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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11-12, no.74 김재경의 PHOTOSSAY 14 [20]

Contents & Flow Map 구분

이종건의 건축편지 04 [38] RESEARCH [40] 한국근대건축의 현장과 이슈 09 이연경

콘텐트 오섬훈↝ 손주휘↝ 박선영↝

인물

밀양강철(도)교 GAIA TOPIC [36][74]

밀양강철(도)교↝ 덕천동↝

빙하 폭탄, 해수면 상승, 수중 도시 편집실 장소

천자[評] [48] 에스티피엠제이stpmj(이승택, 임미정)의 과.천.표.면(The Surface)

박지일, 김태형, 백승한

건축신인 비평초대석 03 [54]

사무소

어반엑스건축↝ SON-A↝ O-Scape Architecten↝

O-Scape Architecten 박선영 최우용, 이주연 젊은 건축가들에게 보내는 편지 04↝

RISING ARCHITECT 04

과.천.표.면(The Surface) 전시↝ 제13회 심원건축학술상 공모↝

[64]

SON-A 손주휘 이태현

SPECIAL FEATURE [75] UrbanEx Architects & Associates 건축가 오섬훈, Architect Oh Seom-Hoon

2020 Incheon Architect 5 선정↝

사건

ICON Party vol.015_컨퍼런스↝ 제52차 WIDE건축영화공부방↝ 제164-165차 땅집사향↝

Dialogue [79] 공간-어반엑스 건축 40년 오섬훈×전진삼 디자인 전략과 프로젝트 [90] 디자인 전략 매칭표 Skin-1 : BMW Galley Skin-2 : B Tower Skin-3 : MS Office Single Flow-1 : 공평 15, 16지구 Single Flow-2 : 양평주택 Etc. : UrbanEx 사옥

NOTICE 제13회 심원건축학술상 공모 [표2] 제52차 WIDE건축영화공부방 [123] 제164-165차 땅집사향 [125]

표지 이미지 설명: 어반엑스 사옥, 오섬훈(어반엑스건축) Ⓒ박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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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십

가로건축↝ 그림건축↝ 동양PC↝ 마실와이드↝ 목천김정식문화재단↝ 비타그룹건축↝ 삼현도시건축↝ 삼협종합건설↝ 수류산방↝ 시공문화사↝ 심원문화사업회↝ OCA건축↝ 운생동↝ 원오원아키텍스↝ 유오스↝ 유하우스건축↝ 이건창호↝ 자연앤인문집↝ 해안건축↝ 현일건축↝ 헌터더글라스 코리아↝

생산자

↝강병국 ↝김경진 ↝김근호 ↝김기중 ↝김기현 ↝김명규 ↝김미현 ↝김연흥 ↝김영철 ↝김용남 ↝김재경 ↝김진휴 ↝김태만 ↝김태형 ↝김현섭 ↝남호진 ↝박달영 ↝박상일 ↝박승준 ↝박영채 ↝ 박지일 ↝박진호 ↝박혜선 ↝백승한 ↝백현아 ↝서정일 ↝손도문 ↝오승현 ↝윤세한 ↝이승용 ↝이승택 ↝이연경 ↝이윤정 ↝이종건 ↝이주연 ↝이태규 ↝이태현 ↝임근배 ↝임미정 ↝임재용 ↝장윤규 ↝전유창 ↝전진삼 ↝정승이 ↝최우용 ↝최욱 ↝최원영 ↝최정권 ↝편집실 ↝한동수 ↝한제임스정민

지면 123 46 46 11 122 16 3 표4 표2 9 20, 48, 75 125 1 48 표2 125 14 19 123, 125 표1 48, 125 46 125 48 46 표2 15 125 1 13 48 40 12 38 54, 62 표2, 표3 64 10 48 6 18 46 46, 75, 125 8 46, 54, 60 5 17 46 123, 125 표2 7


20 : 11-12, no.74 pp.20-35 김재경은 인문학적 감각과 절제된 심미성을 바탕으로 공간과 건축, 인간의 풍경을 기록하는 사진가다.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에 참여했으며 사진집 『자연과 건축』, 『MUTE』, 『MUTE 2: 봉인된 시간』, 『수원화성』(공저) 및 『셧 클락 건축을 품다』, 『김중업의 서산부인과 의원』(공저) 등의 책을 냈다. 현재 본지 사진총괄 부편집인이다. pp.38-39 이종건은 조지아 공과대학교 건축대학에서 역사/이론/비평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경기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5년 《건축평단(ACA)》을 창간해 지금까지 편집인 겸 주간을 맡고 있다. 건축이론서 『건축의 존재와 의미』(1995, 기문당)와 『해체주의 건축의 해체』(1999, 발언)를 냈다. 『해방의 건축』(1998, 발언), 『중심이탈의 나르시시즘』(2001, 이석미디어), 『텅 빈 충만』(2004, 시공문화사), 『건축 없는 국가』(2013, 간향미디어랩), 『문제들』(2014, 시공문화사), 『건축사건』(2015, 수류산방) 등 여러 권의 건축비평서를 냈다. 에세이 『인생거울』(2015, 수류산방)과 장편소설 『건축의 덫』(2015, 정예씨), 『건축학개론』(2020, ACA)을 냈다. 『형태와 기능: 예술. 디자인. 건축에 대한 소견』(1987, 기문당), 『추상과 감통』(2006, 경기대학교출판부), 『차이들: 현대건축의 지형들』(2004, 시공문화사), 『건축 텍토닉과 기술 니힐리즘』(2010, 시공문화사), 『건축과 철학: 건축과 탈식민주의 비판이론(바바)』(2010, 시공문화사)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건축작품 〈삼가〉(2005, 한국 건축가협회 초대작가전)를 전시했으며, 첫 번째 건축개인전 〈Outcast/ed〉(2014, 건축전문갤러리 onground)를 열었다. 그 외에 『시적 공간』, 『살아있는 시간』, 『깊은 이미지』, 『영혼의 말』 등 ‘이종건의 생활세계 짓기 시리즈’(궁리)를 냈으며, 철학서 『아름다움: 아름다운 삶을 위한 개념의 정식화』(2019, 서광사)를 냈다. 현재 본지 명예고문이다. pp.40-45 이연경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건축역사이론 전공으로 석・박사를 취득했다. 심원건축학술상 제6회 4

Profile of the Writers and Protagonists 수상자이며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학사지도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인천대학교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건축역사학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2015) 및 『사진으로 만나는 개항장 인천의 경관』, 『인천, 100년의 시간을 걷다』(공저) 등이 있다. pp.48-49 박지일은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월간 《건축문화》 기자를 역임한 건축&디자인 전문 에디터다. 다수의 건축 매체와 건축사진 온라인 플랫폼, 리빙지, 디자인 웹진 등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다양한 건축 콘텐츠 제작 및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건축가 초청강의 〈땅집사향〉의 MC이며, 월간 《BOB》 편집책임자로 활동 중이다. 현재 본지 섹션편집장이다. pp.50-51 김태형은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에서 한국의 근대건축을 공부하고 「구 서울역사의 건축구법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목천김정식문화재단, 목천건축아카이브의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한국의 근・현대건축 자료를 수집, 기록・연구하고 있는 건축전문 아키비스트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현재 본지 편집위원이다. pp.52-53 백승한은 가톨릭관동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도시설계 및 건축역사이론을 가르치고 연구한다. 주요 연구 관심분야는 학제 간 도시연구, 하부구조론, 일상생활의 철학적 담론, 공동체와 공공성, 분위기와 정동이론, 신유물론, 동아시아의 시각문화와 매체경관 등을 포함한다. 최근 연구는 《Positions: Asia Critique》와 《Korea Journal》을 포함한 다수의 국내외 논문집에 게재되었다. 또한 정림건축의 《SPACE(공간)》 특별호 『일상감각: 정림건축 50년』(2017)을 총괄 기획하였으며, 서인건축 4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 『다른, 상징적 제스처들: 서인건축 40년의 비평적 탐문』(2018)의 주요 저자로 참여하였다. 현재 본지 편집위원이다. pp.54-63 박선영은 본문에 포함

pp.60-61 최우용은 인천에서 태어나고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인천에서 졸업했다. 2018년, 일본 건축가 단게 겐조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교 졸업 이후 줄곧 설계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일본건축의 발견』 등 몇 권의 책을 출간했고 《와이드AR》, 《건축평단》, 《공간(SPACE)》 등에 몇 편의 글을 실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기관지 《나라경제》에 몇 해에 걸쳐 건축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우리 건축의 정체성과 주체성에 대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글을 쓰며 공부하고 있다. 2019년 제10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본지 편집위원이다. pp.62-63 이주연은 서울시립대학교 및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종합예술지 《공간》 건축담당 기자 활동을 시작으로 디자인전문지 《꾸밈》 편집차장, 건축+인테리어전문지 《플러스》 편집장, 현 편집체재로 성격을 굳힌 《공간(SPACE)》의 편집장과 주간을 역임했다. 그 후 건축잡지 월간 《건축인(poar)》 공동편집인으로도 활약했다. 초대 한국건축기자협회장 및 건축저널리스트포럼을 주도했다. 도코모모코리아 부회장을 역임하며 건축비평과 근대건축보존 운동에 앞장서 왔다. 현재 본지 부발행인이다. pp.64-73 손주휘는 본문에 포함 pp.64-73 이태현은 THE A LAB(에이랩 건축연구소)의 대표 건축가이다. 동시대의 아이디어, 미학, 기술 그리고 친환경적 요소들의 통합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건축디자인을 추구하며, 건축을 기반으로 한 도시, 공공, 예술,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국민대학교 건축대학을 졸업했고, 바틀렛 건축대학 석사과정을 최우수로 졸업했다. 서울시 ‘2019 사회혁신 리빙랩’ 사업 공모에 당선되었고, ‘2018 바틀렛 서울쇼’ 기획과 전시에 참여했으며, ‘제4회 국제건축문화교류’에서 우수 교류자로 선정되어 한국건축가협회장상을 수상하였다. 젊은건축가포럼코리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대중과 건축의 소통에도 기여하고 있다. 현재 본지

편집위원이다. pp.75-121 오섬훈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0년 입사한 공간건축에서 설계실 소장으로서 작품 활동을 해오던 중 영국 AA스쿨에서 수학했으며 2006년 초 현재의 어반엑스를 설립하며 독립했다. 서울건축학교(SA) 튜터로 활동했고 줄곧 국민대학교 건축학과의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한국건축가협회 편찬위원장, 서울시 건축분쟁 조정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창원시 총괄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작품으로 성신여대 난향관, 통영수산과학관, 한성대도서관, 송도 벤처빌딩, 창원대 스마트홈전시관 등이 있다. 2000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입선(성신여대 2부관) 이후 대구광역시건축상 동상(대구KBS방송국, 2001), 경기도건축상 은상(고양시물류센터, 2002), 경상남도건축상 은상(통영수산과학관, 2003),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한성대도서관, 2004), 서울 강남구 아름다운건축상(대치동 폭스바겐전시장, 2008), 대한건축사협회 좋은 집 입선(어반엑스사옥, 2017), 인천광역시건축상 장려상(송도 갯벌타워, 2004 / 송도 BT센터, 2019) 등을 수상했다. pp.80-89 전진삼은 제4회 꾸밈건축평론상(1988)을 수상하며 건축평단에 들어섰다. 종합예술지 《공간》 편집장 역임하고 월간 《건축인(poar)》을 창간하여 초대 편집인 겸 주간을 맡았다. 13년간 계간 《황해문화》 문화비평/건축 고정필자로 활약했으며, 1980년 월간 《시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건축의 발견』, 『건축의 불꽃』, 『조리개 속의 도시, 인천』, 『건축의 마사지 1, 2』 등 비평집과 『건축은 없다?』 『IMAGEABLE PLATE-AU』 등 다수의 공저를 냈다. 현재 본지 발행인이다. p.123 강병국은 본문에 약식 표기함 p.125 김진휴, 남호진, 박혜선, 오승현 은 본문에 약식 표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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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7동(덕천마을, 2010)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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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7동(덕천마을, 2010)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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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SAY


김재경의 포토세이 14

도시마을, 덕천동과 미몽 글, 사진. 김재경 본지 사진총괄 부편집인

안양천과 학의천 합류지에 있는 안양7동, 그의 일부

방법이 없다는 동사무소를 나와 전기장판과 낡은 이불을

착시현상이며 진정 모두를 위해서는 납득할 만 한 수준이

덕천마을은 지금 없다. 1977년 대홍수로 안양이 이백여

구해 건넸다. 그때 이후로 청년의 재정착에 관련해서 지금

좋은 것이다.

명의 사망자를 낼 때 그 중심에 있었고 그래도 여전했던

아는 바 없지만, 그 무렵부터 집들이 헐려나가기 시작하자

근대는 투명한 과학적 사고로 무장해 세계를 균질하게

이 마을이 아파트단지(2016)로 바뀌며 기억의 저편으로

길냥이들의 밥차가 들어왔다. 퇴근 후에 온다는 소녀는

나누고 밝히며 문명에 일조했다. 이성과 합리적

옮겨갔다. 여기서 뛰놀던 아이들과 이웃들의 소소한

사람이 떠나고 남은 고양이들을 잊지 못해 발걸음을 멈출

이해로부터 누락된 야생의 사고는 비과학의 처지로

이야기는 벌써 배경이 희미한데 이 마을에 터 잡고 살아온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인심 살아있는 도시마을들이

내몰리는 수모를 겪었고, 그렇게 쌓아 올린 세계는

사람들의 사연들이 궁금했다.

개발논리 앞에 설 곳을 잃는다. ‘난쏘’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아성이 되었으며 끊임없이 새 것으로 머물지 못할 때

과천군 하서면 안양리(조선시대)는 안양사(安養寺)

올린 작은 공』(1978)

근대모더니티가 아니듯이 쇠락을 피치 못하는 사물의

석수동 위치

역사의 비극이 또 다른 소극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말이다.

운명은 근대성의 숙명과 어느 정도 닮았다. 우리의 경우

놓이자 안양역 중심으로 도심을 형성했다. 1960년대

2002부터 2008년까지 전국적으로 50개 지구로

압착된 역사적 시공간을 살아내며 연출한 도회적 모습은

산업화의 물결은 1호 국도경수산업도로와 철로 주변에

확산되어 추진했던 ‘뉴타운개발’은 기성시가지에 대한

현재적 삶을 그대로 반영했다. 시대와 더불어 도시의

크고 작은 공장들을 불러들이고, 덕천 마을 남쪽이

재개발방식이다. 공공이 원하는 민간사업으로 적정규모의

진화는 우연적 형태로부터 필연적 도시 형태로 발전했고,

만안구

에서 지명을 얻었고, 경부선 철도(1905)가

에서 보았던 산업화의 어두운 면처럼, 마치

공업지대로 변하며 주거지역이 형성되자 준공업지역으로

생활권역, 충분한 도시기반시설을 동시에 확충하는

그 도시화는 은연중 거대함을 선호하는 경향성을

변모했다. 시로 승격(1973)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종합개발사업이다. 난개발의 지역 간 격차를 없애기 위해

띠며 사회적 흐름을 보였다. 반면에 “다락과 지하실이

안양시의 벌터坪村가 안양천의 범람으로 수해를 입자

추진했으며 기성시가지에 대한 재개발방식에 다름 아니다.

없는 곳은 집이 아니다”는 집의 ‘원형적 가치’를 일깨운

수재민촌으로 불렸지만 후에 덕천마을(德泉洞)로

신시가지형 은평뉴타운, 주거중심형 길음뉴타운, 도심형

바슐라르는 기억이 머무르는 장소로, 알 수 없는 미지의

개칭되었다. 그래서일까 이곳엔 유난히 특이한 건물이

왕십리뉴타운 3개 지구로 시범지구를 지정해 시작했다.

곳을 떠올렸는지 모른다. 어쩌면 이처럼 적당히 외진

많았다. 유형뿐만 아니라 건축법의 저촉 없이 지어진

그러나 뉴타운지구 지정 이후 지분가치가 상승한

곳, 상상력이 잉태되는 공간이면 어디라도 좋을, 그래서

건물은 실물이 아니라면 때가 될 때까지 사진으로

상태에서 금융위기(2008)를 맞아 사업추진이 멈췄고

자신을 숨길 만 한 곳에서는 상상력이 발동하는 순간의

남겨야할 이유는 충분했다. 과거의 어떤 것이 현재 속에서

원주민 재정착율과 사업정당성의 문제는 거주자 중심으로

중요성 말이다. 이런 점에서 어둠은 빛의 배경이며 꿈을

다시 복원되어 완성되지 않은 형태로 드러나는 “역사의

지구지정 해제를 요구하며 그 대상과 범위가 축소되었다.

잉태하기 알맞은 환경을 제공한다. 개개인의 성취와

기원”(벤야민)처럼 말이다. 재개발 시한이 다가오자

단기간 내 너무 많은 지역을 대상으로 추진해 생긴

성공의 원인인 꿈은 미래를 보증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마지막 겨울채비로 김장을 담그던 이도, 덕천장 중국집

문제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도시개발로 얻는 긍정적인

또 꿈은 자본주의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일종의 환상

아저씨와 자전거 수리집 할아버지도, 믹스커피를 나누었던

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재적 욕망을 표출하는 점에서

차원의 이데올로기적 효과환등상로 기능하며 유토피아적

표준설비집 어른도 더할 말이 하나쯤 있겠다. 이처럼

지대의 상승은 개발이익이 반영된 것이며 필경 그 주변에

소망상을 내포한다. 그렇기에 집합적 꿈의식이 나타난

마을은 익명의 개인들이 교감과 소통이 자유롭던 곳이며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건물과 임대료는 물가에 반영되고

세계로서 우리 사회는 지금 부동산 중증에 시달리는데

공간의 구조가 다양하고 뒤섞여 잎맥처럼 발달한 길은

크게 보면 시민의 입장에서 별반 차등이 없다는 견해도

과거의 어떤 것이 현재 속에서 각성의 형태로 나타나는,

돌아가더라도 또 이어져 그 길이 하나가 아니었다. 반면에

있다. 또 불가분 재산가치의 변동에 따라 보유세 증가는

강남풍의 미몽에서 깨어날 “집합적 각성’을 생각해 볼

그래서 통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골목길을 없애고 대로를

당연한 반면 그 집에 계속 살아가야할 소유자에게는 낼

때이다.

만들어 저항을 잠재우고 감시가 수월한 공간 구조적

세금만 늘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힙(hip)한 도심지와

형식을 만들어 통제사회를 구축한 과거의 사례도 있었다.

변두리 대비 지대의 상승이 등비례 하지 않는 한 그리고

최강의 한파로 모두 꽁꽁 얼어붙은 겨울날 덕천마을의

지방과의 격차가 심할수록 현금 가치는 위력을 발휘할

한 청년이 문 앞에 쌓인 눈을 치우려 빗자루 질을 하고

것이다. 주거비용이 실제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참조: 안양시 자료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있다. “내 집 냅둬!” 그 행위가 사람이 산다는 표시에 다름

큰 현실적 장벽 앞에 다주택 소유자가 아닌 한 내 집은

『아파트 한국사회』(박인석, 현암사), 『베를린의

아닌데 입은 옷이 너무 허술했다. 한파로 배관이 얼어 터져

현실의 삶을 살아야하는 곳이며 무주택자의 시름은

유년시절』(박설호 편역, 솔), 『사회과학 명저 재발견

이불이 젖고 때거리도 없다는 말에, 포대 쌀 외에 도울

깊어질 뿐이다. 때문에 재산 가치에 대한 환상은 일종의

3』(전재성 외 9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덕천마을(2013)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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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마을(2013)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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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7동(덕천마을, 2010)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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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7동(덕천마을, 2010)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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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마을(2013)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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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마을(2015)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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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에게서 소년에게1)

GAIA Topic : 빙하 폭탄, 해수면 상승 사실 우리는 이미 기후변화의 최종 단계에 바다가 어떤 모습일지 알고 있다. 그때까지 얼마가 걸릴지 모를 뿐이다. 해수면은 얼마까지 상승할까? 탄소배출량 감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21세기가 끝날 무렵 해수면은 최소 1.2미터에서 최대 2.4미터까지 상승할 수 있다. 파리기후협약의 2도 상승 목표가 달성할 만 한 목표처럼 느껴질 만큼 탄소배출량을 급격히 감축한다 하더라도 해수면은 최소 0.6미터에서 최대 1.8미터까지 상승할 수 있다. 이상하게도 우리 세대는 이런 수치를 보고 오히려 안심하는 분위기였다.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최악의 결과가 고작 몇 미터의 해수면 상승이라고 생각하자 바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들조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파리기후협약 협정문을 작성할 때만 하더라도 책임자들은 지구가 몇 도 뜨거워져도 남극의 빙하는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리라 확신했다. 21세기 말까지 해수면은 기껏해야 0.9미터 정도 상승하리라고 기대했다. 그 때가 2015년이었다. 같은 해 NASA에서는 그 기대가 한심할 정도로 안일했으며 해수면은 ‘최대’ 0.9미터가 아니라 ‘최소’ 0.9미터 상승하리라고 예측했다. 2017년 미 국립해양대기관리청에서는 21세기 말 기준으로 해수면이 2.4미터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밝혔다.

1) 이 꼭지의 명칭 ‘해에게 소년에게’는 최남선 선생(1890~1957)이 1908년 11월에 한국 최초의 종합잡지 《소년》을 창간하고 발표했던 권두시 제목에서 따왔다. 그로부터 100년 뒤 2008년 1월에 창간한 본지는 선생의 계몽주의적 정신과 시선으로 현 인류와 미래의 인류가 함께 살아갈 지구를 향한 생각을 공유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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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가 초래하는 해빙 과정은 수백 년에서 수천 년까지 걸릴 수 있다. 하지만 기온이 3도만 증가하더라도 종래에 해수면은 최소한 50미터 상승할 것이다. 파리협약 당시 2100년을 기준으로 했던 예상보다 100배 높은 수치다. 미국지질조사국에서는 해수면이 최종적으로 80미터 이상 높아질 수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세계 주요 의 거의 3분의 2가 해안가에 위치한다. (글 박스 안 두 글자를 맞춰 보시오. 정답은 p.74에 있습니다.)

p.74 37


젊은 건축가를 위해 추리는 생각 04

건축주 : ‘건축주’라는 말 대신 ‘의뢰인 혹은 클라이언트’라는 말이 바르다 글. 이종건 본지 명예고문, 경기대학교 교수

우리사회의 적잖은 건축가들은 의뢰자를 ‘건축주’라 부른다. 건물을

아니라 부스러기 사랑도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쓸 사람과 소유할 사람을 딱히 구분하지 않은 채 별 생각 없이 두루

술에 취한 사람에게 운전대를 맡긴 동승자가 자신은 이렇게 저렇게

쓰는데, 대개 건물소유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건축의 주인’을 뜻하는

할 여지가 여전히 있다고 주장하는 것만큼 논리가 궁색하다. 건축가와

이 ‘건축주(建築主)’라는 낱말은 여러 측면에서 석연치 않다. 건축은

동등한 사회적 평면에 있는 의사나 변호사는 결코 생각해낼 수 없는

구체적 사물이 아니라, 철학, 음악, 미술, 춤 등처럼 인간의 특정한 정신적

자기합리화의 궤변이다.

활동의 영역 곧 추상의 세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건축은 돌이 아니라 돌이 드러내는 아름다움이나 성스러움이듯, 벽이 아니라 벽들이 이루는

우리가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언어가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비례나 효용성이나 공간감이듯, 추상의 영역에 속하는 테크네이자 학문의

실증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어 온 영역은 언어가 젠더 평등에

한 분과다. 그리고 사랑이 그렇고 정의가 그렇듯, 추상에 속하는 대상은

대한 태도에 미치는 영향이다. 최근의 한 결과에 따르면, 무성(無性)의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철학주, 음악주,

언어는 사람들이 자신이 지각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젠더 구별에 대한

예술주’라는 말이 없다. 다른 문화에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한들 그

강조를 줄이는 쪽으로 인도하며, 그로써 무성의 언어를 말하는 사람이,

맥락에서 ‘건축주’라는 우리말은 상식의 상궤를 벗어났다는 느낌을 지울

남자와 여자 간의 ‘자연적인’ 비대칭을 덜 느낄 뿐 아니라 젠더 불평등을

수 없다.

거론하는 노고를 더 지지하는 쪽으로 이끈다. 연구자들이 판단하기에 언어는 젠더 불평등의 문제를 더 줄일 수 있는 상황을 가로막는

‘건축주’라는 용어는, 용례의 적실성 문제와 별도로, 우리의 구체적 삶의

핵심장애다. 언어는 사물에 대한 인식과 감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러시아

내용에 매우 나쁜 영향을 끼친다. 우리에게 프로젝트를 가져다주는

물은 여성이지만, 티백을 한번 담군 물은 남성이다. 다리(시계, 아파트,

사람이 ‘건축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로 그 생각에 따라

포크, 신문, 포켓, 어깨, 우표, 티켓, 바이올린, 태양, 세계, 사랑 등)가

행동하든 안 하든, 끔찍한 일이다. 건축가라면 누구나, 자신의 작업을

독일어는 여성이지만, 스페인어는 남성이다. 그 반면에, 사과(의자, 빗자루,

통해 작게는 개인의 일상에, 크게는 도시공간에 약간이나마 긍정적

나비, 열쇠, 산, 별, 탁자, 전쟁, 비, 쓰레기 등)가 독일어는 남성이지만,

변화를 끌어내고 싶어 하는데, 그리하기 위해 자본의 도움이 절실하다.

스페인어는 여성이다. 따라서 스페인어 사용자는 다리와 시계와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결코 적지 않은 물질이 투여되는데, 그 상황에서

바이올린이 힘과 같은 남성적 특성을 더 가진 것으로 여기는 반면,

물주(物主)가 거의 대부분 ‘건축주’다. 따라서 물주가 정말 ‘건축의

독일인은 그것들이 더 날씬하고 우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띤다.

주인’으로 행세한다면, 건축가는 기껏 물주의 부하직원쯤 될 수 있을 뿐

호주의 외딴 지역이 대표적인데, 어떤 문화는 왼쪽, 오른쪽, 앞, 뒤 등을

근본적으로는 종복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주인이 이렇게 해 달라,

뜻하는 공간의 어휘가 없다. 그래서 좌우대칭 평면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저렇게 해 달라는 요구를 건축가가 시종일관 거절하기란 현실적으로

호텔객실을, 우리와 달리, 전혀 다른 방으로 본다. 언어는 세계를 대하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건축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오직 자본의

태도와 대상을 느끼는 방식뿐 아니라 신념, 가치, 이념 등에도 현저한

증대밖에 없는 물주(의 프로젝트)는 건축가에게 최고의 악몽인데,

영향을 미친다. 언어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형식을 규정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구조는 그것을 강화시킬 뿐 도무지 다른 길을

틀이라는 뜻의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표현은, 그 수준을

모른다.

