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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

열다섯번째 이야기

Soollae 15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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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술래』는 참여자 각자의 페이지를 모은 작업물이다.

‘각자의 생각을 담아 각자가 쓴다.’

그 생각은 철저히 개별적으로 시작된다. 풀어가는 과정에서는 공유되기도 한다. 범주는 지정된 바 없다. 작게는 스스로의 의문을 찾아내기 위한 페 이지이며, 크게는 애초에 없는 것들을 찾아내기 위한 페이지가 된다. 그 것들을 찾아내는 과정을 또는 찾아낸 것을 각자의 방법으로 이곳에 풀어 놓으려 한다. 제도적인 관문을 통해 길러진 전문가 집단만이 영화와 문학과 삶을 이야 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특정인들만이 넘을 수 있는 문턱이 아 니라, 자신을 실현하려는 인간이라면 모두가 드나들 수 있는 격조 높은 양식이라 생각한다. 삶과 예술에 대한 애증을 갖고 있는 모두가 예술인이 라고 할 수 있다. 일이 아닌 놀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행한다. 그렇기에 『술래』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거나 고통스러운, 필진들의 배움을 자랑하기 위한 장이 아 니다. 글은 필진 스스로 일을 달성하거나 목표를 위한 수단이 아닌 것이 다. 술래는 독자와 함께 숨을 것들을 찾아내는 놀이다. 술래의 작가들은 자신이 술래가 되어 찾은 것들을 지면에 풀어놓고, 독자는 술래가 되어 그 지면 속에서 그들의 의미를 찾는다. 당신은 이 즐겁고도 슬픈 놀이를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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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좋다. 그러나 더 좋은 건 이 놀이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제, 당신이 술래이다. 잡아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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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줌에 침을 뱉어라 . 정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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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편적인 질문 . 한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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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와 아빠 . 민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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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ion / 긴 담배를 피던 당신. Line8elephant

소설에 대한 조감도. 한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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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없습니다. 정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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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와 아빠. 민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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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대한 조감도(鳥瞰圖)

한누리

Soollae #15

onetheworld@gmail.com


“왜 나에게 슬픈 감정을 닦달하는지 모르겠다. 태어나서 죽도록 살다가 죽었다.  좋아도 죽고, 싫어도 죽고, 기뻐도 죽고, 맛있어도 죽고, 졸려도 죽고, 심심해도 죽고,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그냥 아무 때나 죽는 것이다. 죽음은 그렇게 쉽고도 어렵지 않  은 일이다. 산다는 것은 곧 죽는다는 것 아닌가?” -「행복한 나를 中」(창작과 문장, 2002)

