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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집단   몽니   


‖  목차 006   •   [Special_1]   이스터에그_구글 009   •   [Special_2]   이스터에그_소프트웨어 017   •   [Special_3]   이스터에그_게임 026   •   [Review]   핵전쟁코믹스_물도마뱀 030   •   [Review]   론   레인저_이고은 032   •   [Review]   책   소개_송한별 037   •   [Text]   중편소설   죽을   날이   다가온   헤페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_성우창 055   •   [Text]   장편연재   에레혼을   위하여_이상욱 084   •   [Text]   장편연재   무안만용   가르바니온_dcdc 106   •   [Text]   단편소설   알레르기:   거부반응_한수민 123   •   [Text]   단편소설   엘리베이터_설일스 143   •   [Text]   단편소설   유적_챠리 162   •   [Image]   by   희령 165   •   [Image]   by   이고은 167   •   [Image]   by   이지영 169   •   [Column]   김의성의   예술   나누기 173   •   [Column]   로키와   함께   보는   TRPG   이모저모 181   •   [Play]   TRPG가   뭐야? 186   •   [Play]   고민해결!   마법서점_티엘


죽지도  않고    다시    뵙습니다.    유난히    덥고    습했던   여름의    끝에서   인사드립니 다,   편집장입니다. 그간   너무   달렸다는   의견이   있어서    지난    6월부터   8월까지는    그    좋아하는   오프 라인   행사도   쉬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전혀    한가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방학 이고   휴가    기간이었을    텐데    왜    하나도    한가하지    않았던    걸까요?    왜긴    왜입니까,    또   건수   잡고   일거리를   만들어서   그렇죠. 7월   중순에는    지난    2012년    본지에서    연재되었던   홍대    기담이   종이책으로   엮 여    나왔습니다.    서교예술실험센터의    지원을    받은    홍대    기담은    예약구매를   통해    첫   선을   보였고,   최근에는   EBS   라디오   ‘화제의   책’   코너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7월   말까지    원고를    받은    단편   소설   공모전   큐빅   노트는   현재    텍스툰    마감과   동 시에   단행본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당초    예정과는    다르게    총    열    편의    작품을   선 정했지만,   재미는   보장할   수   있습니다.   수상작품집이   현재   예약을   받고   있으니   관 심이    있으신    분들은    미리미리   예약하세요.   또,   오는    9월    8일    SF&판타지    도서관 에서   시상식이   열릴   예정입니다.   일반   참가도   받고   있으니   놀러   오세요. 덧붙이자면   창작집단    몽니의    모든    책은    인터넷    주문을   통해   집에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찾기   힘든   책인   만큼   인터넷도   이용해   주세요. 텍스툰   이야기를   해   봅시다. 이번   텍스툰   특집은   이스터에그입니다.   실용성에   초점을   맞추고   다양한   이스터 에그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프트웨어와    게임    쪽으로    잘    정리해    놨으니 까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신   분들은   한   번씩   실험해   보시길. 여름   끝물에   편승하고자   공포   단편   3종   세트도   준비했습니다.   설일스,   챠리,   한 수민   작가님   세   분   모두   이   작품을   시작으로   텍스툰과   작업을   시작하신   작가   분들 이십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잘   부탁드립니다.   심심한    여름   밤을   오싹하게   식히 는   작품들을   놓치지   마세요.   넘기지도   마세요.    이건    사실   절반    이상    사심이    섞인    결과물입니다만,    텍스툰에   TRPG   콘텐츠가    새로    들어왔습니다.   소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큰   인기를   끈    고민해결!   마법 서점을   출판하는   출판사   구르는   사람들에서   리플레이의   일부를   제공해   주셨습니 다.   구르는   사람들의   냐브   님과   티엘   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다양 한   인디   TRPG   룰에   대해   소개하고   계신   로키   님께서    TRPG   룰을    소개하는    칼럼 을    시작하셨습니다.    리플레이가    대중적인    콘텐츠라면    인디    룰    소개는    마니아를   


위한  콘텐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속적으로    TRPG   콘텐츠를   확장해   나 갈   예정이오니   소문을   내   주시면   좋습니다. 새   일러스트레이터   이지영   님께서    이번    호부터   새로   참가해   주셨고,   늘   유려한    원고를   주시는   희령   님이   이번   호에도   원고를   주셨습니다.   덕분에   살아갑니다.   또    이고은    님이    곡선미가    예쁜   괴물    두    점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원래는   지난   호에    실렸어야   했는데,   제   실수로   이번   호에   두   점이   같이   실리게   되었습니다.   사과   말 씀   드립니다.   그래도   괴물에게   친구가   생겨서   좋지   않습니까? 성우창   작가님의   중편   소설이    이번    호로   마무리가   되었고,   이상욱    작가님의   장 편   소설   에레혼의   위하여가   각고의   노력   끝에   수록되었습니다.   출간을   앞두고   있 는   dcdc   님의      무안만용   가르바니온   연재본도   무사히   도착했고요.   연재물이   끝나 고   이어지고   하는   걸   보면   마음이   복잡합니다.   정기   연재물을   모집해야겠습니다. 편지    형식으로    된    김의성   님의   예술나누기   3회도   안착했습니다.   인디   웹툰   포 털   핵전쟁   코믹스에   대한   물도마뱀   님의   리뷰도   꼭   한   번   읽어   주시길.   흥미로운    웹툰   포털입니다. 새로   들어온   분들이   많다   보니   왠지   신나고   기운   나고   있는   텍스툰   15호입니다.    한동안   열심히   살   수   있는   에너지를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디   저만   그런   게   아 니길   바라면서,   평소보다   두   배   가량   길어진   편집장   노트는   여기서   끝입니다.    감사합니다. + 9월   8일    큐빅   노트   시상식장에서   창작집단   몽니의   책들을   판매할   예정입니다.    야맹증,   홍대    기담,   2013   큐빅    노트    수상작품집,   그리고   호연    피망이    주    취급   품 목입니다. 9월   중에   무안만용   가르바니온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재미있는   시도를   여럿   하 고   있는데,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표지    촬영이    끝나면    예약    판매를    시작 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서   서울   와우북   페스티벌에   잘   비비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 습니다.   홍대에서   뵙겠습니다.

Editor’s  Page


[Special_1]  특집   기사

이스터에그_구글 이스터에그(Easter  Eggs)란    특 정    검색어를    입력하거나    특정    동

①  구글    검색창에    명령어를    입 력했을   때   나타나는   이스터에그

작을  했을   때,   브라우저나    프로그

구글의  검색창은    다양한    이스

램에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나는   

터에그를  숨기고    있다.    명령어에   

것을  말한다.    외국에    있던    부활절   

따라  다양한   현상을    보여   주는데   

달걀  찾기    풍습에서    유래되었고   

그중에  몇   가지   소개한다.   검색창

영화,  책,   CD,   게임   등에   사용자가   

에  ‘tilt’   혹은    ‘askew’를    입력하면   

알지  못하게   몰래    숨겨    놓은    기능

검색창을  비롯해   화면    전체가   기

을  일컫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매

울어지며  글씨가    조금    작아진다.   

년  자사    홈페이지에    기상천외한   

기울어지는  것보다   좀    더   격동적

이스터에그를  넣으며   사람들에게   

인  화면을    보고    싶다면    ‘do    a   

다양한  재미를   주고    있는    구글의   

barrel  roll’를    입력하는걸   추천한

이스터에그에  대해   소개한다.

다.  검색창이    한    바퀴    회전한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볼   

트’  14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수  있다.   그리고   믿거나말거나   공

작품이라고  하니   심심할   때   한   번

대생들  사이에서    인기    있다던   

씩  해보면   시간    때우기에   안성맞

‘ b i n a r y  혹 은    o c t a l    혹 은   

춤이다.

hexadecimal’명령어를  입력하

 

면  검색   결과   수가   차례로   2진법,   

②  구글    번역&구글    이미지    속   

8진법,  16진법으로   나타난다.   

이스터에그

구글  이스트에그    중에    가장    잘   

구글  번역으로    들어가    출발어

알 려 져  있 는    명 령 어    ‘ z e r g   

를  영어   도착어를    독일어로   설정   

rush’를  입력하면    'O'형태의    저

후  번역란에    ‘pv    zk    bschk   

글링들이  나타나    구글    사이트를   

kkkkkkkkkk’등으로  설정된    말을   

침략한다.  마우스   클릭   연타로   퇴

적고  오른쪽   하단의    듣기   버튼으

치  가능하며,   사이트가   전부   박살

로 

나면  점수가    뜬다.    ‘스타크래프

'beatbox'라고  뜬다.    클릭하면   

마 우 스 를 

가 져 가 면 


비트박스  소리가    나온다.   비슷하

기에  유용하다.   체험   할   수   있는   

게  구글    이미지    검색에서    atari   

링크:  www.google.com/

breakout를  치면    알카로이드   게

doodles/30th-anniversary-of-

임을  할   수   있는데   아타리   브레이

pac-man

크  아웃   출시   37주년을   맞이하여   

또한  구글   비행   시뮬레이터라   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한다.   마지

여  구글맵을    이용한   가상   비행   시

막엔  총   점수도    나오니   집중해서   

뮬레이터로  구글맵에   소개된   지역

해보길  바란다.   

을  비행할   수   있다.   특히   구글맵에 서   지원하는   곳은   다   되어   달과   화

③  링크를    타고    해볼    수    있는    이스터에그

성까지  지원된다.    비행기를    잘못    비행하면   아래로   내려가   폭발하게   

현재  구글    페이지에서    직접    해

되니  나름    운전기술(?)이    필요한   

볼  순   없지만   연결   돼있는   링크로   

이스터에그다.  www.isoma.net/

플레이  가능한   이스터에그이다.   

games/GogglesBeta09.swf  에서   

팩맨  30주년   기념으로   만든   구

플레이  가능하다.

글  팩맨은   검색창   메인에서   팩맨   

이밖에도  구글은    다양한    이스

게임을  할   수   있게   만들어졌었지

터에그를  숨기고    있고    현재에도   

만  지금은   사라져서   링크로써만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다.   인터

남아있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넷만  하기에   지루할   때   다양한   구

팩맨을  즐길   수   있는데   zerg   

글의  이스터에그    속으로    빠져보

rush와는  다른   재미로   시간   떼우

는  건   어떨까?


[Special_2]  특집   기사

이스터에그_소프트웨어 이미  오래    전부터    MS사의    오

‘엑셀95’에는  간단한   3D   1인칭   

피스  프로그램   속에는    다양한   이

길  찾기   게임이   들어있다.   영문버

스터에그가  숨겨져    있었다.   딱딱

전을  기준으로    설명하면,    엑셀   

하게만  보였던    엑셀과    워드프로

95실행한  후    95번째    행을    전체   

세서  속에는    의외로    게임형태의   

선택한다.  (왼쪽    95숫자를    클릭

이스터에그가  숨겨져    있다.   딱딱

하면  전체    선택이   가능하다.)    그   

하고  지루한    문서작성시간에    조

상태에서  마우스로   ‘Help’   메뉴의   

금이나마  즐거움을    느끼라는    제

‘About  Microsoft   Excel’을   선택

작자의  배려가   아닐까    싶은   이스

하면  엑셀   정보   창이   뜨는데,   Ctrl

터에그를  소개한다.

키와  Shift키를   누른   상태로   방금   


띄운  정보창의   ‘Tech   Support’버 튼을    누르면    게임이    실행된다.    ‘Hall    of    Tortured   Souls’라는    이 름의    3D    게임인데,    계단을    올라 가고,    지그재그의    길을    통과하는    단순한    방식으로,    마지막엔   개발 진의   사진이   나온다.

면  ‘Selection   Sheet’버튼을   선택 하 고    바 로    아 래 의    ‘ A d d   

‘엑셀  97’에서는    조금    더    게임   

Interactivity’  박스를    체크한    후   

같은  게임이    숨겨져    있다.    엑셀

‘저장’  버튼을   누른다.   ‘Publish   as   

97을  실행한    후   ‘F5’키를    누르면   

Web  Page’    대화    상자가    나오면   

이동(Go  To)창이    뜬다.    여기에   

‘Publish’를  누르자.   그러면    웹   페

‘X97:L97’을  입력하고    확인   버튼

이지가  저장되는데,    인터넷   익스

을  누른    후    Tab키를    한    번    누른

플로러에  들어가   저장된    웹   페이

다.  그    다음    Ctrl키와    Shift키를   

지를  열어서    2000번째    행    WC

동시에  누른   상태에서    오른쪽   위   

열로  이동하자.    (2000,    WC)탭

도구모음에  있는    ‘차트    마법사

이  화면의   가장   왼쪽   위에   위치하

(Chart  Wizard)’    버튼을    누르면   

도록  화면을   이동한   뒤   탭   왼쪽의   

3D  비행    시뮬레이터    게임이    실

2000행을  전체    선택하고    Ctrl,   

행된다.  마우스    왼쪽    버튼은    전

Shift,  Alt키를    동시에    누른    상태

진,  오른쪽   버튼은   후진이다.

로  왼쪽   위의   오피스   로고를   클릭 하면    ‘Dev    Hunters’라는    이름의   

‘엑셀  2000’에선    레이싱    게임

레이싱  게임이   실행된다.

을  플레이할   수    있다.   엑셀   2000

조작법은  방향키로    운전을,    알

을  연    상태에서    ‘다른    이름으로   

파벳  O키로   뒤에   오일을   뿌릴   수   

저장’을  클릭하고    ‘웹    페이지    형

있고,  H키로    라이트를    켤    수    있

태’를  선택한다.    창    형태가    바뀌

다.  스페이스   바를   누르면   정면으


로  미사일을   발사한다.   게임은   끝 없이    이어지는    형식으로    간단하 게   즐길   수   있다. ‘워드    97’    속엔    핀볼    게임이    숨 어   있다.    프로그램    실행    후    Blue 라고    입력하고    단어를    선택한다.   

그러나  MS사의    이스터에그는   

‘Format’  메뉴로   가서   ‘Font’를   선

윈도우  XP를    기점으로    사라지기   

택한  후   글자    색상을   파랑색으로   

시작하였다.  MS사에서    이스터에

선택한  뒤    ‘확인’을    누른    후    Blue   

그를  만들어서   생길지도    모를    보

단어  오른쪽에    스페이스바를    한

안구멍을  막기   위해    제작을    금지

번  눌러서    공백을    만들자.    그    다

시켰다고  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음  ‘Help’    메뉴의    ‘About    MS    Word’    메뉴를    선택하면    워드    소 개창이    뜨는데,    여기서    Ctrl키와   

그렇다면  다른    프로그램에는   

Shift키를  동시에   누른   채로   워드   

어떤  이스터에그들이   있을까?   지

아이콘을  클릭하면    ‘워드97    핀

금  당장    우리가   시행해   볼    수    있

볼’이  등장한다.   ‘윈도우   ME’부터   

는  이스터에그들도    존재한다.   윈

‘3D  핀볼’이    등장하며    굳이    워드   

도우의  메모장을    실행시켜보자.   

97의  핀볼을   할   이유는   없어졌지

그리고  다음   글귀를   입력한다.

만,  옛날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던    시절    워드프로세서에서    게임이   

bush  hid   the   facts

실행된다는  사실은   아마    많은   이 들에게    즐거움을    줬을거라고    생 각한다.

이  후   다른    이름으로    저장한   다 음,    다시    열어보면    ‘畂桳栠摩琠 敨映捡獴’과   같은    한자어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두    문장을   해석


하면  ‘부시가    진실을    숨겼다.’와   

하여  엄청난   수의   총알을   피해   살

‘진실은  숨기려해도    언젠가는    반

아남기만  하면    되는    게임이지만   

드시  밝혀진다.’로    해석할    수    있

난이도가  매우   어려워    기록을   세

다.  911테러가   부시와   합의된   쇼

우기는  어렵다.   좋은   기록이   나오

였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면  서버에   올려   다른   사람들과   공

자주  등장했던   이스터에그이다.   

유할  수도   있는데,   등록된   기록은    메뉴의    서버기록보기를    클릭하

그렇다면  이번엔    방송에서    다

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게임물

뤄져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

등급위원회에서  전체이용가    등

는  곰플레이어   속    게임을   찾아보

급심의까지  받은    게임이라고    하

자.  곰플레이어를    실행    시킨    후   

니  심심할   때   기록세우는   것에   도

‘F1’을  누르면   등장하는   곰플레이

전해도  좋을   것   같다.

어  로고를    더블클릭한다.   그러면    ‘닷지    1.9’라는    게임이    실행되는

또  다른    동영상    플레이어인   

데  우주   공간에서    우주선을   조종

KM  플레이어에도    숨겨진    게임 이   있다.   플레이어를   실행시킨   뒤    오른쪽    마우스   버튼을    눌러   메뉴 를    띄운    후    ‘환경설정/기타’안의    ‘이    프로그램은..’을    클릭하면    정 보창이    뜬다.   여기서    KM   플레이 어    로고를    더블클릭하면    너무나 도    익숙한    비행    액션게임    ‘라이 덴’이    실행된다.    플래시    형태로    재구성된    게임이지만    ‘라이덴’의    게임성은    충분히   살아    있다고   하 니   오랜만에   한번   해보는   것도   좋 을   것   같다.


한  내용의    이스터에그도    있다.    ‘Jasc    소프트웨어’사(社)의    그래 픽    소프트웨어   ‘페인트샵    프로’에 서는    이스터에그를    실행하면    개 가    고양이를   물어    죽이는   화면이    나타난다.   고양이는   이   회사   경쟁 사인    어도비의   ‘포토샵’   프로그램 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포토샵에는   어떤   이스 터에그가    숨겨져    있을까?    Ctrl    +    Shift를   누르고   About   Photoshop    메뉴를   선택하면   스태프를   나타내 는    정보    화면이    바뀐다.    3부터    CS6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전 통이라고   하니   이쯤되면   이스터에 그라고   불러야할지도   살짝   의문이    컴퓨터를   바이러스로부터   보호 해주는    백신    프로그램에도    이스 터 에 그 는    있 다 .    ' V 3    프 로    2000‘에서도    ’도움말    V3프로    2000    디럭스‘로    들어가    Ctrl과    Shift를   누른   후   마우스를   빠르게    클릭하면    개발자의    이름이    표시 된다.    반면    경쟁    회사를    자극하기    위

든다.  이외에도    다양하게    숨어있 다고    하니    하나하나    찾아보는    것 도   좋을   것   같다. MS사의   이스터에그를    만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    문서    프 로그램이    아닌,    익스플로러를   통 해   만나는   것인데   ‘인터넷   익스플 로러    6’에서는   ‘도움말    인터넷   익 스플로러    승인(확인이    아님)’을   


차례로  클릭하면    개발자에    대한   

NOT  SET’이란   문장이    뜨고    좌측

정보가  화면   가득    나타난다고   한

에  ‘PLAY    EXTENDED    SPECIAL   

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5’에는   익

EDITION’이라는  문구가    나오는

스플로러  로고가   알을    깨고   나오

데,  이것을   선택하면    숨겨진    엔딩

는  공룡(경쟁사인    넷스케이프를   

이  나온다.    또한    터미네이터3은   

상징)을  깔아    뭉개는    내용의    이

화면비  4:3과    16:9가    따로    출시   

스터에그가  숨겨져   있다.

되었는데  4:3    화면비로    제작된   

이  외에도    구글    크롬이나    파이

DVD에서  여주인공인    크리스티

어폭스  등   다른    프로그램에도   이

나  로켄의    전체    나신이    드러나는   

스터에그가  숨겨져    있으니    찾아

이스터에그  덕분에    많은    매니아

보도록  하자.   

들이  DVD를   입수하기   위해    혈안 이   되기도   했었다.   

이런  이스터에그는   영화에서도   

픽사의  애니메이션들은   제작자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최신    DVD

들이  늘    장난처럼    이스터에그를   

타이틀에는  영화    제작    뒷이야기   

숨겨놓는데,  토이스토리3을    통

등을  담은   이스터에그가   많다.

해  픽사의    이스터에그를    살펴보 도록   하자.

물랑루즈  DVD타이틀에는   삭제 된   장면을   보여   주는   10여개의   이 스터에그가    숨겨져    있으며,    파이 널    환타지의    이스터에그는    여주 인공이    마이클   잭슨의    뮤직    비디 오   ‘스릴러’에   나오는   춤을   따라   하 는   장면을   보여   준다.   터미네이터

화면에  보이는   곳은    주인공   ‘앤

2  DVD의    메인매뉴에서    82997

디’의  방이다.    벽에    붙어    있는    세

를  입력하면    ‘THE    FUTURE    IS   

계지도가  이스터에그이다.    지도   


위의  표식이    제작진들의    고향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자세히   보면    미국    뿐만   아니라    멕시코,    영국,    이집트   등   다양하게   꽂혀   있다.       다음    이미지의    화살표를    따라 가    보면   ‘W.Cutting’라는   팻말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원래    픽사   본 부가    있었던    캘리포니아    리치먼 드의    W.   Cutting   Blvd를   가르키 고   있다.    아주    살짝    스쳐지나가서    기억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토이스토 리1에    나왔던    분홍색    곰인형    ‘랏 소’는   토이스토리3에서는   악당으 로   돌아왔다.   바로   이렇게.    또   이   곰인형은    픽사의    다른   애


니메이션에도  등장한다.    업이다.   

스터에그는  깜짝    선물처럼    당신

풍선을  매단   칼의   집이   떠오를   때   

에게  행복으로   다가갈   것이다.

한  꼬마   여자   아이   방을   지나가는 데,    그   방    침대   밑    분홍색   인형이    놓여져있다.    확대해서    보면   랏소 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제작진의    재치가   보이는   순간이다. 이    외에도    토이스토리에는    재 밌는   이스터에그가   다양하다.    이    밖에도    일부    캐논    계산기에 서도    이스터에그를   발견할    수   있 는데    ‘336652’를    누른    후    ‘+’와    ‘-‘키를    동시에    누르면    핑퐁    게임 이,    ‘125993’을    누른    후    위와    같 은   키를   누르면   슈팅   게임이   시작 된다.    계산기를    사용하다가   피곤 하면    게임을    즐기라는    제작자의    배려일까? 이와    같이    다양한    이스터에그 들이    여러분과    함께    숨    쉬고    있 다.   누군가   발견해주길   바라는   마 음으로    숨겨둔    이스터에그를    찾 아    제작자들의    마음을    헤아려보 자.   사용자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 해,    스스로    즐기기    위해    만든    이


[Special_3]  특집   기사

이스터에그_게임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1  오리지날에서   

(해석)

테란  미션   첫번째    튜토리얼인   부

썬  닭고기   가슴살   1파운드   

트켐프(Boot  camp)    미션을    진

옥수수  전분   1티스푼   

행시  브리핑   화면에서    시작   버튼

간장  3티스푼   (어두운   색)

을  누르지   않고    약   3분간   기다리

썰어놓은  레몬   1개

면  중국   레몬   치킨   레시피가   브리 핑   창에   나타난다.


스타크래프트2

프트2에서는  ‘메이지’의    ‘파이어

 

볼’이나  ‘그라폰라이더’,    ‘드래

스타프래프트2  확장팩    ‘군단의   

곤’의  공격   이펙트와   같은   효과를   

심장’에서는  시나리오    칼디르    미

보이며,  워크래프트3에서는    ‘모

션에서  맵   한   구석에   같은   제작사

탈팀’의  이펙트로,    스타크래프트

인  블리자드에서    만든    월드오브

1과  2에서는    ‘핵폭탄’    이펙트가   

워크레프트에  나오는    리치    왕과   

발생한다.  단    싱글플레이시에만   

서리한이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가능하다. 

있다.

또한  유닛을    여러    번    클릭하면    고정된    대사가   아닌    추가적인   대

블리자드의  전략시뮬레이션   게

사를  말한다.   이는   온라인   게임인   

임들,  워크래프트2,    워크래프트

월드  오브    워크레프트의    NPC들

3,  스타크래프트   등   전   게임   공통

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유명한   것

으로  적용되는    이스터에그도    있

은  스타크래프트의   ‘시즈    탱크’가   

다.  바로    맵에서    나오는    중립    크

바그너의  ‘발키리의    비행’리라는   

리처를  여러   번   클릭할   경우   폭발

곡을  흥얼거리는   것이다.

하며  죽어   버리는   것이다.   워크래


카트라이더 넥슨의  캐주얼    레이싱    게임    카 트라이더의    경우    ‘리지    운하’    벤 치    뒤,   ‘아이스   갈라진    빙산’   구석 에    펭귄들과    함께    낚시,    ‘사막    빙 글빙글   공사장’   공사장   진입   직전   

스포어

벽면의  나무   통    등등에   이스터에 그를    배치했다.    오브젝트    스킨에    운영자들의    사진을    덧씌운    이스 터에그를    처음   보는    사람은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길과    함께    이스터    에그도    찾아보도록    하자.

맥시스에서  제작한   시뮬레이션    게임인    스포어    메인화면에서    은 하계를   오른쪽   버튼을   누른   채   시 계방향으로    계속    돌리면    제작자 들의    사진이    은하계로    뿌려지면 서   나온다.


스테이지에서  케이크    같은    것을    던져서   적을   죽일   수   있다. ‘SEX’를    입력시   화면이    번쩍거 리면서    이니셜이    ‘H.!’로    입력된 다.   다시   시작하면   포크가   등장하 고,    이걸    먹으면    1스테이지에서    채소를   던져   적을   죽일   수   있다.    버블보블

‘STR’를  입력하고   재시작   시      홍 학이   등장하고,   이걸   먹으면   남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한번쯤은    들어본    게임인    버블보블입니다.    최대    2인까지    플레이    가능하고   

방울이  분홍색   응가    캐릭터로   바 뀐다고   한다.    

공룡들이  비누방울을    발사하여    적을    가두고    터트리며    물리치는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

게임이다.  게임    오버    후에    렝킹을    등록을   

2001년  손노리에서    자체제작   

하기  위해서   이니셜을    입력시   특

엔진인  왕리얼   엔진을    이용해   만

정  이니셜을   입력하면    이어서   할   

든  액션   어드벤처   호러   게임이다.

때  1    스테이지에서    특수한    아이

게임  시작    시    이름을    성을    ‘노’   

템들이  출현한다.

이름을  ‘에라’라고    입력하면   시작

‘I.F’,  ‘MTJ’,    ‘NSO’,    ‘KIM’,    ‘YSH’   

할  때부터    아이템    창에    ‘도시락’   

로  입력   후   이어서   시작하면   콜라

108개가  들어    있다.    단    버전이   

가  등장합니다.   이걸   먹으면   1    스

1.10  이상이어야    한다.    ‘노에

테이지에서  풍선과    동시에    꽃을   

라’라는  이름은    화이트데이    리드   

입에서  발사한다.

프로그래머  noerror의    닉네임으

‘...’을  입력    후    이어서    시작    시   

로,  당시    최첨단   기술이던   BSP를   

칼이  등장합니다.    이걸   먹으면    1   

알고리즘  한두   번   대충   보고서   혼


이스터에그는  귀신보다    무서운    수위를    공격   할    방법이   없는것에    대한    유저들의    요청으로    인해서    제작되었다고    하는    풍문이    있으 나    자세한   것은    손노리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단,    똥침을    너무   많 이    놓으면   수위의    방망이가   붉어 지면서   데미지가   1.5배쯤   상승하 기   때문에   계속   게임을   진행할   의 사가   있다면   주의하는   것이   좋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 라이엇게임즈(Riot    Games)가    게발한    온라인    AOS    게임,    줄여 서   롤이라고   많이들   부르는   그   게 자서    만들어   낸    초능력적인   프로 그램실력을   가졌다고   한다. 다른   이스터에그로는   본관   2구 역    4층에    있는    생물실에    있는   인 체모형이    있다.    주인공이    지쳤을    때    나타나는   현기증    상태에서   주 인공을    향해   다가오는    환각이   발 생하는데,    이때    그    바로    앞으로    다가가면    ‘위생    장갑’이    떨어진 다.    이를    줍고    나면    수위에게    똥 침(?!)을    놓을    수    있게    된다.    이   

임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수많 은    챔피언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만큼    이스터에그가    많이    있기 로    유명히다.    그    중    몇가지만    알 아보도록   하자.    암석   형태의    ‘말파이트’를    곡괭 이    아이탬을   장착하고    공격시   데 미지가   1추가로   들어간다.    ‘레오나’의    페시브    스킬인    ‘햇 빛’을   받은   식물형   챔피언은   잠시


동안  크기가   커진다.   또한   선글라

적  관계로    이러한    이스터에그가   

스  스킨을   적용한    챔피언은   데미

들어갔다고  한다.

