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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segae Starfield Hanam 신세계 스타필드 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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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WIDE #54

CONTENTS

PUBLISHER’S COLUMN

건축가 승효상

아! 대한민국

[4]

[21]

PROFILE EDITORIAL

[22]

스케일 — 일원一元 과 다원多元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는 이원二元 의 감각

SCALE

[25]

[29]

1 완결하는 2 조율하는 WIDE # 54

3 인식하는 4 통합하는 5 근거하는 6 기록하는 INTERVIEW

경기대 교수 /

[74]

<건축평단> 편집주간 이종건

DRAWING

[79]

수졸당

퇴촌주택

수백당

모헌

수눌당

말리부주택

노헌

청고당

와헌

논산주택

시경루

수우재

INTERVIEW

[96]

EPILOGUE

34

[121]


승효상

건축가

승효상

35


PUBLISHER’S COLUMN

아! 대한민국

PUBLISHER’S COLUMN

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 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 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 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 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 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 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 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 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 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 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 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 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 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 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 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 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말

WIDE #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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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발행인 전진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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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INCHEON

건축사, 건축문화 가치 재창조

기간

2016.11.15(화)~17(목) 메인행사

주최

장소

인천 송도컨벤시아

2016.11.16(수) 14:00

대한건축사협회, 인천광역시

주관

대한건축사협회 인천광역시건축사회


A

Win rege


A Thousand City Plateaus Winner of International Idea Competition for urban regeneration of Jamsil Sports Complex

UnSangDong Architects


34

ARCHITECT SEUNG H SANG

INTERVIEW


승효상

건축가

승효상

35


2016년 9월 13일은 그가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city architect로서의 임기를 마치는 날이었다. PROFILE

그 역할에 어울리는 사람이 그뿐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우려 속에 연임을 전망했고, 그에 대해 냉소적인 사람들은 의혹 속에 연임을 전망했다. 그리고 그는 정해진 날,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그는 사람들 속의 ‘선한 의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시스템’을 믿는다고 했다.

ARCHITECT SEUNG H-SANG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작업에 몰두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22


그는 2014년 서울시의 첫 번째 총괄건축가로 임명됐다. 서울역 고가 공원, 한강 노들섬, 잠실종합운동장, 세운상가 일대 도시재생 등 굵직굵직한 사업들의 구상과 프로필

실행이 시작됐지만, 총괄건축가의 이름이 앞에 있는 경우는 없었다. 2013년 서울시 건축정책위원장으로

‘서울시 건축 선언’을 이끌어낸 것은 지자체 행정 안에 건축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2011년 중국 예술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 (1957–)와 함께 총감독으로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이끌었다. 2009년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설계했다. 같은 해 그의 두 번째 건축론인 #지문$(열화당)이 출간된다. 2008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로 활약했고,

2007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2007년에서 2005년 사이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현상설계(2007), 대장골 주거단지 마스터플랜(2006), 아시아문화전당 현상설계(2005) 등 큰 규모의 작업들이 건축가

진행됐지만 모두 실현되지 못했다. 다만 ‘지문地文 /

승효상

landscript’이라는 그의 생각을 구체화하는 과정으로 중요한 시기였고, 2004년에서 2002년 사이 베이징 차오웨이 소호(2004), 휴맥스 사옥(2002) 등 규모 있는 프로젝트들을 실현시키고 있었다. 이미 그의 작업 무대 또한 한국에서 중국으로 넓혀져 있었다.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다. 건축가로서는 최초였다. 같은 해 미국건축가협회의 명예 펠로우Honorary Fellow가 됐다. 1999년 설계하고 2000년 완공된 웰콤시티로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한국건축가협회상 특별상, 두 번째 김수근 문화상을 수상했다. 이 프로젝트는 ‘어반 보이드urban void’ 개념, 새로운 마감재료인 코르텐 등과 함께 건축 대내외적으로 이슈와 활력을 불어넣었다.

23


2000년 베니스비엔날레 초청작가로 참여했다. 1999년 #지혜의 도시 지혜의 건축$(서울포럼)이 출간됐고, PROFILE

파주출판도시를 ‘지혜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코디네이터로 합류한다. 1998년 북런던대학(현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의 객원교수를 역임하고 서울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가르쳤다. 수백당으로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96년 2월, 건축에 관한 그간의 생각을 정리한 #빈자의 미학$(미건사)이 출간됐다. 이 책은 2016년 10월,

20주년 개정판(느린걸음)으로 복간됐다. ‘빈자의 미학’이라는 말과 생각의 영향력은 그가 행하는 영향력과 함께 성장, 성숙해온 것처럼 보인다. 1994년 서울건축학교SA 운영위원으로, 1993년 건미준(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일원으로 참여했다. 1993년 수졸당으로 김수근문화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했다. 1992년 4.3그룹

ARCHITECT SEUNG H-SANG

건축전시,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을 통해 자신의 건축관인

‘빈자의 미학’을 소개했다. 그리고 1990년 4월 3일 결성된 ‘4.3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1989년 건축사사무소 이로재履露齋 를 개설했다. 1986년 스승의 타계 이후 3년간, 건축가 김수근 없는 공간연구소의 대표이사로 근무했다. 1982년에 다시 공간연구소로 복귀하기 전 1981년부터 1982년까지 오스트리아 마차트 뫼비우스 및 파트너Marchart Moebius und Partner에서 근무했다. 1980년부터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에서 수학했다. 같은 해 그는 ‘전통성과 현대적 동시대성에 근거한 한국주거형식의 제안을 위한 개념에 관한 연구’로 서울대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4학년인 1974년부터

1980년 유학 전까지 공간연구소에서 근무했다. 1971년 부산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공과대학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 1952년 생, 건축가 승효상.

24


승효상

스케일 — 일원一元과 다원多元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는 이원二元의 감각 ­

건축가 승효상

35


EDITORIAL

글. 편집장 이중용 1992년 12월 10일, 같은 달 치러진 43그룹의 건축 전시와

얻는 대신, 현실과 대립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세상에 던지고

1992)이 단행본으로 출간됩니다. 책 내용은 14인 건축가

반대로 생각합니다. ‘한 시대의 사회에 널리 펴져 그 시대를

이름순으로 아홉 번째입니다. 내용을 펼치면 ‘水一瓢食簞

정신’. 따라서 그에게 현실은 극복해야 할 것들로 가득할

같은 제목의 도록인 #이 시대 우리의 건축$(안그라픽스,

멤버들의 생각과 작업을 소개하고 있고, 건축가 승효상은

(물 한 쪽박 찬 밥 한 술)’로 시작하는 매월당 김시습(1435– 1493)의 {북명北銘} 시구詩句가 페이지 전체를 채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는 건축가의

사진이 보입니다.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그 유명한 ‘빈자의

미학’이라는 소제목을 붙인 글이 있습니다. (함께 들어간

도전합니다. 그는 사전적 의미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지배하거나 특징짓는 부정적인 정신에 맞서거나 대체하는 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피곤해 하겠지만, <와이드AR> 51호에 게재된 {짧은 포폄褒貶}(공철)이라는

글에도 쓰여 있듯 역사적으로 ‘건축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대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작가作家 로서 자신의 자아가 시대와 불화를 일으키거나 지사志士 로서 자신의 신념으로

이문 291과 학동 수졸당 작업에 대한 설명을 빼면) 글 내용은

시대를 지도해 온 것처럼 말입니다. 건축가라는 사람들은

2월에 나온 B6(128×188) 판형의 100페이지 짜리 단행본

증명해왔습니다.

원고지 17매 정도로 많지 않은 분량입니다. 하지만 1996년

모름지기 자신을 시대와 맞세움으로써 자신과 작업을

내용과 비교해 보면 생각의 바탕은 충분히 공유하고 있다는

ARCHITECT SEUNG H-SANG

것을 알 수 있습니다.

‘時 · 代 · 精 · 神 ’. 소제목 ‘빈자의 미학 the beauty of poverty’

이제 나는 이 시대의 세기말적 편린에 대립하려는 것이다.

건축가 승효상 또한 시대정신을 ‘세우는’ 쪽을 택합니다.

바로 위에는 고딕 볼드체에 중점까지 보태가며 또박또박 적힌 ‘시·대·정·신’이라는 네 글자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비틀어진 선,튀어나온 예각, 시뻘겋고 시퍼런 색, 이질러진

건축가 승효상에게 이 ‘빈자의 미학’이라는 표현은 1992년

볼륨, 산만한 재료, 현란한 빛, 악취, 굉음, 비명… 우리는

당시의 그가 생각하는 시대정신과 등가等價관계라고 봐도

어느 틈엔가 이런 환경에 의해 에워 싸여 있으며 이들은

무방할 것 같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시대정신’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한 시대의 사회에 널리 퍼져 그 시대를 지배하거나 특징짓는 정신’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오늘의 시대정신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시대정신’과 관련해서,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시대정신이 ‘궁금한’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그것을 통해 지금까지의 삶을 이해할 수 있길 바라고, 오늘의 삶의 방법을 찾길 바라고, 내일의 삶을 전망할 수 있길 바랍니다. 순수한 철학에서 상업적인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서 그에 대한 영감을 공유하는 활동들이 이뤄집니다. 또 다른 하나는 시대정신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그는 세상을 이해함으로써 살아갈 힘을

점점 우리를 압박하며 밀쳐오고 있다.

비틀어지고, 튀어나오고, 이지러지고, 산만하고, 현란하고,

냄새나고, 시끄럽고, … 건축가 승효상에게 비친 1992년의

한국 건축의 현실입니다. 같은 해 2월 있었던 뉴키즈온더블록 내한 공연의 아수라장 속에 여고생이 죽은 사건 또한,

외래 문명 속에 소멸되어가는 우리 문화와 의식의 사례로 짧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그는 사회 안에서의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는 한국 사회와

건축에서 침묵의 필요성을 통감합니다. 그리고 보다

정신적 차원에서의 저항 기제를 모색합니다. 추사 김정희의

필체筆 體와 매월당 김시습의 시詩 를 주목하고, ‘선비정신’을 소환합니다.

그들의, 자연에 대한 존경과 두려움, 도에 대한 갈구, 높은 안목, 청빈한 삶 — 선비정신은 그 시대를 지탱하게 한 시대정신 — 이었으며, 그로부터 그들은 우리의 서정감 넘치는 문화를 일궈냈던 것이다. … 그들이 이룬 문화를 나는 ‘貧子의 美學’이라고 부르고저 한다. 이들의 가난함은 공허함에 대한 가난이요, 정신적 피폐에 대한 가난이며, 물질 문명에 대한 가난이다. 오히려 그 가난은, 영적으로 가득 차 있음이요, 긴장 속의 여유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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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이라는 말이 ‘원리 하나로 전체를 설명한다’는

그의 설명이 유난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가 표기한

일원론一元論과 같은 맥락이라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쉽게

빈자의 한자가 貧者가 아니라 貧子이기 때문입니다.

공 선생님孔子, 맹 선생님孟子처럼 선비정신으로 청빈한

삶을 사는 분들을 통칭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으론

책責잡힐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론이 아니라 감각에 관한 것입니다. 머리 속에서 완전무결하게 자리 잡는 이념理念이라는 생각 이전에,

그것이 자신이 세워야 할 시대정신의 자화상이기도

그것을 지키고자 고뇌하고 발버둥치는 현실 속 인간의

했습니다. 넘치는 물질들 속에 빈한貧寒해진 정신을

신념信念이라는 태도 말입니다. 더이상 이즘ism으로 하는

관한 한 절제된 감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고,

녹아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시절이지만, 한 인간이 세상을

다만 서구의 미니멀적 감수성과는 달리 ‘우리의 서정’이

의미에서의 일원입니다.) 곧, 중심은 잣대 혹은 저울이

가다듬는 일이 급선무였습니다. 정신은 채우되 물질에

따라서 그가 보는 아름다움 또한 절제와 관련 있습니다.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것을 대비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기계적 추상’과 ‘서정적 추상’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는 이때부터도 건축에 대한 시시콜콜한 분석 자체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결과물에서 느껴지는 작가 정신이나 이념이 중요할 뿐 그것을 무엇으로 설명하는 것에는 의도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고개를 돌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설명은 하지도 듣지도 않고 모든 게 다양성이라는 말 속에 살아가는데 마음의 중심이 없을 수는 없겠습니다. (그런

됩니다. 설계할 때 개념concept이라는 것의 역할이 그렇듯이 하나의 중심을 설정한 사람은 인생의 과정 속에서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지나간 길 뒤에는

언제나 두 개로 갈라진 흔적들이 남습니다. 그가 쓴 글의 흔적 곳곳에 남은 ‘천박한’, ‘경박한’, ‘치졸한’, ‘껍데기’ 등등의 낱말은 부정적 현실을 언어로 단죄하여 갈라치는 그의 방법 중 하나입니다.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는 건축을 총체적인 분위기로, 태도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습니다.

이 ‘빈자의 미학’의 건축에서 실천 방안을 나는 적시 할 수 없다. 다만 도시와 건축의 문제에서, 건축과 공간의 문제에서, 그 공간과 요소들과의 문제에서 우리는 많은 해답을 그로부터 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간단할 리 없습니다. 눈 앞의 대상을

나눠야 할 때도 오기 마련입니다. 하양과 검정 사이에 회색이

승효상

이야기 한다. 나에게는 그러한 분석의 입장에서 이 공간을

건축가

혹자는 la tourette의 공간미학에 대해, 그 크기의 비례, 재료의 소박, 광원의 위치, 공간의 모양 등등으로 분석하여

둘로 베어버리는 것으로 족하던 일도 셋, 혹은 넷 이상으로

있듯이, 플라토닉러브와 연애 사이에 썸이 있듯이 말입니다. 크기도 대소大小 사이에 중中이 들어가면 3점 척도로

구분해야 하고, 만족도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매우 만족 –

대체로 만족 – 보통 – 대체로 불만 – 매우 불만’의 5점 척도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무작정 둘로만 나누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단죄한 것들에 대한 송구스러움이 생깁니다.

(그가 쓴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2016)의 마지막 부분에 지난 날 자신의 글로 상처 받은 분들에 대한 미안함을 남겨 두었습니다.) 현실은 자신을 흔들 뿐이고 붙잡을

1996년 단행본이 나오기 전의 1992년 이 글에서, ‘빈자의

거라곤 자기 안에 세운 중심밖에 없던 시절이 지나면, 둘 중

그는 현실을 보았고, 절박함을 느꼈고, 동서양 역사 속 몇몇

포용하는 시절이 옵니다.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도

미학’은 아직 선언-다움을 갖추지는 못 하고 있습니다.

하나가 아니라 셋 중 하나 혹은 둘, 천 가지 중 구백 가지를

사실들에서 자신의 나아갈 바를 감지했고, 작업에서의

둘로 갈라집니다. 중심을 버렸거나, 어떤 상황에서든 중심을

만들었고, 그 길에 대한 믿음을 밝혀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릅니다. 사람들은 개인의 자유와

절제된 감성을 목표로 했고, ‘빈자의 미학’이라는 용어를 그 시점에서, 그것은 일원一元 으로 그의 마음 속에

세워졌습니다.

스케일 — 일원一元과 다원多元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는 이원二元의 감각

‘빈자는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지키면서도 세상을 수용할 수 있는 도량度量이 생겼거나.

권리를 더더욱 크게 인식하고, ‘한 가지’로 세상을 몰아붙이던 교조적敎條的이고 이념적인 생각들은 ‘다원적多元的 ’이라는 가치로 변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에겐 잣대나 저울이 의미가

없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27


EDITORIAL

그럼에도 여전히 중요한 게 있습니다. 바로 ‘균형

이 모든 이야기들과 관련해서, 건축가 승효상이 겪은 과정과

세상의 수용자들(클라이언트, 시공자, 공무원, 매체, 비평,

직관적으로 중요하게 떠오른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감각’입니다. 작업자로서의 개인적 신념에 몰입하는 것도,

대중 등)을 만족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쏟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좋은 건축가가 되고자 하는 이에게라면 차라리 전자를 선택하시라 권고하고 싶지만, 다원의 감수성에

물들어가는 시대에 골방의 감수성에 천착하는 게 어떨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균형 감각이 있다면, 상대적인 것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생각과 그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이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작업, 그리고 개인적으로 현 시대에서 느끼는 문제들 사이에

‘스케일scale’입니다. 건축과 도시, 개인과 사회, 사익과 공익,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건축가와 행정가, 사람과 시스템, 일원적 사회 체제와 다원적 사회 체제, 단일 요소와 집합, 정지된 시간과 흐르는 시간 등 대립적인 많은 기준들 사이에서 그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흔히 건축에서 보이는 코르텐 같은 재료나 단순하고 패턴화된 입면과 볼륨, 그리고 크기를 감지하기

어려운 도시 규모의 작업들에서 느껴지는 비슷비슷함들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일원과 다원의 문제에 대해

인해 그가 다양한 작업을 해오고 있음에도 식상하다는 식의

종교나 이즘으로 대표되는 일원은 개인의 신념을 이상적인

모든 것들을 그의 인물이나 글, 인맥으로 돌리는 것 또한

공공연히 공론화하고 숙고해 본 적이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기준으로 눌러버렸고, 식민지와 이념 전쟁의 기억은

반응들이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성취한 우리에게는 매우 식상한 것입니다.)

ARCHITECT SEUNG H-SANG

비대하게 부풀어올라 언제든 인간을 향해 조준하는 무기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했습니다. 개인적 스케일의 신념은 사회적 스케일의 이념이 자꾸만 대비되어서 이념을 부정하는 만큼 신념도 쉽게 긍정하지 못 하는 상황이 연출되곤 합니다. 한편, 다원의 얼굴인 다양성은 ‘주변’으로 분류된 것들을 보듬어 안으며 수많은 좋은 가치들을 잉태시키는 근사한 둥지가 되어 줄 거라 믿었지만, 오히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하향 평준화하는 세계에 대한 변명만 양산하는

앞의 이야기에서처럼 초기의 그는 건축 작업을 통해

일구어야 할 가치 하나, 한 가지 척도 — 빈자의 미학 — 를 지키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 신념을

고집하면서도 척박한 현실에 대한 애정도 함께 붙잡는 리얼리스트입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이상을 설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의 현실을 끌어 안는 과정 속에서, 그는

건축과 도시 그리고 사람과 환경 사이의 다양한 스케일을

것처럼 보입니다. 사회적 스케일로 작동하는 변명辨明은

아우르는 감각을 터득한 것처럼 보입니다. 개인적 신념의

개인적 스케일에서의 작업에 대한 변辯 속에 자연스럽게

스케일을 사회적 이념의 스케일로 바꾸기 위해 해왔던

스며들고, 의미 없는 차이가 만드는 소음도 점점 증폭됩니다.

지속적인 대중 상대의 글쓰기나 행정 차원의 역할,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중심 없이 사회적 다양성 사이를

프로젝트에서 건축 스케일을 도시 스케일로 다루는 것 혹은

유영游泳 하라고 하는 것도, 사회적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어우러짐 없이 개인의 중심만을 강조하는 것도 모두 모순입니다.

그것들의 반대로 적용하는 과정이 그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확실히 건축 단위가 커져감에 따라 어눌한 결과물을 보여주는 건축가들이 많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의 프로젝트가 규모에 상관없이 적절함의

감각을 보여주고 있는 것 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일원(신념)과 다원(다양성), 둘 사이의

스케일을 정확히 인지하고 오가며 균형을 취하는 이원二元의

감각입니다. 이는 이분법이라는 편견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사이에 공유되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54호를 통해 그가 가진 ‘스케일’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국 결론은 감각感覺 두 글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함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입니다.

28


SCALE 1 완결하는 [30] 2 조율하는 [38] 3 인식하는 [50] 4 통합하는 [58] 5 근거하는 [64] 6 기록하는 [70]

매번 그러했듯 이번 《와이드AR》 54호의 기획 또한 한정된 시간 안에서 접근 가능한 프로젝트 및 건축가 관련 정보들을 검토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자료 협조 또한 적극적이었다. 건축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야 나중에 나도 할 말이 있지.” 자신도 할 수 있는 걸 다 할 테니 당신들도 할 바를 다 하라는 정당한 압박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는 ‘스케일SCALE’을 기획의 주제로 정했다. 이 용어는 인간에서 세상에 이르기까지 많은 ‘크기’들을 떠올리게 한다. 때로는 어떤 선택의 뒤에 숨은 척도尺度의 존재를 감지하게 할 수도 있다. 본 기획에서 제시한 6가지 키워드가 의미하는 바 또한 복합적이다. 그것은 건축과 도시 스케일 사이를 오가며 작업하는 건축가의 특징이기도 하고, 일종의 연대기적 서사 과정을 품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이 건축가 승효상에 관한 이야기인가 하고 묻는다면, 반은 맞고 반은 아닐 수도 있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건축가가 남긴 것들을 뒤따라가면서 시작했지만, 잡지의 독자와 무엇을 공유하고 그것을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해서는 건축가 앞에 서야만 했다. 따라서 건축가의 생각을 전달하는 부분도 있지만, 많은 부분 건축가보다 더 과장된 목소리로, 우리 자신이 건축가처럼 설명하고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기획 방향에 충실하기 위해

200여 개 넘는 작업 결과물 중 10개 좀 넘는 정도의 프로젝트만을 다루는 것 또한 독자들의 양해가 필요하다.) 자료를 검토하면서, 건축가 승효상에 대한 이야기와 평가는 넘치지만 정말로 그를 의미롭게 하는 게 무엇인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그것을 건축에서 찾고 싶었다. 비록 우리가 발견하고 정리한 부분은 작고 근거 또한 미약하지만, 그것이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것은 승효상 건축에 관한 건축론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건축과 스케일에 관한 이야기다. 진행 : 이중용, 정평진 사진 : 김재경(별도 표기 외) 디자인 : 신건모


ARCHITECT SEUNG H-SANG

SCALE

A

1 완결하는

때에 딱 좋은 문진, 지금의 스케일자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

과거 스케일자가 ‘필요했던’ 이유는 설계 도면을 손으로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주택 평면도를 A4 용지에

스케일 = 현실감각

삼각 스케일자에는 1/100부터 1/600까지 여섯 가지 스케일 눈금이 표시되어 있다. 이 숫자들을 기본으로 1/400의

두 배인 1/800이나 1/100의 열 배인 1/1000이나 1/600의

담으려고 해도 100배 정도는 줄여야 가능하다. A 과거의

건축가가 겪는 작업이라는 현실은 언제나 설계 도면보다 일정한 비율로 큰 실체를 다루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스케일자가 ‘필요 없는’ 이유는 더 이상 설계 도면을 손으로

두 배인 1/1200 같은 스케일의 수치들도 파악할 수 있다.

그리지 않기 때문이다. 핸드폰이 등장하면서 개인 간 연결은

캐드 Computer Aided Design 프로그램으로 설계를 하고

더욱 쉬워졌지만 몇십 개 쯤 보통으로 외우던 지인들의

컴퓨터의 휴대성이 점점 좋아지는 요즘은 작업 과정에서 이 스케일자를 쓸 일이 없다. 창호의 폭이나 벽의 길이, 최소한의 화장실 크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조정하는 치수들도 컴퓨터에서 바로 확인을 한다. 프로그램 화면에서 줌 인 Zoom in, 줌 아웃 Zoom out을 하는 이유도 스케일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니터 상의 결과물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출력을 위해 스케일 값을 정하지만, 그 또한

전화번호가 기억에서 방을 뺀 것처럼, 컴퓨터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설계 과정의 번거로움은 줄었지만 스케일에 대한 감각은 느슨해졌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확한 내용보다 강한 인상이 더 오래 남는다. (또한, 내용보다 인상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또한 오늘날의 특징 중 하나다.) 일례로, 센티미터를 다투는

작은 스케일의 건물을 설계할 때는 3cm, 5cm 조정하는

결과물을 담는 매체인 종이의 한계, A4, A3, A2 등의 크기에

일이 큰 문제이기 때문에 정확히 인식하려고 노력하는 게

스케일자를 대어 볼 일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수 있는 치수보다 도면의 중심선과 전체 면적의 총합에

맞추기 위한 것이다. 설계 과정에서 도면을 검토하다가 잠깐 요즘은 감각 感覺에 의거하여 가이드만 스케치하고 구체적인

보통이지만, 큰 규모의 건물을 설계해 보면 정확히 체감할 의거한 대략적인 치수로 적당히 인식하고 마는 게 보통이다.

조정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게 된다. 굳이 용도를

몇 센티미터 정도는 머릿속으로도 현실과의 갭을 느끼지

찾자면 문진 文鎭 정도랄까? 트레이싱 롤 페이퍼를 사용할

않는 사람도 몇 미터를 정확한 현실로 인지하기란 쉬운

30


1 완결하는 건축가

건축가가 도면 위에 긋는 선 1cm가 그것을 사용하는

생각보다 흔치가 않다. 물론 기준은 있어야 하고, 그 기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1:1 조각을 하는 게 아니다.

이유로 30cm인 ‘한 자尺’ 단위가 중심선으로 채택된다.

그 비율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그 비율을 사용함에 있어 설계

가능해도 ‘3,375(mm)!’ 같은 정확한 답을 내는 사람이

읽어낼 수도 있어야 한다. 300(mm), 흔히 시공 편의성을 벽체 중심선 사이의 거리는 300mm의 배수로 가늠을

하고, 건물의 외벽과 내벽의 두께가 다른 점과 현재의 마감 상태를 고려해서 빼면 벽면 안쪽의 안목치수가 나온다.

추리소설에나 나올 법한 방법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끼칠 거라는 걸 누구나, 확실히

건축가는 언제나 비율로 전망하고, 비율로 설계한다. 따라서 도면과 현실을 합치시킬 줄 알아야 한다. 비율

여기서의 ‘그 비율’이 이상적인 수학의 결과는 아니다. 로마의

90년대 중반 이전까지 설계 도면을 손으로 그리던 사람들

건축가 비트루비우스 Vitruvius(대략 BC 85–BC 20)는 신이

사이에 끼어본 적 있는 분이라면 우스갯소리처럼 이런

구성한 인간의 신체 비례를 토대로 건축물을 구성해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던 걸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함을 강조했고, 그의 문화적 전통을 따른 르네상스기의

굳이 이런 방식을 익힐 필요는 없다는 점을 알려 둔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1452–1519)는

요즘은 레이저 포인터로 찍히는 면 사이의 거리를 손쉽게

비트루비안 맨L'Uomo Vitruviano을 그리면서 이상적인

측정해주는 기기가 있어서 건축을 추리하는 낭만은 낡은

기하학과 자연의 인체를 다시 연결시켰다. 조화로움은

취미 정도로 치부되기 일쑤일 테니까. 그럼에도,

황금비율 같은 숫자로 드러난다고 믿었고, 알베르티 Leon

왜냐하면 건축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누가 뭐래도

내재한 규칙과 형식을 발전시키는데 복무한 이들도

스케일감은 건축에서 가장 기본적인 감각이다.

‘지어진다.’ 인류의 낭만과 자유를 고취시키는 역사 속의 무수한 건축 프로젝트들 또한 ‘지어졌다.’ 종이를 벗어나지

Battista Alberti(1404–1472)처럼 고전(그리스 · 로마)에

있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17세기

후반의 신구논쟁 新舊論爭, ‘고전건축이 이미 완성한 체계를

못한 페이퍼 아키텍트들의 꿈 paper architecture 역시

계승하자’는 보수적 입장과 ‘개인의 창의성이 바람직하다’는

덜 중요하다. 건축에서 스케일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는

계몽주의는 고전을 지키려는 노력을 형식적인 것으로 보게

우리들에겐 매우 중요하지만, 생각 속에서 스케일은 비교적

개혁적 입장이 대립했고, 과학의 발전을 기반으로 한 18세기

31

승효상

일이 아니다. 방의 크기가 궁금해서 둘러보면 대략 짐작은


SCALE ARCHITECT SEUNG H-SANG

B

C

만들었다. 고전의 아름다움인 고정된 비례 체계를 밝히던

시대에는 그저 좋은 비례에 대한 감각이 있다는 사실만이

속으로 들어왔다. 역사가 그렇게 기술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스케일과 비례의 관계는 마치 클래식과 대중가요의 관계와도

빛은 사라졌다. 아름다움은 영원한 이상에서 우연의 현실

비율에 대해 좀 더 개인적인 입장 속으로 들어가도 좋을 것 같다.

유효할 뿐 어느 누구의 기준도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오늘날 같다. 기본/ 뼈대를 중요시하는 순수예술과 응용/살갗을 우선시하는 대중예술처럼.

일반적으로 건축에서 비율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한 가지는 동일한 대상이 크기가 다를 때 느끼는

상대적인 감각[scale], 다른 한 가지는 하나의 대상 안에

내재된 부분과 부분 그리고 전체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일정한 균형 감각[proportion]이다. 보통 앞의 것을 스케일, 뒤의 것을 비례라고 부른다. 이전의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스케일은 건축가의 도덕성과 관련 있고 비례는 건축가의 미적 감수성과 관련 있다. 설계 도면에서 그린 것이 현실에서 지어질 때 생각보다 공간이 남거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단위 혹은 기준

1.059, 1.269, 1.061, 1.487, 1.339, 1.458, 1.344. 이 숫자들은

건축가 승효상의 수백당(1998) 입면 중 배면에서 시각적으로 분할되는 일곱 개 박스들의 짧은 변에 대한 긴 변의 비율을 체크한 것이다. B 1.250, 1.250, 1.273, 1.429, 1.429, 1.565, 1.643, 1.778, 2.429, 2.714. 이것은 수백당의 평면에서

건축가가 ‘목적 없는 방’이라고 설명한 분할된 공간들의

짧은 변에 대한 긴 변의 비율이다. C 수학적 비례를 좋아할

든다면, 그 건축가는 자신이 도면을 그릴 때 그것이 의미하는

만한 사람이라면 1.414[√2]나 1.618[황금비율]로 수렴되는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건축가는 희망을 숫자로 정리하는

아름다움이 그런 것처럼 비례 또한 주관적 영역으로 인정될

상당한 경험을 통해 다듬어진다. 건축가는 좋은 건축을

영역으로 인정될 수밖에 없는 비례는 잠시 물려두기로 하자.

바를 정확히 알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과 같다. 사람이 아니라 현실로 구현하는 사람이다. 다만 그것은

답사하고 숙고함으로써, 자신의 현장 경험을 놓치지 않고

체득함으로써 보다 정확한 감각을 키울 수 있다. (겸손이

필요한 부분이다.) 비례는 계몽주의 이후 신비함을 벗었으나, 오히려 그로 인해 더 신비한 분야가 돼 버렸다. 다원적인

32

규칙을 찾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수밖에 없다. 수치적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주관적인

단, 스케일에 대해서라면 ‘말할 수 있다.’ 객관적인

측면, 주관적인 측면 모두에서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하다. 객관적인 측면은 설계 도면에 표기한 1m가 실제로 구현되었을 때에도 변함없이 1m라야 한다는 사실에 근거한


D

1 완결하는

벽면 방향 가로, 세로 수치가 290, 190인 것은 몰탈 10 포함을

훈련을 통해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주관적인 측면은 기준을

염두에 두고 300과 200 크기 모듈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기준으로 하든 1000(mm)을 기준으로 하든 상관없다.

증감한다. 그렇다고 이 단위가 엄격히 지켜지고 있는 것을

선택하는 기준이 건축가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10(mm)을 그것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합당하다는 판단만 있으면 된다. 예를 들면,

3,600 / 6,000 / 1,200 / 4,200.

수치다. 목재 거푸집이나 메탈폼의 규격도 300 단위로

마냥 일반적이라고 만은 할 수 없다. 여타 건축가들의 많은 도면들에서 그 수치 단위를 ‘가급적’ 사용하려는 흔적은

이것은 수백당 평면도D 의

수직 분할된 중심선 1–5열 사이의 치수들이다. 4,200 / 4,800/ 4,200 / 4,800 / 5,400 / 3,600 / 3,300. 이것은 수평 분할된

중심선 A–H열 사이의 치수들이다. 모두 300(mm)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웰콤 시티(1999)

E는

1–6열까지 각각

3,300 / 6,000 / 4,500 / 1,500 / 4,500이며, A–H열까지 각각 7,500 / 6,000 / 5,100 / 9,300 / 6,000 / 6,000 / 6,000이다.

대전대학교 혜화문화관(2001)F 은 1–8열 사이 일곱 개 치수 모두 동일하게 6,000이고, A–F열까지 각각 9,300 / 21,000 / 18,000 / 4,800 / 9,300이다. 근작을 살펴보면, 지형을 따라

변칙적으로 배열된 명례 성지(2015)에서도 12,700으로

100이 남는 숫자 하나를 제외하면 모든 중심선의 간격은 300

단위를 기준으로 했다.