훌쩍 뛰어넘는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건축가는 자본의 증대가 유일한 목적인

건축은, 의술과 법과 함께 현대사회의 복리를 책임지는 세 가지

프로젝트에서도 자신의 건축적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용적률을

프로페셔널 학제이자 직능이다. 의술과 법의 실행자는 자신의 서비스를

깡그리 채우면서도, 능력만 있다면 비례, 공간, 물성 등 건축성을

제공하는 사람을 ‘의뢰인(client)’이라 부르지, ‘고객(customer)’이라

지어낼 수 있다. 따라서 겉보기에는 자본의 시녀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부르지 않는다. 두 낱말은 겉보기에 비슷한 뜻 같지만 심층적 의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생각은 분명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럴

크게 다르다. 고객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판매자와 아주 짧은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가정폭력 피해자가 온통 피해만 받는 것이

시간에 관계를 맺는 사람을 뜻한다면, 의뢰인은 전문가의 조언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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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 회계사, 건축가 등의 프로페셔널 서비스를 이용하는, 그래서

된다. 니체 또한 자신의 『Untimely Meditations』을 집필하는 동안 다른

전문가에게 긴 기간 보호받는 사람을 가리킨다.1) 고객이 가격에 따른

단편에서 앞서의 질문을 제기했는데, 그의 답변은 이렇다. 건축가는

가치를 구매한다면, 의뢰인은 전문적인 지식, 경험, 신뢰를 산다고 할 수

예술가로서 “수많은 정신(영혼)의 파급적 영향, 수용적인 관찰자와

있다. 그리고 의사나 변호사는 “나는 닥터 파우치입니다.”라는 식으로

생산력을 지닌 차후의 건축가들의 수많은 다양한 반향들”을 위해

자신을 프로페셔널로 소개한다.

짓는다. 그에 따르면, 건축의 유일한 목적은 건축을 수용할 영혼을 지닌 자들, 그리고 도래할 건축가의 출산이기 때문이다.3) 너의 건축주는

건축가는 어떤가? 건축가 자신마저 자신을 프로페셔널로 보지 않는다면,

누구(무엇)인가? 그리고 우리의 건축주는 누구(무엇)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사회적 장소에 그렇게 출연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건축가를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없거나 마련하고 있지 않는 건축가는 진중한

프로페셔널로 볼까? 누군가가 건축가를 프로페셔널로 보지 않는다고

숙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상품인 세상이며, 우리 모두 상품을

어떻게 불평할 수 있을까?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규정하지 않는다면

팔아먹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지식도 상품이고 예술도 상품이며, 심지어

다른 사람이 우리를 규정하게 되고, 우리는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인간 자신(의 몸과 마음)도 상품이다. 누구나 무엇이든 자신의 것을 팔

프로젝트를 얻기 위해, 그리고 그것이 수반하는 물질적 이득이나 약간의

시장(市場) 없이는 품위는 고사하고 생존마저 힘겹다. 그런데 그렇다고

명예를 위해 물주의 삶의 방식에 휘말려 거기에 따라 사는 사람은,

해서 모든 것을 상품논리로 환원시킬 수는 없다. 그리하는 것은 살아도

우리가 건축가라 부르지 않는다. 그는 다만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나는 용기와 이상주의로, 그리고 또한 중요한 것은

벌어먹고 사는 평범한 장사꾼에 불과한 까닭에, ‘건축가’의 명칭을 부여할

삶, 친구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으로, 불공평한 이 세상을 살기 더 좋은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건축가라고 당당히 내세울 수 있는 자라면,

곳으로 만들고자 건축을 창조했다.” 니마이어(O. Niemeyer)의 말이다.

건물소유자나 의뢰인이라는 용어대신 ‘건축주’나 고객이라는 용어를 무자각하게 쓰면 안 될 일이다. 자신이 진정 건축가라고 생각하거든, ‘건축주’라는 말을 당장 버리고 그 대신 ‘의뢰인 혹은 클라이언트’라는 말을 써야 하리라. 그렇다면 ‘건축주’ 곧 건축의 주인은 누구인가? 건축가는 누구를 위해 짓는가? 내가 알고 있는 의미심장한 대답은 두 가지인데, 미스와 니체에게서 발견한다. 빌헬름 로츠가 미스의 집들을 언급하며 거기서 건축주는 ‘새로운 인간’이라고 했다.2) 달리 말해, ‘정신이 깃든 삶’을 사는, 따라서 당대인보다 더 고양된 인간이 건축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그로써 건축은 목전(目前)의 삶이 아니라 지금여기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복무하는 투쟁의 술(術), 그리고 건축가는 그것을 실행하는 전사(戰士)가

1) 어원에 따르면, 의뢰인(client)은 “따르는 사람, 기대는 사람”을 뜻하는 라틴어 “clientem”에서 유래한 용어로서, “다른 사람의 보호 아래 사는 사람”을 뜻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귀족의 보호 아래 놓인 평민, 외국인, 심지어 연합국이나 식민도시도 종종 클라이언트였다. 클라이언트의 분명한 의미는, ‘보호받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사람’인데, 1400년경 ‘법률가의 의뢰인’으로 쓰이다가 1600년경 범위가 확장되었다. 고객(customer)은 14세기에는 “세관원, 통행료 수령자”를, 1400년경에는 “상품이나 물자를 구매하는 사람, 동일한 장사나 길드에서 관례적으로 구매하는 사람”을, 중세 라틴어 “custumarius”는 말 그대로 “관습에 온당한”을 의미했는데, 셰익스피어에게 그 말은 “창녀”를 뜻하기도 했다.

3) Tilmann Buddensieg. “Architecture as Empty Form: Nietzsche and the Art of Building.” In Nietzsche and “An Architecture of Our Minds”. Ed. by A. Kostka and I. Wohlfarth. The Getty Research Institute for the History of Art and the Humanities, 1999.

2) Fritz Neumeyer. 꾸밈없는 언어: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말과 건축. 김영철·김무열 옮김, 동녘, 2009. 노이마이어에 따르면, 미스가 추구하는 새로운 건축은 “새로운 삶의 형식을 얻기 위한 거대한 투쟁의 한 부분”으로서, 미스는 다음의 주장을 생애 마지막으로 남겼다. “우리에게 결정적인 것은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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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서치

한국근대건축의 현장과 이슈 09 밀양강철(도)교 : 20세기 밀양시 근대 도시화의 중요 지점 글, 자료. 이연경 인천대학교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

한국 철도의 시작과 그 흔적들

경부철도회사가 1898년 부설권을 획득하여

철도가 부설되고 운영되기 시작함에 따라

철도의 부설은 근대도시화, 산업화의 과정과

1901년 공사를 시작하였고 1905년 서울-

철도역 및 철도 선로 주변 도시들에 많은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산업혁명의 산물인

초량 간 철도 영업이 시작되었다. 20세기를

변화가 있었고, 철도교통을 통한 통근, 통학,

증기기관차는 빠른 속도로 지점과 지점 간의

전후하여 부설된 경인선, 경의선, 경부선이

상업 등이 빈번해지면서 도시 지역 주민들의

물리적 거리라는 한계를 뛰어넘으며 기차

각각 미국인, 일본군, 일본철도주식회사에 의해

일상생활도 변화하였다. 특히 직영화 이후에는

레일이 깔린 전역을 연결했을 뿐 아니라

철도 부설이 시작되었던 까닭에 경인선, 경의선,

철도국의 건축사업 역시 매우 활발하여 운동장,

기차역이 있는 도시와 도시 사이의 차이를

경부선의 운영방식도 서로 달랐다. 그렇지만

병원, 관사 등의 철도관련 시설들이 집중적으로

점차 지워 나갔다. 한편 기차가 있는 곳과

대한제국이 통감부 체제하로 들어가게 되면서

건축되었다. 그러나 한반도 철도의 경우, 군대가

그렇지 않은 곳의 격차는 점점 더 커져가며

철도 역시 통감부 철도관리국에 직속되어

중심이 되어 철도가 부설되었으며, 철도운영

도시와 시골이라는 구분을 곤고히 하였다.

일본 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국유철도 체제로

방식이나 철도역 주변의 철도용지를 확보하는

운영되었다. 1910년 8월 29일 이후에는

방식 등에서 수용을 통해 반강제적으로 토지를

1876년 개항 이후 조선에서도 철도 부설의

조선총독부 철도국에서 철도업무를 총괄하다가

확보하는 등 식민지적 특수성이 드러나기도

필요성은 개화파나 외국인들에 의해

1917년 7월 31일부터 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

하였다. 철도역 주변에는 철도 관사들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으나, 본격적으로 철도

위탁하였으나 1925년 4월 1일부터 조선총독부

이루어진 관사 단지들이 다수 건설되었고 그

문제가 다루어진 것은 1894년 갑오개혁시

직영으로 환원되어 철도국에서 전국의

중 일부는 여전히 남아 도시 재생의 뜨거운

공무아문(工務衙門)에 철도국(鐵道局)이

철도업무를 담당하였다.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재개발사업이 예정된

설치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갑오개혁이 등록번호

문화재명

건립연도

세부 분류

겪으며 철도부설권은 외국인들에게 넘어가게

250

서울 한강철교

1기 1900 2기 1912 3기 1944

철도교

되어, 1896년 미국인 모스(J.R.Morse)와

406

칠곡 왜관철교

1908

철도교

프랑스인 그릴(Grille)이 각각 경인선 부설권과

79

파주 경의선 장단역 죽음의 다리

미상(대한제국기)

굴다리

경의선 부설권을 획득하였다. 모스는 1897년

104

울산 구 삼호교

1924

도로교량

112

철원 금강산 전기철도교량

1926

철도교(폐선)

579

구 만경강철교

1928

철도교(폐선)

254

영천 구 화룡교

1929

도로교량

운행이 시작되었다. 경의선의 경우 프랑스인

145

창녕 남지철교

1931

도로교량

그릴이 처음 철도부설권을 획득하였으나 자금

59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1934

굴다리

조달의 어려움으로 1899년 대한제국 정부에

111

태백 장성이중교

1935

철도교(위, 폐선), 도로교(아래)

대한제국 정부의 서북철도국(西北鐵道局)에

232

공주 금강철교

1933/1952(복원)

도로교량

의해 경의선 부설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얼마

639

정암철교

1935년 준공, 1958년 개축 (6.25전쟁으로 일부 파괴된 후 재건)

도로교량

110

화천꺼먹다리

1945

도로교량

26

철원 승일교

1948-1958

도로교량

143

고성 합축교

1948, 1960

도로교량

실패하고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의 혼란을

3월 경인선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자금난 등으로 인하여 결국 일본에 부설권을 양도하였고, 이어서 일본이 공사를 진행하여 1899년 처음으로 인천-노량진 간에 기차

다시 철도부설권을 돌려줌으로써 1902년

지나지 않아 러일전쟁이 발발하였고 이때 일본이 경의선을 임시군용철도화하고자 함에 따라 경의선 부설 역시 일본에 의해 추진되었다. 이어 경부선은 일본이 설립한 1

40

1. 국가등록문화재로 관리중인 교량들 (출처: 문화재청, 일제강점기 형성 유산(건축물)의 가치 정립 및 보존・활용 방안 연구, 2019 를 참조하여 작성)


상황에서, 관사 단지가 상업적으로 활용되며

경부선 철도부설과 함께 건설된

신시가지가 형성될 기반이 마련되었으나 이

보존을 둘러싸고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는

밀양강철(도)교

지역은 평야지대라 밀양강의 잦은 범람으로

대전 소제동 관사 단지가 그 대표적인 장소라

1900년 최초로 건설된 후 한국전쟁 때

인해 홍수의 피해가 컸다. 주거지는 기존의

할 수 있다. 철도문화마을로 보존되고 있는

파괴되었지만 이후 다시 복구한 한강철교가

밀양읍에 위치하였으므로 밀양역에서 내린

전남 순천 조곡동 관사 단지를 비롯하여

문화재로 지정된 반면 한강철교만큼이나 그

이들은 도보로 혹은 인력거를 이용하여

안동이나 밀양 등에도 관사 단지가 비교적 큰

역사가 깊은 밀양강철(도)교는 현재 철거

밀양읍으로 이동하였는데 현재 밀양교 위치에

규모로 잘 남아 있는 상황이다. 철도 관사들을

위기에 놓여 있다. 밀양강철(도)교는 하행선이

있던 주교(舟橋)배다리를 주로 이용하였다. 이에

제외하고는 용산에 남아 있는 철도 병원이

지나는 1903년 건설된 철교와 상행선이

192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는 철교 건설이

근대 철도의 부설로 만들어진 시설들 중 거의

지나는 1945년 건설된 철교로 이루어져

본격적으로 논의되어 1929년 밀양교라는

유일하게 남은 도시 시설이라 할 수 있다.본지

있는데, 1901년 시작된 경부선 철도 공사는

이름으로 철근콘크리트 교각이 별도로

2019년 9-10월호(통권 68호) 참조

1904년 완공되었고, 1905년 전 노선이

부설되기도 하였다. 당시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었는데 밀양강철(도)교가 있는 밀양-

지나는 밀양강철(도)교는 용두동에 있다 하여

한편 철도부설과 함께 만들어진 철도역과

성현(청도군) 구간은 1904년 4월 준공되었다.

용두철교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급수탑은 다수가 남아 현재 문화재로 관리되고

밀양교의 건설 이전인 1902년 밀양읍성이

있다. 등록문화재 중 철도역은 20여 개,

철거되기 시작하였고 밀양읍성의 성돌들은

밀양강철(도)교는 일제강점기 신문에서 각종

급수탑은 10여 개로 그 비중이 꽤 높은 편이다.

밀양강철(도)교의 교각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건사고와 함께 자주 등장한다. 주로 익사나

또한 철도가 강 등을 지나기 위해 만들어진

밀양역은 기존의 밀양읍내에서 남쪽으로

낙뢰로 인한 감전사, 철교 부근에서 발견된

한강철교를 비롯한 교량들도 일부 문화재로

떨어진 지역인, 밀양강 건너편에 위치하였다.

사체 등 좋지 않은 사건에 관련된 기사들이

관리 중이다. 현재 국가등록문화재로 관리 중인

1911년 발행된 『朝鮮鐵道線路案內』에 따르면,

주로 많았는데, 이는 신문 기사의 특징이기도

교량은 15개소인데 이 중 철도교는 5개소로

당시 밀양읍 인구는 4,000여 명이었는데

하니 굳이 거기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어

한강철교를 제외하고는 전부 더 이상 기차가

밀양역 주변에는 약 100여 호의 일본인들이

보인다. 밀양강철(도)교의 부설과 밀양역의

운행되지는 않는다.

주로 거주하였다. 밀양읍에서 떨어진 지역에

건설은 기존의 시가지인 밀양읍이 남동쪽으로

역이 위치하게 됨에 따라 역 주변에는

확장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밀양역 앞에 일본인

주교

밀양강철교

밀양역

2

2. 1920년대 지형도에서 보이는 밀양읍과 밀양역, 밀양강철(도)교의 위치

41


3

시가지가 건설되었을 뿐 아니라 기존의 밀양읍 일대와 밀양역 앞을 잇는 도로를 따라 삼문리 일대가 시가지로 개발된 것이다. 밀양강이 놓여 있어 물리적 경계가 형성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잦은 범람으로 인해 시가지 확장이 쉽지 않았으나, 경부선 철도의 부설과 제방의 건설, 밀양강철(도)교와 밀양교의 부설, 역전에서 밀양교까지를 잇는 도로의 부설은 20세기 밀양의 시가지 확장 방향을 결정짓는 주요 이유가 되었다. 기차가 더 이상 다니지 않는 철도교의 미래는? 2015년 밀양시는 밀양강철(도)교의 소음・진동으로 인한 시민 불편 등을 이유로 국토교통부에 밀양강철(도)교 개량을 요청하였고 2018년 4월 관련부처의 허가, 승인을 얻어 본격적인 개량 공사가 시작되었다. 한국철도시설공단 영남본부가 시행하고 밀양시가 지원하는 이 사업은 총 1,458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2021년 6월 개통 예정으로 기존의 무도상 판형교를 대신하여 유도상 슬래브 교량방식의 철교로 교체하는 사업이다. 신설 중인 철교는 현재 밀양강철(도)교의 상행선과 하행선 사이에 건설되고 있는데, 밀양시에서는 새로운 철교의 건설 이후 기존의 철교를 전부 철거하고 신설 철교에 야간 조명을 설치하여 새로운 관광명소로 활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2018년 밀양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밀양읍성의 성돌을 사용하여 만든 밀양강철(도)교의 보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4

42

3. 1929년 5월 준공된 밀양철교(본문의 밀양교)(출처: 조선시보 1929.06.01. 기사) 4. 밀양강철도교 전경(출처: 朝鮮鐵道線路案內, 1911)


밀양교

밀양강철교

밀양역

5

나오면서 밀양강철(도)교의 철거에 제동이

보존할지 등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방안을

복원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걸리기 시작하였다. 몇 달 전인 올해 7,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여전히 사용

사실상 1904년 밀양강철(도)교가 건설되면서

8월에는 밀양강철(도)교의 보존과 철거를 두고

중인 한강철교나 아예 폐선이 되어 관광코스의

밀양읍은 근대 도시화에 있어 유리한 위치를

시민대토론회, 주민공청회가 열리는 등 여전히

일부로 활용 중인 구 만경강철교 등과는 달리

선점하게 되었으며, 밀양강철(도)교가 놓인

활발하게 논의가 진행 중이다.

바로 옆에 새로운 철교, 그것도 고속으로

위치와 그로 인해 밀양역의 부지 선정은

달리는 KTX가 달리는 철교가 지나기 때문에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20세기 동안 밀양시의

보존을 주장하는 시민들은 밀양강철(도)교가

관광객을 위한 인도교로 사용하기에는 다소

시가지 확장을 결정짓는 이유가 되기도

한강철교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철교이며

무리가 있다는 게 철거를 주장하는 입장이다.

하였다. 즉, 밀양강철(도)교는 밀양읍성의

경부선 철교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철교라는

성돌로 만들어졌다는 의미 외에도 밀양의

점과 철교의 교각에 밀양읍성의 성돌이

여기에서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점은

도시화 과정에 있어서도 의미가 있는 곳이라는

쓰였다는 점, 그리고 많은 밀양시민들의 기억

밀양강철(도)교의 의미를 ‘밀양읍성의 성돌’에만

점을 기억하였으면 한다. 철거의 기로에 선

속에 밀양강철(도)교가 자리 잡고 있다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밀양읍성의

밀양강철(도)교, 1년 후에도 밀양읍성의 돌로

점을 들어 밀양강철(도)교를 보존해야한다고

성돌이 밀양강철(도)교의 보존 가치에 있어

만들어진 밀양강철(도)교를 바라보며 100년을

의견을 내놓고 있으나, 1904년 건설된 하행선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에, 또 다른

넘는 시간 동안 달려온 기차를 기억할 수

철교만 보존할지 아니면 상행선 철교까지 모두

대안으로는 이 성돌을 다시 가져가서 읍성을

있을까?

5. 1960년대 지도에서 보이는 밀양읍과 밀양역, 밀양강철(도)교의 위치 (철도교는 상행선, 하행선으로 분기되었다)

43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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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밀양강과 밀양강철(도)교 7. 1904년 밀양읍성의 성돌로 건설된 밀양강철(도)교 하행선


8

9

참고문헌 1. 朝鮮總督府鐵道局, 朝鮮鐵道線路案內, 1911, 朝鮮總督府鐵道局 2. 朝鮮總督府 鐵道局, 朝鮮總督史, 1940, 朝鮮總督府 鐵道局 3. 손길신 (2014). “한국철도 1877~1914년 주요사항 정리”. 《레일러》. 17호 (서울: 미래테크) 4. 이뉴스투데이 2020.08.08. 밀양강 신설 철도교, 기전 철도교와 어색한 동행

8. 밀양강철(도)교 상행선 9. 기차가 지나고 있는 밀양강철(도)교 하행선

45


I N

C H E

O Vol. 015

파티

N 46

Incheon Architect 5 와이드AR 선정, 2020 인천 아키텍트 파이브 시상식 및 기념렉처 ●

수상자: 김근호(하운건축 대표_기성부문), 김경진(샴건축 대표_신인부문)

일시: 20년 11월 7일(토) 4:00pm~6:00pm

장소: 인천건축사회관 2층 회의실(인천 중구 제물량로 203-1)

NOV 7th

*참석인원은 선착순 50인 이내로 제한함. 행사 당일 마스크 착용 후 입실 가능함

Conference 인천건축의 디자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문가 포럼 ●

주제: 인천건축의 미래는 안녕한가?

발표: 전유창(아주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박진호(인하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패널: 최정권(건축사, 발트건축 대표), 최우용(건축비평가)

좌장: 전진삼(와이드AR 발행인) / 사회: 백현아(건축사, 이화건축 대표)

일시: 20년 11월 14일(토) 3:00pm~6:00pm

장소: 인천건축사회관 2층 회의실

NOV 14th

*참석인원은 선착순 50인 이내로 제한함. 행사 당일 마스크 착용 후 입실 가능함

Open Studio 2019 Incheon Architect 5 수상자 강신원 건축사 초청 ●

행사: The Day of MARIS Design Group

일시: 20년 10월 24일(토) 4:00pm~7:00pm

장소: 인천광역시 남동구 호구포로 219 세종프라자 802호

OCT 24th

*당일 참가인원은 선착순 30인 이내로 제한함. 행사 당일 마스크 착용 후 입실 가능함 *예정 공지했던 아벨건축과 XECT건축의 오픈 스튜디오는 사무소 내부 사정으로 취소함

Note 주최 간향클럽, 2020 인천건축문화제 조직위원회 주관 격월간 와이드AR 후원 인천광역시, 대한건축사협회 인천광역시건축사회 협찬 이건창호

2020


에스티피엠제이stpmj(이승택, 임미정)의 과.천.표.면(The Surface)

CRITICISM

1. 과.천.표.면 설치 현장 Ⓒ김재경


천자[評]

‘여전한’ 주제에 응답하는 ‘여전한’ 그들의 해답 글. 박지일 본지 섹션 편집장

〈MMCA 과천 야외프로젝트〉는 2014년부터

프레임은 가벼우면서 내구성이 좋고, 탄력을 Poly-Oxy-Methylene

프로젝트 역시 에스티피엠제이의 포트폴리오를

2017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된

가진 합성수지(POM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의 새로운 시즌을

만들었고, 반사 재질의 나일론 메쉬가 원판의

이들의 작업을 단순히 재료적 측면에서만

연상시킨다. 연령의 제한을 둔 추천 공모

윗부분을 감쌌다. 이 구조물들은 접촉하거나

바라보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다. 스스로도

방식과 최종 결과물이 설치 작품인 것, ‘휴식

바람이 불면 적당히 흔들리며 방울 소리를

재료의 프레임에 갇히는 것을 심하게

공간’이라는 주제 등, 형식과 방법들이 상당히

내어, 단순히 바라보는 대상으로써의 작품을

경계한다.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그러했듯,

닮아 있다. 건축계에서 나름 주목받은 흥미로운

넘어 시각, 촉각, 청각적 상호 반응을 통해

이번 프로젝트도 새로운 재료의 활용을

전시가 새로운 장소에서 재개되는 것이 반가운

주변의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감각적 매체가

의도하지 않았고,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소식임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쉼’이라는, 달리

되는 것을 의도했다.

위해 선택된 재료였음을 강조했다. 주어진

표현된 휴식공간에 국한된 비슷비슷한 주제는

이번 공모는 유독 실험적 태도를 견지하는

현실 속에서 건축의 다양한 요소가 가지는

이제는 좀 진부하다. 최종 당선자로 선정된

건축가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그 사이에서

가능성을 넓히는 작업을 하고 싶다며 최근에는

에스티피엠제이stpmj(이승택, 임미정)는 미술관

에스티피엠제이는 대상지의 대지를 읽어내는

재료라는 틀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도

야외의 공간적 변이보다는 여전히 그들다운

탁월한 분석력과 물리적인 제약 등을 기술적,

전했다. 건축가로서 특정 프레임에 갇히는

방식으로 이 진부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조적으로 영리하게 해결했다는 평가를

것은 부담스러울 터다. 그럼에도 건축의

내놨다.

받았다. 에스티피엠제이는 그간 목재와

가장 원초적인 요소인 재료에 대해 끊임없이

초록이 만연한 얕은 경사지에 동일한 크기의

콘크리트, 벽돌, 알루미늄 등 흔히 볼 수 있는

고민하고 실험하는 그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원판과 얇은 기둥으로 이뤄진 700여 개의

일반적인 재료들을 새롭게 해석해 공공미술

여전히 유효할 것 같다.

구조물을 지면을 따라 얹혀 새로운 수평면을

성격의 설치작품 뿐 아니라 실제 프로젝트에

형성한다는 아이디어다. 기둥과 원판의

접목하는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해 왔다. 이번

)로

장식할 새로운 ‘재료 시리즈’의 하나다.

2

2. 과.천.표.면 공모전 출품작 전시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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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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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과.천.표.면 설치 현장 속 관람객 Ⓒ김재경 4. 과천 국립현대미술관과 과.천.표.면 Ⓒ김재경


천자[評]

대지를 감각하는 기관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그 〈표면〉은 사람과

글. 김태형 본지 편집위원

자연의 사이에서 감각적으로 상호작용한다. 단면적으로도, 진입 시점에서의 부재 높이는

“자연과 사람이 만든 세계를 대조적으로

재해석하고,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보통사람의 가슴 정도이다. 관람객이 원판을

만듦으로써 자연은 그 자연의 맛이 더

앞으로 ‘야외 전시장’이 가져가야 할 새로운

헤치며 작품 안으로 나아가면, 점점 낮아지는

나고, 사람이 만든 조경은 자연이 만든 것이

문법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담담하게 가꾸어

경사도를 따라 관람객은 〈표면〉 속으로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알려줌으로써 그대로가

온 미술관의 자연환경 속에서, 완만한 경사도를

빠져든다. 부재의 높이는 단면적으로 일정하기

각기의 미를 더욱 고조시켜준다.”

가진 부채꼴 모양의 대지는 그 꼭지점에 의해

때문이다. 〈표면〉속에 있는 동안 우리는 시간,

건축가 김태수, 김인석이 1986년 과천

방향성을 갖게 되는데, 멀리 청계산과 매봉산의

날씨,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햇빛은

국립현대미술관을 준공시키고 한 말이다.

능선을 시각적으로 교감할 수 있다.

