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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교수 김성태 수필집 생활 속의 심리 지은이:김성태 출판사:도서출판 천지 차례 시간은 흐르고 또 흐른다. 첫째 묶음:생활 속의 심리 불안이란 무엇인가 루머의 정체 열등감의 효능 여성의 수줍음 점과 여성 여성의 우수성 좋은 버릇 나쁜 버릇 낙서 도벽의 요인 도박 이야기 능률적 기억법 자살 아내를 잃은 한 강사의 죽음 사랑의 메카니즘 고독 질투 웃음의 본색 유머의 의미 복종과 반항 둘째 묶음:자학과 사회 도피 4.19 의거에 관한 심리적 고찰 학생들의 보수성 5.16 이후의 학생들 새 돈의 무게 위선과 사기 자학과 사회 도피 매기와 지그스의 가정 학생 없는 교정 서비스 정신 산림 전쟁 현대화와 청소년 문제 패러다임 유감


탓, 통제 소재, 연기관 부모의 자녀 지도와 이해 셋째 묶음:대학생의 소외감 학생들의 연애관 전과문제의 고민 독서의 지도 스튜던트 파워의 요인들 교수와 학생의 길 대학생의 소외감 대학의 자유 학생들의 부적응 문제 넷째 묶음:성숙 인격 성숙인격의 모습 지도자의 인격 이 충무공의 인격 월남 이상재와 해학 김교신 선생의 인격 인문주의 심리학 시간은 흐르고 또 흐른다 객관적인 물리적 의미로든 주관적인 심적 의미로든 시간은 끊임없이 흐른다. 대학 강단에 선 지 35 년이 지난 지금, 옛을 회고한들 특별히 남길 만한 것도 없다. 반평생 넘게 대학생들을 상대로 가르쳐 온 것과 거의 한평생 뜻을 세워 학문에 전념한 것이 전부다. 오직 나 자신에게 충실하고, 그 충실로써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만이 나의 소임이라 생각해 왔다. 그러면서 35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는 시간이다. 또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는 큰 일을 이루게도, 혹은 아무런 시도조차 할 수 없게도 하는 시간이다. 정년으로 교단의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희한과 미련의 감정만이 더 크게 자리하는 스스로를 대하며 이 시간의 역사성을 되새겨 본다. 배우는 사람들,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들. 딱히 사람으로 구별할 바는 아니지만, 또 배움과 가르침은 사람이 존재하는 한 언제 어디서든 계속 될 일이지만,'정년'이라는 구분이 새삼 시간의 단절감마저 맛보게 한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또 흐른다. 하나의 '마감'은 또 다른 '시작'을 예견하므로, 이제 시간을 준비하며 마감을 정리해 본다. 여기에 모은 글들은 그간 35 년 동안 여기 저기에서 청탁을 받아 기고한 것들이다. 그 당시 나름대로 쓰고 싶었던 것, 또는 써야만 한다고 생각되던 것들이기에 그리 볼품은 없으나 이렇게 책으로 엮어 본다. 이것을 준비하다 보니 문득 대학 도서관장을 지냈던 한 교수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퍽 난처한 일 중 하나가 도서관에 쌓이는 중복되는 책이나 그리 중시되지 않는 책을 버리는 일이라 한다. 이런 책들을


아깝다는 생각만으로 구석구석 쌓아 두다 보면 나중에는 어마어마한 양으로 늘어나 공간 이용을 위해서도 처리해 버릴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서관장을 임명하는 데 이 작업 때문에라도 가끔은 영단성이 강한 인사를 찾는다고 한다. 어찌 생각하면 이 책도 결국 도서관에 넣으면 얼마 가지 않아 휴지 처리될 것이 뻔한 책이다. 따지고 보면 주변의 요청으로 그때그때 적어 본 글들이라 이것들을 책으로 묶는다는 일 자체가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초고속화 시대에 달구지 지나가는 소리쯤으로 들릴 나의 말들이 그저 상식과 맹신의 틀을 넘어서지 못하는 잔소리로 여겨지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 그러나 소위 학문을 하는, 그것도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사람으로서 자신의 학문이 그저 위안과 자족의 찬거리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의도에서 묶여졌다. "생활 속의 심리"라는 제목이 보여주듯, 심리학은 단지 연구실과 실험실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행동들 안에, 흔히 들어 넘기는 말들 속에도 심리적 기제는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구태여 이것을 살피고자 하는 이유가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길 바란다. 생활 속의 심리적 기제를 살피는 일은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그래서 우리가 서로에게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수단으로 적용될 수 있을 때 보람을 갖게 한다. 글의 마지막 장에 첨가한 "성숙 인격"은 본인의 주된 관심 영역이다. 숱한 사회적 불합리와 복잡한 모순들이 개별적인 개인의 자성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이러한 문제를 풀어 나가는 작업들은 결국 서로에 대한 애정과 노력을 바탕으로 할 때 더욱 확고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덧붙여, 이 글들 중에는 말 그대로 소시적 이야기도 있다. 어느 때는 안 그럴까마는 4.19 와 5.16 으로 이어지던 불안한 정국 속에서 초조히 지내던 심경을 있는 그대로 적어 본 것이기에 이를 참고로 읽어 주었으면 한다. 타고나기를 섬약하고 재주도 변변치 않은 데다가 세대감마저 소원한지라 명쾌하고 생동적인 젊은 글들에 비할 바 못되나, 오직 심리학적인 탐구에 대중적인 관심을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으로 보아주면 고맙겠다. 끝으로, 보잘것 없는 이런 글들을 세상에 내놓는 데 조력해 준 도서 출판 천지 가족들에게 감사드리며, 교정을 보아준 전양숙 양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1990 년 8 월 김성태 첫째 묶음 생활 속의 심리 불안이란 무엇인가 불안이란 대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가. 이같은 불안이 인간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청소년들의 불안의 요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불안이란 공포와 아주 비슷한 감정 상태인데, 다만 무서워하는 대상이


분명하지 않고 막연하며, 대상을 두려워하는 정도가 미약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스필버거(미국의 심리학자)는 불안을 "긴장과 두려움이 불쾌하게 의식 속에서 지각되는 감정 상태인데, 이때 자율신경 계통의 흥분이나 이와 연합된 활동이 결부되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정의 하였다. 이렇듯 그는 불안의 주된 요인을 두려움이나 근심이라는 의식 요인과 이에 수반되는 만성적인 정서 상태로 본다. 또한 근심이 일에 실패할 때 나타나는 결과를 인지적으로 문제삼는다면, 정서는 생리적 기능 특히 자율신경 계통의 기능 변화에 관련된다고 본다. 이렇듯 불안은 불쾌한 긴장 상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게 될 때면 이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갖은 애를 다 쓰면서 이를 위해 여러 가지 반응을 나타낸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대상이 뚜렷하지 않다. 그래서 이 불안을 면하는 방법도 알 수 없으므로 이 불안에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불안은 외부로부터 상당한 위협을 받거나 사회적 접촉에서 적절한 기교를 행사하지 못할 때, 또는 마음속에 어떤 갈등 상태가 지속될 때 나타난다. 그러나 불안의 해소는 쉽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불안 상태가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불안이 만성화되면 병적 행동으로 굳어지거나 성격 자체가 일그러지기도 한다. 쉽게 해결하기 어렵고 깨뜨리기 힘든 이같은 불쾌감의 상태를 프로이트는 "자아가 위험을 느끼면서 자기 힘으로 감당해 낼 수 있느냐의 여부를 저울질해 자신의 무력을 자인할 때 나타나는 상태"라고 본다. 그는 직면하고 있는 위험 상황이 외적 세계에서 유래되었음이 분명할 때 이를 "현실 불안"이라고 이름하고, 그 위험 사태의 기원이 초자아에 있다고 보일 때 이를 "도덕적 불안"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위험 사태의 기원이 이드(본능)에서 연유한다고 할 때 이를 "신경증적 불안"이라고 한다. 그는 바로 이 신경증적 불안이 신경증의 병인으로 작용한다고 보고, 이런 불안이란 정체 모를 위험에 대한 두려움의 정서 상태라고 한다. 호나이(1885-1952, 미국의 정신 분석학자)는 불안을 인간 활동의 원동력이라고 본다. 그는 자기 주변에 잠재적으로 깔려 있는 위험에 대응하면서 기본적으로 지니는 주관적 위험에 대한 반응을 "기본 불안"이라고 하고, 이 기본 불안의 여러 가지 변형에 의해 여러 병적 상태가 유발된다고 본다. 이처럼 설명 개념 내지 지속적 정서 상태로서의 불안을 생각하는 대신,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정서 상태 또는 긴장 상태가 발산된 후 약간 잔류된 긴장이 누적되어 불안 상태가 나타난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불안 반응이라는 반응들의 정도를 수량적으로 측정해서 불안의 강약을 규정짓는 이른바 조작적 정의로 불안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1950 년대부터였다. 임상 심리학적으로는 현재 심한 불안이 지속되거나 때때로 심한 불안 발작이 나오는 경우 이를 병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때 전문가의 처치가 요구된다. 그러나 약간 심한 불안 상태는 일시적이면서 지속적으로 흔히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태는 생활에 지장은 주지만 이를 쉽게 극복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후 이 불안 반응 내지 불안 상태를 요인 분석해 본 결과 이들은 만성적 불안과 급성적 불안으로 나뉜다. 전자는 비교적 영속적인 성격을 띠며, 후자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일시적 정서 상태를 띤다. 스필버거는 이 두 불안을 "특성


불안"과 "상황 불안"이라고 한다. 상황 불안은 일시적 정서 상태로서 객관적 위협과는 상관없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에 따라 그 강도가 불규칙하게 변한다. 특성 불안은 안정성이 있으며 개인의 차가 많고 상황 불안의 밑받침이 된다. 특성 불안의 세기가 강해지면 상황 불안도 더 자주 나타나며 더 세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비교적 안정된 특성 불안을 기초로 하여 주변에서 작용하는 스트레스에 의해 그때그때 강도가 다른 상황 불안이 나타나게 마련인데, 이때의 스트레스는 심리적 스트레스와 물리적 스트레스로 나뉜다. 자존심의 손상이나 자아의 위협이 되는 것을 전자로 본다면, 신체적 손상이나 심한 통각이 위협받고 있는 것은 후자라고 하겠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근심이 있을 때는 특성 불안의 측정치에 일시적으로 다소의 변동이 있을 수 있겠지만, 높은 특성 불안을 지니게 되면 자기 비하를 유발하는 상황에서 높은 상황 불안이 나타난다. 물리적 스트레스는 상황불안을 높이지만 특성 불안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 요컨대 특성 불안이 높은 사람은 심리적 스트레스에 의해 어떤 상황을 더욱 위협적으로 보게 되지만, 물리적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특성 불안이 높은 사람이건 낮은 사람이건 간에 상황 불안에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불안이 일의 수행에 주는 영향이 어떠한가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에 의해 많이 연구되었는데, 대체로 일 수행에 미치는 불안의 효과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물론 불안이 모든 일의 수행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의 곤란도와 상호작용을 일으켜 어려운 일이나 복잡한 일의 수행에서는 특히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렇게 곤란한 일이나 복잡한 일에 불안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일의 종류와 관계된다. 즉 어렵고 복잡한 일을 수행할 때는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실수도 많겠고, 또 실패 경험이 많으면 근심이 습성화되어 불안을 더욱 세게 조장시킨다. 사실 상황 불안은 쉬운 일을 할 때보다 어려운 일을 할 때(또는 한 후)가 더 높다고 한다. 그러므로 특성 불안이 높은 사람은 실패를 많이 할수록 학습이 부실해지고, 성공을 많이 할수록 학습이 더욱 효과적으로 진행된다. 곤란한 일에 불안이 더욱 부정적인 작용을 하는 이유를 불안이 단기 기억 작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사실 불안은 단기 기억의 효율성을 감소시킨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불안에 단기 기억 체계의 기능을 좌우하는 요인이 있지 않나 하고 1960 년 이후 이 방면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한편 불안은 주의 과정(그 중 특히 선택 작용)에도 영향을 끼친다. 의도적 학습과 우연적 학습이 합쳐 있을 때, 의도적 학습에는 불안이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지만 우연적 학습에는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이는 불안이 높으면 높은 우선권을 지닌 자극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안이 주의의 통제력에 영향을 끼치는 기제에 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다. 불안이 자극에 주의를 집중시켜서 산일(흩어져 일부가 없어짐)을 막는 힘이 있다고 보기도 하고, 반대로 불안이 주의의 산일을 조장한다고 보기도 한다. 결국 불안은 산일을 조장하기도 하고 감소시키기도 하는데, 특히 높은 불안은 복잡한 일을 할 때 산일이 증진된다. 불안한 사람은 자신에 관해 많은 댓가를 치르면서 복잡한 일을 수행하므로 부가적인 산일 자극에 아주 약한 편이라 하겠다.


산일은 외적 자극에 의해 나타나는 것만은 아니고 내적 자극에 의해서도 나타난다. 내적 사고나 상념에 의해 진행 중인 주의가 산일 되기도 한다. 내적 자극에 의한 이러한 산일은 불안이 심해지면 근심이 생기고 편견에 빠지기도 하여 하던 일에서 주의가 벗어나고 만다. 검사에 심한 불안을 보이는 사람은 검사할 상황에서 명상적 생각이 주가 되는 근심에 사로잡혀 해야 할 일 그 자체에는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불안이 기억 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불안이 정보처리 과정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안은 정보처리 과정 중에서도 특히 정교화의 억제나 처리의 범위를 좁히는 기능을 한다. 불안이 높으면 강한 단서의 재생은 영향받지 않으나, 약한 단서의 재생은 이것의 영향으로 광범위한 처리 과정이 요구된다. 이에 따라 처리 과정의 정교화가 억제된다. 결국 불안이 일을 수행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하는 것은 단기 기억 작용을 억제하고 주의의 선택력을 증진시키며 주의의 통제력을 억압하는 작용 때문이라 하겠다. 이렇게 고찰해 볼 때 일을 수행하는 데 끼치는 불안은 아주 적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같은 불안의 영향을 극복하려면 불안 중에서도 특히 근심 요인의 재검토가 시급하다. 근심은 일을 수행하는데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이 근심은 일을 수행하는데 적합하지 않은 정보처리 과정이기 때문이라 하겠다. 따라서 만일 이 근심이 일을 수행하는데 적극적인 조장적 처리 과정��� 되게 끔만 한다면, 이 근심은 일을 수행하는 데 촉진적 효과를 지니게 될 것이다. 요컨대 불안은 주의 과정의 선택 작용을 증진시키며 단기 기억 능력과 그 정확성을 감속시킨다. 또한 불안은 장기 기억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하며 주의의 통제력을 감소시켜 수행하는 일 혹은 그 일에 관계없는 근심까지 하게 한다. 이것은 불안이 자기 관여 활동에도 주의를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서구의 문학자들은 청소년 시절을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해서 낭만적으로 이 시절을 미화시키고 있으나, 정신 분석학자들은 청소년 시절을 심리적으로 교란이 심한 때로 파악한다. 그러나 정상적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연구해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고 한다. 어쨌든 청소년기는 인간의 일생 중에서 가장 의욕적이고 어려움이 많다고 느껴지는 시기임에 틀림없다. 청소년 시절에는 변동이 많다. 신체적인 급성장과 성적인 성숙 등 여러 변화가 연속되고 인지 작용도 발달한다. 이와 아울러 사회적 욕구가 분명해지면, 독립 요구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친구와 어른들에 대한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또한 장래의 직업을 준비하기 위해 학업을 이수하며 교양을 넓히고 나름대로의 인생관을 굳혀 주체성을 확립시켜 나간다. 이런 변화는 의식적이기도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수가 많다. 이러한 변화 과정이 스트레스를 수반하기도 하는데, 변화 후에 전개되는 새로운 역할 수행이 큰 스트레스를 가져다 주어 이와 관련해 불안이 나타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면 청소년들이 불안해 하는 일반적인 요인들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현대 사회에는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규범이 있을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는 가치관도 다양해 세대간 개인에 따라, 혹은 같은 개인에게서도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적절한 가치 기준을 찾아야 하므로 가자는 가치 기준


적용에 신중을 기하고 머리를 많이 쓰게 된다. 이러한 생활 조건에서는 불안이 불가피하게 나타난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과보호로 다룬다. 이들이 청소년기에 이르면 갑자기 높은 수준의 독립성과 역할 수행을 요구받게 된다. 이러한 강요에 떠밀리는 청소년들은 심한 부담감을 지니며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이에 관련시켜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소임의 인지와 실천 사이에서의 괴리감이다. 즉 청소년 부모나 사회가 기대하는 것과, 자기가 해낼 수 있는 것 사이의 격차가 심해 불안을 느끼게 된다. 사회가 점차 핵가족화 되면서 가정 내에서의 아버지의 역할이 약화되는 것도 불안의 한 요인이 된다. 특히 아버지를 접할 기회가 적어지면서 남자 아이의 경우 아버지를 자신과 동일시할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 이에 따라 남자 아이는 성장한 후 남자로서의 소임을 수행해 볼 기회가 적어진다. 이 때문에 그 아이는 자아상이 뚜렷하게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떠한 일에든 자신 있게 대응해 나가지 못하고 공연히 불안스러워 하는 경향을 지니게 된다. 또 하나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을 지나치게 불안하게 하는 요인은 입시 준비에 치중된 교육 분위기에도 있다. 독립심을 기르고 인생관을 확립시키며 직업 준비에 열중할 시기에 입시 경쟁에 몰두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확고한 인생관이 없는 무정견한 사람이 되기 일쑤다. 이러한 무정견의 상태에서는 불안이 그의 생활 저변에 자리잡고 괴로움을 주게 마련이다. 실로 청소년들의 이러한 불안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해 나가야 하는 과제는 오늘날의 청소년 문제와 사회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관건이 아닌지. 아니 더 나아가 이것은 현대 사회의 운명을 좌우하는 과제가 아닐는지. "1987 년 1 월" 루머의 정체 이것은 루머이겠지 생각하면서도 우리는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퍼뜨린다. 루머가 어떤 환상을 지닌다든가 교묘하게 꾸며져 듣는 이의 마음 속에 있는 공포나 의혹을 풀어 줄 때, 그 루머는 특히 잘 퍼진다. 이를테면 상관을 은근히 미워하는 사병이 불평, 불만을 직접 나타내지 못하다가 마침 그 상관이 징계 처분 받았다는 루머를 들었다면, 그는 이를 동료에게 그대로 퍼뜨리고 만족해 할 것이다. 이렇게 루머는 그것을 듣고 퍼뜨리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퍼진다. 노동자가 점심 시간에 하게 되는 루머는 임금 이야기가 많고, 식당에서 은행원이 하는 루머는 전시 수당에 관한 것이 많다. 아군이 후퇴하였느니 전멸되었느니 하는 루머는 말하는 사람이 근심하고 불안해 하는 바의 표현이며, 적이 전면 후퇴하였으니 곧 평화가 올 것이라는 등의 낙관적인 루머는 안정과 평화를 희구하는 징조다. 상관이 부하들 사이에서 떠도는 루머를 통제하려면, 먼저 부하들이 지니는 공포감과 희망이 무엇인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것을 알아보면서 문제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 첫째, 루머를 유포시키는 자가 누구인가 둘째, 어떤 것에 관한 루머인가


셋째, 이런 루머가 어떤 감정의 표현인가 사람들은 루머를 사실인 듯 믿고 퍼뜨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반신반의로 듣고 사실 여부는 확인도 하지 않은 채 퍼뜨리면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루머는 더욱 그럴 듯하게 부연되고 세련되어 말쑥한 몸매로 청중을 사로잡아 간다. 대개 루머는 여론이 모체가 되어 나타나며 일반 대중의 의심이나 근심의 반영이라고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꾸며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루머라고 반드시 헛소문도 아니요 전적으로 조작된 것도 아니다. 사회, 정치에 관한 목격담은 군의 검열로 공식적으로 보도되기 어렵다. 그리하여 그 목격담은 루머 형식으로 변형되어 일반에게 퍼진다. 이를테면 해변에서 침몰된 선박의 승무원들이 구조된 것을 목격하고 이것을 전할 때, 사실은 많이 왜곡되어 퍼지기도 한다. 군 관계에 관한 기밀에 속하는 것은 정식으로 보도되지 않으므로 개인적으로 누설되어 루머로만 퍼질 수밖에 없다. 군함이 대파되었다면, 후송된 사상병 가족이 들은 이야기나 부상병의 목격담을 중심으로 한 확실하지 않은 자료가 예민한 추리를 거쳐 전후 관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퍼진다. 또한 야영장에 대기 중인 군인들이나 항구에 상륙한 부대가 자기들의 목적지나 감행할 군사 작전에 필요한 장비 등을 추측해서 사실화하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 루머가 될 수밖에 없다. 어떤 루머에 호의를 표시하는 사람은 이 루머를 의심하는 사람을 책망한다. 더욱이 그는 적극적으로 그것을 부언하여 그것의 타당성을 강조하고 권위 있는 근거까지도 제시한다. 루머가 사실 그대로라 할지라도 이 루머 자체를 믿기는 어렵다. 이차대전 중에 독일은 심리 작전으로 루머를 많이 이용했다. 루머 작전에서는 선전의 기색을 절대로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이 단파 방송이나 중립국의 신문을 통해 미국에 전파시킨 루머는 모두 그 근원이 독일이 아닌 것처럼 꾸며졌다고 한다. 이런 루머 작전의 유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유형은 이간책인데, 이 유형에서는 연합국 상호간의 유대를 분열시키고 서로 의심하게 하기 위해 다양한 루머를 유포시킨다. 둘째 유형은 연막 전술인데, 여기에서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서로 상충되는 소문을 전파시켜 어떤 것이 사실인지 모르게 한다. 셋째 유형은 비공식 보도 자료를 루머로 퍼지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차대전시 영국 공군이 베를린 역을 폭파시키는 했으나 별로 피해를 입히지 못했는데, 독일은 큰 파괴를 당했던 것처럼 루머를 퍼지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영국이 이 보도를 근거로 성공적으로 폭파시켰다고 공식 보도를 하자, 독일은 역 건물의 온전함을 사진으로 보도하면서 영국 보도의 허위성을 통박했다고 한다. 넷째 유형은 미끼로써 루머를 이용하는 것이다. 즉 진실을 알기 위해 허위 사실을 소문으로 퍼지게 하면, 상대국에서는 사실을 보도하게 된다. 루머는 욕망, 공포, 증오의 세 감정 요인 중 어느 것이 주요 요인이냐에 따라 세 가지로 유형을 나눌 수 있다. 1) 관견몽적 루머:자기의 희망이 사실이 되었으면 하고 이를 믿으며, 또한 그것이 되풀이 되기를 기대하는 루머다. 이에 관한 예는 1942 년 2 월에 미국에서 퍼졌던 루머다. 이대 일분은 석유를 위시한 전쟁 물자가 부족해 6 개월 이상 전쟁을 지속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이 사실처럼 돌아다녔다. 그리고


6.25 당시 서울이 인민군 점령하에 있을 때, 국군의 서울 탈환을 애타게 기다리던 150 만 서울 시민 사이에 1950 년 8 월 중순경에 김일성이 무조건 항복했다는 소문이 퍼졌던 것도 바로 이 일례가 된다. 2) 무시무시한 공포 루머:이는 공포 감정을 나타내는 루머이다. 1942 년 초 미국에서는 독일이 방위 불능의 신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루머가 퍼졌으며, 6.25 초기에는 소련군의 탱크는 여하한 폭격으로도 격파할 수 없다는 식의 루머가 퍼졌다. 바로 이 예들은 '무시무시한 루머'에 해당하는 좋은 예들이다. 또한 6.25 중 겨울 후퇴 당시 강원도, 충청북도에 철거령이 내려졌을 때, 적이 바로 몇십 리 앞까지 왔다느니, 게릴라가 길을 차단했다느니 하는 루머가 있었다. 그 당시 주민들이 당황한 나머지 허둥지둥 가솔을 이끌고 가재 도구만을 대충 꾸려 남하 하는 대혼란을 일으켰던 것도 이에 속한다. 3) 쐐기 역할의 루머:이 루머는 가장 위험한데, 이는 연합군 사이의 불신과 적대감을 조성시킨 루머다. 처칠이 대일전에서 루즈벨트를 매수해 미국을 개입시켰다느니, 영국이 자기 군대는 싸우게 하지 않고 식민지 군대와 연합국 군대만 싸우게 한다는 식의 루머가 바로 그것이다. 루머 역시 비옥한 땅에서 잘 자란다. 여기서 비옥한 땅이란 군중이든 군대든 정서적으로 움직이기 쉬운 집단을 말하며, 전쟁은 이런 땅에 비료를 뿌리는 좋은 조건이다. 승전을 열망하고 후퇴를 두려워하는 심정 내지 적개심이 루머 유발의 동인이 될 수도 있다. 1950 년 12 월 중순경 투르만 대통령의 특별 성명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방송을 통해 이 뉴스를 듣고 루머가 퍼졌다. 말하자면 72 시간 이내에 38 선에 원자탄이 투하되리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 전쟁 속에서 초조한 사람들의 심정과 원자탄이 터지면 서울도 위험할 것이라 해서 큰 소동이 일었던 것은 괴이한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이와 때를 같이해서 미국이 한반도에서 완전 철수한다는 루머도 있었는데, 이는 그 당시에 전쟁력을 거의 미국에 의존해 있던 상황에서 전열을 분열시키려는 상대의 의도가 깔려 있는 루머라고 할 수 있다. 주요 사건에 관한 뉴스의 결핍도 루머의 온상이 된다. 중요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에 대한 자세한 보도가 없으면, 기어코 허무맹랑한 루머가 생기게 된다. 이에 덧붙여 불만, 소요, 권태감 등도 루머의 요인이 된다. 감방, 병원, 병영 등에서 루머가 많이 발생하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 말하자면 일이 없어 심심할 때 쓸데없는 루머로 일종의 긴장과 자극을 얻으려는 것이라 하겠다. 모름지기 상관은 부하들이 일에 바빠 생각할 틈이 없도록 해야 루머와 무료함을 방지할 수 있다. 기대감 역시 루머의 요인이다. 대중은 뉴스를 갈망하며 특히 전쟁시에는 전승의 보도를 기대한다. 뉴스가 없을 때는 기대하는 바를 루머를 꾸미기 일쑤다. 검열은 중대 뉴스를 제한해 보도하게 하므로 루머를 조성시키기에 좋은 조건이 된다. 이차 세계대전 초기에 프랑스에는 검열이 너무 엄중해서 루머가 많았으나, 영국에서는 검열을 적절하게 해 비교적 루머가 적었다고 한다. 검열은 악마(멋대로 놔둠)와 심해(지나친 억압)의 중간에 자리잡게 해야 한다. 너무 검열을 방치하면 오열(적군과 내통하는 자)의 루머가 무성하게 되며, 또 지나치게 검열을 엄격하게 하면 사람들이 루머의 잡음 속에서 갈피잡을 수 없게 된다. 검열의 적절성을 보여주는 한 예가 있다. 미국 정부는 적의 어뢰 공격으로 군함이 격침된 사실을 보도는 했어도 그 격침 지점은 발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그 지점을 발표함으로서 적이 아군 잠수함의


작전 지점을 알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사회 안에 유포되는 루머를 통제하려면 적어도 다음의 법칙들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공식 보도의 신빙성을 유지해 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정보나 당국자의 공식 보도에 신의가 떨어지면, 아마 그후부터는 신문 방송도 믿지 않고 권위 있는 사람들의 발표도 믿지 않게 되어 자연 루머만이 번창하게 될 것이다. 둘째, 지휘관이 신망을 얻어야 한다. 허위 보도의 풍토가 사라지고 검열 기준을 정착을 바탕으로 하여 보도에는 일정 수준의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게 한다면, 보도 결핍의 부작용으로서 나타나는 루머도 사라지리라 본다. 셋째, 가능한 한 많은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사회에 큰 물의를 가져올 내용이 아닌 한, 되도록 많은 것을 자세하게 보도한다면 루머가 솟아날 틈새가 없다. 넷째, 사회적으로 성실한 생활 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빈 시간은 공상의 터이며, 일없이 쉬는 손이 루머의 주책없는 혀로 바뀌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강제 노동으로 들볶는 것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일에 열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라는 말이다. 다섯째, 루머의 유포와 그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사회적 제재가 필요하다. 아울러 사람들이 루머의 진실 되지 못한 면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루머가 사실에 전혀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을 때, 그 루머의 발설자나 전달자에게 '공개적인' 제재를 가해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야 한다. 또한 루머를 화제로 삼는 것도 삼가게 한다. 어느 한 곳에 루머판이나 루머란을 설치해 놓고 그 루머들의 허위성을 조리 있게 제시하여 터무니없음을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것도 좋을 성싶다. "1951 년 3 월" 열등감의 효능 나는 어릴 적부터 말을 더듬었다. 중학교 때 한문 과목이 있었는데, 항상 출석부 순으로 책을 읽혀 내가 읽어야 될 시간이면 늘 결석했다. 다들 교실에서 재미있게 수업 받는 동안 나 혼자 운동장 한구석에서 비관(?)하고 있었던 일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국어, 한문뿐만 아니라 역사, 지리 ���은 수학일지라도 교과서를 읽히고 질문을 받는 것이 무서워 학교에 갈 때면 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나 된 듯 어린 마음에도 기분이 착잡했다. 이것은 말더듬으로 인해 열등감에 싸였던 어느 청년의 술회 중 일절이다. 여러분은 이 청년이 그 후 과연 어찌 되었을까 궁금할 것이다. 이제 이 청년이 취했을 행동의 가능성을 가정해 보자. 첫째, 이 말더듬이는 교정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더욱 분발해서 결국 이 버릇을 고쳤을는지도 모른다. 원래 말을 더듬는 것은 선천적 요인에서 온다고도 하고, 왼손잡이를 무리하게 바른손잡이로 고치려 할 때 생긴다고도 하고, 남이 말더듬는 것을 모방해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된다고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서적 혼란이다. 우리의 걸음걸이는 처음에 고생해서 의식적으로


배우다가 결국 자동적으로 하게 된다. 그러나 평소는 잘 걷다가도 걸음걸이에 신경을 좀 쓸라치면 발걸음이 일일이 의식되어 자연스러운 걸음걸이가 안 된다. 이와 유사하게 자동적으로나 반사적으로 하던 말도 정서적 혼란이 오면 자동성이나 반사성이 깨져 다시금 발달의 초기로 돌아가게 된다. 이것이 말더듬이다. 따라서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되찾는 훈련을 하게 하면 교정될 수도 있다. 희랍의 데모스테네스(기원전 384-322 희랍의 정치가, 웅변가)처럼 열심히 분발 노력하면, 이 청년도 한문의 낭독을 유창하게 함은 물론 대웅변가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이 청년이 말로 하는 것은 잘하지 못해서 남의 멸시를 받을지언정 다른 면에서는 결코 지지 않겠다는 결심을 스스로 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이것저것 해보면서 침식을 잊고 노력한 결과 훌륭한 운동 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르며, 수학을 제일 잘하는 학생이 되거나 일류 화가로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셋째, 학교 가는 것이 점점 더 싫어져서 자주 결석하거나 공부도 안하면서 집에 틀어박혀 소설이나 보고 영화 구경에 재미 붙이며 지내게 되는 일이다. 사람들 앞에서는 입다물고 말하지 않으려 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려고도 안할 것이다. 그의 성격은 우울해지고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몹시 화내며, 심지어는 비관한 나머지 자살을 계획할는지도 모른다. 열등감은 왠지 모르게 불안정스럽고 불유쾌하며 긴장된 느낌을 지니게 한다. 또 자기 자신을 무력하며 하잘것없는 존재로 여겨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 갔으면 하는 심정을 갖게 한다. 이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공연히 불안하기만 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상태를 심리학에서는 욕구 불만이라고 한다. 강한 영구성을 지닌 상태다. 사람은 이러한 욕구 불만을 어떻게든지 극복 또는 모면해 긴장을 해소하고 안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나타나는 반응을 적응 기제라고 부른다면, 위에서 예시한 첫번째 행동 방향은 욕구 불만 상태의 그 장애 요인을 지성으로써 정면 공격해 제거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경우라 하겠다. 즉 이는 객관적 현실의 인식과 분석으로서 이 상황에 가정 적합한 행동 방향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열등감에 의한 말더듬이가 교정될 수 있어 다행이지만, 교정이 불가능한 경우 또는 불가능하다고 본인이 느끼는 경우에는 이 방법이 성립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두번째 행동 방향은 완전한 정면 공격까지 되지는 못할지라도 다소 적극적으로 곤란을 해결해 보려는 것인데, 되도록이면 더 심각한 열등감을 갖지 않게 혹은 자아가 완전히 절망적으로 손상되지 않게 하는 방향이다. 이것을 방어 기제라고 부른다. 세번째 행동 방향은 자신의 열등성이 완전히 절망적이어서 그런 열등성이 노출되는 상황으로는 아예 나가지도 않고 도피해 버리는, 지극히 소극적인 방법이다. 이것을 도피 기제라고 부른다. 이 중에서 특히 열등감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행동 양식 중 방어적 측면과 도피적 측면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이 두 가지 면을 중심으로 열등감의 반응 형식을 좀더 자세히 보기로 하겠다. 먼저 방어 기제부터 생각해 보면, 첫째로 보상 행동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한 측면에서 큰 열등감을 가졌을 때, 다른 측면에서 탁월한 성과를 나타내 열등감을 극복하는 형식이다. 학급에서 성적이 좋지 못해 멸시 당하기 쉬운 아동이 운동에 온 힘을 쏟아 인기 끌고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이 예다. 유명한 위인이나 천재들을 보면, 열등감이 그들의 위업을 성취시킨 예가


얼마든지 있다. 베에토벤, 디즈레일리가 그렇고, 토스카니니의 탁월한 기억력이 또한 그렇다. 이와같이 보상 행동은 자기 일신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아들딸을 훈련시켜 성공하게 하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가난하여 교육받지 못한 장사꾼 노인이 자녀 교육에 온갖 정성을 기울이며 아들딸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모습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렇듯 보상 행동은 좋은 방향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좋지 못한 방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교육을 시킨답시고 어린 아이들을 지나치게 못살게 구는 예라든가, 친구들에게 과자를 사주며 뽐내기 위해 돈을 훔치는 일이라든가, 또 친구들 사이에서의 작은 영웅심에 의해 자극적인 폭행이나 강도질하는 청소년 범죄가 이런 예들이다. 둘째는 남으로부터 관심을 얻기 위한 행동이다. 사람들의 주의를 자기에게 집중시켜 불안정으로부터 자기를 방어하려는 기제이다. 아동들 중에서 불평이 심하고 얼토당토않은 질문을 하며 약한 아이를 못살게 구는 아동이 이의 좋은 예다. 아우를 본 어린이가 손가락을 빨고 침흘리며 공연히 밥을 잘 안 먹는 것이나, 일부 여성이 반나체 복장을 즐기는 것도 이러한 심리적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셋째는 방어적 합리화 기제이다. 이것 역시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자기 변호요 자존심의 옹호이다. 공부가 모자라 성적이 나쁜 것을 몸이 아파 그렇게 되었다고 스스로 믿으려고 하는 것이나, 출제가 공정하지 못한 탓이라고 보는 것이나, 선생님이 자기를 미워하여 그런 까다로운 문제를 냈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또는 원래 자기는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여기려고도 한다. 우리 사회에는 정부나 사회의 문제를 그저 불평만 하거나 자신의 실패를 사주팔자 탓으로 돌리고 마는 사람도 많다. 결국 이것 역시 합리화의 모습이 아닐까. 이 기제와 유사한 것으로서 투사 기제가 있다. 자기의 열등감이나 그러한 생각을 다른 이에게 투사시켜 그도 역시 그러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여인에게 많은 흥미를 느끼고 있을 때 그 여인이 문득 자기를 향해 웃음 지었다고 해서 그 여인 역시 자기에게 흥미를 느낀다고 생각하고 프로포즈하는 것이 이 예다. 또는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이 산천 초목도 다 자기와 더불어 울고 있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것도 투사 기제로 볼 수 있다. 이것이 심하면 관계 망상이 되어 옆방에서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말도 자기를 흉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든지, 열등감이 강한 교사가 교실에서 아동들이 제멋대로 떠드는 것이 자기를 우습게 여겨 수근거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벌컥 화내는 경우도 있다. 이 두 경우도 투사 기제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도피 기제에 관해서 말해 보기로 하자, 이는 우선 사회적 접촉으로부터의 회피가 심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원래 열등감은 앞으로 있게 될 실패와 비난에 대한 정서적 반응인데, 여기에서는 공포가 심한 것이 주된 징후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은 겁이 많고 불안해 하며 부끄러움이 강하다. 이러한 사람은 좀 어려워 보이거나 처음 당하는 일, 낯선 사람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고 겁내는 경향이 심하다. 또한 이러한 사람은 경쟁을 되도록 회피하려 하고, 설사 경쟁이 불가피하다 해도 꼭 이길 자신이 있는 상대하고만 경쟁한다. 말하자면 어떤 형태든 경쟁하거나 또 실패할 상황에는 들어가기를 꺼려한다. 부인들이 초대되어도 입고 나갈 의상이 없다고 거절한다든지, 길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도 일부러 피해 버리는 것도 이러한


경향으로 볼 수 있다. 도피 기제의 또 다른 특징은 자의식이 강하다는 점이다. 처음으로 관중 앞에 서게 되면 다리가 떨리고 얼굴이 붉어지며 잔뜩 긴장되어 모두가 자기만을 주목하고 있는 듯 여긴다. 이런 경우 다른 사람들이 자기 얼굴의 주근깨라도 들여다보는 듯하며, 자기의 덧니만을 보는 듯하며, 화려한 자기 넥타이가 새삼 거북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은 등뒤에서 찬바람이 느껴지고 목소리도 이상하게 들리는가 하면, 자신의 안면 운동까지 의식하게 된다. 그러니 말도 자연 더듬게 되고 기분도 난처해진다. 유명한 위인 중에는 이런 식의 자의식을 가진 사람도 많다. 어떤 사람은 이런 자의식을 정신적 귀족의 표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셸링, 슈베르트, 패러데이, 페스탈로치, 뉴튼 등이 그 좋은 예다. 다음 특징으로는 백일몽 즉 공상이 많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열등감을 느끼면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상으로 도피하게 된다. 우리가 순간순간에 갖는 백일몽은 지배자 아니면 승자가 되는 영웅형과, 비참한 희생자, 수난자가 되어 여러 사람의 동정과 비호를 받는 순교자형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해피-엔드로 끝나는 반면, 후자는 끝내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그런데 열등감이 심한 사람에게는 순교자형의 백일몽이 많다고 한다. 거부 경향이나 거부증도 열등감의 특징이라 하겠다. 이것은 자기가 열등감을 느끼게 될 상태에 놓이지 않기 위해서 경쟁 상태나 평가받을 상황에는 결코 들어가지 않으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도피적이면서도 공격적인 성질을 지닌다. 말하자면 남과 같이 어울리지도 않고 무엇이든 제안 받기를 꺼려하며 간혹 남이 억지로 뭔가 권하기라도 하면 화를 내 싸울 정도로 심한 거부증이 보인다. 묵살, 조소, 무관심도 이것의 일종이다. 끝으로 병으로의 도피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열등감을 해소 또는 방어하기 위해 병을 앓음으로써 인정을 받는다. 이른바 히스테리 증후가 이 한 예다. 이는 자기의 정신적인 열등감을 신체적 징후로 투사시켜 자존심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외아들로 귀엽게 자란 아이가 국민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가 아프다며 학교를 가지 않는 예를 들어보자. 집에서는 기막히게 대접을 받았는데 일단 학교에 가보니 선생님이나 동무들은 집에서처럼 그렇게 대우해 주지 않는다. 자연히 학교 가는 것은 싫어지는데, 그렇다고 이유 없이 빠질 수는 없는지라 이 꾀보는 병이라도 앓았으면 한다. 다행히(?) 이 아이는 병들어 그 난관을 모면하고 자신의 열등감을 보호한다. 물론 꾀병은 아니다. 정말 학교 갈 시간이 되면 머리가 깨질 듯 아픈 것이다. 이런 히스테리 역시 열등감의 한 반응으로 본다. 이상 열등감의 반응을 대략 약술하였으나, 이러한 행동은 대개 누구나 경험하는 바다. 다만 그 열등감의 정도에, 또는 현실에서의 유리 정도에 차이가 있어 정상과 병적 이상이 구별될 뿐이다. "1956 년 3 월" 여성의 수줍음 수줍어 하는 여성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수줍음을 여성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습성이라고 여겨 왔다. 그러나 과연 수줍어 한다는 것이 그렇게 여성에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습성일까.


우리는 남자 아이가 수줍어하면 못난 녀석이라며 혼내지만, 여자 아이에게는 오히려 수줍음을 가르치는 것이 관례다. 여성은 이러한 사회적 환경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이들의 수줍어하는 습성은 천성적인 것이라기보다 조장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여성은 무서워하기를 사회로부터 요구 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이 수줍어하는 경향이 더 많다는 것은 결국 사회 체제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회는 여성이 수줍어하는 역할을 해야 원만히 진행되는 체제이기 때문에 수줍어하는 연출을 여성에게 기대하고, 또 여성들이 이러한 역할의 연출을 준수하도록 사회 분위기가 이를 조장하고 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떤 때 수줍어 하는가. 흔히는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 앞에서나, 자기보다 뭔가 훌륭해서 근접하기 힘든 사람 앞에서 수줍어하게 된다. 이성 교제에 경험이 적은 젊은이라면 이성들과의 모임에 낀다든가, 좋아하기는 하지만 몇 번 만나 본 적이 없는 이성을 대할 때도 수줍어하게 된다. 또는 자기의 약점이 드러나게 될 경우나, 제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때 자신 없어 두려워질 때도 수줍어한다. 이렇게 보면 수줍어한다는 것은 대인 관계, 그 중에서도 특히 대응하기에 자신 없어 두려움이 앞서는 대인 관계에서 나타나는 반응 양식이다. 전혀 예기치 못한 상태에서 자극적인 일이 갑작스레 벌어지면, 또는 익숙치 못한 낯선 사태, 아무리 생각해도 적절히 대응할 길이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 대체로 사람은 위험을 직감하고 당황해 한다. 그 사태에서 벗어나려는 이른바 퇴거 반응이 나타나는데, 우리는 이를 공포 정서라고 한다. 이같은 공포는 현실적 위험이 없는 경우에도 일어난다. 과거에 몹시 무서운 경험을 했던 대상이나 경험이 없어도 타인이나 사회가 위험하다고 일러준 것에 대해서도 무서워한다. 이렇듯 무서워하는 대상은 직접 신체적 위험을 주는 구체적인 사물이나 사건만이 아니다. 이러한 대상은 자기의 사회적 지위를 위태롭게 하는 경우나 자존심이 손상 받게 하는 대인 관계일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여러 사람 앞에서 처음 연설한다든가, 마음이 드는 상대자와 맞선 보는 경우, 자칫 실수라도 하면 수모와 멸시를 당해 자존심이 상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공포감은 생긴다. 이처럼 자기 지위에 위협을 느끼는 경우는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경우보다 긴박감이 적어 예비적 태세를 취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따라서 위험 사태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 자기의 능력, 특성 등을 타인과 비교하여 생각하게 되는 자의식이 생긴다. 이 자의식 때문에 자세는 부자연스럽고 어색해지면 억지로 미소짓고 어울리지 않는 교태도 부려 본다. 이렇듯 대인 관계에서 위험 사태를 예상한 준비 조치가 바로 수줍음이다. 따라서 이 수줍음이라는 것은 무서워한다는 것에 지���지 않는다. 공포 정서의 반응은 그 사태에서 물러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물러나는 행동에는 위험을 미리 피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퇴거시키는 것도 있지만, 사과, 회유, 아첨 따위의 상징적인 퇴거로 위험을 미리 방지하는 수도 있다. 수줍어한다는 것은 이같은 상징적 퇴거의 한 수법이다. 대인 관계에서 정정당당하게 겨루거나 대등하게 어울릴 자신이 없으므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를 공격하지 못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대등하게 겨룰 필요가 없음을 알리기 위해 웃음 띠는 얼굴로 좋은 인상을 갖게 하고, 자기의 열등과 적의가 없음을 보이기 위해 어린 아이 같은 몸짓을 꾸민다고 볼 수 있다.


굴복 또는 아양으로 동정과 선심을 애걸하는 모습이 수줍어하는 것의 본질이라면, 수줍어한다는 것은 약자가 뒤집어쓴 아름다움 조개 껍질에 비유할 수 있다. 적극적으로 자기 능력을 발휘하여 자기를 주장할 자신이 없으므로 미리 후퇴하여 굴복함으로써 치명적인 타격만이라도 피해 보려는 반응 양식이다. 어떤 사람이 대인 관계에서 사사건건 실패를 거듭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대인 관계에 적극 참여하지 않으려 하고 꽁무니 빼는 습성이 생길 것이다. 이같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 자연스럽게 참여하지 못하고 두려움과 망설임으로 후퇴만을 일삼는 태도를 열등감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열등감은 습관적으로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대응 행동에 정서적 혼란을 일으켜 어색한 행동을 취하는 경향이다. 수줍어하는 것도 이같이 어색하고 교란된 정서 반응 중의 하나인데, 이는 열등감이라는 괴물의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즉 수줍어한다는 것은 열등감을 가진 사가 웃음과 아양으로써 자기의 열세를 가장하고 상대방을 회유하여 자기를 방어하는 것이니 이는 약자의 자기 방어 수법에 지나지 않는다. 이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때 수줍어하는 것이 여성다운 습성이라거나, 수줍어하는 여성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입장 등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라 하겠다. 어쨌든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 사회에서는 여성의 수줍음이 그리 바람직한 습성만은 아니라고 본다. "1959 년 11 월" 점과 여성 점장이나 무당을 찾는 손님은 대체로 남자보다 여자가 많고, 또 무슨 답답한 일이 있거나 역경 속에서 헤매는 사람은 물론, 이상하게도 아주 잘사는 층이 많다고 한다. 그저 수수하게 살아가는 중간층 손님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경향이다. 무슨 답답한 일이 있거나 위태로운 상황 또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이것저것 많은 생각으로 결심이 안 서면 혹시나 하고 점도 쳐보겠지만, 별 근심거리가 없어 보이고 잘사는 사람들이 점쟁이를 많이 찾아간다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그들 역시 남모를 근심 걱정이 있는가 보다. 지금 당장 절박한 근심이야 없다지만 무엇인지 모를 불안감에 떨고 있을지 모른다. 현재는 좀 잘산다지만 행복감이라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벼락부자가 되었거나 실속 없이 출세하고 못할 짓을 해서 잘살게 되었을 때 그 불안은 더욱 심할 것이다. 투기적인 실업가, 대중의 인기에 목을 맨 정치가나 배우, 그리고 손님들의 기분에 좌우되는 이른바 물장수들이 점쟁이에게 단골이 되는 수가 많다는 사실이 바로 이를 뒷받침한다. 직업의 불안정성이나 심리적인 불안정 등이 점치는 동기가 된다고 하겠다. 점치지 않고서는 행동을 결심할 수 없고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다고 한다. 자유당 시절 어느 장관은 날마다 점치는 선생님을 문안드렸다고 한다. 사실 여부야 알 바 아니지만 점을 어느 정도 좋아했는지는 짐작이 간다. 얼마나 정치적 식견과 행정적 수완이 없었으면 점으로 정치를 하였을까 생각되니 한심스럽다. 남자보다 여성들이 점치러 더 많이 다닌다면 여성이 그만큼 심리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남자와 결혼할 것인가, 현재는 미관 말직이지만


언제쯤 남편이 출세할 것인가, 아들을 낳을 수 있을 것인가, 사업이 잘 되어 살림이 좀 펴질 것인가...... 이 모든 것을 여성들이 도맡아 근심하는 모양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고 한다. 여성이 자신의 직업 없이 남성에게 의지하며 살아왔으니 어린이가 정서적인 불안정을 갖는 것처럼 그들도 불안하기 짝이 없는 모양이다. 이같은 여자의 불안정성은 선천적 특질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들을 길러 온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조건 탓임에 틀림없다. 여성들이 더 많이 점치러 다닌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는 또 하나의 가설은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기준이 저급한 데 기인한다는 이론이다. 어엿한 신사며 지식인의 신분으로서는 어느 남자든 자기가 언제 어떻게 점쳤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하기 꺼려한다. 대장부(?)로서 점치러 다닌다는 것은 수치스럽다는 뜻이다. 그러나 부인들은 그것을 수치로 느끼는 것 같지 않다. 물론 부인들도 점복술을 꼭 믿어서 치는 것은 아닐 게다. 하도 답답하니까 가고, 장난 삼아 가기도 하고, 또 반신반의한 태도로 가는 경우도 많다. 흔히 말하듯이 "의원과 점쟁이는 인연이 있어야 병을 집어내듯 맞추고 고친다."는 것은 전적으로 점을 믿으려는 것이 아님을 짐작하게 하는 말이다. 그러나 남자는 이를 부끄러워하고 여성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둘 다 똑같이 점을 백 퍼센트 믿지 않으면서 왜 한쪽은 갔다 와서 그것을 비밀로 하고, 왜 한쪽은 그것을 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여성은 미천하니까 그까짓 짓을 해도 좋지만 남자는 그럴 수 없다는, 말하자면 남존여비 사상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못난 짓을 해도 미천한 여성이라 너그럽게 봐주니 이같은 창피한 관용(?)에 재미 붙여 여성이 더 많이 점치러 가는 것은 아닐까. 인생 고해라는 말이 있다. 참으로 우리의 인생 항로는 순탄하지 못하고 불행한 일이 물밀듯이 닥쳐온다. 이러한 불행 중 완전히 우연적인 것도 없지 않지만, 대개는 그런 불행 중 완전히 우연적인 것도 없지 않지만, 대개는 그런 불행을 초래하게 하는 소지를 그 당사자가 가지고 있는 게 보통이다. 자기 불행의 소지와 조건을 극복하지 못하는 데서 불행은 연속적으로 계속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불행의 소지와 조건을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그 불행을 우연적인 것처럼 여긴다. 이런 우연적인 불행이 두세 번 자주 반복되면 자기 힘으로써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여기며 그러한 불행이 연속된다고 단정하게 된다. 이쯤 되면 운명론자가 된다. 인간은 또 자아를 지키거나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자기의 불행을 자기 잘못으로 보려 하지 않고 자신에게 부과된 운명의 탓으로 여기려고 한다. 그리하여 실패를 거듭하고 불행한 상황에 놓인 사람일수록 운수가 나빠 실패했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일쑤다. 이를 따지고 보면 자기 기만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자기 방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운명론자 중에는 인생에 성공해서 행복한 생활을 누리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실패를 거듭하고 불생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본다. 젊은 청년들보다는 고생을 많이 한 노인 층에 운명론자가 많다. 남성들보다는 여성들 중에서 팔자 타령이 더 많이 나오기도 한다. 우리 동양인 중에 운명론자가 많은 것도 동양의 지리, 풍토가 삶을 크게 좌우하고, 또한 이런 거센 자연 조건은 전제 정치를 불가피하게 해서 백성들이 시달릴 대로 시달려 운명론자를 많이 만들었을 것이라고도 여겨진다. 더욱이 이러한 역사 속에서 짓눌려 살던


여성의 지위는 더욱 낮아서 거의 완전히 주체성을 잃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운명이 인도하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사람은 주체성을 완전히 잃지는 않는가 보다. 일정한 과정의 운명이 있어 그대로 살아간다면 완전한 체념 속에서 무한히 살아가겠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운명을 미리 알아보고 싶어해서 -나쁜 운명에 미리 대비하려 하고 그 운명을 전환시키려는 것인지-운명을 점치려고 한다. 근심이나 답답한 일이 있으면 운명이 이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 궁금해 한다. 이 고생이 일시적인 것인지 아주 영구적인지, 또 이 길로 가야 좋을지 저 길로 가야 좋을지 자기의 운명을 보았으면 한다. 점괘에서 잘살고 운수 대통할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에 위안과 희망을 얻어 현재의 고생을 달게 받을 수도 있고 마음이 사뭇 평온해지기도 하겠다. 그렇다고 해서 점괘가 계속 고생할 운명이라 해도 그리 불안해 하지는 않는다. 자기의 고생이 운명 탓이지 자신의 탓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점괘가 좋든 나쁘든 이럭저럭 위안 받는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는 데 인생관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된 생활이나 질서 있는 행동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 형태야 어떻든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의 인생관을 좇아 살아가는데, 다만 그 인생관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에 근거한 보람된 가치를 지향하는 인생관으로써 자기 행동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이를 원숙한 인격이라고 한다. 이렇게 과학적 인생관의 틀을 잡아 살아갈 때, 사소한 실패나 손해, 고민 등은 크게 문제가 안 된다. 쉽게 웃어넘길 수 있다. 오히려 거시적 안목에서 볼 때, 사소한 고민을 하는 그 자체가 우습기 짝이 없다. 훌륭한 인생관을 갖고 있는 사람은 풍부한 유머로써 일상 생활의 번뇌를 웃어 넘기면서 인생의 중심적 목표를 지향하며 살아간다. 따라서 안정되고 착실한 생활을 한다. 이들에게는 운명론도 필요 없고 점쟁이도 쓸데없다. 이렇게 생각할 때 여성이 점을 좋아한다면, 이는 그들이 착실한 인생관을 지니지 못한 탓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근본적인 가치와 뚜렷한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살기 때문에 공연히 불안하고 고통스러워 점쟁이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리라. 사람마다 똑같은 조건의 환경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비길 데 없이 좋은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어떤 사람은 말할 수 없는 고생 속에서 태어난다. 이러한 천부의 조건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기 능력과 자기 역할을 자각하여 새로운 환경을 건설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보람있는 자기 인생을 형성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존경하는 위인이나 성인은 모두 이러한 분이다. 자기를 알고 사회를 일단 받아들여 그 사회의 모순 결함을 고쳐 나감으로써 자기 자신을 향상시킨다는 관점에서 살아갈 때, 쓸데없는 허영이나 사소한 마음의 고통 또는 공연한 불안들은 해소될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성들이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선인들의 가르침에 귀기울여 인생관을 더욱 수준 높게 확립한다면, 그래서 유머와 교양을 풍부하게 지니게 되면 점보려는 유혹은 자연히 사라지리라고 믿는다. "1962 년 10 월" 여성의 우수성


여성의 우수성을 심리학적으로 따질 때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자유당 정권 시절에 사사오입 개헌이 이루어진 직후 어떤 좌석에서 이 사건을 놓고 이야기가 있었다. 나이든 여교수 둘이 합석해 있었는데, 이 사건에 관련지어 한 사람이 말하기를 "남성들이 하는 일이 제대로 되는 것 보았어?" 라고 말하니 또 한 사람이 받아넘기는데 "말해서 무엇해. 남자들이 하는 짓이 다 그 꼴이지."라고 하며 숫제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그 자리에서는 올드 미스들의 거부적 태도 때문이려니 하고 웃고 넘겼지만, 그 후 이 말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고 머리 속에 남아 여러 가지로 되새겨 보는 주제가 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허황된 욕심, 공연한 어거지, 무책임하고 자기 중심적인 방종, 그리고 지나친 공격심 때문에 생기는 충돌과 불안정 같은 것들이 제거될 수 있다면 훨씬 인간적인 사회가 되리라고 본다. 따라서 남성적 요인의 극복이라는 입장에서 여성적 요인의 고찰은 큰 의의를 지닌다고 본다. 우리 주변에는 부인을 잃고 적절한 내조가 없어 몰락해 버린 집이 많은데, 생계의 기둥이던 남편을 잃어 사회에 발벗고 나선 미망인들이 오히려 크게 성공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최근에는 여권이 신장되어 우리 사회에서도 여성들의 직업이 다양화하면서 이제까지 남성들만이 하던 일에도 여성들의 진출이 늘고 있다. 심지어 복덕방 일에서도 젊은 여성들이 친절하고 정직하게 흥정붙여 가며 인기를 높이고 있다. 또 여자는 못하는 것으로 여기던 주택 건축업에도 젊은 가정 부인들이 많이 손대고 있다. 가정 생활에 알맞는 공간 배치, 인간미 있는 노무자 관리, 눈썰미 있는 자재 선정, 그리고 알뜰한 금전 관리 등으로 건축비를 절약하면서도 훨씬 아담하고 실용성 있는 주택을 짓고 있어 새 주택가에서는 이들이 지은 주택들이 인기가 높다고 한다. 여성은 성호르몬의 비율이 다르고 신체의 구조 기능이나 생화학적 바탕도 독특하여 표면상으로는 사뭇 약한 편이지만, 생존 능력은 훨씬 강해 어느 나라에서나 남성보다 평균 수명이 5-6 세 더 긴 편이다. 발달의 속도도 여성 쪽이 빨라 신체적 성숙이나 정신적 성숙이 남자보다 일찍 이루어진다. 여자의 사춘기는 남자의 사춘기보다 10 개월 내지 20 개월 더 빨리 오며, 뼈가 경골화 하는 것이나 영구치가 나오는 것도 여자 쪽이 더 일찍 이루어진다. 심지어는 태내 발달로 더 빨라서 여아의 경우 임신 기간이 짧은 편이라고 한다. 생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어떤 불균형이 생기면 이를 극복하여 균형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을 호메오스태시스라고 한다. 이 호메오스태시스의 입장에서 성의 차를 볼 때, 여성 쪽의 변화 진폭이 큰 편이라고 한다. 여성은 내분비선의 불균형이나 생리적 불안정이 격심하고 심리적으로도 정서 불안과 신경증적 습성 등이 남성보다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를 잘 극복한다. 운동 적성 명에서 근육의 힘 또는 속도, 정확성, 협동성 같은 것에서 남성이 우수하지만, 순발력이나 기술 쪽에서 여성이 우수하다. 지각 과정에서 정밀성, 주의전환, 지각 속도도 여성 쪽이 우수하다. 언어적 적성에서도 단연코 여성 쪽이 우수하다. 어릴 때나 성인이 된 후 또 저���아나 천재의 경우 여성 쪽의 발달이 빠르고 성숙 수준에도 일찍 도달한다. 말더듬이나 말이 막히는 것 등 말이 전달되지 않는 경우는 여성에겐 거의 없다. 어린이의 경우 이 언어 부전의 남녀 비는 10 대 1 이라고 한다. 여자 아이 쪽이 욕구 불만이나 혼미 상태가 적은 것도


어려서 어머니와의 접촉이 많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무튼 이러한 여성의 언어 능력의 우수성은 독서 속도, 유추력, 문장력, 이야기 창작에서도 나타난다. 기억 능력도 여성 쪽이 우수한 편이다. 숫자와 도형의 기억이나 논리적 기억 등에서도 여성이 우수한데, 이것은 그들의 우수한 언어 능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즉 이로 인해 기억의 파지와 재생이 우수해지고 심상도 더 선명하고 강력해지므로 기억이 훨씬 우월해질 수밖에 없다. 관심, 기호, 태도 가치관에 관한 성의 차를 비교해 보면, 여성이 사회 지향성이 강한 편이다. 주된 요인은 역시 여성의 언어 발달의 우수성에서 찾을 수 있다. 어려서부터 말이 빨리 습득되면 자연히 다른 아이나 어른들과 의사 소통이 잘 되고, 이에 따라 사회성도 잘 발달될 것이므로 사회 지향성이 우수하게 나타난다. 다만 성숙한 후 여성에게는 사회적으로 제한이 많아지면서 여성의 우월한 사회성이 계속 유지되지 못하는 것뿐이다. 여성들의 사회성이 우월하다는 점은 여러 가지 면에서 나타난다. 놀이를 보아도 남자 아이는 인위적 놀이를 좋아한다면, 여자 아이는 대인 관계에 관한 놀이가 많다. 책임 있는 일이라든가 어떤 역할에 관한 것 등 사회적 관계를 연출하는 내용이 많다. 그리고 여자 아이들은 자신의 외모나 예절 또는 남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더 머리를 쓰는 것 같다. 어린이들 사이에 붙이는 별명에도 남자 아니는 신체적 특징에 맞추어 붙이는 경우가 많고, 여자 아이는 애정적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다. 여자는 비교적 현실적으로 낮게 요구 수준을 잡기 때문에 목표와의 격차가 적은 편이며 성취 동기도 상황에 맞추어 적당히 바꾸어 나간다. 이 모두가 여성의 사회 지향성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관심 면에서 보더라도 여자 아이의 놀이는 앉아서 하는 것, 보수적이며 제약적인 것이 많다. 남자 아이는 활동적이며 근육을 많이 쓰고 재주부리는 쪽이 많다. 책, 텔레비전, 영화 등을 보는 데도 여자 아이는 애정극, 가족극, 아동극을 좋아하며, 직업 선택에서도 여성은 흥미 위주로 하고 사회에 봉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치관에서도 남성은 경제적인 것, 이론적인 것, 정치적인 것에 더 가치를 둔다면 여성은 심미적인 것, 사회적인 것, 종교적인 것에 더욱 치중한다. 정서적 적응 면에서도 성의 차가 많다. 어린 시절에는 여자 아이가 무서워하는 것이 더 많고 근심, 걱정과 신경증적 습성도 많지만, 문제 행동 면에서 볼 때 여자 아이가 훨씬 덜한 편이다. 또 문제 행동이 나타난다 해도 여자 아이의 경우는 온건하고 비폭력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사회 제약이나 성 역할 의 차이 때문이다. 어린이들의 문제 행동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남자 아이들은 관심을 획득하기 위해 괴상한 짓을 하거나 질투, 과잉 경쟁, 거짓말, 이기적 행동, 심한 짜증 등 지나치도록 어수선한 활동을 많이 하는데, 여자 아이들은 손가락을 빨거나 수줍음을 많이 타고 공포, 우울, 지나친 흥분을 많이 한다. 어떤 면에서는 신경증적 증후나 정서 불안의 경향이 여성 쪽에서 더 심하게 나타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성들이 이렇게 심리적 부적응이 심한 것은 비단 문화적 요인에만 기인되지 않는다. 여성 특유의 체질적 요인에서 더 영향력이 많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증거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첫째, 신경증적 습성에서의 성의 차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나타난다.


