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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심원건축학술상 Simwon Architectural Awards for Academic Researcher

ⓢ 2차 추천작 발표|건축가의 師承關係와 독창성 문제-김중업과 김수근을 중심으로, 강윤식 作 ⓢ 1차 추천작|벽전, 박성형 作

ⓢ 추천제 운용 방식 | 1 / 2차 추천작을 중심으

ⓢ <심원문화사업회>(이하 사업회)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건

로 운영위원회는 소정의 내부 심사 절차를

축가 김광재를 통하여 건축의 세계를 이해하고 애정을 갖게 된

통하여 원고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별도

기업가가 그와의 인연을 회억하며 건축의 인문적 토양을 배양

의 프로그램을 지원함. 그 가운데 매년 1편

하기 위하여 만든 후원회입니다.

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여 시상함. 최종 당선 작 심사에서 탈락한 추천작은 추천일로부터

ⓢ <심원건축학술상>은 사업회가 벌이는 첫 번째 후원 사업으

3년간 추천작의 자격이 유지됨.

로 건축 역사와 이론, 건축미학과 비평 분야의 미래가 촉망되는

ⓢ 최종 당선작 결정 | 1 / 2차 추천작 중 1편

유망한 신진학자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마련되었습니다.

을 선정함 ⓢ 당선작 | 1편 부상 | 상패 및 상금 500만 원과 단행본 출

ⓢ <심원건축학술상>은 1년 이내 단행본으로 출판이 가능한

간 및 인세 지급

완성된 연구 성과물로서 아직 발표되지 않은 원고(심사 중이거

ⓢ 당선작 발표 | 2009년 5월 15일(격월간 건

나 심사를 마친 학위논문은 미 발표작으로 간주함)를 응모받아

축리포트 <와이드> 2009년 5-6월호 지면)

그 중 매년 1편의 당선작을 선정하며, 당선작에 대하여는 단행

ⓢ 시상식 | 별도 공지 예정 ⓢ 출판 일정 | 당선작 발표일로부터 6개월 이 내 ⓢ 심원건축학술상 운영위원 | 배형민(서울시 립대 교수), 안창모(경기대 건축대학원 교 수), 전봉희(서울대 교수), 전진삼(격월간 건 축리포트 <와이드> 발행편집인) ⓢ 사무국 | 서울시 중구 신당동 377-58 환경 포럼빌딩 1층 간향미디어랩 (100-834) ⓢ 문의 02-2235-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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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출간과 저술 지원비를 후원합니다.

ⓢ 주최 | 심원문화사업회(이사장 이태규, 사무국장 신정환) ⓢ 주관 | 심원건축학술상 운영위원회 ⓢ 기획 및 출판 | 간향미디어랩 ⓢ 후원 | (주)엠에스 오토텍

by WIDE

Wide Architecture Report no.7 : january-februar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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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gan Architect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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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가지의 색깔 있는 건축물 아름다운 건축물의 완성, 삼협건설

신뢰와 성실을 주축으로 21세기를 도약하는 삼협종합건설(주)는 뛰어난 기술력과 신용도, 투명한 도덕성, 특유의 잠재력으로 더욱 성숙된 건설업의 발전을 주도합니다.

삼협종합건설(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770-7 홍성빌딩 4층 Tel : (02)575-9767 | Fax : (02)562-0712 www.samhyub.co.kr

by Samhyub Wide Architecture Report no.7 : january-februar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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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ward another Edge!

3학년의 한 학생이 갤러리를 설계하는데, 땅의 기억과 시간을 전시하는 갤러리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주제는 재미있지만 그것를 건축적 어 휘로 변환해 내는 것은 만만치 않음을 안다. 에스키스 시간에 땅의 퇴적 작용, 습곡과 단층 작용으로서 땅의 작용과 기억을 표현하고 실마리 를 삼아 컨셉트 드로잉을 찾아낸 것을 본다.(국민대 건축과 최병설) 일견 땅 위의 현재의 시간과 사건과는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이는 땅 속의 작용성이 둘 사이에 있다. 땅 속의 속도와 땅 위의 속도는 당연히 다르다. 그 사이에 형성되는 표피는 따로인 것 같으면서도 어느 한쪽을 탐색 한다. 그 표피는 수많은 숨은 것을 수용한다. 때로는 땅속의 힘을 많이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그 위에서 일어나는 많은 행위를 담아 내면서, 도시가 형성되기도 하고 때로는 밀도가 덜한 지역들이 형성되기도 한다. 우리네 건축가는 그 기운을, 그 수많은 상황을 결정짓는 작업으로서 늘 여러 종류의 경계를 형성시키는 데 관여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주어지는 경계가 한 켜(layer)로 분명히 존재하지만, 가끔 미드의 <LOST> 처럼 드라마나 영화는 두 개 이상의 겹침을 보여 준다. 어떤 때에는 미디어의 기술적인 테크닉으로, 또 어떤 때에는 의외의 자장 같은 자연적 인 힘의 겹침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Edge라는 것은 늘 어떤 사건이나 행위가 일어나기 마련인 상황 혹은 이미 일어난 상황을 만든다. 그것은 잠재적이거나 또 다른 가능성의 현상이다. 그래서 Edge는 변화되고 복잡화될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상대적으로 다이나믹하고 그곳에 활기 를 넣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곳에 Edge가 형성되도록 하는 것이나 되는 힘을 찾아내는 것은 설계하는 자의 또 다른 즐거움인 것이다. 그 결 과는 그곳에서 생활하는 우리네의 도시 일상 생활과 연결되어 그곳에서 영향을 받으면서, 또 때로는 그것들이 모여서 다시 그곳에 영향을 주 면서 또 다른 새로운 Edge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 글 | 오섬훈(운영위원, 건축사사무소 어반엑스 대표)

by UrbanEx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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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KMAX Korea Wide Architecture Report no.7 : january-februar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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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KIRA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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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내^외장용 고밀도 목재 패널 (Netherland)

플로어링 (Denmark)

시스템 파티션 (Denmark)

객석의자^수납식 관람석^경기장 의자 (U.S.A)

야외 데크 및 외장용 고급 원목 (Brazil)

메탈 천정 시스템 (Germany)

흡음패널 (Sweden)

락카 및 화장실 큐비클 (Singapore)

㈜더블유티씨 by WTC

(137-130)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동 377-3번지 WTC빌딩 6F

Wide Architecture Report no.7 : january-february 2009

TEL. 02) 574-5530 / 050-2777-5777 FAX. 02) 574-8381 / 050-2777-5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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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3 Publishing Co.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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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 In Sung Bok Mixed Use Development

용인시 성복동 복합단지 개발계획

용인시 수지구내 취약한 상업시설을 자연, 문화, 커뮤니티가 어우러진 대규모 복합단지로 건설함으로써 지역 내 새로운 아이콘을 형성한다. 고층부 업무시설은 주변의 아파트와는 차별화된 전략적 One Stop 주거환경을 창출하고 다양하고 변화있는 평면과 입면 디자인을 통해 수지구의 일반적 아파트 이미지에서 벗어나 지역내 Land Mark로 자리매김 도록 하고, 저층부 판매시설 등은 지역 내 부족한 공원과 문화공간을 담아낸다는Concept과 성복천, 신설지하철 예정지와의 자연스런 연계를 통해 쇼핑 및 문화공간으로 주변 인구를 유입시킬 수 있도록 한다. 성복동 복합단지는 수도권내 새로운 문화복합단지 축을 형성 할 것으로 기대된다.

Location : Seongbok-dong, Suji-gu, Yongin-si, Gyeonggi-do, Korea _ Project Type : Office, Store, Cultu re, Sports facilities _ Site Area : 66,043.0 0m2 Building Footprint : 17,051 .06m2 _ No. ofStori es : 6 below-grade, 25 above-grade

EaWes ARCHITECTS http://ww w.eawes.com TEL. 02-2056-9460 _ FAX. 02-543-7902

by Ea Wes Architects

by EaWes Architects

Wide Architecture Report no.7 : january-februar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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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설계 | 안전진단 | 구조물 보수^보강

(주)건우구조엔지니어링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197-5 삼성 IT밸리 802호 T. 02-2028-1803/4 F. 2028-1802

by Kunwoo Structural Engineers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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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yang PC, inc. Wide Architecture Report no.7 : january-februar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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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ta Group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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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E Architects & Associates Wide Architecture Report no.7 : january-februar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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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gal, Youp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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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그룹 <운생동> www.usdspace.com UnSangDong Architects Cooperation은 장윤규 교수와 신창훈 소장을 주축으로 결성되었다. ‘운생동 건축’은 문화적 콘텐츠로 건축의 가능성을 다각적으로 발현해 내기 위한 ‘개념적 건축’을 실현하는 건축가 그룹이다. 건축 설계, 인테리어, 건축 기획, 프로그래밍, 대단위 단 지 계획, 문화 기획, 가구 제작 등의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전문가들과 함께 하는 협력 작업을 통해 진행하는 협력 집단체이다. 또한 ‘운 생동’은 ‘갤러리 정미소’, ‘스페이스 코디네이트’ 등의 문화 단체와 연결되어 있다. 위의 단체를 기반으로 건축 이외의 예술, 문화에 관련되는 운생동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최근 2007년은 <Architectural Review>에서 수상하는 세계적인 건축상 AR Award를 수상하였고, 2006년에는 미국 저명한 저널인 <Architectural Record>가 세계의 혁신적인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Vanguard Award를 수상하였다. 2001년에는 일본 저널 <10+1> 세계 건축 가 4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최근 KRING은 2008 한국공간디자인대상 및 2008 Good Design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였다. ‘운생동 건축’은 모두가 독립적인 건축가로서 자신의 건축적 사고를 ‘운생동 건축’에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는 건축가 그룹을 실천한다. 수 평적 구조의 건축적 사유는 ‘운생동 건축’의 힘이며, 디자인의 원천이다. 와이드를 통해 운생동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와 디자이너들을 소 개할 예정이다. 김윤수 : 단국대 건축공학과, 경기대 건축대학원 졸업 김경태 : 영남대 건축공학과, 서울건축학교 졸업, 건축사 김성민 : 동명대학교 건축학과, 경기대 건축대학원 졸업 김민태 : 국민대 건축대학교 및 동대학원 졸업

by UnSangDong Wide Architecture Report no.7 : january-februar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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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ysky는, 여행을 컨셉으로 하는 디자인 문구입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여행의 추억을 flysky 제품과 함께 그려보세요~

L2S는, 한국 고유 문화의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디자인 브랜드로 작가 임성민이 운영하는 디자인 집단입니다.

작가 임성민(본명 임상순)은, 홍익대 산미대학원(무대디자인전공)을 졸업하고, 서일대에서 겸임교수, 상명대, 한성대, 계원조형대, 협성대, 숭의여대 등에 강사로 출강했으며, 한국디자인학회 및 한국무대예술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 문양 : 우리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 문양 A/B ⓛ 소재 : 고급소가죽, 새턴(satain) ⓛ 사이즈 : 가로 10.5cm, 세로 8cm ⓛ 수납 공간 : 카드 수납 3개, 명함 약 30~40장 수납 가능 tel. 031-977-8338 | 이메일 l2sgb@naver.com 홈페이지 : http://club.cyworld.com/designpd

by L2S 16

Make your dream with flysky Have your dream with it, Draw your dream with it, Keep your dream with it, Make your dream true with‘flysky’

#1 World Map 80*55cm Map 1 / country list 2 #1 Travel Planner 100*150*5mm planner 1 / sticker 1 #1 Note set 100*150mm monthy, weekly, daily scheduler 1 free note 2 (line 1, solid 1) #1 Pencil set 185*70mm 1/2 dozen tel. 070. 8153. 9387 e-mail. flysky@flyskyshop.com URL. http://www.flyskyshop.com

by flysky widE Edge


by Spacetime Wide Architecture Report no.7 : january-februar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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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류산방 樹流山房의 책 book of Suryusanbang

도시마 : 스스로 제자된 자들이 만든 책 T O SH I MA : From the Pers pec tives of Se lf - procla imed St ude nt s

고향을 떠나 20여 년을 에스파냐(스페인) 그라나라에 머물며 온전히 창작에만 집중했던 화가 도시마 야스마사. 생전에 그를 만난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사후에 이야기로만 그를 접한 사람들조차 모두 자신이 이 깡마른 백발의 사내에게 깊이 매료되었음을 자랑스럽게 고백한다. 이 화가의 무엇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그토록 깊이 흔들어 놓은 것일까. 한국어, 일본어, 영어, 에스파냐어 4개 국어로 편집한 이 책은, 그라나다 알바이신에서 그와 함께 생활한 포토그래퍼 정세영의 체험을 모티프로 하여 도시마 선생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기억과 작품, 사진 등을 엮은 것이다. 아들,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벗, 2008년 말 도쿄에 <도시마 야스마사 미술관>을 오픈한 후원자 등 그를 기리는 여러 사람들의 글을 통해 독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예술 세계와 정면으로 승부하다 간 한 화가의 삶과 정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마 선생의 그림과 그가 남긴, 그가 가장 존경했던 조각가 권진규에 대한 추모글 또한 흥미로운 볼거리다. The painter, Toshima Yasumasa, spent 20 years in Granada, Spain dedicating himself to art. Along with the people who had known him before his death, those who came to know him only after his death through stories proudly confess their profound attraction to him. What is it about him that has such force? This book, containing Korean, Japanese, English, and Spanish versions, is a concoction of people’s memories of TOSHIMA Yasumasa, art works and photographs, centered around the experience of the photographer CHUNG Seyoung who practically lived with him in Albaicín, Granada. Through the writings of people close to him, like his son, a college friend, and a sponsor who opened Toshima Yasumasa Memorial Gallery in Tokyo at the end of 2008, the readers will be able to see the life and the spirit of a painter who stood up to his own art face-to-face until the very end. His paintings and writings commemorating his most respected friend the sculptor KWON Jinkyu are particularly interesting.

by Suryusanbang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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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07호, 200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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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리포트 <와이드>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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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25

EAST4 | 상상의 세계에서 새로운 세상을 찾는 컬처 그라운드

28

집담회 | 블로그 온 더 블록—여기서 다시 꿈을 꾸다 |

표4 Mooyoung Architects & Engineers

구영민, 박준호, 의자양, SEAON, 6192, 이강희

표2

widE Edge uos

표3 Samyang Construction 1 제1회 심원건축학술상 공모 요강

wIde Issue 1

2

Seegan Architects

57

30대 건축인이여, 꿈의 날개를 펴라

3

Samhyub

58

REVIEW | <Refuge, 인천 건축가 30대의 꿈>展 | 전진삼

4

UrbanEx

64

건축가 30대 출사표

5

MakMax Korea

6 Incheon Institute of Registered Architects

wIde Issue 2

7

68

1912년 건립된 중앙시험소 청사로 밝혀진 구 공업전습소 본관

8 C3 Publishing Co.

70

구 공업전습소 본관(사적 제279호)에 대한 재검토 | 주상훈

9

EaWes Architects

75

중앙시험소 청사 및 부속 건물의 신축 과정

10

Kunwoo Structural Engin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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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yang PC, inc.

WTC

12 Vita Group

wiDe Dailly Report

13

VINE Architects & Associates

82

강병국의 <건축과 영화 07> | 영화 속의 건축물 I

14

Jeagal, Youp

15

UnSangDong

85 <와이드 書欌 07> | 다크 컬처 | 안철흥 86

이용재의 <종횡무진 07> | 병암정(屛巖亭)

16 L2S + flysky

88

손장원의 <근대 건축 탐사 07> | 우체국, 근대 도시의 상징

17 Spacetime

90

김정후의 <유럽의 발견 07> | 레 프리고, 냉동 창고에서 예술가의 아지트로

18 도시마 : 스스로 제자된 자들이 만든 책 |

94

함성호의 <소소재잡영기(素昭齋雜詠記) 01> | 이상한 의뢰인

97

이종건의 <COMPASS 04> | 공공 디자인이라는 말의 오용, 허식, 그리고 폭력

20

100

최충욱의 <해외 도시 건축 공간 02> | 시오도메(Shiodome, 汐留)

22 Studio 2105

107 <내가 좋아하는 건축 잡지 07>| Lotus | 최진희 108

이정범의 <WIDE EYE 01> |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장 김종헌

112

<주택 계획안 100선 06> | 토당동 주택 | 이손건축

120

WIDE PRO 젊은 건축가 FILE 5 | 건축적 산책로 | 정수진

Suryusanbang Future is... | Cho, Taigyoun

24 건축가 초청 강의 — 나의 건축, 나의 세계 | WIDE

124 WIDE PRO 젊은 건축가 FILE 6 | Urban Dacha | 윤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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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레터 | 민주화 퇴보의 기색이 역력한 즈음 | 정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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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구독 신청 방법

128 와이드 칼럼 | 사라지는 것에 대한 조가(弔歌) | 김정동

ⓦ 로고 글씨 | 김기충 ⓦ 표지 이미지 | EAST4의 White House Redux Competition

Wide Architecture Report no.7 : january-februar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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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is... by Cho, Taigyoun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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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와이드 레터 | 민주화 퇴보의 기색이 역력한 즈음 아시아 문화 중심 도시 광주 조성 사업은 지역 균형 발전에 토대를 둔 20년간의 국책 사업이다. 2004년 대통령 소속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발족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2023년까지 광주시를 미래형 문화 중심 도시 모델로 만들어 가겠다는 청사진을 가지 고 있다. 2005년 12월 말에는 그 사업의 일부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국제 현상 설 계 공모전이 열렸다. 5^18 민주화 운동의 최후 항전지이자 현재 5^18 사적지 중 하나 인 옛 전남도청 일원에 조성되는 이 핵심 시설은 우규승 씨의 ‘빛의 숲’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옛 전남도청을 제외한 공간들을 지하화하고 나머지 공간은 누구나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만든다는 것이 기본 개념이었다. 그런데, 2008년 6월 이 건물의 기공식을 전후로 옛 전남도청의 별관 존치 문제가 새로 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발단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주 진입로를 조성하기 위해 도 청의 일부(별관)를 철거해야 한다는 소식이 몇몇 5월 관련 단체와 기념 재단 측에 전달 되면서였다. 기념 사업보다는 진실 규명 투쟁에 집중하고 있었던 이들은 즉각 “5^18 민주화운동 사적지인 도청 별관을 해체하는 것은 5^18 정신을 망각하는 행위다.”라 며 천막 농성에 돌입하였고, 추진단은 이미 “사회적 합의와 법적 절차를 거쳐 합의된 사항을 공사가 진행 중인 시점에서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팽팽히 맞서게 되었 다. 시민 토론회와 천막 농성, 촛불 집회 등이 벌어지고 여러 가지 대안들, 이를 테면 별 관을 분리 보존하는 방법이나 시민 설문 조사를 통한 보존 여부 결정 등이 제시되었지 만 양측의 입장 차이만 확인했을 뿐이다. 게다가 지역민들 사이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해 관계는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공사는 작년 11월 중단되고 말았다. 별관의 보존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주가 왜 아시아의 문화 중심이어야 하 는지, 아시아 문화 중심 도시를 짓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 다고 말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조성사업은 주체적인 근대화 과정을 겪지 못한 아

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 발행편집인단 발행편집인 고문 | 김정동 임근배 임창복 최동규 발행 편집자문위원 | 곽재환 구영민 김병윤 송인호 윤인석 이일훈 발행편집인 겸 대표 | 전진삼 편집장 겸 대표 | 정귀원 운영위원 | 김기중 박민철 박유진 박종기 손도문 신창훈 오섬훈 제갈엽 조택연 편집위원 | 김진모 박혜선 손장원 이영욱 이충기 장윤규(수도권)|김종헌 송복섭 한필 원 황태주(중부권)|김기수 안용대 안 웅희 송석기(남부권)|김정후(유럽권) ⓦ 크리에이티브 포커스그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박상일 포토그래퍼|이병일 정세영 진효숙 제작 코디네이터|김기현 로고 글씨|김기충 ⓦ 광고 영업 대행 | 아크비즈 Agency 팀장 | 이나영 전화 | 02-2235-1968, 팩스 | 02-2231-3373 ⓦ 서점 유통 관리 대행 | (주)호평BSA 대표 | 심상호, 담당차장 | 정민우 전화 | 02-725-9470~2, 팩스 | 02-725-9473 ⓦ 직판 유통 관리대행|우리북 대표|김영덕, 담당과장|김남우 전화 | 02-3463-2130, 팩스 | 02-3463-2150 ⓦ 디자인 | 수류산방(樹流山房, Suryusanbang) 담당 디자인 | 박상일 + 朴宰成 전화 | 02-735-1085, 팩스 | 02-735-1083 ⓦ 제작협력사 종이|대립지업사|대표 홍성욱, 이사 안영선 출력|삼성PL|대표 김호근 인쇄|예림인쇄|대표 박재성, 부장 오용택 제본|문종문화사|대표 신문섭

시아 도시들과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불리는 광주의 정체성을 엮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오랜 시간 극단적인 소외를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저항 정신을 발휘해 온 빛고을 광주의 민주, 인권,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가 부각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핵심은 5월 광주다. 5^17 쿠데타를 앞두고 군부 독재에 대한 두려움이 증오심보다 더 컸던 시절, 민주 세력이 무력 앞에서 저항력을 상실해 가고만 있던 그 때, 광주 항 쟁은 1987년 6월 민중 항쟁과 7,8,9월 노동자 투쟁을 독려하고 오늘날의 민주 발전 을 이루게 하는 불씨였다. 그리고 옛 전남도청 일원의 5^18 사적지는 항쟁 지도부가 있었고 시민군들이 희생된 곳이며 5월 27일 최후의 항쟁지였다. 과정과 절차에서 이 미 충분히 별관 철거에 대한 논의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막대한 비용과 시일이 추가로 소요된다고 하더라도 또 한 번 심사숙고해야 하는 이유이며, 지역 단체들이 이해 관계 때문에 이를 철거하자고 하더라도 사업의 주체측이 역사적 유물과 현장을 지켜야 하 는 본연의 자세와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어야 하는 이유이다. ⓦ | 글 | 정귀원(편집장)

Wide Architecture Report no.7 : january-february 2009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 통권 07호 2009년 1-2월호 2009년 1월 15일 발행 2008년 1월 2일 등록 서울 마-03187호 2008년 1월 15일 창간 낱권 가격 8,000원, 1년 구독료 45,000원 ISSN 1976-7412 ⓦ 간향미디어랩 GML 발행처|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 200 극동상가 502호(120-796) 편집실|서울시 중구 신당동 377-58 환경포럼빌딩 1층(100-834) 대표전화|02-2235-1960, 02-2235-1968 팩스|02-2231-3373 공식이메일|widear@naver.com 공식URL|http://cafe.naver.com/aqlab ⓦ 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는 한국간행물윤 리위원회의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본지에 게재된 기사나 사진의 무단 전재 및 복 사, 유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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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E TECTONICS” (2008년 국립 과천 과학관 개관 기념 <아름다운 지구>전 “과학으로 본 예술” 전시 부스 설계)

“지구를 덮고 있는 판은 커다란 7개의 판—북아메리카판, 남아메리카판, 유라시아판, 태평양판, 아프리카판, 인도^호주판, 남극판—과 중간 크기의 카리비안판, 나쯔카판, 필리핀판, 아라비아판, 코코스판, 스코티아판 그리고 이외의 작은 여러 개의 판이 있다. 이러한 판들은 서로 그 끝을 맞대고 있는데 그 경계는 판이 소멸되는 수렴 경계와 판이 생성되는 발산 경계, 유지되는 보존 경계가 있다.”— 판구조론 판과 판의 움직임은 에너지의 상징이며 판들의 충동과 움직임은 창조의 움직임이다. 우리는 판에 관한 해석을 통해 과학의 논리와 예술의 창 조성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판들은 서로 연결되어 결국은 만나게 된다는 순환의 논리를 표현하였고, 판들의 접힘과 뒤틀림은 에너지의 표출 을 나타낸다. 그 판들 사이에서 예술 작품은 창조적인 긴장감이 팽배된 상태로 전시되어지고 그 에너지를 발산하게 되는 것이다. | 글 | 김기중(본지 운영위원, (주)건축사사무소 이일공오 대표)

by Studio 210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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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27·28

세 번째 주제

건축가 초청 강의 — 나의 건축, 나의 세계

<건축가 초청 강의 — 나의 건축, 나의 세계>는 매월 한 분의 신진 건축가를 초청하여 그 분의 건축 수학의 배경과 최근 의 작업 이야기를 듣고 묻는 시간입니다. 열두 분의 건축가를 만나가면서 우리 건축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 가 되었으면 합니다. ① 1월의 초청 건축가 | 문훈(문훈발전소 대표)

주제 | Be급 액션 건축

일시 | 2009년 1월 21일(수) 저녁 7시

② 2월의 초청 건축가 | 전유창(아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주제 | Optimization in Architecture(건축에서의 최적화)

일시 | 2009년 2월 18일(수) 저녁 7시

* 장소 | 그림건축 내 안방마루(문의 : 02-2231-3370 / 02-2235-1960) * <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 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카페명 : AQkorea, 카페 주소 : http://cafe.naver.com/aqlab)에 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최 : AQkorea, 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 주관 : 그림건축, 간향미디어랩 GML 협찬 : 우리북, 디자인그룹 L2S, 시공문화사 space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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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7호 | 와이드 워크

EAST4 이스트포 상상의 세계에서 새로운 세상을 찾는 컬처 그라운드 Wide Architecture : Wide Work no.7 : january-february 2009

이번 호 소개되는 EAST4(이스트포)는 설계 사무실에 다니고 있거나 건축 바깥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건축 집단이 다. 그러나 자투리 시간의 재미를 건축에서 다시 찾고 있고, 진정한 건축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부족한 건축 공부를 보충 하고 있다고 해서 이 집단을 과외 그룹쯤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비록 행보는 느리지만 비저너리 건축 그룹(Visionary architecture group) 혹은 컬처 그라운드(culture ground)를 표방하고 ‘상상의 세계에서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는 단서’를 찾기 위해 하루하루 단단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의 구성원으로 이윤을 만들어 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잠시 접혔던 꿈은 거리 위에 우뚝 선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고단한 일상이 더 없이 즐거 운 이유다. 본지는 EAST4가 도심 속의 블로그로서 많은 이들에게 적지 않은 울림을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 고 또 다른 EAST4가 우리 건축 사회에 등장하길 희망해 본다. 작지만 다수의 연대, 그 어떤 변화도 가능하게 하는 힘이 기 때문이다. 진행 | 정귀원(본지 편집장), 사진 | EAST4 제공(별도 표기 외) * EAST4 멤버들 중 몇몇은 개인적인 사유로 익명 게재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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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 ⓦ 뉴욕 공대를 졸업하고 맨하탄의 설계사무소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파슨스(Parsons School of Design)에 서 사진 공부를 하던 중, 프렛대학교 건축과(Pratt Institute School of Architecture) 교수 레이먼드 에브라함(Raimond Abraham)의 글을 읽고 감명받아 프렛대학교 건축 과에 다시 입학, 그곳에서 가말 엘조비(Gamal El-Zoghby) 교수를 만나 논문을 작성하며 건축적 인생관을 정립한다. 이후 프렛대학교 대학원(Pratt Institute Graduate School of Architecture) 과정을 마치고 실험적 작업을 진행하는 뉴욕의 건축가들을 도우며 2년여를 보냈다. 그들과 함께 하였던 몇 번 의 전시와 출판 작업의 경험은 건축관을 수정하는 계기가 된다. 한편, 그 당시 사이(SAI)라는 모임을 만들어 여러 분야의 사람 들을 만나고 토론하며 건축과 타 장르와의 연결을 모색해 보기 도 한다. 1999년 서울로 돌아와 설계사무소에서 몇 년을 보내며 몇몇 학교에 강의를 나갔고, 몇몇 장소에서 전시를 했고, 몇몇 사 람과 단체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개인 사무소를 시작, 그 동안의 작업들을 공개하며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갖게 되 고, 동시에 한국 건축계의 현주소를 짐작하고 한계를 느끼게 된다. 2006년 뉴욕으로 돌아가 미국에서의 유토피아(Utopia)를 꿈꾸 지만 14개월 만에 다시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2007년 인천에서 전시회를 열며 그 동안 잊고 있었던 건축관을 새삼스레 기억 하게 되면서 한동안 이탈되었던 여러 가지 생각과 행동들을 다시 수습하여 EAST4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사진 진효숙)

EAST4 의자양 ⓦ 공예학과를 졸업했다. core1과정 (비전공자를 위한 3년 과정)으로 gsak(경기 대 건축대학원)에 입학하여 박흥서-안창모윤희진-잘리콩/천의영-이종건 스튜디오를 거쳤다. -TRodDa-NEED 등의 디자인 그룹을 결성, 활동한 바 있고 수입 가구 회사에서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쥐싹’에서의 3년은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산 기간이었고, 지 금까지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학교 다니는 동안은 건축 일을 안 할 거면서 왜 공부하느냐는 질문을, 졸업한 다음에는 어렵게 공부해 놓고 왜 건축 일을 안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스스로도 대답에 대해 고민 중이다. 그러나 가구 작업이든 건축 작업이든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에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현재 창업과 폐업을 반복하며 훌륭한 목수가 되고자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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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EAST4


6192 ⓦ 순수 개념 건축을 몇 년간 탐 닉하던 중 산업 중심에서의 건축이 아 닌 그 이상의 것을 찾게 되었고, 이런 저런 사람들과 작업하다 ‘지속 가능 한 건축을 바탕으로 한 딴짓 추구 개념 보’(AILOFLUT)를 만나 SUPERMEDIUM을 결성한다. “더 이상 지면 에서의 건축은 건축이 아니야”를 외치 며 거리로 나가 낙서를 하면서 정기적인 출판을 목적으로 한 작업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현실적인 문제와 마주하게

구영민은 코넬대학교에서 건축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미

되었고, ‘일탈, 끊임없는 방황을 하고 있던 옆 동네 회사 까칠녀 SEAON’을 만

국 fox & fowle, SOM 등에서 10여 년간 건축가로 활

나 T-ISSUE(버려지는 아이디어 회수 작전)의 웹에 실리는 약 4~5회 가량의

동하였다. 현재 인하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연재물을 만들기도 했다. 그 후 여전히 출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중 박준호

파리 발데센 건축대학과 하바로프스크 태평양 국립대학

소장을 만나 인천 스페이스 빔에서 열리는 <상상의 대지 탐사전>에 참여하고

교에서 교환교수로 활동 중이다. 2006년 UIA celebra-

출판 작업을 하며 EAST4를 결성, 건축 그 이상의 ‘CULTURE GROUND’

tion cities 공모전(제4지역)대상을 수상하였으며, 2회

라는 모토 아래 작업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의 개인전을 통해『poetics of crack』 과『imageable plateau』등의 작품집을 발간하였다. (사진 진효숙)

SEAON(SEAONTHESKY) ⓦ 8년의 학교 생활과 5년의 회사 생활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일탈, 끊임없는 방황을 하다가 마침내 처음 건축을 즐거워했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라고 경 고하는 EAST4를 만났다.