지가  1   감소된다.

‘잭스’의  스킨    중    하나인    ‘잭시

‘카직스’와  ‘렝가’가   적으로   만난   

무스’는  공격과    이동시    가끔씩   

상태에서  카직스와    렝가가    모두   

'이건  널    위한거란다,    얘야'라는   

16레벨  이상이며   카직스가    진화

대사를  한다.   과거   라이엇   게임즈

를  3회    모두    했고,    렝가가    ‘뼈이

에서  난치병에   걸린    '조'라는    소

빨  목걸이’를    지니고    있을    경우,   

년을  초청해서   게임을    벌였고   조

‘사냥  시작이라는    패시브와    함께   

가  가장   좋아한    챔피언인   잭스와   

서로를  죽일    경우    카직스는    4번

잭시무스  스킨을   할인하여    그   수

째  진화를    할   수   있고    렝가는    뼈

익금  전액을   그의    난치병   치료비

이빨  목걸이의   스택을   14로   고정

로  기부했던    적이    있었다.    이후   

할  수   있다.    이   둘은    스토리상   숙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가   사


망하자  개발진들은    그를    기리기   

에  따라   취하는    행동이   달라지기

위하여  잭시무스   스킨에    몰래   이

도  한다.    좀    더    이스터에그    같은   

런  대사를   넣었다고   한다.

것들을  확인하려면    시리즈    별로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메탈슬러그1에서    미션1,    미션

스트리트  오브   레이지   리메이크

3  진행    시    공장이    무너져    내릴    때,    가끔    모덴    군    병사가    추락하

스트리트  오브    레이지    리메이

는  모습이   확대되기도   한다.   미션

크에서는  특정시간에    상점에    들

4  시작   시   전진하지   않고   게임   시

어가면  상점   주인인    블레이즈   필

간을  기준으로   60초   가량   기다리

딩이  잠을    자고    있다.    이때    물건

고  있으면   하늘에서    ‘이카B’가   날

을  훔칠    수    있는데,    훔치다    적발

아가면서  미사일을    날리는데,   동

되면  블레이즈가    경악하면서    상

시에  하늘에서    포로    4명이    묶인   

점이  폐쇄된다.   소지   금액이   변상

채로  떨어진다.   

해야  할   금액보다    적을   경우에는   

메탈슬러그2와  메탈슬러그X

스테이지를  클리어   할    때까지   블

에서는  미션1에서    ‘듀크    파커’라

레이즈가  쫓아온다.   

는  정장    입은   노인을   만날    수    있 다.   가방을   내려놓고   주민에게   무 언가   설명하는데,   이때   가방을   획

메탈슬러그  시리즈

득하면  500점을    얻음과    동시에    노인이    화를   내며    화면에서   퇴장

시리즈  공통으로    나타나는    이

한다.  듀크    파커는   미션4에서   다

스터에그로  캐릭터를    떨어질    만

시  나타나는데,    까까머리    남자애

한  곳에   아슬아슬하게    세워   두는   

에게  설명을   시작한다.   이때도   마

것이  있다.   캐릭터가   여러분을   향

찬가지로  가방을    획득하면    500

해  재미있는   모션을    보여줄   것이

점을  얻음과   동시에    노인이   화를   

다.  또한    가만히    서    있으면    장소

내는데,  설명을    듣던    남자아이는   


놀라  울면서    가    버리는    것도    볼   

하는  것에서부터    제작자의    장난

수  있다.   

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따른   재

메탈슬러그  6에서는    모덴    군   

미,  스토리   상의    이밴트,    자회사   

병사  100명을   만날   수   있는   이스

게임에  대한    홍보,    진행에    따른   

터에그가  있다.    미션1    후반부   돌

복선,  나름의    사연이    담긴    것    까

산  분기에서   윗쪽   길을   선택한   후   

지  다양한    이스터에그들이    존재

올라가면  동굴이    나오는데,   동굴

하고  플레이어들은    그것을    발견

안에는  수많은   박쥐와    공중에   묶

하고  찾아내고   그안에    담긴   의미

인  포로들이    존재한다.    그곳에서   

를  알게    되면서    그    게임에    대한   

포로들을  구출하지   않고,   모덴   군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된다.   

병사  두    명을   죽이지   않은    채    공

이렇게  재미있는   이스터에그는   

중의  박쥐를   전부    죽이면   별안간   

사실상  생각해   보면    제작자   입장

하늘에서  모덴군    병사    100명이   

에서는  상당히    귀찮은    작업이다.   

계속해서  떨어진다.    또    외계인을   

심지어  비용이나    시간적인    측면

만날  수도    있는데,   미션3에서   숨

에서도  손해일    수    있다.    하지만   

겨진  무   7개를   전부   먹고   절   입구   

지금까지  나오는    수많은    게임들

같은  곳의   현판에    폭탄을   던지면   

은  다양한    이스터에그를    포함하

뒤쪽에서  외계   종족    병사들이   스

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영

핀  어택을   하며   몰려온다.   

양가  없는   짓을    제작자들이   시간 과    노력을   들어서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그건    단순한    숨겨진    요

게임에서의  이스터에그는   보통   

소가  아닌   게임에    대한   제작자의   

게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애정과  플레이하는    사람을    재미

대부분이나,  게임을    플레이하는   

있게  하기   위한   나름의   배려는   아

것에  대한   재미를    더욱   증폭시켜

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주는  요소로   더욱    많이   발전되었 다.   단순히   제작자의   이름을   출력


[Review]  리뷰

핵전쟁  코믹스_물도마뱀 2011년    인디음악   신에서    소규

구조에서  포털    사이트가    작가들

모  음악생산자들의    연대로    상호

과  계약하고   주간연재를    하되   단

간  음악   활동을   지원하는    ‘자립음

행본  출간은   보장되지   않고,   이로   

악생산조합’이  출범했다.   이와   비

충분하지  않은   연재료    탓에   작가

슷하게,  대형   포털에   진출을   목표

를  돕는   어시스턴트가    없이   단독   

로  하는   지망생들만의    모임이   아

혹은  2~3인    내외의    팀만으로   주

닌  순수하게   만화를    창작하는   아

간  연재를   하는    시스템이   굳어졌

마추어  작가들이   모인   인디    ‘레이

다.  이렇게   공룡   포털인   네이버와   

블’이  생겨났다.    그   이름하야    <핵

다음에  의해   출판    만화에   비하면   

전쟁  코믹스(이하   ‘핵코‘)>.

낮은  컷   밀도의   세로   스크롤로   채

한국  만화   시장은    기존    펜과   스 크린톤으로    수제작하는    출판    만

색을  하는   주간   연재   스타일이   대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화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하

핵코는  만화는    저희의    생활의   

여  포털로    연재하는    ‘웹툰’으로   

일부이거나  전부입니다.    그것을   

기울면서  제작은    편리해졌지만   

나중에  생업으로    삼든,    삼지    않

독자들  사이에선   표지    뿐만   아닌   

든,  저희는   만화를   취미의   연장선

본문  그림까지   전체   채색   하는   것

에서  더   나아가게    해보고   싶었습

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생겼다.   시

니다.1  라는   말에서   시작한다.   

스템  상으로도   만화    출판사가   작

포털에서  벗어나    만화    컨텐츠

가들을  관리하고    주간/월간   연재

를  제공하는    서비스라면    지난    6

와  단행본   출간으로    수익을   얻는   

월에  출범한   ‘레진   코믹스‘가   먼저   

1

텀블벅, <언더그라운드 인디 웹툰 레이블 《핵전쟁 코믹스》, 첫번째 핵전쟁> 프로젝트 소개 중. https://www.tumblbug.com/ko/nukecomics01


떠오른다.  레진    코믹스는    만화를   

의  특성   때문에   상호   연대로   자본

제공하는  서비스를    생산하는    ‘회

을  모을   수   있는   협동조합의   형태

사’로서  유료   연재를   통해    작가와   

로  운영되고   있지만,    종이와    펜,   

회사가  ‘수익’을   얻는   것을    목표로   

컴퓨터와  타블렛    정도만    있으면   

만화  창작을   ‘직업’의   영역으로   끌

제작비에  크게    연연하지    않아도   

어  올리고자    했다.    반면    핵코는   

되는  만화는   이런    문제로부터   더

포털  연재를    준비하는    지망생부

욱  자유로운   형태다.   핵코   초기에

터  만화를   직업으로    여기는   것과   

는  텀블벅   후원을    통해   작가들의   

무관한  취업    준비생,    대학생같이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자    했으나   

다양한  작가들이    모여서    레이블

모금이  실패한   이후엔    노선을   전

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환해  상업적인   부분과    거리를   두

모인  이유는   같다.   ‘만화를   취미의   

고  있다.

연장선에서  더    나가가게’하고    싶 은   작가들이라는   점이다.   

아마추어  작가들의   레이블이지

만화의  제작    방법과    내용에    대

만  핵코에   올라오는    만화는   놓치

해선  제한이   없고   연재   시점과   주

면  아쉬운   만화들이    속속   올라오

기도  작가가   결정해    작가들의   개

고  있다.    ‘반바지’    작가는    ‘디씨인

성을  최대한   존중하여    스스로   연

사이드  카툰   연재   갤러리‘와   창작

재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자립음

만화  커뮤니티    ’ExCF'를    거점으

악생산조합의  경우   창작    및   공연

로      활동하는    만화    작가였다.    핵

을  위해서   제작비와    공연   비용이   

코  이전부터    재기발랄한    상상력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가는    음악

으로  아마추어답지    않은    연출과   


스토리텔링을  보여줬는데    작가

‘손맛’이  느껴지는    그림을    그리고   

의  역량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

있다.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

은  단연    [도약자들]이다.    핵코에

들은  이   그림에   대해   거부감을   느

는  올라오지   않았지만    만화   속의   

끼는  경우가   있지만   한   번   읽기   시

인물들이  사는    공간인    ‘칸’을    깨

작하면  볼수록    매력적인    그림과   

고  이동하면서   실제로    만화가   연

작가가  묘사하는    거대한    세계와   

재되는  칸을    들락날락하는    창의

인물간의  갈등이   일품이다.   

적인  연출이   빛을   발한   수작이다.   

핵코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핵코  이전부터   두각을    보이던   반

‘폴빠’  작가는    레진    코믹스에서   

바지  작가는    [과거    시험에    합격

런칭과  동시에   상업    작가로서   데

하는  방법]에서    과거    시험을    보

뷔를  하게    된다.    짜임새    있으며   

기  위해   한양에    올라온   남장소녀   

유머감각을  잃지    않은    [흔해    빠

‘소비’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암투

진  세계관    만화]의    본편은    레진   

를  SF와    유머가    어울린    독특한   

코믹스에  연재가    되지만    외전과   

구성의  만화를    연재하며    주목받

설정은  여전히    핵코에    올라오고   

고  있다.   

있다.  이외   어둡지만   감각적인   만

‘그리폰’  작가의    [은하!]도    핵코

화를  연재하는   ‘driftdog’,   어처구

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은하!>는   

니없이  시작했다가    황당하게    빵   

네이버  베스트   도전에서   무려   4년

터지는  되는    ‘개호주’    작가의    SF   

(!)  가까이   연재되었는데    공식   연

단편선  등    현재    16명의    만화    작

재작이  아닌    것을   감안하면    이례

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   만

적인  장수    연재인    셈이다.2     적지   

화가  아니더라도   고전    비디오   게

않은  인기를    가진   만화이지만    일

임과  글리치   아트를   소개하는    ‘달

반적으로  펜과   스크린톤    혹은    컴

빛바람’과  서브컬쳐    전반에    대해   

퓨터로  작업하는    다른    만화들과   

심도  있는    시선을    가진    ‘ㅍㅍ

달리  마카를    이용해    다소    투박한   

ㄲ’의  칼럼도   핵코에선   놓쳐선   안   

2

네이버 웹툰에서 현재 연재중인 작품 중에 <은하!>보다 오래 연재중인 만화는 <마음 의 소리>가 유일하다.


될  콘텐츠이다. 최근    핵코는    웹    만화의    스테레 오타입인    '위아래로    길고    한    편    안에   기승전결을   갖춘   만화'에   벗 어나   함축적인   카툰   혹은   코믹   스 트립의    형태로    즉흥적이되    연속 적으로   이어지는    ‘핵전쟁    코믹스    잼’이란    프로젝트로    짤막한    만화    간의    피드백을   틍해    새로운   이야 기를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핵코의    운영자   반바 지    작가는    ‘핵전쟁    코믹스는    웹    만화의    범위에서   여러    시도를   하 는   데에   의의가   있으며   사이트   존 재    자체부터   매번    실험적인   운영 으로   할   것’이라   밝혔다. 핵전쟁    코믹스에서    앞으로    어 떤    형태의    ‘핵폭발’이    이뤄질지    더욱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 핵전쟁   코믹스 http://nukecomics.com/


[Review]  리뷰

론  레인저_이고은 “‘조니   뎁’   다운   영화.”라는   한   마 디로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박물 관에    화석처럼   서    있는    인디언이    들려    주는   이    이야기는    어린애의    망상    같은    영웅담이다.    하지만    ‘돈’이라는   물질에   대한   욕망은   어 른들의   욕망과   그로    인해   상처   받 고    망가져버린   인디언    아이의    이 야기는   어린아이가   지어내었다고    보기엔   조금   어두운   감이   있다.       [론    레인저]는    어린   아이의    시 선을   빌리고   있고,   이야기도   어린

심장하게  던져지는    상징을    읽어

이  취향에    맞을    법한    이야기다.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일    수   

감동적인  형제애,   나쁜    악당,    그

있겠다.

에게  속을    뻔한    영웅,    영웅을    돕

가볍게  즐기며    흥미진진하게   

는  특별한   조력자들,   그리고   멋진   

피식피식  웃으며   보기    좋은   영화

승리.  때문에    흥미진진한    모험을   

지만,  부활을   기다리는   썩지   않는   

지켜보며  가볍게   즐기기에   좋다.   

까마귀나  손에   착착   감겨   대는   회

그러면서도  부활을    꿈꾸고    계

중시계  등   몇몇    요소들의   의미를   

속  먹이를   주지만   수십   년이   흘러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다.   

도  썩지도,   부활하지도   않는   까마

조니  뎁   식의    개그를    보고   웃고   

귀라든가  백인들의    손을    옭아매

싶다면,  또    어린    시절    보던    동화

며  열리는   회중시계와    같이   의미


같은  영웅담이    그립다면    즐겁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마    탄    왕자가   멋진   건   순전히   백마   때문 이다.


[Review]  리뷰

책  소개_송한별 의    의향을    묻지    않는    소녀.    권력 을    깨부수는    건    치밀한    사기.    전 작    [노벨   배틀러]의    단점을    보완 한   수작.   이야기가   훨씬   매끄러워 진   것이   느껴진다.   보르자가   뜨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보르자,   노블엔진,   2012. 현실   사회와   똑같은,    그리고   훨 씬    악의적인   면모가    강하게   부각 된   학교   사회를   배경으로   한   미스 터리.    스릴러?    정의를    믿었다    좌 절한    소년이    어떻게든    살아보겠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 미카미   앤,   디앤씨미디어,   2013.

다고  어영부영   호갱질    하다가   새 로운   내일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   

비블리아  고서점을    중심으로   

절망한  소년을   되살리는    건   소년

일어나는  사건들을    기록한    가벼


운  미스터리   연작집.   이야기에   등

없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단편

장하는  고서의    내용과    이야기의   

소설집.  별    거    아닌    일로    시작한   

내용이  관계가    없는    게    [문학소

사건이  산으로   바다로   가는   게   매

녀]  시리즈와의    차이점.    다른    책

력  포인트.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을  차용하는   다른    소설들에   비해   

일  하나   없어도   포기하지   않고   노

훨씬  차분하고    침착하며    평탄한   

력하는  모습은   소년    만화   주인공

분위기가  특징.   점잖다고   해야   하

을  닮았다.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

나.  누구에게    권해도    실패하지는   

는  순간,   이야기의   흐름에서   빠져

않을  것.

나오지  못하게   된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곽재식,   온우주,   2013.

고기  |   마르틴   하르니체크 행복한책읽기,   2012.

공대  출신의/공대의    서툴지만   

문명이란  탈을   쓴    야만의   세계.   

의욕  넘치고    솔직한데다    성실하

그러니까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

기까지  한,    도저히    내버려    둘    수   

하는  그런   종류의   야만이   아니라,   


문명  따위의   허울로   덮을   수   없는    뿌리   깊은   야만성.   날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슬래셔   같은   느낌.   그리 고   꿈도   희망도   없었다.

왕의  창녀 정도경,   온우주,   2013. 씨앗 정도경,   온우주,   2013. 할머니보다는    책   좀    많이   읽은,    딴생각    하기    좋아하는    누나/언니 가   들려주는   먼   나라   이야기들.   알    것   같다가   뒤틀리는   맛에   놀라고,    완전히    딴    이야기인가    했더니    또    묘하게   아는   이야기라서   놀라고.

스토리의  완결성보다는    그    안 에서    살고   있는    인물의   이야기에    초점을   둔   듯한   이야기들.   세계는    끝나지    않지만    개인의    이야기는    끝나고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주 는   이야기들.   개인에게   처절한   순 간이라    쉽게    음침하고    좌절스럽 지만    그   안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이야기들.


늑대와  향신료   17권   |   하세쿠라    이스나,   학산문화사,   2013.

소녀불충분  |   니시오   이신,    학산문화사,   2013

길고  험난했던    여정의    아주    작

열  살짜리    소녀에게    느슨하게   

고  소박한   마무리.   추억에   어울리

남치,  감금당한    대학생의    회고록

는  가장   완벽한    마무리라고   생각

이  표면상의   이야기.   아마도   니시

한다.  5년   가량   같이   온   독자들에

오  이신의    뿌리를    말한    소설.    중

게  깔깔거리며   빅엿을    먹이는   엔

간까지  지루하고,    마무리가   교과

딩도  좋고.    작가의    다음    작품이   

서적이라  투덜거리면서도    작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의  뿌리가    담겨    있기    때문에,    팬 이라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


[Text]  중편소설_中

죽을  날이   다가온    헤페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_성우창 후아레스를   내리쬐는    햇빛은    이미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이곳은    신 께서    굽어    살피시지   않는   도시    서북쪽,    신경쓰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채 지   못할   어느   골목에는   아는   얼굴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다. “헤페.” 나란챠의   시체를   멍하니   보고   있으니   뒤에   있던   마타가   말을   걸었다. 청장의    면회를    끝낸    직후    마타의    연락을    받았다.    본래    지정된    구역의    거리   순찰을    다녔어야    할    나란챠가    전혀    엉뚱한    곳의    뒷골목에   처박혀    있었던   것이다.    “바실리냐.” “그게,   조금   묘합니다.” 평소   냉철한   마타답지   않은   애매한   대답이었다.    “이미   애들   시켜    탐문을   한참입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하는    말은   ‘헤페 가   쐈다’였습니다.” “무슨   소리야?” “오후   두    시   경부터    헤페와   나란챠가    이쪽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가 장    최근    증언은   거지가   본    목격인데,    나란챠가    발견된   골목으로   헤페와    단    둘이    들어갔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총성이    들리고    헤페만이   데리고    온   일단의   무리를   이끌고   어디론가   갔다고   하는군요.” 이런   멍청한,    도무지   믿기지   않는   말이다.    나는   조금   전까지   청장과    회 담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갑자기   이쪽에서    나타난   또   다른    나는   누구 란   말인가? 동양인이라   겉모습부터   다른   나를   잘못   봤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결론 은    하나다.    그놈이   누구건    간에   동양인에다,    나를   음해할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내   한가운데에서    보란    듯이    내    행세를   했다는   점에서    명백하다.    “당장   애들   풀어서   수색을   시작할까요?” “아냐,   제기랄.   이건   대놓고    날   도발하려는   목적이다.   보나마나    바실리 겠지.   어디서   동양인을   구해   왔는지는   모르겠다만   분명   놈을   수색하느라    내가   세력을   분산하게   하려는   속셈이   분명하다.” 이   정도로   적극적인   접촉을   시도한   것은   처음이다.   놈은   어떤   식으로든    내가   반응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평소대로   있는   게   낫겠다.” 나란챠의   뒤집힌   눈을   손으로   덮어   감겨   주었다. “이   녀석에겐    미안하지만,   당장    애들을   풀어    놈을    수색하거나   하진    않 겠다.   장례는   제대로   치뤄   줘라.” “알겠습니다.” 마타는   뒤에   대기하고   있던   두   녀석에게   손짓했다.   각각   상체   하체가   잡 힌    채로   나란챠의   시신이    들려져   타고    온   승합차에    실려졌다.    차에   실린    채로   발바닥만   보이는   나란차를   차문이   닫힐   때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잘   가라,   불쌍한   녀석. “헤페,   바실리를   의심하십니까?” “달리   그밖에   없지   않냐.” “목격된   게   동양인이라면,   야쿠자도   의심해   봐야   합니다.” “음…⋯…⋯.” 일리    있는   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갱스터에게    협력하는    동양인이라 면,   야쿠자와   바실리간의   연대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눈에   띄지   않게,   애들   풀어서   조사해   봐.” “알겠습니다…⋯…⋯.   또   하나,   그   건에   관해서   말입니다만.” 마타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까   헤페께서    자리를   비우셨을    때,   바로    그    야쿠자에게서   연락이    왔


었습니다.  바실리의   움직임을   잡았다는   소식입니다.” “움직임?” “자세한   것은   접선을   통해   말한다고   했습니다.   9시간   뒤입니다.” “머리   아프게   됐군.” 마타가    제시한    대로    야쿠자와    바실리가    연대가    있다면    주의를    해야한 다.   허나   증거가   부족한   지금   상황에서   바실리의   실마리를   이대로   놓치기 에는   그것도   아쉽다.   무엇보다   야쿠자가   바실리와   결탁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믿고   싶지   않다.   안그래도   요즘   갑작스레   적이   너무   늘어난   탓이다.    “장소는?” “도시   밖,   일전의   거래   장소입니다.” 보통   거래든   접선이든    최근에   만났던   장소에서   다시   만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특히    전에   우리쪽에서    지난    번    같은    곤란한   상황을   만들고    난   뒤에는   더욱   그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소를   정한   것은,   야 쿠자의   진의는   무엇일까.   자신은   결백하다는   악의의   시위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우리의   신뢰를   얻기   위한   선의의   지정인가. “일단은   뭐가   됐든   만나는   수밖에   없나. “혹시   다른   뜻을   품고   있더라도   당장은   무슨   짓을   하진   않을   겁니다.” “알아서   애들   준비시켜   놔라.” “예.” 마타와   나란챠를    태운    승합차가   먼저   떠났다.   라미레즈에게    먼저    차에    대기하고    있으라고    한   뒤   나란챠가    있던    뒷골목에    들어갔다.   인적이   드 문   골목이다.   허름한   공동    주택    두   채가   모여   만든   골목길   가운데에는   썩 어서   파리가    날리는   쓰레기    봉투   더미가    있다.   듣기로   나란챠는    거기   파 묻혀    있었다고    했다.   이    근방은   주거    지역이지만,   이    시간대에는   사람도    별로    없었을    터,   있었다   한들    허구헌날    들려오는    총성이야   무시했을   것 이고   봤다   한들   애써   못   본   채   했을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담배   꽁초가   눈에   띄었다.   얼굴   근처에서   윙윙거리는   파


리를  손사래   치며   쫓으며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익숙한    담배   꽁초,   카멜이다.   우연히도   내가   피우는   것과   같은   담배였다.    접선   시간이   되어,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엔   이미   야쿠자들이   도착해 있었다.    지난번과는    달리   승합차    두   대에    약   여덟    명    정도,   일전에    본   혼 다   콘노스케   또한   있었다.    그들이    서   있는   모양새를   보니   그가   제일   높은    것   같다.    내가   탄    벤츠와   다른   차들이    그들   앞에    차를   세울   동안    나는   내 가   애용하는    콜트의   잔탄을    확인한   후    코트    안으로   넣었다.    차에서   내리 는   것은   나와   마타,    라미레즈를    포함한   아홉   명이다.   데려온   인원은   조금    더   많지만,    모두   내려서    쓸데없이   숫자로    위압감을   주는   건    불필요한   일 이다.    양측    인원이   대치하고,    내가   직접    가운데로   나서자    혼다도   앞으로    나왔다. “오랜만이오.” “용건만   하지.” “바실리   일파가   밀수업에   손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가?” 순간   눈썹이   움직인다. “밀항   루트는   우리   쪽이   모두   잡고   있을텐데?”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건   베라크루스   밑의   작은   시골항이오.   작은   어촌 인데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이니   알기   힘들었겠지.   게다가   그들은   마약   밀 수로   쓰는   것이   아니오.   주로   사람을   나르기에   눈에   잘   띄지   않았겠지.” “밀항?” 그렇다.   때로는    마약   밀수   따위보단   손쉽고    마진도   더   남는   일이다.    다 만    냉전이    끝나고   나서는    점점    일거리가   줄어들어    사람    나르는    일   따위 는   수요가   없어   하려는   조직이   없을   터다. “그렇군,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정보인걸.” “본론은   그게    아니오.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오만,   얼마    전    우리 를   통해   이곳에   입국한   자가   있었소.”


