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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심원건축학술상 Simwon Architectural Awards for Academic Researcher

최종 심사 대상 ⓢ 1차 추천작|벽전, 박성형 作 ⓢ 2차 추천작 발표|건축가의 師承關係와 독창성 문제-김중업과 김수근을 중심으로, 강윤식 作

ⓢ <심원문화사업회>(이하 사업회)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건 축가 김광재를 통하여 건축의 세계를 이해하고 애정을 갖게 된 기업가가 그와의 인연을 회억하며 건축의 인문적 토양을 배양 하기 위하여 만든 후원회입니다. ⓢ <심원건축학술상>은 사업회가 벌이는 첫 번째 후원 사업으 로 건축 역사와 이론, 건축미학과 비평 분야의 미래가 촉망되는 유망한 신진학자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마련되었습니다. ⓢ <심원건축학술상>은 1년 이내 단행본으로 출판이 가능한 완성된 연구 성과물로서 아직 발표되지 않은 원고(심사 중이거 나 심사를 마친 학위논문은 미 발표작으로 간주함)를 응모받아 그 중 매년 1편의 당선작을 선정하며, 당선작에 대하여는 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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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출간과 저술 지원비를 후원합니다.

ⓢ 주최 | 심원문화사업회(이사장 이태규, 사무국장 신정환) ⓢ 주관 | 심원건축학술상 운영위원회 ⓢ 기획 및 출판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 간향미디어랩

ⓢ 후원 | (주)엠에스 오토텍

by WIDE

Wide Architecture Report no.8 : march-april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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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 In Sung Bok Mixed Use Development

용인시 성복동 복합단지 개발계획

용인시 수지구내 취약한 상업시설을 자연, 문화, 커뮤니티가 어우러진 대규모 복합단지로 건설함으로써 지역 내 새로운 아이콘을 형성한다. 고층부 업무시설은 주변의 아파트와는 차별화된 전략적 One Stop 주거환경을 창출하고 다양하고 변화있는 평면과 입면 디자인을 통해 수지구의 일반적 아파트 이미지에서 벗어나 지역내 Land Mark로 자리매김 도록 하고, 저층부 판매시설 등은 지역 내 부족한 공원과 문화공간을 담아낸다는Concept과 성복천, 신설지하철 예정지와의 자연스런 연계를 통해 쇼핑 및 문화공간으로 주변 인구를 유입시킬 수 있도록 한다. 성복동 복합단지는 수도권내 새로운 문화복합단지 축을 형성 할 것으로 기대된다.

Location : Seongbok-dong, Suji-gu, Yongin-si, Gyeonggi-do, Korea _ Project Type : Office, Store, Cultu re, Sports facilities _ Site Area : 66,043.0 0m2 Building Footprint : 17,051 .06m2 _ No. ofStori es : 6 below-grade, 25 above-grade

EaWes ARCHITECTS http://ww w.eawes.com TEL. 02-2056-9460 _ FAX. 02-543-7902

by Ea Wes Architects

by EaWes Archit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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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가지의 색깔 있는 건축물 아름다운 건축물의 완성, 삼협건설

신뢰와 성실을 주축으로 21세기를 도약하는 삼협종합건설(주)는 뛰어난 기술력과 신용도, 투명한 도덕성, 특유의 잠재력으로 더욱 성숙된 건설업의 발전을 주도합니다.

삼협종합건설(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770-7 홍성빌딩 4층 Tel : (02)575-9767 | Fax : (02)562-0712 www.samhyub.co.kr

by Samhyub Wide Architecture Report no.8 : march-april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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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잡담

구미역 앞에 오래전부터 있었던 ‘싱글벙글’이라는 복집이 있다. 구미문화회관 공사 당시, 그러니까 김수근 선생님 말기 작품의 현장에 감리 차 왔다 갔다 하면서 점심 즈음에 들리던 해장을 겸한 조촐한 식사 집이었다. 폭 2~3m 됨직한 기차 통처럼 허름한, 그러나 맛있는(대개 유명 한 맛집들이 허름하나 오래되어 단골을 확보하듯 이 집도 그런 집들 중의 하나였다)그 집에 가서 해장국 먹는 맛이 감리의 또 다른 묘미였을 정도였다. 완공이 되고 나니 갈 일도 별로 없고, 상당한 시간이 지나 다른 일로 구미에 갔을 때 옛 기억의 그 집을 찾아 갔다. 장사 잘되는 집들 이 그러하듯이 그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간 번 돈으로 옆집을 사서 확장하여 같은 메뉴를 팔고 있었다. 사람이 간사한 건지, 이 집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스친다. 맛도 비슷했을 텐데 왠지 다른 것처럼 느껴지고…. 정말 바뀐 건가…. 피맛골 살리기 지명현상 마감이 내일이다. 조선시대 때부터 이어져 온 피맛골이 일제시대, 근대를 거쳐 현재 종로통 전체 재개발로 인해 멸실 내지는 변질될 상황에 있다. 청진동 해장국집, 한일관, 어깨를 부대끼고 앉아서 막걸리 한 잔 하던 이름 없는 주점들…. 젊은 시절 누구나 한 번 쯤 그곳에 들렀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을 법한 그런 동네이다. 서울 한복판의 바로 뒷길, 불과 10m도 안 되는 뒤 켜의 골목은 낮이나 밤이나 종 로통 대로와는 딴판의 세상이다. 조선시대 대감님들의 행차를 피하여 났다는 길답게 태생부터 다른 분위기를 유지해온 터다. ‘싱글벙글’집이 그 자리에, 그 주인이, 같은 음식을 만들어 내 놓고 팔고 있음에도 뭔가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같은 장소 임에도 불구하고 장소성이 바뀐 것이다. 옛날 기차 통과 같았던 공간의 크기와 분위기가 그 폭의 2~3배 되는 좌식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편의 성을 곁들인 또 다른 장소 성격을 갖게 된 것이다. 그 옛날 ‘기차 통’과 같은 분위기를 모르는 요즘 사람들은 그 집을 찾아보고 나름대로 그 이 름을 확인할 것이다. 오리지낼러티(originality)는 사라졌지만, 또 다른 명소로 거듭나기 위해서 노력할것이다. 지금처럼 전부를 밀어내고 새 로이 짓는 방법을 택하는 한, 피맛골 역시 아무리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여태 있어 왔던 그런 피맛골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일부를 유지하고 옆 집을 사서 좀 확장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공간적 스케일을 가져오고 다른 표피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같은 장소라 하더라도 같은 장 소성을 결코 가질 수 없다. 새로운 피맛골이 생겨서 그 옛날의 기억과 일부의 흔적들이 잘 접목되어, 또 새로운 분위기를 연상할 수 있는 그런 동네로 거듭난다면 괜찮은 명소가 하나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 글 | 오섬훈(본지 운영위원, 건축사사무소 어반엑스 대표)

by UrbanEx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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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KMAX Korea Wide Architecture Report no.8 : march-april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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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SangDong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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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류산방 樹流山房의 책 book of Suryusanbang

도시마 : 스스로 제자된 자들이 만든 책 T O SH I M A: From the Pers pec tives of Se lf - procla imed St ude nt s

고향을 떠나 20여 년을 에스파냐(스페인) 그라나라에 머물며 온전히 창작에만 집중했던 화가 도시마 야스마사. 생전에 그를 만난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사후에 이야기로만 그를 접한 사람들조차 모두 자신이 이 깡마른 백발의 사내에게 깊이 매료되었음을 자랑스럽게 고백한다. 이 화가의 무엇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그토록 깊이 흔들어 놓은 것일까. 한국어, 일본어, 영어, 에스파냐어 4개 국어로 편집한 이 책은, 그라나다 알바이신에서 그와 함께 생활한 포토그래퍼 정세영의 체험을 모티프로 하여 도시마 선생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기억과 작품, 사진 등을 엮은 것이다. 아들,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벗, 2008년 말 도쿄에 <도시마 야스마사 미술관>을 오픈한 후원자 등 그를 기리는 여러 사람들의 글을 통해 독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예술 세계와 정면으로 승부하다 간 한 화가의 삶과 정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마 선생의 그림과 그가 남긴, 그가 가장 존경했던 조각가 권진규에 대한 추모글 또한 흥미로운 볼거리다. The painter, Toshima Yasumasa, spent 20 years in Granada, Spain dedicating himself to art. Along with the people who had known him before his death, those who came to know him only after his death through stories proudly confess their profound attraction to him. What is it about him that has such force? This book, containing Korean, Japanese, English, and Spanish versions, is a concoction of people’s memories of TOSHIMA Yasumasa, art works and photographs, centered around the experience of the photographer CHUNG Seyoung who practically lived with him in Albaicín, Granada. Through the writings of people close to him, like his son, a college friend, and a sponsor who opened Toshima Yasumasa Memorial Gallery in Tokyo at the end of 2008, the readers will be able to see the life and the spirit of a painter who stood up to his own art face-to-face until the very end. His paintings and writings commemorating his most respected friend the sculptor KWON Jinkyu are particularly interesting.

by Suryusanbang Wide Architecture Report no.8 : march-april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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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gan Architects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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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설계 | 안전진단 | 구조물 보수^보강

(주)건우구조엔지니어링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197-5 삼성 IT밸리 802호 T. 02-2028-1803/4 F. 2028-1802

by Kunwoo Structural Engineers Wide Architecture Report no.8 : march-april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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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gal, You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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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yang PC, inc. Wide Architecture Report no.8 : march-april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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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ta Group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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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3 Publishing Co. Wide Architecture Report no.8 : march-april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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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ysky는, 여행을 컨셉으로 하는 디자인 문구입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여행의 추억을 flysky 제품과 함께 그려보세요~

L2S는, 한국 고유 문화의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디자인 브랜드로 작가 임성민이 운영하는 디자인 집단입니다.

작가 임성민(본명 임상순)은, 홍익대 산미대학원(무대디자인전공)을 졸업하고, 서일대에서 겸임교수, 상명대, 한성대, 계원조형대, 협성대, 숭의여대 등에 강사로 출강했으며, 한국디자인학회 및 한국무대예술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 문양 : 우리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 문양 A/B ⓛ 소재 : 고급소가죽, 새턴(satain) ⓛ 사이즈 : 가로 10.5cm, 세로 8cm ⓛ 수납 공간 : 카드 수납 3개, 명함 약 30~40장 수납 가능 tel. 031-977-8338 | 이메일 l2sgb@naver.com 홈페이지 : http://club.cyworld.com/designpd

by L2S 14

Make your dream with flysky Have your dream with it, Draw your dream with it, Keep your dream with it, Make your dream true with‘flysky’

#1 World Map 80*55cm Map 1 / country list 2 #1 Travel Planner 100*150*5mm planner 1 / sticker 1 #1 Note set 100*150mm monthy, weekly, daily scheduler 1 free note 2 (line 1, solid 1) #1 Pencil set 185*70mm 1/2 dozen tel. 070. 8153. 9387 e-mail. flysky@flyskyshop.com URL. http://www.flyskyshop.com

by flysky widE Edge


by Spacetime Wide Architecture Report no.8 : march-april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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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GREEN” 남들보다 더 먼저 더 빨리 그린에 다가서는 개인, 기업, 국가가 생존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

뉴욕타임즈의 저명한 칼럼리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그의 저서 『코드 그린-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에서 “청정에너지, 에너지효율, 환 경보존”을 3가지 주요 키워드로 설정하고 이들을 정치, 환경, 비즈니스의 측면에서 정리해내며, 이제 친환경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운명이 라는 것을, 또한 친환경 관련 산업과 기술을 갖지 못한 나라는 석유 이후의 시대에 낙오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저널리 스트이자 환경운동가인 마크 라이너스는 그의 저서 『6도의 악몽』에서 지구 온난화를 늦출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을 제시했다. 첫째 매년 사 람들의 운전 거리를 반으로 줄인다, 둘째 자동차 연비를 두 배로 늘린다, 셋째 건축물의 효율을 두 배로 늘린다, 넷째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 소의 효율을 두 배로 높인다, 다섯째 1메가와트급 풍력발전기를 200만 대 세워 발전한다, 여섯째 200만 헥타르의 땅을 태양광 전지판으로 덮 는다, 일곱째 열대림의 파괴를 막고 숲을 늘린다, 여덟째 수십억 통의 이산화탄소를 지하에 주입하거나 가스발전소를 1,400개 늘려 발전한다 등,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닌 방법들이다. 마크 라이너스는 지금 당장 위의 일들을 실천하지 않으면 지구 온도가 3도 이상 상 승(현재는 1도 상승한 상태이다)하고, 결국에는 6도까지 상등하여 대재앙이 온다고 경고하고 있다. 여기서 건축가는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 에 대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친환경 건물이라는 것은 풍차나 태양 전지판으로 전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의 소비 문제에 대 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친환경 건물이다. 물론 건축 비용에 부담이 있긴 하지만, 전체를 놓고 본다면 이전 건물에 비해 30% 적은 비용으 로 건물을 짓은 것과 다름없다. 건물을 단지 조명과 냉난방 시설을 갖춘 벽과 바닥, 창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시스템들로 구 성된 집합체로 본다면 서로 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프리드먼은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 있는데, 단연코 건축가들이 참여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들이다. 사용할 때만 가동되는 인공지능형 건물, 춥고 어두침침한 날씨에 보다 많은 자연광과 열을 실내로 끌어 들일 수 있는 인공지능형 창문, 건물벽에 흡수되는 태양열-학교 전체의 조명이나 학생들의 통학 차량을 충전하는데 이용된다-, 구부러진 연 결부위를 최소화한 냉방 통기관 등이다. 설계 초기 단계부터 기술적인 부분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뒤로 미뤄지면서 웬만한 것들이 결정되고 나서야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는데, 대부분 때가 늦은 경우가 많다. 건축가 와 대중들의 인식 부족 때문이기도 하고 건축가와 이 분야 전문가들과의 긴밀한 협조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앞으로 친환경 건축물 을 디자인하는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디자인에 대해서 고민해 봐야겠다. | 글 | 김기중(본지 운영위원, (주)건축사사무소 이일공오 대표)

by Studio 210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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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29/30 세 번째 주제 : 건축가 초청 강의 - 나의 건축 <건축가 초청 강의-나의 건축, 나의 세계>는 매월 한 분의 신진 건축가를 초청하여 그 분의 건축 수학의 배경과 최근의 작업 이야기를 듣고 묻는 시간입니다. 열두 분의 건축가를 만나가면서 우리 건축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① 3월의 초청 건축가

<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참여 관련한

정현아(DIA건축 대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카페명 AQkorea,

주제 | Architecture of Everyday Life(일상의 건축)

카페주소 http://cafe.naver.com/aqlab)에서

일시| 2009년 3월 18일(수) 저녁 7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② 4월의 초청 건축가 곽희수(이뎀도시건축 대표) 주제 | Paradox of Gangnam 일시 | 2009년 4월 15일(수) 저녁 7시

주관: AQ KOREA 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 주최: 그림건축, 간향미디어랩 GML 협찬: 우리북, 디자인그룹 L2S, 시공문화사 spacetime

장소 | 그림건축 내 안방마루 (문의: 02-2231-3370/02-2235-1960)

by WIDE Wide Architecture Report no.8 : march-april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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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as a del A gu a t h e 2 nd H o u s e

the gallery casa del agua, jeju legorreta + legorreta, 2009 tel:064-739-0012

by Casa del Agua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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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W

!

통권 08호, 2009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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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리포트 <와이드>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D E

Wide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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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섬훈의 <송도 산업기술문화 콤플렉스>와 <분당 자동차 전시장>

24

집담회 | 프로그램에 대한 탐구와 구조적 조직 짜기 |

표4 Mooyoung Architects & Engineers

오섬훈, 박진호, 이경훈, 임재용

표2

widE Edge Dongwoo

표3 Wondoshi 1

제  1회 심원건축학술상 공모 요강

wIde Issue 1

2

EaWes Architects

55

REVIEW | 건축학 5년제 졸업생들이 말했다 | 전진삼

3

Samhyub

4

UrbanEx

wIde Issue 2

5

MakMax Korea

명동 국립극장 재현기, 우리시대의 아련한 노스탤지어 | 김정동

6

UnSangDong

7

Suryusanbang

wIde Issue 3

8

Seegan Architects

73

인천 아트 플랫폼 Incheon Art Platform

9

Kunwoo Structural Engineers

77

INTERVIEW | 지역 소생의 발화를 기대한다 | 황순우

10

Jeagal, Youp

11

Dongyang PC, inc.

12

V  ita Group

66

86

13

C3 Publishing Co.

wiDe Dailly Report

14

L2S+flysky

강병국의 <건축과 영화 08> | 거킨 빌딩(BUILDING THE GHERKIN)

15

Space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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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 2105

89 <내가 좋아하는 건축 잡지 08>| AMC | 송복섭 90

이용재의 <종횡무진 08> | 나바위 성당과 망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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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욱의 <공간 전달자 03> | 오다이바(O d a i b a , お台場)

99

손장원의 <근대 건축 탐사 08> | 내포로 떠나는 공소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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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 del Agua

102

이종건의 <COMPASS 05> | 공간의 탈소유화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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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 Taigyoun

104

<와이드 書欌 08> |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 김민수 지음 | 안철흥

84

Suryusanbang

106

<주택 계획안 100선 07> | 정릉 주택 | Studio 2105

17 건축가 초청 강의-나의건축, 나의 세계| WIDE

113 WIDE PRO 젊은 건축가 FILE 7 | Be급 액션 건축 | 문훈 115 WIDE PRO 젊은 건축가 FILE 8 | 건축에서의 최적화 - 절충의 상태로서의 건축 | 전유창 121

함성호의 <소소재잡영기(素昭齋雜詠記) 02> | 땅을 찾아서-1

124

<와이드 리포트>| <Terra Incognita 미지의 땅>展_ SECOND LIFE, Fourth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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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레터 | 정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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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구독 신청 방법

128 와이드 칼럼 | 건축 불경기 시대를 사는 법| 최동규

ⓦ 로고 글씨 | 김기충 ⓦ 표지 이미지 | 오섬훈의 송도 콤플렉스

Wide Architecture Report no.8 : march-april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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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is… 2042년 서울(1998년)

by Cho, Taigyoun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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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와이드 레터 | 문화재보호법 개정? 현재 우리나라의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것들 중에는 과거 일제강점기에 침탈의 수단이 되었던 건축물, 이를 테면 군사시설이나 농장 창고, 은행 등이 포함되어 법적, 행정적 인 보호를 받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건축물들을 문화재로 지정 또는 등록할 수 없도록 하는 법률안이 제출됐다. 국회의원 20여 명이 공동 발의로 낸 ‘문화재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주요 골자를 소 개하면,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침략전쟁, 민족문화말살 및 경제적 수탈의 수단으 로 이용된 동산 또는 부동산 중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것은 지정 문화재, 등록문화재로 지정, 등록될 수 없도록 하며, 또 종전 규정에 따른 이 같은 문화 재 중 식민통치 등의 수단으로 이용된 것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그 지정 또는 등록을 해제하거나 말소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역사적 보존 자료라는 항목을 추가,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할 수는 없으나 교육적으로 보존 및 활용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유형의 고고자료를 보존^관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문화유산연대를 비롯한 시민 단체들은 이 개정법안이 근대문화유산 보존의 법 률적 체계를 흔들려는 활동이라며 성명서를 발표했다. 즉, 문화재의 기본 개념을 이해 하지 못하고 공론화를 거치지 않은 졸속 법률안은 기존의 우리나라 문화재 보존체계 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등 전 세계 문명국의 문화재 보존 개념에 반하는 법 률안임을 지적하면서 개정안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필요한 개정법안이라면 기존 법의 취지와 개정안의 진의를 판단할 수 있도록 공론 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개발주의식 정책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문화유산의 철거와 훼손이 우려된다. 국가나 지자체가 소유, 관리하는 근대문화유산이 각종 명분으로 훼손되고 있는 것을 막아내 는 법안이 무엇보다도 절실한 때다. <와이드>가 이들의 견해에 마음을 보태고 싶은 이유다. ⓦ 편집장 정귀원

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 발행편집인단 발행편집인 고문 | 김정동 임근배 임창복 최동규 발행편집자문위원 | 곽재환 구영민 김병윤 송인호 윤인석 이일훈 발행편집인 겸 대표 | 전진삼 편집장 겸 대표 | 정귀원 운영위원 | 김기중 박민철 박유진 박종기 손도문 신창훈 오섬훈 제갈엽 편집위원 | 김진모 박혜선 손장원 이영욱 이충기 장윤규 전유창 조택연(수도권)|김종 헌 송복섭 한필원 황태주(중부권)|김 기수 안용대 안웅희 송석기(남부권)| 김정후(유럽권) ⓦ 크리에이티브 포커스그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박상일 포토그래퍼|남궁선 이병일 정세영 진효숙 제작 코디네이터|김기현 로고 글씨|김기충 ⓦ 광고 영업 대행 | 아크비즈 Agency 팀장 | 이나영 전화 | 02-2235-1968, 팩스 | 02-2231-3373 ⓦ 서점 유통 관리 대행 | (주)호평BSA 대표 | 심상호, 담당차장 | 정민우 전화 | 02-725-9470~2, 팩스 | 02-725-9473 ⓦ 직판 유통 관리대행|우리북 대표|김영덕, 담당과장|김남우 전화 | 02-3463-2130, 팩스 | 02-3463-2150 ⓦ 디자인 | 수류산방(樹流山房, Suryusanbang) 담당 디자인 | 정혜선 전화 | 02-735-1085, 팩스 | 02-735-1083 ⓦ 제작협력사 종이|대립지업사|대표 홍성욱, 이사 안영선 출력|삼성PL|대표 김호근 인쇄|예림인쇄|대표 박재성, 부장 오용택 제본|문종문화사|대표 신문섭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 통권 08호 2009년 3-4월호 2009년 3월 15일 발행 2008년 1월 2일 등록 서울 마-03187호 2008년 1월 15일 창간 낱권 가격 8,000원, 1년 구독료 45,000원 ISSN 1976-7412 ⓦ 간향미디어랩 GML 발행처|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 200 극동상가 502호(120-796) 편집실|서울시 중구 신당동 377-58 환경포럼빌딩 1층(100-834) 대표전화|02-2235-1960, 02-2235-1968 팩스|02-2231-3373 공식이메일|widear@naver.com 공식URL|http://cafe.naver.com/aqlab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는 한국간행물윤 리위원회의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본지에 게재된 기사나 사진의 무단 전재 및 복 사, 유포를 금합니다.

Wide Architecture Report no.8 : march-april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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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Edge


와이드 8호 | 와이드 워크 오섬훈의 <송도 산업기술문화 콤플렉스>와 <분당 자동차 전시장> Wide Architecture : Wide Work no.8 : march-april 2009

이번 호는 오랫동안 (주)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활동하다가 2006년 어반엑스라는 이름으로 사무소를 개설 한 건축가 오섬훈의 작품 2제를 찾아가 본다. 프로그램에 따라 달라지는 형태와 표피, 장소와 이벤트, 그리고 공 간에 이르는 그의 관심과 작업 성향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 사이 건축에 접근하는 건축가의 솔직한 태도들을 만 나게 될 것이다.

진행 | 정귀원(본지 편집장), 사진 | 남궁선(건축 사진가)

↖ 송도 산업기술문화 콤플렉스 건축 개요 ⓦ 대지 위치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동 7-50번지 일원 ⓦ 지역 지구 : 준주거지역, 제1 종 지구단위계획 구역, 경제자유구역, 산업 기술 단지 ⓦ 용도 : 교육 연구 시설 중 연구소/지원 시설 ⓦ 대지 면적 : 59,129.00 ㎡ ⓦ 건축 면적 : 7,493.69 ⓦ 연면적 : 65,989.37 ㎡ ⓦ 규모 : 지하2층, 지상21층 ⓦ 구조 : 철근 콘크리트조, 철골조 ⓦ 외부 마감 : THK24 로이 복층유리, THK24 칼라 복층유리 ↗ 분당 벤츠 자동차 전시장 건축 개요 ⓦ 대지 위치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 자동 176번지 ⓦ 지역 지구 :도시지역, 중심지 상업지역, 지구단위계획 구역, 주차장 ⓦ 용도 : 자동차 관련 시설(주차장, 정비 공 장) / 제1종 근린생활 시설(소매점) ⓦ 대지 면적 : 2,377.20㎡ ⓦ 건축 면적 : 1,496.82㎡ ⓦ 연면적 : 7,024.99㎡ ⓦ 규모 : 지하 1층, 지상5층 ⓦ 구조 : 철골 철근콘크리트조 ⓦ 외부 마감 : 알루미늄 복합 패널(타공), 투명 강화 접합 유리 ⓦ 구조 : 선구조 ⓦ 설비 : 융도 엔지니어링 ⓦ 전기 : 공간ENG ⓦ 시공 : 효성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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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콤플렉 화 문 술 산업기 <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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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 동차 자 당 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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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산업기술문화 콤플렉스 조성사업의 첫 그림 ⓦ 박진호 오늘은 유난히 날이 찹니다. 특히 송도 바 람의 위력이 대단하네요. 먼저, 저희가 오늘 송도에 서 볼 프로젝트는 어떤 겁니까? 간단히 소개를 해주 세요. ⓦ 오섬훈 송도 산업기술문화 콤플렉스(Complex) 조성사업(이하 송도 ITC 콤플렉스)입니다. 이 프로 젝트는 송도국제도시 2공구 테크노파크 내 부지에 기 존의 갯벌타워, 시험생산동, 본부동과 연계하여 벤처 업무 A동, 벤처업무 B동 두 개동을 신축하고 통합 된 광장시설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에요. 시험생산동 은 무영과 희림이, 갯벌타워는 삼우와 공간이 한 것 이고요. ⓦ 박진호 전에 이 계획안을 모형으로 본 적이 있습

프로그램에 대한 탐구와 구조적 조직 짜기

니다. 좀 과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기존 갯벌타워와 연결되는 브릿지(bridge)도 있었던 것 같고, 건물의 높이도 현재보다는 더 높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전 반적으로 모형과 차이가 꽤 있는 것 같은데요? ⓦ 오섬훈 바로 보셨네요. 벤처업무 A동은 뒤로 꺾 여 기울어진 부분을 세우고 높이를 낮췄어요. 저층 부의 랜드스케이프 계획도 많이 바뀌었고요. 그 과 정에서 브릿지도 없어졌지요. 턴키는 일단 당선이 되 고 나면 비용의 문제와 부딪히면서 힘들어지는 부분 이 많아집니다. ⓦ 박진호 그렇다면 원래 계획안은 어떤 아이디어를

ⓦ 집담회 | 오섬훈, 박진호, 이경훈, 임재용

담고 있었습니까? ⓦ 오섬훈 전체 배치에 있어서 두 가지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지하철 입구에서부터 벤처A동 에 이르는 곳까지 다양한 이벤트가 생길 수 있는 테 마 스트리트(street) 조성 개념이었습니다. 프로그램 적으로는 휴게, 식당, 미디어 실험실, 선큰(sunken) 광장, 참여 업체들의 전시 갤러리 등이 길과 함께 구 성되도록 했습니다. 즉 지하 1층에서 시작한 공간의 흐름이 A동에 이르러서는 지상 1층과 2층에서 연결 되도록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입체적인 랜드스케이 프를 조성함으로써 주변의 중앙 공원과 시설 녹지와 의 관계 설정에서도 자연스레 시각적으로 연결되도 록 했습니다. 또 중간에 있는 도로와 차 소음을 뛰어 넘을 수 있도록 구릉지 형태로 계획을 했습니다. 대 지 경계에 인접해 있는 시설 녹지와 시각적 연계성을 도모하고 광장에 열린 남향을 제공하기 위해 B동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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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층(약12M)을 띄워서 계획했습니다. 마지막으로 A 동의 타워는 기존의 갯벌타워와 대비시키는 조형 개 념을 잡았습니다. 조형에 있어서는 사각에 대비해 다 각형의 동적인 형태를 취했고 스킨에 있어서는 갯벌 타워가 여러 켜의 스킨을 시도했다면(유리, 철판, 롤 스크린, 포켓 옥상정원) A동은 동적인 조형의 취지를 살려 1층에서부터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수직적으로 표피의 투명도를 변화시켜 수직 상승의 변화감을 가 지고자 했습니다. ⓦ 박진호 테크노파크 조성 당시 지하철과의 연계 가 상당한 이슈였던 것 같은데, 어떻게 해결했는지 ↑ 사선 처리로 긴장감을 부여한 입면.

궁금합니다. ⓦ 오섬훈 걷다 보면 선큰 레벨과 만나게 되어 있어 요. 본동 건물의 위치에 따라 지하철로부터의 거리가 정해지니까 처음에는 배치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좀 거리를 길게 두어서 그 사이에 여러 장치를 하면, 그러니까 스트리트 몰(street mall)처럼 하려고 했지 만,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과 같이 큰 선큰 가든을 중 심으로 하는 계획으로 바뀌었습니다.

삭제된 부분에 대한 아쉬움 ⓦ 박진호 광장 부분의 변경이 좀 많은 것 같네요. 원 래 두 동의 건물은 중앙의 랜드스케이프로 인해 자연 스럽게 짜 맞추어져 부드러운 연결성을 가지고 있었 는데 말이지요. 중앙 광장이 첨단 기술을 전시하고 공 ↑ 브릿지에서 바라 본 벤처 B동.

유할 수 있는 전체 프로그램에 있어 중요한 위치였다 고 기억되는데요. 또한 경사로를 통해 B동에서 직접 A동의 2층으로 진입이 가능하도록 만든 디자인이 실 현되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듭니다. 바깥 쪽 도시 면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들어와서 건물들과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었을 것도 같고요. ⓦ 임재용 벤처업무 A동 최상층에서 내려다 볼 때 는 광장 조경의 선들이 다양하게 느껴져서 무척 즐 거웠는데, 막상 눈높이에서 보니 굉장히 플랫(flat) 하게 보였어요. 실제로 걷다 보면 조금 심심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군요. 조금씩 레벨차를 두었으면 어 땠을까 싶어요. ⓦ 오섬훈 원안의 랜드스케이프가 변경되는 바람에 입체적인 느낌이 많이 퇴색되었지요. ⓦ 박진호 벤처업무 B동은 선큰 공간과 어떤 연계

↑ 초기 계획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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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가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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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섬훈 지하층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이 또 한 경사로를 이용, 1층에서 연결되도록 계획이 되었 던 부분입니다. 원래는 원형으로 뚫린 중간 부분에 계 단을 두었고요. 아무튼 공간적으로나 입체적으로 삭 제된 부분이 많습니다. 건물의 규모가 커지니까 저층 부에서 신경 써야 할 부분들, 디테일들을 놓치게 되 더라고요. 또 발주측에서 외부 공간에 대해서는 심 플(simple)하게 갈 것을 원하기도 하고, 공사비 문 제도 있고…. 당선 되고 나서 저층부에 대한 클레임 (claim)이 바로 들어왔지요. 발주처도 그렇고 시공자 도 그렇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안 되더라고요. 가운 데 중정만 남은 격이에요.

↑ 벤처 B동의 선큰 부분.

유리 스킨에 대한 고민 ⓦ 박진호 내부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우선 벤처업 무 A동의 로비에서는 텐션 케이블(tension cable)이 조금 눈에 거슬립니다. 원안의 수직적인 것에 비해 다 소 수평적으로 설계된 것 같은데요. ⓦ 오섬훈 양을 줄이다 보니 그런데, 덜 텐션해 보 이죠? ⓦ 임재용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외국에 서는 저런 대형 유리 창호를 디자인하면 오브 애럽 (Ove Arup) 같은 회사에서 디테일이나 기술적인 문 제를 정리해 주잖아요. 그런 면에서 우린 참 불행한 것 같아요. 유리를 잡고 있는 구조도 일정 부분 기여 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구조 쪽에서 먼저 디자인 을 하다보니까 유리 업체에서 만들어 오는 텐션 케이 블 같은 저런 구조물의 역할은 다 빠지고 기둥이나 다

↑ 벤처 B동의 원형으로 뚫린 부분 천창.

른 부재가 뒤집어쓰게 되는 거죠. 부재가 두꺼워질 수 밖에 없는 거예요. 구조를 디자인해 주는 것이 아니라 풀기만 하니까 그런 문제가 생긴다고 봅니다. ⓦ 오섬훈 솔직히 저도 이 공간에 들어오면 조금 불 편합니다. 이 공간이 만들어지기까지 여러 사람들이 관여되어 있지요. 저 이외에도 공간, 인테리어 회사, 발주측 등,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를 해야만 했 어요. 한 사람의 의지만 반영될 수는 없었죠. 맘 편하 지는 않아요. ⓦ 임재용 밖에서 보면 유리 외피 안의 희고 큰 콘크 리트 구조체들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철골 구조로 가 볍게 해결해 보실 생각은 없으셨는지요? ⓦ오섬훈 구조 심의 과정에서 진동을 우려한 구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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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크프린트를 이용하여 스킨에 부여하고자 했던 상승감은 공사비 문제로 제대로 구형되지 못했다.

↑ 벤처 A동의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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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처 A동의 로비.

↑ 로비 전면 창을 지지하는 텐션 케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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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가의 제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진동에 약한 철골 대

도서관 등의 작품으로 오소장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

신 RC 구조로 하게 되었고요. 갯벌타워도 마찬가지

이 있습니다. 그때 소장님의 화두가 노매딕스(No-

였어요. 그런데 여기는 색깔마저 흰색이어서 시각적

madics)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벤트와 연속적인

으로 더 크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흐름에 대한 개념도 기억나고요. 이번 작업들도 여전

ⓦ 박진호 송도 신도시를 보면 커튼월을 과도하게 쓰

히 당시 개념의 연장선상에 있는 건가요?

는 경향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다들 로이 유리

ⓦ 오섬훈 들뢰즈(Gilles Deleuze)가 이야기하는 철

(low-e glass)를 쓴다고는 하지만 에너지 문제나 차양

학적 의미의 노매딕스도 있겠지만, 저의 개념은 단지

등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해 줄 수는 없거든요. 제가

건축적인 번안입니다. 그것으로 현대의 길을 이야기

에너지 관련 건축가는 아니지만 송도에서의 유리 파

한 거지요. 간략하게 정리하면, 한 장소지만 여러 가

사드들은 시야가 트여서 좋은 반면 에너지 손실을 생

지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고 시간에 따라서 다른 장소

각하면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로 변할 수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길의 양 옆에 최

ⓦ오섬훈 유리를 사용하는 방법을 계발시켜야 할 거

소한의 건축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에요.

