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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oshi WIDE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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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Wes Architect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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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심원건축학술상 Simwon Architectural Awards for Academic Researcher

ⓢ <심원문화사업회>(이하 사업회)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건축가 김광재를

ⓢ 주관 | 심원건축학술상 운영위원회

통하여 건축의 세계를 이해하고 애정을 갖게 된 기업가가 그와의 인연을 회

ⓢ 기획 및 출판 | 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

억하며 건축의 인문적 토양을 배양하기 위하여 만든 후원회입니다.

~

ⓢ 주최 | 심원문화사업회(이사장 이태규, 사무국장 신정환)

간향미디어랩 ⓢ 후원 | (주)엠에스 오토텍

ⓢ <심원건축학술상>은 사업회가 벌이는 첫 번째 후원 사업으로 건축 역사

ⓢ 문의 | 02-2235-1960

와 이론, 건축미학과 비평 분야의 미래가 촉망되는 유망한 신진학자를 지원 하는 프로그램으로 마련되었습니다.

ⓢ <심원건축학술상>은 1년 이내 단행본으로 출판이 가능한 완성된 연구 성과물로서 아직 발표되지 않은 원고(심사 중이거나 심사를 마친 학위논문 은 미 발표작으로 간주함)를 응모받아 그 중 매년 1편의 당선작을 선정하며,

공모 요강 ⓢ 당선작 | 1편

당선작에 대하여는 단행본 출간과 저술 지원비를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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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위원회는 모든 응모작의 저작권 보호

으로 운영위원회는 소정의 내부 심사절차를

부상 | 상패 및 상금 500만원과 단행본 출

를 준수할 것이며, 응모작을 읽고 알게 된 사

통하여 원고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별도

간 및 인세 지급

실에 대하여 표절, 인용 및 아이디어 도용 등

의 프로그램을 지원함, 그 가운데 매년 1편

을 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함. 제출된 자료는

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여 시상함. 최종 당선

반환하지 않음)

작 심사에서 탈락한 추천작은 추천일로부터

ⓢ 응모 자격 | 내외국인 제한 없음

3년간 추천작의 자격이 유지됨

ⓢ 응모 분야 | 건축 역사, 건축 이론, 건축 미

ⓢ 제출처 | 서울시 중구 신당동 377-58 환경

학, 건축 비평 등 건축 인문학 분야에 한함

포럼빌딩 1층 간향미디어랩 (100-834)

(단, 외국 국적 보유자인 경우 ‘한국을 대상

(겉봉에 ‘제2회 심원건축학술상 응모작’이

으로 한 연구’에 한함)

라고 명기 바람)

ⓢ 최종 당선작 결정 |

1/2차 추천작 중 1편을 선정함 ⓢ 당선작 발표 |

ⓢ 사용 언어 |한국어

ⓢ 응모작 접수 일정 | 1차 모집 | 2009년 8월 1일-9월 10일 | 2차 모집 | 2009년 10월 1일-11월 10일

ⓢ 응모작 제출 서류 | 1) 완성된 연구물(책 1권을 꾸밀 수 있는 원 고분량으로 응모자 자유로 설정)의 사본(A4

드> 10년 5-6월호 지면)

ⓢ 시상식 | 별도 공지 예정 ⓢ 추천작 발표 일정 |

크기 프린트 물로 흑백/칼라 모두 가능)을

1차 추천작 발표 : 2009년 11월 15일(격

제본된 상태로 4부 제출

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 09년 11-12월

2) 별도 첨부 자료(A4 크기 용지 사용) |

호 지면)

1-학위논문의 경우, 단행본으로의 전환을

2차 추천작 발표 : 2010년 1월 15일(격월간

위한 출판기획서(양식 및 분량 자유) 1부

건축리포트<와이드> 10년 1-2월호 지면)

2-응모자의 이력서(연락 가능한 전화번호, 이메일주소 반드시 명기할 것) 1부

2010년 5월 15일(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

ⓢ 출판 일정 | 당선작 발표일로부터 6개월 이내 ⓢ 운영위원회 | 배형민(서울시립대 교수), 안창모(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 전봉희(서울대 교수), 전

ⓢ 추천제 운용 방식 | 1/2차 추천작을 중심

진삼(건축리포트<와이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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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중 - 1 “저는예,…차가 전시되는 방법하고, 분당의 이미지를 생각해서 해 봤어예,…원래 차는 바깥에 있 는 거니까 옥외 전시하고,…기울어진 슬라브 위에…” 작년에 들어온 녀석이 제안을 설명한다. 송 파에 모 수입차 전시장 계획안을 두고 팀에서 각자 아이디어를 꺼내 놓는다. 한 녀석은 마크(mark) 를 모티브로 조형을, 입면을 요리하겠단다. 기울어진 선, 두 개의 박스 등등을 제안하고……. 저녁 의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시간은 무엇보다 기대되고 흥분되는 시간이다. 난 이렇게 생각 하는데,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비슷한 생각도 반갑지만, 다른 생각에 먼저 관심이 가는 것 은 본능이다.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지, 이것저것 살펴 보고, 옆구리도 찔러 보고, 근사한 느낌도 드 러내고……. 수입차 전시장 외에 모 학원 국제중학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동숭동 의 근린생활시설 복합건물을 한다. 세 종류의 프로젝트가 건축으로 구체화되는데, 우선 기울여야 하는 관심사가 다 다르다. 차 전시장은 차의 전시 방법과 다른 프로그램의 연관성이 이슈가 되고, 중학교는 중학생들의 예민한 감수성에 영향을 줄 일차 환경으로써 공간이 어떠해야 하는가가 중요 하다. 학교 수업으로 하고 있는 대지 150여 평 남짓한 곳의 복합 근생은 건물 자체뿐만 아니라 처음 부터 학생들 모두가 관심을 보인 동숭동 일대의 콘텍스트 해석과 그 반영이 중요할 것이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옛날부터 괴리가 있어 왔다. 그 실행 전략은 같은 장소라 할지라도 그 장소를 읽는 사람이 다르니 같을 수가 없다. 내부적으로 잠재력을 읽었든, 외부적 조건을 반영시켰든, 그래 서 브레인스토밍이 자극적이다. 사람들이 건물을 만들고 도시를 만들면, 거꾸로 도시는 사람을 만 든다고 했던가. 툭툭 던진 말들과 거친 아이디어는 또 다른 아이디어를 야기시킨다. 어찌 보면 학 생들에게는 도시의 한 단면이 그들의 건물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상투적으로 알 수 있는 것에서부터 무언가 또 다른 것에 이르기까지……. 한층 더 성숙한 사고와 몸을 갖게 되는 중등 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공간적 환경은 그들 의 뇌리에 박히고 무의식적으로 남아 또 다른 영향을 줄 것이다. 수업과 선생님이 일러주는 잔소리 에 가까운 훈계는, 침묵으로 감싸주며 몸으로 느끼게 해 주는 공간의 힘에 때로는 못 미칠지도 모 른다. 3년간 한결같이 각인되는 그 힘은 유장할 것이다. 중학교를 가지고 또 다른 ‘작업 중’시간을 만들어 보자. 그 공간의 잉태는 ‘작업 중’에 나옴을 인식하면서……. 글 | 오섬훈(본지 운영위원, 건축사사무소어반엑스 대표)

by UrbanEx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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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가지의 색깔 있는 건축물 아름다운 건축물의 완성, 삼협건설

신뢰와 성실을 주축으로 21세기를 도약하는 삼협종합건설(주)는 뛰어난 기술력과 신용도, 투명한 도덕성, 특유의 잠재력으로 더욱 성숙된 건설업의 발전을 주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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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hyub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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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SangDong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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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KMAX Korea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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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gan Architects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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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설계 | 안전진단 | 구조물 보수^보강

(주)건우구조엔지니어링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197-5 삼성 IT밸리 802호 T. 02-2028-1803/4 F. 2028-1802

by Kunwoo Structural Engineers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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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gal, You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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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yang PC, inc.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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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ta Group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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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이엔씨기술㈜의 기술력으로 세계를 설계합니다.

화성 동탄 메타폴리스

베트남 하노이 경남 랜드마크 타워

베트남 석유공사

송도 The# 125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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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이엔씨기술㈜은 전기, 통신 분야의 최고 Group으로 시대의 변화를 앞서가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왔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최 고의 Project Partner 세계로 향하는 Global Group 그 중심에 대일이엔씨기술㈜이 있습니다. 엔지니어링 활동주체(전기, 정보통신, 소방 설계 및 감리) | 에너지 사용 계획 협의, 에너지 진단 용역

대일이엔씨기술㈜ DAE IL ENGINEERING & CONSULTING CO.,LTD. 서울시 구로3동 191-7 에이스테크노타워 8차 610호 대표 정해종, 윤형식 TEL : 02)2025-7500 FAX : 02)2025-7538 www.dienc.co.kr

by DAE IL Engineering & Consulting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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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2S는, 한국 고유 문화의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디자인 브랜드로 작가 임성민이 운영하는 디자인 집단입니다.

작가 임성민(본명 임상순)은, 홍익대 산미대학원(무대디자인전공)을 졸업하고, 서일대에서 겸임교수, 상명대, 한성대, 계원조형대, 협성대, 숭의여대 등에 강사로 출강했으며, 한국디자인학회 및 한국무대예술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 문양 : 우리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 문양 A/B ⓛ 소재 : 고급소가죽, 새턴(satain) ⓛ 사이즈 : 가로 10.5cm, 세로 8cm ⓛ 수납 공간 : 카드 수납 3개, 명함 약 30~40장 수납 가능 tel. 031-977-8338 | 이메일 l2sgb@naver.com 홈페이지 : http://club.cyworld.com/designpd

by L2S 14

by OORIBOOK widE Edge


by Spacetime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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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 design group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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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31/32

김영재

세 번째 주제 : 건축가 초청 강의 - 나의 건축 , 나의 세계 <건축가 초청 강의-나의 건축, 나의 세계>는 매월 한 분의 신진 건축가를 초청하여 그 분의 건축 수학의 배경과 최근의 작업 이야기를 듣고 묻는 시간입니다. 열두 분의 건축가를 만나가면서 우리 건축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유승종

<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카페명 AQkorea, 카페주소 http://cafe.naver.com/aqlab)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관: AQ KOREA 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 주최: 그림건축, 간향미디어랩 GML 협찬: 우리북, 디자인그룹 L2S, 시공문화사 spacetime

① 5월의 초청 건축가 김영재(㈜토문 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해외사업본부 본부장) 주제 |Oblique vs. Orthogonal (기하학 다시 둘러보기 그리고 공간 벗기기) 일시| 2009년 5월 13일(수) 저녁 7시 ② 6월의 초청 건축가 유승종(조경 건축가, 희림건축 이사) 주제 | landscape+ 일시 | 2009년 6월 17일(수) 저녁 7시 장소 | 그림건축 내 안방마루 (문의: 02-2231-3370/02-2235-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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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류산방 樹流山房의 책 book of Suryusanbang

도시마 : 스스로 제자된 자들이 만든 책 T O SH I M A: From the Pers pec tives of Se lf - procla imed St ude nt s

고향을 떠나 20여 년을 에스파냐(스페인) 그라나라에 머물며 온전히 창작에만 집중했던 화가 도시마 야스마사. 생전에 그를 만난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사후에 이야기로만 그를 접한 사람들조차 모두 자신이 이 깡마른 백발의 사내에게 깊이 매료되었음을 자랑스럽게 고백한다. 이 화가의 무엇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그토록 깊이 흔들어 놓은 것일까. 한국어, 일본어, 영어, 에스파냐어 4개 국어로 편집한 이 책은, 그라나다 알바이신에서 그와 함께 생활한 포토그래퍼 정세영의 체험을 모티프로 하여 도시마 선생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기억과 작품, 사진 등을 엮은 것이다. 아들,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벗, 2008년 말 도쿄에 <도시마 야스마사 미술관>을 오픈한 후원자 등 그를 기리는 여러 사람들의 글을 통해 독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예술 세계와 정면으로 승부하다 간 한 화가의 삶과 정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마 선생의 그림과 그가 남긴, 그가 가장 존경했던 조각가 권진규에 대한 추모글 또한 흥미로운 볼거리다. The painter, Toshima Yasumasa, spent 20 years in Granada, Spain dedicating himself to art. Along with the people who had known him before his death, those who came to know him only after his death through stories proudly confess their profound attraction to him. What is it about him that has such force? This book, containing Korean, Japanese, English, and Spanish versions, is a concoction of people’s memories of TOSHIMA Yasumasa, art works and photographs, centered around the experience of the photographer CHUNG Seyoung who practically lived with him in Albaicín, Granada. Through the writings of people close to him, like his son, a college friend, and a sponsor who opened Toshima Yasumasa Memorial Gallery in Tokyo at the end of 2008, the readers will be able to see the life and the spirit of a painter who stood up to his own art face-to-face until the very end. His paintings and writings commemorating his most respected friend the sculptor KWON Jinkyu are particularly interesting.

by Suryusanbang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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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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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억중의 주택 2제 <어사재>와 <사가헌>

~ ~ ~ ~ W

!

통권 09호, 2009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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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리포트 <와이드>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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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담회 | 그 자리, 그런 집, 그런 사람, 그런 삶 | 김억중, 김종헌, 이호정, 조재억

표4 Mooyoung Architects & Engineers

리뷰 | 시나리오와 같은 집 | 이호정

표3

Dongwoo

표2 Samyang Construction 1

Wondoshi

wIde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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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Wes Archit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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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文化골목 | 기존 주택 5채를 엮어 만든 도심형 복합문화공간 | 박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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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심원건축학술상 공모 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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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anEx

wIde Issu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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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hy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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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심원건축학술상 당선작 | 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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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angD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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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 배경과 경과보고 | 전진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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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Max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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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 배형민, 안창모, 전봉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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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gan Archit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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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요약문 | 박성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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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nwoo Structural Engin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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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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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gal, Y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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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yang PC, inc.

wIde Issu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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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a Group

BIM을 이용한 디지털 건축설계 | 강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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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 Il Engineering & Consul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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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2S+oori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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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time

wiDe Depth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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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 Design Group

<주택 계획안 100선 08> | 평택 주택 | 최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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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초청 강의 - 나의건축, 나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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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강병국의 <건축과 영화 09> | 영화 속의 건축물(02)

- W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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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건축 잡지 09> | l’architecture d’aujourd’hui | 이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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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yusan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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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의 <종횡무진 09> | 강화 온수리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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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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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욱의 <공간 전달자 04> | 록본기(Roppongi, 六本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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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장원의 <근대 건축 탐사 09> | 지워지는 근대의 흔적들

104

이종건의 <COMPASS 06>| 비대화적 상상력(Non-dialogic Imagination)_ 욕과 장자연 사건과 폭압적 정부

107

<와이드 書欌 09> | 고민하는 힘,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 안철흥 건축과 시간 속의 운동 | 전진삼

110 김정후의 <유럽의 발견 08> | 역사의 파편, 베를린 홀로코스트 기념비 114

함성호의 <소소재잡영기(素昭齋雜詠記) 03> | 땅을 찾아서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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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PRO 젊은 건축가 FILE 9 | 일상의 도시 건축 Architecture of Everyday Life | 정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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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리포트> | EAST4 1st Anniversary ‘YEAR ONE’

122

WIDE PRO 젊은 건축가 FILE 10 | 내 일상의 관찰 記 | 곽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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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EYE 02> | Architectural Brief 판도라의 상자 : 정보 소통과 이해의 창(窓) | 장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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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레터 | 정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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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구독 신청 방법

128 와이드 칼럼 | 창작이란 이름의 건축 | 임근배

ⓦ 로고 글씨 | 김기충 ⓦ 표지 이미지 | 김억중의 <어사재>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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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은 친구들과 함께 바다를 건넌다.” 목포 노인 복지관 현상설계 당선안 은퇴 후 시작되는, 또 다른 인생을 함께 하는 풍경원은 편안함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만남이 있고 보살핌이 있고 모험이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A씨는 중정의 평상에서 바둑을 두고 B씨는 1층 복도에서 그 광경을 바라본다. 한편 식당 의 C씨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고 2층 순환 복도에 서 있는 D씨는 이런 풍경을 보 며 삶의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디자인 | 김기중 (본지 운영위원, ㈜건축사사무소 이일공오 대표) + 노경록

by 2105 studi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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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와이드 레터 | 건축아카이브, 건축박물관 지금은 나오지 않는 건축 잡지 <건축인 poar>에서 한때 현상 설계 공모에 제출된 작 품들의 보고서들을 ‘수집’하여 ‘관리 보관’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한 적 이 있었다. 90년대 말의 일이니 아직 데이터 파일로 주고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시 절이었다. 잡지에 목록을 올리고 복사^제본비만을 받고 벌였던, 번거롭고 ‘돈 안 되는 사업’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건축인 poar>의 선배들이 그 일을 붙잡고 있었던 이유는, 추측컨대 최적의 설계 대안을 위해 경험의 공유가 필요하다는 절실함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그곳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중단된 후였는데 도 꽤 오랫동안 문의 전화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우리에겐 지어지지 못한 좋은 설계안들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없다. 게 다가 사라진 건축 작품 혹은 역사적인 공간을 기록 보관하는 기관 또한 변변치 않다. 건축아카이브와 건축박물관이 요구되는 많은 이유 중의 하나다. 건축 작업의 성과물 을 주로 수집하는 건축아카이브나, 수집은 물론 기획 전시 등을 통해 대중과의 소통 기 능까지 담당하는 건축박물관을 꾸준히 발전시켜 온 외국의 경우, 이를 테면 프랑스의 건축연구소(Institut Francais d’Architecture), 네덜란드의 건축연구소(the Netherlands Architecture Institute), 프랑크푸르트의 건축박물관(Deutsches Architektur Museum), 일본 센다이 미디어텍 등에서는 이미 건축 자료의 수집, 보관, 전 시, 연구, 출판 등 다양한 기능들을 수용하고 있다. 2007년 말 제정된 건축기본법에는 건축문화 관련 시설의 설립과 운영 등에 대해 국고 보조 등의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명기되었고, 건축물과 공간 환경에 관한 기록 자 료의 구축에 관한 사항이 언급되었다. 한편에서는 ‘건축^도시공간 아카이브구축 전 략수립을 위한 연구’(건축도시공간연구소)를 비롯하여 관련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올해 초에는 국가기록원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근대기 도면과 조선시대 도면을 대 상으로 건축 도면 해제집을 발간했다. 한국건축역사학회는, 우리 건축박물관의 모델 이 되기에는 어려워 보이지만, 모마(뉴욕 모던 아트 미술관)의 총괄 큐레이터 배리 버 그돌(Barry Bergdoll)을 초청, 박물관에서의 건축이란 주제로 특별 강연을 개최하기 도 했다. 말로만 듣던 건축아카이브 구축과 건축박물관 건립이 요원한 일은 아닌 듯 느 껴진다면 너무 생각이 앞서가는 것일까? 건축의 역사를 충실하게 기록하고, 좋은 건축 의 사례들을 지속적으로 수집^공유하며,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전시 기획을 제대 로 추진할 수 있는 건축박물관의 설립에 더더욱 힘이 실리기를 희망해 본다. ⓦ 글 | 정귀원(본지 편집장)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 발행편집인단 발행인 | 전진삼 · 편집장 | 정귀원 고문 | 김정동 임근배 임창복 최동규 자문위원 | 곽재환 구영민 김병윤 송인호 윤인석 이일훈 운영위원 | 김기중 박민철 박유진 박종기 손도문 신창훈 오섬훈 윤창기 제갈엽 편집위원 | 김기수 김정후 김종헌 김진모 박혜선 손장원 송복섭 송석기 안용대 안웅희 이영욱 이충기 장윤규 전유창 조택연 한필원 황태주 ⓦ 크리에이티브 포커스그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박상일 포토그래퍼|남궁선 진효숙 제작 코디네이터|김기현 로고 글씨|김기충 ⓦ 서점 유통 관리 대행 | (주)호평BSA 대표 | 심상호, 담당차장 | 정민우 전화 | 02-725-9470~2, 팩스 | 02-725-9473 ⓦ 직판 유통 관리대행|우리북 대표|김영덕·담당과장|김남우 전화 | 02-3463-2130, 팩스 | 02-3463-2150 ⓦ 디자인 | 수류산방(樹流山房, Suryusanbang) 담당 디자인 | 정혜선, 이숙기 전화 | 02-735-1085, 팩스 | 02-735-1083 ⓦ 제작협력사 인쇄|예림인쇄 종이|대립지업사 출력|반도커뮤니케이션스 제본|문종문화사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 통권 09호 2009년 5-6월호 2009년 5월 15일 발행 2008년 1월 2일 등록 서울 마-03187호 2008년 1월 15일 창간 낱권 가격 8,000원, 1년 구독료 45,000원 ISSN 1976-7412 ⓦ 간향미디어랩 GML 발행처|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 200 극동상가 502호(120-796) 편집실|서울시 중구 신당동 377-58 환경포럼빌딩 1층(100-834) 대표전화|02-2235-1960, 02-2235-1968 팩스|02-2231-3373 공식이메일|widear@naver.com 공식URL|http://cafe.naver.com/aqlab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는 한국간행물윤 리위원회의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본지에 게재된 기사나 사진의 무단 전재 및 복 사, 유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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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구독을 하시면,

> 전국 어디서나 편안하게 책을 받아보실 수 있 습니다. > 독자 대상 사은품 증정 등 행사에 우선 초대해 드 리며, 당사 발행의 도서 구입 요청 시 할인 및 다 양한 혜택을 드리고자 합니다. ⓦ 정기 구독 관련 문의 : 02-2235-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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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9호 | 와이드 워크

Kim Uk Joong 김억중의 주택 2제 <어사재>와 <사가헌> WIDE ARCHITECTURE : WIDE work no.9 : may-june 2009

← <어사재> 전경. 경사진 땅의 형세를 이용해 고즈넉하게 앉았다. ↓ <사가헌> 서측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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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 오고 있는 ‘교수 건축가’ 김억중은 깊이 있는 사유로 다양한 가치를 건 축에 담아내고자 노력하는 건축가이다. 특히 문학과 전통건축을 통해 사유의 힘을 기르고, 잊고 살았던 가치를 찾고자 하는 그는 여섯 채의 주택 연작, 어사재(於斯齋, 공주 주택), 수경당(水鏡堂, 논산 병암리 주택), 사미헌(四美軒, 논산 산노리 주 택), 완락재(琓樂齋, 천안 안서동 주택), 무영당(無營堂, 대전 노은동 주택), 사가헌(四可軒, 광주 능평리 주택) 등에서 자신의 생각을 어느 정도 구현해 내었다. 본지는 연작 중 맨 처음과 끝에 자리 잡은 두 채의 주택, <어사재>와 <사가헌>을 통해 집에 담긴 건축가의 사유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진행|정귀원(본지 편집장), 사진|진효숙(건축 사진가, 별도 표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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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사재> 동측 전경.

↓ 1,2층의 매스 위에 온실과 다실이 놓였다.

어사재 건축 개요 於斯齋 : 지금, 여기가 낙원(조선조 이민우公의 서재 이름. 정약용 선생의 기문)|대지 위치 : 충청남도 공주시|지역 지구 : 계획 관리 지역|용도 : 단독주택|대지 면적 : 650.00 ㎡|건축 면적 : 238.20㎡|연면적 : 315.47㎡|건폐율 : 36.65%|용적률 : 48.53%|규모 : 지상3층|구조 : 철근 콘크리트|외장 마감 : 노출 콘크리트, 외단열 시스템|내장 마감 : 한지|작업 기간 : 2005. 10. ~ 2007. 02.|시공자 : T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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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사재>의 입면 구성. 2. 연못에 고이는 빗물은 허드렛물로도 쓰인다. 3. 마을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넉넉한 대청마루. 4. 2층 마당에서 내려다 본 진입부의 대청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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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재기(於斯齋記)

어린 시절 집성촌에서 컸던 집주인은 50세에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한동안 소원

했던 일가친척들과 더불어 아옹다옹 새로운 삶을 염원하였다. 나는 경사진 땅의 형세를 이용해 맨 아래층에 동네 분들이 오 고가다 막걸리로 목을 축일 수 있도록 넉넉한 대청마루를 배치했다. 마루 옆에 내키기만 하면 언제든 국수라도 한 그릇 말 아 드릴 수 있도록 부엌을 두었다. 마루 한 쪽 끝에 벽난로를 두어 고구마나 감자도 구워 먹으며 고단한 세상사 담론을 즐 길 수도 있으며, 다른 한 쪽에는 족이든 탕이든 실컷 고아낼 수 있는 주물 솥까지 걸어 두어 마을 사람들을 위한 잔치도 벌 일 수 있게 했다. 게다가 구조체로 윤곽 지워진 틀 안에 들어오는 풍경 또한 일품이어서 동네 정자 공간으로도 손색이 없다. 마루 주변을 따라 하루 종일 움직이는 빛과 그림자 효과만으로도 한동안 서먹서먹했던 이웃들의 말문을 열어 주기에 모자 람이 없을 법하다. 이쯤 되면 집을 지어 동네 친척들에게 뭔가를 베풀고자 하는 집주인의 뜻이 백 마디 입 바른 말보다, 구체적인 공간 보시로 확인되는 셈이 아닌가. 안과 밖, 그 넉넉한 틈새에 스며드는 안온한 빛으로 한 동안 응달졌던 마음을 비추고 녹여서 모두가 끈끈한 인연으로 거듭날 수 있겠다는 바램이 어사재의 벽이요, 기둥이요 골조였다. 마실 길로 이어지는 그 안/밖의 접속 공 간이 집주인, 동네 사람들과 얽히고설켜 집도 사람도 모두가 숨다운 숨을 쉬게 할 것이라는 믿음의 진원지였다. 집주인 내외의 호젓한 삶을 위해서도 2층에 마당과 테라스를 두어 바깥세상을 진드근히 관조할 수 있도록 트인 시야를 확 보하였고, 게서 잘 읽은 포도주 한 잔에 세월의 진한 향내를 음미하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졌다. 행여나 외지에 나간 자녀들

↖ 원형의 틀 안으로 풍경을 끌어 들인다. ↗ 2층 거실 앞 마당.

이나 친구, 친척들이 찾아와 서로 방해하지 않고 기거할 수 있는 별채를 거실 옆에 두어 더불어 지낼 수 있는 보시 공간을 또 하나 마련하였다. 당장은 매일 쓰지 않으니 쓸모없는 공간이라 할 지 모르겠으나, 소박한 살림살이나마 ‘마음으로 쓰는 방’ 을 두었으니, 집주인 내외의 각박하지 않은 심성의 가치를 어찌 섣부른 계산으로 그 시비를 논할 수 있겠는가. 집 안팎은 투명하게 열리고 닫히며, 마당의 영역들이 저마다 성격을 달리하며 미세하게 분화되어 있고 처마 속 깊은 잉여공 간의 의미가 곳곳에 배어 있으니, 비록 외형은 그렇게 보이지 않겠으나 공간 구조로 치자면 한옥의 정신이 여지없이 녹아 있는 집이 되었다. 살다보면 사소한 일상도 소중하지만 무릇 나이가 들수록 홀로 즐길 줄 아는 훈련이 각별하거니와, 영혼 의 깊은 우물을 비쳐보고자 하는 내심이 일면 3층 다실로 향하여 속세와 절연에 들 수도 있으며, 화초 가꾸기를 벗 삼아 심 성을 온유하게 보살필 만한 온실을 두어 자주 왕래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가는 곳마다 ‘지금, 여기’가 천국이니 그 뜻을 담은 어사재를 당호로 삼는 것이 여러모로 합당하다 여겨진다. 주인께서는 치성을 드려 보약을 음복하듯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다스리고 집주변의 미추를 감싸 안은 온갖 풍광을 심친(心親)으로 즐기며 집과 더불어 오래오래 해로하시길 기원 하는 바이다. 글|김억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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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층 마당에서 바깥세상을 관조할 수 있다.

↓ 좁지만 깊은 계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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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실 앞 공간의 빛의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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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지대를 이용, 아랫부분에 주차장을 두고 윗부분에 흙마당을 조성했다. ← <사가헌> 진입부.

사가헌 건축 개요 四可軒 : 집을 지어 네 가지 가능한 기쁨을 얻는다.(이규보 선생)|대지 위치 :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지역 지구 : 계획 관리 지역|용도 : 단독주택|대지 면적 : 539.00 ㎡|건축 면적 : 135.22㎡|연면적 : 180.15㎡|건폐율 : 25.09%|용적률 : 33.42%|규모 : 지상2층|구조 : 철근 콘크리트|외장 마감 : 노출 콘크리트, 내후성강판|내장 마감 : 한지, 자작나무 합판|작업 기간 : 2006. 12. ~ 2009. 03.|시공자 : T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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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헌기(四可軒記)

40에 이르러 집을 취한다 함은 작게는 몸 둘 곳이 생겼으니 거리를 두고 너그럽게 세상

을 바라다볼 수 있음이요, 크게는 몸의 질서와 호흡을 같이 하는 우주를 얻은 것에 다름 아니다. 세상살이 너무도 아슬아슬 하여 본시 젊은 눈엔 풍경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법이련만, 주인 내외는 어찌하여 자연과의 독대를 염원하는 마음까지 깊 숙이 들어섰을까 부럽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뭐든 가능한 기쁨 쪽으로 촉수를 대어 사방으로 뿌리를 내리려는 마음을 따라 지은 집이 우현이네 식구들의 삶을 축복해 주고도 남으리라. 전통과 현대가, 도시와 농촌이, 가족과 이웃이, 이성과 감성이, 평지와 경사지가, 무엇이든 이분법이 어우러지고 스러지는 어스름한 지점에 삶의 재미가 솔솔 우러나는 집을 그려보고자 했다. 하지만 삶은 소소한 것에서부터 실마리가 풀리던 법이 아니던가. 집 모양이 제 골격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부부가 늘 나누어 마시던 곡주 탓일 수도 있겠다 싶어 모듬살이 더욱 더 정들도록 만대루부터 짓고 보았으니 갖은 유형의 공간이 흩어지고 만나는 방식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 만대루에서 시작한 회포는 쉽게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겠으나 깊은 정적으로 되돌아 올 때까지 속내를 다스릴만한 공간들 이 속속 자리해 있어, 안팎으로 멋지게 놀기만 하면 우리네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 것인지 구석구석 여실한 집이 되었으면 했 다. 그 재미와 가능성으로 치자면 어디로 튈지 모르되 사방이 선명하면 좋겠다 싶어 사가헌으로 당호를 삼았으니 모쪼록 생 성의 기운이 충만한 집이 되리라. 글|김억중

↓ 켜를 이루는 <사가헌>의 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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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 침실과 아이 방 사이에 마당을 두어 긴밀함을 더했다. ↗ 켜가 만드는 남측 외부마당. → 숲 산책로에서 바라본 <사가헌>의 동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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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벽면 디테일. ↑ 솔리드한 벽체를 부분적으로 터서 자연과의 단절을 피했다. ↗ <사가헌>의 2층 복도. ↗ 어디서나 빛이 도는 <사가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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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재> 1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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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재> 2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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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재> 3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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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재> 남측 입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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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재> 동측 입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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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재> 주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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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헌> 1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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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헌> 2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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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헌> 서측 입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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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헌> 주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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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담회 | 그 자리, 그런 집, 그런 사람, 그런 삶

↓ <사가헌> 주방에서 바라본 거실.

↑ <어사재> 거실에서 바라본 마당.

김억중 + 김종헌 + 이호정 + 조재억

우리 집을 설계한 분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무의식적인 불안감을 공간을 통해 해소시켜 주는 치유자란 생각이 듭니다. 특히 외부에 놓여 있는 자연은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외부마당 같은 중간 영역을 두어 자연의 거칠음과 집 안의 편안함 사이에서 불안하지 않게끔 조절해 주고 있어요. 거실에 앉아 있으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힘이 느껴지지요. —<어사재> 건축주 본의 아니게 설계 기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마음으로 계속 집을 그리며 지냈기 때문에 이 집은 처음부터 편하고 익숙했 습니다. 건축가를 만나기 전 저희들이 구상했던 집은 빛 잘 들고, 2층에 마당이 있는 일반적인 집이었지요. 여기저기 책 에 나와 있는 집의 이미지를 꼴라주해서 건축가를 찾아다니게 되었는데, 외국 유명 대학을 나왔다는 건축가와 좋지 않 은 만남을 가진 적도 있었어요. 저희들의 그림을 보더니 한쪽으로 쓱 치우더라고요. 본인은 집 장사 같은 집은 안 한다 고.(웃음) 기분이 나빴어요. 아무리 말이 안 되더라도 집을 짓겠다는 사람이 골라가지고 온 건데, 그 속에 담긴 욕망은 읽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일단 마음이 떠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김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죠. 저희가 민망한 것을 내밀어도 그것들을 잘 받아 주셨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셨어요. 원하는 바를 정확히 말씀 드리는 것은 생각보 다 어려웠지만, 전개도를 부탁해 가며 모든 것을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사가헌> 건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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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억중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에서 폰 마이스 교

수와 라 뮈니에르 교수, 건축가 마리오 보타를 만나 건축의 역사, 이론, 작품을 두루 탐험 하였고, 스위스 공인건축가 diplome을 받았다.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 Assistant, 충 북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현재 한남대학교 건축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작품으로 중리동 이교수댁(1986), 황산부인과의원(1989), 대화동 천주 교회(1990), 이화 산부인과(1992), 장곡경(1992), 중촌 근린생활시설(1995), 한남대 대 천수련원(1998), 대덕 아주미술관(2003) 등이 있으며, 『건축가 김억중의 읽고 싶은 집 살 고 싶은 집(동녘, 2003)』, 『나는 문학에서 건축을 배웠다(동녘, 2008)』 등의 책을 썼다.

김종헌 고려대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과 한국건축 역사학회 이사를 역임했다. 제1회 꾸밈건축평론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주 연구 분야는 한국건축사로 양식사, 기술사, 생활사 등의 다양한 관점을 통해 전통과 근대, 현대를 연속성의 개념으로 풀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2004년부터 2006 년까지 미국 M.I.T 대학에서 동서양건축을 비교 연구하였다. 현재 배재대학교 교수로 있으며, 도코모모 코리아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역사(驛舍) 의 역사(歷史)』, 『대한민국 등대 100년사 (공저)』 등이 있다.

이호정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동대학원 건축공학과에서 주거 건축으로 석, 박

사 학위를 받았다. 김중업 건축연구소, 장원건축사사무소, 태 종합건축사사무소를 거 쳐 1992년에 종합건축사사무소 협연을 개소해 작업한 바 있으며, 현재는 공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에 남양주시 오남 도서관 현상설계(2008) 및 고성군 소가야 유물전시관 현상설계 (2007), 홍성군 조류탐사과학관 현상설계(2007)에 당선됐다. 『시카고의 건축가들(태 림문화사, 2007)』, 『도시, 장소 그리고 맥락(이호정 교수의 설계 강의 노트, 태림문화 사, 2007)』, 『새로운 주거의 형태(기문당, 2007)』등의 책을 썼다.

조재억

한남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

Diplome을 받았다. 종합건축사사무소 정원 테 건축, 사람마을 건축사사무 소를 거쳐 현재 아뜰리에 서이의 대표로 재직 중이다.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겸 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경북 안동 남부지방 산림청 청사 신축공사 설계경기 당선, 대전시 목척교 주 변 복원 시민 아이디어 공모전 전문가 부분 장려상, 남문광장 공간 재창조사 업 설계경기 당선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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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학에서 건축을 배웠다

했겠지요. 선생의 집에 대한 관점과 안목이

자아낼 것인가 하는, 다분히 미학적인 측면

ⓦ 이호정 : 2004년부터 2006년까지의 작

야말로 건축가의 그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

에 기울어져 있었던 거예요. 물론 그 이전의

업으로 전시회를 하셨고, 오늘 본 <어사재>

지 않습니까?

작업들에도 알게 모르게 전통 속의 정서적인

와 <사가헌>은 그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있

이를테면 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처럼 좀

가치들을 담아내려는 노력들이 단편적으로

는 작품입니다.

내려다볼만한 곳에 낮은 축대를 쌓고 그 물

있긴 했지만, 집이란 존재를 총체적으로 다

이 기간의 작업들이 교수님께 어떤 특별한

속을 들여다보도록 한 것은 구름과 하늘이

시 생각하게 했던 계기는 고전문학 텍스트

의미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뒤섞여 도는 모습 속에서 우주만물이 생성

였고, 그와 함께 그 전에 읽었던 수많은 문

하고 변화하는 이치를 탐구하고자 한 것이

학 텍스트들이 비로소 설계 작업에 매우 구

ⓦ 김억중 : <어사재>가 시작된 2004년은

라고 짐작이 되요. 집 앞에는 조그마한 우물

체적인 상상력을 뒷받침하는 것들로 움트게

연구년이었고, 프랑스에 1년 동안 머무르게

을 파서 진흙 속에서 피어오르는 연꽃을 보

되었지요.

