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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11호 | 와이드 워크 김재관의 <풀향기 교회> Wide Architecture : Wide Work no.11 : september-october 2009

제주 충신 교회, 강정 교회를 비롯 일련의 교회 건축 작업으로 잘 알려진 건축가 김재관의 최근작이다. 간결한 건축 언어의 연장선상에서, 이번에는 지하 공간의 해법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고도제한에 의해 결정된 지상 1층, 지하 2층이라는 보기 드문 상황을 ‘열어 놓는다’는 개방의 방식으로 해결하여, 부정적 이미지의 지하 공간을 빛과 바람 가득한 기억의 공간으로 치환해 놓았다.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오감을 자극한다는 이 수상한 땅 속 공간에서의 만남에 기꺼이 동참해 보자. ⓦ 진행 | 정귀원(본지 편집장) ⓦ 사진 | 진효숙(건축 사진가) 풀향기 교회 건축 개요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 763-5, 763-9, 762 ⓦ 지역 지구 : 1종 일반 주거 지역, 지구단위계획구역, 비행 안전구역 ⓦ 대지 면적 : 3,557.00㎡ ⓦ 건축 면적 : 1,653.15㎡ ⓦ 연면적 : 4,356.27㎡ ⓦ 건폐율 : 46.48 % ⓦ 용적률 : 46.60 % ⓦ 규모 : 지하 2층, 지상 1층 ⓦ 구조 : 철근 콘크리트 구조, 철골 철근 콘크리트 구조 ⓦ 최고 높이 : 9.6m(종탑 높이 18m) ⓦ 외부 마감 : 씨 블랙, 제물치장 콘크리트 ⓦ 주차 대수 : 5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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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바람, 소리를 담은 수상한 지하 집담회 | 김재관, 함성호, 전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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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관

1962년 충청북도 옥천의 무회마을에서 태어난 산골 출신 건축가다. 그래서인지 그의 마음에는 나무, 물, 숲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건축가 곽재환의 조수로 설계 일을 배웠으며, 영국의 옥스퍼드 브룩스 대학교에서 석사를 한 후 런던의 홉킨스 설 계사무실에서 일했다. 현재 무회건축연구소 대표이며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하는 등 한때는 작가적 관점에서 건축을 한 적 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어떤 종류의 건축이든 편견 없이 보는 태도를 지지하며 건축물을 자신의 개인적 작품으로 여 기거나 건축주를 자신이 설계한 건물을 관리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 근래에는 스스로의 건축적 재능 이 탁월하지 못함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유유히 산다.

함성호

시인이며 건축가다. 강원도 속초 출생으로 강원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했다. 1990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 다. 시집 『성 타즈마할』, 『56억 7천만년의 고독』, 『너무 아름다운 병』과 산문집 『허무의 기록』, 만화평론집 『만화당 인생』, 『건축 의 스트레스』 등의 책을 썼다. 시 쓰는 선후배들과 <21세기전망> 동인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요즘은 개인 건축설계 사무실을 운 영하면서 틈틈이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다.

전유창

아주대학교 건축학부 조교수. 인하대학교 건축과와 대학원 연구실(Factory)를 거쳐 미국 Columbia University 건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 뉴욕 Mitchell | Giurgola Architects LLP에서 디자이너 및 이사로 재직하였으며 일 본 신건축사 주최 센추럴 글래스 국제 공모전 1등상과 2000년 일본 신건축 주택 공모전 가작을 수상하였다. 미국 건축가 협회 (AIA) 정회원이고 LEED AP.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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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고도제한이란 조건 ⓦ 전유창 : 풀향기 교회를 처음 봤을 때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교회 건물의 이미지와 무척 다르 다고 느꼈습니다. 애초에 어떤 요구와 조건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김재관 : 아무래도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고도제한이라는 건축법일 겁니다. 설계를 처음 맡 게 되었을 때(2004년 3월경)에는 지상 4층까지 지을 수 있었어요. 그때는 주차장 일부를 제외 하고는 대부분의 시설이 지상에 계획이 되었는데 그 이후 지상 12미터 이하로 건축법이 바뀌었 습니다. 이것은 지상부분에 예배를 보는 본당에다가 중층이라고 부르는 발코니 석을 겨우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나머지 시설들은 모두 지하로 가야 했습니다. 건물을 축소 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런데 그것이 다시 10미터 이하로 바뀌었습니다. 아무튼 이 규정은 경 사지 땅에서 더욱 불리할 수밖에 없어요. 말이 10미터이지 지형이 높은 곳에서는 사실상 7미터 이상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결국 건물이 단층으로밖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큰 볼륨을 얻기 위해 지붕을 평평하게 폈고 건물을 대지 경계선까지 넓히다 보니, 그것이 바로 건 물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지상에 노출된 부분은 전체 규모의 30퍼센트를 조금 넘기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는 지하층에 들어가게 되었죠. 자꾸 건축법을 말하는 것이 좀 옹 색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지하 교회가 되었던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 전유창 : 그런데도 별 어색함 없이 주어진 조건을 잘 이용하신 것 같습니다. 집이 터에 자연 스럽게 앉혀졌어요. ⓦ 김재관 : 무엇보다 땅이 좋았지요. 건축가에게(적어도 나에게)가장 설레는 일은 좋은 땅을 만 나는 겁니다. 이곳이 그런 곳이었어요. 대지 경계선은 마치 못생긴 고구마처럼 구불거렸고, 하 필이면 길쭉한 끄트머리가 간신히 길에 닿아 있었지요. 또 길이가 100미터도 넘는 땅 중에서 평 지라고는 단 한 뼘도 되지 않는 경사지였고요. 그 까다로움이 오히려 매력적이었지요. 또 한 가 지는 이 땅만의 탁월한 앉음새였습니다. 땅을 에워싸고 있는 양쪽의 산자락이 부드러운 활의 그 것처럼 유연했고, 그 중심으로의 흐름 또한 유려했습니다. 그 흐름은 조그만 개울에 닿았고 건 너편의 산자락으로 이어졌어요. 그 중에서도 백미는 멀리 보이는 북한산의 맥락일 겁니다. 그러 한 산자락의 흐름과 건물의 방향성이 동일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어색함이 덜 하지 않나, 해요.

낮게, 좀 더 낮게 ⓦ 전유창 : 그런데, 접근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저는 차를 가지고 동측 도내동 쪽으 로 들어와서 주차를 했어요. 그런데, 서측의 작은 언덕을 넘어서도 들어올 수 있더라고요. 어느 쪽을 주출입구로 보신 건지요? ⓦ 김재관 : 그게 참 어려운 부분이었는데요. 법적인 의미의 도로와 실제의 접근로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양상은 주변 도시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가 있으므로 많은 가능 성을 염두에 두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메인과 서브의 개념이 있을 수가 없는 집이어야 했 습니다. 어디서든지 접근이 되어야 했어요. 그것이 용이해지려면 건물과 경사진 부지가 잘 연 결되어야 하는데 다행이도 바닥이 경사진 예배당의 기능과 잘 부합되었습니다. 그래서 건물의 출입이 쉽습니다. ⓦ 전유창 : 보통 교회 건축을 보면, 교회의 상징인 십자가가 일반적으로 주출입구에서 입구의 인지를 가능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풀향기 교회의 경우도 건축가에 의해서건 또는 건축 주에 의해서건 십자가가 달려 있는 쪽에 다른 진입부보다 정면성이 부여된 것 같습니다. ⓦ 김재관 :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도로가 건물보다 더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교회를 오는 사람이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벽이 아니라 지붕이라는 거죠. 말하자면 이 집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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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이 단층으로밖에 갈 수 없는 상황에서 큰 볼륨을 얻기 위해 지붕을 평평하게 폈고 건물을 대지 경계선까지 넓히다 보니, 그것이 바로 건물의 형태가 되었다. → 배치도.

면은 다섯 개가 되는 셈입니다. 정면을 따로 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또 어느 건물이든 그걸 정해야 할 필요도 없는 것 같고요. ⓦ 함성호 : 서측 주변으로 계속 주거 단지들이 들어서고 있던데, 그쪽으로의 접근이 쉽지 않겠 더라고요. 딱히 길이 나 있는 것도 아니고. 인지나 접근의 문제가 있을 것 같아요. ⓦ 김재관 : 집이 산속에 있다 보니, 그런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교회는 그 점을 매우 부담스러 워합니다. 약점이라고까지 생각하지요. 하지만 접근에 대하여 달리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는, 이 건물이 주거 시설이나 관공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숲 속에 있는 교회는 접근이 나쁠 수도 있는 반면 그만큼의 깊이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도시 교회가 가지고 싶어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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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을 배경으로 존재감을 갖는 까만 교회 ⓦ 함성호 : 재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사실 까만 교회라는 것은 드물죠. 찾아보면 있겠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예요. 어떻게 해서 까만 돌을 쓰게 되었는지요? ⓦ 김재관 : 재료 설정할 때, 처음에는 보통 이전 설계작이 참고가 되곤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도 시작은 콘크리트였지요. 그런데 클라이언트가 돌을 제안했어요. 고흥석이었는데, 그것을 절충하 는 과정에서 까만 돌, 씨블랙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것은 주변이 녹색의 자연이라는 사 실과 관계가 있습니다. 검은 색은 그 자체로서 존재감을 갖지만 주변에 있는 숲과 나무에게는 좋 은 배경이 됩니다. 말하자면 여기서의 검은색은 그 자체일 수도 있지만 주변의 대상을 드러나게 하 는 상대적 대상입니다. ⓦ 전유창 : 마을 쪽에서 진입하면서 건물의 원경을 봤어요. 초록빛을 배경으로 검은 색의 집이 앉 혀진 모습은 우리 한옥과 같은 맥락으로 읽혔지요. 날렵한 느낌의 지붕과 가볍게 눌린 듯한 매스에 서 말이죠. 그런데 그것을 가까이서 입면으로 바라봤을 때는 조금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더라고요. 돌의 크기와 물갈기로 인해 반사되는 표면의 질감 때문에 아마도 그랬던 것 같아요. 돌의 마감 자 체를 달리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거칠게 말이지요. ⓦ 김재관 : 지적하신 대로 광택을 없애는 방법을 고심했는데 교회로부터 허락을 받지 못했습니 다. ⓦ 전유창 : 결과적으로는 보편적인 재료를 쓰는 것보다 장소의 색이 더 잘 드러나는 작품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김재관 : 예. 맘에 듭니다. 애초의 계획대로 콘크리트를 썼더라면 볼륨이 갖는 장력을 좀 더 강화 시키고 싶다는 유혹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지하에 대한 이해와 오해 ⓦ 전유창 : 건물 지하 양측의 조경 식재 공간이 지하층의 느낌을 많이 완화시키고 있습니다. 쭉 뻗 은 대나무들이 공간을 감싸고 있는데요, 만약 나무가 없었다면 빛이 어느 정도 들어온다고 하더라 도 굉장히 건조하고 메마른 공간의 분위기가 났을 겁니다. ⓦ 김재관 : 그랬다면 우리가 이 자리에서 이러고 있지도 못했을 거예요.(웃음)(이 날의 집담회는 대나무 숲이 우거진 지하 2층 통로에서 이루어졌다-편집자 주) 교회 사람들도 이 공간을 무척 좋아 합니다. 설계자 욕을 하더라도 꼭 이 장소에서 하거든요. 보통 지하층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대부 분 부정적인 요인들이죠. 누수와 결로, 곰팡이, 눅눅함, 냄새와 끈적한 어두움들 말입니다. 지하를 기피하는 이유들이에요. 하지만 저는 그러한 요인들이 절대적이지는 않다고 봐요. 거기에 대응하 는 뭔가를 만났을 때 그 속성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하층에 대한 기존 의 대응 방식은 한결같이 방어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지하에서 생산되는 물이나 습기, 결 로 등에 모두 '막는다'라는 개념을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방수나 차수로 일컬어지는 이 방식 은 시간이 경과하면 그 방어력이 점점 퇴화되기 마련입니다. 좀 더 항구적인 대책이 필요했는데 그 것은 ‘막는다’가 아니라 모두 ‘열어 놓는다’는 방식이었어요. 그랬더니 문제가 해결되더군요. 자랑 을 하나 한다면 바람이 한 점 없는 날에도 이곳에서는 늘 바람이 분다는 것입니다. 그 바람은 외부 에서 흘러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외부와 지하의 상이한 조건들이 열려진 곳에서 만나면서 생성된 바람이라는 것입니다. 지상과 지하의 온도나 습도의 격차가 클수록 바람의 이동이 더욱 활발합니 다. 그래서일까요? 이곳의 바람은 좀 다릅니다.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것이죠. 어느 날은 강하게 휘 발(揮發, Volatilization)하며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 집을 찾는 방문객들은 자신 이 서 있는 곳이 지하라는 사실을 잊게 되지요. 오래도록 머물기를 좋아하고, 한참 동안 앉아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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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곳이 지상으로부터 7.8미터 아래의 어느 곳이라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저의 발명품이 결코 아니에요. 그냥 얻은 것입니다. ⓦ 전유창 : 지하 2층은 커뮤니티 센터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공공적인 성격을 띱니다. 마치 세상과 교회를 연결해 주는 공간이라고 할까요? ⓦ 김재관 : 교회에서 중시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니까요. ⓦ 함성호 : 초기 기독교 교회는 시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요. 그러면서 신성을 추구하다가 고딕에 서 그 정점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다시 시장을 추구하는 것 같아요. 그게 너무 상업화 되는 것도 문제겠지만, 시장의 역할, 즉 공공성이 강조되는 것에는 긍정적입니다.

기억을 회복시키는 공간 ⓦ 전유창 : 집이 지어진 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태도를 보면, 건축이 실증적이란 데는 의심의 여 지가 없습니다. 사용자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에 대해서 사용 후 평가로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지요. 저도 지금 이 공간에서 지상도 지하도 아닌 굉장히 애매모호한(Ambiguous) 느낌을 갖게 됩니다. 여기 습도는 분명 지상하고 달라요. 그러한 습도감과 함께 빛이 들어오고 나무가 있는 공 간에서 제 몸이 반응하여 얻는 느낌이겠지요.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분위기(atmosphere)라는 겁니다. 건축가 피터 줌터(Peter Zumthor) 는 시각적인 요소뿐 아니라 소리나, 몸이 느끼는 온도와 습도의 감각 등이 공간의 분위기를 인지하 게 만든다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받고 있는 느낌들이 그렇게 형성된 것이고, 따라서 이 공간은 와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수밖에 없을 거예요. 설명될 수 없는 느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죠. ⓦ 김재관 : 여기서 가만히 귀 기울여 보시면, 요 위 수조에서 물소리가 퍼지는 것을 들을 수 있어요. 그 소리가 지하로 내려오면서 상당한 공명을 만듭니다. 또 대나무가 바람에 부대끼는 소리도 들을 수 있어요. 그리고 흙냄새도 납니다. 특히 이 땅의 흙은 그 향기가 아주 강하고 상쾌한데, 비가 오는 날이면 더욱 짙어집니다. 좀 시시한 이야기인가요? 그런데 이 흔한 대상들에 대하여 사람들이 반응 을 합니다. 어떤 것이 얼마 만큼이라는 개량적 개념은 별로 안 중요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테크놀로지라는 것은 이것들로부터의 성공적인 격리나 차단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의 효과인지 몰라도 이런 요소들에 대한 기억들이 옅어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그것을 다시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게 어디서 맡 았던 냄새지?’ ‘이게 언제 들어 봤던 소리지?’ 라고 말입니다. 마치 어릴 적 먹었던 음식을 생각하 듯 기억을 회복한다는 것입니다. 그 경험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전유창 : 요즘 건축이 시각적인 자극으로 어필하거나 스펙터클한 광경으로 관심을 끌려고 하 는 것을 흔히 보게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교회를 통해 말하시고자 하는 것들이 의미가 있을 듯 해요. ⓦ 김재관 : 저는 나무, 물, 숲을 아주 좋아합니다. 틈만 있으면 숲으로 들어가고 나무 밑으로 가곤 하지요.

기억의 건축 혹은 그것을 넘어서는 건축 ⓦ 함성호 : 언젠가 영화감독 이명세 감독이 이런 이야길 했지요. “영화라는 것은 항상 관객들로 하 여금 추억을 떠올리게 해야 한다. 기억이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가 성공한 영화다” 라고요. 물론 흥행적인 면에서 맞는 말이고, 미학적으로 생각할 때도 어느 정도 옳은 이야기입니다. 하지 만 작가의 전위 그룹들은 그 회상이나 기억들을 왜곡하거나 비틀면서, 혹은 뒤에서 치거나 하면서 나가거든요. 건축도 마찬가지로 시각적인 요소들에 치중해 온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감각으로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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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 수 있는 건축들을 추구하다 보면, 아까 말씀하셨던 진부한 것, 그러니까 단지 회상하는 영화냐, 그 회상을 한 번 비튼 영화냐, 그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거라고 봅니다. 거기서 현대 건축이 어느 쪽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 혹은 두 개를 행복하게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들이 여전히 남을 것 같습니다. ⓦ 전유창 :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두 가지 방향이 함께 공존해서 가야 되겠죠. 그것으로부터 개개인의 취향이나 필요에 의해 작가관이라고 하는 부분이 형성되는 것이겠고요. ⓦ 함성호 :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과연 건축에 전위가 가능할까, 이런 의문이 강하게 들긴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아까 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연장해 보면, 이 건물은 법적인 제약에 의해 단층으로 되 었단 말이지요. 그리고 분명히 여기는 접근이 서측으로, 즉 언덕을 넘어 오는 쪽으로 되어야 하는 겁니다. 건축가도 이쪽으로의 접근을 크게 생각한 것이 틀림없고요. 주차는 동측에서 쉽게 뽑았겠 지만 일단 정면성은 서측에 둔 게 틀림없어요.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겁니다. 언덕을 넘 어 진입한다는 것은 지붕 레벨보다 더 높은 곳에서 들어오게 되는 건데, 그렇다면 아까와 같은 이 유로 돌을 썼다면 지붕까지 돌로 마감하여 검은 박스를 만들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요. 이곳의 숲이란 게 그렇게 울창한 건 아니지만 여름에는 녹음이 진단 말이죠. 물론 교회가 밖을 보기 위한 공간은 아닐 테지만 완전히 투명하게 하느냐, 아니면 다 막아서 내부로만 집중하게 만드느냐 했을 때 소장님은 후자를 선택하신 겁니다. 그런데 위에서 딱 내려다 봤을 때 검은 벽면 과 부분적으로 사용된 제물 치장콘크리트가 부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검은 벽면에서 제물 치장콘 크리트가 사람이 걸어가는 속도대로 서서히 삐져나와야 하는데 그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단 말이 죠. 돌이 반짝거려서 그러는 건가? 하는 생각도 해 봤어요. 그런 면에서 지붕까지 돌로 마감했더라 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비용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요. ⓦ 김재관 : 그런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에 자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논리도 만들어지지 않더군요. 집을 지을 당시에는 그런 것보다는 오히려 다른 부분에 더 많은 신경을 썼을 겁니다. 가령 공사비라든지, 막강 파워의 현장 소장과의 관계라든지, 교회가 허용할 수 있는 현실 적 한계점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입니다.

