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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호

2017년 1 / 2월 소식지

평화로운 세상·올바른 믿음의 교회 고난함께는 분단의 벽을 허물고 하나님의 형상인 인권을 회복하려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고난함께 전·현직 실무자 모꼬지


포토에세이

사진·글 백현빈

세월호 참사 1000일이 지났다. 아직도 진도앞바다에는 9명의 미수습자가 추위에 떨고있다.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단 한가지 9명의 미수습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기도하는 촛불이 있다. 세월호의 진실을 속히 밝혀내라는 촛불이 있다. 추운 겨울이다. 그러나 촛불이 있어 조금은 따뜻한 겨울이다.

C O N T E N T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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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년인사 4 고난함께 들여다보기 7 10 고난광장 12 세상사는 이야기 15 정명성 詩場 16 달려라 다니 22 만나고 싶었습니다 24 생활인의 기도 26 고난 우체통 28 알림터

새시대를 열어가는 희망공동체 / 신경하

30 영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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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와 우리, 이야기로 엮인 '고난함께' / 김신애 2017 "心訪, 마음을 찾다" 고난지인 만남의 해 / 정유은 정월(正月)의 정치(政治) / 전병식 엄마 그리고 모성애 / 임정희 걸으며 / 정명성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로 달려가다 / 박단 이종준 후원회원을 만나다 / 편집부 부르심앞에 하나님나라를 꿈꾸다 / 이혜지 곧, 따뜻한 봄이 올거예요 / 이병진


신년인사

2017年 新 年 辭

새 시대를 열어가는

희망공동체 신경하 | 이사장

‘고난함께’ 가족 여러분께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무엇보다 지난 한 해 동안에도 ‘고난함께’를 후원하며 격려해주신 개인과 교회에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돌 아보면 지난 2016년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혼란과 고통의 나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또 다시 새해, 2017년을 시작하였습니다. 인간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이 있다는 것이 다른 피조물과 뚜렷이 다른 점입니다. 지 난해를 돌아보면 광화문 촛불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권력을 이용한 국정농단 에 대한 국민적 분노였습니다. 국민적 저항이었으며 국민적 궐기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분노 그 다음입니다. 분노가 저항으로 이어지고 저항이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민적 분노가 화풀이로 그친다면 또 하나의 불행한 과거를 만드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번에야말로 국민적 분노가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집단지 성의 불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동안 쌓였던 비민주적인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정의, 생 명, 평화를 이루려는 촛불 민심의 꿈이 결실을 맺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노한 국민이 먼저 새날을 꿈꿔야하며 저항하는 국민이 먼저 미래를 살아야 합니다. 촛불의 빛이 어둠을 몰아내고 묵은 땅을 갈아엎고 새롭게 일궈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적 과제요 소명인 국민주권의 시대, 모든 기본권이 보장된 민주주의 시대, 누구나 공평하게 사는 평등과 복지의 시대, 남과 북, 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에도 고난의 현장을 뛰어다니며 고난받는 이웃에게 격려와 위로를 나누는 사역 을 감당한 실무자 여러분의 사랑의 수고에 감사합니다. ‘고난함께’는 새해에도 멈추지 않고 이 땅에서 고난받는 이웃을 위해 희망을 만드는 공동체로 계속 달려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꿈꾸 는 새 시대를 열어가는 희망 공동체가 되기를 다짐하며 새해 인사를 대신합니다.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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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함께 들여다보기

고난함께 전·현직 실무자 모꼬지 후기

너와 나와 우리, 이야기로 엮인 ‘고난함께’ 김신애 목사 | 평화사업위원장

1989년부터 2017년까지 ‘고난함께’에 길고 짧은 시간 실무자로 몸담았던 30여명의 일꾼 중 멀리 있거나 참석이 불가능한 이들을 제외한 15인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 1월 19일부터 이틀간 문수산성교회(담임 황 인근 목사)와 인근 청룡회관에서 진행된 모꼬지의 모든 순간을 짧은 지면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첫날 저녁 이들이 내놓은 몇몇 추억담을 기록해 보았다.

“고난 초창기에 준비위원을 했어요. 당시는 따로 실무자가 없었죠. 92년 목회 나가고도 지근거리에 서 서울 오가면서 같이 가는 길동무처럼 지냈습니다. 고난에 위기가 와서 문 닫을까 말까 한참 고민 하던 시기에 이천에 같이 있었던 이광섭 목사와 함께 “광수 형(진광수 목사)이 총무를 맡아 주면 우리 가 돕겠다.”고 제안했는데 그 판단이 지금도 옳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좋은 분 들이 최선을 다해 지금까지 이끌어 주지 않았나 고마운 마음이 들고, 앞으로도 감리교회 자랑거리로 계속 남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헌 목사 (1989~, 현 이사) “고난 처음 만들었을 때는 모두가 일꾼이었고 분과가 여덟 개인가 있었어요. 모두가 다 최선을 다해 자기 몫을 했고 십시일반 힘을 모았는데 그 모습이 아직도 생각나요. 후원회 조직하면서 대강당에 공 연을 올렸는데 800명 넘게 후원회원들이 모였죠. 당시로서는 기독교단체에서 그렇게 한 게 쇼킹한 일이었고 자부심을 가질 만 했어요. 그런 반면 하루에 받는 전화의 반절 이상이 무턱대고 욕부터 하 는 내용이어서 이런 교회 안에서 어떻게 사회운동을 할 것인가 하는 고민과 기도를 정말 많이 했죠. 그리고 달력이니 여름성경학교 단체 티셔츠니 만들어서 사업도 했는데 조기국 목사님이랑 이상필 목사가 그때 발로 뛰면서 굉장히 헌신했죠. 놀라운 건 그 고생을 하면서도 끝나고는 다 웃으면서 돌 아갔다는 거예요. 신 앞에 온전한 진실함, 진정성을 가지고 나다움과 인간다움을 확인하는 웃음이랄 까? 모두가 행복하고 귀한, 진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이어 여러분들이 구슬을 꿰어주어서 지금 반짝 반짝한 보석이 되어 있는 모습을 오늘 보니까 ‘아,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기를 참 잘했다.’ 싶은 느낌이 듭니다. 앞 뒤 다 빼고 순수한 이 행복을 앞으로도 오래 후배들에게 전하는 ‘고난함께’가 되길 바랍니다.” - 김영란(1989~, 현 감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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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의 세월을 넘어 한 자리에 모인 고난함께 실무자들

“대학원 졸업하고 진로를 모색하던 중 고난에 일꾼이 필요하다기에 뜻 있는 선배들 돕자는 마음으로 일 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책 만드는 경험이 전혀 없었는데 송병구 목사님이 출판사로 데려가서 대충 편집 배우게 한 다음에 소식지를 만들도록 했어요. 책 하나 낼 때 마다 거의 밤을 새면서 밑바닥을 헤매며 배웠 는데, 그때는 전산 사식을 떠야 하는 때라 조판작업도 다 배워야 했거든요.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죠. 제가 결혼해서 둘째 낳기 직전까지 일을 했어요. 임신해서도 책 나오면 3천권 다 들고 3층까지 올라와서 봉투 작업 해가지고 다시 들고 내려가 우체국서 발송했던 일이 기억에 남아요. 책 만들면서 이따금씩은 이렇 게 고생해서 보낸 책이 의미 없이 버려지기도 하겠지 싶어서 회한이 들기도 했는데 그래도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꾸준히 우리 목소리를 냈다는 게 큰 의미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고난의 소식들이 힘 있는 소 리로 소중히 읽혀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습니다.” - 엄은희 (1993년~, 현 편지결연 일꾼) “입학하고 얼마 안돼서 후원회원의 밤에 선배들 심부름 한다는 명목으로 안치환 싸인 받으러 갔던 게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고난 우편업무 할 때 마다 불려가서 우편번호 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하며 일꾼 이 됐죠. 2005년부터는 간사로 일하다가 사무국장 2년, 총무 2년 했습니다. 농담으로 이제 ‘이사’만 하면 그랜드슬램 달성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평화캠프 시작한 거예요. 꿈꾸고 준 비했던 것들이 이루어지는 것에 신이 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 황인근 (1994~, 현 협동총무) “학교 졸업하고 전도사를 나갔는데 이민아 선배가 학교에서 나눠주는 고난 소식지를 보고는 이름이 너무 멋있어서 처음 받은 월급을 모두 고난에 후원했어요. 그랬더니 바로 면담 하자고 제안이 와서 민 아 언니랑 같이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우편물 발송 감액을 위해 소식지 천부를 다 가지고 올라와서 우편번호 별로 나눠 고무줄로 싸서 가져갔거든요. 그때 10원 한 장 허투루 쓰면 안 된다고 해서 저는 길거리 다니면 고무줄을 눈에 띄는 대로 주워 모았어요. 고난에서 제일 좋았던 기억은 한 달에 한 번씩 장기수 할아버지들 모여 사시던 집에 가서 밥 해 드리고 생활비 드리던 거였어요. 연회마다 돌면서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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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투어 중 광성보에서

