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eet H_2012.06_Vol.037_3rd Anniversary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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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 H> 3주년 기념 특별기획 

홍 대 앞 에 서

그대 다시 ‘홍대앞 10년’을 꿈꾸는가

1 0 년

이 상

버 티 어

쥔 장 들 과 의

좌 담 회

A2

홍대 이웃, 책굽는 사람들

홍대앞에서 10년 가까이 장수해온 동네 카페, 밥집, 술집 사장들이 지난 6월 12일 다락에서 모였다. 각각 12년차에 접어드는 ‘카페 비하인드’의 임태병 소장과 ‘닭날다’의 정재훈 사장, 그리고 10년차의 ‘어머니와 고등어’의 김진한 감독. 그들을 단지 ‘가게 주인’이라 부르긴 미안하다. 자신의 브랜드를 가지고, 홍대라는 동네에 ‘취향’을 생산하고 전파하며, 후미진 골목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은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상업자본의 고도화 속에서 이들은 그 누구보다 고민이 많다. 치솟는 임대료, 권리금을 둘러싼 복잡한 갈등 속에서 그래도 홍대앞을 홍대앞답게 만드는 기획을 끊임없이 꿈꾸며 고군부투하는 ‘진짜 홍대 사람들’의 솔직한 속내를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기획・정리 정지연 편집장 / 디자인 문가영 / 사진 천병민

김진한 나물먹는 곰

임태병 카페 비하인드

정재훈 닭날다

장성환 <스트리트 H> 발행인

어머니와 고등어, 나물먹는 곰 등 홍대앞의 ‘밥’을 책임지고 있는 김진한 감독. 영화를 업으로 삼겠다고 무작정 대구에서 상경한 이래 홍대를 고향처럼 여기고 있다. 2003년 ‘생계형 창업’으로 시작한 백반집 ‘어머니와 고등어’가 인기를 끌자 이어 2007년 한식 레스토랑 ‘나물먹는 곰’을 차렸다. 독립영화 <햇빛 자르는 아이>를 만들기도 한 전력 때문에 주변에서는 ‘감독’이라 부른다. 그러나 타고난 분석력과 친화력과 오지랖(?)으로 ‘동네 반장’이란 칭호가 더 어울리는 홍대앞의 브레인.

2001년 11월 극동방송극 부근 삼거리포차 뒷골목에 세 명의 친구와 카페를 열었다. 그 카페 비하인드는 빈티지하면서도 모던한 홍대 카페의 전형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2005년 건물주의 횡포로 합정동 골목으로 옮겨왔으며, 창업과정을 담아낸 책 《우리, 카페나 할까?》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홍대앞 카페 창업을 부추겨 지가를 상승시켰다’는 지인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상수동 주민이자 예쁜 딸의 아빠이며 건축설계사무소 사이건축의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2001년 3월 문을 연 ‘닭날다’의 사장. ‘오리지널 철판(매운닭볶음)’으로 11년 넘게 홍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만큼 장사의 달인. 그러나 알고 보면 와우산 정상의 막걸리를 그리워하는 낭만파다. 밀리터리 소품을 적극 활용한 인테리어 때문에 ‘밀리터리 마니아다’ ‘특전사 출신이다’ 별의별 의혹을 샀지만, 실은 홍익대 미대를 나와 미술학원을 경영하기도 했다고. 인심도 후해서 크라잉넛 같은 단골들은 그를 ‘형’이라고 부른다. 카페 비하인드와는 상수동 시절부터 이웃집 인연이 있다.

사회를 맡은 장성환은 <스트리트 H> 발행인이다. 홍익대 미대 시각디자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뜻한 바 있어 잘 나가는 언론사 아트디렉터 자리를 박차고, 2003년 홍대앞에 디자인스튜디오203을 차렸다. 2009년 동네잡지 <스트리트 H>를 창간했으며, ‘10년 지속 발간’을 위해 열심히 노력중이다. 지도에 반영하기 위해 평소에도 홍대앞 곳곳을 돌아다니는 게 취미. “20대부터 홍대앞에 뿌린 술값, 밥값만 모았어도 빌딩 두 채는 샀을 것”이라고 땅을 치는 애주가이기도 하다.