반드시 해소되어야 하는 욕망들 ⓦ 전유창 : 건물 내부의 색이나 전등을 보면 인테리어에 건축가의 의견이 반영된 것 같지 않습니 다. ⓦ 김재관 : 처음부터 인테리어는 다른 사람이 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있었지요. ⓦ 전유창 : 슬픈 현실이라 생각하지 않습니까? 건축가가 건축물의 외관(exterior)에서 가구까지 하나의 완결된 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느 부분이 막혀 버리는 상황이잖아요. 건축을 하나의 실재 적인 독립체(Entity)로 이해할 때, 이를 이용하는 사용자에게 일관된 경험을 유도한다는 면에서 건축가로서 많은 아쉬움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다른 사람에 의해, 다른 의도로 마무리되어서 그런 지 확실히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이 서로 부딪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 김재관 : 별로 슬프진 않습니다.(웃음) 저는 기본적으로 건물의 설계는 건축주와 함께 해야 한다 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옛날보다 그런 생각들이 훨씬 더 강해졌지요. 더구나 집을 짓는데 가담 한 사람들의 욕망이 건축을 통해 해소되지 않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고 봅니다. 이를 테면, 건 축가가 손을 떼는 순간 구현된 모든 것이 변경되거나 심지어 철거되어 버리기까지 합니다. 그런 경 우 건축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진 찍고 돌아서서 ‘무지한 것들’ 이라고 욕지거리하는 것뿐이지요. 건물이 다 지어진 후 그 건물을 다시 보러 가는 것이 두려운 현실이 오히려 더 슬픈 것 아닐까요? 저 또한 저의 의지가 반영된 집을 짓고 싶습니다만 그것 때문에 배척받는 건축가가 되고 싶지는 않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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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만 돌을 외장으로 써서 푸름을 배경으로 존재감을 갖게 했다.

↓동측 주차장 쪽 진입 부분. 주변 마을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창은 최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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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경. 대지는 탁월한 앉음새를 가졌다. 멀리 보이는 북한산의 맥락이 백미다. ↑야경. 어느 곳보다도 정면성이 뚜렷해 보이는 서측 진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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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이것은 절충이나 양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동의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집이란 욕망의 산물이라고 생각하 기 때문입니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그것의 해결이고요. 건축가는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모두를 독차지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에 동의를 전제로 할 수는 없 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가 생기면 저는 제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부분과 그들의 요구를 교환합 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집의 인테리어에 대해 강하게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어요. 나의 개입을 원치 않는 사람들과 다툼이 싫었고, 건축주에게는 어떤 채무감을 갖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설계한 당사자의 침묵은 가끔씩 유효합니다. 좀 미안한 일이잖아요. 이런 복잡한 생각들을 할 수밖에 없었 던 다른 이유는 이 교회가 건축가의 통제를 거의 받지 않는 직영공사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오 히려 건축가가 시공자로부터 허락과 검증을 받아야 했습니다. 거의 모든 것들이 공사비와 시공성 을 담보해야만 했고, 그들이 허용하는 가치 내에서 제안을 해야만 받아들여지는 시스템이었다는 겁니다. 괴로운 노릇이지만 이러한 조건에서 방법을 찾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마음대로(masturbation)’처럼 싱거운 일은 없잖아요. ⓦ 전유창 : 에이드리언 포티(Adrian Forty)는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란 책을 통해 디자 인이란 것 자체가 장인의 개인적인 취향은 아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많은 부분이 사회와의 관 계와 그 영향력을 받아들임으로써 진화해 왔다는 말이지요. 그것과 관련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방금 언급하신 것이 건축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도 관련이 있다는 거예요. 건축은 클라이언트가 없 으면 이루어질 수 없고 또 클라이언트와 공조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또한 건축가와 클라이언트는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자연히 건축가의 의지에 반하는 부분들이 많이 발 생하지요. 바로 그 지점에서, 사회적 인식이 중요하다는 것은 결국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역량에 대 해 얼마만큼 열려 있는가, 얼마만큼 믿음을 줄 수 있는가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만약 건축가의 역량에 대해 믿음이 있다면, 또 건축을 문화로서 하나의 작품 활동으로 인식 할 수 있다면, 건축가의 책임의 범위는 넓어지고 건축가가 일을 맡았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으리라 확신할 수 있겠지요. 다시 말해 건축가가 전체를 코디네이트(coordinate)하는 사람이 란 인식이 형성되었더라면 훨씬 더 나은 공간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김재관 : 이해는 하지만,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앞서 말한 내용이 너무 전략적으로만 비춰 진 것 같은데, 그보다도 사람들이 이 집을 만드는 데 가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가령 저 식당에서 사용된 페인트의 색깔도 이상하고 걸레받이의 높이도 너무 둔합니다. 천장 색깔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도 그걸 통해 그들의 욕망이 해소되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게 다가 그들의 포트레취에 동참까지 한다면 더 좋아집니다. 전 지금 선(善)이나 나눔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니고, 확실히 욕망이 해소되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그 기쁨이 나에게 전이된다는 것이고 동시에 그것은 새로운 촉매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뜻대로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 고 그런 건축가적 관성이 나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 전유창 : 실무를 하다보면 밀고 당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는데, 어떤 부분은 내주면서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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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켜야 할 부분은 견고하게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는 거겠죠? 주로 교육 시설 같은 공공건 물의 설계에 참여한 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전체적인 큰 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부분들과 그 외의 부분들을 융통성 있게 같이 디자인해야 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요.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건축가의 또 다른 모습 ⓦ 함성호 : 건축가에게 좀 더 많은 재량을 줘야 한다고 그러잖아요. 저는 그것은 건축의 촌스러움 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술이나 다른 예술 분야에서는 더 낮은 예술가를 지향하지요. 공공미술 쪽에 서도 예술가라는 옷은 벗어버립니다. 삶 속으로 들어가 섬소년들과 함께 조개잡고 그림 그리는 작 업들을 한다고요. 그 사람들을 두고 우리가 고전적 의미에서의 예술가라고 부를 수는 없거든요. 하 지만 그 사람은 그걸 기꺼이 받아들이죠. 삶 속에서의 예술가라는 거예요. 그런데 반대로 건축가는 모든 걸 다하기를 원합니다. 건축은 왜 다른 예술과 반대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김 소장님의 홈페이지(www.moohoi.com)에는 이 교회를 하면서 일어 났던 일들이 쭉 정리되고 있는데, 그걸 읽어 보면 별 일들이 다 있지요. 거기서는 건축가가 자기주 장을 어떻게 관철시켰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 과정을 이끌어 나갔느냐가 더 중 요할 것 같습니다. 이제 건축가의 작업은 뭔가를 창조하기보다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요? 무엇을 존재케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 자연과 인간의 관계, 그 관계만 맺어주면 건축가의 역할은 끝나는 거지요. 그게 좀 더 다른 모습의 건축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전유창 : 같은 맥락일 수도 있겠는데, 클라이언트나 사용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발현(educe)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건축가의 일이겠죠. 건축가가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들이 몇 있지만, 단지 집을 짓겠다는 것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그려서 드러내 주고 참여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으로 대 안(alternative) 만들기를 강조하고 있어요. 가장 최적화된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죠. ⓦ 김재관 : 많은 사람들이 건축주가 모르면 설득을 해야 한다고 나에게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 설득’이란 상대편 생각을 내 생각과 동일하게 만드는 것인데요, 썩 좋은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 냐하면 그런 것을 시도하려는 사람은 이미 눈이 다르거든요. 그렇게 되면 건축주는 ‘아 저 사람이 내 마음을 바꾸려고 하는구나’ 생각한다는 것이죠. 들키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태도를 갖 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런 식의 설득은 실패를 하거나 오히려 문제를 잠복 상태에 놓 이게 합니다. 그건 해결이 아닙니다. ⓦ 전유창 : 김 소장님은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갖게 되셨는지요?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 다. ⓦ 김재관 : 아주 조금씩 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여 년 전쯤인데요. 제가 지정해 준 페인트 색 깔을 바꿨다는 이유로 굉장히 화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벽을 걷어차는 바람에 다리에 깁스를 하게 될 정도였지요. 그때였던 것 같아요. 나에게 그런 오더(order)를 내리는 그 무엇에 대해 나 자신만 의 정의가 없으면 안 되겠다, 라고 생각한 것이요. 타인으로부터 이식된 신념으로 인해 또 다시 나 의 다리가 부러져서는 안 되잖아요. 저는 건축보다 저의 행복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무슨 이슈거리가 될 수 있는지 모르겠군요. ⓦ 전유창 : 저는 더욱 이슈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고, 개인적인 에피소드 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보편적으로 발생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죠.

이분법적 특징과 건축의 최적화 ⓦ 함성호 : 다시 화제를 돌려서, 김재관의 교회 건축을 한 번 되짚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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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때 김재관의 건축은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지요. 코아는 코아끼리, 또 나 머지는 나머지끼리 분리되어 있어요. 또 항상 기계 설비 라인들을 한쪽으로 몰아 놓죠. 모든 프로 젝트에서 거의 그런 식이에요. 성만교회 같은 경우는 두 개의 코아가 입면처럼 나뉘어져 새까만 모 습으로 서 있어요. 아예 코아가 배 밖으로 나온 형상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누다 보면 공간이 단 조로워질 수 있는 단점이 있어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김 소장님은 빛의 문제를 굉장 히 중요하게 여기는데, 왜냐면 빛이란 건 떨어지는 각도에 따라 매우 다양한 표정을 보여 주기 때 문이지요. 성만교회 이전에는 빛을 지하-지상도 물론-로 쭉 끌어들이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어요. 사실 굉장히 오랜 실험의 결과예요. 풀향기 교회에서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수법들을 여전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의 것 들과 좀 다른 점은, 많은 계단들로 상하 공간을 이어주면서 지상과 지하를 명쾌하게 구분하고 있 다는 겁니다. 지상에 본당 용도의 박스를 하나 놓고, 밑으로 내려오면 그런 단순한 공간과는 반대 의 풍성한 공간이 연출되어 있어요. 중이층도 걸려 있고, 공간에 따라 레벨 차이도 다양하지요. 소 예배실도 시선을 따져 보면 굉장히 풍성한 공간이 나오거든요. 위는 단순, 아래는 복잡, 이런 식의 구분이죠. ⓦ 김재관 : 덧붙여 설명하면, 어떤 부분에서는 결벽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이런 통로나 복도, 동 선의 흐름 등을 구축할 때 전기, 설비, 구조 시스템을 모두 정확하게 맞춰야 한다는 것이죠. 설비 라 인을 한 쪽으로 모는 겁니다. 억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답이 찾아질 때까지 계속 스터디 (study)를 해서 통합되는 결정적인 루트를 찾는 식입니다. 여기 앉아 있는 이 공간도 바람이나 빛 의 요소, 설비, 전기, 사람 등, 이 모든 것이 모일 수 있게 의식한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 전 그것을 기본적이고 당연하다고 보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결벽입니다. ⓦ 전유창 : 그것은 건축가와 건물이 운용되는 방식 사이의 보이지 않는 관계입니다. 미국에서 실 무를 할 때, 디자인뿐만 아니라 시공과 코디네이션, 즉 전기, 설비 이런 것들을 최적화시켜서 건물 의 시스템을 잘 맞추는 일이 건축가의 중요한 업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제가 다녔던 사무실이 특히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글을 쓸 때도 건축의 최적화와 효율성이란 부분을 늘 염 두에 두어야 했지요. 사실 그런 시스템이 정리되지 않으면 디테일이 엉성하게 나올 수밖에 없습니 다. 또 공간 자체의 분위기를 맞추는 데도 그런 세세한 것들이 틀어지기 시작하면 원하는 공간의 느낌이 나오기 어렵겠죠.

쓰임새 있는 빛, 텍스처로서의 빛 ⓦ 함성호 : 아무튼 아래쪽의 복잡한 공간에 이번에는 빛이 대나무를 타고 유입됩니다. 전에는 그 냥 벽을 타고 들어왔지요. 신화적 상징으로서의 나무는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매개입니다. 수직 으로 쭉쭉 뻗은 대나무가 위를 향하고 있다면 빛은 아래로 떨어지지요. 또 예전에는 지하 공간에 빛이 들어오더라도 단순하면서 엄숙한 느낌을 주었는데, 나무를 타고 빛이 들어오니까 한층 느낌 이 부드러워졌어요. 그리고 물소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소리들이, 특히 여기는 숲이 많아서 그런 지 더 잘 들리고요. 이런 공간을 사운드 스페이스라고 그러던데요,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감각 적으로 소리를 느끼는 공간이라는 거죠. 아무튼 성만교회가 마치 지하가 지상으로 확장되는 것을 보여 준다면, 풀향기 교회는 다시 지하로 내려가는, 그래서 지하의 풍성함이 연출되는 측면을 보 여주고 있습니다. ⓦ 전유창 : 공간의 위계(hierarchy)가 거의 없는 듯한 것도 빛과 관련이 있을 듯싶은데요. 이곳은 제가 본 교회 중에서 가장 밝은 교회가 아닐까 해요. 그러한 밝음이 기존의 교회와는 다른 느낌의 교회, 즉 공공성이 좀 더 강하게 구현된 교회를 만드는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보통 교회는 안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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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들어갈수록 위계가 분명하고, 밝기나 분위기를 통해 다른 세계로 끌어들임을 연출하지요. 하지 만 여기는 공간의 특질들에 대한 빛의 느낌들이 굉장히 유연하게 흘러 다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 아요. 지하도 그렇고 지상도 그렇고, 위계에 대한 개념 없이 말이죠. 그런 면에서 빛을 다루는 방식 이 건물의 성격하고 일치한다고 볼 수도 있을 거예요. 건물 자체가 실용적이고 공공적인 성격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빛도 과장되지 않게, 밝기를 위해 쓰인 듯합니다. ⓦ 김재관 : 실용을 말씀하셨는데 듣고 싶었던 평가입니다. 쓸모 있는 집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목 적이었어요. 풀향기 교회에서는 쓰임새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쓰임새가 건강하면 건물도 흉 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어요. 마찬가지로 빛도 그런 대상이었습니다. 편안하고 친근한 그런 햇볕 말입니다. ⓦ 함성호 : 선큰(sunken) 같은 것이 풀향기 교회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에요. 성만교회도 지 하처럼 만든 곳의 이중외피 사이로 빛이 떨어지고, 제주도 교회에도 협소하지만 빛이 떨어지는 부 분이 있죠. 그런데 그것들은, 말하자면 고딕적인 빛입니다. 그런 드라마틱한 빛의 연출을 능란하게 하시다가 여기서는 조금 다르게 처리를 했어요. 하지만 저는 이곳의 빛도 연출된 빛처럼 느끼는데, 아마 조경 때문인 것 같아요. 대나무가 없었다면 빛이 저런 식으로 떨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자세 히 보시면 아래서부터 그라데이션(gradation)이 되어 있어요. 아래에서 어두웠다가 위로 점점 밝 아지는 빛인 거지요. 천상을 지향하는 빛 같은 것입니다. 고딕의 빛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 꽂힌다면 여기서는 아래에서 위로 퍼져 올라가는 상승감을 느낄 수 있어요. 그런 점들이 특이하지요. ⓦ 전유창 : 실용적인 공간이라고 해도 분명히 공간의 느낌들은 표현되어 있어요. 차갑거나 따뜻하 거나 부드럽거나 관능적인 공간들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건축가가 만드는 공간은 그런 느낌으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할 거에요. 결국 그것이 사용자와 건축주가 교감하는 부분이거든 요. 그런 공감의 느낌 때문에 우리가 여기 앉아 있는 거고요.

깔끔한 문장이 주는 감동 ⓦ 김재관 : 아까 함 소장님이 이야기하신 이분법적이란 표현은 매우 정확한 것 같습니다. 성만교 회는 코아가 배 밖으로 나와 있는 것 같다, 라고 표현하셨는데, 그렇죠. 거꾸로 이야기하면 속을 다 비워버린 거지요. 거치적거리는 것들은 바깥으로 빼놓고 안을 비운 상태에서 뭔가를 시작하는 거 예요. 사실 그러한 구분의 수법들은 아주 쉽지요. 그러면 결국 비워진 것과 바깥으로 나간 것이 형 태적으로 드러납니다. 저는 그것을 명쾌함이라고 불렀어요. 그 말이 틀리지는 않겠지만 옳다고 볼 수도 없을 거라고 봅니다. 변명을 좀 더 하자면, 저도 교회 건축을 조형적으로 다루던 시절이 있었 습니다. 또 한때는 반대로 조형을 없애버린 적도 있었고요. 어느 민박집은 기능만 살려서 설계한 적이 있었는데, 기대했던 명료함은 없고 오히려 건조함만 남더군요. 뼈다귀가 서 있는 것처럼 말이 죠. 저는 이 양극단을 경험하면서 조형을 다루는 솜씨가 굉장히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니라고들 말합니다만 조형은 건축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조형이라는 것은 형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냐는 것이지요. 조형은 형태 뿐만 아니라 공간의 조직과 배분, 그리고 느리고 빠르게 하는 흐름과, 끊고 맺는 적절함 모두에 포 함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풀향기 교회가 실용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만, 그 것이 조형을 배제한다는 것과는 다르다고 봅니다. 어쨌건 저는 그 부분에 미숙하며 또한 다행이라 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나는 그것을 붙잡고 살 테니까요. ⓦ 함성호 : 조형에 재주가 없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셨지만, 그것은 건축을 볼 때 생기는 오해 때문 인 것 같아요. 저는 건축은 조형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건축의 미학적인 요소들은 다르게 다 뤄져야 한다는 건데, 그게 뭐냐면, 순전히 저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하나의 문장으로 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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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면 김 소장님의 건축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좋은 문장 이란 무엇인가, 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것은 절실해야 된다, 정확해야 된다, 아름 다워야 된다, 이 세 가지거든요. 그 중에서 한 가지를 택하라고 한다면 거의가 절실함을 택해요. 그 런데 미술이나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택해요. 그런데 건축하는 사람들은 정확함을 택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결국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는 거죠. 아름다움은 어디서 나오는가, 문학에 서는 절실함에서 나와요. 절실하니까 정확해지려고 하고 정확해지니까 아름다움은 저절로 나오는 거예요. 미술하는 사람들은 일단은 아름다워야 하니까 아름다움에 전력을 다해요. 아름다움에서 정확해지고 절실해지려고 그러죠. 근데 건축하는 사람들은 정확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정확 해지는 것이 얼마만큼 절실한가 할 때 아름다움이 나오는 거지요. 건축이 이제까지 형태에 집착해 왔던 것은 건축을 미술과 같은 조형 예술로 오해해 온 결과입니다. 이제 우리는 건축을 다른 관점에 서 바라다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다른 언어가 필요한 겁니다. 김 소장님은 화려체 문 장이 아니라 정제되고 깔끔한 문장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을 울려 줄 수 있어요. 이분법 자체가 수식어가 없단 이야기인데, 그와 비슷한 것이 전통건축이지요. 조선의 반가들이 명쾌하고 모던하 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주어, 동사, 명사로 끝나는 김 소장님 건축에서 한 가지 더 보 탠다면 아마도 조사일 겁니다. 매우 중요한 것이죠. 그리고 그 조사는 빛이 아닐까 해요.