환 서명도 받았죠. 제가 일하고 1년 안 돼서 이 분들이 송환되셨는데 정부에서 그 공을 다 가져가버렸 습니다. 그래도 선생님들이 저한테 ‘꼭 통일돼서 다시 만납시다, 나은 선생님!’ 하고 저도 ‘예, 선생님 건강하세요.’ 대답하며 헤어졌어요. 그때는 금방 통일 돼서 다시 뵐 줄 알았는데 아직도 통일이 안 되 고 있네요.” - 나은 (1999) “어느 날 ‘고난에서 일해보지 않을래?’라는 제안을 받고는 두 번 생각도 안하고 일을 시작했어요. 막연 히 기독운동을 하는 ‘고난함께’에 대한 신기한 느낌과 궁금증이 있었거든요. 전에는 기도나 예배가 세 련되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기도회로 학생들을 만나고 중요한 의제들을 풀어내는 과정을 보면 서 내가 몰랐던 새로운 방향성과 가치, 기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토양이 되지 않았나 생 각합니다.” - 송윤혁 (2008) “필수과목 하나를 F 받는 바람에 인천에서 학교를 오가며 한 과목 수강하는 학기에 마침 제안이 들어 와서 간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기독교사회운동에 대해 깊게 생각 해 보지는 않았는데, 고난 에서 여러 목사님과 선배님들 만나면서 제가 기존에 알고 있던 목회가 아닌 다른 방법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고백하나 하자면, 저...우체국에 통장 찍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오락실 들렸다 오기도 했어요(웃음)” - 박수인 (2012) “2013년 책모임에 왔다가 자연스럽게 간사를 하게 됐고 지금은 평화교회연구소로 옮겨서 일하고 있 습니다. 고난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선배님들 만 나 뵙고 보니 먼저 일하신 분들의 노고가 이어져서 지금 와서 활짝 꽃피웠다는 데 감사합니다. 보다 더 만개한 고난을 뒤에 올 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이동환 (2014) 이들의 이야기는 그대로 ‘고난함께’의 역사를 그려내는 것이었다. 밤새도록 끝도 없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 왔다. 함께 사무실에서 생활했기에 공감할 수 있는 소소한 일상,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 각자가 ‘고난함께’를 통해 꿈꾸는 모습들 등. 지면 관계상 모두 기록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가 엮여 ‘고난 함께’가 되었다. 이 이야기의 다음 페이지가 또 쓰여질 것이기에, ‘고난함께’는 여전히 설렌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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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함께 들여다보기

'고난함께' 연간계획

2.0.1.7. “心訪, 마음을 찾다” 고난지인(일꾼, 후원회원) 만남의 해 정유은 간사

지난 5, 6년간 ‘고난함께’는 여러모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고난함께의 활동을 양적, 질적 으로 확장해가며 숨가쁘게 달려온 시간이었습니다. ‘평화교회세우기연구모임’(2011년 시작), ‘평 화교회연구소 (2015년 창립)’, ‘청년캠프 평화스레’(2012~2014년) ‘홈페이지 개편’(2012년), ‘예배 공동체 고함’(2013년 시작), ‘평화산책 합창단’(2013년 시작), ‘영화모임 영사기’(2013년 시작), ‘뉴스 레터’(2013년 시작), ‘두근두근 책모임’(2014년 시작), ‘북돋 책모임(2015년 시작)’, ‘페이스북 페이지’ (2015년 시작)을

처음 만들고 진행해왔으며 그에 따른 열매도 있었습니다. 몇 가지만 주목하자

면 신학생&목회자들에 대한 사회선교교육이 이루어졌고, ‘고난함께’의 대외적 이미지가 좀 더 대중친화적으로 변모하는 양상을 보였으며, 그에 따라 감리교 내 사회선교 기관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두텁게 하였습니다. 한계를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고난함께’의 현재 방향성으로는 ‘현장&이슈’에 밀착 된 운동이 어렵다는 점, 목회자 중심/감신대 중심의 네트워크 조직이라는 점, 활동 반경을 넓 히다보니 기존 회원/일꾼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졌다는 점, 여전히 일반 교회와의 접점이 부족하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한계란 결국 우리가 현재 집중해야 할 것을 알려주는 기준점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운 동은 ‘현장&이슈’에 1차로 대응하는 운동은 아니지만 결국 그것과 교회/대중을 이어주는 다 리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하는 사업에 덧붙여 장기적으로 ‘교회 대중과의 접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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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해외 네트워크’, ‘소외된 이슈발굴’이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우리의 활동을 꾸려가야 할 것입니다. 지난 5년간의 우리의 활동은 그것을 위해 길을 넓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잠시 숨을 고를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이 속도대로 계속 내달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챙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2017년도의 목표를 <“心訪, 마음을 찾다” - 고난지인(일꾼, 후원회원) 만남의 해>로 제안합니다. 기존의 일꾼들과 후원으로 함께한 이들이 함께할 수 있 는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최근에야 ‘고난함께’를 알게 되어 관심 갖고 있는 새로운 얼굴들 (교회와 사람)도 챙겨야 하겠습니다. 목회자/감신대 중심의 모습이 쉬이 사라지지는 않겠지 만 비목회자/비감신인에 대한 의식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2017년 한 해 동안은 ‘사람’을 중 심에 둔 사업(심방, 일꾼엠티, 신입회원 만남의 날 등)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또한 ‘예배공동체 고함’을 중심으로 한 인권사업, ‘청소년 평화캠프’를 중심으로 한 평화사업, ‘효도나들이’를 중심으로 한 통일사업을 더욱 깊이 있게 진행하겠습니다. 동시에 올해는 특별 히 교육사업에도 힘을 쏟고자 합니다. 교육사업은 신학생, 평신도, 목회자 등 모든 그리스도 인을 대상으로 합니다. ‘사회선교학교’를 통하여 사회선교를 소개함과 동시에 그것이 기독교 공동체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제���, 설득하고 훈련하는 장이 열리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문화사업으로는 ‘고난함께’ 30주년 (2019년)을 기념하며 ‘장기수, 한국사회, 인권’을 주 제로 한 뮤지컬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어느새 ‘고난함께’가 30주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서른 살의 ‘고난함께’가 더 긴 호흡으로 달 려갈 수 있도록 숨을 잘 고르고 진행하는 사업들을 단단하게 만드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 길에 동행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2017년에도 깊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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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고난함께' 연간계획 월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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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감사 상반기 사무국 정책회의 확대 정책협의회 실무자 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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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이사회 166호 소식지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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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운영위원회 기사련 대만 리트릿 신입회원 만남의 날 예배공동체 고함 시작

상시

•장기수 생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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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호 소식지 발간 춘계 대심방 예배공동체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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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평화순례 춘계 대심방 예배공동체 고함

6

168호 소식지 발간 사회선교학교 예배공동체 고함

•평화산책 합창단

7

하반기 사무국 정책회의

•평화교회연구소 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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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평화캠프 169호 소식지 발간

•연대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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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나들이 하반기 운영위원회 예배공동체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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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호 소식지 발간 천달력 제작 및 판매 시작 예배공동체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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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회원 만남의 날 예배공동체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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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호 소식지 발간 후원회원의 밤 고난받는이들과 함께하는 성탄 새벽송

•양심수 지원 •와락, 버마민주화운동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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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광장

정월 正(月의) 정치 政(治 )