모두 반갑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브랜드를 가지고 10년 넘게

김진한▶ 사실 우리나라에서 끼 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생활하고 기운을

저도 개발에 관한 한 임태병 소장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또한

부가가치세를 붙이면 ‘밥집’에서 무슨 부가가치세냐고, 돈 벌더니 사람이

홍대앞을 지키고 있는 분들, 이 자리에 오신 이런 분들은 단순한 자영업자를

발산해내는 동네가 홍대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들과 출판인들, 그들이

각자가 갖고 있는 경험을 공유하고 우리 식의 조건에 맞는 해결책, 현실적인

바뀌었다고 욕해요(일동 웃음). 밥집을 해서 그런지 전 상대적으로 더

넘어 일종의 생산자라고 봅니다. ‘취향의 생산자’인 거죠. 그런 입장에서

만들어낸 베이스가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일이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김진한 감독 말씀도 맞고요.

박탈감이 많아요. 다들 홍대에는 밥집이 없다고 불평해요. 그런데 이런

얘기를 진행하고 싶어요. 먼저 왜 홍대를 택했는지부터 듣고 싶습니다.

다 홍대에서 벌어진 거죠. 90년대 초반만 해도 연대 앞에서 여자가 담배를

김진한▶ 이 시점에서 (자영업자들의) 연합이 큰 힘을 가져온 예를 전

살인적인 임대료에서 늙으신 노모가 지금도 직접 만드는 백반을 7,000원,

피우면 뺨을 맞던 시절이었어요. 그 시기에 홍대는 다 피우고 다녔고,

클럽문화가 산업이 되었던 그 지점에서 찾고 싶어요. 부동산의 변화에

8,000원 받고 팔면 비싸다고 항의해요. 한 그릇 팔아서 겨우 500원 이문이

임태병▶ 전 이곳에 학연도 없고, 정말 객관적인 입장에서 홍대앞을

염색과 피어싱 같은 개성의 표현이 이미 활발했죠. ‘곰팡이’를 생각해보세요.

대응한 대표적인 예가 M2 타워의 세팅이거든요. 4개 클럽주가 지분을 나눠

남는 상황에서 서비스가 불친절하다, 양이 적다고 컴플레인하는 걸

택한 거라 할 수 있어요. 책에도 썼는데 카페를 내기 전 서울 시내

조윤석, 김형태, 하재봉, 어어부의 백현진… 노는 게 달랐죠. 그런 자생적인

갖기로 하고, 투자와 대출을 받아서 건물을 지었어요. 그래서 초기 3년간

들으면서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기는 솔직히 힘들어요.

곳곳을 분석했어요. 당시만 해도 홍대는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했고

놀이문화가 ‘발전소’ 같은 공간으로 이어지면서 지금의 클럽산업의 룰을

엄청난 호황을 견인해냈고 필드에서 살아남았죠. 이들이 만들어낸 룰을

정재훈▶ 소셜 커머스도 문제죠. 티켓몬스터니 뭐니 이런 게 발달하니까

대학가이고 또 특유의 문화가 있었죠. 사실, 카페를 단순히 상업적인

만들어낸 거죠. 타 지역에 없는 이런 놀이문화가 외부인들에겐 마치

보자는 겁니다. 합심해서 몸짓을 키우고 공동으로 대응하자는 거죠.

가게에 들어오기도 전에 모든 정보가 다 노출되고, 거기서 가격으로 일단

이유만으로 할 순 없거든요. 어느 정도 공공장소에서 제 역할을 해주길

트렌드로 여겨진 거죠. 그러면서 외지인이 유입되고, 주말에만 1만 명이

바랐는데, 막연하게나마 그게 가능할 거란 직감이 온 게 홍대였어요.

모이는 클럽이 탄생했던 거죠. 2002년부터는 또 강남의 투자가 포화상태에

그런데 홍대라는 곳이 그렇게 한 색깔이 아니거든요. 10년 넘게 버텨온

이기주의가 범람하는 거죠. 소비자가 이러면 업자들도 좋은 상품, 좋은

정재훈▶ 저도 사실 싸서 택했죠(웃음). 제가 홍대 미대를 들어갔는데

이르면서 그들이 홍대로 몰려 왔어요. 신축빌딩들이 생겨나고 2003년

분들이 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대표적인 것이 문화운동을

서비스에 대해 고민하기 힘들 거든요.

