경험이 있거나 기업체 간부 경


력이 있어야 한다. C$50 만 달러(한화 약 5 억원)이상의 자산을 증명하여야 하며, BC 주, 온타리오 주, 그리고 퀘벡 주는 C$35 만 달러(한화 3 억 5 천만 원)을 캐나다 연방 정부와 주 정부가 승인한 신규 프로젝트나 신탁 금융회 사에 5 년간 투자하면 조건 없는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다. BC 주, 온타리오 주, 그리고 ㅋ벡 주를 제외한 다른 주는 C$25 만 달러(약 2 억 5 천만 원)을 5 년간 예치하여야 한다. 조건 없는 비자로서 꼭 사업을 할 필요가 없을 경 우 안 해도 그만이다. 특히 정부 승인 사업은 많은 종류의 프로그램과 투 자 사업이 있는데, 이 이민으로 영주권을 신청할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예치한 금액에 대한 담보가 무엇이고, 안전성에 대하여 확실한 지를 알아 보고 선택해야 한다. 독립,기술 이민(Independent/skilled worker) 캐나다 노동 시장에서 필요하고 또 잘 적용할 기술과 경험을 가진 사람 은 독립 이민을 신청할 수 있다. 캐나다 정부가 선정한 천여 종의 전문직, 기술, 기능직 종사자로서 해당 직종에 근무 경험이 있으며, 영어(또는 불 어)구사가 가능하고 연령이 44 세 이하인 사람이어야 한다. 이 범주에 드는 사람은 보증인 없이 이민을 신청할 수 있다. 즉 자산의 많고 적음에 상관 없이 고급 기술 소유자로 젊고 언어 능력이 있으며, 캐나다 현지에서 직장 을 구할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따라서 연령, 학력, 어학 실력(영어, 불 어), 직종, 적응도, 친척 유무 등, 10 가지로 분류하여 점수를 합한산 후, 70 점 이상을 넘어야 자격이 된다. 제조업 수준 낮아도 높은 생활의 수준 캐나다의 경제는 안정과 풍부한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외자 유 치 및 이민 정책, 20 세기 초의 농업 생산 증대로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였 고, 그후 펄프, 제지, 비철 금속, 등 자원 부문의 발전에 이어 자동차, 화 학 등 제조업의 발달로 산업화를 이룩하였다. 하지만 제조업 비중은 크게 낮아 국민 1 인당 소득(GDP)의 17%, 기업 인 구의 15%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러한 수치는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크게 낮은 셈이다. 그나마 주요 산업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자동차나 가 전제품, 철광, 석유정제업, 종이 등으로, 자동차와 가전 제품을 제외하고 는 천혜 풍부한 국내 자원 및 생산과 관련된 것들 뿐이다. 물론 이런 산업 형태는 국내 시장이 좁아서 대량 생산에 따른 '규모의 경제'효과를 기대하 기 어렵다는 요인이 있겠지만, 아울러 너무 국토가 광활하여, 수송비용도 높고, 이 때문에 자동차나 통신 분야를 제외하고는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본적인 상황 때문에 많은 캐나다 경제 전문가들은 자본 및 기 술 집약형 산업은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크게 발달해 나갈 것으로 예측하 고 있으나, 노동 집약적 산업은 날로 쇠퇴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 수준은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다. 1995 년 당시만 해도 OECD 가입 국가들 가운데 국민 소득(GDP)이 2 만 달러를 넘어서 영국 (1 만 7 천 달러, 17 위), 한국 (7 천 5 백 달러, 23 위) 등을 크게 앞지르기도 했 다. 이 밖에도 1 백%에 이르는 전기 및 상수도 보급률, 1.3 명에 1 대 꼴에 이르는 전화 보급률, 4%에 불과한 문맹률 등 여러 사회 지표들은 선진 국


가의 면모를 과시하는 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국가 경제에 대한 캐나다 국민들의 신뢰도 역시 매우 높은 편이다. 해마다 전국적으로 조사되는 국가 경제에 대한 여러 가지 국민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절대 다수가 있을 수 있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캐 나다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해 나갈 것으로 믿고 있었다. 미국과 함께 호흡하는 경제 캐나다의 경제는 미국의 경제흐름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미국의 강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이 호황일 때는 캐나다도 마찬가지로 호황 상태에 접어들고, 미국이 불황일 때는 캐나다도 불황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는 캐나다의 기업체나 사업체들의 절대 다수인 70% 가량이 미국을 상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1995 년도 수출 현황을 보면 전체 79%가 미국으로 수출되었다. 나머지는 영국, 유럽연합, 태평양 아시아 지역(특히 일본, 중국, 한국 등) 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그러나 과거 몇 년 동안 유럽 쪽으로 수출이 감 소한 반면, 아시아 쪽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 주는 것이 캐나다의 주요 산업기반이라 할 수 있 는 요소들이 160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캐나다. 미국 사이의 접경 지역, 특히 중부의 온타리오 및 퀘벡 주의 서부의 앨버타 및 브리티쉬 콜롬비아 주에 집중 발달되어 있다는 점이다. 북미 시장권 속에서 캐나다 시장은 미 국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동일 경제권으로 간주되는 셈이며, 북미주나 영국 등, 유럽의 창구 역할도 하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캐나 다의 주 소비 시장인 도시들도 미국과의 접경 지역에 집중해 있어 미국의 도시들과 가까운 관계 속에서 선진 시장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한편, 원래 캐나다는 영국, EC 와 경제적 유대가 강했으나. 최근 성장한 일본 시장이 캐나다의 두 번째 큰 수출 시장으로서 대체되었으며, 중국, 호주에 대한 수출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캐나다가 이처럼 미국과 경제적이 측면에서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일반적인 선진국들처럼 제조업체가 많은 편이 아 니기 때문이다. 인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수요 창출이 어렵고, 소비성이 약하다는 것도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제조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추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캐나다는 가공 원제품보다도 원자재 수출이 주요 산업으로 자 리잡고 있다. 이를테면 목재나 광물 자원, 농산물 등과 함께 하이테크와 원자력, 전기 통신 분야의 기술과 자원업 등에 종사하고자 할 때는 정부로 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땅 넓어 지역별로 경제 기여도 큰 편차 세계 어느 나라나 대부분 그렇듯 캐나다의 경제적 생활 역시 지역별로 큰 편차를 보았다. 워낙 국토가 넓어 그렇기도 하지만, 지역별로 경제의 근원이 되는 자원 보유에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경제적 안정에 가장 기여도가 높은 지역은 주로 캐나다 서부 쪽에 있는 주들이다. 이 지역들은 천해의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캐나다 경제의 안정적 성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지난 1997 년 12 월 연방 통계청이 발표한 실업률 동향에 따르면 사스카츄 완(5.1%), 앨버타(5.6%). 매니토바(6%) 3 개주는 캐나다 평균 실업률(8.6%) 을 훨씬 밑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업률의 수치가 낮을 뿐만 아니 라. 일부 산업체들의 경우는 여전히 부족한 일손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대목은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가 될 것이다. 일단 일손이 달리는 지역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다른 지역으로부터 일손을 빌려 오는 방법을 택하거나, 아니면 해외로부터 이주 희망자들을 받아들여 해결하는 등의 방안을 모색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캐나다 곡물 산업을 주도하는 매니초바 주의 경우, 멕시코에서 인력을 대거 수입해 감자, 당근, 양파 및 기타 야채류를 추수해 오고 있 다. 또 앨버타 주정부는 유전 산업에 필요한 엔지니어, 용접공, 기계공 및 기타 기술직 근로자들의 육성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업체별 수습 사원제 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조만간 5 백만 달러의 예산 지원을 필두로 2001 년까지 4 백만 달러를 추가 지원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서부 주내 산업체들의 인력 수요 곡선 은 1993 년을 기점으로 꾸준히 상 승세를 타고 있으며, 취업 희망자들의 이주 행렬 역시 지속적인 증가를 하 고 있다. 각 지역별 대략적인 경제 상황은 다음과 같다. 이러한 정보는 이 주 희망자들이 캐나다에서 정착할 지역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중부 산업 지역은 캐나다 총생산의 60%가 집중되어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 수출의 80%가 미국의 동부와 중서부 지역을 시작으로 하고 있어 미국 을 상대로 한 비즈니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택해 볼만하다. 자동차 부품, 목재 및 종이제품, 운수 계통 산업이 대표적이며, 인구가 집중된 몬 트리올.오타와.토론토.런던.원저의 산업벨트가 미국의 디트로이트와 곧바 로 연결된다. 한편, 경제 활동의 중심지이고 캐나다 전체 GNP 의 약 40%를 점하고 있는 온타리오 주는 최대의 제조업 기반을 보유하고 있고, 퀘벡 주 또한 온타리오 주와 함께 중요한 제조업 부문의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동부 아틀랜틱 지역은 인구 약 2 백 5 십만 명의 대서양 연안 지방인 뉴펀 들래드,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노바스코시아 및 뉴브런즈윅 주가 이 지역에 포함된다. 특히 이 지역들은 수산업, 제지, 에너지와 운수 기계산 업 등을 주요 산업 기반으로 하고 있다. 아틀랜틱 지역의 북미주 시장 인 구는 약 5 천 만 명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며, 역시 최대 수출시장은 수출의 60%를 차지하는 미국이다. 프레리 지역은 인구 약 4 백 50 만 명의 규모를 지닌 캐나다의 최대 곡창 지역이다. 지하 자원이 풍부하여 잠재력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 으며, 이 지역 산물의 90%가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특히 메니토바 주는 식물 가공 산업과 봉제업, 농기구 제조 산업이 매우 활발하며, 앨버타 주 의 석유, 지하자원 및 서스케처원 주의 곡물과 우라늄, 포타시움이 지역의 산업을 이끌어 나가는 주요 산업이다. 서부 지역은 태평양 연안을 중심으로 한 각종 자원(석탄, 구리, 납, 천 연가스) 개발과 캐나다의 70%를 차지하는 임업과 펄프로 유명한 곳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에너지 수출, 관광 및 금융산업을 주 정부의 전략적 산업 으로 집중 육성시키고 있다. 이 지역의 대미 수출 비중은 다른 지역에 비 해 다소 낮은 약 40%정도이며, 태평양 연안의 각 지역으로 뻗어 나가는 캐 나다의 전초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자연 및 환경/천혜의 자연 환경 캐나다를 처음 관광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세 가지 점에서 놀라거나 잘 지워지지 않는 깊은 인상을 받는다고 한다. 가장 먼저 캐나다 국토의 광활 함에 놀란다. 한반도의 45 배. 남한 땅의 100 배를 넘는 광대한 국토를 가진 캐나다는 좁은 땅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면서 살아 온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과 부러움을 안겨 주게 마련이다. 물론 땅이 얼마나 넓은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기는 어렵다. 비행기 에 올라 동부와 서부 사이를 왕복하면서 확인해 보는 정도가 고작이다. 표 준시간만도 6 개나 되고, 웬만한 도시에서 도시 사이의 이동은 자동차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라는 점에서도 국토의 넓이가 실감된다. 이렇듯 넓은 땅은 그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신적인 안정감 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땅의 넓이야 일상적인 생활에서 체감되는 것 은 아니지만, 드넓은 대지 위에 발붙이고 산다는 의식은 심리적으로 안정 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땅이 광활하다는 것만이 캐나다의 매력은 아니다. 광활한 대륙 곳곳에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이 담겨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낸 다. 특히 국토의 대부분이 오염되지 않고 자연 그대로 간직되어, 말 그대 로 '천혜의 자연 환경' 속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점도 또 다른 매력이다. 오염된 환경으로부터 벗어나 '공기 맑고, 물 좋은 곳'을 끊임없이 찾고 있는 것이 요즘의 우리 현실이라 할 때, 일상적인 생활 환경이 그렇다는 것은 여간 큰 매력이 아니다. 특히 이러한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은 건강을 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인들에게 여간 큰 동경의 대상이 아니다. 캐나다가 이렇듯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무엇보다 드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는 데 비해 인구는 우리 나라 보다 적은 3 천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인구가 비교적 고르게 분포되어 있어 환경 오염이 발생할 요인이 상대적으로 적다 는 것이다. 둘째는 정책적으로 환경의 보호가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 정책을 펼쳐 나갈 때나 이주 정책을 결정하는 데에도 환경을 보호하기 위 한 각별한 배려가 중요한 정책 결정요인으로 작용한다. 셋째는 무어보다 캐나다인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은 점을 꼽을 수 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을 오염시키는 행위는 캐나다인 스스로 ���저하리만 치 용납하지 않으며, 남들이 뭐라 하기 이전에 스스로 자연 보호에 앞장서 는 습성이 몸에 배어 있다. 주민들의 철저한 자연 보호 의식 캐나다인의 자연 보호 의식은 이를 처음 보는 사람이면 한결같이 '유난 스럽다'고 말할 정도로 철저하다. 이런 모습은 캐나다인들의 일상 생활 속 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비교적 여유롭게 살기를 좋아하는 캐나다인들은 주 말이나 공휴일에도 거의 예외 없이 피크닉을 떠나며, 짧은 시간 짬을 내서


라도 인근 공원이나 들녁, 또는 강으로 산책을 나간다. 그토록 자연과 함 께 하는 시간이 많지만 주민들의 발길이 잦은 공원 어디에서고 작은 휴지 조각 하나 발견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철저하게 환경이 보호되고 있는 것은 캐나다인이라면 누구나 자 신이 발생시킨 휴지나 쓰레기를 반드시 자신이 챙겨 가지고 와야 한다는 평범한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개를 끌고 산책을 나 갈 때에는 따로 비닐 봉투를 휴대하고 다닐 정도인데, 개가 길에서 대변을 볼 경우 이를 주워 비닐 봉투에 담아 가져오기 위해서이다. 이렇듯 철저한 자연 보호 의식의 한 단면을 들여다 볼 수 이는 사례 하 나를 소개한다. 밴쿠버의 스탠리 공원길에는 간혹 달리던 차들이 멈춰선 채로 오랜 시간 기다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공원 인근의 차도에서 놀고 있는 동물들이 스 스로 길을 비켜 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경적을 울리거나 인위적으로 동물들을 쫓아내려 하지 않는다. 차도 위의 동물들이 스스로 볼 일을 다 보고 길을 비켜 주면 그제서야 가던 길을 재촉하는 것이다. 캐나다인들의 이렇듯 철저한 자연 보호 의식은 아마도, 자신들에게 주어 져 있는 천혜의 자연 환경이야말로 가장 큰 신의 축복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이라는 가장 큰 신의 선물을 파괴하거나 더럽히는 것은 죄 악이며, 이렇게 해서 자연이 훼손되면 그로 인한 신의 징벌이 곧 자연의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게 대부분 캐나다 사람들의 의식이다. 자연 보호를 위한 엄격한 규제들 캐나다에서 자연 보호가 잘 되고 있는 또 다른 요인은 엄격한 처벌 때문 이다. 어느 지역에서나 허가 없이 야생 동물을 잡거나 살상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를 어기면, 공원법 위반으로 매우 무거운 벌금형을 받거 나. 또는 6 개월 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또한 각 지역에 따라 잡을 수 있는 동물과 기간, 마리 등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거리 이름도 배어 (곰)가, 카리부(순록)가 등, 동물들의 이름을 붙여 놓을 정도로 자연에 관 한 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어류 보호를 위해서도 갖가지 규제조치를 해놓고 있다. 가령 바다 낚시 에서도 연어 두 마리, 광어 세 마리 이상을 못 잡도록 하고 있으며, 일정 한 크기 이하는 반드시 놓아 주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에는 물론 엄격 한 처벌이 뒤따른다. 인기 있는 뉴펀들랜드 섬의 '고래 구경'을 할 때도 자연 보호 원칙은 어 김없이 적용된다. 즉, 고래가 다치거나 놀라는 것을 막기 위해 관광용 보트가 고래에 접근 할 수 있는 거리를 법으로 정해 놓고 있는 것이다. 자연 보호 대상은 비단 동식물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캐나다는 로키 산맥에서 가장 큰 325 제곱킬로미터의 콜럼비아 대빙원과 아스바스카 빙하 등 많은 빙원과 빙하들로 덮여 있다. 얼음 두께가 40 50 미터에서 300 미터까지나 되는 아스바스카 빙하는 관광객들이 설상차를 타고 직접 빙하에까지 올라가 이 거대한 자연을 체험토록 하고 있는데, 놀 라운 것은 그런 것은 빙하물을 떠 먹기 위한 종이컵 등 일체의 도구를 가 져가지 못하게 한다. 관광객들이 종이컵 등을 가져갈 경우 결국 그런 것들


을 마구 버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아름다운 자연이 훼손되기 때문에 이 를 막자는 취지다. 이 밖에도 국립 공원 지역의 건축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국립공원 인 근 지역에는 4 층 이상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고 있는데, 관광객들의 시야 를 가리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공해와 소음으로부터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관광 버스도 일정 수 이상 운행을 허가하지 않고 있다. 관광 공원에서 동물에게 음식을 던져 주었을 때에는 8 백 달러의 벌금형 을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단속하기 위한 단속 반원들이 많은 것은 아니다. 넓은 지역을 삼림 관리관들이 단속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 에 삼림과 공원 곳곳에 밀렵자 신고 핫라인을 설치해 놓고 있다. 규정을 위반한 사례들을 목격한 시민들은 이 핫라인을 이용하는데 조금도 주저함 이 없다. 범죄를 신고하는 일은 시민들의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 하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자연 관리는 '인간은 생태계의 일부'라는 인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즉, 생태계를 자연 그대로 보존하는 것만이 최선의 보호라는 것이 다. 캐나다인들이 자연 보호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임은 바로 자시들 의 생명과 생활을 자연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것이다. 사회/범죄 없는 사회 3,4 년 전 밴쿠버에 있는 한 인도계 갱이 인도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인 사 건이 발생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사건은 그다지 흔한 일이 아닌데다 가, 더욱이 총으로 살인한 일은 매우 드문 일인지라 이 사건은 대대적인 뉴스가 되었다.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인근 지역 주민들은 충격 에 사로잡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엄청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또 다른 매력은 이러한 사건이 충격적인 뉴스가 될 정도로 범 죄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특히 미국과 같이 총기를 갖고 사람을 위협하거나 살해하는 등의 중대한 범죄 행위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범죄가 드물다 보니 자그마한 사건 하나가 발생해도 큰 이슈로 번진다. 토론토 인근의 한 마을에서 경찰에 쫓겨 과속으로 달리던 승용차 가 도망가다 가로수를 들이받아 타고 있던 운전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물론 이러한 사건은 어지간한 나라에서는 다반사로 벌어지는 일이지만, 당시 이 사건을 접한 지역 주민들은 오히려 경찰에 집중적인 질 타를 퍼부었다. 한동안 이 일은 다운타운의 큰 이슈 거리가 되다시피 했는 데 대부분의 주민들은 경찰의 처사가 매우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경찰이 추격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 주민들의 의견이었다. 이 자그마한 사건은 일반적인 캐나다의 국민들이 범죄에 대해 어떠한 생 각을 갖고 있는지, 아울러 사람의 목숨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자그마한 사건이나 사고 하나만 발생해도 다운타운이 시끌벅쩍할 정도로 캐나다인들의 일상은 평온하다. 자동차가 현대인의 대중적인 교통 수단이 된 오늘날 자동차 사고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데 따른 당연한 업보쯤으로


여겨지는 것이 보통인데도, 그 흔한 자동차 사고 또한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도 매우 특별하다. 지난 1991 년에 이미 전 가구의 83%가 자동차를 소유 하고 있을 정도로 자동차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차로 인해 목숨을 잃 거나 큰 부상을 당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물론 이는 캐나다인들의 매우 높은 수준의 자동차 문화와 준법 정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캐나다인들의 준법 정신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속도가 제한된 도로에 서 규정 속도를 위반하는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학교 주변에서 어 린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매우 가별하며, 한적한 도로변이라고 해서 주차가 금지된 곳에 차를 세워 두는 일도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이 정도로 교통 질서가 잘 지켜지는 상황이라면 교통 사고는 여간 해서 발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캐나다 전국에서 범죄를 일 체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어디를 가나 좀도둑은 있게 마련 이고, 법규와 규정을 어기는 사람들 또한 존재하게 마련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밴쿠버 중심으로 좀도둑 크게 늘었으며, 젊은이들이 자동차를 과속으로 모는 경우도 간혹 발견되었다. 젊은이들이 더러 마약을 하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하며, 강 간 사건은 신문이나 TV 를 통해 보도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일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는 자체가 발생 빈도가 낮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범죄가 매우 드물었던 캐나다에 이처럼 범죄가 조금씩 늘어나는 데 대해 사회 일각에서는 이주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리기도 한다. 난폭 운전을 일삼던 사람들이 캐나다에 이주해 와서는 예전의 운전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난폭 운전을 하기 때문에 교통 사고가 발생한다는 주장도 있으며, 먹고살기 어려운 난민이나 이주민들이 좀도둑 질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쨌거나 캐나다 전체적으로 인구가 늘어나면서 사건이나 사고, 범죄는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지만, 여타 선진국들에 비교해 본다면 캐나다는 여 전히 범죄로부터 안전한 지역임에 틀림없다. 캐나다의 취업 및 노동 환경 캐나다의 평균 실업률은 늘 10% 안팎을 넘나들고 있다. 열 명 가운데 한 명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현지 캐나다인들이 그런 판국에 이주민들이 일자리를 구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별한 기능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컴퓨터 분야의 전문가, 엔지니어 등의 전문가 등을 제외한 사람들은 일단 취업하기가 어렵다고 보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연고를 통해 한인 상점에서 일자리를 구한다든지, 친인척의 사업장에 서 종업원으로 일한다든지 하는 등의 경우는 더러 있겠지만 이는 매우 예 외적인 일이다. 캐나다에 일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취업을 위해 이민을 가는 사람들도 그다지 많지 않다. 전체 이주 희망자 가운데 불과 10% 남짓 정도에 머물고 있다. 나머지 90% 이상은 거의 자영업을 통해 먹고 살 궁리를 강구한다. 임금 수준은 그다지 높은 편도 아니지만 턱없이 낮은 수준도 아니다. 지 난 1993 년 6 월 현재 업종별 주 당 임금은 제조업 c$671 달러, 운수업 C$708 달러, 도.소매업 C$458 달러, 금융/부동산업 C$614 정도 수준이다. 노동


강도가 비교적 센 편인 운수업이 다른 직종보다 다소 높고, 그 다음이 제 조업 부문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직종별로 보면 엔지니어의 경우 1 년 연봉이 C$60,000-90,000 달러 정도고, 중간 관리직이 C$40,000-60,000, 노무직이 C$15,000-35,000, 비서 직 C$24,000-30,000 정도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근로자의 실질 임금 은 임금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을 웃돌아 지속적인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 다. 물론 이러한 금액을 환율 상황이 크게 달라진 오늘날 그대로 받아들여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업종이나 직종별 임금의 수준 차이를 가늠해 볼 지표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 근로자들의 평균 노동 시간은 주당 40 시간 정도이다. '캐나다 노 동법(Canada Labor Code)'은 하루 8 시간씩 주 5 일, 즉 주당 40 시간에 이르 는 정상 근무 시간을 초과하는 작업 시간에 대해서는 정상 임금의 1.5 배에 달하는 시간의 근무 수당의 지급을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당 평균 근로 시간은 대부분의 기업이 40-41 시간 정도에 머 물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도 주 5 일 근무가 일반적이며, 일부 기업들은 주 4 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들어서는 사무직 근로자들에 대한 재택 근무제를 도입하는 기업도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이다. 연간 유급 휴가 일수는 1 년 이상 근무한 경우 2 주, 6 년 이상 근무한 경 우 3 주이며, 법정 공휴일은 9 일이 규정되어 있다. 캐나다인들은 취업, 한국인은 자영업 선호 캐나다에서 오랜 기간 살면서 느낀 캐나다인들과 한국인들 사이의 두드 러진 차이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먹고사는 방편'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캐나다인들은 대부분 자영업을 하기보다는 취업을 선호하는 반면, 한국 교민들은 주로 자영업을 선호한다. 물론, 한국 교민들이 자영업에 많이 진출하는 것은 캐나다에서 취업하기 가 사실상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또, 설사 취업이 된다고 해도 오 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다가, 직장에 다니면서도 언 젠가는 자영업에 진출한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특히 취업이 얼마든지 가능한 교민 1.5 세난 2 세도 공부를 마치고 취업을 하는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으며, 취업을 한다 하더라도 몇 년 뒤에는 자 영업으로 돌아서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집안에서 하는 일을 돕기 위해 자 영업에 뛰어드는 경우도 있으며, 아니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짬짬이 모은 돈으로 독자적인 사업체를 차려서 자영업에 뛰어드는 경우도 비일비재하 다. 반면, 대부분의 캐나다인들은 한번 직장을 잡으면 다른 생각하지 않고 그저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비록 큰돈을 받 는 것은 아니지만 직장 생활에 만족해 하면서 굳이 어려운 자영업 따위를 할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캐나다 사람들과 한국인들 사이의 이러한 차이는 생활 철학이 근본적으 로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캐나다인들은 굳이 힘든 일을 해서 큰돈 을 벌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생활에 큰 불편이 없다면, 오늘의 현실에 만족해 하고 감사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 한국 교민들은 좀 다른 측면이 있다. 많지 않은 월급 생활에 만족


해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른바 '장사를 해야 승부가 빠르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점은 비교적 오랫동안 캐나다에서 생활 해 온 교민 1.5 세나 2 세 들에게서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20 대 중반에 접어든 필자의 조카 역시도 그렇다. 지금은 아보츠포드에서 부친이 경영하는 가게 일을 도와주면서 돈을 모 으고 있다. 독자적인 사업을 벌일 만큼 돈을 모으면 조카 역시 자영업에 뛰어 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그 조카 역시 기저귀를 차고 캐나다 땅에 이주해 온 교민 1.5 세다. 어릴 때부터 철저히 캐나다 식으로 교육받고, 의식과 생활 방식도 철저히 캐나 다 식대로 하고 있지만, 생활의 방편에 대한 관점은 결국 여느 한인들과 다를 바 없다. 고등학교를 마친 ��� 대학에 갈 생각을 않은 채 곧장 부친의 사업장에 뛰어든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조카의 생각 역시 다른 한인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해서 는 큰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캐나다식으로 자라왔던 그 이지만 핏줄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보다. 한국인이 캐나다에서 살기 체험담/인종 차별이 없는 나라 서울을 떠나온 지 어느덧 2 년의 세월이 흘렀다. 처음 떠날 채비를 할 때 만 해도 무척 나감하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이 곳에 오니 생각 외로 많은 분들이 따스하게 대해 주시고 가족 이상의 도움과 사랑을 주셔서 큰 어려움 없이 잘 정착해 나가고 있다. 이 곳에서는 많은 생활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움직여지고 있다. 우리 가족도 다행히 좋은 교회를 만나 지금껏 많은 안정을 누리며 편히 잘 지내고 있다. 피차 모두 형제와 가족이 없기 에 더욱 서로를 감싸주며 가족 이상의 유대를 지니고 있는데, 이 모든 분 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 모른다. 우리에겐 6 살과 3 살의 두 딸이 있다. 다행 히도 아이들이 어려서 이 곳에 왔기 때문에 학교 적응이나 친구들을 사귀 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KinderGarten(유치원)부터 시작한 우리 큰딸 은 영어 한 자 모르고 시작했지만 이곳 선생님들의 특별한 관심과 보살핌 속에 어느 덧 웬만한 초등학교 1 학년의 수업을 무난히 해내고 있어 참 다 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아이들이 모국어인 한국어를 잊어 버릴까 봐, 우리 부부는 늘 한국말 가르치기에 항상 열심을 다하고 있다. 다행히 교회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3 시간씩 한글 학교를 운영하고 있어 큰 도움을 얻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두가지 언어에 큰 문제없이 쓰고, 읽고, 말하기 에 자신있어 한다. 둘째딸은 Pre-school(놀이방)에 다니고 있는데, 이 곳에서는 교육이라고 해서 특별히 붙잡아 놓고 수업을 하는게 아니라, 놀이 위주로 영어 교육을 시키기에 큰 어려움 없이 영어를 습득해 나가며 즐기고 있다. 학교를 보내 보니, 캐나다가 좋은 이유는 다른 나라보다 인종차별이 없는게, 우리 이민 자들에게는 크게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이니 만큼, 아이들 반에 가보면, 여러 나라, 여러 민족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이른 바, 다민족 문화 정책을 추구하는 나라이다 보니, 다른 인종이나 다른 민 족에게서 느끼는 선입관이나 편견은 거의 느낄 수 없다.


