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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아버지감사합니다. 이렇게 사람들과 앉아 옛날얘기를 하며즐거운 시간을 보낼수 있다는 것에감사합니다. 저희가 무슨 말을 듣고, 어떤말을 하든지주님을 위하는 데보탬이될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또 좋은 음식으로 저희 생활과 건강에보탬이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기회가 된다면또 만날 수 있게예수님의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차례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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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3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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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가을의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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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인 1933.03.08.


1.4 후퇴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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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 촌, 아버 지와

깨엿 ,지 프차 ,

어머 니와

쌀밥 ,쪽 지, 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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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로 보믄 내가 열다섯쯤이었나. 6.25 사변 이후에 국군이 서울을 수복을 했다가 중공군 이 내려오면서 서울을 뺏겼어. 서울 수도를 내놓고 아군이 남으로 철수를 하는데, 그걸 1.4 후퇴라 그랬었거던? 그때 38선 이남 쪽에 사는 젊은 사람들을 두고 가면 북한군이 내려오 면서 그 사람들을 다 인민군으로 만들 거 아녀. 그니까 이쪽에서 생각을 허기를, 17살부터 38살까지 모두 후퇴를 시켜야겠다 이렇게 됐다구. 그래가지고 그 추운 겨울에 준비도 없이 젊은 사람들을 이북서부터 후퇴를 하면서 싹 데리고 내려가는 거야. 그 해에 굉장히 추웠 어.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입는 거, 먹는 거 우스웠어. 그때 우리 한국사람덜 입고 살았던 게 꺼 먼 고무신, 정 그것도 없는 사람들은 짚신을 신었다고. 바지저고리란 걸 만들어 입는데 솜도 못 넣었어. 다 불타고 없는 데다가 그 추운 겨울에 전쟁이 연거푸 또 나니까. 나라에서 시켜 서 피난을 가는데 춥지, 제대로 입지도 못했지, 먹은 거 제대로 없지. 그냥 사람만 데리고 내 려가는거여. 아무 대책도 없이. 그래서 그때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병들어 죽은 사람이 수만 명이야. 근데 황당한 건 나라에서 나눠줄 옷도 없고 맥일 밥도 없으니까 낙동강에서 이 사 람들을 해산을 시켜버렸다고. 그 멀리까지 데려가놓고.

그때 우리가 파주 양주 살 땐데. 막내 외삼춘이 그때 낙동강까지 끌려갔다가 병들었다고 집에 가라 그래서 온거여. 밤중에 누가 대문을 두드려서 보니까 누가 다리를 질질 끌면서 기 어오더래. 그지도 그런 그지가 없어. 숙모가 "누굽니까?" 하고 물어봤는데 내가 남편이다 하니까 무서운 거여. 그때 외삼춘이랑 외숙모가 결혼한지도 얼마 안 됐을 때거던. 이발도 못 허구 먹지도 못 허구 수염도 못 깎고, 옷은 그저 집에서 나갈 때 입은 옷 그대로니까 몰 라본 거지. 그래서 시어머니를 불러서 보니까 외삼춘이 시골 옛날에 대문, 그걸 넘지도 못하 고 문지방을 붙잡고 꿈틀거리더라 이거야. "어머니 나예요." 하는 목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알아보고 집으로 끌어서 데리고 올라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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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아버지는 청년단 소속이었어. 그런데 어느 날 별안간 나라에서 17살부터 38살까지 젊은 사람을 모은거여. 생각으로는 이거 피난 가야 되는데 했지만 나라를 위한다는 생각에 아버지가 거길 갔다고. 나는 아버지가 나가니까 쫓아나갔고. 그날 눈이 내렸어. 지금도 눈 에 선해. 그때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모여서 걸으라니까. 슬슬 걷기 시작한 게 그게 1.4 후퇴 의 시작이야. 그렇게 사람들이 낙동강까지 걸었다더라고. 동대문쯤 가다 보니까 엿장사가 있어. 그래서 어린 맘에 '저거나 몇 가락 사서 아버지 드려야겠다' 했지. 7~8개 됐나. 신문지 에 둘둘 말아서 아버지 갖다 잡수시라고 옛날 조끼 주머니에 넣어드렸더니 "동생들 줘라" 하시더라고. 집에도 사실 먹을 게 없으니까. 그러면서 엄마가 기다릴 것 같으니까, 얼른 집에 넘어가라 하셨어. 그게 마지막이야.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그저 기다린거여. 이제 오겠지... 이제 오겠지... 전쟁 끝났대니 까 아버지 오겠지... 그때 미신이 하나 있었는데, 주발을 보면 나간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 지 알 수 있다 했어. 밥을 떠서 뚜껑을 덮어놔두면 죽은 사람은 물이 고여서 물이 떨어지고, 산 사람은 물이 안 떨어진다고. 미신이지만 그거 믿지 않으면 어떡하겠어. 그때부터 기다린 게 아직도 소식을 모르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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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없고. 어머니랑 동생 둘만 남겨졌으니까 내가 벌고 일을 하고 벌어야 먹고 살 거 아냐. 근데 그게 쉽나. 전쟁 나고 나서 일할 게 없어. 지금은 일하면 임금부터 얘기하지? 그 때는 "와서 일하면 점심 한 끼 먹여줄게" 이랬다고. 일거리를 찾아다니다가 미군 부대나 영 군 부대에 취직을 하면 돈도 받고 하숙도 할 수 있대. 근데 그것도 쉽지가 않아. 아침에 나 와서 앉아있으면 미군들이 트럭을 몇 대 가지고 와서 몇 사람 필요하다고 해. 그러면 알아 듣지도 못하는데 나요 나요 하는 거야. 그렇게 하루 종일 친구랑 인도 옆 방지턱에 앉아있 었어. 내 제일로 가까운 친구야. 학교도 같이 다니고 옷도 제꺼 내꺼 할 거 없이 입고 대니고. 근데 한 30년 전쯤에 연락이 끊겼어. 호주 가서 연락 준다 하더니... 치매에 걸렸는지 죽었는 지...

