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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팔트 위의 지렁이

‣ 심심풀이로 그리다

‣ 꽃의 웃음은 짧고도 짧다 ‣ 장미 시간의 옷을 입다

‣ 지난 호에서는 ‣ 구독자모집


아스팔트 위의 지렁이 : 민상용

비가 그친 어느 늦은 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우연히 지렁이 한 마리를 보았 다.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지렁이가 나올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는데 느닷없이 지 렁이가 있는 게 신기했다. 지렁이는 많이 지쳐보였다. 비가 오면, 숨을 쉬기 위해서 지렁이는 땅 밖을 나온다고 한다. 숨을 쉬기 위해서 이곳까지 오느라 힘이 들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리 지쳐 보이는가 싶기도 했다.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은 이상, 분명 어딘가에서 기어 나와 이곳까지 열심히 기어왔겠지. 무서운 자동차의 바퀴도 피해가면서. 그러나 너무 멀 리 와서일까. 지렁이는 너무나 피곤해보였고, 더 이상은 1미터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아 보였다. 살기 위해 숨을 쉬러 나왔다가, 다 죽게 생긴 지렁이. 집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얼마 걷지도 않은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지렁이는 살기 위해 나오면서 지친 게 아니라, 다시 돌아갈 곳을 찾느라 지쳐버린 것은 아닌지. 자신의 여린 머리로 무수히 두들겨도 도무지 열리지 않는 아스팔트 위에서, 돌아갈 곳을 잃은 채 절망하며 울부짖었던 것은 아닌지.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일신 하 나 편히 기댈 곳 없어 가슴이 다 찢어져 버린 채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여, 그 모습이 지금 내 모습 아니, 훗날의 내 모습이 아닐런지. 돌아가 다시 지렁이를 보았다. 기어온 길마다 흘린 눈물로, 지렁이는 자신의 흔 적을 남겨놓았더랬다. 어디 하나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함께 있던 틈바 구니 속에서 홀로 떨어지게 될까봐, 혹은 이미 그런 것일까 봐 걱정하고 그러지 않 으려 노력하는 오늘날의 인간관계가 새삼 아찔하게 느껴져 한참을 지렁이를 보며 같이 울었던 그날 밤. 어제.


심심풀이로 그리다 : 한누리


2호에 나왔던 K의 수업시간, 때는 2007년 9월즈음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을 배우다가 따분해하던 중 “자신의 마음의 구조를 그려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말에 끄적끄적.


수업에 집중은 하지 않고 정말 몰입해 그렸는데, 다시 보니 이해되지 않는 것도 있다.

‘keep on moving’ 무슨 뜻으로 쓴 것인지 도통 이해되지 않는다. ‘unique in the world’와 ‘the world’가 서로 다른 의미로 쓴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했을까? 모르겠다. 도통 한글로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전자사전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다 대충 적어둔 것이 아닌가 한다. ‘worthless’는 ‘id’는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적어둔 것 같다.

‘super ego’ 부분의 선이 여러 겹인 것은 일부로 그런 것이다. ‘super ego’와 ‘ego’사이의 쓴 ‘glassy’에 대해선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둘 사이에 유리로 된 투명한 벽이 있다 는 것이다. 정말 깨끗한 유리창이 있다면, 그곳에 유리가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super ego’와 ‘ego’는 서로 구분되어 있지만, 다르지만 서로는 안과 밖을 구분하지 못한다. 쿵! 부딪치고 나서 야 그곳에 유리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id’의 안에는 ‘it’이 있다. 더 깊숙이 정말 깊숙이 들어가 ‘id’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것.


처음 그림을 그렸던 몇 달 후에 그린 것 같다. ♡다. 왠지 처음보다 디자인에서 조금 세 련되어진 것 같다. ‘it’이 두 개로 변했다. 뭔가 심경에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id’와 ‘ego’, ‘super ego’ 사이에 ‘distance’라는 공간이 생겼다. ‘super ego’는 ‘fallacy’와 짝을 이루게 되었 다. ‘super ego’ 중 일부는 틀린, 허위적인 것이 있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결혼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에게 결혼은 제도일 뿐이며,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것은 틀린 명제이다. ‘super ego’는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이도록 하는 허위적인 속성도 있다. ‘ego’ 는 ‘mirror’와 짝을 이룬다. 나를 비춰 나를 돌아보자는 의미인가? ‘idea’의 등장은 좋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완벽한 ‘idea world’와 실제 ‘world’가 존재한다.


이번에는 원이다. 원을 둥글게 그리는 것은 어렵다. ‘idea world’옆에 환상이라고 작게 적어두었다. 완벽한 세상은 사실 환상이다. ‘idea’를 꿈꾸지만 ‘idea’는 존재할 수 없다. ‘parent’가 새로 생겼다. 부모는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다. 나의 성격, 행동, 습관, 생활 행태는 거의 부모에게서 시작된다. 이 그림을 그렸을 시절 나는 ‘키스는 본능인가 학습된 결과인가’에 대해 질문했었다. 그 래서 인지 이 그림 뒷부분에는 이런 글씨가 쓰여 있다. 이에 대한 아직 그 어떤 결론은 없다. 사랑이라고

사회적 충돌(제약, 사회에

사회에서 사랑이라고 하는

인식 및 행동함-보고배운 사

서 인정받지 못함) 그러나 사

(혹, 진실일지도 모르는) 사랑

랑-

랑이라고 자신 스스로는 생각

을 함.

