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동북진흥계획 10년 질적 변화 접어든 북중 협력 시리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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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3. 동북진흥계획 10 년 질적 변화 접어든 북중 협력 2013 년 11 월 14 일 목요일 오전 8:58

<목차> 1.

메인:공동관리 공동운영의 새로운 모델/26 매

보조 1:국경의 빗장을 열어제끼다/17 매

보조 2: 북한의 중국 관광객 20 만명을 넘다/6 매

2. 메인:기업 중심의 협력 확대 및 심화/34 매

보조 1: 전력망 연계와 인민폐 결제통화 도입/9 매 보조 2: 중국내 북한 인력 10 만명 시대/8 매

3.

메인: 러시아 몽골과의 경쟁적 다자 협력/44 매

보조 1: 훈춘 북방의 선전(심천)이 될 것인가/16 매

보조 2: 훈춘의 포스코 현대국제물류단지/5 매

러시아 몽골과의 경쟁적 다자 협력 북중러의 이른바 북방 3 각의 관계는 사회주의체제라는 이념적 대의 속에 묶여 있었지만 경쟁과 견 제 때로는 심각한 갈등 관계에 있었다. 특히 북한은 중러가 이념분쟁을 겪을 때부터 이런 대립과 갈 등을 적절히 활용해왔다. 외교의 영역에서 보면 예컨데 독립적 자주외교를 내세워 어느 한쪽에 서지 않은 채 중러의 틈바구니에서 양쪽으로 부터 경쟁적으로 협력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90 년대 초반 중 국 러시아가 모두 한국과 수교를 하는 과정에서는 북중, 북러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북은 고 립 속에서 홀로서기를 모색해야 했다. 중러의 갈등이 크지 않은데다 러시아는 공산당의 몰락을, 중국 은 천안문 사태로 모두 내부 문제가 시급했다. 북한은 러시아의 배신에 크게 반감을 표출하긴 했으나, 중국과는 협력을 유지하면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변화를 수용했다. 이 시기 북한이 취한 미국, 일 본과의 과감한 관계정상화, 나진 선봉자유무역지대 선포와 같은 부분적인 개혁 개방조처는 이를 뒷받 침한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78 년 홍콩에 인접한 선전을 비롯해, 주하이, 산터우, 샤먼 등 4 대 경제특구로 시작됐다. 그러나 본격적인 중국의 변화는 92 년 1 월 당시 최고 실권자 덩샤오핑의 남순강화로부터 다. 개혁개방의 확대심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중국이 92 년 한중 수교라든가, 1 국 2 체제론 등으로 대만과의 적극적 협력을 추진한 것은 이런 개혁 개방을 위한 동력과 그에 필요한 외적환경을 확보하 기 위한 조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자본주의 국가 가운데 특히 국가주도의 경제정책을 바탕으로 빠른 성장을 보이던 이른바 신흥공업국가들(한국 대만 등)의 전략을 성장모델로 삼았다.


▶20 년을 사이에 둔 김일성과 김정일의 마지막 중국 방문

☆사진:1991 년 10 월 김일성의 마지막 중국 방문에서 만난 덩샤오핑과 김일성. 아래는 선전의 덩 샤오핑의 남순강화 기념물의 모습 바로 이즈음 김일성 주석은 1991 년 10 월 그의 생애 마지막 방문이 된 중국 방문에서 덩샤오핑을 만났다. 당시 덩샤오핑은 천안문 사태를 수습하고 당지도부를 재편해 후계자로 장쩌민을 지명해 둔 상태에서 남순 강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그해 초 공식석상에 나오지 않겠다며 은둔을 선언한 덩샤오핑은 김일성의 만나자는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김일성에게 개혁 개방을 권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두 사람이 나눈 대화 가운데 김 주석이 ‘광장의 붉은기는 언제까지 나부낄 것인가’ 라는 말은 그 뒤로도 회자됐다. 여기서 광장은 모스크바를, 붉은기는 공산당을 상징한다. 91 년 8 월