반투명의 원판에 투과되어 다양한 빛과

이러한 배경에서 미술관은 그 첫 번째

그림자를 제공하며, 비가 오면 빗방울이 원판

〈MMCA 과천프로젝트 2020〉은 과천관 및

작품으로써 에스티피엠제이stpmj(이승택,

표피에 맺히며 다채로운 형상을 만들어 내는가

야외조각장을 대상으로, 미술관 안과 밖의

임미정)의 〈과.천.표.면〉(The Surface, 이하

하면, 바람은 부재에 부딪히며 오묘한 소리를

관계로부터 새로운 전시의 장이 열릴 수 있도록

‘표면’)을 선보였다. 1m 직경의 원판Nylon Mesh

내기도 한다. 또 관람객은 〈표면〉 아래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전략프로그램이다.

disk

자신의 위치를 잃어버릴 수도 있으며, 또는

이제 코로나19 감염병의 대유행 속에서,

제작하였는데 그 형태는 마치 연꽃잎과 같다.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다. 중간

지난 30여 년 동안 사용되어 온 미술관의

700여 개의 단일 부재는 완만한 경사도를 가진

중간 놓인 간이 계단은 〈표면〉 위를 잠시 오를

실천양식이 앞으로 어떠한 형태와 질감으로

대지에 촘촘히 정착되었다. 그 전경을 조감하면

수 있게 한다. 관람객은 〈표면〉의 위아래를

POM pole

과 기둥

을 연결하여 단일 부재로

layer

이 자연에 떠 있는

변화해야 하는가? 국립현대미술관은 특히

새로운 인공적인 부유물

과천관의 ‘야외공간’이 갖는 조건적 상황을

듯하다. 설치작품 〈표면〉은 미술관의 자연과

오가며 과천의 자연과 시각적, 촉각적, 청각적으로 교류할 것이다.

5

5. 과.천.표.면 설치 현장 속 관람객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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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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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과.천.표.면 설치 조감 Ⓒ김재경


천자[評]

사건 그리고 분위기에 주목한다. 사람들은 〈표면〉 위쪽에 위치한 파라솔과 선베드를

분화하는 표면

선호하는 듯하다. 〈표면〉을 가로지르는 행위가

글. 백승한 본지 편집위원

경험은 정적이다. 탐험하기보다는 조망한다.

역동적인 종류라면, 파라솔과 선베드의 시야의 앞에는 청계산과 매봉산이 위치해

설치 작업의 이미지와 그 실제 모습은

한 가운데에서 양 손을 옆으로 펼치고 이를

있어 이를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비슷하면서 다르기 마련이다. 설치한 작가의

음미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어느 건축가의

제공한다. 미술관 방문을 위해 많이 걸어

의도와 관객의 경험 방식 또한 그러하다.

말을 빌리자면, 이 여인은 〈표면〉의 “촉각성”에

다니느라 지친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에스티피엠제이stpmj(이승택・임미정)의

충만히 반응하며 “시적 감흥”을 느끼고 있는

곳이 된다. 선베드는 행위가 일어나는 주요

〈과.천.표.면〉(The Surface)을 방문한 나의

듯하다. 일상 공간은 환상적 세계가 되고,

무대가, 그리고 “시각・촉각・청각적 상호반응을

첫인상이다(이하 ‘표면’). 매체에 소개된

익숙한 풍경은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참여를

경험”할 수 있는 〈표면〉은 무심한 배경이

이미지에서 보는 〈표면〉은 한적하고 여유가

촉발하는 설치미술 작품의 극적 상황은

된다. 이를 반드시 형상/배경의 역전으로 볼

있으며, 이국적이다. 〈표면〉을 구성하는

늘 그대로 구현되지 않는다. 실제 구조물

수는 없겠지만, 두 가지 서로 다른 요소들이

700개의 구조물은 서로 닿지 않을 정도의

사이의 간격은 누워 있기에는 충분히 넓지

예측되고 또한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사용되는

거리를 둔 채, 수평선과도 같은 평행한 면을

않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우리나라 정서상

과정을 통해 고유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형성한다. 각 단위 구조물은 가느다란 기둥에

격식 없이 설치 영역의 아무 곳에서나 편한

작품 옆에는 관람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얇고 둥근 반투명의 원반으로 구성되며,

자세를 취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구조물은

이를 꼭 숙지하지 않더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그것들의 집합은 느슨한 방식으로 하나의

견고한 편이어서 이를 헤치고 지나가는 행위는

〈표면〉과 만날 수 있다. 기획 의도의 말처럼

장소를 형성한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등

어느 정도의 물리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숨, 쉼, 즐거움’이 어느 정도 작동한다. 설치

주변 환경에 반응한다. 〈표면〉은 모래사장

아이들의 몸집에 보다 적합하다. 즉 본 작업의

작품은 의도한 바가 반드시 완벽히 구현될

앞 바다처럼 일렁이고 반짝거린다. 이미지 속

이미지와 구현된 공간 사이에는 간극 또는

때만이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아닐

다국적 사람들은 구조물을 직접 탐험하거나,

불일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꼭

것이다. 〈표면〉은 작가의 구체적인 개념에서

그 아래 마련된 그늘에 누워서 쉬기도 한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출발하지만, 그 구현과 사용의 과정에서 스스로

특히 등을 돌리고 서 있는 어떤 여인이 설치물

간극 내지 불일치를 통해 생겨나는 행위와

거부하고, 분화하며, 확장하고, 조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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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과.천.표.면 설치 조감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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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건축신인 비평초대석 03

박선영의 된장공장공장장은~ : 강원도 홍천 하미토미 영농조합법인

박선영은 O-Scape Architecten 대표, 중앙대학교 건축공학과에서 학사학위를,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에서 도시·건축·건축엔지니어링의 석사학위를 받았고, 영국의 fosterandpartners,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삼성물산 등에서 실무를 익혔다. 서울시 공공건축가 및 마을건축가, 인천시 미추홀구 용일사거리 Master Planner로 활동 중이다. 도시. 건축의 유형과 프로그램, 공간에 대한 지각에 관심을 두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자료 협조 및 사진 크레딧 본문 전체 사진 및 자료 제공: O-Scape Architecten

CRITIC'S PICK 54


1) 건축신인 비평초대석 01_백상훈(2019년 5-6월호) 02_임윤택(2020년 5-6월호)

1. 드론 뷰 Ⓒ임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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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치도 3. 1층 평면도 4. 2층 평면도 5. 북측 입면도 6. 남측 입면도 7. 동측 입면도 8. 서측 입면도 9. 단면도 A-A' 10. 단면도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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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2. 전경 Ⓒ임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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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야경 Ⓒ임학현 14. 천창 Ⓒ임학현 15. 외부 장독대 Ⓒ임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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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개요 설계: O-Scape Architecten(박선영)

용적률: 25.66%

+삼화종합건축사사무소

구조: 철근콘크리트

설계담당: 박현비, 김주영

외부마감: 벽돌, 내후성강판

위치: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

내부마감: 벽돌, 타일, Ply Wood

용도: 제2종근린생활시설

구조설계: 단구조(이성재)

대지면적: 697m2

시공: ㈜일신종합건설

건축면적: 171.83m2

기계설계: 건우엔지니어링

연면적: 178.86m2

전기설계: 건우엔지니어링

규모: 지상 2층

설계기간: 2019.05.~2019.09.

주차: 0대

시공기간: 2020.03.~2020.07.

높이: 7.97m

공사비: 약 4억 원

건폐율: 24.65%

건축주: 하미토미영농조합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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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천창 Ⓒ임학현 17~19. 내부 공간 Ⓒ임학현 20. 옥상 Ⓒ임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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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세 항아리 속 버내큘러 글. 최우용 본지 편집위원

냄새와 해썹

조우하면서 내・외부가 하나의 공간으로 엮이면서 확장된다. 빈티지한

세월이 하 수상하여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돌아다닐 수가 없다.

바닥과 노출콘크리트 천창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서로 호응하는 듯

이는 누구의 탓이런가? 건축가와의 첫 대면부터 마스크로 얼굴을

어울리는데, 그 실내 한 곳에는 인장력으로 살짝 띄워 만든 내부 계단이

반쯤은 가린 채 인사를 나누어야 했다. 차 안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공허부를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세 곳의 천창에서 쏟아지는 자연광이

이야기했는데,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의례 다시 마스크를 써야 했다.

예의 뻥 뚫린 내부를 채우고 있다. 〈세 항아리〉의 수려한 만듦새는

코로나 감염으로 후각이 마비된다고도 하는데, 바이러스가 내 몸에

모던한 인상을 풍긴다.

들어오지 않아도 마스크가 이미 내 후각을 통제한 지가 오래다. 대단히

건축가는 자신의 건축을 설명하며 장, 항아리, 숙성 등의 주제를

강렬한 자극의 냄새가 아닌 이상 어지간한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

건축물의 주요 개념concept으로 차용했음을 밝히었다. 그런데 매우

냄새를 맡을 수가 없으니 내가 있는 곳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도

작은 규모의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모던한 분위기를 풍기는 건축물과

당연히 지각할 수 없다. 감관 하나를 완전히 틀어 막아버린 상태에서,

이와는 달리 장(醬)이란 토속적인 주제가, 과연 건축가의 설명처럼

조금 더 정확하게는 틀어 막힌지도 모른 채, 건축물 여기저기를

서로 밀도 있게 호응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장과 항아리를 설계의

둘러보다가 마스크를 벗은 어느 순간, 장이 익는 은은한 냄새가 콧속을

주제로 설정했다는 건축가의 말은, 항아리의 은유로 보이는 지붕

거쳐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위 내후성강판의 도드라지는 돌출 구조물이 보이는 첫 대면의 순간

강원도 홍천 한적한 농가 마을의 한 영농조합에서 발주하고 건축가

즉각적으로 환기되는데, 바로 그 지점까지 만인 듯하다.

박선영이 설계한 작은 건축물의 이름은 〈세 항아리〉. 50평 조금 넘는

건축가는 ‘항아리와 발효되는 장’을 ‘공간과 사람’으로 각각 치환했다고

작은 규모의 건축물은 외형이나 공간 모두 단출했다.

설명했다. 건축물공간을 항아리로, 그리고 그 안에서 볕을 받으며

장 익는 냄새를 맡으면서 건축물을 둘러보고 있을 때, 직접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을 발효되는 장으로 치환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장 담그는 집주인이 들려준 푸념은 이러했다. 관(官)에서는

발랄한 비유와 설정이기는 하나,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해썹(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인증을 위해서 장독항아리을 모두 실내에

개념적 유희처럼 표층 언저리에 머무는 듯한 건축가의 설명에 비해 〈세

들여놓을 것을 권고했다는데 그건 안 될 소리라는 것. 장독은 숨을

항아리〉의 아우라는 좀 더 깊어 보인다. 이 아우라는 어디서 비롯되는

쉬어야 한다는 것. 겨울 볕에 서서히 장을 익히고 항아리의 미세한

것인가? 건축가가 언급한 ‘항아리와 발효되는 장’과 ‘공간과 사람’의

구멍을 통해 자연 바람을 넣어줘야 한다는 것. 실내에서 공업 생산하는

직설적인 일대일 대응 대신, 그것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연결해 보면

장은 더 이상 장이 아니라는 것.

그 아우라의 발원지를 드러내 보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세 항아리〉 속

통제할 수 있는 균질화 된 실내 공간만이 위생을 보장할 수 있다는

버내큘러를 퍼뜩 떠올리며 그 아우라에 대해서 생각했다.

HACCP

생각 그리고 그러한 보장을 담보로 한 인증

만이 다시 위생을

보증할 수 있다는, 균질공간-위생-인증으로 순환 견인되는 현대적

버내큘러

식품생산시스템에 대한 장 담그는 이의 푸념이었다. 집을 둘러보는 내내

버내큘러(vernacular)는 인도유럽어족에 기원을 둔 단어로,

장 익는 냄새와 해썹이 머릿속을 뱅뱅 맴돌았다.

‘뿌리박음’이나 ‘토착어’또는 ‘토속적인 주거지’ 등을 의미하는데, 건축적인 관점에서는 ‘토속 건축’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의문

글에서는 이반 일리치(Ivan Illich)가 보다 정교하게 다듬은 버내큘러의

〈세 항아리〉는 50평 조금 넘는 연면적 대부분이 1층 면적에 해당하고

의미로 사용했음을 밝히며 이에 대해서는 이번 장 말미에서 짧게

2층은 두 평 남짓 되는 작은 공간이다. 건축물에서 수십 미터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떨어지면 건축물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집의 골격은 표준화된

배니스터 플레처는 『건축의 나무(The Tree of Architecture)』에서

철근콘크리트 공법으로, 껍질은 공업 생산된 외장재로 되어있다.

비서구의 오래된 건축 즉 버내큘러를 곁가지의 방계로 밀어냈는데,

정제된 상자 모양 볼륨에 전면과 후면은 통유리로 처리되어 있고,

버나드 루도프스키는 『건축가 없는 건축』을 통해 구석으로 밀려난

외부 계단은 조형적으로 꺾여 있는데 옥상에는 항아리를 은유하는

버내큘러를 다시 불러들여 반짝 환기시켰다. 그 후로도 존 테일러의

3개의 천창 구조물이 돌출되어 있다. 내부는 어떠한가? 뻥 뚫려있다.

『세계의 건축문화(Commonsense Architecture)』 등을 통해서도

이 뻥 뚫린 내부공간은 전면 접이식 유리문이 열리는 순간 외부공간과

버내큘러는 간헐적으로 소환되었는데, 대부분 환경과 기술 등의 측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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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공간적으로 풀어낸다. 생산자의 입장에서 순치된 내부공간은 생산의

그런데, 케네스 프램튼이 『비판적 지역주의』에서 폴 리쾨르의 글을

편의성을 높여주고 판매자의 입장에서 해썹 인증은 판매의 수익성을

인용하며 설명한 것처럼, 비판적으로 해석된 버내큘러의 가치는 보편화,

보증한다. 그러나 집주인은 외부공간에서 장을 익힌다. 장이 함의하고

세계화란 이름 아래 납작해지고 하향평준화 되고 있는 현대 문명에

있는 우리의 생활양식과 식문화의 의미와 가치를 끌어안은 것인데,

대한 반성적 시선과 대안으로써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서,

건축가는 이를 위해 건축계획 단계에서부터 장이 놓일 외부공간의

버내큘러란 그 토속적 형태나 패시브적 기술의 단순한 모방이나 재현에

배치에 전력을 다했다. 건축물이 들어선 후의 나머지 공간으로써의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대적 기획에 의해 추동되고 있는 현대적 삶의

외부공간이 아닌, 장독이 놓이는 외부공간과 이와 엮일 수 있는

방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때 그 가치가 배가된다고 해야 할

내부공간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다. 이는 초기 계획안에서부터

것이다.

준공된 결과물에 이르기까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외부와 엮이며

이반 일리치는 버내큘러의 개념을 정교하고 치밀한 경제사회학적

확장되는 내부공간은, 또한 자잘한 구획 없이 과감히 한 통의 공간으로

개념으로 다듬어 우리에게 제시했는데, 그가 말하는 토박이(버내큘러)의

계획되어 외부와의 접면을 최대화고 있다.

가치를 짧은 지면을 핑계로 짧게 설명해보면 이렇다. 호모

또 하나 언급할 점은 바로 냄새다. 장 익는 냄새. 후각은 공간의 특성을

인두스트리알리스(homo industrialis)에서 호모 아르티팩스(homo

지각하고 반응할 수 있게 해주는 (시각만큼이나 또는 그 이상으로)

artifex)로의 전환. 다시 말해, 스스로 생산할 능력과 의지를 거세당한 채

중요한 감관이었는데, 근대적 균질공간과 위생의 관점에서는 통제와

공업 생산된 제품들을 끊임없이 소비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의존적 인간

제어의 대상이 되었다. ‘냄새 없는 도시라는 유토피아’1)라 할 만한데,

존재에서, 자립적 삶의 기술을 갖춘 자율적 인간 존재로의 전환. 거대한

특히 재래의 냄새들은 제거와 기피의 대상이 될지언정, 맡을 만한

타율의 삶에서 소박한 자율의 삶으로의 회귀라고 할까.

냄새가 아니었다. 그런데 〈세 항아리〉의 통으로 열린 내・외부 공간에는

나는 이러한 관점에서, 〈세 항아리〉의 확장 연결된 내・외부 공간 그리고

이 냄새가 가득 차 있다. 이 냄새는 된장과 간장과 고추장이 발산하는

이 공간을 관류하고 있는 냄새를 통해 집이 품고 있는 버내큘러적

완성품의 냄새가 아니라 콩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진행 중의

지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냄새인데, 이 친숙하지만 또 낯선 냄새는 된장과 간장과 고추장이 날것에서 음식이 되어가는 과정의 결과물임을 환기시킨다.

〈세 항아리〉 속 버내큘러 근대적 공간개념에서 균질한 공간은 핵심 개념 중 하나였다. 균질이란

‘성분이나 특성이 고루 같음’을 의미하는데, 근대 이후 도시와 건축

우리는 이제 공업 생산된 중저가의 간장이던 수제 생산된 중고가의

공간은 기하학과 위생이란 관점에서 균질적 공간으로 일신하였다.

된장이던, 메주 띄워서 직접 장 담가 먹는 ‘자가 생산-자가 소비’하는

공간에서 신화적, 정신적, 문화적 가치 등의 정량화 할 수 없는 요소들은

생활로 돌아가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불과 한 세대 전, 그러니까

일리치가 말한 ‘불도저로 밀어버린 공간’

탈각

되었는데, 근대의 공간은 데카르트적

내가 어렸을 때 만해도 내 할머니는 아파트에서 직접 메주를 띄워 장을

균질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이후로부터 적극 통제 가능한 내부공간은

담갔다. 〈세 항아리〉에서 장이 익는 냄새를 맡는다는 것과 장이 익는

더욱 길들여졌고 그 순치되는 정도만큼이나 외부공간과의 경계 또한

풍경이 이러하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다는 것은 장이 공업 생산되어

뚜렷해졌는데, 외부공간은 다만 통제가 어려운 것일 뿐 그 자체가

소비되는 제품이 아닌 생활양식과 음식문화로부터 만들어진 과정의

비위생적인 것이 아님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생의 관점에서

결과물임을 환기하는 일이다. 이 환기에서 호모 인두스트리알리스에서

균질공간 안으로 포획할 수 없는 외부공간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해썹은

호모 아르티팩스로의 인식 전환을 기대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겠지만,

그래서 외부공간에서 자연광에 익어가는 장과 장독을 참을 수가 없는

인식의 전환은 기성과 관성에 대한 의심과 회의에서 시작되는 것이리라.

것이다. 또한 식품생산이란 관점에서 장은 가공식품의 지위로 판매되고 소비되는 양산제품일 뿐, 생활양식과 음식문화로의 된장과 간장의 의미는 발붙일 곳이 사라졌다. 집주인은 이 지점에서 해썹과 균질적 공간을 의심하고 회의하며, 건축가는 그의 이러한 의심과 회의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이를

1) 일리치는 『H2O와 망각의 강』 제5장에서 근대 이후 냄새가 어떻게 통제와 제거의 대상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심도 있게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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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세 항아리 집’의 지형학적이고 픽처레스크한 풍경 글. 이주연 본지 부발행인

우리 사회가 여전히 갈등의 진통을 겪고 있긴 하지만 보다 열린사회로

표피를 드러내며 건축의 주변 풍경과 만나고 있다. 건축가가 제공해준

조금씩 진화해 가며 정부나 지자체의 행정 운영이 시민사회와 더욱

자료를 보니 이 프로젝트의 초기안은 항아리를 매개로 삼았던 것인지

밀착된 소통을 이루려는 ‘학습’을 해오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솔리드한 원통형에 가까운 건축 매스를 제안했다가 최종적으로는 지금의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동네 단위의 주민들 스스로 만들어가는 지역

보이드한 직선적 육면체로 정해졌는데 이는 바른 선택으로 보인다.

공동체의 커뮤니티에 공공의 지원을 통한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한

건축가가 관심 하는 지형학적 풍경(geomatic landscape) 측면에서도

마을기반의 활동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도시는 물론

그렇다. 이 커뮤니티 공간이 들어선 지형을 따르자면 자연의 자연다운

농촌에서도 쉽게 찾아진다. 특히 농촌은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삶의

지형적 풍경과 사람의 물리적인 인공 환경이 만나는 자세는 극적인

기반이 되는 농업 생산성의 확장을 위한 영농조합법인 형식을 취한

대비를 통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우선일 터이다.

농촌기업 활동이 농촌 지역사회의 특성화와 지속가능을 실현하는

서류상으로는 제2종 근린생활시설로 기록되어 있는 이 집은 카페

대안 가운데 하나로 주목이 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에 우수

같기도 하고 실습이나 체험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며 조합원들의 만남의

농촌기업으로 활력이 왕성한 강원도 홍천의 한 영농조합법인의 커뮤니티

장소이기도 한 다용도 시설이다. 그런데 이 건축물을 계속 ‘커뮤니티

시설을 설계한 젊은 건축가를 만나 자연과 함께 숨을 쉬고 있는 그 건축

공간’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실은 공식적인 당호가 불분명하기

현장을 둘러보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때문이다. 건축가가 ‘프로젝트 이름’으로 ‘된장공장공장장은...’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은 이런 모호한 사정을 고려한 가운데 이 조합의

하미토미

정체성을 건축의 정체성에 대입시킨 은유적 표현으로 읽힌다. 이런

우리네 음식에 들어가는 전통적 소재인 장류를 생산하는 농촌기업

사정의 연원은 태생적으로 조합측이 이 프로젝트를 구상하던 초기

하미토미영농조합법인(이하 ‘조합’)의 커뮤니티 시설은, ‘하미토미’가

단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늘이 전해준 맛, 땅이 보내준 맛’을 의미한다 하니 농촌의 지역성과

이 커뮤니티 공간은 관련 정부기관의 지원을 받아 마련하게 된

장소성을 갖는 우리 전통 식재료이며 자연과 함께 하는 숨을 쉬는

시설이어서 조합측이 지원신청 시기부터 건축의 구성내용과 공간

환경을 필요로 하는 이 조합의 ‘정체성’을 조합 이름을 통해 확인해주는

활용의 콘텐츠 등 플랜이 구체적이지 않았고, 막연히 ‘외부에서 찾아오는

셈이다. 이 조합이 자리 잡은 터는 들판과 물길이 산들로 둘러싸이고

사람들의 현장 체험을 통한 마케팅에 필요한 공간’ 정도로 생각하고

자연스런 길과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여느 산골의 농촌에서나 만날

집을 지으려 한 것은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을 던져본다. 이는 설계

수 있는 풍경을 안고 있다. 조합 대지는 주요 생산품이 음식 만드는데

의뢰인을 현장에서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누며 갖게 된 생각이기도 하다.

쓰이는 장류인 만큼 발효와 숙성을 위한 장을 담은 많은 항아리들이

이런 불분명한 속사정에 주목하는 것은 의뢰인의 구상이 건축의 구성을

자연과 함께 오랜 시간 숨을 쉴 수 있어야 하니 비교적 아늑하고 평활한

결정하는 데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일반적인 프로세스를

지형을 이루고 있다. 조합으로 진입하는 서쪽을 열어 놓은 대지 중심에는

염두에 둔 것이다. 물론 이런 사정을 건축가의 몫으로 돌릴 수도 있으나

5년 주기로 장이 숙성되고 있는 수백 개의 항아리들이 그룹을 이루어

이는 여러 상황으로 보아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집 이름을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북쪽으로 단 차를 두고 커뮤니티

정확히 특정하지 않는 것도 그에 기인하는 셈이다. 이는 고스란히 건축

공간 설계 의뢰인인 조합 대표의 주거가, 동쪽으로는 제품 생산 관련

공간의 모호성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내부 공간 형태는 기본적으로

시설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인접 도로에 면한 남쪽의 비어있던 자리에

매우 단순하고 간결한 동서 방향으로 긴 직방체 공간 한 덩어리가 주를

최근에 커뮤니티 공간이 들어섬으로써 3면의 건축군들이 장이 숙성중인

이루지만,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둔 것인지 건축가는 이 공간을 실제 공간

항아리들을 끌어안듯 에워싸고 있는 배치 구조를 보이고 있다.

크기에 맞는 어떤 퍼포먼스가 벌어지더라도 무엇이나 수용이 가능하도록 ‘중성적’공간으로 열어 놓았다.

지형학적 풍경속 열린 공간 대지 남쪽 도로에 맞닿아 있어 외부에서 조합을 찾아갈 때 먼저 만나게

세 항아리 집의 공간적 유희

되는 커뮤니티 공간은 동서로 긴 육면체 매스로 구성된 단순한 조형으로

이 커뮤니티 공간은 항아리가 줄지어 앉혀 있는 바깥의 마당과는 전면의

서 있다. 동서의 벽면은 시멘트벽돌의 솔리드한 질료가 구조적 감성을

유리 입면을 투과하는 시선의 소통으로 만나고 있고, 수직적으로는

드러내고 있고 남북의 넓은 양면은 유리의 투명성을 강조한 명료한

지붕이 열려있는 천창을 통해 하늘 풍경과 만난다. 이런 공간구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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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는 “장이 담기고 발효되는 ‘항아리’를 컨셉으로, ‘항아리와

올라가 바라보는 것보다 오히려 공간의 깊이감을 더 깊게 실감할 수

발효되는 장’을 ‘공간과 사람’의 관계로 보고 흥미로운 공간을 만들고자

있을 것 같다. 또한 한쪽을 비워 실내 공간 분위기를 비교적 더 여유

했다”고 설명한다. 이를 조형적으로 풀이해 고깔(항아리를 연상시키기도

있게 함으로써 쓰임새에 활기를 더할 수도 있겠다. 어떤 선택이든 이는

하는) 모양의 구조체 셋을 등 간격으로 지붕 슬래브에 매달았고, 하늘로

결과적으로 건축 안팎 공간이 주변의 자연을 친근하게 품고 있는

열린 고깔 상부 천창을 통해 내부공간으로 빛이 스며들게 한 것이다.

지형학적 풍경은 여전히 공존하고 있게 마련이다.

평편한 지붕에 커다란 바위처럼 혹은 동네를 감싸는 산봉우리처럼 질서 있게 솟아 있는 세 개의 ‘고깔’은 이른바 코르텐으로 부르는 고내후성

건축(가)의 셈법

아연도 강판으로 감싼 조형물로, 굳이 따지자면 뚫린 천장을 통해

어쨌든 건축가가 공을 들여 꾸민 ‘빛우물’ 구조는 흥미롭다. 조합이 제조

실내로 하늘빛과 풍경을 전해주는 ‘빛우물’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생산하는 고추장 된장 간장을 각각 빚는 항아리 세 개가 지붕 위에

장류를 숙성시키고 있는 땅위의 항아리들이 모티프가 되었을 것임은

놓인 듯 은유적인 오브제 같기도 하고,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산세를

물론이다. 이런 배경을 감안하면 ‘고깔’을 ‘항아리’로 치환해도 그리

닮은 듯 방향성을 달리 하며 주변의 풍경과 자연스럽게 교감하고 있다.

어색하지는 않겠고, 그래서 이 커뮤니티 공간을 ‘세 항아리 집’이라고

건축물의 볼륨에 비해 비교적 스케일을 크게 설정한 것으로 읽히는

이름을 붙여도 무방할 것 같다.