남들에 비해 오래 걸렸어요. 90년대 초에는 입시학원도 했고요. 그런데

무렵부터 임대료가 두 배로 뛰기 시작했어요. 외부인들에 의해 상권이

하는 분들이기도 하고요. 각 주체가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는 게

학원 일을 하다 보니까 애들 머릿수가 죄다 돈으로 보이는 거야. 이건

변하기 시작한 시기가 그 무렵인 거죠.

사실이거든요.

홍대의 경우 그래도 신촌과 달리 확장성이라는 차별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니다 싶어서 생각한 게 장사였죠. 왜 홍대였냐면 당시 오렌지족들이

정재훈▶ 연예인들의 홍대앞 땅 사재기가 시작된 것도 그 무렵이죠.

임태병▶ 그런 게 홍대의 장점이자 단점인 거죠(웃음).

망원동이나 연남동이나 더 넓혀갈 수 있다는 거죠. 전 개인적으로 이 골목이

차 끌고 놀러오던 데였어요. 또 당시만 해도 홍대에는 쉼터가 많았어요.

양군이야말로 대표적이고요(웃음). (편집자주 - ‘닭날다’가 있는 부근의

김진한▶ 그래서 단점을 보완하는 선에서 각자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면서

망가지고 있구나 하는 징후를 부동산이 들어오거나 핸드폰가게가 생겨나는

정자도 있고… 그런 게 정서적으로 끌렸어요. 그래서 400만원 가지고

가게업주들은 삼거리포차를 위시하여 양현석이 소유한 부동산에 의해 지가

대안과 솔루션을 찾자는 거죠.

것에서 찾아요(웃음).

시작했죠. 처음엔 삼거리포차 전에 있었던 ‘해물잔치’ 근처 공터에서

상승의 피해를 입었다.)

떡볶이를 팔았어요. 민원에 걸려 12번도 넘게 잡혀가고. 그때 개미슈퍼

<스트리트 H> 3주년을 축하합니다 | 홍대앞 책짓는 집

거르는 기준 같은 게 생기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싼맛에 찾는, 소비자

아티스트 웨이 줄리아 카메론 지음 / 임지호 옮김 전세계 수백 만 독자들이 상처와 두려움을 떨쳐내고 아티스트의 꿈을 펼치도록 해준 이 시대 최고의 멘토 북. 384쪽 | 172x225mm 값 17,000원

임태병▶ 반문화적 징후죠(웃음). 말씀을 듣다 보니 정녕 홍대에서 살아남는 정답은 건물주가 되는 것밖에

김진한▶ 개인적으로 홍대앞의 풍경이 바뀌는 게 싫어서 몇 년 동안 잠수를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

아저씨가 자리가 났다고 알려줘서 2001년 닭날다를 열었죠. 그러면서 카페

상업자본의 거센 유입은 피해 가기 어려운 부분이죠. 그럼 일단 임대료

없다는 결론이라 씁쓸한데 말이죠(웃음). 이런 방향을 꿈꿔야 하는 현실이

탔어요. 홍대앞을 잘 돌아다니지도 않고요. 생각해보면 2003년, 2004년

비하인드의 창업과정을 지켜보게 된 셈이에요.

상승만 놓고 봅시다. 법률이나 법령으로 임대료를 둘러싼 갈등을 보안할

안타깝기만 합니다.

무렵에 홍대 사람들에 대한 책이 참 많이 쏟아져 나왔거든요. 그 시점에

김진한▶ 85년인가 홍대 미대 주최의 전국고교미술실기대회에

대안을 만들 수는 없을까요? 뉴욕시 경우는 건물주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김진한▶ 현재로서는 가장 강력하고 현실적인 대안이죠.

