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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워크 Wide Work 무규칙 토종 건축가의 계보를 잇는 원희연 Won Hee Yeon

형식이나 관행으로부터 벗어나 무규칙적 토종 건축가의 길을 걸었던 고 차운기의 제자 원희연의 작업을 들여다본다. 그의 처녀작이자 차운기의 유작이기도 한 신교동 주택과 최근의 리모델링 작품인 까페 H-Works, 재즈스토리 등은 삶을 풍요 롭게 만드는 건축 행위란 과연 어떤 것일까를 곱씹어 보게 한 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나 폐자재를 활용하여 설계 에서 시공까지 모든 집 짓기 과정을 직접 손으로 작업하는 원 희연의 작품은 낯설 정도로 자유분방하다. 제도권 교육과 규 범화된 건축이 구축해 온 강박증을 떨쳐 버리고, 무모함 속에 솔직함과 위트를 담고 있는 그의 건축을 즐겨 보자. ⓦ 진행 | 정귀원(본지 편집장), 사진 | 남궁선(건축 사진가)

사진 : 삼청동 H-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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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몸으로 만드는 건축, 몸으로 느끼는 세계

원희연 백제예술대학 건축디자인과를 졸업했다. 동양종합건설, 아꼴건축에서 실무를 익혔고, 현재 원희연건축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아꼴 시절, 여수 카페 마랭에 참여하였으며 고 차운기의 신교동 주택(12주)을 마무리 했다. 주요 작품으로 정동진썬크루즈참소리박물관, 대 흥동 카페 틈, 수서주택 리모델링, 퇴촌주택, 삼청동 까페 비늘, 파주 모산 목장, 양평 펜션 등이 있다.

신교동 주택(12柱) 2001년 4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고 차운기는 1990년대 친근하고 자유로운 건축 언어로 대중의 관심은 물 론, 전국에 수많은 ‘택형이네 집’을 낳게 한 장본인으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의 유작이 종로구 신교동에 완성되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고, 2003년 한 건축 잡지를 통해 ‘12주(柱)’ 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우리가 원희연이란 이름을 접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또 그로부터 7년의 시간이 지 났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차운기 유작을 완성시킨 작가’ 원희연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팀 버튼의 영 화에서나 나올 법한 ‘12주’를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서였다. 잘 정제되었으나 한결 같은 모습의 건축보다는, 낯설지만 독자적 방식의 건강하고 진정성 넘치는 건축을 찾고 있던 터였다. ‘12주’ 건축주가 쥐어 준 연락처 를 받아 들고, 그가 그 동안의 작업들을 통해 또 다른 동화적 상상력을 구현해 왔기를 기대하며, 서울 성곽 너머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그리고 온갖 공구들과 자재들이 빽빽이 들어찬 집 안 대신 멀리 성북 동이 내려다 보이는 문간에 간이 탁자를 펴고 그와 마주 앉아 차운기의 유작이자 그의 처녀작이기도 한 신 교동 주택(12주) 이야기로 운을 뗐다. ⓦ “좀 지저분하죠? 차운기 선생님이 운영하셨던 아꼴(A·Cole)의 분 위기도 이랬어요. 그나저나 신교동 주택을 이야기하려면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제가 차운 기 선생님을 알게 된 것은 도서관에서 건축 잡지를 통해서예요. 이 사람 밑에서 배워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 각에 무작정 찾아 갔고, 곧장 일을 시작했죠. 처음부터 눈치껏 알아서 일을 배워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며칠 지내다 보니 차 선생님의 스타일이 어떤지 대충 알겠더라고요. 어떤 땐 우드락 모형 하나 달랑 들고 도면도 없이 공사하러 지방에 내려가기도 했었죠.(웃음) 선생님이 병을 얻으시고 굉장히 안 좋아지셔서 지리산으 로 내려가게 되었을 때, 신교동 주택이 막 시작되었어요. 돈은 이미 받았고 별다른 대책은 없고…. 해서 제 가 불려가게 된 거예요. 모형 없이 계획도면 정도만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걸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하는 도중에 선생님이 돌아가셨지요.” ⓦ “도면 작업을 전혀 안 하신 건가요? 도면도 없이 어떻게 공사를 하지 요?” ⓦ “지금도 그렇지만, 기본적인 것은 그리되 상세도 같은 건 따로 작성하지 않았어요. 디테일은 스스 로 알아서 챙겨야 했죠. 선생님께 직접 배운 것도 많았지만, 아마도 서로 코드가 맞았기 때문에 그런 작업 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 “현장에서의 소통은 주로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나요?” ⓦ “대화로요. 심지어 전화로 일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기도 했고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내용이 제 머릿속에서 3D 모델로 형상화되곤 했어요. 도면을 그리는 대신 더 크게 얻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손맛을 내는 작업, 사람이 움직 여서 만들어 내는 작업이 어떤 것인가 하는 거예요.” ⓦ “그럼 신교동 주택은 차 선생님의 유작이라기보다 원 소장님의 처녀작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건가요?” ⓦ “아뇨. 꼭 그렇지도 않아요. 물론 공사를 직접

→ 신교동 주택(12주)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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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내 방식을 포기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큰 그림은 차 선생님이 그리신 거고, 또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선생님의 의도가 흩뜨러지지 않고 일관되게 보여지도록 노력했기 때문이죠.” ⓦ 실제로 스승의 작업과 오 버랩되는 신교동 주택 외의 작업에서는, 비록 형태 흩뜨리기와 수공예적 현장 작업은 여전하다 할지라도 차 운기의 그것과는 분명 느낌이 달랐다. 보다 정제된 형태랄까, 그러면서도 더욱 과감해진 표현에서 그런 점 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두 사람을 모두 겪어 본 신교동 주택 건축주─그는 이후 원희연의 중요한 고객이 됐다─의 증언이 뒷받침된다.) ⓦ “선과 면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곡면이나 불 규칙한 형태를 선호하다 보니까, 또 아무래도 기성품을 재료로 쓰지 않으니까 차 선생님의 작업과 비슷해 보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디테일을 풀어나가는 데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 “구체적으 로 어떻게 다른 거죠?” ⓦ “글쎄요. 선생님의 작업이 어떻다, 라고 제가 감히 단정지어 말할 순 없을 것 같 고요, 다만 제 작업에 대해서만 말씀 드릴게요. 중요한 건 분위기나 느낌이지만 그 전에 조화나 규칙이 전 제 된다는 거예요. 재료의 물성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과, 무질서한 연속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규칙을 갖는 것…. 아, 말로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이라 좀 그렇네요. 아무튼 초창기 땐 그냥 느낌대로, 손이 가는 대 로 작업을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조화나 규칙을 생각하는 것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 “조화나 규칙 을 위한 모티브는 어디서 찾고 있나요? 주로 자연인가요?” ⓦ “네. 자연에서 얻기도 해요. 그런데, 저는 호 기심이 굉장히 강한 편이에요. 자연계의 현상들, 천문학이나 생물학적 규칙은 물론 인간의 삶 자체에도 관 심이 많죠. 특히 종교나 사회 현상 등에 대해….” ⓦ “그래선가요? 사실 다른 작업들은 신교동 주택에 비해 좀 모던하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 “아, 그건 좀 다른 얘기에요. 우선, 상황에 따라 다른 거겠죠. 기능과 공간 개념을 고려하다 보면 파주 모산 목장처럼 아예 박스 형태가 나오기도 하고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건 축주의 취향과 관련이 있을 거예요. 자유분방한 건축 세계를 이해하고 그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는 건축주를 만난다는 건 정말 행운이죠. 특히 신교동 주택의 집주인은 차 선생님의 골수팬이셨어요. 그 의 건축을 이해하고 좋아하셨죠. 요즘도 가끔 저를 불러서 이것저것 덧붙여 줄 것을 요구하는데, 굉장히 독 특하고 재미있는 걸 원하세요.” ⓦ 그들의 작업이 낭만적이고 친근하다고는 하지만, 그런 ‘파격적인’ 형태 를 수용하는 건축주들의 취향도 유별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신교동 주택의 건축주 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로 자기 집에 대한 뚜렷한 건축관─무엇보다도 독자적이어야 한다는─을 가지고 있 었고, 시종일관 두 건축가에게 무한한 신뢰를 드러내었다. ⓦ “굉장히 좋은 분이죠. 건축가를 아껴 주시고 요. 가끔 해외 나갔다 오면서 가우디의 작품집을 사다 주시기도 해요.(웃음) 아무튼 그 밖의 작업들에서는 건축주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표현을 하게 되죠. 몇 번 대화해 보면 알거든요. 이 사람이 자유로움 의 수위를 어느 정도 허용할지를요. 저도 언젠가 제 작업을 완전히 이해하는 분을 만난다면 더욱 익살스럽 고 재미있는 형태를 만들어나, 구조적인 안전성을 전제로 중력을 거슬리는 희한한 건물도 지어보고 싶어요. 아니, 나중에 꼭 한 번 보여드릴게요. 그걸 수용할 수 있는 건축주를 찾아서요.(웃음)” ⓦ 성향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차운기 선생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이쯤에서 그의 이력이 궁금해진다. ⓦ “원래 조 각을 전공하려고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은 편이었죠. 그런데, 건축업을 하시던 아버지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많이 받았나 봐요. 정식으로 건축 교육을 받기 전에 이미 친척 집을 리모델링하고, 제 도 기능사를 따기도 했죠. 당시 국내에 막 도입된 캐드를 배우기도 했고요. 그리고 나서 백제예술대학 건축 디자인과로 진학했어요. 그 때도 마찬가지로 기존의 건축과 다른 걸 했는데, 교수님들의 평가가 극과 극이 었죠. 꾸중을 하거나, 칭찬을 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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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교동 주택(12주) 내부 공간. 수작업된 붙박이장과 조명, 모르터 뿜칠 마감의 벽이 눈에 띈다. ← 신교동 주택(12주) 거실 스케치. ↓ 신교동 주택(12주) 복층 구조의 살림집 거실 전경. ↘ 신교동 주택(12주)의 계단 디테일. 원목과 철근으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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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교동 주택(12주)의 외벽 디테일. 벽에는 수많은 아크릴 봉이 박혀 있어 밤 에도 빛을 유입한다. ↖ 신교동 주택(12주)의 화장실. 바닥과 벽에 타일을 깨뜨려 붙였다. ↖↖ 신교동 주택(12주) 디테일 스케치. ← 신교동 주택(12주) 평면 스케치. → 박쥐의 날개와도 같은 처마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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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교동 주택(12주) 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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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H-Works 첫 번째 만남 이후 그를 다시 만난 것은 답사 차 사진 작가, 리뷰 필자와 함께 들른 삼청동 H-Works에서였 다. 하지만 그는 잠시 얘기를 나눌 새도 없이 건축주와 집의 이곳저곳을 점검하느라 매우 분주해 보였다. ⓦ “집주인과 한 번 맺은 인연은 집이 완성되고 나서도 계속 돼요. 고칠 데가 있으면 의논도 하고 해결도 해 주 고…. 아무래도 독특한 형태에 소재들도 기성품이 아니니 계속 저를 찾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방충망 을 달고 싶어도 기존의 알루미늄 샤시로 할 순 없을 테니까요. 독점인 셈이에요.(웃음)” ⓦ 그는 모든 작품 안에서 설계부터 시공까지 일일이 손으로 만드는 장인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살다 시피 하면 동네의 특징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건축주나 주민들과의 친분도 더욱 두터워질 수밖에 없을 터이다. ⓦ “건축주는 물론이고 여러 사람들과 집 짓는 과정을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아요. 그만큼 집에 대한 기억도 남다를 것이고 애착도 클 수밖에 없겠죠. 변경이 필요한 부분이 생기면 현장에서 즉각 반영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고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저처럼 수작업하는 노동자들이나 장인들이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주어졌으면 좋겠어요. 이 땅에 그런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거죠.” ⓦ 반듯하지 않게 오린 녹슨 철판, 자유롭게 꾸부린 철근, 랜덤하게 쌓은 나무 조각, 한옥에서 옮겨 놓았을 법한 천장의 서까래, 깨진 타일과 돌 조각들…. 그러고 보면 건축의 표현 재료들이 하나같이 유난하 다. ⓦ “흙으로 마감된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촛농이 흘러내리는 것 같기도 한 벽면은 어떻게 표 현하신 거예요?” ⓦ “아, 그거요? 도로 법면 공사할 때 모르터를 뿜어서 붙이는 방법과 같아요. 그런데, 모 르터 건이 생각보다 비싸더라고요. 그래서 LPG 가스통을 잘라서 아예 만들었죠. 그걸로 모르터를 쏘고 굳 힌 다음에 수성 페인트로 색을 입히고 마감 코팅 처리를 한 거예요.” ⓦ “폐자재 건축가, 재활용 건축가란 수식어가 뒤따르는 걸 봤어요.” ⓦ “기성품으로 나온 것 외에 특별히 가리는 재료가 없어요. 종이 박스 같 은 걸 쓰지 말란 법도 없잖아요? 원목 정도를 제외하면, 쉽게 구할 수 있고 값이 저렴한 재료를 선호해요. 시멘트나 수성 페인트는 값싼 재료들이죠. 폐자재들도 그렇고요.” ⓦ “한때 ‘녹건축연구소’가 사무소 이름 이었는데, ‘녹’이란 단어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가요?” ⓦ “큰 의미는 없어요. 그냥 친구가 녹슨 거 좋아 하지 않냐며 붙여준 이름이에요.(웃음) 너무 심하게 뒤틀리고 왜곡되는 건 경계하지만, 재료가 변화하는 걸 좋아하죠. 뭐든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니까요. 유리도 액체여서 늘 흘러내린다고 하 잖아요? 그래서 오래된 건물의 창은 위쪽보다 아랫부분이 더 두껍지요.” ⓦ “특별한 재료로 마감을 할 때 어려운 점은 없나요? 거칠고 낡은 느낌들이 자칫 완성도를 떨어뜨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H-Works 건축주의 첫 주문은 ‘고급스럽게’였어요. 아시겠지만 ‘고급스럽게’는 재료비, 인건비와 관계가 있죠. 마감 에 공을 들이고 싶어도 어느 선에서는 커트를 해야 돼요. 일반 벽지와 석고보드로 마감을 할 수도 있겠지만 맛내는 걸 포기할 수 없으니….” ⓦ 다시 한 번 찬찬히 H-Works를 둘러 본다. 건축주가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 집은 카페면서 옷을 판매하는 1층과 2층의 작업실, 3층의 개인 공간으로 리모델링됐다. ⓦ “바깥에 나무 조각으로 건물을 감싼 것이 인상적인데요?” ⓦ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으면서 바람 은 통하고, 또 햇빛은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주문이 있었어요. 고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픽셀 개념의 나 무 블라인드였고요. 사실은 픽셀의 단위를 더 축소시켜서 작은 나무 조각들을 돌리면 문자가 새겨지는 효과 를 만들고 싶었죠. H-work 같은 상호를 쓸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러자면 각재도 더 많이 세워야 하고, 일 이 많아질 것 같아서 포기했어요. 지금은 나무 조각 하나의 크기가 130×100mm 정도에요.” ⓦ “나무 조각 들을 일일이 각재에 붙이는 것도 별도의 상세도면 없이 현장에서 직접 시공 방법을 전달한 건가요?” ⓦ “설

→ H-Works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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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테일 스케치. ↗ H-Works 1층 카페 나무 조각의 벽면. 숨겨진 수납 공간의 개구부가 설치되었다. ↗↗ H-Works 외벽 픽셀 개념의 나무 블라인드. → 재료가 가진 물성의 조화와 규칙이 전제된다.

치 방법에 관한 것은 현장에서 직접 합판에 그려가며 설명을 해요. 하지만 분위기나 느낌은 저만 알 수 있 는 거죠. 그걸 어떻게 전달해요? 노상 현장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요.” ⓦ “벽면을 돌아가며 천장 가까 이에 설치된 서랍들도 그렇고, 2층은 유난히 수납공간이 많던데요? 옷을 만드는 작업장이란 기능 때문이겠 죠?” ⓦ “네. 가능한 많은 수납 공간은 또 다른 요구 조건이었어요. 2층 작업실의 벽, 천정, 바닥 등 모든 부 분에 수납 공간을 계획해 보겠다고 했어요.” ⓦ “바닥에도요?” ⓦ “네. 어디든 여지가 있는 곳이라면 모조 리 수납 공간을 두었어요. 1층 카페의 벽에는 숨겨진 문이 있을 거예요. 원래 평평한 벽면인데 새로운 곡선 형태의 벽을 만들다 보면 사이 공간이 생기죠. 그걸 이용했어요. 부득이하게 버려지는 공간이지만, 포기할 순 없죠. 물론 곡면에 열리는 구조를 만들어야 해서 일손은 많이 갔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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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Works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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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Works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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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재즈스토리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단순한 기능에 규칙과 조화를 전제로 자유롭고 독특한 형태를 덧입히는 것, 그것으로 그의 건축을 요약한다면 그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뭘까? 마지막으로 들렀던 대학 로의 재즈스토리는 “테이블에 앉아서 둘러보면 새 것을 찾는 게 더 힘들만큼, 정말 낡지 않은 게 없다(이중 용, 『차운기를 잊지 말자』 中)”는 차운기의 삼청동 재즈스토리가 장소를 옮겨 새롭게 문을 연 것이다. 온갖 폐자재와 잡동사니로 집의 안팎을 꾸몄다는 점에서는 삼청동의 그것과 닮아 있지만,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고 사람 손길이 많이 닿으면 닿을수록 좋아질 가능성이 있어서 좋은’ 재료로 친근하고 편안한 공간을 구 현하고자 한 것 이상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삼청동의 그것과 구별된다. ⓦ “재즈스토리의 주인은 건축 전공을 안 했다뿐이지 디자인에 남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는 분이에요. 대학로로 자리를 옮길 당시 그 분의 상황이 여러 모로 어려웠는데, 그렇다면 차라리 더 울적한 가게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죠. 집을 철거 하면 일명 왈가닥이라고 하는 폐재류들이 많이 나와요. 그걸 재활용하여 폐허 속 분위기를 만들어 보자고 한 거예요. 처음에 굴삭기를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가서, 두들겨 깨고 집어 젖히고 콘크리트 덩어리를 삐딱하 게 세워 놓고 철근이 튀어나오게 하고…. 아무튼 잘만 하면 딱 암울한 분위기를 연출해 낼 수 있을 것 같았 죠. 그런데, 건축주가 너무 세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몇 군데만 남기고 다 끄집어냈어요. 아쉽죠. 언젠가 는 한 번 완성시켜 보고 싶은 컨셉트에요. 거칠면서도 동화 같은, 우울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느낌의 공간…. 블랙 코미디처럼 말이죠.” ⓦ “과연 재활용 건축이라고 할 만하던데요? LP 판이 빼곡히 정리된 장의 철근 이나 에어컨 가리개로 쓰인 구멍 뚫린 공사용 철판 같은 것들이 재밌더라고요.” ⓦ “그런 건 사실 너무 일반 적인 재활용이죠. 재즈스토리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어요. 단열재를 사용한 것만 봐도 공사가 제대로 된 주 택이었는데, 그걸 넓은 홀의 카페로 바꾸는 작업이었잖아요. 내부 비내력벽 등을 헐어낼 수밖에 없었는데, 그로부터 나오는 폐기물들을 재활용한 부분이 많아요. 내부 조적 구조물도 그렇고…. 혹시 1,2층 연결 계단 을 자세히 보셨나요? 2층 슬래브를 3면만 따내고 그대로 경사지게 내려 앉혀 만든 거예요. 거기에 발판만 걸은 거고요. 기존 철근은 물려 있는 형태죠. 또, 무대 앞쪽에 새로 만든 기둥은 뮤지션의 시야를 터주기 위 해 중간 부분을 잘라내야 했어요. 남은 윗부분은 32mm 철근이 잡고 있는 형태죠. 위에서 인장력으로요. 큰 힘을 받는 게 아니라서 없애 버려도 구조적으로 문제가 되진 않지만, 결과적으론 조형적인 요소로 작용을 하게 되었어요.” ⓦ “삼청동 재스스토리와 연관성은 없나요? 비슷한 분위기라던가, 재료의 사용이라던가.” ⓦ “입구 부분은 나중에 보완을 한 건데, 아무래도 삼청동의 기억을 갖고 찾아오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입 구에서는 예전 느낌을 많이 주려고 했어요. 정형적이지 않은 차양과 창문들, 그리고 기둥…. 차운기 선생님 은 기둥을 하나 기울여도 남다른 느낌으로 만드셨죠. 나름대로 저는 그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고 있고요. 그걸 말로 설명하거나 수학적으로 증명하긴 어려울 거예요. 몸으로 체화된 거라고 할 수 있으려나? 이건 좀 다른 이야긴데요, 오랜 역사를 가진 훌륭한 도시 환경 속에서 살아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미적 감각 은 분명 다를 거예요. 유럽인들을 보면 이해가 되죠. 우리도 과거에는 괜찮았는데, 아시다시피 근대기를 거 쳐 오면서 맥이 흐트러졌다고 할 수 있어요. 이제부터라도 우리 색깔도 있으면서 보다 진화된 환경을 조성 해 간다면 몇 세대 이후에는 개개인의 예술 감각이 업그레이드되지 않을까요?”

→ 재즈스토리 외부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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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스토리의 1, 2층 연결 계단은 2층 슬래브를 3면만 따내고 그대로 경사지게 내려 앉혀 만들었다. → 뮤지션의 시야를 터주기 위해 중간 부분을 잘라낸 기둥. ↓ 재즈스토리에는 철근이나 구멍 뚫린 공사용 철판이 재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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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스토리 2층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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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연 워크 리뷰 기억을 자극하는 더미 글 장정제(건축 저술가)

고흐의 구두 ⓦ 우리는 경험을 통하여 세계를 바라본다. 그것은 나를 통해 세계에 참여하는 것이다. 나는 신체가 가진 가능성을 통하여 세상과의 단절 과 어둠에서부터 빠져나와 고립을 탈출하고 세계로 다가간다. 그것이 세계의 모습이 되고 그것은 내 의식과 감정과 하나가 된다.

Cafe H-Works, 신교동 주택, 대학로 재즈스토리는 원희연

그러했고, 지난 수만 년 동안 집은 그렇게 지어져 왔다는 점

의 작업과 의식을 보여 준다. 정연하고 조직된 구축물들 사

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건축적이라 불리는 대상들은 모두

이에서 일종의 낯설음과 충격이라 불릴 만큼 자유로운 형태

인간의 손으로 천천히 만들어지고 변화해 왔다. 우리 시대

를 뿜어낸다. 우리 시대가 발전시켜 놓은 건축적인 성과를

에 와서 거대한 아파트 단지와 초고층 빌딩들이 단숨에 세

무시하거나 혹은 현대적 미학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지도

워지고 원하는 모든 집기와 가구들을 구입해서 일순간에 채

모르겠다. 그것이 거칠고 조야하다고 할 수도 있고 세련되

워 넣을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과연 이러한 삶을 풍

지 못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삶의 과정이

요롭게 만드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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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기와 하나가 되는 건축

국한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건축은 그보다는 한 차원

인간은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고 개척하고 변모시켜 왔다.

높은 세계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을 통해 만들어

더 빠르고 더 튼튼하고 더 크고 더 세밀하고 더 편리하게 진

진 역사이다. 시간을 통해 누적된 역사이기에 무시할 수 없

보시켜 왔다. 문명은 삶의 시간을 바꾸어 왔고 간혹 인간이

는 가치와 판단을 녹여낸다. 그러므로 살아가는 사람과 하

스스로 견뎌내기에도 벅찰 만큼 빠르게 변화한다. 하루를

나가 되어가고, 집은 그 곳에 머물고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

24시간으로 구분하고 분과 초로 나누어 생활하게 만들어 냈

의 이정표이고 반드시 돌아가는 곳이며 휴식처가 된다. 그

다. 생각해 보자면, 삶의 속도는 언제나 몸과 자연의 변화에

리고 기억의 중심이 된다. 집으로부터 삶이 시작되고, 마을

맞추어져 있다. 계절이 변화하고 식목이 잎을 내고 꽃을 피

과 도시는 집으로부터 그려지는 마음의 지도를 얻게 된다.

우고 열매를 맺고 해가 가고 생명이 잉태되고 태어나는 변

그러므로 건축물을 단지 구조물이라고 여긴다면 어떻게 정

화를 기초로 한다. 농부는 작물이 자라기를 기원하지만 스

신적인 의미와 삶의 기억을 담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건축

스로 열매를 만들 수도 더 빨리 추수할 수도 없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짓기, 삶을 위한 짓기가 아닌가?

살아간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 에게 건축은 자신의 시간

집에서 무엇을 했고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가족과 어떠한

에 맞추어져 가고 스스로 건축물과 하나가 되고자 한다. 그

축하를 했는지, 아버지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소소한 집

러한 면에서 보자면 원희연의 작품은 그 건축주의 생각과 잘

기들은 어떻게 구입했고 어디서 가져 왔는지…. 그 하나하

맞추어 작업을 진행한 흔적이 있다. 구석구석 눈에 띄는 곳

나의 기억이 건축을 일상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므로 산

마다 손으로 시간을 통해 만들어 내면서 건축물이 살아가기

다는 것은 집을 만들고, 집을 만든다는 것은 삶의 소소한 이

와 하나가 되도록 하는 방법을 시도한 도전이라고 할 것이

야기를 통해 성장한다. 단지 거실은 티브이를 보고 대화를

다. 우리 모두가 공장에서 순식간에 만들어진 건축 자재를

하는 곳이 아니라 손자가 뛰어 놀던 기억과 조그만 화분에

현장에서 조립하며 세워지는 건축물에 익숙해 있다. 그러한

생기 있는 꽃으로 향기를 기억토록 하여 나의 거실이 된다.