둘째, 사회적 압력은 다 같은 경우에도 여성 쪽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 셋째, 기관에 수용된 어린이들은 남녀의 취급이나 조건이 거의 같은데도 역시 성의 차가 보인다. 넷째, 이런 증세가 심한 시기는 초경기나 폐경기 같은 생리적 변동기와 상응되고 있다. 성의 차가 심하고 또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은 공격성과 지배성의 문제다. 이들의 성차는 문화적 요인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생물학적인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 문화적으로 남성의 공격성은 칭찬 받게 되고, 반사회적 행동이나 파괴 행동도 남자의 경우에는 너그럽게 보아준다. 또 신체적으로 남자는 체격과 근육의 힘이 세고 성호르몬 관계도 공격성을 자극하게 되어 남성의 공격성과 지배욕은 자연히 우세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남성이 더 공격적이고 화를 잘 내며 파괴 행동과 도둑질 같은 것도 더욱 심하다. 어릴 때부터의 이러한 경향은 성장 후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래서 범죄 행동의 남녀 비는 25 대 1 이나 되고, 경찰이 범법자로 구속하는 건수의 남녀 비도 20 대 1 이라고 한다. 이러한 남성 범법자의 독점성에 대해 여성들이 "남성들이 하는 일 제대로 되는 것 보았느냐?"고 비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학교 공부나 과학, 사회와 수리적 추리 같은 것에서 남자가 우수하지만, 철자나 말의 사용 그리고 계산에서는 여자가 우수한 편이다. 학업의 진전도도 여자 아이가 지체함이 적고 성적 수준도 높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여자 쪽이 빠르다. 그들의 우월한 언어 능력, 산뜻한 맵시의 글씨, 유순한 봉사성, 참을성, 자제력 등이 합쳐서 이같은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어쨌든 여성의 좋은 점을 제대로 평가하고 이를 받아들여 인간의 운명을 바로잡아 나가야 할 시기가 온 것은 아닌지. "1976 년 10 월" 좋은 버릇 나쁜 버릇 속담에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느니 "제 버릇 개 주랴"라는 말이 있다. 어릴 때 형성된 버릇은 그 사람됨의 일부분으로 평생 붙어 다닌다는 뜻일 게다. 오늘날의 심리학도 여러 가지 버릇들이 합치고 뭉쳐져 하나의 사람됨을 꾸미고, 이런 사람됨은 대부분 어릴 때 형성된 버릇에 좌우된다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좋은 성격을 지니게 하려면 어릴 때 버릇을 잘 들이게 해야 한다. 틀림없이 그렇다.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사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곧잘 어울려 살 수 있는 버릇을 길러 주어야 한다. 어느 때건 양심적이고 의무를 완수하며 이상을 충실히 추구하는 버릇, 서로 의지하고 남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냉철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버릇, 필요에 따라 용기를 가지고 싸우며 어느 정도 자기 희생까지 서슴지 않는 버릇을 형성시켜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버릇을 기르게 하기 위해 부모, 교사, 사회 일반이 서로 적극 협력하여 노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듯 적극적으로 형성시키려고 노력하는 버릇이 있는가 하면 저절로 형성되는 버릇도 있다.


사람들의 내적 요구에 따라 인격적 결함을 보상하기 위해 생기는 그리 좋지 않은 버릇들도 많이 나타난다.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았는데, 공연히 잘 싸우고 말도 안 듣고 부끄러워하는가 하면 편식하는 버릇이나 도벽 등이 생긴다. 이렇게 보면 버릇들의 총화가 사람됨이요 성격이므로 훌륭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 하나의 버릇을 착실히 형성해야 하겠다. 뿐만 아니라 버릇은 사람됨의 소산으로서 부수적으로 저절로 형성되기도 한다. 좋은 버릇을 형성시키려면, 그 사람됨 전체가 원만하고 균형 잡힌 건전한 사람으로 되게끔 지도해 나가야 한다. 따라서 사람됨과 버릇과의 관계는 하나 하나의 버릇을 잘 형성시켜야 훌륭한 사람이 나타나고, 또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 하나의 버릇이 좋은 버릇으로 될 수 있는 관계라고 본다.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면, 남자 주인공 버틀러가 스카렛과의 사이에 생긴 딸이 주먹을 자꾸 빨아서 입술 모양이 나빠질 것 같다고 걱정한 나머지 딸의 손가락에 열심히 키니네를 발라 주는 장면이 있다. 빨면 쓰기 때문에 주먹 빠는 버릇이 중단될 것이라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주먹을 빨고 손가락을 입에 물고 손톱을 깨무는 등의 버릇은 어린이에게 흔히 보이는 행동이다. 이를 신경증적 습관이라 하는데, 이는 눈을 계속 깜빡거리는 버릇, 코를 훌쩍거리는 버릇, 머리를 공연히 극적거리는 것, 또는 안면 근육을 실룩거리는 증상처럼 성격상 매우 신경증적인 경우에 저절로 나타나는 버릇이다. 버틀러가 자기 딸의 주먹 빠는 버릇을 없애기 위해 아이의 손에 키니네를 열심히 바르지만, 근본적으로 신경증 경향을 없애지 않는 한 이 처치는 완전한 것이 못 된다. 오히려 이 아이에게 다른 신경증적 습관이 생기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뿐이다. 이런 버릇은 긴장이 심한 가정 분위기, 부모의 불화와 지나친 애정, 그리고 간섭, 잔소리 등이 많을 때 생기기 쉽다. 그러므로 이런 버릇을 고치려면 과잉 긴장 요인을 제거해 주는 것이 상책이며, 벌이나 야단을 치는 방법은 오히려 역효과를 나타낸다. 끼니 때마다 음식만 보면 투정부려 전혀 안 먹거나 먹더라도 조금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또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어야 수저를 들지 그렇지 않으면 아예 굶어 버리는 어린이도 있다. 게다가 꼭 엄마가 시중을 들어 주어야만 먹는 아이도 있다. 이런 숫자가 꽤 많다는 것이 소아과 의사들의 공통된 견해인데, 이런 버릇이 형성된 이유로는 먼저 신체적 원인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버릇은 만성적인 질병이나 필요한 공기 부족, 운동 부족, 수면 부족의 경우에도 생길 수 있으며, 또 지나친 간식이나 당분 또는 지방질 음식을 많이 먹일 때도 생긴다. 그러나 이같은 신체적 원인보다도 심리적인 원인이 문제라고 하겠다. 대개 애정 부족으로 인해 부모에게 불만은 표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또는 주의 획득의 방편으로 먹기를 거부한다. 이 경우 강제로 먹이면 거부의 방법으로 투정부리며, 때로는 식사와 불쾌감이 서로 조건 형성되어 음식만 보면 불쾌해 한다. 이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식사에 결부된 긴장을 풀어 주고 즐거운 식사가 되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되도록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조용하고 즐거운 식사 시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아이에게도 어느 정도 선택의 자유를 주고, 일정량의 음식을 꼭 먹이기 위해 잔소리하거나 꾀이고 달래는 일은 삼가해야 한다. 그저 규칙적이고 충분한 식사 시간을 주며 간식은 금하고 안 먹어도 이유를 묻지 말고 오히려 무시하듯 모르는 체하는 것이 좋다. 이와 반대로 너무 많이 먹어서 오히려 애를 먹게 하는 경우도 있다. 훈련


부족이나 정신 박약의 경우에 이러는 수도 있지만, 애정을 충분히 받지 못하거나 천대를 받아 먹는 것 이외는 별로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 이런 버릇이 나타나기도 한다. 아우를 보아 젖이 떨어지고 어머니를 빼앗겼다고 여기는 어린이가 배가 동산이 되도록 먹어대는 경우를 얼마든지 본다. 이런 어린이를 그저 꾸짖고 야단만 치면 몰래 숨어서라도 더 먹게 된다. 이럴 때는 알뜰하게 애정을 주는 수밖에 없다. 아이들에게는 다른 아이를 골려 주고 잘 사우며 욕설이나 하찮은 일에 화를 잘 내는가 하면 물건을 마구 부수는 버릇도 있다. 말하자면 이는 공격적 성벽이다. 자기 의사가 제지당할 때 공격 행동을 취하는 것은 사람의 기본적 반응이라 하겠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로 싸우고 화내며 남을 골려 주는 것은 병적이라 할 수도 있다. 어떤 곤란을 당했을 때 이를 극복하는 적절한 행동을 발견하지 못하고 감정의 흥분도 통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화내며 싸운다면, 이는 그 사람됨이 아직 미숙한 상태에 있다는 증거다. 이런 성벽을 고쳐 주려면 적당한 공격 수단과 사회가 용납하는 공격 방식으로 풀도록 유도하고, 공격을 유발하게 한 거친 인간 관계 등을 부드럽게 해주는 것이 좋다. 짜증이나 화를 잘 낸다면 그 원인을 찾아 이를 제거하고 되도록 정서적 긴장이 적게 해주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짜증을 낼 때는 그대로 내버려두고 무시해야지, 이에 맞장구치듯 금방 반응해 주면 오히려 짜증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온다. 짜증과 더불어 공포증, 악몽증, 야뇨증 등의 버릇이 곁들여 있다면, 이 증상은 심각한 것이므로 곧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별로 신체 활동 없이 상상 활동만을 골똘히 하며 즐거워 하는 어린이도 있다. 공상을 즐기는 어린이다. 그런데 이 공상이 현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계획이라면 창조적 사고하고 볼 수 있어 높게 평가되지만, 현실의 불안이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일시적 향락이라면 이는 다분히 병적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공상에 자주 몰두하며 대인 교섭을 끊고 홀로 즐겨 산다면, 이는 아주 심각한 버릇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런 어린이에게는 주의 사람들과의 접촉에서 만족을 얻게 하고 공상을 그리 달가와 하지 않게 하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을 성취하는 데 관심을 갖고 성공을 맛보게 하며 욕구 불만의 기회를 적게 해야 한다. 그러나 말로 이를 억제하면 오히려 이 경향을 강조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만 앞에서 끄떡거리지 않고 수줍어하는 것을 얌전하다고 본다. 특히 여자 어린이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남을 자연스럽게 대하지 못하고 대인 접촉을 두려워해 회피하려는 것은 그 안에 깊게 뿌리 박힌 열등감 때문이라 여겨진다. 능히 해낼 수 있는 일이나 경쟁도 자신 없어서 미리 겁내고 회피해 버리는 것이 바로 수줍음의 진면목이 아닐까. 그러므로 수줍어하는 버릇은 공상벽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부딪치면서 문제 해결을 시도하지 못하고 미리 회피해서 혼자 즐기려는 경향으로 통한다. 따라서 이런 회피 경향이야말로 장래에 있을 정신적 질병의 유력한 싹이 될 수도 있으므로 크게 단속해야 한다. 공상을 즐기고 수줍어서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남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성벽은 눈에 띄는 것도 아니도 또 남을 괴롭히는 것도 아니지만, 심리적인 면에서는 크게 문제삼아야 할 나쁜 버릇이다. "1964 년 3 월"


낙서 풀같이 끈적끈적한 안료를 손에 듬뿍 적셔서 판자나 종이 위해 문질러 그림 그리게 하는 유아 화법이 있다. 연필이나 크레파스로 그리는 그림보다 훨씬 재미있고 창조 ���욕이 발휘되며 기술 연마에도 퍽 좋다고 인정되어, 오늘날 유아 미술 교육에 많이 쓰이고 있다. 이 화법을 창안하게 된 계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창안자인 이탈리아의 루스 쇼우 여사는 학교에서 어느 날 한 어린이가 손을 다쳤기에 옥도 정기를 바르라고 목욕실로 보냈다. 그런데 한참 기다려도 나오지 않아 목욕실에 가보니 거기에 놀랄 만한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그 어린이는 옥도 정기를 손에 칠해서 목욕실 문짝에 마구 문질러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쇼유 여사에게 그 순간 한 아이디어가 번개같이 떠올랐다. 왜 이제까지 어린이들의 손에 듬뿍 칠해 마음대로 그릴 수 있는 화구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에 이런 자료가 있었다면, 어린이들이 자기 내부의 용솟음치는 힘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이런 표현으로 어린이의 충동, 불안, 갈등들을 해소시켜 교육적 효과도 컸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현재 우리의 형편은 어린이들에게 이러한 핑거-페인팅은 고사하고 크레파스나 연필, 백묵이라도 마음대로 사용하게 하여 한껏 용솟음치는 표현욕을 발휘하게 해주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표현욕이 간접적으로나 직접적으로 억압만 당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어린이들은 자기 표현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가 종이 조각이라도 얻어 그려볼라치면 크게 위험시하여 연필이든 크레파스든 모두 탈취 당하고 만다. 집안에서 무엇 하나 그려볼 수 없게 되면 아이들은 밖에 나와 담벽, 전주, 판자 등에 그려볼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는 어디를 가나 낙서투성이의 담벼락을 대하곤 한다. 이러한 낙서판들은 우리로 하여금 항시 눈살 찌푸리게 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 어린이들이 선천적으로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어 그런 짓을 한다기보다는 원래 가지고 있는 자기표현의 욕구를 엄격히 억압당하고 있어 이 욕구가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 그런 낙서벽으로 전락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생각을 수긍하게 하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지난 가을 대한교련(현 한국 교원단체 총연합회)이 주최한 일선 교사들의 연구 발표회에서 충북의 이우영 교사가 발표한 낙서에 관한 연구이다. 이 교사는 학교 내에 낙서가 심해서 낙서 방지를 목적으로 일부러 마음껏 낙서할 수 있는 낙서판과 낙서장을 몇 군데 설치해 두었더니 학교 내에서의 낙서 흔적이 60%나 감소되었다고 한다. 이는 정당한 표현의 기회를 갖지 못한 이이들이 자기 표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낙서한다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판자, 담벽, 전주 등 도처에 낙서가 없는 데가 없고, 산에도 구질구질하게 하찮은 글씨로 이름자를 암벽에 새겨 놓아 등산객의 빈축을 사는 일이 많다. 먹고 살기에 바빠서, 혹은 일일이 가르칠 수 없도록 자녀가 많아서 자녀 교육에 소홀하기 때문일까. 낙서하면 불쾌감을 느끼지 않고는 못 견디게끔 학교, 가정, 거리 등에서 끊임없는 교육적 훈련이 절대 필요하다고 본다. 가정에서 제대로 사랑 받지 못하고 주위로부터는 구박, 조소, 멸시만을 받게 되며, 심리적 불안감은 점점 굳어져 남의 주의를 끌어 보려고 공연히 애쓰거나


늘 못마땅해 하며, 반감과 공격성은 커져 남을 비방하고 때려 눕히려고만 한다. 많은 범죄자의 사람됨이 바로 이런 반 사회적인격 유형에 속한다. 이런 경향은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남의 집의 다 큰 호박에다 나무 못을 박아 주인이 화내는 것을 보며 즐기는 사람, 세워 놓은 자동차에 흠을 내는 사람, 붙여 놓은 선거 포스터를 보고 그 속에 있는 사람의 눈을 도려내는 일, 깨끗하게 칠해 놓은 남의 대문에다 크게 낙서하는 짓 등등 모두가 이러한 공격적 경향의 발로라고 생각된다. 낙서는 나쁘다는 교육도 받고 또 그만한 지각을 있을 법한 나이에도 여전히 낙서하게 되는 경우는 이같은 성격상의 공격적 행동으로 생각해 볼 만하다. 이러한 공격적 행동으로서의 낙서는 대개 어느 특정인을 비방하는 내용이 많다. 사회화가 덜 되어서 하게 되는 낙서는 그 내용이 단순하고 단어나 개별적인 그림으로 나타나지만, 공격적 성격의 발로로 나타나는 낙서의 내용은 필치가 강경하고 문장화되어 있으며 특정 대상의 인물을 문제삼아 욕하는 형식을 취한다. 과거 자유당 시절에는 공중변소 등에서 흔히 통치자에 관한 욕설이 보였는데, 이것이 바로 그러한 유형이다. 학교에서는 좀 심하다 싶은 교사가 낙서의 대상에 많이 오르게 마련이다. 공중변소에서 많이 보이는 낙서 중에는 성적 내용을 다룬(외설적인) 것이 많다. 즉 남녀의 성기를 그린 그림이나 글 또는 성행위에 대한 묘사가 많은데, 이는 단순한 자기 표현이나 공격성의 표현이 아닌 독특한 측면이라고 하겠다.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은 사춘기부터 성적 충동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사회적 제약은 이러한 충동을 통제하고 제멋대로의 행동에 제재를 가한다. 성적 충동이 있고 또 이를 철저히 억제하는 외적인 제재가 있으며 갈등 상태에 놓여 결국 외적 제재에 굴복해 버리지만, 자아는 이 굴복을 인정하지 않고 원래부터 그러했다는 듯이 스스로의 성 충동을 망각하거나 없애 버린다. 이른바 억압이 나타난다. 홀어머니와 같은 방을 사용하는 아들이 성적 불능이 되고, 고약하게 구는 부모의 자녀가 효자가 되며, 세뇌 공작으로 충성스러운 당원을 만드는 따위가 모두 이런 억제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경우 본래의 욕구가 억제로써 완전히 상실되고 적대하던 욕구로 감쪽같이 전이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불완전하게 억제되어 본바탕의 욕구가 들먹거리기 일쑤다. 마찬가지로 성 충동의 경우도 그 욕구가 완전히 말살되지 않고 약간 변모되어 들먹거리는데, 이것이 노출증, 절시증, 낙서벽 등으로 나타난다. 즉 성적 대상을 보고 성행위로써 직접 그 욕구를 해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만을 드러내 보이거나 이성의 나체를 몰래 보는 것 또는 성 행위의 그림이나 말로써(낙서로) 대상적 충족을 얻는다. 이와 같은 대상적 충족 행위는 의식하지는 못해도 우리들 모두가 어느 정도는 다 하고 있다. 스트립 쇼나 반나체의 무희를 보고 즐기는 것, 또는 조각이나 회화에서 나체가 많이 취급되며 수많은 상업 광고에 나오는 제품이 여인의 나체와 함께 제시되는 것 등은 결국 이 절시증 경향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성 행동에 대한 사회적 제약이 예년에 비해 훨씬 완화되었으며, 또 상업 광고가 성욕의 대상적 충동을 많이 공급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공중변소에 그전처럼 해괴한 성적 낙서가 많지 않은 편이다.


끝으로 산악 낙서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우리 사회에도 레크레시션 붐이 시작되었다. 등산도 처음에는 학생층에서 유행하더니 이제는 일반 대중에게도 대단한 인기다. 좋은 계절이나 휴일만 되면 서울 근교 경승지는 거의 시장통 같이 붐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산으로 출동(?)하게 되니 자연히 탈선 행위도 많게 되는데, 그 중에서 특히 눈에 거슬리는 것은 조악한 글씨로 바위나 암벽 등에 이름자를 쪼아 놓는 행동이다. 물론 장엄한 경치에 도취하여 그대로 돌아오기가 허전해 길이길이 이름을 남기고도 싶으리라. 역사적으로 이름 있는 분들의 발자취를 새긴 글씨가 보이니 자기도 그 분들과 동일시해 보고자 무의식중에 이름자를 새기는 것일 게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이 자기가 감상했던 경치를 크게 해쳐 놓는다는 사실과 아울러 이런 식으로 이름을 길이길이 산에 새겨 남긴다면 후에 오는 사람들의 빈축도 두고두고 살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아야 한다. 산은 우리에게 대자연의 영원성과 신비성을 엄숙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우리가 산을 즐겨 오른다는 것은 이러한 엄숙하고 신비로운 대자연 속에 파묻혀 오염된 자기를 깨끗하게 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좋은 산을 자기 것으로 한다든지 이름을 남기려는 행위는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1964 년 2 월" 도벽의 요인 제 집이나 남의 집 물건을 훔쳐내는 버릇은 어린 아이들에게 흔히 있다. 부모들이 자기 자녀의 이런 버릇을 숨기고 표면화시키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드문 현상처럼 보일 뿐이다. 어떤 경우에는 훔치는 일이 어린이들에게 재미난 유희로 되어 오히려 이것을 못하는 아이가 못난 아이로 취급되기도 한다. 사실 어린 아이들의 훔치는 버릇은 천진스럽고 때묻지 않은 행동으로서 잘 지도만 하면 된다. 이것을 부모가 지나치게 근심하고 잔소리를 많이 해 과대시 하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어린이들은 아직 사회화되지 않았기에 이들은 사회 규범에 적응해 가도록 적당히 이끄는 것이 더 타당한 조치라 하겠다. 그러나 훔치는 것은 나쁘다는 지각을 가질 만한 나이의 아동들이 그대로 도벽을 지닌다면, 이는 문제거리가 아닐 수 없다. 먼저 도벽 때문에로 부모나 교사를 괴롭히는 사례를 들면서 그 원인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국민학교 5 학년에 다니는 남자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는 형과 여동생의 중간에 끼어 자란다. 지능은 보통 이상이며 성격은 약간 변덕스럽고 감정이 불안정한 편이다. 얼굴이 기형으로 코가 좀 찌부러져 있다. 이 아동은 거짓말을 잘하고 집에서 돈을 훔쳐다 동무들에게 나누어주며 즐거워하는 것이 문제다. 본인은 부모가 자기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부모나 형제가 모두 밉고, 혹시 먹을 것이 있으면 저 혼자 먹어 버리고 싶다고 한다. 이 아동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동인이 작용된 것으로 생각한다. 첫째는 성격적으로 이상이 있는 것 같고, 둘째로는 부모로부터의 애정이 다른 형제들에 비해 부족해 대신 동무들의 사랑을 얻으려고 돈을 훔치는 것이라 여기며, 셋째는 외모의 기형에서 오는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해 남들이 못하는(훔치는) 일을 해서 자기를 과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이런 사례도 있다. 중학교 2 학년의 15 세 여자 아이의 경우다. 6 남매 중


넷째 아이로 지능은 보통 이하며, 성격은 분열적 경향이 있고, 신체 이상은 없으나 다만 영양 실조가 심한 편이다. 이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의 전차표를 훔치다가 발각되었다. 전에도 종종 돈을 훔쳐서 그 돈으로 운동화를 사 신고는 이 사실을 친구나 가족들에게 자랑삼아 말하곤 했다 한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생선 장수로 늦게까지 일하고 밤늦게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와 주정하며, 어머니는 신병으로 늘 짜증만 부린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원인을 다음 세 가지로 추측한다. 첫째는 가정 환경의 빈곤 때문에 그 반감으로 도벽이 생긴 것 같다는 것이며, 둘째는 부모에 대한 불만과 꾸지람에서 생긴 죄의식에 대한 속죄의 방편으로 벌을 청해서 받으려고 일부러 훔친다는 것이다. 셋째는 돈을 훔쳐 꼭 운동화를 산다는 점으로 보아 운동화에 대한 어떤 특수 사건이 과거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도벽은 어떤 충분한 동인이 있어 나타나는 것이지, 선천적으로 타고나 그런 짓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제 도벽을 갖게 하는 전형적인 동인을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자. 문화 사회에서는 남의 물건을 무단히 훔치면 처벌을 가해서 그런 짓을 못하게끔 어려서부터 훈련시킨다. 그러므로 남의 물건을 훔칠 때는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을 받게 된다. 양심의 가책이란 죄악감을 느끼는 것이다. 처벌받을 것을 예기하는 불안 상태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불안 상태를 피하려는 것은 인간이 지니는 아주 강한 욕구이기 때문에 이 불안 상태를 피하기 위해서도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죄악감을 피하는 이러한 욕구보다 더 강렬한 욕구가 있어 이것이 훔치는 일로 충족될 수 있다면, 도벽은 습관적으로 형성될 수도 있다. 이처럼 죄악감을 피하려는 욕구보다 더 강렬한 욕구로서 도벽을 형성시켜 주는 것들을 생각해 보자. 먼저 강렬한 생리적 욕구를 들 수 있다. 몹시 배고픈 아이는 벽장 속에 둔 과자를 어머니 몰래 훔쳐 먹지 않을 수 없다. 또 아편 중독 환자가 그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아편을 구하려고 절도 행각을 일삼는 일 등도 이에 속한다. 단순한 소유욕이 훔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는 모든 계층의 어린이에게서 다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러 가지 놀잇감을 갖고자 하는 욕구는 어린이의 경우 본능적이라고 할만큼 보편적이며 강렬하다. 어린이들이 별로 가치는 없으나 신기해 보이는 것을 훔치는 경우는 대체로 이런 요인 때문이다. 5 세 이하의 도벽은 이런 경우가 많다. 이같은 충동은 타인의 소유권을 존중하는 훈련이 미흡할 때 많다고 본다. 그러므로 가정 내에서 어린이들에게 각자의 소유권을 분명하게 해주고 남의 것을 침범하지 않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어린이가 간절히 갖고 싶어하는 것은 가능하면 사주고, 가져서는 안될 것이라면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 설득시켜야 한다. 그리고 용돈을 줄 때도 설득과 이해로 큰 불만이 없게 줌으로써 이러한 소유욕에서 오는 도벽을 예방하고 교정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인정받고 칭찬 받으려는 욕구를 지닌다. 이러한 요구를 자기의 의복이나 소지품 그리고 가까이하는 인물 등 형식적인 면의 자기 과시로 충족하려 할 때 이를 "허영"이라고 말한다. 이 허영심 때문에도 도벽이 생길 수 있다. 또 이렇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남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기 위해 짐짓 훔치는 일을 감행하게 하고 이를 공개하게끔 하는 수도 있다. 그리고 동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선심을 쓰는 데 필요한- 돈이나 물건을


훔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선물 공세는 열등감이 강한 아동의 경우에 특히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신체적인 것 또는 의복, 소유물 등의 비정상성으로 인해 열등감을 지니는 어린이의 도벽은 그 열등감의 교정이나 보상으로 고쳐질 수 있다. 사람은 분할 때 분풀이하고 나면 마음이 시원해지고 안정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분풀이의 한 수단으로서 훔치는 짓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특정인으로부터 분한 일을 당했을 때, 그 사람에게 꼭 보복해야 분이 풀릴텐데 자신의 능력으로나 여건상 정면으로 보복할 수는 없어 분한 마음을 억제하며 지연 공격으로 나간다. 즉 상황을 보아 기다리면서 공격 가능한 때 적절한 방법으로 분풀이한다. 다시 말해 복수다. 복수의 한 방법으로서 상대에게 물질적 손실을 가하기 위해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 부모가 자녀를 무시하거나 차별 대우할 때, 또는 질책, 구타를 당할 경우 부모에 대한 분노를 직접적인 공격으로 표시하진 못하고 부모를 괴롭히기 위해 부모의 물건을 훔쳐내는 수가 있다. 또한 훔치는 일 자체가 아슬아슬할 뿐만 아니라, 그 일을 감쪽같이 성공시켰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훔치는 일 자체에서 오는 이러한 쾌감을 맛보기 위해 도벽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불안과 긴장이 계속될 때 이렇게 아슬아슬할 일에 몰두하면 일시적으로나마 긴장에서 도피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경우 훔치는 일이 일종의 강박증으로 나타나는 수도 있다고 한다. 절도광의 경우가 여기에 속하는데, 이는 훔치는 물건이 가치로는 별게 아니라 하더라도 그 자체에서 오는 쾌감을 느끼려 하는 것이거나, 자기도 무슨 일을 한다는 식의 자기 충족감을 얻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도벽의 원인이 되는 특수한 예를 하나 더 생각해 보기로 하자. 사람은 얻으려는 것을 못 얻으면, 그것의 상징이 되고 대리가 될 수 있는 것을 통해 잠정적, 영구적 만족을 얻으려고 한다. 말하자면 대치니 심볼리즘이니 하는 것을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직접 가까이 할 수 없을 때 대신 그의 소유물을 가까이 하여 충족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경우 애인의 소유물을-훔쳐서라도-몸에 지니게 된다. 황진이의 신발을 훔친 일도 바로 이 심볼리즘의 한 예를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도벽 역시 다른 부적응 행동이나 마찬가지로 그 근원은 정서적 불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도벽의 예방과 교정의 근본적인 방책은 바로 이같은 정서적 불안을 제거하는 데 있으리라 본다. 따라서 어린이에게 불필요한 불안 상태를 자주 경험시켜서는 안된다. 명석한 판단과 결단력을 길러 정서적 불안을 -해롭지 않은- 적절한 출구로 발산시키도록 해야 함은 물론, 자신을 여기고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1964 년 11 월" 도박 이야기 도박은 정말 재미있다. 도박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관심을 집중시켜 진지한 자세를 취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한다. 먼저 재미난 도박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내가 알기로는 많은 인원이 오랜 기간 동안 그리 큰 희생 없이 즐길 수 있는 노름으로 채표라는 게 있다. 원래 채표는 중국 노름인데, 우리 나라에서도 3.1 운동 전까지만 해도 이 노름이 상당히 유행했던 모양이다. 해방


후 질서가 아직 확립되지 못했을 때 중부 일대에 수년 동안 유행된 바 있고, 서울에서도 중국인 상가나 종묘 앞에서 얼마 전까지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의 흥미진진한 모습을 보기 위해 그 내용을 약간 설명하겠다. 이 노름은 36 문으로 되어 있고 물주가 1 문만을 싸면-쥐고 있으면-, 애기패는 36 문에 임의로 얼마씩 돈을 건다. 그리하여 맞춘 문에는 그 문에 건 돈의 30 배를 태우고(주고) 못 맞춘 문들의 돈은 모조리 물주가 거둬들인다. 그런데 이 각 문의 명칭이 흥미롭다. 모두 두 글자로 된 인명인데, 이를테면 월보, 합동, 정리, 봉춘, 민옥, 천신 등이다. 이에 모두 성까지 붙여서 이월보, 쌍합동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들 인명은 각자 관직이 있고 계층이나 직업이 붙어 있다. 또 이 36 문은 인체의 각 부분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마는 무엇이며 코는 무엇이며 손발은 무엇 무엇 등등 신체 부위의 명칭으로 따질 수도 있고, 또 그 한 글자의 뜻에서 여러 가지 자연물과 인간사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 노름은 어느 지방의 두세 면에 걸쳐 각 동리 수백 호 수천 명의 애기패를 상대로 한 물주가 아침, 저녁으로 두번 판벌인다. 많은 인원이 다 모일 수는 없으니 각 동리에서 한 두 사람씩 대리인(통수라고 부름)을 보낸다. 동리의 애기패들이 그날 자기가 걸 문의 이름과 금액을 쪽지에 적고, 접은 쪽지의 표면에는 건 금액의 총액만을 적어 그 액수의 돈과 쪽지를 대리인에게 부탁하면 그는 이것들을 많이 모아 가서 물주에게 준다. 물주는 여러 동리의 것을 모두 받고 자기가 싸 가지고 온 문을 펴 보인다. 그리고 대리인들 앞에서 모아진 쪽지를 하나하나 펴서 그날 뺀 문의 이름을 도장으로 찍어 돌려주고, 맞춘 것만 30 배로 해서 태운다.(준다) 대리인은 그 쪽지를 다시 애기패에게 돌려주고 상금도 돌려준다. 대리인은 물론 보수를 받는다. 가져갈 때는 수납분의 1 할을 물주에게서 받고, 맞춘 것은 그 상금의 1 할을 애기패에게서 받는다. 애기패의 성분은 다채롭다. 물론 전문적인 노름꾼, 건달도 있지만, 점잖은 샌님에서부터 무식한 농군, 갓 시집온 새댁, 늙은 할머니, 장사치, 머슴 등 누구나 하고 싶은 사람은 다 한다. 서로가 서먹서먹한 며느리와 시아버지, 계수와 시아주버니도 이 채표에 대해서는 서로 흉금을 털어놓고 단란하게 이야기한다. 이들은 서로 상의해서 돈을 걸고 그 결과를 온종일 기다리는 재미로 산다. 이쯤 되면 훌륭한 오락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부분은 돈걸 문을 결정하는 힌트를 어디서 얻느냐에 있다. 대개는 꿈을 여러 가지로 해석해서 건다. 꿈이 신령스러운 징조라는 관념에서다. 이를테면 간밤의 꿈에 진 서방이 몽둥이를 들고 자기 이마를 쳤다면 진가 성을 가진 문과, 몽둥이를 상징하는 문과, 이마를 뜻하는 문에 돈을 건다. 또 이 서방네 딸이 남편과 같이 친정에 온 꿈을 꾸었다면, 이가 성의 월보와, 쌍으로 왔으니 합동에다 돈을 건다. 그리하여 이 채표를 하는 동리는 아침 일찍부터 무슨 좋은 꿈이 있나 하고 이집저집 돌아다니는 친구, 새며느리 꿈 이야기를 물어 보는 시아버지, 자기 꿈을 해석하지 못해 꿈 해석을 제대로 하는 사람을 찾아다니는 모습 등으로 분주하다. 또 하나의 힌트는 소위 격물 치기라는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생기고 부딪치는 신기한 사건을 힌트로 삼아서 어느 문에 돈걸 것인가를 결정한다. 이를테면 아침 일찍 뒷산에 까치가 와서 울었다면, 이 까치에 관련된 문에 걸거나 이 사건을 해석해서 돈건다. 이렇듯 힌트에 준해 돈거는 것을 아마츄어 도박이라고 할 때, 프로로 하는 것(이를테면 프로 도박)은 더욱 흥미롭다. 여기에서 통계적 수법이 이용되기 때문이다. 채표판에 가보면, 각 문에 들어온 돈의 액수와 건 빈도수를 일일이


세어서 물주가 그날 그날의 36 문의 빈도표를 작성하고 이를 공개하는 현장을 볼 수 있다. 물주는 이것을 검토하여 가장 돈을 덜 걸 만한 문을 찾아내는 데 하나의 자료로 삼고 있다. 그런데 애기패도 이 빈도표를 참고 삼아 다음번에 물주가 어느 것을 뽑을지 예측해 가며 돈을 건다. 즉 물주가 퍽 소심하고 마음 약하니 아마도 아침에 많이 든 문은 못쌀(쥐고 있지 못함)것이라 생각해 그 문에 돈걸지 않는다든지, 아침에 가장 적게 든 문도 위험하니 못싸고 중간 정도로 들어온 문을 쌀(쥘) 것이라고 생각해 그 문에 돈을 건다. 그야말로 물주의 성격과 자금, 그때 그때의 기분을 살펴서 돈을 거는 생기 있는 작전을 쓴다. 이쯤 되면 전문성을 띤 도박이 된다. 이러한 노름은 가을, 겨울, 봄에 걸쳐 주로 농한기에 근 반년 동안 줄곧 계속된다. 한 애기패가 5 원, 10 원, 20 원 정도인데, 거는 돈도 많이 모여서 한 판 총액이 그때 돈 10 만원이나 되었다고 한다. 아침에 돈을 10 원 걸고 그 결과를 점심때까지 기다리고, 점심때 또 다시 돈걸어 저녁 늦게까지 혹시나 하고 기다린다. 그러다가 무슨 좋은 꿈이나 꿀까 기대하며 잠자고, 일어나면 또 채표 생각을 한다. 이렇게 그날 그날을 지내며 삼동을 나는 것이니 그 재미는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채표에 열중하면 제 이름도 못 쓰는 까막눈이 어려운 채표의 문자들을 글자 한 획 틀리지 않고 다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제 이름은 못 쓴다. 오랫동안 허탕치다가 한번 맞추기라도 하면 그 통쾌감은 형용할 수 없으며, 그래서 타 온 상금을 몽땅 걸고 또 떼이곤 한다. 결산이야 뻔하다. 이것이 그들의 유일한 오락이니 그들에게 어떤 꾸준한 노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한편으로는 참으로 한심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도박의 심리를 실험을 통해 연구한 스키너(1904- 미국의 심리학자) 교수의 업적을 소개하기로 하자. 스키너는 파블로프(1849-1936,러시아의 생리학자)의 조건반사법을 더욱 발전시켜 인간의 의지적 행동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현대 심리학의 선봉장이다. 요컨대 그는 어떤 행동이든 그것이 형성되려면 그 행동 뒤에 오는 효과가 좋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강화 작용이 행동 형성의 원리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강화의 스케줄에 따라 형성되는 행동 경향도 다르다는 논리 아래 강화 스케줄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따지는 것을 행동 분석의 방법으로 삼았다. 스키너는 밀폐된 상자 속에 불을 켜 놓고 물을 넣어준 다음 누르면 음식이 나오게 되어 있는 자동 장치(즉 스키너 박스)를 한쪽 벽에 꾸며 놓고 굶주린 비둘기를 넣었다. 비둘기는 배가 고파 애쓰다가 우연히 음식물이 나오는 키를 누르게 된다. 우연한 이 행동으로 몇 번 음식을 먹게 된 비둘기는 '키'와 '음식'의 관계를 무의식중에 익히게 되고, 이후는 이 키를 자주 눌러 배고픈 상태를 면해 간다. 그 다음 누르기만 하면 바로 음식물이 나오도록 되어 있는 간단한 키 장치에 여러 가지 스케줄을 적용시켰다. 즉 여러 강화의 스케줄에 따라 키를 누르는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광범위하게 따져 보았다. 대표적인 스케줄을 소개하면, 먼저 일정 기간이 되어 누르면 음식이 나오는 고정간격 스케줄, 일정 회수 키를 누르면 음식물이 나오는 고정 비율 스케줄, 일정 기간마다는 아니지만 대체로 일정 기간을 평균치로 삼고 조금씩 다른 시간 간격마다 음식물이 나오는 변화 간격 스케줄, 끝으로 일정 회수를 평균치로 삼고 어느 때는 더 걸리고 어느 때는 덜 걸리는 회수로 음식이 나오는 변화 비율 스케줄이 있다. 어느 때는 한번만 눌러도 나오고 또 어느


때는 15 회째 나오며 어느 때는 7 회에 나오는데, 변화 비율 스케줄은 평균하면 10 회에 한번씩 음식물이 나오게 한 장치이다. 고정 간격 스케줄로 강화를 줄 때는 한참 쉬었다가 음식이 나올 만한 시간이 가까워지면 재빨리 키를 눌러 댄다. 이는 마치 월급제로 보수를 주는 경우 봉급일에 꼭 나오는 모습과 같다고 하겠다. 변동 간격 스케줄의 경우는 계속 키를 누른다. 다만 강화 직후는 약간 휴식이 보이며, 누르는 속도가 느린 것이 특징이다. 이는 마치 월급을 고정 일자로 주지 않고, 어느 때는 좀 이르고 어느 때는 늦으나 대강은 한달 내에 주기는 주는 경우와 같다. 따라서 월급을 언제 줄지 모르나 늘 나오게 되는 경우와 같다. 다음에 고정 비율 스케줄의 경우 키 누르는 속도가 대단히 빠르다. 이는 보수가 월급제가 아니고 일의 분량에 따라 단위 작업량에 얼마로 보수를 주는 스케줄과 같다. 많은 보수를 얻으려고 일을 많이 하는 일종의 도급제의 경우다. 끝으로 변동 비율 스케줄의 경우는 거의 고정 비율 스케줄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키를 누른다. 이것은 인간이 즐기는 도박 장치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어느 때는 단번에 큰돈이 생기고, 또 어느 때는 여러 번 해도 허탕만 치니 말이다. 이 경우 속도가 빠른 반응이 나온다는 것은 그 만큼 이 반응에 열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쓰고 돈을 거는 노름꾼의 관심 집중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변동 비율 스케줄에서 강화 받는 평균 비율이 낮을수록 더욱 빠른 속도로 키를 누른다. 이는 둘 중 어느 한 쪽에 돈을 걸어 맞추는 도박보다 36:1 의 어려운 비율로 돈딸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를 끈다. 또 하나 흥미 끄는 실험 결과는 변동 비율 스케줄에서는 강화 받은 직후 반응 속도가 오히려 더 빨라진다는 사실이다. 변동 간격 스케줄의 경우는 이와 반대로 강화 직후에 잠깐 휴식 상태가 지속되다가 다시 제 속도로 돌아가는데, 변동 비율 스케줄에서는 반대로 강화 직후 더욱 가속된 반응을 보이다가 다시 제 속도로 돌아간다. 이는 마치 도박에서 어쩌다 한번 맞추어 돈따면 그것으로 일단 만족하고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의기양양해서 그 돈으로 더욱 크게 자주 돈을 거는 현상과 같다고 하겠다. 고정 비율 스케줄로 하다가 변동 비율 스케줄로 바꿔 주면, 처음에는 강화 후에 한참씩 휴식이 온다. 그러다가 바로 속도가 빠른 반응을 보인다. 도급제로 벌어먹고 살다가 도박적 생활로 옮겨가면, 처음에는 흥미를 못 붙이다가 바로 흥미 붙이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변동 비율 스케줄에서 고정 비율 스케줄로 바꾸면 좀 독특한 반응 양식이 나타난다. 강화 후 계속 휴식 상태에 있다가 후에 가서 맹렬한 속도로 반응한다. 이는 도박으로 먹고 살다가 도급제로 일하게 되면 흥미가 없어져 빈둥빈둥 놀고, 그러다가 다급해지면 많은 일을 해대는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변동 비율 스케줄로 형성된 반응 습성을 소거시키자면, 아무리 반응해도 일체 강화를 주지 말아야 한다. 비둘기의 경우 7000 번까지 강화를 주지 않아도 속도가 줄지 말아야 한다. 비둘기의 경우 7000 번 이후 약간 반응 속도가 줄면서 간간이 빠른 속도가 나타나고, 8000 번을 넘어서면서 속도가 계속 수그러진다. 이는 노름 버릇은 고치기가 대단히 힘들다는 것을 알게 하는 실험 결과라 하겠다.


도박을 크게 두 가지 나눌 수 있다. 돈 걸고 따먹는 데 기술 여하로 딸 수 있는 것과, 순전히 우연성으로 맞추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바둑, 장기, 화투 따위는 전자요, 심지 뽑기, 채표, 빠징꼬 등은 후자에 속한다. 그러나 기술과 우연성이 반반으로 작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기술이라고 해서 교묘한 사기술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놀이를 하는 경우 그냥 하면 싱거워서 이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 대개는 돈걸고 한다. 그러면 도박이 왜 그렇게 재미있고 진지한 맛이 있을까. 인간은 사회 생활하는 동안에 누구에게나 지배욕, 물욕, 금전욕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남을 누르고 경쟁에서 이겨 돈벌려고 한다. 이런 욕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하고 열심히 일한다. 그러다 목적을 달성하게 되면 계속된 긴장에서 풀려 쾌감을 맛보게 된다. 이 쾌감은 긴장 상태에서 급속히 풀릴 때는 더욱 강도가 세고, 성공을 조금씩 예견하면서 달성할 때는 -긴장 해소가 점차적이라서-그 세기가 약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전혀 예견하지 못하다가 우연하게 긴장감에서 급격하게 풀릴 때, 쾌감은 절정을 이룰 수 있다. 도박에서 성공하고 돈딸 때의 통쾌감이 이만저만이 아닌 이유를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도박에 열중하는 친구는 대체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여 어떤 욕구불만 상태에 있는 사람이나 극도로 정서가 불안정한 사람들 중에 많다. 전쟁터에 나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군인이나 큰 죄를 짓고 피신하는 사람들이 도박에 몰두하는 경향이 많은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일시적으로 도박하는 예도 있겠고, 원래 정서 불안정한 친구가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화풀이로 도박하는 예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정서 불안정하고 욕구불만에 쌓여 있으면, 이런 긴장 상태에서 벗어나 즐거운 상태를 누리려는 욕구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 빠질수록 객관적 태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 중심적이 되어 덮어놓고 성공, 쾌 상태만 추구하게 되며, 거기에다 도박의 강렬한 쾌감마저 맛보게 되면 이에 점점 열중하게 마련이다. 또 하나 도박의 매력은 눈앞에 성공이 있다고 보고 그 성공할 때의 쾌감을 공상하는 데 있다. 우리가 어떤 욕망을 추구할 때 여러 가지 조건으로써 욕구 달성의 가망성을 기대하면서 그 욕구가 달성될 때의 만족을 미리 상상해 맛보는 것을 희망이라고 한다. 이 희망 상태는 충족감을 미리 느끼는 것이라 일종의 환희 정서를 미리 느끼는 것과 같다. 그런데 도박 상태는 바로 이러한 희망을 갖는 상태다. 잘 뽑으면 일확천금이며, 그 조건 또한 전혀 자기 능력이 아닌 우연성이다. 그러므로 그 우연성을 기대할 수 있고 언제나 돈딸 수 있는 희망에 살고 있으니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람은 늘 쾌감을 가지고 도박을 계속하게 마련이다. 계속 허탕치고 돈 잃는 일이 있더라도 성공을 단념하고 우울에 빠져 있기보다는 공상적 충족이라도 맛보며 도박을 지속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도박에서 느끼는 재미 중 또 하나의 주요 요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변모를 나타내고 있다.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며, 심한 경쟁 속에서 정서적 긴장감은 날카롭게 고조되어 있다. 게다가 가정은 점차 분리되고 간소화되어 한낱 잠자는 곳이 되었으며, 휴일에 가정에서 푹 쉬지 못하고 어딘가로 뛰쳐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무(노동) 또한 극도로 분업화되고 전문화되어 간다. 이렇게 전문화 된다는 것은 능률 향상에 좋으나 개인 활동에서는 무척 단조롭고, 그러면서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강요하게 되어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긴장을 풀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분업으로 능률화됨에 따라 여가가 많이 생겨 이 여가를 적절하게 이용해 긴장감을 풀어 주는 레크레이션의 필요성은 증대해 간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가 늘어남에 따라 머리가 비상한 자본가들은 여러 가지 레크레이션 기업을 만들어 매스콤을 동원해 선전을 활발하게 전개시킨다. 이런 과정 속에서 사람에게 가장 재미있고 흥미 끄는 변동 비율 스케줄의 도박성 오락도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도박성 오락이 유행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여가를 재미있게 지낸다는 효과는 크지만, 그것에 지불하는 대가는 너무나 엄청나게 큰 손해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경제적 손실은 말할 것도 없고, 재미있는 도박에 열중해 도박만을 일삼게 되면 다른 -착실한- 일은 시시해서 못하는 버릇을 들이게 되니 그야말로 패가망신하는 군상들만이 늘어날 것이다. 커다란 사회 문제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면 도박적 오락에 빠져 버리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책은 무엇일까. 심리학적 입장에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첫째,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현실 생활에 만족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도박의 소지를 미연에 봉쇄해야 한다. 둘째, 건전하고도 재미있는 오락을 사회적으로 육성시켜 사람들이 여가를 적절하게 즐기며 이용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개개인들 각자가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셋째, 가정 생활에 애착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정에서 단란한 분위기 속에 생활하고 가족과 같이 여가를 선용하는 기풍을 조성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1963 년 12 월" 능률적 기억법 복잡한 현대 문명은 우리에게 많은 지식의 기억을 요구한다. 그러나 시간과 능력에는 한정이 있으니 무한정하고 많은 지식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가장 필요한 것만을 골라서 쉽게 빨리 기억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한정된 시간과 노력으로 어떻게 하면 필요한 지식을 능률적으로 기억할 수 있을까. 능률적인 기억법이라고 해도 무슨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 능률적인 기억법이라고 해도 무슨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 능률적인 기억법이라고 해도 무슨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 능률적인 기억법은 곧 능률적인 학습법이다. 잘 학습한 것만이 오랜 기억으로 남기 때문이다. 이제 능률적인 학습법에 의거해 기억을 잘할 수 있는 몇 가지 요령을 적어 본다. 첫째, 왕성한 의욕을 가지고 배운 것은 잘 기억된다. 근본적으로 의욕이 학습을 가능하게 한다. 강한 의욕에서 빠르고 완전하게 학습한 것은 잊혀지지 않고 오래 기억된다. 강한 의욕은 흥미를 북돋아 주고 또 흥미가 있을수록 학습에 더욱더 열중하게 되므로 빠르고 확실하게 머리 속에 새겨져 기억에 오래 남는다. 둘째, 뚜렷한 심상으로 형성된 바를 학습한 것은 잘 기억된다. 어떠한 내용이든 그것이 지니는 특징들을 잡아 그들을 간단한 도식으로 논리화,


시각화하여 머리에 아로새길 때 그 심상은 잊혀지지 않는다. 학습 대상이 논리적이고 의미가 있을 때, 또는 전체를 조직화하고 도식화할 때 학습이 잘 되기 때문이다. 시청각 교육에서 영화가 효과 있다는 것도 이것이 도식화, 시각화의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셋째, 이미 학습된 확고한 사실들과 연관지어 배우면 잘 기억된다. 어떠한 분야의 대가는 자기 분야의 저작을 간단히 통독하기만 해도 그것을 완전하게 파악하여 오래 기억하지만 낯선 분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불과 20 분 동안에 200 개의 숫자로 된 계열을 완전히 암송해 내는 특출한 사람의 비법의 예에서 보면, 몇 개의 숫자 음을 자기가 자란 고향의 정경으로 전환시켜서 외운다는 것이다. 잘 모르는 외국어의 경우에도 자기가 익숙한 광경으로 그 단어를 음역화 하여 쉽사리 암기하는 예도 있다. 넷째, 리듬을 붙여 학습하면 잘 기억된다. 노래의 가사가 쉽사리 암기되고, 입학 시험 준비에 바쁜 고등학생들이 많은 학과 내용을 거의 다 기억해 내는 것은 그들이 리듬이 붙을 정도로 반복해서 기억한 덕분이라고 본다. 다섯째, 같은 시간에 학습하더라도 연속적으로 한번 학습한 것보다 나누어 여러 번 학습한 것이 더 잘 기억된다. 이른바 집중 학습과 분산 학습의 효과적 차이를 말한다. 특히 내용이 어렵거나 각 부분이 알쏭달쏭한 것은 분산 학습이 효과가 있다. 전후해서 배운 것들이 서로 억제 작용하는 것을 없애기 위해 휴식은 유효 적절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학습 후의 휴식은 망각을 줄일 수 있다. 특히 학습 후 바로 수면을 취하면 배운 것의 망각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망각을 "배운 후 바로 다른 것을 배움으로써 소급적으로 방해받아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괴상한(?) 역설이 참된 뜻을 갖는다. 수영은 겨울에 학습되고, 스케이트는 여름에 습득된다. 여섯째, 되는 대로 배워 가는 것보다 자주 암송하며 배우는 것이 기억을 돕는다. 암송은 학습을 도울 뿐만 아니라 기억을 오래 유지시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을 익히는 데는 만날 때마다 이름을 외우는 것이 좋다고 한다. 만나서 인사할 때 그저 "안녕하십니까?"라고 하지 말고, "김 00 씨 안녕하십니까?"로 버릇들이면 이름을 더 잘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번번이 이름을 붙여 가며 인사하는 것이 일종의 암송 역할을 한다. 일곱째, 내용이 긴 것일수록 먼저 전체를 개관하고 그 다음에 세부를 학습하는 것이 이해가 빠르고 기억도 잘된다. 전체 학습법과 부분 학습법으로 단계를 나누어 학습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이는 전체의 도식을 파악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세부를 배우는 것이 조직화, 도식화를 돕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독서법도 통독과 정독으로 단계화하는 것이라든지, 친절한 저자가 시작이나 끝부분에 개요를 붙여 주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기억술에도 왕도는 없다. 빨리 완전하게 학습할 때, 그 내용은 오래 기억된다. "1961 년 12 월" 자살 자살의 동기를 살펴보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가지각색이다.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하찮은 일로 자살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환경 조건이 꼭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누구나 그의 자살을 수긍하는 유형도 있다. 미워하는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일부러 죽는 경우, 원한에 사무친 상대방을 죽이려다 반대로 자기가 죽는 경우, 끝끝내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자살이라는 형식을 취하는 경우, 죽음을 최고의 황홀경으로 찬미하면서 죽어 가는 경우 등등 실로 백인백태라 하겠다. 그러면 이러한 여러 유형의 자살에 공통되는 요인은 무엇일까. 먼저 자살하려는 중년의 미혼녀의 사례를 들어가면서 자살하려는 마음의 경로를 보기로 하자. 그녀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직업 여성으로서 30 여 년 간 어머니를 모시며 두 남동생을 길러 오던 갸륵한 여인이다. 그러나 동생들은 싹수있어 보이지 않고 살아갈수록 경제적 부담은 가중된다. 설상가상으로 부양하는 식솔들은 동정은커녕 원망만 하는지라 그녀는 완전히 삶의 의욕을 상실한다. 그녀가 자살을 결심한 네댓 달 전의 일이다. 알콜 중독으로 치료 중이던 동생이 병원을 뛰쳐나와 술집으로 싸돌아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하룻밤을 뜬눈으로 밝혔다. 그후 얼마 안 가서 다음 동생이 장사한답시고 누이의 돈을 가져다 툭 털어먹고는 또 돈을 달라고 졸라댔다. 하는 수 없이 돈을 떼이고 나서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공연한 흥분과 초조감으로 밤마다 한두 시간 잘까말까 하는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가족들은 염치없게도 맨날 호의호식할 생각만 하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때때로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 차라리 죽어 버려 저희들끼리 아무렇게나 살게 내버려 두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차마 죽지는 못하고, 그럴 때마다 죽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한 자기 자신을 꾸짖곤 했다. 두어 달 후에 동생이 사업에 실패했다며 돈을 얻으러 왔다. 그녀는 가족들이 돈을 주라고 성화같이 조르는 통에 하는 수 없이 돈을 주었다. 이때부터 그녀는 가슴이 뛰고 변비가 심해졌으며, 불면증은 물론이요 공연히 슬퍼져 활기 잃고 세상이 다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상 모든 것이 싫어져 강에 투신하려고 다리를 몇 번이나 찾아갔으나, 그때마다 용기가 없어 다시 돌아오곤 하였다. 그 상태가 너무나 괴로워서 단골 의사에게 증세와 심경을 토로하였더니 의사는 죽으려고 했다면 당신도 동생들과 똑같이 못난 사람이 아니냐며 바로 입원할 것을 권하였다고 한다. 이 의사의 말을 듣고 자기멸시, 자기비난의 말투만 중얼거리다가 그녀는 불현듯 꼭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면서 가스 자살을 기도했다. 그러다 결국 가족들에게 발견되어 입원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울증 환자의 자살 미수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자살의 심리적 기제를 잘 보여주는 예다. 여기에는 경제적인 위협이 주는 불안이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동생들을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과 그 동생들이 원수같이 미워져서 멀리하려는 증오심과의 상호 갈등도 있을 것이며, 그리고 미혼으로 늙어 가면서 아마도 젊은 시절에 있었을 애정 사건에 관한 갈등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조건들로 미루어 이 여자에게는 심각한 불안이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녀는 이 불안에서 도피하려고 때때로 자살을 염두에 두나, 그런 생각 자체가 죄악감을 일으켜 불안을 더욱 조장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불안의 원천이 되는 복잡한 갈등들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의식하지도 못하면서 그저 이유 모를 불안 초조감만 느끼고, 가족들이 자기를


동정하지 않고 못살게 군다는 생각으로 심한 증오심만을 가족들에게 가졌으리라 보인다. 한편 자살을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용기 부족한 자기를 경멸하고 비난하는 경향도 있다고 보인다. 그러는 중에 의사의 말로 인해 자기멸시는 확고한 근거를 가지고 강화되었을 것이다. 이때까지 동생이나 가족들에게 가지고 있던 강한 증오심과 공격적 성향은 사회적 규제로 억압되어 왔는데, 자기도 동생들과 똑같이 하찮고 못난 존재라는 자기멸시감이 생겨 동생들에게 향했던 공격적 성향이 자기에게로 향했다고 해석된다. 요컨대 자살의 심리적 기제로 중요한 것은 자살의 소지를 만들어 주는 불안 상태다. 실패를 거듭하고 격심한 갈등을 겪는다든가 곤경에 빠지게 되면, 불안은 고조되어 열등감, 고독감, 무감동 내지 자기 중심적인 협소하고 우둔한 지능 등이 증후로 나타난다. 이같은 심리적 상태가 자살 경향을 조성하고, 그 다음에 적당한 계기로 직접적 동기를 얻어 죽게 되는 수가 많다. 실연으로 고민하고 얼이 빠져 있다가 자신이 지지하던 대통령 후보의 급사에 낙심하고 죽는 것은 그럴 듯한 구실을 얻어 죽는 것이다. 그밖에 자살을 실행하게 하는 데 두 요인이 작용한다. 공격성과 도피성이 그것이다. 어떤 갈등이나 불만을 일으키는 사람에게 불같은 공격성향이 있으나, 억제하는 힘 때문에 원래의 대상은 공격하지 못하고 이것이 자기에게로 향하게 되는 경우다. 타인 살해 경향이 대개는 자살로 반전되곤 한다. 실연 끝에 애인을 죽이고 자신도 죽거나 자기만 죽는 것이 이런 경우다. 공격성은 자살 경향에 불을 지르는 요인이라 볼 수 있다. 불안 상태에 있으면 괴로운 상태로부터 빠져나가는 방법은 무엇이나 좋게 생각되고, 불안 상태 외의 다른 모든 것은 평화스럽고 즐거운 상태로 보인다. 여기에 불안 도피로서의 죽음은 미화되고 매력을 띠게 된다. 공격성이 뒤에서 밀고 도피성이 앞에서 잡아당겨 자살은 유인력을 가지고 실행된다. 지나친 불안이 사람을 우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얽매인 쇠사슬을 끊으려고 몸부림치다 못해 자기 생명을 스스로 끊는 인간의 우둔함이여! "1960 년 1 월" 아내를 잃은 한 강사의 죽음 젊은 대학 강사가 병으로 죽은 아내의 뒤를 따라 어린 남매를 두고 음독 자살했다. 그의 자살 행위에 대해 잘잘못을 따져 보기에 앞서 죽게 된 원인을 한번 생각해 보자. 그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외롭게 사랑도 모르며 자랐다. 그는 아내를 맞아 사랑을 나눔으로써 비로소 인생의 보람을 맛보고 행복을 누렸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사랑을 잃고 절망에 빠져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 신문들의 공통된 보도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것을 잃고는 하루도 더 살 수 없어 모든 것을 다 버리고까지 죽음을 택하게 되는 것일까. 무릇 사람은 의지하지 않고는 한 시간도 견딜 수 없는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러니 참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는 존재다. 낳아서 몇 주일만 되면 벌써 의지할 어머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끈질기게 매달린다. 어머니에게 달라붙어야 안전감을 지닌다. 그러지 못하며 그는 불안스러워 못 견딘다. '고독'이라는 말이 이 상태를 표현한다.


