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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의 시대가 온다. 이 사회에서 자신을 보여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외모나 내면과 상관없이 나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 역시 힘이 든다. 기존의 사회는 나의 가치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소비와 소유로 드러냈다. 어느 시대엔 차를 소유한다는 것이 막강한 부와 권력을 상징하기도 하였고, 변호사나 의사는 그들이 가진 라이선스를 이용해 사회의 상류계층을 차지하였다. 『소유의 종말』을 쓴 제러미 리프킨은 산업시대의 소유는 이제 끝나고, 관계를 중심으로 한 접속의 시대가 온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현재 정보화와 서비스 중심의 산업으로 변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변화로도 입증될 수 있으며, 미니홈피나 블로그 문화와 같이 네트워크를 통해 소통하는 젊은 세대들의 문화와도 연결될 수 있다. 이미 산업 전반에서는 인간의 관계와 소통을 주제로 한 다양한 마케팅이 등장하고 있으며, 단순히 상품만 소비하도록 전달하는 일방적인 관계에서 문화적 접속을 통해 네트워크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컴퓨터는 연산을 위한 거대계산기에서 커뮤니티 기계로 진화하였다. 인터넷 접속을 통해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고, 친구를 찾고, 자신만의 방을 가지고, 자료를 공유하며 여론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가상 세계라는 전혀 다른 세상이기도 하면서, 민주주의만큼이나 강력한 정치적 기제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면에서 ‘접속’역시 소유의 개념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를 제기해본다. 접속을 통한 정보의 공유라는 면에서 우리나라의 인터넷 시장이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정보의 빈부격차이다. 즉, 접속할 수 있는 네트워크에 접근하는 자와 접근하지 못하는 자는 소통이나 관계, 정보 등 자신이 목표하는 것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접속이라는 것이 곧 경제적인 이윤 추구로 드러날 수도 있으며, 사회적으로 또한, 정치적으로도 막강한 힘을 가지는 우리 사회의 커다란 메타포라면, 접속 역시 소유의 개념이 아닐까.

‘접속’은 자본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 『소유의 종말』에서는 정보화와 더불어 경제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현실공간에서 가상공간으로, 산업자본주의에서 문화자본주의로, 소유에서 접속으로 이동하는 거대한 조류’라고 설명한다. 즉, 기존의 ‘소유’라는 관념으로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대표했던 것처럼 이제는 ‘접속’이라는 관념이 인간관계를 규정하고 상품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제러미 리프킨은 전혀 새로운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이 시작되면서 기존에는 상품화되지 않았던 것들마저도 시장에 진열된다는 것이다. 상품은 점차 무형의 것으로 변해가고, 물질적인 자본의 비중이 감소한다. 무형 자산이 부상하고, 상품은 서비스로 변신하며, 모든 관계와 경험이 상품화되는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시대가 급부상하면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앞에서 제기한 것처럼 거대 기업의 통신 독점이나, 장악은 접속한 사람과 접속하지 못한 사람의 격차와 더불어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을 예전보다 더 빠른 시간 안에 독점할 수 있으며, 인간의 일상과 삶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상품화 되면서 개인에 대한 권리는 침해될 수 있다.