되었습니다. 하루는 주불 한국문화원의 도

며 풍진 속세로부터 자신의 삶을 의연하게

서관에 들렀는데, 아무도 찾지 않는 책을 발

지켜가야 하겠다는 마음을 다졌으리라는 생

ⓦ 김종헌 : 달리 생각하면 그만큼 여유가 생

견하게 되었어요. 한국 고전문학전집들이었

각이 들어요. 선생에게 집은 한 마디로 삶과

기신 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문학은 단

습니다. 100여 권쯤 되는 책들을 1년 사이에

앎을 일치시키기 위한 도량이 아니었나 싶

지 계기가 된 것이고요. 동양의 문화에는 여

거의 다 읽으면서 많은 걸 깨달았지요. 옛날

어요. 집 안팎을 돌며 이치를 궁구하고 마침

유나 운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선비들은 어떤 마음으로 집을 지었을까, 굉

내 일상의 삶 속에 당신이 주창했던 거경(居

즐기면서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장히 궁금하던 차에 그분들의 생각과 내 생

敬)의 경지를 맘껏 구현해 보려고 했던 것이

생각이지만, 건축을 대하는 태도에 연륜이

각이 얼마나 다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

지요. 그런데, 그렇게 당신 스스로 구상했던

생기면서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였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퇴계 선

명소들은 주로 집 안에 있지 않고 집 바깥에

문학 자체의 영향이라기보다는 문학이 매개

생의 『도산잡영(陶山雜詠)』등이 수록된 퇴

있어요. 어찌 보면 집을 짓는다는 것은 서성

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계록을 보면 집을 짓기 전과 지을 때의 마음

거리고 배회하기 위해서인 것인지도 모릅니

이 어떠했는지, 또 그곳에서 주거의 기쁨을

다. 선생이 보여주었던 집에 대한 관념이나

ⓦ 김억중 : 언젠가 글로도 썼지만, 문학과

어떻게 누리려 했는지, 아주 소상하게 잘 기

사유의 영역으로 볼 때, 잘 놀기 위해 집을 짓

건축은 한 길을 걷는 도반(道伴)이라고 봅니

록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선

는다함은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현대인들에

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미처 생각하

생의 글 속에 물리적인 존재로서의 집 모습

게는 무척이나 낯선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지 못한 것들을 상기시켜 주는……. 그런 의

이 드러나 있지 않다는 점이지요. 그 대신 집

없으리라고 봅니다.

미에서 텍스트 자체는 내게 던져지는 화두

구석구석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즐길지

이처럼 2004년은 문학 텍스트가 구체적으

로서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삶

를 매우 구체적으로 상상했다는 겁니다. 퇴

로 나의 건축 설계에 실존적 물음으로 매우

을 좀 더 포괄적으로 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계 선생에게 집을 짓는다는 것은 어쩌면 잘

깊이 들어왔다는 점에서 중요한 해입니다.

는 측면에서는 김종헌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놀기 위한 장소를 곳곳에 만들어 놓는 행위

그 전에는 다분히 집 자체가 갖는 구성적인

‘연륜’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요.

였는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

측면에 매료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요

근본적으로 집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하기

는 땅 전체의 지리적인 파악이 선행되어야

소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어 어떠한 감동을

이전에 집이란 어떤 존재인가, 를 먼저 고민

거실에서 바라본 안주인의 작업 공간. ↗ <사가헌> 2층 아이 방. ↗ 2층 복도에서 바라본 부부 침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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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던져

적인 요소들을 담아내고 있는 듯합니다. 그

해 심도 있는 분석을 해보아야 합니다. 그게

야 하는 철학적인 물음인 거죠. 그러한 물음

것들이 아주 아름답게 구사되었다고 느꼈는

우리가 제대로 거쳐야 할 모더니즘의 공부라

에 대한 실마리들이 의외로 고전문학이라든

데요,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였던 꼬르뷔지

고 생각합니다. 그의 작품 하나하나에는 이

지 미처 응시하지 못했던 텍스트들 사이에

에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는 건가요?

미 포스트모던이나 해체주의가 모두 녹아들

서 발견된 것이고요. 그렇게 ‘문학 속의 집’

어 있지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그 속에 있

이란 존재를 생각하고, 나는 ‘지금, 여기’에

ⓦ 김억중 : 박사 논문에서는 도시의 맥락 속

는 거죠. 그는 스스로 자신의 언어 시스템을

서 집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물음과 부

에 끼어들어간 르 꼬르뷔지에의 작품을 일부

만들어 새로운 언어의 문법은 물론 수사학

딪혀 가면서 구축하는 사유의 힘이 매우 중

러 골라서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지요. 제 논

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열고, 동시에 닫았

요한 건축의 단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

문에서 다루었던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

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건축을 공부하

니다. 이때는 문학이 건축을 앞서가는 것이

가 르 꼬르뷔지에의 교조적 담론을 순진하게

는 후학들이 반드시 넘어야 할 커다란 산이

겠죠. 물론 그렇게 해서 완성된 집을 누군가

믿다보면 꼬르뷔지에의 진면목을 놓치기 십

라고 봅니다.

가 읽어서 다른 형태의 쓰기로 생산해 낼 수

상입니다. 실제로 그가 ‘말한 것’과 ‘행한 것’

저 역시 박사 학위논문을 빌미로 어딜 넘었

도 있는 것이겠고요.

사이에는 괴리가 많습니다. 알고 보면 그는

는지는 모르겠지만(웃음) 분명 내 나름대로

<villa savoye>처럼 주변 맥락에 크게 영향

설정한 코스를 따라 한 번은 오달지게 넘었

ⓦ 이호정 : 문학에서 실마리를 얻는다는 것

을 받지 않는 대지에다 집을 짓기도 하였지

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산을 매일 등반할

에는 공감을 합니다. 건축가는 문학이나 다

만, 과거 양식이 혼재하는 연속된 도시가로

필요는 없는 거겠죠. 하지만 르 꼬르뷔지에

른 예술분야를 통해 감성을 넓혀 나가기도

변의 주택도 여러 채 지었는데, 놀라운 것은

를 공부했으니 저 사람 건축에는 꼬르뷔제

하지요. 실제로 그들이 쓴 마을의 풍경을 읽

자신이 제안했던 근대건축의 형태 언어를 끝

의 뭔가가 없을까, 그 개연성을 염두에 두는

고 그것을 건축화시키려는 작업들도 더러 있

까지 고수했다는 점이지요. 기존의 가로 입

관점은 인식의 오류를 자초하기 쉬운 편견일

고요.

면의 연속성은 물론 길-공간 구조의 맥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본 두 작품은 다분히 미

존중하면서도 말입니다. 그는 과거 양식을

학적인 작업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

답습하기보다는 기존 가로 구조를 정확하게

ⓦ 이호정 : 그런데, 저는 그게 보입니다.(웃

다. 미학적인 태도에 연륜이 더해졌다고나

읽어 내어 그와 확연히 대비되는 방식으로

음)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자기

할까요? 더욱 세련된 건축 언어들이 적재적

자신의 형태 언어의 체계를 입증해 보임으

언어만으로 건축을 할 수는 없는 거고, 더구

소에 감성적으로 혹은 그 땅에 꼭 어울리게

로써, 어떻게 전통과 근대성을 동시에 성취

나 영향을 받은 건데…….

놓여 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것 위에 간

하였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간히 우리의 옛 집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우리가 모더니스트로서 르 꼬르뷔지에를 공

ⓦ 김억중 : 허허. 나도 모르게 그럴 수도 있

잘 표현되어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부하고자 한다면 작품을 전체적인 경향이나

겠죠. 영향은 있겠지만, 그 사람으로부터의

사상, 이론의 부산물로 보려는 관점에서 벗

영향이 있는지 없는지로 끝나서는 안 될 것

르 꼬르뷔지에로부터 배운 것

어나 그의 작품 하나하나를 건축가의 시선으

같고, 중요한 것은 어떤 언어든지 선택한 언

ⓦ 이호정 : 그런 측면에서 <어사재>나 <사

로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작품마

어가 어떤 생각을 담아내는 데 과연 적절하

가헌>은 다분히 르 꼬르뷔지에 이후의 미학

다 고유한 조건과 미세한 구성의 차이에 대

게 쓰였는가하는 점이겠지요. 제임스 스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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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Kim Uk Joong


링 같은 사람은 꼬르뷔지에의 언어를 쓰다

한 자작나무 합판이 너무 매끈하다는 느낌

습니다. 예컨대 마감된 재료의 표면 효과보

가 어느 시점에 가서는 자기 길을 걸어가잖

이 들었습니다. 노출 콘크리트가 주요 자재

다 공간 구조 안에 어떤 우월한 성격이 두드

아요. 결국 말하는 능력을 스승에게 배웠더

인데 이왕이면 나무 자체의 질감도 좀 살리

러졌을 때, 그 우월한 관계를 흩뜨리지 않는

라도 말투나 생각까지 닮을 필요는 없는 거

면서 가면 어땠을까, 싶어요. 군데군데 강조

재료의 물성이라면 대부분 수용을 합니다.

겠지요. 시대의 요구가 다르고 모든 것이 다

된 것도 아니고, 집 전체가 거의 노출 콘크리

하지만 김종헌 교수님의 지적에 대해서는 공

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해결해야 하거나

트와 자작나무로 마감된 상황에서 너무 매끈

감하는 부분도 있어요. 특별한 재료를 편애

마주치게 될 건축의 문제들 또한 다를 테니

하고 밋밋하게 처리된 부분이 조금은 부담스

하지는 않지만, 다소 반들반들한 것들과 거

까 말입니다. 아무튼 생각이 다르면 스승의

러웠습니다.

친 것들이 대조를 이루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요.

언어가 흔적처럼 묻어 있다고 하더라도 전 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거예

ⓦ 이호정 : 반대로 저는 오히려 자작나무

그런데 <사가헌>의 경우, 그나마 벽난로 같

요. 그와 유사한 입장에서 저를 봐줬으면 좋

합판들이 거칠다고 느꼈는데요? 일반적으

은 부분에 노출 콘크리트가 남아 있어서 매

겠습니다.

로 주택에 쓰이는 더 매끈매끈한 재료들이

끈한 것과 거친 것이 공존하는 부분이 있긴

있는데도 나무라는 재료를 선택한 그 자체

하나, 자작나무 마감을 좀 과하게 썼다는 생

노출 콘크리트와 자작나무 합판

가 거칠게 느껴지고, 검박하게 보이기까지

각도 들어요. 전체적으로 거친 느낌에 부분

ⓦ 이호정 : <어사재>와 <사가헌>을 포함하

했으니까요.

부분 썼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죠. 인정 합니다. 그래도 건축주가 좋아해서 다행이

여 여섯 연작들의 재료가 모두 노출 콘크리 트입니다. 재료의 선택에 무슨 특별한 이유

ⓦ 김종헌 : 스타일의 차이겠지만, 저는 특히

라도 있습니까?

거실 쪽은 나무 자체의 질감을 잘 살렸더라

에요.

ⓦ 김억중 : 지금까지 모두 7채의 주택을 노

예요. 거실에 있지만 내부라기보다 마치 외

삶에 대한 상상으로부터 설정되는 집의 중심

출 콘크리트로 지었어요. 저는 집이 요즘 세

피에 면해서 서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 김종헌 : 설계를 풀어가는 방식이 궁금합

면 훨씬 따뜻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은 거

니다. 물론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 테지

태처럼 가볍게 들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 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지요. 적어도 주택만

ⓦ 김억중 : 그럴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큼은 강건한 뼈대로 땅에 견고하게 뿌리박

저는 재료에 관해서는, 커다란 골격이 만들

은 모습이길 바라죠. 노출 콘크리트를 선호

어 내는 어떤 관계들을 방해하지 않는 정도

ⓦ 김억중 :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긴 어렵

하는 첫 번째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

의 수준이면 그것이 강판이든 자작나무든 상

죠. 프로세스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음은 현실적인 이유인데, 정직한 시공을 위

관없이 어느 정도 건축주의 의견을 존중하는

요. 그런데, 집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중심이

해서이기도 합니다. 별도의 마감이 없다 보

편이지요. 노출 콘크리트와 자작나무 합판은

란 게 있지요. <사가헌>의 경우는 거실이 중

니 시공자들이 아무래도 신경을 더 많이 쓰

두 번째 집(논산의 수경당)부터 쓰기 시작했

심이 되어 부속 공간들이 둘러쳐지고 위아

지 않을 수 없겠죠.

는데(<어사재>를 제외한 다섯 작품에 이들

래가 성립되었습니다. 중심이 설정되면 방

재료가 사용되었다.-편집자 주), 그러면서 재

향과 프로그램과 빛의 조건 등을 가지고 끊

료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일관성을 유지하였

임없이 조정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

ⓦ 김종헌 : 저는 <사가헌>의 실내를 장식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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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정 : 중심을 설정하는 기준은 무엇

의 경우는 오래된 작품들의 전시가 많아요.

가 그다지 취할 만한 풍경이 아니었어요.(여

입니까?

옛 유물들을 보면서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기서 말하는 풍경이란 미학적인 풍경만을 뜻

유추해 보고 또 내가 사는 삶에 대해 의문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자극적이거나 무

ⓦ 김억중 : 집을 짓는다는 것은 삶을 재구

던지면서 결국은 나를 만나게 되는 거지요.

질서해서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다면

성하는 행위지요. 그 삶이 어떠해야 하는 삶

결국 전시장은 나를 만나러 가는 공간인데,

차라리 적당히 가리거나 외면하는 쪽을 택할

인가에 대한 것은, 그걸 나는 문학적인 상상

그곳에 들어가기 전에 도시의 빠름과 수다스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산을 바라보는 서측

력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소설가가 어떤 공

러움을 걷어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것이

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건

간에서 표출되는 삶을 상상하듯이 나는 거

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물도 흐르는 물이

물이 가능한 콤팩트(compact)해야겠더라

꾸로 내가 만들어야 하는 공간에서 펼쳐지

아닌, 미세한 바람에 약간의 흔들림이 있을

고요. 또 그러한 생각으로부터 매스(mass)

게 될 삶을 상상합니다. 새로운 삶에는 과거

정도의 거울 같은 연못을 두었고, 그걸 보면

가 정방형에 가까워졌고요.

와 현재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있을 것이고,

서 빠르고 거칠은 세속의 속도를 조금쯤 잊

아무튼 결과적으로 취할만한 풍경인가 아닌

또 비전이 제시되겠지요. 그런 내용들이 설

어버릴 것을 기대했죠. 내 나름대로 미술관

가는 미래의 변화에 대해서도 예측해 봐야

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을 합니

에 왜, 무엇을 하러 가는지에 대한 고민이 선

할 겁니다. 보고 보이면서 서로 잘 지낼만한

다. 건축주마다 프로그램마다 조금씩 다른,

행되었고 그 사유의 힘으로 미술관 진입 공

관계라면 상관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변화가

바로 그 장소를 배경으로 한 삶에 대한 상상

간이 구체화된 겁니다.

적은 쪽을 택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 설계의 첫 단추가 되고요. 그것으로부터

서향이지만, 다행히 서쪽의 깊은 직사광선

<사가헌>이 지금과 같이 배치된 이유

이 들어올 만큼 산이 낮지는 않아요. 또 켜

실이라면 <어사재>의 중심은 주방 옆의 외 부마당이라 할 수 있어요. 구체적으로 상상

ⓦ 김종헌 : <사가헌>의 경우는 동서로 긴 대

치해 있기 때문에 마을에서 껑충하게 보이

된 삶은 인접하는 기능들을 형성하고, 또 삶

지인데도 건물은 좁은 방향인 남북으로 앉혀

지 않도록, 땅에 가라앉은 이미지를 부여하

의 위계는 그 기능들을 입체화시키지요.

져 서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

기 위해섭니다. 노출된 부분에 한 켜를 둬서

마찬가지로 미술관이든 장례식장이든, 어떤

라도 있는 건지요?

스케일을 조절한 것인데, 내부 공간은 안주

중심이 설정되지요. <사가헌>의 중심이 거

용도의 건물이든 간에 지금 해야 할 기능들

를 둔 것은 상대적으로 지대가 높은 곳에 위

인이 원하는 공간들과 맞아 떨어지면서 지금

과 과거/현재/미래 속에서 이 장소가 어떤 장

ⓦ 김억중 :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마찬가지

소여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삶이 상

겠지만, 저 역시 땅이 많은 답을 가지고 있

상되어야 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

다고 봅니다. <사가헌>은 대지의 꽤 많은 면

ⓦ 김종헌 : 대지의 여유가 있는 <어사재>의

아주미술관>에는 전시 공간 이외에 전혀 쓸

적을 축대 위쪽이 차지하고 있어요. 가용 면

구성과 한정된 대지 내에 콤팩트하게 풀어낸

모없어 보이는 공간들이 자리 잡고 있지요.

적이 많이 줄어든 셈이지요. 축대는 형질변

<사가헌>의 구성이 이해가 됩니다.

그림 몇 점 전시하는 것보다 그런 공간이 더

경 때문에 손을 댈 수 없고, 굉장히 불리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조건이었습니다. 아마도 방위를 고려했다면

ⓦ 김억중 : 콤팩트하면 두께가 깊어지니까

가 박물관/미술관을 간다는 것은 일종의 시

길을 따라 길게 남향으로 건물이 놓였을 겁

잘못하면 직사광선 한 뼘 안 들어가는 공간

간 여행을 하는 셈인데, 특히 <아주미술관>

니다. 하지만 길을 향해 트여 있는 뷰(view)

이 나올 수도 있지요. 프로그램 상 굳이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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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같은 평면이 나오게 되었죠.

WIDE WORK : Kim Uk Joong


사광선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AV룸을 제

착시켜 좀 더 숨어 있게 하려고 했던 거죠. 또

교수님이 읽은 것처럼 오히려 세상을 향해

외하면, <사가헌>의 콤팩트한 내부 공간에

한 가지, 원래는 앞집을 바라보는 곳이 지금

부분적으로는 열려 있되 기본적으로는 돌

는 어디서나 빛이 돌게 되어 있어요. 따뜻한

처럼 막혀 있지는 않았어요. 그릴(grill)을

아서고자 하는 특징들을 부인할 수는 없을

한 점의 직사광선이 어느 곳, 어느 시간대나

두었는데, 막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예기치

것 같아요.

존재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있

않게 높아진 아랫집 때문이에요.

었습니다.

ⓦ 김종헌 : 사찰이나 교회가 아닌 일상적인

그 이전에 전원주택인 여섯 개의 연작을 하

ⓦ 이호정 : 막지 말고 그릴을 두어 희미하게

생활이 이루어지는 주거에서 경험되는 신성

면서 도대체 왜 전원주택에 사는가, 하는 근

라도 저기 마을이 있다, 라는 느낌을 주는 것

한 성역으로서의 느낌이 더욱 새롭게 느껴집

본적인 질문들도 하게 되었지요. 단순히 꽃

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요? 실루엣이라도 볼

니다. 길게 이어지다가 또 넓게 펼쳐지는 마

나무 있고, 공기 좋고, 하늘과 달을 바라보는

수 있게 말이죠. 그런 측면에서, 만약 마당을

당의 구성 등 다양한 공간 구성으로 이루어

정도가 아니라 멀리 우주의 존재들까지 사람

동쪽에 두었다면 마을과 진짜 단절된 느낌을

진 여러 켜를 통해 이러한 공간적 느낌을 전

의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인지

받았을 거예요.

하는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는 공간들을 구석구석에 배치할 때

얼마 전 방문한 대만 동해대학에서의 경험

궁극적으로 전원에 사는 즐거움을 제대로 누

고요하고 평화가 깃드는 집

과 겹쳐지네요. 우리나라 대학처럼 사회와

릴 수 있으리라고 보았습니다.

ⓦ 김종헌 : 김 교수님의 주택은 신성한 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분주한 것이

역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즉 사회로부터 보

아니라 사회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 김종헌 : 경관이 좋지 않아서 서향으로 배

호받고 있는 영역 혹은 독락(獨樂)할 수 있는

보호받고 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어

치한 것은 이해되는데, 한편으로는 대지 서

공간으로서의 집과 같은…….

요. 성소(聖所) 같다는 느낌이랄까요? 오늘 본 <어사재>나 <사가헌>에서도 같은 느낌을

쪽으로 건물을 몰아넣어 동향으로 만들었으 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앞집과의 충돌도 완

ⓦ 김억중 : 숨길 수 없는 부분이겠죠. 세태

체험했습니다.

화시키고, 숲의 나무들이 서쪽의 빛도 차단

가 가볍고 수다스럽고 소란스러운데 집마

그리고 또 한 가지, 두 작품을 보면서 각 공간

시키고, 또 산과의 연계성도 더욱 긴밀하게

저 그런 것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에

구성에 대한 하나의 분해도(分解圖) 같은 것

할 수 있었을 텐데요. 대지의 서쪽에 주차장

요. 심지어 교회나 성당도 저잣거리 같은 곳

이 떠올랐어요. 수평과 수직의 슬래브와 벽

을 두고 콘크리트로 올려서 흙마당을 만들어

으로 변질되어 있는 경우를 보는데, 정말 장

면들이 서로 끼워지거나 혹은 터지면서 공간

진입 시 여유 있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지금

소의 의미를 상실한 세태가 우려스럽습니

을 조합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의 배치도 나쁘진 않지만요. 물론 산책로와

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시대의 집이야말로

의 연결도 고려했을 테고요. 선택에 어떤 고

그 어느 때보다도 종교적인 속성을 잘 담아

ⓦ 김억중 : 초기 단계에는 구조의 배열에

민은 없었습니까?

내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신경을 많이 씁니다. 왜냐면 중요한 컨셉트

하고 있어요. 사는 사람의 신앙을 떠나, 공간

가 간단한 구조 시스템으로 명료해져야 하

ⓦ 김억중: 일단 대지의 서쪽에 놓지 않으려

자체가 세태를 거스르는 측면, 좀 무겁고 침

기 때문이지요. 초기에는 치수도 굉장히 많

고 했던 것은 길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어

묵이 깃들고 고요하고 평화가 잠재할 수 있

이 조절하게 됩니다. 그게 세팅된 후 공간들

껑충하게 부담스러워 보일까봐, 대지에 밀

는 그런 가치들을 추구하는 것이죠. 김종헌

이 조정되는 거고요.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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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헌 : 생각대로 교수님의 설계 방법

국성을 담보해 내기 위해 건축가들이 감당

는 혜택이라고 봅니다. 저는 한국건축이 발

은 분석적이네요. 마치 건물을 읽어내려 가

해야 할 의미와 구축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전하려면 그렇게 특별한 안목을 가지고 있

는 것처럼 말이지요.

또 다른 논의를 필요로 합니다. 수백 년 동

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출 것이 아니라 보편

안 이어져 고착된 이미지로 다가오는 현상

적인 사람, 즉 대중을 위해서 노력을 해주어

ⓦ 김억중 : 쓰기와 읽기는 동일한 것이겠

을 넘어서서 한국 건축에서 보편적으로 재

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뒷짐 지고 서서 대중

죠. 롤랑 바르트는 읽기와 쓰기가 하나의 행

현할 만한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이

들의 눈높이가 낮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말

위고, 창작은 분석의 역방향이라고 했습니

지요. 제 생각을 말씀 드리자면, 채와 담장과

이지요. 그래서 저는 김억중 교수님께서 전

다. 그런 면에서 내가 읽은 만큼 쓸 수 있는

마당으로 이어지는 전체적인 공간 구성 상에

통의 요소들을 좀 더 과감하게 실험해 주셨

거고, 내가 시원찮게 읽으면 쓰는 것도 그만

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다양한 마당들이 가

으면 하는 거예요.

큼 못 쓰는 거겠지요.

지는 가치, 또 눈높이에서 앞과 뒤가 투명하 게 전개되는 공간적인 특성, 우리 몸과 관련

ⓦ 김억중 : 그렇게 하는 것은 오히려 대중

한국성, 공간 혹은 형태

된 치수, 음기와 한기를 적절히 다스리는 지

을 호도하는 것이 아닐까요? 기술적인 조건

ⓦ 김종헌 : 한국건축을 공부하는 사람의 입

혜 등등, 비록 표피는 콘크리트라고 하더라

과 재료의 특성과 형태 언어의 특징은 따로

장에서 김억중 교수님께 기대하고 싶은 것

도 이런 것들이 녹아들어가 있다면 이 시대

작용하는 것이 아니지요. 과거 형태의 유사

이 있습니다. 공간 구성이나 건축을 풀어내

의 언어로 쓸 수 있는 중요한 한국성이 아닐

성을 현대 재료와 기술로 재현했다고 하더라

는 방법들이 이제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신

까, 싶어요.

도 그저 유사할 뿐이겠죠. 차라리 저더러 전

것 같고, 요즘은 한국성에 대한 이야기도 많

통 한옥의 구법에 충실하게 예전 한옥 그대

이 하시는데, 저는 그 한국성의 표현이란 부

ⓦ 김종헌 : 어떤 의미에서는 충분히 이해

로 지으라고 요구하면 그렇게 하겠지만, 그

분을 좀 더 과감하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구

가 되기도 하지만, 저는 그런 부분에서 한국

런 제안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데요? 허

법이나 형태 등을 통해 의도적으로 표출해

의 건축가들은 솔직하지 못 하다고 생각합

허. 더욱이 한옥의 공포 같은 형태 요소들은

서 감추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대중들이

니다. 공간의 구성이나 기법으로만 이야기

단순히 의장적인 것만은 아니지 않아요? 그

한국적인 것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아, 저

하는 것은 사실 서양의 모더니즘에서도 연

런 요소들은 총체적인 시스템 안에 들어와

건 한국적인 분위기가 난다, 라고 읽을 수 있

구되고 추구되었던 방법들이지요. 물론 저

있을 때 유효하겠지요. 물성이 다르고 구조

도록 말이지요.

는 그러한 방법이 동양건축과 굉장히 밀접한

적인 성능이 전혀 다른 재료로 재현하라는

관계를 갖는다는 논문을 쓰기도 했지만 말입

요청에는 그다지 동조하지 못하겠어요. 그

ⓦ 김억중 : 한국성에 관한 것은 보다 깊이

니다.(17~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에서의 극

런 측면에서 차라리 저는 솔직하지 못 해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겠죠. 기와나 공포를 차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근대건축에 미친

괜찮을 거 같아요. 재료나 형태적인 요소를

용한다거나, 마감에 황토벽을 쓰거나 한지

영향에 관한 연구-편집자 주) 하지만 공간론

지워버리고 순수하게 남아 있는 또 다른 본

를 바르는 등, 눈에 익숙한 요소들이 들어있

만 파고들기 때문에 한국성 표현은 항상 평

질적인 요소만으로 전통건축에서 느낄 수 있

지 않으면 전통 한옥의 의미를 잘 읽어 내지

행선만 걷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건축

는 정서적인 가치를 복원할 수 있다면 나는

못하죠. 그렇다면 전통건축 외관 요소의 답

은 공간 구성에 대한 이해가 가능한, 특별한

그것이야말로 한국성을 현대화하는 것이라

습, 변용을 넘어서서 현대의 건축 언어로 한

안목을 가지고 있는 건축주만이 누릴 수 있

고 생각합니다.

52

WIDE WORK : Kim Uk Joong


ⓦ 김종헌 : 대만의 고궁박물관을 가서 느낀

부재 하나가 빠지면 건물이 세워질 수 없다

ⓦ 이호정 : 그래도 콘크리트나 철골로 전통

것은 소스(source)들이 정말 무궁무진하다

는 것을 알았다고 하더군요. 모든 부재들이

건축의 의장적 요소를 재현해 내는 것은 좀

는 거였어요. 발상의 다양함으로부터 굉장

유기적으로 엮여져 힘이 연결되고, 또 형태

억지스럽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공포는 목

히 많은 변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봤지요. 그

적인 요소들도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부재

조건축에서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존

게 대중을 호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의 짜임에 의해 상당히 논리적이고 합리적

재한 것이겠죠. 재료의 물성 자체가 틀려졌

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요. 근데 우리는 지

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 김억중 : 무수하게 존재했던 과거의 형태

금 눈에 보이는 것을 그야말로 형태로만 보

적인 원천들을 새롭게 해석해서 그것을 의장

고 있는 거예요. 형태 역시 시스템과 분리될

ⓦ 김억중 : 목조를 가지고 표현했던 형태 언

적 요소로 쓸 수 있지 않느냐는 의미인가요?

수 없는 것인데, 우리는 형태를 공간과 분리

어의 체계가 다른 재료와 만났을 때는 시스

된 것으로 생각하고 공간만을 가지고 얘기하

템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 김종헌 : 네. 사실 저희 같은 학자들이 연

려고 하지요.

구를 해서 제시해 드려야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김종헌 : 꼭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철 ⓦ 이호정 : 포스트모던처럼 깊이 없이 그저

재로 만들어진 아치나 볼트 같은 것도 석조

형태만을 끌어오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일 거

의 아치 구조에서 얻어진 것이고, 또 석조의

논리가 뒷받침되는 한국성의 표현을 기대

예요. 6,70년대의 전통 논의에서 형태 요소

아치가 에로 사리넨의 <TWA 공항>처럼 콘

를 배제하고 전통의 정신과 공간을 강조하거

크리트로 번안되기도 하지요. 저는 콘크리

ⓦ 김종헌 : 유난히 한국의 건축가들은 전

나 마당과 대청에서의 느낌, 스케일(scale)

트 자체가 라멘조에 적합한 재료는 아니라

통건축의 형태에 대해, 저의 견지에서는, 지

등만을 자꾸만 언급했던 이유도 양복 입고

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가소성이 있는 콘크

나치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합니

갓 쓴 꼴이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죠.

리트는 표현주의적인 건축에 맞는 스타일이

다. 그것을 배제하려는 노력을 지나치게 기

라고 볼 수 있겠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

울이고 있다는 거지요. 그런 부분에서 한국

ⓦ 김종헌 : 하지만 우리는 시도도 하기 전에

리는 목조 가구식 시스템과 유사한 라멘조가

의 건축가들이 다소 솔직하지 못 하다는 생

너무나 큰 비판을 받아서 방법론조차 매몰되

콘크리트의 보편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하

각이 드는 거고, 그것이 한국 현대건축을 굉

고 말았죠. 결과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고 있습니다. 콘크리트 라멘조가 하나의 보

장히 어렵에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

방법론 자체를 폄하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편화인 시스템으로 만들어져서 파급된 것뿐

다. 형태가 변하고 공간의 크기도 달라지고

그것이 설령 포스트모던의 답습일지라도 지

이지, 재료의 물성 자체가 시스템을 오직 한

재료도 달라졌지만, 이를 총체적으로 풀어

속적으로 추진되었으면 합니다.

가지로만 결정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갈 수도 있는데, 유독 형태적인 요소만 쏙 빼

하지만 제가 김억중 교수님께 요청 드리는

버리고 공간적인 특성, 재료의 물성 등만을

것은 그것과 달라요.

ⓦ 이호정 : 아무튼 형태나 구법의 현대화는

논하는 것 자체가 한국성의 구현을 너무 어

정말 공간과 형태가 그 속에서 화학반응을

그다지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전통

렵게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일으켜 공간적으로도 충분히 좋고, 사람들

이 강하다고 하는 유럽도 산업혁명 이후 근

한 학생이 안성의 청룡사로 1/30 스케일의

이 봤을 때 옛 것으로서도 충분히 공감하는

대화를 거치면서 전혀 다른 형태의 건물들

모형을 만들었는데, 그런 작업을 하고 나니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이 나오게 되었죠. 콘크리트 덩어리로 건축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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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하지만 예전 한옥에서 체험했던 공간을

접근도 필요하겠죠. 그걸 부인하지는 않습

를 염두에 두신다는 말씀이시죠?

부여하고, 그런 공간 안에 전통의 흔적들을

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본질에 충실하려는

직설적이지 않게 은근히 보일 수 있도록 하

사람들이 함께 있어야 건강한 거겠죠. 그런

ⓦ 김억중 : 네. 하지만 표현의 결과로서 형

는 편이 훨씬 가치가 있을 듯합니다.

측면에서 나는 본질에 충실하려는 편에 서

태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

고 싶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김 교수님의 이

어 내는 과정에서의 보이지 않는 가치들, 이

ⓦ 김종헌 : 물론 그런 은유적 처리의 건축

야기를 이벤트성에 대한 것으로 폄하할 생각

를테면 앞서 언급한 퇴계 선생의 집에 대한

적 가치는 인정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김억

은 없습니다. 대중에게 눈높이를 맞춰 그들

사유, 아는 것과 사는 것이 일치하는 공간을

중 교수님 같은 내공 있는 건축가들이 다른

이 익숙한 언어를 표현할 수 있으면서도 공

담아야 한다는 것에 크게 공감하고 이는 오

방식으로 풀어주기를 기대하고 있고, 그래

간의 가치를 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

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화두가 되지 않을

서 꺼낸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 건축 이

씀이잖아요?

까,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실제 집

야기를 나눌 때 일부러 전통 이야기는 꺼내

에 적용시킬 때, 과거의 형태 언어로 재현하

지 않는 편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김 교

ⓦ 이호정 : 그 두 가지를 모두 제대로 구사

지는 않아요. 일례로 제가 지은 집들을 보면

수님께 말씀 드리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기

하는 건축물이 있는지부터가 의문입니다.

미로 같은 구석이 많습니다. 은폐와 노출을

때문이에요. 무엇보다도 재료나 형태에 대

거듭한다든지, 갑자기 깊이가 있는 공간이

해 상당히 논리적인 접근 방법을 취하시는

ⓦ 김억중 : 실제로 공간의 가치를 발현한

나타난다든지 하는 수법들은 어찌 보면 그

걸로 알고 있어요. 반드시 거기에 들어가야

사례들을 찾아보면, 글쎄요……. 아주 미세

런 가치들을 구현하기 위한 구성의 수단이

한다는 확신이 없으면 쓰지 않으시지요. 무

한 차이를 가지는 수준 이상의 것들이 바글

라고 볼 수 있을 거예요.

엇을 하든 확고한 논리를 가지고 계시기 때

바글해야 되겠지요. 저는 한국의 건축가들

문에 김 교수님께 공간이 아닌 전통 건축의

이 여전히 그러한 가치들을 일구어 내는 작

ⓦ 이호정 :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저는 김

형태와 구성 요소들로 실험해 보면 어떨까,

업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봅니다. 모더니즘,

교수님의 작업과 한국의 다른 현대 건축가들

하는 제안을 드리는 겁니다. 전통건축에 대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냥 건너뛰고, 세계적

의 작업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한 구법이나 구축에 대한 시스템을 분석해

건축가들의 작품 뒤꽁무니만을 따라가는 것

사용하는 건축 언어들은 조금씩 틀리겠지만

서 한 번 정리해 보시면 형태적으로도 상당

이 현실이잖아요.

큰 틀에서 본다면 말이죠. <어사재>와 <사가

히 논리가 있는 건물을 만들어 내시지 않을 까, 기대하는 거죠.

헌>을 보면서도 한국적인 것으로 느끼기 보 ⓦ 이호정 : 디지털이나 사이버 공간, 구불

다는 매우 잘 된 현대건축으로 이해했습니

구불한 형태들을 이해 없이 쫓아가는 경우

다. 공간 안에 한국적인 맛을 느끼게 하려는

전통건축의 보이지 않는 가치들

를 많이 봅니다. 현상설계의 결과물들을 보

장치들도 많이 있겠지만, 그것들은 서양건

ⓦ 김억중 : 아까 언급하신 대중과의 소통

면 용도에 상관없이 거의가 엑스포 형태고

축에서도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거든요.

문제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대중에게 다

요. 그런 측면에서 김 교수님의 말씀은 매우

재료 자체도 노출 콘크리트나 내후성 강판

가가기 위해 대중의 눈높이로 표피적이고 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걸 따르

등 현대적인 감각의 재료들을 쓰셨고요.

벤트적인 접근을 한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건

기엔 시간이 너무 없지요. 어쨌거나 김 교수

축의 이해에 무슨 도움이 될까요? 물론 그런

님께서는 작업을 하시면서 전통건축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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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억중 : 어떤 특정 재료가 전통적인 가

WIDE WORK : Kim Uk Joong


치의 발현 유무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에

형태보다 건축의 본질을 찾는 태도

시키는 컨티뉴에이터(continuator)로서의

동의하지 않나요? 중요한 건 뭐냐면, 전통적

ⓦ 이호정 : 저는 형태에 대한 아쉬움이 여전

창의성도 그에 못지않게 소중한 것이라 할

인 가치를 내 나름대로 구현한다고 했을 때

히 남습니다. 물론 김종헌 교수님처럼 전통

수 있을 거예요. 일례로 전통 한옥을 봐도, 같

그건 굉장히 선택적인 거란 얘기죠. 옛 것을

적 형태를 그대로 취해 보자는 것은 아니고,

은 지방의 일정한 유형들이 서로 다른 대지

여기부터 여기까지 이만큼씩 무조건 가져오

매우 그리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들로부터

의 조건이나 삶의 여건에 따라 서로 다른 방

는 것이 아니란 말이지요. 예를 들어 <어사

조금 탈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예

식으로 대응하다 보면 결국 대부분의 집들

재>의 서쪽 편을 보면 석양이 질 무렵에 밤

요. 오늘 두 개의 작품을 보면서 공간 언어가

은 외견상 비슷할 뿐, 그 내막을 들추어 보

나무-대나무나 소나무는 아니지만-가지의

무척 풍부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과할 정도

면 하나의 형태 언어 체계가 천차만별 변용

실루엣이 아른아른 거리도록 의도했지요.