다음 작품에서 기대해 볼 수 있는 것 ⓦ 함성호 : 유걸 선생과 김수근 선생의 교회 건축을 통해 김재관의 교회 건축을 읽어보는 것도 재 밌을 것 같네요. 교회 건축에는 유걸 선생의 강변교회처럼 천장에 유리를 깔아서 천상을 구현시키 는 경우도 있고 김수근 선생의 경동교회처럼 폐쇄된 공간과 빛으로 지상이 들려지기를 원하는 경 우도 있지요. 그런데 김재관의 교회에는 그 두 가지가 교묘하게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전혀 개방적 이지 않은 본당의 벽과 천창을 통해 새어 들어오는 빛에서 그런 느낌을 받게 됩니다. 말하자면 망설 임일 수도 있겠는데요, 그렇다면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많이 해본 놈이 장땡이란 말이 있어요. 실패를 하던 성공을 하던 간에 많이 만들어본 사람이 성공 한다는 거죠. 김 소장님은 지금까지 교회 건축을 10여 개 가까이 하셨는데, 꾸준히 더 많은 것을 하실 생각이시죠? ⓦ 김재관 : 최근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를 의뢰받은 적이 있어요. 건축주의 첫 질문이 스타일이 있느냐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없다고 했죠. 그때그때 다르다고요. 알고 보니까 건축주는 이미 여 러 건축가들을 만났는데 다양한 반응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이란 게 말도 안 되 는 요구고, 건축가는 그런 양식을 재현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반응이었데요. 화를 내는 사람도 있 었구요. 처음엔 저도 황당한 경우라 생각했지만 해보니까 무척 재미있는 작업이더라고요. 내가 이 상한가요? 하하. ⓦ 정리 | 정귀원(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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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측 전경. 본당 입구가 있는 부분의 출입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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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외 광장이라 이름 붙여진 곳. 지붕 없이 담으로 구획된 외부 공간이지만 본당 입구 전면 의 로비로 사용되기도 한다.

↑ 전체 건물의 코아라고 봐도 무방한 옥외 광장의 양측에서 지하로의 접근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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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 계단부. 어느 곳에서든 풍부한 빛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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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1층에서 내려다 본 지하 2층. 바람이 한 점 없는 날에도 이곳에서는 늘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외부와 지하의 상이한 조 건들이 열린 곳에서 만나면서 생성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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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2층 통로 부분. 빛과 바람과 소리와 흙 냄새를 담은 곳. 이 집을 찾는 방문객들은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지하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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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층 본당 내부. 밝은 교회를 위해 빛이 실용적으로 쓰였다.

↓중2층이 걸려 있는 지하 2층 식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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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측 외부에서 지하로 진입하는 계단. ↑ 많은 계단들로 상하 공간을 이어주면서 지상과 지하 를 명쾌하게 구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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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경. 수조에서 퍼지는 물소리는 지하로 내려오면서 상당한 공명을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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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 1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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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1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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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2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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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류산방 樹流山房의 책 book of Suryusanbang

도시마 : 스스로 제자된 자들이 만든 책 T O SH I M A: From the Pers pec tives of Se lf - procla imed St ude nt s

고향을 떠나 20여 년을 에스파냐(스페인) 그라나라에 머물며 온전히 창작에만 집중했던 화가 도시마 야스마사. 생전에 그를 만난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사후에 이야기로만 그를 접한 사람들조차 모두 자신이 이 깡마른 백발의 사내에게 깊이 매료되었음을 자랑스럽게 고백한다. 이 화가의 무엇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그토록 깊이 흔들어 놓은 것일까. 한국어, 일본어, 영어, 에스파냐어 4개 국어로 편집한 이 책은, 그라나다 알바이신에서 그와 함께 생활한 포토그래퍼 정세영의 체험을 모티프로 하여 도시마 선생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기억과 작품, 사진 등을 엮은 것이다. 아들,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벗, 2008년 말 도쿄에 <도시마 야스마사 미술관>을 오픈한 후원자 등 그를 기리는 여러 사람들의 글을 통해 독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예술 세계와 정면으로 승부하다 간 한 화가의 삶과 정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마 선생의 그림과 그가 남긴, 그가 가장 존경했던 조각가 권진규에 대한 추모글 또한 흥미로운 볼거리다. The painter, Toshima Yasumasa, spent 20 years in Granada, Spain dedicating himself to art. Along with the people who had known him before his death, those who came to know him only after his death through stories proudly confess their profound attraction to him. What is it about him that has such force? This book, containing Korean, Japanese, English, and Spanish versions, is a concoction of people’s memories of TOSHIMA Yasumasa, art works and photographs, centered around the experience of the photographer CHUNG Seyoung who practically lived with him in Albaicín, Granada. Through the writings of people close to him, like his son, a college friend, and a sponsor who opened Toshima Yasumasa Memorial Gallery in Tokyo at the end of 2008, the readers will be able to see the life and the spirit of a painter who stood up to his own art face-to-face until the very end. His paintings and writings commemorating his most respected friend the sculptor KWON Jinkyu are particularly interesting.

by Suryusanbang 54


와이드 11호 | 이슈 1 Wide Architecture : wIde Issue 1 no.11 : september-october 2009

2009 Wondoshi Academy Seminar 1~3 2009 원도시 아카데미 세미나 1~3차 EXIT, 한국건축의 길을 찾다 ①

지난 5월에서 7월까지 석 달에 걸쳐 2009년 상반기 원도시 아카데미 세미나가 열렸다. ‘EXIT, 한국건 축의 길을 찾다’를 주제로 오늘의 시대 상황에 대항 하는 논리를 세워보고자 기획된 이번 세미나는 한 국 현대 건축의 역사, 이론, 비평을 이끄는 건축학 자가 발제를 하고 젊은 건축가와 토론하는 형식으 로 구성되었다. 본지는 총 3차에 걸친 세미나를 통 해 다양하게 제시된 우리 도시와 우리 건축을 바라 보는 시각들을 정리하여 게재한다. 비록 지면의 한 계로 인해 현장에서 오고 간 질문과 답변들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고, 현장성 또한 생생하게 전달하지 는 못하지만 적어도 건축하는 우리들이 한 번쯤은 고민해 본 문제 혹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물음들을 차분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 한다. (정리 | 정귀원 | 본지 편집장)

제1차 | 05월 07일 제1차 | 이경훈(국민대 교수) 제1차 | 토론 : 공철(그룹 터 소장) 제2차 | 06월 11일 제2차 | 이종건(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 제2차 | 토론 : 장윤규(운생동 대표^국민대 교수) 제3차 | 07월 09일 제3차 | 김원식(미상건축연구소 소장) 제3차 | 토론 : 이일훈(후리건축 대표) 사회 : 장정제(건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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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반(反)도시의 증거들

한국 건축이 처한 문제의 시작과 끝은 오리지낼리티 (originality)에 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오리지낼 리티와 관련한 사례를 들어가며 이야기하는 것은 매 우 부적절하고, 그래서 다른 주제를 택했다. 바로 어 버니티(urbanity)다. 우리 건축의 모든 문제의 근원 은 또 다시 도시성이 없다는 데 있다. 특히 서울이 가지고 있는 도시의 문제야말로 우리 건축을 앞으 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커다란 장애라고 생각한다.

2009 원도시 아카데미 세미나 제1차 이경훈 | 국민대 교수

그래서 오늘은 서울의 반(反)도시의 증거들을 이야 기하는 것으로, 가볍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 면 한다. 우리가 도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많은 부분은 실제로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닐까? 요즘 설계 사무실 명칭 중에도 도시라는 낱말을 붙 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부분 “우리는 아파트 설계 도 합니다”란 뜻을 담고 있는 경우다. 그만큼 도시라

이경훈 국민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프랫(Pratt Institute)에서 수학했다. Carl Puchall Associate Architects, ㈜유창건축사사무소 등을 거쳐 현재 국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노들섬 예술센터 국제설계공모 전문위원(PA), 동대문 디자인 프라자 국제설계공모 부전문위 원(APA), 경기도 전곡 선사박물관 국제설계공 모 전문위원(PA)으로 활동한 바 있다.

는 말은 남용되고 있고, 그것에 대해 한 번 이야기해 보자는 것이 오늘 세미나의 취지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우리는 도시에 살고 있다는 가 상 체험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주로 영화와 드라마, 광고 등을 통해 경험된다. 그 매체들이 전달하는 세 련된 도시 라이프는 실제 라이프와 굉장히 동떨어진 가상적인 현실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를 보자. 눈여겨볼 것은, 사회적으로 성공 한 네 명의 여주인공들 중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다. 굉장히 중요 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택시를 이용하여 교외를 나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걷는 생활을 한다 는 것이다. 길과 거리는 별개의 개념이다. 길의 정의가 A와 B를 잇는 경로라면, 거리는 그것을 잇되 과정이 더 중요 해지는 경우를 가리킨다. 그런데, 서울의 강남대로 를 보면 매우 넓거나 좁은 길 때문에 어떤 경우도 거 리가 불가능하다. 과정의 경험이 없어질 수밖에 없 다는 말이다. 도시에서 사람과 차와 건물의 관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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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차가 있고 사람이 있고, 건물이 있는 게 순서

알려 주고 있는 건데,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다. 하지만 사람과 건물 사이에 차가 끼어들면서 문

모르는 사람이다.

제가 발생되는 것이다. 거리는 무너지고 길만 남게 {반도시적 요소 3} 루체비스타

되는 이유다. {반도시적 요소 1} 걷고 싶은 거리 서울에서 가장 반도시적인 요소는 걷고 싶은 거리이 다. 이 말은 도시에 걷고 싶은 거리가 없다는 것이 다. 관에서 걷고 싶은 거리를 지정하고 특별히 정비 를 해야 할 정도로 거리가 부재하다. 인사동길, 명동 길, 대학로길 등이 그 사례인데, 문제는 앞서 정의한

다음 요소로 루체비스타라고 하는, 시청 앞과 청계

거리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거리라기보다 길

천 변을 밝히는 빛의 장식들이다(루미나리에가 상표

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차를 완전히 없앤다거

법 위반 때문에 루체비스타란 이름으로 변경됨). ‘건

나 덕수궁 돌담길과 같은 호젓한 길 등을 만들어 놓

물’이나 ‘기둥’에 장식 혹은 등을 달았던 유럽의 전통

고 걷고 싶은 거리라고 지정한다. 남산 산책로의 경

에서 유래된 행사를, 우리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가

우는 얼마 전에 공사를 해서 차도를 하나 줄이고 인

설 설치물 위에 최대한 화려하게 치장해 놓고 그 앞

도를 더 넓혔다. 그러고는 걷고 싶은 거리라고 명명

에서 사진 찍으며 즐거워한다. 그러고 믿는다. 나

한다. 그런데 그것들은 사실 길이다.

는 도시에 살고 있다, 라고. 애석하게도 건물 자체 를 빛으로 장식하고 사진을 찍을 만한 장소가 우리

{반도시적 요소 2} 인도 주차

에겐 없다.

두 번째 요소로 인도에 주차하는 행태를 들고 싶다.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가한국에 매장

{반도시적 요소 4} 마을버스

을 내면서 첫 번째 내걸었던 조건이 “매장을 차로 가 리지 말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더 문제는 공무 원이나 경찰의 입장에서 보면 사유지이기 때문에 인 도 주차 단속의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차와 차 사이 를 사람들이 갈팡질팡하는 암울한 현실이 펼쳐지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제 인도 주차는 너무나 당

서울의 마을버스 노선은 253개고, 노선 길이는 평균

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인도 주차

8km 정도 된다. 서울에 산지가 많기 때문에 걸어 다

된 도시의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에 결코 나오지 않

니는 것이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8km 정도의

는다. 깨끗한 보도와 그 위를 거니는 보기 좋은 연인

거리는 일반적으로 도시에서 걸을 수 있는 거리이

만이 있을 뿐이다. 좀 심한 경우에는 5m 정도의 건

다. 하지만 환경이 걸을 수 없게 만들므로 자가용을

물 셋백(setback)을 일찌감치 하기도 한다. 아예 차

타고 다니거나 택시 혹은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들을 딱딱 끼워 넣을 수 있게 말이다. 또 자신의 블

다. 심지어 12인승 봉고차가 마을버스로 쓰이는 곳

로그에 인도 주차 시 주의 사항을 올려놓은 경우도

도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차를 타고 가야 하는 도시

봤다. 까다로운 인도 주차를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환경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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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누구나 생각하는 아파트 문제이다. 물론

{반도시적 요소 5} 방음벽

아파트라는 것은 가장 도시적인 주거 형태다. 그런 데 그것이 귤이 탱자가 되듯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반도시적인 요소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 건축의 아픔 이자 아이러니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아파트가 이 렇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남향과 무관한 중복도형 아파트가 대세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가정주부의 방음벽은 다른 모든 것을 대표하는 반도시의 증거이

기호에 부합하는 전형적인 아파트의 형식이 나오기

다. 나는 가자 지구의 담장을 찍은 사진을 보면서 두

시작했던 것이다. 아파트가 문제되는 것은 판상형이

려움은 벽을 짓고 희망은 다리를 짓는다는 문구가 생

기 때문이다. 이것은 햇볕 혹은 전망을 더 넓게 갖

각났다. 우리는 어떤 공포로부터 벽을 계속 세운다.

겠다는 욕구에서 비롯되었다. 아파트의 남향이 얼마

2차 대전 때 나치들이 유대인을 격리 수용하기 위해

나 중요한지, 전 세대 남향이라는 광고를 흔히 볼 수

점령지 곳곳에 설치한 것을 게토(ghetto)라 부른다.

있을 정도다. 또 다른 문제는 유닛의 내부가 과하게

방음벽을 설치한 모습이 마치 게토를 연상케 하지 않

디자인된다는 것이다. 아파트를 참 화려하게 해 놓

나? 방음벽은 우리 주위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

고 산다. 그런데 그렇게 화려한 인테리어도 집을 나

다. 내가 이것을 반도시 증거의 대표라고 말한 것은,

서는 순간, 눈앞에서 사라진다. 공적인 영역은 대충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것을 통해 공공의 이익보다 사

해도 상관없다는 것이 우리의 태도다. 우리가 생각

적인 쾌적함에 대해 강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하는 내 집이란 아파트의 현관까지다. 르 코르뷔지

때문이다. 학교에 방음벽을 두는 일은 더 큰 문제처

에의 유니떼 다비따시옹(Unite d'Habitation, Mar-

럼 보인다. 아니,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관에서 저 방

seille)을 보자. 가운데 창이 없는 방들도 있고, 비례

음벽을 아름답게 디자인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의

에 무리가 있어 보이는 방들도 있다. 우리가 공공재

아이들은 도시를 소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두려움

라고 생각하는 조망(view)에 대해, 일조에 대해 자기

과 회피의 대상 혹은 필요악쯤으로 여긴다. 뉴욕이

가 가질 수 있는 것을 최소화하고 가급적 여러 사람

나 시카고에서는 철로 옆에 사는 사람조차도 방음벽

과 나누어 갖겠다는 태도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을 요구하지 않는다. 도시에 사는 대가를 치르는 것 쯤으로 알기 때문이다.

{반도시의 배경} 나는 이러한 반도시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

{반도시적 요소 6} 아파트

리고 그 원인은 우리 건축의 문제에도 고스란히 전 달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자연 이데올로기이다. 자연에 순응하는 것, 이것은 우리 건축의 자랑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 는 이것의 이데올로기화다. 자연에 도전하면 큰일이 라도 나는 것처럼 호들갑이고, 반자연은 마치 패륜 처럼 취급받는다. 요즘에는 친환경 개념, 생태 개념 이 들어오면서 자연이 더 큰 힘을 받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친환경은 친자연이 아니다. nature friend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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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니라 environmental friendly라는 말이다. 반

니는 사람이 줄게 되면 대형 매장들이 생겨나고 길거

드시 도시 환경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혹자는

리 상권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내 말을 듣고 외국 생활의 경험에서 보고 배운 걸 진

또 한 가지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이

실인 양 호도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

다. 어떤 경우에는 “자연 환기와 채광이 되도록 계획

다. 숯과 다이아몬드를 예로 들어 보자. 그 둘은 성

한다”가 설계 지침에 나와 있기도 한데, 테크놀로지

분이 같다. 하지만 숯이 열과 압력을 받으면 다이아

에 대한 불신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언제 고장

몬드가 된다. 건축물이 많다고 저절로 도시가 되지

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앞서는 거다.

는 않는다. 개체들을 조직하는 방식이 굉장히 중요 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인공 즉, ‘

이상이 내가 생각하는 반도시 증거의 배후이다. 나

사람의 힘으로 자연에 대하여 가공하거나 작용을 하

는 이러한 것들이 건축에 전이되어 마찬가지로 건축

는 일’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의 경쟁력을 잃게 하고 오리지낼리티를 상실하게 하

반도시 배경의 두 번째는 쾌적함의 신화이다. 우리

여 위기를 이끈다고 봤다. 여기서 대안으로 떠오르

나라 사람들만이 생각하는 쾌적함이란 것이 있다.

는 것이 신사동 가로수길이다. 애초에 눈에 들어왔

신도시가 발표될 때마다 쾌적한 생활 환경을 계속 강

던 곳이다. 이곳이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가

조하는데 그 쾌적함의 유무란 결국 공원의 있고 없음

로수 때문이 아니고 가게 때문이다. 이곳은 어쭙잖

이다. 도시 라이프의 즐거움, 문화적 혜택은 쾌적함

은 쾌적한 공원 하나 없이 상업시설로 채워져 있다.

의 요소라고 느끼지 못하고, 흙 밟고 나무 냄새 맡는

전부 불을 밝히는 가게로 되어 있는 것이다. 또 인도

것이 쾌적함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주차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도시성에 대해 예상 가

세 번째 배경으로 상업성과 도시를 들 수 있겠다. 도

능한 반론은 “한국 도시는 다르지 않느냐”이다. 하지

시는 태생적으로 상업 도시이다. 군사 도시, 교육 도

만 숯은 숯이다. 그걸 우리가 다이아몬드라고 부른

시란 별도의 용어는 있어도 상업 도시란 말은 없다.

다고 해서 보편성을 띠지는 않는다. 한편, 비약이 심

그런데 특유의 체면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버니티를 모더니티(moder-

사람들의 도시에 대한 태도는 반상업주의다. 스토어

nity)로 바꾸어 놓아도 이야기가 될 듯하다. 그것을

프론트(store front)가 줄 수 있는 도시적 혜택에 대

가로막는 것 역시 자연주의, 쾌적함, 테크놀로지에

해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많은 볼거리를 주면서

대한 태도 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밤에는 방법 역할을 하고 또 코뮤니티(community)

내 이야기가 이번 세미나의 주제에 맞는 발제였는지

의 역할도 하는 것이 스토어 프론트다. 안타깝게도

는 모르겠으나, 스스로 매트릭스에 갖혀 있는 것은

우리나라는 차들이 점령되어 있는 상태다. 걸어 다

아닌지 자문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질의와 응답} 공철 | 반도시의 증거? 그게 뭐 어떤가? 살아가는 데 문제가 있나? 이런 태도로 강의를 듣다 보면 너무 체 념적인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서울을 사랑한다. 서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서울의 도시 문화를 즐길 줄 모르는 우리들의 문제가 아닐까? 이경훈 | 윈스턴 처칠은 “우리는 건축을 만들지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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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우리를 다시 만든다(We shape our buildings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문제

thereafter they shape us)”라고 말했다. 사회 문제 대

는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환상 속에 살고 있다는

부분에 도시가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데 있는데, 즉 가상의 기억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다.

공철 | 서울은 한꺼번에 많은 도시적 일상을 누릴 수

말의 서두에 매트릭스 서울을 이야기한 이유다.