학습을

통해

↑ 사회적 학습(혹, 그릇된 것 일지도 모르는)

함. ↑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함

생물적 욕구, 사회적 욕구

인격의 욕구, 생물적 욕구

사회에서 사랑의 정의 ‖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


이번엔 ☆도 있다. 부모에게 받는 영향은 수동적이다. 살아있는 동안 부모가 지어준 이 름이서 벗어날 수도 없다. 나도 나를 알 수 없다. 한구석 ‘id’는 항상 외친다. 무엇을 외친다. 이쯤 하이데거를 만났다. 내가 세상에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에는 그 어떤 의미도 없다. 그냥 이곳으로 떨어졌을 뿐이다. 그 세상이라는 것은 애초에 아무것도 남는 것 없다. 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나는 이러한 생각을 멈출 수 없다. 멈추고 싶었다. 너무나. 이 시절 나는 잠에 들지 못했다. 생각이 멈추지 않아서. 이때 나는 그림을 그렸다. 생각을 멈출 수 있는 방 법은 그것 밖에 없었다. 결국 삶의 끝은 죽음이다. 허무하기 그지없다.

현재 2010년, 난 현재 나의 마음에 대해 생각 할 수 없다.


꽃의 웃음은 짧고도 짧다

No.19

watercolor 20081221

한누리


장미, 시간의 옷을 입 다 .

Photo by kkamangkkoma, pentax superprogram


지난 호에서는 우선 이 잡지는 각자의 페이지를 모은 작업물이다. 각자의 고민을 담아 각자가 썼다. 고민거리는 철저히 개별적으로 시작된다. 풀어가는 과정에서는 공유되기도 한다. 고민의 범주는 지정된 바 없다. 자신의 내면에 지극히 천착해 귓속말을 듣는가 하면 불가사의한 세상에 입을 열고 목소리를 지른다. 지난호가 보고 싶으시다면? 메일로 신청해주세요. 무료로 보내드립니다. 충무로 오!재미동, 홍대 SALON 바다비, 부산 국도예술관에서 배포중.

<1호> •출사표 •QnA •밤에 그림자로 걷다 •할멈 •<비몽> =11= •21 또 하나의 시작을 시작하면서 시 작에 관한 되새김 •본질? 구원이 삶에서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속 편한 대책이라고 가정해본다. 현재진행 형이라는 체계가 삶의 구조인 이상, 구원은 그 시간의 연쇄고리에서 저절로 불려나오는 요소 일지도 몰라. 그렇다면 구원은 괴로워하는 인간의 편이 아니라 삶이 자기 종속을 위해 취한 자구책. 오직 인간의 편에서 삶에 반대하는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혹은 삶에 반대하는 순도 높은 인간이라면. 내가 아는 그들은 오래 전에 죽었다. 그들에겐 부조리마저 생을 지탱해줄 의 미를 전혀 갖지 못한,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 아닐까. 본질? 아, 나를 나로 만드는 것! H라는 원숭이가 있어. H라는 원숭이는 자신의 본질을 알 고 싶어 해. 하지만 우리의 눈엔 그냥 원숭이일 뿐이지. H가 본디부터 갖고 있는 성질? 본디 부터 H는 원숭이야. 고유의 특성? H가 알고 싶어 했던 자신의 본질. 영영 찾을 수 없을 거야.


<2호> •발굴 •좋은 집 나쁜 집 이상한 집 •대화하는 방식으로 •청춘 •k에게 보내는 이야기(부제, 문학비평이론에 대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야기 •행복의 문

서울이 말하는 '현대'는 단지 시작한다는 것밖에 모른다. 그리고 무엇을 시작해야하는지 모 르면서 시작한다. 그 때문에 서울시민으로서 나는 2010년의 기우뚱한 시작을 경험했다. 상실 한 것, 상실할 위기에 놓인 것들이 서울을 산책하는 발목을 잡는다. 비평이론을 가지고 작품을 가르는 것이 비평은 아닌데. 비평이론이 무조건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기본’이라는 태도, 비평이론에 대한 논의 자체를 하지 않는 상태, 비평이론을 무조건적 인 적용, 비평이론의 남용과 오용, 이론적용에 대한 강요, 무한존중적 태도, 모두 싫어. 비평 이론은 그 어디에도 절대적이지는 않아. 가설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이것은 진리요, 곧 사실.’ 이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는 걸까? 틀린 감상, 틀린 비평은 없어. 깊이와 다름의 문제 가 있을지는 몰라도. 참과 거짓은 없어.

<3호> •<잘 알지도 못하면서> •<첩첩산중> •홍상수의 영화를 읽는 몇 가지 키워드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징후와 세기> 홍상수의 영화평은 대체로 ‘리얼리즘’, ‘지식인의 위선’, ‘속물’, ‘일상’의 키워드로 해석된다. 홍상수의 영화 속 인물들은 전혀 속물적이지 않다. 일상도 아니다. 지식인의 위선도 없다.

징후와 세기. 나는 무엇의 징후일까. 관객인 나는 도시에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어울려 사는 이 풍경이 생소하다. 아파트 단지에서 차도에서 나무는 환경 미화의 수단일 뿐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거기 있어 온 실재의 공간일 텐 데, 저토록 아름다운 곳이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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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포처] 충무로 오!재미동, http://www.ohzemidong.co.kr 홍대 SALON 바다비, http://cafe.daum.net/badabie 부산 국도 예술관, http://cafe.naver.com/gukdo.cafe


정아람

catastrophemalady@gmail.com

한누리

onetheworld@gmail.com

민상용

miniloo01179@paran.com

제 4호 2010년 5월 1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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