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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목적 Mission of Global Korean Nurses Association •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한인간호 전문 인력들의 정보교류 및 발전을 위한 네트워크를 구성 Share information and further upgrade nursing profession • 전문직간호사로서의 발전을 위한 간호전문단체 및 우수인력개발과 양성 Provide professional assistance and leadership program • 간호사들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여 국가 발전과 사회발전에 기여함에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Help improve quality of Korean nursing workforce and meet community needs

10개국 간호사들 한 자리에 ...

재외한인간호사 한국간호 100년! 새로운 도약!

▲ 2011년 10월25일 세계 10개국 150여명의 한인간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국립 고궁박물관에서 제1회 재외한인간호사대회를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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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재외한인간호사


자축의 글

신연옥 재외한인간호 60년 역사를 문전에 두고 먼길을 마다치 않고 함께 모였습니다. 모국의 어머니로서 이민으로 떠난 간호사를 품어 않고 오랜 세월 지켜본 대한간호협회와 함께하는 오늘 이자리는 재외 한인간호사들이 든든한 성인으로 성장하여 모국으로 향한 문을 열고 서로 다독이며 협력을 다짐하는 날입니다.

전 남가주간호협회장

뜨거운 가슴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고 반가워 껴안으며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합니다. 간호사들의 헌신과 전문지식의 교류는 건강한 삶을 위함이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따뜻한 사랑입니다. 튼튼한 연합으로 보다 성숙한 한인간호사 모임으로 거듭남을 격려하고 기대하며 자축의 파티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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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재외한인간호사회 구성을 위한 준비대회 1부 사회 김혜미 남가주간호협회부회장

경과보고

남가주간호협회/

안마리 회장

환영인사

재외한인간호사대회/

유분자 준비위원장

축하연주 / Flute

대한간호협회/

성명숙 회장

UCI 간호학과 4학년/

오선영

각지역 대표 인사및 현황보고(가나다순)

한국/ 대한간호협회 조직 및 정책 추진과제 미국/ 남가주한인간호협회 대뉴욕한인간호협회 시카고한인간호협회 북가주한인간호협회 북텍사스간호협회 아리조나간호협회 캐나다/ 캐나다온타리오간호협회 호주/시드니간호협회 유럽/재오한인간호협회(오스트리아) 스웨덴간호협회 독일의사소통을 위하여 한독간호협회 재독일대한간호사회 베를린간호요원회 함부르크여성회(간호사)

성명숙 회장 안마리 회장 윤종옥 회장 김희숙 회장 박희례 회장 김옥금 회장 강선화 회장 박원용 회장 조경희 회장 김동주 회장 허문정 회장 하영순 대표 윤행자 회장 황춘자 회장 이석순 회장 박현숙 회장

사회 권순재 남가주간호협회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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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의 안건

유분자 준비위원장

광고 및 폐회 (기념 촬영)

사회자

2012 • 재외한인간호사


2부 - 초청 만찬 등

MC 정영태

록(5:30~6:00pm)

초청강연

Dr. Ho Bae

“The Silent Crisis Underdiagnosis of Hepatitis Band Liver Cancer in the API community”

식 사

개회사 개회기도

사회자 미주성결대 명예총장/

국민의례 국기에대한경례 미국국가 애국가 경과보고

다함께 샬롬여성중창단 다함께 남가주간호협회/

축하영상 환 영 사 축

이정근 목사

안마리 회장

재외한인간호사 60년 재외한인간호사대회/

유분자 준비위원장

대한간호협회/

성명숙 회장

후원금 전달

대한간호협회/

성명숙 회장

축하공연

한 사람, 님이 오시면

주제강연

이민 역사속 간호사의 역할

21세기 간호전문직의 비전

샬롬여성중창단 미주한인재단/

윤병욱 전국명예회장

LA카운티 보건국/

모니카권 국장

각 나라 및 지역대표 소개 노 래

사랑으로

광고 및 폐회 (기념촬영)

유분자 준비위원장 다함께 사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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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사

앞으로의 50년을 위해 주춧돌을 놓는 대회가 돼야 유분자 준비위원장 제1회 재외한인간호사회

참으로 긴 세월을 멀리 돌아왔다는 느낌입니다. 간호사의 해외이주가 시작된지 어언 반세기 를 맞습니다. 1960년대 서독과 미국에 진출하기까지 그 시간과 공간의 부피가 대서양과 태 평양의 두 바다를 합친 것 보다 더 크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반세기에 걸친 세월 의 고난이 이제야 튼실한 열매를 맺는 것 같아 새삼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그때 그 시절도 돌이켜 보면 오늘을 잉태하기 위해 그렇게도 어려웠나 봅니다. 이제는 ‘글 로벌 코리아 네트워크’의 소중한 자산으로 인정을 받고 있어 제 자신 얼마나 가슴 뿌듯한 지 모릅니다. 어찌 보면 간호사만큼 열정과 도전의식, 긍정의 마인드를 갖춘 직종도 드물 것 같습니다. 언 어와 문화, 풍습이 전혀 다른 외지에서, 그것도 주류사회의 전문인력과 당당히 맞서 삶의 둥 지를 틀었으니 말입니다. 마침 지난해 10월 대한간호협회 주최 외교통상부, 보건복지부, 외무부 후원으로 제1회 재 외한인간호사대회를 개최하여 재외한인간호사 150여 명을 초청해 그곳에서 네트워크의 필 요성과 당위성이 일치되어 그 자리에서 제가 전혀 예상치 않은 준비위원장이란 중책을 떠 밀리다시피 맡았습니다. 이미 70 중반을 넘긴 나이여서 한사코 고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제1회재외한인간호사회 구성을 위한 준비대회를 갖습 니다. 전세계 간호사들이 한마당 한마음 잔치를 벌이는 날입니다. 50년만에 처음으로 한자 리에 모여 앞으로의 50년을 얘기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간호사들의 해외이주 100주년을 맞는 그날,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후손들로부터 냉엄한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 다. 오늘 이 자리가 그저 친목 단합대회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오늘 이 모임에서는 초대 회장단을 뽑게 됩니다. 40~50대의 젊고 유능한 분들이 주축이 되 어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누가 되든 앞으로 1년 동안은 그 분을 도와 이 단 체가 정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각오입니다. 그것이 준비위원장으로서의 책무이자 소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기금마련과 자체 웹사이트 구축, 네트워킹에 필요한 인명록(Who’s Who) 제작, 그리고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인간호사들을 대한간호협회와 협력하여 한국과 미국 유럽의 대학이나 의료기관과 연계해 협력체제를 강화하는 일 등이 될 것입니다. 이번 모임에서 심도있게 논의했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오신 대한간호협회 성명숙회장님, 신성례이사님, 독일, 스웨덴, 시카 고 그리고 증경회장님, 각 동문회장님 그리고 여러 내빈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리고 존경하며 또 사랑합니다. 오늘 이 모임이 소기의 결과물을 낳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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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재외한인간호사


축사

유분자 준비위원장님을 비롯한 각국의 재외한인간호사 대표 여러분, 만나 뵙게 되어 반갑 습니다. 아울러 오늘 재외한인간호사 네트워크를 위한 모임을 개최하게 된 것을 매우 뜻 깊게 생각

