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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아 안녕?” 아무리 상냥하게 말을 걸어보아도 대답이 없다. 간혹 엄마에게 귓속말로 속삭일 때만 하은이의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자폐성 장애 2급인 하은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은 하나, 바로 인라인스케이트다. 아무런 말도 필요 없는 나 자신과의 싸움. 나만의 세상에 갇혀 살던 하은이는 인라인스케이트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해준 인라인스케이트

“사실 인라인스케이트는 7살 때부터 운동치료를 목적으로

선발, 2015년 LA 하계스페셜올림픽 롤러스케이팅 은메달.

시작했어요. 여러 가지를 해봤는데 코치님이 특수체육을

하은이는 이제 스케이트를 통해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고

전공하신 분이라 그런지 하은이의 재능을 발견해주셔서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은 아니다.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인라인스케이트를 시작하게

“분명 1등 할 실력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경기장에만

되었죠.”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하은이 대신 어머니

나가면 출발을 하지 않는 거예요. 무릎을 꿇고 울며

박진희 씨를 통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빌었죠.” 긴 침묵을 깨고 출발선에서 첫발을 떼던 그날, 그 순간을 어머니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하루에 초코우유를 20개씩 먹는 아이, 다른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하은이를 그저 지켜보며

있으면 밥도 먹을 수 없는 아이. 자폐성 장애와

참아내야 하는 건 온전히 어머니의 몫. 그런 힘든 시간을

공황장애를 가진 하은이가 세상으로 나오는 것은

견뎌왔기에 지금의 열매가 더욱 값지다.

너무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한 후, 하은이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났다.

용감한 자매의 도전

하은이의 친구가 되어주는 건 인라인스케이트뿐이 아니다. 실내연습장에 들어서자마자 하은이는 스케이트를

동생 가은이는 언니의 페이스메이커로 함께 운동을

챙겨 신으며 끈을 조였다. 모자와 무릎보호대까지

시작했다. 그저 언니의 운동 친구로 시작한 가은이 역시

갖추고 코치님의 지시에 따르며 훈련하는 모습에서

이제는 언니 못지않게 전국대회 1, 2위를 다투며 유망주로

진지함이 느껴졌다. “운동을 시작하면 엄청난 집중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운동을 계속하기에는 경제적

훈련에 임해요. 피가 날 때까지 입술을 뜯거나 울음을

어려움이라는 큰 장애물이 있었다.

멈추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런 증상도 없어졌어요.” 어머니는 연습장 한편에서 늘 훈련을 지켜본다.

“훈련비를 내지 못할 때, 대회 참가비를 내야 할 때

슬픔과 분노를 표현할 방법을 몰랐던 하은이는

가장 힘들어요. 또 겨울에는 쇼트트랙을 해야 하는데

인라인스케이트를 하며 소통하기 시작했다. 우연히

훈련을 일주일 앞두고 겨우 중고 장비를 구입했어요.”

시작한 인라인스케이트가 이제는 하은이의 유일한

하은, 가은 자매와 오빠까지 네 식구의 생계를 혼자

소통창구가 된 것. 세계스페셜올림픽 최연소 국가대표

책임지고 있기에 어머니의 어깨가 더욱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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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Vision 16 03/04  

WorldVision Korea Magazine 201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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