“일본에서  말인가?” “그렇지만    그는    일본인은    아니었소,   한국    사람인데,    듣기로    사업가였 다고    하는군,    동남아에서   저지른    불법    도박    때문에    당국의   눈을   피해서    이쪽으로    들어온    거요.    오야지의    지시를    받고    밀입국시켜    주긴   했지만,    애초에    원하는    곳이   멕시코는   아니었던    모양이오.    다만    조직을   통해   일 본에서   나갈   수   있는   밀항로가   현재   이곳과   부산항밖에   없었기에   이리로    온    것    같소.   여하튼   그가    멕시코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우리에게   부탁한    것은,   미국으로   통하는   밀항   루트를   알아봐   달라는   거였소.” 그는   마일드세븐의   사각형   비닐갑을   열어   한   개비   물고,   불을   붙였다. “고쿠도(極道:   야쿠자가   자기들을    일컫는   말)는   그런    알선이나    하는   무 리가   아니다   보니   적당히   거절하긴   했소만,   그   다음   이   자가   찾은   곳이   바 로   바실리요.   그쪽으로는   순조롭게   교섭이   이루어져   내일모레   새벽   아까    말한   그   항구에서   출발하기로   한   듯   하오.” 사실이라면    꽤   중요한    정보다.   허나    문제는   이    정도로    자세한   것을    어 떻게    들었나    하는   것이다.   하물며    카르텔에서    눈에    불을   켜고도   번번히    허탕만   치던   놈의   단서를   이렇게   쉽게. 그런   나의   질문에   혼다가   실소했다. “옳은   말이오.    우리   또한    몇    가지   운이    도왔소.   첫째로,    일전에    당신들 과   있었던   일이   그것이오.” “아아,   그   일은   다시   한   번   사과하지.” “괜찮소,   덕분이   일이   이렇게   됐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지.   여하튼   그   때    당신들에게   경고    받은   이후로    우리도   나름   어디서든    흘러들어오는   냄새 를    놓치지    않았소.   어쨌든   바실리의    존재    자체가    우리   세계의   해악이니 까…⋯…⋯.    평소   같았으면    그저   신경쓰지    않았을   테지만,    문득   궁금해졌소.    우리에겐   거절당했고,   카르텔은   요즘   밀항을   취급하지   않는   상황에서   과 연   누구에게   밀항을   요청할까…⋯…⋯   하는   것이었소.” 나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바실리군.” 혼다가  동의의   표시로   끄덕인   뒤   말을   이었다. “곧   아랫놈을    하나   그    자의   뒤에    붙였소.   밀항을    거절할   때    한   번    베라 크루즈에서    알아보라고    던져줬기에   역시나    그쪽으로   가더군.    여기서   두    번째로    운이    트였지.   변장한    부하가   운전하는    택시에   타고   그    곳으로   간    그는   뒷골목으로   향했소.   내   부하도   그   뒤를   밟았고,   곧   그곳에   있는   마약 상과   이야기하는    그   자가    보였지.   얼마    동안    대화를   나누고    곧   헤어지더 니   항구   근처에   있는   주점으로   향했소,   그   자는   어느   테이블에   앉았고,   내    부하는    근처에    적당히   거리가    있으면서    대화   소리는    들릴    만한    곳에   자 리잡았더랬소.   얼마   뒤,   아까    본    마약상은   아닌   어느   중늙은이가   와서   그    자리에    앉았다는군.    내    생각엔    바실리의    직접적인    대리인이    아닐까   하 오.    주점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시끌시끌하고    누구    하나   주변에   신경쓰 는   눈치가    없었기에,   내    부하도   그런    사람들    틈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엿 들었소.   그   다음은   내가   말한   그대로요.   밀항   시각과   장소를   정한   후   그들 은   바로   헤어졌지,   모두   어제   새벽에   있던   일이오.” 뜻밖의   기회가   생겼다.   혼다가   말한   대로라면   다시   없을   기회임이   분명 했다. “일시는   내일   새벽   4시요.   마침   군경의    경계가   가장   약할   때지.    장소는    아까   말한   곳   그대로요.” “야쿠자에게는    감사할    일이군.    일이    잘    풀리면    카르텔은    엄청난    신세 를   지는   셈이다.   보상은   충분히   해   주도록   하겠소.” 그   말에   혼다는   흔쾌히   웃으며   말했다. “여부가   있겠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고쿠도는   인협을   지키는    무리요.    우리   일은   여기까지인   듯    하니    모쪼록   잘   해결하길   빌겠소.   또   다른   도움 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연락하시오.” “다음에   부를   용무는   우리가   도움을   줄   일이었으면   좋겠군.” 나는   혼다의   흉터투성이인   손과   악수를   나누고   돌아서려다.   문득   한   가


지가  떠올랐다. “궁금해서   그런데,   혹시   그   의뢰인의   이름이   뭐요?” 혼다가   갸우뚱하더니   입을   열었고,    “…⋯…⋯.” 눈이   번쩍    떠진다.   이미   나는   그    때    어떠한   운명의   속박에   놓여    있었다 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   챘는지도   모르겠다.    혼다는   이름을    알린   뒤   뒤를   돌아    떠났고,    나는   야쿠자   패들이   모두    떠 날   때까지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한참   동안   움직이지도   않고   생각에   빠져    있자   마타와   라미레즈가   다가왔다. “헤페…⋯…⋯?” “마타,   오늘이   며칠이냐.” 의아한   표정의   라미레즈와는    달리,   마타는   평소의   무덤덤한    표정을    바 꾸지   않고   시계를   내려다보며   답했다. “자정을   넘었으니   17일   화요일입니다.” 나는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자정까지   모든   준비를   마쳐라.   한    놈도   빠짐없이   움직일   수    있는    놈은    모두   나갈   준비   해.” “알겠습니다.” 마타의   건조한   음성이    들리고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나 는   돌아가기를    재촉하는   라미레즈를    무시하고   오래지   않아    한바탕   쏟아 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미칠    듯이   몸이   타오르는   것   같아   비를   맞으 면   조금   식을   것   같았다.    비록   벤츠의   뒷좌석   시트는   엉망으로   젖겟지만,    내게   지금   그런   것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손을   떨며   카멜을   꺼냈다.   한   대   문다.   라이터를   꺼낸다.   그 러나   불을   붙이지   않았다.   그대로   담배를   씹어   먹어   버렸다.   방금   들은   이 야기가   모두   착각이   아니었길. 하.   하.   하.


다음  날   새벽   3시   반,    우리는    예의    시골항에   잠입해   있었다.   총   인원   서 른   명,    대다수가   병원    신세를   지느라    전력    이탈하고   있다고는    하나   우리 는   남미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카르텔이었다.   이   인원을   모으고   AK-47과    그들을   후송할   차량을   갖추는   데는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았다.   새벽   1시 에   후아레즈를   출발한   우리는   바실리의   눈이   닿지   않는   베라크루즈에   내 려,    이곳    밀항   출발지이자    습격   지점인    시골항으로   조용히    잠입했다.   항 구   마을이    한    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적외선    쌍안경으로   항구    쪽을   훑던   마타가   보고했다. “나루터에   어선   하나가   대기    중입니다.    무장   병력은   배에   하나,    나루터 에   둘,   그리고   나루터까지   통하는   좌우   길에   각기   둘씩   있습니다.   딱히   책 임자로   보이는   자는   없습니다.   의뢰인도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돈은    선지불했을    것이다.    그럼    여기    있는    녀석들은    피라미들이란    말 인가…⋯…⋯.” “병력을   삼분하는   게   낫겠습니다.    열   명은   우측,    열   명은   좌측,   열    명은    대기해서   불상사에   대비하게   하겠습니다.” “좋아,   나는   돌입   병력과   같이   간다.” “헤페?   라미레즈나   제가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라미레즈는   대기하고,    우측    병력은   내가    지휘한다.   좌측    병력은    예정 대로   네가   지휘해라,   다만    의뢰인은    절대   쏘지   말고   생포하라,   내가   직접    잡을   거다.” “알겠습니다.   지시해   놓겠습니다.” 프리뷰를    위해    마타가    떠나고,    놓고    간    적외선    쌍안경으로    직접    항구    쪽을   보았다.   여느   시골항이나   다를   바   없는   매우   작은   나루터로,   낡은   어 선들   사이로    옛날   책에서나    나올   법한    나룻배마저   보일   정도다.    그   와중 에는   마타의    말대로   출항    준비   중인    배가    보였다.   나루터로    통하는   길은    창고로    보이는    엉성한   건물을   끼고    좌우로    갈라져    있었다.   무장한   놈들


은  그닥    대단한   장비를    갖춘   것도    아니었다.    배와   나루터에    있는   놈들만    소총을    들었을    뿐이고   나머지는    권총,    많이    흐트러져    있는   탓인지   어떤    녀석들은   잔뜩   풀어진   자세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헤페,   저기.” 곁에   있던   라미레즈가    마을   입구를   가리켰다.   멀리서부터    불빛이    다가    오고   있다.    우리는   마을    입구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폐건물의    무너진   담 벼락   옆에    몸을   숨기고    있으므로   행여나    저쪽에서   볼   염려는    없었다.   불 빛은   점점    다가와,   그것이    차   전조등    빛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오래   걸 리지    않았다.    그   저가형   렌트카가    우리가    숨어    있는   폐건물을   순식간에    지나치려는   순간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해서   주시했다.    조수석의   차창이   지나가는   순간,   찰나에서   찰나까지의   순간,   나는   그의    옆   얼굴이   보였다.   그    순간의    만감은   무어라   설명해야   할는지,   나의   망막 에   비친    익숙한   얼굴의    그는   과연    나의    시선을   느꼈을런지,    순식간에   그    차가   지나갔음에도   나는   멀어지는   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차가   나루터   쪽으로   직선으로   가는   것을   확인하고,   마타에게   지시했다. “마을로   들어간다.” 조금    뒤,   나를    비롯한   스물    남짓한   무장    인원이    마을에   잠입하기    시작 했다.   입구를   통하지   않고    우회하며    건물   뒤로   숨는다.   선두에   선   마타의    수신호로,   1조   열   명이   선두로   건물   좌측으로   통하는   길로   나아갔다.    타다다다탕! 본격적인   싸움을   알리는   총성.    지시   받은   세   명이   침착하게   조준사격한   AK-47이   불을   뿜는   것과   동시 에   길을   지키던   두   명이    허물어졌다.   이에   우측   길을   지키던   놈들이   일제 히   그쪽으로   달려갔고,   그에   맞춰   나를   비롯한   2조가   뛰어들어   그들의   뒤 를   잡고   총을   쏴   잡았다. 그   다음은   주저할   것도   없었다.   마타의   1조는   보초를   쏘자마자   이미   나 루터로    뛰기    시작했고    우리도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나루터에는   이미   


총성을  듣고    우리가   달려오는    것을    본   녀석들이    은엄폐를    하고    막을   준 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    쪽도   각기    항구에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던   드럼 통이나    장애물에    몸을   숨기고,    곧이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욕설이   섞 인   총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교전은   마타에게   맡기고   시선을   돌려   의뢰인을   찾기   시작했다.   간 간히   적의   소총수가   쏘는   탄환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헤페!   머리를   숙이십시오!” “닥치고   총이나   갈겨!” 미친    듯이   두리번거리다    우연히    내   눈앞에    나를    겨눈   9mm의    권총탄 이    스쳐    지나가고   그가   보였다.    혼비백산하여    저만치에    세워둔   차로   달 려가는   그의   모습이   슬로우   모션으로   잡히며   나는   빗발치는   총알은   아랑 곳하지   않고   그   쪽을   향해   뛰쳐나갔다.    “헤페!   위험합니다!” 이름   모를   부하의   만류하는   목소리는   귓전으로도   들리지   않았다.   한   손 에   콜트를    든   채로    그   자를   향해    달렸다.   그는    애써   차문을   열고    이제   막    들어간   참이었다.    “윽!” 별안간   왼팔에   화끈한    통증이   일었다.   뒤따르는   욱신거림에    이를    깨물 며   콜트를    쏜   방향으로    조준하고   보니   나를    겨누고   있는   것은    이미   관자 놀이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고   있는   동공   풀린   눈이었다.    “…⋯…⋯쳇.”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차는    이미   출발한    상태였다.    점점   속력이    붙으 며   마을   입구로   달아나는   차에   대고   욕을   씹으며   총을   쐈지만   허사였다.    “이런   씨팔!” 차는    점점   멀어졌다.    뒤를    돌아보니   총격전은    이미   끝난    상태로,    마타 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헤페,   모두   죽였고   좀   부상이   심각하긴   하지만   한   놈은   살려   놨습니다.   


저희  쪽   피해는   전무…⋯…⋯.” “지금   당장   라미레즈에게   무전   때려,    데리고   있는   애들로   마을    입구    막 으라고   해.” “…⋯…⋯라미레즈,   내   말   들리나?   지금   당장…⋯…⋯.” 총상을   당한   내   팔을   본   마타는   그답게   내색하지   않고   명령을   시행했으나,    마치   ‘어째서   굳이   그렇게까지   하느냐.’라는   느낌의   눈길을   떼지   않았다. “라미레즈가   이미    도주   차량을    잡았답니다.   안에    있던    자는   중년    동양 인   한   명,   일전의    그    의뢰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라미레즈가   처분을   기다 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결국    잡았군,   팔은   너무   아팠지만.    나는   다른   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부하가   가져다   준   붕대   조각을   대충   팔에   감았다. “내가   직접   간다.   뒤처리는   알아서   해.” 조금만   더,   이제   곧   금방이다…⋯…⋯. 마을   입구   주변은    잡초만   무성한   광활한   황무지였다.    근처의    바닷바람 을   맞아    짠내가   가득찬    공간에,   한    무리의    무장한   패거리들이    트럭에   받 혀   찌그러진   싸구려   차를   중심으로   동그렇게   모여   있었다. “헤페.” “수고했다.” 라미레즈를    밀어내고   앞을    봤다.   내    부하   앞에서    무릎    꿇린   채로    결박 당한   채   총구에   눌려   앞으로   엎드려   있는   그는,   뒤룩뒤룩   찐   뚱뚱한   몸   때 문에   더욱   고통스러워   보였다. 아…⋯…⋯   드디어…⋯…⋯. 아직   그는   내   얼굴을   보지   못했다. 떨리는   발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간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깔끔했을    그의    흰색   티셔츠와   청바지는    십여    분만의   푹풍을    거친    뒤로    긴장에   의 한    땀과    뒹구느라   묻은   흙으로    지저분해져    있었다.    공포   때문이지   부하


가  총구로   누르고   있는   내내    덜덜   떨고   있던   그는,   내가   다가서는   기척을    느끼자    새로운    느낌으로    떨기    시작했다.    그도    본능으로    앞으로   닥쳐올    위기를   알아챈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직   그는   내가   누군지   모른다. 증오심이   솟으며   구두를   신은   다리로   그의   등판을   지긋이   누른   채   무게 를   실었다.   그의   떨림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부하들은   내   명령으로   모두   마타를   도우러   마을로   내려간다.   우리   둘만 이   남미의   하늘   아래   남게    되었다.   잘   나오지   않는   한국어를   억지로   밀어 내어,   목구멍으로   토해낸다. “기연도   이런    기연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언제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날   줄   알았겠습니까.” 일순   그의   떨림이   멈췄다.   그닥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곧   그는   내가   원했 던   반응을    보였다.   재갈    물린   주둥이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그는   미칠듯 한   공포를   느끼며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것   참    이상하지요.    타국에서,    그것도    지구   반대편에서    당신과    같이    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를   누르던   다리를   내리고   쭈그려   앉으며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    잘은   몰라도    아마   그때    나는   웃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만화책에   나 오는   입   찢어진   남자처럼   말이다. “운명이란게    참    웃긴    겁니다.    옛날에는    상상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거    있잖습니까.   그냥   평범하게   같이   여행해서   같이   걷는   거요.   다른   사람한테 는   그닥   대단한   일도   아닌데   저는   그게   그림도   안   그려지더란   말입니다.” 덜덜   떠는   기름진    몸뚱아리를   억지로   들어올렸다.   재갈물린    축축한    입 을   위로,   어찌나   둥그렇게   떳는지   튀어   나올   것만   같은   눈이   나를   보고   있 었다.   희여멀건한게   벗겨진   장년의   사내는   온몸으로   현실을   부정하고   있 었다.   나는   입이   귀에   걸릴   것만   같았다. “간만입니다.   아버지.”


씨이이이이이익.

“그런  여자에게   줄   돈   없다.” 쏴아아아아아. “그게   할   말이냐?   아버지   맞아?” “몰라…⋯…⋯   그러게   말이다.” 포차에서   기울이는   술은   썼다.   내   술잔이   비자   녀석은   도로   채운다. “어머님은?” “몰라,   말도   안   들어,   또   돈   번다고   나갔어.” 아버지라는   작자는   분명   능력은   있는   것   같았다.   성공하자마자   금방   다 른    여자    찾아   집   나가고    이혼했으면서    되려    위자료를   뜯어갔으니,   덕분 에    이렇게    병에   걸려도    제대로    고치지도   못하고    내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   낮에   본   전   아버지의   이죽이는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   여자에게   줄   돈   없다…⋯…⋯   줄   돈   없다…⋯…⋯. 그게   어디   힘든   날을   같이   헤쳐온   여자에게   할   말이던가. “그럼,   그   전엔   좋은   아버지였어?” “아니,   그건   아니지…⋯…⋯.” 그닥   말하고   싶지는   않다.   감성팔이하고   싶은   기분도   아니고,   어디에나    흔히   있는   레퍼토리이기   때문이다.   술   좋아하는   아버지가   밤마다   돌아와    때리고   욕하는   그런   이야기. “보통   그런    드라마는   대부분    아버지   쪽이    안   좋게    끝나기   마련인데    말 이지.” 쓴웃음.    “그러네   성공해   버렸네.   왜   그럴까.” “뭐,   도박은   안   하고    사업은    꾸준히   했으니까.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에   


잘  맞는   쓰레기랄까.” 내내    ‘아버지’라는    호칭을    고수하다    이제야    험한    말이    튀어나온다.    점 점   속이   끓어   오른다.   술   때문일까? 친구는   걱정이   된   모양이다. “근데   뭐   이런   얘기,   나한테   막   해도   되는   거냐.” “뭐   어때,   듣기   싫냐?” “마냥   듣기    좋은   얘기는    아니지만   하지    말란게    아니고…⋯…⋯   그래,    그냥    해   봐.” 그러고선   오뎅국을   마는   주인   아저씨에게   술   한   병을   더   시키는   것이다.

“그  뒤    결국   어머니는    개처럼   일만    하시다    정승처럼    떠나셨습니다.    기 억하시나요.    비오던    날   제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으리으리한   단독주 택   현관에서   무릎   꿇고   빌었던   때.” 넋두리가   끝날   때   즈음   부하들은   다시   모여들었다.   우리를   중심으로   둥 그렇게   서서   질서정연하게   총을   들고   있는   것이,   마치   현세의   B급   스릴러    영화의   싸이코   살인마   집단    같다.    허나   아버지의   시선은   내게   꽂힌   채   표 정조차    전혀    변하질   않는다.    이봐요,   이봐요    아버지…⋯…⋯   아들이    이런   재 주도   있었단   말입니다.   조금    더    당신의   자식이   만든   예술의   중심이   된   기 분을   느껴   봐요. “그때   도와주셨더라면    말입니다.    전    당신을    용서해    줄    생각이었습니 다.   지난   날을   잊고서   말입니다…⋯…⋯.” 그러고는    입에   물린    헝겊   뭉치를    확   뺐다.    더러운    침이   튀었지만    나의    관심은   그의   첫   마디에   쏠려   있었다. “제발…⋯…⋯   제발   살려다오   열진아…⋯…⋯   아들아…⋯…⋯.”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정말로   재미없는   반응이다.    “크으…⋯…⋯.”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한   손에는    여전히   콜트를    들고    있다.    다친   왼팔은   그대로   두고   콜트를   들어   그를   겨냥해   봤다. 아버지   당신은   행여나   자기를   쏘는   줄   알고   입에서   뭐라   알아듣지도   못 할   신음을    흘리며   떨림이    심해졌고,   나는    영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느끼고   그냥   총을   내렸다.    24년이다.   24년.    이    자   때문에    그    고생을    하고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 지,    24년이    걸렸다.    게다가    좀    더,    조금만    더    제대로    박힌   인간이었다 면…⋯…⋯   나는   이런   연고도   없는   이국에서   이   따위   꼴로   살고   있었을까? 이대로   깔끔한   총알   하나로   끝내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보십시오,   아버지.   타협을   봅시다.” 내가   총을   내리는   것을   보고   안심하던   아버지는   ‘타협’이라는   말에   화색 이   되었다. “그래,   열진아.   아들아.    뭐든    말만   해   봐.    내가   이래도   미국까지    망명만    하면   뭐든   돈이   생겨.” “아니   그거…⋯…⋯.” “내가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뉘우친다고.   그러니   좀   살려다오.   그래도    네   아버지   아니냐.   내가   이렇게   빈다.” “아니   그러니까…⋯…⋯.” “내   이   꼴   봐라.   사업   잘   되서   좀   살만해지니까   다시   이래.   꼭   남   잘   되면    시기하는    놈들이    있어요.   그러니    나    좀    한   번만    봐다오.    나도   좀   제대로    살아봐야지   않겄냐.   응?” 탕! 곧이어   아버지라는   그   작자는   왼팔을   붙잡고   뒹굴기   시작했다. “으아악!” “한   번,   한   번도   제대로   살아   본   적이   없다…⋯라.” 뒹굴고   있는   그의   피격당한   팔을   밟는다.   비명   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그나마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마저   없어졌다.   결국    쓰레기는    이


런  것이다.   이   자는,   이   돼지   새끼는,   구원   받을   길이   없는   멍청이다. “이   씨팔   놈,   씨발    새끼.   네가   창년   따라서    집   나간   뒤에   아무것도    없던    집안   살림마저   걷어   간   뒤로    어머니는   그   고생을   하면서   날   키우셨어.   자 그마치   10년   동안,   근데   뭐라고?” 팔을   밟던    다리로    그   자의   얼굴을    걷어찼다.    코에   맞았는지   발   끝에    뭐 가   걸리면서   부러진   느낌이   든다.   이제   그는   피를   뿜는   팔을   들어   피를   뿜 는   얼굴을   가리려   애쓰고   있었다.   헤헤,   이거   좀   웃긴데…⋯…⋯. “제안을   하나   하지.” 정신   사납게   구는    그의   관자놀이에   콜트를   가져다   대니    그제야    몸부림 이   멈췄다.   꽤나   아픈   모양인지   제대로   된   말도   못하고   식식거릴   뿐이다.    “나하고   말이야,   한   판   붙읍시다.” “무…⋯…⋯   뭐?” “나하고,   짱   좀   뜨자고.” “이,   이봐…⋯…⋯   열진아…⋯…⋯.” “거    내가,    당신    핏줄이라   그런지    인륜을    막    저버리고    싶네.    내가    지면    당신   고이   살려   보내   주지.   오케이?” 그의   얼굴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페이스    투   페이스.   돼지의   피    냄 새   섞인   콧김이   나의   가학성을   증폭시킨다. “내가   이기면,   알잖아?”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당연하잖아.   아무리   팔   하나를   못   써도   이런   늙은 이   하나를   못   밟을   리가   없다. 그가   동의하고   십   분   뒤,   그는   피떡이   되어   맞고   있었다.   과정을   설명할    건덕지도   없었다.   처음부터   일방적으로   나의   우세였던   싸움은   그대로   별 반   달라질   것   없이   계속    되었다.   나의   상대는   아들의   서른   명의   부하들이    입회인으로   참여한    가운데   아들에게    먼지나게   털리는   인류    최초의   수컷 이   되었다.   


“제발!  제발…⋯…⋯   윽!” 간간히   터져    나오는   신음과    비명,    애원,   후회,    맹세,   변명…⋯…⋯.   그의    뒷 통수를    팔꿈치로    찍어내릴   땐,   혹시    폭력은    가장    효과가   좋은   고해성사 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하,   하아…⋯…⋯. 한참을   패고   정신을   차렸을   땐   피범벅이   된   정체   모를   무언가를   구둣발 로   사정없이   밟고   있을   때였다.    탈진하기   직전인   나는   발길질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커헉…⋯…⋯   헉…⋯…⋯.” 정작   맞은   쪽은   숨소리조차   제대로   못   내고   쓰러져   있는데   이쪽은   말조 차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있는   욕   없는   욕   다   뱉어내려는   뇌와   그 런   뇌에   산소를   공급하려는   심장이   싸우고   있었다. 저만치    뒷걸음질쳐   기다리고    있던   라미레즈에게    부축을    받은   채로    힘    풀린    오른팔을    들자   주변을   둘러싼    부하들이    소총을    들었다.   보통   때라 면    그걸   보고   몸부림쳤을    고깃덩이는    볼   힘조차    없는지    움직일    수   있는    뼈들이   다   부러진건지   미동조차   없었다. 손을   가볍게   내렸다. 투다다다다—― “끄어어!!” 의도한   조준으로    하반신만을   향한   격발.   더    이상    눈뜨고   볼   수   없을    만 큼    처참해진    양다리를   부여잡고    피투성이인   상체가    튀어오른다.   낸다고    낸   비명   소리는   이제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좀   있으면   쇼크가   올   겁니다.   헤페.” 그래   그래   나도   알아,   힘들어   죽겠으니   한국어로   말해,   싸가지   없는   놈아. “헤페…⋯…⋯?”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하는   마타를   뒤에   두고   주섬주섬   땅에   떨어진    콜트를   챙겨   아버지에게   다가간다.   이제   그는   얼마   안되는   기력을   흐느끼


는  데   쓰고   있었다.   별로   신경쓰지   않고   권총구를   그의   정수리에   댄다. “남길   말은?” “나는…⋯…⋯   흐흑…⋯…⋯   나는…⋯…⋯.” 하…⋯…⋯ “내   무기는   아직   이   총이    남았는데,   당신은   이제   마지막   무기인    변명조 차도   가지고   있지   않구만.” 타—―앙 시체가   허물어지는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제   내   과거를   조금이나마   청산할   수   있을까. 어머니는   조금이나마   기뻐하실까. 나는   지금   조금이나마   기쁜   것일까. 눈가에   손을   가져다   대   봤다.   눈물인   줄   알고   닦아내   봤지만,   피와   섞여    잘   알   수가   없었다. 동이   트고   있었다.

—―계속


[Text]  연재소설_2

에레혼을  위하여_이상욱 3. 나는   어머니의   유언을   보고   장례식을   간단히   치렀다.   몇몇   지인만   위로 의    말만    하고    가셨다.    어머니를    화장한    후   그    뼈를    레이콘   강에   뿌렸다.    그   강은   슈바츠쿤스트   제국의   수도를   통과하는   테베르   강까지   이어져   있 는데,    수도에    가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던    어머니가    죽어서라도   수도를    가   보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고운   뼛가루가    강에   녹아    물을    따라    흘러갔다.    그럼   이제    어머니는   강과    일체가    되는    것인가?   이    강은    메워지지    않는   한   영원히    흐를    것이다.    어머니는   영원히   흐른다고    볼   수   있겠지.    그렇게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후   바로   마을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나 는   정규    교육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에레혼이란    말은   전혀   들어    보지   못 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제대로    책을    뒤져보면    나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책을    뒤져도   그런    단어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 다.   나를   보던   사서가   딱하게   여겼는지   한   마디   거들었다 “여기는    마을    도서관이라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여기에    없는    책들 이    중앙   도서관에는   많이    있으니까    한   번    중앙    도서관을   찾아가는   것이    어떻겠니?” 나는    그   말을    듣고   많은    고민을   했다.    여기서    수도까지는   말을    타고도    열흘   이상이   걸리고,   걸어서는   한   달도   더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고 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차피    어머니도    돌아가신    마당에    미련을   둘    이유는   없었다.   더군다나   어머니가   죽고   나서도   계속   찾아오는   빚쟁이들 의   폭행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지긋지긋한   마을에서    벗어나고   싶 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나는   곧바로   얼마    안   되는    짐을   싸   들고    낡고   무


딘  어머니의    검을   챙겼다.    원래는   국가에서    나눠준   양산형   검을    하나   갖 고   있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   것으로,   매우   조잡하다.   검 조차도    빈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니    매우    기분이    나빴다.   당장이라도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혹시    필요할    때가    있을지도   모르니   따로    챙겼다.    도서관에서   전국   지도의    복사본을   챙긴   뒤   털레털레   이    마을    벗어나서    수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케젠    시여,   이제    안녕이다.   내가    17년   동 안   살았지만   힘든   추억밖에    서려    있지   않는   곳.   나중에   좋은   감정으로   다 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나는   이   마을을   떠났다.    케젠    시는   분지    위에   있는    도시이다.   카림    산맥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 는    여름에는    저주   받은    도시라고    생각될   정도로    너무나도    더운    게   특징 이기도   하다.   이제   이런   더운    날씨를   더   이상   느끼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살짝    기쁘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거진    수풀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라는    문제가    나에겐    매우    중요했다.   불행히 도,    나는    편하게   만들어진    길을   갈    수   없었다.    그    길로   가려면    마을   초소 를   꼭   지나야   하는데,   거기서   신원을   확인할   것이   분명하고,   결국   나는   빚 쟁이로에게   잡힐   게   뻔하기   때문이다. 보초들의   시선을   피해서   수풀을   헤쳐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 었다.   뾰족한   가시가   온   몸을   찔러   왔다.   수많은   부정   대결로   단련된   몸을   믿 으며,   나는   스스럼없이   가시덩굴   속을   헤쳐   나갔다.   레젠   시   쪽으로   한없이    걸어갔지만,   제대로   된   길이   아니라서   그런지   아직도   멀게   느껴졌다.    결국   온통    숲과    새들만   있는   곳에서    밤을    맞이   하고   말았다.   늑대    울음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살짝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무딘   칼로   과 연    내    몸을   지킬    수   있을까?   물론    늑대   떼    따위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 다.    다만,    레젠   시에    도착하기까지   아직도    멀었기에   체력을    보존해야   한 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커지자   발걸음도    점차    빨라져    어느   새   뛰어가게   


되었다.  눈과   귀   등의   감각   기관이   예민해져,   벌레   하나   울음소리   조차   아 주   크게   들렸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신경 을   곤두세우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약 간    기쁘기도    했지만,    산적일    가능성도    있다는    걱정을    하면서   조심조심    다가갔다.    드디어    내   키만    한   수풀을    헤쳐나간    끝에   어떤    공터에   도착하 게   되었다.    큼지막한   공터   위에   여자   아이   한   명이   서   있었다.   넓은   공터   위에   가녀 린   여자아이   한   명이   서   있으니,   매우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어 딘가를   지긋이    응시하더니   갑자기    검을   훽   빼    들며   빠른   속도로    한   곳을    베었다.   그리고   그   곳에는    멀쩡한    나무가   갑자기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여 러    갈래로    쪼개졌다.   나는   그녀의    놀라운    속도에    감탄하여   나도   모르게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고,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그녀는   검을   손에    쥔    채로   내   쪽을   향해    재빠르게    뒤돌아보며   나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여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얼어   있었다. “누구냐?” “나,   나는…⋯…⋯” 아까   보여준   거친    검술과   상반되게   가녀린   이목구비와   하얀    얼굴의    그 녀는    가늘고    떨린    목소리로    물어봤다.    나는    멍청하게도    말을   더듬었고,    이런    모습을    본   그녀는    내가    얼빠진   녀석으로    보였는지    피식    웃으며   검 을   검집에   넣었다. “흥,   얼빠진   남자가   이렇게   야심한    시각에   산   속에는   무슨    일로    오셨을 까?   안   좋은   생각으로   내게   접근했다면,   당신의   인생은   비운의   결말을   맺 게   될   거야.” 그녀는    코웃음   치며    나를    조롱했다.   쳇,    아까는   떨리는    목소리로    누구 냐고   물어봐   놓고는…⋯…⋯.