예요. 벤처업무 A동은 유리에다가 실크 프린트를 했

ⓦ 임재용 거기에 저의 짧은 비평의 글도 실렸죠. 성

는데, 열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갯벌타워의 경

신여대의 경우는 뭘 하시려고 하는지가 분명히 읽혔

우는 유리면 안쪽으로 펀칭메탈과 블라인드를 두었

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비단 외부 공간이나 길의 문

지요. 그런 사용 방법들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을

제가 아니라 건물 내부에까지 충분히 끌고 들어올 수

것 같아요. 아쉬운 것은 공사비 문제로 실크프린트를

있는 개념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

이용하여 벤처업무 A동의 스킨에 부여하고자 했던

런데, 송도의 경우는 과연 그것이 내부에까지 연장이

상승감을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했다는 거예요.

되어 엮여졌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원 안처럼 브릿지가 2층으로 연결되었다면 이야기가 될

길과 이벤트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죠.

ⓦ 박진호 원래 계획안을 보면, 단지 내는 물론이고

ⓦ 오섬훈 도시의 공공의 성격에서는, 최소한의 장치

전체 도시와의 연계를 염두에 두셨던 것 같습니다. 도

를 해주면 그 장치 속에 같이 참여하는 사람들과 프

시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요, 사무실 이름이

로그램들이 작동하여 또 다른 의외의 결과를 낳을 수

어반엑스(urbanEx)인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한 장소의 성격이 한 가지로 고정되어 있

ⓦ 오섬훈 엑스(Ex)는 ‘…으로부터’란 의미를 지니고

는 것이 아니지요. 이처럼 장소의 성격을 복합적으로

있어요. 도시로부터, 사람 사는 곳으로부터, 여러 사

해주고 다양한 성격을 가지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초

람 모여 있는 곳으로부터라는 의미지요. 언젠가 글에

기의 테마 스트리트 계획은 이 노매딕스 개념에 많이

서도 썼는데, 현대사옥 옆길, 즉 중앙 고등학교 쪽으

근접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변질

로 올라가는 길을 보면 도시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

이 되어 무척 아쉽습니다. 턴키에 모형을 제출했는

을 하게 돼요. 그 작은 길은 건축적인 스케일도 되지

데, 모형 제작 스케일 때문에 구릉지처럼 생기고 구

만 어떤 면에서는 도시의 스케일이 되기도 합니다. 주

멍 뚫리고 입체로 생긴 그런 모습들이 이상하고 답답

택, 학교, 사옥, 가게들이 퍼블릭(public)한 길을 따

하게 읽힌 모양이에요. 그런 걸 설명하기가 참 힘들

라 늘어서 있음으로 해서 이 길은 다양한 성격을 갖

었어요. 랜드스케이프를 따라 올라가면 답답하다가

게 되지요. 즉 이 길은 아침의 등굣길이나 오후의 퇴

도 어느 순간 확 트이잖아요. 건축 전공자가 아니면

근길, 정오의 벼룩시장, 오후 중간나절의 한가로운

그런 건 잘 모르죠. 단지 시공자의 입장에서는 랜드

길, 저녁의 주점길 등으로 상황 변신이 가능합니다.

스케이프를 계획대로 하게 되면 공사비가 늘어날 뿐

길 양쪽으로 어떤 프로그램들이, 어떤 장치들이 설정

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왜 이렇게 변명만 늘어놓게

되느냐에 따라 동일한 면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기대

되지요?(웃음)

할 수 있는 거죠. ⓦ 임재용 2003년도에 성신여대 2부관, 한성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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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처 B동은 광장에 열린 남향을 제공하기 위해 3개 층을 띄워 계획했다.

↓ 분당 자동차 전시장의 전경. 비틀어진 축의 상황에 대응하여 사각에서 벗어난 형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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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키 디자인의 딜레마 ⓦ 박진호 턴키 당선 후 건설사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보통 디자인 변경이 많이 되고, 이 과정에서 건축가 의 자존심이 구겨질 일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구현 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건축가가 제 일 가슴이 아프겠지요. ⓦ 오섬훈 그렇죠. 그 회사와 다신 일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임하지 않을 바에는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밖 에 없죠. 핑계 같지만 사무실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니까 쉽게 용기를 낼 수도 없고 요. 일산문화센터를 할 때였는데, 문화회관이 무슨 박스냐, 공연장에 한국의 전통성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고 바꾸라고 해서 한참 힘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설득을 해서 그냥 계획안대로 가긴 했지만, 송도 ITC 콤플렉스의 경우는 건설회사 측에서 공사비를 들고 ↑ 송도 산업기술문화 콤플렉스 벤처 A동과 벤처 B동. 두 건물의 연결성을 고려한 랜드스케이프는 아쉽게도 반영되지 못했다. ↓ 재료의 사용으로 아래층과 위층의 프로그램을 형태적으로 분리시켰다.

나오니까 얘기하기가 굉장히 애매하더라고요. 기회 가 흔치는 않으나 끝까지 잘 챙겨서 공사가 마무리되 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송도의 경우는 디테일 단계에 서 거의 손을 놓아버린 상태였어요. 잘 아시겠지만, 디테일 하나 고치려고 해도 설비나 구조를 다 건드려 야 하잖아요. 여러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 옵 니다. 쉽지 않은 일이죠. 그렇지 않고서는 마지막에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분당 자동차 전시장은 이중외피인가? ⓦ박진호 분당 자동차 전시장으로 이야기를 옮겨 봅 시다. 외피가 타공판(perforated plate)이군요. 내부 의 유리창에 덧붙인 이중외피(double skin)의 개념 인가요? ⓦ 오섬훈 대략 60cm 간격의 안쪽으로 유리 마감된 부분도 있고 패널 마감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완 전한 이중외피의 개념은 아닙니다. 1층은 자동차 전 시장(Mercedes Benz)이고 그 윗부분은 주차장이에 요. 3층에는 정비실이 있고요. 정비실 부분은 이중외 피로 되어 있지만 나머지 부분은 아닙니다. ⓦ 임재용 처음부터 외피를 분리시키는 개념을 고려 하지 않으신 건가요? 이중외피의 사이 공간이 잘 인 지되지 않아서요. ⓦ 오섬훈 이중외피에 대한 생각은 애초부터 있었 습니다. 유리면은 어차피 바깥 공간이니까 메탈 부 분을 스커트처럼 살짝 띄워 놓고 싶었어요. 어떤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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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은 이중외피가 아닌 타공판으로 마감되어 있지만, 안이 들여다보이고 안쪽의 스킨이 읽혀지는 것을 생 각했지요. 설계 과정에서 5:1 모델을 만들어 프리젠 테이션(presentation)까지 했습니다. 구멍의 지름을 10cm 뚫으니까 뒷부분이 인식되더라고요. 느낌이 괜 찮을 거라고 건축주에게 제안을 해서 펀칭을 하게 되 었죠. 하지만 밖에서 비추는 경관 조명 때문에 결정 적으로 사이 공간에 대한 인지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 어요. 경관 조명 측의 이야기가 펀칭 구멍이 크면 빛 이 제대로 먹을 수 없다는 거예요. 결국 안쪽 스킨을 읽기 어렵게 되고 말았지요.

해법으로서의 건축 ⓦ 임재용 벤츠가 임대하는 건물인가요? ⓦ 오섬훈 벤츠의 빌딩입니다. 주차장 용도지역이어 서 30% 이하만 상업설계를 할 수 있는 곳이죠. 70% 는 주차장을 해야 하도록 프로그램이 처음부터 정해 져 있었어요. ⓦ 박진호 타공판이 1층까지 내려오지 않고 분리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 오섬훈 아래의 프로그램과 위의 프로그램이 다르 ↑ 결정적으로 경관 조명 때문에 작아진 펀칭 구멍.

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처음부터 주차장 매스와 전 시장 매스를 분리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어요. ⓦ 박진호 형태를 만든 과정이 궁금합니다. 폴딩 (folding)된 부분이 눈에 띄던데요. ⓦ 오섬훈 이 건물의 앞쪽으로는 반듯한 형태의 NHN 사옥이 올라가고 있고, 뒤쪽으로는 고급 주거지역이 형성되어 있어요. 웬만한 형태로는 눈에 띄기 어렵겠 더라고요. 그래서 제스처가 약간 과장되어 있습니다. 바라보는 뷰(view)에 의해 위의 메탈은 도로와 평행 하게 맞춰져 있고, 유리면은 정자 사거리 쪽으로 약 간 틀어져 있지요. 다른 두 축에 대응하다 보니까 그 런 형태가 나왔어요. ⓦ박진호 솔직히 저는 렘 쿨하스(Rem Koolhaas)의 시애틀 공공 도서관이나 모포시스(Morphosis)의 샌 프란시스코 연방정부건물의 입면 등이 떠올랐고, 이 건물의 형태가 그 중간 영역쯤의 제스처라 생각했습

↑ 분당 자동차 전시장의 원경. 뒤로 고급 주거지역이 형성되어 있다.

니다. 축은 전혀 떠올리지 못했어요. 축을 가지고 그 러한 3차원적인 형태를 만들었다는 것도 어떻게 보 면 재미있네요. ⓦ 오섬훈 약간 변형을 주면 사각의 형태에서 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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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수 있겠다 싶었고, 비틀어진 축의 상황에 대응하 고자 했던 겁니다. ⓦ 박진호 아래층 유리면이 실제로는 튀어나와 보이 던데, 위에서 내려오는 타공판이 유리 표피를 감싸 주 면서 떨어졌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내피와 외피 사이 의 중간 완충 공간이 다소 아쉽습니다. 다시 말하면, 보행자 공간과 전시장의 중간 영역으로서 이러한 완 충 공간이 있었다면 내, 외부의 사이 공간을 형성하 여 건물과 도시의 접점으로서의 매개 역할이 가능했 을 법도 한데요. 보행자들은 완충 공간으로 인해 시각 적, 공간적 깊이를 인식하게 되고, 그 사이를 이동하 면서 보행자들은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자동차에 대 한 호기심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 이중외피의 사이 공간이 아쉬운 입면.

ⓦ오섬훈 유리면을 안쪽으로 좀 밀어 넣었는데 메탈 에 비해 생각만큼 들어가진 않았지요. ⓦ박진호 현실적으로 보면 전시장 면적을 최대한 확 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을 듯도 합니다. ⓦ이경훈 저는 일단 물리적인 조건을 잘 해결하신 것 에 점수를 드리고 싶습니다. 자칫 무거워 보일 수 있 는 형태를 타공으로 해결하고 아래 부분에는 C.I에 충실한 공간을 만들고 그 사이를 유리의 접힘 같은 것으로 연결을 했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자동차 전시장의 C.I와 인지성 ⓦ 이경훈 그런데, 개인적으로 자동차 전시장도 매 우 재밌는 빌딩 타입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기 업과 관련된 건물에 동일하게 적용시켜야 하는 C.I(Corporate Image)의 한계도 있을 거고, 강력한 인지에 대한 요구도 있을 거고……. 모델하우스 건물 과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아파트 모 델하우스의 외관상 특징은 실제와 전혀 다른 방향으 로 간다는 거지요. 아파트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배제 하는 방향으로, 혹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욕망하는 방향으로. 하지만 자동차 전시장은 가건물이 아니더 라고요. 아무튼 럭셔리한 아이템을 포장 혹은 과시하

↑ 분당 자동차 전시장의 정면.

는 것만은 분명할 텐데요, 그에 비해 이곳 매장은 의 외의 위치에 들어서 있어요. 강남의 다른 벤츠 매장들 을 보면 눈에 띄는 장소에 위치하지 않나요? ⓦ 오섬훈 눈에 띄는 인지성이 필요한 게 당연하죠. 그렇지만 대지의 약점을 디자인으로 보완할 필요가 제기되어서 전시장의 전면 외벽 유리를 사선으로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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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시키고, 전면 도로와의 관계에서 디자인 모티브가

은 인테리어 C.I 때문에 조정됐지만….

한 개 생겼어요. 또 건물 디자인이 완성된 후 C.I 방

ⓦ 임재용 백화점 설계에서 투명 박스에 사람들이

침에 변경이 생겨 서로 매치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

오가는 것을 보여줘도 좋을 텐데 왜 뒤집지 못할까

습니다.

를 생각해 봤어요. 자동차 매장도 전체를 하나의 디

ⓦ박진호 이러한 자동차 전시를 위한 건물은 무엇보

스플레이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시스템이나 메커

다도 시선을 끌어당기는 작업들이 필요할 것 같습니

니즘(mechanism)을 뒤집어보는 것은 저의 관심사

다. 회사의 마크를 부각시키거나 야간 경관을 이용하

기도 합니다. 매 층에 차를 전시한다면 재미있을 것

여 오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들이려는 특별한 시

같군요.

도가 있었는지요?

ⓦ 박진호 주차한 모습들을 그대로 디스플레이로 활

ⓦ오섬훈 주변의 고층 건물들에서 내려다 볼 수 있도

용하는 것이겠군요.

록 옥상에 벤츠 이미지와 관련한 패턴을 찍어주려고

ⓦ임재용 차를 다양한 각도로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했지만 공사비 때문에 실현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

같아요. 뒤에서도 보고 위에서도 보고 말이죠.

나 파라펫의 제스처나 조경의 패턴으로 어느 정도 보

ⓦ 오섬훈 하지만 건축주의 80~90%가 익숙한 것을

완을 했지요. 또 4, 5층 레벨에 전시를 할 수 있는 쇼

원하지요. 좀 특별한 것을 하려고 하면 다른 사례부

윈도우를 구상해 놓았는데, 아직 내부 마감이 정리되

터 묻잖아요. 설득하는 게 어렵죠.

지 않은 상태고요. 도요다 매장 중에는 카 리프트 꼭

ⓦ 이경훈 어디에도 없다, 라는 것이 더 매력적이지

대기에 자동차 전시를 해 놓은 것도 있긴 합니다.

않나요? 차들이 실내에 있는 것은 낯선 광경이죠. 그 것을 더욱 낯설게 했을 때 효과가 더 크겠고요. 어떤

전시 매장 뒤집어 보기

오토쇼(auto show)에서 차를 뒤집어 놓은 것을 보았

ⓦ임재용 한국의 경우는 외국과 달리 전시 매장에 정

어요. 바닥이 보이게 말이죠. 그런 걸 제안하기에는

비실 같은 서비스 공간이 항상 함께 있는 것이 독특한

우리 사회가 좀 보수적이긴 해요. 더구나 벤츠 본사

상황입니다. 그래서 얼핏 드는 의문은, 굳이 그 서비

랑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딜러(dealer)의 딜러와

스 공간을 꼭 가려야만 하는가? 라는 것이죠. 그냥 있

이야기해야 하니까 더 힘들겠죠.

는 그대로 끄집어내어 보여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 오섬훈 신뢰가 쌓이면 건축주도 건축가의 제안을

수리하는 광경 같은 것을 뒤집어서 보여주는 거죠.

좀 들어주는 편입니다. 다른 걸 이야기하면 솔깃해서

ⓦ 오섬훈 저 역시 자동차 전시는 왜 꼭 1층에다가 비

귀를 기울이기도 하지요. 과정 중에 변경이 많아서 탈

슷한 방식으로 할까, 다른 방식으로 재밌게 할 수도

이지만 말이에요.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어요. 자동차는 사실 실내 에 있는 게 어울리지 않죠. 어쩌면 바깥에 놓여 있는 것이 가장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래서 최근 완성한 대치 자동차 전시장에서는 자동차 를 실내에 집어넣기는 하지만 최대한 외부에 있는 것 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을 기본 개념으로 했어요. 가 장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길에다가 차곡차곡 포개 놓아도 될 것 같았지만 고객이 와서 시승도 해봐야 하 고 또 현실적으로 기술적인 문제도 있겠지요. 그래서 스킨 자체를 유리로 하고 외벽이 천정과 내벽으로 들 어가도록 하여 최대한 외부와 비슷한 느낌을 갖도록 했어요. 분당 자동차 전시장이 프로그램과 주변 상황 의 해석에 치중했다면, 대치 자동차 전시장은 전시 자 체를 생각해서 형태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요. 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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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전시 공간과 매장으로 사용되는 1층.

↓ 해당 기업과 관련된 건물에 동일하게 적용시켜야 하는 C.I(Corporate Image). 분당 자동차 전시장은 디자인 후 C.I 방침에 변경이 생겨 서로 매치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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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도 콤플렉스 부분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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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당 자동차 전시장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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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분류하자면 어떤 건축가라 생각하십니까?

에서 실크스크린 유리를 통해 스킨의 변화를 꾀하려

ⓦ박진호 1979년 공간에 입사하여 독립할 때까지 꽤

고 했던 것이 최근의 사례고요. 조금 더 나아가서는

오랫동안 일을 하신 걸로 압니다. 공간에서 나온 지는

구조와 스킨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의외로 재밌겠더

얼마나 되었나요?

라고요. 김인철 선생의 최근 작품처럼 말이죠. 골조

ⓦ 오섬훈 이제 3년이 지났습니다.

가 드러나고 형태와 스킨이 그걸 따라가면 재밌을 거

ⓦ 박진호 나와서 일해 보시니까 어떻습니까? 디자

같아요. 물론 비용이 문제겠지만.(웃음) 어디서 들은

인의 자유는 있지만, 나름대로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

이야긴데, 디자인이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어떤 디자

이 챙겨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사업적인

인이든 수용이 가능한 사회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

마인드도 갖춰야 할 테고요.

러 이상이라고 하더군요. 실제로 일본에 디자인 붐이

ⓦ 오섬훈 여기 임재용 소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큰

일어났던 시기가 3만 달러 넘어섰을 때라고 하던데,

조직과 비교해 볼 때 무엇보다도 인적 자원의 차이

정말 그런가 싶기도 해요. 우리나라는 2007년 2만 달

가 체감되지요.

러를 돌파했던 1인당 국민소득이 환율 때문에 지난

ⓦ임재용 동감입니다. 일 자체의 어려움보다도 인력

해 1만 달러대로 떨어졌지요, 아마? 그밖에도 규모

수급의 어려움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어요.

가 좀 있는 프로젝트에서 공간의 시퀀스(sequence)

ⓦ박진호 요즘 대학 졸업생들이 큰 사무소로 몰리는

나 다양성을 만드는 것은 지속되고 있는 관심이고요.

현상들이 있긴 하지요.

김수근 선생님께서는 늘 “여전히 건축은 공간이다.”

ⓦ임재용 하지만 작은 곳을 선호하는 마니아들도 있

라고 말씀하셨죠. 공간을 어떻게 경험하게 만들 것인

습니다. 그런 친구들이 일도 잘 해요.

가는 굉장히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겪는 행태나 공간

ⓦ 오섬훈 큰 사무소는 동료나 선후배들 사이에서 배

을 만드는 툴(tool)은 워낙 많으니까, 공간이란 것 자

우는 게 많다는 이점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요즘은

체는 아직도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송도 ITC 콤플

워낙 네트워크가 잘 되어 있어서 큰 차이가 있을 거

렉스 또한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라 생각하지는 않아요.

처음엔 나름대로 공간적인 재미가 많은 프로젝트라

ⓦ 박진호 아무튼 독립 후 작품에서 특별히 하고 싶

고 생각했어요.

은 것, 추구하는 스타일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게 무

ⓦ 이경훈 저는 제 스스로를 만약에 분류하면 ‘모던

엇인지 궁금합니다.

원리주의’ 정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학교에

ⓦ 이경훈 거기에 덧붙여서 스스로를 분류하자면 어

서 크리틱(critic)할 때 오소장님을 뵌 기억으로는 저

떤 건축가라 생각하십니까?

와 비슷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요즘 굉장히 특

ⓦ 오섬훈 되돌아보면 프로그램을 조절하면서 거기

이한 건축을 하는, 아방가르드한 부류는 아닌 것 같

에 충실했던 작업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크고 작은

습니다. 기본기를 가지고 조금씩 실험을 하는 성향

의미를 찾아내어 간접적으로 프로그램을 해석한다든

이랄까….

지, 아니면 분당 프로젝트처럼 위의 매스는 주차장이 고 아래의 매스는 전시장이다, 라는 식으로 기능적으

상황에 따른, 그에 맞는 건축

로 단순하게 해석을 한다든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

ⓦ 오섬훈 그동안의 작업들을 보면 외관에 접힌 부분

만 프로그램 해석에 따른 구조적 조직 짜기가 주요작

들이 종종 눈에 띕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기도 한데

업 방식이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스킨과 관련된 문

요. 그러나 그게 재미있다고 해서 늘 접는 것을 지속

제도 그런 틀 속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두 장

해야 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의 유리벽 사이에 다른 장치를 집어넣어서 유리벽 너

저는 프로그램의 문제에 관심을 더 많이 가지고 있지

머로 투영되는 제스처를 은근히 드러내거나 미끈한

요. 단지 접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접힐 수밖에 없는

유리 스킨 뒤로 몇몇 장치 혹은 빛을 이용하여 건물

상황이 있었던 거예요. 주변의 상황을 의식한 제스처

의 표피에 변화를 주는 것 등이에요. 송도 ITC 콤플

나 다이나믹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 혹은 재료의 마

렉스 벤처업무 A동과 삼정호텔 입면 리모델링 작업

감 디테일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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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호 그게 디자인 역량이겠죠. 건축주의 요구

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건축주들은 그러한 여유를 쉽

사항과 프로그램과 대지 상황을 해결하고 그 위에 자

게 허락하지 않아요. 사실 단일 건물로 들어오게 되면

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게 건축이겠지요.

제가 잘 못 풀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런 여유 있는

ⓦ 오섬훈 늘 쓰던 언어를 계속 쓰느냐 마느냐의 문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만한 프로젝트를 못 만난 건지,

제에서 보면 선택의 관점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마

잘 안되더라고요. 결국 관심이 프로그램에 의해 달라

치 공식처럼 줄기차게 하나의 건축 어휘만을 고집하

지는 형태의 문제나 스킨의 문제로 귀착되는 것 같습

기 보다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하는 것이 맞는

니다. 다른 전략으로 가는 거죠.

게 아닌가, 싶어요. 브랜드(brand)화된 디자인 보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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뷸러리(vocabulary)보다 그 상황에 맞는 것을 찾게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되는 건축의 오리지낼러티

되는 거지요.

ⓦ 이경훈 공간에서 건축인명사전을 만든다고 5명

ⓦ 박진호 언젠가 톰 메인(Thom Mayne)을 만났을

씩 추천하라는 청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네요. 막 패션과

는 선발 조건이 있었는데 일단은 오리지널(original)

연관된 작업을 하였을 때였는데, 주어진 프로젝트마

할 것, 또 그 오리지널한 것이 나름대로 일관성을 가

다 각기 다른 디자인 주제와 독특한(idiosyncratic)

질 것이었지요.

접근방식을 가진다고 하더군요.

ⓦ 임재용 전 오히려 일관성에는 관심이 없는 편입

ⓦ 오섬훈 건축의 스케일로 들어오면 보조적인 기능

니다.

들, 계단이나 발코니 등을 특색 있게 계획하는 것으로

ⓦ 이경훈 물론 매번 새로운 것을 찾겠다는 의지가

공간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겠지요. 그런 것들이 프로

있을 수는 있겠죠. 오리지낼러티(originality)에 대

그램 덩어리들을 잘 엮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

해서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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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용 마치 도장을 찍는 것처럼 누가 봐도 알 것

만 보기 보다는 우리 건축이 발전할 수 있는 전환기

같은 건축은 지양하는 편이죠.

적 산고의 과정으로 보면 어떨까요.

ⓦ 오섬훈 왜 그걸 지향해야하는 거죠?

ⓦ 오섬훈

ⓦ 임재용 개인적인 취향이 아닐까요?

Eisenman)의 것이라고 딱지를 붙일 수 있는 걸까요,

ⓦ 이경훈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아니면 초창기의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것이

ⓦ 오섬훈 공간을 예로 들면, 표피 안에 프로그램이

라고 딱지를 붙일 수 있는 걸까요? 혹은 유동치는 건

있긴 하지만, 어쨌든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축은 그렉 린(Greg Lynn)의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

중반까지 김수근 선생의 도장을 찍은 거와 마찬가지

걸까요? 건축의 본질이 상황과 프로그램을 해석하고

란 말이에요. 주변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이나 공간에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있다고 한다면 폴드 건

대한 생각 등은 누구나 은연중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축을 하든 유영화된 언어를 쓰든 그것은 단지 기법

가지고 갈 수 있겠죠.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고 하더

이 아닐까 해요.

라도 말입니다. 그걸 브랜드화하고 의식적으로 가지

ⓦ이경훈 그런 차원의 정도가 아니니까 문제가 되는

고 가는 것과는 다른 문제겠죠.

겁니다. 예전에 비해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분

ⓦ 이경훈 문제는 남의 도장을 찍는 것이죠. 우리 건

들도 그렇고 국내 계신 분들도 그렇고, 훌륭한 분들

축의 제일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이 아주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국에는 외

ⓦ 오섬훈 냉정하게 따져보면, 정말 자기 도장이 있

국 건축가들이 더 지배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 같습니

을 수 있을까요?

다. 그 이유를 따져 보면 아마도 오리지낼러티의 문제

ⓦ 이경훈 그러니까 왜 없으면서 있는 척하냐는 거

가 크지 않을까 합니다. 제 생각에는 작은 아이디어라

지요.

도 작품에 정확하게 반영하는 훈련에 익숙해져야 하

ⓦ 오섬훈 자기 도장과 남의 도장이 섞여서 조금씩

는데, 들뢰즈 이야기를 하면서 들고 나온 아이디어는

발전되어 가는 것 아닐까요?

지난 달 잡지에 나왔던 거고 하는 것이 현실이죠. 저

ⓦ 이경훈 간혹 국제설계공모전 PA로 참여해 보면

는 들뢰즈를 정말로 이해하냐고 묻고 싶어요. 물론 다

외국심사위원들이 국내 작품을 보고 오리지널이 아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니라는 평가를 내릴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 제가 보

ⓦ 오섬훈 사실 아이젠만의 폴드는 들뢰즈가 말하려

기에도 그랬고요. 낯 뜨거운 순간이죠.

는 해방의 가능성을 담보한 ‘성격으로서의 공간’이 아

ⓦ박진호 독창성과 창작성에 대해서는 저 역시 많은

니라 말 그대로 폴드라는 형태일 뿐이지요. 아이젠만

고민을 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풍토가 과연

스스로도 잡지 대담을 통해 그걸 밝힌 바 있고요. 그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뒷받침해 주는 풍토인지

건 나름의 건축 어휘에 대한 오리지낼러티겠죠. 그런

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건

종류의 오리지낼러티를 말하는 건가요?

축가들이 창작 활동에 몰두할 수 있도록 설계비가 높

ⓦ 이경훈 그야말로 다른 심급의 문제가 있는데, 건

은 수준인 것도 아니고 변호사처럼 건축 상담에 대한

축을 접근하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다이어그램을 쓰

수가를 받는 것도 아닌, 배고프고 어려운 상황에서 마

는 것까지, 사실 다이어그램은 굉장히 혁명적인 아이

냥 창작과 독창성만을 논할 수 있는 상황만은 아닌 것

디어거든요. 분석의 틀로 쓰였던 걸 어떻게 생성의 틀

같아 아쉬움도 들고요. 물론 창작 활동에 고민의 나

로 쓰냔 말이죠. 아무튼 그런 것도 많이들 따라서 하

날을 보내는 분도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외국 것

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뭔가 새로운

을 그저 흉내 내는 작품도 상당히 많을 겁니다. 작년

것을 접하고 그걸 굳이 사용해 보고 싶다면 적어도 투

에 외국의 유명한 모 건축가가 저와 함께 서울 근교

자와 연구를 통해 그 원리가 어떻게 되는 건지는 알아

를 둘러보는 자리에서 서양의 잡지나 서양 건축가가

야 하잖아요. 원리도 모르고 유사하게 만드는 것 자체

개념 작업을 해놓은 작품을 서울에 오니 볼 수 있다

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는, 다소 비꼬는 듯한 이야기를 농담 삼아 던진 것도

ⓦ 박진호 오늘의 주제가 마치 ‘Originality와 Fake’

기억이 나는군요. 이러한 과정들을 단지 부정적으로

같습니다.(웃음)

폴드(fold) 건축이 아이젠만(Peter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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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섬훈 빙 둘러서 저를 때리는 것 같은데요?(웃 음) ⓦ 이경훈 오소장님을 비판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저는 그 반대로 오소장님과 임소장님은 말로만 멋진 건축을 하지 않아서 참 좋습니다. ⓦ오섬훈 멋있는 이야기를 할 줄 몰라요.(웃음) ⓦ이경훈 그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작은 아이디어라 도 제대로 전개된 건축을 보잔 말이죠. 우리도 거기 서부터 시작하면 언젠가는 누구누구처럼 멋있는 이 야기도 하고 그럴 거예요.

상황의 인식이냐, 결과물이냐 ⓦ임재용 저의 경우는 얼마 전부터 프로젝트에 제목 을 달고 작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제목만 봐도 뭘 이 야기하고 싶은지를 알아챌 수 있도록 하고 싶은데 쉽 지는 않아요. 제목으로 안 되면 심플(simlpe) 다이어 그램으로라도 말이죠. ⓦ 이경훈 좋은 이야깁니다. 아이디어가 물리적으로 실현된 예들이 우리 건축에는 부족한 것 같아요. 거 대한 철학적 담론보다도 이러한 생각들을 실현시키 는 작업을 많이 보여주는 것은 건축을 배우는 학생들 에게도 중요하지요. ⓦ 임재용 김수근 선생의 경동교회 옆에 프로젝트 를 하나 했습니다. 그런데 경동교회 바로 옆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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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두렵더라고요.(웃음) 프로그램은 아래가 주유소

데요. 만약 다른 건축가였다면 분당 자동차 전시장의

이고 그 위로 사옥이 올라가는 거였죠. 경동교회를

외피를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열심히 들여다보니까 떠오르는 이미지가 침묵과 무

ⓦ 임재용 개인적으로 이중외피의 개념이라면 벽체

거움이었어요. 어차피 같은 무거움으로는 게임이 안

가 똑바로 섰든 기울어졌든 같아 보입니다. 그 상황

되잖아요. 그래서 일단 가볍게 가기로 했죠. 하지만

에서 이중외피를 설정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요.

침묵은 또 괜찮은 거 같더라고요. 결국 가벼운 침묵

이중외피의 도입에 대한 상황 인식에 관심이 있는 거

을 컨셉트로 정했지요. 저는 건축은 상황의 인식이라

죠.

고 생각합니다. 구법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어

ⓦ오섬훈 임소장님의 생각도 일리가 있지만, 다이어

요. 정확하게 상황을 인식하면 그대로 나타나게 되거

그램을 예로 들면, 다이어그램을 고를 때도 해석하는

든요. 그것이 땅의 문제든 문화의 문제든 경제의 문

방법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있을 듯해요. 또 고른 다

제든, 이 상황이 뭐냐를 정확이 인식하면 해답이 있

이어그램에 따라 결과들도 다를 테고요. 건축은 어찌

다고 보지요.

됐든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

ⓦ이경훈 상황을 충실히 해결하는 건축이 좋은 건축

하는데, 또 한편으로는 결과물을 도출하게 해준 원인

이고, 또 그것을 좋은 건축으로 자꾸만 읽어 줘야 할

이나 작용점도 무시할 수는 없는 부분이겠죠. 초기의

것 같아요. 그 이상의 뭐가 있는 거처럼 이야기하다

인식에 대한 것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똑같은

보면 오히려 허점이 드러나고 마는 거죠.