하루는 한 열두 시쯤 됐나? 웬 한국군 지프차 하나가 턱 오더라고. 지프차에 보통 부대 마 크랑 소속이 적혀있는데 그게 읎어. 시커먼 라이방에 계급장도 없는 모자를 쓴 사람이 내 리더니 "너 이리와" 그러더라고. 그래서 속으로 취직되나보다 했지. 시민증 달라더니 "너 왜 군대 안 갔어?" 그래서 "보다시피 나이가 몇인데 군대를 갑니까" 했지. 그랬더니 "야 이 새 끼야 군소리 말고 타" 그러더라고. 그러더니 돈암동 종점을 넘어서 북쪽으로 가. 겁이 덜컥 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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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동 숲속에 차가 섰어. 그날은 하늘이 카매서 빗방울이 주먹만 한 게 우두두 우두두 떨 어지더라고. 이제 죽은 목숨이구나 했지. 한참을 걷다 보니 부대가 하나 나와. 근데 웬 거 지 같은 사람들이 인민군 복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있는 거야. 내가 한사람 불러다가 뭐 하 는 데냐고 그러니까 아무 소리 말고 입 딱 다물고 있으래. 게다가 집에 연락도 못 하고 길거 리에서 잡혀 온거잖아. 그니까 잔뜩 어는 거야 내가. 나중에 안 거지만 내가 끌려온 부대가 HID더라고. 북파공작 부대.

갑자기 땡땡땡땡 하더니 저녁을 먹으래. 들어갔더니 쭈굴쭈굴한 양재기에 밥이 있어. 근데 하얀 쌀밥이야. 그거 언제 구경했는지도 몰라. 눈물이 싹 쏟아질 정도야. 국허고 주더라고. 그걸 받아가지고 들여다보고 있는데, 하필 그날이 우리 어머니 생일날이야. 내가 집에서 나 갈 때 밀 쭉정이랑 풀로 끓인 기우리 죽을 먹고 왔거든. 근데 어머니는 또 그걸 입에다가 못 넣고 나랑 동생한테 줬다고. 그 생각을 해놓고 오랜만에 쌀밥이랑 고깃국을 앞에다 놓으니 까 얼마나 집 생각이 나겄어. 그 어린 동생들... 한술 뜨니까 눈물이 촥 쏟아지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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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소리 소문도 없이 끌려가니까 집에서 나를 찾을 거 아냐. 우리 어머니가 내 소식을 들을라고 온 동네를 뒤졌대. 근데 알 만한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하나같이 당신 아들 전차 에 치여 죽었다고 하는 거야. 남편 소식 없지, 어린 딸 둘이지, 아들 하나 바라보고 살았는데 전차에 치여 죽었다니 어떡할 거여. 어머니가 정신이 반 나간 거지.

