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 AR SE02,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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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원 식물원(1910~1945)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는 4가지 파편들을 종합하고 있다. «유원지론»은 “일제 ARCHITECTS IN KOREA · Ⅱ

식민지기에 도입된 새로운 공간 유형인 유원지를 통시적으로 살펴보아 현대 사회에 미친 물리적 문화적 영향을 해석하고자 했다”고 하였고, «식물원론»은 “지난 시기의 식물원을 찾아 서술함으로써 한국 식물원의 태동 과정에 대한 총체적 양상을 제시하고 그 함의를 제시하고자 하였다”고 하였다. 나는 «유원지론»과 «식물원론»에서 서로 다른 파편들을 관통하는 빨간 실이 과연 무엇일까를 시종 궁금해 하며 정독하였으나, 결국 두 논문의 우열을 끝까지 가리지 못하였다.

함성호(스튜디오 EON 대표)

리영희 교수는 자신의 글쓰기를 퍼즐 맞추기로 표현한 적이 있다. 어떤 사건을 조사할 때 반드시 그 사건을 둘러싼 전모를 그리고, 거기에서 빠져나가는 구멍들을 마치 퍼즐 맞추듯이 조직해 가야 진실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다. 논문은 말 할 것도 없다. 일반 학술 논문은 그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심원건축학술상>은 다 맞추어진 퍼즐이 과연 지금 우리에게 어떤 얘기를 해 줄 수 있을지 모색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붙잡고 우리는 두 편의 논문에 주목했다. «유원지의 수용과 공간문화적 변화과정»과 «식물원의 탄생»이 그것이다. 연관성이 있는 두 논문은 접근 방법과 목적이 조금씩 갈라진다. 창경원, 월미도, 뚝섬을 중심으로 유원지의 변화과정을 살펴보는 «유원지의 수용과 공간문화적 변화과정»은 몇 가지 문제점을 처음부터 안고 있다. 일제 식민지 시기에 만들어진 유원지가 지금의 유원지(놀이공원, 테마파크, 공원, 공공오픈스페이스를 포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것이 이 논문의 요지다. 그러나 그 전에 지금 WideAR SE 02

우리 주변의 유원지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밝히는 작업이 빠져있다. 지금 우리 주변의 유원지가 어떤 의미고, 그것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과거와 연결되는지를 살펴야 옳았다. 그리고 유원지의 소유관계를 열거하는데 그치고 만 것도 아쉽다. 단순히 소유관계를 밝히는데 그쳐서는 안 되고 그들의 이익을 좀 더 세밀하게 살펴야 했다. 이를테면 만철의 의지와 식민지 지배자의 의도 같은 것들이 좀 더 철저히 규명되어야 했다. «식물원의 탄생»은 식물원을 근대과학의 탄생으로 설정하고 조선시대에 이미 그 맹아가 있었음을 여러 자료로 증명하고 있다. 이 논문은 풍부한 자료와 근거로 설득력을 지닌다. 특히 18세기 사대부들의 다양한 벽을 거론하며 식물에 대한 취미가 관찰과 연구로까지 나아가 근대적 의미의 식물학이나 박물학에 닿아 있음을 밝힌다. 게다가 근대 서양에 대한 견문록에서 식물학에 대한 관심을 일일이 거론한 것은 18세기의 벽 취미와 함께 연결되어 논문의 구조를 더욱 탄탄하게 하고 있다. 결국 한국에서도 식물원의 본질은 과학탐구에 있었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그러나 창경원과 같은 대중적인 식물원은 근대과학의 연구를 위한 것이기 보다는 제국주의적인 전시에 지나지 않았고, 이를 근대적 풍경으로 일제가 수용해 조선에 이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간과한 느낌이 없지 않다. 두 논문 다 퍼즐에 구멍이 나 있었다. 논문 뿐 아니라 논리적 설득을 요구하는 글쓰기는 적어도 퍼즐에 구멍이 나 있어서는 안 된다. 퍼즐이 여섯 면의 색을 맞추는 게임이라면 학술논문은 수많은 차원을 가진 퍼즐을 일일이 연결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하나의 건축적 주제가 사회, 경제, 역사, 정치, 예술, 문학, 철학에 까지 연결되고, 그 변화까지 추적해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그렇다고 수고가 아주 줄지는 않겠지만) 주제를 아주 미시적으로 잡아야 한다. 깜냥에 넘치는 주제를 잡고 이리저리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리바이만 갖다 대기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 여러 고민 끝에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진리는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거기에 다가가는 시간은 아무리 오래 걸려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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