물론 달라붙는다는 것은 직접적인 신체적 접촉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상징인 것을 통해서도 접촉을 유지할 수 있다. 이 강사가 미국에 가서 공부하면서 몇 해를 두고 서신으로 그 아내와 접하며 언제나 행복해 했으니 말이다. 달라붙음으로써 사람들은 무엇을 얻는 것일까. 말할 것도 없이 '사랑'을 받는다. 이것은 안정감이다. 든든함이다. 따라서 불안한 사람일수록 사랑을 얻자는 욕구는 더욱 강하게 되며, 그것을 얻는 것에 실패했을 때는 파탄도 더욱 심하다. 어려서부터의 사랑의 욕구를 갖게 하고, 하루아침에 사랑을 잃었다는 절망감 속에서 그를 죽음으로 도피하게 했다. 죽으면 아내와 영원히 같이 있으리라는 환상으로 죽음을 미화시켜 이를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예를 통해서도 어린이에게는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사람들이 행복을 목표로 살게끔 되어 있는 국가에서는 모든 어린이가 풍부한 사랑 속에서 자라날 권리를 갖는다고 본다. 어릴 때 외부로부터 사랑이라는 이 소중한 양식을 흡족하게 섭취해야만이 성장 후에 이 양식을 스스로 나누어주며 살아갈 수 있다. 아마도 이상적인 성인의 자세는 되도록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홀로 서며, 더 나아가서는 남을 도와 가며 사는 데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사랑을 잃고 죽은 젊은 강사의 비극의 원인은 사랑을 받았어야 할 어린 시절에 사랑을 받지 못해 성인이 되어서까지 그것을 받으려고만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1961 년 9 월" 사랑의 메카니즘 사랑이란 접근하려는 경향성이다. 부산에 있는 님을 사랑해 마지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부산으로 가 님과 함께 있으려 할 것이요, 부산으로부터 님을 데려다 같이 있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할 것이다. 같은 도시에 있으며 더욱 가깝게 이웃하여 매일같이 만났으면 하고, 또 같이 이웃해 살면 더욱더 가깝게 한 집에서 살았으면 할 것이며, 게다가 한 집에 사는 것도 부족해 한 방에서 살을 맞대고 지내기를 원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란 끊임없이 접근하려는 경향성이다. 사랑을 접근 경향성이라 했지만, 사람은 아무 것에나 접근 경향성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접근해서 자기가 쾌 정서(쾌감)를 얻을 수 있는 대상에게만 접근하려고 한다. 안정감, 조화감, 쾌감, 긴장 해소 등을 느끼게 하는 것에만 접근한다. 갓난 아이는 어머니 손에 있음으로써 모든 긴장이 사라지고 즐거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계속 달라붙는다. 독립된 생활을 하는 어른일지라도 자녀와 같이 사는 데에서 아기자기한 재미뿐 아니라 든든한 마음마저 느끼게 된다. 그러니 부모들은 저절로 자녀들을 사랑해 마지않게 된다. 양로원에서 외롭게 여생을 보내는 할아버지가 화초를 매만지고 바라봄으로써 쓸쓸함을 잊고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다면, 그 할아버지는 화초를 가까이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란 직접적인 신체적 접촉에 의한-관능적-쾌감을 얻는 것만으로 사랑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사랑하는 아들을 만리 타향에 보내 놓고도 그 아들과 항상 같이 있는 기분으로 마음 든든하게 즐거워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순간적이긴 하나 현실의 격심한 고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영구적인 안락을 보장한다는 믿음 때문에 고행 수업에 생명을 바치는 승려들이


있다. 이처럼 인간은 상징적 접근을 통해 상징적 쾌락을 추구하는 사랑을 가진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사랑이란 인간이 연출하는 행동의 일종이며, 모든 행동이 동기를 갖는다면 사랑도 어떤 동기에서 유발되어 그 동기의 충족으로 종결짓는 행동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행동의 동기는 무엇일까. 무릇 인간은 생물체이기 때문에 생물학적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자연 환경 속에서 각자가 이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살아가기란 그리 쉬운 노릇이 아니다. 인간은 이 바람(시련) 많은 자연 속에서 기본적인 욕구 충족을 보장하기 위해 집단 생활을 시작하였고, 이 집단 생활은 복잡하고도 까다로운 문화적 생활로 발전되었다. 이렇듯 기본적 욕구를 적절하게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이건만, 이 사회 생활이라는 게 복잡하고 까다롭기 짝이 없어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며 욕구 충족은커녕 파멸의 구렁이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사회 속에서도 역시 기본적 욕구 충족을 위협하는 불안과 공포는 그대로 존속한다. 여기서 사회는 그 안에 제 2 차적 욕구를 형성시켜, 이 2 차적 욕구를 충족시키면 기본적 욕구가 더욱 쉽게 충족되게끔 유도한다. 이들 2 차적 욕구를 "사회적 욕구"니 "인격적 욕구"니 하고 부른다. 이러한 사회적 욕구들 중 불안한 사회 속에서 안정감을 얻으려는 욕구가 어려서부터 생겨난다. 이 욕구로 말미암아 어려서는 어머니에게 매달려 사랑 받게 되며, 커서는 모진 세상을 같이 헤쳐 나갈 적절한 동반자를 구하게 되고, 늙어서는 이 욕구 충족을 자녀들로부터 구하면서 산다. 또 동무와는 우애를 돈독히 하고 동호 집단을 꾸려 친목을 도모하게 된다. 실로 사랑이란 이처럼 안정감과 이에 수반되는 쾌감, 환희, 상쾌감 따위를 얻기 위해 상대편에게 적용하는 반응에 지나지 않는다. 부모를 사랑하고 아들딸을 사랑하고 동무를 사랑하며 제자를 사랑하고 부하를 사랑하는 것, 그 어느 하나 안정감과 이에 수반되는 쾌감을 얻으려는 욕구의 발로가 아닌 것은 없다. 안정감을 얻으려는 이러한 욕구 즉 사랑 받겠다는 욕구는 생물적인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부차적으로 생긴 것이긴 하지만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부차적으로 생긴 것이긴 하지만 기본적 욕구의 그 어느 것보다도 강하게 나타나는 수가 있다. 거리의 부랑아를 모아다 고아원에 수용하면 이들이 야밤 도주하여 다시금 거리의 거지 집단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허다하다. 고아원에서는 의식주의 모든 점에서 거지 생활보다 못할 것이 없고 활동의 자유가 그다지 구속되는 것도 아니건만 그들은 싫다고 빠져나간다. 비참하기 짝이 없는 거지 생활일지라도 외적인 위협에서 이들을 보호(?)해 주는 왕초와의 의리가 있다. 다시 말해 왕초와의 사랑이 있다. 이 안정감을 얻기 위해 그들은 비참한 거지 생활도 오히려 달게 받아들인다. 이성에 대한 사랑에게는 그 강도가 더욱 강렬하다. 여기에는 단순히 안정감을 얻으려는 욕구, 사랑을 얻으려는 욕구뿐만 아니라 기본적 욕구인 성욕이 겹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욕이 생물적인 기본적 욕구라고 해서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욕구라는 의미는 아니다. 성욕을 충족시키지 못해 저절로 생명을 잃게 된 사람의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욕이 다른 욕구에 비해 강렬한 것은 아마도 사회가 성적 욕구 충족에 많은 억압과 제한을 가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성적 욕구는 그동안 억눌려 있던 상태에서 일단 출구가 마련되기만 하며, 그 어느 욕구보다도 강렬하게 된다. 이 강렬한 욕구는 그것이 조성하는 긴장감을 해소하며, 아울러 안정 욕구 충족의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맹위를 떨친다. 더욱이 사회적 제한의 틈바구니에서 간신히 욕구 충족을 달성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므로 이성애는 심적 갈등의 해결이라는 양상을 갖게 되어 불안, 초조, 긴장, 고민 등을 맛보고서야 충족감이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연애를 괴로운 열병에 비유하기도 한다. 누군가 "사랑은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라고 했다. 지당한 말이다. 사람은 사랑하는 이로부터 생명의 양식을 빼앗는다. 생명의 양식을 빼앗는다고 해서 물이나 밥 또는 돈 따위를 탈취하는 것은 아니다. 성적 충족을 뜻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정신적이고 고상하며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한 양식을 말한다. 이를테면 안정감, 사랑, 희열, 즐거움이라고나 할까. 사랑하는 사람은 애인을 바라보기만 해도 즐겁고 푸근하고 든든하다. 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행복을 구가하고 사는 맛을 알게 된다. 사람은 사랑함으로써 이같은 생명의 양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아낌없이 사랑한다. 우리는 부모님에게서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을 얻게 된다. 안정감이라 할까, 훈훈함이라고 할까, 아니 든든함이라 할까. 아내를 사랑하고 애인을 사랑함에도 마찬가지다. 담담함이라고 해도 좋고, 뛰노는 청색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며, 흔한 말로 행복이라 한들 어떠랴. 이렇게 볼 때 사랑하면서 빼앗는 것은 참으로 생명의 영양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인간의 인간다움을 길러 주는 참된 양식이다. 사랑은 "어떤 욕구로 인해 유발되는 것이며, 충족을 줄 것이 기대되는 대상에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며,"자기 굴복의 느낌"이라고 한 사람이 있다. 사랑은 확실히 의식적으로 자기 희생적이며, 자기 극복을 느끼게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강렬한 사랑일수록 이러한 자기 희생감은 커지게 마련이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 기만일는지도 모른다. 남을 사랑하는 자기 희생으로 이기적인 사람을 가장하여 위안을 삼는 것은 문화적인 자기 미화 작용이라고 본다. 사랑의 이기적 요소와 애타적 요소를 말하며 사랑을 거론하는 데는 목사님들이 능숙하다. 그들은 사랑에 두 가지가 있노라고 외친다. 세속적 사랑 즉 인간애가 그 하나요, 신적 차원의 사랑 즉 신에 대한 사랑이 또 하나라고 한다. 그들은 전자를 이기적이라고 하며, 후자를 자기 희생적, 비이기적이라고 한다. 인간은 피조물이고 제한된 존재이므로 부족한 것이나 요구되는 것을 항시 구하는 존재로서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이기적으로 쾌락을 얻으려는 행동으로 나타날 때, 이는 악이요 이른바 세속적 사랑이다. 그러나 구하는 것이 최적의 생명의 양식인 신의 사랑을 구하는 것일 때, 이것이 선이요 이른바 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한다. 이 말에 의하며 신에 대한 사랑은 신의 사랑을 예측하며 기대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은총(신의 사랑)이 충만하게 강림하는데 목적을 둔다. 이러하나 신의 은총을 받기 위해 신이 정해 놓았다는 법이나 의식을 열심히 이해하게 되고, 이는 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된다. 이렇게 보면 신에 대한 사랑 역시 이기적 요소가 거의 전부이다. 물론 신으로부터 빼앗아 오는 사랑의 댓가가 정신적으로 고귀한 것임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생명에 귀중한 거름이 되고 양식이 되는 것을 얻기 위해 신을 사랑하는 인간의 이기적 현명성을 말한다.


고귀한 생명의 양식을 받기 위해 사랑하려면 스스로도 그와 같은 양식을 상대에게 제공해 주어야 한다. 말하자면 서로 주고 받음이다. 어린 아이는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미소짓고 손벌리며 품에 파고든다. 얼굴을 비벼 대고 젖꼭지를 만지작거리면서 사랑의 표시를 한다. 이러한 행동 속에서 귀여운 표정, 보드라운 감촉, 움터오르는 새싹의 희망, 그리고 괴로운 현실에서 구출해 주는 소망을 얻게 되니 어머니로서 어찌 젖을 주지 않고 포옹하지 않겠는가. 아이는 아이대로 모든 허물을 덮어 주고 돌보아 주는 부모에게 어찌 가까이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사랑을 주고 받는 것으로 볼 때 사랑을 수단으로 해서 자기의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점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 사랑으로 상호 유대는 굳어진다. 원래 이기적이며 고독한 존재인 인간은 생명의 양식을 얻기 위해 주고 받는 사랑을 통해서 서로 소통하고 융합한다. 아마도 서로의-생명의-양식을 얻기 위한 끊임없는 접근으로 보람된 삶을 이어가는 것이 참된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1961 년 10 월" 고독 한자로 '고'는 어버이 없는 어린이를 뜻하고,'독'은 자식 없는 늙은이를 뜻한다. 이 두 글자를 연결하여 '고독'이라 할 때 한자의 뜻으로는 외롭고 쓸쓸하고 의탁할 데가 없는 상태나 그러한 인물을 지칭한다. 그러나 오늘날 일반적으로 쓰이는 고독이란 한자 뜻 그래도 의탁할 데가 없고 외롭고 불안정한 상태를 표현하는 말 같지는 않다. 오히려 조용하게 혼자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좋아서 짐짓 이러한 상태를 택하는 것, 말하자면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형성하는 외롭고 고요한 독립 상태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불행하게도 자신이 의지할 ��� 없는 무능력자가 되었다면, 스스로 그 외롭고 불안정한 심정을 좋아라 하고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더군다나 그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친척이나 친구를 찾아 가까이 지내려 애쓸 것이며, 이성에게 의지하려는 노력도 많이 할 것이다. 게다가 이 경우 심한 불안정감 때문에 애정 욕구가 강하게 나타나 정상인보다 훨씬 심하게 대인 접촉을 갈구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일부러 그런 상태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시인이나 소설가 등의 경우 스스로 그 고독감에 묻혀 끊임없는 갈구의 상태에 젖어 있고자 하며, 그밖에 많은 사람들이 고독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그리움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이 고독이라는 상태가 인간의 행동 양식 중에서 어떠한 성격을 지니는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어떤 목표를 세우고 백방으로 노력하다 결국 실패할 때, 정서적 긴장이 심해져 어쩔 줄 모르고 불안해 하거나 괴로워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를 좌절감이니 욕구불만 상태니 하고 말한다. 이 상태는 긴장과 불안으로 괴로움을 주기 때문에 그대로 가만히 견뎌 나갈 수 없다. 이 욕구불만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식의 행동 기제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첫째, 좌절된 목표 달성을 기어코 성취시키기 위해 현실 상황을 재검토하고 다시금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는 방향이 나타난다. 둘째, 본래의 목표는 단념하고 다른 목표를 설정하여 성취시킴으로써 자아의 열등화를 막고 무언가


모르게 끓어오르는 직성을 풀어 보려고 하는 이른바 방어기제가 나타난다. 방어 기제로는 대리 충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제가 생각된다. 셋째, 불안스럽고 괴로운 불만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패할 상황으로부터 후퇴하거나 아예 그런 상황으로는 들어가지도 않으려는 이른바 도피 기제가 나타난다. 대인 관계 속에서의 실패가 두려워 꽁무니 빼거나 사람과 만나기를 꺼리는 은둔 경향, 실패 경험을 갖지 않으려고 그러한 상황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려 하거나 수줍음을 드러내는 거부 경향 등이 이에 속한다. 아울러 외로이 혼자 생각하고 다른 사람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으로부터 한 발 물러나 있는 것, 즉 고독을 즐기는 경향도 생각할 수 있다. 욕구 불만에 대응하는 이러한 여러 가지 행동 양식 중 도피 행동, 특히 자기 세계에 도피해 고독을 즐기는 경향은 어떤 경우에 많이 나타나는 것일까. 도피 행동을 많이 한다거나, 고독을 즐겨 늘 혼자 있고 혼자 생각하며 혼자 행동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것도 일종의 습관화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우선 이런 습관화의 전형적인 요인을 생각해 보자. 첫째, 오랫동안 병으로 누어만 지냈다든가, 신체가 허약해 사람들 틈에 한몫 끼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며 자랐다든가, 부모가 지나치게 엄격하여 늘 질책, 위협, 체벌을 받으며 전전긍긍하는 생활 속에서 자라났다면, 대인 접촉이 두렵고 힘들어 자연히 도피적인 -또는 고독을 즐기는- 경향이 형성되게 마련이다. 둘째, 목표가 너무 허황하게 설정되었거나 당면하는 일이 늘 분에 넘치게 어려운 것들이어서 실패만 거듭되는 경우인데, 이때는 대부분 사실 이상으로 스스로 열등하게 여긴다. 도피 기제는 이때 열등감을 피하는 방법으로 가장 쉽게 적용될 수 있는데, 그것이 성공되는 경우가 많으면 많을수록 일어나 대인 접촉에서 후퇴해 고독에 잠기기 일쑤다. 셋째, 생활 방식이나 정치 체제가 이러한 도피 경향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독재정치, 공포정치 체제하에서 국민은 개방적인 언동이나 솔직한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대인 관계를 갖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도피해 고독을 즐기는 것이 무난한 생활 방식이 된다. 이러한 도피 기제는 손쉽게 취할 수 있을 뿐더러 다른 사람에게 크게 폐를 끼칠 염려도 없다. 사람을 대할 때 수줍어하고 은둔적이 되므로 상대에게 안도감을 줄 수도 있으니 오히려 이런 태도를 선호하게 된다. 따라서 이같은 습성은 더욱더 조장하게 마련이다. 이제까지 도피 기제가 습성화되고 성격화되는 몇 가지 요인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만, 아울러 이들이 현실로부터 도피해서 외롭고 쓸쓸하게 가만히만 있지 않는다. 대인 접촉이나 관심을 끊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혼자 질문하고 혼자 대답하는 사색을 하거나, 가공적으로 활동을 전개시켜 만족하고 슬퍼하며 즐기기도 한다. 그러므로 도피하여 홀로 있다고 해도 단조로움과 권태감을 느끼며 사는 것이 아니라 표상의 세계에서나마 목표를 달성하고 정서적 충족을 얻을 수 있으니 즐겁기 한량없다. 이런 점이 짐짓 고독에 잠기려는 경향의 적극적인 요인이 된다. 고독을 즐기는 사람은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만을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 활동에서도 현실과 관계를 끊으려고 한다. 이런 경우 인정이나 감정적인 흥분은 물론 가벼운 기분일지라도 타인과 나누질 못한다. 냉담하고 초월적인 태도로 제 일이든 남의 일이든 외면하며 모든 일을 무감동적으로 대한다.


고독한 사람은 쌀쌀하다는 것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도피 속에서의 공상에도 여러 가지 있다. 우발적이며 그때 그때마다 내용이 다르고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관성 있고 짜임새 있는-망상증 환자들이 하는-체계적 공상도 있다. 현실 세계와는 완전히 관계를 끊고 자기 세계에서 공상 활동만으로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자폐증 환자도 있다. 공상을 스스로 창조해 가며 즐기는 수도 있지만, 이미 타인이 꾸며 놓은 공상적인 이야기를 좇아가며 즐기는 수도 있다. 소설, 연극, 영화, 만화 또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의 드라마 등을 보면서 주인공과 자기를 동일시 하고 즐긴다. 말하자면 남의 공상을 빌려 즐긴다고 해서 "빌려 온 공상"이라고 한다. 또한 공상 활동의 소재를 빌려주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도피문학이라는 것까지 생겨나 이러한 공상을 부채질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고독을 즐기는 것을 도피 기제로 보고 비교적 불건전한 측면을 다루어 보았다. 그러나 고독이 비록 도피 기제라 하더라도 그것이 적절히 구사되면, 그것이 건전하며 적극적인 효용을 나타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제 고독의 적극적인 효용의 측면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대인 관계 활동이나 현실에 관심 두지 않고 홀로 있게 될 때는 흔히 혼자서 조용히 즐기는 활동을 하게 된다. 주로 독서나 조용히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제작 활동에 몰두한다. 이와 같은 활동은 창조적인 공헌뿐만 아니라 지식의 확대와 사색을 통한 문제 해결을 가져올 수도 있으며, 다분히 지적 발달에 공헌하기도 한다. 고독해 하는 어린이에게서 지적 발달이 잘 이루어진다는 연구도 있으니 말이다. 고독은 지성화의 경향을 드러내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고독은 일면 욕구 불만으로 도피 기제를 나타내면서 정서적으로도 무감동하게 되고 초월적 입장에 서서 냉담해지게 한다. 이같이 정서적 관여를 단절하는 대신 지적 입장에 더욱 확고하게 서서 대응하려고 애쓴다. 즉 지성화 과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슬픔을 참으려고 감정적으로는 둔감하게 -지적 관점에서- 이 사태를 맞이하려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어머니는 참된 인생을 살고 가셨다."라든가 "하나님의 자애로운 손길의 안내를 받고 고통 없이 돌아가셨다"라고 하며 슬픔을 감소시키려 한다. 말하자면 지적 과정을 강조해 정서 활동을 둔화시킨다. 이같은 지성화는 고독을 즐기는 과정에서 강조되어 나타나 자기 객관화나 객관적 인식을 돕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지성화에는 냉소적인 태도가 뒤따르기도 한다. 냉소주의란 자기를 객관화시켜 웃어대는 경향을 말한다. 자기의 이상이나 현상화에 자아를 덜 관여시키고 남의 일 보듯 스스로들 비웃고 관망하는 태도이다. 이렇듯 자기를 객관화시키고 웃어대는 것에서 올바른 자기 평가를 얻게 되는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경우 도덕 관념이나 양심까지도 상대적으로 보게 되어 죄악감 같은 것을 덜 심각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고독은 또 지나친 전진에 대한 피이드백 역할을 하기도 한다. 너무 목표만 바라보고 매진하다가 실패했을 때 외로이 자기의 관계를 가다듬고 새로운 출발의 터전을 닦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또 일에 열중하다 잘 안되어 짜증과 피로를 느끼게 될 때 잠시 물러나 고독에 잠겨 반성과 전망, 새로운 출발의 계획에 잠기는 시간이 꼭 있어야만 하는 지도 모른다. 고독 속에 파묻혀 공상


-또는 그 와 비슷한- 활동으로 즐거움을 삼지 않고, 자아 반성에 잠긴다면, 이 고독은 인간의 내면적 성숙에 꼭 있어야 할 시간이라 하겠다. 이 경우 고독은 맹목적인 매진에 제동을 거는 좋은 작용을 한다. 친구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가져다주며 밤낮으로 어울려 놀던 어린 시절을 지나 청년기의 초가 되면 그렇게도 절친하게 놀던 친구들로부터 떨어져 외로이 혼자 생각하고 활동하는 시기가 온다. 어느 시기보다도 이 청년기의 초가 가장 외로운 시기라고도 한다. 또 이 시기는 자아가 확립되는 시기이다. 어려서는 관심도 없던 자신의 신체 모습을 타인과 비교해 보기도 하고, 자기의 능력, 입장 또는 앞으로의 사명에 대해서도 생각하며, 스스로의 본바탕이랄까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생각한다. 이를테면 자아 확립에 애쓰는 시기인데, 이는 이 시기의 고독한 심적 경향과 관련을 갖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고독하게 곰곰이 자기에 관해서 생각해 봄으로써 자아라는 것이 형성된다고 하겠다. 옛부터 참된 지도자라든가 완숙한 인격의 소유자들은 고독한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그들이 속인의 아첨에 염증 나서 그와 같은 고독을 가졌다기보다는, 높은 식견과 뚜렷한 사명 의식을 가지고 살자니 자연히 현실을 초월하여 고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독 속에 그대로 빠져 버려서는 안 되겠지만, 고독 속에서 잠시 휴식을 즐기고 또 그 안에서 자기를 가다듬고 현실에 대한 설계를 한다는 면에서 볼 때 참된 인생에는 고독이 뒤따르게 마련이 아닐까 싶다. "1967 년 11 월" 질투 남편이 술먹고 늦게 돌아오는 날이 많고 자기를 본체만체 한다든가 공연히 짜증내는 빈도가 많을 때, 아내는 일단 남편을 의심하게 된다. 수소문해서 알아보니 남편 사무실에 젊은 여인이 자주 전화하며 그 여인과 만나는 약속을 한다든가, 게다가 전화로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나누더라는 말을 듣는다고 하자. 이야말로 심상치 않다. 아내는 흥분하게 된다. 더욱 엄중하게 감시하고 젊은 여인의 정체를 밝혀 내려고 하며 혹시나 하고 장래를 근심하기도 한다. 남편에게는 그렇게 정성을 다해 돌보았는데도 몰라주나 서운해 하기도 하고, 갑자기 그 남편을 비롯해 세상이 모두 무서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남편 뒷바라지에 더욱 정성을 기울이며 예쁘게 보이려고도 한다. 때아닌 멋을 부리는가 하면 심지어 젊어 보이려고 지나치게 애띤 화장을 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남편의 관심을 다시 사겠다는 주의 획득적인 행동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젊은 여인의 정체를 알아내기라도 하면, 그녀에게 쫓아가서 그녀의 비도덕성을 비난하며 욕설을 퍼붓고 남편에게서 손을 떼게끔 할지도 모른다. 분풀이는 그 여인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차마 남편에게는 못하면서 애매한 식구들에게까지 공연히 짜증 부리며 들볶아 대고, 가구나 의복을 집어던진다든지 아예 집을 나가 버리는 수도 있다. 아내의 이와 같은 행동은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우선 자기의 장래가 걱정되고, 남편에게는 서운해 하며 가까이 하고 싶지도 않다고 느끼는 것 (남편에게서 도피하려는 것) 등은 소위 공표 정서라고 할 수 있다. 또 남편에게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화장에 신경 쓰며 남편의 주의를 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애정 정서로 볼 수 있다. 한편 문제의 젊은 여인과 싸움하고 식구들을 들볶고 가구를 파괴하는 등의 행동은 분노 정서의 표출이라 하겠다. 이렇게 보면 질투는 공토, 애정, 분노 세 정서의 복합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즉 오직 그이와 가까이 있어야만 마음이 편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데 -그리고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믿었는데-,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의 애정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질 때는 그런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피해 버리고 싶은 심정과 아울러 애정을 상실할 것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게 되고, 또 한편으로는 오히려 더욱 관심을 쏟는 애정적인 접근을 하게 된다. 게다가 경쟁자에게나 그 상황에 대해서는 맹렬히 분노를 터뜨린다. 이것을 다시 도식화해 보자. 남편에게는 애정과 공포 즉 접근 경향과 도피 경향이 동시에 작용하는 양향적 입장에 서게 되는데, 이는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갈등 상태이다. 경쟁 상대나 타인에 대해서는 분노를 느끼고 있으나, 이를 참고 상대에게 가까이하려니 괴롭기 그지 없는 상태라 아니할 수 없다. 정서적으로 안정성이 강하고 웬만한 자제력이 있지 않으면 극단적인 행동을 감행하기 일쑤인 흥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질투는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다. 사랑을 미덕으로 찬양한다면, 그 부산물인 질투도 미덕으로 높게 보아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이에 두고 누군가와 경쟁하게 될 때, 그를 물리치고 사랑하는 이를 자기 것으로 한다는 것이 정당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건전한 사고라 할 수 없으며, 이와 같은 상황도 그리 흔하지 않다. 오히려 그렇게 근심할 것조차 없는 사소한 접촉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질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본인의 성격상의 결함일 수도 있다. 즉 심한 열등감이나 성적 무능력과 부정한 사실 등 자기 스스로의 결함을 상대에게 투사시켜 상대와 타인 사이에 부정한 일이 있는 것처럼 본다. 사실 질투심이 강한 사람은 어려서부터 성장 과정이 순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근심 걱정을 많이 하는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거나 신경질과 변덕이 심한 부모 밑에서 일관성 없는 교육을 받으며 자란 경우, 그 아이는 어려서부터 늘 근심 많고 눈치보게 된다. 그리고 성격상 주의에 잘 적응하는 사람보다 적응하지 못하는 성격을 지닌 사람에게서 질투가 더 많다는 연구도 있다. 이렇게 보면 성숙한 성격을 지닌 사람에게서는 질투가 빈번하지도 않고, 또 표현도 거칠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이 정서적으로 애정이 없어 그런 것도 아니고, 사랑을 빼앗기게 되는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태 파악에 객관적이어서 위협을 느낄 것과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을 잘 식별하고, 그 사태에 대해서도 공연히 흥분만 해 일을 그르치기보다는 사려 깊은 안목으로 신중하게 대처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정서적인 자제력이 없는 사람일수록 질투가 많다. 자제력이 있는 사람은 적당하게 사태 파악을 한 후에 감정을 표출하므로 과격하게 흥분하지도 않고 사태에 적합하게 행동한다. 아마도 정서가 완전히 안정되어 있다면, 실제로 질투를 느껴야 할 위험 상황에서 공연한 질투로 흥분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객관적인 사태 판단에 따라 이성을 발휘하여 상대를 버리든가 탈취하는 식의 행동을 할 것이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자신감이 왕성하며 확고한 자아가 서 있는 성숙한 성격을 지닌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간절한 애정 욕구라든가 과격한 공격심과 불타는 분노 따위로 닥치는 대로 파괴하는 식의 행동은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지나친 질투심이란 성숙한 성격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속성이다. 애교스러운 질투는 권태로움에 활력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다 보면 자신의 못난 성격을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1967 년 12 월" 웃음의 본색 기분이 좋으면 개는 꼬리를 흔들고 사람은 턱을 흔든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나 동물은 만족스럽고 쾌적한 상태에 놓이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종의 흥분에 사로잡힌다. 이것은 에너지 과잉 유출로 인해 어떤 활동으로든지 이 에너지를 발산해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만족, 쾌감, 쾌적의 상태에 놓이면 남아도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 웃음으로써 과잉 에너지를 소모해 간신히 체내 균형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스펜서의 웃음 이론이지만, 그러면 반드시 좋아서 웃고 유쾌해서 웃는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만족스럽다기보다 하도 어이없어 웃기도 하고, 남들이 웃으니까 덩달아 웃어 보는 수도 있고, 너무나 괴로워서 웃는 수도 있다. 이렇게 웃음은 그 뿌리를 알기 힘든 괴이한 행동 양식이다. 그 원인이야 어떻든 간에 타인에게 주는 효과가 고정적이면 웃음은 일정한 신호로서의 의미라도 있다 하겠지만, 웃음이라고 다 좋은 효과를 주는 것만도 아니다. 웃을 때 얼굴을 흔들며 웃으니 망정이니, 웃는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다면 그 누구의 웃음에서나 다 좋은 인상을 받을 것 같지 않다. 시험삼아 웃는 얼굴을 찍은 사진을 보면, 특히 바싹 마른 얼굴의 웃는 사진을 보면, 그리 기쁨에 찬 모습만은 아니다. 사람을 가장 단순하게 웃길 수 있는 자극은 간지럼을 태우는 일이다. 간지럽힌다는 것은 서로 마음놓고 장난하면서 상대를 약간 골려 주는 식의 행동이다. 이때 간지러워 웃는다는 것은 그런 장난스러운 분위기에 가장 적합한 방어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웃으면서도 몸을 비꼬는 것으로 보아 -이렇게 몸을 비꼬는 행동을 상대방이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방어 행동이라고 볼 때- 간지럼으로 인해 웃는 것은 그 상황에서 장난스런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방편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극의 강도가 점차 강해지고 또 장난 기분이 적어지면, 이 방어 행동은 무서움이나 노여움의 반응 형태로 변해 버린다. 단순하고도 원시적인 형태의 웃음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어린이의 웃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린이의 웃음은 유쾌하고도 흥미 있는 상황에서 나타나는데, 특히 이것은 긴박하게 어떤 활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생명 유지에 관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 상황에서는 웃음이 나타나지 않는다. 냉혹한 현실로부터의 쫓김이 없거나 현실을 부정하는 여유 있는 관점에 서게 될 대 비로소 웃음이 나온다. 그러므로 웃음이란 본질적으로 현실 부정과 결부되는 행동이다. 웃음은 니힐리즘(허무주의)에서 솟아난다. 그러기에 참된 니힐리스트는 거울 앞에서 웃는 자기를 보고 더욱더 웃어댈 수 있는 사람이라고도 한다. 하여간 웃음은 현실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을 구출해 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만은 틀림없다. 현실을 부정하는 입장 즉 비현실적 태도란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 특성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많이 웃는다는 것은 미성숙의 표시일지도 모른다.


다 큰 어른이 웃는다는 것은 일시적이나마 미성숙한 어린 시절로 퇴행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웃는다는 것을 자궁 내에서의 태아 생활의 행복함을 동경하는 모습이라고 극언하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웃음이 퇴행이라 해도 흔히 생각되는 식의 병적 퇴행은 아니라고 본다. 웃음이라는 퇴행은 자아의 지배를 받으며 자아의 괴로움을 풀어 주되 자아를 왜곡시키지 않는다. 지극히 건전한 퇴행이라고 보아야 한다. 만족감을 느낄 때 많은 에너지가 남아돌아 그것을 발산하기 위해 웃는다고도 하지만, 어떤 난국에 처해 잔뜩 긴장되어 있을 때 그 긴장을 해소시키기 위한 직접적인 행동을 하지 못할 경우 그 대리 행동으로서 웃음을 보이기도 한다. 의사당에서 '죽일 놈 살릴 놈'하며 싸우고 나서 반대당 인사와 만나 손잡고 껄껄대는 것은 즐거워 우정을 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서 때려 엎을 수 없으니 독니를 감추며 '더욱 공격할 테니 그런 줄 알라'는 세력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아야 한다. 이를테면 파벌 싸움의 행동을 웃음으로 대치시켜 긴장을 해소시키는 것이다.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크나큰 슬픔 속에 그대로 빠져들지 않기 위해 이를 웃음으로써 대치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의 웃음은 즐거움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 고통에 대한 반응이다. 비단 옷으로 차려 입은 젊은 여인이 큰길 한복판 진흙 속에 자빠져 여러 사람 앞에서 창피한지도 모르고 웃는 것은 그야말로 자기 불행에 대한 최고의 적응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불행만이 아니라 타인의 불행을 슬퍼할 때도 웃는 수가 있다. 채플린은 말하기를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을 때 그들이 나를 진심으로 동정하고 있음을 본다. 사건이 지나치게 비극적이면 그들은 더욱더 재미나서 웃는다."고 했다. 공포와 불안에 싸여 어쩔 줄 모를 때 웃음으로 반응하는 수도 있다. 포탄이 퍼붓는 싸움터에서 동료들이 죽어 가는데 웃어대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또한 죽음을 눈앞에 둔 사형수가 우스개 소리하는 '교수대의 유머'도 이에 해당한다. 어떤 사형수에게 죽기 전에 할 말이 없느냐고 물으니 "꼭 한마디만 판사에게 전해 주시오. 무엇보다도 나에게 좋은 일을 하셨다고. 이것이 나에게 가장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니까."라고 웃더라는 것이다. 또 이런 예도 있다. 어뢰에 맞아 파선된 배의 선원이 표류하던 중 지나는 배를 향해 "여보 당신들도 나의 길을 같이 가려는 친구들인가."라고 농을 걸었다고 한다. 웃음은 성적인 외설에 대한 표현을 접했을 때도 나타난다. 터부시된 것에서 해방될 때 웃음이 있다. '어면순:조선 중종 때 송세림이 지은 음담 패설집'의 웃음이 이런 예다. 다음과 같은 예도 있다. 파업을 배반하고 일하는 어떤 젊은 노동자에게 중년의 여성 노동자가 "이놈의 개구멍받이 새끼(사생아)"라고 욕하니까 젊은 노동자가 이를 받아 말하기를 "어머니! 여기서 어머니를 처음 뵙게 되는 좋구려!"라고 농으로 넘기더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경우는 가지가지다. 한 단어가 여러 의미를 암시하는 것을 이용하는 경우, 말이나 행동들이 전체적으로 부조화와 불합리로 당당히(?) 자리잡는 경우, 또는 상식적으로 현실과 철저히(?) 유리된 행동들을 접하게 되는 경우에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또한 인간은 고도로 발달된 생명체라 새로운 상황에 독창적으로 적응해야 마땅한데도 여전히 우둔하게 습관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베르그송이 말했듯이 "생명체는 기계처럼 움직인다."고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이렇게 볼 때 웃음이란 자아를 지키는 방어적 행동이며, 자아를 모진 현실에


노출시키지 않게 하는 연막적 기능이라 하겠다. 웃음이란 역시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할 것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1960 년 1 월" 유머의 의미 우리 나라 사람들은 유머가 없다고 한탄하는 소리를 흔히 듣는다. 유머란 결국 남을 웃기고 스스로도 웃어 보는 것이지만, 여기서 유머가 없다고 말할 때는 단순히 이러한 웃음이 없다거나 적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우리의 웃음이 우아하지 못하다든가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주는, 재치 있으면서도 유순한 웃음이 부족하다는 뜻일 게다. 웃음이란 유쾌하고 흥미 있는 사태에서 나타나게 마련이다. 긴박한 사태나 문제 해결에 몰두해 있는 진지한 상황에서는 웃음이 있을 수 없다. 이제까지 예기하고 기대하던 것이 갑작스레 뒤집혀 긴장이 풀릴 때, 사뭇 우월했던 지위가 급격하게 하락되어 이 때문에 생긴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시킬 때, 당면한 사태가 조화스럽지 못하고 대조성이 심할 때, 웃음은 나타난다. 긴장에서 이완으로 급격하게 바뀔 때, 열등감에서 해방되어 잠시라도 사태를 객관시 하는 위치에 서게 될 때 역시 웃음은 터져 나온다. 이같은 웃음을 유의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재능(또는 태도나 작업 역량)이 유머다. 현실에 각박하게 쫓겨 도저히 웃을 수 없는 긴장 상태에서 웃고 웃기는 것이 유머다. 그러므로 각박한 현실을 부정 초월하게 하는 여유 있는 태도를 꾸며 주며 스스로도 그러한 태도를 취할 수 있을 때 유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웃음은 본질적으로 현실 부정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일시적으로나마 허무주의에 설 때 웃음이 쏟아진다고 한다. 이렇게 현실을 부정하는 입장 즉 비현실적 태도는 미숙한 사람들에게서 보이므로 웃음은 미숙한 어린 시절, 더 소급한다면 태내 생활의 최량 상태(가장 좋은 상태)로 퇴행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이것은 일시적으로나마 현실의 질곡에서 벗어나 안일한 어린 시절의 비현실적 상태로 돌아가 심각한 긴장을 피해 보는 것이다. 타인의 실패, 퇴락 등을 통해 자신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상승했을 때 우월감을 느끼면서 웃게 되는 말하자면 공격적인 유머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이같은 공격적인 유머도 웃고 웃기는 데는 별로 차이가 없겠지만, 남의 불행을 보고 웃으니 뒷맛이 개운치 못하고 오히려 불쾌감을 갖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다치지 않는 구수하고도 재치 있는 웃음이 참된 유머라 할 수 있다. 웃음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웃어댈 수 있는, 말하자면 현실을 초월하는 태도에서도 나올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따지고 보면 비현실적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태도라고도 할 수 있다. 어떤 사태에 당면하여 생명을 걸고 열중하고 있거나 진지하게 대하고 있을 때는 아무래도 자기 중심적이 되게 마련이다. 이럴 때 여유 있게 넓은 안목으로 자기 중심적 성향에서 벗어나 자기를 객관화시켜 가며 현실에 부딪치는 여유를 갖게 된다면 모든 것에 객관적으로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유머는 풍부한 교양과 세련된 인격에서만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아무리 심각하고 긴장된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스스로 웃을 수 있고


남에게도 웃음을 갖게 하는 여유 있는 태도와 습성에 더욱 젖어 들게 노력해 보는 것도 실없는 웃음거리는 아닐 성싶다."1971 년 4 월" 복종과 반항 어떤 조직이나 집단을 통솔하는 입장에서 볼 때, 구성원들의 지도자에게 이해심을 가지고 협조해 주는 것을 무엇보다도 바람직하게 생각하며,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반항하는 것을 가장 곤란하게 여긴다. 그리하여 구성원들을 어떻게든지 복종시켜 반항시켜 반항하지 못하게 하는, 독재적 지배도 목적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보고 흔히들 쓴다. 그러나 이같은 통솔 형식으로 곧 큰 효과를 거둘 것 같지만, 그 구성원들도 인간이라 복종하게만 한다고 해서 진심으로 복종하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복종하는 것 같아도 마음 속으로는 불만을 그대로 참고 있을 뿐, 실은-적극적으로 반항하지는 않더라도-수시로 반항하고픈 감정을 갖기 마련이다. 그래서 명령받는 것과 지시 받는 것만 하는 체하고 그 이상의 협조는 짐짓 하지 않는다. 일부러 잘못된 명령을 그대로 준수해서 일을 그르친다. 이는 복종이라기보다 오히려 소극적인 반항이라 볼 수 있다. 그리하여 통솔 형식을 지배적으로 독재적인 것과, 협조적이고 통정적인 것으로 나눈다. 그리고 지도자와 구성원 사이의 상호 이해와 협조에 의해 가능한 통정적 지도를 바람직한 것으로 권장한다. 이제 단체 안에서 통솔자와 구성원들이 나타내는 복종과 반항에 관한 심리학적 기초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따지고 보면 이들의 행동들은 모두 안전 욕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사람은 무엇보다 먹고 자고 위험을 피해 생명을 유지하는 생존 욕구에 의해 행동한다. 그런데 이러한 생존 욕구의 충족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고, 이들 생존 욕구가 계속적으로 충족 될 수 있는 안전성, 질서 또는 마음의 평온 등을 유지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이같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느 집단에건 소속되려고 하며, 어떤 집단이나 개인과 애정적 관계를 가지려고 한다. 또한 자기를 내세워 스스로의 특유성을 세상에 인식시켜 자기를 아무나 넘보지 못하게 한다. 요컨대 어떤 집단 속에서 그 집단과의 확고한 관계를 가짐으로써 안전감을 얻을 수도 있고, 그 집단 속의 어느 개인과의 애정 관계를 굳게 해서 안전감을 얻을 수도 있고, 혹은 그 집단 속에서 자기의 존재를 뚜렷하게 함으로써 보다 자유롭게 자기를 주장하면서 안정되게 살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솔자가 자기 주장적인 지배욕, 권력욕을 추구하는 것-통솔 받는-구성원들이 복종하여 안전감을 가지려고 하는 것, 반대로 이들이 복종하지 않고 반항해 자기를 내세우는 것 모두 이 안전 욕구로 이해할 수 있다. 프롬(미국의 정신분석 학자)은 "인간은 안전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복종하기도 하고 이들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가장 바람직한 방식은 사랑의 관계를 유지시키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자연에서 벗어나 이성과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 자연으로부터의 분리에서 오는 - 외로움과 불안, 무지, 무력감 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될 때 다른 사람들과의 결함을 추구하게 된다. 이 결합의 양식에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어떤 개인이나 집단, 제도 또는 신에게 스스로 종속됨으로써 세계와 하나가 되려는 것이 있다. 자기보다 더 큰 것의 부분이 되어 개별적 존재의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둘째, 남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권력을 쥠으로써 타인을 자기 자신의 일부가 되게 하고, 남을 자기 안에 종속시켜 자신이 개별적 존재에서 초월하려는 것이 있다. 즉 힘이나 권력으로 세계와 자기를 결합시키려는 방식이다. 이제 말한 종속과 지배는 모두 공생적 결합 방식인데, 여기서는 원래의 참된 자기 모습이나 자유를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 자유와 독립을 요구하는 내적 힘도 없고 자신감도 지니지 못하고 사는 방식이다. 그러나 세 번째의 결합 방식은 본래 자기의 완전한 모습과 개별성을 그대로 지니면서 자기와 세계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스스로의 자유와 독립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자유와 독립도 유지하면서 각자의 발전을 도모하게 하는 방식이다. 프롬은 이런 결합 형식이 바로 사랑이라고 주장한다. 이상적인 결합 방식인 사랑이 지니는 특질로서 프롬은 네 가지를 강조한다. 즉 사랑하는 상대를 돌보아 주는 노고 상대에게 느끼는 책임감과 존경심, 상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그것들이다. 노고란 상대의 발전과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수고를 집중시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랑과 노고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라고 본다. 책임감은 외부에서 부과된 의무와는 달리 상대의 문제가 바로 자기의 문제라고 느끼는 일이다. 이같은 책임을 느끼게 때문에 노고를 아끼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노고와 책임감만 있는 사람은 맹목적인 사랑밖에 안 되며, 지배욕, 소유욕의 종노릇 밖에 못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개별성, 특유성을 파악하여 있는 그대로의 그를 인정하는 지식과 존경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참된 사랑은 상대를 위해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는 그러한 대인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통솔자나 구성원(피통솔자) 모두가 이같은 사랑의 결합 양식을 추구할 때, 여기에 이상적인 지도와 협력이라는 건전한 관계가 성립되리라 본다. 단순히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통솔자나 집단에 종속되어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한 집단이나 통솔자를 아끼고 존중하며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노고를 다하는 그러한 복종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이상적인 복종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비해 상대방이나 구성원들이 기대하는 것과 반대되는 일을 한다거나 전혀 아무 일도 하지 않음으로써 타인의 지시를 거역하는 것은 거부증이나 반항이라고 본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거부증이든 반항이든 이는 자기 주장적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고, 자아 방어의 기제로도 볼 수 있으며, 참된 자기의 주체성 또는 올바른 자기 발전을 위한 정당한 반항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그릇된 지도자나 침략자가 협조를 강요할 때 과감하게 반항하는 모습은 아직도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커다란 귀감이 되고 있다. 위에 말한 정의감에서 우러나온 반항도 있지만, 덮어놓고 반대하는 습관성 반항도 없지 않아 있다. 다 큰 사람을 어린애 취급하듯 멸시한다거나 너무 세심하게 하나하나 간섭하며 잔소리를 퍼부으면 욕구 불만이 생겨 이것의 해소를 위해 짐짓 반항하는 경향이 습관적으로 형성되기도 한다. 반항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이는 기대되는 것을 일부러 안하는 소극적인 반항과, 기대하는 것의 정반대 되는 것을 일부러 하는 적극적 반항을 말한다. 또 이 반항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어 일반화될 수도 있다. 어머니에게 불만이


있어 반항이 되풀이되던 것이 어머니와 같은 여인들에게 일반화되어 여자라면 누구에게나 꼭 반항한다든가, 부모에 대한 반항심이 심해서 웃사람의 일이라면 덮어놓고 반항하게 되는 수가 있다. 종업원이 심하게 반항할 때, 경영자는 너무 권위 의식을 내세워 처벌하는 것보다 차분하게 옳고 그름을 따져 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 사람의 반항 경향이 입사 전부터 지니고 있던 습관적 특징인지, 아니면 입사 후에 회사 분위기에서 조성된 것인지, 혹은 자기와의 관계에서 처음 생긴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너무 지나치게 독단적인 통솔 방식이나 자기의 얼굴 표정과 말투 등이 상대방의 기분을 해치고 불만을 조성해서 이같은 반항을 초래하지 않았을까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명심해야 할 것은 너무나 상투적인 복종보다는 복종할 때 복종하고 부당한 명령에는 정정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말하자면 자각적인 태도를 더욱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1969 년 6 월" 둘째 묶음 자학과 사회 도피 4.19 의거에 관한 심리적 고찰 "한국의 대봉기는 결코 우연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이승만 정권이 극력 선전하듯이 4.19 는 야당이나 공산주의자의 선동에 의해 일어나지도 않았다. 근세 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승만 정권의 독재정치, 그에 수반되는 탄압과 살육, 관리의 부패, 재계인들의 횡탈로 말미암은 국민 생활의 궁핍 등 누적된 학정에의 분노가 마침내 폭발하여 봉기의 불꽃으로 화했다." 이는 어느 외국인 기자의 보도 중 한 구절이다. 1960 년 4 월 19 일의 봉기는 확실히 우발사가 아니며, 그 책임은 말할 것도 없이 12 년 간의 이승만 정권의 폭정에 있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정권 담당자 그 사람들에게만 돌릴 수는 없고, 또 그들만 제거한다고 일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대체로 현대적 의미의 혁명이란 사회 부조화의 산물인데, 이는 그 사회 안에 있는 대다수 인원들이 적절하게 안정된 적응을 하지 못하는 데에서 생기는 심리적 긴장이 원인이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혁명 중에 진행되는 집단적 노력이라 보아도 좋다. 1960 년 4 월 19 일의 학생 봉기도 우리 사회의 부조화, 특히 학생층이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긴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사회의 부조화란 대체 어떤 것일까. 우선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측면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심리적 스키마(도식)만을 생각하기로 한다. 4 월 혁명을 일으키게 한 한국인의 심리적 요인에 관해서는 정양은이 가설적으로 제기한 이론이 흥미를 끈다. 그는 혁명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변화를 사회 구성 요인들의 역동적인 균형 유지 작용으로 보고, 사회 구성 요인의 하나인 심리적 요인을 문제 삼는다. 그는 봉건제도 사회에서의 심리적 특성을 상동적 행동과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심리적 특성을 '선택적 행동과 자유 선택'이라는 주제로 내세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봉건 사회에서 민주주의 사회로 옮겨오는 중간에 일본의 식민지


정책으로 인해 식민지 민족으로서의 왜곡된 방어 행동이 발달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현재 우리나라 기성층의 행동 특징을 방어 행동과의 동일시가 주조를 이루는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 일제 36 년 간의 식민 압정으로 욕구 불만이 만연되어 있으며, 이 속에서도 생존을 위한 방어적 행동이 습관화되어 다음과 같은 경향이 생겨났다고 본다. 첫째, 자신이 없어 현실 도피와 방관적 태도를 갖게 되고, 또 자신이 없으므로 불안이 심하다. 따라서 자기를 평가하는 데 예민하게 된다. 이리하여 관계 망상에 가까운 강박 관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둘째, 자기 일신의 방어에 급급해 이기적이고 타산적이 되며 장기 계획이 없는 찰나주의에 빠진다. 셋째, 지나치게 합리화 기제가 발달되어 간교하고 무책임하므로 대결 정신이 없고 비굴하다. 정양은은 이러한 방어적 행동 경향과, 전세기적인 봉건적 특징인 '상동적 행동과 동일시'가 합쳐진 것이 오늘날 한국 기성층의 심리적 스키마의 특징이라 하여 아래와 같이 서술한다. "사회적인 상하 관계와 봉건 시대의 주종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상전과의 동일시에서 오는 권위에 대한 무비판적 복종 태도와 거기에서 파생된 관존 민비 사상이 뿌리 깊으며,부하 직원에 대해서는 존대와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늘 밑에서 자라 왔기 때문에 자기 방어에 능숙하여 현실에 소극적이고 도피적이며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이다. 또 상관에 대해 야유를 능사로 하고 당당히 자기를 주장하지 못한다. 대결 정신이 결여되어 악을 보고도 옳고 그름을 따지지 못하며, 옳지 못한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는 데 급급함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중추 세력은 이러한 봉건적인 동일시와 식민지 민족의 방어적 행동을 물려받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또한 이들이 새로운 민주적 제도의 틀 속에서 구태의연한 과거식의 관념 체제로 움직여 온 것이 이 정권 12 년이라고도 한다. 게다가 젊은 세대는 선진 국가들의 문화적 영향과 진보적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에 이러한 과거식의 낡은 사회에 적응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오늘날 우리 민족의 심리적 스키마를 꾸며 온 것이 비단 이 봉건성과 식민지 민족 근성 뿐만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나라가 동서 냉전의 중간에 걸쳐 있다는 정치적인 불안정성을 무시할 수 없으며, 또한 해방 후부터 걸어온 역정을 논외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광복과 더불어 애국 망명 지사도 많이 환국해 왔지만 이에 못지 않게 간상배, 무뢰한들도 많이 들어왔고, 특히 북녘에서 수백만의 피난민이 넘어왔다. 이들의 생계가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개별적인 수단에 맡겨져 사람들이 악착스럽게 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6.25 사변으로 불안한 피난 생활이 계속 되어 온 것, 공무원들에 대한 저임금 정책, 군의 팽창으로 군대식 사고 방식이 시민들이 생활 태도에까지 만연되었던 것 등등 사회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미봉적으로 굴러 왔다고 본다. 그리하여 사회의 개개인들은 이기적으로만 되어 가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각과


합리성이 결여되어 사회 분위기가 타인에 대한 봉사 정신은 커녕 불안정하고 계획성 없는 적당주의와, 제도와 현실이 분리된 양두구육(겉은 훌륭하게 내세우나 속은 변변치 않음)식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러한 풍조 속에서도 자기를 비판적으로 자각하며 내일에 희망을 걸고 합리적 방식으로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친 것이 그나마 지식인이요 학생층이었다. 여기에 어찌 지성 있는 학생들이 비정상적 사회에 잘 적응해 나갈 수 있었겠는가. 오히려 욕구 불만은 심화되고, 그것이 심한 심리적 긴장을 조성해 마침내는 4.19 의거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풍토 속에서 조성된 심리적 긴장을 행동으로써 해소하려던 학생들 자신은 사회 부조화의 어떤 면에 가장 불만을 가졌던가. 그들의 심리적 긴장을 행동으로 표출시킨 동인이라 생각되는 것을 살펴보겠다. 필자는 달케가 주로 인종 폭동에서 발견한 폭동의 사회적 동인을 설정하고, 이를 토대로 4.19 봉기에 참가한 서울 시내의 여러 대학 학생들에게 질문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이 정권의 불법 부정 정치에 불만 (72%) *경찰의 포악에 분격(65%) *폭력 지배의 사회에 분격(65%) *특권층의 농단에 불만(65%) *사회의 부패에 불만(64%) *민주 수호 단체의 투쟁에 호응하여(53%) *학생이 국가를 위해 궐기할 수 있다고 단정(48%) *신문의 선동에 흥분하여(45%) *여당계 보도의 왜곡성에 분격하여(44%) *학원의 부패에 분격하여(35%) *고대생을 깡패가 습격한 데 분격하여(35%) *동료 학생의 궐기를 좌시할 수 없어서(17%) *국내외 여론의 지지로 성공을 확신하고(14%) *교수의 호소에 감격하여(13%) 이러한 요인들 중 "민주 수호 단체의 투쟁에 호응하여", "신문의 선동에 흥분하여", "여당계 보도의 왜곡성에 분격하여", "고대생을 깡패가 습격 한데 분격하여", "동료 학생의 굴기를 좌시할 수 없어서" 등은 보조적 계기인데, 이 계기들은 이미 형성되어 있던 불만을 강화시키고 첨예화시켜 긴장을 터뜨릴 대상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요인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것들이 긴장을 폭발시킨 계기는 되었을지라도 긴장 조성의 근본 요인은 될 수 없으리라고 본다. 만일 이들 보조적 요인들을 너무 중요시한다면 학생 봉기 그 자체를 너무 우발적인 것으로 볼 우려가 있다. 그에 따라 혁명의 참된 뜻을 일실하는 과오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4.19 학생 봉기의 근본 요인은 이승만 정권 12 년 간의 불법, 부정, 폭력정치, 특권층의 방자, 사회의 부패 등에 대한 분노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분노를 터뜨리게 한 보조 요인은 3.15 부정 선거, 이후의 여러 사건, 그리고 언론인의 선동과 터무니없는 여당계 보도의 왜곡성, 학생 동료들의 선동, 국내외 여론의 지지 등이었다고 본다.