집을 사고 팔며 빌려 가면서 삶을 유지한다. 그러한 방식에

그것이 건축물을 구조물이 아닌 사건과 기억으로 만들고 삶

익숙해 있는 동안, 원희연은 나름의 방식으로 건축이라는

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집을 얻는 일은 단지 만들기가 아니

작업이 가진 본질적인 의미에 가까이 접근해 있다고 평가할

라 우리 삶 자체와 이어져 있다.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집을 소유한다는 것이 어려운 시점 집, 세상의 중심

에서 스스로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묘한 현실이 되고 마음에서 먼 일이 되고 만다.

건축은 집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집을 얻는다는 것은 내가

물론 집을 스스로 짓고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산업 사

머물 곳을 얻는 것이다. 원희연은 그것을 알고 있는 셈이며

회의 생산물이 아닌 개개인의 수작업으로 구축하기 때문

그러한 작업을 통해, 집이란 무엇인가를 담고 가꾸는 것이

에 세련되거나 미학적으로 완숙하다거나 디테일에 정교함

고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든다는 것을 보여 준

을 따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옥을 편히 느

다. 그는 건축이 아닌 삶의 방식을 만든다. 어떠한 방식을

끼고 그리워하고 그 안에서 평온함과 여유로운 삶을 교감하

얻고 이해하는 것이 모두 길을 얻는 것이다. 길을 찾는 것이

듯이 건축은 형태로만 따지기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인정

다. 우리는 길을 잃었다고 말하지만 정작 잃은 것은 나 자신

한다면 원희연의 건축은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

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길을 찾는다는 것은 나

기를 만드는 작업이라 할 것이다. 그것은 ‘짓기’라는 말에

를 찾는 것이다. 삶의 방식을 찾게 한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어울리는 작업이다.

것, 그리고 그 집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깨닫고 이해할 수 있 게 돕는다. 어둡고 멀고 답답하고 알 수 없는 그 무엇에서

건축, 삶을 위한 짓기

부터 나를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축을 한다는 것은 일을

건축은 짓기이다. 세상을 만들고 나를 만드는 과정이다. 그

도모하고 생각을 한다는 것이고 삶의 방법을 얻는 노력이고

렇지 않았다면 건축은 단지 감각과 소모를 위한 노동으로

내가 나아갈 길을 찾는 것이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나와 나

51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의 삶, 나의 가족, 나의 세계를 짓는 것이다. 원희연의 작업

집은 단지 공간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며 무엇인가를

이 건축주에게 환영 받는 이유도 그것이리라.

통해 형식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는 작업들이다.

우리는 모두 집에서 산다. 나를 안아두는 곳, 몸이 쉬고 마음

모든 짓기는 인간의 노력으로 손으로 직접 만들어져 왔다.

이 머무는 곳, 바로 집이 된다. 내 부모가 있고 가족이 있고

그러므로 짓는다는 것이 인간의 오래된 역사가 아니고 무엇

아내가 있는 곳. 나의 자식과 그 먼 자식들도 머물고 위안을

이라고 할 것인가? 그렇게 해서 건축은 매우 거대하고 힘

얻는 곳이기도 한다. 그곳이 집이기에 우리는 반드시 되돌

겹고 전문가의 작업으로 치부되어버리기보다는 반드시 삶

아온다. 또 되돌아간다. 왜냐하면 몸과 마음과 생명 그리고

의 본질에 다가가야 하고 일상의 부분으로 접근해야만 하

삶이 집에서부터 시작되고 또 세상 모든 곳의 중심이 되기

는 숙명을 가진다. 짓기는 건축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나와

때문이다. 그러한 곳이 바로 집이다. 그곳이 집이기에 우리

내 삶을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축이 디자인으로 국한되

모두는 그 안에 담기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기를 이해하

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는 창조력의 발로에 그치지 않는 이

기에 집을 단지 먹고 자고 쉬기 위한 가족의 공간으로만 이

유이기도 하다.

해할 수 없고, 단순한 구조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곳은

그렇게 보자면 우리 시대에 많은 건축가들은 지금으로부터

세상의 중심이 된다. 나의 생각과 삶의 중심이 된다.

100년 전부터 있어 왔던 문제에 여전히 직면하고 있는 것이

집이 있고 나서 밖이 생겨난다. 집으로부터 집 밖의 세상이

다. 손과 몸의 예술과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기계 미학의 충

결정된다. 그래서 집을 얻는 것이 세상을 얻는 과정이 되는

돌 이후에 모두가 잊어버린 문제이다. 원희연의 도전(?)은

이유이다. 집 안에서 나는 대기업의 회장도 아니고 선생님

건축을 예술로서 삶의 짓기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들이

도 아니며 박사도 식당 주인도 아니며 다른 지위도 갖지 않

예술이라고 일컫는 것이 감각에 호소하고 가치에 다가가고

는다. 나는 집에서 단지 가족의 구성원일 뿐이다. 살아가

자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기의 주인공이 된다. 그러하기에 그러한 집을 건축가만의

수많은 분야들은 점점 일상에 가까워지고 있고 그것이 삶과

생각이 아니라 집 주인과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눈다는 것

하나가 되어가기에 가능한 것이다. 예술은 삶 속에서 풍요

이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하자면, 집은 단지 형태도, 아파

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것이 물질적이든 혹은 정신적이든,

트도, 사고 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건축가는 단지 그러한

아름다움이든, 정서이든지, 감각이든지, 경험이든지, 더 고

가능성이 있는 곳을 열어두는 것이다. 그리고 건축주는 그

상한 미학이라는 단어로 치장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

와 교감하여 자신이 원하는 삶과 존재를 위한 터를 얻는다.

과 삶 전체의 풍요로움을 위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짓기이다. 그렇게 보자면, 원희연의 건축 작업

현대 건축의 다양한 미학적 감각과 표현들은 그러한 통로가

은 짓기이다.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고 세상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더욱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에 강력한 표현의 도구가 된 짓기로서의 원희연의 건축 작업

것이다. 진정한 예술은 이 세계를 가치 있게 하고 아름답게

집을 짓다. 옷을 짓다. 글을 짓다. 독을 짓다. 노래를 짓다.

하며 우리 자신의 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감각의 작

밥을 짓다. 농사를 짓다. 이야기를 짓다. 그러므로 짓는다는

은 차이와 관심 그리고 반응으로 깨어나는 감정이 세계를 바

것은 그 어떠한 것보다도 먼저 만들기의 시작이 되었다. 짓

꾸어 주지만, 아마도 맨 처음 이 세계를 경외하고 느끼고 살

는다는 것은 그래서 단순한 만들기 이상이고 우리 삶을 지탱

아있게 했던 고대인들과, 우주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깨달아

하는 의식주, 종교적 믿음, 세계의 질서에 연결된다. 짓기는

왔던 위대한 선조들은 스스로 삶을 만들고 짓는 동안 풍부

모두 삶과 의식주와 종교적 믿음과 세계와 나를 짓는 것이

한 삶을 누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완전한 산

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해야만 하는 것을 존재토

업사회의 결과물이 되어야 하고 치밀한 구성물이 되어야 하

록 하는 것이다. 짓기를 통하여 참다운 존재가 생겨난다. 결

는 것은 아니다. 그래야만 한다면 우리는 고향인 시골에 갈

국 집을 짓는다는 것은 인간 스스로를 짓는 것이 된다. 그래

때마다 실망만을 느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반대로 기억과

서 원희연은 예술을 하고 세상을 만들고 집을 짓는다. 그의

평안함을 얻는 것은 집이 시간의 기억 속에서 만들어지고 집

52 Wide Work 무규칙 토종 건축가의 계보를 잇는 원희연 Won Hee Yeon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를 그려 내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은 구조물이 아닌 탓이다.

공간을 드러내거나 형태를 구체화하거나 시공상의 편의를 소소한 손의 흔적들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스스로 짓기 위한 것

원희연의 작품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손의 흔적이 그러한 모

임을 이해할 수 있다.

습을 대변한다. 거칠지만 자유롭고 흥미로운 감각을 선사한 건축가의 작품? 노, 건축주의 집      

다. 그러한 손이 가진 흔적은 작가가 어떻게 재료를 선택하 고 다듬고 만들었는가를 연상시키고, 그의 땀과 노력 그리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현대적인 건축 디자인의 프로세스를

고 짓기의 과정을 훤히 드러내 보여 준다.

따라서 지어진 건축물이 아니다. 그 스스로도 그러한 방식

그의 작업은 도시의 수많은 건축물처럼 어딘가에서 기계가

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건축물을 원하는 사람과 건축하는

단숨에 만들어 놓은 재료들의 조합이 아니라, 분명 그가 재

사람이 완성된 결과물을 얻는 것이 아니라 건축하기, 짓기

료를 굽히고 자르고 덧대고 흙을 반죽하고 손으로 만들어 놓

를 공유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건축물을 세우기 위하여

았음을 보여 준다. 작은 파편과 정교하지는 않지만 통일된

그들의 정서가 개입되고 짓기의 과정 속에 스스로의 생각

형태의 노력에서, 자유롭게 기울어진 창틀 하나하나를 짜맞

과 이해 그리고 살아가기가 함께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건

추었으리라는 기억을 떠올리게 하 고 새로운 기대를 만든

축주들이 원희연의 작업이라고 이야기하기보다는 함께 작

다. 화장실 바닥의 타일을 마감하는 데에도 원래의 재료를

업하고 공유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고, 서로 대화하고 자

하나하나 깨어 조각마다 어울리도록 이어 붙여 그림을 그려

신들이 가꾸는 집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그 집들은 자신

놓았음을 알 수 있다. 둔탁한 각재를 일일이 조각으로 잘라

들의 집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다. 단지 건

하나씩 쌓아 올렸을 것이고 철근을 굽히고 철사를 꼬아 한

축디자인을 하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의 작품이라고 생각하

가닥씩 묶어 손잡이와 난간을 만들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

면서 간과한 부분이다. 그리고 완성된 이후에도 함께 필요

므로 그 집에 담긴 기억은 그곳에서 사는 이로 하여금 더 풍

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변화시켜 나간다는 점이다. 그가 가

부한 기억과 느낌들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진 강점은 모던한 아름다움을 드러낸 여느 도시의 건축물

모두 만족하고 행복해 하는 것이다. 더 매번 즐겁고 그 안에

이 아니라 건축주와 함께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건축이 필

서 일어나는 일과 시간이 몸과 감각에 닿아 행복한 삶의 기

요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충족시키는 방법이다. 살아가면

억이 될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서 짓는 것이다.

그의 스케치는 치수와 예리한 선으로 그려 프린트해 낸 도

생각해 보면, 일상을 풍부하게 하는 모든 인간의 노력들이

면이 아니다. 그가 생각하고 그려낸 것, 하나하나의 공간과

드디어 예술이 되지 않았는가? 요리, 꽃꽂이, 장신구, 가구,

집기들 그리고 건축의 부분들을 그림처럼 다듬고, 조각처

주방기기, 악기, 화분, 서예, 자동차, 열쇠, 신용카드에 이르

럼 깎아 내고 조형물로 만들기 위한 밑작업처럼 보인다. 물

기까지…. 전통적인 예술을 넘어서 거의 모든 인간의 활동

론 많은 건축가들이 그들의 작업들을 마찬가지로 스케치하

이 예술이 되어가는 세계가 되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예술

지만, 그것은 무엇인가를 짓기 위한 스케치가 아니라 건축

이 삶을 풍부하게 하는 모든 활동에 깃들어 있었고 그것이

구조물을 만들어 내기 위한 효율적인 과정으로 국한되기 쉽

본질임을 의미한다. 원희연이 선택한 재료와 형태는 그러한

다. 도면 작업을 한다는 것의 전제는 창조할 대상을 미리 구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노력이다. 부분들은 전체의 일부로서

체화하는 것이 첫째이고, 두 번째는 그것을 만들기 위한 방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매력을 지닌다. 각각은 독립

식을 얻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직접 제작하지 않고 시공자

적으로 존재한다.

에게 자신의 의도를 잘 전달하기 위한 작업이다. 그렇기에

신교동 주택에서 현재 거주하고 있는 건축주는 그 공간이 가

건축 제도 통칙을 만들고 그에 따라 수많은 기호와 치수를

진 느낌들을 소소히 이야기해 주었다. 출입문마다 율동적으

기입한다. 원희연의 스케치는 캐드 작업을 위한 준비가 아

로 꿈틀거리는 콘타의 형태와, 손잡이마다 살아 있는 듯한

닐 뿐더러 그대로 작업을 위한 밑그림이 되고 자신 스스로

감각이며 기울어진 창이 매번 새로운 시선을 이끈다고 이야

53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기했다. 어디 하나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고, 그것이 손으

클어지고 미완의 것으로 판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완이

로 만들어지고 정성 들여 치장되었음을 보여 준다. 말 그대

라는 가능성이 언제나 우리 스스로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

로 용이 움직이듯이 드러난 용골과 이리저리 뻗은 횡재들이

를 남기는 것도 사실이다. 철근을 노출시키고 수평 수직을

공간을 움켜잡고 있고 가끔은 무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벗어나고 덩그러니 매단 기둥과 기울어진 창들이 그에게 질

고 했다. 곳곳을 설명하고 건축주가 가져온 느낌을 이야기

서란 갑갑한 틀처럼 여겨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우리

해 주었다. 소소한 부분에까지 손이 닿아 있고 그것을 바라

가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매번 재확인하고 싶어하고 그러한 삶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처럼 많은 이야기를 선사한다

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새로운 것을 찾는다는 것을 우화적

면, 그것 이상의 건축은 없지 않은가? 그것은 장인적인 건축

으로 확인시켜 준다.

이다. 만들기의 주인공이 되고 마스터가 된다는 것이다. 단 예술과 디자인

지 작업뿐 아니라 그 작업과 관련되고 나아갈 삶의 방향과

손으로 만들기는 이미 유럽의 수공예 운동 그리고 독일공

내용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작연맹의 시대 이후에 모두가 부지불식중에 포기한 작업들 우연과 무질서와 가능성

이라고 할 것이다. 원희연의 작품은 표준화되고 일반화되

모든 짓기는 정서와 감각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단지 아름

고 기준화된 정교한 산업사회의 결과물은 물론 아니다. 그

다운 선율과 색채, 형태와 동작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공유

러나 이미 밝힌 대로 예술(藝術)은 짓기로부터 시작한다.

하는 삶의 기억을 나누는 것이다. 고흐의 낡은 구두가 선사

예(藝)는 나무를 심는 모습으로서 예(埶)와 풀(草)이 합해

하는 아름다움은 단지 색채와 이미지적 표현만은 아니다.

져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그래서 예(藝)는 풀과 나무를 심

고흐의 구두. 몸으로 겪는 세계. 몸으로 느끼는 세계. 시간

는 재주를 뜻한다. 그것은 대지를 가꾸고 농사를 짓는 재주

을 통해 남겨지는 세계를 감각하도록 한다. 안다는 것은 나

를 뜻한다. 술(術)은 행(行)과 출(朮)이 합해져서 만들어진

를 더 넓은 세계에 펼치고 이해하도록 만든다. 구두는 낡고

다. 행(行)은 길이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출(朮)

엉클어진 누군가의 구두가 아니라, 그렇게 낡고 오래되었을

은 길, 사업, 기교, 재주를 의미한다. 즉 몸을 움직이고 길

구두를 바라보면서 내가 겪었고 기억하는 고통과 노동을 연

을 찾고 방법을 찾는 방법, 술수, 길을 의미한다. 그렇게 보

상시킨다. 그러한 기억을 통해 얻어낸 정서와 경험이다. 그

자면, 오늘날 예술이라 부르는 말의 오래된 의미는 내가 무

러므로 그 구두에 내 감각과 기억이 함께 개입한다. 그것은

엇인가를 얻기 위하여 자연을 가꾸고 몸을 움직이는 방식

내 몸이 만들어 내고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 재주를 의미했다. 그것은 삶을 얻는 방식이고 스스로 만

주변에서 흔히 발견하는 매끈하고 세련된 현대의 여느 집들

들어 내는 것이다. 그것이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가 아니겠

이 훌륭한 집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원희연

는가? 그리고 이 땅에 도시를 만들어 낸 개발업자와 건축가

의 작품은 기억을 자극하는 더미들이다.

가 아니라 스스로 삶을 가꾸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

원희연의 작품에서는 스스로 짓기를 전제하기 때문에 수천

의 손으로 집을 짓고 가꾸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들 아

년간 건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대표적인 가치들은 사

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그 오래 전부터 모두가 그렇게 집을

실상 무의미하다. 통일된 조화와 균형 그리고 세밀함과 완

지어왔지 않은가?

전함을 찾는 것은 어리석다. 그의 작품은 세계를 질서 속에

디자인은 대량 생산을 목적으로 하고 표준화된 기능을 요구

서 규정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대부분의 시각

한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의 윤리와 삶을 요구하

을 벗어난다. 그 안에서 찾는 것은 바로 우연이고 무질서이

고 동일한 생활 방식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수백 수천의 가

며 가능성이다. 따라서 경험은 매번 새로워지고 공간은 가

구들이 동일한 아파트에서 단지 몇 동 몇 호라는 구분 속에

늠할 수 없게 풍부해진다. 그가 보는 건축은 어디에서나 반

서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동일한 삶을

복되는 동일한 것을 벗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사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러한 양상은 차이를 위한 건

느끼는 감각을 새롭게 구성한다. 또 다른 눈으로 보자면, 엉

축문화는 아닌 것이다. 그 차이를 발견하는 사람들에게 건

54 Wide Work 무규칙 토종 건축가의 계보를 잇는 원희연 Won Hee Yeon


축은 자신의 삶에 결부되고 몸과 손에 닿게 된다. 그렇기에

살리지 않는가? 그리고 그것을 지켜온 소수만이 역사를 대

원희연과 같은 작가의 작품을 받아들이는 건축주가 존재한

변하고 결국 전통이 되지 않는가? 문명을 비하하는 것은 아

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많은 건축적 양(量)을 실현시켰 고 이제는 질(質)적인 성장을 필요로 하는 시기다. 폭넓은

독자적 건축으로서 원희연 작업의 가치

시각으로 보자면, 산업사회의 대량 생산은 자본주의와 도시

이 시대의 건축물을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일 수도 있지만,

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실용성과 기능주의가 필요한 것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문화(文化)에 관하여 놓치고 있

이, 수많은 시민들이 계급을 타파하고 평등이라는 이데올로

는 문제일 수도 있다. 건축하기가 문명인가 혹은 문화인가

기 앞에서 수백 수천의 사람들을 위한 표준화된 전략이었기

에 대한 문제이다. 오늘날 건축은 인간의 삶을 급격히 바꾸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세계는 민족과 국가가 주체가 아닌

어 놓고 있다. 그것은 기술이 가져온 승리이고 합리화와 근

개인의 문화를 존중하는 자유를 우선하는 세계로 변화하고

대화의 결실처럼 보인다. 그러한 세계의 변화는 우리가 산

있다. 개개인은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개인의 삶은 개별적인

업화와 기계적 근대화를 바탕으로 하고 자본주의의 뿌리를

가치를 얻는다. 이 시기에 남겨진 역할은 우리 자신의 것을

둔다. 여기에서 우리는 새로운 차이를 발견한다. 지금까지

찾는 것이고 그러므로 다양성을 얻는 과제가 남았다.

우리가 추구한 바가 문화가 아닌 문명의 징후들이라는 것이

그러한 의미에서 원희연과 같은 작가의 작업들이 나름의 가

다. 문화는 말 그대로 사람들(人)과 사람들(人)사이에서 생

치를 얻는다고 하겠다. 우리는 모두 기억을 통해 삶을 이해

겨난 삶의 양식 혹은 무늬(文)이다. 그러므로 문화는 일순

한다. 기억이 없다면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기억을 더듬

간에 일어날 수 없다. 그것은 사람들과 사람들이 함께 공유

고 정서를 나누는 작업은 새롭고 현대화된 건축물, 이미 작

하고 시간을 통해 만들어 낸 삶의 양식이다. 그래서 문화(文

가의 결정에 따라 모든 것이 완성된 구조물에 자신의 삶과

化)가 된다. 문화의 화(化)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

몸을 맞추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원희연과 같은 작가와 그

는 형상이기 때문이다.

러한 작업을 나누는 건축주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경험

우리 시대의 대부분의 건축개발은 거대한 택지를 조성하고

과 작업을 공유할 수 있다. 그러한 기억은 이야기가 될 수

길을 내고, 순간에 어마어마한 집들을 짓는 것으로 이해된

있고 시간을 통해 역사가 된다. 살아가는 사람의 정서와 하

다. 그리고 그에 관한 모든 법률을 만들어 내는 순간, 도시

나가 되어 추억이 되고 드디어 삶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집

는 사람들로 들어 찬다. 그것은 문명이다. 문화가 아니다. 그

이 아니겠는가? ⓦ

렇기 때문에 그곳에서 오래 동안 밭을 일구던 노인이 새로 생긴 4차선 도로변에 경운기를 세워 두고 가로수 밑에서 낮 잠을 즐기는 것이다. 수십 년간 그렇게 살아 왔기 때문이다. 그것을 잘못된 일이라고 여기거나 교육이 부족하다면서, 몰 아내는 동안 시간과 장소의 기억은 사라지고 만다. 그렇기 에 거대한 도시 문명을 세운 많은 나라들이 자신들의 전통 과 오래된 역사를 아끼고 가꾸는 것이 아닌가? 다시 찾고 되

장정제는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및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쳤다. 『자유로운 건축 개 념의 구조로서 건축』(시공문화사 刊) 외 다수의 저술과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및 한양대학교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55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원희연의 건축에 주목하는 이유 그로부터 며칠 뒤, 이야기의 보완을 위해 궁정동의 공사 현장에서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다. 살림집과 작 업실을 겸하는 본인의 집을 인테리어 공사하고 있다고 했다. 쓰임새에 맞게 정리된 연장들과 온갖 폐자 재들로 목수의 작업장을 연상시켰던 성곽 너머의 전망 좋은 집을 놔 두고 이젠 이 복잡한 도시로 편입 하려는 건가 싶어 못내 아쉬웠다. ⓦ “일단은 시작해 보려고요. 1999년부터 지금까지 많은 작업을 했지 만, 그저 닥치는 대로 일만 했던 것 같아요. 이젠 데이터들도 정리해서 체계적으로 디테일화시키는 일도 필요한 것 같고…. 아무튼 웅크렸다가 새롭게 나가려는 시점에서 저를 찾아오신 거예요.” ⓦ 그는 건축 사 라이센스가 없다. 그 동안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기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저 좋은 스승 밑에서 배 우기에 열중하고, ‘몸으로 겪는 집’을 몸으로 짓는 과정 속에서 소위 경력 관리를 제대로 못 했을 뿐이 다. ⓦ “건축사 라이센스요? 뭐, 불편할 때도 있지만 방법이 없으니…. 길을 찾아 봐야겠죠. 현장 작업 을 하다 보니까 시간이 없어요. 경제적인 여유도 없고. 할 수 없이 아파트, 냉면집 인테리어 등등 가리 지 않고 일을 했죠. 이젠 좀 하고 싶은 것 위주로 하려고요.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작업들, 실현 안 되더라도 스케치나 모형으로 연구 작업 데이터를 만들어 놓고 싶어요. 조각도 하고 그림도 그릴 생각이 고요. 아마 전시도 할 수 있겠죠? 종합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으려나?(웃음) 참, 새로운 작업을 보여 드 리려면 클라이언트도 찾아 다녀야 하는데….(웃음)” ⓦ 고백 하나. 제도권 교육과 규범화된 건축이 쌓 아 온 강박증 안에서는 원희연의 건축에 주목하는 이유, 즉 ‘균질화되지 않은 독특한 방식의 건축을 찾 아 나선다’라는 사뭇 비장한 명제도 불안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결국 무엇이 건축이고 또 무엇은 건 축이 아닌가? 란 물음에 닿고 말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를 만나는 동안, 이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서라도 그처럼 낯선 방식으로 건축하는 이들이 필요하고, 그들을 자꾸만 수면 위로 드러내야 한다는 믿 음은 점점 확고해졌다. 무모함 속에 깃든 위트, 동화적 상상력으로 덧입힌 솔직함, 그것을 통한 즐거움 과 위안, 무엇보다 몸으로 만드는 삶의 터전…. 그의 작업에서 건져 올린 언어들이 새롭게 출발하는 공 간 안에서도 흔들림 없이 여전하기를. ⓦ 글 | 정귀원(본지 편집장)

↙↓ 원희연의 스케치들.

56 Wide Work 무규칙 토종 건축가의 계보를 잇는 원희연 Won Hee Yeon


와이드 이슈 1

젊은 건축가 상을 말하다

프롤로그 | 젊은 건축가 상에 대한 두 가지 견해 인터뷰 | 젊은 건축가 상이 주는 것들 올해로 세 번째 젊은 건축가 상 공모가 시작되었다. 건축계는 과거 새건축사협의회 신인 건축상이 문화체육관광부 주최의 젊은 건축가 상으로 바뀌면서 특히 공감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국가 공공 자원으로 건축과 건축가를 배양하겠다는 취지와 문화적인 측면에서 건축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젊은 건축가 상은 작년 한 해 20여 명의 지원자가 있었으며, 점차로 선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젊은 건축가 상은 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건축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또한 주목을 받고 있다. 다만 시행 초기에 일어날 수 있는 오류나 문제점보다는 현재의 사회 제도와 체제 속에서 시행의 한계가 있지만, 그러면서도 젊은 건축가 상은 계속 진화 중이다. 이 란은 젊은 건축가 상의 진화와 수상자들의 건축가로서의 진화에 관한 이야기이며, 젊은 건축가들의 사고와 말이 아닌, 현재 그들의 행동과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2008, 2009년 수상자 일곱 팀(김현진, 신승수, 유현준, 임도균+조준호, 임지택, 조한, 최성희+로랑 페레이라)과 조금은 다른 풍토에서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는 뉴욕 젊은 건축가 상의 한국인 수상자 양성구, 양수인 씨가 동참했다. 진행과 글 | 강권정예(본지 객원기자) 사진 | 해당 건축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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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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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 1

인터뷰 ▶ 젊은 건축가 상이 주는 것들

으로 가장 빨리 변화시키는 것은 정책

결국엔 싼 값에 좋은 것을 제공하는

입니다. 젊은 건축가 상이 그런 통

인 것 같아요. 그게 갖춰지지 않으면

사람이 이기는 것입니다. 이 구도에

로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생각

허황된 얘기라는 생각이고, 제 경험을

서 경쟁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

합니다.