이강희 ⓦ 학교에서 기계 공학을 전공했고 한때 포토그래 퍼 등을 지냈다. 현재는 마이스페이스(www.myspace. com)의 콘텐츠 크리에이터(content creator)로 활동 중이다. EAST4에서는 EAST4의 작업을 개방(open)하 고 그 과정과 산출물을 공유(share)하며, 더 많은 사람을 참여(participation)시키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2차 생산물을 확산하는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국 내외 젊은 건축가들과 EAST4 의 작업을 교류하며 진행하기 를 원한다. 최근 개인적으로 사 진 작업 ‘myspace mugshot series’를 시작했다. 누구나 A4 지 한 장을 프린트해 참여할 수 있으며 마이스페이스를 소재로 온라인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표 현하는 사진 프로젝트이다. 프랑 스, 캐나다, 알제리아, 일본에서 온 외국인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는 온라인 SNS 사이트 (myspace, flickr, facebook)를 통한 교류가 있었기 때 문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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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온 더 블록

집담회

N, 6 , S E AO 양 자 ,의 , 박준호 | 구영민

강희 192, 이

↖ EAST4 작업실 전경. (사진 진효숙) ← EAST4 미래. Seaon 作. ↓ EAST4 작업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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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EAST4


여기서 다시 꿈을 꾸다 ↑ E AST4 웹 주소. www.east4.org (사 진 진효숙) ↗ E AST4 벽면 폴라로이드 사진들. (사 진 진효숙) → EAST4 작업실 전경. 2008. 3. ↓ EAST4 작업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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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tive Semantics of Phobia City 2007.10.5~18 스페이스 빔, 인천, <상상의 대지 탐사전 IMAGEABLE PLATE-AU>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도시의 생성과 몰락은 우리가 살아가 는 환경을 결정짓는다. 자연 발생적인 도시의 모습은 작은 군락을 형성 하며 증폭하고 도시 계획에 의한 도시의 확장은 부분별 발전을 거듭하 며 우리의 주변을 잠식시키고 있다. 인천의 도시 구조는 이미 오래 전에 인간적인 변화와 발전을 거부해 왔 다. 자연과 함께 생성되는 도시의 모습은 기대할 수 없고, 거대 구조물 들의 향연 속에서 도시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 간다. 인공적으 로 만들어지는 녹지와 호수 그리고 언덕들은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신 음하고 있다. 자연을 대처하는 인공 가공물들은 마치 오래 전부터 그 곳에 있은 듯 가증스럽게 그 자태를 보여주고 있고, 도시는 하부에서 시작되어 꿈틀대는 부패된 기운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구조물과 이 형 공간으로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 도시 내부에 새로 운 도시 ‘Phobia City’가 존재한다. Phobia City는 그들이 만들어 낸 그들의 반영(Reflection)에서 시작된 그들의 유토피아(Utopia) 이며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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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EAST4


전시 준비로 비롯된 시작 ⓦ 구영민 : 제가 EAST4(이스트포)를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10월 인천 스페이스 빔에서 열린 <상상의 대지 탐사전>을 준비하면서였죠. 박준호 소장님의 전시팀으로 참여하였고, 그 이후 작업실을 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각자 바쁜 사무실 생활을 하면서도 짬짬이 시간을 내어 열 정적으로 전시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고무적 인 모임이라고 생각했었죠. ⓦ 박준호 : 처음에는 정말 순수하게 그 전시를 위해서 모 였어요. 모두들 설계 사무실에서 실무를 하고 있었는데, 아시다시피 사무실 생활은 다소 무미건조하지요. 조금씩 지쳐 있던 친구들이 함께 전시를 하면서 무척 재밌어 했 고, 그것이 동기부여가 되어 지금의 EAST4가 만들어진 거예요. ⓦ 구영민 : 당시 박준호 소장님과 같은 사무실을 다니는 멤버가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작품이 박 소장님의 스타일이었죠. 프렛대학교의 가말 엘조비(Gamal ElZoghby) 교수로부터 계승된 건축관이 반영되었다고 할 까요? 그 전에 제가 알고 있는 박 소장님을 간단히 언급하 고 넘어가는 게 좋겠군요. 우리가 처음 만난 건 2001년도 초여름쯤이었던 것 같아요. 정림건축에서였지요. 프랫에 서 학부와 대학원을 마치고 엘조비 교수의 수제자였던 친 구가 정림건축에서 일한다는 입소문을 들은 터라 서먹하 지는 않았지만 그게 꼭 학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 다. 일단 제가 가진 습관들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부 터 호감이 가기 시작했죠. ‘빨간 말보로’, 커피, 장발, 비저 너리(visionary) 건축에 대한 믿음과 열정적인 작업 등 등…. 그런데, 술을 전혀 못 한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 ↑ < 상상의 대지 탐사전> 전시 풍경. 2007년 10월 인천 스페이스 빔에서 열린 <상 상의 대지 탐사전> 준비가 EAST4의 시작이었다. ← ‘ Phobia City’ 중 CLAUSTROPHOBIA. Phobia City는 그들이 만들어 낸 그들의 반영(Reflection)에서 시작된 그들의 유토피아(Utopia)이며 무덤 이다.

이지요.(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새도록 술 마시며 건 축을 얘기할 수 있는,—저 사람은 밤새워 커피를 마실 수 있으니까(웃음)—건축과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엮여 가는 것을 관조할 줄 아는, 건축으로 빈 마음을 채우는 즐거움 을 아는, 그런 건축가라 할 수 있어요. 그러고 보니 혹시 EAST4는 처음부터 박 소장님의 주도로 시작된 것은 아 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 SEAON : 박 소장님이 미국에서 돌아오기 전에 이미 설계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몇몇이 모여 잡지도 만 들고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6192는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고요. 그러다가 박 소장님 귀국 후 진행된 <상상의 대지 탐사전> 준비가 본격적인 활동에 물꼬를 틔우게 된 거지요. 애초의 지향점, 컬처 그라운드(Culture Ground) ⓦ 구영민 : 건축 실무, 특히 설계 회사의 일이란 것은 따분 (boring)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와 같 은 대안을 찾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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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EAST4


<서울시 의자 공모전>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EAST4란

2008. 5.

존재는 건축을 향한 멤버들의 뜨거운 열정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모였으니 뭔가 하고자 하

서울을 대표하는 의자와 장소를 제공하라는 조건을 좀 다르게 받아들

는 특별한 일이 있을 듯싶은데요?

인 작품.

ⓦ 6192 :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때가 있었습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행위로 보여지는 오브제를 고민하던 중, 의자 하

니다. 하지만 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든 해

나하나의 성격은 서울을 담고 있지만, 그 의자가 만드는 모습은 서울

서 결과물이 나오고 서로의 이야기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시청 앞 광장의 소풍, 촛불집회 등 다양한 행위를 즐겁게 표현할 수 있

방향이 설정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록 했다.

ⓦ SEAON : 그동안 이곳에서 많을 것을 배웠죠. 직접 적으로 박 소장님의 드로잉을 학습하진 않았어도 작업을 통해 조금은 이해하기 시작했고요. 물론 앞으로 계속 배 워나갈 생각입니다. 그런데, 처음과 좀 달라진 것이 있다 면 타 분야 사람들과의 협업에 관련된 부분이에요. 처음 에는 건축을 하면서 다른 문화적인 활동도 다 해내겠다 는, 참 오만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여기 이강희와 의자양 도 있지만,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얻는 아이디어나 정보들은 건축을 하면서 새로운 시각을 넓힐 수 있도록 도와주지요. 그게 현재 EAST4의 성격을 형성하는 요인 이 아닐까 싶어요. 요즘은 주택 프로젝트의 인테리어를 통 해 직접 가구를 만드는 의자양과 몸으로 부대끼며 협업 하는 과정을 경험 중인데요, 아무튼 다른 분야의 전문가 들에 의해 EAST4의 성격도 계속 진화되지 않을까 기대 하고 있습니다. ⓦ 박준호 : 처음에는 단순히 전시가 목적이긴 했지만, 이 애매보호한 집단의 성격을 고민하지 않았던 건 아닙 니다. 저희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Culture Ground EAST4’란 문구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컬처 그라운드 (culture ground)’는 애초부터 EAST4의 지향점이었 습니다. 당시 구성원들은 모두 건축하는 사람들이었고, 다 들 이 컬처 그라운드를 이루고 싶어 했지요. 하지만 분명 한 건 건축을 중심에 두고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 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겁니다. 건축가인 제가 패션 쪽 의 일을 하는 것은 패션 디자이너가 집 짓겠다고 하는 것 과 다르지 않겠죠. 건축가와 가구 디자이너와 콘텐츠 크리에이터(Contents Creator) ⓦ 구영민 : 그렇다면 현재 EAST4는 어떤 분야의 사람들 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 SEAON : 건축일을 하는 세 사람과 가구 디자이너, 콘 텐츠 크리에이터 등 총 5명입니다. ⓦ 구영민 : 다른 일을 하시는 두 분은 각자 자신의 소개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강희 : 포토그래퍼 출신 기획자 이강희입니다. 지금 은 마이스페이스 코리아(myspace korea)에서 콘텐츠 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어디서는 포토그래퍼로, 어디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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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기획자로 소개되곤 해서 ‘사진 찍는 기획자’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다음에는 어떤 소재를 가지고 어디서 무 엇을 하고 있을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웃음) 유일하게 건축 베이스가 아닌 제가 EAST4와 작업할 수 있는 것 은 온라인상에 집을 짓는다는 점에서 저 또한 건축가라 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온라인의 건축(웹사이트, 블로 그, 콘텐츠, 트래픽 등)과 오프라인의 건축(건물, 가구, 공 간 분할, 동선 등)은 유사한 점이 참 많아요. EAST4 멤버 들과 함께 온라인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이나 오프라인의 한계에서 발견되는 생산적인 아이디어를 공 유하고 실제 작업에 반영합니다. EAST4 대문에 붙어있 는 ‘WhereAreYou Fromap’은 웹사이트의 방문자 유 입 경로를 파악하는 ‘visitor status application’에서 힌트를 얻은 인터랙티브(interactive)한 작업입니다. 온 라인과 마찬가지로 오프라인의 빌딩에서도 방문자가 어 디에서 왔는지, 오늘은 몇 명 방문했는지에 대한 데이터 가 남는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재미있고, 또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을 거예요. ⓦ 박준호 : 이강희를 통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웁니다. 컴 퓨터 웹상에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건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소재가 무궁무진하지요. ⓦ SEAON : 의자양은 이강희와는 대척점에 서 있죠. 가 장 아날로그한 사람이에요. 여기 테이블이 그녀의 작품입 니다. 무척 꼼꼼하고 섬세한 작업을 하지요. ⓦ 의자양 : SEAON과는 대학원에서 건축 공부를 함께 했습니다. 비전공자 과정이어서 매우 다양한 분야의 사람 들이 많았는데요, 그때 친구들과 현재 EAST4 같은 공간 을 꿈꿨었고, 그때 막연하기만 했던 꿈을 이제 조금씩 실 ↑ E AST4 대문에 붙어있는 ‘WhereAreYou Fromap’은 웹사이트의 방문자 유 입 경로를 파악하는 ‘visitor status application’에서 힌트를 얻은 인터랙티 브(interactive)한 작업이다.

현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요즘은 자극도 많이 받고 재 미있어요. 대학원 때 스튜디오에서 열심히 토론하던 사 람들 속의 내 모습을 다시 볼 수도 있고요. 혼자 작업을 하다 보니 자극받기 참 힘들고 여러 차례의 개업과 폐업 을 거치면서 생활고에 찌들어 아무 생각 못했었는데, 점 차 수입이 늘고 생활이 안정되니까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 하더라고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앞으로 어 떻게 작업을 해야 되나, 이런 생각이 들 때 SEAON을 통 해 EAST4를 알게 된 거죠. 지금은 주택 작업을 같이 하 면서 서로 호흡을 맞춰 보고 있어요. 뉴욕의 스토어프론트(Storefront)처럼 ⓦ 구영민 : 이야기를 듣다 보니 EAST4가 마치 하나의 블로그(blog)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도시를 컴퓨터 네트 워크라고 봤을 때 오프라인 상의 블로그라고 할 수 있겠 죠. 오프 월드(off world)란 것은 사실 온라인(online) 때문에 생긴 것이지, 그것은 리얼(real)이고 인생이에요. 건축하는 사람들과 또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실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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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EAST4


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 블로그 온 더 블록(blog on the block)! 어때요? ⓦ 이강희 : 매우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웹상 의 블로그에 오늘 방문자가 몇 명이고 어떤 콘텐츠가 가 장 인기가 있었는지 남겨지는 것처럼, 여기 이곳에 몇 명 이 왔고 누가 가장 많은 대화에 참여를 했고 또 어떤 자리 가 가장 인기가 있었는지(이를테면 난로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구영민 : 조금 더 생각을 확장시키자면, 블로그를 통 해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하듯이 이 공 간이 전혀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 어요. 그 파워는 아마 대단할 거예요. 더구나 지금 이 공 간은 길을 향해 열려 있어요. 문득 뉴욕의 스토어프론트 (Storefront for Art and Architecture)가 생각나 네요. 스토어프론트는 경 박(Kyong Park, 박경동)이란 분이 1982년 설립한 비영리단체로 건축, 미술, 디자인 안 에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태도들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 해 왔지요. 페이퍼 아키텍트들의 전시도 열어 주고, 잘 알 려지지 않은 동부 유럽 건축가들의 작품 모형을 만들어 전시하기도 했어요. 아티스트와의 대담이나 컨퍼런스, 출 판 등의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해왔고요. 아무튼 스티븐 홀이 스토어프론트의 기존 파사드를 이동^변형 가능한 12개의 패널로 바꾸어 길 쪽으로 완전히 오픈 가능하도 록 만들었지요. 매우 좁은 곳이지만 전시를 할 때면 벽체 를 열고 바깥까지 사용을 합니다. 와인 파티를 열기도 하 고……. 흥미로워서 제안해 본 것뿐이지만, 이 조그만 공 간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은 상상만 해봐도 굉장히 많 을 것 같아요. 비저너리 아키텍처 블로그(Visionary Architecture Blog) ⓦ 구영민 : 그런데, 블로그도 특성이 있어야 인기가 있 겠죠. 팬(fan)도 생길 테고요. 홈페이지를 보니까 ‘비저 ↑ 스토어프론트. 스티븐 홀은 스토어프론트의 기존 파사드를 이동/변형 가능한 12개의 패 널로 바꾸어 길 쪽으로 완전히 오픈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사진 EAST4 뉴욕 특파원)

너리 건축 그룹(Visionary Architecture Group)’이 란 문구가 눈에 띄던데요, 소위 페이퍼 아키텍처(paper architecture)를 이곳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을 듯싶 어요. 특히 저는 이 비저너리 건축이란 것이 21세기 초의 요구에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건축의 모든 형태들 이 미래를 예측한다는 이유로 거의 비슷비슷하게 뒤틀리 고 있어요. 기성 건축가는 물론이고 학생들의 작품에서까 지요. 만화도 그런 만화가 없지요. 문제는 실제 건축물에 서는 지어야 하는 책임이 따른다는 겁니다. 책임을 지지 못하는 건축보다는 차라리 비저너리 건축 안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 보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모르는 사람들이 많 지만, 비저너리 아키텍처는 사회의 네거티브(negative) 한 측면을 끄집어내서 알려나간다는 입장이 강하지요.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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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준호의 드로잉 작업들. 그는 밤늦도록 드래프팅(drafting) 테이블(table)에 앉아서 뭔가에 몰 두해 있을 때 건축하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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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사회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분야입니다. 예를 들어 피라

stone” 같은 말들은 그동안 참 함부로 건축을 대했구나,

네시(Giovanni Battista Piranesi)도 비저너리 건축

반성하게 하지요.

가에 포함될 수 있는데, 그는 폐허(ruin)와 유적의 알레

ⓦ 구영민 : 이상하게도 5년제가 되면서 학생들의 실력이

고리를 통해 건축을 재현했어요. 마찬가지로 비단 물리적

점점 하향 평준화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연히

인 폐허만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인 폐허를 생각해 볼

대학 공모전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는데 개념도, 짓겠다

수 있는 오늘의 상황을 건축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표출해

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 도면들이 허다하더라고요. 아무리

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요? 결국 전시를 많이 하고 많

학생들 작품이라 하더라도 건강한 작품에는 짓겠다는 의

이 보여 줘야 되겠지요. 물론 전시 방법도 기존의 패널 전

지가 엿보이지요. 이미지나 형태에 너무 빠져 있다는 생각

시가 아니라 이벤트가 중심이 되는 파퓰러(popular)한

이 들었어요. 그러고 보니 이러한 형태의 ‘블로그’가 많이

방법을 고안해 내야 하겠고요. 아무튼 이것도 하나의 제

필요할 것도 같네요.

안일 뿐입니다. 여러 가지 콘텐츠를 생각해 내면 오프라인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상의 블로그를 사람들이 재밌어 하지 않을까 싶네요. 어렵

ⓦ SEAON : 좋은 이야기와 좋은 제안들을 해주셔서 너

게 시간을 내서 하는 활동이라면 개인의 만족을 추구하기

무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6192나 저는 설계 사무실에 공

보다 좀 더 의미 있는 일들을 하는 것이 좋을 듯싶어요. 그

채로 입사하여 그저 형태나 싸움판에서 이겨야 하는 결과

렇지 않다면 EAST4를 바라보는 데 다소 부정적인 시선

물에 익숙해져야 했지요. 그러한 시스템적인 상황에서 숨

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게 뭐냐면,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

통을 틔울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학교 다

만 80~90년대에 ‘작업실’이란 설계 클럽이 있었잖아요?

닐 때 순수하게 하고자 했던 작업들을 우리끼리라도 다시

다는 아니겠지만 당시 작업실은 대부분 우리나라 설계 교

꺼내 보자, 라고 했던 거고, 천천히 배우고는 있지만 비저

육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생겨났다고 봅니다. 그것과 마찬

너리 건축이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맞긴 합니다. 실

가지로 설계사무소에 불만이 생겨 작업실 같은 것이 생겨

질적으로 구축하는 것은 회사에서 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났다, 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만족을 하고, 좀더 솔직하고 순수한 이야기를 여기서 하고

골든 아이와 골든 핸드를 얻기 위한 노력

싶은 것이 맞긴 한데, 솔직히 속도가 안 나서 감히 이야기

ⓦ SEAON : 설계 사무실에 대한 불만이기보다는 교육

드릴 수 없을 뿐이에요.

이나 실무에서 충족되지 못한 부분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

ⓦ 구영민 : 설계사무실에서 정시 퇴근을 기대할 수 없으

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공간에서의 작업이 좋은 건축 디자

니 당연히 속도가 안날 수밖에 없겠죠. 천천히 갈 수밖에

이너가 되기 위한 노력으로 보였으면 좋겠어요.

없는 상황일 겁니다.

ⓦ 박준호 : 건축은 참으로 어려운 학문이지요. 저는 학교

ⓦ SEAON : 다만 그런 목적으로 꾸준히 가다 보면 언

에서 ‘창조’는 신의 능력이고, 우리가 건축을 하기 위해서

젠가는 더 좋은 의미들이 생겨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

는 결국 신의 손을 빌려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대충 아무

습니다.

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한다

ⓦ 구영민 : 구태여 서두를 필요는 없을 거예요. 뉴욕의 스

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교수님은 늘 졸업과 함께 너희들이

토어프론트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늘 누군가 그

가져가야 할 것은 ‘골든 아이(golden eye)’와 ‘골든 핸드

자리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모형을 만들고 있으면 지

(golden hand)’라고 말씀하셨죠. 학교 교육을 통해 건

나가는 사람들이 유심히 들여다보곤 한다는 것이었습니

축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과 잘 만들 수 있는 손을 가져가

다. 언제나 들여다볼 수 있는 상점의 정면, 스토어프론트

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건축 교육

의 의미이기도 하지요. 마찬가지로 EAST4도 사람들이

은 아직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학생들은 머

무심히 오고가며 지나치다가도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이

리 좋고, 순발력 있고, 재능도 많은데 말입니다. 무엇이든

나 어느 날 걸리게 되는 그림 한 장에 관심을 갖게 될 수

근본을 찾는 교육과 시작부터 렘 콜하스, MVRDV를 만

도 있을 거예요. 그런 게 하나하나 쌓여서 큰 효과를 발휘

들어 내는 교육은 분명 다를 겁니다. 기초적인 질문에는

할 날이 오겠지요.

전혀 대답하지 못하면서 유행하는 건축의 형태는 기가 막

취미 생활의 재미를 다시 건축에서

히게 그려 내는 것이 요즘의 세태예요.

ⓦ 박준호 : EAST4 친구들은 정말 치열하게 삽니다. 좋

ⓦ SEAON : 요즘 르 코르뷔제의『새로운 건축을 향하

아서 하는 게 아니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보통 사

여』 를 원서로 읽고 있어요. 기본적인 책을 지금에서야 아

무실 퇴근해서 집에 가고 싶고, 쇼핑도 하고 싶고, 친구도

주 제대로 읽고 있는 건데, 감동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

만나고 싶고, 나름대로의 생활이 있을 텐데 그걸 포기하고

를테면, “Passion can create drama out of insert

이 자리에 있는 거예요. 요즘 설계 사무실 다니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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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House Redux Competition

을 보면 일과 시간 후 취미 생활들을 많이 하던데, 어떻게

전시 : 2008. 10.3.~11.8

보면 EAST4 멤버들은 취미 생활의 재미를 다시 건축에

전시 : Storefront Gallery, NY / EAST4, SEOUL

서 찾고 있는 셈이지요.

출판 『WHITE : HOUSE REDUX』, USA

ⓦ 구영민 : 제자들 중에 더러는 사무실을 다니면서도 어 렵게 모여 다른 공모전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모일 장소가 없어 힘들게 작업하는 걸 보고 선생의 입장에서 사랑방 같 은 걸 만들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재미가 있 을 테고 그 친구들은 공간이 있어서 좋을 테고. ⓦ SEAON : 사무실 다니면서 공모전 준비하는 친구들 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퇴근 후 사무실에서 철야하며 공모 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 구영민 : 저도 뉴욕 SOM에 있을 때 개인적으로 공모 전을 준비한 적이 있지요. 물 위에 뜬 호텔 같은 흥미로운 공모전 몇 개를 했었죠. 못낸 적도 있고 막판에 겨우 냈던 기억도 납니다. 그렇게 큰 의미를 두었던 것은 아니지만 요. 그런데 미국의 경우는 설계실 퇴근이 거의 정확하니까 일찍 끝나는 사무실에서 번갈아가며 준비하곤 했는데, 우 리나라의 경우는 여건상 좀 힘들겠지요. EAST4의 작업들 ⓦ 구영민 : EAST4의 그간 작업들이 궁금하군요. <상상 의 대지 탐사전>은 이미 잘 알고 있는 거고…. <화이트 하 우스 리덕스 컴피티션(White House Redux Competition)>은 언제 한 거지요? 홈페이지에 파티 사진이 있던데요. ⓦ 6192 : 작년 봄에 했어요. 2008년 10월 3일부터 11월 8일까지 스토어프론트 갤러리에서 전시가 되었고요. ⓦ 구영민 : 당선이 된 건가요? ⓦ 6192 : 당선된 건 아니고, 인기투표 대상 작품에는 들 어갔습니다. 좀 자세히 설명 드리면, 이 공모전은 뉴욕의 스토어프론트에서 제안한 거예요. 주제가 <화이트 하우 스 리덕스>였고, 백악관의 재해석과 현재 세계의 사회적 이슈들을 대변하는 작업이었어요. 1,2,3 순위에 포함되 지는 못했지만, 인터넷 인기 투표를 실시하는 47개 안에 는 포함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안 중에는 유일하게 올라갔 지요. 스토어프론트 전시 때 초대를 받았는데 갈 수는 없 고 해서 따로 이곳에서 동시 파티를 진행했었죠. 얼마 전 에는 저희 작품을 포함, 선별 작품을 모은 작품집이 나오 기도 했습니다. ⓦ 박준호 : 결과는 7위였어요. 등수를 떠나 이 공간에서 진행한 첫 번째 작업이었기 때문에 우리에겐 의미가 컸

↑↖ 뉴욕의 스토어프론트에서 제안한 공모전 <화이트 하우스 리덕스>에서 EAST4는 인 터넷 인기 투표를 실시하는 47개 안에 포함되었다. 2008년 10월에 스토어프론트에 서 전시를 가졌고 선별 작품을 모은 작품집이 나오기도 했다. (사진 EAST4 뉴욕 특 파원)

습니다. 더구나 페이퍼 건축가(paper architect)들의 등용문인 스토어프론트의 공모전이어서 더 그랬고요. 사 실 한국에 페이퍼 건축 작업들을 계속 리바이벌(revival) 시키고, 그것도 건축의 일부분임을 지속적으로 리마인드 (remind)시키고 싶은 생각이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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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ne-da group exhibition, 2008. 12. 22~12. 29, 대학로 예총회관, supermedium/6192(EAST4)+BO(ALOFLUT)

Architect’s Wonderland ↑ 52, 54p. 메커니즘(mechanism)만 가진 카툰 형식의 작품으로 건축가가 상상하는 도시들이 실제 현실화되었을 때 상당히 폭력적일 수 있다는 가정 에서 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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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영민 : 결과물에서 박준호 소장님만의 스타일을 엿볼

합니다. 그러나 현실 또한 무시할 수는 없겠죠. 결국 현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과 이상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그 간극을 좁혔다가 늘

ⓦ 박준호 : 여러 가지 이유로 그만 두긴 했지만, 아주 초

렸다가 하고 있어요. 처음에도 언급했지만 우리의 목적은

기에 제가 하고 있는 드로잉을 함께 배워 보자, 라는 시도

‘컬처 그라운드’이고, 컬처는 사회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가 있었습니다.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어지는 일을 굳이 꺼릴 필요는

ⓦ 6192 : 솔직히 시작도 못했지요. 하지만 지금도 배우고

없다고 생각합니다.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작업 과정에서 얻게 되는

ⓦ SEAON : 하지만 돈이 목적은 아니었으니 그 일에 전

또 다른 즐거움이에요.

적으로 몰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 구영민 : 만약 또 다시 공모전을 함께 할 경우 박 소장님

ⓦ 구영민 : 아무래도 자그마한 공간이라도 가지고 작업하

의 스타일로 하게 되는 겁니까?

려면 이런저런 경비가 들기 마련이죠. 좀 더 잘 운영해 나

ⓦ 박준호 : 아뇨, 꼭 그럴 것 같진 않아요. 만약 이강희와

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지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함께 프로젝트를 한다면 전혀 다른 개념의 결과물이 나올

ⓦ 박준호 : 그래도 헝그리(hungry) 정신은 요구되는 것

수도 있겠죠. EAST4의 스타일을 뭐라 딱 규정짓지 않았

같아요. 배가 부르면 다른 생각이 많이 들죠.(웃음) 언젠가

으면 좋겠어요. 계속 변화했으면 하고요.

경기대 이종건 교수님이 한국에는 고집스럽게 자기 성격

ⓦ 구영민 :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였습니까?

을 드러내는 건축가가 없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제

ⓦ 박준호 : 회사에서나 여기서나 마찬가지인데, 저는 큰

주변에는 의외로 힘들지만 자기 세계를 지켜가는 사람들

틀만 제시합니다. 그것도 텍스트(text)로 느낌만을 전달

이 꽤 많이 있어요. 건축의 근본을 찾으려고 하고 순수하

하지요. 간혹 스케치를 하기도 하지만 가능하면 안 하려고

게 접근하려는 사람들이지요. 아무튼 요즘 일들이 들어오

해요. 왜냐면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서죠.

기 시작하는데, 건축하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일이 주어지

단어만을 주었을 때는 사람마다 다 다른 생각으로 접근할

니까 저도 모르게 또 거기에 몰입하게 됩니다. 잘 해야 된

수 있지만 스케치가 주어지면 그것이 기준점이 되어버리

다는 생각에 열심히 한단 말이죠. 영어 표현에 보면 ‘run-

기 때문이에요. 더 이상 새로운 것 없이 딱 한 생각에 맞춰

ning on empty’라는 말이 있지요? 딱 그런 상태가 되는

지는 거죠. 스토어프론트 공모전도 초기에는 이야기로 작

거죠. 중심을 잘 잡을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업을 시작하였고, 어느 정도 작업이 진행된 후에는 직접

ⓦ 구영민 : EAST4가 회사(firm)가 될 가능성도 있나

드로잉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요?

ⓦ 구영민 : <화이트 하우스 리덕스> 공모전 말고 또 다른

ⓦ 박준호 : 프로젝트가 점점 커지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

작업들이 있습니까?

죠. 만약 회사가 된다고 하더라도 좀 다르게, 100% 자율

ⓦ SEAON : 그래픽 작업이나 건축 쪽이 아닌 작업들이

적인 생활을 하면서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6192가 12월 22일에서 29일까지

만들고 싶어요.

대학로 예총회관에서 단체전을 갖습니다.

ⓦ SEAON : 가끔 EAST4가 사무실이 되었을 때도 즐

ⓦ 6192 : ‘a-gene-da group’이라는 전시 모임이 있

거울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결국은 아틀리에의 형태

었어요. 거기서 <Architect’s wonderland>란 타이틀

일 텐데, 얼마만큼 초심을 유지하면서 갈 수 있을까요? 몸

로 준비하고 있는 전시입니다. 그 전시 모임의 멤버 중 한

은 힘들지만 지금처럼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즐거움

명과 ‘스카이 스크래퍼’ 공모전에 출품을 못한 적이 있어

을 가지고 가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해 볼 때가 있어

요. 준비를 하고 제출하지 못한 현상으로는 처음이었을

요. 요즘은 우리가 현실 속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또

겁니다. 2년 만에 다시 그 작품을 꺼내 보니 전시는 되겠

다른 EAST4가 나와서 저희처럼 즐거움을 누렸으면 좋

다 싶어 함께 이번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메커니즘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mechanism)만 가진 카툰 형식의 작품이에요. 건축가

ⓦ 구영민 : 꿈과 현실 사이의 타협은 없지요. 내 지론으론

가 상상하는 도시들이 실제 현실화되었을 때 상당히 폭력

협상할 수 있는(negotiable) 꿈은 있을지언정 협상할

적일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지요.

수 있는 현실은 없습니다. 결국 꿈을 죽일 수밖에 없겠죠.

꿈과 현실 사이에서

EAST4에서의 고민은 당연해 보입니다. 미래를 그려보

ⓦ 구영민 : 실제 프로젝트도 있습니까?

는 것 자체가 난제일 수 있어요. 저 역시 앞으로 EAST4와

ⓦ 박준호 : 네. 있습니다. 계약된 것도 있고요. 우리 규모

비슷한 집단이 생겨나길 기대해 봅니다. 현재의 EAST4

에서는 조금 부담스러운 프로젝트입니다. 어떨 땐 그런 실

는 어떻게 기억되고 남겨질 것이냐가 문제일 테고요.

제적인 일들 때문에 EAST4의 정체성에 의문이 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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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Work : EAST4

Architect’s Wonderland

a-gene-da group exhibition, 2008. 12. 22~12. 29, 대학로 예총회관, supermedium/6192(EAST4)+BO(ALOFLUT)


EAST4에서 찾게 되는 의미들

ⓦ 의자양 : 작업실에서는 이 실장이지만 EAST4에서는

ⓦ SEAON : 두 분 모두 프랫에서 건축 공부를 하셨고

의자양으로 통합니다.(웃음) EAST4는 저에겐 또 다른

작업의 방향도 비슷한 것 같은데 한 분은 학교에서, 한 분

삶을 시작하는 장소입니다. 또한 아무 때나 들러도 친구들

은 사무실에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구영민 교수님께

이 먼저와 놀고 있는, 분위기 좋은 단골 술집 같은 곳이기

는 인하대학교 건축학과에 팩토리(FACTORY)라는 든

도 하지요. 개인적인 욕심은 EAST4라는 새로운 놀이터

든한 군단이 있지요. 반면 박 소장님은 페이퍼 건축에 대

에서 제 왼손의 건축과 오른손의 가구를 능수능란하게 가

한 이해가 거의 전무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고요. 혹시

지고 놀고 싶습니다.