인식이어도 상황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낼 수도 있지 않

ⓦ박진호 하지만 건축가마다 차이가 분명히 있을 텐

을까요? 똑같은 프로그램을 똑같은 장소에다가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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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호 어반엑스 같은 아틀리에 사무소에서 그런 디테일들이 나와 주면 우리 건축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은데요? ⓦ오섬훈 작은 설계사무소 네다섯 군데를 묶어서 지 원하는 엔지니어링 회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구조든, 설비든 말이지요. 개별적으로 는 괜찮은 엔지니어 회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프로젝트 규모가 작아질 수밖에 없는 것 같고요. ⓦ이경훈 학교에도 문제가 있겠죠. 리서치를 한다거 나, 뭔가 건축계를 선도하는 게 있어야 하는데 학교가 오히려 사회에 끌려 다니는 형국이니까 조언을 할 수 없는 거예요. 외국을 보면 학교에서 하는 것들이 몇 년 후에 실현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현장에 서 실현된 걸 보고 학교에서 따라가니까…. 아무튼 오소장님의 접근 방법은 건축을 공부하는 학 생들에게도 상당히 중요할 것 같아요. 흔히 건축가들 은 물리적인 문제의 해결에 마치 굉장한 컨셉트가 있 는 것처럼 설명을 하잖아요. 비평가들이 또 그렇게 쓰 고요.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념적인 성향들이 합쳐져서 교외별전(敎外別傳) 같은 행태를 보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학생들 역시 자신들의 작품을 설명할 때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고요. 매우 위험한 시간에 설계를 했어도 같을 수 있을까요? 다를 거란

일입니다. 거기에 비해 오소장님은 솔직한 태도로 작

생각이 든단 말이죠. 어쨌거나 결과물들은 사는 사람

품에 접근하고 또 그것을 설명하지요. 오섬훈 건축의

이나 도시에 영향을 미치게 되니까 결과물 그 자체도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 정리 | 정귀원(본지 편집장)

한국 건축계에 필요한 일들 ⓦ 오섬훈 거대 이론이 전혀 필요 없는 건 아닐 거예 요. 뒤에서 건축가의 작품 이론을 가이드해 주는 그 런 장치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진호 제 생각으로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철학가든 예술가든 누구든 그건 상관이 없지 만, 사회 분위기가 좀 지원을 해야 할 겁니다. 물론 건 축가들도 소신 있는 작업을 해야 할 테고 말이죠. ⓦ 이경훈 디테일의 연구 또한 필요한 일입니다. 요 즘 대형사무소에서 디테일 연구를 그렇게 많이 하지 는 않는 것 같아요.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외주를 주는 시스템이니…. 건축에서 자신 들의 일은 투시도까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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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7일 답사와 집담회를 함께 한 사람들

ⓦ 오섬훈 ↗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chitectural Association School of Architecture(AA School)에서 수학하였다. 공간건축에서 소 장으로 작품 활동을 해 오다가 2006년 건축사사무소 어반엑스를 만들어 운영하 고 있다. 서울건축학교 튜터와 국민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작품으 로는 성신여대 난향관, 통영 수산과학관, 한성대 도서관, 송도 벤처빌딩, 창원대 스 마트홈 전시관 등이 있다. ⓦ 박진호 ← 인하대학교 건축학과를 거쳐 UCLA 건축대학에서 건축디자인 및 이 론 전공으로 건축학 석사 및 박사(Ph.D.)를 받았다. 미 하와이대학교에서 조교수 및 부교수(종신교수)를 거쳐 현재 인하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건축 디자인 및 이론을 가르치고 있으며, Design Research and Innovation Lab(DLab)을 운용하면서 동경대학교 Shuhei Endo 교수, 하버드대 Thomas Schroepfer 교수, 건축가 Mark Mack, Eric Owen Moss 등과 일련의 워크숍을 통해 다양 한 디자인을 실험 중이다. ⓦ 이경훈 ↙ 국민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프랫(Pratt Institute)에서 수학했 다. Carl Puchall Associate Architects, ㈜유창건축사사무소 등을 거쳐 현재 국민 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작품으로 헤이리 테디베어 뮤지엄, 인천 환 경미래전시관 등이 있으며 노들섬 예술센터 국제설계공모 전문위원(PA), 동대문 디자인 프라자 국제설계공모 부전문위원(APA), 경기도 전곡 선사박물관 국제설계 공모 전문위원(PA)으로 활동한 바 있다. ⓦ 임재용 ↘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미시간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Son & Francis Architects, Eric Owen Moss Architect 등에서 근무한 바 있고, 건 축 연구소 OCA(Los Angeles) 소장을 거쳐 현재 건축사 사무소 OCA 대표로 활 동 중이다. 서울석유사옥(2008 건축문화대상 우수상), 오름(2006 한국 건축문화 대상 대상), 광림교회 수도원 야외음악당(2005 IAA International Achievement Award), 림스 코스모 치과(2004 한국 건축가 협회상), 우면동 스튜디오(2004 한 국 건축문화대상 우수상) 등의 작품이 있으며,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생들 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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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Oh, seom-hoon


와이드 8호 | 이슈 1 REVIEW : 건축학 5년제 졸업생들이 말했다 Wide Architecture : wIde Issue 1 no.8 : march-april 2009

건축학 5년제 과정을 마친 새내기 건축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나라 건축학 5년제 교육 현장의 수용자인 학 생들의 목소리를 통해 5년제 교육 제도와 강의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현상들을 되짚어보고, 기성 건축인 사 회에 학생 사회의 의견을 전달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사회 초년병의 위치에서 어렵게 시간을 낸 다섯 신인들과 함 께 건축학 5년제의 경험을 공유해 보자.(편집자 주) ⓦ 일시 : 2009년 2월 20일(금) 저녁 7시 30분~11시 ⓦ 장소 : 장충동 평안도 족발집 2층 골방

참석자 프로필 : 좌로부터 김택구, 민동구, 박효영, 양은주, 박정수 김택구 ⓦ 2002년 아주대 민동구 ⓦ 2001년 숭실대 박효영 ⓦ 2003년 고려대 양은주 ⓦ 2003년 연세대학 박정수 ⓦ 2002년 서울시립 학교 건축학부에 입학하 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하여 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하여 교 건축과에 입학하여 2009 대 건축학과에 입학하여 2009 여 2009년 2월 졸업했다. 2009년 2월 졸업했다. 재학 2009년 2월 졸업했다. 재학 년 2월 졸업했다. 재학 중 서 년 2월 졸업했다. 재학 중 서 재학중 극장건축대전 입선 중 호주의 설계 사무소에서 중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작 울시 공공디자인공모전 입선, 울시립대 건축^도시^조경 공 (2006), 인천도시설계공모전 2개월 근무했으며, 아이아 품전 건축가 협회장상(2008) 서울시 비전제안서공모전 입 동작품전 건원건축상(2008), 은상(2007), 행복도시공모전 크(유걸 스튜디오)에서 인턴 을 수상하였다. 현재, (주)창 선, 디자이너 잡BI공모전 장 삼성전자 Yepp(MP3) 신제 입선, 대한민국건축대전 입 십을 거쳤다. 현재, (주)공간 조건축에 근무하고 있다.

려상, 중랑디자인공모전 우 품 개발 공모전 입상(2008)

선(2008)의 수상 경력이 있 종합건축사사무소에 근무하

수상(2008)의 수상경력이 있 의 경력과 부동산 컨설링 리

으며, 현재, (주)DA그룹 엔 고 있다.

으며, 현재, (주)designcamp 슈 인턴십(2007), 건원건축

지니어링 종합건축사무소에

moonpark 건축사사무소에 워크숍 수료, 인턴십(2008)

근무하고 있다.

근무하고 있다.

과정을 거쳤다. 현재, (주)종 합건축사사무소 건원에 근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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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8 : march-april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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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5년제 졸업생들이 말했다 ⓦ 들어가며 ⓦ 여러분들은 우리 대학의 건축학 5년제 과정을 마치고 올해 졸업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동안은 대학과 교육 정책 당국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5년제 인증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차원에서 대학의 강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사 이 일부 대학은 건축학 5년제 국제 인증을 득한 상태에서 졸업생을 배출했는가 하면 많은 대학들은 5년제 커리큘럼이지만 미처 국 제인증을 받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도 합니다. 이번 <와이드> 이슈는 여러분들을 통하여 우리나라 건축학 5년제 교육 현장의 수용자인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함에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 제도와 강의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현상들을 되짚어보며, 기성 건축인 사회에 학생 사회의 의견을 전달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갓 사회에 나온 여러분들이 각자의 시간을 쪼개어 본 프 로그램에 동참할 생각을 가져 준 점 대단히 감사합니다. ⓦ 5년제 인증 학교 출신이라는 자긍심이 있나? (수도권 외

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담 교수님이 많이 힘들어 하시는 걸

지역에서의 인증 학교인 부경대 졸업생도 초대되었지만 개

보고 졸업했다. 내 경우, 복학 당시 교수님과 면담을 하면서 5

인 사정이 생겨 참석지 못했다. 그 바람에 박정수 씨만이 건

년제를 선택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때가 처음이었다.

축학 5년제 인증 학교를 졸업한 유일한 참석자다.) 입학 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엉겁결에 선택하게 되었다. 학교

후 인증 준비는 수시로 이루어졌다. 인증단 실사가 진행되기

측에서 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따른 경우다.

1년 전부터 집중 준비 과정을 통해 서울대, 명지대와 함께 서

집에다가도 “5년제 해야 한대요” 식으로 그냥 통보하는 수준

울시립대가 최초의 5년제 인증 학교가 됨으로써 교수님과 학

이었다. 여학생들과 달리 군제대 후 복학한 남학생들은 솔직

생들은 저마다 자부심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박정수)

히 많이 당황했다. 학교의 인증 준비 때문에 졸업생들은 마지 막 학기까지 인증 프로그램에 준하여 과다하게 학점을 이수

ⓦ 건축과 또는 건축학 5년제에 대한 정보를 언제 알았나? 입

하는 등 문제점도 많았다.(김택구)

학 전 수시 1학기로 지원하는 과정에선 5년제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고3 여름방학에 전공 예약제로 건축공학 입

ⓦ 학교 밖에서 건축학 5년제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나?

학 허가를 받고 익년 3월에 입학한 케이스다. 처음에 들어가

3학년 때, 새건축사협의회가 주최한 5년제 인증 관련 세미나

선 막연히 건축학과와 토목학과로 구분되는 정도만 알았다.

에 참석했다가 학교에서 듣지 못했던 내용을 듣는 계기가 되

2학년 때 망설임 없이 건축학과를 택했다. 이름도 좋고…. 부

었다. 그때 느낌은 이 제도가 한편으론 정치성이 짙다는 것

모님은 오히려 4년, 5년에 대한 별다른 말씀이 없었다.(박효

과 협회 간 알력의 부산물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물론 5년제

영) 공학 계열로 입학했다. 1학년 때는 건축에 대한 수업을

인증 교육 프로그램을 받으면 해외 유학 시 별 문제없이 석사

전혀 듣지 않았다. 대신 수학, 화학 등 주로 기본 과목의 수업

과정을 밟을 수 있다는 등 굉장히 좋은 얘기들도 많이 들었

을 들었다. 2학년이 되면서 건축과로 배정되었다. 그전까진

다. 그러나 분명했던 건 그 당시, 법제화된 것은 하나도 없었

전혀 정보가 없었다. 건축과를 가고 싶어서 공대를 택했지만

고, 막연한 지침만 무성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그때 이후

그에 비해 정보는 미흡했다. 저학년 때는 건축과 하면 당연히

로 건축학 5년제에 대하여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굉장히

설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학교는 2007년부터 건축

고민도 많아졌다. 주위 분들에게 많이 묻고 듣고 했는데, 중

도시공학과로 바뀌면서 학부제가 사라지게 되었는데 내 또

요한 건 정작 학교에서도 그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래의 애들을 보면 방황하는 경우도 종종 발견되었다. 설계는

거의 없었다, 라는 점이다.(김택구)

어려운 것 같고, 공학 쪽은 더 아닌 것 같고 하는 친구들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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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의대, 교대로 진로를 바꾸는 것을 보았다.(양은주) 우

ⓦ 졸업 전, 인증되지 않은 학교에서 졸업하는 마음은 어땠

리 학교는 현재 예비 심사는 마쳤고, 올해 본 심사에 들어가

나? 2008년 심사에 참여하고 졸업했다. 곧 결과가 나올 것이

wIde Issue 1 : REVIEW : 건축학 5년제 졸업생들이 말했다


다. 그 전에 졸업한 학생들은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

ⓦ 5년제 건축학과를 바라보는 타 대학의 시선은 어떠했나?

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졸업 후 3년 기한 내에 인증 받

알력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컸다. 인증은 관련 교수님 개개인

지 못할 경우, 혜택 받지 못한다는 의구심이 많다.(양은주)

의 관심이 모아졌을 때 수월하게 풀린다. 인증 조건에 보면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지 않다. 졸업 후에라도 수혜 가능하다

개인별 컴퓨터 보유 현황, 개인 작업 공간의 확보 등 세밀한

고 들었다.(박효영) 준비하는 과정에서 커리큘럼에 대한 것

부분에까지 간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보니 학교

은 어렵지 않다고 봤는데 우리 학교의 경우 사용 공간의 확

내에서 곤란한 점도 많이 생겼다. 건축학 5년제 인증을 위한

보 문제가 관건이라고 들었다. 그것 말고는 교수님들이 큰 걱

별도의 공간 확보에 따른 타 대학(학과)의 시샘이랄까, 특정

정 안하고 있는 눈치였다. 내년쯤에 인증 심사 신청 예정이

과에 대한 특혜 시비에 휘말릴 여지가 상존했다. 우리 학과

라고 들었다. 나는 인증 프로그램 자체에 대해서 긍정적이

는 별도 건물 추진 과정에 따른 불필요한 잡음을 없애기 위

지 않다. 우리는 건축학, 건축공학, 인테리어학과가 함께 있

해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했다고 들었

다. 배우면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알고 자기 길을 선택할 수

다.(박정수)

있어야 하는데 인증 제도는 그걸 불가능하게 한다. 학생들의 개성을 죽이는 방향성, 그리고 서구에 대한 사대주의적 발상

ⓦ 5년제 건축학과와 4년제 건축공학과 사이의 관계는? 철

도 보인다.(민동구) 그렇지 않은데…. 준비 자체가 쉽지 않

골 과목의 경우 4년제와 같이 들었다. 대체로 4년제 학생들

은데….(박효영)

의 평균 점수가 높았는데. 4, 5년제의 학점을 별개로 매기는 바람에 수치적으로 같은 점수임에도 학점이 낮게 나오는 4년

ⓦ 5년 동안 학교에 다닌다는 것에 대한 부모님들의 반응은?

제 학생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4년제 학생들의 불

03학번 이상은 5년제를 알고 선택한 사례라 큰 문제는 없었

만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양은주) 명칭에서도 건축학과

다.(박효영) 5년이 길다는 부담보다는 의대처럼 자연스럽게

와 건축공학과의 위상이 비교되었다. 개중에는 겉멋으로 건

생각하신 게 사실이다.(양은주)

축학과를 선택한 애들도 있었지만…. 그런 애들은 대부분 1 년 만에 전과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박효영)

ⓦ 5년제 이수 과정에서 혼란은 없었나? 내 경우 전공 필수 과목은 다 들었지만 5년제 인증과목을 다 소화하지 못했기

ⓦ 5년제를 선택하면서의 고민? 나는 원래 건축가가 된다는

때문에 문제의 소지를 안고 졸업했다. 사실 그 때까지 5년제

꿈을 가졌다. 중학생 때 막연하게 시작된 꿈인데 개인적으로

이수 과목 몇은 권고 과목이었다. 필수 과목이 아니었기에 소

건축 관련 책도 사보면서 관심을 키웠다. 대학 진학 시에도

홀히 취급했다. 근데 막상 졸업을 하려니까 “너는 학교가 5년

당연히 “건축과를 가야돼”, 식으로. 군대에 갔다 와서도 그

제 인증을 받더라도 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나중에 유학을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복학해서 보니 5년제 과정을 통해야

가서라도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하더라. 그럴 때 무척 당

만이 건축가로 성장할 수 있다고 들었다. 친구들 중에는 4년

황스러웠다. 학생이 5년제를 선택한 것은 인증 이후의 삶을

제에 남은 애들도 적지 않았다. 솔직히 한때는 4년제로 돌아

예비한 것인데, 준비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것이

설까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쉽사리 4년제로 가지 못한 이유

라고 할밖에.(박효영)

는 학교에서 5년제와 4년제 학생에 대한 대우가 달랐기 때문 이다. 5년제 인증 준비에 밀려서 찬밥신세로 전락해 있는 4

ⓦ 그 밖에 다른 문제점은? 건축학 5년제에 따른 사회적 이

년제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다. 그 후로 한번

해와 지원이 따르지 않은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외부 장학 제

정도 진로를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나 스스로 좋

도가 대표적인데 다른 학과들이 4년제이니만큼 그들과 똑같

게 좋게 생각하다 보니 5년제에 남게 되었다.(김택구) 설계

이 취급되어 4년 동안만 장학금을 받는 등 불이익한 면이 있

하고 싶은 사람은 결국 5년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

었다. 건축과 5년제가 건축계 안에서만 의미가 있지, 사회적

였다. 5년제를 선택해야 설계할 수 있다는 기본 정보만 있었

으로는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이 컸다.(박효영)

다. 설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거나 적성이 맞지 않는다고 판 단한 사람은 공학과를 선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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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교수님을 찾아갔는데 교수님은 처우가 어떻게 다른지 설

야 하는 게 당연하다. 대기업 같은 경우 그 과목에 대한 성적

명도 없이 무조건 건축학과로 바꿔야지 인정받을 수 있고, 나

을 중점적으로 보는 것으로 안다. 혹시라도 설계가 아닌 시공

중에 건축사도 딸 수 있다, 식으로 말씀하시며 4년제를 나오

분야의 진출을 생각했다면 그 과목의 점수 관리가 필수란 얘

면 건축사를 못 딴다고 했다. 그 때 무척 당황스럽고, 혼란스

기다. 5년제를 나와서 대기업 건설 부문에 지원하는 경우를

러웠다. 그래도 그 때까지는 그냥 4년제를 졸업하고 빨리 사

종종 보아왔는데 전적으로 5년제라는 이유만으로 차별 대우

회로 나가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바뀌

를 받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5년제가 진입할 수 있는

게 되었다. 웹서핑을 하던 중 AA스쿨의 커리큘럼을 보게 된

문이 더 넓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5년제 학생들은 건설사

것이다. 평소 관심이 컸던 서스테이너블 디자인(Sustainable

와 설계 사무소 모두 지원 가능하지만 시공, 구조 등의 4년제

Design) 코스가 눈에 들어와 확인해 보니 그 안에 두 개의 과

학생들의 경우 졸업 후 바로 설계사무소의 취업은 거의 없다

가 존재했다. 4년제를 나온 학생들은 1년짜리 코스가 있고, 5

고 볼 수 있으니까.(양은주)

년제를 나온 학생들은 1년 6개월짜리 코스가 있었다. 내용을 살펴보니까 4년제 나온 학생들은 엔지니어 파트이고, 5년제

ⓦ 5년제 각 학교의 독특한 프로그램 또는 과목의 추억? 5년

를 나온 사람은 디자이너 파트로 구분되어 있더라. 실제로 일

제 인증의 세부 지침 중에는 영국이나 미국에서 만든 규정, 즉

하는 것은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디자이너는 창의력 있고 창

소위 커리큘럼을 수용하되 지역 건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

조적 행위를 하는 전문직의 위상이 있어 호감이 큰 반면 엔지

다는 조항이 있다. 나는 한 학기 내내 한옥을 설계한 적이 있

니어는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영국에서조차 4년제 졸업

었다. 일선의 건축가가 한옥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도시한옥

생을 엔지니어로 구분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느낌이 왔다. 나

전문가로서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한 건축가가 와서 결구 방

는 엔지니어가 아니다. 그리고 그 길로 5년제로 바꾸게 되었

식, 모형 작업 등을 지도했다. 나름 유익했다. 다른 하나는 5

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몇 년 전부터 공간에서 5년제 졸업

년제 교육을 이수했다는 것은 이론상으로 그 학생이 국제적

생 아니면 취업의 기회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분명한 것

으로도 능력이 통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학교의 프로그

은 설계 사무소에서도 4년제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아니구나,

램 중에는 일부 학생을 외국 사무소에 인턴십으로 보내는 코

하는 것이었다.(민동구)

스가 있다. 물론 학생 전체가 대상이 될 수는 없었지만. 한 학 기에 두 명 정도가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의외로 인기는 없

ⓦ 5년제 선택 과정에서의 명암? 똑같은 설계 전공도 02학번

었다. 굳이 이유를 말하라면 외국 사무소라는 것이 잡지책에

의 경우 설계 지망생들 대부분이 4년제로 졸업을 하게 되어

서 보듯 하는 작가급 사무소가 아니고 미국 현지에 있는 중견

있는데, 그들 중 계속 설계를 하고 싶어 하는 경우는 자기들도

사무소라는 점이 작용했었을 것이다. 게다가 미국 사무소에

5년제의 혜택을 받고 싶다며 5년제 시스템에 속하지 못한 것

서의 인턴십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의 인턴보다 보수도 적

을 무척 안타까워하는 선배를 보았다.(양은주) 주변에서 군

게 받고 했다는 것이 이유가 될 것이다.(박정수)

대를 빨리 갔다 온 바람에 5년제를 선택할 수 없다는 이유만 으로 우는 경우를 보았다. 세상이 끝난 것처럼.(민동구)

ⓦ 와글와글 1 그건 보수의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나 같으면 돈 안 받고라도 가고 싶었을 것 같다. 우리 학교는 스미스 그

ⓦ 막상 취업에 당하여 5년제 졸업생의 진로는 어땠나? 삼성

룹이나, 엔비비제이 사무소로 보내 주었는데, 주로 석사생들

물산 등 대기업 건설사의 경우에서는 거꾸로 5년제를 안 받

의 몫이었다. 지난 학기말부터는 학부생을 선발하여 인턴십

더라. 겉으로는 구분이 없는 것 같지만 실상은 많이 달랐다.

을 보내 주고 있다.(박효영) 동감이다. 거기서 하루종일 아무

친구들 중에 대기업에 지원한 이들이 몇 있는데 면접에서 “당

일 안 해도 좋았을 것 같은데?(민동구) 그러게, 외국 사무소

신은 5년제를 나왔는데 왜 여기에 지원했냐?”, “구조나 시공

를 경험했다는 것의 희열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양은주)

기술에 대해서 뭘 아냐?” 식으로 홀대하더란다.(박효영)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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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그건 학교의 문제와 함께 개인차의 문제 아닐까? 건설사

ⓦ 다시, 5년제 각 학교의 독특한 프로그램 또는 ‘강의실’의

에 입사하려면 시공 과목이나 철골 등 구조 과목을 많이 들어

추억? 근데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한 학기에 2명을

wIde Issue 1 : REVIEW : 건축학 5년제 졸업생들이 말했다


뽑는데 경쟁률이 1:1 조금 웃도는 정도였고, 내가 졸업할 때

화를 표방하기에 건축 교육에서도 영어 강의가 강화되었다.

까지 10명 정도가 다녀왔다. 주로 3~4학년 때에 보내 준다.

당장의 목표는 30% 이상을 영어 강의로 추진한다고 했다. 그

그밖에 아시아 5개국의 건축학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아시

통에 설계 수업의 프리젠테이션, 크리틱을 전부 영어로 하는

아 건축도시 연합스튜디오(ACAU)’와 ‘서울-베를린 국제 교

경우가 많았고, 외부 초청 크리틱도 영어로 진행하는 경우가

류전’, ‘국립 싱가폴 대학 건축학부와의 교수 및 학생 교류 프

많았다. 심지어 철골 과목도 영어로 수업했을 정도다. 그리고

로그램’, ‘GLP 프로그램에 의한 유럽 및 아시아 건축 기행’, ‘

우리는 학부 과정에서 대학원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당연히

해외 건축사무소 인턴십’ 등 다양한 국제화 프로그램이 있다.

학점이 인정되었고, 내 경우 5학년 1학기 때 한 과목, 2학기

그중 아카우는 중국, 태국 등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 대학과 조

때 한 과목 해서 두 과목을 대학원 수업으로 들었다. 대학원

인하여 각 지역의 도시 문제를 함께 공유하는 프로그램이다.

수업은 자유로운 점이 많았다. 논문 작성의 방법론도 익힐 수

각국의 학교를 돌아가며 워크숍 형태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인

있는 기회였다. 그 점이 매우 유익했다.(양은주)

데, 이것은 인기가 좋았다. 그리고 이런 경우도 있었다. 사이 트 플래닝 & 디자인(Site Planning and Design)이라는 과

ⓦ 학교마다 영어 수업이 많은가? 그 효과는?

목을 이수해야 했는데, 교수님이 그러더라. 이건 우리의 건축

인증 요건에 외국인 교수의 비율도 있어서 기회가 많다.(양

환경과 맞지 않는 전형적인 서구식 교과 중 하나라며 그 시간

은주) 우리 학교는 규모가 작다보니 5년제로 바뀌었다고 해

에 우리는 한국의 아파트 단지 배치를 배워 보자는 거였다. 한

서 세미나 등 지원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었다고는 생각지 않

옥의 평면 구성에서 아파트 평면 구성까지, 공통 주택의 역사

는다. 이번에 같이 졸업한 친구둘이 15명 가량 되는데 교수님

를 개괄하는 시간이었다. 인증 프로그램이라는 정해진 룰 안

들이 변화를 주고자 하는 부문은 설계에 치중되어 있다. 돌아

에서만 교육이 이뤄진 것이 아니라 교수님의 판단에 의해 융

보면 은퇴하신 이선구 교수님은 일찍부터 영어 수업과 학부

통성 있게 진행된 사례를 말하고자 함이다.(박정수) 우리 학

생들의 논문 작성 지도를 시작하셨다. 우리는 5년제이기 때문

교도 지난해부터 국제 워크숍을 시작했다. 중국에서부터 했

에 뭔가를 새롭게 도입하지는 않았다. 이미 학교 자체 프로그

는데 9박 10일의 기간으로 합숙하며 공동의 주제로 함께 어

램이 그렇게 짜여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5년제로 인해 바

울리는 설계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5년제 인증 프로그램의 일

뀐 것은 외국인 교수 몇 분 정도가 새로 영입된 점을 들 수 있

환으로 강의실 리모델링과 별도의 전시실을 만들었다. SPC

다.(민동구) 설계의 경우 한 학년에 한 과목씩은 영어로 수업

항목의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프리젠테이션 룸이다. 매

하는 것이 개설되어 있다. 우리도 철골 과목이 영어 강의로 진

주 진행된 강의 내용을 알 수 있는 PPT 자료, 학생들의 리포

행되었는데, 솔직히 학생들은 피하고 싶어 했지만 그 수업밖

트 등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초청 강연이 수시로 이뤄

에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듣게 되었다. 영어 수업을 하니 좋

졌다. 개중에는 1학점짜리가 있고, 수업의 일환이 아닌 것으

은 점은(다음은 수강한 친구들의 얘기다) 영어로 대화하는 법

로도 2주 한 번꼴로 지속적인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그 자리

도 배우게 되었지만 그보다는 우리말로 할 때는 돌려서 말하

엔 국내외 유명 건축가들을 초청한다. 건축과가 주최하지만

는 방식에 쉽게 빠져드는데 영어로 하니까 최대한 간단하고

일반인들도 들을 수 있다. 그 면에서 특히 강석원 선생님의

정확하게 의사를 표현하는 기회가 많아졌다고 하더라. 표현

역할이 크다. ‘진짜 진짜’ 좋은 ‘건축가 할아버지’란 느낌이시

이 직접적이다 보니 허튼 소리를 안 하게 되는 이점이 생겼다

다. 학교 내에 설계 동아리가 하나 있다. 그냥 평범한 학교 동

고나 할까.(김택구) 나도 같은 생각인데 우리 학교의 경우 영

아리로 멈출 수도 있었는데 강석원 선생님으로 인해 외국 건

어로 수업을 해서 오히려 좋은 점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축가를 초청하거나, 그분들을 사적으로 만나는 경우에도 그

개중에는 영어를 잘 하는 애들도 많이 있었고, 잘 안 되는 애

들을 학교에 데리고 와서 학생들과 만나게 해주는 등 큰 역할

들도 물론 있지만 오히려 영어로 발표를 시키다 보니까 발표

을 하고 계시다. 현재 설계 강의 중이시며. 70대이심에도 불

가 점차 순수해지더라. 짧은 영어로 설명하다 보니까 좀더 명

구하고, 너무 정력적이시다. 매력이 넘치는 분이다.(박효영)

확한 단어를 찾아 쓰게 되었다.(양은주) 개인적으론 우리 대

우리 학교는 유네스코가 주최하는 국제 설계 워크숍 스튜디

학에서 영어 수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개

오를 공동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학교 전체 분위기가 글로벌

인적으론 어학 연수도 다녀왔고, 외국으로 인턴십도 갔다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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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중요한 것은 외국인과 만났을 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느

았다면 우리의 중견 건축가 분은 조류에서 한참 밀린 구시대

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건축에서는 도면이 언어라는 것이

건축가인 양 해보이더라. 학생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그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그게 아니고 영어가

외국인 교수님이 이전까지 없었던 학풍을 만드니까. 일단 결

최우선이 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과물이 틀렸다. 통상은 패널 한 장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

전통에 기반한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그런

이들은 패널 다섯 장, 혹은 벽면을 패널로 가득 채우기도 하

면에서 5년제 건축학 제도는 너무 사대주의적 발상이란 생각

고, 다른 교수님조차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시겠다고 하

까지 하게 된다.(민동구) 학과의 외국인 교환 학생들과 함께

는 경우가 다반사였지만, 문제는 그것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빌딩 시스템(Building System)이라는 건축공학 관련 이론

시선이 긍정적이었다, 라는 점이다.(박정수)

과목을 수강했는데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솔직히 우리 말로 들어도 어려운 전문 어휘들에 대한 원어적 접근은 굉장

ⓦ 와글와글 2, 왜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나? 새로우니까 그

히 어려운 것이었다.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교육 효

랬을 것이다.(박효영) 다른 교수님들 입장에서 보면 보통 “

과가 크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박정수)

이건 건축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학의 관점에서 그들의 고민 을 받아 주면 될 걸, 왜 네가 하지?” 했을 텐데 그 분 스튜디

ⓦ 5년제여서 좋았던 점? 개인적으론 5년제로 인해 좋아진

오 안에서는 그게 디자인으로 접근 가능했다는 점이다. 애들

것은 1년이란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학교 졸업하

은 다소 황당한 접근조차 연신 “OK, OK” 하며 받아주는

면 사실 다 똑같지 않나? 1년이란 여유가 생기니까 교수님들

선생을 만났으니, 신이 났을 밖에. 자신을 전적으로 밀어주

도 여유롭게 가르치시게 되었다. 내 경우 초고층 프로젝트를

는 환경이 좋았던 거다. 거기에 감동을 받아서 그 수업을 들

수행한 바 있는데 거의 1~2주에 한 번씩 외부에서 설비, 구조

었던 애들은 다음 학기도 벽안의 그 교수님을 좇아가는 진풍

엔지니어들이 오셔서 실현 가능성에 대하여 자문해 주시고,

경을 연출했다. 그 반 학생들은 거의 스튜디오의 이동이 없

그 과정에서 엄청 많이 배웠다. 결과적으로 보면 5년제 이후

었다.(박정수)

수업의 내실이 탄탄해진 것 같다. 우리 학교는 해외랑 조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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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은 그다지 활성화되어 있지 않지만 목요 강좌를 통

ⓦ 최종 결과물은 어땠나? 그 수업을 듣지 않은 학생들과의

해서 초청된 외국인들의 강의를 듣는 것으로 대체 효과가 있

차이? 개들은 항상 화려하게 끝냈다. 시각적인 결과물만 보

었다. 학생들 대부분의 국제적 감각은 그 정도에서 경험했다

고서도 솔직히 콤플렉스가 생기더라. 서로가 동일한 기간 내

고 말할 수 있겠다.(민동구)

에 작업을 했는데 너무 차이가 컸다.(박정수)

ⓦ 기억나는 외국인 강사의 인상은? 인증 규정에 의하면 여

ⓦ 그 밖에 외국인 교수의 수업은 무엇이 달랐나? 우리 학교

성 교수 몇 %, 한국에서 교육받지 않은 외국인 교수가 몇 분

는 교수님들의 친분으로 설계실에 불쑥 찾아온 외국인들과

이상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던 것 같다. 그중 기억나는

만나는 기회가 잦았다. 학부 2학년 때 처음으로 외국인으로

한 분은 스페인에서 태어나신 분인데 대학은 네덜란드의 베

만 이루어진 스튜디오가 만들어졌다. 그 때 영어로 설계 수업

를라헤를 나왔다. 누가 봐도 선진국의 표준화 교육을 받았을

을 받았다. 그 후로는 딱히 외국인으로만 구성된 설계 스튜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던 분인데 이 분의 교수법이 무척 특

오는 없었다. 가끔 외국인 크리틱을 만나는 정도였다. 그 때

별했다. 처음 그 분이 학교에 오셨을 때 학생들은 그 분의 이

마다 느껴졌던 게 외국인들은 칭찬을 참 많이 해준다는 점이

력만 보고 그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가히 인기 폭발. 이

었다. “가능성이 보인다. 열심히 해봐라, 이렇게 하면 재밌지

분의 수업에서는 두 달 동안 다이어그램만 그리도록 하는 과

않겠냐” 하는데 보통 국내에서 외부 크리틱으로 오시는 분들

제가 주어졌다. 주제도 특이해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다

을 보면 대개가 부정적이었다. 크리틱 당하는 학생들에게 좌

이어그램”이라고나. 옆 반 수업과 너무 비교가 되었다. 나름

절감을 안겨 주었다. “이게 뭐야, 나는 이 공간이 무슨 공간

인정받는 건축가가 지도하고 계셨는데 학생들에게 통상의

인지 모르겠는데, 이걸 설계라고 했어.” 막 이런 식으로 기를

도면 그리기를 시키고 있던 그 모습을 누군가 옆에서 지켜보

팍팍 죽이며 대개 안 좋은 말만 해댔다. 그럼 애들은 막 울고,

wIde Issue 1 : REVIEW : 건축학 5년제 졸업생들이 말했다


특히 여자애들은 거의 쓰러졌다. 크리틱이 마치 애들 울려야

ⓦ 5년제를 효과적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내 생각엔 5년제

하는 것처럼, 그래야 잘 하는 크리틱으로 호도되고 있는 것은

의 묘미는 교양 과목의 이수에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문제다. 여기 참석한 누구나가 경험한 바이겠지만 크리틱에

정말 빡세게 공부했다고 생각한다. 5학년 때까지 교양 과목

당하여서 무서운 말 진짜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너무

을 들었으니까. 한번은 학교 선배님이 그러더라, “건축은 아

속상할 때가 많았다. 차라리 한 학기 동안 나를 이끌어 주었

무나 할 수 있다. 인정만 받으면 된다.” 나는 그 말이 맞다고

던 교수님이 “너 진짜 못 풀었다”고 하면 이해라도 할 수 있

생각한다. 건축이라는 게 설계만 중요한 게 아니고 사회적이

었을 것이다. 그 분은 오랜 시간 내 작업을 봐오신 분이니까.

고 과학적이며 다양한 지식을 하나로 통합한 사람만이 훌륭

외국인 크리틱들은 정말 안 좋아도 대개 긍정적인 방향에서

한 건축가가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에 기반해서 교

애들을 지도해 주는 점에서 많이 달랐다. 그 때 이후로 나는

양 과목을 무척 많이 들은 편이다. 가장 인상적인 교양과목

비판을 할 때는 어떤 애정을 갖고 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키우

은 ‘인간과 예술의 이해’라는 과목이었는데 강의는 철학과 교

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박효영)

수님이 맡으셨다. 예술을 철학의 관점에서 풀어 주셨다. 인 간, 예술 그리고 철학을 이해하는 과정이 되었다. 교양 과목

ⓦ 와글와글 3, 크리틱에도 긍정의 기술을 : 크리틱도 긍정

에 대해서 한 가지 덧붙이면, 서울이라는 주제가 나오면 건축

적인 면을 봐주고, 되도록 미소로 해주었으면 좋겠다.(참석

과 학생들은 전공의 한계에서 일탈하지 못하는데 타과 학생

자 일동)

들은 많이 달랐다는 점이다. 직접 경험한 바는 없지만 후배들 얘기가 그랬다. 근데 건축 설계는 서비스업에 속하지 않나?