성명숙 회장 대한간호협회

하며 참석하여 주신 각국 대표자 여러분께 대한간호협회를 대표하여 축하의 말씀을 드리 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 간호사들은 한국의 근대 여성교육의 선구자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는 전문직 여성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또한 강인한 정신력으로 국가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굳은 사명감으로 직분을 충실히 실천해 왔습니다. 특히, 6, 70년대 가난했던 삶의 현장을 뒤로 두고 이역만리(異域萬里) 말도 통하지 않은 타 국 땅에 뛰어들어 몸 바쳐 일해 온 우리 한인간호사들의 노력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원동 력을 이끌어온 영원한 정신적 씨앗이었으며, 여러분이 흘린 땀과 눈물은 한국현대사의 한 장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간호는 이제 간호학의 발전과 간호연구방법의 개발, 그리고 전문 간호사로서의 위 치 획득으로 명실 공히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전문직으로서 한 단계 제고된 높은 이상을 향 하여 발전하고 있습니다. 대한간호협회는 올해에도 한국 간호사들의 권익과 복지를 위하여 더욱 더 정진하고, 간호 전문직의 위상을 높일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할 것입니다. 특히, 국민 생활 속에 살아 숨 쉬는 간호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간호사들의 근무환경을 개 선하고 간호사의 새로운 역할을 개척해 나가는데 힘을 쏟을 것입니다. 또 내실을 다지면서 국민으로부터 사랑받고 신뢰받는 간호를 만들어 나가는데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아울러 간호사가 의료인으로서 변화하는 시대적 요구에 걸맞은 간호 전문직의 역할을 수행 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이를 통하여 보다 많은 우수한 간호 인력이 배출되는 기반을 다져나갈 것입니다. 한국에 있는 모든 간호사들은 우리나라 간호사가 외국에 진출하여 다른 민족의 건강증진을 위하여 공헌하고 있다는 사실에 참으로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울러 각국 한인사회 조직의 발전을 위하여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계신 재외한인간호사께 믿음직하고 자랑스러 운 한국의 간호사가 되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여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끝으로 오늘의 뜻 깊은 모임을 통하여 자랑스러운 우리 재외한인간호사들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시고 발전적인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힘들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오늘 모임을 준비하신 유분자 준비위원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존경과 함께 감사를 드리며, 오늘 행사가 우리 한국간호의 발전을 위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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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새로운 100년의 도약

전세계에 퍼져 활동하는 한인간호사의 정보교류와 간호 전문인력의 “환 글로발

윤병욱 전국명예회장 미주한인재단

네트윅”(Trans Global Network)를 목표로 세계간호사대회를 창립하는 것은 한인 이민사의 발전을 위하여 축하를 드려야 할 일입니다. 이미 10년전 남가주한인간 호사협회가 유분자회장중심으로(해외한인간호사50년사)를 발간하여 한인간호사 들의 세계적인 공헌과 역할을 조명한바가 있습니다. 미주한인 100년의 후반기인 960년대, 고급인력인 간호사, 의사, 전문기술인들 의 취업이민과 가족이민을 주도하여 250만 미주한인사회의 기틀을 마련한것은 1903년 노동계약으로 한인들의 미주정착의 역사적 사건에 비교되는 큰 공적이 었습니다. 더욱이 초기 노동이민의 열악했던 하위직이 아니고 고급인력인 간호 사인 RN의 자격을 갖기 위하여 이민초기 개척자의 정신으로 땀과 눈물을 흘리면 서 스스로 강의와 훈련과정을 교회와 학교를 빌려 수천명의 수강생을 배출하여 Registered Nurses로 합격시킨 노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오늘날의 미주사 회의 초석이요 금자탑이었습니다. 저는 이 기회에 여러분 스스로가 60년대 취업이민의 첫차를 타고 서독으로 미국 으로 스스로 찾아 개척하며 역경을 이겨낸 것입니다. 한국에서 닦았던 교육의 뒷 받침이 있었고 100주년 전반기의 뿌리도 기억하여 역사를 넘어 미래를 바라보 아야 할 시기입니다. 미주에서 최초의 RN으로는 1927년 유타주에서 간호사시험에 합격한 Mary Lee( 이미선)가 있었습니다. 1908년 하와이 이민자의 2세로 태어나 백인보다도 높 은 종합병원의 슈퍼바이저로 캘리포니아, 펜실바니아에서도 RN을 패스, 50년의 간호사로 봉사한 분입니다. 어떤 때 환자방에 들어가면 백인간호사를 요구하는 등 수모와 차별도 많이 받았다고 했습니다. 하와이 민찬호 목사의 부인인 Mollei Hong, Eleano Chow도 있었습니다. 의사로 최초 서재필, 하와이의 양유찬, 이승 신, 김유택, 이용설, 구연승, 이영숙(초대보건부장관), 김용성, 김창세, 이허경, 이 종철, Jerry Rhee, Richard Hahn, Charles Yoon, 올림픽 메달리스트 Sam Lee, 김창하 박사 등 연구하여야 할 분이 있습니다. 1920년 1월 31일 상해임시정부시절, 상하이에서는 적십자사 간호대 개교식이 열렸습니다. 안창호가 정부 내각으로 있을때 간호사를 양성할 목적이었고 적십 자병원에서 간호사를 양성했다는 기록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말함은 새로 구성되는 “재외한인간호사회”의 발족 즈음을 축하하면서 해외한인 간호사의 100년의 영역을 더욱 확대하여 해외한인간호사의 뜻있는 역사창조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뜻입니다. 다시한번 여러분들의 역사적인 업적에 감사와 존경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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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재외한인간호사


특별 기고

글로벌 네트워크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 필자가 소속돼 있는 기관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보건국(Department of Health Service)이다. 보건국에는 공 중보건을 담당하는 퍼블릭 헬스(Public Health)와 입원환자를 담당하는 서비스 디파트먼트(Service Depart-