“그럴  생각으로   여기   온   것은    아니지만,   처음   보는   사람한테    너무한    것    아닌가?” “처음   보는   사람도   상황에   따라    다르지.   검에   찔리지   않은    것이나    감사 하게   여겨.” 말투가   아까부터   계속   거슬린다.   마치   나에게   악감정이   있다는   듯   시비 를   거는   것   같았다.   조금   기분이   나빠   나도   모르게   빈정거리고   말았다. “풋.   그나저나    검은    다룰   수는    있는   거야?    여자가   검을    다룬다는    사실 은   들어본   적은   없는데?”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당장   보여줄까?” 그녀는   갑자기    나를   노려보더니   팔목에    손을   가져간다.   뭐?   여기서    한    판    붙자는    건가?   이런…⋯…⋯    가뜩이나   짐승들이    습격할까   봐    걱정되는   상 황에서   쓸데없이   체력을   빼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너,   나랑   싸우는    게   무서워?   하긴,   남자가    여자한테   검술로   진다는    것 은   무척이나   굴욕적이겠지.   어디를   가나   남자들은   항상   같아.” “뭐라고?   누가   무서워?   남   사정도    모르고   말하는    건   안   좋은    행동이라 고.   정   그렇게   대결을   하고   싶다면   뜻대로   해주지.” 내가   비록    꼴찌에서    3등이라고    하더라도    대결    경험만큼은    풍부하다.    그녀는   딱   보아하니   경험이   많지   않아   보인다.   준비   자세가   어정쩡하다.    아무튼   대결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대결을   벌이려는   당사자들   중   한    명이라도   손목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손목에   장착되어   있는   CO (Competition   Organizer)라는   기계가   지문   인식을   통해서   작동된다.   그 러면   마법   보호막이   펼쳐지면서   심판자   홀로그램이   나온다.   그것들의   생 김새는   한   가지밖에   없는데,   제2대   왕인   하인스   포데르의   모습이라고   한 다.    그것이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심판자    홀로그램은   주위에    있는   사 람    중에    프로그램을   작동시킨   사람을    찾아서    대결    여부를   묻는다.   그리 고   그것을   승인하면,   대결이   시작된다. 심판자    홀로그램의   “시합   개시”라는   짧은    구호와   함께    그녀는   나를    향


해  달려들었다.   그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당황한   나는   검을   얼른   들어   그 녀의   돌격을   저지했다.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   내쉬면서,   뒤로   빠졌다.   나 는   아까보다   긴장한   상태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생각보다   빨라서   놀랐지?   이게   바로   여성의   검술이라고!” 그녀는    기합을   내지르며,    다시    나를   향해    돌격했다.   재빠른    공격에    간 신히    막았지만,    검기가   내    몸에   곳곳에    닿으면서   체력    바(bar)가   줄어들 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힘있게   그녀의    검을   내쳤다.    그녀는   공격에만    집중했기에    순간    균형을   잃었고,    나는   틈을    향해   내찔렀다.    하지만   그녀 가   황급히   내빼는   바람에   별로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나름   머리는   좋은   것   같네.   그래도   실력이   바쳐   줘야지!” 그녀는   또다시   나에게    달려들었고,   나는   이전과   똑같다는    생각에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뭐,   뭐지?” 갑자기    사라진    그녀의    모습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뒤쪽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재빨리    뒤로   돌아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 만   그곳에도   그녀는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녀는   검기    어린    검으로   등을   빠른    속도로    베었고,   결국   체력이    다    깎 여   대결에서   패배하게   되었다. “검을   다루지   못하는   여자에게   패배를   당한   느낌   어때?” “…⋯…⋯.”    나는   대결   전의   기세등등함을   잃고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게   되었다.   도 대체    어떻게    당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동안   수많은    대결을   치렀지만,    이런   기술은   처음   봤다. “뭐   그    멍한   표정이    꽤나   인상적이네.    한   가지    좋은    걸   알려주면,    방금    그   기술은   헤이스트(Haste)라는   내가   자랑하는   기술이야.” 헤이스트!   엄청나지는    않지만,    익히기가    매우   힘든    기술이다.   효과    대 비   손이   많이   가는   기술로,   많은   사람들이   꺼려해서   쓰는   사람도   없다.   그


런데  이걸   이   여자애가   익혔단   말인가? “항상   육중한    파워로   때려    대는   걸    좋아하는   남자들은    이런   값진    기술 을   쓰레기   취급   한다니까.    아무튼    오랜만에   대결해서   좋긴   했는데,   좀   실 망이네.   적어도   내   체력을   반은   깎을   줄   알았는데.” 그러면서   그녀는   어디론가    걸어갔다.   나는   당황해서   그녀의    뒤를    따라 갔다.   아까의   대결로   체력을    많이    쓴   나는   늑대   울음소리가   가득한   이   산    속에   혼자   있기   불안했다.    “야,   왜   자꾸   따라와?” 내가   따라오는   것을   느낀   그녀가   뒤로   서서   날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크흠,   그쪽으로    가면    마을이   나오는    거   아니야?    나는   이런    산    속에서    하룻밤을   지새기는   싫어서   말이야.” “흠,   그러고   보니   이런   야심한   산   속에   사람이   있다는   자체가   참   신기한    일이지.    그래서    의심에    여지도    없이    치한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승리자로서   마을을   안내해   주지.”    그녀는   앞으로   나서서   뒤는   절대로   돌아보지   않은   채   빠른   걸음으로   걸 어갔다.   나는   그   걸음을   쫓아   한   시간   정도   걸려서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는   듯   안녕이란   말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산   속의   마을은   규모가   매우   작았지만,   민박   업소가   어느   정도   있었다. “당장   나가!” 하지만    숙박    업소가    많아도    잘    곳은    없다는    황당한    상황도    존재한다.    나는   모든    숙박   업소를    들렀지만,   내    비루함    옷차림과   랭킹을    보고는   일 말의    여지도    없이   바로    나가라고   소리쳤다.    숙박할   돈은    충분히   있지만,    그저   랭킹이   낮은   것이   그들에게는   무언가   더러운   죄처럼   느껴지는   것일 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랭킹으로    결정되는    사회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것도   랭킹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랭 킹이   슈바츠쿤스트    제국   중앙    프로그램에   등록되어   있어서    랭킹   네트워


크에  접속해서   검색하면   남의    랭킹은    손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내   랭킹 이   꼴찌에서   3등이라는   것을   비밀로   숨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다 행히   마을    밖으로   내동댕이쳐지면서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이    위안이   되 기도   했다.   나는   할   수   없이   밖에서   자기로   했다.   4월   한창   때라서   한밤중 에도    밖의    온도는   적당할뿐더러,    맹수가   들어    닥칠   위험도    없을   것이다.    다만   도둑은   있을   것   같아서    돈을   소매   속에   깊이   넣어두고   자기로   했다.    그런데   공원의   벤치로   드러누으려는   순간,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젊은이,   아무리   젊다고   해도    밖에서    자는   건   위험하네.   봄이라고    하지 만   밤이    되면   찬바람이    불어   감기에   쉽게    걸릴   텐데    그럼   안   되지.    잘   곳 이   없으면   내   집에서   자도   되는데,   어떠한가?” 나는   눈을   뜨고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백발 의   노인이   한   명   서    있었다.    동그란   안경을   써서   그런지   다정하고   온순한    노인이란    이미지가    내   뇌리    속에   새겨졌다.    이    할아버지   집에서    자는   것 이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    노숙하느니   집   안에서    자는   것이    훨씬    좋다는    생각도.    물론    따라갔다가    홀딱    당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에 게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나겠냐는   마 음으로   할아버지를   따라갔다 할아버지가   발걸음을    멈춘    것은   허름한   판잣집   앞이었다.    꾸불꾸불    고 갯길을    올라간    뒤라   땀이    약간    났는데   산바람에    저절로    식어    온몸에   스 산한    느낌이    들었다.   그와   더불어    집    뒤에    무덤가가   보이자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이거   매우    기분이    나쁜데…⋯…⋯    하지만   할아버지는   분위 기에   신경   쓰지   않고   망설임   없이   대문을   끼익   소리를   내며   열었다. “할아버지!   도대체   이   늦은   밤에   어딜   싸돌아…⋯…⋯.” 머리를    뒤쪽으로   묶은    여자   아이가    화난    듯한    목소리로    할아버지에게    따지다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었다. “너,   너는!”


그녀는  놀랍게도    아까    대결을    했던    여자였다.    깜짝    놀란    그녀는    얼어    있었고,   나도   당황하여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음…⋯…⋯   서로   아는    사이였군요?   이거    참   놀랍네요.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잘들   지내요.    아   참,   제   소개를   안    했군요.   저는   카라스   류차 도르라고   해요.   이   녀석은   내   손녀   구요.   서로   통성명은   했겠지요?” 나는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겨우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면식만   아는   사이라고   할까,   아무튼   저는   라빈   플래져라 고   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하면서   할아버지에게    꾸벅   인사했다.   그   손녀란   애를    쳐다보지는    않은   채. “나,   나는   앨리스   류차도르라고   해.” 그녀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자기    소개를   하였다.   음,   앨리스    류차 도르라…⋯…⋯. “그렇군요.   서로   나이도   엇비슷한   거   같은데,   잘   지내요.   집이   좀   누추하 겠지만   편히   있으시면   좋겠네요.   앨리스,   이   손님   분에게   방을   내드려라”    “네,   네.” 엘리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였고,   카라스   씨는   조금    당황한    표 정을   지었다.     “애야,    그    반응은    뭐니.    어휴…⋯…⋯.    이    할배가    가정교육을    잘못시켰구 나.   앞으로는   그러지   마라.   그리고   손님,   죄송합니다.   제   손녀딸이   버릇이    조금   없어요.    그래도   마음씨는    착한   아이니    신경   쓰지   마시고    여기서   하 룻밤이라도   잘   주무시길   바라요.” 할아버지께서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셨다. “…⋯…⋯.” “…⋯…⋯.” 나와    앨리스는   서로    말없이   노려보고    있었다.   이윽고    먼저    입을   연    건    앨리스   쪽이었다.


“허,  어처구니   없네.   신세   지는   주제에   남을   노려보기나   하고…⋯…⋯.   너무    무례한    거   아니야?   아무튼    진짜   할아버지    때문에   운    좋은   줄    알아.   방을    안내할   테니까   얌전히   따라오기나   해” “…⋯…⋯.” 정말    계속   화를    돋우네.   나야말로    너희   할아버지    때문에    참고   있는    거 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여정이   길기    때문에    여기서는   내가    지고   들어가 는   것이   나에게   더   이득이다.   내일   아침   일찍   떠날   것이기   때문에   괜히   트 러블   일으킬   필요도   없고.   그래서   얌전히   방을   안내   받았다    “진짜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뭔데?” “나랑   전생에   원수   진   일   있어?” “뭐?” 앨리스는    생뚱맞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솔직히    아까의    대결 도   먼저   시비   건   것은   그녀였다.   아니면   시비   거는   게   취미인가? “아까   대결   하기   전에도   네가   먼저   시비   걸었잖아.   나는   솔직히   처음   만 난   사람치고   이렇게   사이   나쁘게   지내고   싶지는   않거든.”    “그냥   네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다는   건…⋯…⋯.   솔직히   거짓말이고.    아 까는    착각해서    그런   거였어.    뭐   기본적으로    나는   남자를    싫어하니까.   사 람마다   각각   사정이   있는   법이잖아?   내가   시비   걸었던   것은   사과할게.” 솔직히    계속   자기가    잘났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    말대로    나쁜   애는   아닌   것   같다. “그래,    맞아.    신세    지는    대신    설거지나    해.    수련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그동안   설거지도   하느라   죽는   줄   알았는데   잘   됐다.” 역시    이    녀석은   나쁜    애였어!   어떻게   손님을    부려먹을    생각을    천연덕 스럽게   생각하지?   이거    정말로    미안한   거   맞나?   하지만   나는    이   집에   신 세지는   것은   맞기에   앨리스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매우   피곤하기도    해서   더   이상   실랑이를   벌이지는   않기로   했다.   


앨리스가  안내해   준    허름한   방    안에   있는    지푸라기   속    안으로   냅다    뛰 어   드러누우려고    했는데…⋯…⋯   갑자기    날카로운   무언가가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읏…⋯…⋯   따가워.   내    얼굴에   손을   가져가보니   피가   묻어   있었다.    이게    뭐야…⋯…⋯.    나는    놀란    얼굴로    사방을    둘려보았다.    오른쪽   구석에는    앙칼진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노란색과   하얀색이   절묘하게    조합을   이 루는   털을   가진   고양이가   한   마리   서   있었다.    “마일드,   왜   그래?   평소에는   온순한   녀석이   갑자기   예민해졌어.” 뭐?   마일드?   무언가    말도   안    되는    이름을   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무리    예민한    고양이여도    갑자기    사람    얼굴을    마구    할퀴지는    않는다고!    이   고양이는   주인을   닮은   게   분명해. “이건   너무하잖아   난   고양이한테   아무    짓도   한   적이   없는데.    피곤해    죽 겠는데   고양이   녀석   때문에   제대로   자기도   틀렸잖아.” 앨리스는   일말의   동정심도   품지   않은   채   톡   쏘는   말투로   말했다. “그거야    네가    우리    마일드   보금자리에    아무    말    없이    뛰어들어서    그런    거지.   조금은   주위를   살피라고.   아무튼   여기가   네가   잘   자리야.   만약   마일 드에게   무슨   짓을   하기만   해   봐라   내가   가만   안   둘   줄   알아!” “아니,   이건   나보다   얘가   나한테   뭘   할까   걱정해야지.” “남자애가   고양이    하나    무서워하는   건    아니겠지?   거기다    얘는    온순한    고양이라고!” “…⋯…⋯.” 이런   순   억지가   있나…⋯…⋯.   그녀에게   마구   따지고   싶었지만,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너무    피곤하여    그만두었다.   아직    여행을    떠난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도   벌써   몇   주는   지난   느낌이다.   나는   그   고양이를   경계를   한   채    짚   속에    드러누웠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눕자마자   잘   것    같은   기분이었 는데   지금은    또   잠이    싹   달아났다.    적막한    밤공기가   스며드는    사이로   달 빛의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조그마한    격자로    돼있는    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동그란   보름달이   보였다.   


나는  뭐   하고    있는    것일까?   에레혼이라는    것이   도대체    뭐기에    어머니 는    죽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에게   필사적으로    떠맡기려고   하셨을까.    여러   생각이   잠겼다.   그리고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깨닫 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삐죽하고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이러면   안   되지.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을   멋지게   이루어   씩씩한   아들로   영원히   남아야지.    그래야    어머니의    영혼이   편히    가실   것이다.    나는   엔츠   교를    믿지는   않지 만   영혼과   몸이   분리   되어있는    건   왠지   사실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영혼 과   몸이    분리되어있지    않으면    죽음은    그냥    끝에    불과하단    생각이   들고    너무나도   슬픔과   동시에   허망함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사람은   결국   죽음 이란   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도   이제    잘   시간 인지    얌전하게    구석에서   가만히    웅크려    있었다.    긴장이    풀리자   나는   이    집에서    하루빨리    나가서   또    어떤   여정을    떠나야   되는가,   라는    고민   속에 서   잠이   스르르   들었다.

4. “야!  야!” 귀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나는    몸 을   펄쩍   뛰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거기에는   앨리스가   서   있었다.   으 음…⋯…⋯.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는   거야? “빨리   일어나!   지금까지    자면   어떡해?   진짜    게을러    빠졌어.   아무튼    설 거지   할   시간이야.   “ “아…⋯…⋯   정말!   나는    하루   종일    걸었다고!   너   같으면    일찍   일어날   수    있 겠냐?    거기다가   계속    참아    왔는데,    네가    나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안다고    계속   시비야?   참는   것도   정도가   있어!” 달콤한   잠을   방해한   것에   대해   매우   예민해져   있어서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앨리스는, “뭐가   잘났다고   큰   소리야?   이래서   목소리만   큰   남자애들이   진짜   싫어.    빨리   설거지나   해.” 라고   소리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몽롱한    정신으로    얼굴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러자    찬    기운이    온    몸에   전해지면서   잠이   확    깼다.    대충   머리까지   감은   나는   식탁으로   가   앉 았다.   거기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이   하나   놓여   있었다. “허허,   오랜만에   손님이   와서    아침   일찍   갓   나온    빵을   사   왔네.   맛은    보 장하지는   못하지만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구려.” 나는   아무런   조건    없이   이렇게   잘해주시는   카라스씨를   보며    눈물이    나 올   뻔했다.   그런데   그와   다르게   그   손녀라는   작자는…⋯…⋯. “그나저나   앨리스는   어디로   갔나요?” “아,   앨리스는   수련하러   떠났지요.” “수련?” 그러고   보니   저번   밤중에도   수련   비슷한   걸   하는   걸로   기억이   났다. “그런데   여자는   검을   쓰지   않는   게   원칙   아닌가요?” 그    말에    카라스    씨는    뒷정리를    하던   동작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라빈   씨는   앨리스가   검을   쓴다는   것을   아시나요?” 나는    그   반응에    뭔가   잘못    건드렸나,   라는    생각을    하며   뒷머리를    긁적 였다.   이에   긍정의   표시로   안   카라스   씨는   갑자기   말을   늘어놓았다. “솔직히   이건    우리   집의    복잡한   사정이기도    하지요.    저희   집이    이렇게    가난한   것도   그   때문이기도   해요.   이왕   이렇게   됐으니   다   말해드리지요.    제    아들은    꽤    잘나가던    검사였습니다.    이    마을에서    추앙    받는    검사로    제   손녀딸은   제   아들을    매우    존경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아 들이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멋지게   휘두르던   검 을   조금도    잡지   못하게    되었지요.   이유를    재차    물어봤지만   아무    말도   하


지  않고    제   아들은    시름시름   앓아   결국    병상에   누워   일어서지    못할   지경 까지   됐어요.    어느   날    제가   손녀딸이랑    손을    잡고   시장을    갔는데   거기서    상인이   갑자기   그런   말을   하더군요.    ‘어떡해요,   카라스   씨.   아들이   그런   험한   일을   당해서요.    그동안   쌓아왔 던   명성이   그   한   번의   승부에서   결정   났으니   말이에요’   라고   하는   게   아닌 가요?   저는    놀라서   여러    가지   조사해   본    결과   제    아들이   그    승부에서   지 면   검을    내려놓겠다고   했다고    하더군요.   아마    그   때   상대방이    제   아들을    감정적으로   매우   자극했었을   겁니다.   제   아들이   평소에는   냉철하지만   인 신    공격을    받으면   한순간에   이성을    잃고    말거든요.    아무튼   그   승부에서    져서    이런    지경까지   갔더군요.   그리고    옆에서    들었던    제   손녀딸도   매우    충격에   빠지고   나서   아무것도   못   먹더니   갑자기   검술을   익히겠다며   아버 지의   검을    낑낑   들며    연습을   하고    있더군요.    저가   아무리    말렸지만   소용 이   없었어요.   그리고   내   아들이   병을   얻어   죽고   나서는   더욱   더   검에   집착 을   하더군요” 장황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매우   착잡해진    기분이    느껴졌다   도대체    그 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토록    따르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감정 은    내가    겪었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의    감정과    비슷할   것이다.   그 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걸어왔던    길이   부정되지   않도록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어머니가    추구했던   것을   부정하려고   했던   반면   그녀는   그   길을   지키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녀에게    품었던   악감정들이    조금은   풀리는   듯   했다.   어쩌면   그녀의   검에   대한   열정이   핍박   받는   이   시 대의    관습으로    인해    비뚤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야,   설거지   빡빡   안   해?” 앨리스는    자신이    이    집안의    대장인    양    당당하게    지적을    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면,    수련하러   나갔던   앨리스는   내가   밥을   다   먹을   


때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갑자기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설거지를   빨리   하도록!” 하고   큰   소리로   명령   투로   말을   하였다.   이야   정말   성격   삐뚤어진   거   제 대로   인증하네. 나는    열심히    설거지를    하였다.    내    얼굴이    비춰질    정도로    그릇은    아주    번쩍번쩍    거리며    잡티   하나    없을   정도였다.    내가   이렇게   설거지를    잘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흠흠.   설거지는   잘   하네.   그럼   이제   청소를   해야지?” ‘야,    아무리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해줬다고    해도   무슨    노예    다루듯이    하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할아버지의    말이    계속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래,    한    번이라도    봐주자’    라는   생각이    은근슬쩍    고개를    쳐들자   아무    말    없이   앨리스의    말을    따르게    됐는데   이 게   오히려   역효과가   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청소를    시키고   나서는    노예   다루듯이    장보는    것부터    일일이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온갖   잡일은    다   시켰다.   하아~    이거   부정   대결    하는   것보다    엄청   힘들다고. 앨리스는   여러   가지   잡일을   다   시키더니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보 며   말했다. “너,   왜   그런   거지   꼴인지   알겠다.   남자애가   그런   잡일은   완벽하게   하는    거    보니    검술은   안    하고   집안일만    했네.   솔직히    말해    봐.   네    랭킹   정확히    몇   등이야?” “그걸   왜   말해야   하는   건데?” 갑자기    랭킹을   묻다니…⋯…⋯    정말로    예의   없는    여자애이다.    개인적으로    남의   랭킹은    함부로   묻지    않는   것이    이    사회의   최소한의    예의이다.   그런 데    만난   지   하루밖에    안    된   남에게    스스럼없이    랭킹을   물어보는   앨리스 는   도대체   뭘   배운   건지   모르겠다.   큭,   왠지   카라스씨에게   미안해지네.   참 고로   집안일을   잘하는   이유는   어머니께서   병상에   계신   이후에   항상   내가   


집안일을  해   왔기   때문이다.    “흥,   창피하니까   말   안   하는구나.” “그래,   그렇긴   한데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냐?” 퉁명스러운   내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살짝   흔들며   답답하다는    듯한    표 정을   지으며    “그걸   자기가   인정하다니,   정말   넌   자존심도   없니?” 자존심?   그런   게   중요하게   생겼냐?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런    것까지    챙기면    어떻게    사냐?   나는    그녀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 는데   그게   꽤   노골적이었는지   그녀도   눈치   챘고   갑자기   씩씩거리며   나를    몰아붙였다 “아니,    그    표정은    뭐야?   사람이라면    자존심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   것도   없으면   그냥   가축에    불과할   뿐이야   먹이만   주면   좋아 하고   언제   도살당할지도   모르는   운명도   모른   채   본능만   충족되면   좋다는    삶이라고!   자존심은    꿈이   있는    한    계속   존재하는    것이고    자신을   지탱해 주는    것이지.    뭐    삶의   가치를    불어    준다고    할까나?    그런    의미에서   너의    삶은   가치가   없는   거야! 뭐?   진짜    말   심하게도   하네.    삶의   가치가    없다고?   나는   마음속에서    매 우    깊은    분노가   마그마처럼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내    깊은    내면에서    그    말을   되짚어    보았다.    과연    내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어머니와    함께   평온한    삶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다.    그런데   지금 은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도대체   내    삶의   가치    즉,   의미는    무엇일까?   갑 자기    그토록    뜨거운    분노의    마그마가    급속도로    냉각되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   허무함이    내    내면으로    둑    터진    급류처럼    밀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히    있는    것을   의식했는지   앨리스는    당황함을   느꼈던   것   같다. “뭐,   그렇다고   네가   진짜로   가치   없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게   백   배   낫다는   말이야.   그게   기분   나쁘게   들렸다면   미안해.”


나는  놀란   눈으로    앨리스를   쳐다보았다.   갑작스럽게   사과할    줄은    몰랐 기   때문이다. “별로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그    자존심이란   것,    나하고는    상관없으니 까    네    말에    관심은    없어서    잘못    들었어.   아무튼    그    동안   고마웠다.   이제    슬슬   떠날   시간이   된   것   같아.”    간단한   아침   식사도    한   건   물론이고   식객으로서   설거지까지    철저히    했 으니   이    집에는   볼일    없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재빨리   짐을   챙겨서    이   집    문을   나섰는데…⋯…⋯. 무언가에   부딪혔다.    딱딱하지는    않지만   탄력성이   아주   좋은    것에    부딪 혔는지    나는    뒤로    벌렁    나자빠지고    말았다.    윽,    이게    무슨   꼴이야.   나는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끼고   일어서려고   위를   쳐다보았는데 “허,   뭐야   이   거지는?   부딪혔으면   사과를   해야지” 예전에   부정   대결에서    머리를   베다가   제삿상에   올리고   싶었던    그    카르 고인가   하는   자식과   비슷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부잣집   항아리를   연상시 키는   풍부한   몸매   위에   돼지    머리가    얹혀진   녀석이   떡   하니   내   앞에   버티 고   서   있었다.   말투도   아주   싸가지   없는   것까지   똑같고   말이야. “예예,   죄송합니다.   저는   바쁘니   이만.” 하고   재빠르게   지나가려고   하는   순간, “건성으로   사과를   해?   진짜   발랑   까진   놈이네.” 하고    탁   내    팔을    잡는   것이    아닌가?   아…⋯…⋯.    귀찮은   일이    벌어지게    생 겼네.   그런데, “테베르,   그만해.   우리   집의   손님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것은   예의가   아 니라고   생각하는데?” 앨리스가    뒤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따지는   게    아닌가?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놀라서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   같이   우리   가족을   피곤하게   하는   돼지   녀석보다는   집안일을   도와준    식객이   훨씬   더   나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거든”


테베르는  내   팔을   놓더니   입가에   살짝   비웃음을   머금은   채   앨리스를   바 라보았다 “앨리스,   그   잘난   자존심은   어떻게   해도   안   꺾인단   말이야.   그   자존심이    무참히   깨져서   내   발   밑에서   ‘잘못했어요’   하면서   울   것   같은   눈동자로   나 를   쳐다보는   장면을   상상하면    아주    기분이   매우   좋아져.   뭐   어차피   그   아 버지에   그    딸이라고    너에게는    패배자의    딱지가    붙을    게    분명한데   말이 야.   아무튼   나의   제안   생각해   봤어?” 이에    앨리스는   여전히    노려보는    표정을    유지하면서    주먹을    부들부들    떨   정도로   꽉   쥐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제안    따위   생각할    거    같나?    네   집안은    우리    집안의    원수이고    너의    그    치욕스러운    제안은   듣자마자    저    멀리   수도에    있는    정화의    내천에   쉬 지   않고   달려가서   씻고   싶을   정도야.” “흥   튕기기는.   난   이해가   안   가는군.   그때의   일은   잊자고.   물론   그   때   내    형과   네    아버지의   내기가    잘못됐다는   것은    알아.   네   아버지가    그것   때문 에   죽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   네가   그렇게   검에   목   매달고   하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내가   제안을    하는    거    아니겠어?    네가    내   후첩으로    들어온다면   너에게    검술을   마음껏    하게   해주고   아버지의    명예까지   회복 시켜   주겠다고.   그런데   뭘   망설이는   거지?   우리   집안은   이래   보여도   아주    빵빵하다고.” “그딴   제안은    너    같은    쓰레기나    받아들일    수   있지.   나는    내    힘으로    내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여자가    검술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거 야.   그러니   이만   돌아가도록   해.   내   검이   살집이   더덕더덕   붙어있는   네   목 을   내려쳐   구워   먹기   전에   말이야.” 앨리스는   당장이라도   칼을   뽑을   듯   한   자세를   취하고   이에   테베르는   약 간    움찔한    듯   한    움직임을   보았다.    풋,   뭐야    여자에게    지금   쫄고    있는   거 냐?    하지만    테베르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이내    아무렇지도   않는    듯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크흠.  그래    그럼   약간    다른   제안을    하도록    하지.    너와    내가   검술    대결 을   해서   내가   지면   너의    아버지의    명예   회복은   물론이고   너의   부탁   한   가 지를   들어주지.   대신에   네가   지면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걸로.   어때?” 이에   앨리스는   테베르를   노려보며   말했다. “글쎄?   솔직히   네   형과   내   아버지가   벌였던   대결에서   부정한   술수가   행 해졌다고   생각하는데,   너도   그럴   것   같아.   “ “뭐?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그건   억지   아니야?    “억지긴   뭐가   억지야!   그때의   대결을   철저히   조사해    봤어.    마을   주민이    말하기를   아버지가   막판에   갑자기   당황한   표정으로   검을   바라보았다고.” “그거야   네   아버지   상태가   안    좋았나   보지.   거기서   우리가    어떻게    했는 지는   모를   뿐더러,   증거도   없잖아?” 서로   노려보며   팽팽한   눈싸움을   벌이는   이   두   사람   사이에서   나는   슬그 머니   빠져나가려고   했다, “네가   정    그렇게   못    믿겠다면   심판    시스템   말고도    다른   심판자를    내세 우면   되지   않겠어?   객관적으로   공인된   사람으로   말이야.” “그래   봤자   뇌물로   해결하면   끝   아니야?   돈이   많은   놈들이   하는   수법이    다   그렇지.   안   그래?” “허,   그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솔직히   네가   그런   말   할   처지인가?” 하면서   슬쩍   테베르는    앨리스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면서    손을    앨리스 의   얼굴   쪽으로   뻗자, “그럼   이   녀석을   심판으로    내세우면   어떻겠어?   그리고   이   녀석은    시합    전까지   우리   집에서   묵을   것.” 테베르의   손을   팟하고    뿌리치며   한   발   물러서면서   앨리스는    한    발자국 이면   문   밖을   벗어날   수    있는    내   목덜미를   붙잡았다.   아니   잠깐만…⋯…⋯   왜    갑자기   내가   언급되는   거야? “허,   이런    근본    없는    놈을    심판으로   세운다는    말이야?   아무리    내가    못    미더워도   이건   순   억지잖아?”


