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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 그리 는 무늬 최진석 지음

EBS <인문학 특강> 최진석 교수의 버릇없는 인문학 강의

우리는 나를 가두는 감옥이다.

욕망하는 인문적 통찰의 힘

오직 나의 욕망에 집중하라!


지은이 소개

인간의 무늬를 그리는 철학자 최진석 1959년 음력 정월에 전남 신안의 하의도에서 태어나고, 유년에 함평으로 옮겨 와 그곳에서 줄곧 자랐다. 함평의 손불동국민학교와 향교국민학교, 광주의 월산국민학교, 사레지오 중학교, 대동 고등학교를 나왔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중국 흑룡강대학교를 거 쳐 북경대학교에서 󰡔成玄英的‘莊子疏’ 硏究󰡕(巴蜀書社, 2010)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창 시절에 가르침을 받았던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해 한다. 지금은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쓴 책으로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2001)이 있고, 󰡔노자의소(老子義疏)󰡕(공역, 2007), 󰡔중 국사상 명강의󰡕(2004), 󰡔장자철학󰡕(개정판, 1998), 󰡔노장신론󰡕(1997) 등의 책을 해설하고 우리말로

옮겼다.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은 󰡔聞老子之聲, 聽道德經解󰡕(齊魯書社, 2013)로 중국에 서 번역 출판되었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 욕망하는 인문적 통찰의 힘


인문의 숲 속으로 들어가며 |

첫 번째 인문의 숲 |

저기, 사람이 내게 걸어 들어오네 | 9

인문적 통찰을 통한 독립적 주체되기

인문학, 넌 누구냐? | 17 스티브 잡스와 소크라테스 | 21 현재를 통찰하는 인문의 더듬이 | 28 정치적 판단과 결별하라 | 40 내가 동양학을 공부하는 까닭 | 48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 | 56 이념은 ‘내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다 | 65 그 무거운 사명은 누가 주었을까 | 73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79


두 번째 인문의 숲 |

인간이 그리는 무늬와 마주 서기

우리는 더 행복하고 유연해지고 있는가 | 91 요즘 애들은 언제나 버릇없다 | 95 인문학은 버릇없어지는 것 | 102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은가? | 107 고유명사로 돌아오라 | 113 세계와 개념, 동사와 명사 | 117 존재하는 것은 개념이 아니라 사건이다 | 124 멋대로 해야 잘할 수 있다 | 132 노자, 현대를 만나는 길 | 137 지식은 사건이 남긴 똥이다 | 142 인간의 무늬를 대면하라 | 151


세 번째 인문의 숲 |

명사에서 벗어나 동사로 존재하라

지식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 161 ‘덕’이란 무엇인가 | 165 툭 튀어나오는 마음 | 173 하고 싶은 말을 안 할 수 있는 힘 | 186 멘토를 죽여라 | 197 구체적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라 | 206 진리가 무엇이냐고? 그릇이나 씻어라 | 213 동사 속에서 세계와 호흡하라 | 217 나를 장례 지내기, 황홀한 삶의 시작 | 222 ‘죽음’이 아니라 ‘죽어가는 일’을 보라 | 227


저기, 사람이 내게 걸어 들어오네

세계적인 가수 싸이는 YG엔터테인먼트 소속이지요. 그 회 사를 이끌고 있는 양현석 대표가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 이 말합니다.

남들이 2000억 부자라고 한다. 생각해 보자. 삶에서 보람된 일이 뭘까. 재산이 2조 원이 있으면 만족할까. 그 렇지 않다. 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 한 거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음악을 하지 않았다. 90 년대 힙합이 뿌리내리지 않았을 때도 지누션과 원타임을 만들었다. 당시 힙합은 돈이 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좋 아하는 음악이어서 대중과 나누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 다. 즐겁기 때문에 음악을 만들지 억지로 돈을 벌려고 앨 범을 낸 적은 없다.