모니카 권 간호국장

ment), 그리고 외래진료와 특별서비스를 취급하는 이동진료네트워크(Ambulatory Care Network, ACN) 등

LA카운티 보건국

세 부서가 있다. 필자는 ACN에서 간호국장(chief nursing officer)을 맡고 있다. ACN의 조직은 방대하다. 두 곳에 복합이동진료센터(MACC)가 있으며 19곳에 포괄헬스센터(Comprehensive Health Center)와 보건소를 운영하고 있다. 직원들만 해도 2천명이 넘는데 이 중 8백명 가량이 간호사 들이다. ACN의 당면 목표와 비전은 오는 2014년까지 의료개혁과 관련한 정책을 개발하고 조직과 시스템을 완비해 직원들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다. 표준화된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해 고객(환자) 만족도를 높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오는 환자만 받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탈피해 우리가 직접 환자에 다가가(reach out) 가족과 함께 예방계획과 치료계획까지 마련해 건강한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환자들이 꼭 병원이나 보건 소를 방문하지 않고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하며 또 병원 응급실을 찾거나 입원하는 사례를 방지, 예산낭 비를 줄이는 것도 의료개혁의 주된 목표 중 하나다. ACC본부로 발령받기 전에는 지역 헬스센터에서 수간호사, 행정책임자, 그리고 보건소장 대행을 동시에 혼 자 담당하는 등 중책을 맡았다. 여러 명으로 구성된 팀이 있는 곳보다 1인운영체제가 훨씬 좋았다는 평가 결 과가 나와 자부심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결과는 혼자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단단한 ‘팀워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바로 시너지(synergy)다. 본부에서 일을 시작 하고 나서는 리더십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다. 눈 앞에 있는 것만 해서도 안 되고, 나 혼자만 잘해서도 안 되고, 무조건 빨리 하는 것도 안 되고…. 몇몇 소수의 인력으로 가능한 것도, 혼자도 할 수 있는 것도, 팀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점을 터득하게 돼 진정한 지도자의 덕목이 무엇인가를 새삼 깨닫게 됐다. 매 사에 관심을 갖고 분석을 해보는 습관도 중요하지만 항상 ‘dependable, reliable, available’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도자의 자세라는 걸 재확인해 가며 일하고 있다. 최근엔 Medical Home Management Care 와 Managed Care System에관련된 교육프로그램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이처럼 실무에서 습득한 경험과 지식이 재외한인간호사회에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창립대회가 우리 간호사들의 현재와 미래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준비과정에서 알게 돼 퍽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한 세대를 보내고 다음 세대를 품어 안아야할 과도기 과정에 들어서 있다. 이민 1세대는 거의 현 역에서 물러나 은퇴한 상태다. 2세들의 간호계 진출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는 있지만 이들의 정체성과 단체의 필요성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낮은 형편이다. 이들에게 뿌리의식을 심어주기위해서라도 재외한인간호사회 와 같은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이와 함께 본국의 대한간호협회와도 적극적인 교류에 힘써야 할 것 같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간호협회 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 간호계 발전에도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확신한다. 그 옛 날 미국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우리나라의 교육과 의료제도가 달라진 것 처럼 재외한인간호사회가 주축이 된 다면 다른 나라, 지역에도 도움의 손길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유분자 위원장님과 안 마리 선생님을 보며 그 분들의 열 정과 집념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재외한인간호사회라는 글로벌 네트워크가 성공적으로 자리잡기 위해선 우리 모두 하나의 생각으로, 하나의 목적의식을 갖고 시너지 효과를 발휘햐야 한다는 점을 회원 각자가 숙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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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 논단 미국 간호 역사

유분자 | 한국 적십자사 초대 간호사업국장, 재미 간호협회 초대 회장,

남가주한인간호협회 회장, LA 와 OC가정법률상담소 이사장, 글로발 어린이재단 서부 회장을 역임. 200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여하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 현 소망소사이어티의 이사장. 저서로 ‘내일은 다른 해가 뜬다’

▲ 1964년 제33회 대한간호협회 총회

미주이주간호사들의 애환 50년… 이젠 기록으로 남겨야

당시 보잘 것 없었던 조선의 자화상을 고물 영사기를 틀어 보는 것 같아 일말의 서글품마저 느끼게 해준다. 간호사들의 미국취업은 1960년대 초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이 민법 개혁으로 길이 트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유럽인

미주한인이민사엔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이 나온다. 하와이의 한 병원 앞에서 두 명의 한인 여성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 이다. 간호사 복장을 한 여성은 20대 초반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진만 달랑 전해져 내려올 뿐 사진 속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모 른다. 사진을 찍은 것도 1920년대 쯤으로 추정될 뿐이다. 이 여성들이 한국에서 이주해 왔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1903 년 이민선을 타고 온 하와이의 사탕수수밭 노동자들이 이른바 ‘ 사진 신부’와 결혼해 낳은 딸로 보인다. 이들이 어떤 경로로 간 호사가 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아마 언어소통의 장애가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진료를 위해 병원 측이 단기 훈련을 거쳐 간호 사로 취업시킨 게 아닌가 싶다.

10 2012 • 재외한인간호사

▲ 외국인 군의관 및 간호장교들

김은순, 김영진 소령이 일본 동경 방문 ▶


이민을 우선으로 하고 있어 아시아인들의 이 주를 거의 원천봉쇄했다. 한국전쟁 고아와 결 혼으로 인한 입국 말고는 미국에 영주할 수 있 는 길이 없었다. 케네디는 대통령에 취임하자 각국별로 이민 쿼터를 할당한 이민법을 ‘비미국적(un-American)’이라며 혁파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민개 혁법은 이매누얼 셀러와 필립 하트 두 의원이 공동발의해 흔히 ‘셀러-하트 법안’으로 불린다. 이민개혁을 적극 추진한 케네디는 그러나 이 법안의 통과를 보지 못한채 저격을 당해 숨을 거뒀다. 그를 승계한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1965년 이 법안에 서명, 정식으로 발효됐다. 아시 아인의 이민 허용과 직계가족 초청, 전문인력의 취업 등을 골자로 하

도 생각지 못해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는 이 법안은 존슨 대통령이 뉴욕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서명해 미국

그래도 한국서 가족들을 데려오려면 돈을 더 벌어야 했다.

이 이민국가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미국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그레이브야드 쉬프트(graveyard

이 법안은 3년 후인 1968년부터 시행돼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인력의

shift)’를 마다하지 않았다. 보통 자정무렵에서 새벽 사이의 밤

미국진출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됐다. 간호사의 서독파견과 비슷한

근무를 지칭한다. 얼마나끔찍했으면 ‘그레이브야드’ 곧 묘지

시기에 미국도 문호를 활짝 개방한 것이다.

란 말을 썼을까 싶다.

서독파견 간호사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며 병원에서 근무한 것과는

한인간호사들의 또다른 스트레스는 RN시험이었다. 한국의

달리 태평양을 건넌 간호사들은 철저히 개인위주의 취업이었다. 미국

간호사 자격증은 참고만 할 뿐 인정해주지 않아 미국서 다시

병원에 이력서를 보내 취업이 잠정 결정되면 고용계약서를 근거로 비

시험을 봐 합격해야 제대로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시험준비

자를 발급받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를 하느라 하루 24시간을 쪼개 써야하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1970년대 초 취업한 간호사들은 ‘3중고’를 겪었다. 언어소통능력의

시험이 오죽 힘 들었으면 한국의 사법시험에 빗대 ‘RN고시’라

부족과 RN시험, 그리고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는 말이 나돌았을까.

한국서 아무리 영어에 자신이 있었다해도 본토에 와보니 모든게 생소

1980년대 초 로스앤젤레스에선 RN강좌가 열렸다. 선배 간

했다. 미국인 의사가 “환자에게 세븐업(7-Up)을 주라”는 처방을 잘못

호사들이 후배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낮에는 병원에서, 밤에

이해해 침상에 누워있는 환자를 7번이나 일으켜 세웠다는 에피소드

는 지인의 사무실을 빌려 무보수 강의를 했다. 그야말로 실전

는 이곳 한인 간호사 사회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우스개다. 그때만

에 바탕을 둔 ‘족집게’ 과외와 요령 등을 전수해줬다. 지낼 곳

해도 한국선 ‘세븐업’이 없었던 시절이어서 소프트드링크라고는 꿈에

이 없는 가난한 후배들을 자신의 집에 데려가 숙식까지 제공 한 분들도 적지 않았다. 이와 함께 남가주 간호협회 회장과 초대 재미간호협회 회장을 지낸 필자가 사재를 털어 재미한인간호신보를 발행해 한인간 호사들의 네트워크 구축에 힘을 쏟기도 했다. 한인간호사들의 미국 이주도 이제 거의 반세기에 접어든다. 한국이민자 열 명 중 한 명은 간호사를 연결고리로 해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자와 그의 부모 형제 자매들까지 초청해 지난 수십년 동안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 로 늘어나게 됐다. 이제 1세대 간호사들은 고령이어서 대부분 현역에서 물러나 있다. 이들이 세상을 뜨기 전 한인간호사들의 남긴 발자취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학문적으로 고찰해야 할 시점이다.