건축가 승효상의 책상 위에 항시 대기하고 있는 30cm

있지만, 상황에 맞게 수치를 조정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전통 혹은 그것의 현실적 유효성을 확신하거나 체득하지 못 한다면 ‘단위’ 자체를 지키는 것은 선택의

문제로 비춰질 수 있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을

한다. (특정 수치를 강요하는 것도, 보수적 태도를 권장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생각과 현실을 가장 잘 연결할 수 있는

수치에 대한 인식은 건축가마다 다를 수 있다. 인식과 태도는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므로, 강하게 인식되는 부분은 건축가

개인을 들여다볼 때 하나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 뿐이다.) 건축가 승효상의 기준

변화를 긍정하는 세계 속에서도 기준만큼은 불변이 허용된다. 비록 그것이 프로젝트라는 일정한 시·공간적

스케일자를 굳이 떠올릴 필요는 없다. 이 300이라는 수치는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하더라도, 혹은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대개의 건축인들에게 일반적으로 재료나 시공성과 관련해서

중심 개념처럼 내용을 일정하게 재단할 가능성이 도사리고

가장 합리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가령, 시멘트블록 장려형의

있다 하더라도, 기준의 중심됨을 인정하지 않으면 척도 尺度

33

승효상

것이다. 그 차이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은 지속적인

건축가

수백당 1/300


ARCHITECT SEUNG H-SANG

SCALE

웰콤시티 2층 평면도 1/400

웰콤시티 1층 평면도 1/400

E

34


대전대학교 혜화문화관 4층 평면도 1/600

1 완결하는 건축가 승효상

대전대학교 혜화문화관 3층 평면도 1/600

F

35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그리고 이 기준은 프로젝트 내에서

열어두었다. 도시 속의 건축/건축 속의 도시, 반기능,

작업을 하는 건축가가 설정하는 태도와 방법론의 모습으로도

영역을 만들고, 길을 연장시키고, 적당히 불편하고, 적당히

수치나 방향, 법규 및 요구 등의 모습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SCALE

존재한다. 건축가 승효상에게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있다. 바로 ‘빈자 貧子의 미학 美學’ G 이다. 거기서

그는 ‘엄밀한 의미의 건축 범주’를 구분해내려고 할 만큼

건축 자체를 규정해야 할 절실함을 내비쳤다. 현실 속에서 건축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구분하려

했고, 세 가지 기준 — 합목적성, 장소성, 시대성 — 을 제시했다.

무용無用의 공간, 침묵이 그것이다. 담을 허물고, 공유

걷게 하고, 쓸모없는 공간의 유용함을 알고, 때때로 벽을 세워

침묵을 느끼게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들이 거기서 나온다.

알베르티는 #건축론De Re Aedificatoria$(1486)에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조화로운 미적 아름다움의 감각에 대해

‘콘치니타스concinnitas’라는 용어를 들었고, #가족론Della famiglia$(1440)에서 ‘교양 있는 행동의 고유한 조화와 품위’에도 같은 용어로 설명했다고 한다. 건축에서의 합목적성 또한 아름다움으로 설명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엄밀한 의미의 건축 범주에 들어가게 하는 판단 기준 즉

그는 아름다움의 문제와 올바름의 문제가 함께 풀리길

건축적 요건은 무엇일까. 세 가지, 그 하나는 그 건축이

원했다. 하지만 미적 절대성이 사라지고 아름다움에 관한

수행해야 하는 합목적성이며, 또 하나는 그 건축이 놓이는

평가가 미적 감각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오늘날을 사는

땅에 대한 장소성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건축이 배경으로

건축가들에게 알베르티의 목표는 비록 그가 인본人本

하는 시대성이다. — #빈자의 미학$, p.11

건축은 그 결과가 목적에 부합해야 하고, 건축은

모든 기준들이 개인적 선택의 영역으로 내려왔고, 비어

장소의 특질을 드러내야 하며, 건축은 건축가의 시대에

있는 미美의 왕좌 아래 세상은 미적 기준 뿐 아니라 도덕적

대한 그의 태도는 일원一元의 특징인 단호함을 내포한다.

형식이 물러서면 내용이 자유롭게 만개하리라 믿었건만,

대한 문제의식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 요소에 ARCHITECT SEUNG H-SANG

중심의 르네상스기를 살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이상적인 것이다. 근·현대를 지나오는 동안 거의

태도의 기준은 곧 신념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다원多元의

특징인 수용 및 확산성은 네 가지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G

기준까지 개인적이고 선택적인 것으로 만들 것처럼 보였다.

예禮 가 사라진 자리는 분별없는 사람들을 통해 손쉽게

탐욕과 방종 등으로 채워지곤 했다. 마찬가지로, 건축가

H

36

돌마루공소


승효상은 자신의 눈에 비친 현실에 대해 스스로를 맞세우기 위해 기준이 필요했다. 그가 세상의 아름다움을 순수하게

미美적 측면으로 판단하지 않고 ‘선함’, ‘선한 의지’로 보려고 하는 것은 건축의 역사 이래로 거의 늘 정당하다고 평가되어 1 완결하는

온 합목적성, 올바름의 문제가 개별 건축가의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현실의 단면을 직시하고 판단하기 위한 척도가 합목적성이라면, 시간 속에서 인식하게 하는 것은

장소성이다. 그것은 한정된 공간에 역사와 전통, 그리고

자신 이외의 타자他者들에 대한 당위를 끌어들인다. 그것은

다원적 상황 속에서 공유할 수 있는 공공의 가치로, 멍석 혹은 판 혹은 인프라 같은 것이다. 합목적성과 장소성은 신념과

다양성, 일원과 다원, 건축과 도시의 관계처럼 상대적인

스케일감을 가진 것들이고,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이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시대성의 개념과 더불어

건축가 승효상의 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작업 초기에는 세상과의 교통交通 과정에 벽이나 담 같은 건축적 의지의 부산물이 필요했고, H 이를 통해 건축 스스로의 완결성을

획득하는 한편, 자기 안의 선언을 세상의 스케일에 견줄 수

있는 ‘척도 1’의 감각을 키워나가야 했다. 스스로 물어야 했고, 스스로 답해야 했다. 그것들은 침묵과 절제, 엄격함으로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건축가 승효상

37


파주출판도시 1단계 항공사진(2012) / 파주출판단지조합 제공 © 권태균

ARCHITECT SEUNG H-SANG

SCALE

I

2 조율하는

능률과 편리는 우리로 하여금 주어진 순서에 따라서만 살게 하며, 항상 빠르고 높은 곳으로만 인도해 왔습니다. 그런 건축은 결국 우리를 소모시킬 뿐이지요. 오히려 적당히 불편하여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사유케 하는 그런 곳, 즉

스케일-업 scale -up

반기능적 도시가 우리의 삶을 더욱 풍부하게 하며 의미롭게 할 것입니다.

‘지혜의 도시’는 어떤 곳일까요. 이곳은 소유하기보다는 사용하기를 즐기는 이들이

이 도시의 공간들은 딱히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목적이 있는 공간은 그 정해진 목적이 완성된

사는 도시이며, 그것은 혼자 쓰기보다는 같이 쓰기를

후에는 없어져 버리게 되지요. 따라서 긴 생명을 가질 수

원하는 이들이 공동의 삶을 구하는 곳입니다. 더함보다는

없으며, 생명이 없는 공간은 결국, 그 공간 속의 삶들을

나눔이, 나뉨보다는 이음이 더욱 가치 있음을 믿는 그런

피폐하게 합니다. 되도록이면 적게 채우고 많이 남겨져

곳이지요. 이곳의 건축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도시가 건축

있는 도시, 아니 채워지기 전에 비운 공간을 먼저 만든

속으로 들어가고 건축이 도시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후에야 채우는 도시, 그런 도시가 생명이 길다는 것입니다.

길들은 서로 연결되어 막힘이 없고 건물은 이웃한 건물과

예컨데 우리네 옛집의 마당은 비워져 있습니다. 우리는

수평으로도 수직으로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마당에서, 축제도 하고, 제의도 하고, 생산도 하고, 노동도

이곳에서는 우리들의 지난날 살았던 흔적이 곳곳에 배어

하고, 훈육도 하고, 접대도 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비워져

있습니다. 다시는 옛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지음으로 옛

있는 이 마당을 보며 우리는 사유하고, 우리의 정신으로 그

자취를 없애는 우매함을 범치 아니하며, 되도록 고쳐 짓고

마당을 채웁니다. 이 비움의 공간은 우리들 공동체의 구체적

이어 지어, 지난 우리들의 기억을 미래 속에 연장시켜

형태이며 우리가 귀소해야 할 목적지일지도 모르지요.

읽히게 하는 그런 지혜의 건축이 즐비한 곳입니다.

따라서 이런 비움의 장소가 많은 도시에서의 삶은 항상

이 ‘지혜의 도시’는 기능적이지 않습니다. 기능이라는 단편적 도그마에 맡기기엔, 우리의 삶은 훨씬 미묘하며 측량키 어렵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현대건축의 키워드인

38

근거가 있어 부유하지 않게 됩니다.

‘지혜의 도시’에 서 있는 건축은 서로 작으려 합니다. 결단코 뽐내지 않으며 이웃한 건축을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2 조율하는 건축가

그 그릇인 건축보다 중요함을 아는 까닭으로, 이 건축들은 배경으로만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따라서 우리의

미학$에서 말한 내용 그대로다. 다른 점이라면 ‘빈자의

미학’(1996)에서는 그것들이 가치 있다는 것을 전해야 함을

믿는다고 말했고, 위 글(1998)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불러올

삶은 더욱 돋보이도록 건축 속에 기록된다는 것입니다.

삶을 믿는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2년의 차이일 뿐이지만,

우리의 삶뿐 아닙니다. 이런 건축의 흰 벽은 태양의 궤적을

건축을 통해 세상을 이야기할 때는 공격 / 선언적 입장이

느끼게 하며 빗소리 바람소리를 들리게 하고 지나는 구름을 보게도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세계가 얼마나 경이에 차 있는가를 깨닫게 하며, 우리 인간의 선하고

강했다면, 같은 내용이라도 도시를 이야기할 때는 설득 /

제안적 입장이 강하다. (어쩌면 이것은 스스로 되새기는 말과 상대와의 대화를 가정하는 말의 차이이기도 하다.)

진실되며 아름다움을 다시 믿게 합니다. — {파주출판도시, 그 문화풍경을 만든 이들}, 승효상, #파주출판도시 컬처스케이프$(2010), pp.18–20

위 글은 1998년, 파주출판도시I 가 계획되기 전 건축가 승효상이 출판조합으로부터 청탁 받은 것 중 일부를 옮긴 것이다. 당시 그는 계획과 무관한 위치에 있었고,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도시에 대한 상像을 전달했다. 건축과 도시는

‘도시의 아름다움에 대한 계획’, ‘공동체를 공고히 하기 위한 계획’, 혹은 ‘맑은 하늘 보기 계획’ 등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밀착된 단어와 말들로 된 각종 계획들이 먼저 되도록… 지식을 만드는 이들이 만드는 도시. 이름하여 ‘지혜의 도시’. … 출판문화단지가 아니라 이런 도시와 건축이 되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게 되기를 손 모아 빕니다. — 앞의 책, pp.18–20

각각 구체적 현실과 추상적 구조를 먼저 인식하게 되는 것 만큼이나 읽히는 스케일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건축가 승효상이 바랐던 도시의 모습은 그가 자신의 건축을 위한 기준으로 삼았던 내용과 동일하다. 나누고 연결하는 공동의 삶, 도시와 건축의 연결, 기억의 보존, 적당한 불편을 통한 사유의 장려, 목적 없이 비움으로 삶을 채우는 외부공간,

소박하고 정제되어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건축, 모두 #빈자의

기존의 계량적인 도시계획방식을 실패로 규정하는 한편, ‘맑은 하늘 보기 계획’, ‘지혜의 도시’ 같은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내세움으로써 도시에 대한 인식의 프레임 전환을 유도하는 점은 유용한 방식이다. 한편으로는 개인적 차원의 신념이 공동체와의 커뮤니케이션 과정 안에 들어갔을 때 개인의 신념을 타인들에게 강요할 것인가

39

승효상

소박하며 정제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건축 속에서의 삶이


SCALE ARCHITECT SEUNG H-SANG

파주출판도시 1단계 마스터플랜 1/10000

J

40

A4 크기 (가로 297mm, 세로 210mm)


2 조율하는 건축가

승효상

41


SCALE ARCHITECT SEUNG H-SANG

K

아니면 공동의 유익으로 설득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같다. 같은 내용도 지키기 위한 차원의 것과 공유하기 위한

차원의 것은 스케일이 다른 것이고, 또한 다르게 다루어져야

한다. 건축가에게 도시 프로젝트는 그에 걸맞는 화법 또한 요구한다. 다행인 것은 ‘빈자의 미학’이라는 주제가 가진

보편성이 사유思惟의 스케일 확대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영되었음을 설명하는 경우 정도일 것이다. 1/10000 정도의 스케일에서 도시와 건축은 배열의 규칙과 관계가 먼저 읽히고, 그로써 건물과 건물 등 구성 요소들의 ‘사이’를

생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수백당K (1998)이 건축적으로 독특한 이유는 그것이

사이, 복도, 판

파주출판도시(1999) 1단계 전체 대지면적 822,519m2.

수졸당 대지면적 234.4m2과 비교하면 약 3,509배 정도 큰

규모다. <와이드AR> 잡지는 A4(210×297) 크기와 비교할

때 길이 방향으로 10mm 작은 210×287인데, 한 페이지에 프로젝트 한 개를 채울 때, 수졸당 평면도는 1/100도

가능하지만A

유태인 박물관Jewish Museum Berlin 프로젝트처럼 도시에 흩어져 있는 역사적 흔적과 관련된 부분들이 건물 설계에

파주출판도시 1단계 지역 전체를 담으려면

1/10000로 축소해야 한다. 1/100에서는 건축 내 · 외부의 J

공간구성과 생활 규모 및 세부적인 위치를 살피며 그 안에서의 삶을 떠올릴 수 있지만, 1/10000 배치도에서는 주요 지형 및 도로와 건물의 위치 등 대략적 차이 정도만 눈에 들어온다. 건축을 좀 알면 모를까, 일반인이 보면 ‘까만 것은

‘중성적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건축가 승효상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합목적성을 중요한 가치로 두고 있고, (그는

합목적성을 기능보다 가치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그것이 기능적인 것만을 목표로 할 때에는 평면도와

단면도 같은 도면에서 읽히기 마련이다. 출입구의 방향이

정해지면, 현관에서 거실, 거실에서 주방/식당, 서재, 방,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실 등의 위치가 동선 혹은 시공의

효율성 등 기능적 영향에 의해 정해진다. 당연히 채광, 통풍 등 자연적인 요소 또한 중요한 영향을 끼치지만, 어떻게

보든 구성 자체의 효율성이라는 목표는 사라지지 않는다. 면적과 기능 만으로 설계가 가능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파트다. 그리고 아파트의 평면 효율성을 단독주택으로 가져와서 마당을 붙이면 일반적인 주택이 되곤 한다.

글자, 하얀 것은 종이’ 같은 기분이 들 수도 있다. 단일 건물을

여기서 말하고 싶은 점은 어떤 평면의 좋고 나쁨이 아니다.

한다면, 그건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1946–)의

쉽지 않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에 비해 수백당의

설계하는 건축가 역시 1/10000 스케일에서 땅과 건물을 봐야

42

건축은 기본적으로 ‘기능적’이라는 생각을 벗어나는 것이


2 조율하는

L 건축가

집이다. 이런 생각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건축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도시, 타오르미나Taormina에서

묵었던 한 호텔의 평면 구성을 이야기한다. 복도에서 각각의

방으로 진입하는데 테라스는 전체가 공유하도록 되어 있어서

위해 어쩔 수 없이 생긴 것이 아니다. 1층 복도는 면적을 가진

비워진 ‘사이’들인 뜰(뒤뜰, 안뜰)과 함께 구성됨으로써 주택

안에서의 주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수졸당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안뜰이 거실과 같은 높이의 우물마루로 되어 있고 한 켠에 전통 형식의 담이 서 있어서N 말 그대로 전통풍風이 주는 원형의 기억이 은은하게 깔려 있는데, 일반인들이

독특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스케일이 큰 호텔에 적합한 평면

좋아하는 것도 그 부분이다. 그리고 건축가 승효상은 반응이

구성방식을 작은 스케일의 주택에 적용함으로써 주택 자체를

좋은 쪽이 아니라 자신이 고민하는 쪽으로 걸음을 옮긴

다른 관점으로 보게 만드는 이야기는 꽤 설득력이 있다. 분명

것처럼 보인다. 수졸당이 도시 안의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첫

것은 건축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제이고, 수졸당에서 그

수백당과 비교해 보면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수졸당의

영향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영향을 끼친 흔적을 볼 수 있다.

(1992)은 ‘불편한 집’을 표방하고서야 방과 방의 ‘사이’를 만들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또 한 가지 수졸당L

만들어진 것이 있는데, 바로 복도複道 다. 일반적인 주택

설계에서 동선動線 은 말 그대로 선線의 관점에서 다뤄진다.

거주인의 이동에는 면적을 적게 할당할수록 좋다는 인식이

눈에 인지하기 어렵지만, 그것의 요소를 단순화한 후 펼쳐서

거실에서 안방으로 이르는 복도의 성격은 수백당의 현관에서 큰 작업실에 이르는 주요 복도O 로 확장되었고, 독립적으로 분리된 사랑방은 마찬가지로 분리된 작은 작업실로 남겨져 있다. ‘사이’를 만들기 위해 복도가 길어졌다고도 볼 수

있지만, 복도 즉 불편함과 이동에 부여하는 의미를 구체적인 면적으로 표출함으로써 ‘사이’는 함께 따라온다고도 볼 수

배어 있다. 거실의 위치와 면적 안에는 실내에서의 이동

있다. (이것을 큰 스케일의 도시로 확장해서 비교해 보면,

점을 감안하면 틀렸다고 할 수도 없는 문제다. (다만

유형’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수졸당이 건축가

효율성까지 포함된다. 집을 지을 때 면적이 곧 비용이라는

그의 도시디자인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스파인spine(척추)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다.) 수졸당은 방과 방 사이를 복도로

스스로 말하듯 자신의 건축에 관한 기준을 처음으로 구현한

가진다. 여기서의 복도는 일반 주택에서처럼 방으로 이르기

건축을 논리정연하게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의미롭다.

이동한다. M ‘사이’로 다루어진 복도는 필연적으로 면적을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의미롭다면, 수백당은 그가 추구하는

43

승효상

평면도를 보면 ‘틀을 만들고 적절히 나누었다’는 건축가의 말에 딱히 반박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능과 조금 거리를 둔


ARCHITECT SEUNG H-SANG

SCALE

M

건축가 제공 © 무라이 오사무村井修

N

44


O

2 조율하는 건축가 승효상

VOID

ENTRANCE

LIVING ROOM

CORRIDOR ROOM

KITCHEN / DINING

VOID

GUEST ROOM

VOID

%수졸당&

BATH ROOM

VOID

ENTRANCE

VOID WORK ROOM 2

CORRIDOR

KITCHEN / DINING

ROOM

VOID

VOID WORK ROOM

VOID

DECK

%수백당&

45


이러한 결과는 수백당이 놓이는 땅의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건축의 선들을 강하게 이끄는 도시적 맥락과 달리 이곳에서는 자기완결적인 조건을

SCALE

스스로 한정할 필요가 있었고, 건축가는 30m, 15m의 2:1 비율 사각형 영역을 설정함으로써 복도를 중심으로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적절히 배분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주세페

테라니Giuseppe Terragni(1904–1942)가 설계한 카사 델 파쇼Casa del Fascio의 입면 비율이 가로 33.2m, 높이

16.6m로 2:1인데, 이는 #빈자의 미학$에도 소개된 바 있다.)

그의 건축적 기준인 합목적성은 기능적 합목적성을 포함한

‘삶이 지향하는 목적에 대한’ 합목적성이며, 반기능反機能의 적절한 구성을 통해 대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 바닥면, ‘판’이 강조되는 것 또한 특징이다. 이문 291(1992), 대학로 문화공간P (1994) 등 물리적 벽의

부분, 매스mass가 배치된 방식은 파주출판도시 안의 건물이

자리를 잡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앞서 언급한 건축 디자인이

‘중성적’이라는 평가는 단순히 이미지가 미니멀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디자인 자체에 대한 의지보다는 설정한 기준을 내재화하고 드러낸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도시는 무엇보다 기준들의 체계다. 거기서는 관계와 ‘사이’를 읽어야 하고, 조율해야 한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조율調律이란 말 그대로 소리를 기준음에 맞추는 것이다.

면으로 구성되는 이전과 달리, 수백당에서는 필요들이

음악에서도 스케일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도레미파솔라시CEDFGAB’를 도(C)음을 루트음으로 하는 C장조, Cmajor 스케일이라고 한다. 장조major는 미-파, 시-도가 반음이고, 레-미와 솔-라에 반음을 넣으면 C단조Cminor 스케일이 된다. 그리고 Cminor에서 반음

위에서는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이 하나로 다뤄진다. ‘걷기

스케일이라고 부른다. 이렇듯 음계 사이에는 한음 혹은

실체를 강하게 표출하고 입면디자인 또한 평면을 보조하여 적절히 배분되고 구성되는 판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Q 판 위해 발 디딜 곳만 남기고 나머지를 다 파내어 버린다면, ARCHITECT SEUNG H-SANG

이것을 다시 큰 스케일에서 보면 수백당의 채워진

내려간 시(B)음을 제자리로 옮기면 C하모닉마이너

반음 같은 수치로 규정될 수 있는 다양한 체계들이 있는데,

남긴 부분만으로는 쓸모 없는 땅이 될 것이므로 필요한 부분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들은 음악이 주는 감동이 수치로

이외의 쓸모 없는 부분도 함께 필요한 것無用之用’이라는

분석 가능하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또한 비례로

무용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조율의 기준 중 하나로

장자莊子(BC369–BC289)의 이야기처럼, 판은, 유용과

P

46

표현 가능하다고 믿기도 했다. 그리고 현대의 도시를


‘랜드스케이프landscape’를 말한다. 음계에서 음과 음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체계가 기본이 되는 것처럼, 도시는 솔리드한 오브제가 아니라 도시와 건물 사이의 관계가

관점이었고, 그 둘 사이를 고르게 하는 것은 파주출판도시

건축가들과 클라이언트들 사이에 작성된 ‘위대한

계약서’(파주출판도시 시범지구 건축설계 계약)로 이어진 한 건축가의 믿음이었다. 삶, 건축, 도시로 확장된.

그것의 판인 땅과 불확정한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것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로 인식된다. 파주출판도시는 바로 그러한

2 조율하는

만들어내는 체계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들 ‘사이’의 빈 공간인 ‘보이드void’가 중요해졌고, 건축은

일원의 가치였다면, 뒤의 것은 다양성을 수용하는 다원의

시각 위에 세워졌다.

출판도시 1단계 보고서를 보면, ‘비전’을 밝히고

‘땅의 이해’로 시작하는 작업은 ‘도시구조’에서 비롯되는 유형을 여섯 가지로 분류하고, 세 가지 ‘건물 유형’과 ‘재료’, ‘바닥’, ‘수로’, ‘구조’, ‘설비’에 이르는 인프라의 지침을 규정해 들어가고 있다. 출판도시 랜드스케이프 개념을 디자인한 플로리안 베이겔Florian Beigel과 관련해서, <Architectural Review> 웹사이트에 게재된 그의 새만금 제안

내용(2009.6)을 다룬 기사에는 이런 평가가 덧붙어 있다. ‘시적 해독제poetic antidote’. 경관의 개념으로 건축과 도시,

조경을 통합하는 것은 이전 시대의 도시계획이 가진 한계에 대한 주요 대안이 됐지만, 그것은 시각 중심의 조율이었다.

하지만 이를 통해 건축과 도시가 삶의 인프라, 삶의 배경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보다 절제된 형태와 구성으로 표현될 수 있었고, 다양한 경험을 담기 위한 채움 아닌 비움의

건축가

시각을 전면화 할 수 있었다. 앞의 것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승효상

Q

47


SCALE ARCHITECT SEUNG H-SANG

저는 현대의 ‘물질주의’, ‘상업주의’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고 ‘물질 만능주의’, ‘천민 자본주의’를 거부합니다. 현대는 물질문명의 시대이며 산업 문명의 시대입니다. 저는 모더니스트보다는 리얼리스트적 관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현실과 분리된 순수한 작업이라기보다 주변의 맥락을 포함한 건축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자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에 대한 많은 집착을 갖고 있습니다. 현실적 요소에서 작업의 개념을 많이 추출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 저는 현실의 도시에 대한 애착이 많습니다. — ‘대담’, #urban void$, c3, 2002, p.26

48


모더니스트들은 건축을 이해할 때, 마스터플랜을 통해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결정론자였습니다. 인간의 가치나, 의미가 희석된 이 세대는 편리하지만 인간의 삶이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유용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확정할 수 없고, 결정할 수 없는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인식하는

시대 환경이 결정론자들의 주장처럼 되지 않았고,

마스터플랜이 갖고 있는 오만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지금과 현재입니다. 때문에 현재만으로는 모르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부분을 알지 못하는 것을 인정한 채로 비워 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빈 공간은 그 공간에 사는 사람의 의지에 의해 바꿔나가거나, 채워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공간도 비워놓고 벽도 비워 놓곤 하는데, 이러한 입장에 대해 사람들이 ‘미니멀적’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건축의 입장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건축은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역할을 위한, 하부구조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저의 건축을 원형 그대로 보존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이 공간을 적극적으로 바꿔 나가길 원하는 것입니다. 공간을 고친다거나 색을 덧칠한다거나 하는 것이죠. 이것이 삶의 풍경이고, 리얼리티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확대하면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우리 달동네의 모습이 바로 이렇습니다. 덧대고 수리하고 조금씩 고쳐 나가는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흔적은 사람의 기억을 풍요롭게 합니다. — ‘대담’, #urban void$, c3, 2002, p.26

49

승효상

모습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를 인식하고

건축가

진정한 건축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즐깁니다. 바람직한 것은 '원래는 이렇게 되어 있었다'고 하는 원형의


ARCHITECT SEUNG H-SANG

SCALE

R

3 인식하는

건축 속의 마당이나 비워진 공간만이 보이드라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건축과 건축 사이의 틈이 도시에서는 더욱 중요하며 도시와 건축, 도시의 지역과 지역 사이의 빈터도 중요하다. … 작은 방 속에서도 도시적 속성을 가진 빈터는

보이드

존재하며 심지어는 건축의 벽면이나 재료 속에서도 이 어반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건축가 승효상을 ‘올해의

작가’로 선정했다. 한국미술문화 흐름에 기여하거나 성과를 보인 작가를 선정하는 것으로, 건축가로서는 처음이었다.

보이드는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비워진 곳에 조성된 새로운 긴장이며 그로 인해 만들어진 새로운 장소성이다.

— #urban void$, c3, 2002, p.41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흥미롭다고 생각된 점은 그가 전시를 통해 건축적 현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을 우려했다는 점이다. (이상에 목표를 두는 이는 생각의 성취가

중요한데, 그의 문제의식은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상황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스케일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는 프로젝트의 작은 스케일 결과물들을 전시는 하되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건축에서의 복도가 반기능 공간인 빈 공간과 묶여서 긴장을 자아내듯 도시적 관점에서는 건물과 건물의 ‘사이’를 볼 필요가 있다. 아니, 도시 스케일에서는 그것이 ‘보인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많은 도시계획에서 전문가들의 시선이

땅의 분포와 건물의 밀도, 이동 경로 정도에만 닿고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건축적 관점에서는 분명

도시처럼, 프로젝트처럼 인식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할 계획을

영역과 볼륨, 배치, 간격과 삶을 포함한 도시 전체의 흐름과

그는 바르셀로나 건축가 에드워드 브루Eduard Bru의 말을

있어야 하고, 1/100에서 1/10000의 관계를 읽을 수 있어야

사이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그는 거대 구조물을 제안했지만,

세웠다고 했다. 당시의 이슈는 ‘비움’ 즉, ‘보이드void’였다.

소개하면서, 같은 맥락으로, 단순한 빈 공간을 넘어 두 물체

구조가 읽히기 마련이다. 1/10000에서 1/100의 삶을 읽을 수

한다. 사실은 르 코르뷔지에조차도 그것을 깨닫기에는

뒤이어 인간과 건조물 사이에 적절한 스케일을 설정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는 나무를 심어야만 한다!”

50


3 인식하는 건축가

미덕으로 제시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건축이 볼륨으로

그리고 건축가 승효상은 우리 도시에 보이드가 필요하다고

읽히는 부분은 외부의 도시적 맥락보다는 건축 스스로

말했다. 2002년 올해의 작가상 전시 주제였던 ‘어반

추구하는 완결성에서 이루어진다. 건물의 토대로 구축된

보이드urban void’

(1999)와 함께 등장했다. 건축에서 시작해서 도시에 이른 관점은 다시

일관되게 적용되고, 이로써 네 개의 상자는 비워진

건축으로 돌아왔지만 이전의 건축 프로젝트들에서와는

부분들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전체라는 관념을 공유하게

달랐다. 수졸당에서 수백당에 이르기까지 건축 프로젝트를

된다. ‘지우개로 지워나가듯’ 설계했다는 건축가의 표현은

개념은 웰콤시티R

구성하는 기본 요소는 면面이었다. 독립적으로 구축된 벽 혹은 담, 건물의 외벽까지를 포함해서 거의 면이 강조된

구성이었다. 수백당에서 영역으로서의 바닥이 부상하지만,

이 역시 면의 특성이 강하다. 전면에서 1층의 방들을

연결하는 띄워진 데크 부분으로 인해 바닥면의 특성이 자연 위에 설정한 인공의 지면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5각형의 포디움에서 비롯된 선들은 상부의 볼륨에까지

전체로서의 하나를 가정할 때 더욱 의미가 있다. 건물의 후면 상부에서 하나의 면으로 네 개의 상자를 잘라낸 제스쳐S 가 들어가는데, 이 역시 네 개의 상자가 하나의 관점 안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증거다. 도시를 이야기하는 건축이지만,

건축 자체의 통일감 또한 함께 추구되고 있는 것이다. 도시 디자인의 스케일에서 보면 건축은 케이크처럼 잘라져

웰콤시티에서의 기본 요소는 볼륨이다. 단지 네 개의 상자가

있어서 그 자체로 볼륨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의

보이지만, 그것을 선택하게 하는 건축적 관점이 결과를

디자인 특성을 따라 나오기 마련이다. 웰콤시티의 경우,

두드러지기 때문 만은 아니다. 도시적 맥락에 의한 결과처럼 자연스럽게 볼륨으로 이끄는 것이다.

분할된 볼륨의 크기를 보면 주변 건물의 볼륨들에 일정 부분 대응하고 있고, 특히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건물의 비워진 부분이 앞뒤 건물의 시야를 확장시키고 도시를 인식하게 한다는 점이 부각되기도 했다. 정면에서 우측으로 뻗은 입면의 선은 인근 건물이 물러선 위치와 연결되어 길에서도 하나의 맥락을 추구했다. 이런 점은 도시적 건축의

경우 그것은 가이드일 뿐, 면과 볼륨의 특성은 건축가의

평면도에 많은 비중을 두는 건축가로서는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임에 틀림 없다. 이는 포디움 부분 일부가 사전에 시공된 상태에서 다시 새롭게 디자인을 했기 때문인 듯하다. 지형의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 포디움은 일종의 ‘쉬운 해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에서 포디움은 이미 존재하는 조건과도 같았다.

완성된 웰콤시티의 포디움은 두 가지 다른 스케일의

51

승효상

중간 스케일 건축


ARCHITECT SEUNG H-SANG

S

T

52

SCALE


3 인식하는

U

건축가

승효상

V

53


ARCHITECT SEUNG H-SANG

SCALE

W

바닥을 떠올리게 한다. T 하나는 수백당에서처럼 건축

차이를 극복하면서 디자인의 적절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완결하며 공간을 담는 중성적인 성격의 판이다.

건축과 도시 사이를 오가는 관점과 지침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파주출판도시의 배치도를 보듯 건물과

한편으로 이것은 스몰 사이즈와 빅 사이즈 사이에 있는

건물 사이가 조율되는 개별 필지 성격으로서의 땅이다.

다양한 중간 스케일의 건축 프로젝트를 다루기 위한 방법이

주택보다는 큰, 하지만 도시보다는 작은 이 프로젝트에서

있을 것이라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정반대의 스케일이 담고 있는 의미를 하나로 모은 것이다. 주택 단위인 수백당과 비교해

보면, 웰콤시티 또한 공간의 척추가 되는 복도가 있다.