나는 우이동 산속에서 계속 훈련을 받고 있었어. 이북 지형을 가르치는데 어느 동네 뒷간 이 어디 있고, 거거 돌아서 가면 무슨 나무가 있고, 그 뒤엔 김서방네고 그 뒤에는 이서방네 고. 누가 물어봤을 때 걸리면 안 되니까. 그리고 훈련도 고됐어. 툭하면 인민군 노래 배우고, 따발총 갈기고, 바지 속에 모래 집어놓고 산 올라 댕기고. 한번은 도라무 통(드럼통)에다가 둘을 같이 집어넣고 그 위에 간부가 가마니를 깔고 앉아 있는 거야. 숨은 막히지 나갈 수도 없지. 정말 고대로 죽는가 했다고.

하루는 우리 부대에 서울을 들락거리는 사람이 있대서 불렀어. 그 사람한테 우리 집이 돈 암동이니까 쪽지 좀 전해달라고. 그래서 쪽지에 이름만 써서 건네줬어. 며칠 뒤에 어머니가 쪽지를 받더니 갓난애를 업고 그 먼 길을 한달음에 걸어온 거야. 그때는 버스도 없어서 한 참을 걸어야 했다고. 심지어 길도 전부 공동묘지야. 아들놈 살아있다는 말에 다리 아픈지도 모르고 걸어왔는데 웬걸. 이 자슥이 이북에 드나든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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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 ,해 주중 학교 ,사 자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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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 니와

고구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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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보니까 이북에 가면 안될 거 같아. 도망을 쳐야겠다. 그래서 교육을 받는 동안 두 번을 도망쳤어. 훈련받으러 갔다가 뒤로 빠지고. 자다가 도망치고. 철망이고 뭐고 급하니까 다 넘어가지더라고. 그렇게 해서 집에 숨어있는데. 하루는 동네 애가 "아저씨! 아저씨!" 하 더라고. 왜 그래 그러니까. 누가 권총 찬 사람이 꺼먼 안경 쓰고 아저씨 이름을 대면서 혹시 아냐고 물어봤다 그러더라고. 그래서 얼른 경동고등학교 방공호 뒤로 도망갔지. 어물어물 하고 섰는데 뒤에서 척 하더니 "손들어!" 하더라고. 그래서 잡혀갔지. 근데 들어와서 그러더 라고. 도망갔던 놈은 2~3일 안에 북으로 보낸다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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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북으로 가게 됐어. 해주중학교 학생으로 위장을 해서 임무를 다 하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신분증을 보자는 거야. 근데 웃긴 게 우리 HID에서 신분증을 엉터리로 만들어 줬다 고. 해주중학교 학생이면 해주중학교 학생증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다른 신분증을 주고 해주 학생 노릇을 하라니 순 엉터리지. 그대로 방공호로 끌려갔어. 그 취조하는 사람이 여 자였는데 대뜸 "너 남에서 왔지?" 하더라고. 다 걸린 마당에 아니라고 그럴 수가 없잖아. 이 제 꼼짝없이 죽는구나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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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갑자기 그 사람이 무시래기로 만든 김치를 손에 한 웅큼 쥐어주더니 얼른 뛰래. 자기 동생도 남쪽에 간첩 내려가 있다고. 내무소에서 나오면 너 죽는다고 도망가라고. 그래서 뛰 기 시작했어. 근데 도망질을 해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도망질이라는 게 다리가 떨려서 그렇게 잘 안돼. 다리가 덜덜덜덜.... 금방 쫒아오는 거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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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참을 뛰었어. 전봇대 남바를 세고, 달이랑 해 넘어가는 거 보면서 남으로 뛰었지. 근데 배가 너무 고픈 거야. 거기서 김치 하나 집어 먹고 못 먹었으니까 얼마나 배고팠겠어. 마을에 내려갔지. 어느 방앗간 옆을 지나가는데 밥 한 덩이가 있는 거야. 키에 창호지를 놓 고 거기다가 밥 한 그릇이랑 무나물을 엎어놨더라고. 그게 뭐냐면 사자밥이야. 죽은 사람 먹는 밥. 요즘이야 사람들이 병원에서 죽으니까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집에서 사람이 죽잖 아. 그러면 사자밥하고 입던 동정 뜯어서 대문간에 내놓았어. 저승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고 가라고. 굶은 놈이 그걸 봤는데 지나칠 수가 있나. 창호지째로 들고 밭으로 뛰어서 귀 신이 먹을 밥을 꾸깃꾸깃 먹었어. 내가 귀신 밥 뺏어 먹은 사람이라고.