지붕의 고깔들은 주변 마을 풍경과 함께 픽처레스크(picturesque)한

외부의 조형과 공간 체계가 고깔을 통해 건물 안으로 스며들어와

모습으로 다가온다. 지붕으로 오르는 유일한 동선은 건물 동쪽에

내부공간을 감싸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내부 공간의 가운데

지그재그로 설치한 옥외 계단이다. 이 계단은 프롬나드(promenade)를

부분에는 조리 체험 등을 위한 주방 설비와 테이블이 설치되어 있어

경험하듯 마당의 질서정연한 항아리들과 집들, 주변 마을 풍광을 두루

고깔을 통해서 내려오는 빛이 공간의 깊이를 확장시켜준다. 건축가는

만나면서 지붕에 이르도록 인도한다. 건축이 주변 지형이 이뤄내는

동서 양끝의 두 고깔 쪽에는 경사각을 달리 하며 내부로 스며드는 빛의

풍경, 즉 랜드스케이프(landscape)에 동화되고 있는 셈이다. 건축가의

향연을 더 적극적으로 만날 수 있게 천장 높이까지 오르는 가벼운 철재

‘속셈’을 읽어볼 수 있는 대목이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화가들이

계단을 연결시켰다. 동쪽 개구부는 ‘고깔’하단부를 막아 방처럼 꾸며

구사한 사실주의 기법의 새로운 화풍에서 그 기원을 찾는 ‘랜드스케이프’

계단을 타고 올라가 그 안에서 고깔 벽에 드리워진 햇빛과 천창으로

개념은 주지하다시피 이미 건축언어로서 우리에게 매우 친근하다.

비치는 하늘 풍경을 더욱 적극적으로 만나는 즐거움을 담았고, 서쪽

현대에 이르러 건축 풍토를 논할 때 자연스럽게 이를 다양하게 언급해온

개구부는 뚫려 있는 그대로를 계단을 통해서 올려다 볼 수 있게

것도 기실 우리가 누리는 풍토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구성했다. 그러나 완공

데에 기인한다. 우리네 건축 풍토에서 자연지형의 해석으로 이를 자주

이후 서쪽의 계단은

언급하는 경향 역시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조합에 의해 철거되었다.

이 집을 설계한 건축가가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에서 수학하고 유럽에서

철거 배경이 어찌 되었든

실무를 익힌 이력이나 그가 운영하는 사무소 이름이 ‘O-Scape’인 점을

내부 공간의 볼륨이나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같은 맥락으로 이 집의 ‘지형학적 풍경’의

시퀀스를 생각하면 오히려

건축적 감성과 겹쳐지게 되었다. 이처럼 ‘세 항아리 집’은 버내큘러한

자연스러워 보인다. 서쪽

농촌의 지형을 건축 공간 곳곳에 담아서 근본적이고 기초적이며

계단의 유무에 대해서는

전형적인 건축이념으로 풀어낸 지형학적 풍경의 결정체다.

공간조형의 논리에 따라

이 집이 당초 조합이 구상한 대로 왕성하고 활발한 퍼포먼스를 담아내는

균형과 비례, 질서 등의

마을 공동체 커뮤니티 활성화 장소로 주민들이 애정 하는 공간으로

가치를 따질 수 있겠지만,

자리를 잡는 일은 사용자의 몫이 우선이지만 건축 자체가 지닌 친화적

실제 공간에 대한 감응을

풍경이 그것과 무관하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다. 이 집의 지형학적 풍경이

따지자면 계단 없이

인근 구릉지에까지 올라와 자연 풍광을 독차지하려는 듯 세워지고 있는

플로어에서 천창의 하늘을

볼썽사나운 주택들에도, 동네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거지에도 친근하게

올려다보는 것이 계단으로

다가가 교감하며 이 동네다운 풍경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1

1. 2층으로 오르는 내부계단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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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현의 떠오르는 건축가 04

SON-A 손주휘 : 재미있는 건축을 추구하는 건축가

SON-A의 손주휘 소장은 건축을 기반으로 다양한 영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젊은 건축가이다. 최근 국내 건축 현상설계에 당선되며 두각을 드러냈고, 이미 국제 공모전 수상 경력을 갖추어 국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의 작업은 도시재생과 지역을 기반으로 한 현실적이고 구축적인 건축을 넘어 다양한 영역에서 실험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공공예술 작품과 조명 디자인 등 예술과 디자인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재미있는 건축을 추구한다는 그의 말과 설명을 들을수록 건축을 대하는데 있어 깊이 있는 고민과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추구한다는 모두가 재미있는 건축. 건축을 삶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앞으로 펼쳐 나갈 그의 재미있는 건축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2

인터뷰 일시: 2020년 10월 15일(목) 오전 10~12시 인터뷰 장소: SON-A (서울시 서초구) 참석자: 손주휘(SON-A 대표), 이태현(본지 편집위원, THE A LAB 대표)

RISING ARCHITECT

1. SON-A_손주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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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N)AB 조명디자인 기간: 2020. 07., 2020. 10. 전시: 서울 서초 지아가가 갤러리, 마포 연암 갤러리 재료: 플라베니아, 스테인리스 철판, 나사산 막대 조명은 빛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 IM(N)AB는 이삿짐 박스 재료인 플라베니아로 만들어 빛이 형태 자체로 읽히게 하였다. 막이 아닌 두께가 있는 볼륨으로 구현하여 빛이 통과되는 양으로서 외부의 형태뿐 아니라 내부의 형태까지 드러나게 하는 작품이다. parabolic 형태인 줄 알고 다가가면 속은 반듯한 직육면체가, 박스인 줄 알고 다가가면 속은 parabolic 면이 드러난다. I AM (NOT) A BOX! IM(N)AB 시리즈는 두 차례에 걸쳐 2020년 7월 지아가가 갤러리와 2020년 10월 홍대 잔다리로 갤러리 전시회에 초청되었다. 5

2~4. I'm (not) a box 5. LIGHT HAN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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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From 복합영상문화관 7. From YELLOW 8. From BLUE


SCALE 국립아시아 문화전당(ACC) 하늘마당 설치미술

ⓦ SON-A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마음으로는 계속 갖고 있었으나 금전적인

이제 갓 1년을 넘은 건축사사무소입니다.

걱정이 있던 것도 사실이었는데, 때마침 지원한

건축이라면 뭐든지 흥미를 갖고 다루려 하는

국비유학생에 선발되어 가도 된다는 계시구나

회사인데, 운영하다 보니 이게 건축인가 싶을

여기고 유학준비를 했습니다.

설치기간: 2020. 04. – 2020. 05.

정도인 것들도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전시기간: 2020. 06. – 2021. 05.

건축의 지역성과 구축(tectonic)에 관심을 갖고

ⓦ 국내외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실무를 하면서

주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있는 회사입니다.

느낀 차이점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개인적으로 가장 큰 차이라고 느낀 것은

대지: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하늘마당 제작: 자체제작

ⓦ 어떻게 건축을 공부해왔고 어떠한 건축

외국에서 공부나 실무를 하면서 만난 친구,

설치: 다짐건설

수련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합니다.

동료들은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를 비교적

건축학부가 5년제로 갓 바뀌었을 때 공부를

뚜렷하게 알고 그것을 남에게 드러내는 것을

“Scale”은 인위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시작했습니다. 학부를 졸업하고는 동네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을

아닌 자연의 힘을 빌어 건축적 경계에 움직임을

컨텍스트에 관심이 많은 아틀리에 사무실에서

얼마나 잘하는지는 개인차가 컸지만 적어도

구현한다. ACC 하늘마당의 하늘과 길 사이에

일을 하다가 뒤늦게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무엇을 목표로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아는 것

새로운 경계를 만드는 작품이다. 라미네이트

2.5년의 석사과정을 마치고 David Adjaye

같아서 배울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샘플컬러칩으로 만든 작은 픽셀들이 바람의

라는 아프리카 출신의 영국 건축가 사무실의

힘으로 움직이면서, 그 경계는 때론 닫히고 때론

뉴욕지사에서 일했습니다. 주로 미국 내 흑인

ⓦ SON-A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열려서 방문객들로 하여금 경계 너머의 하늘을

문화가 강하게 드러나는 프로젝트들이나

사무실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새롭게 보게끔 한다.

아프리카 프로젝트들에 참여했습니다. 일했던

내 사무실을 여는 것이 오랜 꿈이긴 했지만,

다양한 컬러들을 사용하여 움직임을 강조하고

회사들이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역의

정작 사무실 문을 연건 어느 날 갑자기

열렸다 닫힐 때 픽셀들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이

특색과 건축이 어떤 관계인 가에 관심이 생긴

였습니다. 물론 프로젝트를 갖고 시작했으면

공간에 새로운 즐거움을 줄 것이다.

것 같습니다. 미국 건축사 시험을 마무리하고

좋았겠지만 마냥 기다린다고 기회가 올 것 같진

바로 귀국해서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않았고, 한번 먹은 마음이 사그러들기 전에 시작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HPL 샘플컬러칩은 가구 인테리어 마감의 올바른 재료와 색을 선택하고 전달하는 도구로써 어느

ⓦ 국내에서 실무수련을 하셨다고 했는데 어떤

좀 이해는 안 가지만 왠지 모를 자신감도

건축 인테리어 사무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계기로 유학을 가게 되었나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흔하고 규격화된 “과정의 재료”에 새로운

일하는 것이 즐겁긴 했으나 건축의 기술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다.

현실적인 것들만 성장하는 느낌이었습니다.

ⓦ 사무실을 시작하며 특별하게 목표로

내가 어떤 건축을 하고싶은 가는 좀 잊고

하는 것들이 있었나요? 사무실의 어젠다가

지낸 것 같았죠. 그래서 잠시 현실에서 멀어져

궁금합니다.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개인적으로 건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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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From GREEN 10. From BLACK 11. 하늘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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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도시 전경 조감 13. perspective_사랑채


사북도시재생 뉴딜사업 - 사랑채

지역성과 구축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직은

ⓦ 진행한 프로젝트들 중 가장 대표할 만

말하기 부끄러운 단계이나 지역의 성격을 잘

한 작업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어떤 것들이

공모기간: 2019. 09. – 2010. 10.

드러내는 건축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동네

있나요?

설계기간: 2019. 11. – 2020. 09.

사람들에게 익숙한 공간을 이용해 건축을

아직 대표할 만 한 프로젝트는 없다고

공사기간: 2020. 09. – 2021. 09. (완공예정)

하거나, 그 지역의 재료, 기술을 이용해 건축을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프로젝트에 진지하게

용도: 주민운영카페. 마을공동작업소, 마을회관,

하는 것이 결국 남과 다른 건축을 하는

임했고 각각 성취한 점들이 있긴 하지만,

순환형 임대주택

길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은 제가 기대한 사무실의 대표작품으로

대지: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이런 거창한 말에 앞서 기본적으로 하고싶은

삼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공공건축들에

건축을 하면서 살아남는 것이 목표입니다.

가장 오래 시간을 쏟긴 했지만 처음이라

(웃음)

미숙한 점도 있었고, 공공건축의 특징상 재료나

사북도시재생 뉴딜사업은 낙후된 윗 사북지역을

공간 스터디를 원하는 만큼 해보기가 쉽지가

재생하기 위해 마을길, 집수리 지원, 포켓파크 조성 등을 하는 주민 주도형 공공사업이다. 그 중

ⓦ 그동안 진행한 프로젝트들은 어떤 것들이

사북사랑채는 주민들이 집수리하는 동안 제공될

있나요?

임시거처와, 마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할 카페,

사무실 열고 나서 진행한 건축물 프로젝트는

ⓦ SON-A의 홈페이지에서 흥미로운

공동작업소, 주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강원도 정선의 도시재생프로젝트, 경북

작업들을 많이 봤습니다. 다양한 현상설계,

않았었습니다. 더 노력해 보겠습니다.

영주 도서관 리모델링 이렇게 두 공공건축

공공예술, 가구, 조명 프로젝트 등이 있었는데,

대상지는 사북리의 중심이 되는 칸델라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하나는 설계를 마치고

그렇게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게 된 이유가

불빛거리를 면하고 있으며, 지장천을 바라보고

공사 중에 있고, 다른 하나는 실시설계

궁금합니다.

있다. 따라서 본 안은 칸델라 불빛 거리가 지역의

과정에 있습니다. 건물 외의 프로젝트는 광주

기회가 왔을 때 건축 설계를 하는데 배울 점이

문화 중심 거리가 되도록 적절한 이벤트를 위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과 소다미술관에

있다고 생각이 들면 다 해봤던 것 같습니다.

앞마당을 제공하고, 2층 주민운영카페 공간에

공공설치미술을 진행하였고, 조명 전시를 위해

공공예술, 가구, 조명은 특히나 직접 제작도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데크 공간을

디자인한 조명 작품이 있습니다. 그 밖에는

해야 하기 때문에 도면 그리면서 고려하지

제공하였다. 상층부의 주거공간에는 공용테라스를

수십 개의 공모전 참여 프로젝트들이 있네요.

못했던 것들로 난관에 부딪히곤 했습니다.

두어 지장천을 바라보면서 저층부터 상층부까지

수상권에라도 든 것들도 있지만, SNS에도 못

그것을 해결하면서 배운 것도 많고요. 물론

입체적인 도시마당을 형성하였다.

올린 비운의 작품들도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만드는 것 자체를 좋아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 다양한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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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levation_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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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전경 조감도 16. 수직마당 개념도


광역소공인특화지원센터

하게 됐습니다.

공모기간: 2019. 02. – 2019. 04.

ⓦ 더불어 작품들도 실험적인 측면에서

방법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용도: 수제화 공장, 전시관, 지원센터사무실

시도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SON-A가

부동산의 관점에서 건물을 보거나, 너무

대지: 서울시 성수동

추구하는 실험성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예술작품이라 생각하셔서 어려운 게 아닌가

주최: 서울특별시

작품마다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 하지만,

싶습니다. 먼저 거리를 걷다가 고개를 들고

협업: 정초이웍스

공통적으로는 새로운 재료를 써보려고

건축물을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하시면

결과: 공모 2등

노력합니다. 조명 디자인할 때에는 이삿짐

어떨까요? 입면이 왜 저렇게 생겼나

느끼는 분들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건축을 재미있게 느낄 수 있는

박스지로 많이 쓰이는 플라베니아를

생각해보고, 마음에 더 드는 건물이 무엇인지

성수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준공업지역으로

사용하였고, 설치작품 할 땐 HPL 샘플칼라칩을

평가도 해보고, 더 나아가 나라면 이렇게

수제화, 자동차정비 등을 비롯한 작은 공장들이

써보았습니다. 그 용도로 고안된 재료들이

디자인하겠다 하고 건축가가 되어 상상도

몰려 있는 곳이었으나, 현재는 몇몇 소공인들만

아니기 때문에 주는 신선함과 기능적인 한계 두

해보면 건축이 좀 가깝게 느껴질 듯합니다.

남기고 서울 밖으로 밀려난 상황이다. 이

가지를 다 보려 한 겁니다.

그러면 거리를 산책하는 것도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요?

소공인들을 위한 공간을 서울시에서 제공하고자 지원센터를 건립하는 공모전을 열었고, 본

ⓦ SON-A에 대한 설명 중 ‘무엇보다 건축

프로젝트는 아쉽게도 2등에 그쳐 지어지지는

과정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라는

ⓦ 사무소를 운영하며 처음 목표하던 것들 중

못했다.

문장이 인상깊었습니다. 어떻게 건축을

성취한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달라지고

재미있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새롭게 생긴 목표들이 있을까요?

대상지 인근 성수동 지역은 준공업지역의 특성상

그 문장은 비법이 있다기 보다 목표와 의지에

다양한 건축영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직접

방문객이나 주변 이용자를 위한 휴식과 문화

대한 표현이었습니다. 경험상 디자인하는

만들어 보면서 스터디 하는 건축가이고

생활을 위한 열린 공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사람이 즐겁지 않으면 결과물이 좋지

싶었는데, 지금까지는 그 방향을 향해 방향키를

광역소공인특화지원센터 8층 높이의 열린 공간은

않더라구요. 그래서 저와 저희 팀원이 끌리는

살짝 잡아 놓은 정도인 듯합니다. 다음

녹지만으로 이루어지는 기존 공원과 달리, 대상지

일을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목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만들고 실험해볼

주변 수제화 산업 및 소공인들과 관련된 이벤트와

그러기 위해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사무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욕심으로는

프로그램이 유연하게 담길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목공기계들과 CNC 머신 등이 갖춰진 작업실

수직 마당은 전시, 행사, 이벤트가 담긴 건물

또 클라이언트도 과정에서 즐거워야 한다고

공간을 마련하고 싶네요. 그곳에서 스터디한

저층부의 공공공간과, 소공인, 초기입주자 방문객

생각합니다. 그분들 대부분이 오랜 시간

결과물을 실제 건축에도 적용해보고 싶습니다.

간의 휴식과 만남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건물

준비하고 바라오던 일을 하는 건데, 과정에서

상층부를 연결한다. 수직 마당은 성수동지역의

힘들고 지쳐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 그동안 해온 작업들이 미래의 프로젝트로

길과 거리에서 개인적이고 산발적으로 경험되던

클라이언트, 설계자, 시공자 모두가 재미있게

이어진다면 어떤 부분에서 도움이 될 수

도시풍경을 8층 높이의 외부공간을 통해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그동안 기대치도 않은 프로젝트들이

연속적으로 경험하는 공간이다. 수제화산업은 성수동 일대를 대표하는 산업이지만 기획, 제작,

ⓦ 일반 대중들 가운데는 건축을 어렵게

나비효과를 일으키면서 저에게 도움을

유통, 판매 등이 소규모로 형성되고 산발적으로 분포되어있어 성수동 거리에 연속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광역소공인특화지원센터는 기존 성수동의 산업과 거리 풍경이 건물 내부로 연장하여 성수동의 산업을 밀도 있고 압축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계획되었다. 센터 내 건물은 상층, 중층, 저층부로 나누어져 각각 기획, 제작, 유통 및 판매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으며, 수직마당을 통해 수제화 산업의 이야기를 시각적, 공간적으로 경험하고, 소공인들의 활동을 직접 체험하고 교류할 수 있는 시설로 계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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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주단면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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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TAY ENTERANCE 19. SCULPTURE VIEW 20. TAY_FULL AXON


조예소(造藝所) 통영 폐조선소 국제 아이디어 공모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전에 했던 작은

ⓦ 건축가 자신에게 크게 영향을 준 건축은

설치 작품을 통해 생각지도 않았던 광주

무엇이며 건축가는 누구인가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설치제안이 온 것,

좋아하는 건축가가 너무 많아서 누군가를

기간: 2019. 02. – 2019. 04.

미국에서 인턴 때 조명 디자인 스터디 했던

꼽기가 쉽지는 않네요. 그래도 가장 크게

용도: 미술관 및 예술가 공방

것이 연결되어 조명 전시에 참여한 것, 심지어

영향을 받은 건축가는 제가 일했던 사무실들의

대지: 경남 통영 (구) 신아조선소

지금 《와이드AR》에 인터뷰를 하는 것도 모두

수장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하다 보니 저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제가 재미있게

모르게 체득된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작가 박경리, 시인 김춘수, 유치환, 작곡가 윤이상,

진지하게 완성한 것이면 어떤 식이든 다음

그분들의 생각은 배우되 스타일은 쫓지 않으려

극작가 유치진, 화가 전혁림, 이중섭... 그 이름이 곧

프로젝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있습니다.

모두 통영에서 작품활동을 해왔다. 통영의 자연과

ⓦ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분야나 새로운

ⓦ 건축가로서 앞으로 되고자 하는 건축가의

도시는 그만큼 예술의 힘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프로젝트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상을 한 줄로 정리한다면?

박경리, 전혁림 미술관, 통영에는 작지만 의미 있는

버려진 도시의 인프라나 공장시설들을

어려운 질문이네요. 여러가지 생각이 들지만

사설 예술 공간들이 있지만, 공공 미술관이나

재활용하는 프로젝트들이 최근에 관심이 많이

그래도 한가지만 말해야 한다면 재미있는

예술가들을 지원할 만한 공간은 없는 실정이다.

생겼습니다. 오랜 시간 그 지역에서 사람들에게

건축을 하는 건축가일듯 하네요. (웃음)

예술이 곧 도시의 브랜드 파워로 이어지는 시대,

친근하게 남아있던 구조물에 새로운 생명을

통영의 산업을 이끌던 배를 만들던 곳造船所에,

불어넣는 것이 재미있는 과정이 될 것이라

자료 협조 및 사진 크레딧

통영의 예술 자양분을 키워내고 시민들과 그

생각됩니다. 두어 번 공모전을 통해서 제안을

본문 전체 사진 및 자료 제공 : SON-A

시대와 분야를 대표하는 이 거장들은 놀랍게도

造藝所

과정을 공유하는 공간

을 제안한다.

했으나 아직은 좋은 결과가 없네요. 계속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손주휘는 2019년 SON-A를 설립했다. 한양대학교와

신아 조선소의 도크에서 주로 건조하던 배는 40~50톤급 탱커 선이다. 이 배는 이중 구조로,

ⓦ 작업은 어디서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인가요?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국비유학생으로

외부는 단조로운 형태를 갖고 있지만 내부는 여러

예전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가 평소에

건축을 공부하고, Adjaye Associates NY, NADAAA,

셀로 구성되어 각기 다른 기름, 가스를 저장하여

단어를 수집해 둔다고 하더군요. 저도 평소에

OMA NY, 및 황두진 건축사사무소에서 건축

운반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좋아하는 공간이나 디테일을 만나면 모아두는

실무를 쌓았다.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를

‘조예소’는 탱커선의 구조에서 모티브를 얻어

편입니다. 모아두고 보니 유명한 건축가의

수상하였으며, 일본의 센트럴 글래스 신건축 공모전

단순한 외벽이 내부의 다양한 크기의 예술가들의

작품이 아닐 때가 더 많고, 그냥 생활 속에서

1등, UIA 베링해협 국제아이디어 공모전 1등을

작업실, 전시실, 공연장을 담고 있는 구성을

또는 필요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포함한 다수의 국제 건축 및 아트 공모전에서

제안한다. 그 사이 공간은 골리앗 크레인에 의하여

공간들을 더 흥미롭게 보는 것 같습니다.

수상하였다. 현재 한양대학교, 건국대학교

때론 내부, 때론 외부가 되어 그 어떤 미술관 보다

심지어 건축물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건축전문대학원에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유연한 공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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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TAY SECTION 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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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에게서 소년에게

GAIA Topic 수중(水中) 도시 유럽 런던, 더블린, 브뤼셀, 암스테르담, 코펜하겐, 스톡홀름, 헬싱키,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북미 캐나다 몬트리올, 미국 뉴욕, 필라델피아, 휴스턴,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새크라멘토 등 남미 브라질 마나우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파라과이 아순시온 등 아시아 도하, 두바이, 카라치, 콜카타, 뭄바이, 베이징, 상하이, 방콕, 도쿄, 서울 등 아프리카 등등2) 이상은 80미터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거의 통째로 물에 잠기는 도 시 의 예상 목록이다. p.36 74

2)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2050 거주불능 지구』 (2020, 추수밭 발행)‘ 2부_12가지 기후재난의 실제와 미래 : 3장 집어삼키는 바다’ 중에서 발췌 인용


Special Feature 9771976-741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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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anEx architect Oh Seom-Hoon


DIALOGUE 78


공간-어반엑스 건축 40년

-2020년 10월 19일(월) 2:30pm-5:00pm

어떻게 접근하면 좋겠는지를 물어보러 갔었지요. 당시 공간에는 1년 선배로

-어반엑스 B1 회의실

친하게 지냈던 한상훈 씨가 먼저 입사한 상태였어요. 그 때 당시에는 공간에

-대화자: 오섬훈(어반엑스건축 대표), 전진삼(본지 발행인)

입사할 때 담당 소장들이 한 명씩 추천을 해서 입사시키는 제도였는데 한상훈 선배의 도움으로 장세양 소장님이 추천하여 입사하게 되었지요.

코로나19로 대면 미팅이 어려운 시국인데 시간 내주시어 감사합니다. 올해 11월 11일은 공간건축의 창립 60주년 되는

혹시 당시 장세양, 승효상 등 학교 선배들이 공간 밖에서 만든

기념일입니다. 공간 내부에서도 그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해오고

그룹의 이름이 티에스씨(TSC)인가요?

있는 듯 보입니다. 공간과 오 대표님과는 떼어놓고 말할 수 없는

모임의 이름은 없었어요. 주로 만났던 곳이 광화문 뒤편의

관계이시지요. 그래서 첫 대화는 오 대표께서 공간에 입사하던

건축학과

‘고향집’이라는 술집이었어요. 학부생, 졸업생들이 함께 어울렸지요. TSC와는

시점의 전/후 사정을 듣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면 어떨까싶네요.

상관없는 모임이었고요. TSC는 82~3년쯤 만든 거로 기억해요. 그리곤 한 5년

공간에 입사한 때는 80년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부서울대학교

정도 TSC모임을 지속하셨을 겁니다. 김수근 선생님 돌아가시던 해까지 만해도

시절에 선후배들의 모임이 있었어요. 졸업한 선배들이 함께 했던

있었던 거로 알고 있어요.

모임이었는데 당시 장세양, 승효상 선배들이 중심 멤버였고요. 3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하루는 진행하고 있는 학교 설계과제를 들고 가도 되겠습니까

그랬군요. 근데 오 대표님은 군에 안 갔다 오셨나요? 어떻게

했더니만 장세양 선배가 “가지고 와봐” 하셔서 들고 갔던 것이 공간과 인연이

80년에 공간에 입사가 가능했지요?

닿게 되는 첫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웃음) 사실은 군대가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대학원에 진학하였지요. 우리 때는 교수요원으로 5년 근무하면 군대면제가 되었었는데

그럼 공간 밖에서 만났던 건가요?

나는 설계사무실을 가려 했기에 군입대 시점을 대학원에 묶어놓고

네, 공간 밖에서 공간에 다니던 장세양 선배 등을 만나게

폐결핵까지 걸려가면서까지 설계일을 계속하면서 결국 방위로 군대를 갔다온

되었던 거지요. 학부 3학년 후반설계과제로 초등학교 설계가 나왔는데 책을

게지요.

보다가 초등학교의 컨셉이 자궁과 같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초등학교라는 환경인즉 비유적으로는 자궁에서 어린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의

그러셨군요.

공간과 비슷하겠다는 것에 착안하였던 거지요. 근데 그것을 건축적으로

그렇게 군대에는 갔다 왔습니다.(함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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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가 떠오르네요. 그럼 당시 대학에서의 은사님은 어느 분이신가요? 설계사무소로 진로를 선택했다는 것은 건축가라는 꿈을 담은

학부에선 이광노 교수님과 김희춘 교수님이 지도하셨지요, 당시

것과 같은 일인데 그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나요?

