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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에서 생각, 곧 사고의 의미를 넓게 풀이한다. 좁은 의미의 사고는 논리적인 사고일 뿐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의 생각은 논리적인 사고뿐만 아니라 느낌과 상상과 합리적 이성적 사고까지 모두 포함한다. 감각과 사고가 맞부딪힐 때 언어가 구성되며 또한 거꾸로 언어에 의해서 감각과 사고가 맞부딪혀서 언어의 의미가 떠오른다.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 "금빛 게으른 울음" 등은 무의미한 기호가 아니라 생생한 대상의 모습과 그 모습에 대한 인간의 넘쳐흐르는 느낌이 담겨 있는 의미있는 언어로서의 글이다. 시골에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철 발벗은 아내"라든가 "따가운 햇살", "흐릿한 불빛" 등의 의미를 가슴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언어는 감각과 사고의 유기적인 상호 관계에서 성립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언어가 제아무리 풍부한 대상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지칭한다고 할지라도 언어는 기호라는 사실이다. 우리들은 사고에 의해서 기호를 구성하며 또 한편으로 언어라는 기호는 우리들이 사고를 구성한다. 편의상 다음의 시를 인용하여 언어와 사고의 순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하자.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다라 흐릅니다려. 김소월 <가는 길> 나의 생각은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라는 기호를 구성한다. 이 기호는 정지한 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사고를 다시금 구성하게 해준다. 그리하여 나의 사고는 "서산에는 해진다고 지저귑니다"라는 내용을 다시금 언어로 구성하게 된다. "앞 강물, 뒷 강물"로부터 "흘러도 연다라 흐릅니다려"까지를 보아도 언어와 사고가 순환적으로 상호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언어와 사고는 동일한 차원에 자리잡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말과 생각 신화라든가 전설에 등장하는 식물과 동물 그리고 심지어는 바위까지도 말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식물과 동물 그리고 바위를 인간이 의인화시켰을 때 가능하다. 말이란 대상이나 사태를 생각에 의해서 구성할 때 비로소 의미있는 언어가 된다. 우리들은 인간의 사고와 언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 사고는 대상과 사태를 구성하며 창조하는 힘으로서 대상과 사태에 의미를 부여하고 #2 그러므로 사고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구성되는 언어도 대상과 사태를 부차적으로 구성하여 형태화한다. 언어와 사고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는 다음의 예를 보면 쉽사리 알 수 있다."빵세"라는 불란서 말이 있다. "생각"이라는 우리말은 누구나가 알고 있다. 그러나 불어에 낯선 사람은 "빵세"라는 단어를 무의미한 것으로 보게 된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이 단어에 있어서 언어와 사고의 긴밀성이 아직 드러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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