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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 #60

CONTENTS

결기의 시대

[4]

WIDE THE ARCHITECT STORY

[22]

PUBLISHER’S COLUMN

목차

EDITORIAL

DESK & CONSTELLATION

[26]

60_51

[32]

60_52

[42]

60_53

[52]

60_54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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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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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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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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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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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결기의 시대

PUBLISHER’S COLUMN

2008년(戊子年, 황금 쥐띠) 1월 와이드AR 창간호를 내며 정귀원 편집장(현, 제대로Lab.

대표)은 이렇게 적었다. 신년벽두의 긴장과 기대가 싫진 않지만 짐짓 낯설다. 그러고 보니 지난 수년간 별다른 자극도 고무도 없이 너무 쉽고 편하게만 살았던 것 같다. 이제, 전열을 갖추고 풀어진 운동화 끈도 다시 단단하게 묶어본다.(창간호, 7쪽, 와이드 레터) 이후 맞닥뜨릴 시간의 불확정성 때문이었겠지만 건축의 전선을 염두에 둔 편집장의 글에서 사뭇 긴장감이 감돈다. 그리고 만 10년이 되는 올해(戊戌年, 황금 개띠) 1월 {와이드AR} 통권 60호를 펴낸다.

지난 시간, 건축저널리즘의 구현을 목표로 삼고 지면 위에서 그리고 현장에서 발행인 칼럼

독자들을 만나왔다. 땅집사향, ABCD파티, ICON파티, WIDE아키버스, WIDE건축영화공부방 등의 주최, 간향저널리즘스쿨 운영, 심원건축학술상 주관,

와이드AR건축비평상 공모, 간향CRITICA, 간향BOOKS 발간 등. 이들 프로그램은 {와이드AR}과 함께 모두 진행형이다. 그 사이 편집장은 정귀원(1대)–이중용(2대)으로 이어졌고, 디자인실은 수류산방(박상일, 1대)–반하나프로젝트(노희영, 2대)–낮인사(신건모, 3대)로 바통이 전해졌다. 인쇄소는 예림인쇄(1대)–서울문화인쇄(2대)로 바뀌었다. 총판은 호평BSA가 정광도서로 상호를 갈아 끼웠다. 창간 당시부터 현재까지 {와이드AR}을 지지하고 응원해준 건축계의 선후배 동료, 친구들의 이름은 부침하는 가운데 더욱 선명해졌다. 그분들이 {와이드AR}의 10년을 함께 일구어냈다. 단언컨대 저들이 있었기에 건축저널리즘의 기치를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로 앞세울 수 있었다. 우리에게 전선이라 함은 그것이다. 그러하기에 오늘도 감사와 기념의 말에 앞서서 우리(건축동네)의 문제가 무언가를 들여다본다. 공교롭게도 창간 10년의 해에 다시 황금 띠의 시대다. 황금이 빛을 잃으면 똥이 될 터이니, 이제 제대로 결기(決起)할 일이다.

글. 발행인 전진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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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101-architects.com


윤승중��김원��김규오��부산시청사�현상설계�응모안��부산��1968 모형사진��1968���윤승중�기증���MC09�3000�0019

목천김정식문화재단 mokchon�kimjungsik�org T�02�732�1602


은혜의 교회 CHAPEL

Urban Tablet of Actualized Architectural Arcadia

l주l유타건축사사무소 www.utaa.co.kr


SEOINN DESIGN GROUP

40 th ANNIVERSARY

th

Anniversary

WWW.SEOINNDESIGN.COM ㅣ주ㅣ서인종합건축사사무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사평대로20길 12-3 서인빌딩, T.532 1861 F.536 8425


신내감리교회

안양열린교회

용인제일교회

이혜경 정인환 김상우 전용환 송혜린 고영덕

구미고아성당

금호중앙교회

김예은

신논현 808빌딩

ZIP

PARTNERS ARCHITECTURE

집파트너스 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가 임성필 양평전수리주택

인천흰돌교회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18, 401호(재동) (헌법재판소 맞은편 삼양사빌딩)

모든 건축은 집이다

TEL. 02.2268.5006 FAX. 02.2268.5007 EMAIL. ziplab@naver.com


A Thousand City Plateaus Winner of International Idea Competition for urban regeneration of Jamsil Sports Complex

UnSangDong Architects

와이ᄃ


수류산방의 백두산 달력 안녕하세요. 수류산방입니다. 이 달력은 백두산을 테마로 합니다. 고지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한반도 물산 지도를 그려 보려고 계획 중인데 이번 달력이 그 첫 결과물인 셈입니다. 한국 고지도의 원리와 형상에 대해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하고 이진경 작가에게 의뢰해서 1년 동안 작업한 그림 가운 데 12편을 뽑았습니다. 달력 전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팅과 제작은 수류산방에서 맡았습니다. | 2018 ● 무술[戊戌] 달력 | 우리의 물산을 찾아서 ● 이새의 고지도 탐구 프로젝트

백두산편 | 이진경 그림 ● 수류산방 樹流山房 Suryusanbang 생각 |

photography by Kim Hyungman

15장 | 달력 170×287mm |달력판 230×340mm | 38,000원

☝수류산방에서는 달력을 만들며 1.예술성, 공예성 2.친환경성, 핸드메이드 3.전통과 현대의 연결, 세 가지를 염두에 두었습니다. 1.우선 작가가 이미 다른 데 발표한 그림을 모은 것이 아니라 이 달력만을 위해 새로이 생산한 작품을 선보입니다. 이젤이나 액자에 놓고 작품을 감상하듯이 열두 장 그림을 감상하는 형식입니다. 숫자판을 뜯고 나면 그림만 간직하게 됩니다. 인쇄도 자연스러운 질감이 있는 종이로 했습니다. 2.수류산방은 탁상형 달력의 고가 의 삼각대를 1년 쓰고 버리는 것이 아깝다고 여겼습니다. 달력의 뒷판(나무판)은 벽걸이식, 거치식, 또는 이용하는 사람의 취향과 공간에 따라 다양한 디 스플레이가 가능하고, 내지를 바꾸면 계속해서 (2019년, 2020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내지를 공급하려고 합니다. 달력 쓰임이 다 하면 다른 용도에 사용해도 좋고 액자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미송 합판에 별도의 화학적 가공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새F&C에서 제작한 수제 카디 면을 함께 넣었는데, 취향에 따라 어떤 오일이든 먹여 가면 자연스럽게 향과 빛깔이 우러나게 됩니다. 각 부분은 사람이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었고 사용자에 따 라 여러 연출이 가능하며, 분리하면 바로 폐기됩니다. 3.수류산방+이진경+이새F&C가 컬래버레이션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각자 활동 영역은 책, 미 술, 패션과 라이프스타일로 조금씩 다르지만, 전통과 현대를 예술과 문화를 통해 잇는 일은 수류산방, 이진경, 이새F&C의 공통된 관심입니다. 저희는 지 리 정보와 회화성, 철학성이 결합된 한국의 고지도에 그 연결의 영감과 단서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몇 년 전부터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고지도를 단순 히 형태적으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지리 관념이나 문화적 의미를 헤아려 저희만의 느낌으로 풀어 가려 합니다. 이번 달력은 전통적인 한 국의 느낌을 현대적으로, 한결 새롭게 해석해 보려고 한 첫 시도입니다. 백두산 천지의 상서로운 기운처럼, 2018년 새해에도 좋은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①

② 이새의 친환경 카디 원단

나무로 만든 달력판

15장의 그림 달력

나사 세트

와이드(210.287)-광고(달력2018).indd 1

2018. 1. 4. 오후 3:13


WIDE THE ARCHITECT STORY JANG YOON GYOO KIM IN CHEURL KIM CHAN JOONG SEUNG H-SANG CHOI WOOK CHO BYOUNG SOO JUNG SU JIN KIM YOUNG JOON JOO DAE KHAN


DESK & CONSTELLATION 글. 편집장 이중용

나는 역사를 “진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나는 역사를 “중용”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1 — 도올 김용옥

안녕하십니까. 편집장 이중용입니다. 60호 에디토리얼은 편집장이 독자에게 드리는 편지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번 호를 끝으로 지난 2년여간 수행했던 편집장 역할에서 물러나기 때문입니다. 때맞춰 이번 호의 내용도 지난 51호부터 59호까지의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합니다. 지금 제 책상

한쪽에 잡지 아홉 권이 쌓여 있는데, 이게 참 볼수록 아쉽고

에디토리얼

또 한편으론 신기하기도 합니다.

처음 편집장이 되어 건축가 한 분을 만났을 때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좁은 생각으로 편집장을 할 수 있나?’ 좀 심하다 싶은 표현이지만, 제가 편집장을 하면서 들은 가장 심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건축잡지 편집장이라는 직업이 그렇게 극한직업은 아닙니다. 그냥 제가 그런 말을 듣게 생겨먹었습니다. 일단은 편협합니다. 그리고 편애합니다. 건축가’만' 좋아합니다. 건축가와 건축가 아닌 사람을 구별하려고 하고, 그것을 위한 기준에 관심이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분별이 흐릿한 사람도 좋아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계도 고민도 투명하게 보이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자신의 주장이나 역량을 분명히 내보이지 않으면서 뭐든 기회만 되면 다 할 수 있다는 식의 마인드는 싫어합니다. 자기만큼을 말하고 노력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런 사람과는 함께 얘기해보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남에게 높은 수준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자신 역시 그렇게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는 걸 싫어합니다. 재능과 박식함은 중요하나 성실이 더 중요합니다. 오죽하면 ‘바쁜 사람과는 함께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작업 기준 중

하나입니다. 건축잡지를 함께 만들어가는 주요 구성원인 건축가뿐 아니라 필자들에 대해서도 선호가 있습니다. 주장이 뚜렷한 사람이 좋습니다. 글에 담긴 지식과 문장의 밸런스는 중요하지만, 내용에서는 차라리 치우친 글을 좋아할지언정 균형을 잡으려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글은 흥미가 없습니다. 검증된 지식과 통용되는 의견을 앞세워 자신의 목소리를 공적인 것으로 포장하려 하거나 특수한 전통 혹은 대중의 여론 뒤로 숨는 태도도 별로입니다. 이런 식으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 때문에 스스로 번거로울 때가 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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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사람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들 하나하나가 궁금합니다. 그들이 가진 어떤 이야기도 제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큼이고 저 역시 모든 걸 알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가급적 상대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관련된 자료도 가능한 많이 보려고 합니다. 필요하다면 ‘혹시 이런 건가요’라고 제 의견을 말해줄 수 있을 때까지 생각을 하는 편입니다. 그럴 때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는데, 저는 틀리는 걸 그다지 염려하지 않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그게 틀렸다는 사실 혹은 상대가 틀렸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고, 거기서부터 또 생각을 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몽enlighten이라는 단어가 가진 폭력성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제 생각이 미치지 못 하는 곳in에 조금씩 빛light을 밝혀가는 과정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은 짧고 말도 어눌하지만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할 때에는 결승점 없이 뛰는 마라톤 선수처럼 수다를 늘어놓곤 합니다. 대낮부터 이야기를 나누다 상대방이 잘 안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고 불을 켰더니 이미 밤이었던 날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에 얼굴이 잘 붉어지는 편이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자신의 몫이라 잘 견디려 애쓰는 편입니다. 유독 건축과 건축가에 관해서 편협합니다. 잡지 한 권에 건축가 한 명을 다루는 쪽으로 방향을 정할 때에도 그랬습니다. 과거 10여 년 동안 한국의 주요 건축매체에 게재된 적 있는 300명도 넘는 건축가들의 리스트를 보면서 20명 정도를 느슨하게 추린 다음 최종적으로 6~7명 정도밖에 많은 건축가를 수용할 방안을 찾을 텐데, 저는 차라리 작고하신 분들이나 외국 건축가를 기웃거렸습니다. 이 글을 쓰는 날을 기준으로 하루 전날인 어제도 누군가 건축가를 추천했고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아직 그분을 ‘건축가’라는 이름으로 소개할 수 없습니다.” 추천한 분이 저와 친하고, 그런 그의 얼굴에 불기운이 돋고 자신도 모르게 주먹까지 불끈 쥐고 있는 걸 보았음에도 우아하고 다정하게 느껴지는 다른 핑계를 내어놓지 않았습니다. 누가 봐도 건축가인데 건축가로 소개할 수 없다… 심지어 제가 그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음에도 건축가로 건축계에 소개하는 일은 별개로 생각합니다. 저에게 그건 전혀 다른 일입니다. 작업과 행위로 평가 받으면 될 일이고, 자신이 건축가로서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굳이 건축가라는 호칭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건축을 하는 많은 분들이 스스럼없이 자신을 작가나 건축가로 칭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분들이 활용할 수 있는 매체는 이미 많이 있고 거기서 어떤 건축가로 소개되던 개의치 않습니다. 그냥 그곳은 저의 관심 바깥일 뿐입니다. 저는 흔히 ‘업자’로 불리는 분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익추구만이 목적이 되어 사람들의 삶에 폐를 끼치는 분들은 확실히 나쁘지만 누군가 필요로 하는 집을 익숙한 방식으로 공급한다고 그를 나쁜이 취급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분들도 당연히 건축가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삶과 이야기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건축가 나고 건축 났지, 건축 나고 건축가 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집을 짓고 필요한 건조물을 짓는 많은 건축가들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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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없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보통은 기준을 넓혀 더


통해 건축이라는 분야가 형성되고 어느 순간 마치 그것이 수호해야 할 이상적인 가치나 본질이 있는 양 말하지만, 때로는 현실에서 충실히 이행하고 견지해야 할 직업인으로서의 가치와 윤리보다 이상이나 본질을 더 강조해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상이나 본질은 그 나름의 긍정적인 역할도 있지만 허위와 망상의 분위기를 세계에 흩뿌리기도 하는데 거기가 바로 제가 의도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영역입니다. 허위와 망상의 세계, 이렇게 해야 건축가 ‘같고’ 저렇게 보여야 건축가 ‘같은’ 생각이나 이미지나 건물은 무관심을 넘어, 싫어합니다. 건축가처럼 보이는데 몰두하거나 그런 방식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싫습니다. 바로 거기서부터 제 생각 속의 건축가라는 존재가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순수함을 지키는 방식은 어떤 분야든 빼기(−)의 양태로 나타납니다. 건축가를 구분하기 위해 건축가 아닌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것이 때로 부정적인 감정까지 몰고 들어와 건축가 아닌 쪽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 분노와 연민, 우월감과 초조함2 ━ 도 덧씌워지고, 급기야는 발작적으로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려는 강박증에 이릅니다. 정말 ‘중용스럽지 않은’ 상황인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시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별짓기가 의도와 상관없이 사회적 차이를 정당화하는 사회적 기능을 한다3는 것에 이미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은’ 구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솔직함이 점차 미덕이 되고 있지만 이 정도의 솔직함이란 누구에게든

에디토리얼

부담이 될 수 있고, 어디선가는 ‘어떻게 그렇게 좁은 생각으로 편집장을 할 수 있나?’ 같은 이야기를 듣기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런 내 생각이 허위와 망상이라는 걸 압니다. 건축계는, 건축에 이끌려 들어와 ‘건축’ 두 글자를 마음에 새기고 하루하루 실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도시입니다.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나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자신에게 되묻습니다. 건축가 한 명을 잡지 ━ 오히려 단행본에 가까운 ━ 한 권에 담으려고 할 때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어떻게 담을 것인가…

인간이 신에 도전하며 지은 바벨탑 이후 언어와 관습이 뒤섞이고 사람들이 흩어졌다는 신화가 떠오릅니다. 다민족을 하나의 통치 아래 두려는 인간의 제국 건설 야심 이후 오랜 기간 존속해 온 지역 고유의 건축이라는 관념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가능성과 다양성으로 뒤섞이고 흩어진 건축 안에서 건축가가 지켜야 할 전통적인 규율은 기초基礎에서 하위下位로 밀렸습니다. 서양西洋이 자기 역사의 연장선에서 빛나는 도시 등 다양한 색깔의 꿈으로 세계를 다시 그리고 구축하는 동안 우리는 급변하는 세계화의 쓰나미 속에 폐허가 된 자신의 의식부터 모습까지 새롭게 짓는 과제를 떠안았습니다. 하지만 인구증가와 정치변화, 기술발달, 산업성장, 문화교류, 무역확대로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하는 세계화에 동참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은 물론 건축 또한 고민할 겨를 없이 서양의 결과를 모방模倣하기 바빴습니다. 간혹 나타났던 자성自省과 대안代案의 목소리들이 흐릿한 자기 역사의 독백처럼 이어졌고 오늘에 이르러서야 자신을 돌아보는 일의 중요성이 조금씩 확산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스타키텍트starchitect들을 레퍼런스로 삼아야 하는데 현장에서는 스타키텍트의 생성 조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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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에 가깝고 그들을 따라가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에 거의 동의한 분위기입니다. 사회가 서열과 계급 중심의 관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심조심 고양이걸음을 걷는 동안 양극화라는 커다란 암덩어리가 발견되면서 대다수가 좌절하고, 이내 그들의 분노는 아직 갖추지도 못한 시스템의 기득권을 향하며 그나마 소수의 상위문화 형태로 명맥을 유지해온 우리 자신에 관한 고민까지 함께 폐기할 기세입니다. 종교가 되지 못하는 중심 논리들은 억눌리거나 자멸하기를 반복하고 문화다양성의 회오리가 수시로 들이치는 시대에 물질문화를 일구기 위해 땀 흘린 기성세대와 물질문화의 혜택 속에 자란 신진세대를 대다수로 하는 우리의 오늘은 ‘중요한 게 없다는 게 중요한 것’처럼 보입니다. 문화란 의미를 구체화하고 희망을 전달하며 열망을 결집하는 일이지만 자칫 시장의 첨병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걸 많은 문화인들이 공감하고 경계하고 있음에도 저자의 죽음 이후 정작 등장해야 할 독자는 보이지 않고 소비자만 넘쳐납니다. 권위는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 그 자체여야 함에도 스스로 갱신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데 인증을 남발하거나 증여贈與와 수혈輸血에 관심 두는 모습이 너무 쉽게 보입니다. 이런 시기에 ‘중요한 건축가’, ‘좋은 건축가’라는 말이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단언하지 못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 성향, 정보를 참조물로만 취급하는 변통變通 ━ 성향과는 또 다른 건축 관련 성향을 우리 안에서 발견해야 했습니다. 말 그대로 독자여야 했고, 고민 끝에 우리 자신이 독자의 자리에 서보기로 했습니다. 건축을 읽는 방식에 대해 다시 고민해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건축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건축이 건축가들의 남긴 유산의 결정질結晶質이라면 우리건축의 이야기는 우리의 건축가들에게서 비롯될 것이 자명합니다. 그래서 건축가를 찾았습니다. 유명한 건축가가 아니라 읽을 만한 건축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건축가들이었습니다. ‘있을 것 같다’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건축가를 컨택해서 ‘당신을 이런 개념과 방식으로 다루겠다’고 이야기한 적 없습니다. ‘당신이 궁금하다, 한번 정리해보겠다’고 말했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그 불안한 과정을 건축가들은 함께 견뎌주었습니다. 부족한 결과까지도 말입니다. 일반적인 경우 전문매체는 해당 계통의 돗자리 역할을 하는 게 보통이고 저와 편집실 역시 거기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방향을 정하면서 일찌감치 돗자리는 접어 넣었습니다. 매체 안으로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 바깥으로 향하는 하는 대신 우리들의 책상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건축가에 관한 자료들을 모으고 정리했습니다. 텅 빈 우주에 별을 새겨넣는 것처럼 건축가 각각이 가진 이야기를 찾고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건축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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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독자讀者를 발견해야 했습니다. 건축을 눈으로만 느끼는 관음觀淫


‘작업’으로 이해하려고 했듯 우리의 일 역시 작업이 되어야 했고,

아홉 명 건축가를 정리하는 동안 우리는 에디터였다기보다 연구자에 가까웠습니다. “건축가 이름을 몇 번 이야기하면 하루가 지나갈까?” 그런 농담이 입버릇이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 건축가의 팬fan, 건축가의 독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51호부터 59호까지의 결과물에 이런 심정을 담았습니다. 각각에는 이야기 하나가 담겨 있지만, 건축가의 존재를 사랑하는 또 다른 독자들이 또 다른 이야기들을 생각할 수 있길 바랐습니다.

건축가의 다음 작업을 기대한다는 말은 건축매체에서 버릇처럼 쓰는 구절입니다. 너무 흔하게 쓰는 표현이라 개인적으로 거리를 두는 편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정말로 기대합니다. 기대하고 있습니다. 건축가들이 작업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독해력이 생기면 그의 다음 작업이 어떻게 될지 정말로 궁금해집니다. 에반겔리스트처럼 건축과 건축가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상적인 표현들이 증가합니다. 하지만 아홉 명의 건축가를 만나면서 내 안에 키워진 생각은 무엇보다 저 자신이 애초에 건축과 건축가를 지나치게 편협하게 보고 있었다는 반성이었습니다. (건축잡지 편집장으로서 여전히 건축작업을 바탕에 둘 수밖에 없지만,) 세상에는 많은 건축가가 있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건축가로서의 이야기가 모두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해 준 분들, 장윤규, 김인철, 김찬중, 승효상, 최욱, 조병수, 정수진, 김영준, 주대관. ‘우리는 건축가를 가질 수 있을까?’ 이것은 그대로 ‘우리는 건축 에디토리얼

이야기를 가질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이나 입, 손가락만 바라보고 고급진 리액션만 늘어가지고는 우리는 눈앞의 우리 건축과 건축가를 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건축인이라면 먼저 읽기 위해 노력하고 이야기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소한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 정도는 있었다는 걸 확인했던 게 지난 작업들이었다면, 이제는 그 외의 더 많은 이야기들과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다양한 우리건축의 줄거리들을 발견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숙제는 다음 사람들에게 남겨두고, 저 역시 저의 다음 숙제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그리고 그 전에, 건축가 연구하는 에디터architect-studying editor로서 지나온 시간의 기록들을 이곳에 남깁니다. 이것은 부족했던 역량 탓에 독자분들께 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이며, 지난 2년의 편집방향 변화를 주도했던 편집장으로서의 개인적인 생각과 사건들의 기록입니다. 건축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로 가야 하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미래로 가야 합니다. 1.

«중용, 인간의 맛», 도올 김용옥 지음, 통나무, 2011, p.14

2.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채사장 지음, 웨일북, 2017, p.156 3. «구별짓기(상)»,

삐에르 부르디외 지음, 최종철 옮김, 새물결, 2006,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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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도 불충분했지만 그것이 우리 스스로에게 부여한 과정이자 목적이었습니다.


WIDE THE ARCHITECT STORY

EDIT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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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4일 목요일 저녁, 잡지사 인근 음식점에서 2016년 5월호(51호)부터 함께 작업할 멤버들이

모였던 것을 기억한다. 그날 발행인으로부터 두 사람을 소개 받았다. 한 명은 35년 차 건축사진가 K였고, 다른 이는 나보다 먼저 합류한 신입 에디터 P였다. 마지막 일기를 쓰는 지금, K는 여전히 함께 하고 있고 에디터는 J로 바뀌었다. 디자이너 S가 합류한 건 석 달쯤 뒤의 일이었다. 모두 고마운 분들이다. 편집장이 되기로 했다. 인구 오천만의 한국에서 ‘선배先輩’라고 부르는 사람이 딱 하나 있는데, 그가 바로 {와이드AR} 발행인이다. 좀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그는 원만한 한편 호기로운 성격의 소유자다. {공간} 편집장, {건축인 포아} 발행인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30여 년을 건축매체에 종사하여 애정이 남다르고, 무엇보다

매체를 도구로 이용하려는 것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어서 그와 함께 하며 일의 근본까지 고민해야 하는 경우는 생길 일이 없다. 개인적으로 «건축의 불꽃»(전진삼, 2001)이라는 책을 좋아한다. 건축저널리스트를 희망하는 친구들에게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하는 것에서 자신의 고민을 시작해보는 것도 좋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물론 정치 혼돈기인 1990년대에 쓰여진 60년대생 건축매체 종사자의 문제의식은 저성장 시기인 2010년대를 살아가는 70년대생 후배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서로의 시절이 달랐고, 서로의 가치가 다르다. (사견私見을 전제로,) 그가 건축의 정의正義와 주권主權에 대해 건축인들과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길을 걸었다면, 나는 건축의 결과를 보다 공정하게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그는 끌어안는 것부터 시작했고, 나는 구별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는 사회 속에서 분연奮然하게 싸웠고, 나는 건축 안에서 고요하게 생각한다. 그가 역사의 시간을 살아내려 애썼다면, 나는 역사의 구조를 살펴보려 애쓴다. 누가 보더라도 너무나 다른 캐릭터다. 하지만 나는 시간과 결과 및 태도와 노력을 포함한 지금의 그를 선배로서 존중한다. 그리고 그는 나를 격려할 뿐 감독하지 않는다. 잡지를 만들면서 발행인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작업자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겪어 본 사람만 알 것이다. 역시나 고마운 분이다. 추억을 만드는 것이 잡지 만들기의 목표일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추억이 남게 된 건 함께 한 사람들 덕분이다. 나는 건축잡지를 변화시키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감했고, 편집장 역할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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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다. 거기 담긴 문제의식에 연결되는 오늘과 내일을 살펴보는


뒤숭숭한 시절이었다. 위안부 합의 얘기가 나오더니 10억엔 받고

‘최종’, ‘불가역적’이라는 합의문구를 명시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잠시 들뜨던 신년 분위기는 곧 북한의 4차 핵실험 소식으로 물들었고, 어릴 적 꿈꿨던 평화로운 미래는 아직인데 이야기로만 듣던 무지막지한 수소폭탄이 멀지 않은 곳에 있을 수 있다는 현실이 되레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개성공단이 중단되고, 청년 실업률은 역대 최고치인 12.5%를 찍었다. 난생 처음 접한 필리버스터filibuster라는 게 어떻게 사회적 파장을 만들어내는지를 접하는 한편, 난생 처음 인공지능의 위력과 그것이 만드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을 보기도 했다. 그렇게 2016년 3월 중순에 이르는 동안 나와 편집실은 5월부터 발행될 새로운

{와이드AR}의 모습을 어느 정도 구체화 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미모는 눈을 사로잡지만 상냥한 마음은 영혼을 매료시킨다.’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Voltaire(1694-1778)의 말이라고 한다. 잡지를 만들고 독자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미모와 마음 두 가지를 모두 고민해야 한다. 특히 자신을 아는 것보다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신경 쓰라는 상품과 서비스로 가득한 세상에서 첫눈에 상대를 사로잡을 수 있는 외모는 사람들의 말 속에서 첫 번째 기준은 아닌 것처럼 다뤄지곤 하지만, 오늘의 우리 현실에서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표현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냥 ‘기본’. 잘난 것도, 개성도, 추구하는 방향도, 어떠한 결과물도, 외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오늘의 한국에서는. 따라서, 잡지를 바꾸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향만큼이나 60_51

새로운 이미지도 필요했다. 제호, 표지, 편집 등 이미지로 전달되는 모든 것들의 체계를 다시 손봐야 했다. 51호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의도적으로 시선을 끄는 이미지(데이터–뉴스 섹션)를 앞에 두고, 건축가 한 명을 다루는 메인 섹션은 에디터들의 여력이 닿는 한까지 콘텐츠를 촘촘하게 쪼갰다. 지금까지도 51호가 가장 잡지답다는 얘기를 듣곤 하는데,

‘건축잡지를 목표로 했다기보다는 잡지처럼 보이는 걸 목표로 했다’라는 것이 편집장으로서의 솔직한 소회所懷다. 편집실 팀원들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겠지만, 잡지를 리빌딩하기 위해 편집장으로서 가장 처음 내보였던 것이 새로운 제호였다. 다양한 어플리케이션 변용과 상품 제작까지 염두에 두고 만들었으며, 무엇보다 ‘지금부터 우리는 가벼워질테니 준비해’라는 시그널이기도 했다. 건축잡지가 사진 위주의 편집을 하면서 무거운 종이를 쓰는 게 보통이긴 하지만 단순히 그런 것에 반대하기 위한 건 아니었다. 기존 독자를 넘어 새로운 독자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먼저 있었다. 위축된 건축출판시장과 화보畫報 위주의 정보에 익숙한 건축독자들 사이에서 의미는 지키고 현실적인 소비 싸이클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게 중요한 과제였다. 누군가 물었다.

‘만약 잡지를 많이 파는 게 목표라면 왜 건축가 한 명을 다루는가?’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건축잡지가 건축가 다루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만약 나라면 우리 편인 반문자의 등 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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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장구를 침과 동시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아이언맨의 고민이 무적의 슈트로 다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고질적인 문제는 자기 안의 충분치 못한 아크원자로에 있는 것처럼, 그 어떤 사람이 우리를 변호한다 하더라도 영원히 견딜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심장을 설계한 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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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기획 당시 산재해 있는 많은 문제들 중 포기하기 어려웠던 것이 잡지의 ‘색깔’ 문제였다. 주변의 건축잡지를 읽는 분들에게 ‘{와이드AR}은 어떤 잡지인가’ 하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와이드}는 건축비평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가 서로 다른 잡지를 읽고 있나보다고 생각하곤 했다. 어쨌든 정황상 ‘읽을거리가 많은 잡지’라는 점이 기존 독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이 한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의 내용이 주로 사설이나 논평이었고, 이는 전문가 집단의 총체적이고 확고한 지지가 있는 경우에나 가능한 방식이라고 판단했다. 단톡방처럼 잘게 나뉘어져 있는 건축전문가집단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이런 방식은 특정 집단 이외에서 비호감이나 무관심의 대상이 되긴 쉬워도 보편적인 호감을 얻긴 어려울 터였다. 기존 열독자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읽을거리의 질과 양은 유지시키면서 신규 독자 유입을 꾀할 수 있는 이미지 쇄신이 필요했다. 때마침 지난 2015년 봄 60_51

건축비평저널인 {건축평단}이 창간됐다. 자연스럽게, {와이드AR}을 보며 ‘우리나라 유일의 건축비평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현저히 줄었다. 동시에 잡지의 색깔을 바꾸는 것에 대한 저항도 줄었다. 색깔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 잡지의 색깔은 곧 잡지를 만드는 사람의 색깔이다. 잡지를 통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잡지의 색깔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미 50~70% 정도를 차지하는 외부 원고는 잡지의 색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더구나 나는 직접적으로 잡지 안에서 살아가는 에디터, 사진가, 디자이너가 콘텐츠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게재하는 것이 잡지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가장 쉬운 방식이긴 하지만 이미 웹 콘텐츠와의 차별화에서도 속도에서도 밀리고 있었다. 더구나 격월간 잡지에서 일반적인 형태의 뉴스와 사설 역시 철 지난 이야기가 되기 쉬워 차원이 다른 퀄리티의 글이 아니면 내세우기 쉽지 않은 상황이고, 크리티시즘은 이미 비평지의 몫이었다. 다른 길이 필요했다. 시간의 흐름에도 잘 견딜 수 있으면서 잡지로 소비되는 시간 이후를 살아갈 수 있는 콘텐츠. 주간지나 월간지가 아니라 격월간지라서 가능한 콘텐츠. 그것은 에디터가 직접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단행본에 준하는 성격의 어떤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비슷한 유형의 잡지들이 있고, 시장은 달랐지만 성공 사례도 있었다.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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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 다양한 면을 가진 단일 콘텐츠로 적합한 대상인 사람 혹은 조직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방식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그들이 가진 이야기와 소스를 바탕으로 에디터가 적절히 서사를 구성하고 편집자 역할을 하면 될 일이었다. ‘그 사람’이 하필 건축가여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는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건축가 이외의 업역에 있는 사람들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잡지를 많이 파는 게 목표인데 왜 건축가를 다루냐는 질문이 개인적으로 아프다고 한 것은 건축가를 다루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하는 것이 아니다. 잡지를 상품으로 다루는 것과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 둘 모두 중요하게 다뤄졌어야 함에도 돌이켜 보면 콘텐츠 생산에만 몰두했던 것이 그대로 한계가 돼버렸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열이나 백을 가지고 한 가지 일을 해야 잘 할 수 있다고 하는데, 가지고 있는 능력조차 부족해서 좀 더 폭넓게 대비하지 못한 탓이다. 어쨌든 새로운 시간이 작동하기 시작했고, 요구와 비용과 기간이 있는 신축 프로젝트를 하듯 우리에게 맞는 최적의 집을 짓는 일을 시작해야 했다. 당연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와 생각을 공유할 수 있으면서도 콘텐츠 부족으로 고민하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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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 ‘건축가’를 찾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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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 누구 할 거야?” (몇 명 적힌 메모지를 내밀며) “대략 이 정도예요.”