학교에 젊은 교수님들이 온다는 소문은 무성했는데 타이밍이 잘 안 맞았던 것 같아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자연스럽다기보다는 나는 스스로 그렇게 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학부 1학년 마치고 학과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석사학위 논문 내용이 궁금해지네요?

무언가를 만든다는 환경이 전자과나 기계과에 비하여 재밌었던 것 같고

(웃음) 아, 참. 부끄러운데 얘기를 해야 하나요? 그때 ‘양식론’ 같은

개인적으로는 우리 외가가 동네에서는 좀 부유한 집이었던 까닭에 집의

게 있는데 근대건축 태동의 계기가 언제부터였는가? 서구에서 근대건축의

구조가 내가 살던 우리집과 많이 달랐어요. 그 때 왜 집의 구조가 다를까?

시초를 바로크, 로코코 끝나기 전에 근대로 넘어가기 전 18세기, 19세기에

어린 시절 은연중에 가졌던 생각이 건축가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는 배경이

여러 가지 건축이즘이 많이 생겨났을 때 근대건축 시발점의 단초가 있었지

아니었을까 싶긴 하네요.

않았는가 하는 주제로 접근한 바 있습니다. 어디 출신이세요? 꼭 한번 찾아서 읽어 봐야겠네요. 읽어보지 마세요.(함께 웃음)

창원입니다. 주남저수지 근처.(자연스럽게 현재 오섬훈 대표가 창원시 총괄건축가를 맡게 된 배경과 겹쳐지는지라 짧게 덕담을 나눔. 이는 뒷부분에서 재론됨으로 녹취에서 제외시킴.)

장세양, 한상훈 등 학교 선배와의 인연이 되어 공간에 입사하셨지만 당시 설계사무소를 고르는 데 있어서 공간이

그렇게 공간을 선택하여 입사하게 되셨는데 처음 공간에서 받은

유일무이한 선택지였나요?

인상이 궁금해지네요.

사실 설계사무소 정하기 전, 3학년 때 실습을 정림건축에서

처음에 들어가서 대게 황당했던 게 그 때가 79년 12월 23,

했어요. 당시 설계사무소를 가는 사람들은 대체로 정림을 가느냐, 공간을

24일이었던 거 같은데 하루이틀 사이로 크리스마스였는데 장세양 소장님이

가느냐, 아니면 서울건축을 가느냐 정도였던 것 같아요. 근데 서울건축은

출근하라고 하더라고요. 성산대교 양쪽에 조각공원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대우건설의 계열사였기 때문에 나 자신 생각이 별로 없었던 것 같고, 정림

진행했던 것 같은데 크리스마스 날 장 소장님이 사무소에 출근하라

아니면 공간 둘 중 하나를 선택하려했던 것 같아요.

해서, 나가서 보니 아무도 없었던 거예요. 크리스마슨데 누가 나오려고 했겠어요.(웃음) 어쨌든 소심하게 출근한 나는 여러 장 스케치를 해놓고

정림건축이라면, 대표자

가 서울대 동문이라서 였나요?

김정철

기다리고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스케치냐고 비아냥 샀을 법한 걸

아니면 상대적으로 공간과 성격상 다르다는 것이 이유가

그려놓고 말이죠.

되었나요?

80년도쯤에 내가 제일 견디기가 어려웠던 건 건축작업이 아니라 그때까지

그 때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정림건축은 색깔이 강한

나는 군대가 해결이 되지 않았던 터라 사실 입사자격 기준미달이었어요.

설계사무소라기보다는 합리적으로 리즈너블(reasonable)한 캐릭터를 지닌

그러다보니 공간 안에서 6개월마다 호봉이 승급되었어야 함에도 나는

곳이라는 생각이 많았던 것 같은데, 공간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한상훈,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멈춤 상태로 지내게 되었지요. 내 기억에는 당시

장세양 선배 등이 “설계사무소 가려면 공간으로 와라” 해서 선택한 게

설계실 본부장이셨던 김원석 선생님이 그 문제로 난감해 하셨던 것이

다입니다. 다른 생각 하고 말을 겨를 없었지요(웃음)

생각나네요.(웃음) 두 번째는 장세양 소장님이 실장으로 재직 시절에 진주박물관 설계를

거의 선배들에게 끌려가듯이 공간에 입사하게된 것이군요. 그렇죠.(웃음)

담당하고 계셨는데 그 안이 결정된 게 아마 그해 9월이었던 것 같은데 앞서 7~8개월 정도를 안을 결정하지 못한 채 엎치락뒤치락 했던 걸로 기억해요. 그 과정에 있어서 김수근 선생님이 바라는 바가 많아서였기도 했겠지만 담당

대학원에 진학하여 좀 더 깊숙이 건축을 들여다보고

실장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거든요. 그래 지금 생각해봐도

있었으니 그 당시 한국현대건축의 흐름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장 소장님 끈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때 당시에 나는 왜 이리 안이

파악하고 있으셨을 것 같은데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정해지지 않나? 원래 설계라는 것이 이렇게 하는 것인가? 등등 대게 힘들었던

한국현대건축의 판도는 어떠했나요?

것 같아요. 진주박물관의 모형을 디자인풀(Desgn Pool)공간 설계실의 디자인 회의

대학원 수업을 받은 건 사실지만 그때만 해도 나 스스로가 건축계

시스템

용으로 지붕을 쪼가리 쪼가리낸 형상으로 했는데, 선생님이 좋다고

전체를 바라보는 눈은 없었던 것 같고 단지 대학원에서 수업을 받았던 김종성

했고, 이유가 진주성 안의 촉석루보다 지붕크기가 작아야 된다고 하셨던 걸로

선생님이 미스의 제자라서 정림건축이나 김수근 선생님 등 다른 분들과

기억합니다.

견주어 색다른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다고나 할까. 그렇게 세 그룹 정도로 구분되었다고 보아지는데 김중업 선생님은 해외에 계시다가 국내로 돌아

그러고 보니 제가 공간지 편집장으로 발행인인 장세양 소장님을

오셔서 그렇게 활동이 크지 않았던 시기여선지 큰 느낌을 받지는 못했어요.

모시고 다닐 때 진주박물관 얘기를 하면서 특히 지붕 조형 건으로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김중업 선생님이 전시를 하신 적이

꿈에서 보고 그렸다고 하시던 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웃음) 그런

있었는데 큰 규모의 은행 본점 등 전시된 내용이 조금은 낯설게 다가왔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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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들은 바 있어요. 한번은 장 소장님이 역구배로

하나는 젊어서부터 큰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지붕선이 내려오는 스케치를 하고 계셔서 “그게 뭡니까?” 하고 물으니 꿈에서

점에서 무척 부럽고 다른 하나는 건축을 단순히 손끝으로나, 감각적으로만

본 그림이라는 거예요.(웃음)

하지 않을 수 있는 이념적으로나 백그라운드 적으로 도와 줄 수 있는 주변 분들이 늘 함께 하셨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행운이라면 행운이고, 선생님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기분은 어떠셨나요? 이상하지 않았나요?

스스로가 만들어간 결과이기도 했겠지만 그 두 가지가 잘 구축되었던 까닭에

아니, 뭐, 그럴 수도 있겠구나 했어요. 꿈을 꿀만큼 많은 생각을

아직도 김수근을 연호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하고 있었을 테니까. 말씀하신 두 가지 관점은 외부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김수근 오 대표님도 꿈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한 적이 있나요?

선생님에 대한 평가인데, 그보다 오 대표님 개인적인 판단을 듣고

글쎄요. 특별히 그런 경험은 없네요.(웃음)

싶은데요. 굳이 개인적인 판단을 말하라면 선생님이 굉장히 편하게

김수근 선생님과 공간에서의 인연

관계맺음/접촉의 빈도

등은 어느

설계를 하신 게 아닌가, 디자인풀할 때 보면은 담당소장과 팀 작업에 의해

정도셨나요?

다 정해지고 나면 선생님은 늘 “그 다음엔 무얼 해야 돼” 하시며 한 발짝 더

설계실에서의 내 위치상 선생님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많았다고

앞으로 나아가 계시곤 했어요. 미리 생각해놓으신 거를 툭툭 던지니 편하게

할 수 없고, 두어 번 정도 계획안을 만들어 보여드렸던 게 전부인데요, 그중 하나는 동아일보사옥 계획안을 진행한 적 있습니다.

설계하시는 거처럼 보였을 거 같아요. 스태프들이나 소장들이 도면 작업 등을 얼추 다 만들어서 내놓으면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시죠. “그럼 조경석은 뭐로 할 건데”.(웃음)

벽돌로 작업한 계획안인가요? 바꿔 말하면 종종 엉뚱한 말씀을 하신 건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그거를 담당하다가 군대를 갔어요. 군에 갔다 와서 장세양 소장님이 주도하던 벽제장제장 설계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여러 가지

엉뚱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 선생님 본인이

스케치를 한 것 가지고 김수근 선생님을 뵈었던 정도입니다.

생각해왔던 것을 토대로 가이드라인을 주시려했던 것 같아요. 한번은

그리고 내가 관여했던 것은 아닌데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의도에

성북동에 위치한 주택이었는데 아침 9시부터 11시까지 스케치를 한 세트

동부사옥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선생님은 그 프로젝트 계획안에서 외부에

해놓으신 게 있었어요. 스케치도면에 시간까지 적어서. 배치, 평면, 입면, 단면,

알루미늄 마감재를 사용한 스케치를 하셨어요. 그즈음에 공간은 벽돌을

상세 등등.

주재료로 한 휴먼 스케일 작업을 해오던 시기였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알루미늄 마감재를 통한 리치니스(richness)를 많이 생각하셨던 거 같아요.

누가 만들어놨다는 건가요?

근데 중간에 클라이언트 브리핑 과정에서 진행이 잘 안되었던 것 같아요.

김수근 선생님이 직접 하신 거죠. 나도 그 때 처음 봤어요.

PM도 바뀌었고. 아마도 그 때가 공간으로서는 벽돌의 시대에서 다음 단계로

선생님이 직접 그리신 걸 본 것은. 디테일 상세도까지 그려진. 그러시고는

넘어가려는 과정이 아니었나싶지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자네들도 원 세트로 해가지고 와라.” 원 세트를! 주택이었으니까 가능한 것이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 머릿속에서

그게 국민은행전산센터와는 연관이 되는 건 아닌가요?

안을 다 만들어놓고는 일사천리로 스케치하신 것이었던 것 같아요.(함께 웃음)

그것과는 달랐던 것 같아요. 김수근 선생님의 말씀 가운데 재밌었던 게 당시 공간에서 경동교회와 국민은행전산센터 두 개의

그러한 김수근 선생님의 캐릭터를 생각할 때 오 대표님 스스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장세양 소장님이 맡아했던 국민은행전산센터의

김수근 선생님을 닮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있다면 어떤

경우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환경조각과 같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던

면이 그러하다고 생각하시지요?

기억이 나요. 건물의 전장이 길고, 볼륨이 심플한 접근 등이 그 전까지 공간의

닮은 부분은 거의 없어요. 그런데 굳이 껴 맞춰 보면 가끔

작업과는 다른 면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설계실 내에서는 손작업 느낌이

선생님은 비논리적으로 답을 찾는다는 느낌을 받는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강한 경동교회와 기계적 작업 느낌이 강한 국민은행전산센터가 어떻게

지점은 내가 김수근 선생님을 닮았다기보다 닮아가고 싶다, 배우고 싶다 하는

동시에 작업 가능하지? 등등 건축에 다른 시선이 교차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부분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아요.

동부사옥에서의 알루미늄 스케치는 그런 태도와는 무관했던 것 같아요. 프레임에 갇혀 있지 않으려하는 캐릭터를 말하는 건가요? 동부사옥은 김수근 선생님 돌아가신 뒤 완공되지 않나요? 내 기억으로는 민경식 소장이 맡아서 했던 것 같은데 디테일

그렇지요. 돌이켜보면 국민은행전산센타 같은 경우도 디자인의 최종 결정권자로서 다른 생각에 기반하고 있는 작업 내용을 오케이 해준

등에서 김수근 선생님의 생각과는 다르게 접근하였던 것 같고, 결국 완공은

거로 보면 건축적인 대원칙은 있되 그것이 구현해내는 디자인 테크닉 등에선

됐지요.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을 수렴하는 태도 등은 김수근 선생님의 장점인 게 틀림없어요. 밀접하게 접촉했던 분은 아니시지만 단편적으로나마 옆에서 지켜본 김수근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당시 공간의 소속으로 절정의 위상을 갖춘 건축가 김수근

정말 대단한 기회를 가지셨던 분 같아요. 두 가지 면에서 그런데

선생님의 문하에 머물고 있으면서 공간 밖의 세계를 기웃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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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억은 없었나요? 자극을 받은 다른 건축가의 존재라든지?

계기나 단초 등을 다양하게 갖고 있었거나 고민의 결과로 찾아냈던 게 아닌가

건축적 사건이라든지?

싶어요.

(웃음) 불행하게도 없었어요, 대학에서 김종성 선생님을 만나서 크리틱을 받았을 때 정도. 나중에 승효상 소장님이 오스트리아에 갔다

옆에서 지켜보기에 장세양 소장님은 자기 건축을 풀어가는 데

와서 보여준 건축하는 태도 등에서 칼라를 강하게 쓴다든지 조형을 다루는

있어서 어떤 레퍼런스를 지니고 있었다고 보십니까? 김수근

면에서의 다른 모습들을 통해 그전까지 알아왔던 것 하고는 다른 것들을

선생님인가요? 아니면 독학의 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요?

얘기하고 있네 하는 정도였어요. 다만 그때그때의 다른 톤들이 내게 얼마나

그냥 보기엔 80~90% 김수근 선생님이 레퍼런스였다고 생각이

임팩트(impact)하게 다가왔는지는 모르겠어요.

들긴 했는데 한번은 카타르대사관 작업을 하고 있었을 때인데 입면 작업을 하면서 테두리를 가지고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 이유를 물어본 적

오 대표님의 지근거리에 장세양 선배가 계셨던 거로 알고 있는데

있어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언뜻 마리오보타의 작업 내용을 비유했던

그와의 영향관계는 무척 큰 것 같다는 느낌을 갖습니다만, 외려

것 같아요. 그리고 내벽에 바람구멍을 냈기에 그 이유를 물었었는데

김수근 선생님보다 더 많은 관계를 통해서 말이지요.

사막지역에서 자연환기를 위해서였다고 했던 것 같았어요. 또 벽제장제장이나

그렇습니다.

대전 두리예식장 같은 프로젝트는 프로그램의 독창적인 해석의 결과로 공간이 조직되었다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그 같은 과정을 통해 장세양만의

학창시절에 동문으로서 만났던 장세양 선배와 공간에서

건축관을 찾아낸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직접적으로 작업을 통해 경험하게 된 장세양 소장님과는 어떻게 다르던 가요? 그리고 그런 차이가 오 대표님한테는 어떤 영향을

장세양 건축에서의 풍토성 같은 것을 함의하는 건가요?

미쳤나요?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요, 그런 걸 매개로 하여 건축적으로

사실 대학에서 뵈었던 장세양 선배는 잠깐잠깐 만났던 것이다 보니 항상 큰형, 대선배셨을 뿐이지요. 빅브라더요. 실제로 설계실에서 일과

공간을 조직할 때에 개입시키는 테크닉을 본인 스스로가 많이 찾아낸 것이 아닌가 싶은 거죠.

맞닥뜨려서는 좋은 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고민하는 모습을 통해서 여러 면을 보게 되는데 장세양 소장님의 장점 중 하나는 끈질긴 면이 있다는 것,

장세양 소장님은 40대 초반에 김수근 선생님 타계 후 공간의

본인의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배우는 바가 컸지요.

어두웠던 시절을 맞아 경영자로서 역할을 자임하게 되는데

그리고 논리적인 사고로 저희들을 설득하는 힘도 참 강력했어요. 심지어는

포스트 김수근이라는 혼돈 속에서 그렇게 귀결되기까지 알고

비합리적인 가정조차도 논리적으로 설명해서 설득시키려 했으니까요.(웃음)

계신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으신가요? 그리고 본격적인 장세양의 공간시대 말년에 설계실 본부장으로서 함께 했던 시기에

공간에서 장세양 소장님과 더불어 길게 작업했던 것은 어느 것이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지요.

있나요?

김수근 선생님 돌아가신 전/후 공간 내부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서라벌호텔과 서울역 앞 동자동 정우빌딩(구 벽산125빌딩) 두 개가 장 소장님과 긴 호흡으로 작업했던 겁니다.

대하여는 아는 바가 없어요. 나중에 전해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는 있지만 이 자리에서 나눌 건 아닌 것 같고요. 장 소장님이 돌아가실 무렵은 두 가지 정도가 있는데 첫 번째는 본인이

작업 시 두 분의 호흡은 잘 맞았나요?

건축가로서 공간을 이어오는데 혼신의 힘을 다해왔다면 그 다음 행보로서

두 사람 성격상 잘 맞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비교적 잘 맞추었던

건축가로서 자기를 내보이고 싶은 그런 생각이 있으셨을 거라 생각해요.

것 같아요. 조직의 체계상 위의 장이 큰 틀을 정하고 아래 직원이 그에

국립중앙박물관 국제현상설계 진행할 때 나는 영국에 체류 중이었는데

맞춰가고 부분적인 디벨롭 하는 정도로 보면 될 거에요. 내 관점에서만 잘

가끔 통화를 하거나하면 그 자체로 굉장히 자극을 받으셨던 것 같아요.

맞았다고 하는 것이지 장 소장님도 같았을 거라는 생각은 아니고요.(웃음)

AA스쿨에서 학생이었던 저도 나름 열심히 현상을 준비하고 있는데 “왜 나는 안 하고 있지?” 하시며 스스로 긴장하는 등 자극이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제가 기억하는 장세양 소장님은 주변 환경, 컨텍스트 등에

두 번째는 공간신사옥을 통해서 건축가로서의 장세양의 생각을 드러낼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요. 나아가 김수근

수 있다고 여겼던 것 같아요. 선생님의 작품 옆에 장 소장님 본인의 작품이

선생님보다 더 공간 만들기에 집착했던 분이었다는 기억이

나란히 지어진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을 거로 생각이 들었죠. 장소성 때문에

강합니다만.

500여년의 시간 자장 속에 현대시점에서의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 가 등···, 그

나 또한 백퍼센트 공감하는 부분이에요. 실제로 김수근 선생님은

결과 유리로서 시간성의 비물질을 표현해 내셨던 거 같습니다. 투명성 구현

공간적인 부분에 대해 말씀하신 것보다는 조형적인 것에 더 많은 말씀을 하신

때문에 여러 가지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썼고요. 복층유리일 경우에 유리

것 같고, 외려 장 소장님이 공간적인 부분에 대해 많이 관심했던 것 같아요.

사이의 조인트에 생기는 시커먼 부분 때문에 단판강화유리 사용이나 유리

대전의 두리예식장이나 서라벌호텔의 경우에서 보이듯 여러 개의 마당을 통해

멀리언 잡는 동그란 쇠뭉치의 원포인트 글레이징 등이 그렇습니다. 잘 아시는

공간의 경험을 극대화시키려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아요. 벽제장제장도 같은

대로 공간신사옥의 최종 완성된 결과물은 끝내 보지 못하시고 말았지요.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공간 만드는 솜씨가 남다르셨어요. 프로젝트를

제 생각에는 이 신사옥이 장 소장님이 김수근 선생님으로부터 벗어나 본인

해석하는데 있어서 내부 공간의 기능성 이상으로 장제장에 이르는 과정적

스스로 건축가로서 시작을 알리는 작업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장

공간에 대하여 다른 종류의 공간 만들기를 보여주곤 했지요. 공간을 만드는

소장님이 살아계셨으면 우리가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는 다른 무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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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내지 않으셨을까 싶긴 해요.

다녀오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AA스쿨에서 공부하고 오셨는데 그

한편으론 한국건축계에서 김수근 선생님의 전통건축으로부터 논리적으로

배경이 궁금합니다.

이념적으로 무장하는데 지인들의 도움을 받으셨던 것만큼 장세양 소장님이

배경이라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가지는 한

당신의 건축논리를 단단히 해나가는 데에 있어서 주변으로부터 적절한

사무소에서 오래 근무해온 소장들도 안식년 같은 걸 통해서 재충전하는

지원을 끌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점에선 여전히 의문도 들어요. 아니 옆에서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과 두 번째는 파트너들 중에서

지원했을 때에 그들의 말을 잘 들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동시에 든다는

더 괜찮은 파트너들이 나오기를 바라는 측면에서 시행한 것이었는데 첫

것이죠. 아마도 조금은 한계가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케이스로 내게 공부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당시 공간은 파트너십이라고는 하지만 운영 면에서 장세양 소장님이 막중한

장세양 소장님 말년의 주변을 돌아보면 학교 후배들 가운데서

책임을 지고 있는 입장에 있었음에도 후배들에게 굉장히 좋은 방향을 열어놔

김광현 교수, 김봉렬 교수 등 그 당시 소장파 건축학자들과 자주

주신 거라고 봅니다. 건축의 지적 경험을 높이기 위한 그런 프로그램은

어울리셨던 것 같은데요. 말씀 듣고 보니 일말의 수긍이 가는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봐도 좋은 시스템인데 일찍이 그 같은 걸 만드셨던

지점이 있네요. 그럼 경영자로서 장세양 소장님은 어떠셨나요?

것이죠.

뭐, 거의 빵점에 가까우셨죠.(웃음) 막상 AA스쿨에 가서 공부하실 때 자극은 많이 받으셨나요? 하하, 그러세요? 가끔 장 소장님 입으로 나는 회사 경영하는 데

자극을 받지 않았다고 하면 큰일 날 소리라고 하겠죠.(함께

천재인 것 같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었는데.

웃음) 참, 웃기는 게, 유학 떠나기 전에는 자만심 같은 것이 있었어요. 뭐든 다

두 가지 관점 다 맞는데 한 가지는 장 소장님의 말씀인즉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 그런데 왜 저렇게 만들어야 될까 하는 면에선

경영이라는 게 건축하는 거와 똑같다며 여러 가지 조건들을 다 맞춰

다른 게 보였어요. 앞에서 김수근 선생님 말씀을 할 때도 비췄지만 이쁘게

가지고 시스템적으로 풀어낸다는 방식은 맞는 말씀 같긴 했어요. 그런데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죠. 건축을 만들 때 어떤

그 시스템이라는 것과 풀어가는 디테일은 다른 거거든요. 예를 들어서 그

생각으로 만들어야 되느냐에 대한 것들을 상대적으로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디테일이 사업을 기획하고 디벨롭 시키는 단계에서 제 기능을 해야 하는데 그런 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고, 공간이 사업적으로

유학 떠날 때 연배는 어떻게 되었나요?

디벨롭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점에서 건축적으로 다음 단계를

서른 네다섯 살 쯤 되었을 거예요.

열어줘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은 일이었죠. 재원의 측면에서는 장 소장님의 공간 입사한 지 몇 년 만에 바깥 구경을 한 셈인가요?

형님 회사에서 가져다 쓰고 하는 등 굉장히 안 좋았죠. 그런 측면에선 차라리 S.O.M, 미국의 다국적 설계회사

같이 경영파트너가 제대로 있어서 맡겼더라면 어땠을까

십 삼사년?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점이 아쉬운 부분이긴 해요. 굉장히 적절한 시기에 나갔다온 격이군요.

그 와중에 유명을 달리하셨으니.

설계실에서 한 10년 정도 일하고, 설계실 본부장 2년 하고 김수근 선생님의 후반부에는 각 소 단위의 독립채산제를 시행한

나갔습니다. 장 소장님이 다음에 파트너가 되기 위해선 갔다 와야지 하며,

것으로 알고 있고, 장세양 소장님의 후반부엔 형식적으로나마

다녀와선 일정 기간 봉사를 해야 된다 하며 내보신 거예요.

파트너십으로 운영하셨던 것 같은데 성격이 많이 달랐다고 봐야 하나요?

그 후 공간을 나오게 된 배경이 자의적인 거였나요, 아님

성격이 달랐던 것 같아요. 김수근 선생님 말년의 독립채산제는

타의적인 것이었나요?

경영적인 측면의 성격이 강했다고 보면은 장 소장님의 파트너십은 진짜

하하, 자의반 타의반이었어요. 파트너들 사이에서 장세양 소장님

좋은 친구들이 모여서 함께 지속적으로 공간을 운영해나가겠다 하는 취지가

때처럼 함께 해나간다는 컨센서스가 이뤄졌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때

강했던 것 같아요. 김수근 선생님 계실 때는 건축의 방향성에 관한 한

당시 계셨던 분들 사이에선 그런 컨센서스가 깊게 안 이뤄졌던 것 같아요.

선생님의 존재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으니까 공간 내부에 있는 각 소장들이

그러다보니 미래에 대한 방향성에 차이가 생겨났고 그런 연유로 나오게 된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게 경제적인 면에서의 자율성을 부여했다는 측면이

거죠.

강했다고 느껴지고 장 소장님의 파트너십은 그런 것도 바탕이 되긴 했겠지만 공간의 지속성을 위한 토대를 구축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게 아니었나

공간 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작업이 인천 송도의

싶어요.

갯벌타워로 알고 있는데요. 그 프로젝트는 앞서 공간에서 수행해온 것들과는 접근 방식이나 디테일 등에서 성격이 조금 그 말씀인즉 장세양 소장님이 공간 안에서 디자인의 중추로서의

다르게 보여지던데요.

역할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고 보시는 건가요?

그렇게 볼 수 있어요.

파트너들에게 디자인의 독립성은 주되 공간의 이름으로 하나로 묶는 것은 디자인풀을 통해서 했는데 그렇게 가는 게 맞는 거였다고 생각했죠.

그러한 작업의 베이스가 영국 유학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오 대표님은 공간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기 전에 영국에 유학을

그 때는 그렇게도 생각했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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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적으로는 동의하는데 디자인의 수단이나 테크닉은 여러 가지로 바뀔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 프로젝트는 운 좋게도 입찰로 계약에 이르렀던 것으로

그럼 그 즈음에 재료에 관한 많은 스터디를 하셨겠군요.

기억되는데 그러다보니 내 입장에서는 디자인을 편하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

벽산125는 워낙 스케일이 큰 건물이었던 관계로 주재료로 알루미늄을 정해놓은 상태여서 내 위치에서는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같아요.

그 대신 패턴에 대한 스터디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벽산125에서는 수평 그 프로젝트가 어반엑스로까지 이어지나요?

패턴을 많이 스터디 했는데 건물의 입면이 워낙 꼬불꼬불하다보니까 수직바를

나중에 감리할 때 일정기간 어반엑스와 겹쳐지지만 설계 끝날

써야하는데 그렇게 하면 건물의 외관이 엉망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많았어요.

때까지는 공간에서 작업된 것이죠.

근데 설계 마지막 무렵에 잡지를 보다보니까 스트럭춰럴 글레이징시스템의 커튼월에 구조용 실리콘코킹재료가 나와서 외부 노출되는 알루미늄바 없이

미추홀타워는 그 후의 작업이죠?