밑천으로 제가 할 수 있는 것 또한 제

정해야 합니다. 저는 경쟁을 할 수 없

도적이고 정책적인 구조를 만들고 조

다고 생각해요. 그 경쟁은 이미 대기

*이 인터뷰는 여러 상황에 따라 대면

직하는 것일 겁니다. 사무실이 또 그

업에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법은

인터뷰와 서면 인터뷰를 병행하면서,

것을 표방하고 있고요.

거기서 나오는 거에요.

모두 개별적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인

제 경우는 항상 프로젝트마다 어떤 가

건축가를 전문가라고 하지만 전문 지

터뷰이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좀 더 효

능성을 만들어줄 것인가로 관심이 이

식도 부족하고 또 그만큼 정당한 요

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공통된 주제

어지는데, 그러려면 한계 상황을 정확

구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노력

로 재구성하였으며, 압축하는 과정에

히 아는 게 중요합니다. 프로젝트를

을 잘 하지 않습니다. 사회에 헌신하

서 과감한 편집이 있었음을 밝힌다.

통해 굉장히 싸게 짓는 공법을 연구한

고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는 노력이 필

다면 빌딩 코드, 법과 제도 같은 것을

요합니다. 할 수 있으면 젊은 세대 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구요.

축가들 중심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에

임지택 ▶ 실천적인 방안을 찾자면 사

서 내려와서 사회와 소통하는 구조 속

실 굉장히 어려운 문제인데요. 우리나

으로 들어가는 게 필요하지 않나 하는

라의 경우 자본주의 체제와 자유경쟁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축가

체제로 완전히 돌입을 했잖아요. 이

들끼리 얘기보다는 사회가 어떤 얘기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경쟁을 공

를 하는지, 말을 들어주는 게 필요하

정하게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고, 사회에 대해서도 얘기해야 할 것

정진하고 있다. 첫 주택설계 작품 고질라로 2009년 서울시 건축상, 한국건축가협회 엄덕문 상, 문화체 육관광부 제 2회 젊은 건축가 상을 수상하였고, 2010 하버드 대 한국건축특별기획전에 참여했다.

고질라, ⓒ Nils Clau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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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섀크, ⓒ 박완순

wIde Issue 1 : ‘젊은 건축가 상’을 말하다


와이드 이슈 2

제7회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 리뷰

이 슈 2 ⓦ

배다리, 천(千)개의 아이디어

수 상 작 리 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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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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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 2

제7회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 리뷰

배다리, 천(千)개의 아이디어

수 상 작 리 뷰

지난 수년간 인천 배다리 지역 주민들은 마을의 한복판을 관통하는 산업도로 건설 공사 저지를 위한 고단한 삶을 보내야 했다. 중구 개항장 일대가 일본과 중국 및 서구 열강들에 의해 근대도시의 풍경으로 조성된 곳이라면 배다리 일대는 우리 선조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근대의 시가지를 형성한 곳이란 점에서 이란성 쌍둥이로 평가된다. 바로 그 마을이 산업도로 건설로 인해 두 동강이 나버리고 만 것이다.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과 지역사회의 응원에 힘입어 산업도로는 지하화 하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배다리는 상처 난 공간의 회복과 역사문화마을로 거듭나기 위한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 올해의 도 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은 이 같은 정황의 배다리를 계획 대상지로 하여 전국에서 몰려든 건축과 도시, 조경 관련 학과 대학(원)생 1,000팀의 아이디어가 결집되었다. ⓦ 글 | 전진삼(본지 발행인)^자료 제공 | 도코모모 코리아 사무국

팀, 총 3천 명을 웃도는 대학생들의 눈과 가슴을 통해 공동

공모전, 지역 주민과 만나다

의 화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공모전은 사건이라 할

72

처음에 배다리 지역 주민들은 도코모모 코리아(회장 김종

만했다. 저간에 지역 주민들이 고투했던 흔적만 있을 뿐,

헌)가 진행하는 디자인 공모전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

인천 전역에서조차 관심을 끌어내지 못했던 것에 비한다

다. 당연히 대학생들의 아이디어 공모전이 현실 참여적이

면 금번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의 집단적 배다리

기보다는 세련된 구호 그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점도 그

연구는 그러한 행태 자체만으로도 큰 수확이며, 학생들의

들은 알 턱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재하는 대지와

시선과 작업의 결과물은 내용의 밀도와 관계없이 집적 효

건축물을 대상으로 벌이는 대학생들의 디자인 공모전을

과의 극대화를 꾀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유의미했다.

통해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적 시각을 광범하게 공유

지난 여섯 번에 걸쳐서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은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심리가 저들의 가슴에 자리 잡는

근대 건축으로서 단위 건물의 보존과 활용 방안을 모색하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만큼 오랜 세

는 주제를 학생들에게 던진 바 있다. 그에 비하면 금번 공

월 살아온 고향에서의 거주할 권리를 지켜 내기 위한 절박

모전 주제의 경우, 도시 설계와 단지계획, 조경과 건축, 문

함이 있었고, 이미 수년 전부터 반복되어 온 건설 행정과

화 공동체 연구, 마을의 보존과 개발 방식 등 매우 폭 넓은

의 충돌 과정에서 공동체 보존론의 허약함을 메워 줄 그럴

프리즘을 요구하는 복합적 프로그램의 해법을 주문했다.

듯한 그림 자료가 필요했다. 그것이 대학생들의 작업 결과

학생들로서는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대상지였다. 그런 까

물이라 할지라도 허공에 대고 내뱉던 지역 주민들의 몽유

닭에 공모전을 준비해 온 집행부는 학생들의 신청 접수 단

도원도보다는 훨씬 세련되고 조직화된 도면들이 될 거라

계부터 응모작을 열어 보기 직전까지 내내 불안을 감추지

는 점에서 한껏 기대에 부풀 수 있었던 것이다.

못했다. 그러나 신청 접수 마감 결과 이 공모전을 향한 뜨

그렇다면 디자인 공모전의 결과가 지역 주민들에게 큰 힘

거운 열기가 변함없음이 드러났고 심사 과정을 통해서도

이 되었을까? 전술했듯 공모전 과정을 통하여 배다리의 현

응모자들의 예리한 시선과 제안된 내용의 높은 수준으로

안과 역사와 문화적 단층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1천 여

말미암아 앞의 전제들이 기우였음을 주최측은 공개적으

wIde Issue 2 : 제7회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 리뷰


이 슈 2 ⓦ

로 사과했다. 학생들의 열정이 일궈낸 값진 결실은 한동안

발 조짐을 익히 알고 보상비에 눈독을 들인 외부 투기 세

인천의, 배다리 지역 주민들에겐 그 무엇보다도 값진 선물

력의 비호 아래 개발은 바람을 타고 있었다.

로 작동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마을을 수호해 온 대지의 정령들이 봉기를 한 탓인지 지역

실제로 배다리 역사문화마을만들기위원회가 초청하는 형

내 대안 미술 공간의 코어 역할을 해 오고 있던 스페이스

식으로 제7회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의 수상작

빔(대표 민운기)의 <도시유목 프로젝트(2007)>가 이 동

일부가 배다리 지역 내 스페이스 빔 전시장에서 7월 2일

네를 경유하게 되었고, 그 사이 주민들과의 만남이 촉매가

부터 2주 간 연장 전시에 돌입했다. 학생들의 이상적인 공

되어 건져 올린 행위의 우연성이 이 마을의 위기를 세상에

모전 성과를 현실 세계의 이야기로 번역하고픈 지역사회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 마을

의 간절함이 묻어나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같

은 사람들의 관심밖에 머물며 아주 조용히 근대도시 동네

은 마을 초청 행사를 두고 학생들의 순수성을 정치적 목적

의 이미지 창을 지워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으로 덧입히는 것 아니냐는 색깔론을 우려하는 시선도 없

다행한 것은 일찍이 이 마을의 잠재 가치에 눈을 뜬 소수

진 않은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특히 도코모모 코리아 집행

주민들의 존재였다. 그분들의 마을을 지켜 내려는 올곧은

부 내부의 의사 결집이 힘들었을 터다.

의식이야말로 젊은 예술가들이 행동하게 하는 동력이 되

수 상 작 리 뷰

었다. 예술 작업의 근거지를 배다리로 옮겨 오게 했고, 문 공모전 대상지, 배다리 리뷰

화예술 프로그램을 이 마을의 역사와 전통에 접목시키는 역할을 하게 했다. 마을의 지도를 새로 그렸고, 마을 개방

사실상 금번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의 주제 <배

문화 행사를 정례화 시켰다.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근대

다리, 또 하나의 인천: 삶의 가치와 맥락을 잇다>는 지난

건축물을 중심으로 동네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알리는 데

수년간의 묻지마식 일방향 건설 행정에 맞서서 지역 주민

에 주력했으며, 일각에서는 퇴락한 마을의 주거 환경을 아

들이 벌여온 사투의 현장 상황 즉, 배다리 관통 산업도로

트 작업으로 개선하려는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그 결과

건설 중지의 염원이 바닥에 깔려 있다. 동시에 배다리 일

마을의 곳곳에서 예술의 향기가 묻어나기 시작했고, 남아

부 지역이 편입되어 있는 인천 구도심 재생 사업의 상징성

있던 주민들조차도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마을의 새로운

을 갖는 동인천 역세권재정비촉진지구 설계안에 따른 저

매력에 휩싸일 수 있었다.

항 의지도 띄고 있었다.

3^1독립운동 인천 지역 발상지인 창영초등학교 교정에서

중구청 일대 개항장 연구에 가려져 마을의 역사와 문화가

이 동네의 저항 정신을 각인시킨 명망 있는 지역 안팎 인

크게 주목되지 못한 채 100년 이상의 시간이 누적되어 온

사들의 집단적 응원의 메시지(배다리문화선언)과 함께 인

배다리 일대가 작금의 사회적 관심을 끌어내는 데에 인천

천 출신의 걸출한 인물들이 탄생한 유서 깊은 마을의 역사

시의 배다리 관통 산업도로 건설이 단초가 되었다는 점은

가 새삼스럽게 조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시의

그 자체로 해프닝이자, 아이러니다.

고자세는 수그러들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것

지역 내 어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 지난 6^2 지방선거를 두어 달 앞두고 정치적 선택지로

파헤쳐진 산업도로로 말미암아 이미 배다리는 두 동강이

나마 배다리 일대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고단했

나 있었고, 주민 다수는 보상을 받고 정든 집을 떠난 뒤였

던 주민들의 삶에 일시적이나마 휴지기가 찾아든 것이다.

다. 늘상 개발의 현장이 그러하듯이 발을 동동 구르는 사

인천시는 동인천역 재정비촉진지구에서 배다리 헌책방거

람들은 세입자를 포함한 남아 있는 주민 당사자들 뿐, 개

리 일대를 제척시키는 결정을 내렸고, 동시에 산업도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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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73


이 슈 2 ⓦ 수 상 작 리 뷰

설을 백지화할 수 없다면 지하화하라는 주민들의 절충안

상으로부터 잠재 가치를 발견하는 태도에 기인해야 함을

을 차선으로 선택하기로 했던 것이다.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지금 이 시점의 불

올봄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에 참가하는 응모자

안정한 동네의 모습조차도 누적시킬 가치가 있음을 주장

들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4월 3일, 인천 동산고등학교 강

하고 있음이다.

당)이 진행될 당시 이 같은 정황이 공식화 되었고, 학생들

최우수상으로 선정된 김웅, 소병일, 이광욱(경기대 대학

다수는 암묵적으로 이러한 배다리의 현안을 응시하고 문

원)의 작업 <Urban Bookshelf_배다리, 오래된 책장으로

제점을 찾아내어 풀어내는 차원에서 공모전의 의의를 되

의 여행>은 배다리 일대의 건축 상황을 비판적으로 주목

새긴 양하다. 응모자의 다수가 파헤쳐진 산업도로의 회복

함으로써 개선 방안을 모색함과 동시에 이 마을의 근대 역

과 치유를 위한 아이디어에 집중하고 있음은 그러한 분위

사의 흔적을 드러내기 위한 적극적인 도시 디자인을 제안

기를 여실히 드러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배다리 지역 전

하고 있다. 여러 동의 근대 건축물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체의 역사와 문화에 기댄 보다 다양한 문제의식의 발견과

역사 마을로서의 장소성이 희박하다는 점과 인지성이 불

마을만들기의 참신한 해법을 기대했던 심사 위원들에겐

량한 지하 전통 공예 상가와 몇 개의 서점으로 명맥만 유

당혹스런 결과임에 분명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획

지하고 있는 헌책방 거리의 쇠락한 풍경을 가지고는 장소

대상지를 응시하는 그 같은 학생들의 쏠림 현상이 금번 공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는 점에서 이 팀은 보다 적극적인

모전의 의의를 반감시켰다고는 볼 수 없다. 문제의식을 공

공간 마케팅적 접근을 시도한다. 오래된 도시는 그 자체

유하는 보편적 시선이야말로 향후 배다리의 역사문화마

로 하나의 헌책방과 같다는 컨셉트로부터 출발하여 도시

을만들기의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를 구성하는 각각의 현재 상황을 책장의 속성으로 단순화 시킨다. 결과적으로 주어진 대상지 전체에 메스를 댄 이

천(千)개의 응모작 그리고 문제작 읽기

팀은 마을의 속살을 드러내는 도전적 건축의 장치를 통 해 새로운 얼굴을 지닌 도시의 풍경을 제안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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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작으로 선정된 강준성, 김선아, 김용수(전남대)의 작

이 특징이다.

업 <Hide & Seek in Baedari_배다리 골목에서 만나는 오

우수상 중의 하나로 선정된 권기영, 김대순, 소윤아(인하

래된 풍경>은 배다리 일대에 남아 있는 골목길을 주목하

대 대학원)의 작업 <A 3rd Object_어색한 친숙함이거나

고 있다. 기존 골목길의 담장을 이용한 프로그램 월(wall)

친숙한 어색함이거나…>는 중성적 오브제인 제3의 오브

에 착안하여 배다리 전체를 아우르는 소통과 통합의 장치

제를 개입시킴으로써 배다리에 드리워진 이데올로기 즉,

로서의 도시 박물관을 구상하는 제안이다. 방법적으로는

거대한 계획과 작은 일상의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립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매개로 하여 배다리의 일상과 문

각을 중재하는 건축적 제안을 내놓고 있다. 이 팀은 단순

화가 소통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다 못해 원시적인 흰 집에 주목하여 다양한 크기로 복

또한 파헤쳐진 산업도로 부지는 인공적 치유 대신 자연치

제 및 증식되는 프로그램의 건축을 마을 곳곳에 투입한다.

유 방식의 공공 공간으로 전용함으로써 급격한 도시 변화

그 결과 배다리는 서로 다른 관성으로부터 발생한 충돌을

를 느긋하게 바라볼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 팀의 제안이

완곡한 방식으로 우회시켜 만나게 하는 전략으로 완성된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닐지라도 소통하는(communica-

다. 각각의 크기로 탄생된 흰 집은 비일상적 마을 풍경

tive) 방식의 건축적 고민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

의 재미는 물론 질레르 뒤랑의 인식론에 기반한 극과 극을

롭다. 특히 마을만들기는 새롭게 구축되는 것이기 보다 일

달리는 양분법적 시각의 허점을 비판하고, 제3의 논리를

wIde Issue 2 : 제7회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 리뷰


이 슈 2 ⓦ

개입시킴으로써 양자를 포용함과 동시에 서로 간의 관계

약점인 기존 주민들의 거주 행태에 대한 분석의 취약성에

를 중시하는 다원주의적 시각 제고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도 불구하고 단기적으로 응용 가능한, 재치 있는 생각이

주어진 패널 안에 인상적인 상상의 대지(Imageable Plate-

아닐 수 없다.

수 상 작 리 뷰

au) 논리를 펼치는 이 팀의 제안은 금번 공모전이 수확한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 할만하다.

배다리의 신진대사 콘사이스

특선작 중의 하나로 선정된 권보민, 맹소영, 정민아(국민 대)의 작업 <일상의 터무늬_기억의 이음을 통한 배다리의

골목, 길, 담, 오래된(풍경/미래/책장), 문화 에너지, 아이

활성화>는 배다리 일대의 탈장소화의 성징에 주목한다.

콘, 헌책, 집합, 일상, 장소성, 터무늬, 기억, 유적, 시간의

오랜 세월 배다리에서 살아온 주민들에겐 미안한 말이지

레이어, 커뮤니티, 도시 극장, 도시 박물관, 화분마을, 루

만 마을을 찾아온 외지인들에게 이곳은 어떠한 기억과 추

럴시티, 슬로우 그린, 랜드스케이프, 플랫폼, 섬, 치유와

억도 부재한 곳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설정한 계획 부지

회복, 이음, 새살, 브리꼴라주, 패브릭, 삶 등.

는 배다리의 내부 도로이자 이 마을의 시간성을 응축하고 있는 우각로다. 이 팀은 이 길의 성격을 해석하고 재구성

이상의 낱말 모음은 금번 공모전을 통하여 학생들이 건

함으로써 흥미로운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이 찾은 여

져 올린 수많은 언어들 중에서 반복하여 쓰여지고 있는

섯 가지의 터무늬 즉, 번무늬/연무늬/팽무늬/취무늬/전무

것들을 채집^정리한 것이다. 그것은 응모자들이 응시하

늬/감무늬는 우각로를 재구성하는 단(段)의 길로 나타난

고 있는 계획대상지 배다리에 대한 해석의 결과이자, 디

다. 무분별한 도시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우각로의 일상적

자인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주

풍경을 이벤트 공간으로 재영토화 하는 전략이 이 팀의 디

목할 만하다.

자인 목표다. 그 과정에서 이제까지의 일방향 자동차도로

학생들 대부분은 배다리라는 장소성의 이력을 기반으로

의 기능을 폐기하고 전적으로 보행자도로의 기능만을 허

주민들의 삶이 배어 있는 일상의 풍경을 디자인의 기점으

락한다. 차 없는 길의 완성은 우각로의 재편을 위한 필수

로 삼고 있다. 현장 답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

불가결한 요소이면서 동시에 잃어버린 우각로의 이야기

는 마을 내 골목(길)은 산업도로 건설로 사라진 골목과 집

를 현재에 재생시키는 플랫폼이다.

터의 자취를 기억하는 장치로 거듭나게 되었을 뿐더러 건

입선작 중의 하나로 선정된 김은아, 박다람, 김민지(연세

설 행정의 폭력에 대면하여 지혜로운 저항의 방식을 찾아

대)의 작업 <Follow the waving lights>는 산업도로 건설

낸 주민들의 행동에 버금가는 디자인 생산의 필요성을 확

구간의 빈 공간을 지형의 단차를 이용한 두 개의 레이어

인하는 기제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내놓은 배다

로 구성하고 상부 레이어는 물의 흐름을 연상시키는 웨이

리의 해법이 수학 공식처럼 정답을 좇는 집단적 의사 표

브 디자인으로, 하부 레이어는 지역 커뮤니티를 수용하는

명이라고 속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과거로부터 현재

시설물로 제안하고 있다. 이 팀은 밤도 낮 이상으로 아름

에 이르기까지 변방의 마을로 존재해 온 배다리로부터 잠

다운 마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결과 회색 도시

재적 가치를 찾아내는 것은 겉보기와 다르게 수월한 것만

의 이미지로부터 일탈하는 방안으로서 파동치는 빛의 벽

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며, 개개인들의 현실인식의 차

을 제안하고 있다. 산업도로 건설 구간을 배다리 마을 중

이가 전혀 다른 해법을 생산케 하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

앙공원으로서의 기능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서 파이버옵

기 때문이다.

틱(fiberoptic)을 이용한 야간 조명 아이디어는 이 팀의

흔히 헌책방 거리, 도매상 문구 거리, 전통 공예 상가,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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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 2 ⓦ 수 상 작 리 뷰

각로, 구 인천양조장, 성냥 공장 터, 근대건축문화재, 낙

문제를 공유하는 이 시대 청년들의 의지의 결집체로서 기

후된 주거환경, 산업도로 건설 구간, 문화 게릴라들의 아

억될 것이다. 그것은 배다리 일대 공간 환경이 처한 위기

지트 등에서 풍기는 이 지역의 문화적 향기와, 동시에 오

가 안으로부터의 신진대사 작용을 통했을 때라야 만이 건

늘날 대도시가 안고 있는 슬럼과의 전쟁을 상기시키는

강할 수 있다는 의미를 뜻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금번

보편적 장소성과 인근 지역의 자본유착형 도시개발의 추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은 배다리의, 배다리에 의

진, 지하화로 결론내린 산업도로구간의 지상화 재론 가능

한, 배다리를 위한 유익한 콘사이스 한 권이 묶여진 것에

성 등이 잠재하고 있는 까닭에 여러 측면에서 역사문화마

다름 아니다. ⓦ

을로의 회생을 꿈꾸는 이 마을 주민들의 소망은 여전히 위 협당하고 있다. 대도시에서 소수의 보통 사람들이 오랜 세월 한 지역에서 살아왔다는 것만으로 그들의 삶이 존중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많은 곳에서 경험되었다. 그들의 가난한 일상의 풍 경은 도시발전의 장애로 인식되어 무참히 짓밟혀온 것이 사실이다. 건설 행정의 지배적인 코드 또한 그와 같은 현 실에 입각하여 도시 계획이라는 큰 틀에서 소소한 일상을 공공의 적으로 내몰아 왔다. 도시를 구축하는 미덕과 악 덕의 사이에서 주민들의 설 자리는 나날이 좁아지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배다리의 현재는 불안정하다. 배다리 주민들이 내몰린 경계 상황을 극복할 방안을 모색 하는 일에 디자인의 힘은 특히 미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다리 주민들에게 있어서 금번 공모 전은 건설 행정의 공포증으로부터 벗어나 숨 쉴 수 있는 자리를 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주민들 스스로 건축과 도시, 조경의 도면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그려내진 못하지 만 학생들이 제출한 도면 한 장 한 장은 그것을 구체적 언 어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도코모모 코리아 집행부가 인천의 배다리를 주목하고 제 7회 디자인 공모전의 대상지로 삼기까지 쉬운 결정 과정 이 아니었던 반면 당해 지역에선 큰 반향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롭다. 뒤늦게나마 인천의 공 직 사회와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이 배다리의 향방을 지켜 보고 있는 전국 각처의 밝은 시선들을 의식하는 계기가 되 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천(千)개의 응모팀 중에서 최종 제 출된 728점의 작업 내용은 심사 결과와 무관하게 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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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제7회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 리뷰


대상 ⓦ Hide & Seek in Baedari _배다리 골목에서 만나는 오래된 풍경 ▶ 강준성^김선아^김용수(전남대)

이 슈 2 ⓦ 수 상 작 리 뷰

골목길 내부 공간(담장)과 이를 위요하는 배다리를 통합적으로 인식하고 경험하기 위한 도시박물관을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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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 2 ⓦ 수 상 작 리 뷰

담장(private-public)을 통해 과거 골목길에서의 기억(놀이 터, 쉼, 머무름)과 지역의 커뮤니티(전시, 만남)를 아우른다.

최우수상 ⓦ Urban Bookshelf_배다리(Baedari), 오래된 책장으로의 여행 ▶ 김웅^소병일^이광욱(경기대 대학원)

근대 역사의 흔적을 드러내기 위한 적극적인 도시 디자인을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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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제7회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 리뷰


이 슈 2 ⓦ 수 상 작 리 뷰

마을의 속살을 드러내는 도전적 건축의 장치를 통해 새로운 얼굴을 지닌 도시의 풍경을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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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 2

우수상 ⓦ A 3rd Object_어색한 친숙함이거나 친숙한 어색함이거나… ▶ 권기영^김대순^소윤아(인하대 대학원)

ⓦ 수 상 작 리 뷰

원시적인 흰 집에 주목하여 다양한 크기로 복제 및 증식되는 프로그램의 건축을 마을 곳곳에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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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제7회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 리뷰


이 슈 2 ⓦ 수 상 작 리 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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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 2 ⓦ

특선 ⓦ 일상의 터무늬_기억의 이음을 통한 배다리의 활성화 ▶ 권보민^맹소영^정민아(국민대)

수 상 작 리 뷰

여섯 가지의 터무늬 즉, 번무늬/연무늬/팽무늬/취무늬/전무늬/감무늬는 우각로를 재구성하는 단(段)의 길. 무분별한 도시화 과정 에서 잃어버린 우각로의 일상적 풍경을 이벤트 공간으로 재영토화 하는 전략이 이 팀의 디자인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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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제7회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 리뷰


이 슈 2

입선 ⓦ Follow the waving lights ▶ 김은아^박다람^김민지(연세대)

ⓦ 수 상 작 리 뷰

산업도로 건설 구간의 빈 공간을 지형의 단차를 이용한 두 개 의 레이어로 구성, 상부 레이어는 물의 흐름을 연상시키는 웨이 브 디자인으로, 하부 레이어는 지역 커뮤니티를 수용하는 시설 물로 제안.