이상의 14 개 요인이 어떤 형태로 작용하여 학생들이 궐기하게 되었을까를 보기 위해 이들 상호간의 상관 계수를 클러스터(연관되는 것끼리 묶음으로 분류해 놓은 것)로 분석해 보니 두 가지 큰 조류로 나뉜다. 하나는 특권층에 의해 농단(독점)되어 부정, 부패, 폭력이 난무하는 이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궐기할 자는 학생들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궐기만 하면 국내외 여론의 지지를 받아 반드시 이길 것이라 믿고 봉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고대생들이 깡패의 습격을 받아 같은 대학생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동료들이 궐기를 눈앞에 두고 자기만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대열에 참가했다는 것이다. 전자는 앞에서 말한 근본적 요인에 해당하고, 후자는 보조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할 것은, 이 두 요인 모두 학생만이 국운을 바로잡을 수 있고 또 궐기할 사람은 학생밖에 없다는 자기 의식이 작용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면 이렇게 혁명의 요인들이 무르익은 정세 속에서 다른 계층은 제쳐놓고 학생들만 주동적 역할을 한 것은 무엇 때문이며, 이들 학생은 어떤 계층의 출신이었을까를 생각해 보자. 첫째, 그 당시 한국 사회가 아직도 반봉건적인 심리적 스키마에 사로잡혀 있었고 다만 도시 중심의 지식층만이 근대적 시민 정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 그 지식층 내에서도 조직이 있는 것은 학생들뿐이었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학생 조직인 학도 호국단은 원래 관권에 의해 조직되었었는데, 이것은 학원 내에 반공 의식을 관철시키고 아울러 학생 운동을 통제하려고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은 수년 동안 경찰, 군대, 노동단체에만 통제력을 강화했을 뿐 학도 호국단은 그대로 방치해 두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학생들은 자신들의 요구와 주장을 펴 나가기 위해 기존의 학도 호국단 조직 체계를 이용하였다. 둘째, 신, 구 세대의 갈등을 무시할 수 없다. 기성층은 봉건적, 식민지적 근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독재 정치의 질곡에 코를 꾀여 끌려 다니는 군상들이었다. 여기에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반항적인 젊은이들이 기성 사회에 자기를 굽히고 그대로 적응할 리 만무하였다. 기성 세대는 또 그들대로 젊은 층들을 무능하며 윤리가 없고 건방지다고 멸시하며 백안시 하였다. 이러한 갈등 상황 속에서 젊은 층의 자기 주장이 봉기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하겠다. 이렇게 학생이 조직을 갖고 있었다는 점과, 신구 세대 갈등에 따르는 학생들의 반항 정신이 아마도 그들을 혁명의 주도 세력으로 나서게 한 바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면 봉기 학생들의 계급성은 어떠할까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혁명의 주동은 그 사회 체계에서 가장 출혈이 심한 하층 계급일 것이다. 그러나 혁명의 역사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미국의 사회 심리학자)은 "혁명은 완전히 짓밟힌 계층에 의해 일어나지는 않으며, 향상에 대한 신념과 혁명의 성공을 믿는 비교적 여유 있는 계층에 의해 일어난다."고 하였다. 4.19 전야의 사회 정세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가장 비참한 계층인 농민은 크게 숨 못 쉬는 상태였고, 다만 비교적 여유 있던 지식층(특히 학생들)만이 그래도 불평도 하고 의욕도 갖고 있었다. 봉기한 학생들 대부분이 중산계급 이하의 학생들이어서 앞으로 이들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경제적 지위와 적극성 정도의 상호 관계를 보면, 계급적 의식에 입각해 데모에 참가했다는 증거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계급적으로는 중류 이상이어도 정치적으로는 급진성을 지녔던 학생들이


주동했는지도 모른다. 이에 관해 전용신이 4.19 후에 아이젠크(영국의 심리학자)의 척도로 잰 수치들은 시사성을 보여준다. 그에 의하면 4.19 당시 학생들의 보수성, 급진성 평균치는 5.7 이라 한다. 또 이 척도로써 나타난 영국인 전체의 보수성, 급진성 평균치는 7.5 였다. 그런데 각 정파별 평균치는 보수 당원 5.3 노동 당원이 10.2 공산 당원 12.7 이었다. 한국 대학생들의 급진성은 영국의 보수당 정도이니 정치 의식 면에서도 그다지 급진적인 것은 아니요, 아울러 여기에 서구적 의미의 계급성은 찾아볼 수 없다 하겠다. 따라서 4.19 의거는 각계 각층 출신의 학생들이 다 같이 일어선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일시적으로나 불규칙하게 모이는 집단 성원 각자가 일시적 동일시를 나타내고 어느 공동 대상에 주의를 집중시켜 반응하는 것을 "군중"이라고 브라운은 정의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4.19 의 학생 시위 집단은 틀림없는 군중이요, 활동성에 비추어 볼 때 그 중에서도 특히 활동 군중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당시 그들의 활동으로는 물론 도피도 있고 약탈도 있었겠으나, 주된 것은 시위와 공격 행동이었으므로 이를 주로 시위와 공격 행동이 많았던 활동 군중이라 할 수 있다. 경찰과의 격투, 파괴, 방화, 약탈 등의 공격 행동이 있었으니 이를 공격적 활동 군중이라 하겠지만, 실은 이것도 데모를 저지하는 데서 부수적으로 생긴 반응이라 할 수 있으므로 근본적으로는 시위를 위한 군중이라 해도 좋다. 데모란 자기 주장의 표현일 뿐이지만, 이러한 표출도 억압받을 때에는 분노 정서를 유발하여 공격적 행동을 나타내는 수가 있다. 심리적 긴장이 심할 때는 그저 아무런 행동이라도 표출하면 그 긴장이 누그러지기 때문에 심리적 긴장을 유발시킨 조건을 제거하는 것과 관련 없는 표출도 할 수 있다. 어떤 불안을 지닌 사람이 술먹고 주정부리는 것, 불만 많은 청년들이 야유회나 운동회 끝에 떠들썩하게 소동 부려야 시원한 것은 이러한 표출의 행동이라 하겠다. 실로 4.19 의 학생 데모는 이들 학생들이 심리적 긴장을 표출하는 일대 시위 행진으로서 처음에는 합리적으로 주장을 내세운 시위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경찰의 진압으로 공격 행동이 나오게 되고 군중은 밀집되었기 때문에 더욱 정서적 흥분을 일으켜 불합리한 행동으로 긴장을 표출하는 표출적 활동 군중의 행동까지 나타났다. 스크럼 짜고 구호 외치며 여학생을 손가마 태우고 행진한다든가, 단발머리 여학생을 여럿이 추켜들고 만세 부르던 일 등은 가장 전형적인 표출적 군중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4.19 의 학생 군중은 본질적으로 표출적 활동 군중이라 규정된다. 경찰이 이런 군중의 행동에 제재를 가하자 새로운 욕구 불만이 생겨 이것이 분노로 발전되면서 공격적 행동으로 나타났다고 하겠다. 더 엄밀하게 말한다면 4.19 의 군중은 공격적 표출 활동 군중임에 틀림없다. 만일 이날 경찰이 제지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서울 시내를 뒤덮는 들썩 소동이 시가를 휩쓸었어도 그와 같은 공격적 행동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실례가 인천에서 있었다. "미국의 소리 방송"이 전했듯이, 작년 4 월 21 일인가 22 일 인천에서 학생들이 데모를 시작하는데 경찰이 방관할 뿐만 아니라 군중에게 냉수를 떠다 준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때의 시위는 거의 파괴는 물로 살상 없이 무사하게 끝났다고 한다. 이렇게 4.19 의 군중이 평화적으로 시위 벌이고도 경찰에게 몽둥이와 총탄 세례를 받으면서 들썩 소동만을 부린 것을 보면, 이러하나 군중은 공격성이


적은 군중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어린이들이 어른들에 의해 자유를 구속받을 때 분노를 터뜨리며 반응하지만, 이들은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어른을 두들겨 패거나 힘으로 물리치려는 공격 방식보다는 땅바닥에 누워 몸부림치고 떼써서 어른은 귀찮게 하는 정도의 행동을 한다. 그들은 합리적 자유를 영구적으로 쟁취하려 하지 않고, 어른에 대한 분노를 어느 정도나마 풀어 보자는 지극히 유치한 반응을 보인다. 4.19 의 학생 군중이 근본적으로 표출적이었다는 점은 일종의 후진성이라 보이는 바다. 불의의 씨로 말미암아 생긴 분노를 공격 행동으로 표출하는 데 떼만 쓰고 만다며, 그 불의의 씨는 제거될 수 있다. 떼만 쓰고 정말로 공격할 것을 공격하지 않은 것이 4.19 봉기의 모습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1961 년 4 월"

학생들의 보수성 4.19 직후 학생들의 정치 참여 의식이 한창 고조되어 있을 때, 전용신은 영국의 아이젠크 척도로 이를 따져 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학생들의 정치적 태도는 보수적인 편이었다. 아이젠크 척도란 영국인이 갖고 있는 모든 정치적 태도를 요인 분석하여 보수적이냐 급진적이냐라는 R 차원과, 강경하냐 온건하냐라는 T 차원으로 측정해 놓은 것을 말한다. R 차원에서 영국 각 당원들의 평균치를 잰 결과에 비교해 보면, 4.19 당시 우리 학생들의 정치적 급진성은 영국의 보수당원 정도였다. 어느 나라에서나 청년층이나 학생층은 급진적이라고 골치 앓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에서도 학생들이 지나치다는 견해를 흔히 말한다. 그러나 영국인의 표준치와 비교해 보면, 우리 학생들은 오히려 보수적인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것을 좀더 생각해 보기 위해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개인에게서 어떻게 발달되는가, 보수, 급진이란 어떤 것인가를 아이젠크 이론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학생들의 보수성의 뿌리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아이젠크는 하나 하나의 사회 현상이나 이에 대한 해결 방안에 대해 사람마다 특수한 의견이 있고 반응이 있지만, 비슷한 사건이나 연관되는 것에는 거의 동일한 의견을 가질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 관습적인 견해를 "의견"이라 하고, 이들 관습적인 의견들이 여러 가지 뭉쳐져 더욱 일반적 견해를 형성할 때 이를 "태도"라고 규정한다. 민족주의, 스파르타식 교육관, 산아 제한론, 국유화 정책 등이 이런 의미의 태도들이다. 아울러 그는 이들 태도들이 합쳐져 어떤 종합적인 사회 문제에 관한 견해를 이룰 때 이를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러한 이데올로기에는 어떤 차원이 있는가. 아이젠크는 영국의 여러 정당들의 주장과 국민의 사회적 태도를 요인 분석해 보수, 급진 차원과 강경, 온건 차원으로 나뉜다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 전제주의 대 자유주의가 후자라며, 보수주의 대 사회주의가 전자이다. 보수, 급진 차원에서 보수적 경향은 "국유화는 비효율적이다", "종교 교육은 강제 시행되어야 한다.", "사형 제도는 있어야 한다"와 같은 견해를 말한다. 이에 비해 급진적 경향은 "사유재산 제도 철폐", "일요 예배의 무의미론",


"평화를 위해서는 국가 주권도 버려야 한다"와 같은 견해들이다. 강경, 온건 차원에서의 강경한 쪽은 공개적으로 공격 행위나 성적 자유를 주장하며, "죄짓는 자는 볼기를 쳐야 한다", "아동 교육에 매가 없을 수 없다", "시험 결혼제가 좋다", "이혼은 쉽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반면 온건한 쪽은 평화주의적이며 윤리, 종교의 제약을 준수하고 인정하며, 종교와 종교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산아제한의 불법화, 사형제 금지, 매질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을 내세운다. 아이젠크는 R 차원의 영국인 평균치 7.5 와, T 차원의 영국인 평균치 14 를 중심 축으로 놓고 2 차원 좌표를 만들어 개인, 단체, 정당의 이데올로기를 좌표로 표시할 수 있게 하였다. 이 두 차원은 영국뿐만 아니라 독일, 프랑스, 북구 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러한 두 차원을 측정할 수 있게 설문지로 꾸민 것이 아이젠크의 사회적 태도 척도이다. 이 척도로 영국 각 정당의 이데올로기를 표시해 보면, 보수당이나 노동당은 T 차원에서 중용적이면서 R 차원에서는 보수와 급진으로 대립되어 있다. 또 파쇼당과 자유당은 R 차원에서는 다같이 중용적이면서 T 차원에서 강경과 온건으로 대립되어 있고, 공산당은 급진적이면서 강경한 좌표로 기울어져 있다. 이러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실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잠재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경향이다. 또한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행동에 영향을 주는 중개 개념으로서 이론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헐(1884-1952,미국의 심리학자)은 활동 성향을 습관성과 동기의 상승으로 보았는데, 아이젠크도 정치적 활동은 각자의 사회적 태도와 활동 의욕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그는 이 사회적 태도를 측정해서 파악하면 정치 활동도 예측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아이젠크는 이러한 태도를 학습 과정으로 보고 학습 이론에 적용시켜 설명하였다. 그는 마우라(1907-1984)의 두 요인 이론으로써 이데올로기의 습득 과정을 설명하였다. 마우라는 파블로프의 고전 조건반사와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 반응이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전자는 "조건 형성"이라 부르는 것이 좋고, 후자는 좁은 의미로 "학습"이라 부르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조건 형성은 접근 즉 연합의 원리만이 작용되며, 학습은 강화의 원리만이 작용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으로 말한다면, 전자는 현실 원리가 적용되고 후자는 쾌락 원리가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문화 습득 과정에는 이 두 가지가 다 있다고 보았다. 문화 습득 과정에는 개인이 의식도 못하는 사이에 집단적으로 습득되는 이른바 사회화 과정과 개개인에게 따로따로 의식적으로 습득되는 개인 교육 과정이 있다. 사회화 과정은 조건 형성인데 연합 원리 즉 접근 반복되어 나타나며, 개인 교육 과정은 학습인데 강화 원리 즉 강화함으로써 쾌락을 얻고 충족을 얻기 때문에 습득된다. 아이젠크는 보수, 급진 차원 즉 R 차원이 개인 교육 과정에 속하며, 강경, 온건 차원 즉 T 차원이 연합 원리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각 개인이 R 차원에서 보수적이냐 개혁적이냐의 문제는 각자가 현재 처해 있는 지위, 계급, 상황에 대한 이기적인 전망에 따라 다를 것이다. 현재 고생하고 있는 하류층은 처지가 달리 바뀌었으면 할 것이요, 중류 이상은 현상 유지를 원하고 이를 주장하는 정당을 지지할 것이다.


이리하여 중류 이상은 보수당을, 하층 계급은 노동당을 지지하고 그 정견을 자기의 이데올로기로 내재화시킬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미워하는 아버지가 노동당이기 때문에 자기는 짐짓 보수당으로 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예외는 극소수이므로 대체로 노동자층은 노동당 지지로, 상류 계급은 보수당 지지로 판이하게 갈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는 선진국의 경우이며 의식화된 대중에게서의 경우일 뿐 의식화되지 않은 대중이 많은 후진국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학습형은 개인들의 의식적 학습 과정이기 때문에 무엇이 자기 이익인지 모르는 무의식 대중 사이에서는 통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R 차원에 비해 T 차원의 형성은 양상이 다르다. 즉 파블로프의 고전 조건형성 과정으로 된다는 것이다. 조건 형성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하나는 반복 회수이며, 또 하나는 성격 유형이다. 여러 번 반복 연합시킬수록 조건 형성이 잘 된다. 또한 내향적 성격은 더 쉽게 조건 형성되며, 외향적 성격은 조건 형성이 힘든 편이다. 사회는 그 구성원에게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멋대로 공격하거나 성적 행위의 남용을 못하게 훈련시킨다. 이것이 사회화 과정의 주축을 이루고 있고, 윤리, 도덕, 종교도 이같은 사회화 과정의 규준으로 되어 있다. 이같은 사회화가 잘 되어 윤리, 종교의 규준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온건하다면, 사회화가 덜 되어 공격적이고 비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온건하다면, 사회화가 덜 되어 공격적이고 비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강경하다. 계급적으로 중류 이상은 자녀 훈련에 열성적이어서 반복 훈련을 많이 시킨다. 중류 출신이 일반적으로 잘 사회화되어 있어 온건하다면, 하류 출신은 강경한 편이다. 물론 같은 중류라고 해도, 또 똑같은 반복 훈련을 받았다 해도 내향적인 사람이 더 온건하고 외향적인 사람이 더욱 강경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이와 같은 보수성 점수는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먼저 그들의 계급적 배경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서 중류 이상일수록 보수적이며 하류일수록 급진적이라는 아이젠크의 생각을 소개하였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보수성은 그들이 중류 이상의 출신이기 때문에 보수 정당 시책에서 이익을 얻어내려고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지니게 될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아이젠크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R 차원과 T 차원으로 분명하게 나타나는 경우는 사회 계급이 현대화된 서구와 미국에만 해당되지, 반봉건적인 후진 국가에서는 T 차원이 나타날망정 R 차원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그런 증거를 중동의 아랍 국가에서 얻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5.16 직후에 한국의 비종교인 학생 집단과 종교인 학생 집단을 비교한 보고에서도 T 차원에서는 변이가 있었으나, R 차원에서는 심한 차이를 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학생층의 보수성도 우리 사회가 아직 R 차원의 분화가 발달되지 않아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 광범위하게 여러 집단과 계층에 이 척도를 적용해 보아야 할 줄 안다. 학생들의 보수성은 우리 나라가 공산주의와 싸우며 반공을 국시로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 사상을 너무 경계하는 나머지 어떠한 개혁적인 사상도 위험시하고 일종의 터부(금기)로 보게 되어 급진적이면 완전히 위험 사상으로 보기 때문에 급진적 견해의 발달을 바랄 수 없게 된 것이 아닐까. 근대화되지 않은 것이 반공일 수는 없는데, 민주주의적


급진 사상까지도 위험시하는 것은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공산주의란 R 차원에서도 극단적인 급진주의지만, 동시에 T 차원에서 냉혹하고 무자비한 극력성을 지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유주의, 인도주의에 대립되는 공산주의의 성격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하여간 덮어놓고 급진적인 것을 위험시하는 풍조 때문에 이같은 학생들의 보수성이 조성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음으로 해방 이후 계속된 우리나라 특유의 정치 풍토가 이같은 보수성을 조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 정권이 국권을 지배하게 되면 이 정권을 지지하지만, 그 정권이 실정을 거듭하면 다른 정당을 지지하게 된다. 그러나 그 정당이 정권을 잡아도 역시 별수 없어 또 다른 정당에게 국권을 맡겨 보지만, 그 또한 마찬가지니 실망에 빠지게 된다. 학습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강화를 받지 못하는 어떤 반응이 반복될 경우 그 반응은 사태와의 결합력을 상실하게 된다. 결국 그 반응은 소거되어 버린다. 어떤 정견을 가지고 애써 호소해 보았자 이익을 주지 못하는 일이 계속 되풀이 되면, 그런 정견은 끝내 기각되어 버린다. 기각되어 버린 후 다행히 다른 정견에서 강화가 있으면 그것이 학습되겠지만, 아무 것도 강화를 주는 것이 없을 때에는 그런 정견을 가지는 일 자체에서 후퇴해 버리게 된다. 사회는 부정견적 상태가 된다. 이를테면 정치적 무관심이다. 민주당 정권이 수립된 지 몇 달 후의 보궐 선거에서 정치적 무관심이 극도에 달했던 때가 있었다. 무관심은 주주의 입장으로 증권 시장을 보는 태도라기보다 관객으로서 연극을 보는 흥미 정도밖에 안 된다. 이같은 무관심 상태에서는 이데올로기가 퇴화되어 유치한 수준에 머물게 된다. 이러한 정치적 무관심은 의식주의 생활고에 허덕이는 하류 계층에서 많이 생기면, 오늘날의 한국적 정치 풍토에서는 지식층에도 만연되어 있다고 보는 이도 있다. 학생들의 보수성은 이같은 정치적 무관심의 표현으로 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현실의 정치 활동이 거의 정책적인 대립이 아니라 감투 싸움에 치우쳐 있으므로 일반 대중은 정견이나 정책적 판단을 해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정치적 무관심과 정책적 논쟁의 빈곤 속에서 학생층에서만 활발한 정견의 다양성을 나타낼 리도 없고, 그들에게만 이데올로기의 의욕적 발전을 바랄 수는 더욱 없을 것이다. 그들 또한 그저 원시적인 정치적 의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 학생들의 보수성을 조성해 준 또 하나의 요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1963 년 3 월" 5.16 이후의 학생들 지난 10 월 대학 신문은 학생회 활동에 관한 좌담회를 가졌다. 학생들은 학생회 활동에 관련해 자신들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4.19 이후에 모든 사회적인 여건은 학생들이 활동할 수 있게 마련되었지만, 5.16 후에는 4.19 의 연장이라고는 해도 이적인 면에서 나타나지 않고 내적인 면에 충실을 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향외적 사회 참여 경향에서 향내적 자기 충실 경향으로


전환되었다는 지적이다. "두 차례의 혁명으로 학생들이 현실에 대해 체념하고 있는 것 같아요. 또 내적 충실이란 점도 4.19 이전보다도 못하다는 면이 없지 않아요.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5.16 후 계엄령 하에서 외형적인 어떤 억압감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 표시를 삼가하고 있는 경향이 많고, 또 이젠 우리들이 날뛰지 말아야겠다는 지숙감에서 응당 해야 할 것도 안하고 있는 인상을 많이 받았어요." 이 학생은 내적 충실도 신통하지 못하고, 정작 해야 할 일도 못 찾아 한다는 의견이다. "많은 학생 운동이 지향점이 견고히 서 있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주체적인 실력을 기르는 데 소홀했기 때문에 5.16 후 외적인 환경이 급격히 변경되자 -솔직히 말해서-벌벌 떨면서 외적인 활동을 거의 삼가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원래 학생들이 주견도 없고 실력도 없이 건성으로 뛰놀다가 5.16 이후 쑥 들어 갔다는 생각도 있다. "4.16 후에 학생들이 현실 참여를 자부하고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현실에 반영시키려고 노력했지만, 5.16 후에는 앞에서도 말씀하신 바와 같이 심리적인 제약을 받고 자기들의 이상을 펼 수 있는 길로서 참여를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막연한 공포감이랄까 학문의 자유가 대학에서 상실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으로 조금이라도 정치성을 띤 것이나 혁명 정부에 저촉되는 일은 아예 언급하지 않으려 해서 지나치게 위축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이는 지나치게 위축되어 도피적인 경향을 보이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또 이들은 "원래 학생의 사회적 활동에 무질서한 점이 있었고, 일반 대중들도 학생의 외적 활동을 찬성한다기보다는 경원하는 경향이 많았지요."라고 하며 과거의 지나쳤던 점을 반성하기도 한다. 지난 12 월에는 "고대신문"이 졸업한 학생들을 모아 놓고 자신들을 반성하게 한 좌담회를 가졌다. 여기에 이런 말들이 있다. "깃발이 없습니다. 아주 서두르며 달려가는 듯한 한국의 현대 행렬에는 깃발 이 없습니다. 더구나 그 앞장에 서야 할 청년들은 빈손이 아닙니까? 그야말로 깃발 없는 기수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세대에는 사상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학생 세대에 는 주체 의식이라는 게 없어요. 물론 그것은 우리들 자신이 이념의 모색에 대한 강렬한 향수가 없는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먼저 객관적인 환경 조건이 그렇 게 되어 있질 못한 탓이겠지요.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문화 적으로나 겹겹이 둘러쳐진 바리케이드 때문에 그 출구를 찾을 수 없습니다. 도 무지 객관적인 여건이 우리로 하여금 사상을 가지게 할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이념이 없음을 개탄하고 자기 불만을 토로하며, 자기네를 무사상적으로 만든 것은 환경 조건이라고 원망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세계 조류가 다 그러하듯이 인간이라는 게 차츰 비지성화 되어 가는 탓이겠지요.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의 대학생들은 서구의 대학생들에 비해 갖가지 고난과 전란 그리고 사상의 기아 상태 속에서 자라난 까닭에 한마디로 말해 지적 수준이 낮고 자기의 이념적인 방향이나 형태를 잡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에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객관적인 요건들의 불비만 탓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진지한 마음 자세부터 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학생들에게는 자신들의 이데올로기 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와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직도 우리에겐 하지 않기 때문에 부진 상태에 놓여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즉 대학생이 사회적 현상에 대해 거의 눈을 감고 있다시피 하니까요." 학생들의 자각과 지적 정진을 촉구하고 있는 반면, 기백이 없어 사회 참여를 못한다고 자탄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학생의 모습을 스스로 이렇게 규정짓고 있다. "우리는 지금 사색도 낭만도 가질 수 없는 불모지 위의 고아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불안과 소심증이 아주 체질화된 셈입니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성인층으로 하여금 움츠러들게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이 거의 절망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혁명을 일으키고 신생활 구호를 외치고 그러다가 남은 시간을 가정 교사라는 이름의 아르바이트로 이 집 저 집을 서성거리는 동안 남은 건 노곤한 육신과 눈치질만 늘고... 6 년 동안 천신만고 발악하며 전선과 캠퍼스를 왕래한 보람도 기껏 알아주지 않는 증서뿐인 학생 자격이고..." 이렇게 앞날의 희망이 뚜렷이 보이지 않은 채, 그러면서도 긴박하게 해결해 내야 할 현실에 부딪힌다. "당장 눈앞에 다가온 취직난, 생활난이 있고, 더구나 20 여 년 동안이나 뒤치닥거리에 쪼들려 온 부모님이 있고... '빵이냐 이념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당면 문제가 있어요... 오직 이러한 한계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확고한 비전을 잃지 말고 꾸준히 사색하고 과감히 행동할 줄 아는 청년이 되어야지요. 우선 당장의 과제인 학업에 전심하는 일부터요." 고뇌와 절망 속에서도 아직 학생의 본분인 학업은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결의가 믿음직하다. 지난 연말에 "조선일보"가 주최한 학생 좌담회에서 어떤 여학생은 말한다.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는 분위가 되었다고 봐요. 4.19 이후 우리들은


너무 정치성을 띠고 있다가 5.16 혁명 후 다시 학원으로 돌아갔으니까요." 거리에서 설치며 돌아다니던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가게 되어 좋다는 말이다. "과거의 학생들 기질에 비해 침착한 느낌을 가지고 학생 본분에 어긋나지 않은 어떤 범위 안에서 노력하고 공부하는 기질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그때 그때를 생각하는 그전의 처세주의에 비해서 지금은 대체로 학구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들떴던 분위기에서 침착성을 찾아가게 된다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시속에 편승하여 다분히 부패에 물들었던 학생들에게 착실히 공부하는 분위기가 5.16 혁명으로 마련되었다는 학생도 있다. 요컨대 학생들은 5.16 이후 급변한 현실 속에서 고뇌에 몸부림치고 현실을 원망하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표면적으로는 거리에서 학원으로 되돌아갔다. 아직도 이들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4.19 의거로 말미암아 학생들은 생기를 회복했다. 이 정권의 억압의 굴레로부터 벗어났다는 해방의 기쁨에서라기보다는, 또 앞으로 희망에 찬 장래가 보장되었다는 느낌에서라기보다는 오히려 학생으로서의 긍지를 되찾은 데서 였으리라. 해방 후 대학의 수는 급격히 불어나 대학생의 희소 가치가 사라지고, 이러한 대학생의 양적 팽창은 아울러 질적인 저하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리하여 대학생 중에는 형편없는 친구가 꽤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식민지 치하에서 대학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대다수의 기성 세대들은 그에 따르는 열등 의식으로 인해 학생들의 부실을 예민하게 헐뜯곤 했다. 이런 이유 등으로 학생을 소중히 여기던 사회 풍조는 점차 사라지고, 학생들은 멸시와 비난의 대상이 되어 오히려 자신의 학생 신분임을 감추는 경향까지고 나타났었다. 그러던 중 학생들이 정권을 뒤집어 엎게 되었다. 그들은 일약 영웅시 되고 국민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었으니 학생들이 어찌 긍지를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오랜만에 긍지를 되찾았던 학생들도 사회 참여라는 명분하에 지나친 행동을 하자고 했다. 정치를 논하고 저희들끼리 갈라져 싸우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마치 해방 후의 상황을 방불케 하였다. 이렇게 무절제하게 법석 부리게 된 책임을 그들의 신경증적 기질에만 돌릴 수는 없다. 책임은 정치인에게도 있다. 그들은 학생을 선도하기는 커녕 학생을 영웅인 양 추켜세워 놓고 자기 세력을 부식하는 데 학생들을 구세주인 양 떠받들고 혁명의 주도 세력으로 지목하고 그들의 모든 행동을 영웅시하여 대서 특필로 다루었다. 말끝마다 "학생들의 피로 쟁취한 혁명"이 나오고, 학생 서클의 하찮은 방담을 대문짝같이 보도하니 그들이 우쭐해지지 않을 수 있으랴. 분별없는 일부 상업주의 매스콤이 아낌없이 학생들을 써먹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매스콤을 탓하기보다는 지각없이 놀아나는 듯이 보이는 학생들을 점차로 외면하게 되었다. 한편 학생들은 겉으로는 존대 받고 우쭐해 했지만, 속으로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자기 실력은 부족하고 자신은 없는데, 밖에서는 굉장한 존재로 떠받들게 되었으니 어찌 불안하지 않겠는가.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이


자유로워질수록 외롭고 불안해진다는 그런 유일 것이다. 앞서 5.16 이후에 학생들은 다분히 안정된 듯도 하다고 했다. 그러나 안정이란 것과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간다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어떤 목표를 향해 침착하게, 그러면서도 골똘히 나아가는 마음의 자세를 그���에게 갖게 해야 된다. 그들에게는 오랜 역사에서 오는 체질화된 불안과 무사상이라는 습성이 있다. 이러한 습성을 고쳐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자존심을 세워 주어야 한다. 즉 애정 어린 지도를 통해 학생으로서의 긍지를 갖게 해야 한다. 그렇다고 4.19 이후처럼 덮어놓고 추켜세우는 것이 아니라, 훈훈하고 믿음직한 기분을 느끼도록 자중 자애 하는 기풍을 진작시켜야 한다. 또한 학생들에게 이념을 갖게 해야 한다. 그들 말마따나 깃발을 들고 앞장서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들이 학문 활동을 광범위하게 벌이도록 해야 할 줄로 안다. 학생들이 연구 활동에 자유로이 열중하게 될 때, 우리는 무사상의 고질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요 지표 있는 행동을 하는 지식인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사회 참여의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되도록이면 학생들 자신의 자발적인 계획을 살려 나가면 좋을 것이다. 재건 학생회가 아마도 그러한 취지인 듯하여 기대가 된다. 무작정 학생들의 불안을 눌러 놓을 수만은 없다. 사회 참여로써 그들의 자존심을 지키고 불안의 출구를 찾아 해소시켜 주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 글을 맺으면서 다시금 학생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 학생들의 여러 가지 문제를 청년기의 소이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자. * 학생들을 소중히 하는 기풍을 불러일으키자. * 학생들에게 자유로이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는 풍조를 만들어 주자. * 학생들이 적절히 혁명에 참여하게 하자. "1962 년 5 월" 세 돈의 무게 한국을 일약 공업화시키려는 벅찬(?)정열에 의해 단행되었던 화폐 개혁이 불과 한 달 사이에 거의 백지화되고 말았다. 그의 부작용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극심한 불경기, 은행 공신력의 저하, 사적 신용 관계의 단절 등으로 말미암아 도무지 유통 질서를 조정하기가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리하여 통화 개혁 전으로 백지화시켜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점점 올라가는 기세이며, 환물 사상이 왕성해서인지 가옥 매매가 활발해 거간꾼들이 한몫 톡톡히 본다고 한다. 정부는 강권까지 발동시켜 물가 안정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경기 회복이 신통하지 못한지 상인들은 올 추석 대목에 그다지 재미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경제 문제에 대해 필자는 왈가왈부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물가 앙등의 원인을 지적할 때 으례 통화 개혁에서 오는 심리적 요인을 한 조목 내세우며 말하곤 한다. 그러면서 이 요인은 마치 일시적 현상으로 그칠 성질의 것인 양 강조한다. 그렇다면 흔히 말하는 심리적 요인 즉 물가 등귀에 영향을 준다는 순수한 심리적 영향력의 정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만하다. 화폐 제도가 우리 인류에게 언제부터 존재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러 가지 필요에 의해 서로가 약속하고 한 가치의 대용물로서 화폐를 쓰게 되었으리라. 이같이 화폐 제도는 약속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그러나 인간이 오랜 세월에 거쳐 그 속에서 살아오는 동아나 그 제도는 인간 생활의 절대 조건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그 대용물의 가치 또한 절대시되었다. 사람들은 약속 위에 서 있는 상대적 가치밖에 없는 돈의 효용이 영구 불변하는 절대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믿게 되었다. 화폐 개혁이란 이렇게 절대적 가치가 부여되고 있던 돈이 하루아침에 무효화되는 것이라 하겠다. 물론 화폐 개혁은 구화가 신화로 바뀌는 것이지만, 돈 자체의 이미지에서 그 절대적 가치가 쑥 빠져 달아나니 허무하기 짝이 없다. 이에 따라 이 세상의 허무함이 절실하게 느껴지고 아울러 무슨 대이변이 있을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같은 불안 속에 새 돈이 나타나서 새로운 절대적 신뢰를 강요하지만 그리 쉽게 친근감을 획득하지는 못한다. 새 돈 자체가 대중들에게 그 절대적 가치를 신임 받으려면 꽤 오랜 시일이 필요하다. 하기야 새 돈 만지는 것은 새 서방 맞는 기분이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아무리 새 서방이 청신함과 희망을 갖게 하는 독특한 맛이 있다 한들 친숙한 묵은 서방만큼 믿음성이야 있겠는가. 요번 화폐 개혁 때도 새 돈을 바꾸어 들고도 어쩐지 돈이라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새 돈에 대한 가치 부여가 실감나지 않는 모양이다. 요사이 유행되는 매점 매석이나 환물에 관한 관념도 어느 정도는 이 새 돈에 대한 애착이 아직 미흡한 데서 유래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폐를 바꿔 만들 때에는 아무리 극비밀리에 하더라도 담당 공무원 외에 심리학자 한 사람쯤 끼어 있어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지폐의 경우, 새 돈 십원 짜리를 받았을 때 가슴이 선뜻했다. '이거 큰일났구나!' 하는 근심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뒤집어 보고 또 뒤집어 보아도 구화 백환 짜리 지폐나 주화보다 돋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해송 선생의 글 중 한 구절이다. 이 분은 새 돈이 가치 있고 무게 있게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특히 가장 많이 쓰이는 십원 짜리를 근사하게 만들지 못한 것 같다는 의견이다. 그렇다. 경제학적으로는 지폐가 한낱 대용물로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딱지 조각 같아도 무방하리라. 다만 위조와 마멸을 방지할 수 있는 조건만 갖추면 되리라. 그러나 그것이 돈으로서의 귀중함을 몸소 느끼게 하고 저절로 권위와 가치가 보이게 하려면, 적당한 크기, 무늬, 빛깔 등이 고려되었으면 한다. 인쇄가 너무 조잡하고 몰골이 값싸게 보여 한낱 지폐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기분이 든다면, 그 돈은 자연 하찮은 가치로 팔리게 마련이다. 이번 화폐 개혁에서는 환율이 10:1 의 비율로 평가 절하되었다. 화폐 단위명도 다시 옛적에 쓰던 "원"으로 고쳐졌다. '환'과 '원'의 발음이 어미에 붙어서 들릴 때 분명하게 구별되지 않아서인지, 또는 전에 가졌던 돈 가치 대 물건의 관념 테두리를 완전 탈피하지 못해서인지 "십원"이라고 하면 그것이 구화 '십환'을 연상하게 한다. '십원' 이전의 '백환'이라는 속셈을 해보지 않고는 구화 '십환'과 같은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래서 합승하고 내릴 때 십원을 주고는 너무 싸서 공짜로 탄 것 같은 기분을 맛본다. 크기, 무게 착각이라는 현상이 있다. 똑같은 무게라 해도 크기가 큰 것은


더욱 가볍게 느껴지고 작은 물건은 훨씬 무겁게 느껴진다. 돈의 무게에도 이런 착각이 있는 것 같다. 똑같은 가치를 지닌 돈이라도 액면이 적은 것은 더 가치 있어 보이고, 액면이 클 때는 가치가 적어 보인다. 동일한 거리를 십원 내고 차를 탈 때와 백환을 내고 탈 때, 전자가 더욱 가치 있어 보인다. 돈에 비해 너무 많은 물건을 받은 것 같아 미안스럽게 느껴질 게다. 그러므로 돈을 더 많이 지불해도 좋을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모양이다. 이것이 아마도 물가 상승의 심리적 요인이 아닌가 한다. "1962 년 9 월" 위선과 사기 5.16 이후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가짜가 많다. 사기꾼, 가짜 형사, 가짜 군인, 가짜 징수원 등과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 이들에 의한 피해는 늘어만 가고 있다. 상품에 이르러서는 가짜 상품 때문에 진짜 상품까지도 팔아먹을 수 없는 형편이다. 우리 상품은 우리 자신에게까지도 신용을 잃고 외래품을 애용하는 풍조가 생겼다. 그러는 동안에 외래품에도 가짜가 범람하여 화장품, 담배, 의류, 주류 등은 가짜 등급까지 매겨져 도매 시장에서 매매되고, 외국의 싸구려 보급판 책의 가짜까지도 나돌고 있다. 상품의 가짜만이 아니라 가짜 인물까지 나오고 신성시되는 인격적 존재마저도 가장하여 무도한 짓을 자행하는 위선자 군상들이 나타났다. 이게 도대체 웬일인가. 사회에 어울려 살아가는 데 남의 정서 안정을 돕는 일로써 자기 정서의 안정을 꾀하는 것을 "선"이라고 하며, 남의 정서를 해치면서까지 자기 정서의 안정만을 추구하는 것을 "악"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사회는 그 구성원들에게 남의 정서를 해치지 않고 자신의 안정을 추구하기를 종용하며, 만일 이 기대에 어긋나면 적절한 제재를 가한다. 이같은 권선징악의 압력 속에서도 이를 좇지 않고 남의 눈을 속여 가며 악이라고 할 만한 짓을 버젓이 하는 자들이 있다. 말하자면 위선자라고 하는 자들이 그들이다. 표면상으로는 사회에 선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실제로는 남을 해롭게 하여 자기 만족을 얻는 부류들이 그들이다. 고아 구호 사업을 한답시고 구호금을 얻어다가 사복을 채우는 자, 육영 사업을 한답시고 학교를 설립해 걷어들인 수업료를 개인 기업에 투자하여 거부가 되려는 자 등을 말한다. 옛날에 예수가 규탄한 위선자는 선을 지나치게 떠벌리고 내세우며 실행하는 척하는 자였지만, 오늘날에는 그 정도를 넘어서 표면상 선을 가장하고 악한 짓을 자행하는 자를 위선자라고 부르게 된 것 같다. 이러한 위선자와 사기꾼은 어딘가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남의 눈을 속인다는 것, 겉으로는 번드레하면서 실제로는 남을 울려 자기 충족을 얻으려는 점이 같기 때문이다. 하기야 남을 속여 의외의 이득을 보는 것이 무료한 우리 생활에 웃음을 가져다주는 자극제 역할을 하는 수도 없지 않다. 봉이 김선달이 강물을 팔아먹는 사기 행각의 유머가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같은 풍조도 도에 지나치면 사회 불안이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은 뻔하다. 오늘날 상거래에서 보증 수표가 아니면 신용하기가 어렵고, 물건을 사는 사람이 으례 가짜, 진짜 여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더욱이 신문은 수출업자들이 견본과 다른 상품을 보내 신용을 잃어 수출이 감소한다고


보도한다. 일단 우리 사회에 이러한 풍조가 그대로 만연되고 있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우리 풍조가 그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무릇 한 개인의 고집적인 행동 경향이나 한 사회가 갖는 최빈적 성격은 그 개인이나 그 사회가 걸어온 역정과 짊어진 문화 양식 그리고 당면한 상황의 특이성에서 그 기원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사기 풍조도 그러한 관점에서 생각함이 옳을 것이다. 즉 어찌하여 우리 사회에 사기 행위가 많은가를 우리 사회의 과거와 현재의 특유성에서 더듬어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피압박 민족으로 강대국에 의하여 제압 당해 왔기 때문에 늘 방어적 태세를 취하며 살아왔다. 더군다나 국내적으로는 오랜 봉건 전제 정치의 굴레 속에서 대부분의 백성들이 가렴주구를 당해 왔으며, 아직도 이같은 잔재는 완전히 일소되었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계속적인 억압 속에서 사람들은 자연히 울분과 열등감 그리고 공격적 태도를 직접적으로는 표현하지 못하고, 간접적으로 이를 드러내는 버릇을 갖게 된 듯싶다. 국민적 성격을 보면,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심히 신경증적이며 내향적이고, 억압된 감정과 불안, 공포 그리고 여러 가지 면상이 착잡하게 혼합되어 때로는 의외로 잔인한 사디슴(가학증)을 노출시키고, 하찮은 일로 옥신각신하는 히스테릭한 협량 (좁은 도량)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불안한 성격이나 욕구불만 상태에서는 누구나 이를 극복하고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해 흔히 여러 가지 방어기제적 행동을 취한다. 정정당당하게 제 실력을 발휘하거나 타인을 지배하여 목적을 성취하지는 못하고, 간접적 방식으로 타인을 괴롭혀서 울분을 풀고 쾌재를 불러 본다. 또 비방과 음모로 상대방을 쓰러뜨리고 사기와 모함으로 남을 괴롭혀 자기 만족감을 얻는다. 이것은 왜곡된 공격 또는 간접적인 자아 방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사기적 행위가 많다고 한다면, 이는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이 갖게 된 일반적 욕구 불만적 성격으로부터 유래된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의 민족적 성격이라 볼 수 있는 욕구불만 상태나 열등감은 우리 민족의 또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굴의 정신을 갖게 하였다. 욕구 불만을 극복하고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악착스럽게 대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처음의 뜻을 관철시키고야 말겠다는 버릇이 생겼다고나 할까. 어느 운동 감독의 말이지만, 우리 선수들이 국제 시합에 나가서 이기고 돌아오는 경우 그곳 운동 전문가의 말인 즉 자기 나라 선수들이 기술이나 체력으로는 오히려 월등한데도 결국 지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한국인의 굳센 투지에 의한 것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감독 자신도 동의하는 바다. 이같은 불굴의 정신은 우리 나라에서 비단 운동 선수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 국민 모두의 일반적인 성격일는지도 모른다. 오랜 압박과 빈번한 침략을 받아 오면서도 우리가 순수성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불굴의 정신도 사태 파악에 무디고 깨끗한 승부 정신이 결여된다면, 그야말로 이전 투구의 추태를 보일 뿐이라 하겠다. 이는 못난이의 만용으로 그칠 것이다. 사회 규범도 아랑곳없이 남이야 죽든 말든 자기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불굴의(?) 정신에서 우리는 사기 행위가 자라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온상을 본다. 깨끗한 승부 정신을 겸비하지 못한


불굴의 정신이야말로 철저히 경계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이같은 억지와 철면피적 행위가 불굴의 정신이라는 탈을 쓰고 일을 그릇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협동 정신과 깨끗한 승부 정신이 강조되어야지, 무슨 짓을 하든 권력만 잡고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의 태도는 사회를 거짓과 위선으로 병들게 할 뿐이다. 생각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의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이다. 우리는 6.25 동란이라는 사상 초유의 대전란을 경험하였다. 아직도 우리는 언제 전투가 재개될지 모르는 준전시 상황 속에서 살고 있으며, 동, 서 양 진영의 냉전의 최전선에서 그날 그날을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자유당, 민주당 정권에 이어 5.16 혁명으로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 급격한 변동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정치적 불안정 상태에서 국민들은 백년대계는커녕 몇 년 앞을 내다보는 생활 계획마저도 영위할 수 없게 되었다. 더욱이 우리는 경제적으로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 때문에 장기 기업 계획���나 장래를 내다보는 안정된 생활을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더욱이 우리는 경제적으로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 때문에 장기 기업 계획이나 장래를 내다보는 안정된 생활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는 그날 그날의 호구지책으로 찰나주의, 향략주의만이 성행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수백만의 북녘 피난민에 대한 적극적인 구호 대책이 거의 없었으며, 독재자의 앞잡이로 무뢰한들이 횡행하여 사회 질서는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국민들이 먼 앞날을 바라보는 전망을 지닐 수가 없다. 이에 따라 좁은 전망 속에서 향락적, 충동적 생을 영위하려는 경향이 성행하게 되고, 이런 상황에서 물건 하나 팔아 터무니없이 팔자를 고치려는 사기 매매 행위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해방 후 외래 문물이 범람과 편중적인 외국 여행 등으로 우리 사회에는 고도의 소비 문화가 유입되었다. 그에 비해 우리의 평균 국민 소득은 그와 같은 소비 생활의 수준을 뒷받침할 정도로 많은 증진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사회에 만연된 소비 풍조 속에서 사람들은 저소득 국민으로서는 분에 넘치는 생활비 지출을 하게 되고, 이에 따라 비정상적인 소득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생활 수준으로 인하여 위선이든 사기든 거리낌없이 아무 짓이나 다하며 살아가는 풍조가 생긴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위선적 풍조에 관해서는 우리의 오랜 형식주의적 생활 방식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생각된다. 형식만 갖추면 그만이고 내용이나 실질은 문제삼지 않는 경향이 관혼 상례 속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오늘날의 관혼 상례는 허례에 불과할 뿐 의식이 지녀야 할 성실서, 존엄성까지도 완전히 폐기해 버린 감이 들 정도다. 형식이나 체면만 지키기 위해 의식이 있지, 참된 의의나 내용의 충실을 추구하려는 면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형식주의는 표리 부동의 이중성으로도 발전하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예식을 성대하게 베푸는 이면에는 허영적 형식으로 많은 축의금을 거두려는 실속이 있다. 표리 부동의 이중성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관직을 노리는 경우 겉으로는 국민의 공복으로 봉사하겠다고 내세우지만, 실제 추구하는 것은 관직이 지니는 이권적 가치에 있다. 합리적으로 내세우는 주장 뒤에는 반드시 숨은 야욕이 따로 있는 것이다. 흉칙한 야심가일수록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주장은 더욱 미화시킨다.


이러한 이중성이 바로 위선을 발효시키는 좋은 터전이 아닌가 싶다. 끝으로 우리 사회에 이러한 악당들이 자라나게 하는 간접적 요인으로서 생각되는 것은 국민들의 고발 정신의 결핍과 비판 정신의 부족이 아닌가 싶다. 같은 사회에 살면서 사회를 좀먹는 존재가 있는데, 그것이 직접 자기와 이해 관계가 없다고 해서 눈감아주는 미덕(?)이 있다.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은 신사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옆 사람의 주머니를 뒤지는 소매치기를 보고서도 주제 넘는 고자질꾼으로 몰리거나 보복 당할까 두려워 짐짓 모르는 체한다. 물론 도리어 보복을 생각하는 소매치기도 문제지만, 그의 이러한 태도는 무엇을 뜻하는가. 사회에 대한 개인의 책임감 결여로 볼 수밖에 없다. 사회 참여 의식의 희박성이다. 이러한 풍토가 사기 행위가 위선이 우리 사회에서 무성하게 자라나게 하는 비료가 되고 있다. 우리 주변에 우굴거리는 가짜 꿀 장수나 길가의 네다바이꾼, 가짜 인삼 장수에서부터 점잖은 위선적 사회 사업가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고발해서 뽑아 내는 국민 운동이라도 전개시켜야 하리라 본다. "1962 년 11 월" 자학과 사회도피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 중에는 제 몸을 불로 지진다든지 팔다리를 자른다든지 매일같이 발가벗고 눈구덩이에 가서 딩굴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학대함으로써 비로소 쾌감을 느끼고 불안을 가라앉힐 수 있는 증세를 "자학증"이라 부른다. 대체로 지나치게 양심이 강하거나 격렬한 증오심과 노여움을 순조롭게 외부 대상에게 발산시키지 못했을 때, 공격이 내향화되면서 이러한 병적 증세가 나타난다. 얼마 전에 정부의 경제 관계 고위직에 있는 한 친구와 술자리를 같이 한 일이 있었다. 이 친구 술잔 꽤나 비우더니, 말끝마다 "한국의 경제 문제 해결은 나부터 시작해서 30 대 이상의 기성인들을 모두 동해 바다에 쓸어 넣어야 한다"고 방담하는 것이었다. 물론 인구 팽창과 기성층의 무능을 한탄한 말이겠지만 다분히 자학적인 언사라 아니할 수 없다. 사실 우리 사회의 지식층에서 이러한 자학적 성향은 흔히 볼 수 있다. 대체로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객관화시키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고, 이렇게 객관화시키는 나머지 자기 스스로를 조소하고 멸시하기도 한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지식층에서는 이것이 더욱 심각해 거의 자학에 가까울 정도다. 이들은 대개가 외국을 여행해 보았고, 따라서 외국 문물을 기준으로 삼아 우리의 문물을 평가하는 습성을 은연 중에 가지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대한민국'이나 '코리아'란 말에는 어딘지 멸시하는 듯한 어감이 풍기고 있다. 이들은 못난 자기를 폭로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깎아 내려야 후련해지는 강박 증세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러한 자학적 경향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피압박 민족으로서 온갖 고난을 겪어 왔다. 강대국의 위압에 짓눌려 살아왔고, 거기에 민족 내부적으로는 소수 특권 계급의 가렴주구에 시달리면서 자라 왔다. 최근세에 들어와서는 외세들의 갈등 속에 끼여 신음해야 했으며, 일제 치하에서는 무자비한 억압하에 울분조차 제대로 발산시키지 못했다. 이렇게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 억압당할 대로 억압당한


우리 민족은 어느덧 자기도 모르게 열등 의식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여기에는 일제가 우리 민족의 열등성을 조작하여 국내외에 유포시킨 영향도 크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고, 다시 얼마 안 있어 6.25 를 겪으면서 세계의 문물을 직접 접하게 되었다. 거기에 우리 자신을 비교해 보고는 자신들이 너무나 뒤떨어졌다고 여긴 나머지 낙담과 절망 또는 열등감 따위를 느끼게 되었을 것이며, 나아가 저주하고 증오하는 마음까지도 갖게 되었으리라고 본다. 우리 민족을 명상적이고 내향적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흔히 내향적일 때는 어떤 모욕을 당하거나 열등감을 느끼게 되어도 공격을 밖으로 발산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자기 내부로 돌림으로써 자기 파괴 자살 등이 나타난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식층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조적 자학적 태도가 어느 정도 이해된다. 이러한 자학적 풍조를 일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열등 의식과 욕구 불만이 축적된 감정의 억압을 깨고 이를 발산시키도록 하는 것이 첩경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모든 일에 실패만 거듭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일해 보려는 의욕은 사라지고 할 수 없다는 체념만 앞서게 된다. 그리하여 의욕적이던 관심은 없어지고 경쟁적인 일에는 미리 겁먹고 참여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도 혼자 가만히 있자니 심심하고 갑갑해서 자연히 공상만을 즐기게 되고, 또 무료하니 무의미한 행동만을 반복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 이른바 고독을 즐기는 것이다. 이것이 퇴피증인데, 이것은 극단적인 경우에 정신분열증의 말기적 증상의 하나가 된다고 한다. 대체로 이런 퇴피증은 엄격한 훈육을 받았다든가 독재정치 체제 아래서 살아 왔다든가 할 때 많이 나타나며, 또 사뭇 순조롭게 잘 보호받고 살아오다가 갑작스레 험한 세파 속에 내던져진 사람에게 잘 나타난다고 한다. 요컨대 자기 주장이 제대로 성취되지 못하고 좌절이 거듭됨으로써 생기는 도피 경향이라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이런 경향이 오히려 바람직한 태도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정신과 의사들은 이런 경향을 지나칠 정도로 과민하게 경계한다. 수줍어하며 사양을 많이 하고 점잖게 침묵과 무관심을 지키는 것은 모두 이런 증후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들을 흔히 동양적인 사회적 태도라고 하는데, 이것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람됨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경향이라 하겠다.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 활동이나 대인 관계에서 어느 정도 서로 무관심하고 수줍어하며 -실은 체념하고 도피하는 것일지라도-사회적으로 초연한 태도를 취할 때 철들고 지각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반면 사회에서 기쓰고 이기려고 하며 오든 사회적 문제에 관여하기를 좋아하고 지나치게 관심을 표시하면 덤비는 사람이나 지각없는 사람으로 간주되곤 한다. 자기와 이해 관계가 전혀 없는 개인의 사적 문제에 관해서는 신사적인 무관심을 완전히 지키지 못하고 참견하면서도 자기와 많은 연관을 맺고 있는 사회 전체의 장래 문제에 대해서는 모른 체한다. 이러한 경향도 어떤 의미에서는 시달림에서 온 일종의 퇴피증이라 하겠는데, 오히려 이것이 전제적 정치를 조장하고 사회 발전을 좀먹는 것이 되기도 한다. 아마도 어떤 의미에서는 국민 일반의 이러한 경향이 고쳐지지 않는 한, 민주주의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낱 허울좋은 간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무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비율은 놀랍게도 우리 국민의 과반수를 넘는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는 아직도 여당이 선거를 통해서는 패배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1963 년의 선거가 상당한 관심을 모으기는 했으나, 아직 선거를 통해 여당이 진 일이 없으니 그 말도 그럴싸하다고 보인다. 정치에 무관심한 과반수의 국민들 중 약 그 반수는 거의 투표도 하지 않을 정도로 아예 무관심한 사람들이고, 그 나머지 반수는 정견이 없어 기분에 내키는 대로 자기 표를 던진다고 한다. 이 기분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은 권력과 조직을 쥐고 있는 여당뿐이니 언제나 여당의 승리가 가능하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이렇게 정치에 무관심하고 사회에서 도피하려는 경향을 지닌 국민의 과반수 속에 지식층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한국의 특징이자 치명적인 낙후성이라고 본다. 오랜 역사를 통해 길러진 퇴피 경향이 그대로 지식인에게도 남아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되는 대로 살아가며 그저 개인의 안전이나 모색할 뿐, 그들에게서 발전에 대한 의욕적인 정견과 적극적인 참여 의식은 기대할 수 없다. 투철한 견해를 지니고 대중에 앞장서서 사회를 발전시켜 나가는 지식층이 없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크나큰 결함이라 하겠다. 특정 세력에 붙어 그들의 입장을 이론적으로 합리화시켜 주는 군상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지식인은 격동하고 있는 사회 문제에 겁먹고는 숫제 눈감고 모르는 체 살아간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참된 모습은 무엇이며, 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솔직하고 진지하게 파고들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런 지식인에게 현실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지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회를 외면하고 자기 세계에만 파묻혀 있는 지식층의 활동은 마치 망상병 환자가 외부 세계의 현실적 지반을 무시하고 홀로 공상만을 즐기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그것은 참된 자기 추구 내지 지식 탐구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언젠가는 밑바닥이 드러나게 될 현실 유리의 자폐적 세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사회와 유리된 지식인의 활동은 문제 해결을 제시해 주는 진지한 노력이 될 수 없다. 지식인이 올바른 자세로 사회에 참여하여 사회 문제를 진지하게 해결하려는 노력을 할 때 우리 사회의 앞날에는 밝은 전망이 내비치리라고 본다. "1963 년 12 월" 매기와 지그스의 가정 우리나라 가정의 양상도 점차 변화되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숙모, 조카들과 함께 사는 대가족 제도는 점차로 그 자취를 감추고, 부부가 중심이 되어 자녀만 데리고 사는 이가 많아지고 있다. 절대적인 남자의 권리는 사그러지고 남녀 평등이 풍토가 성숙되어 가정의 돈주머니는 부인이 도맡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다. 오락에서 친구들끼리 즐기는 경향도 가족 중심으로 되어 간다. 아무튼 도시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러한 변화는 우리 사회의 근대화의 일환으로서 크게 환영할 바라 하겠지만, 이러한 가정 체제를 받아들이는 데 가족 중심이니 남녀 평등이니 하는 것에는 깊은 고려가 있어야 한다. 남편의 전횡이 나쁘다고 여성이 주장을 내세우는 나머지 여성 독단으로 운영되는 가정이 곧 남녀 평등한 가정은 아니라고 본다. 이러한 의미에서 요즘 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만화 "매기와 지그스"는 꽤 흥미를 끈다. 매기는 50 이 넘은 부인이지만, 기분만은 청춘이다. 번들번들한 콜드 마사지,