전병식 이사 | 배화여자대학교 교목실장

정월(正月)은 ‘음력 1월을 달리 부르는 말’입니다. 『예기(禮記)』 제6편인 ‘월령(月令)’편에는 진 (秦)나라 여불위가 일 년 열두 달의 이름을 지어 월령(月令; 월령은 ‘국가의 정례적인 연간행 사를 월별로 구별하여 기록한 표’를 말합니다)을 나누어서 국가의 정령(政令;‘정치상의 법도 와 규칙’또는‘정치상의 명령’)의 실시 시기를 구체화했다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예기(禮 記)』, 池載熙 解釋, 자유문고) 월령편에서 음력 정월은 맹춘지월(孟春之月)이라 해서 초봄을 뜻 합니다. 그러니 예기에 따르면 정월은 겨울이 아니라 ‘천하의 만물이 태동하는’ 봄의 시기요 그 래서 이달에 입춘(立春)과 우수((雨水)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정월이란 중국 상고(上古) 시대의 왕조인 하(夏)·은(殷)·주(周)의 경우와 같이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왕조가 바뀌면 역법(曆法)을 그에 맞추어 고친 데서 나온 말’(『한국세시풍속사전』)이라는 것입니다. 왕조 즉 정권이 바뀌면 새 정권의 정령(政令)을 세우기 위해 과거 정권이 정했던 정월, 해가 시작되는 날을 바꾸어서 새 로이 정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임금이 바뀌면 연호(年號)가 바뀌듯이 말입니다. 대한민국도 중국도 더 이상 왕조시대의 연호를 쓰지 않는데 유독 일본은 아직도 1898년 아키히토 일왕이 즉위하면서 정한 헤이세이(平成)이라는 연호를 계속 쓰고 있는데, 이것이 일본이 과거의 역사 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또 하나의 행태라고 한다면 과장일까요? 어쨌든 정월을 본래의 정치적인 의미로 본다면 정권이 바뀌어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달입 니다. 올해 음력 1월, 대한민국에서 바라보는 정월의 정치는 어떻게 될지 한편으로는 답답하 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떤 기대감 같은 것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다는 기대보 다는 나라 전체의 기운이 바뀌어야 한다는 기대가 더 커야 할 것입니다. 정치(政治)가 정말로 바르게 다스려지는 정치(正治)가 되어, 더욱 정치(精緻; 정교하고 치밀함)하게 나랏일이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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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고,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치(定置)한 곳에 놓여 져서 온 국민의 정치(情致)를 북돋우 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조선시대의 정월은 원래 1년의 무사태평(無事泰平)을 기원해서 조용하게 보내는 달로 여겨, 정월 다례라는 조상 제사를 지내고, 새 옷을 입고 가족의 연장자에 대해서 새해인사를 하고 절을 하며 세배하러 돌아다녔습니다. ‘정월 행사의 대부분은 14~15일에 집중되어 있는데 청 정한 남자를 제주(祭主)로 삼아 부락제가 행하여지며, 1년 중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였으 며, 정월보름에는 달맞이를 하면서 1년의 소원을 빌고 ‘보름밤에는 여성의 밤의 산책이 허용 되어, 여성의 해방 기회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종교학대사전』) 적벽가 중에 적벽대전에서 대패하여 83만 대군을 다 잃은 조조가 간신히 살아남은 병사들을 점호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한 병사가 조조를 보고 입으로만 “절이요” 할 뿐 고개를 숙이지 않자 “어디서 배운 절이냐?”고 조조가 묻습니다. 그러자 병사가 말합니다. “선생 없이 스스로 배운 절이니 내력 한번 들어보오.”라며 적벽강 불구덩이에서 군복 뒷자락에 불이 붙어 목덜미 가 익고 힘줄이 오그라들어 고개를 죽어도 앞으로 숙일 수가 없노라고, 사지(死地)로 자기를 내몬 조조를 힐난하고 있습니다. 이 정월에 저도 나랏일을 하는 분들을 어른이라 여겨 인사 절이라도 드리고 싶습니다만, 과연 새해를 맞는 이 나라의 백성들이 정부나 정가의 높은 분들에게 고개 숙여 절을 하고 싶은 마 음이 들까 의문이 듭니다. 적벽대전에서 큰 부상을 입고 겨우 살아남은 병사가 조조에게 하듯 말로만이라도 “절이요” 한다면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요? 그분들이 나라의 정세(政勢)를 작금 의 지경으로 파탄 냈다고 그러는 것만은 아닙니다. 제가 그분들을, 국민들을 적벽강의 사지로 몰아넣고도 겨우겨우 살아남은 백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점호조차도 취하지 않는, 조조보다 도 못한 패장들처럼 보인다고 한다면 과장일까요? 아니, 남의 말 할 것 없이 제 자신에게로 화살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저도 제 자식들에게나 저 보다 나이어린 사람들에게 인사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어른으로 살아가는 한 해가 되고 싶 어 음력 정월, 새해 벽두에 이리 횡설수설했습니다. 새해 모두 인사 잘하며 살아가시길 바랍 니다. <'고난광장'은 고난함께 이사들이 꾸미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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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이야기

엄마 그리고 모성애

임정희 | 좋은만남교회

이 글에서 나는 일명 '엄마커밍아웃'을 하려고 한다. <나는 아들, 딸의 행복보다 내 행복이 제일 우선이다. 아이들이 알아서 먹고, 입고, 공부해서 빨리 성인이 됐으면 좋겠다.> 이렇게 '엄밍아웃'을 하면서 세상 모든 엄마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엄마가 되면 모두 모성애 라는 것이 생기는 걸까? 그리고 모성애라는 것은 무엇일까?

2008년 결혼, 2009년 출산. 엄마라는 이름으로 산지는 아직 8년… 내 이름은 임정희다. 최근 학부모가 되면서 나의 삶, 그리고 엄마의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았다.

나는 스스로 주변 엄마들과 비교하면서 위축되곤 했다. 특히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스트레스가 더욱 심해졌다. 우리 아들 현수는 이제 곧 초등학교 2학년이 되지만 한글을 모른다. 한글을 깨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학교가 나를 평가하고, 내 아들을 평가하고, 나아가 나의 교 육방식과 육아방식을 평가한다는 생각을 하니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우리 사회는 남들 다하는 육아방식이 옳고, 그것을 쫒아가야 한다고들 얘기한다. 때로 남들 에게 잘 보이려 하는 육아방식이 불만스럽다 토로하면, “그러면 외국에 나가서 살라.”는 얘기 를 듣기 십상이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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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나는 초등학교에서 한글을 배웠다. 그런데 지금은 7세 아이들이 한글을 전부 배우고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는 전제 하에 교과서가 만들어지고 수업이 진행된다. 문제는 이런 세태 를 모두 인정하면서 선행학습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교육현실에 대해 분노하기 보다 는, 왜 한글을 익히지 않고 초등학교를 보냈냐며 학부모나 어린이집 원장을 질타한다. 그 누 구도 이 현실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다. 나를 탓하고, 내 아이를 탓하고...(라고 나만 생각하는 걸 까?) 집에서 책을 읽어주고 미디어를 차단하고 삼시세끼 잘 먹이고 밖에 나가서 다양한 경험

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모성애일까? 아니면 아이에게 매일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스킨십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놀아주는 것이 모성애일까?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원장님이 오리엔테이션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부모가 행 복하면, 아이들은 자연적으로 행복해집니다.” 나는 이 이야기에 공감하며, 아이들에게 잘해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엄청난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었다. 내가 행복한 것이 우선이라는 공 식이 생겨버린 것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집중하며 다양한 경험을 함께하는 것이 행복할 때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 없이 다양한 경험들을 하는 것이 더 즐거울 때도 잦다. 예전엔 사람들이 “현수한테 한글을 가르쳐 줬느냐?”고 질문하면 던지면 많은 변명을 쏟아내 며 자기합리화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교육하기 싫다.”“귀찮다.”라고 솔직한 심 정을 고백한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을 때 엄청난 질타를 받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래요? 그럼 외부의 도 움을 받아서 하셔요.”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하지?” 란 말을 들었다. 정말 의외였고 속이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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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했다. 아이들과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 금이나마 풀리는 것 같았다.