한상돈이 독자에게 선사하는 즐거움은, 자신만의 예리하고 독특한 시선으로 삶의 단면들을 낱낱이 파헤치면서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사실들을 늘어놓는 솜씨에서 연유한다. 그는 여타 다른 소설과 달 리 일반적인 소설의 구성단계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실험을 하는 것에 그 어떤 두 려움도 느끼지 않으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실행한다. 다른 작가들이 철저하게 외면했던 보고 싶지 않은 거북 한 진실을 한결같이 작품으로 옮겨 놓는다. 특히 감성적이고 교훈적인 인물들로 가득한 작품들 사이에서 그 는 자신만의 인물들을 통해 독특한 작품세계를 일구어낸다. 그의 소설은 그 어떤 호칭으로도 불리길 포기한 것 같은 사춘기 소년의 모습이다. 주어진 이름, 그 모든 것에 대해 반항하는 모습이다. 물론 이러한 작품경향 으로 그의 작품은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얻었다. 오늘의 문단에서 한상돈만큼 색다르고 특이한 인물을 그려내는 작가를 찾아볼 수 있을까? 첫 번째 장편소설 「행복한 나를」(창작과 문장, 2002) 에서 주인공은 어떠한 상황을 주든 항상 행복하다고 말한다. 특히 자신 아내의 죽음에도 전혀 슬퍼하지 않는다. 또 자신을 제외한 가족들이 모두 불치병에 걸린 후 안락 사를 요구하는 내용의 작품 「손을 씻다」(『the origin of love』, 창작과 문장, 2001)에서는 주인공의 내면과 고민을 보여 주지 않는다. 언급되는 것들은 나를 둘러싼 상황뿐이다. 이름도 없다. 이것은 한상돈 소설의 가장 큰 특징으 로 주인공의 내면과 심리를 의도적으로 감춤으로써 독자가 주인공의 내면을 만들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한상 돈은 이에 대해서 인간의 내면을 자신은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마음, 심리, 정신을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하며 자신은 그것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를 그리지만, 행위의 이유(근 거)는 그 누구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창조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일지라도, 그 내면 을 묘사하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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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소설 속에 존재하는 인물들은 너무나 인간적이기 때문에 현실과 큰 괴리가 발생한다. 설명될 수 없는 것을 그려내려 하면 할수록 더 거북해진다. 그 괴리는 독자에게 소화되지 않는 트림(거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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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가지고 온다. 먹기는 했지만 소화되지 않아 입으로 복받쳐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상돈은 작품에 서‘인간적’이라는 이름의 환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상돈의 「맑놈」(『the origin of love』, 창작과 문장, 2001)은 늑대 인간 맑놈을 두고 인간인지, 동물인지에 대해 사람들이 모여 논의한다. 끝내 늑대인간 맑놈은 어떤 것으로도 규정되지 못한다. 한상돈은 자신의 이야기를 사실처럼 꾸미지 않는다. 몇몇 작품을 빼면 특별히 내면적 설명 없는 그의 작품이 독자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자들은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분명히 주 인공의 내면에 대해 설명이 없음에도‘주인공이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이해하 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설명되지 않는 주인공의 내면의 빈틈에 독자들은 독자가 스스로 내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물의 감정이 없지만 느낄 수 있다. 더구나 그 감정들은 내가 만들어낸 철저한 나 자신의 것이기 게 주인공이 자신처럼 느껴지게 된다. 일상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을 보면 그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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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것과 같다. 한상돈이 만들어 놓은 구멍을 독자 스스로 채워나가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이 매운 그 구멍은 날카롭게 자신을 스스로를 비춘다. 그의 글들은 모두 인간 영혼에 대한 침잠이다.

한상돈은 현재 블로그를 통해 연재하던 작품을 막 끝냈다. 전혀 그의 소설답지 않은 소설 이었다.「너무나 인간적인」기존의 작품과는 달리 도덕적인 내용으로 기존의 작품을 좋아하던 일부는 실망 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평론가 이성희는 연재 초기에 이러한 한상돈의 변화에 대해“드디어 혼자 쓰고 혼자 만족하는 글이 아닌, 진정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특히 주인공이 보여주는 진정한 인간애는 정말 감동적이 다.”고 말했다. 이렇듯 갑자기 변한 스타일에 각자 의견들이 분분해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 작품 마지막 에 인물들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등장인물이 사실은“동물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마 지막에“사실은 동물이었다.”는 한 문장을 포함하지 않았다면 독자는 결코 몰랐을 사실이다. 앞서 진정한 소설이라 평했던 이성희는 이 마지막 문단에 대해“불필요한 시도로 독자를 불쾌하게 만들고, 배신했다. 사 기다.”라고 했다. 특히 평론가 이성희의 경우「너무나 인간적인」은 인간애를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라고 칭하기까지 했는데, 인간이 아닌 동물이라니 정말 배신당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주인공을 자신으 로 환원시켜 작품에 몰입하던 독자들 또한 배신감을 느끼고도 남을 것이다.“사실은 동물이었다.”는 문장 을 통해, 독자는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주인공들이 한순간에 부정된다. 마치 결혼을 약속한 애인이 알 고 보니 유부남인, 친한 친구가 알고 보니 외계인인, BBK라는 회사를 설립했다고 말했던 사람이 알고 보니