“만약 이렇게 건축가 특집으로 가면 몇 권이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글쎄요. 생각을 바꾸기 나름이긴 한데…” 대략 이런 식의 대화였다. 건축가를 선정하는 일은 주로 발행인과 얘기를 했다. 편집장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건축가도 거의 없었다. 사전에 조사한 리스트의 홈페이지들을 일일이 들어가서 체크도 해보고 잡지들도 다시 확인했지만 잡지 한 권을 프로젝트가 아닌 이야기로 다루고 싶은 혹은 다룰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드는 건축가는 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누구든 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그때는 그랬다. 우리는 에디터였고 비평가는 아니었으며, 하지만 건축가를 선정하는 것 자체는 평가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찾고 만드는 것에만 집중해도 좋았을 테지만 하필 잡지의 이전 성격이 비평과 가까워서 무작정 작업을 즐긴다는 것은 부담이 됐다. 더구나 사전에 준비호를 제작하는 등의 과정 없이 곧바로 본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도 첫 건축가 선정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과연 우리가 건축가에게서 무엇을 뽑아내고 만들 수 있을까? 이건 가능한 작업일까?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생존 인물에 대한 비평을 금기시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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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도 알게 되고, 건축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기 위한 작업이 자칫 건축가에게 누가 되지 않을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비판은 아니더라도 일반적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건축 이야기들도 회피해야 하는 경우가 오지 않을지, 이래서 다들 검증된 방식으로 잡지를 만드는 건가 하며 고민만 늘고 있었다. 그래도 몇 명을 적어 발행인에게 보이고 이런저런 의견을 들었다. 만난 적 없는 건축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중 발행인이 메모에 적힌 한 건축가를 거론했고, 나도 동의를 했다. 건축가 장윤규(운생동 건축사사무소)였다. ‘2016년 3월 4일, 프로젝트 설명 및 자료 요청.’ 작업스케줄표에 기록된 미팅 표시를 보면서

그때의 우리를 떠올려 본다. 운생동 사무소 2층 회의실, 목재 상판의 테이블과 어두운 톤의 공간, 회색 벽면에 걸려 있는 낮은 밝기의 스테이플러 도시 사진, 발행인의 경쾌한 목소리, 초면이라 그런지 속을 알 수 없을 것 같았던 건축가의 표정, 별일 아닌듯 그들에게 잡지 작업을 설명하는 나. 내심 떨렸다. 그리고 그건 아마 긴장하고 있던 위장이 갑자기 들어온 쿠키에 놀라 요동치는 바람에 횡경막이 평소보다 높이 밀어올려지면서 덩달아 심장이 움찔거렸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쿠키가 있었던 사실과 미세한 떨림이 있었던 것만큼은 지금도 기억해낼 수가 있다. “하죠. 뭐.” 그렇게 51호의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왜 안돼why not’처럼 가장 그다운 방식의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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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는 많은 면에서 ‘유일한’ 작업이다. 52호 이후와 비교할 때 콘텐츠 구성 방식이 전혀 다르다.

디자인도 전혀 다르다. 당연히 건축가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에디터의 눈도 이후와는 전혀 다른 상태였다. 그때의 나에게 건축가냐 아니냐에 대한 구분은 선정 과정으로 이미 끝난 문제였다. 우리는 그를 건축가로 받아들였고, 그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정리하고 재구성하는 것만이 작업의 목표라고 생각했다. 역사는 역사가에게 맡기고 비평은 비평가에게 맡기면 된다. 우리는 이야기를 정리할 뿐이고 그것을 역사나 비평의 시각으로 보는 것은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속된 말로 건축가를 ‘터는’ 것이었다. 자료의 출처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과거 신문, 잡지에 실린 기사들과 출간된 단행본 86개의 소스를 검토했다. 공식적으로 거론하는 그의 첫 작업이자 신건축 타기론 공모전 입선작인 <도시의 문>(1994)을 비롯하여 2015년 계획 중인 일들까지 100여 개 넘는 프로젝트 리스트를 확인했다. 구체적인 데이터 수집이 가능한 프로젝트들을 통해 연간프로젝트 수 추세선의 상승을 확인하기도 하고, 위치, 연면적, 용적률 등의 차이와 누적을 체크했다. 노출된 건축면적의 합을 대한민국 면적 99,720㎢ 안에서의 비율로 치환해 보면 1000조각 중 2조각 정도였고, 아뜰리에로서 개별 프로젝트의 규모나 실현되지 않은 계획이 꽤 있는 편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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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이런 데이터들을 시각화하는 것이 일정 부분 중요할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막상 전체 콘텐츠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은 참고사항일 뿐 중요한 이슈는 되지 못 했다. 처음 건축가를 만났을 때 몇 가지 그래프와 이미지를 보여주며 설명했던 게 기억난다. 그때는 그 나름의 최선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정도의 설명만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작업에 이름 있는 건축가가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까지도 내가 이 건축가를 스스럼없이 ‘고마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가끔씩은 발행인이 건축계에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온 음덕蔭德 포인트 중 일부를 내가 빼먹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관심을 가졌던 건 많은 자료들 중에서도 가장 번거롭게 읽히는 «복합체 COMPOUND BODY»라는

책이었다. 순전히 궁금증 때문이었다. ‘그는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가?’ <오르페우스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지속적으로 맴도는 신화적인 코드의 발언지인 오르페우스를 지나칠 수 없다.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와 열망을 오르페우스와 같이 한다. 욕망에 의해서 처절하게 파멸되더라도 우리는 그 세계를 바라 볼 용기가 있다. 가상을 진실로 치환하는데는 위험성이 함께함을 우리는 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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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합체 COMPOUND BODY», 장윤규 지음, 간향미디어랩, 2005, p.11 참, «복합체»라는 책 가장 첫 머리에 ‘오르페우스의 시선’과

‘율리시즈의 귀’에 대해 쓰셨죠? 귀를 막으면 되는데 굳이 몸을 묶어놓고 듣겠다는 건 소장님 작업 태도를 빗댄 건가요? 인생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에요.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키고 도전하는 거요.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 {와이드AR} 51호 건축가 장윤규 인터뷰 中, p.47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잘 알겠지만 궁금할 땐 책을 읽고 전시를 보는 것보다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다. 사람들이 강연이나 세미나에 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사진보다 현장을 직접 보는 게 이해가 쉬운 것처럼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글보다는 타인과의 소통을 전제로 하는 실전에서의 말이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글을 쓸 때 ‘말하듯’ 서술하는 뉘앙스를 활용하는 편이다. 어휘 선택 역시 고급보다는 초급일수록 의미를 전달하기가 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글쓰기의 개별 목적에 따른 것이고, 말이 글보다 쉽다는 것이 말이 글보다 정확하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해하기 쉬운 것은 오해하기도 쉽다. 그래서 작업자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글쓰기 방식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때가 오는데 건축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건축에 대한 태도와 결과물의 차이 만큼이나 문장의 차이도 크다. 똑같이 성찰省察의 내용이라도 어떤 이는 현실의 상태에 주목하고, 드물게는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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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 목소리를 따르는 이도 있다. 건축 분야에서 후자의 경우가 드문 이유는 아돌프 로스Adolf Loos(1870–1933)가 예술과 건축을 혼동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와 동일하다. ‘그는 건축이 기능적인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내용을 포함한 본질에 의해 정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더욱이 사회적인 요구에 직접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느꼈다.’(«합리주의와 낭만주의 건축», 보이시치 G. 레스니코프스키 지음, 박순관.이기민 옮김, 국제, 1993, p.372) 건축이란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대화이며, 건축가란 건축을 꿈꾸는 이상으로 그것을 위해 만나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에서 다시 «복합체»라는 책 속의 문장을 보면 이것은 건축가의 글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곳이야. 이런 상황이지. 그래서 이렇게 됐어. 의외로 이런 부분도 생기거든. 직접 경험해 보면 좋을 거야. 부족한 곳도 보이지. 사연이 많아. 어쨌든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무슨 말인지 알겠지?’ 만약 누군가 이런 식의 글을 썼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은 설득을 위한 문장이며, 글쓴이가 어떤 어조語調로 말을 했을지까지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어조의 파형波形을 플랫하게 깎으면 요즘 대부분 건축가들의 글쓰기 톤 정도가 된다. 조곤조곤한 읊조림처럼, 건축가 자신이 주어가 아니라 건물이 주어가 되어 원래 거기 그렇게 있었던 양 묘사하는 방식 말이다. 현실적인 서술은 존재하지만 시간은 사라지고, 건축가는 거친 돌 안에 담긴 형상을 위해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낸다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1475–1564)처럼 작업의 주인 목소리로 화化한다. 현실을 수용하는 건축가에게 남은 마지막 60_51

신화의 영역인 양 흔히 접하는 건축가들의 문장은 현실과 건축가의 이상 사이를 떠돈다. 어쩌면 거기까지가 오늘의 현실이 수용해 줄 수 있는 건축적 소통의 한계선일지도 모르겠다. «복합체»의 문장은 어조가 플랫하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건축가들의 문장과 유사하다. 대신 그 평평함이 시종일관 이어진다는 점에서 다르다. 문장의 표현방식도 다르다. 현실에서의 사건과 양태의 묘사가 아니라 개인의 인식을 현실에 투사하는 방식이다. 무중력의 인식을 현실로 이어붙이기 위해 끊임없이 밀어붙인다. 굳이 비유하자면 정령精靈의 목소리를 전하는 샤먼shaman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설득이 목적이 아니다. 전달 자체가 목적이다. 그리고 그 전달 방향은 특정인을 전제로 하지 않은 불특정다수의 사회와 자기자신, 두 곳을 향한다. 하나는 선포宣布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존재를 지탱하기 위한 것이다. 문장들을 받치는 때매김時制을 유심히 보면 발화發話하는 저자에게는 대부분의 상황이 미래로 인식된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나는 건축가 장윤규에 관한 많은 정보들 중에서도 다른 건축가들과 차이를 만들어내는 동력원인 그의 생각하는 방식이 궁금해졌다. ‘과거에도 이런 유형의 (건축가를 포함한) 작가가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스터디하던 중 어느날인가 문득 자동기술법automatisme이라는 용어가 떠올랐고, 초현실주의surréalisme의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까지 이르렀다.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기법과 «복합체»의 기술記述 전략이 유사한다고 판단한 지점에서, 나는 문득 망설였다. 건축가에게 예술과 관련된 이미지를 근접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속하는 자본 시스템의 사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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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들의 사회적 이상은 대체할 동력을 찾지 못한 채 가라앉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자본이 길들인 건축이 랜드마크로 부각되어 동경과 경쟁심을 부채질하기 시작했고, 겨우 영문을 알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는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미명 하에 새로운 시대에 대한 건축가들의 고민까지도 백안시白眼視했던 것이다. 아무것도 결정된 것 없이 누군가 선취先取한 것을 안전하게 선택하면서 오늘을 보전하기 급급한 환경, 그리고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과 가속하는 자본시스템의 어긋남 사이에서 건축-말하기를 참던 건축가는 결국 예술이라는 이국異國의 언어를 방언처럼 쏟아냄으로써 우리 건축계가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실험이자 이야기를 남겼던 건 아니었을까. 물론 장윤규는 나에게 ‘건축은 예술’이라고 말했고, 내가 느끼고 해석하는 한에서 나 역시 그의 말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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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이매지네이션imagination. 편집실에서 설정한 51호의 중심 키워드였다. 거침없이 쏟아내는 언어처럼 거침없이 쏟아내는 결과물이 내가 생각하는 장윤규의 매력이다. 반복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과 달리 그의 작업은 많은 세포들과 다채로운 융합을 통한 점진적인 변화들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일정 부분 현실을 감안하고서도 다음 작업이 어떻게 변해갈지를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것 역시 매력적인 60_51

부분이다. 언젠가 나는 대학생 대상 강의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장윤규가 만든 결과물이 이전보다 근사할 거라는 기대는 낮다. 하지만 만약 몇 명의 건축가가 계획을 한다고 하면 나는 장윤규에게 기대를 걸겠다.” 그는 의도적으로 누구보다 자신을 선명하게 드러냄으로써 꽉 막힌 한국 건축이야기의 한 부분에 틈을 낸다. 자본의 반대 입장에서 보면 그의 결과물은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결과물은 활용하기 좋은 그림이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런 견해가 많다는 건 여전히 우리 사회가 ‘자본’이라는 두 글자 아래서 불편해하거나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잡지 속 글 ‹짧은 포폄褒貶›(공철)에 담긴 이야기처럼 ‘부강富強’보다는 ‘건강健康’을 고민해야 할 때인 건 분명한 것 같다. 어쨌든 그 짐은 건축가 개인이 아니라 건축가 사회가 나눠져야 할 부분이므로, 모든 시대가 그러하듯 우리의 시대 역시 점진적으로 변화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가 아직은 완결되지 않은 우리 건축의 종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기록할 필요가 있는 건축가라고 생각한다. 잡지 만드는 이야기로 돌아가면, 역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설정샷을 찍었다는 사실도 기록해 둘 필요가 있겠다. 그는 작업 과정 중 생산된 스터디 모형 등 결과물들을 컨테이너 세 개 분량으로 모아두고 있다고 말했고, 건축가 인물사진을 그곳에서 한 번 더 찍기로 했다. 언젠가는 연예인도 취재할 기세였기에 그림이 나온다고 판단되면 뭐든 해야 했다. 건축가도 준비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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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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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아마 이런 이유로 발행인도 그를 적극 추천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것, 미지의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건축가의 성향 말이다. 표지에 쓴 <ACC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계획안 등 큰 공간과 형태를 만지는 건축가로서의 그의 손길에 대해 사람들마다 호불호가 있을 것이다. 51호를 준비하며 지난 십 년 정도의 기간 동안 주요 건축전문잡지에 게재됐다며 받은 리스트에는 270여 명 정도의 건축가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는 현재 대한건축사협회의 8,500명에 비해서도 3%에 불과한데, 그마저도 자주 보기 어려운 건축가 이름들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매체에 자주 보이는 건축가도 어느 정도 축약되며, 그들의 결과와 행보는 주목을 받을 뿐 아니라 건축계의 풍향계처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결과에 동의하거나 반대하며 각자 좀 더 나아가는 것이 중요할 뿐, 그것이 우리 현재 모습의 전부인 양 호도糊塗할 필요는 없다. 2015년 기준 한국 총 건축물 재고량은 698만 6,913동이라고 하며, 2011년부터 2015년 사이에 착공된 건축물은 평균 200,536동이라고 한다.

(«건축이 바꾼다», 박인석 지음, 마티, p.33/p.70) 나은 방향 혹은 다른 방향을 추구하는 건축가들이 우리에게는 좀 더 많이 필요하다. 참고도판으로 작게 쓰려고 했고, 두 번을 요청했지만 받지 못한 프로젝트 모형사진이 기억난다. 지금도 여전히 궁금하다. 옷 보는 눈 없다고 말하는 어떤 이들에게 건축 보는 눈이 없다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언제나 우리 각자가 원하는 세상은 항상 몇 걸음 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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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운 채로였다. 꿈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아직도 달팽이관 어디쯤 머물러 있다. 침실 남측의 반투명 창에 맺혀 방으로 번져오는 아침 햇살이 눈꺼풀에 걸렸다. 하지만 바로 몸을 일으킬 만큼의 상태는 못 되는 것 같았다. 침대의 이곳저곳을 더듬어 겨우 스마트폰을 찾아서 켰다. 오전 9시 2분. 네 시간을 못 잔 셈이다. 잡지를 몇 권쯤 만든 후에야 일반화시킬 수 있었지만, 잡지가 발행되고 난 후 한 달 정도는 잠을 잘 못 자는 버릇이 생겼다. 불면증을 겨우 벗어나면 다음 한 달은 잡지 만드느라 스스로 잠을 줄여야 했다. 격월간 잡지. 한 달은 기획, 한 달은 정리. 해日와 함께 돌아야 할 일상에 달月과 별星까지 들러붙었다. 새로운 {와이드AR}을 위한 잡지 작업이란 마치 헤어진 연인에 대한 미안함을 느낄 틈도 없이 새로운 사랑에 빠져드는 일과 같았다. 하지만 온종일 다음 작업에 몰두하다가도 새벽 4시에 도달한 시침時針만 보면 딱히 이유도 없이 지난 잡지를 꺼내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서 보고 있었다. 그러다 생체에너지가 바닥이 나면 충전기를 찾아가는 청소로봇처럼 자동으로 침대에 60_52

도킹하고는 몇 시간 후면 시작되어야 할 ‘새로운 날’에 대해 생각하다 잠이 들고, 눈을 뜨면 어느새 ‘다른 날’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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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게나 끈덕지게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었음에도 52호는 제시간에 시작되지 못 했다. 2000년 전후 대형 설계사무소와의 협업과 아뜰리에의 소형 작업 사이에서 한국 건축가로서의 독자적인 로드맵을 만들어나간 51호 건축가를 첫 번째 점으로 찍은 이상, 52호는 좀 더 젊은 건축가의 이야기와 이미지들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51호 작업이 한창이던 때 세 명의 건축가를 만났다. 결과적으로 잘 풀리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건축을 꿈꾸는 고등학생이든 작고한 무명의 건축인이든 흥미만 있으면 결과물의 양에 상관없이 책 한 권쯤 만들 수 있지 않겠나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만들어진 결과물도 없었고, 사람들도 작품집 형태의 잡지까지는 익숙하지만 에디터가 건축가 한 명을 놓고 무슨 이야기를 어디까지 만들지 모르는 건축잡지를 접한 경험은 거의 드물었다. 그렇게 보면 53호 건축가가 좀 독특했던 게 사실이다. 그는 매체가 원하는 모습과 소스들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쨌든, 보다 더 캐주얼한 작업을 하고 있길 바랐던 것과 달리 51호를 마치고 작업은 ‘멈춤’ 상태가 되었다. 51호 건축가의 동세대나 웃세대에서 다음 건축가를 찾을 수도 있었지만 타순으로 치면 5번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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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로 생각 중이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이 건축가의 가치나 중요도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거다. {와이드AR}의 변화하는 분위기를 우선 고려 중이었다. 그런 생각에 몰두하다보니 잡지를 만들기 위한 필수 조건과 관련된 치명적인 오류 하나를 까맣게 생각지도 못 하고 있었다. 함께 작업할 건축가를 어렵게 정한다해도 그가 함께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내 생각은 ‘잡지 한 권에 건축가 한 명’이 아니라 ‘잡지 한 권에 이슈 하나’였다. 이야기는 건축가뿐 아니라 도시나 마을에도 있고, 젠트리피케이션의 빛과 그늘 속을 살아가는 문화기획자나 도깨비 문양이 그려진 전통기와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지방 박물관도 좋았다. 이야기할 만한 것인가에 대한 내 기준이 좁았을 뿐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은 한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울릉도를 다루겠다며 관련 책도 보고 열흘에서 보름 정도의 스케줄을 검토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발행인이 모 건축가의 오픈하우스 이벤트에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사람들 모이는 곳은 거의 안 가는 편인데, 무엇보다 공치사空致辭를 잘 못 하는 편이다. 소수의 사람들과 편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은 좋아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겉모습, 인상들만 깨작거리며 탐색과 평가가 오가는 상황은 피곤하다. 피곤해도 잘 참는 게 어른인데, 언젠가부터 그냥 안 참기로 했다. 어릴 땐 애–늙은이로 살다가 나이 들면서 늙–어린이가 되었다. 하지만 발행인이 60_52

편집실 멤버들과 함께 가기로 이미 약속을 했다고 했고, 몇 시간 후 나 역시 오픈한 어느 하우스의 대문을 지나 마당으로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18세기 유럽에 픽처레스크 투어picturesque tour가 유행했다면 21세기

초 한국에서는 포토레스크 투어photoresque tour가 유행 중이다. 그 옛날 그림 같은 풍경이 하나의 풍風, 양식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는 사진 잘 나오는 자리가 성지聖地로 둔갑하고 순례巡禮의 코스가 된다. 보는 것이 마음의 충족으로 이어지던 사람들과 보여지는 것이 마음의 충족으로 이어지는 사람들은 서로 얼마나 다를까? 근대건축이 장식을 꺼려하기 훨씬 전부터도 건축의 흥미로운 부분은 결과로 보여지는 양식style 그 자체보다는 그러한 결과를 유도하는 한 사회의 문화, 기술, 과학, 산업, 경제, 정치, 교육, 종교 등등이 개별적 혹은 총체적으로 작용하는 과정이었다. 영국의 스톤헨지에 쓰인 거석巨石,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쓰인 무게 1~2톤의 돌, 우르Ur의 지구라트에 쓰인 4.5kg 규모의 진흙 벽돌, 그리스 파르테논의 대리석과 로마 판테온의 콘크리트 및 그 외의 많은 역사 속의 재료들이 단순히 건축을 위한 도구가 아닌 그것을 활용할 수 있었던 해당 사회의 시스템과 맞물려 이해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비트루비우스Marcus Vitruvius polio(BC 1c)가 ‘토성이 우주의 가장 먼 곳’(«건축십서», 모리스 히키 모건

편저, 오덕성 옮김, 기문당, p.310)이라며 건축가의 천문에 대한 관심을 정당하게 기술한 것도, 외젠 비올레르뒤크Eugene Violle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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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관한 일련의 강연을 하려면 ─ 국가들의 역사에 대한 탐구, 그들의 제도와 관습에 대한 검토, 그들이 두각을 Duc(1814–1879)가

나타내게 하거나 몰락을 초래한 다양한 영향에 대한 적절한 검토 등 ─ 방대한 연구 분야를 두루 섭렵하고 있어야 한다’(«건축강의 1», 외젠 비올레르뒤크 지음, 정유경 옮김, 아카넷, p.17)고 말한

이유도 건축을 단순히 눈으로만 느끼고 판별할 수 있는 대상으로 남겨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맹점盲點이 생긴다. 이런 생각은 건축을 단지 결과로 즐기기만하는 마음가짐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데는 유용하지만, 눈 앞의 상태를 살펴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야 하는 건축 전문 에디터로서의 감각을 곧잘 마비시키곤 하는 것이다. (물론 비트루비우스나 비올레르뒤크 같은 선인先人들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 큰 범위에서 이야기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건축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가능성이 잘 안 보이는 건축 탓을 하거나, 아니면 보는 눈이 없는 에디터 탓을 하거나. 사람이 누구나 자기 편의대로 생각한다는 게 이럴 때마다 아쉽다. 내 생각엔 건물과 건축가는 무죄, 에디터는 유죄다. 하지만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에디터와 함께 계를 이루고 살아야 하는 것도 ‘한국’이라는 이름 아래 살아가는 이들의 운명인 것이다. 물론 그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픈하우스가 진행되는 집에서 결례되는 표정을 짓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사람들의 탄성에 그러던 중 10미터 전방으로 백발의 남성이 지나가는 걸 보게 됐다.

‘혹시 김인철 선생님인가?’ 큰 팽이들 사이의 작은 팽이처럼 이리저리 튕기듯 피해 1층 마당을 면한 데크로 나갔다. 잠시 후 백발의 남성도 나왔고, 인사를 드렸다. 아직은 52호 건축가가 정해지지 않아 시간도 비어 있는 상태여서 일간 찾아뵙기로 했다. 선생님이 기억할지 모르지만 2000년대 초에 한 번 뵌 일이 있었다. 초면인데다가, 그분도 경상도 아저씨였고 나도 경상도 총각이었다. 서로 데면데면했다는 얘기다. 그 시절의 그는 뻣뻣한 검정 가죽자켓에 검은 머리와 줄담배였고, 며칠 후 다시 만났을 때는 편안한 벽자색碧紫色 셔츠에 흰 머리와 줄담배였다. 그렇게 2016년의 늦봄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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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넘은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당시 나는 건축잡지사에

있었다. 완공된 어느 프로젝트의 잡지 게재 여부를 두고 의견을 나눴는데, 그때 내가 정한 입장이 왜 그런지 잊혀지지가 않는다. 프로젝트를 보면서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게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현실에서 건축가가 설계를 하며 시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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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도 못 하면서 몸은 자꾸 사람들이 적은 쪽으로 밀리듯 떠돌았다.


완벽하게 컨트롤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적인 생각인지는 약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더구나 해당 건축가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프로젝트도 진행한 바 있다. 나는 결과물의 이미지보다는 건축가의 의지를 응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의견과는 반대로 결과는 게재불가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 결정은 옳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건축가의 길이 있듯 건축잡지의 길이 있고, 매체는 매체를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심이 통하는 세상이라면 조금 부족한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건축전문지의 주요 독자인 건축전문가들은 자기 나름의 주관을 가질 만큼의 공부들은 한 사람이라 웬만한 정보나 주장으로는 만족시키기가 어렵고, 잡지를 만드는 입장에서도 어려운 길보다는 익숙한 길이 편한 법이다. 더구나 익숙하여 유형화된 것들은 그 나름대로 검증된 방식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그것 자체가 악덕은 아니다. 다만 좀 더 노력해서 쟁취해야 할, 조금 멀리 있는 다른 종류의 미덕이 아쉬울 뿐이다. 어느덧 나도 계산이 좀 돌아가고 영리한 선택에 관심이 많아졌다. 그런데도 의미나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애초에 나의 시작이 건축잡지에서도 비중이 적은, 글을 다루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생각과 문제의식 아닌 끌리는 이미지를 공유하는 건축전문지는 한 마디로 마약이다. 60_52

덜 심하게 말하면 광고판. 마약이나 광고가 소비자를 향한다면 건축전문지는 생산자를 중독시킨다. 누군가는 결핍을 느끼며 쫓아가고, 누군가는 포기하고, 누군가는 이익이 되는 부분만 가져다 쓴다. 그런 사람들에게 건축잡지가 좋아할 만한 (기발한 그림 그리는) 작업을 하지 말고 건축가 자신의 (부족하더라도 생각을 담은) 작업을 하라는 말은 안드로메다에서 오는 신호처럼 먼 이야기일 뿐이다. 잡지를 만드는 입장에서 독자들과의 소통이 목표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없는 말을 되는대로 늘어놓거나 인상만 전달하는 식이 되는 건 원치 않았다. 여전히 잡지는 가볍게 만들고 싶다. 건축에 대해서도 가볍게 이야기하고 싶다. 다만 의미 없이 재미만 추구하는 건 피하자고 생각한다. 2016년의 5월이 진공상태로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 결국은 그것 때문이었다. 매일 같이 건축가들의 이름이 거론됐지만 가슴 한쪽이 텅 빈 채로 채워지지가 않았다. 보통의 건축잡지가 추구하기 어려울 만큼의 대중–소통–지향성, 그리고 보통의 건축잡지가 추구하기 어려울 만큼의 건축–가치–지향성. 현실을 달리다가도 새벽 4시가 되면 과거의 기억으로 돌아가는 다른 내가 있는 것처럼 개인에게 상존常存하는 모순된 지향이 히스테리가 될 가능성은 잠복기의 인플루엔자처럼 내 안에 숨어 있었다. 재미 있는 아이디어들로 들뜨다가도 건축적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가라앉았다. 건축가는 예술가일 수도 있고 지식인일 수도 있지만, 예술가나 지식인의 미덕을 건축가의 미덕으로 이야기하는 것에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바깥에서 볼 때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몇몇 건축가들에 대한 추천도 뒤로만 뒤로만 물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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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십리역 8번 출구에 올라서면 다시 두 걸음을 내려서야 인도에 발이 닿는다. 아마 이 역驛도 연 강수량이 여름에 집중되는 우리나라의 기후적 특성 때문에 지하철로 물이 흘러들어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을 것이다. 요즘 삼십 대만 되어도 가물가물하겠지만, 불과 30년 전만 해도 서울은 폭우에 무방비도시였다.(‹서울·중부 수해, 산사태로 한마을 10명 사망·실종›, «동아일보», 1984.09.01) 지하철에서 내려 출구까지 세 번의 계단을 거쳐야 하는 이곳에서 두 단을 덧대어야 할 만큼 절박한 이유란 달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건축가는 이렇게 만들지 않는다. 건축가라면 ‘상황이 그래서 이렇게 되었다’라고 말하는 듯한 설계·디자인은 가급적 피한다. ‘상황과 조건의 수용은 기본이고 결과적으로 무엇을 하려고 했다’라고 말하는 설계를 하는 게 보통이다. ‘되었다’라는 말에 담긴 어쩔 수 없음이 ‘했다’에서 드러나는 건축가의 존재보다는 덜 불편하기 때문일까. 우리 사회에는

‘건축가가 만든 건축가 없는 건축’이라는 이상한 건축 장르가 존재한다. 도보 3분 거리. 아르키움 사무실이 있는 박공지붕과 격자 프레임 패턴의 건물 꼭대기층을 볼 때마다 내 머릿속에 다 들어와 있지 않은 공간 정보 때문에 혼란스러움을 느끼곤 했다. 첫눈에 인지되는 건물의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나는 늘 눈에 보이는 그곳의 60_52

왼쪽이 건축가의 방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쪽에 위치한 코어를 이용해서 이동한다는 걸 알면서도 엘리베이터를 내려 철제계단을 돌아 오를 때 보이는 박공지붕의 경사방향이나 건축가 방의 위치가 인도에서 올려다본 이미지와 겹쳐져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면 본 것과 경험한 것이 자연스럽게 포개졌던 것이다. 직원들과 안부를 묻고, 나는 건축가가 있는 사무실 입구 옆방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건축가 뒤에 있어야 할 격자창은 안 보이고 입구를 향해 있는 건축가의 왼쪽 벽 일부가 지붕 아래까지 트여서 빛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건축가 뒤쪽 벽면에 설치된 문 너머로 빛이 쏟아지는 어떤 공간이 있을 거라고 혼자 맘대로 착각해버리곤 했다. 언젠가 선생님께 그 공간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기교 넘치는 테너의 노래 같은 질문에 베이스에 가까운 바리톤의 음성이 답가로 돌아온다. “안돼.” 지금은 그 방의 공간적 판타지는 사라졌다. 대신 옛날 자료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부터는 언젠가 올라야 할 산들 중 하나처럼 매체 종사자의 호기심과 의무감을 자극하는 미지의 장소가 되었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녹음을 해야 할 상황도 아니었고, 말 그대로 인사 드릴 겸 산책 겸 들른 것이었다. 지금은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때는 시선의 방향이 20도 정도 서로 틀어져 있었다. 나는 선생님을 보고, 선생님은 20도