특수한 대지 U

그리고 주택에 비해 넓어진 면적과 늘어난 공간 구성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 복도에서 실들에 이르는 가지branch 형태의 복도들이 생겨야 했다. 바닥면이 곧 돈이라는

부동산의 관점에서, 이동경로인 복도는 위축되고 주눅이

앞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중성적인 성격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중간 스케일의 프로젝트에서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이 있다. 그것은 ‘특수한 대지specific site’다. 장소의 맥락 혹은 상황에 맞다는 의미에서의

장소특정성site-specific과는 다르다. 이것은 하나의 완결된

들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처럼 다루어진다. 하지만

영역으로서의 바닥 면이 도시적 맥락 혹은 그에 준하는

웰콤시티에서는 이들 또한 가급적 비워진 공간과 접하도록

인공적 지침guidelines과 결합된 상태를 지칭하기 위한

계획됨으로써 동선을 위한 복도가 아니라 길 자체의 성격에 무게를 둘 수 있었다. 규모가 커지면서 각각의 볼륨을 오르내리는 수직동선V 이 추가된 점을 제외하면 수백당에서 정리된 기준들이 비교적 정연하게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도시적 관점에서는 ‘사이’와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공간의

말이다. 이는 마치 ‘건축 안의 건축’ 같은 개념처럼 ‘대지

안의 대지’와도 같다. 일반적인 대지와 이것의 차이는 대지에 건축가의 의지가 개입하느냐의 문제로 이해될 수도 있다. 건축가 승효상의 프로젝트들을 보면, 작은 스케일에서는

건축가 스스로 설정한 영역과 건축방법론만으로 건축가의

분할이 필요하고, 이는 주변을 인식한 적절한 볼륨의 분할과

색깔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큰 스케일에서는

웰콤시티의 연면적을 비교해 보면 각각 199.2m2,

중간 스케일의 작업은 이 두 가지의 특성을 함께 갖춤으로써

그 사이 외부공간을 정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수백당과

3,417.1m2으로 약 17배 차이가 난다. 이 정도의 볼륨 스케일

54

전체를 아우르는 지침이 그대로 종합적인 색깔로 나타난다.

적정한 스케일의 작업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X

3 인식하는 건축가

문화공간이나 이문 291에 비해 섬세하게 조율되어 있긴

하지만, 기본적인 방향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이전에는 필지 옆의 건축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전면의 길과의 관계를 모색했다면, 쇳대박물관은 전면 길과의 관계에서 한 걸음 물러서고 전체 면을 코르텐 강판의 피막으로 씌워 일정 부분 거리감을 야기시키고 있다. 이는

‘빈자의 미학’에서의 생각처럼 현실의 소음에 대한 방어적 태도의 연장일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완고한 (벽)면을 통해 건축이 의사를 드러내도록 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 건물의 몸을 받치는 건축적 요소로서의

바닥인 판 혹은 포디움의 흔적은 없다. 웰콤시티에서 떠오른 볼륨은 쇳대박물관에서 받침대 없이 바닥까지 볼륨의 면들을

형태의 대지로 다시 떠오른다. 뒷 건물과 옆 건물에서

들어오는 선을 기준으로 둘러친 영역이 합해지면서, 보완된

형태의 조건이 완성되었다. 종합해보면, 그의 건축적 특징은

대지를 조율하고 설정하는 방식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건물 앞 사거리가 언젠가는 광장으로 활용되길 희망했다는 건축가의 언급에 따르면, 쇳대박물관의 위치는 옆과 뒤의 건물보다는 길 건너편의 낡은 가옥에서 건너오는 선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건물의 전체 위치는 남쪽으로 조금 이동하고, 북쪽 골목길과 연계된 바닥 면은

건물과 건물의 ‘사이’로 보다 적극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가정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 대도시에서의 도시건축은 대개 스스로 도시적 은유를 내포하는 지점에 머무른다. (뭐니뭐니해도

연장했다. 건물을 둘러싼 네 방향의 입면立面은 벽과 담의

이 건물은 사유私有 영역이다.) 탄천 변 대형 건물 사이를

다른 것이다. ‘완결된 영역으로서의 바닥면’은 사라졌다.

비롯한 몇몇 도시디자인 프로젝트를 경험하는 중의 건축

그런 것처럼, 대지에 일정한 패턴의 디자인을 입혀서 다른

42,890.57m2으로 규모도 27배 가량 스케일이 커졌다.

기능이 합쳐져 있는 면의 조합이다. 둘은 프로젝트의 특성이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그의 많은 다른 프로젝트에서

성격으로 치환하는 방법이다. 수평선이 강조되면서 인공의

대지를 만드는 것은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같은 도시적 관점에서는 일반적으로 채택되는 방식 중 하나다. 인위성은

건축가의 의지를 표현하는 바탕이 된다. 사라진, 건축가의

의지가 들어간 완결된 영역으로서의 바닥 면은 좀 더 느슨한

채우고 있는 휴맥스 사옥X (2002) 또한 파주출판도시를 프로젝트였다. 쇳대박물관 연면적 1,588.9m2에 비해

대규모 단일 건물로 건축가가 선택한 것 중 하나는 투명함이다. 그에 대해 건축가는 ‘도시와 자연의 풍경을

접합하는 틀’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도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디자인 방법으로 이전부터 이어져 온 길에 대한 생각도 함께 들어 있다. Y 건물 내부의 수직공간을

55

승효상

쇳대박물관W (2002)의 공간구성을 살펴보면 대학로


SCALE

Z

ARCHITECT SEUNG H-SANG

Y

설명하면서 ‘야콥의 사다리’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전의 건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건물과 도시를 잇는 길은 사다리를 대하듯 심리적 거리감이 있다. 내부의 규모감은 하나의

도시를 구현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Z 그것은 기존의

건축 프로젝트들에서 보이는 건축가의 기준과 방법론을 큰 스케일에서 충실히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a 각각의 건축과 도시 프로젝트는 그에 어울리는 적절함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둘의 성격은 풍경 등 이미지 정도에서 느슨하게

결합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다양한 스케일에서 ‘적절함’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건축과 도시 양 쪽의 스케일과 관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56


3 인식하는 건축가

승효상

a

57


ARCHITECT SEUNG H-SANG

SCALE

b

4 통합하는

어려움을 반증한다. 거기에는 인식과 환경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늘의 우리에게 ‘시스템’이

당연한 것이 아니듯, ‘스케일’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니다. 중성적인 성격의 이미지가 가지는 독특한 점 중 선언과 건축

건축에서 도시, 도시에서 건축. 건축가 승효상의 작업의 특색은 자신이 구축한 사유와 언어를 바탕으로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면서 다듬어져온 것처럼 보인다.

현실 건축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는 건축가에게, 골목길에서 보이는 건축의 풍경은 삶에 대해 숙고하게 하고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세상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감수성을 불러일으킨다. 건축과 도시라는 상대적인 작업

하나는 작업 결과물이 언어의 앞에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웰콤시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형태가 이미지로서의 의지를 드러내거나 기능이 강조되면 건물은 ‘읽힌다.’ 그

경우 건물을 보는 이의 시선은 건물의 표면만을 맴돌기 일쑤다. 그것이 추구한 가치를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건물의 표면이 ‘읽히면’, 그에 대한 선입견으로 쉽게 판단을 내리게 된다. 웰콤시티는 하나의 토대 위에 적당히 볼륨을

분할해서 올려둔 이미지인데, 만약 그 분할이 적당하지 않고

스케일은 그 이면에 작동하는 공간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어느 쪽에 치우쳤다면 그것은 건축가의 개성이나 외부적인

스케일의 정치경제적 활동과 분리되지 않는다. #공간의

조건의 결과일 거라는 편견과 함께 읽히기 시작하게 될

정치지리$(미즈우치 도시오, 푸른길, 2010)라는 책을 보면

글로벌과 로컬 사이에 위치한 내셔널(국민국가)의 스케일은

전쟁이나 외교, 내셔널리즘 등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영토 내 거주 국민에게 그 스케일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경향을 갖는다(p.58)고 기술하고 있다. 신체, 가정, 커뮤니티, 로컬, 리저널, 내셔널, 글로벌 같은 다양한 스케일들이 사실은 ‘생산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학자도 있다.

(pp.58–59) ‘우리는 왜 작은 일에 분노하는가’ 같은 말도 상황을 합당한 스케일로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것의 취약성과

58

것이다. 정확히 일정하게 분할된 건 아니라 하더라도 적당한 간격과 볼륨들이 만드는 풍경은 그 이유를 궁금하게 한다.

더구나 건물을 부동산의 가치로 바라보기 십상인 이곳에서 비움void은 미덕이 아닌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b 그리고

‘어반 보이드’라는 용어를 들으면 일단은 납득이든 반감이든 갖게 되는 것이다. 신념을 기반으로 한 선언을 프로젝트 앞에 두는 것은 건축가 승효상의 오랜 방법이고, 그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물론 이 방법이 만병통치약은 아닐 뿐더러 건축가마다


4 통합하는 건축가

가장 큰 차오웨이 소호(2004) 대지면적/연면적

결과물의 앞, 옆, 뒤 혹은 위아래에 두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다룬다는 점만이 이 프로젝트의 도시적 특징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업 안에서의 언어는 해당 프로젝트의 범위를

프로그램은 다르지만 파주출판도시 1단계 대지면적

수 있겠다. 많은 이들이 작업의 개념 언어를 자신이 설계한

벗어나기 어렵다. 보는 이들 또한 작업자의 작업과 결과와

언어의 정합도 정도만을 판단하려 할 뿐이고, 대개 언어는 중요하지 않게 다루어지거나 편견들이 맞붙는 링의 역할 정도를 담당한다. 사실 작업자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19,955m2/153,320m2를 생각하면 좀 더 넓은 대지를

822,519m2의 1/10 규모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한예종

마스터플랜 프로젝트는 출판도시의 섹터 하나 정도를 다루는 문제와 같다. 참고로 출판도시의 머리 부분에 위치한 출판물류유통센터인 북센의 경우, 대지멱적 71,779m2,

작업자를 이해하는 한에서 가능하다. 언어는, 말과 글은,

건축면적 26,179m2, 연면적 51,610m2으로 단일 건축

신중하게 다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순히 프로젝트를

국립대구박물관현상설계경기가 있었다. 그리고 당시 건축가

근사하게 포장하기 위해 사용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승효상이 대표로 있던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의 계획안이

프로젝트의 질과 상관 없이 건축가로서의 사유를 쌓아가는

당선됐다. 대지면적 9,900m2, 건축면적 6,701m2, 연면적

작업자의 태도와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는

기회를 포기하게 하는 것이다. 삶의 태도, 사유, 언어, 작업은 마치 이퀄라이저처럼 건축가의 색깔에 영향을 끼친다. 중간 스케일 도시

프로젝트지만 규모로서는 오히려 비교가 가능하다. 1989년

12,736m2로 바닥을 덮는 건축면적이 3.58배 가량 작은 단일

건축 프로젝트다. 벽의 수평성이 강조되지만 단일 볼륨을 가볍게 하기 위한 요소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건축가

김수근 이래 공간건축사무소의 주요한 개성 중 하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마스터플랜c (2000) 프로젝트에 대해

생각난 김에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국립청주박물관(1979)

대지면적 82,536m2 안에 건축이 바닥을 차지하는 건축면적

승효상 약력 부분을 보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으로

건축가는 ‘이것은 도시 프로젝트’라고 이야기했다.

프로젝트가 있다. (4.3그룹 전시 도록(1992)의 건축가

24,017m2, 건축 전체의 볼륨을 채운 바닥면적을 합산한

기록되어 있다.) 대지면적 136,211.57m2, 건축면적

3,771m2/42,890.57m2, 그리고 단일 건물로 설계한 것 중

공간의 규준으로 삼고, 선線적인 디자인 요소를 건물의

연면적 73,775m2. 휴맥스 사옥(2002) 대지면적/연면적

4,677.36m2이다. 경사를 따라 수평선으로 분할해나감으로써

59

승효상

특징적인 지점은 다르다. 다만 언어의 중요성 정도는 짚어볼


c

ARCHITECT SEUNG H-SANG

SCALE

한국예술종합학교 마스터플랜 (계획안, 2000) 1/2000

60


4 통합하는 건축가

승효상

61


입면과 지붕에 이르기까지 적용했다. 길이 방향으로 긴

특색은 보이지 않는데, 실제로는 9m 폭의 절반을 지상 및

대지 진입부에서 떨어져 위치함으로써 관람객은 건물들이

무방하다. 그리고 길의 상부에는 캠퍼스 전체를 연결하는

건물들은 수평선 방향에 맞게 배치되어 있고, 건물 진입부가

SCALE

모여서 만들어내는 전통적 풍경을 연상하며 경사지를 오르도록 되어 있다. 이런 예시들을 통해 한예종 마스터플랜

지하 공간과의 연결 등으로 할애하고 있어 4.5m 폭으로 봐도

데크 형식의 길이 지난다. d 이것은 길의 상부공간을

한정하는 지붕의 역할을 하며 길을 반내부 성격의 공간으로

프로젝트를 ‘군집미群集美 ’ 같은 이전 세대의 개념과

회유한다. 남북 방향으로 나 있는 길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프로젝트에서의 분배分配 가 익숙하듯 건축 프로젝트에서의

내포한 다발의 건물군이 자리 잡고 있다. 서쪽의 상대적으로

이어보려는 건 아니다. 건축가 승효상의 작업에서 도시 분할分割 또한 익숙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도시 스케일로 분배된 건물들이, 동쪽으로는 3m 폭의 길들을 큰 스케일의 건물들은 길 건너 도시조직의 골목길이

프로젝트 규모로 보나 디자인 방식으로 보나 한예종

배치된 폭과 결을 맞춰 앉혀졌고, 동쪽의 가늘고 복잡해

마스터플랜 프로젝트는 분배와 분할 사이에서 중간

보이는 건물군은 분할의 기준으로 전체 가로체계를 근거로

스케일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고 있어서 비교적 논리정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분배는

도시디자인은 내용을 채워가는 과정처럼 보이지만,

처음에는 오히려 빈 곳이 더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면 도시의

도시조직에 의거하고 분할은 길과 같은 공공공간의 흐름을 따랐다.

중심을 관통하고 순환하는 주요 도로와 하천 같은 것들 말이다. 한예종 마스터플랜에서도 마찬가지로 복잡하게

스파인의 데크와 이에 연결된 공공공간들이다. 그것은 서로

흩뿌려진 건물들의 시각적 중심은 남북 방향으로 비워진

다른 부품 사이의 가스킷gasket처럼 양쪽의 도시조직을 누수

9m 중심가로인 일명 ‘캠퍼스 스파인campus spine’이다.

없이 접합시킨다. 더불어 건축에서 비롯되는 인공의 대지와

때 건물의 ‘척추’ 성격을 갖게 되곤 했는데, 스케일이 큰

하나의 도시적 ‘인공의 사이’로서의 판이기도 하다. 대지와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자로서의 길의 성격이 말 그대로 척추처럼, 작용한다.

건축에서 복도(내부)가 길(반외부)의 성격으로 전이될

ARCHITECT SEUNG H-SANG

동일한 스케일의 다른 전략을 통합하는 것은 캠퍼스

도시조직 안에서는 길(외부)이 광장(반내부) 성격을 포함할

때 보다 강력한 척추로서의 성격을 확보하게 되는 것 같다.

도시에서의 ‘사이’, 둘의 성격을 결합시키고 중화시키는 또

캠퍼스 스파인으로 명명된 곳은 배치도 상에서는 길 이외의

d

e

62


프로젝트에서의 통합의 문제

프로젝트에서처럼 도시 프로젝트가 건축과 도시의 양

관련해서 살펴볼 만한 또 다른 캠퍼스 프로젝트로 대전대학교 30

. 건축면적 6,493.03m2,

주년 기념관e 이 있다

연면적 20,325.15m2으로 규모는 크지만 분명 건축

터였다. 그리고 경사광장과 함께 인근 보행전용도로를 대지와 연결시키는 축을 설정함으로써 도시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도시적 성격은 ‘사이’를 요청하고, 건물은 주

프로젝트는 도시적 관점을 추상적 수준 이상으로 현실화 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단순히 생각해 보면 도시는 건축을 포함하고 있고 건축은 도시를 컨트롤 하지 못한 채 받아들이기만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스케일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스케일과는 다른 별도의 요소가

4 통합하는

프로젝트다. 따라서 대지를 정리하는 것이 기본이 될

스케일을 받아들이며 통합성을 높여가는 것과 달리, 건축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축 방향의 광장형 길을 받아들이는 한편 그에 수직 방향인 지형을 따르는 축에 의거하여 프로그램을 분할시킨다.

건축의 척추는 외부로 연장되고 건물과 건물을 연결한다. 도시의 척추처럼 설정된 경사광장은 중심에 대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분할된 건물들의 ‘사이’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킨다. 도시 프로젝트에서 보이던 인공의 판은

건물들의 지붕과 이를 연결하는 요소로 대체되었고, f 길 등 흐르는 바닥면의 성격을 기본으로 하는 한예종 마스터플랜 프로젝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리감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시 프로젝트에서 건축 스케일을 받아들이는 것에 비해 건축 프로젝트에서 도시 스케일을 받아들이며 통합하는 것은 비교적 명료하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공간이나 형태 같은 건축의 기본적 요소보다는 재료와 입면이 건축가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통해 유지된다. 한예종 마스터플랜

승효상

f

63


ARCHITECT SEUNG H-SANG

SCALE

g

5 근거하는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지만, 이는 마치 공공의 장소에서

사람과 사람이 대하는 일과 같다. 실질적인 피해만 주지

않으면 무슨 짓이든 해도 좋다는 게 공동체 사회의 일반적 해석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에 대한 존중尊重(마음, 내용)이 필요한 것처럼

공공성

도시 프로젝트에서 스케일적 관점으로 적절하게 건축과 도시를 통합하는 것이 가능한 것과 달리, 건축 프로젝트는 도시적 성격을 내포할 수 있을 뿐 외부로 확장시키는 것은 어렵다. 애초에 다르게 질문을 해볼 수도 있다. ‘건축

그에 대한 표현, 형식인 예의禮儀 가 필요하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1969–)은 #행복의 건축$(이레, 2007)

에서 ‘집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이 스스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며, … 우리에게는 우리

프로젝트가 도시적 성격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외부

자신의 바람직한 모습을 바라보게 해주고, 중요하면서도

세계로 하여금 도시를 감지하게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쉬이 사라지는 측면들이 살아 있도록 유지해줄 방이

일인가?’ 많은 건축가들이 끈질기게 아름다움이라는 주제를

필요하다’(pp.111–112)고 했다. 정체성을 결정하는데

아름다움(비례)의 분별을 위한 고민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방을 생각하듯 도시 속의 건축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탐구하고, 스케일 또한 크기의 의미를 인식하는 문제 이전에

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건축 속의

하지만 건축가들이 주관의 영역으로 사라졌던 아름다움을

도시건축은 언제나 공공의 영역 안에 선다. 현실에서

다시 소환할 때에는 아름다움보다 아름다움에게 입힌 건축가

지어지는 건축설계에 대해 전문가들의 심의를 받도록

자신이 만든 옷들을 과시하기 위한 경우가 많았다. 또한

하는 것 또한 단순한 미적 판단을 넘어선 공동성共同性 ,

한쪽에서는 순수하게 기능 대비, 법적 한계 대비, 비용 대비

효과로 만족하기도 한다. 차라리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고

생각해버리면 쉬울 수도 있다. 그건 그냥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니까. 공동체를 잘게 나누면 결국 개인이 남듯 개인의

합이 공동체라면, 개성 있는 건축의 합으로 도시를 꾸미는

것도 근사한 일일 수 있다.

64

공공선公共善의 수준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쨌든, 대지경계선이 이미 그어져 있는 상황에서 금 너머를 희망하는 것은 법에 대한 도전이나 불가능한 땅에 대한 동경처럼 무모하고 멀게 느껴진다.


h

5 근거하는 건축가

케네스 프램튼Kenneth Frampton(1930 –)은 1991년 출판된 비토리오 그레고티Vittorio Gregotti(1927–)의 책 #건축

속으로$(미건사, 2002)의 서문에서, 그레고티가 건축의

자유로운 오브제화에 대해 철저히 반대했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그레고티는) 오늘날 위기에 처한 것은 도시가

승효상

땅의 인식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건축가 승효상은 땅에 관한 자신의 생각과

프로젝트들을 엮어서 2009년 #지문 — 땅 위에 새겨진 자연과 삶의 기록들$(열화당)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거기에는 땅(지형의 기억)에 대한 문제와 기억(역사의

기억)에 관한 문제, 두 가지가 담겨 있다. 1990년대 초중반

대지를 단순히 영리의 도구로 개발하는 것을 비판했다. 끊임

‘빈자의 미학’으로 건축의 합목적성, 장소성, 시대성의 문제를 고민한 이래 2000년 전후 ‘문화 풍경culture scape’ 등 몇몇 개념 용어들이 제시되기는 했지만, ‘지문/ 地文 / landscript’ 개념이 특별한 이유는 건축가 스스로 ‘빈자의 미학’ 이후

없이 현실을 초월하는 역할만 수행하려는 과학적 사고에

처음으로 정리하는 건축 방법론으로 언급한 바 있기

저항하기 위해 건축적 유산, 자연, 역사적 기억에 대해 보수적

때문이다. 땅에 관해 그가 생각을 전개해가는 과정은 이전에

학문 간 경계를 없애고, 개방적이고, 반이데올로기적이며,

유사함 또한 알 수 있다. 그는 서양의 건축과 도시가

아닌 대지 그 자체라는 것을 처음 인식한 사람’이라는

평을 남겼다. 내용을 살펴보면, 그레고티는 건축의 형태를

기능과 대지의 형상 사이의 근원적 중개물로 인식하며

태도를 취한다. 그는 하이퍼모던hypernodern적 사고가 무한한 해석과 조합을 가능하게 하면서 모든 것을

즉각적으로 획득할 수 있으며, 희생은 허상으로 간주한다고 보았다. 그는 역사의 깊이와 (조정의) 방향을 갖는 것의

중요함을 역설했다. ‘방법론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 결국

비해 유려해졌고, 문제의식 측면에서 일부 그레고티와

땅과 유리된 역사를 이어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간의 높아지려는 욕망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고딕건축이 높이를 기술적으로 극복하는 동안 땅은 무시되고 있었다거나, 르네상스건축도 땅과 무관한 기하학적 성취에 만족했다거나

목적 자체를 상실했다’는 그의 말은 특정 이즘에 대한

이를 바탕으로 한 이상도시계획에서도 지형은 번거로운

경고라기보다는 지난 20세기에 대한 회한悔恨 처럼 들린다.

것으로 취급됐다거나, 근대도시의 마스터플랜도 효율을

이는 모더니즘이라는 기치 아래 자립해나가고자 했던

앞세웠지만 결국은 폭파·해체된 프루이트-이고Pruitt-Igoe

건축이 역사와 맥락을 고민하며 다시 돌아오고, 종국에는 자신이 딛고 선 대지, 즉 땅을 인식하는 한 편의 서사처럼

주택단지 같은 결과를 남겼다거나 하는 식의 설명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오늘, 실패한 방식인 서구적 마스터플랜이

65


우리의 땅을 유린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윤리를 이야기해야

할 필요성과 땅에 대한 성찰을 강조한다.

다양한 문화행위를 수용할 수 있는 옥외공간의 필요성이 상충되는 문제를 함께 고민했다. 그의 건축에서 주로 다뤄지는 건축 프로젝트 안에서의 인공의 대지는 도시 프로젝트에서의 행위를 통합하는 인공의 판처럼 독립적으로

SCALE

공공공간

한예종 마스터플랜(2000)에서 땅에 대한 문제는

건물들의 배치에 영향을 끼치는, 땅과 관련된 축axis을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문제였다. 도시 스케일에서, 지형의 기억으로서의 땅은 자연 안에 인공을 삽입하거나 인공 안에 자연을 삽입하면서 새로운 풍경을 만드는 기제로 작용했다. ‘문화풍경’이라는 개념 또한 땅 자체보다는

정해지고, 판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도록 약간의 각도를 주어 정리했다. 판의 아래와 위로 필요한 프로그램을 채워넣는

것으로 설계는 일단락된다. 건물은 아래쪽의 기숙사들에서

열어둔 공간의 축을 경사지형의 광장으로 받아들이고, 그

공공공간의 흐름은 판 아래 볼륨 역시 두 개로 분할시킨다. h

오히려 인공적으로 설정된 공유공간으로서의 판을 강조하기

긍정적 대응이든 부정적 대응이든 캠퍼스 내의 전체적인

위함이었다. 큰 스케일의 지도 속에서 땅은 자연과 경관에

공간 구성과 관련한 선택은 단일 건물 내에서의 맥락적

상에서의 조화로운 결합을 예상하거나 추구하게 하고, 그

대전대학교 혜화문화관(2001)에서는 대전대학교 30주년

대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지도 안의 도시와 자연은 평면 속의 건축이 좀 더 건축답게 인지될 수 있는 스케일로 커지면 건축과 자연의 입체적인 결합에 대한 예상이 가능해진다.

특성을 강화시킬 계기를 만든다. 같은 건축 프로젝트임에도

기념관(2008)에 비해 건축과 도시에 대한 태도가 비교적 단순명료해 보인다. 건축적 성취는 떠오른 인공대지에

그리고 자연과 단일 필지가 만나는 건축 프로젝트에서, 땅은

의해 조율되고, 도시적 성취는 의식적인 ‘사이’로서의

(2001)은 건축면적 2,915m2, 연면적 8,300m2으로 건물이 땅을 차지하고 있는 건축면적은

보이드가 ‘비워진 곳’으로서 추상적 의미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이라면, 도시적 스케일을 지향하는 건축 프로젝트에서의

자연적인 땅에 대해 보수적인 관점을 가지는 건축가는

개념이 된다. 그리고 땅이 그것을 작동시킨다.

중요한 토대이자 매개로 부각된다. 대전대학교 혜화문화관g

ARCHITECT SEUNG H-SANG

설정되었다. 그리고 경사와 출입을 고려하여 판의 높이가

쇳대박물관(2002) 342.3m2에 비해 약 8.5배 가량 크다. 경사진 자연지형을 살리는 문제를 설정하고, 그에 따라

i

66

보이드void에 의해 보다 선명해진다. 도시 프로젝트에서의

보이드는 ‘무언가를 의식하고, 의식하게 하는’ 구체적인

도시 안의 건축은 도시가 설정한 지침을 받아들인다.


잘 디자인된 도시 안에서의 건축은 그 스케일감感에

위화감이 없다. 반면 도시디자인에 무신경한 지역에서의

프로그램의 복합성과 도시적 스케일 — 건축가가 한예종

마스터플랜을 ‘도시’라고 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 에

건축은 받아들일 기준을 찾는 것도, 도시를 향해 도시성을

대한 대응방식에 차이가 있다. 같은 점이라면 공공적 성격의

내에 공공공간을 설정함으로써 비롯된다. 길, 광장 등. (물론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발산하는 것도 어렵다. 최초의 가능성은 건축이 프로젝트

향하고 있다거나 옆 건물과 줄을 맞추고 있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공공공간으로서의 특징을 제시하고 그 공간 스스로

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공공공간의 특성은 기본적으로

사용을 전제로 한 비움void이다. 상대적으로 큰 스케일의

건축에서는 이 비움이 외적 방향성을 가진 메시지로 공유될 가능성이 생긴다. 그 건물은 흐트러진 열 안에서 대형을

5 근거하는

작은 의자 하나도 좋다.) 그러니까 단순히 건물이 어디를

빈 공간들, 광장 혹은 건물 사이 등 도시적 관점이 강력하게

땅의 건축

DMZ 평화생명동산i , j (2005)에 대해 건축가 승효상은

‘땅의 건축’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작업을 설명했다.

대지를 인공대지화하고 건축을 대응하는 작업방식은 여기서 건축을 인공대지와 결합되는 요소로 밀어넣는다. 자연스럽게 땅의 층위에서 다뤄질 수 있는 랜드스케이프의

갖추는 구령소리와도 같다. 건축이 도시를 인식하고 자신의

개념이 강화되는데, 건물의 배치 또한 땅을 다루는 방식과

기준은 땅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건축에

이르기까지, 프로젝트 범위로 설정되는 대지의 조건을

자리를 지키려고 할 때, 결국 건물과 공공공간의 방향성의

대한 인식은 다르다 하더라도 지형에 대한 인식은 보편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공간을 품은 땅은 거시적으로 도시를,

미시적으로 건축을 매개한다. 이로써 건축 프로젝트는

도시적 관점을 추상적인 수준 이상으로 높이고, 도시의 현실

안에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자리를 잡는다. ‘땅’은 시장의

욕망과 공동체의 단절을 우려하는 건축가들의 근거根據이며,

관련하여 정리된다. 그의 작업 초기부터 지금의 이야기에

인위적으로 재설정하는 과정/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편의상

‘대지 안에 인공대지를 만든다’라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 건축가가 ‘지문地文 ’으로 표현하기 이전에 먼저 ‘랜드스크립트landscript’로 명명한, 자연과 문화를 땅에 새기는 방식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루堡壘다. 대전대학교 혜화문화관과 대전대학교 30주년

건축가

기념관은 동일하게 큰 스케일의 건축 프로젝트이면서

승효상

67


건축은 이 모든 것을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어 인공화된 자연, 자연화된 인공구조물이어야 했다. 따라서 산에서 보면 갈라진 대지로 보이며, 도로에서 보면 SCALE

비어진 틈으로 산의 풍경이 흘러와 일체가 된다. 그렇게 건축물은 여기서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땅의 건축이요 풍경의 건축이라는 뜻이다.

— 승효상 (DMZ평화생명동산 프로젝트 건축설명 글 中)

ARCHITECT SEUNG H-SANG

j

68


5 근거하는 건축가

승효상

69


ARCHITECT SEUNG H-SANG

SCALE

k

6 기록하는

기억에 뿌리 내린 정서와 양심이 살고 싶은 땅. 그렇게 다른

땅에서 비롯되는 건축의 모습. 이 명백한 차이. 그리고 그

차이가 만들어내는 전혀 다른 풍경. 따라서 적절한 스케일로

삶의 풍경을 이야기하는 도시와 건축은 단순히 이미지의 기억에서 복원까지

우월한 매력만을 논할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인터넷에 의한

많은 이들이 도시를 이해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도입하기

연결로 세계의 도시 및 건축 정보가 융단폭격에 비견될 만큼

위해 노력한다. 인구 천만 도시, 서울 같은 곳에서 살다보면

쏟아지는 지금은 일단 눈에서 선택되지 않으면 내용으로

모든 게 복잡하게만 보일 수도 있지만, 덴마크 같은

나라에서는 인구 250명으로도 도시 요건을 충족한다.

(한국의 도시인구 기준은 2만 명이다.) 우리는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1901–1991)가 도시를 자본의

넘어갈 기회조차 잃어버린다. 현재만을 되풀이하고, 과거도 현재에 뒤섞이고 현재도 미래 전망도 과거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을 것이라는

우려들을 하지만, 아마 ‘그들’이 제일 먼저 물려받게 될 것은

첨병으로 보았다거나,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1916–

인간의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 ‘그들’이 기억하고 인간은

흘러넘치는 잉여가치들 때문에 도시가 건설사업장이

것이 의미 있을까? 그러니 도시와 건축의 풍경을 지키는 것이

2006)가 조닝 같은 것이 도시 다양성을 해친다고 했다거나,

검색하는 세상에서 지금처럼 부동산과 건축을 분별하는

됐다고 말했다는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1935–,

인간의 정서와 양심을 지키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기억을

시대에는 그것들 또한 ‘의견 1’일 뿐이지만, 어쨌든, 도시지역

수 있다.

트위터 @profdavidharvey)의 이야기들을 듣곤 한다. 다원적

인구비율 91.66%(2014 기준)에 달하는 한국을 비롯, 세계가

도시적 삶에 익숙해져가는 오늘날에는 분야 막론하고 도시를 이해하고 적응하기 위한 고민들이 중요해진 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부동산과 건축이 땅을 대하는 방법. 오로지 현재의 잉여

가치만이 중요하며 원치 않는 삶도 견뎌야 하는 땅, 우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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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는 것 또한 도시와 건축, 나아가 인간을 지키는 일이 될 프로젝트에서 땅의 중요성이 부각되면, 지형의 복원과

건축가의 의지 개입을 통한 방향 조정 또한 중요해진다.

그리고 이어 땅의 흔적을 찾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기억의 문제에 다다르게 된다. 도시의 집합적 기억에 의한 유형의 유추 같은 방법으로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키려 했던 건축가들도 있었고, 역사적 사건의 맥락을 건축에


l

6 기록하는 건축가

건축 프로젝트에서 공공공간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도시 프로젝트에서는 공공영역을 설정하는 것이

역사적 감수성과 관련 있다. 그는 아도르노Theodor W.

중요하다. 그것이 곧 공공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특히 도시

일본 건축학자 고야마香山壽夫(1937–)가 설파한 장소가

‘좋은 건축’으로 이야기하는 샘터 사옥n,o (故 김수근 설계)은

Adorno(1903–1969)의 ‘문화풍경kulturlandschaft’이나

갖는 기억의 중요성 등을 거론하는데, 오히려 “역사를

수정하면 결국 자신이 다친다”는 하루키村上春樹(1949–)의

안데르센 문학상 수상(2016.10.30) 소감처럼 기억에 관한

해석 이전에 사실 보존의 중요성 자체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특수한 사건을 기억하거나, 기존의 공간조직을 기억하거나, 삶 혹은 죽음을 기억하거나,

지속되어 왔던 풍경을 기억하는 등의 작업을 한다. 그리고

프로젝트 단위에서는 길의 성격이 중요하다. 그가 언제나

건축이 도시조직인 길에 공간을 내어줌으로써 장소를 풍요롭게 하는 사례다. 파주출판도시가 일면 정제된 풍경을 보여주지만 그곳의 공간들에서 아무래도 몸에 알맞지 않은 느낌이 들 때가 많은데, 과하게 넓고 형식적인 길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도시 안에서의 공공영역인 길과 광장 등의 스케일을 지역, 땅, 사람에 알맞게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은

그것들은 매우 직접적인 양상으로 작업 속에서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실행됐던 작은 스케일의 지도 안에서 축소된

아시아문화전당 현상설계(2005),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2007), (2008) 등의 도시 프로젝트들에서 그는 충실하게, 기존 도시 조직과 건물의

이미지와 용량을 조절하는 것(마스터플랜)이 아닌 보다

현상설계k

큰 스케일에서 확대된 풍경과 삶에 대한 조정으로 대체될

베이징 전문대가l

흔적을 가능한 복원, 보존한다.