― 󰡔매일경제신문󰡕 2013년 1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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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무언가를 성취한 사람들은 대개 이런 투로 말합니다. 좋아서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죠. 사실 빌 게이츠 나 스티브 잡스의 성공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음악이어서 대중과 나누고 싶었다.” 저는 이 한 구절 이 오늘의 양현석 대표를 있게 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좋아 하는’을 통해서 그는 다른 누구가 아니라 바로 양현석 ‘그 사 람’이 되었습니다. 싸이도 왜 성공했을까요? 마찬가지입니다. 하고 싶은 대로 질러 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독창적 일 수 있었죠. ‘좋아하는’을 통하면 확실히 보편적인 기준이나 합리적 계 산 혹은 객관적 표준 등을 벗어납니다. 누구나 숭앙하는 ‘이 념’을 따르지 않습니다. 모두가 가치 있다고 믿는 사회적 합의 를 추종하지도 않습니다. 체계를 초월할 수 있지요. 자신만의 욕망에 집중할 뿐입니다. 자기 내면에 비밀스럽게 웅크리고 있 으면서 불현듯 일어나는 충동질, 자기만의 고유하고 비밀스런 어떤 힘을 따릅니다. 욕망을 따르는 사람은 ‘우리’ 가운데 한 명이 아니라 고유한 바로 ‘그 사람’으로 살아 있습니다. 이미 정해진 프레임을 근거로 소소하게 따지고 계산하는 사 람은 크게 성취하지 못합니다. 모든 큰 성취는 새로운 프레임 에 대한 기대로부터 나오지요. 창조적이라는 것입니다. 세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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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따지는 일은 이미 있는 프레임을 기준으로 사용하며 진행 되지요. 정해진 것을 기준으로 세밀하게 따지는 작은 가슴을 가지고 어떻게 시대를 가르는 돌파를 해낼 수 있겠어요? 번잡 스럽고 자잘한 고려나 계산들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감각적인 통찰을 믿고 나아가야지요. 이래야 대인배입니다. 비로소 ‘사 람’이지요. 왜 비로소 사람이냐? 가치 표준에 의해 인도되지 않고, 자기에게만 고유하게 있는 비밀스런 힘에 의해서 움직이 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개념의 구조물인 이념에 지배되 지 않고, 피가 통하고 몸이 살아 움직이는 활동성을 위주로 한다는 것이죠. 활동하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죠. 이 힘이 바로 욕망이며 덕이며 개성이며 기질이며 감각입니다. 이런 것 들을 바탕으로 할 때, 우리는 이념이나 가치관 혹은 신념의 대 행자가 아니라, 비로소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야기 하나 더 해볼까요? 2013년 1월 3일에 방영된 <무릎 팍 도사>에 영화 <매트릭스> 감독으로 유명한 워쇼스키 남매 가 출연했습니다. 대학을 자퇴하고 목수 일을 잠깐 하다가, 굶 어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극작가가 되었더군요. 그때 “그래 도 대학은 졸업해야 되는 것 아닌가?”랄지 “일단 직업을 가지 고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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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했다면 지금 같은 위대한 감독이 될 수 없었을 겁니다. 마 음속에서 불쑥불쑥 튀어 오르는 비밀스런 내면의 충동을 억 누르면서 자신을 줄여 나가면, ‘사람’이기 어렵습니다. 경지 정리가 매끄럽게 잘된 땅에서 누구나 심으려고 하는 작물을 심고 남들보다 더 잘되기만을 바라는 경쟁적인 요행 심을 갖는 것보다 차라리 측량도 안 된 황량한 들판에 서서 땅과 자신의 관계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다시 고민하는 우직 한 자, 자와 컴퍼스로 그려진 정치한 설계도에만 의지하는 것 보다 집 지을 땅 위에 서서 바람의 소리를 따르고 태양의 길 을 살펴 점 몇 개와 말뚝 몇 개로 설계를 마무리할 수 있는 자, 외국 철학자들 이름을 막힘없이 들먹이면서 그 사람들 말 을 토씨 하나까지 줄줄 외우는 것보다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애써 자기 말을 해보려고 몸부림치는 자, 이념으로 현실을 지 배하려 하지 않고 현실에서 이념을 새로 산출해 보려는 자, 믿 고 있던 것들이 흔들릴 때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축 복으로 받아들이는 자, 이론에 의존해 문제를 풀려 하지 않고 문제 자체에 직접 침투해 들어가는 자, 봄이 왔다고 말하는 대신에 새싹이 움을 틔우는 순간을 직접 경험하려고 아침 문 을 여는 자,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참을 수 있는 자, 들은 말을 여기저기 옮기지 않을 수 있는 자, 옳다고 하더라도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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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지 않고 조금 더 기다려 볼 수 있는 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체계를 뚫고 머리를 내밀어 볼 수 있는 자, 호들 갑스럽지 않고 의연한 자, 기다리면서도 조급해 하지 않을 수 있는 자, ‘해야 할 무엇’보다 ‘하고 싶은 무엇’을 찾는 데 더 집 중하는 자, 십여 시간이 넘는 비행 여정에서도 내릴 때까지 시 계를 한 번도 안 볼 수 있는 자, 아는 것에 제한되지 않고 오 히려 그것을 근거로 모르는 것으로 넘어가려 하는 자, 이성으 로 욕망을 관리하지 않고 오히려 이성을 욕망의 지배 아래 둘 수 있는 자, ‘나’를 ‘우리’ 속에서 용해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수 있는 자, 모호함을 명료함으로 바꾸기보다는 모호함 자체 를 품어 버리는 자, 자기 생각을 논증하기보다는 이야기로 풀 어 낼 수 있는 자, 남이 정해 놓은 모든 것에서 답답함을 느끼 는 자, 편안한 어느 한편을 선택하기보다 경계에 서서 불안을 감당할 수 있는 자, 바로 이런 자들이 ‘사람’입니다. 이성이 아 니라 욕망의 힘이 주도권을 가진 것이지요. 그런 자가 내 작은 정원의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올 때, 저는 비로소 공간에 갇 힌 시간이 튀어나오는 느낌을 받으며 나지막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기, 사람이 내게 걸어 들어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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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인문의 숲