옆의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어떤 때는 90도가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비로소 눈이 맞기도 했다. 어느 순간 나는 건축가로서의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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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졌다. 연배도 높은 데다가 작업도 최근 트렌드와 무관하게 60_52

자신을 반복하는 듯한 이미지가 있었지만, 비교적 최근작인 <파티PaTI>(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는 내가 개인적으로 스터디하는 건축콜렉션박스에 담아도 좋을 것 같은 작업이었다. 역시나 개인적인 생각으로, 나는 43그룹 건축가들을 좋아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톰 울프Tom Wolfe(1931–) 같은 멋진 이야기꾼의 글을 읽다 보면 세상 자체가 간단해보일 때가 있는데, 그런 시선으로 볼 때 건축가들은 결과적으로 과거를 극복할 만큼 대단한 것도 없이 논쟁만 일삼으며 자기 지위를 유지하는 사람들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인생도 간단하지 않은 것처럼 어떤 건축가도 드러난 것 이상의 복잡하고 복합적인 이유와 상황이 있다. 다행히 나는 이전에 한 건축가와의 만남을 통해 ‘그들은 그들의 시대를 열심히 살아냈다’는 생각에 이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들을 제쳐두고 굳이 과거를 살펴보는 일을 해야 할 만큼의 상황은 생기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언제나 내게 공백이었고, 그 사이 작업에서 손을 놓거나 작업 태도를 바꾸는 건축가들이 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도대체 뭘까?’ 주변에서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의 세상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 건축가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이나 이야기는 ‘우리’가 만들 거니까, 나는 ‘내’ 마음만 정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선생님께 잡지 작업을 해보자고 제안을 했다. 그러자는 대답을 들었고, 52호 잡지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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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52호는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다. 나는 건축가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찾고 정리해야 할 이야기들을 만들어 가고 싶었다. 그게, 겨우 건축가를 정했다 싶었을 땐 편집장의 독단적인 선택, 초기에 설정한 방향과의 괴리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어떻게 보면 편집장인 내가 납득하지 못한 건축가들이 모두 물려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도 마찬가지 상황이 온 것뿐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팀을 설득하지 못 했다. 아니, 설득하지 않았다. 대중적인 건 좋아하지만, 왜 그런지 건축에 관한 부분은 타협이 되질 않았다. 우리는 건축가의 무언가를 발견해야 했는데, 최소한 그 가능성이 있는 쪽을 보는 건 내가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왜’를 물으면 명쾌한 답을 줄 수 없었고, 작업 안에서 ‘뭔가’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아직 눈앞에 없는 결과보다는 서로의 선입견이나 이해관계가 가까운 법이다. 나는 나의 선입견을 따라 편집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한동안은 스스로 혼자인 채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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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거의 2주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정리해야 하는 시간이 이른 것이다. 물론 내 머릿속에는 어떤 그림이 있었다. 51호와는 전혀 다른, 수용자를 고려하면서 좀 더 대중적인 잡지들과 비슷해 보이는 결과를 도모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우리가 보다 건축에 집중할 거라는 걸 내용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표방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개별 건축가의 특징이란 소수의 유명한 60_52

건축가들과 꼭 그만큼의 개념만을 생산할 수 있는 아카데미의 조합 속에서나 두드러지게 다뤄질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변두리 한국건축가들의 의미를 다룬다는 건, 이미 중심에서 많이 벗어나있지만 그 나름대로 형성하고 있는 탄착군을 살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중심을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영점조정을 하지 않고, 탄착군의 흔적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서양건축이라는 중심에 대해서는 우리건축을 생각하기 위한 참조 역할만 부여하고, 우리 건축가들을 볼 땐 중심과의 비교 없이 그냥 거기서 보이는 것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이미 어느 정도 고정돼버린 견해 때문에 호불호까지 지우기는 어려웠지만 흑백, 가부, 진위, 시비, 찬반 등등의 문제는 가능한 미뤘다. 그러고 난 후에야 온전히 건축가, 사람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생각이 맞을까’보다는 ‘왜 그렇게 생각해야 했을까’에 대해 연구하고, ‘그 디자인이 적합할까’보다는 ‘왜 그렇게 표현할까’에 대해 연구해보기로 했다. 혼자 스터디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건축가 김인철에 관해서는 한 가지 방안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쓰는 용어와 표현들을 사전처럼 정리하면 좋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어반하이브>부터 본격적으로 보이는, 스킨을 한 겹 더 만드는 방식이 이후 <파티>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보다 재밌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 생각엔 일단 한 가지를 먼저 정리한다면 그건 ‘말’이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건 싫어.”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있지만 그가 40년대생이라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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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이전 시대의 일들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모른 채 살아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젊은 누군가가 자신은 건축을 이렇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단번에 알아채지 못할 때에도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들 때가 많다.

‘그거 누가 예전에 (말)하지 않았나?’ 당사자는 작업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과 영감을 중심으로 설명할 뿐이니 자기 생각의 오리지날리티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 성실하게 검증해주지 않는 한 ‘이건 내 생각인데…’라며 살아갈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건축가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말은 필요한 만큼만 하고 결과에서 사람들이 뭔가를 느껴주길 바라는 것 같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게 느끼기도 어렵다.) 나는 그것이 딱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냥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는 말하고 싶다. 선배들이 성실히 기록해 둔 것은 그들이 경험하고 생각한 한계선이고, 후배들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을 해도 된다. 부정을 해도 되고, 무시하고 자신의 방향으로 가도 된다. 자기가 걷는 길이 어떤 길이라는 것을 굳이 모르고 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길게 보면 전문가로서 자신이 속한 세계의 역사에 대한 예의를 표하는 것과 같고, 다음 세대에 넘겨줄 자신의 숙제를 인식하며 살아가는 일과도 같다. 건축가와 대화를 하면서 미묘하게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가령 ‘상상’이라는 표현을 하면 나는 ‘현실 아닌 어떤 것’ 정도로 이해를 했는데 건축가가 말하는 60_51

맥락 안에서는 조금 어긋나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가 말하는 ‘상상’은 경험이나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요즘 흔히 ‘기억’을 토대로 삼는 일단의 한국 건축가들의 그것과도 연결될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이런 식으로, 너무 무겁지만은 않은 몇 가지 이야기들을 섞어 43개의 단어를 정리한 52호를 만들 수 있었다. ‘진리’, ‘선배’, ‘충고’, ‘혁명’, ‘재미’, ‘여성’ 등 잡지에 담지 않은 단어들을 포함한 260여 개의 단어 항목과 관련 문구 속에서 골라낸 것들이었다. 매주 한두 차례 건축가 만나는 일 이외의 시간 속에서 좋았던 일이라곤 가끔씩 노을을 보는 일뿐이었지만, 왜 그런지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나는 쉽게 눈에 보이는 건물보다 그가 사용하는 말의 미세한 차이를 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바뀐 편집디자인은 심심했지만 잡지가 담고 있는 생각을 보다 분명히 드러내줬고, 그것을 본 발행인이 내게 물었다. 그리고 나는 별로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근데 이건 누굴 위한 잡지야?” “건축가 한 사람이죠.” 어떻게든 잡지를 대중적인 쪽으로 조금씩 밀고 가려던 계획은 우리 스스로가 건축가를 이해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유턴을 했다. 그리고 보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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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잡지들이 있는 곳을 지나쳐서 더 먼, 독자들보다는 건축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단 한 호 만에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건축가가 이 작업에서 어떤 영감이나 생각할 것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2016년 그해 가을 ddp에서 ‘2015 서울시 올해의 건축가상’을 기념하는 전시가 열렸을 때, 이 잡지에 정리된 단어들이 새로 설치된 전시공간의 벽면을 따라 조명박스와 함께 설치되어 있었고, 지금은 아르키움 사무실로 올라가는 계단실 벽면에 디스플레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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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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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는 로마인들의 저소득층 주택단지insulae를 짓는 데도 유용했지만 흙먼지 날리는 도로를 개선하는 데에도 일조를 했다. 그리고 시멘트를 철근과 결합시키면 마천루도 꿈꿀 수 있는 슈퍼콘크리트가 된다는 걸 깨달았던 19세기의 다른 쪽에서는 석유산업이 마지막 남은 찌꺼기를 처리하는데 비용을 들이는 것보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시장을 찾고 있었다. 그들에게도 도로포장은 모두의 이해가 맞닿을 수 있는 영역이었다. 타이어와 아스팔트가 일부 공유하고 있는 혈통(석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시멘트업계보다 정유업계 쪽이 더 절실하게 대응했기 때문일까.(참고 : ‹신설도로 콘크리트포장 방침에 정유업계 대책마련 부심›, {매일경제}, 1985.06.15) 오늘의 우리 도시에서는 대체로 아스팔트 도로를 보게 된다. 53호이자 세 번째 건축가를 만나러 가기 위해 지나쳤던 지하철 분당선

이매역 도로의 어느 구간도 그 여름 내내 포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스팔트 냄새는 이미 친숙한 도시의 냄새 중 하나다. 사람 냄새만 잊어버린 내 코는 고개를 조금 돌려 도로가 닦이는 풍경을 흘깃 보았다. 노반 위로 포설된 아스콘을 사람들이 삽 등으로 적당히 편다. 그리고 그 위를 8톤 이상 무게로 도로 바닥을 다지는 로드 롤러road roller가 느릿하게 움직인다. 기름덩어리 골재들이 저항 없이 눌리고 밀려 자기 자리를 찾아 눕는다. 도시계획가가 일정하게 눌러놓은 공간을 밀리듯이 도로를 따라 걸어 신호등 아래 다다르면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검은 아스팔트가 윤기를 번득인다. 발밑에 느껴지는 점성까지 더해야 갓 태어난 꼬마아스팔트라고 할 수 있겠다. 몇 없는 차와 사람이 아직 공사 중인 도로의 그려지지 않은 건널목을 눈치껏 살피며 이동한다. 파란 불. 일정한 간격으로 쫓아오는 끈적한 신발소리에 문득 뇌 속의 주크박스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돌연 오래된 컨트리 장르의 기타 소리가 슬라이딩 주법과 함께 흘러나온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폰의 볼륨을 좀 더 높여 새어나오는 잡념雜念들을 덮어버렸다. 그래봤자 테일러 스위프트의

‘마인Mine’(컨트리팝)이지만. 아파트 단지를 지나 숨을 돌리고 꺾인 길을 따라 슈퍼마켓 뒷마당으로 접어들면 그 위로 건축사무소가 보인다. 더시스템랩건축사사무소의 회의테이블은 출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 작업공간을 느슨하게 막고 있는 2m 10cm 정도 높이의 칸막이 뒤쪽에 위치해 있다. 테이블에서 보이는 칸막이 벽면에는 스터디 중인 렌더링 이미지들이 빼곡히 부착되어 있고, 그 옆으로 진열된 상장과 상패 및 소형 오브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진열대 앞, 테이블 안쪽으로는 그동안 소개된 매체들이 발목 짧은 수납형 탁자의 서랍과 위를 채운다. 쌓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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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릿한 냄새를 향으로 착각할 정도로 무뎌졌다.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로


있는 잡지들 중 영국의 디자인·건축 잡지 {월페이퍼} 2016년 7월호를 들어서 체크된 부분을 펼쳐보면 차세대 건축가 20인 중 하나로 소개된 건축가 김찬중의 이야기가 나온다. 벽 쪽으로 모델하우스에 쓴 모듈 부재의 목업mock-up과 오디오, 에어컨, 냉장고, 커피머신, 오븐 등이 있고, 그것들이 둘러싼 공간의 가운데에는 사람 몇이 올라도 꿈쩍 않을 것 같은 입식 테이블이 두터운 지지대를 과시하며 서 있다. 그 위에 올려져 있는 건 2011년 완공한 <폴 스미스 플래그십 스토어>의 모형이다. 그리고 다시 출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2006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 참가작인 <더 라스트 하우스>의 조립 모형이 눈에 들어온다. 투명한 유리 상판의 회의 테이블에서 건축가와 협의를 하고 나면 마당이 있는 집에서 건물 출입구와 대문을 지나서 돌아가는 것처럼, 투명한 사무실 유리문과 짙은 철문의 주출입구를 통과해서 사무실을 벗어난다. 2016년 7월 11일, 7월 21일, 8월 4일, 8월 11일, 8월 18일, 8월 25일, 8월 29일. 작업을 위한 일곱 번의

만남, 그리고 처음 협의를 하기 위한 만남과 잡지가 나온 후의 만남까지 모두 아홉 번을 만났다. (잡지 작업 중 가장 많은 공식 미팅 기록은 52호, 아홉 번.) 물론 잡지를 만들던 과정의 스토리와 등장인물들이 기억에 남아 있지만, 가끔씩은 배경에 불과했던 그 투명한 회의테이블이 모든 상황의 중심에 있었던 것처럼 떠오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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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도 이미 정해져 있었고 잡지가 변한 방향도 비교적 선명했기 때문에, 53호부터는 순발력 있는 콘텐츠 조정보다는 순차적이고 느린 작업 과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건축가에게 받은 프로젝트 소스에 내부적으로 찾은 자료들을 정리해서 프로젝트 스펙이 정리된 리스트와 전체 썸네일을 만든다. 그리고 기존에 게재됐거나 출판된 정보들을 수집한다. 거기까지는 다른 에디터에게 맡기고, 나는 텍스트 자료들을 체크하면서 건축가의 생각이 엿보이는 문장들을 일일이 타이핑해서 발췌를 해둔다. 당시 작업 내용을 확인해 보면 2001년 «Harvard GSD Studio Works 8» 단행본에 수록된 ‹Standardization & Customization (live/work housing)›부터 2016년 7월 {SPACE}에 특집으로 게재된 내용에 이르기까지

모두 55쪽 분량 20,233개 단어의 텍스트를 발췌했고, 이는 전체 195개의 소스 ─ 잡지, 단행본, 웹진, 신문 ─ 에서 추출한 것이었다.

기억으로는 꼬박 오륙일을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끝나고 하루 정도는 지쳐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일주을 매달린 셈이다. 매 호마다 마찬가지지만 이런 기본적인 스터디는 속이 메슥하여 울렁거림이 느껴질 때쯤 끝이나곤 한다. 우리의 작업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서 종종 그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었다. 그냥 다룰 거만 정해서 만들면 되지, 왜 쓸지 안 쓸지도 모르는 정보를 체크하는데 그렇게나 많은 시간을 쓰냐는 것이다. 나는 그냥 ‘혹시 내가 모르는 건축가의 다른 모습이 있을지 모르니까’ 정도로 대답하곤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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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으로는 이런 과정이 에디터로서 최소한의 도덕성이라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 직감直感이 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편견 역시 심하다는 것도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정보를 체크하는 건 기본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신림역 근처의 카페로 작업 장소를 옮겼다. 초기 스터디는 에디터들만의 작업이었고, 체크해야 할 정보도 많지만 방향을 정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시간을 줄여야 했다. 순전히 기능적인 이유로 잠시 사무실에서 벗어났다. 곧바로 스터디에 착수했다. 51호 건축가는 디자인의 변형 과정이 궁금했고, 52호 건축가는 오랫동안 다듬어 온 말들이 궁금했다면, 53호 건축가의 경우 첫 번째로 궁금했던 건 건축가의 생각이었다.

사실 이건 앞의 건축가들과 달리 건축가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부터 다시 시작했어야 했다는 말과도 같다. 사무실 이름에

‘시스템’이 들어가고, 건축가 본인도 ‘시스템을 추구한다’고 말하고, 실제 작업에서도 모듈의 부재 같은 시스테믹한 방식이 나타나기도 한다. 누가 봐도 그것이 핵심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몇 차례 방문을 통해 느낀 그가 말한 ‘시스템’은 시스템 자체라기보다는 추구하는 가치에 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본 이 조직의 작업 프로세스는 효율성과 60_53

유효성을 목표로 하는 기계적인 시스템과는 거리가 먼, 구성원 개개인의 능력치가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형태의 시스템이었다. 말하자면 시스템에 의해 성과를 내는 조직이 아니라 건축가를 위시한 좋은 구성원들의 감각과 열정으로 성과를 내는 조직처럼 보였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기성 건축가들의 성과가 정체되는 이유에 대해 건축가의 가치와 작업방식이 구성원들과 효과적으로 공유되지 못 하는 문제가 크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생각이 공유되지 못 하고 소모적인 소통 과정이 생기는 건 어떻게든 극복하면 되지만, 이런 경우에는 열정의 한계치가 시한폭탄이 된다. 결국은 가장 자본적인 방식의 보상이나 전문가로서의 보람이 충족되지 않는 시점에서 조직의 날이 무뎌지고, 이는 다수의 프로젝트를 컨트롤해야 하는 건축가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프로젝트 결과물의 기복이 크게 나타나는 건축가의 경우 건축가 개인의 평가도 가능하겠지만 조직 구성에서 에너지 누수가 많지 않은지 점검해 볼 필요도 있다. 더시스템랩건축사사무소는 사무실에 대한 애착이 강하면서 잠 자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건축가에 오너십 강한 직원들의 조합({와이드AR} 53 ‘건축가 김찬중’ 편, 이화여대 교수 이혜선 인터뷰 내용 참고, p.59)으로 인해 단점이 잘 안 보이는 상태다. 더구나 개성 강한 결과물도 생산해 내고 있어서 표면에 드러난 장점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걸로 그치기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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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성과는 성과대로 인정되어야 한다. 다만 우리는 건축가를 최대한 이해해보고 싶다는 측면에서 건축가의 생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작업은 세 번의 단계를 거쳤다. 첫 번째는 프로젝트 소스와 텍스트 소스들에서 추출한 특징적인 용어들을 활용하여 대략적인 다이어그램을 그려보는 일이었다. 두 번째는 최대한 많은 키워드를 집어 넣은 마인드맵을 작성하여 첫 번째 다이어그램과 비교 검토하는 일이었다. 두 번의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자연스럽게 세 번째 정리작업으로 이어졌고, 이것을 그대로 잡지에 옮겨 53호 기획 내용으로 만들었다. 첫 번째 다이어그램을 그릴 때는 ‘시스템’이라는 표현을 여전히 중심에 두고 있었다. 그의 생각이 방향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유학 시절의 작업에

‘베이스 시스템base system’, ‘핏-아웃 시스템fit-out system’ 같은 표현이 주요하게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매스 프로덕션(대량생산)과 커스터마이제이션(고객화)이 시스템을 통해 힘을 발휘하는 영역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양한 대안의 적용이 가능하면서 조건에 따라 부분들의 대치가 가능한 기계적 매커니즘을 바탕으로 전체를 컨트롤할 수 있는 디자인을 추구한 결과 베이스 & 핏–아웃을 기본으로 한 시스템이 나타났고, 60_53

건축은 시스템, 구성요소, 산업, 테크놀로지의 순환 속에 고려되어야 할 어떤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산업의 역사가 산업혁명 이전의 주문맞춤생산customization, 산업혁명 이후의 대량생산mass production, 오늘날의 대량개인맞춤생산mass customization으로 발전하듯 그의 시선도 산업에서 시장으로 확대되고, 이를 바탕으로 마케팅, 디자인, 상품까지의 또 다른 생각의 순환고리가 만들어진다. 기성 건축가들과 달리 브랜드, 경제성, 합리성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도 이러한 생각의 흐름 안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건축가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 정도는 너무 단출한 것이다. 어쨌든 가시적인 이미지가 하나는 생긴 셈이니 다른 스터디들과의 비교대상 정도로 참고하기로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이야기의 중심이나 결론에 ‘시스템’이라는 세 글자를 둬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잘 되지가 않았다. 시스템을 자꾸 구조나 이념과 동일하게 생각해버리는 내 생각도 문제였다. 큰 그림 그리는 게 버릇이 되면 처음에는 쉽게 풀리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끝에 가서 단추가 밀린 걸 깨닫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이미 건축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많은 매체 속에 풀어놓았다. 그걸 간단명료한 다이어그램 안에 아름답게 안착시키는 것이 내가 원하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단순할 리 없다는 걸 단호하게 깨우쳐 준 건 54호 건축가였지만, 그 말을 믿는 한편 좀 더 쉽고 소통가능한 정보전달의 형태를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어쨌든 퍼즐이 맞춰지지 않을 땐 애초에 퍼즐조각들이 퍼즐보드에 합당한 것이었는지를 파악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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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맵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생산과 산업에 관련된 커다란 이슈 몇 가지를 시장과 소비에 관련된 커다란 이슈 몇 가지와 대응시키는 다이어그램은 짝이 맞는 나비의 날개처럼 그럴듯해 보이긴 했지만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한 번은, 눈에 띈 모든 키워드들을 엉성하게 펼쳐서 살펴보고 싶었다. 시작부터 어떤 결과적인 그림을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키워드 하나를 넣을 때마다 전체 배열이 조정되는 비효율적인 작업이었다. 만약 특정한 목적을 가진 책을 만들 생각이었다면 중심적인 서사(나무)를 담은 분기(나뭇가지)들의 집합 형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작업의 목적은 건축가에 대한 호기심 그 자체였고, 점점 더 뭐가 뭔지 모르게 복잡해져만 갔다. 처음에는 건축가와 사무소를 동일한 키워드로 생각했다. 보통 건축가가 두드러지는 사무실은 지향하는 가치와 조직의 구성 역시 건축가를 중심으로 하기 마련일 거라는 가정에서였다. 대략 비슷했지만 결국 조직과 건축가의 키워드를 분리할 수밖에 없었다. 건축가는 조직에 대해 가치의 공급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기획과 마케팅에 대한 고민, 협업의 적극적인 수용, 허용오차를 줄이는 시뮬레이션, 목업이 필수인 디자인 및 구축의 논리, 산업환경 변화에 대한 민감함, 프로토타입 개발이 가능한 디자인랩시스템으로서의 조직 등등은 건축가가 지향하는 가치가 전체 프로세스 곳곳에 투사된 것으로 볼 수 60_53

있다. 마인드맵 지도를 보면서, 너무 가벼운 비유일 수 있지만, 조직 입장에서 건축가는 메딕medic 역할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조직은 기계가 아니고 조직원 역시 마찬가지인 이상 건축가는 추구하는 가치가 흐릿해지지 않게 영양제든 치료제든 끊임없이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목한 것이 있다. 그것은 건축가 ─ 가치 ─ 기술 브랜드화 ─ 모듈 ─ 컴포넌트 ─ 시스템 ─ 설계/디자인에서 조직에 이르기까지 연결되는 라인이었다. 우리는 가설을 세웠다. 그것은 이들이 추구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모듈’이고,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컴포넌트component’라는 것이었다. 둥글고 부드럽게 깎는 산업적 이미지가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위한 어플리케이션 시스템에 해당한다면, 모든 것을 부품으로 사고하는 방식은 베이직 시스템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보면 베이스 & 핏-아웃 시스템 역시 컴포넌트의 개념을 구축하고 확장하는 일종의 솔루션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문득 건축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프로젝트에 가장 최적화된 솔루션을 시스템이라고 불러요. 모든 프로젝트는 그 나름 고유의 시스템이 있고, 그걸 우리가 찾아내는 사람들이다라는 입장이죠.”({와이드AR} 53 ‘건축가 김찬중’ 편, 건축가 김찬중 인터뷰 내용 참고, p.95) ‘솔루션의 시스템’이므로, 결과는 솔루션이고 목적은 시스템이 된다. 그러니 결과 중심으로 생각하면 더시스템랩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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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어색하고 목적 중심으로 생각하면 자연스럽다. 따라서 김찬중의 시스템을 컴포넌트 중심의 시스템이라는 의미에서

‘컴포넌트–시스템’이라는 표현으로 바꿔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컴포넌트를 중심으로 하는 물리적 시스템과 기획을 중심으로 하는 감성적 시스템을 별도로 구성하여 생산과 소비, 산업과 시장을 동시에 고민하는 건축가의 캐릭터를 반영했다. 이쯤에서 전체 프로젝트들을 다시 한번 체크해 보았다. 프로젝트 리스트는 110개였는데 모든 프로젝트 소스가 다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경향성이 읽히는 정도의 판단을 전제로 프로젝트 별 썸네일 정도는 모두 확보했고,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보기로 했다. 스터디 결과 시기별, 목표별, 초점별, 과제별 등을 기준으로 모두 여덟 단계 정도로 구분해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순수한 건축적 개념이 한국이라는 현실에 안착하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하고, 씨앗에서 시작되어 자라나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잡지에 게재한 기획의 ‘VERSION’이라는 타이틀은 현실에 대응하고 성장하는 시스템의 서사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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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53호의 이야기는 건축가가 말해 준 자신의 유학 시절 별명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유학 초기 자신이 ‘디스맨This-Man’으로 불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건축을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건축학도는 말이 필요 없는 방법에 대해 고심하고, 조립과 분해가 쉬워서 상대의 이해를 도우는데 유용한 건축 형식을 모색한다. 그리고 이것은 작업 안의 모든 것들이 자기 자리를 잡고 제 역할을 하는 하나의 시스템과도 같은 것이어야 했다. 나는 궁금했다. 언어나 설명할 표현이 부족하면 정확히 그 부분을 보강하는 게 보통일 것이다. 실제로 건축가는 유학 후 1년쯤 후부터는 언어가 큰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단순하게, 그냥 언어 문제를 극복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처한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건축 작업을 통해 극복하려 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 했을까? 건축가 자신도 완벽하게는 설명할 수 없을 그 순간이 궁금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들이 나는 늘 궁금하다. 모든 사람들 하나하나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들 각자가 인생 경로를 통해 보여주는 선택과 관련이 있다. 선택의 이유, 상황의 인과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얼마든지 납득할 수 있겠지만 인생이란 자의든 타의든 혹은 자의 안에 감춰진 초자아의 충동이든 무수한 우발적인 것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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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만들어내는 하나의 총체성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한 사회가 자신의 시스템을 동원하여 구현할 수 있는 공학기술의 결정체인 건축 역시 숫자로 포섭되지 않는 차이와 가능성의 세계인 인문예술을 위한 문을 동일한 크기로 열어두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비싼 상품이기 때문에, 어떤 이들에게는 절실한 삶의 토대이기 때문에, 어떤 이들에게는 숭고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등등 다양한 이유로 건축이 주관적으로 해석되는 범위가 넓어지는 걸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건축은 필립 존슨Philip Johnson(1906–2005)과

헨리 러셀 히치콕Henry Russel Hitchcock(1903–1987)이

규정한 1930년대의 국제주의 양식The International Style만으로도 충분할 지 모른다. 그리고 건축에디터로서 나 역시, 그 ‘국제주의’라는 용어에 관심이 많다. 왜냐하면 오늘의 건축, 현대의 건축 이야기가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국제사회’라는 조건 속에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이후 세계의 건축은 단순히 양식과 비전을 각축해온 것만이 아니라 한정된 지역 시스템의 구성물에서 전 지구적인 시스템의 구성물로 체질을 변화시켜 왔다. 2016년 한 해 방사능 위험에도 불구하고 수입된 일본산 석탄재는 132만 5천 톤에 이르며, 용도는 시멘트 재료다.(‹[송윤경의 똑딱똑딱]아프리카 토고에서 쓰레기를 수입해오는 이유›, {경향신문}, 2017.10.15) 물론 이 수치가 2016년 국내 시멘트 판매량 5576만 톤에 비해 적은 양이지만 우리는 우리를 짓기 위해 우리의 자재만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문화적으로도 우리는 60_53

이미 한복이 어색하고, 기능적으로도 우리의 도시에서 한옥이 시민들의 요구에 충분히 대응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세계적으로 정치적 유토피아를 꿈꾸던 시절이 없었다면 모든 사회는 건축가들의 메가스트럭쳐의 꿈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세계가 신자유주의 경제에 동참하지 않았다면 아이코닉한 스타키텍트들의 건축이 부상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인류가 거둬들인 국제화의 결과들을 긍정/부정하는 것과 별개로 오늘 우리의 현실이 세계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대지를 덮어버린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를 비난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과거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의 선택을 만들고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여전히 우리가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느 사물을 바라보는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그것은 이미 물리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세계가 통하는 전 지구적 구성물이 되어가고 있다. 오늘의 건축은 단순히 필요한 문제를 풀어서 끝낼 수 있는 계산 숙제가 아니다. 하나의 생태시스템을 이해하듯 섬세하고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 100% 객관이 될 수 없는 건축에서 주관을 뺌으로 객관을 보장받으려 하기보다는 0과 100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해석과 해법을 찾고 공유하는 그가 오늘의 건축가이지 않을까. 나는 건축가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우리가 지닌 차이는 그것이 신체적이건 문화적이건 종으로서의 우리의 강건함을 증진시킨다.’ ─ «미래중독자», 다니엘 S. 밀로 지음, 양영란 옮김, 추수밭,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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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내부적으로 52호 결과물에 대한 어느 정도의 수긍이 있었고, 53호 작업은 말 그대로 ‘기계적으로’ 각자 할 일을 진행한 것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여전히 이런 작업방식이 결론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작업자들 각자가 콘텐츠 생산에 참여하는 의미는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일단 팀을 이끄는 입장에서 다행스런 마음이었다. 마지막 59호 작업까지도 고질적인 에디터들의 작업량과 스케줄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지만, 이 정도의 작업은 어떻게든 소화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은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제일 큰 문제는 건축가를 선정하는 것이었다. 54호를 위해 두 명의 건축가를 만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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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기관(슈퍼–동력–기계)이 인간을 대신해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해 줄 거라고 믿었던 시절에는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단순노동력이 필요했다. 증기기관이 있는 일터의 단순노동–일상이란 인간성은 소홀히 취급당하고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문제는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생활은 나아지지 않으면서 기계처럼 노동하기를 강요당하는 나날들이었다.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시간이 얼마 걸릴지 모르지만 어쨌든 세상은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였고, 슬픈 현실은 기계보다 인간(들)이 다루기 쉽고 저렴하다는 것이었다. 현실을 직시하고서야 사람들은 두 대의 방적기를 파괴한 인물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그를 좇아 러다이트Luddite의 가면을 썼다. 컴퓨터(슈퍼–연산–기계)가 인간을 대신해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해 줄거라고 믿는 오늘날에는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단순사고력이 필요하다. 컴퓨터가 있는 일터의 단순사고–일상이란 전문성은 소홀히 취급당하고 노동 가치의 평가절하문제는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생활은 나아지지 않으면서 기계처럼 사고하기를 여전히 시간이 얼마가 걸릴지 모르지만 어쨌든 세상은 나아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고, 불안한 현실은 인간(들)보다 기계가 다루기 쉽고 저렴해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고서도 사람들은… 가끔 역사를 보면서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인간이란 소름끼칠 정도로 변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이다. 1800년 전후의 사람들이 풀어야 했던 숙제가 전혀 다른 얼굴의 완벽하게 동일한 구조로 200년 후 재등장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의