배가 고프면 나중이고 뭐고 없어. 근데 배를 채우니까 아차 싶은 거야. 밥이 없어졌으니 누 가 고발을 허겠구나. 누가 그 밥을 먹겠어. 개가 먹었으면 개가 먹은 흔적이 있을 거고. 간첩 이 먹고 도망갔다고 내무소에 고발을 허겠구나. 그래가지고 다시 뛰기 시작하는데 벌써 동 네가 왁자지껄해. 한참을 도망 다니다 보니까 또 배가 고파 죽을 거 같더라고. 배가 고프면 죽는 건 나중이야. 우선 배고프니 배부터 채우고 봐야지 죽는 건 그다음 생각이여. 도로 가 서 붙잡혀줄까. 그러면 밥은 먹을 거 아냐. 에이 아니야.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살아왔는데. 갈 때까지, 붙잡힐 때까지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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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헤매다가 내려왔는데. 지금도 잊어지질 않아. 어느 농가 집에 떡 들어가니까 할머니 가 마루에 이렇게 걸터앉았더라고. 할머니 먹을 것 좀 줘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눈치를 보더 니 들어오래. 부엌으로 데리고 들어가. 그러더니 소쿠리에 담긴 고구마랑 무시래기 김치랑 먹으라고 주더라고. 어제도 당신 같은 사람 왔다가 고구마 몇 개 얻어먹고 갔다고. 허겁지겁 그걸 다 먹었어. 먹었는데, 언뜻 머리에 떠오르는 게, 이 할머니가 나 부엌에서 먹으라고 내 놓고 가서 이르러 갔겠구나. 딱 그 생각이 떠오르더라고. 도망가야겠다. 조금 있으니까 할 머니가 부엌문을 열면서 다 먹었으면 가래. 근데 이 할머니를 놔두고 가면 이르러 갈지도 모 르고 소리 지를지도 모르잖아. 숨은 가빠오고 정신이 없더라고. 그래서 얼떨결에 할머니를 번쩍 안아다가 구석에다 콱 내 집어던졌다고. 나만 살겠다고. 홀린 듯이 도망가는데 이 할 머니가 계속 날 쫓아오는 것 같애. 도망가지 말고 나 좀 보고가 나 좀 보고가...

그때 오면서도, 지금 늙어서도 생각을 항상 하는 게 통일이 되면. 그쪽에 갈 수만 있다면. 그 집 먼저. 그 집에 내가 제일 먼저 가서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나, 돌아가셨으면 자식들한 테 사죄를 하고 싶어. 산소에 묻어놨으면 산소에 가서라도. 마음속에 늘 품고 있는 일이야. 지금까지도 아퍼 그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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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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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우 리

할머 니, 과 거

현재 미래 , 있을

때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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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북을 탈출했어. 남으로 와서는 졸업장 받아보겠다고 고등학교 좀 다니다가 학교 없어지고 시골로 내려갔어. 거기서 농사짓고 사는데 마침 거기 계몽운동 하러 내려온 선생 눈에 보기에 괜찮았나 봐 내가. 그래서 그 선생 중매로 우리 할머니를 만났어. 모든 게 다 잘 될 것만 같더라고. 젊은 패기에 '이 사람만 있으면 내가 잘 할 수 있다. 참새가 죽어도 짹 하고 죽는다고 노력하면 밥이라도 먹고 살겠지' 했다고. 근데 그것도 꿈이라고 부서지는 거 지.