“어차피  내가    약자인   입장에서    이   정도는    양보해   주는    것이   도리    아니 겠어?   솔직히   내가    얘를    매수할   여력도   못    되잖아?   그리고    대신   그때   싸 움을   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근거를    내세우는   조건으로    의견을   받아들인다는   건   어때?” “흠…⋯…⋯   그래    좋아.   뭐    그   정도    쯤은   봐주지.    내가    어지간히   아량이    깊 은   사내란    말이지.   어차피    발버둥쳐   봤자    너는    내   후첩으로    들어오게   되 어   있으니   어디   한   번   잘   해보셔   하하하.” 하고   뒤   돌아서서   가는   테베르.   그   뒤에는   웬   쫄다구   마냥   몇   명이   뻘쭘 하게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웃겨서    나도   모르게   풋하고    웃음이   터 졌다. “야,   너는   뭐가   그렇게   웃겨.   내가   조롱   당하는   게   웃기냐?” 아니   그건   아닌데…⋯…⋯.   참,   이   녀석   나를   갑자기   심판이니   뭐니   하는   귀 찮은   것으로   이용했겠다! “그래,   웃기다.   그나저나   나는   빨리   여기를   뜰   사람이라고.   갑자기   심판 이라니   무슨   소리야?” “뭐,   그거야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잠도   잤으니까   그    정도는    해 야   된다고   생각해서   그랬지.” 그러면서    얼굴을   돌리면서    말끝을    흘린다.    저것    봐라,    자기도    양심에    찔리는지   나하고   제대로   눈도   못   맞추는군.   잔소리를   들어가며   설거지는    물론이고   집안    청소와   장보기까지    완벽하게   했는데   그런    이상한   일까지    동원하는   건   사람으로서   할   짓은   아닌   것쯤은   알고   있네! “그   전에   내   얼굴이나    똑바로   쳐다보고   말해.   나는    그런   거   절대   안    해.    아무튼   그   돼지   같이   생긴    녀석한테   가서   무릎   꿇고   양해를   구하든지.   나 는   나대로   해야   될   일이   있고   하루   빨리   수도로   가야   돼.   그럼   이만.” 하고    떠나는    순간    갑자기    재빠른    속도로    내    팔이    무언가에    붙잡혔다.    나는    급작스런    제동에   의해   벌러덩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나는   꼬리뼈 에   아픔을   느끼며   앨리스를   노려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야!”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질렀다.    한시라도   빨리    가고    싶은데   왜    이렇게    붙잡는    거야?   나는   화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봤는데   그녀의    상태가   심 상치가    않아    금방   풀리고    말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앨리스는   몸이    부들부들    떨면서    가냘픈   몸에서    나온    힘이라고   전혀    할    수    없는   악력이    나의   팔을   꽉   붙잡았다.    “저…⋯…⋯   저기   정말   미안하지만   이번   한   번만   제발   부탁   좀   들어줘.   나는    내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꼭   이루고   싶어.” 앨리스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였지만    울먹이는    목소리에서   그녀가    울 음을   겨우겨우   참아내고   있다는    것을    간단히   알   수   있었다.   어휴,   정말로    귀찮게도    한다.    여기서   매정하게    가야   되지만    그것은   내   성격에    맞지   않 을   뿐더러   어머니의   그   동안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상황이기에   나는   받아 들이기로   했다. “알았어.    그    대신    빨리   시합을    하기나    하셔.    그나저나    이길    수는    있는    거야?”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앨리스는    눈 물을   닦아내다가   갑자기   눈을   부라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너,   내가   그   돼지   하나도   못   이길까   봐?   그   녀석   옛날에   나랑   많이   대련 했었어.   전적은   내가   완승이었지” 가슴을    쭉   피며    의기양양한    채   말한다.    그런데   옛날이라니,    언제적    이 야기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앨리스가   패하든   말든   나는   심판만    보면   되니까. 나는    심판을   보는    대신   내일    당장   시합을    할   것과    집에서   편하게    지낼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했다.    앨리스는    분한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카라스    씨는   허허하고    웃으실   뿐이었다.    후후,   이렇게    평화스러운    하루를    갖다니   무척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소소한   것   하나 하나가   행복을   준다는   말을   실감하는   하루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벌써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었다.    그    마일드라는    고양이를   어떻게   하면   길들일까라는   생각이   가득   찬   채   잠자리로   돌아가 려는   순간, “라빈   플래져,   너는   무엇   때문에   여행을   하고   있는   거야?” 앨리스는    문간에   기대어    무척이나    궁금하듯이   물어보았다.    무엇    때문 이라…⋯…⋯. “글쎄,   뭐   이것저것   있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나를   위해서가   아닐까?   아 무튼   나는   하루빨리   수도에    있는    도서관에   가야   돼.   뭐   자세한   이유는   묻 지   마.   지금   졸릴   뿐더러   별로   애기하고   싶지는   않아.” 나는   앨리스를   뒤로   한   채   잠자리로   들어갔다.   그녀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어머니의   목숨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도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행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 루빨리   에레혼을   찾아서   어머니의   유언을   지킨   효자로   남으려고   하는   자 신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내   머릿속을   괴롭혔지만,   나는    졸음이라는   적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잠에서    깨고   말았다.    부스럭거리는    소 리가    났기    때문이다.   순간    도둑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마일드라는   빌어 먹을    고양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잠을    청했다.   고양이의   움직 임치고는   무언가   무거운   움직임이지만,   도둑이라고   해도   여기서   무얼   훔 쳐갈까.   살짝   눈을   떠   내    검과    돈주머니가   무사히   있다는   것을   깨닫자   걱 정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5. 아무튼  하루가   여유롭고    평화롭게   지나간    후    드디어    시합이    이루어졌 다.   가냘픈    몸을   가진    앨리스와   대조적으로    아주   큰   몸을    자랑하는   테베


르가  서   있는   것을   보아하니    왠지   어디선가   본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   거 인과    조그마한    소년이   싸웠는데   결국    소년이    이겼다지.    뭐   앨리스는   소 녀이긴   하지만.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면서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형 성되었다.    공개적으로    앨리스를   누르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테베 르의   소망과    테베르가    비열한    수법을    못    쓰게    하려는    앨리스의   소망이    일치하는    지점이긴    하지만,   무언가    소싸움을    구경하는    듯    한   느낌을   받 아   께림칙했다.    두   사람은   대결   프로그램을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심판   역할을   하는   요 정의    모습을    띤   홀로그램이   나타나고,    대결하는    두    사람의   머리   위에는    체력을    나타내는    빨간색   바가   형성된다.    그리고    빨간색    바가   다   줄어들 면   패배하게   된다.   즉,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빨간색   바를   다   줄어 들게   하면   된다.       아무튼   대결   프로그램이    가동되자,   앨리스와   테베르의   머리    위에    빨간 색   바가    형성되었고   둘의    몸   위로    푸른빛이    띄기   시작했다.    대결로   인해 서    큰   부상을   입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지만    아픔이   완전 히   흡수   되지는   않는다.    쳇,    부정   대결로   쳐맞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 네.    나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서    허울    뿐인    심판이지만   둘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자   앨리스    님,    테베르   님.    대결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그럼    이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심판   역할을   맡은   홀로그램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한   뒤,   신호음이   울리 면서    앨리스는    재빠르게    테베르의    곁을    맴돌기    시작했다.    아마   빈틈을    찾기   위해서겠지.   하지만   테베르는   언제라도   반격할   자세를   갖추고   있어 서   빈틈을   찾기   힘들었다.   그것을   깨달은   앨리스는, “이얍!” 하고   큰   소리로    기합을   넣으며   무작정   달려들었다.   테베르는    갑작스런   


앨리스의  움직임에   잠시   당황했지만   공격을   맞받을   준비를   했다.    이윽고    둘의   검이    부딪히면서   새하얀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둘   다    꽤    실력이   되는    검사라는    것을    증명하듯    빠른    속도로    서로의    빈틈을   향해       검을    내찔렀다.    하지만    앨리스의    속도가    테베르보다    더    빨랐기   때문에    서서히   테베르가   밀리기   시작했다.   테베르는   자신이   밀린다는   사실에   당 황한   나머지   큰   동작으로   만회하려고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 렀다. “이얍!”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기합을   넣은    앨리스는   큰    동작으로   인해서    생긴    테베르의    빈틈을    향해    정확하고    빠른    속도로    검을    내찔렀고,   테베르는    큰   동작   때문에   그것을    막는데    다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테 베르는    앨리스의    검을   막지   못했고,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쓰러지고   말 았다.    테베르는    이를   악물고    다시   반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형세는   앨리 스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앨리스는    여유롭게    기술을    사용했다.   그녀 의   기술은   검을   아주   빠른    속도로    휘둘러   잔상을   남겨서   진짜   검이   안   보 이게   되는    것이었다.   테베르는    계속   허상에    속아   조금씩   타격을    입기   시 작했다.    빠른    속도로    테베르의    체력    바가    깎이기    시작했고,   구경꾼들은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자가   검술로    남자를   압도하는    모습은   처음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자가   검을   쓰는   것에   대해   부 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터라   앨리스는   비난의    휘파람을   계속    들어야   했다.    아무튼    앨리스의    실력은    이    산골에서는    흔히    볼    수    없을    정도로    좋았 고,    마을    사람들도   그것을    아는   듯한    표정이었다.   과거    켈리   베호프라는    여검사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제대로    된    검술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 다.   마법으로   검의   형상을    만들어    남자들과   겨루었을   뿐,   제대로   된   검술 을    사용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지난    300년간    수준   높은    여검사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구경거리라고   할   


수  있다.    구경꾼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테베르는    표정을   바뀌었다.    그러더니    갑 자기   검을   위로   크게   올리더니   땅으로   내리찍었다. “윽” 앨리스는   조그마한    신음을    내며   뒤로   물러났다.   테베르의    기술은    참격 을   발사시키는   것이었다.   즉,    검의    마력이   땅에   부딪히면서   땅   위로   폭파 하는    것이다.    앨리스는    직접적인    공격을    맞지는    않았지만    땅   파편들이    마법벽을    세게    두드리면서    체력    바가    깎였다.    그리고    뒤로   물러서면서    앨리스에게    빈틈이    생기자    테베르가    재빠르게   앨리스의    품을   파고들어    참격을   날렸다.   땅에   부딪히지   않아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곳에서    쏘았기    때문에    데미지를   줄    수   있다.    앨리스는    재빠르게   막았지만    다   막 지는    못했고,    체력   바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앨리스는   당황하지    않고   몸 을   재빠르게   이동시켜   테베르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헤이스트?” 테베르는   적잖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무척   통쾌하기는   했 지만,    그저께만해도    내가   그   표정을    지었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   씁쓸하 기도   했다. 앨리스는   침착하지만   매우   빠른   속도로   검에   마력을   담아   휘둘렀다.   이 제   구경꾼들은   앨리스의   승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 다.   하지만…⋯…⋯. 앨리스는    매우   당황한    듯   검을    바라보았고,   그    틈을    노려   테베르의    날 카로운    공격이    시작됐다.   앨리스는    제대로   막지    못한   채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나는   결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앨리스는   입술을   꽉   깨물고   다시   테베르를   노려보았다. “너,   내   검에   무슨   짓을   한   거지?”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불리해지니까   트집이나   잡는거냐?”


쳇…⋯…⋯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앨리스는    테베르를    향해서    제대로    공격을    못한    채   테베르의    공격을   피하기만    했고,   조금씩   체력    바가   줄어 들었다.    왠지    테베르의   여유로운    웃음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건   테베 르가   어떤   더러운   수를   쓴    게    분명하다.   어떻게   된   일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젯밤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던    것    같다.   고양이   소리가    아니라   테베르와   관련된   사람이   침입했던   건가?   제길!   분명   앨리스의   검 에다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    아까부터    앨리스의   검에서   마 력이   발산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는   공격을    해도   체력   바가    줄어들지   않 는다.    체력    바는    오직    마력에만    반응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렇게   열심히    연습한   녀석이   이런   더러운   수법을   쓴   녀석에게   져도   되나?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런    것에    화가   나는    것인가?    어차피    돈    많고   권력    좀   있는    놈들은   다    이렇게   해서    이기지   않는가?   부 정   승부를   많이   겪어   온   내가   이런   당연한   일에   왜   화를   내지?   하지만,   하 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그만큼의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하 지,    더러운    수법을   써서   편하게    이기는    것이    당연한가?   그렇다!   사람으 로서   온당   화가   나야   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큭큭,   여자애가    검을    쓰니    당연히    질   수밖에!   테베르,    그   여자애를    혼 쭐을   내   줘!” 라고   말하는   녀석들이    있다는   현실이   정말로   분노를   치밀어    오르게    했 다.    제발,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나?    진정   나는   무늬만    심판에   불과한가?    그렇다.   어차피    자존심조차    사라진,    꼴지에서    3등인    찌질이에   불과하다.   제길…⋯…⋯   . 내   손이    내   무딘   검을   꽉    잡은   채   분노로   온    몸을   떨고   있을   때,    갑자기    검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앨리스와   테베르의   대결에    집중했던    사람들이    엄청난   빛에    깜짝    놀라    내    검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눈조차   뜰   수   없을   정도로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대는  무슨   일로   분노하는가?   그대는   누구를   위해서   분노하는가?   너 의   이타심으로   인한   분노가   나를   깨웠도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   도대체   뭐지?   나는    그   정체에   대해    생각도    할   것   없이   답을   했다. “당연히    앨리스가    더러운    수법    때문에    져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정말로,   정말로   열심히   수련하는   애인데…⋯…⋯” “검에   마력을   발산하지   못하게   하는   아티팩트를   심어   놓았군.   보호   장치 조차   없단   말인가?   안타까울   뿐이군.   해결했으니   이제   안심해도   좋네.” “그나저나   당신은   누굽니까?” “나는   다비도프.   하나의   검일   뿐이지.   다만   정의와,   남을   생각하는   이타 심이    너의    마음에   충만하다면   언젠가    다시    나는    깨어나겠지.   벌써   시간 이   다됐군.   그럼   이만” 계속    나는   다비도프를    불러   봤지만,    더   이상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 았다.    나는   부르는    것을   포기하고,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앨리스의   검에 서   빛이   나더니   푸식하는   소리가   나며   연기가   났다. “아니,   이럴   수가!” 테베르는   매우   놀란   눈으로   앨리스의   검을   바라보았고,   그   틈을   앨리스 는   놓치지   않았다.   그   후로는   앨리스의   일방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승자,   앨리스!” 심판자가   낭랑한   목소리를    외치며   사라졌다.   그리고   앨리스의    체력    바 와   마법벽,   그리고   테베르의   마법벽도   함께   먼지처럼   사라졌다. “테베르!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모여   있는데   약속을    안   지키는    것 은   아니겠지?” 앨리스는   매우   기쁜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큰   소리로    테베르에게    외쳤 다.   참   어린이   마냥   신이   나셨구먼.    “이…⋯…⋯   이건   반칙이다,   무언가   오류가   난   거라고!” 테베르는   매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반면   앨리스는   조소를   날리


며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어차피    심판    프로그램이    판단한    거    아니야?    그럼    너는    그게    잘못됐다고    말하는    거야?   그렇다면    그거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보 라고!   제대로   된   근거를   말이지!” 테베르는   당당하게   말하는    앨리스를   할   말이   없는   듯    입만    벙긋거리며    놀란    눈으로    쳐다봤을    뿐이다.    나는    당황하여    다비도프라고    하는   낡은    검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날이    무딘    칼만   있었을   뿐이다.   마치   아까의   일 이   꿈이었던   것처럼   검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야,   라빈   플래져.” 하고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누가   내    이름을    부르지   하고    주 변을   둘러보다가    그    목소리의    주인이    테베르란    것을    깨닫고    그를   향해    다가갔다 “왜   나를   불러?” “너   때문에   내   완벽한   작전이   물거품이   되었어!   두고   보자,   이   자식!” 정말   이거   너무나도    전형적인   악당의   말투잖아.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 으로   그를   보고   말했다. “그런데   이거   어쩌냐?   난   너   볼   생각   전혀   없는데?   아무튼   잘   있어라   나 는   간다.” “라빈   플래져!” 아이고,    귀청   떨어지겠네.    얼른    테베르의   곁에서    떨어져   마을    출구    쪽 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라빈   플레져.” 또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앨리스가   서   있었다.    “혹,   혹시   말이야.   네가   내   검을   고친   거야?” 앨리스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글쎄?   뭐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니고   이   검이라고   할   수   있지.” 나는   내   무딘   검을   들어   앨리스에게   보여주었다.


“뭐?  이   검이   어떻게    도와줘?   이상한   소리만    하고…⋯…⋯   아무튼   너는    이 제   어떻게   할   거야?” “나?   이제   떠나야지.   너무   시간을   끌었어.” 앨리스는    매우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아무튼   난   먼저   간다” 터벅터벅    나는    마을    출구    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앨리스가    갑자기    내    소매를   붙잡았다. “너,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응?   이건   대체   무슨   소리지? “정체라니…⋯…⋯   그냥   평범한   슈바츠쿤스트   제국의   백성이지,   뭐.” 담담한   목소리로   앨리스의    물음에   대답했지만,   솔직히   나도    아까의    상 황이   매우   놀랐다.    다비도프의   정체가   뭐지?   그녀는   이   검이   도와줬다는    사실을   못   믿는   것   같다. 앨리스는   계속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무언가   결정한    듯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   수도에   간댔지?   나도   따라갈게” 뭐?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솔직히   난    아직도   내    검이   갑자기    정상으로   작동한    게   아무래도    이해 가    안    가.    네가    누군지    궁금해졌어.    그리고   수도에    가면    검술을   더   배울    수도   있고   말이야.” “하지만,   너는   아버지께서   계셨던   이곳에   남고   싶지   않아?” 앨리스가   눈이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나를   노려본다. “그,   그걸   어떻게    알았지?   뭐,   그건    둘째치고,    아버지께서   계셨던    곳이 지만   계속    이곳에   머물기보다는    수도에   가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어.    검술도    그렇고,    할아버지가   검술을    하는   손녀딸    때문에   더   이상    고통   받 는   모습은   보기   싫어.   아무튼   잠깐만   기다려.”


그리고  앨리스는   갑자기   사라졌다.   어디로   간   거지?   별로   긴   시간도   안    되어서   앨리스가   왔는데,   앨리스의   등   뒤에는   빵빵한   가방이   있었다. “자,   그럼   떠나   볼까?” 떠날    채비를    한   거였나?    카라스   씨는    어떡하고?    네가    있는    것이    오히 려   카라스    씨에게는   더   낫다고!   늙은   할아버지를   혼자    두고   떠날   생각을    하다니! “괜찮아,   괜찮아.   할아버지에게    허락도    받았고,   오히려   기뻐하셨어.    죄 송하긴   하지만   나는   이미   굳은   결심을   했으니까.” 내    마음을    읽었는지    마음    속의    말을    되받아쳤다.    그래도…⋯…⋯    진짜    이    녀석하고   가야   하나?   내   입장을   고려한   건   맞아? “라빈!” 그리고   갑자기    왜   친근하게   이름으로만    부르지?   도대체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먼저   안   오면   놓고   가   버린다!” 벌써   저    멀리까지   가   버렸다.   이런,    나는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내   낡은   검을   들어   바라보았다. ‘다비도프라…⋯…⋯   도대체   이건   뭘까?’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이   낡은   검의   정체와    어머니 의    유언의    의미에   대해서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가난한    우리   집에   어떻 게   이런   엄청난   검이   있으며,   그   에레혼이라는   것은   뭘까?   궁금증을   짊어 진   채   한   발   한   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계속


[Text]  연재소설_2

무안만용  가르바니온 육감적인   몸매의   여간부   그   정숙하지   못한   나날_dcdc

”말만  한   계집애가   칠칠맞지   못하게   이런   꼴로   퍼   자니?” 찰싹,    커다란   엉덩이에    붉은    손자국이   남는다.    엄한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어머니가    딸에게    일상적으로    하는    손찌검일    뿐이니까.   제목 을    보고    기대하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그럴    내용은    없다.   네이버   웹소 설에   연재할    때    이런    제목을    쓰면    조회수가    늘어나리라    기대해서   지은    제목일    뿐이다.    효과는    없었다.    김여자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침상에서   일어났다.   박엄마는   늦잠이나   자는   딸이   영   마뜩잖 은   눈치다. “엄마…⋯   나   오후에   일   나간다고   했잖아요.” “일은   무슨.   아르바이트지.   그리고   너   옷   좀   입고서   자.” 김여자는    대학   졸업    후   석사    코스를   밟고    회사   하나를    일이   년    다니다    퇴직한    백수였다.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까지    잠깐    놀까   마음을   먹 었다가   정신   차려보니   백수일직선.   당장   정규직으로   취직할   자신이   없으 니   알바나    할   겸    취업    알선   사이트를    뒤지다   발견한   것이    우주관광   김관 광에서   사아카니스   제국의   3장군   역을   할   배우를   모집하는   공고였다.   평 일만   출근하면    되고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생할   일    없이   지구침 략의   선봉에   서   있기만   하면   된다기에   멋모르고   신청했는데   단박에   합격 할   줄이야. 아직도    믿기   힘들    노릇이다.   어느    날   외계인이    침략해    오질   않나    아르 바이트로    취직한   곳이    그   외계제국—―을   빙자한    관광사—―이질    않나   아르 바이트로    하게    된   일이   지구침략의    여간부    역을    연기하는   것이질   않나.    면접날   서울    모처   낡디낡은    건물에   들어갔다   정체불명의    빛에   휩싸이고   


우주선으로  날아갔을    때도    뾰족뾰족한    갑옷을   입은    이지라니우스   대제    앞에   무릎   꿇고   충성을   맹세했을   때도   기괴수   믹서기간트에   올라타   가르 바니온과   싸울   때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내가   내   방에서   자는   것   갖고   뭐라   그래.” “여자애가   그렇게   서른   넘어서   배   까놓고   응,   헤벌쭉   해가지고.” “아   뭐!   오후   출근이니까   늦잠   좀   자는   거지.   누가   볼   것도   아닌데.” “됐으니까,   엄마    장   보고    올   때까지    니   방이랑    거실이랑    다   치워.    엄마    간다.” 말한들   무엇하리.   잔소리의   목적은   대상의   교화가   아닌   발화   그   자체에    있다.    김여자는    김여자가   여자답게    굴더라도   박엄마가    원하는   여자다움 의   라인이    올라가기만   할    뿐   김여자의   여자다우려는    노력에   여자답다는    평가를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   잔소리   포화에 서   살아남는   법은   하나다.   빠른   도주.   김여자는   박엄마가   장을   보러   간   사 이   집을   나서기로   결심했다. 박엄마가   나가고   삼십   분쯤   지났을까?   김여자는   조심스레   옷장을   열었 다.   코트니   패딩이니를   매달아    놓은    옷걸이   사이   꽁꽁   숨겨놓은   옷   한   벌 을   꺼낸다.   옷   원단에서    잘라낸    부분이   남겨놓은   부분의   세배는   될   듯한,    몸매가    노출된다기보다는    방출될    검은    가죽옷.    사아카니스    제국    3장군 의    유니폼이다.    누가   보면   얼마나    가난하길래    수영복도    잘라다   입냐   싶 을   옷.    여기에   비인도적인    흉기로   금지될    법한    킬힐에다   팔    끝까지   올라 오는   장갑을   끼고   나비   가면까지   쓰니   영락없는   SM   여왕님이다. 옷은   얼추   입었으니   다음엔   몸단장을   할   차례다.   화장대   앞에서   시간을    때울    것은    아니다.   우주인의    기술이   있으니    말이다.   인류보다    진화된   기 술에    화장은    없다.   알약    하나면   끝.    김여자가   우주관광    김관광에서   배급 받은    약을    삼키자   몸이   재구성되는    것이    느껴진다.    정전기   비슷한   따끔 한   감각   뒤에   김여자는   거울을   보았다.    “이   비인체공학적인   바스트라니…⋯.”         


변장이라기보다는  변신이다.   몸무게는   그대로인데   키는   10cm가량   커 진다.    들어갈    곳이   들어가고    나올   곳이    나온다.   얼굴은    손바닥으로   가려 지게    줄었고    머리카락은   초록색으로    변한다.    아이라인    그릴    것   없이   눈 매가    짙어지고    립스틱   바를   것    없이    입술이    붉어진다.   김여자는   들어간    곳은   당겨   보고   나온   곳은    눌러    보며   다시   한   번   우주기술이   가져다준   미 모에    감탄한다.    비효율적이기에    더    우아한    곡선의    바디라인.    미소가   떠 오르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팀장님,   저   오늘   일찍   출근할게요.” 사아카니스   제국   3장군   유니폼의   나비   가면을   쓰면   김여자의   시선이나    대화   모두   우주항모   바톨과   연결된다.   옆에서   보기에는   혼잣말이나   하는    것    같겠지만    다   우주관광   김관광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다.   김여자 가   신호를   보내고   곧   김여자의   몸은   원자분해되어   우주항모로   옮겨진다.    씻지도   않고,   화장하지도   않고,    입을   옷을   고민하지도   않는   출근.   김여자 는   정말이지   이   직업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비바   우주기술.   비바   사아카 니스   제국.