있는 도시여서 좋다. 그러면서도 남산, 관악산, 북

공철 | 도시의 정의를 규정하는 기준은 뭔가? 모호

한산이 있는 도시다. 이런 혜택을 받고 있는 도시가

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드물기 때문에 서울은 가능성이 많다, 라고 생

이경훈 | 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 규모는

각한다. 그래서 몇 가지 반도시의 증거들이 뭐 어떤

아닐 것이다. 스케일이 작더라도 어버니티의 유무에

가 싶은 거다.

따라 도시가 될 수 있다. 층수와 밀도와도 크게 상관

이경훈 | 한국에 온 외국 건축가들에게 서울 이미지

이 없는 것 같다.

를 물어 보면 대부분 다이나믹(dynamic)하다, 산이

공철 |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시킬

많다, 라고 말한다. 반면 도시성이 부족한 것을 솔직

필요까지 있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그렇

하게 지적해 주는 이들도 있다. 내가 모든 것을 부정

게 비난받아야 하나?

적으로 본 것은 아니다. 체념하고 있지도 않다. 시간

이경훈 | 문화와 자연 중에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이 지나면 어느 정도 개선되리라고 생각한다.

문화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 자체가 자연에서 누

공철 | 너무 서양의 이론으로 도시를 진단하는 것은

리던 사적인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다.

아닌가? 말씀하신 것처럼 반도시적인 증거를 우리

방청객 |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발제였는지 혼란스

만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우리 도시도 마땅히 가

러웠다. 건축가의 역할에 대해, 건축가가 할 수 없는

질 수 있는 건데 과하게 비판하는 것 같다.

부분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되긴 했다. 도시에 대

이경훈 | 물론 우리나라 도시에도 긍정적인 측면, 특

한 생각의 정도차도 읽을 수 있었고.

히 서울에도 도시 생활의 즐거움이 있다. 단지 이 세

이경훈 | 딱히 건축하는 분들을 위해 준비한 것은 아

미나의 주제가 한국 건축이 처한 위기에서 길을 찾

니었다. 너무 평이한 내용은 아니었나, 걱정이 된다.

아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맞췄을 뿐이다. 처

오늘 내가 발표한 것 같은 시각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음 구상할 때는 서울에만 있는 반도시적 요소 외에

우리는 서울을 엄연한 도시로 단정하고 그 다음의 논

서울에만 없는 요소들을 좀 찾아보려고 했다. 아쉽

의를 하는 것 같다. 그런 걸 한 번 짚어 보자는 것이

게도 완성을 못했다. 아무튼 나는 그런 요소들이 건

었고 친환경, 생태 건축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싶었

축에 전이되어 건축을 퇴행으로 몰고 가는 것을 위

다. 누군가 나의 성향을 모던 원리주의자라고 지적

기로 본 것이다.

한 적이 있다. 실제로 나는 건축에서나 도시에서나

공철 | 자연주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

모더니즘이 조금 더 전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에는 공감하는 바다. 하지만 발표하신 반도시의 증

하지만 모더니즘의 반자연성, 인공미 등에 대해 태

거들이 과연 우리가 삶을 구축해 나가고 서울이 발전

생적으로 거부감이 있는데다가 친환경 개념이 보태

해 나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인지는 생각해 봐야 한

져서 자칫 이러한 노력이 어그러지지 않을까, 걱정

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반대 입장이다. 도시는 정말

이 되기도 한다. ⓦ

여러 켜들이 있다. 다른 나라의 도시 이면에도 좋지 않은 모습들이 있고 그러한 가운데 살아간다. 이경훈 |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살면 되지 굳이 맞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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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건축 길 찾기

나의 이야기는 한국 건축의 정체성을 주제로 하여 그 것을 면밀히 찾겠다는 데 목표가 있는 것이 결코 아 니다. 정체성이란 것이 하나의 컨셉트로 존재한다고 믿지도 않거니와 국가 혹은 문명의 정체성이란 것도 사실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집단적인 믿음 같은 것이다. 그것보다 나는, 뜬금없지만 상당히 오 래된, 우리의 선배들이 한동안 거론하다 폐기해 버 린 ‘우리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2009 원도시 아카데미 세미나 제2차 이종건 |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

지금 한국 건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우 곤란한 상황에 와 있다. 즉, 여러 가지 입장에서 열세란 얘 기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한국에서는 대형 프로젝 트들을 한국의 건축가들이 수행하는 경우가 별로 없 다. 이름이 알려진 외국 건축가들이 대부분 하고 있 는데, 그 문화적 권력의 차이란 것은 이루 말할 수 없 어서 불균형이 아니라 거의 침탈당하고 있는 느낌이 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 해 나가는 능력

이종건 오클라호마 대학교 건축대학을 거쳐 조지아 공과대학교 건축대학에서 역사/이론/비평 전공으로 철학박사를 받았다. 1996년부터 동명정보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다. 주요 저서 『해방의 건축』, 『중심이탈의 나르시 시즘』, 『텅빈 충만』 등과 역서 『건축 텍토닉과 기술 니힐리즘』(Gevork Hartoonian 지음, 시 공문화사)을 냈다.

을 오래 전부터 상실해 오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까. 우선, 우리도 세계에서 뛸 수 있는 건축가를 만들 어 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삶과 밀착된 건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삶 과 밀접한 영역인 건축으로 글로벨 레벨과는 상관없 이 우리 삶과의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에게 맞는, 우리가 만드는, 우리의 건축으로 신명나 는 세상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두 가지 모두 내가 바라는 바이고, 여기에 하나 더 보 탠다면 한국이 처해 있는 문제를 좀더 직시하여 지 금까지 건축에서 묻지 않은 이슈들을 좀 물어 봤으 면 하는 거다. 과연 건축은 누구를 위한 향유의 대상 인가, 건축의 주체를 누구로 설정하면 좋겠는가, 하 는 이슈를 명확히 밝혀내어 좀더 우리 삶과 역동적 인 관계를 생성해 나갔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 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건축이 조금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이런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들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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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길을 잃고 있는가?}

이론이라는 그물을 현실에 던져야만 고기를 잡을 수

길을 찾는다는 것은 길을 잃었다는 확연한 인식에서

있고 그 이론이라는 그물이 바로 문제화다. 문제화

비롯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건축은 길을 잃었는

작업이 없으면 지식 생산뿐 아니라 담론 생성, 문화

가? 그런데 나는 우리 건축 사회에서 이 인식이 드리

적 행동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즉, 문제가 존재

우는 그림자를 오랫동안 본 적이 없다. 물론 김수근,

하지 않으면 지적 에너지는 벡터를 상실한다. 문제

김중업 선생 이후로 우리나라 건축의 여러 문제, 이

는 지적 에너지를 추동하는 데 필수적이다.

를 테면 정체성이나 토속성, 고유성 등에 대한 문제

그러면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가. 보르헤

들을 한동안 고민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문

스가 문제를 만드는 방식을 보면, 그에게 문제는 가

제를 둘러싼 선배들의 실패와 좌절 또한 기억한다.

상일 수 있다. 그는 글을 쓰면서, 누군가가 항상 자신

아무런 지적 성과물도 없고 표면적인 합의 정도 수준

이 생각하는 것을 먼저 썼다는 것을 가상으로 포지션

에서 더 나아갈 수 없다는 패배 의식이 우리 현실에

한다. 기존에 존재했던 책들을 다시 쓰기도 하고 심

서는 분명히 존재하며, 이런 이유에서 우린 건축에

지어 존재하지도 않는 책의 특정 페이지를 인용하여

대한 문제가 폐기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글의 모티프로 삼기까지 한다. 그런 방식으로 그는

또 하나는 한국 건축을 리드하는 건축가들의 상당

텍스트의 끊임없는 변주와 변용을 통해 새로움을 만

수가 유학파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들어 나간다. 반면, 니체의 생성 방식은 길을 잃음으

4^3그룹 이후 1990년대 중반 대거 밀려들어 온 유학

로써 찾아지는 것이다. 우선 길을 잃었다는 것을 전

파에 의해 한국 건축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고, 그

제해 놓고 어떤 방식으로든지 길을 하나 만들 때 그

들에 의해 우리나라 현대 건축의 흐름이 좌지우지되

것이 바로 생성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제는, 문

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한 예로 <공간>지

제를 어떻게 문제로 만드느냐, 그리고 문제가 인도

가 건축과 교수들에게 우리나라를 리딩(leading)하

하는 목표 지점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니체의 생

는 건축가를 추천받아 그 중 12명의 건축가들을 한

성 방식). 그에 따라, 문제는 가상일 수도 있고(보르

포털 사이트에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헤스의 생성 방식) 현실일 수도 있다.

그 가운데 유학파가 아닌 사람은 장윤규 교수와 조남

어떤 방식을 따르든지 간에 이론이나 실무에서 뭔가

호 씨 둘뿐이었다. 유학파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

를 던져 놓지 않으면 기실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는

음의 증거다. 이렇듯 유학파가 대세를 이루면서 우

것은 죽을 때까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특정

리나라 건축계는 급격히 바뀌게 되었다. 각자가 외

한 도시를 읽어내어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건축을 해

국에서 배운 것을 부지런히 연습하고 있는 상황이어

나가는 렘 콜하스는 물론이고, 우리가 대가로 알고

서 한국의 묵은 이슈를 들춰볼 기회가 없는 것이다.

있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은 저마다 독특한 방법들을

그러다 보니 이 과제가 우리의 머릿속에서 서서히 떠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건축가들의 작업은 도

나가 버렸고, 내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개인적

대체 무엇인가, 라고 묻고 싶다. 반복과 흉내를 통해

으로 이번 원도시 세미나의 이슈를 보고 기가 막히

뭘 할 수 있겠느냐 싶은 거다. 우리도 다른 칼을 잡

게 잘 잡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야 하고, 똑같은 칼을 쓰려거든 다른 재료를 사용 해야 한다. 차이를 만들어 내는 구체적인 방식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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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화}

다면 여전히 우리는 모창 가수에 머무를 수밖에 없

그러면 우리나라 건축은 무엇이 문제냐? 개인적인

고, 심지어 계속 빼앗길 것이고, 끝내는 우리가 희망

건축 작업에서의 관심 사안은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하는 세계적 수준의 건축가가 나오기란 힘들 것이

우리나라의 문제를 명제화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라는 생각이다.

wIde Issue 1 : 2009 Wondoshi Academy Seminar 1~3


{길의 발견}

장 중요한 지도다. 어떤 사유나 어떤 문제를 직접적

“우리가 길을 잃고 있다면, 길은 어떻게 찾을 수 있

으로 받아들이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

는가? 우선, 철저하게 길을 잃은 존재자로 돌아가야

로 매개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매개

한다. 그리고선 우리가 손에 쥐고 있고, 생각해 낼

체가 없는 것은 인신 공격이 될 수 있으며 매개체를

수 있는 모든 정보들을 상호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담론이다.

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논쟁과 실패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이탈

는 당연할 뿐 아니라 절실하다.”(칼 포퍼)

로 칼비노는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새천년을 위한

칼 포퍼의 입장에서 지식을 발굴하고 생산하는 방

여섯 가지 메모를 남겼다. 그가 다음 밀레니움에도

법은 다른 것이 없다. 항상 문제를 발견하거나 문제

지속되기를 바라는 가치들은 가벼움, 신속성, 정확

를 제시하면 그 문제를 역추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 가시성, 다양성, 그리고 일관성이다. 자하 하디

그것을 어떻게 해왔느냐를 철저하게 발굴해 내야 하

드의 프루이더티(fluidity)는 21세기 파워풀(pow-

고, 우리의 상황에서 그것들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

erful)한 문화 코드다. 21세기 우리가 살고 있는 감

가를 검토해야 한다. 또 반드시 어떤 모형이 있어야

성의 조직이 어떻게 재편되는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

한다. 그 모형을 내가 구체적으로 실행할 때 비로소

다는 얘기다. 또한 우리의 문제와 세계의 문제는 어

지식은 생산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실험

떻게 관계되는가?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은 어떻게

건축이란 말을 너무 쉽게 쓰는 것은 아닌가, 한다. 실

통합할 수 있는가? 혹은 이접될 수 있는가? 등에 대

험이란 이것저것 찔러 보다가 나오는 게 실험이 아니

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오늘날의 인식론

다. 실험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이론적인 틀에 의해

적, 지각적인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진행하여 자신이 예측한 것과 예측하지 않은 것들의

실제의 우리는 어떤가. 자하 하디드가 하는 방식을

차이를 찾아가면서 탐구해 내는 것이다. 이론 혹은

그대로 따라하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늘

과정 혹은 추측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모형을 제기

우리의 것은 아류일 수밖에 없다. 요즘 후학들을 이

하지 않으면 실험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끌고 외국의 건축과 피터지게 싸워야 하는 리딩 그

또한 지식은 혼자서 생산할 수 없는 것이다. 학파라

룹들이 맥없이 끌려 다니는 것을 보면 굉장히 실망

는 것이 존재해서 그들끼리 맹렬히 싸워야 한다. 한

스럽고 안타깝다.

쪽에서 맹렬히 비판하면 한쪽에서 방어하기 위해 애

결국 세계의 빅(big) 도시들이 다 비슷해지는 상황

를 쓴다. 방어하기 위해 고민하고 실험하다가 결국

에서 지역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

방어할 수 없으면 포기하는 것이 아름답다. 그리고

할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외국 건축가를 향한

맹렬히 공격하는 가운데 공격의 칼날도 날카로워져

사대주의가 여전히 만연해 있다. 한국의 건축가들은

야 한다. 그것으로 지식은 성장하는 거다. 다시 말해

이렇듯 너무나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싸울 만한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지적 인프 라, 지적 환경, 지적 사유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지식

{마이너 건축}

은 성장할 수 없다.

우리에게 ‘마이너 건축’의 가능성은 열려져 있는가? 열려져 있다면, 그것을 구조화 짓는 조건들은 무엇

{틀 지움}

인가? 그렇지 않다면, 어떤 대안이 우리에게 남겨

지식/통찰은 연역적 추론에서 나오는 잠정적 열매

져 있는가? 우리 건축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묻지

다. 어떤 틀을 매개시킬 것인가는 그래서 탐구의 가

않을 수 없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건축이란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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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가, 혹은 무엇이었고 무엇이고 있는가, 라는 질문

창조적 오해, 이것이 지금 말하는 오독의 방식이다.

을 동반하는데 이 또한 무조건 맞서야 할 근본적인

아돌프 로스가 “장식은 범죄다”라고 한 것은 강력한

물음이다.

오해다. 그의 작품이나 글을 읽어 보면 그가 주장한

언젠가 마이너(minor) 건축에 대해 강의를 한 적이

바와 잘 맞지 않는다. 즉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것

있다. 문학에서는 들뢰즈의 minor literature를 소

이 아니라 그렇게 말함으로써 그 자신이 혹은 후학들

수 문학이라 표현하다. 그런데 마이너는 양의 차이

이 작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으로 이해해야

가 아니라 질의 차이다. B급 선수라는 거다. 그런 의

한다. 오독을 함으로써 작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

미에서 우리는 모두 B급 건축가들이다. 왜냐면 건축

는 것이다. 건축에서 할 수 있는 것들, 상상할 수 있

은 본래 우리 문화가 아니라 서구의 문화이기 때문

는 것들은 모두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때 우리가 할

이다. 동양에는 건축이란 말 자체가 없었다. 그런 측

수 있는 일이란 그 틈을 벌리고 새로운 땅을 만드는

면에서 볼 때 우리는 무조건 마이너다.

것이다. 그 땅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강력하고 체

들뢰즈에게 있어서 카프카는 출신 배경이 마이너리

계적인 오독이다. 아름다운 오해를 해야 한다. 그게

티라는 사실만으로도 분석의 가치가 있는 존재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오해를 하

유태인이면서 체코인인 그의 문학적 언어는 독일어

려면 믿어야 한다. 몇 가지 믿는 사실들을 들고 와서

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중심국의 언어로 풀어 나간

그것들을 자기의 사실로 만들어야 한다. 재밌는 것

다. 그것이 마이너다. 바꿔 말하면 외국 언어인 건축

은 창조적이란 것이 항상 결과와 관련된다는 사실이

언어를 가지고 우리의 이야기를 하면 그게 마이너 건

다. 그러니까 오독이든 신념이든 크게 개의치 않아

축이 되는 것이다. 또 그 마이너 급이 메이저 동네에

도 되는 것이다.

서 어떤 울림을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 를 들어 메이저 언어로는 표현을 할 수 없는 우리의

{질의와 응답}

이야기, 감성 등이 생길 때 이것을 어떻게 메이저 언

장윤규 | 문제의 생성 방식과 길 찾기에 대해 말씀해

어로 바꿔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주셨다. 한편으로는 조직의 문제도 있는 것이고, 또

것이 생성된다. 나는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마이

우리 사회가 어떤 것을 요구하는가에 따라서 생성의

너 건축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마이너 건

방식들이 달라지는 부분들도 있을 듯하다.

축을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종건 | 우리나라의 조직이나 체제도 좀 바뀔 필요 가 있다. 영화에서 감독과 평론가가 함께 일하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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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창조의 길}

우처럼 건축도 내가 다 한다, 라는 생각을 바꿀 필

우리 건축의 길, 그러니까 새로운 길은 찾는다기보

요가 있다.

다 만들어 나간다고 하는 편이 옳다. 이것은 어떻게

장윤규 | 한편으론 공감을 하지만, 외국 건축가들의

가능한가? 문학 평론가 헤롤드 블룸의 ‘영향’과 ‘오

진출로 얻게 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 디

독’의 방식을 통해 내 생각을 이야기하겠다.

자인의 역량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데 기여한 부분

물론 문학 평론이 건축 평론과 같을 수는 없지만 문

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의 상황을 과정이라

학 평론에서 찾을 수 있는 몇 가지 지혜들이 있다. 그

고 본다. 한편으론 과도기에 있는 거다. 좋은 방향

중 하나가 블룸의 ‘오독’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교수님 같은 분들의 역할

건축가의 자료를 찾아 나름의 해석을 한다. 그럴 경

일 것이다. 대형 사무실의 구조 또한 그렇게 허술하

우 서로 공유하기보다는 기분 나쁜 경우가 많다. 그

지는 않다. 탄탄한 조직과 좋은 맨파워를 가지고 있

런데 그러한 오해를 아름답게 하자, 아름다운 오해,

으니,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면 훌륭한 집단이 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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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것이다.

방청객 | 비평가의 역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종건 | 늘 과도기라고 하는 것이 문제다. 우리나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라 대형 사무실에서 자체 생산된 진정한 대표작이라

이종건 | 한국 건축에 비평은 있는가? 라는 주제로

고 할 만한 것들이 있는지 의문이다. 또 우리나라에

비평가들이 모인 적이 있다. 그런데 스스로 비평가

는 못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도 좀 생각하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더라. 비평도 없고 비평가

자. 우리의 상황 속에서 우리의 재료나 형태를 찾아

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가는 게 중요하다. 무조건 외국의 것을 좇는 게 능사

방청객 | 디자인을 하다 보면 정말 힘들 때가 많다.

는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

그게 창조적인 것이든, 창조적인 것이 아니든 간에.

고 나의 건축이 누구를 대상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

힘든 과정에서 비평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라는 생

고민을 좀 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테크닉과 로컬리

각을 하고 있다. 학파 좋고 서로 이야기하는 것 좋고

티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답

다 좋은 데, 제대로 된 비평이 있다고 하더라도 디

답할 뿐이다.