우리 임소장님은 《우리, 카페나 할까》 책도 내서, 덕분에 부동산 가격을 확

참여하느라 온 게 처음 홍대에 온 계기였어요. 그러다가 90년에 ‘영화를

오래된 세입자에겐 매년 일정 퍼센트 이상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게 되어

임태병▶ 그런데 부동산 잉여자본만 두고 본다면, 그게 예측이 힘든

띄어놓고 말이에요(임태병: “그 소리 많이 들어서 나도 괴롭다고.”(웃음))

하자’고 마음 먹고, 대구에서 무작정 상경해서 처음엔 장충동 고시원에

있거든요. 임대주와의 상생은 정말 불가능한 걸까요?

부분이에요. 계속 부동산을 보유하는 게 리스크가 될지 아닐지 누구도 알 수

여하튼 내 결론은 과연 홍대 사람들이 있나 하는 거죠. 이곳에서 먹고

방을 구했어요. 친구한테 술 얻어 먹으려고 홍대 부근을 배회한 게 말하자면

정재훈▶ 건물주들이 어떠냐면 건물을 통째로 사서 집을 다 헐어버려요.

없으니까요.

놀고 생활하는 홍대 사람들이 다 어디 갔을까? 생각해보니 어디 간 게

시작이죠. 어느 날 서교초등학교 부근 쌀집 모퉁이 구멍가게에 사람들이

집이 무형이 되어야 권리금을 안 줘도 되거든. 건물주들의 탐욕과 거기에

김진한▶ 개발에 관해 말해보자면 내 스타일은 뭐냐? 수평적인 거예요.

아니라 분산되버린 거죠. 손님이 없어진 게 아니라 홍대앞이라는 중심이

모여 앉아 막걸리를 먹고 있는 거예요. 가서 합석했는데 이 사람들이 다

저항할 수 있는 제도가 없으니 사실 무슨 수로 해결하겠어요. 개발업자들이

작은 땅에 고도화・집적화・수직화된 개발 말고요. 전 수평적인 데서 밥을

넓어지면서 대안을 찾지 못하니까 뿔뿔히 흩어져버린 거예요. 게다가 가장

영화하던 사람들이었죠. 이현승, 유하, 이재용, 이광모, 여균동, 장기철

일단 부수고 보자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거든요.

먹고, 걷고 싶고 그런 거예요. 고층빌딩 짓고 아케이드 세우고 이런 게

만만한 창업의 형태를 ‘카페’라고 오해한 젊은이들이 전부 홍대로 와요.

감독(전 <친친> 사장)…. 다 데뷔전이었는데 영화판에 새로운 뉴웨이브를

임태병▶ 당장 비하인드만 봐도 그래요. 2005년에 합정 쪽으로 옮길 때,

아니라, 여러 명이 소액을 출자해서 홍대식의 수평적인 개발을 해나간다면

그들이 안 들어와야 하는데, 심지어 바닥 권리금까지 줘가며 들어온다고요.

만들어내자고 하던 때였죠. 그렇게 뭉쳐서 기획해낸 단편영화가

그때만 해도 빈 구석이 많았고 옮겨갈 수 있는 여지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좀 지역이 멀어도 고객은 찾아올 거라 생각하거든요. 안정적 수익

부동산들의 농간에 속아서. 청년실업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줄 수는 없는

<비명도시>였어요. 그때 사무실이 꿀벌슈퍼 2층이었고요. 홍대가 내 평생

지금 이런 시기에 “임대료 두 배로 못 낼 거면 나가라” 그런 소리를 듣게

보장의 플랜이 될 수도 있는 거고요. 어디 ‘천사 건물주’나 지자체가

거고…. 진짜 문제는 우리가 이 흩어진 홍대 사람들을 다시 끌어모아 새로운

꿈인 감독이 될 수 있는 터전이라고 생각했죠. 무과수슈퍼 옆건물에 살 때

되면 저도 바로 접어야 해요. 아니면 결사적으로 버티거나.

나타나서 우리 같은 이들에게 공정한 계약을 보장하고 ‘너희가 공간을

상권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지요.

<햇빛 자르는 아이>도 만들었고, 장편 찍을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갑자기

김진한▶ 나물먹는 곰은 지금 재판에 계류되어 있어요. 건물주가 임대료를

만들어내도록 10년은 보장해준다’ 이러면 정말 열심히 해볼 수 있다는 거죠.