한국의 생활과 특이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곳은 모든 것이 가족 중 심의 생활이다. 남자들도 거의 5 시 정도면 퇴근하여 아이들을 돌보며, 저 녁이 시작된다. 우리도 그랬지만,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아빠의 얼국을 잘 볼 새가 없다. 이 곳에서는 거의 가족과 함께 모이고, 가족 동반 위주의 생활이다. 아이들에게도, 부모가 늘 동행하고 함께 지내니, 정서적으로 안 정되게 자라고 있다. 특히 여기는 부모의 역할과 노력이 더욱더 절실하다. 한국처럼 치열한 입시 제도가 없기 때문에, 청소년기에 살의 목표를 잃어 버린 일부 학생들이 방황하는 수가 있는데, 이 시기에 부모의 세심한 노력 과 배려가 요구된다. 청소년기를 잘 넘기려면 아이들이 집중하고 전념할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예능이나 스포츠 등 취미나 특기를 자기 적성에 맞게 한 가지씩은 개발 하여 잡념없이 매달릴 수 있어야 사춘기에 마약과 나쁜 친구 등 유해한 환 경에서 우리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다. 이 곳에 와 보니, 이민의 적당한 시기는 꼬집어 말 할 수는 없지만, 젊 으면 젊을수록 유리하다고 본다. 일단 아이들의 학교 적응 문제나 직업을 찾는 데에도 젊은 부부일수록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서처럼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높은 빌딩에서 대우받으며 일 하기는 어렵더라도, 우리는 이곳이 정말 좋다. 왜냐하면 신앙적으로는 더 욱 의지하게 되고 신앙 생활을 잘 할 수 있어 좋고, 아이들의 교육면에서 는 학교만 보내면 아이들이 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부모 입장에서도 안 심하고 맡길 수 있으나 마음이 놓여서 좋고, 직업면에서는 거짓이나 속임 보다는 성실하게 믿음을 주며 열심히만 하면 모두 인정해 주고 신뢰해 주 는 이 나라의 환경과 풍토가 마음에 든다. 어차피 고국을 떠나 사는 몸, 이곳에서 좀더 멋있게 자식들에게도 당당한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 보려고, 오늘도 우리 부부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교육/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교육 캐나다인들의 교육열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다. 대학이라는 곳도 본인 의 진로가 정해졌을 때,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가는 곳이지 졸 업장이나 따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니다. 이 때문에 고등 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바로 진학하는 비율이 불과 30% 정도일 뿐이다. 반면 성인이 되어 사회 생활을 하다가 대학 교육이 필요해져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도 많다. 물론,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서 모두 무사히 졸업하는 것은 아니다. 졸업 을 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 학은 학문을 익히고 연구하는 곳으로서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고등 학교도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대부분의 캐나 다 고등 학교들도 학점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일정한 학점을 이수해야만 고등 학교를 졸업할 수 있다. 학점이 모자라면 3 년 이상을 다녀야 한다. 심지어는 19 세가 넘어도 졸업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는 연장 교육 센터(continuing education center)이라는 곳에서 공부하여 학점을 딴 뒤 졸업장을 받게 된다. 퀘벡 주를 제외한 캐나다 전 지역 어디에서건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 까지 모든 교육은 무료로 진행된다. 교육에 필요한 모든 재정적 지원을 주 정부로부터 받기 때문이다. 물론 사립 학교의 경우는 약간의 교육비를 따


로 부담해야 하며, 입학도 원하는 대로 바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공립학교들도 교육수준이 매우 높고, 교육환경도 훌륭한 편이기 때문에 굳이 사립 학교에 들어갈 필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없는 '치맛 바람', 만들어진 '8 학군' 캐나다학교에는 '치맛 바람'이라는 것이 없다, 교육은 그저 학교에 맡겨 두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필요한 만큼, 그리고 충분하게 배 우고 익힌다. 학교는 아이들 각자가 갖고 있는 재능을 최대한 키워 주기 위해 신중한 교과 과정을 운용하고 있다. 모든 진도는 아주 천천히, 아이들의 현실을 고려해 진행된다. 아이들의 학습 평가 역시 상대적, 경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누구는 공부를 잘 하고 누구는 못 한다."는 식의 경쟁적, 상 대적 평가는 이뤄지지 않는다. 거의 모든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재능과 자 질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때문에 누구보다 아이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 편이다. 아이들마다 무엇이 더 필요한지, 따라서 어떠한 도 움을 주어야 하는지 세심하게 살피는 동시에 이에 따른 계획을 세워 아이 들을 가르친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학교 선생님과 학부모가 함께 만나는 이른바 '교사/ 학부모 협의'를 통해 아이들이 올바로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공동의 노력 을 기울인다. 이 협의의 장을 통해 선생님은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의 학습 수준에 관한 정보를 전하고, 부모와 교사 모두가 아이들에 관해 서로가 궁 금해하는 일들을 털어놓고 협의하게 된다. 아이들은 학교 생활을 통해 많은 독서를 하게 되고, 남녀 구별 없이 어 학에서 요리까지 실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학교에서 배우게 된다. 이른바 학교는 '전인 교육의 장'인 셈이다. 이러한 교육 환경을 고려한다 면 한국에서 흔히 얘기하는 '8 학군'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교육의 질은 도시나 시골이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 사람들이 많이 이주해 오면서 한국식 개념으로 인위적 으로 이러한 곳을 설정해 놓은 경우를 볼 수 있다. 부동산이 비싼 부촌이 면 교육의 질이 더 좋을 것이라는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이런 지역을 '8 학 군'이라고 임의로 부르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이런 지역은 밴쿠버의 경우 서부 밴쿠버(Vancouver West), 토론토는 노스요크(North York)등이다. 돈 안 들지만 가정도 함께 해야 한다는 교육 캐나다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 해도 유치원에서 고등학교 과정 까지 돈 한푼 들지 않는 무상 교육이다. 영주권과 시민권을 갖고 있는 캐 나다인이라면 누구나 평등하게 무상으로 학교 교육을 받을 권리가 주어지 며, 국가는 성실하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 초등 학생의 경우에도 교과서가 따로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별도의 교육 비 또한 필요하지 않다. 숙제도 거의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방과후의 시간 은 철저히 가정 교육을 위해 활용토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어린아이들은 많은 스포츠 활동을 한다. 지역 사회 또는 시에 서 다양한 스포츠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다. 야구, 축구, 하키, 배구, 수영 등을 즐기러나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얼마든지 있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주로 학교 내에 있는 다양한 스포츠 팀이나 예 술 활동을 하는 팀에 가입해 여가 활동을 즐기게 된다. 정해진 공부 시간 외에는 연습이나 게임을 통해 스포츠활동을 하게 되는데, 학교 성적이 어 느 수준에 미달되면 자연히 운동 팀에서도 탈락하게 된다. 넘어야 할 산, 어학 교육 캐나다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와 불어이다. 이중 국어를 쓰 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학교 교육을 통해 영어와 불어 모두를 배울 수도 있 다. 특히 몬트리올은 이민자가 정착하게 되면 의무적으로 불어 학교에 가 도록 하고 있다. 영어 학교는 원하는 사람만 돈을 내고 갈 수 있다. 불어 학교라고 해서 영어를 배울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하교에서 도 5 학년부터는 영어도 같이 배우도록 하고 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영어 시간에 대한 비중이 커져 12 학년이 되면 영어를 더 많이 배우도록 하고 있 다. 이 때문에 졸업을 하게 될 때쯤이면 누구나 영어와 불어를 다 할 수 있게 된다. 몬트리올을 제외한 나머지 도시에서는 프렌치 이머전(french immersion) 이라고 하여 불어로 공부하는 학교에 들어가 불어를 익힐 수 있다. 물론 이곳에서도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영어를 익힐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되어 두 가지 언어 모두를 습득할 수 있다. 자녀들을 위한 정규 교육 제도와 입/진학 안내 초기 이민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뭐니뭐니해도 '자녀 교육'문제일 것 이다. 아예 이민의 목적이 "아이들의 교육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이 많다. 한국이라는 나라만큼이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집념이 강한 나라 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이민의 목적 자체가 자녀들의 교육이라고 한다면 일단 캐나다에서는 그 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평균적인 학업 능력이나 지능의 우수성 에서 한국 학생은 대부분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고 있으며, 학교 교육 역 시 아이들이 갖고 있는 잠재적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학교 공부에만 치중하던 한국식 교육의 연장선에서 본다면 사회 활동 참여, 봉사 활동, 그리고 예술과 체육 활동에서 훨씬 많 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야에서 역시 한국 학생들은 잘 적 응하고 있는 편이므로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영어 학습 무엇보다도 한국 학생들의 갖아 심각한 문제는 영어일 것이다. 이 문제 만 해결된다면 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 때문 에 하루 빨리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 교육에서 가장 잘못된 부분을 짚으라면 '영 어 학습'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마찬가지이 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쓸 수가 없어 캐나다 사회에서 능동적이 고 적극적인 참여가 어렵고, 매사에 어쩔 수 없는 차별(인종 차별보다 영 어의 핸디캡으로 인한 제외나 소외)을 당하는 듯한 기분을 갖기 일쑤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참으로 똑똑하고 우수한 민족이건만, 같은 아시아


계인 중국인이나 인도인들과 비교할 때 더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흔한 데, 이는 대부분 그 원인이 영어를 못하기 때문이다. 이민자들의 이민 생활과 비즈니스, 자녀 교육의 문제 등, 이 모든 분야 에서 최대 관건이 되는 것은 결국 영어이며, 더러 이민 생활의 성공과 실 패를 가름하는 필연적인 분기점이 되기도 한다. 일반적인 학제 학제는 주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여기서는 밴쿠버의 예를 들어보겠 다. 밴쿠버의 학제는 토론토와 약간 다르고, 한국과는 비슷하다고 보면 된 다. 일반적으로 초등학교(Elementary School)는 유치원에서부터 6 학년까지, 중학교(Secondary)가 7 학년부터 9 학년까지, 그리고 고등학교(Senior Secondary)가 10 학년부터 12 학년으로 되어 있다. (물론 모두 다 그렇게 엄 격하게 학제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초등학교의 경우 7 학년까지 두 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한국과 다른 점은 새 학년의 시작이 9 월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며, 겨울 방학 2 주일과 봄방학(3 월 초정)1 주일, 그리고 6 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9 월 초에 끝나는 2 개월 이상의 여름 방학으로 한 학년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다. 입학 학년의 결정 초등 학교 1 학년이 시작되는 나이로 보면 서양 아이들의 입학 나이는 한 국 아이들보다 약 6 개월 정도 빠르다. 이는 곧 6 개월 정도 나이가 어리다 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이민오는 자녀의 경우, 처음에 몇 학년으로 입학하느냐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며, 어떤 경우에는 학교측과 조정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물론 자녀가 유치원생 또는 초등학생이면 전혀 문제가 없다. 굳이 학년 을 내릴 필요도 없거니와 ESL 과정도 없이 바로 정규 공부를 하게 되며, 또한 대학 진학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으므로 공부를 잘하는 경우 오히려 6 개월을 앞서 단축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중학교 1 학년 과정에 다니던 자녀의 경우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왜냐 하면 캐나다에 서 몇 년 동안 중/고등학교 과정을 거쳤느냐에 따라 대학 진학 방식이 달 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밴쿠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대학인 UBC 나 경 우, 새롭게 캐나다로 이주해 온 학생이 캐나다에서 5 년간의 중/고교 과정 을 마치지 않았다면 이 학생은 필수적으로 토플(TOEFL)시험을 치러 580(UBC) 혹은 600 점(Simon Fraser)이상을 받아야 입학 자격이 주어진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로, BC 주의 PET(Provincial English Test)제도가 있 지만, TOEFL 이 면제되면 이 시험에서 80 점 이상을 획득해야 한다. 하지만 이 시험은 TOEFL 시험보다 더욱 어려워, 캐나다 본토 학생들도 80 점 받기가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대학진학 영어 성적뿐만 아니라 우수한 대학에 진학하고자 할 때에는 고등학교 이 수 과목 중 주요 9 과목(11, 12 학년의 영어와 수학, 11 학년의 사회, 제 2 외


국어 두 과목, 그리고 과학 두세 과모)의 성적이 평균 B 학점 이상 되어야 한다. 대학 진학을 희망한다면 고등 학교 성적 관리에 매우 신경을 써야 한다. 예를 들어 의대와 상대가 유명한 UBC 의 경우, 지난 1996 년에 상과대 학에 입학 지원한 학생 수가 무려 5,000 여 명이었지만, 실제 입학 가능한 정원은 280 명에 불과했다. 경쟁률이 무려 18:1 이나 된 것이다. 이 모든 지원 학생들의 영어와 학과 성적이 기본적으로 위와 같은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 우수 학생을 선별하는 것이니만치 기준보다는 훨씬 더 높은 점수를 받아야만 안심하고 지원할 수 있다. 설사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더라도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역 시 영어다. 영어의 완벽함이 없이는 졸업 때까지의 경쟁을 뚫고 이겨낼 수 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캐나다에서 5 년간 중/고교 과정을 배움으로써 최소한 TOEFL 시험을 피하는 것이 매우 유리하다. 또한 학과 성적에 있어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라도 입학 학년이 7-8 학년 근처에 걸리는 경우, 어떻게 해서든 7 학년으로 입학하는 것이 상당히 유리하다. 물론, 금품을 동원한다든지 하는 등의 방법은 통하지 않겠지만 학교측의 카운셀러와 ESL 교사 등과 접촉하여 끈질기게 설득해서라도 7 학년 공부부터 시작하는 것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리하다. 8 학년(중 2)이상을 다니다 오는 자녀의 경우, 한 학년씩 내려 입학하면 좋겠지만, 캐나다 현지 학생들의 나이와 비교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학년 을 내리기는 어려운 추세다. 하지만 밴쿠버의 경우, 외곽 지역, 예를 들면 메이플 릿지(Maple Ridge)나 랭리(Langley)지역의 경우 학년을 내려 입학 하는 것이 간혹 가능한 경우도 있으므로 일단 이런 지역에서 입학시킨 뒤 다시 시내로 전학시키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무튼 10 학년부터의 학교 공부는 영어와 교과 과정이라는 두 가지를 모 두 잘 해내야 한다는 큰 부담이 있으므로, 학교 카운셀러와 신중하고 합리 적이 설득을 통해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문 학교 및 기술 전문 대학 대학 진학이 어려운 고교 내신 성적자인 경우(보통 C 학점), 본인이 원할 때 보통 전문 학교(College)에 입학을 할 수 있다. 전문 학교에 다니다가 도 대학에서 탈락되는 인원수만큼 우수한 학생들이 다시 대학으로 편입할 수 있고, 무엇보다 교육비가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기술 전문 대 학인 BCIT 의 경우는 졸업 후 취업률이 가장 높을 정도로 실질적인 직업 교 육 기관 역할을 해내고 있으므로 이 곳을 찾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이 때문에 캐나다 현지에서 전문 학교(College)와 대학(University)에 대한 선호도의 차이는 한국에서처럼 그렇게 크지 않다. 대학 진학 준비 이민자 자녀의 경우,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다음 다섯 가지의 과정을 밟 아야 한다. 1)전문 학교 ESL 코스 2)전문 학교의 고교 필수 과목 학점 취득 3)저문 학교만 졸업하기 위한 코스 4)대학 진학 전환 과정 코스


5)대학 입학 물론 학교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고, 아주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이 전문 학교 ELS 코스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입학시험을 보는 경우도 있으므로 때로 는 사설 학원에서 ESL 부터 실력을 키워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아주 실 력이 뛰어나거나, 중간에 TOEFL 성적이 대학 요구 이상의 점수를 따거나, 대학에서 요구하는 고교 기본 과정을 이수하여 학점을 획득하면 상위에 나 열한 다섯 가지의 단계 없이도 중간에 대학 진학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 기도 하다. 그러나 위의 3 단계 이상인 경우는 전문가의 조언과 현지의 각기 다른 제 도를 가진 학교측과 상담하여 시간 낭비 없이 빠른 코스를 택해 나가는 것 이 가장 바람직하다. 어떤 경우에서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어이며, 캐 나다에 도착하기 전에 학생 스스로 쉽지만은 않다. 열심히 해야한다는 각 오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어렵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또 한국 학생들은 대부분 잘 하고 있다. 아울러 어디서 무엇을 공부하든 간에 캐나다는 인간 교육을 받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나라라는 점은 틀림이 없다. 토막상식/이주자 영어 교육(ESL) 캐나다 정부가 마련한 현지 이민자들을 위한 영어 교육 과정(ESL)이나 WC(Welcoming Class)등을 수강할 수 있으므로 현지 적응 훈련의 하나로 가 능하면 참여하는 것이 좋다. 1)주 정부 산하 교육 위원회에서 프로그램을 작성하여 시행하고 있으며, 교육위원회마다 내용이 다르고 교육 기관 및 수업료가 각기 다르다. 퀘벡 주는 불어 교육이 무료이지만 영어는 수업료를 내야하며, 다른 주는 국 적, 연령, 학력에 관계없이 영어교육이 무료다. 2)수강을 원할 때 각 교육 위원회에서 연도별(또는 학기별)로 발행하는 교 육 프로그램 내용을 입수하여 본인에게 가장 적당한 인근 교육 센터를 선 택, 실력에 맞추어 초/중/고급반에 수강 신청을 하면된다. 신청하는 일자 가 정해져 있으니, 좌석에 여유가 있으면 언제든지 접수가 가능하다. 3)교육내용은 초급, 중급, 고급반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신청자의 특별 목 적에 따라 TOEFL 반과 시민권자반도 있다. 4)교육은 1 년을 두 학기(9-12 월, 1-5 월)로 나누어 진행되며, 야간반도 있 다. 주간반에는 전시간, 1/2 일 수강반이 있으며, 야간반에는 주 2-4 회 수 강반이 있다. 5)자격은 국적, 연령, 성별, 종교, 학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 다. 이민 사례/아이가 학교 가는 걸 좋아해요 투자 이민 초기에 이 곳으로 이주해 왔으니 어느덧 10 년이다 되어 간다. 이민을 당시 내 아이들은 세 살, 여섯 살이었는데 모두 이 곳에서 처음 학 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큰아이는 유치원에 다니다 이민 왔는데, 이미 1 학기는 끝나고 2 학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영어라고는 'YES'와 'NO'밖에 할 줄 모르는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는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으나 아이는 뜻 밖에도 학교 가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너, 말도 못 알아듣는데 학교 가는 것이 좋아?"하고 물으면 "응, 너무 재미있어."라고 자신있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말 한마디 못 하면서도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숙제를 받아 오 는 것도 신기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궁금하기도 했다. 어쨌든 아이는 조금씩 단어의 뜻을 알아 오고, 6 개월이 지나면서 자기 의사 표시도 곧잘 해 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교사들은 아이들이 조금 이라도 잘 하는 것이 있으면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잘못해도 용기를 북돋아 주어, 아이들 스스로 내가 최고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 모두 하나같이 자신 있어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 서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이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밤늦게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프로젝트를 해 내느라 애를 쓰기도 했다. 프로젝트란 하나의 제목을 주면서 정해진 기간 그것에 관한 모든 것을 도서관이나 백과 사전 등을 활용해 정리 발표하는 것이다. 스스로 읽고 찾아서 정리하는 것이기에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에 관한 한 자세히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한국 문화를 본격적으로 알기 전에 이곳으로 왔기 때문에 캐나 다 문화에 쉽게 적용해 나갔다. 이제는 어엿하게 성장해 대학 진학을 눈앞 에 두고 있다. 한국 같으면 이것저것 신경쓸 일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대학 진학 문제도 이미 아이 자신에게 맡겨두고 있다. 이 곳에서 자란 아이답게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하려 애쓰는 모습이 그저 대견스러울 뿐이다. 다양한 예체능 활동에 만족해요 캐나다에 온 지 1 년 정도 되었지만 이 곳에 도착해서부터 지금까지 공부 나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 적이 별로 없다. 그래도 약간의 문화적 차 이를 느꼈고, 지금도 또 그런 점들을 경험하고 있다. 학교 생활의 여러 가지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학생들과 선생님 들 사이가 상상할 수 없는 정도로 가깝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Kiss the Pig'라는 행사가 있는데, 이 행사는 학교 스포츠 팀을 소개하는 등, 학생들이 체육관에 모여 노는 행사이다. 그런데 행사가 열리는 동안 선생님들은 열심히 박수도 치고, 응원도 열심히 한다. 권위적인 모습은 찾 아볼 수가 없고 누가 교사인지 학생인지 구별이 안 된다. 학교의 밴드도 많이 다르다. 나는 한국에서 플루트를 했기 때문에 밴드 부에 들어갔는데 처음에 굉장히 놀랐다. 악기 종류가 너무나도 다양했기 때문이다. 프렌치 혼과 섹스폰, 알토와 베이스 클라리넷 등등 전문 밴드처 럼 거의 모든 악기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곳의 학교 생활이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 우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곳의 학교 생활이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하고 있다. 캐나다의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콘서트 밴드와 재즈 밴드, 콘서트 콰이어, 보컬 재즈 등 다양한 음악부가 있고, 1 년에 7 번 정도 정기적으로 콘서트도 연다. 이 때는 부모님과 선생 님을 초청해 그 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펼쳐 보여줄 수 있다. 이 밖에도 인상적인 것은 아이들이 매우 자율적이라는 점이다. 부모님들 도 자녀들의 생활에 그다지 간섭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무관심하 다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판단은 아이들에게 맡겨두고, 학교 성적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이런 태도가 꼭 좋다고 볼 수는 없지만 자녀들의 독립심을 키우는 데는 좋다고 본다. 적당한 시기에 캐나다에 와서 한국과 캐나다 두 나라의 모든 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주신 부모님께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학교측 뇌성마비 딸 교육적 배려 감격 홍사유 씨(53)가 캐나다 방문 세 번째인 1993 년 3 월, 토론토 이주를 결 심한 이유는 딸 지연(22)이 때문이었다. 20 년간 건축업을 해 오며 중상위권의 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었지만, 뇌 성마비에 걸린 딸 지연이는 늘 홍씨의 마음을 그늘지게 했다. "좋다는 병원은 모두 가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딸은 '바보'라고 놀리 는 주변의 시각 때문에 외출 한 번 변변히 못하고... 부평의 정진 학교에 도 보내 보았지만 기대에는 못미쳤고, 한국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매장 시키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토론토 정착 1 주일 만에 홍씨는 학교 입학을 상의하기 위해 노스요크 교육 위원회에 갔다가 뜻밖의 대접을 받고 깜짝 놀랐다. "도착 시간을 알려 주었더니 교장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A. B. C 를 써 보라고 하더니 '너무 착하고 영리한 아이' 라며 칭찬까지 들려 줬습니다. 기대치 않았던 환대를 받고 나니 눈물까지 핑 돌았습니다." 홍씨의 감탄은 계속된다. "정상인들이 다니는 학교에 편입됐지만 학교측은 지연이의 수업 시간표를 능력에 맞게 꼼꼼히 주었습니다. 일일이 집으로 통지해 주는 학업 성취도, 가정 환경까지 속속들이 알고 정해주는 교육... 아침이면 정확히 집 앞에 통학 버스가 도착했고 하교 때도 똑같았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봉투를 전 달했더니 정중히 지연이 편에 돌려보낼 때는 낯이 뜨거워졌습니다." 지난 해 9 월 지연이는 학교 졸업 후 인근 '코브록 직업 학교'에 진학했다. 교통 사고를 당해서 뒤늦게 장애인이 된 사람 등이 포함된 이 학교에서 지연 양은 간단한 조립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2 주 후 주급 54 달러(한화 약 5 만 4 천원)를 들고 왔을 때 홍씨는 로소 캐나다는 교육 천국이란 말을 실감 했다. 학교측은 지연이가 싫증을 느끼지 않도록 2 주에 한번씩 작업 내용을 바꿔 주기도 했다. 주택/보편화된 임대 주택 제도 캐나다에는 우리 나라와 같은 전세제도가 없고, 따라서 전세보증금이라 는 것도 없다. 주거용이든 사업용이든 모두 월 단위로 임대료를 지불하는 월세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보증금 없는 대신에 '손해 보증금(damage deposit)'이라는 적이 있는데, 이는 한 달 월세에 해당하는 금액을 건물주 에게 맡겨 두는 것을 말한다. 이 돈은 임대 기간이 끝나 집을 옮길 때 되 돌려 받는데, 임대 주택을 사용하는 동안 집에 손상이 있을 경우, 이를 보 수하는데 드는 비용을 제하고 나머지는 되돌려 받게 된다. 처음 캐나다에 정착할 때는 대부분 주거지를 임대하게 되는데, 한국에서 월세를 내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매달 지불하게 되는 월세를 공돈 나가는 것처럼 아까워한다. 하지만 이를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캐나다에서는 관


리비라고 해서 따로 지불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전기세 정도를 본인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이마저 월세에 포함된 경우가 더러 있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막 정착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임대 주택을 택한 다. 물론 몇몇 이민자들은 임대 주택은 내 집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의 안 정이 안 된다는 이유로 정착하자마자 집을 사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최 근 부쩍 많아졌는데, 임대 주택을 얻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점도 요인 가 운데 하나다. 개인 주택을 임대할 때 임대료는 평균 1 천 5 백 달러 정도다. 연립 주택 의 경우 월 1 천 2 백 달러 안팎, 아파트일 경우는 월 1 천 달러 정도 예상하 면 된다. 월세는 보통 매달 1 일에 내는 선불제다. 임대 주택의 계약 기간은 보통 1 년이다. 만일 계약 기간을 연장하고 싶 거나, 아니면 계약이 끝나면 적어도 계약 기간 만료 1 개월에서 3 개월 전에 집주인에게 통지해 주는 것이 예의다. 1 년이 다 되기 전에 부득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될 경우에도 어차 피 계약 기간은 1 년이므로 임대료는 계속해서 물어야 한다. 물론 다행히 다른 사람이 입주를 해 임대료를 내게 되면 집주인의 양해 아래 그럴 필요 가 없을 수도 있다. 한국과는 다른 아파트 개념 캐나다에는 아파트 개념이 한국과는 다소 다르다. 방이 3 개나 있는 아파 트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아파트에는 방이 고작 2 개 또는 단 1 개 정도 있을 뿐이다. 아 파트의 수요층이 단출한 가정이나 젊은 부부, 노인 부부 등으로 제한적이 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이가 둘 이상되면 거의 개인 주택을 찾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한국에서 '콘도(condo)'하면 주말 별장 등을 연상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개인이 소유하는 아파트를 말한다. 사실 대부분의 캐나다인들은 집을 특별한 재산 부풀리기 또는 투기의 대 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임대 주택이든 매입을 한 것이든 간에 집은 그냥 본인과 가족들이 살아가기 위한 공간일 뿐이다. 따라서 갑작스럽게 먼 곳 으로 직장을 옮긴다거나 이사를 갈 경우에만 집을 내놓을 뿐, 어지간해서 는 집을 옮기는 일이 드물다. 이 때문에 빈집이 나오는 경우는 그리 흔하 지 않다. 그래도 요즘에는 비교적 현지인들도 여유가 있는 중국계 사람들 이나 심지어는 캐나다 현지인들도 여유가 있으면, 여분의 집을 사 두는 경 우도 더러 있어 빈집이 곧잘 나오는 추세다. 부동산을 구입할 때 캐나다인들은 현찰거래를 거의 하지 않는다. 본인이 어느 정도 부담을 하고, 나머지는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지불한다. 물론 은행에서 융자를 받기 위해서는 신용이 있어야 한다. 이민자들의 경유 은행 거래 등, 과거 금융상의 신용을 평가받을 수 있는 근거 자체가 없기 때문에 곤란할 수도 있지만, 부동산 자체가 담보가 되기 때문에 거래 금액의 50%선까지는 신용 없이도 가능하다. 융자금에 대한 이 자를 성실하게 납부하는 등, 몇 년 동안 꾸준히 신용을 쌓으면 최대 70%90%까지 도 은행의 유자를 받을 수 있으므로 자신의 신용 관리에 최대한 신경을 써야 한다. 대부분의 캐나다인들은 젊은 나이에 집을 살 경우, 25 년 정도 상환하는