상황은 좀 더 복잡하다. 사람들이 서로의 눈을 바라볼 새도 없이 다양한 종류의 화면들만 쳐다보는 것이 문제라는 걸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인간의 컨트롤 없이도 자가학습이 가능한 인공지능A.I.이 출현했다. 예상 못한 고차원 기계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당황하는 동안 그것이 산업의 토대를 바꿀 것이라는 전망이 부풀어오르고, 동시에 아이들이 미래의 노동자로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2018년, 학생들의 교과과정에 코딩coding 교육이 의무화되었는 사실에 대해 대부분의 어른은 아이들이 가야 할 학원이 하나 더 늘었다는 정도로 받아들이지만, 이는 분명히 우리의 미래와 연결된 조짐이다. 문서프로그램, 디자인프로그램, 연산프로그램, 제어프로그램 등 고정된 형태의 소프트웨어를 구입해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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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당하는 나날들이다.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스스로 결과를 도출하면 되었던 일이 언젠가는, 인간이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언어를 만들고 입력하여 컴퓨터가 스스로 결과를 도출하도록 해야 하는 시절이 오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단순노동으로 묶어버린 기계는 노동을 기계화한 후 다시 인간을 단순사고로 묶어버렸고, 사고마저 기계화한 지금은 인간 스스로 기계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윈터 이즈 커밍으로 시작하는 드라마는 윈터 이즈 히어를 지나 결국 스프링 이즈 커밍으로 끝이 나겠지만, 언제나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일시적인 해소의 형태로서 다음 겨울을 불러들일 씨앗을 우리 안에 남겨 놓는다. 그것이 언제나 역사가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일깨움 중 하나다. 건축의 역사는 인간에게 무엇을 일깨우는가? 우리는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가? 플랑드르의 화가 루벤스도, 입체파 화가 피카소도, 마크 로스코나 프란시스 베이컨, 장 미셀 바스키아나 데미안 허스트도 결국은 몇만 년 전 알타미라 동굴에 벽화를 그린 누군가처럼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만 반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듯이 다양한 지역 양식과 기술 발전의 역사를 이어온 건축 역시 집을 설계하고 짓는다는 사실만 반복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건축보다는 인간에 관해 생각할거리를 던져주는 종류의 반복이다. 지성과 감정, 이성과 직감, 합리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의 투쟁이 서양문화의 근본적인 창조력의 배경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시도했던 어느 60_54

건축역사가의 책 역시 건축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이분법적 시각과 반동의 에너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한심한, 왜 이렇게까지 뻔하면서 반복적인 상황일까를 떠올리게 하는 건축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라면, 건축은 권력과 자본이 욕망하는 세계를 그리고 짓는 일만을 반복해오고 있을 뿐 아니라 점점 더 강화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예술과 기술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건축인들이 때로는 예술의 문제로 때로는 기술의 문제로 천착했지만, 돌아보면 언제나 건축역사의 중심에 남는 건 소수 권력·자본을 배경으로 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이미 예술은 이 문제를 아방가르드라는 개념으로 분리시켜두었지만, 순수예술가일 수 없는 건축가에게 그 개념은 애초에 사용가능하지 않다. 건축가의 예술적 감각은 계급차별의 정당화가 중요한 귀족에게 헌납되어 사람들로부터 귀족취향으로 동경의 대상이 되고, 건축가의 기술적 도전은 투자 대비 수익이 중요한 자본가를 충족시켜 사람들로부터 자본가취향으로 동경의 대상이 된다. 동경이 잉태한즉 결핍을 낳고, 결핍이 장성하여 욕심을 낳는다. 모종의 결탁이 만들어 낸 문화에 대한 막연한 혹은 계산적 동경을 동력으로 새로 태어나는 건축가들 역시 끊임없이 짓고 짓고 또 짓는다. 물론 그것은 각자가 지향하는 좋은 건축을 향한 선한 열망임을 의심할 필요는 없으며, 그렇더라도 역시 대부분의 건축가에게 역사에 남을 작업을 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더 예술적으로 혹은 더 기술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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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사회의 격차가 고정되는 시점에 이르면 예술도 기술도 건축가 능력 이전의 문제로 돌아간다. 최고의 취향과 퀄리티의 결과물을 구현할 수 있는 비싼 도구와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춘 건축사무소들은 이미 다른 세계를 건축하고 있고, 대중적인 도구와 개인의 역량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건축가들은 어차피 달성하지도 못할 것들에 집착하기보다는 일단 눈에 띄는 ‘다른 쪽’에 판돈을 건다. 드물지만 더러 잭팟이 터지기도 하기 때문에 건축가들은 게임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게임장에도 건축계에도 슬픈 진실이 있다. 게임장의 관리자가 잭팟을 조작할 수 있는 것처럼 건축계도 마찬가지다. 게임기들의 관리가 현장 서비스맨들의 정보와 보이지 않는 관리부장의 조작버튼으로 족한데 반해, 건축가들의 관리에는 여러 전문가들이 동원된다. 그것은 매우 섬세한 작업이다. 그 안에 건축잡지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건축가를 예술로 묶어버린 권력과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모종의 힘은 예술을 금권화한 후 다시 건축가를 기술로 묶어버리고, 기술마저 금권화한 지금은 건축가 스스로 모종의 힘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건축가들이 점점 엔터테이너처럼 변해가는 현상. ‘당신은 권력과 자본의 시녀가 될 건가요?’ 우리는 건축가에게 이렇게 묻지 않는다. ‘당신은 권력과 자본의 시녀요.’ 우리는 건축가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건축가에

‘WORLD’인 것을. 승효상은 김수근의 이야기를 이어받아 ‘건축가는 건축주의 시녀가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좀 더 명확한 입장은 ‘건축가는 건축주의 시녀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다. 앞서서 쓴 내가 생각하는 ‘WORLD’에서는 건축가가 지켜야 할 영역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다. 건축가 자체가 ‘WORLD’에 맞물려 작동하기 때문에 결과는 항상 ‘WORLD’가 된다. 따라서 좋은 건축을 하겠다는 건축가로서의 의지는 그 부분만 별도로 평가하면 될 뿐 세상과 연결해서 생각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오히려 고착화된 기존 시스템과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의지다. 그에 비해 ‘승효상의 세상’에는 아직 공공, 사회, 시민이라는 희망의 영역이 남아 있다. 따라서 그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이라는 개념이 살아있고, 그는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을 위해서 ‘살고, 싸운다.’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자기 이름 걸고 건축을 해나갈 수 있기 위해 5년에서 10년은 굶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듯 다르게, 그는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을 위해서 굶을 각오를 한다. 급기야는 개인 클라이언트의 프로젝트에서도 사적 욕망보다 공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쪽에 자신을 건다. 숭고하다. 숭고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건축가가 필요하다는데 동의한다. 다만 좀 궁금하다. 권력과 자본을 중심으로하는 모종의 힘이 대놓고 작동하지는 않지만 그들을 벗어날 수도 없는 공공의 영역이 정말 희망의 영역일까? 단, 내가 생각하는 WORLD와 승효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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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바람이기도 하고, 예의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이런


희망하는 세상에는 아주 작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우선은 개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대와 협력은 기계에 대해서도 힘에 대해서도 취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이면서 검증된 전략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지속성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극복超克하는 개인’의 집합이어야 한다. 사실 우리 모두는 원래 그런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자성自省하고 자각自覺하는 시간을 잃어가면서 마음의 등불을 켜지 못 하고 살아갈 뿐이다. 정권마저 바꾸는 천만 시민의 촛불로 번지는 순간이 오기 위해 처음 소수의 촛불이 켜져야 하듯 사람들의 마음속의 어떤 것을 다시 밝히기 위한 일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들은 목소리의 형태로 우리에게 닿고 일깨우려 손을 내민다. 연대와 협력이 사회 곳곳의 구호가 된 오늘이 많은 사람들과 힘든 과정을 통해 이른 결과인 것처럼, 연대와 협력 이전의 막막함과 가능성이 혼재하는 오늘의 한국건축계 역시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일구어나가는 과정의 소산임은 분명하다. 승효상은, 한국 건축계의 대표적인 목소리다. 54호 작업이 한창이던 2016년 10월, 정권의 뇌관인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같은 달 29일은 1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54호 발행인 칼럼 ‘아! 대한민국’에는 아무런 내용도 없이

‘말’이라는 글자만 1107자가 쓰여져 있고, 이때까지만 해도 2017년의 우리가 겪을 변화에 대한 예측 같은 건 있지도 60_51

않았다. 중요한 건 시민들 마음에 연대와 협력의 촛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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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1일 목요일. 그해 8월의 서울 기온이 37도까지

올랐던 하루를 제외한 다섯 번의 36도 중 하루였다. 나는 잡지 제호를 프린팅한 촌스런 티셔츠 하나만 입고서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세 개의 미팅이 잡혔다. 책상에서 텍스트와 이미지 갉아먹는데 열중하느라 탈바꿈變態도 못한 편집충에게 하루 3회의 미팅이라니. 더구나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그런 날에. 53호 건축가와의 미팅을 먼저 끝냈다. 솔직히 말하면, 기억이 없다. 그냥 그런 일에 관한

기록과 인터뷰 텍스트가 남아 있을 뿐이다. 내 기억은 그날 찍었던 사진 한 장에서부터 시작한다. 장소는 한남 제1 고가차도 아래다. 53호 건축가가 설계한 <핸즈코퍼레이션 사옥> 건물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역시나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건축사무소에 들러 한 건축가를 만났다. 1년 치 게재할 건축가를 미리 공개하기도 하는 일본의 어느

건축잡지와 {와이드AR}의 공통점은 건축가 한 명으로 잡지 전체를 다룬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내용을 다루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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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집 중심의 건축잡지는 자료관리와 편집이 중요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보이는 이야기 하나를 찾고 정리하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보기에 좋으니까’,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같은 이유로는 건축가를 컨택하기는 어려웠다. 늘 망설였다. 어느 날에는 ‘소개할 건축가 없음’이라는 몇 글자만 쓰고 이런 작업은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해야 할 일은 많아서 책상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다음 건축가를 정하는 일은 금방 잊어버리곤 했다. 어쨌든 이날 만난 건축가들은 운 좋게도 함께 작업을 하고 싶은 분들이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어차피 나는 좋아하거나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은 건축가만 찾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싫은 만남이라는 게 거의 생기기가 어려웠다. 언제나 원하는 쪽은 나였다. 겨우 만든 두 권의 잡지를 보여주면서 열심히 설득을 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걸 물어오면 거의 늘 ‘잘 모르지만 열심히 찾고 정리해보겠다’고만 말했다. 한남 제1 고가차도 인근의 건축가는 관심이 있다고 했다. 응원한다고도 했다. 다만 한 가지, 스케줄이 맞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조직이 일하는 방식을 ‘총력전’이라고 말했다. 대개의 건축가들이 직원 별로 프로젝트를 나눠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말한 방식이 좀 궁금했다.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인원이 20명 이상일 때 검토할 수 있는 가능성의 숫자도 다를 것이고 정보의 양도 상당할 것이다. 60_54

‘최대한’을 모색하는 건축가에게 ‘최대한’을 추출할 수 있는 시스템은 어떤 형태이며, 거기서 나오는 것은 ‘최대한'의 결과일까? 확신에 차서 빠르게 말하는 사람의 심리는 어떤 것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여전히 궁금하다. 간혹 매체를 통해 새로운 프로젝트 소식을 접하곤 한다. 하지만 오늘의 나에게 결과물 하나하나를 평가하는 건 덜 중요한 일처럼 느껴진다. 어떤 건축가인지 왜 그런 선택이었는지가 궁금하고,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해야 한다고 믿는 이야기를 찾고 싶다. 이날 마지막 잡힌 미팅의 주인공이 승효상 선생님이었다. 바로 다음 달인 9월 13일이 서울시 총괄건축가 임기가 끝나는 시점이었다. 그는 행정일을 그만두고 건축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즈음의 사람들은 그가 총괄건축가 직을 연임할지 퇴임할지 추측들을 나누기도 했다. 솔직히 관심 없었지만, 나는 연임이라는 게 될 수 있는 거라면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의 인간적인 모습은 모른다. 그가 해왔던 작업과 그가 쓴 책, 매체 속 모습이 내가 아는 전부다. 내 눈에 비친 그는 그가 원하던 원치 않던 목소리의 운명을 타고 난 사람처럼 보였다. 한국사회도 한국건축계도 아직은 불안정하며 다양한 계층 및 세대와의 소통이 필요하다. 시대의 열망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길 바라고, 내 생각엔 그가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시스템이 중요하므로 사람이 돋보이면 안 된다고. 그는 ‘선한 의지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믿는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한국이 아직은 시스템보다는 개인의 의지가 더 필요한 곳 같다고 말했다. 54호 작업을 하면서도 몇 번 더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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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더 이상 나한테 공적인 임무를 요구하면, 비겁한 거예요. (웃음) 요구하는 사람이 그 일 하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와는 별도로, 개인적으로는 바로 그 앞에 했던 말에 더 신경이 쓰였다. “자기가 정말, 자기 나이에 맞는 가장 훌륭한 작업들을 해야죠.” 가끔씩 이 말이 떠오르면서 흐트러지는 마음과 구부정해지는 척추를 바로 세우곤 했다. 미팅은 잘 끝난 셈이었다. 2017년도 아니고 2016년 11월에 출간될 바로 다음 호의 작업에 합의를 했던 것이다. 맞은 편에 앉아서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던 선생님의 모습이 기억난다. 나는 그에게 ‘(잡지에 게재)하려면 나 있을 때 하시라’고 말했다. 나는 우리의 작업이 의지가 있는 개인들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믿었다. 작업에서도 언제나 배수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먼 뒷일을 고민하는 사람과는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하기로 하고, 그가 나에게 말했다. “한 건 했네.” 웃었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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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주제를 ‘스케일scale’로 정한 건 건축가와의 첫 취재, 첫 이야기를 할 때 그의 손에 스케일자가 들려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52호 작업 때 호칭에 대한 문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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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거론됐다. ‘소장님’보다 ‘선생님’이 덜 불편하다는 것이다. ‘건축=작업’,

‘건축가=작업자’라는 생각이 뚜렷했기 때문에 나는 설계를 하는 교수들에게도 건축가라고 부를 수 없다고 했다. 온전히 교수의 과정을 살아내는 사람을 교수라고 하고, 온전히 건축가의 과정을 살아내는 사람을 건축가라고 부른다. 기회 돼서 일부 과정에 손을 대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고 나 역시 존중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건축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내 개인적인 방침이었고, 이 부분에 관한 한 내가 좋아하는 건축가들에게도 잔소리를 듣는다. 실제로 교수 중에도 작업으로 관심 있는 분들이 있기도 하다. 그래도 결국 그런 상황에서의 작업에 대한 내 개인적 기대는 점점 낮아지는 게 보통이었다. 54호 시작과 동시에 같은 문제가 불거졌다. “‘소장님’이라고 하지 마. ‘선생님’으로 해요.” 윗사람은 ‘선생님’, 동년배나 아랫사람에게는 ‘선생’으로 하는 게 좋다는 이야기였다. 그때도 같은 이유를 말씀드렸는데 역시나 너무 속 좁은 이유라 서로 웃었을 뿐 공유되지는 않았다. 지금은 건축가와 건축가 아닌 사람을 구분하지 않지만, 바로 그때만 해도 나는 그런 쪼잔스런 갈등 속에 살았다. 다행히 그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내가 만난 모두가 내게는 선생이었다. 진짜로 때릴 것 같지는 않았지만, 호칭을 정리하자면서 그는 손에 든 스케일자를 칼처럼 한쪽으로 쥐고 가볍게 흔들었다. 그래서인지 스케일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만들기로 한 이후로는 줄곧 건축가의 책상에 있던 스케일자 생각이 났다. 사실은 스케일자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어느 평일 아침에 있었던 건축가의 검도수련이었다. 강당으로 사용되는 건축사무소 지하층 공간은 의자 하나 없이 치워져 있었고, 너른 마루바닥과 둘러쳐진 거울 속으로 짙은 곤색 도복을 입은 건축가와 사람들이 들어섰다. 오전 7시. 집게손가락으로 인중을 비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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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의 준비운동부터 절도 있게 죽도를 다루는 기본자세연습, 호구를 착용한 후의 대련과 마지막으로 선생에 대해 정성스럽게 예를 갖추는 것까지, 나는 한 시간 반 정도 진행되는 검도연습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우렁찬 목소리도 듣고, 턱 끝까지 올라온 거친 숨소리도 들었다. 검을 열심히 휘두르는 모습도 보고, 열심히 맞는 모습도 보았다.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열심이어서 건축가 자신에게는 평범할 일상이 나에게는 약간의 감동마저 불러 일으켰다. 수련을 마치고, 범사範士로 불리는 사범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검도는 이론으로 하는 게 아니라 감각을 계속 익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똑똑하고 계산이 빠른 사람보다 좀 바보 같고 우직한 사람이 좋다고도 했다. 그게 모두 건축가에 관한 이야기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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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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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로만 확인한 프로젝트 수는 1990년부터 2015년까지 187개, 이후 프로젝트들까지 200개 이상이었다. 썸네일을 확보해 체크한 프로젝트는 92개였고, 소스들이 패키징 되어 있는 프로젝트 중 스터디를 위해 받은 게 34개였다. 건축가가 출간한 책 중 확보한 10여 권에 그 이상의 참고서적을 체크해야 했다. 관련 논문이 30개 이상이었고 1998년 12월부터 2009년 7월까지 게재된 잡지를 사진으로 찍어둔 파일이 754개였는데, 자료의 양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모두 스터디하기엔 벅찼다. 이후 잡지 정보 수집은 멈췄다. 53호가 매체에 게재된 내용 중심으로 스터디를 한 반면 54호는 프로젝트 중심으로 스터디를 하기로 했다. 건축가는 필요한 건 다 가져가라고 했다. 그래야 나중에 자신도 할 말이 있지 않겠냐고 말했지만, 작업 하고나서 결과에 대해 핑계 대지 말라는 암묵적인 압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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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건축이라는 주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수많은 자료들과 씨름하면서 조금씩 생각을 정리해나가는 동안 몇 가지 방향이 더 보태졌다. 첫번째는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전 작업들에서도 처음에 추구했던 건 늘 하나의 이야기였다. 페이지의 시작이 이야기의 시작이고 페이지의 끝이 이야기의 끝인 그런 잡지를 바랐다. 당연히 불가능한 여건이었고, 나는 기획 파트에서 여섯 개 장으로 구분되는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를 만드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건축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도시의 이야기로 넘어가고, 다시 건축 이야기로 이어진 다음 도시 이야기로 연결되는 식으로 전체를 구성했다. 두 번째는 글의 성격이 비평에 가까웠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건축계에 존재하는 글의 형식이 너무 적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특히 건축전문지 에디터가 쓸 수 있는 글의 폭이 가벼운 것부터 무거운 것까지 다양하기를 바란다. 건축가에 관한 기존 비평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순수비평은 아니더라도 에디터 입장에서 나름대로 진지한 관점을 담은 이야기 하나 정도는 더 보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54호 작업 60_54

역시 52호 이후 작업들처럼 인간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만 먹으며 빛도 없는 동굴에서 버티는 곰의 심정이었다. 내가 건축(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 가치가 있는데, 그중에서 ‘의지’는 가장 기초적이면서 변질되기도 쉬운 것이란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도 부족한 자신을 자신이 바라보는 어느 곳까지 옮겨주는 것 또한 ‘의지’의 힘이다. 지금 보면 ‘겨우 이거 하려고’ 같은 생각이 들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최종적으로 ‘스케일’이라는 키워드를 선택하기 전부터 프로젝트들을 스케일 별로 출력해서 비교해보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다양한 스케일의 도면만으로도 건축가를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그때 뽑아보고 연습했던 많은 스케일의 출력물들은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사라졌다. 레퍼런스 프로젝트들 대신 들어간 주택의 롤페이퍼 도면을 1/300 스케일로 맞추고 방위를 체크해 넣는데 도움은 된 셈이니, 아주 무용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모든 결정들이 그렇듯 자신이 세우려는 의지나 방향만큼이나 크게 영향을 끼치는 외부 요인들도 있기 마련이다. ‘만약 그때 그 일이 있지 않았더라면’ 같은 생각이 드는 사건 말이다. 54호를 만들면서 그런 일이 하나 있었다. 나와 함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나는 어떤 문제든 표나 다이어그램으로 정리하는 걸 좋아한다. 만드는 과정에서 생각의 빈 곳을 빨리 볼 수가 있고, 자신의 생각을 간단하고 뚜렷하게 표현하기에도 유용하다. 그럼에도 늘 불편한 것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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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도식은 하나의 면을 보는데 유용하지만 그렇게 보이기 위해 많은 것들을 지우거나 감출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도식을 볼 때는 늘 ‘이렇게 간단할 리 없다는 걸 우리가 알고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가장 기본이 되는 이 사실에 유의하지 않는다. 눈이 혹하고 이야기가 그럴듯하면 보여지는 그게 전부인 것처럼 생각해버릴 때가 많다. 선생님에게 A4 사이즈 종이를 그리드로 채운 표 하나를 내밀었다. ‘내 생각에 당신은 이 표처럼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답했다. 지금 그 말은 누군가 말하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 늘 되새기는 일종의 스케일(기준) 같은 말이다. 54호 인터뷰 첫머리에 나오는, 나의 부족함과 건축가의 생각을 살피기 좋을 것 같아 자르지 않고 남겨둔 그 말, “나는 별로 그렇게 동의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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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어떤 결과는 그에 이르는 과정과 수단을 온전히 목적으로 삼을 때에만 도달가능하다.’ ─ {와이드AR} 55호 건축가 최욱 편, p.70 에디터 J가 쓴 55호 기획 섹션의 마지막 페이지에 담긴 문장을 본다. 처음 이 문장을 봤을 때, 적당한 단순함과 적당한 의미와 적당한 수사와 적당한 길이와 적당한 리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마음을 베이게도 하기 때문에 칼과 비교되기도 한다. 하지만 칼을 쓰는 사람은 능동적으로 ‘담근다.’ 글을 쓰는 사람이 똑 같이 ‘담그는’ 심정으로 써내려가더라도 글이란 결국 의도를 얼마나 날카롭게 벼렸는지만을 보여줄 수 있을 뿐, 결국은 미디어라는 칼집에 ‘담긴다.’ 명분과 대의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글은 양심을 일깨우고 사상을 형성하는 다른 형태의 칼이 될 수 있지만, 실리와 개인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글은 지식을 책들을 보면 글도 가스나 기름처럼 연료가 될 수 있어야 하는 시절인 것 같기는 하다. 나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 부분에서 늘 부족함을 느낀다. 일종의 총량의 법칙 같은 것일 수도 있는데, 발화자의 의도를 곧게 전달하는 쪽에 무게를 두면서 수용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디테일에 취약해지곤 한다. 담길 수 밖에 없는 오늘의 숙명을 잊은 담그려는 발버둥은 그래서 더 취약해 보일 때가 많다. 그래서 가끔씩이지만 글을 쏟아내듯 쓰지 않는 J의 몇몇 문장에 호기심이 갈 때가 있다. 55호 건축가 최욱은 건축에서의 디테일, 마감이란 그냥 눈으로 봐서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아마도 모든 작업이 그럴 것이다. 정도正道도 중요하지만, 정도程度의 문제를 전체와 부분 안에서 잘 지킬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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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 해 동안 내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었던 건축가는 단연

최욱이었다. ‘오픈하우스 서울’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졌고, 이전과 다르게 각종 컨퍼런스나 세미나에서도 이름을 접할 수 있었다. 2017년 1월 15일 출간된 {와이드AR} 55호는 건축가 시리즈 중 첫 번째로 품절이 됐다.

그보다 연배가 낮은 건축가들이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건축가로 대체로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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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하고 감수성의 불을 지피는데 도움이 되는지가 중요하다. 요즘 소개되는


거론하는 걸 들었으며, SNS에서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잡지 작업 초기에 그는 2016년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 경쟁률이 상당한 수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하나 같이 그와 그의 조직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도 나 혼자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은 잘 안 가기도 하지만, 정말로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잡지가 독자와의 소통은 제쳐두고 건축가를 통해 공유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이야기 하나를 파는 것에만 신경을 쏟고 있는 지도 벌써 반년이 흐르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유명한 건축가만 다룬다고 이야기했지만, 확실한 건 무명이니 유명이니 하는 건 잡지를 알리는데 도움이 될 지 몰라도 우리의 작업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 했다. 유명해서 눈에 잘 띈다는 것 정도는 장점일 수 있다. 하지만 빨리 보이는 만큼 빨리 리스트에서 지워지는 경우가 많았으니 어찌 보면 ‘쉽게 보여진다’는 건 해당 건축가의 마케팅에 도움이 될지언정 우리 작업에서는 장점이 아니었다. 사실은 우리도 점점 더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냥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과 이전에 본 적 없는 이미지를 숙성시켜 전달하려고 할 때는 건축가가 자주 가는 카페나 애용하는 브랜드, 함께 60_55

사는 고양이 이야기와 이미지를 잘 꾸밀 고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목표도 뚜렷하고 독자도 타깃이 좁혀지고, 필요와 욕망을 순환시키는 대중매체의 역할에 충실했을 것이다. 그런 걸 고민할 땐 또 그 나름의 복잡한 문제들이 있긴 했는데, 건축에 집중하면 모든 부분에서 훨씬 단순해질 거라는 생각 자체도 단순한 것이었다. 일단 건축 자체가 측정 불가의 어떤 것이 돼버렸다.

‘멋지다’, ‘예쁘다’, ‘느낌이 좋다’, ‘잘 만들었다’ 같은 생각은 기준이 될 수 없었다. 왜 그렇게 느끼고 보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인간의 감각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아니라 건축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믿었다. 물론 그런 부분들은 건축사, 건축이론, 건축비평 등이 이미 충실히 해오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 작업에 꼭 필요한 부분이긴 했다. 다만 그런 일들을 에디터 수준에서 어설프게 받아들이면 중세시대의 마상창시합에서 기사를 돋보이도록 소개하는 시인이 되거나 아카데미의 경전을 수호하며 훈계하는 학자 흉내를 낼 뿐이라 생각해서 부러 거리를 두고 참조만 했다. 솔직히 우리 학자들의 우리 건축가들에 대한 평가도 불분명한 데가 많다고 생각한다. 분명分明이란 그 의미가 계몽과도 같은 것인데, 가설과 실험과 검증이 작동하는 분야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문화에서는 좀 다르다. 과학이 명도, 채도, 색상의 부분부분들을 증명하는 영역이라면 문화는 그들의 특정한 어우러짐의 영역이다. 그러니 분명하게 검증되지 않는다는 것이 건축 이야기의 명백한 흠결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오히려 신념의 불분명함이다. 아카데미의 전통을 따르려면 그것이 아무리 낡아 보여도 그 전통을 따르는 ─ 전통을 혁파하는 방식까지도 ─ 신념을 드러내야 한다. 만약 단순히 자기 의견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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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력하는 거라면 애초에 얕아 보일까를 신경 쓰지 말고 개인의 신념을 전달하면 된다. 알다시피 전자의 작업은 힘들고 번거롭다. 후자의 작업은 권위가 없다. 한국사회에서 전자의 작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점점 더 보기 어려워지고, 생각이 모이고 확산되지 않으니 권위 있는 생각도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쉽게 권위를 입힐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작업보다 작업자가 앉은 자리를 보면 된다. ‘아, 교수님이시구나.’ ‘아, 건축가시구나.’