ⓦ 다시, 그 밖에 외국인 교수의 수업은 무엇이 달랐나? 나

예술이기 전에 서비스업으로 분류되는데 서비스하는 사람들

는 외국인 교수님한테 배운 적은 없다. 그래서 설계 수업을

이 자기만의 리그를 갖고 자기들만의 사회를 갖고 활동을 하

영어로 받은 경우도 없었다. 반면 후배들은 외국인 교수님

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일반인들은,

한테 배울 기회가 있었다. 옆에서 그들의 수업 내용을 보니

건축가는 사회적인 의무를 가지고 예술가로서 역할을 다하

까 많이 다르긴 했다. 식빵에 잼을 발라서 건축 개념을 표현

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그렇지 못하다고 본다. 그

하는 친구 등, 특이한 접근이 눈에 띄었다. 호감이 간 건 사

래서 대학에서 교양 과목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하는 생각을

실이지만 한편으론 그런 교육 방식을 통한 효과에 대하여 의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대학교 때만 가질 수 있

문도 일었다. 가능하다면 건축학 인증원에서 각 학교 교수님

는 기회라고 생각해서다.(민동구)

들과 함께 그들의 강의 능력과 경력을 검증해 줄 수 있는 방 안 정도는 마련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민동구) 동의

ⓦ 기억에 남는 수업은? 1학년 때 우연히 정치인을 만난 적이

한다. 외국인 교수라고 해서 다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닌 것

있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두었던 분으로 재야 운동을 했던

같다.(박정수)

사람이다. 그 정치인과 지지자들과 함께 술을 먹을 계기가 있 었다. 그 때 나는 건축계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건축

ⓦ 5년제 건축 교육을 받으면서 즐거웠던 기억은? 듣는 과목

밖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재미를 느꼈다. 그로 인해 한동

수가 증가했다는 점이다. 최소한 인증에 필요한 과목이 정해

안 설계 수업 외에는 학교 수업을 등한히 하는 이유가 되기도

짐으로써 다양하게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과목이 세세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 수업에서 괜찮다고 느꼈던 것은

나눠져 있기 때문이다.(박효영) ‘아키텍토닉’이라는 과목이

자기 주장이 강한 교수님들의 수업이었다. 지금은 학교를 떠

있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각각의 시대를 이끌었던 핵심적

난 분이 계셨다. 그분은 수업 시간에 수퍼 통일장 이론을 건

인 재료와 구법에 연계된 테크놀로지에 대하여 재조명하는

축과 접맥시켜서 말씀해 주셨다. 애들은 무척 황당해 했지

과목이었다. 유익했다.(양은주) 나도 같은 경험을 했다. 교수

만. 그분 수업을 받는 학생들은 다른 많은 경험을 하고 있다

님이 텍토닉에 대한 강의와 설계를 연계한 재료, 기술, 구조

고 생각했다. 아쉽게도 그분 수업을 듣진 못했지만 젊었을 때

등 통합적 교육을 해주었는데, 무척 좋았다.(박효영)

는 그런 류의 학문에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결국은 5 년제, 4년제의 차이가 아니라 가르치시는 분의 역량의 차이

~

~ ~

!

Wide Architecture Report no.8 : march-april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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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니겠는가? 라고 생각한다. 대학 내에 학문적으로 개성

상설계 중이다. 팀장님도 기탄없이 우리 같은 신입 사원의 의

강한 교수님들이 많이 계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다.(김택구)

견을 물으시고, 괜찮으면 곧장 반영해 주시는 편이다. 우리 회사 전체 분위기가 그렇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 스스로 5

ⓦ 5년제를 졸업한 당사자로서 5년제에 대한 평가는? 3학년

년제 커리큘럼을 이수한 것이 실무에서 곧장 적용하는 데에

때 뮤지엄 설계를 했는데 점수가 안 좋았다. 담당 교수님께

이점이 있다고 느꼈다. 토지이용계획 확인원을 떼어 보고 그

전화를 드렸다. “성적이 생각보다 잘 안 나와서 말이죠.” 교

걸 기반으로 작업하고 파이널 결과물의 설계 설명서를 작성

수님이 그러시더라. “그건 건축이 아니야.” 엄청 충격이었다.

하는 과정이었다. 나와 몇 살 차이 안 나는 선배들도 “우리 때

순간 “건축을 하지 말아야 하나?” 라고까지 생각이 미쳤다.

는 이런 것 배우지 못했는데” 하더라. 그때 생각했다. 5년제

결론적으론 그게 되레 큰 힘이 되었다. 그분은 왜 내가 한 것

가 되면서 어느 정도 체계적인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

을 건축이 아니라고 했을까? 에 대하여 무척 많은 시간을 고

고 그것이 실무에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완이 필요하

민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가 한 것을 건축

겠지만 5년제 커리큘럼을 잘 이수했다면 분명 도움이 될 거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아니라고 답이 돌아왔으니 오

라 생각한다.(양은주)

기가 발동했던 거다. 그 때 많이 성장한 것 같다.(민동구)

마지막 여름방학 때 아이아크에서 인턴십을 했는데 나를 좋 게 보셨는지 회의실 발코니 확장을 위한 디자인과 디테일 전

ⓦ 와글와글 4, 건축이란 무엇인가? 돈으로 연결되어야만 하

부를 해보라고 하더라. 그때 느꼈다. 아, 이런 게 아틀리에의

는 공간 디자인이 건축이다.(박정수)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

장점이구나.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해볼 수 있는 곳이 아틀리

이 살아가는 어떤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 건축이다.(박효영)

에, 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 현재의 공간에 입사했다. 연

인간의 본능이 건축이다.(양은주) 공간을 통해서 사회를 구

봉 등 처우도 중요했지만 내가 목표로 하는 것 중에는 유학이

성하는 것이 건축이다.(민동구) 사회가 진화하는 데 가장 큰

라는 계획도 있기 때문에 건축가로 성장하는 프로세스를 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건축이다.(민동구) 너는 아냐? 식으

게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큰 회사에서는 큰 프로젝트를 경험

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건축이다.(김택구)

하고 계획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우해 준다거나, 처우가 어떻다거나 하는 것은 사실 중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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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제 공부하고 나와서 사회에서 받은 대우? 일의 수준

진 않다고 생각했다.(민동구)

은?

나 또한 처우에 대해선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지금의 회사 DA

회사 차원의 대우보다 함께 업무를 처리하는 부서 담당자들

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공부에 대한 미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나를 어떻게 대하냐가 좀 더 현실적일 것이다. 내게 고민

언젠가는 내가 번 돈으로 유학을 가고 싶었다. 더 이상 부모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내가 푼 해법을 도면에 적용시켜

님에게 손을 벌릴 순 없는 것 아닌가. 독립적으로 살아 보겠

준 분들께는 감사드리지만, 대체로 그리 많은 기회를 얻진 못

다는 결심을 굳힌 거다. 정작 입사하고 보니 생각이 복잡한

한 것 같다. 5년제를 나왔어도 실무를 대함에 있어서는 (선배

게 사실이다. 한번은 PF의 안을 봤는데 솔직히 말해서 성에

님들이 보기에) 나와 같은 존재가 작은 ‘점’같은 존재로 인식

차지 않았다. 그럼에도 배울 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

되는 것 같다.(박정수)

이라는 것이 원래 극과 극에 있는 사람들이 부딪히면서 발전

입사 전에 아르바이트 경험이 많았다. 무영, 해안, 원양 등의

해 온 것 아니던가. 향후 몇 년 간은 계속 배워야 할 것이다.

사무소에서 모형 작업을 수행했다. 창조건축에 지원하여 입

돈도 모아야 되고. 학생 때는 막연히 안 좋게만 바라봤던 것

사가 확정된 후 직접적인 일에 투입되진 않았다. 현재 발령

에 대해서 좋게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김택구)

대기 중에 있다. 그 사이 여러 번에 걸친 사내 워크숍에 참

이번에 같이 졸업한 친구들과 얘기해 보면 다들 꿈이 있고,

여하게 되었다. 아직은 입사 전이라 제대로 수행한 것이 없

저마다 유학에 대한 계획들이 서 있고, 그걸 위해선 몇 년간

다.(박효영)

돈을 벌어야 된다, 라고 아주 구체적인 꿈이 있더라. 꿈이 없

이것은 회사 분위기와 맞물리는데 우리 회사는 신입 사원인

는 사람들은 아르바이트 하다가 시집을 간다거나 도중하차

내게도 프로젝트를 수행할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지금은 현

또는 이직을 하고 만다. (박효영)

wIde Issue 1 : REVIEW : 건축학 5년제 졸업생들이 말했다


ⓦ 3〜4년 뒤엔 대개 결혼 적령기가 될 텐데 유학의 꿈이 접

요즘은 일반화된 거 아닌가?(참석자 일동)

히진 않을까? 내가 지켜본 분들은 결혼할 사람이 함께 사무실에 다니면서

ⓦ 5년제 졸업생으로서 지녔던 자긍심과 입사 후 비전의 의

유학을 준비하고 있더라.(박효영)

미?

나도 그게 걱정이 되어서 2〜3년 전부터 부모님과 여자 친구

5년제라고 해서 건축가의 비전에 기여하고 있다고는 생각하

를 세뇌시키고 있다. 결혼하는 순간 유학을 간다고 말이다.

지 않는다. 성격상 지루하거나 창조적이지 않은 일은 못하는

결혼할 때 부모님이 도와주실 전세금을 가지고 떠난다는 전

데, 비전은 나 개인적인 판단으로 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략이다.(민동구)

따라서 학교 교육이 5년이라서 건축가로서의 비전이 향상되 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나는

ⓦ 현재의 직장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

마인드 컨트롤을 많이 하는 편이다. 지금의 회사에 선택된 순

5년제 수업 중엔 대학원 과목이 넘어 온 것이 있었다. 한국

간부터 나 스스로 프로페셔널이라고 생각했다.(민동구)

건축가의 기율을 탐구하는 시간이었다. 기율? 건축가의 설계

솔직히 학교 다닐 때는 4년에 할 수 있는 거를 5년으로 늘려

방법론을 찾는 수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론 수업이기보

가지고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왜냐면 설계 프로젝트

다는 건축가 한 사람을 선택하여 두 달 동안 파악하는 수업

라고 하는 것이 한 달을 주던지, 1년을 주던지 똑같은 경우도

이다. 선정된 건축가를 찾아가서는 답을 내놓으라고 조르는

흔하잖나. 그런 면에선 불만이 많았다. 근데 막상 실무를 하

방식이었다. 우리는 자못 의미심장하게 질문했지만 그분들

다 보니까 5년제란 커리큘럼이 매우 유익했다는 생각이 들었

은 대부분 교묘하게 피해 나갔다. “나는 워드로 작업해, 내가

다. 5년이라는 기간의 이점이 아니라 5년제라는 제도가 되면

종이로 접은 걸 알바생들이 수십 점으로 정리한 것 중 택해”,

서 커리큘럼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실무

뭐 이런 식이었다. 중요한 건 점점 그분들에게 다가갈수록 신

최전선에 계신 분들의 강의가 많이 개설되기 때문에 실무에

비로움이 사라지더라. 종국엔 그분들 대부분에게 건축 언어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대학에서 5년제 교육을 잘

라는 것이 마케팅의 한 수단일 뿐이지 환상적이진 않다는 결

받았다면 실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힘든 5년제

론을 내릴 수 있었다. 작은 아틀리에나 큰 회사나 장단점이

를 거쳤다는 것만으로도 어디 가서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존재함을 발견했고 보다 폭넓게 희망 회사를 생각할 수 있었

을 준 건 사실이다.(양은주)

다. 더하여 (지속적으로 관심을 키워오던) 주거 분야의 대형 프로젝트를 만질 수 있는 전문 회사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했

ⓦ 졸업 후 외국 설계사무소로의 진출에 대한 입장들?

다. 그 결과 현재의 건원을 택하게 되었다. 5년제의 어느 한

우리 세대는 국경을 넘어서는 것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는

부분을 통해서 진로에 관한 한 막연한 환상이 깨지는 시간을

다. 당연히 부르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5년제

벌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박정수)

를 나왔기 때문에 외국 설계 시장에서 특별히 나아진 조건을

나는 회사 선택 시 최우선으로 본 것이 사무소의 규모가 크더

구비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미국이나 유럽은 거반 5년제 출

라도 소규모 아틀리에처럼 디자인부터 실시설계까지 한 소에

신들이잖나.(박효영)

서 다하는지의 여부를 기준으로 삼았다. 또한 내가 가지고 있

이전의 세대보다 우리 세대가 경쟁력이 있다고는 생각한다.

는 것을 최대화해 줄 수 있는 조직이 좋은 곳이라고 보았다.

그런 면에서 당당히 진출할 수 있을 것 같다.(양은주)

내게 2천만 원을 주고 디자인을 시키는 사람보다 내가 4천만

4년제와 5년제는 당장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차이는 없다. ‘

원 이상의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라고 인정해주는

자부심+α’ 정도는 있겠지만. 대학에서의 1년이 굉장히 많은

조직과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았다.(민동구)

걸 말해 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5년제 출신들이 4년제 출신 들보다 분명하게 나은 점을 증명하지 않고서는 5년제를 나왔

ⓦ 와글와글 5, 회사 지원 시 그 회사의 스타일, 재무구조 같

으니 비전이 커졌느냐, 란 의미가 없는 말이다. 근데 실무에

은 걸 보고 들어갔나?

서는 종종 내가 배운 것과 상당히 다른 언어로 말해지는 것을

확인했다.(박정수)

보게 된다. 내 지식과 선배들의 지식이 다른 언어로 병존하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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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8 : march-april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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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도 그걸 번역을 통하여 어느 정도 교감이 되어 내 실력이 선

금번 5년제 졸업생 중에 LG C&S, 두산 중공업, 삼성물산 등

배들의 언어로도 표현이 되었을 때라야 5년제 졸업생의 효과

에 입사한 친구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

를 누릴 수 있는 것 같다. 요즘 노력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선

이 면접 당시 질문 받기를 “왜 5년제 건축과를 나와서 여기에

배들이 무심코 툭툭 던지는 말들을 내 언어의 세계로 가져오

지원했나? 끈기가 없는 게 아니냐?”라고 핀잔식 질문을 받았

는 번역 작업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박정수)

을 때 곤혹스러웠다고 하더라. 조금 빗나가는 얘기지만 내가 아는 한 학번 선배는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그분 하는

ⓦ 건축가란 직업에 대한 의식? 인생을 걸만한 직업이라고

말이 대학을 졸업하는 해에 군대에 갔는데 건축과에서 배운

생각하는가?

프레젠테이션 하는 방법,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 PPT 만드는

그런 생각을 하니까 5년제를 택한 것이고, 이 자리까지 따라

방법,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 그리고 매일 밤을 샐 수 있는 체

온 게 아닐까?(박효영)

력 이런 것들이 되게 도움이 됐다더라. 그 바람에 군대 가서

5학년 때 나갔던 타 장르 공모전에서 건축설계의 디자인 방법

상을 엄청 받았다던데. 그래서 자기는 어느 직업을 택하더라

론이 무척 유효하다고 생각했다. 건축가란 직능은 끊임없이

도 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더라.(박효영)

영역을 확장하는 특징이 있다고 본다. 나는 오히려 5년의 기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한다.(박정수)

간 동안 5학년 때 쯤에는 건축을 베이스로 한 다른 영역에 대 한 궁금증을 키워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양은주)

ⓦ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한테 부탁드리고 싶은 주문은? 자장면은 안 사주셔도 좋은데 함께 밤을 새워달라는 것이다.

ⓦ 와글와글 6, 건축학 5년제 졸업 이후 다른 학문을 더 공부

교수님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과 철학과 마인드를 볼 수 있는

하고 싶다면 어떤 게 있을까?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민동구)

도시와 조경분야(박효영)

학교마다 강사초빙의 사례가 많아져서 자기 사무실을 가지고

산업디자인(민동구)

있는 분들이 다수 학교에 출강을 하시는데 그분들 입장에선

사회학(김택구)

대학 ‘수업’이 단순히 ‘강의’라고 인식되어 있는 듯하다. 강의

언어학(박정수)

시간 외에는 그분들을 뵐 수 없는 것이 아쉽다. 교수님과 학

모든 건축하는 사람들은 어느 쪽이든 디자인 쪽에 관심이 있

생의 관계는 소장님과 직원의 관계와 다를 테니깐. ‘강의’로

고, 그걸 한번쯤은 해보고 싶단 욕망도 있다고 생각한다.(박

생각해주지 말고 ‘수업’으로 생각해 주시고 조금 더 학생들에

효영, 양은주)

게 다가가 주셨으면 좋겠다.(양은주) 우리 학교는 설계 전임교수님의 수가 적다 보니 몇 분 안 되

ⓦ 건축학 5년제 졸업생 친구들에게

는 전임교수님들의 노고가 너무 크다. 전임교수진용의 확충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졸업한 동기 모두가 30년 후에도 건축

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선수과목에 대한 수강의 유연성 확

설계를 하고 있으면 무척 답답할 것 같다. 개중에는 정반대의

보가 요구된다는 점이다.(박효영)

마케터의 길을 걷는 친구도 나왔으면 한다. 다양했으면 좋겠

같은 주제 하에 격론이 일어나는 자리가 많아졌으면 한다. 재

단 기본 생각이다. 한 가지를 배워서 한 가지만 할 수 있다는

학 중 한두 차례 경험한 바 있지만 그런 자리라야 선생님들의

것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구속이란 생각이 든다. 한번은 타 분

논리가 학생들 가슴에 팍팍 꽂히는 감동이 있다. 학생들 앞에

야 공모전에 참여해 본 적이 있는데 역시나 배타심이 크다는

서 선생님들 간의 논쟁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학생들은 그

인상을 받았다. 건축과 출신에 대한 고정관념이 존재하더라.

걸 통해서 진짜 많이 배운다.(박정수)

현실적으론 그런 것이 우리가 건축의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

잘잘못을 인정하는 대학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5년제에 대

고자 했을 때 넘기 어려운 벽이 되겠구나 싶었다.(박정수)

하여 처음엔 그분들도 굉장히 혼란스러워 했던 것 같은데 그 럴 때에 솔직하게 마음을 열고 학생들을 지도해 주었으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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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계사무소 진출을 포기한 친구들의 사회 진출은 평탄했

는 바람이었다. 교수님과 학생들 간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주

나?

문이다.(김택구)

wIde Issue 1 : REVIEW : 건축학 5년제 졸업생들이 말했다


ⓦ 10년 뒤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학교에 강의 나가서 원숙한 모습으로 지금 내가 경험한 것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해 줄 것이다.(양은주) 35살에 회사를 차리고, 40살에 학교에 출강하는 것, 그 사이 있을 수 있는 결혼이 내 꿈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박효영) 실패한 마케팅 이론이라도 내 이론이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 겠다. 내가 평생 하는 일에서 하나의 주제로 관통되는 이야기 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박정수) 외국에 나가 있을 것 같다. 그때쯤이면 국내에 돌아올 거를 고 민하고 있지 않을까?(김택구) 학회나 협회의 일원으로 크게 활약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전문가로서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자가 되었으면 한다.(민동구)

ⓦ 나가며 좌담이 열린 그날은 오전에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장례 미사가 있었다. 마음 한 켠에 숙연함이 가시질 않은 하루였다. 이 날에 마신 소주는 이 어려운 세상의 짐을 홀로 십자가로 떠 메고 가신 그 분을 향한 눈물 같은 것이기도 했다. 좌담은 그 렇게 소주와 함께 진행되었다. 취기가 2층 골방의 공기를 데 울 뿐 누구하나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날은 또한 참석자 다섯 명 중 세 명의 대학 졸업식 날과 겹 쳐졌다. 친구들과 가족과 어울렸어야 할 그날 그 소중한 시간 을 <와이드 이슈> 좌담에 할애해 준 참석자들이었다. 이제 갓 사회에 진출한 그들은 모두들 싱그러웠다. 하나같이 겉모습 도 예뻤고, 속에 든 생각도 아름다웠다. 건축학 5년제 교육 프 로그램의 초기 수혜자들인 이들에게서 건축은 희망의 시위를 겨누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대화 중간 중간에 여러 선배 건축가들의 이름이 호명되면서 날선 비판과 찬사가 교차되기도 했다. 그중 좌담 거의 막바지 에 나왔던 한 가지만 여기에 기록한다. 건축가의 “책임과 권 리가 동시에 중용되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자”는 박준호( 공간건축) 소장의 지론이다. 끝으로 본 지면을 빌어 좌담 참석자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전 한다. 그들의 창창한 내일을 소망하며.

진행 ⓦ 전진삼(본지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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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8호 | 이슈 2 명동 국립극장 재현기 우리 시대의 아련한 노스탤지어 글 | 김정동(본지 발행편집인 고문, 목원대 건축학부 교수) Wide Architecture : wIde Issue 2 no.8 : march-april 2009

명동 축제에 모인 사람들의 인파, 정면이 옛 명동 국립극장

외관 일부의 원형을 살려 오는 6월 개관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명동예술극장(옛 명동 국립극장) 건물이 1936 년 건립 당시 일본 도쿄의 한 극장 디자인을 똑같이 베껴 설계됐던 것이 밝혀졌다. 본지 발행편집인 고문인 김정 동 교수(목원대 건축공학과)는 명치좌(설립 당시 명칭)와 일본 도쿄 아사쿠사의 유명 극장 오가쓰간(大勝館)의 디 자인이 같으며, 설계자 간에 서로 이야기가 되었는지의 여부는 모르겠으나 명치좌가 짝퉁임에는 틀림없다고 전했 다. 이러한 보도가 나가자 일부에서 ‘짝퉁’이라는 이유로 국내 대표 극예술극장으로서의 명동예술극장 복원은 문 제가 있다는 말이 나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복제 건물이라는 사실이 복원이나 보존의 취지를 퇴색시킬 수는 없다 는 김 교수의 주장처럼, 근대건축은 단순히 물리적 구축물로서가 아니라 그 시대의 삶과 연관된 연계성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명동예술극장으로 다시 태어날 이 건물의 사연을 귀 기울여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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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명동 국립극장 재현기 - 우리 시대의 아련한 노스탤지어


명동에 경사 났네 명동에 경사가 났다. 명동 옛 국립극장이 세워진 지 73년, 그리고 극장 문을 닫은 지 24년 만에 이제 ‘명동예술극장’으로 다시 태 어나려 하기 때문이다. 오는 6월 준공식 행사와 함께 ‘맹진사댁 경사’가 공연작으로 올려진다. 이 극장 건물은 세워진 후 계속 명 동의 얼굴 역할을 해 왔다. 영화관으로 세워졌으나, 해방 후 나라의 극장으로 승격되어 연극, 음악회, 각종 행사 등을 수없이 해 왔 다. 그 역사가 우리 근대 문화의 바탕골이 된 것이다. 강남이 없을 때, 그리고 자가용차와 지하철이 없을 때 이곳은 지식인의 산책 코스 제1번지였다. 유행의 발진기지, 연인의 데이트 코스로 빠질 수가 없었다. 1973년 10월 남산에 국립극장, 그리고 광화문에 세 종문화회관 등이 들어서면서 명동 국립극장은 그 역할을 다하고 퇴장했다. 명동 국립극장이 간판을 내리며 그 명동의 문화사도 막 을 내리게 된 것이다. 올드 팬의 마음에만 남게 된 것이다. 명동이라 함은 옛 미도파 백화점으로부터 명동 국립극장, 그리고 명동 성당까지가 한 축이다. 천주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명동성당에 오르면 왠지 하늘 가까이 간 느낌이 들 것이다. 그 언덕배기에 절묘 하게 성당이 들어서서 명동의 마침표를 찍었던 것이다. 나 자신, 지난 몇 년간 명동성당을 수리하는 일에 자문한 적이 있다. 그동 안 명동성당 벽돌을 손대고, 제일 꼭대기에 있는 십자가를 붙들고, 가슴 뭉클한 느낌을 갖기도 했다. 프랑스의 한 건축가는 어떻게 그 오래전 이곳에 이런 건물을 지었을까. 존경심이 우러러 나왔다. 이번 김수환 추기경 장례식 때 한 방송 카메라는 명동성당을 하 늘에서부터 조감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조문의 줄도 감동적이었지만 바둑판 같이 그어진 명동 길에 박힌 명동성당, 명동 국립 극장 건물도 한 눈에 들어와 눈을 뗄 수 없었다.

1943년 개봉된 영화 ‘망루의 결사대’ 포스터. 오른쪽 아래 상영관 ‘명치좌’의 이름이 보인다. (자료; 김종원, 정중헌, 『우리 영화 100년』,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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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많은 극장 건물 명동 국립극장의 설립 당시 명칭은 명치좌(明治座)였다. 서울 을지로 국도극장과 같은 해에 영화관으로 세워졌다. 당시 경성 부민 은 60만 명을 돌파하고 있었다. 60만 명이면 유럽의 이름 있는 대도시보다 작은 것이 아니었다. 명치좌는 주로 일본 영화를 상영하 는 영화관이었다. 명치좌는 8^15해방 후 미군정청 시대가 되며 국제극장이란 이름으로 재개관되었다. 명동 1-65번지에 또 다른 명 동극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국제극장은 서울시에 의해 접수되어 시공관(市公館)이란 이름으로 바뀌고 집회 시설로 쓰이거나 연극 등의 공연을 했다. 1950년 4월 29일, 부민관(현 서울특별시의회 의사당)이 국립극장으로 탈바꿈했다. 시공관은 6^25 동란으 로 황폐해져 52년 개수되었다. 1957년 6월 1일, 시공관은 다시 명동예술회관이란 이름으로 바뀌며 국립극장이 되었다. 1961년에 건물이 개^보수되면서 옥상 일부분을 증축, 지붕 처마선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즈음 극장 주변에 있던 고전 음악감상실 ‘돌 체’, 목로주점 ‘은성(銀星)’은 명동의 분위기를 함께 이끌었다. 명동예술회관은 1962년 3월 21일 명동 국립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다 시 바뀌었고 1973년 10월 17일, 남산 국립극장이 개관될 때까지 10여 년간 국립극장으로 역할을 했다. 그 후 명동예술회관은 폐쇄 되었다. 1975년에는 금융업체 건물로 바뀌어 대한투자금융에서 사용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변용(變容)이었다. 1985년 12월 정 일건축연구소가 개수 공사를 했다. 이어 1995년에는 헐릴 위기까지 이어졌다. 나는 그때 사정을 ‘명동애사(월간 <플러스>, 1995. 5)’란 글로 담았다. 이 건물의 문화사적 가치를 생각하여 원래의 용도인 극장사의 한 장(章)이 이어지길 기대하면서…. 어쨌든 이에 호응이 되었는지 몰라도 명동 상인조합이 들고 일어났다. 명동 상권에서는 명동을 되살리자고 첫 ‘명동축제’를 벌리 면서 ‘옛 영화(榮華)를 되찾자’는 구호를 내걸었다. 더구나 명동성당 주임신부인 백남용 신부도 옹호해 주어 건물이 철거되는 상 황은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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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명동 국립극장 재현기 - 우리 시대의 아련한 노스탤지어


명동 국립극장(<조선과 건축>, 1936.12)

도쿄의 오가쓰관(준공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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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인 지극히 여성적인 건축물 명치좌의 건축주는 일본인 이시바시(石橋良祐)였고 건축가는 다마타(玉田橘治)였다. 다마타는 이미 단성사(1935)와 국도극장(1936)도 설계한 바 있는 극장 전문 건축가였다. 그의 건축사사무 소는 현 명동 2가에 있었다. 그는 일본건축사회 경성지부 지부장을 겸하고 있었다. 건축 당시 명 치좌의 건축 규모는 국도극장과 거의 같았다. 관객 수용 인원은 1,178명으로 1층은 664명, 2층은 354명 그리고 3층은 160명으로 계획되었다. 명동의 금싸라기 땅 505평에 건평 317.1평, 연건평 743.413평으로 지어졌다. 지하 1층, 지상 4층, 옥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평지붕이다. 철골 철근 콘크리트조에 붉은 벽돌로 벽체를 마감했다. 화강석, 타일, 인조석을 부분 시공했다. 명동 안 네거 리 부분에 위치, 모서리 부분을 정면으로 하며 양측 면은 동일한 이미지로 디자인했다. 5층으로 보 이도록 옥탑부(屋塔部)까지 부벽(扶壁)을 세웠다. 옥탑 상부는 원형판을 올려놓은 것 같아 전반적 으로 곡선이 강조된 느낌이다. 각면(角面)이 없어 더욱 여성적이었다. 이 분위기는 당시 세칭 ‘모 던 걸’들을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4각창으로 2층을, 아치창으로 3~4층을, 그리고 전면 현관부의 옥탑 부분은 원형창(圓形窓)을 돌려 창문이 자유분방하게 뚫린 느낌이다. 전면부

1936년 오가쓰관.

는 캐스트 스톤(Cast Stone) 조각을 수직으로 세워 올려 풍요롭게 했다. 처마 부분도 캐스트 스톤

극장으로 사용할 때의 사진이

으로 조각, 부드러운 마감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건물의 디자인이었다. 명치좌는 일본 도

다. 필자는 10여년 전 일본에

쿄의 아사쿠사에 있는 영화관 오가쓰관(大勝館)과 디자인이 똑같았다. 복사 정도가 아니고 완전

서 이 사진을 발견했을 때는

한 도작(盜作) 수준이었다. 오가쓰관은 센고쿠 쇼타로(遷石政太郞)가 설계한 것이다. 센고쿠는 극

명치좌인 줄만 알았다. 건물의

장 전문가였다. 센고쿠는 도쿄 간다(神田)에 사무실이 있었으며 도쿄의 여러 극장을 설계하고 있

일부가 보인다.

었다. 아사쿠사에는 후지관(富士館, 1927, 이후 新世界), 제국관(帝國館, 1929, 이후 松竹演藝場) 등을 설계하고 있었다. 오가쓰관은 1930년 12월에 준공된 것이다.(일본, <건축잡지>, 1931.3) 오 오사카에는 일본구락부(1931, 이후 新世界 日劇)도 설계했다. 명동 국립극장의 설계자 다마타는 그의 작품을 복사한 것이다. 그가 센고쿠의 허락을 받았든 안 받 았든 짝퉁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 영화의 황금기였던 그 시대, 도쿄의 아사쿠사에는 영화관, 극 장 등이 약 30개를 헤아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오가쓰관은 1930년대 국내외에 잘 알 려져 있었다. 그중에는 우리 소설가 김내성(金來成, 1909~57)도 있었다. 그가 도쿄 유학 시절 자 주 간 곳이 아사쿠사였다. 1938년 그가 쓴 ‘아사쿠사 극장가’(淺草 劇場街)(<조광>, 1938.6)라는 수필의 무대가 바로 그곳이었다. 그의 이 글에 오가쓰관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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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명동 국립극장 재현기 - 우리 시대의 아련한 노스탤지어


명동 국립극장 정면. (<조선과 건축>, 1936.12)

“신파를 볼가? 구파를 볼가? 오페라를 볼가? 활동사진을 볼가? 연애극을 볼가? 탐정극을 볼가? 희극을 볼가? 비극을 볼 가? 레뷰을 볼가? 대중은 각각 자기의 취미에 따라 이리 저리로 몰리어 들어간다. 오가쓰관(大勝館), 일본관, 쇼치쿠관(松 竹館), 일활관(日活館), 동경구락부(俱樂部), 금용관(金龍館), 모쿠바쿠관(木馬館), 하나야시키(花屋敷)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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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쓰관 1층 평면도.

명동 국립극장 1층 평면도.

전형적인 서민들의 시타마치(下町)였던 아사쿠사는 지금은 물론 변해 있다. 오가쓰관도 없어진지 오래고…. 2002년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 었다. 8월 23일 문화관광부가 명동 국립극장을 개수, 재개관하기로 했다. 필자는 이 계획에 적극 참여했다. 그러나 짝퉁이란 말은 하지 않 았다. 일이 어긋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도쿄의 오가쓰관은 없어졌으므로 명동을 찾는 많은 일본인들은 이 건물을 새롭게 보게 될 것이다. 사연을 아는 사람에 한한 일이겠지만…. 어쨌든 개관하는 날을 기다려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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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명동 국립극장 재현기 - 우리 시대의 아련한 노스탤지어


와이드 8호 | 이슈 3 인천 아트 플랫폼 Incheon Art Platform Wide Architecture : wIde Issue 3 no.8 : march-april 2009

대한통운 창고의 벽면.

내부 천장의 목재 트러스는 보강을 하여 있는 그대로 남겼다.

인천 중구 해안동의 ‘창고지대’가 창작 스튜디오 중심의 미술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인천시는 총 223억여 원을 들여 13채의 건물을 고치거나 새로 짓는 작업을 통해 창작실과 전시실, 예술가들이 생활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교육과 전시 등을 함께 할 수 있는 다목적실 등을 마련했다. 공사는 지난해 말 1차 완료되었으며, 내부 공사와 입주 자 선정 등을 거쳐 오는 9월 문을 열 계획이라고 한다. 최근 시민 공모를 실시하여 ‘인천 아트 플랫폼’이란 이름을 얻은 새로운 문화 공간은 이름 그대로 지역과의 교류 및 활성화를 고려하되 작가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하고 국제 교 류 및 레지던스 프로그램 수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아트 플랫폼의 총괄 MA로부터 그간의 진행 과 정을 들어 보고, 도시 재생을 위한 문화 공간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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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로 덧대어진 부분의 내부 공간. ↓ 전체 단지를 브릿지와 데크로 연결하여 영역과 기능의 통합을 꾀하였다.

editor’s note | 아트 플랫폼에 거는 기대와 이런저런 아쉬움 아트 플랫폼은 문화 공간이 지역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기획되었다. 해안동을 포함하는 인천의 옛도심 지역은 개 항 후 오랫동안 서구 문물 도입의 전초 기지였으며, 바다와 연계된 항만도시와 전통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공업도시로 성장을 거 듭하면서 인천의 도심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도심 기능이 서울과 가까운 동쪽으로 이동을 하자 이 지역은 점차 활기를 잃 어 갔다. 인천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계획들을 수립해 왔으며, 그 중 아트 플랫폼은 ‘개항기 근대건축물 보전 및 주변 지역 정비 방안’에서 제시한 주변 지역 활성화 계획의 하나로 시행이 됐다. 도시 안에 면 단위의 문화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문화적 흡수 력으로 도시 공동화와 쇠퇴 현상에 반전을 꾀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사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버려진 공장이나 창고 등을 개조하여 미술관이나 공연장 등의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이미 널리 알려진 바다. 건물의 재활용으로 기존 도시 맥락을 유 지하면서 쇠퇴하는 지역에 재생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으로 본다면 매우 긍정적인 도시 개발 방식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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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3 :\ 인천 아트 플랫폼 Incheon Art Platform


개별적인 건물이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나 역사적인 경관을 통해 지역의 특성이 가지는 맥락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유지, 활용되는 창고 건물

도시 재생의 목적 이외에 아트 플랫폼은 근대건축물의 보존과 활용이란 목적이 있다. 인천의 옛도심은 ‘세계 열강이 통상의 목적 을 가지고 자유롭게 거주하면서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특정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결정된 지역’으로서 각국의 조계지가 형성 된 곳이며, 아직까지 독특한 건물 양식들과 도시계획의 흔적들이 잔존해 있는 장소이다. 아트 플랫폼은 이처럼 근대와 현대를 잇 는 인천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지역에 세워졌다. 상량문의 건축 연대가 1888년인 구 일본우선회사 인천지점(대흥공사)을 비롯해 군회조점(삼우인쇄소, 1884년), 피카소 작업실(1933년), 영광슈퍼(1943년), 대한통운 창고(1948년), 대진상사(1948년) 등의 옛 건물들이 남아 있었는데, 옛 건물들은 계획의 과정에서 등록문화재로 등록(구 일본우선회사 인천지점)되는가 하면 기준에 의해 고쳐지거나 철거되거나 재현되기도 했다. 이런 경우 일반 건축물의 리모델링과는 다르게 과정상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더욱 이 우리에겐 근대건축물의 재생, 활용에 대한 사례들이 충분히 축적되어 있지 않다. 최대한 기억의 단편들을 남기면서 역사 경관의 맥락을 잡으려고 했다는 설계자의 의도와는 달리 바라보는 편에서 다양한 평가들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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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편집위원인 손장원 교수(재능대)는 아트 플랫폼이 근대건축물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이러 한 문제의 출발이 개별 건축물을 대상으로 한 면밀한 조사가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실측 조사를 실시하고 조사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 근대건축물 리모델링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아쉬움으로 건축가의 의도가 너무 짙게 스며있는 점을 들었다. 옛 흔적들을 있는 그대로 남겨 두는 것이 기억의 편린을 유지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입장에서다. 미술 쪽 역시 이 부분에 대해 같은 생각이지만 다른 이유를 들어 지적했는데, 인천 스페이스 빔의 민운기 대표는 아트 플랫폼이 예술가들에게 지 나친 친절함을 베푸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불친절한 부분이 있었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지나친 친절함은 작가들의 운신의 폭을 제한하지요. 물론 모든 공간이 다 그럴 수 야 없겠지만, 일부분이라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을 하다보면 공간이 훼 손될 수도 있으니까요. 또 틀에 짜인 공간은 행위의 가이드라인이 되어 작가들의 활동에 제약을 줄 수 있습니다. 작가들의 몸의 감 각은 그것이 어떤 공간이냐에 따라 각각 다르게 반응하지요. 몸이 살아나기도 하고 경직되기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작가들로부 터 불평이 나올 수 있을 거라 봐요. 차라리 건물의 안전진단만 신경 써서 해 주고, 거주자의 다양한 특성이나 표현이 공간에 묻어 날 수 있도록, 쓰면서 만들어 가도록 내버려 뒀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아트 플랫폼의 경관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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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3 :\ 인천 아트 플랫폼 Incheon Art Platform


전체 조감도.