▲ 국제대회(ICN)에서 이금전 선생, 홍옥순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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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 논단 서독 간호 역사

하영순 | • 재독한인세계상공인 총엽합회장

• 1964년 서울여자간호대학 졸업 • 1966년 파독간호사 내독

‘디아스포라’의 길을 떠난 서독 간호사들은‘인간승리’의 주역 지난 5월 초 서독파견 간호사의 아들이 미국 상원 인사 청문회를 통과해 연방판사로 인준됐다는 소식은 이곳 한인사회는 물론 한국에서까지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 다. 미국의 연방지방법원과 항소심, 대법원 판사는 종신 직이다. 헌법규정에 따라 스스로 사임하거나 재임 중 사 망, 또는 의회의 탄핵을 받지 않는 한 그 직을 평생 유지 하게 돼있다. 법조인 최고의 영예가 바로 연방판사다. 존 리(한국명 이지훈) 판사의 어머니 박화자씨는 1960 년대 서독으로 파견됐던 간호사다. 그곳서 결혼해 장남 존 리 판사를 낳았다. 계약기간이 끝나자 다시 미국 시 카고로 이주, 병원에서 근무하며 아들이 아메리칸 드림 을 일구도록 헌신적이고도 희생적인 뒷바라지를 했다. 아들의 연방판사 임명으로 50년 전 서독 파견 간호사들 이 다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한국여성의 해외이주는 서독 간호사들로부터 비롯됐다 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들이 서독에서 보낸온 외화 는 경제발전의 젖줄이자 혈관으로 한국의 근대화 과정 과 깊숙이 맞물려 있다. 1960년대 초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필요한 외국차관을 끌어오기 위해 하얀 제복의 간호사들은 그렇게 한국땅 을 떠났다. 1970년대 중반까지 거의 10년동안 서독에 파견된 간호인력은 1만226명으로 집계됐다. 근무기간 은 3년, 봉급의 일정액은 반드시 송금해야 된다는 조건 을 달고서였다. 당시 서독파견 간호사들의 송금액은 한국상품 수출액 의 36%를 차지했다니 이들이야말로 한국인들이 보릿 고개를 넘길 수 있게 도와준 일등공신이었다. 한국 간호사들이 서독에 첫발을 내딛은 건 1966년 1 월이다. 일본의 JAL 전세기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공항 에 내린 1진은 모두 128명이다. 대부분 한복차림으로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 당시 독일언론들의 집중취재 대 상이 됐다. 12 2012 • 재외한인간호사


이후 ‘한국 간호사=상냥한 미소’라는 기사가 널리 소개돼 6.25 전쟁의 참화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있던 독일인 들의 한국관을 크게 바꿔놓았다. ‘한국인 천사들’의 도움을 받지 않은 독일인이 없을 정도라는 찬사도 쏟아졌다. 초창기 한국 간호사들의 한달 봉급은 3,500마르크. 한국 에선 장관급 월급이라고 부러워했지만 적금붓고, 가족 생 활비 부치고 나면 수중에 달랑 50마르크 정도가 남았다고 한다. 그래도 이 돈이 가족을 먹여 살리고 나라의 발전에 소중하게 쓰인다고 생각해 피곤한 줄 모르고 살았다. 독일에서의 첫 3년은 그러나 혹독한 시집살이나 다름없었 다.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현장에 투입돼 알코올 묻힌 거즈 로 시체 닦는 일, 환자들의 배설물을 치우고 양동이 들고 유리창 청소 등…. 대부분 밤이면 욱신거리는 팔다리를 끌 어안고 엉엉 울었다. 이런일 하려고 이곳까지 왔나 하며 분 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 1966년 1월 31일 제 1진으로 도착한 128명의 한국간호사들

수퍼바이저의 눈은 그러나 매서웠다. 본국으로 쫓겨나지 않으려면 이를 악물고 일해야 했다. 시간을 칼 같이 지켰 고,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되면 눈치 하나로 재빨리 움직였 다. 동양인 여성을 기피하던 환자들도 나중엔 주사를 아 프지 않게 놓는다며 한국 간호사만 찾았다는 일화도 전해 진다. 서독 방문 중인 박정희 대통령 부부와의 만남은 이미 한국 근대화 역사의 고전으로 꼽히다시피 됐다. 서로 손을 맞잡 고 쏟아낸 그 눈물이 결국은 한국의 오늘을 만든 성장동력 이 된 것이다.

▲ 1970년 한인간호사들의 언어교육을 위한 모임

조국 근대화의 과정에서 민들레꽃이 된 서독파견 간호사 들. 현재 독일에 남아있는 간호사는 800여 명으로 추산된 다. 개 중에는 학문의 길로 접어들어 간호대학교수가 된 경 우도 있고, 또 유명 화가가 된 여성도 있다. 송현숙씨는 정 신병원에서 근무 중 그림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걸 보고는 감동을 받아 화가가 된 분이다. 3년 의무계약기간이 끝나 재계약을 맺는 사례도 적지 않 았지만 상당수 서독파견 간호사들은 ‘디아스포라’의 길을 걷는다. 더 좋은 조건으로 유럽 각지로, 또 박화자 간호사 처럼 아메리칸 드림의 꿈을 안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 1977년 베를린에서 개최된 독일교회대회에서 환영받는 한국간호사들

서독파견 간호사들은 개인적으로 모두 ‘인간승리’의 주역 들이며 국가차원에서 보면 유능한 ‘홍보사절’이다. 이들의 헌신과 조국애가 없었다면 오늘날 ‘20-50’(국민소득 2만 달러와 인구 5천만명)의 코리아는 분명 존재하기 어려웠 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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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간호협회 소개

Regional Korean Nursing Associations

뉴욕

남가주

윤종옥 회장(16대)

안마리 회장(21대)

뉴욕간호협회

남가주한인간호사협회

재외한인간호사대회가 LA에서 열리게 된것을 기쁘 게 생각하며 축하드립니다. 남가주 한인 간호 협회는 60년대 말부터 간호사 이민 이 대거 시작되면서 이민 정착에 필요한 정보를 나누 고 도움을 받을수 있는 기관이 절실히 필요하였으므 로 초기이민 간호사 들이 모여서 1969년에 창설되었 으며 43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꾸준히 활동해왔다. 한인 간호사들의 미국 RN 면허 시험 취득을 돕기위 하여 RN 시험 준비반이 1971년에 유분자 선생님에 의해 개설되었으며 김정숙 박사님을 비롯한 원로 선 배님들의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그동안 약 3,000 여 명에 달하는 한인간호사들이 이 과정을 거쳐 RN 자 격증을 취득하고 취업을 하게되었고. 그외에도 장학 사업, 심장병 어린이 수술 돕기, 지역 사회 건강 증 진 사업, 봉사 사업등을 펼쳤다. 이러한 사업을 통하 여 남가주 간호협회는 간호사 이민 정착에 지대한 공 헌을 하였으며 지역사회 건강증진 사업에도 큰 기여 를 하였다. 현재 남가주에는 4500여명의 현직 간호사와 은퇴간 호사를 합하면 7,000 여명에 달한다. 선배님들의 뜻 을 이어받아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교류, 교육을 통한 자질향상, 리더십 양성, 권익증진, 지역사회 건강증 진 사업에 주력하고있다. • 고대 간호학과 졸업, 1982년 • LA/ USC 근무(Neuro Science ICU)