공공의 기억, 삶 그리고 스케일

필요가 있다. 변화된 사회의 현실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도 중요한 일이고, 오랫동안 몸에 익힌 공간에 대한 스케일

감각과 역사적 인식을 담아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건축가 승효상의 ‘지문’은 땅에서 고대의 화석을 발견하기 위한

개념이 아니다. 결국은 모든 일들이 땅 위에서 이루어졌고 땅 길의 보존은 한 공동체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공공영역으로서 그 도시의 공동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 ‘헌인마을’m , #지문$, p.111

위에서 사라진 것처럼, 땅을 통해 삶의 감각을 공유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때, 요즘의 시간으로는 그렇게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71

승효상

삽입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는 건축가들도 있었다. 건축가 승효상이 말하는 기억은 보다 삶에 직접적인


않은 시기에, 페이스북의 주커버그가 VR 시연을 보인

건축 전문가가 가진 감각은, 지속적으로 훈련되는 과정

가상의 공간에서 직접 집을 체험해보면서 설계를 정하는

시대에 계산으로 추출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며,

적이 있다. 그걸 보면서 이제 건축도 건축가와 건축주가

SCALE

시대가 올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건축은 분리된 가상의 인간이 전부 경험해 본 공간환경을 지어나가는 과정의 의미 정도로 축소될지도 모르겠다.

그때도 스케일 같은, 너무 오래 돼서 쉽게 잊어버리는 이런 감각이 필요할까? 가상의 자신이 직접 겪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치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그게 참 그렇다. 소수의 건축가들이 도전하는 과정[건축]보다 현실의 집장사들이 지은 결과[건물]로 뒤덮인 세상인 것처럼, 건축주의

취향에만 맞출 수 있다면, 그 맞추는 과정에서 스케일의 문제

ARCHITECT SEUNG H-SANG

정도는 해결될 것처럼 전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케일은,

m

72

속에서 개발되는 것이다. 그것은 미美의 기준이 사라진

더 나아가 건축 작업에 대해 건축가만이 보유할 수 있는 도덕성이자 신뢰의 상징이다. 무엇보다 행복한 삶을 위해

사람과 사람, 건물과 건물, 그리고 그 ‘사이’들을 통해 균형

잡게하는 장기적 전망의 공공성을 다루는 일이다. 기술을

통한 극복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스케일 감각은 여전히

건축가의 몫일 것이다.


6 기록하는

n

건축가

승효상

o

73


경기대학교 교수 이종건

INTERVIEW

INTERVIEW

1955년 생. 건축의 의미 문제에 대한 현상학적 탐구로 조지아 공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경기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5년 창간한 건축비평지 <건축평단>의 편집인 겸 주간을 맡고 있다. 저서는 다음과 같다. #건축의 존재와 의미$(1995), #해방의 건축$(1998), #해체주의 건축의 해체$(1999), #중심 이탈의 나르시시즘$(2001), #텅 빈 충만$(2004), #문제들$(2014), #건축 없는 국가$(2014), #인생거울$(2015), #건축사건$(2015), #건축의 덫$(2015), #시적 공간$(2016), #살아 있는 시간$(2016). 번역서는 다음과 같다. #형태와 기능$(1987), #차이들 : 현대 건축의 지형들$(2004), #추상과 감통$(2006), #건축 텍토닉과 기술 니힐리즘$(2008), #건축과 철학 바바 : 건축과 탈식민주의

ARCHITECT SEUNG H-SANG

비판이론$(2010).

‘한국의 건축비평가’하면 건축 문외한 이외에는 스스럼없이 ‘이종건’을 떠올릴 것이다. 건축가 승효상과는 대표적인

이중용 : 단행본 #문제들$(시공문화사, 2014)이라는 책 내용 중 {건축 페티시스트 승효상}이라는

비평가와 건축가로서 1990년대 이후 오랜 인연을 이어왔지만,

글에서, 좋지 못한 건축(국회 의사당) 속에 있는

건축 독자라면 누구나 알듯 시원하게 좋은 평가를 내린 적은

한 우리나라 정치가 잘 되기는 어렵지 않을까’라는

없다. 그럼에도 올 봄, 이종건 교수가 편집주간으로 있는 계간지

승효상 건축가의 글에 대해 교수님께서 ‘그럼

<건축평단>의 집담회와 비평을 통해 둘은 다시 만났고, 이는

청와대를 좋은 건축으로 바꾸는 것보다 더 급한

양쪽 모두 지속적인 건축비평의 필요와 중요성에 대해서만큼은

일이 없네?’라고 쓰신 걸 봤다. 그리고 다시 근래

공감하기 때문이다. 건축가 승효상과 관련해서 건축비평가

나온 승효상 건축가의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이종건을 찾을 때는 누구라도 비평적 쟁점들에 대해 다룰

도시$(돌베개, 2016)를 보다가 ‘청와대를 옮겨

것이라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현재까지의 내용은 <건축평단>

지어야 한다’는 내용을 봤다. 좀 유치한 질문인데,

2016년 여름호를 참고하는 것으로 족하리라 생각한다. 오히려

영향을 준 것 같은가? (웃음)

비평의 쟁점들을 접하기는 쉬우나 기본적인 이야기는 대충

이종건: 그건 잘 모르겠다. 그건 잘 모르겠고,

넘기는 게 보통이라서, 독서가 어려운 젊은 건축 독자들을

그 이후에 영향이라면, 훨씬 건축이나 공간이나 도시가 삶에

위해 가벼운 대화 속에서 건축비평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라는 언급을 그 이상 안 하는 정도라고 할

방향을 잡았다.

수 있겠다. 예전에는 단정적으로, 잘못된 도시 잘못된 공간에서

74


사람이 살면 사람이 잘못되고 삶이 나빠지고 이런 식으로

질문하겠다. 우선, 평단에서 내린 승효상 건축가에

직접적으로 말을 했다면, 그런 결정주의적 언사들이 그 이후에는

대한 비평의 골자들을 설명해주시면 좋겠다.

거의 안 나타난다고 보는 게 영향이라면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크리틱은 각자가 알아서 하는 거기 때문에 그걸 퉁쳐서 얘기하기는 힘들고, 중요한 것들은, 그때 승효상 선생이 마치 건축을 자기 복제처럼 대량생산하듯 한다는 느낌, 언사가

인정하지만 골자를 읽어 달라’고 깨알 같은 폰트로

여전히 건축 현실 속에 자리를 잡지 못 한다, 말하자면 공허하다,

설명을 붙여두셨더라. 인터뷰 오기 전에 한 번 더

이런 두 가지 정도의 느낌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유했던 거

읽었는데, 흘러넘치는 감정이 너무 크게 읽혀서

같고, 그게 암묵적으로 아마 글들에 다 깔려 있지 않겠나 하는

건축가도 비평가도 잘 안 보였다. 그때는 왜

생각이 든다.

이종건

그 글과 관련해서, 교수님은 ‘심하게 쓴 건

그렇게까지 건축가를 질타한 것인가? 그 시점의 상황이 ‘KBS 대중 강연’인데, 거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효상 건축가를 밀어 올리던

건축이 대단히 전능한 존재인 것처럼, 그래서 인간의 삶을

타고 돌던 하면서 어쨌든 담론을 만들려 노력하시는

좌지우지할 정도로 강하다고 하는, 소위 말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것 같더라. 관련해서 두 번째는 교수님께서 평단을

건축가가 그런 자리에서 건축을 물신적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

이끄는 분이기 때문에 궁금한 점이다. 승효상이라는

굉장히 보기가 힘들었고 그래서 건축 내부가 아니라 건축

건축가를 대상으로 집담회를 하고 비평적 성과물을

외부까지 건축을 그렇게까지 오인해서 설명하는 것, (이 보기

만들었는데, 이런 작업의 의의에 대해 설명해 달라.

힘들었다.)

의의라면 여러 가지를 들 수가 있겠는데, 우선은 나는 기본적으로 지난 번 <중앙SUNDAY> 권혁재

우리 건축, 도시, 사회, 삶 속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 혹은

기자의 포토에세이({무관심 파괴자 이종건}, 2014.7.18)에도

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들, 이런

나왔지만 분노는 굉장히 중요한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문제들을 표면으로 끌어내는 문제, 그리고 표면으로 끌어낼 뿐

감정 없는 글쓰기 자체를 나는 받아들일 수도 없고 인정하지도

아니라 크리틱 입장에서 각자 숙고해보는 문제, 그것만으로도

않는다. 감정은 있는데 어떻게 통제하거나 좋은 의미로 쓰느냐의

나는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그 다음 문제라고 생각하고. 이게 일회적으로 끝나고 단발마로

운동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거기 감정이 깔려 있다고 해도, 나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걸 한 번 붙잡아두면 언제든지 이 이슈를

지금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다시 한 번 재고再考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이 틈을

생각한다.

우선 벌려놓고, 다음에 어떤 중요한 일이 있거나 이슈가 있으면 그것을 다시 한 번 들고와서 개입할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을 만들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냥 이전에도 승효상

두는 작업이라고 보면 된다.

건축가는 그런 식의 글쓰기를 해왔던 것 같은데, 대중강연이 분노를 증폭시키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승효상이라는 사람을 틈으로 만들어 둔 건가, 아니면

좀 분노를 건드렸다면, 이런 부분이다. 나쁜 공간에서

승효상을 어떤 식으로 평가를 함으로써 키워드 등을

사는 사람은 삶이 나빠진다고 그럴 때, 가난한 사람은 다 나쁜

틈으로 만들어 둔 건가.

공간에 살고 나도 나쁜 공간에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혼, 삶

두 가지 다다. 승효상이라는 한 인간이 차지하고

얘기를 할 때, 즉각적으로 나는 배제된 자 쪽에 속하기 때문에,

있는 사회적 영향, 권력 이런 문제에 대한 일차적인 현실적 관계,

나도 나쁜 공간에 살고 내 주변도 다 나쁜 공간에 사는데, 그

그리고 그 동안 해왔던 작업에 대한 한 번 더 리뷰, 두 가지 성격이

사람들에 대한 모독으로 나는 받아들였고 느꼈기 때문에 더

동시에 있었다고 본다.

분노가 난다고 생각했다. 교수님께서는 승효상 건축가가 ‘가차 없는 비판을 여전히 건축가들의 행위에 대해 느끼게 되는

뚫고 지나가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분노들이 있는가?

지적하셨다. 건축비평의 역할에 대해 궁금해하는

틈틈이 있다. 아까 말한 경우는 직접적으로 내 삶과

독자들을 위한 질문이다. 가차 없는 비판을 뚫고

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에 간섭하는 언사기 때문에 분노가 더

지나가는 건축가가 한국에 누가 있는지, 그게 왜

난다고 생각하고, 대중적이어서 더 분노가 난다고 생각하고

필요한지 알려주시면 좋겠다.

그랬다.

가차 없는 비판이 필요한 것은 굳이 이론적으로 설명 안 해도, 자기는 자기밖에 볼 수 없기 때문에 자기를 벗어난 교수님께서 편집주간으로 계신 <건축평단>

타자의 시선을 자기가 끌어안아야만 자기 성장이 가능하다는

2016년 여름호에 건축비평집담 대상 건축가로 다시

것은 기본적인 문제고, 그런 건축가의 역사가 있었느냐의 문제는

승효상을 호명했다. 두 가지가 궁금한데 한 가지 씩

구체적으로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 확인해 본 관점에서 보자면

75

승효상

오페라티브operative하냐, 현실적으로 작동하냐 이런 문제는 건축가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분노가 굉장히 중요한 에너지라고, 창조적인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글쓰기에서도 그렇고 다른


나는 김인철(1947–, 아르키움) 선생이 최근에, %오픈 아키텍쳐

ARCHITECT SEUNG H-SANG

INTERVIEW

스쿨&(openarchitecture.kr)에서 #공간열기$(김인철, 동녘,

맞물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처음부터 맞물리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 여기’라고 하는 조건과 개념과 의미나 문제의식들이

2011)를 6주를 다루면서 가차 없이 비판을 했는데 그것을

맞물리지 않으면 그 다음에 맞물릴 수 있는 이슈가 없으니까, 소위

대면하고 잘 받아들이고 좋은 대화를 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말하는 헛돌기가 되는 거다. 개념은 개념으로서 아름답고 좋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 열려 있다, 현장에서 확인했다 정도를 얘기할 수 있겠다.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고 했을 때 굉장히 난처한 형국에 처한다. 우리나라 건축가들이 대부분 그래왔다.

그러면 건축비평가로서 현재 뿐만 아니라 한국의

좋은 사례가 있나? 건축하는 사람들 중 많은 분들이

근대건축 이후 역사에서 비평을 통해 건축가로 좀 더

아마 지금 교수님의 이 답변을 들으면 ‘그것도

자리를 잡아간 사례는 있는가?

좋은 의미인 건 알겠는데 그래서 어떻게 하란

그런 역사들도 별로 없었고. 건축가들이 건축비평의

말이냐?’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그 경우는 건축가

가치를 그렇게 받아들여서 숙고한 사람도 별로 없었고 거의

혹은 건축 작업자의 몫인 건가?

자기 방어에 급급하고 자기 변호로 일관해왔기 때문에.

건축가의 몫이기도 하고 건축이론가의 몫이기도

앞으로는 가능하리라고 생각된다. 그게 여러 가지 역사적인

하고 건축교수의 몫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몫인데, 근본적으로

시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비평을 시작할 때가 사십

건축 작업을 옮기는 것은 건축가의 몫이지 않겠나. 예를 들어서

대 초반이고, 연령뿐만 아니라 지방에 있었고, 서울에 있다

조민석(1966–, 매스스터디스) 선생이 부티크 모나코(2004)를

하더라도 지방 출신이고, 여러 가지 문제로 글만으로 다가갈

만들면서 어떻게 하면 아파트 평면을, 아파트가 평형 / 위치 / 층

수 없는 한계들이 많았다. 그것들이 가진 절대적인 한계 때문에

이런 것으로 한정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 문제를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기도 아마 어려웠고, 가십거리만 남았을

해결한 것 아닌가. 많은 평면을 만들어서 ‘집집마다 다른 고유한

것이다. 지금은 나도 나이가 육십이 넘었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장소성을 만들었다’라고 하는 것이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는

후배들도 생겼고 해서 건축비평의 지대들이 또는 스펙트럼이 또는

방법, 현실의 문제로 파고들어서 건축가가 새로운 제안을 해낼 수

연륜이나 시간들이 흘러서, 훨씬 더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는

있는 현실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건축가들이 많이,

거다.

여기저기 있다고 보고 있다.

‘비평’이라는 단어에 여전히 기대감이 있긴 한 것 같다. 교수님께서 ‘승효상이 달동네에서 ‘가짐보다 쓰임, 더함보다 나눔, 채움보다 비움’의 가치를 발굴해내어 미학으로 옮기고자 한 것은 탁월한 안목이다’라고 평가를 하고, 문제는 그것이

‘엘리트의 고급미학으로 쉽게 전락할 수 있다는 것, 실천의 방도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 오늘날의 상황으로 확장시키지 못한다는

평단 글에서 ‘승효상 건축가에게 대표작이 없다’는 표현이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대표작 부재 이유를

‘빈자의 미학’이라는 개념에 비해 실천이 빈약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셨는데, 그에 대한 설명은 독자들이 평단 글을 참고하면 될 것 같다. 궁금한 건, 건축비평가들은 건축가에게 대표작이란 개념과 실천이 합치될 때 나온다고 보는 것인가? 합치 안 되더라도 대표작은 있다. 유행가 가수 누구

것이다’라고 쓰신 문장이 있다. 실천의 방도를

하면 곡이 떠오르듯이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강도 높은 작업의

찾는다는 것, 오늘날의 상황으로 확장시킨다는 것은

결과물들이 있는 건데, 승효상 선생의 경우나 다른 건축가도

어떤 의미인가?

대개 다 없다. 없는데, 그걸 못 만들어 낸다는 것은 여전히 어떤

그 개념뿐만이 아니라 사상이기도 가치관이기도 하고

일정한 수면을 못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주는 건데, 그런 의미에서

혹은 현실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이슈들이 다 알다시피

‘지금 여기’라고 하는 상황과 맞물려야 되는데, 안 맞물려 있는 경우는 비현실적인 게 되는 거다. 과거가 되든 미래가 되든.

이론이나 개념이 실천과 합치되기 때문에 대표작이라고 할 수는 없고 어떤 의미로든, ‘이 사람’, 그러면 그(대표작)게 떠올라야 된다. 그런데 승효상 선생하면 떠오르는 게 수졸당(1992)이

그러니까 ‘지금 여기’라고 하는 현재 조건과 맞부닥치고자

있으면, 수졸당을 가치 있는 작업이다라고 수긍할만해야 하는데

하는 노력, 그러니까 현실에 대한 생생한 인식과 현실에 대한

없게 되면 이게 또 사라지게 된다. 예컨대 웰콤시티(1999)를

한계 조건들을 숙고하고 그 속에서 가짐의 미학이든 나눔의

들여다보면 여러 사람의 손길, 영향 같은 게 있어서 곤란하게 되고

미학이든 이런 것들이 들어와야 되는데, 그에 관한 사색이 없다고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다. 그러니까 건축을 수십 년 해도 대표작이

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건축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한계를

없다는 건 참 슬픈 일인 거다. 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받아들이면서 그 한계 속에서 이것이 어느 정도 가능할지에 대한 건축적인 치열한 고민들, 뭐 이런 것들이 결국은 현실 속에서

대표작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한 가지 더 묻고 싶다.

확장된다는 의미이지 않겠는가. 확장이라는 말이, 일단 그렇게

건축비평가 이종건의 대표작(혹은 대표 아티클)은

맞물려야만 그 맞물린 것을 두고 다른 사람들이 비판과 혹은

무엇인가?

리뷰를 통해 새롭게 전개된다. 일단 하나 맞물려야 다른 기어가

그러니까 내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대부분

76


사람들은 #텅 빈 충만$(시공문화사, 2004)을 제일 많이

비평가가 비평을 하려면 잡지사에서 불러줘야 되고, 잡지사에서

제시하고 그래서 그 책이 많이 알려져 있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불러주기 위해서는 게재하는 건축가의 동의를 받아야 되고,

나는 #건축 없는 국가$(간향미디어랩, 2014). 그게 낫다고

그러니까 권력의 문제다. 항상 건축비평이 건축가나 건축매체를

생각한다.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간택을 받아야만 비평을 할 수 있는 지면이 어떤 측면에서 그런가? #건축 없는 국가$는 단순한 비평이라기보다는

없이 비평을 쓸 수 있는 환경은 마련됐지만, 그 이전은 권력의

이종건

생기는 거다. 이제 <건축평단>이 생겨서 누구든 그 간택과 상관 문제였다. 권력과 무관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이론적인 사색과, 비평과, 한국 건축 현재의 전체 지도를

때문에 어쩌면 나밖에 살아 남지 못 했다고 할 수 있는지는

그려보는 문제이기 때문에 나는 그게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모르겠다.

사람들은 그렇게 안 볼 수도 있고. 그런데 그 반주지적 정서나 비평의 필요성이나 이런 한국 건축의 지형도를 그리셨다고?

것들을 같은 건축계가 인식을 못 한다고 하는 거에

개념적 지형도다. 한국 건축이 어떻게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글로벌리즘이라고 하는 상황 속에 아키텍쳐와 건축이라고

비평에게 책임을 넘길 수는 없고, 나는 그것을 굉장히

하는 사이를 움직여야 되겠느냐 하는 숙고. 큰 문제이기는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일차적으로는 알겠지만 한국의

하지만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문제들, 이런 문제들을 개별

상황이 개별화돼나갔고 이념이 소실돼나갔고, 다 각자도생

건축가보다는 좀 더 큰 스펙트럼인 한국의 운명 속에서

쪽으로 삶이 재편돼나갔고, 자본주의 영향들 정치적 영향들 이런

그려내면서 비평이 개입했기 때문에, 내가 볼 때는 그렇게

저런 영향들, 이런 영향들로 인해서 삶 자체가 사소해져서 개인이

생각한다. 그게 지금까지 해 왔던 것 중에 가장 중요한 작업이지

개인의 목전의 사태 앞에 모든 관심을 쏟고 그 너머는 생각을 안

않겠느냐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하는 이런 큰 흐름이 하나가 있는 거다. 그 흐름 속에서 그나마

있다.

비평이 간신히, 어찌 보면 90년대 이전에 비평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이 비평이 성립되다가 그 거대한 흐름 속에 빨려들어오게 현재의 상황에 이른 것 아니냐 하는 거는 굉장히 불공정한, 부당한

23년 간 한국에서 건축비평가로 확실히 이름을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승효상

된 것이지, 비평이 특별히 잘못했거나 혹은 다르게 했기 때문에

1995) 한글판을 출간하신 후 지금까지 햇수로 새기셨다. 지금의 한국 건축비평이 처한 상황이 궁금하다. 요즘은 건축에서 ‘전선’이라는 말을

어쨌든 전선을 인식하고 있다면 그 전선을 극복할

흔히 쓰는데, 한국 건축비평이 처한 전선들에 대해

전략이라는 것도 같이 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시는 부분들을 알려주시면 좋겠다.

싶은데?

아, (웃음) 한국 건축비평이 처한 전선, 골치 아프다.

나는 전략보다는, 모든 사람이 자기를 충직하게

한두 개도 아니고. 한국 건축계가 우선, 근본적으로 반주지적

하는 것보다 좋은 삶은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정서가 너무 강하다. 지적 작업에 대한, 지적인 어프로치, 모든

90년대 비평이 있었느냐? 없었다고 볼 때 내가 와서 시작했다라고

지적인 성분들, 건축을 둘러싼 지적인 논의들과 언어들에 대한

만약에 가정한다면, 내가 20년 동안 비평을 손에서 놓지 않았기

반감들이 너무 많다. 특히 건축가들에게서. 그래서 반주지적

때문에 후배들이 지금 나타난 거다. 내가 열심히 했기 때문에 후배

정서가 너무 강한 게 우선은 첫 번째 비평의 전선이라고 볼 수

비평가들이 출현했고 만들어졌고 평단이 꾸려졌고, 이제 사단을

있다. 두 번째 전선은 비평과 비평이 아닌 것들이 옛날부터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거다. 내가 만약에 충직하게 그 자리를 안

마찬가지지만 여전히 모호한 상태로 넘어가면서, 무엇이

지켰다면, 누가 선배를 보고 또 누가 비평을 하고 싶어 했겠고

비평인가에 대한 구분이 없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비평의

누가 비평을 공부했겠느냐 이런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어찌 보면

정체성에 굉장히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이 사람도 비평가고 저

나는 비평을 일구어 와서 그나마 비평의 지반을 만들고 지면을

사람도 비평가고 이것도 비평이고 저것도 비평이라고 그러면,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거다.

정말 당혹스러운 거다. 비평하는 사람으로서는. 그리고 또 하나는 아까 말한 반주지적 정서 이외에도, 비평이 도대체

건축비평이 어려운 상황에서 나름대로 맥을

건축에 도움이 되냐 이런 시니컬한 태도들. 비평이 뭔데, 비평이

이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국 건축과

밥 먹여주나, 이런 비평에 대한 반주지적 정서를 넘어서서

한국 건축가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가야하는데

공격적 혹은 파괴적 태도들, 이런 것들이 일종의 전선이다.

거기서 주변부로 분리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앞으로의 건축비평의 도전을 통한 전망은 있는가?

지금 말씀하신 것들이 거의 외부적인 요인 같다. 외부적인 요인이다. 옛날에는 그것보다는 권력의 문제였는데. <건축평단>이 나오기 전에는 권력의 문제였다.

건축가

1994년 박사논문인 #건축의 존재와 의미$(기문당,

그것은 질문이 별로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분리되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건축평단>에 제법 많은 건축가들이 애정을 가지고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고. 물론

77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적대적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책을 만들고 그럴 것이다. 일방적으로 가는 그건 어처구니 없는,

건축가와 분리돼 있지는 않고 예전에 비해서 훨씬 더 단단한

(웃음) 이상한 것 같다.

INTERVIEW

방식으로 서서히 지반을 넓혀가고 있기 때문에. 다만 아까 말했듯이 건축비평이 스스로가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가

그냥 우스갯소리였다. (웃음) 마지막 질문. 한국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건축 사안들에 대해 개입하면서 스스로

건축비평가의 시각에서 볼 때, 오늘의 한국 건축은

지반을 만들어야지 그 사람들이 주지는 않는다. 건축 사회나

희망적인가 혹은 비관적인가? 그게 어떤 지점인가가

정치가 주지도 않고. 누가 격려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특별한

궁금하고, 건축가나 건축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방법이 있겠나, 각자가 자기 스스로의 글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건축비평가로서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가지고 꾸준히 하는 수밖에 없는 거다.

한국 건축이 희망적인지 비관적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희망적이기를 소망하고, 희망을, 블로흐Ernst

그걸 꾸준히 함으로써 뭘 하시길 바라나?

Bloch(1885–1977) 얘기처럼 희망을 전제하고 희망을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 생각하도록 만드는 거다.

만들어가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도록, 좋은 건축이든 뭐든, 생각하고 논의하는 사람, 숙고하고 토론하는 문화, 그게 가장 중요한 거다.

ARCHITECT SEUNG H-SANG

결과가 좋은 건축이 되든 나쁜 건축이 되든 사람은 생각을 해야

특히 어느 지점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점을 생각하기보다 희망은, 희망이냐 비관이냐라고

되는데, 비평이 개입함으로써 비로소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할 때 희망의 입장은, 희망은 우선 전제하고 만들어가는 작업이기

지점들이 열리고 또 생각해야만 되는 사유의 닥달을 느끼기

때문에 희망적일 수밖에 없어야 한다, 이렇게 대답해야 될 것

때문에 그게 나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문화적으로

같고. 그 다음에 그 가능성들이 무엇이냐고 현실적인 실마리들을

팔아먹고 안 팔아먹고, 비평이 건축가를 유명하게 만들고 안

제시해보라고 하면, 아시다시피 젊은 건축가들이 굉장히

만들고 이것을 떠나서 우리 모두가, 글을 쓰는 사람뿐 아니라

많아졌다. 거의 백 명 풀pool이 있고, 그중에서도 선배들이 보지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사유 속으로 들어와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못한 실마리들을 쥐고 있는 후배들을 보면서 상당한 기대를 갖게

거다.

한다. 모든 사람들이 반주지적인 것은 아니니까. 이런 후배 저런 후배들이 있는데, 알다시피 젊은 건축가들이 기본적인 수준은 올해 7월에 교수님께서 쓴 #시적 공간$(궁리,

어느 정도 다 일구어냈고, 그 이후만 넘어가면 될 거라는 생각이

2016)이 나왔고 10월에 #살아 있는 시간$(궁리,

들어서, 건축 공부하는 사람이든 후배들이든 하고 싶은 얘기는,

2016)이 출간됐다. 또 여러 책들이 준비되고 있다고

생각을 많이 해야 된다, 그러면서 책을 많이 봤으면 좋겠고,

들었다. 책의 내용도 삶에 대한 이야기로 독자

모여서 같이 고민과 질문들을 격렬하게 한 번 논쟁의 방식을

타깃을 넓히고 있는 느낌이다. 어떤 기획인지 소개해

통해서 자기를 다듬어 나가야 된다, 그런 가능성 없이 살아가면

달라.

자기 내부뿐 아니라 외부도 살펴볼 기회가 없다, 누구든지

육십이 넘어서고부터는 우리나라가 각자로

마찬가지겠지만 후배들에겐 더 필요한 것 같다. 너무 공부도

돌아와서, 나는 늘 세컨드 트랙이라고 말하는데, 세컨드 트랙에서

안 하고 책도 안 보고 역사도 모르고 이런 게 시대의 질병처럼

순전하게 제로 지점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만연해서, 그게 걱정이면서도 당부인 거다.

건축이라는 용어를 떼고 출발하자, 그래서 건축뿐만 아니라 삶 자체에 대한 고민을 모든 사람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왜 이렇게 건축만 매달렸던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고 (웃음) 좀 벗어나자, 그래서 제목에 건축을 안 쓰기로 했다. 그리고 뭐가 중요할까, 가장 생각하는 게 공간, 시간, 이미지다. 그 세 개를 우선 다루고, 그리고 좀 더 깊숙이 한국 현실, 정치든 사회든 문화든, 현실 속에 좀 더 개입하는 글을 써서 건축하는 사람이 건축에만 매달려 있는 게 아니라, 건축이 삶을 담는다는 표현이 어색은 하지만, 삶에 관한 생각도 건축의 지점에서 할 필요가 있겠다 이렇게 생각한다. 가령, 승효상 건축가가 좋은 건축이 좋은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 말을 하는데, 좋은 책이 좋은 사람을 만드는 건가? (웃음) 나는 그 두 개는 가다머의 해석학적 순환논리와 똑 같다고 생각하는데, 좋은 사람이 좋은 건축 만들고 좋은 건축이 좋은 사람 만들고, 좋은 책이 좋은 사람 만들고 좋은 사람이 좋은

78


DRAWING 수졸당 [80] 수백당 [81] 수눌당 [82] 노헌 [83] 와헌 [84] 시경루 [85] 퇴촌주택 [86] 모헌 [87] 말리부주택 [88] 청고당 [89] 논산주택 [90] 수우재 [91]

건축가 승효상이 직접 스케치한 주택 평면도 12개를 소개한다. 이것은 서울 통의동 진화랑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 ‘열두 집의 거주 풍경’展(2016.10.13–11.20)에 공개된 자료들이다. 이번 <와이드AR> 54호의 주요 키워드인 ‘SCALE’과 관련해서 건축가의 도면들을 살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택에서 도시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많은 작업들을 도면과 사진으로 정리하고 담아내는 일은 <A+U>가 잘 할 것 같고, 우리는 이번 호 주제에 맞는 분위기를 연장하는 방식을 택했다. 도면들은 건축가에 대한 아카이브 용도와 주택 평면의 구성 및 스케일감에 대한 비교 용도로 유용할 것이라 판단했다. 이것은 건축가가 롤 페이퍼 위에

1/100으로 스케치한 것이고, 잡지 편집 시 스케일을 1/300에 맞춰 옮겼다. 자세히 이해하고 싶은 독자분들이라면 삼각스케일자가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는 해당 도면들의 프로젝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붙여두었다. 모형 사진 외 자료는 이로재에서 제공했다.


수졸당

80

1/300


수백당 1/300

승효상 건축가 승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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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 SEUNG H SANG

INTERVIEW

수눌당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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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헌

1/300

승효상 건축가 승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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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 SEUNG H SANG

INTERVIEW

와헌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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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루 1/300

승효상 건축가 승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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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 SEUNG H SANG

INTERVIEW

퇴촌주택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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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헌 1/300

승효상 건축가 승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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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 SEUNG H SANG

INTERVIEW

말리부주택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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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고당

1/300

승효상 건축가 승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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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 SEUNG H SANG

INTERVIEW

논산주택

90 1/300


수우재

1/300

승효상 건축가 승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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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졸당 1992, 서울

대지면적: 234.40m² 건축면적: 117.54m² 연면적: 195.50m² 규모 : 지하 1층, 지상 2층

DRAWING

많은 기교는 졸렬함만 못하다는 ‘대교약졸大巧若拙’에서 따온

‘수졸당’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의 집이다. 70평의 작은 땅이지만 세 개의 다른 마당을 설정했다. 가운데 마당은 거실과 높이를 같이하고 거실처럼 마루를 깔아 내외부의 관념을 흐리게 했다. 이를 포함한 세 개의 마당을 건물과 담장으로 둘러싸 구축했다. 때문에 방과 방 사이가 길어지고 어떤 방은 외부를 통해서만 연결된다. 불편한 집이 되었다. 그러나 그 불편이 사유로 이어지고 가족의 단란을 만들며 결국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이다. 행여 우리 고유의 옛집에 온 듯한 느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옛집의 구성 방식을 차용하며 철저히 공간만을 구축한 까닭이다.

‘빈자의 미학’이라는 화두를 집어 들고 독자적 방향을 모색하던 승효상건축의 첫 작업이었다.