생계를 책임지던 형에게 문제가 생겼어요. 졸지에 노모를 모시고 가장

무려 두 배 이상 올리면서 안되면 나가라는 거예요. 그렇겐 못하겠다고

1년에 임대료 10~20%만 올리자, 그러면 할 수 있어요. 이런 실체적인 룰이

지역적으로는 그런 대안이 되는 지역이 홍대앞 근처에서는 어딜까요?

노릇을 하게 된 거죠. 노모는 평생 음식을 만들어온 분이라 가게 할 터를

버텼고, 민사소송을 진행중이에요. 홍대 부근 노후 주택 리노베이션의

필요하다는 거죠.

연남동, 망원동…?

나는 아프리카인이다

찾았어요. 무조건 싸게 구해야 하니까 골목 깊숙이 비가 새던 집을 찾아냈죠.

모범을 만들어낸 나물먹는 곰과 거기에 들어간 제 노력과 아이디어, 투자에

임태병▶ 문제는 수평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례가 나올까 하는 거죠.

김진한▶ 그 답은 함부로 내릴 수 없죠. 그래도 타지역에 비한다면 아직은

막스 두 프레즈 지음 / 장시기 옮김

그게 ‘어머니와 고등어’였어요.

대해 정당한 보상도 없이 쫓아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얼마 전 가치

고층빌딩을 세우는 이유가 지가를 집중시키는 전략이거든요. 김감독이

비교적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감정을 받아보니 원주택보다 12억원이나 더 나가요. 부동산 가치를 높인데

생각하는 2층과 옥상 정도의 수평화가 성공하려면 제도적 개선이 따라야

임태병▶ 도시 구조에서 보면 아직도 홍대는 숨쉴 구멍이 많아요. 여전히

홍대 변화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광풍처럼

기여한 건 ‘나물먹는 곰’인데 전 빈털터리로 비워줘야 해요. 말 그대로

해요. 주차부터 해결해줘야 하거든요. 의외로 주차가 큰 문제예요. 수평적

아주 느슨하거든요. 레이어가 수십 개예요. 클럽, 카페, 술집… 한 지역에

몰아치고 있는 홍대지역의 상업화라고 생각하고, 그 점이야말로 오늘

재주는 ‘곰’인 제가 넘고, 돈은 건물주가 버는 거죠. 그런데 법원에서도 딱히

개발을 현행법에서 해결하려면 블록단위로 주차지역을 지정해주면 되요.

이렇게 중첩된 레이어가 있다는 건 도시개발에 있어 엄청난 장점이거든요.

모인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전 이걸 좀 더 세분화시켜볼 필요가

수가 없어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거죠.

예를 들어 공영주차장길처럼 말이죠.

정재훈▶ 최호철 화백의 <와우산>이란 작품을 참 좋아하는데 그 시절

남아프리카의 전사와 연인, 예언가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스무 개의 이야기로 엮은 남아프리카 역사 500년. 408쪽 | 218x152mm 값 20,000원

정재훈▶ 근데 듣다 보니 과연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싶네요. 그냥 바람인

와우산에 오르면 달동네에 공터가 있고 평행봉이 있고 그랬어요. 그런 데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을사 5적’에 빗대어 ‘홍대 4적’이라 부르고

김종대 지음 공직생활 30년 동안 사표가 된 김종대 재판관의 이순신 공부! 408쪽 | 153x224mm 값 16,000원

싶은데요(웃음). 홍대 4적이 무엇이냐. 첫째 상업자본의 고도화, 둘째

지금까지 얘기를 듣다 보니 왠지 홍대앞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거죠, 바람. 전 이런 상황에서도 자존심을 갖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애들이 술을 마셨어요. 그게 홍대식 정서죠. 그런데 흉터가 가득한 지금의

부동산 업자의 임대료 인상 부추김, 셋째 뜨내기 업자의 권리금 장사

드는군요.