파이버옵틱(fiberoptic)을 이용한 야간 조명 아이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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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류산방 樹流山房의 예술 도록 시리즈 Art Work Series of Suryusanbang

수류산방 예술 도록 시리즈 수류산방(樹流山房)은 옛 것에 단단히 뿌리박고 또 새로움을 길어내는 일에 ‘수류(樹流)’라는 이름을 붙여 전시 및 작가 도록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새로운 생각과 표현, 새로운 행동과 크리에이티브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이 ‘수류(樹流)’라는 이름 아래서 경계를 허물고 서로 만나, 보다 풍성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01. 기품 있고 결 고운 삶의 방식, 빈 콜렉션 Korean Inspired Lifestyle, Vin Collection (국문, 영문, 일문, 불문) | 7,000원 디자이너 강금성의 수공예 생활 예술품 02. 백(白), 다시 흰색을 보다 White in Korean Crafts (국문, 영문) | 5,000원 백자, 백옥, 한지 등 흰색을 주제로 살펴보는 전통 공예의 새로운 가능성 03. 트랜스 리얼, 나의 고향 Transreal, My Hometown (영문) | 3,000원 런던 아시아 하우스에서 열린 작가 이진경+이세현의 전시 도록 04. 천년보옥, 한국의 누비 Korean Nubi, the treasure of millennium (국문, 영문, 일문) | 15,000원 무형문화재 누비장 김해자에게 듣는 누비 이야기 05. 티베트에서 온 천 년 The Wisdom from Ancient Tibet (국문, 영문) | 품절 춘원당한방박물관 개관 1주년 기념 전시 도록 06. 공간 사리 Space Sari (국문, 영문, 일문) | 7,000원 철에 온기를 불어 넣는 입사장 이경자의 작품 세계

☼ 교보문고, 알라딘 등 국내 서점의 온라인·오프라인 매장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 문의 : 수류산방(02-735-1085)

by Suryusanbang 84

widE Edge


와이드 16호 뎁스 리포트 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 2010년 7-8월호

086 ⓦ 이종건의 <COMPASS 13> 두 형태의 죽음 090 ⓦ 강병국의 <건축과 영화 16>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건축가의 배(The Belly of an Architect) 093 ⓦ 손장원의 <근대 건축 탐사 16> 대불호텔(Hotel DIABUTSU, 大佛ホテル) 096 ⓦ 이용재의 <종횡무진 16> 성주 백세각 098 ⓦ <POwer ARchitect 파일 05 | 최삼영> 둘 또는 반 100 ⓦ <POwer ARchitect 파일 06 | 조민석> Recent Works 103 ⓦ 함성호의 <소소재잡영기(素昭齋雜詠記) 10> 남의 탓이요, 남의 탓이요, 날씨 탓이라! 106 ⓦ <주택 계획안 100선 15> 이기옥의 Sculpture Studio Haus | 강권정예 112 ⓦ <WIDE focus 05> | 디자인과 마음 | 조택연 114 ⓦ <WIDE focus 06> |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안녕하십니까? | 강권정예 117 ⓦ <이슈가 있는 근작 01> 이정훈의 용인 헤르마 주차 빌딩 | 정귀원 126 ⓦ 전진삼 발행인의 <WideAN(Architecture Network)*Club 리포트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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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128 ⓦ 와이드 16호 | 와이드 칼럼 | 역사적 장소는 개발 대상이 아니다 | 김정동


이종건의 <COMPASS 13> 두 형태의 죽음 ⓦ 지난해 느닷없이 찾아온 이례적으로 많은 죽음들이 기억에서 희미해질 쯤, 우리 일상에 또 다시 죽음이 성큼 들어섰다. 죽음의 기억을 불러내는 것 또한 죽음이다. 최진실, 장자연, 김대중, 김수환, 노무현, 용산참사 희 생자들, 법정, 최진영 등 많은 이들의 죽음이 아스라하게 떠오른다. 그리 고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사라진 봄과 성급히 찾아든 여름 사이에 끼어든 2010년의 죽음. 나의 지인들의 혈육들도 몇 죽었지만, 두 다른 형태의 공 적 죽음은 특히 유별나다. 아직 봉합되지 못한 두 사건에서 터져 나온 죽 음은, 이미 주워 담기에는 그 크기가 너무 커, 항차 우리의 정치와 사회 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사라질지 지금으로선 헤아리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공적 공간의 중심이 된 사건들의 의미를 찾으려는 시 도는, 우리 시대를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외면할 수 없다. ⓦ 두 대극적 사건. 6·15 남북 공동 선언 이후 가장 뜨거운 정치 사안이 된 천 안함 사건. 그리고 목하 새로운 정치 불씨로 등장한 문수스님의 소신 공

그래서 결정된 시간에 일어났다. 앞은 국가의 영역을 지키던 마흔여섯 명의 군인들의 수동적 죽음이고, 뒤는 삼 년 동안 불자들 얼굴 한 번 마 주치지 않은 채 수행 정진해 오던 한 스님의 능동적 죽음이다. 군인과 스 님. 물리적 힘에 의해 정신 한 번 제대로 가다듬을 여지없이 두절난 물리 적 존재자와 정신적 힘으로 자기 초월을 감행한 정신적 힘의 존재자. 이 두 대립된 죽음은 관리도 철저히 대조적이다. 천안함 장병들의 죽음의 의식은 국가가 나서서 관리하고, 문수스님의 죽음의 의식은 조계종에서 맡았다. 앞은 불시에 부활된 남북전쟁의 긴장과 정권과 매체들의 적극적 인 관여와 관심 탓으로 대다수 국민들의 분개와 슬픔을 야기했고, 뒤는 불교 단체와 소수 불자들의 감화 탓으로 극히 제한된 국민적 관심을 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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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았고 원치도 않은, 그래서 불시에 발생했고, 뒤는 명상과 사색을 거친,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양 사건. 앞은 죽임을 당했고, 뒤는 죽음을 행했다. 앞은 결코 생각지도


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은 사건의 진리가 여전히 석연찮고, 뒤는 하 등의 논란의 여지없이 명백하다. 그러나, 둘 모두 새로운 기표로 출현했 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냉전 이데올로기의 기표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저항의 기표. 이 두 빈 기표에 어떤 의미가 채워지고 있는가? ⓦ 우 선, 진리부터 묻자. 천안함 사태는, 주지하다시피,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결론 났다. 대통령을 위시해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초기의 태도와 달리, 북한의 짓으로 단정 짓고 북한 제재를 위해 국제 사회에 호 소했다. 그런데, 재미 과학자들을 필두로 예컨대 참여연대는 조사 결과 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결국 유엔에 이견서까지 제출했다. 그 러자, 정치 권력자들, 그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서울대 총장까지 지낸, 그 래서 지식인의 얼굴을 한 정운찬 총리는, 참여연대 사람들은 과연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겠다며 공격했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되면서 표현의 자유가 심대하게 침해받고 있는 와중에, 다른 목소리와 진리에의 요구를 국가 정체성의 문제로 생각하는 파시즘적 사고가 얼마나 끔찍한지는 차 치하고, 우선 진리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인데, 이럴 때 나는 늘 푸코 의 입장을 떠올린다. 푸코의 관심은 진리를 말하는 자, 곧 누가 진리를 말 하는가에 쏠려 있다. 그는 이렇게 본다. (무엇에 대한) 진리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하는 자가, 그로써 얼마나 이득을 보는지 혹은 손해를 보는지가 심판의 근거다. 단적으로, 진리 주장으로 인해 얻을 것이 전무하고, 도리 어 목숨마저 위태로운 자라면 그가 바로 진리를 말하는 자다. 천안함 사 건이 북풍이 되어 선거에 이용된 것을 보면, 그 진리가 분명히 석연찮다. 그에 반해, 소신 공양은 진리를 위해 몸을 불사르는 행위다. (『묘법연화 경』 「약왕보살 본사품」에 약왕보살이 향유를 몸에 바르고 일월정명덕불 (日月淨明德佛) 앞에서 보의를 걸친 뒤 신통력의 염원을 가지고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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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자기 몸을 불살랐다 한다. 경전은 이를 찬양하여 ‘이것은 참다운 법으로 써 여래를 공양하는 길이다. 나라를 다 바치고 처자로 보시하여도 이것 이 제일의 보시이다’라고 하였다.─두산백과사전) ⓦ 천안함 사건의 의 미는 가장 먼저 최고 권력자가 부여했다. 도대체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 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이런저런 일상을 수행하다 졸지에 불귀의 객인 된


장병들이, 대통령의 입술을 통해 하나하나 호명되며 영웅으로 탈바꿈했 다. 적의 공격인지도 몰랐으니, 당연히 전투에 임하지도 않았을 텐데, 혹 은 어떤 적극적이고 의미 있는 행동을 하며 죽은 것도 아니었을 텐데 훈 장이 추서되고, 누군가의 어떤 내러티브 조작 혹은 선동으로 인해 온 국 민이 가슴을 적시고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영웅이 되었다. 단순히 군 복무 중에, 그리고 국가 공무 중에, 죽음의 연유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한 사람이 영웅이 되어버리는 이 희한한 현상. 그에 비해, 얼마 전 지방 선거를 이 틀 앞 둔 5월의 마지막 날 죽은, 경북 군위 지보사의 문수스님(47)의 죽음 의 의미는 명증하다. 다음과 같은 짧은 유서를 남기고 제 몸을 불태웠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폐기하라” “이명박 정권은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이명박 정권은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 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 대의를 위해 제 몸을 불 사르다니! 행동에 앞선 두려움이, 그리고 그에 따른 고통이 어느 정도일 지 상상이 불가하다. 문수스님이 죽음을 행한 것은, 제 몸을 태워서라도 정권에게 사정없이 죽비를 쳐, 그로써 고통 받는 땅과 물과 가난한 서민 과 소외된 사람들을 구하고자 한 까닭이다. 니체가 말하지 않았던가? 영 웅적인 것이란 최고의 희망과 최대의 고통을 동시에 거머쥐는 것이라고.

축 혹은 건축가 자신을 죽임으로써, 땅을 살리고, 정의를 지키고, 가난한 서민과 소외된 자들이 한 뼘 따뜻한 양지라도 얻을 수 있을 건축의 살해 를, 건축가의 자살을. 영웅이 성립될 수 없다는 포스트모더니티라 불리 는 이 인문학적 상황에, 영웅 불모의 이 땅에, 위로부터의 조작이 아니라 내적인 구조 그 자체가 영웅적인 그러한 행동이 행해질 수 있을 길을. ⓦ 외제차를 굴리며 고가의 유흥비를 물 쓰듯 하면서, 정작 자신을 위해 일 하는 직원들의 월급과 시간은 악덕 업주처럼 처리하는, 우리의, 스스로 잘난 건축가들. 그들이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 돈이나 이름 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인가? 지식의 허영과 명예의 욕망을 은밀히 숨긴 채, 지식인인 체하며 후학들에게 혹은 무지한 대중들에게 개똥 장광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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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며, 나는 건축 혹은 건축가의 죽음을 생각한다. 분명한 대의 앞에 건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그렇다면, 문수스님이야말로 우리의 영웅이지 않은가? ⓦ 새로운 죽음을


부끄럼 없이 늘어놓고, 위악과 역겨운 거짓 카리스마를 휘두르며 소위 ‘뽀다구’ 나는 건물 몇 채 지어서, 작가연하며 권력과 매체를 기웃거리는 이들이, 아집 덩어리, 에고 덩어리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인가? 자신들이 살고 자신들이 일구어야 하는 이 땅이 아니라 바깥에서, 마치 사대주의 의 마법에 걸린 나방처럼, 인정을 받으려고 돌아다니는 우리의 잘나가는 건축가들. 그들이, 한 사람의 신실한 건축가로서, 도대체 어떤 건축적 이 슈(혹은 시대적, 사회적 문제)를 품고 정진하고 또 실천해 나가려고 애쓰 는지 나는 모른다. 그들은 대부분 비겁하여 공론의 장을 피하기 때문이 기도 하겠지만, 내 판단에는, 그저 그들 자신도 자신의 지식이 살얼음마 냥 얄팍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 하나의 이미지가 될 정도로 축 적된 자본을, 인간 관계를 이미지 매개의 관계로 전환시키는 것을, 그리 하여 직접적으로 삶에 속한 모든 것을 외양으로 바꾸어 버리는, 그리하 여 에릭 프롬의 용어로 존재적인 것을 모두 소유적인 것으로 추락시키는 것을, 기 드보르는 오래 전에 스펙터클이라 불렀는데, 마크 위글리는 그 러한 조건에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음 으로써 역설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일종의 무위의 건축론을 제시한다. 뜬금없이 양에 기초한 건축의 눈(알베르티)으로, 건축을 하지 않는 건축 을 주창하는 위글리를 언급하는 것은, 그것이 소신 공양의 길과 흡사하 기 때문이다. 드러나지 않는 건축, 뭔가 자꾸 구축하고 덧대는 게 아니라 솎아 내는 건축, 종국적으로 건축을 버리는 건축이야말로 비움의 건축 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러한 형태의 비움의 건축은 에고를 버리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건축을 죽일 수 있는 건축이 절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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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글 | 이종건(본지 자문위원,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교수)


강병국의 <건축과 영화 16> 건축가의 배(The Belly of an Architect) A3* 피터 그리너웨이(Peter Greenaway) 감독, 1990년

신고전주의의 선봉은 불레(Boulee)와 르두(Ledoux)다. 두

(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특히 이 에우르 지역의 건축물들이

사람 다 기하학적이고 단순한 형태를 조형적인 원리로 삼았

궁금했지만, 소개되어 있는 책이 국내엔 거의 없어서 더욱

으며 또 그것이 신고전주의 특징이기도 하다. 불레의 대표

흥미로웠던 영화다. 주세퍼 테라니에 대해선 지금은 나오지

작은 뉴턴기념관인데 구형 입방체 내부에 나 있는 수많은

않는 월간 <건축인 Poar>를 통해 5회 정도 연재를 한 기억

작은 구멍들로 인해 기념관의 천장은 마치 하늘의 별처럼

이 있는데, 아마도 마지막 회가 이 에우르 지역에 대한 이야

빛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그 크기는 정확히 기억은 못

기였을 것이다. 당시 이미 프랑스로 결정된 만국 박람회….

해도 수백 미터에 이르렀던 것으로 기억된다.(그림 1~3)

무솔리니는 특사를 파견해 다시 로마로 유치하는 데 성공한 다. 물론 2차 세계 대전 때문에 개최되지는 못했지만, 그 박

피터 그리너웨이의 작품은 어렵다. 그의 작품에 항상 공통 적으로 등장하는 성(性)과 죽음에 대한 주제는 화면의 현란 한 이미지와 어우러져 더욱더 난해하게 만들고 만다. 여기

물들이 등장한다. 판테온 신전을 시작으로 빅토리오 임마뉴

서 화려한 이미지란 화면을 분할하는 수법이나 타이포그래

엘2세 기념관, 콜로세움, 성 피에트로 대성당, 카리칼라 대

피 등으로 화면만으로도 기성 영화의 벽을 뛰어넘는 충격을

욕장, 하드리안 빌라, 나보나 광장의 피오미 분수와 넵튠 분

전해 준다. 게다가 성경이나 복선 구도의 추리극이라도 다

수…. 유럽 여행을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반가운 장소가 아

룬 영화라면 처음부터 대여섯 번 본다는 각오로 임해야 할

닐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이 영화에는 에우르(EUR) 지역의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터 그리너웨이는 내가

스퀘어 콜로세움(Square Colosseum)이라고 불리는 건축

제일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다. 컬트적 요소가 다소 있어도

물이 등장하는데 정식 명칭은 Palazzo cella Civita Italian

(난 컬트 무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말이다. 물론 작품

Civilization(번역을 한다면 이탈리아 문명관 정도)이다.(그

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표작으로 <털시 루퍼의 가방>

림 4) 예전 이탈리아의 주세페 테라니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1·2·3편을 추천하고 싶다.(그림 5~7) 90

배경 무대가 로마인 <건축가의 배>엔 수많은 역사적인 건축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람회 장소로 지정된 곳이 바로 에우르 지역이다.

* 자료의 분류를 위하여 서두에 다음과 같은 약어를 추가한다. 알파벳 다음의 숫자는 해당 꼭지의 일련 번호이다. A _ Architect : 건축가와 관련된 주제나 영화 / B _ Building : 건축물과 관련된 주제나 영화 / P _ Producer : 감독의 건축적 연관성을 언급한 영화 / D _ Documentary : 건축적 다큐멘터리 / C _ City : 미래 도시를 포함한 도시적 관점의 영화 / M _ Miscellaneous : 그밖 에 건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영화


주인공은 미국 건축가, 그 배경은 이탈리아 로마, 주제는 프 랑스 건축가. 제목에서 말하는 건축가의 배는 아우구스투스 의 배, 그리고 탐욕을 상징한다. 아름답게는 잉태를 상징하 며, 영화의 시작은 그렇게 열린다.(그림 10)

아마 조금 전 언급한 모든 설명이 포함되어 있는 작품이 아 닌가 싶다. 가장 유명하고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요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나 <영국식 정원 살인 사건>은 정말 맛보기이며, <하나의 O와 두 개의 Z>(1985), <차례로 익사시키기>(1988), <프로스페로의 서재>(1991), <베이비 오브 메이콘>(1993)은 정말 어렵다. 다른 작품, <

로마로 향하는 기차 안, 부부의 섹스 신으로 영화는 시작된

필로우 북>이나 <8과 1/2 우먼>은 아름다운 장면들만 용인

다. 흠, 시작서부터…. 창밖으로 보이는 풍광, 이름을 알 수

할 뿐 별로 추천하고 싶진 않다. 최근 작품 <야경>(2007)이

없는 유적들, 시골 간이역 사람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

나 <렘브란트의 심판>(2008)은 또 다른 느낌이다. 오늘 소

습. “언제 봐도 로마로 향하는 이 길은 너무 아름다워요!” “

개하는 <건축가의 배>가 그리너웨이의 작품 중에서 가장 이

완벽하지.” “비옥한 땅과 아름다운 여자들….” “오랜 역사,

해하기 쉽고 또 가장 재미있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유사성

돔과 아치, 그리고 맛있는 음식.” “완벽한 내 이상향이야.”

을 찾을 순 없지만 난 왠지 베르톨루치 감독의 <순응자(The

“이상향이라구요? 아버진 이탈리아를 떠나는 게 유일한 희

Conformist)>와 비슷한 느낌도 지워 버릴 수 없다.

망이었는데….” 대화처럼, 시카고의 건축가 크랙라이트와 이탈리아 출신인 부인은, 로마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판테

미국, 그중에서도 시카고의 건축가, 크랙라이트가 로마로

온 신전 앞에서 크랙라이트 부부는 이탈리아 건축가들의 성

초대된다. 프랑스 건축가 불레를 기념하는 전시회를 위해

대한 환영식을 받는다. 뉴턴을 기념하는 불레의 뉴턴기념관

서.(그림 8~9)

은 케이크로 만들어져 화려하게 미국 건축가를 환영하지만, 모든 건 그 때부터 종말을 향하게 되어 있는 운명이 아닐는 지. 건축가의 자기 배에 대한 의심까지도 그 운명을 더하게 된다. 사과와 뉴턴이 그려진 영국 화폐가 쓸쓸히 파티의 뒤

wiDe Depth report

편에서 타 버리는 것처럼.(그림 11~12)

시카고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할 만큼 미국에서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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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건물들이 많다. 세계 대전 이후,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효율적인 개발 요구는 바로 시카고학파로 이어졌다. 카슨 피리어리 스콧 백화점, 오디토리움 빌딩, IIT의 크라운 홀, 로비하우스, 오크파크의 유니티 템플과 라이트의 스튜디오, 시카고는 라이트와 설리반의 수많은 작품들이 모여 있는 보 고(寶庫)이다. 현상 설계로 유명한 트리뷴 타워도 눈을 의심


할 정도로 아름답다. 시어즈 타워라는 근대의 상징물도 이 들과 더불어 시카고에 잘 어울린다. 아무리 그래도 시카고 와 로마를 비교할 수 있을까? 서양 건축사, 하면 우선 시작 이 그리스·로마인데…. 로마 사람들에게 아무래도 이 미국 건축가는 살갑지 않다. 아니 싫다. 더구나 로마에서 프랑스 건축가를 기념하려는 미국 건축가는, 더더욱 배타적일 수밖 에 없다. 세 나라의 미묘한 차이는 풍토적인 느낌과 관습적 인 주장으로 뒤범벅된다. 건축가의 입을 통해 정의된 ‘탐욕의 도시’ 시카고와 ‘이상 향’인 로마로 향하는 기차 안으로부터, 9개월 동안 불러오 는 부인의 배는 외도와 함께 건축가의 아픈 배로 넘어간다. 고통스런 작업을 견디는 아픔을, 건축물의 탄생을 담보로 견뎌 가는 건축가에게…. 자기 작품의 출산을 지켜보지 못 하는 것보다 더 아픈 배가 또 있을까? 아무튼 부인은 출산을 한다. 남편이 고통스런 작업으로 일군 전시회 기념일의 개 관 테이프를 끊으며…. 동시에 건축가는 목숨을 버린다. 잉 태와 더불어 영화의 시작을 알린 피터 그리너웨이는 그렇게 영화를 맺는다. 건축가라는 직업을 앞세워 피터 그리너웨이 는 자의적인 영혼을 이야기한다. 가장 모뉴멘탈한 역사물로 가득 찬 로마에서.(그림 13~28) ⓦ 글 | 강병국(본지 고정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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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필위원, 동우건축 소장)


손장원의 <근대 건축 탐사 16> 대불호텔(Hotel DIABUTSU, 大佛ホテ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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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일본 제1은행과 대불호텔(1899년 촬영). 출처 : 버튼 홈스, 『세계 여행기』(1901).

우리나라 호텔의 역사는 인천에서 시작되었다. 19세기 말

인에게 매도되어 중국 음식점인 ‘중화루’로 거듭났다. 이러

인천에는 일본인 호리 리키타로가 세운 대불호텔[大佛 : 호

한 사실은 토지대장에도 나타난다. 대불호텔이 있던 자리는

리의 체구가 커서 큰 부처상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 중국인

인천시 중앙동 1가 18번지이며, 대지 면적은 386.8㎡이다.

이태(怡泰)가 세운 스튜어드 호텔[Steward : 이태의 전직이

1914년에 호리 리키타로(堀力太郞) 앞으로 사정(査定)되었

유람선 스튜어드였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 Harry’s Hotel],

고, 1922년에 중국인 레[賴文藻(뢰문조)]에게 이전되었다.

오스트리아계 헝가리인 스타인벡(Joseph Steinbech)이 세

이후 일제 강점기 내내 공화춘과 함께 청요리집으로 명성을

운 Hotel de Coree(1887~1888년?)가 있었다. 여러 개의 서

날리던 이 건물은 한국전쟁 후 포화로 집을 잃은 중국인들

양식 호텔이 들어선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보다 훨씬 더

이 거주하면서 급격히 낡았다고 전한다. 1978년 화재 가능

많은 수의 일본식 여관이 성업했다는 사실은 근대 개항장

성을 이유로 철거 된 뒤 현재까지 반 세기에 가까운 기간 빈

인천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러 숙박 시설 중

터로 남아 있다. 그런데 최근 대불호텔에 대한 여러 사진 자

에서도 으뜸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인 대불호텔로,

료와 기록을 검토하면서 건립 시기, 최초 위치, 건축 양식이

개점 이후 인천항을 오가던 많은 내외국인들이 이 곳에서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것과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머무르면서 커피를 마시고 공연을 감상했다. 아울러 여행자

건립 시기는 그동안 몇 차례 의문을 제기한 사례가 있지만,

를 위해 인력, 마필 등을 중개 및 알선하기도 했으며, 동학

위치와 건축 양식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않았었다. 그간

혁명 당시에는 전라북도로 출병하던 홍계훈이 이 호텔에서

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

800명의 병사가 해상에서 먹을 양식을 구입하기도 했다.

의 비밀을 풀어 보고자 한다.

성황을 누리던 인천의 호텔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것 은 공교롭게도 1899년 9월 18일에 개통된 경인철도이다.

건립 시기에 대하여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극심한 영업난에 허덕이던 대불호텔

다음은 대불호텔의 건립 연도를 추정할 만한 자료와 기록들

은 이후 타쿠(宅)합명회사 인천지점(1907년경)을 거쳐 중국

이다. ① Robert Neff ; Hotel de Coree(The Korea Times,


호텔의 위치에 대하여

bech)은 1884년 늦을 가을에 한국에 도착했다. Stienbech

현재 대불호텔이 있던 자리와 함께 그 주변 대지에 있던 건

은 해안가 토지를 구입하여 여행자들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물이 철거되어 하나의 대지처럼 보이나, 4개의 필지(24-1,

잡화를 파는 가게를 설립하고 한국 가이드를 제공했다. 이

2, 3, 8)로 구성되어 있다. 이 대지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

후 호텔을 건립하려 했으나 수교가 되어 있지 않아 불가능

로 일본 조계지를 설치하면서 각 필지별로 개인에게 경대

했다. 당시 인천에는 일본인 소유의 Daibutsu Hotel과 중

한 자료가 있다. 김용하는 그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이를 자

국인 소유의 Harry's Hotel이 있었다. (중략) 1888년 2월

세히 정리하여 ‘일본 전관 거류지 부지 경대가(日本專管居

Chesney Duncan(영국왕립아시아협회 중국지부 회원으로

留地敷地競貸價)’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도면을 자세히 살

조선의 영세 중립국 정책을 건의)이 객실에서 강연했다.”