인문적 통찰을 통한 독립적 주체되기


인문학, 넌 누구냐?

‘인문학’ 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흔히 철학과 문학 그리고 사학 등이 포함된 학문 영역을 인 문학이라고 하지요. 어떤 것들을 인문학이라고 하는지 대충 감은 잡히실 겁니다. 그런데 인문학이라고 하면 대개는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왠지 그럴싸해 보여서 공부해 보고는 싶지 만 좀 어려울 것 같다랄지, 읽어 봐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랄지, 뭐 이런 얘기를 많이들 하시더군요. 인문학은 어렵고 막 연한 ‘무엇’이라는 생각에 선뜻 눈과 귀가 쏠리지 않는다는 얘 기일 테지요. 그리고 또 인문학 하면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해

인문적 통찰을 통한 독립적 주체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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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생활도 안정되고 자식도 다 키운 다음에, 즉 인생을 어느 정도 살고서 죽기 전에 내가 살았던 의미가 무엇인가 한 번 되돌아보는, 어떤 향유의 대상으로 보기도 합니다. 곧,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나에게 꼭 필요한 ‘무엇’이 아니라, 언제일지 모를 먼 훗날에 여력이 되면 한번 즐겨 볼까 하는 막연한 ‘무 엇’이라는 얘기이기도 하겠지요. 어찌 된 일인지 경제적인 성취가 있고 신분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인문 고전을 많이 읽으려는 것 같고, 우선 닥치는 일을 먼저 처리하면서 하루하루 힘겹게 열심을 다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인문 고전을 그리 가깝게 접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한편 선진국에서는 인문 고전 교육을 강조 해서 하는 것 같고, 후진국에서는 인문 고전 교육을 지금 당 장은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인문학은 가치가 있고 뭔가 있어 보이는 듯싶지만 아직 나의 것은 아닌 듯한 느낌을 주기가 십상이지요. 큰 틀에 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처럼은 보이는데 아직은 아니다라 는 생각들을 하기 쉽습니다. 가난하더라도 평생 글이나 읽으면 서 안빈낙도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감히 덤빌 수 있는 것이라고도 보지요. 그래서 인문학은 가난, 비효율, 비실재적 등등의 느낌을 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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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인문의 숲


그런데요, 과연 그럴까요? 인문학이란 마냥 어렵고 막연하 며, 해야 할 일을 하고 난 다음에 여유 있을 때 한 번 공부해 볼 만한 것 정도일까요? 도대체 인문학이란 우리에게 무엇일 까요?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인문학을 배우자, 인문학적으로 사고하자,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등등의 주장을 다투어 말하고 있습니다. 매스컴이나 기업 또는 각종 단체들에서 인 문학 강좌를 열기도 하고, 인문학을 주제로 한 이른바 교양서 적들도 쏟아지고 있잖아요? 이렇게 인문학이 우리 곁에 바투 다가와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인문학이란 놈을 어디에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그 쓸모가 모호할 뿐이니, 인문학을 업으로 삼 아 온 저 역시 답답하네요. 그래서 저는 인문학이란 것의 정체가 무엇인가, 인문학이 오늘 우리한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인문학을 통해서 내가 어떻게 독립적 주체가 되는가, 즉 어떻게 내 삶의 주인이 되는가, 하는 문제를 여러분들과 이야기해 보고 싶습 니다. 이 책은 여러분과 제가 함께 품어 온 질문과 호기심을 열쇠 로 삼아 인문의 숲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 그 안에서 한번 마음껏 유영해 보려는 질펀한 욕망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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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가볍게 심호흡을 하시고, 저와 함께 인문의 숲 속으로 발걸 음을 옮겨 보실까요? 준비가 되셨다면, 이렇게 외쳐 봅시다. 인문학, 넌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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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인문의 숲