Soollae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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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라는 회사를 모른다는 뭐 그런 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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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돈의 이번작품을 통해 소설이란 가상이며, 허상에 불과한 일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허상에 불과한 이야기를 독자는 진짜로, 진실이라 고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계간지 『문학장』 이아람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글을 쓰면, 매번 나는 인간의 내 면을 묘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아무리 해봐도 불가능했다. 인간을 그려보려 했지만 그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주인공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바로 알 것 같았다. 심리묘사 에 워낙 서툴고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현대인 심리의 탁월한 묘사라는 등의 반응을 보고 놀랐다. 정말 놀랐 다. -중략- 어쩔 수 없이 마지막에 동물이었다는 문장을 넣은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내면묘사란 작가가 인간에 대해 완벽히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의 반영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인터뷰를 보 면, 자신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해석한 독자들로 인해 그도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자신에게는 가짜인 내 용이, 그들에게는 진실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독자는 가상이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했다. 그 결과 자신의 의도를 피력하기 위해 극단적이고도 잔인한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너무나 인간적인」은 한상돈이 생각했었던 가설과 맞지는 않았다. 스스로에게는 실패로 끝난 실험이 독자 에게 과연 무엇을 남겼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상돈은 진짜와 가짜의 그리고 진실에 대한 의문을 풀기위 한 실험을 계속해나갈 예정이다. 진짜라고는 없는 허상이 가득한 소설이라는 세계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가 앞으로 보여줄 작품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진짜가 아닌데도 진짜로 보이는 세계, 가짜가 더욱 진짜로 보이고,  진짜는 정말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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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llae #15

mcb-girl@hanmail.net

정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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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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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성복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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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월별 메모, 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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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뎃손가락을 꼿꼿하게 세우려면 주변 손

가락들은 힘껏 저자세로 고정돼야 한다. 그걸 스캐너의 유리판에 마주 대어 봤다. 초일류적인 중지(中指)를 지탱시키느라 유리판에 힘껏 눌린 손마디와 손바닥엔 유독 하얗게 도드라진 부분 이 생겼다. 그것은 어떤 표정과 닮았다. 이를테 면 출근길, 등굣길의 인구. 전광판에서 지하철 이 도착한 지점을 확인하며 전전긍긍 개찰구를 통과해 지하철에 몸을 비집고 간신히 착지. 한 동안 발 디딜 틈 없는 그 안에서 우리는 아슬아 슬하게 몸을 밀착한다. 개찰구는 일상의 그들을 앵무새처럼 위로한다. "환승입니다." 그러나 환 승을 위하여 버티는 사제들의 얼굴에는 슬픔도 분노도 아닌 파리한 수긍의 표정이 고여 있다. 그 이름은 우울이다. 그리고 그런 세계는 이상 하게도 좆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저 손의 형상처럼. 원하지 않는 환승을 어디까지 해야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제 그만 자기 자신 이라는 종착역으로 귀가할 수 있을까? 中指로의 환승 고리를 끊어버리고 중단할 때, 질식했던 자기 욕망이 피어오를 때, 온전하게, 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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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와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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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민상용