유리 접착하는 제품이 출시됐다고 해서 급하게 연락했더니 풍동 테스트

맞아요. 그건 어반엑스에서 작업하게 되지요. 그 때 당시에

등을 해야 하는데 그러러면 미국에 갔다 와야 하고 그 기간이 족히 3개월은

갯벌타워의 경우 AA스쿨에서 많이 얘기됐던 것 중 하나가 학교의 치프였던

걸린다는 거예요. 그런데 당장은 도면 납품하고 공사해야하는데 할 수 없이

제프리 킵니스 선생이 현대건축에서 필요한 건축적인 원칙이 도대체

수직바는 스텐레스미러로 그려놓고 나중에 공사하면서 바꾼다, 그리고

무엇일까? 를 몇 번에 걸쳐 얘기하면서 두 가지 단어를 꺼내든 적이 있었는데

수평만 알루미늄바로 해놓는 거로 한다 그랬던 거죠. 다행히 건설회사가

인콩그리티(incongruity) 부조화, 모순 그런 의미였던 거 같은데, 그리고

직영이었어요. 정우개발이라고. 그래서 뒤에 바꾸는 게 가능했던 거죠. 안

아주 강력하게 같이 있다는 의미에서의 인텐시브 코히어런스(intensive

그랬으면 입면에 워낙 꼬불꼬불한 변곡점이 많아서 수직바를 일일이 넣었으면

coherence)를 얘기하는데 그게 그 양반 말로는 근대건축과 현대건축의

수평 패턴이 다 죽었을 거예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디테일 스터디를 많이

큰 차이가 근대건축은 여러 가지 동질성이 강하다고 보면 현대에 와서는

했었던 것 같아요.

이질성이 훨씬 더 많은 차이가 있는데 그렇지만 그게 이질적인 상태로 다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네오 모더니즘처럼 동질적인 틀 안에 있었으면

벽산125 빌딩을 보면서 김수근 선생님의 하신 말씀이 떠오르는

좋겠다고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다양하고 복합적이긴

데요, ‘현대건축=리치니스=멋=맛’이라고 하시던. 그 때의

하지만 보이는 부분들은 심플하게 보여서 하나의 모습으로 보이는 게

리치니스와 디테일이 많은 부분 통하는 건가요?

좋겠다고 했어요. 나는 그와 같은 방향에서 프로젝트를 해석하여 갯벌타워의

선생님이 벽산125 모형을 보시면서 리치니스 말씀하셨을 때,

경우 아주 심플한 스킴(sheme)이긴 하지만 스킨(skin)에 몇 개의 레이어를

그게 벽돌건축에서의 리치니스와 어떻게 같은 가 생각하기도 했는데 지금

개입시키는 디테일한 장치를 넣었지요. 그 건물 꼭대기의 모습도 다른

생각해보면 대형의 알루미늄 외장재 건물에서도 리치니스를 구현하면 좋지

프로그램을 들어 있지만 의도적으로 사각박스 안에 넣으려고 한 결과이지요.

않겠는가 하는 정도의 의미가 깔려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어요. 제가 김수근 선생님을 잘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동아일보사옥도 벽돌로 해보자고 하셨을

그랬군요. 갯벌타워의 작업 태도에 비추어 봤을 때 그것과 공간의

때 개인적으론 깜짝 놀랐어요. 그 큰 건물을 어떻게 벽돌로 짓는다는 거지?

작업 연대기 속에서 연속성을 찾을 수 있다면 무엇과 연결 지을

하면서 말이죠. 근데 선생님의 생각을 따라가 보면 벽산125빌딩에서 벽돌과

수 있을까요?

같은 리치니스가 어떻게 가능할까? 선생님 투병기간에 가끔 휠체어타고

그 문제는 오랫동안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공간에 있을 때는 두

설계실에 오신 적이 있었는데, 장 소장님이 양남철 씨에게 입면도를 100분의

가지였던 것 같아요. 한 가지는 공간 시퀀스에 대하여 많이 얘기했던 것 같고,

1로 그리게 했는데 하루는 그걸 보시고 리치니스를 말씀하신 적이 있었어요.

두 번째는 리치니스에 대해 많이 생각했는데 갯벌타워는 공간적 변화를 많이

그 후에 디벱롭 하는 과정에서 수평으로 두르는 띠들을 좀 더 풍성하게 해서

개입시키고 있다는 점에선 공간의 시퀀스라는 측면에서 의미를 같이 하지만

리치니스의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결과적으로 그 건물엔 여러

상대적으로 리치니스적이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리치니스라는

타입의 수평띠가 있어요. 문 여는 데 수평은 조금 셋백하는 타입으로 하고,

느낌은 벽돌이 주는 재료의 느낌과 같은 데서 오는 것이라서, 벽산125처럼

다섯 개 층켜마다 재료를 다르게 하고, 층마다 한 칸에는 스텐레스미러를

알루미늄 재료로는 스케일이나 촉감 등에서 리치니스가 제대로 구현되지

사용하는 등 상대적으로 일반의 고층건물보다는 자상한 디자인이라고 해야

못했는데 갯벌타워도 그랬던 것 같아요. 대신에 생각해봤는데 시퀀스의

할까? 많은 부분에서 섬세함을 담긴 했어요.

문제는 여전히 다양한 공간들이 있을 때 휘젓고 다니는 동선의 흐름은 같은데 그 시퀀스가 장면 전환의 시퀀스이기 보다는 통으로 되어 있는 건물 안에서

공간과 연결된 이야기는 이 정도로 끝맺지요, 어반엑스로 독립한

어디를 가든지 갈 수 있는 길들로 연결되는 것을 의미하지요. 꼭 같다고는 볼

배경이 궁금해지네요. 공간 말년에 경영전선에 참여할 만큼

수 없지만 그 면에서 연속성을 찾을 수는 있다고 봅니다.

공간의 헤드로서 역할을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공간에 계속 있었으면 어떻게든 했겠죠. 근데 그 때 생각에

공간 재직 시 참여했거나 직접 수행했던 작업 중 가장 인상 깊은

공간에 있으면 잘 안 될 거란 생각이 많았어요. 독립할 무렵에 효성, 한국통신,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삼정호텔 등 공간에서 관계해왔던 세 개의 큰 클라이언트들이 힘을

아무래도 벽산125가 제일 앞서고요 그 다음으론 두리예식장을

모아주었어요. 어찌 보면 공간에서 일하는 거나 나와서 일하는 거나 매양

꼽을 수 있습니다. 장 소장님의 밑에서 책임 디자이너 역할을 했었지요.

마찬가지 상태였어요. 솔직히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어요. 내가 어디에 있든

런던 다녀온 후에는 앞에서 약간 언급한 공간 신사옥이 마지막으로 같이 한

설계를 열심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어요.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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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서 리더로서의 역할에 마뜩치 않은 부분이 많으셨던

안 되었는데 상대방을 모르는 상태에서 접근할 때는 쉽지가 않아서 거의

건가요?

누구의 소개로 온다던지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점이 점차 어려운 조건으로

건축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긴 한데(웃음)

다가오더라고요. 그런 이유로 작은 사무실끼리 또는 큰 사무실과 코웤을

운영, 경제적인 부분들에서도 좀 편하지는 않았어요. 결국엔 파트너로

한다든지 하는 생각 가능한 방편을 찾는 거예요.

갔으면 좋았겠는데 그 당시 이상림 사장이 파트너십은 안 하겠다고 선언한

단적인 사례로 미추홀타워 같은 경우도 공간과 조인해서 일을 하게 되는데

상태였어요. 그래서 결국에는 파트너가 아닌 상태로 내가 건축가로 길게 갈 수

어반엑스의 규모로는 접근자체가 쉽지 않았어요. 턴키프로젝트였다 보니

있는 길은 무엇일까 등을 고민했던 것 같아요.

공간과 조인해서 같이 작업한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큰 규모의 일들은 조금씩 멀어지게 되더라고요. 그나마 가능한 일은 현상설계를 통해서

다른 얘긴데 장세양 소장님 말년에 사적으로라도 약조 같은 것

당선해야 하는 정도였어요.

받으신 적 없으셨나요?(웃음) 하하하,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신 적은 없었고 지나가는 분위기 등을 보면 느낌으로 받는 것은 있었죠. 장 소장님이 다음에 사무실을 잘 끌고

지금 몇 년째 어반엑스를 운영하고 계신건가요? 내년 1월로 15년 되네요.

갈 수 있는 그런 팀들이, 그런 누군가들이 같이 있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흘렸던 것 같아요.

벌써 15년이 되셨군요. 지난 15년간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루트를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효성이나 KT같은 진성 클라이언트가

처음 어반엑스로 독립한 장소가 이곳 혜화동이 아니시죠? 여전히

한 축이고, 큰 사무소와의 코웤을 해왔다고 하더라도 그런

원서동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그때 공간에서 멀리 떨어진

식으로만 15년을 끌어 오셨을 수는 없었을 것 같네요.

곳에 자리를 잡지 않고 공간 근처에서 개업을 하시게 된 거죠?

그 사이 자동차전시장 관련해서 사무소의 전문성을 갖춘 것을 들

솔직히 개업 시점에 준비를 많이 한 상태가 아니어서 완전히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하나는 새마을금고를 들 수 있어요. 자동차전시장의

독립적으로 나가서 하는 게 두렵기도 했어요. 그러다보니 이상림 사장과

경우 벤츠매장의 설계를 필두로 페라리, 폭스바겐, BMW 등 몇 개의

얘기하여 독립 후 2년 동안은 프로젝트를 통해서 경제적인 문제에 공간의

프로젝트를 연속하여 수행하게 되면서 입소문을 탄 경우고요, 새마을금고는

도움을 받는 것으로 출발하게 됐지요. 독립 후 지속적으로 가야하는데 초기에

2014년인가 2015년인가 사무소가 무척 어려웠었는데 당시 효성에 있던 분이

세팅이 되지 않으면 안 되니까. 2년 동안은 필요에 따라 코웤(co-work)을

나와서 시공을 하기 위해 프로모션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에게 정보를 주시어

하든지 또 다른 방법을 찾든지 간에 취할 수 있는 방법을 의논한 거죠.

입찰에 참가해보라 해서 했는데 된 것이죠. 당시는 어떻게든 일을 따야하는

그래서 사실은 그 시점에 고민도 많이 했어요. 학교로 가버릴까? 여기저기

시절이라서 상대적으로 저가로 입찰에 응하여 일을 따게 되었어요. 건물

알아보기도 했어요.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 학교 가서 뭘 하지?

설계를 하면서 새마을금고 측에서 설계비 책정 등을 잘해주어 어려운 시기를

싶더라고요. 집어치우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래잖아 생각을 접었죠.

넘어설 수 있었고 그게 계기가 되어 새마을금고 관련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사무실을 한다, 근데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가지고

수행해가고 있습니다. 다른 루트라면 가끔 지명현상설계에 초청되기도

독립하자고 생각했던 거예요. 아마 좀 더 일찍 시작했으면 그러지 않았을 수도

하고 그랬어요. 일부는 지인을 통한 일도 있었고요. 더러는 홈페이지를 보고

있었을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늦었던 것도 아닌데 당시 40대 후반에

연락해오는 분들도 계셨고요. 그렇게 노출된 정보를 통해 알아보고 오시는

독립한다는 것이 다른 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었다는 강박이 작용했던

분들이 전체의 20% 정도 되는 것 같네요. KT와 자동차매장이 한 3~40%

것 같아요. 김수근 선생님 돌아가셨을 때 당시의 소장들이 40대 초반에

정도 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가끔 지명초청 받아 현상설계에 참여하여

오픈했으니까요. 제 동기들도 30대 중후반에 이미 독립한 상태였고요. 나는

일을 수주한 바 있어요. 결국엔 초창기에 했던 것들이 결과가 좋게 이어져서

그들에 비해 10년이나 뒤에 오픈한 격이었으니 마음에 부담이 크긴 했어요.

다음다음 일로 이어져온 셈입니다.

현재 사무소 멤버들 대부분은 처음 독립했을 때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오 대표님이 추구하는 건축의 지향점에 대하여

아니지요?

묻고자 합니다. 저는 이 집 어반엑스사옥에 관심이 많이 갑니다.

전혀 없지요. 다 바뀌었어요.

내용적인 면에선 전혀 다른 종류의 건축이라 하실 수 있겠는데 개인적으론 이 집에 들어설 때마다 공간사옥을 연상하곤

그 동안 운영을 잘 못해온 결과인가요?(웃음)

합니다. 공간에서 성장하셨고, 디자이너로서 큰 역할을 한 후

잘 못해온 거죠.(웃음)

독립하셨으니 당연하다할 수 있는데 이 집의 구석구석 작은 스페이스들을 경험하면서 건축가 가족의 거주지이자 사옥이고

그 사이 많은 부침이 있었다는 건데요.

하니 여러 가지 제약조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건축가가 하고

그렇죠.

싶은 것은 다 담아내려하셨을 것같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에서 받는 공간적 인상만을 보면 오 대표님의 건축의 지향점이

어반엑스를 끌고 오면서 맞닥뜨린 나쁜 조건/환경이 있었다면

공간 안에 있을 때나 독립하여 활동하는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무엇인가요?

것이 없다고 판단되는데 건축가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시간이 지나면서 프로젝트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줄어들더라고요.

레벨의 차이가 적절히 스킵플로어 형식으로 되는 것은 이미 내

물론 앞서 얘기했던 KT나 효성 같은 데는 이미 신뢰로 묶여 있어서 문제가

몸에 배어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건 어쩔 수 없이 공간사옥과 연관 지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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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겠지요. 다른 부분이 있다면 공간사옥 중에서도 신사옥의 계단 올라가는

공간적으로는 여러 종류의 어프로치 하는 루트를 통하여 공간이 다양성을

부분들은 의도적으로 좀 강하게 처리한 부분이 있어요. 그런 부분을 이 집에

가지면서도 하나로 묶여지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그런

적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물론 계단이란 부분이 집을 얘기함에

원칙들은 앞으로도 계속 지켜서 가고 싶은 거죠.

있어서 넓은 부분은 아닌데 계단 공간 자체의 볼륨을 통해서 뭔가 변화를 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 부분은 공간사옥과 미세하게 다른 지점이에요.

갯벌타워 말씀을 하셨으니 인천 송도의 최근 작업 BT센터 얘기를

그런데 얼핏 보기에 공간사옥과 비슷하게 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긴 해요.

해보시죠. 거기에도 입면 디자인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으신데

사옥 짓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간 출신의 김남현 이사님이 놀러 오신 적이

방금 얘기한 부분과 연결 지어서 말씀을 들어보면 좋겠네요.

있었는데 대뜸 “야, 공간사옥하고 똑 같네.” 그러시더라고요.(함께 웃음) 골목길

공간적인 흐름은 그라운드 레벨에서 한 층 올려 데크를 깐 게

같은 분위기와 스킵플로어라든지...

있는데 처음 디자인하기로는 2개 층 높이에 데크를 설치했었어요. 실제로는 1개 층 높이로 공사가 되면서 공간의 시퀀스는 상대적으로 많이 약화됐죠.

제게 강하게 와 닿았던 부분은 화장실이었어요. 층수로는

코오롱이 인수하면서 공사비 등의 문제로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죠. 형태들은

2층이라고 해야 하나요? 1.5층이라고 해야 하나요? 화장실 앞의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딜레마가 생겼는데 갯벌타워 경우는 한 가지 스킨으로

전실과 작은 공간에 구분하여 구획한 양변기실과 소변기실.

모든 걸 집어넣으려 한 것인데 그 때 당시 비슷한 시기에 작업한 게 강남

이것들은 비좁은 공간이지만 나름 최대한의 격식을 갖추고

성모병원 맞으편에 있는 B타워가 있었어요. 그 때 스킨을 어떤 방법으로

있는 태도라는 면에서 공간구사옥의 경우에서와 동질적인 면을

할 것인가가 여전히 고민이었는데 갯벌타워는 맑은 스킨에 테라스 등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집은 밖에서 보듯 생긴 모습은 공간사옥과

변화를 주었다고 한다면 BT센터는 루버를 통하여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전혀 달라도 오 대표님의 공간사옥에서 몸으로 익힌 DNA를

느낌을 주자는 게 컸고 스킨을 두 가지의 패턴을 가져가자고 하여 솔리드한

적절하게 소화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는 거지요.

스킨과 유리 부분으로 두 개가 엮어져 있는데, 일견 우스운 발상으로 들릴

물론 그것만으로 오 대표님 건축의 지향성을 정리하고자 한다면

수 있겠지만, 이 건물이 바이오 중심의 사옥이라는 점에서 두 개의 사슬이

섭섭하다 하실 수 있을 거예요.(함께 웃음) 그래서 직접 듣고자

꼬여 있는 DNA의 구조와 같이 두 개의 스킨을 꼬와서 만들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만.

생각했던 거죠. 그렇게 하여 솔리드한 스킨과 소프트한 스킨이 조화를 이루며

사실 내 건축의 생각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여겨지는 프로젝트는

루버도 사선으로 올라가는 움직임을 보여주려 했죠. 스킨의 조작이나 패턴의

통영수산과학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커다란 통 안에 오브제들이

변화로 다양한 표정을 연출해보자고 생각했던 거죠.

들어가 있고 그 사이로 여러 동선들이 지나가게 되어있는데 거기도 주공간이 있어서 그곳을 통해 들어갈 때에 그 사이에 목적되는 방들이 있는데 그 방들

독립한 이후에 어반엑스 오섬훈 건축의 특징은 거의가 스킨,

외에 부수적인 공간들을 많이 집어넣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서

표면에 집중된 듯한 양상을 띄고 있는데 그와 같은 디자인의

공간건축에서의 시퀀스 같으면 부수적인 공간이 많이 들어있다기보다는

방향성이 앞으로도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일차적으로 필요한 공간들이 분절되어 있거나 레벨로 나뉘어져 있거나

그렇게 보실 수 있는데 내심 그 면에 공간이 결합되기를 바라면서

해서 시퀀스를 만드는 장치를 주로 사용한다면 통영의 경우에서처럼 다른

많은 변주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거죠. 그러면 그 면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

프로젝트에서도 가능하면은 목적되어진 프로그램 외에 어떤 형식으로든지

일차적으로 표면이 경계로서의 작용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스케일이

간에 일견 필요 없어 보일지 모르는 부수적인 그러나 있으면 좋을 그런 것들을

커지거나 작아졌을 때 표면이 갖는 표정이 어떨 것이냐에 대해 첫 번째 개인적

찾아서 넣어 그것들을 거쳐 거쳐서 가는 시퀀스를 만들고자 하거든요. 그런

관심이 있고요, 다른 하나는 스킨 자체에서 공간적인 것과 엮여서 상징성을

면에서 공간건축의 작업과 나의 작업이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그걸

드러내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동질적인 건축에서의

얼마나 눈에 보이게 만들었느냐는 다른 문제이긴 한데 개인적으로 원하는,

태도나 느낌이 여러 종류의 이질성이 집합된 도시적 차원에서 어떻게

바라는 거지요. 상황에 따라서 그런 게 적용되는 데가 있는가 하면 그리 되지

나타날까?를 생각할 때 건물의 프로그램적 측면 외에도 상징적인 표현이

않는 경우도 있어요. 이번 기회를 통해 그간의 작업을 돌아보니 초창기엔

필요하다고 봅니다. 스킨 작업을 처음 시도한 사례 가운데 성신여대가 있는데,

그리 하려고 시도했던 게 많았던 것 같아요. 근래에 와서 보면 앞서 얘기했듯

요즘은 그와 같은 패턴의 입면작업을 많이 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프로젝트의 사이즈가 작아지고 상대적으로 민간 건축주들이 많다보니까 그런

거의 최초로 시도한 거였어요. 버티칼 스킨이 변화를 가지면서 입면이 다양한

것들이 잘 용납이 안 되는 거죠. 공공성이 작아지다보니까. 그래서 공간적인

표정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내 작업의 스킨은 똑같은 패턴으로 하기

거 보다는 스킨이나 스킨의 패턴 쪽으로, 형태 쪽으로 많이 치우쳐서 작업을

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나 솔리드한 것과 소프트한 것의 관계를 통해 표정을

해왔구나 하는 것을 보게 되요. 물론 콤페를 할 때는 다른 것 같아요. 앞의

만들어 가죠.

내용들을 많이 끼워 넣어서 작업을 시도해보지요. 작년에 작업한 것으로 청계천변에 관광센터를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거기에는 필요

대형 빌딩에 유리를 많이 써오신 편인데 채광, 열처리 문제

없다고 여겨지는 즉 요구조건에 없는 공간들을 많이 끼워 넣어서 시퀀스를

등 사용자 입장에서는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

만드는 작업을 해보기도 했지요. 여전히 그와 같은 것들이 설득을 해서라도

같습니다만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시고, 건축가로서

적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지요. 그런 게 나는 공간적으로 풍요로움을

개선책이 있으시다면?

배가시키는 방도라고 생각해요. 그게 그 집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정체성이

다양한 표정을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사실 환경적인

아닐까 싶은 거죠. 앞서 인천 송도의 갯벌타워에서 스킨으로 통합되어 있지만

측면에서 문제가 많을 수 있어요. 새마을금고에 적용한 사례로 유리만

테라스 등을 통해 여러 다른 표정을 개입시켜 다양성을 꾀하려했다고 하면

사용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솔리드한 격자 프레임 대신에 부분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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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카보네이트 등의 재료를 적절하게 도입하여 단열이나 빛의 문제를

김수근 선생님의 세대를 상기해보면 당대 현대건축의 거장이라고

풀고 있어요. 또 하나는 유리에 실크프린트를 하여 사용하기도 하죠. 그

불리던 분들과의 인연이 제한된 시절이었던 반면 요즘은 세계적

실크프린트된 부분은 빛 차단 효과가 커서 실내로 빛이 들어오는 것을

건축가들과 관계맺음이 수월하고, 전과 대비하여 열려 있는

막아주죠. 반대로 야간에는 조명에 의해 내부공간이 외부에 잘 드러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이는 바꿔 생각해보면 현대의 거장들과

효과가 있어요. 일산의 BMW전시장이 그래요.

자유로운 관계맺음의 이 시대가 외려 건축의 오리지낼러티를 궁구하는 이들에겐 블랙홀과 같은 상태에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작업을 해오시면서 건축하는 주변 동료들의 움직임도 예의

한데요? 그 면에서 이 시대에 우리가 이 땅에서 월드 클래스의

주시하시고 있으셨을 텐데 한국현대건축의 디자인 흐름 혹은

거장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싶고요.

방향성에 대하여 어떤 시각을 갖고 계신가요?

우리 건축의 상황이 거장들의 허명에 갇혀 있을 뿐 한국 건축의

우선 다들 건축을 읽어내는 깊이나 땅에 대한 해석들이 다양하고

독자한 중심성을 갖는다는 게 현실적이지 않다, 라는 관점에

독특하다는 생각 그리고 저변이 넓어졌다는 면에서 좋아진 것 같아요. 다른 한편으로는 춘추전국시대 같다고나 할까? 굉장히 많은 건축가들이 쏟아져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신가요? 두 가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현대건축의 거장과

나와 각자의 생각을 펼치고 있는 시절인 것 같아요. 좋은 의미로 지금의

추종자라는 관점에 있어서 우리가 서로 조금은 다르게 접근하고 있는 것

시대상황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 아닌가 싶어요.

같아서 그 지점에 대해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김수근 선생님의 작업 내용 중

종국에는 이념적인 색깔이 됐든 프로젝트를 해석하는 색깔이 됐든 그 자체가

예전 공간사옥 내 벽면에 퐁피두센터 공모전에 출품했던 모형있었잖아요.

그리 중요한 것 같지는 않고 문제는 외국의 건축가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사실 공간사옥도 그 모형의 한 피스가 구체화된 거로 봐도 될만한 거고요,

작업을 하듯이 국내 건축가들도 해외로 나가서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또 하나는 알레한드로의 요코하마 국제페리여객 터미널 공모전 출품작의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리베스킨트나 자하 하디드 같은

경우도 그런 경우인데 당시 런던에 유학중이던 황정현이라는 친구가 그

외국의 건축가들을 보면 초창기에 자기 건축의 색깔을 설정하기 위한 지루한

작업에 연관돼 있어서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알레한드로는 그와 유사한

시간을 갖고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바 있는데 우리의 경우, 그런 면에서

작품들을 요코하마 공모전 이전부터 여러 공모전에 지속적으로 제안했다는

아쉬운 점이 있는 거죠. 결국 건축가 스스로의 오리지낼러티가 중요한 거죠.

거지요. 결국 요코하마에서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렘 콜하스 등이 그의

과거 미스가 시카고에서 활동할 때 정작 시카고 도시를 만드는 사람은 미스가

작업에 우호적이었고 당선한단 말이죠. 그렇게 건축가로서의 빛을 보게 된

아니라 미스의 수많은 추종자들이라는 것이죠, 그 같은 색깔을 가지려면 좋은

경우인데 중요한 것은 건축가가 끊임없이 자기 건축의 색깔에 천착한 결과란

토양이 필요해요.

거죠. 그런 의미에서의 색깔을 가진 사람이 우리 건축계에도 있을 것 같긴 한데 내가 잘 몰라서 그렇게 말한 거고요. 알레한드로의 요코하마 프로젝트

말씀인즉 우리 건축계에도 세계적으로 주목되는 중심 건축가가

이후 여러 사람들이 그를 따라서 많이들 하고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소위

있어야 한다는 건가요?

추종자들이다 이거죠.

그 보다는 자기 색깔이나 오리지낼러티가 강한 건축가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중심적이라는 위상과는 다른 것 같아요.

지금 한국 건축의 단면을 끊어서 주요 흐름을 살펴보면 이전의 어느 시기보다도 많은 경우에서 대중과 건축이 물려

그런 기준하에 거론할만한 건축가가 없다는 말씀인가요?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 유형의 미디어를 통해서

내가 아는 한 그래요. 보면은 1981년인가 82년에 하디드가

건축을 얘기하거나 공공건축가, 마을건축가 등의 제도를

홍콩피크 공모전에서 당선을 하잖아요. 제출된 안으로 보면 그게 도면인지

통해서 실제 프로젝트를 운용하며 시민들과 만나는 경우가

그림인지 모를 정도였단 말이죠. 그렇지만 하디드 자신은 이미 그 때에 자기

많아졌다고 보여지고요. 건축과 대중, 건축의 대중성이라는

건축의 이론이 정립된 시점이었단 거죠. 우리에게는 DDP를 통해 익숙한

관점이 그런 점에서 강점이 있지만 한편으론 건축가가 전문성을

건축가인데 그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지만 그의 건축의 독창성이 곧

유지해나가는데 있어서 대중성이 외려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은

오리지낼러티가 보인다는 면에선 그가 월드클래스 건축가라는 데는 이견이

없으신가요?