조건으로 구입한다. 이렇게 하면 50 세에서 60 세 정도 나이가 될 때 비로소 집 한 채가 자신의 몫이 되는 것이다. 작은 사업을 할 경우, 대부분 권리 를 사는 것이기 때문에 담보는 따로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은 행 대출을 거의 받기 힘들다, 과거 70-80 년대만 해도 작은 사업을 할 때에 대출을 받을 수 있었는데, 사업이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요즘은 은행 에서도 대출을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부동산 거래 시 전문가 도움 필수 캐나다에서는 부동산이나 사업체 매매를 할 때는 변호사나 공증인 등을 통해 거래하는 것이 거의 관행처럼 되어 있다. 이럴 경우 따로 비용을 지 불해야 하는 부담이 생기기는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는 사람이 예측하지 못했던 손해가 생기지 않도록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해 준다. 과거 초창기 때의 이민자들 가운데 일부는 변호사 비용이라도 아끼려는 마음에서 스스로 사업체를 팔고 사는 일을 해결하고는, 나중에 문제가 발 생해 결국 많은 피해를 보기도 했다. 이럴 경우 피해를 보는 쪽은 언제나 사는 사람들이다. 최근 들어 한국에서 오는 이민자들이 도시의 외곽 쪽으로 자리를 잡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오다 보니 이민자들끼리 어 울리게 되고 결국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는 속도가 늦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곽 쪽으로 나갈 경우 거주 비용에 대한 부담을 조금 줄일 수 있기도 하 다. 토막 상식/부동산 업체 '그레이스 랜드'최세일 사장 "한국식 부동산 개념에 익숙한 이민자 중 낭패를 본 경우가 많습니다. 현지 법 개념을 정확히 파악한 후 투자해야 실패를 줄일 수 있습니다." 연세대 졸업 후 대우조선 이민, 부동산 건설 업체 '그레이스 랜드'를 운 영하고 있는 최세만 사장이 조언하는 내집 마련 비결은 첫째, 수입 정도에 맞는 주택 규모를 결정하고, 둘째, 은행을 잘 활용해야 하며, 셋째, 계약 서 작성 때 조건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는 세 지다. 밴쿠버의 경우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신도시에 속하는 서리, 코키 트람 지역은 지하의 레크레이션 룸 포함한 3 층(침실 6 개, 화장실 5 개, 주차 장)규모의 대지 200 평, 건평 130 평짜리 집이 C$50 만(한화 6 억원)쯤에 구입 할 수 있지만, 부유층이 몰려 있는 웨스트사이드 쪽은 같은 규모라도 몇백 만 달러를 호가한다. 비용 조달 방법은 30% 정도만 현금으로 내고 최고 75%까지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 받아 해결할 수 있다. 연 7-9%의 대출 금리로 25 년까지 상 환할 수 있어 목돈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임대의 경우 아파트(침실 2 개 기준)와 연립 주택(침실 3 개), 단독주택(침실 3-4 개)의 구분에 따라 다르 다. 밴쿠버의 경우 아파트가 월 C$700-1,100 로 가장 비싸고, 토론토는 C$575-950, 몬트리올은 C$425-850, 연립 주택도 밴쿠버가 C$900-1500 이 며, 토론토는 C$800-1,150 선이다. 최 사장은 이민자들에게 계약서 작성 때 하자 유무를 따져 그 정도에 따 라 값을 깍아야 한다며, 지붕이나 벽채, 부엌 등 곳곳의 흠을 꼼꼼히 챙겨


주는 홈인스펙션 서비스(수수료 약 C$250)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 다. 한국과는 달리 도로 옆보다 조용한 골목 안쪽이 훨씬 투자 가치가 높다 는 점도 알아두면 좋을 상식이다. 완벽한 탁아 제도 대부분의 선진 복지 국가들이 그렇듯 캐나다 역시 아이들이 정규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돌보아 주는 탁아 제도가 매우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그 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여성들일지라도 남성들과 다를 바 없이 대부분 직업 을 갖고 있거나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혼 여성들은 출산 후 6 개월에서 일 년 정도의 출산 휴가 기 간이 지나면 다시 직장에 복귀하거나 일터를 찾아 나선다. 여성들이 아이 들에 대한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일터에서 일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월 C$400 ~ 450 정도의 탁아 비를 지불해야 한다. 물론 탁아 비용을 지불하 기 어려울 경우에는 정부에 재정적 지원을 요청할 수도 있다. 객관적으로 그런 사실이 확인될 경우 , 탁아 비용의 70% 이상까지도 정부가 지원을 해 주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탁아소는 생후 6 개월에서 1 년 6 개월 정도 지난 아이들을 받는 데 아주 특별한 경우, 생후 3 개월 이상이면 받아 주는 곳도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만 5 세가 되면 초등 학교에 속해 있는 유치원에 들어 가게 되지만, 그 이전이라도 만 3 세 이상이 되면 예비 학교(pre-school)라 는 곳에, 만 4 세가 되면 예비 유치원(pre-kindergarten)이라는 곳에 등록 시켜 학교에 다니게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경우 비용은 부모가 책임 져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 기관들은 매일 온종일 아이들을 맡아 두는 곳이 아 니고 일 주일에 세 번 정도, 그것도 하루 3 시간(오전 9 시부터 12 시까지)정 도 아이들을 교육하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인 경우 아이들을 맡기기에 적합 하지 않다. 결국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이들이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종일 탁 아(daycare)를 해주는 탁아소에 맡기게 되는데, 이러한 탁아소들은 대부분 아침 7 시 ~ 7 시 30 분 경 문을 열어 저녁 6 시 ~ 7 시까지 아이들을 맡아 준 다. 유치원이나 초등 학교 입학 전까지는 종일 탁아소가 아이들을 맡아 주지 만 그 이후는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거의 모든 유치원은 반나절(오전 9 시부터 12 시까지만)만 수업을 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은 자칫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미리 종일 탁 아소에 등록을 해 놓으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학교가 파할 즈음 탁아소 측에서 학교로부터 아이들 안전하게 탁아소로 데려오고, 아이는 탁아소에 서 엄마가 데리러 올 때까지 놀게 된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굳이 탁아소 를 이용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이웃에게 부탁해 그 집에서 데 려 오고 보호해 주는 경우이다. 물론 이웃이라 해서 공짜일 수는 없다. 정 확하게 탁아소 비용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노인들의 천국


캐나다는 노인들의 천국으로도 불린다. 그만큼 노년층에 대한 사회 복지 제도가 잘 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의료 보험도 거의 무상이나 마찬가지며, 심지어는 약을 사먹을 때도 본 인 부담은 별로 없다, 의사가 처방을 내린 약(조제약)을 지어먹을 때에는 약값 부담은 없고, 다만 조세 수수료로 C$ 5 달러 정도만 내면 된다. 의사 의 조제 없이 사는 약(over the counter drug)을 구할 때에는 약값을 부담 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노인들에게는 또, 공공 버스나 전철을 탈 수 있는 1 년 짜리 패스를 48 달 러에 지급해 주고 있으며, 1 년 동안 낚시를 할 수 있는 라이센스도 11,77 달러 정도에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있다. 노인들에게 지급되는 연금도 두 종류나 된다, 캐나다 연금이라 하여 본 인이 일을 하는 동안 조금씩 적립해 두었던 것으로, 65 세 이상이 되면 매 월 받는 것이 있고, 노년 보장 연금이라 하여 65 세 이상이 되면 캐나다에 서의 거주 기간에 따라 차등지급되는 것이 있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이른바 '노인 아파트'라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노인 아파트는 개인이 운영하는 것과 정부가 운영하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개인 아파트의 경우 만 55 세가 된 사람이면 누구나 돈을 내 고 입주할 수 있다. 이러한 아파트들은 노인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시설들, 즉 클리닉이나 편의점 등을 1 층에 집중 배치해 둔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노인 아파트의 경우 비용은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 월 150-200 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아파트라 할지라도 위치는 노 인들을 위한 시설답게 매우 편리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실직해도 월 1,000 달러, 임신 땐 20 주 유급휴가 노령 연금, 가족 수당, 건강 보험, 실업 보험, 근로자 보상제 등, 기본 적 삶을 보장해 주는 다양한 복지제도는 이민자들이 캐나다를 선택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캐나다 복지 제도의 특징은 '빈부의 균형'과 '공평한 혜택'. 총 소득의 9-38%에 달하는 높은 세금을 거둬들이지만 이렇게 마련된 재원은 저소득층 에게 환원된다. 모든 분야가 망라되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경기 하강이 계속되자 캐나다 연방 정부는 최근 복지 비용의 감축을 선 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캐나다 복지부는 북유럽 국가 못지 않게 캐나다의 사회보장제도가 완벽에 가깝다고 자랑한다. 이러한 복지 정책에 대한 사회의 평가는 한결같다. 비록 언어의 장벽, 향수병, 가정불화 등을 호소하는 교민들도 적지 않지만 대부분 '참고 살겠 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은 현지 복지 제도에 만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한인 이민자에게 피부로 와 닿는 것이 가족 수당과 건강 보험 등이다. 먼저 가족 수당부터 알아보자. 퀘벡, BC 주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연방 정부가 동일하게 적용되는 가족 수당은 18 세 이하 부양 자녀는 부모의 전년도 소득 수준에 따라 혜택받는 액수가 달라지는데, 퀘벡과 BC 주의 경우는 여기에 각 정부가 지급하는 혜택이 덧붙게 된다. 치과를 제외한 모든 분야의 의료 혜택이 망라되는 건강 보험은 캐나다


도착 즉시, 수혜 대상이 된다. 하지만 브리티시 콜럼비아주와 온타리 주의 경우는 3 개월 후부터 혜택이 주어진다. 1989 년에 어학 연수를 받던 중 영주권을 취득하고, 현재 캐나다 시민이 되어 살고 있는 한 교민은 '한인들이 맨 먼저 감동 받는 것은 의료 혜택' 이라고 말했다, 종합 병원에서 진료 한 번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한국의 사정을 경험했던 한국인들에게 아무런 비용 지출없이 예약만으로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현실이 대단히 경이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인 사회에서 성격 차이로 인한 이혼율이 느는 것도 어찌보면 복 지 제도가 지닌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이혼해서 직업을 얻지 못해도 월 1 천 달러의 지원이 나오니 별로 걱정할 것이 없고, 이러한 복지 정책이 오히려 맘 편하게 이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냐라는 이야기 가 나오는 형편이다. 교포 문영 씨(43, 메니토바 거주)는 캐나다의 복지 제도를 죽은 시체도 캐나다 시민권을 놓지 않으려 한다는 말로 설명했다. 직장에 다니던 여성이 임신했을 경우 16-20 주 동안 유급 휴가를 받으며 쉴 수 있으며, 복직 후에도 전혀 불이익이 없는 사회라는 것이 문씨의 설 명이다. 어떤 교포는 비록 하루 일당이 100-150 C$ 정도로 낮은 편이지만 의료와 교육 분야에 관한 지출이 별로 없어 그래도 생활이 여유 있는 편이 라며 만족해하고 있다. 완벽에 가까운 복지 제도로 인해 불안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맛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노년 보장 제도 역시 충실하다. 18 세 이후 40 년 이상을 캐나다에서 생활 한 사람, 또는 1997 년 7 월 1 일 이전에 캐나다 영주권을 획득한 자로 일정 조건을 충족시키면 65 세 이후 연금 전액을 지급받으며, 18 세 이후 이민자 라도 10-40 년간 캐나다 거주자는 기간에 따라 혜택을 받는다. 20 년 이상 캐나다 거주자는 캐나다를 떠난 후에도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 때 연금액은 월 평균 수입액의 25%이며, 임금근로자는 최고 380 달러, 자영업자는 760 달러를 매달 받는다. 현직에서 일할 때의 각출액은 월 소득 액의 1.8%, 하지만 이러한 혜택을 누리기 위한 부담은 만만치 않다. 연봉 이 5 만 달러면 세금이 약 2 만 달러쯤 된다. 주마다 차이는 있지만 고소득 일수록 세금도 많다. 10 만 달러 연봉자는 6 만 달러 정도가 나간다. 때문에 캐나다 사회에서는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블랙머니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 되고 있다. 캐나다 생활에 빨리 안정되려면 세금 제도 캐나다에는 주 정부세와 연방세 등, 두 종류의 세금이 있다. 주 정부세 는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5%에서 8%사이이고, 연방세는 7%로 어디에나 같다. 주 정부세가 없는 곳도 딱 한 곳 있는데 그 곳은 앨 버타 주이다. 모든 물건 가격에 이 두 종류의 세금이 부과되어 있기 때문에 캐나다에 서 물건을 살 경우 한꺼번에 두 종류의 세금을 낸 셈이 된다. 심지어 음식 에도 똑같은 세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즉, 어린 자 녀들의 필수품-옷이나 신발 따위-을 구입할 때에는 주 정부세를 면제해 준 다.


캐나다 땅에 이주해 와 처음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붙어 다니는 세금에 매우 당황해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캐나다는 세금 이 많은 나라에 속하지만 그 반면에 납세자가 받는 혜택 또한 대단히 많 다. 의료나 교육, 노후 연금, 환경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납세자에게 혜택 이 폭넓게 주어진다. 세금이 납세자를 위해 잘 쓰이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경우, 캐나다에 와서는 적잖게 부가되는 세금을 아까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일 뿐, 대부분의 세금이 결국 거의 모두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세금 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사라진다. 금융 거래 캐나다는 철저한 신용 사회이다. 일상 생활의 간단한 금전 거래도 대부 분 현금보다는 신용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캐나다인들은 지갑에 불과 20 달러 안팎의 현금만 가지고 다닐 뿐이다. 거액을 소지하고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금전 거래는 신용 카드나 개인 수표 (Cheque)를 쓴다. 이렇듯 철저히 신용 중심으로 금융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를 어길 경우의 피해는 매우 크다. 예를 들어 임대 주택에 살면서 임대료를 제때 내지 않거나, 차를 할부로 구입하고서도 은행 융자받은 금액에 대한 이자 를 제때 납부하지 않을 경우, 그 다음부터는 집을 얻기가 매우 힘들어질 뿐 아니라 은행 유자는 꿈도 못 꾼다. 임대료 및 이자 납입을 연제했다는 기록이 평생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기업뿐 아니라 이러한 개인의 신용을 조사 해주는 회사들도 있 다. 이 회사에 의뢰를 하면 개인의 신용 정보가 모두 밝혀진다. 특히 신경 써야 할 것은 일상 생활에서 현금 대신 개인 수표를 많이 쓰 는데, 이 때 은행의 잔고를 늘 확인하고 쓰는 것이 좋다는 점이다. 만일 자신의 은행 계좌에 잔고가 없는데도 개인수표를 발행할 경우, 은행측은 개인 수표를 사용한 사람에게 수수료를 따로 청구하게 되며, 수표를 받은 사람에게도 별도로 수수료를 무리기도 한다. 결국 잔고 확인을 하지 않음 에 따라 본인 뿐 아니라 남에게도 본의 아니게 해를 입힐 수도 있는 것이 다. 생활비는 얼마나 들까? 캐나다의 물가는 전반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해마다 크게 오르거나 내리 는 일이 별로 없어 가계 수입이 안정되어 있다면,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 을 느끼지 않는다. 일반적인 가정의 한 달 생활비는 대략 3 천 달러 정도로 보면 적당할 것 이다. 물론 이 비용에는 월세와 식비, 차량 유지비 등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보다 훨씬 더 지출이 많은 집도 있고 덜 쓰는 집도 있겠지만, 이 정도면 평균적인 가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가계 지출 가운데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주택의 월세다. 가계 지출의 약 40% 정도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비싼 집을 임대하면 가게 지출 이 크게 늘어나고, 싼 집을 임대하면 지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평균적인


개인 주택 월세는 월 1,500 달러 안팎이다. 캐나다 문화 속으로 내게 캐나다는 천국이었어(체험담) 딸기 농장에서 보낸 두 달 이민온 지 벌써 1 년하고도 4,5 개월이 지났다. 생각해 보면 그 동안 내게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른 문화권에서 살다 온 나에게는 단지 즐거운 일이라기보다는 문화 차 이에서 오는 놀랍고 신기한 느낌이 여태껏의 캐나다 생활에 더 많지 않았 는가 싶다. 작년 여름에는 한두 달 간(7-9 월) 산딸기(raspberry)농장에서 아르바이 트를 한다. 나 역시 11 학년이고 또 좀 한가해서 이리저리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지만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급여가 낮지만 용돈이라도 벌어야겠다 싶어 그 농장에 찾아갔던 것이다. 엄마와 동생도 같이 그 일을 하겠다고 따라 나섰다. 이후 우리는 매일 새벽 6 시부터 오후 2 시까지 산딸기를 땄다. 이른 아침에는 찬이슬 때문에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으며, 비가 오면 질퍽이는 진흙 속에서 산딸기를 따 야 했다. 파운드당 4 달러를 받았는데 고생한 것에 비하면 형편없는 급여였 다. 하지만 돈벌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부모님에게 감사하게 됐으니 도리어 더 큰 것을 얻은 셈이다. 한국에서 의사였던 엄마는 그 일을 하면서 무척 즐거워하셨다. "아침 공기가 참 상쾌하구나. 이제야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아. 맨날 창 백한 환자들 곧 죽어 가느 얼굴을 대하고 있노라면, 꼭 내가 환자가 된 기 분이었지." "엄마, 힘들지 않아요?" "힘들기, 이거 봐라, 얼마나 귀엽니." 엄마는 마치 모든 걸 신기해하는 아이 같았다. 9 월이 되자 딸기 따는 일이 거의 마무리 되었다. 마지막 날 농장 주인은 그 동안 일 잘 해 줘서 고맙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See you next year.' 내년에 또 오라고? 좋긴 하지만 내년에 다시 이렇게 힘든 일을 시도하게 될지 의문이다. 오! 달러 캐나다에 와서 바이올린을 다시 켤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좋았다. 한국 에 있을 때 초등 하교 1-2 학년까지 바이올린을 했는데 중,고생이 되고는 그만두었다. 그런데 이 곳에 와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된 것 이다. 일단은 바이올린을 새로 구입해야 했다. 한국에서 쓰던 바이올린은 운반 도중 갈라져서 더 이상 못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땅한 레슨 선생을 찾 는 것도 문제였다. 작년 6 월 방학이 시작될 무렵, 온 아보츠보드를 들쑤시 고 다녀서야 겨우 한 사람을 찾아 냈는데, 그가 바로 지금은 진짜 좋은 친 구 같은 데이빗 보스 선생님이다. 그다지 사교성이 없는 나는 친구가 별로 없었는데, 데이빗 선생님은 바이올린 렛슨 외에도 여러 면에서 많은 도움


을 주었다. '바이올린을 할 바에야 남한테 인정받을 만큼은 해야지.'하는 생각으로 RCM 시험을 준비할 때 캐나다 제도의 체계성과 전문성에 놀라고 말았다. RCM 시험은 일종의 급수따기 시험이다. 단순히 급수따기 시험인데도 기본적 인 연주는 물론 이론, 청음키우기, 악보읽기, 그리고 주요곡 연주 등 기본 에서부터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주요곡도 장르별로 콘체르 토, 소나타 등, 세세하게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아마추어에게도 이 정도로 철저히 준비시키니 인재 양성 차원에서 현명하고 치밀한 행정인 것 같다. 지금 내 모습을 가만 보면 한국에 있을 때나 달라진 게 하나 없다. 그러 나 머릿속 생각은 너무나 달라져 있고, 날 이렇게 달라지게 한 캐나다인들 은 좋든 나쁘든 여러 면에서 정말 한국인들과는 다르다. 가장 큰 예가 '대학 제도'일 것이다. 보통 고등학교의 대학 진학률이 10-20%정도밖에 안 된다. 한국에서 10-20% 진학률이라면 정말 낮은 비율이 지만 여긴 그게 보통이다. 근데 중요한 것은 지원하는 학생 역시 10-20%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기 대학은 진짜 공부하고 싶은 사람 만 가는 곳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입학은 쉬워도 졸업은 어려운 것이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여기 학생들의 부모는 대부분 돈을 완전히 대 주지 않는다. 일부러 대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제 비싼 학비를 대줄 돈이 없다. 세금 내고 자신들의 노후 보장에 대비하다 보면 항상 돈이 빠듯하다. 부모들 역시 그 들의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자식들의 삶 또한 스스로에게 달렸다고 보는 것 같다. 보통은 어느 정도만 대 주고 나머지는 학생 스스 로가 벌거나, 정부에서 빌려서(student loan) 일단 공부를 하고 나중에 갚 아 나간다. 둘째는 여기선 학벌을 우리 나라만큼 꼬리표로 삼지 않는다. 진짜 실력 이 있고 성실하면 대학을 나온 사람보다 실제로 고용이 되기가 쉽다. 무슨 대학 무슨 과를 평생의 간판으로 내걸고 다닌다는 건 여기서는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이다. 이건 정말 합리적인 사고 방식이고, 그런 합리적인 사람들 이 만들어 나가는 캐나다가 아주 살기 좋은 걸 보면, 우리 나라도 기존의 고정 관념에서 어서 벗어나야 하지 않나 싶다. 나는 현재 의과 대학에 원서를 내놓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앞 으로 장장 7-8 년 동안은 공부해야 할 것이다. 학교에 대학원서가 배부되자 주변 친구들은 학비 걱정이 대단했다. 부모님이 학비를 대 주시니 나는 행 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 면허를 땄을 때 아빠가 소형차를 사 주셨는데, 그걸 본 친국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무척 놀라워했다. "너네 부모님은 참 이상도 하구나." 캐나다 부모님에게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나 또한 친구들처럼 독립하려고 노력한다. 생활비는 거의 내가 벌어서 충당하고 있 다. 차 보험료며 기름값, 바이올린 레슨 시 피아노 반주비 등등, 그래도 아직 친구들에 비하면 부모님에게 많이 의존하는 편이다.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섣불리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곳 사람들의 합리적인 사고 방식이 캐나다를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고 있 는 것만은 확실하다.


부딪치며 배우기 우리 동네 아보츠포드는 그래도 좀 덜하지만 밴쿠버만 가도 온갖 민족들 이 다 모여 산다. 인도인 , 남미 계열, 이란 등의 중동 사람, 베트남, 캄 보디아, 태국 등의 동남아, 독일, 네덜란드, 영국 등의 유럽 계열... 하여 튼 진짜 가지각색이다. 이런 사람들이 영어를 다 잘 하냐하면 물론 아니 다. 30-40 대에 이민 온 사람들은 악센트는 물론이고 의사소통도 제대로 못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걸 보면서 영어가 진짜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런 면에서 난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한국에서 조기 영어 교육에 대해 논란이 많았지만 난 오히려 그 조기 교육 덕을 톡톡히 보았다. 캐나다 학 교에 편입하게 됐을 때, 면접 선생님께서 ELS 과정은 안 밟아도 되겠어 라 며 정규반(regular class)에 바로 들여보내 주었다. 고 1 때 왔으니 10 학년 이었지만 배울만한 것도 특별히 없고 대학도 빨리 가고 싶어서 11 학년으로 편입했다. 따지고 보면 고 1 과정인 10 학년을 건너 뛴 셈인데, 그렇다고 문 제가 되지는 않았다. 내가 아무리 영어 실력이 있다 해도 캐나다 사람들이 쓰는 억양과 속어 (slang)적 표현에는 익숙하지가 않았다. 그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하고 싶어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뭐니뭐니 해 도 캐나다 사람들과 자꾸 부딪치고 끊임없이 대화하려고 하는 것일 것이 다. 캐나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절대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나는 데이빗 선생님과 바이올린 레슨이 끝나면 꼭 서너 시간씩은 대화를 한다. 그는 주로 책을 읽은 후에 감상이라든가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따분하고 재미없을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적이고 학문 적인 어려운 단어를 배울 수 있어서 내게는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돈도 벌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는 일상 영어도 완벽해졌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두세 시간 정도 초등 학교 1, 3, 6 년생 아이들을 돌봤는데(일명 babysitting), 그들에게서 배우는 것도 솔찮이 많았다. 이 곳에서 어린 시 절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 아이들이 자주 쓰는 표현을 잘 몰랐는데 많이 알게 되었다. 아이들 돌보는 일말고 과외를 해 본 경험도 있다. 과외 는 뜻밖에 구한 아르바이트였다. 한번은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어떤 레스토랑에 찾아갔었다. 그런데 주인은 '지금은 새로 종업원을 구할 필요가 없어졌어요'라고 했다. 그러더 니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괜찮다면 우리 애들 과외 선생을 하면 어때요?" 물론 여부가 있겠는가. 좋은 기회다 싶어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 과외를 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었다. 남들로부터 그냥 배울 때와는 또 달랐다. 요즘은 MSA 라는 종합 병원에서 봉사하고 있다. 의과 대학은 학교 정책상 자원 봉사를 꼭 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난 거의 반년 가까이 봉사를 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 의학 용어를 현장에서 배우고 친구도 많이 사귈 수 있 었다. 영어 실력은 이렇게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부딪침으로 써 향상되는 것 같다. 밴쿠버의 코리아 타운같이 한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는 영어를 배울 기회가 없다. 이민 온지 4-5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영어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영어를 잘 하고 싶으면 캐나다 사람들과 많이 접촉하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 어쨌든 캐나다는 내게 기회의 땅이었다. 이 곳에서 생활한 1 년 반 동안 내 인생은 궤도를 수정해 새로운 세계로 빨려들었고 또 새롭게 변했다. 시 간은 한번 가면 안 온다지만 여기선 꼭 그 때가 아니라도 어느 때이든 다 시 이룰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여유가 있고 정신적으로도 풍요로 운 것 같다. 계속 살아 봐야 알겠지만 내가 살기엔 적합한 캐나다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한다. - 이혜령. 10 년 후의 우리들의 미래(체험담) 저는 박 수영입니다. 저희는 1997 년 5 월에 토론토로 이민을 왔습니다. 남편은 10 년 경력의 엔지니어로서 독립 이민이 가능했습니다. 남편과의 사 이에 10 살 된 딸 아이 하나를 두고 있으며 전업 주부입니다. 저희가 이민 을 생각한 것은 2 년 정도였지만 심각하게 고민한 것은 한 5 개월 정도 됩니 다. 당시 남편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는데, 직장도 안정되고 신도시에 중 형 아파트도 장만하고 별 걱정 없는 생활이었지만 10 년 후의 저희 미래를 생각하면 걱정스러웠습니다. 너무나 안정된 저희 생활이 문제였습니다. 안 정되었다는 것은 역으로 발전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저희 는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더 나이 들기 전에 도전하자고 결정했습니다. 왜 냐하면 대개 나이가 들어갈수록 도전에서 오는 위험성을 감수하고 과감하 게 실행할 용기가 없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민을 신청하고 거의 1 년만 에 비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민 신청을 하기까지가 고민스러웠지 일 단 신청을 한 다음에는 더 이상 옳은 선택이었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 습니다. 옳은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이민 생활을 준비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될 수 있는 대로 정보를 많이 수집하려고 했습니다. 현지 답사도 저희 식구 모두가 왔었습니다. 이민의 주제는 남편이었지만 ���도 딸 아이도 어차피 이곳 생활에 적응 할 수가 있는지 알아야 했으니까 요. 물론 수박 겉ㅎ기 식이었지만 이민 생활을 보고 간 것이 막연히 이민 생활에 대해 환상을 갖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이민 생활에 임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점에서 이주 공사 선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에이전트는 그런 면에서 캐나다의 실정을 비교적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고 한국식의 성공(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든 지, 아이를 명 문 학교에 입학 시켜야겠다든 지)에 가치를 둔다면 이민 생활이 힘들어 질 것임을 충고해 주었습니다. 어쨌든 이민 준비는 순조롭게 되어서 인터넷으 로 이곳 미시사가에 집도 미리 구해 놓고 출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무엇보다 감사하는 일은 남편이 오자마자 바로 다음날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한국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취 직을 하는 것은 캐나다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 합니다. 재직증명서만 있으면 집을 얻을 때나 은행에서 융자를 얻거나 할 때 따로 보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초기 이민자 같이 신용이 없는 사람 에게는 정말 도움이 많이 됩니다. 그 외에도 소속감 같은 것이 이민 생활


에 많이 위안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남편은 이곳의 직장 생활에 만족해 하고 있습니다. 월급은 한국에서보다 적지만 시간이 여유롭고 일이 한국에 서처럼 스트레스 쌓이지 않기 때문에 좋아하고 있습니다. 딸 아이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이민 오기 전에 우리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용모도 단정해 서 선생님들도 이뻐하시고 친구들 사이에 인기도 있어서 줄곧 반장을 했었 습니다. 이민 와서 처음 한달 동안은 매일 집에 와서 학교 이야기를 하다 가 울어 버리는 것이었어요. 친구들이 안 놀아 준다는 것이죠. 이 아이가 한국에서처럼 자기가 애써 친구를 만들려고 안 해도 아이들이 놀아 주리라 생각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하루는 아이를 붙잡고 이야기를 했죠. "이곳은 한국에서처럼 네 얼굴 예쁜 것과 공부 잘하는 것을 아이들이 부러워하고 너랑 놀고 싶어서 줄을 서는 곳이 아니다. 친구를 가지고 싶으 면 네가 먼저 누군가의 친구가 되려고 노력해야 해. 용기를 갖고 먼저 놀 자고 해봐." 결국 한달 만에 친구도 생기고 이제는 학교 생활이라는 것이 결국 무엇 을 하든지 한국에서 보다 용기가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아이 들이 학교에서 그렇게 부딪쳐서 배우니 결국 아이들이 제일 먼저 적응한다 는 말이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소극적이고 부딪칠 일 들이 적은 주부들이 적응하려면 시간이 제일 많이 걸릴 것같지만 꼭 그렇 지만도 않습니다. 제 경우는 남편이 바로 출근을 해 버렸기 때문에 제가 모든 일들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아이학교 입학부터 아파트 계약, 전화 신 청, 온갖 쇼핑까지 짧은 영어 실력으로 해결하려니 답답한 적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이들이 자극이 되어 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게 만들어서 지 금은 오히려 남편보다 나은 영어 실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영어만 어느 정도 해결되면 이 곳도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 사는 곳은 별다를 곳이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이것은 아무 문제도 없을 경우의 이야기이고 가끔 어떤 문제로 이곳의 일 처리 방식을 저희 사고방식으로는 이해가 힘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아! 우리가 남의 나라에 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가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정든 가족들 곁을 떠나 낯선 이곳으로 온 것이 잘한 일인지 아닌지에 대해 지금 이야기 할 수 는 없습 니다. 지금은 단지 긴 인생에서 커다란 도전을 한번 했다는 것이 저희에게 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저희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최 선을 다할 뿐입니다. 항상 저희와 함께 하시는 주님과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 드립니다. -박 수영, 박만식 씨 다른 문화권에 대한 두려움 극복 비슷한 실력의 영어를 구사하는 부부가 캐나다에 정착 할 경우, 일반적 으로 남자보다는 여자의 영어 실력이 훨씬 더 빨리 는다고 한다. 그 이유 는 순전히 '남자의 자존심' 때문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이 애써 영 어를 구사했을 때, 상대방이 못 알아들으면 무척이나 자존심 상해한다. 그 래서 다음부터는 영어하기를 겁내고, 아예 입을 봉하고 다닌다. 반면, 여성들은 굳이 자존심 같은 것을 내세우지도 않고, 상대방이 알아 들을 때까지 몇 번이고 시도한다. 그러다 보니 영어를 배우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해보는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영어를 배우는 것이 이렇듯 캐나다에서 가 두려워 아무적도 하지 않으면 발전은 열심히 보고 배우려하고, 모르면 양해를 보장해 준다.