모스크바의 보수파 쿠데타가 실패하자 두 지도자는 소련의 몰락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산주의 건설에 일생을 투신한 두 지도자는 생의 마지막 시점에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를 지낸 한반도전문가 돈 오버도퍼가 쓴 <두 개의 한국>에 따르면 두 사람 은 김일성의 중국 방문전인 9 월 27 일 조지 부시(아버지) 미 대통령이 발표한 전술핵무기 철수에 호응 해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 만남은 그해 여름 보수파의 불발 쿠데타를 기점으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권력을 상실해가는 새로운 정세 속에서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대미 대남 관계에서 전략적 결단을 내리는 하나의 분수령이었다. 덩샤오핑이 남순강화로 나아갔다면, 김일성도 방향은 같았다. 김일성은 방문 직후인 10 월 16 일 노 동당 정치국 회의를 열어 ‘중국적 특성에 맞는 사회주의의 변형·발전을 높이 평가’하는 성명을 내놨다. 그리고 12 월 나진-선봉을 자유무역지대로 선포했다. 이 당 정치국 회의를 시작으로 북한은 11 월 25 일 외교부 성명을 통해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안전협정에 서명하겠다”고 밝혔다. 12 월 24 일엔 당 중 앙위 전원회의를 열어 핵시설 사찰을 허용하고 남한과 쌍무 핵협정을 체결하도록 결정했다. 남북은 12 월 31 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김정일 비서를 군 최고사령관에 추대하는 결정도 이 중앙위 전원회의에서였다. 또한 핵문제의 진전과 병행해 남북관계에서는 방중 직후인 10 월과 12 월 잇따라 남북고위급 회담을 재개해 이른바 남북기본합의서를 타결지었다. 미국의 한반도전문가인 셀 리그 해리슨은 이 당 중앙위 전원회의가 핵, 후계문제,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대미관계에서도 한국전 쟁 이래 견지해온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유보하기로 하는 등 중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덩샤오핑이 92 년 1 월 개혁개방을 확대 심화하는 ‘남순강화’를 발표한 시점에, 김일성은 김용순 당비 서를 뉴욕에 보내 아널드 캔터 미 국무차관과 한국전 이후 최초의 북-미 최고위급 회담을 열었다. 그 러나 93 년 1 차 핵위기 등을 거치며 중국과 북한은 다른 길을 걸었다. 90 년대 초반 유엔개발계획(UNDP)이 추진했던 두만강개발계획은 북한의 이런 나진선봉 특구 설치 라는 조처와 중국이 1992 년 훈춘에 국제합작시범구를 설치한 것을 배경으로 진행된 것이다. 당시 북일 수교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이었기에 북한은 중국과의 협력과 북일수교를 통한 일본으로부터의 보상금과 투자 등을 기대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보기에 이 지역은 대륙 만주로 가는 관문 이자, 투자거점으로서의 잇점이 있었다. 중국 역시 개혁개방의 심화라는 큰방향에서 북중러 국경협력 을 통해 이 지역을 개발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런 점에서 90 년대 초반 두만강지역 개발과 관련한 북중러 세나라의 관계는 큰 틀에서 변방의 낙 후된 이 지역의 개발이라는 공통의 목표와 그를 위한 협력이라는 공통의 이해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서구자본의 유치를 위해서는 경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의 나진항과 러시아의 포시에트항 간에 중국 동북 3 성으로 가는 수출입화물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격화됐고, 중국은 중국대로 나진 또는 포시에트, 자루비노항을 저울질 하며 훈춘에서 동해로 나가는 팡촨(방천)에 독자 항구를 개발하겠다 는 구상을 보였다. 두만강을 축으로 북한, 중국, 러시아 3 국간에 물류기지 선점을 위한 경쟁만 부각됐 을 뿐 어느 누구도 서구자본의 유치에 성공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곳은 중국, 북한, 러시아의 변방이 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에게도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이었다. 강원도가 그랬고, 동해에 면한 일본의 서부지역도 태평양연안 쪽에 비해 크게 뒤쳐졌다. 이들 5 개국이 만나는 바다 동해는 한마디 로 ‘변방의 바다’였다.