『늦은 밤 선잠에서 깨어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부시시한 얼굴

앞으로도 나는 아이들의 행복보다는 나의 행복, 그

아들 밥은 먹었느냐

리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행복을 추구할 것이다. 아 이들의 행복만을 위해서는 살지 않을 것이다. 그리

피곤하니 쉬어야겠다며

고 누군가 나의 교육방식, 육아 방식을 질타하거나

짜증 섞인 말투로

조언을 하려 한다면 언제든지 ‘엄밍아웃’을 할 것이다.

방문 휙 닫고 나면

육아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다. 나만의 방식으로 그

들고 오는 과일 한 접시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나도 아이들도 같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엄마도 소녀일 때가

엄마도 나만할 때가

K-POP STAR4에 출연한 ‘이설아’라는 참가자가 자

엄마도 아리따웠던 때가 있었겠지

작곡 ‘엄마로 산다는 것은’을 들려줬었다. 나를 키워 주신 외할머니가 너무 생각나 많이 울었다. 이 곡의

그 모든 걸 다 버리고

가사로 글을 마무리 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

희생적인 엄마는 되지 못할 것 같다.)

엄마, 엄마로 산다는 것은 아프지 말거라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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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성 詩場

걸으며 정명성 목사 | 팔미교회

별들처럼 조용히 구름처럼 멀리 강물처럼 오래 한낮의 사막을 지나 황혼의 기슭에 이르고 어둠의 바다를 건너 먼동의 지평에 닿는 하루와 더불어 봄, 여름, 가을 정거장 차례로 거치고 다시 겨울 종착역으로 돌아가는 세월과 함께 산맥을 넘는 바람처럼 날아갈 때를 아는 새들처럼 길을 나선 이에게 모든 시간은 처음이고 지금 여기를 지나는 여행자에게 길들은 다 새 길이다 태초에서 나온 어느 나그네인들 그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으랴 모든 길이 본향으로 향해 가는데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는 것이라는 말처럼, 집을 나서는 첫걸음은 집으로 돌아가는 첫걸음이 됩니다. 새로움은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길을 찾아가는 데에 있습니다. 생명은 자신이 돌아갈 길의 지도를 알고 있으며 그 길은 각자마다 다 릅니다. 제각각 다른 시간에 다른 길을 가더라도 빠짐없이 집에 다다르게 되는 것은 그 모두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각자 마음속마다 본향 으로 가는 지도가 있습니다만,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일단 떠나기만 하면 길은 나타날 것인데, 오래 안주한 삶에서 발을 떼지 못합니다. 고향으로 가는 저렇게 아름다운 길을 저만치에 두고, 지겹도록 익숙한 쳇바퀴를 여기서 돌리고 있습니다.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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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다니

금속노조

갑을오토텍 지회로 달려가다! 박 단 간사

안녕하세요! 올해부터 신입간사로 일하게 된 박단입니다. ‘고난함께’를 만나지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네요. 그저 일 꾼으로 발만 담그고 있었는데, 이렇게 몸을 통째로 담그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여러모로 서툰 사람이라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허나 이렇게 시작하게 된 이상 열심히 해보렵니다. 잘 부탁드리고요. 그럼 전 오늘도 달려보겠습니다. 모처럼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던 1월, 제가 달려온 이곳은 ‘갑을오토텍’ 투쟁 사업장입니다. 금속노조 갑을지회 박종국 부지회장님(이하 박)과 가족대책위 김미순 위원장님(이하 김)은 부부이신데요. 두 분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단 갑을오토텍 어떤 회사인가요? 박 갑을오토텍’은 에어컨, 라디에이터 등 여러 가지 공기 조절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입니다. 주로 상용차 트럭 1톤에서 20톤 차량의 공조기를 생산, 납품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현장 직 400명에 관리직 170명이 일하던 곳인데, 사측에서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관리직을 250명으로 충원했습니다. 단 노조파괴라는 말이 나와서 그런데, 사측의 노조파괴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죠? 박 2015년에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드러난 QP 전략 시나리오(노조파괴 시나리오)를 보고 2010년부터 계획된 것으로 확인됐죠. 2014년에 특전사 출신, 비리경찰 출신 32명과 나 머지 용역을 포함해 관리직 60명을 충원하면서 본격적으로 노조파괴가 실행됐습니다. 갑 을오토텍에 입사하면 조합원으로 자동가입이 되는데, 처음에 몇 사람이 갑자기 탈퇴하더 라고요. 자기들끼리 제 2노조를 만들더니 새로 고용된 직원들이 다들 그쪽으로 옮겼습니 다. 제 2노조, 어용노조가 생긴 것입니다. 단 60명의 인원 충원 이후 폭력사태가 있었죠? 박 네, 재작년 4월에는 갑자기 회사 정문을 막고, 우리 조합원들을 못 들어가게 했습니다. 대 치중에 두개골에 깨지는 중상자도 발생했고요. 6월 17일에는 생산라인에 와서 조합원을 무차별 집단 폭행을 했습니다. 당시 20여명이 다치거나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사실 그날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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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박종국 부지회장 (���)김미순 위원장

경찰이 왔습니다. 그런데 제 2노조원들을 잡아둬야 집행을 한다더라고요. 우리가 저 깡패 같은 사람들을 어떻게 잡을 수 있겠냐 따졌는데, 소용이 없었습니다. 간신히 저희 측에서 정문을 막아 제 2노조원들을 잡을 수 있게 했는데, 그래도 연행해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시 충돌이 벌어졌고, 이번에는 저희 측도 정당방위로 대응했는데 법원에서는 쌍방으로 보더군요. 단 폭력사태가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지요? 박 7일간의 전쟁 끝에 극적으로 6월 23일에 합의를 했습니다. 자동차의 라인이 중단되게 생 겨서 어쩔 수 없이 합의하고 현장으로 복귀했죠. 그런데 사측에서 또 다시 합의사항을 어 겼습니다. 박당희 대표이사가 부임하자마자 전에 있던 노사 간의 합의 사항을 다 파기하 고, 비상 경영 선포식을 강행하겠다고 하며, 노조를 또 다시 흔들고 자극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투쟁이 시작됐죠. 단 2016년부터 지금까지 공장을 점거하고 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된 상황이죠? 박 특전사 용역 깡패 사전모집이 사회적으로 이슈되면서 실패하자 사측에서 직장폐쇄를 단 행했습니다. 10일 안에 노조를 깰 수 있다는 생각이었죠. 관리직을 고용한 다음 현장직으 로 돌려서 심야근무로 불법 대체 생산하고, 7일치의 재고를 쌓아 납품하는 겁니다. 그 사 이에 저희가 파업하면 직장폐쇄 들어가고, 10일 안에 공권력 투입해서 무력화하고 선별 복귀 시킨다는 계획이었죠. 하지만 저희가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거죠. 밝혀진 QP시나리오의 '중심전술'은 '불법파업 유도→ 직장폐쇄 등 강경대응→ 선별복귀, 대량징계와 동시에 제2노조 설립→제1노조(금속노조 지회) 와해→ 제2노조 과반수 획득 후 단협 체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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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이렇게 치밀하게 노조를 파괴하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박 간단히 말하면 사측의 입맛에 맞는 노조를 만들어 이윤을 남기려는 겁니다. 저희 연봉과 복지가 꽤 잘 돼있는 편인데, 이러한 것들을 다 빼앗으려하는 거죠. 정규직을 비정규직을 돌리고, 마음대로 정리해고하고, 아웃소싱, 외주화도 마음대로 하면 가만히 앉아있어도 어마어마한 이윤이 남기 때문입니다. 단 앞으로의 투쟁을 어떻게 예상하시는지요? 박 말들은 많은데,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게 없으니 답답한 부분이 없잖아 있습니다. 2월에 단체협약이 해지되는데, 이때 또 다시 회사가 노려볼 것 같아요. 조합원들 분열시키기 위 해 징계 같은 걸 남발할 수 있는데, 감수하고 싸워야겠죠. 우선 법정분쟁이 우리에게 유리 하게 떨어지길 바라는 상황입니다. 단 진행되고 있는 법적분쟁은 무엇이죠? 박 ①사측 교섭거부 건 ②상여금 체불 건(파업과 관계없이 상여금 지급해야 한다는 특약이 있다) ③불법 대체 근로 고용 건(쟁의 기간 중 대체 인력 고용 금지) ④불법 대체 생산 건이 있습니다. 이 네 가지 분쟁에서 이겨야 회사의 직장폐쇄가 불법이 되는 거죠. 여기서 지면 저희가 불법이 되고요. 단 가족대책위(이하 가대위)는 언제부터 만들어졌나요? 김 2015년도 폭행 사건 당시, 조합원 간에 친했던 엄마들 사이에서 당시 회사 상황을 공유하 고 무작정 밤늦게 찾아갔어요. 그때 법의 보호를 받아야할 아빠들이 범법자로 몰리고 있 는 것이 보이더라고요. 그때 이건 아빠들의 싸움이지만 가족들의 싸움이겠다는 생각이 들 었고. 가족대책위가 만들어졌어요. 단 투쟁이 낯설지 않았는지요? 가대위의 활약들이 궁금한데요? 김 처음에는 멋모르고 가대위 일을 한 것 같아요. 재작년 용역 깡패들이 밖에 상주해서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니깐, 아빠들이 밥을 해먹을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남편들 밥 먹이기 위 해서 음식 싸오고, 그걸 아이들이 나르고. 당시 경찰이 엄마들을 공장 안으로 못 들어가게 하니깐 많이 싸우기도 했죠. 작년 여름 다시 투쟁이 시작됐을 때는 조금 더 체계적으로 움 직였던 것 같아요. 서울부터 부산까지 관공서란 관공서는 안가본데가 없는 것 같네요.(웃음) 사실 고생시켜서 미안한데요. 갑을가대위 소문이 크게 나긴 했어요. 왜냐하면 잘 모르니 깐 경찰서고 검찰청이고 무작정 찾아 들어가요. 그러니깐 난리가 난거죠. 이런 경우가 전 에는 없었는데, 무작정 가서 난장을 피니까 아니, 그걸 난장이라고 표현하지 마십시오.(웃음) 억울한데 어떻게 해요. 그리고 누가 봐도 합법적인 투쟁이었는데 범법자로 취급하니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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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직으로 구성된 제2노조