용기가 좀더 좋은 영어를 구사할 생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실수 결코 보장되지 않는다. 무엇이든 구하자 더 발전적인 이민 생활을

캐나다에 더 빨리, 쉽게 적응하기 위한 몇 가지 조언 첫째, 이민 수속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영어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 다. 영어 공부는 굳이 캐나다가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얼마든지 할 있기 때 문이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학원에 등록하거나 아니면 개인 레슨을 받 는 것이 좋다. 이 때에는 되도록 캐나다 미국 등 현지인, 또는 현지인 수 준에서 영어를 구사하는 본토 발음자에게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왜냐하 면 잘못된 발음을 캐나다 현지에서 구사하게 되면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여러 가지 곤란을 겪을 수 있다. 또 현지인의 언어를 제대로 알아듣 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라도 본토 발음자의 지도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 만일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카세트 테이프를 이용한 학습도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끊임없이 반복해서 듣다보면 귀가 트인다. 듣기(hearing)는 매우 중요하다. 귀가 트이지 않은 채 캐나다에 도착하 면 여간 당혹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는 말을 도무지 알아 듣지 못한다면 의사 소통은 결국 불가능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AFKN 을 통한 듣기 훈련도 효과적이다. 시사적인 내용도 있고, 드라마 등 여러 가지 상황에서 쓰이는 영어를 현지 언어 수준에서 들려주기 때문에 꾸준히 학습하면 상당한 도움이 된다. TV 프로그램 가운데 영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여럿 있는데, 특히 이보영 씨의 영어를 가르쳐 주는 기법은 상 당히 뛰어나 보인다. 배우는 사람이 쉽게 따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세심 한 배려도 돋보여 추천해 주고 싶은 프로그램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에서는 배우기만 하고 써먹을 데가 없어서 공부해 봤 자 자꾸 잊어먹으니 말짱 헛일이라고 주장한다. 얼핏 들으면 그런대로 일 리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래도 학습을 꾸준히 해야한다. 캐나다 현지에 도착해 여러 가지 상황에 부딪히다 보면 우리가 잊었다고 생각한 학습 내 용들이 자기 지신도 모르게 떠오르고,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둘째, 이민을 가려고 하는 확고하고 뚜렷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 동기가 뚜렷하고 신념이 확고한 사람일수록 캐나다 현지에서 적응력이 뛰어나다. 그런 사람일수록 모든 일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주어지는 낯선 상황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모든 것을 깊이 생각하고 어떤 일이든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들은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니 적응이 쉽게 될 수밖에 없다. 이민에 대한 확고하고 뚜렷한 동기를 갖는 것은 그런 면에서 대단히 중 요한 일이다. 반면, 동기가 별로 신통치 않은 사람들은 종종 실패의 기로 접어든다. 목적이나 동기가 뚜렷하지 않으니 어려움이 닥치면 내가 왜 이 런 고생을 사서하지 하는 생각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


는다. 될 수 있으면 쉬운 길로 가려고 요령을 피우기도 하며, 자기 발전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더욱 뚜렷한 목적이나 동기를 세워 두는 것은 이민자의 가장 기본적인 마음 자세이다. 셋째,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자기 자신을 위해 보다 충 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아무리 사전 준비를 철저히 했다 하더라도 어차 피 낯선 땅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새로운 것들 뿐이다. 한국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처럼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려면 상당한 시 간이 걸린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보통 1 년에서 2 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이민자들은 3-4 개월 살아보고 포기하기도 한다. 어렵사리 캐나다에 도착 후 몇 개월만에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경우도 있었 다. 이럴 경우 시간적, 금전적 손실은 매우 크다. 아무리 사전 준비를 했 다 하더라도 어떻게 새로운 나라에 3-4 개월 만에 적응할 수 있겠는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보면, 아무리 낯선 곳이라고 해도 어차피 사람 사 는 세상이니만치 참고 견디면서 1, 2 년 노력하면 모든 것은 곧 익숙해진다 는 이야기도 된다. 이처럼 참고 견뎌낸 사람들은 캐나다 현지에 잘 적응해 한국으로 되돌아가겠다는 이야기를 절대로 하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어느 새 캐나다 생활에서 익숙해져 있다는 이야기다. 넷째, 생활 방식뿐 아니라 의식 자체도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한국을 떠나는 순간, 한국적 의식과 사고 방식을 포기하는 것이 여러 모로 자신에 게 도움이 된다. 어차피 새로운 세계로 뛰어드는 것일 바에야 철저하게 새 로운 의식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자신의 마음의 문이 열려 새로 운 문화와 환경에 쉽사리 적응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마음 문을 닫아걸 고 계속해서 한국적 의식과 사고 방식을 고집하는 것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캐나다 생활이 매우 힘들어지고, 결국은 문 제가 발생하게 된다. 다섯째, 캐나다 현지에서 사업을 벌일 때에도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않 는 것이 좋다. 긴 시간 여행하는 셈치고 여러 가지를 주도 면밀하게 살펴 본 뒤 확신이 서면 과감하게 시작해야 한다. 물론 이 때에는 신중을 기한 다고 지나치게 재다 보면 오히려 때를 놓칠 수 있으니만치 한층 적극적으 로 뛰어드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떠한 사업도 100%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고, 또 어느 정도 위험 부담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50% 이상 의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사업을 벌여나가는 자세가 필 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급한 사람은 캐나다서는 좀 자제할 필 요가 있다. 이 성격 급한 사람은 쉽사리 적응할 수 없을 만큼 사회적 환경 이 여유롭은 나라이다. 성격 급한 것을 버리지 못하면 공연히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다. 여섯째, 캐나다에 도착하는 즉시 한국에 대한 것은 일단 잊는 것이 좋 다. 부질없이 한국과 캐나다를 비교하는 일만큼은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 다. 캐나다에 이주해 온 한국 사람들이 가장 비번하게 비교해 보는 것이 한구에서 얻었던 수입과 캐나다에서 얻는 수입에 관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얼마를 벌었는데, 어렵사리 캐나다에 와서 이것밖에 못 벌 고 있다니..." 하는 식의 푸념도 늘어놓기도 한다. 모두 부질없는 일이다. 캐나다에서는


욕심을 버리고 살아가는 법을 새롭게 익혀야 한다. 어느 정도 생활해 나가 는데 어려움이 없다면 그로써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가짐이 필요하 다. 일곱째, 한국과 캐나다를 비교하지 말아야 하듯 다른 사람과 본인을 비 교하는 일도 삼가는 것이 좋다. 다른 교민이 어떤 집에 살든지, 차는 또 무슨 종류인지 따위에 신경쓰지 말고 살아야 마음이 편하다. 어차피 캐나 다에 이주해 온 것도 마음 편하게 살자고 온 것이니 만치 그런 사소한 문 제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또, 요즈음은 투자 이민을 오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고, 이들이 가지고 온 물건과 재산 정도는 저마다 크게 다르다. 누구나 자신이 갖고 있는 만 큼의 재산 규모에 맞추어 생활하면 그뿐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갖고 온 재 산과 남의 것을 비교하거나, 아니면 남이 하는 대로 무작정 흉내내거나 따 라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런 경우 십중팔구 실패하기 쉽다. 여덟째, 앞서 강조한 바 있지만 한국은 떠나는 순간 한국에서 누렸던 지 위와 권위 따위는 완전히 잊는 것이 좋다. 왕년에 내가 어떤 자리에 있었 는가 하는 따위는 전혀 중요한 것이 못된다. 그러한 것들은 캐나다에서 살 아가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새로운 세계 에 들어온 이상 그저 현실에 충실하면 된다. '지난 시절에 내가 무엇을 했 는데 이런 일을 하다니...'하는 따위의 생각은 금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적지 않은 이민자들이 옛날 생각을 하면서 마음의 갈등을 겪는다. 그런 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잊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 으로 하루하루 충실한 자세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아홉째, 가치관이 바뀌어 무슨 일을 하든지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야 한 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은 적어도 캐나다에는 정확하게 적용된다. 실제로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는 캐나다 사람들에게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저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해서 삶을 영위하면 그 뿐이다. 한국에 서 온 이민자들 가운데 다수는 자영업을 한다. 이 때문에 육체적으로는 다 소 힘들 수도 있으나, 자영업을 한다고 해서 내려다보거나 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마음은 매우 편하고 스트레스 받지 않아 좋다는 것이 이민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열번째, 캐나다에 도착한 뒤부터는 자신을 매우 바쁘고 분주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이민 초창기에 한가한 시간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조 금이라도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차를 타고 다니면서 적극적으로 새로운 문 물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으로 활용하고, 캐나다에 대한 한 가지라도 더 알 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자신을 분주하게 몰아 가는 것이 이 민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으로부터 해방되고, 고향에 대한 향수를 떨쳐 버 릴 수 있는 지름길이다. 아울러 실제로 이민 초창기에 한가로운 시간을 많 이 갖는 것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이것저것 새로운 사업에 대한 구상도 해야하고, 현지인들을 만나고 새로운 이웃을 사귀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 이는 것이 앞으로의 생활을 위한 터전을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끝으로, 캐나다에 이주해 온 뒤 영어 공부를 하느라, 이것저것 알아보느 라고 1-2 년을 쉽사리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기간에는 버는 것 없이 가져간 돈을 조금씩 쓰게 된다. 이 때문에 영어 공부고 뭐고 집어치우고 바로 일터로 뛰어드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하지만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결코 이 기간이 소비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캐나다 에 정착해 사업이든 직장 생활이든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 체계적으로 영어 공부를 할 시간이 별로 없다. 캐나다 도착 직후 얼마 동안은 그야말로 천 금같은 시간이다. 현지 사정을 익힐 겸 영어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는 시간 으로 활용하는 것은 결코 소비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일 수 있다. 실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여러 모로 마음도 편하 고 여유로와 지기 때문에 실수할 확률도 그만큼 작아진다. 앞서 이야기한 것 모두가 다 중요한 것들이지만, 결국 이민 생활의 성패 는 캐나다 도착 전, 즉 한국에서 사전 준비를 제대로 하느냐에 크게 달려 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에서 미리 정확하고 현실성 있는 정보를 알고 떠나면 캐나다에 도착해 어떤 곤란한 상황이 발생해도 곧바로 대처해 나갈 수 있게 마련이다. 캐나다에서의 올바른 자녀 교육 16 계 1. 자녀를 적극적으로 안아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질 것 2. 토요일 이후에는 자녀와 함께 낚시나 캠핑을 즐길 것 3. 일상적으로 자전거를 함께 타고, 테니스도 함께 즐길 것 4. 절대로 때리거나 욕하지 말 것 5. 공부를 강요하지 말 것 6. 부모가 고생한다는 점을 은근히 보여 주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과거사 가운데 본받을 만 한 것들을 교육시켜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 7.자식에게도 배운다는 자세를 가질 것. 이 문제는 자녀들이 언어 습득이 빨라, 금방 닥칠 문제임 8.잘 한다는 칭찬의 말을 자주 할 것 9.한 달에 한 두 번은 자녀와 두 시간 이상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것 10. 생활에 쫓겨 아이들을 밤에만 만나지 말고 부부가 교대로라도 낮 시간 에 자녀들을 보살필 것 11. 조금 힘들더라도 자녀들의 아빠가 고생을 좀더 하는 편이 좋음 12.종종 한국의 비디오 테이프를 보여 줄 것. 한국어를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음 13.자녀들끼리 영어로 말한다고 야단치지는 말 것 14.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계시면 꼭 모셔올 것. 화목한 가정의 구성 요건이 기도 하며, 자녀 교육에도 좋고, 특히 한국어를 잊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 이 된다. 15.초행길을 지도를 보고 찾아가도록 교육시킬 것. 16.자녀들에게 음악이나 미술 등, 예능 분야의 교육을 함께 시킬 것. 악기 한 가지씩은 다룰 줄 알게 하는 것이 좋다.) 운전 문화 하나만 봐도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죠(이민 사례) 돕고 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이곳으로 온지 6 개월이 지난 1996 년 1 월 초, '빙판에서의 교통 사고가 이런 것이구나'라고 절실히 느낀 사고를 한 번 경험했다. 웬지 맞을 매를 맞고 난 것처럼 당연히 치러야할 행사를 치른 듯 오히려 운전에 대한 자신 감이 생겼다. 그 후로는 폭설이 오든, 폭우가 쏟아지든 대중 교통 수단이


운행을 정지할 정도가 아니면 어디든지 차를 몰고 다녀 장거리 운전 여행 도 꽤 많이 했고, 덕분에 록키 산맥도 2 번 넘어 보았다. 이렇게 운전을 하며 차가 주는 기동성에 고마움을 느끼면 느낄수록 내 차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고, 그러면 그럴수록 정기 검사를 게을리하지 않 았다. 그런던 어느 날, 밴쿠버로 이사와 일단 필요한 기구를 준비하느라 이곳 저곳 중고 가구 상가를 돌아다니던 어느 토요일 오후, 시내 한복판에서 차 가 멈춰 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다른 때도 아니 토요일 오후, 바로 옆길 에는 큰 교회가 있는데 마침 결혼식이 있어 평소보다 많은 차량들이 줄을 지어 들어가고 있었다. 차량 정비에 대해 무지한 나로서는 뭐가 문제인지 도 모르겠고, 온몸에 소름이 끼치면서 등,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흐르고 있 었다.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뭐가 잘못인지 한블록 건너에 있는 주유소까 지 만이라도 가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다. 어느새 나타난 캐나다 경찰의 친절 한 순간 차내 백밀러를 통해 들어오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치며 놀랐다. 경찰차가 어느 새 위에 와 서있는 것이 아니가? 이 곳에 온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하는 말 중의 하나가 여기 경찰은 어디서 언제인지 모르 게 갑자기 나타나나는 것인데(그렇다고 숨어서 함정 단속을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 말이 정말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40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경 찰이 다가왔다.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차가 가질 않아요." "차 열쇠를 주시죠." 하고는 시동을 걸어 보더니 "차 배터리가 나갔군요."하는 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죠?" "당신이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 내가 차를 뒤에서 밀 테니, 저기 보이는 주유소로 일단 차를 옮기도록 합시다."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정지한 곳이 약간 경사진 곳이라 차가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안간힘을 쓰는 경찰 관에게 정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백미러를 통해 들어오는 그림 에 다시 한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10 초 전까지만 해도 분명 백미러에는 경찰 한 명뿐이 없었는데, 지금 보 니 다른 두 명의 남자들이 온갖 힘을 다해 차를 밀고 있는 것이다. 차림새 를 보니 한 명은 옆 교회의 결혼식을 가던 중이었고(깔끔한 검정색 세미 턱시도 차림), 한 명은 주말 여행을 떠나던 길이었던 것 같다. 그들 눈에 도 경찰 혼자 이 패밀리 카 크기의 세단을 미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는지 결혼식장도 뒤로하고 나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친절한 차량 정비 서비스 맨 차는 무사히 주유소까지 끌려 왔고, 공중 전화를 통해 차량 정비 서비스 를 불러 배터리 충전을 받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 서 비스 맨 이야기가 충전이 20 분 정도밖에 못 가는 임시적인 것이라 되도록 빨리 가까이 배터리 가게를 찾아 정식으로 배터리를 교체하라는 것이었다.


토요일 오후 4 시 반, 곧 5 시면 거의 모든 차량 정비소가 문을 닫는데 어 디에 뭐가 있는지, 그 때는 이 곳 밴쿠버 지리도 너무 생소했고 한참 정신 이 빠진 상태라 뭘 어찌 해야 할지 몰랐다. 그 서비스 맨 보기에도 내가 안되어 보였는지 어딜 가야 할지 모르면 자기 차를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BC 주 차량 협회에서 정식인가를 받고 정규 배터리 제품만을 취급하는 싼 곳이 있는데, 자기는 또 다른 곳에 서비스를 가야 하기 때문에 그 근처까 지는 길을 인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배터리를 바꾸고 나니 그 2 시간 동안 벌어진 일들 이 너무도 길게 느껴지면서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 버렸다. 지난 번 사고 이후 차량 정비소에서 1 주일 동안 수리를 받고 있던 내 차를 멀찌감치 보 면서 멀쩡한 차가 주인 잘못 만나 고생하는 것 같아 난 마음속으로 많이 울었다. 그리고는 이 수리를 마치고 다시 찾아오게 되면 더욱 소중히 다루 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이제껏 항상 나의 발이 되어 준 것이 고마워 세 차도 자주 하고 3 천 Km 마다 꼭 정기 점검도 받으면서 나름대로는 잘 했다 고 생각했는데, 이런 구멍이 있을 줄이야. 이 일로 느낀 것이 있다면, 대비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주 변에는 항상 천사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천사는 꼭 흰옷을 입은 날개 달 린 천사일 필요가 없다. 그 천사는 경찰 제복을 입고 우리 앞에 나타날 수 도 있고, 턱시도 차림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샌들에 반바지 차림으로 나 타날 수도 있다. 6 개월 이상이 지난 지금에도 그 날 일을 생각하면 너무도 꿈같으면서도 잊을 수 없다. 만나 본 적도 없고, 이야기해 본적도 없는 사람들인데, 나 름대로 가던 길이 바빴을 텐데 힘을 다해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고... 어떻게 감사를 해야 할지 몰라하는 나에게 'No problem'한 마디 하고 홀연 히 사라지던 사람들. 여유 있게 그 날을 돌아보면서 전화 번호라도 물어 볼 걸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보니 그것이 이 사람들에게 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오히려 전화 번호를 물어 후사한다는 것 자 체가 우스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돕고 산다는 것, 돕고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법이라고 생각한 다. (이 글은 캐나다 노바스커셔 은행 버나비 지점에서 한국인 고객 서비스 를 담당하고 있는 박은숙 씨의 캐나다 운전 문화에 대한 글을 정리한 것이 다.) 캐나다 이웃과 사귀기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무례한 모습(이웃과 사귀기 위한 방법들) 캐나다에서 한인들은 보통 불친절하고 매너가 없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이러한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 원인은 결국 한국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특히 이러한 인식이 널리 퍼지게된 데에 는 사업하는 사람들(자영업자)의 생활 태도가 그러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 인다. 어떤 일을 하든 사업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친절해야 하는데, 일부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갖고 있던 권위 의식이이 나 습관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채 사업을 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공연히 자격지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으니까 저 사람들이 날 무시하려 하는구나'하는 잘못된 생각을 갖 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고객에게 공격적으로 대하기도 하고, 친절하게 대 하려 애써도 잘 안 되기 일쑤다. 또 무시당하지 않으려 애써 자신의 존재 를 크고 높게 보이려 하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도 인정하려 하지 않고 무뚝 뚝한 모습을 드러낸다. 불친절하고 매너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 데에는 또 다른 문화적 차이 때 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길을 걷다가 마주 오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 혀도 그냥 지나치기 일쑤지만 캐나다에서는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반드시 '실례합니다. 미안합니다.'하고 인사를 한다.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어 보이는 데도 아주 자연스럽게 이런 인사를 나눈다. 한국 사람들에게 이러한 문화는 낯선 것이고, 또 쉽게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쑥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으며, 어떤 사람들은 낯간지러워서 못 하겠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강조했듯 새로운 세 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념을 완전히 뒤바꿀 필요가 있다. 이 민 생활을 더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 또 한국 사람들에 대한 좋은 이미 지를 심어 주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몸에 익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웃과 사귀기 위한 방법 캐나다에서 이주 관련 업무를 할 때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던 이야기는 '한인들에 대해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다.'는 주장과 '왠지 소외감을 느끼 는 경우가 많다.'는 등의 이야기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뚜렷한 근 거가 없는 것들이다. 딱히 꼬집어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뭔가 차별성을 느끼고 있으며, 공연히 소외감을 주는 것이 캐나다 현지의 주류 문화 분위 기라는 주장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지 캐나다인들과 깊은 교류 관 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며, 고작해야 주변의 가 까운 한인들과 교류만 나누는 사람들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생활하면 할수록 주류 사회와 더욱 멀어지는 것이 당연하며, 소외감은 더 욱 깊어져만 간다. 그러니 결국 남들이 자신을 차별하는 것만 같이 느끼 고, 공연한 피해 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누군가가 자신을 배척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류 사회가 자신에 대해 배타적이라고 비 난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밴쿠버 근교의 한 조그마한 시에서는 한인들이 모여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사회의 단합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시 당국과 긴밀한 교류 관계를 유지하 면서 당면한 현안들에 대해 함께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물론 시 당국도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인들의 행사에는 시장도 나와 아무런 격의 없이 어울려 즐기기도 하는 등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인들의 위상도 덩달아 그만큼 높아진 것은 당연하다. 이 지역 한인들이 이렇듯 지역사회의 주류로 등장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특별 히 가진 것이 많다거나 배운 것이 많아서가 아니다. 이들은 다만 자신들의 마음 문을 열어놓고 누구든 대화나 교류를 부담없이 받아들이는 한편, 자 신들이 앞장 서 현지 캐나다인들이나 이민족들과 대화의 장을 마련해 나갔 기 때문이다.


사실 캐나다 이웃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방법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웃들과 친해지기보다 훨 씬 쉽다. 캐나다인들의 개방적이고 소탈하며 꾸밈없는 성격 때문이다. 접 근해 오는 한인 이웃들에게 굳이 거부감을 보이는 캐나다 이웃들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낯선 땅에 이주해 온 자기 자신들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다소 영어가 서툴다고 해서 캐나다 이웃들과의 가까운 교류하기를 기피하고, 이들과 접촉하는 것을 두 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영어 실력도 늘지 않을 뿐더러 이민 생 활이 고독하고 쓸쓸해지기 십상이다. 비록 영어가 서툴더라도 자신의 영어 가 서툴다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진실된 마음으로 마음 문을 열고 이웃들에게 다가가면 그들 역시 차별이나 편견 없이 솔직한 모습으로 다가 올 것이다. 삶의 스타일, 의식, 철학(캐나다인의 이해) 보호받는 어린이, 존중받는 여성 캐나다에서 인권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어린이나 여성들의 권리와 이익은 엄격하게 보호되고 존중된다. 예를 들자면 만 12 세 이하의 아이들을 집에 홀로 남겨 두는 것조차도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아이들은 어른의 보호와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폭넓게 형 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심코 이런 아이들을 집에 남겨 둘 경우, 이웃이 이를 경찰에 신고하게 되고, 경찰은 아이를 데리고 가 버린다. 경찰은 나중에 아이의 부모에게 따끔한 경고를 한 뒤 아이를 되돌려 보내지만 이런 일이 자주 생기면 문제 는 더욱 심각해진다. 자주 이런 일이 발생하는 가정의 경우, 경찰은 아이 를 되돌려 보내주지 않고는 사회 복지 시설에 넘기게 되며, 이렇게 되면 아이는 그 시설로 호적이 옮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캐나다에는 베이 비시터제도가 매우 보편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심지어는 중, 고등학생들도 베이비 시터로 나서 자신들의 용돈을 마련하기도 한다. 자신들만의 시간을 자주 갖기를 원하는 캐나다의 부모들은 시간당 3 달러 정도 하는 베이비시 터에게 자신들의 아이를 맡기고 주말 외출을 즐기기도 하고, 쇼핑을 하기 도 한다. 아이를 학대하거나 매를 드는 행위도 조심해야 하지만, 남편이 부인에 대한 학대와 구타 등도 조금도 용납되지 않는다. 만일 구타를 당한 부인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면 남편은 바로 경찰의 사법적 절차에 따른 처분을 받고 범죄 기록을 갖게 된다. 처음 몇 번은 엄중한 경고로 끝날 수도 있지 만, 이러한 행위가 계속 반복되면 신원에 불리한 기록이 남게 되고, 사회 적 신용도 크게 떨어져 은행 대출조차 힘들어지는 것이다. 부부가 이혼을 할 경우에도 문제 해결은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모색된 다. 이혼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판단은 그저 '누가 더 좋은 부모(better parent)인가' 하는데 모아진다. 아빠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양육권은 자연스럽게 엄마 쪽으로 넘어간다. 이러한 일은 매우 흔하다. 이럴 때 아 이의 아빠는 자신의 경제적 능력 범위 안에서 아이들의 양육을 위한 지원 을 해 줘야 한다.