EAST4가 박 소장님께 팩토리의 대안으로 존재하는 것

ⓦ 이강희 : EAST4는 상황과 환경에 맞게 날마다 변태하

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는 메타모포시스입니다. 모두가 변하고 함께 발전할 수 있

ⓦ 구영민 : 페이퍼 아키텍처에 대한 이해도가 학교라고

는 좋은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다를 것은 없어요. 그전에 우선 페이퍼 아키텍처가 왜 필

ⓦ 6192: 저에게 EAST4란 욕구의 국부적 최적화라고 말

요한지를 말씀 드리고 싶군요. 사람은 자기가 생각할 수

하고 싶습니다. 부분적인 관점에서 비효율적이지만 개인

있는 상식선에서만 생각을 하면 머리가 굳어버리죠. 모형

적인 최적화 단계라고 볼 수 있는 곳이에요.

을 20개 만들면 뭐해요? 다 똑 같은데. 하지만 하나의 모형

ⓦ SEAON : 저에게 EAST4는 새로운 삶에 대한 진한

을 달리 보는 것으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지

갈증을 채우는 샘과 같은 곳입니다. 건축에서의 그 의미도

요. 이처럼 새로운 것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마찬가지이기를 바라는 곳이구요. 그리고 누구든 지나가

다만 일상을 새롭게 보는 눈이 필요한 것이죠. 그러나 사

다 찾아주길 바라는 그런 곳입니다.

람들은 페이퍼 아키텍처를 정석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판

ⓦ 박준호 : 모두에게 EAST4가 컬처 그라운드였으면 합

을 합니다. 정석으로는 건축을 할 수 없는데 말이죠. 비저

니다. 목적보다는 목표가 있는 집단이기를 바라고, 현실

너리 건축이나 페이퍼 건축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보다는 상상의 세계에서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는 단서

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저너리 건축의 가장

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그 행위가 건축이어도 좋고, 그 외

큰 특징은 내가 볼 수 없는 것을 스스로 그린다는 데 있어

의 어느 분야에서 시작되어도 EAST4가 할 수 있고 흥미

요. 계산되고 계획된 것이 아니라 이렇게도 될 수 있다는

로운 일이라면 EAST4의 그라운드에서 시작되고 만들어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지요. 다 해 놓고

졌으면 합니다. 앞으로 많은 시행착오와 성공적인 결과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도 흥미롭고요. 그림 그 자체가

혼합되어 EAST4의 그라운드는 만들어 질 것입니다. 그

사이트(site)인 겁니다.

리고 그 그라운드가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

ⓦ 박준호 : 대안이라기보다 여기서 작업을 하는 동안은

에게 자극과 감동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정말 건축을 하고 있구나 느낀다는 것이 제겐 중요합니다.

ⓦ 정리 | 정귀원(본지 편집장)

사무실에서 도면을 보고 CG를 만들고 할 때는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잊어버릴 때가 있어요. 밤늦도록 드래프팅 (drafting) 테이블(table)에 앉아서 뭔가에 몰두해 있 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학생 때부터 시작된 거예요. 하지만 사무실에서의 생활은 다르죠. 하루 종일 사람 만나는 일만 할 때도 있어요. 턴키를 할 때면 건축과 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을 몇 개월씩 해야 하고요. 온실 같 은 사무실에서는 스스로 경쟁력을 잃어버리기도 하지요. 그와 반대로 EAST4는 완전히 다릅니다. 무한 경쟁을 하 지는 않지만 우리를 나타내기 위해 끊임없이 뭔가를 계속 제시해야 하고, 매우 능동적인 작업들을 합니다. 그런 점 에서 제 자신은 EAST4를 통해 건축하는 의미를 찾게 된 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 구영민 : 앞으로 제2, 제3의 EAST4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각자가 생각하는 EAST4의 의미를 간단하게 말씀해 주세요. 박준호 소장 님의 정리 멘트도 함께 부탁드립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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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 (사진 진효숙) EAST4라는 새로운 놀이터에서 왼손의 건축과 오른손의 가구를 능수능란하게 가지고 놀고 싶다.(의자양) EAST4는 모두가 변하고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좋은 장소라고 생각한다.(이강희) EAST4란 부분적인 관점에서 비효율적이지만 개인적인 최적화 단계라고 볼 수 있는 곳이다.(6192) EAST4는 새로운 삶에 대한 진한 갈증을 채우는 샘과 같은 곳이며, 건축에서의 그 의미도 마찬가지이기를 바라는 곳이다.(SEAON) EAST4가 모두에게 컬처 그라운드였으면 한다. 현실보다는 상상의 세계에서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는 단서를 만들었으면 한다.(박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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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7호 | 이슈 1 30대 건축인이여, 꿈의 날개를 펴라 <Refuge, 인천 건축가 30대의 꿈>展 Wide Architecture : wIde Issue 1 no.7 : january-february 2009

지난 해 12월 초 인천 학생교육문화회관 내 가온갤러리에서 개최된 <Refuge, 인천 건축가 30대의 꿈>전 (2008.12.2~12.7)은 인천을 건축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30대 건축인들을 한 자리에 모은 건축 전시였다. 비록 사회에까지 전시 의의를 공명시키는 감통의 단계로까지 전개되지는 못했지만 30대의 집단적 건축 지성을 끌어 모아 꿈의 복원을 도모했다는 점에서 그래도 희망적인 전시다. 전시 리뷰와 작가들의 출사표를 통해 이번 전시가 던져 주는 값진 의미들을 찾아보자.(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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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uge, 인천 건축가 30대의 꿈>展 Review | 전진삼본지 발행편집인 1년 동안 국내에서 개최되는 건축 전시의 수가 적지 않은 반면 전시의 의의가 의미 있게 전달되는 사례는 흔치 않다. 여러 가 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획이 치밀하지 못한 까닭이 하나이며, 행정 기관과 건축 단체와 대학이 주도하는 전시가 주종을 이루 는 풍토가 또 다른 이유가 된다. 전자의 경우는 기획자의 수적 열세(건축계에 건축 전시 전문 기획자란 존재하는가? 이것은 다른 관점에서 짚어볼 논제이기도 하다)와 기회의 부족이 배경을 이룬다. 후자의 경우 대체로 건축 전시의 기획자가 필요하 지 않은 전시의 형태를 띤다. 틀에 박힌(건축상 수상작의 전시 또는 단체 회원전), 결과물 보고형(대학 과제전 등)의 그래서 사회적으로 무관심으로 일관되는 전시의 행태에서 일탈한 건축 전시의 빈곤은 우리 건축 문화의 허약한 체질을 지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해 12월 초 인천 학생교육문화회관 내 가온갤러리에서 개최된 <Refuge, 인천 건축가 30대의 꿈>전 (2008.12.2~12.7)을 계기로 모처럼 건축 전시에 있어서의 기획자의 역할을 제고할 수 있었다. 또한 건축 전시로 대중과 소 통하는 방법과 문제점을 깊숙이 들여다볼 기회가 되었으며, 이 같은 전시의 유의미한 성과에 대하여도 궁구할 수 있었다.

건축의 언어, 감통과 불통의 난제 건축 전시는 어렵다. 출품자가 일일이 설명해 주지 않는 한 어지간히 건축 공부가 되어 있는 사람조차도 작가의 생각을 따 라잡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시장에 내걸은 패널과 건축 모형 그리고 영상물로 크게 나뉘는 전시 행태는 어느 건 축 전시에서나 쉽게 만나게 되는 모습이다. 문제는 그 안에 담아 놓은 언어들이다. 흔히 건축 도면이라고 하는 것도 전시장 을 찾은 일반인들에겐 낯선 언어다. 도면을 채우고 있는 각종 치수와 기호들 그리고 외국어로 표기되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들. 일제 강점 하에 잘못 길들여진 수많은 일본말이 오늘날에조차 건축 공사판에서 통용되고 있듯이 현재 국내 건축 디 자인계에서 상용되는 많은 언어들은 글로벌화의 영향권 하에서 영어 중심으로 뒤바뀌고 있다. 우리말 중간 중간에 영어 단 어를 끼우지 않으면 소통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도 학생들이 도면 위에 새기는 언어들은 외국어 일색이다. 우리말에서 건축 개념의 어원을 찾고 궁리한 결과를 도 면에 담는 학생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수년 전부터 대학이 브랜드 가치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외국에서 의 석^박사 학위자를 우선 선발하게 됨으로써 학생들은 선진 교육의 모델이 국외에서 비롯하며, 그들이 쓰는 언어를 일상 화해야 함과 동시에 그것으로 무장될 필요를 암암리에 강요받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 대부 분이 겉멋에 빠져 있는 집단적 병리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 이는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는 ‘이상한 엘리트이즘’의 한 본보기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을 병리적으로 보기보다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건 축언어의 상용화가 세계시장에서의 우리 건축디자인과 기술력의 활로를 찾는 최선의 방책이라는 암묵적 동의가 전제되었 다는 주장도 펼칠 수는 있을 것이다. <Refuge, 인천 건축가 30대의 꿈> 전시는 인천을 건축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30대 건축인들을 한 자리에 모은 건축 전시 였다. 인천에서 태어났거나, 인천에서 공부했거나, 인천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30대 건축인들을 찾아내었다는 의미에 고 무되는 것은 아마도 전문 장르의 계층적 분포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인천 지역사회 일부 인사에 국한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이들이 건축 전시를 통하여 무엇을 이 사회에 전달하고자 했는가에서 찾는 것은 당연한 일. 그 면에선 이들이 공통 주제로 던진 <꿈>과 <Refuge>는 너무 건축 내부 지향적이다. 그건 이번 전시의 행태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전시장 바깥 세계 와의 소통에 무게 중심을 두기보다는 여타의 건축 전시가 그러했듯 건축가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 골몰한 집단주의의 한계 를 노정시켰다.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건축 언어의 공통점은 건축의 사회적 소통과는 무관했다. 심지어 전시된 건축 모형까 지도 일반인들에겐 접근하기엔 너무 어려운 전시물이었다. 인천을 건축의 고향으로 삼는 30대 건축인들의 존재를 확인케 하는 합창 자체는 너무 소중한 결실이었지만 그들의 합창이 건축 사회뿐 아니라 시민 사회에까지 전시 의의를 공명시키는 감통의 단계로까지 전개되지는 못한 전시였다. 그러나 한 가 지 희망적인 것은 이들 30대의 집단적 건축 지성이 인천을 향하여 지속적으로 꿈을 펼치겠다는 의지를 모았다는 사실이다. ⓦ 주 1 | 전진삼, 인천일보 2008년 12월 16일자, 인천문화예술비평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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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fuge, 인천 건축가 30대의 꿈>전 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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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건축인, 건축가로서 그들의 위상 무엇이 이들을 모이게 했는가? 인천이라는 지역 연고(출신)에 한정하여 30대 건축인들을 모았다는 발상은 참신했다는 평 가(그것은 인천 지역 내 문화계 인사들로부터의 환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와 동시에 전시 참여 작가 중에서조차 특정 지 역의 굴레로 묶인다는 것에의 거부감이 채집되었는데 당장은 엇갈린 반응의 이유가 궁금해진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리 는 건축에서 지역성을 논점으로 대화하는 것의 부적절함을 당연시 하는 풍조에 젖어 들었는데, 아마도 그러한 분위기로 말 미암은 연유가 부정적 입장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또한 지역이라는 전시 초대작가의 범주가 견고하지 못했다는 비판적 시 각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건축계에서 30대란 대체로 기업의 조직 문화 내에 귀속된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찾는 것이 손쉽다. 그들 대부분 은 자기 건축의 칼라를 지우고 기업의 이윤 창출에 동원되는 직임에서 존재의 가치를 찾는다. 20대를 상징하는 백수문화와 30대의 팔짱문화는 근거리에서 세대 간 특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 결과 20대의 창조적 파괴력은 30고개를 넘어가는 지점에서 쉽게 고사되고 정작 30대를 맞아서는 사회 체제에 가장 순종적인 세대의 특징을 끌어안기 마련이다. 건축 디자인 을 주업으로 하는 건축인들의 세계에서는 이 같은 세대 간 특이점이 유난히 크게 드러난다. 솔직히 30대 건축인 중에서 건 축가라는 포지셔닝을 무기로 사회에 적절히 적응하고 있는 존재를 식별해 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닌데 독립 건축가로서 활 동하는 수가 예상외로 적다는 것이 이유가 된다. 그러다보니 이번 <Refuge, 인천 건축가 30대의 꿈>전에서 볼 수 있듯, 이들이 전시를 통해 보여 주고 있는 주제 의식은 다 분히 주관적이다. 이는 통상의 20대에서 경험한 바 있는 아카데미즘의 편린으로 규정될 수 있는데 크게는 전시를 통하여 소 통코자 하는 분명한 목표의 부재와 작게는 익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전시의 관람을 유도하여 건축과 사회와의 경계 지우기 를 기대하는 심리를 무시한 결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20대의 전시 기획자 장재경이 30대 건축 선배들을 불러 모았다는 관점에서 보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 다. 그가 전시 초대의 글을 통해 밝히고 있는 ‘20대에 꾸었을 사라진 꿈의 복원과 저항 정신의 신생’을 알리는 전시라는 시 각이 주된 관전 포인트로 작동한다면 말이다. 전시 참여 작가들은 그들이 속한 사회적 위치를 일탈하여 다시 20대의 정신 세계로 거부감 없이 회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곳에서 다시 건축의 언어를 추어올리며 꿈의 부재를 자가 치유하는 고단 한 과정을 겪은 것이다. 그들은 벽장 깊숙이 감춰두었던 꿈의 복원을 통하여 건축가로서 30대의 자신을 정위시킨다. 나는 건축가인가? 그럼,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저항’이란 무엇인가? 그것의 실체가 궁금하다. 인천의 글로벌도시 담론의 허구를 지적하는 공 동전선이 이들이 저항하는 첫 번째 대상인 듯한데, 내용으로 들어가서 보면 팩트(fact)가 거세된 또 다른 글로벌 담론의 허 구가 강하게 배어 있다. 문제의 발단은 참여 작가들이 전시에 앞서서 일련의 워크숍과 같은 공동 프로그램을 운용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 된 셈이다. 어설프게 이해하거나, 도시 이해의 단계를 무시한 용감무쌍함이 이 전시의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하 는 저항 정신을 밀어낸 격이다. 그러면 인천 바깥에서 찾은 저항 정신은 어떤가? 소통코자 하는 대상의 부재는 여기서도 함 정으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말하는 저항은 건축가로서의 존재감 상실로부터의 본능적 저항일 뿐이다. 그것이 중 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전시에 걸었던 기대감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Refuge>, 그리고 다시 <꿈> ‘우리의 시선은 낮은 자세이기는 하지만 다분히 저항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인천을 둘러싼 최근의 큰 기획들을 바라 보는 비판적 시선이 그러하고, 이제는 개발의 뒤안길로 전락해 버린 듯한 인천의 여러 장소를 바라보는 오랜 애정들이 그러 하다.’는 권형표의 언급(건축가 30대 출사표 참조)에서처럼 이들은 인천의 도시와 건축에 담긴 문제의식을 양분으로 하여 건축가의 길로 발을 들여놓았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따라서 이들은 30대 건축가의 존재감을 자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 세대 의 집단적 욕망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 점에 있어서 나는 앞에서 이 전시가 저항적이기보다는 유순한, 미온적 태도로 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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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일범, <MAZY(1999), WAVY(2005), FLORY(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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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고 비판했지만 그들의 작가적 잠재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전시는 30대 후반의 건축가 4인을 주목하고 있어 특히 흥미로웠다. 문훈(문훈건축발전소 소장), 봉일범(국민대 교수), 이의성(창조건축 이사), 전유창(아주대 교수) 씨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전시장 내에서 특별 부스에 초대되었는데(개막 후 뒤풀이 자리에서 나는 그것을 이 전시가 탈권력의 재구조화에 실패한 증거라고 비꼬기도 했지만), 이들에게서 공통점이 있 다면 4인 모두 해외파라는 특징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이의성 씨는 모포시스의 중심 멤버로서 이대 앞 선타워 빌딩을 설계하고 현장을 진두지휘한 장본인이며(그는 인하대 국제 워크숍 초청 강사를 역임한 자격으로 이번 전시에 초대되었다), 최근 귀국하여 창조건축에서 전략 디자인 및 도시 설계 부 문 이사의 역을 수행하고 있다. 전유창 씨는 인하대 건축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유학생의 신분으로 일본 신건축사가 주 최한 국제 공모전 대상 수상자의 경력을 소유하면서 주목되었던 건축인으로 근년에 귀국 후 아주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봉일범 씨는 교수 임용 전, 10권의『지어지지 않은 20세기, 건축』전집을 완간한 바 있는 신세대 이론가이자 건축디자이너 로서 주목되었다. 문훈 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아트 액티비스트로서 건축과 영화, 미술 장르의 접점을 아우르는 전시와 출판 행위를 통하여 건축의 외연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는 인물이다. 이들은 30대 초중반에 이미 디자이너 혹은 저술가의 대열에서 자신들의 이름이 호명될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시절을 보냈 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 전시가 이들을 집중 조명하고 있는 배경에 이 같은 개인 이력이 참조되었을 것이라고 하는 추측 은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기획자의 꼼수가 있었다면 전시장의 4 / 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30대 초중반 의 건축인들에게 이들 4인의 존재를 먹잇감으로 내놓았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차별화된 전시 부스는 이 전시를 하나 의 게임으로 관전하는 포인트가 된다. 이들 중 건축 저널리즘에 작업 세계의 노출 빈도가 적었던 2인에게 특별히 시선을 모아 보자. 봉일범의 작업 <MAZY(1999), WAVY(2005), FLORY(2008)>는 인천의 특정 계획 부지를 대상으로 한 작가의 연대기 적 사유(그는 30대 초반 3차원의 미로에 심취되었던 시기의 흔적과 30대 중반 컴퓨팅의 기술에 흥분했던 시기의 흔적 그리 고 30대 후반 인천의 화려한 미래를 궁구하는 동시간대의 꿈을 표현했다고 기술하고 있다)의 고리를 표현했다. 그가 보여 주는 꿈의 궤적은 건축가로서의 성장 바로미터가 곧 건축가의 자기 논리를 세우는 연속된 과정이어야 함을 개인의 경험에 비추어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그는 이른 나이에 건축책의 저술(및 번역)행위를 통해서 건축론의 기 초를 튼튼히 한 건축인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이번 전시는 그의 디자인 경향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리였다. 전유창의 작업 <Urban P/Flat-form>은 노들섬 공연예술센터 계획안을 통해서 땅과 사람을 균형감 있게 묶어 주는 이벤 트 장으로서의 건축 공간을 제시했다. 그는 인공적으로 조성된 노들섬(그것은 이미 자연 공간으로서의 상징적 기표로 작동 중이다)에 또 하나의 인공 대지(건축)를 대지의 종축과 엇물리게 얹어 놓음으로써(건축 행위란 대지 위에 새기는 시계 바늘 이라는 의미를 함의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껏 한강수의 흐름에 순응해온 지형적 특질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결과적으로 그 의 작업은 한강에 정박한 항공모함과도 같은 유비적 건축을 통해서 그 자리에 있어 왔던 것(자연 공간)과 새로 개입시키려 는 것(인공의 건축판)과의 대비와 거대한 지붕판의 군데군데에 격자형의 크고 작은 오프닝을 통한 환유형 플랫폼을 구축함 으로써 건축에서의 원시성과 현대성을 공명시켰다. 그 외에 전시에 참여하고 있는 30대 초중반 작가들 중에서 남건욱+이윤희, 권형표+김순주, 김준모, 박종대+윤새봄+김정희, 서창범, 심경아+이종훈, 이태상 씨 등의 작업 내용도 눈에 띄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풍요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건축 공간으로 주어진 프로젝트에 충실하고 있다. 대체로 그들의 건축에서는 선명한 디자인의 목표와 그것을 엮는 잘 짜인 내러 티브 공간이 특질로 드러난다. 계획 부지에 대한 기층 사회의 안이한 문제 의식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며, 건축의 실현보다는 구축의 입론에 착안하여 건축의 존재를 환기시키는 방법을 좇는다. 이러한 특질이 공유되는 배경에는 대학에서 만난 그들 의 스승, 구영민(인하대 건축과 교수) 씨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이번 전시를 완성하는 데에 있어서 드러나지 않는 암막(暗幕)으로 존재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의 자기 존재를 부인 했지만, 그의 건축적 관심과 이상은 전시에 참여한 상당수 30대 건축인들에게서 고스란히 찾아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건축이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도구라는 시점에서 20세기 초 러시아 구성주의자들의 태도를 오늘의 한국 건축에 현재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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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창, <Urban P/Flat-form>.

키고 있는 건축가이자 비평가이며, 이론가이다. 그러한 그의 건축관은 인천을 고향으로 하는 건축 인재를 잉태하고 키워내 는 중요한 모판의 구실을 하고 있으며, 글로벌 도시담론의 허구에 매달리는 인천의 건축적 저항의 기점이란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인천이 그의 건축관과 국제적으로 광역화한 건축 네트워크에 대한 정보를 중용하지 않 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인천에 없는 것> ⓦ 주 2 | 기호일보 2008년 11월 19일자, 기호포럼 칼럼이라는 지역신문 칼럼에서 인천의 건축가 세우 기를 주장했다. 그의 존재감을 염두에 두었던 까닭이다. 이번 전시는 서울로 모아지는 중앙의 시선을 끌지는 못했다. 그러나 인천의 건축판이 문화적 단층을 축적하는 데에는 충분 히 의미 있는 전시였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전시를 통해서 보여준 개인적 역량은 향후 의미 있는 건축 전시의 출현을 기대케 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건축 전시의 기획자는 보다 넓고, 깊게 세상을 들여다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서 주제 의식이 선명한 전시의 기획이 가능해진다. 그것은 또한 대중과의 소통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지역의 한계를 넘어서 는 기획이 가능해질 때라야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사고로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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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30대 출사표

김준모 ⓦ 건축가 30대란 입추(

김순주 ⓦ 13년의 세월이 많은

현실)를 맞이하는 것과 같다. 아직

것을 바꾸어 놓았다. 위치, 생각, 가

남아있는 더움(몽상)이 결코 끝나

치관, 목표. 그래도 아직 변하지 않

지 않음을 기억하는 시간이자, 완연

는 건 여전히 내 삶의 반 이상이 건

해질 가을을 준비하는 환희의 순간,

축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고, 여전

또는 그 슬픔을 알아차려 버린 절기

히 손에 잡히지 않는 뭔가를 위해

인 셈이다. 그래서 건축가 30대는

하루하루가 빠르게 소비되고 있다

처서(處暑)와 같을 것이다.

는 것이다. 그것을 꿈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 다. 건축가 30대의 꿈은 열정과 이성 사이의 가느다 란 경계선을 따라 걷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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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 인천에서 태어나 30년

소용수 ⓦ 20대에 내가 몰두했던

을 인천에서 살았다. 이 도시는 내

숫자는 8m였다. 늘 탄젠트 값을 구

집이며, 고향이며, 학교였다. 건축

하고 거기서 인천의 마력을 깨우쳤

가 30대 처음으로 밖에서 인천을

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경계 부

보기 시작했다. 서른 살이 훨씬 넘

분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단순한

어버린 도시의 기억과 잠재들이 다

‘선’이 아니라 ‘영역’임을 알게 되면

른 도시들을 제련한다. 건축의 꿈으

서, 그리고 탄젠트 값 위에 ‘lost’를

로 머릿속을 채웠다 비우기를 반복하며 담금질하는

붙이기 시작하면서 난 시인이 되었다. 건축가 30대,

30대. 오늘 다시 인천에 서다.

이제부턴 땅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

윤새봄 ⓦ 그토록 내 심장을 옭아

하경우 ⓦ 낯선 도시 인천에서 건

매었던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스

축을 배운 지도 5,800일 정도가 지

스로의 자유를 향한 갈증으로 20

났다. 회의가 생긴다. 뭘 위해 날짜

대를 보내고, 30대에 비로소 그 꿈

를 세며 살아 왔는지에 대해 ‘꿈’은

이라는 것을 향해 첫발을 들여놓는

이뤄지라고 꾸는 것이라는 진리를

다. 그래서 이런 말 쓰기가 너무 힘

새삼 깨달으면서도 꿈과 현실의 협

들다. 20대를 늘 꿈이란 말로 달래

상인지, 아님 현실의 지배인지 판단

다가 막상 30이 되니 그 책임감이 바위처럼 무거워

하기 힘든 이 시간, 건축가 30대의 변은 이 문제를 푸

진다.

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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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기 ⓦ 성경 한 구절, “너희를

이태상 ⓦ 1997년 겨울과 2008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

년 겨울의 차이. 책상에 쌓여 처리

덩이를 생각하여 보라”(이사야 51

되길 기다리는 서류와 도면을 나태

장 1절 하반절). 원도시건축 8년차

하게 쳐다보고 있는 모습에서 열정

가 된 나는 아무 형상이 없는 커다

의 세기를 측정하는 몸속의 기관이

란 원석에서 떠낸 돌로부터 이력서

둔해져 가고 있다는 자괴감을 느낀

한 줄의 나로 다듬어졌다. 진짜 앞

다. 공모전에, 턴키에, 허가에, 지쳐

만 보고 달려왔던 나를 되돌아보게 해주는 그 ‘꿈’이

잠들 때, 꿈을 꾸게 하는 신경마저 작동하지 않음을

라는 것. 30대에 다시 꿈을 꾸게 된 나는 용감해지고

슬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40이 훌쩍 넘어가기

싶을 뿐이다.

전에 아직도 과거진행형인 내 거울을 다시 꺼내 보고 내가 지금 어디쯤 있는가를 살펴보고 싶을 뿐이다.

이종훈 ⓦ 어렵다. 20대나 30대

조경훈 ⓦ 20대부터 도면과 도

나 마찬가지다. 다만 20대의 어려

시 공간의 괴리에 대해 회의를 갖

움은 도전으로 다가왔고, 30엔 어

고 있었다. 도시와 거리 공간, 그리

렵기에 ‘타협’을 넘보게 된다. 현실

고 그 속의 건축과 사람들을 가슴

이 꿈과 접속되는 굉장한 순간을 포

속에서라도 짝을 지어주기 위해 이

착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짓을 시작했다. ‘시티 스케치(City

꿈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는 용기를

Sketches)’는 때론 혼자, 때론 가

갖게 된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내 30대의 변명은 내

족과 함께 도시를 바라본 사적인 기록이다. 이런 행위

가 ‘젊은 건축가’도 아직 못됐다는 자성이다.

는 일탈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에 대한 집착이라 봐야 옳다. ‘line weight’로부터 일상으로 돌아가 유연한 시각을 획득하려는 욕망 같은 것이다. 30대의 건축여 정은 진짜 “부드러운” 건축가이고 싶다.

권형표 ⓦ 인천을 달릴 때 만나게

박종대 ⓦ 인공물이 반드시 자연

되는 주변의 공장 풍경들과 그 길이

의 형태나 메커니즘을 흉내 낼 필요

끝나는 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바다

는 없다. 미생물의 ‘Shelter’가 된

는 내가 20대에 만난 인천의 첫 풍

해변가의 유리병처럼, 그저 온전한

경이었다. 그 이후로 인천의 바다가

인공물인 채, 자연에 겸손하게 놓이

그저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라는 사

면 된다. 중요한 것은 침식이 일어

실과 인천은 힘겨운 성장통 속에서

날 수 있는 관계와 가능성에 있다.

도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애정 어린 시선을 갖기까지

그리고 시간이다. 무분별한 인천의 확장이 ‘침식’이

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후로도 10

라는 자연의 작동방식에 의해 멈칫거릴 때, 인천의 ‘

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인천에서 성장한 30대 건

인천다움’이 숭고하게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생태

축가들의 의미 있는 여러 시선들이 이곳에 담겨 있다.

도시는 확장이 둔화되고 침식이 가속화되는 순간부

우리의 시선은 낮은 자세이기는 하지만 다분히 저항

터 작동하기 시작한다.

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인천을 둘러싼 최근의 큰 기획들을 바라보는 비판적 시선이 그러하고, 이제 는 개발의 뒤안길로 전락해 버린 듯한 인천의 여러 장 소를 바라보는 오랜 애정들이 그러하다. 10여 년의 터울을 갖는 작업을 꺼내 놓는 이번 기획이 민망하지 만은 않은 것이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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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중 ⓦ 이 전시는 늦기 전에

성주애 ⓦ 20대엔 꺼지지 않는

지연(地緣)의 고리라도 잡자는 어

연구실 불빛을 보며 건축의 열정을

설픈 해프닝이 아니다. 연어가 본능

키웠다. 하루 3시간씩만 디자인하

적으로 자신의 고향으로 회귀하듯

라는 충고를 되새기며 늦은 밤, 연

건축가의 책무를 통해 내 지적인 고

구실을 나서며 바라 본 밤하늘, 그

향, 인천으로 돌아가는 첫 번째 반

하늘에 샛별같이 빛나던 꿈을 지

환점일 뿐이다. 인천이 가르쳐 준

금도 본다. 30에 다시 꿈을 꾸어야

도시의 기억에 대한 무한한 해석가치를 되새김하고

할 이유는 없다. 현재(Present)는 언제나 꿈의 선물

진행 중인 내 건축 인생이 인천에서 만들어졌다는, 그

(present)이기 때문이다.

래서 그 토대에는 인천과 같이 아픈 도시를 바라보며 꾸어야 했던 그 꿈이 받쳐주고 있다는 위안을 갖게 해 주는 숭고한 행위이다.

남건욱 ⓦ ‘Motherland’ 인천

이윤희 ⓦ 열정을 식히지 않기 위

에서 열정과 저항을 배웠다. 그리고

해, 꿈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내가

인천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 새로

끝까지 놓지 않았던 짓은 생산이었

운 세상을 탐하려 했지만 내가 건축

다. 그 생산품들이 옳은 건지 아닌

하는 어떤 세상에서도 인천이 묻어

지 판단할 기운조차 없을 정도로.

난다. 뉴욕의 맨해튼에서도, 아프리

포기하지 않는 것만도 내겐 버겁다.

카의 사막에서도 내 작업은 언제나

인천도 잊고, 내가 인천에 살고 있

인천의 도시 공간,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다는 것도 잊은 채, 그냥 무표정하게 세상과 투쟁하며

의 삶과 겹쳐진다. 추염부열(趨炎附熱)할 마음은 없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갑자기 깨닫게 됐다.

다. 다만 인천을 떠나 저질렀던 모든 건축 행위가 인

인천을 떠난 후 수년 간의 내 모든 작업과 포기하지

천을 담고 있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감히 주장하고

못하는 비겁함조차 인천을 향해 있음을.

싶을 뿐이다. 가슴이 다시 따뜻해진다. 내 건축의 모 향(母鄕)이기 때문이다.