스티브 잡스와 소크라테스

스티브 잡스는 이미 신화입니다. 이 신화의 내용은 무엇이 냐, 바로 세기century를 다르게 했다는 겁니다. 획기적이었다는 말이지요. 잡스가 만든 전화기, 즉 스마트폰은 더 이상 전화기 가 아닙니다. 그는 전화기를 단순히 통신을 하는, 커뮤니케이 션을 하는 수단에 머물게 하지 않고 인간의 손 안에다 세계를 쥐어 줬어요. 스티브 잡스, 그의 신제품이 발표될 때마다 세계 가 긴장하고 열광했던 까닭입니다. 인류의 긴 역사를 단순화해서 보면, 처음에 인간은 자연이 나 신의 큰 품 안에 있는 소속물이었습니다. 서구적 개념으로 보면 고대나 중세가 이러하였지요. 그러던 인간이 이른바 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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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시대를 지나면서 인간을 품고 지배하던 자연이나 신으 로부터 독립하여 그것들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존재로 상 승합니다. 이때 인간은 비로소 현명하고도 효율적으로 자연을 통제하면서 자신의 힘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 재로 자각되지요. 그 능력이란 다름 아닌 ‘이성’입니다. 이성을 가진 인간은 그 이성을 잘 발휘하여 도덕적 삶을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고 변형시킬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성이란 욕망과는 다르게 나 혼자만이 지닌 것이 아니라, 인간 모두에게 공통된 것입니다. 즉, 이성을 발휘 하는 인간은 집단으로서 이해되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집단을 이루어 힘을 발휘하는 형국이지요. 그런데 현대로 들어와 과 학기술 문명이 발전하면서 이 집단으로서의 인간은 분화가 되 죠. 개인이 힘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인간이라는 개 념을 이해할 때는 당연히 집단으로서의 의미로 이해했지만 이 제는 개별자로서의 인간을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뜻이지요. 쉽게 말한다면 ‘우리’에 비중을 두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비중을 두게 됩니다. 이것을 기술 문명의 발전을 통해 서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경향이 드러난 대표적인 현대 기술 문명은 무엇일까 요? 바로 컴퓨터입니다. 사람이 전체 세계와 관계하는 구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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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인문의 숲