없다는 말이죠. 우리에게서도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건축가가 등장할 수

건축의 대중성이 걸림돌이 된다기보다는 건축가에게 도움이 될

있나? 생각을 해보는데 현재로선 어려운 일 아닌가 싶은 거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건축을 이해하는 대중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죠. 건축의 오리지낼러티를 갖는다는 것은 건축의 대중성과는 다른 문제일 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한국의 동료 건축가는

있어요. 어떤 건축에 대하여 대중들을 이해시키는 데에 있어서 말로 설명을

누구를 꼽을 수 있나요?

해준다고 해서 그들이 얼마나 이해를 할까? 그런 것들이 괜찮은 건축이

(웃음) 글쎄요. 앞에서 얘기했듯 나를 포함해서 미스의

지어져 있으면, 일반인들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여행하며 직접 보고

추종자들처럼 활동하고 있는 국내의 건축가들은 많이 보이는데 정작

느끼고 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으니까 대중의 건축에 대한 안목, 눈높이가

미스처럼 활동하는 건축가는 안 보이네요. MOMA에서 두 번에 걸쳐 전시한

우리 건축의 오리지낼러티를 찾아가는 데에 있어서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거란

현대건축전, 디컨스트럭션을 주제로 한 그 시절의 이슈를 돌이켜보면 우리의

기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죠. 한국에 화가, 음악가는 월드 클래스가 있는데

건축 상황과 이슈로 국제무대에서도 주목받을 수 있을까? 그게 어렵다는

건축가는 왜 없지? 식으로 말이죠. 그렇게 되면 건축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거죠. 한편으로는 현대에 그 같은 이벤트가 필요할까 아닐까도 잘 모르겠어요.

위기감 같은 걸 느끼게 되겠죠.

87


현실적으론 상위 1%, 혹은 5%에 해당하는 소수 대중들과

하나로 통합된 반면 지니고 있는 도시의 문제는 각각 전혀 다르거든요.

건축가가 건축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창원은 외부에서 볼 때 공단도시라는 시각이 팽배해 있고, 마산-진해는 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반면 99%, 95%의 소위 다수 대중이

각각이 다른. 각 도시의 주민들과 지자체장들이 생각하는 것은 창원으로

있잖아요. 후자의 대중들은 건축가들이 전문성을 앞세워 끌고

세 개의 도시가 통합이 되어야 한다는 공통의 생각은 갖고 있는데 그러면

갈 수 있겠지만 전자의 대중들은 건축가 이상으로 많은 건축

어떤 방식으로 통합할 것이냐 하는 점에선 의견이 분분한데, 내가 가진

경험의 레퍼런스를 가지고 있어서 건축가들조차 상당수 부담을

주요한 생각은 각각의 도시를 일자리를 매개로하여 도시를 특성화시키고

안고 만나야 하는 대중일 수 있는데 요는 건축가들이 저들 소수의

서로 네트워크화 하자는 것이에요.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하나의 도시가

대중과 만났을 때 건축적 성취를 높일 수 있는 기회, 시너지를

변화하기까지는 족히 18년~20년의 시간이 걸리거든요. 정치적 변화를

높일 수 있다고 봅니다. 후자의 다수 대중들은 저들이 안고 있는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닌데 이참에 큰 틀은 한번 만들어보자

현실적인 문제의 건축적 해법을 통해 소화해주어야 하는 차이가

하는데 까지는 뜻을 같이 하고 있어요. 20년 단위로 도시기본계획을

있고요. 그런 면에서 건축가가 만나는 대중의 성격이 무엇이냐가

바꿔나가고 있는데 그 때마다 조금씩 개선해나가도록 정책적으로 생각들을

중요할 수 있다고 봅니다. 최근 유능한 젊은 건축가들이 공공의

집어넣어가는 거죠. 2년 임기의 총괄에서 물러나더라도 그 도시의 공공건축가

이름으로 만나게 되는 다수 대중들과의 빈번한 기회가 건축의

또는 건축가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해나갈 수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에 도움이 된다기보다 시류에

있다면 좋겠죠.

휩쓸려가는 것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분들도 적지 않은데 선배 건축가로서 그와 같은 지적에 대하여는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어느덧 나이로 60대 건축가가 되셨습니다. 공간을 기점으로 보면

건축가로서 직접 경험하게 되는 대중들은 앞서 예시로 든 소수의

40년의 건축인생을 지켜오고 있으시네요. 그 중 어반엑스를

대중들이겠죠. 그러나 건축의 환경이라는 것이 90%가 넘는 다수의 대중들을

운영해온 시간대로 보면 15년의 시간이 흘렀고요. 현재의 나이를

무시하고 전개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주거환경에 있어서 불특정 다수가 좋고

놓고 보면 지나온 향후 어반엑스 15년만큼의 시간을 새로

나쁨을 느끼는 어떤 것들이 있기 마련이기에 우리가 건축을 함에 있어서

써내려갈 수 있다고 보여지고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다시 그

그들의 입장, 시선 등을 빼놓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그건 아니란 말이죠. 즉

시간만큼 필드를 지키게 되면 90세의 현역이 되시는 겁니다.(함께

시류에 휩쓸린다고도 할 수도 있지만, 어떤 종류의 주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웃음) 물론 현 단계에서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본다는 것이

그 빈번한 기회를 갖는다면 단순히 시류에 휩쓸린다는 것과 조금 다를 수

겸연쩍은 일이기도 하지만 60이라는 숫자가 인생에서 분기점이란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상위 1%, 5%의 소수 대중들과 만나는 건축가들이

생각이 드는데 말이죠, 이 지점에서 포스트 오섬훈, 포스트

그들과의 작업을 통해 건축의 오리지낼러티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도 조금은

어반엑스에 대해 생각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다른 얘기이죠.

처음 어반엑스를 시작할 때 어떤 형태로든 계속 굴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몇 년 전

말씀을 나누다가 보니까 생활건축, 틈새건축, 중간건축 등으로

부터는 사무실을 지속시키는 것에 대해 틈틈이 생각해오고 있죠. 지금 당장

회자되는 우리 주변의 못생긴 건축물들에 개입된 다수 대중의

떠오르는 생각은 5년 뒤에는 사무소를 20년가량 운영한 시점인데 개인적으론

소자본의 건축을 통해서 우리 건축의 오리지낼러티를 만들어낼

그 때쯤 향후 20년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수 있지는 않은가 하는 꿈같은 얘기가 떠오르는데 그게

일차적으로는 향후에 어떤 종류의 건축색깔을 찾아가며 나아가느냐, 또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라고 생각하시나요?

경제적 관점에서 사무소 운영을 어떻게 할 거냐 등 두 가지 생각이 중요한데

그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그게 어떤 환경으로서는 중요하다는

사실 둘 다 만만치가 않아서···, 건축적인 색깔은 함께 하고 있는 동료들과

생각을 하는데 우리가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오리지낼러티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얘기하며 찾아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는 원칙적인 건축에

개인의 관점에서 건축가 개인과 관계하는 거라고 보면 조금 전의 얘기인즉

대한 방향, 예를 들어서 앞서 말한 것처럼 다양하고 복합적이긴 하지만

개인 건축가가 하기 보다는 집단이 놓여 있는 환경을 개선시키기 위해서

그게 좀 단순하게 드러날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하는 디자인의 대원칙들을

접근하는 것이란 점에서 다르다고 봅니다.

노매딕스라는 용어로 얘기했다고 치면 그 원칙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거고요, 그거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디자인 전략은 스킨이 됐든, 시퀀스를 만드는

현재 창원시 총괄건축가이신데 도시 규모에서 건축의 전문성을

부가적인 요소들이 됐든 좀 더 개발이 되면 좋겠지요.

개입시킴에 있어서 일반인들의 건축에의 관심을 동시에 아우르며

공간에서 김수근 선생님의 네거티비즘(Negativism)김수근의 건축철학을 집약하고

도시 발전의 건강한 그림을 그리고 실행에 옮기고 있으실 텐데

있는 용어

막상 현장에서 느끼는 고충도 있으실 것 같고 동시에 총괄로서

좋은데 그걸 실행하는데 있어서는 잘 만들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건축에서의

펼쳐 보이고 싶은 비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구체적인 디자인 전략이 미약했다는 거죠. 건축가 자신의 색깔이라고 하는

총괄건축가 이전에는 도시 스케일에서 바라봤던 경험이 많지

것은 드러나 있는 건축의 언어들로 나타난다고 보는데 원칙을 공감하는 거

이라는 개념을 떠올리며 드는 생각은 그 말이 함의한 원칙은 굉장히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적극적으로 도시를 바라보게 된 점은 무척 좋은

하고는 다르다는 얘기이죠. 네거티브즘이든 노매딕스든 어떤 건축의 언어로

것이었고요, 도시에 대한 정책 중 소위 도시재생사업으로 국토부와 지자체가

보여 지느냐 하는 그런 것들을 지속적으로 디벨롭 시켜 나아가면 좋겠다는

매칭 펀드로 추진되는 과제들이 있는데 대부분 일정 기간 안에 주거환경을

바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게 될라치면 결국에는 사무실이 지속되고

개선한다든지 도시맥락에서 공동체를 진작시키는 도시재생 사업을 하는데

유지되어야겠지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인데 우스개소리로 동료들과 “야, 우리

여전히 자본의 문제가 따라와요. 내 경우는 창원, 마산, 진해 세 개의 도시가

스타 얼라이언스 하나 만들면 안 될까?” 농담 삼아 말이죠, 그걸 느슨한 표현

88


속에서 건축적 지향점을 공유하며 한편으론 지속적으로 건축행위를 하려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확신을 줘야한다는 것과 진행 과정 중에 불편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를 몇 사람과 얘기해보면 돌아오는 답은 “야, 지금도

최소화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 후 방배동에 위치한 B타워가 준공

바빠 죽겠는데 그게 되겠어?” 식이죠. 대체로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오죠.

후 클라이언트의 만족도가 높았다는 것을 실무자를 통해서 들은 바 있었고

그러다보니 현실적으로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는 사실이지 내게도 큰

다음 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이죠. 더하여 사무소 직원들에게 특히 주의를

숙제입니다.

주는 게 클라이언트와의 약속은 절대적으로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을 심어주고 있고요, 동시에 틀린 것은 절대로 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세우고 20년 뒤에도 사무소가 유지되고 있다면 지금의 어반엑스

있어요. 어쩔 수 없이 원칙을 어기게 될 상황이 만들어지면 반드시 사전에

스태프들이 주역이 되어야할텐데 말이죠. 직원들과도 지금의

양해를 구하게끔 하고 있죠.

생각을 공유하시나요? 네, 하고 있죠.

프로젝트 수주를 위하여 공을 친다거나 등등의 통상의 접대와 같은 행위는 하지 않는다는 말씀인가요? 오로지 프로젝트

쉽게 공감들 하나요?

기반으로 성실함과 원칙주의로.

매년 초에 사무소를 기반으로 생각해왔던 것들을

어반엑스 오픈하고 7~8년 정도까지는 클라이언트와 공치는 류의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공유하기도 하고 일년에 두 차례 건축답사를 겸한

친밀감을 중시했는데 현재의 사무소로 이전한 후 지금까진 조금 달랐어요.

워크숍을 하며 술자리를 빙자해 얘기를 하긴 하는데 직원들이 그런 지점에

어느 시기부턴가 한번 클라이언트와 맺은 인연이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대해 얼마나 절실하게 느끼는 가 등은 각자가 안고 있는 타이밍의 문제도 있고

있다는 자신감 같은 게 붙기도 했고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위기의식 같은 걸

해서 잘 전달되고 있다고는 장담할 수는 없어요. 모든 게 맞아떨어져야 하는

느끼곤 해요. 모든 건축가들이 나와 같이 열심히 하고 있겠죠, 그러다보니

거죠. 이번 대담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사무소

인간적으로 끈끈함을 무시할 수 없게 되고요, 현재는 나름대로 그 방면으로도

오픈하고 초창기에는 그런 생각 때문에 5년, 10년 근무한 친구들을 외국에

애를 쓰고 있긴 합니다.

공부를 보낸다던지 하는 그럴듯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실행으로는 옮기지 못했죠. 그러다가 생각마저 잊어버리고 말은 거죠.

건축가가 60대 연배라는 것과 클라이언트의 연배가 무관하지 않을 듯 한데요, 점차 연배가 낮아지는 클라이언트에 대한 나름의

사무소 명칭 어반엑스를 김광현 교수님이 지어주셨다고 들었는데

대비책 같은 건 어떻게 세우고 있나요?

작명의 배경 혹은 이름에 담긴 사무소의 목표의식 같은 게

나 같은 경우는 주요 클라이언트의 나이 폭이 또래보다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10년 15년 이하에서 설정되어 있어요.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동년배에서

크게 사무소의 철학을 논할 정도의 거창한 의미를 담은 거는

느끼는 인간적 끈끈함은 적은 게 사실이에요. 그래도 다행이다 싶은 점은

아니고요, 사무소 오픈 시점에 같이 하자고 했던 친구들, 홍순재 등 몇몇이

클라이언트의 연배가 내려가면 갈수록 인간적 끈끈함보다는 일의 질로서

있었어요. 건축이란 이름만 고집하지 말자, 도시가 들어가면 좋겠다는

판단하려는 시각이 많아진다는 것이에요. 그래도 연배의 차이에서 생기는

방향성을 가지고 그냥 부르기 좋은 이름으로 김 교수님한테 작명을 요청하여

문제점이 없을 수는 없지요. 그럴 경우엔 사무소 공간을 공유하는 파트너 급의

받게 되었죠. 김 교수님이 도시, 어반에 ‘-ex’를 붙여서 익스트림도 되고,

동료가 그 자리를 메워주곤 합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젊은 설계실의 실장이

엑스퍼트도 되고 등등 의미를 부연해주시긴 했지만 어반엑스 자체에 철학적

일부나마 나를 대신하기도 하고요.

배경을 심은 것은 아니었어요. 끝으로 댁에서는 건축가 오섬훈에 대하여는 어떻게 그렇더라도 건축의 원칙으로 주창하신 바 있는 ‘노매딕스’하고

평가하시나요? 집과 사무실의 생활은 어떻게 구분하시나요?

연관도 있는 것 같아서 말이죠. 이를테면 ‘도시의 출구’도

사실 집사람은 제게 있어서 굉장히 든든한 후원자이지요.

가능하고요.

사소하게는 작업하다가 집사람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경우가 있는데,

의미 부여하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매칭 시킬 수도 있겠네요.(함께

그때마다 일반인의 시각으로 내가 못 보는 것들을 지적해주곤 하는데

웃음) 의미를 덧붙일 수는 있겠는데 처음 시작은 안 그랬다는 거죠.

은연중에 여러 가지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그런 거 포함해서 집사람에게 크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요.

어반엑스의 클라이언트들이 오 대표님을 찾는 이유는 무엇

집과 사무실이 한 건물에 있는 것도 일장일단이 있는데 주중은 몰라도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주말까지 일과 가정의 구분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출근하면

클라이언트 입장에 서서 잘 도와준다고 하는 면이 있는 것

퇴근할 때까지 집에 올라가지 않으려 하고, 주말 하루는 무조건 사무실과

같아요. 한번은 효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엎어질 뻔했어요, 설계도면

거리두기를 하려하고 있죠.

납품하고 막상 공사에 들어가는 실행단계에서 잘못된 도면 내용들이 죄다 드러난 거예요. 그 바람에 심하게 클레임(claim)을 받은 적이 있어요. 당신

이렇듯 사옥을 갖고 계시니 나름 성공한 건축가라는 생각을 하게

사무소 인력을 보완 해야겠다 등등, 그런 과정을 겪으며 프로젝트가 다시

됩니다.(함께 웃음) 현재도 진행중인 여러 프로젝트들이 있으신데

지명 초청 경쟁방식으로 바뀌게 되었고, 세 팀 중 하나로 참여하여 정말이지

마무리 잘 하시길 바라고요, 지금까지 장시간 대화에 응해주시어

그때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우리가 다시 일을 따게 된 경험이

감사합니다.

있었어요. 그 때 절실하게 느낀 게 뭐냐면 클라이언트에게 좋은 디자인으로

초대해주시어 감사합니다.

89


디자인 전략과 프로젝트

다양하다. 현대 옆길을 보면 그 주변에 다양한

장소로서의 공간, 움직이고 이동하는 흐름이

프로그램들이 선정되어 있다. 주택들, 중앙고,

그 건축적 요소라고 할 때, 이들 요소가 어떤

1. 건축적 환경이 사람들의 사고형성에 있어서

현대사옥, 가게들 등의 요소들이 동일한 한

속성과 특징을 갖느냐 하는 것은 사람마다

전적일 수는 없지만 환경 결정론적 관점에서

면(single surface)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낳게

다르고 시대마다 다르다.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건축과

되는 최소한의 장치일 수 있다.

제프리 킵니스(J.Kipnis)는 현대건축의

복합성 내포한 단순함

거기에서 생활하는 것은 중요한 이슈가 될

특질로서 이질성과 통합의 원칙(incongruity &

수 있다.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야 하고 그

3. 건물은 물질적 형체를 갖는다.

intensive coherence)을 얘기한다.

시대의 문화적 흔적으로서 기록된다면 그

그 물질적 형체는 그 안에서 사람이 생활해야

이러한 이질성의 공존과 통합의 원칙으로써

시대적 정신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것은

하고 주변도시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

노매딕스(nomadics)라는 건축적 원칙을

기본 전제인 동시에 중요한 방향설정이 된다.

생각하게 된다. 즉, 이질성과 통합의 원칙을

다원성의 시대인 현재는 각각의 개별성과

4. 이러한 건물의 속성을 생각하면, 건물이

내포하는 노매딕스로써 어떤 형태의 스킨을

독립성들이 서로 공존하면서 사회적 혹은

도시와 시간에 따라 경계로서 스킨, 생활할

만드느냐, 어떤 느낌의 내부공간을 만들고,

물리적 통합을 이뤄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어떤 궤적을 가지는 동선 흐름을 만들 것

이러한 인식하에 어떠한 건축적 어휘로써

인가가 중요해진다.

건축할 것인가가 초점이 될 것이다. 1990년대

스킨은 투명하게 둘러싸서 내부의 다양함과

중반 이후 작업해온 것들을 보면 연속적

복합성을 보여주거나, 스킨의 패턴에 점진적

흐름(single surface), 사이 공간, 외피체계

변화들을 통해 은유적으로 다양함과 통합성을

등의 실천 전략을 가지는 노매딕스라는

표현하고자 한다. 그 스킨의 결과적인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매딕스의

엔벨로프(envelope)가 하나의 틀을 갖는

주요 특성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상황들이

심플한 형태이거나 프로그램을 드러나게 한다.

때로는 연속적인 변주(continuous

- 공간조직 역시 주공간과 부수적 공간으로

variation)로서, 때로는 동일한 틀로서 병치되고

조직되기 보다는 다른 종류의 다양한

통합(coherence)되어 하나의 주된 이미지를

공간으로 조직되길 바란다. 그래서 인비트인(in

형성할 수 있을 때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between)적인 공간개념을 생각하게 된다. 동선의 흐름이 이러한 공간들을 느낄 수 있는

2. 현대사옥 옆길에서 일어나는 상황들, 즉

방법으로 다 연결되며 총 두 가지, 세 가지

아침 등교, 출근길, 정오 때의 벼룩시장,

방법으로 경험하게 해서 그 공간적 특징을

오후 중간나절의 한가로움, 저녁시간의 옥외

다원적으로 체득되었으면 한다.

포장마차

주점

으로 변신 등으로 길의 성격이

연속된 흐름을 가지되 다른 종류의 흐름이 1

2

90

3

4

1. 피카소(다비드-앙리 칸바일러) 배경과 대상들의 분절된 프래그먼트에 의해 각각이 해체되어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해낸다. 2~4. 아침 등교 시 길로서의 역할, 점심에는 벼룩시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 저녁 때는 포장마차 등을 중심으로 또 다른 장소의 이미지를 만든다.


병행되기를 원한다. 이러한 것을 노매딕스를 위한 실천 전략으로 삼고 디자인한다.

SKIN-1 ● 투명성

진행하면서 적용하게 된 어느 정도 공통적으로

디자인 과정상의 중요한 지점은 이들 대지와

SKIN-2 ● 점진적 변화

프로그램을 어떻게 해석하여 새롭고 적절한

대해서 새로운 해석은 그 건물로 인한 새로운

● 명신 사무동 증축

정체성 형성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SKIN-3 ● Envelope

● 공평 15, 16 지구 재개발

6. 사무실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나 현상설계를 진행하게 될 때 직원들과 함께 그 프로젝트에

● 관광센타 서울 리모델링 현상

대한 ‘개념적 공간구조’를 찾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하고 가끔 새로운 방향이 생기기도 한다.

● 한남 파운더리 사옥 ● 송도 BT선타

전략’을 연계하여 진행하게 된다.

이루어진다. 프로그램에 대해 각자의 해석이

● 방배동 B타워

● 어반엑스 사옥

대지에 내재된 잠재력 읽기나, 프로그램에

structure)와 앞서 이야기한 ‘디자인 실천

● 세연 테크놀리지 사옥

● 대전 사이버메드사옥

공간구조를 찾아내느냐 하는 것이다.

찾아낸 개념적인 공간구조(conceptual spatial

● 통영 수산과학관

● 세종시 KT무인국사

가지게 되는 나의 디자인 태도이자 색깔이라고 프로그램을 가진다. 그래서 또 다른 중요한

일반 건물

● 한성대 도서관

5. 위의 디자인 실천전략은 여러 프로젝트를

생각한다. 건물은 대지와 각기 다른

● 성신여대 강의동

single flow- 1 ● 외부공간 동선 흐름

찾아내어진 개념적 공간구조의 방향과 실천전략들의 발전된 시스템을 늘 기대하고

● 분당 벤츠 전시장

자동차 관련시설

● 대치동 VW 전시장 ● 일산 BMW 전시장

생각하면서 팀으로 일하게 된다.

● 서산 서령 새마을금고

7. 프로젝트를 계약할 때, 감리를 안 하고 설계만 계약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결국 시공과정을 거쳐서 건물이 완성되는 것이라서

single flow- 2 ● 내부공간 동선

설계된 대로 완성도 있게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 북천안 새마을금고 ● 아산 신우 새마을금고 ● 양평주택

감리의 역할은 너무 소중하다. 설계과정 중에 재료업체와 컨설팅을 거쳐서 실천 가능한

새마을 금고

주거

● 증산혁신거점주거 현상

디테일을 만들고 시공단계 때 샵드로잉(shop drawing)을 확인하고 시공자가 옆길로 새지

● 청주수곡 공공주거 현상

않게 단속을 잘하는 것이 디자인 아이디어를

5

이루어내는데 필수적이라서 현장에 집착한다.

5. 디자인 전략 매칭표

91


SKIN-1 +(single flow 1, 2) 투명성 건물과 주변과의 경계로서 투명한 스킨을 사용하여 내부프로그램과 외부와의 소통을 시도한 작품들이다.(여러 형태의 엔벨로프(envelop)를 가지기는 하지 만) 저층부의 공공적 성격의 외부공간이나 프로그램이 때로는 내부와의 연결로써 나타나는 그룹이다.

1

2

인천 송도 미추홀타워 일련의 기존 건물과 연계하여 증축함으로써 하층부의 연관된 동선 흐름과 외부공간의 조직이 중요했다. 투명유리와 실크스크린의 패턴에 따라 투명도를 조절하고자 했다.

3

한성대 도서관 전체적인 틀로 설정된 두 면과 부분적으로 필로티나 셋백을 통해 틀의 느낌을 강화시키 고, 그 속에 각각의 프로그램들을 통한 다양한 공간체험과 동시에 동선의 흐름과 휴게, 화 장실 등의 선형 공용 공간의 공간적 변화와 주변 캠퍼스몰과의 시각적 교류가 일어나도 록 계획하였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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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송도 미추홀타워 Ⓒ와이드AR 3. 한성대 도서관 Ⓒ박영채 4. 한성대 내부 Ⓒ박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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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 새마을금고 & 청담동 T빌딩 스크린의 장치와 루버 등으로 낮, 밤 혹은 루버나 스크린의 작동에 따라 여러 모습이 연 출될 수 있도록 한 것이 청담동 T빌딩이라면, 신우 새마을금고는 단순한 스킨과 동선의 흐름으로 내·외부가 소통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로 계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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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신우 새마을금고 Ⓒ김재경 7. T빌딩 Ⓒ박영채 8~11. T빌딩 투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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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GALLERY SKIN-1+(single flow1,2) 위치: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법곳동 334-5, 318-4 대지면적: 3,306.00㎡ 연면적: 3,736.60㎡ 규모: B1, 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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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경 Ⓒ바바리안 모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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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테크닉 전체적으로 심플한 유리박스로 하되 출 입구부분의 변화와 유리재료의 투명도 를 이용한 변주, 상층부의 라이팅 박스 (Lighting Box)화, 내부공간의 스킵플로어 구성과 내부마감재의 거친 질감을 갖도 록 했다. 전체적인 이미지는 심플하고 깔끔하게 5

디자인하되, 스킨의 텍스춰, 내부 디자인 의 다양성을 통하여 BMW의 세련되고 깔 끔하나 다양한 베리이션(variation)이 있 는 이미지를 나타내고자 하였다. 첫째, 스킨의 다양한 텍스춰는 유리에 실 크스크린을 해서 층마다 다른 프로그램 에 대응하여 계획하였다. 즉 1,2,3층은 투 명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뿐만 아니라 투 명 구역(zone)을 두기도 하였다. 위로 갈 수록 점점 그라데이션(gradation)이 되게 하였다. 4층의 스킨의 불투명도를 80%로 하여 안 에서는 외부가 보이나 밖에서는 내부가 안보이도록 하고, 외벽 주변으로 라이팅 코리더(Lighting Corridor)를 설치하여 4층 외벽 전체가 균질한 빛을 내는 라이팅 박 스가 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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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야간 전경 Ⓒ오섬훈 3. 야간 전경 Ⓒ바바리안 모터스 4.야간 전경 Ⓒ오섬훈 5. 일산 BMW 3층 평면도 6. 일산 BMW 1층 평면도


둘째, 내부공간 디자인에 있어서는 BMW 의 CI를 근간으로 하되 고객대기실 등의 위치를 아래위 전시장의 중간에 두어 스 킵플로어를 구성하고, 이동 동선을 감안 하여 적절한 보이드(void) 공간을 구성하 였다. 지하1층 출고 대기 구역에는 선큰 가든을 계획하여 또 다른 내·외부 공간의 연계를 계획하였다. 셋째, 지형의 경사를 이용하여 전시장과 고객동선을 주1층으로 진입하게 하고 향 후 정비 센터와 출고장을 지하1층으로 연 결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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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8

7. 실내 Ⓒ이충건 8. 일산 BMW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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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N-2 +(single flow 1) 패턴 전이 혹은 변화 SKIN-1의 그룹들이 단순히 유리의 투명성에 의한 디자인 테크닠이라면 SKIN-2군은 유 리 외에 하드한 패턴이 적극적으로 개입되어 전체적으로 변화와 다양성을 모색했다.