로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건축가들이 하고

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건 순수한 미학적인 가치입니다. 이러한

있는 지오메트릭(geometric)한 형태가 자

외견상 유사하거나 동일한 시스템이라 하더

간접적인 방식, 즉 실제로 대상을 직면하여

꾸만 걸리는 거예요. 과연 저 형태밖에 없을

라도 그렇게 풍부하게 운용된 결과가 축적되

얻는 것이 아니라 몇 개의 장치를 통해서 오

까, 하고요. 지오메트릭한 형태가 전체적인

어야 건축 문화의 토대가 굳건해지는 것 아

는 파장이나 그림자나 움직임들, 그것들을

틀이 된다고 하더라도, 조금 다른 변형들이

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그 미세한 차이는 결

즐길 줄 알았던 옛 사람들의 상상력과 실천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심하게 이야기하면,

코 사소한 것만은 아니라는 거죠.

의 방식들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매우 부족

표피만 가지고 비슷비슷한 건축가로 분류될

한 부분이고, 그래서 집을 지을 때 그 진지

수 있는 위험성도 있을 것 같아요. 저 또한 지

ⓦ 이호정 : 물론입니다. 저는 건축에 담긴

한 뜻을 새롭게 조명해야 할 부분이라고 보

오메트릭한 형태를 무척 좋아하지만 말입니

철학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현상들에 대해

았습니다. 그런 것은 매우 선택적인 것이겠

다. 좀 더 ‘김억중’다운 형태를 기대해 볼 수

말한 겁니다.

지요. 집을 통해 그런 정도의 가치들을 다시

도 있을 것 같아요.

읽게 해 주는 것도 전통을 계승하는 작업이 라고 생각합니다.

ⓦ 김종헌 : 저 역시 교수님의 작품은 너무 ⓦ 김억중 : 물론 의장적으로 재주를 피울

순수하고 젠틀(gentle)하다고 생각합니다.

수는 있겠죠.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으려는

자꾸 전통 이야길 한 것도 전통 건축으로부

ⓦ 김종헌 : 물론 저도 교수님의 작품들에

것도 하나의 태도일 겁니다. 방금 이 교수님

터 좀 더 친숙하고 다양한 형태들을 찾아내

건축적 완성도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

께서 저의 작업이 한국 현대 건축가들의 작

면 어떨까, 했던 것이고요.

다. 하지만 세계 속에 한국의 건축이라고 자

업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셨는데, 제겐

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느냐의 물음에는 머뭇

그것이 독창성이 미흡하다는 평가로 들리지

ⓦ 김억중 : 저보고 자꾸만 재주 피우라는

거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는 않습니다.

소리밖에 안 됩니다.(웃음) 하고자 하면 할

정작 중요한 것은 제 작업과 그들 사이의 미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은 선택의 문제겠

ⓦ 김억중 : 글쎄요. 저는 아직 어떤 것을 말

세한 차이들에 주목해 본다면, 새로운 형태

지요. 우리 건축의 상황에서는 ‘대세에 따라

씀하시는지 정확히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언어 시스템을 제안한 이노베이터(inno-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보다는 미친놈처럼 그

그것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라면

vator)로서 기대할 수 있는 독창성은 아니

냥 제 길을 가는 놈’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

파고들 용의는 있습니다.

더라도, 공유하는 언어 시스템을 계승, 발전

니다. 누구든 재주 피우려면 왜 못 피우겠습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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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누구나가 아니라, 웬만한 사유의 힘이

과 형태로서의 삶을 담아가는 방식을 어떻

과가 5년제가 되면서 유능한 건축가들이 학

있는 사람들에게 건축가가 어떤 고민을 해서

게 풀어나가시는지, <아주미술관> 이후로

교로 많이들 들어오고 있지요. 김억중 교수

어떤 것을 집에 담았는지 느끼게 해주는 정

계속 궁금했습니다.

님은 그 이전부터 학교에 적을 두고 작업을

도로도 저는 행복할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모두들 형태에 대한 아쉬움들이

하고 계셨지만요. 그런데, 학생들을 가르친

많으신 것 같은데요, 저는 교수님께서 형태

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건축계에 도움이 될

ⓦ 김종헌 : 재주를 피우는 거라고 하셨는

를 다루는 데 있어서 스스로 절제하시는 모

수도 있지만 작품다운 작품의 부재란 측면

데, 드라마나 영화를 보더라도 일상을 다루

습을 봐왔습니다. 또 20여 년 동안의 작업을

에서 부정적인 측면도 있어요. 실제로 매우

는 것이 있지요. 일상을 그야말로 표피적으

보면 여러 단계가 있는데, 그만큼 절대 안주

심각한 수준이고요. 설계보다는 다른 일에

로 다룬다면 정말 재미없고 무의미한 드라마

하지 않고 늘 발전해 나가시지요. 제자로서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현실이지요. 이런 상

가 되겠지만, 제대로 다룬다면 굉장히 소중

저는 다음 단계가 무척 궁금합니다.

황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꾸준히 작품

하고 가치 있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

활동을 하고 자신의 건축관을 변화/발전시

가 되겠죠. 사실 일상은 생존에 대한 절박함

ⓦ 김억중 : 막연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을

키는 교수님의 모습이 뒤늦게 학교에 오신

이 그대로 묻어나고, 필연적이고, 내면적인

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는 모두 좋은 건축은

분들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

갈등을 다 담고 있잖아요. 교수님께서도 일

과연 무엇인가, 라고 묻습니다. 뭐라고 콕 집

어요. 그런 면에서 여기 계신 공주대학의 이

상에서 늘 가치를 찾으려고 하고 그런 부분

어서 말하기 어려웠던 부분이지만, 이제서

호정 교수님께도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

에 주목을 하시는 것 같은데, 일상 안으로 들

야 조금 추슬러 이야기한다면 ‘그 자리, 그런

다.(웃음)

어가서 일상의 힘들을 표출해 낼 때 사람들

집, 그런 사람, 그런 삶’의 구성이 아닐까요?

이 더욱 공감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 시점에

너무나 당연한 말이기도 하겠지만, 이 말을

ⓦ 이호정 : 아, 오늘 정말 많은 자극을 받았

서 교수님을 옆에서 가장 많이 봐오신 조재

찾는 데 상당히 오래 걸렸습니다. 조 소장이

습니다. 특히 오전에 교수님의 작업실을 보

억 소장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야기한 것처럼 초기에는 단편적인 것들이

고 나도 이렇게 해야 하는데, 싶더라고요. 김

지금은 좀 전체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종헌 교수님도 그렇고, 조재억 소장님도 그

우주를 담아내는 건축

같은데, 일단 그 자리 그런 모습이란 건 가능

렇고 모두들 교수님께 거는 기대가 많은 것

ⓦ 조재억 : 저는 선생님의 작품을 20년 이

한 내 욕심을 배제하겠다는 태도입니다.

같아요. 조만간 뭔가를 보여 주셔야 할 것 같

상 봐왔지요. 장곡경(1992년)부터 한국 전

요즘은 세상을 보는 관점이나 대지 안에서

습니다.(웃음)

통건축의 공간을 작업 속에서 풀어보려는

밖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주제넘지만, 우

노력을 하신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단편적

주까지 갔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 김억중 : 오늘 이 자리의 이야기들을 겸허

인 대응이었지만 지금은 더 넘어서신 듯합니

우주를 담으려고 한 것을 건축주 역시 읽겠

히 받아들이겠습니다. 허허. (끝)

다. 그런데, 요즘 와서 느끼는 것은 전체 형태

지요. 스케일을 가능한 한 높고 넓게 가져 보

속에 비워진 외부공간이 상당히 많아졌다는

려고 합니다.

정리|정귀원(본지 편집장)

겁니다. 형태 요소지만, 그저 요소로서 끝나 는 것이 아니라 이 요소가 삶을 담아내어 공

ⓦ 김종헌 : 오늘 느낀 거지만, 김억중 교수

간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간

님은 천생 건축가란 생각이 듭니다. 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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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Kim Uk Joong


리뷰|시나리오와 같은 집

한다. 내후성강판과 노출 콘크리트 외장으 로 마감되었는데, 내후성강판을 직접 만지

‘지금 여기가 낙원’이라는 조선조 이민우공

고 두드려 보니 철판 소리가 경쾌하다. 강한

의 서재 이름을 빌린 어사재, 봄의 경치와

비가 오거나 세찬 바람이 불면 어떨지, 소음

향기가 그윽한 계절에 이곳을 찾아간 것은

으로 골칫거리가 되지는 않을지, 약간의 우

예기치 않은 기쁨이었다. 주택은 건물 그 자

려가 없진 않았지만.

체보다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놓이는가(좌

이 주택의 내부는 전형적인 도시형 주택으

향)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

로 집중 형식을 띠고 있다. 컴팩트한 거실과

하게 하는 장소였다. 건물은 노출 콘크리트

주방 그리고 식당이 돋보이며, 특히 프리랜

큐브 형태의 다양한 변화로 이루어져 있지

서 작가인 안주인의 작업 공간으로 쓰이는

만, 주변의 느긋한 자연경관과도 부담 없이

거실과 연결된 외부 작업 공간이 인상적이

어울리는 듯했다.

다. 이 집을 보면서 느낀 첫 번째 기쁨이다.

건물 가까이 진입하면, 우수를 허드렛물로

2층 부부 침실로 올라가는 과정에서도 한

사용하기 위한 장치(홈통을 포함하여)가 독

치의 버려지는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부부

특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은 그대로 건

침실로 들어가면 외부로 연결되는 그들만

물의 조형 요소가 되기도 했다. 또 건축가도

의 마당이 있고 그것은 또한 자연과 맞닿아

언급한 바이지만, 마을 주민들이 부담 없이

있다. 이곳이 내게는 두 번째 기쁨으로 다가

와서 쉬었다 갈 수 있도록, 접근이 용이한

온다. 이 외부 공간은 바로 옆의 아이 방과

사랑방 혹은 평상을 건축화시킨 마당 공간

도 연결되어 있는데, 좀 더 은밀한 공간이었

은 이 주택을 푸는 시작이자 중심이다.

다면 그 긴장감과 감동이 더했을 거란 생각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주택의 백미는 2층

도 해 본다.

거실 앞에 만들어진 중정이다. 거실에 앉아

건축은 하나의 시나리오를 쓰듯이 만들어

마당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없는 적막함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주택에서는 더

속에서 건너편 수평 루버를 통해 밖의 자연

더욱 그렇다. 시작된 이야기가 전개/발전되

이 조용히 마당으로 들어오는 중층적 경관

고, 절정 즉 클라이맥스에 이를 수 있어야

을 체험할 수 있다. 여름에 비가 오거나 겨

한다. 각각의 공간들에 이야기가 있고 감동

울에 눈이 올 때 감동은 더할 것이라는 확

이 있고 적절한 긴장감과 신비로움 그리고

신이 든다.

절정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김억중의 두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 언덕 위에 자

주택은 이러한 것들이 비교적 적절히 구사

리한 사가헌은 집을 지어 네 가지 가능한 기

되어 있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쁨을 얻는다는 이규보 선생의 글에서 유래

글|이호정(공주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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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Kim Uk Joong


와이드 9호 | 이슈 1 부산 文化골목 기존 주택 5채를 엮어 만든 도심형 복합문화공간 Wide Architecture : wIde Issue 1 no.9 : may-june 2009

부산 남구 대연동의 주택가에 위치한 <문화골목>은 5채의 기존 주택을 고치 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조성된 복합문 화공간이다. 설계자 최윤식 씨는 스스 로 건축주가 되어 설계와 인테리어 디 자인은 물론 시공을 담당하면서 라이브 카페 <노가다>를 비롯, 소극장 <용천지 랄>, 갤러리 <석류원>, 와인바 <다반>, 재즈바 <색계>, 노래방 <풍금>, 주점 < 고방>, 음식점 <delicioso> 등 특색 있 는 이름의 공간들을 가꾸어 왔다. 낡고 오래된 건물이면 무조건 부수고 보는 우리의 문화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는 <문화골목>은 “도시 재생에 초점을 맞추어 자칫 슬럼화될 수 있는 지역에 숨을 불어넣고자 했다”는 건축 가의 의도를 잘 드러내어 지난 해 ‘부 산다운 건축’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글|박해영

↑ <문화골목> 주출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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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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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대연동 대학가의 어느 번화한 거리를 지나다 마주치는 <문화골목>이라는 간판은 하얀 바탕에 먹으로 쓴 강건 한 글씨체만으로도 이곳이 형형색색의 간판으로 떠들썩하게 호객하는 주변의 상점들과는 다른 비범한 공간임을 짐 작하게 한다. 게다가 도로변에서 깊숙이 들어가 숨어 있어서 그 앞을 수없이 지나치는 사람일지라도 그 좁고 긴 골 목 안을 직접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이 공간의 정체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다반>과 <노가다> 입구. ↑ 레스토랑 <델리시오소>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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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1 : 文化골목


문화골목 설계 개요 | 대지 위치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3동 52-4 번지 외 4필지 | 용도 : 복합문화공간(근린생활시설, 갤러리, 소극장) | 대지 면적 : 937.2㎡ | 건축 면적 : 419.12㎡ | 연면적 : 805.43㎡ | 건폐율 : 44.72% | 용적률 : 85.94% | 규모 : 지하1층~지상3층 | 높이 : 9.6m | 골조 : 조적, 철골, 샌드위치 패널 | 외장재 : 목재, 외단열시스템 | 설계 참여 : 최윤식, 정지원, 김현문, 김구미, 김정희, 강기일 (사진 제공: 가산건축사사무소)

설계자 최윤식은 부산대 건축공학과 및 경성대 산업대학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부산대 사회교육원 건축풍수 최고 전문가 과정 및 동대학 의학전문대학원 의료경영 최고 관리자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다. 부산 인테리어협회 홍보이사, 부산 실내디자인 교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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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건축사사무소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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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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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문화골목> 프로젝트는 건축가 최윤식 씨가 2004년 대연동 경성대 인근 주택 1채를 매입해 레스토랑으로 개조

하여 운영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2007년 10월, 이 레스토랑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건너편 블록 안쪽 주택 4채 를 한꺼번에 매입하게 되면서 그의 아이디어는 한층 구체성을 띠게 된다. 경제적 여건 때문에 도로변이 아닌 부지를 선택하 게 된 것이 도로와 연결할 수 있는 통로로서 ‘골목’의 모티브를 자연스레 형성한 것이다. 하나의 골목은 그저 드나드는 출입구에 불과할 테고 2개의 골목은 지나가는 통행로에 그칠 뿐이어서, 들어와 이리저리 돌 아다니고 잠시 머물렀다 떠날 수 있도록 3방향으로 골목을 내었다. 외부로부터 들어온 세 개의 골목은 주택 담장을 허물고 마당을 합쳐 만든 작은 정원에서 만나 잠시 머물렀다 흩어진다. ← 조감도. → 주점 <고방>.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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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1 : 文化골목

1층평면도.


2층평면도.

3층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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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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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내부의 갈림길들을 따라 다니다 보면 커피숍, 갤러리, 노래방, 주점, 라이브 카페, 소극장들을 차례로 만나게 된

다. 이와 같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문화 공간 단위들의 집합은 문턱 낮은 문화, 예술 공간을 손수 만들고 싶었던 건축가의 오 랜 꿈이 맺은 결실이다. 소극장의 연극 시간을 기다리면서 갤러리에 들러 미술 전시를 둘러보기도 하고,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커피숍으로 옮겨 차 마시며 수다도 떨었다가 라이브 카페에서 밴드 공연을 안주 삼아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거나 주점에서 주거니 받거니 막 걸리 사발도 기울이다가, 그래도 여흥이 있으면 노래방에 들러 흥겨운 노래 한 곡으로 마무리하는 친숙한 여가생활의 풀 코 스 프로그램이 저장되어 있는 장소가 바로 이곳 <문화골목>이다.

↓ 갤러리 <석류원>. → <다반> 앞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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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1 : 文化골목


네 채의 낡은 단독주택의 구조는 거의 그대로

원>은 장식적 마감을 지양하고 오래된 콘크리트 구조체

두고 철골조로 구조적 보강을 하여 2, 3층으로 증축한 작

를 그대로 노출시켰을 뿐 아니라 색상마저도 배제함으로

은 공간들은 마당이나 좁은 계단, 연결 다리를 통해 끊김

써 전시물 뒤로 물러나 있는 무겁고 차분한 분위기의 무채

없이 이어져 있어, 마치 각기 다른 색의 조각 천을 이어 붙

색 전시 공간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재활용되고 있는 것

여 만든 조각보처럼, 다른 개성으로도 하나를 이루고 하나

은 비단 구조체만이 아니다. 인테리어 마감에서도 폐자재

이면서도 여럿이다. 파사드는 물론이고 바닥 높이나 천장

를 활용한 흔적이 군데군데 눈에 띌 뿐 아니라 가구나 장

높이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주택이라는 태생적 공통 사항

식 소품들은 하나같이 시간에 마모되고 변색된 것들이어

에서 비롯된 아기자기한 스케일감이 다름을 상쇄시켜 줌

서 마치 골동품이나 고미술품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는 듯

으로써 어느새 하나의 연결된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문화골목>에서는 철거와 폐기를 최소화한 흔적으로 예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세월을 가장 뚜렷이 기억하

전 주택으로서의 쓰임새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노래방인

고 있는 것은 이러한 구조체나 소품들이 아니다. 한때 오

<풍금>이나 바 <색계>는 주택에서의 방 구조를 그대로 활

랜 세월 주택이었던 구조체도 다듬어 놓으니 제법 시치미

용하고 있으며, 내벽을 헐어내고 공간을 틔운 커피숍 <다

를 떼고 있고, 오래된 한옥에서 떼어온 듯한 문짝도 원래

반>의 천장에는 주택 거실 마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합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의연한데, 정원의 수목만큼은 여

으로 짠 천장과 샹들리에가 자리 잡고 있다. 갤러리 <석류

전히 예전 주택 마당에서 자라던 시절 그 모습 그대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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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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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문화 공간의 중정을 주택 앞마당처럼 아늑하고 평안한 분위기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부수거나 버리지 않고도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냈다는 점을 인정받아 <문화골목>은 2008년 부산시가 주최하는 ‘부 산다운 건축상’을 수상했다. 이 공간의 기획부터 설계, 시공, 운영까지 맡고 있는 최윤식 대표는 재활용이라는 방법은 도심 재생의 거창한 구호를 위해서라기보다 주변 상황에 의해 주어진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한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으로 은행에서 자금을 차입하여 시작된 프로젝트여서 부지 매입 비용이나 매입 시기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 고, 그 제한된 조건 하에 선택한 지금의 부지가 인접 주택들로 가로막혀 있는 탓에 철거 공사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헐고 새로 짓는 것보다 고쳐 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판단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부산다운 건축상 출품서에 적은 “헐고 짓는 것은 고쳐 쓰느니 못하고 고쳐 쓰는 것은 다듬어 쓰느니 못하다”라는 글귀만 보더라도 ‘ 친환경 건축’이나 ‘도시 재생’에 이바지했다는 결과론적 평가가 애초에 이 프로젝트가 가졌던 최종 목표는 아니라 할지라 도 진행 과정에서 중요한 전제로 작용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건축물 과밀이나 도심 난개발의 현실이 한 개인이나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기에 최대표 가 <문화골목>을 만들어간 과정은 우리 도시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문제의 주요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문 제 해결의 결정적 지표를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도시의 하드웨어를 축적하는 데에만 조급한 나머 지 그 질을 돌아볼 틈이 없었고, 거기에 어떤 문화를 담을지에 대한 고민들을 늘 도시의 물리적 요소와는 무관한 것처럼 여 기며 뒤로 미뤄왔었다. 도시의 양적 팽창을 늦추고 그 질을 다듬어야 할 시점에서 고치고 다듬어 쓴 <문화골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낡은 주택 을 탈바꿈시켜 얻은 복합문화공간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서 오랜 시간 동안 각기 다른 생활을 담으며 서로 무관하게 살아 왔 던 공간들을 소멸시키지 않고도 거기에 새로운 역할과 관계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 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

게스트하우스 <선무당>. ↓

66

wIde Issue 1 : 文化골목


와이드 9호 | 이슈 2 제1회 심원건축학술상 Simwon Architectural Awards for Academic Researcher Wide Architecture : wIde Issue 2 no.9 : may-june 2009

당선작|벽전(甓甎 )—박성형 한 기업가가 요절한 건축가와의 인연을 회억하며, 건축의 인문적 토양을 배양하기 위하여 만든 심원문화사업회(이사 장 이태규)의 <심원건축학술상>당선작이 가려졌다. 지난 4월 20일(월) 저녁 최종 심사를 통하여 선정된 작품은 박성형 씨의 벽전( 甓甎 )으로, 당선 작가에게는 상금 5백만 원과 향후 6개월 내에 단행본 출간의 기회가 동시에 제공된다. 이에 본지는 추진 배경과 경과 및 심사평을 전달하고, 당선작 요약문과 함께 수상자의 당선 소감을 들어 본다.(편집자 주) * 시상식 공지 | 1. 일시: 2009년 6월 5일(금) 오후 2시 | 2. 장소: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3층 소강당

↓ 부여 규암면 발굴 각종 무늬 벽전, 국립부여박물관, 『박물관이야기』(1997, 통천문화사.),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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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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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 배경과 경과보고

다시 묻겠습니다. 왜 문화사업회를 벌일 생각을 가졌습

제한적이었던 1차년도 사업 수행의 결과치고는 최종 심

니까? 뜬금없지만 주최자의 확고한 의지를 재차 확인하

사에 오른 2편의 추천작이 2차년도 공모의 뜨거운 불길

고 싶었다. 이제 막 첫 번째 항해의 끝을 바라보는 시점

을 예고할 수 있는 수준작이었다는 점에서 운영위원회의

에, 동승한 주관처의 장으로서, 우문임을 무릅쓰고 30대

일원으로서 고무된 것이 사실이다.

후반의 젊고, 패기만만해 보이는 그에게 나는 공격적으로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에 대하여는 향후 2년간 계속해서

다가섰다. 제1회 심원건축학술상의 심사가 끝나고, 심사

추천작의 자격을 유지하여, 어렵사리 수상권에 든 원고들

위원들을 배웅한 뒷자리에서였다.

을 재론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도 심원건축학술상만의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지위라면 그것은 명예도

특징이다. 매년 수준 높은 연구 성과물들을 집적하는 효

권력도 아니고, 건축주라는 자리입니다. 건축 행위의 최

과와 함께 본 건축학술상이 이벤트성 보다는 목적 지향성

고 수혜자는 건축가이기보다 건축주에게 있다고 봅니다.

의 사업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견고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저는 이미 그것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건축주에게 최고

세상에 던져진 잔잔한 파문의 격으로조차 존재의 의미를

의 선물을 안겨준 건축가에게 뭔가를 돌려 드려야겠다는

찾으며,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인 후원 프로그램으로서 땅

생각이 이 사업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깊숙이 뿌리를 내리는 것에 목표를 두겠다는 주최자의 굳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한 젊은 건축가를 통하여 건축

은 의지는 심원건축학술상이 지닌 또 다른 덕목이다. 처

의 세계를 이해하고 건축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된 기업가

음, 4인의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면서 각 위원들과의 대화

가 요절한 건축가와의 인연을 회억하며 건축의 인문적 토

를 통해서도, 또한 운영위원 참여 확답의 자리에서도 이

양을 배양하기 위하여 만든, 속 깊은 후원회가 심원문화

것에 대한 주문은 이어졌다. 거기에는 이 같은 프로그램

사업회(이사장 이태규)다. 사업회가 벌이는 첫 번째 후원

의 태동의 의지 이상으로 지속성이 더욱 중요하다는 의지

사업인 <심원건축학술상>은 건축 역사와 이론, 건축미학

로 모아졌던 것이다.

과 비평 분야의 미래가 촉망되는 유망한 신진 학자 및 저

심사 결과 첫 번째 당선작의 향방이 한국건축사를 되돌아

술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마련되었다.

보는 연구물에 시선이 닿았지만 심원건축학술상의 본령

1년 이내 단행본으로 출판이 가능한 완성된 연구 성과물

은 ‘건축 역사와 이론, 건축미학과 비평 분야’ 전 영역에

로서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원고를 응모 받아 그 중 매년

걸친 우수한 저작의 성과물들을 향하여 열려 있다. 매년

1편의 당선작을 선정하며, 당선작에 대하여는 단행본 출

전문 분야 추천작 간 불꽃 튀는 심사가 기대되는 이유가

간과 저술 지원비를 후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거기에 있다. 그만큼 심사위원회를 겸하는 운영위원 시스

지난해 1/2차 공모를 통하여 2편의 추천작이 선정되었

템은 그 자리의 도타운 의미 이상으로 힘들고, 어려운 자

고, 지난 4월 20일(월) 저녁 최종 심사를 통하여 제1회 심

리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

원건축학술상의 당선작이 선정되었다. 당선 작가에게는

금번 제1회 심원건축학술상의 최종 심사는 ‘3인 위원회’(

상금 5백만 원과 향후 6개월 내에 단행본 출간의 기회를

배형민, 안창모, 전봉희)로 구성하여 추진하였다. 수개월

동시에 제공한다.

에 걸친 추천작의 독회를 끝내는 순간, 운영위원회는 당

다시 정리하자면, 심원건축학술상은 건축학계의 전문 연

선작 발표 후 학계와 세간의 반응에 대한 긴장감과 기대

구자와 건축책의 저자를 희망하는 일반 사회의 필자를

감에 한껏 부풀어 오를 수 있었다. 이제껏 누구도 가지 않

대상으로 공모하는 저술 기반 민간지원사업으로 세상에

은 길 위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1년이 그렇게

빛을 보지 못한 의미 있는 주제의 석·박사 학위논문이

흘러온 것이다.

나 출판의 기회를 얻지 못한 건축책의 원고를 발굴하여

글|전진삼(본지 발행인, 심원건축학술상 운영위원)

시상함으로써 건축 인문학의 토양을 배가시키는 데에 1 차 목적이 있다. 단언컨대, 사업 출범 초기에 겪을 수 있는 대외적인 홍보 부족과 사업에 대한 신뢰 구축의 미진으로 참여의 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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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Simwon Architectural Awards for Academic Researcher


이 있겠지만 김중업과 김석철, 당게와 김수근, 김수근과 승

심사평

효상의 관계에서는 질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전혀 다른 관계 인 것 같다. 저자가 인용하는 국내 문헌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정인하의 김수근론과 김중업론에 의지하는 것 자체

1.

가 문제가 아니라 그의 주관적 해석을 단정적인 사실로 인

심사위원|배형민

용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결론에서 일부(4.2 한계와 전망)

(서울시립대 건축과 교수)

프로이트와 블룸을 비판하고 있지만 원론적인 차원에서의

심사번호 01 <벽전( 甓甎 )>

대응일 뿐 구체적인 한국 현대건축의 분석에 그 비판이 반

<벽전>은 방대한 내용을 역사적이고 고고학적인 서술 방식

영되어 있지 않다. 저자 자신이 본문에서 계속 주체 중심의

으로 사전적이고 교과서적으로 정리한 논문이다. 한국건축

서술을 전개한 후 결론에서 ‘서구의 주체 중심주의적 사유

에서 목조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연구가 미비한 조적을 다루

가 얼마나 보편성을 가질 것인가’(224쪽)를 회의하는 것은

고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며 많은 정보가 좋은 문장으로 정

전혀 설득력이 없다.

리되어 있다. 그러나 분량에 비하여 논문의 테제가 분명하 지 않다는 것이 논문의 결정적인 약점이다. 아마도 기존의

종합

연구와 벽전에 대한 이해가 역사적인 시기마다 대단히 다르

두 논문은 주제 영역, 시기, 이론적인 태도의 차이가 커서 비

기 때문에 일관된 주제로 서술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교 평가한다는 것이 어렵다. 두 논문 모두 저자가 설정한 범

에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보다 힘 있는 논문이 되기 위해서는

주 안에서 장단점이 있지만 모두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작으

벽전 연구가 갖고 있는 현재성이 부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심사자의 입장이다.

다. 목조론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기존의 한국건축론,

그러나 책으로 출간하기 위해서는 두 논문 역시 많은 편집

또는 역사론에서 벽전에 대한 이러한 탐구가 갖고 있는 의

과 축약, 테제의 보다 명확한 서술이 요구된다. 이에 따라 어

의가 논문의 전반적인 서술 구도에 스며 있었으면 한다.

느 논문이 책으로 편집이 되었을 때 보다 힘 있는 텍스트가 되겠느냐는 질문이 본 심사자의 가장 중요한 선정 기준이

심사번호 02 <建築家 의 師承關係 와 獨創性

問題 >

다. <건축가의 사승관계와 독창성 문제>는 전반부의 이론

<건축가의 사승관계와 독창성 문제>는 한국 현대건축의 구

적인 서술이 건축가에 대한 본문의 분석에 스며들어가야 된

체적인 작가들을 정면으로 다룬 보기 드문 논문이다. 이미

다고 생각한다.

알고 있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것을 글로 명백하게 서술

그런데 책으로의 편집 과정에서 제출 논문이 갖고 있는 다

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정인하의 기존 연구를 비롯

소 기계적인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해서 2차 문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으나

는 회의적이다. <벽전>은 새로운 서론과 결론에서 테제를

한국 현대건축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에 비하여 자료의 범

명확하게 밝히고, 이 테제에 따라 본문을 축약하면 현재 논

위가 넓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다양한 작가와 작품에

문의 구성 틀을 유지하면서 좋은 책의 구도를 갖출 수 있다

대한 통찰이 돋보이고 저자가 이론적인 입장을 구체적으로

고 판단된다. 이에 따라 책으로 편집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표방하고 있다는 것 또한 큰 장점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러

<벽전>을 제1회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작으로 추천하는 바

한 통찰들이 산만하고 저자가 갖고 온 이론에 대하여 비판

이다.

적이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본문의 전개 방식이 블룸 과 프로이드의 이론적인 언어를 선정의 단계(궤도이탈, 깨

2.

진 조각)-유아주의 단계-정체화 단계(금욕적 고행, 환생) 등

심사위원|안창모

으로 공식화하여 개별 건축가들의 해석에 적용하는 방식은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이론적 체계를 갖고 있지 않은 한국 건축에 이러한 분석의 틀을 갖고 올 수 있으나, 그 틀이 하

심사번호 01 <벽전( 甓甎 )>

나의 진리로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블룸

본 논문은 목구조 건축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한국건축

의 이론에서는 셰익스피어가 중심에 있는데 20세기 건축에

사 연구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쌓기’ 건축의 실체를 통사

서 셰익스피어에 해당되는 작가는 르 꼬르뷔지에일 것이다.

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특히 본 연구가 특정

르 꼬르뷔지에와 김중업을 논할 때는 블룸의 이론이 설득력

재료를 중심으로 전개됨에 따라, 한국건축사에서 일반화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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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69


어 있는 시대 중심이나 건축물의 종별에 따른 건축사 연구

종합

에서는 밝혀내기 어려웠던 부분을 드러낼 수 있었을 뿐 아

심원건축학술상의 1회 수상작은 본 학술상의 향후 진행과 ‘

니라, 재료사나 기술사적 측면도 함께 다루는 성과가 있었

정체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최종적

다고 판단된다.

으로 수상작을 선정하기 전에 학술상의 정체성과 방향에 대

다루는 시기는 조선시대까지로 한정되어 있지만, 개항 이후

한 입장을 분명하게 정리하고 수상작 발표와 동시에 공개할

의 건축까지 다루고 있어, 목구조를 중심으로 한 전통건축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 이질적인 재료와의 만남을 통해 어떻게 변용이 이루어졌

심원건축학술상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요절한 젊은

으며, 시대에 따라 또는 용도에 따라 어떠한 변용(근대적 변

건축가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 건축계가 아닌 건

용 등)이 이루어졌는지를 밝혀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축주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한 상이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연구 성과로 판단된다.

수상작은 기회를 쉽게 얻기 어려워 사장되기 쉬운 주제나

따라서 본 연구 성과는 목구조 중심의 한국건축사 연구의

연구자를 발굴하기 위한 상으로 자리 매김하는 것이 바람

시각을 보정하여 균형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는 초석이 될

직하다고 판단된다.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연구의 중요성과 성과가 갖는 가치에도 불구하고, 본 주제의 연구 성과가 출판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이지

3.

만, 일단 출판될 경우는 한때 주목을 받기보다는 장기적으

심사위원|전봉희

로 주목 받는 연구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서울대 건축과 교수)

심사번호 02 <建築家 의 師承關係 와 獨創性

問題 >

제1회 심원건축학술상의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2편

본 논문은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두 명의 건축가를 기

이다. 많지 않은 작품이지만, 그 질적인 수준은 둘 다 당선

존과는 다른 방법으로 들여다본 연구다. 본 연구에서 연구

작으로 꼽아도 좋을 만큼 뛰어났다고 하는 것이 본 심사자

자가 사용하고 있는 ‘대조비평’과 대조비평을 전개하기 위

의 우선 결론이다.

한 프로이트, 블룸, 들뢰즈를 비롯한 많은 다양한 분야의 연

70

구 성과를 폭넓게 차용하고 있다.

심사번호 01 <벽전(甓甎 )>

본 연구는 타 분야의 이론을 통해 건축 이론비평의 새로운

이 논문은 낙랑에서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

장르를 개척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건축비평이 초보적인 수

서 지어졌던 모든 벽전(혹은 벽돌) 관련의 건축 유구와 문헌

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한 국내 건축계의 현실에서 비평의

을 망라하여 벽전건축이 갖는 형태적, 의장적, 구조적, 생산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

적 특성 등을 역사적으로 고찰한 논문이다. 이 작업은 벽전

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새로운 시각으로 두 사람의 저

과 관련된 이제까지의 어떠한 시도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

명한 건축가를 들여다봄으로써,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시

도로 자세하고 방대한 분량을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각이나 평가를 드러냈다기보다는 기존에 잘 알려진 두 건

를 통하여 학문적으로 새롭게 밝혀진 부분도 적지 않다.

축가의 모습을 새로운 틀로 재조직화했다는 인상을 지울

예를 들어, 다양한 용례의 추적을 통하여 벽돌 혹은 전돌 등

수 없다.

으로 불리던 기존의 구분을 대체하는 벽전이라는 용어의 사

본 논문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비평 방

용을 새롭게 주장하고 있고, 전통건축 속에서 벽전건축이

법론의 도입뿐 아니라, 본 비평론이 선택한 작가에 대한 심

가지는 의미와 역할을 새롭게 해석하여, 무덤과 탑 등 온전

도 있는 연구가 필요했다고 판단된다. 한편, 차용하는 이론

히 벽전으로 구성된 것뿐 아니라 건축의 일부 즉, 기단이나

의 생소함과 난해함은 본 저작이 출판되었을 경우 매우 제

벽 등에 벽전이 사용된 것까지로 벽전 건축의 범위를 확대

한된 범위의 독자에게만 읽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하였고, 구조재로 사용되는 벽(甓 )과 바닥 혹은 벽면의 수장

그러나 본 연구가 대중적인 눈높이에 맞추어 글쓰기가 다

으로 사용되는 전(甎 )을 함께 보면서 둘 사이의 관계를 살

시 이루어져 출판될 경우, 두 건축가가 갖고 있는 한국건축

펴보는 시각도 새롭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확대된 개

계의 위상을 감안할 때 건축계의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있

념으로 인하여 한국건축사 속에서 벽전건축의 의미를 새롭

다고 판단된다.

게 조명하였다는 점이 이 논문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라고

wIde Issue 2 : Simwon Architectural Awards for Academic Researcher


생각된다.

론을 동원하여야만 생각해낼 수 있는 특별한 개념인지도 의

이 논문은 연구자에 의하여 1998년 석사 학위논문으로 준

문이다. 즉, 선배 혹은 스승과의 관계 속에서 제자(후배)는

비되어 제출된 것으로서, 한문으로 기록된 많은 문헌이 한

처음 선배의 작품을 모방하는 단계에서 차츰 그것을 벗어나

글로 번역되고 동구권의 붕괴와 함께 중국과 북한 등의 자

려고 하고, 최종적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료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진 1990년대 말의 학계가 가졌던

단계를 밟는다는 것은 굳이 블룸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풍부한 자원을 잘 활용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

예측 가능한 일반적인 경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해서, 이 연구는 해방 이전의 일본 학자들에 의한 기초적이

이러한 일반론이 시 비평에서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짧

고 전국적이지만 선별적인 연구, 해방 이후 우리나라 학자

은 시구 속에서 그러한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지

들에 의한 지역적으로 심화되고 실증적이지만 폐쇄적인 연

않을까? 이번에 건축에 적용한 것처럼 한 사람의 전 일생에

구를 이은 제3세대 연구의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같은

걸친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해석에서는 지나치게 일반적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고 하여도 이 논문이 가지고

구도에 머물고 있다는 인상이다.

있는 내용의 방대함과 충실도는 석사 학위 청구논문이라고 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수준으로 필자의 기억에는 이경회

종합

교수의 석탑 논문, 작고한 건축가 홍순인의 마을 논문 정도

이상과 같이 분야도 다르고 각각 장단점을 뚜렷이 가지고

가 떠오를 뿐이다.