펴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불호텔의 위치에 해

② Henry Gerhard Appenzeller(1858~1902년) ; 비망록

당하는 필지의 경대자는 이 호텔을 세운 호리 히사타로(堀

(1885년 4월 5일) : “다이부츠 호텔은 놀랍게도 영어로 손

久太郞, ?~1898)도 그의 아들인 호리 리키타로(堀力太郞,

님을 모시고 있었다.” ③ A. Henry Savage-Landor ; 고요

1870~1934년?)가 아닌 토히(土肥福三郞)이다. 호리가 경대

한 아침의 나라 조선(Corea or Cho-sen; The Land of the

받은 땅은 바로 옆과 길 건너에 위치하고 있다. 자신이 임대

Morning Calm) : “다이부츠 호텔은 2층 건물이었으며, 2

한 땅을 놔두고 굳이 다른 사람의 땅에 건물을 세우지는 않

층을 침실로 사용했다. 침실은 커튼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았을 것이라는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일

침대는 마루 위에 올려놓은 매트에 불과했기 때문에 서양

본지계 제일 첫 집이 호리의 자택이고, 그 당시 가장 잘 지

인들에게는 아주 불편했다.” ④ 최성연 ; 개항과 양관역정

었다는 이 벽돌집이 두 번째인데(이하 생략)”라는 최성연

(1959년) : “호리 리키타로(堀力太郞)가 1887년에 착공하

선생의 기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1883~4년에 세

여 1888년에 완공한 서양식 호텔이다.”

운 2층 건물을 1887년에 허무는 것은 재해 등의 특별한 이

이상의 기록을 종합하면 대불호텔의 최초 건축 연도는

유가 아니라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회 통념 또한 간과할

1883~1884년 경으로 추론할 수 있다. 또한 최성연 선생의

수 없는 일이다.

위의 기록은 벽돌조 3층 건물의 신축 연도를 말하는 것으로

다음으로는 일본식 2층 건물에 ‘Hotel DIABUTSU’라는 간

추정된다. 또한 최성연 선생은 건축주를 호리 리키타로로

판이 달린 판화 이미지를 주목하고 이 그림에 묘사된 건물

기록했는데, 이는 호리 히사타로(堀久太郞, ?~1898)로 보는

의 진위를 판단해 보았다. 판화 이미지 풍경과 여러 사진

것이 맞다. 왜냐하면 그의 아들 리키타로는 1887년 당시 17

에 등장하는 대불호텔 사진을 모아 분석한 결과 판화 이미

세에 불과했고, 히사타로가 1898년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지에 등장하는 일본식 2층 건물은 실제로 존재했던 건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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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5일자) : “Austro-Hungarian(Joseph Stien-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대불호텔 일대의 모습. 지붕 위 굴뚝이 있는 건물이 대불호텔, 길이 끝나는 곳에 위치한 건물이 스튜어드 호텔[Harry's Hote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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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대불호텔 이미지 모음. 왼쪽 위가 판화 이미지. 청색 점선 안의 목조 난간과 지붕 형태에 주목.

었다. 이는 지붕 형태와 1층 목조 난간(사진의 청색 점선)

업을 시작했다. 이후 장사가 잘되어 바로 옆 대지를 확보하

을 보면 동일 건물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울

여 벽돌조 3층 건물을 세워 영업을 계속했으며, 당초 호텔

러 판화 이미지에 등장하는 가건물(용도 불명)이 다른 이

로 사용하던 건물은 자신의 주택으로 사용한 것으로 볼 수

미지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판화 이미지가 헛된 것이 아님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로 알려진 대불호텔의

을 알 수 있다.

건축 양식과 건립 연도 및 그 위치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참고로 호리 히사타로와 그의 아들 호리 리키타로는 부산

를 통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것을 밝혔

개항 후 부산에서 활동하다가 인천 개항과 동시에 인천에

다. 이는 우리나라 호텔의 역사와 근대 건축사를 뒤집는 것

정착한 사람들이다. 당시에 발간된 문헌에는 이들이 호텔

이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많은 자료가 발견되길 바란다. 아

영업보다는 주로 기선 영업에 초점을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

울러 이 지면을 통해 밝힌 필자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기다

다. 당시 대표적인 해운 회사이던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

리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 글 | 손장원(본지 고정집필위

점 건물을 호리 리키타로가 매입하여 1915년 6월 12일에 보

원, 재능대학 실내건축과 교수)

존 등기를 마치고 호리(堀)기선회사 사무실로 사용했다. 한 편, 대불호텔 터를 경대받은 토히(土肥福三郞)는 나가사키( 長崎) 출신으로 인천미두취인소 주주(23주 소유, 출처 : 국 편,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토히상점(土肥商店, 무역업) 주 인이었다. 종합 추론 이상의 기록, 자료 및 통념으로 볼 때 호리 히사타로는 우 리가 알고 있는 대불호텔 바로 옆에 세운 일본식 건물에서 ‘Hotel DIABUTSU’란 이름으로 1883~1884년 경 호텔 영

대불호텔 터. 출처 : 김용하, 박사 학위논문


이용재의 <종횡무진 16>

행이 지극하여 당시 경상도 관찰사 회재 이언적이 장계를

값 아껴야 되는데 어디 그게 되나. 3번째 방문. 마침 종손이

올려 1543년 정려가 내려지고 정려각 건립. 1546년 문과중

반갑게 맞아 준다. 이제 묻지마 인터뷰. “몇 대 손인지?” “20

시에 을과로 합격. 송희규 선생은 1546년 당시 세도가 윤원

대 손.” “왜 여긴 솟을대문이 아니고 평대문인 감유?” “솟을

형을 탄핵하다가 역적으로 몰려 전라도 고산으로 유배. 5년

대문은 정승만 하는 것임.” “그럼!” “영의정, 좌의정, 우의

만에 풀려난 뒤 1552년 백세각(百世閣) 준공. 후손들은 영

정만.” “대부분 솟을대문이던데?” “사후 증직된 경우가 많

원히 번창하라는 거죠.

아서. 몰래 만든 경우도 많고.” “아빠, 왜 대문이 집 안으로 열리게 만든 거야?” “집 안으로 복이 들어와야 하니까.” “

“안채 왼쪽 날개가 오래돼 보이지 않네유?” “서얼이었던 할

다 이유가 있군. 근데 아빠, 문빗장에 거북이가 그려져 있는

아버지가 열 받아 불 질러 중건.” “왜 여기서 안 사는지?”

데?” “거북이처럼 장수하라고.” “대문에 붙어 있는 이 고사

“1950년 피난 간 후 비워 두고 있음. 대구 나가 먹고 사느라

성어는 먼 말이야?”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

바빠. 부친도 요절하셨고.” “사랑채는 아예 새 거로 보이네

慶). 봄이 오자 행복이 오고 계절 따라 경사가 많다.”

유?” “7년 전 아랫집이 상을 당해 손님들을 재우게 해 줬는 데 아궁이 불을 소각하지 않아 소실.” 쇠못을 전혀 사용하지

다시 종손에게 물었다. “송희규 선생의 호 야계(倻溪)가 먼

않고 구멍을 뚫어 싸리로 엮은 집. 빗자루 만들 때 쓰는 싸

뜻인지?” “가야산의 시냇물.” “왜 유배를 가시는지? 혹 대

리 아시죠. 대패질을 하지 않고 자귀만으로 깎고 다듬어 만

윤과 친했남유.” “아님. 사헌부 집의로서 간한 것임. 업무

든 건축. 까뀌는 한 손으로 사용하는 작은 연장이고 자귀는

상. 첨에는 집의에서 파직 당해 대구부사로 갔으나 정권을

선 채로 두 손에 쥐고 나무를 다듬는 큰 연장. “안채가 약간

잡은 소윤이 엮었음.” 선생의 본관 야로(冶爐)는 지금의 경

기울었네유?” “성주군이 돈이 없어 보수하지 못하고 있음.”

남 합천군 야로면. 1519년 별시에 병과로 합격. 선생의 효

“그럼 대책이?” “10억 정도의 보수비가 필요해 경북도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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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시 백세각으로. 대전에서 1백 킬로. 아이고, 휘발유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성주 백세각


하소연 중.” “이 정도 명품이면 보물 지정받아야 되는 거 아

해 늘어나고 터지고 미치겠음. 그놈의 입찰이.” 바람 잘 통

닌 감유?” “문화재청에서 보수 후 검토하겠다고 했음.” 지

하는 그늘에서 1년 6개월 간 소나무를 말려 시공해야 하지

금은 경북유형문화재 제163호.

만 공사가 빨리 끝나야 좀 남으니 대충 하는 거죠.

“선생은 혼자 유배 가셨는지?” “손자 데리고 가서 직접 가

“이 사당은 불천위지유. 그럼 야계 선생만?” “아님. 중앙에

르쳤음. 서당 차려 전주 지역 아이들도 가르치고.” “회재 이

야계 선생. 좌, 우에 2개씩 4대 모셨음. 다음 대가 가시면 우

언적과는?” “친구임.” “회재 선생이 3년 위인 걸로 나오는

측 앞 위패는 좌로 한 바퀴 돌리는 것임.” “그럼 사당을 나

데?” “과거 시험 합격 동기임.” “남인이시죠?” “당근.” “그

온 위패는?” “무덤에 파묻음.” “불천위는 왕한테 허락받으

럼 우암 송시열 싫어하겠네유?” “안동에서는 똥개 이름이

신 거죠?” “당근. 유림에서 허락 받을 때도 있음.” “왕만 허

시열임.” 한 번 정리하고 갈까요? ① 동인은 이퇴계의 제자

락하는 게 아닌지?” “남인은 유림이 허락하는 향 불천위를

들. ② 서인은 이율곡의 제자들. ③ 서인은 다시 노론, 소론

더 중히 여김.” “몇 칸 집인지.” “28칸.” 아시죠. 불천위 사

으로. 노론의 영수는 송시열. 소론의 영수는 윤증. ④ 동인

당에 모신 위패는 영원히 옮기지 않는 거. “안마당에 회화

은 다시 남인, 북인으로. 남인의 영수는 류성룡. 북인의 영

나무를 심으셨네요.” “화기를 잠재우려고 세 그루 심었지만

수는 조식. “유배가 풀린 후 벼슬 안 하셨죠?” “당근. 노론

두 번이나.” 아시죠. 회화나무는 정시 과거 합격자 배출 집

이 지겨워서. 남인은 대대로 벼슬 안 함.” “서애 류성룡은

안에만 심을 수 있는 거. “근데 이 엄청난 건물을 지을 돈이

영의정까지?” “서애가 거의 마지막이었음.” “그럼 제자 양

있었남유?” “외가가.” “아, 예.” 후학 여러분 결혼 잘 하세

성만?” “당근.” “그럼 지금은 여기서 생활하시남유?” “텃밭

유. 네비에 백세각 치면 안 뜬다. 주소 치시길. 경북 성주군

가꾸며 소일.” “혼자?” “당근.”

초전면 고산리 542. ⓦ 글 | 이용재(건축 평론가)

정면 7칸, 측면 7칸인 ㅁ자 형 건물. 1919년 3·1운동 당시

wiDe Depth report

송준필 선생을 위시한 선비들이 태극기를 제작한 곳. 역시 들이대는 집안. 선비란 유학을 공부해 그 이념과 도덕으로 자신을 수양하고, 나아가 사회 교화를 임무로 여기는 지식 인. 피할 수 없다면 고달픔을 즐기는 게. 선비 지망생은 요리 학원 다니시길. “민박이라도 하시면?” “성주군엔 관광객이 없어 불가.” 부엌의 살창이 애틋하다. 그냥 수직으로 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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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세우고 창호지 안 바른, 밖에선 안이 안 보이고 안에서 는 남정네 확인하는 창. 연기도 잘 빠지고. “사랑채 대청에 걸린 야계고택 현판은 한석봉이?” “소실.” “이 마을은 집성 촌인지?” “70가구 모두 한 집안임.” “그럼 싸울 일은 없겠네 유?” “더 싸움. 세태가.” “사랑채 대청마루 밑을 철사로 묶 어놨네유?” “일꾼들이 다 마르지 않은 나무로 마구 공사를


<POwer ARchitect 파일 05 | 최삼영> 둘 또는 반

구 구석구석에 박혀 있지만 그들 모두 영화 감독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보편적 일상의 삶을 외면한 채 지하에서 재능에만 미쳐 지내다가 인생의 진정한 맛을 느껴 보지도, 표현하지도 못하고 기 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이들이 많다는 말이다. 건축도 마찬가지 라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재능과 진정성을 고루 갖추지 않 은 작업이 완성도 있는 예술품이 되기 힘들다는 말이다. 인간은 인정받고 사랑받으러 태어났다고들 한다. 인정은 결국 상 호 관계에서 자기 주관성을 돈독히 하며 존재의 의미를 성장시키 는 원동력이 된다. 우리는 관계하기로 인정받는다. 그러한 관계의 오늘도 여지없이 아침이 오고 출근을 한다. 출근길은 늘 두 개의 선

매개에는 일과 놀이가 있다. 다시 정리하면, 인간은 일하고 놀이하

택이 있다. 거리가 짧고 빠른 길과, 시간은 다소 걸리지만 좁고 긴

러 태어났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길의 가로수와 풀섶 풍경이 아름다운 또 다른 길이다. 계절마다 바

말은 인정받고 사랑받음으로 더욱 자신감을 갖고 능력을 발휘하게

뀌는 논밭의 색깔과, 앞서 간 차가 만드는 바람으로 일렁이는 풀섶

된다는 말일 터이다. 관계의 지속성은 진정성에 있다고 본다. 내가

풍경이 힘겨운 아침을 개운한 마음으로 전환시킨다. 그래서 나는

가진 본연의 모습을 꾸밈없이 잘 전달함이 타인의 모습을 내 것으

무의식적으로 이 길을 선택한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늘 두 개의 동

로 치장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말일 것이다.

기 또는 둘 중 하나의 선택의 순간들을 만나고 산다.

최근 가와건축이 인정받고 사는 모습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그

몇 해 전, 영화가 하고 싶은 고3 아들이 김기덕 감독을 만났을 때 그

중 하나는 대책 없이 현상 공모에 목을 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

감독 왈 “너 기차 레일이 왜 두 개인 줄 아느냐”라고 물었다. 어리

는 주택이나 소규모의 근린 생활 시설 등의 소규모 프로젝트를 지

둥절해 하는 아이에게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세상

향하는 것에 있다. 이 둘은 결과적 모습은 유사할지 모르나 출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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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재능이 전부는 아니다. 재능과 끼로 무장한 수많은 이들이 지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갤러리 소소 외부와 내부.


최삼영은 1985년 공간연구소에서 건축 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1994년 현재의 가와건축을 설립하였다. 2003년부터는 일본의 와세 다 대학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국제 공모에 다수 참여하였다. 삶의 근거가 되는 모든 시설이 관심거리지만 최근에는 주택과 문 화 시설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민마루 주택, 진주 선사박물관, 남해 실내체육관, SK 동백 아펠바움, 동원베네스트 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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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동백 동연재, 갤러리 소소, 터치 아트, 갤러리 엔토코 등이 있다.

민마루 주택 외부와 내부.

바자울 전경과 정원.

많이 다르다. 전자는 인정해 줄 대상이 익명의 타인(공모의 심사

다가 사용자의 생각으로 쉽게 변형될 수도 있으며 증·개축 또한

위원)이라면 후자는 특정한 사용자이다. 그리고 적절한 표현은 아

용이한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다. 굳이 내 식의 용어로 규정짓자면

닐지 모르나 후자의 일을 하는 동안은 주도권이 일방적으로 건축

‘반 건축’이다. 많은 예술품의 완성이 그렇듯 작가의 혼 50%, 나머

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닐 경우가 많아, 어떤 때는 건축가에게 더욱

지 50%는 소장자가 불어넣는 것이라고 본다면 집도 너무 건축가

큰 주도권이 주어지기도 한다. 물론 책임도 덩달아 커지겠지만. 그

주도로 완성되어서 사용자는 아무런 역할도 못하게 할 것이 아니

리고 후자 쪽이 보다 진정성 높은 작업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래

라 사용자에게 친절이 배려된 집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포함된다.

서인지 후자의 경우가 훨씬 애정이 가며 준공 후에도 관심이 높다.

반 건축이라고 명명해본 나의 생각을 해석하자면 ‘Skeleton & In-

마치 애지중지 키워 시집 보낸 딸처럼…. 살림살이 걱정만 아니라

fill’로 뼈대는 고정되어 있지만 칸막이나 채우기의 변화로 다양성

면 용역비가 다소 열악해도 후자 쪽에 매달리고 싶지만 두 가지를

을 연출하는 건축이라도 좋고, 시공과 해체가 간편하여 이동이 자

병행하느라 마치 냉온욕하듯 담금질하는 삶이다. 그런다고 진정

유로운 프리패브(Prefab)로 표현되는 방법들도 괜찮을 것이다. 그

강해지기라도 하겠는가만은.

리고 때론 규정짓기 모호한 공간도 사용자의 손길을 기다리는 장

건축주의 요구는 다양하다. 대개는 어딘가에서 본 것이 기준일 경

소로 남겨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관점을 달리하면 이런

우가 많고 당장 눈앞의 삶이 우선이다. 나와 이견이 있을 때는 설

공간이 전체 공간의 유동성과 다양성을 도와 주는 매개적 역할을

득이 필요하다. 결정 기준이 모호할 때는 절반의 성공에 대해 이야

수행하리라 본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공간을 자유로이 조정할 수

기해 본다. 고집스럽게 주장한 가치가 틀릴 때도 많았다는 사례를

있는 구조를 지향하며, 너무 특별하여 눈길을 받는 화사한 패션의

찾아가며…. 반씩 물리자는 뜻은 아니다. 변화되는 가치와 삶의 행

손대기 어려운 건축보다는 편안하고 소박하여 손대기가 다소 편한

태를 적절히 아우르는 방법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인 기준에

그런 건축을 고집해 본다. ⓦ 글 | 최삼영(가와건축 대표)


<POwer ARchitect 파일 06 | 조민석> Recent Works

매스스터디스

터디스의 주제는 크게 매스 무브먼트 스터디스(Mass Movement

2003년 4명으로 출발, 부띠끄모나코를 시작하면서 2007년 한창

Studies)와 매스 매트릭스 스터디스(Mass Matrix Studies)로 나누

바쁠 때 39명 정도까지 인원이 불었다가 현재는 줄여서 운영을 하

어진다. 매트릭스 스터디스가 도시의 수직적 확장에 관한 것이라

고 있다. 대부분의 일은 국내에 있지만 최근 3년 동안 중국 작업들

면, 무브먼트 스터디스는 비선형적 동선 조직에 관한 것으로 좀더

을 비롯해서 다양해진 편이다. ⓦ 놀라운 사실은, 매년 평균 12개

도시적인 접근 방식이다.

의 건물을 디자인해 온 점이다. 3개 중 하나는 실제로 지어졌는데, 매스 무브먼트 스터디스

고 대형 프로젝트를 하는 사무실로 인식하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충무로 활력연구소, 딸기 테마파크, 청암 미디어 사옥, 옥토끼 우

사실은 우리 페이스대로 느리게 가고자 하는 회사이다. ⓦ 매스스

주센터, 자이 갤러리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구현된 비선형적 요소

터디스(Mass Studies)가 보여 주는 또 다른 일관성은 동시에 다양

는 많은 경우들이 관념이 아닌 프랙티컬(practical)한 견지에서 나

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만 평 넘는 건

왔다. ⓦ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경제와

물을 계획하면서 한쪽에서는 도면을 그리고 있거나 전시를 하기도

문화 활동이 ‘복합적인 공생적 관계망’을 형성해 나가는 상황은 작

한다. 다양한 스케일에 대한 관심은 처음부터 꾸준히 지속되어 온

품의 전제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자이 갤러리는 그러한 상황

것으로, 사무실 규모가 점점 커져도 프로젝트 규모는 오히려 더 커

안에서 나름의 전략을 가지고, 오히려 기능적으로 애매한 경계들

지거나 더 작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 우리는 일종의 종자들을

을 만들어 주거나 상이한 영역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 통합할

만든다는 생각에서 굉장히 프로토티피컬(prototypical)한 작업들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 준 사례이다. ⓦ 자이 갤러리에서는 속도

을 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 딱 들어가는 특수한 해법들을 찾기도 한

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기도 하는데, 나름대로 어떻게 하면 가장 짧

다. 그리고 하나의 특수한 해법은 그 자체로 남는 것이 아니라 나

은 기간에 가장 복잡한 건축을 해볼 수 있을까 하는, 두 번 다시 못

중에 다시 참고가 되고, 또 하나의 공식이 될 수도 있다. ⓦ 매스스

할 무모한 도전이었다.

100

때나 마찬가지였다. 외부에서는 코퍼레이트 회사들과 경쟁을 하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처음 4명일 때나 부띠끄모나코로 갑자기 사무실 인원이 늘어났을


조민석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콜롬비아대학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콜라튼맥도날드스튜디오와 폴섹 앤 파트너스에서 건축가로 첫발을 내딛었고 이후 네덜란드 OMA에서 일했다. 1998년에는 제임스 슬레이드와 함께 뉴욕에서 조슬레이드 아키텍처를 설립해 미국 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했으며, 2003년에는 한국에 매스스터디스를 열었다. 미국 젊은 건축가상, 미국 프로그레시브 아키텍처 어워드를 받은 바 있다. 대표작은 딸기 테마파크, 네이처 포엠, 부띠크모나코, 지웰타워 등이다.

매스 매트릭스 스터디스

Recent Works

에스트레뉴 타워(S Trenue Tower)는 매스스터디스 초창기의 수

도시와 비도시의 비율이 50년 사이에 뒤집혔다. 도시가 82%, 비도

직적 상황에 대한 관심을 잘 드러낸다. 수평 슬래브가 다발을 이루

시가 18% 정도라 한다. 우리에겐 에스트레뉴 타워 이후 산발적인

며 변형하는 번들 매트릭스(bundle matrix)로서, 대지 주변으로

고층 건물 작업이 있었지만, 사실 큰 관심이 없어졌다고 보는 것이

최대 건폐율에 최대 용적률을 획득한 일명 ‘깍두기 타워’와 몇몇 타

맞겠다. 힘든 일은 일하는 즐거움이 있어야 어떻게든 진행시킬 수

워 유형들에 대한 대안적인 계획이었다. 중앙의 코어 타워를 중심

있다. 자본과 시스템 속에서 작업을 오래 지속하다 보면 금방 로봇

으로 2개의 세장한 스틸 구조 타워들은 구조적 안전성을 유지하는

이 되기 쉽고, 마치 공장이 돌아가듯 오피스텔이나 엑스포 파빌리

범위 내에서 다양한 각도로 기울어지며, 최대한으로 코어 타워와

온을 찍어 내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이미 4년 전에 이 18%의 비

거리를 두어 세 개의 타워 사이에 외부 공간을 만든다. 그러면서 또

도시에 눈을 돌려 보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은 이후 작업들과 연

하나의 장점은 3개면이 외부에 접하게 되는 집들도 생긴다는 것이

관성이 있다. ⓦ Daum IT Campus : 시작한 지 2년 반 된 프로젝

다. ⓦ 막상 해 놓고 나니까 깍두기 타워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건

트로, 건설사가 결정되었고 내년 후반이면 완성될 건물이다. 한라

물이 되었다. 건축주들은 소위 랜드마크에 대한 주문이 있었지만,

산 중턱에서 제주시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이 시설은 처음

사실 우리의 관심은 코어 타워와 양쪽 2개의 타워 사이를 기능적,

부터 ‘실리콘 밸리 컬처’라는 유토피즘이 있었고, 사실 오피스 파

구조적으로 연결해 주는 32개의 브릿지들이었다. 코어에서 사적

크라고 하면 자동차로 오고가는 고립된 섬이 될 수도 있으니 좀 다

영역으로 가는 전방에 놓여 있는 이 브릿지는 공사비 때문에 축소

르게 해보자는 의도도 있었다. 처음 마스터플랜을 의뢰받았을 때,

되었지만 원래 계획은 훨씬 넓은 것이었다. 한쪽으로 테라스, 한쪽

전체 800m 길이의 대지를 모두 채우지 말고 한쪽은 밀도 있는 지

으로 조그만 정원을 두어 공용 공간으로 도시에 여유로움을 제공

역으로, 또 다른 한쪽은 목가적인 전원으로 만들어 보는 것을 생각

하며 도시의 틈새를 만들어 내는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이렇게 브

했다. 800m 길이에 60m 높이 차가 나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상황

릿지를 두는 것은 우리의 건축 시장에서는 좀처럼 하기 힘든 일이

이었다. 거의 건물 15층 높이의 차가 나는 것을 이용하여 테라스

다. 틈새 공간을 위해 타워들이 벌어지면서 만드는 독특한 형상이

형태를 구상해 볼 수 있었다. ⓦ 에어 포레스트(Air Forest) : 오바

건축주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마가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한 덴버에 설치된 파빌리온이다. 민주 당 전당대회의 문화 행사를 위해 호수 주변으로 숲이 끊어지는 장 소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펼쳐지는 35개 기둥의 구조물을 제안했 다. 고지대에 위치한 덴버의 기후 조건, 즉 낮에는 뙤약볕이고 밤 이 되면 센 바람이 분다는 것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고

101

wiDe Depth report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구조물을 고안해 냈다.