대상 건축물.

보존된 건축물.

그는 아트 플랫폼의 리모델링 과정에서 자신이 이러한 의견을 개진했고 건축가 역시 그것을 반영한다고 했지만 결정적인 부분에 서 미묘한 차이를 보인 것 같다며, 자신은 단순한 공간의 비움을 말한 것이 아니라고 전했다. 의견을 낸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지향하는 바는 같았으나 문제의 해법이 달랐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근대건축물의 리모델링이나 창작 공간을 만드는 일이나 고도 의 전문성을 요하는 일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어쨌거나, 이런저런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아트 플랫폼은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개관을 목전에 두고 있다. 소중한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과 기대에서 비롯된 평가들도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5년 후 또 다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출발은 좋았으나 ‘설 립 취지를 잃어버린 채 박제화되고 있는 창작 스튜디오’가 많은 요즘, 지금부터 잘 해야 될 거란 생각이 부쩍 드는 이유다. 글 ⓦ 정귀원(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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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지역 소생의 발화를 기대한다 황순우((주)건축사사무소 바인 대표이사, 아트 플랫폼 총괄 MA)

ⓦ 예촌(아트 플랫폼의 옛 이름) 조성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오

지켜 주면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처음부터 아

래전에 들었다. 시작은 언제부턴가?

트 플랫폼을 매개로 지역 도시를 다시 살려보자, 라는 의도가 있

2000년 11월 지구단위계획, 즉 도시계획 작업에 대한 용역인 ‘

었다. 꽤 긴 시간이라고 했는데 아직 끝난 것도 아니다. 나는 아

개항기 근대건축물 보전 및 주변 지역 정비 방안에 관안 연구’

직까지 인테리어와 C.I 작업을 자문하고 있다. 또 운영 준비를

를 시작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이 지역의 보존 논의는 이미 오래

위한 TFT팀이 구성되었는데, 그쪽도 계속 지원하고 있다. 오픈

전부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어져 오고 있었다. 1999년에는

될 때까지는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포럼을 통해 정책 입안에 대한 구체적인 사안들을 고민하였고, 실제 정책 제안으로까지 이어졌다. 그것을 시가 받아들여 일단

ⓦ 여러 가지 시행착오나 어려움이 있었을 듯하다.

2000년에 도시계획에 대한 용역을 하게 되었다. 미술 문화 공간

먼저, 얼마나 많은 행정관들을 만나야 했는지 상상이 갈 것이다.

(아트 플랫폼) 건립 사업계획은 2002년 7월에 수립, 2004년 4

시장도 한 번 바뀌었고, 국장급, 과장급은 여러 번 바뀌었다. 그

월 계획 설계에 착수했고 자문회의 등을 거쳐 그해 8월, 계획설

럴 때마다 관은 일관성을 갖지 못했다. 자리에 새 사람이 앉을

계안이 완성됐다. 올 9월에 시운전 및 준공을 앞두고 있으니 정

때마다 시설 내용의 변경이나 요구사항 등이 많아지는 것은 어

책 제안으로부터 만 10년이 지난 셈이다.

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가서 늘 설명을 다시 해야만 했다.

ⓦ 정책 제안을 하게 된 계기는 뭔가?

ⓦ 관 주도 문화 사업인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아파트로 개발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렇게 계속 놔두면 안 되겠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더라도 실제로 정책에 입안하여 구

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둘러 도시 재생의 본보기로 기획

체화시키는 일은 어려운 것 같다. 전문가와 시민단체와 관은 각

을 한 것이다. 지금 하자고 그러면 안 할 거라 생각한다. 서울의

자 해야 하는 역할이 분명 다르다고 본다. 전문가들이 좋은 내

뉴타운 정책 등, 재개발과 관련된 부작용이 얼마나 많은가. 하

용들을 다듬고 정리하는 일을 한다면, 공무원들이 행정적인 일

루아침에 집을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 낯선 도시가 만들어지는

들을 뒷받침해 줘야 한다. 이 프로젝트는 전문가들과 공무원들

과정들…. 그럼에도 재개발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땅값 때

의 공조를 통해 이뤄졌다. 공무원들이 기획안을 만들면 전문가

문일 것이다. 인천시도 주거정비기본법에 의해 150곳을 재개발

들이 검토하여 넘겨주고 하는 식이었다.

재건축한다고 발표했다. ⓦ 대략 220억 정도가 소요된 걸로 안다. 예산 확보의 어려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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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 제안을 하고 난 시점으로 보면 꽤 긴 시간이 소요됐다.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보통 지자체의 단체장들은 자신의 임기 내에 무엇이든 빨리 끝

예산에 대한 문제는 지난한 과제였다. 이미 한참 진행이 된 후

내려고 한다. 하지만 도시를 바꿔 나가는 일은 시간을 갖고 해

에도 시의회에서 “왜 꼭 그 지역이어야 하는가” 라는 원초적인

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게 재개발 아파트를 짓는 일도 아니고….

문제를 거론하며 예산을 세워주질 않아 마냥 홀딩된 적도 있었

이 지역은 앞으로도 10년 정도 더 지나야 제대로 자리를 잡을 것

다. 각자에게 득이 되는 지역에 짓길 원하거나 신축하길 원하는

으로 본다. 도시 재생이란 그 도시가 갖고 있는 맥락, 흔적들을

의원들도 있었다. 시의회의 구성이 다시 되니까 앞에 결정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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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항을 번복하는 거다. 행정에 있어서 일관성을 잃는 건데, 아

ⓦ 내용으로 들어가서, ‘개항기 근대건축물 보전 및 주변 지역

마 시간을 요하는 일들에 대해 어느 지자체에서나 그런 경험을

정비 방안에 관안 연구’ 용역을 소개해 달라.

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 이 자리에서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으

용역의 공간적 범위는 중구 관동, 중앙동 등 6개 행정동을 포함

나 여러 방면으로 뛰어 다니면서 예산을 확보했던 일이 가장 힘

하는 개항기 근대건축물 밀집지역이다. 면적은 약 14만 3천 평

든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인데, 근대건축물 보존 방안 수립, 주변 건축물 정비 방안 수립, 경관 계획 수립, 지역 활성화 방안 및 실행 계획 제시를 전제로

ⓦ 도시계획 작업에도 관여했는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나온 결과가 근대건축물 보존과 그 주변 지

지구단위계획이란, 알다시피 ‘도시 기능과 미관을 증진시키기

역 정비 계획 수립, 주변 지역 활성화 계획 수립 등이다. 가장 먼

위해 모든 지역에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기준보다는 지역 특성

저, 건물 노후도와 가치, 경관 등을 종합적으로 진단, 평가하여

에 맞는 특수한 기준과 원칙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지난 2000

4개의 건조물에 대해 시 지정 문화재로 신청을 했다. 홍예문, 조

년 7월 도시계획법을 바꿀 때 새로 생긴 도시 관리 계획’을 말한

계지 경계 계단, 성공회 성당, 일팔은행이 지정 완료되었고, 28

다. 개항기 근대건축물이 밀집해 있는 이 지역은 역사 경관이라

개의 건조물에 대해 예비문화재 지정을 추진했다. 그 다음에 근

는 측면에서 지구단위계획을 했다. 용역은 전문 업체가 맡아서

대건축물 주변 지역에 대해 디자인과 토지 이용 구상에 따른 세

했지만 이 지역의 역사 경관을 어떻게 보존, 활성화할 것인지에

부 지침을 마련하고, 인천역과 차이나타운, 신포 문화의 거리를

대한 부분은 우리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자문을 했다. 또 용

잇는 특색 있는 거리를 조성하여 주변 지역을 활성화시키는 계

역이 완료된 이후에 그 결과대로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

획을 수립했다. 역사문화의 거리, 가로 박물관, 차이나 몰, 미술

는 것 또한 우리의 역할이었다.

문화 공간 조성 등이 이를 위해 전략적으로 정해진 사업들이고, 미술 문화 공간 조성 사업의 결과가 바로 아트 플랫폼이다.

ⓦ 중간에 MA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안다. 용역이란 것은 끝나고 나면 캐비닛에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 아트 플랫폼은 한 마디로 어떤 공간인가?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MA(Master Architect)를 구성한 것은

아트 플랫폼은 중구 해안동에 위치해 있으며 중심 도로로 나누

지속적으로 사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즉, 단계별로 예

어진 대지에 구 일본우선회사 인천지점 건물(대흥공사)과 삼우

산이 확보될 때 어떻게 여기를 활성화하고 보존할 것인가에 대

인쇄소(군회조점) 등 꽤 역사성, 장소성이 높은 근대건축물을

한 전략을 세워 나가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다. MA 총괄은 내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 창작 공간, 전시 공간, 교육 공간, 커뮤니

가 맡았고 도시계획, 건축, 미술 기획 쪽의 전문가들로 구성이

티 공간, 주차장 등 기타 부대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되었다. 어떻게 보면 블록 아키텍트(BA)들이라 할 수 있다. ⓦ 설계의 지침이 있었을 텐데, 어떤 내용이었나? ⓦ MA이외의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 반영은 어떻게 이루어졌

지구단위계획을 적용할 것과 수립된 정밀 점검 보고서를 숙지

는가?

한 후 리모델링 건물을 설계할 것 등이 설정되어 있었다. 또 디

공청회와 간담회를 통해 꼭 들어야 할 이야기들은 참고하고, 반

자인 대전제가 제시되었는데, 몇 가지 특징적인 것을 이야기하

영되어야 할 것들은 가급적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우려의 시

자면, 개항기 형성된 가로 조직을 존중하여 가구의 합병을 고려

선도 많았고 부정적인 의견 또한 많았다. 냉정하게, 객관적으

하지 않는다는 항목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그 시대의 길이나

로 이야기를 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한다. 최근

필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은 매우 드물다. 이 항목은 도시계

에는 공청회와 간담회를 가지면서 창작 스튜디오의 개념을 다

획의 역사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제시된 거였고, 개인적으로도

시 정립하기도 했다. 인천에는 시립미술관이 없다. 그래서 미술

옛길이나 필지 또한 보존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건축적인 측

문화 공간을 건립한다고 하니까 미술계 일각에서는 이것을 시

면에서는 보존 건축물과 기존의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고, 신축

립미술관으로 오해를 하기도 했다. 성격이 미술관과는 다른 창

은 기능 보완을 위해서만 하되 최소화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결

작 스튜디오 중심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이다 보니 반발이 심할

과적으로는 가능한 건물을 비워내는 작업을 많이 했다. 비워낸

수밖에 없었다. 미술계 인사들이 그걸 이해하기까지 꽤 많은 시

곳은 오픈 스페이스로 활용되었다. 미술 공간적인 측면에서는

간이 걸렸다.

지역과의 교류와 활성화를 고려하되 작가의 프라이버시 중시를 가장 크게 고려했다. 창작 스튜디오가 주요 내용이기 때문에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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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들이 좋은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였다. 아시아 존 (zone)의 교류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국제 교류나 레지던스 (residence)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측면도 고려되었는데, 현재 준비 중에 있다. 또 지역 작가 지원을 위한 코아(core)를 형성 하기 위해 그들이 함께 스튜디오를 쓸 수 있는 방법, 참여할 수 있는 방법, 유통 과정에서 지원을 해 주는 방법 등을 고려했다. 구 우선회사 인천지점에 미술 전문 디지털 자료관을 기획한 것 은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 남겨진 건축물도 있고, 철거된 건축물도 있다. 그 기준은 뭔가? 건물 하나하나 평가 지표를 만들어 자문을 받아 존치 여부를 결 정했다. 평가 지표를 위해 A부터 H 항목의 기준 설정을 했다. 역사성(건축연대/용도 등), 원형 유지 정도, 향후 등록문화재 지정 가치 여부, 지역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 건물, 의장적 특 성이 있는 건물에 한해 보존을 하고 노후 정도, 지역 특성 또는 인접 건물과의 조화 정도, 계획상의 용도 적합성 및 활용 여부 에 따라 철거를 결정했다. 그 중에서 대한통운처럼 지역의 특 ↑↓ 대한통운이라는 벽 글씨와 오래된 나무 전신주, 벽에 걸린 가로등 등을 남기고, 빗물이 타고 들어가지 않는 선에서 옛 흔적들을 남기고자 노력했다.

성을 나타내고 있는 건물은 비용이 좀 들더라도 유지, 활용하 기로 한 거다.

ⓦ 결과적으로 어떤 게 남았고, 어떤 게 사라졌나? 구 일본우선회사 인천지점은 등록문화재로 지정이 되었고 대 한통운창고 등은 활용건축물로 남았다. 노후 정도에 따라 철거 를 한 건물은 세 동이다. 옛 건물을 존치하는 것은 안전 보강이 필수이므로 신축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 비용이 올라가도 가급 적이면 존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으나, 노후 정도가 심해 걷어 내고 재현해 내야 하는 것들이 중간에 생겼다. 세 개동이 안전 상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왔는데, 구조 전문가와 안전진단 업 체와의 협의를 통해 철거를 결정했다. 이런 문제를 설계 단계에 서 결정할 수 없었던 것은 초기에 제대로 조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입주자들의 보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매우 민감한 때였다. 공사 하는 중에도 철거를 못하게 해서 몇 개는 놔두고 공사할 정도였으니까.

ⓦ 삼우인쇄소 역시 역사성과 장소성이 높은 건물로 평가 받는 다. 보존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삼우인쇄소(군회조점, 郡廻漕店)는 1900년대 초의 상량판이 나온, 수준 높은 건물이지만 아쉽게도 증축된 부분이 있다. 등 록문화재를 신청하지 못한 이유다. 다행히 일부를 보존할 수 있 었는데, 특히 공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아치는 증축된 부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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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남겨져 시간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 근대건축물이 아닌데도 남겨지고, 존치되어야 할 건물이 철 거되기도 했던데? 현대에 지어진 건물 중, 한빛빌라는 상태가 좋아 게스트 하우스 로 남겼다. 또 인접 건물과의 조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재현을 했다. 일제시대 지어진 피카소 작업실과 영광슈 퍼는 존치하기에 너무 노후화되어 아쉽게도 철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재현한 건물이다. 비록 벽돌 색깔에 차이가 있 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비슷해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벽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보수 공사를 한 벽돌의 느낌이 옛 것들과 거의 비슷해 보이지 않나? 고잔에 위치한 한화 화약 창 고를 철거할 때 그쪽 벽돌 2만장을 수거해 와서 사용했기 때문 이다. 워낙 보수할 게 많아 2만장이 금새 동이 났지만….

비워진 부분에 격자 틀의 구조물을 채워 넣어 가로에 연속성을 부여했다.

ⓦ 좀 더 디테일한 부분에서 보존을 위한 어떤 노력이 있었는 지 궁금하다. 누구든 최대한 지키려고 애를 쓰지만, 타이밍(timing)이란 것 이 있다. 시간과 예산을 감안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를 테 면 석고로 몰딩을 재현하기도 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있는 그대 로 남겨둔 부분이 더 많다. 지금 없애 버리면 나중에 예산이 확 보되더라도 복구할 방도가 없으니까 좀 보기 흉하더라도 그대 로 남겨 둔 거다. 일식 기와가 남아 있는 부분은 여러 차례 개보 수를 통해 시멘트 기와와 섞여 있는 상태였다. 그걸 다시 복원 하려면 일본에서 기와를 구워 와야 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문제 였다. 비가 새서 몰딩 등이 손상되기 전에 철거를 할 수밖에 없

야외 전시장으로 이용이 가능한 다목적 공간.

었다. 대신 망와와 기와는 수거를 하여 예산 수립되면 복원할 수 있도록 일단 이곳에 전시, 보관하고 있다. 이미 문화재청에 서 실측도 마친 상태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도시의 흔적이 라고 생각해서 남긴 것도 있다. 공방과 아트 숍 사이의 길에 자 유공원으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복개된 구거(溝渠)가 그것이다. 도시 계획상 1900년 초에 만든 것인데, 실제로 물이 흐른다. 필

등록문화재가 된 구 일본 우선회사 인천지점.

요에 따라 다시 복원시킬 수도 있다.

ⓦ 철거로 비워진 부분을 다시 새롭게 채워 넣었다. 어떤 개념 으로 접근한 건가? 프레임만을 끼워 넣거나 창고 모양의 건물 혹은 데크 등을 만들 어 역사 경관의 측면에서 거리의 연속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사 실 여기 건물은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그다지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역사적인 경관을 통해서 지역 의 특성이 가지는 맥락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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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통운 창고 두 동 사이는 다목적 광장으로 비워 두었다. 어떤 용도로 쓰이길 기대하는가? 야외 전시장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디자인 아트페어나 주말 디 자인 벼룩시장 등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배너와 좌판을 설치 할 수 있도록 했고, 유리 캔틸레버를 설치했다. 또 가변형 시스 템을 이용하여 실내외가 통합된 전시장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현재 인테리어를 하고 있다.

ⓦ 사이사이의 데크나 오버브릿지의 용도는 무엇인가? 사족이 란 평가도 있다. 오버브릿지(overbridge)를 둔 것은 단지 전체를 하나로 묶고 동선의 흐름에 따라 구석구석을 다 둘러 볼 수 있도록 하기 위 해서였다. 영역의 통합과 기능의 통합을 고려한 것으로 보면 된다.

ⓦ 전면에 아트 숍과 커뮤니티 센터를 이질적인 유리 표피로 감 싼 이유는 뭔가? 유리를 통해 아트 플랫폼이 가지고 있는 시간성을 보여 주고 싶 었다. 또 기능을 보완한다는 측면도 있었다. 이질적인 요소라 ↑↓ 고잔 한화 화약 창고에서 수거해 온 벽돌 이만 장 으로 보수 공사를 하였다.

고? 나는 이것을 공존이라고 본다. 우리는 시간의 연속선상에 있고, 옛 것과 새 것은 생명력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근 대건축물은 고립되어서 별개로 존재하는 박제된 문화재가 아 니라는 얘기다. 아트 플랫폼의 근대건축물들은 실제 도시 속에 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사용되어야 한다. 옛 건물들이 하 나둘 사라지는 이유 중 하나가 시간상으로 공존이 되지 않아서 가 아닐까?

ⓦ 그렇다 하더라도 건축가의 손길이 생각보다 많이 닿은 것은 아닌가, 하는데? 이를 테면 북경 다산쯔 798 같은 곳과 비교했 을 때 너무 정리 정돈된 느낌이다. 관이 개입되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수도 있다. 공무원을 설득하 기는 매우 힘든 일이다. 책임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깨끗하고 안전한 것을 요구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대한통운이라는 벽 글 씨와 오래된 나무 전신주, 벽에 걸린 가로등 등을 남기고, 빗물 이 타고 들어가지 않는 선에서 옛 흔적들을 남기고자 노력했다. 오히려 이걸 보고 지저분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또 흔적 을 남기는 작업과 동시에 비우는 작업을 하여 작가들이 공간을 만들어 가기를 기대했다. 애초에 스트리트 퍼니처를 계획하지 않은 거나 작업실의 인테리어를 흰 벽체로 최소화한 이유다. 작 가들이 이 안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 지금보다는 좀 더 활기찬 느낌을 가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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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 활용의 측면에서도 보다 자율적인 운용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스튜디오 중심의 레지던스 프로그램 외에도 다 양한 공간 프로그램들이 눈에 띈다. 아트 플랫폼의 공간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창작 스튜디오를 중 심으로 오픈 스튜디오 갤러리가 있고 교육을 위한 실습실과 갤 러리, 유통을 위한 공방과 아트 숍, 자료관, 커피 숍, 야외 전시 장, 공연장 등이 있다. 자율적인 운용에 대한 것은, 이 또한 북경 다산쯔를 사례로 들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산쯔를 자 주 다니는 편인데, 요즘 들어 그곳이 상업적으로 퇴색되고 있다 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며 사유 재산이기 때문에 나쁘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런 측면에서 프로그램의 중 요성이 부각된다. 다산쯔는 시설 관리만 하지, 내용 관리는 거 의 하지 않고 있다. 개별적으로 임대를 해서 쓰다 보니까 자유로 운 모습이 인상적이긴 하지만, 자율적인 사용으로 인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다. 그러므로 부분적으로 창작 작업을 유지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트 플랫폼은 주 변에 상업 시설이 들어차더라도 창작 지원 시설의 유지가 가능 할 것으로 보며, 거기서 지속적인 힘이 생산될 걸로 믿는다.

ⓦ 마지막으로, 주변에 미치는 영향이나 지역 활성화에 대한 기 대가 있는가? 아트 플랫폼은 도시 재생에 목적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인지성을 위해 세심한 경관 조명 계획이 고려되었다.

나는 이곳이 지역의 코아(core)로서 도시를 살리는 데 큰 역할 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벌써 아트 플랫폼 주변에 아틀리에를 만들겠다는 작가들이 생겨나고 있다. 시에서도 옆 블록에 또 다 른 새로운 것을 하겠다고 나서지만, 그것에 대해선 반대하는 입 장이다. 시의 적극적인 개입은 아트 플랫폼으로 족하다. 나머지 는 행정 지원이나 시스템을 통해 자연스럽게 도시가 같은 맥락 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면 된다. 아트 플랫폼은 개별적인 건 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도시에 대한 이야기다. 도시 전체의 변화를 기대하는 출발점이며, 개발 위주의 도시 정책에 경종을 울리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인터뷰어 | 정귀원(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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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류산방 樹流山房의 책 book of Suryusanbang

한국의 자연 유산 <근간> 이선 지음

저 나무는 언제부터 저 곳에 서 있었을까? 지리산에 방사한 곰들은 왜 죽어 나가는 것일까? <우리와 함께 살아온 나무와 꽃>의 이선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국의 자연 유산 이야기, 그리고 천연기념물. 말없는 자연은 그 자체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 준다. 자연 유산은 이땅에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역사와 종교, 철학의 반영이자 그것을 있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지정되는 자연 유산인 ‘천연기념물’의 유래와 역사 그리고 지정 기준에 대해 알아본다. 또한 다른 나라의 자연보호법의 특징과 자연에 대한 사상을 살핌으로써 우리의 자연 유산의 가치와 그 법적 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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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8호 | 데일리 리포트 Wide Architecture : wiDe Daily Report no.8 : march-april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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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킨 빌딩 (Building the Gherkin) D3* 강병국의 <건축과 영화 08> * 자료의 분류를 위하여 서두에 다음과 같은 약어를 추가한다. 알파벳 다음의 숫자는 해당 꼭지의 일련 번호이다. | Architect_건축가와 관련된 주제나 영화 | Building_건축물과 관련된 주제나 영화 | Producer_감독의 건축적 연관성을 언급한 영화 | Documentary_건축적 다큐멘터리 | City_미래 도시를 포함한 도시적 관점의 영화 | Miscellaneous_그밖에 건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영화

지난 호에는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건축 작품 몇 가지를 살펴보았다. 그 중 한 건물 거킨 빌딩은 <BUILDING THE GHERKIN>이란 다큐로 제작되어 해외 건축 영 화제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건축 영화에 대한 다큐는 원래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건축 가에 관한 건 그나마 가끔 눈에 띄지만 건축물에 대한 것은 더더욱 찾기가 어렵다. 그도 그럴 것 이 처음부터 기록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져 설계단계부터 공사 준공까지 밀착하여 기록하지 않 으면 사실 다양한 내용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 영화 <BUILDING THE GHERKIN>은 기획 초기 단계부터 기록에 대한 전문가를 정해 전 과정을 꼼꼼히 영상 에 담아낸 흔치 않은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놓치기 쉬운 혹은 이면에 덮여 누군가의 기억 속 에서 언제가 사라져 갈지도 모를 수년 동안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을 재미있고 때론 긴장감 있게 전달해 내고 있다. 영화를 볼 수 없는 나로선 해외에서 DVD를 구매하여 볼 수밖에 없다. DVD 는 본편과 스페셜 피처(Special Feature)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시 스페셜 피처에는 ‘예고편’, ‘Featurette’, ‘Behind the Scenes’, ‘노먼 포스터와의 대화’, ‘로빈 파팅톤의 건축교실’이 포 01-04

함되어 있다.

원래 이 거킨 빌딩의 대지는 발틱 해운거래소가 있던 자리로서 IRA의 폭파로 폐허가 된 곳이다. 잘 알다시피 영국은 IRA의 테러로 언제나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라다. 더구나 이 건물의 건축 주인 스위스 리(Swiss Re)는 보험회사이기 때문에 테러나 폭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상금 때문에……. 프로젝트 초기에 언론을 비롯한 여러 단체의 부정적인 반응에 더해 거킨 빌 딩의 형태를 폭탄의 탄두로 읽는 아이러니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우주선을 포함한 여러 가지 조 롱 섞인 비유뿐만 아니라, 결국 최종적인 이름으로 정착한 ‘오이(gherkin)’라는 뜻 역시 처음엔 냉소적이고 공격적인 출발이었다.(그림01~04) 원래의 이름은 30 St Mary Axe이다. ‘런던의 아 름다운 스카이라인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역사보존학회의 말처럼, 스카이라인에 거의 집착적이 기까지 한 런던시를 상대로 승인을 얻어내기는 실로 험난한 과정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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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시가 고층 빌딩을 승인한 건 거의 30년 만의 일이었으니까. 이후 문화재청이나 미술위원회는 3~4개 층을 더 높이자는 제안을 한다. 스카이라인을 위해서…….(그림05) 더더구나 노먼 포스터 경의 작품 '밀레니움 브릿지'는, 준공하자마자 너무 심하게 흔들려 그의 명성은 큰 치명타를 맞 게 된다. '혁신이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다'라는 신문기사뿐만 아니라 연일 계속되는 방송은 과연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지까지도 의문시되었다. 거킨 빌딩의 기준층 평면에는 6개의 아트리움이 있다.(그림06) 이 6개의 아트리움은 상층으로 갈수록 나선형으로 5도씩 회전하며 배치된다. 따 라서 내부에 생긴 연속된 아트리움은 기압차를 이용해 자연스런 공기의 흐름으로 환기를 할 수 있다. 이러한 모양은 외부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외부 창호의 나선형 형태가 내부의 아트리움이 라고 생각하면 정확하다.(그림07 스케치와 모형 참조) 전체가 원추형 곡면 형태인 외피는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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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트를 삼각형으로 정리해 그대로 구조로 반영되게 된다. 잘 알다시피 삼각형 유니트는 사각 형과 달리 가장 안정적인 형태이다.그러나 감독관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여러 회의를 통해 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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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변경하고 또 새로운 안을 제시하는 포스터 측의 노력은 안쓰럽기까지 하다.(그림08) 내부 인테리어 업체를 결정하는 현상설계 과정 또한 흥미진진하다. 엎치락뒤치락, 세 업체가 참 여한 경쟁에서 노먼 포스터의 인테리어 팀이 우세를 점치는 듯했지만, 결국 주 계약은 BID에 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포스터도 로비와 최상층 라운지의 인테리어를 맡게 된다. 스위스 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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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는, 안(案)은 포스터경 것이 좋다고 생각되지만 일하기는 BID가 더 나은 것 같다는 말을 한 다. 수주는 안만을 가지고 될 일은 아닌 듯하다. 공사 중 미국에선 911테러가 발생하게 된다. 그 누구보다도 테러에 민감한 영국……. 현장의 분위기는 정말 싸늘하다. 더구나 이 911테러로 스 위스 리는 연 수익의 2/3이상이 보험료로 날아갔다. 형태가 유사해 여러모로 서로 불편했던 장 누벨의 아그바 타워(바르셀로나, 스페인)에 대한 입장도 정리가 된다. 장 누벨 사무실의 디자인 실장이 인터뷰에 응한다.(그림09) 우리나라에선 준공식 때 건축가가 초빙되는 경우조차 드물지 만, 준공 파티 때 노먼 포스터경의 연설은 많은 부분을 시사한다. 거킨 빌딩이라는 이름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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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입장을 비롯해 런던의 비전과 더불어 훌륭한 말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그림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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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노먼 포스터경은 이 거킨 빌딩으로 ‘RIBA 스털링 상’을 수상했다. 짧은 지면이라 다큐의 내용을 일일이 거론할 순 없다. 스위스 리라는 회사의 이름을 배제한 채, 수백 개의 이름을 통해 결국 거킨 빌딩으로 정해지는 과정, 정해진 입주날짜에 맞추어가는 전쟁 과도 같은 사투(마지막 크리스마스 파티 때 스위스 리의 감독관인 사라의 눈물은 연민을 자아낸 다)……. 부동산업자를 통한 임대 과정, 수많은 모델(그림11)과 스케치(그림12)와 도면, 런던시 의 스카인라인, 건물과 관련된 신문과 TV방송 내용, 거기에 DVD의 보너스까지 포함하면 1시 간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 몇 년은 지나는 듯하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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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도 등장한다. 건축가인 노먼 포스터경(그림13)을 비롯해 디자인 실장인 로빈 파팅톤 (그림08), 건축주인 스위스 리의 CEO를 비롯한 감독관 사라 폭스(그림14), 런던 시장과 도시계 획국장(그림15), 건설사인 스카스카의 관계인, 인테리어 BID(Bennett Interior Design) 등, 모두 회의 장면이나 인터뷰나 설명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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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체가 정해지면서 다큐에 대한 결정도 동시에 이루어진 듯하다. 따라서 노먼 포스터경의 인터뷰나 설명 혹은 여러 스케치와 도면까지도 포함되기는 했지만, 건축가의 입장에선 건축가 의 선정과 기획 및 초기 단계 최종안이 결정되기까지 대안들과 발전되어 가는 과정까지도 다루 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그들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 과 노력을 보여주었다고 보지만 건물의 비중에 비해 감독관의 경험엔 다소 의심스러운 부분도 느껴진다. 한 건물에 대해 흔히 껍데기만 아는 수준을 넘어 건축가의 의도 뿐 아니라 준공할 때 까지 수많은 내용을 섭렵하게 되는 기회가 되리라 본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보시기를 추천 하는 바이다.(그림1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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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여서, 지난 호에 소개했던 건물 중 화력발전소를 박물관으로 바꾼 Tate Modern 역시, 동 명 <Herzog & De Meuron, TATE modern>로 DVD가 출시되어 있으니 놓치지 마시길……. (그림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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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강병국은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박춘명 선생의 예건축에서 실무를 쌓았고 한울건축과 신예건축을 거쳐 현재 ㈜동우건축 소장으로 있다. <포이동 성 당>, <쌘뽈요양원/유치원>, <장도박물관> 등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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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8 : march-april 2009


AMC <내가 좋아하는 건축 잡지 08 | 송복섭> 글쓴이 송복섭은 프랑스 파리 8대학 박사학위를 받은 프랑스 국가공인건축가 (DPLG)이다. 2005년 발표된 행정중심복합도시 도시개념국제공모에 'Thirty bridges city'라는 작품으로 당선된 바 있다. 현재 국립한밭대학교 건축학과 교 수로 재직 중이다.

<AMC>는 프랑스에서 발간되는 대표적 건축 잡지로 프랑스 내 건

d'Aujourd'hui(오늘의 건축)>가 편집의 관점에서 프로젝트를 선별하

축 관련 소식과 국제적 이슈도 부분적이긴 하지만 다룬다. <AMC>는

다 보니 소개되는 작품 수도 적고 논지도 애매했던 것이 사실이다. 반면

‘Architecture Mouvement Continuité’의 약칭으로 해석하자면 ‘계

<AMC>는 다루는 작품의 수도 많고, 관련하여 필요한 정보를 빠짐없

속되는 건축 운동’ 쯤이 될 것이다. 1967년 프랑스 건축사협회의 소식

이 기록하고 있었다. 어느 해엔가 발행된 CD는 검색을 통해 건축가별,

지로 출발하였다가 1980년대 초 ‘Groupe Moniteur’라는 건축 관련

연도별, 장소별로 쉽게 건축물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하였다.

저명 출판사가 인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프랑스 건축가들은 <Architecture d'Aujourd'hui>

이 잡지는 건축가뿐만 아니라 건축주, 조경계획가, 디자이너, 경제전

보다 <AMC>를 더 많이 구독한다.

문가, 엔지니어, 관련 기업이 주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데, 건축, 인

귀국하고 나서 한때 이 잡지를 수소문하였으나 가끔 학교를 드나드는

테리어, 도시재생 등의 분야에 새로운 경향과 발전을 가져오게 했다

판매자조차도 <AMC>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외 구독을 하자

고 판단되는 완공된 프로젝트들을 소개한다. 새로운 건축재료, 제품,

니 만만치 않은 액수를 지불해야 하고, 이제는 더 이상 학생 할인이라는

설치 방법, 적용 사례 등도 비교적 상세히 다룰 뿐만 아니라, 시사성 주

특권도 누릴 형편이 못 된다. 그렇게 잊었다고 생각했을 때 <와이드>로

제, 토론, 건축계 동정, 현상설계, 전시회, 새로 출판된 건축 서적도 소

부터 원고 청탁을 받은 것이다.