있는 두 응모작 가운데 어느 것을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할

다만 단점이라고 한다면, 매우 많은 자료의 정리, 그리고 상

것인지의 판단은 쉽지 않은 문제였다. 무엇보다도 먼저 고

당한 자료의 새로운 발굴이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벽전이

려한 점은 심원건축학술상의 제정 취지가 건축 역사와 이론

라는 주제의 성격상 한국건축의 본령에 접근하는 힘 있는

분야의 학술 진흥을 위하여 단행본의 출판을 최종 성과물로

이야기로 연결되는 데 부족함이 보인다는 점이다.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즉, 우리나라의 건축 역사와 이론계 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데 어떤 것이 좀 더 시급한 출판

심사번호 02 <建築家 의 師承關係 와 獨創性

問題 >

을 필요로 하고 있는가에 대한 판단이다. 물론, 이번 최종심

이 논문은 해롤드 블룸이라고 하는, 주로 낭만주의 시를 대

에 올라온 작품은 향후 2년간 계속해서 후보작의 자격을 유

상으로 선배 시인의 작품과의 관계 속에서 후배 시인의 작

지한다는 점도 함께 고려하였다.

품이 가지는 여러 가지 자세를 ‘영향 관계’ 혹은 ‘오독의 지

이런 면에서 <벽전>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목가구조 위

도’라는 독특한 프로세스로 파악하는 문학비평의 이론을

주로 해석되어온 우리나라 전근대 건축의 역사 서술에서 언

차용하여, 한국 현대건축의 1세대 건축가라고 할 수 있는

제나 부수적인 위치에 머물렀던 조적조의 전통을 부각하였

김중업과 김수근의 작품 세계, 그리고 이에 덧붙여 그 이후

다는 점이 한국건축사의 시각을 보완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

세대가 위의 두 사람의 작품과 가지는 관계를 고찰한 것으

하였다. 또, 비록 최초 저술한 지 10년이 지난 논문이지만,

로서, 다소 기계적인 적용에 따른 성급함이 보이지만 한국

동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건축과의 비교적 시각을 강조하는

현대건축 비평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참신

최근의 건축사 연구의 흐름 속에서 벽전건축에 대한 새로운

한 시도로 보인다.

조명이 그 때와 다른 또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판단이

한국 현대건축에 대한 비평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으로서 각

크게 작용하였다.

각의 작품에 대한 해설이 주를 이루고 매우 최근에 들어서

오래 전 매우 힘들게 한 작업이 뒤늦게 발굴되는 행운을 받

야 중요 작가들의 작품 전체에 대한 접근이 시도되고 있는

은 <벽전>에 큰 축하를 보내며, 단행본 출간을 계기로 심기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비평의 방법론을 하나 덧

일전 새로운 도약을 기대해 본다.

보탠다는 것은 비평의 풍요로움을 더한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단점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단편의 문학작품에 적용하 였던 비평 이론을 건축가의 전 생애에 걸친 작품에 적용하 는 과정에서 생기는 의미의 미끄러짐이다. 또한, 여기서 인 용하고 있는 ‘선정—유아주의—정체화’의 단계와 그에 따른 작품의 경향이라는 것이 과연 대조 비평이라는 특별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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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71


당선작 요약문

< 甓甎 >— 박성형

여 만들어 낸 최초의 건축 재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벽전을 통한 조적식 건축은 가구식 구조

72

건축을 형성하는 요소는 수없이 많지만, 그 중

와는 다르게 일정한 규격의 단위 부재를 적층(

에서도 각 사회의 생산력과 당시 사회 상황을 직

積層)하여 독특한 구축 방법과 구조 체계를 갖

접적으로 반영하는 건축 재료는 그만이 갖는 고

는데, 목조건축과 함께 벽전건축은 한국건축의

유한 구축(構築 ) 방법과 구조(構造 ) 체계를 통해

독립된 영역을 확보하며 전개해 왔다. 즉, 낙랑

형태와 공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

(樂浪 )과 삼국(三國 )에서는 벽전축(甓甎築 ) 무

다. 특히 건축 재료의 사용 범위와 구조 기술이

덤과 벽탑(甓塔 ) 등을 축조하였고, 한국의 전

한정적이었고 변화 속도 또한 느렸던 과거의 건

시기에 걸쳐 조적식 건축 구성 요소인 홍예(虹

축에서는 현대건축보다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

蜺 :arch)^볼트(vault)^궁륭(穹窿 ) 등이 현존한

진다고 할 수 있으므로, 역사건축은 건축 형식과

다. 목조건축은 고려말 건축이 최고(最古)이지

형태에 관한 연구 이전에 당시 사회가 주로 사용

만, 벽전건축은 삼국은 물론 낙랑의 유구까지 현

하였던 건축 재료를 통해 살펴보는 연구가 선행

존하고 있기 때문에 각 시기를 연속하는 건축사

되어야 할 것이다.

(建築史)를 완성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건축사(

한국건축은 선적(線的 )인 나무를 구조 재료로

韓國建築史 )에서 벽전은 전통 양식의 일부로서

사용하는 가구식(架構式 ) 목조건축(木造建築 )

위치를 차지하며, 나무와는 다른 이질적인 재료

이 주를 이루어 왔다. 여기서 가구(架構 )는 건

로서 독특한 건축 의미 또한 갖고 있는 것이다.

물의 뼈대인 골조(骨組 )를 의미하고, 가구식 구

그러나 가구식 목조건축에 대한 연구에 비해 조

조는 기둥^보 등의 뼈대를 결구(結構 )하여 각각

적식 건축인 벽전건축에 관한 연구는 삼국시대

의 절점(節點 )을 통해 하중을 전달하는 구조를

(三國時代)와 남북국시대(南北國時代 ) 벽전에

말한다. 한국건축의 또 다른 구조 방식에는 절

나타난 무늬의 특징과 의미 해석에 관한 회화(

점 없이 단위(單位 ) 부재(部材 )를 쌓아 올려, 상

繪畵 ) 분야의 연구, 또는 현대에 사용하고 있는 ‘

부 하중은 부재와 부재가 직접 맞닿아 지면으로

붉은색 벽돌’의 의장(意匠 ) 특성과 조형에 관한

전달하는 조적식(組積式 ) 구조가 있으며, 대표

연구가 대부분이어서 한국건축에서 벽전이 갖

적인 건축 재료에는 석재(石材 )와 벽전( 甓甎 )이

는 구조 특징과 건축 재료적 특성, 그에 따른 건

있다. 또한 벽체(壁體 ) 형식에서 가구식은 뼈대

축 의미를 나타내는 데는 부족하다고 할 수 있

로 지지하므로 칸막이벽(curtain wall)이 보편

다. 특히 각 시기마다 한국적 특징을 나타나고

적이지만, 조적식은 상부 하중을 벽체가 전담하

있는 벽전건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벽전을 광

는 내력벽(bearing wall)이 보편적이다. 이렇

범위하고 보편적으로 사용한 중국(中國 )의 영

게 두 구조를 통한 건축은 하중 전달 방식에 의

향 또는 중국 건축형식의 유입(流入 )으로만 설

한 구조 체계와 벽체의 형식이 서로 다르기 때

명되고, 특히 고려(高麗 )와 조선(朝鮮 )에서는 벽

문에 각각 독특한 건축 형태와 특징을 나타내고

전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

서로 다른 공간을 창출하는데, 이는 당시 사회

는 실정이다.

가 요구하는 건축과 필요를 반영한 결과라고 할

따라서 본 연구는 각 시기에 나타난 벽전의 특징

수 있다.

과 함께 한국건축의 벽전 사용 범위를 재조명하

조적식 구조 재료인 벽전은 나무^돌과 함께 가

고, 고대로부터 조선후기까지 이어지는 벽전 사

장 오래된 건축 재료 중 하나이며, 기와와 동일

용의 연속성을 밝혀 중국과 구별되는 벽전의 사

하게 인간의 특정 목적에 따라 자연물을 가공하

적(史的 ) 위치와 건축 의미를 재조명하였다.

wIde Issue 2 : Simwon Architectural Awards for Academic Researcher

낙랑 벽전축무덤_道濟里50호 벽 전축무덤, 朝鮮古蹟硏究會,『古蹟 調査槪報 樂浪遺蹟 昭和10年度』 (1936.), 도판제20.

고구려 벽탑, 신영훈, 『절로가는 마 음』1(1994, 책만드는 집.), 104쪽.


벽요도, 『화성성역의궤』 卷首 「圖 說 」 甓窯圖 .

동시에 가구식 구조와는 달리 벽전으로 축조한

어를 사용하였지만, 고려 말 또는 조선 전기에 ‘

조적식 구조의 건축 특징을 연구하였다. 건축 구

벽(甓 )’과 ‘전(甎 )’ 용어가 출현하였으며, 그 이

조 재료로서 벽전은 일정한 크기의 단위 부재로

후 각종 문헌에서는 ‘벽전’을 대표적으로 사용

인해 건축 평면과 입면^단면의 규모와 일정한

하였다.

상관관계를 갖기 때문에, 벽전건축의 각 부분에

‘벽전’은 벽체를 축조하는 벽전인 ‘벽(甓 )’과 바

나타난 쌓기 방법의 분석을 바탕으로 하여 한국

닥을 포장하는 벽전인 ‘전(甎 )’이 합쳐진 용어이

건축사에서 가구식과 다른 조적식 건축을 재평

므로, 일반적인 벽전 용도뿐만 아니라 건축 재

가하였다.

료로서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으며, 현

또한 한국건축의 주를 이룬 목조건축에서의 벽

재에도 충분히 그 뜻을 전달할 수 있는 용어이

전 사용과 그 범위를 고찰하고, 전형적으로 나

다. 특히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에서는

타난 건축 특징을 연구하였다. 특히 한국건축에

‘벽(甓 )’^‘전(甎 )’의 의미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서는 조선후기 벽전 사용의 확대에 따른 목조건

사용하였고, 일반적인 벽전을 지칭할 경우에는

축의 벽체 형식과 구조 체계의 변화를 가장 명확

‘벽전’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벽전’은 조선 후

하게 볼 수 있는데, 목조건축의 구조 재료인 나

기 사회에 정착한 용어였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

무는 쉽게 불에 타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썩기

다. 따라서 ‘벽전’은 조선 후기와 현재와의 연속

때문에 이러한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화재와 부

성을 설정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용어인 것

식에 강하고 압축력에 효과적으로 지지할 수 있

이다. 또한 ‘벽전’은 당시 한국에서만 일반적으

어 내구적(耐久的)인 건축을 축조할 수 있는 조

로 사용하였으므로, 벽전을 광범위하게 사용한

적식 건축 재료인 벽전을 가구식 목조건축에 적

중국의 ‘전(磚 )’과는 구별되는, 한국의 독자성을

극 사용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조적식과 가구식

찾을 수 있는 용어이기도 하다.

구조가 갖는 각기 다른 구조 체계와 벽체 형식으 2. 한국 벽전의 발생

부 공간까지 변화하여 특유의 건축 형식을 나타

한국에서 벽전은 기와와 동일하게 목재

내고 있다. 또한 목조건축에서의 벽전 사용의 확

와 석재를 빗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목적

대는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건축과 그에 따른 의

으로

식의 변화 등을 수반하고 있는 것이므로 한국건

浪:B.C.108~A.D.313)의 초기 무덤 형식은 주

축에서 또 하나의 형식으로 포함시킬 수 있는 특

요 구조체를 나무로 축조한 귀틀무덤이었지만

징을 갖추고 있었다.

지하수와 빗물이 스며들어 쉽게 썩고 붕괴하므

이 외에도 벽전 관련 용어를 한국 고문헌(古文

로 내부 주검과 껴묻거리(副葬品)를 오래 보존

獻)을 통해 정리하고, 벽전의 건축적 의미를 표

하기 위해 귀틀을 벽전으로 덮어 보호하기 시작

현할 수 있는 새로운 용어를 제시하였으며, 생산

하였으며, 그 시기는 1세기 후반에서 늦어도 3

방식에 따른 벽전의 특징을 도출하고, 각 사회의

세기 초로 추정할 수 있다.

벽전 생산력과 직결하는 가마[窯]의 제도를 통해

고구려(高句麗 :B.C.37~A.D.668)에서는 적석

조선 후기 벽전 사용을 확대할 수 있었던 배경

무덤인 태왕릉(太王陵 )과 천추총(千秋塚)의 각

역시 살펴보았다.

단 윗면을 두께 2㎝의 붉은색 벽전을 덮고 빗물

무덤에서부터

기원하였다.

낙랑(樂

을 막아 적석무덤의 붕괴를 방지하였다. 특히 고 1. 용어‘甓甎 ’

구려는 환원(還元) 소성에 의한 낙랑의 회흑색

본 연구에서는 기존 연구에서 사용한 ‘연와’(煉

벽전과는 다른, 독자적인 산화(酸化 ) 소성 방법

瓦)^‘전’(塼)^‘벽돌’(壁乭) 등의 벽전 관련 용어

에 의한 붉은색 벽전을 생산^사용하였으며, 적

를 대신하여 한국 고문헌의 고찰을 통해 ‘벽전(

석무덤의 축조는 4세기말에서 5세기초이므로

甓甎 )’

그 이전부터 붉은색 벽전은 빗물을 막기 위해 사

용어의 사용을 제안하였다. 즉, 고려 말

이전의 문헌에서는 주로 ‘전(塼)’과 ‘전(磚 )’ 용

용하였던 것이다.

~

~ ~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

화성 포루, 『화성성역의궤』 卷首 「圖說」 砲樓外圖^砲樓裏圖.

로 인해, 조선 후기 목조건축은 형태는 물론 내

73


이러한 벽전 유구는 한국건축 중 가장 이른 시기

돌^기와와 함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건축 재료

에 속하므로, 한국 최초의 벽전은 구조체를 축

로서 자리매김 되어야만 할 것이다.

조하기 위한 목적보다 기와와 동일하게 빗물을

고려에서는 일반 백성들까지 사요(私窯)를 설치

막는 방수(防水) 목적으로 발생한 것임을 확인

하여 기와를 보편적으로 사용하도록 하였고, 벽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조선 후기 실학자인 박

전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함경남도 혜산(惠山)과

제가(朴齊家)의 『북학의(北學議)』에서도 “대개

삼수(三水)를 중심으로 험한 산지에 벽성(甓城 )

옛적에 돌로 목재를 덮어 썩는 것을 막았던 까닭

을 축조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은 고려에 이르러

으로 기와와 벽전이 발생한 것이다”라고 하여

한국의 벽전 생산과 그 사용이 일반화되었음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의미하는 것이며, 최초의 벽성 축조는 벽전의 사 용과 생산^축조 방법의 발달을 의미하는 중요

3. 한국건축의 벽전 사용과 그 의미

한 사건으로 평가하여야 한다.

조선후기 이전의 벽전은 주로 왕궁이나 절[寺]과

그러나 이러한 흐름을 계승한 조선 전기에는 벽

같이 위계가 높은 상위 계층의 건축이나 종교 건

전의 사용이 크게 위축되어 왕실과 연관한 아주

축에서 일부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을 통해

특별한 건축에만 사용하였을 뿐인데, 그 이유는

벽전이 갖는 의미는 위계를 나타내거나 종교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을 통해 크게 다

상징성을 담고 있는 숭고한 의미의 건축 재료였

섯 가지로 추정할 수 있었다.

음을 알 수 있다.

74

① 조선은 고려에서 숭상한 불교를 배척하

그 이유 중 특히 『구당서(舊唐書)』에서 ‘그들(고

고, 철저하게 주자 성리학을 신봉하는 유교정치

구려인)이 거처하는 곳은 산과 계곡에 의지하여

를 표방하였으므로, 유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모두 띠풀로 지붕을 이는데, 절과 신의 사당 및

의리명분론에 입각한 예학(禮學 )에 의해 벽전

왕궁과 관청 등은 기와를 사용한다’라고 하였는

사용이 엄격히 제한되었다.

데, 기와의 예이지만 이를 통해 생산 방법과 그

② 유교 윤리에 입각한 효(孝)사상은 부모

특징이 유사한 벽전 역시 동일하였던 것으로 추

를 길지 명당에 안치하려는 음택풍수(陰宅風水)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 확대를 초래하였는데, 벽전은 석회로 부착하

그리고 삼국의 벽전에는 기하학 무늬와 함께 연

면 수고(水庫)를 만들 수 있는 특징이 있으므로

꽃^봉황^용^도깨비^산경치^보상화 등 주로

건축재료가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 벽전은 ‘밀폐

왕실^불교와 관련하는 완결된 무늬를 새겼고,

(密閉)’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목조건축의 바닥과 벽체^기단 등에 사용한 것

부모를 안장하는 무덤에 벽전을 사용하면 지기

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무늬를 새

(地氣)와 수맥(水脈)을 차단하는 것으로 생각하

긴 벽전을 사용한 건축은 일반 건축과는 다른,

여 벽전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풍수지리사상

당시 사회에서의 위계와 권위^장엄을 나타내는

은 신라 말기에 성행하여 각 시기에 큰 영향을

건축이었으며, 이때 벽전은 권위와 장엄을 표현

미치고 있었지만, 벽전축 무덤을 축조한 것과는

하거나 의미하는 건축재료였던 것이다.

완전히 다른 관념으로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이러한 벽전은 상위 계층을 위한 벽전축(甓甎

내세운 조선만의 특수한 상황인 것이다. 그러므

築 ) 무덤과 불교의 신앙 중심인 벽탑(甓塔 ) 축조

로 조선 전기 궁궐이나 일반 살림집에서 벽전을

에 사용하였고, 낙랑토성에서는 벽전으로 축조

사용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관념에 의한 것으로

한 수고(水庫)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또한 당시

추정할 수 있지만, 이와 반대로 죽은 자를 위한

목조건축에서는 기단과 벽체^바닥에 주로 사용

묘(廟 ) 건축에서는 음(陰 )의 공간인 내부를 외부

하였으며, 이 외에서도 보도(步道)^배수로(排水

양기(陽氣 )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벽전을 사용한

路)^계단 등에 사용하여 한국건축에서 벽전은

근거가 되기도 한다.

매우 넓은 범위에, 다양하게 사용한 것을 확인할

③ 유교의 수직 윤리에 따른 사대사상(事

수 있다. 따라서 한국건축사에서 벽전은 나무^

大思想)으로 인해 종주국인 중국에서 보편적으

wIde Issue 2 : Simwon Architectural Awards for Academic Researcher

송산리6호 무덤 남측벽 입면도, 윤 무병,「무령왕릉 및 송산리 6호분 의 전축구조에 대한 고찰」 (『백제고고학연구』, 1993, 학연문 화사.), 133쪽.


한 굴뚝과 문^꽃담은 물론 심벽(心壁)^평벽(平

니고, 또 국력이 중국보다 약한 조선에서 사용

壁)^내심벽외평벽 형식의 벽체를 축조한 목조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관념이 팽배하였기

건축과, 지붕은 목조이지만 벽체는 내력벽을 갖

때문이다.

는 새로운 형식의 건축들을 축조한 것이다. 또한

④ 조선 전기에는 벽전의 생산기술과 가마

조선 후기 사회에 벽전을 급속도로 파급할 수 있

제도가 크게 발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벽전 생

었던 그 이면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승

산에는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였다. 따라서 벽전

염식(昇焰式) 가마인 벽요(甓窯 )로 인해 적은 땔

은 그 사용이 크게 줄었고, 그에 따라 생산기술

감으로도 많은 양의 벽전을 생산할 수 있었던 까

은 물론 벽전의 건축 특성을 명확하게 파악하지

닭인데, 이는 결국 조선 후기의 벽전 생산력 발

못하였으며, 결국 벽전 축조 방법 등의 건축 기

달에 기인하는 것이다.

술을 축적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한국사를 통틀어 유독 유교를 숭상한 조

⑤ 벽전을 제작하는 흙의 성질 또한 큰 요

선에서만 무늬 없는 벽전을 사용하였는데, 이

인이다. 조선의 흙은 중국과 달리 수분이 많고

는 유교에서 숭상하는 절제^간결^소박의 정신

흙의 입자가 굵어, 소성 때에 휨이나 뒤틀림^균

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엄격한 예제(禮制)를

열 현상이 쉽게 발생한다. 때문에 중국보다 생산

회복하기 위한 조선에서는 화려^장엄을 위주로

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여 벽전의 대량 생산이

하는 종교 건축을 대신하여 유교의 합리성과 질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일반적 사용은 더욱 어려

서 존중의 정신을 반영한 절제된 단순미와 단정

웠던 것으로 판단한다.

^검약한 건축조형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따라

이러한 다섯 가지의 요인에 의해 조선전기에는

서 유교를 숭상한 조선에서만 무늬 없는 벽전을

벽전의 사용 범위가 크게 줄었지만 기존 주장과

사용한 것이다.

같이 벽전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러한 특징은 시공(施工)과도 연관하는데, 완

즉, 조선 전기에도 꾸준한 벽전 사용 주장들이

결된 무늬가 있는 경우에는 무늬의 의미와 상징

제기되었으며, 실제로 화재를 막기 위한 방화장

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벽전을 가공하여 사용할

(防火墻)과 묘(廟) 건축에서 양기를 막기 위한

수 없지만, 무늬가 없는 벽전은 화성의 벽전쌓기

벽체, 성균관^어실(御室)^정자각(丁字閣) 등의

특징과 같이 시공 때에 가공하여 축조하고, 미세

바닥 포장에 벽전을 사용하였으며, 이는 『조선

한 치수를 조정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의 벽전

왕조실록』을 통해 확인하였다. 또한 고려를 이

은 불교의 장엄을 위한 의장적인 목적보다, 당시

어 조선전기에서도 벽성을 축조하였고, 종묘의

사회가 요구하는 실제적이고 기능적인 측면을

신로(神路)^월대(月臺) 등 외부 공간 바닥에도

강조하여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벽

사용하였으며, 벽전을 사용한 목조건축으로 동

전은 종교의 장엄과 상위 계층의 권위를 표현하

관왕묘(東關王廟) 정전(正殿)이 유일하게 현존

는 상징적인 것에서, 실제적이고 기능적인 의미

하고 있는 것이다.

로 변화하였으며, 이는 곧 벽전 사용의 보편화와

조선 후기에 들어서자 목재 수급의 불균형과 북

관계할 수 있는 특징이라고 할 것이다.

학파(北學派)의 보다 적극적인 주장에 의해 새 로운 건축 재료의 필요성이 사회 전반에 걸쳐 대

4. 벽전 형태와 무늬

두하였다. 이러한 흐름을 바탕으로 조선에서는

한국에서 사용한 벽전은 장방형과 정방형 벽전

처음으로 1794~1796년, 화성성역에서 벽전을

이 주를 이루는데, 장방형 벽전은 일반 벽체나

가장 광범위하게 계획적으로 사용하여 다양한

바닥의 포장, 정방형은 바닥을 포장하는 데 주로

벽전쌓기와 건축 형식을 창출하였다. 이러한 화

사용하였다. 특히 신라 벽탑에서 정방형 벽전은

성의 영향은 조선 후기 사회에 급속도로 파급되

옥개 모서리 축조에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동관

어 궁궐은 물론 사대부의 살림집에까지 다양하

왕묘에서는 모서리를 안정적으로 축조하기 위

게 벽전을 사용하게 되었다. 즉, 벽전으로 축조

해 장방형 벽전과 동시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

~ ~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

무령왕릉 남측벽 입면도, 문화재관 리국, 「무령왕릉발굴조사보고서」 (1973.), 도판103.

로 사용하고 있는 벽전은 조선의 건축재료가 아

75


↑ 신라 벽탑, 좌로부터 朝鮮總督府, 『朝鮮古蹟圖譜』4권(1916.), 449쪽.朝鮮總督府, 『朝鮮古蹟 圖譜』4권(1916.), 448쪽. 朝鮮總督府, 『朝鮮古蹟圖譜』4권(1916.), 451쪽. 진홍섭, 「安東錦溪 洞 化人寺址 塼塔」(국립중앙박물관,『미술자료』1호, 1960. 8.), 3쪽.

사다리꼴 벽전은 주로 벽전축 무덤에서 사용하

이러한 사실은 또한 백제^신라 벽전건축의 영

였는데, 설계 과정을 통해 제작한 벽체와 궁륭의

향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곡률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벽전이며, 이와 동

각 시대에는 그 당시 사회의 종교와 관념에 부합

일한 벽전은 조선후기 홍예 축조에 사용한 홍예

하는 무늬를 새겨 축조하였는데, 이를 통해 현

벽(虹蜺甓 )이다. 그 밖에 벽전의 두께가 서로 달

존하지 않는 벽전건축의 축조 방법을 유추할 수

라 사다리꼴 벽전을 이룬 경우도 있는데, 이 벽

있었다. 특히 백제 무령왕릉에 사용한 벽전은 각

전은 주로 외부에 석회 줄눈이 드러나지 않도록

무늬에 따라 사용 장소와 용도가 서로 다른 것을

뒤쪽에서 벽전을 접합하는 축조 방법에 사용한

알 수 있는데, 축조 이전에 이미 무덤을 설계하

다. 그러나 화성에서는 사다리꼴 벽전을 대신하

고 각 부분에 따라 벽전을 생산한 것이다. 이 때

여 일반 장방형 벽전의 뒤쪽을 뾰족이 가공하여

각각의 무늬는 기호 또는 부호의 역할을 한다.

석회 줄눈이 나타나지 않도록 축조하였다.

또한 각 나라의 벽전 무늬는 시대성과 민족성을

이외 고려 죽죽리(竹竹里) 절터 기단에 사용한

강하게 표출하는 양식적 특성을 나타내기 때문

육각 벽전, 고구려 벽탑에서 원기둥을 표현하기

에 벽전의 제작 시기를 유추할 수 있고, 각 나라

위한 원형 벽전, 신라 벽탑의 옥개에 사용한 곡

간의 영향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면 벽전과 절반만 경사를 둔 특수한 형태의 벽

대표적으로 중국 양(梁:502~557)의 벽전 무늬

전들은 벽전건축의 형태와 축조방법에 적합하

개념은 무령왕릉에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실제

도록 정방형^장방형 벽전과는 별도로 제작하여

적인 연꽃무늬는 크게 다르다. 또한 두 개의 벽

사용하였다. 특히 신라 벽탑 축조에서는 하중을

전이 하나의 연꽃무늬를 이루는 개념은 무령왕

크게 받는 부분에 철물(鐵物 )을 이용하여 벽전

릉의 벽전에서 신라의 임하사(臨河寺)터 벽탑과

과 벽전을 연결하였으며, 날벽전(墼甓甎 )에 철

고려의 신륵사(神勒寺) 벽탑의 벽전까지 이어지

물을 미리 연결하여 제작한 벽전도 발견되었다.

고 있어, 그 영향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낙랑 벽전축 무덤과 고구려에서는 직선 벽체를 축조할 경우에 벽전 자체에 촉과 촉구멍을 만든

76

모자벽전(母子甓甎 )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석회

5. 한국 목조건축의 벽전 사용 : 목조건축에서

없이 벽전을 연결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벽전은 삼국에서부터 벽체와 기단^바닥 등에

백제 벽전축 무덤과 신라 벽탑, 고려 장곡사(長

사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고구려에서는

谷寺) 바닥을 포장한 벽전에는 벽전의 사용 위

주로 바닥을 포장한 유구를 살펴볼 수 있었지

치를 표시하였는데, 이를 통해 벽전건축은 축조

만, 백제에서는 기단과 벽체에까지 다양하게 사

이전에 이미 치밀한 설계 과정을 거쳤고, 그에

용하였다. 신라에서는 한국 특유의 기단 형식인

따라 벽전을 생산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벽체석연(甓砌石緣 )이 시작되었으며, 목조건축

wIde Issue 2 : Simwon Architectural Awards for Academic Researcher


의 내부 바닥을 벽전으로 포장하는 것이 일반적

없다. 또한 서까래가 돌출하지 않는 것은 입면에

인 형식으로 정착하였다. 특히 한국 최초로 벽성

서 ½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건축의 형태를 좌우

을 축조한 고려에서는 삼국의 벽전 사용을 바탕

하는 요소인 지붕의 역할이 감소되고 벽체 부분

으로, 벽전으로 축조한 목조건축의 벽체와 벽체

이 중요한 건축 형태 요소로 부각하여 목조건축

석연 기단 형식을 완성하였다. 이러한 한국 목조

의 가구(架構) 보다 벽체에 의한 볼륨(volume)

건축의 벽전 사용은 조선 특히 벽전을 확대하여

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결국 조선 후기의 목조

사용하기 시작한 18세기 이후, 매우 다양한 형

건축은 기존 가구식 축조 방법에서 조적식으로

식의 벽체를 벽전으로 축조하여 기존 목조건축

변화한 것이고, 그에 따라 하중 전달은 물론 형

과 매우 다른 건축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태까지도 변화하였다. 또한 내부 공간에서도 큰

건축의 축조 재료는 분명 목조건축의 가구식 구

변화가 일어나는데, 기존 심벽과는 달리 4면의

조 재료인 나무가 대표적이지만, 이러한 벽전 사

벽체를 완전히 밀폐시킬 수 있는 벽전으로 축조

용은 한국 목조건축의 형식 변화 또는 각 시대의

하기 때문에, 더욱 폐쇄된 내부 공간을 형성할

요구에 부합하는 건축 형식을 초래하였다. 따라

수 있으며, 좌우 측벽에는 조창(照窓)을 뚫기 때

서 한국건축에서 조적식 건축 재료인 벽전은 매

문에 직사광선을 유입할 수 있다. 따라서 내부

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공간은 도둑과 동물^화재로부터 안전한 공간이

특히 18~19세기를 전후하여 벽전을 적극적으

며 직사광선의 유입에 의해 공간의 인식 체계가

로 사용하기 시작한 조선 후기에서는 서까래와

달라진 것이다.

들보 등으로 축조한 목조지붕을 축조하고, 기

이러한 한국건축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하기 시

둥과 인방 등의 목조 부재를 전혀 사용하지 않

작한 건축 형식은 목재의 부족으로 나타난, 조

고 벽전으로만 축조한 내력벽을 갖는 건축 형식

선후기 사회가 요구한 새로운 건축형식이었으

이 출현하였으며, 화성(華城 ) 남수문(南水門 ) 포

며, 구조 체계와 형태^내부 공간 등에서 한국건

사(舖舍 ), 화성행궁(華城行宮 ) 무고행각(武庫行

축의 가장 큰 변화를 의미한다. 또한 가구식 축

閣)의 화약고(火藥庫 ), 서울 번사창(飜沙廠 ), 윤

조 방법에 의해 주목을 받지 못했던 조적식 축조

승구(尹勝求 ) 가옥 창고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법이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일반 건축에까지 확

벽전으로 축조한 내력벽을 갖는 일반 건축은 상

대되어 나타난 건축 형식으로 평가할 수 있으므

부 하중을 목조 기둥이 아닌 벽체가 지지하므로

로 한국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벽전건축으로도 볼 수 있는데, 하중 전달 방식에

갖고 있는 건축형식인 것이며, 더 나아가 현재와

서는 2차원적인 선적(線的 ) 부재가 절점(節點 )

연관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목조건축

을 통해 전달하는 방식에서 부재와 부재가 직접

형식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맞닿아 상부 하중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크게 변 화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건축 형식은 조선 후 기 사회가 요구한 조적식 건축이 일반 건축 형식 으로 대두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고, 한국 건축에서 가구식 건축에 의해 가려져 왔던 조적 식 건축이 일반 건축 형식으로 새롭게 부각된 것 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건축 형태에서는 일반 목조건축과 큰 차 이를 갖는데, 깊게 돌출된 처마와 짙은 음영을 만드는 처마 밑 공간은 한국 목조건축이 갖는 중 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그러나 목조 지붕과 벽 전 내력벽을 축조한 건축에서 벽체는 빗물에 부 식하지 않기 때문에 처마는 길게 돌출될 필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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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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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 어제의 나에게 감사하며……. 1999년 5월, 남들보다 늦은 논문을 마무리하느

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결국 하나의 벽전 역사책

라 전전긍긍하던 아련한 추억을 간직하고자, 그

이 되어 버렸다. 철저히 현장을 답사하고 눈으로

저 책상 한 켠에 두었던 작은 연구 결과가 10년

확인한 후에 논문을 작성하려는 원칙에 충실하

후에 이렇게 큰 결실을 맺게 될 줄은 몰랐다. 한

려 하였으나 석사논문으로서 다루기에는 어려

국성 탐구에 대한 학생건축상을 만들고 의례히

운 점들이 많았다. 일부분에서는 기존 한국건축

상을 수여하다가 이렇게 큰 상을 직접 받게 되니

사에서 논의하지 않았던 내용을 더욱 촉발시키

그들의 기쁨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기 위한 학문적^건축적 상상력으로 그 내용이

학부 2학년, 첫 설계 과제인 주택 설계에서부터

변질된 부분도 있었지만, 이 연구는 다른 연구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문화와 건축 전통에

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하나의 벽전 자료집으로

관심을 가지고 한국건축 답사와 많은 연구 문헌

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의 탐독을 시작했다. 이 땅에서 건축하는 사람으

대학에서의 한국성 찾기를 바탕으로 지금은 설

로 진심으로 한국건축을 이해하고 싶어 결국 대

계 현장에서 실무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건축 연

학원에서 한국건축을 전공하게 되었고, 서양 근

구에 타자가 된 입장에서 전통 벽전 관련 연구에

대건축(Modern Architecture)을 형성한 주

큰 진전이 없는 것 같아 아쉬움도 컸으나 심원건

요 원인이 산업혁명에 의한 신재료(철과 유리

축학술상 수상이 다시 한 번 전통 벽전에 대한

^철근 콘크리트) 사용에 기인한다는 것과 같은

관심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맥락으로, 한국건축사의 ‘modernity’에 대해

감사드릴 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먼저 심원건축

지속적으로 탐구하였다.

학술상을 제정하고 진행해 주신 심사위원과 관

현재를 중심으로, 현재와의 연속성을 가지는,

련자 모두에게 감사 드린다. 10년 석사 논문이

현재적 의미를 담고 있는 한국 전통건축의 탐구

한국건축계에 작은 흔적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량생산과 규격화의 특징

주심은 물론, 건축에 관한 올바른 인식과 사회적

을 가진 벽전(甓甎 :벽돌)이라는 건축재료에 관

관심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 건축의 인문적 토양

심을 갖게 되었고, 특히 벽전 사용에 따른 조선

을 배양하는 일은 그 어느 일보다도 중요하다는

후기의 목조건축 전통이 어떻게 변화하고, 현재

것을 동감하고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또한 단순

와 연속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연구

한 학문적 지식의 전달이 아닌, 학문의 태도와

하게 되었다.

연구 방법을 몸소 보여 주시고 지도해 주신 성균

벽전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하자 한국 역

관대학교 이상해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

사의 모든 시기에서 벽전 자료들이 쏟아져 나오

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에게 이 기

기 시작했고, 잘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깊이 연

회를 빌어 감사한다. ⓦ

구되지 않은, 뚜렷한 연구 없이 곡해되었던 유구

당선자 박성형은 1973년생으로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동대 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정림건 축 기획실 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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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Simwon Architectural Awards for Academic Researcher


와이드 9호 | 이슈 3 BIM을 이용한 디지털 건축설계 Wide Architecture : wIde Issue 3 no.9 : may-june 2009

최근의 건설 산업은 초고층화, 대형화, 복합화, 비정형화

산업계의 관심이 크게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추세로 방대한 양의 건설 정보들이 발생하면서 각 분야

BIM이라는 용어의 역사는 1975년 카네기 멜론

주체별 정보 전달 또한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Carnegie Mellon) 대학의 Chuck Eastman이 AIA

그래서 설계부터 시공, 유지 관리 단계까지의 일관적인

저널에 발표한 <Building Description System>

정보의 흐름은 각 주체간의 낭비적인 요인을 없애면서

을 시작으로 꾸준히 발전을 거듭해 왔다고 한다.( 『BIM

전체 건설 산업의 효율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Handbook』 , 이강/문현준 외 공역, 시공문화사, 2009,

인식되고 있다. 이 방법 중에 BIM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p15.) BIM에 대한 정의는 아직 하나로 널리 수용되는

있으며, 근래에 들어 BIM에 대한 요구가 건축계 내부뿐

정의는 없고 다양한 분야에서 정의되고 있는데, 요약해

아니라 외부로부터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보면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이란

그러나 BIM에 대한 기대와 함께 접근 방법론의 부재에

기획, 설계, 엔지니어링(구조, 설비, 전기 등), 시공, 유지

의한 혼란이 공존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에

관리 및 시설물 폐기에 이르기까지 컴퓨터의 가상공간에서

본지는 BIM에 대한 정의와 BIM을 도입하기 위한 접근

시설물의 정보 모델(Building Informatuin Model)을

방법을 살펴보고 건축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구현(Modeling)해 보는 과정(Process)을 말한다. 보다

보고자 한다.

쉽게 표현하자면, 시설물을 컴퓨터상의 가상공간에서 3차원적으로 표현하여 설계 및 시공(VDC : Virtual

BIM이란?

Design and Construction) 상의 산출물을 만들어 가는

최근 건축계뿐 아니라 건설 산업 전반에 걸쳐 BIM이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용어가 우리 주변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BIM과 관련한 다양한 소프트웨어들이 보급되고 있고, 여러 기관에서

전산화 동향과 CAD

많은 사례가 발표되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이를

국내 건축계의 전산화 동향을 살펴보면, 1980년대

홍보하는 언론 보도들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는 BIM에

초반에 PC(Personal Computer)가 대중에게 보급되기

대한 관심이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 1, 2년간

시작하였고, 1980년대 중반에 CAD(Computer Aided

← 수작업으로 작성된 도면 예 (1977, 종합문예회관, 공간건축). ↓ CAD를 이용하여 작성된 도면 예 (1990, 경기도립박물관, 공간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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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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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또는 Drafting)라는 도구가 설계 용역사에

(Volume)를 계산한다면 콘크리트의 양을 계산할 수가

알려지면서 현재까지 약 25여년에 걸쳐 설계도면 작성을

있다. 뿐만 아니라 3차원으로 구성된 자료를 통하여

위한 도구로 보편화되어 왔다.