수백당 1998, 남양주

대지면적: 1,162.00m² 건축면적: 165.50m² 연면적: 199.20m² 규모 : 지하 1층, 지상 2층

ARCHITECT SEUNG H-SANG

주어진 땅이 비교적 넓어, 기존의 축대를 의지하여 길이 30m, 폭 15m의 프레임을 주거영역으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그 속에

12개의 방을 구축한다. 우리 옛집에는 목적을 가진 방이 없었다. 위치에 따라 안방 건넌방 문간방으로만 불렀다. 이 전통적 공간관념을 회복하여 도시를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원하는 거주자를 위해 목적이 없는 방 12개를 구성한다. 그것도 5개만 지붕이 있고 나머지는 위가 열려있다. 때로는 식당일 수밖에 없고 욕실일 수밖에 없지만 그 목적 아니고도 그곳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인접한 방들과 접속을 긴밀하게 했다. 방과 방 사이는 때로는 물로 채우고 때로는 꽃으로 채우지만 어떤 곳은 그냥 비워져만 있다. 그리고는 이를 감싸는 재료와 물성도 희게 하여 비웠다. 이 집은 뉴욕현대미술관의 영구수장품으로 2010년에 선정되었다.

수눌당 2002, 아산

대지면적: 2,325.00m² 건축면적: 395.00m² 연면적: 598.90m² 규모 : 지하 1층, 지상 2층

온양 부근 신정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구릉에 위치한 이 집은 연구소를 부속시설로 두고 있어 규모가 다소 크다. 부근에는 농가 몇 채가 있을 뿐이어서 이 집의 볼륨이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지배하지 않아야 했다. 집이 조경의 일부로 보이도록 입구부터 구릉 위에까지 경사진 땅을 축대로 구획하고 이 축대가 집까지 연장되어 집은 그 일부가 되게 하였다. 집으로 보이는 것은 축대 위 주인의 침소뿐이며, 큰 축대인 집과 연구실의 위는 풀과 꽃이 깔린 마당이며 장독대도 있는 새로운 땅이다. 이 새로운 땅이 만드는 수평선이 구릉 위에 떠서 주변의 고만고만한 풍경에 척도자로 그 역할을 담당한다. 도덕경의 ‘대변약눌大辯若訥’에서 따서 ‘수눌당守訥堂’이라고 집이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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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헌 2002, 양평

대지면적: 1,478.00m² 건축면적: 225.00m² 연면적: 416.00m² 규모 : 지상 2층 주택 평면 드로잉 12

남한강 변 300m 가까운 길이의 땅 위에 새로 조성한 억새군락과 자작나무 숲의 크기를 고려하여 폭 4.8m 길이 36m의 나무통을 그렸다. 홍수가 되면 때때로 평상 지면보다 2,3m 높이 위로 강물이 범람할 수 있는 것을 고려하여 주 층은 위에 두고 아래는 되도록 작업실이나 창고 등을 두었다. 집 앞에 작은 문방을 하나 둔 까닭은 집과 문방 사이에 생겨나는 적당한 긴장감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집에서 보는 바깥 풍경 때문이기도 하다. 건축주가 강 건너에 펼쳐진 조악한 상업건물들의 풍경을 거르기 위해 심은 자작나무숲은 티타늄으로 마감한 수평 지붕의 은빛과 조화를 이룬다. 강 건너에서야 은빛의 수평 지붕을 가진 이 집의 전모가 겨우 보인다. 보여지는 집이 아니라 풍경을 보는 집을 그린 까닭이다.

와헌 2003, 성남

대지면적: 822.38m² 건축면적: 164.16m² 연면적: 197.00m² 규모 : 지하 1층, 지상 1층

판교 부근 야산에 위치한 이 땅을 보자마자 집의 이름이 먼저 생각났다. 와헌臥軒. 누운 집이라는 뜻인데, 그렇게 단층으로 길게 누운 모습의 집이어야, 산세가 불규칙하여 균형 잡기 어려운 주변의 건축가

지형을 다스릴 수 있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어지러운 모습으로 막 등장하기 시작한 주변 집들과 형태로 견주는 것도 부담스러워

승효상

이 집은 아예 형태를 갖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도시 근교이긴 해도 자연 속에 지어지는 집이며, 각 방에서 보여지는 풍경은 절제되기만 하면 지극히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각 방들은 독립된 외부공간을 갖고 모든 창의 위치와 크기에 주의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땅에 누운 이 집은 그 자체로 땅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경루

건축면적: 465.15m²

2005, 베이징

연면적: 792.82m² 규모 : 지상 3층

중국의 성공적인 디벨로퍼인 장신 부부의 주말주택. 베이징 부근 만리장성을 경계로 갖는 산악지대에 개발한 리조트 호텔의 끝부분에 지어졌다. 계곡의 건너편에서 차를 내려 계곡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 집에 도달하게 한 접근방식은 일상과 비일상,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과 같으며 바쁜 일상을 보내는 이에게는 더 없는 안식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건축주를 설득하여 짓게 했다. 그리고 사실이 되었다. 방마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깥이 산수화처럼 아름답지만, 이 집의 다락방에서 보는 계곡 아래의 풍경과 먼 산 위를 지나는 만리장성과 망루의 실루엣이 만드는 풍경은 그야말로 백미다. 그런 확신으로 설계를 하고 그대로 사실이 되는 경우 말할 수 없는 충만감을 느낀다. 그게 건축가 된 자의 작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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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촌주택 2009, 광주

대지면적: 862.00m² 건축면적: 164.00m² 연면적: 192.80m² 규모 : 지상 2층

DRAWING

각자 전문적 직업을 가진 가족의 독립된 영역이 모여 이 집을 이룬다. 본디 우리의 전통주거는 방들의 집합이었는데 한 간 집부터 아흔아홉 간 집이라는 게 이를 의미한다. 이런 독립된 형식의 방은 외부와 직접적으로 접속하게 하여 통풍과 채광을 자유롭게 하므로 지극히 건강하다. 현대의 밀폐된 공간에서 현대적 설비를 이용하여 인공적 환경의 삶을 사는데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불과 50평의 뚝뚝 떨어진 이 집은 불편한 집일 수 있다. 그러나, 퇴촌이라는 풍광 좋은 터에서 이 불편함에 익숙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즐거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불편한 즐거움', 아마도 우리가 잃어버린 기억 아닐까? 그래서 이 집은 새로 지었지만 기억의 집이며 이 파편적 시대에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우리의 오래된 미래이다.

모헌 2009, 대구

대지면적: 357.16m² 건축면적: 120.90m² 연면적: 164.68m² 규모 : 지하 1층, 지상 1층

ARCHITECT SEUNG H-SANG

40년 동안 살아온 집의 부속채인 이 작은 집은 특별한 정원을 갖는 게 전제였다. 100평 남짓의 작은 땅이지만 4개의 마당을 만들게 된다. 앞마당의 면적을 최대로 확보하기 위해 내부공간을 뒤로 물리되 이 공간도 두 개로 나누어 그 사이에 마당을 삽입한다. 식당으로 쓰이는 앞부분은 투명하게 하여 뒤쪽 침실에서도 정원이 보이게 했다. 결과적으로 앞의 정원, 식당, 사이마당, 침실, 뒷마당, 이렇게 다섯 개 공간의 켜들이 이 작은 대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대지 전체를 집의 높이와 같은 높이의 코르텐 강 담장으로 둘러 위요된 공간의 긴장을 극도로 높였다. 정영선 선생의 조경은 상상을 뛰어 넘었다. 팥배나무를 그 작은 공간 속에 빽빽이 심고 바닥은 작고 거친 돌들로 가득 채웠다. 본채에서 이 정원 속으로, 코르텐 벽 앞에 직선의 길을 뚫고 화강석을 놓아 띄운 돌판을 밟으면 마치 엄청난 크기의 숲 속, 혹은 원시의 자연으로 빨려들게 된다. 건축은 없어지고 조경만 남았다. 건축이 스스로를 버린 결과이다. 모헌某軒. 아무개 집. 부재의 아름다움이다.

말리부주택 2013, LA

대지면적: 18,332.00m² 건축면적: 385.60m² 연면적: 730.09m² 규모 : 지하 1층, 지상 2층

미국 서부해안에 위치한 말리부의 산 정상에 짓는 집이었다. 기존 집은 멸실 되었지만 집의 기단부는 남아 있어 이를 이용하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산 정상부의 실루엣을 변경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따라서 옛집의 흔적을 따른 직사각의 프레임을 내부평면으로 구축한 후 그 속에 다시 서로 다른 성격의 5개 외부공간을 만들어 비운다. 그러면 내외부가 서로의 경계를 교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모든 내부는 늘 외부와 만나게 되어 있고 이 내부공간은 끊임없는 흐름을 만든다. 적막한 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태평양의 고요함이 모든 공간들에 빛나지만, 이 고요한 바다에 낙조가 내리면 이 집의 모든 공간은 붉은 축제로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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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고당 2014, 성남

대지면적: 264.50m² 건축면적: 129.28m² 연면적: 295.41m² 규모 : 지하 1층, 지상 2층 주택 평면 드로잉 12

먼저 집이 들어선 이후에 집들 사이가 길이나 마당 같은 공공영역이 되어 마을이 형성되는 게 우리의 전통적 주거지였지만, 길을 먼저 만들고 집을 나란히 배치하는 서양식 도시 조성방식이 주도하게 된 지난 시대부터 우리의 거주형식이 죄다 바뀌게 되었다. 판교의 이 주택단지도 마찬가지인데 여기에서는 개인의 주택인데도 담장을 설치하지 못하게 하는 웃지 못할 법규 때문에 모든 집들이 내향적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되어 오히려 동네의 폐쇄성을 초래했다. 한가지 방법이 있었다. 구한말부터 우리가 가졌던 도시한옥의 공간구조인데 가운데 마당을 두고 둘레로 거주공간을 두면 공간감이 확장될 뿐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마당 깊은 집이 된다. 물론 가족공동체의 단란함도 공고해지니, 이 집에 살기를 간절히 소망해 온 아름다운 젊은 가족에게는 더없이 좋은 거주형식이라 여겼다.

논산주택 2015, 논산

대지면적: 3,923.00m² 건축면적: 581.88m² 연면적: 628.74m² 규모 : 지하 1층, 지상 1층

땅은 비교적 넓지만 비탈진 산허리를 차지한 까닭에 야기되는 불안정한 공간감을 바로잡으며 멀리 솟은 산의 원경을 끌어들였던 회재 이언적의 독락당을 만든 지혜를 빌렸다. 그래서 앞마당, 건축가

바깥마당, 가운데마당, 옆마당, 뒷마당 등 대단히 많은 마당이 먼저 배치되었고 그 마당들을 한정하기 위해 별채와 행랑채, 사랑채와

승효상

안채 등으로 둘러싼다. 펼쳐진 공간들이 방만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이들을 잇는 복도의 폭과 높이, 시각목표 등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였다. 각각의 내부공간은 박공지붕을 가진 가장 단순한 형식으로 이루어지게 하여 마당공간에 대한 감각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였다. 부차적으로는 박공의 지붕들이 집합하여 이루는 모습 또한 경사진 주변 지형에 맞는 형식일 게다. 오로지 공간이다.

수우재 2016, 서울

대지면적: 380.00m² 건축면적: 188.33m² 연면적: 564.30m² 규모 : 지하 1층, 지상 2층

구룡산이 감싸고 있는 땅의 모양이 심장 같다고 해서 염곡동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곳에 보호수로 지정된 6백 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있는 바로 옆 땅에 지은 집이다. 땅의 모서리 바로 곁에서 울창한 모습으로 주변을 압도하는 고목에 대항할 건축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며 이 오래된 나무에 의지하는 거주풍경을 만드는 일이 지혜롭다. 그래서 공간을 나누고 집 또한 나누어 마치 작은 마을의 풍경을 이루는 것이 이 거대 형상을 수용하는 유효한 방법이라 여겼다. 또한 이 집은 염곡동 전체 마을과 자연의 경계에 있는 집이다. 뒤편의 산을 앞산과 연결시켜주는 일도 중요하므로 이를 위한 사이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도 집의 방들을 모두 분리하여 독립된 단위의 집합으로 전체를 조성하는 일이 더욱 타당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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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ARCHITECT SEUNG H-SANG

INTERVIEW

건축가 승효상

그가 검도 훈련 하는 어느 날 아침, 시작부터 끝까지를

인터뷰에서도 이 두 가지를 지키고 싶었다. 이번 <와이드AR>

지켜보고 있었다. 요즘 세상에서 일반적인 운동이라는 건

54호 작업을 위해서, 그동안에 비해 가장 적은 세 번을 만났다.

‘심신수련’보다는 ‘보기 좋은 몸’이 목표가 되는 게 대부분이니까, 격과 예를 갖추고 수양하듯 하는 검도가 왠지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두 가지 정도가 기억에 남았다. 내 상태가 불안해지면 상대에게 틈을 보이게 된다는 사범님

바빴기 때문인지 스스로 묻는다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인터뷰보다는 생각할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나마 그중에서도 처음에 했던 그간의 건축 작업 이야기는 이번에 실리지 않는다. 어느 한 쪽이 원하는 이야기로

말씀에 ‘기氣’는 잘 이해 못 하겠지만 ‘호흡’의 중요성은

흐를 때 다른 한 쪽은 수동적이 되는 경향이 있었다. 아무래도

느꼈다. 그리고 맞는 연습. 사람 대할 때 갑자기 들어오는

인터뷰이interviewee인 건축가가 능동적일 수 있는

부정적 발언이나 뉘앙스에 급격히 흔들리기도 하고

대화 쪽이 좋을 것 같았다. 더구나 ‘승효상’ 아닌가.

그만큼 생겨버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추스르느라 애를 먹곤

그의 말과 의지가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만큼, 우리가 무엇을

하는데, 상대가 아이든 어른이든 때리기도 하지만 묵묵히

듣고 싶은가 만큼이나 그에게 무엇을 말하게 할 것인가도

맞아주기도 해야 하는 걸 보면서, 몸 만큼이나 감정의

중요하리라 생각했다.

맷집도 좋아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가 승효상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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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12

전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를 정리해봤어요. 선생님 이야기 속에 나오는 단어들, 도시나 랜드스케이프나 윤리나 이런 단어들이 어떻게 쓰이고 있나를 생각해보니까, 건축가로서, 건축에

건축 이야기가 좀 더 풍성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대해, 도시에 대해 각각의 기준, 도구, 실행에

있어요. 그래서 가급적 건축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관한 주요 키워드들과 관계들이 만드는 틀이 있고,

경향이 있기는 한데요. 사실 지난번에 그런 식으로

전체적으로 이것들이 지향하는 (모종의) ‘플랜’이

인터뷰를 해보고 나니까, 뭔가 허공에 칼질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령 개인적

느낌이 드는 것 같았어요. 어떠셨어요?

차원의 선악을 나누는 신념과 사회적 차원의

승효상 : 괜찮아요.

방향에 대한 이념이 있는데 이들이 균형 잡히는

네. (웃음) 그리고 알려주신 <바이오그래피>

때문이 아닐까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언어 같은

잡지에서 다룬 내용도 대중 취향인 것 같긴 한데

경우도 ‘빈자의 미학’ 같은 건축론이 있고, ‘어반

재밌게 봤어요.

보이드’ 같은 도시적인 개념이 있고, ‘지문’이

사람들이 읽고 나서 하는 얘기가 재밌대요. 사람이

마치 건축과 도시 사이의 랜드스케이프처럼 둘

인터뷰

이중용 : 비평은 비평이 원하는 이야기가 있을 거고, 대중은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가 있을 거고, 저는

이유는 건축가가 현실 자체를 아름답게 보고 있기

실수하는 내용을 읽으면 재밌는 모양이예요. (웃음)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중화시키는 용어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분(승효상)의 방법은 선언을

어제는 페이스북에 (소장님께서) 써두셨더라고요.

하고, 마치 (선언이라는) 옷을 만들어 놓고 그 옷에

이번에 책 네 권이 한꺼번에 나오는 것에 대한 변辯 ?

자신을 맞추려고 애쓰고, 그걸 다시 프로젝트나

(웃음) 그러니까, 그게 계획된 게 아니라는 얘기예요.

사회적 상황에 대한 진술로 적어 놓는 이런 식의 방법을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건축

혹시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한 변인가 싶더라고요.

요건은 ‘빈자의 미학’에서부터 나온 합목적성, 시대성, 장소성 같은 것들이 있고, 건축 어휘는

뭐, 11월에 <와이드AR>도 나온다고 하니까. (웃음)

면과 볼륨 사이에서 판이 전체적으로 중화시키고 있고, 건축작업의 목표에서도 삶의 배경이나

있고.

경험을 불확정성 같은 걸로 중심을 잡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전체적으로 제가 생각하기에는 저는 저 나름대로 계속 스터디를 해나가고

이랬어요. 다른 분들보다도 균형이라고 해야 할까,

있었거든요. 저번에 보여드린 건축적 구성 요소로

이런 부분들이 좀 더 감각이 좋으신 걸까 하고

분석하는 부분도 있었고요. 근데 전체적으로

생각을 풀어보고 있는 중이에요. 선생님은 어떻게

보니까… 이렇게 말씀드리면 건축가분들께 좀

생각하세요?

그렇긴 한데, 어쨌든 저희도 소스가 있고 그걸

나는 별로 그렇게 동의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요리를 하는 입장이 되면, 말하자면 ‘참치가 싱싱한 게 들어온대.’ 그러면 그걸 요리를 할 거 아녜요? 일단 좋은 참치를 골라야 할 거고요.

어떤 면에서요? 세계가 그렇게 디지털화 되어 있지 않다고 하는…

좋은 건축가를요. 근데 날짜가 지났는데 ‘왜 안

디지털로 그렇게 세계는 구성돼 있는 게 아니고, 기본적으로

들어오지?’ 그러니까 ‘들어왔다는데?’ ‘그래?’

아날로그로 구성돼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아이템과

그러고 살펴보니까 ‘어? 고래 뱃속에 들어와 있나?’

아이템 사이에도 굉장히 많은 것들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웃음) 승효상

분석하는 사람이나 학문 하는 사람은 그렇게 분류하면 이해하기

선생님과 분명히 건축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뭔가

쉽고 속이 시원하겠지만, (웃음) 작업하는 사람은 그런 분류에

이질감? 그게 뭘까 생각해 보니까, 이전에 했던 다른

대해 이해는 하는데 동의를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내 생각은.

분들, 장윤규, 김인철, 김찬중 세 분은 ‘만들기’라는

예컨대 이거 있죠. ‘왜 당신은 선과 악이 분명하냐?’ 이런 얘기를

데 이야기 초점이 있어서 거기서 더해지고 빼지는

할 수가 있어요. 그건 출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내 성격을

식이었는데, (승효상 선생님은) 방향에 대한

갖다가 확실히 나타내야 하니까, 그런 문제에서 내가 하지

이야기가 앞에 있고 그걸로 전체를 다 끌고 가셔서…

말아야 할 것을 고르는 가운데서 사람들이 보기엔 ‘저 사람은

(그런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어느 프로젝트의

호불호가 분명해’ 하고, 그게 잘못 이해하면 이분법적으로 보게

창문 디테일을 어떻게 풀었냐고 (웃음) 이렇게

되는… (거죠.) 사실은 난 이분법을 대단히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얘기하기도 그렇고요. 디자인도 그런 스타일도

왜냐며는, 어떻게 보면 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선한 가치가

아니신 것 같고요.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가

있다고 믿는 사람인데, 사람이 그렇게 구분돼 있지 않다고 하는

97

승효상

이왕이면 그럴 바에 다 쏟아 놓고 새로 시작할까 그런 생각도

건축가

(웃음) 사실 저는 딱히 그런 생각하지 않긴 한데요.


거예요. 사람 속에서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내면에 흐르는

좋아하셨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더라고요.

존엄성 이런 것들이 있잖아요.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

근데 그 안은 아마 실현이 안 될 거예요. 그렇게

하더라도 없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근데 한 예를 들면, 전에 내가

실현될 수가 없어.

INTERVIEW

참 그 사건을 두고 오랫동안 생각에 많이 잠겼는데,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 그 자살을 할 때 엄마 되는 여자가 한 달 치 월세를…

어째서요?

아, 그거는 정말 인간 아니면은, 그러니까 자기 안에 내면에

그건 그러니까, 실무적으로도 어렵고, 단계별로

흐르는 존엄적 가치를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그렇게 못 하는

실행을 해야 하는데 저거는 전체가 완성돼야 완성되는 거라고. 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은 정말 존중 받아야 하는 거예요.

부분이라도 완성 안 되면 완성 안 되는 거라고. 그러니까 저거는

처지가 아주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전형적인 서양식 방법인데, 저렇게 해서는 이 사업 자체가 형성이

인간은 그런 존엄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듯이, 상황을

안 되는 거예요. 심사위원들은 뽑을지 몰라도, 지금도 사실상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분류하는 것에 대해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오너는 심사는 그렇게 뽑으라고 하고 자기들은 선택은 다를 수

(웃음) 이중용 선생이 이렇게 분류한 건 이중용 선생의 방법이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고.

이해는 하지만, 저렇게 내가 살까… 의심이 좀 있죠. 그렇군요. 처음 딜러 스코피디오 계획안만 봤을 땐 그렇군요. 그렇다면요. 가령 똑같이 작업이라고

규모에 대한 감을 잘 못 잡겠더라고요.

놓고 보면요. 저 같은 경우는 주어진 시간, 환경

그리고, 스케일 오버예요. 스케일에 대한 관념이 없어.

안에서 잡지라는 결과를 만들잖아요. 그것도

저게 얼만큼의 크기인지 잘 모르는 거 같아. 그래서 거의

하나의 작업인데, 어떻든 결론을 짓는단 말이죠.

원 빌딩one building으로 한다고 하는 거는, 그거는…

ARCHITECT SEUNG H-SANG

제 나름의 방식으로. 그리고 선생님도 하이난 에코 헤테로토피아 A (2016) 같은 프로젝트, 가령 그런

저도 이 분들 거 볼 때는 스케일이 작은 곳인가

경우에 거기서도 선생님 나름대로 선택할 수밖에

했는데, 포스터 파트너Foster + Partners 계획안

없는 상황, 그런 건 있지 않을까요?

보면서 ‘아, 되게 큰 곳이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러니깐, 저런 프로젝트에 관한 개념을 갖다가 같이

선생님 안의 장점이 뭘까 생각해보니까, 이거는

일하는, 그러니까 나 혼자 작업을 하면 나 혼자 해요. 그런데

건축가가 혼자서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여기에

건축이라고 하는 거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하고 작업을 해야 하는

방향을 담아 놓고, 다양한 섹터들을 많은 사람들이

거고, 그 사람들에게 내 뜻을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단계적으로 작업을 하기에는 유용하겠다는…

가장 필수적인 수단이에요. 그러니까,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아니 뭐, 우린 스케일 잘 알지만 (이 프로젝트

이게 어떤 말일까’를 찾다가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라는

대상지가) 파주출판도시 1단계의 2.5배에 해당되는 크기고,

단어를 생각을 해냈고, 그걸 설명을 하니까 같이 일하는 스텝이나

그러니까 그 안에 얼마만큼의 건물과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이해를 하는 거죠. 그러면 그 공동 목표를

들어가는지 감을 너무 잘 알죠. 그러니까 저렇게 하나로 형성될

위해서 같이 만드는 거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고, 더구나 저거(이로재 계획안)는 하나만 완성돼도 완성된 거예요.

그 와중에 선택되고, 분류되고, 종합되는 과정은 어쨌든 다 있는 거죠?

하나만 완성돼도요?

그렇죠. 그 단어가 선택된 순간에는 그 단어가 가지고

예. 저거는 그냥…

있는 가치가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진실이기 때문에, 그것에 위반되는 건 다 쳐내는 거죠. 이거는 나쁘다고 쳐내는 게 아니라,

아, 그쵸.

우리가 이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서 쳐내는 거죠. 선택을

천천히 완성해도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실행가능성도 굉장하고. 더구나 저거는 (다른) 누가 디자인해도

하는 거죠.

괜찮은 거예요. 열두 개의 기존 어반 패턴을 빌려왔지만은 혹시 프로젝트 얘기 나온 김에 좀 더…

맞다면 다른 도시가 와도 되는 거예요. 혹은 세웠다가 없애고 또

(에코 헤테로토피아 프로젝트 현상설계 참가작들을

딴 걸 해도 되는 거예요. 어차피 땅은 원래 있던 땅이 아니에요.

열어 본다.) 야, 그건 정말 아까운 프로젝트야.

인공섬이요? 인공의 대지예요. 그러니까 이 섬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세요? 1등을 한 딜러 스코피디오Diller

많은 사람들이 정주하는 공간이 아니에요. 크루즈 타고 와서

Scofidio + Renfro 안을 보니까 너무

일시적으로 거주하고 가는 사람들, 이 사람들에게 어떤 이벤트나

그림 같아 가지고 잘 몰랐는데, 아마 리조트

사건에 관한 기억을 제공하는 그런 종류의 플랫폼이라서

같은 걸 개발하려고 하신 분들이라면 그 안을

여기에서 오랫동안 왕국을 이루거나 도시를 이루거나 살아가는

98


인터뷰

건축가

승효상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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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공간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항상 많은 사건들이 일어날

이게 발주처가 어디 에어라인 이렇게 돼 있던데요.

수 있는 그런 장치, 바탕만 제공해주면 되는 거예요. 영원히

하이난 항공?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로만 존재하면 되는 거예요.

하이난 항공인데, 개발회사가 사실은 더 커.

INTERVIEW

완성된 건축이 아니라고 하는 거죠. 아, 네. 그래서 저는 내용은 잘 모르고 항공 쪽 여기에 열두 개 블록이 들어가 있던 데요. 이것들은

개발이면 리조트 섬을 개발하셨나보다 해서 딜러

어떻게 유추가 되는 건가요? 축이나 이런 방향도

스코피디오 안을 선택하셨나 했었어요.

있는 것 같던데.

사실은 우리가 4 등을 했다는데, (웃음)

열두 개는…12라고 하는 숫자는 옛날에는

‘완전수’고, 그러니까 올림푸스 십이신神, 예수의 열두 제자, 12라는 숫자는 다 그렇잖아요. 그런데 송나라 시대 때

ARCHITECT SEUNG H-SANG

하규夏珪(1195–1224)라고 하는 화가가 ‘산수12경山水十二景’

그러세요? 순위가 발표가 됐대요. 근데 심사위원 구성이 됐을 때

‘아, 우리가 1등 못 하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은

이라고 하는 그림을 그렸더라고. 그러니까 열두 개의 풍경을

그 심사위원 구성이 이런 류의 스토리를 좋아할 만한 사람이

그렸다고 하는 게 아니라 모든 풍경을 그린 거예요. 풍경마다

아니고, 스코피디오 안을 좋아할 만하다는 걸 알았어요. 그렇지만

제목이 있어. 제목이 기가 막혀요.

그 안에서도 아규argue가 좀 많았대.

어떤 거예요?

그렇군요. 한예종 마스터플랜 B (2001),

제목이 예컨대, ‘먼 산에서 기러기가 나와 소식을

아시아문화전당 C (2005)이나

전하다’라는 풍경, 그리고 ‘기암절벽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 (2007)처럼 여전히

혹은 ‘아주 한가로운 강가에서 낚시를 하다’ 이런 류의 제목을

힘 있게 밀고 가시는 프로젝트들은 아쉬운 경우가

가지고 그 풍경을 그린 거예요. 환상적인 풍경이지. 그 풍경의

많으신대요?

내용이 이런 류의 스토리에 딱 맞는 거야.

맞아요. 정말, 아쉬운 게 많아.

그러면 각 블록마다…

파주출판도시 같은 경우는 어떠셨어요? 그때도 힘을

그 이름을 다 붙였죠.

왕창 쏟으셨어요? 정말 에너지를, 정열을 쏟았는데… 그게 이

그렇군요.

파주출판도시의 한계라고 하는 거는 내가 개입하기 전에 이미

예컨대, 이건 본섬에서 오는 터미널인데,

마련되었던 도시계획, 토지이용계획으로 공사를 시작하고 있었기

‘요산서안遙山書雁’이라고 해서, ‘먼 산에서 기러기가 편지를 가져오다’라는 제목으로 하고, 이런 류로 제목을 붙여가면서 스토리를 만들었단 말이에요. 그런 내용도 재미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근거라고 하는 게 없는, 터무니가 없는 도시를 만드는 거라서 뭔가 스토리를 제공해야 되는 거니까, 그게 하나의 이야기가 인프라가 돼 가지고 전개되는 도시라고…

때문에 도로망 구성을 손을 댈 수가 없었죠. 그게 지금 현재 파주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거든. 예컨대 가운데 20미터 도로가 지나가는데, 그게 전혀 속도를 그렇게 빨리 지나갈 이유가 없는 도로라고. 이미 공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바꾸진 못 했지만 그

20미터 도로를 반으로 잘라서 한쪽을 그냥 주차장으로 만들자, 그냥 2차선으로만 이렇게 다니게 하자, 이 제안을 결국 경찰청이,

(웃음) 수용을 못 하는 바람에 그게 지금 아주 뼈아픈 거죠. 근데 그러면 인공섬 같은 경우에요. 만약 이게 지어지고

그렇게 도로망의 부당함에 대해 얘기 했음에도 불구하고 2단계를

백 년이 지나고 이백 년이 지나면 인공의 흔적이

또 그대로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너무 실망했어요. 10년이라고

남을 거 아녜요?

하는 인터벌이 있었고 충분히 그걸 갖다가… 2단계를 시작할

남죠.

거라고 하는 생각을 못 했었어. 사실은. 시작할 것이라고 했으면 강력하게 요구를 했을 텐데, 더 강력하게 얘기를 했을 텐데. (웃음)

그런 것들도 터무니에 해당하나요? 물론. 나중에 이게 정주를 위한 터전이 될 지도

김영준 선생님이 2단지 초기 지침 세울 때,

모르죠. 시작은 어떻게 했다 할지라도. 그건 나는 모르는 거예요.

그때는 제가 직원으로 있었거든요. (웃음)

그리고 여기에 일정한 간격으로 선이 있는데 이거는 바람이

내가 하도 얘기하니까, 파주에서, 집행부에서 할

지나가는 통로예요. 주 바람 방향이거든. 이것에 의해서 열두 개

만하니까 ‘승효상 까다로운데…’ (웃음)

(도시)가 임의대로 적당히 위치가 되는 거예요. 그 사이는 조경이 그래도 승효상의 정신이 이어진 라인 아닌가요?

전체를 엮고.

에이…

100


B

인터뷰

C

건축가

승효상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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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 SEUNG H-SANG

INTERVIEW

E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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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요?

디벨로퍼가 자기 고향 마을을 이상도시로 만드는 프로젝트예요.

김영준대로의 색깔이지.

그 안에, 기존 마을에 (집이) 백 채가량 있는데, 그걸 기반으로 해서 전체 땅을 넓혀 가지고 와이너리Winery도 만들고, 농업도 하고 교육도 하고 리조트도 만드는 프로젝트라서, 땅을 보니까

큰 스케일에서의 성취들은 또렷하게 얻으신 게

논리도 정연하게 풀 수가 있는 실마리도 찾았어요. 땅의 조건 다

없으신 건가요?

감안해가지고 전체 그림을 꽤 근사하게 그렸는데, 정부하고 잘 안

없죠. 실현된 건 없죠. 한 거는 많아요. 중국에서는

맞고 해서 지금 펜딩pending된 상태.

인터뷰

그런가요? 어쨌든 파주출판도시(1999) 이후에

여러 가지 어반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손을 많이 댔죠. 실제로 구현된 (도시) 사례도 있고요? E

2003년도의 M-city 이런 거 말고요?

어반 스케일로 구현된 게 없죠.

말고. 그 이후에도 많이 됐죠. 톄산핑鐵山坪 주거단지 G (2015)는요? 베이징 전문대가前門大街 (2009)도 실현된 F

그거는 지금 허가받는 상태이고. 어반 스케일

건가요?

프로젝트는 중국에서 많이 했죠. 한국에서도 LH나 이런 데 의뢰를

일부분 됐죠. 나머지는 다른 방법 마련해가지고.

받아서 전에 몇 개를 했었어요. 예컨대 대장골…

최근에 가보면은, 하…, 그렇게 될 거라고 짐작은 했어. 다르게 되는 걸 보고. 왜냐면은 (우리가 계획한) 전문대가는 공간은

대장골 주거단지 마스터플랜 H (2006)이요.

그대로 살리지만은 방법은 바꿔서 현대적으로 오픈하고

그거는 정말 실현될 직전에 있었는데. 그 전에는

그랬단 말예요. 그런데, 올림픽 끝난 다음에, 자기네들이 옛날

도시계획 하는 사람들이 그냥 다이어그램 그리듯이 한 건데, 이게

건물들 하도 많이 없앴으니까, 이게 무슨 약간의 자괴심이 들은

내가 하다 보니까 그림과 풍경부터 먼저 나오고, 그러니까 이게

모양이예요. 그래서 옛날식으로 복원시킨다고, 순전히 얼토당토

입안이 되기 전에 과열이 돼 가지고…

않은 옛날식 건물들을 갖다 놓기 시작한 거예요. 옛날식 건물 갖다 과열이요?