‘아, 사장님이시구나.’ 당연히 좋은 이야기, 맞는 말 했을 거라는 전제를 한다. 솔직히 글 잘 쓰는 분들도 많다. 그런데도 이상할 정도로 생각의 기준으로 쓸 만한 공통의 합의는 드물다. 그 합의라는 것이 결국은 언어로 규정되어야 할 부분일 텐데, 우리는 우리의 언어를 단련해온 것이 아니라 분분한 의견만 쌓아왔다. 게다가 교수도 저널리스트처럼 말하고, 건축가도 비평가처럼 말한다. 이야기 형식의 다양성은 원하지만 우리는 늘 뭔가 잊은 채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글이 안 읽히고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는 몇몇 분들이 점점 지면에서 보기 힘들어질 때, 변하는 시대를 이해는 하면서도 원칙마저 변하는 것 같아 이상하기도 하다. 어쨌든. 하나의 글에 하나의 관점을 담아 쓰는 건 어렵지 않지만, 다른 시대 혹은 타인의 신념을 온전히 이어 받거나 현재의 자신을 통해 재해석하고 고쳐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 부분은 우리 팀이 갖추지 못한 부분이었으므로 외부 원고 등을 통한 영양공급이 필요했지만, 작업 기간과 방식상 함께 작업해 줄 파트너를 찾지 사진을 찍어서 몰래 사진 보며 좋아하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크게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생각해 보면 결국 건축이라는 것 자체가 관념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내가 만난 건축가들은

‘건축을 하다’라는 표현을 쓰기보다는 ‘집을 짓다’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예술을 하다’와 ‘그림을 그리다'의 차이처럼, 그림은 행위와 감각이 중요하지만 예술은 행위의 극한이든 행위가 관념과 연결되든 결국은 관념의 영역으로 올라선다. 건축 역시 마찬가지다. 집을 짓는 건 분명히 떠올릴 수 있는 행위–이미지가 있지만 건축을 한다는 건 가치–이미지에 가깝다. 그것은 사유의 한 형태일 뿐이다. 이런 사고방식 자체가 서구적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감 자체에 의미를 두어 볼 수도 있지 않겠냐는 생각도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때는 그때대로 무엇을 향한 나아감인지도 고민해야 하고, 차이를 연구할 수 있도록 이전과 이후의 걸음에 대한 기록도 충실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게 복잡했다. 웬만한 건물이나 건축가를 봐도 감각이 없었고, 딱히 당겨 쓰고 싶은 기준이 없으니 할 말도 없어졌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쉬우면 쉬운대로 사람들은 이제 건축을 즐길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는데, 나는 어느 쪽도 납득을 할 수가 없었다. 51호에서 이 부분을 적당히 얼버무리고 지나갔다면 52호 이후에는 이런 생각을 쉰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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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했다. 건축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마치 예쁜 여자가 앞에 있는데


ⓒ 남궁선

건축가 최욱을 처음 만나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나는 그가 어떤 건축가인지에 대한 영감이나 이미지가 ⓒ 남궁선

없었다.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자신의 작업에서 모종의 의지를 드러내려 하는데 반해 그의 작업에는 차곡차곡 쌓여 있는 규율들만 느껴졌다. 물 같달까. 꼭 필요하지만, 맛있는 요리를 기대하는 사람 눈에는 중요해보이지 않고 깊은 향의 차를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심심한.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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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는 현대카드 관련 프로젝트를 볼 때도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그에 대해 생각하려 애쓰는 동안 지금은 사람들이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2003년 작 <팔판동 스몰주택>과 2008년 작 <아트 버스 쉘터> 등에서 느꼈던 감각이 기억 속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언어도 감각도 뭉개져버린 자리에서 다시 가장 먼저 고이는 건 감각이었다. 만약 이 상태에서 감각–몰탈을 비비고 굳혀 언어–콘크리트를 구축할 수 있게 되면 그때도 감각을 부수적인 것 취급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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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무소 원오원을 방문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언어는

‘시스템’이었다. 1층의 모형제작실, 2층의 식당 및 세미나룸(당시 공사 중), 3층에는 아이덴티티와 그래픽을 담당하는 팩토리가 별도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고, 3–4층을 설계실로 사용한다. 방문객은 보통 1층 엘리베이터로 4층으로 이동하여 프론트를 거쳐 업무를 볼 수 있다. 5층은 회의실과 자료실, 총무팀의 사무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새로 대표실이 추가되어 공사가 한창이었다. 건축사무소로 특이한 구성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공간에 박함이 없고 흐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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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5층 회의실에서 처음 만난 건축가의 인상 역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듬어져 있다는 인상이었는데, 55호 잡지 작업이 끝날 때까지 그의 외양에서 흐트러진 부분을 본 기억이 없을 정도다. 54호까지의 작업을 진행하면서 나는 건축에 대해 생각해야 할 더 많은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긴 했지만, 미각을 못 느끼는 요리사처럼 변해 있는 상태였다. 나름대로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혀를 너무 혹사했던 탓이었는지, 아니면 한국에서 유명한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밑도 끝도 없이 작업을 밀어붙이는 일에 지쳐가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진 한 장으로도 호불호와 가부를 따지던 미각이 어느 순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작동을 멈췄다. 어차피 기존에 알려진 이야기를 다룰 계획은 없었기 때문에 건축가에게서 뚜렷하게 짚이는 단점이 안 보인다는 이유가 작업에 대한 용기의 근원이 될 수 있었다. 발행인의 도움으로 섭외 문제는 편안하게 풀렸다. 네트워크가 힘을 발휘하는 세상에서 사람 만나는 일이 제일 어려운 나는 원하는 건축가를 무리 없이 연결해주는 발행인의 능력이 부러울 때가 많다. 건축가의 사무소와 편집실 사이를 오갈 때마다 표정 없이 서 있는 수많은 건물들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한 번은 모 건축가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세상의 모든 건물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눈을 질끈 감으면 돼.” 생각 못했던 답이었다. 역사를 기준으로 세상의 건축을 재단하는 것은 어떻게 봐도 타당하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한 곳에서만 정확히 보이는 애너모픽 착시 그림anamorphic illusions처럼 한 번 자리 잡은 곳에서 보였던 멋진 풍경을 깨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토마스 콜Thomas

ⓒ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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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탈해져서 함께 웃고 말았다. 1%도 안 되는 이들이 만든 현대건축의


Cole(1801–1848)의

<건축가의 꿈The Architect’s Dream> 그림처럼

건축은 건축인들을 건축역사의 다음 장을 꿈꾸는 시간으로 이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야 할 시간과 세상이 ‘지금 여기’이듯 건축과 건축가를 보고 만나는 것 역시 ‘지금 여기’로 되돌아오도록 짜여진 스토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불안한 개인의 판단을 공식적인 60_55

언어로 바꿔 소모시키기보다 빈칸으로 남겨두고, 오늘 보고 만진 현실을 충실히 기록해보는 일이 좀 더 ‘우리’라는 공공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건축가, 조직, 공간, 작업을 포괄하는 하나의 오퍼레이팅 시스템(OS, 운영체제)을 떠올렸다. 안정적인 퀄리티의 결과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해 낼 수 있는, 건축가를 중심으로 한 조직이라는 건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그 현실적인 모델의 하나로 55호 건축가 사무소를 대입해 보려는 것이었고, 건축사무소 입장에서도 잘 활용하고 있는 시스템을 더욱 소중하게 가꿔나가길 바라는 의도도 있었다. 건축사무소는 설계만 잘 하고 영업이 잘 되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간단해 보이는 걸 잘 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경영, 영업, 특허, 설계, 프레젠테이션, 협업, 시공, 감리, 세미나, 답사, 휴식, 식사, 디자인, 브랜딩, 출판, 사진 및 영상, 자료 관리, 전시, 매체 대응, 채용, 운영관리 등등 건축사무소와 관련해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은 그냥 내버려두거나 해야 될 때 하는 식으로는 퀄리티를 일정한 수준이 되게 하기가 쉽지 않다. 좋은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조직의 전반적인 체질과 관련한 설계 역시 고민해야 한다. 다른 건축가들과 비교할 때 확실히 최욱의 강점이라고 생각되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결과물이 전체적으로 기복이 적다는 점이다. 건축가들을 볼 때 잡지에 보이는 몇 개 작업만으로 보면 작업에 대한 평가와 상관없이 일단은 결과물의 기복이 적어 보인다. 그런데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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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볼 때 이 부분이야말로 거의 착시라고 생각한다. 건축가 한 명의 전체 프로젝트를 펼쳐놓고 살펴보면 그 안에서 하다못해 비례나 구성의 감각에서도 차이가 나는, 소위 말해 건축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는 프로젝트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건축 작업은 말 그대로 현실이라서 며칠 만에 설계를 완료해야 하거나 이상한 클라이언트를 만났는데 발 뺄 타이밍을 놓쳤거나 하는 등의 사연 있는 프로젝트들도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 프로젝트들에 대해 건축가가 변명을 하게 둘 필요도 없다. 참고만 하면 된다. 건축가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것들이 현실과 만날 때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를 알게 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니까. 거기서 건축가의 다음 장면을 볼 수 있을지 누가 아는가.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건축가들 작업에서 보이는 편차 큰 기복起伏이나 정체停滯 현상은 고민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원오원의 프로젝트들을 검토하면서 나는 마치 세팅된 고급 와인을 마시면서도 평범한 와인을 마시는 것처럼 맛을 몰랐다. 다만 결과물들에서 느껴지는 감각의 진폭이 확실히 다른 곳에 비해서는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역시 단순히 대표 건축가를 받치는 소장급 건축가의 역량이나 충분한 시간을 들이는 등의 단편적인 이유만으로는 다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다른 건축사무소 역시 부분들만 따져보면 갖출 건 거의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개인이나 부분의 도출할 수 있는 역량의 높낮이다. 똑같은 사람이 들어가도 어떤 시스템은 조직과 조직원을 소모시키고 어떤 시스템은 그들이 일정하게 합당한 역할을 하게 한다. 물론 원오원의 시스템을 다 뜯어본 것은 아니다. 검토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살펴본 정도다. 따라서 모르는 부분들을 내버려 둔 채로 그 조직을 이상적인 것으로 단정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하지만 건축가 최욱이 조직과 운영과 작업을 좋은 사람들과 좋은 여건으로 채우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고, 이를 결과로 연결시킨 건 사실이다. 이전 건축가들의 작업을 살펴보면서 그들이 지향하는 방향을 체크했다면 55호 작업의 스터디 과정에서 읽은 건 전체적인 기복 없는 안정됨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건축가 최욱을 볼 때 무엇보다 그가 구성하고 있는 시스템을 보도록 독자에게 제안한 이유다. 스터디가 한창이던 어느 날, J는 ‘incompressible’이라는 키워드를 가져왔다. 압축할 수 없는, 압축되어서는 안 되는이라는 의미에서 시스템이라는 키워드를 확실히 받쳐줄 것 같았다. 55호 기획 섹션 초기 방향을 정한 이후, 결과에 이르는 나머지 작업이 모두 J의 몫이 되었다. 그는 작업의 내용이나 방향을 잘 알고 있었고, 생각의 틀이 고리타분한 나보다는 다른 형식을 찾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확실히 시간의 한계 등 디테일하게 들어가기는 어려웠지만 그건 애초에 우리 스스로 작업의 한계를 넘어버린 문제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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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량이 얼마나 높은가 하는 것보다 전체 시스템을 통해 결과를


최선 외에 정답은 있을 수 없었다. 그래도 잡지를 몇 번 만들면서 촉이라는 게 생겼는지, 기획 섹션의 편집디자인 시안이 나왔을 때 처음부터 이 정도의 모습일 걸 상상도 했지만 다른 호들에 비해 잘 팔릴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대형서점에서 매일 몇 권씩 팔리는 걸 체크하고 있던 그때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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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턱턱턱. 칭. 쩍. 킹. 툭턱컥. 터터퍼퍼퍼. 통통통, 통통. . 따당. 텅텅텅텅. 둔둔둔둔둔. 칭, 잉, 켕. 퍼퍼퍼퍼퍼퍼. 똑. 틱. 빠악. 킹, 킹킹. 킹펑턱구궁. 티동. 퍽퍽퍽퍼퍼. 킹칭. 짝. 두투투투. 탁탁탁탁탁. 킹. 팡. 팅. 컹컹컹컹. 트트트트트. 트특 추. 처처척. 킹쳉쳉. 타닥. 켕. 잉. 터터터, 턱턱… 앞집 신축 건물 아시바飛階 설치하는 소리. 내가 좋아하는, 노을이 보이는 방향을 꼼꼼히 막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땀 흘리는 사람들. 건물에 비가 새는 하자瑕疵는 있어도 풍경이 새는 하자는 없다. 안타깝다. 3~4층이 보통인 동네에 7~8층 임대용 건물들이 밀고 들어오는데에는 그 과정에서의 많은 사람들이 납득한 ─ 책임질 사람도 삶에 대한 성찰도 배제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 논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기능적인 디자인의 건물이라는 게 이럴 때는 참 60_55

눈에 (안) 띄는 변명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나는 결국 내 주변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지키기 위해 내게 허락된 공간과 장소를 더 세심하게 살피는 수밖에 없다. 가령, 오후 3시의 거실을 훑고 지나가는 빛이 좋아서 추운 겨울에도 가끔씩 창문을 열고 햇볕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사람이 모든 것들의 좋은 점을 다 느낄 수 있을 만큼 예민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에게 어느 부분의 좋은 점을 지켜달라며 ‘전문가’라는 호칭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들 중 많은 이들에게 그 호칭은 돈을 벌 수 있도록 열린 길에 불과하고, 그 결과는 그들이 보지 않은 누군가에게 폭력으로 남는다. 음악은 안 들으면 되고 미술은 안 보면 그만이지만, 건축은? 정말 무신경한 사람들, 무신경한 도시다. 엄청나게 복잡해 보이는데도 그나마 내게는 빈 곳이 더 많이 보여서 다행인 이 도시 안에서 건축 관련 전문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건축가는, 나는 무엇에 예민하고 무엇을 지킬 수 있나? 언젠가부터 일상을 좋아하게 됐다. 건축을 사랑해야 하는 관념적이고 영원한 이유를 찾으려 애쓰는 대신, 당연하듯 놓여 있어서 놓치게 되는 감각적이고 순간적인 것들에 눈과 생각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름과 달리 나는 좀 과한 경향이 있다. 이제 좀 건물도 보고 미술관도 가고 하면 좋을 텐데, 이전엔 보기가 싫었고 지금은 관심이 없다. 예술가의 시간이 압축된 작품을 보기 위해 전시장으로 가는 대신, 볼 수도 있고 볼 수 없을 수도 있으며 무엇을 볼 지도 모르지만 보게 되더라도 쉬임 없이 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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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풍경을 보는 일이 더 좋아졌다. 예전에는 분명 대상이 환경 속에서 변해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반대로 환경이 대상에 머무르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더불어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는 자신의 주변을 좋은 것으로 채워가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내 손에 맞는 펜과 노트, 밥그릇과 젓가락에서부터 집에 이르기까지, 나는 생활이 작업으로 가득 차 있다는 변명으로 이들을 대충 방치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원오원에서 설계한 건물의 부분들과 모퉁이들의 사진을 한장한장 살펴보곤 했다. 누군가는 자신도 돈 들이면 그렇게 만들 수 있다 말할 테지만, 취향이나 자본으로 평가되기 쉬운 부분들도 그 바탕엔 일관된 태도라고 할 만한 게 필요한 법이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우리는 우리 각자의 삶에 꼭 필요한 마무리(디테일)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를 일깨울 생활의 부분들을 적절히 마무리하려 애쓰기보다 그냥 내버려두고 다른 핑계를 대거나 잊어버린 건 아닌지. 하지만 습관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바뀔 리 없다. 뉴스에서 전하는 스타키텍트들의 한국 프로젝트 소식은 인상주의 그림을 콜렉팅하던 쁘띠부르주아의 문화계급적 결핍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전문잡지를 포함한 각종 매체에 근사한 사진으로 소개되는 프로젝트들도 여전히 보고 싶지 않았다. 건축의 문제라기보다는 건축을 느낄 감각을 공유하지 못 하는 미디어의 한계라는 생각이 컸다. 편집되는 세계에서는 (이미지를 전달하는 방법도 포함해서) 말하는 방법도 중요할 수 있다. 원하는 말만 잘라서 전달해버리는 미디어의 속성에 먹히지 않기 위해 다른 방식의 말하기, 다른 방식의 대화가 필요하지 가까우면서 충분히 많이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건축가와 미팅을 하기로 한 어느 날이었다. 한 주 동안 다 정리하지 못한 생각 때문에 일단 건축가를 만나 상황을 전달하고 양해를 구한 후 다음 미팅을 기약해야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건축가와 만났다. 때마침 사무실 공사가 한창이어서 소음 때문에 바로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웠다. 건축가가 자리를 옮기자고 했고, 그 과정에 사용된 시간이 30분이었다. 10분 이야기로 끝내기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건축가의 집. 서재에 마주 앉아 본 그의 모습은 뭔가 이야기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처럼 느껴져서, 나도 왠지 뭔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2시 사무실 약속, 2시 30분 건축가 집 도착, 나중에 집을 나와 버스정류장에서

시계를 보니 저녁 8시 30분이 넘어 있었다. 그 대화 중 한 부분이 잡지의 인터뷰 섹션에 담겨 있다. 내용에 대한 기억은 페이지를 들춰봐야 할 만큼 점점 흐릿해지고 있지만,

‘이 건축가가 생각 역시 다듬어가기 위해 노력해왔구나’라는 느낌만큼은 지금도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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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을까. 단문은 좀 더 복잡하게 설계된 복문으로, 대화는 좀 더 현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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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시간이라고 정의하는데 햇빛이 센 지역은 2시간 후가 될 수도 있고 아주 흐리고 습도가 많을 때는 4~5시간이 될 수도 있어요. 어쨌건 눌렀을 때 손자국이 나는 정도의 기준이라고 얘길 해요. 그 당시에 이걸 문질러주는데,

ⓒ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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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곡리 <ㅁ자집> 같은 경우도 시공자가 제안하거나 클레임 건 부분은 없었나요?” “그런 부분 중 하나가, 여기를 방수를 안 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우려를 했죠. 우려를 했는데, 내가 제안한 대로 문질러서 하는 방법으로 ‘해보자’ 해서 최초로 했던 프로젝트였죠.” “‘문지른다’는 게 어떤 건가요? 갈아내는 건가요?” “그건 굉장히 중요한 에피소드인데요.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하고 그 방법을 개발하고 나서, 다른 많은 프로젝트도 굉장히 심플해보이게 한 게 그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만약 방수를 한다면 이런 결과를 얻긴 힘들거든요. 모든 건물들, <틸트루프하우스>까지 같은 방법으로 한 거죠. 그게 내가 미국에 왔다갔다 할 당시에, 비행기를 미국에서 갈아타면서 오다가 잡지 책을 읽었는데, 싸구려 잡지 책이에요. 거기에 Q&A 섹션이 있어서, 일반인이 물어보는데, 콘크리트 타설하고 나서 줄나누기 크랙 안 가게 컨스트럭션 조인트 선 자르기를 며칠 후에 하면 좋습니까라는 질문이 있었는데요. 나는 3~4일 후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 답을 읽고 내가 놀란 거예요. 뭐냐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왜냐하면 크랙은 콘크리트 타설하고 나서 3~4시간 후에 간다, 그리고 나서는 가지 않는다…’ 난 그걸 보고 놀란 거예요. 그 얘긴 무슨 얘기냐면, 서너 시간 지난 다음에 이걸 문질러서 다시 붙여주면 크랙이 없어진다는 거죠. 이론적으로는 그런 건데, 타설했는데 서너 시간 후에 크랙이 가잖아요? 손으로 눌러서 손자국이 살짝 나면서 물이 조금 고이는 단계, 그게


쇠흙손으로 문질러주면 쇠가 물을 빨아올려서 표면장력을 줘가지고 표면에 물을 끌어올리면서 포틀랜드 시멘트가 같이 올라와 그쪽을 다시 한 번 씰seal 해주는 효과가 있는 거죠. 옛날에 우리가 시멘트로 부뚜막 같은 걸 만들면 물 바르고 시멘트 뿌려가지고 문지르는데, 시멘트 안 뿌리고 문질러도 그게 빤질빤질해지거든. 계속 문지르면. 그게 물을 빨아들이면서 시멘트를 올려 문지르는 건데, 그러면서 크랙 가있는 것도 다시 한 번 붙여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근데 문제는 그걸 문지르고 나서 두세 시간 됐을 때 다시 크랙이, 처음만큼은 아니지만 또 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세 번인가 네 번인가… 세 번을 하면 되는데 네 번을 하라고 했어요. 네 시간 간격. 마르면 또 하고, 마를 것 같으면 또 하고, 물기가 없어지면 계속 하라고 해서 그렇게 방수가… 되게끔 하라, 고 했는데, 근데 시공하는 날 현장소장이 나한테 전화했어요. 그 친구한테 물어보시면 재밌을 텐데, 자기 돈으로 방수액을 뿌리겠다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하지마라. 실험하는 거고, 내 집이니까 물이 새도 상관없다. 그때 가서 방수해도 되니까 일단 하지 말어라.’ 알겠다더라고요. 그 대신 시키는대로 하라고 했더니 시키는대로 했다더라고. 시공이 아침부터 타설을 60_51

했는데, 마지막 문지르는 작업이 몇 시에 끝났냐 했더니 새벽 서너 시쯤 끝났다고 하더라고요. 대충 계산해보니 맞겠어, 그러면 맞게 한 거 같으다, 근데 이건 자기가 손에 장을 지지는데, 맨날 그가 그렇게 표현하거든. (웃음) 방수액을 해도 물이 새는데 이거 안 샐 리가 없대. (웃음) 건축가 제공

그러더니 나무와 실리콘으로 대더니 물을 부어가지고는 새는 걸 보여주겠다고, 근데 물이 안 새는 거예요. 여름 내내 실험을 했는데 물이 안 새. 아직까지도 물이 안 새요. 그 친구가 뭐라고 그러냐면, ‘방수 중에 가장 완벽한 방수는 방수를 안 하는 것이다’ (웃음) 문질러주는 거예요.”

“콘크리트 자체를 완벽하게 시공하는 거군요.” “그렇죠. 방수액을 바르면 방수층이 나중에 크랙이 생겨서 깨지거나 벌어지거든. 그런데 이건 벌어지지 않게 만들어놓은 거예요. 지금은 마모가 많이 됐어요. 시꺼멓게 돼서 한 번 갈아줄 생각이에요. 왜냐면 마모가 많이 되면 시멘트가 많이 빠져나가서 크랙은 없지만 거칠거칠해져 있기 때문에 물을 흡수해요. 그러면 겨울에 얼면 깨지거든요. 그게 점점점점 더 들어가요. 그렇게 점점 깨져서 철근까지 녹이 슬 수가 있어요. 지금 10년 넘게 됐거든요. 한 번 그라인딩만 해주면 물이 흡수가 안 되고 빠져나가는 거죠. <ㅁ자집>에 한 세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 중에 또 한 가지가 스카이라이트에 철 프레임을 보통 넣는데 그걸 넣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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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죠. 이건 하면서 변경된 사례는 아니지만 새롭게 시도해봤던 건데… 프레임 넣지 말고 유리로 바로 하라고 그랬더니 ‘이게 실리콘이 되겠냐’, ‘프레임을 제대로 하는 비싼 창호회사 제품도 스카이라이트는 새는데…’ 그래도 그냥 해보라고 했는데 지금은 이것도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그래요. (웃음) 콘크리트와 유리가 수축팽창이 거의 비슷해요. 같은 돌에서 만든 재료기 때문에. 철도 돌에서 뽑아낸 거긴 하지만 철이라는 건 굉장히 다른 성분을 가지고 있어서 수축팽창이 좀 더 심한 재료기 때문에 페인트칠을 하면 벗겨나오고 페인트칠을 안 해도 떨어져나오고 해서 열을 많이 받는 지역 같은 경우는 문제가 되는데, 여기는 한 번도 문제가 된 경우가 없어요.”

그다음부터는 굉장히 모놀리틱하고 심플하고 훨씬 더 비용도 절감되는 그런 건물을 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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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합 부분은 실리콘인가요?” “실리콘만 쏘아져 있어요. 같은 면에 돼 있어서 반사도 좋고. 참, 아까 방수 문제는 잡지에서 읽는 순간에 두 가지 생각이 순간 떠올랐어요. 뭐냐면 우리가 그때 향린동산에 시공을 하는 게 있었는데 노인들이 시공을 했거든요. 근데 옥상지붕방수를 하는데 ⓒ 김재경 직원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소장님, 여기 할아버지들이 지붕에 올라가서 대나무로 계속 두드리고 있어요.’ 그래서 ‘그게 뭔소리냐? 차근히 얘기해봐’ 그랬더니 할아버지 둘이 지붕 양쪽에서 긴 대나무를 잡고 지붕면을 두드리면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고, 다시 두들기면서 오고 그런대. 그래서 ‘왜’ 그랬더니 그러면 방수가 잘 된다고 그런대. ‘야,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고 설계대로 다 방수하라고 그래’ 그랬더니, 아니, 방수는 하는데, 이렇게 하면 좋다고 그런대. 그래서 ‘야, 참 쓸데없는 일 한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 일을 까먹었어요. 그리고 또 돌담집이 있어요. 양평에.” “송학리요?” “예. 송학리. 그 집 주인이 미장하는 사람이에요. 누가 아는 분이 부탁을 해서 설계를 해드렸는데, 콘크리트 타설한 다음날 새벽에 가봤더니… 저는 보통 새벽에 잘 가보는데, 잘 굳었나 궁금해서 가보는데, 새벽에 무슨 소리가 들려서 가보니까 한쪽에서 미장을 바르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아저씨 뭐 하세요’ 그랬더니 이게 완전히 굳기 전에 바르면 방수 같은 게 잘 된대요. ‘어, 그래요?’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은 했는데 그 잡지 책을 읽는 순간 이게 떠오른 거라. 이게 굳기 전에 해주는 게 굉장히 좋구나. 크랙이 3~4일 후에 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미리 다 가 있었던 걸 알게 돼서 해보게 됐던 거죠.” “그러면 그 전에는 콘크리트에 항상 방수를 별도로 하셨고요?” “항상 했던 거죠. 그리고 이 방법을 누가 가르쳐줬던 것도 아니고, 그 책을 읽고 이런 사건들을 생각해 낸 거죠. 그거를 하게 되면서 우리가 설계한 건물들이


뭔가를 고안해 내는 것, 뭔가를 만드는 과정 안에 있는 것. 내가 만난 어떤 건축가라도 자신이 만든 것에 들어간

‘어떻게’의 부분에 대해 모르는 경우는 없었다. 다만 관심 분야의 차이랄까. 어떤 이에게 의도가 중요하고 어떤 이에게 방법이 중요하고 어떤 이에게 신념이 중요하듯 조병수에게는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한 일처럼 보였다. 특히나 ‘어떻게’에 관한 설명에서는 평소보다 말수가 몇 배로 늘어서, 그가 그 이야기하는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이런 그를 두고 브리콜라주, 브리콜뢰르 같은 용어로 설명하려 하기도 했다.(«건축의 스트레스», 함성호 지음, 문학과지성사, 2004, pp.33–41) 장인적인 속성과 손맛에 이끌리는 우발성이라는 설명은 조병수의 일면을 떠올릴 수 있는 쉬운 표현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브리콜뢰르를 코르뷔지에처럼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게 만드는 이로 설명하기도 했다.(«정의와 비용 그리고 도시와 건축», 함인선 지음, 마티, 2014, pp.121–125) 그런 관점에서 조병수를 다시 보면 왠지 좀 왜소해진다. 하지만 그에게 입힐 근사한 용어 하나가 마땅치 않더라도 그의 태도가 그를 60_56

증명할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뭔가를 고안해 내는 태도, 뭔가를 만드는 과정 안에 있다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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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가 발행된 2017년 5월 15일은 제19대 대통령 보궐선거인 5월 9일을 엿새

넘긴 날이었다. 56호 기획을 시작해야 했던 시기인 3월 10일은 18대 대통령의 최종 파면 보도로 시끌벅적했고, 다가오는 5월의 보궐선거가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아크데일리archdaily, 디진dezeen, 디자인붐designboom을 비롯한 주요 건축정보채널들에서 관심을 점점 거둬들이고 있었다. 그들은 서구건축 중심 분위기를 설파하고 다지는 건축뉴스통신사와 다를 바 없어 보였고, 다른 한편으론 매일 같이 올라오는 새로운 정보에 관심을 가져도 어차피 우리가 고민해야 할 건축은 거기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를 기록할 것이 아니라 기록할 만한 걸 기록해야 하는 시절에 들어서고 있었다. 굳이 서구까지 가서 조선통신사 역할 하지 않아도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건 이전 시대에 비해 매력적인 일이었으나, 그 정도의 감각이나 그 정도의 이야기에 편승하는 것이 빨라졌을 뿐 우리건축을 우리답게 이야기하는 건 애초에 전혀 다른 일이었겠다고 생각하던 즈음이었다. 하지만 살면서 익숙해진 과정 하나를 떼어내는 일이라는 게 쉽지가 않다. 귀에 발리는 꿀 같은 음악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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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어낸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지만 이명耳鳴은 끌어 안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구축방식의 탐구, 새로운 디자인의 가능성, 새로운 소통방식의 모색, 결과물의 매력이나 적정함을 포함한 많은 신호화된 정보들이 끊임없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당장은 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만약 오늘 정보를 끊는 건축가가 있다면 그가 사회에 자신을 납득시키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타임리미트는 10년 내외일 거라고 예상한다.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내가 느낀 학교와 사회에서의 건축–시간차가 그 정도였다. 오늘 보편적으로 소통하기 힘든, 새롭거나 다른 생각이나 기술도 10년이 지나면 대중까지는 아니더라도 클라이언트들은 이전보다는 좀 더

수월하게 공유하는 분위기가 생긴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건축가가 자신의 생각과 말을 세상과 소통가능하게 다듬는데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볼 수도 있다.) 2000년 전후에는 건축에서의 형태적인 제스쳐도 개념의 타당성이나 기술의 보증과 함께 나타나야 했지만, 2010년 전후에는 형태가 강하게 드러나는 결과를 설명 없이도 어느 정도 수용하는 게 가능해졌다. 자신의 건축을 추구한다는 건 건축가로 오롯이 독립 후 일단은 10년을 걸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반대로 정보를 끊으면, 10년 후에 보편화 될 어떤 이야기의 한 부분을 잃는다는 생각도 가능하다. 생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일 비슷하게 쏟아지는 오늘의 정보들은 미래를 위한 일종의 보험인 셈이고, 생각의 프레임을 바꿔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 정보들은 <매트릭스>의 파란약이나 <이퀼리브리엄>의 감정억제제처럼 건축가를 롯데월드타워의 전망대에 오르는 식의 일상 속 즐거움이 희망이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간은 고양이가 아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현실에 고착시키려는

‘구조’라는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연처럼, 56호 작업시기는 우리 사회가 다음 희망을 이야기하거나 준비하는 시기였다. 건축에서도 좀 더 다른 이야기, 좀 더 우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을 계속해보고 싶었다. ‘그는 항상 작업 안에 있는 사람이다. 그의 특징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는데 집중한다는 것이다. 그의 표현으로는 ‘추상과 현실 사이에서 좀 더 많은 이해와 노력을 통해 실질에 다다르는 것’이다. 그는 현실을 자기편으로 만든다.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건축가 조병수를 만나고, 그에 관한 자료들을 스터디한 후 끄적인 글이다. 56호를 처음 기획할 때의 생각은 ‘태도attitude’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다루면

좋지 않을까 하는 거였다. 작업 자체가 녹아든 삶을 살아가는 조병수라는 건축가를 통해 할 수 있는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그 말의 스케일이 너무 큰 것도 사실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찾는 ‘이야기 하나’를 갖고 있는 건축가들 모두 건축가로서 나름의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들이었다. 건축가를 존경하는 이유는 그가 건축가로서 해야 할 일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것이 각자의 작업 과정과 결과에서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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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비끄러매는 구조적 책략의 일종일 수 있다. 2017년 4월 3일 오픈한


태도로 드러난다. 많은 건축가들은 스스로 건축가처럼 보이기 위해 외양에 신경을 쓰는데,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검사처럼 나는 건축가가 아니라 작업자의 작업만을 본다. 그걸 위해 부족한 생각과 눈을 단련하는 게 에디터로서의 애티튜드다. 그런 식으로, 일반적인 ‘태도’라는 말보다는 좀 더 건축가의 캐릭터에 어울리는 키워드를 찾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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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에서 중요한 건 감각일세. 감각은 시대를 앞서나가지. 기술은 그 다음에 따라오는 거야.” ─ <바람이 분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2013 물질을 땅 위에 구축하는 일보다는 공중에 띄우는 일이 더 힘들 것 같기는 하다. 앞의 이야기는 비행기 설계가에 관한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대사인데, 건축에서도 다를 것이 없어서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감각 이전에 자신을 이끄는 혹은 가고자하는 방향이 있어야 한다. 하고 싶은 게 있고서야 풀어야 할 남들과 다른 문제도 생기고, 문제가 달라야 아직은 드러난 적 없었을 다른 해결방법도 끄집어 낼 수가 있다. ‘하고 싶다’가 없이도 ‘할 60_56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일견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새로운 상황을 인식하는 것이 곧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드는 요즘 같은 시절에는 개선의 의지가 없다는 말과도 같다. 그러한 의미의 ‘의지’가 항상 필요한 건 아니라는데 동의하지만, 사람도 시대도 변하는데 건축만은 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다만 건축은 여타 예술 분야와 달리 그 의지가 개인에서 비롯되면 튀어나온 못 취급 당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다. 따라서 건축가는 자기 프로젝트의 공적 신뢰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습관적으로 개인의 선호를 감춘다. 건축가의 (개인적) 인문소양에 공적 신뢰만큼의 무게가 부여되던 시절도 거의 지나간 것처럼 보인다. 건축가가 새로운 개념을 말하고 비평과 저널이 평가하고 부연하는 것은 이제는 반향도 없을 뿐 아니라 자칫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를 재현하는 일이 돼버릴 수도 있다. 건축가의 내적 충동에 관대하고 건축을 바라보는 공적 시선이 수용되는 지점이라는 게 있을까… 생각해 보니, 생각하기 아닌 만들기, 머리 아닌 손이 그런 영역이었다.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현실은 복잡한 마음들이 피어나고 사라지고 싸우고 화해하는, 모두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담기는 지점이다. 조병수는 이상을 설정하고 싸우는 건축가는 아니다. 그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끊임없이 변해가는 상황 속에 작업의 질을 균형 잡는다. 그러한 순간들의 기록이라면 건축가의 캐릭터도 현실의 필요도 함께 다뤄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 입장에서도, 만약 건축가라면 겪었을 수 있고 건축가가 되고자 한다면 겪게 될지 모르는 일일 수 있어서 비교적 공감이 될 거라는 판단도 있었다. 일종의