✦ “사랑은  일격필살!” “인생은   일필휘지!” “침략은   일렉트릭!” “전.   전.   전압을   좀   맞춰서   날   사랑해죵!” “이번에도   문제발언임다…⋯.” “어찌됐든   사아카니스   제국의   3장군,   오늘도   섹시하게   침략!” 서울    용산의   모    오락실.    섬광과   연기,    폭음이   뒤섞인    가운데    사아카니 스    제국의    3장군이    등장했다.   오락실의    스피커로   사아카니스    제국   군가 가   울려   퍼지는   와중에   각종   언론사의   카메라   플래시까지   터져   평소보다   


훨씬  더    요란한   분위기였다.   김여자는    요니아    파탈    역에   심취해   진정으 로    악의    여간부가    된    마음가짐으로    채찍을    휘둘러    오락기들을   부쉈다.    기자들은    어떻게    찍어야   박력    있게   나올까    고심하며   사아카니스   제국    3 장군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아카니스   제국의   3장군의   무모한   등장   이후   우주관광   김관광은   계획 을   또다시    대폭   변경해야    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침략이    아니라   관광 이라는    사실을    숨기기에는   너무   나가    버렸다.    결국    심각한   분위기를   연 출하기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침략이   아닌    예능의   포맷.    이것이   우주 관광   김관광이   내린   결론이었다.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인형    쇼처럼    말라깽이    사르치오    마컴과    뚱뚱이   사르페오    마컴   형제도    과장된   동작으로   오락실의    각종   기기들을    부숴   대기   시작했다.   어차피   우주관광   김관광이   설립한   보험사에서   처리 할    거니까    얼마든지   물건들을   박살    내도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   스피커 에서   사아카니스    제국   군가의    후렴이   나오고   얼추    부술   것들    다    부숴   놓 았으니   이제는   침략   선언을   할   차례다. “나!   사아카니스   제국의   여간부   요니아,   파탈!   지구의   오락실이라는   곳 이   내   마음에   쏙   들어!   갖고   싶어!” “그러면   이번   기괴수는   오락실에서   찾을깝숑?” “마침   오락기   하나가   남아있슴다.” “좋아.   아케이드라군!   나와라,   뿅!” 김여자,    그러니까   요니아    파탈의   채찍이    남아    있는    오락기    한   대를    내 려치니   오락기가    기묘한   빛으로    둘러싸여   유기적   생명체로    다시   태어난 다.   물론   진짜   기괴수가    이런    방식으로   태어날   리는   없다.   지금도   우주항 모의   바톨에서   기괴수   제작부의   피땀   어린   노력과   함께   공장이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공정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낼   수는    없으니   이런    쇼를   마련한   것이다.   방금    유기적    특성을   갖게   된   저   오락기는   곧   우주항 모   바톨   창고   한구석에   처박힐   예정   뿐이다.


“이번에  침략하시는   곳은   용산입니까?” “그래.    이    아케이드라군은    우리    기지에서    숙성된    다음    금요일    용산으 로   돌아올   거야.” “가르바니온에   맞설   대책은   무엇이죠?” “나,   요니아   파탈의   천부적인   격투   게임   센스야.” 이제는    일종의   기자회견이다.    우주관광    김관광은   아예    개그    노선으로    가게    된   것    예산    절약도   할    겸   지구    측    피해도   줄일    겸    매주   수요일마다    침략지를   선정해   예고편을   갖기로   결정했다.   금요일   낮   용산에   기괴수가    침략하기로   약속을    했으니    주변    시민들은    하루    전날    대피를    마쳐   놓을    것이고    재산손괴도    보다   적게   일어날    것이다.    이    예고편의   홍보를   위해    한국의   언론들과   미리   접선,   오늘의   쇼를   기획하였다. “지금   인류가   소속된   국가의   대다수는   민주정입니다.    사아카니스    제국 의   점령이   인류의   삶을   봉건제정으로   되돌릴   수   있으리라   보십니까?” “오,   그래.   우리는   독재자야.   1%의   사람들이   자본을   장악할    거고   부자 들의   세금을   깎아   더   부유하게   만들면서   걔네들이   도박으로   파산해도   구 제해   주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건강과    교육   따위는   무시할    거야.   언 론은   맘대로    주무르고   전화는    도청하고   사람은   미행하면서    역사책은   뒤 바꾸고   불만을   말하면   경찰을   풀어서   쥐어   패겠지.   새삼스럽네.” “이    전쟁이    무의미한    침략전이라는    비판이    있는데요.    전쟁을    기획한    여간부로서   한   말씀.” “맞아.   석유를   약탈할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런   저효율   에너지원    빼앗 아봤자    외우주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든    기름값도    안    나올   테고.   그래도    우리가   하는   전쟁에는   최소한   재미라도   있잖아?” 김여자는   요니아   파탈로   사는   것을   사랑한다.   몸매   좋아지지   입는   옷도    예쁘지   아무한테나    반말하면서   채찍    휘두르지   이런   일을    사랑하지   않기 란   어려운   일이다.   넉살맞은   대답에   기자들은   긴장이   풀렸는지   이것저것    폭을   넓혀   질문하기   시작했다.   김여자도   요니아   파탈답게   유머러스한   캐


릭터를  연출하려   노력한다. 김여자는    여간부라는    호칭부터가    좋았다.    여배우나    여선생처럼    직업 을   뜻하는    단어   앞에    여⼥女女    한   글자가    덧붙으면   왠지   여성성을    더   강조하 는    것    같아   썩   반가운    노릇은    아니었다.    게다가   여사장이나   여의사처럼    어디에서   알아주는    직업에   여⼥女女를    붙이면   남자들의   세계에    이단아가   들 어왔다는    듯이    사용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다    같은   사장이고   의사 인데   왜   굳이   여,   한   글자를   붙이지   못해   안달이란   말인가.    그런데   막상   자신이    여간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니   조금    다른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일종의   애착이라고나   할까.   사기극의   등장인물을   연기하 는    것일   뿐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여성적인   매력을    유지한    채    제국   군대 의   정상에   올라선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니까.   여자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자부심을   갖고   여간부   요니아   파탈의   역할에   임하자   마음먹었다.    “혹시나   가르바니온을    무찌르고   지구를    지배한다면    추후    인류의    반발 을   통제하기   위해   준비해   놓은   정책이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   여간부   요니아   파탈의   미모면   충분하지.   막   지배   당하고   싶지   않아?” 기자들은   한마음이   되어   어우야   그건   진짜   아니지   하는   표정을   지어   주 었다.   어느   정도   친근감을    느끼니    할   수   있었던   일이다.   정말로   사아카니 스   제국이    사악하다면   방금    표정만으로도   기자들은   총살형을    당했을   테 니까.    언론에서    이미    수십    쯤   요니아    파탈의    몸매와    의상에   '아찔'이나    '충격',    '대담'   등의    수식어가   붙은    기사를   내보냈으나    아직까지    별반   제 재가   없기도   했으니까.    “요니아    파탈    씨의    복장이    선정적인    것을    두고    '걸어    다니는    유해매 체'라며    반발하는    학부모들이   있는데요.    좀   더    정숙한   복장을    하고   침략 을   하시면   어떨까요?” “내   옷?   뭐   임마?” “기자님   옷   센스도   그리   보기   좋진   않사와용.” “조심하시는    게    좋슴다.    사아카니스    제국이    지구를    지배하게    되면    목   


짧은데  옷   카라   세우고   다니는   사람들은    징역    6개월   형에   처할   예정이니    말임다.” 많은    사람들이   실소를    머금느라    요니아    파탈이    사르치오와    사르페오    형제에게    눈인사를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김여자가    기자의   질문에   발 끈해    하마터면    무대를   망칠   뻔한    것이다.    목소리가    높아지기   전에   사르 치오와   사르페오가    눈치   좋게    농담으로   마무리를   해줬으니    망정이지   잘 못했다간   우주관광   김관광   A팀장이   지구에   온   지   다섯   번째로   뒷목을   부 여잡고   쓰러질   뻔했다. 일단   기자회견의   주도권은    사르치오   사르페오   형제가   맡기로    했다.    어 차피    3장군    모두    계획에    대해    아는    바는    똑같았으니    큰   무리는   없었다.    요니아    파탈을    겨냥한    질문에만    김여자가   건성건성으로    대답했을   뿐이 다.   묘한   긴장감이   오락실   안에   감돌았다. “그럼   이쯤하고   우리   아케이드라군이나   키우러   갈까?” “기자   여러분   다음에   뵐   때에는   정복기념축사   기자회견이에용.” “저희들도   3면이   아니라   1면에도   나오고   싶슴다.” 몇    가지   농담    비슷한   질답이    오가고    사아카니스   제국    3장군이    우주항 모    바톨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김여자는    가능한    웃는   얼굴을   유지하 려고    했지만    언짢은   기분이   쉽사리    풀리지는    않았다.    전송되는   그   순간 까지   김여자는   멈추지   않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걸어   다니는   유해매체가    뭐?   니가   내   엄마니?   나   입고   싶은   거   입겠다는데   뭐   잘났다고   이래라   저 래라니?

✦ “쟤네  엄마는   지   딸년이   저런   꼬락서니로   다니는   거   알려나   모르겠다.” 김여자는   입을   다물고    박엄마를   바라보았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뉴스를   보는데   변신한   자신이   오락실에서   채찍을   휘두르는   장


면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박엄마는    혀를    끌끌    차면서    TV화면의   딸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김여자는   혹시    자신의    정체를    들킨    것은   아닌가   박엄 마의    눈치를    보지만   다행히   그러진    않은    듯하다.    요니아   파탈로   변신할    때는   체형부터   목소리까지   모든   것이   변하니   정체를   알아차리긴   쉽지   않 을   것이다. “엄마도   참.   외계에서는   다   저렇게   입고   다니나   보지.” “저게   입은   거니?   나는   벗은   건   줄   알았다,   얘.” “내   눈에는   예쁘기만   하구만.   좀   과하기는   해도.” “어이구.   헐벗고   다니는   년을   색시   삼을   신랑이   어디   있니.” 달갑지   않은   단어가   식탁에   올랐다.   김여자는   긴장   속에서   담담히   필연 적으로   다음에   이어질   화제를   기다리려   애쓴다.   박엄마는   일종의   척수반 사로   입을   연다. “그러니까    너도    조신하게    하고    다녀.    직장에    괜찮은    남자    없어?    너도    이제   나이가   몇인데…⋯.” 박엄마에게   기승전결의   결은    결혼의    결이다.    모든   화제의    결론이    결혼 이다.   김여자는   예상한   대로   이야기가   흘러가자   마음을   비우고   명상에   들 어갔다.   자연과   하나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 울이자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효과는   없지만   뭐라도   하기는   해야   하니까. 직장에서   남자를   찾는다라.   나쁘지   않은   계획으로   들린다.   하지만   김여 자가    일하는    직장은   우주관광    김관광이고   직원의    대다수가   외계인이다.    원거리연애의   단위가   km가    아니라   광년인   것을   견디기에는   인류문명발 전이   덜    되었다.   고용된    현지인들은   보안    유지를   위해   서로의    정체를   모 른다.   끼리끼리   이야기하는   것은   금지되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여론이   잘 못    흘러갈    경우   사아카니스   제국에    지구를    팔아먹은    매국노,   아니   매성 노가   될    가능성도    있으니    가급적    정체에    대해서    말하기를    피하는   편이 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연애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내    소설에서   연 애는   금지다.


“지금  직장에서는   좀…⋯.” “빨리   다음에   취직할   곳이나   찾아.   내가   보니   거기는   영   텄다.” “엄마   그만   좀   해.   지금   직장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그리고   내가   알아서    할   건데.” “하긴   뭘    한다고.   저기    TV에   저    빤스만   입은    계집도    그렇고    요즘엔    직 장   잘못   잡아도   시집   못    가니까   빨리   옮겨.   함부로   나대다간   저   계집애처 럼   인터넷   곳곳에서   욕먹고   얼굴도   못   들고   다니니까.” 김여자는   건성건성으로    밥을    먹고   방으로   돌아갔다.   엄마든    엄마가    아 니든   욕먹기는   매한가지였다.

✦ “각하.  오늘   기분이   안   좋으신가   보네용.” “피곤하시면   쉬셔도   됨다.   아케이드라군은   저희   둘이   조종해도   괜찮슴다.” 김여자는   힘없이   부하들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날짜는    어느새    아케 이드라군을    몰고   용산을    침략해야    하는   금요일.    사아카니스   제국    3장군 은    우주항모    바톨    공장에서    아케이드라군의    조종    훈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습이    도통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동체   조종을   맡은    요니아   파 탈,   그러니까   김여자가   넋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아케이드라군은   믹서기간트와는   달리   외부에서    조종하는    방식의   기괴 수다.    믹서기간트는    동체가    비인간형이라    사아카니스    제국    3장군이   탑 승해서    움직일    수    있는    모양이었지만    아케이드라군은    이족보행을   기반 으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건물    안에서    기괴수를   조종하는   것 은   임팩트가    없다는   판단에    사아카니스   제국    3장군은   반중력    원반   위에    올라타   기괴수   주변을   부유하며   명령을   내리기로   전략이   변경되었다. 사르치오   마컴은    기괴수의    무기를,   사르페오는   반중력   원반의    비행을,    요니아   파탈은   기괴수의   움직임을   조작하기로   역할을   분담했다.   각각   자


신이  맡은    부분을   연습하는    사이   김여자가   아케이드라군의    조종간을   놓 고    말았다.    사르치오와   사르페오    형제    역시    기계의    조작을   멈추고   걱정    어린   표정으로   요니아   파탈의   조종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별일    아니에요.    미안해요.    그저께는   엄마한테    혼나고    어제는    사아카 니스    제국에    관한   인터넷    뉴스에    달린   덧글을    봤더니    안   좋은   이야기만    가득해서…⋯.” “저런…⋯   인터넷   덧글은   안   보고   사는   게   속   편해용.” “그렇슴다.    어쨌든    저희는    침략자니까   말임다.    짜고    치는    전쟁이라지 만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는   없을   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들이   평소에    ~용이나    ~슴다    류의    말투를    쓰고    살    리야    없다.   얘네도    사람이다.   하지만    사르치오   사르페오    형제가   쓰고    있는    가면은    이지라니우스    황제의    투구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번역기가    달려   있다.   혹시라도   긴급한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표준어를   쓸   위험을    막기   위해서이다.   김여자가   연기하는   요니아   파탈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말투를   써야   하기   때문에   번역기가   달려   있지   않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사르치오    사르페오    형제는    연극에서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상사인    요니아    파탈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자    어쩔    줄   몰랐다.   가능한    한   상냥하게   위로를   해   보려고   했지만   가라앉은   분위기가   나아지진   않는 다.    여기에    김여자가   핸드폰으로    자신에    대해    달린    덧글을   보여주니   아 예   우울함이   전염되기까지   한다. “보로   시작되는   단어가   참   많네용.” “년으로   끝나는   단어도   많슴다.” “밥   먹을   때   쓰는   단어도   많고요.”    여기에    옮겨   적었다가는    음란서적물    배포죄로    편집장님과    내가    사이 좋게    은팔찌    커플링으로   차고    나랏밥    먹을   수위의    덧글에    다들    입을   다 물었다.   김여자는   침울하게   신세   한탄을   했다. “뭐   제가    곱게   보이지야    않겠죠.   지구를    정복하겠다고    온   침략자인    줄   


알  테니까요.    그래도   이렇게    성적인   놀림감이    되는   게    즐겁지는   않네요.    제가   진짜   요니아   파탈인   것도   아닌   데도요.” “인간끼리도   짓궂게   구는데   외계인에다   침략자니   막   대하기도   쉽겠죵.” “요즘   애들이   인터넷에서   입이   보통   험한   것이   아님다.” 이제는   다들   훈련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복지도    근무환경도   보수도    완벽한   직장이지만    내심   인류를   배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은    그렇게   비난을    듣게    되는   것은    아닌가    불안한    구석이   있었 던   탓이다.    하지만   속내를    다   털어놓기에는    아직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 닌지라   화제는   요니아   파탈에   대한   성희롱에   국한되었다. 김여자는   자신의   착    달라붙는   가죽옷을   팽팽히   당겼다    놓았다.    비인체 공학적인    바스트가    중력의   법칙에    저항한다.   사르치오    사르페오   형제는    무례히   쳐다보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게다가    제    사진을    모아놓은    인터넷    카페도    있더라고요.    그냥    팬클럽 이라면   웃고   넘어가겠는데   야시시한   각도의   사진만   모아다가   만든   거   있 죠?   제   옷이   보기에도   몸의   라인이    다   나오고   에로틱하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도촬을   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잖아요.   기분   나쁘다고요.” “유명인의   숙명이네용.   요즘은   아무나   물어뜯는   놀이가   유행이잖아용.” “명색이   외계인이니   법정에서   고소할   수도   없고   말임다.” 차마    부하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지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요니아    파탈의    도촬    사진의   수위는   여간    높은    것이    아니었다.   기자회견이나   가 르바니온과의   싸움   외에   요니아   파탈의   모습을   하고   돌아다닌   적도   없는 데   어떻게   그   짧은   시간    동안    이   정도로   선정적인   각도를   찾아낼   수   있었 는지   카메라맨의    굳은   열의에    감탄을   하게    될    정도다.   도무지    즐겁지   않 은   감탄이지만   말이다. 김여자는    다시    한숨을    쉬고    말았다.    나는    이런    여간부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닌데.   여성적인   매력은    잃지    않으면서도   할   일은   다   잘   해내는   멋 진   간부의   모습을   연기하고   싶었는데.   우주관광   김관광이   코믹   노선으로   


사아카니스  제국   3장군의   캐릭터를   정했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선   안 에서는   가능한   노력하려   했는데.    “각하,   기운내세용.   똥   밟았다    생각하시고용.   각하가   잘못한   게    아니잖 아용.” “맞슴다.   그리고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거   아니잖슴까.    그냥    지구침략 이   끝날   때까지   인터넷은    끊으시는    게   좋슴다.   지금   이보다   더   중요한   일 이   어딨겠슴까.” 다정한    부하들의   위로에    김여자는   정신을    차리고    일에    집중하기로    결 심했다.    어쨌든    사아카니스    제국과    우주관광    김관광이    하는    일은   지구    역사에    남을    일이다.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외계와의   교류 는   외계와의   교류다.   김여자는   다시   아케이드라군의   조종간을   잡고   훈련    준비에   들어갔다. “네.   힘내겠어요.   제   미모에    무릎    꿇고   복종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신 민들이   있으니까.”    사르치오와    사르페오는   어우야    그건   진짜    아니지    하는    표정으로    자신 의    상관을    바라보았다.    헛소리를    하고    헛소리를    받아줄    정도로   기운이    난    눈치에    내심    안심하면서.    김여자는    김여자대로    결의를    다졌다.   둘의    이야기가    옳다.    요니아    파탈이    성희롱을    당하는    것은    김여자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인터넷만   끊으면    기분   나쁘지   않게    피해   다닐   수    있는   노릇 이다.

✦ …⋯라고  생각한   것은   오산이었다.   온라인이니   뭐니   해도   결국   그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오프라인에서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들이다.   결전의    금요일.    용산의    빌딩   옥상    곳곳에   가르바니온과    아케이드라군의   싸움을    구경하러    온    무리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군중이   들고    있는   플랜카드


나  팻말에는    사아카니스    제국과   3장군을    규탄하는    문구들이    적혀   있었 으며   그중에는   물론   성적인   비하발언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세상에   할   일   없는   사람   많네용…⋯.” “악역으로서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슴다…⋯.” 사아카니스    제국    3장군은    아케이드라군을    이끌고    용산에    강하했다.    아케이드라군은   오락실   게임기에   팔과   다리가   달린   심플한—―건성건성의 —―디자인이다.    이번에    무기라고    받은    것도    오락실    용   등받이    없는   의자    하나   뿐이다.   사아카니스   제국   3장군의   등장   이후   우주관광   김관광의   상 품개발부의    의욕이   많이    떨어졌다는    소문이   사실인    듯하다.   3장군은   어 찌   됐든   무중력   원반으로   아케이드라군의   주변을   돌며   재건축   예정인   건 물을   최우선으로   부수도록   조작   버튼을   눌렀다. “몰려   온   사람들이   위험에   빠지지는   않겠죠?” “감시용   스파이   로봇을   뿌려서   체크하고   있어용.” “우주항모   측에서도   감시하고   있겠지만   저희   쪽   도청   채널도   켜겠슴다.” [와   이게   찍혀요?] [카메라   렌즈가   아니라   천체망원경   렌즈   같은데요.] [아이돌   팬들도    대포   여신이라지만    걔네들은    끽해야   객석에서    무대까 지잖아.    반면에    우리는   빌딩    몇   개는    가로질러서   찍어야   하니까    이   정도 는   필수야.   봐봐.   요니아   저년   가슴에   점까지   찍히잖아.] 근방의    관광객   무리의    도청   채널을    키자마자    적나라한    대화가    이어졌 다.    아무래도    전문적으로    파파라치    사진을    찍는    일행으로    보였다.   김여 자는    몸을   가리고   싶었지만    도청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들킬    염려에   얼굴 이   새빨개진   채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별로   위로가   되지는   않겠습니다만…⋯   남자는   다   바봄다.” “위로는   되지   않아도   이해는   되네요…⋯.” 관광객   근처에   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건물을   부수는   사이    드디어    무안 동력의    전사    갈과   비아    그리고   니온이    도착했다.   지구를   구할    영웅의   등


장.  도청기    채널   전부가    술렁이며   세    영웅의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저번   화까지는   리얼리티를   위해   갈과   비아   그 리고   니온이   싸우기   전에   미리   기지에서   합체하고   기괴수와   싸우러   왔지 만   이제는   아니다.   사아카니스   제국    3장군의   등장과   함께   리얼리티는   갖 다   버리기로   우주관광   김관광은   내부   결론을   내린   것이다. 사람들의   환호성    사이에   갈—―비아—―니온은   가르바니온으로   합체를    시 도했다.    어느    부위가   열리고   어느    부위는    하늘로    치솟고   도무지   효율이 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형식의   접합   끝에   가르바니온의   형태가   완성되어 간다. [아저씨는   로봇   합체하는   거   안   찍어요?] [난   사람끼리    합체하는    거만    찍자는    주의야.   야,    비켜    봐.    지금    요니아    찍고   있어.   젠장.   얘는   왜   합체를   안   한대니.] 도청기    채널의   대다수가    가르바니온    합체에    환호성을    지르기만    하니    파파라치의   한탄이   유난히   잘   들린다.    “실수로   빌딩을   밟으셔도   눈   감아드릴게용.” “생각만   하고   있을게요.” 짜증이    난들    쇼는    계속    이어진다.    가르바니온의    세    파일럿은    합체    후    파괴    활동을    멈추라느니    통상적인   권고를    건네고   사아카니스    제국    3장 군은   나름대로   너   따위는   한방감이라는   둥   도발을   했다. 신경전은    곧장    전면전으로    이어진다.    가르바니온은    무적만용검을    휘 두르며    무섭게    파고드는   반면    아케이드라군은   시작부터    수세로   몰렸다.    가르바니온의   세   파일럿이   인공지능인   것에   반하여   아케이드라군의   3장 군은    인간에    불과하니    아무래도    불리한    싸움이다.    더욱이    저번   기괴수    믹서기간트는    강력한    칼날    회전    공격이    있었지만    아케이드라군에게는    거대한   오락실용   의자를   휘두르는   것   외에는   공격할   방법이   없다. 그    사이   가르바니온이    아케이드라군의   한쪽    어깨를    내려치는   데    성공 했다.    빌딩    하나   크기의   막대한    질량을    가진    무적만용검이   엄청난   속도


로  휘둘러지니   주변은   거센   바람에   휩싸였다.   무서운   검압에   사아카니스    제국   3장군이    타고   있는   반중력   원반마저   흔들렸다.   그리고   원반만이   아 닌   원반   위의   사람들도   흔들리긴   매한가지였다. [좋아!   흔들린다!] 김여자는   반중력   원반    위에서    겨우    균형을    잡아내면서도    파파라치의    목소리를    잡아내었다.    뭐가   흔들렸다고    좋아하는지는   아마    예상한   그대 로일   것이다.    “아까   제안   받아들여도   될까요?” “지금   이   대화가   우주항모   측에도   들릴   검다…⋯.” 아케이드라군은    한쪽   어깨에    상처를   입고    나서는    눈에    띄게    가르바니 온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기괴수는   단순한   기계를   넘어서   유기적인   특성 도    갖고    있기에   큰   상처를    입으면    전체적인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가르바니온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맹공을   가해    아케이드라군을   몰아세 웠다.       거진   클라이막스라는   느낌에    사아카니스   제국   3장군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곧    있으면   각본대로    가르바니온이   무안만용검    깍둑썰기로   기괴 수를    물리칠    것이고,   폭발에   휘말리는    척하며    준비해    놓은   퇴장   대사를    하고   도망칠   차례다.   가급적이면   화려하고   멋있는   포즈로   깍둑썰기를   당 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가르바니온의    세    파일럿이    '무적만 용'이라고    외치면    그    순간부터    가르바니온은    10초    동안    에너지를   모으 고   '깍둑썰기'라고   외치며   필살기를    쓴다.   그   사이   시간의   연출은   오로지    사아카니스   제국   3장군의   몫이다.    사아카니즈    제국    3장군은    서로    눈을    맞춰가며    기술을    받아낼    준비를    했다.   폭파   씬이야말로   베이비페이스에   맞서는   힐의   자존심이   걸린   순간 이다.   3장군은   출동   전까지   몇   번이고   합을   맞춰가며   가장   간지나게   아케 이드라군이    쓰러지는    장면을   연습했다.    김여자   역시    여간부다운   마지막    장면을    위해    어떤   노력도    불사할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또다시    그   파파


라치의  한마디를   듣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적만용!” [벌써   끝이야?   저년은   가슴만    크지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    하여튼    여자란…⋯.] 그   순간   김여자가   맛이   갔다. “깍둑썰기!” 탕—―탕—―탕—―탕—―탕—―탕—―탕! 탕—―탕—―탕—―탕—―탕—―탕—―탕! 가르바니온의    필살기    무안만용검    깍둑썰기는    커맨드는    ↓↘→↓↘→K 를   입력하는    것으로   횡베기    일곱   번,    종베기    일곱   번에    마무리   거합베기    한    번으로    총    15번의    참격이    자동으로    나가    상대방을    산산조각내는   기 술이다.   하지만   요니아   파탈은,   김여자는   그   횡베기   일곱   번,   종베기   일곱    번의   참격을    아케이드라군이   타이밍    좋게   오락실   의자를    휘둘러   튕겨내 는    것만으로    완벽하게   방어했다.    그리고   아케이드라군은    공중으로   치솟 아   올랐다. 탕! 마지막    거합베기조차도   완벽하게    공중에서    방어,   김여자는    그    자리에    서   바로   이어지도록   공중에서   강K   후   ↓K,   →↓↘P을   캔슬,   ↓↘→↓↘→K의    콤보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전타   적중시켰다.    그야말로   EVO   2004에 서의   우메하라가   재림한    순간이었다.   가드데미지만으로도   KO   당했을지    모를   상황을   블로킹으로   완벽하게   뒤엎어낸   것이다.   저   강고한   가르바니 온조차도   기괴수의   노도와   같이   몰아치는   연속공격에   맥을   못   추고   쓰러 져버렸다. 김여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아케이드라군을    한    빌딩    앞으로    이동시 켰다.    사르페오는    상관이    보내는    무언의    압력에    반중력    원반을   움직여    아케이드라군    위에    착륙했다.   아케이드라군이    마주한   빌딩은    당연히   그    빌딩이다.    문제의    파파라치가   요니아    파탈을   도촬하고    있던   그    빌딩.   파


파라치는  오줌을    지렸다.   거인    위에   올라탄    악녀의   내리까는    시선.   지릴 만하다.    김여자는    아케이드라군을   움직여    기괴수의   그    크나큰   손가락으 로   파파라치를   가리켰다. “야.” “…⋯네?” “이   씨X놈아.” “…⋯저요?” “뭐.” “…⋯뭐,   뭐가요?” “하여튼   여자가   뭐   이   씨X놈아.” “어,   그게요…⋯.” 사르치오와   사르페오는   숨을    죽이고   요니아   파탈이   충동을   못    이겨    살 인자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바라보았다.   주변의   관광객들   역시   지구방 위   최후의    보루    가르바니온이    쓰러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구경    온   사실이   들통   나지   않게   침묵한   채   이   상황을   관망할   뿐이었다.   용산   전 체가   물에    잠긴   듯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하고   무겁고   음침한    공기로   가 득   찼다.    “어휴   진짜…⋯   한방감이…⋯.” 반경    50km내에서    가장   큰    소리는    파파라치가   침    삼키는   소리였을    것 이다. “씨X…⋯.” 아케이드라군은   주인의    심정을    대변하듯    발을    과격하게    구르며    지랄 을    쳤다.    일대가    뒤흔들리고    도로가    무너진다.    3화까지    나온    기괴수   중    최약의   기괴수라고는   하더라도   이   병기를   가로막을   수   있는   방법은   지금    이    지구    상에는   하나도    없다.   김여자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한마디라도    더   했다간    자신    스스로를    억제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다.   분에   떨리는   손을   꽉   쥐어가며   조종간을   움직였다.