CG(Computer Graphics) 작업을 할 수도 있고,

CAD는 도면 작성만 하는 것이라면 매우 유용한

3차원 계산을 통하여 임의의 단면을 잘라 표현하는 등의

도구임에는 틀림없다(실제로 이 용도로 주로 사용되고

추가적인 활용이 가능해 진다. 이러한 작업들의 집합이

있다). 그러나 이런 디지털화된 설계도면(CAD 도면)을

바로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의

추가적인 용도로 활용하기 위해 그 동안 많은 시도들

구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도면 작성 자동화, 물량 산출, 공정 관리, 내역서 연계

그렇다면, 아래 그림처럼 1990년대 중반부터 투시도 및

등)이 있었다. 하지만 자료 구조상의 한계로 인하여

조감도 등에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CG(Computer

일반적으로 활용되지는 못하였다. 이를 테면 현재의 2차원

Graphics)는 3차원 모델링 및 실제 상황을 묘사하기

CAD에서 벽선을 그리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2개의 선

위한 정교한 작업들인데, 이 작업도 BIM이라고 말할

(단순한 콘크리트 벽을 표현한다면)을 그리고 레이어를

수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CG 작업은 BIM이라고

‘벽(Wall)’이라고 정의하여 표현한다. 여기서 추가되는

얘기할 수 없다. CG 작업을 위한 3차원 모델에 들어

정보는 선의 종류(Linetype)와 색상(Color) 정도이며,

있는 정보는 형상 정보(Geometric Information)

추가로 필요하다면 벽의 높이를 입력할 수 도 있다. 이렇게

중심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설계 및 시공 등에 필요한

표현하여 작도하면 아래 그림처럼 사람이 벽이라는 것을

정보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BIM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인지하는 데 문제는 없다.

것이다. 즉, 이러한 CG용 도구들은 그 사용 목적이 설계

그러나 컴퓨터가 이러한 선의 집합이 벽이라는 것을

및 시공 등 건설 정보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실감 있는

인지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하다. 벽선을 합쳐서 하나의

형상을 표현하는 도구라 할 수 있다.

벽이라는 개념을 만들어야 추가적인 작업이 가능한데

결국 BIM이란 설계 및 시공, 유지 관리 등 시설물의

(예를 들면 이 벽에 마감선을 자동으로 넣거나 창호를 이

생애주기(Lifecycle) 과정에서 BIM 구현 도구

벽에 삽입하는 경우 등) 이런 추가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Authoring Tool)를 통해 각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별도의 복잡한 계산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혹은 안 되는

정보들을 입력하여 3차원 정보(Modeling) 자료들을

경우도 생긴다. 이렇게 안 되는 이유는 이차원 CAD의

만들어 내고, 이들을 각 분야의 목적에 맞게 활용하는 과정

자료 구조가 벡터(Vector) 중심의 자료 구조로 정의되어

(Process)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있기 때문이다. 벡터를 사용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새로운 방법-정보를 저장하고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건설 산업에서 3차원 설계 기법의 등장이 늦어진 이유 사실 이러한 개념의 기술은 최근의 첨단 기술은 아니다.

80

3차원 객체를 사용하는 새로운 방법

이미 항공기, 자동차, 기계, 제품 설계, 플랜트 등 제조업

이 새로운 방법이 3차원 객체(Object)를 사용하는

분야에서는 PDM/PLM(Product Data Management/

방법이다. 흔히 얘기하는 3차원 설계 방법을 말한다.

Product Lifecycle management)이라는 개념으로

여기서 말하는 객체(Object)란 건축물을 구성하는 요소를

설계부터 제조 공정을 통합하여 3차원 설계 기법을 이용한

기하학적인 정의와 연관된 자료와 규칙으로 이루어진

디지털 디자인 프로세스(Digital Design Process) 또는

것이다. 위의 예를 다시 풀어보면, 벽을 그리기 위해서

디지털 프로토타이핑(Digital Prototyping) 시스템을

선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벽’이라는 객체를 사용하여

구축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런 제조 공정의 특징은

필요한 정보를 입력하는 방법(벽의 두께, 높이, 재료 등)

설계부터 제조까지 일관된 자료의 흐름을 제공함으로써

으로 도면을 작성한다. 이 방법의 특징은 컴퓨터가 그려진

빠른 의사결정지원이 가능하고, 전체 생산 공정의 효율을

객체를 ‘벽’이라고 인식할 수 있다는 데 큰 차이가 있다.

높이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산업 분야는

이런 인식을 통해 컴퓨터상에서 여러 가지 작업이

한 번의 설계로 대량생산하는 구조(자동차, 가전제품 등)

가능해지는데, 쉬운 예를 생각해 보면, 도면에서 콘크리트

를 가지고 있어 시스템 구축에 드는 많은 비용을 분산할

벽이라는 객체를 사용한 것들을 추출하여 전체적인 부피

수 있다. 반면 건설 산업은 3차원 설계를 해도 시설물에

wIde Issue 3 : BIM을 이용한 디지털 건축설계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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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AD 도구(AutoCAD)에서의 벽선 작업 예(AutoCAD 2009 Version, Autodesk). 2. Revit에서의 AEC Object 예(Autodesk Revit 2009 Version, Autodesk). 3. CG(Computer Graphics)를 활용한 실내 투시도 예. 4. BIM 구현 도구(Autodesk Revit)로 작성한 3차원 시설물 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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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사용할 수밖에 없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물론 초고층 건물처럼 시설물이 큰 경우에는 활용도가 좋을 것이고, 아파트처럼 같은 형상이 반복되는 예외적인 부분도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를 보면 같은 형상을 가진 시설물은 없다), 또한 세분화된 수많은 분야의 조직이 협력해야 한다는

7

5. 디지털 프로토타이핑 설계 예 (Autodesk Inventor). 6-7. Disney Consert Hall(Frank O. Ghery, 2003. Photo courtesy of Dennis R. Shelden, Ph.D., Chief Technology Officer, Gehry Technologies. The picture is of the Disney Conference Hall, designed by Frank Gehry).

특성 등으로 건설 산업에서의 3차원 설계 방법의 등장은 구조적으로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컴퓨터 기술의 발달(HW, SW)이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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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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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지면서 건설 산업에서 활용 가능한 수준의 BIM

수 있는 친환경 시설물을 건설해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구현 도구가 등장하게 되었고, 여기에 연계된 많은 도구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식경제부에서 주도하여

(구조해석, 열 해석, HVAC 자동화, 간섭 검토 도구 등)도

다음 표와 같은 친환경 관련 정책을 향후 지속적으로

동시에 개발되면서 BIM의 현실화가 앞당겨 지고 있다.

유지할 것으로 보이며, 국토해양부에서도 BIM 기술의 긍정적인 부분을 인식하여 관련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건축설계 분야의 3차원 적용 사례

그러나 BIM이 시설물의 설계, 시공, 유지 관리의 전

건축설계 분야에서는 그동안 부분적 또는 전체적으로 3

생애주기(Lifecycle)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건설 산업 각

차원 적용 사례가 꾸준히 발표되어 왔었다. 특히 아래

분야에서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관심 요인은 다를 수밖에

그림처럼 비정형 건축물에서는 엔지니어링, 시공 방법

없다. 설계자는 자유로운 디자인과 신속한 의사 결정,

등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3차원 설계가 필연적으로

설계 품질 및 에너지 분석 등의 활용에 관심을 보이는

사용되어 왔다.

반면, 시공사에서는 시공성 검토와 각종 수량 산출, 공정

국내의 경우는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하여

공사비 관리 등의 활용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는 BIM

관심을 모으고 있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 파크

의 통합된 3차원 정보 모델을 통하여 그 동안 해결하지

(DDPP)>의 비정형 디자인의 시공성 검토를 위해 현재 3

못했던(2차원 CAD 도구로는 해결할 수 없는) 여러 문제를

차원 설계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근의 국내외적 화두로 친환경, 에너지 절감 등이 부각되고 있고, 그중에서도 아래 그림과 같이

BIM 성숙 모델과 통합설계 프로세스

건설 산업이 전체 산업 중에서 많은 자원을 사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BIM에 대한 혼란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어 각국의 정부가 친환경 설계에

있다. 각종 홍보용이나 보도 자료들을 보면 BIM이 기존의

주력하고 있다. 아래 그림은 2006년 전 세계 건설 산업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수단으로 표현되고

규모를 보여 주고 있는데, 세계 전체로는 4조 6천억 달러

있고, 실제로 BIM도구에 의하여 3차원 모델에 의한

규모이고, 약 1억 명이 종사하고 있으며, 전 세계 GDP

간섭 검토나 자동화된 도면 산출 등이 이루어지고 있어

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또 그중에서 미국의 경우 전체

초기보다는 분명히 진보된 기술을 구현하고 있는 것은

에너지 소비 중 36%를 상업용/산업용 시설물이 소비하고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BIM 구현 도구들이 완벽하지

있고, 65% 전기, 30% 가스, 30% 원자재, 30% 산업폐기물,

않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어렵다고 여겨지고

12% 용수를 소비하고 있다고 한다.

있으며(새로운 도구 이므로), 다른 한편에서는 현재

이런 건설 산업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BIM 구현 사례로 소개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의구심

친환경 설계 방법으로서의 BIM 설계 기술 도입이

(BIM 본래의 취지에 맞는지에 대한)이 들면서 BIM이

적극적으로 권장되고 있다. 이는 초기 설계 단계부터 각

설계분야에서의 IT 유행(Trend) 또는 새로운 SW도구

분야의 업체가 협력하고 가장 효율적인 시설물을 건설할

정도로 보는 시각도 상당히 있는 것으로 안다.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 결과적으로 에너지 사용을 줄일

이런 관점에서 미국의 NIBS(National Institute of

↓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 파크(DDPP)(출처 : http://ddp.seoul.go.kr) ↘ 세계 건설 산업 규모(SmartMarket Report, McGraw Hill Construction,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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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3 : BIM을 이용한 디지털 건축설계


성장의 정체

해법

신성장 동력 확충을 통한 신국가 발전

정책 방향

녹색 기술 개발

-녹색 산업 기술(주력 산업, IT산업, 그린 오션) -녹색 에너지 기술(신재생에너지, 탄소 회수 등) -녹색 과학 기술(핵융합, 극지 탐사) -녹색 기후 환경 기술(대기, 수질, 기상, 물 등)

핵심 주력 산업의 녹색 혁신

-수송 산업 에너지 효율 혁신(자동차, 조선, 기계) -소재 산업 친환경 소재 개발(철강, 석유화학 등) -IT산업 신환경 산업 진출(반도체, 가전 등)

녹색 산업 육성

-녹색 에너지 산업(태양광, 풍력, 연료 전지 등) -녹색 기후 환경 산업(기상, 재활용 등) -녹색 국토 해양 산업(물 산업, 그린 홈, 그린 빌딩)

적정 에너지 믹스 화석연료 고갈

화석연료 의존도 저감 및 에너지 효율성 제고 가치 사슬의 녹색 변환 달성

저탄소형 산업구조 재설계 기후 변화와 환경 위기

주요 정책 추진 과제

저탄소 고효율 사회경제 시스템 구축 기후변화 적응 대책 추진

-원전 공급 능력 및 국민 이해 기반 확충 -화석 연료 청정화(IGCC, CCS 등)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에너지 시장 효율화, 합리적 가격 체제 구축 -녹색 표준 및 국제 환경 규범 대응/선도 -그린IT 및 자원생산성 혁신 -녹색 유통/물류 혁신 -산업 부문 에너지 효율 향상 -지식 혁신형 경제로 전환(지식 서비스 산업 육성 등) -기후 변화 대응 기반 조성(배출권 거래 등) -기업의 녹색 경영 활성화 지원 -녹색 소비 촉진 및 실천 운동 추진 -수송/가정 등 부문별 에너지 효율 향상 -저탄소 녹색 교통 체계 구축 -국내외 산림 조성 및 한반도 녹지화

Building Sciences, http://www.nibs.org)가 2007

현행의 설계 프로세스는 일반적으로 기획설계

년 12월 발표한 National BIM Standard V1(http://

(PD:Pre-Design)-계획설계(SD:Schematic Design)-

www.buildingsmartalliance.org/nbims/)에서는 각

기본설계(DD:Design Development)-실시설계

부문별로 10단계의 레벨로 BIM의 성숙 모델(Capability

(CD:Construction Documents)로 구분된다. 이러한

Maturity Model)이라는 것을 정의하였다. 만약

단계의 구분은 업무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고, 협업과 자료의

단순히 3차원 모델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서 도면 산출

통합에 불리한 부분이 있는 듯하다. 특히, BIM 환경에서는

등을 한다면, 이 성숙 모델에서는 낮은 수준에 해당하는

이러한 업무 구분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BIM 도입을

미국 AIA(The 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

검토해 본 기업들이라면 BIM이 가야할 방향이라는

http://www.aia.org)에서는 2007년도에 다음과

점에는 공감하지만, 낮은 단계의 BIM 구현으로는

같이 BIM 환경에서의 새로운 ‘통합설계 프로세스

일부의 효과밖에 낼 수 없으리라는 판단을 하고 있으며,

(IPD:Integrated Project Delivery, http://www.aia.

언제 어떻게 BIM을 도입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org/about/initiatives/AIAS076700 )’를 제안하였다.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래의 그림에서처럼 현행의 전통적 설계 프로세스에서는

~

~ ~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

도전

83


각 설계 단계별로 참여 주체가 분절되어 있는데, 이러한

자연스럽게 구축되어 설계자의 지식수준이 높아질 것으로

분절됨은 각 참여 주체별 정보의 단절을 의미한다. 따라서

보며, 국내 실정에 맞는 통합설계 프로세스 매뉴얼 개발

아래 그림에 있는 것처럼 통합설계 프로세스는 이 분절된

및 BIM 가이드라인 등, BIM 설계에 대한 개념이 반영된

참여 주체를 앞 단계에서 통합하여 설계를 같이 진행할

연구 또한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런 통합 작업은 BIM 환경에서

또 BIM으로 산출된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친환경 건축물

가능하며, 프로세스뿐 아니라 인력, 시스템, 기술 등의

시뮬레이션, 시공성 검토, 에너지 관련 분석, 구조해석

통합된 형태로 이루어진다. 즉, 이를 통해 설계와 시공에

등과 협업을 통해 여러 부문의 진행 과정의 정보가 신속

이르는 모든 단계에 걸쳐 낭비적인 요인을 줄이고 정보의

정확하게 전달 또는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흐름을 일관적으로 유지함으로써 설계 업무 효율을 높여

설계품질 향상을 통해 발주자, 시공자, 설계자 모두가

전체적인 공기 단축과 자원 절약이 그 목적이라고 하겠다.

이익을 얻는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물론 이를 우리나라의 현업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아직

1980년대 중반에 시작된, 수작업을 통한 도면 작성에서

시기상조일 것이다. 그렇지만 BIM으로의 전환이 되려면

2차원 CAD로의 전환은 아날로그 자료(Analog Data)

국내 실정에 맞는 통합설계 프로세스의 개발도 병행하여

중심에서 디지털 자료(Digital Data)로의 패러다임

개발되어져야 한다.

전환을 의미하였고, 다시 2000년대 중반에 시작되고 있는 2차원 CAD에서 3차원 모델 구축을 통한 BIM으로의

BIM을 통해 기대하는 것

전환은 디지털 자료(Digital Data) 중심에서 디지털 정보

BIM의 도입이 이런 프로세스를 요구한다면 기존의

(Digital Information)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됨을

설계 방식, 구조, 체계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의미한다. 따라서 BIM이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건축계를

설계자에게 디자인은 물론 기술적(Engineering) 능력,

포함하여 건설 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통합 설계 능력, 협업 설계 능력 등을 요구할 것이며,

기회라고 인식한다면, 우리 모두가 가능성과 문제점을

결과적으로 전반적인 설계자의 능력은 현재보다 많이

동시에 냉정하게 바라보고 BIM을 통해 실현 가능한

향상될 것이다. 이는 결국 국내 설계 산업의 질적인 향상을

부분들을 계속 탐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건축계의

가져오면서 국제적인 경쟁력 또한 올라가는 효과를 볼 수

미래를 위하여 책임 있는 대비 방안을 함께 논의해 나가야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BIM을 중심으로 설계 업무

할 것이다. ⓦ

전체가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즉, BIM 설계 프로세스를 활용한 실무자 교육 지원 체계가-대학 교육을 포함하여-

글|강병철((주)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연구소장/상무)

글쓴이 강병철은 (주)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연구소장/상무로 건설 CALS 표준, 전자 도면 표준, BIM, 설계 프로세스 분야 등의 일을 하고 있으며 (사)한국건축가협회 정보위원회 부위원장, (사)빌딩스마트협회 재정위원장을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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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3 : BIM을 이용한 디지털 건축설계


와이드 9호 | 뎁스 리포트 Wide Architecture : wiDe Depth Report no.9 : may-jun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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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주택 | 최삼영 <주택 계획안 100선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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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계절의 변화가 수상하다. 봄을 느끼기도 전에 여름이 오고 가을

행할 수 있다. 그래서 주택 설계가 여타 종류의 건축설계 일보다 어렵

을 느끼기 전에 겨울이 온다. 기후가 바뀌고 식생도 그에 따라 조금씩

다고들 하는가 보다.

바뀌어 간다. 대구에는 이미 사과 농사가 재미 없어지고 포도를 심어야

이 집의 건축주 부부는 우연히 용인 동백지구의 단독주택 타운하우스

한다고 하니……. 파주에 혹시나 하고 심어둔 대나무는 아무 탈 없이 무

의 분양용 모델하우스에 들렀다가 집이 맘에 들어 건축가인 나를 찾아

럭무럭 잘도 자란다. 사람들의 삶도 자연을 따라 같이 진화해 나가는 것

왔다고 한다. 요구 사항은 간단했다. 그 집처럼 지어 달라는 것이었다.

인지, 아니면 사람만 유독 퇴화하는 것인지.

땅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요구 사항이 다소 황당했지만, 먼저 나를 알아

계절의 형태가 바뀌듯 집의 모양도 새로워지지만 살아가는 것이 불편

봐주고 찾아 오셨다니 고마워서 장시간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

한 집들이 많다. 건축가라고 불리는 사람에게 용역을 의뢰하면 공사비

를 나누었다. 사람을 알고 땅을 안 후,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 생각해

부터 그동안 살아오던 삶의 방식까지 모든 권리를 빼앗긴다는 건축주

보고 답을 얻는다. 땅은 서울에서 다소 먼 평택이니 사람부터 알아야겠

의 하소연을 이따금 듣곤 할 때면 가슴이 뜨끔해진다. 심할 경우는, 건

기에, 어떻게 살아 왔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물론 깊숙이 묻기도 답하

축가가 건축주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작품을 위해 집을 설계하는 것

기는 어려웠지만 가족 관계, 취미, 취향 등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몇 마

이라며 촬영과 관람을 완강히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고 들었다. 물론 건

디를 물었다. 그리곤 다음 코스로 현장답사 일정을 잡았다.

축주와 건축가 사이의 의사소통 과정상의 오해나 이해 부족 때문이겠

건축주가 나와 동갑이어서 대충 삶의 배경이 비슷하거나 짐작으로 눈

지만, 어쨌거나 단독 주택 수주를 어렵게 하는 일이다.

치 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현장을

법정스님이 말하길 최상의 도는 친절이라고 했다. 건축가는 건축주에

둘러보았다. 논을 성토한 넓은 대지의 일부로서 성토한 지 1년 정도 된

게 친절한 이해와 배려로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결과에 대한 이

어린 땅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확실치 않으나 프로그램이 대충 있어

미지나 그 속에서의 삶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일을 원만히 진

일을 진행하며 조정하기로 하고 개략의 규모를 정했다.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최삼영은 1985년 공간연구소에서 건축 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1994년 현재의 가와건축을 설립하였다. 2003년부터는 일본의 와세다 대학에서 객원 연구원 으로 근무하며 국제공모에 다수 참여하였다. 삶의 근거가 되는 모든 시설이 관심거리지만 최근에는 주택과 문화 시설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민마루 주택, 진주 선사박물관, 남해 실내체육관, SK 동백 아펠바움, 동원베네스트 용인 동백 동연재, 갤러리 소소, 터치 아트, 갤러리 엔토코 등이 있다.

↑초기안 모형.

건축주는 특별한 요구 없이 그저 나에 대한 신뢰로 잘 해 달라고만 했다.

나 더 만들어 같이 사용하겠다고 하니 이 기회에 시간을 벌어 다시 설계

제일 어려운 상대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송두리째 묻겠다는 심산으로

하자고 설득을 했다. 증축 건축과도 조화가 필요하니 다시 설계함이 어

들렸다. 고마워해야 할지, 도망가야 할지, 갈등이었다. 사실 그즈음 회

떠냐고 말이다. 그랬더니 소장님 작품이니 알아서 하시라며 인심을 써

사는 일이 많아 소화불량이었고, 일은 많고 경제적 도움은 별로 안 되는

준다. 작품? 왠지 거슬리는 단어다. 집이 아니라 작품이라니.

단독주택이어서 일하는 재미로만 보면 해보고 싶긴 하지만 계륵인 셈

간혹 주택 분양 광고에서 볼 수 있는 명품이니 예술이니 하는 말이 좋은

이었다. 건축주의 간곡한 부탁이 아니었으면 거절할 뻔한 일이었다. 배

집을 의미하고 표현하는 말인 줄은 알지만 나에겐 부담스럽고 거부하

부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때의 상황은 그랬다.

고 싶은 단어다. 집을 살아가는 사람의 생활보다 돋보이는 조형이 우선

저명한 건축가라서 줄 세워 놓고 일할 처지도 못되고 급한 일들 처리로

되어야 한다는 말 같아서 드는 거부감이다. 어쩌면 스스로 두 가지 상황

밤 세우는 식구들에게 미안하기까지 해서 처음엔 혼자서 웬만큼 진행

을 다 만족시킬 자신이 없어서일 수도……. 집은 이래야 된다는 원칙은

해 보다가 결정하기로 했다. 나막신 장사라면 그저 있는 신발 틀에다가

없다. 단지 집을 살아가는 거주자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믿는

하나 뚝딱거려 드릴 텐데, 그럴 수는 없고…….

다. 집은 땅을 근거로 펼쳐지는 거주자의 삶의 본원적 무대이며, 행복을

우선 급한 대로 그간의 틀 중에 하나를 골라 대지 위에 올려 보았다. 그

생산하는 가족의 둥지이다.

런대로 쓸 만해서 땅에 맞춰 조정한 후 도면화시키고, 간단한 모형까지

목구조의 스킵 형으로 계획된 초기안은 가족 관계를 긴밀하게 결집시

만들어서 건축주와 상의해 보니 의외로 아무 조건 없이 좋다고 한다.(

키는 데 목적을 둔 집으로, 다소 복잡하며 공간 활용이 확정적이라 융통

그래서 더 불안하긴 했지만.)

성이부족하고 지하 공사로 인한 공사비 증가가 예상되었다. 계단실을

허가를 넣고도 맘이 편치 않아 몇 날을 고민하던 중, 다행히도 여러 조

중심으로 자녀 공간과 부모 공간이 반층씩 물려 있어 세대간 소통은 원

건으로 착공이 미루어지고 옆 대지에도 조그마한 다용도의 취미실 하

활하며, 기다란 매스는 경사진 두 개의 지붕으로 분리되어 적절한 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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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 주택 정면도.

↑평택 주택 모형.

의 조형을 이루며 주변 산세와 잘 어우러진다.

지금 이곳은 인접한 건물이 없는 시골 논밭이지만 향후 개발로 많은 집

변경된 계획 또한 단열과 건강을 위한 환경이 고려된 목구조로서 패

들이 신축되어 주변을 천천히 에워쌀 것이며, 이 집을 중심으로 확장될

널 방식의 캐나다식이 주로 응용되었고, 부분적으로 구조미가 돋보이

것이다. 그래서 주변과의 관계를 예측하며 필지 경계에 집을 배치하고,

게 보를 노출시켰다. 창호도 가능한 목구조 기둥을 프레임으로 이용하

향후 인접한 집들의 배치에 적절히 조화되도록 마당을 비우고 증축을

여 목구조를 부분적으로 노출시켜 강조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경사

해나갈 예정이다. ⓦ

진 지붕 아래에는 거실이 두 층을 통합하며, 일층은 거실과 부엌, 그리 고 주인 부부 공간이 차지하고 이층은 자녀들의 공간이 자리를 잡았다. 특히 거실과 면하는 자녀의 방은 바닥까지 찢어지는 큰 창을 두어 일층 거실과의 시각적 연결을 고려하였다. 거실은 후정과 연속되어 다용도 건물과 연결되며 확장된다. 후정은 적 당한 크기의 활엽수를 심어 더운 계절엔 정취 있는 옥외 거실 및 식당으 로서 기능하게 했다. 두 개의 필지에 본채와 인접 배치한 다용도채는 향 후 증축을 고려하였는데, 사랑방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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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 주택 우측면도.

→ 평택 주택 종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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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 주택 1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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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 주택 2층 평면도.

평택 주택 건축 개요 ⓦ 대지 위치 :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기산리 일원 | 지역 지구 : 생산 녹지 지역(농업 진흥 구역) <창고 부분> 용도 : 창고 |대지 면적 : 660.00㎡ | 건축 면적 : 67.92 ㎡ | 연면적 : 67.92 ㎡ | 건폐율 : 10.29% | 용적률 : 10.29% | 규모 : 지상2층 | 구조 : 목구조 <단독주택 부분> 용도 : 단독주택 |대지 면적 : 660.00㎡ | 건축 면적 : 124.50 ㎡ | 연면적 : 176.35 ㎡ | 건폐율 : 18.86% | 용적률 : 26.72% | 규모 : 지상2층 | 구조 : 목구조 | 주차 대수 : 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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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건축물(02)B2* 강병국의 <건축과 영화 09> * 자료의 분류를 위하여 서두에 다음과 같은 약어를 추가한다. 알파벳 다음의 숫자는 해당 꼭지의 일련 번호이다. | Architect_건축가와 관련된 주제나 영화 | Building_건축물과 관련된 주제나 영화 | Producer_감독의 건축적 연관성을 언급한 영화 | Documentary_건축적 다큐멘터리 | City_미래 도시를 포함한 도시적 관점의 영화 | Miscellaneous_그밖에 건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영화

01

피터 그러너웨이 감독의 <툴스 루퍼의 가방 3(Tulse Luper Suitcases 3)>(그림01)에는 가우 디가 설계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Temple de la Sagrada Familia) 이 등장한다. 이 사르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최근 개봉한 우디 알렌 감독의 <빅키 크리스티 나 바르셀로나>에도 등장하며 구엘 공원을 비롯한 가우디의 여러 작품들이 잘 표현되고 있다. (그림02, 03) 마찬가지로 그리스 로마 시대의 건물이나 중세 시대의 유명 건물들이 등장하는 영화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예를 들면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의 <베니스의 죽음>에는 베니스의 유적들 이, 펠리니 감독의 <로마>에는 영화 내내 로마의 유적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아마 영화 제목 에 도시의 이름이 들어간 경우, 대부분 그 도시의 표면적 특성은 대개 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 는데…….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다. 특별한 원칙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 글을 통해 소개하는 영화나 건축물에 관한 선정은 주로 근^현 대 위주로 진행하고자 한다. 오늘은 유럽을 중심으로 몇 가지 영화와 건축물을 살펴보기로 하자. 02-03

르 꼬르뷔지에의 스타인 주택(Villa Stein, 1927)과 빌라 사보이(Villa Savoie, 1931) <세상의 종말(La Fin du Monde, 1931)>, 아벨 강스(Abel Gance) 감독 가르세 주택(Villa Garche)으로도 알려져 있는 르 꼬르뷔지에의 작품이, 마르셀 레르비에와 더 불어 프랑스 무성영화의 대표자로 알려져 있는 아벨 강스 감독의 영화에 등장한다는 자체 만으 로도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그러나 지원되는 자막도 스페인어나 이태리어 밖에 없고, 오래된 제작 연도만큼이나 화질도 떨어져, 다만 영상에서 가르세 주택만 확인할 뿐 내용을 모르니 답답 하기 그지없다. 누군가의 작품 평을 기대해 본다. <프랑스 연인들(French Postcards, 1979)>, 윌러드 휴익(Willard Huyck) 르 꼬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이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비교적 많은 장면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럽 기 그지없는 건, 아마 건축인의 눈으로 영화를 보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그렇지, 어울리지 않는 수많은 장식으로 뒤덮인 방, 발코니에 만들어 놓은 노천탕엔 화가 나기까지 한다. 다만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램프와 계단이 영화의 내용에 따라 잘 표현되어 꼬르뷔지에의 프로 미네이드(promenade)로 대표되는 건물의 동선을 일부 읽을 수 있으니 그나마 위안이다. 더불 어 1층 필로티 하부의 자동차 동선은 원형 그대로 재현되어 더더욱 다행이다.(그림04)

04

말레 스테뱅스(Robert Mallet Stevens)의 노아유 자작의 별장 (Villa Noailles, 1926, 프랑스 이에르 소재) <주사위 성의 비밀(The Mysteries of the Chateau of Dice, 1929)>, 맨 레이(Man Ray) 감독 스테뱅스는 우리에게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르 꼬르뷔지에와 더불어 양 세계대전 사이 프랑스에 가장 영향을 끼친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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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게리의 빌바오 구겐하임(Guggenheim Bilbao Museum, 1997) <007 언리미티드(The World is Not Enough, 1999)>, 마이클 앱티드(Michael Apted) 감독 영화의 도입부에 이 빌바오 구겐하임이 나온다.(그림05) 스페인 빌바오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일전에 소개했던 다큐 <프랭크 게리의 스케치(The Sketches of Frank Gehry)>에서도 게리의 스케치가 건물과 오버랩 되는 도입부 장면으로 게리의 아이덴티티를 유감없이 표현한 바 있다. <프랭크 게리의 스케치>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 상을 거머쥐었던 시드니 폴락 감독의 마지막 작품으로, 그는 작년 5월 운명했다. 칸 영화제의 심 사위원뿐 아니라 심사위원장까지 지냈던 영화계의 거목이었지만, 원칙이나 긴장감 없이 이야기 를 전개해 나간 이 다큐는 내게 영 아닌 듯하다. 물론 게리가 그렇게 원했을 수도 있겠지만……. <007 언리미티드>엔 리차드 로저스 경의 밀레니움 돔도 나온다. 05

자하 하디드의 파에노 과학센터(the Phaeno Science Center, 독일 Wolfsburg, 2005)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의 총격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인터내셔널(The International, 2009)> 에서 파에노 과학센터는 이태리 한 해안에 위치한 것으로 설정되며, 사진 속의 배경은 절벽으로 변해 있다.(그림06, 07)

장누벨(Jean Noubel)의 까르티에 현대미술재단 (Cartier Foundation for Contemporary Art, 파리, 1993)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극본에 빔 벤더스 감독, 존 말코비치, 장 르노, 소피 마르소 등 초호화군 단을 자랑하는 <구름 저편에(Beyond the Clouds,1995)>에서 까르티에 미술재단은 장 르노의 주택으로 표현되고 있다.(그림08, 09)

06-07

08-09

리카르도 보필의 아브락삭스 집합주거 (Palacio d'Abraxas, 프랑스 마린 라 발레(Marne-la-Vallee), 1983) 테리 길리엄 (Terry Gilliam)감독의 <여인의 음모(Brazil, 1985)>는 프리츠 랑 감독의 <메트

10-11

로폴리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와 더불어 건축인들에게 미래 도시 영화의 영 원한 바이블인 듯하다. 사람마다 평가는 다르지만 내 생각엔 뤽 배송 감독의 <제5원소> 또한 포 함시키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나아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포 함한 이 SF영화들은 건축 뿐만 아니라 영화사에 있어서도 그 작품의 가치를 높게 평가 받고 있 으며, ‘죽기 전에 봐야 할 … 시리즈’에 반드시 포함되는 명작들이다. 학창시절 한창 좋아했던 리 카르도 보필의 작품이 이 영화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보고도 몰랐음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영화가 그려내는 미래의 모습은 개인의 사생활까지 통제하는 전체 주의의 형상으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연상되듯 실제 테리 길리엄은 이 영화의 제목을 <1984 1/2>로 생각하기도 했었다. 따라서 영화는 나치나 무솔리니의 휘장, 혹은 개인을 압도하 는 공간으로 표현되고 있다.(그림10, 11) 포스트모던의 고전주의적 경향의 일부로 인용되는 아 브락사스 주거단지가 감독의 눈엔 이러한 전체주의적 느낌과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림 12) 로버트 드니로가 까메오로 잠깐 출연함 점도 재미있다.(그림13)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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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6

휴 스터빈스(Hugh Stubbins)의 의사당(Congress Hall, 1957) / 월터 그로피우스의 바우하우스 기록보관소(The Bauhaus Archive, 1979) 캐린 쿠사마(Karyn Kusama) 감독의 <이온 플럭스(Aeon Flux, 2005)>에는 여러 건물이 등장 한다. 모두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것으로, 첫 번째는 미국 건축가 휴 스터빈스(Hugh Stubbins) 가 설계한 의사당(Congress Hall, 1957)이다.(그림14, 15) 다음 월터 그로피우스의 <바우하우 스 기록보관소(The Bauhaus Archive, 1979)>(그림16)가 등장하는데, 이 건물은 바우하우스 의 유물들을 보관하고 전시한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바우하우스의 교육목표와 커리큘럼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대부분이 건축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건축 관

17

련 스케치와 모형들……. 소유한 자료의 35% 정도만이 전시되고 있다고 하니 그 전체 양은 상 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로피우스가 디자인한 시점은 1964년이지만 착공은 1976년에 이루어진다. 여러 가지 우여곡 절이 많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로피우스의 본래 디자인은 자연광을 유입하는 천창 과 더불어 몇몇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2005년엔 증축 현상설계로 세지마의 작품이 당선된다. 또 악셀 슐테스와 샤를로테 프랑크가 설계한 바움슐렌베크 화장장(Baumschulenweg Crematorium, 1998)(그림17)과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가 설계한, 아주 유니크한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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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의 벨로드롬(Velodrom, 1996)(그림18)도 영화에 등장한다.