‘줄타기rope walk’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기획은 스터디를 거치며 ‘균형balancing’이라는 키워드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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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에 여유가 있을 때 당신은 작업을 좀 더 밀고 나가는 스타일인가, 아니면 그 상태에서 결과물의 퀄리티를 높이는데 집중하는 스타일인가? 나는 솔직히 정해둔 건 없지만 거의 늘 ‘좀 더’를 고민하는 유형에 가깝다. 시스템이 안정적일 땐 밀고 나가는 만큼이 그대로 다 성과가 될 확률이 높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나아간 만큼의 길에 고민들을 뿌려둔 채 수습 가능한 범위로 후퇴해야 할 수도 있다. 조금씩 줄이고는 있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밑도 끝도 없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균형’에서 ‘아드리비툼ad libitum’이 나오고, 애드립이라는 말의 이미지가 건축을 이해 못 하는 사람들에게 자칫 편견만 심게 될 것 같은 생각에 ‘변수variable’라는 키워드를 만들었고, 거의 정리가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우리의 이 편집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건축가가 변수를 수용한다는 것이 이상이나 신념을 지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의미 있다고 말할 수 있고, 조병수 역시 대표적으로 거론되어도 손색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좀 더 오늘날에 합당한 형태이거나 지향해야 할 비전으로써의 변수라면 특수한 전제가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협력변수’라는 말을 생각했다. 건축은 기본적으로 협력을 전제로 한 변수들을 다루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에 맞게 개념의 방향과 범위를 좁혀본 것이다. 건축가, 건축사무소 직원, 시공자, 클라이언트, 공무원 등 다양한 건축 작업의 주체들이 협력을 통해 변수들을 보았다. 1. 설계, 시공을 포함한 모든 과정에서 균형을 추구해야 하는 건축가 이야기. 2. 도면에서는 예상되지 못하거나, 예상했다 해도 상황을 봐서 대응해야 했던

다양한 변수들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 그리고 여기서의 변수는 기본적으로 협력을 전제로 풀이 가능한 협력변수. 3. 건축 작업 범위를 현장까지 연장해서 생각하도록 함. 4. 설계·감리 분리 이슈에 대해, 디자인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축의 질

관리를 위해 건축가가 필요함을 이해시킴. 5. 건축가 중심 이야기에서 관련자들(건축가/설계·감리 담당직원/시공자/

협력업체/클라이언트/공무원 등)의 협력 이야기로 전환. 6. 문제 해결의 주체가 건축가 1인 중심에서 참여자 다중심으로 변화. 7. 서양건축사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건축역사를 만드는

계기로써 주인공인 ‘이상을 추구하는 건축가, 건축의 경계를 확장하는 건축가를 포함하여 ‘함께 만들어가는 건축’ 이야기가 될 가능성 모색. 주류–비주류 논리 벗어난 이야기. 8. 건축 작업 과정, 다양한 참가자들, 역사 서술방식 등을 조화롭게 표현해내는

방법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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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하는 과정이 스토리로 풀어질 거라 예상했다. 간단하게 지침도 작성해


기획은 필요성이 곧 함정일 때가 많다. 기획자가 아무리 냉정하더라도 기획이 필요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장밋빛 그림을 그리고 싶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은행이자처럼 인풋한 만큼 정해진 아웃풋이 정확히 돌아오면 좋겠지만, 똑같은 케이스의 기획도 사람이나 지역이나 여건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도출되는 게 현실의 묘미, 생동성이다. 따라서 완벽한 기획을 준비하기 위해 모든 걸 쏟는 것보다 어느 정도 정해진 기획을 가지고 현실에서 부딪히며 조정해나가는 게 더 나은 선택일 때가 많다. 하지만 기획하는데 열중하는 만큼 그림은 점점 더 구체적이 되고, 아마추어 기획자는 눈에 보이는 그림에 빠져서 소소하지만 정확히 체크해야 할 것들을 빠트리게 되는 것이다. 56호 작업을

‘변수’라는 주제로 정리해야겠다고 마음을 거의 먹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설마 우리 작업의 변수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던 한 가지 변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건축가였다. 이전 건축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목적의식이 뚜렷했다면, 56호 건축가는 달랐다. 항상 일을 몇 가지쯤 함께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잡지 작업 중간에 건축가가 장기간 외국 출장 일정이 있어서 ‘이런 내용이 필요합니다’라며 별도로 부탁한 것들이 있었는데, 귀국 후에도 잘 채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웬만해선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 가능과 불가능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일들에 대비를 하는 편이다. 바빠도 느긋하게 60_56

생각부터 할 정도의 단련은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도 반복되니까 조금 쫄리기 시작했다. 약속을 잡고 취재하러 사무소에 가다보면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연락이 오고, 그렇게 가 보면 미안하다면서도 현장 체크에 열중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이런 상황에서는 뭘 어떻게 진행하는 게 좋을까’ 같은 고민을 하는 건 너무나 한가한 것이다. 그 사이 그는 또 다른 프로젝트 협의를 하고 있었고, 이어서 밥 먹자고 했을 때 ‘밥 먹고 이런 내용을 좀 체크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면 이미 다음 일정 때문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기획 스터디를 위한 취재용으로 녹음해 둔 대화 때문에 안도했던 건 인터뷰를 이전처럼 장시간 하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든 후였다. 경험상 그는 마주 대할 때 필요한 대화를 충분히 해야 하는 사람이다. 만났을 때 결론을 지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잠깐 눈을 돌리거나 이야기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언제라도 체크해야 할 프로젝트들과 미팅이 밀고 들어왔다. 하루에 한 가지 일 정도만 하고 뒷짐 지고 걷는 나 같은 사람은 그의 많은 업무량과 처리속도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는 늘 해야 할 일들에 빠져 있었다. 익숙해질 즈음 잡지 작업은 끝났지만, 그런 그가 좋아보였다. 기획 내용을 이전 프로젝트의 변경 기록들을 토대로 하기로 했을 때 에디터 J가 사무소 창고에 가서 옛날 서류들을 찾지 않고 기다렸다면 56호는 일정을 맞추지 못할 수도 있었다. 건축가가 해야 할 일은 빨리 줄여주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전념하는 게 56호의 최대 변수에 대응하는 최적의 해법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협력변수’를 다시 ‘변수’로 고쳐야 하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더러 직원이나 시공사의 협력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그가 이룬 건축적 성취의 대부분은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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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과정은 분명 있었다고 말했지만, 그에게 협력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어서 그 세부 프로세스를 살피는 일보다 문제를 푸는 것 자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긴 내가 본 그 또한 백 가지 문제를 주면 그 백 가지를 전부 혼자 다 풀어낼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결론은 이렇다. ‘협력변수’라는 키워드로 ‘연출을 해보려 했던’ 내 계획은 접어야 했고, 후에 ‘변수’로 다뤄진 조병수라는 건축가를 담은 잡지에 대해 흥미 있어하는 이야기들은 들을 수 있었다. 자료를 정리하면서 <ㄷ자 양철지붕집>(2002)의 지붕이 그렇게 휘어져 있는 줄 처음 알게 되는 등 흥미로운 것들이 많았다. 그 흥미로움을 느끼는 차이나 정보가 점점 소소해질수록 크거나 예쁘거나 색다른 것에 끌리는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진다는 생각도 들었다. 검증된 욕망을 채우는 일이 싫어지면 세 가지 결론을 향할 뿐이다. 견디거나, 내 의견을 검증된 것으로 만들거나, 혹은 멈추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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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류의 일을 하건 감각적으로 알아야 한다. 되는 일인지 안 되는 일인지, 할 수 있는 일인지 할 수 없는 일인지, 해야 하는 일인지 해서는 안 되는 일인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누구와 하면 되는지 언제 하는 게 좋은지까지도 모두, 알아야 한다. 감각적으로. 예를 들면, 건축에디터는 건물이나 건축가를 보면 매체로 다룰 만한 대상인지 아닌지, 어떤 방법이 좋은지 등등을 감각적으로 아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신은 믿을 수 있어도 감각은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믿을 수 있는 감각의 하한선은 상식이다. 상식이라는 말이 일정常하게 통하는 지식識의 의미로 쓰이지만 실은 그것조차도 일종의 감각이다. 공통의 감각common sense. 형사의 감, 에디터의 감 같은 전문가들의 감각은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검증이 되기 전까지는 아직 공통적으로 납득할 만한 감각은 아니다. 전문가들끼리도 감이 다르고, 감에 따른 해석이나 전략도 다르다. 명명백백 설명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지나치게 주관적이라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그래서 감 잡은 형사는 일단 건축에디터도 마찬가지다. 건물이나 이미지/텍스트 소스를 보며 감이 있네 없네 단번에 체크해버리고, 다른 에디터들이 ‘너무 성급한 진단 아닌가’ 하며 우물쭈물하는 동안 이미 다른 프로젝트들도 판단하고 있다. 동료들은 자신의 생각을 매듭지을 틈도 없이 쫓아다니기 바쁘다. 제동을 거는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건축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일부만으로 전체를 다 판단하는 게 얼마나 무모하고 부질 없는 일인지를 모르는 건축에디터는 아마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때에도 감을 잡았거나 잡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다. “보는 순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찌 아니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아니라서 아니라는 것이온데…” 건물을 볼 때 요즘은 중요한 이슈도 아닌 비례나 구성조차도 한 번 눈에 밟히면 계속 들여다보기 어려울 때가 많다. 결국 감이라는 건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개인의 편견과도 같은 말이다. 수준. 마음 속에 그어진 선. 일종의 장대높이뛰기 선수처럼 뛰어넘어야 하는 누군가의 기준.

“자, 날 넘어요.” 건축잡지를 볼 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잡지에도 실렸고 사람들도 좋다고 하는 프로젝트가 소개됐는데 무감각한 내 마음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사람들 마음을 움직인 것이 무엇인지가 궁금해지곤 한다. 가급적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싶지만 알다시피 감각이라는 게 주관적인 거라서 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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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먼저 뛰고, 영문 모르는 동료는 툴툴거리며 쫓아서 뛴다. 감 좋아하는


설명을 들어도 똑같이 느끼기 어렵다. 논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설명도 의사소통을 위한 공통감각 정도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아무리 이해해보려 해도 마음 안에 이미 다르게 느껴버린 개별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냥 이해하려는 노력만 남는다. 달달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떫은 와인을 주면서 ‘묵직하다’라고 표현하는 사람 말에 공감하지 않는다. 그냥 ‘이런 걸 묵직하다고 말하는구나’라며, 혀를 비롯한 몸이 느끼는 감각과 생각을 일치시켜보려 애를 쓸 뿐이다. 정말 좋은 결과물을 통해 단번에 그 일치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 다만 어떤 분야든 경험해야 할 대상은 너무나도 많고 혼자 느낀 순간의 진실(일치)이 영속성을 가지는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간은 너무나도 길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초보에게는 동일한 충고가 가능하다. “많이 경험해보세요.” 어쨌든 그 일치의 경험을 시작점으로 조금씩 범위를 넓혀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이해와 상관없이 견고하다. (그만큼 편견도 강하다.) 오히려, 세상이 쉬지 않고 쏟아내는 ‘좋다’는 평가에 길들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블라인드 테스트하면 금방 밑천 드러날 정도의 감각과 이해를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게 별로 없다. 그들은 세상이 그려놓은 안전한 교통체계 속에서 신호를 준수하는 모범시민들이다. 신상품이 나오거나 새로운 60_57

지역이 뜨면 자동으로 가줘야 한다. 드라이브를 좋아해서 기름값이 많이 드는 사람과 차를 몰아야 하기 때문에 기름값이 많이 나가는 사람은 분명 상황에 대한 이해가 다를 것이다. 건축을 좋아해서 답사나 책에 돈이 많이 드는 사람과 참고해야 하기 때문에 답사나 책에 돈이 많이 나가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다를 것이다. 흥미로운 건 언제나 전자보다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고, 그렇다고 전자가 정답을 확보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세상은 안전한, 예측가능한, 다수가 이용하는 교통체계를 원한다. 왼쪽은 고급주거지, 오른쪽은 빈민촌처럼 이정표를 만들고 도로를 닦는다. 많은 이들이 소비하기 원하는 길은 가깝고 넓고 찾기 쉽고 불편함 없게 만들고, 반대쪽 길은 멀고 좁고 찾기 어렵고 불편하게 만든다. 미로의 전체 지도를 보지 못 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가깝고 명확한 길이 좋다. 그렇게 미로의 시작과 끝이 소비자로 채워진 줄기 하나를 우리는 대중의 (소비)패턴이라고 부른다. 물론 그것은 누군가가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만드는 것이다. 잡지도 마찬가지다. 잡지 역시 하나의 생산물이면서 동시에 패턴이다. 패턴이 시간 속에서 누적되면 신용과 권위를 발생시킨다. 건축잡지에 건물이나 건축가가 게재되면 자동적으로 신용과 권위의 증명서가 발행된 것 같은 효과를 만들고, 건물과 건축가도 패턴 안으로 수용된다.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불편함이 없는 그 패턴이라는 것이 시장에서 만들어지고, 시장의 작동 목적이 좋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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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기 위한 게 아니라 재화의 순환이기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패턴보다는 자신을 비롯한 소수 전문가들의 감각에 근거해 주관적 감각을 설득력 있게 구성하려 애쓴다. 아이러니하게도 눈에 띄는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은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다. 눈에 띄지 않는 전문가들이 누리는 장점이라곤 시장의 유혹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감각을 흔들림 없이 유지할 수 있다는 것뿐 그다지 공식적이지도 생산적이지도 못 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역시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지, 시장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도움되는 것을 검색searching하기 때문에 상품이나 마케팅에 도움될 것으로 판단되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메이저 마이너리티를 유지하는 시스템에서 눈에 띄지 않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언젠가는 수용될 날이 온다. 대규모 체인서점이 유통 기능만 있었던 동네서점을 다 몰아낼 것처럼 보였지만, 가라앉은 출판시장의 이슈파이팅을 위해서는 오히려 컨셉이 강화된 동네서점들이 많이 알려지는 게 좋은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이제 와서 감각과 시장은 따로 설명하기 어렵고, 감각도 시장도 정말 뻔하면서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나 역시 침체된 건축시장을 활성화시킬 자양강장제라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게 없어서, 그리고 오늘의 건축매체시장에 그다지 동의하지는 않아서,

위에서 위치를 파악하는 게 쉽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인식의 지도 위에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는 지도 자체를 새롭게 그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알고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을 전제로 둬야 했다. 그냥 빈 공간에 건축가 한 명의 위치를 찍고, 새로운 건축가들이 들어오면 처음 찍은 위치를 포함해 전체를 조정해가는 정답 없는 과정에 임했다. 선을 긋고 싶었던 것 같다. 도달해야 할 수준이든, 이게 우리의 건축이야기라는 확신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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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가 특별하다면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 하나는 잡지 형식 측면에서 다른 호들과 다르게 전체를

대화로 구성했다는 점, 다른 하나는 건축가 시리즈 중 유일하게 다뤘던 여성 건축가라는 점이다. 오늘의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접할 수 있는 키워드가 페미니즘이다. 젊은 남성 디자이너에게 ‘당신은 디자인계에서 (작업으로) 이슈될 만한 게 없나?’라고 물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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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리포트 와이드’를 마이너리티 리포트로 만든다.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일도 어류박물관을 운영하는 일도 다 중요하지만, 둘은 태도가 전혀 다르다. 나는 건축가를 팔지 않는다. 공유하면 좋을 것 같은 우리 건축 이야기를 건축가 안에서 찾고 정리하는 일을 한다. 시장에 연결되기 전까지는 작은 화단을 가꾸는 일에 불과할 것을 알지만, 나는 만 송이 세상의 꽃보다는 눈 앞의 꽃 한 송이 한 송이를 가꿔나가는데 열중하고 싶다. 이런 식의 개별 감각이 공통감각이 되려면 소통의 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 주어진 지도


‘요즘은 무슨 이야기를 하든 여성이나 동성 코드를 깔아야 눈길을 끈다’는 답을 듣고 웃었던 적도 있다. 확실히 어떤 분야든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어떤 것이다. 여성의 권리나 동성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대중의 호기심을 형성할 수 있는 시절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이내 문화력이 집중되고, 이전과 다른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여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 하나의 패턴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안에서 사람들 각자는 자신의 위치를 새롭게 인식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즘ism(主義)에 관심이 없다. 개인들의 개별 신념과 사회 현상에는 관심이 많지만, 그 복잡한 상황을 스캔한 하나의 단면만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것이 공부할 때는 유용한 방법일지 몰라도 현실에서 잘못 쓰면 칼이 된다는 것쯤 인류는 이미 많은 경험을 통해 학습해왔다. 회색 현실을 흑백으로 재단하려는 것이 인간의 속성인 것 같긴 하다. 그래도 구분을 해야 할 때에도 각각이 처한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려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집단화를 추구하는, 이즘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 흥미를 두지 않는다. 레이니즘도 관심 없었듯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단, 인간의 자유와 평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다. 인류의 역사가 권력을 한 곳에 집중시키고, 그렇게 모은 권력을 다시 모두에게로 되돌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상대적 약자들의 권리를 다른 사람들과 균형을 이룰 수 60_57

있게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은 단순한 공식을 푸는 문제가 아니라 오랜 역사와 세대와 경험과 현실이 복잡하게 꼬인 헝클어진 실을 푸는 일이다. 서두른다고 빨리 해결할 수도 없고 천천히, 감수성을 열어가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필요한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면 될 일이다. 앞 세대가 도달하지 못 했던 곳을 우리 세대는 도달했고, 우리 세대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서 다음 세대는 살아갈 것이다. 촛불로 권력도 교체시키는 수준에 이르렀는데, 잠시 정지나 퇴보가 있다 하더라도 길게 보면 계속 나아가는 과정 아닐까. 따라서 여성이든 동성이든 남성이든 상관없다. 나는 건축가만 관심 있다. 그냥 여성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된 시기가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고, 나는 성별에는 무감각한 채 프로젝트들만 뒤적거리며 머리를 쥐어싸매고 있을 뿐이다. 그러는 동안 초기에는 유명한 건축가들만 하는 것 아니냐던 의혹에 한 가지가 더해졌다. 남성 건축가들만 하냐는 비아냥이다. ‘팔 수 있는 건 다 팔아’라고 생각했던 초기에는 여성도 중요한 이슈였다. 하지만 한동안 건축만 봐야겠다고 생각하고부터는 거의 잊어버렸다. 의례적으로, 잡지를 만들 때마다 여성건축가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다. ‘여성 건축가를 다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고는 매번 리스트만 훑고 넘어가는 일의 반복이었다. 사람들이 추천하는 여성건축가는 거의 알려진 분들뿐이고, 솔직히 누구를 해도 비슷비슷할 거라 생각했다. 대부분의 산업이 남성 중심으로 발전하고 여성은 비교적 늦게 합류한 것처럼 건축에서도 마찬가지다. 온전히 개인의 역량만 평가하면 되는 분야와 다르게 많은 사람들 ─ 그나마도 남성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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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성된 ─ 과 함께 하며 전체의 역량을 끌어올려야 하는 건축가의 직업 특성은 여성에게 도움이 되기는 커녕 불리할 공산이 크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렘 콜하스를 기대하지 않듯 자하 하디드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건축에 대한 의지, 의지를 제대로 세우기 위한 지속적인 삶과 노력으로써의 규율, 건축이 가진 가능성의 틈을 벌리고 확장시키는 건축가 자신의 색깔. 건축가로 생각하는 누구든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가지고 있는 미덕들을 여성건축가에게서도 보고 싶을 뿐이었다. 가끔 2000년 전후에 유명했던 여성건축가들 생각이 났다. 공교롭게도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졌던 몇몇 분들이 비슷한 시기에 건강 상의 이유로 소식이 뜸해졌다. 풍문과 함께 ‘건축이 아직은 여성이 하기엔 힘든 일인가봐’ 정도의 분위기를 접한 기억이 있다. 57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여성건축가 이야기가 나왔다. 또 한

번 리스트를 훑었고, 또 한 번 마음에 몇 가지 안을 생각했다. 돌아가신 분들의 작업을 좀 더 살펴봐야겠다는 것과 검토 중인 남성건축가 몇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과 정수진(SIE)을 다루겠다는 것이다. 앞의 것은 자료를 찾아보다 타임리미트에 걸려 무기한 연기됐고, 남성건축가들은 마지막까지 미적거리고 고민하는 내 태도 때문에 결과적으로 여성건축가를 다룰 수 있게 돼버렸다. 정수진을 선택한 이유는 복잡하지 않았다. 프로젝트에서 건축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 다른 이들에 비해 비교적 선명하다고 생각했다. 지향하는 바도 분명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한 가지는 다른 60_57

건축가들에 비해 거품이 적다고 느끼기도 했다. 미디어의 좋은 점이란 좋은 걸 많은 사람들에게 알린다는 것인데, 때로는 그게 악영향을 끼칠 때가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좋아 보이게 하는데 신경을 쓰도록 만드는 것이다. 작업은 쏘쏘so-so인데 폼은 확실히 건축가다운 경우도 있다. 작업은 그럴듯해 보이는데 건축가가 아니라 자본력만 보이는 경우도 있다. 열심히 한 건 알겠지만 한 것보다 과한 포장이나 평가가 되레 거리감이 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거품을 많이 생산하는 것 자체가 미디어시대의 미덕이 돼버려서인지 미디어는 우리가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자료들을 통해 접했던 건축가 정수진의 작업과 말들이 비교적 수수하고 담백하게 받아들여졌다는 게, 51호 이후 여성건축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 정도면 좀 더 알아보고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부부건축가들을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그들을 만나지 않은 건 크레딧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잡지 작업을 하면서 공동으로 건축가를 소개하기 원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줄곧 거절해왔다. 해야 한다는 판단이 들면 따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부부건축가의 경우는 판단이 어려웠고, 더구나 건축계 사람들과 교류가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미지의 세계였다. 게다가 결과물에서 사람이 보이면 좋겠지만, 요즘은 그런 결과물 접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지금이라면 이런 식의 고민은 하지 않겠지만, 이때까지는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diller scofidio+renfro를 다뤄도 한 명만 떼어 낼 요량이었을 것이다. ‘속 좁다’는 소리를 듣는 게 신기하지도 않은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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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집>(2011)과 <이-집>(2015)만 생각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사진집을 만들던 디테일집을 ⓒ 남궁선

만들던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매번 기획이 내용뿐 아니라 형식까지도 달랐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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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는 땅이고 에디터는 건축가가 된 것처럼 매번 다른 땅을 붙잡고 설계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정수진은 일관된 설계 방법론이 있었는데 반해, 나는 일관된 편집 방법론이 없었다. 최대한 정수진에 어울리는 형식을 찾고 싶었다. 정수진이 설계한 주택들 중 인상적인 것은 외부에 면한 개구부가 최소화된 중정을 둘러싼 형태의 주택들이었다. 그녀의 건축에 대해 폐쇄적이라는 평가가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문제지만 비슷하게, 세상이 건축가 정수진을 바라볼 때 편견을 갖게 하는 몇 가지 면들이 있었다. 주택, 근생 등 신도시의 소형 설계 위주라는 점, 폐쇄적으로 보이는 디자인을 한다는 점, 프랑스 유학파의 컬러가 확연하다는 점, 한 가지 스타일을 고수한다는 점, 여성건축가라는 점 등이 그것이다. 작업을 하기로 하고 일정 기간의 스터디를 거쳤다. 200개 넘는 프로젝트를 체크한 적도 있고 200개 가까운 매체 자료들을 검토한 적도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스터디에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건축 스타일도 명확했다. 그녀에게는 좋은 건축이라는 관념이 있고, 그걸 향해 가는 방법도 일정하다. 그러니 현장에서 상황이 변하면 거기서부터 전체를 조정하고 균형을 잡는 건축가와는 다르게, 그녀에게 현장은 설계도면을 충실히 재현하는 장소다. 오차 범위를 넘어가면 이미 지어진 벽도 부순다는 마인드 역시 당연한 것이다. 그녀와 그녀의 팀이 최선을 다하지 않을 거라는 의심은 불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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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최선에 가까운 어딘가이며, 따라서 그녀의 건축에서는 즉흥적이거나 변칙적으로 삽입되는 디자인도 보기 어렵다. 무예로 따지면 유도보다는 태권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스타일의 건축가는 아마 평생 동안 건축 작업을 해도 많은 변화를 거치지 않는다. 건축 자체의 구분보다는 건축가의 인생을 시기별로 구분하는 식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건축에는 0과 1의 두 단계만 있을 텐데, 그나마 발전과정이 아니라 항상 정해져 있는 완성의 지향만 있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건축가의 프로젝트에서는 기복만 느껴질 뿐 그 외 다른 부분들은 비교적 명료하다. 스터디 후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한 가지는 그녀에게 좀 더 큰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꾸준히 할 일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주로 주택 프로그램을 다룬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주택은 볼륨에 비해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가장 많은 프로그램이고, 요구를 채우는데 익숙해져버리면 건축에 대한 생각이 흐릿해질 때가 많은 법이다. 그림을 예쁘게 그려야 한다는 게 아니다. 한옥 같은 타이폴로지를 변용하는 작업을 하는 시대가 아닌 이상 오늘날의 건축가는 형태, 공간, 재료, 비례, 가치, 생활, 환경 등 건축과 관련된 모든 부분에서 자기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계속 조정해나가야 하는 운명이다.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수용하기 전에 건축가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 클라이언트에게 주고 싶은 것, 세상에 전하고 싶은 것 등등의 건축관이 없는 상태라면 건축가는 보통의 건물을 좀 더 그럴듯해 만들어보고 싶어하는 의지가 있고, 그로 인해 최소한의 자기완결성은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은 힘이 많이 들어간 듯 보이지만 풀어지는 것보다는 그쪽이 훨씬 좋아 보이기도 하고, 점점 편안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건축관을 정리해 볼 수 있는 프로젝트, 예를 들면 갤러리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터디 후 떠오른 다른 한 가지 생각은 앞서 이야기한 편견들이었다. 읽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독자들에게라면 그녀의 건축은 한눈에 쉽게 파악되듯 보여질 것 같았다. 프로젝트 수도 많지 않은 데다 규모, 유형, 재료를 쓰는 방식이나 디자인 방식까지 큰 차이를 느끼기가 어려워서, 독자들이 건축가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이미지로 편견이 만들어질 거라는 게 고민이 됐다. 프랑스 유학파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분화해나가는지를 찾아보고 그 경로 안에서 정수진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재밌는 일이 되겠지만, 정수진 세대 이전의 경우 유학파 중에서도 프랑스 쪽은 어느 정도 스테레오타입이 보이는 곳이다. 주어진 잡지 작업 기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도 낮을 뿐더러 세밀하게 정리하지 못하면 자칫 프랑스 유학파 건축이라는 쉬운 단정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건축가가 여성이라는 점은 애초에 강조하고 싶은 이슈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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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게 만들어주는 전문가에 머물기 십상이다. 정수진은 건축가로서


쉽고 끌리는 이미지들이 만드는 편견이 건축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고민해보겠지만,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건축가 성향을 생각해 보면 아직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프로젝트를 하나씩 소개하는 방식도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프로젝트를 깊고 다양하게 소개하는 방식이 적합한 건축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지금 만들려는 것이 단행본 아닌 잡지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우리 잡지는 결과물이 아니라 이야기와 의미를 전한다. 잡지가 소수의 프로젝트를 다루려면 마스터피스에 가까운 공감대가 필요한데, 그러기에 정수진의 프로젝트들은 아직 시대적 평가가 내려질 정도의 시간을 살지 않았다. 아카이브 목록에 올려두는 정도가 적절한 선택일 것이다. 어느 날 정리해 둔 인터뷰 녹취록을 다시 읽다가, 문득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로 이어진 녹취록을 문단으로 끊어보니 서른 개가 넘게 들어 있었는데, 의외로 기승전결이 있는 수다였다. 이전의 포맷이었다면 인터뷰는 일정 분량만 잘라서 뒤쪽에 몰아넣을 터였다. 인터뷰 내용과 프로젝트를 한 번에 읽히게 편집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맞물리기 시작했다. 참고도판들을 이야기에 맞춰 배열해 보니 적당히 섞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화보집처럼 사진은 시원하게 60_57

볼 수 있게 하되 프로젝트들의 파편만 보이게 하고 내용은 어려운 것 없이 편하게 읽히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전혀 어렵지 않은, 오히려 너무 간단한 전략이었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되레 불안한 그런 방식이었다. 그냥 감이었다. 건축가 입장에서는 복잡하게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보다는 프로젝트들을 하나하나 자료 위주로 소개하는 게 프로모션에 더 도움이 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에 비해 나는 건축가가 자신의 건축을 돌아보거나 생각할 것들을 찾길 바라는 쪽이다. 물론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하나를 전하고 싶기도 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어쩌면 57호 방식이 우리가 다듬어서 안정적인 수준까지 끌고 갈 수 있는 포맷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와 글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글이 조금 남사스럽다는 기분이 들면 그게 오히려 좋은 징조라는 얘기를 하곤 한다. 그럴 때는 매끈하고 우아하게 문장을 다듬으려 하지 말고 그 느낌을 견디라고 말한다. 글 쓰는 이도 힘을 좀 빼고 독자들도 편안해지는 지점이라는 게 의외로 그런 데서 발견되곤 하기 때문이다. 57호 포맷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톤이나 내용, 편집은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우리 건축가들을 잘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포맷이 아니라 건축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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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내가 원하는 잡지의 성과가 다른 이들에 비해 멀리 있었기 때문에 안정적인 포맷 같은 말은 내 머릿속에 머물 자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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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다음 작업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 않지만 늘 안정적인 결과로 나 같은 독자를 기쁘게 하는 건축가들이 있고, 그녀가 그런 건축가가 되길 바랐다. 누군가는 그녀의 작업이 너무 형식적이지 않냐고 말하기도 하는데, 공자께서 이미 좋은 말씀을 남긴 바 있다. 현실적으로 계산하느라 예禮를 잃어버릴까 두렵다는 식의 이야기였는데, 형식을 갖추지 않으면 편해질 것 같지만 게으르기 쉬운 인간이 형식마저 없으면 그만큼 내용을 잃기도 쉬워진다는 거다. 견고함이 자연스러워져야지, 자연스러워 보이려고 풀어지는 건 오히려 좋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녀가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키길 바라고, 찾고자 하는 것을 60_57

찾기를 바란다. 수다 같은 이야기를 모아둔 57호를 통해 건축가에게 건네고 싶었던 건 딱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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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건축가가 될 거라면 가급적 최고에서 시작하기를 바란다. 최고는 눈에 띌 테니까. 이기적인 이유지만, 그러면 나 같은 건축에디터가 찾기도 쉽다. 건축에디터가 최고의 건축, 건축가를 찾아서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게 독자를 비롯한 건축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물론 이런 식의 이야기에 다른 고민을 하는 독자들이 생길 수 있다. ‘세상에 최고의 건축이라고 생각되는 것만 의미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에 대한 나의 대답 역시 ‘예스yes’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최고‘만’ 의미 있고 도움 된다는 게 아니라, 최고‘도’ 의미 있고 도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딱히 부정할 필요가 없다. 그냥 독자와 건축계에 도움이 되는 많은 방법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 가지 생각을 중심에 놓고 전체를 재단하는 건 심각한 문제지만 의견을 가지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어떤 종류의 생태계든 다양성을 유지하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된다. 건축에디터는 최고의 건축, 최고의 건축가를 찾고 정리하는 일로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그건 자신이 속한 분야에 도움이 60_58