안녕하세요? 뉴욕에서 대 뉴욕 한인 간호사 협회 NYKNA ( The Greater New York Korean Nurses Association) 현직 회장 16대 윤종옥 인사드립니다. 임기는 2년이며 2013 년 총회 3월 말이면 총회를 거쳐 신임 17대 회장이 선출됩니다. 1981년에 창설되었으며 올해로 31년을 맞이하고 있읍니다. 임원진을 살펴보면 회장, 부회장(2명), 총무(2명), 서기(2명), 회계 ( 2명), 감사(2명), conference coordinator(1명), membership coordinator(3명), education coordinator(1명), assistant(1명), web 관리 (2명), health fair coordinator(1명) 회의는 보통 한달에 한번 정도 있으며 앞으로 남은 사업으로는 10월 첫째주에 의사 협회와 공동 주최로 한인 사회( 건강보험이 없는 분들을) 위해서 건강검진이 있으며, 11/30 간호사의 밤이 개최됩니다. 간호사의 밤에는 보통 180 명의 간호사들이 모여 정보도 교환하며 만나지 못해던 친 구들도 만나며 멋지게 노는 시간입니다. 3명의 간호 학생들에게도 소정의 금액 장학 금이 주어집니다. 뉴스레터는 보통 600 부 정도 일년에 2-3회로 나누어 회원들에게 우편으로 전달되며 올해 부터는 확보된 200 명 이상의 이 메일이 가능한 회원들에게 이메일도 함께 시 도했읍니다. vision 이라 하면 협회는 전문인의 단체로써 이제는 무언가 지역사회를 위해서 전문인 으로써의 독특성을 가지고 간호사 로써 할수있는 일들을 해야 할때라고 생각됩니다. 쉽게말해 BLS 코스를 community out reach 해서 교육 시키는 일입니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임원 두사람이 현재 BLS instructor 이며 회장, 부회장 한명, 필요한 supply 가 일단 확보 되면 곧 시작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을 작은데서 하다보면 언 젠가는 협회 자체에서 BLS 을 회원들을 위해서도 제공되리라 봅니다. 또 한가지 이제는 저희 협회도 세대 교체가 이루어 져야 된다고 봅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2세들을 협회 임원으로 참가시켜 자연스럽게 세대 교차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뉴욕 의사협회를 보면 벌써 1.5 세의 의사들이 활동한지 오래되었읍니다. • 경기간호대학 졸업 • RN, MSN, FNP-C • Nurse Practitioner Consultant at VNSNY

▲ 2011년 야유회에서

14 2012 • 재외한인간호사

▲ 뉴욕한인간호협회 총회


시카고

북텍사스

김회숙 회장(27대, 39대)

김옥금 회장

시카고간호협회

북텍사스간호협회

한번의 행사를 하신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신데…. 재외 한인 간호사회를 진행하시는 준비위원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시카고한인간호사회는 43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간호사님들, 전직회장님들, 임원들, 커뮤니티의 노고가 있었기에 1969 시작 후 아직도 살아서 생동력 있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네트웍이 얼마나 주요한 역활을 하는지는 삶의 경험이 있으신 분 들은 다 잘 아시지요. 비젼은 전세계에 한국의 피를 갖고 흩어져 간호의 사명을 이루고 계시는 여러분들이 모여 서로 키워주고, 각 단체와 사회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더욱 발전 시키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현 시카고간호협회는 12년 전에 창단된 Angel’s Choir 간호사 합 창단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현 2012년 임원진에는 1.5세, 2세들을 많이 영입 되었고 IT 부서 를 처음으로 만들었습니다. 국제간호학술대회를 10/25-27/2012에 개최하고 합창단의 Concert가 연이어 집니다. 호텔과 행사 장소는 www.wyndham.com/groupevents2012/ordgv_kna/main.wnt 물론 여러분 모두 초대 합니다. • 서울국립철도대학 졸업 • Northwestern University 의과대학에서 CRNA, APN, Faculty 19년 근무

북텍사스간호사회 연혁(45년간 역사) 1968 parkland병원 기숙사에서 21명의 회원이 모여 간호사회 발족 1969 1차 정기총회 방숙자 회장, 유분자 부회장 1976 재미간호협회 초대회장 유분자, 부회장 임홍옥 임명            제1회 의료봉사 (하계 건강 무료진단)임홍옥 선생께서 최초로 교민대상 건강 세미나 실시 1979 제1차 RN 시험응시자를 위한 강의 시작(임홍옥 선생 강사) 1982 봉사센터의 보건부에 임홍옥,이호순 임원으로 임명 1983  간호인록 발간, 재미간호사회 부회장에 이호순 임명             대한간호협회 창립 60주년 학술대회 임홍옥 이사 연사로 참석             한국의 간호계에 대한좌담회 개최, 한인 무료진료봉사             최초 미주 한인간호사회 대표자 회의 개최하여 각주 대표자 15명 참석              이호순 간호 임시회장으로 회장패 받음. 1984    LAS VEGAS 미주대표회의에 임홍옥, 이호순, 김경환 참석 김정님 재미간호협회장 취임(1984-1985) 1985    학술대회 개회, 재미간협신보 발행 1989     재미간호협회의 LA 후원금 전달 1994    국제간호협회 후원금 보냄 2007     Pink Ribbon Club 창립, Online Newsletter 2010    북텍사스 주 간호협회 -Non Profit Organigation 2011     <백의의 천사들> 책발간, 사인회.              8월에 <백의의 천사들> 200권 대한간협에 기증 (전국 17 지부와 10개 산하단체, 대한간협자문위원님께 기증)             간호사 신문 7월21일자에 기사화됨 2011-현재 북텍사스 간호사회 회장 김옥금          매년 무보험자및 저소득층 한인들을 위한 무료건강검진, 피검사, mammogram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NTNKNS home page 개설 • 군산간호대학 졸업(1975년) • UT Southwestern Medical Center 30년 근무(Surgical Center)

▲ 2012년 6월 12일 총회 후 신구임원 기념촬영

▲ 2011년 3월 26일 무료건강검진 후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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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간호협회 소개

Regional Korean Nursing Associations

오스트리아

시드니

김동주 회장

조경희 회장

재오한인간호사협회

시드니간호협회

1972년에 오스트리아로 진출한 50명중에 20명은 간호사이 고 30명은 간호조무사입니다. 1973년 50명중에도 20명은 간호사이고 간호조무사는 30명입니다. 그러니 그 당시 정식간호사는 40명이 왔다고 해야되겠지만 이곳의 작은 한인사회의 특성상 같이 통합해서 간호협회를 만들었습니다. 그 외는 독일에서 근무하다 온 간호사 또는 저 같이 개개인으로 온 간호사등이 있습니다. 이곳 한인 간호사들의 나이는 평균 55세에서 60세이상이라 고 보면 됩니다. 2세들은 간호사들이 없고 이민 1세들만 간 호사이니 사실 간호를 위한 세미나를 하기에는 힘든 상황입 니다. 현직에 있는 간호사들 보다 퇴직자가 더 많은 상황이니 한인사회의 의료봉사와 친목위주로 협회를 이끌어가고 있습 니다. 그러니 미국하고는 아주 다른 상황이라 생각됩니다. 성공적인 재외 간호사 대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춘천간호대학 졸업