타오르는 듯한 볼 연지, 곤두세워 빗은 머리, 꽉 잡아맨 헤어 밴드, 귀밑에는 출렁대는 귀걸이, 게다가 앞가슴은 대담하게 노출시키고 타이트한 미니 스커트에다 날씬하게 보이려고 허리를 꼭 졸라매고 있다. 외출할 때 쓰는 모자는 날마다 달라지고 언제나 높은 하이 힐을 신고 나간다. 매력을 돋우느라 그렇게 차리고 다니겠지만 우리에게는 좀 징글맞아 보인다. 비록 반백의 부인이라도 우리네 중년 여성에게서 볼 수 있는 인생에 대한 체념과 허무감 따위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의욕적으로 세상이나 남편을 휘어잡고 인생을 즐기려는 생각만이 가득 차 있는 여성이다. 이에 반해 남편 지그스는 60 이 가까운, 고풍을 즐기는 키 작은 신사다. 언제나 예복 차림으로 하이칼라에 실크 햇 그리고 지팡이를 잊지 않고 들고 다니는 사장님이시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부인을 아껴 주고 순종하는, 말하자면 유순한 공처가라 하겠다. 이 두 사람이 결합하여 이루고 있는 가정에는 몇 사람의 부속 인원이 있다. 언제나 은근히 아버지 편이 되어 동정해 주는 묘령의 딸 로라와,'예쁜이'로 통하는 매기의 친정 조카딸, 그리고 요리사와 용인 한 사람이다. 이렇게 두 사람씩이나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꽤 상류에 속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집에는 어떻게 된 일인지 지그스 쪽의 친척이라곤 얼씬도 안하고, 매기의 친정 식구들만 문이 닳도록 드나든다. 장���는 말할 것도 없고, 처남 되는 비미라는 건달 녀석이 계속 드나들며 지그스를 괴롭힌다. 친정 조카들은 취직을 부탁하면서도 게으름이나 피우고, 또 정작 취직시켜 주면 염치없이 경쟁 회사로 팔려 가곤 한다. 친정 식구들의 행실로 보아 매기와 지그스의 가정 내에서 매기가 어떠하리라는 것이 가히 짐작된다. 쓸데없이 남편에게 신경질 부리고 폭행을 밥먹듯 하는 매기의 고약한 성격은 아마도 그녀가 자라난 가정 환경의 결과일 것이요, 또한 하류 가정에서 태어나 세탁부, 식당 접대부 등으로 고생하면서 상류 사회로 기어오르려고 피눈물나게 고생한 것이 부산물일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류 출신으로서 출세해 상류 사회에 끼어들게 되었으니 제법 고상하게 처신해야 했을 것이다. 매기는 일과로 피아노 치고 노래도 부르며, 지그스와 함께 음악회에도 자주 나간다. 서투르지만 그림도 그리는 척하며 골동품 취미도 대단하다. 교제도 상류 인사들하고만 한다. 그러나 지그스는 이러한 매기의 고상한 취미에 골치 않는다. 골프를 치고 부인 몰래 포커와 경마를 즐긴다. 노름하기 위해 부인을 속여 가며 용돈을 감추어 놓고 쓰느라고 식은땀을 흘리는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몸은 늙었어도 지그스 또한 남자인지라 바람피울 가능성이 꽤 많지만 엄격한 매기의 감시로 꼼짝도 못한다. 매기는 자기가 생각하는 가정 위주의 방향으로 남편을 길들이려고 한다. 이에 대해 지그스는 일단 아내에게 순종하지만, 적당히 아내의 눈을 속여 자기대로의 재미를 보는 것으로 낙을 삼고 있다. 지그스가 젊은 여자들에게 보이는 왕성한 관심으로 보아 아마도 아내에 대한 애정에 금이 좀 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 이들의 가정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는 여자가 남자보다 더 가정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내의 주장에 끌려가는 가정은 실속 있는 가정이 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남자는 남자대로의 생활이 있고 고유한 흥미 영역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내가


덮어놓고 자기 생각대로만 남자를 끌고 나가는 것도 슬기로운 방안이랄 수는 없다. 아내가 지나치게 자기 주장만 세운다면 남편의 애정을 저버리고 단란한 가정 분위기를 스스로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매기와 지그스의 가정은 그 좋은 본보기라 하겠다. 요컨대 우리나라 가정의 근대화에서 엄격히 경계해야 할 점은 여태까지 남자의 권리가 너무 센 편이었으니 이제부터는 여자의 주장이 강력히 실행되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다. 덮어놓고 부인의 주장이 신장된다고 그것이 현대화된 가정은 아닐 것이다. 남녀가 서로 상대를 존중하여 상대방의 취미, 생활영역, 요구 등을 이해하고, 자아를 주장하면서도 상대편에 대한 존경으로 그의 의견을 살려주면서 공통의 안식처를 꾸며 가는 것이 현대화된 가정의 참모습이 아닐까. "1964 년 8 월" 학생 없는 교정 그렇게 떠들썩하던 캠퍼스는 학생들이 나오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다.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아직 일도 잡히질 않는다.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산으로 바다로 꽤 많이들 가버리고 연구실에 나와 있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 해마다 여름 방학이면 욕심 내어 많은 계획을 세우고 안간힘을 써 보지만 어디 계획대로 된 적이 있던가. 더군다나 이번에는 소동이 심해서 방학 전에 미리 맥풀려 금년 방학에는 숫제 아무 계획 없이 지내보자는 뱃심으로 방학을 맞이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낸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무료하고 허전하며 답답하기 그지없다. 집에 있자니 좀이 쑤셔서 가방 들고 연구실로 나온다. 글줄이나 보는 체하고 있으면 누군가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게 마련이고, 찾아오는 이가 없어도 계속 눌러앉아 있지 못하고 이방 저방을 기웃거리며 남의 일이나 방해한다. 단조롭기 그지 없는 여름 방학이다. 이 여름 방학에 나에게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ㅂ교수가 처음 발견해 점심 시간이면 자주 나가곤 하는 보신탕 집이 이공대학 옆에 하나 있다. 요사이 이것이 알려져 7-8 명의 애호가들이 거의 매일같이 나간다. 굴 속 같은 방에서 웃통 벗고 모여 앉으면 먹기 전에 으례 보신탕에 관한 예찬이 나온다. 여름철에 20 일만 이것을 먹으면 겨울에 감기를 모른다느니, 누구는 이것을 오래 먹어서 폐병을 고쳤다느니, 어느 의사의 말이 이것은 가정 소화가 잘 되는 고기라고 했다느니 하는 따위다. 하여간 몇몇은 보름쯤 먹으니 기름이 내의에 배어서 식구들이 세탁하기 힘들다고 비명 지른다는 정도로 독실히 애호하고 있다. 하루에 점심 한 끼만이 아니라 두끼까지 먹어도 좋더란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경향은 여기에서도 동, 서가 갈라진다는 일이다. 이것을 애호하는 사람들 중에 소위 양학꾼은 적고, 거의 가 국학패들이란 점이다. 옛부터 우리네 선조들이 경험을 통해 발견한 이 식이섭생법을 국학패들은 믿지만 양학꾼은 못 믿는 탓일까. 또 하나 나에게 생긴 변화를 소개하겠다. 지난 가을부터 수삼 명의 교수들이 정구를 시작하더니 올 봄에는 제법 식구가 많아져 이번 방학을 계기로 매일


나오는 인원이 문과대학만 해도 20 여명 넘게 되었다. 덕분에 나도 뒤늦게나마 정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저녁때 나가서 30-40 분 뛰고 돌아와 목욕하고 맥주 한 잔 하는 기분은 그야말로 시원하기 그지 없다. 장마철에도 오후 3 시나 4 시쯤 비가 뜸하기만 하면 게임이 시작된다. 웬만한 가랑비나 빗방울 같은 것은 무시한다. 이들의 화제는 거의 정구에 관한 것이다. 누구의 서브는 어떻고, 스매싱은 어떠며 폼이 어떻고, 자네가 못하느니 내가 잘하느니 하다가 다시 게임은 시작된다. 교정 여기저기에 서 있는 합환수(자귀 나무)는 아직도 붉은 꽃입술을 간직하고 비에 젖어 있다. 6 월말 제철을 맞아 함빡 피었건만 누구 하나 이 청초한 여인을 보아주지 않으니 초목인들 어찌 그대로 꽃을 지게 할 수 있겠는가. 보아줄 사람들이 돌아올 때까지 한 두 송이라도 간직했다 보이려는 알뜰한 마음씨로 저렇게 피어 있는 것이리라. 이 고요한 교정에 서니 머리 속에 자꾸만 분노에 찬 학생들의 눈초리와 고함 소리가 명멸한다. 하릴없이 벽에 걸려 있는 화두를 외워 볼 뿐이다. 이렇게 해도 얻지 못하고, 이렇고 하지 않아도 얻지 못하니. "1969 년 8 월"

서비스 정신 새해를 맞이하면서 여러분들도 새로운 각오와 희망을 가지고 계획을 세워 새로운 발전을 시도할 것이다. 진심으로 여러분에게 발전되고 보람있는 새해가 되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보람있는 생활을 위해 사회 전체가 여러분에게 크게 기대하고 있는 여러분의 직책의 근간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여러분의 왕성한 서비스 정신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이 서비스 정신에 관해서 말해 보자. 첫째, 서비스 정신은 무엇보다도 사람의 정신이 밑받침된다. 상대편을 위해 그의 발전, 행복, 편리 등을 도와주는 것이 서비스라면, 이것은 상대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편을 잘 알고 있는 그대로의 그를 인정해 주는 존경심이 있어야 한다. 그의 발전이나 그의 행복을 마치 나의 그것처럼 느끼며 그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하는 것이 사랑이다.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사랑, 부부나 젊은 남녀간의 사랑이 모두 이같은 노고, 책임감, 존경심, 지식의 네 가지 요소가 합쳐서 참사랑이 된다. 서비스 정신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네 가지 요인이 핵심이 된다. 둘째, 서비스 정신의 주축이라고 생각되는 요인은 객관성이다. 자기 스스로나 상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폭넓은 관점에서 일을 처리하거나 사람을 상대할 때, 부질없는 감정적 마찰이나 상호 적대 관계는 있을 수 없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자기 통찰"이라고 한다. 이러한 자기 객관화 상태에서는 진실된 유머와 세계를 올바르게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며, 타인과의 관계도 부드럽고 따뜻하게 되고 자기 직책에도 충실할 수 있으리라. 그러므로 서비스 정신은 이같은 객관적 태도에서 솟아나는 것이라 하겠다.


셋째, 서비스 정신과 땔 수 없는 요인은 참된 인생관과 보람있는 가치관의 소유 여부다. 애정과 객관성만 가지고도 상대에게 잘 대해 주는 일이야 하겠지만, 이것만으로는 상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주는 서비스 핵심이 빠져 버린다. 인간 누구나가 올바른 방향을 추구하며 보람찬 생활을 하기 위해 대인 관계 속에서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이 서비스일진대, 이러한 방향 지향성이 없는 협조는 참된 서비스라고 할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평생 교양을 쌓아 가며 보다 나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존재다. 대인 관계에서 사랑으로 서로 마음을 주고 받으며 안전감을 얻고, 또 모든 사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면서 스스로 제자리를 찾고 보람있는 인생관을 실현시키고자 노력한다.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서비스는 생활 속에 넘쳐 흐르게 되고, 서비스 정신은 인격화한다. 이렇듯 보람있는 인생관을 구현하려고 하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으로 돌보아 주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보람있는 생활이 되도록 인도해 성심껏 대인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1971 년 1 월" 산림 전쟁 얼마 전에 고향인 충주에 다녀왔다. 버스를 타고 광주를 지나 이천 땅을 거치게 된다. 1 년에도 몇 번식 다니는 길이라서 연도 풍경이라야 별로 새로운 것이 없지만, 한 가지 마음에 흐뭇한 인상을 느끼게 하는 것은 이천 지방의 조림 사업이 제법 성공을 거두어 산림이 우거져 가는 모습이다. 벌써 35 년이나 지난 옛 이야기지만, 서울에서 공부하겠다고 할머니를 따라 처음 이 길을 지날 때의 풍경과는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갖게 한다. 비교적 산에 수목이 우거져 있던 고향에서 외지라고는 생전 다녀 본 적이 없던 열한 살 어린 소년이 서울에 간다는 벅찬 흥분으로 잔뜩 긴장해서 자동차에 흔들리며 이천 땅에 접어들었을 때 우선 보이는 모습이란 그야말로 기이한 풍경뿐이다. 높고 낮은 구릉과 산봉우리에 큰 나무라고는 하나 없고, 산사태를 막기 위해 계단식으로 잔디의 띠를 두르고 여기저기 까만 열매가 달린 회초리 같은 나무가 있는 새하얀 산의 모습, 하천이라고 해도 넓은 백사장 하상에 실오라기 같은 물꼬리가 보일 뿐이다. 그 정경이 이제껏 눈에 익혔던 산천 풍경과는 나무나 판이한 데 경이를 금할 수 없다. 어린 마음에도 너무나 이상해 "충주 땅엔 나무가 많은데 왜 여기는 산에 나무가 저렇게 없을까요?"라고 할머니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할머니는 동화조로 "옛날 옛적에 충주와 이천이 전쟁을 해서 충주 쪽이 이기고 이천 쪽이 졌단다. 그래서 이천이 입고 있던 옷을 벗겨다 충주가 끼어 입게 되어 그만 이천 땅은 백사장이 되었더란다"고 서슴지 않고 대답해 주셨다. 어린 마음에도 전쟁에 져서는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과 전쟁에 진 이천을 측은히 여기면서 이곳을 지나온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던 이천의 산천이 이제는 나무가 우거지고 산사태 흔적이라고는 볼 수도 없으며, 하천에는 풀밭 사이로 그득히 물이 흐르고 있어 흐뭇한 감을 절로 느끼게 한다. 오히려 나무가 우거져 있던 충주 지방은 산은 높아도 나무가 거의 없고, 여기저기 할퀴어 놓은 듯한 사태 흔적이 많이 보이는 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옛날 할머니가 들려주신 충주와 이천의 싸움 이야기가 다시


생각났다. 산림 전쟁에서 이번에는 이천이 이기고 충주가 졌다. 그러므로 이천은 충주 옷을 벗겨다 입고 나무가 무성한 두메 산골이 될 것이다. 이 뒤바뀌는 모습에 일면 감개 무량한 점도 없지 않아 있다. 사실 그동안 인접되어 있는 이 두 지역의 산림 정책이나 농민들의 조림에 대한 태도를 비교해 보면, 오늘날의 이 대조적인 변화는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싶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는 겉모습에서도 충주 쪽은 목조 가옥이 많고 울타리도 거의가 다 나뭇가지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천 쪽은 흙벽돌집이 많고 울타리도 돌담이나 흙담이 많다. 연료도 충주 쪽에선 나무를 주로 때지만, 이천 쪽에서는 볏짚을 많이 이용한다. 또한 이천 지방에선 집집마다 충분히 불을 때지 못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충주 지방에서 어느 집의 방이 추울 때에는 "이천 사람 불때듯 하는구나"라는 농담을 하는 것이 예사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천 지방에선 관민이 힘을 합쳐서 사방 공사에 전력을 다하고, 동리마다 산림 보호 책임자를 두어 남벌을 감시해 왔다. 또한 이천에 선 봄에 비료용으로 갈잎을 꺾는다든지 7.8 월에 땔감으로 풋나무 가지를 치는 것도 일정 기간을 정해서 일정한 규준에 따라 밑가지를 치게 하는 등 동민이 서로 협력해서 산림 가꾸기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우리는 잘 가꾸어 놓은 무성한 일본의 산림을 직접 본 일도 있고, 영국과 독일에서 잘 가꾸어진 인조림의 장관에 대해 들어본 적도 있다. 그리고 산림을 가꾸어 목재를 산출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문화 민족의 척도라고 주장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이천 지방 농민들의 산림 가꾸기 운동은 한낱 한 지방의 자랑거리만은 아니리라. 흔히 우리 사회에 특히 지식층에서 오가는 말속에는 "대한민국의..."라는 어두가 딸려 나온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긍지를 표시한다거나 적어도 순수한 서술적 용어로 쓰여지기보다는 어떤 자기 멸시적 비평이나 열등감을 직감하게 하는 어감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 민족이 협조성이나 규율 엄수 또는 장취성(앞으로 진보해 나갈 가능성)이나 자주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려 할 때 이 말이 자주 나오는 것 같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이같은 실망을 느끼게 하는 사회 동태나 개인 행동이 아주 없다고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어둡고 부정적인 측면만 가지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규정지어 버릴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밝은 면과 적극적인 측면에도 정당하게 눈길을 돌려보아야 할 것이다. 이천의 농민들이 산림 조성 사업에 수십년래 노력 쏟고 있는 것은 우리들의 협조 정신이나 자주성의 역량을 보여주는 그야말로 앞길을 밝혀 주는 증거가 아닐까. "1971 년 2 월" 현대화와 청소년 문제 지난해부터 우리 나라에서도 청소년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일고 있다. 이 문제는 현대 문명이 당면한 주요 과제 중의 하나인데, 우리 나라에서도 점차 문제성이 심각해져 더 이상 이를 도외시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13 세에서 18 세에 이르는 이 청소년기는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어린이가 어른으로 되어 가는 시기이다. 신체의 급속한 성장은 성적인 성숙도


가져와 이 시기에는 성적 관심이 부쩍 커진다. 부모로부터 감정적으로 고민되고 장래의 직업을 대충 선정해 놓고는 이를 준비하는 데 집중하기도 한다. 이때는 사회 규범, 도덕, 관습을 스스로 익혀 나가면서 자기 생활을 통제하고 이끌어 나갈 인생관을 수립해야 하는 시기이다. 이 나이의 젊은이들은 자기 나름대로 내면적인 고민도 많고, 사회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로 불평이 많다. 이 청소년들은 기성 시대들의 이해 부족과 지나친 간섭, 기성 사회에 부조리가 많다는 것 등을 불평하게 마련이다. 이 젊은이들을 많이 접촉하고 이들을 책임져야 할 기성층은 이들 때문에 또 크게 고민하고 있다. 너무 가정을 외면하고 친구들하고만 어울린다느니, 무책임하고 근로 정신이 부족하다느니, 반지성적이며 너무나 반항적이고 비판적이라고 탓하며, 질서, 규율, 관습을 무시하고 엉뚱한 요구를 많이 한다고 한탄한다. 이러한 청소년들의 문제성은 크게 사회화되어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문제가 되어 있다. 이제 사회 문제화되어 있는 이 청소년 문제에서 중요한 것을 크게 네 가지로 묶어 열거해 보자. 첫째, 세대간의 단절에 대한 문제이다. 가정에서건 학교에서건 젊은이들은 부모나 교사와 대립이 격화되고 반항이 심해져 이들을 다루는 데 크게 애먹고 있다. 둘째, 학생들의 현실 참여에 대한 문제이다. 요즘에 학생들이 지나치게 사회 참여에 나서는 경향을 보인다. 셋째, 청년 문화에 대한 문제이다. 청소년기가 길어지면서 이들의 수가 많아지고 대학생 수가 격증된 데다가 친구와의 집단 활동이 강조되는 것을 계기로 이른바 청년 문화가 유행한다. 이것이 성인 사회에 문제를 던져 주고 있다. 넷째, 청소년 범죄의 증대에 대한 문제다. 세계적으로 청소년 범죄는 증가 일로에 있다. 이 문제는 내용에서도 더욱 흉악화 하며, 연령에서도 그 수치가 더욱 낮아진다. 이 모든 것은 사회구조적 모순이어서 더욱 문제가 된다. 이제부터 이들 네 가지 문제를 이에 연유하고 해당하는 원인과 전망을 중심으로 현대 사회의 특징과 관련시켜서 고찰해 보기로 하자. 먼저 현대 사회의 특징부터 짚고 넘어가 보자. 서구의 근대사를 통해 현대화를 살펴보면, 시민 계급이 지배권을 쥐고 산업 자본을 통해 현대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런데 이 시민계급 정신은 과학적인 합리 정신이다. 베버(독일의 사회학자, 경제학자)의 말대로 서구 자본주의 사회는 이를 주도한 시민 계급이 지닌 프로테스탄트 정신인 근면, 성실, 노동을 존중하며, 규율을 엄수하고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자기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합리적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이룩된 것이라 하겠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원천적인 자본주의 정신은 퇴색되고 천직으로서의 직업 의식도 사라졌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산물인 관료 제도는 더욱 굳어지고 과학과 기술은 고도로 발전되어 정교한 기계 문명과 대량 생산이 급진전을 보이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중 생활은 풍요해지고 교육과 참정권은 보편화되어 대중의 상당수가 대학 교육을 받고 누구나가 정치에 참여하여 전통적 가치와 습속에서 벗어나 특유한 대중 사회를 이룩하게 되었다. 이 대중 사회 속에서의 개인은 아무런 자각도 없이 큰 기구의 한 부속품으로서 독자적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어디론지 움직여 나가는 존재일 뿐이다. 이러한 자기


망각과 정신의 무력 상태를 반성하고 스스로를 자각하는 운동이 현대 실존주의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는 19 세기 말엽부터 현대화의 물결이 밀려들어 왔으나, 이 현대화 물결에 본격적으로 접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사뭇 뒤늦게 발전되었지만 1960 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는 고도의 공업화와 경제 성장을 이룩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인구는 도시로 집중되었고, 합리주의와 개인주의 사상은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가족 제도는 어느새 핵가족제로 바뀌었다. 학교 교육은 보편화되어 대학생도 많이 배출하게 되었고 생활도 풍족해졌다. 하지만 이에 따라 젊은 세대의 가치관과 기성층의 그것과는 거리가 생겨 어딘지 사회는 조화를 잃어 간다고 볼 수 있다. 전체 사회를 일률적으로 통제하는 통일적 규범은 있을 수도 없다. 그리고 가치관이 세대에 따라 다르다고 해도 개인차가 많고, 또한 개인에게서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사회가 다양하게 되고 복잡해짐에 따라 과도기적 혼란과 부적응이 싹틀 가능성이 많음을 무시할 수 없다. 전통 사회에서는 각 개인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소임이 비교적 명확하고 안정되어 있어 연령 변화에 따른 큰 변동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중 사회에서는 분화와 전문화 그리고 급격한 사회 변동으로 각자 소임에 안정성이 없어지고 있다. 이렇듯 쉽게 변화하는 소임과 자기가 할 수 있는 소임에는 큰 격차가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불안해 하고, 이에 따라 이 불안을 처리하는 방식에서도 부적응 행동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오늘날 기성 세대나 청소년층이 다같이 호소하는 것은 세대간의 단절감이다. 부모나 교사 일반적으로 말해서 기성층과 젊은 층은 의견이 맞지 않고 의사 소통이 잘 안 된다고 한다. 이러한 대립에는 청소년층의 기성층에 대한 반항까지 곁들여 심각한 갈등을 이루는 경우도 많다. 앞서 청소년기의 과업에서 정서면의 독립을 이루는 것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청소년은 생활 면에서 경제적 독립이 어렵기 때문에 의식주에서는 부모에게 의존하면서도 일반 행동이나 정서, 태도 면에서 독립을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청소년에 대해서 부모들은 자식들이 앞으로 사회 진출할 때 독립적으로 생활할 것을 너무나 중시하는 나머지 사사건건 행동 면에서 독립적으로 성취할 것을 기대하고 또 이같은 입장에서 간섭하게 된다. 이렇게 지나친 독립 행동을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청소년으로 하여금 부모나 교사에 대해 반항하고 적대시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곤 한다. 사실 이렇게 강요하지 않아도 청소년들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그 나름대로 본받을 만한 사람을 찾아 그의 소임을 모델로 살고 있다. 이러한 모델이 되는 대상은 흔히들 독립 생활을 멋있게 해내고 있으므로 청소년들 또한 독립 성취를 열심히 배우게 된다. 세대간의 단절에 크게 작용하는 요인은 독립의 강요뿐만이 아니다. 청소년기에 들어서서 너무나 급속하게 높은 수준으로 독립되기를 기대하는 데서 불안과 갈등이 생기고, 또 이 때문에 반항이나 신경증성이 심해져 결국 이것이 세대간의 간격을 넓히게 된다고 본다. 이와 같은 개인적 요인과 더불어 사회적인 요인으로서 세대간의 대립과 이것의 원천이라고 볼 수 있는 반항 의식을 조성하게 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 급속한 현대화는 사회 체제를 급변시키고 있고, 세대간에 의식구조의 격차가 심해져 왔다. 따라서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자연히 대립과 갈등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특히 후진국일수록 기성층은 교육이 뒤지고 청소년층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게 되니 서로에 대한 이해와 의사 소통에 어려움이 생겨 세대감의 단절이 심한 편이라고 본다. 둘째, 현대는 대가족제에서 핵가족제로 옮겨지면서 연장자 중심에서 자녀 중심의 가정으로 그 성격마저 바뀌고 있다. 자년 중심의 가정이 나쁘지는 않지만, 절제 없는 자녀 중심적 태도는 아동기의 자녀를 양육하는 데 과보호적이 되기 쉽다. 아동기에 과보호적이었다가 청소년기에는 급격히 독립을 강요하게 되니, 아이들은 불안과 갈등에 빠지고 이 때문에 부적응이나 문제 행동을 나타내기도 한다. 셋째, 핵가족 내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약화되어 가는 경향이 청소년 문제를 야기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아버지는 직장 근무로 늘 밖에 있어 자녀를 마주 대하는 시간이 적다. 이런 경우 특히 남자 아이는 아버지와 동일시할 기회가 적어져 성장 후 자신의 소임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게 된다. 그 아이는 이른바 역할 혼미에 빠져 적당한 자아상을 갖지 못하게 되며, 이 때문에 부적응이 나타나 올바른 위치에서 기성층을 대할 줄 모르게 된다. 학생층이 진리를 추구하는 데 열성적이며 정의감이 강하고 이상주의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 문제에 관해서 문제의 핵심을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경험이 풍부하고 보는 눈이 확실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은 목적을 강조하지만, 책임감이 적고 관념적 공식주의에 빠지게 된다. 현실의 모순과 결함에는 감수성이 예민하지만, 원대한 관점에서는 소루한(꼼꼼하지 못하고 소홀함) 점이 많다. 1960 년대를 휩쓴 선진국의 학생 운동들에도 대체로 이러한 비판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어느 시대에서나 생각할 수 있는 이러한 학생층의 일반적인 특징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오늘날 학생들의 현실 참여가 과열되게 나타나고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늘날의 학생들에게 주어진 현대 사회의 조건에서 현실 참여 운동의 요인으로서 흔히 지적되고 있는 주장들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 세대간의 단절과 기성층에 대한 반항이 그대로 조직화되어 나타난다고 보는 점이다. 더욱이 학생들은 자주성이 부족한데도 동료 집단에 부화 뇌동하면서 하찮은 구호에 집결되어 움직인다고 본다. 이러한 견해도 근본적으로는 기성층에 대한 반항 의식을 가정해야만 성립되는 가설이라 하겠다. 둘째, 학생의 수가 많아지고, 게다가 그들이 어느 한 지역 내에 밀집되어 있다. 이 때문에 학생 서로가 조직을 꾸며 상호 의존하고 집결하기 쉽게 되어 있다고 보는 점이다. 셋째, 청소년들이 독립심을 기르고 인생관을 형성시키며 집업을 위한 준비에 열중해야 하는 시기에 과중한 입학 시험 준비에만 파묻혀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은 인생관 형성이나 직업 준비는커녕 부정견하고 불안정하게 되어 대학 입학 후에도 무기력하고 목표 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대학 입학 후 수험 공무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감정은 적극적인 행동으로 전화되어 급진적인 현실 참여를 나타나게 된다고 된다. 넷째, 두 번째 가설과도 관련되는 것인데, 대학 교육이 너무 보편화되다 보니


많은 학생 중에는 질적으로 부족한 학생들이 많아서 이들은 대학 강의에는 흥미가 없고 과외 활동이나 현실 참여에 지나치게 몰두하게 된다고 보는 점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높은 수준의 역할과 전문적 직업을 감당하기 위해 전보다 긴 준비기가 요구된다. 이러한 긴 준비기가 곧 청소년기인데, 이 시기에 해당되는 젊은이들은 숫적으로도 많기 때문에 이들끼리만 어울려 특유한 생활 양식과 고유한 세계를 꾸미고 그들대로 보람을 찾으려 한다. 이들은 기성층에 대해서 반항적이기 때문에 기성층의 세계와는 다른 모양의 옷차림, 말씨 등을 지니며, 대인 접촉 방식이나 생활 방식 또는 즐기는 음악, 미술의 경향까지도 다르다. 젊은이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스스로의 소속감을 찾고 기성층과의 상당히 어긋나니 큰 사회 문제로 된다. 이들이 특유한 생활 방식을 나타낸다고 하여 사회학자들은 이를 하나의 하위 문화로 간주하고는 "청년 문화"니 "친구 문화"니 하고 있으나, 이 문제는 물론 선진국의 경우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도 아주 무관한 문제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작금의 청년 문화의 해독적 경향에 대해서는 당국의 철저한 조치에 의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말해지지만, 그렇다고 이 물결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이 청년 문화 현상을 설명하려는 몇 가지 가설들이 현대 사회의 특질 속에서 찾아지고 있다. 첫째, 공업화된 현대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본격적인 생산 노동에 참가하지 않고 단지 이를 준비하는 단계에 있으면서도 현실 사회에 대해서는 무책임하게 관망적 입장에 서서 반희롱조로 생활을 즐기기가 일쑤다. 이러한 청소년들의 수가 많고 또 어떤 집단을 이루어 움직이게 되면서 친구 문화가 생겨났다고 본다. 둘째, 매스콤의 발달에 따라 청소년들의 특이한 모습이나 활동이 하나 하나 보도됨으로서 특이한 생활 방식이 빠르게 전파되고 획일적이며 동질적인 생활 양식이 젊은 층을 휩쓸게 되었다고 본다. 셋째, 생활이 풍요해져서 청소년들은 그들 나름대로 성인층과 멀어져 동무들끼리 어울려 즐기다 보니 동무들과의 동일시가 더 많이 이루어져 청소년층에만 획일적인 생활 방식이 굳어지게 되었다고 본다. 넷째, 현대 사회에는 세대간의 단절이 심하므로 청소년끼리의 생활권에서 살다가 점차적으로 성인 사회에 접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적응면에서도 무리가 없다고 본다. 이렇듯 가설 중에는 청년 문화 현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복잡한 성인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한 예비 과정으로 보려는 사람도 있다. 하여간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이 청년 문화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해독적 요인이 엄중히 제거되고 있다지만, 나름대로 대비책은 준비되어야 한다. 현대화된 사회일수록 청소년 범죄는 전문화하고 직업화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최근 청소년 범죄가 증가 일로에 있으며, 질적으로 볼 때 절도범이 그 대부분이던 것이 점차 폭력화해 가고 퇴폐적인 범죄가 많아지고 있다. 범죄를 저지르는 연령도 더욱 낮아지고 대도시 중심으로만 나타나던 범죄도 점차로 중소 도시나 읍, 면 지역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이렇게 사회가 현대화함에 따라 청소년 범죄가 증가되는 요인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지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의견들은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 사회가 복잡하고 경쟁이 심하게 ���타나면 구성원의 비동조성과 파괴성의 경향이 늘어날 것이며, 이에 따라 비행 청소년의 수도 늘어날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둘째, 복잡하고 전문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한 개인의 인격 발달이 고도의 성숙 수준에 이를려면 시간적으로나 노력적인 면에서 많은 어려움이 생긴다. 이 때문에 제대로 적응이 안 되고 탈락하는 사람이 많아져 반사회적 성격이나 신경증적 경향이 심한 사람이 되기 싶고, 이들이 범죄화의 소지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셋째, 앞서 지적한 세대간의 단절이나 청년 문화의 발달로 말미암아 동료들끼리의 생활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생활 속에서는 방종과 모방의 기회가 많고 통제하는 사람이 없으니 범죄화의 가능성이 많을 것은 당연하다. 넷째, 현대화하여 풍요한 생활을 즐기게 될 때는 빈곤에서 비롯된 비행은 없어지고, 오히려 풍부에서 비롯된 비행 쪽이 더욱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범죄의 성격도 반사회적인 공격성과 유희성을 띠게 되어 극악화 하고 퇴폐화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물론 개별적인 비행 청소년의 요인을 따져 볼 때는 여러 가지 병적 성격이 많이 작용하지만, 무엇보다도 일반적인 요인으로 생각되는 것은 어려서부터의 부모의 관심, 사랑 그리고 수용적 태도와, 양친간이나 친자간의 부드러운 관계, 일관성 있는 양육법 등이 청소년의 범죄를 예방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하겠다. 우리 나라의 청소년 문제는 아직 심각한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본다. 그러나 가까운 장래에 크게 문제화할 소지는 인정해야 한다. 이 문제의 해결은 단순히 교육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의 각 분야에서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포괄적으로 검토하고 대책을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1976 년 10 월" 패러다임 유감 평생에 걸쳐 우리의 구비 전설을 수집하신 한 노심리학자를 얼마 전에 찾아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우리의 신화는 신들의 서열이 없이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활동하는 이른바 함께 존재하는 다신론이며, 우리의 전설은 지극히 현세주의적일 뿐 환상적이지 못하다는 대목이 있었다. 요즘의 세태를 암시하는 것 같아서 퍽 흥미 있게 들었다. 그러나 요즘의 세태를 이렇듯 민족성의 탓으로 단정짓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큰 변동을 가정하고, 이러한 변동 속에서 개개인의 소임이 정착되지 못해 이러한 혼돈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나라는 현재 큰 변동이라 할 수 있을 만한 개혁을 수행하고 있다. 표면적인 변화나 지엽적인 개정만이 아니라 근원 혹은 그 뿌리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 달라져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달라져 가고 있는 뿌리란 결국 과학 이론에서 많이 논의되는 패러다임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학문은 어느 분야든 일관성 있게 일정한 대상을 관찰하여 사상들 사이의 관계를 명제화 시키고, 이들은 더욱 광범위 하게 묶어 체계 있게 이론화 시키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한 학문 연구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디디고 서야 할 관점 또는 불가피하게 지녀야 할 조작 방식이 "패러다임"이다.


물리학에서는 갈릴레오와 뉴튼의 역학 개념이 오랫동안 이 학문 연구의 패러다임 역할을 하였으나, 이후 아인슈타인의 새 모델이 나오면서 이를 패러다임으로 하는 새로운 물리학의 연구 분야도 생겨나게 되었다. 사실 연구자들이 패러다임을 그때그때 의식하면서 연구 활동을 벌이는 것은 아니고, 부지불식간에 일정한 패러다임 위에 서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대체로 이 패러다임은 시대성을 반영하고 학파를 달리하게 하며 이론 체계의 차이도 가져온다. 그러므로 상반되는 논쟁에서 상호간의 패러다임의 차이를 조심스럽게 검토함으로써 쟁점이 되는 마디를 풀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또 이제까지 그 위에 서서 연구해 온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더욱 적절한 패러다임 위에서 연구를 벌여 학문의 혁신을 가져오게 하는 수도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에 관한 고려는 비단 학문 연구의 세계에서만 중시되어야 할 것이 아닌 듯싶다. 일상생활의 생각, 계획, 판단, 가치관에까지도 적용시켜서 검토해 볼 만하다. 모든 생각이나 결정에 디디고 서 있는 받침돌과 같은 기본 가정이나 전제 조건이 꼭 있을 것이나 말이다. 요즘의 세태를 바라보면서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은 남들의 주장이나 활동을 평가할 때 그 자체가 디디고 서서 주장하는 기반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일이라 하겠다. 이렇게 함으로써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게 되며 자기를 더욱 객관화시켜 여러 가지를 두루 배려하게 하는 신중성을 기대할 수 있다. 생각하고 활동하면서 그 생각 그 활동의 패러다임을 따져 분명히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소경이 파밭 매는 격이 되지 않으려면, 이런 노력이라고도 하는 길밖에는 없을 것 같다. "1988 년 8 월" 탓, 통제 소재, 연기관 얼마 전 국회가 다시 개원되던 날 농민 대표들이 만여 명이나 여의도 광장에 모여서 고추 수매와 수세 감면을 요거하며 시위를 벌였고, 급기야는 폭력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폭력과 파괴 행동은 일부 과격한 사람들의 가세로 생긴 것이라고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자못 걱정들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농촌에서 태어난 어릴 적부터 농민들이 각고하는 생활을 눈으로 보면서 자란 필자로서는 이 뉴스를 듣고 일단 그들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고추 재배는 담배 재배와 마찬가지로 잔손이 많이 가는 일이고, 공들여도 결과는 반드시 좋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이른봄에 고추씨를 뿌려 모종을 옮겨 심고, 가물면 물주고 가지를 치고, 잎에 벌레가 붙으면 이를 잡아 주는 등 온갖 정성을 들인다. 그래도 고추는 비가 좀 많이 오거나 조금만 가물어도 금세 말라죽어 버린다. 또 적당한 기후로 고추가 잘 달려도 달린 고추는 병을 치르는 경우도 많다. 공들여 붉게 익은 고추를 적절한 시기에 따서 이를 말리는 데도 잔손이 많이 간다. 게다가 막상 매각할 때 고추의 시가가 늘 좋은 것도 아니다. 요즘은 이와 같은 고추 재배 방식이 과학화하고 개량되면서 오히려 잔손이 더 많이 가고 자본도 꽤 있어야 한다고 한다. 비닐 하우스에서 모종을 재배하여 이를 두서너 번 옮겨 심었다가 밭에 둔덕을 다져 비닐로 덮어 수분 증발이나 지나친 수분 침입을 막게 해 놓고 여기에 모를 옮겨 심는다. 건조 과정도 건조실을 만들고 공기를 가열시켜서 해야 한다.


그러니 품삯도 많이 들거니와 자본 투입도 이만저만이 아닌 셈이다. 이런 고생을 해 가며 재배해도 가격이 좋으면 그 나름으로 재미보겠지만, 작년처럼 과잉 생산으로 가격이 폭락하면 분한 마음에 울화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세상이 바뀌어 살기 좋은 사회라고 사회 전체가 외치고 있는데, 고추 재배 농민만은 농자금의 처리조차 할 수 없게 되었으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만 오랫동안 쌓인 한이 표출될 수밖에 없었다. 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는 한 많은 민족이라고들 한다. 한탄이 많은 백성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뒤집어 보면 과거나 현재에도 원한이나 뉘우침이 많은 백성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뒤집어 보면 과거나 현재에도 원한이나 뉘우침이 많은 백성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이 한풀이로서 감정 표출이 많고 또 정서가 불안정한 편이다. 그래서 어떤 인류학자는 한국인이 정서적으로 흥분하기 쉽고 불안정한 편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특히 낯모르는 여행자를 지나치게 후대하는가 하면, 같은 민족끼리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대립이 심하고 서로 예리한 공격 성향을 보이며, 음식을 먹는 데도 고추나 젓갈류 등 강한 맛과 향기 있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또 흰옷이나 부서지기 쉬운 갓을 써 스스로 정서 통제에 항상 노력했던 것은 모두가 정서성이 강한 민족임을 말해 주는 바라고도 한다. 정서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로 연구되어 왔고 이에 대한 이론도 많지만, 최근에는 정서를 막연한 생리적 흥분 상태와 이 흥분 상태의 원인에 관한 인지 과정에 상호 작용으로 보는 이론이 유력시되고 있다. 환경에 어떤 사건이 나타나면 그것이 충격이 되어 사람은 막연한 어떤 상태(흥분된 상태)에 빠지게 되며, 뒤이어 곧 이 흥분이 무엇 때문인가를 인지하게 되면 어떤 유형의 정서 상태나 감정이 결정된다고 한다. 이렇게 흥분 상태는 정서의 강도를, 인지 과정은 정서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무엇인가 억울한 일을 당해 원망과 공격하려는 마음이 집중될 때 여기에 한탄하는 정서가 생긴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좋은 결과를 얻든지 좋지 못한 결과를 얻든지 간에 그것의 탓을 찾아서 좋아하거나 슬퍼하고 화도 내고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또한 이런 경우에 겁을 내 도망치거나, 더욱 가까이 접근하기도 한다. 자기의 어떤 행동의 결과가 좋은 것이든 아니든 전적으로 그 행동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 즉 자기의 노력이라기보다는 우연의 힘이라든가 운이 좋아서라든가 또는 다른 외적인 힘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믿게 될 때 이를 외재적 통제의 신념이라고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어떤 행동의 결과가 자신의 행동 때문이라든가 자신의 영속적인 특징들의 소치라고 볼 때 이를 내재적 통제의 신념이라고 한다. 이렇게 자기의 행동을 통제하는 요인이 자기 자신 속에 있다고 보느냐 아니면 자기 이외의 외적인 것에 있다고 보느냐의 문제를 통제 소재의 문제라고 한다. 이런 경향은 사람마다 비교적 고정성을 띠므로 이를 성격 차원으로 보고, 이러한 통제 소재가 내재적이냐 외재적이냐를 측정하는 이른바 1-E 척도까지 제작되어 성격 측정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 이 측정를 써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내재성은 일 완수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 데 더 적극적이며, 많은 정보를 구해 사회 활동에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장애물을 극복하는 데도 더 적극적이며, 좌절에 대응하는 것에도 더욱 건설적이다. 요컨대


내재성은 생활에 적극성을 부여하며 통제적 접근에 열중하게 하는 편이다. 이 통제 소재는 신체나 정신의 건강 여부에도 상관 있다고 한다. 흡연자를 조사하니 외재성이 많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담배를 끊는 자를 조사하니 내재성이 많더라는 것이다. 입원할 결핵 환자 중에도 자기 건강에 관해 정확한 정보를 지니고 있거나 자기에게 요구되는 바를 아는 것 역시 내재성의 사람에게 많았다고 한다. 또 1-E 척도 점수는 예방 행동, 예방 주사를 맞는 일, 수술 후에 조리하는 일과도 상관을 보인다고 한다. 성의 차는 확실하지 않으나 여성 중 내재성을 지닌 사람이 가족 계획을 효과적으로 실천하는 편이며, 살빼기 위한 체중 감소 프로그램의 자기 통제도 잘한다고 한다. 요컨대 내재성을 갖는 사람이 환경을 더 잘 조작하고 통제하며 보다 능력 있고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편이라고 한다. 태도 변화와 통제 소재의 상호 관계를 보며, 외재성을 지닌 사람은 쉽게 설득 당하고 동조를 잘하며 타인으로부터의 정보도 쉽게 수용한다. 또한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힘과 노력에 의한 성공을 기대하는 수준도 낮고 결과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도 부족해 남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 반면 내재성을 갖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에 확신을 가지고 있고, 가치 면에서도 자기 통제를 선호하며 타인의 조정을 혐오하고 반대하는 것을 당연하게 본다. 최근 연구들은 대학생들의 1-E 척도 점수가 점차 외재성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은 다분히 학생들의 사회적, 정치적 의식 변화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통제 소재의 내, 외 대립을 인간 사상에까지 일반화시켜서 인간 사상은 이 두 방향으로 양분하여 발전한다고 보는 이도 있다. 개인의 능력이나 업적에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개개인의 사람됨 자체의 차이 때문이라고 보려는 입장과, 개개인을 둘러싼 환경 조건의 차이 때문이라고 보려는 입장이 양립되어 있다고 본다. 이 대립이 정치에서는 귀족주의 대 평민주의, 보수주의 대 개혁주의, 전체주의 대 민주주의 사이의 대립이며 심리학에서는 실험심리학 대 측정 심리학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사회 계층간에도 잘 사는 사람은 그들이 잘 사는 이유를 자기 자신들이 우수하기 때문이라고 자부심을 가지며,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못사는 이유를 환경이나 사회제도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위안을 얻는다. 그러므로 잘사는 층은 귀족주의, 독선주의, 자유경쟁주의로 되기 쉽고, 못사는 층은 평민주의, 민주주의, 통제주의로 흐르기 쉽다. 이러한 경향에 비추어 보면 보수주의는 어떤 사회 현상이나 부조리의 이유를 당사자들의 사람됨 자체에서 볼 뿐 환경의 탓이나 환경 조건의 개량을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나 급진주의는 개개인의 못사는 이유를 전적으로 환경 체제 때문이라고 보고 체제 개혁을 주장한다. 이렇게 볼 때 성격적으로 통제 소재가 내재성인 경우가 보수주의적이라며, 외재성인 경우가 급진주의적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억울한 일을 너무 많이 당해 왔고 현재도 불합리한 점이 너무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탓할 대상도 많이 가지고 있다. 우리는 정당하게 탓할 것은 탓하고, 권리를 가져야만 한다. 그러나 남의 탓만 하고 제 탓은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큰일이다. 또 의무도 잊어서는 안 된다. 성격적으로도 자기 탓을 많이 하는 사람이 모든 면에서 능률적으로 살고 있음은 전술한 바 있다.


이렇게 볼 때 탓을 해도 정당하게 해야 하며 남의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자기 탓도 많이 해야 한다. 더욱이 자기 탓을 더 많이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권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너무 탓만 하는 것은 아닐까. 잘못된 것을 고치려고 남이든 자기든 탓만 하고 살 것인가. 잘되어 있는 것은 없는가. 알게 모르게 만족할 만한 것에 대한 탓을 문제삼지 않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의 이러한 상태를 가져오게 한 잘못된 탓을 찾아서 이를 고치고 더욱 잘되게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잘된 면의 원인도 잊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오늘날 현대화니 민주화니 하면서 우리의 생각을 너무나 과학적으로만 하려고 하는 것에 회의를 갖게 된다. 사고를 논리에 맞게 실증적 과학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을 탓하는 게 아니다. 생각하는 관점을 과학적인 진리 추구나 이것의 응용이라는 면에만 맞추지는 말자는 것이다. 종교적인 입장에서 성스러운 것도 추구하고, 예술적 입장에서 아름다운 것도 문제삼고, 도덕적인 관점에서 착하나 면도 추구하는 폭넓은 관점에 서서 살기 좋은 사회를 이룩해 내는 노력으로 민주화를 이끌어 나가자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불교에서 주장하는 연기관이 떠오른다. 서양 철학에서는 변화무쌍한 현상계를 파악하는 데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성질, 상태, 작용의 밑바닥에는 불변하는 자기 동일적인 실질적 본체가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서양 철학에서는 이들의 상태나 상호 관계인 참된 지식 즉 진리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오늘날의 과학도 형식은 이와 마찬가지 입장에 서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불교의 입장은 이러한 실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공이란 이 세상이 아무 것도 아닌 허무라는 뜻이 아니고, 실체라고 보아야 할 것이 이 세상에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상으로서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실체도 없는데 이 현상들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고 물을 때, 대답은 연기의 원리에 따라 일어난다는 것이다. '연기'란 여러 가지 조건에 의거하여 현상이 일어나는 방식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비록 어떤 하나의 조건이 주된 원인-또는 보조적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그 실체의 변화나 작용으로 인해 다른 실체의 변화나 작용이 나타나는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이것은 여러 요인들이 합쳐서 한 현상을 일시적으로 이룬다는 것을 뜻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연기의 원리는 상호 의존의 관계라고 한다. 현상은 무상하고 늘 생멸 변화하지만, 이들의 변화는 무궤도적이 아니라 모두가 상호 의존의 관계를 맺으며 이룩된다고 본다. 즉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가정, 학교, 사회 안에서 양육되고 교육받으며 성장해서 사회의 일원으로 일하게 된다고 할 때, 이 과정 속에서 접하고 도움 받는 사람이나 물질적 대상을 여러 가지 역사적, 문화적 사건들의 산물로 보거나 또는 이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른 현상의 요인으로 참여된 것으로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 의존성은 사람의 성장 과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식주와 관계되는 경제 현상에도 상호 의존성은 그대로 적용될 수 있고, 문화 전반이나 정신 생활에도 이같이 겹치고 싸인 무궁한 연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일체 만상이 이같은 연기의 원리 즉 상호의존성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생성 유전되며 사라지기도 한다. 필자는 물론 불교 원리를 설명하자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불교를 설법하려는 것은 더욱더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풍조가 민주화의 과업을


내세우며 너무나 단순한 인과 법칙으로 현상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처리하는 것을 좀 피해보자는 것뿐이다. 원인을 단일화시키고 말고 다원화시키며 탓만 하지 말고 고마움도 알아야 한다. 물질 세계만을 다룰 것이 아니라 정신 세계도 고려해 보다 넓은 관점에서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는 마음가짐을 가져 보자는 것이다. "1989 년 3 월" 부모의 자녀 지도와 이해 청소년 자녀를 거느리는 부모로서는 이들이 생각하고 생동하는 기본적 성향과 남다른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 주면서 이들을 지도해야 한다. 대체로 청년기를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과도기로 본다. 이 시기는 성적 관심이 매우 왕성하며 감정이 퍽 불안정하고 독립적으로 행동하려 들며 자아관을 확립시켜 나가는 시기다. 이러한 시기에 발달되는 심리적인 면을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부모를 보는 눈이 달라지고 독립 성향이 두드러진다. 어릴 적에 부모를 전지전능한 존재로 생각했다가 사춘기가 되면서는 오히려 사회 저명 인사나 선배 중에서 존경하는 인물을 찾아 애착을 보인다. 그러다가 이들에게도 시들해지면 스스로가 독립하는 것에 열중하게 된다. 이때 부모나 교사 그리고 선배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되고, 점차 경제적 독립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이를 위해 노력하게 된다. 둘째, 이성을 보는 눈이 달라져 자신의 성적 역할에 관심이 많아지고 성적 행동의 표출이 왕성해진다. 사춘기가 되면 이성에게 심한 대항 의식을 나타내다가 연상의 이성을 따르고, 그 다음에 이성 친구에게 애착과 연애 감정을 지니게 된다. 더 나아가서는 여러 가지 형태의 성적 행동을 나타내기도 한다. 셋째, 청소년은 독립 성향의 구현으로 장래의 직업을 결정지어 이를 이루기 위한 공부에 몰두한다. 이 작업은 본인, 부모, 교사가 공동으로 지나친 욕심 없이 사회적 요구와 본인의 능력, 가정 형편 등이 적절히 고려되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상당수가 오류를 범하고 끝내 헛된 인생을 사는 수가 많다. 넷째, 청소년의 중요한 심리적 과제는 어른다운 가치관과 주체성을 지니게 되는 일이다. 아동 시절에는 부모와 교사가 제시하는 가치관이 절대적이지만, 청년기에는 친구와 어울려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 자기 특유의 가치관을 지니고 행세한다. 그들은 존경하는 인물의 가치관을 자기화 시키고, 보다 높은 교양을 쌓아 가면서 가치관의 자기 체계화를 시도한다. 이에 따라 자기의 역할과 인생 목표에 대해 자각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주체성을 확립시킨다. 이상은 청년기의 심리적 과제 때문에 생기는 청소년의 성향 내지 특성이지만, 오늘날 그들이 자라고 있는 시대적 특수성 때문에 지니게 되는 문제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들은 세대간의 단절과 갈등을 지니고 자라 왔기 때문에 현실 사회에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청소년 스스로가 현실 문제 해결에 참여함으로써 기성 세대와 대립하고, 청소년 특유의 하위 문화를 형성하여 기성 세대의 상위 문화에 도전한다. 또한 이러한 반사회적인 청년 문화의 기저에 즉흥적인 반항성이 가세하면서 청소년 범죄 성향까지 만연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한 책임은 성인층에도 있으나, 여기서는 논외로 하고 가치관에 관한 청소년의 특성만을 생각해 보자. 우리 사회가 너무 지나치게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을 강조하고 교육에서도 과학적 태도에만 치중하다 보니 청소년들이 결정론적인 인과론으로 모든 것을 생각한다. 그러므로 한 개인의 행동 원인을 생각할 때, 그의 의지나 책임은 무시한 채 어떤 외적 사실이나 현상만을 그 원인으로 보려고 한다. 스스로의 책임을 생각하지 않고, 어떤 사회 현상의 탓이나 자신의 어떤 특질 탓으로 보려고 한다. 말하자면 지나친 과학주의의 폐단을 보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고도로 기계화되고 복잡한 다원화 사회에서 생활 조건도 급변해 간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은 개인의 능력이나 가치 기준에 무력감을 느끼게 되고 가치와 정서가 메말라 불안과 권태감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민감한 청소년들은 허무주의, 찰나주의, 이기주의에 빠져드는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급속한 매스콤의 발달이 청소년에게 자극적, 비도덕적, 성적 행동 특성과 폭력화, 현실 참여, 권위 무시의 특성을 조장하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또는 핵가족화로 인한 지나친 자년 중심적 교육 태도는 자녀의 요구를 지나치게 충족시켜 준다. 그리하여 이것은 청소년으로 하여금 방자하고 인내심이 없게 하며, 자기 주장이나 하고 반항하며, 권위를 무시하는 행동을 하게끔 부추겼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경향은 가정이나 교육 기관에서 여러 가지 청소년 문제가 야기되는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문제성을 지닌 청소년과 매일같이 함께 어울려 생활하면서 지도해야만 하는 부모들은 이들의 잘못을 그저 받아 주고 이해하면서 이끌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받아 주고 이해한다고 해서 이를 지나치게 하므로 오히려 반감을 일으키게 된다. 모르는 체 침묵을 지키면서, 호소해 올 때나 경청하고 도와주는 것이 옳을 듯하다. 이해는 잘못에 대한 칭찬이나 묵인이 아니며 방임이나 무관심도 아니다. 그렇다고 사생활을 침범해서까지 적극 지도하는 일은 더욱 아니다. 자기 감정을 상하게 하는 자녀의 행동이라면 이를 잘 참아 내고 잘못을 수용하며 묵인해야 하지만, 책임성이 문제되는 잘못에 대해서는 엄격한 태도로 비판과 성실한 지도가 따라야 한다. 언제나 보다 나은 방향을 생각하고, 또 지도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성실하고 진지하게 지켜보아 주어야 한다. "1989 년 4 월" 셋째 묶음 대학생의 소외감 학생들의 연애관 "세대사"는 대학생들의 연애관을 알아보기 위해 6 항목으로 된 간략한 설문지를 작성하여 중앙대생, 연대생, 고대생 400 여 명에게 응답을 받았다. 표본 추출의 방식이나 질문 항의 형식에 문제점은 있으나, 학생들의 연애관을 어림하기에는 충분한 것 같아 이 조사를 중심으로 연애관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어떤 특정한 이성의 인격에 접함으로써 쾌락감, 안전감, 행복감 같은 정서적