백상훈 ⓦ 처음 건축을 시작했

전유창 ⓦ 30대 후반, 모순(Par-

을 때 건축은 나에게 막연한 이상으

adox)의 두 면에 서 있는 내 자신

로 다가왔다. 지금 건축은 그 이상

을 바라본다. 20대에 꿈꾸어 왔던

과 현실 사이의 틈이 심연(深淵)임

건축에서의 이상과 현실의 구체적

을 깨우쳐 준다. 그 심연을 가로질

인 실체와의 대립은 비단 건축뿐만

러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기나긴 여

아니라 삶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니

정을 가르쳐 준다. 30대는 내게 이

었던가? 건축이 선을 통해 경계를

렇게 말한다. 꿈과 가능성의 애매한 차이, 희망과 현

생성하는 구축의 작업과 연결을 통해 관계를 맺어가

실의 높은 벽, 창조의 희열과 비통함 사이를 왔다 갔

는 행위쯤으로 여겨질 때 30대의 나의 모습은 바람에

다 하면서 건축에 열광하고, 건축을 증오하며 내면의

몸을 맞기며 현실과 꿈의 절박함 사이를 가로지르는

긴 여행을 시작하라고.

외로운 줄타기쯤이 아닐까? 이 위험한 줄타기의 시간 에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 선 나에게 무모함(Recklessness)과 어리석음(silliness)은 덕목이라고 되 뇐다. 현실의 무거움을 밀쳐내고 이상의 가벼움을 부 여잡으며 오늘도 나는 숨을 죽이고 어리석게도 이 선 (line) 위에서 무모한 곡예를 하고 있다. 자유로이 경 계를 가로지를 수 있는 균형 잡힌 40대의 나와 나의 건축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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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1 : 30대 건축인이여, 꿈의 날개를 펴라


씨애틀, 김정희 ⓦ ‘꿈? 난 아

김지운 ⓦ 20대 초반의 내게 건

직도 그것만 먹고 산다’는 공장장

축이 던져주었던 질문들은 너무 매

과 불모지를 개척하며 후배들이 넓

력적이었다. 거대한 세상을 품을

은 세계로 나오길 바라는 선배, 아

듯, 철학, 미학, 역사의 담론 사이를

직 젊다며 우리는 아직 세상과 타

오가는 생각과 대화에 밤을 지새우

협할 수 없다는 친구 놈과 선배들의

곤 했다. 30대가 된 지금, 건축이 가

꿈을 일깨우기 위한 칼을 쥐고 있는

진 매력의 대부분은 그저 종이 안에

후배들… 그들이 위태한 나를 숨 쉬게 하는 내 죽은

갇혀 있는 순간적인 감상과 의견들이었음을 알게 되

심장의 붉은 꽃이다. 그들과 함께 30대의 꿈을 시작

었다. 이곳저곳에서 빌려 온 현란한 어휘들과 논리로,

하려 한다.

건축은 스스로를 경계 없는 존재로 만드는 데 성공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은 여집합의 세상과 소통 할 수 있는 일말의 수단조차 잃어버린 듯한 것은 아이 러니다. 저 혼자 엘리트가 돼버린 건축을 더 이상 참 을 수가 없다. 아마 30대에는 더 이상 ‘작가’나 ‘이야 기꾼’이 되기 위한 시간이 없을 것 같다. 그냥 얌전히 그 진가를 이해하는 정도의 독자로, 청자로 남고 싶 다. 자신의 건축적 ‘감상’을 종이 밖에서 현실화시킬 수 있을 때, 자신을 건축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기 에 난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기로 했다.

심경아

ⓦ 인천에서 태어나고,

최해안 ⓦ 누군가 말했다. 완만한

초, 중, 고등학교, 대학교를 마쳤다.

경사로를 걷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

그래서 내게 인천은 익숙한 집이자,

는 사이 도태되는 자신이 싫다고.

일상 자체였다. 하지만 석사 논문을

하지만 건축은 언제나 내게 말한다.

통해 새롭게 발견한 도시 읽기, ‘인

열정만 있다면 마치 액체가 끓는점

프라아키텍쳐바니즘’의 프레임은

이라는 임계점을 넘어 공기 중으로

나의 안식처(refuge)를 평생의 전

퍼져버리듯이 나 또한 자유로워질

쟁터로 바꿔 놓았다. 인천에서 멀어져 서울 직장에서

수 있다고. 인천에서 뜨겁게 보냈던 20대의 열정과

새롭게 시작된 30대에, 내 30은 인천을 떠났다고 믿

무모함을 가진 채, 언제 다다를지 모르는 임계점을 향

고 싶은데도 떠나지 못하는 도착증의 지경에 빠져 있

해 나의 30대는 시작되고 있다. ⓦ

는 것 같다.

건축가 30대 출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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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7 : january-februar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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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7호 | 이슈 2 중앙시험소 청사로 밝혀진 구 공업전습소 본관

↖ 중앙시험소청사신축설계도(中 央試驗所廳舍新築設計圖) 부 분. ↙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199-1번 지의 근대 이층 목조 건축물, 현 재 사적 제279호 구 공업전습 소 본관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 진 출처 : 문화재청 20세기초 건 축물 사진 실측 조사 보고서, 문 화재청, 2000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별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층 목조 건물은 지금까지 1909년 탁지부 건축소에 의해 건립된 공업전습소 본관으로 알려져 왔다. 물론 1981년에는 구 공업전습소 본관이란 명칭으로 사적 제279호로까지 지정되었다. 그런데 최근 한 대학의 연구실에서 이러한 사실이 잘못되었음을 판명하는 연구 결과가 나와 이목이 집중된다. 전봉희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학교 건축사연구실이 ‘일제시기 고적^관사^박람회 등 건축도면 콘텐츠 구축’ 사업을 통해 밝혀낸 바로는 현재 공업전습소 본관이라고 알려진 건축물이 실제로는 1912년에 건립된 중앙시험소 청사라는 것이다. 이는 사업을 통해 정리된 124매의 중앙시험소 관련 건축 도면의 내용과 자료를 분석한 결과라고 한다. 이에 본지에서는 그것이 공업전습소 본관으로 알려질 수밖에 없었던 연유와 중앙시험소 청사임을 밝혀 주는 몇 가지 근거들을 들어보고, 중앙시험소 청사 및 부속 건물의 신축 과정을 소중한 사료와 함께 엿볼 수 있는 기회를 별도로 제공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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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중앙시험소 청사로 밝혀진 구 공업전습소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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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1> 중앙시험소부지지균공사평면도(中央試驗所敷地地均工事平面圖), 1912년 추정. 출처 : 국가기록원 소장 도면.


구 공업전습소 본관(사적 제279호)에 대한 재검토 글 | 주상훈(서울대학교 공학연구소 연구원, 건축사연구실)

현재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199-1번지에는 20세기 초에 건립된 이층 목조 건축물이 아직까지 남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별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지금까지 1909년에 탁지부 건축소(度支部 建築所)에 의해 건립된 공업전습소 본관으로 알려져 왔으며, 1981년 9월 25일 구 공업전습소 본관( 舊工業傳習所本館)의 명칭으로 사적 제279호로 지정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최근까지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져 왔으나, 2008년 국가기록원에서 시행한 ‘일제시기 고적^관사^박람회 등 건축도면 콘텐츠 구축’ 사업(사업 수행 : 서울대학교 건축사연구실, 지도교수 전봉희)을 통하여 정리된 124매의 중앙시험소와 관련된 건축도면의 내용과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 현재 공업전습소 본관으로 알려져 있는 건축물은 실제로 1912년에 건립된 중앙시험소 청사(中央試驗所 廳舍)임이 규명되었다.

탁지부 건축소와 공업전습소 공업전습소 본관에 대한 기존의 연구를 살펴보기 위해 이를 건립하였던 탁지부 건축소(度支部建築 所)에 대해 알아보자. 이 기관은 1906년 9월에 설립되었으며 행정, 재정, 사법 등에 필요한 각종 근 대 건축물의 건립을 전담하였다. 탁지부 건축소에는 실제 계획과 공사를 담당한 건축과(建築課)와 토목과(土木課) 외에도 벽돌 제작을 위한 연와제조소(煉瓦製造所) 등이 설치되었다. 탁지부 건축 소는 1910년 8월 조선총독부가 설치된 이후 폐지되었는데, 4년여의 활동 기간 동안 계획하여 건립 한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탁지부청사(1907), 대한의원 본관(1908), 평리원(1908), 공업전습소 본관 (1909), 광통관(1909), 내부청사(1910), 농상공부청사(1910) 등이 있었다. 1907년에 설립된 공업전습소의 건물 역시 탁지부 건축소에서 건립하였으며, 본관 건물은 1909년에 준공되었다. 공업전습소는 1904년 설립된 농상공학교를 그 모태로 하며, 1907년 공포된 ‘관립공업 전습소 규칙’에 의거하여 한성부 동서 이화동에 설립되었다. 공업전습소는 근대 시기 최초의 공업 기 술인 양성을 위한 학교였으며, 1912년에 동 부지에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가 설립되면서 중앙시험 소 부속 공업전습소로 개편되었다. 이후 1916년 4월 경성공업전문학교가 설립된 이후에는 경성공 업전문학교 부속 공업전습소로 개편되었으며, 1922년 3월 경성공업전문학교가 경성고등공업학교 로 개편되면서, 공업전습소는 경성공업학교로 다시 편성, 독립기관으로 분리되었다.ⓦ 주 1)

공업전습소 본관에 대한 기존 해석 이 건축물이 공업전습소 본관으로 알려지게 된 원인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탁지부 건축소의 사업을 소개한 1909년의『건축소사업개요(建築所事業槪要)』 , 1915년의『조선총독부공 업전습소일람(朝鮮總督府工業傳習所一覽)』등의 근대기 문헌을 통해 공업전습소 본관이 1909년 탁 지부 건축소에 의하여 건립되었음이 알려져 있었다. 둘째, 현재의 종로구 동숭동 199번지 일대에는 1912년 이후 중앙시험소와 공업전습소가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 2) 자연스럽게 1909년 탁지부 건축소에 의해 건립된 공업전습소 본관이 1910년대 중반 이후 중앙시험소 청사로 계승되어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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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중앙시험소 청사로 밝혀진 구 공업전습소 본관

ⓦ 주 1) 서울대학교공과대학 60 년사 편찬위원회,『서울대학교 공과대학 60년사』 ,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2007. ⓦ 주 2) 1916년부터는 경성공업 전문학교, 중앙시험소, 경성공 업전문학교 부속 공업전습소가 부지 내에 공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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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2> 중앙시험소청사신축설계도(中央試驗所廳舍新築設計圖), 1912년 추정. 출처 : 국가기록원 소장 도면.


↑ 경성고등공업학교(京城高等工 業學校). 출처 : 재인용, 김정동, ‘원로와의 대화2—이균상, 건 축가, 서울, 1981.01.02. 萩森 茂, 京城と仁川, 東京, 大陸情報 社, 1929. ← 관립공업전습소(官立工業傳習 所). 출처 : 杉市郞平, 倂合記 念朝鮮寫眞帖, 東京, 元元堂, 1910.

구체적으로 공업전습소 본관에 대한 가장 이른 시기의 소개와 연구는 1966년 출판된 고 윤일주 선생 의『한국 양식건축 80년사』 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국립공업연구소 본관이었던 이 건물은 1909년 4월 완공된 공업전습소 본관으로 소개되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 3) “工業傳習所本館 (現存, 現國立工業硏究所本館) 構造 : 木造 2層 坪數 延 802坪 工期 : 1908.11 ~ 1909.4 1906年 發足을 본 工業傳習所는 典圜局時代부터 機械試驗所가 있었던 東崇洞에 터를 잡아 本館을 비롯한 校舍, 食堂 等 적지 않은 건물을 지었는데, 그中 本館건물이 木造인대로 格式을 갖춘 것이었다. 工業傳習所는 合邦後인 1912年 4月以後 中央試驗所로 되고 傳習所와 共存하게 되었는데, 1916에 傳習所가 京城工業專門學校와 京城工業學校로 分 立하게 되면서 本館은 全的으로 中央試驗所로 되었다. (후략)”

이와 같은 내용은 1978년 출판된『한국현대미술사(건축)』 에도 그대로 인용되어 있으며,ⓦ 주 4)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건축물은 1981년 9월 25일 구 공업전습소 본관으로 사적 지정이 되었다.ⓦ 주 5) <구 공업전습소 본관의 문화재 지정 내용> 종목

사적 제279호

지정일

1981.09.25

명칭

구공업전습소본관

소재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199-1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근대교육문화/학교시설

시대

대한제국시대

수량/면적

999㎡

소유자

국유

이후 1987년 김정동은 <한국근대건축의 재조명>이란 연재물을 통하여 한국의 근대건축물 각각에 대한 매우 세밀한 연구와 소개를 하였는데, 윤일주의 연구 성과를 그대로 이어받아 이 건물을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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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중앙시험소 청사로 밝혀진 구 공업전습소 본관

ⓦ 주 3) 윤일주,『한국 양식건축 80년사』 , 서울, 야정문화사, 1966, p.85. ⓦ 주 4) 국립현대미술관,『한국현 대미술사(건축)』 , 서울, 동화출 판공사, 1978, p.31. ⓦ 주 5) 구 공업전습소 본관, 문 화재청 문화유산정보 from http://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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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3> 경성동숭동/중앙시험소/공업전습소/청사급관사부지(京城東崇洞/中央試驗所/工業傳習所/廳舍及官舍敷地), 1914년 추정. 출처 : 국가기록원.


년에 완공된 공업전습소 본관으로 소개하였으며, 이외에 공업전습소의 관제와 교육 내용 등에 대하 여 추가적으로 연구하였다.ⓦ 주 6) 이러한 초기의 연구 성과 이래 현재까지의 모든 연구와 자료에서는 이 건물이 공업전습소 본관으로 기술되어 오게 되었다.

중앙시험소 청사임을 말해주는 몇 가지 근거 2008년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는 일제 시기 건축 도면의 정리와 분석 작업을 통해 발견된 ‘중앙 시험소부지지균공사평면도(中央試驗所敷地地均工事平面圖)’와 ‘중앙시험소청사신축설계도(中央 試驗所廳舍新築設計圖)’ 등 124매의 도면에 기재된 내용을 분석하고 관련 자료를 재검토한 결과, 현 존의 동숭동 목조 건물은 1912년에 설립된 중앙시험소 청사임을 판명할 수 있었다. 1912년에 작성된 ‘중앙시험소부지지균공사평면도’는 기존 공업전습소의 서쪽에 중앙시험소 부지 의 공사를 위해 작성되었던 도면이다. 도면에 작성 연도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조선총독부 중앙 시험소 관제’가 1912년 3월 27일에 공포되었으며, 1937년의 ‘조선총독부중앙시험소개요(朝鮮總督 府中央試驗所槪要)’에 중앙시험소 청사가 1912년 12월에 분석실, 요업시험실 등과 함께 준공되었 고, 다음 해 12월에 염직 시험실, 응용화학 시험실 등의 건물이 완공되었음이 기록되어 있어ⓦ 주 7) 이 도면이 1912년 3월에서 12월 사이에 작성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도면에는 중앙시험소 청사 및 부속 건물에 대한 배치 계획이 기재되어 있으며 이와 더불어 그 동쪽 에 공업전습소 본관(工業傳習所本館)이라고 쓰여 있는 건물의 위치가 기재되어 있다. 이를 통해서 1912년 중앙시험소 청사를 신축할 당시 공업전습소 본관과 신축된 중앙시험소 청사가 서로 다른 건 물이었음을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이후 시기인 1914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면(< 도판 3> 참조)에는 공업전습소 본관의 위치에 다른 건물들이 기재되어 있어 공업전습소 본관은 중 앙시험소를 신축하는 과정, 즉 1912~1913년경에 철거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는 12매의 ‘중앙시험소청사신축설계도’에는 당시 건립한 중앙시험 소 청사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 정보가 기재되어 있다. 이들 도면에도 작성 연도는 기재되어 있지 않 지만 <도판 1>과 마찬가지로 1912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도면에는 중앙시험소 청사의 평면과 입면을 비롯하여 현관이나 계단부에 대한 상세도가 포함되어 있으며 현재 구 공업전습소 본 관으로 지정되어 있는 건축물을 표현하고 있어 현재의 건물이 1909년의 공업전습소 본관이 아니라 1912년의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 청사임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더불어 이후 변형된 부분을 복원할 수 있는 건축물의 원형에 대한 정보도 제공해 주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뒷받침하는 사진을 일제 시기 문헌 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10년 도쿄에서 간 행된『병합기념조선사진첩(倂合記念朝鮮寫眞帖)』 에는 당시의 관립공업전습소(官立工業傳習所)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 뒤쪽의 낙산을 배경으로 하여 사진의 중앙에 공업전습소 본관이 위치해 있다. 사진 속의 공업전습소 본관은 전면부가 一자형인 2층 건물이며 건물의 위치도 앞쪽의 도로와 개천 을 기준으로 볼 때, 뒤쪽으로 많이 물러나 있는데, 이는 <도판 1>의 배치도에 기재된 내용과 일치하 는 부분이다. 1929년 발간된『경성과 인천(京城と仁川)』 에는 경성고등공업학교(京城高等工業學校)의 사진이 실 려 있는데 이 사진에서 1912년에 신축된 이래 일제강점기 내내 사용되었던 중앙시험소 청사의 모 습을 볼 수 있다. 청사 앞쪽의 개천과 도로, 다리의 모습도 함께 확인할 수 있으며 청사 남쪽의 분석 실 건물도 함께 찍혀 있다. 이 두 장의 사진은 앞서 1912년의 건축 도면을 통해 확인한 사실과 마찬가지로 공업전습소 본관과 중앙시험소 청사가 서로 다른 건물이었음을 명확히 해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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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중앙시험소 청사로 밝혀진 구 공업전습소 본관

ⓦ 주 6) 김정동, <한국근대건축의 재조명(4)>, 건축사, 1987.08, pp.39-40. ⓦ 주 7) 이태희, <1930년대 조 선총독부 중앙시험소의 위상 변화>,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8, p.5.


중앙시험소 청사 및 부속 건물의 신축 과정

중앙시험소는 1912년 3월 27일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 관

한 도면이며 내용으로 보아 1914년경 작성된 도면이다. 부

제’가 공포되면서 당시 경성부 동숭동에 설립되었다. 중앙

지의 가장 서쪽으로 중앙시험소의 건물들이 남북으로 늘어

시험소는 각종 공업에 관한 시험 및 조사 연구를 목적으로

서 있으며 그 동쪽에는 기존 공업전습소의 실습실 및 교실,

하였으며 구 탁지부 소관의 양조시험 업무와 구 농상공부 소

기숙사, 관사 등이 그대로 존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관의 공업에 관한 시험, 분석 및 감정 업무를 계승하였다. 동

모든 건물의 명칭이 범례에 기재되어 있어 당시 각 건물들

년 12월 중앙시험소의 본관(本館), 분석실(分析室), 요업시

의 용도와 위치를 알려주고 있으며 부지의 면적은 12,746

험실(窯業試驗室) 및 기타 부속 건물이 준공되었고 다음해

평으로 기재되어 있다.

12월에는 염직시험실(染織試驗室), 응용화학시험실(應用

글 | 주상훈

化學試驗室), 요장(窯場) 창고 및 부속건물이 완공되었다. 중앙시험소는 개청한 이후 줄곧 공업전습소, 경성공업전문 학교(1922년 이후의 경성고등공업학교)와 부지를 공유하 였고, 공업교육과 공업연구 및 시험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었다. 따라서 각 기관의 영역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으며, 부지 내 각 기관의 건물들이 그때그때의 필요성 에 따라 남은 공지에 계획되면서 전체 배치가 일관되지는 못하였다. 1912년경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앙시험소부지지균공 사평면도’(<도판 1> 참조)는 당시 중앙시험소를 건립하기 위한 기초 부지 토공 공사 설계도이다. 중앙시험소의 부지 는 기존에 존재하였던 공업전습소 본관의 서쪽 부지에 마 련되었으며 부지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기존의 재래 하 천을 도로에 인접하도록 흐름을 바꾸고 남북으로 크게 ‘제1 부지’와 ‘제2부지’로 나누어 부지 공사를 계획하였다. 그리 고 각 부지로 진입하기 위한 교량 2개를 신설하기 위한 계 획도 기재되어 있다. 부지의 중앙에는 청사(廳舍)와 부속 변 소 등의 부속 건물이 계획되었고 그 남쪽으로 분석실(分析 室)과 분석시금실(分析試金室)이, 부지의 동쪽 끝에 요업시 험실(窯業試驗室)이 계획되었다. 청사의 뒤쪽으로는 교실 이 계획되었다. 이후 1914년경의 중앙시험소와 공업전습소 전체의 배치 를 보여주는 도면이 ‘경성동숭동/중앙시험소/공업전습소/ 청사급관사부지’(<도판 3> 참조)이다. 당시의 현황을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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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7 : january-februar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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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시험소전기화학시험실신축공사설계도(中央試驗所電氣化學試驗室新築工事設計圖). 1915년. 출처 : 국가기록원.

<도판 4>는 1915년에 작성된 ‘중앙시험소전기화학시험실신축공사설계도’로 교실과 응용화학시험실 사이의 공지에 전기화학시험실(電氣化學試驗 室)을 신축하기 위한 설계도이다. 1912년에 건립된 건물 이외에 분석실 남쪽으로 기직공장(機織工場)과 염색공장(染色工場)이 완공되어 있으며, 청 사 북쪽으로는 응용화학시험실(應用化學試驗室)이 완공되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당시 중앙시험소는 필수적인 건물들을 대부분 완공하게 되었는데, 일련의 배치도를 통하여 알 수 있는 중앙시험소 배치의 가장 큰 특징은 독립된 시험연구시설을 모두 개별 건물로 계획하고 청사를 중심으로 一자형 배치를 하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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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ssue 2 : 중앙시험소 청사로 밝혀진 구 공업전습소 본관


↑ 중앙시험소병공업전문학교 부지실측평면도(中央試驗所倂工業專門學校敷地實測平面圖). 1916년.

<도판 5>는 1916년에 작성된 ‘중앙시험소병공업전문학교부지실측평면도’이다. 이 도면은 1916년 같은 부지 내에 경성공업전문학교가 설립된 이후 의 상황을 보여주는 도면으로, 중앙시험소와 공업전습소만 존재하던 당시를 보여 주는 <도판 3>과 비교하여 그 변화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1914년 에 비해 남서쪽과 북쪽으로 부지가 확장되었음을 볼 수 있으며 부지 중앙의 대형 교실을 기준으로 서쪽과 북쪽의 대부분의 부지에 중앙시험소 관련 건 물이 신축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분석실의 동쪽에는 위생시험실(衛生試驗室)이, 부지의 북쪽에는 제2의 응용화학시험실, 분석실, 요업시험실 이 추가로 건립되었다는 것과 청사 뒤쪽 부지 중앙부에 기존의 소규모 건물들이 모두 철거되고 ㄷ자 형태의 거대한 교실 건물이 세워졌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러한 거대한 교실의 건립은 3년제의 경성공업전문학교가 설립되면서 교실 수요가 증가한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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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시험소청사신축설계도/ 정면양익상세(中央試驗所廳舍新築設計圖/正面兩翼詳細). 1912년 추정. 출처 : 국가기록원.

<도판 6>은 <도판 2>와 더불어 1912년 건립된 중앙시험소 청사의 설계도 일부이다. <도판 2>는 평면과 입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도판 6>은 앞쪽 날 개부의 상세도이다. 이 건물은 서쪽을 전면으로 하는 목조 2층 건물로 계획되었으며 입면 구성은 당시 유행하였던 르네상스 양식이다. 외벽은 가로로 독일식 나무비늘판을 붙여 구성하였고, 현관과 내부 통로, 계단실이 있는 중앙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의 평면과 입면을 구성하다. 또한 중앙 지붕 위에는 첨탑을 세워 중심성을 강조하였다. 건물의 좌우 부분은 앞쪽으로 돌출되어 ㄷ자 모양의 평면으로 설계되었으며 중앙 부분의 뒤쪽에는 계단실이 설치 되었다. 중앙부 및 좌우의 전면 돌출부 창호와 입면은 매우 화려하고 섬세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건물의 내부에는 중앙에 십자형으로 통로를 놓고 각 개실이 배치되었다. 1층에는 소장실, 사무실, 도서실, 회의실, 교무실 등이 배치되었으며 2층에는 대규모 강당과 응접실이 계획되었다. 건물의 좌우 에도 보조 출입구가 있는데, 좌우의 분석실과 응용화학시험실로 연결되는 통로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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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시험소분석실신축설계도(中央試驗所分析室新築設計圖). 1912년 추정. 출처 : 국가기록원.

<도판 7>은 1912년에 청사와 같이 건립된 분석실(分析室)과 시금실(試金室)의 설계도이다. 청사의 남쪽에 열을 맞추어 건립된 분석실은 단층 목조 건 물로 계획되었으며, 청사와 마찬가지로 독일식 목조 비늘판벽으로 구성되었다. 입면은 청사보다는 간소하게 계획되었지만 일부에 르네상스 양식의 장 식이 도입되었다. 건물의 전면(서쪽면)으로는 출입구가 설치되지 않았으며 본관으로 이어지는 북쪽 방향에 간이 출입구가 계획되었다. 내부에는 속복 도를 중심으로 전면에 각 분석실들이, 후면에는 보조실들이 배치되었다. 동쪽으로 회랑을 통해 연결된 시금실은 분석실과 달리 단층 벽돌조 건물로 계 획되었는데, 이는 시금실에서 행하였던 실험의 화재 위험성을 고려한 계획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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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시험소전기화학시험실신축설계도(中央試驗所電氣化學試驗室新築設計圖). 1915년. 출처 : 국가기록원.

<도판 8>은 1915년에 계획된 전기화학시험실(電氣化學試驗室)의 설계도이다. 전기화학시험실은 벽돌조 단층 건물로 계획되었으며 박공 지붕을 채택 하였다. 전면(서쪽면) 출입구는 남쪽으로 치우쳐져 형성되었으며 북쪽에 보조 출입구가 계획되었다. 내부에는 두 출입구를 잇는 ㄱ자 형의 복도가 계획 되었고 그 복도의 양쪽에 각종 시험실들이 위치하였다. 입면 구성은 1912년에 건립된 청사나 분석실과 달리 매우 기능적으로 간소하게 계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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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7호 | 데일리 리포트 Wide Architecture : wiDe Daily Report no.7 : january-februar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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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건축물 I B1* 강병국의 <건축과 영화 07> * 자료의 분류를 위하여 서두에 다음과 같은 약어를 추가한다. 알파벳 다음의 숫자는 해당 꼭지의 일련 번호이다. | Architect_건축가와 관련된 주제나 영화 | Building_건축물과 관련된 주제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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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ducer_감독의 건축적 연관성을 언급한 영화 | Documentary_건축적 다큐멘터리 | City_미래 도시를 포함한 도시적 관점의 영화 | Miscellaneous_그밖에 건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영화

영화 <맨 인 블랙(Man in Black, 1997)>에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구겐하임 미술관(그림 01)이 나온다. 또 007영화 제17탄 <언리미티드(The World Is Not Enough, 1999)>에는 프 랭크 게리의 빌바오 구겐하임이 나온다. 그러나 건축가나 건축이 그 영화의 주제가 아닌 바에야, 건물은 감독이 원하는 영화의 배경막 역할 말고는 건축적으로 그다지 큰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구겐하임의 나선 형태가, 감독의 눈엔 다른 어떤 건물보다 단지 SF영화의 이미지에 적 합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내년에 개봉할 <인터내셔널(The International, 2009)>에서는 구 겐하임의 내부 나선형 갤러리가 광각 렌즈로 포착되어 뫼비우스 형태로 왜곡된 채 엄청난 속도

02

로 긴장감과 박진감을 더하게 된다. 긴박감 넘치는 쫓고 쫓기는 총격전에 알맞은 배경으로 전환 되는 순간이다. 그렇듯 빌바오 구겐하임 역시 감독이 찾는 007영화의 이미지, 즉 예술적으로 승 화된 냉철한 금속성 이미지에 부합되었을 뿐이다.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유 명 건축물들을 영화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 로이드 빌딩(The Lloyd's Building) : 리차드 로저스(Sir Richard Rogers) 여태까지 대개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단골로 등장했던 건축물은 누가 뭐래도 1986년 에 준공된 리차드 로저스의 로이드 빌딩을 들 수 있다. 사실 런던은 영국 국회의사당(그림02)이 나 웨스트 민스터 사원같이 근사한 고전적인(classical) 건축물들은 많아도, 감독들이 좋아할만 한 현대적이고 독특한 건물은 찾기 쉽지 않다. 그 중 하나인 노먼 포스터의 런던 시청사는 그 용 도상 엄격하기 그지없는 영국 사회에서 촬영 장소로 제공되기가 쉽지 않았을 테고, 때문에 밀 레니엄 돔과 밀레니엄 브릿지, 그리고 상기한 로이드 빌딩은 영국영화의 단골 건축물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중 제레미 체칙(Jeremiah Chechik) 감독의 영화, <어벤저(The Avengers, 1998)>(그림03-05)에선 미학적으로 표현된 옥상의 기계 설비적 부분까지 로이드 빌딩의 구 석구석이 비교적 자세히 표현된다. 또한 건축가들의 단골 메뉴인 화가 에셔(Escher)의 그림에 서 차용한 계단, 즉 내려가도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물게 되는 계단(그림06)도 등장한다. 이 밖에 도 홍콩의 상하이 뱅크(노만 포스터, 1986)(그림07)가 등장하는 토니 스콧(Tony Scott) 감독 의 <스파이 게임(Spy Game, 2001)>(그림08)에도 그리고 <코드46>(Code 46, 2003), <엔트 랩먼트(Entrapment, 1999)>에도 로이드 빌딩(Lloyd's Building)의 부분 부분이 잠깐씩 등 장한다. 이 중에서 마이클 윈터 바텀 감독의 <코드46>은 미래 SF영화다. 복제 인간들이 많아 진 시점, 미래 사회는 DNA테스트를 통해 유전자를 통제한다. 즉 유전자가 25% 이상 일치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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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결혼을 할 수 없는 법안, 바로 코드46이다. 드라이한 건축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영 화……. 꼭 한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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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킨 빌딩(Gherkin Office Building) : 노먼 포스터(Sir Norman Foster) 2003년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런던의 랜드마크, 그리고 ‘오이(Gherkin)’라는 뜻이 확 와 닿는 거킨 빌딩(Gherkin Office Building)이 나오면서, 로이드 빌딩은 영화에서 조연 자리로 역할 이 축소된다. 거킨 빌딩의 원래 이름은 ‘30 St. 메리 액스 빌딩(30 St. Mary Axe Building)’이 다. 형태가 갖는 독특한 상징성 때문에 이전 영화들처럼 그 모습이 잠깐 비추어 지는 정도가 아 니라 영화 전반을 걸쳐 주 무대로 사용되는 기회가 많아졌다. <스톰 브레이커(Stormbreaker, 2006)>(그림09)와 <에이전트 코디 뱅크스 2(Agent Cody Banks 2, 2003)>에 잠깐씩 등장하 던 거킨 빌딩은 2006년의 영화 <원초적 본능2(Basic Instinct 2)>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된다. 정신과 전문의 마이클 글래스(데이비드 모리시 분) 사무실이 이 거킨 빌딩에 위치하면서 내외 부 모두가 영화 내내 주무대로 등장한다.(그림10-15) 범인을 추정하는 단초로서 건물 모양을 한 샤론 스톤의 라이터(그림16)가 나오는데, 건물의 형태를 성적인 은유로 사용하고 있는 감독 의 생각 또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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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 ⓦ 알비온 강변 아파트(Albion Riverside,1998-2003) : 노먼 포스터(Sir Norman F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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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의 또 다른 영화, 리들리 스콧(Ridley Scott)감독의 <어느 멋진 순간(A Good Year)>에 서도 이 거킨 빌딩이 출현한다.(그림17,18) 맥스 스키너 역을 맡은 러셀 크로우가 근무하는 사무 실로 설정되어, 독특한 형태가 여러 번 소개되나 내부는 다른 곳에서 촬영한 듯하다. 반면, 맥스 의 적수로 나오는 애미스의 사무실은 로이드 빌딩(그림19-21)에서 촬영되었는데, 거킨 빌딩의 등장으로 건축에서도 조연격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더불어 러셀 크로우의 아파트는 바로 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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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가 설계한 런던의 알비온 아파트(그림22-24)로 극중에서도 그 이름 그대로 사용된다.(그 림25) 삼촌이 물려주신 아름다운 프랑스의 포도밭과 집……. 이 집엔 어릴 적 삼촌과 같이 살던 맥스의 추억이 묻어 있다. 펀드 매니저로 성공한 맥스는 당장 이 집을 처분하러 프랑스로 떠난 다. 예기치 않은 일로 체류 기간이 늘어난 맥스는 촌각을 다투며 일하는 도시적 일상에 어릴 적 추억과 함께 느리디 느린 전원 풍경을 대비한다. 옛것에 가치를 더 두는 와인, 그리고 프랑스 포 도밭의 아름다운 풍광을 추억의 배경으로 설정하고 거킨 빌딩, 로이드 빌딩, 알비온 아파트와 같 이 도시 미학적 이미지를 그것과 병치시킨 리들리 스콧 감독은 <블레이드 러너>로 너무도 유명 한 감독이다. 그 역시 2003년 기사작위를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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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트 모던(Tate Modern) : 헤르조그 드 뮤론(Herzg & de Meuron) 우디 알렌(Woody Allen)의 영화 <매치 포인트(Match Point, 2005)>에도 거킨 빌딩이 등장 한다. 테니스 강사 크리스는 영국 상류사회의 한 남자를 가르친다. 우연한 기회에 그의 여동생이 크리스에게 매료되었고, 결국 결혼에 골인하여 장인어른의 후광을 업고 입성한 회사가 이 거킨 빌딩에 있으며(그림26,27) 로이드 빌딩도 잠깐씩 등장한다.(그림28) 그리고 <매치 포인트>에 는 2000년 헤르조그와 드 뮤론이 화력발전소를 멋지게 박물관으로 거듭나게 한 새로운 테이트 모던도 나온다.(그림29,30) 이 테이트 모던은 <에이전트 코디 뱅크스 2(Agent Cody Banks 2, 2003)>에도 밀레니엄 브릿지, 캐너리 워프 지하철 역사, 로이드 빌딩(Lloyd's of London), 런 던 아이(London Eye)와 함께 멋지게 등장한다.(그림3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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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강병국은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박춘명 선생의 예건축에서 실무를 쌓았고 한울건축과 신예건축을 거쳐 현재 ㈜동우건축 소장으로 있다. <포이동 성 당>, <쌘뽈요양원/유치원>, <장도박물관> 등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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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컬처 캐서린 스푸너 지음, 곽재은 옮김, 사문난적 펴냄, 232쪽, 13,000원 <와이드 書欌 07 | 안철흥>

글쓴이 안철흥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월간 <말>지와 시사주간지 <시 사저널>, <시사IN>에서 20여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했다. 그 동안 정치부와 문 화부에서 거의 절반씩 밥을 먹었는데, 건축계 쪽을 여전히 기웃거리는 것은 그 때 어설픈 곁눈질로 사귀어둔 ‘인맥’ 덕분이라고 한다. 이미 ‘절판’ 상태라 이름 을 밝히기 좀 그렇다는 책 한 권을 쓰고 한 권을 번역했다.