철저한 신용, 투철한 신고 정신 여느 선진국이 그렇듯 캐나다 역시 고도의 신용 사회이다. 캐나다인들은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는 일단 철저히 믿어 준다. 대부분 거짓말을 가장 수 치스러운 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믿어 준 이야기가 결 국 거짓말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의 이야기는 두 번 다시 믿어주지 않는다. 그들이 가장 수치스럽게 여기는 거짓말을 한 사람 에게 또다시 믿음을 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캐 나다 사람들은 주변에 문제가 생기거나, 불법 사례가 발견되거나 하면 곧 바로 경찰을 부른다.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웃집에서 부부 싸움이 일어나 남편이 아내를 한 대라도 때렸다면 이 역시 경찰에 신고할 정도로 신고 정신이 투철하다. 처음 캐나다에 이주해 온 한국인 교민들은 시민들의 이러한 신고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종종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자동차를 몰고 가 다가 주변에 교통 경찰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사소한 교통 법규를 위반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통 법규 위반은 즉각 시민들에 의해 신고되 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범죄나 사회적 규범 위반에 대한 시민들의 신고 정신이 이렇듯 투철하다 면 사회적 비용이 그만큼 줄어들기 마련이다. 굳이 많은 교통 경찰관을 고 용하지 않더라도 교통 법규는 쉽게 단속될 수 있으며, 동, 식물이나 자연 보호를 위한 요원들을 따로 배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캐나다 사람 들의 이러한 투철한 신고 정신은 남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해치기 위한 것 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이웃을 배려하기 위한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강하다. 사회적 규범이이나 법으로 정한 것은 일종의 사 회적 약속이며, 이러한 약속을 지키는 것은 시민들로서 당연한 도리라는 것이 이들의 의식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이러한 약속을 어기거나 깨는 행위는 공동체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 단호히 배척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따라서 더 많은 사람들과의 평화를 위해 규범을 어긴 소수가 처벌을 받거나 그만한 대사를 지불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캐나다 사람들의 이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범죄행위나 규칙을 어긴 사람들을 모른 채 눈감아 주는 우리 사회의 풍토가 도무지 이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철저한 예약 문화 캐나다는 예약 문화가 잘 정착되어있는 나라이다. 항공기 등은 말할 것 도 없고 의사나 변호사, 은행, 학교 등을 방문할 경우에도 미리 약속 시간 을 정해 놓은 뒤 방문해야 볼일을 볼 수 있다. 만일 부득이한 사유로 제 시간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는 예약 때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사전 취소를 해야 한다. 특히 여행사는 미리 예약할 경우 할인 혜택이 주어지므로 출발 며칠 전에 예약을 해서 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할인 금액이 달라지기도 한 다. 이러한 것만 보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예약 문화에 익숙해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의사나 변호사 사무실의 경우에는 예약을 해놓고 방문하더라도 적잖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경우에도 대부분의 캐나다인들은 거의 불평하지 않고 내 차례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은행이 나 관공서에서 볼일을 볼 때도 모든 순서는 도착 혹은 예약 순서대로만 진


행된다. 돈 많고 이른바 백 든든한 것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누구를 특별 히 우대하거나 하는 등의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전문가에 대한 신뢰 캐나다인들은 조그만 일에도 전문가들을 찾는다. 모든 거래나 계약에도, 사소한 일에도 그 방면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요청한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경륜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 이며, 그들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것이 일을 그르치지 않고 궁극적으로 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인들이 이 같은 사 고 방식 때문에 캐나다에는 다양한 종류의 전문가들이 폭넓게 형성되어있 다. 옷에 단추를 단다든지, 바짓단을 줄이는 일조차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 을 수 있고, 선뜻 그들의 도움을 요청한다. 특히 주택을 구입하거나 사업 장을 매매할 때에는 전문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거의 관행처럼 되어 있다. 매매 계약을 체결할 때는 물론, 주택이나 사업장에 어떤 하자가 있 는지를 돌아보고 점검하는 일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캐나다 사람들의 전문가에 대한 신뢰 의식은 각별하다. 전문가들은 전문 가로서 그만한 자질과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전문가가 되기까 지 그만한 수업을 받았을 것이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만큼 의뢰한 일을 잘 처리해 줄 것이라는 믿음도 갖고 있다. 물론 전문가들은 일반 시민들의 이러한 믿음을 저버리는 일이 거의 없다. 자신들의 지식을 이용해 의뢰인 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이 거의 없다. 자신들을 믿어 주는 만큼 철저히 의 뢰인의 이익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전문가들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전 적인 신뢰, 그리고 전문가들의 의뢰인들에 대한 철저한 서비스는 우리와는 다른 캐나다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일 것이다. 가정은 삶의 최고 가치(캐나다인의 가정교육) 캐나다의 일반적인 가정 역시 자녀들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평균 2 명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자녀들이 3-4 명에 이르는 가 정들도 종종 눈에 띤다. 캐나다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독립심과 자립정신 등이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은 주로 독립심과 자립정신 을 키워 주는 데 집중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은 자신이 자고 일 어난 잠자리는 스스로 정리 정돈해야 하며, 자기가 먹은 그릇은 자기가 직 접 싱크대에 갖다 놓아야 한다. 이러한 일을 하는 데 남자 아이, 여자 아 이, 구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 방은 자기가 알아서 치워야 한 다. 아이들이 어지간히 커서 중학교에 들어갈 때쯤 되면 많은 아이들이 파트 타임으로 일거리를 찾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살림이 어려워서 하는 것 이 아니고 스스로의 용돈은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는 것이다. 하는 일도 매우 다양해 신문을 돌리는 일부터 아이들 을 돌보는 일(babysitter), 식당 종업원, 가게 점원 등으로 일하기도 한 다.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함으로써 어렸을 때부터 돈 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돈의 귀중함을 알게 되는 효과도 거두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속의 산 교육은 자연스럽게 절약정신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 한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이러한 교육이 계속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 어도 가정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부부 사이에 서로 돕는 분위기가 조성된 다. 어지간한 일들은 서로가 알아서 맡아 처리하고, 살림도 서로 돕는 가 운데 부부가 함께 나눠서 꾸려 나간다. 캐나다인의 취미 생활 캐나다인이 가장 많이 즐기는 취미 활동은 대부분 가정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여성들의 경우는 정원 가꾸기를 아주 즐겨한다. 집안의 텃 밭에 씨를 뿌리고 채소를 가꾸는 일은 대부분 가정에서 생활화되어 있다. 일상적으로 먹는 간단한 채소류들은 이렇게 직접 가꿔 먹는 것이 보통이 다. 심지어는 당근이나 오이, 토마토 등도 직접 재배해 먹기도 하며, 꽃을 많이 키워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기도 한다. 특별히 취미랄 것은 없지만 일부 가정 주부들이 취미 겸 집안 살림을 위 해서 직접 옷을 재단해 만들어 입기도 한다. 세탁물을 직접 손으로 짜서 널어 말리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는 집에 있는 동안 집안 살 림을 직접 하는 것이 단순히 가사 노동 차원에만 그치지 않고 어쩌면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독특한 의식 때문일 것이다. 남자들의 경우 대부분 스포츠를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틈만 나면 스포츠에 몰두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남성들이 집안에서 취미 생활 로 목공일을 즐기고 있다. 집집마다 있는 차고 안이나 지하 공간에 별도의 목공실을 만들어 놓는다. 목공일에 필요한 거의 모든 공구와 설비들을 갖 춰 놓고는 집안일에 필요한 간단한 일들은 직접 해치운다. 문짝을 만들어 달거나 창틀을 수리하는 일, 벗겨진 담장에 페인트칠을 하는 일 따위는 별 도로 사람을 부르지 않고 직접 처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처럼 일반적인 캐나다인들의 취미 생활은 어찌 보면 대단히 실용적이 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집안 살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취미 생활 따로, 집안 일 따로'하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집안 일을 취미 생활로 여 기면서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단순히 경제적 인 것만이 아닐 것이다. 감사하며 삶을 즐겁게 캐나다인들에게 권위의식을 찾아보기는 매우 힘들다. 때문에 한국에서 갖고 있던 의식을 갖고 살아가기 힘들다. 체면이나 체통 따위를 버려야 한 다. 그들은 남을 의식하지 않는 약간은 개인주의적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는다. 그저 검소하고 소박한 삶의 스타일을 중시한다. 다소 보수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거리에서 만나는 누구나 친절 하다.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모르는 것을 묻는다면 그들의 친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다. 아울러 캐나다인들은 대체로 삶을 즐겁게 즐기며 사는 편이다. 무조건적 인 저축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의 현재의 삶 을 즐겁게 영위하기 위해 적당히 먹고, 즐기며 쓸 줄도 안다.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는 욕심보다는 어느 정도 안정된 소득이 있으면 거기에 만족해하 고, 그 범위 안에서 즐거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캐나다인들의 사고방식 또한 매우 느긋하고 합리적이다. 평소 급하게 서


두르는 행동을 볼 수 없을 정도며, 이러한 느긋한 성품 덕인지 질서의식이 매우 높다. 버스를 타기 위해 우르르 몰려드는 따위의 행동은 볼 수 없다. 캐나다인들의 이러한 성격은 아마도 사회 환경 때문일 것이다. 캐나다인들의 또다른 의식의 특성을 들라면 무엇보다 늘 감사하는 마음 을 갖고 산다는 점을 들 수 있다. 'thank you'는 아마도 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어휘일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얼마나 일상화되어 있는지 식사 를 하기 전 자녀들은 부모에게도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건넬 정도다. 무엇 이든 조그만 일에도 그냥 지니치는 법이 없다. 이러한 마음은 결국 남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혼자만 편하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거리의 교통 질서는 캐나다인들의 이 같은 심성을 말해 주는 뚜렷한 증거이기도 하다. 교통 질서를 위반하는 차 량은 거의 없고, 요령을 부리는 것 역시 쉽게 볼 수 없다. 이들의 합리적 인 사고는 간혹 캐나다에 이주해 온 한국사람들을 당혹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맺고 끊음이 분명하고, 따라서 내 것과 네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캐나다인들의 의식을 처음에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은 부모와 자녀 사이, 그리고 형제 사이에서도 내 것과 네 것을 분명하게 구 분한다. 부모가 모은 재산을 자녀들에게 그냥 넘겨주는 경우는 드물며, 보 통 종교 단체나 사회 단체에 기증하는 경우가 흔하다.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아 편하게 생활하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에 일반 적으로 독립심이 강하다는 것도 캐나다인들의 또 다른 의식 형태이다. 아 울러 사회적, 제도적 장치 또한 본인이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자립적, 독 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한인 거주 지역 미리 둘러보기 퀘벡에서 밴쿠버까지(체험담) 1986 년 10 월에 초등학교 2 학년 1 학기를 마친 딸과 유치원 다니던 둘째 아들을 데리고 퀘벡 주 몬트리올 시에 정착하였다. 퀘벡 주는 불어 보존 노력이 대단한 곳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나 다른 주에서 이주해 온 자녀들 은 반드시 불어 학교에 입학해야 하며, 외국인을 위하여 학군마다 불어만 교육시키는 학교가 있다. 이 곳에서는 정규 학교에 편입할 수 있는 수준이 될 때까지 불어 기초 교육을 담당한다. 학생 모두가 불어를 잘 못 하니까 심한 스트레스까지야 받지 않겠지만 그래도, 어린 마음에 고생이 심한 모양이었다. 아침에 학교에 갈 때면. "엄마, 친구들 많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는 했다. 그런 아이들을 억지로 스쿨 버스에 태워 보내고 나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겨울에는 눈이 굉장히 많이 와서 아이들이 걸어서는 학교에 다니지 못한다. 학교에서 스쿨버스를 보내 주기 때문에 아이들의 등, 하교 문제는 걱정이 없고, 교재는 대부분 학교에서 공급을 해주기 때문에 학부 모의 부담이 적은 편이다. 점심 식사후에는 모든 학생을 밖으로 내보내서 놀게 함으로써 추위에 잘 적응하도록 훈련시키고 있어 아이들 건강에 특별 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3 개월 정도 지나니까 아이들끼리 잘 어울려 놀고, 장 보러 갈 때면 곧잘 부모를 잘 도와 주게 되었다. 딸아이는 8 개월 후 정규 학교로 편입이 되었 고, 말이 둔한 편인 둘째 녀석은 1 년 6 개월 후에 정규 학교로 편입되었지


만 얼마 후부터는 줄곧 반에서 불어 성적이 상위를 유지했다. 퀘벡 주에서 3 년 거주 후에 BC 주 밴쿠버로 이주하였다. 주마다 살아가는 분위기가 다름을 느꼈지만 특히 교육 제도도 달랐다. 영어를 모르는 학생 을 위한 별도의 학교가 없고, 교육청에 등록하면 일단 정규 학교에 편입을 시켜 놓고, 방과후에 ELS 반을 편의에 따라 운영을 했다. 갓 이민온 학생은 영어를 전혀 몰라도 하루 종일 모든 정규 수업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아이 들이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무척 힘든 것 같았다. 어린 학년은 그래도 몇 개월 지나면 많이 나아지지만 고등학교 정도의 학생은 매우 힘들어 했다. 그래서 학교 안에서 한국 학생끼리 몰려다니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을 위 해서 밴쿠버에서 외곽 도시로 이사하는 가정도 종종 있었다. 아이들이 불 어권에서 밴쿠버로 이사를 하니 언어문제로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되었지만 불어를 배운 후에 영어 배우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 듯 큰 고통 없이 적응 하기 시작했다. 1 년 후에 지금 거주하는 밴쿠버 외곽 도시인 아보츠포드로 이사를 하면서 프렌치 이머전스 스쿨(French immersions)에 등록을 했는 데, 이 학교는 불어로 하는 수업이 70-80%나 차지하는 불어 중심 초등학교 로 동네마다 하나씩 있었다. 이번에는 우리 아이들이 본토 발음(?)으로 학 급에서 늘 앞서기 시작했고 학교 생활을 자신 있게 하며 즐거워 했다. 불 어 웅변 대회에서는 늘 1 등을 해서 상품으로 피자 가게 티켓을 여러장 타 와서는 친구들을 데라고 가곤 했다. 큰 아이는 음악을 좋아해서 밴드부, 재즈 밴드 및 합창단에 가입해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큰 아이가 금년에 대 학교에 갔는데 대학교 생활을 몇 달 해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아빠, 집에서 공부만 하는 애들은 공부를 못 하고, 병원이나 공공 기관 에서 자원 봉사하고 교회 생활도 활동적으로 하는 애들은 공부를 잘 하던 데요. 시간이 어디서 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 수업은 받을 만하냐?" "예에. 학교 수업이 2 가지 형태인데 하나는 100 명, 200 명을 강당에 모아 놓고 교수가 마이크로 가르치는 수업이 있고, 하나는 10-20 명 정도 그룹으 로 어떤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시간이 있는데 어떤 소그룹은 1 학년에서 4 학년까지 섞여 있는데 정말 재미있어요. 마이크를 잡고 주제를 발표하게 되는데요. 말을 더듬으면 1 학년, 세련되게 발표하면 2 학년, 앞뒤가 딱 맞 고 조리있게 설명하면 3 학년이에요. 4 학년은 우리가 상상지 못하는 것을 말해요. 대학교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나 봐!" 둘째 녀석은 의과대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12 학년(고등학교 3 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병원에 자원 봉사자로 매주 1 시간씩 일하고 있다. 대학 입시 때 공부 성적 외에 사회 봉사 부분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주요 지역 둘러 보기 (지역) 밴쿠버 한국의 이민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다. 중국인들도 이 곳을 좋아해 캐나다에서 중국인이 가장 많은 도시다. 밴쿠버는 캐나다 서부 쪽에 위치 하고 있으며, 태평양을 끼고 있어 겨울에는 기후가 온화한 편이다. 일 년 내내 기온이 영상에 머물고 겨울에 비가 많이 온다. 또한 인구는 약 2 백만 정도 그 가운데 한인들은 2 만 5 천명 정도이다. 바다가 가깝고 산과 강이


곳곳에 있어 레저 활동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겨울에 도 날씨가 따뜻하니 일년 내내 골프를 즐길 수도 있고, 아이들은 한겨울에 축구나 하키 등을 즐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밴쿠버는 소비 도시이며, 관광 도시이다. 이 때문에 부동산이나 서비스 요금, 사업비용 등이 다른 지역에 비해 비싼 편 이기 때문에 적잖은 한인들이 밴쿠버 외곽 지역인 휘슬러나 프레이저벨리 쪽으로 나가 자리를 잡기도 한다. 한인들이 많은 도시이다 보니 한인들끼 리 조직한 여러 단체들이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자영업을 하 는 한인들이 조직한 한국인 실업인 협회는 필요한 상품을 대량으로 싼 값 에 공동 구매하는 일종의 협동 조합의 기능도 하고 있다. 협회를 통해 물 건을 구하면 그만큼 이윤이 많이 남게 되는 것이다. 협회가 이처럼 활발한 사업을 벌이는 것은 벤쿠버에서 자영업을 하는 한인들의 70% 이상이 식품 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 국계 이민자들 중 대만인들은 지난 10 년 동안 1 만 명이나 이 곳으로 이주 해 와 가장 많았다고 한다. 반면, 지난 1996 년에는 중국에 반환되는 홍콩 의 미래에 대한 우려감이 커진 홍콩인들이 전체 이민자들의 25%를 차지해, 오히려 대만인(18%)들을 능가했다. 따라서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의 중심 도시인 벤쿠버는 중국계 이민자들이 몰려들어 '홍쿠버'라고 불릴 정도다. 그러나 홍콩인들의 대규모 이주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이 이 곳 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부동산 매입에 열을 올리는 바람에 땅값이 껑충 뛰 어 미국 서부의 최대 도시 로스엔젤레스 보다 1.5 배 정도 비쌀 정도다. 또 지난 5 년 전보다 집 한 채의 값이 2 배 이상 올랐다. 홍콩인들에 이어 대만인들도 지난해 3 월 대만의 총통 직선제 선거 기간에 중국이 미사일 발 사 훈련 등, 군사 시위를 한 후 밴쿠버로 몰려들고 있다. 캘거리 최근 몇 년 사이 캐나다에서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는 도시이다. 로키 산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추운 편에 속한다. 하지만 '시눅 (chinook)'이라는 것이 있어서 한겨울에도 며칠 동안은 영상의 날씨를 보 여 많은 사람들이 반팔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기도 한다. 캘거리의 인구 는 약 60 만 명 정도, 이 가운데 한인들은 4 천 명 정도다. 캘거리는 캐나다의 몇 안 되는 산업 도시다. 이 도시에 주정부는 없지만 기름이 많이 나오는 주에 속한 도시이기 때문에 기름 회사들의 본사가 밀 집되어 있다. 게다가 부동산 값이 저렴하고 사업체의 권리금도 싼 편이라 사업을 하기에는 여러 모로 유리한 도시이다. 캘거리 근처에는 또 유명한 스키장들이 많이 있어 겨울철이면 수많은 관 광객들이 스키를 타기 위해 이 도시로 몰려온다. 로키 산맥 동쪽의 평원 지대로, 여름 기후는 적절하나 겨울은 추우며, 한국의 삼한 사온 같은 기 후를 나타내고 있다. 캘거리가 속해 있는 앨버타 주는 평균 30 세 이하의 젊은 인구 분포가 말 해 주듯이 젊고 활기찬 분위기가 특징이며,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고용률을 자랑한다. 50 년대 이후 캐나다 내에서 소득, 고용 등 각 경제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주다. 대부분의 경제는 목축업, 농업이 차지하였으나. 1947


년 이후 기름이 발견되면서 여러 방면으로 경제가 성장되어 1975-1983 년 사이 고용률이 41%나 증가되었다. 앨버타 주에는 7 천여 명의 한인들이 정착해 살고 있으며, 관광업, 요식 업, 건축 및 무역업 등 전반적으로 상업에 종사하고 있다. 토론토 토론토 역시 한국의 이민자들이 선호하는 도시이다. 가장 많은 이민자들 이 몰려들고 있으며, 일명 캐나다의 뉴욕이라고까지 일컬어지고 있는 도시 다. 토론토에는 각양각색의 민족이 제각기의 모습으로 자유로이 살고 있어 하나의 작은 지구촌이라 할 수 있다. 토론토에는 70 여 민족이 100 여 종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다양한 이민족 사회들 중 특히 중국과 이탈 리아 계가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양한 인종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는 토론토는 그야말로 다국적 문 화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는 도시이다. 다양한 음식점과 식품점, 그리고 선물 가게들이 즐비한 차이나 타운을 비롯하여 포르투갈 활어점, 군침을 절로 흘리게 하는 그리스 제과점, 그리고 노상 카페와 첨단 유행의 거리 이태리 타운 등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곳이다. 캐나다 동부에 위치한 이 도시의 인구는 4 백만 남짓, 캐나다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다. 이 가운데 한인들은 5 만명을 웃돌아 캐나다에서 한인들이 가 장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많은 업체들이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고, 제조업체들도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많다. 그러다 보 니 사업체를 확보하거나 일자리를 잡을 수 있는 기회 또한 상대적으로 많 아 요즈음 젊은 이민자들이 주로 이곳에 많이 찾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나 사업체 값도 벤쿠버와 비슷하다. 지리적으로 미국의 뉴 욕이나 보스턴과 가까워 미국을 상대로 사업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가장 큰 규모의 도시답게 학교 수도 많아 아이들의 교육의 선택 폭도 넓다. 토론토가 속해 있는 온타리오 주는 비즈니스, 금융, 제조업의 중심지로 서 캐나다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1100 만(캐나다 인구의 37%)이 넘는 거주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여러 가지 면에서 가장 다양한 주이기도 하다. 주의 수도요 최대의 도시인 토론토는 상업의 중심지이자 공원과 정원들 로 잘 가꾸어진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단일 건축물로서는 세계 최대의 높이를 자랑하는 CN 타워를 위시한 도시 내의 빌딩 숲들은 토 론토를 세계적인 도시로 인식하는 데 일조를 한다. 메트로폴리탄 토론토는 세 개의 도시(토론토, 노스요크)로 이루어져 있 으며,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들과 빅토리아식 옛 건물들이 조화롭 게 어울려 있다. 공업 지대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토론토는 금융, 교통, 통신 및 제 조업의 중심지이며, 캐나다 GDP 의 근 40%와 제조 상품의 59.2%, 수출 상품 의 48.6%를 담당하고 있다. 미국의 공업 도시 디트로이트와 시카고에 가까운 가장 미국적인 도시로, 미국 뉴욕 주의 국경에서 불과 90 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다. 대호의 하나인 온타리오 호 호반에 위치한 토론토는 캐나다의 다른 도시


들과 세인트로렌스 강을 통해 연결되고 있어 수운의 요지이며, 도로, 철도 및 항공로가 잘 발달되어 있어 주요 북미 도시와 산업 중심지로 연결하기 가 매우 용이하다. 시내에서 북쪽 29 제곱킬로미터의 지점에 토론토 국제 공항이 있으며 시 내 중심지까지 약 30 분이 소요된다. 지하철이 잘 발달되어 있어 시내 교통 이 편리하고, 지하철이 닿지 않는 주요 도시에는 버스와 시내 전동차가 운 행되고 있으며, 정류소에는 TTC 표시가 있어 갈아 탈 수 있다. 철강, 화 학, 섬유, 식품등의 공업이 발달하였으며, 자동차, 항공기 제조업, 기계, 전자, 통신, 장비, 전기 제품, 판금 제품, 인쇄, 출판업, 의류, 피혁, 신 발 및 고무제품, 제조업 등이 주요 산업이다. 캐나다의 경제, 운수, 통신 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기후는 대체적으로 춥고 습한 겨울이 6 개월 정도로 긴 편이며, 여름에는 습기가 없는 더위가 계속되고 연중 가장 많은 비가 내린다. 봄, 가을에는 온도 변화가 심하며 전체적으로 한국과 기후가 비슷하다. 토론토의 교포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몇 배 더 일해서 높은 생활 및 교육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토론토의 코리아타운은 제 1 한인촌, 제 2 한인 촌, 해방촌이라는 별명을 가진 3 지역으로 나뉘고 있으며, 주로 한국 음식 점, 떡집, 식품점, 주유소, 의상실, 여행사, 일식집, 한약방 등이 자리잡 고, 의사, 변호사, 회계사, 무역 회사 등이 진출해 있어 한국 생활의 아쉬 움을 해결해 주고 있다. 특히, 블루어 지역, 웨스턴 더프린 지역, 노스 요 크 지역 및 스카보로 지역은 전형적인 코리아타운의 형태를 갖춘 곳이라 할 수 있다. 이 밖에 편물 제조, 대한 무역 등의 사업가와, 전기, 전자, 기술 등의 회사원 종사자가 늘어나고 있다. 무비자 협정 이후 한인 상가는 계속 증가 추세에 있으며, 교민 사회를 중심으로 사업체 모색도 가능하다. 몬트리올 북미의 파리로 불리는 국제 도시로서 인구 320 만 명의 캐나다 2 번째 경 제 중심지이다. 1642 년, 프랑스 인들에 의해 건립된 몬트리올은 1876 년에 캐나다 연방이 설립된 후 경제적 중심지로 부상하여 퀘벡 주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었다. 19 세기 말에는 유럽 각국에서 이주민들이 모여들어 오늘날 에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문화 모자이크를 형성하고 있다. 초현대적 빌딩 군이 운집한 신시가지와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고풍스러움이 공존하고 있으며, 4 백 개가 넘는 교회가 있고, 대부분이 신 성한 예술품들로 가득차 있는 것이 특징이다. 몬트리올은 중세 프랑스의 분위기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옛 전통과 현대를 융합한 최대 도시로 퀘 벡을 이끌어 가고 있다. 1824-1829 년 사이에 건립된 신고딕 풍의 노틀담 사원, 1683 년에 로마 승 려가 건립한 성 술피 수도원 등은 몬트리올만의 독특한 건물이다. 북미 최 초로 프랑스 문화와 영국 문화가 어우러져 발달된 몬트리올은 대륙 최고의 멋과 유행을 창조하고 있는 곳이다. 몬트리올은 예술적이고 현대적인 대도시로서 수준 높은 문화 유산과 아 울러 문학, 시각, 공연예술이 발달했다. 몬트리올의 옛 시가지는 캐나다의 문명 박물관의 본고장이며, 수많은 회의, 무역 전시회, 세미나 및 기업인


들의 행사 개최에 알맞은 곳이다. 몬트리올에서 볼 만한 곳으로, 1976 년의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만들어진 올림픽 공원, 1931 년에 건립되어 현재 약 2 만 6 천 여종의 수종을 보유하고 있는 식물원, 철 따라 각종 동,식물을 감상할 수 있는 바이오 돔 등이 있 다. 멋과 낭만으로 가득한 레스토랑들, 나이트 클럽과 선술집, 그리고 흥 을 돋우는 각종 예술 공연들과 문화 행사 등은 연중 재즈, 연극, 영황 그 리고 각종 축제 등을 감상할 기회를 제공한다. 몬트리올은 여름과 겨울의 연교차가 매우 크고, 겨울에는 폭설이 내리기 도 하며, 추위는 무척 지독하다. 짧은 봄에 이어 갑작스럽��� 다가오는 여 름은 온난 다습해서 에어콘이 필수적이며 덥고 지루한 날씨가 지속된다. 캐나다 동부에 위치한 이 도시는 캐나다의 불어 문화권에 속한다. 시민 들 가운데 80%가량이 불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미의 파리라고 불릴 만큼 유럽 풍이 흐른다. 시민들의 의식 또한 프랑스 인들의 삶을 그 대로 닮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캐나다의 다른 도시에서보다 외모에 더 욱 신경을 쓰고, 유럽의 패션이 캐나다로 가장 먼저 유입되는 도시이다. 도시의 곳곳에서 예술적인 분위기가 묻어나며, 고급스러운 식당들이 많기 로도 유명하다. 인구는 약 3 백만 정도이며, 이 가운데 한인들은 약 2 천 명 정도로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과거 70 년대에는 캐나다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산업이 활발한 도시였지만, 캐나다로부터 독립을 하겠다고 여 러 차례 투표를 하는 등, 정치적 갈등기를 거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과 기업들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 오늘날에는 산업면에서 토론토에 뒤지 고 있다. 약 2 천 명의 한인들이 10-25 년 전에 이주한 사람들로서 식품점, 세탁소, 커피 및 도너츠 판매, 꽃가게, 기계류 제조업, 신발 제조업, 사무 기기 제 조업, 유리 제품 생산, 문구류 제조업, 컴퓨터 부품 생산업 등, 토론토와 유사한 직종 및 형태의 사업을 하고 있으며, 식당, 모텔업도 활발한 편이 다. 퀘벡 다른 주들과는 달리 퀘벡은 일찍이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캐나다 내에서 도 프랑스 문화권으로 분류되는 곳이며, 주민들의 대다수가 프랑스어를 사 용하고 있으며, 더불어 퀘벡 주는 뚜렷한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며, 아름다운 자연과 수많은 문화적 유산들을 보유하고 있는 대단히 유서 깊은 주이다. 퀘벡에는 또한 7 천여 명에 달하는 에스키모 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주 이름은 인디언 부족 앨공킨(Algonquin)의 언어로 해협 또는 갑자기 좁아진 지점을 뜻한 것에 유래되었으며, 그 좁아진 곳은 수도 퀘벡시 근처 세인트로렌스 강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1554 년, 자크 카르티에가 가스페 반도에 상륙하여 뉴프랑스라 부르다가, 1759 년에 영국 통치에 속했다. 때 문에 중세 프랑스의 분위기가 곳곳에서 배어나며, 주민들 대부분은(80% 이 상이 프랑스 계) 불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고 '캐나다 속의 프랑스'로 불린다. 퀘벡 주는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개방된 지역 중의 하나이다. 주도