충족을 느끼게 되어 그 인격체와 독립적이고 영구적인 접촉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연애"라고 부른다. 이러한 인격적 접촉은 신체적 접촉만이 아니라 상징적 접촉 혹은 정신적 접촉으로도 이룰 수 있다. 서로 만나서 살을 대는 것만이 아니라 서신으로 가까이 할 수도 있고 마음이 서로 의기 투합하여 합일하게 되는 경우까지 연애라 한다. 서로 싫어하지 않는 남녀가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같이 영화도 보고 음악 감상도 하고, 혹은 전화나 서신으로 의견을 주고 받는 동안에 즐겁고 뜻이 맞아서 각자가 사는 보람을 느끼고 자구 이러한 접촉을 시도한다면, 이는 정신적 접촉을 주로 한 연애라고 본다. 이와는 달리 서로 만나서 손잡고 포옹하며 키스와 성교 등으로 즐거움을 찾는다면, 이는 신체적 접촉을 주로 하는 인간적 접촉이라고 본다. 같은 신체적 접촉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활동을 통틀어 성 활동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연애란 말은 이성과 정신적 인격 접촉으로 충족을 느끼려는 과정을 주로 말하지만, 약간의 성적 활동이 으례 수반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너무 결백할 정도로 성적 활동이 없는 연애는 플라토닉 하다고 무시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성 활동은 지나치게 두둔하고 있지도 않다. 너무 성 활동만을 위주로 한 연애는 '성애'니 '치정'이니 하는 말로 표현하고 '연애'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어쨌든 이러한 연애의 즐거움은 정말로 대단하다. 인간 역사가 기억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이를 한껏 찬미하였고, 그래도 다 못해서 앞으로 두고두고 찬미해 갈 것이니 말이다. 연애는 젊은이들의 과업(?)이다. 연애 감정은 아동이나 중년기 혹은 노인에게도 있지만, 대체로 청년기에 가장 빈번하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연애의 본질을 알려면 청년기의 특징에 관련시켜 규명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아동이 어른으로 되는 청년기에는 신체적 성장과 더불어 성적으로 성숙되어 왕성한 성욕이 나타난다. 이 강렬한 성욕이 연애에 작용되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청년기의 연애를 전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연애가 단순한 치정극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년기의 또 하나의 특징은 급격한 성장에서 오는 심한 불안감이다. 성인으로서의 독립 생활에 자신이 없고 각박한 세파 속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마음이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불안하기 때문에 청년기에는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생활상의 안전을 찾는 요구가 강렬하게 나타난다. 사회 관계에서는 자기를 지지해 주는 사람에게 접근해 그를 동반자 내지 지지자로 삼으려 한다. 일반적으로 이를 안정감 욕구라고 부른다. 이 욕구 때문에 어려서는 어머니에게 매달리게 되고 커서는 동고 동락할 동반자를 찾기에 열중한다. 즉 늘 마음의 안정, 즐거움, 쾌락 등을 추구하는 여러 활동이 나타난다. 이렇게 정서적 안정을 추구하는 활동을 통틀어 "사랑"이라고 부른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곳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되니 꽃을 사랑하고, 귀여운 자녀에게서 흐뭇함을 느끼니 자녀를 사랑하게 마련이며, 모든 것을 허용하고 받아들여 내세까지 돌보아 줄 것이니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그이와 같이 있으면 저절로 기쁘고 든든하며 희망이 생기고 사는 보람이 있으니 어찌 그이와 떨어지려고 하겠는가. 이렇듯 사랑이니 연애니 하는 것은 안정감 욕구의 반응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연애는 이성에 대한 사랑이므로 아마도 성욕이 부과되어 작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성적 활동이 수반되는 사랑인 연애는 사랑이라는 미덕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성 활동이 금기시 되어 많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연애관이나 이에 대한 견해도 이 점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제껏 연애라는 행동을 유발하게 하는 원동력으로서 안정감 욕구와 성욕을 지적하였지만, 이것만으로 모든 설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모든 행동이 그러하듯 이러한 행동을 대하는 관념 형태 내지 가치관과 의식 구조가 또한 행동을 좌우하게 된다. 말하자면 어떤 행동이 아무리 하고 싶더라도 그것이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면, 그 행동은 실천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연애를 좌우하는 요인으로 각자의 연애관이 문제된다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학생들의 연애관을 아는 것은 그들의 연애 경향을 짐작하는 데 절대적인 요건이 된다. 먼저 우리 학생들이 어느 정도 연애하고 있으며 연애에서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인가를 알아보고, 연애에서 고민하게 되는 장해는 무엇인가, 또 문제시되는 성욕을 연애에서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짐작하기 위해 결혼과 연애의 일치 여부와 연애 중의 성 관계에 대한 태도를 설문 내용을 중심으로 따져 보기로 하자. "제 1 문" 사랑하는 이성이 있느냐? 있다면 그에게 무엇을 구하느냐? 이 질문에 "있다"고 한 사람이 31%, "없다"가 69%였다. 연애 대상에게서 구���는 것으로 행복이 35%, 이성의 인간성 탐구가 21%, 쾌락이 11%, 고독의 해소와 모성애, 배신이 각각 3%, 기타 24%였다. 이 질문 형식이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성이라 해도 서로 연애하는 상대만인지 짝사랑하는 대상도 포함시킨 숫자인지가 애매하며, 또 현재 진행 중인 연애만인지 과거에 있었던 연애까지도 포함시켰는지조차 불분명하다. 일본의 도시 남자 대학생들에게 연애 경험에 대해 설문한 하나의 조사를 보면, 대상자의 약 70%가 경험 있다고 답했다. 그 중 대학 시절의 사랑이 30%정도, 짝사랑이 35%였다. 이런 자료로 유추해 보면, 우리 대학생들이 상호 연애의 약 15% 정도가 대학 시절에 연애 경험을 갖는다고 보겠다. 홍성직 교수가 조사한 우리나라 대학생의 가치관 연구에서는 86%의 학생이 자유의사로 자기의 결혼 상대를 선택하겠다고 되어 있고, 숙명여대 학생 박경애의 조사에서는 대학 시절 남녀 교제를 찬성하는 비율이 96%로 나와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대부분이 남녀 교제를 원하고 자유 결혼을 바라고는 있지만, 실제로 자유롭게 교제하고 연애까지 하는 학생의 수는 불과 15%밖에 안 되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많은 장해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애 대상자에 대해 구한 답을 보면, 인격적 접촉으로써 자기의 안정감 욕구를 충족하려는 것이 사랑이라는 주장이 새삼 수긍된다. 행복이니 쾌락이니 고독의 해소니 모성애 추구니 하는 모든 것이 허전한 마음의 불안정성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목표를 추구하며 연애하는 숫자가 과반수나 된다. 그리고 이성에 대한 인간성 탐구가 21%나 되는데, 이는 이성을 잘 모르고 있어 그에 대한 호기심으로 연애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호기심에서의 연애는 호기심의 해소와 더불어 와해되거나 또는 성 유희에 빠질 위험성이 있으므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제 2 문" 사랑 속에서 느끼는 고민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해 "배신" 27%, "경제적 부족" 23%, "사고 방식의 차이" 6%, "불성실" 5%, "기타" 4%, "모르겠다" 13%, "없다" 22%로 답하고 있다. 이 숫자로 보면 많은 학생들이 연애에서 만족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이 숫자로 보면 많은 학생들이 연애에서 만족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원하는 것과 기대하던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특히 경제력의 부족이 연애에 큰 장해로 작용한다. 때로는 많은 학생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범법 행위를 하기도 한다. "제 3 문"연애와 결혼은 일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여기에 "그렇다"가 42%, "그렇지 않아도 좋다"가 58%의 대답이 나왔다. 결혼을 신성시 하지만, 연애 자체는 이것이 성 행동을 수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많이 경계 당하고 있다. 다만 연애는 결혼의 전주곡으로 필요함을 인정한다는 것이 일치론의 근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일치론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연애의 향락성과 결혼의 실리성을 따로이 인정하는데, 그들은 결혼 전 성 행동을 어느 정도 용납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대학생은 과반수 이상이 연애의 향락성 내지 성 행동의 개방성을 받아들인다고 볼 수 있는가? 이는 다음에 나오는 질문과 더불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제 4 문" 결혼 전 성 관계를 용인할 것인가? 이 질문에는 31%가 "있을 수 있다"로, 69%가 "있을 수 없다"로 대답하고 있다. 성 관계를 결혼에서만 용인하려는 것을 현대적이라고 하려는 데에는 많은 의문이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성 행동을 완전히 개방하였다면, 인류는 발전은 커녕 벌써 존립을 끝마쳤을 것으로 본다. 모든 인류의 정력이 성적으로만 발산되었다면 무엇을 남겼을 것인가. 하여간 결혼 전 성 관계를 상당히 용인하는 편이라고 하지만 결혼 전 다른 사람과의 연애 관계(제 3 문)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반대에 부딪치고 있을 을 볼 때, 아직도 성 행동에 관한 터부는 젊은이들에게도 남아 있음이 분명한 것 같다. "제 5 문" 처녀가 피임약을 가지고 다닌다면 이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이 질문에 "있을 수 있다"가 9%, "절대로 부당하다"가 91%로 나왔다. 결혼 전 성 관계라 해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부득이한 경우도 있으므로 이는 너그럽게 보아줄 수도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피임약을 휴대한다는 것은 계획적으로 향락을 위해 성 행동을 기대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해 긍정하는 것은 훨씬 적극적인 용인이라 볼 수 있다. 그래도 이런 적극적인 결혼 전 성 행동의 승인은 9%밖에 안 된다. 이를 제 4 문의 결혼 전 성 관계를 용인한 31%와 비교할 때, 아마도 과오로 생기는 성 관계를 너그럽게 용인하는 숫자가 20% 이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제 6 문" 이상적인 연애 유형은? 이 물음에 답하여 "베르테르형" 36%, "살로메형" 12%, "기타" 25%, "모르겠다" 27%로 나왔다. 대체로 자기가 본 인상적인 소설, 영화, 연극 등의 주인공을 이상적 유형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로맨틱한 경향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 정신적인 접촉이 주가 된 연애를 이상으로 보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구세대적 이성관과 태도에서 충분히 탈피하지 못한 채 새로운 이성관의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새로운 이성관도 내면화시키지 못하면서 상반되는 두 개의 이성관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구세대적인 남존여비의 관념이 몸에 배어 있어 남학생들은 필요


이상으로 자기를 과대시 한다. 반면에 여학생들은 너무 기펴지 못하거나 남학생들을 우러러본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남녀 평등이니 이성 존중이니 하는 교육을 받고 의식적으로는 평등을 주장하고 그렇게 하려고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남존여비적 태도로 처신하게 된다. 남녀가 어울릴 때 양편 모두 이같은 입장이 된다. 그러므로 남녀는 이성을 대하게 되면 심하게 긴장하고 당황해 하며 이성 접촉을 퍽 어렵게 생각한다. "남녀 7 세 부동석"이라는 엄한 규칙이 아직도 완전 제거되지 않아 국민학교 아동들까지도 이성 아동과 노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 이렇듯 이 규칙에 의해 어릴 때부터 이성과 자리를 같이 하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 이에 따라 이성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고, 결국 이러한 제재에 의해 호기심만 조장되어 이성을 터무니없이 경원하는 습성을 가져오게 한다. 이러한 호기심은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하고 맹목적으로 그리워하는 경향을 만들기도 하고, 첫눈에 대수롭지 않은 사람에게 매혹되어 연애 관계가 되고는 나중에 깨달아 파탄되기 일쑤다. 한편 남녀 교제는 바로 성적 교제를 연상시켜 덮어놓고 나쁘고 불결한 것으로 보게 된다. 그리하여 남녀 교제를 열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를 싫어하는 미묘한 감정 복합이 이에 수반되게 마련이다. 또한 학생들은 이성 교제에서 사랑하는 상대에게 자연스러운 애정 표시를 못하는 흠이 잇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아하고 즐거운 감정을 전달하지 못하고 멸시, 거부, 공격을 일삼는다. 상대를 골려 주고 난처하게 만들며 익살 궂은 장난을 한다. 이는 아동 시절부터 감정 억압을 강요하고 이성 적대시를 권장하는 훈육법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 우아한 즐거움을 상대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오히려 공격으로 쾌락을 찾으니 사디즘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까지 심하지는 않더라도 애정 표시를 못하고 속으로만 애태우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우리 학생들의 경제적 곤궁 또한 연애관에 크게 반영되는 것 같다. 데이트에는 자금이 필요하고 적절한 장소가 있어야 한다. 학교는 강의실뿐이며 집은 찹박(답답할 정도로 좁음)하고 가족들의 이해도 없으니 적당한 데이트 장소란 다방 극장 등이 고작이다. 아니면 교외로 나가야 하는데, 이것은 경제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경제력이 없는 친구들은 이를 엄두도 못 내게 되고, 또 좀 여유가 있다손 치더라도 자주 만나기를 두려워하게 된다. 이러한 경제적 궁핍 때문에 연애에 대한 적극성이 크게 위축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 학생들은 구세대적인 봉건적 이성관에서 탈피하지 못한 채 새로운 현대사회적 연애관을 받아들이고 있다 하겠다. 오늘날 젊은 세대의 성 행동의 문란을 우려하는 층도 있지만, 이는 상업주의 매스콤의 지나친 과장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아직도 건전한 성 윤리는 지켜지고 있다고 보인다. 앞으로 더욱더 새로운 이성관, 자연스러운 태도와 건전한 성 윤리를 토대로 한 정신적인 인격 접촉에서 생의 기쁨을 찾으려고 하는 연애관을 지향하게끔 노력해야 한다. 짧은 기간에 관념 형태나 가치관의 변혁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것은 여러 세대에 걸쳐 서서히 이룩되는 것이겠지만 이를 옳게 방향 짓게 하고 촉진시키는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1963 년 10 월"


전과 문제의 고민 현재 재학 중인 학과가 마음에 맞지 않아 불만이면서도 하는 수 없이 다니고 있는 학생이 상당수 있는 것 같다. 대학별로 보면 적은 데는 23%에서 많은 데는 58%에까지 달하고 있다. 졸업 후 취직이 잘 된다는 이른바 인기 학과의 학생 중에도 상당수가 전과를 희망하고 있다. 이렇게 전과 희망자가 생기는 이유와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지각이 생겨 스스로의 자질이나 역량을 옳게 짐작하여 자기의 가정 형편이나 사회적 정세 또 앞으로의 전망을 대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그 학생은 자기의 이상이나 취미에 가장 적합한 인생 계획을 설계할 수 있다. 따라서 그 학생은 이를 준비하기 위해 우선 적합한 대학과 학과를 정하고 입학할 수 있게끔 노력할 수 있다. 그러나 인생 계획을 세우고 학교 선정을 하는 데 학생 혼자서만 하기는 벅찬 일이고 또 불안스러워서 부모와 교사 혹은 선배들과 상의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때 학생 본인이나 상담 상대가 지각 있고 성격적으로 성숙하여 올바로 학과를 선정하고 무난하게 입학할 때에는 순조롭게 발전하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참된 자기 이해와 객관적인 자기 평가에 입각하여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지향하고, 이에 따라 대학이나 학과가 결정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이나 학과를 결정하는 데 자기 중심적인 허욕과 기분에 따라 또는 유행에 휩쓸려 선정하는 수가 많다. 동무와의 경쟁심에서 또는 저 친구가 저 학교에 가는데 낸들 못가랴 싶어 그 쪽으로 지원하려 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형님이 저 대학을 다녔으니 나도 꼭 그 대학에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덮어놓고 지원하려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객관적인 자기 평가 없이 일시적인 기분이나 유행에 따라 실없는 고집을 부리는 것을 신경질적이라 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대학 또는 학과 선정이 신경증적으로 이루어질 때 입학 후 반드시 후회하게 되고 재선정, 재출발의 고민을 하게 된다. 신경증적인 부모나 교사의 조언을 좇다가 진로를 잘못 택하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부모 스스로가 원하던 직업을 갖지 못했거나 다니고 싶었던 대학을 가지 못했을 때, 부모들은 자신의 꿈을 자녀를 통해 성취해 보려고 자녀에게는 접합하지 않은 대학이나 학과를 지원하게 하는 수가 있다. 또 담임 교사는 학생들을 일정 대학에 되도록 많이 진학시킴으로써 높이 평가받는다는 생각으로 학생 개개인의 적성이나 장래 성공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많이만 들어가게끔 지원하게 하는 수도 있다. 이같은 부모나 교사는 모두 자기 중심적인 생각으로 인해 자녀와 학생들을 희생시키고 있다. 아무리 학생 본인이 그의 자질이나 역량을 잘 고려해 진학했다고 하지만, 그는 지원 학과의 교과 내용이나 장래 풀려 나갈 직장 영역에 대해 그릇된 정보를 가짐으로써 입학 후에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국문학과'는 소설이나 쓰고 공부를 하고 '영문학과'는 영어를 배우며, '교육학과'는 교사가 되는 학과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들어와 보니 막상 그것이 아니더라고 낙담하는 경우가 많다. 요컨대 자기 중심적인 기분과 정확하지 못한 편견에 의거하여 본인의 적성이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막연한 생각으로 진학해 겪어 보니 예상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보다 객관적으로 자기를 평가할 수


있고 장래를 더욱더 절실하게 예감하면서 현학과가 자신에게 맞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학과 변경이라는 게 용이한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되어 실망과 고민은 심해진다. 마음잡지 못하고 자포자기에 빠져 자제력을 잃어 되는 대로 살아가는 학생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면 전과를 희망하고는 있으나 이것을 해결하지 못해 고민하는 학생들이 취할 방도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먼저 자기는 현학과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자기 자신의 견해에 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학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고등학교 시절에 부모나 선재 또는 교사에게서 받은 학과의 교과 내용과 장래 진로에 관한 지식이 정확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입학 후 반년이나 일년 사이에 경험하면서 알게 되는 현학과에 대한 정보도 오류에 찬 것일 수 잇다. 그러므로 현학과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해당 교수나 과의 선배를 만나 학과의 성격에 대해 의논하는 것이 좋겠다. 학과의 성격을 정확하게 알게 된 후에는 자신이 이 학과에 적합한 위인인가의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이나 앞으로의 조건, 자기 자신의 지능, 성격, 흥미, 역량, 가치관 등을 고려해서 자신의 학과가 적합한가를 따진다. 이 문제를 학생 스스로가 결정짓기는 막연하므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지도해 줄 전문가를 찾는 것이 좋다. 이런 상의에 응할 만한 선배나 친척 또는 교수들이 있을 것이요, 이런 문제를 전담하는 기관을 찾는 것도 좋다. 현학과에 대한 불만은 이제까지 말한 소질, 가치관, 흥미의 차이에 따른 부적응에서 오는 것도 있겠지만, 본인의 성격상 어떤 열등감이 원인이 되어 덮어놓고 불평, 불만만 토로하여 잘 적응해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이 현학과에 대한 불만과 부적응은 현학과 자체에 대한 불만이나 부적성에서라기보다는 자기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떤 문제에 대한 불만이나 불안감이 현학과에 전가되어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경우 현학과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기보다는 현실 전체에 적응하고 있지 못하다고 해야 한다. 현상황에 불만을 느껴 다른 학과를 원하고 잇지만, 그곳으로 옮겨간다고 해서 잘 적응될 가능성이 꼭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잘 아는 사람 중에 처음 전공한 학과를 버리고 다른 과로 학사 편입하여 전공을 바꾼 사람이 셋 있다. 그런데 이 세 사람 모두 현재는 먼저 전공했던 학과에 관계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이런 예는 전과 희망자 중 상당수가 성격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요인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실에 적응하려면 현실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그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현학과에 맞지 않는다고 개탄하며 고민하는 사람 중에는 현학과에 열중하지도 못했던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노력해서 학과 공부에 파고들어 가면 진지한 흥미를 가지고 전공하라 수도 있다. 사실 현학과를 열심히 공부해 보지도 않고 그 학과가 자기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모두 성격적 부적응성에서 오는 것이라 해도 크게 잘못된 판단은 아니라고 본다. 이런 요인을 밝히기 위해서도 성격 진단에 도움되는 전문 기관을 찾아 상의해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여러 가지를 검토한 끝에 전과하는 것이 좋다고 결론지었을 때는 서슴지 말고 전과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마땅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학제나 사회적 형편상 학생들의 전과가 그리 쉽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그 길이 전혀 없는


것만도 아니다. 동일한 대학 내에서 유사 학과끼리는 사무적으로 전과가 가능하며, 각 대학이 편입학 시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학사 편입 제도나 대학원 진학에서도 타학과 전공 학생을 받아 주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확고한 결심을 가지고 노력하면 정당한 전과 희망은 해결될 수 있다. 공연히 불가능하다고 고민만 하다가 귀중한 대학 시절을 우물쭈물 헛되게 지내지 말기를 바란다. "1967 년 11 월" 독서의 지도 대학생의 학업이나 생활 지도를 위해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독서 지도의 문제다. 학업을 직접 지도하기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교양이나 성격의 발달을 위해서도 독서가 대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대학생의 독서 지도를 크게 두 가지 분야로 나누어 보면, 그것은 독서의 내용 지도와 형식 지도이다. 우선 강의나 과외 활동을 통해 고전과 학술적 참고문헌을 읽혀 그 내용 파악을 더욱 충실하게 하도록 지도하는 분야가 있다. 또 하나는 독서의 기술을 형식면에서 지도하고 교정해 독서의 능률화를 기하는, 소위 독서 클리닉(교정 상담소)이나 학생 상담에서 문제삼는 분야다. 전자가 안내적인 집단적 독서 지도에 속한다면, 후자는 상담적인 개별적 독서 지도에 속한다. 대학의 학생 전체를 상대로 한 학생 독서지도위원회로 하여금 교양 도서의 추천이다. 읽는 방법의 교시 또는 독후감의 검토 등을 하게 한다든가, 학생들의 클럽 활동인 독서회, 윤독회, 연구 발표회 등을 맡아서 지도하는 것들이 전자의 내용이다. 반면에 학생 상담소나 독서 클리닉에서 이를 찾아오는 학생들의 독서 부진 문제를 상담하며 능률적인 독서 방식을 일러주는 것은 후자 즉 형식에서의 지도라 하겠다. 대학의 각 분야에 걸친 교수들로 구성된 학생독서지도위원회 같은 모임에서 학생들이 읽을 만한 교양 도서를 추천하거나 추천 도서를 읽혀 독후감 같은 것을 쓰게 해서 이를 읽고 지도해 줄 수도 있다. 또한 독서에 관해 학생들의 상담에 응해 읽을 책의 순서나 준비 과정을 지도할 수도 있으며, 명저 소개회 같은 모임을 통해 읽을 만한 책의 내용과 의의를 소개한다든지 읽을 때의 주안점이나 비판적 관점을 가지게끔 지도해 나갈 수도 있다. 요즘은 여러 잡지사나 대학의 학부에서 교양을 위한 동서 고금의 양서들을 뽑아 읽기를 권장하고 있으며, 매월 한두 개씩 읽어 오게 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전들은 그것이 비록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라 해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읽기 전이나 읽은 후에 적당한 지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같은 면에서도 학생독서지도위원회의 역할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이 학생독서지도위원회는 학생 전반에 걸친 교양 도서의 지도만이 아니라, 학생 클럽 활동 영역인 독서회들의 계획과 진행에도 함께 할 수 있다. 우리 나라 각 대학에서 영어 공부를 목적으로 하는 클럽 활동으로는 "타임반"이니 "뉴스위크반"이니 하는 것을 많이 본다. 영문학 교수들의 의견으로는 이같은 활동이 노력에 비해 얻는 효과가 아주 적다고 한다. 지나치게 시사성을 띤 용어와 속어가 많고 문장의 간결성이 심해 영어 공부로서는 마땅하지 않다고


한다. 굳이 잡지로 공부해야 한다면 오히려 좀 쉽게 씌여진 'U.S.리포트 앤드 뉴스'같은 것을 읽어 가는 것이 발전성이나 흥미에서도 좋고 시사 영어 공부에도 좋다고 한다. 물론 잡지가 싸고 사기 쉽다는 요인도 있겠지만, 어쨌든 지도 부족으로 말미암아 노력에 비해 효과가 적은 수고를 학생들이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면에 특히 지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담당은 역시 학생독서지도위원회가 적임이라 생각한다. 학생독서지도위원회의 지도 목표는 주로 교양을 위한 독서 지도이기 때문에 번역된 고전을 읽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대중성 있는 문학작품이나 사상 관계 서적이 주로 다루어진다. 또한 그 내용도 대의 파악이나 자기 발견을 위한 교양 교육적 지도가 된다. 이런 점은 강의 중에 내주는 독서나, 강독에서 원서를 찬찬히 읽어 가는 것과는 엄격히 구분된다. 이를테면 사회학과 학생이 교양으로 막스베버의 번역본을 읽을 때와, 상급반에서 강독으로 원본을 읽을 때하고는 읽어 가는 입장이 다르다. 이런 면에서 학생독서지도위원회의 지도가 너무 전문적인 수준이 될 수 없는 한계는 있다. 그러나 전자가 후자의 전문적인 연구의 기초가 되고 도움을 준다는 것을 말할 것도 없다. 오늘날 대학생들의 과외 활동을 살펴보면 우정적인 것, 학술적인 것, 종교적인 것, 예술적인 것, 봉사적인 것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여러 형태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과외 활동 중에서 극소수의 활동만이 학교 당국의 도움을 받아 합법화되어 지도 받고 있는 형편이다. 이들 과외 집단 활동은 대학과의 관련 여부가 어떠하든 간에 대체로 일정한 목표를 가진 집단 체제로서 효과적인 자기 발전을 노리며 사회적 훈련 소속감, 안전감을 은연중에 얻을 수 있는 교우 활동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집단 활동은 독서하는 클럽으로 발전되기도 하며, 그렇지 않다 해도 활동의 일부에 독서가 끼어드는 수가 많다. 이러한 독서회나 독서 클럽 활동의 지도는 교수가 맡게 마련이다. 지도 교수는 대체로 학생들의 희망에 따라 선정되는데, 간혹 교수와 학생 사이에 이해의 결여로 말미암아 클럽 활동에 지장이 생기는 수도 있다. 학생들은 자기들이 존경해 추대한 교수의 성의가 부족하다느니 하며 실망하고, 교수는 또 교수대로 학생들이 기대에 어긋나게 활동한다고 재미없어 해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교수들이 연구 활동과 생활 지도에 시간을 많이 빼앗기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며, 학생들의 집단 활동에는 여러 가지 동기가 작용하므로 순수한 학술 활동만으로 시종일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교수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들 독서회 활동의 내용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학생은 칸트의 저서를 읽으며, 어떤 학생은 동학 사상을 따져 가며, 어떤 학생은 선불교 책을 정독해 가며, 어떤 학생은 신소설을 읽는다. 그리고 학생들은 읽은 결과를 발표하고 토론한다. 한국의 토지 제도의 변천을 더듬어 가는 학생, 이순신 장군의 인간됨을 주제로 삼는 학생, 이율곡의 책을 읽고 따지는 학생, 사회 사상사를 읽고 토론을 하는 집단 등등 여러 내용이 있으리라 본다. 형식에서도 이들은 몇 달 동안 모여서 원본을 강독해 가며 내용을 토론하거나, 아예 미리 읽어 와서 내용만 요약 발표하고 토론하는 등의 방식을 취할 수도 있다. 또 이같은 학생 활동에 지도 교수가 참여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라고 생각된다. 클럽의 성격이나 지도 교수의 개인, 사정 성격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참여할 것이다. 그러나 방식이야 어떻든 학생들의 활동 방향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에는 학생들의 활동 정도에 맞추어 단호한 결정을 내려 주는 지도가 절대 필요하다. 지도 교수의 역할은 보다 높은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 집단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의 자격을 조정하거나 너무 지나친 요구 수준을 적당히 현실화시켜 가는 일, 적당한 집단 활동의 분량이나 절차 등을 일러주는 일에서부터 학생들과 어울려 책을 읽으며 잘못된 곳을 교정해 주는 일까지도 할 수 있다. 아마도 교수들은 중도에서 학생들의 불만에 봉착하겠지만, 목적에 맞는 준비 과정을 갖게 해서 결국 유종의 미를 거둘 때 학생들의 기쁨을 생각하며 지도해 나가야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의 형편상 교수와 어울려 학문적인 독서 활동을 대학원생에게서는 많이 볼 수 있으나, 대학생들의 수준에서는 이러한 독서 활동이 여러 가지로 무리가 따르는 것 같다. 그러나 학생 선택을 잘하고 준비 과정을 잘 밟게 해서 적절한 지도만 한다면, 꽤 높은 수준의 독서회 활동도 그리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제까지는 정상적으로 독서할 수 있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독서 지도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많은 학생 중에는 독서 능력에 결함이 있기 때문에 학업에 능률이 오르지 않는 학생들도 상당수 있다. 이들에게도 지도와 훈련을 어느 정도 가하며, 이들은 독서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된다. 아무튼 독서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되면, 공부하기가 쉽고 학업 성적이 올라 대학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독서 방법의 교정 지도는 대학에서도 학생 지도의 주요 과제라 아니 할 수 없다. 아직 우리나라 대학에서 관례화 하지 않았지만, 외국 대학에서는 강의 시간에 요구하는 참고문헌 읽기의 숙제가 굉장히 많다고 한다. 한 시간에 30-40 쪽 가량을 읽어야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와 같은 독서 속도를 갖지 못한 학생은 밤늦게 까지 공부해야 이를 간신히 따라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므로 독서 속도가 느린 사람은 좀처럼 대학 공부를 해내기가 힘들다고 한다. 직업적으로도 독서 능력은 중요하다. 신문이나 잡지의 편집원으로 일하는 이들은 한 시간에 60-70 쪽은 읽을 수 있어야 직책에 어울릴 수 있다고 한다.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독서 속도가 본격적으로 학업이나 직업의 기초로서 사회에 표면화하지는 않았지만, 독서 속도가 은연중 학업이나 직업의 적응 여부를 좌우하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한마디로 독서를 잘못 한다는 것은 결국 독서 속도가 더디다는 뜻이다. 줄줄 훑어 내려가지 못하고 글자 하나 하나를 떼어서 읽다 보니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자연히 읽은 데를 다시 되돌아가 읽게 되므로 독서 속도가 더디다. 읽는 사람의 안구 운동을 살펴보면 독서 속도에 빠른 사람은 한 줄에 불과 2, 3 회만 정지할 뿐인데, 속도가 더딘 사람은 한 줄 읽는 데 7, 8 회에 걸쳐 정지한다. 눈 운동이 정지하는 순간에 글자나 어구 또는 문장을 지각하게 되고 이를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정지 회수가 적게 읽어 가는 사람은 어구나 문장을 단번에 지각해서 이해한다. 또 빨리 읽는 사람은 정지 시간도 짧다. 한 지점만 응시하고 딴 생각이나 공상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정지 시간이 짧게 마련이다. 독서 속도를 빠르게 하려면 소리내어 읽거나 혀, 목구멍 등을 움직여 입 속에서 읽지 말아야 한다. 즉 묵독을 해야 한다. 안구 운동 이외의 다른


운동에 시간 소비나 에너지 소비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독서 내용에 따라 읽는 속도를 달리할 수 있어야 한다. 신문, 잡지, 대중 소 설 따위는 대의 파악만 해도 되므로 대충 훑어 내려 가도 되지만, 수준 높은 문학 작품, 학술 논문 따위는 한마디 한마디가 의미 있는 표현이므로 천천히 새겨 가면서 읽어야 한다. 또한 교과서는 완전 이해뿐만 아니라 전부를 기억하며 읽어 가야 한다. 하나의 책이라도 부분에 따라 읽는 태도나 속도를 달리하는 것이 좋다. 중요하지 않거나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은 빨리 읽어 가고, 처음 보는 것이나 중요한 곳만 자세히 본다. 이름 있는 한 철학자에게 철학책 신간본을 가져다주니 불과 한 시간 정도로 다 읽고 그에 대한 비판을 해 사람들은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책은 서론과 역사적 개요, 다른 사람들의 주장이나 인용, 자기 입장 등을 서술했는데, 석학인 이 사람은 역사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웬만한 이론은 다 알고 있으니 그런 것을 소개한 부분은 훌훌 넘기고 저자의 주장에만 정독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니 한 시간 정도로도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육당(최남선, 역사학자)은 한문책을 읽는 데 열 손가락을 펴서 훑어 내리면 전부 이해하더라"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역시 육당의 한문 실력이 높기도 하겠지만, 그 분이 쉬운 부분에서는 대충 훑어 내려가는 모습만을 보면서 평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독서 속도는 이해력과 상관이 높다. 빨리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이해력이 좋고, 이해력이 좋은 사람은 빨리 읽을 수 있다는 말이다. 빨리 읽는 사람은 읽어 내려갈 때 단어의 모습이나 그것이 주는 표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어구나 문장의 의미만을 직접 파악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독서할 때는 글의 의미 파악에 열중할 수 있는 주의 집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실 독서 속도에 크게 방해되는 요인들 중 하나가 바로 이 집중력 부족이라고 한다. 책을 읽다가 공상에 잠기고 다시 몇 줄 읽다가 다른 생각을 한다면, 글자나 어구에 접해서 다른 표상이나 사건이 떠오르게 되어 중간 중간이 빠지게 되니 대의 파악이 잘 안 된다. 그러면 ���렇게 공상이나 다른 생각이 독서를 방해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독서로부터 관심을 빼앗아 공상으로 몰고 가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중 대체로 정서적 문제가 많다고 본다. 물론 상담 교수의 상담을 받는 것도 좋지만, 자주 나타나는 공상이나 다른 생각의 내용을 매일 기록해서 한 일주일 모아 보면 문제의 소재가 짐작된다. 이때는 이 문제의 해결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어느 것에 주의를 집중할 수 있으려면, 우선 그것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집중하기에 힘들다는 것은 읽어도 이해가 안 되고 그것이 자기에게 주는 의의가 느껴지지 않아 자연 관심 있는 다른 분야로 생각을 돌리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관심을 가지게끔 독서 내용의 의의를 알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독서에서 어휘 이해력은 매우 중요하다. 어휘력이 빈약하면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 자연 독서 속도도 더뎌진다. 그러므로 어휘력을 풍부하게 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요컨대 이해할 수 있는 그것에서 성공해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때 맹렬한 관심이 생긴다. 따라서 그 학과나 그 책을 성공하도록 노력하는 데서 자연 관심이 회복되고 독서도 정상화되리라고 본다.


끝으로 학생들이 시험해 보아도 좋을 효과적인 독서 방법을 적어 보기로 하자. 1. 어느 한 책을 읽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라. 읽으려는 책이 자기의 연구 계획이나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적합한가를 고찰해서 적합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읽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적합하지 않을 때는 보다 적합한 것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의식해야 하면, 이 책과 동일한 문제를 다룬 다른 저자의 견해와 비교하는 마음가짐으로 읽기 시작해야 한다. 2. 예비적 개요를 기록하라. 논문, 책의 제목, 저자의 지위, 다른 저작의 개요, 본 저작의 연도, 발행소 등을 적어 놓는다. 서문을 읽어 저작의 목적이나 입장을 알아야 하고, 목차를 살펴서 저작의 개요를 머리에 놓고 읽기 시작한다. 읽으면서 중요한 것은 정리해 가며 읽는 것이 좋다. 무슨 책이든 다시 읽을 필요는 없지만, 중요한 것이나 더욱 확실히 알고 싶은 것은 반복해 읽는 것도 좋다. 중요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은 세 번 읽을 것을 주장하는 이도 있다. 처음에 읽을 때는 개요 파악에 중점을 두며, 두 번째 읽을 때는 부분적으로 정밀하게 검토하면서 읽고, 세 번째 읽을 때는 전체 저작의 의향, 의의를 생각하며 읽는다. 3. 빨리 읽어 가는 노력을 하라. 책은 졸면서 읽어서도 안 되고, 또 책을 마냥 들고 있다 해서 저절로 읽혀지는 것은 아니므로 한 번 읽을 때 집중해서 빨리 읽어 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너무 천천히 읽으면 잡념이나 공상이 생기게 마련이고, 또 그럴 경우 부분만을 이해하게 될 뿐 전체 의미는 잘 파악되지 않는 수가 많다. 차근차근 공들여 읽은 고전은 오히려 그 전체의 뜻과 향기를 모르고 넘기는 수가 많다. 너무 늦게 읽은 나머지 전체 의미를 놓치면서 읽어 가기 때문이다. 빨리 읽으면 처음에는 의미 파악이 애매할는지 모르나, 차차 의미 파악을 제대로 하게 되면서 잡념이나 공상을 물리칠 수 있으므로 오히려 효과적인 독서를 할 수 있다. 4. 규칙적인 독서를 하라. 책은 계속해서 장시간 읽어 나가는 것보다 매일 일정 시간을 정해 놓고 정기적으로 읽어 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피로감이 없는 생생한 기분으로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규칙적이어도 읽는 시간을 너무 짧게 잡으며, 읽기 시작하면서 얼마 안 되어 바로 그만두는 결과가 되므로 자기에게 적절한 시간을 정해야 한다. 5. 독서 속도를 적당히 조절하라. 단순하고 쉬운 부분이나 이미 잘 알고 있는 부분은 빠르게 혹은 생략하면서 훑어 내려가고, 중요한 부분이나 어려운 데는 차근차근 읽어야 한다. 모르는 글자나 어구는 사전을 찾아 뜻을 정확하게 하며, 의미 파악이 어려울 때는 전후 관계를 도식화하거나 요약해 가며 일관성 있게 뜻을 파악해야 한다. 요컨대 타성적으로 마냥 똑같은 속도로 읽을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는 빠르게도 읽고 늦게도 읽어 의미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6. 책 위나 옆 공백에 자기 나름의 주석, 요점, 제목을 붙여 가며 읽어라. 자기 나름대로 이해한 것을 적거나 중요한 데를 줄치고 표를 해 가며 읽으면, 그후 다시 읽을 때나 인용할 때 편할 뿐 아니라 읽어 가는 데도 이해하기에 좋다. 물론 도서관이나 남에게서 책을 빌어다 읽을 때는 예외다.


7. 책을 읽으면서도 읽은 데까지는 기억을 되새기면서 읽어라. 읽은 데까지의 대의를 암기해서 생각해 보며 이를 검토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 좋다. 저자의 견해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이에 비판을 가하면서 다른 견해와 비교해 볼 때, 독서는 자기 발전의 거름으로 작용된다. 다시 말해 한 저서가 비평받기 전까지는 미완성에 불과한 것이라고 볼 때, 저서의 미완성 부분을 자신이 책을 읽어 가면서 완성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결전만 찾으라는 것은 아니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객관적으로 보아 이를 완성한다는 입장으로 자기 발전을 위해서 독서가 이용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1968 년 6 월" 스튜던트 파워의 요인들 학생 문제는 세계적인 과제인 것 같다. 오늘날 학생 문제로 골치 앓지 않는 나라는 많지 않으니 말이다. 작년만 해도 서독과 프랑스 등지에서 대규모의 학생 소요가 있었고, 미국에서는 산발적이지만 150 여 개 대학에서 치열한 학생 소란을 겪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학생 폭동이 계속되면서 드디어는 이를 단속하는 학교법이 생겨 법석을 피우고 있다. 이밖에 유럽의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남미의 브라질, 아르헨티나, 심지어는 공산 국가인 유고, 체코, 폴란드에서도 학생 운동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개헌 반대"라는 이슈를 내걸며 학생들이 데모를 벌여 대부분 휴교 상태에 있다. 이와 같은 세계적인 움직임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현재 이것은 어떻게 처리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는가. 일반적으로 이 학생 소요에 대한 여론이나 의견은 어떠한가. 물론 각 나라마다 또 각 학교마다 특수성이 다르겠지만, 여기서는 일단 일괄적으로 생각해 보자. 학생 소요에 가담하고 있는 학생은 물론 일부 학생들이다. 우리 나라에서 매일 보도되는 데모 학생의 수효는 몇백 명 몇십 명으로 되어 있다. 야단스러운 미국의 학생 소요도 약 10%의 학생만이 가담하고 있는 형편이며, 이들을 이끄는 선두는 불과 2%의 학생이라고 한다. 일부 학생들이 떠들어대는 것이라 하지만, 이 때문에 대학 운영이 마비되고 사회적 혼란까지 가져오고 있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학생 소요의 원인이나 이들의 처리 문제를 생각할 때, 학생 소요에서 주동 역할하는 선봉 학생들과, 이들에 동조하는 일반 참가 학생들을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먼저 주동 학생들 개별적인 성격적 결함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떤 개인이나 특정 사상 또는 이데올로기를 절대시하는 광신도인 경우가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자기 스스로의 심적 불안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이와 같은 광신도가 되는 수가 있다. 어떤 학생들은 지나칠 정도로 반사회적인 성격을 가지고 공격심과 반항 의식으로 뭉쳐 있는 듯한 느낌을 풍긴다. 이같은 경향도 자라나는 환경에 불만과 억압이 많을 때 형성된다. 또 이들 주동 학생 중 일부분은 정치적으로 극렬한데, 이들이 외부 정치 세력의 조종을 받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들 주동 인물들을 중심으로 문제를 다룰 때는 문제의 원인과 처리가 단순한 개인 사례 연구에 그칠 가능성이 짙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학생 소요의 원인이나 처리를 문제삼는 데 단순한 참가자인


일반 학생들의 문제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다. 첫째로 현대의 젊은이나 학생들의 특징을 문제삼을 때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이들이 기성 세대와 단절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미국의 학생연합회의 회장을 지낸 슈바르츠는 자기들 세대를 "as the first post-war, post-depression, post-television, post-technology, post-bomb, post-space generation"으로 특징짓는다. 즉 이차대전 이후에 태어나 전쟁을 모르며 그 무서운 불경기도 겪지 않았다는 것, 텔레비전 문화 속에서 고도로 발달된 기술과 풍요한 생산의 덕택으로 부족함 없이 여유 있는 생활을 해 왔다는 것, 또 핵폭탄 제조와 우주 계획의 경쟁이 치열한 현대에서만 살아왔다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먹고 살기 위한 근심 따위는 해보지 않고 자라나 성인이 되었다. 현재의 풍요한 생활 조건은 영구적으로 확보되어 변할 수 없는 데, 이것을 얻기 위해 애써 일하지 않아도 으례 주어지는 당연한 조건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같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불완전한 사회제도, 이해할 수없는 국제 분쟁, 인종 차별, 폭력 등등은 존재한다. 더욱이 기성 세대에도 급격한 사회 변동으로 인해 확고한 가치 체계가 없다. 그리하여 자녀를 양육하는 데도 뚜렷한 방향과 일정한 가치관을 제시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리즈만(미국의 문화평론가)의 말처럼 50 년대 이후 성인들은 어린이에게 이끌려 산다. 우리 사회에서도 도시에서는 자녀들에게 이끌려 왕성한 소비 풍조가 나타나고 있는 것을 역력히 볼 수 있다. 이렇듯 의, 식, 주의 풍요한 생활 속에서 확고한 가치 체계를 물려받지 못하고 자란 이들 젊은이들의 눈에는 현실 사회의 불합리성, 불완전성이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둘째로 많이 지적되고 있는 요인은 대학의 변질이다. 이차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대학이란 속세에서 떨어져 학문적 정예 분자들이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연구하는 특수 지대였다. 그 당시 대학생의 이미지는 굉장한 수재이든가, 아니면 상당한 자산가의 자녀라는 점에서 촉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대학생 스스로도 이에 대해 긍지를 갖고 있었다. 전후 대학은 급격하게 팽창하여 거대한 기구로 발전되었고, 대학생의 수도 굉장하게 불어났다. 우리 나라는 대학 팽창의 억제 정책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1947 년에 2 만 미만이었는데 1969 년에는 13 만에 가까운 대학생을 가지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도 1948 년에 250 만이었는데 1969 년에는 13 만에 가까운 대학생을 가지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도 1948 년에 250 만이었는데 1969 년에는 690 만이며, 내년쯤엔 780 만이 되리라고 한다. 이같은 학생 수의 팽창에 따라 교수도 변질되어 갔다. 수입은 신통치 않고 저하된 학생 자질에 흥미 잃어 오로지 연구 활동에만 몰두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교수는 연구에 몰입함으로써 수입도 좋아지고 진급도 빠르며 명성도 올라간다. 그러나 학생들과의 관계는 아무래도 소원해지니 학생들은 자긍심도 없어진 데다가 교수로부터의 소외감까지 겹쳐져 자기의 존재 의의를 느끼지 못하게 되면서 심한 욕구 불만에 빠지게 된다. 더욱이 현대 조직 사회에서의 개인의 비인간화,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각에서 오는 개인적 분노를 폭력적 반항으로라도 터뜨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셋째로 학생 소요의 중요한 원인으로 생각되는 것은 매스콤의 발달이다. TV 와 라디오의 보급으로 오늘날 전세계의 모든 사건은 동시적이며 집단적으로 보도되므로 온 세계가 한꺼번에 어떤 문제를 받아들이고 이를 토의하며 같이


해결하게 되었다. 매스콤의 발달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너무 벅차고 직접적인 자극을 주고 있다. 이들 자극 중에는 폭력 행사가 많이 보이는데, 이들 폭력 행사는 그것이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불합리하고 비도덕적이므로 젊은이들에게는 충격적인 인상을 주며 스스로 사회 참여의 긴박감을 느끼게도 한다. 반면에 거대한 조직 사회 앞에서 그들 자신의 무력함을 절감하게 한다. 따라서 그들은 이러한 심적 상황에서 기성 체계에 대하나 공격만이 스스로의 주체성과 존재 의의를 찾는 유일한 방편이 된다고 느낀다. 넷째로 학생들의 폭력 행위는 현대의 사회 체제가 이들 젊은이에게 희망, 이상, 의욕을 북돋워 주지 못하는 데서 온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고도로 산업화된 소비 사회에서는 생산품의 소비 실적이 사회 속에서의 인간의 가치를 등급 지어 주며, 인격이니 자유니 봉사니 또는 의미 있는 생활이나 개인의 존엄성, 사랑 등등은 경쟁에 낙후된 인간들의 합리화 내지 퇴행 행동으로 보일 뿐이다. 이와 같은 사회 속에서 지각 있고 세상 물정을 알게 되는 젊은이들은 현실 사회에 대한 혐오와 저항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인문 과학, 사회 과학 계통의 학생들에게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드골(프랑스의 정치가)도 "기계적인 사회, 현대의 소비 사회는 학생들이 요구하는 것 즉 이상, 희망, 의욕을 그들에게 주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런 이상, 의욕, 희망을 학생들이 참여함으로써 발견할 수 있고 또 마땅히 발견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다섯째로는 사회의 변질과 대학 사명의 변화에 관계되는 것인데, 과거식의 학구풍의 고수는 학생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본다. 이제까지의 대학은 학문 탐구가 주목적으로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고도로 산업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다수의 고등 기술자가 필요하게 되어 대학에 이들의 공급을 요구하고 있다. 산업 사회의 기술자 공급 요구가 학생들로 하여금 대학 교수의 완고한 아카데미즘에 반발하게 하여 파괴를 일삼고, 교과 과정에 학생의 결정권까지 주장하게 되었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학생들이 보다 더 값싸게 산업 사회에 적응하여 구세대의 까다롭고 힘든 대학 체제를 바꾸는 데 앞장선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는 학생 소요가 발생할 수 있는 요인을 생각하였다. 이제 학생 소요의 형태와 대책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학생들은 현실 개혁을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주장한다. 평화적인 방식과 폭력적인 방식이 그것이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의 여부는 학생 소요를 지도하는 쪽의 성격과 당국의 대책에 따라 달라진다. 지도부가 극렬할 때는 으례 폭력화하고, 온건파가 지도할 때는 평화적 개혁의 형식을 취한다. 그러므로 당국은 사태를 파악해서 소수의 지도부와 일반 학생들이 합류하지 못하도록 하고 지도부들끼리만 떠들어대게 하면, 학생 소요는 폭력화되지 않고 평화적으로 수습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당국이 부질없이 자극적으로 대처하고 처벌해서 어떤 이슈를 만들어 주면, 일반 학생들이 지도부에 동조하게 되어 소요는 확대되기 마련이다. 소요 집단이 커지면 많은 인원수를 발판으로 지도부는 여러 가지 요구를 내세워 당국과 흥정하려 든다. 이때 학생 동조자가 많을수록, 지도부의 공격 서양이 강할수록 학생들은 어려운 요구를 내놓게 된다.


메케이슈(미국의 사회 심리학자)는 당국이 학생 소요를 성공적으로 수습하는 방안을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하였다. 첫째는 학생들이 문제삼고 떠들어댈 수 있는 이슈를 되도록이면 조심스럽게 고려해서 미연에 막도록 노력한다. 이것은 학교 내의 시설, 제도, 운영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슈가 반드시 학교 내의 문제만은 아니다. 사회 체제의 문제는 학교 당국자로서는 어찌할 수 없으므로 이같은 노력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둘째로는 일단 학생 소요가 발생했을 때 당국은 초기에 어떤 강경책이라도 씀으로써 일반 학생들이 흥분하게 하고 지도부에 동정하는 과정을 밟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심한 처벌을 하거나 경찰을 끌어들여 사태 수습할 때 일반 학생들은 지도부에 합세해서 크게 폭동화 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로는 학생들의 불평이나 요구를 미리 알아차려 그 일부라도 충족시켜 주는 방향으로 노력한다. 학생들의 합리적인 요구가 어느 정도라고 충족되면 일반 학생들이 지도부에 합류하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이제까지 학생 소요가 있을 때 이를 미리 예방하거나 최소한의 희생으로 이를 수습하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모든 사건을 그 당장의 미봉책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다. 학생들이 소요를 일으킬 때, 총장, 학장, 교수, 사회 인사들은 입모아 합리적 설득을 통한 개선을 추구하도록 권장한다. 실로 이 합리적 설득을 통해 결론 내리고 일 처리를 해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합리적 설득을 통한 상호 토론으로 피차에 서로 이로운 결론에 도달하려면, 한 가지 가정 위에서 이것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서로 이해하고 고집을 버리는 애정 관계에 있을 때에만 토론과 합리적 설득은 결실을 가져올 수 있다. 오늘날 선진국의 발달한 민주 제도 속에서도 이 기본 가정인 상호 애정 관계가 결핍될 때는 완벽한 제도라 해도 어느 파나 어느 계층의 자기 중심적 추구에 말려들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실로 학생 소요의 근본적 원인도 이러한 현실에 직면해 학생들의 합리적 설득을 통한 개량 의욕이 벽에 부딪치는 데서 유래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찍이 프롬은 본래의 참된 인간은 생산적으로 세계와 관련 맺는다고 했다. 말하자면 참된 인간은 이 세계를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또는 이성과 애정을 파악하고 이와 관계한다는 것이다. 이성의 힘으로 이 세상의 표면을 꿰뚫고 본질을 파악하며 사랑의 힘으로 타인과의 벽을 뚫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이를 받아들일 때 생산적인 업적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성적 사고를 아무리 강조해도 생산적인 애정이 없다면, 그 이성은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아론(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은 이렇게 말한다. "수많은 개인들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서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음은 사실이며, 생산이나 소비 자체가 생의 의미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학생들의 항거는 이를테면 형이상학적인데, 이는 초월적 신앙의 상실로 인해 아무런 궁극적 목표도 없고 지혜의 가르침도 없이 보다 많은 지식과 보다 많은 권력을 향해 미친 듯이 치달리고 있는 현대 문명을 대상으로 한 것인지도 모른다" 또 하나 학생 소요의 근본 요인은 앞에서도 자주 지적되었듯이 주체성의


상실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람은 각자 자기 자신의 천분을 깨닫고 자기의 현실 조건을 잘 인식해 참된 자기의 소임과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할 때 보람을 느낀다. 이같이 보람을 지니고 사는 사람을 주체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 산업 사회에서는 학생들이 이같은 자기 실현적 존재로서의 의의에 관해 교육받는다기보다는, 자신을 일정한 틀의 부분품 아니면 있으나 마나한 존재로 여기게끔 교육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이성적 설득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직 기성 체제를 파괴해야 한다는 공격적 행동으로서만 주체성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선진 사회의 학생 소요의 근본 원인이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 존재의 상실이라고 볼 때, 애정적인 인간 관계와 인생의 의미를 확립 또는 회복시켜 주는 문제는 학생 세력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는지. "1969 년 12 월" 교수와 학생의 길 사마광(중국 송대의 학자)의 '권학가' 속에 부모는 자녀가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의무가 있고, 스승은 제자를 분명하고 철저하게 교도(가르치고 이끔)할 책임이 있으며, 부모와 스승이 할 일을 다해 주는 데 열심히 배워 대성하지 못한다면, 이는 자녀들 자신의 죄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가정, 학교, 학생이 각기 할 일을 다해야 소기의 교육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은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원칙인데, 이 셋 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기울면 교육에 흠이 있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가정, 학교, 학생의 문제 중 가정에 관한 요인은 일단 접어 두겠다. 이제 학생을 철저하고 바르게 교도해야 할 스승과, 이를 받들어 대성시켜야 할 제자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여기서는 특히 이것을 대학에서의 교수와 학생의 관계에 한정시켜 생각해 보자. 말할 것도 없이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성숙 인격의 형성을 지도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다. 학문이란 공적으로 인정되며 표준화된 연구 방법으로 얻은 개별적 지식들을 조직화시킨 체계적인 지식이다. 그러므로 학문적 지식은 타당성이 높고 객관적이며 실용성이 있는데, 이는 편견이나 독단과는 엄격히 구별된다. 정확성이 높고 객관적인 연구 방법을 통해 얻은 학문적 지식은 그것이 인류의 발전과 생활의 풍요화에 공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학문을 발전시키는 본거지가 바로 대학이며, 이 대학에서 연구와 교수(가르침)를 통해 학문을 넓히고 전달하는 주동적인 역군이 교수이다. 따라서 교수가 지니는 일차적인 소임은 학문의 발전을 위한 연구와 또 이를 후학들에게 가르치는 일이라 하겠다. 연구와 가르침 중 어느 것이 더 중요시하는가 할 때, 연구 활동에는 그의 독창성과 노력이 더욱 요구된다는 점에서 연구의 성취를 일차적으로 앞세우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교수의 연구 활동을 권리적 소임으로 본다면, 강의하는 것은 의무적 소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연구는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상황일지라도 어는 정도 용납이 가능하지만, 가르치는 일에서 준비에 태만하거나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것들은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다고 대학의 사명은 순수한 학문의 연구와 그 가르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같은 학문에 기초해서 현실 사회에 직접 적용하고 생활 향상에 이바지하는 응용적 지식이나 기술의 연구와 습득 또한 제외되는 것이 아니다. 대학이 지니는 직업적, 기술적 소임을 무시할 수 없다. 현대 사회에서 전문화하고 분화한 한 구석을 담당할 수 있는 전문적 직업인을 준비하는 교육의 터전이 대학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까지 대학의 학구적 풍토와 직업 준비 교육의 기능에 대해 말했지만,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인격적 지도의 소임이라 하겠다. 이것은 체력, 지력, 정서, 동기를 합친 개개인의 특유한 - 그러나 일관성 있는- 행동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특히 자아 개념과 인생관이 핵심이 되어 굳어지게 된다. 따라서 사람됨의 여하에 따라 본인이나 타인 또는 사회 일반이 받는 효과는 지대하며, 특히 전문적 직업인의 경우에 미치는 그 효과는 더욱 크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인격을 형성하는 일 역시 대학에 주어진 또 하나의 중요한 소임으로 보인다. 이같은 대학의 소임에 비추어 교수가 할 일이란 크게 학문 연구와 이의 가르침 그리고 인격 지도로 요약되지만, 교수가 학문적 전문가로서 사회 전반의 발전에 직접 기여하는 사회 봉사 활동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물론 이같은 여러 기능의 중요성에 대해 경우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일률적으로 단언할 수 없겠지만, 개별적인 경우 상황에 적절하게 조화하지 못하다는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대학생의 소임은 교수가 하는 강의와 실습 그리고 그의 연구 활동에 직접 간접으로 접하면서 학문 발전의 현황과 연구 방법을 습득하거나 직업인으로서 필수적 기술과 전문적 지식을 습득하는 일이라 본다. 또한 교수와의 접촉이나 교양적 정진을 통해서 성숙 인격을 이루러 가는 것이 대학생의 소임이라 하겠다. 이렇게 교수가 지니는 연구, 교육, 인격 지도라는 세 가지 소임과, 학생이 지니는 학문, 기술의 습득과 인격 도야의 소임은 다 같이 학문이나 기술의 연구 활동을 매개로 한 인격적 접촉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요즘 사회에서 대학 내 교수와 학생의 관계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자유롭게 교수와 접촉하여 학문이나 인생 문제를 제대로 지도 받고 있는 학생은 불과 15%정도였다. 나머지는 거리감이 있거나 시간적으로 만나 볼 수 없다고 불평한다. 게다가 숫제 만나고 싶지 않은 교수도 있다고 한다. 또 교수에 대해 가졌던 기대가 충족되었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변에서도 상당수가 불만을 표시하였다. 요컨대 이것은 학생과 교수 사이에 어떤 불신 경향이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조사 결과라 하겠다. 학생과 교수 사이에 불신 풍조가 있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혼히 그 원인은 사회 일반에 펴져 있는 상호 불신 풍조가 그대로 대학 내에 옮겨진 것이라고 본다. 더욱이 그 원인은 교수의 지나친 권위주의적 허세가 불신을 조장한 데 있다. 또 교수들이 위선적으로 혹은 불성실하게 학생을 대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학생도 있다. 그런가 하면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교과 내용에 대한 불신으로 옮겨져 그렇다고 보는 학생도 있다. 사회적으로 대학 교육을 간판과 자격증을 얻는 방편쯤으로 보기 때문에 학생이나 교수 서로가 상대에 대한 노력과 관심을 잃어 이같은 불신 관계가 생겼다고 보는 이도 있다. 또 대학에서의 교수에 대한 경제적 대우가 너무나 소홀해 교수들이 대학 외 활동에 바빠서라고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학생들이 너무 기대에 어긋나게 굴어서 그들에게 아예 관심이 없어졌다고 실토하는 교수도 없지 않다.