독일

하영순 회장 재독한인상공인총연합회

16 2012 • 재외한인간호사

안녕하세요. 저는 새로이 시드니 한인간호협회 회장으로 선임된 조 경희 입니다. 불행히도 이번에 있을 재외 한인간호사 대회에는 개인사정으로 참석 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전임 회장이셨던 최 복희 선생님 께서 소식을 전해 주셔서 뒤 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최 선생님과 임원 분들이 참석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여의치 못하였습니다. 반세기 이전부터 해외로 진출하여 전문간호인으로서 성장한 우리의 모습을 모든이들에게 보여주기에 재외 한인간호사 협회의 존재는 매 우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일이 호주에서도 있기를 소원해왔습니다. 재시드니 한인간호사협회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저의 소망과 비전 은 좀더 많은 한인간호사님들의 회원 확보와 회원간의 Network 확장 과 나아가 전세계에 있는 한인 간호사와의 교류입니다. 이제 재외 한인간호사회의 획기적인 출범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재 외 한인간호사 역사의 기반이 될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난 2011년 10월 재외한인간호사대회에 76명의 독일간호사들이 참석하여 독일 대표(연락자)로 선 출된 하영순입니다. 동서남북 그리도 멀다하니, 마음모아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한인간호사의 네트위크의 필요성을 갖고 이번 LA에서 열리게 되어 뿌듯한 맘 금할길 없으며 또한 추진하시는 유분자 준비위원장님 그리고 남 가주간호협회 안마리 회장님을 비롯하여 임원진 여러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처음 1차로 1966년 파독간호사 128명이 독일 후랑크후르트에 도착하였습니다. 독일은 1985년 재 독간호협회가 처음으로 창립되었습니다. 많은 홍보 및 문화행사를 통해 친목을 도모하고 있으며, 60, 70, 80 대면 누구나 조국의 흐름을 다아실 것입니다. 그 중 1966년초 조국이 어렵고 보릿고개때 독 일정부로부터 1억 5천만 마르크의 차관 조건으로 광부 간호사의 파견이 시작되어 광부 총 736명 간 호사 조무사 약 11057명이 배출되었으며 5대도시에 공장과 경부고속도로 그리고 대한민국의 건설 과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음을 인정받고 있음에 지난 46년 세월이 결코 헛된 세월이 아니엇다고 자 부하며 우리 파독간호사 모두 위로받는 바입니다. 이번 1차 모임으로 전세계속의 간호계 네트워크가 잘 형성되기를 기대합니다. • 서울여자간호대학 졸업(1964년)


축하 메세지

방정자 증경회장

안정옥 증경회장

남가주간호협회 (9대)

남가주간호협회 (6, 7대)

세계 간호사 네트워크의 필요성과 비전

젊고 유능한 인재들의 참여가 있기를…

먼 곳 마다하지 않고 뜻 깊은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대한간호협회 성 명숙회장님, 김성례이사님, 각국 지역 대표 간호사님 내외 인사 여러분, 또 오늘 이모임을 위해 수고해 주신 유분자 회장님을 비롯해 남가주 간 호사회 회장단 및 회원 여러분을 환영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작년 가을 대한간호협회로부터 88주년 정기총회에 초대를 받고 그 자 리에 참석했던 저는 많은 감동과 한인간호사로서의 자긍심 내지는 도 전을 받았습니다. 저희를 초청해 주신 당시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 님은 해외간호사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강조하 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주최 측에서 준비해 주신 3대의 차량으로 해외 간호사들은 총회 장소 인 88실내올림픽 경기장에 도착했습니다. 경기장 내에 도착한 저희들 은 그 큰 경기장을 꽉 메운 전국각지에서 온 간호사들의 젊음, 열기 에 너지, 조직력, 동원력에 놀라고 감격하여 가슴으로부터 목을 통해 올라 오는 뜨거운 감동과 젖어오는 눈시울에 전율을 느끼며 귀중한 경험의 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참으로 자랑스럽고 무한한 가능성과 열정과 힘을 경험하는 기회였으며 오늘이 있기까지 모국간호사의 위상을 높이고 협회 발전을 위해 선배 간호사님, 간호계인사, 회원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과 수고가 뒤에 있었 음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 국내간호사 들과 해외 간호사들이 결집하여 서로 돕고 배우고 사랑하고 이해하며 같은 목적을 향해 함께 할 수 있다면 그 시너지(synergy) 효과는 대단 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지금은 시작이지만 이 단체가 한국간호사들의 세계를 향한 디딤돌이 되고 더 나아가서는 많은 지도자를 배출하고 지역사회는 물론 세계간 호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간호 단체로 성장하고 그 사명을 다 할 수 있게 되기를 여러분과 함께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난해 10월 대한간호협회 창립 88주년 기념행사에 해외거 주 한인 간호사들을 초청해 주신 것에 대해 지금도 감사한 마 음이 가슴 한 켠에 남아있습니다. 행사를 지켜보고는 내 자 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국사회는 물론 간호계도 크게 업그레이돼 이젠 세계 어느 선진국에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돼 무 척 흥분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특히 세계 각 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국간호사들을 네트 워크화 해 조직을 만들 구상을 하신 성명숙 현 회장님과 신 경림 당시 회장님 등 간협 이사님들의 차원높은 비전에 경 의를 표합니다. 남가주 간호협회 회장을 지낸 제 자신, 전산초 회장님이 재 미간호협회 발족에 남다른 관심과 열정을 기울였던 그 옛날 이 불현듯 떠올라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해외에서 온 참석자들에게 재외한인간호사회의 중요성을 브 리핑해 주신 회장단의 리더십은 우리 모두에게 공감을 넘어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본인의 완곡한 고사에도 불구하고 유분자 초대 재미간호협 회 회장님을 준비위원장으로 뽑은 것은 그 분의 폭넓은 경 험과 열정, 그리고 지도력을 높이 산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아무쪼록 이번 창립대회에 젊고 유능한 일꾼들이 적극적으 로 참여해 재외한인간호사회가 글로벌 네트워크의 구축이 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 니다.

•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졸업(1965년) • Olympia Medical Center, ICU charge Nurse 25년 근무

• 국군간호사관학교 졸업(1954년)

Special Thanks 제1회 재외한인간호사회 구성을 위한 준비대회를 위해 특별히 큰 도움과 사랑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미미 장 세인트빈센트메디칼센터 임상간호사 * 쉐리 지글러 커뮤니티 서비스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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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 체험수기