miniloo01179@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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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 전.   망했다. 또 망했다.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한 걸까. 산수경시대회 시험지를 들고서 한동안 충격 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15점. 그러니까 세 문제를 맞혔다는 얘기다. 세상에 아무리 수학을 못한 다고 하지만 눈 감고 다 찍어도 다섯 개는 맞아야 정상이 아닌가 말이다. 시험시간 40분을 꽉 채워 성실히 풀어낸 점수가 15점이라니. 나는 수학 쪽으로는 진정으로 바보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자, 시험지 다들 받았지? 오늘 집에 가서 부모님 보여 드리고, 사인 받아오는 것 잊지 마. 선 생님이 나중에 부모님하고 다 만나서 이야기하니까 속이려 들지 말고 꼭 받아와. 그리고 죽지 말 고 돌아와.”   웃으라고 하신 말씀이 가시가 되어 가슴에 와 박혔다. 나는 살아날 수 있을까. 나는 부모님께 보여드릴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늦게 얻은 아들에게 기대가 큰 아빠에게 이 시험지를 보여드렸 을 때, 아버지의 얼굴에 비칠 실망의 기색을 정면에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 얼 마나 바쁘게 일하시는지 나랑 가는 낚시가 그렇게 행복하다 하시더니 요샌 낚시 갈 시간도 없으실 정도다. 그런데 15점 받은 시험지를 대체 어찌 보여주란 말이냐. 악마는 내게 힘든 아빠에게 짐이 되진 말자는 말로 나를 유혹했고, 천사는 내게 거짓말은 하지 말라는 아빠의 가르침을 다시 떠올려 보라며 내 정신을 잡아 세웠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 6일 전. “어제 나눠준 산수경시대회 시험지 다들 가지고 왔죠? 얼른 내세요.” 다들 가방에서 시험지를 꺼냈다. 어제 아빠한테 맞아서 죽을 뻔했다느니, 엄마한테 종아리를 몇십 대나 맞았다느니 엄살을 피우는 애들도 있는가 하면, 잘 본 아이들은 칭찬을 들었네, 선물을 받았 네, 저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시험지를 선생님께 가져갔다. 나도 시험지를 꺼냈다. 내 시험지는 잔뜩 구겨져 있었다. 귀퉁이 한쪽에는 엉성한 아빠의 사인이 쓰여 있었다. 시험지를 내자 선생님께선 왜 이렇게 구겨졌느냐고 물으셨다. “아빠가 이것도 점수냐며 화가 나셔서 시험지를 다 구겨버리셨어요. 사인도 안 해주신다는 걸 겨우 받아왔어요.”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 선생님께서 과연 12살 어린이의 거짓말을 간 파 못 하실까.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부끄러워서 고개도 들 수 없었다. 그런 내게 선생님은 말없 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시면서 인자하게 웃으셨다. 다음 시험은 잘 보라는 말과 함께. 자리로 돌아온 나는 선생님께서 두드려 주신 어깨를 만지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는 안도감이 아니라 똥 싸고 밑 안 닦은 것 마냥 한없이 찝찝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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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거짓말 진짜 잘한다? 그런 애인 줄 몰랐는데. 좀 실망이네.”  아뿔싸. 고개를 돌리니 거기엔 서연이가 서 있었다. “내, 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다고 그래? 네가 봤어? 봤냐고?” |

“못 봤지. 너희 아버지가 너의 시험지를 구긴 모습을 나야 못 봤지.” “그렇게 치면 나도 너의 아버지가 네 시험지에 사인한 거 못 봤거든?” “그래. 못 봤겠지. 근데 나 요새 주���인 거 알지?” “그게 뭐 어쨌는데?” “주번은 누구보다 학교 빨리 오는 거 몰라? 나 오늘 우리 반에서 제일 빨리 학교에 왔어.” “웃기시네. 내가 제일 빨리 왔거든?” “응, 맞아. 네가 나보다 더 빨리 왔더라고. 그래서 나는 네가 거짓말했다는 걸 말할 수 있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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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더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늘 아침, 학교에 일찍 와서 했던 나의 행동들을 조서연은 모두 본 것이었다. “너, 이거 비밀로 해주면 안 돼?” “좋아. 비밀로 해줄게. 대신 조건이 있어.” “뭔데?” “일주일 이내로 부모님께 솔직히 말씀드리고 내일 시험지 돌려받게 되면 보여 드릴 것. 네가 이것만 지킨다면 선생님께는 영원히 비밀로 해둘게.” “진짜? 음, 알았어. 내가 그 약속 꼭 지킬게. 그니까 선생님하고 애들한테 절대로 말하지 마.” “알았어. 일주일이야.”