KT 무인국사(세종시) & 세연 테크놀로지 사옥 말 그대로 무인 통신국사이기 때문에 내외부의 관계보다는 상대적으로 메카닉하게 보이 고 싶었다. 레귤러한 창 패턴이 기본이었으나, 기울어진 각도의 변화로 다양한 제스처를 만들어 냈다. 세연 테크놀로지 사옥은 표피가 프로그램을 둘러싸되 열려서 소통을 도모 할 수 있도록 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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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있는 창의 패턴으로 네트워크의 상징적 이미지를 표현했다. 반사유리를 이용하여 자연요소를 건물의 외피에 담고자하며, 창의 깊이를 최대 400까지 조절하여 생동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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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연 테크놀로지 투시도 2~3. 세종 KT Ⓒ김재경 4. 세종 KT 다이어그램


아산 명신 사무동 기존 공장과 주차장 사이의 경사진 땅에 직원 복지시설과 사무공간을 계획한 프로그램 이다. 5

공평 15, 16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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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 파운더리 사옥 이태원 핫 플레이스에 문화예술이 전시되고 있는 대상이 되는 장소를 계획하고 시공 중 에 있다. 루버의 각도와 길이로써 변화를 계획하고 전체 형태도 다이내믹한 느낌이 들도 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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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명신 사무동 스케치 6~7. 공평 15,16 지구 평면 스케치 8. 한남 파운더리 투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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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TOWER SKIN-2 +(single flow 1) Banpo Office 연면적: 45,842.74㎡ 규모: B5, 2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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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포 B타워 Ⓒ박영채 2. 반포 B타워 사진나열 Ⓒ박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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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B타워 Ⓒ박영채 4~5. 입면패턴 Ⓒ박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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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B타워 Ⓒ박영채 7. 내부 사진 Ⓒ박영채 8. 배치도 9. 1층 평면도 10. 2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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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N-3 +(single flow 1) ENVELOP TYPE 엔벨롭(envelop)의 결과가 모노리스(monolith)같은 단순한 형태로써 스킨의 작용에 중점 이 주어진 타입을 선호해 왔지만, 프로그램에 따른 다른 종류의 스킨이 병치되어있는 타 입들이다.(서령 새마을금고는 SKIN-2에 더 가깝기도 하다.)

분당 벤츠 전시장 자동차 전시장과 주차장이 강하게 포함된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에 따른 두 개의 스 킨으로 나뉘다보니, 변화와 동적인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기울어진 면이 점점 수직면으 로 변해가는 모습으로 디자인 되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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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폭스바겐 전시장 뒤집어진 ‘ㄹ’ 자 스킨이 외부의 패턴에서 내부 천정, 벽, 바닥으로 이어지게 시도한 프로 젝트였으나, 내부공간의 스킨패턴은 CI 벽을 넘지 못하고 단순히 면으로만 연결되는데 그쳐 아쉬웠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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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분당벤츠전시장 다이어그램 2. 폭스바겐 전시장 다이어그램 3. 분당자동차전시장 Ⓒ박영채 4. 대치동 폭스바겐 Ⓒ박영채 5. 분당자동차전시장 Ⓒ박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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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령 새마을금고 평면구성의 다른 사항을 넘어서서 모노리스적인 조형을 시도하던 때라, 선이 굵은 수직 수평틀과 상층부로의 변화, 수직수평틀 사이에 채워지는 재료로서 유리 외에 폴리카보 네이트를 사용하여 모노리스 같은 느낌을 만들었다.

청주수곡 행복주택 현상설계 업무시설 등의 저층부와 주거의 상층부 구성에 대응하는 형태를 가진다. 상층부 변화는 기본적으로 일조권 사선제한을 디자인 모티브로 테라스 타입과 그 변화를 계획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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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서령 새마을금고 Ⓒ김재경 7. 서령 새마을금고 Ⓒ오섬훈 8~9. 청주수곡 투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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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OFFICE SKIN-3 +(single flow 1) 위치: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구성리 302번지 외 1필지 대지면적: 48,257㎡ 연면적: 2,58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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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신 사무동 Ⓒ이충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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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신 사무동 외부 공간 Ⓒ이충건 3. 명신 사무동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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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명신 사무동 내부 공간 Ⓒ이충건 6. 명신 사무동 2층 평면도 7. 명신 사무동 1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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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LE FLOW 1 +(skin 2) 외부 공간 동선 공간체험의 다양성은 프로그램의 해석에 따라 주어진 것 외에 부가적 요소들 즉, 회랑, 테라스, 틈, 보이드, 계단 등의 공간이 적절한 관계와 이들의 연결이 시각적인 차원과 더불어 체 감될 수 있는 연속적인 흐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평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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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관광공사 서울센터 리모델링 현상 주어진 메인전시 공간 외에 휴게, 테라스, 진입동선 계단, 에스컬레이 터 등을 1층 진입 회랑 위로 적극적으로 띄워서 도입부의 계단광장, 오 픈된 골목길 같은 복도 등을 통해서 청계천변과 외부로 열린 복합 관 광 인포센터가 되길 기대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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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평주택 조감 2. 양평주택 스케치 3~5. 한국 관광공사 서울센터 리모델링 현상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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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성당 좁은 땅이지만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긴 호흡의 흐름과 말씀의 빛 으로 상징되는 성전의 내부공간을 계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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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혁신거점 주거현상 물펌프장을 존치하면서 저층의 접객시설이 있는 공원화와 상층부 입주민들의 테라스 활 용과 그 테라스들의 외부적 연결이 저층부에 이어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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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사림성당 내외부 공간 8~9. 증산혁신거점 주거현상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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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 15,16지구 SINGLE FLOW 1 +(skin 2)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401-20 일대 대지면적: 9,277.10㎡ 연면적: 116,020.59㎡ 규모: B8, 1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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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elopment

종로변과 인사동에서 내려오는 길 사이에 접해져있는 공평 15,16지구 재개발은 주변의 강한 역사적 맥락뿐 아니라 대 지내부에 피맛길, 옛길, 물길 등의 역사적 자산이 있는 환경으로 서울시의 도시건축시범사업의 일환으로 선정된 재개발 프로젝트였다. 공공건축가의 자격으로서 삼우설계와 협력하여 계획설계를 진행했다. 세 가지의 주요한 계획원칙을 설정하여 진행하였다. 역사성과 공공성의 확보, 피맛길 환경개선 및 보전, 저층부의 수복 재개발 개념도입의 원칙으로써 입체적 골목길의 개념과 다양한 소규모 외부공간을 계획하며 개방된 공공성을 확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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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피맛길을 중심으로 종로변의 건물을 정비, 리모델링을 유도하고 신축 재개발 쪽은 전체 맥락에 어울릴 수 있도록 소 규모로 매스를 분절했다. 공사과정에서 제대로 된 물길이 발굴되어 저층부와 공간적, 시각적 연결성을 계획 중이다. 입면 패턴도 기본 요소의 형 태를 기준으로 층의 위치에 따라 각도나 크기를 변화시켜 점진적 변화의 느낌을 가지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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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평 15, 16지구 조감도 2. 배치도 3. 다이어그램 4. 입면 패턴

Preser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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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5. 공평 피맛길 6. 다이어그램 7. 1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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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LE FLOW 2 +(single flow 1) 연속적인 흐름(single flow, surface)을 부가적인 프로그램들의 외부공간적 연결뿐 아니라 내부공간에서도 다양한 볼륨, 다양한 프로그램의 연결로 이어져야 하지만, 때로는 내부 의 동선 흐름에서만 이뤄지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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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엑스 사옥 얇은 한 켜의 계단, 복도로서 전면의 골몰길의 느낌이 몇 개의 층을 거쳐 옥상에 이르기 까지 공간볼륨의 다양함이 연결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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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매드 사옥 IT 사옥으로서 인상적인 느낌을 줄 수 있 는 내부동선 연결을 계획하여 4층의 식당 과 연결된 테라스의 휴게 공간에 이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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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어반엑스 사옥 Ⓒ박영채 3. 어반엑스 사옥 계단 다이어그램 4. 사이버매드 사옥 Ⓒ김재경 5. 사이버매드 사옥 Ⓒ오섬훈


양평 주택 SINGLE FLOW 2 +(single flow 1) 위치: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신화리 15-5 대지면적: 622.00 ㎡ 연면적: 134.47㎡ 규모: 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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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경사진 땅에 중정을 두고, 주변 경치와 레벨을 합하여, 외부공간의 변화와 그 변화가 동선의 흐름으로 내부공간과도 이어지도록 하였다. 식당과 거실이 중정의 높은 레벨과 연결되고 중정의 낮은 레벨이 서재 앞의 필로티가 서재와 이어져 반 층 차이의 거실과 식 당 등을 이어준다.

1. 전경 ⒸSergio Pirr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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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실내 ⒸSergio Pirrone 3. 전경 ⒸSergio Pirr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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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거실

안마당

현관 화장실 손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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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주방

다용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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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서재 ⒸSergio Pirrone 5. 1층 평면도 6. 거실 ⒸSergio Pirr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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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주택 감리 후기 감리현장에는 자주 부딪히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설계당시에 못 봤던 주변 환경과 관계에서 공간적 연계 문제이고, 둘째는 시공상의 이유로 변경을 유도하는 경우이다. 양평주택의 경우도 식당에서 서재 앞 낮은 필로티를 통해서 멀리 낮은 조망이 열리는 부분에 대한 확인과 2층에서 1층으로 반 층 내려오는 곳에 들려 진 지붕들로 건너편 산자락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설계 때는 보지 못했다. 뜻밖의 좋은 장면 발견에 클라이언트와 함께 즐거워 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두 번째 해당 부분은 전면에 벽돌 박스 위로 솟아나오는 지붕면의 연결부분 처리 문제였다. 누수와 단열의 문제가 안 생 기도록 하면서 원하는 치수의 지붕면이 빠져 나오듯이 하게 하는 것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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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공사 장면 및 공종 관계자와 나눈 문자메시지 Ⓒ오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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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건축가 오섬훈의 인간적 매력은 건축하는 동지애가 특히 강하다는 점이다. 공 간에서의 사반세기 건축 이력이 오늘의 어반엑스를 견인하는 지층으로 작용 하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화 중에도 그는 공간에서의 말년기 에 관하여는 최대한 말을 아낄 줄 아는 신사도를 발휘했다. 공간은 여전히 오 섬훈 자신의 건축을 지탱해주는 표본이며, 거울이기에 공간 출신의 선배 건축 가들과 비견되는 어반엑스의 미래상을 그리며 뿌리 깊은 사무소의 전통은 이 어가되 어반엑스만의 독자한 위치를 점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읽혔다. 건축인 생 40년의 궤적이 무르익은 건축의 정점을 지나가고 있음을 환기시키는 숫자 임에 분명하지만 아직은 건축의 장(場)에서 자신의 색깔을 깊게 드리웠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늘도 오섬훈 자신은 준비할 미래가 더 소중한 까닭이다. 자료 협조 및 사진 크레딧 본문 전체 자료 및 사진 제공 : 어반엑스건축 사진 크레딧 : 별도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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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반엑스사옥 단면 투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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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어반엑스사옥 내부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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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문의 : 시공문화사 http://www.spacetime.co.kr, spacetime@korea.com, T. 02) 3147-1212, 2323, F. 02) 3147-2626


제52차 12월 송년 프로그램 발표

WIDE 건축영화 공부방 코로나19로 어수선하게 보낸 2020년 한 해 동안 《WIDE건축영화공부방》에서는 건축의 직접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일반적이고 다양한 건축의 주제를 다루어 왔습니다. 각각의 프로그램을 접하며 건축이론, 역사, 혹은 환경이나 이념 등, 확장된 다양한 생각을 영화를 통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프로그램

이제 한 해를 정리하는 송년 프로그램으로 독자

렘(Rem)│75min│2016│감독_토마스 콜하스(Thomas Koolhaas)

여러분들을 만나고자 합니다. 올 한 해 역경을 헤쳐 나온 서로서로에게 응원의 박수를 나누는

감독의 이름이? 그렇다. 렘 콜하스의 아들이다. 그래서 영화제목을 ‘렘’이라고만 했나? 렘과의 관계를 은폐하려고?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워낙 유명한 건축가니 ‘렘 콜하스’라고 했으면 더 파급력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거의 모든 건축 다큐는 온전히 건축물과 그 배경에 대한 탐구가 전부다. 반면 토마스 콜하스가 바라본 시선은, 건축가와 아버지 즉 건축은 물론 인간적인 관계에도 할애되었다. 그렇다고 가족사 속에 숨겨진 비화 따위를 기대할

일시

필요까진 없다. 이 다큐는 시애틀 도서관에서 매일 숨어 지내는 노숙자, 카사 다 뮤지카를 뛰어다니는 파쿠르 뿐만

2020년 12월 9일(수) 7:00pm

아니라 렘의 삶과 작업방법, 철학 등 다양한 관점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사실 렘 콜하스는 따로 설명이 필요한 건축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네덜란드 출생으로 OMA 설립 및 대표, 그의

장소

유명한 책 『정신 착란증의 뉴욕』, 작품으로는 베이징 CCTV사옥, 시애틀 도서관, 포르투갈의 카사 다 뮤지카,

이건하우스(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 161)

보르도 주택, 우리나라엔 서울대 미술관과 리움, 최근 갤러리아 백화점 광교점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필자는 늘 그의 영화적 배경이 흥미롭다. 네덜란드 《헤이그 포스트》라는 신문사 기자로 일을 하다가 ‘르네

방장

달더(Rene Daalder)’등과 더불어 필름그룹 1,2,3 이라는 팀을

강병국(본지 기획자문, WIDE건축 대표)

만들어 “1,2,3 랩소디”라는 영화에 직접 출연하기까지 했고, “The White Slave”라는 영화를 직접 제작하기까지 했다.

신청 예약 방법

건축영화에서 없어서는 안 될 영화감독, 일라 베카(Ila Bêka) &

네이버카페 〈와이드AR〉 WIDE건축영화공부방

루이즈 르모안(Louise Lemoine)의 르모안이 보르도 주택의

게시판에 각 차수별 프로그램 예고 후 선착순

건축주교통사고를 당한 건축주의 딸이었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통해

접수

처음 알았다. 그가 렘의 보르도 주택에서 살고 있다니. 헉! 고 김수근 선생의 경동교회 모형이 영화에 나오는 것도

주최

인상적이다.

간향클럽, 미디어랩&커뮤니티

(글. 강병국 건축가)

주관 WIDE건축, 와이드AR 후원 이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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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향클럽, 미디어랩 & 커뮤니티

간향클럽 사람들

GANYANG CLUB, Media Lab. & Community 우리는

mc 1

편집인 겸 프로듀서 전진삼

건축가와 비평가 및 다방면 건축의 파트너들과 함께

사진총괄 부편집인 김재경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건축한다는 것만으로 반갑고

섹션 편집장 박지일

행복한 세상을 짓는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편집위원 김태형, 백승한, 이태현, 최우용 디자이너 심현일, 디자인현

우리는 건축계 안팎의 현안을 주시하며 이슈를 발굴-

mc 2

사진위원 남궁선, 노경, 진효숙 비평위원 김현섭, 박성용, 박정현, 송종열, 이경창, 이종우, 현명석

공론화하고, 나아가 건축동네의 계층, 세대, 업역 간의 골 깊은 갈등 구조를 중재하는 매개자 역할을 통해 우리 건축의 현재와 미래를 견인하는 통합의 지렛대가

mc 3

제작자문 김기현, 시공문화사spacetime 종이공급 박희진, 신안지류유통

되겠습니다.

인쇄처 서울문화인쇄 인쇄인 강영숙 제작국장 김은태 관리부장 손운일 우리는 이 땅에 필요한 건강한 건축 저널리즘을 구현함은

mc 4

독자지원 및 마케팅 박미담

물론 건축과 대중 사회를 연결하는 미디어 커뮤니티가

과월호 공급 심상하, 선인장

되겠습니다.

서점관리 심상호, 정광도서 직판관리 박상영, 삼우문화사

우리는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mc 5

기획자문 강병국, 고영직, 고충환, 김영철, 박병상, 박진호, 손장원, 신용덕, 안철흥,

월례 저녁 강의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땅집사향)》

우종훈, 이정범, 이중용, 전진성, 허은광

건축가들의 이슈가 있는 파티 《ABCD Party》

운영자문 강승희, 김창균, 손도문, 신창훈, 이수열, 이승용, 이윤정, 조남호, 최원영

지역 건축의 콘텐츠를 발굴하고 응원하는 《ICON Party》

mc 6

고문 김종헌, 박민철, 박영채, 박유진, 이충기, 정귀원, 함성호, 황순우

인천건축의 디자인 리딩 그룹을 선정하는 《Incheon

명예고문 곽재환, 구영민, 김정동, 박길룡, 박승홍, 우경국, 이상해, 이일훈, 이종건,

Architect 5》

임창복, 최동규

건축역사이론비평의 연구자 및 예비 저자를 지원하는

대표고문 임근배

《심원건축학술상》 신예 비평가의 출현을 응원하는 《와이드AR

mc 7

패트롱 김연흥, 김정후, 목천, 삼현, 이태규, 장윤규, 최욱

mc 8

발행위원 김기중, 김용남, 김태만, 오섬훈, 우의정, 임재용, 정승이, 조택연, 하광수

건축비평상》 내일의 건축에디터&저널리스트를 위한 《와이드AR 저널리즘워크숍》

부발행인 이주연

건축 비평도서 출판 《간향 critica》

대표, 발행인 전진삼

건축가(집단)의 모노그래프 출판 《wide document》 국내외 건축과 도시를 찾아 떠나는 현장 저널

mc 9

심원건축학술상 수상자 박성형, 서정일, 이강민, 이연경, 이길훈, 강난형, 도연정, 서효원

《WIDE아키버스》

심원건축학술상 심사위원회 김영철, 김현섭, 서정일, 한동수

인간・ 시간・ 공간의 이슈를 영상으로 따라잡는

심원문화사업회 사무장 신정환

《WIDE건축영화공부방》 건축・ 디자인・ 미래학 강의실 《포럼 AQ korea》 건축 잡지&저널리즘을 아카이빙하고 연구하는 《한국건축저널리즘 연구회》 인천도시건축의 건강한 생태계를 준비하는 《인천건축발전소》 등 일련의 프로젝트를 독자적으로 또는 파트너들과 함께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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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10

마실와이드 대표 김명규 팀원 최지희, 고현경, 김정아, 김찬양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우리 건축 장場의 새 얼굴로부터 기성, 중견, 노장 건축가를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

‘건축가 초청강의’(시즌5) Architects in Korea・ Ⅴ : Young Power Architect

2020년 11월_제164차 : Architects in Korea 52

하에 이 땅에서 활동하는 벽안의 건축가까지 주목하고자 합니다. 2016년 5월~2017년 2월(1라운드), 2017년 3월~2018년 2월(2라운드), 2018년 3월~2018년 12월(3라운드), 2019년 1월~12월(4라운드), 2020년 1월~12월(5라운드: Young Power Architect)로 이어지는 건축가 초청강의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주관 와이드AR 주최 그림건축, 간향클럽

이야기손님 : 김진휴, 남호진(김남건축 공동대표) 일시 : 11월 18일(수) 7:30pm

협찬

장소 : 이건하우스(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 161)

시공문화사Spacetime, 유오스Knollkorea,

주제 : 오늘만의 정답

수류산방 후원 ㈜이건창호 문의

2020년 12월_제165차 : Architects in Korea 53

02-2231-3370, 02-2235-1960 *<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카페명: 와이드AR, 카페주소: https://cafe.naver.com/aqlab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손님 : 박혜선, 오승현(서가건축 공동대표) 일시 : 12월 14일(수) 7:30pm 장소 : 이건하우스(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 161) 주제 : 촘촘히 읽고 단단히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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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AR》 2020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4

강병국

Kang Byungkuk

최문규

Choi Moongyu

정재헌

Jeong Jaeheon

Lee Kwanjic

이한종

Lee Hanjong

손진

Son Jean

Lim Hyoungnam, Roh Eunjoo

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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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4*/,03&"˾

이관직

임형남, 노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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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건축가들 ˽

Kim Kwangsoo

김재관

Kim Jaegwan

이은석

Lee Eunseok

강승희

Kang Seunghee

김동원

Kim Dongwon

SE 04

SE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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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AR》 2019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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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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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S IN KOREA . Ⅳ

ARCHITECTS IN KOREA . Ⅲ

EDITORIAL

EDITORIAL

나의 건축 인생작Masterwork

X세대 건축가들의 자서전Architect’s Autobiography

ESSAYS

ESSAYS

강병국 Kang Byungkuk_광양장도박물관

김주경 OUJAE Architects : 나의 건축 인생 연대기 혹은 기억조작

최문규 Choi Moongyu_KIST 숲속 어린이집 정재헌 Jeong Jaeheon_양평 펼친집 이관직 Lee Kwanjic_영남대60주년기념 천마아트센터 이한종 Lee Hanjong_가르멜의 모후 수도원 손진 Son Jean_아이뜰유치원 임형남, 노은주 Lim Hyoungnam, Roh Eunjoo_제따와나 선원 김광수 Kim Kwangsoo_부천아트벙커 B39 김재관 Kim Jaegwan_유진이네집 이은석 Lee Eunseok_새문안교회 강승희 Kang Seunghee_여목헌 김동원 Kim Dongwon_분당메모리얼파크 사옥

김범준 TOPOS Architectural Firm : 오리지낼러티 탐문의 건축여정 김태만 HAEAHN ARCHITECTURE : 실패의 역사 (to be) unbuilt 이상대 spaceyeon architects : 어느 건축 마라토너의 방백傍白 임영환 D・LIM architects : ‘지속가능한’ 아마추어 건축 김선현 D・LIM architects : 꿈꾸는 자의 행복한 건축 조성익 TRU Architects : 냅킨 드로잉 박창현 a round architects : 몇 가지 단서들 김세경 MMKM : 건축이라는 올가미 민서홍 MMKM : 건축 짓는 농사꾼의 길 조진만 JO JINMAN ARCHITECTS : 어느 젊은 건축가의 회상 홍재승, 최수연, 이강희 PLAT/FORM : 풍경風景, 반 풍경 그러나 알레고리

NOTICE 제12회 심원건축학술상 추천작 발표

NOTICE

제29회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 공모

제12회 심원건축학술상 공모

제11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공모

제28회 김태수 해외건축여행장학제 공모


《와이드AR》 2018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2

《와이드AR》 2017년 3-4월호, Special Edition Vol.01

PUBLISHER’S COLUMN – ABCD파티–올해의 발견

PUBLISHER’S COLUMN – 친구

ARCHITECTS IN KOREA . Ⅱ

ARCHITECTS IN KOREA . Ⅰ

EDITORIAL 한국 건축의 새 판을 여는 젊은 리더들의 12가지 화법 ESSAYS 건축의 엄밀성과 농담, 혹은 사랑과 체념 : aoa architects 건축이 남긴 이야기들 : CHAE–PEREIRA architects 새로운 프로세스와 시스템 : EMER–SYS

EDITORIAL 젊은, 내일의 건축 리더들이 말하는 우리 건축 장場의 단면 #1. 건축의 뿌리 혹은 공부의 배경에 대하여 #2. 한국 건축 비평(계)에 대한 바람 #3. 귀 사무소(팀)의 작업 화두는? #4. 현대건축을 수행함에 있어서 ‘전통’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5. 귀하(또는 사무소, 팀)가 이해하고 있는 ‘개념’이란 무엇인가? #6. 현 단계 한국 건축계, 무엇이 문제인가?

경계에서의 점진성 : EUS+ architects 새로운 주거 트렌드를 리드하는 건축, 건축가 : johsungwook architects 엘리스의 비눗방울 놀이, 그리고 일상 속 이야기 생성 : L’EAU Design 스타일의 전략–작업의 방법에 대한 근본적 이해 : Min Workshop 근대 건축, 수용과 변용의 미 : OFFICE ARCHITEKTON 들띄우기와 흰색 그리고 부산 : RAUM architects 새로운 눈을 갖기 위한 발견의 방식, 질문 : Samhyun Urban & Architecture 길, 에움길, 샛길 : SUPA schweitzer song 따뜻한 건축 그리고 10+ : UTAA NOTICE 제10회 심원건축학술상 심사결과 발표 당선작 : 해당작 없음 심사위원 김종헌, 박진호, 우동선, 함성호

PROJECTS : OFFICE INFORMATION a.co.lab : 휴먼 네트워크의 수행자 BOUNDLESS : 관계의 진화를 엮는 전술가들 designband YOAP : 3인 3색의 피보나치 수열로 건축하는 집단 FHHH Friends : 좌충우돌 화려한 팀플레이 집단 HG–Architecture : 디지로그의 세계를 실천하는 스튜디오 JYA–rchitects : 함께 흘리는 땀의 가치로 무장한 팀워크 mmk+ : 한 방의 장외홈런 다음을 준비하는 히어로 OBBA : 건축, 내러티브의 소중함으로 승부하는 사무소 stpmj : 아트와 건축의 경계를 넘나드는 파이어니어 Z–Lab : A to Z, 콜라보&커뮤니케이션스 컴퍼니 NOTICE 제9회 심원건축학술상 당선작 발표 경복궁 궁역의 모던 프로젝트 — 발전국가시기 광화문과 국립종합박물관을 중심으로(1962~1973) 수상자 : 강난형 127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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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5일 발행, ISSN 1976-7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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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

2008년 1월 2일 창간 등록,

〈배송지 주소〉,

예스24, 인터파크, 알라딘, 11번가, 인터넷 교보문고

2008년 1월 15일 창간호(통권 1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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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17일 변경 등록, 마포 마-000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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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점(02-5300-3301)

통권 74호, 2020년 11-12월호, 격월간

잠실점(02-2140-8844)

주소|03994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 175 (동교동, 마젤란21오피스텔) 9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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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 지질: 미스틱 105g 횡목

종로점(02-739-2331) ・북스리브로

주 활용서체 및 라인선스

홍대점(02-326-5100)

표지 및 본문: SM/직지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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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AR》 과월호 구입처 본지 총판 정광도서 내

[알림]

선인장(담당 심상하 방장, 02-725-9470) *2008년 발행본: 현재 1호~6호까지 절판되어 구입

본지는 대망의 2021년을 열며 새로운 기획하에 아래와 같이 편집실을 이전합니다.

불가합니다.

이전 주소: 03733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독립문공원길 13 (극동프라자) 5층 Spacetime

《와이드AR》을 할인가로 구입 가능합니다.

*그 외 과월호 구입: 2009년~2019년에 발행된 본지의 오프라인 매대인 ‘선인장’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과월호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위치 정보: 서울특별시 종로구 필운대로 56 (통인동)

128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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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 no.74, Design  

Wide AR no.74 Korean Architectur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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