자인은 그것의 간섭을 별로 받지 않을 것 같다. 만

방청객 | 나는 건축 실무를 하는 사람과 비평을 하

드는 사람의 역량과 경험이 더 중요하지 않나? 도움

는 사람의 선을 분명히 긋는 편이다. 왜냐면 비평이

이 안 되는데 자꾸 이야기하는 것에 작가들은 불편

나 논리가 디자인을 만들지는 못할 것이라는 믿음

해 지는 거다.

이 있기 때문이다. 교수님께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

김미상 | 척박하긴 하지만 한국 건축에도 분명히 비

다. 렘 콜하스나 자하 하디드 같은 건축가들이 자신

평은 있다. 하지만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 사실 없다.

의 작업들을 하기까지 과연 전략적이었을까? 아니

건축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어떻게 보

면 우연에서 나왔을까?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

면 건축가들이 말은 더 많다. 또 건축을 보는 방법이

하자면 오늘 교수님이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하시고

상당히 많은데도 불구하고 평론가나 학자가 별로 없

싶은 말씀은 공부해라, 다. 그런데 작업하는 사람들

다 보니까 한 방향으로만 편향되게 가는 것은 아닌

은 디자인이라는 것은 공부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

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한 가지 짚고 넘어가

고 뭔가 매직(magic) 같은 것이 작용하지 않을까, 생

자면, 설계라는 것은 전략 혹은 우연으로 되는 것인

각하는 편이다.

가를 묻고 싶다. 그것은 아니지 않나? 의지가 있어

이종건 | 외국의 건축가들은 집합적으로 공부를 한

야 되는 것 아닌가? 선한 의지가 있어야 되는 것이

다. 옆에서 자극을 주는 것이다. 한국 건축가들은 그

라고 생각한다.

런 점에서 굉장히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아까 전략

장윤규 | 디자이너가 꼭 디자인만을 해야 한다고는

을 말씀하셨는데, 그들은 전략적인 준비를 한다. 절

생각하지 않는다. 디자이너도 공부하고 글 쓰는 것

대로 우연히 될 수 없는 것이다. 점점 더 우연은 불

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코르뷔지에도 많은 이

가능한 시대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건축가들도 그

론서를 남겼다. 내 생각의 근본은 어디서 출발하고

렇게 과감한 가설과 혹은 이론으로 함께 가는 것이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맞지 않나? 대담한 가설과 대담한 추측을 할 수 있

던지고, 책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만큼 디자

는 사람만이 대단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

인의 깊이도 비례한다고 본다. 그런 과정에서 중요

한다. 그리고 통찰을 가지고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한 부분들은 서로 소통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트너를 좀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혼자 할 수 있는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

것은 너무나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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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도시-눈과 길(道)

이 이야기는 전체 주제와 어긋날 수 있겠다. 한국 건 축의 길 찾기를 내가 제안하는 것은 좀 어렵기 때 문이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역사학자로서 건축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또 어떤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 것인가 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우리나라 민화와 옛 지도 등을 보고 이야기하겠 다.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인데, 서

2009 원도시 아카데미 세미나 제3차 김원식 | 미상건축연구소 소장

양과 비교를 해서 사상적인 토대가 되는 것을 계속 마련해야 하는 처지이다. 건축에는 매우 다양한 분야가 있지만 내가 하고자 하 는 것은 예술로서의 건축과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 (우리말로 조경이라고 하는)이다. 나는 역사를 연구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역사는 예술에 대해 이야기 를 못한다. 그러나 예술은 역사에 대해 얼마든지 이 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건축도 마찬

김원식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대학원 과정에서는 이해성 선생님을 사사, 서양건축사를 전공한 후 벨기에의 루벵 가톨릭대학교에서 예술사학을 공부,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양대학교 건축과 교수로 재직한 바 있으며 현재는 미상건축연구소에서 건축 역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가지다. 역사가 건축에 대해 이야기할 순 없다. 그래 서 내가 하고 있는 역사학이란 것은 하나의 길을 닦 는 것에 불과할 뿐이지 종착점이 될 수는 없다. 즉 예술 혹은 건축을 통해서 사회를 보는 거다. 그리고 대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바꿔 말하면 가장 기 본적인 문법 구조나 언어를, 화용(話用) 구조를 연 구한다. {민화와 의궤를 통해 본 우리나라의 도시 구조} 1

우선 김홍도가 그린 규장각도(奎章閣圖)<그림1>를 보 자. 그림을 나타내는 방식이 서양하고는 완전히 다 르다. 축, 즉 주체가 되는 사물의 시선에 주목을 해 보면 우리나라 건축이나 도시의 접근 방식은 서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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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 혹은 바로크와 다른데, 이 그림의 꺾인 담

뒤에 있다면 우리 그림은 앞에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처럼 항상 꺾여 들어간 부분이 있고 출입도 일직선

차이를 우리는 잊고 살아 왔으며, 또 정면을 향한 그

이 아니라 사선으로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편

림에도 매우 익숙해졌다. 알게 모르게 서양식으로

적인 이야기지만 사실 서양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

물들어 있는 셈이다.

다. 물론 일직선으로 들어가는 것과 한번 꺾어서 들

정조대왕이 화성에 올라 야간 군사훈련을 지휘하는

어가는 것의 심리적인 좋고 나쁨의 판단은 여러 분

모습을 그린 <서장대야조도(西將臺夜操圖)> <그림 3>를

에게 맡기겠다.

보자. 3차원적이고 동일 축선상의 그림이지만 지형

우리나라 그림을 보면 초상화나 탱화, 왕의 초상을

을 살리다 보니까 다른 축이 보이는 그림이다. 그런

제외하면 정면으로 보는 게 없다. 서양에서는 브루

데 그림에서 왕은 없다. 부재하지만 계시는 것이다.

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의 원근법이 예술

굉장히 평면적인 그림이고 축을 중심으로 한 서양의

뿐만 아니라 사상사에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전주의 접근 방식처럼 보인다. 이것은 위계를 중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니다. 신윤복의 <단오풍

시하는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정(端午風情)>을 봐도 그림 안에 주체가 되는 사람

3

들의 시선은 전부 사선이다. 다른 민화들을 보면 사 람뿐만 아니라 공간도 전부 틀어져 있다. 옆으로 보 고 있는 것이다. 또 김홍도나 신윤복의 그림을 보면 정면도를 등각투상법으로 튼다. 평면화지만 사실 평 면화가 아니다. 그리고 항상 주체자의 시선은 다른 데 가 있다. 이러한 것들은 건축이나 도시에도 굉장 히 중요한 접근 방식이 되었다.<그림 2> 김정호의 <동여도(東輿圖)> 중 <도성도> <그림 4>를 보

2

면, 아까 본 그림에서처럼 길들은 항상 틀어서 들어 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권위를 나타내는 장소, 이를 테면 광화문 앞 육조거리 등에서는 직진을 한다. 영 조(英祖)의 둘째 아들 사도세자와 그의 비 헌경왕후 (獻敬王后)의 사당 경모궁(景慕宮)의 의궤를 보자. 언젠가 부석사의 배치를 보면서 깜짝 놀란 적이 있

이것 역시 권위 있는 사람의 공간이기 때문에 직진

다. 부석사 배치에 대한 설명은 많지만, 그것보다도

으로 들어간다.

건물 하나하나가 향하는 방향이 산봉우리에 닿아 있

4

다는 점에서 그랬다. 서양에서는 ‘나’가 주체 즉, 자 기 중심성(egocentrism)을 가지지만 이런 그림들을 보면 바깥에 중심이 있다. <책거리 그림(문방도)>을 보더라도 저쪽 반대편에 소점이 있다. 주체가 되는 것이 서양과 동양이 완전히 다른 셈이다. 사선 구도로 그림 자체가 역동적이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소점이 앞에 있다는 거다. 서양 그림의 소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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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도시 구조를 도면에 그려 봤더니<그림 5> 실핏줄

경유해서 백두산까지 이어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같은 길들이 전부 ㄱ자 형태로 놓여 있다. 또 광화문

다.<그림 6> 물론 이러한 방식은 서양에도 있다. 하지만

앞,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인다는 운중로는 지금처럼

성격은 다르다. 우리나라는 연결성을 가지고 나름대

큰 길은 아니었지만 광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우리

로 방향을 부여하지만 서양의 것은 무한대로 펼쳐가

나라에서 길은 무브먼트(movement)를 위한 선적인

는, 즉 방향성이 없다는 특징을 보인다.

개념을 가지면서 동시에 머물러 있게 만드는 정적인 기능을 가지고도 있었다. 그런데 분명히 방향성은

{바로크 예술과 도시}

있다. 광화문과 경복궁이 있고 그 뒤로는 산으로, 주

7

산까지 올라가는 흐름이 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있어도 사실은 움직임이 있는 공간 구조인 것이다. 그리고 개념적으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백 두산까지 연결이 된다. 이것들이 완전히 하나로 꿰 어 있는 우주론적인 구성을 보이고 있다. 5 브루넬레스키가 투시도를 발명한 이후에 회화에는 큰 혁명이 일어난다. 라파엘로(Raffaello Sanzio)가 그린 <마리아의 결혼>을 보면, 투시도법을 가지고 그린 것이어서 중심성이 강하다. 즉 소점이 중심에 있으며, 바로 내가 중심이 되어 이 광경을 보는 것이 다. 우리나라가 측면에서 보는 것과 분명 다르다.<그림 7>

서양에서는 이것이 철학,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있

다. 데카르트가 이야기한 “cogito ergo sum, 나는 생 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처럼 내가 우주의 중심 6

이라는 즉, 에고센트리즘(egocentrism)과 물려 있 는 것이다. 그런 방법론들이 건축이나 도시, 정원에도 마찬가지 로 적용된다. 가장 성공적으로 생각되는 것이 파리 남쪽의 보 르 비꽁뜨(Vaux le Vicomte)다.<그림 8> 이것

경복궁 근정전 앞의 근정문은 문의 용도만 있는 게

은 중심축을 따라서 완전 대칭으로 되어 있다. 그래

아니다. 여기서 왕의 즉위식을 하고 그랬다. 도면

서 무척 단조로운 구성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

상으론 점으로 표현되는 문이지만 측면에 칸이 있

실 그렇지는 않다.

는 완전한 공간인 셈이다. 근정전을 넘어 여러 전각 들을 거치면 사생활 공간이 나오고, 후원과 만나게 된다. 이 후원에서 의미심장하게 보이는 것은 계단 을 설치하여 공간을 사선 방향으로 막고 있다는 점 인데, 사실은 공간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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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닥에 박아 놓은, 그

무튼 서양에서는 시각 예술은 물론이고 사상 분야에

것만 따라가라는 표식인 징에 대해서다. 이것은 내

서도 투시도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보는 것

가 주체라는 걸 나타내 준다. 그 길을 벗어나 옆으

이 바로 생각인 셈이다. 또 복잡한 그림들을 투시도

로 가면 장관(壯觀)을 볼 수 없다. 이것은 완전히 독

법으로 그려서 그림 그리는 재주만 있는 게 아니라

재다.

투시도를 그릴 수 있는 인텔리겐챠임을 자랑하기도

보 르 비꽁뜨 성의 평면은 바로크 양식이다. 바로크

한다.<그림 11> 11

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우선 바로크는 한 눈 에 봐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돌아다니면서 봐야 한다. 바로크는 다이나미즘(dynamism)이다. 동적 인 성격이 포함되어야 한다. 또 고전주의가 완전한 원형의 공간을 가진다면 바로크는 타원형의 공간을 가진다. 초점이 두 개인 타원형의 공간 안에서 사람 들은 움직이게 되어 있다. 억지로 움직이게 만드는

이 <대사들>의 찌그러진 해골은, 일상적인 시각에

것이다.

서 볼 때는 그림에 나타난 대상의 모습이 뒤틀려 보

바로크 공간의 특징이라면 공간의 연장선이라고 이

이지만 특별한 각도에서 보거나 거울에 비추어 보면

야기한다. 터놓아서 무한대로 나가게 만들어 놓는

왜곡이 사라지고 정상적으로 보이도록 그리는 수법

다. 또 울퉁불퉁한 지형을 이용하여 각 지점마다 반

인 아나모포시스(anamorphosis), 즉 왜상화법으로

경이 다양하게 변하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중심축을

그린 것이다. 실제로 옆에서 보면 뭐 그렇게 일그러

따라가더라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매우 다양하

지겠는가? 싶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은 개념에 있어

다. 즉 각 지점마다 장면이 막 바뀌면서 시선을 무한

서 이것을 극도로 피했던 것이다. 12

대로 보내버리는 것이다.<그림 9> 9

10

중심을 지향하는 서구의 정원을 사선의 위치에서 사 진 찍으면 왠지 어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고궁을 옆에서 찍으면 훌륭한 구도를 보

베르사유 궁전은 도시를 만드는 데 하나의 문법이 되

여 준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옆으로 비껴 찍는 것이

어 왔다. 전면을 삼지창처럼 만드는, 프랑스 표현으

좋지만 서양에서는 정면으로 찍어야 좋다.<그림 10>

로 오리발이라고 하는 수법이다. 바로크의 계획안에

한스 홀바인(Hans Holbein)이 그린 <대사들(The

서는 중심 건물이 있고 초점이 되는 광장이 있고 그

ambassadors)>을 보자. 일그러져 있어서 적당한 거

앞에 오리발 모양의 삼지창이 있다.<그림 12>

리에서 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든 해골 그림이 인

베르사유 궁전은 보 르 비꽁뜨를 모방한 것인데, 그

물들의 발밑에 그려져 있다. 이것은 너무나 잘 알다

래서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같은 공간

시피 투시도법을 이용해서 해골을 늘인 것이다. 아

인데도 장면이 굉장히 다양하게 변한다. 한 마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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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바로크 시대는 연극적인 시대다. 모든

바로크 건물이다. 전면은 가운데 운중로만 정비되었

것이 연극처럼 연출되고 만들어진다(이 당시를 배경

는데, 제대로 했더라면 아마도 삼지창 형태가 되었

으로 한 영화를 보면 매우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다).

을 것이다.<그림 14> 또 시청의 옛날 전경에서는 어느 정

이 베르사유와 보 르 비꽁뜨를 본떠 만든 것이 워싱

도 삼지창 구성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멀리 산이 있어

톤이고, 로마의 유명한 깜포 마르치오(campo mar-

서 주축인 가운데 길은 형성되지 못했다.<그림 15> 15

zio)라고 하는 곳도 완전한 삼지창의 배치를 보여 주 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바로크의 공간은 옆에서 들 어오는 길 위에서는 재미가 없다. 우리나라는 옆에 서 들어오는 것이 재미있는 반면, 서양의 공간은 앞 에서 정통으로 들어오는 것이 제일 좋다. 삼지창의 길은 단지 순례자들을 위해 만든 것이다.<그림 13> 13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리노베이션된 구 경성재 판소(대법원) 역시 바로크 건물이다. 사람조차도 하 나의 엘리먼트가 되는 것이 바로크 계획이다. 제대 로 하기 위해서는 덕수궁이 훼손될 수밖에 없는데 결국 그렇게 해서라도 이룬 경우이다. 입면은, 누 군가는 고딕 양식이라 그러는데, 사실 절충주의 양 식으로 르네상스 양식이 기본이고 로마네스크 양식 이 부분적으로 들어가 있는 형태다. 평면은 리노베

베르사유 궁전을 보면 모든 것이 무대 장치이다. 그

이션하기 전에 둥글게 계단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자체로 무대 세트여서 이 공간에 들어온 사람은 관

보아 바로크 계획안에 맞는 것이다. 바로크 계획안

객이 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세트가 된다. 또 여기서

은 모든 엘리먼트들이 다 맞아야 하기 때문에 하다

는 개인의 자유란 없고 주어진 스킴(scheme)에 따

못해 분수도 아무렇게나 놓는 것이 아니다. 전체 조

라 요소(element)가 된다. 즉 주체가 못 된다. 그러

직에 다 맞게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리노

면 이 공간에서의 주체는 누군가. 바로 건축가이고

베이션된 계획안은 어떠한가? 조경은 물론이고 평

건축가의 에고(ego)밖에는 없는 것이다. 완벽하게

면에서도 전혀 고려가 되지 않았다. 또, 현재 서울

독재자들이 선호하는 억압적인 평면이다.

시청 앞 광장도 마찬가지다. 과연 그렇게 한 게 맞 는 것일까?

{바로크 도시 구조와 서울} 14

{picturesque 기법의 도시 계획론}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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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 광화문을 없애고 조선총독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은 프랑스의 고전주의

부 건물을 두었던 당시를 보자. 조선총독부 건물은

작가이다. 그런데 그의 그림들을 보면 수학적인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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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가진다. 모듈과 규준선을 써서 계산한 것이어

원은 루소 이후의 사상에 더 맞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 16>

서 그림이 탄탄하고 견고해 보인다.

영국식 정원의 선호는 산업화와 함께 교통에 대한 관

프랑스에서 보 르 비꽁뜨나 베르사유와 같은 바로크

심으로 이어진다. 또 움직임과 속도에 대한 관심은

개념을 볼 수 있었다면 영국에서는 푸생의 그림처럼

옛 도시의 길들을 밀어버리고 허허로운 대지 위에 건

각 지점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계산하여 억지로 그

물들을 조형물처럼 갖다 놓는 식의 공간 개념을 발

림을 만드는 개념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영국식 정원

생시켰다. 즉, 과거에는 솔리드(solid)한 도시 내에

이나 조경이라는 것은 인공적으로, 기하학적으로 만

기하학적 보이드(void)를 빼내는 일이 도시 계획의

든 프랑스의 그것과는 매우 달라 보이지만, 자연적

중점이었다면 르 코르뷔지에 이후에는 기존의 것을

으로 보이는 것일 뿐, 사실은 치밀한 계산 아래 조작

밀어버린 후 공허한 대지 위에 기하학적인 솔리드를

되어 있는, 그야말로 가공된 것이다. 간혹 어떤 사람

꽂는 것으로 개념이 뒤집힌 것이다.<그림 19> 19

들은 영국식 정원이 우리나라 정원과 비슷하다고 말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견해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영국 정원을 배경으로 한 장 면을 보면, 풍경이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꼭 한 자리에서 찍어야만 제대로 된 그림이 나오기 때문 에 촬영 지점을 아예 정해 놓았다. 그래서 영국의 정 원은 재미가 없다. 이처럼 회화적인 구도의 장면들

물론 이러한 계획에 반대한 사람도 있었다. 까밀로

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구성을 픽처레스크 스타

지테의 <The Birth of Modern City Planning>을 보

일(picturesque style)이라고 하며, 도시나 조경에서

면, 영국의 풍경식 정원(picturesque garden)을 염 두에 둔 아티스틱 플래닝(artistic planing)이란 말

<그림 17><그림 18>

아주 중요한 방식으로 적용되어 왔다. 17

18

이 나온다. 또 거의 한 챕터(chapter)가 길에 할애되 어 있는데 자연 발생적인 길에 관한 것이다. 또 우리 나라 도시나 길에서와 같이 어떤 얘기치 않은 시각 적인 연출을 많이 볼 수 있는 사례들을 독일의 도시 를 통해 확인시켜 준다. 일례로 북부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부루주라는 곳은 길들이 구불구불하게 되어

프랑스의 바로크 방식이 정해진 곳으로만 가도록 유

있는데 그 길은 사실 생활의 장이다. 건물들과 연계

도된 것이라면 영국의 방식은 각 지점에서 어느 곳

가 굉장히 잘 되어 있다.<그림 20>

으로 가도 동등한 퀄리티(quality)를 보장받을 수 있

20

기 때문에 다양한 경치를 찾아 갈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즉 프랑스가 질서 정연한 도시 계획의 특징 을 보인다면 영국은 상당히 유기적인 형태의 구성을 가진다. 영국 정원의 다양한 시각 효과는 프랑스 사 람들조차도 자신들의 방식을 버리고 영국식 정원을 택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기 의지대로 움직일 수가 있다는 점에서 영국식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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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11 : september-octobe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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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과 건물이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는 도시}

다. 그래서 보여지는 그림의 종류를 몇 가지로 나눠

다시 서울로 돌아와 보면, 우리나라에서 도시의 영

서 생각을 해 봤다. 처음에는 풍경화 같은 것이다.