우리가 흔히 ‘고딕’이라고 부르는 장르의 원

드링크와 레저복의 판매 촉진을 위해 쓰이는 단골 문구가 된 곳에서 어

형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미술사에서 ‘

떻게 사악함과 죽음, 파멸과 혼란, 심리적 불안을 환기시키는 장르가 단

고딕 예술’(Gothic art)로 불리는 것으로, 중

순한 소수 취향이나 아방가르드적인 전복, 언더그라운드 문화 취향 이

세 후기 서유럽에서 성행했던 회화나 조각, 건

상의 것이 될 수 있는가?”

축 따위를 일컫는 용어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저자는 우선 ‘현대의 고딕’이 첫 출발부터 철저히 대중 장르였음을 환기

나 사르트르 대성당처럼 수직으로 쌓아올리고 뾰족한 첨탑으로 마무리

시킨다.『오트란토 성』이후 대부분의 고딕 소설은 상투적이었지만 대

한 석조 건물이 대표적이다. 원래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사람들이

중적 매력을 잃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만개하면서 고딕은 블록버스터

서유럽 일대의 중세 건축을 낮추어 부르는 말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영화 등을 통해 지반을 넓혔다. 그리고 이어진 포스트모던 시대에 고딕

고딕이란 용어의 또 다른 용례는 18세기 ‘고딕 소설’(Gothic novel)

은 표면과 외양의 중시, 수행성, 시각적 화려함 등의 특징으로 인해 더

에서 찾을 수 있다. 18세기 후반 골동품 애호가였던 영국 작가 호레이

욱 생명력을 키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스 월폴이 쓴『오트란토 성』 이 최초 작품이다. 이때부터 일부 낭만주의

저자는 나아가 고딕 문화에는 “종말론적 우울이나 값싼 스릴러물을 훨

작가들은 신비와 공포가 지배적인 중세 분위기를 짙게 풍기는 대중 소

씬 넘어서는 그 이상의 것이 있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고딕 문화에 탐

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 장르는 중세의 건축물과 폐허에서 상상력을 끌

닉하는 사람들이 불안감을 통해 은밀한 유대감을 형성한다는 점에 주

어냈다고 해서 고딕 소설로 불리지만, ‘역사적인 고딕’과는 별 상관이

목한다. 그리고 “현재의 공포 속에서 해결하지 못한 채 억압된 과거의

없다. 지하 통로나 비밀 문자, 중세의 성이나 수도원 등이 공포와 폭력

상처를 읽어내는 눈이 고딕에는 있다.”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점으로

을 유도하는 배경으로 쓰였을 뿐이다. 이때의 고딕은 고딕 ‘풍’의 흉내

인해 고딕은, 죽음과 어둠을 지향하는 것은 절대로 주류가 될 수 없다는

내기에 불과했다.

통설에도 불구하고 현대 자본주의 하위 문화로서 변화무쌍하고 끈질긴

캐서린 스푸너의『다크 컬처』 에서 탐색의 대상으로 삼은 고딕은 후자

생명력을 지닐 수 있었다.

에 가깝다. 캐서린 스푸너는 고딕 예술 장르의 기원이나 형태, 상징 따

“고딕에는 원본이 없다. 고딕은 줄곧 부활의 형태를 취해 왔고, 각각은

위를 다루는 미학사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문화사 연구자인 저자는 괴

매번 예전 것을 판타지화한다. 하나의 형식으로서 고딕은 언제나 위조

짜 골동품 애호가에 의해서 패러디 형식으로 창조되었던 ‘현대의 고

에 관한 것이었다.” 저자가 여기서 언급한 정의는 ‘현대의 고딕’에 관

딕’(Contemporary Gothic: 이것이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하다!)이 마

한 것이지만, ‘역사적 고딕’도 거기서 별반 다르지 않다. 16세기 이탈리

르크스와 프로이트, 페미니즘을 거치면서 어떻게 성적이고 정치적인

아의 르네상스 작가들이 처음 고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 그 말은

자의식을 획득했는지, 그리고 지난 200여 년의 세월 동안 죽음과 부활

‘고트족이 만든 야만적인 예술’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하지만 12~16세

을 거듭하던 이 ‘어둠의 문화’가 어떻게 자본주의의 틈새 상품으로 성

기에 성행했던 서유럽의 고딕 예술과 5세기에 로마 문명을 무너뜨렸던

공했는지를 추적한다.

고트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런! 패러디로 재창조된 ‘현대의 고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 텔레비전 드라마 <미

딕’뿐 아니라 ‘역사적인 고딕’ 또한 태생부터 원본(고트족의 예술)이 없

녀와 뱀파이어>, 록 가수 마릴린 맨슨, 영화 <배트맨> 시리즈와 다양한

었던 셈이다.

‘뱀파이어’ 시리즈…. 이것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고딕’이라는 한 장

물론 이 말을 확인하는 데서 끝낸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저자는 바로 그

르로 묶인다는 점이다. 열거한 작품들에서 보듯 현대의 고딕은 공포, 미

‘원본 없음’에서 고딕의 진가를 발견한다. “고딕은 표면을 강조하므로

스터리, 죽음, 광기, 범죄 같은 이미지를 공통적으로 담고 있다. 이런 소

결코 시뮬라시옹에 저항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그것은 신체를 전면에

설이나 영화, 음악 장르만이 아니다. 현대의 고딕은 할로윈 축제 같은

부각시킴으로써 오히려 정반대의 방향으로, 피상적인 문화에 깊이를

놀이 문화에서부터 패션, 가구, 컴퓨터 게임, 청년 문화, 그리고 광고에

복위시킨다는 목표를 향해 작동할 여지도 안고 있다.” 고딕이 21세기

까지 등장한다. 저자는 ‘캔디 고딕’이라는 용어를 소개하면서 “현대의

에도 대안 장르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이로써 충분하지 않을까.

는 고딕 문화를 다루는 수준 높은 비평서이다. 다만 문학과 고딕은 궁극적으로 충족되지 않는 오싹한 전율을 파는 흥청망청한 사 『다크 컬처』 탕가게이다.”라고 썼다.

영화, 미술 등 다양한 고딕 장르 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따라

상식적으로 보면 불쾌하고 피해야할 것처럼 보이는 고딕이 열광적인

읽기 버거운 부분이 많다. 건축학도로서 ‘역사적인 고딕’에 대한 좀 더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상품으로 ‘팔리는’

쉬운 입문서를 원하는 이들은 카린 자그너의『고딕, 어떻게 이해할까?

이유가 뭘까. “행복의 추구에 바쳐진 문화, 인종 통합과 평등이 소프트

』 (미술문화, 2007)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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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암정(屛巖亭) 이용재의 <종횡무진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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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문수고에서의 특강. 저녁 7시임에도 120

예천 권 씨의 5대손 권선의 아들 오행, 오기, 오

1843년 김해 생. 중인. 명성황후의 천거로

명이 들어왔다. 대부분 여학생. 여성 상위 시

복, 오윤, 오상 5명 전원 과거급제. 가문의 영

1888년 파주 목사로 정계 진출. 기술자인 중

대 맞군. 인근 학교에서 오신 선상님들도 보이

광. 오복문(五福門) 등극. 오복과 오자(五子)를

인의 벼락출세. 당연히 고종의 오른팔. 덕수궁

고. 소득 수준 전국 1위인 부자 동네. 조선업,

다 갖춘 센 집안임.

리모델링 수석 건축가. 1898년 법무대신. 중

자동차 산업이 호황이라. 물론 문화재는 전무

“아빠, 오복이 머야?”

인이 법무부 장관에 오른 거다. 1895년 을미사

한 황무지. 둘 다 가질 순 없는 법. 여학생들 질

“수(壽), 장수하는 것. 부(富), 물질적으로 넉넉

변. 명성황후를 칼로 찔러 죽인다. 일본은 각성

문이 쏟아졌다.

하게 사는 것. 강령(康寧), 몸이 건강하고 마음

하라 훌라 훌라. 당연히 유배 길에 오른다.

“요새 취직이 어려운디 우찌해야 되남유?”

이 편안한 것. 유호덕(攸好德), 도덕 지키기를

1900년 경북 관찰사로 재기. 금당실에 99칸

“취직하지 말 것. 어차피 잘릴 거.”

좋아하는 것. 고종명(考終命), 제 명대로 살다

대궐 건립.

“그럼 우찌해야 되남유.”

가 편히 죽는 것.”

“대감 왜 이렇게 큰 집을 짓는 건 감유?”

“때를 기다릴 것. 독서하면서.”

“아빠는!”

“고종황제 모시려고.”

“언제까지요.”

“삼복. 수와 부는 불가.”

1905년 부보상들로 조직된 공진회에 적극 가

“불혹 때까지.”

1498년 무오사화. 연산군 열 받았다. 예천 권

담 친일단체인 일진회와 붙었다. 당연히 유배

“그때까지 머 먹고 사남유?”

씨 영수 셋째 아들 권오복 사형. 이제 32살. 나

길. 이미 선생은 64세. 세상이 싫다. 병암정 터

“부친 전화번호 알려 주면 내가 전화해 놓겠

머지 가족은 전부 살아남기 위해 본관을 바꾼

사들이고 옥소정 건립. 북향. 매일 고종황제를

음.”

다. 나 안동 권 씨걸랑요. 그래 현재 안동 권씨

향해 북향사배. 거대한 암반 위에서 연못을 내

“아빠가 안 된다고 하면유?”

는 70만 명. 예천 권 씨는 달랑 5천 명.

려다보며 막걸리를 들이켰다.

“수녀원이나 군 입대해 때를 기다릴 것.”

“아빠, 조선시대 사화는 네 번이지.”

“대감, 고종황제가 하야하셨다는디유.”

“그럼 장사하면 어떨까유?”

“응. 많이 늘었구나.”

“머라.”

“어차피 망할 거 하지 말 것.”

“두 번은 연산군이네.”

곡기를 끊었다. 선비가 떠나는 방법은 달랑 두

“당최 먼 소린지 알 수가 없네유.”

“응. 수도 없이 많은 선비를 죽인 왕. 그래 종묘

가지. 들이대다가 사약을 받거나 굶어 죽는다.

“책에 다 있음. 강의 끝.”

에도 안 모셨어.”

예천 권 씨 종친회 소집. 얘들아 이유인 갔단

특강 마치고 콘도에서 1박. 예천군을 찾았다.

“연산군 나중에 어떻게 됐어.”

다. 다시 사들여라. 현판을 바꿔 달았다. 병암

“아빠, 예천이 먼 뜻이야?”

“1506년 왕에서 쫓겨나 강화로 유배. 같은 해

정. 권원하가 이유인의 대를 잊는다. 직업 독

정유재란 때 울산의 왜군을 토벌하기 위해 이

31살로 병사.”

립운동. 주 업무. 독립운동 자금 마련. 가산 탕

고을을 지나던 명나라 장수 양호가 예천읍 노

“묘는 어딨는데.”

진. 23살에 감옥행. 2년 후 출옥. 병암정에서

상리의 주천이란 샘의 물을 마셔 보고 뿅 간다.

“몰라. 알고 싶지도 않고.”

아그들 가르친다. 얘들아 일본 깡패가 국모 죽

물맛이 달고,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철엔 이가

살아서들 잘 하서유. 특히 청와대 안에 사시는

인 거 알지. 예.

시릴 정도로 차가운 게 우리 중국의 예천(醴

분들. 병풍처럼 펼쳐진 암반 위에 정자 하나 짓

역시 인간은 건축을 만들지만 건축은 인간을

泉, 단술처럼 맛이 좋은 샘)에 못지않구나.

고 안빈낙도. 현판을 걸었다. 암반이 병풍처럼

만드는군. 39살에 역시 곡기를 끊는다. 나라

고려 시대 때 흔 씨의 집성촌. 고려 제29대 충

펼쳐져 있군. 병암정(屛巖亭). 얘들아 속세에

도 망해 가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목왕 등극. 충목왕의 이름은 흔. 난리가 났다.

나가지 마라. 다친다. 소실.

2006년 KBS 황진이 제작팀이 병암정을 찾았

왕의 이름은 백성이 사용할 수 없는 법. 성 바

경상북도 관찰사 이유인이 병암을 찾았다. 죽

다. 머야 이거.

꿔라. 엄마는 안동 권 씨. 좋다. 드럽고 치사해

이는군.

“하루 임대료가 얼만 감유?”

서. 그래 흔 씨는 예천 권 씨가 되나니.

“아빠, 이유인이 누구야 첨 듣는데.”

“안 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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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에게 병암정 알려야 됩니다.” “그럼 하루에 3백. 선비도 입에 풀칠은 해야 선 비의 기개를 드높일 수 있는 법.” 1년 2개월 동안 하지원과 장근석은 병암정에 서 사랑을 나눈다. 대박. 그래 병암정은 장안의 화제. 국민 여러분 이곳 병암정은 조선의 위대 한 선비 이유인과 권원하 선생이 막걸리 들이 키던 곳입니다. 우리도 병암정에서 막걸리 한 잔들 하시죠. 내 이 왜놈들을 그냥. 1970년 예 천군의 인구는 14만 명. 지금은 달랑 5만. 엄마 야 병암정 앞마을로 이사 오자. 싫어유. 음. 맘 대로 되는 게 없군. “아빠, 왜 꼭 연못에 연꽃을 띄우는 거야?” “연꽃은 속세에 물들지 않는 군자의 꽃이걸 랑.” “군자(君子)가 먼데.” “학식과 덕행이 높아 높은 관직에 있는 선비.” 멜 도착. 요새 하도 많이 네티즌들이 글을 보 내 주니. “꼬르 님의 좋은 글과 사진을 보다가 오전 일 과를 거의 못했습니다. 그만큼……. 너무너무 좋아서. 보고 싶고 보고 싶어서. 즐겁게 보았습 니다……. 저도 역사 만화 그린다고 답사를 가 긴 하지만 꼬르 님 같은 대가한테는 정말 미약 한 것 같습니다. 많이 보고 배우고 정말 좋았습 니다. 그리고 힘들게 갔다 온 곳 소중한 곳 보 여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가 헛살고 있는 건 아니군. 근디 왜 처자식은 날 미워할까! 거참 알다가도 모르것네. ⓦ

글쓴이 이용재는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명지 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건축평론을 전 공했다. 1984년부터 1990년까지 월간 <건축과 환 경>의 기자를 지냈으며, 월간 플러스 편집장을 거친 바 있다. 2002년 이후 택시를 운전하며 전업 작가 로 활동 중이다.『좋은 물은 향기가 없다』 ,『왜 살기 가 이렇게 힘든거에요?』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 행』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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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근대 도시의 상징 손장원의 <근대 건축 탐사 07>

일제강점기의 우체통.

정보는 속도가 생명인 탓에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정보 통신 분야에는

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미국도 우체국을 줄여 나가고 있다. 그러나 유치

최첨단 기술이 집약되고 변화의 속도 또한 매우 빠르다. 휴대 전화와 이

환이 편지를 썼던 우체국 창문 앞은 없을 지라도 시골에 위치한 우체국

메일이 일상화되어 있고 인공위성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현대 생활에서

은 정겨운 공간이다. 공공 기관 가운데 우체국만큼 친근함이 배인 곳은

전달하는 데 여러 날이 걸리는 편지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은 그리 많

없다. 그런데 이러한 우체국이 자꾸만 줄어드는 것은 안타까운 일임에

지 않다. 그렇지만 심부름꾼을 시켜 소식을 전달하던 전통 사회에서 국

틀림없다. 우리 나라에서의 우체국 감축은 1998년 이후 전개된 우체국

가가 나서 정기적으로 편지를 전달해 주는 제도를 갖추는 것은 근대 국

구조 조정으로 본격화되어 모두 249개의 우체국이 폐쇄되었다.

가의 기본 인프라였다.

1884년에 신설된 우정총국은 그 해 일어난 갑신정변으로 폐쇄되었다

“각국과 통상한 이래 관상(官商)의 신식(新息)이 번잡하여지니 진실로

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893년이 되어서야 전우총국으로 이름을 바

그 뜻을 속히 체전(遞傳)하지 않으면서 서로 연락하고 멀고 가까운 곳

꿔 우편 업무를 재개했다. 이후 공무아문 역체국, 농상공부 통신부, 통

이 일체로 될 수 없다. 이에 명하노니 우정총국을 설립해 각 항구에 왕

신원 등으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1905년 한-일 통신 기관 협정에 따라

래하는 서신을 맡아 전하고 內地(내지)의 우편도 점차 확장하여 공공의

일본에 모든 업무를 넘겨 주어야 했다.

이익을 거두도록 하라.”—고종의 칙령(1884년 4월 22일)

신기술이 집약된 우체국 건물은 일제가 우리 나라를 침탈하는 데 사용

근대 국가의 상징이던 우체국은 현재 대부분의 국가가 이를 민간 영역

한 주요 상징물 가운데 하나였다. 1910년 이전에는 주로 항구가 잘 보

으로 이전하여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우정 사업을 국가

이는 언덕에 일본 영사관을 중심으로 우편국과 경찰서 등을 세워 도시

가 직접 운영하는 나라는 우리 나라와 미국밖에 없다고 한다. 또한 정보

를 잠식하는 수단으로 썼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시도 청사, 철도 역사와

통신 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인터넷에 밀려 우체국의 역할이 위축되어

함께 그들의 업적을 알리는 공공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사용되었다. 더

그 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영국의 경우 2007년 전체 우체국

구나 정보를 전달하는 공공 기관이던 우체국 청사는 근대성을 강조하

14,000개 중 2,500개를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우편

기 위해 도시의 번화가 사거리에 세워져 그 도시의 상징물이 되었다. 우

<일제강점기 주요 도시의 우체국> 경성 우편국(1915년 9월), 적벽돌을 바탕으로 하는 붉은 색 벽체에 회색의 화강암을 장식적으로 사용한 이 건물은 영국의 퀸 앤 양식을 반영한 이른바 ‘타츠노 긴코’ 양식이다. 화려하고 세련된 요소들로 구성된 이 건물은 길 맞은편의 엄숙한 느낌을 주는 조선은행(현 한국은행)본점과 대비를 이루면서 가로 경관을 형성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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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김제시 백구면 부용역 앞에 위치한 분식점으로 원래는 우체국 건물이었다.

<일제 강점기 주요 도시의 우체국> 부산 우편국(1910년 10월 25일). 이 건물은 당시 부산역사, 부산 세관청사와 함께 부산을 상징하는 3 대 건축물이었다.s

<일제 강점기 주요 도시의 우체국> 인천 우편국(1924년). 1882년 인천 일본 영사관에서 우편 업무를 시작하여 1924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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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일본 영사관 내에 설치되었던 인천 우체국. 사진 오른쪽.

조선총독부 체신국.

구한말 우편배달원. 일명 우전인.

리 나라가 우편 업무를 시작하면서 세운 우체국 건물은 우정총국(1884

물과 한성의 우편물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배달되었다. 경인 철도가

년)처럼 한옥 양식이었다. 그러나 1906년 통감부가 설치된 이후에는

개통되기 전까지 우전인으로 불리는 직원이 우편낭을 지고 매일 오전

통감부 관할의 통신 관리국이 생기면서 일본식 의양풍이나 서양식으로

9시에 인천과 한성에서 각각 출발해 오후 1시쯤 중간 지점인 오류동에

달라졌다. 일제 강점 이후 1912년 조선총독부 체신국이 생기면서 이러

서 만나 우편낭을 교환했다. 하루에 한 번씩 이런 방식으로 인천과 한

한 양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때 대도시는 물론 소도읍에도 우체국이

성 사이에 우편낭이 오고 갔는데, 인천 우체사의 우전인이 한성 우체

세워졌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정보 통신 기술을 담아야 했

사 우전인에게 우편낭을 전하고 받아오는 데에만 9시간이 넘게 걸렸

던 우체국 건물은 지속적으로 개축되어 국내에 현존하는 것은 진해 우

다고 한다.

체국(1912년), 인천 우체국(1924년) 정도다.

우체통이 빨간색인 이유는 눈에 잘 띈다는 점과 우편물을 신속하게 전

우체국 건축물은 조선총독부 부속 기관인 체신국에 영선과 건축 관련

달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것이라지만, 실제로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업무를 담당하는 수리과와 경리과 영선계에서 세웠다. 이곳에서는 체

한다. 그러나 영국, 캐나다 등 25개국이 빨간색을 사용한다. 독일, 프랑

신 관계 시설의 설치와 수리를 담당하였는데, 1912년에 설치된 체신

스 등의 우체통은 노란색이고 미국, 러시아 등은 파란색이다.

국 공무과는 1945년 해방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한편, 우체국의 주요

우리 나라의 우체통의 색깔은 역사만큼이나 다르게 바뀌었다. 해방 이

업무 가운데 하나였던 전화와 전보를 위한 통신 시설 공사는 주로 일본

후 1956년까지는 빨간색을 사용했으며, 1957년~1984년까지는 상부

군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통신 시설의 군사적 중요성 때문

빨간색, 하부 초록색을 사용했다. 현재 사용 중인 우체통을 빨간색이라

으로 보인다.

고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주황색으로 보는 것이 옳다.

우리 나라 정부가 근대 우편 업무를 시작한 것은 공식적으로 1895년 7

1993년 5만 7,599개로 정점에 도달했던 우체통도 우체국처럼 그 수

월 22일이다. 서울에는 통신국 내에 한성 우체사를 두고, 인천에는 해

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2006년 말을 기준으로 우체통 수는 2만

운회사인 이운사 내에 인천 우체사를 개설했다. 우편물은 인천의 우편

7,317개였는데, 2005년 3만 1개에서 9% 정도 줄어든 것이라 한다. ⓦ

<일제 강점기 주요 도시의 우체국> 대구 우편국(1916년). 현재의 대구 우편 집중국 자리.

<일제 강점기 주요 도시의 우체국> 원산 우편국(1920년 10월). 1880년 5월 일본 원산 영사관 내에 우편국을 개설하였다.

<일제 강점기 주요 도시의 우체국> 11. 청진 우편국(1930년대). 1905년 6월 군대 우편국으로 시작하였다.

글쓴이 손장원은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인천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재능대학 실내건축과 교수로 있으며, 본지 편집위원, 인천광역시 문화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다시쓰는 인천 근대 건축』 『건축 , 계획(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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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프리고, 냉동 창고에서 예술가의 아지트로 김정후의 <유럽의 발견 07>

흔히 ‘파리에서는 모든 것이 예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만큼 파리와 예술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예술로 특화된 파리는 프랑스가 오 랜 시간 동안 문화 관광 대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 그렇다면 예술에 있어서 세계인들이 인정할 정도로 파리가 최고 수준 및 최대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파리에는 예술과 연관된 창작 활동을 위한 적합한 공간과 이를 위한 치밀한 지원 제도가 정착되어 있 기 때문이다. 이는 파리가 단순히 선조들이 남겨 준 유산을 통해서만 번영한 도시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술 활동에 대한 다양한 지원을 통하여 끊임없이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이 오늘날 파리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예술가의 천국이라고 하지만 파리 역시 풍족한 환경보다는 어려운 여건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이 더 많다. 따라서 가난한 작가들이 포기하지 않고 작품 활동을 지속하며,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을 제 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파리에서 보편적으로 접할 수 있는 방식은 방치된 산업 시설을 예술가들이 저렴하게 사용하도록 임대하 는 것이다. 프랑스는 1960년대에 문화부가 출범한 이후 파리 인근에 창작 활동을 고취시키기 위한 작업실 신축 지원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서 기존의 산업 시설을 작업 공간으로 사용하도록 배려함으로써 문화 예술 활동을 시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버려 진 냉동 창고에서 예술가의 아지트로 변신한 레 프리고는 이러한 파리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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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파리 변화의 주역, 리브 고슈 ⓦ 파리는 유럽의 다른 대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강을 중심으로 번영한 도시다. 파리를 동서로 관통하는 센 강 은 경제는 물론이고 문화 예술의 핵심이기도 하다. 런던이 템스 강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빈부의 격차가 발생했다면, 파리의 경우는 센 강을 따라 서 동서로 괴리되었다. 파리의 서쪽이 전통적인 부촌으로 자리잡았고, 동쪽은 낙후되었다. 특히 20개 지구로 나누어진 파리에서 동남쪽의 외곽 지 역은 문화예술도시 파리의 성격과는 무관한 산업 지대로 개발이 이루어졌다. 특히, 파리 중심부에서 불과 3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13지구인 리브 고슈(Rive Gauche) 지역은 철도 변을 따라서 많은 수의 산업용 건물들이 문을 닫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2년에 당시의 자크 시락 파리 시장이 파리 리모델링의 상징적 프로젝트라 할 수 있는 리브 고슈 지역 재개발을 단행했다. 도미니크 페로를 단숨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가로 이끈 국립도서관이 1996년에 이곳에 완공되었고, 파리 7대학 또한 인근으로 이전해 왔다. 리브 고슈에는 조만간 세계 최고 건축가들의 작품이 완공될 예정이며, 초기 계획대로라면 내년에 모든 재개발 작업이 마무리된다. 그런데 13지구에는 파리 시에서 전략적으로 진행한 재개발 과는 별개로—혹은 그 이상으로—이목을 끈 건물이 있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보금자리로 자리잡은 ‘레 프리고(Les Frigos)’가 그 주인공이다. 건 물 이름으로 사용되는 레 프리고는 냉동 창고라는 뜻이다. 이 건물은 1919년에 지어진 전형적인 저장고로서 열차로 운반된 냉동 물품을 보관하는 장소였다. 1970년대 초반 이후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방치된 레 프리고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10여 년이 지나면서 레 프리 고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레 프리고는 자연스럽게 파리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예술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따지고 보면, 자크 시락 대통령이 리브 고슈 재개발을 시작하기 전부터 벌어진 일이니 13지구가 문화예술 지역의 특성을 갖는 데 크게 일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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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위한 공간과 예술인 공간 ⓦ 6층 규모의 박스형으로 지어진 레 프리고는 콘크리트로 지어진 전형적인 대형 창고 건물이다. 건축적으로만 본다면 별다른 특징이 없는 기능적 건물로서 80여 년 전에 지어진 이후로 특별한 개조가 없었으므로 외부에서 보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폐허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저층부 및 담장 그리고 건물 주변 일대는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유분방하게 페인팅이 되어 있다. 아마도 빈 공간은 여 지없이 캔버스로 사용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내부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현관을 통해서 내부로 들어서면 공간은 미로처럼 구성되어 있을 뿐 만 아니라, 벽과 복도를 포함하여 모든 장소가 예술 작업의 소재로 활용된다. 레 프리고와 같은 산업용 건물은 여러 면에서 작가들에게 환영을 받 는다. 우선은 충분한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거주와 작업실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레 프리고와 같은 대형 냉동 창고의 경우는 정 방형의 넓은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전위 예술 혹은 인테리어 등을 주 소재로 삼는 작가들을 위해서는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 면 필요에 따라서 가변적으로 공간을 사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이곳에 초기부터 정착하여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술가 중 한 명인 이탈 리아의 파올로 칼리아는 이탈리안 바로크 스타일의 화려한 장식으로 몇 개의 공간을 꾸몄다. 전 세계에 자신의 마니아 고객을 확보할 정도로 독 창적인 칼리아의 작업실은 이곳이 과거에 냉동 창고였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레 프리고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통하여 공통적으 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 한 가지 있다. 기존의 설비물 혹은 시설을 작품의 일부로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녹슬고, 부러지고, 휘고, 깨진 내부 공간의 부재들을 있는 그대로 활용한다. 순간순간 이들만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확인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레 프리고에서는 유사한 개념을 가진 작가들이 모여 한 건물 내에서 작업하므로 다양한 교류가 항상 가능하다. 현재 레 프리고 내에는 음악, 조각, 미술, 영상 등을 다루는 작가들이 주로 모여 있는데, 매년 봄에 공동으로 기획하는 행사와 전시를 거행함으로써 레 프리고는 단순한 예술가 작업실의 개념을 넘어서 독창 적인 전시 공간으로도 발돋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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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정후는 2003년까지 한국에서 건축가와 비평가로 활동하며, 대학에서 설계 강의를 했다. 이후 영국 바쓰 대학 건축학 박사 과정과 런던 정경 대학 도시 계 획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런던에서 도시 계획 튜터와 컨설팅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공간 사옥』 (공저, 2003),『작가 정신이 빛나는 건축을 만나다』 (2005), 『상상/하다, 채움의 문화』 (공저, 2006),『유럽 건축 뒤집어보기』 (2007) 등의 저서가 있다.『조선일보』 와 ‘세계 디자인 도시를 가다’를 공동 기획했고, 현재 KBS와 SBS의 디자인 관련 프로그램 자문을 하고 있으며, <희망제작소>의 ‘공공 디자인 유럽 연수 프로그램’ 지도 교수를 맡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레 프리고 ⓦ 최근 몇 차례 레 프리고를 방문한 필자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처음 혼자서 방문했을 때는 건축가로 소개한 필 자를 레 프리고의 예술가들이 별다른 거부감 없이 환대해 주었다. 아마도 작가 의식(?)이 통했기 때문인 듯싶다. 그러나 작년 겨울에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서 방송 팀과 함께 방문했을 때는 경계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이유가 있다. 재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13지구의 핵심 지역에 남겨진 폐 허에 가까운 건물을 방치하는 것이 파리 시당국으로서는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20년이 넘게 이곳을 터전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있 고 이미 상당한 명성도 얻었기에 철거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엄격히 말하면 레 프리고와 같은 ‘스쿼트(squat, 폐 건물에 무 단 입주하는 행위)’는 불법에 해당된다. 그러나 도시에 흉물로 방치된 공장 건물들이 예술가의 작업실로 사용됨으로써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 받 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파리 시는 13지구를 현대미술에 기초한 예술 지구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전략적 정책을 펴고 있다. 파리이면서 오래 동 안 파리와는 거리가 먼 산업 지대였던 13지구의 탈바꿈은 파리의 미래를 위해서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기존의 파리가 그러하듯 단순히 새로 운 건물만을 짓는 것에 의하여 13지구가 완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버려진 냉동 창고에서 독특한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한 레 프리고가 무엇보다 소중한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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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의뢰인 함성호의 <소소재잡영기(素昭齋雜詠記) 01>

2007년 봄, 내 사무실로 이상한 의뢰인이 찾아왔다. 시인이고 어린이도

그래서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의뢰를 맡아야만 했다. 다짜고짜 종이인

서관을 운영하는 사설 도서관 관장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의뢰인은 다

그 백지는 확실히 내 몫이 되어버렸고, 무리하고 무례한 주문은 다 내

짜고짜 내 앞에 백지 한 장을 들이 밀었다. 아무것도 적힌 것이 없는, 단

가 떠맡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의뢰인이 집을 짓겠다고 결심한 배경을

지 스프링노트를 찢은 다짜고짜 종이였다. 종이에서 아무것도 찾을 수

차근차근 알아보았다. 가장 큰 문제는 어린이 전문 도서관 <웃는 책>의

없는 나는 고개를 들어 의뢰인을 쳐다보았다. 분명 의아한 눈빛이었을

임대비였다. <웃는 책>은 아래 위층 합쳐서 40평 남짓한 공간을 쓰고

것이다. 그런 눈빛을 마주보며 의뢰인이 입을 열었다. 집을 지어 달라는

있는데 현재 전세 2,000만 원에 월 150만 원의 임대비를 내고 있었다.