아들 하나 낳고 서울로 다시 올라와서 돈 되는 일은 다 했어. 노동일. 지금 경희대학교 체 육관, 경희 여자 고등학교, 뭐 보이는 노동판엔 다 가서 일을 했어. 근데 북에 넘어갔다 오면 서 몸이 많이 상했다고 내가. 산속에서 비 맞으며 밤새고 도망대니고 이러니까 몸이 병나지 않을 수가 있나. 그때 생긴 축농증 때문에 지금 눈 한쪽도 안 보여. 그래도 자식이 있는데 일을 해야 살겠는데 힘은 부치지, 몸은 아프지. 그래도 그냥 기를 쓰고 참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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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내가 몸살이 나고 병이 난 거야. 밤에 자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밖에서 뛰어다 니고 있어. 우리 할머니는 나를 붙들고 있고. 얘기를 들어보니까 내가 밤마다 "아버지! 아버 지!" 하고 뛰쳐나간다는 거야. 나는 기억이 읎어. 그러다 정신 차리면 다시 들어가고. 우리 할머니가 얼마나 힘들었겠어. 재산도 없는 집에 남편 하나 보고 시집 왔는데 남편은 헛소리 나 픽픽 하고 뛰어댕기지. 그러니까 올케들이 올라와서 집사람보고 저 사람이랑 그만 살고 같이 내려가자 그랬어. 근데 그때 할머니가 아픈 사람 두고 못 간다, 가도 낫는 거 다 보고 간다고 그랬어. 그 덕에 괜찮아져서 이렇게 가정을 일구고 잘 살아온 거야.

물론 힘들었지 살기가. 그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 너무 기뻐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날을 고르자면 결혼하고 자식들 낳은 날이야. 나도 가족이 생겼구나. 결혼해보면 다 알 거 야. 말로 다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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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 미래. 시간이 이렇게 딱딱 나눠져 있는 것 같지마는 사실 그렇지가 못해. 지금 방금 얘기한 것도 과거가 되어버렸어. 현재는 언제나 과거가 되어버려. 그래서 과거는 단순 하고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가 아니여. 그 당시 '현재'에 했던 선택들이 모여서 지금 내가 있는 거고 그걸 과거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거야.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과거도 한때 현재였단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는 것 같어. 예전에 길거 리 지나다니면서 "머리카락 팔아요, 머리카락 팔아요" 하는 젊은 여자들이 있었어. 그렇게 한푼 두푼 모아서 우리나라 경제가 이만큼 된 거야. 그 사람들 지금 다 쪼그랑 할머니가 됐 어. 근데 그 할머니를 쳐다보면서 그 치열했던 젊은 현재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걸. 사람들은 이미 늙어버린 할머니만을 바라보는 거야. 그건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으니까. 그 당시에는 현재였다는 걸 잊어버리는 거지.

내가 고구마 할머니를 마음에 품고 사는 이유도 그거야. 그 할머니가 고구마를 주기로 한 선택 덕분에 이렇게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아서 삶을 살고 있으니까. 과거에 그 고구마가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는 거라고. 꼭 한 번만 만나고 싶어. 그리고 고맙다고 인사를 할 거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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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현재는 과거가 되고, 그 과거는 현재를 있게 해. 그래서 현재에 순간순간 내리는 선택이 중요해. 가족들한테 한마디 하고 싶어. 있을 때 잘 혀. 그게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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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시간이흐른 후에가족들이할아버지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해줬으면좋겠어요? 34


우리할아버진열심히 살았다. 그거하나 남기고 싶어.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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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가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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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facebook.com/snailbook 달팽이는 자서전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달팽이는 지나간 자리에흔적을 남깁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 자취를 찾아 이야기로 만들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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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인 자서전 만든이 의뢰인

손녀 한여울

발행일

2017년 11월 13일

글편집

이홍근

사진

김정재

디자인

배완

Copyright Ⓒ , 2017 *이 제작물은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글꼴을 사용하여 디자인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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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1 - 류재인 자서전  

달팽이의 첫번째 이야기 - 류재인 자서전. 달팽이는 자서전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남긴 자취를 찾아, 책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www.snailbook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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