최성숙/ MSNC, RN, CNN

유학생이던 남편을 따라 이민가방 6 개에 간편한 살림살이만을 챙겨 온 이민 생 활이 어느덧 20년이 훌적 넘었습니다. 이민 초기 Stress 때문인지 학교에서도 오 줌을 싸던 딸아이는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반듯한 숙녀가 되었고, 한국을 떠날 때는 생각에도 없었던 아들은 엄마 뱃속에서 함께 이민초기의 역경을 격어서인 지 한참 멋부리고 놀기좋아할 대학 2학년이지만 늘 지친 이민생활의 기쁨이 되 어 주어주고 있습니다. 이민초기 달랑 License 하나에 영주권도 없이 남편에게 간단한 영어를 배워 80점이 넘어야 Job application 을 쓸 수있다는 병원에 입사 원서를 냈지만 98 점을 맞고도 제 서류는 쓰레기통으로 향해야만 했고, 어렵게 취업한 병원에서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지만 영주권이 없는 영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 간호사이기에 아무말도 못하고 당해야만 했던 서러움 등 이민 1세로써 격어야만 했던 일들을 쓰자면 소설책 2권은 족히 될거라며 이 제는 추억의 옛 이야기가되어 가끔 이민을 갖 오신 분들에게 남편과 함께 무용담 을 이야기하듯 신이나서 이야기하곤 합니다. 영어때문에 영주권때문에 하늘을 나는 비행기만 봐도 눈물이 나던 시절을 지나 생각지도 못했던 교통사고로 직장 도 그만두고 불구의 몸으로 살아야 했던 2년여의 생활등 부모형제가 있는 고국 에서 살았더라면 격지 않아도 될일들을 격으며 날 이곳으로 데려온 남편이 밉기 도 했습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미 연방 정부병원의 신장 전문 간 호사(CNN)로 MD fellow 들 평가하고 Nursing Student 를 가르치고 신입 간호사 들의 Preceptor로 나름 이민 1 세 간호사로써 자리를 잡고 반듯하게 잘 자라준 두 아이들을 보며 늘 감사할 따름 입니다. 25년전 남편과 결혼하며 함께 미래를 계획하며 나누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납니다. 우리 나이 50이 될때까지는 우리를 위해서 열심히 살고 50이넘으면 남 좋은 일을 하면서 살자고…. 올해로 내 나이 는 꽉찬 50 이 되었습니다. 결혼생활 25년 이민 생활 22년 어려움도 많았고 원망 도 많았지만 돌아보면 모든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국에서라면 갖을 수 없었 던 Korean Diaspora 로서 날마다 새로운 소망과 꿈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이 꿈 을 위해 2년전 늦은 나이지만 대학원을 가게 되었고 오는 11 월이면 제 이름뒤에 는 MsnEd, RN, CNN 이라는 Title 이 붙게 됩니다. 최근 실력있는 많은 2세들이 Nursing 을 전공하는 것을 볼때 참으로 기쁘지 않을 수 없습니다. 50년전 우리들 의 이민 1세대 선배님들이 쌓은 주춧돌이 있었기에 늦은 나이지만 제나이에도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되었고 직장에서도우리 한인 간호사들이 인정받을 수 있는것 이라 생각합니다. K-Pop 이 세계의 젊은이들을 감동시키고 Made in Korea 전화 를 갖는것이 소원인 세계의 젊은이들이 있고 Best Buy에 진열된 냉장고 중 가장 최고가의 냉장고가 Made in Korea 인 이 시대에 우리의 후세 간호사들이 세계간 호인의 Leader가되는 꿈을 꾸어봅니다. 이민 간호사 60 년을 바라보는 이시대를 내 나이 50에 맞으며 조금이나마 이일을 이루는데 작은 조각이라도 보탬이 된다 면 내가 받은 축복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있는 기회가 된다면 나의 작은 수고로 그 누군가 꿈을 꾸고 그 꿈에 가까이 갈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우리 의 American Dream 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욕심 내지 않고 하나 님이 인도하시는대로 기쁨으로 조금씩 감당하기를 소원합니다. 18 2012 • 재외한인간호사

박기남 회장 전 텍사스 달라스 한인간호협회

안녕하세요. 저는 Texas Arlington 에 위치한 University of Texas를 졸업한 박기남 입니다. 현재는 SNG Dialysis Center의 Vice Present로 일하 고 있으며 Peritoneal dialysis 와 Home dialysis를 포함 해 13 개의 Chronic dialysis center 와 3 개의 Acute dialysis program의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신장전문 간호사로서 신장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의 건 강 증진과 생활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있는 훌륭한 신장 전문 기관에서 일하고 있음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 니다. 전문인으로서 신장전문 지식의 향상과 보전을 위 해 최선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이번 6월에 LA 에 있을 모임에 미리 약속된 기관모임 으로 인해 참석할 수 없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시간이 허락한다면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시한번 저에게 이런기회를 주심을 감사 드리며 앞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기 대해봅니다.


태란영 적십자간호대학 졸업(1956년) Cedals Sinai Medical Center MLK Medical Center OR

간호사에서 DNA 상담가로   시대의 변화를 타고 의료계는 생명공학, 유전자공학으로 발전하고 인간의 생로병사에 도전 하기에 이르렀다. 2003년 인간 게놈지도가 발표되면서 각자의 진(DNA) 곧 유전자를 알 수 있는 시대가 도래 되어 나의 유전자가 나의 건강을 지배하고 유전자를 통해 미래의 건강 Risk를 미리 알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발병이 된 후에라야 여러 검진, 검사를 통해   시술이 시작 되었던 종래의 치료의학계는 예방의학으로 거대한 전환이 시작 되었다. 빠르고 엄청난 소용돌이가 일고 있어도 그 한가운데에서는 별 큰 요동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의 일상은 항상 빽빽한 삶의 돌림으로 시대의 변천이 현실을 어디로 몰고 왔는지? 나의 내일은 어떻게 되는지?  보통사람, 우리들에게는 관심거리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아직도 우물 안에 개구리들인가? 세상이 내 귀에 들렸을 때 나는 내 귀를 열어 들었고 우물 안에 개구리로 부터 탈출하고 3T 시대 Internet Technology Nano Technology Bio Technology   가운데 첨단의 Bio, 건강과 관계된 DNA의 정보를 받아 들였다.

오선영 UCI 간호학과 4학년

저는 1년 전 까지만 해도 제가 왜 간호학을 공부하는지 자신있게 대답 할수 없었습니다. 화학이나 생물학 반에서 의사 공부를 하는 많은 학생 들이 왜 간호학을 공부하냐고 물어 볼때 저는 항상 “그냥!” 이라고 밖에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너무나도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습니다. 왜 내가 간호사를 하고싶은지. 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 면서 의사 아닌 간호사라는 직업을 택했는지. 이번 년 부터 병원 실습이 시작 되었습니다. 10주동안 매주 2 번 12시 간씩 병원을 가서 한명의 간호사를 골라 같이 병원 일 경험을 하게 되 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경험한 병원 일은 정말 많은 것을 깨닳게 해 주 었습니다. 우선 간호사의 중요함을 체험했습니다. 정말 간호사들 없 이는 환자들이 병원에서 편히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걸 너무나도 크 게 느꼈습니다. 의사들이 병을 치료 한다면 간호사는 그 병 뿐만이 아니라 마음과 영 혼도 치료하는 더 중요한 치유자라는걸 배웠습니다. 항상 환자들 옆에 는 간호사가 있었고 저는 그런 간호사들이 너무나 멋져 보였습니다. 너 무나도 힘이 없고 누구의 도움이 꼭 필요한 그 환자들에게 옆을 지켜 줄 수 있을수 있다는게 정말 얼마나 큰 보람이 되는 일 인지 느꼈습니 다. 어렸을 때 항상 아플 때 마다 옆을 지켜주신 어머니 처럼 저는 그 런 따뜻한 존재인 간호사가 될 수 있다는 기대에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리고 또 제가 1.5세 한국 간호학생이라는게 너무나 뿌듯한 경험도 했습니다. 한번은 60세 한국 환자를 돌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국인 인걸 알고 는 그 환자가 저에게 너무나 의지를 하고 믿고 모든걸 맡기시는게 힘들 수도 있었지만 저는 너무나 기쁘고 재미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더욱더 보람을 느끼게 해준건 제가 한국말을 할 수 있음으로 인해 의사들과 간 호사들에게 통역을 할 수 있어서 정말 필요한 존재임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나도 즐거웠습니다. 저는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정말 내가 왜 의사 아닌 간호사를 택했는지 확신을 갖었습니다. 저는 그냥 간호사가 아닌 정말 환자를 위해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자랑 스러운 한국인 간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또 더 멋진 간호사가 되어 대 한간호협회에 큰 자랑이 되고 싶습니다.