생각해 봅시다. 그 이전에는 여러 사람의 힘과 재능을 합쳐야 그것이 비로소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떻지요? 컴퓨 터 한 대만 있으면 이 세계와 직접 관계할 수 있습니다. 한 사 람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 세계와 ‘맞짱’을 뜰 수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 이전에 인간은 반드시 여럿이 힘을 합쳐야 힘 을 발휘했지만, 이제 인간은 혼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조 건을 가지게 된 것이죠. 이 조건을 스티브 잡스는 더욱 발전시 켰어요. 스마트폰을 개발하기 이전에는 인간이 혼자서 세계와 맞짱 뜰 수 있었다 하더라도 고정된 위치에서만 가능했지요.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커다란 컴퓨터가 있어야 그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세계와 관계하는 이 메커니즘을 혼자 있는 인간의 손에다 쥐어 줬어요. 물론 그 이전에 노트북이 있 어서 세계와 상대하는 일을 개별적 인간에게 가능하도록 조건 을 만들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동성도 확보해 주긴 했죠. 하 지만 그것을 작은 손바닥 안에다 옮겨 주지는 못했습니다. 함 께 작동하는 수많은 어플리케이션은 또 어떻습니까? 그 수많 은 어플리케이션은 거대 조직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개별적 인간들이 자신의 욕구와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 록 되어 있습니다. 이 얼마나 큰 변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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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를 통해 인간의 힘이 커졌습니까? 작아졌습니 까? 당연히 커졌지요. 집단을 이루어야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인간과, 세계를 손 안에서 다룰 수 있는 인간하고는 질적으로 다른 유형의 인간이 된 것이에요. 이 질적으로 달라진 인간의 유형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눈,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는 어떻게 해서 인간을 전혀 다른 유 형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요? 잡스는 지금의 인간은 무엇 을 욕망하는가, 어떤 방식을 통해서 일을 해야, 또 어떤 방식 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더 행복해 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한 사람입니다. 잡스는 돈을 더 벌려고 하거나 더 좋은 제 품을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했 다는 뜻이지요. 달라진 유형의 인간에게 제공할 수 있는 새로 운 유형의 행복! 이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이 위대함의 출 발입니다. 물론 스티브 잡스가 인간의 행복을 위한 헌신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제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인간이 과학기술 문명의 변화에 따라 다른 인간으로 변모해 가며, 다른 유형의 인간으로 새로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채고 거기에 적응하려고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일견 쉬 워 보이지만 절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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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기존의 프레임을 지키고 거기서 더 나아지려고 하는 일 이 보통 사람들의 행동인데, 이 행동 양식을 벗어나서 프레임 자체를 관찰하고 그 프레임 자체를 달리 하려는 생각을 한다 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이런 사유의 패턴을 가지고 자기가 하는 일에 몰두한다는 것, 이것이 위대함의 출발이라는 얘기 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이런 재미난 말을 했어요. “소크라테스하고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진 모 든 기술을 주겠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이고, 철학은 인문학을 대표하는 학문 입니다. 철학은 인간이 움직이는 모양을, 즉 인간이 움직이는 동선을 가장 분명하고 명징하게 보여주는 학문입니다. 철학자 는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 하는 사람이지요. 그럼 스티브 잡스가 겨우 한나절 시간의 대가로 지금 애플 이 가진 모든 것을 다 주고서라도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필요 로 하는 이유는 뭘까요?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죽음이 다가오는 자기를 달래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자기 인생의 의미를 분명히 세우기 위해서입니까? 모두 다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스티브 잡스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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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히 알고 있었어요. 제대로 된 철학자와 한 끼 식사를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소크라테스 같은 위대한 철학자한테 이 야기를 들으면 그 밥값으로 지금 가진 재산을 다 쓸지언정 그 보다 더 많은 돈이 생길 것이다, 이런 확신이 있었던 것이지요. 즉, 인간이 움직이는 흐름을 읽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야 성 공할 수 있다는 걸 알았던 것이죠. 철학을 구체적 삶의 작동과 관련시켜 볼 수 있는 사람과, 구 체적 삶의 현상과 유리된 어떤 개념 체계로만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수준 차이라는 것은 엄청납니다. 철학 등과 같은 인문학은 단순히 추상적인 삶의 의미나 가치 등을 알게 해주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큰 성취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권력도 인문학적 통찰을 통하면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철학을 ‘생존’과 연관시켜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애플의 DNA는 기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애플의 기술은 인문학과 결합되어 우리의 심장이 노래하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냈다.” 또, 잡스는 신제품 아이패드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애플의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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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언제나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에 서 있다.” 잡스와 애플 신화의 원동력은 바로 인문학에 있었던 것입 니다. 사실, 잡스 신화는 부풀려지거나 왜곡된 면이 없지 않을 수 도 있습니다. 폐쇄성과 비밀주의로 대표되는 애플의 기업 문화 는 여전히 논란거리이고, 잡스의 경영 철학이나 그의 인간적 면모 등을 비판적으로 살피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잡스가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을 끊임없이 고민하여 세계를 혁신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잡스가 이룬 ‘성공’이 아닙니다. 잡 스는 인간이 변화해 가는 맥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함을 알고 있었다는 것과, 또 그것을 집요하게 ‘관찰’할 수 있 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우 리는 스티브 잡스의 신화를 접하면서, 잡스가 어떻게 인문학적 으로 기술을 개발했는가, 그 사람은 어떻게 인문학과 기술을 예술적으로 결합했는가를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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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신만의 무늬를 그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까지 바람직한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니면 바라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여러분은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여러분은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아니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우리’가 아닌 ‘나’로 살기 위한 인문학

“오직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라!” 우리가 인문학을 배우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바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지요.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독립적으로 알아내기 위해서 인문학을 배우 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인문학적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을 때 어떤 새로운 사태나 사건을 만나면 어떻게 반응하나요? 대개는 일단 좋다, 나쁘다, 마음에 든다, 안 든다, 이 렇게 우선은 정치적 판단을 합니다. 이 정치적 판단을 해주게 하는 것, 이것은 뭡니까?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이념이나 신념들 때문이지요. 자기에게 있는 이념, 신념 그리고 가치관 등이 자기의 독립성보다 강하여 자기를 지배하면 지배할수록 인문적 통찰은 불 가능하고 더듬이는 없어져요. 그럼 도대체 인문적 통찰을 하는 관건은 뭐냐? ‘자기가 자 기로 존재하는 일’입니다. 이념이나 가치관이나 신념을 뚫고 이 세계에 자기 스스로 우뚝 서는 일, 이것이 바로 인문학적 통찰을 얻는 중요한 기반입니다.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서 여러분은 더 자유로워졌습니까?”

값 15,000원

인간이 그리는 무늬  

현재 EBS에서 절찬리에 강연중인 서강대 최진석교수님의 EBS 인문학특강 ‘현대철학자 노자’를 재미있게 구성한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