최대한 버티는 게 답이라고 봐요. 그게 이제까지 해온 거죠. 홍대답다는 게

홍대를 보면 참 암담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자존심만 가지고 버텨볼 수

그리고 넷째 지자체의 무관심이나 전시행정이라고 보는데요. 그 외에 홍대

임태병▶ 3년 안에 상업자본에 의해 홍대앞은 정리가 될 거 같아요.

유지되는 이유이고요. 다 때려 치우고 자꾸 제주나 내려간다 하면 안 된다

있을지 저도 생각이 많습니다.

상업화를 부추기는 또 다른 면이 있을까요?

상수・당인동이나 당인리발전소 부근을 보면 ‘저기도 멀지 않았구나’라는

이거예요(좌중 웃음).

정재훈▶ 전 홍대에 미대 실기가 없어진 게 문제라고 봐요(좌중 웃음).

생각이 들어요. 3년 안에 분명 거기까지 다 확산될 겁니다.

‘미대 실기 없앤다’ 방침 나오기 3년 전부터 학원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죠.

김진한▶ 자영업이라고 대표되는 형태가 공간을 디렉팅하고

자, 그러면 이제 소비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임대료는 오르는데

홍대의 남아 있는 긍정성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해보죠.

그러면서 예전과 달리 공부만 잘하던 애들이 미대를 가기 시작했어요.

프로듀싱하는 거라고 본다면 가게주인들은 분명히 생산자잖아요? 지금

과연 상품가격은 적절히 이를 반영하고 있나 하는 고민도 있어야 할 거

김진한▶ 부정적인 이야기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홍대’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예술가 중심의 분위기가 싹 사라졌거든요. 말하자면 똘끼 있는

처한 문제는 사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현재 처한 개발의

같습니다.

금전적 측면에서나 재미라는 측면에서나 홍대만한 상권이 없죠. 누군

애들이 없어지면서 지역 색깔이 없어지기 시작한 거죠.

문제, 그 코어core란 생각이 들어요. 다들 혼신의 힘을 다해 알아서 버틸

김진한▶ 나물먹는 곰의 경우 5년 만에 1,000원 가격인상을 단행했는데,

이태원이 뜬다지만 이태원엔 밤만 있죠. 그러나 홍대는 낮이 존재하는

임태병▶ 일리가 있어요. 홍대에 오기 위해 학원을 다니던 애들은 다른

뿐이죠. 그래서 우리 스스로는 파편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케이스라고

가격 저항력이 거셌어요. 그동안 인건비만 120% 이상 상승했고 이제는

곳이고, 산책하고, 서로 인사하는 동네죠. 여기 동네 술집, 동네 밥집, 동네

워크WORK: 열심히 일하면 어디까지 올라갈까?

곳 학원 아이들과 생각 자체가 달랐어요. 실기가 센 학교들의 분위기라는

여겨지는 이런 현상과 고민을 공유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4대보험과 퇴직금까지 챙겨줘야 하는데 그런 부분은 음식값과 별개로 놓고

카페, 동네 잡지 다 모여 있잖아요. 홍대는 많은 문화의 시발점이었고

CrimethInc. 지음 / 박준화 옮김

게 있거든요. 입시 변화가 기존 학교 분위기를 바꿔놓은 거죠. 건축학과만

이런 자리가 하나의 매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건물주와 공간의

생각하는 거죠.

지금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다만 홍대라는 울타리 안에서 문화와 상업이

봐도 그래요. 학교별 특성이 두드러졌어요. 홍대 건축학과에서 뭔가 한다면

시간을 지키려는 임대주 사이에 중개역할을 해줄 매개자가 필요하단 거죠.

임태병▶ 비하인드도 10년 전 금액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어요. 그건

이상적인 밸런스를 갖춰주길 바라는 게 꿈이고요. 그 핵심이 전 ‘공간’과

전국에서 보러 왔어요. 왜냐면 말도 안되는 테크닉과 재료를 가지고 막

그 매개가 무엇이냐? 그건 저널과 같은 여론의 힘일 수도 있고, 또 상업회

손해를 감수하고 있단 소리거든요. 분명 그 부분에도 조정이 필요한데

‘밥’이라고 생각합니다.(정재훈: “마무리는 술이지.”(웃음) / 임태병: “밥 먹고

만들어내니까. 뭔가 예술적인 게 있었거든요. 반면 한양대는 기계적이고

같은 연합일 수도 있고… 여러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그 저항이 만만치 않아요. 누가 그래요. 에스프레소 한 잔 원가가 400원

커피 마시고 술 먹어야죠.”(웃음))

합리적이고, 서울대는 아카데믹하고 그런 게 있었거든요.