: 하루 하고도 여덟 시간 전. - 잠시 후 “산수 경시대회? 아, 참. 내 정신 좀 봐. 그래 그게 있었지. 그거 결과가 나왔겠구나. 점수가 나왔니?” “그럼요, 아주머니. 저번 월요일에 나왔는걸요. 아직 석우가 말 안했죠?” “뭐? 그렇게 오래됐어? 아니 이게 근데 왜 안 알려주는 거야 대체! 이게 아직 결과 안 나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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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당하게 말해놓고는 그게 다 순 거짓말이었잖아.” “시험을 엄청 못 봤거든요. 아무튼, 제가 이 얘기 했다는 거 석우에겐 비밀이에요? 아셨죠?” “아이고 얘 비밀이고 뭐고 간에 이놈의 자식 집에 들어오기만 해봐라 그냥. 얘는 학교 갔다가   왜 이렇게 늦게 오고 지랄이야.” “석우 요새 애들이랑 학교 끝나고 야구하잖아요. 야구에 푹 빠졌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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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오늘 들어오기만 해봐라. 그 야구 방망이로 엉덩이를 두들겨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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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하고도 다섯 시간 전. “너 엄마한테 잘못한 것 있어 없어?” “네? 잘못한 거요?” “엄마 큰소리 내기 전에 얼른 말해. 엄마한테 잘못한 거 있어 없어?”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 표정을 보니 나를 떠보기 위한 말은 아닌 것 같 은데. 나는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솔직히 가장 켕기는 것은 무엇보다 시험지였지만 그것은 들킬 리가 없었다. 조서연은 굳게 나와 약속을 했고, 아직 일주일은 지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지은 여 러 죄 중에서 가장 가벼운 것을 먼저 얘기하기로 했다. “얼마 전에 엄마가 시킨 심부름에서 잔돈이 남았는데, 그거 엄마 안 드리고 제가 가졌어요.” “오, 그래? 그런 것도 있었어? 좋아 그럼 한 개. 또?”    또? 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걸려도 단단히 걸렸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무엇을 말해 야 하지? “어제, 저금통에서 몰래 동전 꺼내서 오락실에 갔다 왔어요.” “오호, 도둑질까지? 그것도 오락실에 갖다 썼어? 좋아 그럼 두 개. 또?”    헉. 아니 이것도 아니란 말인가. 그럼 대체 무엇 때문에 엄마는 화가 난 거지? 그날 난 결국 네 개의 잘못을 더 말한 뒤에야 비로소 시험지에 대한 거짓말을 솔직하게 말씀드리게 되었다. 엄마는 시험지 사건에 네 개의 잘못된 행동을 더해 내게 매를 드셨고, 나는 엄마 앞에서 ‘잘못 했습니다.’를 연방 외치며 그 매를 다 맞았다. 그러나 엄마가 때리는 매는 맞을 수 있었다. 엄마 에게 매를 맞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제발 엄마가 아빠에게만은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 생각할 만큼 난 그때 어리기도 하고, 약삭빠르기도 하면서 못된 것만 배운 나쁜 아이였던 것 이다.

: 두 시간 전.    오랜만에 아빠가 집에 일찍 들어오셨다. 아빠는 오자마자 나를 찾았다. 나는 얼른 거실로 나 와 얼굴을 비췄고, 아빠는 우리 아들 공부 잘 했느냐며 웃으셨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얼른 엄 마 얼굴부터 보았다. 엄마는 점수가 너무 낮아 아빠에게 말도 못하겠다고 말씀하시긴 했지만, 엄 마 역시 아빠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 다. 나는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제발 말씀드리지 말라고. 어머니는 애써 내 눈빛을 외면하신 채 저녁을 차리시러 주방으로 가셨다.    저녁 시간. 아빠는 아들의 밥그릇에 연방 반찬을 올려주시느라 바쁘셨다. 나중에 자기 제삿 밥 차려줄 놈이라고 연신 챙겨주신 덕에 내 밥그릇은 맛있는 반찬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나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 지 알 수 없었다. 오로지 나의 눈은 엄마의 입만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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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애기 아빠.” “응?” “석우만 주지 말고 당신도 좀 먹어요.” “응 알았어. 나도 많이 먹고 있다구.” |

“저……. 애기 아빠.” “아 왜? 뭐 할 말 있나? 뭔데 그래.” “석우가……. 요 얼마 전에 산수시험 본 거 아시죠?” “응 알지 그럼. 그거 뭐 결과 아직 안 나왔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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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모두 내려놓았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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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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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 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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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

민상용 miniloo01179@paran.com 정아람 mcb-girl@hanmail.net 한누리 onetheworld@gmail.com

김진희

디자인 shicj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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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1년 4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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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2011 soollae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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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와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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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대한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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