박 가대위 자랑 하나만 하면, 재작년에 서로 연락하더니 180-190여명이 800만원을 모금해 서 밥을 해줬어요. 그리고 남은 기금이 있는데, 이건 가능하면 다른 투쟁 사업장에 쓰고 싶 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이 사람들이 투사가 되려나? 그렇게 생각했죠.(웃음) 단 가족대책위는 이 싸움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김 아빠들은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싸우지만, 우리에겐 생존권 문제, 먹고 사는 문제들이라 고 생각해요.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아빠들이 회사에서 퇴출당하면 막말로 어디를 가겠 어요? 그래서 더 사력을 다해 싸우는 것 같아요. 단 가대위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시는지요? 김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서로 만나 이야기하면 힘이나요. 그리고 정말 감사한 게 이제는 엄 마들끼리 동지애를 느껴요. 하루가 시작되면 좋은 말로 인사들 나누고, 가족이 함께 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이야기로 서로를 독려합니다. 박 사실 현장조직이 탄탄하게 된 가장 큰 배경은 가대위의 힘이 굉장히 컸습니다. 사실 긴 싸 움에 조금씩 흔들리는 아빠들도 있었는데, 가족들이 이 투쟁에 들어오니깐 당당한 아빠로 남고 싶어 해요. 아내와 자식이 와서 ‘아빠, 여보, 힘내’라고 말하면, 뭉클하기도 하고... 힘 은 들어도 자식과 아내 앞에서 쪽팔리지는 말아 야겠다는 생각이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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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지역 사회에선 이 투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요? 김 지역적으로 연대를 많이 받았어요. ‘쟤네 또 투쟁한다’는 불편한 시선들도 있겠지만, 제 가 느낀 체감온도는 따뜻했어요. 힘들어서 어떻게 하냐며, 직접 농사지은 쌀 한 가마씩 보내주기도 하고. 고맙죠. 박 투쟁 190일 동안 쌀을 딱 한번 샀어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연대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단 교회의 도움은 없었는지요? 박 사실 저와 아내는 한 교회에서 20년 동안 신앙생활 하다가 교회를 옮기게 됐어요. 공교 롭게 투쟁이 시작되면서 옮기게 됐죠. 김 그 교회에서 받은 상처가 아직 남아 있어요. 우리는 따듯한 말 한마디를 원하는 건데, 불 쌍한 사람 동냥하듯 하는 표현들이 상처가 됐어요. 박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약간 따지는 스타일이었어요. 지역의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교회들이 힘을 실어주면 할 수 있는 게 많겠다 싶었죠. 교회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라 는데, 이게 바로 영혼 살리는 일 아니냐며 따지고 그랬어요. 그래도 작은 교회 목사들이 아름아름 와서 응원도 해주고, 위로도 해주고 그래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김 정말 귀한 도우심 같아요. 남편한테 종종 얘기해요. 이거는 ‘정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이 도우신거다.’라고 말해요. 박 이렇게 말하면 가끔 얄미워요.(웃음) 단 신앙이 투쟁할 때 힘이 되었는지요? 박 오랜 세월동안 신앙생활 하던 게 힘이 된 것 같아요. 특히 아내가 가대위 워원장을 맡게 됐는데, 신앙의 사명으로 결심했다고 말하는 걸 보고 정말로 고마웠어요. 재작년 7일째 되던 날엔 보초를 서고 있는데, 너무 힘든 거예요. 죽을 것 같더라고요. 그 자리에 서서 하나님께 막 따지면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이게 뭡니까! 우리가 무슨 죄를 졌다고...”하 면서요.(웃음) 그런데, 극적으로 싸움이 끝났죠. 그러니까 그 다음에도 하나님께 바라게 되더라고요. 내 믿음 부족한 거는 생각안하고.(웃음) 김 지금 당장 해결해주시면 좋겠죠. 그래도 싸우면서 ‘지면 어떡하지’란 생각은 한 번도 안 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두렵지 않아요.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거란 믿음이 있어요. 박 이런 얘기 들을 때마다 저는 따집니다. “하나님이 언제 하실 건데?”라고요. (웃음) 여기 상황을 아시는 장로님이 있으신데. 우스갯소리로 “기도 어떻게 하는거여? 한명의 의인 을 들어 쓰신다고 했는데... 여기 한명의 의인도 없는 거여? 아니면 기도 빨이 안 먹히는 거여?”하며 피식피식 웃고 그래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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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이 투쟁과 연대하고 싶은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연대를 할 수 있을는지요? 박 금전적인 것도 그렇지만,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회사가 공격을 할 때는

언론공격을 통해 먼저 하거든요. 우리 보고 고액 임금자, 불법이라고 하는데, 이게 사실이 아니란 걸 많이 알려줬으면 좋겠습니다. 단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씀 있을까요? 박 글쎄요. 이 인터뷰가 이곳뿐만 아니라, 투쟁하는 여러 사람들에게 연대와 도움을 줄 수 있는 계기로 되었으면 해요. 김 갑을지회는 다 정규직이에요. 지금 사회적으로 기업들이 비정규직으로 많이 고용하잖아 요? 다른 투쟁하시는 분들한테 들었는데, 온전히 정규직인 회사가 얼마 안 된데요. 그래 서 이곳이 마지막 노선 같은 곳이라고. 이 투쟁은 판례 방향이 바뀌는 싸움이래요. 이 투 쟁을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라, 올바른 민주주의를 실현해가는 싸움이고. 이 땅의 노동자 들이 함께 웃을 수 있고. 정의를 만들어 가는 싸움이라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박 나보다 낫네!(웃음)

작년 7월 8일부터 시작된 투쟁은 벌써 200일을 훌쩍 넘었다. 사진은 1월 12일 투쟁 189일째

인터뷰 후 감사하게도 따끈한 칼국수 한 그릇 대접 받았습니다. 인터뷰에 식사까지, 다시 한 번 두 분을 비롯해 갑을 오토텍 노조와 손찬희 사무장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갑을오토텍 후원계좌 : 국민은행 484602-04-114613 예금주: 문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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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싶었습니다