샵shop이나 이런 게 투명하지 못 하고 다 막혀 있게 되니까

공무원들부터 땅 투기를 (웃음) 시작해서, 이게 국회에서 문제가 되고 했잖아요. 내부 정보를 흘리고 다니고

말았어.

이러는 바람에. 그래서 LH에서 전면 캔슬cancel을 했버렸지. 전문대가 보내주신 자료에 보면 1층은

여전히 그 곳에서의 프로젝트는 유효하고요?

다 샵이…

땅값이 그냥 확 올라버렸으니까 더 이상 사업성이

다 샵이예요. 갤러리 등 이렇게 사람들 오게

없어졌어요.

만드는 건데, 지금 형성된 거 보면 아주 완강한 담으로 하고 기와 얹히고 다…

그러면 실제로 도시 단위에서 구현된 사례는 파주출판도시가 있고, 이후에 가장 큰 스케일로

근데 상하이의 텐즈팡田子坊 ? 이런 거리 가보면

지어진 건 대전대학교 30주년 기념관(2008)

옛날 건물에 돌담으로 막혀 있는 골목 같은데도

정도인가요? 계획이 아니고 실제로.

예술가들이 많이 들어가서 작품 활동하고 상품 팔고

규모 이야기하는 건가? 큰 거야 차오웨이朝外

하긴 하더라고요.

소호(2005)가 훨씬 크지. 이게 5만 평이 되는 건물이니까 훨씬

그러니까 도시라고 하는 것은 거리가 살아야 되는

크죠.

거거든요. 거리라고 하는 게 익명의 사람들이 군집하는 곳이 거리니까, 그게 도시의 정체성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곳이라고요.

국내에서는요?

그러니깐 아무나 갈 수 있어야 돼. 아무나 갈 수 있어야 되는데

국내에서는 휴맥스 빌딩(2002)이 크죠. 만 평 가까이

아무나 가지 못 하게 만든 게 옛날의 도시예요. 옛날의 도시는

되니까.

항상 통제를 하고, 신분 때문에 계급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까 옛날 마을 복원한다고 옛날 식으로 하면 이게

차오웨이 소호 하고 M-city하고 클라이언트가

요즘의 시대정신하고 안 맞으니까 사람들이 갈 리가 없죠. 그렇게

같나요?

만들어 놓은 게 지금의 전문대가 안에 있는 거리 풍경이에요.

같아요.

그래서 굉장히 아쉽죠. 그거 말고도 중국의 타이위엔太原에 했던 프로젝트는 정말 흥분되게 시작했는데 아직까지 잘 안 됐어. 어떤

그래서 M-city는 이야기를 보니까 자하 하디드Zaha

Hadid(1950 –2016) 안이 당선이 됐는데,

103

승효상

사람들이 가나. 사람들이 전혀 안 가는 그런 거리로 변해버리고

건축가

놓으면 전부 다 아주 견고하게 벽을 쌓고 있는 거니까, 1층에서


ARCHITECT SEUNG H-SANG

INTERVIEW

G

H

104


클라이언트 측에서 협력건축가로 참여하시라고

뿐만 아니라 역사 경관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이미 엄청나게

했지만 ‘하면 안 돼’ 하고 빠져나오시고, 차오웨이

많이 사라졌으니까, 굉장히 애통해 하고 있고, 심지어는 젊은

소호 때도 자하 하디드하고 경쟁해서 당선됐죠?

평론가는 ‘서양 자본의 광기가 베이징 하늘을 휩쓴다’는 식의

차오웨이 소호는 자하 하디드, 이토 토요伊東豊雄

글을 써놓은 것도 있고. 중국도 경기가 재작년부터 굉장히 둔화가 많이 됐죠. 그러니까 ‘재생’에 대한 관점에 눈을 뜨기 시작하고,

붙어서 당선이 된 건데, M-city보다 전이지 아마?

상황이 굉장히 많이 바껴요. 지금 그런 상황에서 필요한 책이라고

인터뷰

(1941–), 위니 마스Winy Maas(1958–)하고 나, 이렇게 네 명이

하는 거죠. 차오웨이 소호가요? 거기서도 가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건가요?

응.

(웃음) 이후인 것 같은데요. 2004년 가을 겨울 쯤에 제가 그 프로젝트 계획안 당선됐다고 잡지에 실었던

그런 거죠. 근데 아직도 멀었어. 일부는 그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기억이 나고요. (당시 c3에 있었다.) 어쨌든 클라이언트 한 분이 굉장하신가봐요.

중국에서는 선생님하고 결을 같이 할 만한 건축가들이 있으신가요?

차오웨이 소호를 하고 그 다음부터는 자하 하디드하고

좋은 건축가들 굉장히 많아요. 거기. 작년에

사랑에 빠져가지고 자하 하디드한테만 전부 다 건물 설계를

베이징디자인위크에 중국의 건축가 100인의 전시회가 있었는데,

맡겼죠.

가보고 깜짝 놀랐어. 건축에 대한 사랑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클라이언트가) 하이튼 여잔데, 부부긴 하지만 여자가

왜요?

설계를 담당했으니까, 장신張欣(1965–)이라는 분. 그분이 자하

100명 전부 다가 굉장히 하이 퀄리티의 건축이에요.

하디드하고 완전히 가까운 사이가 됐버렸어. 그 이후로 모든 공간 조직도 단단하고, 디자인 실력도 아주 뭐 이게 좋고, 아주 세련됐고. 그러니까 세계 어딜 갖다 놓아도 굉장히

둥글둥글하게 나오는 프로젝트들도…

좋은 디자인이라고 얘기할 만한 거예요. 100개가 다 그래.

전부 다.

그래서 내가 깜짝 놀랐어. 굉장히 쇼크 먹었어. 그 사람들은 나이 많은 사람도 있지만 젊은 사람이 많은데, 주로 해외에서 교육

최근에 어떤 책 내용 보니까 #빈자의 미학$이

받아가지고 2000년대쯤 되면 해외에서 교육을 끝낸 건축가들이

2015년에 중국에서도 출간됐다면서 선생님께서

많아요. 다시 들어오기 시작을 한다고. 내가 2000년에 중국에

‘이 책 왜 찍어?’ 그랬더니 그쪽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야.’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중국에 지금 필요한 이야기라고

중국은 ‘설계원設計院’이라고 그 안에서 모든 설계를 다 하는

갔을 때만 하더라도 독립된 설계사무소들이 거의 없었어요. 거예요.

생각하세요? 그렇죠.

설계원이요? 중국설계원. 혹은 제1설계원, 제2설계원 이렇게

어떤 측면인가요?

있어요. 추이카이崔愷(1957–)라고 하는 중국의 아주, 나보다

좀 전에 자하 이야기… 자하가 설계를 해서

나이가 한두 살인가 적지만은 굉장히 잘하는 친군데 설계원의

갤럭시 소호가 완성이 됐어요. 그 건물에다가 영국

부원장이었어. 근데 국영기업이에요. 거기서 모든 설계를 다

리바RIBA(영국왕립건축사협회)에서 상을 주는 일이 생겼어.

하고, 개인적으로 하는 건축가는 장용허張永和(1956–)라고, 그

그때 중국에 있는 역사문화보존협회라는 곳에서 항의서한을

친구가 일찍이 유학을 가가지고, 아버지가 중국의 건축가였기

넣었어. 리바에다가. ‘이 건물에다가 상을 주는 행위는 북경의

때문에, 천안문 광장 스탠드를 디자인했던 사람인데, 일찍 유학

전통적인 경관을 훼손하는 일에 상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

가가지고 일찍 돌아와서 아주 독특한 새로운 스타라고 하던 그런

주는 일을 그만둬라.’ 그렇게 항의서한을 넣었어.

때였어. 근데 2000년대부터 그런 사람들이 하나둘씩 돌아와서 사무실을 만들어가지고 이제는, 지난 십여 년 사이에 자기 사무실

철회 됐나요?

가진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졌죠. 그 사람들이 만든 작업들이 다

철회 안 됐죠. 그걸 <빌딩 디자인>이라는 잡지에서

나온 거예요. 근데 뭐 진짜 하이 퀄리티야. 그래서 깜짝 놀랐어.

보도를 했어요. 그때부터 중국에서는 이게, 서양의 건축, 건물이 휩쓰는 것에 대한 반성이 아주 일기 시작하고 있는 거예요. 그

105

승효상

그러면 중국에서 갤럭시 소호(2012) 같은

건축가

하이 퀄리티라는 건 어떤 측면인가요?

프로젝트를 자하한테 다 맡겼죠.


디자인 자체만인가요? 아니면…

얘기를 하지 않으니까 재미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자기가 하는

디자인 논리도 탄탄하고, 땅에 관한 해석이나 자기

건축, 자기가 하는 생각을 내놓고 얘기하면 좋은데…

디자인에 관한 선언이나 공간의 조직이나 이런 것들이 뭐 정말 근사하죠. 우리나라 100명? 턱도 없는 얘기죠.

그건 한국 사람들의 습성일까요?

INTERVIEW

음… 그런데 요즘은 좀 희망이, 희망적인 상황도 좀 우리나라… (웃음)

보여요. 전에는 건축전시회라고 하는 게 전혀 없었어요.

그건 뭐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예요. 언제 말씀하시는 건가요? 나라 스케일이 달라서 그럴까요? 물론 뭐 나라가 워낙 넓고 그만큼 인구가 많으니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래서 하도 답답해서 내가 스스로 전시회 하는 경우가 많았어. 그런데 런던 같은 경우는 매일

우리나라로 치면 한 열 명은 뽑겠지. 열 명 뽑아서 전시하면 그런

어딘가 있어. 건축 전시라고 오늘 어디 찾아볼까 하면 항상 어디

하이 퀄리티를 만들겠지.

있어요. 근데 한국은 전시가… 아마 그게 내 생각에는 바빠서 그런 거 같아요.

중국의 건축가들 안에서도 기억이나 풍경이나 이런 데 대한 공유된 관점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는

바쁘다는 건요?

건가요?

자기에게 주어진 프로젝트가 있는데, 설계 안 하고

그렇죠. 지금 사합원四合院이라고, 전통가옥을

(전시를 하기에는) … (웃음)

주제로 하는 컴페티션 같은 일도 있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기억이나 풍경이나 이런 것들에 관한 작업을 안 할 수가 없죠.

영국 같은 경우 건축가들이 안 바쁜가요?

특히 올해 주제는 그거였어요.

안 바쁘죠. 프로젝트가 없어. 건축가들이 할 일이

ARCHITECT SEUNG H-SANG

없어요. 선생님은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거잖아요?

그럼 뭐 먹고 살아요? (웃음)

그렇죠.

그러니까 겨우, 근근이 먹고 살아요. 그러니까 티칭teaching하는 거예요. 주로 티칭해서 먹고 살고, 그러다

그런 것들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의 방향?

꼼페competition 있으면 해가지고 엉겁결에 당선되면 독립하고

그런 걸 통해 건축가들을 끌고 가는 면도 있는

그 자리에서 그만 두죠. 그게 알레한드로 자에라-폴로Alejandro

건가요?

Zaera Polo(1963–) 같은 친구가 전형적인 그 스타일이에요.

그건 뭐 전체의 시대적 정신, 이렇게 보기에는 무리가

그러니까 자기를 알리기 위해서 글도 쓰고 전시회도 하고

있는 거고, 요즘은 시대가 옛날처럼 한 가지 시대정신으로

기웃거리고 서로 쓸데없는 얘기도 하고 하니까 담론도 만들게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지난 거고요. 뭐 SNS 이런 것들이

되겠죠. 근데 한국은 그런 거 안 해도 프로젝트가 너무너무

하도 발달돼 있으니까 정보가 독점돼 있지 않잖아요. 옛날에는

많으니까, 뭐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일절

권력이 정보로부터 나왔는데, 그때는 권력자만이 정보를 가질 수

전시도 없고 이야기도 안 하고 담론도 없고 이런 상태죠. 지금은

있었으니까 한 사람이 좌지우지 했고, 몇 명의 지식인들이 모여서

일이 좀 없어졌는지, 아니면은… 내가 그래도 조금 노력해서

‘이게 새로운 시대정신이다.’ 하면 그게 인정이 됐어요. 지금처럼 누가 이야기하면 ‘그게 뭐 시대정신이야. 이게 더 그렇지.’

우선 프로젝트 주는 일이라던가 이런 일들을 하게 되니까, 모이는

모이게 하는 일들, 공공건축가 제도라던가, 젊은 건축가에게

하고 백가쟁명百家爭鳴하는 시대에는 하나의 이념이나 하나의

느낌이 좀 있어요. 근데 요새 젊은 건축가들이 폐단弊端이 있대.

컨센서스로 모아지기는 지극히 어려워요. 그러니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오히려 지금은 개별적 언어가 훨씬

어떤 거요?

더 존중 받고, 다른 언어하고 같이 공존하는 시대여야 한다고

젊은 건축가들이 빨리빨리 독립을 하려고 한다는

생각해요.

거예요. 개별적 언어라는 건 건축가가 가진…

네. (웃음) 그건 일본도 마찬가지라던데요.

자기의 주장이죠.

아니 그래서, 일이 있으니까, 젊은 건축가들이 해야 될 일이 있으니까, 공공으로부터 일이 막 나오기 시작하니까. 요새

백가쟁명이라는 용어를 쓰셨는데, 제가 다른

우리 같은 설계사무소에 지원하는 친구들이 별로 없대요. 그런

분들께도 더러 그런 얘기를 들었거든요. 지금은 그런

쪽으로 다 간대요.

시대라고요. 근데 한국의 건축계 안에서 백가쟁명? 주장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문제지. ‘나는 어떻다’

106

공공 프로젝트 같은 경우는요. 좀 다른 얘기긴 한데,


설계비? 프로젝트가 5천만 원 규모에 설계비 800만

대략 숫자를 가늠해보니까, 2014년 9월부터 2016년

원인데 세금 포함해가지고, 사실은 몰입해서 일을

9월까지 선생님 2년 임기 동안 최소 800건에서 최대

하기에는 애매하다는 얘기도…

1100건 정도 처리했을 것 같다고 추청이 됐거든요.

그건 동사무소(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가 그런

굉장히 많이 했어요. 네. 그래서 서울… 좋아졌나요? 건축? (웃음)

그러면 관에서 젊은 건축가들이 할 만한 다른 프로젝트들이…

인터뷰

경우인데. 건축이나 도시 프로젝트가 롱 텀이니까, 좀 더 있으면, 내년부터는 환경이 바뀌는 게 이곳저곳 보일 거예요.

많죠. 서울시에서는 컴피티션을 젊은 건축가들만 대상으로 하는 걸 자주 해요.

길게 일하는 것들은 눈에 잘 띄지 않아서… 그렇죠.

오늘 아침에 서울시 총괄건축가 관련 정보를 좀 찾아보다가요.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총괄건축가’로 검색된 게 약 2600건 정도 문서가 있더라고요. 보니까 굉장히 다양한 부서에서 자문을 요청하더라고요. 거의 모든 부서에서 자문을 하게끔 돼 있어요.

그러니까… ‘승효상 탑’ 이런 거 세워야 사람들이…

(웃음) (웃음) 이 제도가 좀 정착이 확실히 되면 뭐 점점 좋아질 건 틀림 없어요. 그 사이는, 들어가보니까 정말 파편적인 일들이 거의 너무 전부 다라서…

그거 보고 좀 재밌었던게, 여성 관련 부서든 복지

파편적인 일이라는 건 어떤 건가요?

관련 부서든 어디든 건물 짓는 이런 사업들이

연결이 안 되는 거예요. 심지어는 하나의 땅인데도

엄청나게 많구나 이걸 알겠더라고요.

건물이 다섯 개가 있다고 치면 다섯 개를 관할하는 부서가 다

거의 모든 부서가 다 갖고 있었는데, 그 전에는 그

달라요. 이걸 리노베이션을 하는데 자기 건물만 해요. (웃음) 다른 데 어떻게 영향을 줄지는 몰라. 그러니까 이 사이에 있는 공간들은 아무도 책임을 안 지는 거야. 이런 식으로 일을 해왔어요. 어떤 거는, 마포구에 근로복지회관인가 하는 이런 거는 아파트 단지

그래서 내가 가서 그거 안 된다고 가져오라고

내에 박혀 있어요. 근데 굉장히 땅이 중요한 땅이야. 아파트 단지

하고, (다른 곳에선) 이걸 왜 가져가야 되냐고 하면서 맨 처음

내의 커뮤니티 센터로서 충분히 기능할 텐데, 이 땅에 대해 해석을

초기에는 반발도 많고 그랬다고. 근데 가져오고 보니깐 편하거든,

안 하고 전부 다 건물만 해가니까 너무 파편적이라서 ‘이러지

자기들이. 첫째 편한 건 자기들이 책임질 일이 없고. (웃음)

마라. 전체를 다시 마스터플랜을 하는 식으로 다시 생각하자’ 하는 식으로 전 부서를 모아 놓고 설명하니까 다른 부서들도

뭔가 이권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닐까요?

정말 그게 맞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이걸 다시

그것도 아니에요. 우선 뭐 총괄건축가한테 다

마스터플랜 컴페티션을 해가지고 주변하고 길도 연결시키고 해서

미루니까 책임질 일이 없는 거예요. 다 총괄건축가가 알아서

좋은 사례가 하나 만들어졌죠.

했다고 그러니까. 그리고 또 실질적으로 훨씬 더 자기들보다 전문적으로 알고 그러니까 이해가 되고, 그러니까 한 번

결국은 지금의 총괄건축가와 도시공간개선단이

경험한 친구들은 이거는 정말 좋은 제도라고 하는 걸 알아요.

있기 전에는 공공영역에 대해 책임질 부서가 없었던

완강한 부서들이 몇 개 있었는데, 시장 지시에 의해서 반드시

거네요?

총괄건축가에게 넘기라고 하는 게 하달이 다 되가지고 지금은

없어요. 전혀 없어.

다들 알고 있어요. 도시 관련 부서들은요? 서울시에 도시공간개선단이 행정부시장 아래서

그 사람들도 도시는 도시대로 주어진 바운더리만

전체적으로 검토를 하는 게 아니고, 그 옆에

보는 거지, 딴 부분과 연결이 어떻게 되는가는 관심이 없어.

시장하고 직속으로 총괄건축가가 있던데, 여기서

전체를 관할하는 사람이 시장인데, 시장은 전문가가 아니니

지금 전체 부서의 프로젝트들을 다 체크하고 있는

모르죠. (웃음) 그러니까 이게 뭐, 일관성도 없고 파편적이 될 수

건가요?

밖에 없는 거예요. 또 시장 밑에 전문 최고직이 부시장인데,

총괄건축가는 혼자 있는 거고, 도시공간개선단이

1부시장과 2부시장이 관할하는 영역이 틀려요. 2부시장은

서포팅을 해줘야 하는 거니까, 그 여러 가지 실무적인 거는

기술인데 1부시장은 행정이거든. 행정 안에 문화본부가 있다고.

도시공간개선단에서 다 조직하고 다 만들어줘야죠. 총괄건축가는

문화본부에서 박물관, 미술관들을 전부 다 관할을 해요.

다 하나하나 어드바이스, 지적해주고.

이 사람들이 이거 관할을 못 해. 비전문가들이니까. 그게

107

승효상

건축 잘 모르실 텐데 어떻게 그렇게 하죠?

건축가

부서의 장長 들이 다 알아서 했어요.


이때까지 만들어 놓은 문화시설이에요.

토목하는 사람들이 해요. 토목 출신들이 세력을 다 잡고 있어요. 내가 한 번 가서 ‘나는 건축 출신’이라고 인정을 하니까 토목

그렇군요. 그런데 도시공간개선단과 총괄건축가를

프로젝트, 도시 프로젝트를 나한테 안 가져와요.

INTERVIEW

보면 예전에 오세훈 전 시장 때 디자인총괄본부가 생각이 나요. 그게 처음에 확대됐다가

총괄건축가에게로요?

서울디자인재단도 하나 생기고, 시간이 흘러오면서

예. 안 가져오는 거예요. 이거 도시인데 왜 건축이

여러 이슈가 있었는데도 지금은 축소가 돼서 문화부

가져 가느냐고. 그래서 그 사람들을 여러 각도에서 설득을 했어.

안쪽에 어디 부서로 들어가 있는 것 같거든요.

강의도 가고 논쟁도 하고 실제 프로젝트를 보여주기도 하고,

다 뿔뿔이 흩어졌죠. 흩어졌는데 이제,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 그게 아니구나’ 인식하게끔 됐어.

그 디자인총괄본부에서 디자인에 관해 굉장히 전문적으로

근데 아직도 불완전해. 심지어는 공무원들 데리고 해외로 나가서

했을지는 몰라도, 도시라고 하는 문제를 간과하고 디자인을 하는

답사하면서 가이드하고 도시와 건축의 문제를 설명한 것도

거예요. 그러니깐 도시를 고치려면 도시의 공간구조를 고쳐야

매년마다 했어. 나하고 같이 갔다 온 사람들은 다 설득이 됐든

하는데 그냥 화장만 하는 거예요. 뼈대하고 이런 게 굉장히 못

깨우쳐졌든 해서 ‘야, 그렇구나’ 하는데, 아직도 나하고 직접 일

생겼는데, 이걸 갖다가 분만 다닥다닥 바르는 일을 했으니까 내가

안 해본 사람들은 아직도 도시, 건축, 토목은 완전히 건널 수 없는

굉장히 비난을 했어요. 그런 거 하지 말라고. 근데 그러니까 그런

영역이 돼 있는 거예요. 이게 지금 김영준(서울시 2대 총괄건축가,

일을 한 결과가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 짓는 일. 오페라하우스

1960–)이 해야 할, 내가 많이 싸워서 허물었지만 아직도 더

같은 걸 시내에 하나 지으면 그 주변이 다 바껴요. 주변이 다

싸워야 해요.

ARCHITECT SEUNG H-SANG

관련 산업도 생기고 그렇게 되는데, 노들섬 아일랜드에 그걸 지으면 도시가 뭐가 바뀌나, 그 몇 천 억을 투자를 해가지고 그거

근데 세계적으로 건축 출신이 도시 전반을

할 필요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교통만 번잡해지고. 근데 그런

컨트롤하고 담론을 만들어가고 하는 것들은

일은 스펙터클한 하나의 오브제를 만들고자 하는 거니까 이게 그

경향인가요, 아니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디자인이라고 하는 거예요. 도시의 문제에

아니, 원래부터 그렇죠.

대해서 생각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 문제에 대한 지적인 거죠. 세빛둥둥섬. 그건 한강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데, 한강

보통 우리는 학교에서 건물 그리는 것만

문제를 해결을 안 하고 무슨 이런 조각 같은 걸 세워서 하겠다고

배우잖아요?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비난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이거 도시와

생각을 해봐요. 다른 나라에도 도시과라는 건 없어요.

관계가 없는 거거든. 다른 디자인은 더 그래요. 그러니까 그런 사업이 무산되니까, 박원순 시장 들어와서 뿔뿔이 흩어지고

도시설계학과?

이렇게 됐는데, 아… 이게 건축이 들어와서 또 그 짓을 한다고

요새는 생겼죠. 특히 우리 때는 그런 게 없거든.

하는 오해를 맨 처음에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지금도 그렇게 보는

그러니까 사람들이 건축과에 건축하기 위해 와가지고 건축을

시각들도 있는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건축은, 특히 서울시 같은

해보니까 적성도 안 맞고, 이런 사람들이 어디로 갔냐면은

경우에는, 아… 이야기하자면 길지만 간단히 하자면은, 시장이

설계사무소 안 가고 졸업한 다음에 미국으로 유학 가는 거예요.

토건이 아니라 건축의 시대라고 얘기를 하고 했지만, 예컨대 내가

가서 건축은 못 하겠고 학위를 주는 데가…

참 잘못한 것 중 하나가… 서울시에 ‘건축국’이라고 하는 부서가 어반 플래닝?

없었어.

어반 플래닝이죠. 거기서 학위를 받아요. 어반 응? 없었어요?

플래닝과 어반 디자인은 달라요. 어반 플래닝이나 시티 플래닝은

없었어요. ‘주택국’이 있어. 주택국 안에 건축과가

경제에 속하는 사항이고, 그래서 런던의 정경대 같은 데 그런

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어떻게 주택 속에 건축이 있느냐’고

게 있는 거예요. 어반 디자인은 건축에서 배우는 거예요. 이 두

얘기를 해놓으니까, 주택국을 주택건축국으로 바꾸었어. 지금

개는 틀려요. 근데 거기서 박사를 받았단 말예요. 우리 말로는 다

건축국으로 불러요. 근데 내가 그 이야기를 한 까닭은 건축의

도시계획이에요. 이 사람들이 돌아오니까 정부에서 관 공사에

업무 범위를 갖다가 확대를 하자, 이거였는데 이름만 바꿔가지고 주택국에서 하던 일을 건축국에서 하는 바람에 건축의 의미가 더 확산되지 못한 거예요. 그러니까 예컨대 서양에서는 건축에서 도시나 이런 거를 관장을 다 한단 말예요. 그런데 지금은 도시나 건축이 분리가 완전히 돼 있는 거예요. 다른 나라의 선진 도시를 가 보면 다 건축과 도시는 한 부서에서 전체를 관장하는데, 이거는 도시는 도시대로 건축은 건축대로 따로 노는 게 당연해가지고 이 영역 싸움이, 영역이 무진장 공고한 거예요. 도시는 주로

108

‘도시계획 박사인데…’, 그리고 그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게 도시학회고 도시설계학회고 그런 거예요. 그래서 정부에서 하는 모든 도시를, 그 사람들이 모든 도시를 먼저 처리하게 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건축을 몰라. 건축은 건축대로 그 사이에 한국에 얼마나 (일이) 많았어. 그 설계만 해도 바쁘단 말예요. 도시 관장할 겨를이 없어요. 그러니 점점 (둘로 나눠진) 이게 공고해지기 시작한 거지. 서양에선 절대 안 그래요.


서양에서도 건축 안에서 어반 디자인까지 다…

거죠. 욕실이 있으면 욕실은 하나의 인프라라고 생각하고 이걸

다 하는 거죠. 물론. 도시를 다루는 게 싱가폴

사용하지 않을 때, 비어 있을 때, 어떻게 공간에 관한 걸 침실하고

도시개발청이나 이런 데가 전부 다 건축하는 사람들이 수장이고

연결시킬 수 있을까 (같은), 도시적 맥락에서 정리할 수 있는

전부 관할하고 하는 거지, 어반 플래닝하는 사람들이 있지

여지가 굉장히 많아요.

분석해주고 대안을 내주는 사람이에요. 전체는, 어떻게 도시를, 컨셉을 그리고 가져야 될까는 건축하는 사람이 가져가야 마땅한

인프라라는 게 마치 블랭크(빈 칸) 같은 거네요?

인터뷰

않단 말이에요. 그 사람은 초기에 경제학적으로 영향이 있는가 그렇죠. 도시설계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건물이

거예요. 그래서 전체 도시를 설계하는 사람, 책임지는 사람이

하나라고 하면 이 안에서 거주하는 사람이 이 도시 속에서 어떠한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파편적 아니에요? 건축, 도시, 토목

행위들을 하고 지나가게 할까. 건물 하나는 일관되잖아요.

전부 파편적이다 보니까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 브라질리아

그러니까 일관성을 어떻게 견지할 수 있을 것인가를 도시설계

설계한 사람 오스카 니마이어Oscar Niemeyer(1907–2012),

할 때도 똑 같이 할 수 있는 거고. 그러니까 나는 스케일이 항상

찬디가르는 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 이런 류로

플렉시블flexible하게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경험이나 생각을 많이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니까. 분당 누가 설계했어요? 설계한 사람이

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건축가를 보면 스케일이 안 맞는 그런

없다니까.

경우가 수없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은 이런 류의 왔다갔다 하는 작업을 안 해서 그래요. 그러면 학교 교육 차원에서도 이런 준비가 필요하겠네요?

저도 처음에 말씀드린 것 같은데, 선생님은 스케일이

우리나라 학교 교육은 뭐 엄청나게 문제가

특징일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사실 이런

있었으니까. 요즘은 학교 수업을 안 간 지 오래 돼서 잘

부분을 어떻게 정리하는 게 좋을지는 감이 잘 안

모르겠지만, 요즘은 어반 디자인에 대해 많이 가르치는 걸로 알고

오더라고요. (웃음)

있어요.

이런 걸지 몰라요. 사람들이 다 똑같은 공간지각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나는 알고는 있어요. 예컨대 수가 있어. 왜냐면 지도가 평면으로 인식되는 게 아니라 나한테는

생각하시는 부분이요.

공간으로 보인단 말예요. 공간으로 보이는 건 기억에 확실히

내가 뭐 점쟁이가 아니니까 난 그런 건 잘… (웃음)

남기 때문에 다시 꺼내지 않아도 한 번 보면 그대로 가면 되는

본인의 신념만 계속 밀고 갈 뿐인가요?

아니더라고. 난 늦게 알았어. 똑같이 갖고 있는 게 아니라고 하는

나는 뭐 내 일만 할 뿐이지. 전체를 이 방향으로

걸. 이런 거는 약간의 선천적인 경우도 있고, 어떤 거는 훈련에

가자고 주창할 마음도 없고 의지도 없죠. 도시설계 할 때나

의한 것도 있을 수 있어요. 부단히 자기가 사는 공간에 대해서

건축설계 할 때나 나는 항상 마찬가지니까. 이게 범위가 크고

인지를 해야 하는 거예요. 예컨데 공간을 보면 이게 천정고가

작고 할 따름이지, 도시설계 할 때와 건축설계 할 때의 마음이

얼만지 폭이 얼만지 금방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거예요. 근데 나는 모든 사람이 다 그런 줄 알았어. 근데 (웃음)

절대 다르지가 않으니까. (웃음) 적어도 나 같은 경우에는, 나는 스케일에 관해서는 민감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큰 건물이나 작은 건물이나 어떤 경우든 당황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건 훈련이 좀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웃음) 훈련이 필요하지. 이게 몇 평이라 그러면 알아야

작은 거는 작은대로 큰 거는 큰대로, 얼마든지 그 스케일을 요리할

하는 거야. 가령 이 방의 치수를 알면 다른 방에서 차이를 금방

수 있는 자신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경험도 있고. 그러니까

알잖아요. 자기가 익혀야 할 기본적인 치수들이 있는 거예요.

작은 방 하나를 설계해도 그 안에 도시적 성향을 담을 수도 있고.

다른 건 인터넷을 치면 다 나오겠지만, 절대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치수들은 자기가 알아야 하는 거예요. 예컨대 지구가 몇 평인지,

예를 들어 설명해주시면요?

지구 둘레가 얼만지, 서울 땅의 면적이 얼만지, 인구가 얼마 살고

예를 들어서 방에 있는 가구들 있잖아요. 침대에서

있는데 공간 밀도가 얼만지, 이거 익히면 다른 도시 가서 비교하면

책상까지 갈 때 어떤 풍경을 보며 가게 할까, 이런 류로 이게 스토리를 짤 수 있다…

금방 안단 말이에요. 이걸 갖다가 요즘 친구들은 특히 콤퓨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더 몰라요. 우린 옛날에 트레이싱지에 직접 그렸기 때문에 스케일 백 분의 일로 1센치 그리면 그게 1미터인지

시퀀스 같은 거요?

아는데, 요즘은 캐드로 그리고 축소확대가 맘대로 되니까 여기에

다 있는 거죠. 그러니까 창문을 어떻게 뚫으면 바깥의

대한 감각이 없는 거예요.

풍경이 어떻게 방 안으로 끌어들여질까, 침대에서 일어날 때 어떤 풍경을 보게 하는 게 좋을까, 그리고 이게 높이라든가 길이라든가

하긴, 한 번 그려서 스케일 별로 출력만 하면

크기라든가 이런 것도 하나의 도시적 영감을 다 들 수 있는

되니까요.

109

승효상

우리는 지도를 보면, 지도를 한 번만 보면 어느 곳인지 찾아갈

건축이든 도시든, 이렇게 변해 갈 거다, 이런 식으로

건축가

선생님 자신이 내다보고 있는 부분이 있으세요?


그러니까 이게 사실은 도면 위에서 열 평을 설계하면

INTERVIEW

열 평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아야 확신을 가지고 설계하는데,

저…는 ‘건축가’를 되게 좋아해요. 개인적으로. 그래서 별 것 아닌 것도 몰입해서 읽는

요즘 친구들 보면 이 단위에 대한 확신이 없어. 정말 문제예요.

스타일이라서요. (웃음) 글을 쓴 사람이 한국이라는

이게, 건축가라 그러면 집 짓는 게 목표지 그리는 게 목표가

나라 안에서 도시를 계속 걷고 있다는 느낌?

아니잖아요. 짓는 그게 현실, 그걸 리얼리티라고 하는 건데,

걸으면서 보이는 이런저런 상황들을 전부 건축과

건축은 리얼리티에 대한 작업이지 결단코 미래에 대한 작업이

도시로 연결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고 있다는 게

아니거든요? 건축가라면 리얼리스트가 돼야 한다고 보는 거예요.