만국박람회로서 호기심 속에 열렸던 초창기의 엑스포는 150여 년

강익중이 제작한 45×45cm의 알루미늄 패널로, 약 4만 개의 아트

이 지난 지금, 그 관심이 많이 퇴색된 듯하다. 그러나 이번 상하이

픽셀들은 한국관의 입면을 다양한 색, 희망, 화합을 통합적인 동시

엑스포는 새로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개인적으로

에 조화롭게 구성한다. ⓦ 결과적으로 가장 경제적인 방식으로 최

는 한국성에 대한 물음과 맞닥뜨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

대의 효과를 얻은 파빌리온 중 하나라고 자부하며, 이것은 엑스포

흥미로운 것은 지난 100년 동안 인구의 증가와 함께 국가의 수가

의 화두인 ‘지속가능성’에도 걸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6개월 동

4배 이상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는 전체 국가의 3/4, 곧 이번 상하

안 존재했다가 사라질 도시에 비싸고 화려한 건물들이 들어선다는

이 엑스포에 참여한 대부분의 국가가 지난 100년 사이에 형성되었

것은 모순이지 않을까? ⓦ 글 | 조민석(매스스터디스 대표) * 이 글

다는 것을 의미이다. 북한을 비롯하여 신흥 독립 국가들이 건축이

은 땅집사향의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임을 밝힙니다.

나 문화를 통해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은 중국관 다음으로 큰 건물이 들어설 땅과, 가장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가장 경제적으로 지어야만 했다. 어 려운 조건이지만 최대의 효과를 거둬 보자는 각오가 있었다. 좋은 점을 가지고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었다. ⓦ 중요한 특징으로는, 이 번 엑스포에서는 로버트 벤투리가 이야기했던 오리(duck)와 장식 된 헛간(decorated shed)의 개념이 드러나는데, 한국관은 장식된 오리(decorated duck) 혹은 오리 헛간(duck shed)이라고 하는 중 간의 지점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오리 개념으로 왕관 형상, 풍뎅 이 형상 등을 하기에 우리의 예산은 너무 적었는데―단위 면적당 공사비가 대부분 우리보다 3~4배, 많은 경우는 8배 정도에 이르는 곳도 있었다―박스를 만들어서 파사드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정도 였다. ⓦ 전체 건물의 입면은 한글과 아트 픽셀, 두 가지로 구성되 었다. 한글은 한국관 기호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또 이것은 조합

Wide Architecture Report no.15 : may-june 2010

되어 건축물이 되는 공간화된 기호이다. 아트 픽셀은 설치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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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엑스포 한국관


함성호의 <소소재잡영기(素昭齋雜詠記) 10> 남의 탓이요, 남의 탓이요, 날씨 탓이라!

그렇게 나는 “세상에 그런 법은 없습니다”라는 인부들의 말에 지

준공 후에 3,000만 원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땅을 살 때 2억 5천

쳐 갔다. 나중에는 그 말의 서두에서 일찌감치 나는 도리 없이 돌

만 원을 대출받았으니, 시설 자금 대출을 다 받으면 은행 빚이 3억

아서야 했다. 그리고 갈릴레오처럼 중얼거렸다. “없긴 왜 없어.”

4천만 원이 되는 것이다. 골조가 완공되자 받은 3,000만 원으로 골

그리고 욕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되는 일이 없구나, 되는 일이. 그

조 대금을 일부 지급하고 마감 공사를 시작한 것이니, 자금이 바닥

런가 하면 “걱정 마십시오”라는 말도 두려운 말 중의 하나였다. 내

을 드러낸 것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창호를 달려면 아직도

말을 잘 알아 듣는 것 같지만 그건 순전히 나의 착각인 경우가 허

수장 공사와 벽돌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인부들의 인건

다했다. 그들의 “걱정 마십시오”는 “세상에 그런 법은 없습니다”

비는 그들의 생존비다. 자재 대금을 떼어먹는 시공자는 용서받을

의 범위 안에서의 일이었다. 무슨 주문이든 그들은 내 의도와는 상

수 있어도, 인건비를 떼어먹는 시공자는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러나

관없이 자기들의 ‘그런 법은 없는’의 바깥에서 생각하고 제멋대로

돈이 어디서 난단 말인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지만

그런 것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어 버리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없는 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 은행 이자 낼 돈도 없었

방의 천장은 사방 모두 벽에서 50미리 씩 띄어서 커튼박스를 치듯

다. 이자를 못 냈다. 연체 이자, 불이익, 어쩌구 하면서 걸려 오는

이 해 주십시오, 하면 예, 그런다. 그리고 돌아와서 보면, 커튼박스

은행의 빚 독촉. 인건비도 지급하지 못했다. 끝없이 걸려 오는 인

를 만든 게 아니라 석고보드 한 장은 벽에 붙여서 치고 그 위에 덧

부들의 전화. 나는 그들의 생존비를 지급하지 못한 것이다. 그나

치는 한 장은 벽에서 50미리를 띄워 놓는 식이었다. 그래서 커튼

마 인부들의 전화는 작은형님이 거의 처리했는데도 견디기 힘들었

박스를 만들라고 했지 않습니까? 하면, 그들도 할 말은 있다. 그러

다. 생활비도 없었다. 오피스텔 월세도 못 냈다. 여기저기 돈을 빌

면 천장 안이 들여다보이게 되지 않습니까, 한다. 내가 상관없습

릴 데를 알아 봤지만 시절이 수상한 때라 누구도 도와 줄 수 없었

니다, 그렇게 해 주세요, 하면, 예의 그런 법은 없습니다, 가 나오

다. 더군다나 이제는 백만 원 단위가 아니었다. 천만 원 단위의 돈

는 식이다. 그러니까 인부들과 나는 완전히 동상이몽을 하면서 집

이 왔다 갔다 해야 숨통이 웬만큼 트이는 처지였다. 엎친 데 덮쳤

을 지어 나간 것이다.

다고, 정권이 바뀌었다. 되는 일이 없었다. 이젠 앞이 보이지 않았 다. 나는 이제 새 대통령 탓까지 했다. 방송 일을 통해서 들어오는

집이 점점 꼴을 갖춰 나가면서 이 공정 저 공정이 섞이게 되고, 현

돈은 확인하기 전에 빠져나갔다. 무지개 어린이 집 설계비는 언제

장이 복잡해질수록 문제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일이 힘들어

들어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설계비 중 일부를 설계하기도 전에

질수록 일꾼들은 남의 탓만 해댔다. 그것은 처음부터 그랬다. 형

미리 양해를 구하고 당겨 썼기에 독촉도 할 수 없었다. 주변도 초

틀 목수들은 설계가 복잡하다고 건축가를 욕했고, 내장 목수들은

토화되어 있어 누구의 도움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정권은 말기 증

골조가 잘못 나왔다고 형틀 목수를 욕했다. 페인트 공들은 퍼티를

상이 나타나고 있었고, 새 정부에 대한 기대로 가진 자들은 실체도

먹이면서 내장 목수를 욕했고, 가구 목수들은 내장 목수를 욕했다.

없는 기대감에 돈줄을 풀고 있지 않았다.

103

wiDe Depth report

벽돌공들은 전기공들이 공사를 망친다고 말하고, 전기공들은 벽돌 공들이 일머리를 모른다고 욕했다. 타일공들은 타일공들대로 방수

공사가 중단되었다. 더 이상 끌고 갈 힘이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장이들이 바닥 구배 잡기 어렵게 해 놓고 갔다고 욕했고, 창호공들

그냥 흘렀다. 현장은 우중충한 휘장에 가려 겨울을 맞고 있었다.

은 벽돌공들이 수직도 못 잡았다고 욕했다. 심지어는 건축주도 욕

은행에서는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번호

했다. 뭐, 이딴 집을 져서 사람 고생시킨다는 게 욕의 내용이었다.

를 아는 전화 외에는 벨이 울려도 그냥 무시하는 날들이 지나갔다.

현장에서는 누구 하나 내 탓이요, 라고 말하는 치들이 없다. 자기

아, 이자(利子)라는 년은 얼마나 무서운 년인가. 또 문자가 왔다.

가 잘못한 일은 순전히 남의 탓이다. 일을 하기 귀찮아도 남의 탓이

나는 기계적으로 확인 버튼을 눌렀다. “급합니다. 전화주세요. ~~

고, 일이 안 돼도 남의 탓이고, 날씨 탓이고, 원래 그런 탓이다.

부동산” 분명히 거래하던 부동산은 아니었다.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대화동의 빌

나도 건축주 탓을 했다. 돈도 없으면서 무슨 집을 짓겠다고. 공사

라를 부동산에 내놓았는데, 작자가 나섰다는 것이다. 22평 빌라

비가 바닥이 난 지 오래였다. 이자 내는 날은 없는 집 제사 돌아오

를 1억 9천 5백에 내놓았는데, 그렇다면 1억 5백 전세금 제하고,

듯 했다. 은행에서 받은 시설 자금 대출 3천만 원도 바닥이 났다.

은행 대출 3천을 제하면, 다시 공사 자금 6천만 원이 생기는 거였

시설 자금 대출은 골조 완공 때 3,000만 원, 창호 달면 3,000만 원,

다. 아, 정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구나. 나는 부랴부


관이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는 거 아닌

서 수포로 돌아갔다. 다시 모든 공사가 중단되었다. 콘크리트는 얼

가? 부동산에 들어서니 이미 집을 살 사람이 와 있었다. 바로 계약

고, 인부들은 더 이상 작업하기가 힘들었다. 보일러를 설치했지만

서가 작성되었다. 그런데 가격을 흥정하자는 것이 아닌가? 난감했

엑셀 파이프에 물을 넣지도 못했다. 헤이리에서 한겨울에 보일러

다. 지금 나는 어떤 흥정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가 없는 처

에 물을 넣었다가 그 즉시 얼어 버리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지다. 더군다나 집값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고, 동장군이 한파

얼어 버린 물을 녹이느라 인부들이 밤새도록 토치램프로 방바닥

를 몰고 올 기세였다. 아파트 값이 오른다는 이유로 아파트들이 너

을 녹여야 했다. 아무리 공사가 급하다고는 해도 그런 실수를 되

도나도 외국어로 이름을 바꾸기 시작하던 그 무렵, 나는 2천만 원

풀이 할 수는 없었다. 날씨 탓이었다. 그렇게 두 달 가까이 현장은

이나 깎인 1억 7천 5백만 원에 빌라를 팔았다. 공사비가 6천에서

또 놀고 있었다.

4천으로 줄었다. 아니, 공사비가 4천만 원이 생겼다. 이 돈이면 창 호를 달 때까지 충분히 현장을 꾸려 갈 수 있다. 그런 기대도 기대

그 사이 형과 나는 단열재를 벽에 붙이는 작업을 둘이서 했다. 스

지만 나는 집을 팔아 버렸다는 것에 더없이 후련함을 느꼈다. 다시

티로폼 대신에 0.5미리 알루미늄 단열재를 사용했다. 내부 공간이

아무것도 없었던, 이삿짐이라곤 가방 두 개 밖에 없던 시절로 돌아

약 15센티 가량 늘어나는 이점이 있는 반면 정확히 검증되지 않은

간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았다. 2천만 원 깎인 것쯤은 아무래도 괜

재료였다. 날은 추웠고, 연면적 110㎡의 벽량은 만리장성처럼 느

찮았다. 다시 공사를 시작할 수 있고, 다시 아무 것도 없는 내가 되

껴졌다. 붙여도 붙여도 끝이 없었다. 형과 둘이 각재를 이용해 콘

었다는 것이 좋았다.

크리트 벽에 단열재를 대는 작업은 허리가 휘어졌다. 힘든 만큼 작 업은 나의 작업은 거칠어졌다. 아마 형이 아니었으면 나는 포기하

나는 형에게 전화를 했다. “형 집이 팔렸어요.” 형은 뜸도 안 들이

고 말았을 것이다. 역시 노가다에서 인간의 성의를 지속적으로 기

고 말했다. “그럼 빨리 입금해.” 그렇게 허무하게 돈은 다시 흩어

대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공사장 현장 기사 시절

졌다. 집이 없어지는 건 좋았는데, 돈이 없어지니까 허전했다. 역

에 미장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질린 적이 있었다. 지금 우리 집과

시 돈은 좋은 거구나. 나는 다시 손가락이나 빠는 신세가 되었다.

는 비교도 안 되는 그 넓은 벽에 미장 작업을 하는 인부들을 보면

그러나 역시 돈의 힘이 제대로 작동했다. 현장은 동장군의 기세에

서 나는 내가 설계를 하면 미장은 다 없애 버리리라 다짐했다. 그리

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대로 돌아갔다. 돈 탓이다. 현장이 멈춘 것

고 실제로 내 설계에서 미장 마감은 없다. 세상의 모든 노동은 작업

도 돈 탓이고, 현장이 돌아가는 것도 돈 탓이다. 은행이 돈을 빌려

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인간의 성의를 기대할 수 있다. 일찍이 노

준 것도 돈 탓이고, 은행 이자를 못 갚는 것도 돈 탓이다. 현장은 다

동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려고 마음 먹은 마르크스는 위대하다. 지

시 “세상에 그런 법은 없습니다”와 ‘남의 탓’이 난무했다. 그래도

금 모든 후기 산업 사회의 부작용을 그는 정확히 예견하고 있었던

괜찮았다. 이 모든 것이 지나가고 있지 않은가.

것이다. 규격화와 공장 생산이 해결책은 아니다. 한나 아렌트는 『

그러나 날씨 탓이었다. 한파가 계속되었다. 창을 달고, 보일러를

인간의 조건』에서 ‘노동, 작업, 행위’라는 개념을 통해 노동으로 인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틀어 가면서 겨울 공사를 하리라던 계획은 창호 공사가 늦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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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 부동산으로 달려갔다. 처음 보는 부동산이었지만 그게 무슨 상


해 공론의 장에서 소외되는 인간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는 우리의

래도 남는 대금은 2층의 전세 보증금으로 충당되어야 했다. 이제

노동에서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얽매여 있는 한 정치 공론

는 삶의 질을 위해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공사 대금을 갚기 위해

의 장에서 소외된다. 노동은 인간에게 비판 의식, 세계를 보는 시

집을 짓는 꼴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용 승인이 빨리

각을 앗아 간다. 좀 과장했지만 정말 만리장성에 단열재를 붙이는

나야 했다. 설계 당시에 세웠던 도심 조경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

것 같은 끝없는 노동, 그리고 무한히 계속되는 시간이란 얼마나 공

들도 접어야 했다. 한겨울에 조경을 했고, 그것도 법적 조경을 전

포스러운가? 이틀에 걸쳐 단열재를 다 붙이고, 나는 돈이 필요함

담하는 인부들이 동원되어 후닥닥 해치웠다. 주차 구획을 하고, 사

을 더 절실하게 느꼈다. 인건비 아끼려다 몸은 파김치가 되었고,

용 승인에 필요한 필증도 챙겼다. 도시 가스, 전기 인입 필증 같은

허리가 더 안 좋아졌다.  

것들을 인부들로부터 받아 내고, 도로 복구 증명을 위해 다시 12개

담당 관청을 돌며 도장을 받았다.

105

wiDe Depth report

현장이 놀고 있을수록 현장 비용은 증대된다. 작업을 하기 위한 비 게틀 같은 가설재들은 모두 대여해서 쓰는 것들이라 현장이 노는

그리고 설계 변경을 해야 했다. 서류상 2층을 두 세대로 계획하고,

일수만큼 착실하게(?) 대여 비용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그 비용이

실제로는 3세대로 만들어 좀더 많은 세수익을 얻으려고 했던 꼼수

결코 만만치 않다. 그해 겨울은 춥고 길었다. 추위가 물러가자 다

를 접었기 때문이었다. 꼼수를 접은 것까지는 좋은데 2층을 3세대

시 공사는 시작되었다. 늦장을 부리던 창호가 들어오고, 연이어 수

로 만들자 금방 주차 문제가 터져 나왔다. 어떻게 되겠지 했던 게

장 공사가 들어왔다. 타일이 붙고, 페인트가 칠해졌다. 은행에서도

오산이었다. 주차 대수가 전체 3대에서 4대로 늘어났다. 좁은 땅

시설 자금이 다시 대출되었다. 공사는 서둘러 마무리되었다. 더 이

에서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어도 도저히 나오지가 않았다. 법을 뒤

상 꼼꼼히 공사를 할 여력이 없었다. 내장이야 언제든지 다시 손볼

지면서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내가 이

수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문제는 전기였다. 시멘트 벽돌을

고생하는 것도 다 그 돈 없는 건축주 탓이다. ⓦ 글 | 함성호(본지

쌓고, 미장 마감 없이 페인트를 칠한 상태라 전기업자들은 어떻게

편집기획위원, 시인, 건축가)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세상에 없는 법에 제대로 노출된 것이 다. 전기 박스들이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설치되었고,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콘센트 박스들이 벽돌을 깨고 설치되었다. 그로 인해 콘 센트 주위가 구멍이 뻥뻥 뚫렸다. 그리고 집을 위해 동원되었던 모 든 인부들이 빠졌다. 저것을 누가 마감할 것인가? 할 수 없이 형이 직접 나섰다. 어떤 것은 나무판자를 대어 막기도 했지만 어떤 것은 그냥 구멍이 뚫린 채 지나갔다. 왜 이렇게 서둘렀는가? 당연히 준 공을 내기 위해서였다. 준공이 나면 다시 마지막 시설 자금이 대출 되고, 그것으로 남은 인건비를 일부 지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주택 계획안 100선 15> 이기옥의 Sculpture Studio Haus

은 호수로 이어지는 근사한 조각 공원이 만들어졌을 거예요.” 어 떤 연유에서인지 집 짓는 계획이 슬며시 수그러들고 호수 조각 공 원도 사라졌지만, 여전히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건축주는 원 래 거주하던 공간이 골프장으로 개발되면서 급하게 서둘러 땅을 구해 집과 작업 공간을 마련하는 설계를 의뢰해 왔었다. ‘집이면서 도 작업실이자 갤러리’까지, 그리고 조각 같은 건축물이었으면 했 다. 건축에 안목 있고 눈 높은 건축주였다. “설계를 시작하기 전에, 처음부터 건축주와 계속 이야기만 했어 요. 건축주가 ‘왜 뭔가 보여 주지 않느냐’라고 말하기 전까지 말이 지요. ‘이런 방향과 컨셉트로 해야겠구나’ 하는 큰 틀이 정해지는 문법은 아주 빨리 만드는 편이라서, 오히려 건축주와 얘기를 하면

↑투시도과 배치도.

서 문장을 만들 단어들을 찾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거죠. 그 러다 보니 문법을 뒤집는 대안보다는, 건축주에게 맞는 하나의 안

이기옥은 고려대 건축공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 국제설계학교(MIT-서울대)를 수료하였다. ㈜간삼종합건축, ㈜희림종합건 축에서 실무를 쌓았으며, ㈜김이종합건축을 설립하여 공동 운영한 바 있다. 현재 ㈜필립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이며, ㈜건축설계정보 아키데이타를 설립하여 이사로, 고려대학교, 중앙대학교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 Buenos Aires 2009(Vertical Zoo In Front of Pueto Madero) 등의 국제 공모전 당선을 비롯, ‘구 기무사 본관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활용에 대한 타당성 및 방향성 연구’와 같은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도코모모코리아 이사와 한국건축가협회, 건축문화학교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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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의 전시가 이 집에서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집 주변을 휘감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아마 계획대로였으면, 지금 인사동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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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으로 계속 발전시켜 나가게 돼요. 2~3번 미팅을 하면 정리가 되는 편인데, 그러면 앞으로 제가 설계를 풀어 가는 방식에 대해 이야 기를 하죠. 보통 주택 설계안이 완성되기까지 열 차례 이상 미팅 을 가지면서 6개월 정도 걸리는데, 이 주택은 4개월 만에 안이 완 성되었어요.” 건축가가 주택 설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과정을 풀어내면 서, 이 집 주인의 작업이라며 보여 주는 조각 작품은 설계한 집의 입면과 패턴이 비슷했다. 두꺼운 철판을 잘라 다시 원래 형태를 따 라 붙이면서 기하학적인 틈을 만들어 내는 건축주의 조형 작업이 작업실의 외벽에 그대로 구현된 것이었다. “건축주는 조각을 하시는 분인데, 개인 주택을 비롯해, 작업실과 갤러리, 그리고 부속 공간들을 요구하셨어요. 대지가 200평 정도 되지만, 들어가야 할 3~4개의 프로그램을 모두 합하니 매스가 대 지에 비해 아주 커졌어요. 더욱이 대지가 이형이라 제일 큰 매스인 작업실을 넣고 나니, 디자인이 안 될 듯싶었죠. 그래서 처음부터 출발은 각 프로그램의 매스를 모듈화시켜, 매스를 누적시키는 개 념을 전개해 갔어요. 위쪽에 주거를 놓고, 아래쪽으로 작업실과 부 속 공간들, 갤러리를 두는 식으로요. 그리고 가장 큰 작업실을 틀 어 놓아 최대한 장 스팬을 갖도록 했죠.” 조각가의 작업실이란 것이, 주로 육중한 철판을 자르고 붙이는 일 이 한 공간 안에서 벌어지고 환경 조형물 정도의 스케일 큰 작업 이 이루어지다 보니, 천장고가 8m까지 된다. 지하층을 파서 작업 실 놓고, 철판의 제단과 용접을 도와 주는 전문가가 거주하는 공 간, 그리고 학생들의 개인 작업실을 더해 게스트 하우스 겸 작업 실을 하나의 매스로 놓았다. 그 위에 주인 개인 작업실 겸 갤러리, 마당이 펼쳐진다. 그리고 2층부터는 건축주의 완전한 독립실이자

민을 많이 했어요. 작업실과 주거가 위아래로 적층돼, 매스가 붙 어 있거나 박히는 느낌이 될 수 있거든요. 두 매스가 떨어져 보이 도록 매스와 매스 사이에 보를 올리고, 주거 부분은 2m 상당의 캔 틸레버를 넣었죠.”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것은 많은 프로그램을 대지 안에 넣기 위해 매스들을 분절하고 중첩시키면서 강하게 드러나는 조형성이다. 정 작 복잡한 프로그램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잘 드러나지가 않는 다. 작업실에서 썬큰으로, 그리고 주거로, 다시 갤러리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동선은 이 집의 터미널과도 같은 중정을 통해서다. 좀더 내부로 들어가면 길게 늘어뜨려진 수직, 수평 동선과 용도가 불분 명하고 애매한 공간들이 등장한다. 늘어진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전시 벽면과 맞닥뜨리거나 프레임을 통해 마당을 보면 또 하나의

↑모델과 구조 시스템.

옥외 갤러리가 만들어져 있다. 분절과 중첩의 건축적인 특성은 이

Sculpture Studio Haus 건축 개요 ⓦ 위치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용설리 516-6 | 대지 면적 : 684.00㎡ | 건축 면적 : 265.85㎡ | 연면 적 : 913.94㎡ | 건폐율 : 38.87% | 용적률 : 69.79% | 규모 : 지하 1층, 지상 3층 | 외부 마감 : 노출콘크리트, IPE, C-BLACK, 복층 유 리 | 내부 마감 : 온돌마루, 실크 벽지, 친환경 페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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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컨셉트를 풀기 위해, 매스를 분절시키는 디테일에 고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사적 공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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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런 곳에서 발견이 된다. 실지로 갤러리라는 건축 프로그램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건축가의 말에 의하면 그 애매함 은 ‘로스’가 아니라 여기저기 공간을 ‘플러스’해 줄 것들이다. “이 애매한 공간은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 들어가도 어느 정도는 수 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용도가 정해지지 않는 공간 은 줄이기를 바라지만, 버린 것 같아도 그로 인해 얻는 것이 있어 요. 그 공간이 얼마나 건축적인 얘기를 풍요롭게 해줄까 하는 거 죠. 그리고 동선이 잘 풀려 있으면 주택이든, 갤러리나 매장이든, 다른 용도의 프로그램이 섞이거나 개조를 해도 자연스럽고 그러면 서 비슷한 공간의 얘기를 가질 수 있답니다.” 목적이 명확한 오피스나 근생 시설에 반해, 주택은 법이나 경제성 같은 현실적인 것으로부터 그나마 자유로운 곳일 것이다. 면적이 많이 나와야 하고 임대가 잘 돼야 하지만, 면적이 줄더라도 좋은 공 간을 더 선호하는 최근의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건축가들은 자신의 건축 언어를 표현할 수 있는 좋은 공간으로 주택을 여기게 될 것이 다. 이 집의 건축가가 주택 설계에서 ‘문장을 만들기 위해 단어를 찾는다’는 것은 이 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건축주 본인이 직접 살아야 하잖아요. 주택은 건축 주가 갖는 집착도가 높기 때문에, 결국에 형태나 공간을 만들기 이 전에 거기에 담겨야 할 중요한 것이 있어요.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건축주의 시간입니다. 지금 건축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앞 으로도 여전히 유효한 공간이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지 게 되죠. 앞으로 이 집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예요. 사람의 취향에 맞는 소품들이 살면서 매번 바뀔 수 있듯이, 살면서 대부분 변하는 ↑입면도들.

구체적으로 요구를 했었죠. 어떻게 보면 주택은 건축 설계만이 아

↖동선 개념들.

니라, 인생 설계, 라이프 스타일 설계를 병행해야 정말로 그 공간이 작동되는 것이죠.” ⓦ 글 | 강권정예(본지 객원기자)

↓투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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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들어가야 한다고 봐요. 이 집에서는 갤러리였고 건축주가 아주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것들이겠죠. 그래서 주거에 담아내야 할 모든 것에는 시간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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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WIDE focus 05>

디자인이란?