적 무역 분야는 자동차(21%), 전기 및 전자 제품(14%), 가공 금속(10%), 종이(9%) 및 기계류이다. 퀘벡 주의 국제 무역 구성비를 보면 60% 이상은 미국, 21%는 유럽, 12% 는 아시아로 구성되어 있다. 활엽수인 상업용 삼림을 개발한 목재와 종이 의 가공 산업체에는 수출량의 23%를 차지하고, 금, 철광, 티타늄, 구리, 아연 등, 30 종의 광물 가운데 40%는 주 내에서 가공되고 나머지는 수출하 고 있다. 퀘벡 주의 금융 시장은 현대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 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근년에 와서 외국 은행과 기업들 이 투자를 하고 있는 몬트리올에서는 금융활동의 다양성과 금융 거래량이 주목할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 퀘벡 주는 현재 캐나다 연방으로부터의 분 리 독립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데, 최근의 국민 투표 결과로 당분간 독 립설은 지연되었지만, 10 개 주 중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주이기도 하다. 다른 주들과 마찬가지로 퀘벡 주는 세계적인 겨울 축제로 성황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썰매차와 산악 스키는 이 곳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며, 특 히 늦은 겨울 단풍나무로부터 메이플 시럽을 빼내는 시럽내기 행사는 가히 이 고장의 일품이다. 캐나다 한인들의 생활(생활) 한인들에 대한 오해와 이해 한국에서 캐나다로 막 이민을 떠나려는 사람들 사이에 이상한 이야기가 오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캐나다 현지에 가게 되면 될 수 있으면 한 인들은 말고, 목사나 변호사 등을 피하라는 말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이 듣는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많 이 치니 조심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고 한다. 이러한 말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캐나다에서 오랫동안 생활해 온 나 자신도 이런 이야기는 금시초문인데 어째서 이민을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 야기가 전해지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그런 일은 있지도 않 으며, 있을 수도 없다. 물론 캐나다도 사람 사는 곳이니 사기꾼도 있고 범 죄자들도 있다. 사기 사건도 벌어지고 도둑질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절 대 다수의 한인들이 새로 이민 오는 한인 이민자를 상대로 사기나 치려고 마음먹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한인들은 낯선 땅에 새로 이 주해 온 사람을 자신의 경험을 살려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하고 있다. 먼저 이주해 온 한인들에 대한 불신이 생기는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고 본다. 즉 새로 이주해온 어떤 사람이 가게를 하기 위해 한인이 경영하던 상점을 하나 샀다고 하자. 그런데 장사를 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손님이 적을 경우 가게를 판 한인은 영락없이 사기꾼으로 몰린다. 예상 매출을 턱 없이 부풀려 팔아 이익을 취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사실 가게라는 것이 누 가 장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매출이 크게 달라지는 법이다. 가게가 잘 안 되는 원인은 먼저 자신에게 있는데 무턱대고 가게를 넘긴 사람의 사기 탓으로 몰아 붙이는 풍토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만일 외국인에게 그 가 게를 샀다면 쉽사리 '사기'라는 말을 안 할텐데, 한인으로부터 샀기 때문


에 '사기를 당했다.'고 마구 떠들고 다닌다. 이런 말은 곧바로 교민 사회 에 널리 퍼져 나간다. 별 것 아닌 일이, 또 실제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잘못된 일들이 마치 보 편적인 현상인 것처럼 알려진 것은 이런 측면에서 작용했기 때문이다. 좋 은 일은 널리 알려지지 않는 반면, 나쁜 일은 과장되어서 입에서 입으로 퍼지는 것은 캐나다 교민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민 신세대와 구세대 간의 갈등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현재 캐나다에는 이민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 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다. 나이가 많아서 구세대가 아니라 오래 전에 캐나다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민 구세대)과 최근 몇 년 사이에 새롭게 캐 나다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민 신세대)사이에 종종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이러한 갈등과 마찰은 그리 심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더러 한인 사회의 화 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갈등과 마찰이 빚어지는 원인이야 매우 다양하겠지만,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이주의 배경과 과정이 상이한 데서 비롯된다. 즉, 이민 온 지 오래 된 사람들은 그야말로 '맨주먹 붉은 피'로 캐나다에 들어와 숱한 고난을 무릅쓰고 열심히 노력해서 집 한 채라도 장만하고 가게라도 하나 장만한 공통점이 있다. 비록 큰 돈은 벌지 못했지만 과거의 고생에 비하면 오늘날의 현실은 그래도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반면, 최근 몇 년 사이에 이주해 온 한인들은 이들과는 좀 다르다. 이민 신세대들은 아무래도 어느 정도 재산을 갖고 들어오기 때문에 이민 구세대 들의 의식과 편차가 있게 마련이다. 한국에서 어느 정도 쓰던 습관도 있어 생활하는 모습이나 태도가 이민 구세대들과는 차이가 있다. 이민 신세대들 의 이런 모습은 종종 이민 구세대들로부터 오해가 아닌 진짜 갈등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건방지고 버릇없다는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일부 이민 신세대들이 가지고 온 돈으로 가게 하나 차려 놓고 '이 정도면 밥은 먹고사는 데 지장 없어요.'라는 식의 이야기를 서슴없이 늘어놓는 것에 대 해 이민 구세대들은 거부감을 느낀다. 자신들은 고생고생해서 어렵사리 가 게 하나 겨우 장만했기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자존심도 상하고 기분도 언짢아진다. 이러다 보니 한인들이 새로 이주해 오는 것을 싫어하는 교민 들도 생기고, 일부 이민 구세대들은 새로 이주해 오는 한인들과 상대조차 하지 않으려 들기도 한다. 한인 교민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현상은 일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지만 바람직한 것은 분명 아니다. 어느 사회고 갈등은 있게 마련이지 만 서로 조금씩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기분과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해주 는 마음만 있으면 이런 갈등은 아예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을 내세 우고 교만하게 처신해서 좋을 것도 없다. 돈을 좀 가지고 왔다고 해서 독 불장군처럼 행동하면 오히려 따돌림 할 수도 있고, 잃는 것이 훨씬 더 많 다. 재산이 있다고 해도 갓 이민 온 사람답게 '저는 아무것도 모르니 많이 가르쳐 주고, 도움을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하면 오히려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뜻밖에 얻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이런 사람은 서로 도와주려 하는 것이 현지 교민 사회의 관행이다.


캐나다에서도 계속되는 교민들의 자녀 교육 열기 캐나다에 이주한 지 오래 되는 교민들에게 자식들은 그들이 거는 최대의 희망이다. 부모들은 자식을 통해 대리 만족을 얻기도 하며, 자식들이 잘 커 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생의 최대 보람이다. 심지어는 자식들이 어 떻게 성장하고 있으며, 무엇을 하는지 여부가 이민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 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캐나다라고 해서 자식들이 모두 잘 커 나가기만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수는 아니지만 일부 청소년들은 부모들의 기대와는 달리 엉뚱한 길로 접 어들기도 한다. 범죄의 길로 가는 아이들도 있고, 부모의 바람과는 영 딴 판으로 진로를 선택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부모들은 자식들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 이든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 재산을 투자한다. 이런 일은 캐나다에 이제 막 이주해 온 교민들에게서도 예외는 아니다. 한 국에서 가졌던 교육에 대한 높은 관심이 그대로 캐나다에 와서까지 유지되 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녀들의 교육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이야 나쁠 것이 없지만, 현지의 실 정이나 관행 등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자기 자식만을 위한 행동을 저지르 는 경우가 간혹 있어 교민 사회의 화제가 되고, 현지인들로부터 손가락질 을 받는 경우도 벌어지곤 한다. 이를테면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 가서 선생님들에게 뇌물, 현금 또는 비싼 선물을 주어 선생님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 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일에 놀란 어떤 선생님은 이 일을 교장에게 보고 하고, 교장은 또 교육청에 보고하는 등, 사건은 일파만파 확대되어 교민 사회를 온통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적어도 캐나다에 사는 동안은 우리 아이만 특별하게 봐 줄 것을 기대하 는 마음은 갖지 않는 것이 좋다. 더욱이 그러기를 바라면서 교사에게 뇌물 을 주는 행위는 생각지도 말아야 한다. 캐나다의 선생님들은 누구 집 아이 라고 해서 특별하게 관심을 갖고 대해 주는 일은 거의 없으며,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대해 준다. 이러한 교육 방침은 반장, 부반장을 따로 두지 않는 데서도 잘 나타난 다. 아이들은 누구나 다 동등하기 때문에 그 가운데 우두머리를 만들지 않 겠다는 취지에서 선생님을 돕는 도우미(Helper)를 뽑는다. 그나마 도우미 는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하게 되어 있는데, 말뜻 그대로 학급의 여러 일을 떠맡아 하는 역할이 주어질 뿐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도우미를 맡게 되는 전날이면 너무나 흥분해 잠을 설칠 정도라고 한다. 한인들의 종교(교회) 생활 캐나다에 막 이주해 온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일요일에 교회를 찾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평소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었던 사람은 물론 그렇 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간혹 교회를 찾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교회를 찾는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그 사람이 기독교인으로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쉽게 교회를 찾는 것은 한인 사회의 한인 교회가 단순히 신앙 생활을 하는 기능


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 주일에 한 번 찾는 한인 교회에는 다양한 한인들이 모여들게 마련이 고, 이 곳에서 한인들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정보를 교류하고 친교를 나누 게 된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을 사귀기도 하고, 사 업을 하는 어른들은 먼저 성공한 사람들로부터 경험을 듣고 배울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된다. 캐나다에는 미국과 달리 범죄도 별로 없고 마약 등, 약물 중독 사례도 흔치 않지만, 그래도 범죄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이 이런 길로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교회를 찾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아 이들에게 교회 활동은 건전한 성장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밖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지 않고, 빠져들어도 쉽게 되돌아 오기 때문이다. 초기 이민자들이 교회를 쉽게 찾는 것은 자신이 생활의 안정을 빨리 이 룰 근거지가 되어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큰 교회의 경우 초기 이민자들을 도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여러 도움을 제공한다. 한인 노인들의 일상 한인들이 비교적 많이 모여 사는 캐나다의 큰 도시 토론토와 밴쿠버 등 지에는 한인 노인회가 세워질 정도로 노인들을 위한 환경이 잘 마련되어 있다. 노인들은 자칫 외로움에 빠져들기 쉽고, 이 때문에 병이 날 수도 있어 외로운 노인들이 함께 모여 서로 즐거운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 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이 때문에 이지역 노인들은 시간만 나면 노인회에 들러 친구들과 함께 바둑이나 두고 장기를 두며, 서로의 생활에 관해 이야 기를 나눈다. 노인회는 노인회대로 시시때때로 여러 행사를 열어 노인들이 더욱 적극적이고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친한 노인들끼리는 캐나다의 수려한 자연 환경을 적극 활용하는 취미 생 활을 함께 즐긴다. 노인들 몇몇이 서로 모여 낚시를 즐긴다거나 가까운 산 에 올라 나물을 캐는 등, 자연을 벗삼아 노후를 즐기는 것이다. 특히 밴쿠버 지역의 경우에는 산과 바다, 들녘에 온통 먹���거리가 풍성 해, 노인들이 소일거리로 해 온 먹을거리로 밑반찬을 삼기도 한다. 부지런 하거나 왕성한 활동력이 있는 사람들은 미역을 따기도 하고, 조개, 게 따 위를 채취하기도 한다. 낚시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아 오는 사람들도 많다. 심지어 일부 노인들은 가정에서 먹을 것 이상으로 먹을거리들을 채취해 와 상점에 내다 팔아 용돈을 마련하기도 한다. 한국에서와 달리 캐나다의 한인 노인들은 자식들과 살기를 원치 않는다. 자식들과 함께 살면 외롭지는 않겠지만 집 안 살림살이를 대신 돌봐야 하 는데다 손자 손녀들을 키우는 일까지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노인 부부가 따로 살림을 마련해 살고 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또 캐나다에서는 이렇게 노인 부부만이 가정을 꾸미고 살아나가 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는 것도 자식들과 어울려 살려 하지 않는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정부에서 지급하는 연금만으로도 크게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으며, 소일거리도 많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캐나다에서의 창업과 직업 선택 문화 차이, 언어 장벽 넘어서야 성공(이민 사례) 1986 년에 사회 복지학과를 졸업한 후 국내 굴지의 항공 회사에 4 년간 근 무했던 이병주 씨(34)는 1992 년 4 월 밴쿠버로 왔다. 이 곳에서 그는 노래 방이 포함된 2 층짜리 한식점을 운영한다. 350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곳의 주고객은 물론 한인들이다. 새벽 2 시까지 영업하는 그는 첫해 34 만 달러를 은행에서 빌렸지만 3 년만 에 모두 갚고, 48 만 5 천 달러짜리 3 층 집도 마련했다. 그가 이 곳에 온 이 유는 고향인 광주에서 1980 년 벌어진 유혈 참극의 기억 때문, 이씨는 "한 국에서는 정치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편안하지 못했다. 캐나다는 일한 만큼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나라"라고 말했다. 편의점, 청과상, 음식점, 햄버거 스토어, 담배 판매상, 이른바 캐나다로 이민온 한국인들이 종사하는 업종 `빅 5`이다. 이들 직종의 특징은 누구나 별다른 기술이 필요 없어 실패 확률 없이 운영할 수 있고 수익 또한 짭짤 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1990 년 이후 캐나다로 떠난 한국인들은 평균 대졸 수준의 교육을 받았 고, 연령도 30 대 후반으로 젊다. 그렇지만 한인들이 백인처럼 `화이트 칼 라` 직종에 취업할 기회를 찾기는 쉽지 않다. 안정적인 캐나다 사회의 구 조와 문화적 차이, 높은 실업률, 부족한 언어 능력 등이 그 이유다. 1990 년 1 월 15 일 밴쿠버로 떠났던 방 아무개(45)는 편의점을 하다 재산을 다 날리고 1995 년 3 월 31 일 한국으로 되돌아 온 케이스다. 그가 뉴웨스트 민스터에 마련한 편의점은 권리금 9 만 달러짜리, 설비비 5 천 달러를 합쳐 모두 한화 약 9,500 만 원이 들었다. 처음엔 월 3 천쯤 순익이 났다. 그러나 한국에서 디자인업을 했던 그는 하루 8 시간씩 편의점을 지키는 게 너무도 힘들었다. 자연히 술친구가 늘어났다. 남편 없는 자리를 메우는 부인은 늘 불평을 해 댔다. 부부 싸움도 잦아졌다. 3 년쯤 지나자 가지고 간 돈이 모두 바닥났다. 가게를 팔아 보았지만 채 2 년도 견디지 못했다. 결국 방씨는 되돌아 와야 했다. 먼저 자신에게 만족하는 자세 필요 밴쿠버 인근 리치먼드 시 차이나타운의 냉면집 `대동강 면옥`이 음식점 을 경영하는 박지용 사장은 대기업의 상무 이사였다. 그는 1989 년 퇴직 전 까지 대공산권 무역을 담당했다. 퇴직 후 무엇을 할까 망설이던 그는 서울 사대 부속 중,고교를 다닐 때 취미삼아 요리를 배운 것에 착안해, 서울 강남구에 삼성동에 냉면집을 차 렸다. 장사는 잘되어, 5 년 동안 돈도 꽤 벌었다. 그렇지만 `대기업 중역=냉면 집 사장`이라는 주위의 입방아가 계속 부담이 되었다. 결국 박씨는 1994 년 6 월 캐나다 이민을 택했다. 투자 이민의 형태로 박씨가 들로 나온 돈은 미화 30 만 달러(당시 한화 2 억 4 천만 원). 이 돈으로 박씨는 1 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70 여 평짜리 식 당을 중국인으로부터 월세 6 천 캐나다 달러(당시 한화 약 340 만원)의 조건 으로 넘겨 받았다. 인건비는 한국보다 20%, 재료비는 30%나 저렴했다. 리치먼드 시 전체 인구 12 만 명 중 중국인은 절반이 넘는 6 만 2 천여 명.


첫 6 개월 간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직접 개발한 소스의 맛이 소문나면서 장사는 1 년 반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지금은 월 3 천 ~ 4 천 달 러씩 순익을 내며 캐나다 인직원도 6 명이나 된다. 대학에 재학 중인 두 아들이 요리를 직접 만들고,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볼 때 느끼는 만족감, 게다가 술, 친구도 찾지 않고 꼬박꼬박 집으로 퇴근하는 남편을 반기는 아내... 박 사장은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고 말한다. 그러나 캐나다의 환경과 겉모습만을 보는 섣부른 이민 결정을 그는 반대 했다. "화이트 칼라 계층의 직업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실패한 이민자들의 대부분이 사회적 만족을 추구하다가 좌절된 케이스다. 철저히 스스로에게 만족하려는 자세를 지니면 낭패가 없다." 그러면서 박씨는 가 능한 사전 조사를 통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먼저 정하라고 충고했다. `대동강 면옥` 박 지용 사장 퀘벡 사람들 꽃 좋아해 영업 쉬었어요 장승엽 씨(35)는 1992 년 5 월 부인과 함께 캐나다로 여행 왔다가 이민을 결심했다. 한국에서 꽃 도매상을 했던 그가 몬트리올 웨스트 할펜지역에서 다시 꽃 도매상을 차린 것은 1994 년 3 월 영주권을 받은 직후. 이후 장씨의 월 지출 항목은 세 가지로 나뉘었다. 방 3 개 짜리 아파트의 월 임대료 40 만 원과 4 백여 평 규모의 화원 월 임대료 1 백 80 만 원, 순수한 생활비 약 1 백 만원 등 3 백 20 만원 정도다. 유달리 꽃을 좋아하는 퀘벡 인을 상대로 한 영업은 별 어려움이 없는 편 이다. 네덜란드, 남미,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그가 수입하는 꽃은 생화뿐 아니라 드라이, 컷, 액세서리 등 다양하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연간 매출 액이 약 180 만 달러에 달했다. 순이익은 마진이 20%에 불과한 슈퍼마켓에 비해 높은 편이라고 장씨는 말했다. 그러나 장씨는 지난해부터 급격히 가라앉은 퀘백 주의 경기를 우려하고 있다. 분리 움직임에 이은 찬반 투표 때문이다. 실패하긴 했지만 찬성과 반대의 차이가 적은 데다 젊은 퀘백인 사이에 독립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 다는 점을 들었다. 장씨는 "몇 년 내로 다시 분리 투표가 있을 것 같다"며 "그 때는 분리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이 탓인지 장씨의 지난해 연 매상은 80 만 달러나 줄었다. 인종 차별의 기미까지 보이자 장씨의 친구들도 토론토나 최근 각광받는 밴쿠버로 많이 떠났다. 그래도 장씨는 몬트리올이 북미에서 가장 살기 좋 은 도시로 꼽혔다는 조사 결과를 자랑했다. "골프에 간단한 식사비용까지 합해 한국 돈으로 1 만 5 천 원 밖에 안 드 는 곳이 세계 어디에 있겠느냐"며 장씨는 "생활만 유지된다면 귀국할 생각 이 없다"고 말했다. 몬트리올 꽃 도매상 장 승엽 씨 이렇게 했더니 사업이 잘 되네요 드리워진 커튼 자락 사이로 밝은 아침 햇살이 방안으로 살짝 비껴들었


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햇살이다. 지난 1 주일은 내내 흐린 날씨에 비만 후줄거렸기 때문에 더욱 햇살이 반갑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날씨 변화에 민감해지고 또 좋은 날씨에 아름다움과 감사함을 느끼게 된 것을 보니 나 도 서서히 이 곳 캐나다 생활에 적응되어 가는가 보다. 우리 가족이 이 곳에 온 지도 벌써 1 년 반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혹독 하다는 토론토의 겨울도 겪어 보았고, 아름답지만 너무 짧아 아쉬움만 더 했던 여름도 맛보았다. 이제는 마침내 두 번째 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독립 이민(취업 이민) 비자를 얻어 나름대로 꿈을 안고 밝은 캐나다 땅 은 한국에서 막연히 생각했던 그런 파라다이스는 아니었다. 특히 우리가 가장 먼저 터득한 것은 고생 없이는 어떤 대가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 다. 편안히 대충대충 살았던 한국 생활을 후회하면서 막연히 그 시절을 다시 그리워하기 시작할 즈음, 우리는 지금의 사업체를 찾게 되었다. 자신 만만 하게 시작했던 이 곳 생활이 불안과 초조함으로 바뀔 바로 그 무렵이었다. 이 곳에서는 흔히 캐나다 땅에 도착하는 바로 그 날 공항에 마중 나오는 사람의 직업이 아주 중요하다고들 한다. 왜냐 하면 첫날 만난 그 사람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 새로 이주해 온 사람도 거의 100%가 그 직업이나 비즈 니스를 찾게 된다는 징크스 때문이다. 우리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를 마중 나오신 분은 편의점(convience)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그 때문이었는지 우리도 당연한 듯이 그런 쪽으로 비즈니스를 생각해 버렸다. 그래서 비즈니스를 시작하기 전 9 개월 동안 캐나다 생활에 적응해 갈 때 관심을 가진 것도 오로지 컨비니언스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금의 델리 스토어(조제 식품 판매점)를 보게 되었는데, 편의점이 정적인 것에 비해 이 비즈니스는 동적이었다. 또한 나름대로의 개발성(창의성)을 요구하는 매력에 이끌려 그것을 택하게 되었다. 비록 아무런 경험도 없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사업 계획서도 작성했으며, 사업 확장 방향 등을 빌딩 소유주에 게 제출하면서 가게 인수를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다. 주변에서는 경험 없이 하는 사업은 위험하다고 우려를 했지만, 우리는 나름대로의 자신감과 소신을 가지고 결단을 내려 마침내 지금의 가게를 인 수했다. 다행히 지금은 우리가 인수하기 전보다 가게가 더 바빠져 매상이 많이 올랐고 권리금도 두 배 가량 뛰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그 분야에 경험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결정을 내 리는 데 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물론 경험이 있으면 비 즈니스를 하기에 유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주위를 둘러보 면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이것저것 재는 등, 생각이 많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돈과 세월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때로는 경험보다는 자 신감 있는 과감한 결단력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 가게는 지하철역과 연결된 사무실 빌딩 안의 음식 백화점(Food court)에 있는 매장 중의 하나이다. 딸서 가게도 빌딩에서 일하는 고객들 이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문을 열고, 또 퇴근 무렵에 같이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토,일 요일은 또한 쉴 수가 있어 다른 업종의 비즈니 스보다 시간적으로 많은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렇지만 음식(샐러드, 샌드위치, 미트 등)을 파는 사업이다 보니 신경 쓰며 유의해야 할 점이 무척 많다. 더욱이 우리 나라 음식도 아닌 남의 나


라 음식으로, 또 캐나다인 고객을 대상으로 판매해야 하니 말이다. 우리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신선함을 유지하는 것과 청결 문제, 우리 가게에는 5 명의 도우미(Helper)가 있는데, 복장과 청결에 각별히 유의하고 있다. 음식을 만지기 전에는 항상 손을 씻고, 앞치마도 늘 청결 상태를 유 지하고 있다. 그 다음 신경 쓰는 부분은 고객 만족 서비스 부분이다. `고 객은 왕이다.`는 명언(?)을 늘 염두에 두며, 고객들에게 최대의 만족을 제 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반드시 감사의 인사를(Thank you)하는 것은 물론이 고, 손님 개개인의 기호와 구미를 하나하나 잘 기억해 챙겨 주었다. 우리 는 한 번 찾은 손님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는 철칙을 세워 놓았다. 특히 우 리의 주고객은 오피스 빌딩 내의 직원이기 때문에 고객의 취향을 잘 알면 유리하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하면 고객들의 이름을 기억하여 그들의 이름 을 불러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 정서로 비추어 보면 다른 사람의 이 름을 부르는 것이 무례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이곳 사람들은 이름 을 불러 주면 무척 좋아한다. 이는 친밀함을 나타냄과 동시에 상대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고정 고객을 늘려 나가 매장 중에서 가장 바쁜 매장 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고객을 대할 때 방법상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되는 부분 중의 하 나는 동양적인 매너를 잘 이용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거스름돈을 줄 때 가능하면 아무리 바빠도 돈을 가지런히 하여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건네 준다든가, 포크나 냅킨 등을 줄 때도 가능하면 손님 쪽으로 손잡이가 가도 록 정성스럽게 주면 여기 사람들은 처음에는 무심히 여기다가도 나중에는 감격해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이는 작은 친절에 불과하지만 그들은 쉽게 감동한다. 이렇듯 내가 상대를 존중해 주고 있다는 마음이 상대에게 전달되면 상대 도 반드시 나를 존중하게 되는 것 같다. 하여튼 우리는 비즈니스를 통해 많은 것을 함께 배우고 있어 더욱 만족해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해하는 방 법이나 또 사람을 다루는 방법 등을 현장에서 터득하고 있다. 물론 시행 착오도 겪으면서... 아직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모든 것들을 밑천삼아서 낯선 나라 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했다는 자부심을 보듬고 더 큰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자 한다. 남현숙 씨 욕심 때문에 실패한 사업, 이제는 욕심이 없어졌어요 어느덧 20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캐나다라는 크고 광대한, 언어와 풍 습이 전혀 다른 나라 속에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삶과 경쟁하듯 살았다. 돌아다보면 결코 짧지만은 않은 세월을 이 곳에서 보내면서 그다지 어려운 일없이 비교적 평탄한 생활을 했다. 한국이나 이 곳이나 직장 생활을 하면 안정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우리 부부는 별다른 욕심 없이 남편이 벌어 오는 봉급으로 비교적 잘 살아가고 있었다. 가끔 부모님으로부터 걱정스러운 말을 듣기는 했다. 부모님께서는 그 동안 살아온 경험으로 우리에게 충고를 해 주시곤 했다.