이종준 후원회원을 만나다 편집부 작년 겨울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정에서 천달력을 팔던 중이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추운 날씨에 천달력 판매가 저조해 마음이 쌀쌀했는데, 홀연히 다가와 후원약정서를 작성해 따뜻함을 선물해주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이종준 후원회원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이종준 후원회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종준입니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입니다. 학부 에서는 종교철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대학원 M.div과정 중에 있습니다. 작년까지 나고 자랐던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사역하다 올해 사임했습니다. 지금은 편의점에서 알바 중인 알바몬 입니다. 요즘에는 교회에서 했던 일들을 정리하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공동체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 교회에서 앞만 보고 달려가며 정신없이 사역하다가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하 다 보니, 내가 지향해야 할 교회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품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 도 만끽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고난함께'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학부시절 학교에 붙어 있던 포스터를 보고 '고난함께'를 처 음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아마 고함예배 포스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 관심이 향하는 현 장을 찾아가 몇 차례 예배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인들이 '고난함께'에 여러 모습으로 참여하고 있더라고요. 덕분에 '고난함께'의 다른 사업들도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평소 '고난함께'의 사업들에 여러 모습으로 참여하고 싶었습니다만, 그동안 용기를 내지 못하 고 있었죠. 그러다 친한 동생이 '고난함께'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작게나마 마음을 보태고 싶어 후원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용기를 내서 정기후원뿐 아니라 여러 모양으로 '고난 함께'에 함께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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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떤 고민을 갖고 계신가요?

요즘 국제적으로, 사회경제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건들이 많죠. 우리나라도 물론 마찬가지고요. 교회에도 어수선하고 뒤숭숭한 일들이 많습니다. 제가 원래 정치에 크게 관심을 가지던 사람 은 아니었는데요. 요즘 사건 덕분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뉴스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 민거리라고 하면 나라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헌법재판소가 어떤 판결을 내릴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앞으로 공부해야 할 주제를 정하는 것과 오늘의 현실과 그것을 어떻게 연관시켜 야 할지도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인지. 가치 있는 삶인지 고민이 되지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고민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 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나 주변 사람들, 공동체가 조금이라도 발전하기를 기대합니다. 그 래서 우리 사회가 상식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데 저 개인의 삶이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난함께’에, 그리고 소식지를 보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고난함께’가 참으로 필요하고 의미 있는 일들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난함께’의 일꾼 들과 실무자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저도 ‘고난함께’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고난함께’를 알리겠습니다. ‘고난함께’에 직간접적으로 함께하고 싶은 마음 이 있습니다. 아직은 어떤 방법이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여러 모임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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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인의 기도

부르심 앞에 하나님 나라를

꿈꾸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40)

이혜지 | 다드림 교회

나는 새내기 노무사다. ‘노사 갈등 조정가’, ‘노동 법률 전문가’, 노무사를 설명하는 이 거창한 수식어 를 들으면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마냥 아직은 어색하기만 하다. 사실 나는 수험공부를 하기 전까진 노무사란 직업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중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며 마태 복음 25장 40절을 묵상했다. 말씀을 보며 ‘예수님께 잘해드리고 싶으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면 되 는 거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시기에 유난히 노동 분쟁과 관련된 소식을 많이 접했고, 막연하게 노무사가 되면 하나님 앞에 선하게 쓰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 길에 들어섰다. 분명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으리라. 노무사 명찰을 단지 겨우 한 달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새벽송’에 참가했다. 이 때 방문한 갑을오토텍, 유성기업, 삼성 반올림 농성장은 장기간 지난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 가고 있는 유명한 현장이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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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하나의 사례 혹은 판례로 배웠던 평면적인 사건들을 치열하게 삶으로 살아내고 있는 분들을 직접 만나니, “연대란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는 말이 생 각났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산이 있다고 생각한 너의 교만을 내려놓고 우는 자와 함께 우는 (로마서 12:15) 자가 되라 하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게 물으셨다. 전문가로서의 지식을 이용하여 노조를 파괴하는데 일조하는 노무사도 보았고,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노무사의 모습도 보았다. 너는 어떤 모습으로 너의 부르심을 감 당하겠느냐? 노사분쟁은 분명 이익집단 간의 갈등이고, 따라서 선악의 프레임을 씌우고 봐서 는 안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내게는 노동자들의 신음소리가 훨씬 많이 들린다. 누군가에겐 소리 없는 외침일 그들의 투쟁이, 내 마음에 울려 퍼져 외면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주신 부르 심의 영역이라 생각했다. 결국 나에게 있어 지극히 작은 자는 외면 받고 고통 받는 노동자들이 었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공의와 정의에 대한 가르침은 성경에서 거듭 거 듭 강조된다. 특별히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일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와 방식에 따라 그 관심의 모습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누군가는 골방에서 기도로, 누 군가는 거리에서의 외침으로. 하지만 우리를 향한 동일한 명령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마 태복음 5:13~16)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제 맛을 내는 소금, 따뜻하고 은은하게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살아가길 소망한다. 수험기간은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하나님 앞에 누린 은혜도 컸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나를 위 해 살지 않겠다는 그 때의 약속, 내가 소유권 주장하지 않겠다는 그 다짐을 기억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명령하고 계시는 예언서의 말씀을 되새겨본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24)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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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우체통

곧, 따뜻한 봄이 올 거예요 이병진

하성웅 전도사님께,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미 관계의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미국이 전체적으로 외 교전략을 수정하는 가운데,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가 임박했다고 하자 트럼프는 “그 런 일 없을 것(it won’t happen!)”라고 즉각 반응하였습니다. 핵무장을 계속 확장하려는 북과 이를 막으려는 미국의 충돌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1968 년도에 북이 미국의 정찰선을 납포하자 미국이 전쟁까지 위협했는데도 북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미국이 선제타격으로 위협한데도, 북은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2월 말부터 시작하는 키리졸브 한미군사훈련을 계기로 북·미 대결이 구체화될 것입니다. 북·미 사이에 극적인 협상을 예상하기도 하지만, 군사적 충돌까지 예상되는 민감한 정세입니다. 한·중 사이에 사드배치 문제까지 겹쳐 더 복잡해졌습니다. 남북 사아에 긴장을 풀지 않는다면, 우리의 입지는 주변 강대국들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 에 보다 적극적으로 남북대화와 신뢰회복에 나설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상과 현실은 차이가 있 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다 주저앉는 것 보다는 뭐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은 해봐야죠. 위기가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함에 움츠려 들기보다는 서로를 보 듬어주고 격려하면서 연대하고, 힘을 합치면 전쟁위협을 물리치고 평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거 라 확신합니다. 며칠 전 저는 영화 ‘오빠생각’보면서 눈물을 글썽였어요. 분단과 전쟁의 아픔이 가슴 시리게 저 를 울렸어요. 제가 소위로 임관하여 최전방에서 근무하며 북녘 땅을 바라보는 비장함. 반대로 평 양조국해방전쟁 박물관에서 만났던 친진하고 나이어린 인민군을 떠올리면서 우리 민족의 슬픈 현실에 가슴이 북받쳤어요. 전쟁고아가 된 남매가 여동생을 지키려다 인민군의 총에 죽고, 그런 오빠를 그리워하며 ‘고향생 각’을 부르는 16살 소녀의 노래에 그만 울음이 터지고 말았어요. 10살 때 헤어진 제 큰딸 아이 같아서 더 가슴이 아팠어요.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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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강해지려고 감정을 억누르고 잘 표내지 않지만, 어떤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마음 속 깊 이 숨겨놓은 감정들이 나와요. 특히, 나이어린 순진한 아이들의 고통과 희생을 볼 때마다 나의 자녀 같아서 더 슬프고 그래서 참기 힘들어요. 젊어서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옳은 삶을 쫒았지만, 나이 들면서 우리 아이들의 꿈과 미래 를 위해선 평화가 더 절실하고 생각되네요. 슬픔을 딛고 더 용기내어 분발해야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합니다. 오늘 인도박물관 원장님과 전화 통화를 나누면서 인도연구에 대한 저의 기대감을 느낍니다. 출소해서 인도연구에도 집중할 계획이에요. 전도사님과 고난함께 선생님들을 인도박물관에 초대하여 반가운 만남의 시간도 가질 생각이에요.이번 겨울 추위를 이겨내면 곧 따뜻한 봄이 올 거예요. 우리 민족의 평화와 따뜻한 세상을 손 모아 기다립니다. 나의 마음을 담아 전해요. 사랑해요. 전도사님! 2017년 1월 24일