IMF의 정신적 공황을 벗어나려고 외치기 시작한 구호 ‘IT 강국 코

지난 가을 인문 사회과학 분야 원로 학자들이 모이는 포럼에 참석

리아’는 1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대표적 자긍심으로 대중

할 기회가 있었다. 그중 한 분이 갑작스럽게 “우리나라 디자인 능

의 마음에 자리 잡은 듯하다. IT는 우리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이

력은 세계 몇 위쯤 됩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인문 사회 학자

자연스레 배어나올 수 있는 몇 안 되는 단어들 중 하나이다. 하지

의 눈에는 필자 같은 얼치기도 디자이너로 보였는지 이렇게 물어

만 ‘IT 강국 코리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IT 생산 강국이라기보

오셨다. 옆에 계시던 노 석학께서 “경제학자 ~~~가 그러는데 한

다 IT 소비 강국의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국가도 부도가 날 수 있

20위쯤 된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생각을 해 보았

다는 파국의 공포에서 서둘러 벗어날 목적으로 급조된 IT 강국의

다. 과연 우리나라의 디자인 경쟁력은 어디쯤에 있는 걸까? 과연

교조는 소비 시장 창출에 필요한 기술만 모아 조립한 내구성이 취

이 원로 학자의 말처럼 디자인 능력에 어떤 정량성을 적용해 순위

약한 제품일 수밖에 없었다. 10년이 채 되지 않아 우리는 그런 제

를 매길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떤 정량적 틀을 사용해야 하

품은 사용 연한이 극히 짧음을 배우고 있다. ⓦ ‘IT 강국 코리아’

는 것일까? 갑작스런 질문에 응하기 위해 정량적으로 디자인을 바

의 구조를 그대로 이어받은 ‘유비쿼터스 코리아’ 역시 취약한 사

라보기 위한 틀을 찾아보았다. ⓦ ‘글쎄요, 이미 제품 기반이 아닌

유의 토대 위에 지어진 화려한 언어의 무대에 불과했다. 대한민국

미국과 영국보다는 우세하고, 생산 관점의 자동차 디자인에서는

의 풍요로운 미래를 약속하던 신성장 동력은 불과 5년도 되지 않

이제 일본은 따라잡은 것 같고, 어떤 분야에서는 유럽보다도 디자

아 유행 지난 재고 상품처럼 창고에 쌓여 무관심의 먼지를 뒤집어

인 생산 경쟁력이 앞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최고의

쓰고 있다. 유비쿼터스 환경이 줄 무한한 가능성의 미래가, 그 희

디자인 강국인가? ‘그런데 최근에 조금 새로운 디자인 현상이 나

망의 시원(始原)을 선점하려는 정치적 욕망으로 탈색돼 시작도 못

타났습니다. 지금까지 제품 생산에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 재료는

한 채 철 지난 유행어로 여겨지는 것이다. 유비쿼터스 공간과 유

형상과 색채(질감 포함)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인터랙션

비쿼터스 개짓(Ubiquitous Gadget)을 구분하지 못한, 유비쿼터스

(Interaction)이라는 새로운 재료가 첨가 되었습니다. 이 인터랙

환경의 비선형적 사유를 이해할 능력도 없으면서 그 희망의 미래

션을 디자인 재료에 포함시킨다면 미국의 디자인 경쟁력이 갑자기

아래 모여들었던 소비 기반의 욕망들은 이제 그곳을 떠나고 있다.

세계 최고로 뛰어 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이 답변은 이미 오

ⓦ ‘iPhone’ 하나에 맥없이 나가 떨어져 몇 달을 허둥대다 겨우 스

래 전 디지털과 결합했던 제품들이 이제 마음과의 결합을 시도하

크린이 조금 더 밝은 아몰레드(Amoled) 복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

려는 현재의 제품 환경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디지털이란 마음

이, 소비 구조로 시작한 ‘IT 강국 코리아’, 무지한 욕심에서 시작한

의 가장 큰 부분인 생존 본능과 실시간 강하게 반응할 수 있는 영

‘유비쿼터스 코리아’의 2010년 현주소이다. 아이폰(iPhone)보다

역이다. 이에 비해 형상에 의존하는 지금까지의 디자인 영역은 마

더 밝은, 더 빠른 스마트폰을 만들어 내는 동안, 아이폰은 디지털

음의 작은 부분과 느리게 반응하는 영역이다.        

자이로를 내장하고 아이폰4(iPhone4)로 진화했다. 자이로를 내장 한 아이폰4에서 애플이 디자인한 것은 iPhone4의 주인이 세상에

제품 디자인

나서 교류하는 데 필요한 자신감이다. ⓦ 자이로(Gyro)는 수백 수

일본은 좋은 제품을 만들려다 10년을 잃어버렸다. 후쿠다 보고서

천 억 원의 미사일과 비행기에 목적지의 위치 정보를 제공해 파괴

한 장에서 디자인의 가치를 깨달은 대한민국은 예쁜 제품을 쫓고

력과 유용성을 수백 배 증가시킨다. 디지털 자이로 탑재 아이폰4

있지만 그 앞날이 일본보다 밝다고 할 수 없다. 이제 시장의 트렌드

는, 자신의 주인을 이 세상과 하나로 결합시키는 위치 기반 증강 시

는 좋고 예쁜 제품이 아니라 재미있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템의 출발점이다. 핸드폰 가게에서 소비자를 유혹하기 위해 만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는 방법은 예쁜 디자인을 고집하거나 재미

들어진 것이 아몰레드 장착 스마트 폰이라면 아이폰4는 수많은 앱

있는 디자인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욕망이 그 다음으

(App)과 결합해 사용자의 삶(Life style)을 풍성하게 하려고 한다.

로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 최근 디자인의 중

애플이 디자인한 것은 예쁜 모양이 아니라 자신의 주인과 세상의

요성을 강조하고 디자인 경영을 표방한다. 하지만 “장인 정신을 바

교감이다. IT 강국이 아이폰의 의미를 CPU의 연산 능력으로 잘못

탕으로 품격이 다른 디자인을 창출해야 한다”라는 제시어는 고전

이해하고 흉내 내는 동안 iPhone4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

적 제품 생산 기반의 디자인 개념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음

한 사용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답을 내고 있다.

을 보여 준다. 폐기를 목전에 둔 디자인 패러다임에 1,000억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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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강국 코리아의 10년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디자인과 마음


니라 1조 원을 퍼부은들 그 결과는 무의미할 것이다. ⓦ 제품 디자

이로가 세상과 교감하는

인에서 이제 디자이너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얼마 되지 않는다. 디

위치 기반 스마트폰의 기

자인에서 형상의 의미가 차지하는 영역이 극히 작아지고 있지 때

초이듯, 사람들과 더 깊이

문이다. 21세기, 소비자를 유혹하기 위해 제품에 담을 수 있는 디

교감하게 하는 촉감 기반

자인 재료가 형상과 색상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21세기 디지털 환

스마트폰의 토대이다. 이

경에서 장인이란, 무엇인가를 맵시 있게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아

손가락은 나의 촉각적 행

니라 그것을 원하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자연, 인문, 사회 과학

위를 상대에게 전달해 줄

자들이다. ⓦ 우리의 주력 상품 중 하나는 고품질 LCD 패널에 기

수 있다. 벨을 울려 목소리

반한 평면 텔레비전이다. 하지만 평면 텔레비전의 발달은 점점 더

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가 자신의 디자인 의지를 담으려고 하는 공간을 박탈한다.

주머니 속 핸드폰을 만지

과거의 CRT TV가 디자인을 표현하는 데 충분한 4개의 공간(바닥

면 손가락이 이에 반응하

과 배면을 제외한 면)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 달리 두께 7mm, 베젤

손가락 핸드폰.

고 이것에 다시 반응하는

(Bezel) 15mm인 46인치 LCD TV는 단지 한 면, 그것도 그 한 면

손가락의 움직임을 상대

의 10%가 채 안 되는 공간이 생산자에게 디자인을 허락한다. TV

방 핸드폰을 통해 전달한다. ⓦ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휴대 장치

의 궁극적 목표는 베젤을 없애는 것이고, 결국은 생산자는 스탠드

인 핸드폰에 CPU를 결합함으로써 탄생한 스마트폰은 자연스럽게

를 디자인하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장인 정신에 기반한 디자

핸드폰이 전달하는 것이 음파가 아닌 전파임을 깨닫게 한다. 전파

인 패러다임에서 디자인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모순을 발견하

는 목소리와 비교할 수 없는 고밀도의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이다.

게 된다. ⓦ 더 이상 디자인을 담을 공간이 없는 제품을 디자인해

사용자에게 무한에 가까운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전파를 통해 목

야 하는 모순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 아니다. 100% 스크린

소리만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다. 왜 핸드폰이 세

공간이 있지 않은가. 혹시 제품 생산자는 스크린을 불가침의 미디

상에 나왔는지, 그리고 왜 그것에 열광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어 생산자 몫으로 비워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핸드폰이나 스마트폰 그리고 위치 기반 네트워크 통신 장치가 아

스크린 영역 역시 제품 생산자의 몫임을 아이폰은 보여 주고 있다.

닌 새로운 교감 장치로서 핸드폰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폰에 대한 소비자의 호감은 외형보다 그것의 전원을 켰을 때 스크린에 나타나는 인터랙티브 영상에 의해 이끌어진다.

투명 증강창.

시나리오 1. 가족 TV 바젤이 사라진 LCD TV에는 고해상도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다. 이 카메라는 표정 인식 기능을 가지고 있어 TV 프로그램을 시청 하는 가족의 웃는 모습이나 재미있는 표정을 포착해 자동으로 촬 영하고 저장한다. 전기를 거의 소모하지 않는 디지털 잉크 스크린 기능을 가진 TV는 저장한 가족의 모습을 슬라이드로 보여 준다. 영상 자동 보정 및 편집 기능을 가진 TV는 더 예쁜 얼굴을 찾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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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고, 촬영한 스틸이미지(Still Image)를 영상 처리해 표정 변화 동 영상을 만든다. 가족의 눈이 TV의 카메라와 마주치면 예쁘게 미

스마트폰 따라잡아서 무엇을 할 것인가

소 짓는 가족의 모습을 목소리와 함께 보여 준다. 가족 사진들 중

생산자도 이제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면 아무리 익숙한 것이라도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스마트폰으로 자동 전송해 준다. ⓦ 가족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자기 것을 찾아야 한다. 아직도 아이폰의 극

불러 모으던 벽난로의 역할을 대신하는 TV는 가족들이 모여 감정

도로 단순한 디자인이 그것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그

을 이입시키는 공간으로 풍부한 표정이 만들어진다. 디지털 액자

것을 흉내 낸다면 소비자의 호감이 아니라 스티븐 잡스의 칭찬을

에 저장된 사진의 95%는 가족에 관한 것이다. 이 둘을 결합시키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고광량 아몰레드 스크린만 잘 만들

면, 예쁜 사진을 찍어 주고 상황에 적절한 사진을 선택해 보여 주

면 스티븐 잡스는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IT 강국 코리아’의 삼성

는 TV는 가족으로서의 소비자 호감을 끌어내는 시스템으로서 새

과 LG는 애플보다 훨씬 앞서는 기술과 자본을 가지고 있지 않은

로운 다자인 영역이다.

가? 스티븐 잡스를 위해 제품을 만들지 말고 사용자가 원하는, 그 래서 그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을 생각해야 한다. 불과 2~3년 안에

시나리오 2. 손가락 핸드폰

애플이 포기할 CPU와 App. 기반의 스마트폰 따라잡아서 무엇을

스마트폰에는 손가락이 하나 달려 있다. 약지의 위치에 달려 있는

할 것인가? ⓦ 글 | 조택연(본지 운영기획위원, 홍익대학교 산업

손가락은 사람의 손에서 약지의 역할을 한다. 손가락은, 디지털 자

디자인학과 교수)


<WIDE focus 06>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안녕하십니까?

시킨 프로젝트라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현 정부 들어서 급속

박물관이다. 박물관이라는 프로젝트 자체의 속성이나 장소성에서

하게 부각된 프로젝트라 과정이나 배경이 현대미술관 서울관만큼

나 의미가 큰 국가적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공모전 시시비비의 속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현대미술관 서울관이 2차 현

사정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공교롭게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상 설계를 앞두고 조선 시대 종친부 유구 발굴로 건립의 향방이 어

의 얘기를 계속 들을 수 있었다. 이 두 공모전이 계속 비교되는 것

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인데 반해, 역사박물관은 2012년 말에 완공

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주무 부처에서 진행하고 있으면서도, 미

을 목표로 2차 턴키 공모에 돌입하였다. 이 점이 대한민국 역사박

술관과 박물관이라는 공공성 강한 문화 시설이 사연 많은 곳에 들

물관 아이디어 공모 결과에 대한 시비와 함께 계속 비교되는 것들

어선다는 점이 우선 그렇다. 하나는 국군기무사령부가 쓰던 곳이

이다. 그리고 공모전 패자들의 묵언을 미덕 삼으라는 말도 쉽지 않

고, 다른 하나는 곧 이전할 문화체육관광부 건물이다. 그리고 하

으며, 석연치 않은 구석이라 생각되는 부분이다. ⓦ 현대미술관 서

나는 기존 도시 구조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다른 하나는 국가 상

울관은 지난 와이드 3-4월호에서 아이디어 공모의 결과와 과정을

징 거리 1번지, 미대사관 옆에 들어선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정도

집중 조명한 바 있으며,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의 당선작(우수작)은

의 차이는 있지만 기존의 구조체를 두고 리모델링하는 설계 방향

(주)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서해천, (주)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

도 유사하다. ⓦ 비교되는 차이라면 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위치 선

소 이필훈, 에이엔유디자인그룹(주) 오성제, (주)나우동인건축사

정에서 15년이 넘게 미술계와 문화계가 언론 플레이를 통해 실현

사무소 외 2개사 박병욱, (주)가아건축사사무소 강인철 등 5개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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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공모전 시비다. 이번엔 그 대상이 국가대표 격 대한민국 역사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들어설 문화체육관광부 건물. (사진 제공 : 문화체육관광부)


이 선정되었으며, 상금과 함께 2차 공모인 설계·시공 일괄 입찰

은 안을 뽑기 위해 턴키가 좋은 방법이 아님에는 분명합니다. 현

에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에이디에프도시건축건축사사무소 외 2

상 설계를 하면 좋지만, 낙선하면 설계자는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개사 김광선, (주)창조종합건축사사무소 외 1개사 김병현, (주)종

합니다. 적게는 CG 투시도 몇 컷 뽑아내는 데에 2천만 원, PF 경

합건축사사무소 디자인캠프문박디엠피 김혁, (주)시아플랜건축사

우 동영상이라도 들어간다면 1억 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가기도 합

사무소 조주환, 예주건축사사무소 김선재가 가작 5개 팀으로 지난

니다. 그런데 턴키 공모에서는 당선에 상관없이 기간 동안 투여되

4월 23일 발표되었다.

었던 실제 비용과 인건비를 차감하더라도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비용이 주어집니다. 예를 들어 턴키 공모에서 총 설계비가 20억일

공모전 시비의 단초는 1차 아이디어(건축 개념 설계) 공모 당선작

우는 6~10억 정도가 건설사로부터 먼저 지불되고, 당선 후 나머지

을 비롯한 수상작 일체가 공개되지 않고 있는 데에 있다. 심사 기

를 지불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설계 사무소에서는 이윤이 발생하

준과 심사 내용이 어떠하였는지를 알 수 없으니, 당선한 이유가 무

는 수주 프로젝트로 턴키 설계를 취급하는 것이죠.” ⓦ 분명 턴키

엇이고 낙선한 이유가 무엇인지, 왜 더 우수한지 가늠하기 어렵

설계가 복수의 설계사가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임에는 분명하다.

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박물관 건립 추진단에서는 최종 설계안

그리고 일단 턴키 설계가 시작되면, 보통 주어지는 60일 내외의 기

이 선정될 때까지는 아이디어 공모의 당선작 공개는 어렵다는 내

간에 시공성이나 공사 금액을 책정할 수 있는 실시 설계 직전까지

용을 몇 차례 확인시켰다. 계획대로라면 9월 중순에서야 아이디어

도면이 나와야 한다. 그 만큼 맨파워와 조직력이 갖춰진 사무소가

공모 당선작 공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원칙은 당선작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작은 설계 사무소에서 단독으로 하기는 힘들

5개 팀 합의에 의한 것으로, 아이디어를 모방할 가능성을 아예 차

다는 얘기이다. 오히려 합사나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것이 현실적

단하여 공모전의 공정성을 기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 사실 이

이다. 그러면서 건설사나 협력 업체에서도 누구나 다 만족하는, 아

점은 납득이 어렵다. ‘당선안의 개념 및 형상 변경 불가’라는 발주

주 나쁘지 않는 보편적인 안이 선정되고, 턴키 설계는 오히려 발전

처가 만든 공모 지침을 스스로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이기도 하며,

소나 플랜트, 교각 설계에서는 환영받는 것이기도 하다. ⓦ 그렇다

취재원을 만나는 과정에서 다른 팀의 당선작을 상당 부분 접할 수

면 턴키 설계 자체의 문제점보다는 선정된 역사박물관의 건축 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작 설계자들은 국가적인 프로젝트의

이디어가 제대로 구현될 것인가와 역사박물관이 턴키 설계 방식으

당선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서 설계자의 이미지에 도움을 줄 수 있

로 진행하기에 적합한 건물인가 하는 것이 남는다. 먼저 역사박물

지 않겠느냐, 특히 역사박물관과 같이 공공적이고 문화적인 성격

관의 심사 위원장이자 건립 위원인 김원(광장건축 대표)은 공모 방

이 강한 프로젝트는 앞으로 그 시설을 이용할 국민들의 관심을 이

식에 변경이 있었음을 전했다. “역사박물관 건립 위원이 모두 27

끌어 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아이디

명인데, 그 중에 건축과 관련된 사람은 저 혼자입니다. 물론 건립

어 공모에 참여한 한 사무소는 다른 곳에 이유를 두고 있었다. “

위원의 구성은 처음과 달리 대폭 축소된 것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일반적으로 턴키 공모가 진행되면, 설계안의 보안 유지는 관례적

책임이 더 막중해졌다는 생각입니다. 지금은 아이디어 공모가 진

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계 아이디어를 포함하는 현상 설계

행되었지만,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애초에 턴키 공모로 진행하

가 스키메틱(schematic) 디자인이라면, 턴키 설계는 적정 공사비

는 것이 결정돼 있었어요. 사업의 주무 부처인 문화부의 입장은 설

를 제시해야 하는 공사비 입찰입니다. 상대 팀의 안을 분석해서 공

계보다는 날짜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조달청 턴키 방식을 채택

사비를 예측하는 것이 가격 심사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하나

한 것이죠. 건립 위원으로서 반대할 수 밖에 없어요. 아이디어 공

의 방편이 되기 때문이죠. 특히 설계안의 변별력이 크지 않고 가

모는 논의 과정에서 바뀐 것입니다. 좋은 건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격 배점이 높거나 저가 입찰이라면 두 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

그만큼 방식이나 방법이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사실 턴키는 국가

다.” 실제로 설계안의 보안 유지는 공모 방식에 기인한다는 것이

프로젝트, 미술관, 박물관 문화 시설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방식입 니다.” ⓦ 역사와 문화적 특성이 강한 건축물, 특히 공공 건축물에

하면서 좋은 디자인을 뽑기에 적절하지도 못하다는 턴키 방식인

서는 건축주라는 대상이 좀더 다양해진다. 때문에 의사 결정 단계

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내려진 엠바고에 다른 연유가 있지 않

가 복잡하고 그만큼 잡음도 많기 마련이다. 그리고 시민 사회가 확

을까 하는 것이다.

장되면서 공공 건축물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wiDe Depth report

때, 건설사와 컨소시엄을 이루어 설계부터 턴키까지 진행하는 경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면 왜 탐탁치 않은 이유로 보안까지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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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바고,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공공 건축물의 턴키 설계,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식으로 차단된다면 분명 적합한 방식은 아닌 것이다. 사업을 빨리

사실 턴키 방식이 좋은 건물을 짓는 방법은 아닐 수 있지만, 시장

추진하기 어려운 일련의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발주처의 생각이나

의 구도에서 보면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 이미 규모가 큰 사무소

의지를 실현하기에는 턴키가 적합한 방식이지만, 시민 사회를 위

에는 턴키 설계만을 전담하는 부서가 있을 정도다. 또 규모가 작

한 공공 건축물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방식인 것이다. ⓦ 그런데 역

은 곳도 기본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나름대로 턴키 방식에 협력하

사박물관은 공모 자체로도 자가당착의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

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설계자들은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다. “좋

다. 하나는 당선작 5개 팀만으로 턴키 설계 공모가 진행되면 공정

지만 설계안을 접하는 과정이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발주 방


거래법 위반을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달청은 1차 공모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역시 ‘역사 바로잡기’라는 명분으로 고안된

에 작품 제출한 41개 팀을 대상으로 하여 당선작 5개에는 가산점

건축물입니다. 역사박물관을 만들어서 국민들한테 ‘바로 된 역사’

을 주어 형평을 고려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당선된 아이디어가

를 보여 주자는 것이지요. 대한민국이 태동한 이후부터, 왜 우리

다시 현상 설계 공개 공모에 응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뿐더러, 공

나라가 오늘날 이렇게 잘 살게 되었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 주며,

모 방식을 바꾼다면 당선 팀의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부분이

남남 이념 갈등의 논쟁을 모두 없애고, 아주 긍정적인 현재와 미래

기도 하다. 또한 당선 가산점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5개 당선작 중

만을 가지고도 대한민국의 잠재력을 살려 나갈 수 있다는 것이지

에 하나가 최종안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같은 방식으로 앞서 진행

요. 당연히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점입니다.”’사실 역

된 ‘광화문 광장’ 은 1차 아이디어 공모 당선된 안들이 가산점을 받

사박물관의 현대사 전시는 일제 강점기 역사가 있는 독립기념관,

고도 2차 턴키 설계 공모에서는 시공성과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에

한국전쟁을 중심의 현대사가 있는 전쟁박물관, 그리고 서울역사박

있던 전혀 다른 안이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심사 위원이

물관의 서울시사와도 상당 부분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 물론 역사

다. 턴키 설계 공모의 심사 위원은 조달청에서 새롭게 구성하는데,

박물관이 기획되면서 대한민국 현대사를 전시하는 박물관을 별도

턴키 심사의 폐단과 불공정성을 막기 위한 자구책이기도 하다. 하

로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에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전

지만 역사박물관에서는 변별력 없는 심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아

혀 논의가 일지 않았던 부분이다. 지하 터파기를 하지 않는다는 조

이디어 공모 자체가 공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당선작의 내용을

건이나 문화부 건물이 보존 가치가 있어 리모델링으로 설계 방향

알 수 없을 뿐더러 아이디어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거나 전혀 다른

이 결정되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당시 미국 설계사가 설계하고 전

안을 제출하는 파울을 범하더라도 이를 제어할 방법이 없는 것이

형적인 패스트 트랙 공법으로 1961년에 시공된 것일 뿐이다. 더욱

다. ⓦ 건립 위원회 측은 5개 당선작을 대상으로 턴키 대신 현상 설

이 무량판 구조(플랫 슬래브 구조)로 천장고가 낮아, 박물관으로

계 공모로 최종안을 뽑은 후, 턴키 공사 입찰과 1,2차 설계 심사 위

사용하기에 적합하지도 않는 건물이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원을 동일하게 구성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그리고 현재 조달청

산업화를 촉발시킨 경제기획원이 과거에 사용했던 건물이라는 점,

공고는 1차 당선작에 가산점을 주는 일반 경쟁으로, 자격 심사 후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는 것 정도다. ⓦ 최근 영국에서

턴키 입찰 방식으로 조정한 상태다. 당선작 5개 팀의 사전 동의를

런던의 대규모 재개발 계획이 무산된 사건이 사회적인 이슈가 된

통해 변경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리처드 로저스의 개발 계획이 런던의 이 을 넣어 건축가를 교체하고 계획을 변경시킨 것에 대해, 영국 왕립

그런데 빨리 지어야 하는 것이 단지 사업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행

건축가협회는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권력 개입이라 즉각적으로 비

정적 편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현대사

난하고 나섰다. 그리고 법원은 왕세자의 개입이 부적절했다는 판

박물관’에서 ‘국립대한민국관’으로, 그리고 지금의 이름은 바뀌는

결을 내렸다. 권력이나 정치가 공공 건축물의 프로세스에 개입하

과정에서 드러나는 의도는 더욱 노골적이다. 현 정부가 역사박물

는 방식은 결코 좋은 건축물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관 건립에 앞서 ‘건국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통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찰스 왕세자는 있지만, 전문가 집단이 없다는 것은

정부 수립의 연원을 1948년으로 규정한 바 있고, ‘국립대한민국

아쉬운 일이다. ⓦ 글 | 강권정예(본지 객원기자)

관’에 들어가는 좌익 독립 운동가들을 배제하겠다는 의도라는 지 적과 의견도 분분했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명기돼 있는 임 시정부의 법통을 정부가 부정하면서까지 잃어버린 10년이니, 좌 편향의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공언을 한 것도 무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립 위원 김원은 역사박물관에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문제는 제가 독립기념관에 건립 위원으로 참여했을 때와 상황이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독립기념관은 현상 설계로 진행되었는데, 건축 설계의 저작권 개념이나 심사 위원 사 전 공개, 이전까지 흔했던 현상 설계 운영상의 문제점과 전횡을 바 로 잡았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독립기념관 은 신군부 정권의 정통성을 알리기 위해 고안된 것입니다. 독립기 념관이 6개의 전시관에 수·당나라 때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독립 투쟁의 역사를 담고, 마지막 제7관에다 5공화국관을 구성하여 입 구에 전두환 대통령의 거대한 초상화를 걸었죠. 군사 쿠데타의 스 토리를 전체 독립 투쟁 역사의 일부로 편입하는 것, 즉 정권의 정통 성, 당위성을 보여 주는 것이 바로 독립기념관의 아이디어였어요.