것이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뭔가 많이 부족했다. 땅은? 없었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빌려가는 것은 공짜고 작은 강좌를 통해서 얻는

다. 시공비는? 없었다. 그럼 설계비는? 없었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

수입이 전부라서 전체 비용이 수익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한 마디로

럼 계획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것도 없었다. 적지 않은 의

만성 적자였다. 거기다 집주인으로부터 임대비를 월 200만 원으로 올

뢰인을 만났지만 이런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어쩌란 말입니까? 땅

릴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그러니까 그 임대료를 은행이자로

사는 것에서부터 설계, 시공, 건물 임대까지 모두 다 해주세요. 자금은

내고 대출을 받아 집을 짓자는 게 의뢰인 남편의 생각이었다. 제대로 된

갖고 계시나요? 그것도 해주세요. 세상에 이런 막무가내가 어디 있단 말

생각일리가 없었다. 4억은 이자만 내면 그냥 빌려 주나? 그에 상응하는

인가? 부인, 저를 놀리시는 거지요? 아니요. 의뢰인은 단호했다. 만약 내

담보가 있어야 하고, 그 담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는 만무했다. 의

가 해주지 않으면 더 강경한 수단을 써서 해결하겠다는 투였다. 나는 의

뢰인 남편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 차라리 그 돈으로 은행 이자를 내고

자 등받이로 몸을 눕혔다. 그건 불가능하다는 내 나름대로의 완곡한 표

집을 짓겠다, 란 말만 듣고 의뢰인은 나를 찾아 온 것이다. 다짜고짜 종

현이었다. 의뢰인은 다시 다짜고짜 종이인 백지를 내 앞쪽으로 밀었다.

이인 백지 계획서 한 장을 들고서. 그러나 어찌하랴 나는 의뢰인의 남

여기다 이제 내가 말씀드린 것들의 세부 계획을 적어 보세요. 저는 돈이

편이자 건축가였다.

없습니다. 대출을 받으세요. 대출? 내가 왜? 내 집을 팔아도 고작 1억 7 천이었다. 거기다 대출금을 제외하면 1억 3천. 어떤 수를 써도 할 수 없

나는 정리를 해 보았다. 갖고 있는 집을 팔면, 대출을 갚아도 1억 4천만

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이 사람은 나에게 이런 무리한, 무례한

원, <웃는 책> 임대 보증금 2,000만 원, 그리고 통장에 있는 여유 자금

주문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 의뢰인은 내 아내였다.

이 3,000만 원, 도합 1억 9천만 원이 움직일 수 있는 돈의 다였다. 그러 니까 현금은 3,000만 원밖에 없었다. 일산의 땅값은 평당 500만 원 선.

부인, 건축주가 이렇게 돈이 없어서는 곤란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

다짜고짜 종이인 백지에 이렇게 저렇게 자금 계획을 세워 봤지만 묘수

어요. 비싼 재료를 들여서 짓는 집이 꼭 좋은 집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나오지 않는 묘수를 접고 일단 땅을 알아보기로

비용 정도는 해결하실 능력이 있어야 지요. 의뢰인은 드디어 처음으로

했다. 의뢰인은 그렇다 쳐도 일단 나에게는 성취 동기가 너무 부족했다.

수긍하는 표정을 짓더니 그럼 이렇게 하자는 식의 해결책을 가진 사람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건축주의 남편이)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어

처럼 단호하게 말했다. 알았어요. 제 남편한테 말해 볼게요.

찌어찌 성공한다 해도 생기는 것은 은행 빚밖에 남는 게 없는 일이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혹 좋은 땅을 만나면 건축적인 욕심이라도 생 길지 모른다, 하는 것이 나의 궁여지책이었다. 좋은 땅을 보면 생길지도 모르는 욕심을 바라고 이 무리하고, 무례한 일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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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동네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았다. 일산의 땅은 대략 70평씩 택지 분 할이 되어 있었다. 평당 500만 원이니 한 필지에 3억 5천만 원이나 했 다. 일산 중심을 벗어나면 땅값은 반으로 준다. 평당 2백 50만 원. 그러 나 주변부의 필지는 200평씩 정도였다. 이렇게 시세를 파악하고 나서 은행 대출을 알아봤다. 감정가의 70%를 대출해 준다는 거였다. 그렇다 면 시세로 계산하면 일산에 땅을 살 경우 70평에 3억 5천만 원이니까 2 억 4천 5백만 원은 대출이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문제는 시세대로 감정 이 나오느냐 하는 거였지만 어차피 무리수를 둔 거, 부정적인 예상은 접 어 두기로 했다. 문제는 땅을 사는 데 필요한 1억 5백만 원을 어디서 구 하느냐? 하는 거였다. 운 좋게 집이 팔린다 해도 나가 살 곳이 없었다. 그 리고 시공비는 어디서 마련하나? 대책 없는 고민이 계속 이어졌다. 70평짜리 땅을 구한다. 일산 신도시의 건폐율은 대지면적의 50%다. 그 래서 일층과 이층의 면적은 각각 35평, 그리고 아무래도 3층은 일조권 사선 제한을 받으리라 예상하면 25평 정도로 제한된다. 그러면 연면적 95평이 나온다. 지하층은 공사비가 늘어날 것 같아 파지 않기로 했다. 당연히 일층은 <웃는 책>이 들어온다. 2층은 주거용으로 세를 받는다. 3층은 건축주가 산다. 이렇게 층별 용도를 정하고 나니 한심했다. 3층 에 건축주의 살림집이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고, 가장 임대비가 높 은 일층 역시 건축주가 쓰니 공사비로 충당할 만한 것은 2층 임대비 밖 에 없었다. 그래서 2층을 무리하게 3세대로 나누어 봤다. 전세를 주면 2 층에서 1억 4천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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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함성호는 시인이며 건축가다. 강원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했다. 시집『성 타즈마할』 『56억 , 7천만년의 고독』 『너무 , 아름다운 병』 과 산문집『허무의 기록』 ,만 화평론집『만화당 인생』등의 책을 냈다. 시 쓰는 선후배들과 <21세기전망> 동인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요즘은 개인 건축 설계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방송 에도 출연하고 있다.

다시 정리해 보자. 집을 팔고, <웃는 책> 임대 보증금과, 있는 돈을 박

의뢰인,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

박 긁으면 1억 9천이다. 그리고 나중에 집을 다 짓고 2층을 임대하면 1

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부당한 임대료를 내시겠단 말인가요? 당연히

억 4천이 확보된다. 거기다가 완공된 집으로 대출을 받으면 1억 4천+

의뢰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이 계획서를 좀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

건물 담보대출=시공비는 해결될 것 같았다. 조금 희망이 생겼다. 그리

십시오. 의뢰인은 다시 휴지를 집어 들었다. 다시 휴지가 계획서가 되는

고, 집 팔고 어쩌고 해서 생기는 돈 1억 9천+땅 담보대출=땅을 살 돈

가 싶더니 그게 아니었다. 시 쓰고 있네. 의뢰인은 이번엔 내 계획서를

은 생겼다. 뭐야? 되잖아! 나는 의뢰인에게 이 복음을 전했다. 다짜고

시로 만들었다. 내가 시인인 걸 저이가 어떻게 알았을까? 의뢰인은 시

짜 종이일 뿐이었던 백지가 훌륭한 자금 계획서가 되었다. 그런데 좋아

를 휙 내 앞으로 던져버렸다. 나는 시를 집어 들고 한 번 읽어 보았다. 아

할 줄 알았던 의뢰인은 내 자금 계획서의 구멍을 지적했다. 집이 안 팔

무래도 내가 시를 이렇게 못 쓸 리 없었다. 왜냐하면 이건 기가 막힌 계

리면? 임대가 안 되면? 대출이 안 나오면? <웃는 책> 임대 보증금을 빼

획서이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방법이 적혀 있는 거의 비결 수준의

면 집을 지을 때까지 최소 1년은 도서관 문을 열지 못 할 텐데, 거기서

계획서 아닌가? 그러나 이 비결을 작동시키는 데는 한 가지 주문이 따라

오는 손실은? 나는 어어 하며, 내가 꾸민 자금 계획서가 그나마 종이에

야 한다. 의뢰인, 그런 안 되면? 이라는 불확실성은 무릅쓰고 갑시다. 그

서 휴지로 변하는 모습을 봤다. 안 나오면? 안 되면?에 당할 계획서가 어

렇게 하다 실패하면 길거리에 나서기 밖에 더하겠습니까? 내가 모든 책

디에 있겠는가?

임을 지겠습니다. 그러자 의뢰인은 주문이 먹혀들었는지 나를 빤히 쳐 다보기 시작했다. 이상한 의뢰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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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디자인이라는 말의 오용, 허식, 그리고 폭력 이종건의 <COMPASS 04>

공공 디자인을 둘러싼 논의의 한가운데로 ⓦ 요 몇 년간 내게는 귀에 퍽이나 거슬리는 두 낱말이 있다. 이름 하여, 도시 건축. 그리고 공공 디자인. 도시 건축은 다른 지면에서 일갈한 바 있으니 여기선 공공 디자인이란 말을 시비에 좀 붙이겠다. 우선 공공 디자인이란 무엇을 두고 말하는 것인지, 아무런 합의도 명쾌한 규정도 우리 사회에 별 없는 것 같다. 이 말을 쓰는 사람들은 대충 공공 기관에서 발주하는 디자인 혹은 일반 대중들을 위한 디자인이란 뜻으로 받아들이고 말하는 듯하다. 크게 빗나간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그리 온당하다고도 볼 수 없다. 일단 이 러한 애매모호한 의미는 잠시 밀쳐 두고, 그것을 둘러싼 논의의 한가운데로 바로 뛰어 들어가 보자. 이번 달 ‘공간 사’가 발행한 <+art 02>(주 1 : 공간사, +art 02, 창간 42주년 기념 미술특집호, 월간 <공간> 제43권 제11호, 2008년 11월)가 내 곁에 있는 가장 근간의 자 료다. ‘공간사’는 거기서, 21세기 코드로 디자인을 내세운 서울시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서울 시민(진짜로 그런 가?)을 대상으로 ‘어글리 퍼블릭 아트’에 대한 설문을 실시하여, “‘공공’이란 개념에 어떤 새로운 접근 방법이 유효 할까를 고민하며 ‘인터넷’이라는 ‘공공 공간’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안”해서 논의하기를 기대한다고 쓰고 있다. 서 울의 공공 디자인의 비판을 전제로 ‘인터넷’이라는 부적절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공간사’의 관점은 다시 거론 키로 하고, 거기에 게재된 비판적 의견들이 현실적 논의의 감을 제공하고 있으니 우선 그것들로써 시작하자. 어글리 퍼블릭 아트? ⓦ “서울 시민이 뽑아버리고 싶은 공공 조형물”이라는 부제로 제시된 것들이 꽤나 흥미롭다. 청계광장에 설치된 올덴버그의 <스프링>은, 공모 절차 등 행정의 문제를 논의에서 제외하자면, 그것이 어글리하 다고 생각하는 주된 이유가(이것은 대체로 여타 다른 대상들에도 거의 비슷하게 적용된다), 한 마디로 장소성과 무 관하다는 것이다. 청계천 복원이라는 사건과 맞지 않다는 것. 어떤 이는 시대 정신이라는 측면에서 군국주의 시대 의 산물인 광화문 이순신 동상의 존재에 대해 부정적이기도 하고, 3차원적인 도시에 2차원적인 작업의 삽입이라 는 논지로 경복궁 복원 공사장 가림막이나 최정화가 작업한 잠실종합운동장 설치 작업을 부정적으로 내몬다. 인 사동의 붓 조형물은, 취지는 좋은데 그에 따른 조형의 결과가 나쁘고,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에 세울 서울 상징물이 저급한 개념과 즉물적 적용으로 적나라하게 비판된다. 대학로에 설치된 조형물은, 유지의 문제를 제외하자면, 주로 보행의 리듬을 깨거나 차가운 재료와 날카로운 형태로 심리적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나 쁘다. 송파구가 송파대로 명소화 추진 사업 중 하나로 설치한, 버섯을 재배하던 지역의 역사성을 토대로 만든, 버 섯 모양 조형물 또한 장소성의 부적합성과 표현의 직접성으로 낙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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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적 관점보다는 시민의 눈높이와 일상 행위의 견지에서 바라봐야 ⓦ 공공 디자인에 대한 비판적 견해들을 훑 어볼 때 나의 의식을 가장 먼저 건드린 것은, 그들이 거의 대부분 한결같이 조형적 판단 혹은 미학적 관점에 근거 를 둔 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조형물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 곧 그 미학적 수준이 낮다는 것이다. 장소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그 범주 안에 들어간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그 자리에는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의 정체성과 청계천 복원에 대한 서울의 진취적이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상징적인 조형물 (이) … 설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처구니없는 발언이다. 그리고 어처구니없다는 나의 판단의 근거는, 디자인 혹은 예술에 관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뻔히 알 만큼 그 근거를 굳이 댈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들이 거의 다 조 형성에 주목한 주된 이유는 ‘공간사’의 편집의도 때문이라 보는 것이 더 합당한 것 같다. 꼴 보기 싫은 공공 예술 (디자인)을 일단 공공 조형물에 맞추는 순간 비판의 한계 혹은 범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공공 디자인을 생각하 는 나의 입점과 그나마 유사한 이는 김광수인데, 그가 말하듯, 무언가를 덧대는 것이 유익할지부터 우선 따져 봐 야 하는데, 그 까닭은 도시 공간은 근본적으로 생활 공간이고 디자인 또한 감각이든 행위에서든 본디 편함과 우선 관계되기 때문이다. 도시, 특히 이 고밀도 서울에 공공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벌이려 한다면, 어디에 어떤 조형물을 설치할 까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민의 눈높이에서 그리고 그들의 일상 행위의 견지에서 공간을 혹은 장소를 어 떻게 더 좋고 매력적으로 만들까를 생각해야 할 일이다. 이런 점에서, 서울시가 생각하는, 혹은 서구식 조형 개념 에 조율된 디자이너가 마음에 두고 있는 디자인을 행사하려고 드는 것은, 공공 디자인 아니 좀 더 근본적으로 말해 서 공공성이라는 개념 그 자체로부터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무지와 폭력의 소산이랄 수 있다. 퍼블릭, 누구나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나타나는 모든 것 ⓦ 공공 디자인을 논의하는 데 일차적인 핵심 논점은 ‘공 적인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규명하는 일인데, 이것과 관련해서는 한나 아렌트의 해명(주 2 : Hanna Arendt. Human Condition. 이 적실하다. 그녀에 따르면, “공적임(public)”이라는 용어가 뜻하는 바는, 누구나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나

pp.6-12)

타나는 모든 것, 곧 우리 모두가 속한 “세계 그 자체”다. 이러한 까닭에 그것은 사물들이 탈은폐되어 나타날 수 있 는 “공적 영역(public domain)”을 전제로 하는데, 특히 자연이 아니라 인공물 곧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들의 공 작(fabrication of human needs)”과 연관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에서 함께 산다는 것이 본질적으 로 뜻하는 바는, 우리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사물들의 세계가 “마치 테이블이 그 둘레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 이에 존재하듯,”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그것은 우리를 피차 관계시켜 주면서 그와 동시에 분리 시킨다. 아렌트의 통찰에 따르자면, 대중 사회가 견디기 어려운 것은 우리의 사물 세계가 우리를 함께 모아 관계시 키고 분리시키는 그러한 능력을 상실한 탓인데, 이에는 두 가지 조건이 관계된다. 사물 세계의 세속적 초월성의 잠 재성 곧 우리로 하여금 개별적 삶의 하찮음을 넘어서게 하는 상대적 영구성,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속한 사물들을 바라보고 듣는 다양한 관점이 그것이다. 우리의 공동 세계는 사물(들)이 “하나의 양상에서 보이고 단 하나의 관점 으로 제시될 수밖에 없을 때,” 그리고 일상의 사소함에 갇힐 때, 종말을 고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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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디자인, 밑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공동 세계를 위한 배후 작업 ⓦ 이로써 인터넷 공간은 무엇보다 우선 거기 등록되는 사물(?)들의 사소한 성격 탓으로 공동 세계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리고 공공 디자인이 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예술적 욕망을 도시에 펼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짓이지, 우리 일상의 온갖 풍경들 을 서구 디자인의 잣대로 재단하는 행위가 얼마나 무지한 짓인지 확연히 인식된다. 그야말로 우리의 적나라한 삶 을 드러내는 가로 광고판들을 서구의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로 풍경으로 순화시키려는 ‘위로부터의 강압’은 즉각 멈추어야 한다. 여기저기 세우는 온갖 조형물과 건축비의 일부를 헌납시켜 조성하는 장식품들은, 시카고 미 스 건물 앞에 세운 피카소의 작품 하나에 견줄 수조차 없다. 공공 디자인이란 무엇보다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 물들을 공작함으로써, 우리가 가급적 마찰 없이 살고 좀 더 활발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행위라는 점을 재고한다 면, 그것을 행할 터는 도시의 버려진 땅, 흐름을 끊는 공간, 보행자를 외면하는 공간, 걷고 싶은 욕망을 차단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디자인은 공기라는 서울 디자인 올림픽이 내세웠듯, 디자인은 전경(前景) 이 아니라 시민들이 도시에서 활기 있게 살 수 있도록, 그러한 막힌 공간을 다시 조직하여 흐르게 하는 배후 작업 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런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의 삶의 공동을 이루는 공간을 찾아내고, 적어도 그것이 한두 세대의 역사라도 넘어설 수 있도록, 아렌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상대적 영구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곧 밑으로부터 터 져 나오는 우리의 뜨거운 삶의 에너지를 붙들어 맬 수 있도록 하는 행위가 곧 공공 디자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 는다면, 공공 디자인은 착각이거나 기만이거나, 폭력이거나 무지이거나, 허식이거나 정치가 되어, 결국 우리의 삶 을 낭비하고 축소시키고 왜곡시켜 헛돌음만 반복할 뿐일 것이다. 촛불 집회 사건과 숭례문 터야말로 진정 공공 디 자인의 대상이지 않은가? 역사 교과서를 위로부터 뜯어고치려는 작태야말로, 그리고 인터넷 토론 공간마저(미네 르바) 검찰이 조사해야 하지 않느냐고 촉구하는 꼴통 국회의원의 무식한 생각이야말로 우리의 공동 세계를 죽이 는 확실한 짓이지 않은가? ⓦ

글쓴이 이종건은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이자 우리 시대 가장 소중한 자리를 지키는 비평가다.『해방의 건축』 『중심이탈의 , 나르시시즘』 『텅빈 , 충만』 등을 썼다. 한 국 현대 건축의 중심과 주변을 넘나드는 이야기의 주제와 평문들은 언뜻 날을 세우고 있는 듯하지만, 기실은 따뜻한 시선의 깊이로 문제 의 핵심을 잘 집어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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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도메(Shiodome, 汐留) 최충욱의 <공간 전달자 02>

글쓴이 최충욱은 건축을 전공한 뒤 월간 <이상건축>과 <건축문화>, <플러스>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이후 몇 개의 출판 매체 기획사에서 건축과 인테리어, 건설 관련 출판을 코디네이션 했다. 최근까지 도시 건축 전문 여행사에서 해외 벤치마킹 답사를 수년간 진행하면서 해외의 다양한 도시 건축 공간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시작했다. 세계의 도시, 건축, 조경, 인테리어 등 공간 디자인과 관련된 커뮤니티 네이버 카페 <스페이스투어> 운영자를 맡고 있으며, 공간전달연구소 초이스페이 스 <choi's pace>를 운영하면서 해외 도시 건축 가이드북 제작과 매거진 발행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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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도메는 도쿄의 대규모 도심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2007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되었다. 일본의 도시 인프라 사업을 엿볼 수 있는 이 도시 공 간 일대는 원래 일본의 국철이었던 JR의 열차 기지 창고 역할을 했던 ‘구 국철 시오도메 화물역’이 있었으며, 도쿄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의 하 나였다. 하지만 1992년 토지구획정리사업계획을 통해 도시 기반을 정비하고 업무, 상업, 문화, 거주 등의 복합 지역을 위한 재개발 프로젝트를 시 작하였다. 2007년 완성에 이르기까지 업무 유동 인구 6만여 명, 상주 인구 1만여 명으로 팽창해 현재는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모 했다. 시오도메 일대 재개발 구역의 공식 명칭은 ‘시오도메 시오사이트(Shiodome sio-site)’로 A~I 지구까지 총 11개의 구획으로 나뉘어졌고 각 구획별로 거대한 규모의 오피스 빌딩과 주상복합 타운이 들어서 있다. 2002년에 구획 정리가 종료되었고, 2003년 니혼TV 본사가 입주를 시 작한 이래로 카레타 시오도메가 있는 시오도메 시티센터, 마츠시타 빌딩, 덴츠 본사, 시오도메 시키 타워 등이 속속 새롭게 등장했다. 이 모든 빌 딩과 도로망의 결합은 정리가 매우 잘 되어 있는데, 특히 모노레일(유리카모메)과 전철, 지하철, 국철선의 유기적인 이동을 위한 수평 수직 공중 보행로의 설계와 배치는 백미라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시오도메 시오사이트는 오다이바, 록본기 힐즈, 미드타운 등의 재개발 사업과 더불어 도쿄 의 대표적인 신명소로 급부상했다. 시오도메 개발 프로젝트의 모토는 ‘성인들의 슬로우 라이프(slow life)’이다. 각 건물들의 특성들이 독창성을 가지며 독립되어 보이지만, 경제, 문화, 관광, 주거 등 핵심적인 신도심의 기능이 하나의 컨셉트로 유기적인 통일을 이루도록 인프라가 다듬어졌 다. 국제 공항과 항만의 접근성이 뛰어나고, 일본 경제의 중심인 긴자 지역과 새롭게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오다이바 지역 등에 국제 비즈니스 업 무를 보는 외국인과 공간 디자이너에게는 특히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지역이다. www.sio-site.or.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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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구

ⓦ 시행사 : 덴츠, 덴츠 패컬티 매니지먼트 ⓦ 부지 면적 : 17,244㎡ ⓦ 용적률 : 1,199.5%

➌ 카레타 시오도메 Caretta Shiodome ⓦ 설계 : Jerde Partnership ⓦ 완공 : 2002.12 ⓦ 용도 : 상업 시설 ⓦ 시오도 메 시오사이트 재개발 프로젝트 중 제일 첫 번째로 완공된 카레타 시오도메(カレ ッタ汐留)는 도시 생활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슬로우 라이프(Slow Life)’를 컨 셉트로 마련한 복합 상업 시설이다. 덴츠 본사의 스카이 레스토랑과 카레타 모르( 지하 1, 2층), 캐년 테라스 모두를 가리키는 총칭이기도 하다. 총 58개의 점포와 극 단 사계의 상설 극장, 광고 박물관인 아드 박물관 도쿄로 구성되어 있다. 사계 극장 ‘우미’(海)는 일본 최고의 극단인 사계(四季)의 상설 전용 극장으로 객석은 2층으 로 나뉘어져 있으며 총 1,2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 ‘21세기형 마천루’란 이 름으로도 불린다. 1층부터 3층까지의 캐년 테라스(Canyon Terrace)는 사계극장 을 중심으로 테라스와 레스토랑, 카페가 자리하고 있어 작은 브로드웨이로 꾸며져 있다. 지하 1층부터 2층까지의 쇼핑몰 카레타 모르(Caretta Mall)와 카레타 플라 자(Caretta Plaza)는 오오에도센(大江戸線) 시오도메 역으로 이어지는 약 1,300 ㎡ 규모의 공용 지하 공간으로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실제로 앉을 수 있도록 배려되었다. 또 오피스동 최상층(46, 47층)에 위치한 스카이 레스토랑은 지 상 200m 높이로 레인보우 브릿지는 물론 오다이바와 긴자 일대까지 한눈에 조망 되며, 지하 2층에서 논스톱으로 운행하는 전용 엘리베이터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 다. ⓦ www.caretta.jp

➊ 덴츠(電通) 본사 Dentsu Headquarter ⓦ 설계 : Jean Nouvel ⓦ 완공 : 2002.10 ⓦ 용도 : 오피스, 상업 시설, 문화 시설 ⓦ 규모 : 지하 5층, 지상 48층, 210m ⓦ 연면적 : 232,289㎡ ⓦ 공기 : 1999.10 - 2002.10 ⓦ 세계 1위의 광고 대행사 덴츠의 본사 사옥이다. 58개의 점포로 구 성된 카레타 시오도메, 극단 사계의 상설 전용 극장, 광고 박물관 등 총 5,500여 명 이 근무하는 복합 공간이다. ⓦ www.dentsu.co.kr

B 지구

ⓦ 시행사 : 미츠이 부동산, 마츠시타 전공, 동일 본 철도문화재단, 알 대니^인 베스트 체면^비티 이^리미티드 ⓦ 부지 면적 : 19,708.33㎡ ⓦ 용 적률 : 1.200%

➋ 아드 박물관 도쿄 ADMT(Advertising Museum Tokyo) ⓦ 덴츠 본사 지하 1~2층의 약 1,200㎡에 이르는 광고 도서관으로 전시홀, AV홀, 도서관을 갖추었으며,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일본 최초의 광고 자료관으로 자사의 광고뿐만 아니라, 광고의 트렌드와 역사에 대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광고 도서 관이 있다. 도서관은 무려 1만 3천 권이 넘는 광고 관련 서적을 보유하고 있어 에 도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디지털화된 약 13만 5천 점의 광고 관련 자료 와 작품을 검색하고 열람할 수 있다. 1960년대 인기가 있었던 TV CF까지 볼 수 있다. ⓦ www.admt.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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➍ 시오도메 시티센터 Shiodome City Center ⓦ 설계 : Kevin Roche John Dinkeloo and Associates / Nihon Sekkei ⓦ 완공 : 2000.02 - 2003.01 ⓦ 용도 : 업무 시설, 상업 시설 ⓦ 규모 : 지하 4층, 지상 43층, 215m ⓦ 연면적 : 217,753㎡ ⓦ 후지츠, ANA 항공, 미츠이 화학 등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의 본사가 입주해 있으며, 지하 2층~지상 3층까지는 중, 한식을 비롯 한 이국 요리나 가볍게 점심을 즐길 수 있는 델리숍들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41층 ~42층에는 모두 60여 개의 숍과 레스토랑 거리인 ‘톱 오브 더 시티’가 형성되어 있 는데, 그 중 최상층인 42층에는 전통적인 분위기의 일식 레스토랑 ‘엔’이 위치하고 있다. 엔은 이미 뉴욕과 서울 등의 세계 유수의 유명 호텔 일식당을 디자인한 사토 이치로의 인테리어를 엿볼 수 있다. ⓦ www.shiodomecitycenter.com

C 지구

ⓦ 시행사 : 카시마 시오도메 개발 ⓦ 부지 면적 : 15,658.81㎡ ⓦ 용적률 : 1,200%

➐ 니혼TV타워 Nippon Television Tower

➎ 구 심바시 정거장 Old Shimbashi Station ⓦ 설계 : Nihon Sekkei / JR East Design Corporation / JV of Kajima, Taisei and Takenaka ⓦ 공기 : 2000.01 - 2003.01 ⓦ 용도 : 상업 시설, 전시 시설 ⓦ 규모 : 지상 2층, 15m ⓦ 건축면적 : 969㎡ ⓦ 연면적 : 1,351㎡ ⓦ 일 본에서 처음 철도가 개통할 당시인 1872년에 개업했던 심바시 역사(駅舎)을 그대 로 재현했다.