저한테는 인상적이었어요.

현실주의자가 돼야 되는데 현실에 관해서 정확한 치수, 경험, 인지

이중용 선생이 괜찮다면 성공이지. (웃음)

능력이 있지 않으면 좋은 건축가가 되기 힘들다고. 제가 좋다는 걸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는 잘 확실히 어떤 건축가들은 스케일이 커지면 둔해지고

모르겠어요. (웃음)

이런 건 있어서요. 궁금하긴 하더라고요. 혹시

아니, 이중용 선생이 좋다면 돼요. (웃음)

프로젝트 중에 작은 스케일의 프로젝트와 큰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같이 놓고 보면 선생님 성향이

#빈자의 미학$(느린걸음, 2016) 20주년 개정판도

보인다거나 하는 그런 케이스는 있으신가요? 아마

최근에 다시 나왔잖아요? 주변에 요 근래 책

평소에 생각은 안 해보셨을 것 같긴 한데요. (웃음)

주문해서 받은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스케일이라고 하니까 문득 궁금해졌어요.

그게 지금 굉장히 많이 팔린대요. 며칠 안 됐는데

그러니까… 내가 지문地文 을 주장하는 것도

찍은 게 다 팔렸대.

ARCHITECT SEUNG H-SANG

스케일에 관한 얘기일 수 있어요. 그러니깐, 백지 위에 그린 거는 스케일 감이 없잖아요. 그렇지만 땅에 무늬가 있다고

20년 전 처음 그 책이 나올 땐 어떠셨나요?

생각하면 이게 스케일이죠. 방향이나 이런 거니까. 건축 설계할

어쨌든 그때도 많이 팔리긴 했잖아요.

때도 마찬가지죠. 프로젝트에 주어진 땅이라고 하는 거니까, 그

그때는 책장사들이 큰 책 팔기 위해서 끼워줬던

스케일은 계속 유지가 되는 거죠. 커지면 이런 류의 한 땅에 대한

거였지. (웃음)

크기가 계속 커지고 확대된 거니까 일관된 스케일 유지가 가능한 거죠. 땅에 대한 문제예요.

그래도 15,000부 정도 팔렸다고 들었는데요. 아, 그렇다고 나중에 듣긴 했는데… (웃음)

2016. 10. 19

제가 학교 다니던 2000년 전후에는 #빈자의 미학$이라는 책에 대해 건축 방법론? #보이지

이중용 : 최근에 나온,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에도 그게 방법론이라고

도시$(돌베개, 2016) 읽었거든요. 예전에 기사로

써두셨더라고요. 그런데 검도도 정신적인 면이

봤던 것들인데요.

있고 기술적인 면이 있는 것처럼 건축 방법론이라고

승효상 : 물론 비슷하지만, 시점이 다르니까 거의 새로

하면 일반적으로 만드는 방법에 관한 거라고 생각할 텐데요.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는 그 책은 일종의

손을 다 봤어요.

삶의 태도론 같은 거였다고 생각을 해왔거든요. 읽어보니까 건축 만드는 얘기만 빼고 다 있는 것

그건 일반적인 사람, 건축 안 하는 사람에게 그런 걸

같더라고요. 물론 그 안에 의미는 다 있겠지만요.

지도 모르고, (웃음) 건축하는 사람에게도 그게 사는 방법일지

(웃음) 이 ‘보이지 않는 건축’이라는 제목은 어떤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건축방법론이에요.

의미인가요? 건축이라고 하는 게 물리적 형상만은 결코 아니라고

방법론이라고 하면, 학교에서 가르칠 때 가령 피터

하는 거죠. 사는 풍경을 이야기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하는

아이젠만Peter Eisenman(1932–)이 흔적을 찾고

거예요. 그게 공간 이야기일 수도 있고.

그것을 형상화 하는… 그건 물리적인 형상에 관한 방법이고 내가 하는 거는

음… 그러면 ‘보이지 않아야 하는 건축’이

건축 공간을 축조하는 방법이니까, 공간을 어떻게 축조할 것인가

아니고요?

하는 게 그 #빈자의 미학$에 담겨 있죠. 그 책 끝 무렵에 도시에

‘보이지 않는 건축’이죠. 보이는 것 이면에 있는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고 하는.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1935–)도 그랬잖아요. 이미지보다는 내러티브가 더 중요하다고요. 책이 재밌어요?

110

관한 것도 있고, 기능에 관한 문제도 있고, 형태에 관한 문제도 있고, 공간에 관한 문제 등 네 가지 문제에 관한 게 다 있어요. 도시, 기능, 형태, 공간. 이 네 가지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는 게 적혀져 있죠. 그게 좀 추상적으로 읽힐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추상적인 게 아니에요. 굉장히 구체적이죠. 사실은 나는

상대방에 대해 이야기할 때요. (웃음) 가령 익산의 교회 프로젝트 이야기하실 때는 ‘치졸한 필지분할’ 같은 표현을 쓰시고, 양평의 풍경을 키치적이다라고 하면서 한글로 표현하실 땐 굳이 또 ‘천박한’이라는 표현을 쓰시고, 경박하다거나 천민자본주의라거나

가지고 있는 함의가 엄청나게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이렇게 단어를 세게 몰아붙여가지고 분리하는

의심이 추호도 없었고, 또 #빈자의 미학$이 아주 거칠고 서투른

느낌…

문장으로 돼 있지만, 그 안에 담긴 함의는 나는 아직도 가치가

그래서 이제 그런 걸 저지른 사람으로부터 굉장한

있다고 생각하고, 또 더구나 그 안에는 선언만 있는 게 아니에요.

인터뷰

‘빈자의 미학’을 선언이라고 이야기하고 했지만, 내 나름대로 전략은 그 안에 이미 다 있는 거예요. 그 전략을 갖다가 하나하나 구체화시킨 게 그 이후의 작업들이었고. 말이 ‘미학’, ‘빈자’라고 쓰니까 빈정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걸 빈정대거나 안 하거나 그건 그 사람들의 한계일 뿐이고, 나는 ‘빈자’나 ‘미학’이

(이 책 이외에서도 전반적으로) 치졸하다거나…

반발감을 (웃음) 불러일으켜 왔죠.

사실은. 방법론도 다 있어요. 그래서 가치에 대한 판별법도 있고, 가치 기준도 적어 놓았고, 건축이냐 건물이냐… 이 말은 조금

책 마지막에 보면 본인이 글 쓰신 것으로 상처 받은

바꿀 용의가 있다 하더라도 건축이 되기 위해서 장소, 시대라던가

분들이 생기는 것에 대한 소회가 있던데, 이분들이

합목적이라던가 하는 기준도 적어 놓았고 그에 대한 방법론으로

그분들인가요?

도시에 관한 문제, 공간에 관한 문제, 형태에 관한 문제, 기능에

예. 그렇죠.

관한 문제도 구체적으로 다 적어 놨어요. 건축을 구성하는 게 그 프레임이 전부 다죠. 그 안에서 도시는 어떻게 해야 된다, 기능은

앞으로는 부드럽게 쓰실 계획인가요? (웃음)

반기능을 하는 게 좋다 이런 류의 이야기가 다 있어요.

그렇게 해야죠. 정말 그렇게 하고 싶은데 (웃음) 아, 우리의 주변에 돌아가는 상황이 옛날보다 더 분노하게 만들지 더

그런 류의 이야기가 있긴 있어요.

평화하게 만들지가 않아요. 이게 문제죠.

그거는 나한테는 방법론이지, 무슨 태도라던가 이런 데만 머물지 절대 않아요. (웃음)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가지고

그런 부분에 대해 건축가들이 더 생각해봐야 할 것들이 있나요? 건축이라고 하는 게, 코르뷔지에도 얘기했지만

‘건축이냐 혁명이냐’, 건축이 시대적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거예요. 자기 혼자의 밀실에 들어가서, 미학이나 아름다움이나

사람들의 반응이 20년 전보다는 낫지 않으세요?

유미주의에 빠져서 자기 만족을 갖다가 취하기에는 우리가 사는

내가 실천을 해왔기도 하고, 20년 동안. 내가

세상이 너무… 절실해요.

버렸으면 모르지만 나는 그 안에서 매진을 해왔기 때문에, 한 사람이, 아무리 이름 없는 건축가라도 20년을 매진해왔다면 그건 뭐 가치가 있는 거죠.

절실하다… 고요? 전에 누가 나한테 물었어. ‘왜 건축을 하십니까’ 하고. 그냥 나왔던 대답이 ‘절박하기 때문에 건축을 한다’고 얘기했죠.

그건 그러네요. 제가 어렸을 때 주변의 반응하고

상황이 너무 절박한 거죠.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 요즘 #빈자의 미학$ 책을 접하는 분들의 반응이 좀 더 따뜻하다는 느낌을

김수근 선생님 계신 ‘공간’으로 들어갈 때도

받는 거 같아요. 그래서 20년 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절박하다고 표현하셨던 것 같아요.

받아들여지기에 좀 거친 환경이었다면 요즘은

그렇죠.

사람들이 좀 더 받아들일 만한 환경인가, 그런 생각이 좀 들기도 하더라고요.

2016년의 지금 현실도요?

내가 너무 앞서 갔나? (웃음)

더 절박해졌으면 절박해졌지 나아진 거 같지가 않다는 얘기예요. 근데 절박하다고 하는 게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랬던 거

작업자들은 다들 그러실 것 같기도 하고요. (웃음)

같아요. 비교할 것은 아니겠지만은 (웃음) 나는 건축이 예술이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를 보면 자살

아니라고 보는데, 예술을 하는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은, ‘어떻게

이야기가 두어 군데 나오더라고요. 아파트 경비원의

예술 하느냐’ 물어보면은 ‘불안하기 때문에 예술한다’고 하는

자살도 있고, 세종시 여성 공무원의 자살도 있고요.

사람이 꽤 많아요. 강박관념 때문에 이걸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그런 부분들이 건축이 만들어내는 상황 속에서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 사람들 보면은, 그 안에는 선 하나만

벌어진 일 아니냐 그런 식으로, 사회에서 벌어지는

그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대단한 감동을 줘요. 왜냐면 그 사람들이

일들을 건축이나 도시와 붙여서 사람들에게 계속

생각한 강박관념이나 불안이나 번민이 표현되기 때문에 그래요.

알려주려고 한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면서도

그걸 두고 ‘나도 저렇게 선 긋겠다’ (웃음) 이런 사람은… 그렇게

111

승효상

데 개의치 않아요.

건축가

그게 미학이냐, 뭐 너는 빈자냐 이렇게 비아냥거리기도 하잖아요. 근데 그건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일 뿐이에요. 나는 그런


그을 수 있죠. 하지만 그 사람이 긋는 선하고 고통 중에 그은

전에 한 달치 월세를 내놓고 죽었다고 하는 이거는 뭐, 나는 뭐

선하고는 굉장히 다르죠. 서로 똑같은 모양이라고 하더라도

정말 감동 받았거든. 눈물이 푹 나오더라고, 그 이야기 듣고.

느끼는 건 다르단 말이에요. 왜냐하면 그 선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선을 그은 사람의 내면을 우리가 보기 때문이죠.

그 사건을 접하고도 도시나 건축의 관계에 대해

INTERVIEW

생각을 하셨어요? 내면… 을 볼 수 있어야 되겠죠? 볼 수 있어야죠. 그게 보는 눈이죠.

그렇죠. 그 가족에게, (그들이 살던) 그 공간이 아주 절망적일 거 아니에요. 그 공간이 누군가가 연대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면, 누구한테 보여지기도 하고 누군가

보기 위한 훈련도 필요한 거죠?

손을 잡을 수 있게 해주기도 하고 그럴 수 있었다면… 그리고 바깥

물론, 그리고 생각도 해야 되고.

세상이, 그 지하 단칸방에서 바깥 세상이 보였겠어요? 바깥의 풍경이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고, 해가 뜰 때 햇살이 따뜻하게

어떤 훈련이 필요한 건가요? 만약 학생들, 훈련이

스며들기도 하고 이런 상황이면 그 사람들은 결코 그런 상황을

필요한 사람들이라면요.

맞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ARCHITECT SEUNG H-SANG

대단히 많은 훈련이 필요하죠. (웃음) 그러니까 자기가… 끊임 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사유를 해야 되는

절망의 공간이라고 말씀하시니까 문득 든

거죠. 자기 자신을 사유한다고 하는 거는 자기 자신을 객관화

생각인데… 아, 생각이 들다 말았어요. … 아니

시키는 거니까, 특히 건축가라고 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그리는

이게,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게 같이 있어서요.

게 평면도니까, 평면도는 신의 위치에서 볼 수 있는 거니까,

헌인마을(2007)도 그렇고 에코 헤테로토피아도

그건 항상 상황에서 자신을 객관화시켜야 되는 거예요. 수시로

그렇고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책에

떨어트려서 봐야 되는 거예요. 자기를 경계 밖으로 내쫓던지,

참고도판들을 넣어두셨잖아요. 이런 것들을

시점을 올리던지 해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쳐다볼 수 있어야 돼요.

사람들에게 보여주시는 건데, 뭐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자기 안에… 항상 모든 사람은 자기라는 존재가 둘이

도시계획이나 건축설계에서 사람의 삶에 대한

있어요.

차원이 분명히 있을 거고, 그 시스템을 굴리는 자본이나 정치나 이런 차원이 있잖아요? ‘도시가 둘이요?

사람을 바꾼다’고 하는 이런 것들이 직관적이고

둘의 자기가 있어요. 자기 분열이라고 하는 게 그래서

감성적인 부분에서는 받아들여지는데, 이 사건도

생기는 거예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행위로서 나타나는 거 하고

마찬가지고, 실제 그게 자본이나 정치 논리 안에서

자기 속의 내면에 있는 거 하고. 그게 양심일 수도 있고 의식일

도시와 건축의 담론이 힘을 계속 가져갈 수 있을까

수도 있어요. 이 두 개가 분열되면 이게 정신분열이에요. 항상

하는 건 좀 의문이더라고요.

합의가 돼야 되는데, 자기가 이 분열을 겪어야 돼요. 사실은. 이

그거는 너무 뻔하죠. 예컨대 옛날의 예가 그렇죠.

분열에서 나타나는 고통이나 나타나는 대립이나 갈등을 심각하게

전제주의 도시에서는 도시구조가 전제적으로 구성되는 게

생각해야 돼요.

당연하죠. 예를 들면 베르사이유 궁전에서는 모든 길들이 뻗어 있어서 모든 길들에서 궁을 쳐다보고 경배할 수밖에 없는 도시

그건 어떻게 감지할 수 있나요? 그거는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가 그렇게 살아요. 나는

구조, 그런 상황들이 항상 일어나서 그것만 쳐다보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십 년전에 압록강, 두만강을 답사한 적이 있어.

공부해야 되는데 욕심은 자고 싶은 거야, (웃음) 이게 분열이죠.

해산이라는 곳이 있고, 그 건너편에 있는 마을이 장백이라는

항상 그렇게 갈등하며 살아요. 근데 이걸 어떤 방향으로 자기가

마을이에요.

의지를 발동시켜서 합치시키느냐 이게 정말 중요해요. 그리고 선한 방향으로 끌어야 돼요. 내면에서 요구하는 자기 외의

장백산 쪽에요?

자기가 있어요. 그 자기가 올바르도록 항상, 공부한다고 하는

예. 장백은 백두산 바로 밑에 있는 중국의 마을이고,

거는 육신이 원하는 걸 먹여주는 게 공부가 아니거든. 자기

압록강 바로 건너서 있는 마을이 바로 해산인데, 거기는 압록강

내면이 갖고 있는 양심이 보석처럼 닦이도록 연마하는 게 공부고

상류가 돼서 강 폭이 30미터 정도밖에 안 돼. 옛날에는…

수련이거든요. 이것대로 육신이 따라올 수 있도록 하는 게 사람이 되어 가는 거죠. UN이 만든 인권선언의 서문에 보면 아주 근사한

건너 다녔겠네요.

문구가 나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존엄성’. 영어로

건너 다녔어요. 같은 마을이에요. 근데 이게 강에

하면 ‘our inherent dignity’,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는 존엄성,

있는 마을은 강에 평행하게 구성이 돼요. 강변에 있는 쪽은

아, 이거는 정말 근사한 말이에요. 이게 자기 외의 자기라고 하는

상업시설이고 올라갈수록 주거시설이겠죠? 장백은 여지

말이거든.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하는 거예요. 전에 내가 잠깐

없이 이런 류의 구성이에요. 근데 건너편에 해산을 보니까,

얘기했잖아요. 송파 세 모녀 사건. 그 사람이 죽을 때, 자살하기

해산도 옛날엔 그랬을 텐데 지금 어떻게 돼 있냐면, 해산은

112


김일성이 보천보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하는 지역이에요. 김일성

최근에 관심 가지고 보신 사건들은 있으세요?

전승기념비가 있어. 이게 솟아 있고, 거기서 길이 쫙 뻗어 있고,

건축보다 사회에 대한 관심을 더 여쭤보는 게

이 길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시설들이 붙어 있는 거예요. 여기는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중심이 탑이에요. 이 사람들은 자나 깨나 탑만 보고 살 수밖에

요새 사람들이 모르는 것 중 하나가, 불황이라고 그러잖아요. 지금은 불황이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수 있어요. 생각이, 권력이 다 바꾸는 거예요. 종교도시도 보면 항상 교회나 성당이나 도시 가운데 있잖아요. 그렇게 살다 보면

어째서요?

사람들의 의식이나 행동이 다 그렇게 바뀌게 된다고요.

불황이라고 하는 것은 앞으로 호황이 오는 걸 전제로

인터뷰

없는 거예요. 장백 같은 도시구조를 해산처럼 얼마든지 바꿀

할 때 불황이에요. 앞으로 호황이 안 와요. 옛날처럼 그런 식이 네. 그런데 보통은 어쨌든 권력자들은 그런 일원화된 구조를 원하고 사람들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다원적 민주주의를 원하고… 요새는 문제가 뭐냐면, 권력은 정보에서 나오거든. 정보를 가진 사람이 권력자인데, 옛날에는 당연히 정보가 권력자에게 집중됐지만 요새 같은 SNS 시대에는 정보가

아니라니까. 지금은 불황이 계속되니까, 이건 다른 말로

‘저성장’의 시대라니까. 저성장의 시대는 우리가 겪어본 적이 없어. 우리나라가. 완전히 새로운 상황이에요. 그러면 이 새로운 상황에 맞게 우리가 빨리 바꿔야 되는데, 호황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하는 거예요. 이 정부부터 그래요. 호황 만들려고, 부동산 열기 만들려고 애쓰는 이게 잘못된 거예요.

권력자에게 있을 수가 없어. (웃음) 모든 사람이 다 정보를 가지니까, 지금은 도시를 그렇게 누가 한 사람이 만들 수가

정부는 호황을 만들려는 게 아니라 이해관계자들만

없어요. 합의가 안 되는 거야. 이야기 하면 그건 안 된다 그러니까,

좋게 하려는 것 같은데요? (웃음)

시대가 바꼈어. 완전히. 그러면 이 시대에 맞는 도시를 만들어야

아니, 그래도 명색은 호황의 시대를 만들려고 하는

되는데, 관성적으로 옛날에 한 사람이 만든 도시의 체제에

건데 지금은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이게 잘못된 거거든. 그러니까

익숙해져 있어 가지고 그 도시를 자꾸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이게

우리의 의식을 바꿔서 행복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안 된다고 나는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지금 시대가 바껴서 고성장이나 저성장이나 다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데… 다 행복 추구가 첫 번째죠. 그동안은 돈이 많으면 행복해진다는

좀 알까요?

나쁜 등식等式의 생각을 심어 가지고 해왔는데 이게 행복하지

뭐, 아마 그렇게 될 걸요.

않았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지금은 ‘과연 그러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이런 문제를 가지고 담론을 나눌 수 있으면 제일

계속 건강 유지하셔야 될 것 같네요. (웃음)

좋겠다는 거죠. 아주 지혜로운 정치가가 있으면, 아니면 사회의

하하하하. 그래서 검도하잖아. 계속. (웃음)

리더가 있으면, 매스콤에서도, 지금은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런 이야기를 우리가 이야기했으면 좋겠어.

아까 검도 보니까… 건축과 관련해서 ‘행복한 건축’, ‘행복한 도시’ 이런

어때요?

이야기들도요? 사범님이 칼끝이 예리하시긴 한 것 같더라고요. 아, 대단하지.

그런 얘기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우리의 내면에 흐르는 존엄성을 더욱 더 고취시킬 수 있을까 이런 거라던지… 그게 아무래도 전 시대와는 다른 상황이에요.

선생님은… 목소리도 함께 키우고 계시구나 하는 느낌이… (웃음)

선생님은 그걸 뚫고 나가기 위한 해법 같은 것들이

하하. (웃음)

좀 있으세요? 이때까지 나는 그렇게 해왔죠. 이때까지 해온 게 다

(그는 월, 수, 금 중 스케줄 없는 날 아침 일찍 한

그렇죠. 뭐, 스펙터클한 광경 안 만들려고 노력한 거고,

시간 반 정도 검도 훈련을 한다. 인터뷰 당일, 그 전

(웃음) 관계를 만들려고 한 거고, 불편한 집 만들려고 한 거고,

과정을 지켜보게 됐다. 운동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기능적인 집 만들려고 한 거고…

I

우렁차서 호흡이나 뱃심, 소리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데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사람들

그게 저성장과 관련된 건가요?

목소리가 합해져서 들리는 줄 알았는데, 그의

딱 맞는 거죠. 그게.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사범님 말씀에 따르면 승효상 건축가는 검도 3단이다.)

113

승효상

그러면 #빈자의 미학$처럼 20년쯤 지나면 사람들이

건축가

저성장 시대에는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건가요?

전혀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ARCHITECT SEUNG H-SANG

INTERVIEW

I

114


좀 더 불편하게 살고, 좀 더 나누고 살고,

그렇죠.

이런 식으로요? 이어가며 살고, 연대하며 살고 이런 거죠. 이게

근데 실제로 언론이나 이런 데서 듣기로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접하지를 못 했던 것 같은데요.

때문에 이 사람들은 나눌 수밖에 없고 모일 수밖에 없어요. 이

모르니까, 이 내용을 갖다가 그게 어떤 삶의 풍경이

사람들은. 그러면 공동체가 회복되는 거죠. 그러면 건강해지는

되는지를 몰라서 그런 거예요.

인터뷰

못 사는 사람들의 동네에 가면 그게 다 있잖아요. 가진 게 적기

거예요. 옛날부터 (웃음) 주장한 것들이라니까. 그냥 투시도 몇 장 본 것 같아요. 아까 자본과 도시 문제의 연장선에 있는 질문인데요.

모양만 보여줘서 그런데,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는

헌인마을 등 프로젝트를 보면 기존의 달동네가

거죠. 공유할 수 있는 시설을 남기고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있었던 지역이라도 결국 다 재편되기는 할

연구하자고 얘기했고, 몇 가지 해법은 다 나와 있어요.

거잖아요? 그럴 때 땅의 지문, 흔적들을, 지혜들을 살려서 개발하겠다는 방식인데, 근데 도시의 기억을

그러면 거기 들어간 주택들 디자인에는 공유 개념이

그런 식으로 살린다고 할 수는 있는데, 그런 곳에

들어가 있는 거겠네요? 그렇죠. 주택 내에서의 공유, 마을 내에서의 공유,

살았던 사람들은 어쨌든 어떤 방식의 개발이든 그것이 진행되면 또 밀려나는 건 마찬가지였던 것

전체 도시의 공유. 백사마을 같은 경우는 빨리 지어만 놓으면…

같거든요. 좋은 사례가 될까요?

그게 이제 유네스코 등에서 권고한 역사마을 보존의

금방 다 따라해요. (웃음) 빨리 하고 싶었는데,

원칙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대충 중요한 걸 뽑으면 네 가지가 나와요. 그 중에 한 가지가 원주민의 생활 방식을 보존하라고 하는

문제가 없었으면 벌써 지어졌는데 아직 그 갈등을 푸는 기술이

거예요. 원주민을 쫓아내지 말라고 하는 거거든. 필지 보존하고

부족해가지고…

지형 보존하고 길 보존하는 것도 있고, 마지막 중요한 게 그건데, 그런 프로젝트에서 제일 문제는 뭔가요?

그렇고, 하나는 관리비를 부담할 수가 없어서 그래요. 이 두 가지

일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기적 태도가 그렇고, 그것을 소화하지 못 하는 기존 법규가 그렇고. 시스템의 문제도

이건 아무리 건축이 새롭게 들어와도 익숙하게 돼요. 문제가 안

있고.

돼. 이건 디자인에서 해결할 수가 있어요. 생활 방법, 관리비를 보전하는 거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인식 중에 또 하나가,

그러면 주민들의 요구를 채우기 위한 방식하고,

잘못 수입된 인식 중 하나가 모든 주택은 nLDK로 돼 있는

제도를 계속 개선해나가야 하는 문제가 같이 있는

거예요. 리빙, 다이닝, 키친. 이건 서양식인데, 이게 생기면 그

거네요.

안에서 사람들이 자족하게 돼요. 이게 흐트러져야 옆 집 사람들과

예. 같이 있어요. 나는 해법이 있다고 봐서 계속

공유하게 돼요. 예컨데 자기는 침실만 갖고 있단 말이에요.

이렇게 하면 된다고 그랬는데, 그거 뭐 하려고 하면 법규 바꾸고

부엌을 옆집 사람과 공유하겠다, 화장실 공유하겠다, 옛날엔

시간도 걸리고 하다 보니 오래 걸리는 거죠.

다 그렇게 살았거든. 못 사는 사람들 동네 가면 여전히 그렇게 살아요. 내가 비엔나에서 유학할 때 옆집 사람들하고 화장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선생님만큼 도시 단위나

공유하면서 살았어. 한 플로어에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었어.

제도권에서 직접적으로 발언을 많이 하신 케이스도

비엔나에 사회주택 짓는다고 전쟁 후에 막 그렇게 지어서 그런데,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건축가들 중에요.

그런 식이면 자기는 침실 하나만 갖고, 침실은 서너 평만 있으면

그게, 참, 답답한데, 공공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되잖아요. 거기에 대한 관리비만 내면 되는 거예요.

사람이…. 유종원柳宗元(773–819)이 쓴 #재인전梓人傳 $이라고 하는 책을 봐도 1200년 전 글인데도, ‘재인’이라는 게

아, 그런 식의 방식으로요.

건축가인데, 공공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건축가가 공공에

나머지는 사용료만 내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봉사하는 게 직능이 되어야지 건축주에 봉사하면 그건 건축주의

관리비를 엄청나게 줄일 수 있죠. 그러면 거기서 거주하게 되는

시녀와 하수인밖에 안 된다고 누누이 이야기를 하고 있죠. 건축주

거예요. 이걸 갖다가 ‘공유마을’로 바꾸자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익하고 사회의 이익이 틀릴 수가 있는데, 그 이익이 틀릴 때

한 게 백사마을이고. 헌인마을은 이미 원래 있던 사람들이 다

건축가는 사회를 따라야 마땅하다고 그런 이야기를… 근데

나가고 없어요. 그렇지만 공유하는 마을로 바꾸자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려면 고통이 따르죠. 일을 못 하게 되고, 경제적으로 손해도 오고, 이 고통을 감내할 수 있어야 된다고 계속 이야기하고

백사마을 같은 경우는 그런 식으로 구성이 된

있는 거예요.

건가요?

115

승효상

중에 생소한 환경은 길 보존하고 지형 보존하고 필지 보존하면,

건축가

원주민이 왜 나가느냐면은 두 가지 이유예요. 생소한 환경 때문에


INTERVIEW

(다른) 건축가들에게도 감내하라고 말씀하세요?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앞 세대가 쌓아온)

내가 이제, 샘플로, (웃음) 내 스스로 나는 얘기를

그런 부분들을 존경하게 되는 것 같고요.

했으니까 내 스스로 지키면은 보고 배우는 건축가가 혹시 있을 거

그런데 어쨌든 도시와 건축이 사회를 바꾼다고 하는

아니에요.

기본적인 명제들을 말씀하고 계시잖아요? 사실 이런 것도 생각해보면, 패션 하시는 분들이 ‘야, 옷이 있겠죠. 분명히.

사회를 바꾸는 거야.’ (웃음) 라고 한다면 ‘그것도

또 나보다 더 그런 사람이 있는 것도 알아요. 나보다

그럴 것 같기도 한데?’ 그런 느낌 들지 않으세요?

더 외골수로 공공에 투신하고 있는 것도 알지만은, 너무 소수야.

(웃음)

좀 더 많아져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패션이라고 하는 말 자체에서 알잖아요. 패셔너블하다고 하는 건 트렌디한 거고, 그게 많은 사람이

그런 환경을 더 넓히기 위한 시스템을 고민해보진

공유하더라도 시한이 굉장이 좁아요. 옷이라고 하는 것이 쉽게

않으셨어요?

입고 벗을 수 있는 거잖아요. 건축은 벗을 수 있는 게 아니죠.

우리는 너무너무 소수예요. 서울만 하더라도 만

건축은 트렌디한 게 없어요.

명이 건축 라이센스를 갖고 건축을 하고 있는데, 만 명이 모여서 하는 일이라고 하는 게 설계-감리 분리해서 자기들도 먹고 살게

트렌디한 게 없어요?

해달라고 하는 이런 걸 하고 있으니…

없죠.

그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계세요? 일단 시행은 됐는데요.

ARCHITECT SEUNG H-SANG

(서울)시에서는 계속 이야기를 했죠. 분리를

근데 학생 시절에는 보통 트렌디한 게 보이잖아요? 그게 패셔너블한 아키텍쳐라고 하는 거고, 그건 건축의 본질하고 관계가 없는 거죠. 적어도 우리가 사는 주거를

법규적으로는 했지만, 감리는 설계자가 하는 게 당연하니까

보면 2000년 전 주거와 우리가 사는 주거 형식이 다른가? 다르지

설계하는 사람이 감리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달라라고요.

않아요. 결코. 편한 설비가 생길지 몰라도, 공간 구조는 다

그래서 (건축가가) 항상 디자인위원회로 참여해서 시공자가

마찬가지예요.

어프루브approve 받을 수 있도록 계속 이야기해서, 서울시는 그렇게 시행하고 있어요. 서울시에서 발주하는 건축은 다 설계한

그렇군요. 아까 말씀하신 정책과 관련해서,

사람이 관여하게 돼 있어요.

제가 내용을 찾다 보니까 지금 어쨌든 다원적 민주주의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이야기들을

작은 것도요?

전개하고 계시고 서울시 프로젝트들도 그런데,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예전에 광화문 역사축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 축들은… 그건 왜 굳이 또 필요한 건가 이런 생각이

서울시 공공 프로젝트 안에서요?

들긴 하더라고요.

그렇죠.

광화문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역사 도시인데, 부단히 역사성을 능멸해왔거든요. 게다가 최근 들어서 다시

서울시 안의 개인 프로젝트에 대해서는요?

서울의 정체성을 회복시키기 위해 찾은 것 중에 하나가 서울이

개인 프로젝트는 할 수가 없는 거죠.

만들어졌던 상황을 보면은, 경북궁이라는 존재가 있었고 육조 마을이라는 공간적 구조가 있고 그 구조가 아직도 남아 있는

그러면 이것도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 공공

거죠. 남아 있는 걸 그동안 부단히 훼손해 왔죠. 이게 굉장히

프로젝트하고 개인 프로젝트들에서, 설계-감리

중요한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고, 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역사

분리된 프로젝트에서 나타난 결과의 퀄리티들이

공간이 중요한 건데 그 역사 공간을 지금도 회복할 수 있다고

비교되고…

하는 거예요. 회복할 수 있다고 하는 거는 옛날로 돌아가자,

나타나고, 지나면은 이게 가지고 있는 폐단이 ‘이젠 안

회귀하자고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면서 살자고 하는

되겠다’고 하는 판단에 의해서 ‘공공선’이 만들어지면…

거예요. 인식하기 위해서 그 기억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바른 기억 장치를 만들자고 하는 거죠. 육조六曺거리라고 하는 것도

‘공공선’이라… 뭔가 길고 멀지만 멋진 목표

얼마든지 문헌에서 고증할 수 있는 거고, 육조 마당을 형성했던

같은데요.

거리의 유구들도 파면 나와요. 틀림없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것을 위해서 싸우고 투쟁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게

그런 걸 다 숨겨 놓고 살지 말고, 드러내 놓고, 서울이 얼마나

헛되지 않겠지.

역사도시인가를 확인하면서 살자는 거고요. 그건 역사적인 부분이고 또 하나가 일상적인 이야기를

헛되지는 않겠죠. 어릴 때는 잘 몰라도 나이가 들면

116

하더라도 광화문 광장이라고 하는 건 지금은 뭐 아주 모뉴멘탈한


광장이지 일상의 삶을 사는 광장이 아니거든. 그래서 광화문

그래요? 이번에 밝혀진 거에는 제가 검색해 봤는데

광장 가려면 목숨 걸어놓고 건너야 하니까, 그러지 말고 편안하게

없으시더라고요. 이번에 밝혀진 블랙리스트 말고, 다른 블랙리스트가

걸어서 접근할 수 있게. 만들려면 쉬워요. 왼쪽 길만 폐쇄하면 되는 거니까.