문화체육관광부 건물 주변. (사진 제공 :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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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사회로부터 이탈하는 방법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미지와 맞지 않는다며 못마땅해 하던 왕세자가 개발 회사에 압력


<이슈가 있는 근작 01>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의 카페 거리 부근에 용도를 가늠 하기 어려운 형태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건물이 섰

이정훈의 용인 헤르마 주차 빌딩

다. 비교적 통과 차량이 많은 6차선 도로를 달리던 사람 들은 새로운 건물이 선사하는 의외성에 호기심을 드러 낸다. 해가 뜰 무렵 하얀 빛을 뿌리다가 점점 보랏빛으 로 물들고,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금빛을 띠게 되는 입 면의 다양한 변화가 건물명 ‘헤르마’(중성의 신 헤르마 프로디토스, 복합·양성·미묘함을 상징)를 잘 설명해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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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형의 피난 계단을 채워 넣은 북측 모서리.


이정훈은 성균관대학교에서 건축학과와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2003년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도불, 낭시(Nancy)건축학 교에서 건축 재료학으로 석사를, 파리 라빌레뜨 건축학교에서 건축이론 석사 및 프랑스 건축사를 취득했다. 파리의 시게루 반 유럽 사무소에서 Metz Pomphidou Center 실시 설계에 참여하였고 런던 자하 하디드 사무소에서 Ferrercout Singapore 아파트 단지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가감법을 이용한 설계 방법론 연구』를 주제로 파리건축학교를 최우수 졸업했으며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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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립현대미술관 국제 현상에서 우수작, 전곡리 선사유적박물관 국제 현상에서 Merit Award 등을 수상했다.


전면 전경. 60도에서 150도까지, 각을 이룬 폴리카보네이트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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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들과 스테인리스 스틸 메시를 덧댄 홀(hole).


택지 개발 지구의 주차 빌딩 헤르마 빌딩은 주차장 건물이라는 용도의 의외성으로 사람들을 또 한 번 놀라게 한다. 무미 건조한 표정에 현란한 간판으로 치장되 는 기존 택지 개발 지구의 주차 빌딩들과 비교한다면 매우 파격적 인 모습이다. 이에 대해 이 건물의 설계자 이정훈은 땅을 분할하는 한국의 도시 개발 방식과 극단적으로 채워지는 건물에 대한 비판 으로 말문을 열었다. “도시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 너무 인위적이 에요. 그 속에서 생산되는 주차 빌딩들도 그다지 성공적인 것 같지 않고요. 아마도 순수하게 주차 사업을 하려고, 혹은 주차난 해소와 도시 미관에 도움을 주려고 주차장 용지에 투자를 하는 사람은 없 겠죠. 대부분이 일반 상가 대지보다 싼 가격에 땅을 사서 최저 비 용으로 건물 짓고 상가 분양했을 때 발생하는 이익을 바랄 거예요. 주차장이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이상한 구조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최대 용적률로 지어 놓고 정신없이 간판 붙여 놓는 것이 현 실이고요.” ⓦ 일반 상가 대지가 지니는 법정 조건과는 달리 택지 개발 지구에서 분양하는 주차 빌딩 대지는 건폐율 90%와 용적률 2,000%가 적용된다. 다만 주차장 시설과 상업 시설이 80:20의 비 율로 구성되어야 하는 제약 조건이 있다. 최대 용적, 최대 주차 대 수, 그리고 최적의 상가 분양 조건을 거역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건축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가득 채워진 대지 신예 건축가 이정훈이 선택한 것은 도시의 주요한 축선 상에 위치 한 새로운 주차장이 기존의 주차장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표정 으로 도시를 기억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 한 선택은 공사비의 증가를 가져올 수 있지만, 독특하고 아이덴티

임대료가 상향 조정되었고 문의도 적지 않다고 하며, 무엇보다 주 변 지역 주민들이 갖는 즐거움과 기대감이 무척 큰 것으로 전해진 다. ⓦ 헤르마 빌딩은 크게 1층의 상업 시설과 2~4층의 주차 시설 로 구성되어 있다. 채울 수 있을 만큼 건폐율을 채우고 거기서 얻 을 수 있는 상가의 최대 면적을 기준으로 하여 나온 결과이다. 자 본의 논리 속에서 사업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 차라리 로 스가 거의 없는 평면 계획을 하고, 대신 참신한 디자인으로 도시 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주력하자는 전략이 배경이 됐다. “먼저 아 주 콤팩트한 콘크리트 볼륨을 만들었죠. 주차 대수가 50대가 넘으 면 램프 폭이 6.6m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약간의 불편이 있더라도 폭을 줄일 수밖에 없었어요. 램프가 커지면 상가 면적이 그만큼 줄 어들 테니까요. 그렇게 해서 1층 상가에 들어갈 수 있는 최대 면적 을 뽑고, 20:80을 적용, 상가 면적의 4배가 되는 주차장 면적을 확 보했죠. 그렇게 해서 나온 층수가 4층이고, 50대 미만에서 주차할 수 있는 모든 배치를 해 본 결과 얻어 낸 주차 대수가 44대예요.” ⓦ 하천을 끼고 있는 전면은 건축선이 셋백되어 있다. 그 사이의 자투리 공간을 이용하여 테라스를 만들면 상업 시설의 외부 공간 으로 사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건축선을 외곽 라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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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도 있다는 또 다른 면이 있다. 실제로 헤르마는 완성된 이후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티가 있는 건물로 땅의 가치를 높여 주고 임대·분양 조건을 좋게


→ 빛의 각도에 따라 유리 같기도 하고 메탈 같기도 하며, 한편 으론 플라스틱의 은은함이 배어 나오기도 하는 입면. ← 안쪽에서 밖을 바라본 모습. 폴리카보네이트 패널를 붙잡기 위한 40×40 혹은 50×50의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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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난 계단 부분.


서 1m 후퇴시켜야 한다는 규정에 의한 것으로, 전면뿐 아니라 사

로 채워진 콘크리트의 덩어리들은 이 다양한 표정을 지닌 입면에

방으로 자투리 공간을 얻을 수 있는 주차장 대지만의 매력이다. 끝

의해 산화된다.” ⓦ 스테인리스 스틸 메시를 덧댄 긴 타원형은 좀

으로 쓸모 없어 보이는 대지 북측의 뾰족한 모서리 부분에는 삼각

더 투명성이 강조된 부분이다. 물론 즉물적인 투명성과 대별되는

형의 피난 계단을 채워 넣음으로써 건축가가 의도했던 가장 합리

투명성이다. 그런데, 건축가는 원래 커다란 홀(hole)을 만들어 그

적인 평면 계획을 완성하였다.

자체가 시각적 통로가 되길 원했다고 한다. 완전히 열려 있는 상 태지만, 동시에 표피를 가지는 거대한 홀을 통해 도시의 다양한 표

다양한 입면의 패턴들

정을 담고 싶었고, 태양이 지면서 석양이 투영되는 공간과 태양의

헤르마 빌딩의 입면은 60도에서 150도까지, 10종의 톱니 형태의

흐름에 의해 변화하는 입면의 요소를 기대했다는 것이다. 물론 현

각으로 제작된 삼각형 유닛들에 의해 분할되고, 그것은 빛과 그림

실적인 여건은 그것을 추진하기에 벅찬 상황이었다. ⓦ 홀 주변에

자에 의해 더욱 섬세하게 나누어진다. 주름을 드러내어 표피를 공

는 투명성의 정도가 다른 또 다른 느낌의 스킨, 즉 타공판을 댔는

간화시키는 매체로 폴리카보네이트 패널이 선택되었는데, 이것은

데 공사하기가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길가에

쉽게 붙일 수 있으면서도 가볍고, 주차장 빌딩의 재료로 적합한 재

서 보면 홀 주변의 타공판은 거의 구멍이 인식되지 않는다. “하천

료 가운데서 신중하게 고려된 것이다. “내부 공간의 완전한 노출

만큼의 거리를 계산에 넣지 못했어요. 지름이 2cm예요. 안쪽에서

을 의도하지 않아서 패널이 필요했어요. 목재 패널은 가격이 맞지

는 타공판이 빛에 의해 인식되지만 밖에서 보면 그냥 패널처럼 보

않았고, 그래서 폴리카보네이트를 주시하게 됐죠. 마침 스위스에

이는 게 좀 아쉬워요. 1층 부분의 타공판은 타공 지름이 8cm로 좀

서 나온 제품을 보게 되었는데 빛을 반사시키는 아이알 코팅과 자

크고요.” ⓦ 635개의 폴리카보네이트 패널은 길이가 모두 다르고,

외선을 차단시키는 유브이 코팅이 되어 있더라고요. 테스터 샘플

패널 각을 이루는 부분에는 알루미늄 캡이 씌워져 있다. 프레임과

을 보는데 이거다 싶었죠. 결정적으로 단가가 문제였지만, 디자인

타공판도 크기가 같은 게 거의 없고, 스테인리스 스틸 메시의 사이

을 본 그쪽 회사 측에서 저가로 지원을 해 주었어요.” 바깥쪽으로

즈도 다 다르며, 개구부의 크기에 따라 메시의 굵기도 다르다. 타

보랏빛, 안쪽으로 흰빛이 도는 헤르마 빌딩의 폴리카보네이트 스

공판과 홀이 만나는 부분은 프레임의 느낌이 나도록 접어 주었고,

킨은 빛의 각도에 따라 유리 같기도 하고 메탈 같기도 하며, 한편

재료와 재료가 만나는 부분의 디테일과 색채의 조합 등은 꼼꼼하

으론 플라스틱의 은은함이 배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극단적으

게 챙겼다. 건축가가 거의 10개월을 현장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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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홀의 메시, 타공판, 폴리카보네이트 패널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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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다. 함께 일한 사람들 역시 힘들게 공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그들은 건축가를 이해 못 하는 듯했으나 나중에는 디자인 을 포기하지 않은 것에 오히려 고마워하기도 했다. 가감법에 의한 공간과 스킨 비록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헤르마 빌딩에서 홀은 건축가가 건축 을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것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홀 이 빛과 그림자의 문제와 연관이 있다고 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홀은 문을 여는 방식이 될 수 있고, 또 빛을 유입하는 방식 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졸업 논문에도 썼지만, 그런 개구부들 은 알(r) 값에 의해 빛을 받아들이는 표면적이 넓지요. 그런 측면 에서 시각적인 통로뿐만 아니라 바람의 통로라든지, 공기의 순환 문제를 이야기해 볼 수 있고, 내외부가 모호한 공간의 성격은 기 능적으로 다양한 쓰임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디자인은 얼마든 지 가능한 반면 제작이나 시스템에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딜레마 가 있지만, 건축가는 “연구가 되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현상 설계를 통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며, 현실 에서 처음으로 시도해 보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헤르마 빌딩이라 고 밝혔다. ⓦ 홀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자면, 그것은 이 정훈의 논문 『Research of architectural methodology based on subtraction strategy』 주제인 가감법과 관련이 있다. 가감법은 형 태를 통해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볼륨으로부터 빼는 것의 미학에 관한 것으로, 스킨이 공간이 되고 공간이 스킨이 되는 것을 가능 케 하는 건축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공간이 빠지면 스킨이 된다 는 것은 스킨과 형태가 동시에 디자인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데, 결 국 구조적인 솔루션이 필요하겠죠. 구조 설계가 된 상태에서 뺐을

로 재현이 가능할 수 있다. 즉 최대 용적률의 볼륨을 미리 설정하 고 그것으로부터 빼내는 설계를 말하는데, 주어진 여건에서 어떻 게 하면 그러한 것들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 주택이나 오피스에서 는 가감법이 어떻게 다르게 적용될지, 그리고 누가 봐도 효율적이 고 인텔리전트한 방식의 해결은 무엇인지, 는 지금 이 건축가의 중 요한 화두이기도 하다. ⓦ 어쨌거나 스킨에 대한 이정훈의 핵심은, 단순히 표피의 문제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표피성이 공간성으로 구현되는 것에 있다. 그렇기에 헤르마 빌딩은 스킨의 실험이란 점 에서 의의를 가진다. 비록 주차 빌딩이어서 뺄 게 없고, 드러낼 만 한 요소가 공간의 주름을 만들거나 보이드(void)된 부분을 치장하 는 것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기능 없이 홀을 만드는 것은 미학적인 장난밖에 안 되지요. 건축주를 설득시킬 수 있는 논리의 근거도 약하고요.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가능성의 확신이 란 수확은 있었다고 봅니다.” ⓦ 글 | 정귀원(본지 편집장) 사진 | 진효숙(건축 사진가) 카페 골목 쪽의 서측 입면의 폴리카보네이트 패널은 각을 두지 않 았다. 씩 웃는 듯한 표정의 타공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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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로 해야 돼요.” ⓦ 이러한 가감법은 최대 용적률을 통해 실제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때, 변형되는 부분의 구조 계산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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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삼 발행인의 < WideAN(Architecture Network)*Club 리포트 01 >

문화계 인사 및 중국과 베트남에서 특별 초청된 클라이언트, 국내외 협력 업체, 임직원 등 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 사 25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마쳤습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 는 무영건축의 비전 선포식(위 사진)이었지요. ‘2015년, 글 로벌 톱10’(2015 Global Top 10) 진입을 제창한 가운데 세 계로 뻗어 가는 무영건축의 ‘그림자 없는 건축’(Shadowless Architecture)의 시대를 열겠다는 위풍당당한 포부를 밝혔 습니다. 창사 25주년을 기념하는 식장은 건축가로서 안 회 장의 오늘을 있게 한 모교 은사님들에 대한 감사와 그의 출 신지이기도 한 인천의 지역 사랑을 흠뻑 만끽할 수 있는 분 위기였습니다. 특별 공연도 인상적이었는데 창사 25주년을 상징하여 스물다섯 명으로 구성된 무영건축 2009, 2010년 도 새내기 사원들의 프로 뺨치는 집단 북 퍼포먼스와 소리 (주)무영건축(회장 안길원, 사진)은 지난 7월 1일(목) 그랜

꾼 장사익 선생의 구성진 노래 가락까지 여흥의 밤은 3시간

드 인터콘티넨탈 호텔 서울 2층 그랜드볼룸에서 이광로, 원

넘게 지속되었습니다. 앞으로 5년 뒤, 무영건축의 변화된 위

정수, 이명호 선생 등 건축계 원로와 지용택(새얼문화재단)

상을 기다려봄 직하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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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 이본수(인하대) 총장, 김종량(한양대) 총장 등 교육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무영건축그룹, 창사 25주년 기념 비전 선포


전진삼 발행인의 < WideAN(Architecture Network)*Club 리포트 01 >

2010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제2회 심원건축학술상 시상식 그리고

초대 작가, 이충기·조정구

제1회 당선작 출판기념회

한메건축의 이충기(서울시립대, 맨 아래 사진) 교수와 구가 도시건축의 조정구(사진) 대표가 2010 베니스 비엔날레 국 제 건축전 한국관 초대 작가로 동참합니다. 한국관의 전시장 내부에는 조정 구 대표가 자기 건축의 기점이라 고까지 말하는, 그의 가족이 모 여 사는 도시 한옥이 1:1 모형으 로 설치됩니다. ‘건축 안의 건축’ 이라는 개념이 특별한 것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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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라도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 서 현재 숨쉬고 있는 전통 한옥의

6월 18일(금) 서울 정동에 위치한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3

가구 체계를 투시할 수 있는 전시

층 강당에서 제2회 심원건축학술상 시상식과 전년도에 당

기법은 그 곳 관람자들에게 흥미로운 볼거리가 될 것 같습

선작으로 선정된 『벽전』(부제 : 우리나라 벽돌 건축의 조

니다. 수요답사 500회를 통해 우리나라 서울의 골목과 주

영 원리)의 출판 기념회가 소박하지만 내실 있게 베풀어졌

거 상황을 관찰해 오며 삶의 형상과 건축의 경계를 탐문해

습니다. 이태규(심원문화사업회) 이사장을 비롯, 운영 위원

온 조 대표의 건축하는 방식이 베니스의 시선을 붙잡을 수

이자 심사 위원인 전봉희(서울대) 교수, 안창모(경기대 건

있을까요?

축대학원) 교수와 건축가 정기용(기용건축) 대표, 이일훈( 이충기 교수는 소주제 ‘아파트먼

후리건축) 대표, 김종헌(도코모모 코리아 회장, 배재대) 교

트 시티’를 중심으로 서울의 아파

수 및 취재 나온 건축 저널리스트들이 함께 축하하는 자리

트에 담긴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

로 꾸며졌습니다.

는 것에 주력할 것이라고 합니다.

심원건축학술상의 시상

신승수 씨와 협력 작업을 한다고

식은 당선자 초청 강연

하는데요, 예를 들면 서울시 전도

회가 특화된 프로그램인

(全圖)에 아파트 단지 표시하기,

데 이 날은 서정일(서울

내·외부 순환 고속도로를 자동

대 인문학연구원 HK 연

차로 돌며 촬영한 아파트먼트 시

구 교수, 사진) 당선자의

티스케이프의 동영상 기록물 보여 주기, 그리고 디테일하

루이스 칸의 도시 건축

게는 아파트의 옥탑 모양, 메일 박스, 현관 도어에 이르기

관련 내용의 심도 있는 강의로 하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

까지 근접 촬영된 자료들을 들고 오늘날 서울이 전통적 주

니다. 초청 강연이 끝나고 곧바로 제1회 당선작 『벽전』의 출

거에서 아파트로 리플레이싱(re-placing)되고 있는 현상에

판 기념회가 이루어졌지요. 저자 박성형(정림건축) 소장의

주목한다지요. 건축가 개인의 작업을 드러내기보다 급속히

인사말에 이어서 저자 사인회(맨 위 사진)가 있었고, 선후배

변해 가는 주거 현상을 가감 없이 전달한다는 기획 취지에

건축인들이 줄을 서서 저자로부터의 사인된 책을 받아드는

부응하기로 한 것인데 베니스 현지의 반응이 궁금해지는군

행복한 시간을 누렸습니다. 바쁘신 분들은 먼저 자리를 뜨

요. ⓦ

고, 끝까지 남은 분들은 사업회가 준비한 만찬석까지 동행 하여 1, 2회 당선자와 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지요. 내년 6월 중순에는 제2회 당선작의 출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벌써 부터 기다려지는군요. ⓦ


와이드 16호 | 와이드 칼럼

의 대표, 대성당은 지금도 쾰른의 상징이 되어 있다.

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신문 방송 등에서 연중 현장 중계하듯 보

오스트리아의 빈 역사 지구도 마찬가지이다. 그곳은 7백여 년이나 된

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부도 마치 국격(國格)이 세계문화

고도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제도(帝都), 그리고 음악의 도시란 이름으

유산 등록 숫자로 결정지어지듯 요란하게 선전하고 있다. 그 탓에 정

로 등록되었다. 그러나 그 후 빈의 중심인 이너 도시(inner city) 주변

부·지자체는 등록 숫자 늘리는 데 몰입하고 있는 듯한 양상이다. 물

의 일부 난개발로 말미암아 위기유산 목록에 오르내린다. 아름다운

론 긍정적인 면도 있다. 우리 것이 세계 혹은 지역 문화유산에 등록

옛 도시에 빌딩이 들어서며 고도 분위기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참담하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

필자는 최근 그 두 곳을 찾아가 본 적이 있다. 역시 전에 보았던 그곳

저 세계문화유산을 보면, 세계유산조약에 의한 세계문화유산은 최근

풍경과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원흉은 새로운 빌딩들이다. 쾰른 대

통계 812건이다. 스페인, 이탈리아, 중국 순으로 숫자가 많다. 우리는

성당은 쌍탑 건물인데 그 탑 주변 가까이 새 빌딩들이 계획되고 자리

1995년 이후 아홉 개를 등록시켰다. 그것은 석굴암과 불국사, 팔만대

잡고 있었다. 카메라 앵글 주위로 빌딩이 끼어들어온 것이다. 성당은

장경을 안고 있는 가야산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1995), 창덕궁, 수원

가까이 라인 강을 끼고 있는데 대안(對岸) 쪽에 높이 103미터의 고층

화성(1997), 고창·화순·강화의 지석묘군적(群跡), 경주역사지역군

빌딩의 건설이 계획되고 있기 때문에 성당에 시각적 영향 즉, 장애가

(2000), 조선왕릉(2009) 등이다. 북한의 경우는 고구려고분군(2004)

생길 우려가 있다 하여 위기유산이 된 것이다. 이제 위기유산 목록을

하나만이 등록되어 있다.

다룬 책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문화유산 제도 중에는 ‘위기유산(Danger Heritage)’이란 항목이

문제는 우리다. 현재 우리의 문화유산 보호 대책은 무대책이라 할 수

또한 중요하다. 자랑스러운 유산이 걱정거리 유산으로 재보호되고

있다. 등록만 시켜 놓고는 방치하고 있는 상태이다. 세계문화유산 종

있는 것이다. 2005년 말 현재 34건이 위기유산 목록에 올라 있다. 즉

묘(사적 제125호)와 사적 창덕궁, 서울 성곽 주변 아파트 신축 설계 등

812건 중 34건, 4퍼센트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위기유산이

난개발이 문제가 되고 있다.

란 항목을 만들었을까. 지금도 세계 여러 곳에서는 무지막지한 개발

근대 사적 문화재인 ‘명동성당 개발 문제’를 생각해 보아도 남의 일같

그리고 무모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강대국들은 역사상 수많은 전

이 여겨지지 않는다. 명동성당 측도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시

쟁에 개입, 역사 도시를 황폐화시켜 왔다. 여기에 종교 간의 대립, 테

키려는 작업을 몇 년 전부터 해 오고 있다. 명동성당은 1960년대 이후

러도 이어지고 있다. 개발과 전쟁 이는 문화 유산의 재앙으로 인류 유

경제 성장에 따른 주변 난개발로 인해 성당과 그 주변이 계속 망가져

산을 파괴시키고 있다. 사람들은 개발과 전쟁의 위험을 잘 알고 있지

왔다. 성당은 1950년대만 해도 서울 시내 어디서나 보이던 랜드마크

만 경종만 울릴 뿐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

타워였다. 성당 측이 그동안 마스터플랜 하나 없이 즉흥적으로 개발

산위원회조차 예를 들면 전란으로 파괴된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계

해 온 탓에 성당 영역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성당 주변도 비싼 땅값에

곡의 1,500년 된 석불, 조류 보호구역 등 리스트를 등재시켜 보호(?)

상응하려 고층화되어 잡건물들로 포위되었다. 문화재 당국은 이곳을

에 나서고 있는 정도이다.

문화재 구역으로 설정하지도 않았다. 성당 건물만 덩그러니 문화재로

위기유산 중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이 있다. 좀 의외이긴 하지만 문화 선

해 놨을 뿐이다. 당시 문화재위원회(1977.2.26. 회의)에 책임을 묻지

진국이라는 독일의 것이다. ‘쾰른 대성당’은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

않을 수 없다. 이제라도 관계 당국자들은 개발에 앞서 성당 내외부 정

로 등록되었는데, 2004년 위기유산으로 재등록된 것이다. 세계의 자

비 계획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랑거리에서 세계의 걱정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독일의 고도(古都)이

우리는 현재 세계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등록해 놓고 있는 스페인, 이

며 대표적인 공업 도시인 쾰른의 자랑은 라인 강가에 자리 잡은 대성

탈리아, 중국 순으로 세계 최고 유산 국가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등록

당이다. 성당은 600년 이상 걸려 세워진 것이다. 성당은 1880년 준공

신청하지 않는 국가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등록 숫자가 많은 국가는

되었는데 높이 157미터의 성탑이 도시 어디서든지 잘 보여 쾰른이 ‘성

그만큼 책임질 일이 더 많은 것뿐이다. 등록된 세계문화유산은 해당

당 도시’란 칭호도 받게 만든 것이다. 독일의 상징 건축물이기도 하다.

국에 관리·보수·유지의 책임이 있다. 우리가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

그 성당 자체의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던 것이

지 않으면 우리의 세계문화유산도 위기유산으로 낙인찍힐지 모른다.

다. 프랑스 성당 건축의 영향을 크게 받은 이 성당은 지금도 수리 공

아무튼 쾰른과 빈은 너무 유명한 도시이고 유럽에 있기 때문에 더 빨

사를 계속하고 있다. 하루 70명의 석공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쾰

리 문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유네스코 본부가 파리에 있기 때문

른 시는 문화재 도시라고도 불린다. 쾰른 시의 역사는 로마 식민지 시

이다. 우리 것은 그들의 레이더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어 그나마

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시대의 유적이 즐비하다. 문화재만 9천

다행인지도 모른다. 세계문화유산은 등록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등

5백 건이 있다. 그중 70퍼센트가 주택이다. 쾰른 거리의 80퍼센트가

록 후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법

제2차 대전 때 공습으로 무너졌는데 옛 사진이나 자료를 가지고 복원

적 장치가 시급하다. 난개발은 국격을 떨어뜨리는 행위가 되기 때문

해 놓았다. 물론 지금도 계속 중이다. 시 문화재보호국장이 진두지휘

이다. ⓦ

한다. 서울시는 과장급인데 여기는 국장급이다. 어쨌든 쾰른 문화재

글 | 김정동(본지 고문, 목원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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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우리나라는 우리 건축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시키는 것

Wide Architecture Report no.16 : july-august 2010

역사적 장소는 개발 대상이 아니다 | 김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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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 vol 16, Design  

WIDE AR Vol.16 Korean Architectur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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