원인이야 어떻든 이렇게 학생과 교수 사이에 불신 경향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학으로서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자제지간에 불신이 있다면, 교육 목적의 달성은 이미 기대할 수 없다. 학생이 미덥지 않고 사랑스럽지도 않으며 보기조차 싫을 때 교수가 정열을 기울여 그를 지도할 리 만무하다. 마찬가지로 학생 쪽으로도 교수가 미덥지 않으며, 교수를 동일시해 가며 본받으려고 하지도 않을 뿐더러 교수의 입장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또한 이때 대학생은 교수의 지도를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는다. 교수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제대로 수용될 리 없다. 여기에 인격적 지도의 실효는 더욱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불신 관계의 책임이 어느 쪽에 더 많든지 간에 이러한 경향성은 교수나 학생 모두에게 똑같은 불행이며 손실이다. 이런 풍조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수나 학생이 깊은 자기 성찰로써 불신을 바로잡아 나가는 길밖에 없다고 본다. 사실 사람을 못 믿는 것은 신용을 배반당한 경험이 많아서 생기는 수도 있지만, 자기 스스로가 타인에게 성실하지 못해 그러기도 한다. 즉 자신의 이러한 불성실을 그대로 타인에게 투사시켜 그가 자기를 속이리라고 보게 된다. 교수가 학생을 멸시하고 등한시한다면, 그것은 그 자신이 직면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결함(불성실)의 표출에 지나는 것이 아닌가. 또한 교수를 적대시하고 무시하는 학생이 있다면, 이는 자기 열등감의 투사이거나 교수에게 자기 불만을 전가시키는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 대학 풍토의 변질 내지 황폐화의 문제에도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정부 당국이나 대학 경영자가 명실상부하지 못한 대학 경영책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수가 지나치게 부직에 치우치고 있어 교수 본래의 소임에 충실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학생들이 자기가 해야 할 당면 과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다른 일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문제에 각기 깊은 반성과 성실한 노력을 집중시킴으로써 대학 풍토의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또 하나 반드시 성찰해야 할 학생 교수 사이의 문제점은 학생들이 교수들에 대해 갖는 기대에 대한 올바른 자세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대체로 초, 중, 고에서는 교사가 수업 시간뿐만이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 관여하고 지도한다. 그러나 교사라면 언제나 이렇게 세심한 존재이겠거니 하다가 대학에 들어와 보면 사정이 다르다. 학생들이 강의 시간이나 특별 활동에서 교수와 접촉하지만, 교수가 학생들에게 일일이 간섭하거나 적극적으로 나오는 태도는 볼 수 없다. 그야말로 문의에 응하는 식의 교수를 대하면서 그들은 당혹감을 금할 수 없게 된다. 무관심이라 할까 마치 소박이라도 맞은 듯해 주눅들고 교수와는 원인 모를 벽이 쌓여 간다. 필자는 대학에 갓 들어와 교수가 너무 쌀쌀하다느니, 고등학교 선생님의 고마움을 새삼 알겠다느니, 너무나 자유로워 오히려 불안스럽다느니 하는 학생들을 자주 만났다. 사실 대학에서는 학생들을 이미 성숙한 인간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들에게 일일이 간섭하기보다는 자기가 스스로 어련히 해 나가겠거니 하며 되도록 간섭하지 않는 태도를 취한다. 오히려 자상하게 일일이 관여하는 것은 주책없는 짓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성인 사회에서 너무 지나치게 남의 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사생화 침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고등학교와 대학 사이에는 학생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데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적응하지 못하며 교수의 태도만을 탓한다면, 이는 학생 자신의 미숙함과 부적응의 탓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면 교수와 학생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말할 것도 없이 성숙한 인격들의 관계라고 본다. 교수와 학생은 대학을 터전으로 하여 유대를 맺으므로 그들의 관계 역시 연구라는 대학의 본질을 떠나서는 생각될 수 없다. 넓은 의미로 순수한 학문 연구와 전문적인 기술 습득을 포함한 연구 활동을 통해 사제 관계가 성립된다고 하겠다. 사실 대학은 교수와 학생이 연구에 몰두하게 하며 인류와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하려 하기 학교 바깥 사회와는 달리 특권적 자유를 부여받고 있다. 무론 학문에 한한 연구의 자유지만, 이같은 자유는 교수와 학생의 개인적 특권이 아니라 연구자로서의 특권이다. 따라서 이 자유가 자주적이고 자각적인 학자 또는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특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류와 국가 발전이라는 목표를 앞세우고 특권적인 자유를 향유하면서 연구 활동과 가르침에 종사하는 교수와 학생은 다같이 대학인으로서 엄격한 자율성과 주체성이 있어야 하고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교수와 학생의 관계 역시 이러한 성숙 인격들의 관계여야 한다. 교수-학생 관계는 연구 협동 관계뿐만이 아니라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다. 가르치는 것을 받아들여 자기 것이 되게 하려면, 이 두 사람 사이에 '라뽈(rapport)'이 이루어져야 한다. 라뽈이란 상호 조화되고 협조적인 친근 관계를 말한다. 이 관계는 상대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협조해 줄 것이 확신되는 안정된 관계다. 이러한 관계 수립에는 일시적이나마 기교도 있을 수 있겠지만, 지속적인 라뽈을 이룩하는 데는 상호간 성실성으로 대하는 것이 최선이다. 상대를 지배하거나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권리, 장점을 존중하고 인간으로서의 존귀성을 인정하며, 그를 깊이 이해하고 그의 발전을 위해서 자기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그를 돕는 태도가 성실성이다. 이러한 성실성은 성숙 인격에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교수의 인격이 라뽈을 크게 좌우한다고 본다. 성실한 인격의 소유자는 자기 스스로를 잘 통찰하면서 상대를 정확하게 보고 이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자기 욕심에 눈이 어두워 상대를 잘못 본다거나 자기 위주로 상대를 해석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상대에게 너그러울 수도 있다. 관용이란 증오하지 않고 자기와 다른 상대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을 받아 주는 것이므로 자기 통찰과 타인에 대한 이해가 같이 있을 때만 이루어진다고 본다. 자기를 잘 알고 상대를 잘 이해할 때 자기 중심적 기준에서 벗어나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게 된다. 요컨대 자각적이고 성실한 인격을 지녀야 상대의 존경과 신망을 얻게 되며 자신의 주장도 더욱 설득력 있게 수용하게 할 수 있으리라. 과거에는 제자가 스승의 그림자조차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식의 절대 권위로 스승을 받들게 했지만, 오늘날에는 그보다도 자각적인 접촉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대학생은 특히 연령적으로 자기의 앞날과 현재 위치 또 그 소임에 대해 자각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들 또한 자각적인 입장에서 교수에게 접근하고 존경하며 인간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인간은 흔히 직접 접촉하는 상대에게 반항, 경쟁, 적대감이 있고, 이를 무의식 속에 억압하여 겉으로는 알아볼 수 없게 하는 불쾌 감정을 갖게 되기 일쑤다. 특히 가정에서 부모나


형제 사이에 이같은 관계가 성립되기 쉽고, 때때로 가족에 대한 이러한 태도가 학교의 스승에게로 전환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연유하여 교수에게 이유 없는 반항과 공격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자각적이며 교양 있는 학생이라면 깊은 자기 성찰로써 이같은 정서적 불안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자기 결함을 극복하여 보다 나은 사제 관계를 이룩해 나갈 것이다. 요즘은 근대화의 물결에 다라 합리주의 생활 방식이 권장되면서 과거의 엄격했던 사제간의 분별과 절대성이 무너지고, 이 관계를 일시적인 계약 관계로 보려는 풍조가 많이 보인다. 그러나 낡은 과거의 의식 구조라 해도 서로 도우며 유대감을 느끼고 평생토록 서로 협조하는 사제 관계의 측면은 섣불리 버려서는 안 된다. 서로 인연을 맺은 상호 관계를 지속시켜 안정감을 즐기는 기풍은 한낱 야수에게도 있거늘 어찌 학문 연구를 같이하고 사람됨의 바탕을 지도 받는 사제 관계가 한낱 옛날의 일이었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다행히 우리나라 대학의 전통에서는 졸업 후에도 사제간에 서로 돕고 돌보아 주는 미풍이 끈끈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온고지신이 참된 창조의 발전임을 자각하여 앞으로 새로운 시대의 사제 지도를 닦아 나가는 데 이 문제는 크게 고려되어야 한다. 요컨대 현대에서의 사제 관계는 학문 활동을 주축으로 한 성숙 인격인 내지 성숙 인격을 지향하는 자들의 자각적인 관계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의 현실과 장래를 똑바로 인식하면서 바람직한 학문 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현실적인 사제간의 기강을 굳히는 데 다같이 노력해야겠다. "1970 년 11 월" 대학생의 소외감 요즈음 학생들은 심각한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학생들 스스로 이를 소외 의식이니 세대간의 단절감이니 하는 말로 곧잘 표현한다. 세대간의 단절감이니 하는 말로 곧잘 표현한다. 세대간의 단절감을 논의하는 학생 잡지 좌담회에서 3-4 년 전 졸업한 선배는 학생들의 심정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우리의 선배들은 그래도 항일이라는 목표가 있었고 반독재 투쟁이라는 확고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명분이 옹호되는 어떤 한쪽의 분위기도 갖지 못한 채 목표가 없어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의 후배들을 보면 우리들보다도 더 불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게 근대화되어 생활 향상이나 경제 발전은 잘 되어 나가는 것 같습니다만, 정신면에서 볼 때 이처럼 불우한 시대는 없다고 봅니다. 특히 요즘 사회를 '대중화 사회'라고 하는데, 이 대중화 사회의 특성과 대중 문화가 뿜어내는 독소가 지성인에게 상당한 소외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대학 사회 속까지 대중화 사회의 물결이 흘러 들어와 대학생이 '외로운 방랑자'가 되지 않았나 봅니다. 최소한 우리가 다닐 때는 무엇인가 가치관을 설정해 보려는 풍토가 미력하게나마 있었고, 그것을 추구해 나가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을 나온 후 후배들을 바라볼 때, 대학생들은 문제 의식이 없고, 문제의 제기도 없고, 책도 안 읽고, 대화를 해보면 참 얄팍한 냄새만 나서 큰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편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재학생 측은 이를 수긍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적인 무엇을 추구하려고 해도 대중 사회의 광란을 심각한 것을 지루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두운 골방에서 얼굴을 찌푸려 가며 원서를 읽기에는 이 사회 분위기가 너무 환락적이고 요란합니다. 또 제가 느끼는 가장 근본적인 불행은 국가나 사회가 우리에게 '너희들의 제일의 적은 누구냐?'라고 이야기하는 그 적이 바로 우리 자신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회가 대학생을 부정적으로 볼 때, 우리는 세대차를 느끼고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회가 불안정해 가뜩이나 소시민적으로 되어 가는 학생들의 요구가 더욱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적 방황 속에서 '실존주의'니 '허무'니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다 보면 퇴폐적인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 사회자께서는 우리에게 확고한 문제 의식이 있느냐고 물으셨는데, 저로서는 처절한 방황 속에서도 우리들은 그 무엇을 찾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다고만 말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볼 때 단절감이란 목표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 목표가 있어도 다른 세대의 호응을 받지 못하여 어딘가 불안하고 자기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데서 오는 기분이라 생각된다. 다른 세대의 호응을 받지 못하는 것은 학생의 역할에 관한 견해의 차이에서 오는 것 같다. 학생들이 역사의 주역 노릇을 하게 될 때는 10 년 후이며, 지금은 그때의 준비 과정일 뿐이라는 선배의 주장에 대해 학생들은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신 선배가 하신 말씀에 대해 불만인데요. 왜 젊은이를 미래적 존재로 못박아서 사회와 유리시키려 하느냐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완전히 성인으로서 사회에 발언할 수 있는 권한, 아니 주동적인 역할을 할 사람으로 인정해 달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준비 과정으로서의 학생 시기임을 자인하면서도 충동적으로 행동을 취하게 된다고 실토한다. "우리는 지금 내부로 침잠해 들어가서 스스로 자아를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여건이 가만히 두질 않더군요. 정부에 대해 압력 단체 역할을 하는 것은 언론이나 군부인데, 이미 그 역할을 상실해 버렸어요. 남은 것은 학생 뿐인데, 가만히 정국을 보자니 너무나 참을 수 없어 뛰쳐나가게 됩니다" 학생들만이 더럽혀지지 않은 유일한 존재로서 궐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견해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행동만이 남겨진 과업이며 그 행동만이 소중한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학생들이 현실에서 단절감을 느끼고 자신의 행동에서 자기를 찾으려는 발버둥은 청년기에 으례 있는 성인으로부터의 독립 요구로 규정될 수도 있다. 이를 학생들이 직면한 현실 상황과 관련지어 검토하기 위해 일찍이 소외 문제를 다룬 에리히 프롬의 견해를 검토해 보자. 프롬은 소외감을 "자기 자신을 낯설게 느끼는 경험 방식"이라고 정의하였다.


자기 자신은 자기 생활 세계의 중심이 아니며 자기 활동의 주체자가 아닌 것처럼 느끼고, 다만 자기의 활동과 그 활동의 효과만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이 두려워한다. 다만 감각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사물을 지각하듯 자기나 타인을 볼 따름이다. 즉 자기를 객체화한다. 그들은 현실을 주체적으로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 사랑과 이성이라는 생산적 힘을 지닌 주체로서 자기를 보지 못하고 자신을 천대하고 미천하게 볼 때 소위 우상 숭배가 나타난다. 자기의 애정, 힘, 사상을 타인에게 투사시켜 그를 초월적 존재로 여기고, 그 사람에게 몰입하여 충족하는 것이 우상적 애정이다. 이러한 소외 인간이 정치 지도자, 국가, 계급에 자신을 투사시킬 때 영웅 숭배, 국가주의, 특수계급 지배 이론이 나타나기도 한다. 인간은 비합리적 격정에 사로잡힐 때 타인이나 자기와의 관계에서 우상화의 소외 현상을 보인다. 권력에 열중하면 스스로 권력욕의 노예가 되어 권력자를 우상화하고, 돈에 지나치게 이끌리면 자신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려고까지 한다. 자기 속에 있는 하나의 부분적 힘에 쫓겨 본래의 자기와 유리되고, 이에 따라 스스로가 낯설고 하찮은 존재로 여긴다. 또한 자기 밖의 힘에 의존하려 하고 자기를 투사시켜 그것에 열중한다. 원래 인간은 불안한 존재이며, 이를 극복하는 것은 주체 의식뿐이다. 즉 자기 자신을 독립된 실체로 의식하고, 스스로가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며, 자신 에 대해 의의를 느끼고 사는 경우 불안감은 극복된다. 그러나 소외된 인간은 특 정 개인이나 집단에 동조해서 그들에게 인정받아 불안감을 극복하려고 한다. 인간은 또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연에서 벗어나 초월하기 위해 사 랑한다. 건전한 인간이라면 자기의 본래 모습과 개별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상 대와 자기를 결합시켜 참된 의미의 자기 발전을 도모한다. 서로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고 상대를 결합시킴으로써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즉 소외 인간은 맹목적 사랑이나 우상적 사랑으로 안전감을 얻으려 한다. 인간은 이성과 사랑으로 생산적인 인생을 살아갈 때 행복을 느끼고 현실의 밑바닥을 통찰하게 된다. 자기의 개별성과 타인과의 동일성을 발견할 때, 세계와 자신과의 생산적 관계에서 증진하는 생의 에너지를 느낄 때 역시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이러한 생의 에너지가 마비됨을 느낄 때 권태감이 생긴다. 소외 인간은 이 권태감을 생산적인 생의 에너지의 촉진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쾌락과 소모 활동을 추가함으로써 일시적으로나마 권태감을 회피하려고 한다. 요컨대 주체적 인간은 생산적인 사랑, 이성, 신념에 살며,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삶을 존경한다. 그러나 소외 인간은 스스로를 천시하며 자기라는 존재를 하찮은 주사위쯤으로 여겨 타인에 의해 쉽사리 조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외 인간은 주체성이 없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흔히 불안스러워 하고 공포에 떨며 열등감이 심해 타인의 인정과 동조를 얻으려고 애쓴다. 프롬은 현대 미국 사회의 불건전성에서 생겨난 소외 인간을 다루었는데, 이 이론이 우리 사회에 그대로 들어맞을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시사해 주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 학생들은 몹시 불안정하고, 사회와 단절감을 느끼면서도 어떤 목표에 열중하려고 애쓰는 것은 아마도 프롬의 소외 인간 증후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면 이러한 소외의 요인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첫째, 학생들로 하여금 비합리적 격정에 열중하게 해서 자기 소외를 일으키게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전통이라고도 볼 수 있는 학생들의 독립 운동, 민주주의 운동의 역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빛나는 전통은 학생들에게 자기 자신도 이같은 운동의 선봉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가지게 한다. 학생들은 학생으로서의 정상적 역할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다. 이와 같은 사회개혁 운동 담당자로서의 학생 역할에 지나치게 열중하다 보면 자기 소외와 우상화에 빠져 이데올로기적 광신과 급진적 경향에 빠지게 싶다. 둘째, 학생들이 단절감, 소외감을 느끼게끔 하는 것은 현실 사회체계에서 찾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나라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발전 모형에 따라 현대 학생들은 과거처럼 엘리트로 대우받기보다는 고용 후보자로 취급당할 심각한 압력을 느끼므로 자기 평가에서도 심한 열등감을 느낀다. 더욱이 국내 대학의 불신성과 대미 협조 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우리 사회의 지도층 구성 비율에서는 외국 유학생 비율이 높다. 또한 특수 연구소에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데 대학은 황폐화되다시피 버려져 있다. 이러한 사회와 대학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스스로의 취약성을 실감하며 자기 소외에 빠져 버리는 것은 아닌지. 셋째, 학생들이 대학 생활 중 자기 방향의 정립에 극심한 방황을 나타내는 것은 우리의 교육 제도와 교육 실태에도 직결된 문제일 수도 있다. 최근 각 대학에서 교양 학부를 설치하고 교양 과정에 더욱 주력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고등학교 교육은 대학 입시 준비에 지나치게 주력하고 있는 나머지 청년기에 이룩해야 할 자기 발견과 가치관 정립에 밑받침될 교양 교육을 소홀히 하고 있다. 이러한 결함을 대학에서라도 고쳐 보려는 노력이 바로 이 교양 학부 방안이다. 그러나 이미 대학이나 과 선정이 무책임하게 이루어진 뒤라 이를 수정하기는 어렵고, 학생들이 당면하는 여러 문제들은 대학 공부에만 열중할 수 없게 하는 요인들을 지닌다. 이 때문에도 학생들은 심각한 고민으로 마음의 방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넷째, 오늘날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학생 세력의 움직임에 관련된 학생들의 고민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단편적으로 들어오는 외신만 보더라도 선진국에서는 학생들이 자기들의 존재를 크게 선양하고 어떤 세력을 형성한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이에 우리 학생들도 자기네 역할에 대해 뭔지 모를 중요성을 절감하며 이제야말로 학생들이 역할 할 시대라고 자처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덮어놓고 대학 당국이나 사회에 반항하고 하찮은 권리 주장을 하는 어리석은 짓을 할 수 없다. 외국 학생들에게는 그 나름대로의 문제 의식이나 논점이 있듯이 우리 학생들도 현상황에 절실한 요구를 내세워 주장해야 한다. 그런데 이같은 문제 파악이나 자기 역할의 발견에는 폭넓은 교양과 사색의 힘이 요구되므로 교양이 부족한 학생들은 문제 파악에 아무리 안간힘써도 신통한 해결을 할 수 없다. 그야말로 여기에는 문제 의식도 없고, 문제 제기도 없고 그저 무엇을 찾으려는 발버둥만이 있게 된다. 이같은 지성의 빈곤이나 문제 제기로 향한 발버둥과 학생 스스로의 존재를 내세우려는 지나친 격정은 외부 정치 세력을 우상화하게 하고 그들의 유혹에 말려들어 가는 과오를 범하기 쉽다. 한마디로 자기 나름대로의 학생 운동을 하지 못하는데 자기 비하 내지 자기 소외의 원인이 있다고 본다. 그러면 이러한 소외감, 단절감을 해결하는데 도움될 가능성을 생각해 보자.


첫째, 학생들은 너무 자기 주장, 명성, 인정 요구를 앞세우지 말고 참된 현실 이해에 입각해서 자기 발전에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폭넓은 교양과 사색을 통한 인생관의 확립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기 발견이 이루어질 때 대학 생활은 충실해질 수 있으리라. 둘째, 우리 사회의 빛나는 전통이라고 믿고 있는 학생의 사회 개혁에서의 선봉 역할이 참된 의미에서 빛나는 전통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준비 과정에 있는 학생이 뛰어나와야만 할 긴급성이라는 것과, 새싹만이 가능성 있고 기성은 완전히 쓸모 없는 존재라는 식의 상투적 주장에도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셋째, 사태 파악이나 사고를 하는 데서도 학생들이 지나치게 이분법과 실무율을 따르려는 것이 문제다. 4.19 의 교훈이 보여주듯 부정에 대립되어 있는 것 모두가 정의는 아니며, 어떤 것이든 일률적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현실은 객관식 시험 문제처럼 '예''아니오'로만 규정될 수 없는 것임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1970 년 8 월"

대학의 자유 근 3 개월 간에 걸쳐 불었던 거센 바람이 이제 겨우 잠잠해진 것 같다. 4.27 대통령 선거와 5.25 의원 선거를 앞두고 "교련 반대", "학원의 자유 수호", "민주 수호", "공명 선거" 등의 구호를 외치며 수십 차의 가두 데모가 있었다. 급기야는 이로 인해 3 명의 학생이 구속되기까지 했다. 이후 구속 학생 석방을 요구하는 데모가 연일 계속되면서 학원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하여 문을 닫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학생들의 현명한 자성으로 인해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건대 4.19 이후 학생들이 정치 문제에 대한 관심이 왕성해져 나라의 정치적 전환점에서 으례 대학은 큰 진통을 겪어 왔다. 한, 일 국교 타결에 관련해 64 년과 65 년에 휴교 사태가 빚어졌고, 67 년에는 선거 부정을 규탄하면서 조기 방학이 있었으며, 69 년에는 개헌을 반대함으로써 또 휴교 사태가 있었다. 작년에는 다행히 강의를 제대로 마쳤으나, 이번에는 총선거에 관련해 또다시 큰 소동을 겪었다. 여러 해에 걸친 이같은 경험은 대학의 자유와 학생들의 현실 참여의 타당성에 관해서 깊은 반성을 하게 한다. 진리를 탐구하고 가르치며 장래 인류 역사의 지도적인 전문적 직업인이 될 수 있게끔 기술과 인격을 도야하는 곳이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이같은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 사회는 대학을 현실 격리적인 분위기 속에서 특권적 자유를 허용하고 대학 자체가 자율적으로 대학을 운영하게끔 하고 있다. 물론 현실과 격리된 상아탑 속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내용은 모두 다 현재 사회가 요구하는 바 그대로는 아니라 하더라도, 먼 안목에서는 인류 사회나 국가에 기여할 수 있다. 대학은 사회를 개조 발전시키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사회에 대한 기여가 직접적인 참여보다는 연구와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 대학이 갖는 사회 공헌의 특유성이라 하겠다. 대학인은 특권적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한다. 대학인의 이러한 자유는 어디까지나 학문 연구에서 주제를 자유롭게 택하고 자료를


무제한 사용하며 자유로운 입장에서 결론 내릴 수 있는 연구의 자유이다. 그렇다고 이 특권적 자유는 사회 생활에서 무제한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행동의 자유는 아니다. 대학인의 자유는 어디까지나 연구자로서 연구 기관 속에서의 특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마음대로 행동하고 표현하는 자유는 절대로 아니다. 그러므로 현실 참여적인 입장에서 대학인은 일반 사회인과 똑같은 입장에서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대학이 현실격리적 분위기를 유지하며 자유로운 연구를 할 수 있게 하려면, 대학의 운영조차도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대학의 자치가 계속 실천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대학의 자치는 권리에서의 특권이라기보다는 대학인의 인격적인 성숙에 기초하여 이룰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닌지. 대학의 자치는 특히 대학인의 성숙에 따라 자연적으로 성취되었으면 한다. 대학의 자유를 성실하게 지켜 나가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대학인의 인격이 아닌지. 그러면 대학의 자유를 유지하는 대학인의 인격 요인은 무엇인가. 첫째, 엄격한 자제력, 주체성, 도덕성에 입각하여 연구의 자유를 행사해야 한다. 연구 활동이나 그 발표에서도 자기를 주장하는 입장보다는 다수 의견의 종합과 진리 파악에 신중성을 보이며, 현실의 직접적 특수문제보다는 긴 안목에서의 근본적 원리 문제에 치중하는 학구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둘째, 대학인의 인격은 심사숙고하는 면을 지녀야 한다. 현실 사회에서는 그 현실에 참여하고 적응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책략과 술수 또는 자기 변장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수법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목표의 정당성이 없는 속임수는 용납될 수 없고, 이 경향이 지나치면 정신병 환자로 취급된다. 더군다나 진리를 문제삼고 인격 도야를 과업으로 하는 대학인에게는 목표와 방향이 더욱더 올바르고 이를 위한 수단과 행동이 합치하는 성실성이 요구된다. 원리적인 것을 추구하고 성실성과 순수성을 지니며 이론이나 인격을 지도해 가는, 내면 생활을 지향하는 사람이 되어야 대학의 참된 자유는 유지된다. 이제 큰바람은 지나가고, 대학은 다시금 고요히 학문에 열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같은 고요 속에서 대학의 자유와 소임의 완수를 위해 대학인 모두의 깊은 반성이 있어야겠다. 특히 이번에 경험한 정치적 회오리의 반복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고 대학의 참된 자유와 소임을 발휘하는 데 이같은 장해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준엄한 반성과 각오가 요구된다. "1971 년 6 월" 학생들의 부적응 문제 학내 생활이나 사회 생활에서 부적응 행동을 일으키는 학생들을 문제 학생으로 간주하고, 이런 학생의 예방과 교정이라는 입장에서 이들 문제 행동의 원인을 고찰해 보기로 하자. 정신 장애자에 관한 정확한 통계 숫자는 얻기 힘들지만, 정신병의 으뜸인 정신 분열증은 전인구의 약 1%로 보고 있다. 이 비율대로라면 대학생 1 만 명 중 약 1 백 명 전후에게 분열증 경향이 있으며, 다른 유형의 정신병도 이와 비슷한 숫자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신경증도 대학생이나 고등학생에게서 약 20% 전후로 추정된다.


1978 년도의 신입생 실태 조사에서 보면 정신적인 고민이나 신경성 질환으로 입원 치료한 경험이 있는 학생이 0.9%이며, 입원까지는 아니지만 외래 진료를 받은 학생의 수가 2.7%이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응답한 학생이 9.5%나 된다. 이렇게 볼 때 약 10% 이상의 학생이 심리적으로 문제되는 학생이 아닌가 추측된다. 일반적으로 병적 행동을 예방하고 교정하는 심리 치료적 조치는 크게 세 수준으로 나누어 적용한다. 1. 원인 제거 조치:병적 행동 발생의 원인이 되는 조건들을 제거하거나 수정하는 노력을 말한다. 2. 초기 발견 치료 조치:병적 행동을 나타내더라도 아직 만성화하지 않고 심각해지기 전에 발견하고 치료해서 문제성을 극소화시키는 노력을 말한다. 3. 재활 조치:병적 행동 자체는 소대지 못하고 그것으로 유발되는 손상 효과를 극소화시키면서 일단 나타난 결과의 원상 회복과 재적용을 지도함을 말 한다. 첫째의 원인 제거 조치를 적용하는 데는 몇 가지 가설을 토대로 해서 이루어진다. 우선 가설을 열거해 보기로 하자. 첫째 가설은 개인의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욕구에 대한 충족 결여로 이상 행동이 생긴다는 것이다. 둘째 가설은 환경적 결여가 선천적 조건의 발달 과정에 영향을 주어 병적 행동이 생긴다는 것이다. 셋째 가설은 환경적 결함을 교정하고 개인의 기능이 전달되지 않는 것을 수정함으로써 문제 행동을 모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세 가설에 입각하여 욕구를 적절하게 충족시키고 나쁜 환경을 보충하며 건전하고 생산적인 환경 조건을 조성하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문제 행동을 예방할 수 있다고 본다. 둘째의 초기 발견 치료 조치에서는 조기 발견과 정확한 진단이 특히 강조된다. 부모, 교사, 의사와 기타 관련자들의 적절한 예비 지식과 노력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고 본다. 셋째의 재활 조치는 시설의 결함을 극복하여 적절하게 교정하고 재적응시키며 일시적인 책임 면제와 노력으로 부담을 감소시켜 주면서 점차 원상 회복으로 이끌어 나가는 방안이다. 대학에서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의 지도에서도 이상의 세 가지 수준의 조치가 그대로 적용된다. 이제 이 세 조치를 합해 대학에서 특히 문제되는 것들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즉 경제적 곤란과, 원하는 학과로의 전과가 안 되어 불만 상태에 있는 것, 대인 관계의 부적응, 가치관의 부적응, 그리고 대학 생활의 부적응 등 다섯 가지에 대한 문제를 살펴보자. 우리는 상당수의 학생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있고 이를 극복하느라 애쓰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학생 스스로 해결해 나가면 문제없지만, 그렇지 못할 때 여러 가지 문제 행동을 예상할 수밖에 없다. 1975 년과 1976 년의 신입생 실태 조사에서 보면, "학비 사정이 매우 곤란하다"는 학생이 약 10%, "다소 곤란하다"는 학생이 30%나 된다. 1978 년 11 월에 2 학년 학생만 조사한 것에서도 "아주 곤란하다"가 9%, "다소 곤란하다"가 25%로 나와 있다. 이들의 부직 유무를 조사해 보면, 부직을 계속 갖고 있는 학생이 19%, 때때로 갖는 학생이 24%, 전에 가진 것이 있는 학생이 34%다.


이러한 자료로 미루어 보아 대학생의 10% 내지 20%가 학비 사정에 어려움이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상태가 심하고 또 오래 지속될 때 좋지 못한 결과가 오리라고 본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상태가 학업의 방해 요인이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풍요롭게 생활하는 동료나 정상인에 대해 대립 의식이 생기고, 이 경향이 심해지면 거부증과 심한 낭비벽을 보이기도 한다. 학생 지도에서 이러한 경제적 곤란을 당하고 있는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지도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현재 자신이 다니고 있는 대학이나 학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옮기고 싶으면서도 전학과 전과가 쉽지 않아 고민에 쌓이는 것도 학생들의 욕구 불만의 하나다. 1976 년에 고대생 전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보면, 가능하면 전과하겠다는 학생이 전체의 33%나 되었다. 1978 년에 2 학년만 대상으로 조사한 경우에도 가능하면 전화하겠다는 학생이 29%로 나와 있다. 이들은 계열별로 입학해 그 계열 내에서는 자유롭게 과 선택이 허용되었던 학생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진로 문제나 전과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들을 잘 살펴보면, 성격적 결함을 지니는 경우도 많다. 성격적인 부적응이 원인이 되어 과 선정을 잘 못하고, 또 그리 잘못되지 않은 현학과에 공연한 불만을 집중시키는 경우도 있다. 현학과에 열중해 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불평, 불만만 내세우는 경우도 많다. 1977 년부터 우리 대학(고려대)은 계열별 입학 제도가 도입되어 2 학년이나 3 학년에서 구체적으로 학���를 선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제도에서 학생 각자의 무지각과 신경증성이 극복되지 못할 때, 학생들은 안일주의와 유행에 빠져 학과 선택을 잘못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에서는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가족, 친구, 교사와의 인간 관계에서 불화와 부적응의 문제를 안고 있는 학생은 의외로 많다. 1978 년도 신입생 실태 조사에서 당면하고 있는 9 개 문제 중 3 개만 고르게 했더니 약 50%의 학생들이 이 문제를 내세웠다. 성별로는 남학생 48%에 비해 여학생은 67%가 이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1975 년도와 1976 년도의 신입생 실태 조사에서 약 20%의 학생은 가족 중에 불화 대상이 있어서 속썩이고 있다. 특히 부모나 동기간과 원만하지 못해서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와 자녀간에는 세대의 차가 있고 가치관의 차이가 심하다. 그러므로 서로 이해하고 잘 어울린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더욱이 청년기 특유의 반항성과 독립성이 가세하면서 웬만큼 너그럽고 성숙한 부모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대의 차와 가치관의 차이는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런 대립도 그리 심하지 않거나 장기화되지만 않으면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불화는 그 책임이 부모에게 있는 경우도 있지만, 자녀가 지니는 성격적 결함 특히 의존성과 정서 불안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지나친 의존성과 불안정성 때문에 부모나 형제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기대하게 된다. 따라서 이것을 얻지 못할 때는 기대한 만큼 불만이 생기고, 또 이 때문에 불화도 초래한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은 근본적으로 학생들의 정서적 안정과 성격적 성숙에서 기대할 수밖에 없다. 특히 대인 관계에 장애가 심해서 사람과의 접촉을 꺼려하고 무표정한 경우, 또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늘 불행감에 젖어 못마땅해 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관심을 갖고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청년기에 해당하는 대학생들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기성 사회의 가치관을 습득하고 스스로 이를 토대로 삼아 자기 나름의 건실한 인생관을 확립시켜 나가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엔 성인 사회의 가치관을 이미 낡아서 타당성이 적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대학생들이 상당히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이에 대치되는 새로운 가치관을 체계 있고 확고하게 정착시켜 놓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가치관의 취약성은 행동에 추진력 부족 현상을 가져오게 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 나라는 현재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발전 모형을 좇아 현대화에 열중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에는 신, 구 체제가 공존하므로 학생들의 가치관과 인생관도 과도기적이다. 즉 불안을 느끼고 기성층과의 단절감을 지니며 스스로 소외된 듯 고민하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사회는 끊임없이 신체제로의 발전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학생들에게는 대학 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부적응 또한 커다란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요컨대 학생들이 부적응의 핵을 이루는 자기 소외감을 극복하는 길은 착실한 현실 참여를 통한 자기 발견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폭넓은 교양과 인생관의 확립을 중시하는 기풍이 조성되어야 하리라. "1979 년 4 월" 넷째 묶음 성숙 인격 성숙 인격의 모습 20 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건전 인격, 성숙 인격, 통일 인격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 연구를 종합해 보면 성숙 인격에 관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특질들이 강조되고 있다. 첫째, 성숙 인격은 타고난 자기의 가능성을 성취하고 자주적으로 행동하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충분히 달성한다. 둘째, 성숙 인격은 자기의 현실을 효율적으로 인지하고 현실 속에서의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며 현실과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셋째, 성숙 인격은 확고하고도 타당한 인생 목표를 지니며 통일된 세계관을 세우고 이에 맞추어 행동한다. 넷째, 성숙 인격은 문제를 직접 현실 속에서 해결하기를 좋아하며 자기 중심적이 아니라 문제 중심적으로 살아간다. 이 다섯 가지 특질들은 통일된 한 인간의 모습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포착한 것이므로 서로 연관 있고 중첩되기도 한다. 이제 이 다섯 특질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기로 하자. 먼저 자기 성취, 자주성, 책임, 소임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이를 성취하는 특질을 생각해 보자. 프롬은 성숙 인격의 핵심적 특질로서 생산적 오리엔테이션을 지니는 것에


관해 지적하였다. 여기서 오리엔테이션이란 사람이 경험하고 행동하는 기본적 태도나 생활 방식의 테두리를 이루는 것을 말하며, 생산성이란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힘을 사용하고 가능성을 실현하는 인간 능력을 말한다. 그러므로 생산적 오리엔테이션이란 인간 조건의 충분한 인식과 자각을 토대로 자기 자신, 타인, 자연에 대해 적극적이고도 창조적으로 관계하는 모습을 말한다. 이러한 오리엔테이션으로 살아갈 때 자기에게 주어진 독자성, 책임, 가능성을 올바르게 깨닫게 되고, 이를 충분히 성취시켜 나가는 자기만의 자주적인 생활이 전개된다. 매슬로우(미국의 인문주의 심리학자)는 성숙 인격을 자기 성취라고 규정하고 자기 성취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즉 자기 성취란 각 개인마다 다르게 타고난 가능성, 능력, 자질 등을 스스로 깨달아 이를 충분히 개발시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 성취에서는 환경이 자기에게 부여하는 사명을 충실히 달성해 나가며, 인간의 공통된 본성과 각 개인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개별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것을 마음으로부터 수용한다. 또한 한 인간 속에서 여러 가지 요구, 과제, 특질들이 결합되고 통일되어 나가는 것이 자기 성취다. 이렇게 볼 때 성숙 인격이란 이 세상에서의 참된 자기의 위치를 알고 그 자기를 실현시켜 나가는 사람됨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자기는 확대된 자아 또는 적극적인 자아 개념인데, 이러한 의미에서의 자기는 인간으로서의 참된 자기 가치를 고려해 공적 복지 즉 국가, 민족, 인류의 복지를 지향하면서 활동하는 책임감이다. 일찍이 1898 년 11 월 이상재 선생은(1850-1927) 옥에서 나와 의정부 총무국장을 사임하는 상소문에서 "신(본인)은 정부의 한 관리입니다. 그 직책이나 권한은 상관의 지시를 받아 엄정하게 시행하는 것에 불과합니다만 천부의 병이야 어찌 조금이라도 남에게 양보하겠습니까?"라고 적고 있다. 이는 인간으로서 타고난 천성과 책임을 헛되어 양보할 수 있겠느냐는 자아의 존재 의의에 대한 다짐이라 하겠다. 병이란 인간으로서 타고날 때부터 지니는 정당한 성향과 권리를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각자의 자주성이며 책임과 소임이다. 또한 이것의 표현과 성취를 해내는 사람됨이 성숙 인격이라고 본다. 둘째, 현실의 효율적인 인지와 그 속에서의 자기의 위치를 객관화시켜 볼 수 있고, 그러면서도 이러한 현실과 자기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경향이 문제가 된다. 앞에서 올바른 자아관, 자주성, 책임감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이러한 자기의 성취와 자기 사명의 완수를 위해서는 정확한 현실 파악과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 조건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이러한 지적 능력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너그러운 정적 태도는 서로가 상보적 관계에 있으며, 어느 한 쪽도 없어서는 안 된다. 사실 정서적으로 너무 흥분하거나 너무 자기 중심적으로 동기화 할 때는 정확한 현실 파악이란 생각할 수조차 없다. 또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현실 인지가 계속되지 못하면, 마음의 안정성도 지속되지 못하고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현실을 정확하게 지각하는 것은 단순한 지적 능력의 소산이 아니라 마음의 안정성, 순수하고 객관적인 무욕 상태, 편견 없는 공적인 자세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이러한 무욕의 바탕만으로 정확한 현실 파악이 다 되는 것은 아니다. 넓고 깊은 지식의 축적과 풍부한 지식을 참고로 할 때 안정되고 편견 없는


자세는 정확한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평가할 때 그의 업적을 중시한다. 그런데 성숙 인격이 갖는 이러한 정확한 인지력과 뒤에 언급할 문제 중심성이 근간이 되어서 보통 사람들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는 탁월한 업적이 성숙 인격자에게는 자연히 나타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셋째로 중요한 특질은 이해심과 사랑을 지니고 따뜻한 대인 관계를 유지하는 점이다. 올포트(1897-1967, 미국의 성격 심리학자)는 성숙 인격자의 사회 관계는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자연히 따뜻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하나는 이들이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고 또 사랑하기 때문이며, 또 하나는 상대의 모든 인간 조건을 이해하고 동정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프롬도 생산적 오리엔테이션을 지닌 사람에게서 비로소 참된 사랑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보았다. 참된 사랑이란 어떤 것이냐는 물음에 대해 네 가지 특질을 내세운다. 즉 사랑하는 상대를 성심껏 돌보아 주는 노고, 상대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것, 상대를 존경하는 것,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지하는 참된 지식이 그것이다. 상대를 위한 노고란 상대의 발전과 행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를 위해 스스로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실로 참된 사랑이 보여주는 헌신적인 희생은 바로 이 노고라는 특징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상대에 대한 책임감은 어쩔 수 없이 부과되는 의무와는 좀 다르다. 이것은 상대의 여러 가지 문제가 바로 나의 문제인 양 느껴져 그것에 대해 손을 쓸 수밖에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상대의 문제가 나의 문제로 느껴지므로 상대를 괴롭히는 자가 밉고 원망스럽게 여겨진다. 사랑하게 되면 맹목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열중에 빠진다는 것도 이 특질 때문이라고 본다. 노고와 책임감의 두 특질만이 주가 되어 있는 사랑은 흔히 있는 통속적인데 여기에서는 지나치게 맹목적이고 헌신적이어서 잘못하면 지배욕과 소유욕을 충족시키는 구실밖에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상대를 존경하고 바르게 인식하는 이지적인 두 요인이 없이는 참된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상대에 대한 존경심이란 덮어놓고 복종한다든가 무서워하는 태도가 아니다. 이는 상대의 개별성과 특이성을 파악해 있는 그대로 그의 사람됨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를 모르고는 존경할 수 없다. 상대방을 정확하게 인식해서 그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볼 때 상대를 잘 알고 그의 특이성을 인정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이해요 동정이며, 이에 더해서 책임감을 느끼고 그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하는 노고까지 나타내는 바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해와 동정의 수준이든 사랑의 수준이든 따뜻한 대인 관계는 상대를 잘 알고 존경하는 데 기초를 두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인 관계에서 이러한 애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자를 성숙 인격이라고 한다. 넷째, 성숙 인격인은 확고하고도 타당하나 인생 목표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통일되고 체계가 있는 인생관과 세계관을 정립해 이에 맞추어 생활해 나간다. 카텔(미국의 성격 심리학자)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 목적이 있겠으나 이 여러 가지를 단 하나의 조화된 인생 목표에 응집시켜 살아가는 사람됨을 통일 인격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여러 가지 생활 목적들이 가장 중요한 인생 목표에 조화 있게 응집되도록 하려면 필수적으로 통일되고


체계화된 인생관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리즈만(미국의 사회 심리학자)도 합리적이고 비권위적이며 비강박적인 분명한 인생 목표와 올바른 가치 지향성을 지니고 사는 것을 성숙 인격의 특질로 보았다. 오늘날 교육 특히 대학 교육에서 자주적이며 성숙된 인격을 도야하기 위해 교양 교육이 강조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통일된 인생관의 수립에 그 목표를 두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교양 교육이란 지성, 의지력, 정서, 체력 을 종합해 바람직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인격적 기초를 다지게 하려는 것이지만, 그 핵심은 올바른 인생관의 수립에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다섯째, 성숙 인격의 특질은 문제 중심성이다. 당면한 문제를 직접 현실 속에서 해결하는 데만 만족을 느낄 뿐 공상이나 대리적 해결로 충족하려 들지 않는다. 따라서 자기 중심적이 아니라 문제 중심적으로 일에 열중하기 쉽다. 매슬로우가 지적하고 있듯이 성숙 인격자는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의 모습이나 문제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외적인 문제에 몰두하기 때문에 마음의 불안이나 긴장 또는 지나친 내성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또한 자기가 열중해서 하는 일에 해야 할 책임이나 의무감을 느끼고, 공적인 관점에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일단 할 일에 열중하면 쓸데없는 잡념 없이 집중적으로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며 담담한 심정으로 살아가는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심적 상태는 의식이 생생하며 아무런 잡념이 없는 무장애 상태다. 성리학에서 말하는 명경지수의 상태, 선에서 말하는 견성의 명묘하고 청정한 마음이 아닌가. 이런 상태에서는 자아 의식이 의식상에 자주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자기 망각적이 된다. 실없는 동기에 방해되지도 않고 오직 대상 중심적으로 대상에만 응한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인식하고 이에 집중해서 객관적으로 대처해 나간다. 그러므로 인지하는 데 대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거나 왜곡시키지도 않고 부당한 추상화도 보이지 않는다. 활동하는 데 집중적이며 정확하고 착실하다. 능률적이며 성공적인 결과가 저절로 나타난다. 요컨대 이 문제 중심성이라는 특질은 단순한 주의의 집중성, 일에 대한 전일성이라는 표면적인 경향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성숙 인격의 핵심적인 성향이라고 볼 수 있는 의식, 동기, 대상 지향성의 순수성과 안정성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1976 년 3 월" 지도자의 인격 집단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위치에 있는 지도자의 사람됨이야말로 그 집단의 운명을 좌우하는 관건이라 하겠다. 이제 올바른 지도자로서 꼭 갖추어야 할 사람됨으로서의 성숙 인격적 특질들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구성원 서로 서로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한군데 모여 있거나 혹은 관찰자의 의식 속에 한데 뭉쳐 인지되는 사람들의 모임을 집단이라고 한다. 부양하고 부양 받고, 사랑하고 사랑 받는 관계로 서로 모여 있는 것은 가정이다. 또 어떤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어떤 결론을 내리는 관계로 모여 있는 위원회라는 집단도 있다.


정신분석학적으로는 두 사람 이상의 구성원들이 자기의 초자아 속에 똑같이 동일한 모델이나 이상을 지니고 있을 때, 이들은 심리적으로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초자아란 출생 후 부모나 다른 가족으로부터 훈련받아 마음속에 형성된 이상적인 모습이나 표준적 기준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이 초자아는 한 개인의 이상이나 양심 또는 행동의 기준이라 할 수 잇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마음속에 자기가 해야 할 것과 살아갈 방식에 대해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때, 즉 추구하는 바가 같고 삶의 이상형이 같을 때 이들은 한 집단이 되었다고 본다. 한 집단을 이루면 구성원은 서로를 동일시하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서로가 모방의 대상이 되고, 이로 인해 자기 신뢰는 더욱 굳어져 구성원 상호간에 '우리들'이라는 표현이 자연히 나타나게 된다. 집단 내에서 몇몇 구성원들이 그 중 한 사람에 대해 동일시를 보이며 각자가 지니고 있는 유사한 내적 갈등을 해결해 나갈 때,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을 이 집단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지도자가 집단 전체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 가면, 다른 구성원들은 이에 추종해 나가는 상호 작용의 관계가 있다. 이 관계는 일정한 양식으로 일관성 있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 이 상호 작용이 뒤바뀌는 수도 있다. 이를테면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늘 이끌어 나가고, 다른 사람들은 늘 그의 뒤를 따라다닌다. 그런데 사태의 변화에 따라 이끌어 가고 따라다니는 이러한 관계가 교체되는 경우가 있다. 부부 관계에서도 생활의 모든 면에서 부창부수를 고수하기도 하지만, 가사 문제나 자녀 양육에는 아내가 선도적 역할을 맡고 남편은 이에 뒤따라갈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같은 집단 내에서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지도자가 바뀔 수도 있다. 지도자란 집단을 지도하는 자리에 임명 또는 선출되어 그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 보통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그 안에서 다른 사람이 실제적인 실권을 쥐고 지도자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감안할 때 집단을 이끌어 나가는 직책에 있는 사람이 반드시 지도자라고는 할 수 없다. 지도자는 또 집단 구성원들의 행동의 촛점이 되는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구성원들이 다 같이 애정을 표시하고 자기와 동일시하는 중심적 인물이 있으며 구성원 상호간의 동일시도 생기고 구성원 각자의 이상적 자아 속에 이 중심 인물의 사람됨이 구체화되어 구성원들은 이를 모방하고 추종하는 행동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지도자가 이끄는 방향으로 집단을 쉽게 움직여 나간다. 이처럼 집단 구성원과의 정서적 유대를 중시하는 지도자의 개념은 집단의 목표나 기능의 완수와는 관련이 적은 입장에서 지도자를 생각하게 되는 흠도 없지 않다. 집단 속에서 영향력이 많은 사람을 지도자라 생각하려는 경향도 있다. 제반 사회적 상황에서 선도적으로 계획을 잘 세워 여러 사람의 행동을 조직화시키는 능력, 그리고 여러 사람을 잘 이끌어 협동해 나가게 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지도자로 본다. 즉 여러 사람을 일정한 방향으로 나가게끔 영향력을 많이 행사하는 자를 지도자로 한다. 특히 이 영향력이 집단 구성원에게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중요한데, 이렇게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요건은 이 영향력이 집단 전체의 기능이나 발전에 크게 공헌하는 점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개별적인 구성원에게 미치는 지도자의 영향력은 집단 전체의 진행 과정에 미치는 영향력에 비하면 2 차적이라고 하겠다. 사실 지도자의 참된 존재 의의는 집단 전체를 이끌어 효과적인 성취를 이룩하게 하는 데 있다.


이렇게 볼 때 집단 전체의 성취에 적극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참된 지도자를 규정지으려는 입장도 생각할 수 있다. 이 입장에서는 집단 전체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발휘하는 데 집단의 통합성, 응집성, 점착성 등이 무엇보다 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요인들을 강화시키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지도자가 된다. 지도자의 존재를 그가 한 집단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나 인망 또는 구성원에게 주는 영향력 혹은 집단의 성취에 공헌하는 정도에 따라 파악하고 있지만, 그리 분명한 해답은 아직 못 얻고 있다. 지도자란 무엇이며 지도력이란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해 실제로 지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인격상 특징들을 지적한 연구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지도자의 신체적 특징을 살핀 연구를 보면, 키가 크다느니 작다느니 체중과 외모 등이 상관이 있는 것 같다느니 하지만 확실한 결론은 내리기 어렵다. 다만 체력이 강건하고 정력적인 면이 공통되는 특징으로 나타난다. 또 우수한 지능을 지도자의 일반적 특징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카텔은 인격 특성 12 개 중의 하나로 일반 정신 능력을 생각했는데, 이는 지적이며 현명한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독립성, 인내력 면을 지닌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 정신 능력이 지도자들에게는 훨씬 강하게 나타나는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능력이 그대로 지도력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지도자가 지능이 너무 우수하면 오히려 지장이 많다고 한다. 지도자의 지능 계수가 일반 구성원들보다 30 이상의 높은 차이를 보일 때, 지도 관계는 형성되기 어렵다고 한다. 심리학자 터만(1884-1959)의 천재 연구에서는 큰 집단의 지도자는 구성원보다 지능 계수의 평균의 20 내지 30 은 높아야만 제대로 감당해 낼 수 있다고 밝힌다. 자신감 또한 지도자의 중요한 특징이라 하겠다. 위대한 역사상의 지도자들은 대체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정확하고, 이에 더하여 명예욕과 지배욕 또는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가 강한 편이라고 본다. 하여간 집단이 크든 적든 한 집단의 지도자는 그 구성원들보다 자신과 확신이 더 센 편이라 한다. 이러한 자신과 확신이 목표 달성을 위한 활동을 순조롭게 하고 권위를 인정받게 해주기도 한다. 지도자는 강한 인내력, 지구력, 결단력이 있으며 요구 수준이 높은 만큼 근면하고 야심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카텔은 지도자는 초자아의 세기가 강한 편이라고 주장한다. 이 역시 결단력, 책임감, 자제력, 야심 등이 많은 것을 말한다. 크레치(미국의 심리학자)는 집단의 구성원 중 지배욕이 강한 사람이 지도자로 발전된다 하여 지배욕을 지도자의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보았다. 집단 속에서 개인은 다름 사람들과 함께 공동의 목표를 달성시켜 나가면서 동시에 부수적으로 개인적인 다른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한다. 이 때 지도자와 추종자를 구별하게 하는 것은 지도자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그것으로써 어떤 강력한 욕구를 충족시켜 나가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다. 강력한 욕구란 다름 아닌 지배욕 또는 권력욕이며, 지도자란 결국 이런 욕구를 가지고 이를 충족시켜 나가는 사람이다. 지도자의 사람됨의 특징을 찾아보아도 모든 집단의 지도자에 해당되는 지도자 특유의 인격 특질이라는 것은 아직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지도자에게 바람직한 사람됨의 특징이란 구성원들이 용인하는 목표로 집단을 잘


이끌어 나가고 이를 구성원들이 받아들이게 하는 측면을 갖추면 된다고 본다. 이러한 면을 지니는 사람은 집단을 구성하는 일반인보다는 한층 탁월한 인물이어야 하며,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능률적, 자주적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물이란 결국 성숙 인격자를 말하므로 지도자의 특질은 성숙 인격 속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지도자의 기본적 자질은 올바른 사명감을 가지고 이것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인데, 심리학적으로 이와 같은 모습을 자기 실현 또는 자기 완성이라고 한다. 자기 실현 등으로 표현되는 이러한 성질들에 대해서 앞서 성숙 인격을 논하는 자리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성숙 인격이 보여주는 책임감과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지력 등의 성숙한 자세들은 지도자의 품성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건이라 하겠다. 지도자가 그 구성원들을 통솔해 나가는 행동들을 분석해 보면, 크게 고려성과 선도성이라는 두 요인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성이란 지도자가 상호간의 우호 관계, 신뢰, 존경, 그리고 지도자와 구성원 사이나 집단원 상호간의 따뜻한 관계를 고려해 지도하는 것을 말한다. 또 선도성이란 구성원의 역할을 정의 짓고 조직을 확보하는 것, 의사 소통의 통로를 터주고 일하는 방식을 일러주는 것 등을 말한다. 그러므로 고려성은 집단유지 기능에, 선도성은 집단 목표 달성 기능에 각기 깊은 관계를 갖는다고 하겠다. 지도자의 기능 중 고려성에 관련이 깊으면서도 집단의 목표 달성에도 중요하게 역할 하는 상호간의 애정적 관계를 문제삼아 보기로 하자. 사실 사랑과 이해로 타인과 따뜻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은 성숙 인격의 중요한 특질이다. 한마디로 애정이란 말을 쓰지만, 애정에도 여러 가지 종류의 차이가 있다. 호니는 애정 행동을 유발하는 원동력에 차이가 있으며 그에 따라 나타나는 사랑의 감정이나 이에 수반되는 행동에도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사랑일 때는 자발적이고 분별력 있게 행동하지만, 불안에 쫓겨 사랑하는 경우는 강박적 또는 맹목적으로 무분별하게 행동하는 것 같다고 한다. 흔히 인격적으로 한 개인과 접촉하여 쾌감, 안정감, 행복감 등의 정서적 충족을 얻음으로써 그 인격과 영구적인 접촉을 유지하려는 경향성에 대해 애정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자신의 불안 상태를 면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아무에게나 접근하여 의지하려고 하는데, 이 경우 사람의 감정적 충족은 2 차적이고 불안에서의 구제가 1 차원적인 요소가 된다. 설리반(1892-1949, 미국의 정신 분석학자)은 애정을 어느 특정인이 체험하고 있는 만족이나 안전을 마치 자신의 만족과 안정처럼 느끼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다시 말해 대인 친교의 욕구가 표출되는 것을 말한다. 대인 친교란 접근적인 인간 관계로서 두 사람이 서로의 개인적 가치들을 인정하고 이를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런 관계에서는 공동 의식이 생겨 집단 전체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즉 서로의 개인적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서로 너와 나의 구별 없이 모든 문제를 우리의 일로 생각하게 되는데, 우리 의식을 갖는 이러한 인간 관계가 바로 사랑이라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애정적 관계란 결국 상대방의 문제를 자기 문제처럼 여겨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고를 다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성숙 인경의 모습이라 하겠다. 지도자는 모름지기 구성원 각자를 이해하고 장점과 단점을 살핌으로써


그들의 발전과 집단의 목표 달성을 위해 솔선 지도하고 이끌어 나가야 한다. 일반적으로 통일되고 자주적이며 성숙한 인격을 도야하는 과정을 교양이라고 부른다. 교양이란 한마디로 안전감, 지배욕, 명예욕 따위의 하위 욕구 충족이 아닌 참된 인간의 완성을 추구하는 모습이라 하겠다. 아마도 대소를 막론하고 어떤 집단을 올바르게 이끌어 나가려면 참된 인간의 완성을 추구하는 바로 이러한 교양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리라 생각된다."1976 년 10 월" 이 충무공의 인격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명장으로서 쓰러져 가던 나라를 침략자의 말발굽에서 건졌거니와 공의 인격 또한 높이 평가되어 우리 민족의 대표적 인물로 존경받고 있다. 그러면 공의 인격의 위대성은 무엇일까. 일찍이 이식(1584-1647)은 공의 사람됨을 "법도 있는 몸가짐, 지극한 충성심, 전략과 용병의 지혜, 사무를 통괄하고 결정짓는 조직력과 판단력에서 견줄 자가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설의식(1901-1954, 언론인)은 "꾸준한 예비심과 치밀한 조직력, 크고 넓은 포용성과 드센 통어책으로 보천 욕일 (만천하에 큰 공이 있음)의 대공을 세웠거니와 천생으로 문무와 지용, 충효를 겸하여 미치지 않음이 없었으니, 그는 민족의 태양이시다"라고 찬탄하였다. 그러면 공의 사람됨을 오늘날 성격 이론의 입장에서 보면 어떠할까. 공의 사람됨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보는 것은 우리에게 현실적인 의의를 찾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의 성격상 몇 가지 특징을 생각해 보자. 먼저 지적 측면을 살피면, 공은 사태 파악과 상대의 의중을 통찰하는데 뛰어났던 것 같다. 흔히들 성숙 인격의 주요 특질로서 내세우는 것은 혼돈 되고 애매한 현실 상황을 신속 정확하게 파악하는 점이다. 이는 비단 우수한 지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경성 경향, 욕구 불만, 환상 등에 지나치게 치우쳐서 합리적인 인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정확한 현실 파악은 성격적인 성숙성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1952 년 4 월 30 일 조정에 올린 "부원경상도장"에서 임진왜란 초전에 왜적이 불과 10 여일 만에 서울까지 육박하게 된 사태를 공은 이렇게 파악하고 있다. 즉 해전으로 바다에서 응전하지 않고 적을 바로 상륙시킨 점, 여러 성이 있었는데도 제대로 수비하지 않고 그대로 도망쳐 버린 점, 정확한 병법도 없이 전법이 제멋대로 였다는 점 등을 실패의 원인으로 들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평범하고 상식적이지만 당시 패전 상황의 정곡을 파악한 것이라 생각된다. 실전에서도 공은 착실한 상황 판단으로 대처해 나갔다. 임진(1592) 6 월 당항포 해전 후 송진포를 떠나 천성, 가덕 등지를 수색할 때이다. 공은 도망간 왜병을 쫓아 부산으로 가 그들을 섬멸하고 싶었으나, 연일 큰 싸움과 오랜 선내 생활��� 군사들이 지쳐 있을 뿐만 아니라 양식은 동나고 부상자도 많아서 그동안 도망가 쉬고 있던 적들과의 대전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양산강의 어구가 좁아서 배가 드나들기 어렵고, 적들은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진을 친 채 정면으로 싸우려 하지도 않을 것이라 보았다. 또한 부산으로 가게 된다 해도 앞뒤로 적을 맞게 되리라 여겨 더 나아가지 않고 회군하였다. 이는 승승 진격하는 용장이라기보다 여러 조건을 면밀하게 계산해 착실하게 싸우는 지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이듬해인 계사년 6 월 진주가 함락되고 7 월초 진양이 함락된 후 왜군이


전라도로 넘어온다는 풍설과 함께 광양에서 왜군들이 관청과 창고를 태우고 식량을 약탈해 간 사건이 있었다. 이때 공은 왜군이 전라도로 넘어올 리는 만무하다고 판단해 염탐해 본 결과 영남 피난민들이 헛소문을 퍼뜨리고 광양에서 분탕질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런 일은 정유년에도 있었다. 이란 앞 바다에 진치고 있을 때 어부들이 피난민의 소를 잡아먹으려고 왜선이 내습한다는 헛소문 내는 것을 통찰하고 범인을 색출해 처형하였다. 갑오년 7 월에는 영의정 유성룡이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나 공은 이것이 반대파가 조작한 소문임을 간파하고 통분하는 대목이 있다. 갑오년 9 월 조정이 진격 명령을 내렸을 때는 이미 적이 교묘하게 소굴에만 틀어박혀 있었으므로 덮어놓고 진격한다는 것은 경솔한 짓이라고 하며 어리석은 조신들을 한탄하는 대목이 일기에 나타나 있다. 요컨대 공은 현실 사태를 직감하고 이를 분석하는 데 날카롭고 정확하였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지능의 우수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성격의 성숙성에서 이룩되는 것이라 하겠다. 매슬로우는 자기의 천분, 역량, 재능의 충분한 인지와 이의 개발을 자기 완성이라고 규정하고 이러한 자기 완성의 특질로서 문제 중심성을 강조한 바 있다. 또 로톤(미국의 심리학자)은 성인이 문제에 직면하여 이를 회피하는 방식을 찾는 데 몰두하지 않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공격을 꾀하는 것을 성인의 특질로 지적한 바 있다. 즉 어떤 일이나 문제를 맞이하라 때 그것이 문제 해결의 성패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를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 자체의 성취와 문제 해결을 위주로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이 성숙한 사람이나 위인들의 태도라고 한다. 그러므로 직면하는 문제들도 자연히 공동 이익의 관점에서 문제삼고 해결하려 한다. 일에 대한 공의 태도에서도 이같은 문제 중심성이 여실히 보인다. 임진왜란 초기부터 공은 왜적을 격멸시키되 왜의 머리를 베는 데 관심을 두지 말라는 원칙을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목적이 왜적을 섬멸하는 데 있지 머리를 많이 베어 공세우는 자체에 있지 않기 때문이며, 혹시나 머리를 베는 데 급급해 본 임무인 작전을 그르칠 가능성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전투보다는 공세우는 데 급급해 싸움이 끝나면 죽은 왜적의 목을 베러 혈안이 되어 다니는 원균을 몹시 못마땅해 했다. 계사년부터 전투가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공은 전선 제작과 군량 자급책을 위해서 각 고을에서 목수들을 모아 배를 만들고, 또 산전을 개간하고 어로와 제염에 열중하였다. 그리하여 계사년에서 갑오년에 이르는 그 무서운 전염병의 만연을 치루고도 병신년에는 확고부동한 군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 해에 이원익(1547-1634) 제찰사는 선조에게 한산도에는 통제사의 노력으로 군량이 많이 쌓여 있다고 보고하였다. 이를 증명하는 것을 그 이듬해 정월에 원균에게 통제사 사무 인계를 할 때 한산도에만 군량미가 9.900 여 석, 화약 4.000 근, 총통 저장량이 300 여 개였다는 사실이다. 일상 생활에서 이러한 문제 중심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는 정유년 4 월에 출옥한 후 바로 모친상을 당하고도 미처 장례를 치루지도 못한 채 백의 종군하는 데서도 보여진다. 이때 공은 틈틈이 장례에 쓸 제물을 구해 손수 가공까지 해서 아산 본가로 보내곤 하였다. 백의종군한 처지라 반죄수 취급을 받으면서도 시간만 나면 장례에 쓸 물건을 만들어 보내곤 했다는 것은 일을 좋아하고 또 어떻게든 일을 성취하려는 성격적 특징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정유년 7 월, 공이 8 년여에 걸쳐 피땀으로 건설한 수군이 원균의 손아귀에서 하루아침에 전멸된 후, 공은 다시금 통제사로 임명되어 이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불과 몇 달만에 8,000 여 명의 군사와 10,000 여 석의 군량미를 확보하고 전선과 총포 제조에 박차를 가하여 옛 한산도의 성황을 이루었다며 이덕형과 유성룡은 공의 비범한 재량을 경탄하였다. 이것 역시 비범한 지략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성격상의 문제 중심성에서 이룩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충무공이 대소 수십 번의 전투에서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승전을 거둔 것은 공의 신속 정확한 사태 파악 성향과 이 문제 중심성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말한 문제 중심성과도 관련 깊은 것이지만, 공의 성격상의 특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위대성은 그가 확실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살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올바른 인간으로서 도리에 맞게 살아가려고 한 점이라 하겠다. 부귀를 위해서는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탐관오리들 속에서 공은 어려서부터 습득한 유교적 세계관을 실천하고 달성시키려고 했다. 이러한 목표 추구에 열중함이 강인했기 때문에 공은 대인 접촉에서 너무 심하다는 오해를 받거나 부하 통솔에 강박적 처벌 경향이 있는 게 아닌가 여겼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패된 사회에서 그나마 군 규율과 조직을 유지하고 수군의 소기 목적을 달성해 낼 수 있었던 것은 공의 이같은 확고한 목표 의식의 실천 의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공을 충성심이나 효성 그리고 부인이나 자녀들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다고 우러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공의 통일된 세계관과 교양의 표시이고 성실한 인간으로 살아가려는 수도자적 태도에서 우러나오는 모습이라 생각된다. 공은 이처럼 확고한 목표 의식과 세계관에 따라 살아가려고 했기 때문에 일거수일투족도 도의 어긋나고 이에 맞지 않는 것은 하지 않으려 했다. 동성 동본인 율곡이 만나자고 해도 그가 이조판서의 직책에 있는 한 만나지 않겠다고 자리를 피한 일화라든가, 병조판서가 그를 신임하여 서녀(첩의 난 딸)를 주려 해도 이를 거절했다는 이야기라든가, 발포 지역의 만호(벼슬 이름)로 있을 때 좌수사가 객사 뜰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어다 거문고를 만들려고 하자 "이 나무는 관청 물건이라 개인적으로 가질 수 없다. 게다가 다 큰 나무를 함부로 벨 수 있느냐"며 이를 나무라는 것 등은 공의 인생관의 뚜렷함을 그대로 나타내는 예라 하겠다. 하급자로서도 도리에 어긋날 때는 절대로 굽히지 않았으며, 또 상급자가 잘못이 있을 때는 직간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송사'를 읽고 난 후 쓴 글이나 담종인 도사에게 쓴 편지 답사에서 보이는 적극적인 참여 의식이나 주체성이 발로도 따지고 보면 공의 확고한 인생관과 자기 주체성의 소산이라 생각된다. 공의 성격의 위대성의 핵심은 인간 도리를 깨달아 이 도리에 철저하게 맞추어 나가며, 자기 역할을 찾아서 자기를 마음껏 주장하면서 살았다는 점이라 하겠다. 또 하나 공의 성격 특징으로서 지적해야 할 것은 정서적 통제에서의 성숙성이라고 본다. 사람은 누구나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얻어진 정서적 흥분이나 표출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순화된 성격일수록 이같은 정서적 격동성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승화시키고 적절하게 통제하여 표출할 때 표출하고 억제할 때 억제한다. 이와 같은 정서적 통제는 개인의 이 세상에 대한 태도 여하에 많이 좌우된다. 자기나 타인 자연을 주어진 그대로 이해하고