개한다. 연말에는 결산하는 의미로 100여 개의 건축물을 프로그램, 공

<AMC>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바로

사비, 설계 기술, 재료 등을 명시하여 별책으로 묶어 펴낸다. 또한 매년

이 점이 내가 이 잡지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잡지는 신문과 책의 중간적

l'Equerre d'Argent(은T자상)과 신진 건축가를 위한 Prix de la Pre-

성격을 띠면서 유용한 정보를 모아 독자에게 제공하는 정보 매체의 전

miere OEuvre(첫 작품상)을 시상하고 작품을 소개한다. 부정기적으

달 기능을 담당한다. 분명 사회를 반영하고 해석할 뿐만 아니라 언론을

로 발행하는 특집은 대표 건축가를 다루기도 하고, 나무 건축, 알루미늄

이끄는 시대적 리더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지만, 광고와 구독료 수입

건축, 유리 건축 등 특별 주제에 대한 심층적인 사례와 분석을 다룬다.

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속성상 상업적 관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AMC>가 방대한 주제와 정보에 강한 이유는 이 회사가 <Le Moni-

이 현실이다. 따라서 좀 더 자극적인 이슈에 천착하고 혼란스런 담론을

teur>라는 자매 정보지를 매주 발행하기 때문인데, 우리의 <나라장터

생산하며 과장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비슷비슷한 잡지들이 넘쳐 나

>처럼 정부 또는 지자체에서 발주하는 모든 입찰 정보와 현상설계 정보

지만 각각의 특색이 분명치 못한 세상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시대를 앞

를 이 정보지를 통해 볼 수 있다. <Le Moniteur>는 현재 프랑스 10대

서며 담론을 주도하는 전문 비평지도 필요하고, 다양한 정보를 충실히

경제 주간지 중 하나로 명실 공히 건설 분야의 최고 정보지이다.

제공하는 정보지도 필요하다. 우리에게도 <AMC>같은 잡지가 하나쯤

유학 시절 건축 학교에서 공부하던 무렵, 도서관에서 유난이 많이 애

나와도 좋을 성싶다. ⓦ

용하던 잡지가 <AMC>였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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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위 성당과 망금정 이용재의 <종횡무진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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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년 사제서품을 받은 파리외방전교회의

“응.”

야 되걸랑요.”

다블뤼(1817~1866)는 전교 신부가 꿈이다.

죽인다고 사랑이 멈추나. 파도는 계속 치는 법.

“그러지 머.”

“아빠, 전교(傳敎)가 머야?”

그래 또 죽여라. 넌 안 죽나 보자. 대원군.

그 지역의 문화에 관여하지 않는 게 외방전교

“전 세계를 다니면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신

1887년 사제 서품을 받은 파리외방전교회의

회의 법. 중앙에 기둥을 죽 세우고 칸막이 설

부. 목숨 걸고.”

베르모렐 신부에게 전화가 왔다. 야, 서울로 가

치. 좌측은 남자석, 우측은 여자석. 입구도 따

1845년 마카오에서 목선 라파엘 호를 탄다. 어

라. 예. 근데 서울이 어디 있는 도시지. 6개월

로. 지금도 이 법을 따르고 있다. 칸막이는 제

라, 김대건신부도 타고 있네. 자네 여기 웬일

만에 백령도 도착. 김대건 신부가 개척한 비밀

거했지만. 천주교와 유교가 함께하는 위대한

인가. 1845년 김대건은 제물포항에서 라파엘

항로. 나룻배 타고 제물포 잠입 성공. 용산 신

성당.

을 타고 중국 상해로 넘어간다. 금가항 성당에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친다. 얘들아 조선은 백

“아빠, 왜 남자가 좌측이야?”

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고 대한

년 후 올림픽을 개최할 위대한 나라란다. 열심

“좌고우저. 좌가 더 높은 법. 그래 종묘도 근정

민국 1호 신부가 된다. 조선으로 돌아가는 길

히 갈고 닦아라. 신부님 백 년 후를 어떻게 아

전 좌에 있고.”

에 다블뤼를 만난 거다. 제주도 들렸다 42일

세유. 내가 점을 좀 보걸랑.

“왜 남자가 더 높아야 돼?”

만에 전북 익산 근처 나바위 도착. 거 참, 산

전라도가 시끄럽다. 한 맺힌 동네. 1897년 전화

“아님 말고.”

이 예쁘군.

가 왔다. 1년 선배인 보두네 신부(1859~1915)

“신부님 지붕엔 뭘 얹죠. 명동성당엔 동판 얹

“이 산 이름이 머냐?”

는 전라북도의 북쪽, 너는 남쪽을 평정해라.

었던데.”

“화산(華山)이옵니다.”

예. 당나귀 타고 출발.

“돈 없다. 기와 얹어라.”

“꽃으로 뒤덮인 빛나는 산이라. 역시. 산 이름

“얘들아, 이 지역에 극적인 드라마를 갖고 있

토착적인 재료. 늘 보아 왔던 친근한 재료. 값

은 누가 지었대냐?”

는 동네가 어디냐?”

도 싸고. 고딕에 기와지붕이라. 팔작지붕도 있

“우암 송시열이옵니다.”

“43년 전 김대건 신부가 몰래 입국한 나바위

고. 죽이는군. 이거 절이야 성당이야! 예수와

“역시 왔다 가셨군.”

인디유.”

부처의 사랑이 넘나들고. 허긴 종교엔 국경이

“아빠, 나바위가 머야?”

머라. 가자. 음, 죽이는군. 금강도 내려다보이

없으니.

“너른 바위.”

고. 본국에 전화. 천 냥만 보내 주세유. 동학운

“신부님 벽은 뭘로 채우죠. 명동은 벽돌로 했

1846년 선교사의 안전한 입국을 위한 비밀 항

동 때 망한 김여산의 초가집 사들여 성당을 차

던데.”

로를 찾아 나섰다가 백령도에서 체포. 새남터

린다. 현판을 걸었다. 나바위 성당. 소문이 났

“돈 없다. 흙으로 메워라.”

에서 사형. 이제 27살. 대한민국 최초의 신부

다. 라파엘호가 도착한 나바위. 헌금은 밀려들

외벽인지 담장인지 헷갈리고. 아무려면 어떠

는 이렇게 가고. 신화가 되나니. 역시 갈 때 잘

고. 역시 터가 좋아야 돼. 건축도 그렇고.

랴. 정성이 있으면 그만. 10년 만에 완공. 1906

가야 된다니깐. 김대건 신부의 귀국선 라파엘

명동성당을 찾았다. 음 고딕이군. 포아넬 신부

년 축성식. 난리가 났다. 사상 초유의 짬뽕건

호는 지금 제주도 용수리 하멜표류기념관에

님 설계도 좀 주서유. 좀 베끼게. 그러지 머. 돈

축. 그러면서 단아하니.

복원 전시 중. 11명이 타고 온 작은 나룻배. 이

은 모질라고. 나무 기둥을 대충 세웠다. 직사각

“아빠, 중국에 가니까 짬뽕 없던데.”

걸 타고 바다를 건넜다고라.

형 단순한 평면.

“우리 입맛에 맞게 만든 거야.”

“딸아, 이런 작은 한 척의 배를 일엽편주(一葉

“신부님 저희는 남녀칠세부동석이걸랑요.”

“그럼 이 성당도.”

片舟)라고 한단다. 외워라.”

“머라, 그게 먼데?”

“맞아. 우리 문화에 맞게 만든 거야.”

“아빠, 김대건 신부 본관은 어디야?”

“아이가 여섯 살이 되면 수와 방향의 이름을

나이 103살. 1907년 계명학교 설립. 아그들 가

“김해.”

가르치고, 일곱 살이 되면 남녀가 자리를 같

르친다. 하늘 천 따지. 교육은 백년대계.

“엄마랑 같네.”

이 하지 않고, 여덟 살이 되면 소학에 들어가

“아빠, 백년대계(百年大計)가 머야? 많이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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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

“응.”

“어라, 죽이네. 이 정자 이름이 머냐?”

“먼 앞날까지 미리 내다보고 세우는 중요한 계

1912년 대구교구장 드망즈 주교가 나바위를

“없는디유.”

획.”

찾았다. 음. 풍광이 죽이는군. 나 여기서 피정

“그럼, 망금정(望金亭)이라고 하자.”

“계명학교는 천주교 가르치는 데 아니야?”

할 게. 그러시죠 머.

“먼 뜻인지.”

“아니. 천주교는 강제하지 않아.”

“아빠, 피정(避靜)이 머야?”

“너 아직 천자문 안 띄었냐!”

“기독교는 월급의 10%를 헌금해야 되지?”

“속세에서 벗어나 묵상하는 거.”

“지금 바빠서.”

“응.”

“묵상(默想)이 먼데.”

“야, 너 놀지 말고 공부 좀 해라. 금강을 바라보

“그럼 천주교는?”

“마음으로 생각하는 거.”

는 정자라는 뜻이다.”

“각자 맘.”

주교님 돌아가시자 누각 신축 착수. 나바위에

“아, 예.”

“안 내도 돼?”

천막 치고 피정하게 하실 순 없고. 담양 면앙정

1916년 흙벽 뜯어내고 벽돌을 채웠다. 적벽돌

“응.”

을 찾았다. 음 죽이는군. 스케치. 베껴야지. 몰

은 구조재, 회색벽돌은 장식재. 심플. 원래 명

“눈치 주는 거 아냐?”

래. 나바위 위에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 기둥 세

작은 단순한 법. 자연과 함께하면 그만.

“아니.”

우고 기와를 얹었다.

1931년 베르모렐 신부 이미 72살. 은퇴. 28살

“그래서 성당이 가난하구나!”

1915년 주교님이 다시 찾았다.

에 이 땅을 밟은 지 44년 동안 나바위를 지켜 온 분. “신부님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시죠.” “됐다. 내 조국은 대한민국.” 성바오로 수녀원 지도신부로 취직. 양로원. 6 년 동안 고아들 또 가르친다. 얘들아 꿈을 잃어 서는 안 된다. 지금 힘든 건 좋은 일이 생기려 고 그러는 거걸랑. 1937년. 너무 오래 살았군. 선종. 77살. 베르모렐 신부님에게 대통령 훈장 을 주자 훌라훌라. 1935년 왜놈 순사들이 계명학교를 찾았다. “너네 정말 신사참배 안 할 거야?”

↑ 나바위 성당 전경.

“배 째셔유. 불사이군. 우리에겐 주님 뿐.” “야, 지금 전국에서 2백만 명이 매년 참배에 나 서고 있걸랑.” “남 들 다 하는 건 우린 안 함.” 당시 신사참배에 나섰던 인간들은 고해성사하 라 훌라훌라. 후손들은 반성하고. 안 하면 말 고. 신부, 수녀, 신자 전부 구속. 학교 폐쇄. 그런다 고 지구가 안 도나. 머 이런 거다. 1955년 성 김 대건 신부 순교비 건립. 1991년 피정의 집 건 립. 사적 제318호. ⓦ

↑ 망금정. ↙ 나바위 성당 내부. ↘ 나바위 성당 측면.

글쓴이 이용재는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명지 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건축평론을 전 공했다. 1984년부터 1990년까지 월간 <건축과 환 경>의 기자를 지냈으며, 월간 플러스 편집장을 거친 바 있다. 2002년 이후 택시를 운전하며 전업 작가 로 활동 중이다.『좋은 물은 향기가 없다』 ,『왜 살기 가 이렇게 힘든거에요?』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 행』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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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이바(Odaiba, お台場) 최충욱의 <공간 전달자 03>

↑ 어반 독 라라포트 도요스.

글쓴이 최충욱은 건축을 전공한 뒤 월간 <이상건축>과 <건축문화>, <플러스>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이후 몇 개의 출판 매체 기획사에서 건축과 인테리어, 건설 관련 출판을 코디네이션 했다. 최근까지 도시 건축 전문 여행사에서 해외 벤치마킹 답사를 수년간 진행하면서 해외의 다양한 도시 건축 공간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시작했다. 세계의 도시, 건축, 조경, 인테리어 등 공간 디자인과 관련된 커뮤니티 네이버 카페 <스페이스투어> 운영자를 맡고 있으며, 공간전달연구소 초이스페이 스 <choi's pace>를 운영하면서 해외 도시 건축 가이드북 제작과 매거진 발행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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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미 아일랜드 트리톤 스퀘어.

↑ 케이 뮤지엄.

일본 미나토구(港區)에 위치한 상업과 레저 및 주거 복합 지구인 오다이바는 이제 한국 관광객들이 도쿄를 여행할 때 빼먹지 않고 들리는 곳이다. 총면적이 여의도의 절반 정도 크기의 인공섬으로 도쿄 남동부의 도쿄만 매립지에 위치해 있다. 명칭 오다이바는 고토구(江東區)의 아리아케(有 明)와 아오미(靑海)지구, 시가나와구(品川區)의 히가시 야시오(東八潮) 지구를 포함하는 도쿄 린카이 후쿠토신(東京臨海副都心)을 일컫는 말이 다. 1853년 서양의 함선 침략을 막기 위해 방어선을 설치한 이 인공섬이 지금은 도쿄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로 변화했다. 1990년대 초 정부 관 료인 이치 스즈키는 1996년 국제도시박람회(International Urban Exposition)를 준비해 인구 10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미래형 주상복합 프로 젝트 ‘도쿄 텔레포트 타운(Tokyo Teleport Town)’을 조성하기 위한 도시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도쿄의 도심부와 떨어진 인공섬이라 는 점에서 군사적인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에 상업지역으로 개발을 시작하는 데에는 진통이 많았다. 초기 계획 목표는 여의도처럼 상업지구 조성 이었지만 장기 불황과 맞물려 공사가 중단되고 건설 회사는 부도가 나는 등 순탄치 않았다. 뿐만 아니라 힘들게 빌딩과 오피스텔 등을 지어 분양 을 시도했지만 경기 불황과 맞물려 일본인들에게는 실패한 계획도시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관광지로 개발이 되면서 이곳은 외국 사람뿐만 아니 라 많은 일본인들이 찾기 시작했다. 땅값이 비싼 도쿄에서 각종 편의 시설과 놀이 시설, 쇼핑센터, 전시장이 자리잡기 힘들었지만 오다이바는 이 런 부분을 수용하기에 충분히 넓은 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다이바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인 전차인 유리카 모메(모노레일)를 이용하 는 방법과 수상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 해저 터널을 이용해 차량으로 접근하는 방법 등 다양하며, 인근의 긴자 지역과 심바시의 시오도메 지역, 시 노노메 지역, 하네다 공항의 접근성도 뛰어나다. 지금은 도쿄의 상징으로 불리는 레인보우 브릿지와 도쿄 최대의 콘서트장인 제프 콘서트 홀, 도 쿄 최대 스크린 수를 자랑하는 메디아주 시네마가 오다이바를 대표하고 있다. 아직까지 수많은 공터를 개발하기 위한 여러 가지 자구책들이 시도 되고 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


➊ 도쿄 국제교류관 Tokyo International Exchange Center(TIEC)

➌ 왕관 스튜디오 New Fuji Television Studio(The Wangan Studio)

ⓦ 용도 : 주거 시설 ⓦ 완공 : 2001 ⓦ 규모 : Residence Halls - 싱글룸 630개 ⓦ 설계 : Sawada Hideyuki ⓦ 대지 면적 : 19,373.41㎡ ⓦ 건축 면적 : 15,180.64 (20㎡/ 30㎡), 커플룸110개(80㎡), 가족실 56개(100㎡) ⓦ Plaza Heisei - 다목적 ㎡ ⓦ 주차 대수 : 237대 ⓦ 후지TV의 별관이자 촬영 스튜디오로 활용되고 있다. 홀(480석), 미디어홀(100석), 회의실 ⓦ www.tiec.jasso.go.jp / www.tokyoacademicpark.jp

➋ 미래과학관 National Museum of Emerging ➍ 텔레콤 센터 Telecom Center Science and Innovation/Miraikan ⓦ 설계 : Nikken Sekkei, Ltd., KUME SEKKEI co., Ltd. ⓦ 용도 : 전시 시설, 교육 시설 ⓦ 규모 : 7층 ⓦ 완공 : 2001 ⓦ 도쿄도 고토구 아오미의 국제연구교류촌 내에 자리잡고 있으며, 독립행정법인 과학기술진흥기구에서 운영하고 있다. 2001 년 7월 9일에 개관하고 최신 과학기술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LED 100만 개를 부착해 만든 ‘우주에서 바라본 오늘의 지구’는 일본 미래과학관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관람객과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다양한 연령대의 방문자들이 과학을 직접 체험하고 배울 수 있도록 안내되어 있다. 특히 일본 최고의 환경 그래픽 디자이너인 마사키 히로무라의 사인(sign) 디자인은 건축설계 단계부터 함께 기획되어 사인이 건축의 한 부분으로 인지하도록 되어 있어, 기존의 간판 형식의 틀을 벗어나 건축 조형적인 요소로 잘 흡수되어 전달되고 있다. ⓦ www.miraikan.jst.g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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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계 : HOK (Hellmuth, Obata & Kassabaum) ⓦ 용도 : 업무 시설 ⓦ 규모 : 21층, 99m ⓦ 완공 : 1995 ⓦ 1995년에 준공된 지상 21층, 지하 3층의 건물이다. 건물은 동서의 2개로 나누어져 있으며, 지상 1~3층에는 각종 이벤트가 가능한 다목적 홀이 있다. 2개의 동을 연결한 21층에는 도쿄의 임해 부도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으며, 옥탑에는 라파볼라 안테나가 다수 설치되어 있어 텔레비전 위성 중계에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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➎ 파레트 타운(서측동)^비너스 포트 Palette Town West^ Venus Fort ⓦ 설계 : Mori Building Co., Ltd, Nihon Sekkei, INC., and others S' International Architects, Venus Fort Inc. Taisei Corporation, ⓦ 인테리어 : De Gaulle Design Associates ⓦ 용도 : 상업 시설 ⓦ 연면적 : 44,140㎡ ⓦ 완공 : 1999. 07 ⓦ 일본 굴지의 부동산 전문회사인 모리사(社)가 10년 동안의 개발을 약 속으로 동경시로부터 임대 받아 만든 복합 상업 시설로 10년이 지나면 해체가 용이하도록 설계되었다. 임대 기간 동안 파레트 타운에서 큰 수익을 올렸으며, 현재는 10년 동안의 임대 기간이 만료되어 해체를 하거나 다음 임대 사업자와의 재계약을 고민 중이다. ⓦ www.palette-town.com ⓦ 비너스 포트는 ‘여성을 위한 테마파크’로 디자인된 쇼핑몰로 일본 젊은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쇼핑타운이다. 17~18세기 유럽형 골목을 모티브로 한 고급스러운 분 위기와 5개의 광장, 150여 개의 숍, 푸드 코트, 카지노, 오락실들이 함께 구성되어 있다. ⓦ www.venusfort.co.jp

➏ 메가 웹 Mega Web ⓦ 완공 : 2004. 12 리뉴얼 ⓦ 용도 : 상업 시설, 전시 시설 ⓦ 메가 웹은 도요다에 서 프로듀서한 자동차들의 전시장이다. 실제 전시된 자동차를 탑승해 보고 몰아볼 수도 있다. 최신 차를 선보이는 도요다 시티 쇼케이스, 과거의 자동차와 모형 자동 차를 전시한 히스토리 게리지, 그리고 미래의 자동차를 선보이는 퓨쳐 월드 등으로 나뉜다. www.megaweb.gr.jp

➐ 후지 TV 본사 FCG(Fuji-Sankei Communications Group) Headquarters Building ⓦ 설계 : Kenzo Tange Associates ⓦ 용도 : 방송 시설, 업무 시설 ⓦ 연면적 : 141,825㎡ ⓦ 규모 : 지하 2층, 지상 25층, 123.45m ⓦ 완공 : 1996. 06 ⓦ 오다 이바 지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서 오다이바의 개발이 시작될 때부터 자리잡고 있었다. 도쿄를 비롯한 간토 지방의 주요 민방 TV 방송 중 하나인 후지 텔레비전 은 일본 최대의 미디어 그룹인 후지 산케이 그룹의 핵심 기업이다. ⓦ www.fujitv. co.jp/dai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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➑ 케이 뮤지엄 K-Museum ⓦ 설계 : Makoto Sei Watanabe(Architects Office) ⓦ 용도 : 전시 시설 ⓦ 연 면적 : 245㎡ ⓦ 완공 : 1996. 09 ⓦ 지하 공동 하수도 시스템을 보여 주는 전시 시 설로, 내외부를 각종 신소재로 마감하여 도시의 재료적 특성을 상징화하였다. 현재 일반인 관람은 불가. ⓦ www.makoto-archite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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➓ 오다이바 쓰레기 소각장 Tokyo Rinnkai Fukutoshinn City Garbage Factory ⓦ 설계 : Yasuhiko Nagakura/Katsuhiro Kobayashi/ Takenaka Corporation ⓦ 완공 : 1994

➒ 아리아케 스포츠센터 Ariake Sports Center

 아리아케 콜로세움 Ariake colosseum

ⓦ 설계 : Sewerage in Tokyo, GKK Architects & Engineers ⓦ 용도 : 스포츠 시설 ⓦ 완공 : 1996

ⓦ 설계 : Kenchiku mode kenkyujo/Tokyo Port and Harbors Authority and Kenchiku mode kenkyujo/Architectural Mode Laboratory ⓦ 용도 : 스포츠 시설 ⓦ 완공 :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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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패션 타운 Tokyo Fashion Town ⓦ 설계 : Kenzo Tange Associates, NIHON SEKKEI, YAMASHITA SEKKEI, JV ⓦ 용도 : 상업 시설 ⓦ 연면적 : 164.708㎡ ⓦ 규모 : 지하1 층, 지상 9층, 42.965m(Area F)/지하 2층, 지상 10 층, 42.574m(Area G) ⓦ 완공 : 1996. 02 ⓦ www. tokyo-bigsight.co.jp/english/tf

 하루미 여객터미널 tokyo harumi passenger terminal ⓦ 설계 : Minoru Takeyama Architect & U/A ⓦ 용도 : 상업 시설, 교통 시설 ⓦ 연면적 : 17,545㎡ ⓦ 완공 : 1991. 03

 도쿄 빅 사이트 Tokyo Big Sight ⓦ 설계 : Tokyo Metropolitan Government/AXS SATOW Inc. ⓦ 용도 : 전 시 시설 ⓦ 연면적 : 230,873㎡ ⓦ 완공 : 1995. 11 ⓦ 1996년 4월에 오픈한 일 본 최대의 종합 전시장이다. 정식 명칭은 도쿄 국제전시장(Tokyo International Exhibition Center)으로, 웅장한 외관 때문에 ‘빅 사이트’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 었다. 10개의 전시 홀을 갖춘 실내 전시 면적은 80,660㎡에 이른다. 크게 동전시관, 서전시관, 컨퍼런스 타워의 3개 구역으로 나뉘며 유리와 티타늄 패널로 마감된, 거 꾸로 선 4개의 피라미드가 결합된 형태를 띠고 있다. 7~8층에 있는 1,000명 수용 의 국제 회의실, 1,100석 규모의 리셉션 홀, 다양한 규모의 회의실과 엔트런스 플 라자, 이벤트 플라자, 이벤트 홀, 전시 광장, 3개 구역 자체의 편의 시설 등으로 구성 되었다. ⓦ www.bigsight.jp

 하루미 아일랜드 트리톤 스퀘어 Harumi Island Triton Square ⓦ 설계 : Nikken Sekkei, Ltd./ KUME SEKKEI co., ltd./ YAMASHITA SEKKEI INC. ⓦ 용도 : 주거 시설, 상업 시설 ⓦ 연면적 : 약 600,000㎡ ⓦ 완공 : 2001. 04 ⓦ 트리톤 스퀘어는 창고 군이 늘어선 하루미 지역에 있다. 취업 인구 2만 명, 거주인 5천 명의 ‘일하고, 만나고, 생활하는’컨셉트로 기획된 복합 상업 시설이다. 일반적인 인기 브랜드 위주의 상가 구성을 배제하고, 부도심에 거주할 중장년 층의 ‘유럽풍의 세련됨’을 겨냥하여 디자인되었다. 3개의 타워동은 공중 브릿지를 통해 각각 이동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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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반 독 라라포트 도요스 Urban Dock LaLaport Toyosu ⓦ 설계 : Mitsui Fudosan Co., Ltd. ⓦ 완공 : 2006. 10 ⓦ 일본 도쿄(東京)의 매립된 인공섬 도요스(豊洲)는 1990년대 초반까지도 조선소, 화력발전소, 가스 공장, 석탄 하역 부두, 제당 공장 등이 있던 공장 지대였다. 일본 최대 부동산 업체인 미쯔이 부동산은 이곳에 멀티 쇼핑몰을 열고 기존의 조선소가 가지고 있던 공간들을 테마로 활용해 꾸몄다. 내륙과 수상으로 접근이 가능하며, 긴자 지역과 하네다 공항과도 매우 가까운 입지를 활용해 개발하였다. 200여 개의 점포 중 어린이 직업 체험관인 ‘키즈 니아’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매출이 급상승 중이다. ⓦ toyosu.lalaport.jp

 코단 시노노메 CODAN Shinonome ⓦ 설계 : Rikem Yamamoto & Fieldshop/Toyo Ito & Associates, Architects/Kengo Kuma & Associates and Research Institute of Architecture/Yama Architects & Partners/Kenchiku Design Studio and Yamamoto Hori Architects/Urban Development Corporation/Mistui∙ Konoike∙Nippon Engineering Consultants JV/Tado∙Penta-Ocean Construction∙Zenitaka JV/ Reiko Chikada Lighting Design, Inc.(조명)/Studio On Site(조경)/Hiromura Design Office Inc.(사인) ⓦ 용도 : 주거 시설 ⓦ 완공 : 2003. 07 ~ 2005 ⓦ 코단 시노노메 집합 주거는 도쿄 도심의 고밀도 2천 세대를 수용하는 6블록의 시 범 단지로 건축가를 비롯한, 조경가, 작곡자, 미디어 전문가 등의 자문 기구로 운영되는 곳이다. ‘Good, Activity, Variety, 24hours, Vivid’의 5가지 개념으로 총 6개 블 록으로 나누어진 이 단지는 1개의 블록씩 1명의 건축가 혹은 2~3개의 컨소시엄으로 구성된 건축설계 집단이 나누어 설계하였다. 단지의 공동 시설은 1층에 두고 2층부 터 세대가 시작되며, 전체 단지는 2층 높이의 데크로 서로 연결되게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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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로 떠나는 공소 기행 양촌본당 1889년

손장원의 <근대 건축 탐사 08>

간양골본당

1889년

합덕본당 1898년

공세리본당

1895년

수곡본당 1908년

공주본당

1896년

금학리본당

1908년

상흥리본당

1908년

동문동본당

1908년

흡수 또는 이전 분할

내포 지역 본당의 분리 계통.

내포 지방이란 충남 서북부에 위치한 가야산 주변 지역으로 현재의 홍

방에서 전교 임무를 수행할 정도로 교세가 확장되었다. 이는 1861년 베

성군, 서산시, 태안군, 당진군, 예산군, 보령시 일대를 말하나, 그 범위

르뇌 주교가 조선 교구를 8개 본당 구역으로 나눌 때 내포에 두 개의 본

를 명확하게 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하

당을 두고, 다블뤼 (Daveluy) 주교를 배치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이처럼

는 ‘내포’는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 말한 가환 이중환의 ‘택리

서울에 버금가는 전교 기지였던, 내포 지역 천주 신앙과 관련된 자료에

지’를 통해 친숙하게 되었다. 이 지역에 내포란 말이 붙은 것은 일반적

흔히 등장하는 말로 ‘신앙 못자리’가 있다. 못자리는 볍씨를 뿌려 어린

으로 아산만과 천수만에 이르는 지역에 ‘안 개(內浦)’ 즉 육지 깊숙한

모를 기르는 곳으로 우리나라 초기 천주교 역사에서 이 지역이 차지하

곳에 위치한 포구가 많기 때문이며, 과거 이 지역은 수로를 통해 하나

는 비중을 보여주는 단적인 표현이다. 1845년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의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또한 이 수로는 서해와 연결되어 삼국시

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가 된 김대건 신부와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대부터 당나라와 교류가 있었던 덕에 당나라로 가는 나루라는 뜻의 ‘당

신부가 태어난 곳도 이 지역이다. 그러나 일찍이 천주 신앙을 받아들인

진(唐津)’이라는 지명을 만들어 내기도 했으며, 조선 후기에는 천주교

탓에 내포의 천주교 신자들은 엄청난 고난과 박해를 받아야 했다. 이들

가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길목이 되었다. 내포 지역 중에서도 수로가 가

은 여러 차례의 박해로 434명의 순교자를 냈는데, 이는 전국 순교자의

장 발달했던 지역은 당진과 예산이다.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

25%를 넘은 숫자이다. 특히, 유태계 독일상인 오페르트(Oppert, Er-

의 고향이자 내포 전교의 중심지였던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 ‘여사울’은

nest Jacob)의 도굴 사건으로 촉발된 병인박해기에 그 피해가 가장 커

내포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아산만과 연결된 삽교천과 무한천이 합

서 370여 명의 신자와 다블뤼 주교, 오메트르(Aumaitre) 신부와 위앵

류하는 수로 교통의 요지였다.

(Huin) 신부가 순교했다. 그런데 내포의 천주 신앙은 박해기를 거치면

1784~5년경 이존창이 영세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 내포

서 지역적으로는 오히려 확산되었다. 박해를 피해 고향이나 교우촌을

의 천주 신앙은 수로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어 나갔다. 두 차례의 박

떠나 타 지방이나 산간으로 숨어든 신자들에 의해 천주 신앙이 전라도

해를 거치면서도 1850년대에 이르러서는 3명의 외국인 신부가 내포 지

북부, 경기도는 물론 경상도 북부 지역으로 전파되었으며, 이들 지역에

<서산 동문동 성당 > 서산시 동문동 665에 위치한 이 성당은 1937년 10 월 5일 축성식을 거행하고 상홍리에 있던 본당을 이곳으로 옮겼다. 건축양식은 중앙에 종탑을 두고 외벽은 두 단의 화강석 기단 위에 콘크리트 뿜칠로 마감하였으며, 벽면에는 장식 문양과 넓은 띠의 코니스(cornice)가 돌출되어 있다.

<예산 성당> ‘예산 오리동 성당’으로 불리는 이 성당은 1934 년에 완공되었다. 정면 중앙의 종탑부가 돌출된 삼랑식 건물로 정면은 두 단의 석조 기단 위에, 측면은 한 단의 기단 위에 벽돌을 쌓아 외벽을 쌓았다.

<합덕 성당> 당진군 합덕읍 합덕리 275에 위치한 이 성당은 페링(Perrin. Riv)신부가 1929년에 세운 것으로 대지 면적 2,390㎡, 연면적 495㎡의 벽돌조 2층 건물이다. 정면에 2개의 종탑을 가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 창 아래와 종탑의 각 면에 회색 벽돌로 마름모꼴의 무늬를 장식한 것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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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리 공소와 다블뤼 주교관(사진은 다블뤼 주교관)> 당진군 합덕읍 신리에 위치한 이 공소는 당초 1815년경 설립되었다. 1845년 김대건 신부와 함께 조선에 입국한 다블뤼(Daveluy) 안(安) 주교는 부주교로 서품된 이래 안 주교가 10년 가까이 사목의 근거지로 삼았던 주교관이자 당시의 교구청이기도 하였다. 원래 성 손자선의 집이었으나 순교로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던 것을 1927년 4월 당시, 합덕 성당의 페렝 백 신부가 이 집을 사들였고, 1954년 대수리(지붕을 함석으로 교체)를 거쳐 공소 건물로 사용하게 되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 공소를 폐쇄하고 방치되어 오다가 2003 년 9월부터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 감자, 담배 등의 경작법과 옹기 제조업이 발달되는 계기가 되었다. 내포의 근대건축물 답사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공소의 설립 기원은 아 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초기에는 교우촌을 중심으로 유력한 신도의 집에 모여 미사를 올리다가 나중에 공소를 세웠을 것으로 보인 다. 1861년 내포에 본당이 설치된 이후, 이에 속한 공소가 있었을 것 으로 보이지만 박해기에 공소건물을 세우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 을 것이다. 공소는 '인근 지역에 본당이 없거나, 교통이 불편한 곳에 세우는 임시 성당'이다. 상주하는 사제가 없어 평상시에는 공소 회장이 미사를 주관 하다가 순회 신부가 오면 성찬 미사를 집전한다. 그러나 내포의 공소는 상주 사제의 유무를 넘어 박해기를 통해 형성된 공동체 의식의 상징으 로 신자를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다. 내포 지역에 공소가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한 시기는 1880년경부 터이다. 프랑스 신부들은 내포 지방을 순회하면서 공소와 교우촌을 방 문하여 본격적인 전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에는 해마다 평균 6개의 공소가 설치되어 1883년부터 1900년까지 신설된 공소는 무려 100여 개에 달했다. 특히 1889년에는 삽교천 좌우에 양촌 본당(예산 군 고덕면 상궁리)과 간양골 본당(예산군 예산읍 간양리)이 설립되었

<마중리 공소 > 당진군 대호지면 마중리 342번지 인근에 위치한 공소로 1986년 건물을 수리하는 중에 발견된 ‘天主降生1897年3月5日上樑’이란 상량문을 통해 정확한 건축 연대가 확인되었다. 현재 이 공소는 1996년 1월 정미면에 위치한 돌마루 공소로 편입되어 폐쇄되었다. 팔작지붕의 한옥 구조인 이 공소는 천주교 대전교구 내의 공소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면적은 82.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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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리 성당> 이 성당이 세워진 공세리는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인 40개 고을에서 거둔 세곡을 서울로 운송하기 위해 거둔 세곡미를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던 곳으로, 1523년에 세워진 80평 규모의 창고는 고종 대에 이르러 폐쇄되었다. 아직도 성당 근처에는 공세곶지의 흔적이 남아 과거를 반증하고 있다. 1895년 양촌 성당에서 분리^설립된 공세리 성당은 1897년 언덕 위에 구 본당 및 사제관을 세웠다. 드비즈 신부가 설계한 현재의 성당은 중국인 기술자가 시공에 참여하여 1922년에 완공되었다.