역을 만드는 것은 산이고 도시를 구성하는 것은 길

굉장히 정서적인 그림과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간다.

이다. 그런데 최근 광화문 광장이 단장되었다. 어느

그런데 풍경 속에 멋진 건축을 꿈꾸지만 건축의 표현

날엔가, 그것을 샹젤리제처럼 하겠다고 위치를 시

은 풍경으로만 되지 않는다. 건축가들이 주로 쓰는

민들에게 딱지 붙이기로 결정하는 모습을 봤다. 과

방법이 투시도적 접근이다. 그런데 투시도라는 것은

연 그렇게 해서 될 일인가? 샹젤리제를 제대로 아는

왜곡된 그림이다. 투시도적 방법으로 사유하는 건축

지조차 의문이다. 또 너무 시나리오가 과해서 오히

과 도시는 모두 왜곡이 심하다. 겉으로 보여지는 그

려 시나리오가 없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더구

림 중에서 왜곡을 덜하게 하는 그림들이 오블리크

나 이순신 장군 동상 앞 분수와 경관 조명을 보면 또

(oblique)나 엑소노메트릭(axonometric), 혹은 분

언젠가 부숴야 하겠구나, 싶다. 미안한 말이지만 외

해도 정도일 것이다. 결국은 등각투상도, 정각투상

국 사례를 좀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적정한 거

도 등의 그림을 그려내는데, 이 그림이 이지적이고

리에 적정한 모뉴먼트(monument)를 둬서 시퀀스

이성적이고 객관성을 담보하기는 하지만 남을 설득

(sequence)를 만들고 스토리를 만드는 그런 방법들

시키는 데는 약하다. 전문가끼리의 소통에는 도움이

을 말이다.

되지만 소위 자본을 설득하는 데는 굉장히 어려운 것

도시에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까밀로 지테의 방

이다. 자본을 설득하는 데는 왜곡된 조감도 이상 없

식은 우리나라 옛 도시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길

고 왜곡된 투시도 이상 없다. 그 부분이 우리가 새로

과 건물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시퀀스를 만

만든 도시를 정말 멋대가리 없게 만들어가는 것 아닌

들어 낸다. 그러므로 도시 계획을 할 때 기존 도시의

가, 싶다. 거기 천착해 가니까……. 그런 생각을 하

패턴들을 잘 연구하여 재생시키는 것이 필요하겠다.

면서 말씀을 들었다. 두 번째, 세 번째 강의를 듣지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 길에 관한

못해서일지는 몰라도, 논점이 외시적인 것, 즉 외시

것이었다. 세 파트로 나눴기 때문에 뒤에 두 파트가

의 도시, 외시의 건축, 외시의 길에 머물러 있는 것

더 있긴 하지만 시간도 그렇고 해서 이만 마치겠다.

은 좀 아쉽다.

오늘은 도시를 보는 방법, 즐기는 방법에 대한 것으

김원식 | 맞다. 전부 외시적으로 본 것들이다. 사실

로 봐 줬으면 좋겠다.

은 길을 좀 이야기하려고 했었는데 확대된 부분이 있다. 내시적인 것은 이일훈 선생님이 잘 하시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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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와 응답}

나? 가가불이(街家不二)만 하더라도 그 길들은 쉬

이일훈 | 부재를 통해 존재를 드러내는 의궤들의 발

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은 공간 안에 굉장

견이 좋았다. 그래서 그 부재의 방식을 통해 존재를

히 다양한 위계가 있다. 투시도는 말씀하신 대로 왜

나타내는 도시는 과연 어떠할까를 내내 생각하고 있

곡 현상이 심하다. 게다가 회화에서 투시도법을 가

었다. 답은 모르겠지만 매우 근사한 도시가 될 것이

지고 직접 작도를 하다 보면 단축 현상이 굉장히 심

라 생각하면서 오늘날 우리나라에 새로 만들어지는

해진다. 소점에 따라 줄어드는 비율이 너무나 커지

신도시들은 왜 이다지도 재미없을까, 를 김원식 선

는 것이다. 그런데 사양 사람들이 투시도에 계속 집

생의 말씀을 통해 나름대로 생각해 봤다. 우선 보여

착했던 이유가 있다. 눈으로 보는 실제라고 하는 것

지는 것, 이것에 집착하는 것이 이 도시를 정말 멋

은 감각에 의지하기 때문에 허구일 수 있다고 생각

대가리 없는 도시로 만들어 간 주원인이 아닐까, 싶

하고, 투시도를 가지고 그리는 것은 수학적인 도구

wIde Issue 1 : 2009 Wondoshi Academy Seminar 1~3


를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지적인 것으로 받아

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면 그 건물은 환

들였다. 그래서 의지를 많이 했다. 도시 역시 투시

경을 이미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고, 후에 부분을 허

도를 사용하다 보면 굉장히 권위적이고 위계적이고

물었다고 할지라도 장소성은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탄압적인 공간이 나오기 쉽다. 요즘은 서양 사람들

생각한다. 보존, 재생 등의 분야에서는 굉장히 중요

도, 특히 예술하는 사람들은 투시도에 거부감을 갖

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반드시 옳다고 할

고 있기도 하다.

수는 없겠지만 전혀 새로운 내용이 들어가는 것보다

이일훈 | 도시에 대한 것도 김원식 선생님은 역사

는 낫다고 본다.

적, 학술적 또는 다른 단서들을 통해서 리서치(re-

이일훈 | 나는 여전히 신도시를 만드는 열정과 경비

search)하는 성향이 강하다. 실무를 하는 사람의 입

와 에너지를 도시 재생에 바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

장에선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연 건축 실

는 사람이다. 그것이 19세기, 20세기를 반성하는 21

무자들에게 도시를 인식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얼마

세기의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 땅에서 이

나 되겠는가?

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재생이란 것은 보다 힘들

김미상 | 그전에 과연 진정한 도시 전문가가 있는가,

고, 이윤 또한 나지 않을 것이고, 이윤이 나지 않는

라고 반문하고 싶다. 아까 건축가들이 도시를 너무

데 세상이 몰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극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라고 이야기

히 개인적으로 신도시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

했다. 여러 지역에 모뉴먼트(monument)를 만들어

고 있는지 묻고 싶다.

서 도시 전체의 스토리보드(storyboard)를 만든 경

김원식 | 이일훈 선생님은 굉장히 이상적이고 로맨

우를 봤는데, 그건 도시 계획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티스트다. 예술가다. 그렇지만 내 입장에서는 따져

도시 설계를 가르쳐도 봤지만 이론으로 접근하는 것

야 한다. 그게 내가 할 일이다. 내가 하고 있는 분야

만 해도 내용이 방대하고, 과정에서 변수도 많은 것

로, 필요하다면 공부를 해서라도 여러 부분을 따져

이 이 분야다. 지금은 가르치는 것을 그만 뒀다. 건

보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그러다 보면 신도시가 꼭

축과 도시 분야는 어디를 가 봐도 서로 반목이 심하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좋은

다. 건축가들은 혼자서 하려고 한다. 또 대학에 도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지금 세태에서 신도시가 필요

과가 생긴 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전체를 아

한가를 생각해 보면 필요하지 않다, 라는 게 더 강한

우를 수 있는 도시 전문가가 과연 있는가, 라는 생각

것 또한 사실이다. ⓦ

을 하게 된다. 이일훈 | 서울시립미술관과 관련된 질문이다. 구조 를 없애 버리고 한쪽 면 외피만 살아 있는 경우인 데 그럴 때도 여전히 회화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 는 건가? 김원식 | 꼭 그렇지 않을 수는 있다. 건축이란 것은 어떤 환경을 창조하는 것이다. 환경을 규정하는 것 은 우리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때론 필요하 겠지만). 어떤 특정한 틀을 완전히 정해 준다기보 다 큰 틀만 세우고 나머지는 알아서 채우게 하는 것 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파사드는 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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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11호 | 이슈 2 젊은 건축가 집단 SAAI Wide Architecture : wIde Issue 2 no.11: september-october 2009

SAAI

<디자인로드—홍대前 SAAI between^interval^relations>전, 더 갤러리, 2009.7.31~ 8.13 두 차례의 집담회를 통한 매니페스토

20퍼센트의 왼손잡이를 사회생물학에서는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개체군의 생존 대비책이라고 한다. 변화된 환경에서 개체군의 생존을 리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왼손잡이에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세상살이에 편리한 오른손잡이 대신 왼손잡이를 택한 젊은 건축가 집단 SAAI에게도 이러한 가능성을 점쳐 볼 수 있겠다. 최근 그들의 생각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건축 전시와 두 차례의 집담회를 통해 한국 건축계의 현실 긍정적인 면모와 소규모 아틀리에 사무소, 그리고 새로이 시작하는 젊은 건축가들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자. ⓦ 글과 집담회 정리 | 강권정예(건축 프리랜서 기자) ⓦ 사진 | SAAI 제공(별도 표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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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젊은 건축가 집단 SAAI


글쓴이 강권정예는 도서출판 발언, 월간 건축문화를 거쳐 한국건축가협회 보조 연구원으로 『한국건축가협회 50년사』 작업에 참여하였다. 일반인과 어린 이를 대상으로 한 건축문화투어(서울문화재단, 문화관광부)를 진행하였고, 어린이 건축 도서 『깊은 바다에 어떻게 다리를 놓을까』를 쓴 바 있다. 현재 건 축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 중이다.

Report

Report 동네 건축가를 꿈꾸는 SAAI 글 | 강권정예(건축 프리랜서 기자)

집담회 1

1

“저희는 박창현, 이진오, 임태병입니다. SAAI의 공동대표이자 사무실에서 가장 오랜 시간 상주하는 붙박이 스텝입니다. 또 작업하면서 서

로 교류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는 집단입니다. 저희는 지휘자가 아니라 같이 연주하는 사람들이며, 저희 세 명뿐 아니라 저 희와 작업하게 될 친구들과 서로 눈빛을 교환하면서 맞춰가는 그런 성격의 사무실을 지향합니다.”

집담회 2 작품 건축집단 SAAI는 자신들의 소개에 건축관이나 작품 세계보다 건축하는 과정과 방법을 얘기한다. 건축가로서 참 알듯 말듯하다. 그런 그들 을 만난 건 여섯 번째 <디자인로드—홍대前>에서다. <디자인로드—홍대煎>은 홍대 앞 디자인을 조명하는 기획 전시로 더 갤러리와 스토 리텔링 컴퍼니 봄바람이 주최 / 주관하였다. 홍대 앞을 베이스로 작품 활동을 벌이는 디자인 회사 11개가 자신들의 작품을 릴레이 전시하 는데 그 여섯 번째가 젊은 건축집단 SAAI의 전시다. SAAI의 전시는 박창현, 이진오, 임태병 대표가 개별로 진행한 홍대 앞 읽기와 공동의 건축 작업으로 구성되었다. 홍대 앞 읽기는 다소 표피 적인 수준에 머무르나 홍대 앞이라는 공간을 사회, 문화, 역사적인 문맥 아래 읽으려 했다. 먼저 홍대 앞의 모습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찾는데, 서교동 사거리의 모습이 담긴 사진가 이형록의 사진(빠지지마, 1956년) 한 장과 서교택지조성사업이 시작되던 당시의 지적도는 홍대 앞의 지형이 1950년대에 형성되었음을 말해 준다. 개발 바람이 불던 1970, 80년대의 지도를 통해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변화 과정 을 보게 된다. 그리고 현재 홍대 앞 지도 위에 표식된 카페 작업은 카페라는 공간이 어느덧 문화적 유희가 되고 있는 트렌드를 말해 주기도 하며(WORKS in 홍대煎), ‘홍대 앞’의 공간 이미지는 개인의 기억이 스며있는 장소를 중심으로 조각 내어 다시 퍼즐 맞추기를 하면서 재 구성되기도 하고(無感覺 홍대), 다시 카메라 뷰파인더(view finder)에 담긴 이미지를 줌인 줌아웃하여 낯설어 보이게도 한다(전체와 부분). 그래서 친근하고 일상적이던 홍대 앞의 건물과 장소는 줌잉(zooming)으로 새로운 홍대 앞의 이미지를 만들어 준다. 갤러리 지하층에 분리 전시된 SAAI의 공동 작업은 많은 건축가들처럼 전시를 통해 작품 세계를 피력하거나 건축가의 자아와 대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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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11 : september-octobe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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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회를 통해 알고 보니, 동네 건축가 되기를 자처하는 이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집담회는 서로 전문적인 고견이나 주장을 어필하기보다는,

Report

를 의도하는 전시라기보다 마치 홍대 앞에 자신들을 인사시키려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런 그들을 전시 기간 중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집 SAAI와 이야기 손님 각자의 얘기가 자신의 스타일로 오고 간 일상적인 생활 이벤트에 가깝다. 물론 전시의 내용과 준비 과정을 짐작해 보 면 결코 가볍지도, 일상적이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 내용은 오히려 동네 건축가가 되겠다며 그들의 동료, 지인 그리고 주민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매니페스토와도 같다. 하층의 공동 작업을 들여다 보고서야 그럴 듯해 보인다. 전시된 공동 작업들은 매혹적인 조형성을 강조하거나 현란한 분석 툴(tool)을 이용 한다거나 하는 합리적인 설계 방법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대신 대지의 흐름에 벗어나지 않고 대지 조직에 순응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보인

집담회 1

그런데 그들은 왜 동네 건축가일까? 한 마디로 답한다. “동네는 우리가 제일 잘 아는 지역이다”라고. 이 같은 간명한 답은 그간 진행해 온 지

다는 것이다. 주어진 조건에 반응하는 작업 경향, 그리고 작업들 대부분이 한적한 전원에 있었기에 복잡하고 까다로운 도시에서 하면 ‘어떨 까’하는 건축가로서의 욕망이 더해져 동네 건축가가 되고픈 이유를 납득시킨다. 그리고 강남보다는 강북에서, 더군다나 건축가 스스로가 살고 있기 때문에 정보가 체화되어 있는 홍대 앞에서 하면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비춰지기까지 한다. 문화적 트렌드에 민감하고 먼저 반응하는 곳이 홍대 앞인 까닭에 개성 있는 건축 어휘로 동네 이미지를 업그레이드시킨다는 명분을 얻을 수도 있는 곳이 홍대 앞일 것이다. 그래서 새로움에 대한 욕구가 많으리라 예상되는 것도 홍대 앞이다. 하지만 의외로 건축가들에게는 척박

집담회 2

문제는 기회인데, SAAI도 최근 동네 건축가로서 데뷔할 기회가 있었지만 진입 장벽이 만만치 않았으니, 그 장벽은 결국 땅이었다. 보통은

하고 까다로운 곳이 홍대 앞이다. 그 속에서 홍대 앞을 잘 안다는 것만으로 동네 건축가를 할 수 있을까. SAAI가 흥미를 두는 것은 문화 인프라가 어느 정도 구축된 홍대 앞의 이미지 연결과 지역 내 프로그램을 네트워킹하는 제안을 함으로써 열 리는 건축의 가능성이다. 동시에 거대한 매스와 자기완결적인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한다. 그래서 홍대 앞의 건축적 접근 또한 달 존의 공동 작업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고 자신감이 비춰지는 이유이다. 돌이켜 보면, 홍대 앞의 동네 건축가는 이들이 처음은 아니다. 1980년대 후반 김기석 씨의 우리마당 연작시리즈에서 그 맥을 짚어볼 수 있 지 않을까 한다. 우리마당 연작은 평범한 슬래브 집을 조금씩 부수고 이으면서, 계획에 따라 진행되었다기보다는 자연발생적으로 형태가 만들어지면서 우리마당, 씨어텔서울, 누나네가 되었다. 그 결과로 홍대 정문 앞 가로변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과 안마당으로 이어지는 도시 의 공간은 도시가로의 활력과 선배 동네 건축가로서 후배 동네 건축가들에게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연작은 시간 이 흘러 모습을 달리하고 변하고 있으니, 이 또한 후배 동네 건축가의 몫으로 남겨진 게 아닐까 한다. 현재 한국에서 3,40대 독립 건축가가 자리잡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은 많다. 개성 있는 건축 언어나 든든한 스텝, 프로젝트를 위한 인적/ 물적 네트워크도 구성해야 한다. 경제적인 생존이 아니면 문화적으로라도 잔류하기 위해서,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대규모 사무소에 몸 담 은 이는 그 나름대로의 생존과 경쟁의 방법을 습득해야 한다. SAAI라는 건축집단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고 그들 역시 앞으로의 항해에 좌 표를 두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들이 현실에 대처하는 자세는 다소 순리적이고 타협적이다. 디자인 시스템을 꾸리고 프로젝트를 수주 하는 것에서부터 스스로를 스텝이라고 부르는 것까지. 때문에 무한 경쟁의 틈새를 메우려는 그들의 존재감이 커 보인다. 이것이 부침하는 한국건축에 지역성을 근거로 한 저항을 기대하는 이유이고 그들이 별일 없이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바람을 안고 두 차례에 걸친 집담회를 통해 그들의 매니페스토 속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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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젊은 건축가 집단 SAAI

작품

라야 하며 형태보다는 내용을, 완결보다는 미완의 열려 있는 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동네 건축가가 되고픈 이들의 생각이다. 기


김명한은 패션 디자이너 출신으로 디자인 콜렉터이자 자칭 카페 1세대, 자타공인의 홍대 앞 터줏대감이다. 그래서 생기는 사명감은 SAAI의 동경 대상 이다. 현재 aA디자인뮤지엄, 아지오 대표. 배윤호는 SAAI의 작업에 충고와 관심을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멘토. 공연 영상 분야에서 스토리텔링과 문화 예 술 다방면에서 아트디렉터 역할을 하고 있다. 홍익대 산업디자인과, 독일 HFF 산업디자인 바벨스베르그 영화학교 졸업, 현재 중앙대 미디어 공연 영상 대학 조교수. 조윤석은 황신혜밴드의 베이시스트로 많이 알려져 있다. 실험예술극장 시어터제로를 지키기 위한 홍대 앞 문화예술협동조합을 결성, 구의 원 선거에까지 출마한 적이 있다. 홍익대 건축학과를 졸업하였다. 현재 홍대 앞 희망시장 대표, 문화기획자, 목수. 조정구는 서교365번지 연구를 진행한 바 있으며, 지속적인 답사를 통해 도시 읽기와 기록 작업을 해오고 있다. 서울대 건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 박사과정을 거쳤다. 현재 구 가도시건축 대표.

집담회 1 홍대 앞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2009. 08. 06 Report

이야기 손님 |

김명한(aA디자인뮤지엄 대표),

배윤호(중앙대 미디어 공연영상디자인과 교수),

조윤석(홍대 앞 희망시장 대표, 문화기획자),

조정구(구가도시건축연구소 대표)

2

집담회 1 집담회 2 ↑맨 왼쪽이 조윤석 씨.