되는 일이니까. 그런데 ‘최고’란 무엇인가? 쉽게 생각해 보자. 가요 프로에서 1위를 한 가수와 노래가 있다. 최고다. 그중에서도 연말 가요대상을 수상한 가수와 노래가 있다. 최고다. 1위는 못 해도 대중적인 지지를 얻는 가수와 노래가 있다. 최고다. 상賞과는 인연이 없지만 비평가들과 소수 마니아의 지지를 얻는 가수와 노래가 있다. 최고다. 아무도 안 알아주지만 최소한 자신에게만큼은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가수와 노래가 있다. 최고다. 어느 날 문득 듣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가수와 노래가 있다. 최고다. 사람들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고 즐겁게 해주는 가수와 노래가 있다. 최고다… 음, 이런 식으로 따지면 세상에 최고 아닌 게 없을 것 같다. 나름대로 다 최고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당신은 아파트 가격으로 마당 있는 집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건축가예요’, ‘당신은 재밌는 건축이야기를 TV로 보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건축가예요’, ‘당신은 싸고 빠른 설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건축가예요’, … 전문가란 누군가의 필요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고, 필요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걸 원하는 누군가에게 최고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순수하게 최고의 건축, 건축가를 따지는 일은 탄소 알갱이 하나 없이 다이아몬드를 빚는 일처럼 무모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것처럼 보인다. 추상적인 세계가 원래 그런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질문의 폭을 좀 좁혀 보자. ‘건축에디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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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건축, 건축가란 어떤 것일까?’ 건축에디터의 필요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건축은 무엇이고 건축가는 누구인가? 이것은 건축에디터가 스스로 최고를 찾으려 하지 않을 때의 가장 핵심 질문이 될 것이다. ‘최고의 건축이 뭐냐’라는 질문이 관람자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예술작품처럼 밑도 끝도 없는 것과 다르게, 이 질문엔 어느 정도 근사近似한 답이 있다. 건축에디터의 필요라는 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니까 말이다. 크게 보면 둘 중 하나다.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거나, 보람을 느끼는데 도움이 되거나. 사실 돈과 명예는 모든 현실인간의 기본 요소다. 그게 있어야 살아가고, 살아갈 수 있어야 일도 계속할 수 있다. 일단, 건축에디터가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려면 당연히 매체가 많이 소비되어야 한다. 내놓으면 반응이 빵빵 터지는 건축이나 건축가가 최고다. 반응도 없이 실소失笑만 툭툭 터지면 괴롭다. 심장에서 나간 피가 동맥을 거쳐 정맥을 타고 다시 심장으로 되돌아와야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일이든 생산과 소비가 연결되어야 살아갈 수 있다. 심장이든 매체든 건강한 펌프질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먹고 사는 일에는 적정선이라는 게 없다는 것이다. 현실은 비교할 것 투성이고 미래는 불안한 것 투성이다. 먹는 양이 변하지는 않는다. 오늘 세 그릇 먹었으면 내일도 그만큼 먹으면 된다. 다만 더 먹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하고, 못 먹게 될까 걱정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심장의 펌프질은 일정한 게 건강한 거지만 시장에서의 펌프질은 일정한 선을 넘어 잉여를 축적해야 건강하다고 생각되기 쉽다. 60_58

심장박동이 ‘대박’인 사람 얼굴엔 죽음의 홍조가 피어나지만 시장에서 ‘대박’친 사람 얼굴엔 세상 다 가진 듯한 홍조가 흘러넘친다. 시장이란 비유하자면 더 많이 쥐어짜기 위해 멀쩡한 사람 눕혀 놓고 심폐소생술에 전기충격기, 에피네프린 주사를 놓고 급기야는 배를 가를 수도 있는 그런 곳이다. 편집장이 되어 건축가 한 명 다루는 건축잡지 만든다고 이야기했을 때 들었던 질문,

“다음에 누구 나와요?” “OOO 건축가예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한 번도 시원하게 긍정적인 반응을 들었던 기억이 없다. 기성 건축가들 중에서도 꽤 유명한 사람들이 다뤄졌는데도 말이다. 나도 남 신경 안 쓰기로 유명한 사람이지만은 정말 어느 때에는 부르지도 않은 앰뷸런스가 인근을 배회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갑자기 스트레처에 눕혀 주사 맞는 그런 일은 상상하기도 싫지만, 일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매진이라는 이야기에 들뜬 적도 있는가 하면, 생각과 다르게 반응이 잠잠한 때도 있었다. ‘빌어먹을’이라는 관형사를 쓰는 게 허락된다면, 나는 그것을 ‘반응’이라는 말 앞의 수식어로 놓고 싶다. 성과가 숫자로 나오면 사람들은 편집방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숫자가 나오지 않으면 언제든 의혹과 불만이 제기된다. 그러면서도 내가 숫자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면 사람들은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며 훈계한다. 물론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종류의 펌핑 기술은 다 써보고 싶었다. 건축가 한 명으로 한 권을 다루는 아이디어는 펌핑이 아니라 전반적인 체질개선을 위한 시도였다. 우리가 정한 방향에선 펌핑할 거라곤 건축가밖에 없는데, 우리나라에서 티켓파워 있는 건축가란 손으로 꼽을 정도인데다 그나마 점점 가라앉는 출판시장에서는 그 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매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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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건축 이야기만 하고 있다가는 차분하게 빈사瀕死상태에 도달하기 쉽다. 이럴 때, 인간이 의미를 판단하고 반응하기 이전에 차이 자체에 반사적으로 반응한다는 걸 건축에디터도 잘 알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건축에디터는 굳이 건축을 선별하지 않아도 된다. 차이를 선별하는 것으로 족하다. 건축매체는 건축매체시장의 줄임말이고, 당장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쪽은 건축매체로서의 신념보다는 시장 기능 쪽이다. 달라 보이는 것, 즉 차이를 독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일단 눈길부터 끄는 방식은 강심제를 투여하는 것처럼 효과적인 방식이다. 그로 인한 내성耐性을 잘 관리하고 그 사이 체질을 건강하게 개선할 수 있다면 말이다. 대부분의 건축매체가 그 정도의 언저리에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캐릭터로 자리를 굳힌 매체가 아니라면 시장의 점점 빨라지는 속도를 뒤쫓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고, 그건 정말 카드돌려막기처럼 지치는 일이다. 점점 쎈 약이 필요해지고, 나중에는 답도 없이 늘상 해왔던 걸 반복하며 자신도 모르게 취약과 도태의 과정으로 접어든다. 그래서 차이만 제시하는 매체는 늘 위태로움을 깔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약효가 있기 때문에 건축에디터들은 ‘달라 보이는’ 것들에 집착한다. 최소한 그게 건축에디터가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는 방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건축에디터에게 최고의 건축은 ‘다른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고, 최고의 건축가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 건축가가 건축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림 그리는 사람처럼 돼 버리는 건, 뭐라도 쉽게 눈에 띌 다른 이미지를 요구하는 건축매체와 자신을 드러내고 지름길이자 패턴이다. 물론 매체도 핑계는 있다. 독자가 점점 더 글을 읽지 않고 이미지로만 판단하는데다 난독증까지 심해져서 말을 길게 붙이는 게 부담스런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이다. 그래도 핑계는 핑계일 뿐이다. 건강한 매체를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도 매체가 해야 할 역할 중 하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건축에디터가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는 ‘쉬운’ 방식은 납중독처럼 해로운 것이 몸에 쌓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더구나 보여줄 게 차이 나는 이미지 뿐이라면 이미 인터넷으로 세계의 건축 정보들이 공유되고 있는데 굳이 더 세련되지도 못한 한국에서 생산된 이미지들을 들여다보고 있을 이유가 없다. 우리 건축매체들이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게 결국 독자들에게 제대로 된 실재(세계)시장에 어울리는 소비태도를 학습시키기 위해 규모가 작은 모의(지역)시장을 시뮬레이션하는 서비스를 제공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하면 너무 심한 이야기일까. 세계가 열린지 오래지만 우리 자신이 만든 주도적 성격의 건축문화가 어디 한 군데라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먹고 사는 건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시장을 지향함에 있어 스스로 인간다움이나 전문가다움을 유지하려 애쓰지 않으면 결국 시장에 되먹힌다. 통제할 수 없는 빨간 구두는 스스로 발목을 자르지 않는 한 떼어 낼 수 없다는 어느 잔혹동화의 교훈처럼. 앞에서 노래에 대한 비유를 한 바 있다. 그런데 노래는 혼자 만족하고 혼자 최고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건축은 다르다. 건축은 그럴 기회를 얻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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싶은 욕구를 가진 건축가들의 암묵적 합의가 시장 속에서 만들어내는 어두운


어렵지만, 기회가 있다 한들 그렇게 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라는 비판을 듣기 쉽다. 창의력의 영토는 무한하지만 건축의 영토인 토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축에 관한 지나친 생각들, 환상幻想은 페이퍼를 벗어나는 경우가 드물었다. 환상은 시장의 직접적인 에너지원은 아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액션visionary architecture은 언제나 희소했다. 그것이 시장의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환상을 예지력으로 추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장에서 건축으로 스타starchitect가 만들어지는 하나의 패턴이 생겼다. 그들이 거침없이 신세계를 열어가는 동안 대부분의 세계건축이 공통적으로 앓아야 했던 병폐가 있었다. 이전 시대의 지역 건축가가 박한 건축정보와 얕은 저작권 개념 속에서 모조품 생산의 유혹에 빠지기 쉬웠다면 20세기 후반 이후의 지역 건축가들은 스타키텍트의 과정이나 결과를 답습하는 게 일상이었다. ‘대한민국에 건축은 없다’, ‘한국에서 건축은 비즈니스일 뿐이다’(«대한민국에 건축은 없다», 이상헌 지음, 효형출판, 2013) 같은 우리 안의 고백이 선명해진 게 2013년 여름쯤의 일이다. (서구의

가치가 중심이어야 하냐 아니냐가 중요한 건 아니다. 우리 안에 여전히 희망을 일궈 낼 밭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보편화 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일단 그들의 방식을 몸에 익히고 나서 우리 것을 고민했지만, 그것이 필요한 일인지도 가능한 일인지도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러는 동안 우리사회도 어느 곳에는 부富가 축적되고 있었다. 세계의 높은 곳에서 60_58

환상을 판다는 소문도 이미 매체들을 통해 충분히 알려졌고 기왕 쓰는 돈 의미 있고 멋지게 쓰고 싶어하는 이들도 생겨난다. 어차피 건축가의 이미지를 구매하는 거니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상품인 스타키텍트를 찾는다. 큰돈을 쓰는 일은 말 많고 탈 많은 우리나라에선 언제나 조심스러운데, 수준 높은 문화를 수입하면 큰돈을 써도 사람들의 부정적 입방아에 덜 오르는 장점도 있다. 문화열등국 건축가들과 대화하면 사사건건 생기는 불만도 문화고등국 건축가와 대화하면 어렵지 않게 풀리는 것 같은 효과도 있다. 돈은 있고, 좋아 보이는 게 따로 있다는데 굳이 열등한 걸 선택할 이유가 없다. 우리 안에서 나오는 말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권위도 없는 것 같으니 고등한 곳에 가서 인정이라도 받고 와야 뭐라도 좀 될 것 같다. 그래서인가. 매년 프리츠커상 시즌만 되면 되도 않은 기대로 설왕설래한다. 내가 ‘되도 않은’이라고 말하는 건 ‘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래봐야 전 지구적 스타키텍트 시스템을 공고히 하는 지역마케팅에 동원될 뿐인 일, 되도 그만 안 되도 그만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다시, 우리 건축매체들이 해온 일이라는 게 결국 독자들에게 제대로 된 실재(세계)시장에 어울리는 소비태도를 학습시키기 위해 규모가 작은 모의(지역)시장을 시뮬레이션하는 서비스를 제공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하면 너무 심한 이야기일까. 세계가 열린지 오래지만 우리 자신이 만든 주도적 성격의 건축문화가 어디 한 군데라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먹고 사는 건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시장을 지향함에 있어 스스로 인간다움이나 전문가다움을 유지하려 애쓰지 않으면 결국 시장에 되먹힐 수 밖에 없다. 결론은 건축에디터가 먹고 사는데 도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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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건축, 건축가는 일종의 핵에너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필요한 전기는 공급 받을 수 있지만 방사능과 폐기물 등으로 주변의 모두가 알게 모르게 부정적인 영향을 입는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건축, 건축가를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려고 찾는 건축에디터는 건축계에 착시와 교란만 제공할 뿐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건축에디터 입장에서 최고 중 다른 하나인 보람을 느끼는데 도움이 되는 건축, 건축가를 찾으면 될까? 보람이란 결과적인 만족감,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일의 가치 같은 것들을 통칭한다. 자부심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표준국어대사전) 건축과 건축가를 통해서 건축에디터가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면 된다는 건데, 언제 그럴까? 신작 소개가 주요 콘텐츠인 건축매체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건축가를 발견하고 소개하는 일을 할 때 보람을 느낀다. 거기에 독자들의 긍정적인 피드백까지 더해지면 ‘알려야 한다’라는 저널리즘적 소명이 더해지기도 한다. 건축 생태계의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일이니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다만 앞에서 이야기했듯 차이만 소모시켜서는 괜히 언더그라운드에서 조용히 자기 길 가는 건축가를 오버그라운드의 습속–체인에 옭아매기만 할 뿐이다. 만약 건축에디터가 건축가를 발견한다면, 건축가에게는 없으면서도 도움 되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게 좋다. 건축에디터로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알 수 있고 사람들도 존중하는 일은 돈 문제와는 별개로 명예로움의 관점에서 최고다. 건축에디터에게 최고의 건축, 건축가는 따로 있지 않다. 그건 건축에디터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이 방식이 당장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른다. 다만 돈 되는 것 좀 찾아보려다 별별 이야기를 듣거나 소모적인 경험을 해야 하는 것에 비하면 차라리 홀가분한 방식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어쨌든 마음을 정했다면 이제 건축가만 찾으면 된다. 그리곤 곧바로 문제에 봉착한다. 이번 호 잡지 앞쪽에서 언급한 적 있는 것처럼 건축에디터 입장에서 직관적으로 소개할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우리 건축가가 잘 안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이 일본과 비교할 때 음반시장이 1/30에 불과해도 나름대로 들을 만한 게 있고 한류라는 이름으로 해외에서 소비되기도 한다. 컨텐츠가 아이돌 중심으로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상업적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한국적 환경의 특성일 것이다. 한국의 건설시장은 일본의 1/4 규모인데 국가별로 보유한 세계적으로 인지도 높은 건축가들의 비율을 생각해 보면 제곱 수준 이상으로 거리가 벌어지지 않을까 싶다. 한 건축가에게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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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길을 충실히 가도록 응원하고 독자에게는 중독성이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중국의 현대건축가 100명이 하는 전시회를 보고 깜짝 놀랐다는 거다. 하나하나의 완성도가 그만큼 높았다는 얘기였다. 만약 한국건축가들로 그런 전시를 한다면 몇 명쯤 가능할까? 나는 속으로 세던 숫자가 한 자리 수를 못 넘고 있었고, 건축가도 100명은 어림없고 10명 정도 하면 가능하지 않겠냐고 했다. 물론 생각하기 따라서는 우리도 다룰 만한 건축가가 270명 정도는 있고 앞으로 계속 좋은 건축가들이 나올 거라는 긍정적

전망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지나치게 긍정적이라서 채택하기도 기대하기도 어렵다. 기본적으로 한국건축은 종 다양성지수로 보면 말도 안 되게 낮을 것이다. 획일적이고 상업적이라는 비판은 한류 아이돌 문화뿐 아니라 한국건축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굳이 따져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이유는 건축가들의 대부분이 ‘이런 맥락에서, 이런 여건에서, 이런 문제를, 이렇게 감각적으로 잘 해결했음’ 정도의 이야기를 하고 그런 결과를 내보이기 때문이다. 건축가마다의 근본적인 차별화는 생각에서 비롯되어야 하는데 우리에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데 익숙한 건축가는 소수 중에서도 소수다. 물론 새로운 프로젝트들은 계속 쏟아지고 있다. 그걸 보고 있으면 한 사람이 다 못 풀 정도로 프로젝트 양이 많은 탓에 많은 건축가들이 나눠서 풀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다른 생각을 60_58

하거나 접하거나 받아들이는 일에 익숙치 않기 때문에 다른 건축가의 작업을 보면 가격, 재료, 디테일, 디자인 같은 실용적이거나 눈에 보이는 부분에만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작업 결과를 존중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여건이 좋아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건축비만 넉넉하면…” “나도 금수저면…” 물론 그 안에도 고민해야 할 현실이라는 게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기본개념은 건너 뛰고 문제풀이 기술만 업데이트시켜온 것과 다를 바 없지 않나 싶다. 그래서 작업 결과물을 볼 때마다 분명히 이전보다 점점 더 잘 만들고 세련된 느낌이 들면서도 뭔가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 것이다. 그 ‘뭔가’가 바로 건축가의 생각이고 이야기다. 이것은 그대로 건축가의 방향을 나타낸다. 방향이 없고 크기만 있는 것을 스칼라scalar(ex. 길이, 질량, 넓이, 체적, 시간, 온도 등)라고 하고, 방향과 크기가 함께 있는 것을 벡터vector(ex. 힘, 속도, 가속도)라고 하는데 이걸 건축에 빗대어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길이가 긴 건물을 보면 ‘길다’라고 말할 수 있고, 다른 건물들과 길이를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건물의 보편적인 성질을 설명할 뿐 의미 혹은 의미 있는 차이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런 식의 관점으로는 현실의 건물은 스칼라적 해설을 넘어서지 못한다. 벡터화될 수 있는 것은 크기와 더불어 작용점과 방향을 가진다. 건물의 길이에 의미가 부여되려면 바로 그 작용점과 방향이 필요하다. 작용점은 건축가의 건축관이고, 방향은 건축가가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가리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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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이다. 우리는 그제서야 ‘쎈 건축’이나 ‘공간에서 느껴지는 속도감’ 같은 벡터적 설명으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관점에서 보려 하더라도 생각보다 의미 있는 로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지 않다. 건축가들의 이야기가 담기는 건축매체에 기록되는 건 주로 건축소묘다. 대략적인 해법은 기록되지만 건축관, 특히 건축가의 생각이 비롯되는 지극히 주관적인 작용점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분업이라고 해야 하나. 오히려 다른 건축가나 비평가가 그걸 유추해내거나 기존 계보 안에서 정리해보려고 시도를 한다. 솔직히 나도 건축가가 모든 걸 다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짐이 너무 많다는 생각마저 한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나 순서에 대해 너무 무감각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건축가가 생각이 없으면 건축가에게서 비롯되는 가치에 대해 고민해보는 다음 작업도 없고, 그것이 전체 건축 맥락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는 그 다음 작업도 없다. 물론 그런 게 없어도 클라이언트는 행복할 수 있고 건축가는 만족할 수 있다. 다만 우리 건축계 안에서 그것들이 벡터화되지 못 하고, 우리는 데이터만 쌓을 뿐 우리 서로를 움직일 무언가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너무 거창하게 이야기한다는 이유로 잘 안 듣게 돼버린 선배 세대들의 건축관 탓인지 다음 세대는 거창함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그 다음 세대는 이전 세대들의 고민보다는 나아진 환경에서 차려진 재료들을 잘 편집하고 있으면 장점은 강화하고 단점은 보완하면서 발전시키는 게 어느 분야에서든 기본 전략이 된다. 그와는 다르게 우리의 건축을 세대가 이어가는 과정은 번번히 단절을 반복하는 것 같다. 건축의 존립에 대해 고민해야 했던 시절의 디자인 감각이나 디테일이 오늘의 수준으로 보기에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로서니 거기 있는 장점까지 버릴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어쨌든 우리 건축계는 같은 시대에 여러 세대가 활동하며 동시에 쌓여 있는데, 이야기는 앞쪽에 주로 남겨져 있고 뒤로 갈수록 소소해지다 못해 투명해진다. 물론 이런 내 생각에도 상당한 착시가 껴 있을 것이다. 익히 알다시피 SNS 같은 소통 도구들이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건축 전문가 세대들을 끌어당기고 이야기를 풀어놓게 만들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사라지는 건축에 관한 코멘트들에 익숙한 요즘의 분위기를 보면 별도로 중요하고 대단해야 할 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럴 때 흥행하는 건 정파보다 사이비인데, 사실 나는 둘 다 별로다. 정파는 정파 같지 않고 사이비는 사이비 같지 않다. 정파의 조급함이 느껴지는 것도 별로고 사이비의 느긋함을 느끼는 것도 별로다. 어쩌면 우리는 정파에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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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것에 좀더 관심이 많다. 보통은 장점과 단점이


것만 있는 셈이니 사이비도 순수한 사이비 아닌 사이비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겠다. ‘‘Like’ is more.’ 긍정할수록 풍부해진다Yes is more는 말이 윤리와 시장 사이에서 갈등하는 건축가들에게 일시적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박하사탕 같은 선언이었다면, 건축도 건축가도 구분하지 않는 SNS 속 네트워크의 ‘좋아요Like’는 건축과 건축가를 좀비zombie로 만드는데 일조한다. ‘이미 죽은 걸 죽일 수 없다’라는, 한류 열풍을 좀비로 보는 미국 기자Mark Russell의 표현에 동의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어린왕자는 길들여짐을 통해 관계를 맺고 소중함을 인식하지만, 길들여진 건축과 건축가는… 60_58

좋은 소리를 가진 음악가가 오래 가는 이유는 음악이 소리를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다. 비록 ‘음악하다’와 ‘노래를 부르다’가 다른 세계를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소리가 다양할수록 음악도 풍성해진다. 그런데 소리는 노력해서 얻는 것보다 타고난 것들이 길을 여는 분야다. 건축가도 일정 부분 타고나는 게 중요하겠지만, 그 타고나야 하는 능력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된다. 생각, 안목, 협력, 현실인식, 디자인, 관리, 엔터테인먼트, 그 외에도 다양한 감각을 골고루 갖고 있어야 한다. 한 가지를 잘 하면 그걸로 돋보일 수 있겠지만, 건축의 감각이란 단일 감각을 뽐내는 것보다 종합적인 감각을 뽐낼 수 있는 균형감각에 가깝다. 좋은 소리만으로도 아름다운 음악을 표현할 수 있지만, 한 가지 월등한 감각으로 아름다운 건축을 표현할 수 없다. 먼저 눈에 띄는 월등한 감각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머지들이 가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건축은 예술과 다르게 영원한 시간 아닌 현실의 시간을 살아내므로, 좋은 부분이든 그렇지 않은 부분이든 결과적으로 남아 있는 현실과 건축이 스스로의 민낯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좀 건방진 이야기이고 게다가 몇몇과 나눈 소소한 이야기지만, 나는 대중이 존경하는 어떤 건축가에 대해

‘그는 좋은 건축가라기보다는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건 순수하게 내 의견이고 다른 이들이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몇몇 건축가는 그 의견에 대수롭지 않은 듯 수긍했다. 굳이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감각적으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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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후회했던 것은 내 판단이 지나치게 결과물 중심으로 치우쳐 있었다는 점이다. 건축가의 생각과 의지가 비롯된 지점을 의미롭게 볼 눈이 없었고, 그나마 인내심 있게 들을 귀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종 다양성만 외치면서 내가 원하는 종 다양성만 인정하는 민폐–에디터에 불과하다. 건축가의 생각은 중요하다. 스스로 생각하는 건축가는 길을 고민하는 사람이고, 길을 열어가는 그 과정 안에서만큼은 그 건축가가 유일할 수 있으며, 그러니 최고라고 하지 않을 도리가 없겠다. 건축의 블루오션은 거기 있는데, 많은 이들이 결과물에 광택 내는 레드오션에 도전하는 풍경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것도 우리 모습이니까 긍정적으로 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심할 정도로 획일적이고 상업적이면서 건축가로 평가까지 받겠다는 뻔뻔함을 보면 정말, 퉤. 아, 글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빼먹었다. 58호에 관한 직접적인 글을 한 줄도 쓰지 않은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김영준은 좋은 건축가다. 그에게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그는 이미 건축가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충분히 보여줬다. 60_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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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 작업은 정말 힘들었다. 욕심을 부려도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딱

거기까지라는 생각을 했다. 당장 생각나는 건축가들이 몇 명 더 있었지만 2년 동안 10권을 마무리하는 프로젝트도 일단락되는 시점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어떤 건축가든 다룰 수 있는 상황이긴 했다. 구분하고 따져서 만난 건축가들 덕분에 구분하고 따지는 일의 무의미함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었다. 외국 건축사무소와 협의를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한 번 지향점을 한국건축가로 정한 이상 결단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먼저 접촉하고, 먼저 미안하다고 했다.)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로컬 건축에디터의 쓸데없는 고집 같은 게 있다. 생각이란 늘 변해서, 잡지에서 건축가를 20명 다루겠다고 생각할 때와 100명 다루겠다고 생각할 때의 건축가 선정 방식은 전혀 다르다. 10명으로 1차 매듭 짓겠다고 생각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는 만나보겠다고 주변에 이야기한 건축가가 있었다. 그에게 연락해보기로 한 시기가 왔을 즈음, 건축가 시리즈 작업을 2017년으로 끝내기로 내부적으로 60_59

정리를 했고, 나는 예정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그리고 결국 한 명이 모자란 아홉 명의 건축가를 다루는 것으로 이 작업이 끝나게 됐다. 초기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만 하고 싶은 시기가 오면 ‘한국에 건축가 더 없음’ 같은 몇 글자만 쓰고 잡지 대신 노트 만들어서 독자들에게 보내고 나와야겠다는 식의 황당한 엔딩 씬 말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구분하고 따져서 만난 건축가들이 그런 생각을 지워버리도록 도와줬다. 조언도 듣고 잔소리도 듣고 그랬다. 그들이 건축가로 살면서 남긴 흔적들을 뒤쫓다 보면 순간의 영원한 이미지를 지키는 일 같은 건 그들과 하등 상관없을 뿐 아니라 한없이 시시한 일처럼 보이기도 했다. 많이 배우고 많이 느꼈다. 내가 작업을 멈추기로 한 이유는 건축가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더 할 수가 없어서였다. 작업을 하면서 나는 점점 더 책상에 머무르는 게 좋아졌다. 시간을 쓰는 방식은 생각을 하는 방식도 바꾼다. 작업을 하고 연구를 하고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 일들 속에서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생각을 좀 더 여유 있게 만들려면 마음을 좀스럽게 만드는 무식부터 어떻게든 해야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몇 가지 레퍼런스에 집중하는 건 효율적인 방식이지만, 그 전에 폭넓게 갖추지 못한 지식과 마음은 늘 걸림돌이었다. 정말로 여유가 필요했다. 책이나 더 보자는 생각을 했다. 어쩌다 보니 59호가 마지막이 됐는데, 기획 섹션을 J에게 맡겼기 때문에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작업 이외의 시간을 거의 독서로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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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 작업이 한창일 때 건축가 주대관을 만났다. 2000년대 초 철암 작업으로

유명했던 그이지만, 다른 대부분의 건축가들처럼 그 역시 초면이었다. 그는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우리말로 순화하면 색안경이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에게 그는 운동가처럼 불편한 사람으로 비칠 수 있고, 그에게도 세상은 색으로 보이지 않을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J와 함께 만났다. 둘은 구면인데다 J가 건축가로서 그를 좋아하기도 했다. J는 건축의 공공성 문제에 관심이 많다. 토지 문제 등 관련 관심사가 많은데 건축가 정리하는 작업을 하느라 관심을 뒤로 물려두고 있었다. 59호를 주대관과 함께 하기로 한 후 어느 날엔가는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누가 먼저 했더라. 그게 철암세상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건축가를 정하기 전에는 그냥 J가 건축가를 아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관심이 많았다. 만약 기획 섹션을 내가 정리했더라면 J가 만든 것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을 것이다. 기왕 집짓기 활동 16년의 역사를 보여주기로 정했으니,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좋아하는 나는 땀과 술과 빗물과 눈물의 액체들로 버무려진 현장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쪽에 초점을 맞췄을 것이다. 당연히 태양에 익고 땀에 절은 구리빛 피부색이 컬러의 중심 톤이 됐을 것이다. 이미 이쪽으로 유명한 사무엘 막비Samuel Mockbee(1944–2001)나 어셈블Assemble이 만든 정제된 이미지의 60_59

결과물에 익숙한 눈으로 보면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결과물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안에서, 아마도 나는 이미지 아닌 우리의 현실을 봐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을까. 과정과 현실을 담아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같았지만, 한 부분에서 J의 생각은 달랐다. 일단 내용에서 땀 냄새부터 지웠다. 담담하게, 건축가와 참여자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기록하려 했다. 처음엔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역시 작업자에서 관리자나 독자의 시선으로 돌아서면 가장 쉽게 끌리는 포인트를 벗어던지기가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J의 방식이 오히려 내가 원하는 방식이었다. 건축가가 대체로 ‘어떻게’ 잘 만드는가를 고민하는 것과 다르게 주대관은 건축가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는 J의 이야기는 나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59호 에디토리얼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J는 16년 간 이어온 22개의 주요 프로젝트들을 통해 건축가와

작업팀이 겪은 일들 중 주요한 고리들을 정리했다. 첫 번째 집짓기 프로젝트에 붙인 ‘서투른 손’이라는 제목 때문에 웃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재밌게 보았다. 내용이 더 디테일할 수 있지 않겠나라는 가정은 이미 별개의 문제였다. 우리는 늘 작업시간이 부족한 방법을 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간자료들과 프로젝트 썸네일 등을 체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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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건축가 미팅과 돌아와서 건축가의 어떤 면을 볼 건가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한 달은 금방 지나가버렸다. 정리하다 보면 시간은 늘 부족하고 디자이너는 디자인할 시간이 없었다. 포맷과 네트워크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잡지가 딱 그 둘만 빼고 작업을 붙드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일시적인 집짓기 행사처럼 참여자들이 즐겁고 폼도 나는 이벤트와 다르게, 꾸준히 집이 필요한 사람들과 시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한국 건축가의 삶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취재 중 건축가는 추후 집짓기 과정을 별도로 정리해보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아마도 생동감 있는 많은 사진들과 참여한 이들의 많은 이야기들이 담길 것이다. 59호에 정리된 걸 봤을 테니 최소한 더 재미 있고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겠나 예상한다. 좀 더 근사해 보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고민하지 않고 ‘집짓기’라는 키워드를 선택한 이유는 그것이 어떻게 보이는가와 무관하게 그가 건축가로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독자나 매체가 좋아할 만한 이미지는 아니더라도 관심을 가져야 할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다. 관련된 일을 하는 많은 보이지 않는 건축가들이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만나고 60_59

싶다. 잡지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축디자인이 좀…”이라고 말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맞아요. 디자인이 좀…”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편집장으로서의 나라면 “우리가 한국에서 살고 있다는 걸 생각하세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몇 명에게는 그렇게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59호를 내고 난 후의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요. 기회 되면 그런 일에 한 번 직접 참여해 보세요. 그러면 당신이 디자인에 관한 한 우리나라의 이쪽 분야에서 금방 톱클래스로 기록될 거예요.” 진심이었다. 좋은 건 좋은 거고 아닌 건 아닌 거고, 어쨌든 많은 이들의 관심이 필요한 건 사실이니까. 잡지에 소개한 아홉 명 건축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집단화시키지 않으면서도 한데 묶는 걸 잘 하는 건축가도 있고, 프로젝트에 가장 적합한 형태의 행정과 프로세스를 짚을 건축가도 있고, 프로젝트를 사회적으로 공론화시키는 힘을 가진 건축가도 있고, 주어진 여건에 최적화된 해법을 내는 건축가도 있고, 최선의 감각으로 디자인할 건축가도 있고, 이벤트화하여 시민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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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유지시키는 건축가도 있고, 건축계에 상상력을 공급할 건축가도 있다. 그들이 좋은 편집장을 만났더라면 좀 더 많은 다른 꿈에 대해 모여서 이야기하고 만들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외활동 제로의 편집장이 이런 일에서만큼은 좀 쓸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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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던 날 저녁, 오랜만에 J를 만났다. 에필로그의 에필로그 같은 60호를 마무리하기에 좋은 이야기는 어떤 걸까 같은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에필로그의 에필로그의 에필로그 아니겠냐며 웃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책상에 앉아 어떤 이야기로 마무리를 해볼까 고민을 하고, 나는 문득 60호 작업을 위해 편집팀이 마지막으로 모였던 지난 2017년 12월 12일의 풍경을 떠올렸다. 시옷시옷한 일상. 시시하고 소소하고 수수하고 세세하고 사사로운 편집실 동료들과의 일상이다.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건 생각을 쌓고 행동을 쌓고 그렇게 일상을 쌓아 누군가 만든 길 위에서 좋은 길,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일 아닐까. 그날의 기록과 간단한 글로 60호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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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 2017.12.12