있어. (웃음) 이거보다 더 심한. 그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서명한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어 있는 축을 제안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하긴, 없어서 좀 이상하더라고요. (웃음)

예. 그러면 되는 거고, 혹은 서울 지하도시 네트워크를

나는 뭐, 문재인(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1953–)도

만들기 위해서 광화문 광장 지하를 개발할 수도 있어요. 그도

그렇고 박원순(서울시장, 1956–)도 그렇고 선거할 때

가능한 방법이라고 보니까. 그러면 지하를 통해서 오른쪽하고도

멘토였는데… (웃음)

인터뷰

사람들이고, 다른 류의 블랙리스트가 있어. (웃음)

다 연관될 수 있고 하니까 대단히 근사한 도시 공간의 새로운 그렇군요. 이게 좀 섣부른 진단일 수 있는데, 정권

시스템이 생기는 거죠.

차원에서 사람들이 바뀔 때, 통치 구조 안에서 그렇군요. 서울시에서 총괄건축가하시면서 이뤄질

사람이 바뀔 때 거기에서의 국가나 도시의 비전에

것들 중에 2017년 도시건축비엔날레를 선생님께서

대해 생각을 좀 정리하고 계세요?

주창해서 만들어두셨다고 하더라고요. 이 정도까지

이때까지 나는 수없이 말을 많이 했고요. 말뿐만

하면 선생님의 서울시 안에서 펼쳐 보려고 했던

아니라 글도 썼고, 여러 모임에서 지도도 했고 자문도 했고, 그

생각들이 거의 구성이 되는 건가요?

사항들을 모으면 돼요. (웃음) 일선에 다시 나갈 생각은 추호도

그러니까, 여러 가지 프로젝트도 진행했지만 내가

없고.

가장 중점으로 생각했던 건 ‘서울의 정체성이 뭐냐’, 이게 모든 보통은 정치가나 행정가가 건축가보다

누가 와서 하든지, 이게 공유만 된다 그러면 그 방향으로 나갈

비전문가지만, 사실 이 분들이 어떤 부분에 관심이

것 같아서 계속 그 이야기에 관해서 줄기차게 해왔어요. 아주

있다는 한 마디를 표명하는 게 되게 중요하잖아요?

일관성을 가지고 이 개념을 피력해왔는데, 모든 프로젝트도

그러니까 우리나라도 네델란드처럼 서울시에 시티 아키텍트 제도를 처음 도입했듯이, 우리나라도 스테이트

보여주는 게 나는 비엔날레라고 보는 거예요. 비엔날레 전에 몇

아키텍트State architect 제도가 도입되면 좋겠어요.

개의 프로젝트도 완성도 되고, 종합해서 보여주자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면은 그게 세계 사람들과 견주어서 확인 받고 평가

아, 네. 혹 지금 국가건축정책위…

받는 자리니까, 그러면 그게 객관화가 되고, 그게 하나의 중요한

그건 처음부터 잘못 꿰어져가지고 계속 이상한 일만

플랫폼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죠.

하고 있으니까 그건 스테이트 아키텍트가 아니고, 네델란드처럼 스테이트 아키텍트가 그 나라의 국토계획부터 건축에 이르는

그렇군요. 어쨌든 거기에 다양한 협회들이나

모든 것을 혼자서 다 결정하고 지휘하고 하는 시스템을… 뭐

정치인들도 이름을 넣고 그림을 짜고 있는 것

서울시처럼 하면 되죠.

같아서, (웃음) 내년 12월인가요? 대선. 예전에

2008년에 조선일보에 쓰신 글, ‘다시, 내가

제가 예전에 얼핏 듣기로, 한국의 건축 프로젝트

서울시장이 된다면’…

물량이 공공발주가 70% 정도가 되고 민간이 30%

(웃음)

정도가 된다고 들은 적이 있거든요. 만약에 국가 시스템 안에서 좋은 건축을 해나갈 수 있거나 젊은

거기에 보면 그때 오세훈 전 시장이랑 경쟁하던

건축가들이 좀 더 많이 참여할 수 있거나 하는

강금실 시장 후보에게 서울에 대한 제안을 들고

쪽으로 바뀔 수 있으면…

갔었다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지금 서울시도 해 가지고, 젊은 건축가들이 굉장히

응.

활발해졌어요. 이번에 (이로재) 신입사원 뽑는데 보니까 전보다 반 밖에 안 와서 왜 안 오냐 그러니까 젊은 건축가들 창업하는데

그런 걸 숨기지 않고 글로 다 오픈을 또 하시대요.

간대요. 젊은 건축가들이 서울시에서 하는 일이 굉장히 많아.

(웃음) 그거 참 희한한 부분인 거 같아요. 보통

기회를 굉장히 많이 줬거든. 여러 가지 기회를 서울시 제도를

자기검열 할 것 같은데. 그런데 어떠세요? 보통

통해서 줬기 때문에 활발해요. 나는, 그에 관한 혁혁한 공을 세운

‘야권인사’ 하면 선생님도 그중 한 분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데, 난 블랙리스트 맨 첫 줄에 있다는데.

거예요. 그걸 갖다가 국가적 차원으로 하면 이거 분명 바뀐다고.

117

승효상

거기에 연관되도록 맺어 왔는데 그것을 갖다가 종합적으로

건축가

사람이 공유만 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서울에 관한 정책 방향도


그거는 왠지 기대하고 싶네요.

네. 그리고 결과물의 수준이나 편차나 이런 것들은

내가 스테이트 아키텍트 될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까,

그것도 각자…?

난 안 하니까. (웃음)

그럼요. 그것도 다 다르고, 그게 이제 건강한 논리로

INTERVIEW

선택되는 게 아주 중요하고, 다른 논리라 하더라도. 설혹 스킬이 선생님은 여전히 ‘선한 의지’가 작동할 거라고

부족해서 거칠다 하더라도 그거는 우리가 살면서 시간이 다

믿으세요?

치유하고 좋은 건축으로 자리 잡게 마련이에요.

아, 그렇죠. 누가 나한테 얘기했어요. 왜 당신은 처음 하는 일만 하느냐. 근데 돌아보면 정말 그래요. 남들이 안

젊은 건축가들 입장에서는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하는 일을 항상 처음 개척을 다 해왔어.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건

좋은 가치를 가지는 게 더 중요한 문제겠네요?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 왔어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그렇죠. 예. 물론이요. 자기가 정말, 자기 나이에 맞는

특히 서울 같은 굉장히 중요한 도시에 시티 아키텍트로서 어떻게

가장 훌륭한 작업들을 해야죠. 저는 그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을

해야 된다고 하는 걸 완결하지는 못 했지만, 한 번 보여줬으면은,

해왔어요. 근데 더 이상 나한테 공적인 임무를 요구하면, 비겁한

그러면 이거는 다른 곳에서도 도입할 수 있는 거라고 하는 거죠.

거예요. (웃음) 요구하는 사람이 그 일 하면 되는 거예요.

내가 있는 동안 실패했다고 보지 않거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평가를 해주니까 고마운 일인데, 아무튼 그렇게 보여줬으면

네. 그런데 대체로 행정이나 정치 쪽에서는 좋은

남들도 딴 데서도 시행을 하면 될 거 아니에요. 나는, 이제 ‘내 일’

파트너가 필요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시장하실 때

해야 돼. (웃음)

양윤재(전 공무원, 1949 –) 교수님 계셨고, 오세훈

ARCHITECT SEUNG H-SANG

전 시장 때 권영걸(기업인/환경디자이너, 1951–) 선생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겠는데도

교수님 같은 분들이 계셔서… (선생님도) 계속

불구하고, 왠지 한국은 (선한 의지나 시스템 이전에)

불림을 받지 않을까요? (웃음)

여전히 사람이 굴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분들은 임기를 같이 했기 때문에 시장이

(웃음)

그만두면 그 시스템이 없어져 버렸어. 그래서 나는 그게 우려가

좋은 사람은 계속 나오기 마련이고, 그 다음에 또 해야

돼서, 김영준 같은 나보다 더 훌륭한 친구들이 와서 해야 그

할 사람들도 있고, 당연히 나보다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도

시스템이 인정이 된다고 하는 거예요. 시스템으로 지속되는 게

얼마든지 있죠.

중요하지 사람으로 지속되는 게 중요하진 않아요. 그러니까 시장 없어지면서 총괄건축가 제도 없어지면 아무 것도 아닌 거지.

네. 건축에 관한 이야기는 좀 안 했는데, 가령 젊은 건축가들에게 기회가 많이 가서 지어지고들

저는 선생님 뵙기 전에는 건축의 만들기 부분,

있잖아요. 어느 단지 안에 공용시설이라고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건축 작업의 퀄리티가 너무

설계한 것도 제가 본 것 같아요. 그런 프로젝트

균질하지 못한 데다가 후지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

안에서 건축의 퀄리티 자체는 이제 중요한 부분이

있어서, 그럼에도 사람들이 개념이나 말, 투시도 한

아닐까요?

컷으로 자잘하게 포장하는 게 솔직히 좀 싫어서요.

건축의 퀄리티라면 뭘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 부분들을 자꾸 밀어내려고 하는 성향이 좀 있거든요. (웃음) 세세한 걸 따지려고 하고요.

완성도라는 게 있잖아요. 비례든 볼륨이든 재료를

그런데 선생님하고 몇 번 얘기를 해보니까, 어쨌든

사용하는 방식이든 디테일이든…

비슷한 것 같긴 한데도 좀 더 넓게 보면서 가신다는

좀 어설프게 느껴진다는 이 얘기죠?

느낌도 들고요. 급한 문제가 더 많다고 하는 거죠. 절박한 문제가.

네. 그 어설프게 느껴지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 돼요.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들이요? 연대해야 되는 문제도 많고.

그러면 선생님 입장에서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가치들을 사람들이 좀 더 많이 공유하는 게 더

젊은 건축가들도 그랬으면 좋겠는데요.

중요한 거겠네요?

젊은 건축가들이 특히 연대를 좀 많이 했으면

그렇죠. 혹은 나하고 다른 가치가 타당하면 그 가치도 구체화시켜 달라고 하는 거예요. 한 가지 가치가 있는 사회는 너무

좋겠어요. 자기들끼리. 그러니까 우리가 옛날에 4.3그룹 모인 것처럼, 43그룹하고 똑같은 형태를 만들라고 하는 게 아니고,

지겨워. 서로 다른 가치가 있어야 되니까, 그 가치가 정당하다고

자기 혼자는 힘이 없을 수밖에 없으니까 몇 사람이라도 모여서

하는 논리만 구성되면 실행하라는 얘기예요.

담론을 만들든 아니면 자기 건축을 가지고 서로 비판을 하든 같이 답사를 가보든, 이런 류의 합종연횡合從連衡 으로 해가지고

118


서로 연대해야 힘이 생기는 거죠. 힘이 생기면 발언할 때 무게가

아주 독불장군 같은 건축가가 나와요. 엘스워드 투히라고 하는

실리고, 그러면 뭔가 개선할 수가 있는 거죠.

비평가가 있어. 비평가가 와서 ‘당신이 내게 좀 잘 보여주면 내가 좋은 말을 쓸 건데’ 하니까 하워드 로크가 하는 이야기가,

선생님께는 좋은 동료들이 많이 계셨죠? 지나오면서 연대의 방식, 연대의 대상을 바꿔왔죠.

인터뷰

많이 있었죠. 많이 있었고, 그래서 힘을 길렀고 계속

‘난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무슨 소리하는지도 모르겠고 아무 관심이 없어요’ (웃음) 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렇군요. 어쨌든 작업이라는 건 (비평) 앞에

어떤 식으로요?

있잖아요…

맨 처음 ‘43그룹’하다가, 그 다음에 ‘건미준(건축의

그런 류의 사람들이 나에 대해 쓴 글을 잘 읽지를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하다가, 그 다음에 ‘서울건축학교’하다가,

않아요. 사실은. 읽다가 싫어서 안 읽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에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하다가…

그렇게 계속 쓰다 보면 진전이 될 거라고 믿고 있어서,

연대의 방식을 바꾼 거라기보다는 어쨌든 다 해야 할

거칠은 건축이 세련되어지는 것처럼요?

일들이었던 것 같은데요.

예. 나도 그중에, 열 마디 중에 한 마디는 배울 말이

이제, 상황에 따라서 이게 더 필요하다 싶으면 어떤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뭔가를 하자고 하면 응대하려고 노력을

때는 교육으로, 어떤 때는 운동으로, 어떤 거는 치열한 담론

하죠. 노력을 하니까 내가 <와이드AR>에서 하자고 하는 걸

만들기로 이런 식으로 다 해온 거죠. 그러다 보니까 내가 이제,

갖다가 내가… (웃음) 안 하다가 근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응대하는

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그 다음부터는 내 주장을 하게

거예요.

되었고. 주장에 반대한 사람도 있지만 정당한 반대는 항상 좋은 더구나 저는 이쪽 동네에서도 소설 쓰는 사람으로…

거는 정말 가치가 없는 거고, 이런 것들은 내가 눈길을 주지도

(웃음) 어쨌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스케일에

않았어. (웃음) 그렇지만 정당한 반대, 근거를 가지고 하는 반대는

대해서는 여전히 ‘감感’이신가요?

평가할 가치가 있어요. 그걸 통해서 나도 배우고, 나도 다른

스케일?

건축가

거예요. 쓸데없이 질투나 시기나 실체도 없이 말만 가지고 이런

생각을 아니할 수 없어서 배우고, 성장하는, 이런 사회가 건강한 네. 건축 스케일이요.

승효상

사회라고 하는 거예요.

감이 아니라 훈련한 결과죠. 말씀하신 ‘정당한 반대’가 구체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는 부분 혹시 있으세요?

훈련도 계속 감을 다듬는 과정…

위원회나 모임에 가보면 얘기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아, 그렇죠. 물론이요. 감각에 대한 훈련이죠.

옳으면 내 생각을 바꾼다고. 안 그러면 내가 그 사람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내 스스로가 강해지거나, 아니면 또 다른 논리를 찾아서

아침에 여기 검도 사범님께서 검도는 이론으로

강화하거나 이런 거죠.

하는 게 아니라 감각을 계속 익혀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똑똑하고 계산이 빠른

건축(작업)에서는 그런 경우는 없었나요?

사람보다 좀 바보 같고 우직한 사람이 좋다고요.

솔직히 이야기하면 우리나라 건축의 평론에 관해서는, 마음에 드는 말을 들은 적이 없어요. 마음에 드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 게 아니라… 보통 보면 자기들의, 건축이라는 게 평론을 하면 대상을 놓고 분석을 하고 그에 대해 다른 예를 들고 하면서 이 사람이 만든 논리가 이 건축에 얼만큼 타당하게 퍼져 있는가, 논리적 모순이 있지 않은가, 이런 거를 밝혀내고 하면 듣는 사람이 ‘아, 내가 이런 허술한 부분이 있구나.’ 하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냥 비평하는 사람이 자기의 가치를 대입시켜서 싸우는 거야. 그게 뭐 가치가 있나… ‘아, 그러면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러면 끝이에요. 이게 진전이 안 돼. 반론을 제기하기도 싫고 아무 것도 없는 거야. 그러니까 비평하는 사람이 자기의 지식의 정도를 갖다가 과시하기 위한 이런 류가 제일 나쁜 거거든. 옛날에 #마천루$라고 하는 소설을 보면, 하워드 로크라고 하는

119


EPILOGUE

그런 의미에서 진보도 보수도 모두 보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는 진보도 보수도 없습니다.

EPILOGUE

가치를 추구하는 이는 보수적 성향이 되기 쉬운데,

이상과 이익만 있습니다. 한국 건축이라고 뭐가 다르겠습니까. 분야만 다를 뿐 한국인이 만들어간다는 공통점은 다를 수 없고, 사람이 다르지 않으니 속도와 수준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안에 내재된 속성은 별로 다르지 않을 겁니다. 낡은 이념과 욕심을 걷어내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곳곳에 남은 상처들은 자꾸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무래도 이 나라는, 이 나라의 건축은 쉽지가 않겠구나 생각을 하다가 문득 아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생각이 없는 건지 세상이 좋은 건지 그래도 좀 더 순수하게 뭔가를 좋아하고 고민하는 걸 봅니다. 우리도 똑같이 아이였을 텐데, 저 아이들이 커서 지금의 우리처럼 된다는 게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길이란 혼자 걷는 길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지나갔고 지금 함께 지나가고 있는 길이라는 것, 그 뒤로 또 많은 이들이 지나올 길이라는 것도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오늘 우리가 할 일이란 해야 할 일을 하고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 그 정도로 충분할 겁니다. 이런 말에 피식 웃게 되는 이유는 이미 우리가 그것의 어려움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누가 완성을 바란답니까. 그저 노력하면서 살자는 이야깁니다.

121

승효상

최소한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길을 걷는다는 생각쯤은

건축가

가난이 대물림되듯 상처도 대물림됩니다. 이왕에 처한 현실이야 각자 다르지만


REFERENCE / CREDIT

REFERENCE / CREDIT

REFERENCE

CREDIT

인터뷰

건축가 제공

일시: 2016.10.7 / 10.12 / 10.19

70, 71, 72, 99, 102, 104

장소 :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8-2 종합건축사사무소 이로재 건축가 제공 ⓒ 오사무 무라이

44M

건축가 자료 일반 이로재 홈페이지 iroje.com 승효상 페이스북 @hsang.seung

파주출판단지조합 제공 ⓒ 권태균

38-39 건축가 관련 단행본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돌베개, 2016

김재경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ISSUE 8.5 승효상, 스리체어스,

18-19, 20, 22, 23, 24, 36-37, 42, 43, 44N, 45, 46, 47, 48-49, 50-,51, 52, 53, 54, 55, 56, 57, 58-59, 62-63,

2016 #승효상 도큐먼트$, 열화당, 2015

64, 65, 66-67, 68-69, 73, 74, 92, 93, 94, 95, 96, 114,

#노무현의 무덤 -– 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 눌와,

120

2010 #파주출판도시 컬처스케이프$, 기문당, 2010

표지

#지문(LANDSCRIPT)$, 열화당, 2009

수백당 모델 ⓒ 김재경

#건축이란 무엇인가$, 열화당, 2005 #Urban Void$, c3, 2002

ARCHITECT SEUNG H-SANG

#지혜의 도시 지혜의 건축$, 서울포럼, 1999 #빈자의 미학$, 미건사, 1996

기타 #4.3그룹 구술집$, 우동선 외 채록, 마티, 2014 #감각의 단면$,배형민 지음, 동녘, 2007

‘건축비평집담 2016 – 승효상’, 《건축평단》, 2016 여름, 정예씨 #건축속으로$, 비토리오 그레고티 지음, 임종엽 옮김, 미건사,

2002 #공간의 정치지리$, 미즈우치 도시오 지음, 심정보 옮김, 푸른길, 2010 #도시의 건축$, 알도 로시 지음, 오경근 옮김, 동녘, 2003 #르 꼬르뷔제의 사상$, 쟈크 귀통 지음, 이현식 옮김, 태림문화사, 2002 #문제들$, 이종건, 시공문화사, 2014 #서울, 메타시티의 첫 단추를 꿰다 : 서울총괄건축가 1주년 백서$, 도시공간개선단, 서울시, 2015 {알베르티 건축론연구 – 콘치니타스 개념을 중심으로}, 남궁희, 명지대 석론, 1996 #열두 집의 거주풍경$(전시 도록), 이로재, 2016 #유로피안 어버니즘의 경험$, 임동원, 시공문화사, 2010 #이 시대 우리의 건축$, 43그룹, 안그라픽스, 1992 #한국현대건축의 유전자$, 박길룡, 공간사, 2005 #합리주의와 낭만주의 건축$, 보이시지 G. 레스니코프스키 지음, 이기민 옮김, 국제, 1993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이레, 2007

프로젝트 자료 및 진행 협력 이고은 / 이로재 기획팀장

122


NOTICE

공모요강 발표 본지는 2010년 이래 꾸밈건축평론상과

시상내역

당선작 발표

공간건축평론신인상, 와이드AR 건축비평상

당선작 : 1인

2017년 1월 중 개별통보 및

수상자들의 모임인 건축평론동우회와 손잡고

기타(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당선작

<와이드AR> 2017년 1/2월호 지면

<와이드AR 건축비평상>을 제정하여 신진

외에도 가작을 선정할 수 있음)

및 2017년 1월 초 네이버카페 ‘와이드AR’

비평가의 발굴을 모색해오고 있습니다.

게시판 및 소셜미디어를 통해 발표 수상작 예우

우리는 한국 건축평단의 재구축은 물론 건축과

당선작 : 상장과 고료(100만원) 및 부상

심사위원

사회와 여타 장르를 연결하는 통로로서

가작 : 상장과 부상

수상작 발표와 함께 공지 예정

건축비평의 가치를 공유하는 젊은 시각의

공통사항 :

출현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역량 있는

1) <와이드AR> 필자로 우대하여, 집필

시상식

새 얼굴들의 많은 관심과 응모를 바랍니다.

기회 제공

2017년 2월(예정)

2) ‘건축평론동우회’의 회원 자격 부여 주최

응모작 접수처

간향클럽, 미디어랩&커뮤니티

응모편수

widear@naver.com

다음의 ‘주평론’과 ‘부평론’을 동시에 WIDE # 54

주관

제출하여야 함

기타 문의 대표전화 : 02-2235-1960

와이드AR 주평론과 부평론의 내용은 아래

‘응모요령’을 반드시 확인하고 제출바람

후원

응모요령 ❶ 모든 응모작은 응모자 개인의 순수

건축평론동우회 ❶ 주평론 1편(200자 원고지 50매

창작물이어야 함. 기존 인쇄매체(잡지,

이상 70매 사이 분량으로, A4 용지 출력 시

단행본 기타)에 발표된 원고도 응모

참고도판 등 이미지 포함하여 7 –10매

가능함 (단, 본 건축비평상의 취지에 맞게

사이 분량 기준으로 응모자 개인의 필요 시

조정하여 응모 바람)

초과할 수 있음)

❷ ‘주평론’의 내용은 작품론, 작가론을

❷ 부평론 2편(상기 기준 적용한 30매 내외

위주로 다루기를 권장함

분량으로, A4 용지 출력 시 3 – 4매 분량

❸ ‘부평론’의 내용은 건축과 도시의 전

기준으로 응모자 개인의 필요 시 초과할 수

영역에서 일어나는 시의성 있는 문화현상

있음)

및 응모자 개인의 비평에 대한 생각이 다뤄지기를 권장함

응모자격 내외국인, 학력, 성별, 연령 등 제한 없음

❹ 응모 시 이메일 제목 란에

“제7회 와이드AR 건축비평상 응모작”임을 표기할 것

사용언어

❺ 원고는 파일로 첨부하길 바라며 원고

❶ 한글 사용 원칙

말미에 성명, 주소, 전화번호를 적을 것

❷ 내용 중 개념 혼동의 우려가 있는

❻ 원고 본문의 폰트 크기는 10폰트

경우에만 괄호( ) 안에 한자 혹은 원어를

사용 권장

표기하기 바람

❼ 이메일 접수만 받음 ❽ 응모작의 접수 여부는 네이버카페

응모마감일

2016년 11월 30일(수) 자정 (기한 내 수시 접수)

124

‘와이드AR’ 게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음


제 29 차 상영작

오스카 니마이에르 소식

2016년 <WIDE건축영화공부방>(시즌 5)은

‘ARCHITECT’를 키워드로 프로그램을 운용해오고 있습니다. 12월 프로그램은 송년모임으로 치러집니다. 참가를 원하는 독자 여러분은 아래 일정과 참여 방법을 확인 바랍니다.

일시

2016년 12월 7일(수) 7:00pm 장소 ㈜ 원도시건축 지하 강당 방장 강병국(간향클럽 자문위원, WIDE건축 대표) 와이드 # 54

참석 신청 예약 총원 총 35인 내외로 제한함(선착순 마감 예정) 신청 예약 방법 네이버카페 ‘와이드AR’ WIDE건축영화공부방 게시판에 각 차수별 프로그램 예고 후 선착순 접수 주최 간향클럽, 미디어랩&커뮤니티 주관

WIDE건축, 와이드AR 후원 ㈜ 원도시건축

Oscar Niemeyer. A Vida é um Sopro 감독 : 파비아노 마시엘 Fabiano Maciel | 2010 개관

1988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오스카 니마이에르는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태어났으며, 현대건축 2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르 코르뷔지에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1956년 브라질의 도시 계획가 및 건축사가로 유명한 루시오 코스타가 당시 새로운 수도 브라질리아의 도시계획 설계경기에 당선하게 되는데 당시 오스카 니마이에르는

Nova Cap(브라질 수도를 브라질리아로 옮기는 임무를 맡은 조직)의 최고 기술고문과 건설책임자로서 중요한 건물 설계에 참여하게 되며 1960년부터 브라질리아 수도 건설의 주력 건축가로 활동하게 된다. 그러다가 1965년 공산당 가입으로 프랑스로 추방당했으나

68년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리우 데 자네이루 대학교수직과 설계사무실을 운영한다. 1970년엔 AIA 골드메달을 수상했으며, 100세가 넘는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그치지 않다가 2012년 105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이 다큐는 부제 “인생은 숨결과 같다”라는 말처럼, 100세를 맞은 오스카 니마이에르의 삶을 시종 차분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의 긴 인생역정과 건축의 깊은 세계를 읽을 수 있는 좋은 자료다.

125


NOTICE

간향클럽 사람들

간향 미디어랩 GANYANG Media Lab.

우리는 건축가와 비평가 및 다방면 건축의

[와이드AR 발행편집인실 publisher & partners]

파트너들과 함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지방(locality), 지역(region), 청년(youth), 진정성(authenticity), 실용성(practicality)”에

발행인 겸 편집인 전진삼 발행위원 김기중, 박민철, 박유진, 오섬훈, 우의정

시선을 맞추고, “건축을 배우는 후배들에게 꿈을,

공동편집인 김재경, 이주연, 정귀원

[와이드AR 논설실 editorialist]

건축하는 모든 이들에게 긍지를” 전하자는 목표 아래 건축한다는 것만으로 반갑고 행복한 세상을

논설고문 이종건

짓는데 함께 힘을 보태겠습니다.

논설위원 김정후, 박인수

[와이드AR 전문위원실 expert member] 우리는

비평전문위원 박정현, 이경창, 송종열

건축계 안팎의 현안을 주시하며 이슈를 발굴-

사진전문위원 남궁선, 진효숙

[와이드AR 편집실 editorial camp]

공론화하고, 나아가 건축동네의 계층, 세대,

편집장 이중용

WIDE # 54

업역 간의 골 깊은 갈등 구조를 중재하는 매개자 역할을 통해 우리 건축의 현재와 미래를 견인하는

사진총괄 김재경

지렛대가 되고자 합니다. 그로써 이 땅에 필요한

인턴기자 정평진

건강한 건축저널리즘을 구현함은 물론 건축과

피처에디터 박지일

대중 사회를 연결하는 미디어 커뮤니티가

디자이너 신건모, 낮인사

[와이드AR 유통관리대행 distribution agency]

되겠습니다.

서점 심상호, 정광도서 직판 박상영, 삼우문화사

우리는

[와이드AR 제작협력 production partners]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잡지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코디네이터 김기현, 시공문화사spacetime

월례 저녁 강의

인쇄, 출력 및 제본 강영숙, 서울문화인쇄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땅집사향)>

종이공급 박희진, 신안지류유통

건축가들의 이슈가 있는 파티 <Architecture Bridge(ABCD파티)> <인천건축도시컨퍼런스ICON-x>

간향 커뮤니티 GANYANG Community

건축역사이론비평의 연구자 및 예비 저자를

[고문단 advisory body]

지원하는 <심원건축학술상> 신예비평가의 출현을 응원하는

명예고문 곽재환, 김정동, 박길룡, 우경국, 이상해, 이일훈, 임창복, 최동규

<와이드AR 건축비평상>

대표고문 임근배

내일의 건축저널리스트를 양성하는

고문 구영민, 김원식, 박승홍, 이충기

[후원사 patron]

<간향저널리즘스쿨>

대표 김연흥, 박달영, 승효상, 이백화, 이태규, 장윤규, 최욱

색깔 있는 건축도서 출판 <간향(間鄕)> <AQ Insight Books>

[자문단 creative body] 운영자문 공철, 김동원, 김석곤, 김종수, 김태만, 신창훈, 안용대, 오장연,

국내외 건축과 도시를 찾아 떠나는 현장 저널 <WIDE아키버스> <WIDE건축영화공부방> 건축·디자인·미래학 강의실 <간향AQ학당> 어린이·청소년 건축학교 <AB스쿨> 등의 연속된 프로젝트를 독자적으로 또는 파트너들과 함께 수행하며 우리 건축 문화의 켜를 기품 있게 다져 나가겠습니다.

126

www.ganyangclub.com

인간·시간·공간의 이슈를 영상으로 따라잡는

이성우, 정승이, 조남호, 최원영, 최재형, 황순우 전문분야 자문 강병국, 고영직, 고충환, 김영철, 박병상, 박철수, 안철흥, 전진성, 조택연

[협력기관 program partnership] 심원건축학술상 심사위원회 김종헌, 박진호, 우동선, 함성호 심원건축학술상 역대 수상자 박성형, 서정일, 이강민, 이연경, 이길훈 심원문화사업회 사무장 신정환

[계열사 project partner] 마실와이드 대표 김명규


우리 건축 장(場 )의 새 얼굴로부터

(시즌5)

소식

(약칭, 땅집사향)

건축가 초청강의 : Architects in Korea 2016년 11월_제119차 : Architects in Korea 07

기성, 중견, 노장 건축가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 하에 이 땅에서 활동하는 벽안의 건축가까지 주목하고자 합니다. 소위원회 박지일, 백승한, 심영규, 최호준 주관 와이드AR 주최 그림건축, 간향클럽 협찬 시공문화사Spacetime, 유오스Knollkorea

02-2231-3370, 02-2235-1960

와이드 # 54

문의

이야기손님 정이삭(에이코랩 대표) 일시

11월 16일(수) 7:30pm

장소 홍대 신홍합밸리 오픈 라운지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4길 77) 주제 모두의 언어 — 은유 아닌 형상

* %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카페명 : 와이드AR, 카페주소: http://cafe.naver.com/aqlab)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6년 12월_제120차 : Architects in Korea 08

이야기손님 신현보, 류인근, 김도란(디자인밴드요앞 공동대표) 일시

12월 14일(수) 7:30pm

장소 이건하우스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 161) 주제

3 years / partners / projects

127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통권 54호, 2016년 11–12월호, 격월간

2016년 11월 15일 발행, ISSN 1976-7412 2008년 1월 2일 창간 등록,

2008년 1월 15일 창간호(통권 1호) 발행

2011년 1월 19일 변경 등록, 마포 마-00047호 발행인 겸 편집인 : 전진삼

발행소 : 간향 미디어랩Ganyang Media Lab. 주소 : 03994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 175

(동교동, 마젤란21오피스텔) 909호

전화 : 02-2235-1960

팩스 : 02-2235-1968

홈페이지 : www.ganyangclub.com

네이버카페명 : 와이드AR

• 본지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본지에 게재된 기사나 사진의 무단 전재 및 복사, 유포를 금합니다.

1권 가격 : 10,000원 연간구독료

1년 구독 : 55,000원

2년 구독 : 1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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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지 주소&, %구독희망 시작월호 및

구독기간&, %핸드폰번호&, %이메일 주소&, %입금예정일&을 적으시어 <와이드AR> 공식

이메일 : widea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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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입금 후 보내드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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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 전진삼(간향미디어랩)]

광화문점 (02-393-3444) 강남점 (02-5300-3301) 잠실점 (02-2140-8844)

구독자와 입금자의 이름이 다를 경우,

목동점 (02-2062-8801)

확인하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등포점 (02-2678-3501)

꼭 상기 전화, 팩스, 이메일로

이화여대점 (02-393-1641) 분당점 (031-776-8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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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점 (051-806-3501) 부산 센텀시티점 (051-731-3601) 창원점 (055-284-3501)

<와이드AR>의 광고는 본 잡지를 함께 만드는 건축(가)네트워크와의 연계를 지원합니다. 지면 위에서의 1차적 홍보

효과를 넘어, 실질적 수익 효과의 창출을

위해 데스크가 함께 고민해 드립니다.

천안점 (041-558-3501) 영풍문고 종로점 (02-399-5600) 미아점 (02-2117-2880) 명동점 (02-3783-4300) 청량리점 (02-3707-1860) 김포공항점 (02-6116-5544) 여의도점 (02-6137-5254) 서울문고 종로점 (02-2198-3000) 건대점 (02-2218-3050) 북스리브로 홍대점 (02-326-5100) 동네 서점 효자 책방 소란 (서울 통인동,

02-725-9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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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 vol 54, Design  

WIDE AR Vol.54 Korean Architecture Magazine

WIDE AR vol 54, Design  

WIDE AR Vol.54 Korean Architectur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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