작품 ↑오른쪽부터 배윤호, 박윤준(㈜서울하우스 대표) , 박치동(디자이너), 조정구, 김명한.

임태병 : 지하층 전시(공동 작업)와는 달리 홍대 앞을 무대로 한 2층 전시는 서로 크로스 체크하면서 조절해야 하는 게 저희 작 업의 기조였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판을 벌려 놓은 느낌도 들어요. 그래서 건축은 어떻게 해도 무겁구나 싶죠. 어마어마한 작 업량과 막대한 인원과 시간 투입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겠죠. 개인적으로 저는 홍대 앞에 흘러 들어온 사람이라 할 수 있는 데, 애정을 가지고 여러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처음에 붙들어 주고 원동력이 돼주셨던 분이 조윤석 씨라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 었고요, 그래서 오랫동안 지켜보신 분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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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11 : september-octobe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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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이 됐어요. 처음 차릴 때만 해도 파스타 집은 로드 샵으로 처음

지오 이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카페 <B-hind> 이

이었고, 우리나라 사람이 파스타를 잘 모를 때라 저 역시 막 만들

전과 이후로 나누기도 합니다. 처음에 <B-hind>가 생겼을 때 대

어도 팔릴 때였어요.(웃음) 메리트는 공간이었죠. 아마 최초는 아

명의 빛이 밝아 오는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약간은 진부한 <B-

니고 최초에 근접했을 거에요. 소위 단독주택을 개조해서 레스토

hind> 이전의 숍에 비해서는 세련됨이랄까, 그 때문에 제가 많

랑도 아니고 카페도 아닌, 양다리를 걸친 집이거든요.

이 열광했어요.

지금 <자이 갤러리>가 있는 가로수길(홍대 앞 가로수길은 <B-

그 전까지만 해도 가운데 카페에 큰 테이블을 놓는 경우가 없었

hind>가 이전하기 전 서교동 404-26번지 부근에서 상수 전철

죠? 아니, 1980-90년대까지는 ‘하이델베르그’나 ‘캔맥주’집 같은

역까지의 거리를 얘기하는 것임—편집자 주) 쪽은 카페가 한 달

곳에 큰 테이블이 있긴 했어요. 그런데 6-8명 정도가 둘러앉아 이

에 하나씩 생기는 것 같아요. 작년 11월 들어오려던 뉴타운이 해

야기할 수 있는 정도의 스케일을 제시한 데는 <B-hind>가 처음

제되면서 더욱 그런 것 같아요. 뉴타운이 들어오지 않는 것은 굉

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따로 또 같이’가 되었죠. 혼자 와서, 옆

장히 다행스러운 일인데 그러면서 카페는 더 퍼진다고 봐요. 저

에 누가 앉아 있어도 자연스럽게 앉아 있을 수 있었고요. 혹은 여

는 앞으로 대통령 선거가 있는 2012년까지 지금보다 이백 개는

러 사람이 함께 와 테이블에서 스터디도 하고 회의도 하고요. 어

더 생긴다고 봐요. 왜냐면 그걸 막을 수가 없거든요. 거기에는 정

떻게 보면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책적인 부분과 부동산의 입김, 그리고 책을 쓴 책임(임태병은 B-

이후에 홍대 앞의 카페는 가운데 커다란 테이블을 놓는 게 약속

hind 외 몇몇 카페를 만든 경험을 정리해 『우리 카페나 할까』라

과도 같이 되었어요

는 책을 공저로 쓴 적이 있다-편집자 주)도 있을 거예요.

배윤호 : 저는 사무실이 없었을 때인데, (B-hind의) 그 큰 테이

이진오 : 길지는 않지만 추억해 보면 홍대 앞은 여기저기 빈 틈이

블에서 일을 많이 봤어요. 큰 테이블에서 미팅도 하고요. 결정적

많았던 동네였거든요. 뒷골목으로 가면 그냥 주저 앉아 서로 얘기

으로 여 러 명이 책을 놓고 토론할 수 있는 규모의 테이블 하나

할 수도 있었는데, 점점 더 밀도가 높아지고 딱딱하게 갖춰지면서

가 작은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모델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카페

어디 탈출구가 있을까, 해서 자꾸 카페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 같

가 정치적이거나 카페테리아 문화가 살롱 문화처럼 인터렉티브

아요. 더 많이 생길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게 어디까지 수

(interactive)하게 발전할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런 싹

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요.

이 없어요. 제 친구들만 해도 문화 기획을 하면서 이곳을 드나드

김명한 : 저는 현재 홍대 앞이 변하고 있는 과정을 긍정적으로 보

는데, 생명이 짧아지면서 곧바로 클럽 문화나 인디로 넘어간 것

고 있어요. 도시에서 카페의 기능은 굉장한 것이에요. 서로 바쁜

같아요. 출판 기획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카페 문화가 제대

데 카페에서 커피 한 잔으로, 그곳에서 집중력을 높일 수 있고, 디

로 성장하진 못했던 것 같아요. 금방 조로하고 스타일이 오래 가

자이너들은 구성에 대해 연구도 할 수 있고, 20대는 연애사업을

지 못했어요. (디자인 스타일도) 카피들이 많은 것 같아 개인적

할 수도 있고요.(웃음)

으론 아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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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병 : 다들 아시다시피 <B-hind> 이전에 훨씬 더 중요한 것

아나키스트들의 사명감

들이 여럿 있었는데 <B-hind>를 그 정도로 평가해 주시는 건 약

임태병 : 저는 홍대 출신이 아니지만 <B-hind>를 열면서 홍대

간 낯간지러운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홍대에 카페라든가, 음식점

의 인적 네트워크가 생겼다는 것에 많이 감사해 하고 있어요. 사

이라는 게 상업적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한 쪽으로 쏠리지 않게

실 홍대 사람들의 커뮤니티라는 게 실체로 잡히지는 않지만, 지

균형을 잡아 준 김명한 사장님의 공도 무시할 수 없는 거죠. 사실

나 다니면서 만나고 사무실 가다 만나고, 밥 먹으러 가다 만나죠.

<aA디자인뮤지엄>에 가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단순히 스타일

최근에는 오히려 옛날보다 옅어지고 그런 기회들이 점점 없어지

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뭔가를 얻고 그게 좋아서 가는

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많거든요. 저희는 거기 갈 때, ‘이런 의자는 유럽에 가서

조윤석 : 저는 제일 궁금한 게 막걸리 파는 아저씨에요. 어느 날 갑

일류 부띠크 호텔 같은 데 아니면 앉아보지 못하는 의자’라고 생

자기 나타나셨는데 언제인지 아세요.

각하면서, 카페에서 4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면서 쉽게 경험하게

김명한 : 2000년도에요. <아지오>의 손님한테 막걸리를 팔려다

돼요. 사실 그런 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마찰이 생긴 뒤로 친해졌어요. 그 만큼 특이한 사람이 한 분 더 있

김명한 : 사실 내 ‘놀이터’를 하나 만들고 싶었는데, <aA디자인뮤

어요. 청소하시는 분인데 머리가 길고 내공이 굉장한 분이에요.

지엄>이라는 놀이터를 만든 거죠. 그 놀이터를 혼자 쓰기는 아까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묵묵히 주어진 청소만 하죠. 그

워서 같이 놀아보자는 의미이고요. 카페로서 유명한 <흙과 두 남

다음으로 홍대 앞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람은 사실 <아지오> 건

자>도 있지만, <B-hind>이전인 1980년대 초반부터 홍대 앞에

물 주인이에요. 그리고 황 통장님이라고, 쌀집 주인이신데 작년

wIde Issue 2 : 젊은 건축가 집단 SAAI

작품

후’로 구분을 짓는데요. 홍대 앞을 <아지오(Agio) 이전>과 <아

집담회 2

생겼지 않나 싶어요. 카페토랑이라고 하는 <아지오>는 생긴지 19

집담회 1

는 카페들이 몇 개 있었어요. <흙과 두 남자>는 1980년대 후반에

조윤석 : 우리는 역사 이야기를 하면, 항상 ‘누구 이전’과 ‘누구 이

Report

‘따로 또 같이’의 놀이공간


평창

ⓦ 대지 층, 지상

Report 집담회 1

B-hind 개요 ⓦ 위치 :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04-26 ⓦ 건축 면적 : 107.59㎡ ⓦ 건축 연도 : 2005년(이전)

에 돌아가셨어요. <아지오> 주인은 인근에 임대해 주는 건물만 몇 채 되지만 임대료는 자기 마음이에요. 쓰레기 재활용 봉지 천

집담회 2

장 정도 모아 가면 절반 값만 받고 안 받기도 해요. 자기 것이란 거죠. 새벽 4시 되면 일어나 골목을 쓸고, 동네 고장 난 수도를 다 니면서 다 손 보고, 그러면서 생색내는 법이 없어요. 조금 부지런 하게 장사하지 않으면 오히려 카페 주인들한테 가서 야단을 치 기도 하구요 그리고 홍대에서 제일 오래된 하숙집인 <나교장>이 있었고요. 최 풍경들이 있었지요. 주치의처럼 여기저기 살피면서 이 얘기 저 얘 기 해 주셨고요. 같이 계신 간호사도 굉장히 오래 됐고. 인테리어 도 옛날 그대로였죠. 영화의 한 장면이었죠.

은 시대가 변하면서 작업실 문화라든가 커뮤니티가 거의 없어진

한편으로 홍대 앞 사람들은 아나키(anarchy)의 성향이 다분해요.

것 같고요. 그게 홍대의 변화와 홍대 앞의 상업적인 변화와 일맥

사실 압구정이나 신사동 가로수길에는 아나키의 특성을 지닌 사

상통하는지 궁금합니다.

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성 요소가 홍대 앞의 굉장

김명한 : 시대가 바뀌었어요. 우리가 홍대의 상징이라고 하는 것

한 강점이에요. 홍대 앞이 배타적인 면을 가지기도 하지만요. 신

이 대학 앞에 있는 미술학원이었잖아요. 일명 ‘연어 양식장’이라

사동 가로수길은 굉장히 세련됐지만 적과의 동침을 합니다. 그리

고 하는데요. 전국의 미대를 가기 위해, 그래도 합격률이 높을 것

고 그 스트레스를 홍대 앞에 와서 풀어요. 밤에 몰래 오죠.(웃음)

이라 생각하고 홍대 앞에 있는 미술학원을 왔었죠. 홍대로 진학하 는 학생도 있지만 아닌 경우 전국적으로 퍼지잖아요. 중학생, 고

포자, 연어 양식장 그리고 퍼블릭 스페이스

등학생들이 몇 년을 다니다 보면 회귀본능이 생깁니다. 다 돌아오

임태병 : 저는 홍대 앞에서 작업실 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

죠. 제가 긴 세월 그것을 겪어 봤는데, 그건 굉장한 자산이에요.

해요. 학교 주변의 지하, 반지하 방을 거의 다 점령하다시피 했어

배윤호 : 지금의 홍문관이 있기 전에는 학교의 안과 밖이 잘 구분

요. 이 친구 방에 놀러 가면 저 작업실 얘기, 또 그 뒤의 작업실 얘

되지 않았어요. 홍대와 홍대 앞이 하나였는데, 건물이 들어서면서

기를 들을 수 있었고요.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종의 독버섯

차단돼 버린 느낌이 들어요. 저는 홍대 벤치에 4년 내내 머물렀던

처럼 포자로 번식해 갔지요. 제 기억으로는 홍대 정문을 중심으로

것 같아요. 홍대가 건물들이 몰려 있기 때문에 밀폐돼 있지만, 굉

산울림 소극장 왼쪽 뒤의 블록으로 꽉 차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장히 퍼블릭하면서도 개인적이에요. 다른 데서 보지 못한 입체적

~

~ ~

Wide Architecture Report no.11 : september-october 2009

!

작품

근에 <이관희 내과>가 없어졌어요. 종합병원에서는 볼 수 없는

79


인 점조직처럼 특수한 것이었어요.

위 창작을 하는 사람들,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예술가들이

그리고 보통 사람들처럼 직업 없이 전전하며 홍대 앞에 살아야 하

왜 한국 땅에서는 신념을 세우고 작업하기가 힘들까를 수십 년간

는 사람도 많았고요, 직업도 별로 없고 갈 곳도 별로 없는 사람들

고민하다 보니, 결국은 토양의 문제고, 토양이 없는 데서 교육을

이 생활할 수 있는 밥집이나 환경이 최소한 존재했거든요. 저는

받고 신념을 세우려니 빨리 무너져요. 그러다 보니 바빠지고 변하

마포 평생교육원을 좋아하는데요, 자생력과 생존권을 잃고 많이

게 되는 거죠. 그럼에도 도시는 변하고 동네도 변하는데요, 우리

커지긴 했지만 나쁘지는 않아요. 그것들이 변하고 있죠.

는 변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흐름을 타고 자기 정

김명한 : 하지만 홍대 앞은 생각보다 변화가 느린 곳입니다. 우리

체성을 드러내야 할 거예요.

가 카페 숫자만 보면 변화가 빠른 것 같은데, 굉장히 느립니다. 다 동네 건축가의 소명

도 동숭아트센터 쪽으로 가면 옛날 모습들이 다 사라졌어요. 전

임태병 : 저희 작은 목표는 사실 동네 건축가라고 할 수 있어요. 그

혀 없죠.

런데 한국 상황에서는, 조정구 소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동네 건 축가만큼 되기가 힘든 게 없을 거예요. 그리고 됐다고 해도 그 지

요. 조윤석 씨도 일찍 관심을 가져 주었고요. 저는 그냥 단지 신기

배윤호 : 동네 건축가는 퍼스널리티가 있는 사람이, 그가 추구하

한 건물이랄까, 신기한 집합체가 있어서 하나 샘플링(sampling)

는 라이프스타일이 축적되면 컨텍스트가 생길 수가 있는데, 그런

한다는 생각으로 홍대 앞을 왔어요. 2006년에 기록을 했는데, 5

맥락이 사라지게 되면 자본이 흐르는 것과 시스템에 따라 사라지

년 정도 뒤에 다시 한 번 기록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게 되거든요. 동네 건축은 작은 듯 하지만 철학적이고 동네 건축

오면서 보니까 놀이터에 마포구청에서 노점을 디자인하고 조명

으로 건축이라는 게 달라지겠죠.

을 달았는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홍대 앞에 대한 오랜

김명한 : 특히 건축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가장 해결해야 되

추억을 가진 사람은 주거지 등이 사라지는 게 아쉽겠지만, 저처럼

는 문제가 있어요. ‘적게, 쉽게, 빨리’라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얘

중간부터 본 사람은 홍대 앞이라고 하는 에너지가 넘치는 공간,

기를 건축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얘기를 하는데요. 그것을 설

자생적인 도시의 역사와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이 변하는 게 아쉬

득시키고 간극을 좁혀 들어가는 것,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이 과

워요. 서교365번지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특히 1970년대를 거

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동네 건축가로서 입지를 굳히

쳐오면서 누적된 것이 나타나는 곳인데요, 그런 것들이 지금까지

는 데 중요한 것 같아요.

도 활발하게, 그리고 더 활발해지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고

조정구 : 동네라고 하는 것은, 사실 노출되지 않는 속속들이의 세

정된 껍질로 노점을 만든다는 것이 너무 한심하더라구요.

상이라 할 수 있어요. 동네 사람들을 다 모아놓고 보면 그다지 이

배윤호 : 저는 이번 전시처럼 소통하고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기

상적인 커뮤니티도 아니에요. 거기에는 별별 사람들이 다 있죠.

회가 여러 번, 자주 있었으면 해요.

어두운 과거를 가진 사람들도 물론 있고요. 밝게 돌아다니는 사람

조정구 : 저는 건축을 하는 작업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

만을 동네 사람이라고 하지는 않는 거죠. 그래서 제가 말하고 싶

는데, 하나는 배 교수님 말씀처럼 가볍게 소통하는 차원의 작업들

은 것은 동네 건축가라는 것을 좀 더 깊이 볼 필요가 있다는 거예

을 계속 해야 하는 것이고요, 또 하나는 사람을 많이 동원해서라

요. 전시를 통해 보여주신 작업들이 저는 인상 깊은데요, 홍대 재

도 제대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 있어요. ‘이 정도 생각은 못했지? 이

래시장이 사라지면서 지하로 들어간 떡집이라든지, 이웃하는 장

정도 힘든 걸 우리가 해’라는 걸 보여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봐요.

어집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골고루 봐줄 수 있는 사람, 그게 건축

그런 작업들도 사람들이 보고 싶어할 것이라 생각하구요.

가의 견지든 뭐든지 간에, 진짜 동네 사람다운 시각을 갖고 봐줄

얘기를 좀 더 하자면 ‘규명과 기록’이라는 것인데요. 도대체 지

수 건축가가 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금의 이 변화는 무엇이고, 지금의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이고, 그것

저는 개인적으로 동네 건축가란 말을 좋아하진 않아요. 동네에는

을 어떻게 규명할 수 있고, 어떻게 기록할 수 있냐를 건축쟁이들

관심이 없는 동네 부자 건축가와는 구분될 필요가 있을 텐데요.

끼리는 조금 더 신중하게 다뤄야 하지 않겠냐, 라는 것이에요. 그

제 스스로 동네 건축가라는 말에 느끼는 불쾌함이 있지만, 그러면

냥 조각을 맞추고 했던 것을 보여주는 차원이 아니라 조금 더 규

서도 ‘나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

명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거죠. 저는 주로 ‘삶의 형상’이라고 얘기

요. SAAI도 지금 좋은 출발을 하셨기 때문에 홍대의 사이사이를

하는데, 전시가 있는 더 갤러리도 삶의 형상의 하나일 거구요. 사

누비는 작업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실 동네 건축가로서 SAAI가 갖는 사명이 거기에 있는 것이 아

김명한 : 외국처럼 지역의 공공 디자인을 할 때는 주로 지역 건축

닐까, 해요.

가를 많이 선택하잖아요. 지역 건축가를 선택해서 지역 정서에 맞

김명한 : 이제 저도 변화에 대해 구성인으로서 고민하게 돼요. 소

는 것을 디자인하는데, 우리에게는 그런 시스템이 없는 것 같아

wIde Issue 2 : 젊은 건축가 집단 SAAI

작품

그 작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조언을 듣고 싶어요.

집담회 2

위(역할)를 지킨다는 것이 한국에서는 너무나 힘든 상황이어서,

조정구 : 저는 서교365번지 연구를 통해 느끼는 변화들이 있는데

집담회 1

80

변하는 것에 대한 규명과 기록

Report

른 동네는 우리보다 속도가 배는 앞서 나가는 것 같아요. 대학로


요. 옛날 유엔본부를 지을 때, 의장 국가가 노르웨이였는데 6개 본

할 때 지역 주민들을 동참시켜 시키는데 굉장한 충격 또는 도움을

부 건물을 전 세계 각국의 상임 이사국이 건축가를 선택해서 하나

받는다고 해요. 그 사람들은 생활을 기반으로 하는 사람들이기 때

씩 맡겼죠. 영국 같은 경우도 지역에서 뭔가를 할 때는 지역 건축

문에 학생들이 피상적으로 보는 것을 정확하게 짚어 주고요

가에서 먼저 좁혀 들어갑니다. 여기 마포지역도 뉴타운이 결정돼

조윤석 : 서교동에도 멤버들이 있죠. 한 번은 제가 답답해서 서교

있지만, 어디부터 어디까지 수용되는지 아무도 잘 모르잖아요. 만

동 성당 신부님께 ‘홍대 앞이 이래서 되겠습니까, 성당에서 좀 나

약 여기에 연건평 2천 평짜리 건물이 들어온다면 이 동네에서 제

서야 되지 않겠습니까’라며 찾아간 적이 있어요. 그때 홍대 앞 유

일 큰 건물일 거예요. 분명 지역 건축가 내에서 살펴봐야 됩니다.