"젊어서 하는 고생은 돈을 주고도 못 산다. 이렇게 편안한 생활만 하지 말고, 너희도 한번 사업을 해 보는 것이 어떠냐?" 그래도 우리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직장 생활을 계속하면서 세 아이들 을 키우며 제법 알뜰한 살림을 꾸려 나갔다. 적은 액수였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돈도 좀 모았다. 곧 집도 장만하고 살림도 장만하면서 나름대 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느닷없이, "우리 다른 주로 이사갈까? 그래, 까 짓것 내일이라도 당장 이사가자."고 했다. 그러고서는 한 달 만에 이사를 단행했다. 그래서 이 곳 BC(British columbia)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 다. 그 때부터 고생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직장을 구하려고 보니 쉽지가 않았다. 마침 큰언니네가 주유소를 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잠 시 그 곳에서 일을 도왔다. 이민자들이 할 수 있는 일거리는 한정되어 있다. 식품점, 음식점, 세탁 소, 주유소 등. 그런 종류의 자영업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처음 우리 사업체를 갖게 된 것도 음식점이었다. 그 때만 해도 아이들이 어려서 살림 하면서 일을 돕기에는 나에게 힘이 부쳤다. 그래서 스모크 숍(Smoke Shop) 으로 바꾸었다. `스모크 숍`은 주로 잡지를 많이 취급하는 작은 가게였고 남편이 주로 운영했다. 경험은 없었지만 제법 벌이가 괜찮았고 우리 식구 는 별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생활할 수 있었다. 세 아이들 역시 이 곳에서 태어났지만, 한국말도 잘하고 읽고 쓰는 것도 서툴게나마 할 줄 안다. 사 람들로부터 과잉 보호하는게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25 년 이상 이곳에 서 살고는 있지만 남편이나 나나 아이들을 보수적으로 키우고 있다. 그 덕 분인지 아직까지 자기 마음대로 외출을 하거나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 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아이들을 나쁘게 보 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아이들이 부모 말에 잘 순종해 주는 게 고마울 뿐이다. 이렇게 편안했던 생활을 그리워하면서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사업 실패에 대한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정리하겠 다는 마음에서다. 지금으로부터 3~4 년 전 이 곳 밴쿠버에는 투자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들 기 시작하면서 모텔 사업이 번창했었다. 그 중에는 단독으로 하는 사람들 도 있었지만 서너 사람이 투자하는 동업이 한때 유행인 듯했다. 내가 아는 사람들도 그 중에 몇 명이 있었는데, 많지 않은 돈을 투자해서 일만 하고 도 1 년에 몇만 불씩 배당금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그 소리에 귀가 솔깃해 지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였던가! 내 마음 속에 욕심이 생겼다. 나라고 못 할 거 같아? 그 동안 꾸준히 모은 돈, 부자한테는 적은 액수에 불과하겠지만 우리한 테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큰 액수였는데, 그것을 모두 투자했다.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 처음에 남편은 동업이라 주저했다. "동업이라니 썩 내키지 않은 걸." "그렇게 하면 돈 많이 벌 수 있대요. 나 한번 편하게 살고 싶어요." 나는 자꾸 하자고 우겼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심, 편하고 싶은 욕심


에 계속 고집을 피웠다. 남편도 마음이 흔들렸던지 곧 동업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잘 되는 가게를 정리해서 마침내 다른 두 사람과 동업을 하기로 하고, 모텔과 레스토랑이 딸린 큰 사업체를 사들였다. 그런데 인수를 한 직후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동업한 사람들끼리 마음이 어긋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서로 친한 사이였지만 물질(금전)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 서로 친했던 사이인가 싶을 정도로 갈등이 심해졌다. 또 많은 경험도 없이 방이 74 개나 되는 큰 모텔을 경영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았다. 처음에 시작할 때 세 사람이 한 번씩 돌아가면서 운영하기로 했었다. 하 지만 몇 달 그런 식으로 운영하다 보니 그러한 경영이 잘못된 생각이었음 을 깨달았다. 아무리 영어를 잘 해도 겉모습은 어쩔 수 없이 동양인이었다. 직원들이 나 손님들은 대부분 현지인들인데, 그들과 익숙해지는 데에서 한참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서로 익숙해질 겨를도 없이 주인이 바뀌다 보니 서로 불평 하기 시작했다. 주인은 직원들이 제멋대로라고 하고, 직원들은 도대체 어 느 주인한데 맞춰야 하는 거냐고 불만이 가득했다. 문화가 전혀 다른 40 명 이나 되는 직원들을 우리 식으로 다룰 수도 없었다. 설사 우리 문화를 강 요한다 해도 그들에게 통할 리가 만무했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이 자주 바뀌었고, 나간 직원들은 우리 모텔에 관하 여 나쁜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우리 모텔이 있던 곳은 아주 작은 시 골 동네였다. 정확히 몇 명인지는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다 보니 대부분 사람들이 나쁜 감정을 가지고 그만두면서 모텔에 대한 소문은 점점 나쁜 쪽으로 번져 나갔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일할 사람조차 구하기 어 려워졌고, 그 소문 때문인지 손님들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손님들 대부분 은 이 곳에 장기간 머물면서 기름을 파내거나 나무를 자르는 일을 했다. 그들은 이곳 저곳 옮겨다니면서 일하기 때문에 그들까지도 소문을 들어 나 쁜 감정을 갖게 된 것 같았다. 모텔은 물론 레스토랑까지도 거의 문을 닫 아야 할 지경까지 와 버렸다. 그런데도 서로의 감정대립은 여전했다. "으 이구, 내가 참고 말을 말자." 하며 말을 안 한 것이 오히려 대화의 단절을 초래했다. 마주치면 다투기 일쑤여서 아예 서로 외면해 버렸다. 직원들을 제대로 못 구해 직원들이 해야할 일까지 하다 보니, 피곤이 겹치고 드디어 는 건강까지 잃어버리게 되었다.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결국은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겼다. 남편을 제외한 동업자 두 사람이 건강 문제로 인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남편이 전적으로 다 맡게 되었다. 세 사람이 해서도 감 당 못했던 것을 혼자서 어떻게 운영해 나갈까 걱정이었다. 재정적인 어려 움까지 겹치자 이제는 도저히 걷잡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직감했다. 중 간중간 돈을 구해서 막아 보았지만 끝이 없었다. 그 후 빚독촉이 계속된 건 물론이고 집에서는 생활비조차 바닥이 났다. 매일매일 허덕였지만 아이 들한테나 다른 사람들한테는 힘들다는 내색을 애써 하지 않았다. 그런 이 야기를 해 보았자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그들은 오히려 나를 더욱 비참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고난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혼자 하기에는 너무 힘겨운 상탭니다. 보좌해 줄 유능한 매니저를 한 명 구했으면 하는데요."


"아, 매니저를 두겠다는 생각을 못 했군요. 그렇게 하죠." "저 컴퓨터에 잔뜩 쌓인 먼지도 털어 내야겠습니다. 언제까지 장식용으 로 사용할 수는 없지요. 매니저까지 두는데, 비즈니스 규모에 맞지 않게, 또 시대에 맞지 않게 계속 수동으로 일할 수는 없는 일 아니요." 그리하여 매니저를 한 명 구하고 그 동안 세 사람 다 다룰 줄 몰라 썩혀 두고 있었던 컴퓨터도 작동시티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제법 일이 잘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진작에 그랬어야 했다고, 지금 참 잘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며 즐거워 했다. 하지만 웃고 좋아할 수 있는 상황이 계속되지는 않았다. 워낙에 매상이 떨어진데다가 주위는 쉽지가 않았다. 또한 분위기까지 더욱 나쁜 쪽으로 치닫고, 남편 혼자 할 때마다 오히려 더한 상황에 이르렀다. 은행에서 빚 독촉장이 날아들었다. 이러다간 어렵게 집까지 흘라당 날릴 판이었다. 난 사실 이렇게까지 상황이 안 좋은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남편은 사업 얘기를 집에 와서 지분지분 떠들지 않았다. 난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되 었을 때에야 소문을 들어 알게 되었다. 아. 정말 하늘이 시커멓게 보였다. 그 때 비로소 부도를 내고 자살하는 사람들을, 도망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것 같았다. 내가 그러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이렇게 계속 나가다간 정말 회생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고 말 것이었 다. 손해를 보더라도 부도는 내지 말고 정리하자고 결정을 내렸다. 6 개월 둬, 모텔은 정리가 되었다. 다행히 빚을 다 갚고도 조금씩이나마 우리 손에 돈이 돌아왔다. 그 돈으로 작은 사업체를 사서 운영할 수 있었 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 었던 것은 하느님이 항상 함께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때 만 큼 뼈저리게 기도했던 적은 없었다. 욕심 때문에 치러야 했던 고난, 하지 만 건강을 지켜 주시고 다른 두 동업자들도 건강을 회복해 가는 걸 보며 감사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정말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게 된 것에 감사하며, 고난과 환난 중에 우리와 함께 해 주신 하느님, 지금 이 순간도 우리를 지켜보시는 하느님께 감사한다. - 유 00 씨 캐나다에서의 창업과 직업 선택 캐나다의 투자 환경 캐나다 경제는 대미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고 비교적 산업 기반이 약하 다. 아울러 천연자원 및 원자재를 수출하고 자본재와 소비재를 수입하는 무역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캐나다 정부는 수입 대체품의 생산확대, 부존 자원 개발 활성화 및 지역별 균형 발전 등을 목적으로 매우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 유치정책을 펴고 있고, 다양한 투자우대혜택도 부여하고 있 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주해 가는 사람들의 절대 다수가 투자이 민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취업을 해 돈을 벌기는 쉽지 않은 반면 투자를 통해 생활의 기반을 마련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 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투자 관련 법규는 1985 년에 제정되고, 1989 년에 개정된 `캐나 다 투자법(Investment Canada Act)`과 `캐나다 투자규정(Investment Canada Regulation)`이 있으며, 회사 설립은 `연방 및 주정부 회사법`을 따라야 한다. 외국인의 투자를 총괄하는 외국인 투자 전담기구는 `캐나다 투자청 (Investment Canada)`인데, 이 기구는 투자 관련 각종 조사업무 수행 및 정책 자료 제공과 일부 외국인 투자 심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30 여 년간 우리 나라와 두터운 외교, 통상 관계를 유지해 온 캐나 다는 우리 나라의 10 대 수출 시장의 하나로서 현재 30 여 개의 한국 기업이 제조업 및 광업 부문에 진출하여 투자 실적이 4 억 달러를 웃도는 적지않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의 풍부한 보존 자원 개발, 활용 가능성을 고려하면, 아 직도 투자 기회가 많은 것으로 판단되며, 또한 자원 개발 중심의 투자 형 태 뿐만 아니라 자원 가공형 투자와 기술 집약형 투자를 통하여 고부가가 치 부문의 제품생산에 참여함으로써 선진기술의 습득과 양국 간의 상호 호 혜적인 경제 협력이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 정부 권장 투자 유망 분야 새로운 제조업 또는 가공업 -이주 희망지역의 주요 원자재를 이용할 수 있는 분야 -수출이 가능한 제품 생산 분야 -새로운 기술 도입이 가능한 분야 기존 산업 연관 서비스업 -산업 장비, 기자재의 수리 및 보수 -현존 기술에 앞서는 기술 공법 제조, 컴퓨터 소프트웨어 분야 및 기술 연 구 개발 분야 -유전 공학 분야 -교육용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 기존 업체 투자 -기존 업체 확장 강화 -기존 업체 고용 수준보다 고용 증대 지역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관광 레저 산업체 -완비된 산장 및 오락, 숙박 시설 -여름과 겨울의 레저 시설 확장 사업을 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캐나다에 도착한 뒤 사업을 벌일 경우에는 일단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는 것이 좋다. 될 수 있으면 시간을 갖고 캐나다에 대해 한층 폭넓은 이해와 정보를 획득한 뒤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비록 사전에 필요와 정보 와 지식을 갖추었더라도 막상 캐나다 현지에서 맞닥뜨리는 상황과는 으레 편차가 있을 수 있고, 급하게 서두르다가는 자칫 낭폐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무엇보다 현지의 실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꼼꼼하 게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캐나다인들의 문화적인 실상을 익히고, 사업을


하는 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영어를 익히는 데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지역의 교통사정이나 실정도 익혀야 하며, 이웃 캐나다인들의 취향도 파악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자신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 끄는 데 보이지 않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한국에서 사업에 성공한 경험이 있고, 돈도 필요한 만큼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사업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언어와 문 화가 다른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남이 하던 업체나 가게를 인수할 경우, 먼저 검토해야 할 문제가 이른바 `권리금`이라는 것이다. 권리금 제도는 캐나다에도 있기 때문이다. 보통 권리금은 가게나 업체의 매상 정도에 따라 가격이 큰 편차를 보인다. 이 때문에 가게난 사업체를 인수할 때는 본인이 직접 매상을 확인하는 기간을 갖는 것이 좋다. 무조건 주인의 말만 믿고 사서는 안 된다. 아울러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은 세금 보고는 성실하게 했는지, 부가된 세금을 모두 다 냈는지 하는 문제다. 캐나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인지라 발 생한 소득 모두에 대해 완벽하게 세금 보고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양심껏 보고해 줘야 한다. 너무 심하게 절세하려 하다가는 자칫 캐나다 국세청으로부터 감사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발생 하면 오히려 더 많은 세금을 물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캐나다에서는 변호사나 공증인 등을 통해 거래하므로써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부담이 생기기는 하지만, 사는 사람이 예측하지 못했던 손해가 생기 지 않도록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해 준다. 과거 초창기 때의 이민자들 가운데 일부는 변호사 비용이라도 아끼려는 마음에서 스스로 사업체를 팔고 사는 일을 해결하고는 나중에 문제가 발생 해 결국 많은 피해를 보기도 했다. 이럴 경우 피해를 보는 쪽은 언제나 사 는 사람들이다. 창업할 때 유의해야 할 일들 캐나다에 이주해 온 한인들이 창업하는 과정에서 흔히 저지르는 사소한 실수들이 결국 한인들에 대한 캐나다 인들의 이미지나 신뢰를 크게 떨어뜨 리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어떤 일이든 지나치게 쉽게 결정하고 또 쉽 게 `없었던 일`로 취소한다는 것이다. 창업을 하고자 가게나 점포 따위를 계약할 때도 그런 일이 흔히 벌어진 다. 어떤 가게를 하겠다 확실하게 결정해 놓은 상태도 아니면서 대뜸 가격 부터 흥정한다. 점포 임대료가 지나치게 비싸다는 등 잔뜩 흥정을 해 놓고 도 정작 주인이 팔겠다고 하면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 했다.`든지 `안 사겠다`든지 하는 식으로 뒤로 물러선다.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캐 나다 인들로서는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한두 번 쯤 경험한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한인들한테는 가게를 팔지 않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한인들과 거래하 기를 기피하는 현지인들도 적지 않다. 신중하지 못한 데다 워낙 이미지가 안 좋게 형성되어 버린 것이다. 이민 생활에 쉽게, 그리고 올바르게 정착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관행 이나 습관, 문화 등을 철저히 익히고 그들이 하는 대로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자기 중심을 확실하게 견지하고 살아나갈 필요가 있다. 가게 하


나를 계약할 때도 제반 사항에 대한 조사와 검토는 치밀하고 신중하게 하 되, 쉽사리 우왕좌왕 하는 모습은 피해야 한다. 결정을 했으면 철저하게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깨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사업체 매매 계약서 작성시 주의할 사항 1.매각자가 법인 (주식회사)일 경우에는 필히 그 법인의 실질적인 소유자 (주주 임원 및 이사)가 계약서에 보증 서명을 해야 상기 조항들, 보장 및 확약 조항들이 궁극적으로 유효하게 된다. 2.업체나 계약의 성격, 예를 들면 환경 오염 문제, 위생 문제 등에 대비한 조항을 명기한다. 상대방(매각자, 변호사 및 관계자)을 신뢰해도 반드시 충분한 조사를 하고 서면 확인을 받는 것이 좋다. 맹목적인 신뢰는 사업 계약에 상당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3.변호사 비용, 선임 내용 및 한계 등을 사전에 확인한다. 4.계약 선제 조건들은 사전에 충분히 의논, 검토 및 확인한 후 해제한다. 융자 확인도 서면으로 받아 놓는다. 조건 해제 후에는 변호사 및 회계사 등 전문가를 통한 권리 보호가 어렵다. 별도로 임대 계약 양도에 관한 건 물주의 허가는 서면으로 확실하게 하기 전에는 조건 해제를 삼가야 하며, 대개의 경우 그 허가는 계약 종결과 동시에 유효하게 된다. 5.법률 서류 준비 기간은 변호사 면담서부터 3~4 주가 소요 된다. 그 이유 는 제반 열람 조사(Searches)에 약 3 주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6.주식 매입(Share Purchase)의 경우에는 매입 형식에 따른 문제점들이 있 으므로 필히 회계사들과 상의한다. -세금 및 소송 등의 채무 및 부채의 승계선 : 현재 밝혀지지 않았거나 향 후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 -정부 관계법 및 기타 책임의 승계성 -추후 사업체 매각시 종합 소득세 채무. -매각 보증자(법인의 실질적인 소유자) 및 매각자의 계약 조건 위반시에 법적 제제를 하는데 따르는 실질적인 문제점과 한계. -절차상 주주 차입금(Shareholder`s Loan)이 명기되어 있는 최근의 재무 제표가 필수적이며, 흔히 자산 매입 형식이 중복되어 사용될 수도 있으므 로 구입가격에 포함 또는 제외되는 정확한 명세가 필요하다. 7.임대 계약 약관(Lease)는 일반적으로 건물주를 보호하기 위한 일방적인 계약 내용이며,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조항을 확인한다. -계약 당사자 확인 : 매각자의 임대 양도권 소지 여부. -중요 조항 : 장소(Premises), 면적(Area), 계약 기간(Term), 월세 및 추 가 월세(Rent and Additional Rents), 임대 용도(Use), 양도 및 재임대 (Assignment and Subletting). 철거(Demolition), 건물 파손 (Destruction), 계약 기간 연장(Option to Renew), 선취득권(Right offirst refusal). -양도 및 재임대 : 대개 건물주의 사전 서면 허가가 필요하다. 그 서면 허 가는 불합리하게 또는 일방적으로 거절될 수 없거나(May not be unreasonably or arbitrarily withheld), 거절할 수도 있으며, 건물주가 일방적으로 계약 파기를 할 권한이 있는 등 여러 형태가 있다. -계약 기간 연장 : 계약 조건을 준수할 시에 세입자가 계약 만기 일정 기


간 후에 기간 연장을 서면으로 요구할 경우, 계약 당사자가 연장 기간의 월세를 합의하여 합의가 안 되면 중재 조항에 의하여 조정하는 경우가 관 례이다. 계약 조건 준수 여부와 중재 및 기타 조항이 명기되어야 실효가 있다. -선취득권 : 건물주가 건물 매각시에 구매 계약 제안의 동일 조건으로 세 입자에게 건물 취득 기회를 제공하는 조항. -임대권 등기 : 임대권을 부동산에 등기하면, 부동산 등기법에 의하면 공 공 등기가 인정되므로 법적 권리 보호를 받게 된다. 계약 기간이 3 년 이상 일 경우 판례법에 의하여 통고 간주 인정이 비등기 시기에도 가능함으로 피해는 흔치 않다. 캐나다 한인 직업, 취업 현황 요즘 캐나다 행 비행기를 가장 많이 타는 사람들은 기업체 간부 출신들. 명예 퇴직 등 감원으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고 해외에서 제 2 의 인생을 시 작하려는 30, 40 대들이다. 그 다음으로는 전문 기술직 종사자들, 컴퓨터 전문가나 연구소 연구원, 석사 박사 등, 누가 보더라도 유능한 인재들이 다.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대략 30%선. 나머지는 이미 자녀를 캐나다에 유 학 보내 놓은 부유층이다. 가서 돈벌이를 하느라 애쓸 필요 없어 한국에 있는 부동산 임대 소득이나 이자 수입으로 자식 뒷바라지하며 한국과 캐나 다를 왕래하면서 살겠다는 이들이다. 전문 기술직 출신의 경우는 취업에도 큰 불편이 없다. 연봉이 기껏해야 2 만 ~ 3 만 달러 정도로, 한국보다 낮다는 것이 흠이지만 사회 복지 제도가 발달되어 있어 큰 불만은 없다고 한다. 문제는 자기 사업을 해보려는 경우다. 대부분 이민자들이 선진 복지 제 도와 교육 시스템을 보고 이민을 가지만, 막상 가서는 마땅한 일거리를 찾 지 못해 고심한다. 국내에서 사업 경험이 없는 이들은 몇 년씩 사업 거리 를 찾아 한국과 캐나다를 오락가락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이민자들은 앞서 이민간 교민들이 주로 종사하는 식료품점이나 세 탁소 등, 인건비 정도를 버는 업종을 기피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공산품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수입해 오기 때문에 제조업 진출에도 한계가 있고, 무역업의 경우도 판로 개척에 어려움이 많아 마땅한 품목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때문에 한때는 나이아가라를 건너 미국행을 감행하는 사례가 많았고, 이 로 인해 캐나다를 통해 미국으로 넘어가는 여행객에 대한 검문 검색이 강 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교포 상권이 발달하면서 한식당, 비디오점, 의류점 등이 늘 고 있고, 밴쿠버, 토론토 등 유학생들이 몰려드는 대도시에서는 술집, 노 래방, 카페, 당구장 등 유흥업소가 크게 늘고 있다. 사업체를 인수할 때 담보가 없으면 대출이 어렵거나 프리미엄을 줘야 하는 점은 한국과 비슷하 다. 밴쿠버 도심지에 있는 10 평 내외의 커피숍의 경우, 매매 가격은 프리미 엄을 포함해 1 억 5 천-2 억 원 정도이다. 예상 수입은 1 만-1 만 2 천 캐나다 달러 선. 3 명 정도의 파트타임 종업원을 쓸 경우 인건비 3 천 달러, 월 임


대료 약 3 천 달러, 기타 경비를 제외하고 나면 5 천 달러 정도의 수입을 올 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어느 정도 돈을 모은 이들은 밴쿠버와 캘거리, 밴프 등 유명 관광지에 모텔을 짓거나 학원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취업 근로 환경 노동에 관해서는 연방 정부 및 주정부가 관할하고 있는데, 연방 차원에 서 규정하는 법률로는 근로 시간, 노동 시간, 시간외 근무, 휴가 등 기본 노동 조건을 규정하고 있는 노동법과, 허용되지 않는 노동 관행을 열거하 고 있는 인권 보호법, 그리고 작업장 내의 흡연을 제한하고 있는 흡연 제 한법 등이 있다. 또한 권리와 자유에 관한 캐나다 헌장(Federal Charter of Rights and Freedom), 교용 평등법(Equality-of-work Provision)은 여 성, 소수 민족, 장애자 등의 고용을 규정하고 있다. -노동력 캐나다의 노동 인구는 1993 년 현재 1,395 만 명으로 총인구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실업률은 1982 년 이후 안정적인 경제 성장과 노동 인구 증 가율의 둔화에 힘입어 점차 감소하여 1989 년에는 7.5%까지 달하였고, 그 후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여 1993 년에는 11.2%에 달 하였으나,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상업별 취업 인구는 제조업, 임업, 광업, 건설업 등 생산 부문이 22.7%, 서비스 부문이 77.3%를 차지하고 있다. -임금, 복지, 노동 조건 근로자의 실질 임금은 임금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을 상회하여 지속적인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캐나다 노동법은 하루 8 시간, 주 40 시간의 정상적인 근무 시간을 초과하 는 작업 시간에 대해 정상 임금의 1.5 배로 시간외 근무 수당의 지급을 규 정하고 있다. -실직했을 경우 본인이 회사에 악영향을 끼쳐 해고된 경우를 제외하고, 고용주는 여러 주전에 고용인에게 통보해야 하거나, 고용인이 6 개월 이사 근무하였을 때 에는 일정액을 지불해야 한다. -취업 관련 정보 근로자의 고용은 긴문 광고, 캐나다 고용 센타(Canada Employment Centres)의 이용, 민간 고용 중개인의 활동 등 3 가지 방식이 주로 사용되 는데, 일반 노동자는 고용 센터, 관리 전문직은 고용 중개인을 통하여 고 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직업을 구하는 데 필요한 기본 서류들은 한국에서 준비해 가면 도움이 될 수 있다. 여권, 출생 증명서, 졸업장, 학위 증명서, 자격증, 추천서(영문이나 불 문), 영주권, 운전 면허증 등이 필요하고, 인터뷰 시 지참하면 되며 복사 는 해 줘도 되지만 원본은 주지 않도록 한다. S.I.N(Social Insurance Number)이 있어야 일을 하며, 이민 정착소에 연 락해서 직업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 된다.


