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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지. 동네 꼬마들 모아놓고 사기치듯이 하는 것으로는 안 된단 말야." "그럼요?" 지아가 부쩍 흥미를 나타냈다. "마술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마술사가 자신을 멋지게 속여 주기를 바라지. 만약 마술사가 어설퍼서 자신을 멋있게 속여넘기지 못한다면 본전을 생각하게 되고 마는 거야. 우리는 속일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지. 허가받은 사기꾼이라고나 할까?" "그런데요?" 희수가 심드렁하게 말을 받았다. "남들이 다 알고 있는 것으로 속이는 것은 이제 그만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해." "형 말은 어려워서 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희수가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더니 종래 자신의 숙소로 쑥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현덕은 말을 그치지 않았다. "마술사란 고대에 있어서는 왕권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직책이었지. 그러나 오늘은 이게 무얼까? 사기를 쳐서 목에 풀칠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의 말은 어느 새 독백의 단계로 넘어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본다. 고대의 마술사들이라 해도 사람을 속인 것은 사실이야. 그들에게 어쩌면 약간의 초능력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아는 현덕의 '초능력' 이라는 소리에 움찔 몸을 움츠렸다. 그의 말에는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실려 있었다. 갑작스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비가 한차례 올 모양이었다. 비가 오면 관객이 줄어들 텐데. 지아의 관심은 어느 새 날씨로 넘어갔다. 때문에 현덕의 말을 잠깐 놓치고 말았다. "......필요한 것은 조직,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야. 그것이 없으면 우리는 정말 사기꾼이야." 현덕은 듣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 끝났다고 여겨지자 벌떡 일어서서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지아는 혼자가 되었다. 지아의 가슴이 갑작스레 답답해졌다. 아직 비는 내리지 않고 있었다. 모든 것을 토해 버릴 수 있으면 좋을 것을, 비도 내 답답함도..... 지아는 웅얼거리며 거실의 유리문으로 다가섰다. 정원으로 바람이 움직이고 있었다. 넓은 정원의 수풀을 헤치며 죽음이 걸어가는 것이 그녀에게 느껴졌다. 아직은 그림자일 뿐, 실체가 어느 곳에서 손을 내밀지 그녀는 알지 못했고 그 대상이 누구인지도 떠오르지를 않았다. 갑작스레 예민해진 그녀의 감각기관을 통해 집 안의 온갖 움직임이 전달되어졌다. 현덕의 고른 숨소리, 희수가 음란한 잡지를 들춰 가며 군침을 삼키는 소리, 남녀가 얽혀서 절정을 맞고 있는 느낌까지도 모두 전달되었다. 그녀는 흠칫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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