임태병▶ 전 중재자의 역할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에요. 어차피 그렇게

정도인데 커피값은 왜 5,000원이냐. 이 얘긴 제가 건축설계사무소를 하는데,

임태병▶ 동감입니다. 서울의 다른 곳을 아무리 다녀봐도 홍대만한 문화적

정재훈▶ 원래부터 대학가는 가장 큰 상권이었죠. 홍대는 미대 색깔이

흘러간 걸 중지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요. 자본의 힘이 그렇게 만만한

설계도면 그려진 종이값만 받겠다는 소리거든요. 커피 한잔에 보이지 않는

다양성과 흡수력을 찾기 어렵거든요. 아까도 말했지만 여전히 느슨한 구조,

중요한 포인트였던 셈이거든요. 거기에다가 홍대에서 미술학원을 다닌

것도 아니고. 다만 그 시기를 늦출 순 있겠죠. 늦추는 사이에 변화가 생길

무형의 자원과 서비스가 엄청 들어간다는 걸 모르고 하는 말이잖아요.

확장가능성이 있다는 건 홍대만의 장점이죠. 가로수길이 선이라면 홍대는

예비소비자(웃음)들은 적어도 홍대 기운을 맛본 애들이거든요. 그런데

수도 있고요. 꼭 해결책을 못 찾더라도 여러 고민을 나눌 수 있게 같이

김진한▶ 세금 문제도 만만치 않아요. 카드결제가 보편화되면서 부가세

면이에요. 여전히 숨쉴 곳이 많고 켜켜이 레이어가 있죠. 그래서 홍대가

공부는 못해도 똘끼는 충만하던 애들의 유입이 차단된 거지요.

움직일 필요는 있다고 봐요.

10%, 카드수수료 3% 생기면서 평균 13~15%의 매출 감소가 일어났어요.

난삽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건 ‘미추’의 기준으로 보면 답이 안 나와요.

이제까지 홍대의 변화와 각자가 처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자본주의의 피라미드.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생얼’. 415쪽 | 128x188mm 값 15,800원

땅값은 거의 주류에 편입되었다 해도 문화는 여전히 비주류로 남아 있는 게 홍대거든요. 정재훈▶ 장담컨대 3년 안에 다시 홍대에 실기제도가 부활할 겁니다(좌중 폭소). 교수진도 바뀌고 분명히 다시 변화할 거예요. 에너지가 나올 거고요. 김진한▶ 10년~20년 가까이 홍대를 다양한 경험을 통해 바라본 결론은

섬문화답사기

3년 여 안에 합정동 자이부터 동교동로터리, 당인리발전소 라인까지

김준 지음

전부 개발될 거예요. 3년이면 끝납니다. 이런 상황이지만 문화적 가치를

섬의 남자, 21세기 ‘섬 대동여지도’를 꿈꾸다. 656쪽 | 152x225mm 값 25,000원

생각하는 개발자가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고 믿고 싶어요. 안된다면 그 대안을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개격파하든 연대를 하든 위로를 하든 우리가 자주 만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죠. 정재훈▶ 여담인데… ‘닭날다’ 근처 야구장 밑 공터가 있어요. 거기를 활용해 포장마차를 해보면 재밌을 거 같지 않아요? 야구장을 커버하는 커버를 씌워서 서커스 같은 연출을 해도 좋고…. 김진한▶ 정사장님! 기획 같은 거 하면 안 된다니까요. 그거 건물주만 좋은 일 시키는 거예요. 그 일대 땅값만 올린다니까. 하고 싶어도 꾹 참아요(좌중 폭소). 정 하고 싶으면 임대료는 향후 10년간 매년 10%씩만 올린다는 개런티를 받고 하세요. 제가 소송 걸린 거 보고도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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