고난받는 이들을 위해 ▶▷

기도해주세요

출소 장기수선생님 생활지원

통일광장 권낙기, 임방규 낙성대 만남의 집 김영식, 박희성 (02)888-4350 박수분 1931. 04. 01, 65년 출소, 11년 복역, 051)752-1904 박정덕 1930. 01. 25, 08648 서울시 금천구 시흥대로 47 111-5 섭리의 집 박정숙 1917. 08. 16, 62년 출소, 12년 복역, 강북구 번3동 주공A 306동 1502호 박종린 1933. 03. 14, 21445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397-32 삼원빌라1동 201호 변숙현 1924. 12. 16,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흥2동 310, 031)748-4822 안학섭 1930. 04. 14, 95년 8월 출소, 43년복역, 23014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13번지

버마 민주화 운동(NLD) 한국지부/양나잉툰 후원 ▶▷ 심리치유센터 와락 후원 ▶▷ 양심수 후원 ▶▷

이병진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 8년, 전주교도소 2513 김덕용 재야 국가보안법 위반(왕재산), 대구교도소 27 김성윤 목사 국가보안법 위반, 서울구치소 71 지영철 코리아연대 국가보안법 위반, 춘천교도소 2016 강광철 노동자 세월호1주기집회 여주교도소 659

* 양심수 선생님들과 고난 일꾼들이 편지 결연으로 마음을 나누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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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터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 새벽송을 진행했습니다.

지난 2월 6일(월) 사무실 지하 EZE홀에서 정기이 사회가 있었습니다. 작년 한해 ‘고난함께’ 사업들 을 점검, 정비하고 올해 활동을 함께 준비하는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

한국기독청년협의회, 평화교회연구소, 고난함께 공동주관으로, 지난 12월 24일(토) ‘고난받는 이들 과 함께’하는 성탄 새벽송에 다녀왔습니다. 감신대 정문에서 출발해 아산 갑을오토텍 농성장, 양재 현 대사옥 앞 유성기업 농성장, 강남 삼성직업병피해 자 인권을 위한 반올림 농성장, 광화문 장애등급제 · 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을 찾았습니다.

'고난함께' 전·현직 실무자 모꼬지 다녀왔습니다.

지난 1월 19(목)~20일(금) 김포-강화에서 '고난함 께' 전·현직 실무자 모꼬지를 진행했습니다. 28년 동안 '고난함께'를 거쳐간 보석 같은 인연을 마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2017년 정기이사회를 진행했습니다.

고함예배위원 MT 다녀왔습니다.

지난 1월 24(화)-25일(수) 양일간 서울역 근처 찜 질방에서 고함예배위원 MT가 진행됐습니다. 이번 엠티는 지난 해 수고한 예배위원들과 쉼과 힘을 얻 고,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올해 고함 예배를 위해 마 음을 모으는 시간이었습니다.

감리교 시국대책위에서 신년하례회를 진행했습니다.

정기 감사를 받았습니다.

지난 1월 16일(월) 사무실에서 2016년 회계 재정 과 사업운영 일체에 대한 감사를 받았습니다. 김영 란 권사, 김정숙 교수님이 감사로 수고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확대정책협의회를 진행했습니다.

지난 1월 31일(월) ‘평화교회연구소’와 ‘평화산책’ 그리고 ‘고난함께’의 각 사업의 위원장들과 함께 2017년의 사업과 일정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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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시국대책위는 지난 1월 16일(월) 감리회본 부에서 감리교 에큐메니컬 신년하례회를 진행했 습니다. 이번 신년하례회는 에큐메니컬 활동을 하 고 있는 감리교 목회자 및 평신도 50여명이 참석 하였습니다. 한편 시국대책위 송년회는 지난 12월 20일(화)에 진행했습니다. 올해에도 수고할 시국 대책위 실무자들을 위해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절 연합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KTX 해고승무원 해고 투쟁 4000일, 대안 모색을 위한 대화마당에 참석했습니다.

지난 12월 25일(일) 서울역 광장에서 KTX해고승 무원들과 함께 성탄절 연합예배를 진행했습니다. 기독인 600여명이 모여 ‘어둠은 가고 빛이 오길(마 4:16)’ 바라며 예배하는 자리였습니다.

지난 2월 10일(금) 철도회관 6층 대회의실에서 KTX 해고승무원 해고 투쟁에 관련 토론회가 있었 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주제로 필요한 것, 할 수 있는 것, 우리 사회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을 고민하는 자리였습니다. KTX 승무 원 해고 투쟁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평화교회연구소 총회가 있었습니다.

박근혜 퇴진기독교운동본부 기자회견

지난 1월 24일(월) 사무실 지하 EZE홀에서 평화 교회연구소 정기총회가 있었습니다. 지난 해 동안 어려움 속에서도 부지런히 달려온 연구소입니다. 2017년에도 놀라운 사업들을 계획 중입니다. 한국 교회의 새로운 상상력! 평화교회연구소에 많은 응 원 부탁드립니다.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총회가 있었습니다.

지난 2월 10일(금)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기독교 사회선교연대회의(이하 기사련) 총회가 있었습니다. 기사련은 1971년 출범하여 사회선교를 통한 인권 운동, 민중선교, 평화통일일운동, 민주화운동에 기 여해온 에큐메니칼 단체로 '고난함께'도 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19일(월)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진행 했습니다. ‘고난함께’ 진광수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기자회견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공범 자 황교안의 퇴진을 촉구하며 촛불민심의 진의를 밝히는 자리였습니다.

동정 ·장례 박준수 전도사 부친상 (2월 1일) ·장로안수 권혁률 이사 (2월 14일, 아현교회) ·결혼 김준호, 이은주 전도사 (2월 18일, 기독교연합회관) 전병식 이사 장남 (2월 25일, 종교교회)

세월호 1000일 추모음악회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1월 9일(월) '고난함께' 사무국은 안산 문화예 술의전당 해돋이홀에서 열린 '세월호 1000일 추모 음악회'에 참석했습니다.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 님이 귀한 표를 구해 주셨습니다. 온전한 선체인양 과 진상규명. 성역없는 책임자 처벌을 다짐하는 시 간이었습니다.

·졸업 김준호, 임수현, 임하나 전도사 (2월 14일, 감신대 웨슬리 채플) ·출산 박은경 회원이 쌍둥이를 출산했습니다. 축하합니다.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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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영수기 개인후원

평화운동은 갈등과 다툼의 현장에 그리스도의 화해와 평화를 심는 일입니다. 평화기행, 평화캠프 평화교회 세우기 반전평화활동

통일운동은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일입니다. 출소장기수 생활지원 및 효도나들이 북한 고아원 및 재일민족학교 돕기 통일운동연대 및 지원

인권운동은 고난받는 이들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고난받는 이들을 위한 기도회 영치금 및 양심수 자녀 장학금 보내기 교도소 방문 및 석방지원 에큐메니칼 활동가 지원

개인후원 1구좌 10,000원 단체후원 1구좌 10,000원 소식지광고협찬 100,000원 보내실 곳/고난함께 우체국 013920-01-004461 30