한스 샤로운의 국립도서관(Berlin National Library, 1968) <베를린 천사의 시(Wings Of Desire, 1987)>, 빔 벤더스(Wim Wenders) 감독 (그림19) 너무도 유명한 영화라 오히려 영화평은 자제하는 편이 낫겠다. 한 도시의 존재 속에는 건물, 공 원, 광장과 같은 외형적 요소뿐 아니라, 그 도시의 역사와 또 그에 따른 기억, 이데올로기, 문화, 사상, 정치 등, 수없이 많은 요소들이 녹아 있게 마련이다. 사람이 보고 느껴야 할, 그리고 이해해 야만 할 이미지와 내용은 천사의 눈, 다시 말해 사람이 되고픈 천사의 눈을 통해 찬찬히 설명된 다.(그림20) 일본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 감독을 오마주한 <도쿄가(Tokyo_Ga)>처럼, 빔 벤더스 의 작품은 언제나 내 마음을 후벼 파낸다. 언제나 그렇듯 꼭 한번 보시길. 이 영화에 등장하는 베를린의 <국립도서관>은 1964년 한스 샤로운이 현상설계에 당선된 것이 지만, 준공은 1968년에 이루어졌다. 따라서 마무리는 샤로운의 제자였던 에드가 비시니에프스 키(Edgar Wisniewski)가 했다. 대부분의 영화가 건물의 외향적 특성에 머무는데 반해, 이 영화

19-20

는 도서관의 곳곳을 빠짐없이 물 흐르듯 평화롭게 표현한다.(그림21, 22) DVD C.E.(Collector’s Edition)로 구입하면 Interactive Map.(베를린의 촬영 장소 / 유적 소 개)을 포함한 다채로운 서플먼트(supplement)를 접할 수 있다. <멀고도 가까운(Faraway, So Close!, 1993)>이란 제목의 2편도 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페터 한트케의 시가 머릿 속으로 흐른다. ⓦ * 지난 호 영국 편에 이어 간단하게 유럽을 마무리하고 북미 쪽으로 넘어가려 했으나, 이태리 편 만은 다음 호를 통해 따로 정리할 예정이다. 글쓴이 강병국은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박춘명 선생의 예건축에서 실무를 쌓았고 한울건축과 신예건축을 거쳐 현재 ㈜동우건축 소장으로 있다. <포이동 성 당>, <쌘뽈요양원/유치원>, <장도박물관> 등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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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2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l’architecture d’aujourd’hui <내가 좋아하는 건축 잡지 09 | 이충기>

<l’architecture d’aujourd'hui>는 프랑스

와 함께 소개된 것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 5원칙에 충실하고자 했던

를 대표하는 유서 깊은 월간지이다. 1930년

1929~1930년에 완성된 poissy의 빌라 사보아가 크게 소개된 것과, 우

에 창간되었으니 무려 80년 동안 프랑스를

리 눈에도 익숙한 그의 독특한 스케치 역시 눈에 띠는 내용이라 할 수

중심으로 한 유럽과 세계의 건축 역사를 기

있다. 아울러 내가 구입한 10호 외에도 1930년 창간호와 7호 르 꼬르뷔

록해 오고 있는 셈이다. 발행 초기부터 월간

지에의 스승인 오거스트 페레(auguste perret) 특집호 혹은 1946년 6

으로 발간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99년

월호 리차드 누트라(richard j. neutra) 특집을 구입 신청하여 받아 볼

중반까지 월간으로 발행되다가 그해 후반부터 격월간으로 바뀐 것으

수 있다고 책 말미에 소개되어 있으므로 지금도 구입하여 소장본으로

로 기억하고 있다.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1999년, 파리의 한 서점에 들렀다가 눈에 띠는 책 한 권을 발견하고 반

그 동안 <l’architecture d’aujourd’hui>의 내용과 편집 경향도 시대

가운 마음에 - 처음 이 잡지를 구독한 것이 1998년부터였으니 익히 알

의 변화에 따라 많이 변화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표지는 그

고 있던 차였으므로 - 구입한 적이 있다. 그 책이 바로 1933년에 발간된

러한 변화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행된

<l'architecture d’aujourd’hui> 10호 르 꼬르뷔지에 특집이다. 책 표

지난 호들의 내용들은 전반적으로 세계 각 지역의 건축, 건축가 특집,

지에는 그의 본명 ‘le corbusier’와 스위스 이름 ‘pierre jeanneret’ 가

새로운 경향 등을 반복,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근작과 이슈

동시에 표기되어 있고, 책 발행 연번인 10이라는 숫자와 책 내용을 소

가 된 설계경기-특히 역사적 도시적 맥락에서-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으

개하는 architecture, urbanisme, decoration 이라는 글자가 선명하

며 하이테크한 건축을 상세도와 함께 담아내거나 신재료, 신공법을 게

게 박혀 있다. 1930년 무렵까지 르 꼬르뷔지에가 본명을 사용하고 있

재하고 있다. 이처럼 기본적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측면에서

었던 것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어서 이채로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

이 잡지가 역사만큼이나 여전히 보수적인 성향과 편집 노선을 견지하

떻게 60년을 훌쩍 넘은 이 잡지가 아직 서점에 남아 있을까, 궁금한 마

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건축적으로 유럽, 특히 프랑스적 성

음에 책의 제일 뒤페이지를 열어 보았더니 1933년 10호 르 꼬르뷔지

향을 느끼게 하는 단면이기도 하고 이 잡지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견지

에 특집판을 1992년에 한정판으로 새로 인쇄한 것이고 내가 구입한 것

하려는 의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은 한정 재인쇄판 210번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책 내용은 1920년대

노력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가지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

후반과 1930년대 초반의 르 꼬르뷔지에의 건축, 도시 작품과 그의 건

하고 건축 잡지로는 얇은 편인 8mm 두께 안에 담긴 80년 전통의 무게

축 이론들이 글과 함께 도면, 스케치, 사진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특히

감은 프랑스의 보르도와인이 주는 묵직함과 일치한다. 어설프게 두껍

그의 근대건축 5원칙인 필로티, 기둥과 벽의 독립으로 가능해진 가로

기만 한 실속 없는 몇몇 잡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

로 긴 창,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 옥상정원 등이 순서대로 사례

이충기는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연세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한메건축을 운영하면서 가나안교회(2001,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인삼랜드 휴게소(2001,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옥계휴게소(2005,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동다주택 등의 대표작을 내었다. 아울러 마을가꾸기, 공공디자인 등의 활동 과 건축기본법, 건축사법, 건축교육인증원, 건축사등록원 등의 법^제도 관련 활동, 새건축사협의회 활동 등 사회^공공적 분야에서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 다. 현재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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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온수리 성당 이용재의 <종횡무진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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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중엽 로마 교황청 영국 점령. 교회뿐 아

원. 선교는 좀 있다 하고. 인천 최초의 병원. 환

터너 주교는 나무 구하러 백두산 간다. 동해물

니라 영국의 정치, 경제는 교황청의 식민지가

자는 밀려들고. 말은 안 통하고. 머 이렇게 말

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두만강에서 소나

된다. 영국왕은 교황의 충실한 충복. 1,500년

이 어려운 거야. 중국어를 비롯해 5개 국어에

무를 뗏목에 실어 서해 바다로 끌고 나와 강

간 참는다. 두고 보자. 이를 간다. 영국이 로마

능통한 코프 신부도 한국어만은 노 생큐. 바디

화 앞바다 건너 강화읍까지 실어 나른다. 동력

의 식민지라고나. 헨리 8세는 캐서린 왕비가

랭귀지로 버틴다. 1891년 드디어 서울 공략.

선 없던 시절. 바람 따라 흘러간다. 족히 6개

맘에 안 든다. 교황청 법에 의하면 이혼은 안

지금의 정동 성공회대성당 뒤편 수학원 구입.

월 걸린다. 세월 다 가네. 나무 말리는 데 또 1

되고. 그래 교황 클레멘 7세에게 결혼 무효소

“아빠, 수학원(修學院)이 머하던 데야?”

년 6개월. 2대 주교 터너는 1900년 과로로 지

송을 낸다. 이혼소송이 아니고 무효소송이다.

“왕족과 명문가 자제에게 신학문을 가르치던

구 떠나고. 유언은 이렇다. 나 다시는 한옥 안

머리 좋다. 당연히 거부. 1534년 독립. 이게 성

학교.”

지을 거야.

공회다. 천주교와 성공회가 다른 점. 천주교 신

그래 30평 규모의 쓰러져 가는 한옥은 강림 성

3대 주교 트롤로프(1862~1930)가 이어 받는

부는 결혼할 수 없지만 성공회 신부는 결혼할

당이 되고. 대한민국 최초의 성공회 성당.

다. 1901년 강화 성공회성당 완공. 이제 강화

수 있다. 다른 건 같다. 로만 칼라도 같고. 결혼

“아빠, 강림(降臨)이 머야?”

도 북쪽은 됐고. 영국인 외과의사 로우스가 따

하기 위해 로마 교황청으로 부터 독립. 아니 영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인간의 형상으로 이 세

뜻한 지하수 가득한 온수리(溫水里)에 천막 치

국의 독립을 위해 결혼을 선택한다. 헷갈리네.

상에 태어난 거.”

고 병원 개업. 감초로 버티던 강화 백성들은 만

“아빠, 흰색 로만 칼라를 목에 착용하는 이유

서울은 이미 천주교와 기독교가 점령한 상태.

병통치약 아스피린에 뿅 간다. 신자들 넘쳐 나

가 머야?”

1896년 강화도에서 첫 세례자가 나온다. 김희

고. 1905년 온수리 성당 건립 착수. 돈은 없고.

“독신의 정결을 상징하는 거야.”

준. 잘됐다. 좀 에둘러 가자. 1899년 강화도로

트롤로프 주교는 강화 성공회성당 도편수를

“성공회는 먼 뜻이데.”

나간다. 이미 철종의 모친 용성부대부인 염 씨

다시 불렀다.

“거룩하고 공변되다.”

가 순교한 땅. 그래 조선 25대 왕 철종의 잠저

“주교님, 나무는 역시 백두산에서 가져 오는

“공변되다가 머야.”

인 용흥궁 인접한 언덕 사들이고 성당 건립에

게.” “터너 주교 과로사한 거 모르냐. 너 나 죽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다.”

나선다.

는 거 보고 싶냐. 그냥 뒷산에서 베어 와라.”

1889년 대한민국이 곧 뜰 거라는 소문을 들은

건축 총책임자는 제 2대 주교 터너. 명동성당

“강화 성공회성당 베끼면 되남유.” “됐걸랑.

에드워드 벤슨 캔터베리 대주교는 존 코프 신

은 고딕으로 갔는데 우린 로마네스크로 갈까.

나 카피 싫어해. 하나 물어 보자. 왜식 한옥 보

부를 초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 “근데 대주교

어차피 한옥에서 시작한 거. 그냥 한옥으로 간

니까 솟을대문 위에 방을 만들던데 용도가 머

님 조선이 어디 붙어 있는 나라인 감유?” “몰라

다. 당시 기독교 목사 아펜젤러가 비난한다.

냐.” “소작인들 농사짓는 거 감시하는 초소인

인마. 중국 근처에 있을 걸.” “신자는 있남유.”

“절은 지옥에 갈 자들이 지옥에 간 자들을 섬

디유.” “여기도 솟을대문 위에 방 만들어라.”

“없을 걸.” “갈 차비가 없는디유?” “야, 너도

기는 곳이다.”

“머하시게유.” “종 달게.” “근디 종은 왜 치는

이제부터 주교니까 네가 알아서 가.”

그 친구 몰라도 한참 모르는군. 종교라는 건 그

건 감유.” “종 치면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

코프 신부(1843-1921)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

지방의 토속적인 문화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

의 몸과 피로 변하걸랑.” “성당은 강화 성공회

을 나온 영재. 전 세계를 돈다. 가난한 나라만.

해야 돼. 여기가 독일이냐! 만날 하늘을 찌르

성당처럼 대문과 일직선 상에 놓으면 되남유.”

1890년 의사 랜디스와 와일스, 간호사 수녀 두

게. 한양에서 제일 집을 잘 짓는다는 도편수 스

“90도 꺾어라.” “중층으로 하면.” “됐걸랑. 단

명 대동. 싱가포르, 홍콩을 거쳐 제물포에 내린

카우트. 경복궁 중건에 참여했던 국보급 스타.

층으로 해라. 돈 없음.”

다. 물론 배타고 가다 허리케인 만나 물에 빠져

중국인 돌쟁이도 스카우트해 오고.

도 보험처리 안 되는 거 아시죠.

“주교님 적송이 필요한디유?” “그게 어디 있

인천 중구 송학동에 병원을 차렸다. 성누가병

는데.” “백두산에 가면 구할 수 있을 걸요.”

Wide Architecture Report no.8 : march-april 2009


글쓴이 이용재는 명지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건축 평론을 전공했다. 1984년부터 1990년까지 월간 <건축과 환경>의 기자를 지냈으며, 월간 <플러스 > 편집장을 거친 바 있다. 2002년 이후 택시를 운전하며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좋은 물은 향기가 없다』, 『왜 살기가 이렇게 힘든 거예요?』, 『딸과 함께 떠나 는 건축여행』등의 책을 썼다.

“수단(Soutane)은?”

성당을 베꼈다. 이제 성 안드레아 성당은 역대

당.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52호.

“밑에까지 내려오는 옷.”

주교들의 유품을 전시하는 기념관.

“아빠, 안드레아가 누구야.”

신부는 검은색, 주교는 자색, 추기경은 붉은

1992년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 관할에서 독립

“예수의 12 제자 중 한 분. 수석 제자인 베드

색. 추기경은 흰색 수단을 입는다.

관구로 승격한 대한성공회는 현재 교회 150

로의 동생.”

“사제가 되려면 몇 년 걸려.”

개, 신자 6만 명, 성직자 200명. ⓦ

1914년 강화 성공회성당에 최초의 신학원 설

“6개월 교리 강습. 3년 신자. 신학교 7년. 군대

립. 최초의 세례자 김희준 1호 사제 서품. 검은

2년. 최소 12년 6개월.”

색 수단을 걸쳤다. 난 이제 세상과의 인연을 끊

“세상에 쉬운 일이 없군.”

은 성직자.

“응.”

“아빠, 사제(司祭)가 머야.”

사제관은 인천 유형문화재 자료 41호. 2004년

“미사를 지내는 사람.”

새로운 온수리 성공회성당 신축. 서울 성공회

1906년 완공. 현판을 걸었다. 성 안드레아 성

↑ 온수리 성당 측면 전경.

↑ 온수리 성당 정면.

↑ 온수리 성당 내부.

↑ 솟을대문을 응용한 출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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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본기(Roppongi, 六本木) 최충욱의 <공간 전달자 04>

록본기 힐즈 Roppongi Hills 록본기 힐즈는 1986년 재개발 계획을 수립하여 2000년 공사 착수, 2003년 완공하기까지 약 17년 이상 수많은 협의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프로젝 트로서 주거, 문화, 상업, 업무 시설을 해결할 수 있는 도심 복합 단지 개발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실상 주거, 문화, 상업, 업무 시설을 결합하여 도 심 복합 타운을 형성하면 도심 재개발사업의 부가가치를 최대한 높일 수 있다는 전략으로 새롭게 시도된 개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VERTICAL CITY’ 라는 모토 아래 국제도시에 부합하는 문화 기능을 수행할 문화 허브를 목표로 했다. 또 모리 정원의 녹화, 록본기 힐즈 아레나 중심의 오픈 광장, 지하철 및 주차장에서부터 각각의 공간으로 이어지는 동선에 설치된 환경 조형물, 주거동과 이어지는 케이야키자카 거리의 시민을 위한 벤 치 디자인 및 장애자를 위한 시설물들은 록본기 힐즈의 적극적인 공공 디자인 및 환경디자인 활용 사례를 보여 준다. 완공 당시는 록본기 일대의 상징적인 랜드 마크와 문화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해내었으나, 최근 인근에 신축된 미드 타운의 오픈으로 상당히 위축된 상황이다. www.roppongihills.com ⓦ 개발 : Mori Group, 재개발 조합(400명) ⓦ 설계 : 마스터 플랜 - Kohn Pedersen Fox Associates(KPF), Jerde Partnerships, Mori Building Co. Ltd / 건축 - Obayashi+ Kajima Joint Venture(메인 오피스), Toda Corporation+ Fujita Corporation Joint Venture(고급주거) ⓦ 부지 면적 : 84,801㎡ (약 11ha) ⓦ 연면적 : 724,524㎡ ⓦ 용도 : 복합 시설 ⓦ 업무 시설 : Mori Tower(지상 54층, 지하 6층) / Gate Tower(지상 15층, 지하 2층) ⓦ 주거 시설 : 4개 타워(800 Units/ 6, 18, 43, 43층), 1개 임대형 고급 아파트 ⓦ 숙박 시설 : Grand Hyatt Tokyo ⓦ 문화 시설 : Mori Art Center / Ashai TV Midtown Design Hub ⓦ 상업 시설 : 230 Shop & Restaurants ⓦ 총 공사비 : 약 2,700억 엔 ⓦ 완공 : 200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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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최충욱은 건축을 전공한 뒤 월간 <이상건축>과 <건축문화>, <플러스>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이후 몇 개의 출판 매체 기획사에서 건축과 인테리어, 건설 관련 출판을 코디네이션 했다. 최근까지 도시 건축 전문 여행사에서 해외 벤치마킹 답사를 수년간 진행하면서 해외의 다양한 도시 건축 공간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시작했다. 세계의 도시, 건축, 조경, 인테리어 등 공간 디자인과 관련된 커뮤니티 네이버 카페 <스페이스투어> 운영자를 맡고 있으며, 공간전달연구소 초이스페이 스 <choi’s pace>를 운영하면서 해외 도시 건축 가이드북 제작과 매거진 발행에 집중하고 있다.


➌ 록본기 힐즈 레지던스 Rop-

➊ 모리 타워 Roppongi Hills

➋ 아사히 티브이 TV Asahi

ⓦ 준공 : 2003. 04 ⓦ 설계 : Kohn Pedersen Fox Associates(KPF), Mori Building Co. Ltd ⓦ 용도 : 오피스, 전시 시설, 상업 시설 ⓦ 규모 : 지상 54층 ⓦ 연면적 : 379,500㎡

ⓦ 준공 : 2003. 03 ⓦ 설계 : Fumihiko Maki(Maki and Associates) ⓦ 용도 : 방송 시설 ⓦ 연면적 : 73,700㎡ ⓦ company.tv-asahi.co.jp

pongi Hills Residences ⓦ 준공 : 2003 ⓦ 설계 : Toda Corporation + Fujita Corporation Joint Venture ⓦ 용도 : 주거 시설 ⓦ 규모 : 지상 43층 ⓦ w w w.roppongihills.com

➍ 미드 타운 MID TOWN ‘도심에서 즐기는 럭셔리한 일상’을 모토로 민간투자의 복합타운 도심 재개발 사례다. 쾌적한 환경의 녹지 공 간 속에서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을 향유하며, 디자인과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여 높은 수준의 삶을 충족시키 겠다는 미드 타운은 기존의 록본기 힐즈와 함께 동경 최고의 글로벌 프리미엄의 집산지를 이루고 있다. 특히 국립동경아트센터의 개관과 더불어 록본기 힐즈의 모리아트 센터와 이곳 선토리 아트 뮤지엄이 새로운 트라 이앵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부지 곳곳과 건물 내부에는 다양한 작가들의 아트 워크로 공공 디자인을 하였으며, 프로젝트의 로고에서부터 실내외 사인 디자인까지 통합된 토탈 디자인을 보여 주고 있다. 부지 내의 히노키쵸 공원과 각 건물의 옥상 및 테라스 가든 등으로 자연 친화적이고 인간 친화적인 휴식과 여가를 위한 공간으로 채워지는 풍족한 거리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록본기 힐즈와 더불어 록본기 일대의 양대 랜드 마크 로서 최근 록본기 힐즈의 문화와 소비 수요를 흡수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w w w.tokyo-midtown.com ⓦ 개발 : Mitsui Fudosan ⓦ 설계 : SOM / Nikken Sekkei Ltd / Tadao Ando Associates 등 ⓦ 부지 면적 : 4ha ⓦ 건축 면적 : 102,000㎡ ⓦ 연면적 : 563,800㎡ ⓦ 규모 : 6개동으로 이루어진 복합타운, 54층, 248m ⓦ 업무 시설 : Tokyo Midtown Tower ⓦ 주거 시설 : Tokyo Midtown Residences / The Park Residence at Ritz-Carlton / Oakwood Premier Midtown Tokyo ⓦ 숙박 시설 : Ritz-Carlton Tokyo ⓦ 문화 시 설 : Suntory Museum of Art / 21_21 Design Sight / Tokyo Midtown Design Hub ⓦ 상업 시설 : 130 Shop & Restaurant(Galleria / Plaza / Garden Terrace) ⓦ 완공: 2007.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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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➎ 디자인 21_21 사이트 21_21 Design Sight ⓦ 준공 : 2007. 03 ⓦ 설계 : Tadao A ndo Associates, Nikken Sekkei ⓦ 용도 : 전시 시설, 상업 시설 ⓦ 규모 : 지하 1층, 지상 1층 ⓦ 연면적 : 1,932㎡ ⓦ w w w.2121designsight.jp

➐ 정책연구원 National Graduate Institute

for Policy Studies ⓦ 준공 : 2005 ⓦ 설계 : Richard Rogers Partnership ⓦ 용도 : 연구 시설 ⓦ 연면적 : 31,925㎡ ⓦ w w w.grips.ac.jp

➏ 동경국립신미술관 The Na-

tional Art Center Tokyo ⓦ 준공 : 2006 ⓦ 설계 : Kisho Kurokawa architect & associates + Nihon Sekkei, Inc. ⓦ 용도 : 전시 시설 ⓦ 규모 : 지하 2층, 지상 6층 ⓦ 연면적 : 49,846㎡ ⓦ w w w.nact.jp

➑ 이즈미 가든 타워 Izumi Garden Tower ⓦ 준공 : 2002 ⓦ 설계 : 구로가와 기쇼 디자인 + Ove A rup+Nikken Sekkei ⓦ 용도 : 주거 시설, 상업 시설, 오피스 ⓦ 규모 : 지하 2층, 지상 45층, 216m ⓦ 연면적 : 208,401㎡ ⓦ w w w.sumitomo-rd.co.jp/izumi_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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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는 근대의 흔적들 손장원의 <근대 건축 탐사 09>

제국주의의 군함과 대포가 이 땅을 흔들던 19세기, 우리나라를 놓고 각

었다. 진해시청(구, 진해면사무소)은 시청을 옮기면서 대지를 매각하는

축을 벌이던 열강은 전국 곳곳에 그 날의 흔적을 남겼다. 그들은 조계라

바람에 철거되어 그 자리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고, 일본 은행 진해 지

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사람을 내쫓은 뒤 자기들의 거류지를 설치하고

점과 관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

자국에서 유행하던 양식의 건축물을 세웠다. 인천, 마산, 목포, 군산 등

려 창원을 거쳐 마산을 둘러봤다. 마산은 진해와 달리 근대 문화유산을

이 대표적이며, 이들 도시에는 그때 설치한 조계지가 지금도 구도심의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근대기 역사가 담긴 장소에

시가지로 남아 있고, 곳곳에 산재한 근대건축물은 독특한 장소성을 형

표지석을 세워 놓았으며, 근대건축물도 비교적 여러 채 남아 있어 어렵

성하고 있다. 그동안 목포와 군산은 여러 차례 답사를 다녀왔지만, 마

사리 찾아간 데 대한 보상으로 생각하며 위안으로 삼았다.

산, 진해 지역의 근대건축물은 직접 볼 기회가 없었다. 차일피일 미루던

그런데, 근대의 흔적을 지우는 일은 비단 진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

이 지역 답사를 결심하고 동장군이 한반도를 꽁꽁 얼린 1월 1일, 2박 3

닌 전국적인 현상이다. 국내에서 근대 문화유산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

일의 일정으로 마산, 창원, 진해 지역의 근대건축물을 둘러봤다. 인천에

용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천에서도 제물포 고등학교 강당을 등록

서 남해 지역을 가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은지라, 큰 맘 먹고 나선 길이

문화재로 지정하기까지 여러 어려움을 겪어야 했으며, 금년 2월에는 인

었다. 오전 4시에 집을 나와 KTX 광명역에서 4시 45분 고속열차를 타

천시가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하던 강화양조장이 철거되었다. 이처럼

고, 밀양역에 내려 새마을 열차로 갈아탄 뒤 오전 9시에 진해역에 도착

사라지는 근대건축물을 아쉬워한 김정동 교수는 와이드 7호에 ‘사라지

했다. 진해역을 출발해 중원, 북원, 남원 광장을 돌아보며 지리를 익힌

는 것에 대한 조가’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더구나 올해에 들어서는 근

뒤 본격적인 답사를 시작했다. 근대 문화유산의 보고라는 말만 믿고 많

대 문화유산 보호를 아예 제도적으로 금지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

은 기대를 품고 찾아갔지만, 진해 우체국과 몇 채의 일본식 주택을 제

다. 모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문화재보호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바로

외하곤 볼만한 건물이 없었다. 힘들게 찾아간 진해에서 확인한 것은 보

그것이다. 2009년 1월 22일, ‘일제강점기 식민 지배의 수단으로 이용

존 가치가 있는 근대건축물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사라졌다는 사실뿐이

되었던 군사 시설, 일본인 지주 주택 등이 문화재로 등록되어 보호를 받

마산 청원 여관 일제강점기 마산시 두월동 2가에는 유명한 여관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청원 여관은 그러한 여관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해방 이후 이 건물(일광 여관)을 매입하여 다다미 방을 온돌로 바꾸고, 천장도 개수하였다 한다. 1946년부터 1949년까지는 제일신마산 교회가 이 건물을 사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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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우체국 군항으로 개발되면서 많은 근대건축물이 세워졌지만, 해군기지 이전으로 고도제한이 완화됨에 따라 근대건축물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나마 진해 우체국이 남아 역사를 반추하고 있다. 한때 정보통신의 상징이었던 우체국이지만, 근대기에 세워져 지금까지 그 기능을 다하고 있는 우체국은 진해 우체국과 인천 중동 우체국뿐이다.

진해시 대천동 일대 일제강점기 진해의 모습으로 사진 우측의 육각 지붕 건물은 수양 회관이며, 지붕 첨탑은 현재와 달리 가늘고 긴 것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의 건축 연대가 1938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사진은 일제 말기의 모습으로 보인다.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마산이사청 / 창원군청 당초 1908년 마산이사청으로 세워져 1914년 마산부청으로 개칭된 뒤, 마산부청이 중앙동으로 이전하는 1936년까지 부청사로 사용하였다. 이후 창원군청, 의창군청으로 사용되다가 철거되었으며, 현재 이 터에는 경남대학교 대학원이 들어서 있다.

고 있으며, 이는 일제의 문물을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문화재로 인정하

경에 대한 부분이다. 등록문화재의 경우 현상 변경 기준은 이미 상당히

는 것으로 우리의 문화적 긍지와 자존심을 훼손한다’는 명목으로 문화

완화되어 있으나, 국가나 시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근대건축물은 도

재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치욕의 역사도 분명 이 땅에서 일어난

심 재개발로 보존에 엄청난 어려움이 따를 것이 분명하다. 침탈이 문

역사이다. 부끄럽다는 이유만으로 철거해야 한다는 논리는 또 다른 치

제라면 일제가 남긴 유산만이 청산 대상이 아니다. 제국주의의 흔적이

욕을 불러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문화선진국에서는 치욕이나 과

남아 있는 구도심의 가로는 재정비되어야 하고, 이와 관련된 모든 건축

오를 의미하는 네거티브 문화유산을 보존하여 귀감으로 삼고 있다. 한

물을 대상으로 해야 마땅하다. 나아가 나당연합군을 이끈 소정방(蘇定

국건축역사학회도 지난 4월 3일 성명서를 내고 “이 법안은 얼핏 우리

方)이 새겼다고 전해지는 ‘大唐平百濟國’이 새겨진 정림사지오층석탑

문화재를 보호하고 민족문화의 자긍심을 지킨다는 명분이 있어 보이

과 병자호란에서 비롯된 ‘환향녀’의 치욕이 서린 삼전도비도 이 개정안

지만 문화재에 대한 몰이해를 담은 졸속 입안”이라고 밝혔으며, 건축

을 적용해야 한다.

문화신문(제60호, 2009. 4. 16)에도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의 부당함을

조선총독부로 세워져 중앙청을 거쳐 국립 중앙박물관으로 명을 다한

지적하는 사설과 김정신 교수의 글이 실렸다. 상당수의 근대 문화유산

건축물 철거를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아직도 남아 있다. 근대의 흔적을

이 도심지에 위치하고 있어 개발의 걸림돌로 인식되는 마당에 이 법안

단지 지워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안타깝다. 도시는 공간과 시

대로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된다면 대부분의 근대건축물은 상당한 위기

간의 켜(layer)가 중첩되어 존재할 때 역사문화도시가 되고, 건축물에

에 처하게 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일제수탈에 사용된 지정문화재와 등

는 당대의 문화가 함축적으로 표현된 상징물이라는 데 문화적 가치가

록문화재는 ‘역사적 보존 자료’가 된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역사적

있다. 치욕의 상징을 없앤다고 그 치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제의

보존 자료에 대한 기록의 작성^보존이나 수리 및 관리에 필요한 경비

아픔을 기억하지 않는 자에게는 비슷한 아픔이 언제든 다시 찾아온다

보조 등을 할 수 있도록 하여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는 진리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

이 개정안이 발효됨으로써 가장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문화재 현상 변

진해면 사무소 1920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로 진해면사무소, 진해읍사무소를 거쳐 진해시청으로 사용되다가 최근에 철거되었다. 사진우측 제황산 정상의 탑은 일제가 1929년에 세운 러일전쟁 전승 기념탑이다.

강화 양조장 근대건축물을 가장 잘 활용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천에서도 강화 양조장이 올 2월에 사라졌다. 3년 뒤 강화군에서 매입하겠다고 소유자에게 알렸음에도 건물은 철거되었다. 명목상의 이유는 화재의 위험성 때문이라지만, 실제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후문도 들린다.

글쓴이 손장원은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인천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재능대학 실내건축과 교수로 있으며, 본지 편집위원, 인 천광역시 문화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다시쓰는 인천 근대 건축』 『건축 , 계획(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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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화적 상상력(Non-dialogic Imagination) 욕과 장자연 사건과 폭압적 정부 이종건의 <COMPASS 06>

폭력이 지독하고 만연하다. 이명박 정부의 통치 방식으로부터 사소한 우리의 일상 공간에 이르는 전 영역까지. 용천지랄한 세상이 부르는 욕 ⓦ 얼마 전에 방영한 10대들의 욕을 다룬 <KBS 스페셜>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학교 에서 내뱉는 그들의 욕이 근본적인 휴머니티를 파괴하는, 인간성을 철저히 부수는, 외설과 음란과 폭력과 상스러 움의 극한으로 범벅되어 있다는 것도 그러하지만, 그들의 모든 언어적 표현이 그야말로 온통 욕으로 발화된다는 사실이 더 그러하다. 욕이 바로 그들의 언어인데, 다만 그들의 부모와 우리가 그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까지 까맣게 몰랐던 것뿐이다. 그들의 욕지거리를 보며 나는 서늘한 전율을 느꼈다. 한 동안 멍했다. 그들이 욕을 하는 이유를 짐작하는 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잠시만 생각해 봐도 감이 잡히니. 그들은 생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장 불안정한 삶의 과정에 머물고 있으며, 무조건적인 점수 경쟁의 상 황에 내몰려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러하리라 여기는데, 특히 그들은 왕따에 대해 본능적인 수준의 저항 혹은 불안에 철저히 붙잡혀 있다. 그런데, 그들 위에 군림하는 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채널도 방도도 없고, 그 상황 을 벗어날 출구도 없다. 그들은 엄청난 억압을 그저 견디고 견디며 살고 있다. 게다가 마치 폭력이 그러하듯, 욕은 일단 발화되면 전염되기 십상이다. 욕은 왜 할까? 욕은 근본적으로 소통^대화의 두절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대화두절의 발생지는 더러는 나에게 있기 도 하고 더러는 상대에게 있기도 하다. 나는 소통하려고 애쓰는데 나의 소통이 차단되거나 먹히지 않는다. 치사하 고 더럽고 아니꼽고 억울한데 그것을 하소연 할 데가 없거나 하소연해도 아무 소용없다. 어떤 때에는 나 자신이 먼 저 대화를 포기한다. 나는 오직 욕으로써만 나의 심정^느낌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결 국 욕이란 나와 세상 간의 불화가 대화로 풀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터져 나오는, 세상에 대한 언어의 폭력이요, 감 정의 복수인 셈이다. “요컨대 세상이 지랄이다. 용천지랄이 세상이라 욕 안 하곤 뱃길 수 없다. 입성이 사납기 전에 세상이 사납고 입이 더럽기 전에 세상이 더럽기 때문이다.” 김열규 선생의 말이다. 폭력 앞에 뒤돌아 서는 민주주의 ⓦ 장자연 사건이 매일 뉴스의 일부를 점유한다. 뭇 존재는 그것이 파괴^소멸될 때 자신의 존재를 가장 강렬하게 드러내듯(WTC를 보라. 건축이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신인 배우 장자연 또한 죽고 나서야 스타만큼 이름이 회자된다. 이 비극의 아이러니! 인간이 사는 세상은 어디나, 그리고 어떤 역사의 시점 에서나 불평등하고 불균등하고 불공정하고, 강자가 약자를 밥으로 삼는 법이니 별스럽게 문제 삼을 건 없다 하겠 지만 이 사건의 바닥에 두껍게 눌러 붙은 동물적 폭력성은 좀 다르다(나의 한 지인이, 이런 일이야 미국도 마찬가 지지 않느냐? 되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답했다. 성을 둘러싸고 터진 스캔들이야 미국 대통령 클린턴부터 뉴욕 검찰 총장 스피츠에 이르기까지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적어도 거기에는 폭력이 개입되지 않았다). 장자연 사건의 본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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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인간이 약한 인간을 폭력으로써 즐기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도착적인 쾌락에 있다. 청와대 행정관 성 접대 뇌 물 사건에서 드러난 공권력의 수상한 거동처럼, 장자연 사건을 다루는 권력기관의 줏대 없는 짓거리도 이상하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대화가 아니라 폭력 행사로 이루려는 행태가 개인의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박정 희 군사독재 정권에서 뼈아프게 경험했다. 참으로 지독한 인권유린의 역사였다. 그런데, 엄청난 피의 제물로 일구 어낸 우리의 민주주의 토양이, 가까스로 이십 년을 넘기면서 또다시 불도저에 짓눌리고 있다. 잘 살게 해 주겠다 는 공약을 찰떡같이 믿고 위탁한 권력을 손에 쥔 이명박 정부의 폭압적 행태는, 세계의 살아있는 지성 노암 촘스키 (Avram Noam Chomsky)가 MBC의 W에서 명확히 폭로한다. 현재의 한국은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 기본권 등 이 공격받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민주주의 체제가 약화되고 있다.” 촛불시위에 참가한 아줌마들을 공격하고, 역 사 교과서를 공격하고, YTN을 공격하고, MBC를 공격하고, 인권위원회를 공격한다. 폭력을 사용하는 권력은 이 미 권력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폭력을 통해 상실하고 있는 권력을 필사적으로 만회하려는 몸부림일 뿐이다. 차이의 관점과 대화 메커니즘 ⓦ 르네 지라르(Rene Girard)에 따르면, 사태를 대화가 아니라 폭력으로 해결하려 드는 메커니즘은 관점의 차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체제의 안에서 보면, 차이들밖에 없다. 반대로 밖에서 보면 동 질성밖에 없다. 안으로부터는 동질성이 보이지 않으며, 밖으로부터는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두 관점이 대등한 것은 아니다. 안으로부터의 관점은 언제나 밖으로부터의 관점에 통합될 수 있지만, 밖으로부터의 관점은 안으로부터의 관점에 통합될 수 없다. (……) 밖으로부터의 관점, 즉 상호성과 동질성을 보며 차이를 부정하는 이 관점만이 (……) 폭력적 해결의 메커니즘을 발견할 수 있다.” 한 마디로, 폭력은 근본주의(절대적인 선이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절대적인 악이라는 사실)의 소산인데, 따라서 폭력의 사회에 절실한 것은 안으로부터 의 관점, 곧 차이의 발견/강화/생성이다. 그리고 차이의 관점에 기초한 인간관계와 문화는 대화의 메커니즘을 유 지한다. 건축과 예술을 품는 인문학을 자연과학으로부터 구별시키는 것은 대화적 특징이다. “자연과학이 단성적 이고 독백적인 지식의 형태를 추구한다면, 인문학은 다성적이고 대화적인 지식의 형태를 추구한다. 전자가 지식 의 결과를 중시한다면 후자는 지식의 과정을 중시한다.” 대화성은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의 사유에 가장 핵심적인 개념인데, 그에 따르면 작품의 의미는 오직 의사소통의 한 행위로서 “개인과 개인, 주관적 의식과 주관적 의식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창출된다. 왜냐하면, 의미라고 하는 것에는 최초의 의미도, 마지막 의미도 있을 수 없고, “이 세상에는 아직껏 결정 적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세계의 그리고 세계에 대한 궁극적인 말도 아직껏 행해지지 않았” 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화는 “우리가 보통 정상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어떤 공통의 규칙을 가지고 하 는 대화”가 아니다. 대화(dia-logue)란 근본적으로 두(dia) 사람 간의 말놀이(logue)로서, 상대를 다른 존재 곧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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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받아들일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종교인과 비종교인 간의 대화는 그래서 절망적이다. 종교인은 대상을, 대 화가 아니라 설득과 전도의 대상, 곧 가르침의 대상으로만 간주하기 때문이다. 대화가 서로 다른 존재 간의 의사소 통인 한, 그것은 상호 가르침^배움의 관계를 선행조건으로 삼는다. 거꾸로 말하자면, 가르침^배움이 발생하지 않 는 의사소통은 대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적 거래 너머 카니발적 건축을 상상하다 ⓦ 우리 건축 사회에 대화가 있는가? 상상력을 촉발하는 대화의 세계 로 초대하는 작품이나 아이디어가 우리에게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배워왔고 배우고 있는가? 건축가 아무개와 같 은 혹자들은 우리 사회의 개입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자신의 작품들에 대한 의견(주례 비평 의 형태가 대중을 이룬다)도 미국이나 유럽의 비평가(들)에게서 구한다. 그들에게서 받아내는 (호의에 치우친) 평 가가 더 가치가 있고 정치적으로 더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은 사대주의적 태도가 아닌가? 여자의 최대의 적은 여자라 하듯, 우리와 더불어 살면서 우리를 무시하는 또 다른 우리야말로 우리의 공공 의 적이다. 대화를 회피^거부하는 자들 간의 소통에서 나올 수 있는 상상은 도대체 무엇일까? 나의 아둔한 머리로 서는, ‘정치적 거래’밖에 떠올릴 수 없다. 그것도 은밀히 도모하는 암거래 같은 성격의 거래. 노무현이 억대의 돈을 요구하고 받았다는 것은(박연차의 주장), 정말 상상하지 못한, 허를 찌르는 일이다. 역시 사건은 건축이 아니라 정 치의 자손이다. 정치를 도외시하는 건축은 결코 사건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청소년의 욕은 대화를 요청하는 타자 의 언어인가? 그것이 장터나 길거리의 상소리 언어 혹은 인터넷과 문자 메시지 언어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그것 은 폭력 그 자체로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욕과 달리, 상소리 혹은 훼손되거나 굴절된 언어는, 지배 계급이 사용하는(공식적인) 언어의 형식과 규범과 품위에 맞서고 그것을 깨뜨리고자 하는 카니발화 된 언어, 곧 정치적 언 어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저잣거리의 건강한 욕에 걸맞는 카니발적 건축을 상상할 수는 없을까? ⓦ

글쓴이 이종건은 오클라호마 대학교 건축대학을 거쳐 조지아 공과대학교 건축대학에서 역사^이론^비평 전공으로 철학박사를 받았다. 귀국 후 이종건 건축연구소 를 개소하여 <국립 중앙 박물관>, <경상대학교 제2 도서관> 등의 설계 경기에 참여하였다. 1996년부터 동명정보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경기대 건 축대학원 교수로 있다. 우리 시대 가장 소중한 자리를 지키는 비평가로 『해방의 건축』, 『중심이탈의 나르시시즘』, 『텅빈 충만』등을 썼고, 역서『건축 텍토닉과 기술 니힐리즘(Gevork Hartoonian 저, 시공문화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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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와이드 書欌 09 | 안철흥>

고민하는 힘

는 것이다.” 강상중이 두 사람에게서 배운 삶의 자세는 그랬다. 시대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사계절 펴냄, 184쪽, 9500원

흐름에 올라타되 시대의 흐름에 빠지지 말고, 스스로 ‘고민하는 힘’을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고 불렀다. 사실 인류가 자신

발휘하자. 이것이 저자가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주는 조언이다.