직업 선택할 때 유의 사항 캐나다에서 취업을 할 때 가장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직업에는 귀천 이 없다.`는 것이 완벽하게 적용되는 곳이 바로 캐나다라는 것이다. 어떤 직종에서, 어느 기업에서 일하든지 간에 그 직업 자체 때문에 차별 받는 경우는 없다. 어느 직종에서 일하든지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일하면 그뿐 이며, 그에 따른 대가는 언제나 정당하게 주어진다. 물론 캐나다에서도 선호되는 직업이 따로 있기는 하다. 캐나다의 한인들 이 주로 하고 싶어하는 업종은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다. 대부분 소규모 사업을 좋아하며, 이러한 업종 가운데서도 영어를 쓸 필요성이 적은 업종 을 선호한다. 이 밖에도 큰 자본이 요구되지 않은 업종과 위험 부담이 덜 한 업종을 즐겨 찾으며 될 수 있으면 `현찰 장사`인 쪽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요즘은 비교적 재산이 넉넉한 사람들도 있고, 캐나다 현지에서 오 랫동안 산 사람들 가운데 그간의 경험과 축적된 자산을 바탕으로 큰 사업 을 벌이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소규모 사업으로 대표적인 것은 식품점, 편의점, 세탁소, 스낵 코너, 커 피 전문점, 선물의 집, 꽃 가게, 샌드위치점, 식당, 과일 및 채소 가게 등 이다. 반면, 비교적 큰 규모의 사업으로 모텔이나 호텔, 주유소, 요식업 체인점 등을 창업하는 경우이다. 뛰어난 맞벌이 조건 캐나다에서 맞벌이는 매우 보편적이 사회 현상이다. 캐나다인들은 말할 나위 없고, 대부분의 한인들도 부부가 함께 일한다. 특히 자영업을 할 경 우 부부가 함께 일하면 인건비가 절약되기 때문에 거의 예외 없이 함께 일 터에서 동고동락한다. 캐나다인들은 맞벌이를 해서 생기는 재정적 여유분을 은행에 집어넣기 보다는 휴가 때 여행을 가는 데 쓰거나 평소의 레저 생활에 쓰는 것이 보 통이다. 한편, 흥미 있는 현상은 캐나다 인들의 경우, 자녀가 둘이면 이 아이들 을 탁아소에 맡기고 맞벌이를 하지만, 셋 이상이 되면 부부 가운데 어느 한 쪽이 (대부분 여성 쪽이지만) 맞벌이를 포기하고 집에서 아이들을 돌본 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들의 경우 직장에서 벌어들이는 소득이 세금을 제하고 나면 불과 1 천 ~ 1 천 5 백 달러 정도인데, 자녀 둘을 주간 탁아에 맡기게 되면 월 8 백-9 백 정도 들기 때문이다. 소득이 얼마 되지 않지만 캐 나다 여성들의 경우, 소득도 소득이지만 직업을 갖고 일한다는 것이 본인 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긍지 때문에 직업을 갖고 있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셋 이상을 주간 탁아원에 보낼 경우 오히려 벌어들이는 것 보다 탁아 비용이 더 커지게 되어 하는 수 없이 직업을 포기하게 되는 것 이다. 캐나다에서 90 년대 후반에 유망한 직종 캐나다에서 가장 유망한 직종은 무엇일까? 딱히 이러저러한 직업이 유망 하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최근 사회의 변화 추이를 감안한다면 몇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특히 건강을 중요시하는 현대인들의 의식을 감안한다면 건강 관리 직종 도 전망이 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캐나다 인구가 계속 노령화되 는 반면, 정부의 예산은 크게 늘어나지도 않고 오히려 줄어드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어, 양로원이나 환자들의 집을 직접 방문할 수 있는 건강 관리 전문가들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컴퓨터와 인터넷 관련 분야는 앞으로 계속적으로 새로운 기술자들과 전 문가들을 요구하는 직종이다. 인터넷의 보급이 급격한 속도로 늘어남에 따 라 웹사이트를 설치, 관리할 수 있는 사람과, 여기에 광고를 만들어 넣을 수 있는 전문가들이 현재 심각히 모자라는 실정이다. 아울러 모든 정보가 전산화되면서 이 같은 정보를 관리할 줄 아는 `전자 도서실장`들과, 이런 막대한 자료를 일반인들이 간편하게 소화해 낼 수 있 게 재편집할 전문가들도 그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엔지니어링(컴퓨터 엔지니어) 북미 경제의 안정된 성장에 힘입어 컴퓨터 엔지니어에 대한 수요가 2005 년까지 현재 19 만 5 천 명에서 37 만 2 천 명으로 2 배나 증가할 것으로 전망 된다. 이들은 기존의 하드웨어 디자인에서 소프트 웨어를 새로운 온라인 망에 통합하는 일까지 담당하는 등, 업무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연봉도 다른 직 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며, 컴퓨터 엔지니어링, 전기 엔지니어링, 또는 수학 전공이 요구되며 고급 컴퓨터 기술 습득자는 더욱 우대 받는다. -환경(오염 방지 전문가) 정부 뿐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수요가 많다. 특히 캐나다의 자동차 3 사도 자동차 제조 과정에서 대기 오염 방지를 위해 전문가를 찾고 있는 상 황이다. 특히 환경이나 화학전공자, 석사 학위 소지자는 취업이 쉽다. -보건(의사 보조원) 전국 2 만 9 천 명의 의사 보조원은 수술 및 환자 치료 과정에서 의사를 돕는다. 이들 중 40%는 주치의 역할도 한다. 특히 도심과 외각 지역 모두 에서 이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연봉도 높은 편이다. 이 분야 종 사자들은 의대에서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대부분 의사 보조원은 대학이나 병원 등에서 2 년간의 경험이 있다. -���력 자원(훈련 전문인) 모든 업종에 컴퓨터 조작술이 필수적 요건이 되고 있는 요즘, 이 기술을 익히게 하는 훈력전문인이 많이 필요하다. 지난 1983 년에서 1995 년까지 각 기업들이 직원 훈련에 쓴 비용은 83 억 달러나 늘었다. 컴퓨터, 심리학, 교육학, 조직 관리학 등의 전공자가 유리하다. -인터넷 및 뉴미디어(인터넷 관리 간부) `포천`지에 오른 500 대 기업 중 80%가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설치할 정도 로 인터넷의 유용성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인터넷 웹 페이지 설치 및 관리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인터넷 관리 간부가 절대 필요 하다. 연봉은 다른 직종에 비해 최상급 수준이다. 특히 이 분야의 전문가 들은 특별한 학위가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터넷 분야에 대한 지 식과 경륜, 그리고 비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의학(미용 치과의) 미국인의 경우 4 명 중 3 명은 웃음이 매력적이지 못하면 출세에 지장이


있다고 생각하며, 성인의 절반만이 자신들의 웃음에 만족한다. 웃음의 기 본 역시 치아인만큼 이를 예쁘게 보여 좋은 인상의 웃음을 만들려는 사람 들이 많다. 미국 미용 치과 의사 학술 회의는 회원들이 3 년 전보다 두 배 나 늘어나, 현재 3,500 명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이 분야의 진출이 두드 러지고 있다. 이런 추세는 캐나다도 예외는 아니다. -회계(비즈니스 감정사) 비즈니스 감정사는 CPA 분야에서 가장 고속 성장하고 있는 직종이다. 이 들은 기업의 자산평가뿐 아니라, 세금 부담에서 경쟁력 평가까지 다양한 업무를 한다. 비즈니스 감정사의 평균 연봉 또한 높은 편이다. 비즈니스 감정사가 되 려면 회계학 또는 관련 분야의 학사 학위와 CPA 자격증을 소지해야 하고, 특수산업 종사 경험이 요구된다. -미술 및 연예(만화가) 만화는 더 이상 아동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를 통한 다채로운 제작 기법을 십분 활용해 성인들에게도 어필하는 만화가 속속 나 오고 있다. TV 의 `심슨`과 같이 아동과 성인들이 모두 즐길 수 있는 만화 물이 자리를 잡았으며 영화, 광고 등 활로도 많다. 만화도 다루고 있는 UCLA 의 영화학과의 경우, 여기저기서 내미는 구인 손길로 학생들을 졸업때까지 잡아 두기 힘들 지경이다. 만화가가 되려면 미술, 만화, 컴퓨터 분야에 최소 학사 학위는 소지해야 한다. -금융(재정 계획사) 뮤추얼 펀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재산 증식을 원하는 개인이나 기업들 이 점증함에 따라 효과적인 투자를 안내하는 재정 계획사의 인기가 오르고 있다. 자문을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재정계획사들의 시장 규모는 지난 5 년간 2 배로 늘어 1996 년 현재 2 억 8,200 달러에 달한다. 재정 계획사의 수입은 보 통 수준의 경우에도 연간 6 만 달러 수준을 넘는다. 대체로 4 년제 대학 졸업이 요구되며, MBA 취득자나 판매 또는 시장 조사 분야에서 일한 경력자는 선호된다. -홍보(위기 관리 전문인) 텍사코 정유 회사가 흑인 직원에 대한 인종 차별로 소송을 당했을 때처 럼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발했을 때 이를 효율적으로 대처 극복하는 데 위 기 관리 전문인들이 필요하다. 이들은 언론과의 유기 접촉 등을 통해 훼손 된 기업의 이미지를 살리는 일을 주로 한다. 이 같은 일종의 홍보업무는 2006 년까지 약 55%나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 며 그만큼 위기 관리 전문인의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위기 관리 전문인들은 대부분 정부 및 사기업의 홍보 분야에서 일한 경 력이 있다. 언론학 및 다른 통신분야 전공자가 다수를 차지한다. -교육(수학 및 과학 교사) 인터넷을 자유 자재로 이용하는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교직 대신 졸업 후 수입이 좋은 컴퓨터 업계에 진출하길 원해 유능한 수학 및 과학 교사가 많이 부족한 현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국 고교생의 절반 이상이 과학을 선택 과목으로 정하고 있어 수요가 많다.


자격 요건은 주 정부마다 다르지만 수학과 과학 전공자가 유리하다. 부록 이민에 관한 핵심 궁금 사항 Q & A 캐나다 이민 정책과 이민 자격 Q)영주권과 시민권의 혜택의 차이는 어떤지요? A)두드러진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시민권자는 선거권이나 피선거권이 있 는 반면 영주권자 그런 것이 없으니 투표를 통한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느 냐, 없느냐의 차이는 있지요. 아울러 캐나다 내에서 중대한 범죄를 저질 렀을 경우와 영주권만을 갖고 있는 사람의 경우, 추방 될 수 있다는 점 도 차이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Q)고졸 학력으로도 이민을 갈 수 있나요? A)고졸 학력이라고 해서 이민을 못 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여러 이민 프로그램 가운데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 이민가려고 하는지에 따라 약간 불리할 수는 있습니다. 이미 잘 알 려져 있듯 캐나다의 이민은 누구에게 나 공평하게 기회를 준다는 원칙 아래 철저히 점수제 도를 채택하고 있 기 때문에 고졸 학력은 대졸 학력보다 약간 낮은 점수를 받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점수에 약간 불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Q)캐나다에 취업 이민을 가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A)일단 취업 이민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캐나다는 실업률이 항상 10% 안팎에 머물 정도로 높은 편입니다. 나라 실정이 그렇기 때문에 기업체에서 외국인을 고용하는 것에 대해 캐나다 정부(노동청)에서 별 로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캐나다 국내에서 적합한 인력을 구할 수 없을 경우 처럼, 아주 특 별한 경우에는 취 업 이민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그러려면 캐나다의 기업 은 노동청에 해외 근로자를 채용하 겠다는 신청을 내야 하고, 이때에는 그 동안 국내에서 적합한 인력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는 증거를 함께 제 출해야 합니다. 한국 식당에서 한국 요리사를 고용한 사례는 더러 있습니다. 한국 음식 요리사를 캐나다 현지에서 구하기는 사실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마저도 과정과 절차가 복잡해 고용 주들이 귀찮아서 잘 안하려고 합니 다. 이처럼 절차도 복잡하고 규정도 까다로운 편이어서 취업 이민의 성공률 도 낮은 편(5% 미 만)입니다. Q)이민 신청시 자녀가 만 21 세가 넘으면 가족과 함께 못 간다던데? A)21 세가 아니라 만 19 세 이상일 경우 문제가 좀 복잡해집니다. 19 세가 넘 은 자녀가 함께 가려면 일단 학생 신분이어야 합니다. 결혼을 했다거나 직장을 다녀 자립할 수 있는 능 력이 있으면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19 세가 넘은 자녀가 학생은 아니지만, 가족 모두 가 이민을 떠나게 되면 달랑 혼자 남게 될 경우 함께 갈 수 있도록 배려 하고 있습니다. 인도주의적 입장에 서 `이산 가족`을 만들어 놓을 수는 없다는 의식 때문입니다. Q)독립 이민을 신청할 때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 취업 약정서를 제출해야 합니까?


A)미국과는 달리 캐나다는 그러한 조건을 달고 있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 로 현재의 캐 나다 이민 정책은 신청자가 선택 기준 조건을 만족시키는 경우, 캐나다에 서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고 간주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취업 약정서`를 제출하면 약간 유리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자격 심사 때 10 점이 가산되기 때문입니다. Q)군 또는 공무원 경력도 이민 가는데 도움이 되나요? A)군 경력이나 공무원 경력을 인정해주는 경우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모든 주가 다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요. 순수 투자 이민일 경우 군 경력, 공무원 경력 모두를 인정해 주고 있는 주는 퀘벡 주뿐입 니다. 연방법과 퀘벡 주 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독립 이민도 가능할 수가 있습니다. Q)캐나다 이민을 신청했는데, 수속 기간 중에 가족이 늘어나면 어떻게 되 는지요? A)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 가족이 늘어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 러운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에는 호적 등본 등, 증빙 서류를 갖 추고 늘어난 가족을 추가해 줄 것을 요청하는 신청서와 소정의 대사관 접 수비만 더 내면 됩니다. Q)캐나다에도 가족 초청 이민을 갈 수 있나요? A)미국과 같은 일반적인 형태의 갖고 초청은 없다고 보면 됩니다. 다만, 친부모나 배우자, 배우자의 부모를 초청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배우자를 초청하는 데에는 조건이 없지만, 부모를 초청하는 경우 에는 조건이 있습 니다. 초청을 하는 당사자(자녀)가 부모를 초청해 모시고 온 뒤에 부모를 충분히 부양할 수 있다는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즉, 소득 이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소득도 없으면서 무작정 노년의 부모를 모 시고 와 고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취지입니다. 물론 소득 수준에도 가이드 라인이 있습니다. 이 밖에도 FTP(Family Trust Position)이라는 것이 있는데, 일종의 갖고 고용 초청 형태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 오빠나 형 등, 가족을 고 용하고 싶을 때 고용 초청을 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물론 이 경우에 도 사업상의 손익 계산을 고려해 설정되어 있는 가이드 라인이 충족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본인이 세탁소를 할 경우, 초청하고자 하는 가족도 세탁소에서 일했거나 경영한 경력이 있으면 좋습니다. 고용 초청의 경우, 담당 영사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민 대상자의 영어 실력도 고려합니다. Q)캐나다 이민에서 신체 검사의 결격 사유는 어떤 것이 있는지요? A)먼저, 전염병 환자의 경우는 안됩니다. 오히려 장애인은 괜찮은 편입니 다. 하지만 장애인이라도 부모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할 처지라면 곤란합니다. 지능 정도도 고려하고 있는데 규정은 IQ 70 이상 입니다. 장애인이든 정상이든 사회적 적응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원 칙입니다. 또한 현재 앓고 있는 어떤 질병이 캐나다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의료 시설을 의존해야 될 경우도 안됩니다. Q)캐나다 이민 수송 중 직장을 그만두면 어떻게 되는지요? A)수속 기간 중 직장을 그만둬도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일하지 않고 노는 기간이 길어지면 아무래도 불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인터뷰까지만이라도 하던 일을 계속 하거나 직장에 계속 다니는 것이 좋습니다. Q)이민 접수 때 재산 증명한 것을 다 가지고 가야 되나요? A)그렇지도 않습니다. 처음에 캐나다 들어갈 때 정착금을 어느 정도 가지 고 가시고, 하여간 자금을 출지받아 인층받은 날로 2 년 안에만 정식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게끔 한국의 외환 관리 법상에 규정되어 있으나, 이것도 올 7 월에 외환 관리법이 없어지게 되면 기간 제한은 없어지고 금액도 제한 이 없어지며 출처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해 진다 합니다. Q)영주권을 받고 한국에서 계속 일할 수 있나요? A)영주권을 받은 것은 캐나다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이 된 것이지 국적 취득이 아닙니다. 한국 국적이 유지되므로 한국에서 계속 일 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수입금에 대하여 캐나다에 소득세 신고를 해야 하는 게 원칙입니다. Q)영주권자가 캐나다에 최소 거주 기간이 정해져 있나요? A)예. 있습니다. 1 년이라는 기간 안에 6 개월 이상은 캐나다에 거주하라고 되어 있으나, 의무는 아닙니다. 캐나다에서 영주권을 준 것은 캐나다에 거 주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밖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있으면 영주권을 포기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캐나다에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주권을 포기 할 의사가 없음을 증명을 하게 되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증명은 캐나다 에 집 주소가 있고 은행 통장이 있고 의료 보험 카드가 있고 운전 면허증 을 소유하고 또한 세금 보고를 한 내용이 있으면 됩니다. Q)영주권을 가진 사람이 한국에 사업체나 부동산을 소유할 수 있나요? A)예. 있습니다. 캐나다의 국적을 취득하기 전까지는 물론 가능합니다. 캐 나다 국적을 취득한 후 3 년 이내에 한국에서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을 처분 하라고 한국법에 되어 있기는 하나 이것도 역시 외환 관리법이 올 7 월에 없어지게 되면 기간 제한 없이 그냥 소유하고 있을 수가 있게 됩니다. 수속과 절차 Q)이민 수속 때 해외 변호사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요? A)다른 나라의 경우 해외 변호사 비용에 대한 규제는 전혀 없지만 우리나 라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외무부에서 규정을 정해놓고 있기 때문이지요. 1998 년 3 월 현재 투자 이민이나 독립 이민 모두 6 천 달러(미화)로 정해져 있습니다. Q)일반적으로 캐나다 독립 이민 신청을 한 뒤 서류 수속 기간은 어느 정도 됩니까? A)한국에서 접수된 서류는 필리핀의 마닐라에 있는 캐나다 대사에서 일괄 접수하기 때문에 조금 오래 걸리는 편입니다. 수속 기간은 평균 1 년 6 개월


정도로 보면 됩니다. 물론 독립 이민의 경우에는 인터뷰가 면제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일년 이내, 대략 8 개월에서 1 년 사이에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Q)캐나다 독립 이민을 신청할 때 첨부하는 자산 증명서 등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데요. A)물론 독립 이민도 자산 증명을 해야 합니다. 캐나다 대사관에서 신청자 를 선별할 때 최소한 일년에서 6 개월 정도는 먹고 살 돈이 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최소 한화 3 천만 원 이상의 자산에 대한 증명서류가 있어야 합니다. Q)캐나다 이민 수속 중 영사와 인터뷰를 한다고 들었는데, 주로 어떤 질문 을 하는 것인지요? A)독립 이민의 경우, 그 사람의 직업을 보고 대상자를 선별하므로 직업에 대해 중점적으로 묻게 됩니다. 직업에 대해 전문성은 있는지, 같은 직업이 라도 어떤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 일했는지 등을 알아보는 것이지요. 반면 투자 이민은 비즈니스 경험에 대해 주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자신 의 사업 경력이 어떠한지, 앞으로 어떠한 사업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이지 등에 대한 사업 계획을 알아보는 것이지요. Q)이민을 신청한 뒤 캐나다에 입국하는 시기는 어떻게 잡아야 하나요? A)간략하게 절차를 알아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캐나다 대사관에서 접수한 뒤 인터뷰를 갖게 됩니다. 인터뷰를 하고 나면 신체 검사 용지를 교부하 고, 이와 함께 가비자를 발급합니다. 그러면 병원에 가서 신체 검사를 받 게 되지요. 캐나다 입국 시기는 신체 검사를 받은 날로부터 일년 이내로 정해져 있 습니다. 영주권을 받은 날로부터 일년 이내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신 체 검사를 받은 날로부터 일년 이내라는 점을 잘 알아두어야 합니다. Q)캐나다 이민 때 인터뷰를 면제받을 가능성은 어떤지요? A)독립이민에 한하여 인터뷰 면제 사례가 있으며, 퀘벡 주의 경우는 순수 투자 이민에 한해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인터뷰 면제 혜택을 주고 있습니 다. 인터뷰가 면제되려면 제출된 서류의 근거가 확실하고, 아울러 완벽해야 할 것입니다. 거기다가 영어도 잘 하고, 자산이 많을수록 유리한 것이 사 실입니다. 투자이민의 경우는 비즈니스 경력이 확실하고 재산이 많아 완벽하다고 인정될 경우 인터뷰가 면제될 수 있습니다. Q)캐나다 영주권 취득할 경우, 학비 감면 혜택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아 울러 학비를 장기융자를 해주기도 한다는데? A)고등학교 이상이니 대학생의 경우 학비감면 대상자에 해당됩니다. 이럴 경우 대학생은 8 천 달러에서 1 만 달러 정도의 연 등록금이 보통 드는데 영 주권자는 2,3 천 달러만 부담하면 됩니다. 물론 영주권이 없는 유학생들의 경우는 8 천에서 1 만 달러 정도를 다 부담해야 하는 것이지요. 또 학비 융 자(Student Loan)라는 것이 있는데, 학교를 통해 학비 융자를 정부에 신청 하면, 정부에서 학비를 대출해주게 됩니다. 졸업을 한 뒤 직장을 얻어 임 금을 받으면 상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학업 성적이 우수하면 융 자받는 금액에서 장학금 받은 금액 만큼 감면해 주기도 하니 여간 유리한


것이 아닙니다. 방학 기간에 학생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한 취업도 매우 쉬운 편이어서 영주권을 받으면 돈이 없어 학교를 못 다니는 일은 거의 없 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Q)캐나다에서 하고자 하는 직업이 과거의 직업과 다른 경우는 어떻게 되는 지요? A)예외는 있지만 경험이 없는 사람의 신청에 대해서는 서류 심사가 중단됩 니다. 그러나 꼭 같은 직업은 아닐지라도 신청자의 과거 직업 가운데 포함 되어 있는 다양한 요소가 앞으로 캐나다에서 할 일과 어떤 형태로든 관련 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지난 경력의 관련성을 인정받을 수도 있습니다. 경험을 평가하는 항목에서는 신청자가 제출하는 설명에 따라 점수가 주 어지며, 결국 최종적으로는 비자 인터뷰 담당자의 재량에 맡겨지게 됩니 다. 떠나기와 정착하기 Q)캐나다에서 한의원을 하고 싶은데 여건은 어떻습니까? A)아직까지 한의원을 개업하기 위해 현지에서 캐나다 면허(라이센스)를 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한의원 개업 사례가 많아지면서 몬트리올 같은 데 서는 4,5 년 전부터 면허(라이센스)를 딴 사람만이 개업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한의학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외국인들도 이 분야에 흥미를 갖기 시 작하면서 규정이 만들어지는 추세라고 할 수 있지요. 몬트리올이 아닌 다 른 지역에서는 아직 면허제도를 채택하지 않고 있습니다. Q)캐나다에 8 학군이 있다는데 사실 인지요? A)이미 본문을 통해 밝혔듯이 캐나다의 교육의 질은 어디든지 다 같습니 다. 어디서든지 아이들은 맘껏 자유를 누리면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 사람들이 많이 이주해 오면서 한국식 개념으로 인위적 으로 이러한 곳을 설정해 놓아 `8 학군`이니 뭐니 하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 다. 부동산 값이 비싼 부촌이면 교육의 질이 더욱 좋을 것이라는 터무니없 는 관념 때문에 생긴 말이지요. 주로 이런 지역은 밴쿠버의 경우 서부 밴 쿠버, 토론토는 노스요크 등인데, 사실상 교육의 질은 다른 곳이나 마찬가 지라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Q)캐나다에서 아내와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데, 아내가 취업을 위해 준비 해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A)단적으로 말해서 미용사, 요리사 자격증 등, 국내에서 취득한 자격증은 캐나다에서 인정이 안 되기 때문에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자격증을 따서 이민을 간다고 해도 당장 차릴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것이지요. 물론 캐 나다 지역마다 캐나다 현지의 자격증 없이 미용실 등을 차려 놓고 임시로 영업하는 곳이 있기는 합니다. 단순히 생계를 위해 취업을 할 경우, 몸은 조금 힘들어도 식당이나 식료 품점 등에서 헬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라도 일한다면 가족 을 위한 살림살이에 도움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참고로 남자들의 경우, 자동차 수리 기술을 익혀서 간다면 매우 좋습니 다. 수리비가 비싸기 때문에 간단한 고장이나 부속품을 바꿔 끼우는 일은


본인이 직접하므로 그 만큼 경비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밖에 사진 속성, 현상인화 등의 기술이 매우 전망이 좋고, 창업하기에 도 유리한 분야일 것입니다. Q)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캐나다 독립 이민을 가고 싶은데요? A)컴퓨터 프로그래머는 캐나다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직종입니다. 사실 캐 나다는 컴퓨터 관련 산업 분야에서 미국보다 오히려 앞서 있으며, 이 분야 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매우 활발한 편입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도 캐나 다의 컴퓨터 관련 고급 인력에 대한 스카우트를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이민 신청을 할 경우, 직업 관련 점수는 10 점 만점 에 10 점을 줄 정도로 유리합니다. 캐나다 현지에 도착해서도 유능한 컴퓨 터 프로그래머는 거의 모두 쉽게 직업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영어를 못 해도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을 정도로 우대받고 있는 것이지요. Q)저는 현재 보험 회사 지점장 일을 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이민을 가고 싶은 데 가능한지요? A)순수 투자 이민의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보험 대리점업의 경우 독립 이 민의 조건은 매우 까다로운 편이어서 거의 불가능 합니다. Q)특별한 직장에 속해있지 않은 프리랜서입니다. 캐나다로 독립이민을 가 고 싶은데 가능한지요? A)전문적인 편집인(editer), 아트디렉터(art-directer) 등은 캐나다에서 매우 우대받을 수 있는 직종입니다. 자신의 경력을 증명해 보일 조건을 완 벽하게 갖춘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Q)아이들을 캐나다로 조기 유학 보내고 싶은데 비용은 얼마나 들까요? A)영주권을 획득하지 않고 단순히 유학을 보낸다면 비용이 꽤 많이 들어가 는 편입니다. 대략 1 년에 2 만 달러 정도 든다고 보면 되는데, 일부 비싼 학교의 경우 3 만 5 천 달러 정도 드는 곳도 있습니다. Q)이민 갈 때 이삿짐은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요? 한국에서 쓰던 물건들은 어떻게 할까요? A)가능하다면 한국에서 쓰던 물건 모두를 가지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한 국 사람으로서 세상 어디에 가서 살든지 생활 스타일과 패턴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필요한 물건은 캐나다에 가서도 필요할 것입니 다. 다만, 캐나다의 전자 제품 값이 한국에서 보다 싸기 때문에 안 가지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무리 그래도 한국에서 쓰던 물건 쓰는 것이 그곳 에서 새로 사서 쓰는 것보다는 쌉니다. 만일 가지고 있는 것이 새 것과 다 를 바 없다면 가지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캐나다의 가정용 전기는 110V 이기 때문에 220V 전용 전자 제품을 쓰기 위해서는 가정용 변압기가 필요합니다. 될 수 있으면 모 두 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지만 장롱 만큼은 안 가지고 가는 것이 좋습니 다. 임대 주택이나 다른 주택들 모두 붙박이 장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 다. 이처럼 거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간다 하더라도 캐나다에 도착해 이삿 짐을 푸는 순간, 필요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 다. 그래서 도착 후 대략 6 개월 정도는 일반적인 생활비 이상의 지출이 생 깁니다. 지출 규모를 줄이기 위한 준비를 한국에서 짐을 꾸리는 동안에 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Q)캐나다 이민 갈 때 쓰던 차량도 가져갈 수 있는지요? A)뭐든지 다 갖고 가면 슬 곳이 있다고 해서 승용차까지 가지고 가라는 말 은 아닙니다. 차량에 대한 캐나다 정부의 기술 규정은 매우 까다롭습니다. 그렇게 까다로운 기술 규정을 통과한다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운송비용 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쓰던 차량은 두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Q)캐나다 이주가 결정되었습니다. 이삿짐은 언제쯤 보내는 것이 좋을지요? A)영주권을 받았다면 본인과 가족들이 캐나다에 도착하는 날로부터 한 달 전쯤 부치는 것이 좋습니다. 화물들이 배편으로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 을 감안한 것이지요. 이주자들의 이삿짐은 캐나다 세관창고에서 7 일까지 무료로 보관해 주는 데, 7 일이 지난 다음에도 찾아가지 않으면 그 다음 부터는 매일 보관 요금 이 추가됩니다. 참고로 이삿짐은 한국에서 밴쿠버까지 35 일 정도, 토론토까지는 45 일 정 도 걸린다고 보면 됩니다. 캐나다의 한인 사회 Q)캐나다에서 한인들은 주로 어떤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지요? A)한국 교민들이 주로 경영하고 있는 업체들은 모텔과 호텔 등의 숙박업소 와 주유소, 무역업, 세탁소, 식품점, 편의점, 의류점, 음식점, 여행사, 꽃 가게, 제과점, 미용실, 한양방, 커피 전문점, 스넥 코너, 건강 식품점, 선 물의 집 등으로 매우 다양합니다. 물론 남들이 이런 일을 한다고 해서 자신도 이러한 업종을 선택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캐나다 현지 한인들이 무슨 일에 종사하는 지가 아니라, 본인에게 알맞는 업종이 무엇인지 세밀하게 따져보는 것입니 다. Q)그렇다면 한인 2 세 들은 어떤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까? A)한인 2 세들의 활동 영역은 1 세들에 비해 폭넓고 다양한 편입니다. 이들 은 당당하게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는데, 이는 주로 동양인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일도 없고, 철저하게 본인의 능력에 따라 정당한 대우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현재 2 세들은 의사, 변호사, 회계사, 엔지니어 등 전문직종에서부터 정 치인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진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Q)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이민 가면 아이들은 어떻게 영어를 배우고 적응하 게 되는지요? A)초등학교에 따로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학급이 있지 않기 때문에 곧바로 초등 학교 정규 과정에 들어가 영어를 익히게 됩니다. 친구 들과 선생님들의 특별한 지도와 배려를 받으면서 영어를 익히게 되는데, 초등 학생처럼 어린 아이들은 언어 습득 능력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짧 은 시간 안에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 고등학생들은 학교 안에 있는 ESL 학급에 들어가 영어를 익히게 됩니 다. ESL 학급에는 이민자들이 모여 집중적으로 영어를 익히게 되는데 학생 들의 능력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1 년 정도 지나면 정식 학급으로


옮겨져 보통 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하게 됩니다. ESL 학급이 없는 학교도 있는데, 이럴 경우에는 담당 교육청에서 직접 ESL 학급을 운영하며, 어느 정도 영어 실력이 향상되면 등록된 학교로 옮 겨지고, 새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과 다름없이 공부하게 됩니다. Q)생활 스타일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평균적인 생활비는 어느 정도나 들까요? A)물론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생활비는 천차만별입니다. 지역에 따라 서도 생활비는 약간 차이가 나는데, 주택임대료나 물가가 다소 차이가 있 기 때문입니다. 대략적으로 추정해 볼 때 밴쿠버에서 4 인 가족이 생활하는 데 드는 한 달 평균 생활비는 캐나다 달러로 약 3 천~ 3 천 5 백 달러 정도 드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토론토의 경우는 약 3 천 달러 정도. 몬트리올은 이보다 약간 덜 드는 2 천 5 백 달러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생활비에는 대부분이 주택이 임대 주택이라는 점을 고려해 주택 임대비가 포함된 것이기 때문에, 주택을 임대하지 않고 샀을 경우에는 이 보다는 훨씬 덜 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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