지들의 커뮤니티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김명한 : 저도 그 모임에 초대된 적이 있는데, 모임의 주된 관심사

Report 집담회 1

저항성과 권력의 디자인

는 정치 얘기로 흘러요. 거기에 이권이 연루되기도 하고요. 다른

임태병 : 그런 것들을 조정할 수 있는 지역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

나라의 경우에 건축가 위에 또 다른 프로듀서가 있거든요. 일본도

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라이프스타일 프로듀서라고 해서 안도 다다오 위에 또 있어요. 그

조윤석 : 보통 정치적인 압력을 행사하게 되는데, 마포에서 홍대

들이 이 거리를 이렇게 만들자는 컨셉트로 프로젝트에 영향력을

가 갖고 있는 입지가 워낙 크니까요. 계속 어떤 토론을 만들고 지

줍니다.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홍대 앞도 이제 만들어

역 건축가들이 계속 얘기할 수 있고 축적된다면 가능할 거예요.

야죠. 왜냐면 좋게 변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힘을 갖든지, 우리

금방은 아니겠지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만 만들면 언젠가

가 갖고 있는 아나키적 특성과 영향력을 발휘해야 하든지 해야 합

는 되겠죠.

니다. ‘권력의 디자인’이라고 하는데, 권력자를 적당히 이용해서

임태병 : 스위스에서 공부한 후배가 있는데요, 학교에서 설계 과

권력을 공공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거죠. 달리 말해 좋은 디자이

제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최종 크리틱

너들이 권력자에게 명분을 주고 뺏어 오는 거죠. 조금 기다려보세 요, 저도 그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웃음)

윤태권(가아건축 소장)

서승모

윤태권 신창훈

서승모는 대중적인 건축 전시와 건축 작업을 왕성하게 펼치고 있는 아틀리에 건축가다. 경원대 건축학과와 도쿄예술대학 미술연구과(건축전공)를 졸업했 다. 현재 r Da unit 소장. 신창훈은 건축가 장윤규과 파트너쉽을 유지하며 공동 작업을 하고 있다. 영남대 건축공학과와 서울시립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운생동 건축사사무소 대표. 윤태권은 SAAI의 작업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 왔던 동년배의 건축가. 집담회가 진행될 때는 가아건축의 소장이었다. 관동대 건축공학과와 경기대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독립건축가를 준비 중인 프리랜서 건축가.

~ ~

~

작품

이야기 손님 | 서승모(r dA unit 소장), 신창훈(운생동 대표),

Wide Architecture Report no.11 : september-october 2009

!

집담회 2

3

집담회 2 SAAI의 작업을 묻다

81


임태병 : 아이디어나 컨셉트를 시작하는 부분은 같이 도출하는 경

슷하고 저희 태도가 어떤 것들인지, 어떤 연유로 해서 이런 작업

우가 있지만 프로젝트마다 조금씩 달라요. 그때 상황에 따라 어

들을 했는지 평소에 잘 알고 계신 분들과 함께 자기 처해 있는 상

떻게 할지를 결정해요. 예를 들면, <평창 국악스튜디오(비탈스튜

황, 건축하는 상황, 혹은 생활인으로서 건축을 바라본 상황을 나

디오)>는 사무실 자체에서 스텝들과 현상을 했어요. 모델이 예닐

누고 싶어요.

곱 개가 나왔고, 클라이언트가 보고 결정한 게 지금의 안이에요.

윤태권 : 건축가 집단에서 ‘생각을 공유한다’ 라는 것이 궁금해요.

보통은 대부분 2-3개의 제안이 나와 초기에 정리가 되고요. 처음

셋이 싸우거나 하지는 않나요?

에 나온 아이디어는 다섯이나 여섯이 될 수도 있는데, 얘기를 하

임태병 : 일단 셋이 하면 장점인 게, 둘이 하면 의견이 다를 때는 결

다 보면 두세 방향으로 좁혀지거든요. 그러면 그것을 가지고 2-3

정이 안 나거든요. 그러면 꼭 한 명이 캐스팅보트(casting vote)를

개 보여주고, 그 중에 선택되면 진행을 해요. SAAI의 일반적인

쥐게 돼요. 그렇다고 지금까지 다수결은 없었고, 두 명이 의견이

방식이에요.

같으면 어떻게든 한 명을 설득시켜서 진행하게 돼요. 그리고 공유

서승모 : 저도 내부에서 대안을 많이 만들지만 클라이언트를 만

한다는 것에 대해 예전에 한 번 농담처럼 한 얘기가 있어요. 나이

날 때는 하나가 더 편했던 것 같아요. 수많은 경우의 수를 검토

어린 스텝이건, 아니면 파트너이건, 혹은 누군가가 들어와서 ‘이

하고 조건에 맞춰서 풀어 가잖아요. 그리고 여러 경우의 수에 대

렇게 하자’라고 할 때 그 태도가 저희와 같다면 충분히 받아들일

한 최적의 해를 찾아가지만 폐기한 안들에 대해서는 이유를 설명

수 있다는 데 동의를 했어요. 중요한 것은 태도와 자세가 어떠냐

하게 되지요.

하는 거죠. 폼이 똑같아도 생각하는 방식이나 자세가 다르면 같

박창현 : 저희도 그런 태도와 다르지는 않고요, 저희는 스터디 과

이 일하기 힘들겠죠.

정에서 대안이 여러 개가 나와요. 클라이언트에게 대안별로 각

윤태권 : 중요한 말인 것 같은데, ‘저희 태도와 다르다’라고 했잖

각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두세 가지 대안

아요. SAAI의 태도라는 것이 있는 건가요?

을 갖고 가요. 클라이언트는 왜 스터디한 다른 안에 대해 궁금해

이진오 : SAAI를 같이 하기 전, 일 년 반 정도 다른 파트너와 작

하지만요. 그렇게 진행하는 방법이 클라이언트와 만날 때는 수

업을 같이 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어려서인지 서로 자신의 생각

월하지요.

을 관철시키려고만 했지요. 그러다 보니 여기는 네 것, 여기는 내

이진오 : 공통적으로 믿고 있는 것은, 건축은 예술이라고 생각하

것으로 프로젝트를 한 번 만들어 봤어요. 그랬더니 훨씬 더 나빠

지 않는 겁니다. 여러 가지 보편적인 다양한 해법이 있을 텐데요,

지는 거에요. 그런데 SAAI에서는 조금 내가 정말 맞다고 생각하

저희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해법이 아니더라도 보여드릴 수 있

면 더 강하게 주장해도 서로 얼굴 붉히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다고 판단이 되면 보여드려요. 하나가 선택되면, 그 다음부터는

있어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주장하고, 아니면 잠깐 물러

그것을 다듬는 데 훨씬 더 많은 공을 들이죠. 다행이 저희 마음에

날 수도 있고, 그렇다고 구체적인 주장을 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

드는 안이 항상 선택되곤 합니다.

아요. 처음부터 완공까지 함께 한 프로젝트가 <이천 SKMS 연구

82

소>인데요. 이것은 누구의 디자인이라고 얘기할 필요가 없는 게

몇 가지 호혜적 원칙들

같이 데스크에 모여 서로 얘기하면서 그리면서 결정됐던 것들이

신창훈 : 재료에 대한 부분을 많이 고민하고 재료의 선택에 신중

기 때문이에요.

을 기하는 것 같아요.

박창현 : 그리고 취향이나 기호는 큰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큰 틀

이진오 : 어떤 재료를 쓸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재료를 어떻게 쓸

을 헤치지 않는 범주에서 수용되는 것 같아요. 취향의 문제라면

것인가를 많이 고민합니다. <양구 방산자기박물관>의 다짐 흙벽

이번은 이렇게 하자고도 해요. 디자인을 갖고 심하게 다퉈 본 적

이나 <SKMS 연구소> 숙소동의 반절 벽돌쌓기 등을 예로 들 수

은 없고요. 세 사람의 공통적인 성향은, 신념이 아니라면 쉽게 양

있겠네요. <SKMS 연구소>는 벽돌을 길이 방향으로 반절 나누

보하는 편이라는 거죠.

어 두께를 훨씬 얇게 만들었어요. 두께가 얇은 벽돌을 쌓다 보면

임태병 : 세 소장의 공통적인 관심사, 큰 틀은 공유하는 게 많지만,

쌓인 층이 많아지게 되지요. 벽돌과 중력과의 관계를 강조하려는

사실 진행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많아요.. 하지만 차이가 나는 부

의도였는데, 예민하신 분들은 금방 알아차리시더라고요. 원래부

분들은 서로서로 채워주는 식으로 일이 진행되지요.

터 비싼 재료를 쓰는 대신 노동량이 많이 들어가는 방식으로 재료

박창현 : 상대적인 차이가 약간씩 보이긴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를 쓰려고 해요. 재료비보다 인건비가 비싸질수록 건축은 더 바람

프로젝트에 조금 더 스며들 수도 있고 빠질 수도 있어요. 그것들

직한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공유하고 있는 생각이기

은 저희가 이야기를 하면서 조율하는 부분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도 하구요. 대신 일하는 분들이 많이 힘들어 하시죠.(웃음)

공통의 언어들이 나오지 않나 싶어요. 저희가 ‘우린 이 길로 가자’

임태병 : 저희는 서울에 프로젝트가 하나도 없어요. 저희 관심사

wIde Issue 2 : 젊은 건축가 집단 SAAI

작품

리에를 제대로 잘 꾸려갈 수 있을까 싶습니다.저희와 연배가 비

집담회 2

수 있다면 다르겠지만요. 앞으로도 있을까 싶은데요.?

집담회 1

라는 어떤 목표는 아직 없습니다. 어쨌든 저희 작업이 한 데 엮일

이진오 : 저희는 동네 건축가가 되기를 소망하지만 소규모 아틀

Report

공유하는 태도와 자세


중의 하나가 서울에 언제 프로젝트를 해 보나, 입니다. 어쨌든 경관

책임을 진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설계사무소의 고용을 더 늘

이 좋은 특별한 사이트에 특별한 건물보다는 건폐율이나 사선제

려서 건축가가 사회 공헌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지만, 불완전한

한 조건이 까다로운 ‘악다구니’ 같은 것들을 좀 해 보고 싶어요.

상황이 항상 그것을 보장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저희는 분명

신창훈 : 저도 설계할 때 그런 것을 좀 해 봤으면 좋겠어요.(웃음)

책임에 대해 확신이 있었고 끊임없이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겠다고

그런데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특별한 방법이나 기준이 있나요.?

했는데, 그게 상황이 되질 못했을 때는 너무 가슴이 아픈 거죠. 그

박창현 : 사실 SAAI 이름으로 현상설계에 참여한 적은 한 번도 없

런 상황을 또 다시 반복하는 것은 저희를 위해서도, 무엇보다도

어요. 현상설계를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아요. 경

그 사람을 위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력과 조직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집담회 2 작품

현상설계에서 새로운 건축 아이디어나 파격적인 제안을 하고, 그

윤태권 : 만약 좀 덩치가 큰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다른 사무실

것으로 인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스타덤에 오르고, 수주로 이어

과 연계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텐데요. 생각해 보지는 않

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아요. 사실 저희는 어떤 경위로든 저희한테

으셨는지요?

일이 맡겨졌을 때 일이 끝난 다음 클라이언트가 저희를 믿을만하

박창현 : 실질적으로 당연히 그렇게 하겠죠. 그런 기회가 오면 잘

다 생각해서 다음 일에, 혹은 다른 사람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다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있어요. 어쨌든 우리가

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것을 지향합니다. 소박하지만 저희의 공통

내부적으로 다 해결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에 그런 기회가

된 태도일 거예요. 일을 어떻게 수주하느냐가 일종의 마케팅 전략

온다면 다른 사무실, 다른 팀, 다른 파트너와 어떻게 공조를 해

이라고 한다면, 다른 방향으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려고 하죠.

서 프로젝트를 실현시킬까 하는 관심과 네트워크는 꾸준히 가져

<SKMS 연구소>의 경우, 완공된 것도 있고 보류된 것도 있고 앞

가려고 해요.

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지만, 비교적 그런 관계를 잘 유지했다

이진오 : 큰 프로젝트를 하려면 어느 정도 인원이 갖춰져야 되는

고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그러리라는 믿음으로 하고 있고요.

데, 스튜디오 형태의 사무실을 지원하는 친구들이 없어요.

이진오 : 그래서 일을 거절하기도 하는데, 한 번 심각하게 의견이

서승모 : 세계적인 건축가를 꿈꾼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유능한 스

다른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임 소장님이 그런 일은 하지 않는 것

텝이 받쳐줄 때의 얘기에요. 그리고 그 스텝들이 희망을 갖고 여

이 신념이라고 해서 다들 동의했죠.

기서 일하는 것이 재미있다, 라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요. 또 독립

임태병 : 그것은 상황에 따라서 달라요. ‘잘 하지 못할 것’ 같은 프

할 시기에는 독립할 수 있어야 하구요.

로젝트는 많이 거절하게 돼요. 누군가 제시를 했는데, 사무실 상

신창훈 : 작은 사무소들끼리 뭉쳐서 프로젝트에 대응할 수 있지

황에서 이것을 하려면 너무 힘든 것이에요. 그리고 일정이나 금액

않을까요?

에 대한 부분도 관련 있고요.

임태병 : 집단과 집단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더 자유로운 방법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그런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제 신념에 따

어떤 것인가를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포잠박 사무실처럼 프로젝

라 할 수 없다고 생각이 되어도 나머지 두 분으로서는 다른 가치

트 별로 팀이 꾸려지고 진행되는 방법을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

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진행할 수는 있다고 봐요. 하지만 저희는 항

요. 저희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무실이 하고 싶어 하는 모델에 가

상 셋이 같이 해야 하니까 프로젝트를 버리게 되거든요. 좀 더 유

깝지만 현실적으로 힘들죠. 사회보장제도나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한 사무실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어요.

에 대한 개념도 우리와는 다른 사회니까 가능한 것일 테고요. 사

신창훈 : 같이 일하는 스텝들이 어떻게 되나요?

람도 없을뿐더러 행여 그 정도 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대개

임태병 : 8년 차 되는 친구 한 명, 사무실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불완전한 상황의 작은 아틀리에에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

인데 오픈 데스크(open desk)를 통해 들어온 친구가 둘 있고요.

황에서 모험을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죠.

그렇게 정규 직원이에요. 저희도 소장이 아니라, 사무실에 오래

박창현 : 아무튼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 저희는 더 느리게 느

상주하는 스텝이에요. 함께 하는 동료들 모두 미래의 건축가라 생

리게 갈 수 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아니, 그것보다는 조심스럽게

각하고 대하고 있죠..

가야 하는 것이겠죠. 조금 힘들더라도 더 해 보자는 방향으로 가

이진오 : 현재의 시스템에 맞게 프로젝트의 수를 조절하는 편이에

려고 해요. 물론 5, 10년 뒤가 지금과 같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요. 사실 시스템을 갖추는 게 처음 시작하는 건축가들에게는 꿈이

바람은 있습니다. ⓦ

잖아요. 저희도 7명까지 정규 인원을 짜 본 적이 있는데요. 예상 대로 되었다면 건강하고 풍성한 상황이 되었을 거예요. 예상대로 되지 않아서 그 친구들과 아프게 이별을 해야 했던 것이 저희한테 는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임태병 : 직원을 한 명 채용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사회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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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담회 1

끝나지 않을 독립 건축가들의 트랜스포밍

Wide Architecture Report no.11 : september-october 2009

!

Report

임태병 : 관심이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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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작품

Report 집담회 1 집담회 2 작품

← 배치도. ↙ 숙소동 평면도. ↘ 연구동 평면도.

SKMS 연구소 1차 ⓦ 위치 :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장천리 산38-1번지 외 ⓦ 대지 면적 : 29,200㎡ ⓦ 건축 면적 : 4,108㎡ ⓦ 연면적 : 4,108㎡ ⓦ 용도 : 연구 시설 ⓦ 규모 : 지하 1층, 지상 1층 ⓦ 구조 : 철근 콘크리트조, 철골 철근 콘크리트조 ⓦ 마감 : 노출 콘크리트(유로폼 거푸집), 복층 유리, 반절 벽돌 치장쌓기, 무근 콘크리트 위 침투성 표면 강화제, 개비온 패널, 내후성 강판 ⓦ 건축 연도 : 2008년 9월 ⓦ 건축주 : SK(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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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젊은 건축가 집단 SAAI


Report 집담회 1 ←전시동 단면도.

집담회 2 작품

양구 군립 방산자기박물관 ⓦ 위치 : 강원도 양구군 장평리 239-3 ⓦ 대지 면적 : 4,406.25㎡ ⓦ 건축 면적 : 959.17㎡ ⓦ 연면적 : 1,086.94㎡ ⓦ 용도 : 문화 및 집회 시설 ⓦ 규모 : 철 근 콘크리트조 ⓦ 구조 : 철근 콘크리트조 ⓦ 마감 : 검은색 노출 콘크리트, 흙다짐 쌓기, 전벽돌, U형 글라스 ⓦ 건축 연도 : 2006년 ⓦ 건축주 : 양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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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e Architecture Report no.11 : september-octobe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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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평면도.

2층 평면도.

Report 집담회 1

지하 1층 평면도.

집담회 2 작품

평창 국악스튜디오(비탈스튜디오) ⓦ 대지 위치 :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수하리 65 ⓦ 대지 면적 : 3,220㎡ ⓦ 건축 면적 : 620.1㎡ ⓦ 연면적 : 1,403.9㎡ ⓦ 용도 : 연구시설 ⓦ 규모 : 지하 1 층, 지상 2층 ⓦ 구조 : 철근 콘크리트조 ⓦ 설계 기간 : 2004 ~ 2005년 ⓦ 건축주 : 김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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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젊은 건축가 집단 SAAI


Report 집담회 1 집담회 2 작품

분당 타운하우스 ⓦ 대지 위치 :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 대지 면적 : 795.3㎡ ⓦ 건축 면적 : 388.29㎡ ⓦ 연면적 : 982.35㎡ ⓦ 용도 : 단독주택 ⓦ 구조 : 철근 콘크리트 조 ⓦ 규모 : 지상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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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11 : september-octobe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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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AI 박창현은 부산대 예술대학 미술학과 및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후 위가건축, 두이건축에서 실무를 익혔다. 현재 ㈜건축사사무소 SAAI 공동대표로 경기대학교 건 축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진오는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을 졸업하고 위가건축, D.P.J & Partner’s, Korea에서 실무를 익혔다. 현재 (주)건축사사무소 SAAI 공동대표이자 건국대학교 예술문화대학 산업디자인과 겸임교수이다. 임태병은 경원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주)건축사사무소 A.I., (주)옴니디자인, ( 주)Minoru Yamasiki Architects, Korea 등에서 실무를 익히고 현재 (주)건축사사 무소 SAAI 공동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건국대학교 예술문화대학 산업 디자인과에 출 강 중이기도 하다.

사진 오른쪽부터 박창현, 이진오, 임태병. <디자인 로드 —홍대前, SAAI between^interval^relations> 전시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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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젊은 건축가 집단 SA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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