☆김정일의 2011 년 5 월 중국 장쑤성의 양저우를 방문해 장쩌민을 만난 모습 김일성의 마지막 중국 방문 20 년 뒤인 2011 년 5 월 이번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다. 이 방문에서 그는 20 년전 아버지의 중국 방문을 기억했음에 틀림없다. 이틀 밤을 특별열차에서 보내 며 2000 여㎞를 달려 장쑤성 양저우를 찾아감으로써 아버지가 갔던 여정을 그대로 밟았기 때문이다. 1991 년 79 살의 고령으로 김정일 후계체제로의 수순을 밟고 있던 김일성과 장쩌민 총서기를 후계자 로 내세운 덩샤오핑은 ‘대를 잇는 친선’을 다짐하려 했다. 김일성은 장 총서기와 함께 양저우를 찾았 다. 양저우는 장쩌민의 고향이었다. 덩샤오핑의 권고를 따른 것이다. 2011 년 5 월 김정일 위원장이 양 저우를 간 것은 1991 년 10 월 김일성의 마지막 발자취를 밟아가려는 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김 위원장은 아버지가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 방문 뒤인 6 월 6 일 30 여년 만에 처음으로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었다. 회의는 방중 결과를 평가하면서 황금평 위화도를 경제특 구로 지정했다. 그리고 6 월 9 일 북한과 중국은 나진선봉 특구 공동개발 착공식을 열었다. 김정일 위 원장에게도 아버지처럼 2011 년 5 월 방문은 생애 마지막 중국방문이 됐다.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아 들은 북-중 협력을 한 단계 발전시킴과 동시에 개혁개방으로서 특구설치를 결정함으로써 나이 어린 아들 김정은으로의 후계체제에 대한 협력을 재확인한 셈이다. 이로써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는 20 년 만에 잠에서 깨어났다. ▶동북진흥계획 10 년 새로운 단계-동북 지역 4 갈래 대외개방 대통로 구축 올해는 지난 2003 년 후진타오 4 세대 지도부가 공식 입안한 지역균형발전 정책인 동북노후 공업기 지 진흥계획이 10 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동북진흥계획이 북중 경제협력으로 본격화된 것은 중국 중 앙정부가 2009 년 11 월 발표한 중국 두만강지역 합작개발 계획 요강(공식 명칭은 창지투를 개발개


방 선도구로 하는 중국 두만강지역 협력개발 계획 요강)에 의해서다. 중앙 정부는 지린성정부가 몇년 전부터 지역 경제활성화를 위해 검토해 온 창지투 개발개방 계획을 수용했다. 이때부터 창지투 개발 개방 선도구는 국가 차원에서 실행단계에 들어섰다. 아울러 동북진흥 계획 초반부터 연해지역 경제벨 트구축을 실시해 온 랴오닝성은 2010 년부터 지린성과 협력해 압록강 경제벨트 전략을 펼치기 시작 했다. 이에 따라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역 경제협력은 창지투 개발 계획과 랴오닝성의 연해지역 및 압 록강 경제벨트 구상과 결합하게 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10 년 5 월,2010 년 8 월 그리고 마지막 방문이 됐던 2011 년 5 월까지 1 년여 사이에 3 번에 걸친 중국방문은 이런 동북진흥 계획의 구체화를 북중 협력과 결합시키는 과정이었다. 그 합의의 결실이 2011 년에 6 월에 정식으로 가동된 북한의 황금평,위화도 특구 설치와 나선경제특 구의 공동개발, 공동관리인 것이다. 20 여년전 설치된 북중 접경지대의 경제특구는 이제 극적인 변화에 들어섰다. 연변대의 김성남 경 제관리학원 교수는 북중 양국의 ‘2 개 경제지구’의 개발협력은 이제 랴오닝성과 북한의 평안북도, 지 린성과 북한의 라선시가 각각 지방간 경제무역협력 체제를 설립하는 형태로 구체화하고 있으며, 지 린, 랴오닝성에 대한 북한의 개방도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중러의 경쟁적 투자 확대와 북중러 3 각 연계+ 몽골 20 년전과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중국이다. 창지투 선도구를 내세워 자본투자 등 주도적 역 할을 한 중국은 변화의 추동력이 됐다. 또 다른 놀라운 변화는 두만강지역에서의 북중러의 관계다. 이 지역에서 북중과 북러, 중러의 경쟁과 견제의 상호작용은 오히려 협력을 확대시키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몽골까지도 가세하면서 이 지역을 대륙의 해양으로의 출구이자 동북아 내 협력 거점으로 변모시켜 가고 있다.