“우리 가게는 앞으로 조미료를 치지 않겠습니다.”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많은 것들이 변한다. 작업자들도 변해야 한다. 가격, 맛, 비주얼을 비롯한 많은 것들이 다시 숙제가 된다. 뽕짝 좋아하는 세대에게 제3 세계음악을 권하는 게 어렵듯 기존 방식에 익숙한 독자에게 다른 형식을 권하는 일도 마찬가지란 걸 알고 있다. 알면서도 ‘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우리 내부에 있었고, 변해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던 걸로 안다. 그것을 위해 나와 우리가 있었고, 그것을 위한 과정이었다. 어느 건축가의 말처럼 건축이나 건축가를 경외하게 하거나 숭상하게 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건 동일한 심정이다. 할 수만 있다면, 감동을 나누고 싶다. 지난 아홉 명의 건축가들은 모두 두 달의 작업 기간 동안 우리가 뭘 하는지 잘 모르는 상태였다. 우리도 잘 몰랐고, 그 시간을 가능한 성실히 보내는 것 밖에는 답이 없었다. 그렇게 나온 결과였다. 독자들이 더 견뎌줬으면 좋겠다. 건축을 좀 더 즐겁게 유익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으로 넘어가기 위한 판단이라는 것을. (믿어달라.) 어째서 마지막엔 믿음만 남게 되는 걸까? 1 더하기 1이라서 2라는 식으로 간단히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문화와

가치와 미래와 우리 사이에 영원히 머물러야 할 사랑 같은 것들은 수식으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그런 건 아닐까? 저녁 6시, 편집실 모임이 예정돼 있었다. 사당역. 내가 있는 곳에서 지하철로 10분 거리. 5시쯤 먼저 움직여 다른 일을 보고 신림역 지하철로 들어섰다.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이어폰으로 듣고 있는 음악을 바꾸기 위해 본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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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간은 5시 32분이었다. 사당역엔 15분 정도 먼저 도착했고, 나는 곧바로 지하도에 연결돼 있는 서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올 초 출간된 책을 찾아다녔다. 책을 찾는 일은 번거로웠다. 검색 결과 세 권이 남아 있고 ‘B100’이라고 분류되어 있는데 그런 매대나 책장은 없었다. 직원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다들 바빠보였다. 근처에서 책장을 정리하고 있는 직원의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된 것처럼 보일 즈음 그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제 물어도 괜찮다는 표정의 그녀는 검색대에서 책의 정보와 위치를 종이로 출력하고, 계산대가 있는 곳으로 가서 다른 직원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종이를 받은 다른 직원이 “아~” 하며 우리가 지나온 방향으로 걸어갔다. 나는 첫 번째 직원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두 번째 직원 뒤를 따랐다. 책은 매대 아래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비닐로 쌓여 있었다. 그녀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역시 비닐에 쌓인 문학잡지 최신 호를 집어들어 계산을 하고 서점을 나왔다. 사당역 5번 출구로 나가는 방향 아래서 멈춘 시간은 오후 5시 57분이었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책들에 쌓인 비닐을 벗겨 인근 쓰레기통에 버리고, 사진가 K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태령이야.” “5번 출구 밑에 있을 거니까 괜히 추운데 나가서 헤매지 마시라고요.” “알았음.” 바깥 온도는 영하 10도에 가까웠고, 체감온도는 그보다 좀 더한 상황.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이곳 저곳으로 흐르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문득 신해철의 <재즈카페> 노랫말이 떠올랐다. ‘어느 틈엔가 우리를 둘러싼 우리에게서 오지 않은 것들.’ 지식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살아가는 도시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60_59

많은 것들 속에서 살아간다. 필요한 것이 ‘보온기능’ 하나였다면 훨씬 적은 종류였을 패딩이 가격, 머티리얼, 디자인, 컬러, 브랜드 등으로 분화되며 수 없이 많은 양태로 내 눈 앞을 흘러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울린 전화. “거기 가실 거죠? 5번 출구 쪽.” 에디터 J는 이미 저녁을 먹을 장소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처음엔 마치 거기에 없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사실 이건 그의 버릇 같은 것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것에 대해 ‘그건 뭔가요?’라고 묻는 게 일반적인데, 그는 ‘그건 이렇다고 볼 수 있는 건가요?’라고 묻는다. 물음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걸 전달하면서 타인의 의중을 살피는 방식 같은 거다. 돌아가는 답변은 같다 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 하나에 대한 판단은 포함하는 셈이니 비교적 효율이 높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좀 상투적으로 느껴질 만큼 많아서, 가끔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해서 하는 거야’라는 느낌을 받을 때면 조금 피곤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는 아직 책임을 질 만한 위치가 아닌데도 너무 조심한다는 생각이 들고, 그럴 때는 괜히 좀 미안하다. 사진가 K가 와서 먼저 식당으로 가서 주문을 하고, 이내 디자이너 S도 도착을 했다. 재질이나 스타일만 다를 뿐 다들 검은 상의를 입고 있어서 ‘검은 뭉텅이 넷’ 같은 상상을 했다. 편집회의는 따로 하지 않는다. 51호 같은 모습을 발전시켰다면 오늘의 모임은 형식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시트를 만들고 콘텐츠들의 진행 상황을 체크하면서 전반적인 조정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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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일상적인 편집실의 모습. 하지만 52호 이후 편집회의는 없어졌다. 사실은 없어진 게 아니라 잡지의 포맷을 바꾸면서 편집회의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고 하는 게 맞다. 최소 1년 치, 아니면 반년 치라도 콘텐츠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나도 동의를 하는 편이고 실제로 그럴 수 있는 상황처럼 보였다. 잡지 한 권에 건축가 한 명을 다룬다는 건, 일단 건축가만 선정되면 그다음 작업은 프로세스에 따라 진행하기만 하면 되는 일인 것처럼 복잡해 보이지 않고, 실제로도 내부적으로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나만 빼고. 그렇게 될 수 없었던 가장 간단한 이유는 ‘어떻게 보이게 만드는’ 것을 멈추려고 했기 때문이다. 가볍고 많은 이야기를 담더라도 그것들이 건축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건축가의 캐릭터나 작업의 의미를 먼저 판단한 다음 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콘텐츠를 다양하게 쪼개는 작업을 하는 게, 말하자면 ‘순서’였다. 거기서 가장 큰 장벽은 건축가 열 명을 미리 섭외하더라도 우리가 그를 어떻게 보고 이해할 것인지를 설정하는 과정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사전에 건축계에서 도출된 납득할 만한 이야기들이 있었다면 우리의 과정은 좀 짧아졌겠지만, 바로 그 과정을 검토하는 데만도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물론 도움을 받는 일도 가능했다. 건축계에도 전문가들이 60_59

많으니까 건축가를 이해할 방향에 관한 건 전문가들과의 협업으로 풀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됐다. ‘이번에 소개하는 건축가는 누구인가?’ ‘누구다.’ ‘너무 뻔한 건축가들만 다루는 것 같다.’ ‘그런가? 그러면 이 건축가에 대해 좀 아는가? 우린 그 정보가 필요하다.’ ‘그냥 이런 재료, 저런 디자인, 그런 얘기 하는 사람 아닌가?’ ‘…’ 모든 전문가들을 다 알아본 건 아니다. 하지만 건축계에서 건축가를 보거나 이해하는 분위기라는 것이 그다지 우리 작업에 도움될 만한 게 아니라고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스스로 건축가에 관한 자료와 프로젝트들을 최대한 확인하고, 그 과정에서 계속 건축가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하면서 해당 건축가가 가진 많은 이야기들 중 건축을 꿈꾸거나 관심 있는 사람들이 공유할 만한 한 가지 이야기를 정해서 나아가는 과정을 반복했다. 두 달 중 그 작업에 들어가는 시간이 거의 한 달 이상이었다. 그건 충분한 시간이 아니라 후반 작업과 마감까지를 고려해 투입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이었다.

“2주 주세요. 2주.” 디자이너 S는 투명한 오르골 기계음처럼 늘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리고 나는 늘 미안하다. 사진가 K와는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만들어오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작업’과 ‘작업자’에 대해 존중하는 입장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것도 사실은 사진가의 일방적인 배려에 가까웠지만. 35년 차 베테랑이 아니라면 내가 만드는 잡지에서 사진은 진작에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잡지의 프로세스라고 할 수 없는 ‘스터디’ 과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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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이상을 써버리는 구조였기 때문에 사진 작업도 디자인도 덩달아 밀릴 수밖에 없었다. 잡지 제작도 건설처럼 패스트 트랙을 만들어 볼 수도 있었지만, 참여자들의 열의를 결집시키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는 거죠.”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S가 문제제기를 했다. 독자를 위한 기획이라면 그들이 돈을 내고 펼쳐보면서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할 텐데, 지금은 누구를 위해 잡지를 만들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데다가 점점 더 선택하기 어려운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55호 이후부터 편집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다 그랬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56호와 59호 같은 경우는 디자이너로서 선택하고 싶지 않은 포맷이었을 것이다. 기획에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을 쓴 데다가 마지막까지 에디터들은 이야기 하나 찾아 넣는데 신경을 쏟고 있었다. 디자이너가 디자인 고민할 틈도 없이 기획에 맞게 정리하는 방법밖에는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정말 지금 결과에 만족하세요?” “응.” “정말요?” 그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원한다. 하지만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고, 나는 눈을 만족시키기보다 이야기를 담아두는 쪽을 택했다. 나는 만족한다. 누가 뭐라든 최선을 다했다. 누구보다 안타까움을 크게 느끼지만, 그것까지 포함해서 나는 우리의 작업을 좋아한다. 외모는 여건만 개선되면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는 60_59

부분이고, 내용을 남기기 위한 노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 없어야 한다. 나에겐 그게 도덕성이다. 우리가 다룬 건축가의 신작이 다른 잡지에 게재된 걸 본 적이 있다. 크리틱인지 에세이인지 모르겠지만, 짜증스러웠다. 배운 게 있으니 전문가처럼 보일 수는 있겠지만 그가 얼마나 불성실했는지 그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만약 나라면 그 글을 잡지에 실을 수 있을까? 독자가 판단할 기회를 주는 것은 매체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그 원고를 들고 그에게 가서 대화를 하고 싶을 것 같다. 어쨌든 좋은 의도가 있을 것이고, 그 좋은 의도가 글자에 파묻혀버리지 않게 할 좋은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필자도 그런 과정은 원치 않는다. 더구나 다들 바쁘다. 나는 바쁜 사람들과는 일하지 않는다. 정당하게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결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작업자가 아니다. 건축가에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면 그 요구를 하는 사람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여야 한다. 어쨌든. 돌이켜 보면 2016년의 우리는 너무 무리했고, 2017년의 우리는 좀 더 나은 여건에서 해야 할 작업을 하면서 소화하기 힘들어했던 것 같다. 비교적 젊은 건축가들의 작업에 대해 닫혔던 마음도 조금씩 열리고 있었지만, 나는 내 작업을 닫기로 했다. 지혜라는 것이 내게도 있으면 좋겠다. 자리를 인근 카페로 옮기고, 몇 가지 정도 느슨하게 60호 작업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편집회의는 늘 느슨하게 진행된다. 작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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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자가 한다. 에디팅과 라이팅은 에디터가 하고, 사진은 사진가가 하고,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한다. 나는 그들이 열의가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아는 이상, 그들이 그 이상의 작업을 할 수 있더라도 그건 그들 스스로의 판단일 뿐 더 요구하지 않는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역시 처음 해보는 방식에 대해 약간의 모호함과 긴장을 공유하면서 미팅을 끝냈다. 책상에서— 1970년대 포스트모던 절충주의와 1900년대 초기의 근대주의에 관한 자료를 읽고 있었다. 전자는

이데올로기나 집단적 접근보다 오브제 지향의 개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시기였고, 후자는 건축을 객관적인 내용이 포함된 본질로 정의하려 했던 시기였다. 시대의 전환에 관한 기록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건축이 사회적인 요구에 직접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느꼈다는 아돌프 로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매체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요구 혹은 독자 니즈needs 관점에서 보면 60호 작업은 빛보다는 그림자를 지향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는 이번 작업을 통해 건축가보다는 건축에디터에 관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작업이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사람들이 기다리는 건축매체 결과물은 시각중심의 어떤 것이다. 시각중심문화가 지나칠 때 그것을 일종의 환각상태로 인식한다면, 그에 대해 대응하겠다는 태도 자체가 문제된다고 할 수는 없을 60_59

것이다. 문제는 대응의 강도다. 어떤 일이든 지나치면 전체를 위한 대의大義도 개인의 충동衝動으로 비치거나 혹은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다. 더구나 ‘–주의-ism’, ‘–주의자-ist’ 꼬리표가 촌스러워진 요즈음에 대의는 생존의 틈바구니에 기생할 뿐이다. 그러니 의미 있는 일은 세상이 인증한 누군가에게 맡겨두고 나머지 모두는 시장에 충실하는 것으로 각자의 역할을 다 한다고 믿으며 살아갈 수도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편집장)’ 역시 마찬가지 생각을 절반쯤은 갖고 있다. 지난 아홉 권의 {와이드AR}을 읽으면서 ‘더 이상 잡지를 팔지 않을 생각이군’ 하고 판단을 내린 독자가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만약 그/그녀가 어느 날 나를 만난다면 ‘어떻게 하면 잘 팔아볼까’로 많은 시간 즐겁게 수다를 떠는 생뚱맞은 상황에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 그런 생각이 우리 편집실의 99%를 채운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1%, 너무나도 편협하고 너무나도 옹졸하고 너무나도 단단한 1%가 남아 있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처음의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부르즈 할리파>의 꼭대기층까지 올라서고는 세상을 내려다보며 문득 노트를 접어 종이비행기를 만들고 목표도 뚜렷하지 않은, 그저 날리는 것만이 목표가 되는 행위를 하고 다시 빌딩의 가장 낮은 곳으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일이었다고나 할까. 한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 검증된 유명 건축가들을 만나러 가서 충분히 멋진 그들의 모습을 경험하고서도 결과적으로 우리가 세상에 전한 건 그들이 가진 많은 근사한 것들 틈에 끼어 있는 작은 이야기 한 가지 정도였던 것처럼 말이다.

120


독자들의 손을 잡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평소보다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선 뒤 돌아서서 다시 손을 내민다. 허공에 뻗은 손. 우리 모두의 사이에 이만큼의 공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

‘본 적 없는 건물과 들은 적 없는 이야기를 전해주세요’와 ‘이 건축가의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해주세요’라는 두 개의 선이 사실은 교차가 불가능한 평행선이라는 걸 깨닫는 일. 선의 기울기를 조정하기 전에 선의 존재를 먼저 인식해야 한다는 생각을 벗어나지 못 했기 때문에 독자들을 바라보면서도 그 맞은편 독자들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선을 그리는 일에 열중했다. 이렇게 쓰면서도 표현이 너무 거창하게 전달될까 걱정이다. 딱히 굶지도 않았고 잡지가 안 팔린다고 걱정한 적도 없다. (독자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진행했던 건축가 시리즈를 일단락짓기로 했을 때, 여러 상황 속에서 다 전달되지는 못한 우리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다. 일종의 매듭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어느 날 편집장이 고민하고 발행인이 제안하여 편집간사가 동의한 것을 편집실에 통보한 후 시작된 작업이었고, 대표로 편집장이 글을 썼다. 그리고 오늘 {와이드AR}과 함께 하고 있는 모두에게 드리고 싶은 말, 60_59

“감사합니다.”

121


WIDE #56

건축가 조병수

WIDE #57

WIDE #58

건축가 정수진

WIDE #59

건축가 김영준

건축가 주대관

EDITORIAL

EDITORIAL

PHOTO-LOGUE

EDITORIAL

이방인의 건축법

Switch—건축소수자 되기

도시와 건축가

건축가의 위치 ─ 언어와 현실 사이,

VARIABLE

TALK ONE. ONE DAY MET

STORY-A

시차

거부와 실험 사이 연결통로의 법규 해석

산전수전

외장재 교체

<이-집>설계과정

나무를 피하는 골조선

<하늘집>

ESSAY

와이어를 활용한 녹화 입면

대표작

나의 건축 좌표

시간을 들여 결정에 다다르기

입면을 만들지 않는다. 이유는

와이어 브레싱

다이어그램, 이게 뭔 짓

역보의 활용

사회적 실험으로서의 집짓기 집짓기의 목적 오늘의 집이 내일을 지탱한다 서투른 손

ARCHITECTURE & ANALYSIS

부작용

YO2 프로젝트 읽기

보존과 보상 실마리

안전환경수용설계

TALK TWO. CHARACTER

쓰는 말用言

건물 진·출입 데크 조정

정수진이라는 사람

ㄱㅣㅁ-ㅇㅕㅇ-ㅈㅜㄴ

구조의 지속가능성

‘SIE’의 의미

조경을 활용한 보완

트라우마

PROJECTS

투 바이 식스

수직 패턴 변주

‘E’의 의미

박수근 미술관

세가지 제안

디자인과 시공성을 반영한 입면

양면성, 하지만 편집증

경세원

잇다

120-40=80

대학생 정수진

서광사

도서관의 입지 조건

예산과 계획의 입장 차이

휘트니 비엔날레

자하재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건축

흡음재 없이 흡음하는 방법

파리 유학

자운재

지붕 경사도 조정

앙리 시리아니 선생님 1

서귀포주택

투 바이 텐

부족한 공사비, 남은 주요 작업

앙리 시리아니 선생님 2

MG주택

2km

설계 변경과 대체 자재

앙리 시리아니 선생님 3

Y주택

2350

경암층의 출현

아뜰리에 3년, 대형 설계사무소 3년

K주택

인제에서 영월로

독립, 고립

허유재

양구에서의 교훈

INTERVIEW

첫 번째 기회, 아쉬움

파주 상업시설

건축가 조병수

두 번째 기회, 좌절

동일테라스

건축과 사회의 연결고리

세 번째 기회, 성취

국립현대미술관

마가지

중정형 주택

학현사

4평학교

네오텍

농성장에서 추모장으로

TALK THREE. ARCHITECTURE

파주출판도시 공동주거

미인도

작업 방향

가평 주거단지

먼립

색깔 혹은 고집스러움

고덕강일 2 지구 8단지

마가지2 호

도면과 시공

휴맥스 연수원

포도넝쿨

안 되면 다 뜯는다

하이난 리조트 마스터플랜

캉촹 炕床

퀄리티=감리

베이징 물류항 마스터플랜

꿀잠

PROJECTS

온그라운드 갤러리 F1963

실험을 넘어서

건축가가 만나는 전문가들

하이퍼 카탈루냐

나이≻건축가≺여성

해인사 신행문화도량

INTERVIEW

건축을 생각할 때 중요한 것

행정중심복합도시 도시개념

건축가 주대관

외부 마감 재료

건축 올림피아드 함부르크

‘빈 곳’, 공간, 感

행정도시 첫마을

SHUT CLOCK

퀄리티 그리고 디테일

출판도시 2 차단지 기본구상

철암 2006

태권도 공원 TALK FOUR. VISION

하고 싶은 건축

ZWKM 블록

현대자동차 그룹 신사옥 남해명주 에코아일랜드

격월간 건축잡지 {와이드AR} 정기구독 및 구입안내는 128p 참조


건축영화 공부방

제36차 상영작

WIDE

2018년 WIDE건축영화공부방은 ‘다시’ 건축물(Building)에 시선을

맞춥니다. 우리는 2012년 4월 이 코너를 시작하며 ‘성가신 이웃’(제1차 상영작)을 통해 르코르뷔지에의 크루체트 하우스를, ‘콜하스 하우스라이프’(제2차 상영작, 2012년 6월)를 통해 렘 콜하스의 보르도

주택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건축가가 설계한 집의 사용자 관점이 투사되는 각각의 경험은 건축전공자는 물론 건축에 관심 많은 일반 대중에까지 영화로 소통하는 건축 이야기의 진수를 보여줄 터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일시 2018년 2월 7일(수) 7:00pm

장소 이건하우스 NOTICE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 161) 방장 강병국(간향클럽 자문위원, WIDE건축 대표)

참석 신청 예약 총원 총 30인 내외로 제한함 (선착순 마감 예정) 신청 예약 방법 네이버카페 <와이드AR> WIDE건축영화공부방 게시판에

각 차수별 프로그램 예고 후 선착순 접수 상영작 주최

모리야마-산 Moriyama-San│63분│감독 Bêka & Lemoine

간향클럽, 미디어랩&커뮤니티 주관 WIDE건축, 와이드AR

개관

집주인 모리야마 씨, 영화는 일주일 간 ‘그의 집’에서 ‘그의 행적’을 기록한다. 동경 외곽의 전형적인 작은 마을. 이 마을에 마치 ‘주사위를 던지듯’(건축가 니시자와의 표현) 10개의

후원

작은 매스로 분절된 주택이 있다.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니시자와 류에의 모리야마 주택이다.

이건창호

클라이언트의 요구, 또 주변 환경과의 조화 등 다양한 조건과 건축가의 창의성이 잘 결합된 예다. 그의 개념 스케치를 보면 매시브해질 수 있었던 건물이 10개로 분절된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다. 노이즈 뮤직과 실험 영화, 그리고 독서를 즐기는 모리야마 씨. 그의 일상은 너무도 자유롭다. 5개의 매스는 주인인 모리야마 씨가 사용하고 나머지 5개는 임대 주택이다. 건축가의 의도와 주인인 모리야마 씨의 삶, 그리고 건축가보다 더욱 예리한 시각의 소유자 ‘일라 베카’의 카메라를 따라가 본다. 모리야마 주택의 개요

위치: 일본, 동경│작업기간: 2002~2005│설계: SANAA 니시자와 류에│대지면적: 290,07㎡│건축면적: 130,06㎡│연면적: 263,08㎡│규모: 지상 3 층, 지하 1층

125


간향클럽, 미디어랩& 커뮤니티

간향클럽 사람들

간향 미디어랩 GANYANG Media Lab.

우리는 건축가와 비평가 및 다방면 건축의 파트너들과 함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지방(locality), 지역(region),

[와이드AR 편집실 editorial camp]

청년(youth), 진정성(authenticity),

편집장 이중용 사진총괄 김재경

실용성(practicality)”에 시선을

편집간사 정평진

맞추고, “건축을 배우는 후배들에게

디자이너 신건모, 낮인사

꿈을, 건축하는 모든 이들에게 긍지를” 전하자는 목표 아래 건축한다는 것만으로

[와이드AR 논설실 editorialist]

반갑고 행복한 세상을 짓는데 함께 힘을

논설고문 이종건 논설위원 김정후, 박인수

보태겠습니다. [와이드AR 전문위원실 expert member] 우리는

비평전문위원 박정현, 송종열, 이경창 사진전문위원 남궁선, 진효숙

건축계 안팎의 현안을 주시하며 이슈를 발굴-공론화하고, 나아가 건축동네의

[와이드AR 발행편집인실

계층, 세대, 업역 간의 골 깊은 갈등 구조를

publisher & partners]

발행위원 김기중, 박민철, 박유진, 오섬훈, 우의정, 조택연 공동편집인 김재경, 이주연, 정귀원

중재하는 매개자 역할을 통해 우리 건축의

네트워크팀장 겸 에디터 박지일

현재와 미래를 견인하는 지렛대가 되고자

마케팅팀 박미담

합니다. 그로써 이 땅에 필요한 건강한

발행인 겸 편집인 전진삼

건축 저널리즘을 구현함은 물론 건축과

소식

대중 사회를 연결하는 미디어 커뮤니티가

[와이드AR 유통관리대행

되겠습니다.

distribution agency]

우리는

[와이드AR 제작협력 production partners]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잡지

서점관리 심상호, 정광도서 직판 박상영, 삼우문화사 제작자문 김기현, 시공문화사spacetime 종이공급 박희진, 신안지류유통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인쇄관리부장 손운일

월례 저녁 강의

인쇄제작국장 김은태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땅집사향)}

인쇄처 대표 강영숙, 서울문화인쇄

건축가들의 이슈가 있는 파티 {Architecture Bridge(ABCD파티)} {인천건축도시컨퍼런스 ICON Party}

간향 커뮤니티 GANYANG Community

건축역사이론비평의 연구자 및 예비 저자를 지원하는 {심원건축학술상} 신예비평가의 출현을 응원하는 {와이드AR

[고문단 advisory body]

건축비평상} 내일의 건축저널리스트를 양성하는

대표고문 임근배

{간향저널리즘스쿨 GSJ}

고문 구영민, 김원식, 박승홍, 이충기

건축 비평 도서 출판 {간향 CRITICA} 국내외 건축과 도시를 찾아 떠나는 현장

[후원사 patron]

저널 {WIDE 아키버스} 인간·시간·공간의 이슈를 영상으로

[자문단 creative body]

건축·디자인·미래학 강의실

운영자문 공철, 김동원, 김종수, 김태만, 류영모, 손도문, 신창훈, 안용대, 이성우, 이수열, 이윤정, 임재용, 정승이, 조남호,

{간향 AQ포럼}

최원영, 하광수, 황순우

어린이·청소년 건축학교 {AB스쿨}

전문분야 자문 강병국, 고영직, 고충환, 김영철, 박병상, 박철수,

등의 연속된 프로젝트를 독자적으로 또는

안철흥, 우종훈, 이정범, 전진성

파트너들과 함께 수행하며 우리 건축 문화의 켜를 기품 있게 다져 www.ganyangclub.com

126

대표 김연흥, 김찬중, 박달영, 승효상, 이백화, 이태규, 장윤규, 최욱

따라잡는 {WIDE 건축영화공부방}

나가겠습니다.

명예고문 곽재환, 김정동, 박길룡, 우경국, 이상해, 이일훈, 임창복, 최동규

[협력기관 program partnership]

심원건축학술상 심사위원회 김종헌, 박진호, 우동선, 함성호 심원건축학술상 역대 수상자 박성형, 서정일, 이강민, 이연경, 이길훈, 강난형 심원문화사업회 사무장 신정환

[협력사 project partner]

마실와이드 대표 김명규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

‘건축가 초청강의’ : Architects in Korea (시즌5)

(약칭, 땅집사향)

우리 건축 장場의 새 얼굴로부터 기성,

2017년 1월_제133차 : Architects in Korea 21

중견, 노장 건축가를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 하에 이 땅에서 활동하는 벽안의 건축가까지 주목하고자 합니다. 2016년 5월~2017년 2월(1라운드), 2017년 3월~2018년 2월(2라운드)로

이어지는 건축가 초청강의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기획위원회 박지일, 백승한, 심영규, 최호준 주관 와이드AR 주최 그림건축, 간향클럽 협찬 시공문화사Spacetime, 유오스Knollkorea

㈜이건창호 문의 02-2231-3370, 02-2235-1960

NOTICE

후원

이야기손님 민우식(Min Workshop 대표) 일시 1월 17 일(수) 7:30pm 장소 이건하우스(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 161) 주제 Min Workshop 2011-현재

* <땅집사향>의 지난 기록과 행사참여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카페 (카페명: 와이드AR, 카페주소: http://cafe.naver.com/aqlab 에서

2017년 2월_제134차 : Architects in Korea 22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손님 김용남(삼현도시종합건축 대표) 일시 2 월 21일(수) 7:30pm 장소 이건하우스(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 161) 주제 질문의 건축

127


건축리포트 와이드(와이드AR) WIDE Architecture Report, Bimonthly

정기구독(국내 전용) 신청방법 안내

{와이드AR}주요 배본처

<구독자명(기증하실 경우 기증자명 포함)>,

온라인 서점

<배송지 주소>, <구독희망 시작월호 및 구독기간>,

예스24

<핸드폰번호>, <이메일 주소>, <입금예정일>을

인터파크

통권 60호, 2018년 1-2월호, 격월간

적으시어 {와이드AR}공식

알라딘

2018년 1월 15일 발행, ISSN 1976-7412

이메일: widear@naver.com

11번가

2008년 1월 2일 창간 등록, 2008년 1월 15일

팩스: 02-2235-1968

인터넷 교보문고

창간호(통권 1호) 발행

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2011년 1월 19일 변경 등록, 마포 마-00047호

책은 입금 후 보내드리게 됩니다.

오프라인 서점

발행인 겸 편집인: 전진삼

무통장입금방법

대형 서점

발행소: 간향 미디어랩 Ganyang Media Lab.

입금계좌: 국민은행, 491001-01-156370

교보문고

[예금주: 전진삼(간향미디어랩)]

광화문점(02-393-3444)

주소: 03994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 175

구독자와 입금자의 이름이 다를 경우, 꼭 상기 전화,

강남점(02-5300-3301)

(동교동, 마젤란21오피스텔) 909호

팩스, 이메일로 확인하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잠실점(02-2140-8844) 목동점(02-2062-8801)

전화: 02-2235-1960 팩스: 02-2235-1968

이화여대점(02-393-1641) 정기구독 및 광고문의: 02-2235-1960

영등포점(02-2678-3501)

홈페이지: www.ganyangclub.com 네이버 카페명: 와이드AR

분당점(031-776-8004) {와이드AR}의 광고는 본 잡지를 함께 만드는

부천점(032-663-3501)

건축(가)네트워크와의 연계를 지원합니다.

안양점(031-466-3501) 인천점(032-455-1000)

• 본지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윤리강령 및

지면 위에서의 1차적 홍보 효과를 넘어,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실질적 수익 효과의 창출을 위해 데스크가 함께

인천 송도점(032-727-2807)

• 본지에 게재된 기사나 사진의 무단 전재 및 복사,

고민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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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를 금합니다.

부산점(051-806-3501) 부산 센텀시티점(051-731-3601)

1권 가격: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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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구독: 110,000원

종로점(02-399-5600) 미아점(02-2117-2880) 명동점(02-3783-4300) 청량리점(02-3707-1860) 김포공항점(02-6116-5544) 여의도점(02-6137-5254) 홍대점(02-2250-7733) 서울문고 건대점(02-2218-3050) 종로서적 종로점(02-739-2331) 북스리브로 홍대점(02-326-5100) 동네 서점 효자책방 소란(서울 통인동, 02-725-9470)

[社告: 가격 인상 공지] {와이드AR} 과월호 구입처 2018년 3/4월호부터 본지의 가격을 아래와 같이

인상코자 합니다. 용지대 인상 등 제작여건의 변동에

선인장(서울 통인동, 02-725-9470)

따른 조치임을 양해 바랍니다.

*2009년~2015년 발행된 본지를 파격 할인가로

구입 가능합니다.(한정수량) 1권 가격: 12,000원(인상 전; 11,000원)

연간구독료 1년 구독: 65,000원(인상 전; 60,000원) 2년 구독: 120,000원(인상 전; 1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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