의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 지난 세기만큼 격변기는 없었다. 풍요

『재일 강상중』이 강 교수 자신의 성장통 치유기를 적은 책이라면, 『고

로움과 빈곤, 살육과 평화, 과학기술의 승리와 종교 분쟁, 자유와 압제

민하는 힘』은 자신처럼 시대의 아픔을 겪는 후배들에게 스스로의 치유

등 전혀 상반된 가치와 현상들이 동시대를 수놓았다. 20세기는 이 모

법을 일러주는 책이다. 강상중이 보기에 지금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젊

든 것이 ‘극단’까지 치달아서 폭발 직전에 이른, 강상중 교수의 표현을

은 날 못지않은 무거운 고민을 안고 산다. 극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체

빌리자면 “압력솥”과 같은 세기였다. 지난 세기가 끝나갈 무렵 몇몇 학

제는 인간을 소모품 취급하고 있으며,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젊은이들

자가 새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지만, 21세기

은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일하지 않

벽두에 터진 9^11 테러는 인류에게 이번 세기 또한 만만치 않을 것임

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신조어)이나 프리터족(Free

을 상기시켜 줬다.

Arbeiter, 필요한 돈이 모일 때까지만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사람들을

강상중 교수가 『고민하는 힘』을 쓴 이유 중에는, 거창하

뜻하는 신조어), 아니면 비정규직이 되어 사회의 주변부

게 들자면 이런 ‘극단의 시대’를 함께 살아야 하는 후배들

를 맴돌고 있다. 우울증에 빠지거나 히키코모리(은둔형

에 대한 원모심려가 한 가닥 깔려 있음이 분명하다. 이 시

외톨이)가 되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도 늘고 있

대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정치학자 강상중의 해법

다. 이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일본의 100년

은, 지극히 ‘문청’적이고 인문학적이다. 책 제목으로 쓴 ‘

전 인물들의 행태와 비슷하다.

고민’이란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근대’는 개인의 시

강상중은 또 한편 서울대학교에 교환교수로 와 있으면서

대이고, 시대를 헤쳐 나가는 해법 또한 오롯이 개인의 몫

다른 유형의 젊은이들을 발견했다. “필요 없는 것을 생각

이다. 그래서 우리 나이로 예순인 강상중은, 그 자신 젊

할 여가가 있으면 전문지식을 익히고 유용한 정보를 가능

은 날 스스로에게 던져 봤음직한 질문을, 그가 이 책의 주

한 한 많이 획득하기. TOEIC이 900을 넘지 않으면 취직

요 독자로 상정하고 있음이 분명한 21세기의 젊은이들에

이 힘들다며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기. 이런 각박한

게도 똑같이 자문해 보길 권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귀속

분위기 속에서 미국식 프로그램을 필사적으로 소화하기.” 그의 눈에 비

되는가? 나는 어디에 근거해서 살아야 하는가? 나는 누구와 만나고 누

친 서울대생, 아니 평균적인 한국 대학생의 모습은 이랬다. 그러나 사실

구를 믿어야 하는가? 이 세상에 믿을만한 가치를 지닌 것이 과연 있기

이런 학생들과 앞서 언급한 니트족이니 프리터족이니 하는 젊은이들은

나 한 것인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강상중의 젊은 날 고민은 자신의 특수한 처지 때문에 증폭되었다. 수년

강 교수가 보기에 양 극단에서 헤매는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의 젊은 날

전 출간된 『재일 강상중』에서 스스로 밝혔듯, 그는 ‘재일(在日, 일본에

이 그랬듯,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일종의 디아스포라 상태에 빠져

서 재일한국인을 이르는 말)’이다. 일본에서 ‘재일’로 산다는 것은 우리

있다. 그는 자아, 돈, 지식, 청춘, 종교, 일, 사랑, 죽음 등 여러 주제를 종

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절박했던 것 같다. 그는 “일본인의 역사의 일

횡하며 젊은이들에게 인생 선배의 조언을 들려준다. 그리고 요즘 젊은

부를 담당하면서도 그 바깥으로 쫓겨난”, 동시에 “한반도 역사의 일부

이들에게, 비대해진 자아를 멈추고, 자기 성(城)에서 빠져나와서 자기

이면서도 그 탯줄에서 잘려 나간” “디아스포라적 반(半) 일본인”이었

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것을 권한다.

다고 스스로를 회상한다.

강상중의 글은 자신의 경험담과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이 풍부하게 인

당시 그의 우울한 청춘을 보듬어준 이가 일본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와

용된 덕에 쉽게 읽히며 흡입력 또한 크다. 이 책은 일본에서 발간된 지 1

독일의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였다. 막스 베버가 1864년생이고, 나쓰메

년 만에 10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이 책은 현재 시내 주요

소세키가 1867년생이니까 두 사람은 거의 동시대인이다. 지리적으로

서점의 인문서적 코너에서 판매량 1~2위를 점하고 있다.

매우 먼 독일과 일본에서 살았건만, 두 사람은 ‘근대’를 비슷하게 앓았

인문서이자 고급 자기계발서로 읽히는 이 책에서, 나는 입소문만큼의

다. 근대에 맞선 두 사람의 태도 또한 비슷했다. “시대는 거친 격류처럼

감흥을 맛보지는 못했다. 아마 내가 불혹을 훌쩍 넘겨버린 세대이기 때

흘러가는데, 그 흐름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그럴 때 현명한 방법은 스

문이리라. 강상중은 이 책에서 내내 “~해야 합니다” 류의 경어체를 사

스로 그 흐름에 올라타지만 그 흐름에 휘말리지 않고 시대를 꿰뚫어보

용하는데, 이 또한 머리 굳은 서생의 머리를 주억거리게 하기에 적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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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는 아니다. 사실 책 한 권 읽어서 ‘고민의 힘’을 얻기에는 이 시대

구자들에게 경고를 주었다는 점”에서는 성과가 있다.

의 ‘고뇌’의 무게가 좀 많이 무겁다. 그렇지만 내게 소득이 전혀 없었던

박홍규의 주장처럼, 니체가 민주주의에 적대적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서가에서 먼지 쌓인 채 꽂혀있던

니체는 영혼과 정신의 위대함을 끝없이 추구하는 ‘귀족적 급진주의자’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몇 권을 새삼 찾아내어 다시 읽었다. 그것만으로

였다. “강자의 덕은 능동적 자발성에서 나온다. 능동적 힘은 폭력과 권

도 나는, 충분했다.

력, 잔혹함과 희생의 용광로를 거치면서 발현되고 단련된다. 그 과정을 통하여 문화가 고양된다”거나 “민주주의는 타자의 강함을 시기하고,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질투하는 약자의 원한”에서 비롯했다는 등의 발언만으로 살펴보면 니

김진석 지음, 개마고원 펴냄, 304쪽, 16000원

체를 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하기에 충분하다. 니체가 살았던 19세기

니체의 캐리커처 위에 몇 겹의 액자를 포개 놓은 『니체는 왜 민주주의

말은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면서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떠오르던 시대였

에 반대했는가』의 표지 디자인은, 우리 시대의 ‘니체 해석학’을 보여주

다. 니체는 왜 시대정신과 역행하는 돈키호테 식의 ‘객기’를 부렸을까?

는 듯해서 재미있다. 그림 속의 니체처럼, 현실의 니체(학)는 수많은 얼

많은 연구자들이 니체를 “부르주아의 기득권을 편협하게 옹호한 철학

굴을 지녔다. 아이러니하지만 니체는 근대 이후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

자”(루카치)로 혹평하고 말거나,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그의 텍스트

이자, (이해받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가장 난해한 철학자이기도 했다.

가 현재의 정치(학)적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하버마스)

니체는 시인이자 예술가였고, 철학자이자 시대 비평가였다. 니체는 그

라며 자위하고 만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일방적이거나 온정적인 해석으

의 후계자들에게는 한없이 “착한 니체 씨”로 기억되었지만, 일부에게

로는 니체의 정치철학적 발언이 내포한 위험성을 경계할 수 없는 것은

는 미치광이, 여성혐오주의자, 인종주의자, 심지어 나치

물론, 유의미한 해석 또한 끌어내기 힘들다.

국가 철학의 원조로 비난받았다. 니체는 끊임없이 변신

이런 방식보다는 니체의 정치철학적 발언에서 19세기 말

했고, 이해 받기를 바라지 않았다. 니체는 “사람들이 나에

에 철학이 처한 현실을 읽어 내고자 한 김진석의 시도가

대해 말하지만 누구도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조금 더 절실해 보인다. 민주주의 시대에서 주인공은 철

라고 했는데, 많은 부분 그것은 스스로 자초했거나, 혹은

학자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었다. 철학은 자신의 특별한

의도한 것이었다.

덕과 통찰력을 적용할 현실을 잃어버렸고, 책 속에 갇힌

니체 전문가인 김진석 인하대 교수가 쓴 『니체는 왜 민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처럼 19세기 말은 철학과 민주주

주주의에 반대했는가』는 니체 철학의 입문서나 해설서가

의의 존재 이유가 처음으로 정면충돌한 시대였고, “그 충

아니다. 김진석은 니체의 철학적 발언들 가운데 그 동안

돌이 현대 이후 가장 요란하게 일어난 텍스트가 바로 니

간과되어 왔던(혹은 의도적으로 회피했던) 니체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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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였다.” 니체 정치철학의 “비시대성” 혹은 “반(反) 시대

철학적 발언들만을 다시 불러내어 논쟁의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논

성”은 이러한 시대 상황의 역설적인 반영이기도 한 셈이다. 니체가 당

쟁적인 문체의 메타 비평으로 일관하는 이 책은 ‘김진석의 “나쁜 니

시에 느꼈을 충격은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인문학자들이 겪은 혼란

체 씨”를 위한 변명’ 쯤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의 변론은, 그

스러움과도 비슷할 터이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다소 모호한 이름으로

가 지난해 펴낸 책 제목처럼 좀 ‘기우뚱한 균형’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불리던 위기 상황의 핵심은 아마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현실에 대해

김진석은 니체를 오독한 비판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되, 니체 정치철

확보하고 있었던 발언의 힘을 잃어버렸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라는.

학 자체의 모험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견제하면서, 니체를 ‘순수’ 철학

잠시 옆길로 샌 이야기를 되돌려 글을 마무리하자. 니체는 민주주의를

적으로만 편식해온 국내외 니체 연구자들에게 한 방 날리는 것까지 빼

‘약자들의 원한과 복수’에 의해 작동하는 체제라고 비판했다. 탈현대적

먹지 않는다.

관점을 지닌 철학 교수이자, 『사회비평』과 『인물과 사상』등에 밀도 깊

김진석은 박홍규 영남대 교수가 지난해 펴낸 『반민주적인, 너무도 반민

은 정치비평을 기고했던 김진석은 ‘약자들의 원한’이라는, 니체가 던진

주적인』을 읽은 것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화두에서 현대 민주주의를 위한 위대한 덕목들을 발견해 낸다. 김진석

박홍규는 책에서 “인종주의와 반민주주의가 니체 사상의 핵심이자 전

은 “니체는 민주주의를 위한 위험한 증인이다”라고 말한다. 말인즉 니

부”라고 주장했다. 김진석에 따르면 박홍규의 이 “유감스럽게도 단순

체의 민주주의 비판이 “위악을 무릅쓰는 일”이었으며, 니체를 여전히

하고 거친” 주장들은 상당부분 오독의 소산이지만, “이제까지 간과되

불완전하고 위험한 민주주의의 파수꾼으로 삼자는 뜻이다. 아래에 길

기 일쑤였던 니체의 민주주의 비판을 크게 부각시키고 게으른 니체 연

게 인용한 글은 ‘니체를 위한 변명’의 결론이자, 김진석 자신의 민주주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글쓴이 안철흥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월간 <말>지와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시사IN>에서 20여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했다. 그 동안 정치부와 문화 부에서 거의 절반씩 밥을 먹었는데, 건축계 쪽을 여전히 기웃거리는 것은 그때 어설픈 곁눈질로 사귀어둔 ‘인맥’ 덕분이라고 한다. 이미 ‘절판’ 상태라 이름을 밝히 기 좀 그렇다는 책 한 권을 쓰고 한 권을 번역했다.

의론이기도 하다. “현대 민주주의 체제는 아마도 약자들의 복수와 원한에 내재하는 합 리성 혹은 정당성을 창조적으로 인정한 덕택에 발전했을 것이다. 예 를 들어 ‘사회적 정의’란 무엇인가? 그것을 단순히 도덕적으로 이해하 지 말고, 창조적으로 이해해 보자. 그것은 약자들의 원한과 분노가 창 조적으로 인정되면서 새로 태어난 권리다. 이 점은 민주사회가 복지사 회로 갈수록 명확해진다. 복지사회로 가는 과정은 약자들의 다양한 원 한과 분노를 정의로 해석하고 전환해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 이다. 이 점을 긍정하는 것은 다원적 민주사회로 나아가는 데에 매우 중 요한 일이다.” ⓦ

건축과 시간 속의 운동 김원갑 지음, 시공문화사 펴냄, 444쪽, 22000원 현재 우리가 만나는 건축은 진화의 산물인가? 도대체 어떤 동인으로 말미암아 진화 프로세스를 밟아온 것인가? 이 책 은 운동의 개념을 빌어 현대건축의 역사를 투영하고 있다. 시간 속의 이동과 움직임, 변화 등의 개념을 통해 20세기 건 축의 변화를 추적함에 있어, 제2기계시대의 건축으로 명명되는 1960년대 이후 건축의 양상에 특히 주목하고 있는데, 이는 20세기 초 제1기계시대 건축이 물리적 공간의 한계 내에서 작가에 의해 임의 조작된 데카르트적 운동 공간의 개 념화 단계였음을 성찰하고, 지난 50년 간 벌어진 현대건축의 운동 개념은 공간보다는 시간의 결과로, 시간의 흐름 속 에서 만들어지는 변화라는 개념의 일반화에 동조를 구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근거하고, 베르그송의 질적 다양체로서의 시간과 지속에 대한 철학적 개념과 그것을 발 전시켜 운동을 다양체 속의 잠재성의 현실화로 파악한 들뢰즈의 해석을 수용하고 있는 이 책은 드디어 건축 자체가 실제로 움직이고 이동하는 유 목적 대상으로 나타난 한 시기를 기억하며, 오늘날의 가장 강력한 건축적 이슈로 떠오른 발전된 컴퓨터 공학과 디지털 환경의 통합을 매개로 하는 다이어그램의 건축 향방에 대하여 적시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드로잉 시대의 종언과 다이어그램 시대의 발흥에 따른 세 세한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경희궁 앞에 임시로 설치된 구조물 <트랜스포머(2009, 렘 콜하스)>의 형태 변화를 위하여 작동하는 숨겨진 긴 팔(크레인)은 건축 기술의 아 이러니다. 이는 20세기 초 미래파 건축가들에 의해 드로잉 되었던 크레인을 이용한 건축의 현현(顯現)단계 그 이상이 아니다. 그 점 이 구조물이 보여주는 대중적 호감도 또는 충격적 제스처가 상당부분 상업 자본의 알레고리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의 미한다. 현대건축의 운동성에 직면하여 종국엔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반응의 건축을 탐닉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하고, 현재 다수의 건축 실험이 그것에 다가서는 과정임을 우리가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는 대상으로서의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기술력의 조 화는 금세기 건축의 최고 목표 지점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새로운 유형의 형태발생이론에 입각한 단서들을 제공하는 데에도 주력하고 있다, 통상의 건축 역사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있는 이유다. 책의 마지막 쪽을 넘기는 순간에 제2기계시대 건축의 경계면이 제1기계시대의 그것과 교묘하게 중첩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의 건축적 실험을, 지난 세기의 노동과 오락, 혹은 실용성과 욕망 등 대립적 관계항들 사이의 진동과 휘어짐을 의미하는 벡터, 즉 ‘가변적 힘들의 게임’으로 파악하는 저자의 발랄한 통찰을 접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혹자는 현대건축의 변화무쌍한 양상을 파악한다는 것이 무모하다는 위축된 심리로 도시 공간을 자극하는 건축의 현존을 애써 외면하려 든다. 또 한 기술을 지배하는 자본의 크기가 곧 건축의 창작성으로 비유되는 건축의 지난한 역사가 오늘도 변함없이 되풀이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에서 지루함을 느낀다. 이 책의 독회는 그런 일상의 짜증을 벗겨 주는 알코올과 같은 효능을 경험할 수 있을 거라고 단언한다. ⓦ 글|전진삼(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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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파편, 베를린 홀로코스트 기념비 김정후의 <유럽의 발견 08>

<작전명 발키리 (Valkyrie)>가 많은 관심 속에 전 세계에서 상영되었다. 이 영화는 제 2차 세계 대전과 히틀러를 다룬 기존의 영화 들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독일군 장교인 폰 슈타펜버그(톰 크루즈 역)는 히틀러의 과욕이 독일은 물론 유럽을 파괴할 것이라 우 려했고, 그와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히틀러를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 바로 ‘작전명 발키리’다. 역사는 승자에 의한 기록이므로 현 대사에서 독일은 전범국이자 패전국의 오명을 안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을 한 가지 던질 수 있다. 독일인은 히틀러를 어떻 게 판단할까? 당연히 절대적 혹은 공통된 답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외부에서 판단하는 것처럼 전 유럽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 넣은 독재자 혹은 전쟁 미치광이 등으로 평가하지 않음은 짐작할 수 있다. 독일인도 히틀러를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할 수는 없지 만, 그렇다고 그를 평가절하 하지도 않는다. <작전명 발키리>는 이처럼 고뇌하는 독일인의 단면을 드러낸다. 마치 장난감 병정처 럼 훈련 받고, 나라가 아닌 히틀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것으로만 조명된 독일군^혹은 독일 국민-의 감춰진 모습이라고 할까. 영 화에서는 일부 급진적인 장교들만이 히틀러의 정복욕에 반기를 들었지만, 만약에 그 숫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다면 현재까지 전 범국의 오명을 쓰고 있는 것은 억울한 처사일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자신의 역사를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눈을 가진 민족이 라는 점에서 말이다. 제 2차 세계 대전 종전 60해를 맞은 2005년, 베를린은 다시 한번 세계를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나치에 의해서 학살당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홀로코스트 기념비를 베를린의 심장부에 세운 것이다. 독일의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추모 관 련 시설 건립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정도로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만큼 독일은 지난 역사의 과오에 대해 진솔한 태도를 가졌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에 산재한 여러 박물관 및 추모시설과 비교해서 홀로코스트 기념비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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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방식에 대하여 ⓦ 1988년 저널리스트인 레아 로쉬가 홀로코스트 기념비 건립의 화두를 던졌다. 기존의 시설과 다른 점은 베를린의 가장 중요한 부지에 대규모 공원을 추진한다는 점 이다. 원칙적으로 추모 시설 관련 건립에 찬성했던 시민들조차도 이의 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격렬한 논쟁 끝에 1992년 의회와 정부가 홀 로코스트 기념비 건립의 지지를 발표했다. 이미 유사한 추모 시설들을 통하여 충분한 반성과 교훈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에 새로운 대규모 추모 시설 건립에 동의한 것을 독일 정부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유럽에서 희생된 600만 명의 유대인을 추모하는 시설을 통 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건립함으로써 독일은 물론이고 세계가 이와 유사한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담당해야 하는 역사의 책임이다.” 독일 정부가 제공한 6천여 평에 달하는 부지는 국회의사당 및 브란덴부 르크 문과 인접해 있다. 그런가 하면 이 부지는 옛 히틀러의 집무실과 선 전상 괴벨스가 있던 곳으로 나치 정권의 상징적 장소라 할 수 있다. 축구 장 세 개를 합친 크기이니 규모 면에서 상상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시민 들과 베를린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언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에 위치 한다는 점에서 독일 정부의 의지를 짐작할 수 있다. 즉, 특별한 장소이면 서 동시에 도시의 일상 속에 추모 시설을 건립한 것이다. 부지를 결정하고 곧바로 1994년에 현상설계가 진행되었다. 수차례의 논의 끝에 피터 아이젠만이 1등으로 당선됐다. 아이젠만은 전체 부지에 2,711개의 콘크리트 석비를 늘어놓았다. 높이는 0.2m에서 4.8m까지 다양하며, 길이는 2.38m, 폭은 0.95m다. 각각의 콘크리트 석비 사이로 는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데, 2m가 넘는 곳에서는 미로와 같아서 길 을 잃기 십상이다. 그런가 하면 석비로 이루어진 광장의 남동쪽을 가면 계단을 통하여 지하로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 지하에는 유대인 추모 및 정보 센터를 마련하여 당시의 사진과 영상을 포함하여 희생자들의 일 기, 편지 등을 전시한다. 아이젠만은 완공 후 홀로코스트 기념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자제 했다. 아마도 몇 마디의 설명보다는 직접 체험을 통하여 이곳의 의미를 느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견 2,711개의 석비는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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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관이 솟아오른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석비 사이로 걸어 들어가

평균 8톤 가량되는 석비들은 특별한 규칙이 없이 나열된 듯해 보이지

면 일순간에 길을 잃고 두려움에 방황하는 느낌도 갖는다. 사방으로 통

만 지속적으로 중첩되어 나름의 독특한 흐름 혹은 스카이라인을 형성

하는 좁은 석비 사이로 금새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다. 아무 것도 없는

한다. 마치 고층 빌딩으로 가득 찬 무표정하고 황량한 현대 도시의 모습

육중한 석비의 틈바구니에서 한없이 밀려오는 공포감, 이것은 영화나

같기도 하다. 흐린 날이나 혹은 해가 지고 나면 석비가 만들어내는 어둡

소설을 통하여 갖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임에 틀림없다. 절대 고독

고 침울한 느낌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배가된다. 그야말로 독일의 수도

과 침묵의 시간, 아이젠만은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잠시나마 생사의

베를린 한 복판에 자리한 거대한 돌무덤이라고 해야 할까.

갈림길을 오갔던 유대인들의 참혹한 심정을 헤아리도록 한 것이다.

아이젠만은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추상적이고 침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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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정후는 2003년까지 한국에서 건축가와 비평가로 활동하며, 대학에서 설계 강의를 했다. 이후 영국 바쓰 대학 건축학 박사 과정과 런던 정경 대학 도시 계 획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런던에서 도시 계획 튜터와 컨설팅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공간 사옥』 (공저, 2003),『작가 정신이 빛나는 건축을 만나다』 (2005), 『상상/하다, 채움의 문화』 (공저, 2006),『유럽 건축 뒤집어보기』 (2007) 등의 저서가 있다.『조선일보』 와 ‘세계 디자인 도시를 가다’를 공동 기획했고, 현재 KBS와 SBS의 디자인 관련 프로그램 자문을 하고 있으며, <희망제작소>의 ‘공공 디자인 유럽 연수 프로그램’ 지도 교수를 맡고 있다.

느낌의 추모공원을 조성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한편으로 이곳이 가벼 운 마음으로 시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시 공원이 되기를 희망했 다. 따라서 아무 조각이나 장식이 없는 석비가 아이들의 놀이 시설로 사 용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석비에는 아이들이 낙서도 할 수 있도록 의도했지만 극우파의 훼손을 우려한 나머지 정부는 석비에 코팅을 하 고 낙서를 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과거의 잘못을 명예로움으로 바꾸다 ⓦ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 노 나나미는 일본과 한국은 각자 나름의 역사를 가지면 된다고 말한다. 일견 틀리지 않은 얘기일 수 있다. 그렇다면, 독일은 어떠한가. 독일이 지난 50여 년 동안 보여준 모습은 자신을 위한 역사나 인위적 해석이 아 니다. 결코 그들만을 위한 역사가 아닌 모두를 위한 역사라는 말이다. 전 세계에 가장 많고,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전쟁 박물관 혹은 추모 기념관이다. 그만큼 인류 역사가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뜻한다. 그 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제 1, 2차 세계 대전은 물론 이고 홀로코스트 등에 대한 젊은이들의 이해는 점점 떨어져 간다. 즉, 전쟁의 참상이 박물관의 전시나 영상 등으로 쉽게 이해될 수 없음을 반 증한다. 더군다나 전쟁과 연관된 해당 국가들의 경우 상당 부분 역사를 왜곡하거나 감추는 것이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찬란하던, 부끄럽던 역사는 객관적으로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그 것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유사 한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단순히 전하는 것이 아 니라 어떻게 전할 것인가, 이다. 전쟁 당시에 사용된 물품이나 생생한 기록보다도 한 편의 영화가 훨씬 효과적일 수 있는 이유는 짧은 시간이 나마 당시를 재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터 아이젠만이 디자인한 베 를린의 홀로코스트 기념비 사이를 걷는 것은 한 편의 영화가 주는 감동 이상이다. 과거의 잘못을 명예로움으로 바꾼 디자인과, 그것을 선택한 베를린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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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찾아서-2 함성호의 <소소재잡영기(素昭齋雜詠記) 03>

땅은 긴 장방형에 짧은 변 두 곳이 모두 도로에 접하고 있었다. 더구나 한 변은 보행자 전용도로에 접하고 있었다. 자동차는 동쪽 도로에, 도보 이 용자들은 서쪽의 보행자 전용도로를 이용하면 자연스럽게 보차분리가 된다. 남쪽에 도로가 없어 일조권 사선 제한을 심하게 받는 것이 문제가 되 었지만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었다. 중개업자는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를 보이자 얼굴에 가득 웃음을 띠웠다. “괜찮…, 쵸?” 나는 고개를 끄 덕였다. “빨리 추진해 주세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벌써 땅을 보러 다닌 지 2주가 넘어 서고 있었다. 그 날 오후 늦게 다시 건축주와 함께 땅을 보러 갔다. 나는 건축주에게 이 땅이 가진 잠재력을 설명했다. 장방형의 긴 대지를 보자마자 나는 경사로로 수직 공간들을 연결하는 생각을 했다. 건물을 이리저리 훑고 뚫으며 경사로는 전체 공간의 가장 중요한 분위기를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공간들이 자리 잡으며, 떠 있고, 분리되며, 움직이게 될 것이다. 나는 건축주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건축주는 뭔지 잘 모르겠지만 어째든 내 확신에 찬 설명에 감동하는 것이 분명 했다. 건축주와 나는 해가 지는 대지의 풍경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서있었다. 우리는 마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프루스트가 마들렌 과 자의 향을 음미하면서 자신의 기억 전체를 떠올리듯이 우리의 미래를 떠올렸다. 일본식 종이접기처럼 아무것도 아닌 종이가 물에 닿자마자 아름 다운 형상으로 피어나듯이 우리가 지을 집이 물에 젖은 일본식 종이접기처럼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잎잎에서는 벌써 아이들이 존 버닝햄의 그림책을 읽고 있었고,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낮은 소리로 책을 읽어 주고 있었다. 그날 밤 건축주는 꿈을 꾸고 있었고, 나는 책상 앞 에 앉아 그 꿈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수시로 집 앞 부동산에 들러 상황을 보고 받았다. 땅 주인과의 연결이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이제는 땅 주인과의 연결이 왜 쉽지 않은지 잘 알고 있었다. 투기 목적으로 땅을 구입한 사람들은 대개 소유하고 있는 땅이 하나 뿐이 아니다. 집과 땅이 수 개였고, 심지어는 수 십 개나 되는 사람들도 여럿이다. 아파트를 천 채나 소유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런 사람들이 모든 부동산을 다 자기 명의로 한다는 것 은 스스로 세금의 지뢰밭으로 걸어 들어가는 꼴이다. 아내, 아들, 딸은 말할 것도 없고, 친척이나 전혀 모르는 원주민의 이름으로도 부동산을 축적 하기 때문에 공부상의 연락처로 전화를 해 봐야 늘 몇 다리 건너뛰어서 진짜 소유자와 연결이 된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가고 있었다. 나는 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원소유자와 연결이 늦다는 것은 그 사람이 전문적인 투기꾼이라는 얘기가 되고, 그렇다면 이번에도 역시 세금 문제가 불거 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저, 저, 저, …전데요.” 안다. 중개업자다. 거래는 물 건너갔다. 일본식 종이접기처럼 피어났던 꿈이 팝업 북처럼 닫혔다. 나는 전화를 끊고,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남한의 부동산 천민주의에 대해 갖은 욕을 해댔다. 건축주는 그런 푸념은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며, 좀 현실성 있는 대안을 찾아보라고 이성적인 요구를 했다. 그리고 자기가 생각하기에 저 중개업자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그건 사 실이었다. 그와 같이 다니는 동안 나는 이 중개업자가 이제 막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고 사무실을 낸 지 얼마 안 되는, 소위 초짜라는 걸 알았 다. 건축주는 이제 그 사람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고 했다. 다른 중개업자를 찾든지 우리가 직접 나서자고 했다. 왠지 배신하는 것 같은 찜찜한 기 분이 들었지만, 배신 운운 하는 것이 오히려 터무니없는 일이기는 했다. 그래서 우리는 날을 잡아 일산 전역을 돌았다. 그리고 드디어 일산을 벗어났다. 일산 신도시 내에 남아 있는 땅은 거의가 세금 문제에 붙들려 있 는 땅이라고 봐도 무방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막 개발되기 시작한, 일산 신도시의 동쪽에 자리한 풍동 택지개발 지역으로 눈을 돌 렸다. 땅값도 평당 250만 원으로 일산 쪽보다 훨씬 쌌다. 주변에 아이들이 모여들 수 있는 아파트 단지들과 바로 인근에 야산을 가꾼 공원이 있었 다. 땅값 부담이 반으로 준다는 사실에 건축주와 나는 크게 고무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택지개발은 원주민에게 땅을 사서 개발을 한 다음 분양을 한다. 이때 원주민이 영순위다. 그리고 다음에는 일정 기간 동안 부동산 소유가 없는 사람들이 우선순위다. 원칙적으로는 투기꾼들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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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시.

양을 받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분양을 받은 사람들은 일정 기간 동안 이 분양권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거나 팔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예외가 있다. 원주민이 분양을 받은 경우에 한해서 한 번 다른 사람에게 전매가 가능하다. 이렇게 원주민에게 땅을 산 사람은 다시 원래의 원칙대로 일정 기간 동안 다른 사람에게 팔지 못한다. 원주민 분양자에게 특혜를 주는 것은 토지개발공사로부터 받은 보상금으로는 중도 금을 치르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서 원주민에 한해 땅을 팔 수 있게 배려해 주는 것이다. 재개발 사업지에서 원주민의 시위와 자살 사태가 일 어나는 것은 이런 구조적인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원주민과 조금이라도 자기 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예외 다. 문제는 자기 땅 없이 소작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도 보상금이 주어지지만, 턱없다. 그 돈을 가지고는 도회에 전셋집을 얻기도, 땅 을 사기도 어렵다. 그야말로 이들은 그나마 일구어 먹고 살던 터전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그들의 극단적인 선택, 죽느냐 아니면 보상금을 더 받아 내느냐는 기실, 선택이 아니라 절체절명의 기로다. 이것이 문제였다. 풍동재개발 지구에서 제대로 분양 받은 사람들 중에 땅을 팔려고 내놓은 사 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팔 수 없는 구조였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땅을 내놓은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불법이었다. 이 불법을 피해 가기 위해서 법 이 정한 일정 기간 동안 이들은 땅을 팔아도 서류상 자기 명의를 그대로 유지해야 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들에게 땅을 사도 그 명의는 당분간 나에 게 넘어오지 못한다는 거였다. 이 부분에서 건축주와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넉넉하기는커녕 오히려 모자란 돈에 무리한 계획, 자금 여유라 고는 제로인 상황에서 땅의 명의마저 남의 것으로 해 건축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부담이었고, 무엇보다 위험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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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약의 경우 내 권리를 주장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나는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고라도 풍동지역의 땅을 사고 싶었다. 무엇보다 금액이 반 으로 줄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건축주는 반대였다. 그런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또 건축주를 설득했다. 땅 주인과 건축 행위의 주체가 다른 경우는 무수히 많다, 실제로 그런 작업을 해보기도 했다, 적당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면 문제없다, 가 내 요지였다. 건축주는 그 러면 일단 은행에 대출한도를 알아보자고 했다. 그런 연후에 결정을 해도 괜찮지 않느냐, 였다. 이런 경우 여자는 항상 현명하다. 남자는 미션 수행 에 열중하느라 융통성을 잃어버리지만, 여자는 좀 더 과정을 신중하게 처리할 줄 안다. 맞는 말이었고, 은행에 알아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재개발 지구는 대출이 50%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50만원×70평=17500만원에 50%니까 8750만 원밖에 대출이 안 되는 거였다. 땅 값은 쌌지만 그에 비례해 은행대출이 적어졌다. 그렇다면 굳이 위험을 안고 풍동지역을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 건축주의 문제는 땅값이 싸고 비싸 고가 아니라, 은행에서 대출이 얼마 나오느냐가 관건이었다. 우리는 풍동에서 발을 뺐다. 건축주는 이제 지쳐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지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집 앞 부동산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 저, 저, 저…, 전데요.” 안다. 능력 없는 초짜 중개업자. “, , , 타, 탄현에 땅이…, 하나, 나왔어요.” 상업 지역인데 값은 같다는 것이다. 상업 지역이 라면 3층 이상을 지을 수 있고, 그 만큼 임대 수익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나는 부랴부랴 땅을 보러 갔다. 큰 도로에서 약간 들어와 있지만 충분히 대로변에 어필할 수도 있고, 아파트 단지도 멀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건축면적이 늘어나는 만큼 시공비도 늘겠지만 임대 조건을 미루어 자금 문 제는 좀 더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엔 확실합니까?” “그,…, 학, 확실해요.”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건축주를 모시고 땅을 보여 주었다. 건축주도 솔깃해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부정적이었다. 유해 업소들이 너무 많아 어린이 도서관 부지로는 맞지 않는다는 거였다. 나는 저런 게 왜 유해 업소인지 헷갈렸다. 술집, 고깃집, 등등, 내가 너무나 익숙하게 드나드는 데가 아닌가? 저게 유해 업소라니? 나는 그 럼 뭔가? 그러나 건축주가 싫다니 어쩔 수 없었다. 더군다나 며칠 후 걸려온 중개업자의 전화는 또 전과 같은 이유로 취소되었다. 벌써 봄이 가고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

글쓴이 함성호는 시인이며 건축가다. 강원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했다. 시집『성 타즈마할』 『56억 , 7천만년의 고독』 『너무 , 아름다운 병』 과 산문집『허무의 기록』 ,만 화평론집『만화당 인생』등의 책을 냈다. 시 쓰는 선후배들과 <21세기전망> 동인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요즘은 개인 건축 설계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방송 에도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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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일상의 도시 건축 Architecture of Everyday Life <WIDE PRO 젊은 건축가 FILE 9 | 정현아>

현실. 강남 뒷골목, 집장사들의 도시 시원스레 뚫린 10차선 도산대로 뒷길엔 채 20평도 되지 않는 필지들이 존재한다. 블록의 앞면은 대형 필지 위에 반듯하고 높은 커튼월 빌딩들이 세워졌지만, 뒷면은 환지수법 방식이 양산한 극소 필지들과 심각한 주차 난을 겪고 있는 6m, 4m의 골목길이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과도한 지 가상승으로 소형 필지를 합필하여 4-5층의 다세대들이 빼곡히 들어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어떤 곳은 건축주 스스로 대지를 둘로 분할해 팔면서 대지 안의 대지가 되어 대지 내에 작은 골목길들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곳은 변화의 틈바구니에서도 여전히 70년대 개발 초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도 있다. 아직 남아 있는 집들은 당시 집장사들에 의해 지어진 소위 ‘불란서식 미니 2층집’이다. 불란서와 아무 관련도 없는 이 집은 반지하와 어슷한 경사 지붕의 비슷비슷한 유형을 보여준다. 고층빌딩 껍데기 속, 이미 다세대가 무성하게 자리잡은 틈새에 이런 노후한 집들이 여전히 군데군데 자리하 고 있는 것이다.