☆두만강 하구 팡춴의 전망대 용호각에서 내려다 본 하산역의 기차와 육교 지난 9 월 22 일 러시아 극동 하산과 북한 나진항을 잇는 철도 개통기념식이 있었다. 그동안 북한·러 시아 간에는 하산을 통과하는 러시아 철도가 두만강역 다음의 홍의리역에서 중단되어, 여기서 나진항 까지 50 여㎞ 구간을 잇는 게 숙제였다. 러시아 철도는 광궤이고 북한은 표준궤로 되어 있어 나머지 50 여㎞에 광궤 철로를 깔아야 한다. 2008 년 북·러 간에 하산-나진 간 철로 연결 합의가 이뤄진 것은 2008 년이었으니 5 년만의 개통이다. 그동안 러시아 철도공사와 북한이 지난 2008 년 7 월 설립한 합 작회사 ’라손콘트란스‘가 철로 개보수 및 나진항 현대화 공사를 동시에 벌여왔다. 합작 형태의 사업 이었지만 약 4 억 달러(약 4 천 300 억원)에 달하는 공사비는 러시아가 모두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쪽은 그동안 하산-나진(52km) 본선과 나진-나진항(2km) 지선 등 전체 54km 구간에 러시아식 광궤 (1520mm)와 한반도식 표준궤(1435 mm) 방식 선로가 나란히 놓인 복합궤를 새로 깔았다. 선로 방식 이 달라도 차량 바퀴를 바꿔달 필요 없이 열차가 신속하게 운행할 수 있도록 하기위한 조치였다. 또 같은 구간에 있는 18 개의 교량과 3 개의 터널 등도 개보수했으며 현대식 신호 및 통신 장치도 새로 설치했다.


☆훈춘과 인근 러시아 마하린노(포시에트 항)로 이어지는 러시아 철도 중국은 이에 앞서 훈춘과 러시아 연해주 하산을 잇는 중러 국경철도를 재개통했다. 지린성은 중국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훈춘~하산 국경철도가 8 월 2 일 본격 운행에 들어가 오전 10 시께 러시아산 석탄 을 가득 실은 국제복합운송 열차가 하산의 마한리노를 출발해 오전 11 시 15 분께 훈춘 국제 환적역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북한 나진항에 이어 러시아 자루비노항도 본격 이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 이다. 북한의 나진, 중국 훈춘, 러시아 하산이 철도로 서로 연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린성은 이 철 도 재개통으로 하산의 자루비노항을 이용한 국내화물 운송은 물론 한국, 일본, 미국 등과 국제화물 운송도 확대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중국의 훈춘 해관(옛 창링즈 해관)과 인 접한 크라스키노 세관의 신축 공사에 들어가 대형 차량 검사 및 통관설비를 크게 확충했다. 또 블라 디보스톡에서 크라스키노 세관까지 일부 2 차로를 확장해 4 차선 고속도로로 개보수하는 공사에 착수 했다. 기존 5 시간 걸리는 거리가 크게 단축될 것이다. 이 고속도로는 북한 나선으로 가는 노선과 상당 구간이 겹친다. 러시아는 중국 훈춘과의 연계 수송망을 확충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한국을 참여시켜 일본을 포함해 동북아 지역 국가들의 유럽행 수출 화물을 나진항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이를 개 보수된 하산-나진 구간 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을 통해 유럽까지 운송하는 물류 사업에 기대 를 걸고 있는 것이다. 지린성이 훈춘에 거는 기대는 더 원대하다. 중국 전역의 물류가 두만강지역을 통해 배송되는 종합 화물운송기지 구축이다. 훈춘시를 동북아시아지역에서 가장 국제화, 현대화한 물류 중추로 키우겠 다는 것이다. 훈춘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최근 국제화물운송 중추역 공사에 착수했다. <연변일보 >(2013 년 11 월 5 일)는 훈춘시 국제물류단지 안에 63 만 1200㎡ 부지규모에 총 투자비 5 억 2 천만 위 안(8 천 500 만 달러)이 들어갈 훈춘국제화물운송 중추역이 들어선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린성은 훈춘 에서 중국 내륙 중심지인 내몽고 지치주 우란하오터(烏蘭浩特)시에 이르는 훈춘-우란하오터 고속도 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서남쪽 훈춘-둥닝(동녕)을 잇는 동변 철도ㆍ고속도로를 훈춘세관과 취안 허(권하)에 이르게 하는 프로젝트도 세워놓았다. 중국은 이미 2011 년부터 동북 3 성이 아닌 내몽골을 포함한 동북 4 성의 협력을 논의하는 행정장관 연석회의를 열어오고 있다.