··165호 166호

권영진 김선아 김지웅 박지연 서신천 안복규 이신선 이영광 이영호 이원증 이효성 최승화 (5,000) 강득환 강민정 강희석 구영숙 김동관 김동욱 김동하 김동 휘 김민영 김범서 김성복 김순현 김신아 김애진 김연진 김 영광 김영미 김영자 김용대 김용진 김재빈 김진해 김하희 노덕호 도태화 민아름 민진영 박단 박민 박병록 박성중 박 세훈 박요섭 박일령 박진수 박진수 박현진 방선진 부영 희 서민영 서정훈 성모 송우진 송윤혁 송화섭 신성호 심자 득 심진보 양금성 오현일 오현주 우경준 유명선 윤여군 윤종 구 이경화 이규성 이동은 이민효 이선진 이연희/강원경 이 원국 이은주 이인건 이인옥 이재길 이종명 이진아 이진영 이해남 이헌 이혁 이형규 이희준 임성호 임원 장연승 전성 득/오지연 전은영 정규식 정명성 정영 정완영 정은희 정 재영 정현식 조선혜 조주용 조화순 지동흠 차완희 채가람 최건희 최대현 최승원 하희정 한광수 한성훈 한은혜 한진 희 홍영의 홍은숙 홍지향 황기수 황민혁 이진용 정사무엘 (10,000) 김호진 유승리 (15,000) 강기택 강철민 강현 김기정 김순둘 김영곤 김용강 김주연 김창주 김치국 김학준 남일량 박은경 백승철 백윤우영 신 현종 신혜빈/신아인 엄효원 윤문자 이길극 이상민 이상 숙 이윤정 이종준 이하얀 장남수 장선정 장성배 장세현 전 남병 정은영 채미혜 최덕희/장동수 한인철 홍미자 황선주 (20,000) 김영득 김정숙 이정재 이진영 (30,000) 권종호 김영훈 김혜경 남영숙 이경환 이준석 이진경 황범하 (50,000) 정유은 (90,000) 윤건호 (100,000) 진광수 (220,000) 유예은 (250,000)

단체후��� 초록교회(하수광) (10,000) 시내교회(신민종) 영덕교회(조아진) (20,000) 강경대흥교회(이진희) 광서교회(김병훈) 반월중앙교회(박 종배) 수동교회(엄상현) 양곡중앙교회(이찬규) 양도제일교 회(곽노윤) 하늘씨앗교회(최성진) (50,000) 문수산성교회(황인근) 색동교회(송병구) 양정교회(임석한) 청파교회(김기석) (100,000) 한강교회(김순영) 종부교회(최승화) (200,000)

감리교농촌선교훈련원 (70,000)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박정훈(고촌교회) 이경자 이 광섭(전농교회) 김영주(NCCK) 무명 (100,000) 색동교회 2속 (120,000) 박인환(화정교회) 이민재(은명교회) (200,000) 배화여자대학교 교목실(전병식) (250,000) 부광교회(김상현) 영천교회(신태하) 원주제일교회 (최헌영) (1,000,000)

▷▶ 1월 영수기 개인후원 권영진 김선아 박지연 서신천 안복규 이신선 이영광 이영호 이원증 이진용 이효성 최승화 (5,000) 가정현 강기택 강득환 강민정 강희석 고영준 구영숙 김동 관 김동욱 김동하 김동휘 김민영 김범서 김성복 김순현 김 신아 김연진 김영광 김영미 김영자 김용대 김용진 김재빈 김주연 김진해 김하희 노덕호 도태화 민아름 민진영 박난 수 박단 박민 박병록 박성중 박승일 박요섭 박일령 박진수 박현진 방선진 부영희 서민영 서정훈 성모 송윤혁 송화섭 신성호 심자득 심진보 양금성 오현일 오현주 우경준 유명 선 윤여군 윤종구 이경화 이동은 이선진 이승현 이연희/강 원경 이원국 이인건 이종명 이진영 이하늬 이해남 이헌 이 혁 이형규 이희준 임성호 임수현 임원 장남수 장연승 전성 득/오지연 전은영 정규식 정명성 정영 정완영 정은희 정재 영 정현식 조선혜 조주용 조화순 지동흠 차완희 채가람 최 건희 최대현 최승원 하희정 한광수 한은혜 한진희 홍영의 홍은숙 홍지향 황기수 황민혁 (10,000) 김호진 유승리 (15,000) 강광수 강현 김기정 김순둘 김애진 김영란 김용강 김창주 김치국 남일량 박은경 백승철 백윤우영 변영권 송우진 신 현종 신혜빈/신아인 엄효원 윤문자 이길극 이민효 이상민 이상숙 이은주 이인옥 이재길 이하얀 장선정 장성배 장세 현 전남병 정은영 채미혜 최덕희/장동수 한성훈 한인철 홍 미자 홍성헌 황선주 (20,000) 김신애 김영득 김정숙 이정재 (30,000) 이윤정 이종준 조병훈 (40,000) 권종호 김영훈 김혜경 유예은 윤건호 이준석 이진경 황범하 (50,000) 진광수 (230,000)

이사회비 송병구(색동교회) 이헌(생명나무교회) (50,000) 김광년(신내교회) 김광후(마전교회) 박신진(삼척제일교회) 신경하 신태하(영천교회) 신화철(성정교회) 원종휘(만석교 회) 이광섭(전농교회) 이광호(도봉교회) 이현식(진관교회) 정 연수(효성중앙교회) 채성기(오류동교회) 최범선(용두동교회) 정학진(일동교회) (100,000) 유요열(새홍성교회) (200,000) 이환재(중앙연회) (500,000)

단체후원 초록교회(하수광) (10,000) 시내교회(신민종) 영덕교회(조아진) (20,000) 반월중앙교회(박종배) 수동교회(엄상현) 양곡중앙교회(이 찬규) 양도제일교회(곽노윤) 하늘씨앗교회(최성진) 한생명 교회(정해선) (50,000) 색동교회(송병구) 양정교회(임석한) 청파교회(김기석) (100,000) 기쁜교회(손웅석) 문수산성교회(황인근) (200,000)

특별후원 이희운 (100,000) 좋은만남교회(방현섭) (200,000) 상동교회(서철) (384,900)

고난지인 후원 강희석 (20,000) 무명 (23,000)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 (30,000)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기독여민회 김동관/임하나 김민 영 박영옥 영등포산업선교회 일하는예수회 한국기독학생 회총연맹 (50,000)

이사회비 송병구(색동교회) (50,000) 김광년(신내교회) 김광후(마전교회) 박신진(삼척제일교회) 신경하 신화철(성정교회) 원종휘(만석교회) 이광섭(전농교 회) 이광호(도봉교회) 이현식(진관교회) 정연수(효성중앙교 회) 최범선(용두동교회) (100,000) 박정훈(고촌교회) (200,000)

특별후원 목원민주동문회 (100,000)


고난주간

팽목항 순례에 초대합니다. 올해 고난주간에는 세월호 3주기를 맞아 예배공동체 고함에서 팽목항을 찾아갑니다. 시대의 큰 슬픔인 세월호 참사의 현장을 순례하며 기도하는 일정입니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을 만나 위로를 전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올해 4월 16일은 부활절입니다. 진상규명과 선체인양의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하며, 시대의 큰 슬픔인 세월호 참사에 마음 더해주시길 바랍니다.

출발 : 4월 10일(월) 오전 7시 감신대 출발 참가비 : 2만원 계좌 : 우체국 013920-01-004461 신청 : 사무국 02-393-4662 / 박단 간사 010-3448-2668

사진출처 : 미디어몽구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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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편집_정유은, 박단, 이하늬 / 발행일_ 2017년 2월 15일 / 발행처_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주소_ (03735) 충정로우체국 사서함 52호 / 전화_ (02) 393-4662 / 364-6076(fax) / E-mail_ gonanwith@daum.net/ 홈페이지_ http://gonan.or.kr 이사장 신경하 감독(전감독회장) 고 문 박이섭 목사(원로), 김진춘 목사(원로), 윤문자 목사(원로) 이 사 권혁률 장로(CBS) 김광년 목사(신내교회) 김광식 집사(바이블25) 김광후 목사(마전교회) 문선경 권사(창천교회) 박신진 목사(삼척제일교회) 박정훈 목사(고촌교회) 송병구 목사(색동교회) 신태하 목사(영천교회) 신화철 목사(성정교회) 우경아 목사(커클랜드 제일교회) 원종휘 목사(만석교회) 유요열 목사(새홍성교회) 이광섭 목사(전농교회) 이광호 목사(도봉교회) 이상경 목사(재일대한기독교회 소속) 이정배 박사(아현교회) 이종명 목사(송악교회) 이헌 목사(생명나무교회) 이현식 목사(진관교회) 이환재 목사(중앙연회) 전병식 목사(배화여대) 정연수 목사(효성중앙교회) 정학진 목사(일동교회) 채성기 목사(오류동교회) 최범선 목사(용두동교회) 최승화 목사(종부교회) 한석문 목사(해운대교회)


고난함께 소식지 16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