➏ 마츠시타 전공 도쿄 본사 빌딩 Matsushita Electronic Works Tokyo Head Office ⓦ 설계 : Nihon Sekkei / Nikken Sekkei / JV of Kajima, Shimizu / Obayashi / Taisei, Kumagai / Toda / Fujita / Maeda / Tokyu and Mitsui / JR East Design Corporation / JV of Kajima, Taisei and Takenaka ⓦ 완공 : 2000.03 - 2003.01 ⓦ 용도 : 업무 시설, 상업 시설, 전시 시설 ⓦ 규모 : 지하 4층, 지상 24층, 12m ⓦ 건축면적 : 2,388㎡ ⓦ 연면적 : 47,274㎡ ⓦ 지하 층 선큰에 샘플하우스 형식을 빌어 홈 오토메이션이나 가전 시스템 등을 전시하는 쇼룸인 내셔널 센터 도쿄(National Center Tokyo)를 상설 전시하며, 조르쥬 루 오 등 프랑스 화가의 작품을 상설 전시한 마츠시타 전공 시오도메 박물관(NAIS) 을 병설 운영하고 있다.

ⓦ 설계 : Mitsubishi Jisho Sekkei design / Richard Rogers Partnership / JV of Shimizu / Taisei / Kajima and Obayashi ⓦ 공기 : 2000.01 2003.04 ⓦ 용도 : 방송 시설, 상업 시설, 업무 시설 ⓦ 규모 : 지하 4층, 지상 32층, 193m ⓦ 건축면적 : 7,289㎡ ⓦ 연면적 : 130,726㎡ ⓦ 인접한 시오도메 타워와 함께 지하 2층부터 지상 1층까지 광장을 공유하며 보행자 및 방문자들에게 영상이 나 방송, 이벤트 등을 적극적이고도 다양하게 제공한다. 특히 공용 데크에서는 스 튜디오를 관람할 수 있도록 했으며, 250in×200in의 대형 모니터를 구비해 놓고 있다. 지하 2층~지상 1층에는 중국, 이탈리아, 영국 식당과 바 그리고 커피숍과 다 양한 빵집, 라멘 전문점 등이 입점해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일 2회에 거쳐 방송국 내 견학 코스가 있다. ⓦ www.ntv.co.jp

➑ 시오도메 타워 Shiodome Tower 로얄 파크 시오도메 타워 Royal Park Shiodome Tower ⓦ 설계 : Kajima Design / Kajima Corporation ⓦ 공기 : 2000.01 - 2003.04 ⓦ 용도 : 업무 시설, 숙박 시설 ⓦ 규모 : 지하 4층, 지상 38층, 172m ⓦ 건축면적 : 3,547㎡ ⓦ 연면적 : 79,819.38㎡ ⓦ 시세이도 시오도메 오피스(1~22층)와 객 실수 490실을 보유한 특급 호텔 로얄파크 시오도메 타워(24~38층)가 함께 입주해 있는 복합 빌딩이다. 고급 비즈니스 고객을 메인 타깃으로 완벽한 업무 보조와 각 종 고급 설비로 인하여 비싼 요금에도 불구하고 인기 호텔로 자리 잡았다. 객실 내 부는 2.8m의 천장고와 함께 세련된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으며, 최고층인 38층에 위치한 객실은 3.2m나 되는 천장고로 뛰어난 개방감과 전망을 가지고 있다. 또 마 츠시타 전공과 공동으로 개발한 침실은 업체 최초로 수면 공학을 적용시킨 곳이기 도 하다. 식당은 총 6곳. ⓦ www.rps-tower.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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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북(北) 1지구

ⓦ 시행사 : 숲 트러스트, 스미모토 부동산 ⓦ 부지 면적 : 17,847㎡ ⓦ 용적률 : 900%

➒ 도쿄 시오도메빌딩 Tokyo Shiodome Building 콘라드 도쿄 Conrad Tokyo 페디 시오도메 Pedi Shiodome ⓦ 설계 : Yasui Architects & Engineers, Inc. ⓦ 공기 : 2002.02 - 2005.01 ⓦ 용도 : 업무 시설, 상업 시설, 숙박 시설 ⓦ 규모 : 지하 4층, 지상 37층, 174m ⓦ 연 면적 : 190,257㎡ ⓦ 일본 최대의 플로어 임대 면적(3,300㎡)을 가지는 오피스를 중심으로 고층부는 힐튼 최고급 브랜드의 럭셔리 호텔 콘라드 도쿄가, 저층부는 고 품격 상업 시설과 컨벤션 시설이 배치된 글로벌 비즈니스 복합 시설이다.

D 북(北) 2지구

ⓦ 시행사 : 스미모토 생명보험, 스미모토 부동산 ⓦ 부지 면적 : 10,077㎡ ⓦ 용적률 : 900%

➓ 시오도메 스미모토 빌딩 Shiodome Sumimoto Building 호텔 비라 퐁텐 시오도메 Hotel Villa Fontaine Shiodome ⓦ 설계 : Nikken Sekkei LTD ⓦ 공기 : 2002.04 - 2004.07 ⓦ 용도 : 업무 시설, 숙박 시설, 상업 시설 ⓦ 규모 : 지하 3층, 지상 27층, 126.41m ⓦ 연면적 : 99,913.20㎡ ⓦ 오에도센 시오도메역과 바로 연결되며 아사쿠사센 심바시역과 는 지하 연결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고층부에 임대용 오피스가 있고, 저층부에 초 현대식 도시형 비즈니스 호텔 ‘비라 퐁텐’이 497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 저층부 의 거대한 로비에 아트리움을 배치해 호텔의 메인 진입이 가능토록 했으며, 로비 바 닥에 뚫린 통로로 지하보도에 직접적인 접근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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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북(北) 3지구

ⓦ 시행사 : 일본 통운, 닛쯔 부동산 ⓦ 부지 면적 : 5,518.55㎡ ⓦ 용적률 : 839.90%

 일본 통운 본사 Nippon Express Building ⓦ 설계 : Kajima Design ⓦ 공기 : 2000.07 - 2003.06 ⓦ 용도 : 업무 시설, 문 화 시설, 전시 시설 ⓦ 규모 : 지하 4층, 지상 28층, 136m ⓦ 연면적 : 54,241.22 ㎡ ⓦ 33개국, 159도시에 286지점을 둔 글로벌 물류 기업 일본 통운의 본사. 고 도 정보화 사회에 부응하는 지적 창조성을 낳는 공간을 목표로 설계되었다. 고층부 에 업무 시설, 저층부에 물류 자료관, 무도장, 스모장 등을 마련해 지역 사회와의 커 뮤니티도 꾀하였다.

D 남(南)지구

ⓦ 시행사 : 미츠비시 토지, 미츠이 부동산, 스미토 모 부동산, 도쿄 건물, 오릭스, 스미토모 상사, 미 츠이 물산, 헤이와 부동산 ⓦ 부지 면적 : 15,561 ㎡ ⓦ 용적률 : 600%

 도쿄 트윈 파크스 Tokyo Twin Parks ⓦ 설계 : MITSUBISHI JISHO SEKKEI ⓦ 공기 : 1999.10 - 2002.11 ⓦ 용 도 : 업무 시설, 주거 시설, 근린생활시설 ⓦ 규모 : 지하 2층, 지상 47층, 165m ⓦ 연 면적 : 149,000㎡ ⓦ 일본 굴지의 개발 회사 8개가 동시에 사업을 진행하였다. 초 고층 쌍둥이 빌딩에 100년 이상의 수명을 목표로 한 고(高) 내구성의 초고급 주거 시설을 제안했으며, 하마리큐 정원, 도쿄 타워 등의 전망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 도록 계획하였다. 기본적인 근린 생활 시설인 편의점, 클리닉 등이 입주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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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지구

ⓦ 시행사 : 교도통신사, 토판 폼스 ⓦ 부지 면적 : 9,323㎡ ⓦ 용적률 : 900%

 시오도메 미디어 타워 Shiodome Media Tower 파크호텔 도쿄 Park Hotel Tokyo ⓦ 설계 : Kajima Design / JV of Kajima and Shimizu / 인테리어, DE SIGNE(Frederic Thomas) ⓦ 공기 : 2000.10 - 2003.06 ⓦ 용도 : 업무 시설, 숙박 시설, 상업 시설 ⓦ 규모 : 지하 4층, 지상 34층, 173m ⓦ 부지면적 : 5,067㎡ ⓦ 건축면 적 : 2,440㎡ ⓦ 연면 적 : 66,489㎡ ⓦ 일 본을 대표하는 국제 적 미디어 교도통신( 共同通信)의 새 본사 빌딩으로 오피스와 호텔, 상업 시설이 복 합된 건물이다. 1층부 터 3층에는 역사적인 뉴스 사진과 항공 사 진, 최신의 정보 미디 어 등을 소개하는 ‘뉴 스 아트’가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4~23 층까지는 교도통신 및 관련 회사가 이용 하고 있으며 1층부터 3층까지 오픈된 진입 홀에는 야에스 북센 터가 자리잡고 있다. 또 25층부터 34층까 지는 274개의 객실을 보유한 파크호텔 도 쿄가 자리잡고 있는 데, 동경 내에서도 유 명한 부티크 호텔로 손꼽힌다. 독창적인 디자인 스타일을 지향하는 월드와이드 호 텔그룹 ‘Design Hotels’의 멤버 호텔이기도 한 파크호텔 도쿄는 2003년 9월 1일 오픈하였으며, 최근 내부를 새롭게 리노베이션했다. 특히 25~34층까지 뚫린 천장 아트리움은 일본 최대 규모로 부드러운 조명과 검은 대리석, 오크 바닥 등의 조화가 훌륭하다. 전망이 뛰어나며 지하철 오오에도센, 심바시역과 직접 연결되어 접근성 도 좋다. ⓦ www.shiodomemediatower.jp, www.parkhoteltokyo.com

H 지구

ⓦ 시행사 : 도시 기반 정비 공단, 동일본 여객철도 ⓦ 부지 면적 : 12,347㎡ ⓦ 용적률 : 600%

 아크티 시오도메 Acty Shiodome ⓦ 설계 : Ando Corporation/ Mitsui Construction Company / Takenaka Construction / Toshi Kiban Seibi Kodan ⓦ 공기 : 2000.04 - 2004.03 ⓦ 용도 : 주거 시설, 근린생활시설 ⓦ 규 모 : 지하 2층, 지상 56 층, 183m ⓦ 연면적 : 100,700㎡ ⓦ 독신 자에서부터 가족 단 위까지 입주할 수 있 도록 기획된 초고층 임대 주택이다. 3~44 층은 공단 임대 주택 이 들어서 있고, 45 층 이상은 민간 임대 주택이 들어서 있다. 주상 복합 시설로 빌 딩 내에는 슈퍼마켓 과 육아 지원 시설 등 이 잘 갖춰져 도심 주 거의 기본형을 지향 하고 있다.

이탈리아 공원 ⓦ 시행사 : 미나토구(港區) ⓦ 부지 면적 : 2,200 ㎡

 토판 폼스 빌딩 Toppan Forms Head Office ⓦ 설계 : Okada Architect & Associates, JV of Kajima and Ando ⓦ 공기 : 2000.12 - 2003.04 ⓦ 용도 : 업무 시 설, 문화 시설 ⓦ 규모 : 지하 1층, 지상 19층, 99m ⓦ 부지면적 : 4,256㎡ ⓦ 건 축면적 : 2,902㎡ ⓦ 연면적 : 26,664㎡ ⓦ 일본 내 비즈니스 폼 제조^판매의 최 대 기업인 토판 폼스의 새 거점이다. 고 객 지향의 프리젠테이션 기능과 토탈 솔 루션 기능을 상충시켜, 종합 정보 관리 서비스업의 사업 영역을 확립하겠다는 전략으로 건립했다. 문화 교류 시설로서 다목적 홀과 시오도메 인포메이션 팩토 리는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탈리아 공원 Italia Garden ⓦ 공기 : 2003.10 ⓦ 이 정원은 일본과 이탈리아의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이탈리 아에서 만들어 기증한 것이다. 공공 녹지 구역 2개소 사이에 조성된 장방형 부지로 토스카나 정원을 참고하여 설계되었으며, 대리석을 기본으로 토스카나 풍의 원주 와 조각상, 벤치, 식재, 조명, 방사선 원형 광장 등을 원근법 효과가 잘 살아나게 배 치하였다. 대리석과 조각, 타일 등은 이태리에서 직접 공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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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1 지구

ⓦ 시행사 : 이이노 해운, 일본 토지건물 ⓦ 부지 면 적 : 3,418㎡ ⓦ 용적률 : 900%

I-2 지구

ⓦ 시행사 : 타이세이 건설, 일본생명보험 ⓦ 부지 면적 : 13,160㎡ ⓦ 용적률 : 700%

 시오도메 시바리큐 빌딩 Shiodome Shibarikyu Building

 스카이 그란데 시오도메 Sky Grande Shiodome

ⓦ 설계 : Nikken Sekkei / Takenaka Corporation ⓦ 공기 : 2004.08 2006.06 ⓦ 용도 : 상업 시설, 업무 시설 ⓦ 규모 : 지하 3층, 지상 21층, 130m ⓦ 연면적 : 33,000㎡

ⓦ 설계 : Taisei Construction ⓦ 공기 : 2003.06 - 2005.08 ⓦ 용도 : 주거 시 설 ⓦ 규모 : 지하 1층, 지상 22층, 72m ⓦ 연면적 : 11,700㎡ ⓦ 샤룸 하마마쓰초 맨션의 재건축 사업과 신축 사업이 결합된 방식으로 시오도메 지역과 하마마쓰초 역에 가까운 입지를 살린 직주 근접을 목적으로 만든 고급 집합 주택이다.

서(西) 지구 ⓦ 시행사 : 시오도메 서쪽지구 70여개 지주 ⓦ 부 지 면적 : 16,100㎡ ⓦ 용적률 : 700%

하마리큐 정원

 하마리큐 정원 Hama Rikyu Garden  시오도메 이탈리아 Shiodome Italia ⓦ 공기 : 2000 - 2006 ⓦ 용도 : 주거 시설, 상업 시설, 숙박 시설, 업무 시설 ⓦ 규 모 : 지하 1-4층, 지상 7-16층, 약 60m ⓦ 연면적 : 54,241.22㎡ ⓦ 시오도메 서 쪽 지구의 지주권자들이 만든 업무, 숙박, 상업 및 주택 지구. 중심 광장을 각 가구가 둘러싸는 구성으로 건축 디자인이나 경관 및 거리 디자인, 점포 구성을 이탈이아 풍 의 공통 테마로 조성한 지역이다. 특히 지구 중심의 시오도메 이탈리아 크리에이티 브 센터는 2006년 12월 1일 오픈 이후, 이탈리아와 일본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 의 새 디자인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두 나라 간의 현대 디자인과 건축, 아 트를 테마로 전람회나 세미나, 양국의 비즈니스를 묶는 다양한 행사를 기획한다. 또 <아이 아트 & 디자인 리서치 & 디벨로프먼트 센터> 프로그램으로 트리엔날레 밀 라노의 상설 전시장, 디자인과 건축 교육 프로그램을 갖춘 좀스 아카데미도 진행되 고 있다. ⓦ www.shiodomeitalia.com, www.comune-shiodome.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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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오도메 D지구 건너편에 자리한 하마리큐 온시테이엔(浜離宮 恩賜庭園)은 도 쿠가와(徳川) 장군가의 별저였던 곳으로 에도 시대를 대표하는 다이묘(大名 : 만 석 이상을 소유한 막부 전속 무사) 정원이다. 역대 장군들에 의해 개원 개수 공사 가 계속되어 11번째 장군에 이르러서야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메이지 유 신 당시에는 황실의 별궁으로 사용되어 그때부터 하마리큐(浜離宮)로 불리게 되었 는데 관동 대지진으로 중요한 시설물들이 전소하여 대부분을 1945년부터 새롭게 정비했다. 바다에 인접해 해수를 끌어들인 연못 ‘시오이리노이케’가 있으며, 삼백 년된 소나무, 오츠타이 다리, 나카지마의 다실 등 에도 시대의 정서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오이리노이케를 중심으로 한 남쪽 정원(南庭)과 메이지 시 대 이후에 만들어진 북쪽 정원(北庭)으로 나뉘며, 총 250,215,72㎡ 규모에 6천 그 루의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어 신주쿠교엔, 히비야 공원 등과 함께 도쿄를 대 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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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tus <내가 좋아하는 건축 잡지 07 | 최진희> 글쓴이 최진희는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이탈리아 로마국립대학교 ‘라 사피엔자(La Sapienza)’에서 Laurea와 Ph.D를 수여했다. 김준성건축사무소, Studio Gennaro Cassiani, 간삼파트너스 종합건축사사무 소를 거쳐 현재 경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수많은 세계 건축 잡지들의 성격은 여러 가지겠지만 보통 사람들이 잡

관에서 접하다 보니 지금 이 잡지를 소개하기 위한 소장 자료가 많지 않

지를 찾는 이유는 정보의 신속한 습득과 더불어 당대의 유행과 흐름을

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파악하기 위함일 것이다. 고민 중인 디자인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하고,

도시 속의 땅과 건축을 함께 얘기하는 잡지 <Lotus>는 1963년부터 만

단지 시각적 눈요기를 충족하기 위한 즐거움 또한 하나의 역할을 하고

들어지기 시작하였다. 밀라노에서 1년에 3번씩 간행되는 잡지이며, 현

있다. 시대에 따른 디자인이라는 명목으로 오히려 너무 표피적이고 가

재 밀라노 공대의 건축과 교수인 Pierluigi Nicolin이 편집 디렉터를

시적인 디자인을 생각 없이 가져다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실 많은

맡고 있다.

설계 사무실에서 디자이너들이 인터넷을 통해 유행하는 디자인을 검색

<Lotus>는 매 권마다 논의하고 분석하는 대상으로 세계의 모든 도시

하듯 잡지 또한 디자인 자료 집성의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이니 과다하

와 그 도시 속의 건축을 다루고 있다. 잡지나 글의 구성은 <Lotus>의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독특한 분석적 구성을 가지고 있고, 각 권은 한 테마를 중심으로 편집,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 색깔들의 잡지들을 소개하고 있고 소개되어질

구성된다.

것이니, 필자는 도시와 문화에 대한 고민을 배경으로 만들어낸 좀 더

도시 속에서의 땅과의 관계는 곧 역사를 말하는 것이며, 사실 역사 도

이론적인 성향의 건축 잡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Lotus>는 현대 잡지

시에 사는 유럽인들에게는 건축문화의 기본적인 배경이니 이러한 편집

가 가지는 시대적 중요성의 기준에 부합한다고는 할 수 없으나 필자가

방향은 당연한 것이다. 주제는 각 볼륨의 표지에서 알 수 있듯이, ‘De-

<Lotus>를 좋아하는 이유는 오히려 표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잡

sign/Context(Progetto/Contesto)’, ‘Network Analysis(Densita'/

지는 짧은 글일지라도 도시 문화적, 사회적 의식이 담겨 있는 글들의 깊

Infill/Assemblage)’, ‘The Modern inside out’, ‘Urban Housing’,

이감이 느껴지고 그것이 전체 집필 구성의 짜임새를 알 수 있게 한다.

‘Living in cities(abitare la citta’)’, ‘Imitating the city(Imitare la

그렇기 때문에 <Lotus>에 실린 글들은 가볍지 않고, 따라서 잡지 한 권

citta’)’, ‘People’, ‘Everything is landscape(tutto e’il passaggio)’ 등

이 가볍지가 않다.

이다. 도시 없이는 얘기할 수 없는 이러한 주제들과 그 주제 아래의 작은

어찌 보면 요즘 시대의 잡지답지 않은 <Lotus>, 하지만 가장 동시대

글들의 소제목은 이미 이 잡지의 특성인 이론적 체계를 보여 준다.

적인 잡지로 얘기하고 싶다. 사실 이렇게 마음에 담고 소개하고 싶다고

이러한 <Lotus>는 SCI급으로 인정되는 세계적인 건축 잡지이다. 주

말하는 <Lotus>이지만 정작 필자에겐 소장본이 많진 않다. 유학 시절

제의 선정과 집필 기간은 장기 계획에 의하여 진행된다. 주제 선정은 출

50% 세일하는 책들을 찾아다니며 책 구입을 열심히 하던 시기에도, 모

간 2~3년 전에 결정되며, 이 주제에 꼭 필요한 집필진에게 연락을 취하

든 유학생들이 그렇듯이 자유롭지 못하던 경제적 여건 하에 책값보다

여 오랜 집필 기간을 부여한다. 이 때문에 <Lotus>는 원고에 대한 엄격

비싼 잡지를 현금을 주고 사자니 참 많이 망설여졌고, 많은 부분을 도서

한 품질 관리가 가능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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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학당 역사박물관장 김종헌 역사와 현대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서 근대를 만나다 이정범의 <WIDE EYE 01>

1858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서더튼에서 태어난 헨리 게르하트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는 어려서부터 철저한 성서 교육을 받으며 성 장했다. 그는 프랭클린 마샬 대학을 졸업한 데 이어 드루 신학교에서 수학하고 1885년 2월 1일, 태평양 우편선인 아라빅호에 승선해 2월 27일 일본에 도착했다. 이후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기로 결심하고 같은 해 4월 5일 제물포항에 도착하지만 어수선한 정치 상황과 부인 엘라 닷지 (Ella Dodge)가 임신한 상태였기에 부득이 일본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가 한글을 공부하면서 몇 달 지내는 동안 미국에서부터 동행했던 스크랜 턴(W.B. Scranton)은 서울 정동에 머물 집을 마련했고 덕분에 아펜젤러(Appenzeller) 부부는 같은 해 7월 19일, 마침내 서울로 안착할 수 있 었다. 서울에 도착한 아펜젤러가 가장 먼저 추진한 사업은 학교 설립이었다. 아펜젤러는 이미 당시 미국 대리공사였던 폴크(G.C. Foulk)를 통해 학교 설립 가능성을 타진했고 고종 황제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같은 해 8월부터 두 학생을 받아들여 영어를 가르치면서 교육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 교육 기관으로 손꼽히게 된 배재학당(培材學堂)의 출발이다. 현 시점에서 배재는 근대 한국을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라 할만하다. 더구나 배재학당이 배재중^고등학교 및 배재대학교로 역사 전통을 잇고 나날이 성장하는 것과 함께 근대의 역사를 간직한 공간으로 거듭나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서울시 기념물 제16호인 배재학당 동관이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새로 꾸며진 것은 2008년 7월 24일이었다. 1887년에 준공된 이래 유서 깊은 근대 건축물이자 신교육의 발상지, 신문화의 요람으로 손꼽혀왔던 이 건축물이 박물관으로 거듭난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운 영될까? 배재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를 겸임하고 있는 김종헌 초대 박물관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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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interviewee) 김종헌은 고려대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과 한국건축 역사학회 이사를 역임했다. 제1회 꾸밈건축평론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주 연구 분야는 한국 건축사로 양 식사, 기술사, 생활사 등의 다양한 관점을 통해 전통과 근대, 현대를 연속성의 개념으로 풀어내려고 노력하 고 있다. 이러한 개념을 통해 ‘한국건축의 이해’ 디지털 콘텐츠 개발과 안채와 사랑채의 재해석을 통한 재 택근무를 위한 주거 ‘HOMOFFICE 21’를 개발하여 건축 설계 분야로서 특허(실용신안)를 등록했다. 또 한 철골조 공포 시스템(실용신안 등록)을 개발하여 한국적 하이테크 미학의 발전 가능성을 열기도 하였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 M.I.T 대학에서 동서양 건축을 비교 연구하였다. 현재 배재대학교 교수로 있으며, 최근 도코모모 코리아 부회장으로 선임되었다. 저서로는『역사(驛舍)의 역사(歷史)』 ,『대한민국 등 대 100년사(공저)』등이 있다.

ⓦ 이정범 : 주변에 새로 세워진 현대식 건물들

대다수 건축가들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건축

다. 그런 담론의 중심 공간이란 역사적 의의를

과 이 배재학당 건물의 조화가 아름답습니다.

적 공간에 사용자들이 형태를 맞출 것을 강요

살리고 오늘날까지 연장한다는 의미에서 회의

배재학당이 한국적 전통 건물 양식을 가진 것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 건축가들

실이나 세미나실의 비중을 높였습니다.

은 아니지만 준공할 때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

이 전통성을 표현하려는 시도는 단지 외국 건

ⓦ 이정범 : 오늘날 한국인에게 ‘근대’라는 주

직했다는 점에서 근대 한국 건축의 역사를 한

물과 구별하기 위함이나 시각적 흥미를 유발

제는 ‘암울한 것’과 동일한 뉘앙스를 가지고

눈에 보여 주는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는 느낌

하기 위한 형태적 유희로서 이해되어서는 안

있습니다. 아펜젤러가 처음 한국을 방문할 당

이 듭니다.

될 것입니다. 이 배재학당 건물은 서울시 기념

시의 상황도 그랬지만 역사적으로 한국의 근

ⓦ 김종헌 : 이 건물은 한국 근대의 심장부였던

물로 지정된 것에서 알 수 있듯 준공된 지 120

대와 현대는 외세의 간섭과 개입으로 시작되

정동 한 가운데 위치한 데다 대한제국 당시의

여 년이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근대 건축 유

었고 그로 인해 지금은 근대 사회를 회색의 시

외교와 정치, 종교, 교육, 문화 등의 현실을 대

산이라는 점에서 역사성이 있습니다. 또한 날

대로 보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배재

변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이

렵하고 세련된 유리로 이뤄진 주변의 고층 건

학당의 건립 과정을 본다면 당시 고종 황제가

처럼 새롭게 지어진 건축물들이 꽤 많았지만

물들 사이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강력

서양 학문이나 근대식 교육에 대해 상당히 열

지금까지 보존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

한 벽돌 건축의 힘을 내뿜고 있다는 점이 돋보

린 자세로 임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배재학당

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건물은 도심 내 역사

입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전통 건축과 현대 건

건립 당시의 상황은 어땠습니까?

문화 환경에 대한 보존 여부를 둘러싼 화두를

축 사이의 징검다리 구실을 한다는 부분에서

ⓦ 김종헌 : 아펜젤러는 정동에 거처를 마련하

제공하는 문화 유산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는 즉시 이겸라, 고영필 학생에게 영어를 가

심의 물리적 개발보다 문화적 개발에 그 가치

ⓦ 이정범 : 건물 자체로도 역사적인 의의가 큰

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의사가 되려고 했던 그

를 두고 시민들에게 제공된 건축물이라는 점

데 그 내부 공간마저 역사박물관으로 개조해

들은 스크랜턴(William B. Scranton)의 소

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주변에 건립된 배재

새로운 의미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온고지신

개로 1885년 8월 3일부터 아펜젤러의 첫 번

정동빌딩은 고층이면서도 이 배재학당 동관을

(溫故知新)의 미덕을 갖췄으면서도 문화적인

째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 뒤 9월 7일에는 이

보여 주기 위해 지상층을 들어 올려 사선으로

역량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간략히

종운, 오인학을 비롯해 지방에서 상경한 2명

설계했는데 건축가의 이러한 배려가 일반 시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을 소개해 주십시오.

의 학생들도 합류하게 되어 아펜젤러의 제자

민들로 하여금 신^구 건물의 조화가 잘 어울

ⓦ 김종헌 : 이 박물관은 크게 체험교실과 상

는 금세 6명으로 불었습니다. 이 가운데 이종

린다는 느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설전시장 1^2, 기획전시장, 회의실, 소회의실,

운, 오인학은 정부의 위탁을 받아 근대식 교육

ⓦ 이정범 : 지금까지 보존된 배재학당을 통해

세미나실로 구성되었습니다. 박물관 본래의

을 받게 된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아펜젤러가

본 근대 한국의 건축 또는 그 발전 과정에는 어

기능보다는 토론이나 담론을 위한 공간을 많

신식 학당을 열어 영어를 가르치자 고종 황제

떤 관계가 있을까요?

이 가진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소통’

는 1886년 6월 8일, 배재학당이라는 현판을

ⓦ 김종헌 : 과거 우리의 생활 형태를 담아 왔

이라는 주제가 정치적인 이슈로까지 제기되고

내리게 됩니다. 배재란 ‘배양영재(培養英材)’

던 전통 건축은 현대와의 연결이 포기된 채 무

있는데 이 건물이 준공될 무렵의 국제 관계에

의 줄임말로 말 그대로 영재를 길러내는 학당

비판적으로 수용된 근대 건축의 무표정한 상

서도 소통은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배재학당

이라는 뜻입니다. 현판 글씨는 당대의 명필로

자형 건물에 의해 침식되었습니다. 우리의 실

은 교육 기관일 뿐만 아니라 주변국들과 소통

알려진 정학교가 썼고 고종은 이를 현판으로

존적 공간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서구의 건축

하여 한국의 위상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의

만들어 아펜젤러에게 하사했던 것입니다. 그

적 공간이 우리의 삶을 담아 왔던 것입니다. 따

문제를 비롯해 문화, 종교, 정치 등 당시 한국

뒤 아펜젤러는 한국인 건축가 심의석에게 의

라서 이러한 공간의 불일치는 생활상의 많은

이 근대화하기 위한 여러 과제들을 두고 수많

뢰해 벽돌 교사인 배재학당 학사(學舍)를 착공

무리와 불편을 가져오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은 토론과 담론이 줄을 이었던 공간이었습니

해 1887년 준공했습니다. 번듯한 학사가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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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재학당 배치도. ↓↘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전경과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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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후로는 한국인을 비롯해 중국^미국^일본

대의 한국 문인들이 서양 문학을 능숙하게 소

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인 학생들이 다 함께 공부하는 ‘글로벌 학교’

화했었다는 주장을 펼쳐왔습니다. 한국의 현

ⓦ 김종헌 : 그동안 배재학당은 120년 역사를

로 성장하게 됩니다. 고종 황제 역시 직접 10

대 문학의 여명기에 서양 문학이 큰 영향을 주

간직한 외관으로만 빛을 발했습니다. 그러다

명의 학생을 위탁했으며 1895년에는 200명

었다는 것인데 <배재> 교지에 실렸던 작품들

가 내부를 박물관으로 개조하면서 정동의 새

을 선발해 국비로 위탁 교육을 시켰습니다.

을 보고는 자신의 주장에 중요한 근거가 생겼

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휴관

ⓦ 이정범 : 한국인만의 교육 기관으로 그치지

다며 한동안 부들부들 떨 정도로 감격하더군

일(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오전 10

않았다는 사실이 흥미롭군요. 그만큼 용광로

요. 당시 배재 학생들은 예이츠의 시를 비롯

시~오후 5시까지 언제든지 우리 박물관을 방

와 같은 개방의 시기였다는 것을 반증하는 일

한 서양의 문학 작품을 번역해 교지에 실었는

문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의 실제 주인인 시민

이 아닐까 합니다.

데 맥캔 교수는 이를 근거로 배재학당을 통해

들의 애정 어린 시선과 발걸음을 기대합니다.

ⓦ 김종헌 : 말 그대로 초기의 배재학당은 국적

소개되었던 영시와 영문학이 한국 문학에 상

건축사학자라는 입장에서는 우리 박물관의 문

과 연령, 신분을 모두 초월해 학생들을 선발했

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확신을 하게 된 것입니

화적 가치를 보여 주려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

습니다. 수업 또한 한문과 교리 강독(한글)을

다. 실제로 김소월은 모파상의 소설을 번역해

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시각을 좀 더 다

제외한 모든 과목은 영어로 진행되었습니다.