아케이드라군은  용산에    내려왔을    때처럼    조용히    하늘로    올라가기    시 작했다.    사르페오는    잠깐   당황했다가    상관의   뜻을    알아차렸는지   반중력    원반을   조종해   공중으로   떠올랐다.   기괴수와   그   조종자들은   자신들이   왔 던   곳,   우주항모   바톨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 김여자는  우주를   보고    있었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우주를    보 고   있었다.    우주항모   바톨의    골방에   틀어박혀    창밖의   별과   달과    함께   정 신을   놓고   있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우주를   보는   것    말고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악역   실격이다.    악당   주제에,   그것도    중간보스    주제에   주인공을   3화만 에    쓰러뜨려    버리다니.   비록   마무리는    하지    않고    떠났다지만   승패는   누 가   봐도    자명했다.   우주관광   김관광의    A팀장이    울었다는   이야기도   들었 다.   김여자도   조금   울었다.   도무지   다른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다. 요니아    파탈은,   김여자의    직장은    단순한    아르바이트라고    할    수    없다.    외계와    인류의    첫   만남.   비록    그것이    조금    마니악한   감성에서   시작되었 더라도    역사적인    사건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그    소중한   기회를    자신의    손으로    망가뜨린   것이다.    국가의    죄인도    아닌    인류   차원의   죄인 이   된   셈이다.   그   순간   누군가   골방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요니아   파탈이여.   짐이   행차해도   무방한가?” 저음에   스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목소리.   분명   사아카니스    제국의    황제    이지라니우스다.    김여자는    그제야    추위를    깨달았다.    넋   놓고    있던   탓에    이지라니우스의    갑옷에    달린    반경    5m에    있는    모든    생물체에게   강제로    소름이   돋게   만드는   냉기발산장치의   효과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김여자는   네,    라고   대답하려   했지만   목이    매여   소리가   나질   않았다.    몇   


번  헛기침을   한   뒤에야   겨우   목이   풀려   이지라니우스에게   들어와도   좋다 고   말할   수   있었다.   곳곳에    뾰족한   뿔과   쇠사슬이   달린   갑옷을   입은   거구 의   사내가    방안에   들어와    김여자의   옆에    앉았다.   악의   제국의    황제와   그 의   No.2   간부는   나란히   앉아   우주를   본다. “…⋯송구해요.” “그대를   책망하는    것이   아니니라.    짐   휘하    관료들    전원    귀공을    염려할    뿐이다.” 에츄,   김여자는   재채기를   하고   만다.   갑옷에   달린   냉기발산장치가   주변    공기를    하도    음산하게   만든    탓이다.   이지라니우스는    멋쩍어하며   그제야    냉기발산장치의    전원을   내린다.    공기가   한결    따스해진다.   이지라니우스 는   김여자의   코에   손가락을   갖다   댄다. “흥.” “흥?” “흥.” “…⋯황송해요.” “괘념치   말라.” 펭!   김여자는   이지라니우스    대제의    손가락에   코를   풀었다.   이지라니우 스는   손을    휘저어   잔뜩    묻은   코를    바닥에    뿌렸다.   김여자는    맹맹한   코에    공기가   통하는   것을,   조금   진정이   되는   것을   느꼈다.   아주   짧은   침묵의   순 간이   지난   뒤   김여자는   자신의   고용주에게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폐하.   저는요.   있잖아요.   여간부   짱   잘하고   싶었거든요.   멋진   여자라고    해야    되나.    그런   거    있잖아요.   롤모델    같은   거.    지구에서   여자로    사는   거    되게   좆같으니까   외계인   중에   여자가   겁나   잘   살   수   있다고   막   그런   거   사 람들에게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한가?” “네.   진짜요.   근데   제가   여간부를   해도요.   엄마는   맨날   시집가라고   하고 요.   엄마한테는   내가   사아카니스    제국    여간부라는   거   말   안   했지만요.   계


속  일    빨리   그만두고    남자나   찾으라고    하고요.   되게    그렇거든요.   그래서    직장에서라도    일    잘   할라고    했는데요.   일    되게   재밌고요.    다들   친절하고 요.    완전    좋거든요.   근데    못된   새끼들이    맨날   제    복장   갖고    놀려요.   야한    사진   찍고요.   기분    되게   더러워요.   막   패   주고    싶어요.    저   여간부   댑따   좋 아하는데.   여자라서   까이고   간부   취급도   못   받고   그래요.” “패고   싶다면    패도   된다.    감히   사아카니스    제국의    간부를   능멸하는    자 가    있다면   토벌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그대는,    요니아    파탈은   이지라니 우스    대제의   일당천    전사이지   않은가?   짐의    적이   그대의    적이고   그대의    적이   짐의   적이다.   그대를   얕본   자는   짐을   얕본   자이니,   관용을   베풀   대상 이   아니다.” 고용주의    진중한    어투에    김여자의    기분이    누그러진다.    이지라니우스 는   그   음산한   목소리로   위로의   말을   건네기를   멈추지   않는다. “익히   들어    알겠지만   짐은    지구를   침략하러    온    것이    아니다.    바캉스로    놀러   온    것이다.   그러니    짐에게   중요한    것은    관료들이   기괴수를    잘   조종 한다든가    각본을    잘   짜   온다든가    따위가    아니다.    귀공들과   한바탕   재미 나게   이    천하를   휘젓다가    가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니    그대가   즐거 웁게   지내는   것이   지구침략보다   중요한   일이다.” “성은이   망극하네요.” “짐은    여자가    아닌데다    애초에    인간부터가    아니다.    그대의    아픔을    알    리도   없고   알   수도   없다.    그대가   여자로서   사는   것에   피로를   느낀다면   남 자로    바꿔줄    수도   있고    간부    의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머리부터   발 끝까지    검은    천을   두르고    눈만   내밀고    다녀도    무방하다.   그저    짐을   위해    싸워   준다면.   단기필마의   각오로   저   가르바니온이라는   강적   앞에서   개그 꽁트를   하는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짐은   그대에게   천하를   줄   것이다.” “안   주셔도   돼요.   부담   돼.” “그러한가.” “의상도   바꾸지   않는   편이   좋고요.   전   이   옷이   진짜   마음에   들거든요.”


“그러면  그대에게   악플을   단   자들의   컴퓨터에   저장된    야동마다   클라이 막스   장면에서   사탄의   인형   처키가   갑자기   튀어나와   괴성을   지르며   사람 을   난자하는   장면이   나오게   조작하는   바이러스를   배포하는   일은   해도   되 는가?   실은   이미   했다만.” “좋아요.   아주   좋아요.” 김여자는   그제야   미소를    지어   이지라니우스   대제를   안심시킨다.    둘    모 두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편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느낌이 다.    그렇다.    우주관광    김관광의    지역미개발행성    투어는    거진   망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어차피    망한    거   자잘한   문제는   신경   쓰지   않고   이지 라니우스   대제가   즐겁게   놀다   갈   수   있게   재밌게   지내기만   하면   된다. 여자로   사는   것이   더   쉬워진   것도   아니고   간부로   활약하는   것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수를    해도    부족함이   있어도    힘든   일 을    겪어도    옆에서   응원해    주는   사람,    아니   외계생명체가    있다는   것이다.    김여자는   웃으며   각오를   다졌다. “폐하.   저    지구침략도    여간부도    힘낼게요.    이   거지같은    별의    우민들을    예쁜   제가   긍휼이   여겨야하니까요.” 이지라니우스   대제는    성심성의껏    김여자에게    어우야    그건    진짜    아니 지   하는   표정을   지어주었다.   종과   은하를   넘어서는   교류의   순간이다.

—―무안만용  가르바니온,   곧   출간   예정!


[Text]  단편소설

알레르기:  거부반응_한수민 잠에서    깨어나    보니    품    안의   봄이가    숨을   쉬지    않았다.    오전    여섯    시,    이른    새벽이었다.    몽롱하던    잠기운이    단숨에    달아났다.   봄이는    네   개의    하얀    발을    늘어뜨리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작은    코를   벌름거리지도   않 았고,   숨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던   배도   움직임을   멈췄다.    “봄아…⋯…⋯?” 나지막이    이름을   불러    봤지만   귀를    접은   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베 개   삼아   내어   준   오른팔이    시렸다.   봄이가   머리를   올려   두면   늘   따듯하던    자리에   아무런   체온이   남아   있지   않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봄이의   몸뚱이가   잠든   자세   그대로    목석처럼    굴렀다.   벌써   몸이   굳은   뒤였다.   숨이   꺼져   가는지도   모르고,   숨을   다했는 지도   모르고   나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   딱딱한   사체를   끌 어안고   있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벽에   등을   바짝   붙이고   서서   봄이를   내 려다봤다.    칠    년   전,    박스   속에    버려져   있던    봄이도   이렇게    누워   있었다.    갈색    몸통에    하얀   발을    가진   잡종견.    칠   년    내내    옆을   떠난    적도   없었고,    말썽을    부리거나    잔병치레를   한   적도    없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함께   기 다리는    가족이    있었다.   온    방을   헤집고    다닐    때는   그렇게도    크던   몸뚱이 가   사실은    팔뚝보다도   작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커튼   틈    사이로   어스름 한   푸른빛이   들어왔다.   골목길에서   주워온   낡은   책상과   등받이가   부서진    의자,    어설프게    박아둔   못마다   간신히    걸쳐    놓은    옷들…⋯…⋯   그리고   이부 자리   한    가운데서   박제된    동물처럼   누워    있는    봄이.   따듯한    체온을   가진    건   이   방에선   나    하나뿐이었다.    방안은   지나치게   고요했다.   내가   뱉은   숨 소리만이   방안을   맴돌았다.   죽었다.   그래,   봄이는   죽었다.   예고도   없이   나 만   남겨둔   채   생을   다했다.    왜    죽었을까   하는   의문보다   이미   죽었다는   사


실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눈앞에    놓여   있는   건   내가   아는   우리   봄이 가    아니었다.    좁은    방    안에는    오로지    산   것과    죽은    것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죽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   자가   하필이면   나였다.    벽을    짚고   서서    머리맡을   향해    한   쪽    발을    뻗었다.    도둑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살금살금…⋯…⋯   혹시라도   봄이의   사체와   닿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 했다.    베개    아래를    더듬어서    발끝에    걸리는    휴대폰을    끌어당겼다.   알려 야했다.    그들에게…⋯…⋯.    화면    불빛    때문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단 축   번호   1번을    눌렀다.   신호음   끝에   목소리가   들리기를   바라면서   엄지손 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되며    삐    소리   후    통화료가    부 과됩니다.   삐—―’ “저예요,    은수.    봄이가    죽었어요.    아시죠?    예뻐하셨잖아요,    우리    봄이.    옆에서   같이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숨을   안   쉬어요.   어떡해요,   이제…⋯…⋯.” 중얼중얼   혼잣말을   늘어놓는   동안   목소리는   점점   더   떨리고   있었다.   듣 고   있는   상대방도   없는데    전화기를    붙잡고   했던   말을   하고   또   했다.   한참    후에야   이번만큼은   꼭   연락이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   버튼을   눌렀다.   통 화를    끝내고    휴대폰   화면마저   꺼지자    다시    깊은    정적이   찾아왔다.   조금    전부터   자꾸만   간질거리는   팔을   벅벅   긁었다.   마지막까지   봄이의   머리가    닿았던    자리가    간지러웠다.   짧지만    보드랍던    봄이의    털이    계속   닿아   있 는   듯했다.    팔은   간지러울    뿐만   아니라    이따금    바람이   든    것처럼   시리기 도    했다.    소맷자락을   둥둥    걷어   올렸다.    어스름한   빛에    의지해서   이곳저 곳을    살펴봤지만    별   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추위에   떠는   사람처럼    몇   번이고   팔을   문질러대면서   이부자리를   힐끗   쳐다봤다.   봄이는   기적처 럼   움직이지도,   숨을   쉬지도   않고   여전히   그   자리에   죽어   있었다.   손을   뻗 어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용기가   부족했다.    한   손엔   휴대폰을    쥔   채로    벽을   타고   주저앉았다.   무릎    사이로    깊이   얼굴을   묻었다.   불쌍한   내   강아 지,   불쌍한   윤은수…⋯…⋯.   


하룻밤  사이,   그   좁던   단칸방이   우주보다   드넓고   삭막해졌다.   

아침은  편의점에서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죽은   강아지와   한    방에    앉 아서   맛있게   밥을   먹을   자신이    없었다.   봄이의   사체는   이불   째   둘둘   말아    구석자리에    밀어놓았다.    언젠가    봄이를    잃게    된다면    몇날    며칠을   목   놓 아   울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있었다.   막상   그때가   닥쳐오니   특별히   통곡할    만큼의    슬픔이    밀려오진   않았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봄이의   머리가   닿 은   자리에   가려움이   더해졌다.    점퍼를    걸치고   집을   나설   때도,   진열대   앞 에서   메뉴를   고를   때도   가려움은    끊이질   않았다.   벌레   한   마리가   같은   자 리를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무슨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싶었다.    실수로    머리카락    하나가    들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눈에    보이는    샌드위치와   삼각   김밥,    오렌지    주스를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당장이라도   자리 에서    옷을    뒤집어   확인하고   싶었다.    바코드가    찍히는    소리를   들으며   짧 은   한숨을   뱉었다.    “삼천팔백   원입니다.” 주머니에서   구겨진    천   원짜리   네   장을    꺼냈다.    온   신경은   팔을   향해    있 었다.    “할인이나   적립   카드   있으세요?” 몸과   팔을   밀착시키고   맞닿은   부분을   비볐다.   피부에   옷이   닿았다   떨어 질    때마다    가려움은   배가   됐다.    점원은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종종거리 는   내가   수상했는지,   곱지   않은   눈길로   아래   위를   훑었다.   물건   값을   계산 하는    일이    이렇게   번거로울   줄이야…⋯…⋯.    계산대    위에    놓인   음식들을   주 섬주섬   집어   들고   유리문을   밀었다.   거스름돈을   외치는   점원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편의점과   두    블록   쯤    떨어진   공원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주말이라   출근을    할    수도    없어서    마땅히   시간을   보낼   


곳이  필요했다.    찬바람   하나가    목덜미를   스쳐    지났다.   겨울이    어느덧   코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공원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자전거를   타거나   배드민턴을    치고,   조깅을   하는   사람들    틈에서    인적   드문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공원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공중   화장실을    찾았다.    그곳은   언제고    사람의   발길이   드문   곳이었다.   삐걱거리는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   주변을    살폈다.   예상한   대로   화장실은   텅    비어   있었다.   세면대   옆에   음식들을   쏟 아놓고   서둘러   점퍼를   벗었다.   껴입은   티셔츠도   겨우   목만   끼운   채로   팔뚝 을   들여다봤다.   겨드랑이   아래부터   팔꿈치   위까지   붉은   반점들이   팔을   뒤 덮고    있었다.    너무도   자잘한    점들이    고르게   퍼져    있어서   얼핏    보면   크고    붉은   멍    자국    같기도    했다.    비명을    지르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누르고   좀    더   가까이서   팔을   관찰했다.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왼팔을   부여잡고   눈이    빠져라   들여다보는   모습이라니.   거울에   비치고   있을   바보   같은   내   모습이    빤히   그려졌다.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반점이   생긴   부위를   쓸어   보았다.   좁 쌀처럼   오돌토돌한   피부가   느껴졌다.   살이   닿자마자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가려움에   부르르   몸이   떨렸다.   햇빛이   가장   잘   들어오는   자리에   맞춰   팔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가며   다시   상태를   확인했다.   반 점이   퍼진   자리는   봄이가   머리와   목을   누이고   자던   딱   그만큼의   크기였다.    봄이.   팔뚝에는   봄이의   죽은   자리가   그대로   찍혀있었다.   그   자리에   웅크리 고   앉아    주머니에   넣어    뒀던    휴대폰을    꺼내봤다.    연락은    단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주말을   맞아   여태껏    늦잠을    자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아직   내    연락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   그럴   가능성에   무게를   두기로   했다.    하는   수    없이    인터넷    검색창을    띄웠다.    ‘가려움증’이라    쓰고   검색이   될   때 까지   습관처럼   엄지   손톱을   깨물었다.   봄이의   털이   닿아있는   것처럼   간지 러움은   계속   됐다.   어쩌면    저주에    걸린   게   아닐까.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 터   불길한   예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공원  구석   자리에    앉아   한나절을    보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팔을    문 지르기도    하고    때려   보기도    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진   못했다.    참다   못 해   옷   안으로   손을   밀어   넣어   긁기   시작했는데,   한두   번   계속되다   보니   어 느   순간에는    손톱   밑으로    빨간   피가    묻어났다.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편 의점에서   빵과   김밥을   사먹었고,   휴대폰으로   가려움증을   해결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을   찾았다.    전화벨은    내내   울리지   않았다.   공원에   앉아   있 는   것만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늦은   저녁이   돼서야   떨어지지   않는   발을   집으로   돌렸다.   종일   찬바람을    맞았던   터라   뼈마디에서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현관문을    여는    짧은    순간에도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났다.   혹시   봄이가    벌떡   일어나    나를   원망    어린   눈으로    보진    않을까,   이미    사라져   버렸거나    내    팔을    물어뜯으러   달려들진    않을까.   고작    반나절이   흐른    사이,   사랑하 는   봄이를   떠올리며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집안은   정적만이   감돌았다.    오랫동안   사람이   머물지   않았던    집처럼    차 가운   공기가   뺨에   닿았다.    바깥과    다를   바   없는   싸늘함이   느껴졌다.   스위 치를   올리자   십   평이   되지    않는   단칸방에   환한   불이   들어왔다.   창가   가장    구석자리에   밀어놓은   이불더미가   보였다.   어지럽게   그려진   들꽃   문양   때 문에   그    자체만으로   동그란    무덤   같아    보였다.   최대한   사체와    거리를   두 고   벽에   붙어   서서   몸을    움직였다.   우선   인터넷에서   찾아본   방법들   중   내 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   볼   생각이었다.    싱크대    아래쪽   찬장을   열었다.    시큼털털하고    습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줄지어    선    온갖   조미료와   양념    병들   중에    노란   뚜껑이    달린   식초병을    꺼냈다.   절벽에   간신히    붙어   있는    사람처럼   걸어가서   겨우   화장실   문을   열었다.    바싹    마른   타일    위에   고무    슬리퍼   끌리는    소리가    요란히   들렸다.    목욕 을    싫어하는    봄이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던    소리였다.    몇   번이고   창가    쪽을   돌아보고   싶었지만,   절대로   돌아봐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타일렀


다.세면대에  물을    받고   이    대   일의    적당한    비율을   계산하면서    식초를   부 었다.   좁은   화장실에   시큼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속옷만   남겨   두고   윗옷 을   모두    벗었다.   거울    속에는   볼품없이    색이    바래고   늘어난    속옷을   걸친    여자가   서   있었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팔뚝을   들여다봤다.   너무   놀라   비 명도    나오지    않았다.   붉은    반점들   하나하나마다    피가   맺혀    있었다.   이름    모를   벌레의    알   같기도    했다.   반점은    아침보다    더   뚜렷하게    팔을   장악한    것도   모자라    점점   더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서둘러서   진열 장에   있는    화장솜   한    움큼을   꺼냈다.    눈을    질끈   감고    식초물에   화장솜을    모두   적신    다음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솜을    한   장   한    장   팔   위에    올려   놓았 다.    반점마다    바늘을   꽂은    것처럼   따가움이    밀려들었다.   입술을    꽉   물고    신음을   삼켰다.   혼자   듣고    혼자    지르는   비명만큼   비참한   게   어디   있을까.    바닥에    줄지어    놓은    애견    전용    샴푸와    린스를    신경질적으로   걷어찼다.    그렇게   예뻐했던   봄이가   내게   이런   흉측한   흔적을   남겼다고   생각하니   억 울한   마음마저    들었다.   반점이    퍼진   부위보다    훨씬   더   넓고    꼼꼼하게   팔    전체를   닦아냈다.   차갑고   따끔하던   느낌은   차츰차츰   파스를   바른   정도의    화끈거림으로    변했다.    일시적일지    모르겠지만   가려움도   조금은   사그라 졌다.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단   사실만으로도   묘한   안도감이   생겼다.    방은   이불    하나    깔려   있지   않은   냉방이    되어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이 불은   전부   봄이   사체를   감싸는    데   써   버렸다.   장롱에서   제일   두꺼워   보이 는   스웨터와   티셔츠   몇    장을    꺼냈다.   그것들을   전부   겹쳐   입고서   벗어   뒀 던   점퍼까지    꾸역꾸역   주워    입었다.   싱크대    아래   깔려   있던    러그는   다리 를    덮는    데   썼다.    그리고   현관    바로   앞에서    둥글게    몸을   말고    누웠다.   체 온을    뺏기지    않기   위해    겨드랑이    아래로   단단히    손을    밀어    넣고   팔짱을    꼈다.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대각선   구석에    놓인   이불더미가    보였다.   이 불   아래에   있을   그   딱딱하고   서늘하던   느낌이   되살아났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살을    맞대고   체온을    나누던   봄이가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방 구석에   덩그러니   누워   사체    옆을    지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왜   내게   


이런  상황이    생겼는지    의구심마저    들었다.    코끝이    시큰거렸다.    한   순간 에   재난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밤새  잠자리를    뒤척이며   꿈을   꿨다.   크고    높은   성당이   있었고,   열한    살 의   나는   원장   수녀님의    손을    잡고   있었다.   원장   수녀님은   성당   앞에   멈춰 선   검은   차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젬마,   이제   너에게도    가족이   생겼단다.   이    차를    타고   가면   엄마,    아빠,    그리고   오빠가   너를   맞을   거야.]    가족.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찼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에   올랐다.   차 는   풍경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달렸다.    유리창   밖으로    온갖   색깔이    뒤섞여   물결을   만들어냈다.   속력을    높일수록   어디에선가   멍멍—―   하고   우 는   소리가    났다.   옷깃이    터지고   목이    늘어난    옷은   어느새    분홍색   체크무 늬   원피스가   되어있었다.   발    아래서    양철로   된   쿠키   통이   들썩였다.   군침 을    삼키며    힘껏    뚜껑을    열어    젖혔다.    누린내가    연기처럼   피어오르면서    봄이가   내   품안으로   뛰어들었다.    [봄아!]    보드라운   털을   한    품에   끌어안는데,   어디선가   테니스공이    날아와    어깨 를   때렸다.   튕겨나간   테니스공에서   팔다리가   솟아났다.   연이어   눈코입이    돋아난   테니스공은   오빠로   완전히   모습을   바꾸었다.    [똥개   새끼!   야,   이   똥개야!]    오빠는   두   손을   얼굴에   갖다   붙이고   연신   소리쳤다.    [똥개   주제에!   똥개   주제에!]    같은    말을   수    없이   반복하는    오빠의   두    눈은   봄이가    아닌   나를    노려봤 다.   차   안은   어느새   넓은   정원이   되어   있었다.   둥글고   하얀   테이블에서   신 문을   보던   아빠가   웃으며   말했다.    [넌   최고야.   실망시키지   않을   거지?]   


붉은  벽돌로   지은    이층집에서   앞치마를   둘러맨   엄마가   나오며    입을    모 아   말했다.    [넌   우리   집   복덩이야.   똥개가   아닌   거지?]    엄마는    하늘까지   쌓아    올린   머핀을    하나씩   내    입으로    구겨   넣었다.    눈    꼬리와   입   꼬리가   붙을   정도로   웃음을   지으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착하지.   어서   먹고   우리에게   복을   주렴.   우린   가족이잖아.]    [엄마,   숨이   막혀요.]    아무리   말해도   머핀으로    틀어막힌   목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머핀 이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키가   자라고    손과    발이   커졌다.    오빠는   봄이를    둘둘    말아서    공처럼   걷어찼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    봄이를   이기지   못 하고    몸이    휘청거렸다.    정원의    잔디가    아닌    시멘트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손바닥만큼   작아져   버린   집에서   아빠의   얼굴이   비집고   나왔다.    [넘어지면   어떡하니.   실망이구나.]    [일어날   수   있어요!]    아빠의    얼굴이   뭉그러지더니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엄마의   얼굴이    등 장했다.    [일어날   필요   없단다.   그   똥개와   같이   굴러가렴.   넌   복덩이가   아니야.]    어느새   교복을   걸친   나는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우린   가족이잖아요.   엄마,   아빠가   그랬잖아요.]    손바닥만   한   집을   비집고   세   개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집이   너무   작아졌단다.   이제   너는   들어올   수   없어.]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세   사람의   얼굴이   풍선처럼   터졌다.    목구멍에 서부터   썩은   계란   냄새가    났다.    그   자리에서   토악질을   했다.   뭉개진   머핀 이   쉬지   않고   쏟아졌다.    발    아래가   질펀해지도록   토하고   또   토했다.   멍멍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오물을    뒤집어쓴    봄이가   이를    세우더니   내    팔뚝을   덥석   물어뜯었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겨우   꿈에서   깨어났다.   백   미터   달리기를   완주한    듯이    숨이    가빴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훔쳐내는데    손바닥에   묻은   누 런    자국을    발견했다.   손끝으로    비비자   누런    자국이   때처럼    밀렸다.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데    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   곧장   창가 자리를    쳐다봤지만,    어젯밤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는    냉방에서    벌써   부패가   진행될    리는    없었다.    머리로는   잘   알겠는데    마음이   불안함을   놓지   못했다.    고개를    돌리자   또   한   번,   구수하면서도   콤 콤한    냄새가   코를    스쳤다.   뜨끈한    체온까지   실려    있는   냄새였다.    설마—―    하는   마음에    옷을   들추고    그   사이로    고개를    묻었다.   개처럼    코를   킁킁거 리며   냄새의   원인을   찾았다.    사람의    것이   아닌   냄새가   내   몸에서   나고   있 었다.   밤사이   내   팔에서   또   무슨   일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말도   안   돼…⋯…⋯.” 옷을    벗고   그    실체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식초가    독이   됐던    건지   반점들이    부풀어   올라    빽빽한    수포를   이루고    있었다.   사 람이   아닌    괴물의   껍질을    보는   듯    했다.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끔찍하고    징그러웠다.    수포가    터진    자리에서는    누런    액체가    흘렀는데,    코를   가까 이하니   누린   냄새가   훅   끼쳤다.   봄이다.   비   오는   날이면   온   방안에   진동하 던   개    냄새였다.   봄이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생의   흔적이    진물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도   계속    되는    가려움증이    더더욱   나를   절망 시켰다.   마음이   초조해질수록   가려움은   커졌다.   봄이의   잔털   하나하나가    피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팔을   간질이는   상상까지   했다.   최대한   조심조심 하며   손끝을   대   보았다.   물컹하게    부풀어   오른   피부   층과   함께   미열이   느 껴졌다.    서둘러   휴대폰을   꺼냈다.   단축   번호   1번을   누르고   두   번째   음성   메시지 를   남겼다.    “저예요,   은수.    문제가   좀    생겼어요.    봄이가   죽기    전까지    제    팔을    베고   


있었는데…⋯…⋯  제    팔이   이상해요.    피   나게    긁어도   간지럽기만    하고,   소독 을   해   봐도   소용없어요.   혹시    예전에   제가…⋯…⋯   제가   어렸을   때도   이런   적    있었어요?   아플    때마다   항상    잘   돌봐주셨잖아요.    지난   오    년   동안    한   번 도   이런    적   없었는데…⋯…⋯.    전화는   근무    중에도    받을   수    있으니까   언제든    꼭   연락주세요.   봄이는   아직   저랑   같이   있어요.   가족이잖아요.” 한겨울   탓만   하기에는   방이   너무   추웠다.   