☆지난달 28 일 몽골대통령으로는 9 년만에 북한을 방문한 차히야 엘벡도르지 몽골 대통령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몽골이 북한에 눈을 돌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 동북지역에서 동해를 출구로 하는 대통로가 구 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석탄 철광석 등을 텐진으로 싣고 갈 필요가 없다. 내륙국가 몽골 또한 북한과의 협력을 본격화함으로써 역시 바다로의 출구를 확보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지하자원 개발 협력을 적극 추진해 온 몽골은 지린성과 마찬가지로 이를 바탕으로 한 자원수출 등 동북아 국가 들과의 통상 무역을 확대하려 했으나 해양 통로가 없었다. 중국-러시아 틈새에서 북한과 몽골은 나선 특구를 매개로 새로운 협력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 월 28 일~31 일 차히야 엘벡도르지 몽골 대통령의 북한 방문은 그 속도를 빠르게 할 것이 다. 그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회담을 하고 공업·농업, 문화·체육·관광 분야 협조에 관 한 협정과 2013-2015 년 정보기술 분야 교류 계획서에 서명했다. 몽골 대통령의 방북은 2004 년 나차 긴 바가반디 대통령의 방북 이래 9 년만이다. 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광범위한 협력이 추진되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엘벡도르지 대통령은 지난해 북한의 항구를 빌려 사용하고 싶다는 뜻을 공개 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번 회담에 앞서 7 월달에만 네차례의 몽골 정부 대표사절단이 북한을 방문했 으며, 9 월엔 몽골 정부의 경제·무역대표단이 방북해 의정서를 체결했다. 그 가운데는 “나선경제특구 개발에 몽골쪽이 참여하는 문제와 몽골에 파견된 북한 인력(현재 1700 여 명 규모)의 확대, 정보기술 (IT) 및 농축산 분야의 경협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몽골의 에너지기업인 HB 오일 은 지난 6 월 선봉에 있는 승리정유회사 지분 20%를 1 천만 달러에 인수했다. 또 북한의 농지개간 사 업에 몽골 기술자가 참여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농축산 분야 내지 농지개간 사업의 협력은 북한이 강원도 일원에 조성중인 대규모 축산단 지인 ‘세포등판’ 개간사업에 몽골 중국 등이 참여하기로 한 것을 말한다. 강원도 ‘세포등판’ 축산단지 조성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 1 위원장의 중요한 경제적 업적이자 북한이 ‘경제강국 건설’의 주요 상 징물로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사업이다. 북한 언론들에 따르면 지난 해 9 월 개간을 시작해 1 년 만에 5 만여 정보에 이르는 인공 목초지 조성이 이미 끝났으며, 이제 남은 건 축산기지와 축산물가공 기지 건설이며, 2015 년을 완공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10 월 22 일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공식 인터 넷 홈페이지)에 따르면 리홍차이 북한 주재대사 등 대사관 고위 관계자들이 10 월 17 일 ‘세포등판’ 축 산단지 조성 현장을 견학했으며, 리 대사는 북중 양국 간 목축업 분야 교류합작 촉진을 위해 적극적 으로 나설 의향을 밝혔다. 북은 중국과 몽골을 경쟁적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훈춘 나진을 중심으로 한 두만강 삼각지역이 동북아 대륙과 해양을 잇는 거대한 물류 생산거점이자 관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북중러 3 국에 몽골이 가세한 다자협력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 다. 지난 10 월초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 제 3 차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 대회는 동북아와 극 동지역간 무역량이 조만간 급속도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를 위해서는 한 항만에서 다른 지역의 항만까지 어떠한 검사없이 멈추지 않게 바로 운수할 수 있는 도로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 됐다. 권철남 연변대 경제관리학원 교수는 “중국의 동북 진흥전략은 북한 러시아 등과의 큰 지역협력 의 방향을 갖고 있다”면서 “러시아의 항구개발, 몽골과의 협력등 광역 두만강개발계획(GTI)의 틀 안 에서 다자적 접근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연변대 동북아연구원의 윤승현 교수는 지난 3 월 중국의 시진핑 지도부가 동북진흥계획 10 년을 맞 아 “그동안 성과와 경험 문제점 등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다음 10 년을 내다본 계획을 내놓았다”고 밝혔다. 이른바 전국노공업기지 조정개조 규획(2013~2022)이다. 동북진흥계획의 성과와 경험에 기 초한 모델을 동북지역에서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중국이 이를 통해 과거에 비해 더 효율적인 산업배치와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동북지역 발전 전략을 추진할 것이며, 북-중 접경지역 개발도 한 단계 진전될 것으로 예상했다. ♣H6s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보조 1:

훈춘 북방의 선전(심천)이 될 것인가 ▶동북아의 무역 전진기지 시동건 훈춘 지난 1978 년 선전특구에서 시작된 중국의 개혁개방은 점→선→면의 확대과정을 밟았다. 동북진흥 계획은 그 역순이다. 2003 년 초기 단계에서는 동북 3 성 전체를 대상으로 했으며, 2009 년부터는 지 린성의 창지투 개방 선도구의 지역 개발로 구체화 되고, 2012 년 4 월엔 중앙정부가 ‘중국 투먼장(두만 강)지역 국제합작시범구를 비준하는 것으로 발전되고 있다. 비유하자면 면→선→점의 과정으로 진행 되고 있는 것이다. 창지투 개방선도구는 이제 창춘 지린에 이어 투먼강 지역의 훈춘을 거점으로 설정


하고 이를 서로 연결하면서 각각을 사통팔달의 교통망으로 확산시키는 과정이 되고 있다. 지린성 전 체로 보면 중심도시인 창춘시와 지린시를 배후지로 연변조선족 자치주에 속한 옌지, 룽징(용정), 투먼 (도문)을 개방의 전초지로 삼아 러시아 북한에 인접한 훈춘을 개방의 창구로 삼겠다는 구도인 것이다. 이 가운데 지린성의 발전에서 볼 때 훈춘은 바다로의 출구라는 점에서 그리고 북중러가 만나는 지역 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두만강 지역 북중러 협력의 중심거점이면서 서쪽으 로는 지린~창춘을 거쳐 내륙의 몽골과 연결시키고, 서남쪽으로는 동변도 철도를 통해 단둥으로 연결 한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나진을 거쳐 동해를 통해 대양으로 뻗어나가고, 북동쪽으로는 하산~자루비 노, 블라디보스톡으로 연결해 동해 또는 시베리아 대륙으로 연결되는 물류망 구축이다. 이른바 동북 지역의 4 갈래 대외개방 대통로 구축이다.

이미 서쪽의 창춘~지린~ 훈춘간 460km 를 잇는 왕복 4 차로 고속도로는 2010 년 9 월 개통됐다. 이 를 바탕으로 이제 훈춘에서 북한 원정리를 마주보는 취안하(권하)통상구를 거쳐 나진까지의 통로는 기존 꼬불꼬불한 2 차선 도로를 개보수 한데 이어 2 단계로 39km 구간의 고속도로 건설을 추가하는 계획이 입안돼 있다. 고속철도 공사도 한창 진행 중이다. 창춘(장춘)에서 지린까지의 고속철은 2010 년 말 완공됐다. 나머지 지린~옌지(연길) ~훈춘으로 이어지는 고속철도는 2014 년 완공될 예정이다. 이 고속철도가 완공되면 창춘~훈춘은 2 시간 반 거리로 단축된다. 변경의 소도시 인구 20 여만의 훈 춘은 이제 두만강 지역 협력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앞서 언급했지만 무산광산과 관련이 깊 은 허룽~난핑~청진 철도 이외에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으며, 투먼~남양~하산을 잇는 철도 개보수 및 연결, 투먼~청진, 투먼~나진의 철도 연결 사업도 2015 년 또는 2020 년까지 모 두 추진한다는 계획이 서 있다. 나진 이외에 청진이라는 동해출구를 더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훈춘은 이런 교통망의 대통로 구축을 바탕으로 물류 단지와 대규모 산업단지를 결합시키는 단계 에 접어들었다. 2012 년 4 월 중국 국무원의 두만강구역(훈춘) 국제합작시범구 설치계획 비준에 따라 지린성 정부는 5 월 29 일 쑨정차이 당서기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합작시범구` 착공식을 열었다. 훈춘 에는 1992 년에 중국 국무원이 국가급 개발구로 비준한 훈춘변경경제합작구 이외에 그동안 성급 차