인정할 때, 부질없는 정서적인 흥분, 열등감, 불안감 등으로 고민하게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서적 안정감은 근본적으로는 자기 인정, 자기가 놓여진 상황에의 긍정에서 온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자기 인정 또는 상황의 긍정은 수도자의 목표이며 심리 치료나 상담 치료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유성룡이 어릴 때의 충무공을 회고하는 글에 보면, 공은 동네에서 놀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활로 그의 눈을 쏘려 해서 사람들이 공의 집 앞을 지나다니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또 정유년에 백의종군하면서 구례에서 하동을 지나 6 월 2 일 비맞으며 삼가현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그 곳 현감은 권율 도원수가 있는 산성에 가서 없고 이방들만이 남아 있었는데, 이들은 충무공 일행에게 식사 대접도 않고 밥을 지어먹으라고 박대했다. 그러자 공은 부하들에게 볼기를 치고 얻어다 먹은 밥쌀을 배상하게 했다. 얼마나 괘씸스럽고 분해서 이렇게까지 자학적으로 분풀이했을까 짐작이 간다. 또 원균과의 관계에서도 공은 내심 굉장히 분해하며 괘씸해 하는 것을 일기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공은 어려서부터 공격적이고 정서적 흥분이 심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공이 이러한 공격적 불안정감을 대인 관계에서 그대로 표출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지각없이 구는 장수나 조신들을 접할 때면 분통이 터져 나오지만, 이를 가소롭게 웃어넘기고 스스로가 때를 못 만났음을 자인하며 자기 객관화 내지 자기 인정을 통해 정서적 흥분을 제어하였다. 공은 또 술을 좋아하면서도 과음이나 주정을 조심해 실수한 일을 찾아 볼 수 없다. 이같은 조심은 매사에도 마찬가지이다. 이원익이 이순신은 명령에 불만이 있어도 억지로라도 복종하지만 원균은 화를 펄펄 내더라고 선조에게 술회한 것, 유성룡이 공의 됨됨이에 대해 말과 웃음이 적고 용모가 아담하고 삼가하여 마치 참한 선비 같으나 속에는 대담한 기상을 엿볼 수 있다고 술회한 것, 또 김응남(1546-1598)이 공을 평하면서 종용적중(조용하고 알맞은)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 것 등에서 볼 때, 공은 굉장히 삼가하고 단정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공은 어느 정도 불안정감과 공격성은 있었지만, 대적 전투에 공격성을 집중시키고 자기 인정과 수양을 통해 이를 승화 극복하여 정서적인 안정성을 유지해 나갔다고 생각된다. 대인 관계에서의 공의 모습을 보면, 앞서 말했듯이 유교적 세계관에 입각해 이를 몸소 실천했던 공은 고생하는 부하나 백성을 생각하며 잠 못 이루는 밤이 한두 밤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러한 공이었기에 통제사 재임명을 받고 순천에서 보성으로 가는 길에 촌 노인들이 길가에 열지어 술을 바치며 격려하고, 또 고음도에 유배될 때는 백성들이 공을 믿고 몰려들어 불과 3-4 개월 만에 옛 한산도 시절과 같은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공이 전사했을 때는 이 소식을 듣고 우리 군사나 명나라 군사나 모두 제 아비를 잃은 것처럼 통곡하였으며, 운구할 때는 곳곳에서 백성들이 제사를 차리고 행렬을 따르며 슬퍼했다고 한다. 이는 다 공이 부하나 백성에게 가졌던 마음에 대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료나 상급자에 대한 대인 관계에서는 좀 사정이 다르다. 친밀하게 지냈던 상대가 몇몇 뿐이었기 때문이다. 식견, 성실성, 범절에서 뜻이 맞지 않으니 깊은 친교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제한되게 마련이다. 공이 마음으로부터 존경하고 믿던 사람은 유성룡과 선거이(1550-1598, 임란시


전라병사 부원수), 정도는 다르나 이원익 뿐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어떻게 보면 냉정하고 거만한 것 같으며, 어느 한두 사람하고만 친밀하게 지내니 미숙하게도 보이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매슬로우는 자기 완성적 인간의 특질로 초월성을 내세웠는데, 공에게서도 이런 초월성을 지적해 낼 수 잇다. 보기에는 고독한 것 같지만 고독한 사람이 뼈저리게 느끼는 고민이나 불안이 있는 것도 아니요, 친구가 적고 혼자만의 생활을 은밀히 즐기지만 스스로 잘난 척하는 것은 아니리라. 그렇다고 이들이 친구나 정답게 지낼 만한 상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서로 뜻이 맞는 사람과는 깊은 유대를 갖는다. 아마도 공의 대인 관계에서나 내면 생활에서도 이같은 초월적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시정의 우상이나 무반서적 동조 경향에 의해 살아간다기보다 독자적이며 뜻있게 삶을 살아가려는 생활 태도가 이러한 대인 관계를 나타낸 것이라 생각된다. 공은 좋은 경치 특히 월야의 해경을 좋아해 달이 뜨는 밤이면 이에 도취되어 잠 못 이룰 정도로 들뜨는데, 이것의 새로운 해석을 해보고자 한다. '난중일기'에 달이 떠 있을 중순이 기록되어 있는 날이 50 개월인데, 이 중 달밤의 정취를 기록하고 있는 대목이 18 개월이나 되며 기록된 날짜는 23 일 이상이 된다. 이는 단순히 감상주의나 불안 증세로만 보기는 어렵다. 매슬로우는 그의 연구에서 위인들은 신비적인 경험을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의 신비적 경험이란 종교적, 초자연적 현상의 경험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경험적인 느낌을 말한다. 즉 신비적 경험이란 시야에 무한한 수평선을 느끼며 전보다 힘이 더 충만된 듯하면서도 무력감이 곁들여져 황홀, 경이, 외경의 감정이 합쳐진 상태이다. 말하자면 금새 큰 일이 날 듯 하면서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흐뭇한 감정적 경험을 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사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위인들에게는 이것이 더욱 뚜렷하고 빈번하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경험은 몰자아적이고 초월적이며 자기 향상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는 위인들의 성격이 성숙하는 데 기초가 된다고 하겠다. 유교에서 수양의 궁극에 이르면 도달된다고 말하는 호연지기니 광대지기상이라든가, 선불교에서 터득하려는 견성의 경지와도 상통하는 성숙된 성격의 정적 기조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공이 밤바다에서 달을 바라보면서 즐기는 경우, 그의 정적 기조는 근심과 슬픔이 지배적인 것 같다. 단순한 감상적 기분인 것 같으면서도 그 속에는 웃음과 즐거움을 초월하고 자기 객관화가 이루어져 있으므로 이 슬픔은 어떤 높은 경지에의 몰입 융화되어 주어진 상황과 자기의 위치를 슬퍼하면서도 다시 이를 긍정했으리라. 성찰의 도장이 고요한 밤이며, 고뇌를 정화시켜 주고 자기를 찾게 하는 것이 바다와 달 곧 교교한 자연이다. 이러한 경치 이러한 경험에서 공은 필경 본래의 자기, 성성적적한 자기의 진면목에 직면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1970 년 9 월" 월남 이상재와 해학 유머라는 말은 웃음을 자아내는 것의 특질 또는 그러한 작용을 말한다. 즉 기이감과 익살스러움, 하찮고 우스꽝스러움, 기대에 어긋남 등의 즐거움을 돋우는 해동, 말, 글의 특질이나 이런 특질을 알아보는 능력 또는 이를


표현하는 능력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웃음을 유발하게 하는 대상의 특질은 무엇이고 이를 감지하거나 표출하는 작용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아이젠크는 크게 세 가지 이론으로 나누어 생각한다. 첫째, 어떤 것을 인지 또는 표현했을 때 웃음이 생기는가를 따져 인지 내용의 부조화성과 대조성, 기대에 어긋남 등에서 웃음의 요인을 찾는 인지적 이론이 있다. 둘째, 웃음의 요인을 의욕적인 측면에서 찾는 이론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우월감을 충족과 잘 적응된 상태 또는 억압된 욕구의 충족에서 웃음의 요인을 찾으려는 것이 있다. 셋째, 정서적인 측면에서 순수한 환희와 이와의 연합 또는 여러 정서의 대비 속에서 웃음의 요인을 찾는 이론이 있다. 아이젠크는 웃음을 자아내는 이같은 지, 정, 의의 세 요인이 지적인 요인에 의해 생기는 웃음과, 감정과 의욕의 요인에 의해 생기는 웃음으로 다시 구별 된다고 보았다. 단순하고 익살스러우며 성적이고 공격적인 우스개를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와는 반대되는 우스개를 즐기는 사람도 있는데, 전자는 외향성과, 후자는 내향성과 관련이 깊다고 한다. 시어스(미국의 심리학자)는 우스개를 구조 요인과 주제 요인으로 나눈다. 구조 요인은 종결로 향하는 원 경향성이 급작스레 어긋나면서 처음의 경향성과는 다른 엉뚱한 종결로 귀착되는데, 어떤 우스개든 이 특질이 없는 것은 거의 없다. 반면 주제 요인은 우스개의 필수 요인은 아니지만 상당수가 공격욕, 우월감, 성욕의 충족이 주제가 된다. 전자가 인지적 유머라며, 후자는 정의적 유머다. 프루겔(독일의 정신분석학자)은 우월감과 공격성을 표현하는 유머가 사회의 발달 과정에서 점차 세련되고 인간화하면서 이때까지 공격의 대상이 되어 오던 것을 오히려 동정하고 이와 합해서 제 3 자를 공격하는 웃음이 나타난다고 본다. 그리고 플루겔은 이 공격적 웃음이 사회적으로도 정당화되는 방향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요컨대 유머의 표현도 사회화되어 사회가 정당하다고 보아주는 방식과 대상에 대해 웃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이드류의 사람들은 유머를 자아가 초자아의 입장을 취해 더 고차적인 차원에서 스스로의 불안이나 난처함을 내려다보고 웃음으로써 감정 소모를 절약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울포트는 성숙 인격의 특질의 하나로 유머를 내세우면서 "사랑하는 것을 웃으며 그러면서도 그것을 사랑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이런 능력은 자기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게 하는 자기 통찰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유머는 공격성이나 성욕과 깊이 관련된 우스개와는 근본적으로 구분되는데, 이러한 유머는 참된 자기를 알고 그러한 자기를 객관화시켜 웃을 수 있는 철학적 웃음이다. 따라서 인지적으로 비공격적이고 사회화한 유머는 자기 스스로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갖는 자기 통찰력 혹은 자기 객관화의 힘을 필요로 한다. 즉 예리한 지성으로써 가치 있는 인생관(자아관)에 서서 자기나 남을 보며 웃으면서도 이를 해결해 나가는 방향성이 있어야 이러한 유머는 가능하다. 유머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분은 한말 민족 운동의 지도자인 월남 이상재 선생이다. 월남은 확고한 자신의 주장을 지키면서도 넓은 도량으로써 노소의


구별 없이 해학으로 대했으나, 그 내용은 결코 난잡하지 않았으며 흔하나 우스개에도 항상 한 가닥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깨달음이 있게 하였다. 그가 갑신정변 후 우정국 말직에서 물러나 있을 때, 좌상, 우상을 역임한 김홍집이 미국에서 귀국해 국정의 개혁을 월남과 같이 논의한 적이 있었다. 김홍집이 탐관오리들의 숙청 본보기로 8 도의 감사들을 처벌해야겠다고 말하니, 36 세의 월남은 이에 답하길 "여덟 사람까지 죽일 것이 뭐 있소, 세 사람만 죽이면 될텐데?"라고 했다. 말하자면 제 정승만 본보기로 처벌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김홍집은 이 말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1888 년 주미 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재직하다가 돌아왔을 때의 이야기가 있다. 고종이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폐하께서 선정을 베푸시면 미국은 호의를 가질 모양이며, 그렇지 않으면 가졌던 호의도 없어질 듯합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는 주체적인 집정 태도를 풍자해서 간청한 예로 유명하다. 또 3.1 운동 후 옥에서 나온 월남은 한참 동아나 그 청년을 바라보면서 "자네는 지금 호강하며 지내고 있는가?" 라고 하며 반문했다 한다. 우리의 지금 처지가 옥내, 옥외를 가려 힘들 때냐는 뜻이다. 1922 년 김윤식이 죽었을 때의 일이다. 박영효가 사회장을 발기했을 때, 망국 대신에 대해 사회장이 결정되었다. 이때 사회장 본부에 "개같은 놈"이라는 투서가 날아들어 본부 사람들이 분개하였다. 그 자리에 참석한 월남이 이 이야기를 듣고 "그래도 대접한 말인데 그래?"라고 하며 투서한 사람을 두둔하였다. 옆에 있던 위원들이 불쾌하게 여기며 이유를 캐묻자, 월남은 "그래도 개는 주인을 아는 동물이야. 망국 대부로서 주인을 알아 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해 모두가 아무말도 못하였다고 한다. 월남의 유머에는 상당히 공격적인 것도 많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적인 공격이 아니라 정의적, 국가적 견지에서 이를 해치는 것에 대한 공적 공격이라 할 수 잇다. 예를 들어 보자. 참찬으로 있을 때 상관인 참정 박제순이 자기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는 위원직 10 명을 요구하며 월남에게도 몇 명을 마음대로 임명하라고 했다. 그는 "내게는 위원이 소용없으니 돈으로 대신 주시지요"라고 하며 "늘 팔아 자시니 판로를 잘 아시겠으나 나는 그것을 모르니 소용없습니다"라고 했다 한다. 또 병합 후 청빈 속에서 세금을 못내 강제 집행까지 당했던 월남에게 경성 부윤이 전근 간다고 사전 양해도 없이 발기인에 월남을 끼워 초청장을 돌린 것을 받아 보고는 "가재 전부를 집행해 빈집을 만들더니 마침내 성명까지 집행함은 너무 심하지 않소?"라고 말해 만좌를 웃겼다고 한다. 1906 년인가 1907 년에 일본 시찰을 가서 병기창을 둘러보던 중 감상을 이야기하라는 일본인에게 "병기창을 보니 일본은 과연 강대국의 면목을 가졌소. 그러나 나에게는 퍽 유감스럽게만 보이오. 성경에 총검으로 일어나는 자는 총검으로 망한다는 구절이 있으니 그것만이 걱정되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후 1911 년 월남이 일본에 갔을 때 구한국 공사관에서 한국 유학생에게 연설하였는데, 그가 부모 잃은 동생들을 만난 것 같다고 말해 장내를 눈물 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찰 소감을 묻는 일본인에게 월남이 "새어머니 집을 보니 죽은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오"라고 답해 주, 객이 다같이 침통해 했다고 한다. 그 언젠가는 조선군 사령관의


초대연에서 사령관이란 자가 감기로 고생한다고 말하자, 월남은 "감기는 대포로 못 고치시오?"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항상 경찰의 감시 하에 있던 월남이라 경찰에 대한 풍자도 많다. 경찰관이 찾아와 "이리 오너라"라고 하고 문을 두드릴 때면 "오냐 나간다"라고 응수하며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월남이 어떤 연회에 나가 보니 눈익은 형사들이 많이 눈에 띄어 "어허 개나리꽃이 만발하였군"라고 하며 형사의 별명 '개'와 존칭 '나리'를 연결시켜 즉흥적으로 그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한다. 별세 며칠 전에도 담당 형사가 문병을 가장해 동정을 살피러 왔는데 가족들이 못 들어가게 하였다. 이것을 안 월남은 그를 들여보내라 하고 들어온 그를 맞으며 "이 사람아, 기어이 내가 죽는 데까지 따라 올 참인가?"라고 하며 유머스럽게 꾸짖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역시 별세 전 병상에서의 이야기다. 변영로와 구자옥이 문병 가니, 자신이 아끼던 두 청년을 보고 "이놈의 자식들, 내가 뒤졌나 안 뒤졌나 보러 왔지?" 라고 하며 웃기고는 벽쪽으로 돌아 누으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란다. 죽어 가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웃어 보다가도 죽음의 절대성 앞에 고개 숙일 수밖에 없는 절망감 때문이리라. 아니면 사랑해 마지 않던 두 청년과 영원히 이별하는 순간에 차마 울음을 보일 수 없기 때문이리라. 이같이 풍부한 유머를 나타내고 있는 그의 유머 성향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안재홍(1891-1965)은 월남 사회장의 애사 속에서 "해학을 잘 하심이 선생의 평소이신가? 폐부를 찌르시는 해학 속에는 골수에서 우러나오는 분격이 잠기셨고, 낙천적으로 표현하심이 선생의 천질이신가? 화기유유하신 낙천의 그늘에는 천지에 사무치는 비통이 숨으셨다"고 보았다. 또한 변영로는 "치미시는 울분을 본의 아닌 해학으로 대체하시고 복받치는 불만을 진심 아닌 풍자로 교역하셨다"라고 보았다. 말하자면 월남의 유머의 원천을 공격욕으로 본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앞서 지적했듯이 올포트는 성숙 인격의 특징으로 자기 객관화 경향을 내세우고, 이 경향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자기 통찰력과 풍부한 유머감을 내세운다. 유머는 자기 객관화로 말미암은 자기 스스로 웃는 것이며, 이같은 유머는 근본적으로 공격적이 아닌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공격적인 유머를 나타낸 월남의 성격 성숙성을 의문시해야 하는가. 그렇게 공식적으로 단순히 생각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월남은 어려서부터 심술과 장난이 심했다고 한다. 그가 18 세에 상격하여 과거에 낙방한 후 줄곧 박정양의 식객으로 35 세까지 있었으니, 그의 욕구불만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더군다나 나라를 생각하고 정의를 앞세우는 그로서는 당시의 문란상에 대한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므로 그의 유머에서 공격적인 경향이 다분함은 피할 수 없었다고 하겠다. 안재홍이나 변영로가 그의 유머를 공격성의 표출로 보는 것은 정당하다. 다만 그 공격성의 표출이 개인적 공격이 아닌 사회화한 공격이며, 사회가 미워하고 경계 타도하려는 대상에 대한 불만을 승화시켜 나타내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옳지 못한 상대를 비웃거나 공격하기 위해 사용한 유머라 해도 그 상대는 개인적인 적대, 경쟁 관계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 상대가 사회 일반이 미워하는 부정 관료나 침략자의 협조자였으므로 그의 유머는 사회적으로 공명을 얻었다. 말하자면 공격성이 강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사회화되고 인간화된 공적 공격의 형식을 취한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물론 그에게서 비공격적인 유머도 많이 나타난다. 박정양이 앓고 있을 때 의사를 데리러 간 사람이 심부름을 소홀히 했다고 꾸지람을 듣고 있자 "심부름 잘하면 또 시키는 법이야"라고 하며 웃어넘긴 것, 3.1 운동 후 출감하는 그에게 인사하는 청년을 보고 자네는 호강으로 지내는 셈이냐며 반문한 것, 그리고 김윤식을 개 운운하며 비방한 자를 편들면서 "그래도 대접한 말인데 그래"하고 한 것 등은 표면적으로는 공격적인 것 같지만, 자기 입장을 확고하게 지키고자 하는 깊은 함축성을 지닌 유머이다. 이것은 비공격적인 경향이 두드러지며 깊은 반성을 촉구하는 유머라고 볼 수 있다. 총체적으로 보아 월남의 성격상 활동적인 외향적 경향이 우세해서인지 유머의 내용이 대상 지향적일 뿐 자기 지향적인 면은 적은 편이다. 그리고 그 유형도 인지적이라기보다는 정의적이다. 이것은 깊은 교양과 확고한 자기 입장에 서서 인간화하고 사회화한 인지적 테두리를 통한 유머이기 때문에 단순한 우월감의 충족이나 억압된 욕구의 충족으로 그치는 유머가 아니다. 다같이 즐길 수 있고 깊은 여운을 주어 생각하게 하는 형식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 올포트는 유머를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웃으며, 그러면서 그것을 사랑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지만, 월남의 유머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웃으며, 그러면서 그것을 다같이 사랑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웃음은 웃음의 대상을 기반까지 없애 버리는 허무화의 웃음이 아니고, 웃음을 새로이 튼튼한 기반 위에 세워 주는, 웃음의 방향성이 뚜렷한 것이 하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1973 년 9 월" 김교신 선생의 인격 1972 년 김교신(1901-1945, 무교회주의자, 교육자) 선생(이하 선생으로 약칭함)의 교유, 제자의 글, 선생을 뒤따르는 분들의 글과 선생의 서간을 합쳐서 '김교신과 한국'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 있는 글 중 선생을 직접 접했던 분들의 선생에 대한 인물 평들을 토대로 선생의 인격상 특징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이 글들은 선생의 27 세부터 45 세까지를 제자, 교우의 회고를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선생이 사회에 진출하여 작고할 때까지 18 년 간의 모습이 주가 되고 있다. 더우기 이러한 글들은 인상적인 점만을 토대로 한 것이라 일화적인 고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간략하게나마 선생의 인격을 개요적으로라도 살펴보려 한다. 선생의 인격은 기독교 신앙이 핵심이 된다. 그러나 필자는 신앙의 문제에 관해 언급할 수 없고 인격에 따른 특징에 관해서만 생각해 보겠다. 류달영은 이렇게 쓰고 있다. "김교신 그는 무엇이었나? 그는 뜨겁게 민족을 사랑한 사람이었고 충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섬긴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평생 염원은 스스로 참되게 살아보자는 것이요, 민족의 살 길을 열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 내가 아는 한 선생처럼 자기의 생명을 아껴 쓰면서 부지런히 사신 분은 아직 못 보았습니다. 그의 삶은 끊임없는 실천의 생활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류달령은 열렬한 애국심과 충실한 신앙심 그리고 성실하고 실천적인 생활 태도를 지닌 점을 선생의 인격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덕봉은 "보통 사람으로는 도저히 견디고 계속하기 어려운 일신 삼역의 이러한 고된 과업을 능히 관철해 낸 것은 그의 강철같은 체력과 불굴의 의지와 깊은 신앙심의 소치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술회한다. 또한 최남식의 회고에서는 선생의 이러한 좋은 체력과 강한 의지력에 못지 않게 눈물을 잘 흘리는 감격 성향이 강조되고 있다. 노평구는 선생이 이스라엘의 예언자 예레미아처럼 눈물이 많았을 뿐 아니라 정의감과 실천력도 강하며 애국의 지성까지 겸비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이상 네 사람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선생의 인격 특징은 강한 정의감과 깊은 신앙심, 성실성과 실천력, 풍부한 감성, 강건한 체력, 그리고 일관된 민족애와 사랑의 정신 등 다섯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이제 이들 다섯 가지 인격 특징들에 관한 예를 들어가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 번째 특징을 잘 보여주는 글로서 함석헌이 선생을 평한 대목이 있다. "본래 그는 그 글을 보면 아는 대로 어릴 때부터 도덕적으로 대단히 민감했다. 공맹의 교훈을 일언반구 남기지 말고 시행해 보고자 했던 그다. 그러다가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오 선생에 접하여 성서적인 순신앙에 일단 눈이 뜨이면서 그리로 매진하게 되었으니 피폐한 세태를 보고 그냥 있을 수 없었고, 또한 비열하고 세속화한 사이비 신앙을 그대로 용인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 필봉이 매양 날카로웠다. 양정에서 교편 잡고 있던 때 학생들 사이에서 별호를 양칼이라 했다는 것은 저간의 면목을 잘 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도덕 관념이 엄격하여 성현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려 했고, 기독교 신앙 생활을 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덕봉은 "'성서조선'의 권두에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글이 실렸던 것으로 기억되며, 강직하고 불의를 허용하지 않는 그의 성품은 신앙적인 면보다 오히려 도덕적인 면에 치중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불의에 굴하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소신을 관철한 의지의 사나이, 경골한(자기 주장을 쉬 굽히지 아니하는 자) 김교신이었다"고 기술하며 정의에 살려고 노력한 모습을 선생의 인격 특징으로 보고 있다. 류달영은 또 선생이 불의를 미워하고 이를 냉혹하게 처단했다고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선생은 불의를 심히 미워하고 의 아닌 일을 하는 때에는 그것이 자기 자신이건 가족이건 평생의 동지들이건 자기 민족이건 한결같이 냉혹하게 처단했었습니다. 우리가 재학 시대에 선생의 별명은 양칼이었습니다. 그것은 선생이 불의를 미워함에 사정이 없었던 성격을 잘 표현한 별명인데, 걸작이라 믿습니다" 선생의 일상 생활의 모습, 정의와 그리스도의 신앙 속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송두용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그는 박물 교사인지라 그 관계로 박물 실험실을 자기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이용하여 교수 시간 외에는 언제든지 그 방에 혼자 있으면서 '성서조선'의 원고를 쓰거나, 아니면 교정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그럼 어찌 그 일뿐이랴. 김교신은 인쇄소와 총독부에 드나드는 일과, 잡지가 나오면 몇 군데 서점에 배달하는 일에도 분주하였다. 그는 걷지 않으며 언제 어느 곳에 가든지 자전거를 사용했다. 그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는 뻔하다. 독자에게 보내는 잡지의 겉봉을 써야 했고 봉투에 넣고 난 뒤에 하나 하나에 우표를 붙여서 발송 준비를 마치면 자전거에 싣고 우편국에 가서 발송했다. 이렇게 사환에서부터 사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한 몸에 지고 묵묵히 주님의 뒤를 따라 가면서 부여된 사명을 완수한 것이다. 뒤늦게나마 이제 겨우 그의 속 사람을 본 것 같다. 이런 생활을 하던 때의 문하생인 구건도 이에 더하여 "후일의 인상은 예수의 십자가의 속죄로 자유를 얻은 정의와 독립의 사람이었다. 그는 참만을 알고 소신대로 믿고 살고 일한 자유인이었다. 자유, 정의, 독립은 그의 성격의 근간이었다"고 회상한다. 선생의 일상 생활은 정의를 위한 것이며 그것이 바로 그의 신앙 생활이었다. 이규동은 아침마다 하는 기도에서 선생의 졸업식날 모습을 이렇게 전한다. "선생이 학생들의 졸업식날 새벽 기도 때면 자기 반 졸업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큰 소리로 불러 그들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던 이야기를 사대 학생들에게 되풀이해 준 것이 몇 번이던가" 이 얼마나 정성어린 모습이며 의로운 일을 하려고 애쓴 신앙인의 자세인가. 이중일은 선생이 형무소 속에서도 그 곳 규칙을 그대로 지키시던 모습을 이렇게 기술한다. "선생님은 바둑을 좋아하시니 유치장 간수가 오후 한가한 시간에 바둑을 두자고 수차 권하는 소리를 들었으나 선생님은 끝내 법을 따라 거절하셨다" 정의감이란 어려서부터 해야만 할 것을 하게 하고 해서는 안될 것을 안하게 하는 훈련을 일일히 받아서 굳어지지만, 성숙한 후에는 마음 속에 지니는 인생관과 가치관에 입각해서 해야 할 것을 하고 해서는 안될 것을 안하려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정의감은 어려서부터 이루어진 확고한 인생관과 가치관의 소치다. 선생의 인생관과 가치관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일진대, 선생의 정의감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실현하려는 방향이었음이 분명하다. 성실성과 실천력이 강한 선생의 모습에 대해 정태시는 "그 분은 철저한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반면 행동의 사람이었다"고 지적한다. 김연창은 열성적으로 노력하며 초지일관하는 선생의 모습을 이렇게 회고한다. "선생은 한번 한다고 결심하면 무슨 일이고 그칠 줄을 모르는 성격이어서 새로 시작한 정구 기술도 자꾸만 늘어 당당한 선수로 활약하게 되었다" 선생과 함께 도문에서 목장 일을 하던 때를 박석현은 이렇게 서술한다.


"김 선생과 함께 숙식을 같이하는 공동 생활을 할 때 인상 깊었던 것은 대인 관계에서 진실한 태도를 보여주신 점이었다. 선생은 어떠한 술책도 쓰지 않으셨는데, 이것은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셨기 때문이다. 가령 같이 일하는 동료들 중에서 이유 없이 불평 불만을 품고 자기가 맡은 바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는 자를 대하실 때면, 시간을 요하고 설득의 노고를 거듭하시더라도 어디까지나 일의 시비를 분명히 가려서 본인 스스로가 잘못을 깨닫고 납득이 가도록 설득하였다. 언젠가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대하는 데 적당한 술책과 농간을 쓰면 피차 유리할 줄 알지만 이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더우기 함께 노고하는 형제를 대하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다'고 하셨다" 성실한 실천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를 손기정은 이렇게 쓰고 있다. "내가 베를린 올림픽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그때 대회가 끝난 후 덴마크에 초대를 받아 구경하게 되어 그 나라의 인상과 독일의 인상을 함께 적어 선생님에게 편지를 했었다. 나는 편지에 독일 여자들이 화장하지 않는 것과 덴마크 국민들이 자전거를 많이 타는 것이 하도 신기해 그것을 적어 보냈다. 그때 선생님은 정릉에서 사셨는데, 귀국해서 보니 선생님께서는 자전거로 그 먼거리를 출퇴근하고 계셨다" 또 박윤동은 다음과 같은 경험을 적고 있다. "예배 다음 간단히 다과회 후 선생 댁에서 묵게 되었는데, 내가 먼 데서 왔다 하여 기어코 아랫목에 눕게 하셨다. 사양하다 못해 그대로 응했는데, 밤중 잠결에 요 밑에 손이 들어오는 것 같아 잠을 깨어 보니 선생이 문소리도 없이 밖에 나가 부엌에서 불을 때시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불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시는 선생의 사랑에 크게 감격했다" 정의와 진실에 대한 충실성을 성실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성실한 인격에는 정의와 진실을 배반할 수 없는 굳센 양심 때문에 강력한 실천력이 수반된다. 내가 해야 할 일을 그대로 해야 하고 남의 입장을 올바로 이해함으로써 그에게 해줘야 할 일을 그대로 해야 하고 남의 입장을 올바로 이해함으로써 그에게 해줘야 할 일을 그대로 해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선생은 감정과 의지에서 참된 자기의 뜻을 그대로 실천으로 옮기고야 마는 특성을 지닌 것 같다. 말하자면 성실한 인격의 본보기라 하겠다. 선생의 인격에서 세 번째 특징으로 생각되는 것은 잘 감읍하는 경향이다. 박석현은 "인품이 엄격 강직하면서도 인자 온유하시고 솔직하고 또 다정 다감하신 분이었다. 인간의 진실과 의로움에 대해서는 감격의 뜨거운 눈물을 한없이 쏟으셨다"고 하며, 다감 다정하여 인간의 진실성과 정의에 접해 감격의 눈물을 잘 흘리는 특성을 지적한다. 윤석중은 이렇게 술회한다. "이처럼 선생은 눈물이 흔하셨다. 눈물이 흔하신 선생은 마음이 약하거나 생김새가 가냘픈 것이 아니었다. 선생은 학생 때 중거리 선수였고


팔씨름으로는 친구 사이에 당해 낼 사람이 없는 장사이셨다" 눈물이 고달프고 감읍하는 감격하는 흘리셨다 선생이

흔했으나 이 눈물은 몸이나 마음이 약해서 우는 것이 아니며, 몸이 완전하지 못해 우는 것도 아니다. 좋음, 올바름, 의로움, 고마움에 눈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연창도 "김 선생은 모든 일에 잘 분이었다. 학생을 상대로 곧잘 한시를 읊으며 감격의 눈물을 한다"고 쓰고 있다. 감격해서 잘 운 예를 최남신은 이렇게 서술한다.

"눈물 많으신 선생인의 몸은 강철같고 성격은 양칼처럼 날카로왔으나 선생님의 눈에서는 항상 눈물이 마르지 않으시는 인자하신 선생님이었다. ...한번은 가을비 내리는 만산홍이 된 북한산 기슭에서 뒤따르는 우리를 보시고 '이놈들아, 느껴라 느껴'하시면서 우시는지 웃으시는지 분별할 수 없이 큰소리를 치실 때 다정 다감하셨던 선생님의 그 심정을 어찌 철부지인 우리들이 짐작이나 하였으랴. ...한번은 시험 중 뒤에서 통곡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니 선생님께서 에반젤린(롱팰로우가 지은 목가풍의 시)을 읽으시면서 우시는 것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움, 인간의 거룩한 모습,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으로 느끼고 이에 몰입되어 벅찬 감동을 눈물로 쏟아 버린 것이다. 박을룡은 선생과 함께 산에 갔을 때의 경험을 이렇게 쓰고 있다. "묵묵히 앉아 계시던 선생님은 갑자기 침통하게 흐느끼신다. 마침내는 방성대곡하시는 게 아닌가. 멋도 모르고 그냥 망연히 지켜보고 있었으나, 이윽고 엄숙하고 짜릿한 어떤 허용키 어려운 감정에 빠져 있는 나 자신을 의식하게 되었다. 잠시 후 울음을 거두신 선생님의 얼굴은 어쩐지 훨씬 시원스레 보였다. 선생은 이윽고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자네도 때때로 산에 올라서 울어 보게. 그냥 어린애처럼 막 울어 보게. 바위도 나무도 흐르는 물도 따라 울어 줄 걸세. 내가 우는데 이 나라의 강산이 묵묵할 수 있겠는가" 김성태(저자)는 이렇게 서술한다. "김 선생은 눈물이 많으셨다. 그때 말씀하시기를 늘 아침 네 시에 기상하시어 먼저 생수 마찰을 하시고 산 속에 들어가 기도와 울음으로 아침 시간을 지내신다고 하셨다. 언젠가는 앞서 말한 최용신(심훈 작 '상록수'의 여주인공 모델이 된 실재 인물) 소전을 읽으시느라고 손수건 세 개를 적셨다고 한다" 이러한 눈물은 단순한 감격에서가 아니고, 인간과 신의 참모습을 몸소 느끼고 이에 합일되어 그 참모습의 입장에서 이 세상을 안타까워하여 도맡아 우는 울음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것은 몰자아적이며 초월적으로 자기 향상을 느끼는 성숙한 인격의 특징과 연관지어 자연, 인, 신의 참 모습을 직감과 이에 몰입하는 선생의 진지한 면을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선생을 회고하는 데 있어 그 강건한 체력과 이를 단련시켜 나간 모습 또한


많이 거론되고 있다. 송두용은 이렇게 기술한다. "김교신은 낮에는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그것도 담임까지 맡아보면서 지친 몸으로 밤이면 열심히 성서를 연구하여 매월 빠짐없이 '성서조선'을 계속 발간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가끔 철야까지 하곤 했다. 그는 고양군 승인면 정릉리에 살면서 10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양정 중학교까지 자전거로 통근하였다. ...주위의 사람들은 김교신을 정력가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우선 체구가 켰다. 항상 혈색이 좋았다. 물론 힘도 셌다. 그래서인지 무슨 운동이든 닥치는 대로 한 모양이다. 특히 정구는 선수급이었고, 마라톤은 그의 특기였다. 김교신은 식사를 잘해 동료 사이에서 대식가로 알려질 정도였다" 최남식은 이렇게 회고한다. "한번은 홍제원을 지나 녹번리 고개까지 왕복 코스로 교내 마라톤 대회가 있었다. ... 일류 육상 선수가 교내에 많았는데 선생이 당당 10 위로 주파하신 기억이 난다" 박동호와 심창유는 선생이 수년간 날이 밝기가 무섭게 일찍 일어나 냉수 마찰하던 일, 걸음걸이가 빠르기로 유명한 일, 또 마라톤, 씨름, 팔씨름 등에서 젊은이들을 무색케 했다고 술회한다. 박석현도 선생은 유치장에서도 냉수마찰만은 거르지 않았다고 전한다. 구건은 특히 마라톤과 씨름을 잘하던 선생의 모습을 이렇게 쓰고 있다. "연례 행사로 전교생이 뛰는 마라톤 대회에도 대체로 용약 참가하시는가 하면, 전교생 씨름 대회 리그전에도 출전하셨다. 장년의 신사라지만 양정의 젊은 건아들 중 어느 선수도 선생을 당해 내지 못했다. 황소와도 같은 전국 대표 선수들이 낀 틈에 한몫 끼시어 역주해 열째 안에 드신 사실이라든가 씨름 리그 개인전에서 2, 3 위를 다투신 사실 등은 선생의 체력이 얼마나 강하셨는가를 잘 나타내 준다. 게다가 이것은 선생이 젊은이를 얼마나 좋아하시고 아끼셨던가를 엿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구본술은 선생에게서 자신이 어릴 적에는 병약하여 신경쇠약까지 겪었으나 신앙을 굳게 다진 후부터는 남보다 건강하고 활동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강인하고 건강한 체력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섭생, 훈련, 신앙을 통해서 이를 길러 냈다고 한다. 선생의 인격상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그의 참된 민족애와 사랑의 정신을 간과할 수 없다. 함석헌은 선생의 일생을 이렇게 보고 있다. "저는 일생을 이 말못된 나라의 생명을 참으로 살려 보고자 힘쓰고 애쓴 사람의 하나다. 말못된 김교신���게 조선을 빼고는 의미가 없다. 조선을 생각함이 간절할새 갖은 고생을 하며 '성서조선'을 간행하였다. ...그는 산 조선은 산 인생에게서만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성서와 조선은 따로


떼지 못해 성서적 신앙 안에 새 조선을 살려 보려고 애썼던 것이다" 박동호는 또 이렇게 술회한다. 장기려도 선생은 엄격한 성격이라 말수도 적었지만 오직 어떻게 하면 내 동족을 구원할 수 있을까 하는 일념에 충만했었다고 전한다. 야나이바라의 평은 이렇다. "김교신씨는 참조선이었다. 그는 조선을 사랑하고 조선 민족을 사랑하고 조선말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의 민족애는 고루하고 배타적인 민족주의와는 달랐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신생한 조선인이었다. 온유, 근면 등 조선인으로서의 생래적 도덕성이 그에게는 믿음에 의해 한층 순화되어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에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으로 자신의 애국을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식의 천박한 기독교도, 불신앙의 소련 공산주의도, 세속적인 민족 운동도 아니었다. 더욱이 이것은 권력자에 대한 영합이나 협조도 아니었다. 다만 순수한 무교회의 복음 신앙을 통해 조선인의 영혼을 신생시키고 나아가 이들이 자유와 평화와 정의의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 그는 그 귀한 일생을 바치신 분이었다" 이렇게 볼 때 선생의 민족애는 집단적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내는 소위 국수주의적 애착이 아니고, 우리 민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참된 사람이 되어 의로운 일을 해 나가게끔 하려는 노력이었다. 이러한 노력은 인간의 가장 거룩한 모습인 사랑의 정신 바로 그것이라 하겠다. 선생은 인간의 가장 거룩한 모습인 사랑의 정신 바로 그것이라 하겠다. 선생은 우리 민족의 장점, 단점을 겸허하게 인정하여 좋은 점은 더욱 발전시키고 나쁜 점은 고치고 개조시켜야 됨을 책무로 삼아 이 일에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간 분이다. 그는 우리 민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오로지 성서적인 수양을 통해 참사람이 되어야 이 민족은 살 길이 트인다고 보고 이러한 수양을 통해 참사람이 되어야 이 민족은 살 길이 트인다고 보고 이러한 수양을 권하는 일에 그의 일생을 바쳤다. "1974 년 12 월" 인문주의 심리학 자연과학적 입장에 서 있는 전통적 심리학은 인간을 외적 자극에 좌우되는 수동적인 생물체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의 자극들을 적절하게 통제함으로써 인간의 행동을 조절하고 변용 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인간이 어디까지나 생물체의 한 종류로서 자연 현상에 적용되는 법칙에 그대로 좌우된다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이들을 연구하는 방법에서도 자연 과학에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과학적 방법을 그대로 적용시키고 있다. 이렇게 전통적 심리학은 그 근본 입장이 과학적이며 결정론 위에서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심리학은 기계론적으로 인간 행동을 보며, 환경론적인 관점에서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대립하여 인문주의 심리학은 인간을 행동의 주체 혹은 행동의 결정자로


보고, 인간은 어떤 사태에서나 자유롭게 어떤 행동이든 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동을 연구라는 데 중요한 것은 인간의 내면 세계라 한다. 이 내면 세계 즉 의식을 통제하므로써 인간 행동이 통제될 수 있다 하여 이 의식 현상을 직접 기술하는 현상학적 방법이 중시되고 있다. 이들은 정신과학적 방법의 특수성을 강조한다. 이들은 비결정론의 입장에 서서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인간의 행동을 다루는 경향이 짙다.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의 대립은 역사적으로 볼 때 로크와 라이프니쯔, 마르크스와 키에르케고르, 비트겐슈타인과 사르트르, 그리고 스키너와 로저스(1902-, 미국의 인문주의 심리학자)의 대립으로 이어져 온 인간관의 기본적인 두 가지 경향이라 하겠다. 인문주의 심리학도 여러 갈래여서 다양한 의견이 대립하고 있지만, 그들의 공통된 특징은 먼저 인간을 전체적으로 다루고 이해하는 방식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전통적 심리학은 인간의 행동을 무수히 작은 부분 지식으로 나누어 취급하고, 이들을 합쳐서 전체 인간 행동을 설명하려는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인문주의 심리학은 인간 행동의 이해라는 관점에 서서 인간을 전체적으로 파악한다. 즉 인간이 지니는 각자의 개별성과 이에 관한 개인적 식 그리고 그들에게 공통되는 객관적 자료를 합쳐 인간을 직접 경험하는 개체로서 기술하여 그 대인의 참뜻을 이해한다는 입장이다. 인간 연구의 과학적 방법인 설명적 방법에서 벗어나 보려는 노력은 일찍이 독일의 철학자인 딜타이(1833-1911)와 슈프랑거(1882-1963) 등이 시도한 바 있다. 이들은 자연과학적인 설명적 방법에 대항하여 이해적 방법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은 과학적 방법에서 쓰이는 법칙 기술적 방식을 버리고 개성 기술적 방식을 내세워 인과 관계의 파악보다는 의미성 파악에 중점을 둘 것을 강조한다. 이같은 이해적 방식을 적용시켜 연구하는 인문주의 심리학의 방법을 전통적 심리학의 방시과 대조시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 인문주의 심리학자들은 표면화된 행동을 다룬다기보다는 내면적인 의식의 기술에 입각하여 의의 있게 연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세운다. 야스퍼스는 실존 심리학의 연구 대상으로 의식을 문제삼으면서 이것의 형식적 특징으로 활동 의식 통일, 의식, 동일서, 의식, 자기독립 의식을 내세우고, 이러한 의식으로 자기가 존재함을 아는 존재로서의 여러 활동을 규명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둘째, 자연과학에서는 학문의 기본 목표로 자연 현상의 설명, 예측, 통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인문주의 심리학은 그 기반이 결정론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 행동의 예측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사실 과학적으로는 주말의 자동차 사고 건수나 한 대학 내에서의 학생들의 낙제율이 일정한 자료에 따라 꽤 정확하게 예측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심리 치료 환자의 치유 가능성이나 한 학생의 장래 직업 선택의 방향 같은 거이 그리 쉽게 예측될 수 없다. 이런 문제는 결정론에 서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인문주의 심리학적 고려가 요구되는 분야라 하겠다. 셋째, 전통적 심리학은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서 논리에 좇아 지적으로 행동하는 합리적 존재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인문주의 심리학은 인간을 초합리적 존재로 보고 신념, 종교, 철학, 천명에 따라 몸바쳐 살아가는 존재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합리적 설명보다는 기술적 이해를 통해 개인이


지향하는 바를 의미성과 상징성에 입각하여 파악하는 것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 넷째, 전통적 심리학은 인간을 일반적으로 서로 비슷한 존재로 보고 인간 전체에 공통되는 일반 법칙을 찾아서 이것으로 인간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인문주의 심리학은 각자를 각기 특유한 존재로 보고 그들의 개별성과 특유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인문주의 심리학은 행동을 좌우하는 요인이 바로 이 개별성과 특수성이라고 본다. 따라서 전자는 인류 전체에 통하는 일반 법칙이 강조되는 분야라고 한다면, 후자는 오히려 각 개인의 개별성을 중시하여 개성 기술적 이해의 깊이에 중점을 두는 분야라 하겠다. 다섯째, 전통적 심리학은 인간을 실현성의 측면에서 다루는데 반해, 인문주의 심리학은 인간을 가능성의 측면에서 다룬다. 이제까지 전통적 심리학과 인문주의 심리학의 전형적인 방법론 차이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상당수의 인문주의 심리학자들은 이 두 가지 방법을 병용해서 적용시킨다. 즉, 이들은 인간의 이해와 더불어 인간의 객관적 파악을 결합시킨다. 인간을 전체로서 파악하되 객관적 파악 즉 인간 일반의 경향성을 토대로 인간 개개인의 개별성과 특유성을 고려하는 개별적 이해에 중점을 두는 접근 방식이 보다 더 타당한 연구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문주의 심리학은 인간을 인간을 그의 전생활사를 통해 전체로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인간을 실존주의적으로 다룬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실존적 고려가 이 학문의 밑바닥을 이루는 철학적 기초인 셈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인간 실존의 경험을 가장 중요시하고, 또 이를 현실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을 행동 통제의 주요 수단으로 삼는다. 이러한 실존 경험이 가장 강렬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지향성의 현실적 경험이므로 그들은 인간의 자아가 그의 동기의 핵심을 이룬다고 보다. 여기에서 지향성이란 지적이며 의지적인 경향으로서 자신에게 의미 있는 어떤 대상에 대해 자기를 몰두하게 하는 것이다. 지향성은 이렇듯 자신에게 의미 있는 어떤 대상에 대해 자기를 몰두하게 하는 것이다. 지향성은 이렇듯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에 향하는 경향이다. 그러므로 의미성은 중시되는 개념이다. 이렇게 볼 때 의미란 정신의 의향이며 한 대상에 대하여 이를 인지하고 의욕을 갖는 집중성을 뜻한다. 그러므로 인문주의 심리학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데는 스스로 자기 문제를 다루게 하는 것, 즉 자기 문제에 자신이 지향하는 것을 이미 치료된 상태로 간주한다. 자기에게 의미 있는 것에 지향하게 되면 이미 자기와 세계와의 관계는 변화된 것이라고 본다. 상대를 믿는 능력이 증진되면 자연히 자기를 믿게 되고, 이때 기억이 다소 소생되어 스스로의 문제를 똑바로 볼 수 있는 태도가 생긴다. 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의욕이 생기고 세계에 대해 인간 전체로서 지향하는 자세를 보이게 된다. 인간은 이러한 지향성에서 자기의 동일성을 느끼고 자기를 경험하게 된다. 인간의 중심적 핵 역할을 자기로 보지만, 이 자기라는 개념은 정신분석학에서 쓰고 있는 자아라는 개념과는 다른, 자기 의식의 핵심적 체제를 이루는 목표 지향적인 확고한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인문주의 심리학에서 행동을 유발하는 요인은 환경 조건이나 자극이 아니고 또 본능도 요구도 아니다. 여기에서는 오로지 핵심적인 자기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바에 따라 행동이 나타난다고 본다.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현명하고 성실하게 선택해서 행동할 때 각자가


지니는 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있다. 이렇게 현명하고 성실한 선택을 위해 인간은 스스로의 실존 가능성을 자각해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해서 인간은 늘 스스로가 개방된 채로 있어야만 한다. 이 자기 개방은 진정한 자기 또는 순수한 자기 상태를 유지하는데, 인문주의 심리학자들은 이것이 인격의 건전 상태에서만 이룩될 수 있다고 보았다. 물론 이들이 자각하게 되는 가능성이란 무제한적인 가능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누구에게나 다 같은 가능성을 상정하는 것도 아니다. 각자에게 다르게 주어진 조건에 따라 가능성도 다르기 때문에 이를 충분히 고려한 자신의 참된 가능성을 자각해야 현명한 선택이 이루어진다. 이들은 또 인간의 생활에서 생성이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인간 실존은 어디까지나 정적인 상태가 아니고 항상 새로운 것으로 되어 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인간은 현재의 자기를 초월하여 보다 새롭고 보다 의미 있는 것으로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실존을 찾는다. 현존재는 모든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생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자기의 의미를 찾는다. 상황이 어려워도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세계 속의 자기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빈틈없이 달성해 나가는 것이 바로 생성이다. 인간이 이 생성을 거부하라 때, 스스로 어두워지고 폐쇄되어 이 때문에 강박증이나 망상 등은 생긴다. 여러 가지 이상 행동은 생성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표시일 수도 잇다. 전통적 심리학에서는 인간 행동의 궁극 목표를 동질성체로 보고, 모든 이론은 이에 맞게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인문주의 심리학에서는 자기 실현 또는 자기 완성을 인간 생활의 최종 목표로 본다. 호나이나 프롬이 그랬고, 골트슈타인(독일의 정신 의학자)이나 매슬로우도 그랬다. 로저스도 발달을 생활의 목표로 보았는데 이를 가능성이 실현되는 성장 과정이라고 했다. 샤롯과 버블러(정신 의학자)는 자기 실현을 "가치를 구현시키는 경험"이라고 했다. 한편 프랑클(독일의 정신의학자)은 인간 실존을 자기 초월이라고 했고, 인간의 목표는 자기가 그것을 위해 살고 있는 것에 투사시킨 개인적 의미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개념은 프로이드를 비판하고 나선 정신의학자 융, 애들러, 랭크 등이 원래 쓰기 시작했는데, 그후 유기체 이론이나 현상적 이론에 계승되었고 문화인류학이나 사회학에서도 쓰이게 되었다. 건전한 인간이 참된 인간성을 발휘하는 근본적 요인이며, 자기 가능성의 올바른 실현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프롬은 이상적인 인간형을 생산적 성격이라고 이름 붙이고, 이러한 인간이란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충분히 실현하는 자라고 보았다. 이것은 대인 관계에서는 사랑으로, 행동이나 인지에서는 이성적으로, 생활에서는 창조적으로 살아 나가는 존재를 의미한다. 자기 실현에 관해 적극적이고도 확고한 이론적 기초를 닦은 사람은 매슬로우다. 그는 현대 사회의 체제와 문화가 잘못되어 있어 인간 각자의 자기 실현이 쉽게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보았다. 이간은 동물적 존재로서 기아나 갈증 같은 생리적 욕구를 지니며, 이것이 결핍되어 있으면 무엇보다도 이들의 충족에 열중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욕구들을 충족시키면 다음에는 신체의 계속적인 안전을 위한 노력을 하게 되며, 이 안전이 보장되면 소속 욕구에 몰두하여 가족, 친구, 애인과 같이 있으면서 서로 애정을 주고 받기를 원한다. 이것이 제대로 충족되면 또 자기 평가를 받으려는 욕구가 나타나 권력, 지위, 지배, 성공 등을 얻고자 한다.


이러한 생리적 욕구 내지 안전감, 소속감, 자기 평가, 욕구가 순차적으로 모두 충족된 후에야 본격적으로 자기 실현 욕구가 나타난다고 매슬로우는 보았다. 스스로 타고난 자질과 역량의 가능성을 충분히 사용 개발하는 것을 자기 완성이며,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 나가는 사람이 건전하고 성숙한 인격의 사람이다. 이러한 자기 실현 욕구는 자연과학적 법칙이 적용되는 대상이 아니며 예측 가능한 것도 아니다. 자기 실현 욕구에 좌우되어 사는 인간은 어떠한 외적 자극이나 내적 자극이 작용하든 그때 그때의 특유한 상황에 맞추어 행동한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인간은 일정한 자극에 대한 일정한 반응으로 응하기 보다는 그때 그때의 상황과 자신의 가능성을 깊이 고려하여 선택적으로 행동한다. 이 자기 실현의 욕구는 어떤 결핍 상태를 메꾸기 위하나 것이라기보다 모든 결핍을 충족시켰어도 스스로의 가능성을 실현시켜 보려는 것이므로 자기 표현적 경향이다. 따라서 이것은 자기 성장의 동기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자기 실현은 성격 표현이며 인간으로서의 발전과 성숙을 밀고 나가는 노력이라고 하겠다. 인문주의 심리학은 이제까지의 심리학 특히 정신분석학이 병적인 인간의 연구에 너무 치우쳐 있었으므로 이제부터는 건전한 사람의 행동을 본격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올포트, 매슬로우, 프롬, 로저스 등이 이 런 분야의 연구를 많이 하였다. 건전 인격 또는 성숙 인격의 특성에 관한 이들의 주장을 개괄해 보기로 하자. 첫째, 건전 인격을 지닌 사람의 특징은 자기의 독자성을 확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자기의 천분을 깨닫고 주체성과 자기 책임을 자각하며 이를 성취해 나가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라고 본다. 앞서 지적한 자기 실현을 밀고 나가는 것을 말한다. 프롬은 자신이 자기 행동의 주체자임을 깨닫고 독자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책임 있는 행동으로 자기 존재에 의의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건전 인격의 참모습이라고 보았다. 리즈만은 사회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 관점에서 살되 의미 있는 목표를 지니고 이를 위해 사는 존재로서 합리적이고 비강박적이며 비권위주의적으로 사는 사람을 자주적 인간이라고 해 이를 건전한 사람의 이상형으로 보았다. 둘째, 건전 인격의 특징은 객관적인 지력이다. 이 경우 자기나 타인 또는 현실 사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떤 편견이나 집착이 없이 객관적으로 보기 때문에 현실 파악이나 처리가 능률적이고 정확하며 판단력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자기 객관화와 현실적 파악은 그 기초가 정서적 안정성에 있는데, 이는 마음이 담담하고 지나친 흥분이나 충격이 없는 상태로서 이성적이고 애정적인 상태요 자기 수용적인 태도에서 연유된다. 셋째, 건전 인격의 특징은 대인 관계에서의 따뜻한 사랑과 이해심을 갖는다는 점이다. 참된 사랑이란 상대의 일을 자기의 일처럼 생각하며 상대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에 더해 상대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알고 이들을 인정하여 상대를 받아들이는 존경심이 있어야 한다. 넷째, 건전 인격의 특징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인데, 이는 확고하고도 타당한 인생관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인간 생활을


이끌어 주며 우주 속에 생기는 여러 현상을 인간과의 관련성에서 그 의미성과 방향성을 설명해 주는 통괄적인 체계를 지니는 것이 건전한 인간에게 꼭 있어야 한다. 다섯째, 건전 인격의 특징은 매슬로우가 주장하고 있는 문제 중심성이다. 자기 자신의 평가에 열중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에게 맡겨진 일이나 문제를 해결하는데 열중하는 것을 말한다. 매슬로우는 "자아가 가장 강한 사람이 자기 완성인인데, 이들은 쉽게 자기를 잃고 자기를 초월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들은 문제 중심적이어서 사물을 인지하고 창조하는 일에 곧잘 열중하며 그 일을 철저히 해낸다. 또 자기 완성인은 의식이 통일되어 있고 순수한 편이다. 자기를 늘 의식하면서 이기적으로 움직이거나 욕구 충족을 위해 활동한다기보다는 외계의 일에 열중하는 편이라고 한다. 대체로 욕구 충족에 결핍이 많은 사람에게는 이 문제 중심성이 적고 자의식이 많으며, 자기 실현 욕구가 강한 사람은 문제 중심적이 되기 쉽고 자의식이 적어 객관적 세계를 다루기가 쉽다. "1977 년 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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