<상홍리 공소(가재 공소)> 서산시 음암면 상홍리 159-2에 위치한 면적 173.91㎡의 공소로 1920년에 세워졌다. 이 공소는 1917년 합덕 성당에서 분리^설립된 금학리 성당을 1919 년에 흡수하여 성당으로 설립하였다. 이후 1937년 서산 동문 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서산 지역의 본당이었으며, 이후 공소가 되었다. 이처럼 당초부터 본당으로 세워진 터라 바로 옆에는 사제관도 있다. 설계는 폴리(Desideratus polly, 沈應榮)신부가 했으며, 시공은 중국인 목수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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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촌 공소> 1890년대 공소 집회가 시작되었고, 1889년 본당으로 승격되어 1890년 8월 초대 신부로 퀴를리에 신부가 내포 지역의 양촌으로 파견되어 서산, 해미, 서천, 공주 등 충청도 서남부 지역을 관할하였다. 1892년 초 양촌에 사제관 겸 성당을 짓고 전교 활동을 하였으나 본당의 중심지로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1898 년 합덕에 땅을 매입하여 이전한 곳이 현재의 합덕 성당이다. 이 공소는 예산군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역사성 때문에 당진 합덕에 위치한 합덕 성당으로 편입되어 있다. 1949년에 건립된 이 건물은 1892 년에 세워진 낡은 건물을 허물고 그 부재를 이용하여 새로 세운 것이다. 종도리에는 ‘天主降生 乙丑年 4月 13日 未時立柱 上樑’이라는 상량문이 있다.

다. 간양골 본당은 1894년 양촌 본당으로 병합되었다. 이후 양촌 성당

근 본당에 흡수되었다. 공소가 폐쇄되면서 공소를 중심으로 형성된 공

은 1895년에 공세리 성당을 분리 설립하였으며, 1898년에는 양촌 성

동체 의식도 하나씩 사라지고 있으며, 공소 건물은 방치와 세월의 압박

당을 폐지하고 합덕 성당을 세웠다. 이후 공세리 성당은 1896년 공주

에 밀려 폐허가 되고 있다.

성당을 분리했고, 합덕 성당은 1908년 공리에 설립된 ‘수곡 본당’을 시

내포 지역의 공소 기행은 지리적 이점과 교통의 편리를 고려한다면 수

작으로 1917년 금학리, 1919년 상홍리를 거쳐 1937년 서산 본당이 되

도권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을 기준으로 서산에서 시작하

는 서산 성당을 분리시켰다. 이처럼 양촌 성당은 충청남도 성당의 모태

여 당진, 예산, 공주, 아산의 순서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순서에

이며, 합덕 성당과 공세리 성당은 내포 지방을 상징하는 성당으로 지금

맞춰 성당과 공소를 열거했다. 온갖 봄꽃이 어우러진 비산비야(非山非

도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野)의 내포로 공소기행을 떠나보자. ⓦ

내포에 현존하는 근대기 공소 건물은 서산시(상홍리 공소, 대곡리 공 소), 당진군(구룡리 공소, 마중리 공소, 사기소리 공소, 남산 공소, 음 샘 공소, 매산리 공소, 도산 공소, 세거리 공소, 신리 공소), 예산군(양 촌 공소, 상리 공소, 조곡리 공소, 구만리 공소, 여사울 공소, 수철리 공 소), 보령시(도화담 공소), 아산시(마산 공소) 등 19개가 있다. 그 중에 서도 당진과 예산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불과 500여m 떨어 진 곳에 두 개의 공소가 있는 곳도 있다. 현존하는 공소의 상당수는 해 방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전에 세운 노후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세운 것 들이다. 그러나 내포 지역의 지리적, 문화적 특성이 오롯이 담긴 공소들 은 1980년대 이후 본당 행정 업무의 효율화 등으로 점차 폐쇄되어 인

<요골 공소 ,사기점골 공소, 사기점골 공소가 있는 마을로 들어가는 길(좌로부터)> 1883년에 작성된 기록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 이전에 설립된 것으로 보인다. 요골 공소(공주군 유구면 명곡2리)와 사기점골 공소(명곡 1리)는 산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배치되어 있다. 이는 당시 이 일대에 거주하던 신자 수가 많았던 때문이다. 이곳 공소들은 1890년 양촌 본당에 편입되었다가 1896년부터는 공주 본당에 속하게 되었다. 요골 공소는 건물이 보수되어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으나 반쯤 무너진 사기점골 공소는 올 봄 철거할 예정이라 한다.

글쓴이 손장원은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인천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재능대학 실내건축과 교수로 있으며, 본지 편집위원, 인천광역시 문화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다시쓰는 인천 근대 건축』 『건축 , 계획(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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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탈소유화를 꿈꾸며 이종건의 <COMPASS 05>

“금융시장이 다시 불안합니다. 원 달러 환율이 오늘도 올라 1450원을 넘어섰고, 주식은 폭락했습니다. 정시내 기자입니다.” ⓦ 작년 후반기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본격적으로 발동시킨 뉴욕발 세계경제 파국은 이제, 우리의 일상의 안정을 테러보다 더 위협하는, 그야말로 21세기의 가 장 시급한 정치경제적 핫이슈로 등장했다. 주택 버블, 은행 붕괴, 구제금융 스캔들을 넘어 의료^의약 보조와 사회보장제도마저 극히 취약한 지경 에 이르면서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이 문턱으로 내몰리고 있다. 세계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연일 온통 경제에 골몰하고 있지만, 이 참담하고 암 울한 경제 파국의 터널은 그 끝이 보이기는커녕 도대체 얼마나 길고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미국은 지난 주 또 다시 민주당 의 일방적 표결로 통과시킨 약 8조 달러라는 역사적 규모의 자금을 방금 오바마가 서명함으로써 침몰하는 경제를 자극하기 위한 극약처방에 나 설 참이다. 죽어가는 경제를 시급히 소생시킬 방도는 천문학적 금액의 돈을 푸는 것 이외에 뾰족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지만, 코앞의 두려움의 덫 (fearmongering)에 걸려, 정부가 비대화되어 가는 현실을 도외시하거나 경제 위기의 뿌리에 대한 진단과 그에 따른 근본적 정책변화를 닦달하 지 않는 것은, 항차 도래할 또 다른 문제의 시발이다. 집 소유를 조장하는 정책, 집을 소유하는 사회가 그려내는 풍경 ⓦ 현금의 문제의 근원을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문제로 돌리는 데에는 누구도 토를 달지 않겠지만,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하다는 이 사태의 본질은 정작 경제가 아니라 지난 수십 년간 서구 자본주의가 추동해 온 ‘소유의 사회’라는 이념^정책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 자신의 문제를 위해서도 새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조지 부시가 2004년 재선에 출마하면서 그린, 모든 가족이 집과 증권 포트폴리오를 소유하는 세계는 최고의 ‘소유의 사회’의 그림이다. 부시의 주장에 따르면, 그러한 나라는 더 안정적이고 더 번창하는 국가다 : “미국은 가족이 그들 자신의 집으로 이사하는 매 순간마다 더 강해지는 나라다.” 이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부시는 제로 다운페 이먼트(Zero Downpayment) 발의같은, 집 소유를 조장하는 새 정책들을 밀어 부쳤다. 그 이후 불거질 수밖에 없는 문제는 이제 백방에 다 알려 진 바지만, 기실 "집의 소유를 통해 이룩하는 더 나은 사회"라는 꿈은, 자카리(K. Zachary)에 따르면, 부시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인 1835년, 개 인의 재산 증강과 국가 안정 간의 직결적 관계를 주창한 토크빌(A. de Tocqueville)의 아이디어, 그리고 1862년 주택 법 조항이 명시한 미국 운 명의 행로다. 결과는 놀랍다. 1950년 전형적인 미국 주택은 침실 두 개와 욕실 한 개를 지닌 93제곱 미터 넓이의 일층 건물로서 과반수가 소유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2/3 이상이 집을 소유하고 있으며, 전형적인 새 집은 최소한 세 개의 침실, 두 개 반의 욕실을 지닌 204제곱 미터 넓이의 이층 건물이다. 그런데, 이 노선은 미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마가렛 대처가 진착시키고 고든 브라운이 승인한 “재산소유 민주주의” 의 꿈을 쫓은 영 국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미국에서처럼 영국에서 집을 소유하는 것이 더 나은 인간 곧 근면, 성실, 시민정신, 애국, 그리고 궁극적으로 더 안정된 사회라는 가치와 직결되었다. 영국의 결과도 놀랍다. 40퍼센트의 독일과 50퍼센트의 프랑스에 비해, 영국의 주택 소유율은 70퍼센트를 넘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집과 증권의 소유는 실제로 전통적 유대감을 약화시켜 왔다. 많은 연구자료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간, 집의 소유가 증가 하면서 결혼율은 계속 하락하고 실업률이 증가했으며, 건강은 악화되고 도덕성이 하강했다. 공간 소유의 욕망을 자발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 마련이 필요 ⓦ 미국이든 우리나라든, 우리가 사는 현금의 사회적 환경에서 단독주 택을 소유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대문과 마당과 나무와 빗소리를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위층의 소음과 아래층에 미 칠 삶의 소리들의 불안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모든 사람이 각자의 단독주택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지구의 자 원과 국가의 경제가 넉넉한가? 모든 개별인간의 공간 소유욕을 채울 수 있을 국가 혹은 사회가 가능한가? 남의 것을 빼앗지 않은 채 말이다. 미래 의 세대가 누릴 지구를 훼손하지 않은 채 말이다. 오늘의 세계경제 파국은 결국, 모든 개별 인간의 공간의 소유라는 서구 자본주의의 위대한 약속 ^환상의 논리적 결론이 그려낸 풍경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소유를 줄이고서도 살 수 있는, 에리히 프롬의 용어를 빌리자면, 소유를 줄여 야만 가능한 삶의 양식 곧 존재적 실존양식으로 공간정치학을 재편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벗어날 길은 없을 것 같다. 집이란 소 유(재산)가 아니라 거주(존재)의 공간이라는 깨달음이 근본적 해결안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무엇보다 우선, 임대 공간을 늘리면서 그와 동시에 공간 임대자들의 권리를 대폭 증대시켜 공간 소유의 욕망을 자발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적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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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8 : march-april 2009


글쓴이 이종건은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이자 우리 시대 가장 소중한 자리를 지키는 비평가다. 『해방의 건축』, 『중심이탈의 나르시시즘』, 『텅빈 충만』등을 썼다. 한국 현대 건축의 중심과 주변을 넘나드는 이야기의 주제와 평문들은 언뜻 날을 세우고 있는 듯하지만, 기실은 따뜻한 시선의 깊이로 문제의 핵심을 잘 집어 올리 고 있다.

공간 곧 땅과 하늘과 길과 풍경은, 개인소유의 볼모에 가급적 최소한 붙잡혀 있을 방도를 찾아야 한다. 소유의 무게를 덜어내는 삶에 대한 태도, 결단, 실천 ⓦ 얼마 전 발표된, 지난 1월 자동차 회사들의 판매 실적이 흥미롭다. 미국 자동차 3사인 크라 이슬러 55% 감소, 지엠 49% 감소, 포드 39% 감소, 그리고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로 등극한 도요다 32% 감소다. 그런데 현대자동차는 도리어 14% 증가를 보였는데, 이 기상천외한 현상은 현대의 광고 카피(차를 사시고, 그 다음 해에 일자리를 잃으시면 차를 돌려주십시오. 그래도 신용에 아무런 해를 입지 않습니다) 덕인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소유의 무게를 덜어 일상의 불안을 줄여준다(혹은 더 늘이지 않는다)는 개념이 현실에 서 작동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언제든 허허롭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유목적 삶이 그러하듯, 소유가 늘어날수록 삶의 무게가 늘어 나고, 그로써 자유로움 또한 줄어든다는 평범한 이치를 누가 모르겠는가. 늘 그렇듯, 문제는 다만 삶의 태도요, 결단이요, 실천일 뿐이다. 소유적 인간 vs. 존재적 인간 ⓦ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레퍼토리에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곡들이 여럿 있는데, 특히 1959년 마일즈 데이비스가 녹음한 <So What>과 <All Blues>는 그 중에서도 최고에 속한다. 발표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베스트셀러 앨범이 되고 있는 <Kind of Blue>는, 그 음악이 도대체 어떻길래 생명력이 그렇게 강할까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말콤 존스는 그 이유를 마치 옛 친구를 만나듯 편하다는 데에서, 그러면서도 또 다른 한편 청취자가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어떤 안내 도식도 없다는 데에서 찾는다. 그러니 까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낯설지만 낯익은 그런 상반된 특성을 함께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애초부터 그렇게 디자인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처음부터 고려한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의 하나는, 발견과 탐색으로 구성된 열린 엔딩이다. 연주자들은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에 연주할 음악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데이비스가 연주 불과 몇 시간 전에 잡은 세팅과 테마^모티프와 같은 간단한 스케치가 전부였으니, 거의 순수한 즉 흥연주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연주자들이 주어진 음표들 사이의 빈 공간을 음표들만큼이나 중요시 여겼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앨 범의 또 다른 매력은 컨텍스트 안에서 드러난다. 40년대 이후 재즈는 비밥, 그리고선 미친듯한 템포와 코드 변화와 집적으로 특징 지워지는 하드 밥에 의해 지배되어 극도의 음악적 정교성이 요구되었는데, 데이비스는 그러한 유행에 의도적으로 등을 돌려, 마치 클래식 음악이 그러한 것처럼, 불과 몇 개의 코드들이지만 그것들로써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을 만들어내어 인간의 기본 감정에 닿는 서정성을 복구하려 애썼다. 그리고 연주자 들에게는 힌트를 가급적 적게 주어 느슨하게 해 줌으로써 주어진 스케일 상에서 자신들의 멜로디와 변화들을 즉흥적으로 창조할 수 있도록 했다. “생장과 변화는 삶의 과정에 내재한 특성이다. 소유적 인간은 자기가 가진 것에 의존하는 반면, 존재적 인간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 기탄없이 응답할 용기만 지니면 새로운 무엇이 탄생하리라는 사실에 자신을 맡긴다. 소유는 사물과 관계하며…… 존재는 체험과 관계 (한다)…… 존재 양식은…… 독립성과 자유, 비판적 이성을 전제조건으로 하며 자신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프롬의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 ⓦ 꺼져가는 경제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국민의 혈세를 끌어 모아 역사적으로 가장 거대한 공적 자금을 조성하고 집행하 기 위해 몸집을 불리고, 금융권이며 기업이며 구제금융을 빌미로 극도의 관치를 기도하는 정부로 인해, 그리고 경제 위축을 빌미로 비경제적인 모 든 인간의 창조적^실험적 행위들을 억압하는 모든 사회 분위기와 여건들로 인해 존재 양식의 삶이 더 지난하다. “나의 주교표어 ‘너희와 모든 이 를 위하여’대로 성체성사의 주님처럼 생명의 빵이 되는 삶, 모든 이의 ‘밥’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유산이라곤 거의 남기시지 않은 채 어제 귀 천하신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의 말이다. 소유의 사회가 잉태한 경제 파국의 상황에 공간의 탈소유화 작업보다 더 절실한 것이 있을까? 죽어가는( 혹은 죽은) 우리 사회에 비판적 이성보다 더 절실한 불씨가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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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시디자인 탐사 김민수 지음, 그린비 펴냄, 560쪽, 32,000원 <와이드 書欌 08 | 안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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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상상력은 위험하다. 김민수 교수가

리의 모습을 보여준 바로 그 페이지에서 서울시의 ‘동대문운동장 공원

쓴『한국 도시디자인 탐사』(그린비 펴냄)를

화 사업’에 대해 언급한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

“이곳은 중층화된 시간의 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역사·문화적 장소

산, 대구, 대전, 광주, 울산, 인천 등 한국의 대

였다. 그러나 서울시는 어떻게 재생시킬지 지혜를 모으는 대신에 이른

표적인 도시를 종횡하며 그들 도시의 건축물

바 ‘월드디자인 플라자’ 지명 국제설계공모전을 열어 당선작을 선정하

과 도시 디자인을 관찰하고 분석한 이 책은 비평집이라기보다는 고발

고 일방적으로 철거해버렸다. 이로써 서울은 동대문운동장이라는 도시

장에 가깝다.

의 역사와 기억을 말해 줄 수 있는 좋은 장소를 잃어버렸다.”

이 책은 오롯이 ‘해직교수 김민수’의 산물이라고 할 만하다. 알 만한 사

건축이론가 노르베르크슐츠(Christian Norberg-Schulz)는 ‘공

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서

간’(space)과 ‘장소’(place)를 구분하고, 건축이란 장소의 영혼을 시각

울대 미대 초창기 원로 교수들의 친일 행적을 거론하고 선배 교수의 작

화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의미 있는 장소를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건

품과 교과 과정을 비평의 잣대에 올렸다는 이유로 1998년 교수 재임용

축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디자인 또한 마찬가지다. 단순히 아름답기

에서 탈락했다. 이후 6년 반 동안 그는 복직 투쟁과 소송을 벌이는 한

만 해서는 안 된다. 장소에 깃든 삶과 영혼을 담아내는 철학이 있어야 한

편 스스로 유배자가 되어 전국을 주유했다. 이 책에서 그는 먹먹한 가

다. 그러므로 건축가나 도시 디자이너는 프로페셔널한 직업인이기 이

슴과 날선 눈으로 한국 도시의 무정체성을 파헤치며 일침을 놓았다.(그

전에 역사가의 안목을 갖춰야 한다. 건축과 디자인을 이런 식으로 규정

러므로 사족하나 붙이자면, 책을 다 읽고 난 뒤, 다산의 목민 철학이나

했을 때 “부동산 투기판과 스펙터클한 전시행정의 각축장으로 변하고

완당의 고졸미(古拙美)에서 유례를 찾을 수 있듯, 지식인에게 일정 기

있는 한국의 도시들”의 모습은 참담하기만 하다.

간의 ‘유배’는 그의 정신을 더욱 벼리게 만드는 보약일 수도 있겠다는

한국의 도시에서 ‘역사’를 거세해 버린 첫 사태는 식민지 시대 때 벌어

생각이 들었다)

졌다. 일제는 근대적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옛 도시의 성곽을 허물어 버

도시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단순한 군집성으로만 자신을 드러내지

렸다. 일본인 거주지 중심의 ‘뉴 타운’이 들어서면서 구 도심은 원래 이

는 않는다. 고대 오리엔트 시대부터 이집트, 유럽 뿐 아니라 왕조시대

름마저 빼앗기는 경우가 다반사로 벌어졌다. 광주가 읍성도시였다는

중국의 도시들까지 나름의 정체성을 간직한 채 역사가 되어 있다. 현대

사실은 1920년에 만들어진 ‘대광주건설계획’이 1990년대 초에 발견되

도시도 마찬가지다. 각종 여행기와 인터넷 덕분에 우리는 가보지 않은

기까지 묻혀 있었다. 또 원래 부산의 옛 이름인 부산진이 현재의 부산진

도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고, 어떤 수식이나 설명을 덧붙이지 않더

구와는 한참 떨어진 부산 동구에 위치했음을 아는 부산 사람은 별로 없

라도 그 도시가 어디인지, 어떤 맥락에서 여행자의 눈을 사로잡았는지

다. 개발과 근대화로 ‘급조’된 도시에 사는 시민들이 자기가 사는 곳의

한 눈에 이해한다.

역사를 망각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국민

워낙 타자의 시선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인지라, 타자의 시선을 차용하

들 중에 인천에 관해 ‘차이나타운, 원조 자장면, 월미도, 짠돌이 당구’는

는 게 현실을 더 잘 드러내는 방식일 수 있겠다. 책을 펼치면 맨 앞쪽에

알아도 인천의 기원지로서 문학산 자락에서 펼쳐졌던 고대 백제의 건

커다란 도시 사진이 실려 있다.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되기 전, 그

국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국 도시의 역사 거세 작업은 1960

빌딩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맨해튼 덤보 지구의 전경이다. 그곳은 브루

년대 이후 몰아닥친 개발 광풍으로 더욱 가속화되었다.

클린 다리가 놓이면서 폐허처럼 변해버린 옛 항만 창고시설 지역이다.

문제는 개발 시대를 넘어선 ‘자치 시대’에 역사 지우기와 정체성 없는

뉴욕시는 1990년대에 이 버려진 지역을 살리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

개발이 더욱 확산된다는 점이다. 그것도 ‘디자인’이라는 옷을 입고서.

를 계획했는데, 그 방법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재개발이 아닌 낡은 시설

그 결과 부산시는 그리스 산토리노 마을을 연상시키던 용호동 일대의

을 보존하고 재활용하는 식이었다. 그 결과 덤보 지구는 예술가들의 해

해안 절경을 갈아엎어서 초고층 첨단 빌딩 숲을 만들었으며, 대구시는

방구로, 뉴욕을 살리는 새로운 트레이드마크로 다시 태어났다. 저자는

10년 전 시가 지원해서 녹색 마을로 가꾸었던 삼덕동 일대를 일거에 고

덤보 지구 재생 프로젝트와 공장 건물이 화랑으로 변신한 뉴욕 첼시 거

층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시켜 버렸다. 광주시의 ‘디자인 집착증’은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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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안철흥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월간 <말>지와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시사IN>에서 20여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했다. 그 동안 정치부와 문화 부에서 거의 절반씩 밥을 먹었는데, 건축계 쪽을 여전히 기웃거리는 것은 그때 어설픈 곁눈질로 사귀어둔 ‘인맥’ 덕분이라고 한다. 이미 ‘절판’ 상태라 이름을 밝히 기 좀 그렇다는 책 한 권을 쓰고 한 권을 번역했다.

미디에 가깝다. 광주시는 디자인 비엔날레를 개최하고 거대한 디자인 센터를 세웠지만, “외국 유명 디자이너들과 서울에서 주로 활동하는 디 자인 관련 업체들이 이 행사로 돈을 벌었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디자인 산업 기반이 취약한) 광주의 지역경제 활성화에 직접적 보탬이 된 증거 는 없다”. 도대체 누구의 ‘삶을 비추는 디자인’이란 말인가? 새로운 도시디자인은 기존 도시경관과 맞물려 하나가 될 때 독창성을 부여받는다. 이것이 도시미학으로서 ‘장소성의 힘’이다. 하지만 한국에 서 “디자인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허상을 붙잡고 국가 이미지 전략의 최전위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디자인 전문가인 저자는 이 책에서 ‘디 자인’이라는 유행병이 한국의 도시 정체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낱낱 이 꼬집은 뒤 이렇게 독백한다. “도시디자인이란 단순히 도시경관을 멋 지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어떤 방식의 삶을 살 것인지 도시공간을 통해 ‘삶을 약속하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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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 주택 | Studio 2105 <주택 계획안 100선 07>

정릉주택을 꿈꾸다 ⓦ 글 | 이한종(studio 2105 소장) 윤 회장과의 인연은 그럭저럭 4년은 넘었을 것이다. 그간 윤 회장과 이런 저런 프로젝트의 계획안을 검토했었지만 모두 실현되지는 못하였다. 그런 차에 정릉에 땅이 있는데, 이제 집을 짓고 살고 싶다면서 이번에는 자신의 집을 한번 설 계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어찌나 동네 자랑을 하던지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건축가가 사이트 보러 가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정릉계곡이 얼마나 좋기에 이리도 자랑하는가 싶어 한여름 더위가 한창일 때 정릉을 찾아갔다. 오래된 동네의 모습은 예상하던 바였다. 골목을 돌아서 엄청난 경사면 도로를 올라 대지에 도착했다. 대지는 아주 심한 급경사를 가지고 있었다. 거의 15m 이상의 경사면이다. 야, 이거 재미있는 땅인데!, 그런데 뷰(view)가 좋지 않네요. 앞쪽에 바로 연립이 들어서서 좀 답답하니까 집은 뒤쪽으로 밀어야겠어요. 뒤 쪽 경사 면 도로 쪽으로는 집을 올려야 겠고요. 이 소장. 뒷 도로에서 사람들이 우리 집을 다 내려다보니 그것 좀 안 보게 해줘요. 그리고 우리 집 식구들이 유별나니 방이 많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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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종은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부터 2000년까지 (주)원도시건축에서 일했다. 이후 구간건축에서 파트너로 활동하였으며, 2004년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학에 교환교수로 유학한 바 있다. 2005년 건축사사무소 이일공오를 설립하고 현재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서울대학교 외래교수로 출강 중이다. 대 표작으로는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대구학생문화센터, 봉화군청사, 익산 베어리버 숙박단지, 익산 베어리버 콘도미니엄 등이 있다. 수상 경력으로는 대한민국 건 축대전, 꾸밈건축평론상, 건축사협회 학생건축상, 공간학생건축상 등이 있다. 배상훈은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졸업하고 2005년 이일공오에 입사, 말레이시아 집합주거 마스터플랜, 이화여대 리사이틀 홀 리노베이션, 고양식사지구 공동주 택 현상설계 입면특화, 쿠알라룸푸르 암팡지구 공동주택 신축공사, KT 그룹데이터센터 현상설계 등의 작업에 참여하였다. 전태일메모리얼, 도코모모공모전, 건 축대전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다.

윤 회장은 대지를 구경시켜 준 뒤 바로 계곡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공용주차장 밑으로 계곡을 내려다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울창한 숲 밑 으로 맑은 계곡물이 그림같이 이어져 있었다. 여름 한낮이라 아이들은 별로 없고 동네 어르신들이 물에 발 담그고 한적하게 여름을 피하고 있었다. 아니, 이런 곳이 아직 서울 동네 한복판에 있다니. 윤 회장님, 우리도 내려갑시다. 우와, 물 정말 시원하다. 아, 이 소장, 양말 벗어요. 그래야 더 시원해. 이리 와요. 한참이나 우리는 물에서 놀다가 지칠 때쯤 되어서야 윤 회장은 나를 데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산을 올라가는 등산로 옆으로 계곡은 이어지고 있 었다. 산책길 사이로 검고 큰 바위 하나가 나의 눈을 끌었다. 아주 크지는 않지만 어디에서 날아와 흙 속에 박힌 듯 아주 특출하게 생긴 검은 바위 였다. 그런데 그 바위가 주변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뭐, 산에 있는 바위니까 당연히 어울리겠지만 그래도 저건 이물질인데 어찌 나무와 흙과 풀과 잘 어울릴까. 사무실로 돌아와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다. 난 그 바위가 자꾸 생각이 났다. 급경사의 대지에서 솟아 난 듯하다. 집 매스를 다듬으면서 비틀고, 쪼개고, 뚫고, 들어 올리고를 반복하며 그런 덩어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세월이 흐르면 그 땅에서 이미 오래전에 박혀 있던 바위 같 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참 계획안이 잡힐 무렵, 이 땅이 재건축에 편입될 것 같다는 비보를 들었다. 이 소장, 이거 어쩌나. 그동안 수고했는데. 정릉에 언제 다시 오세요. 순두부 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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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 주택 배치도.

정릉주택 작업일지 ⓦ 글 | 배상훈(studio 2105 팀장) 집터를 돌아보며 가장 고민하였던 부분은, 북측 2개 층 높이의 옹벽과 인근 연립주택에서 집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주택의 해법으로는 좋은 집을 만들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외부에서의 시선은 차단하되 시원 한 풍경을 담을 수 있는 방법으로 디자인을 풀어가기 시작하였다. 남향으로 열린 집터의 반을 가리고 있는 연립주택은 집터보다 2개 층 정도 높 게 올라가 있었고 이에 대한 방안으로 서로 다른 성격의 마당을 제안하였다. 옛 한옥의 사랑채-사랑마당과 같은 성격의 마당과 안채-안마당과 같 은, 외부의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는 오로지 가족만을 위한 마당이 그것이었다. 사랑채의 역할을 하는 거실 매스는 집터 앞의 쌈지공원과 정원을 바라볼 수 있도록 축을 틀어 계획하고 근린생활시설 사이와의 공간을 너른 마당으로 계획하였다. 이곳은 꽉 막힌 담장으로 막힌 곳이 아닌 시원 한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외부로 열린 마당이었으면 좋겠다. 또 다른 마당은 외부의 시선에 방해 받지 않고 가족들에게 비밀의 정원을 만들어 주 는 곳으로 계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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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릉 주택 단면도.

집안 곳곳에서 고요히 바라볼 수 있는 마당을 만들고 좋은 나무 한그루를 심어 비가 오면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간혹 북한산 에서 날아온 산새 한 마리가 쉬었다가 가면 참 좋을 것이다. 이러한 마당들과 집안 곳곳의 연결을 위해 시각의 이동에 따른 다양한 집의 모습을 만 들어내고 싶었다. 외부로부터의 집의 모습은 마치 원래부터 그곳에 뿌리내리고 있었던 바위의 모습이라 한다면, 외부 마당에서 1층을 들어 올린 틈으로 보이는 중정의 모습은 동굴을 지나 신비한 비밀의 장소로 이끄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건축주는 집을 지으면서 향후 손자들이 재미있게 뛰어 놀고 좋은 유년의 추억을 간직하길 원하셨다. 아파트가 어느덧 주거의 또 다른 이름이 되어버린 현재지만…. 앞으로 이 집의 재미있는 형태 와 마당들, 그리고 사선의 지붕 아래 숨어 있는 곳곳의 다양한 옥상 정원과 다락방들이 건축주의 손자들에게 신나는 유년의 추억을 선사해 주었으 면 좋겠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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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릉 주택 1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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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릉 주택 2층 평면도. ↑ 정릉 주택 3층 평면도. ← 정릉 주택 옥탑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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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릉 주택 입면전개도.

정릉 주택 건축 개요 ⓦ 대지 위치 :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 800-56 외 1필지 | 지역 지구 : 제2종 일반 주거 지역 | 용도 : 단독주택 및 근린생활시 설 | 전면 도로 : 12M(현황 도로) | 대지 면적 : 553.71㎡ | 건축 면적 : 192.08㎡(단독주택), 100.91㎡(근린생활시설) | 연면적 : 313.24㎡(단독 주택), 281.47㎡(근린생활시설) | 건폐율 : 52.91% | 용적률 : 107.40% | 규모 : 지상3층(단독주택), 지하2층 지상2층(근린생활시설) | 구조 : 철 근 콘크리트조 | 주차 대수 : 3대(단독주택), 4대(근린생활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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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급 액션 건축 <WIDE PRO 젊은 건축가 FILE 7 | 문훈>

우선 B급이 아닌 Be급 액션 건축이라는 말에 대해 설명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 흔히 B급이라는 말이 앞에서 언급되는 경우, 우리는 흔히 그럴싸 하고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것과 반대되는, 급조되거나 싸구려 같은, 아류의, 뭔가 보편적인 것에도 못 미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B의 소 리를 가졌기에 B급의 표상에 가까이 가게 되지만 결국 Be라고 쓰이고, 소리는 같지만 뜻이 전혀 다른 그 무엇을 상정하게 되었다. Be급은 말 그 대로 이미 그러한, 존재하는 천성에 대한 이야기이고, 액션이라는 말은 땅 속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부동의 건축에 대한 저항 혹은 다른 가능성 혹은 틀 깨기에 대한 표현이다. 현재 골조 공사를 마친 정선 펜션 테일(Tale)의 경우에도 땅에 뿌리박고 있는 고정된 기본 기능, 즉 거실, 주방, 화 장실 등과 더불어 액션 건축이라 명명할 수 있는 꼬리 모양의 놀이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는 재료상의 특징인 망사 혹은 그물망이 내부에서의 사 람들의 놀이와 움직임, 또는 바람에 의한 움직임을 반영하는데, 이는 즉 액션이 연출되는 것이다. 더 큰 맥락과 공간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본다 면, 대지^환경 예술가인 크리스토 야바체프 (Christo Javacheff)처럼, 정선 펜션 한 동과 앞쪽의 레벨차가 있는 건천을 그물망/망사로 이어지도 록 하거나 일부를 덮는 것들-건축물의 액션 부분이라고 지칭하는 것들-은 대지^환경 예술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액 션 건축 부분은 기능적 혹은 프로그램적으로 볼 때 건축의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화 혹은 엔터테인먼트의 건축화 방식으로 진화할 수 있 는데, 이 부분에 대한 얘기를 전개하기 위해 정선 펜션 각 동의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각각의 동은 다른 주제와 컨셉트를 가 지고 있으며, 스텔스(stealth)나 페라리(ferrari)처럼 스피드 혹은 특성화된 기능들이 외부 형태를 포함하여 내부의 전자오락 기능에까지 일관성 있게 적용되었다. 또 영화 <트랜스포머>나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처럼 특정 부분의 움직임을 통해 확장된, 또는 다른 형태로 읽힐 수 있는 공 간과 형태를 연출하기도 했다.

정선 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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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문훈은 호주 타즈매니아 섬의 호바트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인하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MIT건축대학원에서 수학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실무를 쌓고 2001년부터 문훈건축발전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건축과 드로잉으로 짧은 영상물을 제작하고 있기도 하다. 2005년 상상사진관으로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했으 며 다른 작품으로 현대고등학교, 전주동물원, 묵동다세대주택 등이 있다.

옹달샘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코너 대지 사거리가 가지는 좋은 분위기를 한층 더 극적인 상태로 이끌 수 있는 방식으로 부양된 런웨이(runway) 혹은 다리를 동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도록 한 후, 그 하부에는 흐르는 물 커튼(curtain)을 도입하여 필요 시 사거리에서 새로운 풍경 이벤트와 소 리 이벤트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는 조절될 수 있는 물의 액션이 부동의 건물과 대비를 이루면서 장소로서의 활기를 불 어넣어 주게 되는 것이다. 즉 건물 어딘가에 숨어 있는 옹달샘이 도시의 사거리에서 극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송도 파라마운트 홍보관의 경우에도 건물 표면을 스크린으로 만들어 항상 움직이는 이미지를 제공하고, 상층부에 있는 돌출 전망대 부분은 상하로 움직일 수 있도록 계획 하였는데 이 역시 액션 건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양평에 있는 S-Mahal 또한 액션 건축을 지향하고 있다. 주택 외각 캐노피를 따라서 설치되 어 있는 방수 재질의 빨간 커튼은 바람이 불 때마다 펄럭이면서 주택에 역동적인 느낌 혹은 살아있는 느낌을 전달한다. 물리적으로 바람에 나부 끼는 커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을 드러나게 한다. 이러한 액션, 움직임이 주택을 설명하는 도구로 쓰이게 되는데, 즉 바람을 탄 커튼 들은 늘어나고 넓어져 날개처럼 되며, 그것으로 이륙을 하여 다른 세상(가상의 세계나 사이버 스페이스)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이야기 구조를 만 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건축이 사이버 스페이스(cyber space)로 들어오게 되면 마치 꿈을 꾸는 방식처럼 나름의 비논리적, 넌센스 (nonsense)적, 그러나 부드러운 방식으로 연결되게 된다. 여기서 사이버 스페이스 혹은 가상현실이라 말하는 것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3 차원 그래픽 도구를 포함하지만, 그 중에서도 웹으로 연결된 구글 어스(Google Earth)라든지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와 같은 소프트웨어 의 인터페이스(interface)에 더 친근할 수 있다. 이렇게 가상현실에 들어온 건축물은 자유자재의 변형을 이뤄 낼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되므로 오 프라인에서 가져야만 하는 기능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보다 순수한 형태 혹은 타협되기 이전의 순수한 에너지 상태로 돌아갈 수도 있는 것이 다. 그렇게 함으로써 원래 건축물의 기원이 된 아이디어나 컨셉트를 보다 명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도구(tool)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오프라인 건 축물에서의 표현적, 기술적 타협은 버려지지 않고 다시 가상 세계에서 태어나고 생존하게 된다. 즉 가상세계를 이용하는 것은 현실계의 확장 혹 은 보다 완전한 이해를 위함이다. ⓦ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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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파라마운트.