원에서 중러상호무역구, 훈춘수출가공구, 두만강구역합작시범구가 있었지만, 쑨정차이 서기가 밝히고 있듯이 중앙 정부의 국제 합작시범구 결정으로 ‘ 대개방 대개발로 대발전 대도약’의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시범구는 국제산업합작구역, 국경무역합작구역, 북중 훈춘경제합작구역, 중러 훈춘경제합작 구역 등 4 개 구역으로 90㎢에 이르며 2020 년까지 조성할 예정이다. 훈춘을 동북 3 성을 넘어 동북아 시아의 국제물류 센터이자 생산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린성의 주요 고속도로망


지린성의 주요 철도망 ☆북한과의 철도 도로 연결 추진 프로젝트와 지린성 철도망 및 고속도로망. 출처:교통연구원 및 대 외경제정책연구원 이러한 훈춘의 국제 합작 시범구 설치는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기존의 북중협력이 자원개발에 서 나아가 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자본-노동의 결합쪽으로 확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연변일 보>(2013 년 2 월 5 일)의 표현을 빌리면 ‘북중간 위탁가공무역의 빗장이 열린 것’이다. 연변일보에 따 르면 지난해 12 월 11 일 국가해관총서는 창춘해관에 보낸 <장춘 해관의 대 조선 위탁가공업무전개 시행동의에 대한 가공무역사의 회신>에서 창춘 해관이 대북한 위탁가공업무를 관할할 수 있도록 권 한을 위임했다. 이 행정위임에 따라 창춘해관은 하위기관인 훈춘해관에 북한과의 위탁가공무역을 신 청한 4 개 기업을 승인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북한과의 위탁 가공무역은 지린성은 물론이고 중국 내에서도 최초라고 전했다. 4 개기업은 쌍방울이 투자한 길림트라이방직유한회사, 일본 독자기업 고지마의류(훈춘)유한회사, 중 국기업인 훈춘 운달복장유한회사와 훈춘 홍풍제의유한회사 등이다. 의류기업들은 이들의 북한내 생 산규모는 년 1500 만벌 이상, 무역규모는 1.5 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가운데 운달 복장유한회사는 중국내 유명상표인 YOUNGOR 로 부터 수주 받은 9 만벌의 셔츠를 현지에서 생산하 기 시작했는데 <연변일보>는 가격이 200 위안인 의류의 경우 일반무역에서는 54 원의 관세가 부과되 나 위탁가공무역에서는 관세가 10.8 위안으로 5 분의 1 수준인데다 북한의 인건비가 국내의 60% 정 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상당한 매력이 있다고 전했다.