싣기도 했는데 그런 작업을 통해 자신의 시어

양화하고 그동안 간과했던 사실을 밝히는 공

그야말로 120년 전에 이미 글로벌 교육을 시

(詩語)를 보다 한국적인 정서에 맞게, 아름답

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실제로 관람객 중에

작했던 것인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아펜젤러

게 가꾸지 않았을까 합니다.

는 외국의 연구자들이 꽤 많습니다. 해외에 나

가 단순히 통역관이나 학교의 인재를 기르기

ⓦ 이정범 : 아펜젤러의 교육관은 무엇이었습

가 보면 한국의 문화 유산 또는 건축사에 관한

위해 배재학당을 설립한 것은 아니라는 부분

니까?

자료가 거의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일반적으

입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한국의 고유 문화와

ⓦ 김종헌 : 아펜젤러는 전인교육(全人敎育)을

로 우리의 의식 속에는 전통적인 것, 문화재 등

정신 사상을 존중했습니다. 그런 바탕 위에 근

중요시했습니다. 따라서 영어는 물론 생리학,

을 부담스러워하는 반면 신도시, 현대적인 건

대 문명의 지식을 쌓고 기독교적 진리를 실천

화학, 음악, 미술, 체육, 연극 등 다양한 과목을

축물에 대해서는 새롭고 참신하게 여기는 경

하며 교회와 학교, 국가에 이바지할 수 있는 문

개설해 인재를 양성했던 것이죠. 당시로서는

향이 있습니다. 좋은 건축물의 기준을 서양에

화인을 양성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 목적

상당히 진보적인 수업을 진행했는데 이를테면

두다 보니 한국의 전통 건축물, 문화를 부정하

으로 그는 지식 계층에서 한글을 적극 사용하

생리학의 경우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머리를

는 경우도 많죠. 하지만 역사와 현대인의 삶은

며 개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에 따라 주시

표본으로 삼아 교육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

단절된 게 아니라 어떤 연속성을 가지고 있습

경 등의 한글 학자를 비롯해 김소월, 나도향 등

펜젤러가 더욱 중요시했던 것은 민주적인 사

니다. 이런 측면에서 배재학당과 같은 근대 건

의 훌륭한 문인도 배출된 것입니다. 이처럼 배

고를 기르는 일이었습니다. “크고자 하거든 남

축물은 우리 역사와 현대를 이어주는 매우 중

재학당이 한글 문화와 근현대 문학의 산실이

을 섬기라.”는 가르침을 배재학당의 교훈으로

요한 연결 고리라 하겠습니다. 현대인의 생활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내세운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에서 전통적인 요소나 팩트(fact)를 끝없이 재

ⓦ 이정범 :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판본이 전

신분 질서가 분명하던 때라 일부 학생들은 하

가공하고 접목시키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를

시된 것을 보았습니다. 소월과 당시 한국 문학

인을 거느리고 등교하고는 했습니다. 하인들

착실히 구현하려고 합니다.

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책가방도 들어 주고 잔심부름도 하는 식이

ⓦ 이정범 : 재미있고 유익한 말씀 감사합니

만…….

었죠. 하지만 아펜젤러는 그런 학생들에게 “하

다.

ⓦ 김종헌 : 김소월은 1919년 오산학교 중학

인을 데리고 다니지 않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

ⓦ 김종헌 : 감사합니다.

부를 마치고 1922년 배재고등보통학교로 편

라며 따끔하게 충고했습니다. 또한 학당 내의

입했습니다. 1923년에 발행한 교지 <배재>에

모든 사안에 대해 충분한 토론과 회의 과정을

는 소월의 시가 10여 편이나 실려 있는데 이

거쳐 학생들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민주 교육

후 <진달래꽃>은 1925년 매문사(賣文社)에

을 실시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

서 간행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초판

에게는 학당 내에 설치한 붓방, 구둣방, 인쇄

본은 현재 국내에 2부 정도 남았다고 하며 그

소 등에서 일하게 하여 학비를 스스로 벌게 했

중 한 부를 저희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

습니다. 당시 배재학당 인쇄소는 <협성회보>,

다. 박물관 개관을 준비할 무렵, 하버드 대학에

<독립신문>, <매일신문>을 제작했는데 나중

서 한국 문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자타가 공인

에는 삼문출판사로 발전했습니다.

하는 김소월 전문가인 데이비드 맥캔(David

ⓦ 이정범 :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이 개관한 지

McCann) 교수가 <진달래꽃> 초판본을 한

반 년 정도 지났습니다. 다시 새해가 밝았는데

장, 한 장 조심스레 넘겨보며 감회에 젖었던 모

앞으로 이 박물관이 어떻게 운영될지 궁금합

습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맥캔 교수는 1920년

니다. 아울러 건축사학자로서의 포부나 희망

인터뷰어(interviewer) 이정범은 서울예술대학 문 예창작과를 졸업했다. 한때 창작 활동에 마음을 기 울이다가 몇 해 전부터는 우리 역사를 탐구하는 일 로 한눈을 팔게 되었다. 그 결과물로 한국 근대사와 독립 운동 과정을 다룬『수원화성과 정약용』 을비 롯한 ‘다큐 동화로 만나는 우리 역사 시리즈’(전 8 권)를 썼으며『술술 넘어가는 우리 역사』 ,『초등 한 국사 생생 교과서』 ,『맞수 한국사』 (공저) 등의 저서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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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당동 주택 | 이손건축 <주택 계획안 100선 06>

고양시 덕양구의 토당동에 위치한 대지는 자연 촌락의 하나인 삼성당에 자리 잡고 있다. 삼성당 마을은 최근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되었고 제1종 지구단위계획지역으로 지정되었다. 토당동은 농촌 커뮤니티의 고즈넉함과 도시 주변부의 역동성이 공존하는 곳이다. 삼성당은 이곳 한가운데 섬 처럼 위치한 한적한 마을이다. 대지는 삼성당을 가로지르는 12m 도로에서 삼성교와 직교하는 소로에 접해 있다. 서측 언덕을 등지고 동측 하천 을 마주하고 있는 배산임수의 형국을 띄고 있으나, 하천과 주변 건물은 열악한 실정이다. 우리가 현장을 찾았을 때 계획 대지의 하부 레벨에는 기 존 건물이 폐허가 된 채 있었고, 상부 레벨의 대지는 텃밭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은 흔적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으며, 주변 건물들 또한 허름한 주택과 창고로 이용되고 있었다. 대지 전면에 흐르는 하천 또한 정비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어 대지에 대한 첫인상은 산만했으나 대지의 상부 레벨에서 들녘으로 드넓게 펼쳐진 조망은 계획지의 잠재력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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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은 1955년생으로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을 졸업하고, 로마대 건축대학원에서 수학한 뒤 나폴리의 스튜디오 프란체스코 베네치아에서 실무를 쌓았다. 손진은 1959년생으로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베네치아 건축대학에서 수학했다. 이후 나폴리의 스튜디오 프란체스코 베네치아와 마케도니아의 스콥피 에 건축사무소에서 실무를 쌓았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에 출강 중이다. 이손건축의 대표작으로는 천사유치원(안양), 안상규 스튜디오(헤이리 아트밸리), 손정완 패션사옥 증축 리모델링(논현동), 아란유치원(용인), 운문유치원(경산). 발 트하우스(용인), 양주시 천경자 미술관(양주) 등이 있다.

↑ 토당동 주택 배치도와 대지 단면. ↗→ 토당동 주택 스케치. ↖ 토당동 항공 사진. ← 토당동 현황 사진.

두 개의 필지 ⓦ 대지는 동서로 6m 레벨차를 가지는 두 개의 필지로 이루어져 있다. 형태 또한 서로 다른 축을 갖는 이형의 필지들이다. 이로 인해 상부 레벨로의 원활한 진입과 대지 윤곽에 걸맞은 건물 배치 문제의 해결이 쉽지 않았다. 프로그램 ⓦ 건축주는 페인팅에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아티스트인데, 부인과 딸 둘을 둔 4인 가족을 이루고 있다. 건축주는 이 ‘스튜디오-하우 스’의 신축을 통해서 꼭 이루고 싶어 했던 것이 있었다. 젊음을 바쳐 그려온 수천 점의 페인팅과 드로잉을 자신만의 공간 속에 펼쳐 놓고 작업하는 것이었는데, 건축주의 이런 요구는 프로그램의 범위를 넘어서서 건물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었다. 건축주는 주변 상황에 대한 변화 가능성을 예 상하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1층에 수익 시설인 창고를 두어 차후에 용도 변경을 통해 대응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벽 ⓦ 주택과 작업실, 그리고 수익을 위한 임대형 창고, 세 개의 서로 다른 성격의 프로그램을 연결하고 분리하는 것이 주요 과제였으며, 우리는 세 개의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긴 벽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프로그램의 구분과 연결은 긴 벽이 갖는 구획과 방향성에 따라 프로젝트 전반에 표 현되었다. ⓦ 유도하는 벽과 에워싸는 벽. ⓦ 벽이 분리되어 형성되는 공간과 벽이 만나서 형성되는 공간. ⓦ 벽의 엇갈림에 의해 형성되는 어둠과 빛. 상부 레벨에 앉혀진 주택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벽은 실내 공간과 외부 공간의 성격을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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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 ⓦ 건축주가 요구한 임대형 창고를 2개소로 배치하였으며, 전면부 창고는 향후 용도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콘크리트 블록 조적벽으로 외 벽 마감을 하였다. 진입 계단은 넓은 디딤판을 가진 여유 있는 공간이며 중간 레벨의 외부 공간으로 연결된다. 중간 레벨의 외부 공간에서 주택 내 부와 외부로 연결되는 두 개의 계단과 함께 두 개의 벽면이 동선을 유도한다. 많은 책을 소유하고 있는 건축주의 요구에 의해 긴 책상과 책장이 있 는 서재 겸 작업실을 구성하였고, 양측으로 하천과 언덕을 마주하는 테라스를 두었다. 언제나 전시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는 긴 벽면을 고려하였다. 주택은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을 대지 선형에 따라 구분하여 배치하였고, 긴 복도 벽면의 변화와 천창을 통해 방향성과 빛의 유입을 시도하였다. 입면 ⓦ 전체적으로 세 개의 매스의 연결로 이루어져 있다. 주택의 사적 영역이 자리한 후면부 매스는 전면 두 개의 매스와 독립되며, 긴 벽을 통 해 배경을 이루고 있다. 외부 마감은 하부 노출 콘크리트, 상부 적벽돌로 마감하여 안정적인 느낌을 갖게 하였고, 내부 마감은 노출 콘크리트에 나 무 패널로 계획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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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당동 주택 1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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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당동 주택 2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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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당동 주택 동측 입단면. ↓ 토당동 주택 남측 입단면.

토당동 주택 건축 개요 ⓦ 대지 위치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토당동 647-8번지 외 | 지역 지구 : 제1종 일반 주거 지역, 제1종 지구단위계획구역 | 용도 : 단독 주택, 제2종 근생 | 도로 현황 : 10m 계획 도로 (현재 4m 미만)|대지 면적 : 1370㎡ | 건축 면적 : 541㎡ | 연면적 : 899㎡ | 건폐율 : 39.5% | 용적률 : 65.62% | 규모 : 지상 2층 | 구조 : 철근 콘크리트조 | 외부 마감 : 노출 콘크리트, 적벽돌, 콘크리트 블록 | 주차 대수 : 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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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적 산책로 <WIDE PRO 젊은 건축가 FILE 5 | 정수진>

프롤로그 ⓦ 건축은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다. 공간은 무엇이 되기 위한 스스로의 의지, 조건, 요소, 건축가의 해석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공 간은 자신의 잠재 능력과 사람의 지각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평면은 공간 상의 인간의 점유이다. 우리는 눈으로 앞을 보고 두 발로 나아간 다. 지각은 연속적이며 시간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심포니와 같은 시각적 반향이며 사건들의 연속이다. 시간(temps), 지속(durée), 잇달음(succéssion), 연속(continuité)이 건축을 이루는 요소들이다.”(르 코르뷔제) 코르뷔제의 말처럼 공간의 체험은 공간의 이동을 의미하고, 이것은 시 간에 따라 나타나는 상호작용의 시퀀스—항상 움직이는 사람과 그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공간—를 의미한다. 사람과 공간의 가장 중요한 관 계는 시퀀스에서 주고받는 다양한 감각적 대화이다. Promenade Architecturale ⓦ <건축을 향하여>에 언급된 Aquatania, 천정 몰딩, 파르테논의 열주 등은 볼륨의 깊이를 표현하는 동기가 된다.( 그림 1) 새로운 퓨리스트 그림들에서 보이는 것처럼 대상은 큐비스트의 그것과는 다른 질서정연한 공간의 수평^수직적 켜를 형상화하는 3차원 적 공간 구성법을 보여 주고 있다.(그림 2) 이런 다양한 공간적 켜들의 꼬리를 무는 연속적인 구성과 깊이에 관한 공간적인 프로세스가 움직이는 시각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의 흐름으로 표현되는 것이‘건축적 산책로’이다. “기후는 나의 주제이다. 비, 뙤약볕, 눈, 바람. 주위를 둘러보고 취하는 것은 그 기후이다. 정오의 사막, 모든 것이 투명하게 사라져 버릴 때. 발걸음은 나의 호기심을 위한 자연스러운 행로이다. … 걷는다는 것은 피안 을 향해 어디든 가게 하는 최고의 수단이다. … 여행이란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아니라 장소의 고유한 향기의 변화를 체험하는 것이다.”(Bernard Plossu)(그림 3) Plossu는 사진 속의 시간의 여정에 따라 관찰자를 이동하게 함으로써 그가 예상하는 장소의 향기를 따라 끝없이 빠져들게 한다. 그가 사용하는 50mm 렌즈는 대상들을 자연스럽게 흔들거나 모호한 경계를 만듦으로써 순간들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게 영원을 향하여 한걸 음 한걸음 다가서게 하고 있다.(그림 4) 반면 ‘Egypte’에서는 대상이 평면에 투영되고 있는데, 이는 단계적 음영으로 표현된 공간의 상관 관계를 나타냄과 동시에 보이지 않는 대상에 관한 끝없는 상상을 하게 한다. 앞서 언급한 Aquatania는 새로운 공간 구성의 국면을 내포하고 있는데 깊이 를 가진 공간은 그 끝까지 확장되고 있지만 일순간 그 끝은 4개의 삼각형 또는 ‘X’자 구성을 가진 사각의 평면이 되기도 한다.(그림 5)

(그림 1) Aquatania / Villa Savoye / Unite d'Habitation - Le Corbus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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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은 프랑스 건축사로 영남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홍익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프랑스 Ecole d'Architecture de Paris-Belleville에서 유학하 고 돌아와 현재 에스아이(SIE) 건축 대표로 있으며,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림 2) 접시더미와 책이 있는 정물 / 분석도 / Villa Stein - Le Corbusier

(그림 3) Sénégal - Bernard Plossu

(그림 4) 스트롬볼리의 동틀 무렵 Françoise와 Joaquim Bernard Plossu

(그림 5) Egypte - Bernard Plossu / 무한성장미술관 - Le Corbus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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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Bruxelle - Henri Cartier-Bresson / Agadès, Niger - Bernard Plossu (그림 6) Castlle, Espagne - Bernard Plossu

Promenade visuelle ⓦ 공간에서의 시간은 단지 연속적인 흐름뿐 아니라 압축된 시간의 응집을 표현하기도 한다. Aquatania의 역설처럼 3차원 적 볼륨이 일순간 ‘X’자의 2차원적 면이 되거나, ‘Egypte’의 실재와 허상의 반전, 그리고 퓨리스트 그림의 투상법이 여전히 현실에서 불가능한 다 시점을 동시 투영하는 것이 시간의 응집을 표현하고자 하는 좋은 예이다. “나에게 사진은 의미와 사실 사이의, 이것과 저것 사이의, 실재를 설명 하는 시각적 형태들 사이의 엄격한 조직을 순간적이고 동시적으로 재인식하는 것이다. 끊임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내^외부 두 세계 사이에 존재 해야 하는 균형, 그것이 바로 세상과 우리가 대화하는 방법이다.”(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브레송의 사진은 특별한 집중 대신 관찰자의 시선을 분 주하게 만든다. 각 요소들의 강한 긴장과 균형은 독립적인 실체를 확보하고 어떠한 대상도 걸러 내거나 강조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에게 동등한 의 미의 무게를 가지게 한다.(그림 6)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주제가 있다. …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어떤 것의 본질을 추려내는 방법은 무수히 많 지만, 그것을 일일이 설명하려 하지 말고 그대로 남겨두자. 사진은 실재하는 사물들의 세계 속에 내재하는 리듬에 대한 인식을 다룬다. … 한 장의 사진에 있어 구성은 눈에 띈 요소들의 동시적 결합과 유기적 종합의 결과이다. 사진은 움직임 사이에서 균형의 순간을 잡는 것이다.”(앙리 카르티 에 브레송)(그림 7) 그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객관적인 눈과 본질적인 사고의 판단에 의해 포착되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 ‘결정적인 순간’이다. 흐트러진 세상의 모든 것들은 결정적인 순간 이후 불협화음을 멈추는 동시에 나직이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기 시작한다.—흘러가 는 순간을 의미 있는 포착으로, 무질서에서 자유로, 비구축에서 구축으로, 프레임에서 현실로, 현실에서 프레임으로. 각각의 대상이 갖는 본질, 즉 결정적인 순간은 회화적 절정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에 관한 진실을 일깨우는 이야기의 절정을 포착하는 것이다.(그림 8) “사진은 중재하 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돌려 주는 것이다.”(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림 8) Hyères, France - Henri Cartier-Bresson

에필로그 ⓦ 건물은 정해진 장소에 고정되어 있지만 그에 개입된 복잡한 상황은 감정 이입이 수반된 공간의 사건을 발생시키는데, 이것은 일정 하고 순차적이기보다는 가변적이고 동시적이고 우연적인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공간이 이런 복합적인 상황을 통합하거나 식별할 수 있을 때 스스로 살아있는 가치를 발휘하며 스스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Architecture Parlant. 말하는 건축은 질서정연한 자리 잡음뿐 아니라 자체 의 잠재성을 활성화하고 조화로운 균형을 이룰 때 전체적인 이야기가 더욱 풍부해진다. 이것이 건축적 산책로에 대한 시각적 산책로이며, 시각 적 동시성이라 정의한다.(그림 9) “이성과 감성의 동시적인 노력이 바로 생각을 실체화하는 것이다.”(르 코르뷔제) “감동은 진실되어야 한다. 그 것은 일시적이거나 우연이면 안 된다. 우리가 보는 그것이 감동이며, 그것은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명백함이다. 미래도 과거도 아닌 순간의 동시 성 속에 우리는 존재한다.”(앙리 시리아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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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센느 영화학교(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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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웅원 >

Wide Architecture Report no.7 : january-february 2009


윤웅원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라빌레뜨 건축대학에서 디플롬을 받았다. 1996년 명동성당 축성 100주년 기념 현상 설계 우수작에 당선되어 그 해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참여했다. 귀국 후 3년의 실무 기간을 갖고 2001년 제공건축을 김정주와 같이 설립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명필름 사옥 (2002), 정릉 근생(2004), 정릉 주택(2004), 마로니에 미술관 파빌리온이 있고, 신사동 성당(2001), 노들섬 오페라 하우스(2005) 등의 현상 설계 참여작이 있다. < 건축과 나>(2001), <이것은 전원주택이 아니다>(2002), <한국건축의 자생>전(2003), <롤링스페이스>전 등의 전시에 참여하였으며, 이밖에도 김지운 감독의 <조 용한 가족>(1997) 세트 디자인과 단편 영화 <비>(2005)를 제작(제1회 서울실험영화제 상영)한 바 있다.

작용과 반응 ⓦ 내가 권투에 열광하는 부류는 아니지만 어쩌다 한번 가본 권투 경기장에는 텔레비전과 달리 그 싸움으로부터 흘러나와 내 피부 끝에서 느껴지는 ‘냄새’가 있었다. 단어의 의미에 맞지 않는 ‘피부가 느끼는 냄새’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것이 시각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그것 은 바로 그 순간 그 공간에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공기 속의 떨림, 바로 그 ‘현재적 정서’다. 가끔 격투기를 하는 선수들의 몸짓에서 어 떤 심미적 의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용수의 동작보다 더 아름다운 제스처를 볼 때가 있다. 그것은 상대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서로 변화하는 상황에 빠르게 반응하며 생겨나는 의도되지 않은 제스처다. 즉 움직이는 상대방에 반응하는 것이다. 샌드백이 아닌 상대방은 언제나 움 직이고 나는 그 변화에 끊임없이 반응해야 한다. 서울같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도시에서 건축을 한다는 것은 정형화된 형식이나 형태를 찾는 것보다는 특정한 상황에 반응해서 그것들 사이의 균형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위 한 필요 조건은 건축에 존재하는 어쩌면 관습적인 태도, 공간과 스타일에 대한 표현적 태도를 배제하고 순수한 주어진 상황 속의 현재성에 뛰어 드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도시계획 프로젝트—톱밥 인분 변기 ⓦ 홍대 앞 365거리는 걷고 싶은 거리가 끝나고 주차장 거리가 시작하는 경화당 금은방 부터 ‘수’ 노래방이 있는 앞 오거리까지의 500m에 이르는 건물 군을 부르는 명칭이다. 대부분 낡고 노후한 1970년대 건물들로 홍대 앞 상업 건 물 신축 바람을 피해 생존하고 있다. 이 건물들의 집단적인 모습은 독특한 외관을 형성한다. 아마도 좁고 긴 땅의 모양과 임의로 증축한 무허가스 러움과 홍대 앞 미술 작업실의 기억으로 남은 페인트 색 외벽들 그리고 당인리 발전소로 향하던 철길이 사라지면서 전면으로 드러난 건물의 숨겨 졌던 뒷모습에 기인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한때 무허가 건물들로 천대 받던 건물들이 그 무허가스러움으로 인해 각광을 받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다. 인디밴드와 클럽들과 ‘희망시장’으로 대표되는, 소비되는 예술은 문화 생산지로서의 홍대를 변화시켰다. 서울에서 사람을 모으는 장소는 돈 이 되고, 돈이 되는 동네는 임대료가 상승한다. 상승된 임대료는 홍대 앞에 존재하던 생산자로서의 문화 행위자들을 밀어내고 있다. 365건물은 이런 상황 속에 존재한다. 홍대 앞 365번지 건물들을 좋아하는 365모임은 <나는 이 건물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전시(공동 전시, 서울 서교동 2006) 시작을, 작업실을 오픈 하는 것과 도시 농업으로 시작했다. 예술이 아니라 농경이다. 도시에서 농경을 하는 것은 사실 낯선 행위는 아니다. 나이든 노년 인구의 대부분은 주변 자투리땅에 소규모라도 농사를 한다. 우리는 참외와 호박과 수세미를 키우고 생산된 참외와 호박 등을 365지 역 주민들과 같이 나누었다.우리는 이러한 행위가 새로운 도시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연장되길 바랐다. 단순히 예술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홍 대 앞 365건물들이 도시에서 무언가를 생산하는 장소이기를 바랐다. 그것을 통해서 도시의 삶을 성찰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도시 농업과 인분 퇴비 변기이다. ← ↙ → 인분 변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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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 다차 ⓦ 50만의 도시가 30년을 목표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곳에는 다른 여러 장소들에서 온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다. 이 도시를 만드는 30년의 기간은 도시의 중심에 형성될 공원이 완성되는 기간과 동일하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공원과 도시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상이 된다. 중심 이 없고 민주적이고 주민참여를 상징하는 링 모양의 도시는 중심 공원이 진정한 시민 참여 공원으로 완성될 때 가능하다. 이 프로젝트는 행정복 합도시 중심 공원을 위한 프로젝트이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홍대 앞 365프로젝트에서 시도한 도시농업의 아이디어를 갖고 시작했다. 이 50 만의 도시계획은 뉴욕의 센트럴파크보다도 더 큰 공원을 계획하고 있다. 가능한 미래의 공원 이용자 수에 비해 지나치게 거대한 공원을 계획하 기 위해서 우리는 공원의 프로그램에 도시농업을 도입했다. 농업이 공원과 다른 차이점은 그것이 개인적이고, 일 년을 단위로 하고, 실제로 노동 을 하고, 무언가를 생산해낸다는 것이다. 각각의 가족은 공원의 일부분을 분양(입양)받아 농업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무 한 그루를 심고, 파빌리 온을 만들고 농사를 짓는다. 그리고 그것이 공원을 자라게 한다. 우리의 모토는 “one family, one garden, one tree”이다. 중심 공원은 길과 위 락 시설과, 시민 농장 그리고 휴경 지역으로 이루어진다. 휴경 지역은 기능적으로는 미래의 이용을 위해 의도적으로 남겨진 부분이고 디자인적으 로는 계획되지 않는 부분을 공원에 도입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원과 휴경지와 수많은 농지들이 만나서 끊임없이 갈라지는 길이 만들어내고 수많 은 산책길이 형성된다. 잔디 광장과 숲과 경작지와 수로와 야채 시장과 빈 공터로 이루어진 공원이 완성된다. 그리고 이 공원은 변화하고 살아있 고 생산하는, 새로운 도시의 중심이 된다. ⓦ

←↑↗→ 어반 다차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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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7호 | 와이드 칼럼 사라지는 것에 대한 조가(弔歌) | 김정동 Wide Architecture : widE Edge column no.7 : january-february 2009

근대 문화재에 대한 훼손 작업이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도처에서 벌어

도괴 사건, 한강 다리 폭락 사건도 있었다.

지고 있다. 근래 수년 동안 인지도 높은 건물 여러 채가 사라졌다. 유서

1996년 시설안전기술공단(KISTEC)이 중심이 되어 안전 진단 규정

깊은 근현대사의 현장도 사라졌다. 왜 우리 현대사의 현장인 궁정동 안

이란 것을 만들었다. 다섯 등급으로 나눠 안전 등급을 매긴 것이다. 주

가(安家)를 부셔 버려야 했는가. 산업사(産業史)를 대변하는 해방 직후

로 아파트, 상업 시설 등에 적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쨌든 구조적으로

의 영등포 공장 지대도 다 사라지고 아파트로 변해 버렸다. 옛 군부대 막

취약한 건물을 잘 보강해서 지켜내는 것이 기본 목적이었다.

사도 거의 다 사라졌다. 이제 모두 새 공장과 새 부대일 뿐이다. 이 모두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안전 진단 기준이 근대 건축물, 문화재 건물에도

우리 건축에 대한 몰가치적 인식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적용되기 시작했다. 건축물 소유주가 진단을 요구했다. 불행한 일이지

정부나 공무원들이 우리 역사의 기록을 부숴 버리는 것은 참으로 한심

만 소유주의 목적에 맞는 등급이 요구되기도 했다. 철거를 합리화시키

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건물을 철거하는 것에 전문가의 의견은 무시

는 방편으로 악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조적조 근대 건축

되고 정책 결정자, 즉 건축의 아마추어가 헐라, 말라 하는 것은 어쭙잖

물의 경우는 보통 C, D급이 보통이다. 그 등급 결과를 당사자에게 보여

은 일이다.

주며 건물 철거를 요구하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

건물을 부수는 것은 국민 정서에도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흔한 말로 건

안전성 평가 등급의 근본 취지는 보강 조치가 우선이지 철거가 우선이

물은 그 시대사의 얼굴이다. 우리 후손들은 그 건축물의 현장을 통해서

아니다. D, E등급 받았다고 철거하라 말은 없다.

만 역사의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도시의 근대 건축물은 아무리 식

국유재산법은 국유재산을 훼손할 경우 훼손자를 벌하는 조항을 만들어

민지 시대의 것이라도 우리 역사가 묻혀 있는 곳이다.

놓고 있다. 국유재산법, 제5조, 52조, 58조가 그것이다. 그런데 그 처벌

유럽 강대국 속에 낀 벨기에는 좋은 사례가 된다. 브뤼헤(Bruges)는 유

조치란 것이 기껏해야 2년 이하의 징역 혹은 7백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럽 강국(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들이 거쳐 간 흔적을 치부로 생각해서

불과하다. 건물을 멸실(滅失)시키는 자가 이 법을 염두에 둘리가 없다.

없애기보다는 오히려 ‘성숙한’ 마음으로 그것들을 문화유산으로 삼고

근대 건축물의 층수는 보통 2-3층이다. 고층 건물도 없다. 물론 안전이

있다. “당신네 선조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이런 일을 벌였다”고 은연중

우선이지만 보강해 고쳐 쓰면 되는 것이다. 근대사 시기에 세워진 건축

에 알리고 있는 것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객관화해 놓고

물은 전통 건축물에 비해 결코 싸구려 건물이 아니다. 우리 땅의 한 시대

있는 것이다. 이 나라에는 오히려 다국적 문화가 잔재해 있어 독특한 볼

사를 담은 현장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등록문화재 제도가

거리가 있다. 역사상 침략만 받아온 우리나라도 지나간 흔적을 얼마든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세금으로 존치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지 문화자원화 할 수 있다. 민족정기는 지난번 대통령의 말대로 건물을

12월 현재, 등록문화재는 422건이다. 이 중에서 동산 52건을 제외하면

부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건조물은 370건이 된다.

필자가 관계 당사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이 건물은 오래된 건

그런 문화재로 등록된 건축물마저 지금 도처에서 훼손되고 있는 실정

물이라 부숴도 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 건물을 너무나 폄훼하는

이다. 서울시청의 경우도 그 예이다. 현 서울시청 건물은 등록문화재인

말이다. 건물도 사람과 같아서 고쳐 가며 써야 한다. 그렇지 않고 오래

데 앞으로 새 청사를 지으면서 훼손될 상황에 놓여 있다. 그 좁은 터에

갈 수 있는 건물이란 아예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큰 규모의 새 청사를 세우려는 의도도 알 수 없지만, 발표된 안을 보

몇 년 전 서울 정동 소재 정동제일교회는 이 교회가 위험하다며 과잉 안

면 기존 문화재 건물도 새 건물의 규모에 압도되어 초라해질 것이 뻔하

전 진단을 한 예가 있다. 물론 그 결과는 철거였다. 역사성과 시간성에

다. 새 건물이 들어서면 익숙해진 건물은 존재 의미를 잃어버리게 될 것

의미가 붙은 이 붉은 벽돌 교회는 헐어야 될 건물이 되고 말았다. 종탑

이다.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도 철거하고 이제 국적 없는 건물을 세우

이 트위스트 되었고 목재 트러스가 손상되었다는 게 이유다. 나의 대답

려 하고 있다.

은 간단했다. “그러면 고쳐 쓰면 되지 않는가.”

우리는 아직 오래된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전자 제품처럼 새로운

그러면 안전 진단이란 무엇인가. 1990년대 초, 노태우 정권 때 서울 남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건축물은 옛 것과 새 것이 어우러질 때 더

쪽 신도시에 대량으로 아파트가 세워졌다. 그런데 소위 바닷모래가 사

좋지 않은가. 만에 하나 부술 때가 되더라도 기록은 잘 만들어 내고 해

용되었다고 하여 여론이 들끓으면서 아파트 붕괴의 걱정거리가 생겼

야 할 것이다. ⓦ

다. 이때 안전 진단이란 하나의 장르가 뜬 것이다. 건축 쪽에서도 구조

글 | 김정동(본지 발행편집인 고문, 목원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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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학회, 교수, 업체를 중심으로 바빠지게 되었다. 마침 삼풍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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