상황이  어찌   됐건    출근을   거를    수는   없었다.    아무리    사회   인식이    좋아 졌다   해도   고졸의   여자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그리   많지   않았다.   최근 까지   레스토랑에서    서빙   일을    했지만,   손목    인대가   늘어난   탓에    관둘   수 밖에    없었다.    얼마    전부터는    콜센터    대행업체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우 리   팀은   주로   통신사   아웃바인드    일을   맡았다.   하루   종일   좁은   칸막이   책 상에   앉아서   보이지   않는   상대와   입씨름을   하고   꾸역꾸역   상품을   판매하 는   게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JS텔레콤입니다.    저희   JS텔레콤에서    연말   이벤트를    맞아    고객님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통화가   끊겼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누구인지    모를    상대에게    전화를    걸면    혹자는    무반응을    보였고,   혹자는    욕을   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말을   빙빙   돌려가며   놀리기도   했다.   내내    먼저   전화를   걸어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   청하고   밥   먹는   것보다   많은   거 절을   받았다.   언제쯤   전화가    끊어질까,    어떻게   하면   욕을   듣지   않고   대화 를    이어갈    수   있을까.   전화선에    대롱대롱    매달린    심정으로   근무하는   대 부분의    시간을    전전긍긍하며   보냈다.    전화가    끊긴    뒤의    정적은   수백   번    들어도    막막하고    낯선   것이었다.    고객    명단이    적힌    컴퓨터   화면을   멍하 니    들여다봤다.   오퍼    거부,   미수신,    오퍼   거부,    오퍼   거부…⋯…⋯    몇   페이지 를   넘어가도    성과   여부에    오퍼   성공은    보이지    않았다.   헤드셋을    벗고   잠


시  숨을    골랐다.   팔에서부터    누린내가   물씬    올라왔다.   긁지도    못하고   꾹 꾹   누르기만   했는데도   수포가   터진   모양이다.   티셔츠가   조금씩   축축해지 고   있었다.   출근   전에    뿌리고    온   향수   냄새는   어디에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독한    누린내…⋯…⋯.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용    향수병을   꺼냈다.    작고   길 쭉한   바틀이    한   손에    들어왔다.   향수    입구를    팔   가까이에    바짝   들이대고    분사    버튼을    눌렀다.   특유의    알콜   냄새가    진동했지만,   한두    번으로는   성 에   차지   않았다.   뚜껑을   따서   모조리   들이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무실도   좁은데   뭘   뿌려   대는   거예요.   머리   아프게.” 옆    책상을   쓰는    희경이   코를    틀어쥐고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희경 은   처음부터    열   명    남짓한   직원들    가운데    가장   텃세가    심했다.   문구점에 서   클립을    사   오라는    둥    편의점에서   날개형    생리대를   사   오라는    둥   별별    잔심부름을    시키는가    하면,   시시때때로    옆자리를   힐끔거리며    실적을   견 제했다.    “아…⋯…⋯   조심할게요.” 희경은    콧잔등을   찡그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희경 의    손가락과    가느다란   팔을    봤다.   장미가    수놓인   아이보리색    가디건,   그    아래    있는    그녀의   팔도   얼굴만큼이나    하얗고    매끄러울까.    내   옷을   걷어    끔찍한   실체를   보여준다면   얼마나   머리   아픈   비명을   질러댈까.    [한결같이,   가족처럼.] 액자에   걸린   사보를    읽으며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가려움과    냄 새가   심해질수록   온갖   잡념은   많아졌지만,   일단은   팔을   부여잡고   시간이    가기만    기다렸다.    괜한   문제로   회사에서조차    눈    밖에    나는   일이   없어야    했다.   한결같이,   가족처럼…⋯…⋯.

퇴근  후   사무실과   같은   빌딩에   있는   피부과를   찾았다.    “어디   물렸다거나   그런   것   같진   않고.”


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마흔을   갓   넘긴   듯   한   그는   실눈을   깜 빡이며   한동안   내   팔을   관찰했다.   직접   손을   대지도   않고,   겨우   손가락   끝 만   쥔   채로   이리저리   팔을   돌려   댈   뿐이었다.   나는   봄이의   똥을   만질   때도    저렇게까지    조심하진    않았다.   한    순간   수술대에    오른   외계인이   된    것   같 았다.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마음이   참담해졌다.    “알레르기   반응일겁니다.   최근에   새로   먹었던   음식이나    발랐던    로션이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전문가를   만나면   뭔가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 다.   특별히   챙겨   먹은    음식도    없었고,   바디로션   제품은   애초에   쓰지도   않 았다.   최근에   있었던   변화라면    내    팔   위에   누워   있던   봄이가   죽었다는   사 실이    전부였다.    단순   알레르기    반응일지   모른다니.    그건   나와    봄이가   살 을   부비고    지낸   수    년의   시간을    무시하는    말이었다.   당장    진료실   밖으로    나가   그의   형편없는   실력을   소문   내고   싶었다. “일단   먹는   약이랑   바르는   연고를   드릴   테니까   삼   일   정도   잘   관찰해   보 세요.    수포가    터지면   염증이    생겨서   더    간지러워질   수도    있어요.   가능한    긁지   않도록   주의하시고.” 진료는   아주   순식간에   끝이   났다.   의사는   멀찍이   떨어져서   처방전을   작 성했다.    다른    가능성을   의심하지도    않았고,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도   않았다.    “저기…⋯…⋯” 말끝을   흐리면서   무릎   위에   두   손을   슥슥   비볐다.   진료가   끝나고도   자리 에서   일어나지   않는   내가   이상했는지   할   말을   재촉하는   시선이   날아왔다.    “수면제도    좀    부탁드려요.    가려움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서…⋯…⋯.” 말하고   싶었다.    알레르기일   리가   없어요.   그러니까   내   팔에   죽은   개가   붙어   있다고요.   


현관  앞에서   쪽잠을   자며   벌써   나흘   밤을   보냈다.   매일   밤을   거의   뜬   눈 으로    지새웠다.    눈자위는   푹   꺼졌고    얼굴색은    핏기    없이   노르스름한   빛 을    띠었다.    입안이   깔끄러워서    밥을   먹는    일도   번거로웠다.    의사가   처방 해준   약은    역시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수포가    터지면서   입는    옷마다   진 물이   묻어    애를   먹었다.    딱지가   생기긴    했지만    동시에   발열    증상이   나타 났고,    밤이    되면   낮보다    더한   가려움에    시달렸다.   근무    시간에는   겨드랑 이   사이에    얼음   팩을    끼고   손수건으로    팔을    동여맬   수밖에    없었다.   책상    아래로   난롯불을   쬐면서도   견딜   수   없는   추위에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이봐,   아가씨.   당신   나   알아?   언제   봤다고   그런   말을   해?” 신경질적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벌써   오늘   오전에만   서른   번 이    넘는    거절을   받았다.   덩그러니    앉아서    대기    화면으로   돌아간   피씨를    쳐다봤다.   어제   저녁부터   먹은   게   없는   탓인지   눈앞이   핑   돌았다.   어서   다 음   전화를…⋯…⋯.   책상   끝을    톡톡    두드리다   말고   고민에   빠졌다.   사람은   정 신이    멍해지면    무모한   용기가   생기는    걸까.    화면에    떠있는   커다란   숫자 를   보자   익숙한   번호를    누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지난   며칠   동안   나 는   너무   지쳐   버렸고,   어떠한   도움이   꼭   필요했다.   얼음   팩을   추슬러   끼고    주변을   살폈다.   모두   칸막이   안에서   제   일을   하느라   바쁠   뿐,   내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다음   고객의    번호   대신    단축   번호   1번에   저 장되어    있는    번호를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헤드셋   선을   빙 빙   돌리면서    괜한    예측을    해    본다.    받는다.    안    받는다.    받는다.    안   받는 다…⋯…⋯    역시    바쁜   거겠지.    길어지는   신호음을    들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안도감이   생겼다.   순간이었다.   달칵.    전화를   받아   드는   소리가   호흡을   멎 게    했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야—―   나인지    누구인지   모를    목소리가   마 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소리쳤다.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과   통화하는   일 이   이토록   쉽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여보세요.”


여보세요.  오   년을    기다려온    한    마디였다.    꿈에서나    들었던    목소리가    헤드셋을    통해    또렷하게    들렸다.    전화    너머로부터    달큰한    머핀   냄새가    풍겨올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만   벙긋거렸다.   하고   싶었 던   말들이   모두   목구멍에   들어차서   첫   마디를   꺼내기도   버거웠다.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은수예요.   끊지   마세요.” 전기가   통하듯이    찌릿—―   하고   가려움이    올라왔다.   헤드셋   선을    움켜쥐 고   화면   앞에   최대한   몸을   붙였다.    “제가   보낸   메시지   들으셨어요?   며칠째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봄이가    죽었는데,   정말    혼자가   될까    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집에   혼자   있기가   너무   무서워요.   도와주세요…⋯…⋯.” 어느새   나는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여보세요.” 통화음이   잠시   고르지    못하게   흔들리더니,   굵직하고   낯선    목소리가    끼 어들었다.    아빠와    닮았지만   그보다    더    젊고    짜증    섞인   목소리…⋯…⋯   오빠 일까.    “은수?   너   은수   맞지?   너   돌대가리야   뭐야.   불쌍한   애   주워다   좀   돌봐준    거   가지고,   누구   보고   가족이래.   어?   우린   그   똥개   새끼가   죽건   말건   털끝 만큼도    관심   없거든?   먹고    살기도   빠듯하니까    서로   피곤하게    하지   말고    조용히    갈    길   가자.    아직도   우리한테    얻어먹을   게    있다고   생각하나본데,    수작   부리지   말고   조용히   꺼지라고.   알았어?” 상대는    내   말    따위는   듣고    싶지도   않은    듯   가차    없이   전화를    내려놓았 다.    딸칵하고    끊기는   소리가    아프게   귓전을    때렸다.   얼음    팩에서는   차가 운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화면에   뜬   '통화   종료'라는   글자를   보는데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들과    나   사이에    남아있는    추억은    봄이    뿐이었다.    우린    가족이니까.    유일하게    한    집   밥을    먹고   같은    곳에서    생활했던   봄이가    곁에   있으니까.   


언젠가는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지난   오   년을   보냈었다.    “어머,   은수   씨.   왜   이래.   어디   아파?”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그대로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옆자리에    있던    희 경이    호들갑을    떨며   팔을   잡아당겼지만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었다.   이 대로   바닥끝까지   가라앉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스크로  얼굴을   절반쯤    가린   뒤    이불더미   앞에    섰다.    고무   장갑을    낀    손에는   퇴근길에   사온   쓰레기   봉투를   들었다.   유리창에   고스란히   비치는    모습은    흡사    방역   작업을   앞둔    사람    같아    보였다.   우스꽝스러웠지만   나 름    비장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방안은    훨씬    더    차가워졌고   고요해져   있 었다.   이불   밑에   숨어    있을    봄이의   사체가   머릿속을   떠다녔다.   나흘이   지 났으니    지금쯤    얼마나   상했을까.    내   옷    아래    숨죽이고   있을    괴물과도   닮 아있을까.    두    손으로   봉투를    붙잡고   입구를    활짝   벌렸다.    이불   끄트머리 를   잡고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가며   봉투    입구와   이불을   맞춰    넣었다.   천 천히    신중하게.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봄이의    장난감과   사료,    애견   샴푸 와   린스도    빠짐없이   봉투에    챙겨   담았다.    이가    빠진   듯    썰렁해진   방안을    둘러봤다.   지난   칠   년의    시간이    천이백   원짜리   봉투   하나에   모두   담겼다.    혹시나    빠져나오는    일이   없도록    봉투를    묶고    또    묶었다.   정리를   마치고    깨나    묵직해진    봉투를    현관까지    질질    끌어놓았다.    큰일을    해낸   것처럼    몸이   지끈거렸다.   허리   위에   두   손을   얹고   목을   빙빙   돌리며   잠시   숨을   돌 렸다.   기운이   다하기   전에    서둘러야겠다.   그   자리에서   장갑을   벗고,   입고    있는   후드   티와   바지도   벗어던졌다.    화장실   수도꼭지를    최대한    뜨거운   쪽으로   돌리고   대야를    받쳐    놓았다.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주방    서랍에서    쓰지    않은    철   수세미를    챙겼다.   손바닥에   철   수세미를   살살   비벼보았다.   꼬불꼬불하지만   날카롭


고  따끔한    느낌이   살을    긁었다.   이만하면    됐다.   대야에는    어느새   뜨거운    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화장실   문턱에   앉아   출렁거리는   대야를   끌어왔 다.   뜨거운   김이   다리를    따뜻하게   했다.   어쩐지   코가   시큰거렸다.   무릎을    세우고    쪼그려    앉아   코를   훌쩍였다.    대야에    물이    일렁이는   건지   시야가    일렁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손에    쥔   철   수세미를    물   속에    담갔다.   손바 닥    안에서    물에   불어난    수세미가   꿈틀꿈틀    움직였다.   왼팔을    뻗었다.   나 흘   넘게    나를   못살게    괴롭히던   끔찍한    실체를    마주했다.   누렇게    말라   버 린   진물과    딱딱하고   붉은    딱지가   정신없이    팔을   뒤덮고   있었다.    그건   내 가    아닌    괴물이었다.   봄이의   생에    대한    미련과    나의   멍청함이   뒤엉켜서    혐오스러운    괴물을    만들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위에서    아래로   철   수세 미를    힘주어    밀었다.   들러붙어   있던    딱지가    두둑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 졌다.    수세미가    긁고    내려간    자리에는    진물과    피가    흘러내렸다.   팔뚝을    적시는    게    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살갗이   긁히는   따가움보다는    뼛속까지   파고드는   시원함에   몸서리쳤다.   파드득   몸을   떨면서도   철   수세 미로   미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살갗이   벅벅   밀릴   때마다   꽉   깨물고   있던    입술을    비집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내    어린애처럼    엉엉   우는   소리가    화장실을    가득    메웠다.    입만    붙였다    떼어내도    음마아—―   하는    소리가   터 져   나왔다.   타일에   부딪혔다   되돌아오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서러움 을    느꼈다.    서러웠다.    봄이를    향한    애정이    고작    이    정도였다니.   더   이상    산   것이   아니라   함께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이렇게   무섭고   이렇게   치 워   버리고   싶어지는   마음이었다니.   가족이라고   믿었던   애정이   이토록   가 벼웠다는    사실에    서럽고   치가   떨렸다.    그들이    이토록    가벼운   마음인   줄    모르고    오    년을   기다렸던    시간이   분했다.    처음부터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래서   이   끔찍한    마음을    완전히    벗겨   내야겠다고   결심했 다.    박박    밀고    밀어서라도    모조리    긁어내자고…⋯…⋯.    부러진    수세미   파편 이   피부   속에   박히는   걸   보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시간.    전봇대   옆에   삼십   리터짜리   쓰레기   봉투를   놓 아두고,   골목길   어귀를   서성거렸다.   고개를   빼고   주변을   둘러봐도   오가는   사 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몇    블록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   편의점   불빛을   제외 하면   밝은    것이    없었다.    손수건을    동여맨   팔이   점퍼에    닿을   때마다    통증을    동반한    열이    올라왔다.    가려움보다는    이    편이    견디기   좋았다.    커다란   봉투    옆에   잠시   주저앉았다.   소매   속에   감춰   두고   있던   폰을   꺼냈다.    얼어붙은   손 끝을   호호   불어가며   단축   번호   1번을   길게   눌렀다.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되며   삐    소리   후   통화료가   부과됩 니다.   삐—―’ “저예요,   은수.   이제   봄이   보내   주려고   큰   쓰레기   봉투를   하나   샀어요.   같이    있을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달리   방법   몰라서…⋯…⋯   제가   아는   방 법은   이거뿐이더라고요.” 바퀴   구르는   소리가   먼   곳에서부터   조금씩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덩그 러니   놓인   봉투를   쳐다보며   마지막   안녕을   건넸다.    다    긁어낸   줄    알았던   울 음이   아직도   남았는지   목울대가   저리고   아팠다.    “근데요.   나는   정말   엄마의   복덩이가   되고   싶었어요…⋯…⋯   우리   봄이도   그랬 을까요?” 쓰레기   수거차가   이제   막    모퉁이를   돌아   골목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두    개 의   헤드라이트가   골목길을   환히   비췄다.   내   옆인지   어디인지   모를   곳에서부 터   멍멍—―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봄아,   아무래도   내   자리는   여긴   거   같아.   


[Text]  단편소설

엘리베이터_설일스 “지금  우리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   내   꿈에   나왔던   그   여자야.” 그가   평소처럼    툭    내던진   한   마디    말은,    여느   때와   달리   뒷골이    당기도 록   나의   가련한   말초신경을   쥐어짰다.    그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녀석은   여전히   멍한   눈길로   형광등   꼬다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알바   중 인데도   불구하고   일   할   맘이    전혀   없어   보였지만,   일관된   그   태도에   딱히    딴죽을   걸지도   못했다. 저    놈은   워낙    그런   놈이었다.    멍청해   보이는    저    희여멀건한   녀석은    도 무지    현실감각이란    게   없다.   자다가    문득    잠이    깼더니   귓가에   바퀴벌레    한    마리가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더라,    그리고    길을    지나가다가   본   담배 꽁초가   내    것과   똑같더라…⋯…⋯    라는   이   전혀    다른   느낌의   두    가지   사건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   버리는   녀석이다.   그런   그와   일주일,   아니,   일곱   시 간만   같이   지내면   무슨   말을   들어도   놀라지   않게   된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저   녀석에게    딱    맞는    대응법이다.    누군 가   이   녀석과   만나게   된다면   참고하길   바란다.          “요즘   말이야,   나   이상한   꿈을   자꾸   꿔.” 그   녀석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난   만들던   샌드위치 에   집중하며   조건반사적으로   대꾸했다. “무슨   꿈인데?” “그러니까…⋯…⋯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녀석은   손님들이   반납하고    간   머그컵을   물에   대충   헹구며    이야기를    시 작했다.    설거지는   뒷전이고,    골똘히   생각하는    데   여념이    없다.   머그컵이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도는   것조차   눈치   못   챘으니   어련할까.    “엘리베이터에   탄   상태로   꿈이   시작해.” 완성된   샌드위치를    플라스틱    팩에   포장했다.   녀석은   아직도    허공을    응 시하며   잠꼬대   하듯   지껄인다. “누군가가    같이    거기에    타고    있었어.    곧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 하고,   나는   화면에   표시되는   층수를   쳐다보고   있는데—―” 난   녀석을   옆으로   밀쳐내고   머그컵을   박박   닦았다.   딱히   눈치를   주려는    건   아니다.   그저   손을   빌려주는   거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의   층수보다   훨씬   높은   층이   마구   생기는   거 야.” “하아?” 알    수    없는    소리에   적당한    리액션을   해주며    일단   컵을    식기   대에    올려 놨다.    이런   뜬구름    잡는    소리가    대화의    70퍼센트   정도니    어지간히   면역 이   됐다.   녀석이   이쪽으로    조금    다가온다.   여전히   현실감   없는   얼굴과   말 투로   느릿느릿   그놈의   꿈   이야기가   이어진다. “예를   들어   말이지,   건물은   30층   정도밖에    안    되는데   화면에   172층   같 이   얼토당토   않은   숫자가    뜬다고.    아,   근데   그건   어느   정도   엘리베이터가    정상적인    작동을    한    후의    일이야.    처음에는    멀쩡하다가    갑자기   폭주를    시작하면   말도   안   되는   층수가   나타나지.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폭주하기    전에   몇   번   멈추거든?   그때   내릴지   말지   고민하는데…⋯…⋯.” 녀석은   갑자기   말을    멈추고   눈을   껌벅거렸다.   손님이라도    들어왔나    싶 어,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지만,   손님은    한   명도    없다.   난    손목시계를   한    번   봤다.   12시   5분.   사장님이   오시기   전에   슬슬   청소라도   해   놔야…⋯…⋯. “흐억…⋯.” 갑자기   녀석이    내    팔을   덥석   붙잡았다.    한    손엔   행주를   들고   날    뚫어지 게   쳐다본다.   그런데   그   눈이,   비   오는   날   버려진   강아지의   눈   같았다.    “나,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어.”


  오전    파트타임    알바를    끝내고    우리는    같이    퇴근했다.    한    시까지    하는    카페   아르바이트는   기본   시급이지만   손님도   별로   없어   대충   시간   때우기    좋았다.   그리고   퇴근   후   이   녀석과   같이   느지막한   점심   식사를   하고,   같이    학교에    가서    과제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과가    되어버렸다.   이   녀석과    어울리기   시작한   초창기엔   좀   특이한   구석이   많아서   괜찮을까   싶었지만,    몇   번    만나다   보니    생각보다   멀쩡하고    꽤    재밌는   녀석이었다.    적적한   학 교생활에   미미한   활력소랄까.    그    녀석과는   달리    난    몹시도   평범한    복학생이다.   특이할    것도,    남들보 다    유별나게    못하는   것도    없는   진정한    평균치의   남자.    …⋯…⋯물론,   친구가    하나도   없는   건   남들과   조금   다르다.    작은   사고가    하나    있었는데,   그   소문이    과    내에   쫙   퍼지자   모든    동기들 과   선후배들이   등을   돌렸다.   말   그대로   그저   사고일   뿐인데도   말이다.    어쩌면   나와   붙어   다니는   유일한   친구인   이   녀석도   남들과는   다른   사고 방식을   가졌기에   가능한   거라고    본다.    실제로,   복학한   후에   만난   다른   동 기들은   날   자연스럽게    피했다.   그런데   유일하게   이   녀석만이   그게    뭐가?    라는   소탈한    태도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이    녀석과   지내면서   그의    ‘유 별난   구석’에   점차   익숙해졌다.    그    증거로,   냉면을    먹으면서   계속된    저   녀석의    꿈    타령을   거의    완벽히    이해했다.   여태까지   주구장창   읊어대던   개요를   정리하면   대략   이렇다.    그는   이상한    꿈을   자주   꾸는데,   유독    반복적으로   계속   꾸는   꿈이    있다.    항상   똑같은   내용이라서   아    이건    그   꿈이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그런   꿈. 그    꿈은   엘리베이터에    탄   그    녀석이   겪게    되는    이상한    일이다.    엘리베 이터는    폭주하기    전,   몇몇    층에   멈추는데    그    밖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인 다.   누군가는   타기도   하고,   누군가는   내리기도   한다.   그리고   녀석은   그   안 에서    묘한    익숙함을   느낀다.   그리고    적당한    때에    내리지   않으면   어디서   


내리든  죽게   된다는   것도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확신을   얻게   될   즈음,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폭주하 기    시작한다.    전광판의    숫자는    미친    듯이    올라가고    내려가기를   반복한 다.   그리고   그렇게   폭주하던   엘리베이터는   이따금씩   문을   열고   사람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갑작스런   엘리베이터의    폭주에   겁먹은    불쌍한   사람들 은    엘리베이터를    벗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녀석은    내리면    안   된다는   걸    안다.   그저   내려야   살   수   있는   그때를   묵묵히   기다릴   뿐. 그   순간,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고   있던    어떤    여자가   등을   톡톡   치며    말 을   건다.    “너,   언제   내려야   살   수   있는지   알고   있지?” 무뚝뚝한   얼굴일    게   분명한데,   난   그    표정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대신   상기된   녀석의   얼굴을   쳐다보며   되물었다. “그러니까   그   여자가   너에게   말을   건   건   처음이었다고?” “응.    여태까지    알고    있는   꿈의    전개랄까.    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층에서   내리기만   하면   됐었거든?   근데   갑자기   그   여자가   나타난   거야.” 녀석은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도대체   뭐가   저   녀석을   저렇게   설레게   만 들었는지    모르지만,    꼭   첫사랑에    빠진   여고생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게    기분   나쁘다.    “야,   냉면   안   먹으면   내가   먹는다.” 난   젓가락만   빨고   있는   녀석의   사발을   끌어당기려   했다.   하지만   녀석은    부리나케   젓가락을   고쳐   잡더니,   사발을   끌어안고   후루룩   면발을   들이키 기    시작했다.   식욕마저    잊어버린   건    아니니   다행이다.    노파심이지만,   저    녀석이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마저    까먹고    죽어    가는지도    모른    채   죽어    가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종종   한다.   물론   절대   일어날   리가   없 지만,   저   맹한   녀석이라면    인류    사상   최초의   새로운   죽음을   보일   지도   모 른다.   단언컨대,   녀석은   분명   인류   역사의   한   획을   그을   잠재적   요소다.   


“그  여자가   엄청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면서   나한테   이렇게   얘기하더라고.” 녀석은   입   안   가득   면발을   넣고   우물거리며   살얼음   낀   눈알을   번득였다. “지금   생각하는   그거,   틀렸어.   살려면   여기서   내려야   돼.   라고.” “…⋯…⋯호오.” 내심    감탄했다.    고거   참    당돌한    여인네네—―   라고.    의도가    왜곡될까    봐    덧붙이지만,   비꼬는   게   아니다.   사실   입   밖으로   안   냈지,   래퍼토리에   갑작 스레   끼어든    그   여인네의    정체가   좀    궁금한    건   사실이다.    어느새   냉면을    다   마셔    버린    녀석은    입술을    핥으며    꿈의    세계로    슬근슬근   끌어당기기    시작한다.    “난    그   여자의   말에    긴가민가했어.    그런데    그   여자의   파리한    얼굴에    눈 동자가   너무   진실돼   보여서   차마   대답을   못한   채   엘리베이터가   멈춘   거야.    그   여자가   말했던   84층에.   근데   문이   열리고   나서   뭐가   보였는지   알아?” “아니.” 녀석은   곧장    대답하려던   몸짓을   멈췄다.   살짝    떠는   것   같기도   하고,    뭔 가    망설이는    것   같기도    한   기묘한    움직임이었다.   이윽고,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녀석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어둠.   아무   것도    안    보였어.    전혀.   완전히   아무    것도    없는    깜깜!   처음    이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도    여기선   절대   내리면    안   된다는   걸    알   정도로    음습한    기운이   느껴지는    층이었어.   어둠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84 층이라니.   층수부터   말이   안   되잖아?   그   건물은   30층짜리   건물이었단   말 이야.”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나도   모르게   머리털이    쭈뼛    곤두 섰다.   단순한   꿈   이야기일   뿐인데.   은근   긴장된다. “그래서   내렸어?   어떻게   됐어?” 어느새   녀석의   이야기를   재촉하고   있다.   젠장,   관심   갖고   싶지   않았는데. 녀석은   갑자기   적극적인    태도로   바뀐   날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나 지막한   한숨을   토했다.   


“거기서  끝.   내리면   안   된다는   걸   깨달은   순간   깼어.” “아,   뭐야.   싱겁게.   그냥   개꿈이네.” 뭔가   대단한    반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그저   그런   개꿈이었나.    실 망한    투를    역력히   보였지만   녀석은    미동도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는   여태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목소리였다. “그냥   개꿈이었으면   좋겠다.” “왜,   그    여자가    엄청    미인이면    개꿈이라도   좋지    않냐?   혹시    꿈    내용보 다   일어난   뒤가   더   당황스러웠던…⋯…⋯!   자,   솔직히   말해.   얼마나   예뻤냐?” “직접   네   눈으로   확인해봐.” “뭐?” 녀석은   자세를    바꾸며   내   눈을   똑바로    직시했다.    장난기   한   점   묻지    않 은    정직한    말투,   그   것과    정반대인    능글맞은    미소를   빙글거리며   속삭이 듯   말했다. “지금   우리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   내   꿈에   나왔던   그   여자라고.”

엘리베이터에  관한   기억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다.   언 제였는지    시기조차    가물거릴   정도로    빨리    기억에서    지워    버린   사건.   어 지간히    불쾌했던    사건이기도   하고,    내   생애에    절대   잊힐   리가    없을   거라 고   여겼던   끔찍한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아마도   3년   전,   스무   살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집에서   통학을   했다.   하루는    늦잠을   엄청   자   버렸는데,    집을    나온   시각이    이미   수업    시작   시간이었다.    전공    필수   과목에다가    이미   결 석이   세   번이나   있어,   결석은   절대   안   된다는   생각에   내   발걸음은   더욱   바 빠졌다. 다행히   출근   등교    전쟁   시간대를   살짝   넘겨서   그런지    엘리베이터는    텅 텅   비어    있었다.   유일하게    교복을   입은    여고생    한   명이    같은   엘리베이터


에  타고   있었고,   속으로   혼자   동병상련의   기분에   젖어   있을   즈음이었다.    「삐—―   덜컹」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비정상적인    소리를    내며   멈췄다.    전광판의    숫자 가   8층을    지나는   순간,   엘리베이터가   위협적인   진동과   함께   완전히   정지 했다.    “어,   뭐야?” “아…⋯…⋯   뭐야   이거…⋯…⋯.” 우리는   거의   동시에   짜증과   당황스러움이   섞인   탄성을   입   밖에   냈다.   낡 은   아파트의   고물   엘리베이터는   심지어   호출   버튼까지   먹통이   되어   버린    상태.   여고생은   이미   포기했는지   구출을   기다리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