‘접속’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법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IT산업이나 인터넷 네트워크와 같은 분야의 직종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지금에야 경기 침체와 청년실업으로 인해 극히 안정적인 직업에 젊은 세대가 모이고 있긴 하지만 ‘접속’의 시대에 어울리는 직업군들은 큰 인기를 끄는 직종이 되고 있다. 기존의 산업시대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직업군들도 점차 ‘접속’의 세계 안으로 편입하려 하고 있다. 라이선스를 획득해 기득권을 행세했던 의사나 변호사들 역시 가만히 앉아 오는 고객들을 맞이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터넷과 미디어, 통신매체를 이용해 자신을 알리고 홍보한다. 이제 변호사는 자신의 법률적 지식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진 인간관계와 감성, 일상, 사생활 등까지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접속’의 세계는 인간관계 그 자체를 거래적 상황으로 놓이게 한다. 서로의 이익도 돕고 상호 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이익도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정한 사회의 현실이 자리잡고 있던 산업시대의 현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기도 한다. 일촌을 맺고 선물을 주면 매력지수가 올라가는 미니홈피의 ‘일촌관계’가 새로운 자본주의의 거래 방식이라는 점이 아리송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일촌’과 방명록에 등록된 글을 세어보며 강박을 나타내는 사람들처럼 ‘접속’의 시대에 요구되는 관계는 ‘고립’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닮아있다. 개인적 인간관계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이루려는 모습이나 ‘접속’된 상태와 자신을 분리시킬 수 없기 때문에 관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포털사이트나 블로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리플과 스크랩 기능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정보 강박과 함께 누군가에게 기대어 자신을 소속시키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결국, 주체를 잃어버리고 스스로를 볼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문화를 고갈시키는 자본주의 앞에서 지적한 문제에 대해 제리미 리프킨은 ‘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소통과 관계는 결국 ‘접속’의 시대에 ‘원형감옥’이며 ‘빅브라더’이다. 이렇기 때문에 문화는 다른 이유를 모두 접어두고서라도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소생되어야 한다. 문화를 소생시켜야 하는 이유에 그것이 문화를 생산하는 데 원료가 되기 때문이어서가 아니고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문화가 만들어내기 때문만도 아니다. 인간이 가치로울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문화이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가 상업화의 재료 조달원 정도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문화는 더 창조되어야 하고, 자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간이 자기 스스로를 주체로서 인식하고 주변의 문제들을 해결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체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그래서 이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다면. 적어도 ‘접속’의 시대로 다다라 더욱 더 고도화된 자본주의 앞에서 휘둘릴 염려는 없을 것이다. 『소유의 종말』은 그러한 면에서 매우 훌륭한 책이었고, 내 현실에 갇혀 세상을 보는 눈이 좁았던 나에게 좀 더 다양한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燐년에 출간된 책인 소유의 『소유의 종말』은 10년이 지난 지금 훨씬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의 책은 스스로 50년 후를 내다보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점점더 그의 예언대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 놀랍기만 할 뿐이다. 러프킨의 소유의 종말을 상업형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함과 동시에 부자가 아닐지라도 가진 소득 그 이상을 소유하고 싶은 일반인들에게 충분한 욕구충족을 시켜줄 것으로 보인다. 금융리스, 대출은 물품을 사기 위하여 금융상품에 의존하도록 하지만 사용료의 개념은 금융 비용이 들지 않으며 이를 판매기업의 이윤으로 또는 잇점으로 작용시킬 것이다. 금융기관이 너무 많은 이득을 취한다는 생각이 너무도 이상하다고 생각되던 찰나에 '소유의 종말'은 중계 서비스 부분의 지나친 이익을 없애고 생산자와 소비자간 직접적인 이해관계만을 존재시킬 것이다. 거대 자본에 의한 시장잠식 또한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너무도 거대한 기업의 힘은 정부도 넘어선다. 상업을 견제할 수단이 없다면 왜곡 또한 정당화 될 것이다. 소비형태의 변화는 사회를 변화시킬 거대한 흐름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장점은 물론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과 광범위한 시야, 여러 분야에 대한 확고한 지식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장점은 미래 사회에 대한 예견을 하면서도 한 편으로 어두운 면도 지적해준다는 것이다. 한 예로 한창 네트워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중간중간에 계속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직까지 단 한번도 전화를 걸어본 경험이 없다.“라는 말을 하며 소외된 사람에 대한 시야를 계속 환기시켜주고 있다. 그는 미래를 예측하며 미래가 안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을 예방하고 싶은 것이라고 본다.

대림대학 컴퓨터 소프트웨어과 중간레포트] 200630216, 심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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