종래의 친족찾기, 범법자 찾기로만 알던 DNA였지만 과학은 쉬지 않았고 인간의 미래건강을 질병으로부터 예방하기에 춧불을 올렸다. 오늘을 사는 특혜로 오늘의 건강과 노후의 건강을 위한 DNA상담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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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대한간호협회 37회 정기대의원 총회 ▲ 1971년 함께 모인 지도자들 (왼쪽부터 유분자, 고 김순봉, 고 이귀향, 고 최정자, 고 이혜정, 고 홍신영, 고 이영복)

재외한인 ▲ 1972년 나성중앙교회에서 실시된 RN 시험준비반에 참석한 간호사들 ▲ 1978년 유분자 간호사 집에서(LA) (왼쪽부터 유분자, 고 최정자, 고 김복음, 고 이혜정)

▲ 1978년 재미한인간호협회 초청 합동학술대회

▲ 1970년 재미한인간호협회 정기총회

▲ 1981년 국제간호협의회 총회에 참석한 한미간호계 대표참가단

20 2012 • 재외한인간호사

▲ 1982년 제4회 재미한인간호협회 정기총회


◀ 1973년 남가주한인간호협회 총회 이금전 선생님께서 축사하시는 모습

▲ 1986년 재미한인간호협회 창립10주년 및 신문창간 3주년

간호사 화보 ▲ 1983년 대한간호협회 창립 60주년 기념 전국대회 및 제4회 국제간호학술대회

▲ 1978년 재미원로간호모임

▲ 1974년 RN 강좌 (김정숙 박사)

▲ 1999년 오렌지카운티 고 석진영 선생 생존 시 방문 (왼쪽부터 유분자, 고 석진영, 방숙자)

▲ 2006년 LA 아들 집에 온 홍옥순 선생을 방문 왼쪽부터 고 최정자(86세), 이송희(75세), 고 홍옥순(89세), 유분자(70세)

◀ 2012년 5월 31일(목) 재외한인간호사회 준비모임을 위해 이경석 박사님을 모시고 회의 후 박혜순, 김정숙 박사 생신 축하 (뒷줄 왼쪽부터 방정자, 안정옥, 신연옥, 이경석 앞줄 왼쪽부터 박혜순, 김정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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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재외한인간호사대회 화보 2011년 10월 25일

▲ 각 지역 대표자들 (왼쪽부터 윤종옥/뉴욕, 안마리/남가주, 김동주/오스트리아, 이말희/시카고, 유분자, 허문정/스웨덴, 최부길/호주)

▲ 2011년 10월 25일 한국간호사 전국대회

▲ 경복궁에서 기념촬영

▲ 대회장 입구에서 기념촬영 ▲ 제1회 재외한인간호사대회에 참석한 한인간호사들

22 2012 • 재외한인간호사

▲ 청와대 기념촬영


일간지 기사소개

<한국일보> 2012년 6월 21일 재외간호사대회가 LA서 열리면서 권익과 정보 교환의 큰 장이 될 것으로 운영진은 기대하고 있다. 왼쪽부터 모니카 권 남가주 간호협회 이사, 유분자 대회 준비위원장, 안 마리 간호협회 회장.

“전세계 한인간호사 교류·정보교환” “세계 간호 전문직 발전에 앞장서야 할 시기입니다” 재외한인간호사회 구성을 위한 준비대회(준비위원장 유분자)가 28일 오후 1~9시 옥스포드 팔레스 호텔에서 개최된다.

<중앙일보> 2012년 6월 22일

미국과 한국은 물론 전세계에 퍼져있는 한인 간호사모임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대회 목적은 각국의 이민역사에서 간호사들의 역할과 새로운 시대를 위한 네트워크 강화다. 재외간호사대회 준비위원회(위 원장 유분자)측은 오는 28일(목) 오후 1시 옥스포드팔레스호텔 에서 스웨덴 호주 오스트리아 캐나다 독일 등을 포함한 15개 국가에서 활동중인 재외 간호사모임과 단체들의 대표를 초대 해 대회를 연다고 밝혔다. 유 위원장은 전체 참석인원이 150여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 고 있다. 재외한인간호사대회는 지난해 서울에서 1차 대회를 마친바 있다. 유 위원장은 “이번 대회는 남가주한인간호협회와 대한간호협 회가 함께 힘을 모아 만드는 행사인 만큼 좋은 안건들도 많으 며 괄목할만한 결과물로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 했다. 남가주한인간호협회 안마리 회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보다 많 은 이민 1세 간호사들이 미국과 전세계에서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이를 통해 1세와 2세 간호사 인력들이 네 트워크를 쌓아가는 것”이라며 “일단 네트워크가 강해지면 힘과 목소리를 가진 단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남가주한인간호사협회(회장 안마리)와 대한간호협회(회장 성명 숙)가 후원하는 제2차 재외한인간호사 대회로 ‘재외한인간호사회’ 조성을 위한 준비작업을 통해 LA지역에서 열리게 됐다. 유분자 준비위원장은 “지난해 10월 한국에서 대한간호협회 주최 로 처음 열렸던 재외한인간호사 대회에서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 는 한인 간호전문 인력 간의 정보교류 및 발전을 위해 네트웍을 효 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기구 조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절감 했다”며 “대한간호협회와 각 지역 대표들과 의견을 합해 재외한인 간호사회를 조성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에는 대한간호협회 성명숙 회장과 신성례 이사가 참석 할 예정이며 4시간에 걸친 회의에 이어 LA카운티 보건국-외래환 자 네트웍(DHS-ACN) 모니카 권 선임 수간호사와 미주한인재단 윤병욱 전 총회장을 강사로 초청해 주제 강연과 만찬이 진행된다. 모니카 권씨는 “이번 대회에서 ‘21세기 세계 간호사들의 필요성 과 비전’이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세계 각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인간호사들의 힘과 지혜를 결집하는 구심체로 글로벌 네트웍 을 구축한다는 재외한인간호사회의 취지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 었다”고 말했다. 제1회 재외한인간호사회 구성을 위한 준비대회에는 미전역은 물 론 독일, 스웨덴 등 세계 각지에서 활약하는 전문 간호사들이 참 석해 정보교류를 통한 상호발전과 전문 인력 양성 및 간호의 질 을 향상시키는 방안을 강구하는 행사다. 특히 대한간호협회에서 도 재외한인간호사회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특별위원회가 구성돼있다.

협회측은 그동안 이런 활동들이 유기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많 은 문제점들을 노출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협회는 남성 간호사 들의 진출로 이에 대한 적절한 안내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 되고 있다고 전했다. 행사 참가등록은 27일까지다.

안마리 회장은 “지난해 한국 대회를 통해 한인 간호사의 파워와 정치적 영향력에 놀랐고 재외한인간호사들을 위한 글로벌 네트워 킹에 남가주한인간호사협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 유분자 준비위원장을 중심으로 재외한인간호사회 구성을 위한 준비대회 를 열게 됐다”며 한인 간호사들의 관심과 참석을 부탁했다.

▶ 최인성 기자

▶ 하은선 기자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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