S-Mah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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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서의 최적화 절충의 상태(Status of Negotiation)로서의 건축

<WIDE PRO 젊은 건축가 FILE 8 | 전유창>

스토니브록 대학 산학 연구소. 로만브릭, 부식동판, 메탈 패널의 조합을 통한 표면의 구현.

표면과 깊이의 양극성은 내부와 외부의 양극성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하다. 깊이가 투명해지면 그것은 또 다른 표면이 되고, 마찬가지로 내부가 투명해지면 그것은 외부가 된다. 모든 것이 투명해짐에 따라 깊이와 내부는 사라 진다……. 이렇게 깊이와 내부가 사라지면 표면은 변형된다. 다시 말해, 표면은 깊이나 내부에 반대되는 말이었을 때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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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계획안 1층 평면. Material Patch-바닥 패턴과 재료를 통한 프로그램의 재구성.

기하와 섬세의 정신 ⓦ 시각중심주의(Ocuularcentrism)에 편향된 근대건축의 광학적 메커니즘은 시각에 내재된 감각적 기능을 간과하고, 추상 적이고 차가운 건축 공간과 표면의 생산을 통해 고전적 공간이 가지고 있는 시각과 감각의 이중성을 해체하는 경향을 보인다. 즉 체험으로부터 시 각 이외의 모든 감각의 경험을 배제하였으며, 건축에 있어서의 시간과 이미지 그리고 표면의 물성 등이 감각적으로 구현된 건축 실체의 핵심을 아 우르지 못하였다. 파스칼은 그의 저서 『팡세』에서 섬세의 정신과 기하의 정신에의 변증법적 관계에 대해 논한다. 데카르트로부터 내려온 이성 중 심의 전통은 기하학적 추론(推論)과 함께 기하학적 형태의 강조로 환원되며, 근대건축의 ‘보편성’이라는 순수한 실제적 객관성은 일차적인 기하 학 형태로 표출된다. 기하학이 이성으로서 수치적으로 판단되는 현상의 결과물이라면 그 윤곽이 담아내는 표면의 텍스처는 감각에 반응하는 접 촉면이라 할 수 있다. 근대에서의 건축의 관점은 수치적 정량적인 관점으로 이해하고, 파악하고, 판단하고 그리하여 설명하려는 노력이다. 이에 반해 섬세의 정신은 분위기, 감성, 기운, 기분 등, 눈보다는 손이, 머리보다는 몸에 의해 체험되는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성이 추론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 이성을 지탱시켜 논증과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감성과 심정이다. 즉 데카르트적인 기하학적 추론(推論)의 결함은 ‘ 섬세(纖細)의 정신’으로 보완된다. 기하학적 윤곽을 통한 추상적 형태 구축은 표면이 가지는 특징과 구성을 넘어 재료를 중심으로 한 디자인 방법 론의 출현을 통해 보완되며, 재료의 물성적 특질을 표면에 적절히 구현시키며 재료 자체의 물리적 특성, 인간척도의 스케일, 재료의 역사성 그리 고 시간의 특성을 통해 표면 이미지를 생성한다. 섬세의 정신으로 요약할 수 있는 표면의 구축은 물성의 변형과 조작을 통해 인간의 감성에 공조 하는 공간과 형태의 구현이 가능하다. 표면의 물성에 대한 이해는 시각과 촉각의 동시적 경험을 촉발하며, 표면의 구성은 시대적 감성과 지역성, 역사성 등의 컨텍스트를 포함한다. 기하와 섬세의 정신의 관계를 통해 건축을 개념과 형상의 장을 넘어 재료가 가지는 실재와 표면의 상호 관련성 으로 이해한다면, 형과 상의 관계를 기본으로 공간의 개념과 구현, 또 그 안에서의 빛과 재료가 조응하여 만들어 내는 분위기(Atmosphere)를 통 해 건축과 인간과의 감각적 상호작용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스토니브록 대학 산학 연구소 디자인 스터디. 건물의 형상과 표면의 물성에 대한 대안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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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과 실체 ⓦ 제대로 된 건축을 위해서는 적절한 아이디어뿐만 아 니라 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종 합적 사고의 구현이 필요하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마스터 빌더(Master builder)로서의 건축가의 역할은 축소되었고, 결국 건축가는 외관만 을 신경 쓰는 스타일리스트로 전락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개념과 그의 실체를 구현하기 위한 통합적 담론이 부재한 실정이다. 건축에서의 형태, 공간, 맥락, 그리고 재현 등은 개념 과 아이디어를 통한 가정을 전제로 한 실험들과 논의, 그리고 계획들 로 활발히 토의되고 있는 반면, 건축이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로서 구축되어지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적절한 이해들은 상대적으로 우리의 관심 밖의 일로 여겨진다. 구조와 재료, 생산방식에 의해 실현됨으로 써 나타나는 지각적 미의 질서로 구축된 건축, 이는 개념의 실현을 전 제로 하기 때문에 물성, 구조와 재료의 결합 방식, 힘의 전달 방법, 구 축되는 대지와의 관계에 대한 종합적 이해가 필요하다. 특히 건축에서 의 기술적인 영역들 (구조, 설비, 시공의 과정과 다양한 분야의 커뮤니 케이션을 포함하는)과의 개념적 소통을 전제로 한 건축 디자인의 이해 가 필수적이다. 재료들의 물성을 중심으로 한 기술의 발달은 새로운 방법론적 연구뿐 아니라 새로운 재료의 출현과 함께 다양한 시공 방법과 기술의 발전을 야기한다. 또한 디지털 디자인 도구의 발전은 디자인에서의 재료와 형 태의 대안을 탐색하는 가상적 시뮬레이션을 가능하게 한다. 더 나아가 디자인과 시공과의 긴밀한 연속성을 통한 형태적, 공간적 변형은 디자 인에서 건축가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시공 현장에 전달함으로써 효율 성과 미적 가치 창출의 주요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특히 컴퓨터 프로그 램의 매핑(Mapping) 기술을 이용한 색채의 인식과 재질의 구현은 디 자인 과정에서 표면의 구체화 과정을 통해 미적 감각의 변화와 수용의 차원을 변화시킨다. 반복과 변화의 동시적이고 즉각적인 실험과 생산 의 과정을 겪으며 다양한 색채와 재료의 가정과 실험이 가능해진다. 이 는 CAM(Computer Aided Manufacturing)의 등장과 함께 생산 방 식의 변화와도 긴밀히 연결되는데, 컴퓨터 내의 수치적 데이터의 변화 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반복적이며 변화하는 변수의 순차적인 변화 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반복과 변화의 패턴과 텍스처들을 효율적으 로 생산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특히 반복과 변형을 통한 표면의 패 킨 주립대 연구동 단면 상세 계획. 구조와 설비 재료의 조합과 결합을 통한 외피 구축의 과정.

턴화는 부재의 표준화 생산으로 인한 건축 구축으로의 영역에 재편된 다. 특히 현대건축에 있어서 외피는 구조적인 관계로부터 자율성을 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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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카펠러 대학 리서치 센터. 건물 형태와 공간을 구성하는 지오메트리의 시공을 위한 구축화 작업.

득한 후, 피복의 역할을 넘어 경계로서의 표면 현상을 만들며, 건축의 구조적, 설비적, 그리고 시공 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외부와 내부, 프라이 빗(private)과 퍼블릭(public)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있다. 이는 현대에서 미디어 같은 매체의 발전으로 인한 시각성의 변화와 공조하며, 표면의 효과라는 측면과 인터페이스(interface)로서의 역할을 강화시킨다. 이는 건축의 외피가 외기, 소음, 공간의 분할 등의 기능적인 역할 이외에 문화 적, 사회적 특질을 능동적으로 표현하는 캔버스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유연한 구축 ⓦ 카티지안 좌표(Cartesian coordinates)계의 구성에 종속된 기하학의 관습적인 형태 생성의 원리에서 탈피해 유연한 구성으로 서의 형태적 변형을 고안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고전적인 건축 형태 생성의 패러다임을 넘어 개념적인 사고의 변화를 유도한다. 이는 건축 에서의 내부와, 내부의 경계 현상에서 표피가 어떠한 방식으로 내부의 프로그램적 요구와 외부의 사회문화적 컨텍스트를 유연하게 조율하는지를 실험할 수 있다.유연한 구성을 통해 차이들을 제거하기보다 자유로운 의도들을 유동적인 혼합의 기법으로 결합시킨다. 유연한 혼합은 동일화시 키는 것이 아니라 형태의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을 위한 방법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건축의 유연성은 상황에 대한 융통성을 통해 좀더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며, 비확정적인 결합을 통해 형태 생성의 가능성을 유지시킨다. 유연한 구성과 연약한 표피는 형태 생성을 위한 기본 조건으로 이해될 수 있다. 유연한 구축은 기술과 구조, 자본주의의 기능적이고 상업적인 요구, 그리고 사회 문화적 감성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현 시대에서의 새로운 감각과 이에 상응하는 현대건축의 표현 방식에 의해 변화하고 발전한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구축의 표현 방식으로 사건, 의 미, 감각 요소들의 구성을 통해 건축은 사람들의 지각적 체험과 경험을 중재하고 재생산할 수 있다. 형태 생성의 과정은 이제 구축을 위한 기술적 영역으로 전이되며, 형태를 이루는 표면의 단위 요소는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으로서의 가능성이 재고된다. 조직(Fabric)의 재구성(Fabrication) 을 통한 형태의 구축이 고려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건축가는 기본적인 형상의 이성적인 이해와 해체가 필요한데, 즉 건축의 구축은 각 부재들의 결합과 조립이라 볼 때 복잡한 건축물에서의 다양한 부재들의 효과적인 표준화와 생산과정 그리고 접합(joint)의 이해가 중요하다. 이는 빌딩 시 스템과 재료 생산 공정의 이해와 병행될 때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통해 최적화된 구축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이는 설계와 시공의 통합적 이해 에 기반을 두며, 전체와 부분과의 관계를 조직(organize)하고 조율(coordinate)하며 관계를 최적화함으로써 구조적, 시공적, 기능적인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 디자인 최적화를 위한 설계와 생산공정 부재의 과도한 생산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으며, 이는 재료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생 산의 친화경화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

라카펠러 대학 리서치 센터. 내부 공간의 표면에 대한 패널화 작업과 mock-up mo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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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캐롤라이나 하우징 계획. 카달로그로서의 건축^건축의 각 요소를 사용자의 의지에 의해 선택할 수 있는 카달로그 개념의 주거.

Efficiancy-Scape. 공간과 시간의 스케줄링을 통한 효율적인 도시 이벤트의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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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창은 인하대학교 건축과와 대학원 연구실(Factory)을 거쳐 미국 콜롬비아 대학 건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 뉴욕 Mitchell/Giurgola Architects LLP에서 디자이너 및 이사로 재직하였으며, 일본 신건축사가 주최하는 센추럴 글래스 국제 공모전 1등상과 2000년 일본 신건축 주택 공모전 가작을 수상하였다. 미국 건축가 협회(AIA) 정회원, LEED AP.이며 현재 아주대학교 건축학부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최적화를 향한 건축 ⓦ 최적화는 목적한 것에 대하여 가장 적절한 방침^계획을 세워 설계하거나 선택하는 것, 합리적인 최적 결정^선택을 위한 적합한 정보의 습득과 분석 그리고 선택을 위한 행위이다. 경제에서의 최적화는 효율과 동일시되지만 건축에서는 미학적 요구와 기능적 요구 사 이의 적절한 관계 형성을 통한 최적화의 방법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건축에서의 최적화는 양자택일에서 양자공존으로의 수렴을 의미한다. 건 축의 복잡성, 새로운 도구의 탄생과 패러다임의 변화, 건축이 가지는 일회성과 특수성 사이의 해법이라 할 수 있다. 건축주의 요구, 대지적 특수성, 프로그램의 복잡성, 시공업자의 영향, 특히 최근의 새로운 재료와 시공 기술 등의 다양한 요소들의 관계에서 가장 적합한 해법을 찾아내는 전략이 다. 건축의 설계와 시공은 기본적으로 비용이라는 경제적 현실에서 서로가 모순된 대립 관계를 존속해 왔다. 건축에서 효율의 문제는 설계와 시공 의 대립적인 관계를 넘어 상호 보완적인 방법에서의 균형 찾기이다. 건축에서의 최적화 과정을 위해서는 건축 디자인에서 설계와 시공, 즉 건축가 와 기술자 간의 새로운 협력관계를 통해 효율성의 증대를 꾀하고 미적 가치 창출을 위해 시공과 설계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재료가 가지고 있는 물리적 속성과 건축 부재의 조립 기술에 기반을 둔 건축 디자인과 시공의 통합이 필요하며, 이는 건축에서 디자인과 생산의 과정^흐름을 명확히 함으로써 건축가의 의도가 구축에 정확히 반영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위의 과정은 디지털 디자인 도구를 통해 다양한 방식의 구조적, 형태적 디자인의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 건축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특히 개념에서 재현과 구축을 통해 실현의 단계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으로서의 건축을 이해한다면 이를 통합함에 있어서는 공시적, 통시적 이해의 방법론이 필요하다. 이는 한 시대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으로서 건축적 사고의 틀을 넘기 위한 균 형적 사고의 필요성을 전제로 하며, 최적화라는 큰 틀은 이 균형의 적절한 조절을 위한 근거라 할 수 있겠다. 최적화는 가상적 실체로서 존재한다. 결국 이는 이룰 수 없는 현실의 법칙이라 할 수 있으나 최대화(Maximize)된 노력을 통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통합적 건축의 효율적 이해와 구축 에 그 주요한 목적이 있다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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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찾아서-1 함성호의 <소소재잡영기(素昭齋雜詠記) 02>

하늘을 봐야 별을 볼 수 있는 법이다. 집을 지으려면 땅을 찾아야 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땅

다. 나는 계획서였다가, 휴지였다가, 시였다가, 다시 계획서가 된 계획

도로가 세 면에 접해 있고, 그것도 남쪽에 넓은 도로가 있었다(일산은

을 머리에 넣고서 집 앞의 부동산 중개업소를 향해 나섰다. 이 무슨 폼

일조권 사선 제한을 남쪽에서 받는다). 그것도 한 면은 보행자 전용도

나는 일인가? 뭐라고 말할까? 땅 좀 봅시다. 아니, 좋은 땅 있습니까? 아

로였다. 대지에 인접한 면은 서쪽 한군데였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

니, 좀 건들댈까? 뭐, 좀, 좋은 물건 나온 거 있습니까? 이건 너무 싼티

을 것 같았다. 다행히 지금 <웃는 책>의 위치와도 멀지 않았다. 내가 만

나네. 땅 사러 왔는데요. 아, 씨이. 이건 뭐 동네 철물점에 온 것도 아니

족하자 중개업자는 자랑스럽게 웃었다. “…, …, 괜, 찮지요?” 물론이었

고. 그럼…, 그런 폼 나는 대사를 구상하던 중에 코앞에 부동산 중개소

다. 나는 당장 구매 작업에 들어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곤 돌아 와서

로 나는 들어서고 있었다. “어, 어, 어, 어서 오, 오세요.” 중개업자는 말

건축주와 같이 땅을 보러 갔다. 건축주도 대만족이었다. 일이 이렇게 수

을 심하게 더듬었다. “어, 어, 어떻…게. 오, 오, …” 어떻게 오셨냐고? 당

월하게 풀리다니. 역시 젊은 중개업자라서 구매자가 원하는 바가 무엇

연히 땅을 사러 왔지. “땅…” 아, 이런. 이런 한심한 명사 한 마디 밖에

인지 정확히 아는 센스가 있구나 싶었다. 의사소통에 시간이 조금 걸린

못하다니. “에?” 중개업자는 잘 못 알아들었는지 되물었다. “예. 저, 땅

다는 게 문제였지만 오히려 그게 신뢰가 갔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면

을 좀….” 아 한심하다. 폼생폼사 아닌가? 평생 한 번 밖에 하지 못 할지

서 정작 일은 못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나는 구청에서 지적

도 모르는 이 중차대한 대사가 이렇게 아무렇게나 흘러나오다니. 어눌

도를 받아, 당장 윤곽설계에 들어갔다. 땅은 더도 덜도 않게 딱 70평이

하다. 어눌해. 중개업자는 말을 더듬고, 구매자는 어눌하고, 뭔가 불길

었다. 예상은 했지만 절대적으로 면적이 부족했다. 지하를 팔까? 하는

한 전조가 말더듬이 중개업자와 어눌한 구매자 사이에 쫘-악, 하고 깔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공사비를 충당할 길이 없었다. 나는 다시 곧

리는 순간이었다.

우리의 땅이 될 그 땅에 나가보았다. 밤에도 나가고, 아침에도 나가 봤 다.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아침 햇살에 저절로 집의 꼴이 보였다. 저녁 에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중개업자에게는 이틀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

말더듬이 중개업자와 어눌한 구매자

었다. 워낙 일을 맡기면 독촉을 잘 안 하는 성격이지만 괜히 안달이 나

“아,…, 땅,…, 땅, 사실려고?” 중개업자는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녹

서 찾아갔다. 집 앞이니까.

차를 내왔다. 나는 내가 원하는 조건을 말했다. 평당 300만 원 이하, 70 평 규모. 그리고 일층에 어린이 도서관을 하고, 이층은 전세를 주고, 삼 층은 우리가 살 것이다. 어린이 도서관이 들어 올 거니까 접근도 편리 하고, 조용한 공원 주변으로 알아 봐 줬으면 좋겠다. “ㄲ, ㄲ, 꼬,…,” 뭔 가? 닭 울음소리? 상상하지 말자. 기다리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꼬,…, 꼭, 이,…, 일산, 일산이어야하나, …?” 아하, 그래 중요한 질문이다. 꼭, 일산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그건 내가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 니었다. 나는 그건 다시 건축주와 상의해서 알려 주겠다고 했다. 중개 업자는 아주 희망적으로 말했다. 현재 나와 있는 매물은 많으니까 걱정 하지 말라고 했다.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일산에 아직도 빈 땅이 곳곳에 있는 걸 봤기 때문에, 나는 땅 구입에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지금, 요,…, 앞, 앞에 나와, 나와, 있는 땅, …, ….” 그래서 바로 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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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참여정부에 된서리를 맞은 천박한 투기꾼의 땅

년 가까이 된다. 그때 땅을 사두고 아직도 거기에 건축 행위를 하지 않

“그, …, 그, 그게.” 오늘 따라 유난히 더듬는다 생각했다. 왠지 신뢰가

았다면 분명 살기 위한 목적은 아니다. 재테크를 목적으로 사두었다고

가는 말더듬. 그런데, “…, …, …” 숨이 넘어간다. “땅주인이 안, …, …,

봐야 한다. 밑에 돈이 숨을 못 쉬어서 사둔 사람들이야 그렇다 쳐도, 은

판대요.” 뭐라? 중개인이 말을 더듬으니까 요점만 추리자. 부동산을 팔

행에서 돈을 빌려 당시에 땅을 산 사람들은 아까처럼 양도 차익이 1000

경우에는 ‘양도소득세’라는 걸 국가에 내야 한다. 그러니까 양도소득

원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70%를 세금으로 내고 그 동안에 은행에 낸 이

세는 국세다. 만약 자신이 땅을 구입할 때 1000원에 주고 샀는데 팔

자까지 합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꼴이 된다. 당연하다. 땅은 공기(公

때 2000원에 팔았다면 2000원-1000원=1000원의 소득이 생긴다. 이

器)이다. 땅으로 재테크한다는 것에 나는 기본적으로 반대한다. 빈 땅

1000원의 소득에 일정한 비율을 국가에 세금으로 내야 한다. 물론, 양

에 행위(농사든, 건축을 하든)를 한 다음 가치를 상승시켜 파는 것까지

도차익이 없는 경우(1000원에 사서 1000원에 팔 때)와 상속이나 증여

야 좋지만 계속 빈 땅을 값이 오를 때까지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에

등 무상으로 소유권을 이전할 때는 양도 소득세를 물지 않는다. 또, 부

상응하는 세금을 물려 그런 몰염치한 투기 행위를 근절시켜야 한다. 나

동산을 팔게 되면 양도소득세가 과세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1세대가 1

는 그런 의도로 양도소득세를 과하게 책정한 참여정부의 정책에 찬성

주택(고급주택 제외, 부속 토지 포함)을 3년 이상 보유한 후 팔면 양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땅주인들은 땅을 활용할 생각은 안 하고, 오히려

소득세를 물지 않아도 된다. 단, 서울과 5개 신도시(분당, 일산, 평촌, 산

정권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땅

본, 중동) 및 과천에 소재하는 주택은 3년 이상 보유하고 보유기간 중 1

주인들은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길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여

년 이상 거주해야만 양도소득세가 과세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참여정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가장 많은 피해를 많이 입은 계층을 대변하는 한

부는 강력한 부동산 투기 근절책의 일환으로 양도 차액의 70%라는 막

나라당이 집권하면 부동산 정책이 가진 자들에게 유리하게 확 바뀌리

대한 양도소득세를 부과했다. 이것은 투기 목적으로 땅을 사 둔 사람들

라 하는 게 그들의 계산이었다.

에게는 막대한 부담이었다. 생각해 보라. 일산의 토지는 분양된 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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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8 : march-april 2009


글쓴이 함성호는 시인이며 건축가다. 강원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했다. 시집『성 타즈마할』 『56억 , 7천만년의 고독』 『너무 , 아름다운 병』 과 산문집『허무의 기록』 ,만 화평론집『만화당 인생』등의 책을 냈다. 시 쓰는 선후배들과 <21세기전망> 동인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요즘은 개인 건축 설계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방송 에도 출연하고 있다.

꿈을 꾸고 있는 사람, 땅을 찾다 그렇다 해도 나처럼 땅을 사서 거기에 알콩달콩한 프로그램을 짜 넣을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 거꾸로 피해를 보다니. 짧은 기간이지만 애써 궁 리한 윤곽디자인이 모두 도로가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천, …, …, 천 만 원 달래요.” 중개업자는 앞에 말을 힘들게 하는 반면에 뒷말은 급격 하게 짧게 맺었다. 그런 말투가 “천만 원”이라는 터무니없는 액수에 나 를 더욱 분노하게 했다. 투기꾼 새끼들이,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솟았다 가 가라앉았다. 20년 동안 땅을 놀리고 있었다면 그건 분명히 더 오를 거라고 계산하고 그냥 버려두다 참여정부에 된서리를 맞은 게 분명했 다. 그게 천박한 투기꾼이지 뭐란 말인가? 중개업자도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말이 안 되는 금액이었다. 결국 나더러 세금까지 내라는 소리였 다. 그럼 뭐 거기만 땅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 세상에 투기꾼 만 있을라고. 참고로 일산은 90년대 초반 당시의 농림지역의 토지는 논 이건 밭이건 평당 10만 원이면 어디건 살 수 있었다. 허허벌판이었던 일산의 토지를 수용해 개발한 후 토지공사가 분양한 금액은 단독용지가 60만 원 내외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이제 시가가 500만 원이 되고, 투기꾼들은 1000만 원을 호가하게 된 것이다. 불과 15년 남짓한 기간에 시가로만 따져도 무려 8배 이상이 상승한 것이다. 건축을 한 땅들은 당연하다 해도 빈 땅도 그렇게 오르니 누가 돈 들여서 땅을 활용할 생각을 하겠는가? 손 안대고 코 풀려고 하다가 투기꾼들이 참여정부에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희망이 있었다. 바로 한나라당이었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의 출범은 이런 천박한 투기 꾼, 부재지주, 악덕 브로커들의 지지에 힘입은 바 크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은 그 지지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의 경제는 천박한 투기꾼, 부재지주, 악덕 브로커들의 경제였다. 그러나 나에겐 분노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봄이 가고 있었다. 중 개업자와 나는 다시 다른 땅을 물색하고 다녔다. <웃는 책>과는 좀 떨 어져 있지만 적당한 땅이 나왔다. 그래. 이렇다니까. 당연히 이런 게 있 어 줘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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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ra Incognita 미지의 땅>展 SECOND LIFE, Fourth Nature 와이드 리포트

청계천 타워.

지난 1월, 청계 창작 스튜디오 1층 갤러리에서 열린 <Terra Incognita 미지의 땅>전은 현실 세계와 닮은 꼴인 또 다른 가상 세계(www.secondlife.com)에서의 공간 실험을 통해 새로운 도시, 건축의 구축법을 모색하고 새로운 유저 인터페이스와 현실을 넘나드는 복합적 공간 경험을 관객에게 제공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청계천의 4.3km 구간을 세컨드 라이프의 가로, 세로 254m인 섬에 새로운 방식으로 복원한 이 전 시는 시립대 도시공학과 유석연 교수의 기획 아래 유학규(디자이너), 문훈(건축가), 안세권(사진 작가), 홍영인(아티스트) 등의 작가들이 참여하 였고,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학생들이 작업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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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8 : march-april 2009


전시를 하기까지 전시는 1학년 시각 커뮤니케이션 수업 시간을 통해 ‘청계천, 좋은 장소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시작됐다. 유 교수는 우선 청계천의 구간 중 4.3km 지점을 정하고 그것을 11개 조로 잘라 부지를 분석하게 한 후 각자가 선택한 장소를 다양한 방법으로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하 는 기획서를 쓰게 했다. 그렇게 한 다음 주어진 임의의 장소를 개개인이 좋은 장소로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지게 했고, 2학기가 끝날 무렵 다시 청 계천에 좋은 장소 만들기를 반영하여 결과물을 이끌어 냈다. 유 교수는 이 결과물들을 보완하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사업의 전시에 내 걸었 다. 여기에 가상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문훈)과 청계천 장소성에 대한 사진(안세권)이 더해졌고, 경험을 통해 새로운 도시의 가치를 만드는 작업( 홍영인)이 힘을 보탰다. 물론 실제 가상 세계에서의 구축 방법과 기술, 그리고 그 가능성을 알려주는(유학규) 작업이 전제되었다. 청계천 타워 벽면의 패널과 영상 이외에 이 전시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전시장 중앙의 아크릴 구조물이다. 높이 254m에 이르는 도시 스케일의 건축물 ‘청계천 타워’를 축소한 모형이다. 이 ‘청계천 타워’에 학생들의 ‘청계천, 좋은 장소 만들기’ 프로젝트와 작가들의 작업이 구축되었는데, 4.3km 구간을 높이로 쌓아 올린 이유에 대해 기획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사실 세컨드 라이프 안에서 땅을 더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형식이 달라졌겠죠. 그러나 단위 공간에서 도시를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그러면서 도시가 다른 방식으로 경험되는 것을 구축해 보고 싶었지요. 펼쳐져 있는 도시를 핸들(handle)할 수 없다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건축가도 그렇지 않나요? 도시계획으로 잘린 필지 위에 정해진 주변 환경을 분석하여 작업을 하죠. 도시는 손댈 수 없는 대 상으로만 다가오는 겁니다. 이렇게 펼쳐진 도시를 층층이 쌓아 만질 수 있는 스케일로 작업을 하다 보니 실제 청계천에 대한 이해가 훨씬 높아지 는것도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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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가 문훈의 작품. ↓세컨드 라이프 내 청계천 벽에 걸린 홍영인의 작품.

공간적 대상, 세컨드 라이프 이 전시는 또 다른 도시 공간을 구축하고 생활하는 인터넷 사이트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를 공간적 대상으로 하고 있다. 알다시피, 세컨드 라이프는 일상을 그대로 인터넷에 구현한 3D 가상현실 웹사이트이다. 이미 전세계 140만 명(실시간 접수자 수 5만 명 이상)이 넘는 유저들과 기 업들이 대지를 분양 받고 자신의 분신인 아바타를 만들어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넘나들고 있다. 이 세컨드 라이프에서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 든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물건을 판매, 구매하는 활동뿐만 아니라 홍보 활동을 하기도 한다. 린든 달러(제작사가 린든 랩이다)라는 통화가 통용되 기 때문에 경제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건축가들의 활동도 눈에 띈다. 집을 멋지게 지어 팔기도 하고 디자인을 실제 생활에 구축하기도 한다. <Terra Incognita 미지의 땅>전은 이 새로운 세상 안에서 도시과 건축, 그리고 예술 공간의 가능성을 만들어 보고(공간 생산), 전 세계 누구든 들 어와 걸어 보고 체험해 볼 수 있게 하여 ‘현실 생활과의 소통’을 실험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가상 세계에서의 공간 실험 그런데, 이 낯선 전시를 준비하면서 애로 사항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세컨드 라이프 안에서 상업적인 용도가 아닌 것은 자유롭지 못한 탓에 가로 254m, 세로 254m의 땅을 구입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고, 조작이나 공간의 구현도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더구나 청계천처럼 대규모 공간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최고 사양의 컴퓨터를 사용해야만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에게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 다. 동영상으로 일방적인 경험을 도모할 수는 있지만 인터랙티브(interactive)한 도시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다. 반면, 툴이 주어 지고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상황만 된다면 일반인들도 1학년 학생들처럼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사용자 참여 디자인이나 주민 참여 시스템을 새롭게 고민하게 되었고, 세컨드 라이프에서처럼 주어진 시스템과 경험 방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스템을 직 접 구축해 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가상 세계 라는 낯설고 새로운 경험 안에서 남겨진 값진 소득이다. ⓦ 취재 | 정귀원(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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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8호 | 와이드 칼럼 건축 불경기 시대를 사는 법 Wide Architecture : widE Edge column no.8 :march-april 2009

미국 발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 경기의 침체는 한국도 비켜갈 수 없었

가구 및 집기를 대부분 건축주들이 직접 선택해서 들여 놓게 되는 경우

나 보다. 신문과 방송에서 온통 경기 불황에 관한 우울한 소식만 쏟아

가 많아 막상 준공 후 가 보면 건축주 임의대로 선택한 가구 등의 집기

져 나오기 시작한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일 년이 되가는지 그마저도

가 전체 건축을 망치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심지어는 준공 후 사

기억이 안 나기 시작한다. 지난 IMF 때는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에 없

진 찍을 때만 가구를 빌려와 사진 촬영하는 웃지 못 할 일도 발생한다.

는 걸 보면, 그 땐 자연스럽게 극복을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별다른

그것도 주택 같은 간단한 건축이나 가능하지 교회처럼 규모가 제법 되

대처 방법이 없다.

는 건축에선 어림도 없는 일이다. 식당의 테이블, 의자, 그리고 미처 실

그동안 내겐 오랫동안 터득해온 사무실 경영 합리화에 의해, 설계비를

시설계 당시 깊이 생각하지 못한 공간들의 변경까지, 막판에 손대어 바

받은 만큼의 범위 안에서 해 줄 것은 해 주고 손해 보지 말아야 된다는

꿀 수 있는 부분이 너무 많아지게 되자 오히려 나는 이 일로 무척 행복

생각이 늘 지배적이었다. 또 건축학과 5학년 2학기를 가르치면서 보게

감을 느끼게 되었고, 건축주로부터 더 많은 신뢰를 받게 되었다. 이제

된 건축설계 실무라는 책에서도 설계비는 밑지지 말아야 한다는 구절

돈을 벌면 얼마나 더 벌겠는가, 오히려 들어온 일에 최선을 다하여 좋은

이 수시로 나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내 나름대로 전략을 하나 바꾼

건축을 만드는 기회로 삼을 수밖에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것이 있다.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아주 중요한 깨달음이 60을 넘

그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든다.

은 나이에 생긴 것이다. 그것은 맡겨진 설계에 대해 설계비를 많이 받든

신문을 보니 불경기라 백화점의 명품 코너에서도 상품을 할인해서 팔

적게 받든 개의치 않고 최선을 다하는 건축가들이 결국 성공한다는 깨

기로 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본인의 건축을 명품이라고 생각하고 본인

달음이다. 타산적으로 따지다 보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게 되고

의 기술을 선별적으로 아껴서 잘 내어 놓지 않았던 건축가들이 있다면

결국 본인의 손해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불경기에는 명품의 솜씨를 할인해서 팔아라, 고 말해 주고 싶다. 나는

실제 사례를 들자면, 몇 년 전에 설계 경기로 Y교회를 하게 되었다. 당

아직 명품의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이번 현장 감리를 하면

선된 후에 즉시 실행된 게 아니라 1년여가 지난 후에 시작되었고, 설계

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지만서도 말이다. ⓦ

계약 시에도 겨우 설계를 수행할 정도의 비용만 받는 것으로 계약이 되 었다. 설계를 착수하고 처음에 계획을 할 때까지는 관계가 좋아 의욕적

글 | 최동규(본지 발행편집인 고문, 서인건축 대표)

으로 일을 진행했었다. 그런데 실시설계가 끝나고 검수가 시작되자 교 회 내에 설계에 관여하는 인력들이 대거 투입되면서, 설계 도서의 잘못 된 부분들을 이 잡듯이 뒤져내어 끝없이 수정하면서부터는 나와 직원 들이 지쳐 설계 초기의 열심히 해 주겠다는 마음이 다 떨어진, 의욕 제 로의 프로젝트가 되고 말았다. 자연히 건축주가 오라고 하면 가기 싫고 해주기 싫은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종탑 위치가 바뀌면서 건축가의 의견을 들어 봐야 겠다고 하여 우리는 실로 오랜만에 그 부분을 정성들여 해 주게 되었다. 그러자 모든 건축 위원들이 수긍하고 우리말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 문득 어차피 설계비 덜 받은 것도 우리고, 더 달라고 해서 받아 낼 것도 아닌 바에야 남게 되는 것은 건축뿐이란 생각이 들었 다. 이렇게 우리말을 무겁게 받아들여 준다면 이제부터라도 감리 과정 에서 최선을 다해 임해보자 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부 터는 건축주가 상의할 일이 있다고 하면 열 일 제쳐 놓고 현장을 찾으니 모든 세세한 일의 의논 상대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중요한 것은 본당의 장의자 선정하는 일에도 깊숙하게 간여되는 등, 최종 결정하는 모든 순 간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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