질문. 일상의 필요에 따라 바꾸다 늘어나는 사무실과 상업 시설에 대한 요구는 단숨에 블록 안쪽까지 파고 들었다. 미니 2층집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이은 개조와 불법 증축으로 초기 모습과 무관하게 마당은 주차 공간으로 바뀌었고, 반지하 공간은 상점으로, 다락방은 거주를 위한 제대로 된 2층으로 개조되었다. 하지만 전 문가 없이 마구잡이로 진행된 개조 때문에 건물의 구조는 심각하게 불안하고, 결로와 누수도 심한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내부 공간의 짜임은 현 재의 쓰임과 그리 정확하게 맞지 않는다. 논현동 프로젝트의 경우는 원래 단독주택으로 지어진 미니2층이었지만, 먼저 지하와 2층에 별도 세대 임대를 주는 다가구주택으로 바뀌었고, 그 것이 웨딩숍이 되었다가 다시 사무실로 개조되었다. 원형은 거의 알아보기 힘들었고, 1층 홀 여러 군데에 구조를 보강하기 위해 파이프들을 마구 박아 놓은 상태였다. 신사동 프로젝트1은 빨간 벽돌집이 디자인 사무실로 개조되면서 지붕까지 온통 하얀 페인트를 덮어쓰고 있었고, 기능적으로 도 반지하 공간과의 연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신사동 프로젝트2는 비교적 원형이 남아 있는 골목 안 주택이었으나 주변이 다 상업 시설로 바뀌면서 자신들도 미용실로 개조되길 원했다.

↑ 논현동 (변경 전) 더덕더덕 붙어있던 샷시와 불법 증축 부분 철거 후. → 논현동 (변경 후) 구조보강 파일을 벽 속으로 숨기면서 마당으로 방향성을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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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신사동1 (변경 후) 외부의 흰색 도색과 대조시켜 구로철판으로 마감한 입구. 지하로의 동선을 실내에서 해결. 02 신사동2 (변경 전) 분할된 앞쪽 필지에 다세대가 지어져 대상 건물은 파묻혀 버렸다. 03 신사동2 (변경 전) 철거 후 드러난 반자틀. 04 신사동2 (변경 후) 기능에 맞추어 공간의 위계를 바꾸다.

이론. 도시건축의 pro-sumer 미셀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는 그의 책 『The Practice of Everyday life(일상생활의 실천)』에서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대해 소비 자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개입, 반응하여 저항 혹은 적응하는 적극성을 띄는 것에 대해 논하였다. 그리고, 그 적극성을 띄는 소비자를 prosumer(producer와 consumer의 합성어)라고 일컬으며 생산과 소비의 이중구조를 넘어서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 그의 논리를 도시로 확장해 본다면, 건물을 쓰는 사용자의 저항과 적응을 통해서 건물의 내외부적 한계상황에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말할 수 있겠다. 즉, 변화하는 외부 요건들에 건축물을 어떻게 적자생존 시키느냐의 관점이다. 더 이상 도시 건축을 한 순간에 만들어져 고정불변 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내부 수용자와의 동적 관계를 통해서 문화적 재생산을 해나가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또한, 한 장소가 사용자와의 교감을 통해 의미를 가지게 되면서 그곳에 장소의 정체성이 부여될 수 있다.

유행. 지속 가능한 건축 sustainable architecture ‘Sustainability’가 건축계에서 유행처럼 대두되고 있다. 미래를 위해 자원과 에너지의 최소 소비와 재활용을 지향하는 개념이다. 이 개념의 본질 은 다름 아닌 재료와 에너지의 경제적 효율성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도시는 노후한 건물을 약간만 손 봄으로써 충분히 가능한 새로운 해석을 뒤로하고, 완전히 허물고 다시 쓰는 선택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sustainability’는 재료와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식으로 새 건물을 짓는 것만 아니라, 그것을 다시 짓기 위해 기존 것을 쉽 게 부수는 것에 대한 반성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우리에겐 현재의 도시를 부정하고 완전히 다시 쓰는 방식이 아닌, 조금은 부족해도 현재의 상황 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조금씩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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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 느린 건축 slow architecture 도시에 대해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항상 가지고 있다. 그것은 건축주와의 계약관계 속에서 작업의 기회가 주어지는 건 축가가 과연 도시문제에 얼만큼이나 적극적일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일 수도 있고,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필요한 사회적 전략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강남 블록 안쪽에 일련의 미니2층 개축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것이 비록 싸구려 집장사 집이지만 우리의 과거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소중한 ‘문화’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아름답진 않더라도 오히려 그것들은 시간과 문화가 배어내는 고유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시대의 요구가 달라짐에 따 라 그것들은 쇠약해지고 비정상적으로 변형될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을 부정하고 새로이 쓰기 보다는, 그것들의 가능성을 읽어 건강하게 작동될 수 있도록 바로 잡고 바꾸어 주는 것이 도시에 대한 건축가의 중요한 몫이다. 도시에게 건축가는 예술가라기보다는 차라리 의사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려하고 멋진 디자인을 하려 하기보다는 병들고 아픈 상태를 건 강하게 작동하도록 바꾸는 것 정도로 작업의 수준을 내려놓는 것도 필요하다. 조금은 느린 건축을 생각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보다 건축의 속도가 너무 빠르거나 강하면 자칫 독단적인 주장이 될 수 있고, 또 너무 느리면 과 거의 답습이 될 수 있다. 적절한 속도로 은근하게 일상에 개입하여 가장 보편적인 모습으로 도시의 건강함을 만들어 내는 것을 꿈꾼다. ⓦ

글쓴이 정현아는 홍익대 건축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미국 콜롬비아 대학(Columbia University) 대학원 과정(M.Arch)을 마쳤으며, 에이 엠 스턴 (Robert A.M. Stern Architects, LLP.) 사무실과 난디니 푸칸(Nandinee Phookan Architects) 사무실에서 실무를 쌓았다. 한도시건축, 창조건축 등에서 일한 바 있고 서울대, 홍익대, 중앙대, 이화여대, 연세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 디아건축연구소 소장으로 건축 작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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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 논현동 배치. → 논현동 평면.

↑ 신사동1 배치. → 신사동1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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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동2 배치. → 신사동2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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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4 1st Anniversary ‘YEAR ONE’ Free exhibition for everyone | 20090424-20090429 <와이드 리포트>

와이드 제7호 워크(WORK)란의 작가로 소개된 신개념 건축 집단 EAST4가 창립 일주년을 기념하여 전시회를 열었다. 모든 이들에게 오픈된 참 여형 무료 전시의 주제는 ONE YEAR. 전시 한달 전부터 홈페이지(www.east4.org)와 플리커 사이트(www.flickr.com/group/east4yearone)를 통해 주제와 제출 형식(A4 사이즈의 결과물) 등을 공지함으로써 불특정 다수들의 참여를 유도하였다. 그 결과 건축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총 39점의 작품을 제출했고, 지난 4월 24일 오프닝 행사에서는 주제 ONE YEAR에 대한 토론의 자리도 마련되었다. 또한 전시 기간 내내 투표를 진행하였는데, 그 결과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작품은 일정 기간 동안 EAST4에서 무 료 전시를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컬처 그라운드(culture ground)를 표방하는 EAST4의 이번 행사는 뉴욕의 스토어프론트(Storefront for Art and Architecture)처럼 건축 을 포함하는 제 분야의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태도들을 끌어올리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실제로 EAST4는 이번 전시를 기점으로 공통의 주제 를 가지는 기획 전시를 진행할 예정이다. ⓦ ⓦ 전시진행 EAST4 멤버 : 박준호, 이승연, 이강희, 이진경, 김남균 | www.east4.org | 서울시 종로구 원서동 20-2번지 EAS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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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의 관찰 記 <WIDE PRO 젊은 건축가 FILE 10 | 곽희수>

관찰 01 나에게 이른 아침은 마치 좀비같은 죽음의 시간이다. 걸어 다니지만 뇌는 멈춰 서고 눈은 응시하지만 분별력을 잃는다. 만약 누군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건 “해 뜨는 시간” 이라 고 말할 것이다. 영화 <태양의 노래>에 나온 소녀도 아닌데 아침과는 인연이 잘 닿지 않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깊은 밤이다. 대부분의 인류가 휴면을 취하는 시간이 나에겐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이 다. 나의 생체 시계가 이러하다 보니 지인들과 만나는 시간도 자정을 훌쩍 넘어 버린다. 고로, 나와 일 상을 함께 나누는 사람은 올빼미족이거나 24시간 자지 않는 불면증환자들이다. 이런 나에게 누군가는 일주일에 술을 몇 번이나 먹느냐고 묻는다. 날씨나 취미를 묻는 것처럼 흔한 인사말이지만 답해야 하는 내겐 난감함이 있다. 나의 일과를 한 주에 한정 지어 평균 같은 걸 내는 순간, 질문자의 혼란만 가중시 킬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일주일 내내 음주할 때도 있다는 대답에 질문자는 나의 훌륭한 대인 관계를 칭 찬한다. 그러나 그의 염탐은 실패했다. 나는 일주일을 한 사람하고만 술 마시며 보낸다. 나의 생활엔 그 리 많은 사람이 개입되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유사 생활 습관자들의 부재만이 원인은 아니다. 초식동 물을 자처하는 나에겐 이 거친 야생의 세계가 그저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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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02 나는 나의 뇌를 흥분시키는 마력이 있다. 과연 내 뇌는 내가 흥분시키는 것일까? 아니면 뇌가 흥분되어 내가 작용하는 것일까? 작용과 반작용 사이에서 나는 다른 이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의 뇌도 흥분 되냐고. 하지만 돌아올 답은 뻔하다. 흥분? 왜 해야 되냐. 그렇다. 그것은 흥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흥 분거리를 찾는 애절함에 있는 것이다. 나는 흥분거리를 찾아 돌아다녔던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과연 흥분 자체에 감동하는 것인가? 아니면 흥분거리에 감동하는 것인가? 나는 잉크 엎지르기 놀이를 좋아 한다. 잉크병만 보면 심장의 박동수가 달라진다. 한 번은 중요한 문서에 이 놀이를 해서 큰 낭패를 본 적 이 있다. 무슨 중독 증상같은 것이 생긴 것이다. 물론 그림자 놀이나 레고 등에 비하면 좀 조잡하고 번 잡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 놀이는 좁은 장소에서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나의 뇌를 흥분시키 는 묘한 마력이 있다. 예측하겠지만, 잉크가 수용성인 관계로 종이 뒷면엔 두꺼운 신문지 같은 걸 깔아 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책상의 피부는 온통 검버섯과 주근깨 투성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성에 게 불결함을 줄 생각이 없다면 장갑 같은걸 끼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런 후, 기다리면 된다. 검은 액체는 이내 생명력을 부여 받고 꿈틀거리며 종이의 흰색 면을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한다. 지면을 애무하던 검 은 액체가 탐닉의 절정에 다다를 무렵 나는 서서히 수많은 장면과 판타지를 보기 시작한다. 드디어 나 의 뇌가 흥분되기 시작한 것이다.

관찰 03 집은 일산이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닿는 시간은 늘어지게 식사를 두어 번쯤 하거나 잡스러운 책을 서너 권 읽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주로 자유로와 강변북로를 거쳐서 오는데, 음악에 빠지기도 하고 라디오 의 우스갯소리에 히죽거리기도 한다. 가끔은 사무실에서 해결 못한 디테일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거나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기도 한다. 그러면 재빨리 운전대와 가방으로 손이 오가며 노트에 메모 나 스케치를 한다. 결국 나에겐 일하는 장소나 시간을 구분하는 재주가 일찌감치 없는 것이다. 나는 물 건을 잔뜩 실은 화물차 뒤에 붙어 가는 것을 좋아한다. 적재된 화물의 다양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 보다 훨씬 큰 물건을 실은 모습이 우스꽝스럽기 때문이다. 한번은 아름드리 활엽수를 실은 용달차 뒤를 따라간 적이 있었다. 그 큰 가지와 녹색 잎의 출렁이는 모양이 마치 입을 벌리고 연신 웃음을 토해 내는 것 같았다. 이런 경우 나는 얼른 카메라 동영상을 돌려서 찍는다. 좀 위험스럽긴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형상은 영화에서 본 어떠한 괴물보다도 익살스럽고 흥미롭다. 이런 재미있는 광경은 항상 있는 것이 아 니다. 그날은 운이 좋았다. 파이프, 차의 범퍼, 블록, 합판, 가구, 심지어는 차에 차를 싣고 달리는 모습 이 정말 가관이다. 적재된 화물은 안간힘을 다해 차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 애쓴다. 운전자의 태평함에 비하면 이들의 모습은 정말로 눈물겹다. 거의 습관적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동틀 무렵이다. 낮의 즐거운 드라이브에 비하면 밋밋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다. 물론 속도감을 즐기는 마니아라면 절호의 기 회이다. 그러나 나에겐 불행하게도 그런 취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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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04 사무실 앞에는 선릉(宣陵)이 있다. 선릉은 밤샘한 다음날 아침 어슬렁거리거나 식사를 해결하는 곳이 다. 담배로 찌든 호흡기에 신선한 산소 공급이 목적이지만, 가끔은 착각에 가까운 풍광을 감상하기도 한다. 나무 사이를 비집고 나온 햇살은 지난 밤 엄습했던 어둡고 긴 터널의 묵은 때를 말끔히 씻어 낸 다. 아침 햇살을 점거한 사람은 나만이 아니다. 비닐 재질의 방한복을 걸치고 뒤로 혹은 앞으로 열심 히 걷는 웰빙족들이 있다. 이들은 마치 화학전에서 살포된 다량의 가스로부터 살아남은 자들처럼 보인 다. 가끔 한 번씩 광합성을 하는 나로서는 저들의 복장이 이런 묘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 곳의 주인은 인간 척도를 압도하는 크기의 왕릉 이다. 물론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봉긋한 잔 디 봉분과 그곳을 지키는 동물들과 무^문신의 석상들이다. 나는 왕릉 주변을 배회하면서 석상들과 눈 을 맞춰보곤 한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현대인들에게 느껴지지 않는 어떤 비장 함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신의 목숨을 타인을 위해 초개와 같이 버리는 이들은 언제 봐도 존 경스럽다. 이타심이 강했던 시대의 생명체들인 것이다. 왕릉과 이들의 배경은 사물의 움직임이 감지 되지 않는 테헤란로의 고층건물들이다. 설명하기 힘든 묘한 조화다. 이 풍경은 사뭇 현대와 동양의 과 거 이미지를 섞고 흔든 다음 미래의 모습이라고 상상하는 서양인들의 SF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 러일으킨다. 아마도 이러한 조화는 시^공간적 착각 증세가 심해 잠시 현실을 잊고 과거를 향해 각성된 자들을 깨우기 위한 관계 기관의 연출인지도 모른다. 특히 나처럼 밤새도록 현실과 모니터 사이를 넘 나든 몽환적 상태의 사람은 이 장소에 오는 순간 실제로 일터로의 회귀를 자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 한 자각증상에 관계없이 나의 산책은 그리 길지 않다. 육체적 피로도 그 원인이지만, 아침이 적성에 맞 지 않는 오랜 습관 탓이다. ⓦ

글쓴이 곽희수는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현재 이뎀 도시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2007년 KIA신인건축가상, 서 울시건축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08년에는 한국건축문화대상 주거부분 본상 및 일반 건축부문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TETHYS/고소영 빌딩, 42nd Route House/원빈 주택, 김형석 House, DOROTHY MUSIC/신승훈 빌딩, Hangang Guardians Ⅰ, 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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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al Brief 판도라의 상자 : 정보 소통과 이해의 창(窓) <WIDE EYE 02 | 장정제>

새로운 시도(試圖)를 꿈꾸고 그것을 단숨에 실행(實行)으로 옮기는 것은 삶의 용기라고 생각한다. 변화의 시작은 스스로 생각하고 실행하고 구체화 하려는 노력을 통하여 이루어져 왔다. 이 변화는 차이이고 시간의 흐름이고 삶의 혁명이고 미래의 단초이다. 우선 밝히자면, 이 글은 나와 abrief 사이의 이야기이다. 나는 발행인도 그 분의 의도도 모른다. 단지 뉴스레터 abrief를 통하여 이해하고, 그렇게 이해한 abrief를 옮기고자 한다. 인터넷 뉴스레터 abrief(http://www.abrief.net)는 변화를 위한 시도이고 가능성이고 창이며 틈이다. 모든 시작은 시간의 기다림이 필요하고 결 과를 얻기까지 적절한 채워짐을 요구한다. 그래서 일정한 시간과 공간의 폭이 되고 그 안에 일정한 양(量)을 넘어 채워진다면, 그 순간부터 그 양( 量)은 실체 이상의 질(質)로 전환될 것이다. 그러기에 지난 2년의 시간과 누적된 텍스트가 변화를 만들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거대한 백과사전이 고 장보이고 담론과 비평의 무대가 될 것이다.

abrief는 그 즐거운 통로이다. 창간사는 지난 60여 뉴스레터의 의도를 드러낸다. 이 시대가 변화를 요구하며, 그 변화는 세계와 결합된 개인의 이상이어야 하고, 실행을 구체화하고, 스스로 시작하는 것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건축을 보는 시각의 한계와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abrief가 가진 본래의 장점이고 정보 제공의 본래 의도이다. 그 정보는 그러한 간극을 좁히고 나와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와 차이를 내용으로 만들어 낸다. 그 내용을 채운다 는 것은 서로 이해를 확대하고, 은폐된 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사이의 주름을 펴는 일이다. 그래서 수많은 생각의 지형들이 새로이 만들어져서, 눈앞에 선보이는 것이다.

• 지식의 네트워크 이미 체계는 물리적 흐름으로부터 가상적인 흐름으로 바뀌어, 네트워크라 함은 공공연히 전기통신과 인터넷의 연결망으로 대체되었다. 전기제품, 통신제품, 컴퓨터, 노트북, 핸드폰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그것이 물리적인 통로 이상의 역할과 순환 체계를 지니는 세계에 살고 있다. 네트워크 위 정보의 정글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적절한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높은 산에서 주변을 조망한다는 것은 세계를 단지 바라봄이 아니라 그 구 조와 거리를 조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지적 토대를 고양시키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모든 지식과 진화의 체계, 우주의 신비는 나무의 수형도로 표 현되어 왔다. 오늘날에 와서 그 나무의 줄기와 성장의 은유들은 뿌리(rhizome)의 세계로 전환된 이유도 비슷한 배경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네 트워크 위의 정보들을 가려내는 몫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데 abrief는 나름대로 다양하고 선택적인 체계를 만든다. 이 순간 세계에 일어나는 일들 에 대한 창구가 되고 넓은 세계의 접근할 수 있는 방향들과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1차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수많은 촉수를 달 아 놓은 셈이다. 이만큼의 거대한 거미줄을 건축이라는 창(窓)에 걸쳐 놓은 것에 대하여 즐거운 기대를 갖게 한다. 일시성(一時性)의 극복 abrief의 정보가 개념이 되고 연관된 이야기로 자리 잡기에는 시간성과 관계를 요구한다. 정보는 서로 관계를 이루어 낼 때, 이야기의 줄거리가 될 수 있고 가치를 생산한다. 관계의 고리는 이야기의 그물이고 길이다. 그 길은 순간 떠오르는 상념(想念)이 아니다. 시간을 잡아 둔다는 것, 일시성 을 극복하는 것은 념(念) 이상의 것으로 전환을 의미한다. 념(念)이란 언제나 현재 바로 지금(今) 마음(心)에 있는 의식을 의미한다. 시대의 일시성 을 넘어 하나하나의 정보가 시간의 겹과 목차로 이루어진 체계 속에서 시간성(時間性)을 얻는다. abrief가 이메일과 블로그를 통하여 건축 정보 를 제공하는 것은 일시적인 텍스트를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연결된 사유(思惟) 혹은 사고(思考)로 전환하려는 목적이다. 생각 사(思)는 그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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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재미있다. 바로 언제나 밭(田)과 밭(田)의 작물 생각으로(비가 오나 눈이 오나 봄여름가을겨울 아침이나 밤이나 언제나) 노심초사하는 농부의 마음(心)이다. 건축을 사고한다는 것은 의미 이상으로 마음에 담는 것이다. abrief는 네트워크와 일시성 그리고 시대성을 통하여 그러한 반복과 누적을 생산한다. 뉴스 (news)가 가진 이상성(理想性), 사회성(社會性), 새로 운 사실, 시사성(時事性)을 통하여 건축 정보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비평도 생산한다. 비평은 건축이 갖는 범위의 폭으로 인하여 이념적(ideological)이 된다. 건축은 자본과 문화와 사회의 반영이고 권력과 예술의 잣대에 놓여 있다. 건축가는 감각 이상의 삶의 무대와 생활의 내용 그리고 사람들이 갖는 의식과 존재를 재생산한다. 그것은 강력한 권력이지만, 동시에 매우 큰 책임감이다. abrief의 내용은 <건축일반, 정책^제도, 환경, 디지털, 도시, 행사^공모전, 정보, 기타>의 구분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그 내용은 이 인터넷 뉴스레 터의 두 발행인(윤기병 교수(광운대)와 이한석 교수(국립해양대)) 가운데 윤기병 교수의 블로그로 연결된다. 블로그에는 <건축, 지속가능성, 도시, 일반, opinion>의 카테고리고 구분되는데, 건축은 종합, 건축^설계, 정책^제도, 디지털, 기타로, 지속가능성은 지속가능성, 환경, 경제, 사회로, 도시는 도시계획^설계, 조경으로, 일반은 Issue^Trend, People, 행사, 공모전, 신간 서적, 정보, 기타로, Opinion은 건축, 환경, 디지털, 도시, 일 반으로 구분되고 있다. 그 내용이 어떠한 체계가 있고 그 사이에 관계가 무엇인가를 논하기 전에 건축에 관한 논의 전부를 포괄한다. History, 만들어진 이야기 사회가 성숙한다는 것은 abrief와 같은 다양한 통로가 성립되고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건축이 어떠한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는가 를 이해하게 된다. 그 이야기가 역사가 되는 데에는 사건과 그 사건을 보는 시선의 관계가 있어야 하고, 시간의 폭과 터가 필요할 참이다. 그러므 로 abrief가 누적시킨 역사는 시간을 누적시킨 역사(曆史)가 아니라 참여하고 경험하는 과정의 역사(歷史)이고 이야기를 넘어선 이야기, Hi + story일 것이다. history의 어원은 라틴어 historia이다. 종종 his+story 라고 하여 고대의 신들의 이야기 혹은 중세의 하느님의 이야기, 남성의 이야기로 전개되고 해석되지만 실은 탐구를 통하여 배우는 행위와 그 과정이다. 여기에서는 필자가 high + story로 제시하는 것이고 그것은 지 극히 임의적인 설명이다. 이야기는 누적되어 어느 사이 60호를 넘었다. 블로그로 쌓이는 정보에는 서로 간에 관계를 만들고 체계를 만들어 낸다. 정보는 방대해지면서 필 요한 목차와 순서, 이해의 전후 관계를 생성한다. 우리는 그러한 대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윤곽을 그려내고, 전체를 이해할 경계를 얻고자 한다. 그 래서 의식적 추상이 생겨나고 추상적인 패턴을 통하여 질서를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추상화를 그리는 것과 같다. 저절로 만들어진 이야기 이다. 그것은 계획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기보다 스스로 성장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abrief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에는 어떤 흐름이 자연스레 드 러난다. 그 이야기는 뉴스레터가 갖는 모태인 블로그를 통해 보고자 한다. 건축 - 종합 | 매우 시사적이다. 종합적인 내용으로 건축가의 소양과 대화, 사건들 과 의식들이 소개된다. 전부는 아니지만, 이 시대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공감하 고 참여할 수 있는 무대를 얻은 것은 분명하다. 소통한다는 것은 그것을 이해하 고 듣는 것이며, 서로 막히지 않고 의미와 감각과 의지를 나누는 것이고, 책, TV, 신문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다. 블로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참여할 수 있다면 그 것은 정보를 생산하는 것이다. 건축 - 건축설계 |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의 건축 설계 과정과 디자인 개념, 결과를 소개한다. 이 건축물은 우리 시대를 선도하는 것으로 저명한 잡지에 실 린 기사를 토대로 선택된 것이다. 그 원래 기사에 접근할 수 있고 내용을 누적시 킴으로써 선택된 정보의 체계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다양한 기구와 기관 그리 고 사적인 단체의 잡지와 기사, 홈페이지, 서적, 답사, 전시, 세미나 등에서 무수 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것이지만, 그것을 지난 2년간 발췌하여 정리함으로써 훌 륭한 이야기를 얻는다. 건축 - 정책^제도 |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의식 변화와 관계 기관의 움직 임, 국제기구와 건축 기구와 집단의 선언과 성명, 정책결정과 지침, 법률의 변 화 등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한 결정들을 통하여 세계가 어떠한 점에 골몰하 고 있고 어떻게 타개하고자 하며 우리나라의 건축 사업의 문제와 의식을 발견 할 것이다. 건축 - 디지털 | 이미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디지털 소프트웨어와 그 소프트웨어 의 도움으로 진행되는 디자인 정보이다. 관련 상품과 소프트웨어 업체의 전략과 변화 그리고 디지털 아키텍처, 디지털 스페이스와 같은 연관된 고리들을 함께 보 여 준다. 이미 손으로 도면을 그려내고 그것을 직접 투시도로 작성하고, 건축물 의 세부를 도구를 사용하여 정교하게 깎고 두드리고 쌓는 일은 사라졌다. 디지털 신호로 이루어진 장치들과 화면의 정보들로 통제되고 조정되는 시스템으로 전 환되어 가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는 창(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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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 - 지속가능성 | 지속가능한 건축의 일반적 논의와 관심을 찾아 볼 수 있다. 지난 세기까지 인간이 창조한 것은 세계와 공존이 아닌 대립으로서 이식 과 삽입이다. 공존의 가능성을 연다는 것은 우리 삶 자체를 공존의 방식으로 바 꾸어 놓는 시도이다. 건축물이 어떠한 방향으로 진화해 가는가에 따라 사회의 모 습과 삶의 방식도 함께 전환되어 갈 것이다. 지속가능성 - 환경 | 지속가능성이라는 것은 건축 자체의 지속가능함이 아닌 건 축을 포함한 환경의 지속가능성이고, 그 안에서 인간과의 공존의 가능성이다. 그 러므로 환경을 언급하는 것은 건축이 그 건축물에서 삶을 유지하는 개인과 환경 사이에 어떠한 관계를 얻는가에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 섹션에서는 환경의 이용과 통제, 보존과 개발에 대한 접근 방식을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이 인간과 건 축물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를 볼 수 있다. 지속가능성 - 경제 | 거의 모든 건축물은 자본에 귀속되고 통제된다. 그리고 설계 비, 건설 공사비와 같은 비용의 문제는 가치와 연관되어 있다. 그것은 공사 계약 의 근본적 토대이며 가능한가에 대한 타당성의 기준이 되어 왔다. 이 섹션에서는 건축과 설계 전반의 경제적 여건에 대한 정보에 접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사용 가치는 상대적인 비용가치를 낳는다. 여기에서 비교를 위한 기준이 비용이 되는 순간 금전적으로 환원할 수 있는 가치의 크기로 전환될 수 없는 가치는 무시되기 시작한다. 어떠한 전략의 차원에서 궁극적으로 비용의 구조와 체계, 정기적인 효 과를 가늠하는 것은 무시된 가치들에 대한 접근이 되었으면 하고 기대한다. 지속가능성 - 사회 | 앞으로 시대가 갖는 환경의 의식과 가능성의 폭이 어떠한가 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시 - 도시계획^설계 | 도시에 일어나는 계획, 도시적 규모의 설계, 그러한 계획 에 대한 전반적인 변화와 동향, 정책과 행사, 연구, 기사들을 다루고 있다. 건축 은 이제 도시적 차원의 이해와 소통의 방식을 통하여 결정된다. 자신의 대지 안

Wide Architecture Report no.9 : may-june 2009


에서 개인을 위한 공간을 창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한 시기는 근대 화와 현대화 이후 사라졌으며 우리는 도시 속에서 상호작용하고 네트워크 위에 존재한다. 도시를 이해하는 것은 점점 중요해 질 것이다.

축을 디자인만이 아니라 폭넓게 이해하는 것이다. 이미 2천 년 전 비트루비우스 가 건축 10서에 장황하게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기도 하고 중세까지도 인문학과 교양이 건축의 교과과정이었다는 것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다.

도시 - 조경 | 도시환경 혹은 건축 외부 환경에 대한 계획과 관련 기사들이다. 이 섹션의 제목인 조경(landscape)은 몸과 마음과 시선으로 가늠하고 파악할 수 있 는 영역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생존적인 공간적인 범위를 담고 있는 것이다. 제목 을 보자면, 오늘날 생존이라기보다는 삶을 유지하는 영역으로서의 도시적 공간 을 일컫는데 조경(造景)이라는 제목을 끌어 왔다. 매우 의미심장한 뜻인 셈이다. 동서양의 해석적 의미의 차이(差異)이다.

Opinion | 모든 정보 매체에는 경력을 갖는 기자들이 마련하는 영역이 할당되 어 있다. 신문에는 사설이, 뉴스에는 논평이 있는 것이다. 적어도 어떠한 평가를 부여하는 논의와 기술(記述)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비평이 되어야 한다. 비평은 어떠한 주제에 대한 해석과 판단을 요구한다. 정보는 “~이다”를 기준으로 사실 을 구체화하지만 이제 비평은 그 앞뒤에 무수한 형용사와 수식어, 비교급과 어 휘의 분절을 요구한다. 그리고 문장은 문단으로 확장되면서 접속사를 요구한다. 그 순간 텍스트는 스스로 살아서 우리가 사유하는 바를 옮기는 정신의 작용을 대 변하는 것이고, 이야기로 남는 것이다.

일반 | 그 구분이 Issue^Trend, People, 행사, 공모전, 신간 서적, 정보, 기타로 되어 있는데 그 타이틀 자체가 내용을 대변한다. 조금 설명하자면, People은 인 력 정보 혹은 네트워크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겠다. 세심한 배려이다. 그리고 건

소통의 창(窓) abrief는 건축을 이해하는 통로이며 세계로 열린 창이다. 통로는 세계로 만든 창(窓)이고, 판단의 근거이며, 가치관(價値觀)이고, 세계관(世界觀)이 된다. 그러므로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는 판단의 소지가 존재하고, 우 리는 그 판단의 중심에 선다. 그러므로 정보를 접한다는 것, 우리가 세계를 보고 파악한다는 것, 지평을 넓힌 다는 것, 들여다보고 밝혀낸다는 것이 모두 시각적인 언어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영어 see의 뜻이 <보다, 보이다, 이해하다, 깨닫다, 생각하다>와 같이 확대된다는 것은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의 창(窓)이 바로 앎의 틀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재미있게도, 한자 창(窓)의 구성을 보면 물리적인 틀 사이의 구멍(穴)과 음가인 총 (悤)의 생략형 사(囱)와 마음(心)이 합하여 이루어진다. 창, 틈, 구멍, 틈새가 마음을 소통하고 생각과 느낌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마음을 더하는 것은 보고 있는 사물에 이름을 부르는 것을 넘어 선다. 개념적인 대상으로서의 이름에 내가 관 계하는 술어를 연결시키는 것이다. 단지 꽃이 아닌 아름다운 꽃, 신기한 꽃, 노란 꽃, 작은 꽃, 밝은 꽃. 그리고 그 과정과 시간을 더하는 데 노란 꽃이 핀다. ~ 싱싱하다. ~ 진다. ~ 흔들린다. ~ 향기롭다. 그러므로 술어는 나의 감각과 느낌과 사고의 통로로 접근하는 과정이다. 옛 사람이 창(窓)에 마음(心)을 더한 것은 바로 마음 으로 나의 존재를 밖으로 드러내고, 또 참여하고 받아들이는 통로로서의 본다는 것과 열림을 이해한 것이다. 열린 세계의 소통이란, 그러므로 나를 세계에 참여시키고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네트워크를 구축 하고 상호작용과 소통, 공유, 공명을 의도하는 것은 전체를 이해와 가능성의 상황 속에 들여 놓기 위한 것이 며, 무지와 은폐로부터 벗겨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뉴스레터 abrief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그러한 소통 의 창(窓)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더 나은 이야기와 역사(history)를 생산하고, 많은 사람들의 참여 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글쓴이 장정제는 홍익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0년생으로 논문 「건축언어에 의한 의미구조와 가치구조에 관한 연구」 (2005. 12)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및 대학원 박사과정에 출강하고 있다. 『자유로운 건축』, 『개념으로서의 건축』, 『개념으로서의 건축 Ⅰ. 창조적 사고와 디자인의 도전』, 『개념으로서의 건축 Ⅱ. 아름다운 건축, 인간이 꿈꾸는 건축, 건축이 그려내는 도시』, 『알기 쉬운 건축, 건축을 모르는 내 아내 와 학생들도 이해하는 건축 이야기』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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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Depth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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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9호 | 와이드 칼럼 창작이란 이름의 건축 Wide Architecture : widE Edge column no.9 :may-june 2009

지난 3월에는 WBC 한국대표 야구팀과 피겨 스케이터 김연아의 선전

할 것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에 비하여 대가는 항상 충분하지 않습니다.

으로 온 나라가 기쁨과 흥분으로 오랜만에 즐거움을 만끽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사회에서 건축가를 그리 존중해 주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 금융 위기의 어려움 가운데 단비와 같은 낭보였습니다. 이 경기 들이 열리는 동안만은 온 국민이 찌푸린 인상을 환히 펴고 마치 자신의

창작은 멋진 일입니다.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 그 일을 하는 사

무용담인양 목청을 돋우던 마냥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더욱이 숙명

람들은 늘 무언가를 만드는 데에 정신을 다 기울입니다. 문학, 미술, 음

적인 라이벌인 일본을 상대로 한 선전이었기에 즐거움이 더했던 것 같

악 그리고 건축……. 창작의 행위에는 즐거움도 따르지만 처절한 산고

습니다. 사실 이 스포츠 이벤트들이 어려운 경제 여건을 회복하는 데에

를 겪기도 하며, 그러한 과정을 거쳐 잉태의 환희를 누립니다.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열광하고 신이 났을까

잡지나 신문에 가끔 건축가들이 나옵니다. 그것은 그들이 이미 화제가

요. 아마도 우리는 거기서 희망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되는 인물이고 영향력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매체에 오른 그들의 모습은 대부분 심각해 보입니다. 턱을 괴고 인상을 쓰고 있거나, 팔짱을

희망!

끼고 무언가 생각하는 등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모습, 그래서 쉽게 범접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희망입니다. 총체적인 어려움으

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건축이란 그렇게 심각해야 할까요? 그렇게 비

로 모두가 극심하게 침체되어 있는 지금, 불가능할 것 같았던 것을 이루

춰져야 하는 것인가요?

어낸 WBC한국팀과 김연아에게서 통쾌한 비전을 얻은 것입니다. 열악 한 환경을 피땀 나는 노력과 전략으로 극복하여 훨씬 좋은 조건의 상대

건축을 공부한 많은 젊은이들이 설계보다는 다른 일을 택하고 있습니

를 이기는 드라마를 연출하며 희망을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다. 설계에서 매력을 못 느끼나 봅니다. 비전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겁니다. 이에 대해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니 정말 참담합니다. 건축

정형외과를 운영하는 의사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 의사 친

에서 어떻게 비전을 만들어야 할까요? 사회적으로 건축가가 존중받으

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의욕 있고 전망

“의사를 꼭 공부 잘하는 사람이 해야만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오히려 건

있는 젊은이가 설계를 하고 싶게 만들 수 있을까요? 그래서 그들을 가르

축이나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머리도 더 좋고 명석해야 할 것 같다.”

치고 함께 연구하고 고민하며, 만드는 일을 해나갈 수 있을까요?

공부 잘하는 사람이란, 우리나라에서 대학 진학할 때 의대, 법대, 상대 등의 인기 학과를 지망하는, 성적이 좋은 이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창작하는 일인 건축설계는 어려움이 많지만 매력 있는 일임에는 틀림

의사는 아픈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일은 보람이 있으나 늘 아픈 사람만 대

이 없습니다. 그 어려움을 이유로 이 매력 있는 일을 포기하는 것은 좀

해야 하고, 변호사는 억울한 사람의 권리를 찾아주며 보람을 느낄 수 있

아깝지 않을까요? 어느 일이라고 쉽기만 할까요? 이제 심각한 것은 우리

으나 늘 문제 있는 사람만을 대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도 대다수가 의

끼리 하기로 하고,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어 건축을 가까이 하도록 그들

사, 변호사를 지망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대체로 경제적인 안정

의 눈을 높여 주는 것은 어떨까요? 그로써 그들로 하여금 더 좋은 것을

을 많이 꼽습니다. 그래도 그것만으로 만인이 선망하지는 않겠지요. 성

요구하게 하고, 그로 인해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어떨까요?

취감과 보람 그리고 이에 따르는 사회적인 존경심 등으로 주어지는 자 긍심도 큰 동기가 됩니다. 미래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선망하는 것은 당

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저를 만나 이야기 끝에 늘 하시던

연할 것입니다.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문학을 하지 않았더라면, 건축을 했을 텐데…….”ⓦ

언제부터인가 건축설계 일은 기피하는 직업으로, 3D 업종에 포함된다 는 말이 돌기도 했습니다. 사실 설계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공장

글 | 임근배(본지 발행편집인 고문, 그림건축 대표)

설계를 의뢰 받으면 공장 생산라인에서부터 운영, 경영, 게다가 그 회 사의 철학까지 이해해야 합니다. 또 교회 설계가 들어오면 기독교에 대 하여, 전례에 대하여, 성직자와 신자들의 생리를 공부해야 합니다. 이렇 게, 설계를 하려면 아는 것도 많아야 하고, 조사하고 이해하고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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