☆훈춘 변경경제합작구의 쌍방울 의류 선전입간판 연변대 경제관리학원의 김성남 교수는 훈춘 말고도 투먼시에서는 IT 분야의 북한 노동력을 활용한 공업단지가 조성됐다면서 최근 지린성정부가 발표한 <중국 동북에서 동북아지역을 향한 개방계획요 강 관철시달 ‘2012 년-2020 년’ 실시의견>에는 이 투먼시의 북한 공업단지를 국가급 단지로 승격시킬 데 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정부방침으로 북한 인력을 활용한 공업단지를 국가 대 국가간의 합작대상으로 승격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 월 단둥에서 열린 제 1 차 ‘중조 경제문화관광박람회’에서는 12.6 억달러에 72 건의 투자 무역협력 의향서가 합의됐다. 올해 10 월 10 일 열린 2 차 박람회 기간에는 총 20 여개 나라에서 1 만 여명의 기업인들이 참가했으며, 200 여건 합작프로젝트 가운데 교통운수, 의류가공, 농산물가공 등 분야에서 모두 16 억달러 93 건의 투자, 무역합작 의향서가 체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의향서가 실제 투자를 의미하지 않지만 북중의 경제협력은 거스를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훈춘 시내의 러시아적인 풍경들.광고판들은 조선어, 중국어 러시아어 때로는 영어까지 모두 4 개국 어로 표기돼 있다. 훈춘이란 지명은 훈춘허에서 왔다. 훈춘허는 꼬리라는 만주말이라는데, 뜻이 바뀌면서 변경,국경지 역이란 뜻으로 됐다고 한다. 만주지역 지도를 보면 훈춘은 몸통에 붙은 꼬리모양이다. 지난 97 년 클 린턴 대통령의 섹스스캔들로 ‘Wag the dog’(꼬리가 몸통을 흔든다)이라는 영화가 화제가 된 적이 있 다. 맥락은 다르지만 말 그대로 지금 훈춘은 북방의 동북아 지역을 흔들고 있다. ♣H6s 훈춘/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보조 2:

훈춘 포스코 현대국제물류단지-한국의 유일한 진 출 훈춘의 포스코 현대국제물류단지는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역으로 연결된 훈춘세관으로 가는 길 양쪽으로 펼쳐진 국제합작 시범구에 조금 못미쳐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10 여분 들어가는 곳에 있었 다. 인근 지역엔 신축 아파트 단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난해 9 월 착공에 들어가 이제 1 년여가 지 난 시점에서 철골 구조물들로 창고와 사무실은 건물의 윤곽 갖췄다. 넓은 들판에 높은 건물이 없기에 멀리서도 한눈에 보였다.


☆내년 10 월 1 단계 시설 완공목표로 공사를 진행중인 훈춘의 포스코 현대국제물류단지(위)와 완성 된 모습의 조감도 50 년 임차된 1.5㎢(약 45 만평)의 부지에 들어설 물류단지는 물류창고, 컨테이너 야적장, 집배송 시설 건물들로 구성된다. 포스코가 80% 현대상선이 20%의 지분투자로 총사업비 1994 억를 투입해 2020 년까지 3 단계로 건설이 진행된다. 사업기획팀의 이승덕 부장은 지난달 31 일 간략한 브리핑을


통해 “1 기 공사는 전체 부지의 5 분의 1 에 해당하는 0.3㎢ 부지에 컨테이너 야적장, 관리동 기타 도로 녹지 수로 등을 짓고 있으며, 내년 10 월에 완공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이 부장은 “현재 훈춘 지역의 주요 수송품목인 철광 석탄 등은 생산지에서 중간의 물류기지를 거치 지 않고 직송되기에 주요 취급품목이 될 수 없다”면서 “70% 정도가 소비재가 될 것이며, 사료, 자동차 부품, 곡물 등이 취급 품목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지린성의 물류가 “러시아를 통과하는 데는 여전히 절차가 까다롭다면서 그러기에 나진항의 경우 개방이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보면서 “포스코의 물류단지가 북한의 개혁개방 및 통일 이후에 대 비한 대북 진출 거점이라는 본래의 취지에 맞게 기능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했다. 포스코-현대 물류단지는 동북 3 성의 변화와 북중 협력 그리고 훈춘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한 포 스코의 전략적 투자임에 틀림없다. 북 중 러 협력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한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러기에 포스코의 투자는 돋보였지만 유일하다 보니 고립돼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11 월 13 일 박근혜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러시아의 나진항 개발투자에 30%의 지분으로 참여하는데 합의했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걸어 잠근 한국 정부는 이 지역의 변화를 지켜보기만 했다. 지난 6 년에 걸쳐 한국 정부가 취한 첫 조처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 령은 유라시아이니셔티브를 외치고 실크로드 익스프레스의 비전을 내놓았다. 그러나 나진항 개발에 대한 30 여%의 지분참여로 무엇을 할 것인가?. ♣H6s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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